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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Broadcasting Trend & Insight 20172Vol.11 55 INDUSTRY & POLICY <옥자>와 ‘옥자’ 1) 의 평행 이론설 :영화 <옥자>의 넷플릭스 개봉과 관련한 쟁점과 함의 글. 노성규(키움인베스트먼트 수석심사역) 봉준호 감독은 흥행의 아이콘이다. 이번에 연출한 <옥자> 이전까지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장편 영화는 총 5 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를 제외 2) 하고,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4편의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3) 안타깝게도 10년 넘게 이어온 그의 흥행 가도는 <옥자>에서 멈추게 될 것 같다. 공식적으로 극장 상영을 시작한 6월 29일부터 한 달이 넘어선 7월 31일까지 <옥자>를 관람한 관객은 31만 850명에 불과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1만 명도 관람하지 못한 것이다. 출처 : Netflix<옥자> 1) 이 글에서는 영화 타이틀로서의 옥자를 <옥자>로, 극중 캐릭터로서의 옥자를 ‘옥자’로 지칭했다. 2)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통계로 극장 관객 5만 7,469명. 이 때에는 통합전산망에 의한 관객 집계가 이뤄지지 않은 때이므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3) 영화진흥위원회의 공식 통계는 <살인의 추억>525만 5,376명,<괴물>1,301만 9,740명, <마더>301만 3,523명,<설국열차>934만 9,991명.

와 ‘옥자’1)의 평행 이론설 - KOCCA(2013) 4편의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3) 안타깝게도 10년 넘게 이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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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와 ‘옥자’1)의 평행 이론설 - KOCCA(2013) 4편의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3) 안타깝게도 10년 넘게 이어온

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Broadcasting Trend & Insight 2017년 2호 Vol.1155

INDUSTRY & POLICY

<옥자>와 ‘옥자’1)의 평행 이론설:영화 <옥자>의 넷플릭스 개봉과 관련한 쟁점과 함의

글. 노성규(키움인베스트먼트 수석심사역)

봉준호 감독은 흥행의 아이콘이다. 이번에 연출한 <옥자> 이전까지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장편 영화는 총 5

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2000)를 제외2)하고,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4편의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3) 안타깝게도 10년 넘게 이어온 그의 흥행 가도는

<옥자>에서 멈추게 될 것 같다. 공식적으로 극장 상영을 시작한 6월 29일부터 한 달이 넘어선 7월 31일까지

<옥자>를 관람한 관객은 31만 850명에 불과했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1만 명도 관람하지 못한 것이다.

출처 : Netflix<옥자>

1) 이 글에서는 영화 타이틀로서의 옥자를 <옥자>로, 극중 캐릭터로서의 옥자를 ‘옥자’로 지칭했다.

2) 영화진흥위원회 공식 통계로 극장 관객 5만 7,469명. 이 때에는 통합전산망에 의한 관객 집계가 이뤄지지 않은 때이므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3) 영화진흥위원회의 공식 통계는 <살인의 추억>525만 5,376명,<괴물>1,301만 9,740명, <마더>301만 3,523명,<설국열차>934만 9,99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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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Broadcasting Trend & Insight 2017년 2호 Vol.1156

알려진 대로 <옥자>는 3대 멀티플렉스라고 불리는 CJ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3사로부

터 상영을 거부당했다. 실제로 <옥자>는 7월 1일에 상영 스크린수 111개를 기록한 것을 정점으로

7월 31일 현재 21개까지 계속 감소했다. 3대 멀티플렉스가 차지하고 있는 스크린 수의 비중이 무려

92%, 이를 제외하면 한국에는 189개의 스크린만 남는다.4) 그 중 100여 개에서 상영했으니 3대 멀

티플렉스 외에 거의 대부분의 극장에서 상영한 셈이다. 분전했지만 역부족인 상황, ‘계란으로 바위 치

기’한 격이었고 결국 계란이 깨져버리는 상황이 되었다.

봉준호 감독이 이러한 상황을 예견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재미있게도 영화에는 이런 상황을 예

견이라도 한 것 같은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다소 과장해서 말하자면 극중 ‘옥자’가 처하게

되는 형편과 영화 <옥자>가 처하게 되는 현실이 사뭇 닮아있다. ‘옥자’를 통해 봉준호 감독이 예견

한 <옥자>의 스토리를 들여다보자.

*이 글은 영화 <옥자>에 대한 강한 스포일러성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 미자의 산속 집에 조니 박사가 나타나다

인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산속, 할아버지 희봉(변희봉 분)과 단둘이 살아가는 미자(안서현 분)의 집

에 낯선 이들이 나타난다. 한국인 등산객이어도 놀랄 상황이지만 낯선 방문객 중에는 미국의 유명 TV

쇼 진행자 조니 박사(제이크 질렌할 분)도 끼여 있다. 이 이미지는 매우 놀랍다. 전형적인 한국의 시골

풍경 속에 유명 미국 배우가 결합되면서 전에 본 적 없는 생경한 이미지를 선보인다. 미자의 집에 불쑥

나타난 제이크 질렌할처럼 한국 관객들에게 넷플릭스(Netflix)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넷플릭스는 1997년에 설립한 미국 기업이다. 처음에는 비디오 렌탈업으로 시작했으나 2007년

부터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지금은 명실공히 대표적인 OTT(Over The Top)기업으

로 성장했다. 넷플릭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라는 TV 시리

즈를 직접 제작하면서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된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2013년 2월에 공개되었는

데, 기존 레거시 미디어(전통 미디어)들과 달리 시즌 1의 전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릴리스(release)하는

파격을 시도한다. 이 작품은 그해 에미상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최종 3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작품성으로도 호평을 받아 넷플릭스는 뉴미디어 플랫폼 기업에서 콘텐츠 기업으로 위상을 넓혀갔다.

넷플릭스는 이후에도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Orange is the New Black), <마르코 폴로>

(Marco Polo), <마블 데어데블>(Marvel's Daredevil)등 다수의 오리지널 TV 시리즈를 자체 제작

해왔고 시즌의 전 에피소드를 한번에 공개하는 방식을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 콘텐츠 제작사로서

넷플릭스는 TV시리즈 제작에 만족하지 않고 2015년 영화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Beasts of No

Nation)을 넷플릭스 플랫폼과 극장에 동시에 선보이는 새로운 파격을 시도했다. 비록 박스오피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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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로고

4) ‘2016년 전국 영화 상영관(극장) 현황’, 영화진흥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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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Broadcasting Trend & Insight 2017년 2호 Vol.1157

적은 초라했지만 이 시도는 넷플릭스의 첫 영화 진출이라는 측면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넷플릭스는 현재 190개국, 1억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세계적인 미디어 기업으로 성장했다. 뿐만

아니라 30여 편의 자체 TV시리즈와 10여 편의 자체 영화를 보유한 콘텐츠 기업이기도 하다. 넷플릭스

는 2016년부터 한국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10만 명이 조금 넘는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어색한 동거 2년차. 그러나 <옥자>를 계기로 한국에서의 넷플릭스 위상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자의 집에 있지만 ‘옥자’가 미자의 것이 아닌 것처럼 <옥자>는 한국의 대표적인 감독인

봉준호의 작품이지만(‘옥자’는 희봉과 미자가 길렀지만)한국 작품이 아니다(‘옥자’는 미란도의 소유

다). <옥자>는 넷플릭스가 5,000만 달러로 추정되는 제작비 전액을 투자한 ‘미국 작품’이다. 봉준호

의 연출에, 한국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며, 한국어로 제작된, 모든 것이 한국 영화 같은 이 미국 영화를

통해 넷플릭스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 시장은 요동쳤다. 멀티플렉스들은 상영 거부를 하고 나섰고, 관객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

으며 언론들은 다양한 목소리로 <옥자>를 얘기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속셈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존

재를 알리고 이슈화 시키는 데에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제이크 질렌할이 미자네 마당에서 제 집 마당

인 것처럼 행동5) 하듯 넷플릭스의 한국 미디어 마당에서의 행보는 이제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넷플릭스는 <옥자>에 그치지 않고, 영화 <끝까지 간다> 김성훈 감독의 연출

과 드라마 <시그널> 김은희 작가의 극본이 더해진 TV시리즈 <킹덤>을 제작하기로 결정한 상태

다. 아직까지 넷플릭스가 한국 미디어 콘텐츠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지 않지만 이후로도 그럴 것

이라고 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 미디어 콘텐츠 기업들의 마당이었던 공간에서 넷플릭

스가 냉장고를 열고, 소주를 마시며 포즈를 요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2 동물 해방 전선 멤버들 간의 논쟁

미란도로부터 ‘옥자’를 탈취하는 데에 성공한 ALF(동물 해방 전선, Animal Liberation Front)

멤버들과 미자가 대형 트럭 안에서 대화를 나눈다. ALF 멤버들은 미자에게 자신들을 ‘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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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옥자> 조니 박사, 미자와 옥자

5) 미자의 집에 찾아온 조니 박사는 어떤 허락도 구하지 않고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주희봉(미자의 할아버지)의 소주를 마셨으며, 희봉과 미자

에게 자신과 같은 포즈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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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Broadcasting Trend & Insight 2017년 2호 Vol.1158

(Animal lovers)’라고 소개하고, 자신들의 활동과 계획을 들려주는데, 이상하게도 ALF 멤버들끼리

제각각 논쟁을 한다.

동물을 사랑하지만 ‘옥자’를 사지로 보내려는 작전에 대한 갈등에서 시작해 작전 성공을 위해 희

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년 동안 이어온 ALF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주

장이 오고간다. 그 와중에 한 멤버는 지독한 동물 사랑에 거의 모든 음식을 거부하며 극도로 쇠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결국 멤버 중 하나인 케이(스티븐 연 분)가 미자와 다른 멤버들을 속이고 ‘옥

자’를 미국에 보내버린다.

이 장면은 마치 <옥자>를 두고 영화냐 아니냐를 갑론을박하는 영화 애호가들을 연상하게 한

다. 영화(映畵)의 한자를 그대로 해석하면 ‘그림을 비춘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림은 아날로그

형태의 ‘영화(film)’를 의미하는데 영화의 시작은 필름(film)을 빼고는 얘기할 수 없다. 실제와 같이 움

직이는 동영상을 군중들 앞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영화 기술은 필름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필름에 저장된 연속된 이미지를 영사기를 통해 비추어 군중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주는 초기의 영

화 기술은 기술의 한계와 가격 문제로 인해 실내에서, 대단위의 군중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구현해 낸 실제처럼 움직이는 이미지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은 폭발적

이었고, 기술적 한계와 높은 가격은 영화관과 흥행 산업이라는 제2의 피조물을 만들어냈다. 이들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갔고, 현재의 영화적인 것(영화적 스토리텔링, 영화적 장르, 영상 기술 등)을 만들

어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필름이었고, 영화 역사가 100년이 넘게 지나는 동안 영화가 필름의 예

술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영상을 디지털 방식으로 저장하고 인코

딩할 수 있는 기술이 자리 잡고 디지털 영사기까지 상용화되면서 필름은 서서히 설 곳을 잃어갔다. 그

러나 겉에서 볼 때에는 필름이라는 기록매체만 사라졌을 뿐 앞서 언급한 영화적인 것에는 변함이 없

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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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Netflix <옥자>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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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Broadcasting Trend & Insight 2017년 2호 Vol.1159

한국에서는 이미 100%에 가까운 상업영화가 디지털로 상영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 10여

년 사이에 일어난 것이지만 그것을 인지하면서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우

리는 필름 없이 영화를 얘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히려 영화의 촬영 현장까지 디지털로 바뀌어서 영

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2014)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처럼 필

름 촬영을 고집하는 것이 뉴스가 될 만큼 드문 현상이 되어버렸다.

“필름이 없어질 수 있다면 영화관도 없어질 수 있지 않을까?” <옥자>는 이런 질문을 직접적으

로 던지는 영화다. <옥자>를 만든 넷플릭스는 <옥자>를 온라인과 영화관에서 동시에 선보이겠다

고 선언했다. 그것은 다르게 말하면 ‘반드시 영화관에서만 상영하지는 않겠다’는 선언과 같다. 이 선언

에 대해 프랑스 극장 협회는 “극장 개봉을 하지 않는 넷플릭스 작품이 극장 상영을 원칙으로 하는 칸

영화제에 진출하는 것은 위법”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6)

이에 동의하듯 2017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Pedro Almodovar) 감독은 “나는 개인적으로 큰 스크린에서 볼 수 없는 영화들에게 황금종려상 뿐

만 아니라, 그 어떤 상도 수여하는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고 했다.7)

한편 경쟁부문 심사위원을 맡은 미국 배우 윌 스미스(Will Smith)는 “우리 집에서 넷플릭스는 절

대적인 도움이 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전에 보지 못했던 영화(film)를 봅니다”(In my home, Netflix has

been nothing but an absolute benefit. [They] watch films they otherwise wouldn't have seen)8)라

며 넷플릭스를 통해 소비되는 것이 필름(film)이라고 부르는 ‘전통적 영화’와 다름없음을 역설했다.

<옥자>의 영화됨에 대한 논쟁이 산업적 위상에서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전술했던 것처럼 프

랑스 극장 협회는 프랑스의 법률적 위반을 근거로 상영 보이콧을 선택했다. 국내 멀티플렉스들도 상

영을 거부했다. 이유는 <옥자>와 넷플릭스가 국내 영화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것이었다. 넷플릭스

는 이 영화에 5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 숫자는 넷플릭스의 영화를 영화로 규정하지 않는 대상을 향

한 주장의 강도가 아닐까.

동물을 사랑하는 데서 함께 출발했으나 그 사랑하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옥자’를 두고

논쟁하는 ALF 멤버들과 영화를 사랑하는 것에는 차이가 없으나 영화 <옥자>를 두고 논쟁하는 영

화인과 영화산업 주체들을 보면서 관객들은 영화 <옥자>의 미자처럼 답하지 않을까.

“<옥자>랑 우리를 내버려 두세요.” 9)

INDUSTRY & POLICY

6) 장진리(2017.5.11.), '극장 개봉작만 경쟁? '옥자'가 칸에 던진 화두'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5/11/2017051100551.html

7) 강병진(2017.5.18.),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이 '옥자'의 수상 가능성에 적신호를 켰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7/05/18/story_n_16681672.html

8) Lauren Turner(2017.5.17.), 'Cannes Film Festival: Will Smith and Pedro Almodovar clash over Netflix'

http://www.bbc.com/news/entertainment-arts-39954563

9) 영화상에서 미자는 “옥자랑 산으로 갈래요”라고 답한다.

<옥자>의

영화됨에 대한

논쟁이 산업적

위상에서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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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Broadcasting Trend & Insight 2017년 2호 Vol.1160

#3 루시와 낸시의 대결

쌍둥이 자매인 루시와 낸시(틸다 스윈튼 분)는 미란도 그룹의 후계자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루시 미

란도는 쌍둥이 언니인 낸시를 런던으로 쫓아내버리고 미란도 그룹을 장악한 상태다. 루시는 기업의

이미지를 매우 중시한다. 소비자들이 꺼려하는 유전자 조작 음식을 제조하는 미란도 그룹을 친환경

적인 슈퍼 푸드 회사로 보이게 하려고 애를 쓴다. 그 일환으로 루시가 계획한 것이 ‘베스트 슈퍼 돼지

페스티벌’이다.

루시는 무려 10년을 들여 이 프로젝트를 준비했고,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옥자’는

이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할 베스트 슈퍼 돼지로 선택되어 미국으로 옮겨졌다. ‘옥자’가 보여줄 건강

함과 풍요로운 이미지를 방패삼아 유전자 조작 음식인 슈퍼 돼지 육포, 슈퍼 소시지 등의 판매를 극

대화 시킬 계획을 세웠다.

반면 낸시는 철저히 실리 위주의 경영 전략을 선호하는 경영인이다. 이미지와 마케팅보다 가격과

물량이 중요하다. 고작 이미지를 위해 10년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루시를 낸시는 이해할 수가 없

다. ‘옥자’를 학대하는 영상이 노출되면서 이미지 마케팅에 실패한 틈을 타 낸시는 루시를 끌어내리고

미란도 그룹을 다시 장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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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옥자> 루시와 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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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Broadcasting Trend & Insight 2017년 2호 Vol.1161

자본주의 시장에서 기업들은 치열하게 경쟁한다. 이것은 영화 시장에서도 결코 다르지 않다. 특

히 미디어 플랫폼 기업들은 서로가 서로를 대체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기에 그 경쟁의 강도가 매

우 심하다. 그래서 보다 영향력 있는 플랫폼은 다른 플랫폼으로 확장할 수 없는 일정 기간을 의미하

는 ‘홀드백’(Hold back)이란 것을 설정하게 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영화관은 영화 역사의 시작과 함께 존재했던 플랫폼으로서 영화 시장에서 가

장 영향력 있는, 그래서 어떤 플랫폼보다도 먼저 콘텐츠를 선보이는 플랫폼으로 자리하고 있다. 일반

적으로 영화들은 영화관에서 먼저 상영을 하고, 영화관에서 상영을 마친 후 다음 플랫폼으로 넘어가

게 되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양상이다. 그러나 정작 영화 작품 자체는 이런 플랫폼들의 경

쟁의 법칙에 소외되어 있다. 작품 본연의 힘으로 홀드백이라는 플랫폼간의 암묵적 결계를 깨보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오션스 일레븐>(Ocean's Eleven, 2001)으로 일찌감치 흥행 감독의 반열에 오른 감독 스티

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는 2005년에 160만 불(한화 약 18억 원)의 저예산영화 <버블>

(Bubble)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당시 새롭게 대두되고 있던 플랫폼인 유료 케이블과 영화관 동시 개

봉을 추진했다. 예산은 적었지만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이름값만으로도 화제가 되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그러나 박스오피스 성적은 보잘 것 없었다. 영화관들의 반발로 미국 전역에서 32개 스크린에

서만 상영할 수 있었고, 14만 5,382불(한화 약 1억 6천만 원)을 거두는 데에 그쳤다.10) 전술했던 넷

플릭스의 영화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도 비슷한 결과였다. 600만 불(한화 약 67억 원)로 제작한

이 영화는 미국 전역에서 총 8만 3,861달러(한화 약 9,340만 원)를 거두었다.11)

<옥자>는 웬만한 한국영화보다 훨씬 많은 5천만 달러(한화 약 562억 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흥행만 놓고 얘기한다면 실패한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여기에는 앞

서 미국의 예에서 볼 수 있었던 바와 같이 영화관들의 상영 거부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3

대 멀티플렉스들은 홀드백을 무너뜨리는 것이 영화 산업의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이라 했다.12) 즉, 영

화 산업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상영 거부를 선택한 것이다.

<옥자>가 극장을 개봉한 2017년 6월 29일에 함께 개봉한 영화 중 김수현 주연의 한국영화

<리얼>(감독 이사랑)이 있다. 극장 개봉 후 2주차에 접어들었을때 한 포털사이트에서 <옥자>의

관람 평점은 평균 8.4점을 기록했던 반면, <리얼>은 4.4점이었다. 포털 사이트의 관객 평점이 영화

의 작품성을 드러내는 지표는 아니겠지만 2배에 가까운 점수 차로 보아, 두 영화를 놓고 관객들의 평

가가 극명하게 나뉘고 있음은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데 <리얼>은 <옥자>의 10배 가까운 스크린

INDUSTRY & POLICY

10) http://www.imdb.com/title/tt0454792/?ref_=nm_flmg_dr_20

11) http://www.imdb.com/title/tt1365050/?ref_=nv_sr_1

12) 3대 멀티플렉스가 이에 대한 공식적인 보도자료를 낸 적은 없다. 공식적인 워딩을 담아 상영거부를 하는 것에는 부담을 가졌던 것으로 짐작되

며, 이 주장은 SBS뉴스(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259259), 스타뉴스(http://sportalkorea.mt.co.kr/

butterfly/view.php?gisa_uniq=2017061614114017825&key=&field=&section_code=A1000&search_key=y) 등을 참고했다.

작품 본연의 힘으로

홀드백이라는

플랫폼간의 암묵적

결계를 깨보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Page 8: 와 ‘옥자’1)의 평행 이론설 - KOCCA(2013) 4편의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3) 안타깝게도 10년 넘게 이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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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상영을 시작했고13), 7월 11일까지의 관객 수는 <옥자>의 2배가 넘는 45만 명을 기록했다. <옥

자>를 상영거부하면서까지 지키려 한 생태계의 건전성이 바로 이런 것일까?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선의의 피해자일까. 적어도 현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유일한 승자에 가깝

다. 넷플릭스는 가입자 기반의 BM(Business Model)을 갖춘 기업이므로 <옥자>를 선택할 때에 티

켓 판매의 증대를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라도 그랬다면 기존 영화관들과 갈등을 초래하는 동

시 개봉을 선택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넷플릭스는 궁극적으로 플랫폼으로서의 가치를 높이는 데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시장의 관심을 모을 수 있는 작품 또는 작품성으로 인정받는 작품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런 작품

을 홀드백없이 릴리스 함으로써 다른 플랫폼에 비해 차별된 가치를 가입자들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옥자>는 이런 전략에 비춰볼 때 매우 적합한 작품이었고, 다른 플랫폼과 사업자들도 넷플릭

스가 의도한 대로 움직여줬다고 볼 수 있다. 봉준호라는 한국 영화 시장의 대표적인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 3대 멀티플렉스의 상영거부로 흥행에 실패하게 생겼다는 사실은 훌륭한 기사감이 되어 수많

은 언론들이 넷플릭스라는 기업을 홍보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국내 영화관들이 외면하는 한국 감독

의 작품을 전액 투자한 미국회사라는 이미지는 새로운 가입자를 모으고, 기존 가입자의 충성도를 유

지하는 데에 효과적일 것이 틀림없다.

마치 루시로 인해 옥자와 미자가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넷플릭스로 인해 영화 <옥자>와 한국

관객이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또 루시가 오랜 연구와 희생 끝에 슈퍼 돼지를 개발한 것으로 보인 것처

럼 넷플릭스가 한국에서는 영화화될 가능성이 높지 않았던 작품을 완성시켜준 셈인 것이다.

INDUSTRY & POLICY

13)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두 영화의 공식 개봉일인 2017년 6월 29일에 <리얼>은 918개 스크린,<옥자>는 94개 스크린에서

상영했다.

출처 : Netflix <옥자>

Page 9: 와 ‘옥자’1)의 평행 이론설 - KOCCA(2013) 4편의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3) 안타깝게도 10년 넘게 이어온

방송 트렌드 & 인사이트 Broadcasting Trend & Insight 2017년 2호 Vol.1163

플랫폼과 플랫폼의 대결은 어제 오늘의 이슈가 아니다. 특정 시장의 이슈도 아니다. 모든 미디어

시장에서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갈등의 전선이다. 루시와 낸시의 갈등과 다툼, 미란도 그룹과 ALF의

대결 속에서 정작 고통 받는 주체는 ‘옥자’와 미자인 것처럼 플랫폼 대결의 전선에서 고통 받는 대상

은 영화 <옥자>와 관객뿐일지도 모른다.

#4 수만 마리의 슈퍼 돼지 농장에서 옥자를 구하다

베스트 슈퍼 피그 페스티벌은 난장판이 되고 갑작스런 낸시의 등장으로 ALF와 미자는 ‘옥자’를 구하

는 데에 실패하고 만다. 이제 그들은 직접 미란도 그룹의 비육장을 찾아나서야 했다. 비육장에 도착

한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수 천, 수만 마리의 슈퍼 돼지들이었다. 그 슈퍼 돼지들은 미란도 그룹의

깨끗하고 완벽한 육가공 시스템을 통해 하나하나 소시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미자는 극적으로 ‘옥자’

를 찾아내고 낸시와 결판을 낸 끝에 ‘옥자’를 구해내는 데에 성공한다.

영화 <옥자>는 한국 시장에서 보자면 베스트 슈퍼 돼지 급의 영화라고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한국 영화 시장에서 <옥자>만한 영화는 얼마나 될까? 아직 영화가 되지 못하고, 아직

완성이 되지 못했을지 몰라도 만만치 않은 잠재력을 가진 스토리들이 수없이 있을 것이다. 이 스토

리들 앞에 놓여 있는 산업의 시스템은 어떠한가. <옥자>의 비육장과 같은 모양새는 아닐까. 이야기

하나하나가 소중한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죽이고, 자르고,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서 먹기 좋은

소시지 같은 영화를 만드는 시스템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옥자’를 구하는 것은 미자다. 슈퍼 히어로처럼 초능력을 가지지도 않았고, 남과 다른 지혜

를 가진 것도 아니며, 위대한 조력자의 도움을 받거나 남들을 설득하는 매력을 갖지도 못한 그냥 평

범한 미자다. 그런 미자는 어떻게 ‘옥자’를 구할 수 있었을까. ‘옥자’를 사랑했고 ‘옥자’ 구하기를 포기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뻔하지만 그래서 허탈하기까지 하지만 평범 그 자체인 미자에게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슈퍼 돼지들을 구할 여력은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옥자’

만은 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화 시장 시스템 앞에 놓인 저 작품들은 누가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어떤

영웅이나 탁월한 정책, 다른 영역에서 혜성 같이 나타난 조력자가 등장하기를 기다려야할까. 아니면

‘옥자’를 구원한 미자처럼, 평범한 관객들이 구원자가 될 수는 없을까. 소시지 같이 보기 편하고 천편

일률적인 작품을 쏟아내는 이 영화 시스템 속에서 생명력을 가진 작품을 살려낼 수 있는 유일한 비결

은 관객들의 영화를 향한 사랑과 열정이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현실에서 우리는 또 다른 <옥자>를

구할 수 있을까.

INDUSTRY & POLICY

우리의 영화 시장

시스템 앞에 놓인

저 작품들은 누가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