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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를 일구는 농도상생마을공동체 2013 05 제37호

아름다운마을 37호(201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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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아름다운마을 37호(2013 05)

생명

평화

일구

농도

상생

마을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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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

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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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편집실에서] 줄 서서 어깨 걸고 최소란

4 [생태건축] 흙미장하며 단열을 다시 생각하다 김현기

6 [청춘답게] 다른 이들에게 열어둔 유연한 시간, 백수 백윤정

8 [함께 산다는 것] 한 방에 모여 잠 자는 우리 최소란

9 [그리고] 봄의 전령사 김은영 황지영

10 [農생활] 장 맛 아니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지? 이한영

12 [밥상머리] 나 하나 건강하기 위한 게 아니라 유재홍

14 [마을학교] 선생님도 그랬어 이주원

16 [空과 共] 이웃이 필요할 때 내 차 쓸 수 있도록 주재일

18 [소통과 대안] 침묵과 걸레질로 일상을 닦는 마을수도원 최소란

20 [만나보기] “나는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92세 청년 문동환 목사님의 사자후 김준표

22 [이웃공동체] 떼제 기도모임에 다녀와서 서아름

23 [아이들세상] 아름다운마을교육공동체 운동회 풍경 최유리

<아름다운마을> 펴낸 곳 아름다운마을공동체 기자 김세진 김준표 김형우 임안섭 주재일 최소란 디자인 김준열 김준표 김지명 서아름

문의 02-999-9294, 010-2578-6050 누리편지 [email protected] 누리집 www.maeullo.net 후원 국민은행 487101-01-436510

<아름다운마을신문>은 강원도 홍천 아미산자락 효제곡마을과 서울 북한산자락 인수마을을 오가며 농촌과 도시에서 농도상생마

을공동체를 일구는 사람들의 삶을 증언합니다. 시대 과제와 소통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소통과 대안]에 담습니다. 일상과

관계, 수련을 통해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봅니다. 마을밥상 지기들이 밥을 차리는 마음을 [밥상머리]에 모읍니다. 기

독청년아카데미에서 만나는 20·30대 청년대학생들과 [청춘답게] 모험하는 활동을 나눕니다. [청소년마당]과 [마을학교] [아이들세

상]은 홍천과 인수 마을학교 아이들이 살아있는 배움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농(農)을 통해 문명과 삶 전체를 다시 살

피고 재구성하는 [農생활]과 건강한 주거문화를 만들어가는 [생태건축] 현장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만나보기]에서는 당신과 우

리가 함께 만나고픈 사람을 찾아갑니다.

2013 05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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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5 37호

편집실에서

최소란 편집장

“누구라도 늦어지면 그 사람이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다음 줄로 넘어가는 모내기

다른 사람이 일하는 속도와 호흡을 의식하며

어떤 이는 분발하고 어떤 이는 슬며시 옆 사람 몫을

채워주거나 표 안 나게 기다려주었다.

‘성숙’이 필요한 일이었다.

함께 하는 사람과 공동의 과업을

정확히 이해하면서도 여유로운 모습이

우리 삶의 기반이 되는 ‘밥’을 심는 과정에 고스란히 담긴다.”

홍천 마을학교 농생활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물 댄 논에 발 담그고 손모내기를 하고서 선생님이 쓴

날적이 중 일부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다른 이의 호흡을 의식하며 여유롭게 모줄을 하나하나 완성하

면서 춤추듯 나란히 나아가는 모습을, 5월 절기달력에서 손그림으로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

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루고 있는 과업은 어떤 그림일까, 나는 분발해야 할 때일까, 채워주고 기다려

줘야 할 때일까 헤아려보며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겠습니다.

어쩐 일인지, 아름다운마을 교육공동체 운동회에서 10인 11각 달리기 시합을 하려고 서로의 발목

을 굴비처럼 엮고 길게 줄지어선 이번호 마을신문 표지 사진도 손모내기할 때 연출되는 장면과 비

슷합니다. 모처럼 힘껏 몸 좀 풀어보겠다고, 사뭇 긴장감도 느껴집니다. 평소 늘 호흡을 맞추며 경

기를 놀이처럼 즐기는 학생들을 이기기가 만만치 않았겠지요. 처음엔 어색하게 어깨 걸고 어느 순

간 한 몸과 같이 되는 걸 느끼며 힘껏 달리면서 아이들 못지않게 신났을 그들의 다음 장면이 기분좋

게 그려지지 않습니까?

줄 서서 어깨 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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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건축연구소 흙손’이 지난 4월 6일 강원도

홍천 아미산자락 효제곡마을에서 ‘생태적 집짓기

와 노동’ 강좌를 열었다. 흙손은 시멘트와 콘크리

트로 대표되는 현 시대 건축양상을 거슬러 대안

적 주거양식과 건축기술을 연구하며 집을 짓고 있

다. 흙집 짓는 기술을 배우겠다는 청년, 가족과 살

집을 직접 짓고 싶다는 부부, 땀 흘리며 일하려고

친구 따라 온 사람들, 20대 대학생부터 30~40대

직장인까지 서른 명 남짓한 참가자들이 먼 길 마

다 않고 모였다.

흙손은 지난 4년 간 홍천에서 흙, 나무, 돌 등 자

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재료들로 집과 가구를

하나씩 만들어왔다. 폐가 리모델링을 시작으로,

생태뒷간, 너와구들집, 태양열 구멍가게, 한옥, 흙

부대집 등 효제곡마을에는 ‘흙손의 손’을 거쳐 간

건축물이 많다. 처음엔 정교하지 못한 설계도로

겁 없이 공사를 시작하여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지만, 매번 새로운 공법을 공부하여 도입하는 모

험심과 창조력으로 생태적 집짓기의 진보를 이뤄

가고 있었다.

홍천은 겨울철 단열을 신경 써야 한다. 벽 단열

재로는 흙벽돌, 왕겨숯, 흙부대 등 여러 가지가 있

는데, 난방을 위한 기본은 바로 ‘구들’이다. 지금은

가정용 기름보일러와 가스보일러가 보급된 뒤로

일순간에 사라진 아궁이와 구들은 화석연료 사용

을 줄이는 데 중요하다.

가장 최근 건축한 흙부대집의 주 건축 자재는

바로 흙이다. 집터를 파낸 흙을 건축 자재로 즉

시 사용할 수 있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흙을

35m 양파망에 담아 길쭉한 흙부대를 만들고, 양

파망을 동그랗게 둘러 층층이 쌓아 올리는 건축방

식이다. 흙부대끼리 지탱해주는 무게가 상당하기

에 지진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다고 한

다. 실제로 만져 봐도 단단했다. 이 흙부대집은 생

동중학교 서당공간으로 지어졌다. 원형 흙부대집

두 채가 나란히 선 느낌은, 보통 딱딱한 학교 건

물과 달리 창조적인 배움의 관계를 떠올리게 해

준다.

이날 강좌에서는 흙부대집 외벽을 점성이 강한

흙으로 미장하는 작업을 두 시간 정도 했다. 아무

건축기술이 없는 수강생들도 재미를 느끼며 흙미

장을 했다. 반죽이 된 흙을 삽으로 떠 옮기고 일일

이 손으로 벽에 바르는 일이었다. 그리 넓어 보이

지 않은 집인데도, 우리 몸을 써서 완성한다는 게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

집짓는 일은 어려운 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라는 고정관념을 털어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

다.

생태건축으로 등장하는 여러 집들 중 ‘에너지제

로하우스’라는 게 있다고 한다. 고밀도 신소재 단

열재를 사용하여 보온병처럼 밀폐된 집을 짓는 것

이다. 제로 하우스에 들어가는 SIP (Structural In-

sulated Panels) 단열재는 놀라운 단열효과를 보

이지만, 따지고 보면 석유화학 제품이다. 자연으

로 되돌아갈 수 있는 재료가 아니다. 화석연료를

흙 미 장 하 며

단 열 을 다 시 생 각 하 다

생태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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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쓰겠다고 석유화학 제품에 둘러싸인 집을 짓고, 통풍이 잘 되지 않아 별도의 환기시스템을 가동시켜

야 하는 집에서 사는 것을 생태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집을 지을 때 어떤 건축자재를 사용할 것인가, 어떤 공법을 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만큼 에너지라는

주제도 흙손의 치열한 연구주제였다. 전구 하나 밝히는 데도 에너지가 들고, 집을 따뜻하게 하는 데도 에

너지가 든다. 건축자재를 생산하는 과정에도 에너지가 드는 것은 물론이다. 대안에너지로 방구들을 놓

는다던지, 태양광 전지로 조명이나 노트북 전원 같은 소량 소비전력을 해결한다던지, 태양열을 이용한

온풍기를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병행하고 있지만 흙손의 지향점은 무척 단순하다. 에너지를 적게 사용

하는 일상, 그것이 최선이다. 안락하고 편리한 삶을 바꾸지 않는다면 대안에너지를 쓰나 원자력에너지

를 쓰나 변별력이 없게 된다.

‘어떤 집을 짓고 살 것인가’라는 대안적 주거양식에 대한 고민은 결국 ‘어떤 삶을 지향하며 사는가’와 같

은 질문이 된다.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이 끊임없이 실천하는 모든 과정에서 ‘어떤 가치로, 어떻게 살 것인

가’라는 질문 앞에 서는 것이 중요한 기준점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자연에 죄를 덜 짓기 위해, 에너지를

덜 써서 조금 불편한 삶이더라도 자연과 대지와 사람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을 유쾌하게 택

하는 것. 생명을 살리는 조용한 혁명이 아름다운 노동의 손길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감사

한 시간이었다.

김현기 | 인터넷서점 인터파크에서 일하는 7년차 직장인.

‘자립하는 삶, 어우러져 사는 삶’을 주제로 다양하게 공부하고 실천하고 있는 친구들과 함께 생태적 집짓기 강좌에 참여했다.

원형집을 따라 자연스레 둥그렇게 자리해서 놀이처럼 흙벽을 치며 처음 만난 사람들과 수다도 떨고

외벽 미장을 하기 전 흙부대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생태건축연구소 장재원 님

흙미장은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고, 잘 반죽된 황토를 벽에 두툼하고 균일하게 붙이면 된다 생태건축연구소 흙손이 그동안 연구해온 대안적 주거양식과 건축공법을 총망라하여 들을 수 있었다

미리 반죽해서 쌓아둔 흙이 꽤 무겁다. 삽으로 퍼 나르는 역할을 도맡은 이들 마음만큼 완성하진 못했지만, 뿌듯하다. 점심밥이 꿀맛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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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에게 열어둔 유연한 시간,

백 수현지야!

집에는 잘 도착했어? 영화를 향한 꿈을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먼 길을 오가는 너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했어.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삶의 쉼표를 찍고 있는 시기에 네가 우

리 마을에 놀러오면 좋겠다고 소망했는데, 너에게서 서울에 온다는 전화를 받아 얼마나 기뻤는

지! 그런데 모처럼 만난 너와 단둘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하고 헤어져서 아쉬운 마음이 남

아 못 다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학교에 다니면 다닐수록 빚만 늘게 만드는 비싼 등록금과 전공 공부의 의미에 대한 고민으로 휴

학을 결정하고, 대학 밖의 배움을 즐겁게 찾아다니며 함께할 친구를 찾고 있는 너를 보며 나와 비

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 또한 휴학과 같은 시간을 설정해서 마을에서 놀고 있으니까. 바로 창

조적 백수! 일반적으로 백수 하면 구직에 실패했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생각하기에, 난 당분간 직

업을 갖지 않기로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의미에서 창조적 백수라고 새롭게 부르기로 했어. 또

한 이 시기 동안 내 시간을 비워두고 다른 이들에게 필요한 일들을 찾아서 도우며 유연하게 생활

하겠다는 마음도 있지.

창조적 백수로 지내며 여러 가지 질문을 품고 있어. 처음에는 교육과 교사로서의 재능과 진로

에 대한 것이었는데, 다양한 만남과 공부 속에서 이제는 나의 삶이 터 잡고 있는 땅에 대한 관심, ‘

나는 왜 도시에 살고 있는가’와 같은, 사회구조가 낳고 있는 삶의 양식에 대한 회의로 범위가 점점

넓어지는 것 같아.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삶의 전망을 세우는 이 시간이 마치

십대로 다시 돌아간 듯해.

그러나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런 질문들을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처럼 생각만 하

는 게 아니라, 땅 속에 든든히 뿌리내린 나무처럼 구체적인 삶으로 연결해갈 수 있는 마을공동체

가 있다는 사실이야. 그래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데만 몰두하지 않고 마을에서 필요한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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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찾아서 돕는 것이 재미있어.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랄까. 어떤 만남 속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모르지만 그 일을 통한 만남 속에서 뭔가 하나씩은 배우게 되거든.

매주 목요일 저녁에는 마을찻집에 가서 찻집지기 대신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어. 찾아오는 손님

들이 내가 만든 차를 마시면서 맛있다고 이야기해주면 얼마나 뿌듯한지……. 지난달에는 마을어

린이집 선생님 한 분이 아파서 쉬게 되어서, 한 달 동안 어린이집 선생님 역할도 맡았어. 덕분에

마을의 귀염둥이인 4살 또래 여섯 명과 친해졌지. 처음에는 부끄럽다며 도망가던 아이가 이제는

와락 안길 때 또 얼마나 행복한지…….

아무도 나를 찾는 이가 없을 때는 뒷산에 오르는데, 요즘 산이 포실포실해 눈길을 끄는 것이 많

아. 얼마 전에는 분홍빛 철쭉을 보았는데 그 색이 신비롭게 느껴질 만큼 아름다웠어. 그래서 숲속

을 걷는 것도, 마당바위에 올라 책을 읽는 것도 백수생활의 큰 즐거움이란다. 우리 다음에 만나면

함께 산에 올라가볼까?

2월 17일부터 창조적 백수가 되었으니 어느새 석 달이 되었구나. 때로는 바쁘게 때로는 심심하

게 지내면서 배우고 싶었던 강좌를 수강할까 알아보기도 하고, 잠시 아르바이트라도 할까 찾아보

기도 하고, 앞으로 어떤 직장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기도 했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에

휩쓸려가지 않을 수 있는 건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 덕분이야.

교사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한 번 주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이젠 어

떤 일을 하게 되어도 잘 살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게 신기해. 그것은 든든한 친구들을 만나

함께 살아온 일 년의 시간이 내게 준 선물이 아닐까? 창조적 백수의 시기로 설정한 시간이 길어질

지 혹은 줄어들지 알 수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균형 잡힌 생활을 하도록 지켜주는 친구들로 인

해 오늘 하루에 감사하단다.

부산에 돌아가서 넌 어떻게 지내고 있어? 고민하던 일들을 어떻게 소통하며 풀어가고 있는지 궁

금해. 봄날의 기운처럼 생동하는 삶 살기를 응원하며 답장 기다릴게.

백윤정 / 강북구 인수동 북한산 아랫마을에서 놀고 있는 서른 두 살의 창조적 백수. 첫 직장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 만난 현지와 이제는 열 살 차이 나는 친구로 지내고 있다.

청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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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산다는 것

“북한산이 바로 옆이다. 일찍 일어나서 다같이 마당바위까지 다녀왔는데, 아침 공기가 무척 좋았다. 형

제방으로 돌아와 도시락을 쌌다. 역할을 분담해서 밥을 짓고, 세면하고, 멸치를 볶고, 떡볶이를 만들고,

그 와중에 계속 수다를 떨면서 참 재밌었다. 같이 무언가를 준비한다는 것, 그것이 굉장히 일상적인 부분

에서 나타날 때는 또 다른 감사함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마을공동체에서 1박2일을 지낸 김서욱이라는 대학생이 나눈 이야기이다. 4월 26일~27일 북한산자락

인수마을에서 공동생활 워크숍이 열렸다. “이 워크숍이 매뉴얼을 전달하는 시간은 아닙니다. 빠르게 질

주하는 도시문명의 한복판에서도, 서로를 비추며 살리는 공동생활이 가능함을 믿고 삶으로 살아온 청년

들이, 자기 경험을 나누며 수강생들과 함께 새로운 희망을 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합니다.” 인수마을에서

여덟 개의 비혼 여성공동체방과 형제공동체방을 이루고 있는 이들이 삶의 현장으로 젊은이들을 초대했

고, 공동체를 꿈꾸는 20대 학생 20명이 찾아와 두세 명씩 곳곳에 흩어져 함께 하룻밤을 머물렀다. 둘째 날

아침 도시락을 들고 맑은 얼굴로 마을수도원에 모여 공동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눴다.

공동생활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방을 각자 쓰는가’이다. 함께 사는

삶은 공간을 새롭게 배치하는 것이라고 한다. 밥 먹을 때, 잘 때, 공부할 때, 나갈 채비할 때, 끊임없이 서

로의 얼굴을 살필 수 있도록 말이다. 가상공간에서는 ‘친구’가 많은데, 일상에서는 깊은 관계가 없는 사

람이 많다. 관계의 빈곤은 더 많은 소비를 부추길 뿐이다. 욕심을 덜 부리며 살려면, 남들과 더불어 살아

야 한단다. 어딜 가나 있기 마련인 ‘나랑 안 맞는 사람’과의 사이가 질적으로 변화될 때의 희열, 내 몸 하나

챙기기도 버겁던 내 존재가 어느새 옆에 있는 사람까지 책임지는 사람으로 커지는 경험이 공동체로 사는

삶 속에 있다고 했다.

김서욱 님은,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고, 이번 만

남이 내가 가는 길의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워크숍 참가자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 최유리

님은 “여러분이 언제든 찾아와서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고 싶고, 또 다른 곳에서도

새롭게 시도해보는 소식을 듣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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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5 37호

봄 의 전 령 사

어릴 적에는 봄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꽃이 개나리였다

서울 북한산자락 아래 살 적에는 노란 산수유가 봄의 전령사였다

산과 숲과 들에 집을 얻어 살고부터는

노랗게 꽃을 피우는 산수유, 개나리, 생강나무보다

길가에 벙그러진 버들강아지가

얼음꽃처럼 눈부시게 피어나는 봄의 전령사다

그러면 누가 진짜 봄의 전령사인가

밭은 이미 봄을 몰고 오는 작은 생명들이

이름 부를 새 없이 피고 진다

봄처럼 힘차게 일어나는 너와 내가

봄의 전령사다

아침에 학교 가는 길,

누구보다 먼저 꽃을 피운 갯버들, 키버들, 버들강아지를 보고 쓴 시

시 김은영 | 홍천에서 지내는 소소한 일상과 아이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시를 써서 생동중학교 아침열기 시간에 한 편씩 낭송하고 있다.

그림 황지영 | 미술학원에서 만나는 다양한 아이들이 그림을 통해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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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맛 아니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지?

여름, 새벽 김매기가 한창일 때다. 등이 뜨거워

질 때까지 밭에 있다가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는 깻

잎 몇 잎 손에 쥐고 온다. 엊저녁 먹고 남은 찬밥에

막 따온 깻잎 찢어 넣고 된장 한 숟갈 넣어 쓱싹쓱

싹 비벼 먹는 그 맛이란! 특별한 찬이 없이도 장만

있으면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신선하고 맛있는

재료도 장을 만나 더 맛있는 반찬이 된다. 어디 그

뿐인가. 체했을 때 된장차를 마시거나 오랜 공복

후 식사를 할 때 된장을 곁들이면 속이 한결 편안해

진다. 자연스레 우리 조상들에게는 집에 장이 없다

는 것이 곡식이 떨어지는 것과 같게 여겨졌으리라.

오늘 우리 밥상의 장 의존도도 조상들 못지않다.

아침이면 흰 죽에 된장 풀어서 먹고, 점심에는 간장

조물조물 무친 시금치나물에 간장과 조청 넣어 조

린 연근, 저녁에는 쑥 된장국으로……. 매 끼니 알

게 모르게 빼놓지 않고 먹고 있는 장부터 자급하기

시작해야겠다 싶었다. 작년 한 해 콩농사도 짓고,

처음으로 메주도 쑤었다. 노린재의 콩밭 습격과 갈

무리의 압박이 컸지만 그래도 순조로웠다 할 수 있

다. 메주 띄우는 과정에 비하면 말이다.

지난 겨우내 온돌방 아랫목을 메주에게 내어주고

함께 지냈다. 잘 말리고 띄워야 나쁜 균이 번식하

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잘 말리려다보니 너무 바짝

말랐나보다. 이불 속에서 2주를 보내고도 별다른

변화가 없기에 물도 뿌려주면서 습도를 맞춰주려

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보통 따뜻한 실내에서 말

리면 절로 뜨기도 한다는데 실내 공기가 차가운 걸

고려했다면 적당한 시점에서 이불로 뒤집어 씌워

주었어야 했다. 늘 그 적당한 시점을 모르는 것이

초짜의 한계다. 게다가 메주 크기가 작아서 속까지

빨리 말랐을 거라는 생각까지 미치자 아차, 싶다.

農생활

항아리에 메주와 소금물을 담고 고추와 대추, 숯을 띄워줬다. 40일 뒤면 우리 밥상을 든든하게 해줄 된장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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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5 37호

음식 맛은 장맛이라는 옛 말처럼 평소 장맛에 기

대어 밥상을 차리는 터라 잘 띄워지지 않은 깔끔한

메주를 보니 막막해졌다. 기댈 언덕이 무너진 느낌

이랄까? 뒤늦게 해줄 일이라도 있을까 싶어 이리저

리 자료를 찾아본다. 메주가 잘 떠야 장맛이 좋다

는 이야기만 들어온다. 안 뜬 메주로 담근 장을 먹

기도 하면서 해마다 부지런히 장 담그는 세월 속에

서 비로소 장맛도 깊어진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덜 뜬 메주로 담근 장은, 맛은 덜한 대신 메주콩에

담긴 생명과 갈무리, 메주 쑤고 장 담그는 전 과정

에 담긴 수고와 정성을 더 잘 만나게 해줄 거다. 그

러면서 맛으로만 밥상을 대하는 오랜 습도 조금씩

나아지겠지? 그렇게 아쉬움을 달래보기도 하고 올

해는 메주도 좀 더 크게 만들고 적기를 놓치지 말아

야지 마음을 다져본다.

춘분 즈음 장 담글 준비를 했다. 아랫목에 누워

있던 메주 두 개를 반으로 갈라보았다. 겉으로는

깔끔해도 속이 제법 뜬 녀석도 있다. 간장독에서

나는 냄새가 진하게 난다. 나머지 메주도 냄새를

맡아보며 떴나, 안 떴나를 가늠해본다. 1/5 정도 떴

나보다. 같은 조건에 있었는데도 제각기 다른 모습

을 보이는 메주들, 정말 살아있긴 한가보다.

올해는 초등학교 6학년 친구들과 장 담그고 가

르는 걸 함께 하기로 했다. 생활기술시간이 있는

수요일에 날이 좋아야 하는데……. 월요일 오전까

지만 해도 한겨울처럼 굵은 눈발이 날려 다음 날로

미뤄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오후부터 날이 개

서, 산에서 흘러오는 물을 받아 소금도 녹여두고 화

요일에는 볕이 좋아 메주도 씻어 햇볕을 쬐어줄 수

있었다. 흔히 얘기하는 길일은 아니지만 볕도 좋

고, 학교 친구들의 생기도 함께 장에 담글 수 있도

록 여러 상황이 조화롭게 맞아 떨어지니 오늘이 바

로 길일이다.

딱딱한 메주를 계속 입에 넣으며 달달하고 맛있

다는 친구들. 왜 커다란 인절미 같다고 표현했는지

알겠단다. 아이들의 평가 속에서 메주가 뜨지 않고

마르기만 했다는 걸 다시 확인한다. 메주를 더 떼

어 먹고 싶지만 된장과 간장으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항아리 속에 메주를 넣는다. 미리 만들어

둔 소금물 아래 가라앉은 고운 흙이 일지 않게 자기

들끼리 서로 주의를 줘가며 조심스레 떠와서는 서

로 서로 거름천을 잡아주며 살살 부어준다. 항아리

가 깨졌나 확인하면서 혼자 물을 채울 때에는 꽤 오

래 걸렸는데 친구들이 한두 바가지씩 부어주니 금

방 찬다. 마지막으로 숯과 고추와 대추를 띄워주

고, 40일 정도 지난 후에 만나기로 하고는 뚜껑을

덮어주었다. 친구들은 저마다 맛있게 되라며 한마

디씩 응원의 인사를 건넨다. 이 글이 신문으로 나

올 때쯤이면 장 가르기를 하고 있겠지. 메주가 또

어떤 변화를 보일지 기대된다.

이한영 | 홍천 마을밥상 지기. 자연과 벗하고 사는 덕분에 생명밥상에 대해 조금씩 눈 떠가는 중입니다.

올해 장은, 맛은 덜한 대신 메주 쑤고 장 담그는 전 과정에 담긴 수고와 정성을 더 잘 만나게 해줄 거다.

항아리가 깨졌나 확인할 정도로 물을 채우는 게 꽤 오래 걸렸는데, 친구들이 열심히 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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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마을학교

선생님도 그랬어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밥상 앞에서 함께 외우는 밥상 기도문이다. 날마다 아이들

과 마주하며 밥을 먹는 점심시간은 중요한 교육이 일어나는 현장이다. 밥상을 대할 때마다 너무 급하게

먹지 않고 떠들거나 산만하지 않게 차분히 앉아서 꼭꼭 씹으면서 남기지 않고 잘 먹자고 가르치고 있다.

밥상머리 교육은 아이들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식습관을 길러주고 일상생활에서 밝고 안정된 기운

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준다.

마을학교에 매일 따끈한 밥을 가져다주는 마을밥상은, 현미밥과 제철에 나오는 유기농 재료들로 요리

를 한다. 가공식품이나 고기 반찬도 나오지만, 나물무침과 생채소, 버섯, 두부, 해조류, 장아찌, 김치 등이

다양하게 나온다. 아이들마다 다르지만, 이런 음식이 익숙하지 않은 경우 밥 먹는 것을 무척 힘들어 한다.

먹기 힘든 반찬만 남겨두고 한참을 앉아 있거나, 처음부터 밥을 아주 조금만 달라고 한다. 밥 먹는 시간을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일이 다반사이다. 원래 밥 먹는 데 오래 걸리는 건가 생각도 해보았지만, 학교에서

새참을 먹을 때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제일 빨리 먹고 더 달라고 하기까지 한다.

학교 선생님으로서 내게 부담스러운 것 중 하나가 밥상 교육이었다. 나부터가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명

확하기에 점심마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음식도 골고루 먹이도록 하는 게 큰 부담이었다. 다른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좋아하는 음식만 먹으면 어떡하니? 싫어하는 음식도 골고루 먹어야지!” 라고 말씀하실 때마

다 가슴이 뜨끔거렸다.

어렸을 때부터 편식이 심했던 나는 야채를 거의 먹지 않았다. 아니, 먹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

다. 아버지가 내 편식을 고치겠다며 상추를 억지로 먹이자 내가 먹고서 바로 토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

하다. 라면을 무척 좋아해서 자주 끓여먹었는데 건더기스프는 항상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밥에 들어가

“이 밥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우리는 온 생명이 깃든 밥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어우러져 살아가는 해, 물, 바람, 흙, 벌레와

땀 흘려 일하는 모든 손길과 하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천천히 정성으로 먹고 서로 살리는 밥의 삶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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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5 37호

서 골라내기 힘든 콩과 같은 음식은 모았다가, 물과 함께 삼켜 먹었다. 볶음밥을 먹을 땐 입 안에서 싫어

하는 재료들을 골라 뱉어낼 수 있는 기술까지 습득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했던 편식은 20대

가 넘어도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다행히 군대에 가서 깻잎과 상추 같은 쌈 정도는 먹을 수 있었다. 그래

도 여전히 먹지 못하는 음식은 많았고, 누군가를 만나서 외식을 하는 일은 내게 불편하고 힘든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2007년 단식과 생채식을 하면서 그 동안 먹지 못했던 음식을 먹

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나의 식습관은 많이 바뀌었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채소들도 먹게

되었고, 어렸을 적부터 길들여진 입맛이 놀랍게 달라졌다. 그래도 여전히 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많이 남

아 있다.

이처럼 편식이 심했던 나는, 싫어하는 음식 앞에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면 동정심이 먼저 생긴다.

아이들에게 싫어하는 걸 꼭 먹여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으로 밥상 교육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여전히 불편했다. 이런 고민은 교사생활 초기에 한동안 계속 되

다가, 5~6개월 뒤에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아이들이 처음에 못 먹던 음식을 점차 아무런 부담 없이 잘 먹

게 되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식습관이 형성되는 이 시기에 밥상 교육이 매우 중요한 것임

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났다. 예상했던 것처럼 몇몇 아이들이 학교 밥상에서 어떤 반찬들을 먹

는 것을 힘들어한다. 지금은 그런 아이들을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익숙하지 않았던 음식들이 친숙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가정에서도 일관되게 밥상 교육을 해주시도록 당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

이들이 아주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신기해하고 있다. 아이들을 보면서 ‘누군가 나에게

이런 밥상 교육을 해주었다면 서른 살까지 그런 고생을 안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에겐 아직

도 부담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아이들도 나와 같은 후회가 남지 않도록 밥상 교육에 마음을 다하고 싶다.

이주원 | 아름다운마을학교 인수터전에서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함께 자라가는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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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크게 앓아본 적이 없어 건강한 편이라 생

각하며 지냈습니다. 그런데 제 몸이 약해진 것 같

다고, 저를 가까이에서 지켜봐온 형이 얘기해주

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아침마

다 오만상을 쓰며 일어나고, 직장에서도 금세 피

로감을 느꼈습니다. 몸 상태가 느껴지니 이대로

머물지 않고, 일상을 경쾌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올해 1월 변화를 위해 단식을 택했습니다. 단식

은 몸에 쌓여 있던 독소를 빼내고 체질 개선을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처음

에는 5일 동안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었습니다. (저는 한 끼만 굶어도 굉장히 힘들어하

는 사람이었습니다.) 막상 시작하니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괜히 쫄았던 거죠. 몸은 오히려 이 시

간을 반기는 것 같았습니다. (단식 기간은 3일 감

식, 5일 단식, 7일 보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산야초와 죽염을 먹는 것과 더불어 아침저녁으로

풍욕을 하고, 출근하기 전 목욕탕에 들러 냉온욕

을 했습니다.

아침잠이 많아 6시 이전에 일어날 수 있다는 생

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5시에 눈이 번쩍 떠지

고 상쾌한 기운으로 책을 읽었습니다. 얼굴이 오

만상으로 찌푸려지지 않았고요, 직장에서도 오히

려 더 생기를 느꼈습니다. 낯선 경험이었습니다.

‘내 몸이 맞나?’ 이런 생각도 들었죠. 일상을 리듬

감 있게 지내는 느낌이 들어 즐거웠습니다. 식구

들도, 동료들도 전보다 밝아 보인다고 얘기해줬습

니다. 이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보식까지 마친 뒤 ‘하루 한 끼 생채식’을 시작했

습니다. ‘맛이 있을까?’ 하는 물음이 들긴 했지만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마을에서 사

는 형이 45일 동안 매일 모든 식사를 생채식으로

아주 맛있게 먹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미 꾸준히 건강한 식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

게 다양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대부

분 점심에 생채식을 하고 아침은 집에서, 저녁은

마을밥상에서 제철 재료로 만든 정성이 듬뿍 담긴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전 직장에서 먹을 생채식

도시락을 쌌습니다. 그런데 겨울에 채소를 먹으

려니 먹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이었습니다. 아침마

다 뿌리채소, 잎채소, 열매채소, 해조류, 두부 등

을 골고루 씻고, 먹기 좋게 자르는 일이 번거롭기

도 했습니다. 뿌리채소를 꼭꼭 씹을 때는 턱이 아

프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생채식 도시락은 맛있

었습니다. 미리미리 장을 봐두고 재료를 다듬으

며 집에서 정갈하게 살림을 하는 재미도 들었습니

다. 그리고 평소 직장 근처에서 점심을 사먹고 나

면 속이 불편한 채로 오후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

는데, 생채식을 하면서 편안하게 오후시간에 일할

수 있었습니다. 보기에도 좋으니, 군침을 흘리는

동료들도 생겼죠.

나 하나 건강하기 위한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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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채식이 점점 입에 맞아갔습니다. 석달 동안 했던 ‘하루 한 끼

생채식’을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음식을 대하던 태도를 반성하게

됐습니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으면 오후에 일하기 힘들다는 이

유로 먹고 싶은 대로 먹었습니다. 양상추, 당근, 버섯에게 그리고

밭에서 채소를 기르는 손길에 고마운 마음 없이 그저 내 몸만을

위해 먹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몸이 건강해지려 돈

을 써대는 웰빙붐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밥상 앞에 올라오는 밥 한 끼도 이제는 전과 다르게 느

껴집니다. 내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건 자신을 내어준 채소들과

농부들의 수고 때문입니다. 그러고보면 도시에 살고 있지만, 우

리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건 농촌입니다. 도시에 살면서도 생

명력 넘치게 살려면 농촌과 교류할 있는 관계망을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만 생각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인 농촌의 현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건강을 위해 시작했던 단식과 생채식이, 더 잘 살기 위한 삶으

로의 고민으로 이끌어주는 것을 보며 이 기간의 경험이 제게 복

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회적 체험이 되지 않고, 내 정황에서 꾸

준히 이어나갈 수 있는 실천을 모색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밥을 대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나와 연결된, 나

를 살리는 다른 생명을 기억하며 함께 먹고 누릴 수 있는 밥상을

우리 일상에서 지켜가고 싶습니다.

유재홍 | 교회개혁을 지향하는 언론사에서 영업을 맡아 일하고 있는 2년차 직장인. 인수마을에서 다른 이들과 어우러지는 삶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밥상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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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이루고 살면 같이 쓰고 나눠 쓰는 것들이 늘어난다. 책이나 아이들 장난감 따위의 부담이 없는

것들도 있고, 자동차와 같이 쉽게 빌려 쓰거나 빌려주기 어려운 물건들도 있다. 특히 자동차 빌려 쓰기는

아름다운마을에서 흔하지만 다른 곳에서 경험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카 셰어링(Car-sharing; 자동차 공동 사용제)

이라고 해서 여러 사람이 자동차를 공동 소유하

는 개념의 운동이 있다. 우리나라서도 이러한 실

험을 해본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속하기 쉽

지 않다고들 한다. 개인이 가진 재산 가운데 가

장 비싼 축에 들고, 교통사고 따위의 돌발 상황

이 되면 책임 소재 등 복잡하게 따져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차 공유는 좋은 생각이지만 실

천은 어려운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마을을 이루

어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이런저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뚫고 ‘쉽게’ 차를 공유하고 있다. 누구네 차를 빌려

쓰는 일이 자연스럽고, 우리가 차를 쓰지 않는 날 빌려 쓰려는 사람들 연락을 받는 것도 흔하다. 용도에

따라 승합차와 승용차를 바꿔 쓰기도 한다.

차를 ‘소유’한 지연과 원 님, 빌려 쓰는 준표 님을 만나 ‘차 공유’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연과 원 님

은 자신의 차를 마을사람들이 필요할 때마다 쓰고 있는 것에 흡족하다고 말한다. 내가 쓰지 않으면 어차

피 쉬고 있을 차인데, 다른 이웃들이 쓰는 게 유익하다고 입을 모았다. 법적으로는 한 개인의 소유이지만,

우리 모두의 것이고 생각한다. 자신은 모두가 함께 쓰기 위해 평소 잘 관리하는 사람으로 여긴다고 했다.

원 님은 홀로 썼을 때는 범퍼 등에 흠집이 생기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함께 쓰면서는 외관보다는

안전과 기능에 더 집중한다고 했다. 소모품 등은 미루지 않고 제때 갈고, 아기들도 타기 때문에 실내도 청

결하게 관리한다. 여러 사람이 타다보니 이곳저곳에 흠집이 생길 일이 많은데,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다

가는 정작 다른 관리를 놓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차마다 브레이크나 가속 페달이 차이가 나고, 핸드브

레이크 작동법도 다르다보니 지연 님은 간단한 사용법을 적어놓은 수첩을 차에 둔다. 지연 님 차를 빌리

는 이웃들도 함께 차계부를 작성하고 차에 이상이 느껴질 때는 그냥 돌려주지 않고 점검을 받기도 한다

차를 같이 쓰면 여러 대가 필요하지 않다. 같이 쓰니 많은 소비가 줄어든다.

空과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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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5 37호

그럼 차를 소유, 혹은 관리하는 사람만 피곤한 일이 아닐까. 빌려 쓸 때 만일을 대비해 꼼꼼하게 계약 같

은 걸 해두지 않으면 우려했던 일이 생겨 의가 상하지 않을까 걱정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공유하면 그런

마음 상하는 일은 없었다. 물론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날 때도 있지만, 미리 그런 일을 상정해서 까다로운

조건을 달지는 않는다. 큰 건은 보험으로 처리하고, 가벼운 일들도 그때 상황에 맞게 판단해서 소통하면

된다는 정도의 원칙만 가지고 있다.

원칙보다 서로의 차를 다루는 마음 씀씀이에서 감사하기도 하고, 더 성숙해야 함을 배우기도 한다고 했

다. 빌려 쓰는 이들이 차 상태를 파악해 수리해야 할 것들을 미리 알려주거나 직접 고쳐오기도 하고, 세차

를 해놓을 때도 있다. 지연 님은 차 서랍에서 양갱 같은 간단한 선물을 발견했을 때, 차 수리나 소모품 교

환할 때 쓰라고 돈을 보태줄 때 감격했다고 했다. ‘이럴 때 나 혼자만 관리하는 차가 아니구나’ 싶다는 것

이다. 그렇지만 차를 쓰고 주유하는 걸 깜빡하거나 흔적을 남기는 경우는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라고 했

다.

준표 님은 세 살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고 해서 꼭 차가 있어야 한다고 생

각하지 않는다. 마을 이웃들의 차를 빌려 쓸 수 있

기에 내 차를 소유하려는 욕심을 접을 수 있었다

고 감사했다. 차를 빌려 쓰는 일이 힘들었다면, 내

가정만 생각하면 무리를 해서라도 차를 샀을 것이

다. 하지만 차를 함께 써서 불필요한 소비를 줄일

수 있었다고 했다.

소비를 줄인다는 것은 빌려 쓰는 사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함께 쓰기 때문에 모두가 각자 차를

한 대씩 소유하고 있을 필요가 없으니, 마을 전체로 볼 때 소비가 준다. 그러면 차를 가진 사람만 손해를

보는 것 아니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마을 사람들의 간단한 대답. “그럼 차를 안 가지면 되지요.” 자기 정

황에 맞게 차가 필요해서 차를 산 것이고, 이미 샀으니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을 친구들과 함께 쓰

는 것뿐이다. 오히려 원, 지연 님은 차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어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주재일 | 교회개혁을 지향하는 기독교언론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머지 않아 목수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차를 함께 쓰는 건 마을 밖에서는 상상으로만 가능하지만 마을에서 함께 사니 자연

스러운 일상이다. 차 나눠 쓰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모인 원, 지연, 준표(외쪽부터)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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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 하루 일과를 소개하면, 아침 6시 반쯤 일어나서 가볍게 몸을 깨우는 운동을 합니다. 5~10분 함께

중보기도를 하고 간소하게 아침밥상을 나눕니다. 그리고 각자 일터로 나갔다가 밤 9시 전에 들어와 걸레

질하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피정하러 온 사람들은 평소처럼 일하고 사람들 만나고, 삶과 분리되지 않

는 수도원이지요. 그러면서 지내온 생활을 돌아보며 정리해야 할 부분을 찾고 정리합니다. 피정의 여운

으로 일상에서도 수도하듯 살아갈 수 있게 돼요.

윤하 보통 ‘피정’ 하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는 수도원을 떠올려요.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을수도원

은 삶에 균형을 잡아줍니다. 다음 사람을 생각해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물건을 제자리에 두고, 신발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바로바로 하는데, 잘 지키다가 어느 순간 자기 관성대로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과제가 무엇인지 직면하기도 하지요.

지영 수도원지기를 하면서 얻는 유익이 참 큽니다. 저는 대학

생 선교단체에서도 공동생활을 했는데요. ‘야작’을 많이 하던 미

대생이라 동이 트면 자는 일이 많았는데, 함께 살면서도 규율 없

이 지내며 저의 생활패턴을 바꾸지 못했지요. 시간이 지나 몸이

아프고 힘있게 하루를 지내질 못하면서 규칙적인 생활에 대한 필

요를 느끼게 됐어요. 하지만 십여년 간 몸에 베인 습관을 바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저의 정황을 잘 알고 있는 지체들의 지

지를 받으며 수도원지기를 시작했지요. 사람은 금방 바뀌지 않는

수도원에서 일상의 변화를 경험한 지영 님

소통과 대안

마을수도원은 삶과 분리되지 않으면서 일상을 닦는 장이다.

서울 북한산 아랫마을 인수동에는 형제수도원과 자매수도원

두 곳의 마을수도원이 있다. 올 1월부터 형제수도원 지기로

지내고 있는 조윤하 님(38)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

는 자신이 밤에 숙면을 할 수 있는 비결이 수도원의 침묵 수

련 때문이라고 했다. 자매수도원 지기 황지영 님(30)은, 오랫

동안 밤샘 작업이 습관이 된 자신이 요즘에는 여유롭게 아침

운동을 하며 봄기운을 한껏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

을 만나 마을수도원에서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형제수도원 한 켠에 널어놓은 걸레, 그리고 빗자루 두 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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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5 37호

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기운을 모으면 이렇게 바뀔 수도 있구나

깨달았어요. 수도원에서의 삶은 제 인생의 또 다른 전환점이 되

었어요.

윤하 저도 예전에는 밤 10시면 말똥말똥한 초저녁이었는데,

마을수도원에서는 10시부터 소등하고 자율적으로 취침합니다.

잠자는 방과 떨어진 공간에서 불 켜놓고 책을 볼 수 있지만 인터

넷을 사용하지 않고 휴대폰도 꺼놓습니다. 12시 안에는 전부 소

등하는데, 보통 10시 반이면 잠듭니다. 그렇게 자서 새벽동이 트

는 걸 볼 기회가 많아졌어요.

지영 아침에 일어나는 사람이 천지의 기운에 조화를 이루며 사는 거라면, 밤을 사는 사람은 전적으로

전기불에 의존하는 것이지요. 전기불이 없으면 저녁형 인간이 나올 수 없었겠죠. 한때 아침형 인간, 저녁

형 인간이란 말이 유행했는데요, 아침형 인간, 즉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라 해도 도시에서는 늘 분주

하고 정신없이 달리게 됩니다. 아침을 여는 시간, 저녁을 마무리하는 시간, 참된 쉼을 누리지 못하고 있

지요. 마을수도원에 살면서 그렇게 산만하던 삶이 단순해지고 밤에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도 줄어들었어요.

윤하 밤에 잘 자고, 잘 죽어야, 또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겠죠. 밤늦도록 엔진을 지펴놓고서 자려고

하니 잡생각이나 망상 때문에 선잠이 드는 거예요. 수도원에서 자는 사람들이 숙면할 수 있는 이유는, 주

변이 고요하고 깜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침묵 때문입니다. 형제수도원은 밤 10시부터 소침묵을 시작

합니다. 자정부터 오전 7시까지는 대침묵입니다. 침묵 시간이 있기에 깊이 잠들 수 있는 겁니다.

지영 수도원 침묵 시간에는 말뿐 아니라 물소리나 다른 소리들도 들리지 않게 합니다. 침묵 수련을 하

면서, 평소 침묵을 어려워하고 쉽고 가볍게 말하던 습관이 달라진 것 같아요. 수도원에서도 타인의 시선

이 느껴지면 잘 하다가도 홀로 있을 때는 풀어지는 때가 있어요. 규율이 타율적으로 교조화되면 그렇게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하 수도원에서 밤 9시 반부터 1, 2층 바닥을 전부 걸레질하는 데 30분 정도 걸려서 제대로 ‘노동’이

됩니다. 스팀청소기를 쓰지 않고 걸레질을 하면 구석구석 먼지가 잘 보이고 잘 닦여요. 그리고 손빨래로

걸레에 낀 때를 빼지요. 날마다 단순하고 똑같은 사이클이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어느 순간 매일 하는 걸

레질이 지루하고 하찮게 여겨지고 내가 왜 이걸 해야 하지? 그럴 때가 있어요. 남들이 볼 때나 보지 않을

때나 일관성있게 규율을 지키는 것, 어떤 의미부여 없이도 내 몸이 그냥 그렇게 하는 게 몸에 배어가는 게

수련이라고 생각해요.

최소란 |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사사건건 따라다니며 글을 쓰고, 글을 매개로 아름다운 생명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침묵 수련 덕에 매일 숙면을 하는 윤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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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보기

제가 태어난 곳이 만주 명동촌이라는 공동체입니다. 함경북도에 살던 세 유교 선비가 때가 이르러 만주

로 가서 젊은이들을 길러내 앞날을 도모하자고 해서 명동촌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대개 실학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 외조부는 동학까지 공부한 학자이면서 농사를 지으며 가르쳤습니다. 정부에 글을

올렸더니, 이런 학자가 다 있냐면서 만주와 함경북도의 장학사로 명하고 그 일대 서당에서 신학문을 가

르치라며 연필과 종이를 보내주었습니다. 선생이 필요해서 서울YMCA에서 교육받은 사람을 불렀는데,

그 사람이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게 하면 명동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와서 학교를 멋지

게 발전시켰습니다.

1년 뒤에 보따리를 싸면서 아이들만 예수를 믿어서는 조선이 새로워지지 않는다, 부모들도 예수를 믿어

야 한다, 그러면 계속 남아 있겠다고 했습니다. 당황한 유교 선비들이 사흘 동안 모여서 협의하고 협의하

더니 상투를 자르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명동이 기독교와 애국심이 하나로 된 학교가 된 것

입니다. 거기에 김약연 목사가 있었는데, 이분이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학교에 가나, 교회 가나, 집에 오

나 귀에 못이 박이게 들은 소리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죽지 않는 삶은 헛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

이 나만을 위한 삶이라고 생각도 못했습니다. 제가 열두 살적에 12월 24일 눈 내리는 밤길을 제가 까불면

서 앞장서서 열겠다고 했더니, 기특하게 여기고 “너 커서 뭐할래?” 물어봤습니다. 저는 김약연 목사가 떠

올라서 목사가 될 거라고 했더니, 다들 목사가 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김약연 목사가 내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생명평화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문동환 목사님

일제시대 한민족 기독교공동체였던 만주땅 명동촌에서 자라

나 이후 독재정권 시절 한신대를 중심으로 민주화운동을 펼

치며 형 문익환 목사님과 평생 동지로 살아온 문동환(92세)

목사님이 공동체를 찾으셨다. 2012년 5월 17일 서울 인수

동 마을찻집에서 아름다운마을공동체와 첫 만남을 가진 문

동환 목사님은, 이번에는 4월 25일 기독청년아카데미 대학

로 강의실에서 청년들과 만나셨다. ‘공동체’ 이야기가 나오

면 마음이 설렌다며 ‘명동촌’ 이야기를 시작으로 살아온 삶

의 역사 속에서 당신이 만난 하나님을 증언하셨다.

“나는 지금도 찾고 있습니다” 92세 청년 문동환 목사님의 사자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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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관심은 언제나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였습니다. 한신대학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주체적으로 참여

해라, 캠퍼스가 커뮤니티가 되어야 한다고 얘기했습니다. 한신대학이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니까 박정희

정권이 저를 학교에서 추방했습니다. 교회에서도 공동체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꿀단지는 집에 있

고 직장에 있으면서 몸만 교회에 왔다갔다 하면 교회가 공동체가 될 수 없다, 공동체가 없는 교회는 그리

스도의 몸이 아니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랬더니 교회 청년 6명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공동체를 만들자

는 겁니다. 쉽지 않을 거라고 했더니, 그럼 설교는 왜 했냐길래, 그 설교에 붙잡혀서 그 친구들과 공부하

면서 집을 짓고 공동체를 시작했습니다. 몇 번 위기를 극복하고 마음이 하나가 되어서 함께 살았습니다.

노래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저녁 먹고 피아노 치면서 노래하면 천정이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주변

에 있는 과부와 고아들을 모아서 장구회를 만들고 추석이나 단오마다 축제를 벌였습니다. 신이 났지요.

그러다가 깨달은 것이 산업문화에 대안이 되는 참된 공동체 문화를 만들려면 우리 젖줄을 다 자본주의

에 대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농촌에 가서 농사지으면서 신앙공동체를 만들자고 결정하

고 2월 28일에 출대식을 했습니다. 그리고 명동성당에서 3월 1일 박정희 정권을 반대하는 구국성명서가

발표됐습니다. 그 예배에서 제가 설교를 하고 긴급조치 위반으로 체포되었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농사

지으러 저 없이 시골로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결정적으로 실수를 한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모임 가

운데 교육 전공한 사람은 많지만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교육기

관을 만들어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초청한 사람과 우리 삶의 방식이 맞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노래하고 즐겁게 지내는데, 그 사람은 경건주의자였습니다. 결국 정착에 실패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저는 자본주의 산업문화에 희망이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공동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미

국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세상을 조종하여 멸망의 구렁으로 끌고 가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당시 유대나라가 가는 모습을 보고 소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새것을 만들었습니다. 예수

님은 비참한 갈릴리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아파했습니다. 이 한국사회를 보면서 애통하지 않으면 안 됩

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생명평화를 이루는 세상에 살 수 있을까 반문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첫 외침은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악을 ‘각(覺)’하면서 단(斷)’하고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신대로 사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산업문화에 대항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점점 더

힘들어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갈수록 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집단적인 각(覺)입니다.

그 사람들이 생명공동체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고 껴안고 섬기면서 생명의 기쁨이 차 넘치는 공

동체를 이룩할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죽을 때까지 찾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이

구십 넘은 사람이 찾으면 얼마나 찾겠습니까? 여러분이 찾아야 합니다.

김준표 | 책, 사람, 공동체를 꿈꾸며 사는 출판 편집자

목사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 40명 가량의 청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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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공동체

떼제 기도모임에 다녀왔다. ‘바쁜 삶을 멈추고 자신과 주위를 돌아보며 쉼과 힘을 얻는 시간을 함께 가

져요.’ 모임 초대글을 읽었을 때 그 목소리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신한열 수사님은 투명하고 발간빛의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부드럽지만 설렘이 가득 담긴 악수로 서로의 체온을 나눴다. 금세 촉촉한 온

정이 돌았다. 아늑하게 준비된 공간 앞쪽에는 초와 성화, 꽃이 장식되어 있었다. 밝지 않은 조명, 바닥에

깔린 담요 안에서 침묵으로 기도시간을 준비했다.

수사님은 모임 시작 즈음 벽에 걸린 성화 한 점을 가리키며 설명하셨다. 성화는 그 너머 영혼의 세계, 하

나님나라의 실재를 볼 수 있도록 돕는 창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하셨다. 다른 그림도 있었다. 친밀히 어

깨동무를 하고 계신 예수님의 그림,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께서 우리를 그들의 밥상 한 자리로 초대하고

계신 그림, 이런 성화들이 하나님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개신교에서 보던 성화는 대부분 예수

님께서 양을 치는 목자의 모습을 하고 있거나 기도하는 옆모습인데, 다양한 그림체의 성화를 보니 새로웠

다. 성화는 ‘이콘’이라는 말로 불리는데, 이는 보통 ‘그리스, 러시아 동방교회의 성화들을 지칭하는 말’이

라 한다. 우리가 본 이콘은 러시아와 이집트의 작가들이 그린 아주 오래된 그림이었다. 성화를 소중히 아

끼던 신앙의 선배들을 상상하며 보니 잔잔한 감동이 눈에 어른거렸다.

아침기도를 함께 했다. 떼제의 찬양을 배우고, 이사야 41장을 묵상했다. 찬양과 기도는 간결한 문장과

형식을 가지고 있다. 찬양은 여덟 마디 정도로 이루어져 있는데, 몇 번이고 반복하며 불렀다. 소박한 기

타 반주와 다양한 목소리가 은은한 조화를 이루며 공간을 채웠다. 나의 마음이 사람들에게 사뿐히 실리

는 것 같았다. 따라하다보니 금세 끝났다.

소그룹으로 모여 대화를 나누었다. 수사님이 잠시 묵상할 거리를 알려주셨다. 지금 우리의 마음을 차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의 목표와 꿈은 무엇일까. 어떤 결정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기준은

무엇인지 돌아보라 하셨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인의 삶의 기초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부르심인데,

그 초대와 사랑이 와 닿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저마다 떼제공동체에 대한 경험과 기억이 달랐다.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하나님을 느꼈던 시

간,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맛본 특별한 관심과 돌봄, 모두 그 따듯한 느낌을 간직한 채 전국에서 모

인 이들이었다. 언어를 넘어 말의 기교를 넘어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라고 했다. 외국의 떼제공동체

나 기도모임에서도 언어가 다른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함께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 잘 알아듣지 못할 때

에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경험하는구나, 충분한 위로와 사랑의 응답은 말로 시작되는 것

이 아니구나 알 수 있었다.

여러 이들이 함께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

떼제 기도모임에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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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05 37호

점심기도 뒤에 그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아름다운마을공동체와 예수살이공동체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

졌다. 떼제 순례에서 잠시 맛본 그 경험을 이미 늘 일상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고백이 전해졌다. 모양은 다

르지만 서로를 지키고 함께 살며 애쓰는 이들의 좋은 향기가 났다. 이후 다과를 나눌 때 여러 사람들이 구

체적인 질문을 하며 관심을 보였다.

떼제는 생활공동체가 아니다. 잠시 쉬며 목마름을 풀고 가는 우물과 같다. 결코 떼제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떼제는 많은 젊은이들이 기도와 침묵 가운데 현존하는 신을 마주하고 응답하며 자신의 장소로

돌아가 다른 이들을 섬기고 돕기를 원한다. 특별히 세상의 온갖 파도 속에 압박된 젊은이들에게 넘치는

신뢰와 희망의 기운을 불어넣어준다.

떼제는 초교파수도회다. 동방정교회, 로마가톨릭, 개신교,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함께 모여 예배하고 기도한다. 수사님은 천주교와 개신교도, 남과 북도, 서로 찾아가고 만나고 해야 한다

고 말씀하셨다. 한국전쟁 정전 60주년인 올해, 수사님은 휴전선에서 평화의 순례를 할 거라고 말씀하셨

다. 또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대전 등 여러 지역을 다니며 기도모임도 열 계

획이라고 하셨다.

이날 기도모임은 떼제를 추억하려 만나는 날이 결코 아니었다. 자기 자리에서 평화의 걸음을 걷던 자

들이 함께 모여 마음을 나누고 신뢰를 회복하며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떼제의 경험으로 내 주변에서 기

도와 연대를 할 수 있도록 깊은 격려와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교회에서, 모임에

서, 떼제의 노래와 함께하는 기도모임을 가지며 평화의 길을 살아가고 있다. 함께, 때로는 홀로 걸으며.

서아름 | 청소년과 함께 놀이와 일의 경계를 넘나들고 여전한 사랑을 주고받으며 쑥쑥 크는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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