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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를 일구는 농도상생마을공동체 2014 05 제47호

아름다운마을 47호(2014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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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아름다운마을 47호(2014 05)

생명

평화

일구

농도

상생

마을

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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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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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배움의 길을 펼쳐가는 생기 가득한 얼굴들을 <아름다운 마을> 47호에 담았습니다. 3

월 1일 문을 연 삼일학림, 그 출발을 함께한 학생들이 들려주는 첫 마음이 참 씩씩하게 읽혀집

니다. 저도 언젠가 청소년들과 나란히 학림에 입학하여 제대로 공부를 해볼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도 스며듭니다. ‘늘 배우고, 깨달은 바대로 살아가려는 삶’, 그런 배움과 삶의 가치가 생명

을 온전히 생명되게 하리라 그리 믿습니다.

또 한번 이 땅에서 우리 상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건을 직면하게 되었는데, 지금 안타까워

하는 만큼 모두들 그냥 지나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뉘우치고 용서를 비는 마음이 헛되지 않으

려면, 어떤 근본적인 가치질서의 전환이 있어야 하는지 묻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래야 삶

과 죽음 앞에 무책임해지지 않을 수 있겠지요. 새싹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힘을 기다리다가 기

다리다가 또 기다리다가 떨림으로 마주하는 계절입니다.

<아름다운마을> 펴낸 곳 아름다운마을공동체 기자 최소란 김준표 김승권 원유미 디자인 서아름 김준표 오승화 고경환 문의 02-999-9294

누리편지 [email protected] 누리집 www.maeullo.net 후원 국민은행 487101-01-369173 예금주 생명평화연대(마을신문)

02 아름다운마을이 들려주는 이야기 ┃ 최소란

배움의 숲 특집

03 새로운 문명을 여는 배움터, 삼일학림(三一學林)┃ 박민수

06 삼일학림의 배움주체들을 소개합니다

12 춤추듯 공부하라 ┃ 김연, 황지영, 김승권

14 그리고 그날 우리 마음엔 ┃ 황지영

15 農생활 홍천마을 농생활 날적이 ┃ 장윤희, 박민선, 이한영, 박민선, 오승화

18 밥상머리 향긋한 흙뿌리, 도라지 껍질 까기 ┃ 조한아

20 소통과 대안 생명을 향한 마음가짐을 배우다 ┃ 정재우

22 하루를 천년같이 ┃ 해민, 박지혜

23 고마워요 터전에서 받은 귀한 선물

24 지금이순간 딸기잼 ┃ 고경환

글 싣는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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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숲

2014년 3월 1일, 많은 이들이 함께 준비해온 삼일학림(三一學林)이 문을 열었다. 삼일학림은 고등·대

학과정을 통합한 배움터이다. 농사, 건축 생활기술, 철학과 수신을 필수과목으로 두고, 학생들의 다양한

관심에 따라 주체적으로 공부하는 배움터이다.

학림은 ‘배움의 숲’이란 뜻이다. 삼일학림은 학생과 교사, 부모와 자녀가 함께 어우러져 공부하는 곳이

다. 이 뜻에 어울리게 청소년 여덟 명과 성인 열두 명이 첫해에 입학했다. 올해 입학한 청소년 학생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공부에 대한 열정이 가득 찬 학생들이다. 학림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 학생들이 학림이

라는 배움의 과정을 상상할 수 있는 직접적인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학부모로 참여

한 이, 생동중학교와 삼일학림에서 교사로 함께하고 있는 이들, 농부, 기자, 시민활동가, 제약회사 연구

원, 공무원, 의사 등 성인들도 농생활과 그에 바탕을 둔 삶의 기예와 철학을 배우기 위해 입학했다. 자기

전문분야가 있는 성인들이지만, 그 지식과 우리 일상을 연결하고, 문명의 전환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

더 잘 사는’ 삶을 추동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입학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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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을 토대로 삶의 모든 영역 재구성

농생활(農生活)은 단순히 농촌이나 농민만이 살아가는 삶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農(생명살림

과 순환)을 토대로 교육, 문화, 의료, 복지 등 삶의 모든 영역을 근원적으로 재구성하는 삶을 말한

다. 자신의 먹을거리와 살 집을 스스로 해결하고 자기 몸을 스스로 돌볼 수 있도록 수련하고 공부한

다. 자신의 삶을 규모 있게 계획하고 주체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내적 자기규율을 증진시키는 능력’

을 키워간다.

삼일학림의 한해살이와 하루살이 역시 이러한 농생활을 토대로 짜여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학

기로 구성되며, 농사와 집짓기를 할 수 있는 절기에 맞게 각 학기가 진행되고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자신이 배울 과목을 선택해서 수업을 듣고 학점을 받는다. 하루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간을 매일 설

정하고, 학생들 스스로가 자기 시간을 계획해서 수업을 듣거나 학생연구실에서 공부한다.

청소년 학생들의 경우, 처음에는 약간 낯설었던 이런 흐

름이 이제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규모있게 자기 생활을

즐겁게 해가고 있다. 수업을 듣지 않을 때는 각자 학생

연구실에 가서 주도적으로 자기학습을 한다. 성인 학생

들 중 직장을 다닐 경우, 자기 생활의 흐름에 맞게 수강

할 과목을 신청하고 해당하는 날에 와서 수업을 듣고 공

부한다. 특히 학림에서는 주말에 수업이 많다. ‘공부하고

일하는 평일’과 ‘쉬는 주말’로 구분하지 않고, 학생들 모

두 자신이 계획한 공부 흐름에 맞게 하루와 일주일의 흐

름을 잡아간다.

해석하고 연관시키고 소통하는 능력

이번 학기에는 필수과목으로 농생활, 생태건축, 철학수

신, 생활기술, 경전공부가 개설되었고(그 외 필수과목으

로 양생, 역사, 예술이 있다), 미술, 그래픽디자인, 일반사

회, 고등수학, 기초수학, 심화수학, 영어회화, 시사영어,

음악, 사진예술, 문학, 체육이 선택과목*))으로 있다. 이

런 개설과목 외에도 학생들은 ‘개인 자율과목’을 스스로

개설해 학업계획서를 제출하고 설정한 기간 동안 공부하

면 학점을 부여받을 수 있다. 이번 학기에 학생들이 스스

로 설정한 공부 과목으로, 동의보감 외형편, 기초침구법,

민요, 동·서양 미술사, 식물생리학, 태권도 등이 있다.

*) 선택과목은 문학, 수학, 과학, 사회, 외국어, 특성화과목, 수능시험과정이 있다.

배움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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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의 배움은 수많은 분과

학문들로 분화되어 있고 세부

분야의 자기 전문성만을 강조

하기에 우리 사회와 문명 전체

를 돌아볼 수 있는 넓고 깊은

지혜를 얻기가 힘들다. 학림에

서는 농생활을 토대로 분과학

문들을 넘나들고, 문명을 성찰

하고 전환할 수 있는 공부를 해간다. 이를 통해 해석하는 능력, 연관시키는 능력, 소통하는 능력, 창

조하는 능력을 길러간다.

또한 소통은 다른 생명과 친구, 자신의 몸과 대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아름다운 자연 속

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지낸다. 풀, 벌레, 나무, 우리가 기르는 농작물과 소통하고, 함께 자고 공부

하고 생활하는 친구와 소통하는 것이다. 공동생활을 하며 서로가 서로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함께

살아가는 힘을 배우고 그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요즘은 봄철이라 밭 갈고 씨를 뿌리고,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물도 캐고, 차를 만들 잎을 따기도

한다. 이렇게 얻은 작물과 나물로, 학생들은 한 달에 한 번씩 공동밥상을 직접 준비한다. 채집과 농

사짓는 것에서 시작하여 밥상을 차리는 것까지 손수 해본다. 또한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여러 현상

들과 소통하며, 단순히 의료자본에 자신의 몸을 맡기기보다, 자기 몸을 양생하는 능력, 삶의 터전

속에 있는 생명체들과 관계 맺는 능력을 키워간다.

몸으로 들인 공부, 다시 가르침으로

학림 학생들은 공부하는 동안 최소 1년 이상 학림을 떠나 자율적으로 자신이 정한 곳에서 공부하

는 독립학습 기간을 가진다. 이후 학림에서 어떤 공부를 어떻게 더 지속할 수 있는지 주체적으로

찾고 자기 진로를 선택해가는 과정이다. 수련하며 몸으로 들인 공부를 바탕으로 가르칠 때 더 힘

있는 가르침과 배움이 상호간에 일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삼일학림에서 삼일(三一)은 인간이 온생명을 자각하는 가장 원형적인 상징을 뜻한다. 길(道)과

진리(眞理)와 생명(生命)에 대한 경이로움과 경외심으로 기도하는 삶, 하늘·땅·사람(天地人)의

조화 속에서 온생명과 더불어 사는 삶,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 상호간에 평화를 일구며 살겠다는 뜻

을 담고 있다. 이름이 품고 있는 뜻에 맞게, 우리 시대 대안적인 삶과 문명을 일구며, 농촌과 도시가

상생하는 마을공동체를 일구는 주체를 양성하는 배움터가 되길 기도한다.

박민수 | 강원도 홍천 생동중학교와 삼일학림에서 교사로 지냅니다. 어떻게 하면 더 학생들과 잘 소통하고 학생들의 고민과 마음을 잘 이해해주며, 그 가운데 서로 성숙할 수 있을까가

요즘 가장 큰 생각거리입니다. 또 좋은 시기, 학림 학생으로 입학할 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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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상원입니다. 점점 바빠지는 농사일에,

읽고 싶은 책들도 읽고, 하고 싶은 공부를 잘 하면서도 너

무 지치지 않게 생활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동중학

교 때에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우리 생활방식에 담긴

뜻을 이제부터 잘 찾아가고 싶습니다. 학림에서 재밌게 공

부하는 것은 수학이고, 마음을 두고 의미있게 공부하는 것

은 생활기술입니다.

학림에서 친구들, 선생님, 이모삼촌들과 함께 새로운 배움의 길을 걷고 있습니

다. 날마다 활기찬 웃음소리를 친구들과 나누고, 때로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성숙해가고 있습니다. 가끔 마음이 답답하거나 지칠 때, 밥상에서 나누는 대

화들과 쑥국 한 모금으로 다시 힘을 받곤 합니다. 요즘은 밭에서 여리지만 힘 있는

새싹들을 보며 그 생명력을 받아 기운찬 일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림에서는

좀 더 주체적으로 공부해가고 있습니다. 재밌게 공부하는 것은 문학이고 마음을

두고 의미있게 공부하는 것은 영어입니다. 또 공동체에서 만들어가는 가치에 대

해, 왜 그렇게 해가고 있는지 질문하고 이전의 배움 속에서, 주변 이모삼촌, 선생님

들의 삶 속에서 찾아가려고 합니다. - 주은

반갑습니다. 학림 주원입니다. 주원은 두루 주(周), 근원 원(原)을 씁니

다. 두루 근본이 되라는 뜻입니다. 학림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하고도 반

쯤 지났습니다. 몸과 마음을 잘 닦아가며 학림생활에 적응하고 있습니

다. 배움에 있어서 제 자신에 부끄럽지 않게 두루 근원이 될 수 있도록 열

심히 수련하겠습니다. 재밌게 공부하는 것은 철학수신이고, 마음을 두고

의미있게 공부하는 것도 철학수신입니다.

안녕하세요? 학림에서 공부하는 태주입니다. 학림 입학을 준비하며 학림이 운영되는 방식

을 보며 잘 할 수 있을지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들과 재미있게 생활하면서 학림이라는 배

움의 길을 선택한 것이 저에게 도움 되는 선택이었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공

부를 하며 지금처럼 즐거웠던 적이 없습니다. 재밌게 공부하는 것은 철학수신이고, 마음을 두

고 의미있게 공부하는 것은 영어와 수학입니다. 가끔 친구들과 자전거도 타고 등산도 하며 기

분전환을 할 수 있어 더 즐겁습니다. 앞으로의 생활이 기대도 되고, 더 의미 있는 학림 생활을

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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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림 입학을 준비하면서 선생님들께 학림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는지 수도 없

이 들었지만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인

지, 그리고 학림에서 제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입학하고 지내

면서 의문이나 저의 생각을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조금씩 학림 생활에 익

숙해지고 있습니다. 생동중학교에서 친숙하게 만났던 친구들, 선생님, 이모삼촌

들과 익숙한 홍천터전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학림’이라는 다른 배움의 장에서

새롭게 시작하니, 입학할 때 떨리는 마음이 가득했고 새로운 다짐도 했습니다. 앞

으로 입학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고 공부하고 싶습니다. 재밌게 공부하는 것은 미술이고, 마음을 두고 의미있게 공부하

는 것은 수학입니다. - 예진

배움의 숲

홍천에서 친구, 동생, 선생님들과 함께 어울리며 생활할 수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

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저희를 너무 어른스럽게 대해주셔서 솔직히 조금은 슬픕니

다. 앞에 있어야 할 선생님이 바로 내 옆자리에서 같이 공부하고 있다는 게 어색합니

다. 선생님들과 나이가 비슷해진 것 같아서 싫기도 하지만 우리가 친구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앞으로 학림에서 제가 어떻게 변화해갈지 궁금합니다. 기대되는

것도 많습니다. 새로운 길을 가는 건 두렵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무

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열심히 공부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

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재밌게 공부하는 것은 농사고, 마음을 두고 의미있게 공

부하는 것은 철학수신입니다. - 진혁

학림 소속 열일곱 살 해민입니다. 물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바람 쐬는 것을 좋

아하고, 짖는 것을 좋아하고, 땀 흘리는 것을 좋아해요. 열심히 공부하고 싶고, 공

부를 좋아하고 싶고, 공부를 잘하고 싶어요. 아직은 모든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아무것도 믿지 못하는 뭔가 이상한 아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열심히 살다보면 저

가 꿈꾸는 저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 이거 하나 딱 믿고 있으니까, 일단은

열심히 살아봐야죠, 뭐. 당당하게, 담담하게, 단단하게. 재밌게 공부하는 것은 태

권도고, 마음을 두고 의미있게 공부하는 것은 ‘몸’입니다.

저는 이번에 새로 학림에 입학한 인애라고 합니다. 함께 생활하게 돼서

기쁘고 새롭네요. 적응을 다 하진 못한 상태지만 빨리 적응해서 내 자신이

바뀌고 공부 습관이 바뀌는 삶의 전환점이 되길 기대합니다. 아직 어색하

고 미숙하더라도 좋게 봐주세요. 재밌게 공부하고 있는 것은 체육이고, 마

음을 두고 의미있게 공부하는 것은 문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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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마케팅과 홍보 일을 하며 인간을 대상화하고 광고 천지의 피로사회를 만

드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직장생활 중 겪은 불통의 경

험이, 제가 학림 공부를 시작하게 된 주된 이유였습니다. 나 자신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했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라고 하는데, 적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아리송한 채 살아온 자신을 자각했습니다. 그리고 삼일학림이라면 나를 발

견하는 계기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저의 특성과 한계를 깨닫는 공

부, 과제를 설정하며 조금씩 한계를 뛰어넘는 것, 이렇게 중심을 놓지 않고 공부해가

려 합니다.

농생활 수업을 통해 자연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이해하여 어떻게 나로서의 생명으

로, 다른 생명을 만나갈까 고민하며 지내려 합니다. 철학하고 수신함을 통해 물렁한

마음을 좀 더 단단하게 닦고, 수학을 통해 무뎌진 논리력과 세밀성도 키워보려 합니다. 자연에 대한 깊은 경외감이 자라

는 시간, 생명과 지혜롭게 소통하는 방식을 배우는 공부가 되길 소망합니다. - 김승권

저의 지난 고등과 대학과정을 돌아보았을 때 ‘대졸’이라는 명예를 위해 맥

락 없고 수동적인 공부를 해왔기에 공부와 삶이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왔

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올해 귀촌과 동시에 새롭게 공부를 시작하

면서 창조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역량을 키우고 싶어졌습니다.

함께 배우며 고민하고 연구하는 즐거움도 느껴보고 싶었고요.

그동안 미술이라는 전공분야에서 어떤 철학적 바탕 없이 기술적인 훈련만

맹목적으로 받아왔는데, 학림 공부를 통해 철학과 역사에 대한 공부를 계속

해서 끊어진 우리 미술의 맥락을 찾고 우리 삶과 정서에 맞는 새로운 시각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러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그림 수련을 시간 내어 정기적으로 하고 있습니

다. - 황지영

안녕하세요? 저는 서른다섯 살, 10년차 직장인입니다. 올해 1월 삼일학림 교사

연수회에 참여해서 조선상고사, 중국철학사, 서양철학사, 자연과학, 정치경제학

등의 주제를 2주 동안 함께 공부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의 일상과 관계

를 돌아보고 새롭게 구성할 수 있도록 추동해주는 힘이 함께하는 공부에 있음을

배웠습니다. 내 삶과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주제의 공부를 통해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신기하고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공부를 더욱 긴 호흡으로 꾸준하게 하고 싶어서 삼일학림에 입학하게 되

었고 농생활, 생활기술, 철학수신을 배우고 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밭을 일

구고 흙을 만지며 평온함을 느끼고, 씨앗을 뿌리고 싹을 기다리며 설렘을 느끼고,

필요한 게 있으면 소비하는 데만 익숙해져 있다가 스스로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기술을 배울 때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

부하고 공부한 것을 부지런히 일상에 들이며 살겠습니다. - 김연

배움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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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중에는 세무공무원으로 일하고 주말에는 삼일학림에서 공부하고 있

습니다.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무기력함이었습니다.

초·중·고등, 대학이라는 과정에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저에게 새로운 것을

떠올릴 수 있는 창조력도,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역량도 전혀 훈련되지 않

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학림에 입학하여 수강하는 수업 하나는 농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수신입

니다. 매일 새벽 출근 전에 밭으로 나갑니다. 밭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제가

뿌려둔 씨앗들에 싹이 났는지 유심히 살펴보는 것입니다. 작은 잎들이 올라오

긴 했는데, 이 잎이 제가 뿌린 씨앗이 움튼 것인지 아니면 다른 풀인지 아직 구

별하지 못합니다. 제가 뿌린 콩의 싹을 구별하기 위해 밭에서 만나는 모든 풀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이 생

겼습니다.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명의 폭력성’, 요즘 깊게 생각하는 주제입니다. 비

록 미세먼지로 숨도 쉬기 힘든 도심 속 일터에서 지내고 있지만,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을 머금은 사람은 어떤 다

른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상상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학림을 통해 생명에 대한 감동과 창조적인 역량을 구비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습니다. - 권상원

공부라는 것이 자기 존재를 새롭게 하고 생명, 우주와의 교감 능력을 키워주는 것임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습니

다. 같은 공부라 하더라도 어떤 철학을 가지고 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경이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기도 하고 건

조한 개념의 나열에 그치기도 합니다.

긴 시간동안 공학 관련된 일을 하고 공부를 해왔지만 그런 공부가 경탄을 자아내

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면서 앞으로는 그동안 배워왔던 과학,

생명, 자연에 대한 공부를 새롭게 하면서 우주의 신비, 생명의 신비를 깊이 탐구하

는 공부를 해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생활기술의 연마에 더 열심을 내보려고 합니다. 단

순히 개인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수준을 넘어선, 기술이 예술과 통하는 기술의 그

본래적 의미를 살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르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 박영호

학림 학생들과 함께 농생활을 하면서 서로가 잘 배우고 성숙할 수 있게

북돋아주고 격려하며 지내고 싶습니다. 그런 소망에 걸맞게 저 또한 부

지런히 공부하며 성숙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입학했어요. 학림에서 역사

와 철학을 공부하면서 해야 할 질문을 잘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며 뿌리 깊

은 사대성을 넘어서고, 지금 제가 살아가고 있는 농생활과 문명을 연결

시키고, 문명을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 같

아 기대하는 마음이 큽니다.

홍천에서 자연과 벗하여 지내며 누리고 있는 은총을 잘 정리하고 나

눌 수 있는 공부를 하려 하는데, 그동안 농사짓고 밥상을 차리며 만난 주

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올 한해는 농사를 집중해서 지으면서 흙과 미생물과 퇴비, 채종, 절기, 식물

의 생리 등 농사에 필요한 다양한 주제들을 정리하고, 본초학과 기철학 등의 분야와 저의 일상이 맞닿는 곳으로

점차 공부를 확장해가려고 해요. 벅차기도 하지만, 함께 공부할 동지들이 있어서 용기를 내어봅니다. - 이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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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4세 주부입니다. 학림에서 철학수신, 농생활을 공부합니다. 대학교 1학

년 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각각의 핵심사상을 시험용으로 외운 것이 철

학공부의 전부였습니다. 살면서 철학이 중요하다고 들었으나 그때 잠깐 배운

철학이 제 삶에 중요한 힘을 주진 못한 것 같습니다. 학림에서 철학수신을 잘 배

우고 익혀 힘 있게 살고 싶습니다.

올 봄에 양평으로 이사 왔습니다. 집 옆에 조그만 텃밭이 있습니다. 농사는 처

음이지만 밭을 개간하고 풀 뽑고 씨앗심고 밥상부산물 발효시키고 오줌액비 모

으면서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매번 한영 선생님에게 묻느라 바쁜 초보지만 올

한해 농사를 조그맣게 지으면서 제 역량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콩 농사를 장 담

그기까지 할 수 있을지, 배추, 고추 농사가 김장까지 될 수 있을지, 농사에 대한

기대와 애정이 새록새록 생깁니다. - 남은선

작년을 마무리하고 올해를 시작하며 공부하는 자세와 방식에 대해 다시 고민하

는 계기가 있었는데, 학림 입학을 통해 공부하는 방식과 자세를 새롭게 제 몸에

들이고 싶습니다.

홍천에 와서 살며 조금씩 씨를 심어 키우고 수확하는 농생활을 하고, 학생들과

과학수업을 하며 땅에서 살아가는 식물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관련된 책

을 찾아보며 좀 더 식물 관련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올해부

터는 농사를 적극적으로 하며 식물 관련 공부, 종자 관련 생화학 등의 주제를 책임

있게 학림 학생으로서 공부해가고 싶습니다.

함께 해가고 있는 ‘농생활’과 작게나마 제 선에서 공부하며 학생과 함께 한 수업

을 통해 갖게 된 관심을 시작으로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주제가 발견되어가는 과

정이 즐거웠습니다. 삶과 공부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생명이 생명답게 사는 여정을 더 풍성하게 해주는 것이 공

부라는 것을 많이 배우고 느끼고 있는데, 이런 소박한 즐거움과 기쁨을 학생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김진숙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이어진 16년 학교 교육에서 벗어난 순간, 다시 ‘학교’

란 곳에 의존하는 공부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마을 선배

들의 질문과 조언 속에서 진로를 모색하던 중에 저는 홍천으로 이주하여 선생님

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으로 한 해 살면서, 내가 경험했던 선생님과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 새

로운 가르침과 삶을 살아내기 위해 실수하며 고민하고 배우는 시간을 보냈어요.

저는 영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오랫동안 영어와 굉장히 친한 삶을 살아왔거든요.

어느 순간, 저는 영어에만 쏠린 몸과 생각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걸 깨달았

고, 제 안에 쌓인 편향과 왜곡을 극복하는 공부를 적극적으로 해가면서 단절된

자연세계와의 소통을 회복하고 싶어졌어요.

그런 소망을 품고 용기 내어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무기력해지고 질문하는 능력을 상실하기 전에 학림에

서 선배들, 학생들과 배우고 가르치며, 몸 부대끼며 건축하고 농사짓는 일상을 신명나게 살고 싶습니다. - 길서영

배움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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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자연과학도로 화학을 전공하고, 오랜 시간 환경운동가로 살

아왔습니다. 환경운동을 통해 개발과 보존의 갈등, 다양한 정책과 계획과

정, 인간세계의 변화무쌍함을 경험했습니다. 전문가들과 조사하고, 문제

를 해결하고, 대안을 찾아보고자 노력했지요. 그 과정에서 분과학문으로

나뉘어 있는 학문체계와 전문성에서 늘 2% 부족하다는 아쉬운 마음을 품

게 되었어요.

자연과학의 눈만으로, 사회과학적 지식만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사안이

너무 많았고, 학제적 연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죠. 자연과

학과 사회과학을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해석하는 철학적 기반과 틀을 공부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학문간 경계가 허물어진 통합학습! 제가 공부하고 싶은 내용입니다.

공부의 방법과 틀이 세워지면, 의사소통을 통한 계획과정에 대해 철학적으로 또는 방법론적으로 심화시키고,

제가 지금 현업에서 하고 있는 일들-사회적경제와 지역계획-을 해석하고 싶습니다. 또한 공동체의 의사소통과정

에 대해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꾸준히 공부하고, 생각하는 것이 제 삶에 든든한 지지대가 되고 있습니다. 삼일학

림에서 배우고 공부하는 과정이 제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주는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 정연경

새롭게 도약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향한 배움의 숲 삼일학림에 문을 두드

렸습니다. 농생활, 생태건축, 철학수신, 무예 등을 갈고닦으며 몸과 정신을 새롭

게 가꾸어가려고 합니다. 농사를 배우며 하늘땅에 숨 쉬는 뭇 생명과 호흡하고, 똥

오줌과 밥의 순환을 일상에 들입니다. 집짓기를 익히며 흙과 나무 같은 자연재료

로 건축하고, 해와 산과 물과 어우러지는 법을 전수받습니다. 철학·수신·양생

을 하나로 엮어 공부하며 생각과 삶의 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수련해갑니다. 도

시문명에 익숙해진 모습을 일깨우고, 농(農)의 가치로 삶을 전환해갑니다. 평일에

는 서울 인수마을과 직장에서 지내고, 주말에는 강원도 홍천에서 일상을 보냅니

다. 어느 장에서든 공부와 수련을 지속해 창조성을 발현하는 학림 학생으로 살리

라 다짐합니다. - 임안섭

저는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하는 바이오벤처회사 연구원으로 10년여 간 직장

생활을 해왔습니다. 지금은 휴직을 하고 삼일학림에 입학하여 새로운 공부와

삶을 모색하는 중에 있습니다.

지난 1월, 삼일학림 교사연수회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했던 친구들과 자

연과학 세미나에 참여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 생명에 대한 애정과 이

해 없이 기계적으로 생명을 다루고 고치려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러면서 생명에 대해 새롭게 공부하고픈 마음이 솟아났고 삼일학림이 그런 공부

의 장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삼일학림에서 농생활 수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흐름, 생명의 변화

와 힘을 배우고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농생활 수업을 통해 솟아나는

질문들을 공부해가며 생명의 경이로움을 더 깊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길 기대

합니다. - 안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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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건축

월요일 생태건축 수업, 쉼터(휴게실) 한 채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지으며 함께 배우고 있다. 각자 구

상해온 설계도를 보며 어떤 설계로 지을지 함께 결정했고, 요즘은 집의 기초를 다지는 일을 한참 하고 있

다.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지은 구멍가게에서 친구와 마주 앉아 이야기도 나누고 아늑하게 쉴 수 있는 날

을 상상하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 자신이 살 집을 스스로 지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얻는 배움의 시간

이 되기를 기대한다.

# 농생활

밭 개간, 장 담그기 등의 실습을 함께하고 서로의 농생활을 나눈다. 사실 매일이 농생활 시간이다. 각자

주어진 밭에서 개별 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한 주간 자신이 설정한 시간에 자율적으로 밭에 나가 밭일을

하고 일지를 기록한다. 가끔씩 밥상에선 학생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밥상일을 돕는 모습이 보이는데, 자

신이 채취, 수확한 것으로 반찬을 만드는 밥상 실습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밥상에 오른 된장덮밥, 봄나

물샐러드는 먹는 이들에게 인기도 좋고, 실습을 한 학생은 밥상의 수고도 알게 되고 생명을 살찌우는 뿌

듯함도 느낀다.

# 생활기술

이번 학기에는 전기에너지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전기가 생기고 흐르는 원리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전

기에 대한 이론을 배우며 멀티탭, 전등과 스위치, 차단기 등을 직접 연결하고 설치해보았다. 태양광이나

자전거 등을 이용하여 발전기를 만들고, 생태건축 시간에 짓고 있는 쉼터에 전기를 배선하는 공사를 함

께 할 계획이다. 익숙하지 않은 납땜을 하느라 한참을 낑낑거리며 만든 태양광 발전기를 통해 작은 전구

에 불빛이 반짝 켜지는 것을 보며, 생활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고 채우는 공부에서 기쁨과 자신감을

맛보고 있는 요즘이다.

# 예술

미술수업에서는 요즘 음영법을 배우고 볕 좋은 날 밖에 나가 자연을 그리기도 한다. 같은 시간, 한편에

선 편집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루는 그래픽디자인 수업이 이루어진다. 음악수업이 있는 날이면, 학생들이

책을 보며 골몰히 생각하는 모습이 보인다. 곡을 작곡하는 기본 틀을 세워가는 화성학을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기를 들고 학교 이곳저곳을 찍고 있는 학생들이 보일 때는 사진예술 시간임을 알 수 있다.

홍천의 생동하는 모습들이 어떻게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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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와 수학

영어 읊는 소리가 학림 생활관을 울린다. 단어암기 숙제 분량은

모두에게 절대적이지 않다. 자신이 외울 수 있는 만큼 숙제도 주

체적으로 설정한다. 외국어시험 고득점을 위한 비주체적 언어학

습이 아닌 소통을 위한 언어를 함께 공부해간다. 수학도 마찬가지

다. ‘수’라는 보편적인 언어로 우주를 이해하고 증명하고자 수를

자유롭게 다루는 연산능력을 키워간다.

# 철학수신

수업 시작 10분전, 수강생들은 강의실(강당) 벽면 큰 거울을 향

해 서서 춤추듯 지난 시간에 배운 몸수련을 시작한다. 의식한대로

몸을 다루며 막힌 ‘기’를 뚫어주고, 균형이 흐트러진 몸, 굳은 근육

들을 풀어주는 것이다. 분리된 의식과 행위의 일치를 이루는 과정

이기도 하다. 몸을 풀면서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함께 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거나 모둠별로 토론을 하기도 한다.

지식적 습득에 머무르는 공부를 넘어서야 한다. 몸( )을 닦고, 마

음( )을 수련함으로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는 중이다.

# 경전공부

주체성과 순종, 사랑과 믿음, 담대함 그리고 침묵. 경전공부에서 배우는 내용이다. 함께 예배를 드리며

성서 속 사건들을 통해 자기 삶을 비추어보고 성찰하는 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다. 자기 차례가 오면, 긴

장하면서도 텍스트(본문)와 컨텍스트(맥락)에 맞게 지금 자기 삶을 묵묵히 나눈다. 설교자에게 지나치

게 의존하지 않고 성서를 보는 주체성을 훈련해간다. 또한 말하는 훈련과 소통능력을 키우는 시간이기

도 하다.

# 학생주도학습

학생들은 ‘학생 자율 과목’을 스스로 개설하고 공부한다. 해민은 동의보감을 읽고 태권도를 연마하며 몸

을 이해하고 수련한다. 주은은 동부·경기민요를 배우고 익힌다. 예진은 포토샵을 공부하며 이미지로 소

통할 수 있는 기능을 익힌다. 지영은 동서양 미술을 심화해서 연습하고, 그 역사를 정리한다. 영호는 생

명활동을 화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화학 공부를 한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배움이기에 또 다른

즐거움과 재미를 만끽하며 ‘흥’을 내고 있다.

김승권, 김연, 황지영 | 몸과 마음이 분리된 공부의 한계를 자각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삼일학림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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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볕이 좋은 날, 평상에 앉아 목련나무의 꽃봉오리를 그리고 있는데

학생들이 하나 둘 모이더니 “저도 그릴 것 좀 주세요” 했습니다.

제 도구들을 건네주니 저마다 자릴 잡고 금세 그림을 시작합니다.

저는 이 모습을 그리고 곧이어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도 모여 그림을 논했습니다.

마음의 흥을 따라 그림으로 함께 즐기니 이것이 풍류인가 싶습니다.

그날 우리 마음엔 이미 목련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황지영 | 지난 2월 서울에서 홍천으로 터를 옮기고 農의 삶을 시작하고 있는 미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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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4일

어젯밤부터 눈으로 바뀌어 내린 비 덕분에 뒷산의

설경을 감탄하며 한참 보게 됩니다. 밤사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소식에 재에 굴려둔 씨감자를 혹시하는

마음에 실내로 대피시켰는데 밭에 넣어둔 씨는 흙

이 따뜻하게 품어주었겠지요. 엊그제는 생활공간에

씨고구마 묻은 상자를 넣어 두었는데, 오늘 2차로

씨고구마를 묻어서 연구공간에 두었습니다. 어제

눈비 덕분에 습기를 한껏 머금은 산흙이라 물을 따

로 주지 않았어요. 서당, 생활공간, 연구공간 곳곳

에 씨고구마 상자가 보입니다. 어디서 싹을 가장 먼

저 틔울지, 들려올 소식이 기대가 됩니다. - 한영

4월 4일

오후 잠깐 틈에 토종우엉과 당귀 씨를 넣었습니다.

밭이 넓은 것이 아니니, 이곳저곳 틈새 땅을 고르고

골라 심었네요. 안정된 밭은 아니더라도, 오가며 눈

마주치고 애정을 줄 수 있는 곳에 살포시 넣었습니

다. 약초로 심은 녀석들이 잘 자라서 우리에게도, 또

함께 자라는 이웃 생명들에게도 좋은 기운을 잘 전

해주면 좋겠네요. 어릴 때, 당귀 잎을 코끝에 대어주

던 어머니와 진하고 좋았던 그때의 당귀향을 떠올

리며 오후를 보냈습니다. - 민선

4월 7일

새벽에 산에 가서 부엽토 퍼다 씨고구마 묻었어요.

어제는 저절로 퍼진 딸기도 옮겨 심고 옥수수씨도

넣었습니다. 좀 이른 감이 있지만, 토마토와 상추씨

도 뿌렸구요. 이제 슬슬 밭벼 자리 정리해야겠습니

다. - 승화

4월 7일

장 담근 항아리 살피니 메주가 소금물을 다 먹어버

렸더군요. 남았던 소금물 더 부어주고, 그걸로도 부

족해서 소금물 조금 더 만들어두었습니다. 작은 비

닐집 안에 땅을 파고 김장 항아리를 묻어두었던 것

도 정리했습니다. 겨울에 너무 춥지도 않고, 눈도 피

할 수 있어서 좋았는데 봄이 되니 김치가 있기엔 너

무 따뜻해서 남은 김치들과 무짠지, 북향으로 난 서

늘한 방으로 이사했습니다. 돌, 마른풀 따위가 쌓여

있던 밭둘레 정리해서 작은 이랑 하나 만들어 개똥

쑥 씨를 흩뿌려놓고, 아주까리 맞이할 준비 해두었

습니다. 혼자서 설렁설렁하는 자투리땅 개간은 여럿

이 함께 하는 큰 규모의 개간과는 다른 뿌듯함과 즐

거움이 있습니다. - 한영

씨고구마 넣고 한 달 뒤

밭벼

農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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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0일

작년에 일부러 퍼뜨린 씀바귀가 지칭개를 따라잡으

려는 듯 열심히 자랍니다. 해바라기씨 심을 때 김매

면서 뜯어다가 효소로 담급니다. 올해는 해바라기

씨로 기름을 짜볼 요량으로 욕심내 심어봅니다. 요

사이 쉽게 빵을 만들고 있어, 조청 만들고 남은 쇠비

름건지로 빵도 해먹었습니다. 효소는 버릴 게 없네

요. 봄철 기분 느끼려 목련 꽃 조금 뜯어 말려 꽃차

로 마시며 격있는 삶 누리고 있어요. 봄도 가을처럼

풍성합니다. - 승화

4월 14일

오늘 점심에는 별꽃, 쇠별꽃, 벼룩나물에 남은 식재

료-양배추, 양송이버섯, 구운 감자를 곁들이고 달콤

하고 고소한 참깨사과장을 끼얹어 버무려먹었어요.

잎채소 씨앗은 이제 막 심었는데 싱그러운 잎채소를

상큼하게 무쳐 먹고 싶을 때, 절로 나서 푸른 잎이

무성해진 나물들을 밥상에 올릴 수 있어서 감사했어

요. 쇠별꽃, 별꽃, 벼룩나물 하나같이 작은 잎들인데

정성껏 뜯어준 손길 덕분에 밥상에 올리리라 벼르던

음식 맛있게 나눠먹었습니다.

심은 씨앗은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데 풀싹은 점점

많아집니다. 오늘은 딱 하나 올라온 완두싹을 풀싹

으로 오해하기도 했네요. 올해 처음 만나게 되는 싹

들을 잘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 한영

4월 9일

5월 초부터 씨가 들어갈 곡식밭과 가을 김장밭 개간

했습니다. 함께 일하던 이들이 점점 말이 없어질 정

도로 힘들고 고된 일이기도 하여 지난 주말부터 여

럿이 힘을 모을 수 있을 때 물길을 내고, 고랑을 내

어 밭의 윤곽을 조금씩 잡아가고 있습니다. 돌이 많

고 풀 한포기가 귀한 땅이 어떻게 푸르름을 입게 될

까 기대하면서 흙에 다양한 생물종이 살 수 있게 돕

는 일을 찾아보고 해보기로 마음 단단히 먹습니다.

- 한영

4월 9일

하늘은 맑고, 햇볕은 따스하고, 은근한 바람이 부는

봄날이었습니다. 햇살을 몸에 담은 채, 산과 밭을 거

닐며, 지금 피어나고 있는 푸성귀(민들레, 고들빼

기, 며늘취, 돌나물)들을 사진에 담아봅니다. 진달

래 꽃 피기 시작하고, 두릅도 이제 싹을 틔우기 시작

했습니다. 진달래와 쑥으로 화전 만들어 먹기 좋은

때인 것 같아요. 틈틈이 앞으로 들어갈 곡식들을 생

각하며 밭 이랑 다듬고, 부추, 상추 씨 이르게 넣었

습니다. 된장국 생각하며 냉이도 한 바구니 캤습니

다. - 윤희

학림연구공간 앞 민들레

봄나물 생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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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아침 안개가 가득했습니다. 강 건너밭에 유채와 갓,

순무 씨 넣었습니다. ‘유채는 여릴 때 나물 무쳐 먹

어야지.’ ‘갓은 잎이 세어지기 전에 솎아서 쌈 한 번

먹고, 더 자라면 갓김치도 한번 담아볼까?’ ‘순무는

김치 담을 양으로 몇 차례 나누어 심어야지’ 하며 밥

상으로 이어질 것을 그려보며 씨앗을 넣습니다.

오후에는 학교 뒷간 옆에 돌을 쌓아 작은 화단을 만

들고, 구석에 있던 금낭화와 붓꽃 몇 뿌리를 옮겨 심

었어요. 옮기는 동안 뿌리가 건드려 졌을 텐데, 해

잘 들고 밝은 새 터전에서 무사히 뿌리내리길 기대

해봅니다. 저녁에 있는 비소식이 자꾸 기다려지네

요. - 민선

4월 24일

드디어 단단히 마음먹고 밭벼를 넣었습니다. 귀한

거라 산에서 부엽토까지 퍼 와서 밭 준비하였고요.

학교 터전 밭은 흙 상태가 어떨까 싶어, 이랑을 다

채우지 않고 가장자리에는 땅콩을 심어봤어요. 강

건너 밭이 물기가 많아 기대가 됩니다. 비교해서 살

피는 것도 농사의 재미네요. 오늘 감자싹, 해바라기

싹, 상추싹 다 머리를 내밀었답니다. 싹을 보는 일은

반복해서 보는 것인데도 늘 설레고 떨립니다. - 승화

4월 14일

얼마 전에 집 앞 텃밭에서 부추를 조금 다듬다가 옆

에 있는 풀을 뜯어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달콤한 것

이 강하지도 않아 그냥 먹어도 맛있어서 풀은 아닐

거야 하며 스쳐 지나갔던 것이 영아자라는 것을 오

늘 장에 나오신 할머니들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일상의 궁금증이 갑자기 해소되는게 시원하

기도 하고 재밌습니다. 산에서 한번쯤 만나고 싶었

던 나물을 집 앞에서 만나니, 반갑고, 앞으로 다른

곳에서도 쉽게 찾고 알아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

습니다. 집 앞 텃밭에 바로 먹을 수 있는 상추, 아욱,

부추, 곤드레 씨 넣었습니다. 살짝 늦은 감도 있지만

개똥쑥도 조심스레 심어봅니다. - 윤희

4월 16일

내일 저녁밥상에 올리려고 잠깐 머위 군락지에 들러

어린 머위잎을 땄습니다. 머위 덕분에 오랜만에 마

을 맨 꼭대기부터 한 바퀴 돌면서, 이곳저곳 변화들

을 살폈습니다. 밭에 호박과 박 심을 구덩이에 1년

동안 삭힌 거름 넣어 두었습니다. - 윤희

한영,윤희,민선,승화 학교와 텃밭에서 씩씩하게 자라나는 새싹들을 보며 희망을 얻는 홍천의 소농영아자(미나리싹)

아직 못 알아본 어느 풀싹

삐딱모자 해바라기싹 기운찬 옥수수싹

뭉게뭉게 감자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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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별 모양 꽃을 피우는 도라지는 여러해살이 풀입니다. 겨울을 몇 해 지나면서 뿌리를 깊게

내리지요. 도라지 뿌리는 폐를 보호하고 기침을 멎게 하는 효능이 있어, 약재로 쓰기도 하고 꿀에

재어 도라지청으로 만들어 먹거나 말려서 도라지차로 마시기도 합니다.

요즘엔 도라지 껍질을 벗겨낸 깐도라지나 아예 채를 썬 채도라지를 많이 팝니다. 어릴 적 명절 때

면 엄마랑 도라지를 다듬은 기억이 있는데 도라지를 물에 담가놨다가 과도로 껍질을 깠더랬지요.

이제는 껍질이 있는 생도라지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누군가 껍질을 벗겨 다듬어놓은 도라지

를 사서 조리하는 것이 익숙해졌습니다. 사실 도라지만이 아니기는 합니다. 고사리나 시래기도 다

말린 나물을 다시 불려서 삶아놓은 것을 팔고 있습니다. 힘든 과정은 생략한 채 우리는 쉽고 편하

게 요리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마을밥상에서 생도라지를 까고 채 썰어서 도라지 나물볶음을 한 적이 있습니다. 60~70

인분을 하려다보니 도라지반찬이 나오기 3일 전부터 다듬었는데 이틀 꼬박 껍질을 까고 하루 종일

채를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두세 사람이 함께 말이지요. 일단 시작을 했으니 끝은 내야겠는데, 마

을밥상에서 얼마만큼 필요할지, 다듬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감이 잘 안 잡혔습니다. 깐도라

지나 채도라지를 사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비용의 차이도 있고, 도라지 같은 나물류는 소포장 되어

있어 마을밥상에서 필요한 만큼 대량을 사게 되면 플라스틱과 비닐쓰레기가 너무 많이 생겨버립

니다. 그동안 쓰레기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에 조금이나마 쓰레기를 줄여보고자 하는 마음도 더해

서 시작한 일이 예상보다 커졌습니다.

3일 동안 도라지를 까고 다듬고 채 써는 과정에서 마을밥상에 오가는 사람들이 함께 보고 관심을

갖고 신기해기도 했습니다. 뭐하는 건지 궁금해 하는 아이들, 힘들겠다고 염려하는 사람, 예전 기

억을 떠올리는 사람, 왜 하냐고 묻는 사람, 모양만으로는 뭔지도 전혀 모르는 사람, 도라지 향기가

좋다는 사람 등 여러 반응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음식을 할 때 중간과정을 보는 것,

밥상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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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들어보는 것이 참 중요한데 그 과정을 통해서 밥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더 맛있게 정성껏

먹는 모습을 보면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직접 도라지를 까보니 껍질을 까고 채를 만드는 그 수고 또한 녹록치 않음을 느끼게 되었습니

다. 밥상에 올리기까지 해, 물, 바람, 흙, 벌레와 농부들과 씻고 다듬고 포장하고 날라주는 수많

은 손길이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절로 생겨납니다. 마을밥상에서 도라지를

직접 까서 반찬을 내는 것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밖에 못하겠구나 하며 손사래를 치기도 했지

만 과정에서 힘든 것보다는 배운 것과 감사한 것이 더 많습니다. 생명과 밥과 손길들의 소중함

을 생각하며 더욱 겸손히 밥을 지어야겠습니다.

조한아 | 인수동 마을밥상에 찾아오는 이들을 날마다 반갑게 맞이하는 밥상지기

* 생도라지 손질하는 법

1. 도라지를 흙만 씻어서 물에 하루정도 담가 놓습니다.

2-1. 도라지를 맨 위부터 껍질을 조금 까서 돌돌돌 돌리면서 껍질을 벗깁니다.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깔끔하기도 하고 하얀 속살이 나올 때 뽀얀 게 참 예쁩니다.

2-2. 또는 과도의 칼등으로 긁으면 껍질이 쉽게 일어납니다.

3. 도라지를 위에서부터 3~4등분하여 먹기 좋은 크기로 가르면서 채를 만듭니다.

4. 소금물에 비벼 씻고 찬물에 소금을 넣고 한시간 정도 담가 아린맛을 빼줍니다.

재료: 도라지, 오징어채, 오이, 미나리, 양념(고춧가루, 고추장, 매실청, 식초, 들기름, 깨소금)

1. 도라지는 채 썰어 굵은 소금으로 비벼 씻고(쓴맛 제거) 찬물에 헹군 뒤

굵은 소금을 넣고 한 시간 정도 담가놓는다(아린맛 제거).

2. 오징어채는 적당한 크기로 썰거나 잘라 물에 불려놓는다.

3. 오이는 반 갈라 어슷썰기 한다.

4. 미나리는 3~4cm 길이로 썬다.

5. 양념장을 넣고 버무린다.

재료: 도라지, 다진파, 다진마늘, 들기름, 소금, 멸치액젓, 간장

1. 도라지는 채 썰어 굵은 소금으로 비벼 씻고(쓴맛 제거) 찬물에

헹군 뒤 굵은 소금을 넣고 한 시간 정도 담가놓는다(아린맛 제거).

2. 팬을 중간불로 달군 뒤 들기름을 두르고 다진마늘을 넣어 살짝 볶는다.

3. 물기를 뺀 도라지를 넣고 소금을 살짝 뿌려 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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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라는 말만큼 일상에서 널리 쓰이면서 깊고 풍부한 뜻을 가진 것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누

구나 잘 알고 있고 쉽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중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생명

이 없는 곳, 생명이 생명답지 못한 때에야 비로소 깨닫고 돌아보게 된다. 마치 공기에 대해서 그런 것

처럼.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생명현상은 무한히 신비롭고, 인과적 관계만으로 설명할 수 없

으며 구성성분을 다 알았다고 해서 전체를 이해했다고 할 수도 없다. ‘포유류의 세포 하나하나를 생명

으로 볼 수 있는가, 없는가?’ ‘나무가 생명인가, 나뭇잎도 생명인가?’ 하는 질문들은 모두 생명을 단일

개체로 이해하려 하기 때문에 나온다.

그동안 인류는 물질세계의 원리를 밝혀내고자 애썼고 조금씩 가깝게 가고 있다. 모든 물질은 열역

학 제2법칙을 따라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일상적으로 표현하면 결국 ‘가장 있음직

한 상태’가 된다. 물은 가만히 놔두면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고, 아무리 뜨거운 물체라도 어느덧 식어

서 주변 온도와 같은 표면 온도를 갖게 된다. 그런데 이 원리를 거스르는 존재가 있다. 바로 생명이다.

우리의 몸이 언제나 36.5도인 것도, 일반 대기보다 이산화탄소 농도가 훨씬 높은 날숨을 뱉는 것도 생

명활동의 한 예이다.

하지만 생명이 주변의 아무 도움 없이 제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자 교만

이다. 생명은 끊임없이 주위와 물질·에너지를 주고받는다. 한 개체인 낱생명을 이해하려는 학문적

연구가 심화되는데도, 사회적으로 볼 때 생명에 대한 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것은, 나를 생명되게 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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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대안

는 다른 존재에까지 관심을 돌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라는 낱생명을 온전하게 해주는 보(補)생명들로 말

미암아 내가 살 수 있음을 고백할 때 비로소 함께 온생명을 이루어갈 수 있다.

온생명 개념을 주창하며 생명과 물질의 통섭적 이해에 많은 기여를 한 장회익 교수는 생명 현상의 핵심

으로 자체촉매적 국소질서를 들었다. 물질세계의 원리는 일반적 이론들인 1차질서(바탕질서)와 좁은 세

계에서 적용되는 2차질서(국소질서)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우연히 1차질서를 거스르는 2차질서가 생

길 수 있지만 연달아 나올 수는 없다. 낮은 확률이지만 동전을 던졌을 때 열 번 연거푸 앞면만 나올 수 있

다. 하지만 작은 원숭이가 키보드 위에서 뛰어 노는데 나중에 봤더니 책 한 권을 똑같이 타자 쳤다면 그

것은 확률이 아니라 활동 주체의 자기인식과 의지가 들어간(즉 생명현상인)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

이다.

이 생명현상의 첫 단추가 자체촉매적 국소질서*)이다. 바탕질서 안에서 한 존재가 수명을 다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과 대등한 국소질서를 형성할 수 있다면 소멸하지 않는다. 한번 촉발된 자체촉매적 국소질서

는 점점 그 주기를 줄이면서 질서를 집중시키고 마침내 집약된 무엇인가가 나올 수 있다.

137억년의 긴 세월 동안 우주는 인간과 관계없이 자체 변화를 이루어 왔다. 이제야 인류는 집단이성을

가지고 우주를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온생명의 주체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류는

근대 이후 추구해 온 문명의 결과로 온생명의 암이 되어가고 있다. 어떤 문명을 선택할 것인지의 심각한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생명이란 부엔트로피를 먹고 사는 존재’라고 하였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만물을

지배할 권리가 주어졌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나를 생명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많은 보생명들이고, 나도

누군가의 보생명이 된다. 이렇게 역할을 바꾸면서 서로를 살려간다. 물론,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해주

는 바탕질서도 중요하다.

패러다임의 전환기에는 기존의 질서와 정상 사고체계로는 설명이 안 되는 현상들이 여기저기서 발생하

고 각종 모순들로 인하여 이전의 지식이 더 이상 설득력이 없어진다고 한다.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

아들이고 이에 걸맞은 양식의 변화를 만들어간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처참한 사태는 기존의 패러다임

이 얼마나 생명보다 다른 가치들, 특히 자본을 우선시해왔고, 생명을 가벼이 여겨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히 매뉴얼을 강화하고 만반의 대비를 하는 것으로 극복할 수 없다. 어떤 가치를 추구할 것인

지 문명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그동안 화석연료와 핵 발전을 기반으로 급속도로 발달시킨 도시·성장

중심 문명에서 벗어나 지구 온생명의 근원인 태양에너지 중심의 온생명 문명으로의 전환이다.

정재우 | 14년차 직장인, 일하는 방법보다는 생각하고 표현하는 법을 나누며 지냅니다.

* 이 기사는 4월 15일 기청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장회익 전 서울대 물리학 교수의 ‘현대 과학의 흐름과 문명의 성찰’ 강의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1차질서를 거스르는 자체촉매적 국소질서가 생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요동에 따른 준안정 상태로의 전이, 복잡계도 예이다. 하지만 생명의 초기 생성 과정에서 이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자체생성성(auto-poiesis)라는 용어가 있지만, 장회익 교수의 표현이 본질을 더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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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천년같이

농생활연구소·농생활영성수련원에서 만든 <농생활절기달력> 2014년 4월에 쓰인 글과 그림을 발췌했습니다.

글┃해민, 그림┃박지혜

씨앗에서 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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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홍천터전으로 주신 선물

러빙핸즈 박현홍 님 일행 송이토마토, 밥상에서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씨알공동체 함인숙 목사님, 진인경 선생님 진인경 선생님이 손수 만든 목걸이,

두레기초공동체에서 돌을 맞이한 선율이네 가정에 선물했습니다.

민수선생님의 친구분 농구공, 축구공, 조끼 등, 학교 체육시간에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검산1리 마을 창식아저씨 학생들과 맛있는 간식 나눠먹으라고 현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학교 참시간에 간식을 준비해 맛있게 먹었습니다.

지영부모님 한라봉, 학교 참시간에 나누어 먹었습니다.

인수터전으로 주신 선물

주희 부모님께서 주신 김치, 대영 부모님께서 주신 찹쌀,

마을초등학교 4학년 진 부모님께서 주신 현미 마을밥상에서 잘 먹고 있습니다.

귀한 선물에 감사합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모든 사람이 함께 겪고 있는 아픔, 분노, 성찰에 함께 하는 마음으로,

5월에 예정되었던 삼일학림 여는잔치를 연기합니다.

이후 좋은 일정을 잡아 알려드리겠습니다.

삼일학림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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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고경환 | 인수마을 공동체방에서 비혼청년들과 함께 생활하는 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