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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그리운 그 시절과 그리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이 어떻게 남아있든,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 다 보물상자처럼 아름다웠던 그때의 그 추억을 꺼내어 보며 행복해하곤 한 다. 올해 가슴 따뜻한 사랑 이야기로 우리들의 마음을 적신 <유열의 음악앨 범>의 주인공 미수도 그러하다. 미수 는 가수 유열이 처음 라디오 방송 <유 열의 음악앨범>을 시작하던 때부터 시 간이 흘러 그 라디오가 처음으로 보이 는 라디오를 선보이게 된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1994년 미수제과점에서 쌓은 따뜻했던 추억을 잊은 적이 없다. 비록 기자는 그 당시를 직접 겪어보지 는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며 문득 미 수와 현우 , 그리고 미수의 친언니나 다 름없던 은자 가 살아가던 그 시절의 분 위기가 궁금해졌다. 시간이 흐르고 많 은 것들이 변화했지만, 그들이 품고 있 었던 그 따뜻한 마음과 아름다운 추억 만큼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길 바 라며 기자는 영화 속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유열: 화창한 날이 계속되면 그곳은 사막이 된대요. 새해 소망은 한마디 만 붙여서 빌어봅시다. 새해에는 좋은 일‘도’있게 해주세요. 기자는 미수와 현우, 은자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 공간이자 행복했던 추 억이 남아있는 미수제과점을 찾아가 보았다. 이 제과점이 자리한 인천의 한 골목은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부 지런한 발걸음으로 생기를 띠고 있었 다. 기자는 미수제과점맞은편에 있 는 편의점에 앉아 아침의 활기찬 기운 을 느끼며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보았 다. 영화 속에서 제과점의 하루를 시작 하며 분주하게 빵을 만들던 미수와 은 자의 모습도 저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가수 유열이 처음으로 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을 진행하던 날, 미수와 은자 가 운영하는 미수제과점에 현우가 아르바이트를 지원하며 그들의 운명적 인 만남이 시작된다. 이후 세 인물은 제 과점을 함께 꾸려나가며 서로의 일상 을 공유하고,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 는 등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가족처럼 돈독한 사이가 된다. 그동안 미수와 은 자 단둘이서만 꾸려왔던 미수제과점이 현우의 등장으로 더욱 두터워진 가 족애의 시작이자, 미수와 현우가 서로 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는 중 요한 공간이 된 것이다. 기자가 찾아간 미수제과점은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 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비록 현재 는 제과점을 운영하지 않아 이따금 기 자처럼 영화를 보고 찾아오는 관광객 들이 미수제과점의 유일한 손님이지 만,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제과 점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미수와 현 우, 은자 세 사람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현우: 저 그냥 밥 먹으러 온거에요… 맛있어요 (중략) 은자: 나는 기억도 안나는데, 내가 자 기를 믿어준다고 했다는 거야 종로3가역에서 밖으로 나오면 바로 보 이는 낙원상가 옆 지하시장은 미수제 과점을 떠난 은자의 새로운 일터이자, 미수와 현우를 향한 은자의 애정을 확 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은자는 이 지하 시장에서 수제비를 팔며 생계를 유지 해 간다. 그리고 가끔 일상에 지친 미수 와 현우가 이곳을 찾아오면, 따뜻한 수 제비 한 상을 차려주며 담담한 응원의 말로 그들을 위로한다. 수제빗국은 미 수와 현우를 향한 은자의 애정과 무한 한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기자가 찾 아간 대낮의 지하시장은 영화 속 시장 의 분위기와 같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 었다. 시장에는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 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요리하는 식 당 주인, 식탁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소 박한 안주 위로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 의 근황을 묻는 사람들, 신기한 눈초리 로 한국 시장 문화를 구경하는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활기를 띠고 있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말 소리와 활기찬 분위기는 마치 기자에 게 하나의 라디오처럼 들려왔다. 기자 는 이러한 소리를 배경 삼아 천천히 지 하시장을 돌아보며 곳곳에 남아있는 은자의 애정을 한껏 느껴보았다. 미수: 현우야. 뛰지 마, 제발. 뛰지 마, 다쳐. 응? 기자의 다음 목적지인 종로의 돌담길 은 미수와 현우의 이별의 아픔을 상징 하는 공간이다. 운명적인 만남 이후 상 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이 별을 반복하던 그들은 그동안 서로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이 별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돌담길 에서 미수는 뒤따라오는 현우를 밀어 내며 눈물의 이별을 한다. 기자는 영 화 속에서 현우가 미수를 따라 걸었 던 이 길을 따라 걸으며 그들의 감정 을 헤아려 보았다. 사랑하는 연인 미수 에게 자신의 치부를 들키고 싶지 않았 던 현우와 자신에게만은 모든 짐과 걱 정을 털어놓고 함께 해결해나가길 바 라는 미수. 그 둘의 복잡한 감정이 섞 였던 돌담길을 걸어보니 기자는 왠지 기자가 이별한 것만 같은 저릿한 아픔 이 느껴졌다. 서로 이별을 선택했음에 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마음만은 여전 히 따뜻했던 그들의 온기가 기자에게 도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유열: 오늘이 보이는 라디오 첫날인데 불러줬으면 하는 이름 있어요? 현우: 미수요. 어쩔 수 없이 이별을 선택했지만, 어떠 한 장애물도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이 처음 만난 날 시작했던 유열의 라디오가 처 음으로 보이는 라디오 로 송출되던 날, 유열은 라디오의 촬영을 담당하게 된 현우의 부탁으로 라디오에서 미수의 이름을 부른다. 미수는 라디오에서 흘 러나오는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되고, 현 우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한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를 찾아 나 선다. 현우가 미수를 따라 달려왔던 그 돌담길처럼, 미수는 현우를 찾기 위해 서울 도시 한복판을 달려가며 현우와 는 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영화는 보이는 라디오 부스 안에 서 방송 장비를 정리하는 현우와 그를 부스 밖에서 바라보던 미수가 서로를 향해 웃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기 자가 찾아간 보이는 라디오 부스는 현 재 공사 중으로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먼발치에서 보이는 라디 오 부스를 보며 잠시나마 재회 당시 미 수와 현우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 들의 첫 만남부터 이별과 만남을 반복 해온 현재까지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 고 있는 <유열의 음악앨범> 방송이 형 태와 내용은 변했어도 본질과 마음만 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쩌면 미 수와 현우의 변하지 않는 사랑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장소에서 영화는 끝이 났지만, 기자 는 왠지 모를 아쉬운 마음에 보이는 라 디오 부스가 위치한 KBS 건물을 한참 동안 서성였다. 건물 외부 곳곳을 빨간 색과 노란색의 단풍이 뒤덮고 있는 것 을 보니 기자의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 다. 온 세상을 뒤덮은 단풍이 꼭 따뜻 하고 아름다웠던 이 영화의 분위기를 떠오르게 해, 단풍 속을 걷고 있는 기 자로 하여금 앞으로 펼쳐질 미수와 현 우의 이야기, 그리고 묵묵하게 그들을 지지해준 은자의 마음이 한층 더 아름 답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기자는 모든 여정을 마치고 다시 집 으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 창가에 기 대어 한참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 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라보기만 해 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계절인 가을이 꼭 이 영화의 잔잔한 분위기와 잘 어울 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연한 가을 속, 마치 영화의 미수와 현우가 된 것처럼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 이 여정은 무엇보다 일상 속에 지쳐있던 기자에 게 휴식과도 같았다. 특히 기자가 찾아 간 장소들에서 영화에서 등장한 다양 한 음악들과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물건이나 대사들을 함께 떠올려보니 기자는 마치 그 시간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첫 만남의 장소인 미수제과점부터 마지막 재회 장소인 KBS 보이는 라디오 부스까지. 비록 기자의 여정은 끝이 났지만, 미수 와 현우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와 영화 중간중간 확인할 수 있는 은자의 사랑 이 잔잔하게 남아 집에 돌아와 노트북 으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기 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천지예 기자([email protected]) ▲인천 동구에 위치한 미수제과점의 모습 ▲낙원상가 지하시장의 모습 ▲라디오 부스에서 미수와 현우가 재회하는 장면이다./출처:네이버 영화 ▲종로에 위치한 돌담길의 모습 문화 9 보고 따라가는 이야기 수많은 변화 속 절대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심을 노래하다 <유열의 음악앨범>(2019) 당신도 있나요? 그리운 그 시절, 그리운 그 사람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의 진수를 엿보다 SAL N De HONGIK ▲알폰스 무하의 연극 포스터 <연인들>(1895)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 진 아르누보 양식의 대표 작가로 알려 진 알폰스 무하(Alphonse Maria Mu - cha, 1860~1939). 알폰스 무하라 하면 나무줄기, 조개 모양 등에서 따온 아름 다운 곡선을 이용하여 테두리를 장식 하고, 그 속에 화려한 장신구를 한 매 혹적인 여인의 모습을 섬세한 선으로 표현한 아르누보 양식의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그는 이국적인 아르누보 형 식을 활용해 각종 광고 포스터나 책의 삽화를 디자인하는 등 예술을 우리의 일상생활로 들여왔다. <알폰스 무하>展 은 그의 첫 실용미술 작품인 극장 포스 터부터 조국인 체코의 독립을 응원하 는 작품까지 일명 무하 스타일 이라 불 리는 그의 전반적인 예술 세계를 총 5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첫 번째 섹션은 파리 연극 포스터, 사라 베르나르와 무하 로 알폰스 무하 가 처음으로 디자인한 연극 포스터 <지스몽다>(1894)로 시작한다. 그는 이 포스터에서 다채로운 색감을 사용 해 <지스몽다>의 주인공 사라 베르나 르를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바로 크나 비잔틴 양식 등에 영향을 받은 세 련된 곡선을 이용해 화면을 나누어 배 우의 신성한 이미지를 관람객들에게 각인시켰다. 이후 그는 연극 포스터 분야에서 명성을 얻어 <연인들> (1895), <메데>(1898), <햄릿>(1899)까 지 다양한 연극 포스터를 제작하였다. 한편 무하가 두 번째로 제작한 연극 포스터 <연인들>은 예술적 가치와 홍 보물로써의 가치를 모두 살린 작품으 로 평가받는다. 평소 세로로 길게 제작 되며 주인공만 등장하는 그의 다른 연 극 포스터 디자인과는 달리, 이 작품은 가로로 긴 형태로 제작되었고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이런 디자인으 로 코미디 연극 <연인들> 특유의 시끌 벅적함과 비극적인 분위기가 공존하는 모습을 관객들이 효과적으로 느끼게 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섹션은 각각 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광고 포스터대중을 위한 인쇄 출판물 로 알폰스 무 하의 화풍이 굳혀진 시기의 작품들을 보여주며 그가 제작한 실용미술 세계 를 엿볼 수 있다. 연극 포스터에서 유명 세를 굳힌 그는 특유의 우아한 곡선미 가 느껴지는 화풍으로 식음료에서 향 수까지 다양한 제품 광고 포스터뿐만 아니라 잡지 표지 등 출판물 분야까지 진출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제작하였다. 그중 <욥>(1896)은 당시 파리의 담배 회 욥(JOB) 의 광고 포스터로, 나풀거 리면서도 유연한 곡선으로 표현한 여 성의 머리 스타일과 회사명 욥(JOB) 을 활용한 무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더불어 이슬람문화에서 기인한 기하학 적인 직선 무늬와 자연물을 활용한 아 라베스크 문양을 사용하여 이국적이 고 관능적인 느낌을 준다. 19세기 말 사 회적 자유를 갈망하던 여성들과 해방 을 상징하는 담배라는 물체의 이미지 를 합성한 욥(JOB) 광고는 제품의 주 된 소비층이었던 여성들을 고려한 디 자인으로 평가받는다. 뒤이어 네 번째와 마지막 섹션은 매혹적인 아르누보의 여인들 , 고국을 위한 애국적 헌사 이다. 두 섹션에서는 실용 미술에서 멀어진 그의 작품세계 를 엿볼 수 있다. 우선 네 번째 섹션에 서는 그의 작품 중 잘 알려진 <사계> (1896) 시리즈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동양화에서 사용하는 자연물 묘사 방 법과 곡선적인 모양, 다채로운 색감이 돋보이는 서양화의 표현법을 함께 활 용한 장식 패널로 그의 창의적인 면모 를 보여준다. 마지막 섹션에 들어서면 슬라브 민족의 주체성이 잘 드러나는 <남서 모라비아를 위한 국민 연합 복 권>(1912), <8회 소콜 축제>(1926) 등 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알폰스 무하는 광고 포스터부터 책 삽화까지 다양한 분야의 미술에 도전 한 실용미술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아 르누보의 대중화를 넘어 자신의 근원 을 탐구한 민족화가로서의 면모는 매 우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여러 미술 분야에 걸친 무하의 다 양한 예술적 시도를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현지 기자([email protected]) 전시기간: 2019년 10월 24일(목)~2020년 3월 1일(일) 전시장소: 마이아트뮤지엄 관람시간: 10:00~20:00 (매주 월요일 휴무, 오후 7시 입장 마감, 2020년 1월 28일(화) 휴관) 관람요금: 성인(19세 이상) : 15,000원 / 청소년(8세~19세 미만) : 12,000원 / 어린이(만 3세~7세) : 10,000 / 유아(~만 36개월) : 무료 취재부

보고 따라가는 이야기 보 따 리 당신도 있나요? 그리운 그 시절 ...pdfhiupress.hongik.ac.kr/1288/128809.pdf · 2020. 4. 30. · 우리들의 마음을 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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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보고 따라가는 이야기 보 따 리 당신도 있나요? 그리운 그 시절 ...pdfhiupress.hongik.ac.kr/1288/128809.pdf · 2020. 4. 30. · 우리들의 마음을 적신

누구에게나 그리운 그 시절과 그리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이 어떻게

남아있든,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살아가

다 보물상자처럼 아름다웠던 그때의

그 추억을 꺼내어 보며 행복해하곤 한

다. 올해 가슴 따뜻한 사랑 이야기로

우리들의 마음을 적신 <유열의 음악앨

범>의 주인공 ‘미수’도 그러하다. 미수

는 가수 ‘유열’이 처음 라디오 방송 <유

열의 음악앨범>을 시작하던 때부터 시

간이 흘러 그 라디오가 처음으로 ‘보이

는 라디오’를 선보이게 된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1994년 「미수제과점」에서

쌓은 따뜻했던 추억을 잊은 적이 없다.

비록 기자는 그 당시를 직접 겪어보지

는 않았지만, 이 영화를 보며 문득 미

수와 ‘현우’, 그리고 미수의 친언니나 다

름없던 ‘은자’가 살아가던 그 시절의 분

위기가 궁금해졌다. 시간이 흐르고 많

은 것들이 변화했지만, 그들이 품고 있

었던 그 따뜻한 마음과 아름다운 추억

만큼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길 바

라며 기자는 영화 속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유열: 화창한 날이 계속되면 그곳은

사막이 된대요. 새해 소망은 한마디

만 붙여서 빌어봅시다. 새해에는 좋은

일‘도’있게 해주세요.

기자는 미수와 현우, 은자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 공간이자 행복했던 추

억이 남아있는 「미수제과점」을 찾아가

보았다. 이 제과점이 자리한 인천의 한

골목은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부

지런한 발걸음으로 생기를 띠고 있었

다. 기자는 「미수제과점」 맞은편에 있

는 편의점에 앉아 아침의 활기찬 기운

을 느끼며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보았

다. 영화 속에서 제과점의 하루를 시작

하며 분주하게 빵을 만들던 미수와 은

자의 모습도 저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가수 유열이 처음으로 라디오 <유열의

음악앨범>을 진행하던 날, 미수와 은자

가 운영하는 「미수제과점」에 현우가

아르바이트를 지원하며 그들의 운명적

인 만남이 시작된다. 이후 세 인물은 제

과점을 함께 꾸려나가며 서로의 일상

을 공유하고,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

는 등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가족처럼

돈독한 사이가 된다. 그동안 미수와 은

자 단둘이서만 꾸려왔던 「미수제과점」

이 현우의 등장으로 더욱 두터워진 가

족애의 시작이자, 미수와 현우가 서로

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는 중

요한 공간이 된 것이다. 기자가 찾아간

「미수제과점」은 영화에서 보던 그대로

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비록 현재

는 제과점을 운영하지 않아 이따금 기

자처럼 영화를 보고 찾아오는 관광객

들이 「미수제과점」의 유일한 손님이지

만,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제과

점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미수와 현

우, 은자 세 사람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현우: 저 그냥 밥 먹으러 온거에요…

맛있어요

(중략)

은자: 나는 기억도 안나는데, 내가 자

기를 믿어준다고 했다는 거야

종로3가역에서 밖으로 나오면 바로 보

이는 낙원상가 옆 지하시장은 「미수제

과점」을 떠난 은자의 새로운 일터이자,

미수와 현우를 향한 은자의 애정을 확

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은자는 이 지하

시장에서 수제비를 팔며 생계를 유지

해 간다. 그리고 가끔 일상에 지친 미수

와 현우가 이곳을 찾아오면, 따뜻한 수

제비 한 상을 차려주며 담담한 응원의

말로 그들을 위로한다. 수제빗국은 미

수와 현우를 향한 은자의 애정과 무한

한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기자가 찾

아간 대낮의 지하시장은 영화 속 시장

의 분위기와 같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

었다. 시장에는 손님에게 대접할 음식

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요리하는 식

당 주인, 식탁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소

박한 안주 위로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

의 근황을 묻는 사람들, 신기한 눈초리

로 한국 시장 문화를 구경하는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활기를

띠고 있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말

소리와 활기찬 분위기는 마치 기자에

게 하나의 라디오처럼 들려왔다. 기자

는 이러한 소리를 배경 삼아 천천히 지

하시장을 돌아보며 곳곳에 남아있는

은자의 애정을 한껏 느껴보았다.

미수: 현우야. 뛰지 마, 제발. 뛰지 마,

다쳐. 응?

기자의 다음 목적지인 종로의 돌담길

은 미수와 현우의 이별의 아픔을 상징

하는 공간이다. 운명적인 만남 이후 상

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안타까운 이

별을 반복하던 그들은 그동안 서로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이

별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다. 돌담길

에서 미수는 뒤따라오는 현우를 밀어

내며 눈물의 이별을 한다. 기자는 영

화 속에서 현우가 미수를 따라 걸었

던 이 길을 따라 걸으며 그들의 감정

을 헤아려 보았다. 사랑하는 연인 미수

에게 자신의 치부를 들키고 싶지 않았

던 현우와 자신에게만은 모든 짐과 걱

정을 털어놓고 함께 해결해나가길 바

라는 미수. 그 둘의 복잡한 감정이 섞

였던 돌담길을 걸어보니 기자는 왠지

기자가 이별한 것만 같은 저릿한 아픔

이 느껴졌다. 서로 이별을 선택했음에

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마음만은 여전

히 따뜻했던 그들의 온기가 기자에게

도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유열: 오늘이 보이는 라디오 첫날인데

불러줬으면 하는 이름 있어요?

현우: 미수요.

어쩔 수 없이 이별을 선택했지만, 어떠

한 장애물도 그들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이 처음

만난 날 시작했던 유열의 라디오가 처

음으로 ‘보이는 라디오’로 송출되던 날,

유열은 라디오의 촬영을 담당하게 된

현우의 부탁으로 라디오에서 미수의

이름을 부른다. 미수는 라디오에서 흘

러나오는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되고, 현

우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한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를 찾아 나

선다. 현우가 미수를 따라 달려왔던 그

돌담길처럼, 미수는 현우를 찾기 위해

서울 도시 한복판을 달려가며 현우와

는 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후 영화는 보이는 라디오 부스 안에

서 방송 장비를 정리하는 현우와 그를

부스 밖에서 바라보던 미수가 서로를

향해 웃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기

자가 찾아간 보이는 라디오 부스는 현

재 공사 중으로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먼발치에서 보이는 라디

오 부스를 보며 잠시나마 재회 당시 미

수와 현우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그

들의 첫 만남부터 이별과 만남을 반복

해온 현재까지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

고 있는 <유열의 음악앨범> 방송이 형

태와 내용은 변했어도 본질과 마음만

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쩌면 미

수와 현우의 변하지 않는 사랑을 의미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장소에서 영화는 끝이 났지만, 기자

는 왠지 모를 아쉬운 마음에 보이는 라

디오 부스가 위치한 KBS 건물을 한참

동안 서성였다. 건물 외부 곳곳을 빨간

색과 노란색의 단풍이 뒤덮고 있는 것

을 보니 기자의 마음이 절로 따뜻해졌

다. 온 세상을 뒤덮은 단풍이 꼭 따뜻

하고 아름다웠던 이 영화의 분위기를

떠오르게 해, 단풍 속을 걷고 있는 기

자로 하여금 앞으로 펼쳐질 미수와 현

우의 이야기, 그리고 묵묵하게 그들을

지지해준 은자의 마음이 한층 더 아름

답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기자는 모든 여정을 마치고 다시 집

으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 창가에 기

대어 한참 동안 창밖으로 보이는 가을

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라보기만 해

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계절인 가을이

꼭 이 영화의 잔잔한 분위기와 잘 어울

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연한 가을 속,

마치 영화의 미수와 현우가 된 것처럼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 이 여정은

무엇보다 일상 속에 지쳐있던 기자에

게 휴식과도 같았다. 특히 기자가 찾아

간 장소들에서 영화에서 등장한 다양

한 음악들과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물건이나 대사들을 함께 떠올려보니

기자는 마치 그 시간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첫 만남의

장소인 「미수제과점」부터 마지막 재회

장소인 KBS 보이는 라디오 부스까지.

비록 기자의 여정은 끝이 났지만, 미수

와 현우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와 영화

중간중간 확인할 수 있는 은자의 사랑

이 잔잔하게 남아 집에 돌아와 노트북

으로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까지도 기

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천지예 기자([email protected])

▲인천 동구에 위치한 미수제과점의 모습

▲낙원상가 지하시장의 모습

▲라디오 부스에서 미수와 현우가 재회하는 장면이다./출처:네이버 영화

▲종로에 위치한 돌담길의 모습

문화 9

보고 따라가는 이야기보 따 리

수많은 변화 속 절대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심을 노래하다 <유열의 음악앨범>(2019)

당신도 있나요? 그리운 그 시절, 그리운 그 사람

<알폰스 무하>아르누보의 진수를 엿보다

SAL N De HONGIK

▲알폰스 무하의 연극 포스터 <연인들>(1895)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이어

진 아르누보 양식의 대표 작가로 알려

진 알폰스 무하(Alphonse Maria Mu-

cha, 1860~1939). 알폰스 무하라 하면

나무줄기, 조개 모양 등에서 따온 아름

다운 곡선을 이용하여 테두리를 장식

하고, 그 속에 화려한 장신구를 한 매

혹적인 여인의 모습을 섬세한 선으로

표현한 아르누보 양식의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그는 이국적인 아르누보 형

식을 활용해 각종 광고 포스터나 책의

삽화를 디자인하는 등 예술을 우리의

일상생활로 들여왔다. <알폰스 무하>展

은 그의 첫 실용미술 작품인 극장 포스

터부터 조국인 체코의 독립을 응원하

는 작품까지 일명 ‘무하 스타일’이라 불

리는 그의 전반적인 예술 세계를 총 5

개의 섹션으로 나누어 보여준다.

첫 번째 섹션은 ‘파리 연극 포스터,

사라 베르나르와 무하’로 알폰스 무하

가 처음으로 디자인한 연극 포스터

<지스몽다>(1894)로 시작한다. 그는

이 포스터에서 다채로운 색감을 사용

해 <지스몽다>의 주인공 사라 베르나

르를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또한 바로

크나 비잔틴 양식 등에 영향을 받은 세

련된 곡선을 이용해 화면을 나누어 배

우의 신성한 이미지를 관람객들에게

각인시켰다. 이후 그는 연극 포스터

분야에서 명성을 얻어 <연인들>

(1895), <메데>(1898), <햄릿>(1899)까

지 다양한 연극 포스터를 제작하였다.

한편 무하가 두 번째로 제작한 연극

포스터 <연인들>은 예술적 가치와 홍

보물로써의 가치를 모두 살린 작품으

로 평가받는다. 평소 세로로 길게 제작

되며 주인공만 등장하는 그의 다른 연

극 포스터 디자인과는 달리, 이 작품은

가로로 긴 형태로 제작되었고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이런 디자인으

로 코미디 연극 <연인들> 특유의 시끌

벅적함과 비극적인 분위기가 공존하는

모습을 관객들이 효과적으로 느끼게

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섹션은 각각 ‘예

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광고 포스터’와

‘대중을 위한 인쇄 출판물’로 알폰스 무

하의 화풍이 굳혀진 시기의 작품들을

보여주며 그가 제작한 실용미술 세계

를 엿볼 수 있다. 연극 포스터에서 유명

세를 굳힌 그는 특유의 우아한 곡선미

가 느껴지는 화풍으로 식음료에서 향

수까지 다양한 제품 광고 포스터뿐만

아니라 잡지 표지 등 출판물 분야까지

진출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제작하였다.

그중 <욥>(1896)은 당시 파리의 담배 회

사 「욥(JOB)」의 광고 포스터로, 나풀거

리면서도 유연한 곡선으로 표현한 여

성의 머리 스타일과 회사명 「욥(JOB)」

을 활용한 무늬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더불어 이슬람문화에서 기인한 기하학

적인 직선 무늬와 자연물을 활용한 아

라베스크 문양을 사용하여 이국적이

고 관능적인 느낌을 준다. 19세기 말 사

회적 자유를 갈망하던 여성들과 해방

을 상징하는 담배라는 물체의 이미지

를 합성한 「욥(JOB)」 광고는 제품의 주

된 소비층이었던 여성들을 고려한 디

자인으로 평가받는다.

뒤이어 네 번째와 마지막 섹션은

‘매혹적인 아르누보의 여인들’, ‘고국을

위한 애국적 헌사’이다. 두 섹션에서는

실용 미술에서 멀어진 그의 작품세계

를 엿볼 수 있다. 우선 네 번째 섹션에

서는 그의 작품 중 잘 알려진 <사계>

(1896) 시리즈를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동양화에서 사용하는 자연물 묘사 방

법과 곡선적인 모양, 다채로운 색감이

돋보이는 서양화의 표현법을 함께 활

용한 장식 패널로 그의 창의적인 면모

를 보여준다. 마지막 섹션에 들어서면

슬라브 민족의 주체성이 잘 드러나는

<남서 모라비아를 위한 국민 연합 복

권>(1912), <8회 소콜 축제>(1926) 등

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알폰스 무하는 광고 포스터부터 책

삽화까지 다양한 분야의 미술에 도전

한 실용미술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아

르누보의 대중화를 넘어 자신의 근원

을 탐구한 민족화가로서의 면모는 매

우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여러 미술 분야에 걸친 무하의 다

양한 예술적 시도를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현지 기자([email protected])

전시기간: 2019년 10월 24일(목)~2020년 3월 1일(일)

전시장소: 마이아트뮤지엄

관람시간: 10:00~20:00 (매주 월요일 휴무, 오후 7시 입장 마감, 2020년 1월

28일(화) 휴관)

관람요금: 성인(19세 이상) : 15,000원 / 청소년(8세~19세 미만) : 12,000원

/ 어린이(만 3세~7세) : 10,000 / 유아(~만 36개월) : 무료

취재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