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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리운 그 시절과 그리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이 어떻게
남아있든,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
다 보물상자처럼 아름다웠던 그때의
그 추억을 꺼내어 보며 행복해하곤 한
다. 올해 가슴 따뜻한 사랑 이야기로
우리들의 마음을 적신 <유열의 음악앨
범>의 주인공 ‘미수’도 그러하다. 미수
는 가수 ‘유열’이 처음 라디오 방송 <유
열의 음악앨범>을 시작하던 때부터 시
간이 흘러 그 라디오가 처음으로 ‘보이
는 라디오’를 선보이게 된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1994년 「미수제과점」에서
쌓은 따뜻했던 추억을 잊은 적이 없다.
비록 기자는 그 당시를 직접 겪어보지
는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며 문득 미
수와 ‘현우’, 그리고 미수의 친언니나 다
름없던 ‘은자’가 살아가던 그 시절의 분
위기가 궁금해졌다. 시간이 흐르고 많
은 것들이 변화했지만, 그들이 품고 있
었던 그 따뜻한 마음과 아름다운 추억
만큼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길 바
라며 기자는 영화 속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유열: 화창한 날이 계속되면 그곳은
사막이 된대요. 새해 소망은 한마디
만 붙여서 빌어봅시다. 새해에는 좋은
일‘도’있게 해주세요.
기자는 미수와 현우, 은자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 공간이자 행복했던 추
억이 남아있는 「미수제과점」을 찾아가
보았다. 이 제과점이 자리한 인천의 한
골목은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부
지런한 발걸음으로 생기를 띠고 있었
다. 기자는 「미수제과점」 맞은편에 있
는 편의점에 앉아 아침의 활기찬 기운
을 느끼며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보았
다. 영화 속에서 제과점의 하루를 시작
하며 분주하게 빵을 만들던 미수와 은
자의 모습도 저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가수 유열이 처음으로 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을 진행하던 날, 미수와 은자
가 운영하는 「미수제과점」에 현우가
아르바이트를 지원하며 그들의 운명적
인 만남이 시작된다. 이후 세 인물은 제
과점을 함께 꾸려나가며 서로의 일상
을 공유하고,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
는 등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가족처럼
돈독한 사이가 된다. 그동안 미수와 은
자 단둘이서만 꾸려왔던 「미수제과점」
이 현우의 등장으로 더욱 두터워진 가
족애의 시작이자, 미수와 현우가 서로
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는 중
요한 공간이 된 것이다. 기자가 찾아간
「미수제과점」은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
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비록 현재
는 제과점을 운영하지 않아 이따금 기
자처럼 영화를 보고 찾아오는 관광객
들이 「미수제과점」의 유일한 손님이지
만,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제과
점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미수와 현
우, 은자 세 사람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현우: 저 그냥 밥 먹으러 온거에요…
맛있어요
(중략)
은자: 나는 기억도 안나는데, 내가 자
기를 믿어준다고 했다는 거야
종로3가역에서 밖으로 나오면 바로 보
이는 낙원상가 옆 지하시장은 「미수제
과점」을 떠난 은자의 새로운 일터이자,
미수와 현우를 향한 은자의 애정을 확
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은자는 이 지하
시장에서 수제비를 팔며 생계를 유지
해 간다. 그리고 가끔 일상에 지친 미수
와 현우가 이곳을 찾아오면, 따뜻한 수
제비 한 상을 차려주며 담담한 응원의
말로 그들을 위로한다. 수제빗국은 미
수와 현우를 향한 은자의 애정과 무한
한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기자가 찾
아간 대낮의 지하시장은 영화 속 시장
의 분위기와 같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
었다. 시장에는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
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요리하는 식
당 주인, 식탁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소
박한 안주 위로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
의 근황을 묻는 사람들, 신기한 눈초리
로 한국 시장 문화를 구경하는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활기를
띠고 있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말
소리와 활기찬 분위기는 마치 기자에
게 하나의 라디오처럼 들려왔다. 기자
는 이러한 소리를 배경 삼아 천천히 지
하시장을 돌아보며 곳곳에 남아있는
은자의 애정을 한껏 느껴보았다.
미수: 현우야. 뛰지 마, 제발. 뛰지 마,
다쳐. 응?
기자의 다음 목적지인 종로의 돌담길
은 미수와 현우의 이별의 아픔을 상징
하는 공간이다. 운명적인 만남 이후 상
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이
별을 반복하던 그들은 그동안 서로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이
별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돌담길
에서 미수는 뒤따라오는 현우를 밀어
내며 눈물의 이별을 한다. 기자는 영
화 속에서 현우가 미수를 따라 걸었
던 이 길을 따라 걸으며 그들의 감정
을 헤아려 보았다. 사랑하는 연인 미수
에게 자신의 치부를 들키고 싶지 않았
던 현우와 자신에게만은 모든 짐과 걱
정을 털어놓고 함께 해결해나가길 바
라는 미수. 그 둘의 복잡한 감정이 섞
였던 돌담길을 걸어보니 기자는 왠지
기자가 이별한 것만 같은 저릿한 아픔
이 느껴졌다. 서로 이별을 선택했음에
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마음만은 여전
히 따뜻했던 그들의 온기가 기자에게
도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유열: 오늘이 보이는 라디오 첫날인데
불러줬으면 하는 이름 있어요?
현우: 미수요.
어쩔 수 없이 이별을 선택했지만, 어떠
한 장애물도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이 처음
만난 날 시작했던 유열의 라디오가 처
음으로 ‘보이는 라디오’로 송출되던 날,
유열은 라디오의 촬영을 담당하게 된
현우의 부탁으로 라디오에서 미수의
이름을 부른다. 미수는 라디오에서 흘
러나오는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되고, 현
우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한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를 찾아 나
선다. 현우가 미수를 따라 달려왔던 그
돌담길처럼, 미수는 현우를 찾기 위해
서울 도시 한복판을 달려가며 현우와
는 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영화는 보이는 라디오 부스 안에
서 방송 장비를 정리하는 현우와 그를
부스 밖에서 바라보던 미수가 서로를
향해 웃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기
자가 찾아간 보이는 라디오 부스는 현
재 공사 중으로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먼발치에서 보이는 라디
오 부스를 보며 잠시나마 재회 당시 미
수와 현우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
들의 첫 만남부터 이별과 만남을 반복
해온 현재까지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
고 있는 <유열의 음악앨범> 방송이 형
태와 내용은 변했어도 본질과 마음만
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쩌면 미
수와 현우의 변하지 않는 사랑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장소에서 영화는 끝이 났지만, 기자
는 왠지 모를 아쉬운 마음에 보이는 라
디오 부스가 위치한 KBS 건물을 한참
동안 서성였다. 건물 외부 곳곳을 빨간
색과 노란색의 단풍이 뒤덮고 있는 것
을 보니 기자의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
다. 온 세상을 뒤덮은 단풍이 꼭 따뜻
하고 아름다웠던 이 영화의 분위기를
떠오르게 해, 단풍 속을 걷고 있는 기
자로 하여금 앞으로 펼쳐질 미수와 현
우의 이야기, 그리고 묵묵하게 그들을
지지해준 은자의 마음이 한층 더 아름
답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기자는 모든 여정을 마치고 다시 집
으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 창가에 기
대어 한참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
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라보기만 해
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계절인 가을이
꼭 이 영화의 잔잔한 분위기와 잘 어울
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연한 가을 속,
마치 영화의 미수와 현우가 된 것처럼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 이 여정은
무엇보다 일상 속에 지쳐있던 기자에
게 휴식과도 같았다. 특히 기자가 찾아
간 장소들에서 영화에서 등장한 다양
한 음악들과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물건이나 대사들을 함께 떠올려보니
기자는 마치 그 시간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첫 만남의
장소인 「미수제과점」부터 마지막 재회
장소인 KBS 보이는 라디오 부스까지.
비록 기자의 여정은 끝이 났지만, 미수
와 현우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와 영화
중간중간 확인할 수 있는 은자의 사랑
이 잔잔하게 남아 집에 돌아와 노트북
으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기
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천지예 기자([email protected])
▲인천 동구에 위치한 미수제과점의 모습
▲낙원상가 지하시장의 모습
▲라디오 부스에서 미수와 현우가 재회하는 장면이다./출처:네이버 영화
▲종로에 위치한 돌담길의 모습
문화 9
보고 따라가는 이야기보 따 리
수많은 변화 속 절대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심을 노래하다 <유열의 음악앨범>(2019)
당신도 있나요? 그리운 그 시절, 그리운 그 사람
<알폰스 무하>아르누보의 진수를 엿보다
SAL N De HONGIK
▲알폰스 무하의 연극 포스터 <연인들>(1895)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
진 아르누보 양식의 대표 작가로 알려
진 알폰스 무하(Alphonse Maria Mu-
cha, 1860~1939). 알폰스 무하라 하면
나무줄기, 조개 모양 등에서 따온 아름
다운 곡선을 이용하여 테두리를 장식
하고, 그 속에 화려한 장신구를 한 매
혹적인 여인의 모습을 섬세한 선으로
표현한 아르누보 양식의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그는 이국적인 아르누보 형
식을 활용해 각종 광고 포스터나 책의
삽화를 디자인하는 등 예술을 우리의
일상생활로 들여왔다. <알폰스 무하>展
은 그의 첫 실용미술 작품인 극장 포스
터부터 조국인 체코의 독립을 응원하
는 작품까지 일명 ‘무하 스타일’이라 불
리는 그의 전반적인 예술 세계를 총 5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첫 번째 섹션은 ‘파리 연극 포스터,
사라 베르나르와 무하’로 알폰스 무하
가 처음으로 디자인한 연극 포스터
<지스몽다>(1894)로 시작한다. 그는
이 포스터에서 다채로운 색감을 사용
해 <지스몽다>의 주인공 사라 베르나
르를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바로
크나 비잔틴 양식 등에 영향을 받은 세
련된 곡선을 이용해 화면을 나누어 배
우의 신성한 이미지를 관람객들에게
각인시켰다. 이후 그는 연극 포스터
분야에서 명성을 얻어 <연인들>
(1895), <메데>(1898), <햄릿>(1899)까
지 다양한 연극 포스터를 제작하였다.
한편 무하가 두 번째로 제작한 연극
포스터 <연인들>은 예술적 가치와 홍
보물로써의 가치를 모두 살린 작품으
로 평가받는다. 평소 세로로 길게 제작
되며 주인공만 등장하는 그의 다른 연
극 포스터 디자인과는 달리, 이 작품은
가로로 긴 형태로 제작되었고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이런 디자인으
로 코미디 연극 <연인들> 특유의 시끌
벅적함과 비극적인 분위기가 공존하는
모습을 관객들이 효과적으로 느끼게
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섹션은 각각 ‘예
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광고 포스터’와
‘대중을 위한 인쇄 출판물’로 알폰스 무
하의 화풍이 굳혀진 시기의 작품들을
보여주며 그가 제작한 실용미술 세계
를 엿볼 수 있다. 연극 포스터에서 유명
세를 굳힌 그는 특유의 우아한 곡선미
가 느껴지는 화풍으로 식음료에서 향
수까지 다양한 제품 광고 포스터뿐만
아니라 잡지 표지 등 출판물 분야까지
진출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제작하였다.
그중 <욥>(1896)은 당시 파리의 담배 회
사 「욥(JOB)」의 광고 포스터로, 나풀거
리면서도 유연한 곡선으로 표현한 여
성의 머리 스타일과 회사명 「욥(JOB)」
을 활용한 무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더불어 이슬람문화에서 기인한 기하학
적인 직선 무늬와 자연물을 활용한 아
라베스크 문양을 사용하여 이국적이
고 관능적인 느낌을 준다. 19세기 말 사
회적 자유를 갈망하던 여성들과 해방
을 상징하는 담배라는 물체의 이미지
를 합성한 「욥(JOB)」 광고는 제품의 주
된 소비층이었던 여성들을 고려한 디
자인으로 평가받는다.
뒤이어 네 번째와 마지막 섹션은
‘매혹적인 아르누보의 여인들’, ‘고국을
위한 애국적 헌사’이다. 두 섹션에서는
실용 미술에서 멀어진 그의 작품세계
를 엿볼 수 있다. 우선 네 번째 섹션에
서는 그의 작품 중 잘 알려진 <사계>
(1896) 시리즈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동양화에서 사용하는 자연물 묘사 방
법과 곡선적인 모양, 다채로운 색감이
돋보이는 서양화의 표현법을 함께 활
용한 장식 패널로 그의 창의적인 면모
를 보여준다. 마지막 섹션에 들어서면
슬라브 민족의 주체성이 잘 드러나는
<남서 모라비아를 위한 국민 연합 복
권>(1912), <8회 소콜 축제>(1926) 등
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알폰스 무하는 광고 포스터부터 책
삽화까지 다양한 분야의 미술에 도전
한 실용미술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아
르누보의 대중화를 넘어 자신의 근원
을 탐구한 민족화가로서의 면모는 매
우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여러 미술 분야에 걸친 무하의 다
양한 예술적 시도를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현지 기자([email protected])
전시기간: 2019년 10월 24일(목)~2020년 3월 1일(일)
전시장소: 마이아트뮤지엄
관람시간: 10:00~20:00 (매주 월요일 휴무, 오후 7시 입장 마감, 2020년 1월
28일(화) 휴관)
관람요금: 성인(19세 이상) : 15,000원 / 청소년(8세~19세 미만) : 12,000원
/ 어린이(만 3세~7세) : 10,000 / 유아(~만 36개월) : 무료
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