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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를 일구는 농도상생마을공동체 2013 11 제42호

아름다운마을 42호(201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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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아름다운마을 42호(2013 10)

생 명 평 화 를 일 구 는 농 도 상 생 마 을 공 동 체

2 0 1 3 1 1 제 4 2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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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홍천 효제곡마을에 있는 생태뒷간 사진으로 11월 마을신문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 몸에서 나오

는 소중한 똥오줌을, 물을 낭비시키며 버리는 게 아니라, 모아서 밭거름으로 쓰는 생명 순환의 삶을 배

우는 공간이지요. 생명 순환의 가치를 몸으로 익힌 마을학교 학생들이 생태뒷간을 운치있게 꾸민 이야

기를 [생태건축] 지면에 담았습니다. 앞으로 홍천마을에 가시면 뒷간 곳곳에 숨어있는 재치발랄함을 발

견하며, 훨씬 편안하게 일(?)을 치를 수 있을 겁니다.

홍천마을에서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되는 공간 중 하나는 바로 ‘흙손’이 지은 구들방입니다. 구들방에서

자려면, 저녁 먹기 전 부지런히 장작을 패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놔야 합니다. 밤이 깊어지고 장작불이

차츰 사그라들 무렵, 서서히 달궈진 구들은 비로소 방바닥 가득 열기를 발산합니다. 밤새 머금은 열기

는 오전까지도 쉽사리 식지 않습니다. 활활 타오른 사건 뒤에 열기를 오래도록 간직하는 구들과 같은

근성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 근성으로 마을공동체를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번에 또 새로운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고등·대학 통합과정 ‘삼일학림’이 개교를 앞두고 있습니다. 대학 입시를 위한 수단으로 하는 공

부가 아니라, 배운 대로 살고, 사는 대로 가르치는 참배움터입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며 전문성

을 지닌 삼십여명이 학림의 연구와 교육, 운영과 재정을 책임지는 기획위원으로 포진해 있습니다. 이번

호 마을신문에서는 기획위원들을 초청해 특집 좌담을 했습니다. 서로 살리는 삶으로 세상에 길을 내는

이들의 열정을 생생한 이야기로 전해 듣습니다.

다양한 생활인들이 뜻을 모아 삼일학림이라는 새로운 교육편제를 만드는 과정을 들으며, 반면 현대

도시문명은 너무 세분화되어 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내 분야가 아니기에’ 멀어지고 멀리하는 영역이

너무 많아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연결 지을 수 있는 능력, 서로 보완이 되는 관계, 통합하여 몸으로 살

아내는 경험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기술 대신 모르는 ‘전문가’에게 돈 주고 맡

기는 소비가 더 익숙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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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1 42호

마을공동체는 삶의 총체성이 회복되는 장입니다. 자기가 먹고 입고 자는 데 필요한 살림의 역량을 익

히고, 몸 쓰는 일을 통해 머리를 식히고, 아이들을 만나며 무뎌진 생명감수성을 키우고, 다른 사람을 가

르치고…, 나 아닌 다른 이들과 어우러져 살아간다는 건 자기를 확장해가는 엄청난 에너지인 것 같습

니다. 이번호 [함께 산다는 것]에는 인수동 마을사람들이 힘 모아 가꾸는 공적 공간 중 하나인 마을어

린이집 도배하는 날 풍경을, 생전 처음으로 도배를 직접 해본 도시직장인의 목소리로 전합니다. 실수

해서 한지에 구멍 숭숭 ‘흥부네 집’처럼 되면 안 된다면서 야단법석 도배하던 그날을 떠올리면 웃음부

터 나옵니다.

지난호 마을신문 [꿈꾸는 일터] 지면에 실린 한 공교육 교사의 고백이 울림이 된다는 말씀을 많이 들

었습니다. 직장 현장을 묵묵하게 지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짧지 않은 기간 몸 담아 온 직장을 의도

치 않게 한순간 정리하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막막한 현실 앞에서 오히려 자기 마음을 성찰하며 맑게

웃을 수 있는 건, 사회적 지위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 만나는 관계가 있고, 마을공동체라는 삶의 터전

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깊어가는 늦가을, 밥냄새 모락모락 나는 마을밥상이 더 따스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국물맛은 날

로 깊어가도, 밥상지기의 표정은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밥상에는 ‘지킴이’라는 역할이 있습니다. 밥 차

리는 수고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마을사람들이 품앗이를 하는 건데, 대학생이나 직장을 쉬는 사람의

아르바이트 자리가 되기도 하고, 직장인들이 매주 혹은 격주로 요일을 정해 퇴근하고 달려와서 앞치마

를 두르고 사람들과 교제하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뒷자리를 정돈하는 일, 밥상지킴이를 한

경험담도 마을신문에서 조만간 들어봐야겠죠?

마을신문 재정이 넉넉지 않은 소식을 듣고서, 몇몇 마을사람들이 마을찻집 공간을 빌려 후원 장터를

열었습니다. 집집마다 안 쓰게 된 옷이나 보관만 하는 물건, 놀잇감 등을 정리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갈

수 있도록 서로에게 어울리는 옷도 챙겨주고 하면서 한바탕 흥겨운 한마당이 되었습니다. 놀잇감과 인

형들은 아이들이 가장 즐겁게 노는 마을찻집 분홍방에 자리 잡았지요. 마침 대학교 앞에서 하시던 헌책

방을 정리하게 되신 분은 이날 중고 인문서적들을 싸게 판매하셔서 수익금을 마을신문에 전액 기부해

주셨습니다. 훈훈한 시간이었습니다.

최소란 | 직장인 남편과 네 살배기 아이와 함께 살며,마을공동체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풀어 이땅 곳곳에 향기를 퍼뜨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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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마을> 펴낸 곳 아름다운마을공동체 기자 최소란 김준표 김승권 디자인 서아름 문의 02-999-9294

누리편지 [email protected] 누리집 www.maeullo.net 후원 국민은행 487101-01-369173 예금주 생명평화연대(마을신문)

<아름다운마을>은 강원도 홍천 아미산자락 효제곡마을과 서울 북한산자락 인수마을을 오가며 농촌과 도시에서 농도상생마을공

동체를 일구는 사람들의 삶을 증언합니다. 시대 과제와 소통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소통과 대안]에 담습니다. 일상과 관

계, 수련을 통해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봅니다. 마을밥상 지기들이 밥을 차리는 마음을 [밥상머리]에 모읍니다. 기

독청년아카데미에서 만나는 20·30대 청년대학생들과 [청춘답게] 모험하는 활동을 나눕니다. [청소년마당]과 [마을학교] [아이들세

상]은 홍천과 인수 마을학교 아이들이 살아있는 배움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농(農)을 통해 문명과 삶 전체를 다시 살

피고 재구성하는 [農생활]과 건강한 주거문화를 만들어가는 [생태건축] 현장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만나보기]에서는 당신과 우

리가 함께 만나고픈 사람을 찾아갑니다.

02 [아름다운 마을이 들려주는 이야기]

최소란

05 [특집]

참배움의 숲 ‘삼일학림’ 개교 ┃ 임안섭

07 [특집]

삶으로 새로운 교육과 문명의 길 열어가다

┃ 김준표

13 [그리고]

겨울이 오기 전에 ┃ 길서영

14 [생태건축]

이야기가 숨어 있는 생태뒷간

┃ 생동중학교 선생님들

16 [마을학교]

아이들은 창조이고 생명의 약동이다 ┃ 김승권

18 [아이들세상]

연극놀이로 친구 마음을 보아요 ┃ 이영미

20 [함께 산다는 것]

어린이집 한지 도배, 내 손으로 하다 ┃ 고경환

22 [청춘답게]

졸업, 그 이후 ┃ 장철순

24 [함께 산다는 것]

밀양 송전탑 대응현장에 다녀와서 ┃ 이선아

글 싣는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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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대학 통합과정 '삼일학림(三一學林)'이 2014년 개교한다. 삼일학림은 아름다운마을공동체에서

참교육과 참신앙의 삶을 일구어온 이들이 함께 세워가는 새로운 배움터다. 고등·대학과정을 통합한 새

로운 학제를 통해, 기존 초·중·고등-대학으로 틀 지워진 편제 자체가 만들어내는 과도한 대입 편향 교

육의 한계와 상상력의 제약을 극복하는 시도다.

‘삼일학림’이라는 이름에는 학교의 교육철학이 담겨 있다. ‘삼일(三一)’은 인간이 온 생명을 자각하는 가

장 원형적인 상징이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와 존재에 대한 깨달음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길

과 진리와 생명을 향한 경이로움과 경외심을 품고, 하늘·땅·사람의 조화 속에서 온 생명과 더불어, 생

명을 존중하며 평화를 이루며 살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학림(學林)’은 학생과 교사, 부모와 자녀가 함께 어우러져 공부하는 배움의 숲을 뜻한다. 연령과 분과

로 분절된 학습을 넘어선 통전적 공부, 추상적 관념과 구체적 삶을 순환시키는 공부, 관념들을 논리적으

로 연결시키고 합리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을 키우는 공부, 삶의 기예(技藝)를 수련하는 공부가 더불어 숲

으로 어우러지는 장이다.

삼일학림은 첫째, 생명평화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농생활(農生活) 역량, 둘째, 주체성 안에서 키워

가는 창의적 능력, 셋째, 소통하는 능력 육성을 교육 목표로 삼는다. 먹을거리와 살 집을 스스로 해결하

고 자기 몸을 돌볼 수 있도록 수련하고 공부하며 삶을 계획하고 주체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내적 자기규

율을 증진시키는 능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또한 학생 각자 자신의 흥미와 적성에 따라 교과를 선택하여

공부하면서 잠재된 다양한 창조성이 발현되도록 지원하고 대안적 삶과 문명을 창의적으로 전망할 수 있

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생활과 관계를 통해 더불어 사는 삶, 연관시키는 능력을 배우고 훈련해가

는 게 목표다.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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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 개념과 구체적 삶 순환하는 공부

삼일학림에서 필수과목을 이수하고 설정된 학점을 취득하면 학림 과정을 마무리하는 예식을 갖는다.

학년에 맞춘 고정된 과목들을 모두 들어야 하는 부담을 줄이고, 학생이 자기 필요에 맞게 과목을 설정하

여 공부할 수 있도록 무학년, 교과선택 학점제로 운영된다. 이로써 학생들은 자기 공부를 기획하고, 책임

있고 심화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삼일학림은 농생활 교과를 필수과목으로 배운다. 농생활은 농촌·농민의 삶만을 칭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 살림과 순환의 가치로 교육·문화·의료·복지 등 삶의 기본영역을 근원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뜻한다. 농도상생(農都相生) 마을공동체를 토대로 생명평화를 구현하는 식·의·주·락 생활양식의 역

량을 기르는 데 필요한 △생명순환 농사와 밥상 △흙·나무·돌로 집짓는 생태건축 △목공·에너지 관

련 생활기술 △수신(修身)·양생(養生) 등이 농생활 교과에 해당한다.

또 하나의 필수과목인 철학은 우주와 존재에 대한 근원적 성찰, 문명의 전환과 새로운 문명에 대한 이

해, 경험과 생각을 개념화시키는 능력을 가르친다. 학림에서는 어떤 문제에 대해 획일적이고 쉽게 답을

전달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질문하고 판별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돕

는 교육을 지향한다. 동서양 고전과 경전을 읽고 다양한 종교와 철학적 관념을 공부하고, 자기 생각을 합

리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삼일학림의 특이성 중 하나는 독립학습 기간이다. 이것은 학생이 학림에서 공부하는 동안 1년 이상 학

교를 떠나 정한 곳으로 가서 스스로 학습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기간에 원하는 주제를 연구하고, 세상

을 다각도로 경험하며,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은 다양한 일터에서 전

문성을 지닌 사람들과 참 배움의 관계를 형성하며, 실제적이고 풍성한 진로를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보

인다.

대안교육은 대안의 가치를 구현하는 공동체의 삶에 토대한다. 대안교육의 책임성과 설득력은 그 가치

를 구현하는 삶에 있는 것이다. 많은 대안학교가 교육의 가치를 구현하는 삶이 부재해 그 한계에 직면하

거나 혹은 대안적 삶을 구현할 공동체를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삼일학림은 생명평화, 농생

활, 더불어 사는 삶이라는 교육 철학과 가치를 이미 구현하며 살고 있는 아름다운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한다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는, 서울 북한산자락 인수동과 강원 홍천에 터를 잡아 결혼·임신·출산·육아 과

정을 함께 통과하며 생명평화의 영성과 식·의·주·락 생활양식을 만들어왔다. 공동육아, 어린이집, 아

름다운마을초등학교와 홍천터전 생동중학교 등 공동체교육을 일구어왔다.

* 문의 : 033-433-9290(아름다운마을공동체), 010-2279-3927(담당 교사)

* 아름다운마을교육공동체 누리집 : cafe.daum.net/maeulschool

임안섭 | 인터넷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주말이면 홍천에 찾아가 농생활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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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1 42호

가르치는 바를 삶으로 구현하는 공동체 기반으로,

다양한 생활인들이 기획위원단 결성

특집

‘삼일학림’의 토대는 마을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삶이다. 대안적 삶의 양식에 기반하여 새로운 교육적

틀이 세워진 것이다. 삼일학림에는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한다. 가장 중요한 주체는 아름다운마을학교와 생

동중학교에서 ‘학생심’과 ‘더불어 사는 능력’을 길러온 학생들이다. 그리고 일반 직장, 공교육, 시민단체, 대

안학교, 농사와 생태건축, 마을밥상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동하며 20~40대 생활인 서른 한 명이 뜨거운 마

음을 품고 기획위원으로 모였다. 기획위원들은 연구와 교육 뿐 아니라, 운영과 재정을 함께 책임지는 ‘유기적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기획위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10월 18일 인수동 마을찻집에

서 좌담을 했다. 참석자는 정대영(의정부 발곡고등학교 교사), 정연경(사회적경제활동가), 박민수(홍천 생동

중학교 교사), 신 원(풍력발전기업 팀장), 이한영(농부) 님이다(편집자 주).

삼일학림 기획위원들은 올해 7월부터 모여 전체회의를 했다. 10월 12일 진행된 기획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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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림을 세우는 뜻을 모으는 데 선뜻 동참한 계기와 마음이 궁금하다.

정대영 학교 교사로 고3 학생들과 만나면서 근대 공교육체제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고, 혁신학교에서

도 답답함은 여전했습니다. ‘삼일학림’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학교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며 ‘아, 이

렇게 가능하겠구나’ 하는 기쁨을 느꼈지요. 다양한 현장에 있는 기획위원들이, 학생들의 잠재성을 키워

주고 든든한 삶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됩니다.

정연경 마을어린이집과 마을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까 질문이 생기던 차에, 삼일학림 기획위원회가 열려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회적

경제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서, 연관된 교육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첫 모임에서, 우리가 준비한 것

이 아이들에게도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 질문하는 시간이 있었고, 그런 질문으로 출발한다는 게 울림이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 교육에 대해 철저히 돌아보고 평가하면서 반성하고 성과를 확인할 수 있었고, 그

걸 기반으로 이후 과정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었어요.

요즘 학제 간 연구, 융합학문이 시도되지만, 실제로 말처럼 안 되거든요. 학문을 합쳐놓는다고 해서 되

는 건 아니니까요. 삼일학림에선 다양한 기획위원들이 각자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향을

가지고 뭉쳐나가니, 진짜 학제 간 연구, 융합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민수 대학원생으로서, 귀촌하여 대안교육 현장에서 지내고 있는데, 최근 다시 학교에 가보니, 이전

에는 안 보이던 문제들이 새삼 보였습니다. 첫 번째는 학교와 학생의 관계가, 등록금과 비민주성 문제로

학교가 투쟁의 대상이어야 하는가 고민이 들었고, 다음으로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본관 앞에 텐

트를 치고 1년 넘게 투쟁하시는 분이나 힘겹게 지내시는 미화노동자 분들을 보면서, 이 대학이 운영하는

방침대로 살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어요.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와 그걸 현실화할 수 있는 힘을 배우는 곳이 학교인데, 오히려 제가 다닌 대학이

보여준 행태를 배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배움의 과정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느꼈습니다. 대

안학교 아이들이 가치를 구현해갈 수 있도록 돕는 관계에 대해 책임있는 대안을 내놓지 않은 채 학교를

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 원 저는 8년차 직장인으로서 어느 정도 제 분야 전문성과 일 처리 능력도 생겼고, 같이 일하는 팀원

들도 있어서 영향력도 발휘할 수 있는 연차가 되었는데, 그런 역량을 통해서 무엇을 할 건가 질문 앞에서

는 여전히 막막한 부분이 있었어요. 삼일학림을 통해서 그걸 풀어낼 관계와 장이 생기겠다는 기대가 생

겼습니다. 특히 좋았던 점은, 자기가 가진 능력이나 익숙하게 해왔던 방식을 뛰어넘어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어떤 지식을 알고 있다 해도, 먼저 그것이 내 삶

으로 들어와 있어야 하고, 내 일터에서 실현이 되어야 새로운 틀에 담아 가르칠 수 있는 거구나 확인하게

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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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1 42호

이한영 3년째 홍천에서 농사도 조금씩 짓고 밥상 살림도 꾸리면서 내가 먼저 경험하고 배운 것을 학생

들과 나누고, 오래된 지혜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정황에 맞게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실천해가는 작

업을 함께 하고 싶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책임있게 공부하는 관계가 꾸준히 수련하는 삶의 원동력이

될 거라는 소망이 있는데, 학생들을 어떻게 만날까 고민하며 공부에 대한 긴장을 놓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삼일학림을 통해 학생들의 창조적인 생각, 생동하는 기운을 받게 될 것을 기대하며, 먹거리

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함께 길러가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감사하며 마주하는 밥상이 주는 행

복을 잘 나눌 수 있겠지요.

고등대학 통합과정 교육체계에 대해 설명해달라.

정대영 오늘 대학이 예전과 같은 긍정적 기능을 상실했다는 진단이 기획위원 모임에서 있었어요. 대학

에서 의식이 각성되고, 변혁의 주체를 만들던 시대가 분명히 있었지요. 저도 독서서클을 하거나 선배들

을 따라다니며 비형식적 틀에서 배운 게 많았는데, 어느새 관계가 다 깨지면서 자기 학점 챙기기도 바쁜

곳이 되어 버렸지요. 학교 졸업한 제자들이 가끔 찾아와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담한 지경이에요. 지

쳐 있고, 고등학교 시절을 퇴행적으로 그리워하고…. 그러면서 대학 가지 않으면 인생을 무책임하게 사

는 사람으로 매도되는데, 대학을 왜 가는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지요.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대입이라

는 지점 앞에서 생각이 멈춰버린 것 같아요. ‘고등·대학 통합’이라는 개념은, 6-3-3-4 학제를 벗어난 발상

의 전환이자, 우리 사회에 오늘 대학이 운영되는 방식에, 입시에 대해 의미있는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필요에 따라 학생들 결정을 존중해서 특정 이공계열이나 삼일학림의 여건에서 소화하

기 어려운 전공은 대학을 방편적으로 선택할 여지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정연경 공교육도 그렇지만, 대안학교 졸업생의 진로 역시 대입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아요. 중·고

등 통합과정 대안학교들을 살펴보면, 학생 능력에 맞는 평가체제, 외국어 학습 등은 유사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어느 때에 가서는 진학지도를 하겠다고 하거든요. 진학지도를 내세우는 순간부터 입시, 수능 준

비에서 자유로워지지 않는 것이죠.

박민수 최근 한 대안학교 선생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흔히 고2까지는 대안학교에서 가르치는

과정을 하고, 고3 때는 대다수 학생들이 수능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비단 그 선

생님 뿐 아니라 많은 대안학교 선생님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부모님들이 우려하시는 것도 자

녀들이 대학을 안 가게 될 경우, 할 것이 불투명하다는 점이지요. 고등대학통합과정은 그 한계를 해소할

수 있는 교육편제라고 봅니다.

삼일학림은 교육철학을 명확히 세우고 그걸 토대로 학교의 제도적 양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제도

적 양식은 필수과목과 선택과목, 그리고 한해살이와 하루살이에서 나타납니다. 필수과목으로 농생활 교

과인 생명 순환하는 농사, 생태건축, 적정기술, 수신과 양생이 있고, 그것을 문명의 전환 속에서 사고하는

철학이 있습니다. 흔히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국영수사과’는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어요. 그리고 농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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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맞춰 학기와 시간표를 구성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오전에는 지식교과, 오후에는 농생활교과를 배치했

는데, 사실 농사짓기에는 여름에는 새벽이 가장 좋더군요. 농사력에 맞춰 한해와 하루의 흐름을 정하고

그에 맞게 농사, 건축, 다양한 지식교과 과목들을 융통성 있게 배치하려고 합니다.

이한영 고등·대학 통합과정은 입시패러다임을 넘어선 교육의 장 속에서 학생들의 주체성과 창의성

을 고양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독립학습은 삼일학림에서 배워온 역량을 확인하고 더 확장할 수

있는, 객관화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대안교육을 받으면 너무 온실 속에서만 자라서 사회에서 부적응

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는 부모님들도 계시는데, 독립학습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면서 자기가

배운 것을 통합해내고 세상과 소통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장과 시간이 독립학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연경 보통 고등학교 때가 학습 능력이 가장 높고, 졸업을 하면 성인이 되는 나이기에, 공부하고 자

기 삶을 살아내는 게 병행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등학교는 대학을 가기 위한 곳이

고, 대학은 취업을 하기 위한 곳이 되어버려서 학교에서의 배움이라는 게 삶의 능력으로 가지 못하고 있

지요. 고등·대학 통합과정은 필수과목들과 선택과목들로 학습 능력을 갖추고, 그것을 살아내는 능력

을 키우며 끊임없이 이어갈 배움의 과정이라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배움의 숲인 학림은 고등학교 적령

기 학생 뿐 아니라 직장인, 학부모도 올 수 있는 곳, 평생 배움의 장으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신 원 고등·대학 통합과정에 대한 학생 집담회에서, 삼일학림에 입학하면 자기 신분이 무엇이냐는 질

문이 나왔어요. 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요. 좋은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 고등학생이면 사회

적 위상, 역할이 분명하잖아요.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역할, 대학생도 사회에서 바라보는 역할이 분명하

고요. 그런데 삼일학림에서는,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자기가 자율 판단 속에서 진로와 학문영역, 삶

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주체로 보고 그 선택과 책임을 도와주는 교육과정이 녹아있어요. 우

리는 학생을 고등학생이라고 부르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주체로 대하느냐도 크게 다른 것 같아요.

박민수 학생을 선발하는 기준도 신선합니다. 학교들은 보통 점수화할 수 있는 기준을 내규에 명시하고

평가합니다. 그런데 학생의 학습능력이나 활동능력이 아니라, 이 학교의 가치와 지향하는 삶에 함께하고

싶고, 서로가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가가 대안학교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삼일학림은 엄격하게 선발하겠다고 정했는데, 그 기준은 다른 게 아니라 학생이 얼마나 내적 규율과 자기

주도성을 가지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는가입니다. 기존의 점수화하는 방식이 아니라서 사실 확인하기 어려

운 부분이죠. 그래서 함께하기 원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부분을 숙지시키고, 한 번에 합격, 불합격을 결정

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접촉과 교제시간을 열어두려고 합니다.

고등 이후 과정에 대한 학생 집담회, 부모 집담회에 이어 10월 12일 홍천마을 강당에서 열린 학림 설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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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몸으로 습득해온 배움을 철학적 틀로 해석하는 공부를 고등·대학 통합과정에서 한다는데,

중등까지의 교육에서 학생들이 체득한 학습을 축약해서 설명해준다면.

이한영 학생들이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얻은 점으로 가장 많이 나눈 이야기가 ‘더불어 사는 능력’이었

어요. 서당에서 공부하는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생활하고 잠자면서 자기 자신을 마주하고, 나와 다

른 사람과 소통하는 힘을 길러올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부분은 삼일학림에서 계속 중요한 것으로 수

련해갈 것입니다. 홍천에서 지내며 수많은 온생명들과의 만남, 처음 경험해본 생태뒷간, 소박한 밥상, 땀

흘려 얻은 수확물(생산한 것이나 직접 지은 흙집서당 모두 포함) 등 자기 몸에 새롭게 들이게 된 생활도

많습니다. 이런 자기 삶의 변화와 사건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공부를 하면서 더욱 힘있게 배운 대로 살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정연경 생동중학교에서 학생들이 가장 많이 배운 것, 가장 많이 변한 것이 뭐냐고 물으니까, 학생들이

성격이 다른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게 된 것, 불편한 상황에 대해 잘 이야기하게 된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이야기했어요. 그게 아이들에게 가장 큰 배움이 아니었을까. 사람과 사람, 세상과 관계를 맺는 기본기를

살아냈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학습이었던 거죠.

박민수 어른이든 아이든 누구나 자기 과제가 있는데, 생동중학교 학생들은 관계 안에서 자기 학습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자기 과제를 확인하고 있어요. 또 교사로서 가장 뿌듯한 부분은 아이들이 보여주는

학생심(學生心)이에요. 어떤 한 학생이 생동중학교에 들어온 결정적 계기에 대해 입학 자기소개서에, “배

움을 이렇게 즐겁게 할 수 있는 학생들은 처음 봤다”고 설명했습니다. 그걸 관찰한 아이의 통찰력도 중요

하고, 그런 느낌을 갖게 해준 학생들도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학생심이 삼일학림을 시도할 수 있

는 토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삼일학림이 세워졌는데, 공동체와 교육은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보는가?

이한영 가르치려는 가치를 삶으로 구현해내는 아름다운마을공동체를 토대로 학교를 세웠습니다. 지

금 교사이든 아니든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학생들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세상에서 무엇이 대안적 삶의 양

식인지 전망하고 함께 공부하고, 공부한 대로 살려고 끊임없이 수련합니다. 꿈꾸는 대로 사는 삶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대안교육인 것 같습니다.

정대영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가르친 바대로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 하는데, 삼일학림을 우리

가 기대하면서 잘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마을이라는 든든한 뒷받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런저런 한계에 봉착해 어려움을 겪는 대안학교들에 도전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어요. 그렇게 가치를

가지고 교육을 하러 모인 사람들이 가치를 올바르게 근성있게 구현하려면 그 가치를 몸으로 살아내는 사

람들의 관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도전받아 다양한 공동체들이 생겨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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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수 삼일학림이 한국사회에서는 획기적이고 새로운 시도인데, 공동체에서는 그렇게 낯선 것이 아

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년여 간 축적해온 공부와 꾸준히 청년대학생들을 만나며 쌓인 역량이 있고,

무수한 관계망 속에서 어떻게 주체가 세워지는지 봐왔기 때문에 삼일학림도 그런 연속선상에 있고 충분

히 발현될 수 있겠다고 봅니다.

공동체의 삶과 집단적 학습과정이 없다면, 학교를 꾸려나가는 주체인 교사를 뽑는 게 자본가와 노동자

같은 틀로 형성될 위험이 있습니다. 교사가 고용되는 한계에 빠지는 거죠.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진입할

가능성도 많아지고요. 교사 재생산 문제도 그렇지만, 교육이 일관성 있게 흘러가려면, 대안교육의 가치

를 구현하는 공동체라는 기반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연경 어떤 생물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생물교과만큼 공상과학이 없다는 거예요. 생명 현상을 가르

치는데, 한 번도 새나 꽃을 보지 않고 수업을 하니까요. 마을공동체에 기반한 교육은 공상이 아니라, 가치

를 실현하는 삶을 배우는 과정이고, 배우는 내용을 실현할 장이 없으면 교육적으로 실패한다는 생각도 들

어요. 제도교육이든 대안교육이든 그 교육을 충실하게 받은 사람이 이행하고 살 수 있는 대안사회가 있

어야 하는데 그건 마을공동체가 있어야 가능하지요. 기존 대안학교는 대안적 교육은 있지만, 학생이 졸

업하고 그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과 교육을 통해 배우는 세상이 단절되어 있었고, 그래서 결국

대학 진학으로 갈 수밖에 없는 한계에 봉착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삼일학림은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

이 살아갈 장이 펼쳐져 있다는 점에서 교육의 최대가치를 실현하는 토대가 되는 것 같아요.

신 원 삼일학림의 필수과목은 농생활연구소와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에서 심화하고 구현해온 것을 바

탕으로 학생들에게 창조적 역량을 길러주지요. 농생활, 생태건축이라는 운동의 주제를 모델로 삼아서 저

도 직장영역을 어떻게 다르게 해갈 수 있을까 끊임없이 모색하게 되거든요. 학생뿐 아니라 가르치는 사

람도 삼일학림을 통해서 그런 장이 열리는 것 같아요.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유기적 연관, 순환

이 가능해지는 것 같습니다.

박민수 아름다운마을 교육공동체는 다른 대안학교와 달리 학생의 부모가 많이 수고해야 한다는 의무

가 없습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부모가 되고 교사가 되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부모님들께는 가르침대로

삶을 살아주는 것이 학교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 삶을 함께 배우고 사는, 즉 아이의 동지

가 되어주는 게 더 큰 몫으로 남는 것이지요. 부모님들도 주말에 같이 오셔서 배움의 장에서 아이들을 만

나는 것도 서로에게 유익한 시간이 될 겁니다.

현실 시대 진단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이 문명의 전환기라는 문제의식으로 삼일학림이 출발했습니

다. 도시문명과 산업문명이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고, 가치적으로도 옳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요청이 있습니다. 전환시대에 맞는 새로운 주체를 길러내는 곳이 학교인데 삼일학림

을 통해 새로운 문명을 열어갈 인간형이 배출되리라 기대합니다.

김준표 | 출판사에서 책에 대한 애정과 고민 속에 편집 일을 하면서, 마을신문 기자로 즐겁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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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길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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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은근한 뒷심을 얻는 똥퇴비 정리

생동중학교 농생활 수업시간. 오늘은 학생들과 생태뒷간 정리를 해

야겠다. 한마디로 똥 푸기! 뒷간 정리는 농생활에서 중요하고도 큰 일

가운데 하나다. 우주의 기운이 담긴 음식을 먹어서 우리 몸에 들이고,

그 부산물을 쓰레기로 버리지 않고 땅으로 되돌리는 큰 순환의 중심에

생태뒷간이 있다. 생태뒷간은 바가지에 일을 보고 왕겨를 뿌려 옆 칸

인 똥간에 모은다. 일을 보는 곳과 똥을 모으는 곳이 분리되어 있어, 생

각보다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힘들긴 하지만 똥퇴비를 정리하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똥을 보는 재

미도 있다. 가끔 아주 커다란 똥덩어리를 발견하면, 우리가 소를 키우

는 게 아닐까 농담도 던지고, 이 거대한 똥의 주인이 누굴까 궁금해하

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학생들은 이제 똥퇴비 정리하는 일에 익숙

하다. 똥을 모아 수레에 싣고 조금 떨어져 있는 퇴비간으로 옮긴다. 퇴

비간은 세 칸으로 되어 있어 가장 오래 발효된 것을 퇴비로 쓴다. 퇴비

간으로 옮겨진 똥은 왕겨와 바람과 시간이 함께 버무려져 냄새가 거의

없는 훌륭한 거름이 된다.

생태건축

생태뒷간은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이 집 한 채 지을 때마다 꼭 함께 따라붙

는 필수 건축물이다. 홍천마을에서는 귀촌 초기부터 생태뒷간을 짓고 똥

오줌을 모아서 밭거름으로 썼다. 똥오줌을 액체폐기물로 버릴 때마다 한

번에 물 18리터씩 덩달아 낭비되는 수세식 변기에 대한 실존적 성찰과 대

안이었다. 농생활에 걸맞은 집 구조를 설계하며 화장실을 실내에 두지 않

고, 생태뒷간은 집 주위에 아담한 건축물로 자리잡게 되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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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 비료, 사서 쓰는 퇴비조차 없이 짓는 농사에 큰 재산이다. 손수 퇴비를

만드는 시골살이를 하면서, 깨끗함과 더러움의 기준도 바뀌었다. 똥, 음식부

산물, 흙은 더러운 게 아니다. 사람과 자연에 해될 것 하나 없이 고스란히 자

연으로 되돌아가고, 거름이 되어 다른 생명들을 키운다. 하지만 ‘위생’이라는

이름하에 유난스레 씻어내는 온갖 세제는 사실 그것을 쓰는 사람에게 해롭

고, 물도 땅도 오염시킨다. 무엇이 더럽고 무엇이 깨끗한 걸까?

똥퇴비 정리도 거뜬히 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눈에 띄고 드러나는 일보다는 모두가 꺼려하는 일을 뒤에

서 묵묵히 해내는 사람이 되리라 기대된다. 제 먹을 것을 스스로 농사지으면서도 그랬지만, 똥퇴비를 정

리하면서도 은근한 뒷심 같은 게 생겼다. 이제 못할 일은 없겠다 싶기도 하고, 땅에 뿌리 내리고 내 몸과

맞닿은 일들을 하는 데서 오는 개운함과 맑음이 있다.

둘, 힘주는 데 도움 되는 똥그림

미술시간에, 늘 쓰던 생활공간을 꾸며보자고 생각하면서 떠오른 공간이 바로 생태뒷간입니다. 외부에

서 홍천마을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터전을 둘러보고 경험하면서 가장 낯설고 신선해하는 곳이 생태뒷간

입니다.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홍천에서 학교생활을 처음 시작하면서 걱정했

던 것이 뒷간 사용이었다고 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생태뒷간

또한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요.

생명 순환의 가치를 담아 똥과 오줌을 소중히 모으고 있는 서당 뒷간을 어여쁘게 꾸며주기로 했습니다.

자주 쓰는 공간을 더 익살스럽고 정겹게 마주하기 위해서 생활 속에 쓰임이 되는 미술을 발휘했습니다.

모둠을 나누어 뒷간을 어떻게 꾸밀지 구상을 하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입니다.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작

업이 마무리 된 후…, 이렇게 달라졌습니다(사진). 재치 있는 그림들과 문구 하나로 끙~ 힘주는 데 도움

이 될 것 같아요. 생태뒷간에 가면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똥오줌 누면서 웃음도 배시시 새어나오겠지

요.생동중학교 선생님들

생태뒷간을 익살스럽고 정겹게 마주하기 위해서 어여쁘게 꾸며주었다. 똥오줌 누면서 웃음도 배시시 새어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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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처음엔 아이들과 들살이를 가는 게 좀 두려웠다. 저녁 마을밥상에서 한 아이가 나를 보며 맑디맑

은 웃음을 지어줄 때, 나에겐 그런 맑은 마음이 없다고 느끼던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이 두려웠던 거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 한켠에 있던 기대를 깨워 아이들을 만나러 갔다. 마을학교로 들어서는 내게 와락 안

기는 한 아이를 꼬옥 안으며 두려움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인간이 살아가며 잃어버리는 그것, 뭇생명

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아이들에겐 있었다.

한강을 따라 차로 진득하게 달려 유명산에 도착했다. 도착 후 점심 먹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자유놀이’

를 시작했다. 솔잎을 주워 음식을 만들던 친구들은 어느새 ‘식당’을 개업했고, 잣을 주워 모으던 아이들

은 잣 찾기, 잣 까기, 잣 분류하기 등 합심해서 각자 원하는 일을 찾아 했다. 산은 그 자체로 아이들의 놀

이터였다.

얼마 후 선생님 진행으로 ‘모둠놀이’를 시작했다. 각 모둠별 이름을 정하란다. “우리 모둠은 뭐로 할까?”

아이들이 거침없이 의견을 표출한다. ‘산들’ ‘푸른 강’ ‘파란 하늘’ ‘잣나무’ 중 하늘과 강이 대세였다. 결국

둘을 합쳐 ‘파란하늘 푸른 강’, 줄여서 ‘늘강’이라고 이름을 정했다. 아이들은 더 적극적으로 모둠 이름을

외치며 놀이에 임하는 듯했다.

저녁 먹고 산책하다 귀를 귀울이니 활기찬 노랫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어깨동부하고서 엉덩이 들썩

이며 노래하고 있었다. 오호라, 장기자랑 시간이구나. 연극, 노래, 악기 연주, 율동 등 장르도 다양하다.

자그마한 손을 번쩍 들어 별을 가리키고 부르던 ‘밤하늘 별들’, 인디안 처녀처럼 휘이휘이 손을 돌리며 추

던 율동 ‘트랄라랄라’, 환상적인 화음과 절제된 리듬이 인상적이던 리코더 합주, 센스 있는 소품 사용, 절

묘한 캐스팅으로 큰 웃음을 준 연극 ‘백설공주’, 웃음기 가득하면서도 진지한 스토리가 있는 연극 ‘범인

을 찾아라’와 ‘빨간모자’, 대본까지 써가며 연극을 준비하고 연출한 아이들은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무대

를 즐겼다.

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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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늘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했고, 그것을 표현하길 원

했다. 차에선 노래를 만들기도 했는데, 가사를 바꿔서 마을학교

친구 각자의 모습을 노래에 담는 식이었다. 예를 들면, “밤하늘

별들이 그렇게 멀다지만~ 가만가만 부르는 내 노래를 듣나봐요

~”를 “솔이가~ 솔이가 그렇게 귀엽다지만~ 토끼를 따라 하다 토

끼가 되어버렸어요~” 이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담아 노랫말로 만

들어 부르는 것이었다. 듣던 나도 어느새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곤충박물관 체험실습장에서, 애벌레를 만져보고는 도로 놓아

줄 때 툭 던지거나 떨어뜨리면 놀랄 수 있다고 말해준 아이, 과제

를 수행하려고 나뭇잎을 따며 나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던 아이

등 여러 아이가 생명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생명을 대

하고 있었다. 생명과 교감함으로 아이들의 생명의 기운이 더 힘

차게 약동 되는 것 같았다.

“친절하게 대해줘서 늘 고마워, 사랑해” 마을학교 아이가 친구

에게 보낸 생일 엽서였다. 아이들은 들살이 중 생일을 맞은 친구

를 위해 미리 준비해온 카드를 읽었다. 다양한 편지 형태와 편지

글이 있었다.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해 몸을 배배꼬며 편지를 읽

는 아이들이었지만 진심이 고스란히 들어있어, ‘녀석들 마음으

로 썼구나' 싶었다. 생일 맞은 이도 진심을 읽었는지 환한 웃음

으로 화답했다. 환하게 떠있는 둥근 달이 아이들 얼굴 같았다.

마지막 날 용문사에 들러 천년이 넘은 은행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으니 어느덧 우리의 들살이는 끝을 향해 있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들과 지내며 생명에 대해 무뎌진 감각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도시에서 살다보니, 어느새 닭은 치

킨일 뿐이고 나무는 그늘일 뿐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도

상품으로, 가격으로 단번에 규정할 수 없는 엄연한 생명이다. 아

이들은 생명의 창조이고 약동이다. 자문해본다. 아이들에게 한

껏 받은 영감을 가지고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사회에서 효율적

이고 경제적인 관점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명력을 잘 지켜보며 관계해가야겠다. 충만한 생명의 약동을

잃지 않고 책임있게 살아가고 싶다.

김승권 | 사회에 대한 여러 질문과 새로운 꿈을 품고 새날을 살고 있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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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세상

어린이집 다섯, 여섯 살 아이들과 '연극놀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과 이번 가을학

기에 연극놀이를 할 거라고 하니, 아이들은 바로 “공연하는 거예요?” “연극 보는 거예요?” 하고 질문 공세

를 펼칩니다. 지난해 연극놀이를 해본 여섯 살 아이들은 그렇게 묻는 동생들에게 “그런 거 아니야. 놀이

하는 거야~” 하며 핀잔을 줍니다.

“응, 맞아. 같이 재밌게 놀 거야. 그리고 연극을 하긴 하는데, 공연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니야. 옛날 얘기

를 듣거나 동화책을 보고 이야기를 연극처럼 우리가 만들 거야. 그리고 상상도 많이 해보면서 몸으로 표

현해볼 거야. 그리고 함께하는 놀이도 많이 할 거야”라고 연극놀이를 소개했지요. 말로 소개를 들었지만

고개를 갸웃하던 아이들, 한 시간, 한 시간 함께 수업을 하면서 몸과 마음으로 함께 놀 마음이 점점 열려

가는 걸 느낍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놀이를 하면서 자신 안에 있는 생각과 감정들을 다른 사람과 잘 소통하

는 것, 그리고 스스로 하려는 마음을 충분히 이끌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교사의 의지만 앞세우

려고 하면 오히려 수업은 재미가 없어집니다. 교사인 저도, 아이들도 말이지요. 하지만 어느 정도 내가 준

비한 대로 진행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역동

적이고 생기가 넘치게 되지요. 제가 아이들에게 기대했던 모습을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내는 걸 봅니다.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진 아이들은 연극놀이를 하려고 하면 눈이 반짝반짝합니다. ‘오늘은 뭘 하지?’ 궁

금해하는 아이의 눈을 보면 놀이가 주는 힘을 느낍니다. 놀이 속에서 생각해내고 생각한 걸 해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이 안에서 나오는 것을 보게 되지요. 옛날이야기를 듣고 역할을 정하고 제가 해설을 하면

서 극놀이를 이끌어갔는데 이야기를 끝맺으려고 하는 순간, 한 아이가 스스로 그 다음 이야기를 만들어

해설을 하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모두 새로운 상황에 맞게 자기 역할을 하면서 극놀이를

이끌어가는 게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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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야기 안에 있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또는 쑥스러워서 교사

가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이야기 내용에 없는 상황도 만들어내고 그것에 맞게

자신의 역할을 생각해서 표현해내고 있었습니다.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고 그것에 맞게 자신을 녹아

낼 줄 아는 것은, 자기중심성에서 한 발짝 물러서 전체를 볼 수 있는 마음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거

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이집에서 지내는 아이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질 때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친구를 때리면 아

프니까 그러지 않기로 굳게 약속한 사이지요. 하지만 마음이 상한 상황에서 약속은 자주 잊히게 됩니

다. 그렇게 다툼이 벌어졌을 때 때린 아이에게 물으면, 자신이 왜 때려야만 했는지 그 아이의 화가 난

마음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맞아서 아프고 속상해진 아이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면, 바로 친구에게 미

안하다고 사과를 하지만, 마음이 담겨있지 않는 경우도 보게 되지요. 친구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리

지 못하면 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보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나의 마음뿐 아니라 다른 이의 마음이 어떨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 스스로 마음을

키우는 연습이 연극놀이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인의 마음을 느낄 줄 알고, 그런

마음이 동기가 되어서 스스로 지켜가는 것을 말이지요. 이러한 경험들이 일상에서도 잘 이어지면 좋

겠다는 바람으로 오늘도 아이들과 손을 잡고 신나게 뛰어놉니다.

이영미 | 재잘거리는 아이들과 날마다 마을 곳곳을 누비며 웃음과 감동이 끊이지 않는 생활을 하는 마을어린이집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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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11시 ‘아궁이’ 공동체방의 네 남자는 집안 구석구석 걸레질

을 합니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를 펴는 것이지요. 사실 가산동

에 위치한 회사에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늦게 귀가할 때면, 빨리 드

러눕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걸레만 잡으면

금세 끝납니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하기에 집안일도 힘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줄곧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

면 내 집과는 상관없는 바깥일뿐, 함께 쓰는 공간이라고 인식해본 적

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파트 공터에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고

도 내가 치워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수마을로 이

사 오니 좁디좁았던 제 생각의 폭도 자연스럽게 커져갑니다. 마을사람

들이 힘 모아 마련하고 손수 수리하고 묵묵히 청소하고, 손때가 묻은

곳들, 어느 곳 하나 내 삶과 동떨어진 곳이 아닌 듯 느껴집니다. 그래서

이번에 마을어린이집에서 도배를 한다고 해서,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

을까 망설이지 않고 주말 시간을 내어 참여했지요.

10월 둘째주 토요일 아침 집집마다 공수해온 도배붓, 빗자루, 칼, 장

갑 등의 도구를 들고 마을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저처럼 처음 해보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입니다. 전날 저녁 가

구를 옮기고 벽지를 뜯어놓았기에 바로 붙이면 됩니다. 시키는 사람이

없어도 풀을 개는 사람, 초배지에 풀을 발라 나르는 사람, 배달된 초배

지를 벽에 붙이는 사람… 분업을 시작합니다. 초반에는 일을 익힌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함께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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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란 걸 난생 처음 해보는 저로서는 초배지가 울지 않게 붙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옆에서 한

수 가르쳐줍니다. 먼저 윗선을 맞추고 정중앙을 쓰윽 한번 문지른 다음 바깥쪽으로 펴 바르니 주름 없이

말끔하게 완성됩니다. 초배지 작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한지를 붙이는 일은 단순해 보였지만, 이 또한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죠. 한지는 도배지보다 얇고 찢어지기 쉬워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합니다. 아이들

이 생활하는 공간이기에, 몸에 유해할 수 있는 일반 도배지와 도배풀, 본드 대신에 감색 한지와 해초풀을

고심하고 고른 것입니다.

‘흥부네 집’을 만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어떻게 하면 한지 특유의 질감을 살리며 줄을 잘 맞춰서 붙일

수 있을까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지혜를 모읍니다. 3인1조가 되어 먼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한 사람이

기준을 잡으면 맞은편 사람이 수평을 이루어줍니다. 나머지 사람이 빗자루로 쓰윽쓰윽 펴바르면 금방입

니다. 호흡을 맞추니 제법 속도도 붙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남은 마루 천장은 이제 겨우 절반밖에 완성하지 못했는데, 한지가 동이 나버렸습니다. 한

지를 더 사서 나중에 다시 해야 하나 고민도 되었지만, 바닥에서 크고 작은 한지 자투리들을 찾아내 한 뼘

한 뼘 공백을 채워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붙이는 순간,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던 천장

이 가득 메워지는 놀라운 광경이 연출되었습니다.

지난해 여름 집 이사를 하면서 도배를 했습니다. 그 때는 너무나 당연하게 전문업자에게 맡겼습니다.

바쁜 세상에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인 선택이라 생각했으니까요. 잠깐 가게에 들러 벽지를 골랐고, 도

배가 잘 되었는지 스윽 둘러보고는 청구된 금액을 지불하는 것으로 제 할 일은 끝이었습니다. 마을에서

살기 시작하니, 그동안 당연히 내 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던, 삶의 수고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요리를 하

고, 걸레질을 하고, 집수리를 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밥상 지킴이를 하고…. 함께 사는 삶에서 필요한 역

량과 기술을 익히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다음에 또 어디서 한지 도배한다고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

습니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는 가을날, 단풍잎처럼 곱게 물든 어린이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결 따스한 느낌

이 감도는 어린이집 분위기가 체감온도 3도 정도는 거뜬히 올려놓은 것 같아 뿌듯합니다. 마을 이모삼촌

들이 정성스레 단장한 어린이집이 아이들 마음에도 쏙 들면 좋겠습니다. 신나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

가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

고경환 | 인수마을에 이제 막 터를 잡았습니다. 의료기기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서른넷의 직장인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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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답게

오늘 대학생들은 졸업 이후의 삶을 매우 불안해합니다. 졸업 그 이후 그들을 기다리는 건, 거대한 권

력 앞에 무력한 개체로 낙오될 수 있다는 압박, 그리고 학벌, 자본, 부동산, 가족주의 등 미래의 안정을

보장해줄 것 같은 시대의 허상을 좇는 무한경쟁의 삶입니다. 따라서 대학 내내 뚜렷한 자기 이유 없이

무언가를 갖추려고 끊임없이 분주하게 삽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대학 들어간 뒤에 하라고 부모님과 주변으로부터 설득 당한 것처럼, 스펙 이

외의 것은 ‘시험 끝난 뒤’로, ‘취직한 뒤’로 늘 유보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정작 어떤 삶을 살고 싶

은지, 자기 삶을 개척해나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대해서는 고민을 멈추고, 그저 품질 좋은 상품이

되려는 것과 흡사합니다.

리영희 선생은, “요즘 청년들에게 기상이 없지 않습니까?”란 기자의 질문에 “생명의 기질상 불의에

항거하는 시기가 청년이다. 그렇지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청년들이 소비문화에 종속되는 것이다”고

일찌감치 내다보셨습니다. 예언처럼, 자본은 끊임없이 대학생들의 소비를 부추깁니다. 없는 돈에도

스마트폰을 소유해야 하고, 친구를 사귀어도 쓸 돈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청년아카데미는 지난해 가을에 이어 올 가을에도 대학 졸업 그 이후 삶의 고민을 새로운 공부

와 관계로 함께 풀어가고자 하는 대학생 졸업예비학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불안에 빠져, 남들이 욕

망하는 것을 덩달아 따라 달리느라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여주는 소중한 공부와 관계 말입니다. 역

사 속에서 시대의 변혁을 선도하였던 것은 청년이었습니다. 청년의 때에 너무 일찍 늙어버려 안정만

을 추구하고 몰려드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우상에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생기 가득한 삶을 꿈꿉니

다. 9주에 걸쳐, 진로와 비전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 함께 나누고, 직

장인, NGO 활동가, 교사, 청년 창업 등 다양한 현장에서 배운 바대로 지조를 지키며 살아가는 선배들

의 이야기를 듣고 풀어갑니다.

장철순 | 청년들과 함께 공부하고 삶을 나누는 대학생단체 간사, 기독청년아카데미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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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친구를 만나는 일은 늘 나중으로 미루며 살아온 우리의 현실. 정작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물어볼 관계의 부재를 경험합니다. 연애조차도 스펙을 갖춰야 할 수 있고 돈이 없으

면 하지 못하는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겉사귐이 만연한 오늘, 깊은 사귐의 관계 속에서 고백하고 다

짐했던 바를 한결같이 살아가길 마음 모읍니다.

* 대학생들이 단지 능력만을 키워서 그 능력 때문에 모이는 사람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현실이

무섭기도 하고, 고립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들이 자신에게 관심 가져주기를 바라지만, 반대로

나는 남들에게 관심이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 함께 어울리고 서로 챙겨줘야 하는 학창시절에 경쟁

으로 너와 내가 분리되는 개체가 된다는 말씀을 듣고, 안타까웠습니다.

* 생활문화, 연애, 우정, 결혼에도 특별히 세상과 다를 게 없이 살면서도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 저

를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남들 말에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중심 없는 가치관은 삶을 피곤하게 만

들고 시간이 부족하다고 조급함을 만들어냅니다. 드라마를 통해서 배우는 연애관, 우정관, 가치관

등은 진실한 관계를 경험하지 못하도록 더 부추깁니다. 연애하기 전에 우정을 먼저 쌓고, 연애를 특

별한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 속에서 하라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 생명을, 마치 상품 보듯이 대상화하는 것이 제게도 익숙한 것 같아 마음이 아팠고,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도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편한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됐어요. 요즘 인생의 앞길을

함께 고민하고 함께 책임지는 것들을 몸으로 배워가고 있던 터라 감사하기도 하고, 지금껏 나는 얼

마나 공동체를 몰랐던가 탄식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오늘 내 앞에 서있는 존재가 고유한 생

명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나를 겸손하게 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혼자’, ‘각자’, ‘스스로’가 익

숙하고 편한 세상에서 생명을 대하는 민감함을 가지고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이 진짜 삶의 능력이라

는 것,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 ‘어떻게 살 것이냐?’는 곧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라고 합니다. 혼자서만 생각하면 또 길을 잃어버

리고, 후회하면서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졸업을 하면 혼자가 된다는 불안감, 세상

가치관의 충돌에서 마음 나눌 친구를 찾지 않고 혼자 끙끙대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내가 잘못된 길

을 갈 때 나를 돕는 친구를 만나고 그 길을 잘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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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대안

10월 9일 한글날 이른 아침 부산행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한국전력의 765kv 고압 송전탑 건

설 강행을 막으려 온 몸으로 산을 지키고 계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빚진 마음을 안고 찾

아갔다. 난 전기를 가장 많이 소비한다는 서울과 경기도에 집과 일터를 두고 생활하고 있다. 버

튼 하나로 편리하게 전기가 on/off 되는 현대문명 속에서 우리는 이 전기가 누구의 삶과 어느 농

촌마을을 짓밟고 오는지 망각해간다. 도시사람들이 과하게 쓰는 전기를 대주려 끊임없이 산을

파헤쳐 송전탑을 줄 세워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다섯 시간이 걸려 도착한 곳은 밀양 옆의 청도군 금곡리 마을. 송전탑이 세워질 산 중턱에 할머

니들은 움막을 짓고 당번을 정해 지내시며 마을을 찾는 이들 밥을 짓기도 하고, 공사를 저지하

기 위해 대기하고 계셨다. 허리 굽은 어르신들이 지팡이를 의지해 산중턱을 오르내리고 계셨

다. 그날은 전날부터 내린 비로 인해 경찰과 용역이 빠져서 소강상태라고 했다.

정성껏 대접해주신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오는데, 할머니들이 평상에 앉아 논밭을 하염없이 바

라보고 계셨다. 굽어진 허리와 축 쳐진 어깨에서 8년 넘게 싸워온 고된 시간을 느끼며 어깨와 등

을 주물러드리고 마디마디 굳어지고 휘어진 손을 만져드렸다. 할머니는, 전에는 마을이 단합도

잘 되었는데 송전탑 공사로 인해 마음이 갈리게 되어 안타깝다고 하셨다. 이분들이 허리 펼 날

없이 정직히 농사짓고 평생을 자신의 생명같이 여기며 살아온 이 땅을 어찌 이리 한순간에 잔인

하게 빼앗을 수 있는지, 화도 나고 마음이 답답했다.

송전탑 공사 현장에 오르니, 포크레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마을어르신들이 파놓은 큰 구

덩이들이 보였다. 헬기를 동원하고 몇 백, 몇 천의 경찰인력을 동원하는 공권력에 비해 이분들

이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작아보였다. 서울에서 함께 내려간 사람들이 둘러서서 간절히 기도

를 드렸다. 이분들의 눈물과 아픔을 씻어주시길, 농촌을 수탈하며 질주하는 도시문명이 멈춰서

기를, 반복적으로 경험되는 국가권력과의 싸움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체념하지 않고 자기가 살

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희망을 일구는 이들이 생겨나기를….

돌아오는 길, 한순간 쏠린 관심으로 현장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일상에 파묻혀 잊어버리는 게 아

니라, 농도상생 마을공동체를 일구어가는 삶의 의미를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에너지 소비를

조장하는 이 도시에서 관성적으로 써온 문명의 이기들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몸의 습을 바꾸

어가고 있는 마을공동체에서 잘 배우고 또 적극적으로 실천해가야겠다.

움막을 지키며 바쁜 와중에 따주신, 가을볕을 가득 머금은 감에는 그 땅의 눈물이 담겨있는 듯

하다. 할매, 할배의 정성어린 그 고운 맛을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 감사히 맛보고 싶다.

이선아 | 일산에 있는 병원으로 출퇴근하며 세상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일상을 정성껏 살아가려 하는 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