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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소식지 24호(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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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전쟁없는세상소식지 24호(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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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에디토리얼아드레날린 저글링 1

CO note 병역거부자 활동수기어쩌다 나는 감옥에 가는가 2어쩌다 내 아들은 감옥에 가는가 5수감자의 시선으로 7주어진 시간과 자유의 시간 9다시 삶을 욕망하다 11미치지마 주지훈 14

Focus 시선집중국가 안보 그리고 병역거부강좌‘ , , ’

히틀러의 아이들 책읽기 +‘ ’ 16

평화교육 두 번의 경험, 18

Report 한국상황 특별 리포트

Special 기획기사전쟁이 게임을 만날 때 44게임은 시작됐다 48게임이니가 괜찮아? 53나는야 게이 게이머 , 57

Book review 서평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성찰 63

Series 기획연재가람이의 좌충우돌 세상읽기5 66채식 속으로 고고 몸보신이 필요할 때! ! - 67

Essay 평화에세이인턴을 마치며 WRI 70

사랑니와 군대 75

Report 재정보고후원해주셔서 감사해요~ 80

World WITHOUTWARNewsletter No.24 CONTENTS

▶▶ Report 한국상황특별리포트

한국의 병역거부 운동 .. 23한국사회에서 군대란? .. 25비폭력직접행동의 맥락속에서 병역거부운동이 갖는 의미 .. 27 이명박 정부 이후 강화된 사회통제 사회적 부정의 , .. 29나는 찾을 수 있게 한 병역거부 .. 31수감생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 억들 .. 34출소후의 삶들 .. 36평화연구를 위한 모색 .. 38병역거부에 대답하며 .. 40

편집팀

용석 여옥 형쥬, ,

인쇄기획 한울타리| 서울동대문구 제기 동 130-062 2 137-69

TEL : 924-9641,2 FAX : 927-5104

발행처 전쟁없는세상: 발행일 년 월 일: 2009 4 30제 호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호 : 24연락처 : 02-6401-0514주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 475-51

호 우 301 ( ) 121-826http://withoutwar.org | [email protected]

▶▶ Special전쟁과 게임 죽거나 혹은 죽이거, 나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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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4 1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한참 스타크래프트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수업끝나면 방으로 달려가, . PC는 아이들이 못마땅해하며 나는 술친구를 찾아 어슬렁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문듯 아이들과의 대화. , 에서 내가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담사가서 백제의 고분을 보며 이 벙커안에는 마린이 몇 마리 . “들었을까 라는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도 아이들과 어울리기 위해 스타를 시작했고 비?” . , 교적 늦게 시작했으나 얍삽한 전략 몇 개로 쉽게 먼저시작한 아이들을 이겼다 그리고 구속되기 전 마침. , 내 스타 배틀넷 승 패도 기록했다 을 달성했다 스타 승의 병역거부자라니 고백컨대 나1000 (1000 ) . 1000 ... 는 아드레날린 업그레이드한 저글링이 제일 좋았다.

이번 소식지에서는 특별기획으로 게임을 다뤘다 역시나 무턱대고 접근했다가 복잡하고 오묘한 게임‘ ’ . 의 세계에 대해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숨어있는 게임의 고수들의 도움을 받아 소식지를 완성할 수 있, 었다 일상의 군사주의를 게임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고자했던 의도가 얼만큼 성공했을지는 자신이 없다. . 우리의 전제를 증명하기 위해서 억지스럽게 논리를 전개한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든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 의 시작이 누군가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이야기가 확장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따름이다.

또한 호에는 특별한 기획이 들어가 있다 월 일은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세계병역거부자의 날24 . 5 15이다 매년 전세계의 한 지역에 초점을 맞춰서 국제적인 연대가 이루어졌었는데 년의 초점국가가 한. 2009국이다 그래서 월 일부터 일까지 비폭력트레이닝과 직접행동 국제컨퍼런스 평화콘서트 등 다양한 . 5 10 16 , , 행사가 열린다 외국의 참가자들 한국에 직접오지는 못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외국의 평화주의자들. , 을 위해 한국상황에 대한 특별 리포트를 제작했다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는 글과 병역거부자들의 글을 담. 았다 한국사람들에게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 재미없을 수도 있지만 따로 책자로 만들기보다는 소. , 식지에 포함시키는 것이 더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 이미 소식지에 실렸던 이길준과 우공의 글은 리포트. (에는 있지만 호 소식지에는 실지 않았다24 )

호 소식지가 월 일 병역거부자의 날 이전에 나온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이번 소식지가 병역거부24 5 15 , 운동을 포함하여 군사주의에 저항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그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ditorial

아드레날린 저글링용석 | 전쟁없는세상 책임활동가 + stego @ 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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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의무적으로 국군아저씨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이 있었다추운 날씨에도 나라를 지켜주시. 느라고 고생이 많으세요 힘내세요 라고 썼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군인아저씨는 늠름하. . . 고 씩씩한 우리의 수호자였다 이러한 생각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에. . 는 이왕 군인이 되려면 가장 강하다는 해병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열아홉 살 때 받은 군대 신체검사, 에서는 급을 받고 내심 기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나라에서 보증하는 튼튼한 급 남자였다1 . 1 .

엉뚱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모범생이었던 내가 대학교 때 선배들을 따라가서 본 집회는 큰 충격이었다 전경들과 몸싸움을 하다니 그들은 경찰이 아닌가 저래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집회를 . ! ? ? 다녀와서는 이불 속에 들어가서 몸을 벌벌 떨었다 대단한 범죄를 저지른 듯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 . 본격적으로 학생 운동을 시작한 후로 공권력은 언제나 나와 반대편에 있었다 그들은 법질서를 지킨다며 . 해고당한 노동자와 농민 철거민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몽둥이와 방패로 끝없이 진압, , 했다 법과 공권력은 언제나 가진 자들의 편이며 이 자유민주주의라는 나라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다르지 . 않았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전투경찰은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만 생각했지 병역 자체를 거부. 하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 내 머리 속에는 가장 억압받은 자에게 가장 먼저 연대하라는 말이 항상 빙빙 돌았다 지“ ” . 금 생각해보면 책임질 수도 없는 거대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그 말에 매료되었다 년 월 그 말은 , . 2003 3 , 나를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까지 가게 했다 그 때 바그다드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막기 위해 전 . 세계의 반전 운동가들이 몰려들었는데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침공이 시작되더라도 끝까지 이라크에 남아. 있겠다고 다짐했지만 미국의 선전포고가 발표되고 난 후 나는 바그다드를 빠져나왔다침공이 기정사실이 , . 된 상황에서 이라크에 머무르는 것보다 한국에 돌아와서 전쟁 반대와 한국군 파병 반대 여론을 만드는 것도 차선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끝까지 이라크에 남아있지 못한 것에 대해서 부끄러, 웠다.

어쩌다 나는 감옥에 가는가은국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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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침공이 시작되었다 집들은 무너져 내렸고 사람들은 마구 죽어갔다 총에 맞아 죽고 폭탄에 터. . 져 죽고 건물에 깔려 죽었다 나는 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도망쳐 나온 곳에서 도망쳐 나오지 못한 . TV . ,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아무도 이 학살을 멈출 수 없었고 심지어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조차도 막을 . , 수 없었다 국익을 위해서 미국의 날강도질에 후방 지원을 하다니 이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 . 였다 그 때 나는 마음먹었다 이런 전범국의 나라에서 병역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나는 부조리한 세상을 . . . 바꿀 아무런 힘이 없지만 적어도 이런 부조리를 강화시키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라크 , . 파병을 선택한 이 나라 정부는 나에게 국방의 의무를 요구할 권위를 잃어버린 것이다.

같은 해 월 나는 팔레스타인에 있었다 이라크 반전 운동을 계기로 국제 평화 운동에 눈이 떠지게 5 , . 된 것이다 한 달간 머무른 팔레스타인에서는 죽음은 항상 나와 가까이 있었다 마을에서는 늘 곳곳에 이. . 스라엘 저격수들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고 테러리스트를 색출한다는 검문소에서는 여권을 요구하며 총을 들이밀었다 장전된 총에 조준되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오줌이 지리고 온 몸이 얼어붙어 숨쉬기가 어. ? 려운 공포였다 한 밤 중에는 폭탄이 떨어져서 땅이 흔들렸고 탱크소리와 장갑차 소리 총소리가 들려왔. , 다 여기서 죽지 않고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은 거대한 홀로코스트 수용소였다 수 십 년 동. ? . 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은 나치에게 그들이 당한 그 방식 그대로 팔레스타인을 압살해가고 있었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내가 팔레스타인에서 돌아와 가지게 된 의문이었다? .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한 현재까지의 나의 결론은 모든 권력의 집중은 악이다 라는 것이다 예전의 나치“ .” . 나 지금의 이스라엘의 공통점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누가 가지고 있던지 간. 에 매우 위험한 것이며 필연적으로 상대적 약자를 지배하게 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따라서 나는 모든 권, . 력의 집중을 반대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무조건적인 비폭력주의자는 아니다 폭력은 맥락적으로 판단되어야하며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 방어는 필요하다 군대의 원칙적인 존재 이유 역시 나라를 방어하는 것이었지만 예전의 베트남 파병 그. , , 리고 지난 이라크 파병은 나라를 방어하는 본연의 임무를 떠난 범죄행위였다 이러한 범죄행위에 대한 반. 성이 없는 정부가 국방의 의무를 요구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 또한 지금과 같은 한국의 군사력 확대주. 의는 평화가 아니라 무력 충돌과 전쟁 위험성을 높이는 데에 기여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병역 거부가 군. 사력을 약화시키고 나라를 위험하게 만드는 범죄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지만 나는 군사력 축소, 가 전쟁을 방지하는 진정한 길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러한 신념에 따라서 병역을 거부한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 다 나는 각자의 신념에 따라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 사람들과 군사력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 존중한다 그들은 평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론이 나와 다른 것뿐이다 하지만 그들과 다른 나의 신념에 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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른 행동에 대해서 실형을 선고하는 지금의 법은 민주사회의 다양성을 파괴하고 개인의 사상과 신념의 자, 유를 억압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동의할 수 없는 강제 징집과 감옥행 중에 한 가지만을 고르라는 하. 는 것은 협박에 가까운 국가폭력이다 이러한 협박에 굴하지 않는 것은 내 자신과 이 사회 모두를 더욱 . 건강하게 만드는 선택일 것이다또한 나는 생명을 보살피는 의료인의 한 사람으로서 군사력 확대를 반대. 하고 모든 종류의 전쟁을 거부하는 것이 병을 치료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2009.2.19

은국

입영일에 병역거부선언2009.02.19 도봉경찰서에서 경찰조사 받음2009.03.30

검찰조사2009.04.08 현재 재판 대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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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나쁜 놈입니다 국방의 의무가 국민의 의무인 대한민국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놈이지요. . 나도 이런 아들을 욕하고 비난했습니다 남 다 가는 군대를 그것도 주 군사훈련만 하고 지하철에서 공익. , 4으로 근무하라는 것도 마다했을 때 정말 미웠습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어미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지 진, . , 정 가족을 생각하는 자식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도 이기적이고 자기 생각만 하는 나쁜 놈이라. 고 욕했습니다.

나는 그 애를 알지 못했기에 내가 편하고 싶었기에 아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미, . 인 나는 그저 아침에 따뜻한 밥을 먹이고 저녁이면 따뜻하게 재우고 싶은 마음밖에 없습니다 신념 정. ? 의 잘못된 체제 다 개나 물어가라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그래 다 좋다 너만 안 하면 누가 뭐? ? ! ? , . 라냐 여호와의 증인도 있고 다른 애들도 있지 않은가 다만 내 아들은 조용히 살아 주길 바랬습니다 좋? ? . 은 한의사로서 어려운 이웃들을 보살피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단체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서 누가 보, 아도 보기 좋은 이웃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동안 아들은 내가 모르는 곳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많이 다녔습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지구, . , , 이라크에서 또한 내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가슴 아프게 겪고 왔고 또 그 일이 그에게 많은 , 고민과 갈등을 갖게 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평화이고 비폭력이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총과 무기가 없는 세상이. 라면 살상도 전쟁도 없으리라고 믿는 아이의 신념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모여서 가위 바위 보로 술래를 , 정하는 것처럼 단순합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 모이고 합쳐지다면 진정 전쟁없는 세상이 오리라고 저도 . 믿습니다 모두 총을 거두고 무기를 없앤다면 지금처럼 끔찍한 학살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 .

저는 아들의 신념을 믿습니다 그것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나는 그 아이의 어미이기에 힘. 을 더 해주고 격려해주며 이 힘든 시기를 겪어 나갈 것입니다 가족이 외면한다면 누가 이 아이를 응원하.

어쩌다 내 아들은 감옥에 가는가윤혜숙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은국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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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힘이 되어 주겠습니까 지난 몇 달 간 저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수히 많은 질책과 비난을 받았습니? 다 애를 어떻게 길러서 그러냐 에미가 오냐 오냐 하니까 자식이 제 멋대로다 그런 나쁜 놈은 호적을 . ? . 파 가라고 그래라 그런 말들을 들으면서 나는 그들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를 사랑하기. . 에 나를 괴롭히는 내 자식이 미웠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이해하기 어렵고 인정하기 힘든 길일지라도 본인이 꼭 . 가야겠다면 가야만 할 길이 있기에 나는 내 아들을 보냅니다 단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일은 내 아, . , 들로서 끝이 나길 바랍니다 세월이 가면 반드시 모병제가 될 것이며 병역거부로 감옥에도 갔다는 전설이 . , 생길 것입니다 욕하고 비난하고 격려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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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구치소 생활에 많이 적응됐는지새벽 시 반 만 되면 눈이 저절로 떠집니다 눈을 떠서 제일 먼, 5 . 저 확인하는 건 창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죠 습관적으로 날씨를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

월에는 하루 이틀을 제외하고 늘 화창했습니다 그렇게 맑게 개인 하늘을 보면서 방안의 사람들에게 4 . 농담을 주고받는 일이 잦아졌답니다 야 날씨 좋다 오늘 북한산에 김밥 싸 들고 놀러나 갈까 그. “ , . ?” “럼 물통에 소주 담아 갈까요 시덥지 않은 농담이지만 그 속에는 답답함이 묻어나오기에 끝 맛이 조금 ?” , 씁쓸하긴 합니다.

그래도 처음 이곳에 올 때에 비해 저는 두려움과 긴장을 많이 털어냈습니다 미처 예상치 못한 구속, . 이었기에 구치소에 끌려 온 첫날에는 많은 것이 낯설고 두려웠지요 그러나 지금은 하루하루 적응해 나가, . 면서 그리고 제 본연의 모습을 되찾으려 애쓰면서 낙천적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 .

운동접견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남은 시간에는 주로 신문과 책을 읽는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 ․부터 태백산맥 을 읽고 있는데 지금 마지막 권을 보고 있지요 염상진 하대치 등 당대의 모순과 시< > , 10 . , 대적 요구에 담대하게 대처하는 인물들을 보며 다른 것은 몰라도 뜨거운 열정만큼은 뒤처지지 않으리라 , 다짐합니다 그리고 사회에서는 절대 읽지 않았을분량에 질려서 책을 여기서 읽을 수 있게 된 작은 . ( ...) , 행운에도 감사하면서요.

지난 일에 심리공판이 있었습니다 제 담당 판사가 기이하게도 너무 부지런한 사람이더군요예정시15 . . 각이 오전 시인데 분 일찍 제 심리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지난 일 공판에 이어 이번에도 간발10 , 10 . 1의 차로 제 얼굴을 못 본 분들이 있었대요 다행히 저희 측의 증인 신청이 받아들여지고 재판도 월 말. , 5로 연기됐습니다 그 때는 오후 재판이니 늦게와서 제 얼굴 못 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곳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물론 모두 국가에 의해 죄인으로 몰린 사람들이지. ‘ ’

수감자의 시선으로 김영익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영등포구치소 수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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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요 하지만 제 각각 사연이 다르고 그에 따라 성격도 다릅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 . , 가 아직도 모르는 세계가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제 사정을 궁금해하고 걱정. 해주기도 하고요 당연히 저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요. ( ^̂ )

그리고 가끔은 정말 황당한 사연도 있습니다 귀가길에 너무 지쳐서 길가에 버려진 자전거를 타고 가. 다가 중간에 어느 집 대문 앞에 쉬었는데 그 사람을 빈집털이범으로 생각한 이웃주민이 신고해 경찰이 , , 출동했대요 그래서 엉뚱하게 자전거 절도 혐의 어쨌든 자기 자전거가 아니니까로 들어온 사람도 있지요. ( ) . 물론 빵잡이들의 허풍과 거짓말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이런 얘기는 곧이 곧대로 믿을 필요는 ‘ ’ , 없습니다 그저 웃고 즐기는 그러면서 수감생활의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털어내려는 노력의 일환일 뿐입. , 니다.

한 사회의 인권수준을 알려면 감옥을 살펴보면 된다고 하죠 한국의 감옥에서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 ? 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일테지만 그동안 먼저 거쳐간 양심수들이 싸운 덕분에 많은 부분이 , 개선돼 있더군요 그러나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많이 있는 듯합니다 처음에는 심리적으로 위축돼 그런 것. . 을 살펴 볼 겨를이 없었지만 지금은 하나 둘 개선을 요구할 점들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그래서 여기 들어, . 온 김에 재소자 처우개선에 필요한 요구들을 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첫술에 배부를리 만무하. 고 계란으로 바위치기 식일 겁니다 그러나 뭐든지 시작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하나씩 한걸음씩 나아가, . . , 려 합니다.

년 월 일2009 4 19영등포 구치소에서 김영익

김영익

입영일 병역거부2008. 11. 4 경찰조사2009. 2. 4.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2009. 2.27. 심 첫재판 2009. 4. 1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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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은 운명의 시간 신들이 모든 결정을 내린 . , 시간이고 그래서 인간이 무력해지는 시간이다 만일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만을 살았다면 인간의 시. 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인간의 역사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시간 인간의 역, . , 사는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며 주체적인 결정을 내리는 창조성의 시간 주체성의 시간일 수밖에 없다, .

그런데 세속의 세계에는 창조성과 주체성으로서의 시간을 끊임없이 질서화하는 힘이 존재한다 경쟁이. 라는 이름으로 부자인 자와 가난한 자를 나누고 가난한 자를 배제하는 힘 즉 권력이 존재한다 이 권력은 , .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힘이고 인간의 삶과 생명이 계속 유지되게 해야 하는 힘이다 그래서 이 , . 권력은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살아 있게 만든다 그리고 동시에 권력에 종속되며 포섭되. 는 삶을 계속 생산한다 이처럼 종속된 삶을 계속 생산하며 살아 있게 하는 권력을 삶권력 이라. (biopower)고 한다.

나의 군대 입영일이며 병역거부 기자회견일인 년 월 일은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된 시간이었2009 1 6다 강제된 입영일이 정해지기 전에도 항상 입영일을 염두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야 했고 그럴 때마다 . 정확히 알 수 없는 불안과 우울이 찾아오곤 했다불안이 깊어져 침울해진 어느 날 나는 스스로를 실제하. , 는 군대가 아닌 내가 상상한 군대에 가둬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군대에 있지 않음에도 나의 감정‘ ’ . 과 생각은 내가 만든 군대에 종속되어 생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삼 군대라는 국가권력 기구가 내 삶 ' ' .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게 된 씁쓸한 순간이었으며 내가 공부한 삶권력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 고민하게 되는 짧은 순간이기도 했다 이후 내 삶의 어떤 부분이 얼마만큼 국가권력 기구에 포섭되어 있. 는지 삶이란 무엇인지 국가권력이란 무엇인지 등 거대하면서도 근원적인 고민들이 계속되었다, , .

병역거부 기자회견 이후에 내가 상상한 군대라는 것에 내 삶을 가둬두고 불안해하는 일은 줄어들‘ ’었지만 군대에 대한 고민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확장되고 있었다 기자회견 이후 경검찰과 언론사 기자들. , 그리고 친구들을 통해 병역거부한 이유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듣게 될 때마다 나는 군대와 내 삶‘ ?’ ,

주어진 시간과 자유의 시간 우공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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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회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병역거부 이유서에 쓴 내용들이 주로 나의 대답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군대라는 것과 새로운 방식으로 대면하고 싶었고 이러한 . , 나의 의지와 전쟁없는세상 상임활동가 용석 님 여옥 님의 배울 것이 많은 활동 경험이 더해져 국가< > , < , 안보 그리고 병역거부 라는 강좌를 기획하게 되었다 이 강좌의 세부 주제는 역사 전쟁 종교 법 평화> . , , , , , 안보로 한홍구 조정환 강인철 이재승 임재성 정희진 등 명의 선생님들이 강의를 하실 계획이다, , , , , 6 .

나는 이 강좌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거대하면서도 근원적인 질문들을 풀면서 병역거부 운동의 역사와 , 활동을 재조명하고 병역거부 운동의 과학과 철학의 진화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서 병역거부를 . 고민하며 고군분투를 하고 있을 사람들에게 이 강좌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현재 이 . 강좌에는 출소한 병역거부자들 재판을 기다리는 병역거부자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사람들 활동가들 병, , , , 역거부를 둘러싼 고민을 쟁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 등 여명이 함께 하고 있다 이 강좌가 나를 10 . 비롯하여 다른 수강자들에게 활력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기서 제기되는 쟁점들과 새로운 생각들이 우. 리 삶 속에 내재된 자유를 좀 더 풍부하게 해주길 바란다.

우공

입영일 당시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2009. 1. 6. 경찰조사2009. 1. 29. 심 첫 재판2009. 4 .14. 1

현재 불구속으로 재판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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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 다녀왔다 요즘 수업시간에 를 다루고 있는데중세는 종교의 전1. . , 中世史성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불교 등 지금의 세계종교가 대중의 정신에 뿌리를 깊게 박. , , 고 찬란한 녹음을 뿜어내던 시기가 바로 당시이다 그 도저한 정신들은 다신교라 할 수 있는 소박한 민간. 신앙들을 힘차게 정복해 나갔다 대체 무엇이 그러한 정복을 가능케 했을까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그 . ? 세계의 맛을 보여 주고 싶어 고심하다가 각 종교의 최대 사원을 순례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서울의 이슬람사원과 명동성당 조계사를 가기로 했다 다행히 세 사원은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 .

먼저 이태원의 이슬람사원에 갔다 미리 예약해 두어 사원 층의 교육실에서 영상물과 함께 이슬람에 . , 1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강사는 히잡을 두른 젊은 터키인 여성이었다 그의 한국어는 매우 수줍어 보. . 였다 강의를 다 듣고 나서는 당직자로 보이는 무슬림 남성의 안내에 따라 모스크 내부로 들어갔다 꽃과 . . 식물 그림으로만 정갈하게 채색된 벽은 아름다웠다 질서정연한 무늬의 아름다움에 금세 매료됐다 사원을 . . 나와 우리는 근처의 이슬람 식당에서 배를 채웠다 나는 양고기 요리를 먹지 못해 샐러드와 터키식 빵으. 로 허기를 달랬다.

전철을 갈아타며 명동성당에 도착했다 성당은 이슬람사원의 곡선에 견주어 날카롭게 치솟았다 작고 . . 붉은 벽돌 수십만 장으로 촘촘하게 축조된 성당은 세속에 물든 의식을 압도했다 우리는 미사가 진행 중. 인 내부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돌며 건물의 미려함을 감상했다 오랜 역사가 깃든 만큼 엄숙한 멋이 . 풍겼다 거기에는 순교의 아픔과 더불어 그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담긴 듯했다 그리고 명동답게 인파로 부. . 산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살 학년이다 더 이상 교사의 인솔을 달가워하지 않는 나이다 아이들의 뜻대로 14 , 7 . . 팀별로 과제를 주었다조계사에 가기 위해 팀별로 종각역 번 출구에서 만나자 자세한 설명을 들을 새도 . 2 . 없이 아이들은 흩어졌고 나도 빠른 걸음으로 명동의 번화가를 헤쳐 지나갔다 명동에서 종각까지는 청계천. 을 지나면 금방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조계사에는 가지 못했다 빨리 온 팀은 바로 내 뒤에 도착했지만 가. .

다시 삶을 욕망하다 , 김훈태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email protected] 과천자유학교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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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늦은 팀은 시간 반을 넘기고 말았다 저녁이었다 귀가 시간도 임박했고 무엇보다 모두 지쳐 있었다1 . . . 초조하게 아이들을 기다리느라 나는 기진했고 맥진했다 우리는 종각역에서 해산했다 이미 커 버린 아이. . 들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는 선을 넘은 지 오래다 속마음을 숨긴 채 담임의 존재를 불편해 하고 집요하, . 게 교사의 허점을 파헤치는 사춘기 아이들을 감당하기란 버거운 일이다 아이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 언제나 쓸쓸하다.

종각에 있는 서점 반디앤루니스에서 신형철의 평론집을 샀다 몰락의 에티카 그는 쓴다 온2. . ‘ ’. . “세계가 성공을 말할 때 문학은 몰락을 선택한 자들을 내세워 삶을 바꿔야 한다고 세계는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몰락을 선택한다 그렇다 나는 몰락을 선택했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세계는 변했을까 삶은 .” ... . . ? 바뀌었을까 세계가 변했는지는 모르겠고 확실한 건 내 삶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감옥의 철문을 열고 나? . 와서야 내 삶이 노선에서 이탈해버렸음을 실감했다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했다 그러나 감옥살이를 . . 거치며 응축된 두려움은 생의 촛불을 훅 꺼버렸다.

촛불은 꺼지고 나는 재가 되었다어떻게든 기억을 되살리려 했으나 내가 누구였는지 알 길이 없다짙은 안개처럼 시간은 의식의 골을 타고흘러내렸다 나는 주저앉았다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한다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리며 몸을 떨어도되살아오는 것은 없다

한동안 우울에 시달렸다 웃었지만 울었다 황폐해진 내면을 견디기 힘들었다 스타일을 구기고 싶지는 . . . 않았다 나라는 이미지의 탈을 벗어던질 수도 쓰고 춤을 출 수도 없었다 남은 건 막막한 미래였다. ‘ ’ , . . 감옥에서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 견뎌냈던 것이다 바깥에 나가면 뭐든지 . .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을 주문처럼 외우며 지루하고 우울한 날들을 이겨냈다남은 건 사랑하는 사람, . 들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이었다 책임감 파산한 자의 마지막 만원 빚처럼 그건 들고 서 있기 힘든 무. ... 10게였다 그걸 들고 있기 위해 남몰래 피를 흘려야 했다언제까지 피를 흘리고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게 가. . 장 두려웠다 사실 내가 그것밖에 안 되는 그릇이라는 자각이 가장 아팠다 몰락이란 그런 것이었다. . .

대안학교에서 다시 아이들을 만났지만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다 그건 기억의 상실에 가까웠다 좋3. . . 은 교사가 꿈이라던 사람이 아이들을 만난 게 기쁘지 않다니 새롭게 만난 아이들은 무엇엔가 단단히 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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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듯했고 나의 무능과 부조리를 찾는 일에 혈안이 된 듯했다 칠판 앞에서 나는 외로웠다 발도르프라는 . . 낯선 이름의 교육 앞에서 자신 없어 하는 교사에게 아이들은 철저히 잔인했다 그만큼 나는 위축됐고 무. 기력했다 조용히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

더는 떨어질 수 없는 바닥이 나를 밀어냈다 몰락한 자의 슬픔을 들어 줄 귀는 더 이상 세상에 없다. . 세상은 이미 몰락한 자들의 아우성으로 가득하다 이제 그것은 지겨운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 스스로 깨달. . 아야 했다 자기를 학대해서는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 나는 더듬더듬 내가 사랑하던 생의 기쁨들을 찾. . 아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자전거를 탔고 책을 샀고 여행을 갔다 그러나 아직 음악을 듣지는 못했다 물. , , . . 론 글을 쓰지도 못했다 흡사 재활훈련이었다. .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이 보여 주어야만 하는 역할극의 후유증임을 아무도 바라지 않지만 또는 모두. . , 가 그렇게 바라고 있다고 믿지만 본의 아니게 진실 을 외치고 갇혀버린 자에게 일상은 연극이 되고 만, (?)다 내면의 일렁임을 감추고 마치 평화의 사도가 된 것처럼 연기를 한다 감옥에서 그런 연기를 하느라 나. . 는 온몸의 힘이 다 빠지고 말았다 나는 애당초 그런 인격이 아니었다 얼굴에 달라붙은 가면을 떼기까지 . . 꼭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아이들을 보내고높이에서 땅바닥으로 힘껏 내동댕이쳐진 듯한 육신을 달래기 위해 혼자 카페에서 4. , 따뜻하고 달콤한 커피를 천천히 마신다 몸을 일으켜 서점에 가 책을 고른다 서점을 나와 아이들과 가기. . 로 했던 조계사에 혼자 들러 예불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는다 절 앞 상점에서 염주를 산다 인사동에 가서 . . 저녁을 먹는다 집에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이 글을 쓴다. .

아직 음악을 듣지는 못하지만 시집을 사 읽고 이따금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럴 때 아주 가느다란 행복. 감을 느낀다 특히 빛나는 문장을 읽을 때 나는 천재들의 문장에 몸서리치는 걸 즐긴다 자신의 무게를 . . . “바람에 놓아준 눈송이들은 지상의 시간을 떠돌다가 교회의 마당에 신의 호흡처럼 흩어져 있었네와 같은 ”시인 김경주의 문장을 보라 나는 그 쾌감을 사랑한다 결코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문장의 성취를 그게 바. . . 로 근래 내가 기억해낸 나의 욕망 중 하나이다 나는 진정성의 한 귀퉁이를 찌르고 싶은 것이다. .

신형철은 이어서 말한다 몰락은 패배이지만 몰락의 선택은 패배가 아니다 세계는 그들을 파괴하지. “ . 만 그들이 지키려 한 그 하나는 파괴하지 못한다 그렇다 나는 파괴됐지만 나의 욕망은 그 누구도 파괴.” . 할 수 없다 나는 패배하지 않았다. .

토2009.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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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칭 미네르바 씨가 출소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봤다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이 시대 꼰대들의 너절함과 . 저급함 따위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단지 내게는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미네르바의 표정이 너무 강렬. 한 이미지로 남는다 세상에 속아서 넋이 나간 그 사람은 이 세상은 제정신이 아니에요 이 세상이 미쳤. ‘ . 나 봐요 맨정신으로 살면서 미치지 않으려면 기대를 버리세요 그래도 힘들면 약도 좀 먹고 더러는 자살. .. 도 필요할지 몰라요라고 떠드는 것 같아서.’ .

미네르바와 노무현과 신해철과 주지훈과 장자연이 다 한 세트로 뇌리를 훑고 지나간다 거기엔 전, , , , . 체적인 맥락을 관통하는 어떤 거대한 음모가 있지 않을까 세상에 거대한 암적 존재가 이 모든 시나리오? 를 짜 놓은 듯한 기분 내 언어는 그들 사이에 연관관계를 깊이 통찰하지 못하지만 분명히 뭔가가 있지 . 않고서야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다보면 나마저 정신분열이 아닌가 싶다. .

친구가 방을 빼면서 두고 나간 대학교 학년 생물학 교재 그 가운데 진화는 언제나 가장 흥미로운 주1 . 제다 척추동물은 어떻게 생겨났나 척추가 생김으로써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 ? ? 결과인가 싸구려 음모론보다 백배는 정직한 세계 거기엔 미지의 세계가 있을지언정 형용모순이나 사기 ? . 따위는 없다.

그러나 억 백만 년 동안 지구에서 가장 우월한 지위를 차지했던 공룡 이야기도 척추 덕분에 직2 1500 , 립이 가능해졌고 자유로운 손을 이용해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영장류 이야기도물을 통과시키지 않, 는 껍질을 가진 알과 수분 손실을 줄여주는 각질의 비늘 덕분에 육상생활이 가능해졌지만 피부호흡이 불가능해져서 폐가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파충류 이야기도 왜 이 세상이 이런지 설명해주지 못한다, .

인간이 석유를 좀 더 갖겠다고 남을 죽이고스타를 만들어주겠다며 성상납을 강요하고 악에 받친 댓, , 글로 사람을 두 번 죽이는 이런 세상 따위는 진화라는 틀로 설명하지 못한다 봄마다 황사가 날리고 지. , 구온난화로 봄부터 초여름처럼 푹푹 쪄대고 대기오염으로 파란 하늘이 잘 보이지 않고 그래서 봄을 빼앗, ,

미치지마 주지훈, 나동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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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기분에 사로잡히고 마초들과 위계질서와 돈에 환장한 사람들로 가득찬 이런 세상 따위는, .

지구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서 보면 지금 지구는 비교적 추운 시기에 속해 있다 화산재가 지구를 뒤덮. 는 바람에 대기가 순환하지 않아 호흡곤란으로 수많은 공룡이 죽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 대기는 아주 깨끗하다 지구는 전혀 위기가 아니다 인간들만 고생이 많다. . .

그러니 고작 일백 년도 안 되는 시간을 이런 고통 속에 살아야 하나 고민하지 말자 왜 이런 시대에 . 그것도 하필 한국에서 도 아니고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 고작 이런 음모 속에 살아야 하나 고민하지 , F4말자 하고 싶은 거 다하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그래도 짜증이 나면 이민도 가고 자전거 여행도 가고 데. 모도 하고 그러고 살자 어처구니 없는 우연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

요즘 열심히 보고 있는 애니메이션 캐산 에 등장하는 주인공 캐산은 인조인간이다 시작부터 그는 이< > . 유 없이 로봇들을 죽인다 자신도 왜 로봇들을 죽이고 있는지 모른다 왜 멸망이 시작되었는지 왜 로봇들. . , 은 캐산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는지 왜 캐산은 그들을 상대로 싸우는지 아무것도 설명하지 , 않는다 그런 캐산이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는 왜라는 질문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을 가진 이들 . ‘ ’ . ‘ ’끼리 서로 기대기 때문이다.

이 황당한 설정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세상이 굴러가는 이치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이 세상에 뚝 떨어졌다 진화 따위론 설명되지 않는 세상에 그리고 일생에 걸쳐 남. . . 을 짓밟고 욕한다 각자는 세상 속에서 고립되고 타인에게 혹은 자신에게 공격을 가하며 존재의 불안을 . 달랜다.

어젯밤 꿈에 주지훈이 나왔다 그 손을 잡았어야 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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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자들의 행복한 책읽기 히틀러의 아이들< >

년 월 일 금요일 저녁 시 민중의 2009 4 10 7 , 집에서 평화주의자들의 행복한 책읽기 오프모임이 열렸다 책읽기 게시판에 올라온 서평을 먼저 읽. 고 이 책의 기획자이자 추천을 했던 염창근의 이, 야기로 모임을 시작했다 어떤 분들은 책을 읽으. 면서 힘들었다고 하고 어떤 분들은 생각보다 쉽, 게 읽혔다고도 했는데 나치와 파시즘을 무조건적, 인 악으로 규정하면서 자연스레 연합군이 미화되는 방식으로 내용이 진행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높았다 또 실제 본문에서는 청소년이나 .

젊은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를 제목에서 ‘Youth’아이들이라고 한 것은 마치 어린 아이들이 ‘ ’ , ‘어떻게 히틀러를 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선택하’…게끔 하기 위해 선정적인 제목을 지은 것은 아닌지 아이들은 미성숙한 존재라는 편견을 가지고 , 있었던 것은 아닌지 문제제기가 있었다.

어린시절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 아람단 해양소년단 등의 기억을 , , , 떠올리며 억압된 욕구를 해소하려는 방식으로 청소년들이 매력을 느끼는 모험 제복 깃발 등의 , , 것을 청소년 고유의 특성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그런 것들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는지, 그들을 억압하고 있는 현실을 봐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른들이 망쳐놓은 현실과 암울한 미. 래에서 히틀러는 재건의 현재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열광을 했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 매력을 느끼고 열광하는 것이 파시즘대신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그 내용이 무엇인가보다는 조건 , 자체를 해체해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국가 안보 그리고 병역거부 강좌‘ , , ’ 히틀러의 아이들 행복한 책읽기+『 』

여옥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이번 책읽기는 병역거부자 염창근씨가 기획한 책 히틀러의 아이들로 진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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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레 청소년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청소년운동이 청소년을 바꾸려는 운동이 . 아니라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려고 하고청소년운, 동이 인정받는 것도 결국 어른들의 시선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나이어린 청소. 년의 경우 운동사회에서 희소가치가 있어 이용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주목받고 인정받고자하는 , 욕구가 있는 청소년들이 이것을 또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인정받고자 하는 욕. 구를 왜 여기서만 채울 수 있는 것인지 탈학교 , 청소년들이 가지는 삶의 조건들에 대해도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촛불집회 이후 생겨난 청소년조직. 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다들 궁금해했는데 지금까, 지 거의 남아있지 않고 일제고사반대운동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히틀러의 아이들에서 홀로코스트를 빼고 보면 예전 학생운동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목표달성을 위해 조직적이고 폭. 력적인 수단을 중시하고 훈련하는 것은 단지 유겐트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전체주의나 집단. 주의를 해체하기 위한 운동이 되지 못하고 그저 적에 의한 반작용으로 쉽게 진행되는 것이 또다른 문제를 발생시키게 되어 위험하다는 지적이었다.

다지원기획강좌 국가 안보 그리고 병역거부< , >

병역거부와 관련한 다양한 관점과 쟁점들에 대한 강좌 국가 안보 그리고 병역거부 가 다중< , >지성의정원에서 열렸다 올해초 병역거부를 하고 .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우공오정민이 강좌를 기( )획하였고 전쟁없는세상도 함께 했다 월 일 목. 3 26

요일 저녁 시반 한홍구 선생님의 병역거부의 7 , '역사와 현재를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 저녁에 탈' '근대 전쟁과 병역거부 기독교 평화정신과 병역', '거부 법과 병역거부 평화운동으로서의 병역거', ' ', '부 한미동맹의 변환과 신자유주의를 통해 본 징', '병제의 성별 정치학 변화하는 국가안보 담론과 : 병역거부 운동의 강좌가 월 일까지 총 강으' 4 30 6로 진행되었다 한홍구 선생님을 비롯한 조정환. , 강인철 이재승 임재성 정희진 선생님이 강의를 , , , 진행해주셨고 병역거부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나 , 고민하고 있는 분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유료로 진행되는 강의라서 관심이 있어도 부담되어 못듣는 사람이 있을까봐 전쟁없는세상 후원회원의 경우 강의비 일부를 지원하기도 했다. 수강생은 모르는 사람들보다는 아는 사람들이 더 많긴 했지만 계속 활동을 함께 해오던 활동가들, 에게도 쟁점들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다 매 강. 의가 끝나고 뒷풀이에서는 강의 때보다 더 많은 이야기로 일상에서의 고민들과 활동을 하며 느끼는 고충들을 나눌 수 있었다.

민중의 집에서 진행된 행복한 책읽기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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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 나눔의집 마을학교 평화교육

삼양주민센터에서 활동하는 오정록씨의 제안으로 공부방 마을학교를 시작하려는 성북나눔‘ ’의집 선생님들을 만나게 된 것은 년 월 초2008 6 . 전쟁없는세상은 총회준비에 사무실 이사준비 계, 속되는 촛불집회까지 겹치면서 정말 정신없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제안을 받고나서 우리가 하고싶. 은 우리가 할 수 있는 평화교육에 대해 충분히 , 고민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다. 평화교육 인권교육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서 보고 , 주제와 목표를 정한 후에 활동을 고른 후 여러 차례 논의를 거쳐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수정하는 작업을 거쳤다 마을학교 평화교육은 년 월 . 2008 6일부터 월 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시반18 7 16 3

부터 시간씩 총 회차를 진행하였고 진행은 여2 4옥 현지 조은 용석이 함께 했다, , , .

진행한 프로그램 간략정리< >

회차 오리엔테이션 1 : 마음열고 친해지기 수업에 대한 욕구 파악- ,

하기소개카드로 소개하기 욕구파악 가게놀이, 회차 타인에 대한 이해와 수용2 : (1)경청의 중요성을 체험을 통해 이해하기-

소개카드로 소개하기 듣기연습놀이, 회차 타인에 대한 이해와 수용3 : (2)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것 받아들이기-

소개카드로 소개하기 애니메이션 동물농, ‘장과 퀴즈’회차 타인에 대한 이해와 수용4 : (3)다르다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인정하기 -

소개카드로 소개하기 애니메이션보고 그림그, 리기

마을학교는 공부방이 시작하는 단계라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아이들이 수업을 하는 시. 간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어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평화교육 두 번의 경험 ,

여옥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전쟁없는세상에서는 년 여름 성북 나눔의집 마을학교에서 그리고 년 월 인수동 겨울방학교실에서 2008 , 2009 1두 차례에 걸쳐 평화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제안을 받고서는 의욕만 가지고 시작해서 미흡한 부분이 많았지만. , 앞으로도 꾸준이 이 부분에 대한 고민과 의지가 있기 때문에 두 번의 평화교육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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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을만큼 매우 산만했고 매 시간 인원변동도 , 심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이 중심이었는데 그 . , 친구들이 동생을 데리고 오기도 해서 참가하는 아이들의 연령대가 살부터 살까지 다양해졌다4 10 . 활동게임의 수준을 평균수준에 맞추다보니 정작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생겼다 아직 . 글씨를 못읽는 아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 참여자들이 어리다보니 집중력이 짧아서 많은 것을 할 수 없는데 의욕에 넘쳐서 준비한 프로그램, 은 절반도 진행하기 힘들었다 아이들은 진행자의 . 의도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

하고 나가기도 했다 그러한 돌발 상황에서 우리, . 는 능숙하게 대처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행이도 프로그램을 함께 준비한 여. 러 명이 같이 진행하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해 아이들을 나눠맡아 적극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평화에 대한 직접적인 얘기보다는 쉽고 재미있는 놀이를 통한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아이들은 선생님들의 말과 행동에서 배우기 . 때문에 사소한 몸짓 하나라도 신경쓰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인수동 겨울방학교실 평화교육

인수동겨울방학교실은 년 월 일 목요2009 1 8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 시 시반 총 회10 - 11 3차로 진행되었고 전쟁없는세상 여옥 경계를 넘, , 어 강아지똥 수진이 함께 준비하고 진행을 하였, 다 제안을 받고 해보기로 결정한 이후에 갑자기 . 대체복무제가 뒤집히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폭격했다 그래서 두 단체 모두 정신없이 바쁘고 제.

대로 논의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하. 기로 했던 결정을 번복할 수도 없어서 이스라엘 대사관 앞 집회를 끝내고난 밤 시에 회의를 해10가면서 준비를 했다 부족한 경험이었지만 지난번 . 평화교육이 이번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과 진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수급자가. 정 아이들 약 명과 함께할 평화교육은 일상적으20로 위축되고 감정적인 분출이 쉽지 않은 저소득층 아이들이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놀이

소개카드로 자신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평화교육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욕구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가게놀이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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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주의 프로그램과 방중 프로그램이라는 점과 참가하는 아이들의 환경적 특징들을 고려해 평화라' '는 직접적인 주제에 맞추기보다는 감수성을 중심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진행한 프로그램 간략정리< >회차 나와 친구되기1 : 나에 대해 표현하고 다른친구 이야기 들어-

주기소개 나는 누구일까요 게임, 회차 다르다고 차별하지 않아요2 : 다름이 공존하는 것의 의미 찾기-

영상을 보고 조별 그림 작업과 발표회차 작은전쟁 큰전쟁에 대한 이야기3 : ,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공감과 연민-

언제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표현하기 다른나, 라에서 온 친구의 편지듣고 답장쓰기

이번 평화교육에 참여하는 아이들은 매일 아침 시 반부터 수유 동 주민자치센터에 모여서 겨9 5울방학교실의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었다 여러 수.

업에 맞춰 짜여있는 시간표에 따라 평화교육이 진행되었고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라 프로그램 준, 비와 진행에 있어서 고려해야하는 변수가 적었다. 소그룹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듣다보니 , 거의 방임이나 학대가 아닌가 싶은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이럴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과 . 연결시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좀더 구체적, 인 상담으로 연결짓지도 못한 채 안타까움만 커져갔다 그리고 겨울방학교실에 자원봉사로 나오는 . 몇몇 선생님들은 평화교육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소그룹 그림작업에서는 시. 간 내에 그림을 완성하는 것보다 아이들끼리 서로 의견을 묻고 조율해가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어떤 선생님들은 시간 내에 완성.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 나머지 돌아다니며 그릴 것을 지정해주며 심지어 직접 그려주기도 했다 아이들과의 프로그램 진행 전에 선생님들과의 . 소통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면 담당 선생님들과 평, 화교육에 대한 프로그램을 진행해야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도 들었다.

모두가 행복한 동물농장을 그리는 조별작업에서 아이들은 동물들에게도 먹을 음식과 물 쉴 수 있는 집, , 편안한 화장실 충분한 놀이터 등이 필요하다는 토론, 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

베트남 팔레스타인 매향리에 있는 친구의 편지를 듣고 , , 아이들이 쓴 답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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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두 번의 경험이었지만 아이들을 만나고 평화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많은 자극과 기대와 설레임을 주었다 평화라고 . ‘ ’하는 것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이미지나 실현되기 힘든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우리 모두가 평화,

를 만드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조금더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의 감수성과 상상력 대단한 집단 내 . , 역동을 지켜보며 오히려 아이들에게 배우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장기적인 시각으로 노력을 . 꾸준히 해나갈 지 고민을 계속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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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일은 전쟁저항자인터내셔널에서 정한 세계병역거부자의 5 15 WRI(War Resisters' International, )날 입니다 세계병역거부자의 날은 전쟁을 거부하고 총을 (International Conscientious Objector's Day,) . 들기를 거부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함께 연대하는 날입니다 해마다 데이에는 주로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 CO탄압이 심한 나라 또는 지역을 정해 국제적인 공동행동을 진행하며 동시에 각 나라 상황에 맞는 다양한 , 평화 행동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년부터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행사를 꾸준히 진행해왔습. 2003니다 년 초점국가는 대체복무제 하겠다고 해놓고 정권이 바뀌자 다시 원점서 재검토하겠다고 하는 . 2009한국이 선정되었습니다 병역거부연대회의와 는 년 병역거부자의 날 초점국가인 한국의 상황을 . WRI 2009소개하는 한국상황특별리포트를 발간하여 세계의 병역거부운동 그룹과 반군사주의 운동그룹에 배포하‘ ’였습니다 한국상황 리포트를 전쟁없는세상 소식지에 실습니다 이길준과 우공의 소견서는 리포트에는 포. .(함되어 있으나 전쟁없는세상 소식지에 이미 실렸었기 때문에 제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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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병역거부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을 중심으로 년이 . 50훨씬 넘는 기간동안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시간만 합쳐도 만 여 시간이 훌쩍 넘1는다 독재정권 하에서 구타 고문 등을 견디며 . , 누군가는 숨을 거두었고누군가는 년이 넘는 시, 7간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한국에서 병역거. ‘부가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년 ’ 2001초의 일이다 그 후 사회적. 으로 많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한국사회에서의 병역거부 문제는 큰 이슈가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 비난과 질타로 년이 넘는 시간동안 겪어왔던 고50통보다도 더 큰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야 했다.1)

하지만 병역거부문제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된지 얼마 되지 않아 눈에 띄는 사회적 변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년 남부지방법원에서 병역. 2004거부자들에게 무죄선고를 하였다 무죄선고를 계. 기로 행정기관에서도 더 이상 병역거부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사회적 논의도 활성화 . 되어 병역거부 문제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가게 되었다 지방법원의 무죄선고로 대법.

원과 헌법재판소 또한 병역거부 관련 법안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대법원과 헌법. 재판소에서는 법적 근거로 병역거부를 유죄로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입법부에서 나서서 병역거부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다양한 병역거부자들의 출현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 법안 마련 논의가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병역거부자들은 끊임없이 생겨났다 눈여겨볼만한 지점은 년대 . 2000초반의 병역거부자들이 한국사회의 군사주의에 대해 심각한 문제제기를 했다면 그 이후로 병역거, 부 이유가 점점 다양해진 부분이다 일방적이고 . 획일적인 국가제도에 대한 고민 동성애자와 군대, 의 문제에 대한 고민들이 시작되기도 하였고 부, 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 등 단순히 군사주의를 넘어서 민주주의적 가치들이 다양하게 함축되었다.

이런 병역거부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은 그동안 함께 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는

1)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운동 초반의 내용은 브로큰라이플 호 년 http://www.wri-irg.org/pubs/br59-en.htm ( 59 , 2003한국편 영문판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습니다, ) .

한국의 병역거부 운동현지 |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준비팀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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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동성애와 군대라는 . ‘ ’주제로 라는 소모임이 구성Q&A(Queer & Army)되었다 또한 년 촛불집회. 2008 2) 과정에서 진압에 나섰던 전경 이길준의 병역거부로 병역거부문제에 대해 반대했던 혹은 무관심했던 많은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진압의 주체였던 그가 부당한 명. 령에 따르지 않고 저항의 주체로 넘어서기까지 혼, 자 감당해내야 했을 힘겨운 고통과 고민의 시간에 많은 사람들은 마음의 울림을 느꼈다.

기쁨의 순간 하지만 다시 원점으로, ..

년 무죄판결에 이어 년에는 국가인2004 2005권위원회가 대체복무제 시행을 권고하였다. 2006년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도 규약 이행 여부B에 관한 한국 정부의 보고서 검토 후 병역거부 문제와 관련하여 병역거부자의 권리를 인정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관련 법률을 제정할 것을 한국 정부에 재차 권고하였다 사회적 인. 식의 변화와 더불어 년 월 한국정부는 병역2007 9거부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도를 도입 추진하겠, 다고 발표하였다 감옥수감생활과 사회적 비난 속. 에서 꿋꿋하게 버티며 지나온 병역거부운동이 드디어 제도적 성과를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하지만 대체복무제도는 정권교체와 함께 다른 사회현안들과 마찬가지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

다 년 월 국방부에서는 빠르게는 년 . 2008 12 2009월부터 시행키로 했던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체1복무제 시행 계획을 없던 일로 하겠다고 발표‘ ’하였다 국방부 관계자는 개인이 지닌 신념의 . “자유를 존중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면서 여기에 대체복무가 병역기피 ”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점도 감안됐다고 ”결정 번복을 설명했다.3)

그래도 병역거부는 계속 된다..여 년이 되어가는 병역거부운동의 가장 큰 10

성과는 물론 병역거부에 대한 사회적 거부반응이 많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더불어 병역거부운동은 . 단순히 대체복무 허용 문제를 넘어서서 한국사회에 견고하게 자리잡고 있던 군사주의와 권위주의에 흠집을 내고 새로운 가능성들을 모색하는데 , 기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방부의 대체복무 . 인정 번복은 어쩌면 그들의 두려움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가진 신념의 다양성을 인. 정한다는 것은 권력의 일방성과 폭력성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국방부는 병역거부자들을 겁이 많. 아 도망치는 기피자로 치부하며 병역거부를 ‘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의 일방성에도 불구. 하고 오늘도 내일도 자신의 신념을 걸고 감옥을 ,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2) 년 한국 정부는 국민의 여론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채 미국산 소고기 협상을 체결하였다 이에 불만을 가진 시 2008 . 민들이 몇 개월에 걸쳐 매일저녁 길거리에 나와 촛불집회를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국가폭력의 실상에 대해 많은 . 시민들이 공분한 계기가 있었고 비폭력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기도 하였다 한국에서는 자발적 대중의 집단지성과 , . 인터넷을 통한 빠른 결집력 등으로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기회였다고 보고 있다.

3) 관련 내용은 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www.wri-irg.org/node/63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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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식민지배 년 해방되자마자 시작된 35 , 미소 강대국의 조선분할통치 전쟁 분단 군부· , , , 독재정권의 등장과 레드컴플렉스 그리고 최근 금, 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남북 간 군사적 대결완화를 위한 합의들이 사실상 무효화됨으로서 고조되고 있는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까지 한국의 군사주의를 짧은 지면 안에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리 길지 않은 한국현대사의 과거들이 . 아직도 채 정리되지 못한 채 사회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고 있으니까요 물론 한국 사회에 민주화. 가 진척되고 북한과의 체제경쟁이 사실상 끝난 지금 과거와 같은 반공이데올로기는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현. 재와 만나 또 다른 세련된 군사주의 괴물을 만들어내고 교묘하게 사회 곳곳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한국사회의 군사주의를 관찰하는 키워드로 징병제도를 들여다보는 것은 충분하지는 않지만 매우 유효한 일일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군대와 . 국방의 문제는 매우 복잡한 역사와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군대와 국. 방은 곧 생존과 직결되는 절대적인 개념으로 여겨져 왔으며 역대 정권은 권력유지를 위해 이러한 상황을 잘 이용해왔습니다 자연스럽게 군대는 국.

가안보라는 미명 하에 범접할 수 없는 성역이 되었고 민간의 감시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각종 의문. 사 부정 부패가 성행했고 돈 없고 권력 없는 서, , 민들만이 입대하는 곳으로 군대와 징병제도는 다른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 선거에서 다른 어떤 쟁점보다 당락을 결정지을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니까요 비록 사회의 . 민주화 속도에 비해 그 변화속도가 느리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군대는 현재 인권적 측면에서 조금씩 발전해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계. 속 군복무 기간이 줄어들고 있고 년까지 년 2014 1개월로 줄인다고 하고 이제는 특권층의 그 누구6도 군복무를 회피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 군인대신 최첨단 무기로 대체 되고 평화정착과 , 군축의 관점이 아니라 국가의 인력관리 차원에서 대체복무제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며 징병제, 도의 근거가 되는 평등의 논리가 예외 없이 군인이 되어야 한다는 거꾸로 된 평준화 논리로 귀결되는 현실은 한국 사회 군사화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징병제나 국방에 관한 논의는 종종 자주국방론과 만나 미군은 철수하고 한국군

한국 사회에서 군대란? 오리 |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준비팀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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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강화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미국에 할 . 말은 하겠다며 당선된 노무현 정부 이후 특히 주한미군 철수 재배치 문제가 논란이 되면서 국방, 비의 증액과 군대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힘을 얻었고 이러한 입장은 보다 친미적인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 주장들. 은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끊임없이 강한 나라 강한 한국을 동경하는 사, 람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사회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주국방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국가주의, 애국주의 바람은 그 세기가 아주 무서울 정도입니다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나라 외세에 아. , 랑곳없이 정책을 유지하는 나라 주권을 제대로 , 행사하는 나라에 대한 동경은 비단 우파만의 것이 아닙니다 좌파 진영이라고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 다양성을 말살하는 민족주의 담론 동등한 인격체, 로서 인간이 직면한 폭력을 민족의 자존심 문제로 환원하는 논리는 시민들을 운동에 동원하기 위한 수사로써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어 온 것입니다. 순결한 우리 딸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강해져야 합니다 군대는 진짜 남성이라면 당연히 거쳐. 야 하는 곳이 됩니다 인기 있는 젊은 남성 연예. 인들이 에 나와 나라를 지키러 군대 가는 것을 TV자랑스럽게 홍보하며 애국심을 고취하고 군대를 기피한 연예인들을 마녀사냥 식으로 매장하는 것은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군대 . 가면 이제 연예인으로서의 생명은 끝이다라는 ‘ ’인식이 퍼져있던 과거와는 다르게 여자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남자답게 군복무를 하는 것이 훨씬 인기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현충일을 다른 어떤 국경일보다도 강조하고 기리며 년 갑자기 대한민국 국기법을 제정, 2007하여 강제적으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가 강요 되고 병역의무에 예외를 둘 수 없다며 군복무 분, 야를 사회복지분야까지 유연화 하더니 현재 년 1 6개월씩 감옥행을 감수해야 하는 병역거부자들에게 그 문호를 열지 않고 오히려 과거 군복무의 의무가 없었던 여성 혼혈인 고아 등에게 군복무를 , , 허락하는 등 현재 한국 사회는 지나치리만큼 과도한 국가주의에 지배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군사화는 오랜 분단과 군사독재정권 그리고 이를 비호하고 조장했던 미국에 의, 해 출발해 사회 전체 우리의 일상 속에 스며들었, 습니다 우리 모두가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 , 이러한 군사주의의 행위자이자 피해자로서 군사주의 구조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병역거부운동은 .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해 한국 사회 군사주의의 실체를 드러내고 삶에 대한 성찰과 자각으로 국가폭력에 저항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비록 적은 수이긴 하지만 이들이 한국 사회에 던진 울림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며 이에 대한 사회 전체의 논의와 지지도 점차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 년간의 활동을 통해 병역거부운동 그룹은 8비폭력을 원칙으로 활동하는 그룹으로 한국사회 평화운동의 새로운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현재는 착한무기프로젝트라는 새로운 모임을 결성하여 활동의 영역의 확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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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직접행동이라는 단어가 한국사회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전히도 비폭. 력에 대한 많은 오해들이 있고 직접행동의 방식, 도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보수언론이 비폭. 력 합법의 등식으로 비폭력을 왜곡하기도 하지만= , 작년 년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비폭력이라는 2008구호가 이제는 아주 생소하기만한 것은 아니게 되었다.

그동안 비폭력의 개념이 한국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혼재되어 있다 획일적이고 폭력적인 군사주의 문화가 국가. 주의와 결합되어 사람들의 삶 구석구석에 파고들어 있었다 세기 초반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 . 20지배의 경험과 년대 한국전쟁의 경험은 국, 1950가를 비판과 견제의 대상이기 보다는 시민들 위, 에 군림하는 초월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근대. 국가를 경험해보기도 전에 빼앗겨 버린 국가에 대한 기억이 그리고 전쟁으로 다시 한 번 국가를 ,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은 북한. 공산주의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거짓‘ ’된 이미지로 치장하게 되었다.

일본의 식민지배와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도 있었지만 거대한 국가폭력에 맞서 , 저항폭력이라는 방식이 주로 선택되었다 비‘ ’ . 폭력은 마치 국가권력에 대한 소극적인 긍정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일제 식민지 당시 일군의 부. 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일본의 지배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타협했던 모습이나 독재정권과 맞, 서 싸울 당시 비무장을 주장하는 일부 온건파가 보여준 기회주의적인 모습이 저항폭력의 담론‘ ’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비폭력은 타협적이고 패배적인 ‘ ’방식이라는 뿌리 깊은 오해가 발생하였다.

비폭력에 대한 오해는 폭력에 대한 성찰을 무디게 하였다 국가폭력에는 민감했지만 민주화운. , 동 내부의 여러 형태의 폭력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었다 민주화운동의 대표적인 이미지는 신체 건. 강한 남성노동자들의 거리투쟁 마치 군대의 퍼- 레이드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사회운동 내부의 민. 주주의를 위협하는 여러 형태의 폭력들은 국가의 , 폭력에 맞서 싸우기 위한 대의를 위해서 눈감아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년대 전방입소 반대투쟁1980 ,

비폭력직접행동의 맥락 속에서 병역거부 운동이 갖는 의미

이용석 |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준비팀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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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대 군인과 전경들의 양심선언 등 자1980~1990신의 양심에 기반한 비폭력 저항이 있었지만 삶, 의 철학으로서 비폭력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은 년이 지나고 나서였다 병역거부운동은 2000 . 비폭력과 평화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아무도 비판 할 . 수 없었던 군대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했고 사, 람은 누구나 양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 양심에 따라 부당한 명령과 요구에 불복종 할 수 있음을 알렸다 아무 생각없이 혹은 가기 싫어도 어쩔 수 . , 없이 군대에 끌려갔던 젊은이들은 군대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들 중 자신. 의 양심의 소리를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사람들은 병역거부자가 되어 감옥에 수감되었다.

물론 병역거부운동의 시작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군사주의와 국가주의가 해체되지는 않았다 여전히 한국사회는 소수자. 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획일화 된 사회였고 국가, 폭력은 조금 더 세련되어졌을 뿐이지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운동사회 내부에서. 도 여전히 물리적인 폭력을 비롯하여 비민주적인 , 군사주의 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병역거. 부운동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여성운동, , 생태주의 등이 맞물리며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를 , 조금씩 이끌어냈다 사람들은 전쟁과 군대 혹은 . , 폭력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아직은 미약하지만 .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면서 점차 확대되어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여러 형태의 직접행동으로 드러

나기 시작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반대하. 는 투쟁에서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느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는 비폭력직접행동이 보다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촛불. 집회에서 비폭력은 가장 대중적인 구호였다 사람. 들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와 퍼포먼스로 경찰폭력을 조롱하고 비웃었다 이는 야만적인 경찰의 폭. 력과 대비를 이루며 많은 시민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이제 시민들은 정치권이나 언론에 의존하지 .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의 비폭력 직접행동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중이다 폭력과 비. 폭력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누어 바라보기도 하고 정권과 보수언론의 악의적인 프레임에 갇혀 , 스스로를 옭아매기도 했다 비폭력 직접행동에 대. 한 준비부족과 이해부족은 시민들을 때로는 위험한 상황에서 처하게 하기도 했다 또한 아직까지. 는 비폭력 직접행동을 시위방식에서의 단순한 전술적인 선택으로 바라보는 측면도 있다 때문에 . 때로는 비폭력이 저항주체들의 선택이기보다는 상부에서 지침으로 내려오기도 한다.

비폭력직접행동에 대한 다양한 입장들이 이제 막 한국사회에서 나오기 시작했으며 아직도 많은 ,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 마치 평화나 비폭력이 그러하듯이 병역거‘ ’ ‘ ’부운동을 비롯한 비폭력직접행동은 아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가고 있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자기 삶에 기반해 세상의 잘못된 것에 맞서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디지만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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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가 년 2008 2월 일 취임했고 년이 지났다25 , 1 .

전세계적으로 심화되는 경제위기 속에서 국민들은 조금이라도 더 잘 살기 위해 신자유주의 정권을 선택했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 부자대통령을 . 뽑은 것이다 도덕성을 비롯한 다른 모든 문제들. 은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무마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정권은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며 시장만능주의를 외쳤고 경제를 살린다는 명분 하에 , 재벌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사회는 더 불공. 평해졌고 서민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시민사회의 통제가 가능할 것 같던 국가권력 기구들은 대통령과 집권정당에 의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정부 부처가 대통령의 지시를 처리. 하기 위한 기관으로 변해가고 있다 정권에 따라 . 그동안 쌓아온 사회적인 합의와 민주화운동의 성과마저도 한순간에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절차와 소통을 무시해도 . 된다는 생각이 어떤 심각한 문제를 낳을 수 있는지를 직접 겪은 일년이었다.

시민들은 저항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남녀노. 소 할 것 없이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밤새 토론을 했다 작년 봄 광우. 병 쇠고기 문제로 시작된 촛불집회는 교육 공공, 성 비정규직 대운하 등의 문제를 의제로 삼으며 , , 확장되었다 저항세력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정. 부와 보수언론에 맞서 대안적인 정보를 생산하는 인터넷언론들이 생겨났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 하면서도 인터넷을 공론의 장으로 만들어가는 네티즌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자신들의 목소리를 짓. 누르는 부당한 공권력에도 스스로 비폭력을 ‘ ’외치며 성숙한 시민사회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정부는 국민들과 소통하려고 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민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초고속인터. 넷 가구 보급률 세계 위를 자랑할 정도로 한국의 1인터넷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매일 수십. , 수백만건의 내용이 등록되는 인터넷은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고 토론과 합의가 이루어지는 공간으, 로서 이제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촛불집회에서 인터넷의 . 역할은 대단했다 인터넷을 통해 집회의 시간과 .

이명박 정부 이후 강화된 사회통제, 사회적 부정의

여옥 | 세계병역거부자의 날 준비팀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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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홍보가 이루어졌고 새로운 방식과 다양한 , , 행동들이 논의되고 실행되는 역할을 한 것도 인터넷이었다 집회참가자들은 언론매체가 전하는 왜. 곡된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현장의 상황을 올렸고 그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

당시 촛불집회에 참여했던 수많은 시민들은 보수언론이 현장의 상황을 왜곡 편파보도 하고 ,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편파보도를 일삼던 . 보수언론 사조선 중앙 동아 에 항의하는 뜻으3 ( , , )로 그 신문에 광고를 내는 회사에 광고중단을 요청하는 전화를 하고홈페이지에 항의글을 올리기 , 시작했다 많은 네티즌들이 이 운동에 동참했고. , 실제로 많은 회사들이 보수언론 사에 광고를 중3단하기도 했다 그러자 광고수익이 줄어든 보수언. 론사는 업무방해혐의로 이 운동에 동참한 네티즌들을 고발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는 광고중, 단운동 게시글이 불법정보이기 때문에 삭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재판에서 검사는 이 운동에 동참. 한 네티즌들에게 실형을 구형했고 현재까지도 재, 판이 진행 중이다 이는 국가권력과 자본이 하는 . 일에 반대하거나 문제제기하면 이렇게 된다는 경고를 한 것과 같다 인터넷 실명제를 강화하고 정. 보통신에 관한 법들을 개정하면서 인터넷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네. 티즌들은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 전에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되고 위축되는 효과 가 , (chilling effect)나타나게 되었다.

정부를 비판하는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자를 검찰이 직접 수사하고 공영방송의 사장을 마음대로 , 해임하고 정부가 원하는 사람을 임명하는 등 언론

탄압도 심해졌다 더 나아가 집권정당은 언론매체. 를 재벌과 일부 보수언론이 장악할 수 있도록 하는 신문법과 방송법을 통과시키려고 노력 중이다.

집회시위에 관한 법은 지금도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어서 문제가 많다 그런데 현재 추. 진하고 있는 개정안은 신분확인을 위해 마스크도 쓰면 안되고 소리도 크게 내서는 안되고 다른 사, , 람에게 피해를 줘도 안되는 등 사실상 모든 집회를 사전에 차단하려고 한다 게다가 처벌규정도 무거. 워져 엄청난 벌금과 구속을 각오해야 한다.

국민들에 대한 정부의 실질적인 통제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와 직. 접 관련이 있는 권리라고 할 수 있는데 사회개혁, 이라는 이름으로 관련법들을 개정하려 하고있어 인권과 민주주의는 더욱 후퇴될 것이다.

이처럼 현재 한국의 상황은 대다수 시민들을 소외시키며 권력을 장악한 소수에게 점점 더 많은 힘을 몰아주고 있다.

재벌들에게만 특혜를 주어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경제위기 속 사회안전망은 해체되어 가고 , 있다 정권에 대해 비판을 하거나 반대하는 의사. 를 밝히는 것에 대한 탄압은 더욱 교묘해지고 노골적이 되어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 소득만 높아지면 된다고 믿는 의 국민과 보수 30%언론은 여전히 현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부당한 일에 저항하는 일은 더더, 욱 어려워지고 엄청난 각오가 필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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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을 다닐 때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그 영향으로 졸업을 하고나서도 국가에 충성하는 군인이 된다는 것이 아주 불편하고 부담스러웠습니다 국가를 위해 무조건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 . 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무엇보다 한국 , 군대가 위계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자행해 왔던 강압적인 폭력 문화가 두려웠습니다 제 꿈과는 .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살상 훈련을 반복해서 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 징병제를 실시하는 한국에서는 입대를 피할 방법이 없었고 막연히 입대 시기를 미루기만 하는 방법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년 초에 병역거부에 대해 알2002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년 동안이나 병역을 . 60거부해 온 행동이 이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때서야 한국사회에 병역거부라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병역거부 사안을 사회에 알려야겠다고 . 생각했던 소수의 평화운동가들 덕분이었습니다. 년 동안의 강요된 침묵 속에서 병역을 거부해 60온 역사가 드러나면서 그걸 본 저는 어떤 충격에 , 휩싸였습니다 저는 군대가 만들어내는 폭력과 위. 계를 알면서도 한 번도 병역을 거부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의 신념,

에 따라 병역을 거부해 온 젊은이들이 만 명이나 1있었다는 사실에 몹시 놀랐습니다 이런 선택도 . 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이 묵묵히 이런 , 선택과 행동을 해 왔다는 것을 알고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군대나 전쟁 같은 거대하고 강압적이고 . 확고한 질서를 한 개인이 무슨 변화를 만들 수 있겠냐고 회의하며 핑계를 대면서 피해가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군대가 싫어도 견딜 수밖에 없다. 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잘 것 없. 고 힘없는 개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온몸으로 군대와 전쟁에 저항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면서, 그때부터 저에게 심각한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주변의 격려와 지지 덕분에 병역을 거부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동시에 평화를 , 만들어 가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했습니다 나의 . 삶과 활동에서 군사주의를 놓아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런 결심을 한 이후로는 평화를 향한 활동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아프가니스탄 . 침공으로 고통 속에 처한 아프간 사람들을 지원하는 일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년 겨울 미국 . 2002 ,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을 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유가족들이 이라크에서 자기의 이름으로 911 ‘․전쟁을 하지 마라며 호소하는 모습을 보고 그’ ,

나를 찾을 수 있게 한 병역거부

염창근 | 병역거부자 평화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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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 중동에 사는 사람들이 파괴의 아픔을 전하는 시위를 보면서 이라크 반전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함께 전쟁에 반대하는 . 활동을 벌이고 이라크로 가 이라크 사람들과 지내는 활동도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으로 고통 속에 .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저의 마음까지 절절히 전해져 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 국회는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입대하기로 되어 있던 년 월 일 저2003 11 13는 군 당국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그날 작은 카페를 빌려 같이 활동하던 지인들과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인들과 함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 누었습니다 얼마 후 경찰 당국은 제가 입대하지 . 않았기 때문에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호출했고, 몇 차례 조사를 받고 나자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구속 여부를 다루는 구속영장실질심사 담당 판사는 저에게 한 마디 심문도 하지 않고 구속을 결정했고 저는 그날 수감되었습니다 감옥에서 개월 . 1반 정도 지났을 무렵 재판부는 제게 보석을 허용해 주었지만 년 후 다시 재판이 열렸고 저는 재1 , 수감되었습니다 항소 심와 상고 심를 하는 . (2 ) (3 ) 7개월 동안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았지만 재판부, 는 저의 병역거부권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유죄가 인정된다며 년 개월 형을 선고했습니다1 6 .

감옥이라는 가라앉을 것만 같은 어둠의 건물, 은 낡을 대로 낡아버린 육중한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감옥 방은 어른 명이 누울. 2만한 공간에 명씩 수용하고 있었습니다 작고 5~6 . 부실하기 그지없는 화장실은 안이 훤히 보이게 되어 있었고 게다가 거기에서 설거지와 씻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견고한 벽으로 사방이 막힌 골방 . 같은 감옥 방은 저의 의식조차 답답하게 만들었고 다만 쇠창살이 쳐진 작은 창으로 들어오는 한 , 움큼의 빛과 바람만이 바깥세상을 느끼게 했습니다 지급받은 수의와 고무신 좁은 복도와 수많은 . , 철문과 쇠창살들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는 긴장감을 지속적으로 전해주었습니다 초조함. 과 답답함은 사라질 리 없었고 이곳에서 일의 545낮과 밤을 보내야 한다는 아주 현실적인 사실 앞에 마음은 계속 가라앉기도 했습니다.

예전과 달리 이제 한국의 감옥에서 더 이상 고문이나 신체적 폭력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 간과 공간의 봉쇄근대의 감옥은 직접적으로 육체, 를 처형하는 대신에 이 두 가지 인간의 삶의 근간을 봉쇄합니다 시간과 공간을 빼앗으면서 삶의 중. 단을 명령합니다 그 속의 인간은 죽음을 거부하. , 려는 것처럼 필사적으로 시간과 공간에 집착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렇듯 감옥은 일종의 죽. 음을 느끼게 만드는 경험이었습니다 매 시간마다 . 갑작스레 찾아오는 상대에 대한 메마른 감성과 자, 신의 삶에 대한 좌절 좁은 감옥만큼이나 좁아져 . 버리는 정신 자신의 겉멋과 위선을 만나고 마는 . 밑바닥의 경험 그것은 상실이나 죽음 같은 단어와 . 동일한 느낌을 가진 괴로움이자 외로움 같은 것이었습니다 마치 풍경이 밤이 되면 어둠에 사라지는 . 모습처럼 풍경의 형태를 없애며 검게 쪼여들지만 , 동시에 내부를 서서히 침식했습니다 회색빛 감옥. 은 그렇게 신체의 구속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도 어둠이 들어서게 했습니다 내면도 감금되어 가. 고 있었습니다 감옥은 이 모든 것을 감내하라고 . 명령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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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는 일을 하기를 강요받는 일은 감옥에서도 동일합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병역. , 거부란 역시 자신에게 스스로 말을 걸고 자기 내면을 정직하게 만나면서 자기와의 마찰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평화라는 . 사회성은 먼저 자신부터 마주하며 내면에서부터

경합하는 자기 안의 타자성을 짚어보는 것에서 , 시작됨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야 타자와의 공감이 . 회성이 아니라 지속성을 가지고 이루어질 테니까1

요 그런 노력과 준비를 하지 않은 채 감옥살이를 . 했던 것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앞으로의 과제로 , 삼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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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월 일 오랫동안 알고지내오던 친2005 12 1 . 구 부르뎅김태훈 과 병역거부를 하면서 처음 알( )게 된 김영진과 함께 병역거부 선언 기자회견을 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언론에서 병역거부자가 . 한 명 더 나타나는 것에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더 널리 알리고 싶어서 함께 기자회견을 했던 것이다 나. 는 입영날이 월 일으로 입영영장만 나와 있12 21는 상황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입영일이 되기 전에 선언을 하게 되었다 학생운동을 하. 던 대학교 시절부터 병역거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평화주의자여서 병역거. 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 저항하는 보다 , 급진적인 운동을 하고 싶어서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되었다 내가 몸을 담고 있던 학생운동 그룹이 . 병역거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병역거부운동에 동참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오히려 병역거부를 . 결심하고 나서 평화주의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병역거부자들이 일반적으로 입영일로부터 개월 안에 구속된 것과는 다르게 나는 3~4 2006

년 월에 구속되었다 그 당시는 병역거부자들에 8 . 대한 구속수사가 불구속수사로 바뀌어가는 시점이었는데 법원이 불구속수사를 결정하자 담당검사,

가 반발하면서 재차 구속영장심사를 하느라 기간이 길어진 것이다 구속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지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 기간 동안 평택 미군기, 지 확장이전에 반대하는 여러 활동들에 참여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의 경험은 평화운. 동과 비폭력에 대한 고민을 넓혀주었던 좋은 계기였다.

병역거부자들은 일반적으로 구치소에 수감되었다가 형이 확정되면 교도소로 이감을 간다 구. 치소에서 일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구치소와 교도소 총 곳에서 년개월을 수감생활을 한다 나2 1 6 . 는 총 군데의 교도소와 구치소를 거쳤다 앞서 4 . 말한 평택 미군기지 반대 집회에서 경찰에 연행된 적이 있었는데 병역거부로 수감이 된 이후에 그 , 사건이 재판까지 가게 된 것이다 당시 군산교도. 소에 수감 중이던 나는 재판부가 소재해있는 수원구치소로 이감을 가게 되었고 재판이 끝날 때 까, 지 그 곳에 머물렀다 다른 곳의 수감생활도 쉽지. 는 않았지만 수원구치소에서의 수감생활은 그중 , 가장 악몽 같은 나날이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국 감옥의 가장 큰 , 문제는 공간의 협소함이다 이것은 굳이 병역거부. 자들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교도소마다 약간의 .

수감생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억들 ,

이용석 | 병역거부자 전쟁없는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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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 사람당 평의 공, 0.5간이 주어진다 청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 다른 교도소에서 사람들이 싸우다 죽었다며 한 방에 명만 넣으면 안된다는 공문이 법무부에서 내2려왔었다 나는 당시 평짜리 방에서 명이 살고 . 1 2있었는데 그 조치로 인해서 평 방에서 명이 살, 1 3게 되었다 명이 누워 자면 방안이 가득 차게 되. 2는 방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누워도 한명을 몸을 똑바로 누울수 없다.

이런 물리적인 공간의 문제는 이미 각오를 하고 왔었고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는 내 마, 음속에 있었다 단절감 나는 감옥 안에 있을 때. . , 많은 친구들로 부터 편지와 관심과 지지를 받았지만 그럴수록 외로움은 커져만 갔다 수원구치소 . 조그만 독방에서 살아있는 것은 나와 국화화분 하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화분이 시들어갔다. . 차가운 시멘트 방에서 생명이라 불리는 것이 나 혼자라는 고독함은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바깥 . 세상은 내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써 자신을 자각하기에는 . 나는 아직 나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평택 미군기지에 맞서 싸우던 평택의 주민들. 이 쫓겨나도 한미 가 졸속적으로 체결되어가, FTA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니 내가 설, . 사 감옥 밖에 있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감옥 안에서도 감옥 밖에서도 내가 있을 곳. , 은 보이지 않았다 굉장히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 성격인 나로서는 예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무력감과 외로움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해야만 한다는 사실도 나를 괴

롭게 했다 역시 수원구치소에 있을 때였다 같은 . . 방안에 너무 미운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이감. 을 가거나 출소를 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내 소원. 은 이루어졌지만 그 사람이 떠나고 난 후 다른 , 사람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원래 미운감정이 전혀 . 없던 사람이었다 그 때 읽고 있던 헤르만헤세의 . 데미안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우리가 어떤 사. “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 ,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 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미움은 다, .” 른 사람에게 속해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은 . 커다란 고통이었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난 다시 입영영장을 , 거부할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감옥을 가고 싶지. 는 않다 물론 감옥도 사람 사는 곳이라 스스로 . , 노력하기에 따라서 그 시간에서 배워올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절대적, 으로 많은 곳이다 자신의 밑바닥을 경험하는 것. 도 하나의 훌륭한 경험이라기보다는 참아낼 수 없는 고통의 과정일 뿐이었다 억지로 수감생활을 . 미화하거나 반대로 상처를 부각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앞으로 평화운동을 하면서 혹은 다른 이유에서든 감옥에는 절대로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감옥이 두려워 무언가를 못하지는 . 않겠지만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 그 곳에서 , 내 삶을 한 순간도 보내고 싶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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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월 일 나는 병무청에 전화를 걸2005 10 11어 입대를 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그 후 일, . 19에 내가 믿는 가톨릭 신앙과 양심으로는 군대가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병역을 거부한다는 것을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사회에 알렸다.

대학에 들어가서 가톨릭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나는 단순히 일주일에 한 번 미사에 참례하던 , 신앙생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됐다. 가톨릭 학생회에서 참으로 예수를 따라 사는 삶이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존재를 알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배우게 됐고 앞으로 그렇게 ,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사회에서 일어. 나는 일을 예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입영 날짜가 다가오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군대에 가기가 너무 싫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어. 려보이고 유약했던 나는 군대에서 너 같은 애, “들은 여자 흉내도 내고 선임 병이 막 만지고 그, 런대 라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무서웠다.” . 그러다가 년 언론을 통해 병역거부를 하는 2001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듣게 됐다 이들은 자‘ ’ . 신들의 신앙에 의해서 병역거부를 한다고 하는데,

나 역시 나의 신앙에 비추어 군대 문제를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의 왼쪽 뺨을 때리. 면 오른쪽 뺨도 내밀라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원, 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예수가 평, 화를 지킨다고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결론은 명확했다 나는 그렇게 병역을 ? . 거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병역거부 의사를 밝히고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고나서 년 월 일 구속 결정이 내려2006 1 24졌다많은 친구들이 불구속 탄원서를 써주었지만. , 나의 실제 주거지와 서류상 주거지가 다른 것을 이유로 구속을 시켰다 국가의 신성한 의무라는 . 병역의무를 거부하고 국가의 통제를 따르지 않아, 서인지 국가의 힘을 느껴보라는 건 아니었는가 , 싶다.

그렇게 구속이 돼서 보석 결정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정말 괴로운 시간이었다 여호와의 증인 . 신자들은 구치소에서 그나마 병역거부로는 인정을 받았지만 나는 천주교 신자가 예수를 팔아먹고 , 병역을 회피했다는 모욕을 들어야만 했다 한 평. 생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 나에게 그 모욕은 큰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감방 . 안에서의 생활은 총만 들지 않았지 실상 군대와 ,

출소 후의 삶들

고동주 | 병역거부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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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지 않았다 지금껏 겪지 않았던 철저한 계급 . 사회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을 때까. 지 모든 일에는 순서가 정해져 있었고 방 안의 , 일 대부분은 막내인 내 역할로 정해져 있었다 정. 신없이 방의 일들을 치러내니 한 달이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그리고 월 일 보석으로 . 3 14감옥을 나왔고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감옥 밖, 에서 지낼 수 있게 됐다.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한국 정부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고 법원도 실정법을 위반했다, 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판결을 내렸고 나는 상, 고심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월 일 보석이 . 9 21취소돼 다시 구치소로 들어가게 됐다 성실한 . 근로를 통해 교정을 받지 않으면 가석방을 받‘ ’을 수 없으므로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출력을 , 신청했다취사장으로 작업장이 결정되고 여. , 1700명 식사를 책임지는 일들을 하게 됐다 출력 첫날. ,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앉아있는 시간은 식. 사 시간밖에 없었고 그나마 분 정도에 불과했, 10다 이곳에서는 일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다. . 제대로 못하면 그저 소리를 치며 다그칠 뿐이었고 알아서 일머리를 배워야 했다 정신없이 일을 , . 하며 들었던 생각은 내가 느끼는 고통이 대부분 속도를 중시하는 것에서부터 온다는 것이었‘ ’

다 그곳은 너무 바빠서 일을 차분히 가르칠 시간. 도 없는 것이었다 정말 그때만큼 느리게 사는 것. 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간절하게 했던 적도 없다 사람들이 속도를 중요시 하는 이유를 지. ‘ ’금 생각해보면 남보다 더 가지려는 욕심과 남을 , 지배하려는 욕심인 것 같다.

년 개월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년 1 2 , 2007 9월 일에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앞으로 어떻게 28 .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다시 들어가지 , 않아도 되기에 얼마나 설렜는지 모른다 좋아하는 . 사람들과 단체로 만나는 것도 실감이 나지 않았고 단체 사진을 찍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

출소한지 년이 넘은 지금 나는 좀 더 소박1 , 하고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는 삶이 폭력을 줄인다고 생각하고 그런 삶을 꿈꾸고 있다 농사를 짓고 . 되도록 자립하는 것이 그런 삶에 가깝다고 생각해서 현재 귀농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 다.4) 조만간 나도 농촌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대 . 체복무제도의 도입과 관련해서 병역거부자들이 , 여전히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현실임에도 직접 나서서 활동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내가 있는 자리, 에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하고자 한다.

4) 이글을 쓸 당시 귀농운동본부에서 일하던 고동주씨는 지금 현재는 카톨릭뉴스 지금여기 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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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이 그렇겠지만 병역거, 부는 저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병역거부란 단순히 신념을 선언하고 . 감옥에 갇혔던 경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활동을 하면서 많은 병, 역거부자 활동가들과 교류하면서 저는 평화운동- , 을 해나가야겠다는 의지를 만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출소 이후 평화연구를 하겠다고 결. 정한 이후에도 병역거부는 가장 주요한 연구주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그러한 저의 . 경험들과 깨달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대학생시절 좌파 학생운동에 참여하면서 병역거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매우 군사주. 의적인 국가여서 년이 넘는 시간동안 병역거부60자들을 처벌해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특정 종교. 여호와의 증인 의 별난 일로서만 여겨졌기에 사( ) ,

회운동으로 등장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저는 . 년 병역거부자들에게 감옥이 아닌 대체복무2002

제도가 주어져야 한다는 인권의 관점에서 이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병역거부자. 들 평화활동가들을 만나게 되었고 스스로의 신념, 에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징병제 국가인 한국에서 저 역시 군인이 되어

야 했지만 별다른 고민을 가지지 못해왔습니다, . 한국은 군사독재에 저항했던 학생운동의 역사가 매우 길었고 그 속에서 많은 이들이 죽고 감옥에 , 갔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단 한 명의 병역거부. 자도 등장하지 않았을 만큼 군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병역거부운동을 하. 면서 비로소 스스로가 군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비록 감옥에 가야만 했지만 . 전 제가 가진 반전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병역거부를 선택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병역거부. 운동은 군대와 군인이라는 것이 가진 의미를 사회적으로 일깨워 준 최초의 사회운동이었습니다.

수감시절은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잘 견딜 수 있었습니다 활동가들과 지지자들은 빈번하게 접. 견을 와 주었고 많은 편지를 보내주었습니다 한, . 국 병역거부운동에 있어서 평화수감자들에게 이러한 후원을 하는 것은 주된 활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죄를 주장하며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 지만 결국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년 월 1 6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년 월 형량은 당시 병역. 1 6거부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내려졌던 형량이었습니다 년부터 한국의 병역거부자들은 군사법정. 2001이 아닌 민간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고 형량 , 역시 년에서 년 월도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기3 1 6 .

평화연구를 위한 모색

임재성 | 병역거부자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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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수가 된 이후에는 충주구치소로 이감이 되어서 종이봉투를 만드는 일을 했고징역형을 받은 이들(은 일정한 작업을 감옥에서 해야 합니다 지난 ) 년 월 출소하게 되었습니다2006 5 .

수감시절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면, 서 대학원에 진학해서 평화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의 경우 평화학이라는 것이 . 전무한 상황이었는데관련 연구자가 꼭 필요하다, 고 느꼈습니다 또한 저 개인적으로도 병역거부를 . 통해서 깨닫게 되었던 한국사회의 군사주의와 군대 폭력 전쟁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해보고 , , 싶다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한국에는 평화학을 전공할 수 있는 학과가 없었기에 사회학과 대학원에 진학을 했습니다 일본. 이나 유럽 쪽의 평화관련 학과로 유학을 가는 것에 대한 제안도 있었지만 여러 활동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할 계획이었기에 한국에서 공부를 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사회학을 택한 이유는 학문의 영. 역이 넓어서 제가 가진 평화연구의 주제들을 포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회학은 기존의 . 국제관계을 바탕에 둔 전쟁 평화 연구가 아닌 실-제 사회 속에서 폭력과 군사주의가 만들어지고 강화되는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년의 석사과정을 마치고 저는 한국의 2병역거부운동을 평화운동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평가하는 내용으로 졸업논문을 작성했습니다 지난 . 년 동안 병역거부는 한국에서 늘 뜨거운 주제였8

지만 여전히 대체복무제 개선에만 초점을 두, ‘ ’

는 연구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병. 역거부운동의 반군사주의적 측면이 부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강력한 군사주. 의 속에서 양심의 자유와 반군사주의라는 ‘ ’ ‘ ’가치가 운동 내부에서 어떤 긴장관계를 형성하는가를 살피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박사과정에 진학했습니다 박사. 과정에서는 징병제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군사주의가 형성되어온 과정을 역사적으로 고찰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징병제만큼 한국사회. 에 많은 영향을 준 제도도 없지만 이에 대한 연, 구는 매우 드뭅니다 군사주의 역시 추상적으로만 . 사용되지 실제 형성과정이나 영향력에 대한 경험, 적 연구도 부족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의 연구. 가 한국 평화운동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이제 조금씩 비폭력이라는 가치가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지난 년 월 . 2008 5-6수십 만 명이 모인 촛불집회에서 수많은 이들이 외친 비폭력은 모두에게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관점에서 군대와 병역에 대한 비판적인 활동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 한. 국의 병역거부운동과 병역거부자들은 많은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저 역시 병역거부자로서 한. , 국사회에서 거의 시작단계에 가까운 평화연구를 지속적으로 해 나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노력. 이 한국의 평화운동에 작지만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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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고민한 건 살 때였습니다 처음 21 . 병역거부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한국에서 병역거, 부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오태양의 병역거부는 제게 충격이기보다는 . 많은 질문이었습니다 그건 보지 못하던 세상이기. 도 했지만 끊임없는 질문의 요청이었습니다 딱, . 히 답을 할 수는 없었지만 도망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그때 제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 군대를 연기하기 위해 대학에 가는 것 뿐이었습니다.

이듬해에는 두 여중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죽은 두 여학생은 침. 묵할 수밖에 없었지만 남은 우리들은 침묵할 수 , 없었습니다 무언가를 찾아야 했고 사람들은 하. , 나 둘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수만의 사람들이 시청 앞을 가득 메웠습니다.

년에는 이라크 전쟁이 났습니다 하지만 2003 . 이미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전쟁이 일어. 나고 있는 곳은 이라크만이 아니란 사실을 세상 . 어디에선가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고 그 외마디 고통들은 한국에서도 들을 수 있다,

는 것을 그들은 무엇 때문에 죽어야 하는 걸까. 요 저는 많은 질문을 안은 채 피켓을 들고 거리? 에 나가야 했습니다 목이 쉬기보다는 마음이 먼. 저 아팠습니다.

병역거부는 답이 정해진 질문은 아니었지만 시간은 정해져있었습니다 언제까지나 마냥 미룰 . 수만은 없는 문제였습니다 하나 둘 알고 지내는 . 이들이 병역거부를 선택했고 그 중 어느 누군가, 의 글을 읽고는 정말 더 이상 피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일이 아니라. , 전쟁을 예방하고 막아내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처럼 제 의 길. 3 , 비폭력 직접행동의 길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역거부가 최선은 아니었지만 쉬이 다른 . 답이 없었습니다.

징역을 사는 시간은 모든 것이 온통 도전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이어지는 고통스런 노동도 사. , 람들 사이의 경직된 관계와 정신적 폭력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좁은 공간 안에서 사람들끼리 . 부대끼는 문제는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회의를 갖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제가 보아야 했던 표정. 은 늘 화나고 지친 얼굴들뿐이었으니까요.

병역거부에 대답하며 보이지 않는 이길준들을 위해-박정경수 | 병역거부자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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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을 나온 뒤에 제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우습게도 병원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 징역을 살면서 매일 잠이 들지 못할 만치 이가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주를 거의 잠도 못. 2자며 고생했는데 이를 뽑을 수 없었습니다 정말 . 울고 싶어질만큼 힘들어서 병동을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제가 들었던 대답은 같았습니다 이를 뽑. 는 일도 그곳에서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엑스레. 이도 찍지 않은채 사랑니를 뽑다 잘못 되더라도 “네가 직접 책임을 져라라고 협박하던 구치소 직“원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감옥을 나. 오자마자 이를 뽑았습니다.

병원을 가는 것은 시간을 되돌리는 일이었습니다 쉽사리 뽑히지 않는 기억이지만 이를 뽑는 . 것처럼 그 기억도 뽑아내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옥에서의 기억은 그렇게 사소한 일에도 충. 치가 박힌 듯 고통이었습니다 그렇게 잊고 싶은 . 기억은 있었지만 반대로 무엇을 시작해야할지는 정말 알 수 없었습니다 근본적으로 대답해야할 . 질문들이 남아 있었던 겁니다 제게 병역거부는 . 대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병역거부를 하고 난 . 뒤의 삶이 그 대답이 되어야 했습니다.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면 경직된 채 살“ , 아가야할까?”

가장 궁금한 것은 출소한 뒤의 삶이었습니다. 수년간 미뤄왔던 병역거부를 한다는 것은 후련했지만 앞으로 짊어지고 살아야할 제약들은 무서웠습니다 출소하고 저는 늘 병역거부자로 소개되고 . 있습니다 가끔은 그것이 버겁고 힘겨울 때가 있.

습니다 몇 년 전의 선택으로 아직까지 불린다는 . 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사람은 늘 . 현재의 질문에 대답하며 살아야 하는데 저는 그러지 못하는 것도 같습니다 늘 병역거부를 했었. ‘다는 과거형입니다 병역거부자이기 때문에 누’ . 군가는 더 호감을 느끼고 또 누군가는 더 혐오를 , 느낍니다 자유로운지 아니면 경직된 삶인지 지. , 금 대답해야 한다면 아마 저는 경직된 채 살아가고 있다고 대답해야 할지 모릅니다.

제가 세상에 다시 나온 년은 무언가 낯2008설었습니다 년 만에 다시 정권이 바뀌었고 모. 10든 것들이 시간을 거꾸로 흐르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채 몇 달이 되지도 않아 사람들이 다시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쇠고기 광우병 파동 . 때문이었습니다 국민의 안전을 무시한 채 자신의 . 정치 논리대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정권이 밉기도 했지만 다들 그보다는 모든 일을 공권력으로 밀, 어붙이는 대통령의 태도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입장을 . 바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저는 조금은 무기력해 있었습니다 감옥생활에 많이 지쳐있기도 했지만. ,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사. 람들이 거리에 나갈 때 나는 아직 가석방 중이“야 라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무얼할 수 있을까.” . . 굳이 연행될 상황을 피하면 되는데도 거리에 나가는 대신 아직 라는 말로 대신했습니다 그런 “ .” . 제가 힘을 얻었던 건 이길준 때문이었습니다 아. 니 정확히는 주변에서 그를 돕던 사람들이라고 해야 맞겠네요 무자비한 정부의 명령을 거부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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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준도 대단했지만 농성에 들어간 그를 밤낮으로 , 지켜주던 사람들을 보면서 부끄러웠습니다 잠시 . 무기력했던 저는 무엇을 피하고 싶었던 걸까요.

지금은 미군기지 주변에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대략 명 정. 27,000도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기지 주변에는 범죄, 와 훈련 피해 소음 등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이 많이 있습니다 일을 시작하며 문득 처음으. ‘로 돌아왔구나 생각했습니다 처음 이렇게 병역. . 거부를 고민할 때 바로 미군 장갑차에 의한 두 여중생의 죽음이 있었으니까요 감옥에 있을 때부터 . 줄곧 생각했던 것이 한국이 여전히 전쟁 중이라고 하는데 살면서 그것을 잘 모르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저 뉴스에 북한이 나올 때야 그저 고개만 . 끄덕일 뿐이었죠 하지만 여전히 군대로 인해 피. 해를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군대가 있.

다면 그건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 전쟁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지 주변에서 피. 해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전쟁. 의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길준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삶으로 투쟁해야 했던 그를 응원. 하고 싶었다고 지켜주고 싶었다고 저도 비슷한 . . 생각을 해봅니다 여전히 기지 주변에서 살아야 . 하는 사람들 그들의 일상은 그렇게 거창한 것은 . 못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은 전쟁의 그. 늘을 싸워내야 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부끄럽. 지만 그들을 돕고 응원하는 삶이 필요하겠다 생, 각했습니다 뒤돌아서기보다 그들 옆에 한 발짝 . 다가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우리 주변. 에서 보이지 않는 이길준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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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전쟁없는세상은 그동안 소식지를 통해서 한국사회에 일상화된 군사주의를 다루고자 했었다 이번 호. 24에서는 그 초점을 게임으로 맞춰보았다 언제나처럼 우리의 능력을 앞서는 욕심도 문제였지만 우리가 게. , 임과 그다지 친하지 않다는 것도 중요한 장벽으로 작용했다 어느 활동가는 기사를 쓰기 위해 스타크래프. 트를 새로 배우기까지 했다.

군사주의는 여러 가지로 이야기될 수 있을텐데 전쟁없는세상은 전쟁과 군사적인 것들이 너무 일상적, 이고 익숙해지는 것을 군사주의의 강화로 보고 이에 게임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했다 또한 게임의 어떤 측면들이 현실의 폭력과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게임의 . . 고수인 활동가와 게임 초보자인 활동가들의 게임체험기를 통해서 평화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게임을 하면서 느끼는 고민들을 담아내고자 했다.

기획기사를 쓰면서 가장 경계했던 것은 전쟁과 폭력에 대한 책임을 게임에 물으려는 보수적인 도덕주, 의의 관점이었다 전쟁과 폭력에 대한 책임을 게임에게 물으려는 태도는 자칫하면 현실적으로 전쟁과 폭력. 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을 가지는 집단에게 면죄부를 줄 수도 있다.

또한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도 경계하려고 했다 일상화된 군사주의에 대해서 고. 민한다는 것이 어떤 도덕적인 잣대를 세우고 타인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형태여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할 . 수 있는 일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의 시작일 뿐이다.

군사주의의 어떤 모습이 게임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의도가 충분히 충족되지는 못했다 부족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부족한 부분의 이야기들을 채워 가주기를 . , 바란다.

전쟁과 게임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 , 매체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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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화된 전쟁

전쟁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브레히트가 앞. 「으로 일어날 전쟁을 를 읊었던 세기에도 있었20」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교도를 무참히 살해했던 , 중세 유럽에서도 있었고 유비관우장비가 중원을 , ․ ․달리던 고대 중국에서도 있었다 책에서 보거나 .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들은 전쟁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내가 처음 경험한 전쟁은 아버지 부시가 일으킨 걸프전이었다 그리고 대학 신입생 . 시절 뭐가 뭔지 잘모르면서 선배들과 정세분석 세미나로 했던 코소보 사태 정도가 이전의 내가 911경험한 전쟁이었다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그. , 리고 그 이전의 두 차례의 세계대전 어쨌든 전쟁,

은 나의 인식 속에서는 비정상적인 상황 혹은 ‘ ’ 인간집단이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벌이는 극단적인 행동일 뿐이었다.

이후의 세계에서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911 . 전쟁은 더 이상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 미국의 . 아프간 침략과 이라크 침략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 들려오는 내전의 소식들 어쩌면 그 이전에는 나. 의 무관심과 무지로 인해서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후의 세계는 전쟁이 너, 911 무나 일상적이었고 신기하게도 이런 비정상적인 , 상황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TV를 보면서 말도 안돼를 연발하고 있었지만“ ” , 그 이 상황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그 다짐마저 익

용석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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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전쟁이 이토록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실제로 역사적인 사건으로서의 전쟁이 빈번해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냉전이 끝나면서 전쟁이 줄. 어들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이미 자가증식하는 거대한 산업이 된 전쟁산업과 부시행정부를 위시한 미국의 전쟁위주의 군사정책이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성격을 바꾸어버렸다 즉 특정한 . 공간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이루어지던 사건으로서의 전쟁이 전지구적인 영역에서 중단없이 지속되는 네버엔딩 스토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또한 베트남전쟁 이후 급속도로 발달된 전쟁과 대중문화 혹은 미디어의 발달과 전쟁의 연관, 도 중요한 이유일 수 있다 삼국지 나 일리. 『 』 『아스 와 같은 전쟁을 다룬 동서양의 고전들이 있』긴 했지만 베트남 전쟁 이후 전쟁은 대중 문화의 , 콘텐츠로 본격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 . TV와 극장 인터넷에서 우리는 언제든 실시간으로 , 전쟁을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실제의 전쟁과 . 실제에서 파생된 상품으로서의 전쟁과 전쟁의 속성을 닮아가고 있는 세상에 대한 비유입시전쟁( , 취업전쟁 광고전쟁등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다, ) .

서사가 제거된 게임

물론 현실의 전쟁에 대한 모든 책임을 대중문화에 물을 수는 없다 와 영화가 존재하기 전. TV에도 전쟁은 있었고 지나치게 참혹하고 잔인했다. 또한 전쟁을 소재로 삼았을 뿐이지 전쟁에 대한 반대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나 소설들도 많이

있다 또한 전쟁영화를 봤다고 해서 모두가 전쟁. 광이 되는 것은 아니고 전쟁게임에 심취해 있다, 고 해서 모두가 정치적으로 전쟁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대중문화를 전쟁과 폭력의 주범으로 바라. 보는 것은 특히나 전쟁이 일어나는 정치적인 구조와 경제적인 상관관계를 은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보수적인 도덕적 잣대로 전쟁. 을 바라보는 것은 전쟁으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사람들 전쟁을 바라고 재생산하는 사람들의 책임-을 감추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 등 다른 대중문화와는 다르게 전쟁을 다루는 게임은 일정정도 전쟁을 일상적인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전쟁을 긍정하는 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그 이유는 게임은 다른 문화. 적인 장르와 다르게 서사의 중요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반전영화나 전쟁에 대해 부정적인 . 소설을 있지만 전쟁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은 , 게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전쟁영화에도 볼거. 리의 스펙타클에 집착한 영화들이 있고 소설등도 , 특정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가지고 전쟁을 찬양하는 이데올로기를 수행하기도 한다 즉 다른 대중. 문화 영역들은 서사를 통해서 창작자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삽입할 수 있고 그것을 접하는 사, 람들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그런 메시지들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기도 한다.

물론 게임도 나름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의 유명한 삼국지시리즈는 중국의 고전 KOEI ‘ ’

삼국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커맨드 앤 컨커, ‘나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등은 역사적(C&C)’ ‘ ’

인 고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워크래프트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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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등도 판타지 세계의 스토리를 ‘ ’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 게임에서는 스토리는 . 존재하되 시나리오 모드에만 존재할 뿐 중요한 , 것은 상대방 플레이어 다른 게이머가 되었든 컴퓨(터가 되었든를 절멸하는 것이다 삼국지에 나오) . 는 다양한 인물군상들은 그저 전쟁을 위한 숫자로만 표현될 뿐이며 판타지 세계를 가능케 하는 상, 상력은 단순히 유닛간의 상성관계에서만 발휘될 뿐이다.

현실에서 멀어지는 게임 속의 전쟁

그러나 게임속의 전쟁들은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아무리 다양한 문화컨텐츠로. 서 전쟁을 향유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전쟁을 추악한 현실을 직면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때문. 에 게임은 전쟁을 현실이 아닌 가상의 시공간으로 도피시키려 한다.5) 리얼리티나 역사적인 고증에 서 높은 성취를 보여준 나 에이지 오‘C&C’ ‘브 엠파이어보다 스타크래프트가 성공한 이’ ‘ ’유는 전쟁을 즐기되 정치적이거나 민감한 이야기들을 배제한 채 그저 놀이로 즐기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를 블리자드사가 잘 파악했기 때문이다. 워크래프트 로 가면 한 층 발달된 그래픽 등으로 3더 이상 전쟁이 참혹한 어떤 것이 아니라 귀엽고 아름답고 신기한 캐릭터들이 나와서 벌이는 한 판의 마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게임에서의 전쟁은 현실의 전쟁이 가지

는 복잡성을 과감하게 지워버린다 현실에서의 전. 쟁이 다양한 정치적 경제적 이유들의 복합적인 원인들의 총체적인 관계 속에서 발발하고 진행과정 또한 전면전에서부터 외교적인 대화나 다른 여타의 외부의 국제사회와 같은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게임에서의 전쟁은 정치 경제 문화, , , 적인 요소들은 삭제된 채 오로지 군사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된다 전쟁은 게임 속에서 더 . 이상 현실의 전쟁이 아니면서도 가장 군사적인 ( ) (측면이 부각된다는 점에서 전쟁적인 행위가 되어) 버린다 이는 현실에서의 전쟁이 가지는 어떤 측. 면을 은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전쟁. . 이건 간에 모두가 정치적인 정당성을 스스로 천명하지만 사실은 전쟁을 수행했던 대부분의 정치권력들이 다른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즉 브. , 레히트의 말을 빌려 승전국에서도 패전국에서도 ‘하층서민은 죽을 수밖에 없는 전쟁에서 선과 악’은 서로 어지럽게 교차하며 굳이 도덕적인 기준이 아니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국제법상으로라도 전쟁을 수행하는 모든 주체들은 선보다는 악‘ ’ ‘ ’에 가깝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이 온갖 복합한 과. 정들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나는 선이고 상대‘ ’방은 절대적인 악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결‘ ’ . 국 전쟁은 악을 처단하기 위한 선의 필수선택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Nuclear launch detected

게임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전쟁.

5) 물론 잔인성이나 사실성이 극단적으로 추구되는 게임들 도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게임들은 특정한 매니 (FPS) . 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전쟁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온라인 윷놀이. 라고 일컬어지는 스타크래프트에 중점을 두고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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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한 아이들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전쟁에 참여에 무차별적인 살육을 일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너무나 비정상적이고 특수한 상황. 으로서의 전쟁을 아주 일상적이고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데 게임이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을 쉽사, 리 버리기는 힘들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지구인종. 족인 테란에 핵무기가 있다 게임이 장기전이 되. 다 보면 배틀크루저와 같은 고급유닛들이 나오고 핵무기도 등장하게 된다 인류의 절멸을 가져올 . 수 있는 핵무기 이미 수 십 년 전 지금보다 훨씬 ,

약한 핵무기만으로도 모두를 충격과 공포로 몰(?) 아넣은 그 핵무기가 아무리 게임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발사되어도 되는 것일까 나는 왜 핵을 ? 발사하는데 한 점 망설임도 없게 될까.

스타크래프트에서 “Nuclear launch detected” 핵을 사용할 때 나오는 저 한마디가 너무나 익숙해서 북한의 핵실험에도 미국의 핵무기가 남한에 , 배치되어 있다 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은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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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시작FPS

게임은 시작됐다 일단 빨리 움직여야 한다. .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나는 곧 살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빨리 움직이기만 한다면 이 세계에서는 살아남을 순 없다 결국 이 게임에서는 상대방. 을 죽여야만 모든 것이 끝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건 상대방 게이머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또한 . 나를 죽여야만 이 게임을 끝낼 수 있다 따라서 . 게임을 끝내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내가 상대방을 죽일 필요는 없다 내가 살해당하면 된다. .

그러나 살해당하기 위해 게임을 시작할 사람 은 한 명도 없다 즉 상대방도 나도 남에게 살해. ,

당하기 위해 이 게임에 접속한 것이 아니다 따라. 서 나는 죽지 않고 남을 죽이기 위해서 혹은 나, 는 죽지 않고 살인을 즐기기 위해서 이제부터 움직일 것이다 물론 큰 죄책감은 없다 이건 단지 . . 게임일 뿐이니까.

전쟁 게임은 옛날옛날부터 있었다 우리가 어.

릴 때부터 반강제적으로 읽었던 남성적 위인전기를 떠올려보라 강감찬 장보고 이순신 광개토대. , , , 왕 등등 유명한 왕과 장군들치고 어릴 때 다른 . 동네 애들과 목칼 들고 패싸움 안 해 본 위인이 거의 없다 그러니까 제발 애들한테 게임 많이 .( PC하지 말라고 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녀석들. 은 앞으로 우리 민족을 위해 누구든 단칼에 내리

형쥬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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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 버릴 수 있는 장군감으로 크고 있는 중이니까.) 그런데 그 남자 아이들이 손에 쥐고 있던 목

칼이 세기 들어 빠르게 진화하기 시작했다 총 20 . 비스무레하게 생긴 것들이 아이들 놀이에 점점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베트남전이 벌어. 지고 나서부터는 대중오락문화 전반에 현대적 전쟁 코드가 적극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영화. , 드라마 소설 속에서 연일 총과 대포의 굉음이 울, 려 퍼졌다.

오늘날 엄청나게 커진 게임시장을 연 전쟁PC , 게임의 효시 둠 이 개발된 것은 년이(Doom) 1993다 그 전까지 아이들은 현대전쟁을 놀이에 많이 . 차용하긴 했겠지만 그것은 탄총이나 물총을 통BB해서였을 뿐이다 그 때는 상대편에게 총을 맞으. 면 윽 하고 쓰러졌다가 놀이터 바닥이 너무 차거! 나 저녁 먹을 때가 되면 그냥 몰래 일어나서 집,

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탄총싸움과 둠 이후 . BB PC게임 간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다 둠 이후부터 . 우리는 적을 정말로 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놀이가 벌어진 자리에서 총에 맞은 아이들은 정말로 살해된 것처럼 사라진다 울면서 집에 돌아갔. 든 배고파서 집에 돌아갔든 상관없다 어차피 이. 건 가상현실 게임이니까.

게임에서 나는 대체 누구뉴규( )?

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6)와 더불어 대부분의 한국 게임 유저들을 사로잡고 있는 게임은 FPS

의 줄임말이다 모First-Person Shooting Game . 니터 화면은 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내가 총을 들1고 있는 것처럼 게임이 시작된다 물론 게임 속에. 서 카메라구도를 전환하면 멀찌감치 인칭 시점에3서 나를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인칭 . 3구도로 본다고 해도 게이머가 실질적으로 조작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아바타 하나뿐이다 즉 이런 . 장르 게임에서는 시점을 아무리 변화시킨들 게임 속 내가 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전쟁시뮬레이션 게임과 다르게 와 게임세계에서는 확실히 , MMORPG FPS 나라는 실존체가 존재한다 내 아바타가 확실‘ ’ . 히 그 세계 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 에 모니터를 통해 느껴지는 것이 한낱 가상세계일

6) 의 기초가 되는 게임은 기본적으로는 역할놀이를 말한다 엄마 아빠놀이 소꿉놀이처럼 각자 가상의 인MMORPG RPG . - , 물을 정하고 마치 그 인물이 된 것처럼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이 게임의 묘미다 여기에 조금 더 복잡하고 환상적인 . 세계관을 덧씌운 것이 흔히 얘기되는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 즉 다 따라서 는 인터넷 사이버 스페이‘ ’ , RPG . MMORPG스를 무대로 대규모 사용자들이 벌이는 역할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게임의 효시라 불리우는 미국의 게임 FPS PC의 실제 게임화면이다DO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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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이라는 사실은 게이머에게 그다지 실제적이지 않다 그보다 더 실제적 사실은 내 눈 앞에서 총. 을 쏴대는 적의 움직임과 총소리 수류탄 폭발음, 이다 적어도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난 전쟁터에 . 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히 모니터의 영상신호를 인식하는 현실 세계의 인간이지만 나라는 , 실존은 그 게임 안에 철저히 몰입된 것으로 구성된다 특히 게임 안에서는 신속하고 정확하게 . FPS움직이지 않으면 나는 언제 적의 총알에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아바타와의 동일시는 더욱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져야만 한다 바짝 긴장하지 않. 으면 내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곳이 바로 이 FPS 전쟁터다.

게임에 관심이 없거나 에 관심이 없는 , FPS이들은 이렇게 물을 지도 모르겠다 대체 그런 복. 잡하고 어지러운 게임을 왜 해야 되느냐고 말이다 물론 아무도 그 게임을 하라고 강요한 적은 . 없다 그러나 이런 류의 게임이 다른 오락물에 비. 해 굉장한 스릴감을 전해줄 수 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의 장점은 교묘한 거리감에 있다 게임이FPS . 기 때문에 우리는 가상현실과 거리감을 두고서 나를 작동시킬 수 있다 그런데 컴퓨터 게임 개발기. 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어서 우리가 현실과 가상을 구분 못 하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실보다 . 더 현실 같은 세계를 게임이 구현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보가 아닌 이상 잘 알고 있다. 어쨌든 이것은 단지 게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것은 가짜이며 가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그런데 게임은 오히려 우리의 이런 바보스PC런 자신감을 철저히 역이용하는 오락장르다 우리. 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게임을 한다 우리는 현. 실과 게임을 구분할 줄 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 그 자신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동시에 게임 속, 에서는 냉혹한 살인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이것은 단지 게임이므로.

전설적인 게임 개발자 존 카멕와 존 로메로는 자신들이 게임시장에서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게임을 . “(통해 게이머들은 교도소에 갈 걱정 없이 살인을 ) 마음대로 저지를 수 있다 따분한 일상에 질린 전. 국 직장인들이 게임에 빠져드는 것도 놀라운 일이

최근 가장 인기가 높은 한 게임의 홈페이지 화면인데 FPS , 게임의 배경 스토리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년 석. 2010유파동으로 인한 국제정세의 혼란 아프리카 지역의 쿠데타, 와 내전의 심화 선진국의 무기개발산업의 지나친 팽창 등, . 결코 가상현실이라고만 말할 순 없을만큼 탄탄한 스토리라인 앞에서 여러 가지 의미의 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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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7)

실정법과 도덕률을 모조리 무시하고 넘어선 자리에서 우리는 무기를 들고 서 있다 평범한 사. 람들이 처음 게임을 접했을 때 이런 존재조건FPS은 오히려 가상의 적보다도 더 두려운 요소였을지 모른다 누구도 나를 구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 명히 더 큰 구속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폭력성 폭력의 게임성,

그러나 그러한 평범한 죄책감은 이 곳은 가, 상세계이며 모든 것은 게임에 불과하다는 인식, , 그리고 그 인식을 하고 있다는 본인에 대한 자신감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쉽게 무뎌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우리는 점점 폭력 자체에 무뎌지고. , 타자의 고통은 모니터에 나타나는 빨간 이미지로, 타자의 비명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흥미로운 전자음 쯤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무뎌짐에 익숙해질수록 내가 저지르고 , 있는 폭력과 살인이 모두 게임에 불과하다는 바로 그 인식은 이제 점점 더 나를 옥죄기 시작한다. 청소년들이 게임 속 폭력을 모방해서 저지르는 끔찍한 범죄들이 이런 현상의 실제적 사례다 그들. 이 게임에 몰입할수록 주변의 인격적 타자는 한낱 가상적 이미지로 전락해버린다.

이 사례로부터 우리가 깨달아야할 사실은 그들은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 했으므로 미성숙

하고 열등한 개체라는 식의 생리 심리학적 인간-발달론이 아니다 강조되어야할 점은 바로 그 앞. 의 지점에 있다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 하게 . 만드는 원인 그것은 결코 성장 호르몬이나 훈육. 에 있지 않고 게임에 있다 충격적인 것은 아이들. 의 저지능이나 무분별함이 아니다 이 사건이 우. 리에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어쨌든 그것이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사건이 터졌을 때 그리고 이9.11 , 라크 전쟁이 시작됐을 때 전 세계인들은 두 가지 . 사실 때문에 놀랐다 하나는 갑자기 이러한 대규. 모의 살육행위가 문명국 사이에서 일어났다는 점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그 문명에 의해서 대, 규모 살육이 마치 컴퓨터 게임 화면처럼 생중계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문명은 타인의 죽음마. 저 게임처럼 보고 즐길 수 있는 상태까지 도달했

7) 데이비드 커시너 둠 컴퓨터 게임의 성공 신화 존 카멕 존 로메로 어심민 옮김 , - & . . media2.0. 268p『 』 .

현실의 수많은 폭력이 게임화되고 있다 우리는 타자 . 를 전자신호로 레이더에 표시되는 한 점 쯤으로 여기, 고 있진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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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몇 주 전 북한에서는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 사건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이라크 9.11 ,

사건보다는 훨씬 들뜬 언론은 대포동 미사일의 설계도부터 현재 항로까지 모두 시뮬레이션 게임화시켰다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잠시 두려움. 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이 느낌은 게임을 . FPS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고독감 공포감과 비슷했+다.

게임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기 위해 기술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렇다면 설마 이제 현실이 게. 임을 추격할 차례가 오기라도 한 것일까 게임방? 에 들어선 순간 들려오는 온갖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일상적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전쟁의 시대 지.

금의 우리는 과연 게임의 폭력성을 탓할 수 ‘ ’있는 상황에 있을까 오히려 폭력의 게임성이 지? 금 시점에서는 더 큰 문제는 아닐까?

그것이 대포동에서 쏘아 올려졌든 망원동에서 , 쏘아 올려졌든 간에 미사일은 사람 몇 천 명을 죽일 수 있는 무기다 그런 끔찍한 폭력수단에 대한 . 보도가 프로게이머 리그 생중계만큼이나 스릴을 제공하는 이 기묘한 시대 과연 게임에 중독. FPS된 어린 아이들을 우리가 훈계할 자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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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월 중순의 어느 일요일 저녁 해본 2009 4 . 게임이라고는 테트리스와 카트라이더가 전부여서 이번 소식지를 준비하는 내내 힘들었던 양은 한Y동안 이바닥에서 게임으로 꽤나 유명했던 하지만 , 지금은 게임을 하지 않는다는 병역거부자 군을 D만나기 위해 까치산으로 향했다 양의 부탁으로 . Y아주 오랜만에 군은 스타크래프트를 설치하고 D먼저 컴퓨터와 하는 싱글 플레이로 가볍게 시범을 보였다 얼마 후 양은 그나마 가장 거부감이 덜. Y한 지구인 종족인 테란을 선택해서 모드Tutorial 로 주어진 미션을 하나씩 수행해나갔다 그렇게 . Y양의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전쟁게임 체험이 시(?) 작되었다.

일상은 전쟁을 준비하는 시간

딸깍딸깍딸깍딸깍 딸깍 딸깍 딸깍딸깍 딸, , , , 깍 계속반복( )…

화면에서 이것저것을 하며 자꾸 왔다갔다하는 여러 종류의 유닛에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멈추, 지 않는 마우스 클릭소리는 더욱 정신이 없었다. 배려심 많은 군은 최대한 천천히 설명해주면서 D단축키보다는 마우스로 게임을 하고 있었지만, Y양은 누가 쳐들어온 상황도 아닌데 계속 바쁘게 움직이는 유닛들과 군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세D . 히 들여다보니 자원을 모으고 건물을 짓고 공격, , 에 필요한 유닛들을 만들어내는 중 자원을 충분.

여옥 |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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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확보하고 그것으로 공격에 필요한 유닛을 많이 만들어야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데 스타크래프트 , 같은 실시간 전략게임에서는 내가 유닛을 만드는 동안 상대방도 열심히 자원을 모으고 유닛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 서둘러 전쟁준비를 해야하는 것이다 모아지는 미네랄과 가스. 를 남기지 말고 계속해서 건물을 짓고 공격유닛을 만들어야 한다 전투가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도 .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전투를 대비하는 것이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평소에 빠른 속도로 전쟁준비를 계속해야 한다 언제 적들이 공격해올지 . 모르니 항상 긴장감을 늦춰서는 안된다 그런 긴. 장감과 속도감이 턴 제 게임Turn 8)과는 다르게 더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고 더욱 스릴있다는게 D군의 설명이다.

모든 것을 결정하는 나의 위치‘ ’

전투를 대비해서 공격유닛을 자꾸 만들어낸다. 어느 정도 유닛들이 만들어지면 조급한 마음이 조금은 해소된다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유닛들로 방. 어태세를 갖추고 적의 공격을 기다리던 양은 언Y제 공격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점점 커진다 그. 리고 적이 지금 무얼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자 언젠가는 반드시 공격해올 적들이기에 , 부대를 이끌고 적을 찾아 이동한다 게다가 내가 . 공격해야하는 적은 인간이 아니다 그렇게 선제공. 격은 최상의 방어로 정당화된다 기지를 지키는 . 방식으로 살아남을 것인지 선제공격을 통해 적을 , 없애고 살아남을 것인지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전적

으로 양의 결정이다 어디에 어떤 건물을 세울 Y . 것인지 공격유닛의 업그레이드 기능을 개발할 지 , 숫자를 늘릴건지 선택하는 것도 양의 몫이다 우Y . 리 편 땅이 넓어지는 것 같은 마음에 건물을 멀리멀리 세우다가 망하는 것도 파괴해야하는 상대편 , 기지가 강 건너편인줄도 모르고 무조건 마린을 많이 만들었다가 실패하는 것도드랍쉽을 몰랐다ㅠ( ) 온전히 양의 책임이다 게임에 있어서 게이머는 Y . 거의 절대자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게임 안에서 전쟁은 자연스럽게 일. 어난다 하지만 사실 현실에서의 전쟁은 자연스. , 럽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일으‘ ’ ‘키는 것이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든 자유와 ’ . , 해방을 위해서든 상대방을 공격하는 동일한 행위가 일어난다 저그든 프로토스든 상대방 종족을 . 없애야 하고 무력을 쓰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하지만 상대방도 나를 보며 마찬가지의 생각. 을 하고 있겠지?

전쟁의 수단 전쟁의 도구,

계속 유닛을 만들어 내다보니 양은 자신이 Y보유한 유닛의 숫자와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전투가 발생한 다음에는 얼마. 나 죽고 다쳤는지 얼마나 죽였는지 알 수가 없었, 다 군이 알려준 화면 오른쪽의 작은 숫자로 사. D라진 유닛을 대충 파악할 뿐이었다 자신이 만들. 어낸 유닛들이 어떻게 공격을 당해서 어떻게 죽는지는 관심대상이 아니다 공격에 도움이 되기 위. 해 존재하거나 적의 공격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

8) 바둑이나 보드게임처럼 상대편과 내가 한 번씩 순서대로 진행하는 방식의 게임을 말한다 히어로스 오브 마이트 엔 . 메직 아틀란티카 삼국지 등이 있다(Heroes of Might and Magic),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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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버티다가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게이머가 . 보지 못하는 공간에서 공격을 받기도 하는데 유, 닛들은 직접 지시하지 않아도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알아서 공격을 한다 공격할 수 없을 때는 . 도망다니다가 죽는다 상대편과의 관계는 죽이거. 나 아니면 죽거나 둘 중 하나이다 전쟁게임 속에. 서 다른 여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많이 죽. 이고도 괜찮은걸까 군은 스타크래프트는 죽이. D ‘는 느낌이 별로 없고 게임을 통해 그런 타격감’ , 을 원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타격감을 중요하게 . 생각하는 사람들은 게임FPS 9)을 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실감나는 게임을 원하는데 실제 상황과 비슷한 커맨드 앤 컨커10)와 같은 게임은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흥행실패여부에 대한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궁금했다 군은 애니메이션이 ) . D너무 사실적이고 사람과 똑같으면 오히려 실패한다고 하며 게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사람들이 , . 게임에서 원하는 것은 판타지인 것이다 게임에 . 정치적역사적 맥락에다가 미국적인 시각까지 들어․가 있다면 게임을 게임으로만 즐기지 못하고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래픽이 발달해 시. 각효과를 높이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게임 . 때문에 컴퓨터 사양이 좋아진다는 얘기가 진짜였나 보다.

온라인게임계의 윷놀이

너무나도 가볍게 컴퓨터를 이긴 군은 맛보기D로 워크래프트 를 보여주었다 조금전과는 차원3 . 이 다른 그래픽에 감탄하던 양은 이런 게임이 Y있는데 왜 아직도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지 궁금했다 군은 스타크래프트가 온. D ‘라인게임계의 윷놀이와 같다고 했다 평소에는 ’ . 하지 않다가 명절에 친척들이 모이거나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피씨방에 가서 스타를 하기도 한다는 다른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심. 지어 예전에 병역거부자들 몇 명이 사무실에 모여서 스타를 하며 놀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다른 사. 람들과 함께 하기 위한 놀이로서의 스타크래프트, 그만큼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할 줄 안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직도 양에겐 어렵지만 너무 쉬. Y , 우면 금방 지루해질테고 너무 어려우면 배우기가 힘들어서 진입장벽이 높아진다스타와 비슷한 듯 . 하면서도 그래픽이 훨씬 뛰어나고 와 접목되RPG어 더 어려운 그래서 아무나 하는 게임이 아닌 , 워크래프트 에 빠져든 적이 있었던 군은 배틀넷3 D에서 전세계 순위다툼을 하기도 했다 갑자기 전. 략이 생각나서 새벽 시에 자다일어나 게임을 해4서 이겼던 적도 있었단다 레벨 이 최고일 때 . 50

을 넘어서 중고수급까지 올라갔지만 지금은 재40미가 없어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양은 이런 . Y D군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9) 인칭 슈팅 게임 는 게임상의 캐릭터의 시점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전 컴퓨터비디오 1 (First-Person Shooter, FPS) ·게임이다 서든어택 카운터 스트라이크 스페셜포스 등이 있다. , , .

10) 커맨드 앤 컨커 또는 는 년에 웨스트우드 스튜디오 에서 개 (Command & Conquer, C&C CNC) 1995 (1985 - 2003)발하고 일렉트로닉 아츠에 의해 배급된 실시간 전략 게임의 하나이다 커맨드앤컨커 시리즈의 정통이라고 할 수 있. 는 레드얼럿 시리즈는 제차 세계 대전을 막기 위해 히틀러를 제거한다는 대체 역사물이고 년 월에 레드얼2 , 2009 3 '럿 시리즈의 확장팩인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업라이징을 출시했다' ' 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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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목적

예전에 스타크래프트를 하면서 전쟁과 폭력에 반대하는 사람이 이런 게임 해도 되나 고민을 했다던 어떤 병역거부자의 이야기를 양은 잠시 떠Y올렸다 게임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재미와 . 만족을 얻으면서도 누군가는 게임과 현실을 철저히 분리해내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전쟁 상황에서 , 적을 비인간화하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항상 존재하는 적은 다른 수. 단이 아닌 전쟁을 통해 해결해야하고 필요하다면 , 계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군인으로 전투를 벌이고 이기기 위해서라면 군인의 희생 정도는 기꺼, 이 감수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전쟁게임을 통해 영향을 받는 것이라면 전쟁게임을 즐기는 수많은 . 사람들 중에 일부라도 그런 생각에 젖어든다면.

그래서 모니터로 보는 전쟁과 티비에서 보는 전쟁을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감수성을 잃어간다면 전쟁게임을 게임이니까 괜찮다고 하고 넘. ‘ ’어가도 되는 것일까 처음부터 문제의식을 가지고 . 목적의식적으로 전쟁게임에 접근한 양은 게임은 Y즐겨보지도 못하고 불만만 늘어놓았다 전쟁게임. 과는 어울리지 않는 감수성 때문인지 손놀림과 , 반사신경이 둔해서 그런건지 며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미션을 몇 단계 깨지 못한 양은 딴Y지걸려고 했던 메딕은 만나보지도 못했다 그러다 . 케리건을 만나 몹시 당황했는데 메딕이 유일한 , 여성 유닛인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타크래. 프트 의 동영상을 찾아보고는 감탄했다 이러다가 2 . 설마 불순한 의도로 계속 스타크래프트를 해보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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늬들이 고생이 많다 앗싸 ㅋㅋ 게임얘기. 다 하앍하앍 횽아 나 닌텐도 사듀세여!!!! !!! DS !!! 먼저 웃긴얘기 하나예전에 인터넷에서 돌아다니. 는 사진중에 게임진흥위원회인가 하는 정부부처에서 행사당시 플랭카드를 걸고 사진을 찍는데 ㅁ' '자가 가려져서 게이진흥협회로 나온적이 잇엇다, ' ' . 게이진흥협회라뉘 ㄷㄷㄷ 호모 섹슈얼리티를 진;;;흥한다는 얘기 이거 게이인 나로서는 완전 신나? 는 일이자나 ㅋㅋㅋㅋ 어쩔수 없어 세상의 이치!! 야 영원히. .

게임에 대한 글을 청탁받고 오덕후 게임폐인

인 나는 게임의 문제점이 뭥미 싶었지만 그' ?" ..;; 래서 글 수준이 저열하고 다소 경박스럽다고 해도

그냥 읽어주시길 바란다 난 다중접속 . MMORPG(롤플레잉 온라인게임 이라는 장르를 완전 완소 하)는데 특히 솬수를 데리고 다니는 캐릭을 조와라 한다솬수 소환수 가 없으면 외롭기 때문이다 난 . ( ) . 예전부터 나의 인생목표중 하나가 애인과 함께 방 가서 야간정액을 끊고 같이 서로의 캐릭을 PC

키워주는게 소원이였다 그 얼마나 알흠다운가. ? 니들이 연인끼리 방에서 시켜먹는 수제비의 맛PC을 알어 ㅎㅎ 웃자고한 진담이고 게임에도 ?? ;; , 다양한 장르가 잇을꺼이고 다소 유익할지도 모르, 는 게임도 잇을꺼다.

이를테면 닌텐도사의 게임들은 상당히 아기자

기하고 독창적이며 정서적으로도 유익하다고 생각

효웅 | 병역거부자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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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선악의 이분법이 명확한게 좀 흠이긴 하지. /만 그래도 배불뚝이 배관공이라는 시민권이 없;; 는 다소 퀴어적인 주체가 주인공인점도 고르져스하고 버섯을 먹고 꽃을 먹고 나뭇잎을 먹는 등의 , 채식주의의 정치학을 표방하기도 하며 그는 배불, 뚝이 배관공으로서 외모차별주의와 산업화된 현대자본주의사회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폭로하는 게임인 것이다 물론 예비병역거부자이자 개인적으로!! (는 저의 시아주버님 되시는 좐의 분석에 의하면 슈퍼마리오는 자신의 임노동에 대한 댓가로 돈을 너무 밝히는 천박한 배금주의자라는 한계가 잇다고 한다 기타 닌텐도사의 게임들은 비디오게임.) 계를 지배하고 있는데 슈퍼마리오 시리즈는 누적 , 통산 합산판매량이 억장 정확하지 않을수도 3 !!!!!!!(잇음이라는 경이적인 판매량솔직히 이정도면 비) (틀즈의 음반도 따귀맞을 정도로 우리 생활세계를 침투해있는 것이다 을 자랑하는 닌텐도사의 게임.)들은 동심어린 세계와 기엽고 깜찍하고 카와이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로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고마운 친구들이다 맘마미아. ( ~ )

하지만 점점 그래픽 기술이 발전함에 따3D

라 게임속 버츄얼 리얼리티는 점점 실사판 그래픽으로 발전하고 잇고 이를테면 같은 수없이 , GTA논란이 되며 항의를 받는 문제작인 게임은 민간, 인을 자동차로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수도 있는 반사회적인 게임으로 항상 논란이 되어왔다 사회적 . 금기에 대한 위반욕망이라는 심리가 게임속에서, 는 실현이 가능하니 구체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현실원칙에 의해 억압된 쾌락원칙을 게임속에서 구현하는 거다 그뿐만이 아니라 리니지나 와우같. 은 게임들은 중독성이라는 점 때문에 지mmorpg

탄을 받는데 나를 보면 알수 잇다 내가 고생이 ( ;;많다 이 점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하겟다.) .

일단은 평화주의자 생태주의자이자 와우 만랩,

을 찍은 고랩이자 언니들은 너랑 놀아줄 시간이 , <없단다 의 길드원으로서 바라본 게임의 문제점중 >하나는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시옹과 시뮬라르크처럼 점점 현실과 가상과의 경계가 무너진다는 점이다 일례로 심즈같은 슈퍼히트 게임이나 세. ' ' '컨드 라이프라는 가상공간을 디테일하고도 충격적'으로 표현한 게임은 세컨드 라이프가 과연 게임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걸로 안다), 정말 그야말로 니가 상상하는 일상생활에서 가능한 모든 일들을 할 수 잇다 심지어 세컨드 라이. 프 게임속에서 유통되는 화폐는 곧바로 현금화시킬수도 잇는 것이다 한국의 많은 게임들도 이점. (이 문제가 되고 잇다 특히 초딩들이 돈도 많이 . 벌고 많이 쓴다 세컨드 라이프 속에서 얼마나 재) 밋는 일들이 많은가 하면은 변호사가 자신의 아, 바타 캐릭터에 대한 재산권침해에 대해서 소송을 통해 승소한 일도 잇으며미친거 아냐 별걸로 다 ( ? 소송을 하네 미국이엿나 프랑스엿나 정-_-;;), 당의 부스를 세컨드 라이프속에서 설치해놓앗더니 정치적 반대세력들에게 테러를 당한 일도 잇엇다. 또 관타나모 수용소를 가상으로 세컨드라이프에서 구현해놓앗더니 그곳에 잇던 게이머유저 가 폭력, ( )적으로 변해서 다른 유저들에게 린치를 가햇던 엽기적인 사건도 잇엇다고 한다 물론 !!!!!!!!!! . 게임속에서 아주 게임얘기 나오니깐 신이 낫. (다 와우에서는 동성애자 길드가 게임속..;;-_-;). 에서 따돌림과 증오범죄를 당해서 뉴스화된 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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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장르가 있다면 는 이종격투기급FPS

특히 가장 문제적인 장르는 라는 그 자FPS , 체가 군사훈련적인 게임이다 전쟁이 게임인지. , 게임이 전쟁인지 모른다는 보드리야르의 분석처럼 특히 이 장르는 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높고 그만(큼 군사주의화된 나라이고 마초가 많다는 소리야 , 이양반아 항상 게임순위 상위에 포진해잇다 전) . "방 수류탄 이라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아!" , 예 지들끼리 군대식 계급도 잇어서 중령 소위, , 이딴게 지 레벨이다 최대한 덜죽고 많이 죽일수. 록 계급이 높아진다 최근에는 아예 남북-_-;;;; 대치상황을 게임소재로 만든 것도 출시준비 광고를 하는걸 봣다.

문제는 이런 게임들이 가져올 폭력의 학습효

과와 폭력에 대한 무덤덤함이다 생명경시와 인간. 의 존엄성이라는 보편타당한 명제가 살아잇고 숨, 쉬고 야동을 보는 유기체로서의 인간이 가상공간속에서 아스키코드의 이진법 디지털로 표현된 폴리곤으로 만들어진 인간들로 대체될 때 그것은 허용될수 잇냐는 거다 특히 장르는 평화운동. FPS 진영에서 분명히 반대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죽이면서 새디즘적 쾌락을 맛보는 . 이 변태들이 나보고 게이라서 변태라니 지나가던 , 방귀대장 뿡뿡이랑 피카츄가 비웃을 일이다.

그렇지만 ㅠㅠㅠㅠ 닌텐도 게임은 너무 기여

워서 안된다 게임에도 옥석을 가려야 한다 게!!! . 임에도 상상력과 동심의 세계가 가능함을 보여준 게임계의 이단아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악당들. 도 다들 너무 기엽게 생겨서 못죽이겟따 ㅠㅠㅠ

그리고 와우도 안되요 와우 노움종족은 완소 레!! 어에여 ㅠㅠㅠ 아 각설하고 최근에 히트를 치고;; 있는 블리자드사의 게임들로 위시되는 MMORPG장르는 현재진행형이라 생각한다 나 서바이. FPS벌호러게임들처럼 폭력적이고 피가 난무하는 프레임들은 많지 않지만 더러 있는것도 사실이며 특, 히나 문제되는 것은 라는 게이머 대 게PK(PVP)이머의 전투이다 서로 상대방을 죽이면 점수를 . 얻고 아템을 좋은것을 보상받는 방식은 좀 저열, 하지만 반드시 모든 가 폭력적인 학습, MMORPG효과만 잇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례로 와우. 월드오브워크래프트 에서는 파티를 맺고 길드를 ( ) , 맺기도 한다 혼자서 솔로잉으로 커가는데는 한계. 가 잇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야 하. 고 그럴려면 자신도 무언가를 줘야 한다 반드시 , . 상대방을 죽인다고 해서 원하는걸 얻을순 없다 . 사회성이나 관계맺기를 하지 않고서는 게임속에서 살아갈 수가 ㅇ벗다.

알튀세르와 매슬로우의 주체로 바라본 MMORPG

니들이 뭘알겠니 나처럼 방에서 이틀밤을 . PC

새다가 고혈압으로 죽을뻔해봤겠니 수능전날에 , 게임을 하다가 늦잠을 자봤겠니 여튼 왜 . ..;;;

게임은 특히 중독성이 쩔고 인기가 있는 mmorpg것일까 왜이렇게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까 대규? ? 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이라는

이 다른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과 구분[MMORPG]되는 가장 큰 특성중의 하나는 직업의 특성화에 있다 현실세계의 사회 정치 경제시스템의 축소. , , 판이나 다름없는 는 역할분담게임이기 MMORPG때문에 아담스미스가 말한 분업처럼 각자 맡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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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충실히 수행하면 누구나 주체가 될수 잇다. 이미 직업을 고르는 순간항상 이미 존재하는 호, -명의 부름을 받게 되어있다 이를테면 와우를 하. 다보면 대도시에서 이런 광고들을 흔히 당신을 볼수 있을것이다 완소 힐러분 모십니다 탱딜 대. " ~ /기요 너 와우 한번도 안해봤니 즉 ~" ? MMORPG세계속의 타자들은 당신을 당신의 직업이 가지고 있는 필요성때문에 당신을 호명 하고 있는 것이< >다 게임속에서 각자는 꼭 필요하며 가장 다양한 . , 직업들이 시너지 효과를 얻을경우 가장 클리어의 효과가 극대화되며 각 직업들은 모두 소용되기 , 때문에즉 버림받는 비체 는 한명도 없다는 , ( )非體것이다 즉 개똥도 약에 소용된다고 쓸모없는 사. , 람은 없는 것이다 각자의 직업에 따라 시너지효. 과를 발휘할때 쉽게 게임을 클리어하고 진행할 수 잇거든 나 또한 별로 인기가 없는 흑마법사 직업. 이지만 가끔 누군가가 나를 불러준다면 그에게로 꽃이 된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무언가 내가 세상, 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이고 다른이들에게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짜릿한 주이상스를 준다 그리. 고 다양한 직업과 종족을 구현하고 선택하며 자, , 아실현을 할수 있다즉 현실세계에서는 히키코모. 리 니트족 덕후폐인에 만원세대 백수에 막장인88생인 너도 자아실현을 할수 있다는 것이다 욕구 . 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단계인 자아실현 사회적 !! 경제적 다양한 변수들과 이미 시작이 불공평한 계급교육조건으로 인해 자아실현이 프로게이머랑 /스타하는 것처럼 어려운 현실세계와는 달리 게임에서는 보상도 빠르고 확실하게 투자한만큼 자아, 실현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은 그만큼 중독성이 있다!!!!

헤겔적 주체로 바라본 MMORPG 헤겔의 과정 중의 주체와 텔로스의 여행은 - -

의 끝없는 렙업노가다의 부질없는 세계MMORPG관과 닮아 잇따만나는 타자몹들을 무덤덤하게 . ( )소멸시키고 그럼으로써 자아안에 타자들을 통합,

시킨다 때론 지보다 쎈몹을 만나(LEVEL UP!) . 면 지가 맞아서 뒈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또다, 시 굴하지 않고 변증법적으로 주체가 되어가려고 노력한다 헤겔적 주체는 죽을때까지 계속 해야한. 다는 점에서 레벨업 게임과 유사하다 헤겔적 주. 체는 죽음으로서 종결되지만 게임속 세계는 죽으, 면 무덤가서 부활하면 땡이다 자기와 세상을 알. 기위해 그리고 타자를 앎으로서 자신을 알게되려 , 여행을 계속한다는 호기심많은 헤겔의 과정 중의-

주체는 다양한 사람들과 몹을 잡으면서 자신을 - , 완성해간다는 점에서 헤겔의 주체다 즉 .

에서 게이머들은 부질없어 보이는 반복MMORPG된 전투를 통해 자신과 세계를 알고 자신을 만들, 어가려는 존재론적인 욕망과 정신현상에서 비롯된 삶을 살려고 하는 것이다 니체식의 자기 정의적. -인 주체는 게임에서 필요없다 재미도 없고 감동. 도 없고 니체나 들뢰즈의 주체는 누가 키워놓은 ....만랩 캐릭을 주는거랑 똑같은거다 재미없자나. !!! 쪼렙부터 고생하면서 커야지 재밋지 그래서 인간. 은 타자를 필요로 하는거다 심지어 못생긴 몹이. 라도 그래서 주체는 타자의 인질인건가!! ??

어쩔수 없어 세상의 이치야 영원히.

게임에 반대한다는 것은 스포츠나 음악에 반

대한다는 거 만큼이나 힘들다 폭력적인 영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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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다고 영화산업 자체를 문제삼을순 없듯이 우리, 는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아닥하고 개입하면 그뿐이다 그 수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보편적 합의. 는 존재하겟지만 게임산업은 다른 모든 산업이 .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와 국제금융불안속에서도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한 산업이다불황을 모!!!!! . 르는 해가 지지않는 산업이다 이미 영화와 출판, . 시장은 게임산업밑에 닥버로우하고 머리를 조아릴 정도이며 미국과 일본같은 중심주 자본국가는 게, 임산업을 통해 문화적 경제적 지배를 하고 잇다, . 특히 충성도면에서 게임만큼 소비자를 잡아두는 것도 업따 나만해도 와우 정액요금을 몇번이나 . 지불햇는지 모른다 뿐만인가 관련산업으로의 타. ? 이 업 도 무궁무진해서 다양한 마케팅과 (TIE-UP) , 상품시장과 결합될수도 잇따 황금알을 낳는 거위. 다 그리고 사실 비디오게임이 점점 현실화되서 . 그렇지바둑이나 장기같은 원시적인 게임들과 본, 질적으로 다른건 별로 읍따 장기판도 전쟁의 축. 소판이 아닌가 실사인것과 아닌것은 차이점이 천? 양지차이겟지만 교육이나 주술의 효과에 있어서( ?), 기술의 발전에 의거햇을때 장기가 레인보우 식스로 발전한것은 맑스의 역사단계설만큼이나 당연5한 이치이다 솔까말 보드게임과 비디오게임 그. , 리고 스포츠와 스포츠를 나누는 기준은 모호하E-다고 생각한다.

어떤건 게임이고 어떤건 게임이 아닌겅미, ?

혹은 어떤 기술매체와 결합한 것만을 별도로 문제삼을수 있을까 비디오게임이 문제라면 보드게임? , 도 문제가 될것이고 스포츠도 문제될 것이다 술. 래가 되어 잡으면 죽는 숨바꼭질은 경쟁과 따돌' ' 림을 부추키는 걸지도 또하나의 초난강한점은. ,

성매매 반대론자들이 결국 국가주의를 강화하고 성적 보수주의와 조우하는 지점이 있듯이 게임에 , 대한 반대가 국가에 대한 검열권을 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동방신기 노래가 음란하다거나 게임에 관해서

도 통제와 검열을 하면서 지들 좋을대로 우리들을 좌지우지하려고 하는 게임 마스터 같은 정GM ( ) 부들은 판옵티콘에 우리를 가두고는 여기서만 렙업을 하라고 할런지도 모른다 이는 김일병 . GOP 총기난사 사건당시 군부대내의 반인권적이고 폭력과 억압적인 문화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군대, 의 속성 자체를 눈속임하고자 김일병을 게임 매니아로 이야기했듯이,

그것은 국가가 자신들의 죄를 덮기위해 마녀

사냥을 하고자 게임을 핑계댈런지도 모를만큼 마당 깨진데 솔뿌리 찾고 앉았는 격이 될지도 모른다 콜롬바인 총기난사사건당시 미국총기협회인 .

가 자신들의 죄를 덮기위해 마릴린 맨슨이라NRA는 마녀를 찾아냈듯이 말이다물론 평화주의자로. 서 개입하는 것과 이것을 같다고 하는건 아니지만 검열같은 권력을 저 오크같은 국가한테 준다, 면 인간세계가 위협을 받을꺼라 이얘기다.

또 난 좀 특이하게 게임의 다양한 , MMORPG

아바타와 종족들을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기도 하다 후로게이 라는 일본식 신조어 게임속에서 . < > (여성역할을 하며 렙업에 유리하고자 남성들을 낚시하는 남성들을 가리킴 로 대표되는 것처럼 게) 임속 환타지 세계는 다양한 패러디와 드랙의 세계이며 아이템과 다양한 튜닝을 통해 우리의 몸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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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를 마음대로 갈아입을 수 있다 이는 패러디. 적인 증식을 통해 젠더 이분법에도 균열을 내며 진보하는 측면도 조금 어거지인건 알지만 없진 않다고 생각한다 코스프레나 드랙이 그래도 많은 . 젠더 이분법과 정형화된 고정관념들을 깨트려준 상상력있는 정치행위가 아니였던가 현실에선 맨!! 날 똑같은 직업에 정체성에 성별도 게임에서는 , , 다양한 직업과 다중적 다층적 정체성과 성별을 취사선택할 수 잇는거이다 젠더와 역할의 가장무도. 회가 펼쳐지는 상상속 나래의 유토피아!!!!

그리고 오크나 언데드같은 조금 안습인 종족

도 선택함으로써 세상에서 타자화된 존재들에 대, 해서도 공감할 수도 있따 누구나 엘프는 아니지 . 않은가 그리고 선악이분법에서 벗어나 상대주의. 적인 관점에서 악한 종족을 선택함으로써도 얘네"는 왜 악하다고 규정당해질까하는 생각의 기회를 "통해 니체식으로 선악의 이분법이나 도덕근본주의를 의심해볼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타자들을 . 인정함으로써 아 오크나 언데드가 없다면 블러" , 드 엘프와 나이트 엘프 그리고 인간도 없는 거구, 나 하는 식으로 타자들의 가치를 존중하게 될런!!"

지도 모른다.

참 쉽죠 잉~

는 게임이 아니다 현실의 권력관계MMORPG . 에 축소판일 뿐이다 차라리 게임속 세계속에서는 . 누구나 주체가 되기도 하고 타자들과 공존한다는 점에서 니들 세계보다 날때도 잇는 것이다 게임. 을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현실세계의 삶에 지장, 을 준다는 건데 정확히 자본주의적 청교도 윤리, 관이다 노동이나 노동에 필요한 교육시간을 박탈. 한다는 거이다 이는 자본주의가 원하는 인간형이 .아니다 히키코모리나 장애인이나 자본주의는 똑. 같이 원하지 않는다 자아실현을 차단시키며 인간. 을 통제하는 게임보다 더 게임같은 이 플레, PK(이어간 전투가 난무하는 무한경쟁사회나 바꿔버)려 게임은 그 해방구인 측면이 있으니깐 말이다. . 솔까말 게임속 잔인함은 현실을 반영한 것일 뿐, 이다 현실이 게임을 반영한다는건 아직까지는 이. 명박이 잃어버린 년을 바로잡앗다는 것처럼 지10 , 나가던 타우렌이 비웃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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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톨스토이 할아버지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나는 톨스토이의 작품을 접한적이 . 없다 병역 거부자 문제와 평화주의 비폭력에 관한 글을 읽다보니 톨스토이까지 만나게 되었다 나는 톨. , . 스토이가 이렇게까지 비폭력주의자였으며 평화주의자였다는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년전에 나온책이. 100다 그때 당시도 국가가 있었고 정부들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훨씬더 복잡해졌고 세분화되었고 시민들은 . , , 더욱더 국가에 길들여 졌다톨스토이는 국가자체가 폭력이라고 이야기 한다 정부의 존재자체가 폭력이고 . . 권력이 폭력을 낳는다고 한다.

나는 요근래 들어서 국가와 애국심의 개념에 대해서 한번씩 생각하곤 한다 국가라는것이 그렇게 경건. 해야만 하는것일까 개인의 평화는 안중에도 없는 국가를 위해서 우리는 애국심을 가져야만 하는것일까? ? 왜 우리는 국가안에서 하나로 뭉쳐야 하는것일까 국가는 때론 애국심을 빌미로 다른국가에게 적대감을 ? 조장한다 거대재벌이나 관료집단 정치인들이 잘못해서 벌어진 파국들을 애국심에 호소하며 우리보고 봉합. 하라고 한다 정부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제대로 돌려주는건 별로 . . 없다 사회복지에는 무관심하고 부당한 해고에 투쟁이라도 하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세금을 낸 우리를 . 폭력적으로 진압한다왜 전경들은 세금을 낸 시민을 지키지 않고 권력자들과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을 지키. 는걸까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게 아닐까 그러면서 그들은 국가의 기강과 안정을 이야기 한다 공권? ? . 력이 없을때 벌어질 폭력의 크기와 공권력으로 시민을 억압하는 폭력성중 어는것이 더 심한것일까 여전? 히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 가 생각난다< > .

톨스토이는 오랫동안 살아서 그런지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잘못된 권. 력을 개선하자는 개혁가들의 이야기에 대해서 하나하나씩 반박한다일단 권력이 생기게 되면 자신의 이익. 을 더 구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물욕이다 혁명가들은 잘못된 정부를 폭력으로 뒤엎고 제대로 된 정부. . 를 개편하자고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다시 권력을 잡게 되는 사람들은 또 권력을 휘두르게 되고 다시 .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성찰 -『국가는 폭력이다 를 읽고 』박조건형 | 전쟁없는세상 후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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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억압하게 된다 사회주의자들처럼 공동으로 소유하고 분배하자고 이야기하자는 사람들에 대해 그. 런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적게나마 조직을 운영해야 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필시 권력이 생긴다는것이다 그. 렇다면 어쩌라는것인가 톨스토이는 정부를 거부하고 투쟁을 거부하고 폭력에 대해 저항하는것을 거부하? 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왼뺨을 내밀면 오른쪽뺨을 내밀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평화로 가는길. . 이며 폭력과 권력의 생성을 막는 길이라고 말한다 유토피아적 발상이라고 나는 톨스토이의 사상이 현실. ? 적이진 않지만 가치가 있고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비폭력과 평화주의에 따라 , . 정부에 거부하여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도 있고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이란 , . 권력과 결탁해서 속세의 죄를 씻고 목사의 설교에 귀기울이는 그런 세속적인 기독교를 말하는것이 아니, 다 톨스토이가 살았던 당시도 진정한 기독교인이 드물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기독교. , . 가 상징적인 의미의 종교이지 기독교에만 한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거대 종교에 의해서 이단이라고 손가락질 받던 소수 종파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도 거부하고 정부를 거부했던 역사를 이제서야 조금 이해하겠다 그들의 신만이 유일신이기에 하나님에게만 고개를 숙이는것이 . 아니라폭력을 막고 평화를 지향하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있으면 권력이 생기고, . , 권력이 생기면 소수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 과정속에 폭력과 억압은 갈수록 더 심해진다 사람들은 투표한. 번 하고 자유로운 세상에 살고 있다고 속고 있거나 세뇌당하고 있다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을 견제할 권리. 와 자유는 시민에겐 없다 노동권조차 제대로 보장안되고 파업투쟁을 하면 개인 노동자에게 수천만원에. 3서 수억원의 벌금을 먹이는것이 그들이다 시민을 위한 법이 아니고 시민을 위한 정치인들도 아니다 국가. . 적으로 중대한 사안이 있으면 국민투표에 맡겨 국민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이명박이 행하는 . 많은 나쁜 행동들에 대해서 제동을 걸 수있는 통로도 많아야 하고 잘못된 정치인들을 수시로 낙선시킬수 있는 기관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까지 쉽지가 않다. .

나도 평화를 실천할 자신감이 있는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폭력적인 영화도 즐기고 잔인한 영화도 가끔 .(본다 채식주의는 아직 고려도 안해봤다 그러나 평화주의자들의 삶을 조금씩 살펴보다보면 그들의 삶이 . .) 참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병역거부까진 아니더라도 혹 내가 실천할수 있는게 여러 책들을 통해 발. 견할수 있을까 찾아보기도 한다 톨스토이가 이야기하는 바가 실현되기엔 너무나 오래 걸리는 방법이라도 . 평화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들이 읽어볼만한 책인것 같다 그리고 예수님이 바로 현실성이 없는 그 방법으. , 로 몸소 자신을 희생하며 실천하지 않았는가 많은 종교인들이 예수님의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지? 만 요즘은 너무나 세속적이고 국가와 권력과 결탁된 종교인이 너무 많은것 같아서 많이 안타깝다 정당한 , . 폭력과 정당한 전쟁론을 그들은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국가가 폭력이다 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 , < >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나도 초등학교 아침 조례에서 태극기가 나오면 부동자세로 세워놓는건 잘못. 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라는것이 그만큼 경건하게 느껴야 할만한 가치가 있는것인지 나는 회의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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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태극기도 그렇다 물론 나라가 어려울때 내이웃을 지키기 위해 목숨걸고 싸운분들의 영혼을 폄하하진 . . 않는다 다만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수 밖에 없게 만든 권력자들과 정부라는 존재가 가치가 . 있는가 의문스러울 뿐이다.

권력이란 놈은 괴물 같아서 한번 손에 들어오면 좀처럼 놓기가 힘들고 점점 그 크기를 점점 부풀리고 싶어한다 그런 권력자들에 대해 손벌리고 가슴내밀고 희생할 마음은 아직 나에게 없다 그리고 욕망을 존. . 중하고 도시적인 어느 정도 즐기며 세속적인 좋아하는 내겐 아직 멀고 먼 길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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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보기에 특히 부모님이 보시기에 세상물정 모르고 철도 안들고 사는 것 같은 나이긴 하지만 그( ) , 래도 세월이 비켜가지는 않나보다 활동하고 있는 공간 이외에서 만난 사람들은 보통 나이를 가장 먼저 . 물어보는데 대답에 대한 인사치레식의 반응들이 잠깐 이어진 이후에 받는 질문은 남자친구 있어요, ' ?' 다 그런데 최근들어 약간 변형된 두 번째 질문이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있다. .

혹시 결혼했어요" ?"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기 시작하고 주말마다 예식장을 들락날락 하지만 가끔은 결혼해서 이바닥 , 뜰거라는 시덥잖은 농담을 지껄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결혼은 아직 나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는데, ‘ ’ . 나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나도 나이를 먹고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도 벌써 이런 얘기를 한다. 는건 좀 그렇다 게다가 글로 쓰는건 더더욱 그렇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이 다 검색이 되고 기록으로 남. . 는 이런 인터넷 시대에 아직 대인 내가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쓰다니 좀 민망하기까지 하다, 20 . .

날이 갈수록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걸 느낀다 특히 써지지도 않는 글을 짜내느라 밤을 꼬박 새거나. , 기분이 좋아서 혹은 안좋아서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일상으로의 원상복귀 속도가 많이 느려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게다가 아무이유없이 아프기도 한다 내 친구는 그 이유가 나이들어서라고 했. . ( ' '다 보통 긴장이 풀어졌거나 마음이 힘들 때 몸이 아프지만 그 반대로 몸이 힘들면 마음도 약해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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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면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직장다니며 돈벌고 결혼하고 알콩달콩 사는 것이 부러울 때도 있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안달날 정도는 아니고 몸도 마, . , 음도 큰 탈 없이 잘 버티고 있다.

그렇게 몸에서 무언가 채워달라고 요구할 때 그럴 때 생각, 나는게 바로 보양식이다 하지만 몸보신이라고 하면 가장 . ' '먼저 떠오르는건 몸에 좋다고만 하면 뭐든 구해다먹고 심, 지어 외국에까지 나가서 희귀한 동식물들을 찾아다니다 결국 멸종위기까지 몰고가는 그런 아저씨들의 이미지 몸에 . 안좋은건 다 하면서도 강한 남성성은 과시하고 싶어서 택하는 쉬운 방법 몸에 좋은 비싼 것들을 먹는 으로서의 - -보양식은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몸보신한다고 ‘ ’ . 하는게 그다지 좋은 말로 들리지는 않는다 내가 말하는 몸. 보신은 그런 개념이라기보다는 평일에는 활동하고 주말에는 알바하느라 쉬는날 없이 사는 불쌍한 활동, 가가 체력적으로 부족함을 느낄 때 보충할만한 무언가가 생각나기도 한다는 그런 얘기이다 여전히 조. 금 변명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무언가가 무엇인가 하는거다 최근에 몸이 ' ' . 아팠을 때 생각난건 바로 삼계탕이었다 세상에 비육식을 하고. , 있는 내가 먹고싶은게 장어도 아니고 홍삼도 아니고 삼계탕이라니 이건 황사가 심한 날 삼겹살에 소주한잔 하고싶은 생각. 이 드는 것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자라오고 생활해온 문화 속. 에서 사회화되어온 나의 상상력은 한계를 가진다 그래서 새로. 운 경험이 필요한데 맛있는 채식식당은 떠올라도 몸보신을 할, 만한 음식은 딱히 떠오르는게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 을 해보았더니 도라지 찹쌀튀김 양념무침 모듬 버섯구이‘ ’, ‘ ’, 두부 단호박 탕수육 검은깨 현미죽 부추된장비빔밥 등이 ‘ ’, ‘ ’, ‘ ’

나왔다 채소이면서도 보양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는 마 더덕 부추 콩 버섯 호두를 비롯한 견과류 . , , , , , 등을 꼽았다 몸보신의 느낌이 잘 오지않는 요리들과 따져보지 않아도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재료들이. ‘ ’다 그나마 얻은 정보라고는 칼슘섭취에 우유나 사골보다는 다시마나 미역 파래 김 등의 해조류를 자. , , 주 먹는게 더 좋다는 것 그리고 해조류에 들어있는 알긴산이라는 끈끈한 수용성 섬유질이 미세먼지나 , 중금속 등을 배출하는 역할을 해서 황사에 좋다고 하는 것 정도이다 혹시 나는 채식 보양식을 모르는.

보양식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여전히 삼계탕이라서 큰일이다

술안주인줄만 알았던 모듬버섯구이가 보양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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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아니라 받아들이고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걸까 여전히 보양식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 삼계탕? -으로 대표되는 때문일 수도 있고 먹고나서 기분은 좋아져도 힘이 나고 기운을 차리는 경험을 아직 - , 해보지 못해봐서 그럴 수도 있다.

어쩌면 내게 보양식은 규칙적인 식사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먹는 것만으로 하는 몸' ' . 보신은 일회용일테니까 채식한다며 빵 떡볶이로 대충 때우지말고 평소에 규칙적으로 밥을 챙겨먹고 ‘ ’ . , 밤새지 말고 술은 적당히 마시고 틈틈이 운동도 하고 스트레스 안받게 휴식도 취하고 누구나 다 아는 .. 이야기이긴 하지만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늘 괴리가 있다 특히 활동가들에게는 더더욱 그, . 런 것 같다 건강한 것도 활동가의 능력이라면서 장기적으로 보고 지금부터라도 잘하라는 친구의 조언. 은 너무 고맙지만 항상 나를 어렵게 만드는 얘기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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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의 군복무기간 대체복무제도 부재 년 월의 형기라는 사실이 이 곳 영국 사람들에게는 꽤나 충‘2 , , 1 6 ’격적인 사실이긴 한가보다영국은 다른 유럽 국가보다 늦은 시점인 세계 차 대전 때 징병제를 도입한 . 1뒤 곧바로 대체복무도 도입하였고 년대에 징병제를 폐지 지금은 직업군인의 병역거부권도 공식적, 1960 , 으로 인정이 되는 곳이다 이런 국가에 사는 사람들이니 인력활용이라는 효율성의 관점에서든 인권의 . , 차원에서든 평화활동가가 아닌 뭇 사람들은 다들 한국 병역거부자들이 겪는 현실에 놀라움을 표시하곤 한다 자꾸 그게 진짜야 라는 식의 질문을 받다보니 어떨 땐 내가 마치 말을 지어내는 사람인 마냥 . “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내 스스로도 한국의 상황이 다른 세상 얘기처럼 낯설게 여겨. 지기는 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한국에서 남들의 눈치와 반응을 끊임없이 살피며 병역거부의 논리를 힘겹게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익숙해져 있다가 여기 와서는 병역거부에 대해서 오히려 지지를 받으며 설명을 할 수가 있으니 묘한 해방감마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론 한국의 인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끙끙대야 한다는 사실에 . 누굴 원망할 수도 없고 가슴이 답답할 때도 있다 다들 한국 하면 서울도 다 알고 삼성이 한국 기업이. 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한국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듣고 나면 다들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 이미 여기 사람들은 한국을 더 이상 인권 수준이 열악한 제 세계가 아니라 좋은 자동차와 핸드폰을 수' 3 '출하는 선진국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 .

한국을 뜬 이유

사실 내가 영국에 오기로 결심한 건 도피성의 성격이 컸다 늘 그렇듯 지금 돌아보면 내가 그때 왜 ‘ ’ .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 당시 나는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내 삶의 전망에 좌절하며 ,

인턴을 마치며WRI 영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

날맹 | 전쟁없는세상회원 + [email protected]

P.e.a.c.e.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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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닥에서 끝없이 침잠을 하고 있었다 그 때의 나는 여기 친구들은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좀 억울하. , 기도 한 난 감옥에 언제 가게 될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곤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딱히 활력도 , ‘ ’ . 없이 하루를 보내다 밤이면 술기운에 취해 잠시 시간을 잊는 그런 생활 징집 영장을 받고 나서 이를 . 일단 미루기는 했지만 가긴 싫은데 결국 맞닥뜨려야 할 감옥을 기다리는 것에도 진이 빠져갔다 그러, . 다 보면 어느 새 병역거부와 그에 따른 감옥행이 내 삶의 무기력의 근원인 양 여겨지기도 했다 다 내. 가 선택한 것이면서도 말이다 그러다가 이 무기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 각에 불현듯 한국을 뜨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개월 정도의 시간을 보낸 뒤 다시 돌아갈 때가 된 지금 내 상태는 좀 좋아졌는가 스스로에게 , 10 , 되물어본다.

여기 도착해서 처음 한두 달 간은 내가 여기 와서 뭘 하고 있는가 싶은 자괴감에 힘들어 했던 것 같다. 늘 순간의 행동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고 삶의 목적을 찾으려고 애쓰는 예전의 몸에 배인 습관들 때문에 더 스스로를 갉아먹은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매 순간 진지해지려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 과대망상은 지금도 언제든 조건이 갖춰지면 다시 찾아올 것 같아 여전히 두려운 부분이다 사실 나‘ ’ . 에게 있어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과정은 기존의 소위 주류적 삶의 방식을 포기하는 것과 맞닿아 있었기에 그렇다면 어떤 대안적인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고민을 좀 더 열심히 해도 됐을텐데 난 그저 미래의 먼 꿈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 자체를 주류적 삶의 양식인 것처럼 여기고 모든 것에 손을 놓은 채 ‘ ’감옥에 가야만 하는 현실 탓만을 했던 것 같다 그래봐야 딱히 뾰족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 다.

이 곳에서 만났던 나에게 우쿨레레를 가르쳐 준 조나단이라는 친구는 남들 보기엔 번듯한 직장도 없이 , 노래나 부르며 그때 그때 생계를 이어가는 것처럼 보일진 몰라도 나에겐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의 전형으로 보였다 이래도 허허 저래도 허허 웃을 수 있는 그를 보고 있자니 그에 반해 . , 세상의 온갖 걱정 근심을 다 떠안고 사는 내가 문득 우스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나. 란 존재와 내가 가진 고민들이 상대화되어 보이기 시작했고 덩달아 기분도 좀 가벼워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튼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더 이상 마치 감옥이 내 삶의 종착점인양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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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갖게 된 것 같다 군대 문제를 끝내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증에서 조금은 벗어. 나게 됐달까 영장이 나오고 재판을 받기 전까지도 무언가 생산적인 것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 각 그리고 감옥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구상을 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 다.

난 좀 성숙해졌는가

한편 돌이켜 보건데 한국 바깥에 머물면서 힘든 일 중에 하나는 다름 아닌 한국인을 만나는 일이었다 내, . 가 다니던 어학원에서 만난 모든 한국인들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대개 한국사람들은 특히나 같은 한국 사람을 만나면 영어로 나이를 물어본다 그리고 남자들은 빠지지 않고 군대를 다녀왔는지 묻는다 그( !) . . 리고 연속 콤보로 아니 어떻게 그 나이가 되도록 군대를 안 다녀왔냐면서 나중에 군대 가면 고‘ ’ ‘생 좀 하시겠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피상적인 몇몇 정보만을 가지고 상대를 재단하기 좋아하는것처’ . (럼 보이는 한국인들과 말을 섞기가 싫었기에 내가 주로 친하게 지낸 건 어쩌다 보니 일본 친구들이었) , 다.

사실 나는 대학에 들어와 학생운동을 시작하면서 상대방과 가치관 혹은 이데올로기가 다르면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아주 견고한 생각을 해왔고 이로 인해 대학에 있는 동안 같이 활동을 하는 친구 이외에는 (!) , 별로 사람을 사귀지 못했다 나와 다르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아예 만나볼 생각도 하지 않는 엄청난 자. 신감이었다 이쯤 되면 방금 전에 상대를 재단하는 한국인 얘기를 했지만 사실은 나야말로 상대방을 . , 쉽게 재단하고 상호소통과 변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사람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랬던 내가 . 신념 따위 따지지 않고 친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니 무엇이 나를 변화하도록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 ' . 겠지만 이곳에서 사귄 두 명의 일본인 친구들과는 앞으로도 쭉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 들어서 므흣할 따름이다.

따뜻한 사람

그런데 영국에 머무는 동안 앞서 언급한 일본인 친구 두 명 외에는 제대로 된 친구를 만들지 못한 듯 하, 다 물론 나를 우쿨레레 의 세계로 초대해준 조나단도 있지만 그와는 일상을 공유하고 정기적. (Ukulele)으로 만나는 친구의 수준은 아니었다 내가 내심 기대했던 건 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WRI었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친해지진 못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내. W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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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그 동안 익숙해져 온 관계맺기의 방식과 거리가 멀었다 다들 각자그리고 애인과 의 삶이 우선이고 . ( )그 다음에야 다른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난 함께 활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 술도 자주 마시고 서로의삶에도 개입을 하며 공감하고 지지해주 는 방식에 익숙했었다는 걸 자각하게 되었다 얘네는 또 이런 나의 방식을 보고 개인의 삶이 없는 끈적끈적한 관계맺기 방식이라고 생각할런. 지도 모르겠다 에서 일한 것이 고작 길어야 개월 정도이니 이런 판단이 이르다는 생각도 들지만. WRI 4 , 다들 서로 대화다운 대화 한마디 없이 자기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일만 하다가 저녁 때 각자 집으로 휙 돌아가 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참 정 없다싶은 생각도 종종 들었다‘ ’ .

나의 이런 욕구가 특이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 가끔씩은 일 끝나고 저녁에 같이 술 한잔 하면 좋겠단 욕, 구가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평소처럼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에만 집중을 하다가 시간 됐다 싶. 으면 피곤하다며 집으로 돌아가버린다 내 성격으론 그렇게 가는 사람을 붙들고 술 한잔 하자는 말은 . 차마 또 못 한다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는 집에 일찍 돌아가기 싫을 때 에라 모르겠다 나도 일이나 더 . 하고 가자며 일 중독을 자처하기도 했고 아니면 혼자 거리를 걷다 들어가서 방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다.

불쑥불쑥 찾아오는 외로움에 대처하는 것 뭔가 심심하고 몸이 근질근질 할 때 혼자서도 잘 노는 것에 익, 숙해지는 것 여기 와서 특히나 런던으로 거주를 옮기고 난 이후에 스스로 위로하고 만족하며 사는 생. 활에 너무 익숙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에 들었다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관심 욕구가 많으면. , 서 또 동시에 타인에 대한 의존 욕구도 꽤나 컸던 나였기에 이처럼 혼자 놀고 즐길 수 있는 삶을 경험해본 것도 의미 있단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론 내가 너무 쿨한 캐릭터를 갖게 되는 건 아닐까 살짝 , ‘ ’걱정이 되었다 여기 사람들 특히나 활동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겪고 나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던 . , 것이 혼자서도 독립적으로 잘 살 줄도 알지만 동시에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다 자율적인 인간은 혼자 힘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늘 주변 사람들과의 협력과 . 교감으로 완성된다는 깨달음이었달까.

'Imagine'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존 레논의 앨범을 듣고 있다 여기 처음 올 때 한동안 들었던 음악이 비틀즈 . 노래들이었다 그리고 지난 여름 에딘버러에서 시작해 리버풀을 거쳐 브리스톨까지 내려오며 여행을 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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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듣던 음악도 비틀즈의 노래들이었다 이제 한국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까지 며칠 안 남은 지금 이 . 시점에 다시 존 레논의 앨범을 듣고 있자니 지난 기억들이 하나 둘씩 스쳐간다 헤이스팅스의 바닷가. , 리버풀의 활기찬 분위기 런던의 펍들과 야경의 모습 나의 영국, . ' 행 도피는 외도 치곤 굉장히 사치스러'운 외도였지만 그만큼 여기서 보고 느낀 것들이 내 삶에서 소중한 밑천으로 남을 수 있고 또 이를 남들과 공유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병역거부에 대해 완전히 알고 계시는 부모. 님의 기대처럼 대체복무가 얼른 도입이 되면 좋겠다 그럼 여기서 만났던 사람들이 나에게 약속한 지지. 성명을 써주는 수고도 피할 수가 있겠지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 대체복무를 무려 년이나 할 엄두는 . , 3또안 나지만 말이다 .

날맹이 가져온 영국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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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된 나는 그저 입만 벌리고 있었다 입 안 쪽에서 온갖 공. 사장 굉음이 들려오는 걸 듣고 앉아 있으려니 기분이 참 묘했다 그래도 이렇게 소음공해와 고통 한 번 참고 나면 지금까지 나를 짜증나게 했던 . 문제들이 말끔히 없어질 것이라 생각하니 수술 후가 기대됐다 너무 사랑니 뽑는 데만 신경 쓰니까 시. 간이 더디게 가길래 다른 생각을 해보려 노력해봤다 그러다가 사랑니보다도 더 나를 골치 아프게 했던 . 군대 문제가 생각났다 그런데 문득 사랑니 문제와 군입대 문제 이 둘 사이에 꽤나 많은 공통점이 있. , 단 생각이 퍼뜩 들었다.

사랑니와 군대의 공통점 일단 둘 다 별 쓸모가 없다 근데 괜히 자꾸 생긴다 그렇다고 그냥 멋모르고 놔! . . 뒀다가는 나중에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이렇게나 골칫거린데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사람들 대부분한테 . 생기는 문제다 게다가 생긴 걸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조차 없어 막막해진다 없애려면 반드시 . .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게다가 이게 생길 때 잘못 생기면 다른 것에까지 큰 피해를 준다 그. . 리고 겨우 맘 먹고 없애더라도 없애고 한 동안은 꽤나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내가 언제부터 군대에 가기 싫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거의 사랑니가 막 날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둘 다 보통 세 전후에 생기는 일이니까 꼭 나한테만 해당하는 경우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먼저 자백20 . 하건대 나는 전혀 특이한 사람이 아니다 특이하다면 전형적인 모범생이라는 것 정도. ?

학교 다니는 내내 나는 겁이 많아서 선생님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다 옆에서 친구가 맞고 있어도 그냥 .

모른 척 하고 윤리 교과서에 적힌 정의를 달달 외우던 사람이다 엄마가 딴 거 하지 말고 공부만 ‘ ’ . 하라고 해서 공부만 했고 아빠가 딴 데 가지 말고 대학만 가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대학에 갔, 다 근데 대학가니까 이제 넌 남자니까 군대 가야된다고 형아들이 말해줬다 이런 삶에 슬슬 짜증. ‘ ’ . 이 났다 모범생이었던 내게 사춘기가 조금 늦게 온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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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와 군대형쥬 전쟁없는세상 매체편집팀|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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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조언해준 많은 형아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난 당신들이 이‘ ’ , 미 제대한 그 군대에 너무나도 가기가 싫다 라고 말하면 병역기피자라고 사람들한테 욕먹는다 물론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 ’ . 니까 남, 들한테 욕먹는 건 정말이지 두렵다 그렇지만 욕 먹을 때 먹더라도 차라리 군바리로 제대할 . . . 바에는 병역기피자가 되고 싶다‘ ’ .

내 꿈은 이건희도 ‘ ’ 아니고 박지성도 김연아도 아니고 이명박은 진짜 절대 아니다 부, ‘ ’ ‘ ’ , ‘ ’ ! ! . 귀고 영화고 별로 바라지도 않고 그런 거 애시당초 꿈꿔 본 적도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남들한테 피해 . 안 주고 안 받으면서 조용히 행복하게 사는 건 꿈꿔본 적 많다 그래서 내 꿈은 병역기피자다 군. ‘ ’ . 대는 그 자체로 국가적 범죄다 게다가 그 안에서 별 드러운 짓을 다 겪고 후임한테 자기가 당했던 짓. 을 고스란히 시키기까지 하는 비열한 곳이다 드러운 짓 저질렀다는 자책과 후회 속에 평생 고통 받으. 며 사느니 좀 불편해지더라도 병역기피자로 욕먹으며 사는 게 나는 더 행복할 것 같다 왜냐면 군대를 , . 가면 내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지만 병역거부를 하고나면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는 한 점 부끄럼 없이 평생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들 병역기피자들에게 힘을 보태 주기 위해 기피란 단어를 기피하는 대신 정치적으로 올바른 거‘ ’ , ‘

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분들도 있다 근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난 기피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 . 다 그리고 한국말에서 기피란 말이 절대 나쁜 말이 아니다 왜 옛 말에 이런 상황에 딱 들어맞는 . ‘ ’ . 속담이 있잖은가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고 전쟁과 군대는 두렵거나 무서워할만 것이 . !? 아니라 단지 그냥 더러운 짓거리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같은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은 평생 동, . 안 그 비열한 짓을 가능하다면 기피하고 조용히 친구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꼭 전쟁이 , . 안 터져도 군대란 곳이 더럽고 치사한 곳이란 것은 나보다도 형아들이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믿는‘ ’다.

많은 형아들은 양심적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병역거부한 사람들을 다른 병역비리 범죄자들 신의 아‘ ’ , , (들 돈 있고 빽 있는 자식들 연예인들 등과 같은 범주로 싸잡아 묶어서 비난한다 그리고 병역거부자, , ) . 들이 군대가 무서워서 입대도 못 한 비겁한 겁쟁이라며 비웃는다 근데 나는 그런 형아들을 도대체 . ‘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감히 그 용기 있는 친구들을 비웃을 수 있는 걸까 나는 도대체 우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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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누구며 우리의 적은 또 누군지 전혀 모르겠지만 일단 뭐 다들 적이 쳐들어올 수도 있다고들 벌, ‘ ’벌 떨어대고 있으니까 북한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어쨌든 적이 있다고 치자 그러나 . , , , ‘ ’ .(여전히 나는 우리라고 할 때 우리가 대체 뭔지 모르겠다‘ ’ ‘ ’ .)

자 형아들 말 대로 우리의 적이란 것이 있다고 치자 그럼 그 적이 쳐 들어오든 아니면 우리가 , ‘ ’ ‘ ’ . 적한테 쳐 들어가든 서로 간에 총과 미사일을 퍼붓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은 이쪽이고 저쪽이고 죽게 마련이다 우. 리가 무슨 홍콩영화 주윤발도 아니고 분명히 사람이 반드시 죽는 곳이 전쟁터다 이건 아마 . 어린이용 국어사전만 찾아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전쟁하. 면 너나 나 둘 중에 하나 이상은 반, 드시 죽는다 물론 둘이 싸우다 둘 다 죽기 십상인 게 실제 전쟁이지만. .

그렇다면 아주 간단한 산수만 할 줄 알아도 적이라는 자들과 이유가 어쨌든지간에 일단은 안 싸우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게다가 요즘 시대가 무슨 광개토 깡패야만왕 시절도 아니고 남의 나라 땅과 . 백성들 뺏어서 대체 우리가 뭐에다 쓸 것인가.

그럼 우리 형아들은 전쟁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그렇게들 군대에 가려고 할까 게다가 그 더럽고 ‘ ’ ? 치사하고 아니꼽다는 군대에 왜 꼭 가겠다고 오기를 부리고 있을까 아마 내가 군대를 안 갔다 와서 ? 형아들 속을 다 헤아려 볼 순 없겠지만 감히 말하건대 실은 다들 겁이 많고 속마음이 여려서 그러‘ ’ , 고들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적이 총 들고 쳐들어올지도 모르니까 우리도 총 들고 지켜야 한다 라는 말에서 나는 전혀 남자다운 패기. 를 찾아볼 수가 없다 내가 보기엔 이건 그냥 완전히 쫄아 있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 나라 전. 100% . 체가 이러고 부들부들 떨고 있으니까 시쳇말로 전세계적으로 쪽팔리는 거 아닌가 어른스럽게 대화하, . 거나 화해할 생각은 못 해보고 저 건너편에 있는 자식이 나 때리면 어떡하지 저 자식이 나 때리면 . “ ? 저 자식 나 가만 안 둘거야 우이씨 이 생각만 하며 눈물 찍 콧물 찍 바들바들 떨면서 총 붙잡고 . !” , , 있는 게 우리 대한민국 국군 형아들의 모습이지 않나?

아까도 말 했지만 대체 누가 적이라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잔뜩 쫄아서 나라 지키겠답시고 조용히 , 입대하는 건 그래서 내가 보기에 병역거부보다 훨씬 비겁해 보일 뿐이다 차라리 총 내려놓고 당당하게 . 가슴 펴고 나가서 잠깐 거기 우리랑 대화 좀 합시다 라고 하는 게 형아들이 그렇게나 좋아하‘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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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남자다운 행동 아닌가 설마 그냥 무조건 상대편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미친 광기가 멋있어 보인다고 ? 말하고 싶은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조심하자 차라리 내 꿈은 그나마 소박하게 병역거부자라 ? . ‘ ’지만 당신들의 장래희망은 살인마 강호순과 그닥 다르지 않다. .

게다가 요즘 형아들과 얘기해보면 다들 자기도 실은 군대 가기 싫었는데 억지로 간 거라며 솔직하게 ‘ ’고백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취업 대비해서 자기 스펙 올리기도 바쁜 시대에 짱 박혀서 삽질하고 . 오면 완전 머리가 텅 비어 버리는 것 같다고 화내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그런 형아들을 보고 . ‘ ’있노라면 나는 연민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어쩌면 저렇게 나약할까 자기에게 부당한 징집명령. . 을 내리는 저 미친 정부에게 한 번 덤벼들어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맞짱 떠 볼 생각 한 번 못 해보고 남자다운 우리 형아들이 어쩌다가 저렇게 쭈그리고 , ‘ ’ 앉아 있게 됐을까 군사독재는 분명히 . 끝났는데 말이다.

우리 남자들이 이렇게 국가 앞에서 무력해져 있는 이유는 대체 뭘까 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기준? , 으로 볼 때 그건 모두가 공유하는 모범국민 정신 때문 아닐까 싶다 나는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명‘ ’ . 령에 잘 따르면 손해보단 이익이 많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체득했다 근데 범생이들이야 차라리 철없던 . 학창시절이라 혼나는 것 무서워서 그렇게 비겁하게 살았던 거라지만 수많은 형아들은 학교부터 군, ‘ ’대까지 아주 그냥 인생풀코스로 모범국민 되고 싶어 하는 것만 같다 대체 누구좋으라고 그러는 걸까. ? 심지어 군대는 갔다 왔을 때 별로 이득 되는 것도 없는 데 말이다.

대한민국 정부라는 꼰대가 시키면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남자다운 거라고 우리는 대체 누구한테 배워먹은 버릇일까 조용히 군말 없이 입대하는 것이 이 사회의 발육상태 좋은 수컷으로 인정? 받는 과정이라 알고 있으므로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죽이게 될 지도 모르며 후임병에게는 악마로 느껴, 질 짓거리를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그 역겨운 곳에 들어가기로 쉽게 결정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이제 군대는 당연히 안 가야겠다고 맘 먹었다 그러나 사실 나도 군대란 곳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 얼마 전까진 잘 살고 있었다 사랑니가 날 때쯤 내게 입영통지서가 날아 왔고 사랑니를 뽑아야 할 때. , 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결단을 내렸다 사랑니 나 본 사람은 잘 알겠지만 사랑니는 한 번에 안 나고 . 이따금씩 천천히 조금씩 자란다 군대에 대한 나의 고민도 처음부터 확고하지 않았다 조금씩 방황하고 . . 번뇌하고 좌충우돌하다가 이렇게 결론을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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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는 참 기구한 운명의 치아다 사랑니는 해괴망측한 짓을 하지 않는 한 평소에 우리가 볼 수 없는 . 위치에 나있다 뽑혀서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이게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 수가 없다 군대를 안 가기. . 로 확실히 결정하고 나서부터 나는 오히려 정말 진지하게 군대란 곳에 대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나는군대를 전쟁과는 별 상관없는 그저 때 되면 가야되는 학교랑 비슷하지만 좀 더 힘든 통 , 과의례 정도로 정의하곤 했었다 당연히 가야되니까 가는 것이었을 뿐 그 곳이 사람 죽이는 기술을 가. , 르쳐주는 곳 철저한 계급사회라서 후임병들에게 갖가지 비인간적인 짓거리를 하게 되는 곳이라는 것까, 진 깊게 생각해 보진 않았다.

물론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런 것들에 대해 아예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술만 마셨다 , . 하면 형아들이 내게 다 얘기해주려고 안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대‘ ’ . 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오기를 부렸다 괜히 깊게 생각해봐야 어차피 군대 아니면 감옥이었기 . 때문이다 스스로의 군입대 행위를 합리화시키려고 내 양심 앞에서 온갖 오기를 부리곤 했다. .

그러나 이제는 그런 고집스러운 생각들까지 말끔히 뽑아 버렸다 내 스스로에게 안 부끄러워지니까 내 스. , 스로를 괴롭히지 않게 되니까 이젠 정말이지, 너무나도 시원하고 행복해졌다최근 몇 달 동안 나는 별 . 일 아니면서도 별 일인 것 두 가지를 했다 몇 년간 골칫거리였던 사랑니를 뺐고 몹쓸 군대에 절대 안 . 가리라 다짐했다.

다 정리하고 나니 속이 다 후련하지만 딱 한 가지로 화가 난다 군대 안 가기로 맘 먹은 이상 그 이상한 . 곳에 평생 안 가게 된 건 참 좋은데 왜 하필 내가 좋은 것 다 놔두고 좋은 활동 다 놔두고 그 어두, , , 운 감옥으로 들어가야 되는 것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추잡스럽고 드러운 삶 안 살겠노라 이제야 겨우 . 힘들게 맘먹은 선량한 사람한테 왜 법정에서는 감옥으로 가라고 하는 건지 경제도 어렵다는데 왜 이러. 시는 건지 도무지 난 이 나라 형아들 속셈을 모르다가도 정말 모르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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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쳉김석민 서울구치소에 수감:: ( ) : 년에 병역거부선언을 했던 보쳉이 년 월 일에 법정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입니다 현재 2004 2008 11 14 .

재판이 진행중이며 항소심 심이 끝났고 상고 심를 해놓은 상황입니다(2 ) (3 ) .

권순욱 인천구치소에 수감:: : 권순욱씨가 월 일 심 선고공판에서 년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되었습니다4 22 1 1 6 .

우공오정민 심 재판 중:: ( ) : 1첫재판은 월 일이었고 연기되어서 월 일에 서울 중앙지법에서 재판이 열립니다4 14 5 7 .

김영익 영등포구치소에 수감 심 진행중:: : , 1김영익씨가 월 일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되었습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며 다음 재판은 월 일 시2 27 . 5 27 2에 남부지법에서 있습니다.

이길준 상고기각 서울구치소에 수감:: : , 월 일 상고심이 대법원에서 기각되어 실형 년이 확정되었습니다 조만간 이감 갈 예정입니다4 9 2 . .

현재 수감 중인 병역거부자들의 주소::

안홍열경북 청송군 진보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5 1144 (763-710)

이길준경기도 군포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20 2467 (435-050)

김석민경기도 군포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20 1289 (435-050)

김영익서울시 금천우체국 사서함 호 번 _ 164 428 (153-600)

권순욱인천시 남인천우체국사서함 호 번 _ 343 1304 (405-600)

전 쟁 없 는 세 상 소 식 지 호2 4 81

서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