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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5 2014년 5월 7일 수요일 제393호 와 TPP협상 미루고 실익 큰 중국과 FTA에 집중해야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웃관계가 중요하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그리고 오랫동안 한국의 우방역할을 해온 미국이 시대에 따라 역할 은 달라졌지만 한반도의 통일과 미래에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의 핵개발과 일본 의 과거사 부정과 영토분쟁, 세계 경제대국을 노리는 중국의 대국굴기 전략 사이 에 낀 대한민국. 그 어느 때보다 한중일 3각 협력체제를 튼튼하게 구축하고 북한 의 비핵화를 이끌어냄으로써 남북 평화와 통일을 이끌어내야 한다. <김흥기의 파 워인터뷰>는 외교관 출신으로 정부 공직자와 국회의원을 지낸 박진 한국외국어 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를 만났다. 쉴 새 없이 달리는 정치라는 열차에 서 스스로 뛰어내려 자신을 돌아보며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지형도를 그려나가는 그는 외교관, 정치인, 학자로서의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 편집자 주 -2년 전 잠시 정치를 떠나 있겠다고 선 언한 후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10년간의 의정활동을 접고 불출마를 선언한 건 세상을 좀 더 넓게, 인생을 길 게 보고 가자는 생각에서 내린 결단이었 어요.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에서 강 의를 하며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하 고, 젊은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의 미래에 대해 고민도 해봅니다. 생활의 절반은 대학 강의에 할애하고, 나머지 절반은 세미나와 그동안 미뤄두 었던 집필활동에 할애하고 있어요. 며칠 전 한국외대 1학년 신입생 전체 1800명 을 대상으로 오바마홀에서 ‘지구촌에서 한국의 역할’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 습니다.” -외교관, 정치인, 대학교수 가운데 어 떤 일이 가장 보람 있고 재미있었습니 까? “정치인도 보람이 있었고, 청와대 비 서관 생활을 할 때 대통령을 모시며 옆 에서 국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지켜 보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영국에서 대학 교수 생활하다가 1993년 한국으로 돌아 와 20년 간 공직생활을 했어요. 사실 그 동안 많은 걸 경험했지만 제 삶을 스스로 정리할 여유가 없었어요. 물론 정치인으 로서 자기 경력을 계속 쌓아가는 것도 좋 겠지만 달리는 열차에서 한번 뛰어내려 한 발짝 물러나서 제 자신을 진지하게 되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한 것 같 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제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게 아주 기 쁘고 즐겁습니다. 학생들은 질문도 ‘왜 정치를 그만 두었습니까’ ‘왜 정치인이 됐습니까?’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 까’ 하고 직설적으로 던져요. 학생들과 스스럼없는 대화를 통해 제 자신을 새롭 게 발견하기도 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게 가르치 는 사람만의 특혜이지요.” -한·미 안보의 최우선 과제를 무엇으 로 봐야 할까요? “최우선 과제는 북한의 핵문제를 어떻 게 다루냐 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를 진전하도록 유도하고 필 요하면 압박할 수 있는 입체적인 전략이 계속 추진되어야 합니다. 한쪽에서는 남 북대화를 통해 북한을 설득하고 유도하 는 한편, 한쪽에서는 유엔 안보리의 제 재를 통해 북한이 스스로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도록 해야 하지요. 그 와중에 남 북이 서로 대화하며 동질화하고 남북한 경제격차를 줄여나가면 자연히 남북평 화통일 얘기가 나올 것입니다. 정치·군 사통일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는 어렵 기 때문에 경제·문화적 접근이 우선돼 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에 대해 미 국 워싱턴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남북 통일을 위해서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삼각 힘을 합해야 가능하다는 목 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한·미 동맹관계에 있어서 미국이 한 국의 평화통일에 대해 적극 지지하는 것 이 대단히 중요해요. 오바마 대통령도 남북평화통일에 대해서는 과거부터 일 관되게 지지를 표명하고 있어요. 미국이 한·미동맹 차원에서 남북통일을 지원 할 수 있도록 우리 외교를 끌고 가야합니 다. 우리 입장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통 일대박론과 신뢰프로세스가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평 화정착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신뢰를 쌓으면 경제통합을 거쳐 정치적 통합도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한국 혼 자의 힘으로 통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남북통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지 만 국제기구인 유엔의 도움도 필요합니 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인으로 서 우리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미국 뉴욕코리아소사이어티 특 강 때 반기문 사무총장을 만나서 여러 가 지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반 기문 사무총장도 한반도 안정이나 평화 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 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그걸 위해 유 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또 한 분이 김용 세계 은행 총재인데, 국적은 미국분이지만 실 제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한국정서와 남 북통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부모님이 북한에서 오신 분인데다가 개 발도상국의 문제를 너무 잘 아는 분이라 남북한 통일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 다. 김용 총재는 북한이 어떻게 가난을 탈출하고 남북한이 함께 잘살 수 있을까 를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김용 총 재를 만나서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총 장과 삼각편대를 이루어 남북한 통일대 박론을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게 좋겠다 고 얘기했습니다.” -외교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계 기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 막 올라갔을 때였 어요. 1972년 초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과거의 적대국이던 중공을 전격 방문해 사진=김태훈 기자 10년 의정활동 접고 불출마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 내려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돼 2차대전 후 EU 만든 기적 한중일 과거딛고 미래협력 10 김흥기의 파워 인터뷰 박진 前 의원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 마오쩌둥 주석과 만나서 악수한 뒤 죽의 장막이 열리고 미·중 데탕트 시대가 출 범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어린 나이에 국제정치를 잘 몰랐지만 미·중 정상의 만남은 세계사를 바꾸는 일대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 이 적국으로 생각했던 중공 지도자와 악 수 하나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남북한은 왜 협력하고 통일할 수 없을까, 라는 생 각이었지요. 당시 그 소박한 생각이 씨 앗이 되어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국제법 을 공부하고 외교관이 되고 대통령을 모 시고 국회에서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 원장까지 하게 되었어요. 만일 닉슨 대 통령이 중공을 방문해 손을 맞잡는 역사 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의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어린 나이에 외교의 힘에 대해 눈 을 떴다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원래는 의사가 될 생각으로 이과에서 공부하고 있다가 미·중 정상의 만남을 보고 국제정치를 전공하게 되었어요. 영 어공부를 하던 중 뉴스위크의 커버스토 리에 실린 ‘Nixon visits China(닉슨 중 공을 가다)’를 읽고 충격을 받았고 그 후 국제정치에 푹 빠졌어요.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이 만나기 전 키신저 박사 가 파키스탄을 통해 중공으로 가 저우언 라이 총리를 만나 미·중 역사를 바꾸는 준비외교를 펼쳤어요. 이게 모두 국가전 략이라는 생각에서 외교는 단순히 국가 와 국가의 만남 그 이상인 예술이라는 생 각을 갖게 되었어요.” -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4 개국 순방은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일 뿐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도움이 되지 않 는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순방은 나름 시기적절하고 의의도 있었어요. 일각에 서는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 차원에서 아시아 동맹국과 결속을 강화하려는 의 도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지만 저는 다 르게 봅니다. 미국은 중국이라는 강대국 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서 갈등이나 대 립 대신 협력과 공생의 관계로 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미국은 경제적으 로도 그렇고 지역질서를 유지하는 데도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 어요.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진다고 해서 미국과 사이가 멀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로섬 게임의 시각으로 한국 과 미국과 일본을 보는 관점도 있지만 한 국은 미국과 안보동맹을 굳건히 하고, 중국과 경제협력을 이끌어내야 해요. 만 일 미국이 한·중 경제협력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한국의 능력이고 외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오면서 이슈를 논의 했는데, 일본과는 집단적 자위권, 일· 중 간 영토문제가 불거진 센가쿠 열도 (댜오위다오)에서는 일본의 손을 들어주 었어요. 미국의 입장에서는 일본 동맹을 우선순위로 두고 이번 순방을 통해 아시 아회귀와 아태 재균형 정책을 실지로 증 명한 것이지요. 한국방문에서는 일본과 달라서 영토 문제나 중국과 각을 세우는 이슈가 없었 어요. 북한의 비핵화, 중국의 역할론(중 국이 북한을 설득하고 핵개발을 하지 못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렛대의 역 할), 그리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과 거사 영토문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의 -TPP가입을 서둘러야 할까요? 아니 면 좀 더 지켜봐야 할까요? “한국의 TPP가입에 대해 미국의 입장 은 한국이 FTA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 면 TPP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미국의 생각일 뿐입니다. 미국 국내에서도 TPP가 언제 체결될지 모른다고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을 배출 한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 가 나오고 있어요. 여러 나라와 FTA를 체결했지만 정작 미국은 크게 얻은 게 없 는데, TPP까지 체결하게 되면 다른 나 라만 좋아지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비 판이 제기되고 있어요. 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 정치권에서 TPP를 어 떻게 처리할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미리 준비는 철저히 해두되, 11월 미국 생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 로 보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선물로 한국 은 미국에게 FTA추가 협상을 해주면서 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얻어낸 게 아무것도 없다는 시각이 있습 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한·미 FTA는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협정입니다. 미국은 오히려 한국에게 자 국에 이득이 된 게 없다는 입장이 강해 요. 중국과 대만이 미국과 FTA를 체결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은 유리한 입 장에서 미국과의 교역과 투자를 늘려나 갈 수 있어요. 한·미FTA를 잘 활용하 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수준을 넘 어 에너지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됩 니다. 미국은 셰일가스를 자국에서 먼저 쓰고, FTA를 체결한 나라에 셰일가스를 우선 공급하는 생각을 검토하고 있어요. 미국의 셰일가스를 한국에 가져와서 한 국이 중국이나 일본, 대만으로 다시 수 출하는 에너지허브가 될 수 있어요. 한 국이 에너지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한·미FTA 덕분입니다. 미국 측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신경을 쓴 부분은 원산지 규정입니다. 한·미관계에서 FTA가 제 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는 앞으로도 꾸준 히 나올 이슈이고 FTA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주고받는 기브앤테이크(Give & Take)입니다.” 고등학교 때 적대국 닉슨 · 마오쩌둥 美 · 中수교 보고 외교관 되기로 박대통령 · 반기문 총장 · 김용총재 ‘통일대박론’ 실질적 추진했으면 美 셰일가스 도입 중국 · 일본 · 대만에 재수출 한국을 에너지허브로 중간선거 결과를 보면서 TPP가입을 추 진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한 국은 중국과의 FTA협상에 집중해야 하 지요. 중국이 스스로 개방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킬 수 있도록 높은 수준의 한·중FTA를 이끌어내는 게 더 시급한 실정입니다.”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를 통해 서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이 어떤 시 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유럽이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고서 도 유럽공동체를 만들어 낸 건 그야말로 하나의 예술입니다. 외교에 불가능한 것 은 없어요. 엄청난 희생자를 낸 세계대 전을 치른 나라들이 다 같이 앉아서 과 거를 청산하고 진정한 반성을 하고 공동 의 역사를 만들어 철강·석탄을 넘어 공 동체를 만든 건 지도자의 안목과 선견지 명이 절대적이었어요. 영국 프랑스 독일 세 나라가 역사적으로 화해를 하고 미래 를 향해 갈 수 있었다면 한·중·일 동북 아 3국도 못할 이유가 없어요. 과거의 아 픔을 딛고 미래의 협력으로 나가고 못 나 가고는 정치지도자의 책임이라고 생각 합니다. 공동의 역사를 쓰고 공동의 미 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가지도록 하는 일은 정치지도자가 할 일입니다. 한· 중·일 3국 협력사무국이 유럽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배웠으면 합니다. 환경, 문 화, 소통, 원자력의 안전성, 역사교과서 문제 등을 놓고 세 나라가 머리를 맞대고 상상력과 결단력을 발휘하기를 바랍니 다.” /정리=노정용 기자 KS에 하버드 · 옥스퍼드서 수학 대학 재학중 외무고시 합격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대학 재학 중 외무고등고시에 합격 했다. 1985년 국비장학생으로 미국 하 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에서 행정 학 석사를 거쳐 1993년 영국 옥스퍼 드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영 국 뉴캐슬대 정치학과 조교수를 거 쳐 대통령 비서실 공보비서관, 16 대·17대·18대 국회의원, 국회 한 국의원외교포럼 회장, 국제민주연 김흥기 미래창조과학부 글로벌창업 정책포럼 상임의장은 중국과학원 지식 재산최고위과정 원장, 모스크바 국립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KAIST 겸직교수 파워인터뷰 진행자 김흥기는 박진 전 의원은 누구인가? 합(IDU)부회장, 한영협회(Korea Brit- ain Society, KBS)회장, 국회 외교통상 통일위원장을 지냈다. 특히 그는 문민정 부 당시 청와대 공보·정무비서관 등을 지내며 5년간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역 을 맡기도 했다. 및 대통령직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 원, 대한민국 과학기술 대연합 공동대표 와 강원미래발전21 상임의장 등의 활동 으로 후학 양성과 살기 좋은 나라 만들기 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외교는 예술이다, 외교엔 불가능은 없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2014년 5월 7일 수요일 5 와 TPP협상 미루고 실익 큰 중국과 FTA에 …pdf.egreennews.com/393/39305.pdf · 했는데, 일본과는 집단적 자위권, 일· 중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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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14년 5월 7일 수요일 5 와 TPP협상 미루고 실익 큰 중국과 FTA에 …pdf.egreennews.com/393/39305.pdf · 했는데, 일본과는 집단적 자위권, 일· 중 간

인터뷰 52014년 5월 7일 수요일제393호

“美와 TPP협상 미루고 실익 큰 중국과 FTA에 집중해야”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웃관계가 중요하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그리고 오랫동안 한국의 우방역할을 해온 미국이 시대에 따라 역할

은 달라졌지만 한반도의 통일과 미래에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의 핵개발과 일본

의 과거사 부정과 영토분쟁, 세계 경제대국을 노리는 중국의 대국굴기 전략 사이

에 낀 대한민국. 그 어느 때보다 한중일 3각 협력체제를 튼튼하게 구축하고 북한

의 비핵화를 이끌어냄으로써 남북 평화와 통일을 이끌어내야 한다. <김흥기의 파

워인터뷰>는 외교관 출신으로 정부 공직자와 국회의원을 지낸 박진 한국외국어

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를 만났다. 쉴 새 없이 달리는 정치라는 열차에

서 스스로 뛰어내려 자신을 돌아보며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지형도를 그려나가는

그는 외교관, 정치인, 학자로서의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 편집자 주

-2년 전 잠시 정치를 떠나 있겠다고 선

언한 후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10년간의 의정활동을 접고 불출마를

선언한 건 세상을 좀 더 넓게, 인생을 길

게 보고 가자는 생각에서 내린 결단이었

어요.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에서 강

의를 하며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하

고, 젊은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의 미래에 대해 고민도 해봅니다.

생활의 절반은 대학 강의에 할애하고,

나머지 절반은 세미나와 그동안 미뤄두

었던 집필활동에 할애하고 있어요. 며칠

전 한국외대 1학년 신입생 전체 1800명

을 대상으로 오바마홀에서 ‘지구촌에서

한국의 역할’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

습니다.”

-외교관, 정치인, 대학교수 가운데 어

떤 일이 가장 보람 있고 재미있었습니

까?

“정치인도 보람이 있었고, 청와대 비

서관 생활을 할 때 대통령을 모시며 옆

에서 국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지켜

보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영국에서 대학

교수 생활하다가 1993년 한국으로 돌아

와 20년 간 공직생활을 했어요. 사실 그

동안 많은 걸 경험했지만 제 삶을 스스로

정리할 여유가 없었어요. 물론 정치인으

로서 자기 경력을 계속 쌓아가는 것도 좋

겠지만 달리는 열차에서 한번 뛰어내려

한 발짝 물러나서 제 자신을 진지하게 되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한 것 같

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제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게 아주 기

쁘고 즐겁습니다. 학생들은 질문도 ‘왜

정치를 그만 두었습니까’ ‘왜 정치인이

됐습니까?’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

까’ 하고 직설적으로 던져요. 학생들과

스스럼없는 대화를 통해 제 자신을 새롭

게 발견하기도 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게 가르치

는 사람만의 특혜이지요.”

-한·미 안보의 최우선 과제를 무엇으

로 봐야 할까요?

“최우선 과제는 북한의 핵문제를 어떻

게 다루냐 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를 진전하도록 유도하고 필

요하면 압박할 수 있는 입체적인 전략이

계속 추진되어야 합니다. 한쪽에서는 남

북대화를 통해 북한을 설득하고 유도하

는 한편, 한쪽에서는 유엔 안보리의 제

재를 통해 북한이 스스로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도록 해야 하지요. 그 와중에 남

북이 서로 대화하며 동질화하고 남북한

경제격차를 줄여나가면 자연히 남북평

화통일 얘기가 나올 것입니다. 정치·군

사통일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는 어렵

기 때문에 경제·문화적 접근이 우선돼

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에 대해 미

국 워싱턴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남북

통일을 위해서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삼각 힘을 합해야 가능하다는 목

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한·미 동맹관계에 있어서 미국이 한

국의 평화통일에 대해 적극 지지하는 것

이 대단히 중요해요. 오바마 대통령도

남북평화통일에 대해서는 과거부터 일

관되게 지지를 표명하고 있어요. 미국이

한·미동맹 차원에서 남북통일을 지원

할 수 있도록 우리 외교를 끌고 가야합니

다. 우리 입장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통

일대박론과 신뢰프로세스가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평

화정착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신뢰를

쌓으면 경제통합을 거쳐 정치적 통합도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한국 혼

자의 힘으로 통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남북통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지

만 국제기구인 유엔의 도움도 필요합니

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인으로

서 우리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미국 뉴욕코리아소사이어티 특

강 때 반기문 사무총장을 만나서 여러 가

지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반

기문 사무총장도 한반도 안정이나 평화

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

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그걸 위해 유

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또 한 분이 김용 세계

은행 총재인데, 국적은 미국분이지만 실

제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한국정서와 남

북통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부모님이 북한에서 오신 분인데다가 개

발도상국의 문제를 너무 잘 아는 분이라

남북한 통일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

다. 김용 총재는 북한이 어떻게 가난을

탈출하고 남북한이 함께 잘살 수 있을까

를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김용 총

재를 만나서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총

장과 삼각편대를 이루어 남북한 통일대

박론을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게 좋겠다

고 얘기했습니다.”

-외교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계

기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 막 올라갔을 때였

어요. 1972년 초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과거의 적대국이던 중공을 전격 방문해

사진=김태훈 기자

10년 의정활동 접고 불출마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 내려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돼

2차대전 후 EU 만든 기적

한중일 과거딛고 미래협력

10김흥기의 파워 인터뷰

박진 前 의원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

마오쩌둥 주석과 만나서 악수한 뒤 죽의

장막이 열리고 미·중 데탕트 시대가 출

범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어린 나이에 국제정치를 잘 몰랐지만

미·중 정상의 만남은 세계사를 바꾸는

일대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

이 적국으로 생각했던 중공 지도자와 악

수 하나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남북한은

왜 협력하고 통일할 수 없을까, 라는 생

각이었지요. 당시 그 소박한 생각이 씨

앗이 되어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국제법

을 공부하고 외교관이 되고 대통령을 모

시고 국회에서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

원장까지 하게 되었어요. 만일 닉슨 대

통령이 중공을 방문해 손을 맞잡는 역사

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의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어린 나이에 외교의 힘에 대해 눈

을 떴다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원래는 의사가 될 생각으로 이과에서

공부하고 있다가 미·중 정상의 만남을

보고 국제정치를 전공하게 되었어요. 영

어공부를 하던 중 뉴스위크의 커버스토

리에 실린 ‘Nixon visits China(닉슨 중

공을 가다)’를 읽고 충격을 받았고 그 후

국제정치에 푹 빠졌어요.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이 만나기 전 키신저 박사

가 파키스탄을 통해 중공으로 가 저우언

라이 총리를 만나 미·중 역사를 바꾸는

준비외교를 펼쳤어요. 이게 모두 국가전

략이라는 생각에서 외교는 단순히 국가

와 국가의 만남 그 이상인 예술이라는 생

각을 갖게 되었어요.”

-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4

개국 순방은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일 뿐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도움이 되지 않

는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순방은 나름

시기적절하고 의의도 있었어요. 일각에

서는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 차원에서

아시아 동맹국과 결속을 강화하려는 의

도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지만 저는 다

르게 봅니다. 미국은 중국이라는 강대국

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서 갈등이나 대

립 대신 협력과 공생의 관계로 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미국은 경제적으

로도 그렇고 지역질서를 유지하는 데도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

어요.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진다고 해서

미국과 사이가 멀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로섬 게임의 시각으로 한국

과 미국과 일본을 보는 관점도 있지만 한

국은 미국과 안보동맹을 굳건히 하고,

중국과 경제협력을 이끌어내야 해요. 만

일 미국이 한·중 경제협력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한국의

능력이고 외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오면서 이슈를 논의

했는데, 일본과는 집단적 자위권, 일·

중 간 영토문제가 불거진 센가쿠 열도

(댜오위다오)에서는 일본의 손을 들어주

었어요. 미국의 입장에서는 일본 동맹을

우선순위로 두고 이번 순방을 통해 아시

아회귀와 아태 재균형 정책을 실지로 증

명한 것이지요.

한국방문에서는 일본과 달라서 영토

문제나 중국과 각을 세우는 이슈가 없었

어요. 북한의 비핵화, 중국의 역할론(중

국이 북한을 설득하고 핵개발을 하지 못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렛대의 역

할), 그리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과

거사 영토문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의

-TPP가입을 서둘러야 할까요? 아니

면 좀 더 지켜봐야 할까요?

“한국의 TPP가입에 대해 미국의 입장

은 한국이 FTA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

면 TPP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미국의 생각일 뿐입니다.

미국 국내에서도 TPP가 언제 체결될지

모른다고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을 배출

한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

가 나오고 있어요. 여러 나라와 FTA를

체결했지만 정작 미국은 크게 얻은 게 없

는데, TPP까지 체결하게 되면 다른 나

라만 좋아지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비

판이 제기되고 있어요. 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 정치권에서 TPP를 어

떻게 처리할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미리 준비는 철저히 해두되, 11월 미국

생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

로 보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선물로 한국

은 미국에게 FTA추가 협상을 해주면서

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얻어낸 게 아무것도 없다는 시각이 있습

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한·미 FTA는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협정입니다. 미국은 오히려 한국에게 자

국에 이득이 된 게 없다는 입장이 강해

요. 중국과 대만이 미국과 FTA를 체결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은 유리한 입

장에서 미국과의 교역과 투자를 늘려나

갈 수 있어요. 한·미FTA를 잘 활용하

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수준을 넘

어 에너지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됩

니다. 미국은 셰일가스를 자국에서 먼저

쓰고, FTA를 체결한 나라에 셰일가스를

우선 공급하는 생각을 검토하고 있어요.

미국의 셰일가스를 한국에 가져와서 한

국이 중국이나 일본, 대만으로 다시 수

출하는 에너지허브가 될 수 있어요. 한

국이 에너지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한·미FTA 덕분입니다. 미국 측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신경을 쓴 부분은 원산지

규정입니다. 한·미관계에서 FTA가 제

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는 앞으로도 꾸준

히 나올 이슈이고 FTA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주고받는 기브앤테이크(Give &

Take)입니다.”

고등학교 때 적대국 닉슨·마오쩌둥 美·中수교 보고 외교관 되기로

박대통령·반기문 총장·김용총재 ‘통일대박론’ 실질적 추진했으면

美 셰일가스 도입 중국·일본·대만에 재수출 한국을 에너지허브로

중간선거 결과를 보면서 TPP가입을 추

진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한

국은 중국과의 FTA협상에 집중해야 하

지요. 중국이 스스로 개방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킬 수 있도록 높은 수준의

한·중FTA를 이끌어내는 게 더 시급한

실정입니다.”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를 통해

서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이 어떤 시

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유럽이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고서

도 유럽공동체를 만들어 낸 건 그야말로

하나의 예술입니다. 외교에 불가능한 것

은 없어요. 엄청난 희생자를 낸 세계대

전을 치른 나라들이 다 같이 앉아서 과

거를 청산하고 진정한 반성을 하고 공동

의 역사를 만들어 철강·석탄을 넘어 공

동체를 만든 건 지도자의 안목과 선견지

명이 절대적이었어요. 영국 프랑스 독일

세 나라가 역사적으로 화해를 하고 미래

를 향해 갈 수 있었다면 한·중·일 동북

아 3국도 못할 이유가 없어요. 과거의 아

픔을 딛고 미래의 협력으로 나가고 못 나

가고는 정치지도자의 책임이라고 생각

합니다. 공동의 역사를 쓰고 공동의 미

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가지도록 하는

일은 정치지도자가 할 일입니다. 한·

중·일 3국 협력사무국이 유럽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배웠으면 합니다. 환경, 문

화, 소통, 원자력의 안전성, 역사교과서

문제 등을 놓고 세 나라가 머리를 맞대고

상상력과 결단력을 발휘하기를 바랍니

다.”

/정리=노정용 기자

KS에 하버드·옥스퍼드서 수학…대학 재학중 외무고시 합격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대학 재학 중 외무고등고시에 합격

했다.

1985년 국비장학생으로 미국 하

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에서 행정

학 석사를 거쳐 1993년 영국 옥스퍼

드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영

국 뉴캐슬대 정치학과 조교수를 거

쳐 대통령 비서실 공보비서관, 16

대·17대·18대 국회의원, 국회 한

국의원외교포럼 회장, 국제민주연

김흥기 미래창조과학부 글로벌창업

정책포럼 상임의장은 중국과학원 지식

재산최고위과정 원장, 모스크바 국립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KAIST 겸직교수

파워인터뷰 진행자 김흥기는

박진 전 의원은 누구인가? 합(IDU)부회장, 한영협회(Korea Brit-

ain Society, KBS)회장, 국회 외교통상

통일위원장을 지냈다. 특히 그는 문민정

부 당시 청와대 공보·정무비서관 등을

지내며 5년간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역

을 맡기도 했다.

및 대통령직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

원, 대한민국 과학기술 대연합 공동대표

와 강원미래발전21 상임의장 등의 활동

으로 후학 양성과 살기 좋은 나라 만들기

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외교는 예술이다, 외교엔 불가능은 없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