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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 2007 DEVVIE MILMAN All right reserved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09 by Viz&Biz Press Korean translation rights arranged with Jean V.Naggar Literrary Agency rough EYA (Eric Yang Agency)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에릭양 에이전시를 통한 Jean V . Naggar Literary Agency와의 독점 계약으로 한국어 판권을 비즈앤비즈가 소유합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HOW TO THINK LIKE A GREAT GRAPHIC DESIGNERS HOW TO THINK LIKE A GREAT GRAPHIC DESIGNERS

Book renewal-위대한그래픽디자이너의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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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학기 편집디자인 과제로 진행한 책 리뉴얼 프로젝트 "위대한 그래픽 디자이너의 사유" 0912875 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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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 2007 DEVVIE MILMANAll right reserved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09 by Viz&Biz PressKorean translation rights arranged with Jean V.Naggar Literrary Agency

Through EYA (Eric Yang Agency)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에릭양 에이전시를 통한 Jean V . Naggar Literary Agency와의 독점 계약으로

한국어 판권을 비즈앤비즈가 소유합니다. 저작권법에 의하여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HOW TO THINK LIKE A GREAT GRAPHIC DESIGNERS

HOW TO THINK LIKE A GREAT GRAPHIC DESIGNERS

오늘날 가장 영량력 있고 존경 받는

그래픽 디자이너들과의 유쾌한 대화

데비 밀만 Debbi Milman

뉴욕에 있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회사인 스털린 브랜드의

파트너이자 디자인 부문 대표이다. AIGA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고 있으며,

뉴욕 SVA와 FIT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녀만의 능숙한 대화술로 인터넷 토크쇼 <Design Matters>의 호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디자인 블로그 <Skpeak Up>와 <Print>지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www.debbiemillman.com에서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데비 밀만 지음

마이클 베이르트 Michael Bierut

캐린 골드버그 Carin Goldberg

밀튼 글레이저 Milton Glaser

파울라 셰어 Paula Scher

스테판 새그마이스터 Stefan Sagmeister

네빌 브로디 Nevile Brody

피터 샤빌 Peter Savile

제임스 빅토어 James victore

존 마에다 John Maeda

폴 세허 Paul Sahre

칩 키드 Chip Kidd

제시카 헬판드 Jessica Helfand

한 그 래 픽 디 자 이 너 의

위 대 한 그

래 픽

디 자 이 너 의

사 유

위대

한그

래픽

디자이너

의사

이 책은 우리 시대 가장 성공한 그래픽 디자이

너처럼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대신 존경받는 예술가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어떻게 생

각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들려줄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의도로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 디자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

물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기술할 생각이

었다.당연히 초기의 질문들은 피상적이었고, 처음 스테프 가이

스블러의 답장을 받았을 때는 발끈했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끼리,

그리고 우리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자인이 비교적 새로운 분야임을 고려할 때 우리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이 그리 잘못된 일일까? 무엇이 논리, 신

비로움 또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가득 찬 훌륭한 두뇌를 만드는

지 정의하기란 상당히 주관적인 작업이다. 훌륭한 두뇌를 모방

하는 작업은 더욱 복잡하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고 누구나 가

질 수 있는 우아함, 열성, 예술적 기교를 통해 창조하는 방법을

알려줄 수도 없거니와 객관적인 방법 따위도 없다. 어차피 논

쟁이 많은 영역에 한 가지 더 추가하는 것이라면 디자이너의

전략적인 논리보다 더 깊이 들어가고 싶었다. 디자이너와의 깊

은 교감을 통해 그들이 무엇에서 영감을 얻어 그렇게 독특한

생각과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했다.

디자인은 브루스 마우Bruce Mau가 말하는 ‘실행력’을 지닌 원

재료에 투자하는 산업이다.실행력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물질에 실행을 유도하는 힘이다. 디자인 작업을 가장 효

과적으로 달성하려면 이 힘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FORE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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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작업은 복잡하다. 훌륭한 디자인 솔루션은 보는 이

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그 무엇뿐만 아니라 그들을

반응하게 만드는 그 무엇으로 평가된다. 디자인은 과학이

자 예술이다. 효과적이고 의미 있는 디자인은 지적 이성적

으로 엄격히 통제되어야 하며, 보는 이가 감정을 일으키거

나 믿음을 가져야 한다.따라서 디자이너는 매번 인간의 논

리와 서정성을 균형감 있게 사용해야 하며, 이 작업에는 특

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이 책을 위해 인터뷰한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을 문제 해결

활동이라고 말한다.물론 디자이너는 이보다 더 많은 작업

을 한다. 몇 가지 당연한 공통점 외에 디자이너들이 지닌 한

가지 특성은 바로 넓은 공감대다. 그들은 감수성이 풍부하

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시적으로, 또는 전자 그래픽을 통해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다.

따라서 능력 있는 디자이너는 지금처럼 감각 신호가 넘쳐

나는 시대에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메시지와 순수한 표

현을 창조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췄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모든 디자이너는 이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 예로 밀튼 글

레이저는 "당신은 존재의 신뢰성에 근거해 생각을 전달하

는군요."라고 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신뢰성에 기반해서 전달하는 훌륭한 예

술인의 아이디어와 지혜를 만날 것이다.궁극적으로 이 책

에 수록된 대화는 디자이너들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인지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범상한 창조물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알려줄 것이다.

데비 밀만 Debbie Mil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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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베이르트Michael Bierut

♦ 디자이너는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Looking Closer : Critical Writings on Graphic

Design의 공동 편집자이며 디자인 옵저버Design Observer(베이르트가 제시카 헬파

느, 윌리엄 드렉텔, 릭 포이너와 함께 만든 디자인 및 시각 문화에 대한 블로그-옮긴

이)를 만든 마이클 베이르트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이메일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런

데 답장을 받고 보니 어떻게 이렇게 재미없는 답변을 할 수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에를 들면 이런 식이다. 가장 처음으로 창조한 기억은? 그런 기억이 있는지 모르겠다.

디자인 외에 다른 직업을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없다.

마이클은 1990년부터 펜타그램Pentagram의 파트너로 일해왔고 현재 활동하는 디

자이너 중 가장 중요하고 인정받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100개가 넘는 상을 받았으며

뉴욕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상설관에 작품을 전시하는 디자이너이기

도 하다. 게다가 인간적으로 보면 멋있고, 매력 있고, 재치 있고, 총명한 사람이다. 하

지만 이메일 인터뷰 답장에는 이 같은 그의 성격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낙

담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대의 내로라하는 디자이너에 관한 책을 쓰면서 베이르트를

빼놓을 수 있겠는가. 결국 몇 번의 요청 끝에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그는 두 시간이

나 내주었고, 덕분에 이 책을 위한 인터뷰 중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운 대화가 오갔다.

마이클 베이르트Michael Bierut

시간이 없었다고 해도, 클라이언트가 멍청했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단 한가

지 중요한 점은 당신이 무엇을 디자인했느냐, 그것이 좋으냐 나쁘냐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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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펜타그램 파트너인 파울라 셰어는 어떤 점이 다르다고 보는가?

파울라 셰어는 생각하는 대로 말한다. 그런 점이 부럽다. 나는 그

럴 수 없을 것 같다. 충돌을 싫어하는 성격인데, 너무 예의 바르

게 커서 그런 것 같다! 안 좋은 점은 내 성격이 수동-공격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나의 내면에는 노이로제와 단점이 뿌리깊게 똬

리를 틀고 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사실은 세상 모든 사람이 나

를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다지 불행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데?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파울라는 예전에 나더러 30년을 참고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폭발할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다행히

지금은 좀 나아진 것 같다. 모든 사람의 지지를 받으려는 정치

인처럼 사람들에게 너무 맞추다 보면 결국 내 신념이 무엇인지

도 헷갈려버린다.사실은 언제나 자기 방식대로 일하고 자기 방

식에 맞지 않으면 대담하게 거절하는 디자이너들이 부럽다. 처

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신념이 아주 강한 친구랑 일한 적이 있

다. 물론 그는 다른 사람드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을 좋

아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

다. 하지만 나는 클라이언트가 내 아이디어를 거절하면 실패한

기분이 들고 신념이 흔들린다.

클라이언트를 직접 상대하기 시작했을 때는 클라이언트의 동

의애 너무 집착한 나머지 클라이언트의 동의가 곧 일의 성공

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프로젝트가 출판사로 넘어가기 직전

에 상사인 마시모 비그넬리가 먼저 보고 "이게 뭔가?"라고 물

은 적이 있다.

내가 "무엇무엇을 위한 작업이다."라고 대답하자 이번에는 "왜

이렇게 했는가?"라고 물었다."그들이 이렇게 저렇게 하여 이렇

게 되었다."라는 설명에 그는 "이건 아니다. 아주 잘못되었다. 이

상태로 넘길 수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는 바로 수화기

를 들고 3주 동안 날 괴롭힌 클라이언트의 상사의 상사의 상사

마시모 비그넬리 Massimo Vignelli

파울라 셰어 Paula S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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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 있죠? 지금까지 진행한 내용이

잘한 것 같지 않아 제대로 다시 해야겠습니다. 다시 해서 보내드

리겠습니다. 아직 시간 있죠?"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 자

리에 앉아 3주 동안 진행한 나의 작업 중 엉망진창인 부분을 다

뜯어내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시 만들었다. 마시모는 "일이 내

손을 벗어나면 변명하기엔 너무 늦다."라고 했다.

시간이 없었다고 해도, 클라이언트가 멍청했다고 해

도 아무 소용이 없다. 단 한가지 중요한 점은 당신이

무엇을 디자인했느냐, 그것이 좋으냐 나쁘냐는 것

뿐이다. 나는 이것저것 시도하고 작업하면 거기서 몇 가지 좋

은 결과가 나오리라 희망하며 일한다. 야구로 치자면 타율이 너

무 낮아 점수를 못 내더라도 그냥 타석에 많이 오르는 것이다.

이것이 디자이너로서 나의 지침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렇다. 나는 일을 빠르게 진행한다. 경험도 연륜도 생겼지만 '

눈 감고 소는 것'에 중독되어 있다. 사실 타깃을 맞추는 데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니다.

지금까지 타깃을 여러 번 놓쳤다면 그만두었을 텐데 여전히 같은 방

법을 사용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는 의미일 것 같은데.

그렇다. 작업이 빠르면 사람들이 천재인 줄 안다. 역시 좋지는

않다. 한가지 방법에 익숙해지면 실용적인 습관이 생기는 반면

좋지 않은 습관도 따르게 마련이다.

목요일까지 디자인 옵저버Design Observer에 글을 올리겠다고 마음먹

으면서도 미룰 때가 있다. 그러나 주제를 알고 일주일 정도 그

주제를 생각해서 준비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단

번에 써내려갈 수 있다. 팔뚝에 요점을 적어놓고 쓰는 것과 같

다. 내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처럼 보여도 무의식 속에서, 또는

잠재 의식 속에서 계속 일했던 것이다.

디자인 옵저버 Design Observer

www.designobserver.com/

예일대 건축 심포지엄 포스터

유혹 SEDUCTION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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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싹을 틔운 것인가.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글쓰기가 좋았던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는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끝내고 처음부

터 읽고 또 읽으면서 '이거 정말 잘 썼구나!'내가 이렇게 잘할 줄이

야!’라고 생각하곤 했다.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처럼. 맨 처음 디

자인시안을 만들었을 때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어. 아주 아름답고 실

용성 있고 완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단

점도 많이 보이고 그 작업에 싫증을 느끼게 마련이다.

처음 디자인을 완성했을 때도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출판된

내 디자인 작품은 아직도 지하실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나는 수

많은 샘플을 가지고 있다 25년 전에 만든 조명 회사의 브로셔도 가

지고 있다. 이 브로셔는 두 가지 색만 사용해서 디자인했는데 아

직도 20장은 족히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내 작품을 여러 개 가지

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물

론 지금 보면 그렇게 완벽하진 않지만 내 작품 중 가장 처음 출판

했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 실제성에 감탄해 또 다른 디자

인을 하고 싶은 열정으로 또 다른 디자인을 하고 싶은 열정으로 가

득 찰 정도였다.

뛰어난 사람들은 일하면서도 여러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 같

다. 그들은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집줄력을 잃지 않고 일상적

인 작업을 하면서도 지름길로 가지 않는다. 스테판 새그마이스터

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 티보 칼맨 같은 사람도 있다.

티보 칼맨 Tibor Kalman

스테판 새그마이스터 Stefan Sagmeister

<The power of time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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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보는 어떻게 실행했는가?

티보에게는 두 가지 규칙이 있다. 첫 번째는 그가 새로운 장르

의 일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미술관 전시회 브로셔 디자인을 의

뢰받았는데, 전에 미술관 전시회 브로셔를 디자인한 적이 있다

면, 전시회 디자인 경험이 없음에도 "아뇨, 저는 그 전시회를 디

자인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미 건너온 다리는 모두 태워버릴 수 있다. 그래서 되풀이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야말로 천재의 한 가지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토킹헤즈Talking Heads와 나싱 벗 플라워즈Nothing But

Flowers 애니메이션 비디오 작업을 했을 때도 텔레비전 연출자들이 수차례 전화를 걸어 "티보, 그 비디오

에 나온 글자처럼 내 광고에 글자를 넣어줄 수 있어요? 이렇게 해줄 수 있나요? 저렇게 해줄 수 있나요?"

하고 요구했다.

티보는 그가 무언가를 잘한다는 이유로 고용되는 것을 싫어했

다.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고용되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만 반복하다가는 곤경에 빠지

기 쉽다. 특히 명성을 얻은 분야의 일을 줄기차게 의뢰받았는데

더 이상 다양성을 추구할 수 없어지면 큰 기쁨이 되던 일이 이

제는 기쁨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는 기본적인 심리 반응

이다. 미로에서 먹이를 찾는 쥐와 흡사하다. 나에게 기쁨을 주

는 것을 알면 그 기쁨을 위해 반복한다. 그리고 모든 중독이 그

렇듯 결국 그 기쁨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순간이 찾아온다. 처

음에는 아주 좋았지만 열 번째에는 '흠,여기 또 있군. 이젠 사진

도 찍을 필요가 없겠어. 지하실에 있는 20장도 쓸모가 없는데'

라고 생각할 것이다.

뭔가에 중독되어 있는가?

독서.

독서? 독서를 중독으로 보는가?

나는 아무것도 읽을 것이 없을 때 가장 두렵다. 탑승한 비행기

티보 칼맨 <Talking Heads>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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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읽을 것이 없다면 지독한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심지어 극

한의 상황에서도 책을 찾는다. 아이들과 놀이 고원에 갈 때도 오

랜 기다림에 대비해 꼭 책을 챙긴다. 나 자신을 보호하려는 것

같다. 항상 머릿속을 채워 스스로 반성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

이다. 이런 점을 고치려고 많이 노력한다.

뭔가를 회피하기 위해서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셈인가?

그런 점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저 강박관념일 수도 있다. 매일

아침 3마일을 조깅해야만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정말 알고 싶은가? 우리집 지하실에 가면 지난 몇 년간의 달력

이 정리되어 있다. 이 달력을 보면 날짜별로 무엇을 했는지 표

시되어 있다. 내가 뛰지 않은 날이 있다면 세 가지 이유 중 하나

다. 아침 8시 30분에 약속이 있든지, 비가 많이 내리든지, 아니

면 체감 온도가 아닌 실제 온도가 10도 아래로 내려갈 때가. 이

조건에 부합하면 그날은 뛰지 않아도 된다. 사실 아무도 상관하

지 않는다. 내 성향일 뿐이다.

10도를 최저 기온으로 정한 이유는?

10도 아래로 내려가면 한 자릿수가 되기 때문이다 9도가 되면

뛰고 있어도 몹시 춥다. 12도라면 그리 나쁘지 않다. 9도 아래로

내려가면 추워서 견딜 수가 없다.늦게 잠드는 날은 달력에 슬픈

표정을 그려넣는다. 뛰지 않은 날은 X표시를 한다. 이런 강박관

념은 사실 피곤하다. 하지만 아침마다 운동하면 건강에는 좋다.

그럼 당신에겐 삶의 비밀을 담은 일기장이 달력이란 말인가?

그렇다.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주 싫고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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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하다. 본받을 만한 가치도 없다. 아, 그리고 또 있다. 노트를

보곤한다.

1982년부터 모으기 시작하여 79권이 있다. 줄이 없는 노트인데

요즘은 정말 찾기 힘들다.

이런 노트를 박스로 대량 구입하는가?

새것 말인가? 거의 다 써간다. 2년 전에 누가 왕창 갖다주었

다. 내 작업의 시초는 전부 이 노트 뭉치에서 찾을 수 있다. 회

의 때마다 기록한 메모와 수많은 전화번호 역시 노트에 기입해

놓았다.

한번에 몇 권씩 가지고 다니는가?

지금 쓰는 노트와 그 전 노트를 가지고 다닌다.

79번째와 80번째 노트를 가지고 다니기 시작하면서 78번 노트를 보관

한 기분이 어땠는가?

솔직히 별 느낌 없다. 지금까지 노트를 잃어버린 적이 두 번 있

는데 이 두권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한 권은 막 시작한 노

트였기에 그냥 다시 시작하면 됐지만, 런던 히드로 공항 화장실

에 두고 나온 나머지 한 권은 거의 끝나가는 것이었다. "공항 화

장실에서 왜 노트를 꺼냈느냐?"고 묻는다면 화장실에 앉았는데

아무것도 읽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책도 없고 신문도 없고

잡지도 없었다. 읽을 것 없이 화장실에 있는 것은 내가 가장 두

려워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노트를 보기 시작했고, 일을 다 본

뒤 손을 씻고 휘파람을 불면서 나왔다. 노트 잃어버린 걸 언제

쯤 알아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노트 없이도 잘산다는 세

신기할 따름이다.

가끔 회의에 노트를 안 가지고 들어가서 아무것도 못 쓸 때가 있

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질문과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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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많아진다. 나중에 다시 볼 요량인데 사실 그런 일은 거의 없

다. 벌써 다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다. 가끔 "그들이 말한 세 가지

가 뭐더라."하면서 다시 보기도 하지만, 그저 쓰는 것만으로 기

억도 더 잘되고 생각도 잘 정리되는 것 같다.

지금 펜타그램에서 내 책상을 옮기고 있다. 얼마 전 우리 회사에

입사한 직원의 책상이 구석에 있기 때문이다. 새로 온 사람을 구

석에 앉히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내 책상과 바꾸기로

했다. 그래서 내 물건을 모두 옮겨야 하는데 물론 77권의 노트

도 포함된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기 전에 사용한 달력도 빼 놓

을 수 없다. 가끔 1991년 달력을 펼쳐놓고 당시 중요하게 생각했

던 이름, 약속, 일들을 살펴본다. 내가 걱정스러워한 회의와 하

루에 전화를 네 통이나 받은 중요한 일에 대한 메모를 보면서 '

다 어디로 갔지? 지금은 어디에 있지?'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 너무 이상하다. 남는 것은 작품 뿐이다.

무엇을 했는지 증거로 남기려고 내 작품을 곁에 두는 것 같다.

물론 가끔 국세청에서 감찰을 나올 때 사용할 수도 있다. 그렇

다. 나는 만약 감찰에 걸리면 그냥 자살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요?"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잘못한 게 있다. 뭔지는 모르지만 잘못한 게 많다.

뭔지는 몰라도 나는 죄가 많다."라고 대답한다.

어떨 때 화가 나는가?

바보 같은 것 때문에. 서랍이 제대로 닫히지 않을 때 몹시 화가

난다. 여러 번 세게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이 바보 같은 게 잘

닫히지도 않는군."하며 소리 지른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잘 닫

히는지 안다. 예전에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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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도 그런 모습을 보았는가?

물론이다. 그렇지만 아내에게는 화를 내지 않는다. 누구든 겉옷

을 걸어놓지 않으면 화를 낸다. 정리정돈에도 강박증이 있다.

내가 정신과 상담을 받은 진짜 이유는 빨래에 너무 집착했기 때

문이다. 내가 우리집 빨래 담당인데 특정한 방법대로 빠느라 주

말을 다 보냈다. 간단히 설명하면 빨래를 순서대로 해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빨래를 개는 순서와 정리하는 방법이다.

다섯 식구 중에서, 아들의 바지는 특정한 방법으로 갰고, 청바

지는 청바지끼리, 면바지는 면바지끼리, 그리고 셔츠는 또 다른

방법으로 정리해야 했다. 아들은 반소매 폴로 셔츠, 반소매 셔

츠, 긴 소매 셔츠를 입으니까 먼저 칼라가 있는 폴로 셔츠를 놓

고 그 위에 긴 팔 셔츠를 놓은 뒤 마지막으로 반팔 셔츠를 놓는

식으로 정리했다.

이런 식으로 다섯 면의 옷을 순서에 따라 정리하려면 시간이 오

래 걸린다.

내가 화난 이유는 아무도 내 노력을 고마워하지 않는 것 같았

기 때문이다. 내가 어떠게 정리하든 다들 아무렇게나 빼서 입

는 바람에 정리한 게 흐트러졌다. 이것이 화낼 만한 이유가 되

냐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든 것에 어느 정도의 통제력

을 주고 싶었다.

옷을 가지런히 정리하면 기분이 좋은가?

물론이다.

요리를 좋아하는가?

나는 요리가 싫다. 다 준비해놓으면 사람들이 마구 흩뜨리기 때

문이다. 대신 설거지는 좋아한다. 깨끗하게 씻어서 완벽하게 정

리하면 몇 주씩 정갈하게 유지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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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살면서 지저분한 적이 한번도 없는가?

불행히도 지금은 없다. 어렸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내 책상도

지저분한 편이고 내 책도 지저분했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꽤 지저분한 디자이너라는 사

실이다.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그 과정은 지저

분하다.

가끔 "디자인 과정에 대한 작업을 하는데 당신의 디자인 과정

을 보여줄 수 있습니까"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뻔하다. 몇 컷의 스케치 후 중간 단계의 스케치를 거치

고 거의 완성된 작품에 이어 완성된 작품이 나오는 과정을 원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과정이 없다. 방법론적인 과정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

다. 당신의 질문은 창의력에 대한 것이 많은데, 디자인은 그다

지 창의력을 요하지 않는다. 창의력이 필요한 낱말 맞추기와 달

리 상상력과 지식만 있으면 된다. 미술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

기 때문에 창조적이지만 디자이너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

어 디자인을 한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그러면 디자인은 창의력보다 연관성에 대한 작업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내가 디자이너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이 새로운 무엇

을 발명하는 것보다 무언가의 용도를 바꾸는 작업을 하기 때문

이다. 1990년 '왜' 보고서라 부르는 켄트 헌터Kent Hunter의 타임 워

너 연차 보고서를 처음 봤는데, 그 안에는 새로운 것이 없었다.

그저 오래된 <스파이Spy>지를 찢어붙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의 대담성이 엿보였다. 여러가지 요소를 하나의 목적을 위해 통

합시켰다는 것이 놀라웠다. 자세히 살펴보면 별로 독창적인 방

법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사용한 방법이었다. 주로 만

들기를 잘하는 릭 밸리 센티RickValicenti의 것이었다. 그는 종이 한

장으로도 직관적으로 형태를 만들 수 있다. 그의 클라이언트는

그의 흥미에 맞춰 의뢰하고 그의 작업을 통해 이득을 얻는다.

02

0

누군가 나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라고 요구한다면 아

주 힘들 것이다. 정말 힘들다. 나는 결국 문제를 제기해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야 한다. 다행히 이것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일

이다. 나는 문재 풀이에서 희열을 느낀다. 마시모 비그넬리는

한 가지 작업을 여러 번 하는데 매번 조금씩 다르게 만든다. 그

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매번 조금씩 다르게 하면서 커다란 기

쁨을 느낀다. 좋은 디자이너라도 언제나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자기가 가진 능력 안에서 일하며, 아무리 폭넓게 일한

다고 생각해도 작업이 진행되면서 어느 정도의 수작업은 감수

해야 한다. 그 같은 작업이 몇몇 디자이너에게는 수많은 강박

관념 중 하나다.

당신 스스로 단점이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의 성공과 유명세는 어디에

서 기인했다고 보는가?

고등학교 때였다. SAT를 보기 전에 시험 준비를 하고 싶었다.

1970년대에는 SAT 준비 과정도 없었다. "이 시험은 준비를 할 수

없다. 실력대로 보는 것이다."라는 식이었다. 나는 연필 두 자루

를 가지고 입장해서 시험을 봤다.

다행히 SAT에서 아주 좋은 점수를 받았다. 아이비리그 대학에

장학생으로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미술에 소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픽 디자인이 뭔지도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아주 똑똑하다고 생각했기에 의사나 변호사가

아닌 예술가의 길을 걷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했다. 나는 세상

에 똑똑한 의사와 변호사는 많겠지만 똑똑한 상업 예술가는 많

지 않겠다 싶어 '똑똑한 상업 예술가가 되면 이슈가 되겠군.' 하

고 생각 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나는 똑똑한 상업 예술가다.

대학에서는 적어도 두 명이 선천적으로 나보다 더 똑똑한 디자

이너였다. 사실 상상력으로는 어느 정도밖에 이룰 수 없다. 상

상력으로만으로는 프로젝트를 따낼 수 없다. 상상력만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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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이클 베이르트가 감독한Marian Bantjes for Saks Fifth Avenue

창의력에 자극을 줄 수는 있겠지만 어떠한 솔루션도 찾을 수

가 없다. 설사 솔루션을 찾았다 하더라도 클라이언트에게 설

명할 수 없으며 많은 사람들을 당신이 의도한 방햐으로 움직

일 수도 없다.

분명 다른 것이 더 필요하다. 바로 두뇌다. 나는 내

단점과 부족함을 내 똑똑한 머리와 많은 독서량 그

리고 극도의 성실성으로 극복해왔다. 또한 더 많은

시도를 추구함으로써 극복해왔다. 내가 홈런을 더

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10배는 더 많이 시도

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더 많은 파울과 스트라이크

도 기록한다.

그렇지만 이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굳이 알릴 필요가 없

지 않겠는가?

02

2

캐린 골드버그Carin Goldberg

♦ 1983년 여름, 데이빗 보위David Bowie, 더 폴리스The police 그리고 에블린 ‘샴페

인’킹Evelyn ‘Champagne’King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 때 한 무명 가수가

연예인을 보는 우리의 문화 관점과 시각 트렌드를 영원히 바꾸어버렸다.

바로 마돈나다. 그녀의 첫 번째 앨범을 보는 순간 나는 그 어떤 것이 영원히 변화할 것

임을 짐작했다. 마돈나 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앨범 재킷의 영향력을 이야

기하는 것이다. 아주 도전적인 이 재킷은 카리스마가 훌륭하고 색달랐다. 하지만 무엇

보다 주목할 점은 마돈나가 자신의 캐릭터를 개발하기도 전에 그녀의 독특한 분위기

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 재킷은 (그리고 사진에서 마돈나가 건 목걸이는) 캐린 골

드버그가 디자인 한 것이다.

캐린은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30년이 넘은 베테랑으로 출판물, 음반, TV 방송사의

디자인과 광고 작업을 해왔다. 1082년부터는 캐린 골드버그 디자인Carin Goldberg

Design을 직접 운영하고 있따. 2001년에는 첫 번째 책인 카탈로그Catalog를 디자인하

고 출판했으며, 현재는 두 번째 책 집Home을 집필 중이다.

캐린과 나는 점심 때쯤 맨해튼의 식당에서 만나 저녁 때까지 직업상 공통점과 수명, 티

보 칼맨과의 논쟁, 위험 감수의 중요성, 파울라 셰어와의 오래된 우정, 그리고 넙치 낚

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캐린 골드버그Carin Goldberg

나는 공동 작업을 좋아한다. 차가운 다락방에서 혼자 온 몸에 물감을 묻힌 채 독한

담배를 피우는게 싫었다. 내 한구석에는 보통 언어를 사용하고 싶어 하지만, 반대

로 아주 복잡한 언어를 사용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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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디자인의 가장 좋은 점은?

일에 몰두하다 보면 무언가 충족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 시점에

도달하면 정말로 디자인에 빠진 것이다. 모든 디자이너가 이 시

점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디자인에 빠지기만을 기다린

다. 물론 작품을 만드는 작업 자체도 사랑한다.

가장 싫어하는 점은?

상투적인 특기.

상투적인 특기?

요즘은 상투적인 특기에 기초해 많은 디자인이 진행되고 있다.

이를 반박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을 말해볼까 한다. 누군

가는 예쁘게 태어나고 또 누군가는 별로 안 예쁘게 태어나지만

결국 둘 다 주름 진 노인이 된다. 우리는 모두 같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외모는 별 의미가 없다. 가장 큰 딜레마는 할 수 있

을 때 특기를 만들어서 사용할까 고민하는 것이다. 5,60대가 되

면 우리는 결국 같은 배를 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디자인 분야, 특히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 오래 일하기란

쉽지 않다. 젊은층 중심의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종종 내가 이

런 트렌드를 따르는지 새각한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길은 이

것이 아니다. 나의 관점은 이와 다르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디

자이너들은 익명으로 활동했다. 유명하지도 않았고 책을 출간

하지도 않았다. 물론 별다른 특기도 없었다. 단 한명도 말이다.

결국 이 일을 하면서 유명세를 타는 것만이 디자이너로서 수명

을 늘려나가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이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

간이 걸렸다. 나는 결코 내성적이지 않지만 나서는 것을 좋아

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편이다. 또한 특

기를 인정받아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치르면 그 사람은 비행

기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할 시간을 언

제 만드는 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정말 할 '일'이 있는 것인지도 02

6

잘 모르겠다.

당신은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고 많은 업적을 남겼다.

당신의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어릴 적 아버지와 낚시를 가곤 했

다. 아버지는 아주 외향적이었는데 작은 배를 타고 롱아일랜드

해협으로 나가곤 했다. 우리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좋은 넙치 어

장을 고대했다. 실제로 좋은 어장을 만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어장만 만나면 넙치를 큰 통으로 두

통이나 잡았다. 우리는 넙치를 집으로 가져와 이웃에 나누어주

었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넙치를 많

이 잡아오면 겨우내 넙치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 경력도 마찬가지다. 넙치 어장을 발견한 것이다. 좋은 어장

이 레코드 사업에 있을 때 이를 만났고, 또 좋은 어장이 출판 사

업에 있을 때 이를 만났다.우리는 좋은 어장을 만나기 위한 레

이더를 펴리고 있다. 한번은 '이것을 보고 있는가? 왜 다른 사람

들은 우리와 함께 넙치를 잡지 않는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우리만 이런 멋진 어장을 발견하고 고기를 잡아들이는 것을 믿

을 수 없었다.

나는 항상 이랬다. 운이 좋아 이런 좋은 어장을 만났다. 아주 좋

은 기회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운을 잡고 나면 열심히 일했

다. 남자들이 말하는 여자와 여자의 출세에 대한 상투적인 이야

기를 들으면 화가 난다. 정말이지 나는 뼈다귀를 뜯어먹는 개처

럼 집요하게 일해왔다.

많은 것을 관찰하고 보고, 또 배울 것이 많은 사람들을 찾아 어

깨 너머로 내가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려고 무던히 노력

해왔다. 따라서 내 성공은 운과 노력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02

7

새 프로젝트를 의뢰받는 것은 운일지 몰라도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

는 것은 단순하게 운만은 아닐 것이다. 안정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안정성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화가가 될수 없음을 개달은 1983년의 그때를 기억한다. 절

대 화가로서는 오래 살아남을 수 없을을 깨달았던 것이다. 이 이

야기를 강단에서도 한 적이 있다. "나는 예쁜 침대 시트와 타월

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엇다."라고 시작한다.

또한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가끔은 혼

자가 좋지만 보통 때는 싫다. 고독을 좋아하는 것은 나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어렸을 때는 혼자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종종 떠나기도 했는데,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나는 공동 작업을 좋아한다. 차가운 다락방에서 혼자

온몸에 물감을 묻힌 채 독한 담배를 피우는게 싫었다.

합의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처음 CBS 레코드와 일할 때 캐롤킹

광고용 일러스트를 밀튼 글레이저Milton glaser에게 부탁한 적이 있었

다. 처음 그에게 전화할 때는 온몸이 떨렸다. 마치 교황에게 전

화를 거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한 장짜리 캐롤킹 광고용 일러스

트를 부탁하자, 그가 작업한 것을 보내왔다. 하지만 가장 잘된

작품은 아닌 것 같았다. 어린 나이지만 알 수 있었다. 나는 그가

하나님이 세상에 내린 선물이라고 생각했기에 전화를 걸어 일러

스트를 바꿔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밀튼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미안하지만 지금 받은 것으로 만족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울어버렸다. 밀튼을 화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일주일 동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몇 년이 지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작업을 지켰던 그가 옳았음을 깨달았다.

내 작업을 내가 지지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를 가지고 놀 것이

다. 일자리를 잃을 위험도 있겠지만 넓게 보면 나를 지킴으로써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분야에 발전을 가져오는 것이다.

나는 책표지 디자인을 하는 프리랜서 친구들 때문에 화난 적이

많았다. 그들은 서류 전달이나 기계적인 부분의 비용을 하나도

02

8

받지 않았다. 내가 '우리 모두를 일하기 힘들게 만들 뿐'이라고

하면 그들은 '일거리가 없을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그래서 참

을 수 없이 화가 나는 것이다.

나는 번지점프를 아주 좋아한다. 두렵더라도 옳고

공평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 표지 디자인을 그만둔 것은 내게 커다란 모험이었다. 내 발등

을 찧는 것일 수도 있음을 알지만 더 이상 아침에 일어나 책상에

앉을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더 이상 일할

수가 없었다. 사실 이런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복

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결국에 남보다 앞서나간다. 도덕

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한단계 발전하기 때문이다.

1989년에 티보 칼맨이 당신과 파울라 셰어 그리고 루이스 필리Lois Fili

가 디자인 역사를 약탈한다고 말했는데,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다고 생

각하는가?

어떤 면에서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그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다. 그 때는 우리가 많은 것을 변화시키는

시기였다. 우선 디자인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당시 내가 하던

일을 보나 파울라 셰어나 루이스 필리가 하던 일을 봐도 변화할

수 밖에 없었음을 인정할 것이다. 디자인은 진화하고 있었다. 건

축 분야나 사진 분야를 봐도 모두 이런 변화를 겪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이전에 몰랐던 것을 발견하는 시기였다. 딱히 설명할 수

가 없었다. 이를 정의할 만한 말이 없으니 탈현대주의라고 해두

자. 남편인 짐 바이버Jim Biver는 건축에서 이 변화를 겪었다.

이런 커다란 움직임은 항상 그렇게 온다. 어느 날 갑자기 이전

에는 나오지 않았던 책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갑자기 아트디렉

터라는 직함이 싫어졌다. 더 이상 누군가의 사진을 찍고 제목을

찍어 표지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물건을 디자인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왜 변화의 촉매제라는 수식어 대신 디자인 역사의 약탈자 02

9

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인가?

파울라는 허버트 베이어Herert Bayer에 대한 존경을 표한 스와치 시

계 광고 때문에 욕을 먹었다. 나의 경우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율리시스Ulysses 표지를 디자인했다가 모더니스트 포스터를

찬양했다고 퇴짜를 맞았다. 출판사에서는 1960년대 맥나잇 코

퍼E.Mcknight Kauffer가 디자인 한 유명 표지인 큰 U처럼 뭔가 순수한

타이포그래피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전통을 보전하고 싶어

서 큰 U와 같은 디자인을 원했던 것인데, 덕분에 12개의 큰 U를

만들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그들이 고른 U가 내가 연구하면서

봤던 스위스 디자인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U에

는 콘텐츠가 없다. 출판사는 콘텐츠를 원하지 않았고 나는 콘텐

츠를 원했다. 그들은 내가 율리시스를 읽고 그 콘텐츠와 관

련된 디자인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 식으로든

콘텐츠를 반영한 디자인이 아니면 디자이너로서 본분을 다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받는다.

이 같은 상황이 올리버 삭스Oliver Sacks의 아내와 모자를 혼동한

사나이(The Man Who mistook His Whife for a Hat)표지를 디자인할 때 또 발생

했다. 출판사는 특별한 이유 없이 내가 지적인 작업을 하는 것

을 원치 않았다. 나는 뭔가 아주 초현실적이고 마그리트의 그

림 같은 디자인을 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출판사가

원하는 대로 책이 나왔고, 이 책의 표지는 내 디자인을 조직의

일원으로나 개인적으로 비판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의 좋은 먹

잇감이 됐다.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시집 표지를 디자인한다면 근본적으로 변할

수 없는 작품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다. 시 자체가 예술이다.

한 시대에 창작된 예술로서 이 작품을 대해야 한다. 릴케가 누

구였고, 그녀의 작품이 당시에는 어떠했고, 이를 어떻게 새 표

지 디자인과 접합시킬까 생각해야 한다. '새로워진' 릴케가 아

니기 때문이다. 릴케는 릴케일 뿐이다. 어떻게 독자들에게 릴

케를 알릴 수 있을까? 릴케의 시집은 단지 다시 출판되는 것뿐

03

0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율리시스Ulysses 표지

올리버 삭스Oliver Sacks의 아내와 모자를

혼동한 사나이(The Man Who mistook His Whife for a

Hat)표지

다시 쓰인 게 아니다. 데이브 에거스Eave Eggers가 릴케의 시를 다

시 쓰는 게 아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뭔가 현대적이

고 이상하고 엉뚱한 것을 만들어야 할까? 아니다. 작품의 본질

을 지키기 위해서 그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 1980년대에는 대중

이 위너리흐Wienericht에 대해 알지 못했고 바우하우스Bauhaus가 뭔지

도 몰랐다.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런 스타일이 전 세계로 퍼

졌다. 이처럼 그 당시는 우리의 시각 작업이 아무런 이름도 가

지지 못할 때였다.

그래픽 디자인 외에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있다. 화가가 되고 싶었다. 여전히 그림 그리는 방법을 찾고 싶

고 아이디어도 많다. 내 안의 한 부분이 아직도 그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하지만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래픽 디자이너의 삶을 아직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예전 작업을 보면서 "와~ 내가 한 것이지만 정말 멋있는 표지다"라고

감탄한 적이 있는가?

상황에 따라 다르다. 내가 작업했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울 수

도 있다. 그렇지만 지루하게 느낄 가능성이 크다. 그 작업을 15

년에 걸쳐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표지

디자인은 내가 별 경험이 없을 때 시작한 일이다. 지금도 그 작

업을 다시 하라면 예전과는 다르게 만들 것이 몇 개 있다. 보통

'흠, 이건 이렇게 했어도 좋았을 테데' 라고 생각할 뿐 '와~이런

걸 했다니 큰 행운이었군. 다시 봐도 멋져'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다. 가끔은 뭔가를 보고 '흠, 너무 앞서 생각했나 보다'라고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때에 따라 다르다. 근본적으로 지난일은 생

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차라리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더 관

심있다. 삶의모든 것이 그렇듯 내가 성장하고 지혜를 쌓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그 지혜를 학생들과 나누고 나의 성장에 보

탬을 줄 수 있어 자랑스럽다. 이런 점이 나를 자극한다. 뒤돌아

보면 '내가 정말 많이 배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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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지만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다.

당신의 디자인이 정말 성공적이라는 것은 어떻게 아는가?

일을 즐기면 성공한 것이다. '재미'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를 가

진다. 사람들은 '재미'있는 작업이라고 하면 콘텐츠나 중요성이

결여되어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나는 재미있고 웃기

고 따뜻하고 예술적인 시각 이미지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동시

에 피상적이지 않고 의미가 있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좋은 말

은 아니지만, 나 자신을 대중주의자이며 완전한 엘리트주의자

라고 생각한다.

내 한구석에는 보통 언어를 사용하고 싶어 하지만

반대로 아주 복잡한 언어를 사용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자각한다. 대외적으로 선언한 적은 없지만, 일

에 대해 두가지 태도를 가지고 있다. 에보트 밀러Abolt Miller의 '무엇

을 선언하는가'식 태도와 마이클 베이르트의 '개밥'식 태도 중간

쯤에 서 있는 것 같다. 이 둘 중 어느 한 가지도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성장해야 한다. 이게 우리의 일이다. 우리는 사람

들을 편하지만 너무 편하지 않게 해야 한다. 나는 사람들이 알

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도 싫어하고 사람들이 눈앞의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도 싫어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사람들을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

내가 싫어하는 작업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의심할 여지 없이 내

작업에 항상 어떤 목소리를 담으려고 한다. 간단한 것이든 복잡

한 것이든,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개인적

으로든 비판적으로든, 사람들은 내 작품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나는 항상 이것을 전제 조건으로 삼는다. 내 작품은 아름다워야

한다. 당연히 기발해야 하지만, 아름답기도 해야 한다. 나는 '기

발하기만 한' 작품을 만들만큼 인내심이 많지 않다.

가끔 기발하지만 아름답지 않은 작품을 본다. 글씨가 아름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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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에보트 밀러 Abolt Miller

않거나 공예 요소가 없는 작품도 있다. 이런 작품을 보면 화가

난다. 나는 타이포그래피는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없다면 디자이너보다 그냥 작가가 돼야 할 것이다.

아직도 탐구하고 배울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내가 해

온 일이 자랑스럽다 운이 따르고 아주 깊은 영감을 받으면서 사

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나는 지금껏

내가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얻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지만, 이상한 일도 있고 기대를 버려야 할 때도 있었지만,

그 많은 일에도 불구하고 다시 돌아간다면 역시 똑같이 할 것이

다. 내가 해온 일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을 이렇게 깊이 알기 전에는 당신이 무서웠다.

충격이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친해지기 쉬운 사

람이라고 생각한다.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 인간적으로 내

가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나는 보이는 그대로다. 더불어 꽤 인

정이 많은 사람이다. 이 점은 엄마에게 감사해야 한다. 파울라

셰어도 이 점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어다. 겸손하게 보

이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래도 누군가가 나를 무서워한다면

그건 내가 어쩔 수 없지만, 사실 나는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

이라고 생각한다.

밀튼 글레이저Milton Glaser

♦ 전설적인, 기발한, 지적인, 귀엽게 순수한.

지난 몇 년간 밀튼을 수식하기 위해 사용된 말들이다. 나는 일부러 성 대신 그의 이름

을 쓰는데, 그를 존경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존, 폴, 마이크와 같이 밀튼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바로 그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픽 디자인계의 슈퍼스타다. 딜런의 포스터와 I♥NY 아이콘을 디자인한 사람

이다. 푸시 핀Push Pin, WBMG, <뉴욕 매거진>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딴 스튜디오와 함

께한 그의 작업은 오랫동안 많은 디자이너와 팝 문화 팬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다른

디자이너들도 멋진 포스터와 아름다운 책표지, 강렬한 로고를 디자인했지만, 밀튼 글

레이저는 그가 사는 시대를 한단계 발전시킨 사람이다. 그의 완벽함과 비전이 우리를

더 높은 곳으로 이끌어주었으며,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더욱 감사해야 한다. 밀튼을 종

종 '예술'이라는 말을 둘러싼 혼동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그는 이를 '작업'으로 대체

할 것을 권장하며 다음과 같은 격언을 남겼다. "기능적인 목적을 넘어 우리를 깊고 신

비스럽게 변화시키는 작업이 훌륭한 작업이다."

밀튼 글레이저는 훌륭한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사람이다. 그가

특별하고 소중한 이유는 아무런 속임수나 과대 광고 또는 술책 없이 정직하게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이다. 그의 작업은 시대를 뛰어넘고, 깊은 뜻이 있으며, 빛나는 순

수함과 우아함을 보여준다.

밀튼 글레이저Milton Glaser

첫 번째 질문은 예전에 물어본 것이다. 가장 처음으로 창조한 기억은?

처음을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예전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희미하고 내가 나중에 만들어낸 기억이 많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과거의 기억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사촌이 종

이백을 가지고 왔는데, 내가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먹은 순간

이었다. 그가 새를 보고 싶으냐고 묻기에 종이백 안에 새를 숨

긴 줄 알았다. 그런데 사촌이 종이백에 손을 넣는 순간, 그가 연

필로 종이백에 새를 그려넣었음을 알고 감탄했다. 정말 깜짝 놀

랐다!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나는 기적을 만드는 사람

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왜 그랬나?

그가 연필과 종이로 살아 있는 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 기

억에 그 새는 꼭 진짜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기호로 나타낼

수 있는 연기, 태양, 나무 외에 다른 것을 그린다는 건 상상조차

못 했다. 살아 있는 존재를 꼭닮은 그림을 보는 순간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그때부터 내 삶은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또 다른 기억은 여덟 살 때였다. 류머티즘성 열 때문에 1년간 집

에만 있었는데, 내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매일 가져

다주는 나무 판자와 찰흙 덕분이었다. 나는 찰흙으로 집, 탱크,

전사 등을 만들었고, 하루가 지나면 모두 다시 뭉쳐서 내일은 또

어떤 것을 만들까 생각했다.

그래서 내 삶이 지속된 것이다. 내 삶, 생각 그리고 자아는 무

언가를 만들고 거기서 얻는 만족으로 지속되었다. 내가 온종일

무언가를 만드는 데 열중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내 삶에 강한 자

극이 되었다.

03

8

하루가 지나서 당신이 만든 것을 모두 없앨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이 작업도 매우 즐거웠다. 다음 날 새로운 것을 만들 찰흙이 다

시 생겼기 때문이다.

슬프지 않았다는 말인가?

반대다. 만들고 없애는 작업이 즐거웠다. 한번도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기본적으로 더 많은 경험을 하려면 내가 만든 것은 없

애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 디자이너로서 내 캐릭터인 것

같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이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때 나는 특별한 방법론을 찾아냈다. 내가 아는 것을 계속 없

앰으로써 내가 모르는 것을 찾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전문가로

서 살아가는 방식이다.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모든 것을 파괴한

다는 생각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는 아주 깊은 원리가

숨어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과 성취를 모으고 그들이 살면서 달성한 것에 대

해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자주는 아니지만 수시로 내 삶을 뒤돌아본다. 하지

만 나는 이 분야에서 아주 특이한 경력을 쌓아왔다.

기억을 믿을 수 없다고 했는데 왜 그런가?

어릴 때 살던 집에 가보니 그 집이 자신이 기억하는 것의 3분

의 1 크기였다고 생각해보라. 기억은 믿을 수 없다. 의지할 수

도 없다. 기억은 불안을 가중시키기 위해, 또는 당신을 더 멋지

게 하기 위해 재생산된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주관적

인 해석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나는 절대로 내 기억을 믿

지 않는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경제적인 성공은 얼마나 중요했는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경제적 성공이 내가 일하는 이유였던

적은 한번도 없다. 푸시 핀에서 일할 때는 파트너 중 아무도 넉넉

한 보수를 받지 못했다. 우리가 에이전시의 아트디렉터만큼 받

으려면 10년의 경력이 있어야 했다. 우리는 일주일에 고작 65달

러를 받았다! 하지만 돈이 일하는 동기가 된 적은 없다. 나는 지

금처럼 살 만큼 돈을 벌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돈이 내가

일하는 이유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나에게 일은 생존이다. 나

는 인간으로서 존재감을 위해 일해야 했다. 일을 하거나 무언가

를 만들지 않으면 불안하고 불안정했다.

왜 그런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일을 해야 한다. 얼마 전에 행복을 연구

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그것이 무엇이든 자

신의 일에 가장 몰두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일에서

내 삶의 만족과 행복을 얻는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 않다. 또한

여전히 기회와 가능성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소통, 디자인, 색

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아직 많다. 일을 하다 보면 색이나 형태

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건 좋은 느낌이다. 배움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배울 수 없거나 나의 잠재력이 바닥난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다.

생활이나 경제적 측면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일

자체가 안정감보다 더 중요했다는 점 말이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원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내 생각도 그렇

다. 이 세상에 풍요롭다고 믿으면 풍요로워질 것이다. 풍요롭지

않다고 믿으면 풍요롭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한번도 세상이 풍요

롭지 않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항상 우리에게 필요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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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것이 충분하다고 믿는다. 세상에는 충분한 아이디어가 있고

충분한 공급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풍요롭지 않다고 믿

으며, 그들이 충분한 돈이나 명예를 얻지 못하면 세상에 충분한

자원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세상에는 자원이 충분

하다. 세상에 대한 인식만 바꾸면 세상은 풍요롭다는 사실을 공

감할 것이다.

원시시대의 삶도 마찬가지다. 딱 먹을 만큼의 식량만 있었을 때

는 아무도 굶어죽지 않고 나눠먹었다. 하지만 식량이 풍족해지

자 사람들이 굶어죽기 시작했다. 식량이 많아지과 동시에 이를

약탈하는 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아주 간단한 이치이며,

거의 모든 인류 사회에 적용된다. 잉여 자원이 있는 곳에 굶어

죽는 자가 있다.

당신의 윤리적 비판론인 '그래픽 디자이너를 지옥으로 이끄는 12가지'

에 대해 몇 년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젊은 디자이너들은 집값을 낼

수 없을 때 곧장 3단계 (새 포도밭을 오래된 것처럼 나타내는 장식 디

자인하기)나 4단계(인간적으로 혐오스러운 성적 내용을 담은 책표지

디자인하기)로 가는 것이 쉽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되면 더 이상 생존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

어진다. 디자이너로서 당신은 이미 '무슨 일이 있어도 생존한다'는 경

지에 올랐다. 이름이 알려지거나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아도 생존에

자신감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많이 알려지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어도 불안해한다.

아주 흥미로운 수수께끼다. 이와 같은 논점을 가진 물음이 바로

"당신은 사랑을 가지고 사는가, 두려움을 가지고 사는가"이다.

물론 여러 가지 대답이 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영국

소설가인 아이리스 머도Iris Murdoch의 대답이다. "사랑은 당신 자신

이 아닌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랑이란

결국 다른 무언가의 진실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상이 존재함과 세상에 사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을 인정하는 것은 아주 큰 발전이다. 인간에게는 나르시시즘이

나 이기심이 깊이 뿌리 박혀 있다. 자신이 다칠지도 모르는 산황

이거나 어떤 두려움이 있을 때는 특히 더 그렇다.

따라서 "남이 가져가기 전에 내 몫을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당신은 '일을 하면 부는 따라올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커리어를 시작했

다. 이제 막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은가?

졸업을 하고 처음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을 결정

지을 일을 찾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잡지사에서 일한다면 어

시스턴트로 시작해서 하급 아트디렉터가 되고, 상급 아트디렉

터가 되는 절차를 밟는다. 10년 뒤에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

을 것이다. 그러면 다른 일을 생각할 선택권이 없어진다. 따라

서 처음 10년 동안 아주 신중해야 한다. 푸시 핀에서 좋았던 점

은 내가 돈을 많이 벌지 못했고 우리 가족의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서 형편이 나아지면 빠져나오기 어

렵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작품이 성공적인지 어떻게 아는가?

이미 반백년 넘게 이 일을 해왔다. 나는 이제 아마추어가 아니

다. 첫째, 기억력을 사용하여 과거에 해놓은 작업을 보고 그 영

향력, 힘, 우아함을 평가한다. 이때는 비판력이 있어야 한다. 자

신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엄격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 이것도 나르시시즘과 자기 보호의 문제다. 자

신의 작업을 보고 무엇이 만족스럽지 않은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분야는 다른 분야아 다르게 어느 정도 성장을 하면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내가 30년 전에 할 수 있었던 일을

이제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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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를 들면?

많은 체력을 요하는 그림이나 만들기 등이다. 생각이나 아이디

어도 많이 변했다. 찰스 올슨Charles Olson이 시에서 "막시무스는 자

신에게 말했다. 가장 단순한 것을 가장 마지막에 배우다니"라고

말한 것 같이,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가장 단순한 것을 배워왔다.

내 작업은 고등학교와 쿠퍼 유니언Cooper Union의 근대 교육을 지나

고, 근대주의와 간소주의를 거부하는 단계를 거쳐, 다시 간단하

면서도 강렬하고 직접적일 수 있다는 이념으로 돌아왔다. 하지

만 복잡함과 간소함에 대한 이념적 원칙은 없다.

요리사 시험을 볼 때 오믈렛을 만드는데, 이는 스튜와 달리 아

주 간단한 시험이다. 완벽한 오믈렛은 계란에 공기를 얼마나 집

어넣고, 팬을 얼마나 달구고, 오믈렛을 어떻게 뒤집는가에 달려

있다. 꽤 기술을 요구하는 시험인 것이다. 지원자는 그에게 요

구되는 기술이 간단한 작업으로 요약될 수 있음을 알지만, 그

작업은 완벽해야 한다. 나는 지금의 상황에서 아는 내용을 반복

하지 않는 것에 가장 관심이 있다. 아직도 내가 잘 모르고 나를

고생시킬 수 있는 것을 찾고 싶다.

친한 친구 중에 아주 성공한 디자이너가 있다. 그는 돈과 성공과

성취에 많은 가치를 두고 살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드 그

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더 이상 그를 찾지 않는다는 사

실에 굉장히 괴로워하며 일 자체에 흥미를 잃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했다. 나늑 그가 평생 일보다 일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었다

는 것을 알았다. 참으로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는 것이 없

기 때문이다. 특히 유행이 많은 것을 지배하는 분야라면 언젠가

는 내 스타일이 진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당신이 오랫동안 건재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책상에 앉아서 주문받은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잘하는 것이다. 나는 아주 고집스럽고 완고한 사람이

다. 그에 대한 보상은 언제나 그랬듯 강렬하고 사람들에게 영향

을 미치는 질 좋은 작품이다. 물론 작업 자체의 기쁨도 있다. 나

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을 즐긴다.

당신의 작업적 기복에 대해 말해달라.

내 인생에서 최악은 <뉴욕 매거진>을 처음 맡은 해였을 것이다.

뭘 해야 할지 전혀 몰랐고, 매주 끔찍한 표지를 발행했다.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편집팀과 첫 표지를 함께 결정하고 났는데 곧

이어 두 번째 표지를 며칠 안에 끝내야 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

랐다. 매주 마감해야 하는 작업은 너무 힘들다. 이 작업을 맡기

전에는 잡지사 아트디렉터로 일해본 적이 없다. 잡지사 일은 해

봤지만 아트디렉터는 아니었다.

사실 처음에는 많이 헤맸다. 매주 아주아주 보기 흉한 작업을 발

행했고, 사람들은 매주 "이렇게 흉한 표지는 처음이다"라고 고

개를 저었다. 처음 1년 동안은 너무 창피했다. 항상 시간에 쫒겼

기 때문에 뭔가를 고칠 시간 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지 깨달았고, 잡지는 마침내 정체성을 찾았다.

요즘 당신이 불안해 하는 것이 있는가?

불안이라? 어떻게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이 세상에는, 삶에

는 안심이 없다. 어느 정도의 불안감을 가지고 결국 모든 것은

변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는 것도 괜찮다. 나는 인생에서 모

든 것이 순환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내

가 50년 동안 해온 것이다. 내 사무실이 있는 이 건물에서 1965

년부터 일해왔다. 그리고 결혼한 지 50년이 되었다. 학교에서

가르친 지는 48년 정도 되었고.나는 여러가지 작업을 다시 함으

로써 어느 정도는 안정을 추구한 것 같다. 인생에서 평생 하게

되는 일이 있다. 나는 별로 모험가 기질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예전에 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아직도 하고 싶은 작업

이 있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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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모험가 기질'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신체적인 모험이다. 스노클링이나 수상스키 등 위험한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다. 내 모험은 모두 머릿속에서 이루어진다. 내 생

각은 아주 멋진 모험을 한다. 원래 이것저것 생각하기를 좋아한

다. 내 삶이 드라마틱한 요소 없이 단조로웠기 쫒문에 생각 속에

서 많은 모험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흥미로워하는 것은 몇 가지뿐이다. 12년 동안 영화관에 간

적이 한번도 없다. 음악도 집에서 듣고 콘서트는 가지 않는다.

항상 책을 읽고 일을 한다. 그리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이 짜릿하다. 나는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 가르치는 경험을 즐

긴다. 사람들이 내 가르침에 반응하는 것이 좋다. 가르칠 때는

내가 쓸모 있는 것 같아서 좋다. 내가 가르치는 것이 바로 나라

는 사실을 이해하기 때문에 꽤 좋은 선생님이 된 것 같다. 가르

치는 것은 그냥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는가?

(지오르지오) 모란디는 내 생애 가장 처음 만난 훌륭한 선생님

이다. 이탈리아에 있는 동안 그분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한번도 없다. 그는 내가 예술로 무엇을 할지 조언해준 적이 없

다. 한 번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자기 작업에 얼마나 몰두

하는지 봤고, 그가 고등학교 수준의 기초적인 에칭 수업을 가르

치면서 수업이 끝나면 바로 작업실로 돌아와 그림을 그리면서

하루를 보내고 싶어 하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작업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었다. 또는 나에게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미술가처

럼 그리고 싶으면, 그만큼 시간을 들여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

곤 했다. 우리는 그가 지지하는 믿음과 삶에 대한 태도를 보았

고 이해했다. 그가 교실에 들어오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그가 굳

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가르침이 있었다.

사람은 자신의 정통성을 통해 생각을 전달하는 것 같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할지를 유창한 언변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말

을 너무 많이 해도 비효율적이다. 말로써 가르치는 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학생들은 바로 안다. 좋은 가르침은 자신이 동경

하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 그 자체다.

당신이 지지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디자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

지고 있다. 내 독선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의 결과에 대해 생각

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나는 항상 이를 인식하고 있으며 언

제 어디서든지 필요할 때 이 문제를 제기한다. 또한 디자인 분

야의 개방성을 지지하며 그 작업이 사회와 우리가 디자인을 보

는 관점을 변화시킨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디자이너가 사회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는 '디자인

주의'운동을 시작했다. 디자이너의 영향이 아직 미약하다고 보는가?

디자이너가 지구상의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

다.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고민한다. 모

든 사람이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좋은

디자이너는 좋은 시민이어야 한다. 좋은 시민은 어떻게 하는가?

ㅅ회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고 앞장서서 무언가를 한다.디자

이너는 제품 개발이나 생산에 우리처럼 관여하지 않는 보통 사

람과는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갖는다. 우리는

기회와 함께 책임감도 갖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면서 세상을 위해 일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우리가 경쟁적이고 비판적인 환경을 만

들면, 우리도 그 안에서 고생한다.행동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한다.

마이 스페이스, 유투브, 아이팟 같은 공동체 브랜드 경험이 사람들이

공동체를 찾도록 한다고 보는가?

그렇다. 물론 악영향도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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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격리된다.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곧 지위나 계급 전쟁으로 들어선다. 욕망이나 취향 때문

에, 또는 돈을 더 잘 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이 팽배해지는 것이다. 이런 집합적인 정체성은 다른 사람

들을 소외시킨다. 우리는 이 점을 아주 조심해야 한다. 인간의

역사는 항상 이 과정을 반복해왔다. 한 종족에서 집합성이 생

기면 그 집합 밖의 사람들은 무가치하게 취급한다. 이것이 인

간 사회의 특성이다.

당신의 삶이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지금의 삶이 내가 생각한 유일한 삶이다. 종이백에 그린 새를

본 그날부터 이 길을 벗어난 적이 없다. 나는 하루하루 뭔가를

만들면서 보내고 싶었고, 지금까지 그것만 하면서 살아왔다.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파울라 셰어Michael Bierut

♦ 맨해튼의 시각적 배경은 흥분을 일으키는 전기 콜라주라고 정의할 수 있다. 42번

가의 LED 전광판과 지역 사업체들의 수제 간판, 도시를 둘러싼 광고가 다 그렇다.

파울라 셰어의 작업은 항상 뉴욕의 시각 표현과 미국의 대중 문화를 이끄는 유행을 선

도해왔다. 퍼블릭 시어터Public Theater등의 예술 기관을 위한 디자인 작업은 주제를 정확

히 짚어내 문자와 이미지를 현명하게 배치시킴으로써 표현하는 능력을 잘 보여준다.

특히 1970년대에 아틀랜틱과 CBS 레코드를 위해 만든 레코드 표지 디자인은 지금도

그 장르의 클래식으로 분류되며, 그녀의 사고력과 재치는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가진

다. 파울라는 1991년에 파트너로 펜타그램에 입사했는데, 그때부터 시티뱅크 아이덴

티티 재구성, PBS 시작 화면, 존 스튜어트Jon Stewart의 「아메리카」표지 디자인 그리

고 여러 클라이언트를 위한 환경 사인 등의 프로젝트를 맡아왔다. 그녀는 타이포그래

피 사용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대학 때까지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에 대해 잘 몰랐다고 한다. 타이포그래피 디자인을 선택한 것이 아닌데 저절로

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파울라는 디자인을 '계획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녀의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가 2차원

적 적용에서 3차원적 건축으로 많이 옮겨온 것을 보면 이 정의가 적절한 것 같다. 파울

라 셰어가 계획하고 디자인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기쁨을 만끽했으면 좋겠다.

파울라 셰어Michael Bierut

가장 처음으로 창조한 기억은?

6학년 때 벽화를 만들었다. 교통 수단에 관한 벽화였다. 그 전에

도 여러가지를 만들었겠지만, 이 벽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칭

찬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차가 달리는 고속도로를 그렸는데,

고속도로 차선을 반대로 그려서 선생님이 "영국에 있는 고속도

로인가 보다"라고 했다.

어렸을 때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었는가?

가수, 댄서, 피아니스트, 승마선수 등 뭔가 보여주는 일을 하

고 싶었다.

그래픽 디자이너는 내면에서 록가수가 되고 싶어한다는 이론을 가지

고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인가?

대학에 들어갔을 떼는 그래픽 디자인이 뭔지도 몰랐다. 3학년

이 되어서야 알았다. 내가 디자인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학교에 기본적인 바젤식 그래픽 디자인 수업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바로 '흰 배경에 흰 그림' 이었다. 흰 종이를 겹쳐서 만

드는 작품이었다. 나는 깔끔하게 만들지 못했다. 고무 시멘트와

고무 시멘트 지우개로 하는 것은 뭐든 잘하지 못했다. 그냥 내

능력 밖의 작업이었다. 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디자

인과에 들어갔다. 내가 디자이너가 될 만한 능력은 없다고 생각

한데다 일러스트가 더 표현적인 것 같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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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었나, 아니면 그

냥 운명처럼 그렇게 되었나? 당신이 미래에 이 일을 하리라는 걸 알

았나?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뭔가를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멋지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뭔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을 만들고 싶었다. 만들기 자체를 좋아했기 때문에

만들기를 하고 싶었다.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

이다. 대학 때는 타이포그래피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일을

하면서 배웠다.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았다. 하려고 하지 않았는

데 저절로 하게 됐다. 선생님이 아주 중요한 조언을 해줬다. 내

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아서 그것만 하라고. 그 분야가 좁다

하더라도 거기서 최고가 되라고 했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은

다 버리라고 했다. 아주 훌륭한 조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이

조언을 종종 떠올린다.

'그래픽 디자인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디자인'이라는 말부터 시작하면, 사전에는 '계획'이라고 되어 있

다. 나는 디자인을 계획의 예술이라고 본다. 그래픽 디자인 하

면 계획적이고, 뭔가 그래픽적이고, 만들어진 문자나 이미지가

들어있는, 영향력 있는 무언가를 포함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

다. 그러나 이는 애매모호한 말이다. 나는 그냥 나를 시각계획

자라고 표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당신이 시각계획자라고 하면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가?

아니다.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사람들이

인지하는 것보다 디자인의 영향을 더 많이 인식한다고 믿는다.

굳이 설명은 못하더라도 말이다.

요즘 뉴욕시 예술 위원회와 함께 일하는데 그래픽 디자이너를

위한 자리를 새로 만들어줬다. 너무 복잡한 사회 시스템과 계획

에서 벗어난 환경 프로젝트라 그래픽 디자이너의 조언이 필요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보면 디자인의 관객과 디자인에 대

한 이해력이 넓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원회와 함께 일하

는 것이 아주 즐겁다. 미술가, 건축가, 엔지니어, 미술사학자도

있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브루클린 박물관 관계자도 있다.

뉴욕시에서 공금을 받아 짓는 건물에 허가를 내주는 일인데 모

든 것이 예술위원회의 책임 아래 진행된다. 아주 매력있는 일

이다.

당신이 성공했다고 믿는가?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성공을 어떻게 정의

하는가? 어떤 면에서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런 점에서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성공이라고 생각하

는 중요한 부분에서 많은 성장을 거듭해왔다. 나에게 성공은 돈

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디자인하느냐다. 매일 더 성장해나가

는 여력이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다면, 나는 성공

한 것이다.

당신은 자신감 있는 사람인가?

어렸을 때는 별로 없었다. 다만 자신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싶었

다. 거만하고 필요할 때는 허세를 부릴 줄도 알았다

물론 그런 체하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25년간 일하면서 자신

감이 생겼다. 나 자신으로 나서는 것이 편안해졌다. 다른 사람

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나 자신에 만족하면서 살

고 있다.

당신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키랑 체구가 작은 사람, 완벽한 외모, 목소리가 큰 작은 사람

남편은 당신을 어떻게 보는가?

아마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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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베이르트는 당신을 어떻게 보는가?

그도 같다.

디자인 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 있는가?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가?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하는 지 설명하기는 조금 어렵다. 특별

한 순서대로 일하지는 않는다. 모든 일에는 어느 정도의 직관

적 사고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직관적 사고에 대해서 설명하기

는 너무 어렵다. 컴퓨터와 슬롯머신으로 설명할 수 있을 텐데,

내 머릿속에는 여러가지 생각이 있다. 책에서 읽은 것이나 영화

에서 본 모든 것이 머릿 속에 있다. 내가 본 모든 예술 작품, 영

감을 주는 대화, 어디서든 본 길거리 예술, 내가 구입하고, 버

리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모든 것이 있다. 나의 뇌 한쪽에는 이

런 것들이 있다.

다른 쪽은 내가 프로젝트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 솔루션은 A,

B, C, D로 이루어졌다는 간단한 개요를 생각하고 있다.

내가 슬롯머신을 당기면 내 머리 안에 있는 모든 생각이 돌아가

기 시작하고, 나는 그 중 같은 그림이 줄에 맞기를 바랄 뿐이다.

이런 사고는 혼자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는가?

지금도 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서도 하고 있다. 내 하

루는 아주 바쁘고 나는 여기저기서 많은 방해를 받는다. 넓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도, 사무실에 있을 때도, 전

화를 할 때도, 파트너와 수다를 떨 때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

는지 생각할 때도, 그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건 내 개요

에 대해 생각한다.

의식적으로 이 개요에 대해 생각하지만, 너무 골똘히 생각하지

는 않는다. 잠재의식 속에서 생각할 뿐이다. 이게 내 생활이다.

내 뇌의 한 부분은 언제나 아주 논리적인 개요에 모든 것을 맞

추려고 노력한다. 내 생각이 저절로 흘러가 내 머릿 속에 슬롯머

신에 같은 그림을 나열할 수 있도록 한다. 언제인지는 나도 모른

다. 그림이 맞지 않을 때도 있다. 물론 두려운 일이다. 이 경우에

는 숨겨 놓은 카드를 꺼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프로젝트에서

얻은 지식을 말하는데, 아주 간혹 여기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

보통은 뭔가를 개발하려고 한다. 뭔가를 개발하려면 머리 한 쪽

에서는 지금까지 쌓아놓은 지식과 경험을 이리저리 맞춰서 생

각지 못한 결함을 만들어내고, 다른 한 쪽에서는 논리적인 개요

를 짜야한다. 그리고 지식을 사용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지금까

지 해온 것을 새로운 방법으로 해나갈 무언가를 유추해내야 한

다. 이 과정이 성공적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언제나

성공적이지는 않다. 그래도 한 쪽에서 여러 정보를 꺼내오고 다

른 쪽에서 논리적인 방법론을 꺼내와 문제에 접근하고 이를 해

결하는 아주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 낼 때도 있다.

문제 해결이 성공적인지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아주 어렵다. 나는 뭔가 돌파구를 마련하는 순간에 '유레카'를

외친다. 이전에 있었던 것을 한단계 발전시키는 순간이다.

잡지건 아이덴티티이건 이전의 역사가 있고, 한 회사를 위한 아

이덴티티도 여러 세대가 있기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각 분야에는 패러다임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은 이 패러다임을 확대하여 혁신적으로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 것이다. 가끔은 다른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오기도 한

다. 이것이 내가 한꺼번에 여러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이유

이다. 지금은 사용자 매뉴얼 역할을 하는 건물을 디자인하고 있

다. 2차원 형태를 3차원 시스템에 적용시키는 중이다. 그러면 '

저 곳'의 지식이 '이 곳'에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준다.

바로 이때 돌파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디자인

에서 달성하려고 하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은 것들이 논리적인

의미를 갖도록 만들고 싶다. 여러가지 현존한 것을 재해석하고

싶다. 그러면 무엇이 가능한지에 대한 기대치를 넓힐 수 있다.

05

6

당신이 '유레카'를 외친 디자인을 고객이 거부하면 어떻게 하는가?

당신의 관점에서 보도록 어떻게 설득하는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항상 성공하지는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보수를 받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비영리 단체

와 많은 일을 한다. 내 일을 증정함으로써 내 돌파구를 찾는 것

이다.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하면 내 일에 대한 도전을 받지 않는

다. 내가 한 일을 그저 받아들인다. 돈을 주는 고객은 내 작업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때때로 좋은 보수를 주는 고객과 일하면서

돌파구를 만들 때도 있다. 한번은 내가 뭔가를 보여주기 전에 우

리가 왜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내 솔루션

을 보여주기 전에 내 이론을 증명한 것이다. 이 방법을 여러번

썼는데 점점 더 잘하는 것 같다. 추가로 할 일이 많지만 이 방법

을 더 자주 쓰려고 한다. 내가 논리적으로 원리를 설명하지 않

고 곧장 해답만 말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기하학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해답을 얻는 과

정을 증명하는 부분이 있었다. 나는 한 단계 한 단계 밟지 않고

곧장 답을 써버렸다. 내가 왜, 어떻게 답을 얻었는지 몰랐다. 설

명할 수 없는데, 선생님은 자꾸 증명하라고 했다. 나는 이런 과

정이 몹시 어렵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내 답을 사람들에게 설

명하는 일에 점점 더 노하우가 생긴다. 얼마 전에 고객이 뭔가

를 비틀어주기를 원한 적이 있는데 아주 안 좋은 생각이라는 확

신이 있었기에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고객이 나를 찾아와

그게 왜 안 좋은 생각이며 왜 그렇게 하면 안되는지 설명해 달

라고 했다. 나는 그 들의 생각이 왜 안좋은지, 왜 우리의 목적에

서 빗나가는지 진지하게 설명했다. 내 설명은 아주 설득력 있었

다.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그들은 그 아이디어가 얼마나 안 좋

은지 깨달았다. 내가 점점 나아진다는 증거다. 그렇다고 이 작

업이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둘다 맞다. 사실 남편이 나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할 것 같다. 나

는 감정적이기도 하면서 분석적이기도 하다.

프로젝트가 언제 끝나는지는 어떻게 아는가? 당신이 프로젝트를 끝

낼 때를 어떻게 아는가?

어려운 일이다. 가끔은 시간이 없어 끝날 때도 있다. 이것도 좋

은 방법이다. 이 방법으로 좋은 프로젝트를 많이 만들어냈다. 마

감일이 내가 언제 끝내야 하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는 마감일을 좋아한다. 가끔은 작업을 너무 많이 해서 더 나빠

졌기 때문에 그만둬야 할 때도 있다. 이런 때는 멈추고 다시 되

돌려야 한다. 어떤 때는 끝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든 만족한다는 것은 위험하다. 만족하지 않아야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다. 항상 이전에 달성한 것이 아닌 다음 프로젝트를 향해

야 한다. 이전에 한 것은 이미 달성한 목표다.

지난 5년이나 10년 동안 한 일을 보면 만족스러운가, 아니면 아직은

평가하기 이른가?

그저 예전의 일만 봐서는 안 된다. 내가 그 일을 할 때 언제 어

떤 상황에 있었는지, 그리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모두

이해해야 한다. 성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작업을 찾

아야 한다. 같은 것을 5년 동안 할 수는 없다. 어느 순간이 되면

버려야 한다. 모든 사람이 계속 그것을 기대한다 할지라도 말이

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말은 쉽지만 실제는 쉽지 않다. 이

것이 바로 나에게 넓은 폭이 중요한 이유다. 편집부터 환경 디

자인, 아이덴티티, 모션그래픽, 웹 디자인까지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다양한 작업을 하다 보면 새로운 방향을 찾을 수 있

다. 특히 나는 25년 동안 이 분야에 있었기 때문에 항상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를 돌아보며 좋았는지 나빴는지 생각할 겨

를이 없다. 다음 프로젝트로 들어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

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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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새로운 것은 어떻게 발견하는가?

논리적이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찾

아야 한다. 나는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하고 이 일을 해나갈 직원

을 고용하고 있다. 나는 그저 한 곳에서 나만을 위한 작업을 하

지 않는다. 나는 현실적인 일을 한다. 프로젝트를 보면 내가 언

제 극단적인 성과를 낼지, 또는 내가 언제 뭔가를 발명할지 어

느 정도는 알 수가 있다.

성공과 행복을 누리는가, 아니면 이는 지나가는 감정이라고 생각하

는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조차도 모르겠다. 보통은 내 성공이나 행

복을 아예 믿을 수가 없다.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인가?

내 미래에 대해 걱정한다.

역할 모델이 필요하면 어떻게 하는가? 영감은 어디서 얻는가? 영화나

책 말고 사람 말이다.

사람한테서 영감을 얻기란 어렵다. 많은 것을 성취한 여자는 그

리 많지 않다. 스테판 새그마이스터는 50대엔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했다. 이제 그는 60대엔 아무도 성

공하지 못한다고 한다.

당신의 한계점을 지정하는 건가? 무서운 것이 있는가?

언덕 저 너머로 가는 것.

진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가? 진심으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다. 평생 피

할 수는 없다.

당신은 아직도 건재한데 그 힘의 비결은?

나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저절로 그렇게 된 건가? 당신을 증명하기 위해?

당신이 마지막으로 한 일이 평생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것이

라고 믿는다면 아직도 할 일이 많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오

늘 내가 뭘 했는지 안다. 그 일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도 정확

히 안다. 내가 타협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가 많다. 앞으로 나아

가기 위해서 지켜야할 것들이 있다. 이것은 아주, 아주, 아주 어

렵다. 명성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저 매일 마주하는 일상

의 삶과 관련있다.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 모든 사람은 뭔가를 남기고

싶어 하고, 그 열정은 아주 값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 그 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다. 당신이 그래픽 디

자인의 성취에 대해 노하려고 이 책을 기획한 것이 맘에 든다.

모든 자료와 상장과 책에 내 사진이 실리는 것 등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 프로젝트다. 당신이 의자에 앉아 "

좋아, 아주 잘했어."라고 한다면 그건 죽음이다. 당신 자신을 죽

이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그럴 수는 없다.

잠시만 상상해보자. 5년이 지났다고. 삶의 끝에 그만큼 더 다가간 것이

다.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그림을 그리는가, 아니면 아직도 디자인을

하고 있는가? 펜타그램과 함께 있는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지금 내가 마주한 상황이다. 나는 길을 잃었다. 온

종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은 좋다.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

지만 결정의 시간이 다가오면 디자인도 버리고 싶지 않을 것이

다. 나는 디자인을 사랑한다. 디자인하는 일도 사랑한다. 나는

운이 아주 좋은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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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새그마이스터Stefan Sagmeister

♦ 스테판 새그마이스터하고 체포될 뻔한 적이 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있는

내 사무실에서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스테판이 17층 정문에 'OVER'라는 글

을 매달았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보고 "끝이다"라며 자살하려는 사람의 메

시지로 생각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경찰과 미디어가 지역의 모든 소방차와 구급차를

이끌고 왔을 때, 맨해튼 전 지역이 진정한 예술가의 악의 없는 예술 행위를 보고 있다

는 것을 알았다.

스테판 새그마이스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일화다. 그는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특별

한 재주가 있다. 뭔가를 보고 이해하고 나면, 그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을 깨닫는 데 왜 이

리 오래 걸렸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렘브란트의 그림이나 그래픽 디자인 작

품을 통해 예술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스테판은 디자인 분야에서 미술가와 록스타를 넘나드는 사람이다. 많은 칭찬과 명성에

도 불구하고 겸손하며 많은 시간을 할애해주었다. 우리는 이메일로도 소통하고 만나

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경과는 식견, 영감, 퍼포먼스 아트로 가득 찬 인터뷰였다.

스테판 새그마이스터Stefan Sagmeister

가장 처음으로 창조한 기억은?

여덟 살 때, 판 위에 여러 가지 파란색과 노란색 물감을 칠하고

그 판을 작은 정사각형으로 자른 뒤 조각들을 붙여 파란색 욕

조 안에서 터지는 노란 풍선을 만들었다. 전체적인 조합은 미

니멀리스트였던 헤르 피처 선생님이 지도했는데, 내 것은 별로

칭찬받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었는가?

가톨릭 신부님.

1년 동안 클라이언트를 받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 결정을

내린 계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간단한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

였다. 그냥 재미가 없었다. 우리는 7년 동안 음반 시장에서 일

했고, 나는 CD 재킷을 만들고 음악을 시각화하는 일이 싫증났

다. 사실은 프로젝트마다 레코드사, 매니지먼트, 가수 등 세 팀

의 클라이언트와 일하는 것도 싫었다. 우리는 종종 커다란 세

개체 사이에 떨어진 작은 공 같았다. 그러던 차에 에드 펠라Ed

Fella가 최근에 스튜디오를 방문했는데, 그가 '출구 미술'이라고 부

른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로 가득한 스케치북을 보고 깊은 인

상을 받았다. 이 밖에 티보 칼맨의 죽음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

다고 생각한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

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홍콩,

비엔나, 뉴욕을 돌아다니면서 일했고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 별로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항상 내가 하는 일을 생각하고

이에 도전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7년을 보내고 난 후, 내가

아직도 뉴욕을 많이 사랑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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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 펠라 EDWARD FELLA의

실험적 타이포그래피

는 것을 알았다. 다만 내가 하는 일을 재고할 수 있는 공간을 만

들고 싶었다. 더불어 사무실에서 일하는 데 점점 흥미를 잃어간

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점에 대해서 뭔가 조취를 취해야 했다.

내가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재미를 잃어버린다면 모든 것이 의

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한지 6년 가까이

되었다. 이제 내 일이 가치있었는지에 대해 꽤 정확한 판단을 내

릴 수 있다. 가치 있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이싸.

2년을 쉬는 동안 다시 일을 시작했을 때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없을지

도 모른다는 걱정은 안 했는가?

결정한 뒤에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

다. 그 전에는 겆정이 많았다. 몇 초 안에 잊혀질 것만 같았다.

클라이언트가 떠나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지도 몰라서 걱정했다. 그렇지

만 다시 시작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1년 동안 얻은 가장 중요한 배움은 무어인가?

많은 것을 배워다. 가끔 클라이언트한테 화난 것도 클라이언트

때문안이 아님을 깨달았다. 문제는 내 안에 있었던 것이다. 클

라이언트가 없을 때 역시 화를 내기도 하고 안 내기도 했다. 그

1년 동안 깨달은 사실은 내 안에 클라이언트와 상관없는 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당신을 화나게 하는가?

체계 없음,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화를 많이 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

도 가지고 있다. 대니 길버트Danny Gilbert와 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

이 있다. 그는 행복에 대해 깊이 연구한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

자다. 그의 연구는 외적인 사건은 우리의 행복에 놀라울 만큼

미미한 영향을 끼칠 뿐임을 증명하고 있다. 아이의 죽음과 같은

특정한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6개월 이후까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거의 없나는 것이다. 나도 그 1년 동안 내

가 가지고 있던 중요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무슨 뜻인가?

처음에는 그래픽 디자이너 말고 영화감독이 될까 생각했다. 해

볼만한 길 같았다. 루 리드Lou Reed의 뮤직비디오를 감독한 적도

있고, 영화 쪽 친구도 여럿이기 때문에 영화에 대해 문외한은 아

니었다. 내가 만족할 만한 무언가를 만들려면 한 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판단 했다. 10년 동안 무엇을 하고 어떤 학교를 다니고

그에 따르는 지출은 어떻게 감당할지 계획을 세워봤다. 이 도전

은 아주 흥미로웠고, 내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이 길을 가면

10년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이미 아는 언어를 계속 사용햇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 더 좋을지

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기에 이렇게 쓰고 도전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삶에서 배운 것들Things I've Learned in My Life So Far'

시리즈가 탄생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무엇을 하든 열심히만 하면 성공할 사람처럼 보

인다. 당신이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영화감독으로 성공하는게 의

심스러운가?

10년의 세월을 투자하기 전엔 알 수가 없다.그렇지만 내가 디자

인에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찾은 것 같다. 바로 어제 아

주 오래된 <더 뉴요커>에 실린 인디언 남자의 기사를 읽었다. 이

는 운명과 내가 지구에 온 진정한 이유를 찾은 기분에 대한 기사

였다. 내가 지구에 온 이유는 디자이너의 언어, 이미지, 의미다.

나는 디자인이 관객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좋

다. 디자인이 '미술'이 아니어서 좋고, 다른 사람들하

고 협력해야 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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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계에서 당신은 록스타와 같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가?

두 가지다. '록스타'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꽤 포괄

적인 의미를 담는 표현이 되었다. 내 친구는 얼마 전 아이를 잘

낳는 다른 친구에게 '록스타'라는 표현을 썼다. 두번째, 디자인

은 우리의 작은 세상이다. 이 세상은 내가 정확하게 인지하듯이

아주 멋진 명성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디자이너로서 우리의 명

성을 조절할 수 있다. 회의에 참석하면 모두 우리를 알고 좋아한

다. 그러면 자존감이 커진다. 회의를 끝내고 나면 아무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많은 록스타를 만나봤고 여러 다른 캐릭터를 보았다. 명성

을 즐기는 록스타도 있다.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스티븐 타일러

는 록스타의 삶을 좋아한다. 다른 스타들은 많은 곤욕을 치른다.

그들은 음악을 사랑해서 유명해졌지만, 사람들이 그냥 놔두기

를 원한다. 루 리드에게서 이런 경향을 찾을 수 있다. 명성은 불

청객일 수도 있다. 디자이너는 이런 유명세가 없다. 명성의 좋

은 점만 취하는 것 같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유명한 디자이너

는 유명한 전기공과 같다.'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결정은 언제 했는가?

열여섯살 때 작은 잡지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는데 레이아웃

을 붙이고 손으로 헤드라인을 써넣는 작업이 즐거웠다. 기증받

은 프린터기가 'e'를 항상 빼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엉터리

밴드의 일원이기도 했는데, 연습을 빼먹기 위해서 몇 시간 동안

레코드 표지만 들여다보곤 했다.

디자인에 소질이 있다는 것은 언제 알았나?

소질이란 무언가를 잘하고 싶어하는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내

가 디자인을 잘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것은 비엔나의 미술대

학에 들어간 열여덟, 열아홉살 때였다.

스티븐 타일러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주 좋은 디자이너가 되었다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는가? '그래!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한 거야. 내가 추구했던 거야'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아주 가끔 있다. 간혹 뭔가를 끝내고 프린트했을 때, 디자이너

라는 직업이 내게 잘 맞는 이유도 있다. 바로 관객의 의견에 따

라 내 생각을 쉽게 바꾼다는 점이다. 줏대가 없는 정치인 같기

도 하다. 나는 손을 들어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부는지 확인한

다. 내가 순수 미술가였다면 별로 좋지 않은 성향일 것이다. 하

지만 관객과 함께 디자인을 하는 그래픽 디자이너에게는 잘 들

어맞는다.

순수 미술가였다면 왜 좋지 않았을 것 같나?

순수 미술가는 자신을 위해 일하고 관객은 그들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는다. 물론 관객을 염두에 두고 작업하는 순수 미

술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통은 그러지 않고 그렇게 강요받

지도 않는다. 반대로 디자인 작업은 관객이 보고 이해할 수 있

어야 한다.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농담하는 것인가? 현명한 사람이면 차라리 자신의 발가락을 총

으로 쐈겠다.

그러지 말고 대답해보라.

꼭 해야 한다면 이건 어떤가? 그래픽 디자인은 그래픽 디자이너

가 만든 작업이다. 아니면 최근 네덜란드 타이포그래퍼 사이에

서 인기를 얻고 있는 낮은 엑스 하이트를 포함한, 고객의 목적

과 교통 수단의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 과정, 시스템을 시각 이

미지와 문자로 표현하는 것.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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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할 때가 있는가? 작업이 잘 되었는지 걱정할 때가 있는가?

작업이 만족스럽지 않고 졸작이 될 때 걱정한다. 가끔은 생각이

멈춰서 더 확장시킬 수가 없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는가?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다르다. 내가 에너지가 넘친다면 이

를 과감히 버리고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 이

를 그냥 두고 졸작이나 그보다 약간 나은 것을 만들 것이다. 그

순간 내 힘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에 따라 다르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으리라 생각한다. 이전에 한 일을 다시 하는 것은 언제나

가장 쉽다. 가끔은 반복하는 것도 좋을 수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반복하는 것이 어떤 점에서 좋은가?

가끔은 반복하여 이를 확장시키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나의 목표는 매 프로젝트마다 아주 새로운 것

을 시도하자였다. 물론 이는 곧 불가능하다고 판명났다. 불가능

했다. 누구에게도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스튜

디오는 여러가지 사용 가능한 방법론을 세워놓았다.

가끔은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지만, 경우에 따라 예

전에 한 것을 다시 사용할 수 있다.

뭔가를 발전시키기 위한 적절한 방법론이 있지만, 가끔은 단지

반복하는 건지 아주 새로운 것을 하는 건지 결정하기가 어렵다.

방금 가끔은 만족스럽지 않은 채로 프로젝트를 끝낸다고 했다. 얼마

나 자주 그러는가?

꽤 자주 그러는 것 같다. 작년에 한 일을 보면 프로젝트 세 개는

아주 마음에 든다. 작년에 15개의 프로젝트를 했으니까 12개의

프로젝트는 만족스럽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스튜디

오처럼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나누지 않는다. "이것은 돈이 됐고,

이것은 안 됐다" 라고 말하는 회사도 있다고 한다. 내 스튜디오

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이윤을 위해 많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

다. 그렇다고 내가 나머지 12개의 프로젝트를 부끄러워하는 것

은 아니다 대부분 좋은 콘텡츠를 가지고 있고 모두 가치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클라이언트를 위해 만든 프로젝트이다. 그리

고 모두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앞에 말한

세개의 프로젝트만큼 만족스럽지는 않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특별한 과정이 있는가?

있다. 여러가지 과정이 있는데, 프로젝트마다 그 순서가 다르

다. 여기에는 리스트를 들고, 한 프로젝트에서 다른 프로젝트로

옮겨오고, 아무 읽을거리도 없이 혼자 카페에 가서 바보처럼 앉

아 있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일하고(이 방법은 디렉터 스티

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에게 배웠다), 프로젝트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이디어의 씨앗에서부터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과정이 포

함된다. 예를 들어 교육 캠페인에 대한 디자인을 '에어컨디셔너'

란 단어에서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이는 에드워드 드 보노Edward

de Bonom가 개발한 방법이다.

의뢰를 많이 거절하는 편인가?

그렇다. 우리는 작은 스튜디오이기 때문이다. 1년에 대략 12건

의 일을 한다. 우리는 현재 140번째 일을 하는 중이다. 12~13년

간 일해왔다. 좋은 점은 우리가 보기에 가장 좋은 프로젝트만 골

라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후회하는 것이 있는가?

재디아 스미스 Zadia Smith의 「온 뷰티On Beauty」표지 디자인을 맡지

않은 것. 이 소설은 그 해 내가 가장 즐겁게 읽은 소설이었다.

스튜디오를 확장하거나 다른 사람과 파트너를 맺고 싶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스튜디오를 열기 전에 크고 작은 회사에서 일을

해봤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일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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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다. 10, 20, 30명 정도 있는 스튜디오 에서도 일해봤다. 이

런 회사를 보면 정말 좋은 작업은 그 중 세명이 만든다. 20명이

다 참여하면 좋은 작업이 나오지 않는다. 회사의 규모가 클라이

언트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은 스튜디오가 장점이 많다고 본다. 나가는 것이 많지 않기 때

문에 재정적으로 독립적일 수 있다. 또한 디자이너로 남을 수 있

다. 내 친구 중에 직원 규모가 10명에거 20명 이상으로 늘어난

친구들은 더 이상 디자이너가 아니다. 나는 경영은 최소한으로

하는 것을 좋아한다. 디자인 매니저가 되기는 싫다.

아직 달성하지 않은 것 중에 달성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디자인에서 말인가?

삶에서.

물론이다. 아직 하지 못한 것이 몇 개 있다. 트럭을 몰고 남극을

횡단해보지 못했고, 1년 동안 스리랑카에서 살아보지도 못했다.

이 두가지 모두 해보고 싶다. 디자인에서도 두 가지가 있는데,

이제는 음반 작업을 하지 않지만 킹 크림슨의 CD 재킷 디자인

을 해보고 싶다. 킹 크림슨은 내 마음에 아주 오랫동안 자리한

밴드다. 다른 하나는 아주 큰 국제 브랜드의 작업을 해보고 싶

다. 단 내가 결정권자여야 한다.

작은 스튜디오의 단 한가지 단점은 아주 큰 브랜딩 프로젝트는

대부분 큰 국제 회사로 간다는 점이다. 이 점이 아주 아쉽다. 전

세계에서 성공한 브랜드의 경우 나이키, 애플, IBM 같이 성공

적인 아이덴티티는 대부분 한 회사에서 작업한 것이다. 부분적

으로는 폴 랜드Paul Rand나 솔 배스Saul Bass가 디자인 할 당시의 프로

젝트였기 때문이다.

나는 브랜딩이 단순한 로고 디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

고 있다. 요즘 국제적인 브랜딩 회사가 하는 일은 그들이 아닌

척 해도 디자인이 아닌 컨설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컨설

킹 크림슨의 CD 재킷

팅 호사는 디자인 비즈니스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디자인 컨퍼

런스가 끝나고 이런 컨설팅 회사의 사장이나 창업자와 바에 앉

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이 하는 일이 뭔지 알 수 있다. 물

론 그들이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서비스는 그 서비스의 중심이

아니다. 브랜드를 총체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런 컨설팅 회사

는 브랜드가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하지 않는다.

그게 무엇인가?

제품의 품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품의 품질은

디자이너가 하는 일보다 훨씬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내가 가는

모든 컨퍼런스에서 사람들은 모두 같은 제품에 대해 이야기한

다. 항상 아이팟과 스타벅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제나 지난 10

년 동안 가장 성공한 제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디자인 컨퍼런스라 하더라도 이런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브랜

딩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이론이 끊임없이 쏟아져나온다. 하

지만 결국에 이 회사가 달성한 것은 어떻게 아주 좋은 제품을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이런 회사의 광고 및 브랜딩 예산을 보면

아주 적다. 맥도날드와 비교해서 스타벅스의 광고 및 브랜딩 예

싼은 아주 적다. 대부분의 고객이 품질을 보고 제품을 선택하는

것 같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소비자가 알아채지 못하는 몇 가지

부분에서 믿을 수 없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예를 들면?

물과 보드카. 소비자는 두 가지 브랜드의 생수나 보드카를 마시

고 그 차이점을 알 수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은 광고가 됐든, 병

디자인이 됐든, 병에 붙일 로고 디자인이 됐든, 아주 큰 차이점

을 만든다. 이것이 소비자의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단 하

나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동차나 커피 등 소비자가 그

차이점을 알 수 있는 제품이라면, 우리가 하는 일은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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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브랜딩 작업을 한다면, 어떤 브랜드를 위해 일하고 싶은가?

전 세계에 유통되는 브랜드면 좋겠다. 또 좋은 제품으로 해를 끼

치지 않는 제품이어야 한다. 내가 사용하고 좋아하는 제품일 수

도 있다. 버라이존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울어본 적은?

도쿄 라포렛 박물관의 피터 사빌 전시회에서 열린 이기 팝Iggy Pop

의 라이브 공연 비디오를 보면서. 아마 <러스트 포 라이프Lust for

Life>를 발표한 후인 1980년대 초의 공연일 것이다. 비디오에서

는 <더 패신저The Passenger>를 연주하면서 공연을 시작한다. 기타가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

담 하고 시작하면 관객은 흥분의 도가니가 된다. 이기의 히트

송이기 때문이다.

기타가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

담, 다다담 하면 이기가 들어와야 하는 부분인데, 들어오지 않

고 웃으면서 무대 뒤를 바라보고 서 있다.

기타가 또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

다담, 다다담 하고 이기는 계속 웃고 관객은 더 흥분한다.

기타가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

담 하면 이기는 기다리고 관객은 그가 시작하길 바란다. 관객은

흥분해서 까치발로 응원하는데 이기는 계속 기다린다.

기타가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

담, 다다담 하고 이기가 천천히 무대 앞으로 걸어온다. 이제 몇

초 후면 시작할 것 같으니까 관객은 안정을 찾는다. 기타가 다

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하고 이기는 돌아서서 이 시간을 만끽한다.

기타가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

담, 다다담 하고 이기는 공연장을 쥐고 흔든다. 모든 눈과 귀가

그를 향한다.

록스타 이기 팝 Iggy Pop

기타가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

담, 다다담 하고 이기는 아주 천천히 마이크를 든다. 관객은 안

심한다.

기타가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담, 다다

담, 다다담 하고 드디어, 드디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기가 무대 앞으로 걸어나왔다가 아무런 머뭇거림 없이 바로

무대밖으로 나가서 관객의 손 위로 걸어간다. 마치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것처럼. 이때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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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네빌 브로디Nevil brody

♦ 네빌 브로디는 우리 시대의 가장 영향력있는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그의 이야기는 1980년대 영국의 음반업계에서 시작한다. 당시 그는 로킹 러시안,

스티프 레코드, 페티시 레코드 등 전설적인 레코드 회사의 레코드 재킷을 디자인했다.

그 후에 <페티시>지의 아트디렉터가 되었으며, 거기서 시간, 건축, 편집 요소를 놀랍게

혼합한 새로운 시각 언어를 실험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쌓기 시작한 것은 1980년부터 1986년까지 <페이스>지

의 아트디렉터로서 일하면서였다. 당시 그는 디자이너와 독자가 잡지에 대해 가지고 있

는 고정관념과 기대를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그의 혁신은 후에 많은 디자이너들이 모방했다. 1988년에 발간된 그의 논문인 네빌브로

디의 그래픽 언어는 이 작업과 그가 진행한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네빌은 현재 다각적인 디자인을 하는 런던의 리서치 스튜디오에서 일한다. 그의 현대

디자인 작품은 영국 신문인 <타임스>의 리디자인부터 타입페이스 디자인, 돔 페리뇽의

아이덴티티 디자인까지 다양하다.

네빌은 인터뷰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유명 디자이너, 새

아이덴티티, 디자인계의 여원한 수수께끼 그리고 현재의 시각 문화에서 진정으로 반항

적인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논했다.

네빌 브로디Nevil brody

처음으로 창조한 기억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아주 어려운 이야기다. 걷기도 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나?

없다.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인가? 걷기도 전에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부모님한테 들었나?

그렇다. 내가 한 살에서 한 살 반 사이에 걷기 시작했다면 맞다.

그때는 무엇을 그렸는가? 부모님이 이야기해주셨나?

아니다. 아쉽게도 모른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때부터 내

가 무엇이 될지 고민해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커서

내 진로를 정해야지'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정해진 길

은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림을 좋아했다면 순수 미술 쪽으로 진로를 정했을 것 같은데.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좋은 아티스트다. 영국에서는 졸업 전

에 거쳐야 할 기초 코스가 있다. 모든 학생이 1년이나 2년 동안

이 코스를 거쳐야 한다. 여기서는 타이포그래피부터 미술, 도자

기, 사진까지 모두 다 경험할 수 있다. 이는 아주 좋은 경험이다.

덕분에 학생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싶은지 결정할 수 있다.

그때 우리가 배운 것은 세상과 소통할 길을 하나 정했다면, 그

것을 통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엘

리트주의에 젖은 순수 미술에서는 이 가르침을 다룰 수 없었다.

소수의 사람하고만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소수의 사람

은 자기 스스로 정하는 사람이다. 더욱이 순수 미술은 상업적인

세계다. 그 당시 나는 순수미술을 가장된 문화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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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네빌브로디가 졸업한

LONDON COLLEGE OF PRINTING

그래픽 디자인 문화는 더 실제적이라고 보는가?

그래픽 디자인 문화는 더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상업 분야

다. 나는 어차피 모든 것이 돈과 관계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화 산업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보다 산업 분야를 위해 뭔

가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다. 또한 내가 자랄 때는

회화의 세계가 위선적이었다. 제한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며 배

타적이었다. 나는 이런 것들을 혐오했다.

아직도 순수 미술 세계가 엘리트주의적이며 배타적이라고 생각하는

가?

지금은 더 그렇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위해 당신을 인터뷰해도 되냐고 물었을 때, 굳이

당신을 인터뷰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했다. 왜 그랬는가?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위해 아주 똑똑하고 분명한 생

각을 가지고 있고 영감을 주는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내가

한 일이 어딘가에 어떤 기여를 했다면 아주 기쁘다. 그냥 이상하

다. 내 안에는 두 명의 네빌 브로디가 있다. 하나는 아침에 일어

나서 샤워를 하고 버스를 타고 우유배달부와 말다툼을 하는 나

다. 그리고 다른 내가 있다. 자랑스러운 나는 아니지만 내가 세

상에 대해 할 말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나다. 중심에 있지 않

으면 사람들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말을 귀담아 듣는 유명인이 되기로 했다.

어떻게 했는가?

사람들을 내 작업으로 끌여들여 그 안에 숨은 의미를 보도록 했

다. 내 작업에 숨겨진 의미는 다소 정치적이다. 내가 하려는 말

은 모두 의식과 관련 있다. 현재 그래픽 디자인이 조작이 아주

쉬운 산업이 된 것과 관련이 있다.

당신의 작업도 조작된다고 생각하는가?

물론이다. 당연하다. 우리의 일은 상업 서비스다. 어느 정도는

절충할 수밖에없다.

인위적인 네빌 브로디가 당신을 여전히 많이 대변하는가, 아니면 두

네빌 브로디가 이제는 하나가 되었는가?

대중적인 나는 올해에는 활동하지 않는다. 시간이 없다. 하지만

학교에 가면 언제나 놀랍다. 나는 매년 학생으로서 인물 그리기

수업을 듣는다. 내가 학교에서 인물 그리기 수업을 받는 동안

옆 교실의 디자인 역사 수업에서 내 작업을 배우고 있을지도 모

른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아주 흥분되는 경험일 것 같다.

환상적이다.

스테판 새그마이스터를 인터뷰하면서 명성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는 아주 특별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유명한 그래픽 디자이너는

유명한 전기공과 같다"라고 했다.

스테판이 좀 틀린 것 같다. 사실 아주 많이 틀린 것 같다. 전기

공은 여론을 모으는 사람이 아니기때문이다. 그래픽 디자이너

는 여론을 모은다. 나는 모든 그래픽 디자이너가 사회에서 많은

책임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생각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만든다. 이게 우리의 일이다. 우리는 뉴스나

정보, 희망과 같은 감정이나, "왼쪽으로 돌아라" "이것을 사라"

"섹시하게 행동하라" 등 넓게 봐서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형체

를 만든다. 실제적인 것을 만드는 것이다.

당신의 유명세가 작업의 질이나 접근법에 영향을 미쳤는가?

절대 아니다. 내 스튜디오는 아주 소극적이다. 요즘 내 일은 새

로운 팀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작업의 질이나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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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희생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대 미디어에서는 급진적인 작

업을 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보수적이지 않은 모든

것이 혁신적이고 급진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요즘에는 어떤

것이든 받아들여진다. 내가 홀딱 벗고 런던 시내를 돌아다녀도

사람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포르노 잡지를 사도 눈 하

나 깜짝하지 않는다. 더 이상 큰 이슈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글자체를 골라서 어떻게 사용하든 모든 것이 가능하다. 어떤 한

가지가 다른 것보다 더 가치 있게 취급될 이유가 없다. 더 이상

충격이 주는 가치는 없다.

그러면 사람들이 당신이 말하려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받는다고 생

각하는가?

문제는 일반적인 문화가 평이해진다는 것이다. 어떤 도시에 가

든 다 똑같이 생겼다. 나는 여행을 자주 하는데 싱가포르에 있

든 토론토에 있든 내가 경험하는 문화는 다 똑같다. 심지어는 호

텔방에 걸어놓은 그림까지 똑같다. 이 그림은 내가 타는 브리티

시 에어웨이 비행기 앞에서 본 그림과 같을 수도 있다. 상호 교

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핵심적인 의미가 퇴색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세대는 우리가 하는 일이 이 사회를 좀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제는 그렇

지 않다. 레이건과 대처가 모두 망쳐놨다. 그들은 문화가 정체

성이 아니라 광고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했

다. 이 생각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영국은 대학을 금융 기관

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지금도 당신의 작업으로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이 분야를 사랑하는 바로가 바로 여기에는 영원한 수수께

끼 또는 영원한 패러독스가 있기 때문이다. 상업 분야에서 일한

다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득을 줄 수 있는가? 상업적 작업이

라는 것은 당신이 누군가에게 의뢰받은 것이다. 의뢰를 한 사람

은 의뢰를 함으로써 이득을 어기 바라는데, 99퍼센트는 금전적

인 이득을 말한다.

이를 어떻게 조정하는가?

기회를 찾아야 한다. 문제는 급진적인 디자인이 트렌드가 되었

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별로 급진적인 것이 없다. 급진적인 것

은 예를 들면 상업적이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이 충격받지 않으면 주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사람들은 이제 면역력이 생긴 것 같다.

그럼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는가? 뭔가가 돋보이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는가?

그렇다. 비상업적인 공간이다. 광고가 전혀 없는 공간은 충격

적일 것이다.

당신이 만든 것이 좋은지 어떻게 아는가?

내가 시도하고 달성하는 작업과 내가 언제나 시도하고 달성하

는 종류의 작업은 아주 높은 수준의 모호함을 가지고 있다.

무슨 뜻인가?

광고계에서 사람들이 광고를 보고 생각하는 것은 광고주가 원

하는 게 아니다. 광고주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들이 의도

한 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의 가능성밖에 없는 하나

의 공식이다. 여기서 만들어지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생각할 권

리를 잃는다.

나는 항상 추상적이고 애매하며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작업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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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고 한다. 이렇게 하면 독백식의 작업이 아닌 양방향 소통을 하

는 작업을 만들 수 있다. 내 작업은 관객이 보고 그 작업의 전체

적인 의미를 스스로 발견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당신의 클라이언트는 의도된 모호함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언제나 성공적일 수는 없다. 이를 싫어하는 클라이언트도 있다.

모든 사항이 이미 결정된 브랜딩 작업도 해봤다. 이것도 상업 디

자인 분야의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점이 디자이너에게 장기적으로 가져다 주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

각하는가?

디자인은 아주 건강한 분야다. 요즘도 여전히 아름답게 빛난다.

나는 요즘 아무것도 어려울 게 없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어렵다''의 정의가 무엇인가?

아이를 기르는 것이나 강아지를 키우는 것 등의 어려움이 아니

다. 우리는 모든 것을 최대한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싸여있다. 더 이상 아무도 어려운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다. 그래픽 디자인이 노력을 요하는 어려운 분야로 여겨

지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순수 미술도 이제는 어렵지 않다. 센세이션을 일으킬지언정 어

렵지는 않다.

가장 최근에 '어려움'을 느낀 적은?

스테판의 몇몇 작업이 어려웠던 것 같다. 티보의 몇몇 작업도

어려웠지만 아주 재미있었다. 조금 옜날로 돌아가보면 영국의

순수 미술 분야에 '브릿아트Brit Ar' 라는 것이 있었다. 팝 아트 같

은 것이었다. 모두 아주 커다란 센세이션이었다. 나는 이를 탈

생산 미술이라고 부른다.

그게 무슨 뜻인가?

기본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센세이션에서부터 시작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를 어떻게 달성할지 계획하는 것이다. 광고

가 택하는 방법과 같다. 완전히 똑같다. 현재 미술은 광고 분야

와 비슷하다.

초점은 많이 다르지 않다. 많이 위험하거나 맣이 어려운 것은 아

무것도 없다. 우리는 사람들을 자극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사람

들이 비상업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작업적으로 실패한 적이 있는가?

물론이다. 가장 큰 실패는 <더페이스The Face>지였다.

왜 실패작이라고 생각하는가?

<더 페이스>의 근본은 규칙을 받아들이지 말자는 것이었다. 모

든 것에 도전하여 새로운 공간과 표현을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을 왜 실패작이라 생각하는가.

사람들이 이를 모방했기 때문이다.

모방을 했는가, 아니면 모방을 하려고 했는가?

모방했다. 특히 영국에서 많이 모방했다. 모방의 문화가 생겨

났다.

그것을 왜 실패라고 보는가?

많은 사람들이 근본을 보지 못한 채 그 스타일만 모방했기 때문

이다. 스타일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점은 언어가 유기

적이며 사회가 진화하면서 언어도 진화한다는 점이었다. 언어

는 개인적일 수 있지만, 몇 사람만이 언어를 조정할 수 있으면

안 된다. 항상 변화하는 살아있는 것이어야 한다. 죽으면 안된

다. 이것이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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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한 작업을 실패라고 보는 가, 아니면 사회가 당신의 작업을 잘

못 받아들인 것인가?

개인적인 실패라고 본다. 내가 판단을 잘못했다. <더 페이스>는

열린 실험실이었다. 매달 지난달의 실험에 대한 결과가 나온 것

이다. 아무것도 고정시키지 말고 진화해야 했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방했다고 생각하는가?

당시에 그것과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인가? 그게 유일한 이유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게 새로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새로운 것 중에서도 사람들이 이를 모방하거나 그들을 표현하

기 위해 사용하도록 자극하지 않는 것도 많다.

그럴 수도 있다. 내 문제는 한번 실패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그

렇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에는 <아레나Arena>지에서 일했고,

이번에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작업을 했다. 내가 <더 페이

스The face>에 있을 때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늦게까지 일

했다. 하지만 뭔가 커다란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매번

모든 것이 새로워야 한다는 기대치의 압력이 있었다. 그래서 새

로움이 기본이 되었다. 사람들은 매번 새로운 것을 원했다. 지난

번과 비슷한 디자인이 나오면 우리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이를

반박하려면 전혀 변하지 않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무엇인가?

결국에는 뭔가 다른 것이 됐다는 사실이다. 처음 디자인 일을

시작했을 때는 뭔가 새로운 것을 미친듯이 찾아다녔다. 하지만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신중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레나>는 내게 잡지라기보다는 공원 벤치 같았다. 신중히 생

각하고, 신발도 고쳐 신고, 좋은 옷을 사고, 편안하게 살다가 다

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물론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다.

다행히 '헬베티카Helvetica'는 좀더 정서적으로 만들었다. 그래

서 이후의 작업들이 더 표현적이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언제

나 우리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된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의 메시지는 더 평범한 것이 되고,

우리의 메시지가 평범한 것이 될수록 사람들이 뭔가 다른 것을

경험하는 기회는 적어진다. 약간 부정적으로 들리지만 그렇지

는 않다. 이는 인류가 요구하는 해답이다.

피터 사빌Peter Savile

♦ 나는 언제나 레코드 표지에 열광했다. 로저 딘Roger Dean의 천상적이고 내세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을 포함한 예스Yes의 앨범이 가장 처음으로 나를 황홀하게 만든 작품

이었다. 하지만 피터 사빌이 디자인한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앨범을 본 후로는 모든

것이 변했다. 나는 생물학자가 연구하는 것만큼 심혈을 기울여서 이 표지를 관찰했다.

관찰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조이 디비전의 앨범은 사빌의 가장 훌륭

한 작품이다. 종종 미니멀리스트적이고 거의 매번 탈현대적인 그의 작품은 언제나 풍부

한 뉘앙스를 가지며 신비럽도록 세밀하다.

그는 조이 디비전, 뉴 오더New Oder, 스웨이드Suede, 펄프Plup 등의 레코드 표지 디자

인뿐만 아니라 질 샌더, 요지 야마모토, 스텔라 맥카트니 등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

과도 많은 작업을 했다.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도 그가 작업했다.

2003년에는 「피터 사빌의 디자인 (Design by Peter Savile)이라는 논문을 출판했는데,

그가 런던의 디자인 박물관에서 열린 대형 회고전의 한 부분을 장식하는 학술서였다.

또한 2004년에는 영국 맨체스터 시의 첫 번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는 영예를 차지

했다. 피터와 나는 지적인 규칙이 결여된 컬트 팝 디자인, 논란이 일었던 펜타그램과의

작업 그리고 그가 6년 동안 디자이너로 있으면서도 레터헤드를 어떻게 디자인하는지 몰

랐던 이유 등에 대해 길고 두서없는 대화를 나눴다.

피터 사빌Peter Savile

[사빌이 인터뷰를 먼저 시작했다]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짚고 가자면,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은 다

른 사람을 위해 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젊은 디자이너나 디자이너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알아

야 할 매우 중요한 점이다.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는가?

젊은 디자이너나 디자이너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커뮤니케이

션 디자인이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

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누구에 반해서?

자기 자신에 반해서.

이 시대에 그래픽 디자인이 자기 표현 수단이라는 믿음은 큰

오해다.

이런 오해가 왜 생긴다고 생각하는가?

부분적으로는 나 같은 사람의 작업 때문일 것이다.

왜 그런가? 어떤 면에서?

미국에서는 아직 분명하진 않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영국에

서는, 특히 지난 몇 년간 디자인과를 졸업한 학생들 사이에서

는 아주 팽배하다. 패션 캠페인이나 편집 디자인도 그렇고, 특

히 레코드 표지 같이 한참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직접적

인' 커뮤니케이션 예술은 그들에게 아주 설득력 있는 수단이기

도 하다. 젊은이들은 한창 성장하는 시기에 그들을 열광시키는

것을 예술로 받아들인다.

특히 청소년은 음악의 다양한 면에 열광한다. 음악의 컬트적인

면에 가장 많이 열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특히 청소년은 음악의 다양한 면에 열광한다. 음악의 컬트적인

면에 가장 많이 열광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마릴린 맨슨 팬이라면 그와 관련된 모

든 것을 섭력하고, 랩을 좋아한다면 랩과 관련된 모든 것을 좋

아한다. 이것이 청소년의 특성이다. 대중 문화와 관련된 그래픽

아트는 이런 질서로 들어가는 문이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하나의 직업으로 본다면 이는

좀 잘못된 생각이다. 컬트 팝은 디자이너가 스스로 표현을 만들

어가는 자유 구역이다. 여기에는 질서가 거의 없거나 아예 없다.

이것이 지난 20년 동안 젊은이들에게 '입문 수준의 예술'로서 그

들을 직업 세계로 유혹했다.

왜 컬트 팝 디자인에는 질서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실제로 없기 때문이다. 질서가 필요 없는 것이다. 대중 문화의

이미지는 현실과 멀리 있다.

규칙이 없단 말인가?

지적인 규칙은 전혀 없다. 사업이나 상업적인 규칙도 없다. 스

물 두 살 짜리가 다른 스물 두 살짜리를 위한 레코드 표지를 디

자인한다. 음반 산업은 이를 통해 돈을 번다. 나는 오랜 세월 레

코드 표지를 디자인해왔지만, 레코드 표지 디자인을 위한 사업

이나 기획 회의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직도 하지 않는가?

그렇다 넒은 의미의 사업 세계에서 하는 회의는 하지 않는다.

전부 감정적으로 디자인한다. 마돈나의 레코드 재킷을 디자인

하는데 무슨 브리핑이 필요한가? 브리핑에서 할 말은 마돈나를

만족시켜라 뿐이다. 그것밖에 없다. 마돈나를 만족시켜야 한다.

마돈나의 앨범은 그 표지가 단순한 종이백이라고 해도 팔릴 것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수를 만족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질서가 결여된 것에 대해 자책하는가?

아니다. 일반적인 질서의 결여 때문에 자책하지는 않는다. 내가

디자인을 하기 전부터 그래 왔다. 이는 대중 문화의 특성일 뿐

이다. 최근에 패션의 컬트라고 생각하는 스케이트보드와 스노

보드 비즈니스를 하는 클라이언트와 일한 적이 있다. 여기서도

모든 것이 직관적으로 실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에

게 디자인을 맡긴다. 그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을 하면 그들 또

래의 다른 젊은이들도 좋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다.

이는 아주 직관적인 경험이며, 결과적으로 많은 돈이 되지 못

한다. 경력이 많다고 해서, 더 전문적이라고 해서, 또는 더 잘

한다고 해서 돈을 더 많이 받지 않는다. 레코드 표지를 위해 쓸

수 있는 예산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스무 살이든 쉰 살이든 같

은 돈을 받는다.

나이가 들면서 직관성이 떨어진다는 말인가?

아니다. 대중 문화 분야의 직관성만 떨어진다. 다른 분야의 직관

성은 더 높아진다. 내가 보기에 레코드 표지 디자인은 30대나 40

대가 할 일이 아니다. 이런 대중 문화가 젊은이들이 그래픽을 접

하는 첫 단계라는 것이 아이러니다. 하지만 이는 이 분야에 대한

큰 오해를 만들어낸다. 생각해보라. 새로운 브리티시 페트롤리

엄BP의 로고가 좋아서 미술 대학에 가려고 하는 열여덟 살 짜리

학생은 거의 없다. 이게 핵심이다. 나는 그래픽 아트 수업이 초

보 단계의 순수 미술인 것 처럼 팝 아트가 교양 없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의 입문 단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왜 초보 단계의 순수 미술이라고 생각하는가?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기본적으로 그래픽 아트의

영감을 동시에 미술에서 얻는다.

예를 든다면?

그래픽 아트는 수십 년 전 패션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 후 10년

동안은 팝 아트에서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10년간은 동시

대 미술이 주요한 영감을 주는 분야로 떠오르고 있다. 그래픽

아트는 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졌고, 새로운 유행이라는 둥 떠든

다. 당연히 젊은이들이 여기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관심도 많

다. 당신도 알다시피 피상적으로는 제프 쿤스Jeff Koons를 이해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픽 디자인 일을 어떻게 시작했는가?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 덕분에 시작했다. 선생님이랑 나의 가

장 친한 친구인 말콤 가렛Malcolm Garret하고 미래에 대해 이야

기하던 중 선생님이 그래픽 디자인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래 뭔가요?" 하고 물었다. 1974년의 일이다. 선생님은

그래픽 디자이너도 직업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우리는 점심 시

간에 재미 삼아 하던 것을 직업으로 선택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매우 고무되었다.

그리고 대학에 갔는데, 디자인이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분야라

는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알아버렸다. 1970년대에는 디자인에

규칙이 있었고, 이를 따라야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큰 기회가

왔다. 우리가 대학에 있는 동안 대중 문화에서 뭔가 근본적으

로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대중 문화의 주도권이 잠시 동

안 젊은이들에게 넘어온 것이다. 펑크록이 대중 문화를 장악했

고 이를 대중과 젊은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이런 변화가 10분 정

도 지속되었다.

이 기회가 당신이 하고자 했던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완벽한 변화였

겠다.

그렇다. 1970년대 중반에 대중 문화는 완전히 상업화되었다.

3,000명 정도가 콘서트에 가면 거기서 판매하는 레코드를 꼭

사야 했다.

개인적인 것은 없었고 완전히 상업용 레코드였다. 펑크가 들어

서면서부터 수많은 독립 레코드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변

화는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를 맞춰서 일어났고, 나는 맨체스

터에서 레코드사를 공동 창업했다. 그리고 상업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과 클라이언트인 동시에 디자이너로 일하기 시작했다.

팩토리 레코드에 있는 그 누구도 상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

는 회사도 아니었고,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지도 않았다.

그냥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돈이 개입되지 않았고, 모두 소박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만 했다.

그래서 나는 내 맘에 드는 레코드 표지를 만들었다. 레코드 가

게에서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을 만들었다. 팩토리에서 내

직위는 막강했다. 아무도 참견하지 않았고, 디자인 권한도 전부

나에게 있었다. 다른 사람들하고 일할 때문 한번도 이런 적이 없

었다. 나는 아트디렉터와 디자이너로서 내 클라이언트인 자비

스 카커Javis Cocker나 마돈나 등과 일했다. 이곳은 전문 영역이었다.

팩토리와 일할 때는 아무도 나의 디자인에 간섭하지 않았다. 나

는 14년 동안 아무런 지휘도 받지 않는 영역에서 일했고, 내 명

성은 점차 국제적으로 뻗어갔다. 조이 디비전이나 뉴오더 같은

그룹을 포함하여 내 디자인을 팔 수 잇는 곳이 최소 15만 곳이

넘었다. 나는 어떠한 디자인 요청도 받지 않았고 비서를 두지도

않았다. 이런 시스템은 아주 엄청난 영향력이 있었는데, 부분적

으로는 내 작업 때문이었지만 대부분 조이 디비전과 뉴 오더의

성격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도 내가 그런 영향력을 미칠 수 있

는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내 영향력은 정말 대

단했다. 내 레코드 표지 디자인 때문에 그래픽 디자이너가 됐다

는 사람도 많이 봤다.

그럴 때 기분이 어떤가?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나는 보통 "미안하게 생각한다"라고 하

고, 사람들은 내 뜻을 안다는 듯이 미소짓는다. 이제는 예전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시대는 갔다. 그

렇지만 아직도 이런 인식이 팽배하다. 특히 디자인 교육에서

그렇다.

어떤 점에서?

이는 꽤 위험하다. 디자인 교육 분야에는 자발적인 디자인 아

이디어가 많다. 이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깊게 생

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모든 사람은 결과적으로

시장의 흐름 안에 있어야 한다. 디자인은 미술이 아니다. 그래

픽 디자인이라는 말은 이제 위험하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

라고 해야 한다. 그래픽 디자인이라는 것은 더이상 아무런 의

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바로 커뮤니

케이션 디자인이다. 이는 누군가의 메시지를 정해진 대상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

인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우리가 할 일은 단지 A의 메시지

를 최대한 명확하게 B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제 디자인의 전

문성은 1970년대쯤에 이름을 날린 그래픽 디자이너의 전문성과

는 아주 다르다.

예를 들면?

밀튼 글레이저, 솔 배스, 마시모 비그넬리, 펜타그램의 창립 멤

버들, 그들은 그들만의 스타일을 가지면서도 지적으론 철학적

으로 전문성을 가졌다. 그들이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는 어떠한

규칙이 있었다. 그들은 클라이언트를 대변하는 전문가였다. 청

부살인자라기 보다 두에 숨은 전략가였다. 성숙한 그래픽 디자

인 분야를 들여다보면 아주 지적이고 전략적이다. 궁극적인 목

적은 A가 원하는 것을 관객인 B에게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