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Heart & Mind 31 제134호 2009년 10월 4일 인천 아트플랫폼 안에는 우리나라에 현존하 는 근대건축물 가운데 사무소 건축물로 가 장 오래된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1888년)과 1902년에 세워진 옛 군회조점이 있다. 두 건물 모두 해운회사 건물로 그동안 건축연도를 몰라 막연하게 개항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다가 리모델링 공사 중에 지 붕 속에서 상량문이 발견돼 정확한 건축 시 기가 밝혀졌다. 이처럼 일찍 해운회사 건물 이 세워진 것은 인천의 지리적 특수성 때문 이었다. 1883년 인천 개항 후 우리나라와 통 상을 체결한 국가들은 인천항에 정기항로를 개설하고자 노력했다. 당시 일본은 나가사 키와 부산을 운항하는 정부 관할 항로의 일 종인 이른바 ‘명령항로’를 운영하고 있었지 만, 항해보조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어 인천 에는 정기항로를 개설하지 못하고 있던 처지 였다. 그런데 영국인이 운영하는 이화양행 이 1883년 8월부터 인천과 상하이를 오가는 정기항로를 개설하자 이에 다급해진 일본은 그해 10월부터 인천까지 항로를 연장하였 다. 이후 인천에는 여러 개의 해운회사가 들 어섰으며, 군회조점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건물은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에 이 어 인천에 현존하는 근대건축물 중 둘째로 오래된 것이다. 두 건물 모두 붉은 벽돌로 벽체를 구성하 고 트러스를 걸었으며, 지붕에는 일본식 기 와를 올려 마감했다. 1890년 이후 일본에서 는 공공건축물에 붉은 벽돌을 많이 사용하 였으며, 이 벽돌의 일부가 우리나라에 수입 됐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벽돌벽에 사용된 줄 눈 크기는 가로줄눈 7.6㎜, 세로줄눈 9.1㎜였 으나,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한다. 군회조점 건물에 사용된 줄눈의 크기는 가로줄눈과 세 로줄눈 모두 7㎜이며, 줄눈의 형태는 보기 드 문 둥근 줄눈으로 상당히 아름답다. 인천 아트플랫폼 위 블록에는 19세기 말 인천에 진출했던 일본은행 지점 건물 세 채 가 남아 인천의 위용을 상징하고 있다. 근대 시기 사무소 건축물이 한곳에 밀집돼 현존 하는 곳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그리 흔 하지 않다. 이 일대를 천천히 돌아보면서 19 세기 말 우리나라 근대문물의 유입 창구였던 인천의 영화를 되새겨 봄직하다. 지난달 25일 ‘다시 개항’이라는 개관전으로 문을 연 아트플랫폼은 인천시 구도심 재생사 업의 일환으로 중구 해안동 일대에 조성된 복 합문화예술매개공간이다. 복합문화예술매 개공간은 예술가가 거주하며 창작하는 레지 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동시에 창작물의 발표를 위한 전시장·공연장, 그리고 자료실 등 지원시설이 함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아트 플랫폼이 위치한 일대는 인천항의 배후지로 서 1883년 개항 이후 근대문물 유입의 전초기 지였던 흔적이 곳곳에 남겨 있는 역사적인 장 소다. ‘개항장 지구’라 불리는 이곳은 일본과 청나라, 그리고 서구 각국의 조계지였다. 이 런 역사는 이국적인 풍경의 조각들을 남겼고 현재의 주거와 상업 등 일상의 풍경이 혼재되 어 있다. 아트플랫폼은 개항기의 청나라 조계 지 터(현재의 차이나타운)와 마주하며 일본 인 조계지였던 곳이 시작되는 곳의 경계에 자 리 잡은 일본해운회사의 건물로 지어졌던 두 동의 근대 건축물과 1930~40년대에 지어진 대한통운의 창고 등을 활용해 13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블록으로 재건축되었다. 최근 많은 지자체가 쇠락한 지역을 재생시키는 데 상징 성을 가진 근대 건축물과 예술의 창조적인 에 너지와 접목하려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 운데, 인천 아트플랫폼의 개관은 지역 내외의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요일인 지난달 27일 오후, 인천아트플랫 폼을 방문했다. 택시를 타고 가며 보이는 시내 풍경은 여느 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는데, 어느새 붉은 벽돌의 창고며 항구의 시설들이 아트플랫폼에 가까워옴을 알려줬다. 차에서 내려 차이나타운을 바라보는 중앙의 길에 서 니 한눈에 모든 건물이 들어왔다. 열성적인 블로거들이 올린 방문기와 개관을 알리는 기 사의 사진을 통해 건물은 낯설지 않았다. 하 지만 길 끝으로 이어지는 다소 과장된 양식의 한중문화원과 차이나타운의 풍경은 아트플 랫폼의 풍경과 마치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한군데 옮겨놓은 듯 이질적이다. 13개 동 하나로 묶어 건물은 중앙의 길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나뉜다. 도로 쪽에는 전시와 공연, 그리고 교 육이 이루어지는 개방적인 성격의 건물 블록 이었다. 반대편 건물 블록은 작가의 창작공간 과 거주공간이었다. 개별적인 동으로 나뉘면 서도 철제의 공중 보행로가 종횡으로 연결돼 군집을 이룬 건물군이 마치 한 건물처럼 복합 적인 프로그램을 수용하도록 하였다. 이는 새 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도 기존하는 도 시의 문맥을 유지하려는 계획가의 의도를 보 여준다. 철제로 된 공중 보행로는 13동의 건물 사 이 사이에 놓인 하늘이 보이는 좁은 틈과, 옛 골목길과 계단의 흔적이 남은 통로 등 지상 의 유기적인 외부공간을 압도해 현재의 스케 일에서는 다소 과한 느낌이 있다. 주변을 돌아 보고 나서 아트플랫폼을 꼼꼼히 볼 요량으로 전체 개항장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인천공 항과 월미도, 그리고 신도시인 송도 이외 지 역의 인천에 대해 무지했던 필자는 아트플랫 폼과 그 주변 지역을 둘러보는 짧은 탐방으로 인천에 대해 꽤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됐다. 탐 방을 안내해준 인천 재능대학교 손장원 교수 덕이다. 손 교수는 인천의 근대 건축물에 대 해 꾸준히 연구하고 저술활동을 해왔다. 그는 건물의 연혁, 건축가와 건축주의 개인사까지 들려줬다. 다시 제자리인 아트플랫폼으로 돌아와 보 니 한중문화원과 아트플랫폼 사이의 드라마 틱한 경계가 비로소 보였다. 아트플랫폼은 단 기간에 이루어진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 시작 은 이미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준비를 통해 구체화되어서인지 아트플랫폼 은 완성도 있는 마감과 잘 짜이고 완결된 공 간 구조를 가졌다. 허물지 않고 재활용한 네 채의 벽돌 건물과 새로 지어진 붉은 벽돌조 의 건물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자 연스럽게 이어졌다. 동과 동 사이의 열리고 닫 힌 내·외부 공간의 조합도 짜임새가 있다. 이 렇듯 얼마 전까지 주변의 다른 풍경과 비슷했 을 아트플랫폼은 이제는 통일된 재료와 프로 그램으로 주변과 대비되는 독자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장점이었을 완 성도와 완결성이 주변 지역을 돌아보고 나니 오히려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오래된 것과 새것의 시간차, 그리고 중국 절, 성당, 일본식 적산가옥 등 양식의 불균질함과 거기서 비롯 한 역동성이야말로 이 지역의 정체성을 이루 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예술 가들이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의 변방에 물이 고이듯 모이는 것은, 예술가의 한계적인 상황 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예술가의 본성이 그 런 거친 토양에 반응하고 그것이 그들의 창작 욕구와 그들의 삶 자체와 만나 새로운 장소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일대 의 장소성과 예술가의 작업과 삶의 양태가 만 나지 않는다면 예술과 지역의 재생을 접목하 는 일은 지속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 서 개관전의 제목인 ‘다시 개항’은 이 시점에 딱 맞는 전시인 셈이다. 아트플랫폼은 기존 대지에 있었던 건물 중 다양한 시기에 지어진 건물 네 채를 그 원형을 부분적으로 살려 재활용하였다. 재건축을 위 한 철거과정에서 그 준공연도가 밝혀져 인천 시 문화재로 등록된 대흥공사(구 일본우선주 식회사)는 현재 자료실로, 사진만으로 그 원 형이 알려진 구 군회조점은 교육 및 전시공간 으로 활용되고 있다. 99년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 이 두 건물은 복원과 보존의 방식으로 접근 했다기보다는 보존할 요소를 선택하여 활용 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보였다. 구 일본우선 주식회사의 내부는 전체적인 내부 구조를 유 지하고 천장의 장식적인 목재 몰딩과 바닥 아 래 드러난 벽돌 구조물을 유리로 덮어 내려 다볼 수 있도록 했다. 자료실에는 천장 마감 을 없애서 지붕의 목조 트러스를 드러냈다. 철거과정에서 드러난 푸른색 도장으로 금고 의 문을 도색하는 등 이 건물에 축적된 시간 의 켜를 부분적으로 드러나도록 고심한 흔 적이 보였다. 희고 깨끗한 마감재로 덮기보 다 오랫동안 덧대어진 마감재를 덜어냈다. 이 방식이 이곳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에 접속 할 수 있는 창 역할을 하고 있었다. 좀 더 적극 적으로 드러내도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교육공간이자 전시장이기도 한 구 군회조점의 건물은 사진으로 남아 있는 기 록과는 다른 입면으로 변형되었다. 경비실의 뒤로 보이는 원래의 입구 돌 아치와 벽돌의 둥근 줄 눈만이 1902년 지어진 이 건물의 나 이를 짐작하게 한다. 근대 건축 유적이라 할 수 있는 앞선 두 건 물 이외에도 이곳의 장소적인 특징을 드러내 는 대한통운의 창고를 구조 보강한 건물은 전시장으로, 다세대 건물은 작가의 거주공간 으로 각각 활용되고 있었다. 아트플랫폼의 총 괄계획(MA)은 건축가 황순우씨가 맡았다. 황씨는 99년 지역 보존을 위한 정책 제안부 터 2000년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을 수행하는 등 이 지역에 대한 논의가 형성되어 아트플랫폼으로 구체적인 결실을 맺는 전 과 정에 참여해 왔다. 아트플랫폼의 곳곳에는 오래된 건조물을 낡고 쇠락한 것으로 보고 과감하게 새로운 프로그램에 맞게 재구성할 것인지 철저하게 그 흔적을 추적하여 역사 적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인지 보존과 활용 의 정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건 축가와 지역사회의 고민이 드러난다. 황씨는 한 인터뷰에서 과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온 도시의 역동성 을 인정하고 보존할 요소들을 선별하여 과거 흔적에서 미래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건축가 의 몫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그의 생각에 동 의하면서, 개항장 지구의 미래가치는 보존할 요소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선별하느냐에 따 라 좌우되는 점을 더하고 싶다. 이런 과정은 의미를 잃고 낡은 건조물로 쇠락해 가는 자 원들이 비로소 도시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거 울이 되고 시민이, 예술의 힘이 장소의 이미 지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도시를 재발견하도록 하는 창의의 원천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 인천 ‘아트플랫폼’ 차이나타운 옆 옛 조계지 건물 다름이 빚은 역동적인 매력 쇠락한 건물 재건축 예술가들이 살고 작업하고 전시장 겸한 복합예술공간으로 붉은 벽돌에 둥근 줄눈 1888년 세운 일본우선주식회사 가장 오래된 근대 사무실 인천 등록문화재 제248호로 지정된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건물. 앞으로 아트플랫폼의 자료관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아트플랫폼 전 경. 왼쪽에 차이나타운 일부가 보인다. 사진 앞줄의 창고 등 건물은 전시와 공연 공간 등이고 뒷줄은 작가의 창작과 거주 공간으로 활용된다. 옛 일본우 선주식회사의 내부 바닥 일부를 유리로 만들어 건물 바닥 아래의 벽돌 구조를 볼 수 있다. 창고를 개조해 만든 전시장. 신동연 기자 인천 개항 직후 세워진 일본 해운회사 건물의 재탄생 아트플랫폼은 위치 인천시 중구 해안동 면적 5600㎡ 구성 창작스튜디오·공방·교육관·전시장· 공연장 등 13개 동. ※예술가에게 작업실·거주공간을 3개월~1년간 빌려주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을 운영한다. 20 손장원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부교수 인천광역시문화재위원 조재원 0_1 도시건축스튜디오 대표

차이나타운 옆 옛 조계지 건물 다름이 빚은 역동적인 매력 › text › 사색공간 › 사색공간1004.pdf · 2011-04-13 · 다름이 빚은 역동적인 매력

  • Upload
    others

  • View
    1

  • Download
    0

Embed Size (px)

Citation preview

Page 1: 차이나타운 옆 옛 조계지 건물 다름이 빚은 역동적인 매력 › text › 사색공간 › 사색공간1004.pdf · 2011-04-13 · 다름이 빚은 역동적인 매력

Heart & Mind31제134호 2009년 10월 4일

인천 아트플랫폼 안에는 우리나라에 현존하

는 근대건축물 가운데 사무소 건축물로 가

장 오래된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1888년)과 1902년에 세워진 옛 군회조점이

있다. 두 건물 모두 해운회사 건물로 그동안

건축연도를 몰라 막연하게 개항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다가 리모델링 공사 중에 지

붕 속에서 상량문이 발견돼 정확한 건축 시

기가 밝혀졌다. 이처럼 일찍 해운회사 건물

이 세워진 것은 인천의 지리적 특수성 때문

이었다. 1883년 인천 개항 후 우리나라와 통

상을 체결한 국가들은 인천항에 정기항로를

개설하고자 노력했다. 당시 일본은 나가사

키와 부산을 운항하는 정부 관할 항로의 일

종인 이른바 ‘명령항로’를 운영하고 있었지

만, 항해보조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어 인천

에는 정기항로를 개설하지 못하고 있던 처지

였다. 그런데 영국인이 운영하는 이화양행

이 1883년 8월부터 인천과 상하이를 오가는

정기항로를 개설하자 이에 다급해진 일본은

그해 10월부터 인천까지 항로를 연장하였

다. 이후 인천에는 여러 개의 해운회사가 들

어섰으며, 군회조점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건물은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에 이

어 인천에 현존하는 근대건축물 중 둘째로

오래된 것이다.

두 건물 모두 붉은 벽돌로 벽체를 구성하

고 트러스를 걸었으며, 지붕에는 일본식 기

와를 올려 마감했다. 1890년 이후 일본에서

는 공공건축물에 붉은 벽돌을 많이 사용하

였으며, 이 벽돌의 일부가 우리나라에 수입

됐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벽돌벽에 사용된 줄

눈 크기는 가로줄눈 7.6㎜, 세로줄눈 9.1㎜였

으나,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한다. 군회조점

건물에 사용된 줄눈의 크기는 가로줄눈과 세

로줄눈 모두 7㎜이며, 줄눈의 형태는 보기 드

문 둥근 줄눈으로 상당히 아름답다.

인천 아트플랫폼 위 블록에는 19세기 말

인천에 진출했던 일본은행 지점 건물 세 채

가 남아 인천의 위용을 상징하고 있다. 근대

시기 사무소 건축물이 한곳에 밀집돼 현존

하는 곳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그리 흔

하지 않다. 이 일대를 천천히 돌아보면서 19

세기 말 우리나라 근대문물의 유입 창구였던

인천의 영화를 되새겨 봄직하다.

지난달 25일 ‘다시 개항’이라는 개관전으로

문을 연 아트플랫폼은 인천시 구도심 재생사

업의 일환으로 중구 해안동 일대에 조성된 복

합문화예술매개공간이다. 복합문화예술매

개공간은 예술가가 거주하며 창작하는 레지

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동시에 창작물의

발표를 위한 전시장·공연장, 그리고 자료실

등 지원시설이 함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아트

플랫폼이 위치한 일대는 인천항의 배후지로

서 1883년 개항 이후 근대문물 유입의 전초기

지였던 흔적이 곳곳에 남겨 있는 역사적인 장

소다. ‘개항장 지구’라 불리는 이곳은 일본과

청나라, 그리고 서구 각국의 조계지였다. 이

런 역사는 이국적인 풍경의 조각들을 남겼고

현재의 주거와 상업 등 일상의 풍경이 혼재되

어 있다. 아트플랫폼은 개항기의 청나라 조계

지 터(현재의 차이나타운)와 마주하며 일본

인 조계지였던 곳이 시작되는 곳의 경계에 자

리 잡은 일본해운회사의 건물로 지어졌던 두

동의 근대 건축물과 1930~40년대에 지어진

대한통운의 창고 등을 활용해 13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블록으로 재건축되었다. 최근 많은

지자체가 쇠락한 지역을 재생시키는 데 상징

성을 가진 근대 건축물과 예술의 창조적인 에

너지와 접목하려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

운데, 인천 아트플랫폼의 개관은 지역 내외의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요일인 지난달 27일 오후, 인천아트플랫

폼을 방문했다. 택시를 타고 가며 보이는 시내

풍경은 여느 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는데,

어느새 붉은 벽돌의 창고며 항구의 시설들이

아트플랫폼에 가까워옴을 알려줬다. 차에서

내려 차이나타운을 바라보는 중앙의 길에 서

니 한눈에 모든 건물이 들어왔다. 열성적인

블로거들이 올린 방문기와 개관을 알리는 기

사의 사진을 통해 건물은 낯설지 않았다. 하

지만 길 끝으로 이어지는 다소 과장된 양식의

한중문화원과 차이나타운의 풍경은 아트플

랫폼의 풍경과 마치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한군데 옮겨놓은 듯 이질적이다.

13개 동 하나로 묶어

건물은 중앙의 길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나뉜다. 도로 쪽에는 전시와 공연, 그리고 교

육이 이루어지는 개방적인 성격의 건물 블록

이었다. 반대편 건물 블록은 작가의 창작공간

과 거주공간이었다. 개별적인 동으로 나뉘면

서도 철제의 공중 보행로가 종횡으로 연결돼

군집을 이룬 건물군이 마치 한 건물처럼 복합

적인 프로그램을 수용하도록 하였다. 이는 새

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도 기존하는 도

시의 문맥을 유지하려는 계획가의 의도를 보

여준다.

철제로 된 공중 보행로는 13동의 건물 사

이 사이에 놓인 하늘이 보이는 좁은 틈과, 옛

골목길과 계단의 흔적이 남은 통로 등 지상

의 유기적인 외부공간을 압도해 현재의 스케

일에서는 다소 과한 느낌이 있다. 주변을 돌아

보고 나서 아트플랫폼을 꼼꼼히 볼 요량으로

전체 개항장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인천공

항과 월미도, 그리고 신도시인 송도 이외 지

역의 인천에 대해 무지했던 필자는 아트플랫

폼과 그 주변 지역을 둘러보는 짧은 탐방으로

인천에 대해 꽤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됐다. 탐

방을 안내해준 인천 재능대학교 손장원 교수

덕이다. 손 교수는 인천의 근대 건축물에 대

해 꾸준히 연구하고 저술활동을 해왔다. 그는

건물의 연혁, 건축가와 건축주의 개인사까지

들려줬다.

다시 제자리인 아트플랫폼으로 돌아와 보

니 한중문화원과 아트플랫폼 사이의 드라마

틱한 경계가 비로소 보였다. 아트플랫폼은 단

기간에 이루어진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 시작

은 이미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준비를 통해 구체화되어서인지 아트플랫폼

은 완성도 있는 마감과 잘 짜이고 완결된 공

간 구조를 가졌다. 허물지 않고 재활용한 네

채의 벽돌 건물과 새로 지어진 붉은 벽돌조

의 건물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자

연스럽게 이어졌다. 동과 동 사이의 열리고 닫

힌 내·외부 공간의 조합도 짜임새가 있다. 이

렇듯 얼마 전까지 주변의 다른 풍경과 비슷했

을 아트플랫폼은 이제는 통일된 재료와 프로

그램으로 주변과 대비되는 독자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장점이었을 완

성도와 완결성이 주변 지역을 돌아보고 나니

오히려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오래된 것과

새것의 시간차, 그리고 중국 절, 성당, 일본식

적산가옥 등 양식의 불균질함과 거기서 비롯

한 역동성이야말로 이 지역의 정체성을 이루

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예술

가들이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의 변방에 물이

고이듯 모이는 것은, 예술가의 한계적인 상황

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예술가의 본성이 그

런 거친 토양에 반응하고 그것이 그들의 창작

욕구와 그들의 삶 자체와 만나 새로운 장소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일대

의 장소성과 예술가의 작업과 삶의 양태가 만

나지 않는다면 예술과 지역의 재생을 접목하

는 일은 지속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

서 개관전의 제목인 ‘다시 개항’은 이 시점에

딱 맞는 전시인 셈이다.

아트플랫폼은 기존 대지에 있었던 건물 중

다양한 시기에 지어진 건물 네 채를 그 원형을

부분적으로 살려 재활용하였다. 재건축을 위

한 철거과정에서 그 준공연도가 밝혀져 인천

시 문화재로 등록된 대흥공사(구 일본우선주

식회사)는 현재 자료실로, 사진만으로 그 원

형이 알려진 구 군회조점은 교육 및 전시공간

으로 활용되고 있다.

99년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

이 두 건물은 복원과 보존의 방식으로 접근

했다기보다는 보존할 요소를 선택하여 활용

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보였다. 구 일본우선

주식회사의 내부는 전체적인 내부 구조를 유

지하고 천장의 장식적인 목재 몰딩과 바닥 아

래 드러난 벽돌 구조물을 유리로 덮어 내려

다볼 수 있도록 했다. 자료실에는 천장 마감

을 없애서 지붕의 목조 트러스를 드러냈다.

철거과정에서 드러난 푸른색 도장으로 금고

의 문을 도색하는 등 이 건물에 축적된 시간

의 켜를 부분적으로 드러나도록 고심한 흔

적이 보였다. 희고 깨끗한 마감재로 덮기보

다 오랫동안 덧대어진 마감재를 덜어냈다. 이

방식이 이곳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에 접속

할 수 있는 창 역할을 하고 있었다. 좀 더 적극

적으로 드러내도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교육공간이자 전시장이기도 한 구

군회조점의 건물은 사진으로 남아 있는 기

록과는 다른 입면으로 변형되었다. 경비실의

뒤로 보이는 원래의 입구 돌 아치와 벽돌의

둥근 줄 눈만이 1902년 지어진 이 건물의 나

이를 짐작하게 한다.

근대 건축 유적이라 할 수 있는 앞선 두 건

물 이외에도 이곳의 장소적인 특징을 드러내

는 대한통운의 창고를 구조 보강한 건물은

전시장으로, 다세대 건물은 작가의 거주공간

으로 각각 활용되고 있었다. 아트플랫폼의 총

괄계획(MA)은 건축가 황순우씨가 맡았다.

황씨는 99년 지역 보존을 위한 정책 제안부

터 2000년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을

수행하는 등 이 지역에 대한 논의가 형성되어

아트플랫폼으로 구체적인 결실을 맺는 전 과

정에 참여해 왔다. 아트플랫폼의 곳곳에는

오래된 건조물을 낡고 쇠락한 것으로 보고

과감하게 새로운 프로그램에 맞게 재구성할

것인지 철저하게 그 흔적을 추적하여 역사

적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인지 보존과 활용

의 정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건

축가와 지역사회의 고민이 드러난다. 황씨는

한 인터뷰에서 과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온 도시의 역동성

을 인정하고 보존할 요소들을 선별하여 과거

흔적에서 미래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건축가

의 몫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그의 생각에 동

의하면서, 개항장 지구의 미래가치는 보존할

요소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선별하느냐에 따

라 좌우되는 점을 더하고 싶다. 이런 과정은

의미를 잃고 낡은 건조물로 쇠락해 가는 자

원들이 비로소 도시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거

울이 되고 시민이, 예술의 힘이 장소의 이미

지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도시를

재발견하도록 하는 창의의 원천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

인천 ‘아트플랫폼’

차이나타운 옆 옛 조계지 건물다름이 빚은 역동적인 매력

쇠락한 건물 재건축

예술가들이 살고 작업하고

전시장 겸한 복합예술공간으로

붉은 벽돌에 둥근 줄눈

1888년 세운 일본우선주식회사

가장 오래된 근대 사무실

인천 등록문화재 제248호로 지정된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건물. 앞으로 아트플랫폼의 자료관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아트플랫폼 전

경. 왼쪽에 차이나타운 일부가 보인다. 사진 앞줄의 창고 등 건물은 전시와 공연 공간 등이고 뒷줄은 작가의 창작과 거주 공간으로 활용된다. 옛 일본우

선주식회사의 내부 바닥 일부를 유리로 만들어 건물 바닥 아래의 벽돌 구조를 볼 수 있다. 창고를 개조해 만든 전시장. 신동연 기자

인천 개항 직후 세워진 일본 해운회사 건물의 재탄생

아트플랫폼은

위치 인천시 중구 해안동

면적 5600㎡

구성 창작스튜디오·공방·교육관·전시장·

공연장 등 13개 동.

※예술가에게 작업실·거주공간을 3개월~1년간

빌려주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을 운영한다.

20

손장원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부교수

인천광역시문화재위원

조재원

0_1 도시건축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