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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52014년 5월 7일 수요일제393호
“美와 TPP협상 미루고 실익 큰 중국과 FTA에 집중해야”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웃관계가 중요하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 그리고 오랫동안 한국의 우방역할을 해온 미국이 시대에 따라 역할
은 달라졌지만 한반도의 통일과 미래에 대단히 중요하다. 북한의 핵개발과 일본
의 과거사 부정과 영토분쟁, 세계 경제대국을 노리는 중국의 대국굴기 전략 사이
에 낀 대한민국. 그 어느 때보다 한중일 3각 협력체제를 튼튼하게 구축하고 북한
의 비핵화를 이끌어냄으로써 남북 평화와 통일을 이끌어내야 한다. <김흥기의 파
워인터뷰>는 외교관 출신으로 정부 공직자와 국회의원을 지낸 박진 한국외국어
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를 만났다. 쉴 새 없이 달리는 정치라는 열차에
서 스스로 뛰어내려 자신을 돌아보며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지형도를 그려나가는
그는 외교관, 정치인, 학자로서의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 편집자 주
-2년 전 잠시 정치를 떠나 있겠다고 선
언한 후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10년간의 의정활동을 접고 불출마를
선언한 건 세상을 좀 더 넓게, 인생을 길
게 보고 가자는 생각에서 내린 결단이었
어요.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에서 강
의를 하며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기도 하
고, 젊은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의 미래에 대해 고민도 해봅니다.
생활의 절반은 대학 강의에 할애하고,
나머지 절반은 세미나와 그동안 미뤄두
었던 집필활동에 할애하고 있어요. 며칠
전 한국외대 1학년 신입생 전체 1800명
을 대상으로 오바마홀에서 ‘지구촌에서
한국의 역할’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
습니다.”
-외교관, 정치인, 대학교수 가운데 어
떤 일이 가장 보람 있고 재미있었습니
까?
“정치인도 보람이 있었고, 청와대 비
서관 생활을 할 때 대통령을 모시며 옆
에서 국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지켜
보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영국에서 대학
교수 생활하다가 1993년 한국으로 돌아
와 20년 간 공직생활을 했어요. 사실 그
동안 많은 걸 경험했지만 제 삶을 스스로
정리할 여유가 없었어요. 물론 정치인으
로서 자기 경력을 계속 쌓아가는 것도 좋
겠지만 달리는 열차에서 한번 뛰어내려
한 발짝 물러나서 제 자신을 진지하게 되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한 것 같
습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제 생각과
경험을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게 아주 기
쁘고 즐겁습니다. 학생들은 질문도 ‘왜
정치를 그만 두었습니까’ ‘왜 정치인이
됐습니까?’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
까’ 하고 직설적으로 던져요. 학생들과
스스럼없는 대화를 통해 제 자신을 새롭
게 발견하기도 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게 가르치
는 사람만의 특혜이지요.”
-한·미 안보의 최우선 과제를 무엇으
로 봐야 할까요?
“최우선 과제는 북한의 핵문제를 어떻
게 다루냐 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의미
있는 비핵화를 진전하도록 유도하고 필
요하면 압박할 수 있는 입체적인 전략이
계속 추진되어야 합니다. 한쪽에서는 남
북대화를 통해 북한을 설득하고 유도하
는 한편, 한쪽에서는 유엔 안보리의 제
재를 통해 북한이 스스로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도록 해야 하지요. 그 와중에 남
북이 서로 대화하며 동질화하고 남북한
경제격차를 줄여나가면 자연히 남북평
화통일 얘기가 나올 것입니다. 정치·군
사통일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는 어렵
기 때문에 경제·문화적 접근이 우선돼
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에 대해 미
국 워싱턴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남북
통일을 위해서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삼각 힘을 합해야 가능하다는 목
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한·미 동맹관계에 있어서 미국이 한
국의 평화통일에 대해 적극 지지하는 것
이 대단히 중요해요. 오바마 대통령도
남북평화통일에 대해서는 과거부터 일
관되게 지지를 표명하고 있어요. 미국이
한·미동맹 차원에서 남북통일을 지원
할 수 있도록 우리 외교를 끌고 가야합니
다. 우리 입장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통
일대박론과 신뢰프로세스가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평
화정착이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신뢰를
쌓으면 경제통합을 거쳐 정치적 통합도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한국 혼
자의 힘으로 통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남북통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지
만 국제기구인 유엔의 도움도 필요합니
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한국인으로
서 우리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미국 뉴욕코리아소사이어티 특
강 때 반기문 사무총장을 만나서 여러 가
지 의미 있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반
기문 사무총장도 한반도 안정이나 평화
에 대해 누구보다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
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그걸 위해 유
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또 한 분이 김용 세계
은행 총재인데, 국적은 미국분이지만 실
제 만나서 이야기해보니 한국정서와 남
북통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부모님이 북한에서 오신 분인데다가 개
발도상국의 문제를 너무 잘 아는 분이라
남북한 통일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
다. 김용 총재는 북한이 어떻게 가난을
탈출하고 남북한이 함께 잘살 수 있을까
를 고민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김용 총
재를 만나서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총
장과 삼각편대를 이루어 남북한 통일대
박론을 실질적으로 추진하는 게 좋겠다
고 얘기했습니다.”
-외교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된 계
기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 막 올라갔을 때였
어요. 1972년 초 미국의 닉슨대통령이
과거의 적대국이던 중공을 전격 방문해
사진=김태훈 기자
10년 의정활동 접고 불출마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 내려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돼
2차대전 후 EU 만든 기적
한중일 과거딛고 미래협력
10김흥기의 파워 인터뷰
박진 前 의원 /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석좌교수
마오쩌둥 주석과 만나서 악수한 뒤 죽의
장막이 열리고 미·중 데탕트 시대가 출
범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어린 나이에 국제정치를 잘 몰랐지만
미·중 정상의 만남은 세계사를 바꾸는
일대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
이 적국으로 생각했던 중공 지도자와 악
수 하나로 친구가 될 수 있다면 남북한은
왜 협력하고 통일할 수 없을까, 라는 생
각이었지요. 당시 그 소박한 생각이 씨
앗이 되어 서울대 법대에 진학해 국제법
을 공부하고 외교관이 되고 대통령을 모
시고 국회에서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
원장까지 하게 되었어요. 만일 닉슨 대
통령이 중공을 방문해 손을 맞잡는 역사
적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의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 어린 나이에 외교의 힘에 대해 눈
을 떴다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원래는 의사가 될 생각으로 이과에서
공부하고 있다가 미·중 정상의 만남을
보고 국제정치를 전공하게 되었어요. 영
어공부를 하던 중 뉴스위크의 커버스토
리에 실린 ‘Nixon visits China(닉슨 중
공을 가다)’를 읽고 충격을 받았고 그 후
국제정치에 푹 빠졌어요.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이 만나기 전 키신저 박사
가 파키스탄을 통해 중공으로 가 저우언
라이 총리를 만나 미·중 역사를 바꾸는
준비외교를 펼쳤어요. 이게 모두 국가전
략이라는 생각에서 외교는 단순히 국가
와 국가의 만남 그 이상인 예술이라는 생
각을 갖게 되었어요.”
-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4
개국 순방은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일 뿐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도움이 되지 않
는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순방은 나름
시기적절하고 의의도 있었어요. 일각에
서는 중국에 대한 견제와 압박 차원에서
아시아 동맹국과 결속을 강화하려는 의
도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지만 저는 다
르게 봅니다. 미국은 중국이라는 강대국
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서 갈등이나 대
립 대신 협력과 공생의 관계로 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미국은 경제적으
로도 그렇고 지역질서를 유지하는 데도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
어요. 한국이 중국과 가까워진다고 해서
미국과 사이가 멀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로섬 게임의 시각으로 한국
과 미국과 일본을 보는 관점도 있지만 한
국은 미국과 안보동맹을 굳건히 하고,
중국과 경제협력을 이끌어내야 해요. 만
일 미국이 한·중 경제협력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이 한국의
능력이고 외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오면서 이슈를 논의
했는데, 일본과는 집단적 자위권, 일·
중 간 영토문제가 불거진 센가쿠 열도
(댜오위다오)에서는 일본의 손을 들어주
었어요. 미국의 입장에서는 일본 동맹을
우선순위로 두고 이번 순방을 통해 아시
아회귀와 아태 재균형 정책을 실지로 증
명한 것이지요.
한국방문에서는 일본과 달라서 영토
문제나 중국과 각을 세우는 이슈가 없었
어요. 북한의 비핵화, 중국의 역할론(중
국이 북한을 설득하고 핵개발을 하지 못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렛대의 역
할), 그리고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과
거사 영토문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의
-TPP가입을 서둘러야 할까요? 아니
면 좀 더 지켜봐야 할까요?
“한국의 TPP가입에 대해 미국의 입장
은 한국이 FTA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
면 TPP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미국의 생각일 뿐입니다.
미국 국내에서도 TPP가 언제 체결될지
모른다고 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을 배출
한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
가 나오고 있어요. 여러 나라와 FTA를
체결했지만 정작 미국은 크게 얻은 게 없
는데, TPP까지 체결하게 되면 다른 나
라만 좋아지게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비
판이 제기되고 있어요. 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는 미국 정치권에서 TPP를 어
떻게 처리할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미리 준비는 철저히 해두되, 11월 미국
생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
로 보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 선물로 한국
은 미국에게 FTA추가 협상을 해주면서
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얻어낸 게 아무것도 없다는 시각이 있습
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한·미 FTA는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
협정입니다. 미국은 오히려 한국에게 자
국에 이득이 된 게 없다는 입장이 강해
요. 중국과 대만이 미국과 FTA를 체결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은 유리한 입
장에서 미국과의 교역과 투자를 늘려나
갈 수 있어요. 한·미FTA를 잘 활용하
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수준을 넘
어 에너지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됩
니다. 미국은 셰일가스를 자국에서 먼저
쓰고, FTA를 체결한 나라에 셰일가스를
우선 공급하는 생각을 검토하고 있어요.
미국의 셰일가스를 한국에 가져와서 한
국이 중국이나 일본, 대만으로 다시 수
출하는 에너지허브가 될 수 있어요. 한
국이 에너지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한·미FTA 덕분입니다. 미국 측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신경을 쓴 부분은 원산지
규정입니다. 한·미관계에서 FTA가 제
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는 앞으로도 꾸준
히 나올 이슈이고 FTA는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주고받는 기브앤테이크(Give &
Take)입니다.”
고등학교 때 적대국 닉슨·마오쩌둥 美·中수교 보고 외교관 되기로
박대통령·반기문 총장·김용총재 ‘통일대박론’ 실질적 추진했으면
美 셰일가스 도입 중국·일본·대만에 재수출 한국을 에너지허브로
중간선거 결과를 보면서 TPP가입을 추
진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한
국은 중국과의 FTA협상에 집중해야 하
지요. 중국이 스스로 개방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킬 수 있도록 높은 수준의
한·중FTA를 이끌어내는 게 더 시급한
실정입니다.”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를 통해
서 한국과 중국, 한국과 일본이 어떤 시
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유럽이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르고서
도 유럽공동체를 만들어 낸 건 그야말로
하나의 예술입니다. 외교에 불가능한 것
은 없어요. 엄청난 희생자를 낸 세계대
전을 치른 나라들이 다 같이 앉아서 과
거를 청산하고 진정한 반성을 하고 공동
의 역사를 만들어 철강·석탄을 넘어 공
동체를 만든 건 지도자의 안목과 선견지
명이 절대적이었어요. 영국 프랑스 독일
세 나라가 역사적으로 화해를 하고 미래
를 향해 갈 수 있었다면 한·중·일 동북
아 3국도 못할 이유가 없어요. 과거의 아
픔을 딛고 미래의 협력으로 나가고 못 나
가고는 정치지도자의 책임이라고 생각
합니다. 공동의 역사를 쓰고 공동의 미
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가지도록 하는
일은 정치지도자가 할 일입니다. 한·
중·일 3국 협력사무국이 유럽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배웠으면 합니다. 환경, 문
화, 소통, 원자력의 안전성, 역사교과서
문제 등을 놓고 세 나라가 머리를 맞대고
상상력과 결단력을 발휘하기를 바랍니
다.”
/정리=노정용 기자
KS에 하버드·옥스퍼드서 수학…대학 재학중 외무고시 합격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대학 재학 중 외무고등고시에 합격
했다.
1985년 국비장학생으로 미국 하
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에서 행정
학 석사를 거쳐 1993년 영국 옥스퍼
드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영
국 뉴캐슬대 정치학과 조교수를 거
쳐 대통령 비서실 공보비서관, 16
대·17대·18대 국회의원, 국회 한
국의원외교포럼 회장, 국제민주연
김흥기 미래창조과학부 글로벌창업
정책포럼 상임의장은 중국과학원 지식
재산최고위과정 원장, 모스크바 국립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KAIST 겸직교수
파워인터뷰 진행자 김흥기는
박진 전 의원은 누구인가? 합(IDU)부회장, 한영협회(Korea Brit-
ain Society, KBS)회장, 국회 외교통상
통일위원장을 지냈다. 특히 그는 문민정
부 당시 청와대 공보·정무비서관 등을
지내며 5년간 김영삼 전 대통령의 통역
을 맡기도 했다.
및 대통령직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
원, 대한민국 과학기술 대연합 공동대표
와 강원미래발전21 상임의장 등의 활동
으로 후학 양성과 살기 좋은 나라 만들기
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외교는 예술이다, 외교엔 불가능은 없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