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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 & Mind31제134호 2009년 10월 4일
인천 아트플랫폼 안에는 우리나라에 현존하
는 근대건축물 가운데 사무소 건축물로 가
장 오래된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1888년)과 1902년에 세워진 옛 군회조점이
있다. 두 건물 모두 해운회사 건물로 그동안
건축연도를 몰라 막연하게 개항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다가 리모델링 공사 중에 지
붕 속에서 상량문이 발견돼 정확한 건축 시
기가 밝혀졌다. 이처럼 일찍 해운회사 건물
이 세워진 것은 인천의 지리적 특수성 때문
이었다. 1883년 인천 개항 후 우리나라와 통
상을 체결한 국가들은 인천항에 정기항로를
개설하고자 노력했다. 당시 일본은 나가사
키와 부산을 운항하는 정부 관할 항로의 일
종인 이른바 ‘명령항로’를 운영하고 있었지
만, 항해보조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어 인천
에는 정기항로를 개설하지 못하고 있던 처지
였다. 그런데 영국인이 운영하는 이화양행
이 1883년 8월부터 인천과 상하이를 오가는
정기항로를 개설하자 이에 다급해진 일본은
그해 10월부터 인천까지 항로를 연장하였
다. 이후 인천에는 여러 개의 해운회사가 들
어섰으며, 군회조점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
건물은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에 이
어 인천에 현존하는 근대건축물 중 둘째로
오래된 것이다.
두 건물 모두 붉은 벽돌로 벽체를 구성하
고 트러스를 걸었으며, 지붕에는 일본식 기
와를 올려 마감했다. 1890년 이후 일본에서
는 공공건축물에 붉은 벽돌을 많이 사용하
였으며, 이 벽돌의 일부가 우리나라에 수입
됐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벽돌벽에 사용된 줄
눈 크기는 가로줄눈 7.6㎜, 세로줄눈 9.1㎜였
으나, 잘 지켜지지는 않았다 한다. 군회조점
건물에 사용된 줄눈의 크기는 가로줄눈과 세
로줄눈 모두 7㎜이며, 줄눈의 형태는 보기 드
문 둥근 줄눈으로 상당히 아름답다.
인천 아트플랫폼 위 블록에는 19세기 말
인천에 진출했던 일본은행 지점 건물 세 채
가 남아 인천의 위용을 상징하고 있다. 근대
시기 사무소 건축물이 한곳에 밀집돼 현존
하는 곳은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그리 흔
하지 않다. 이 일대를 천천히 돌아보면서 19
세기 말 우리나라 근대문물의 유입 창구였던
인천의 영화를 되새겨 봄직하다.
지난달 25일 ‘다시 개항’이라는 개관전으로
문을 연 아트플랫폼은 인천시 구도심 재생사
업의 일환으로 중구 해안동 일대에 조성된 복
합문화예술매개공간이다. 복합문화예술매
개공간은 예술가가 거주하며 창작하는 레지
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동시에 창작물의
발표를 위한 전시장·공연장, 그리고 자료실
등 지원시설이 함께 있는 공간을 말한다. 아트
플랫폼이 위치한 일대는 인천항의 배후지로
서 1883년 개항 이후 근대문물 유입의 전초기
지였던 흔적이 곳곳에 남겨 있는 역사적인 장
소다. ‘개항장 지구’라 불리는 이곳은 일본과
청나라, 그리고 서구 각국의 조계지였다. 이
런 역사는 이국적인 풍경의 조각들을 남겼고
현재의 주거와 상업 등 일상의 풍경이 혼재되
어 있다. 아트플랫폼은 개항기의 청나라 조계
지 터(현재의 차이나타운)와 마주하며 일본
인 조계지였던 곳이 시작되는 곳의 경계에 자
리 잡은 일본해운회사의 건물로 지어졌던 두
동의 근대 건축물과 1930~40년대에 지어진
대한통운의 창고 등을 활용해 13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블록으로 재건축되었다. 최근 많은
지자체가 쇠락한 지역을 재생시키는 데 상징
성을 가진 근대 건축물과 예술의 창조적인 에
너지와 접목하려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
운데, 인천 아트플랫폼의 개관은 지역 내외의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일요일인 지난달 27일 오후, 인천아트플랫
폼을 방문했다. 택시를 타고 가며 보이는 시내
풍경은 여느 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는데,
어느새 붉은 벽돌의 창고며 항구의 시설들이
아트플랫폼에 가까워옴을 알려줬다. 차에서
내려 차이나타운을 바라보는 중앙의 길에 서
니 한눈에 모든 건물이 들어왔다. 열성적인
블로거들이 올린 방문기와 개관을 알리는 기
사의 사진을 통해 건물은 낯설지 않았다. 하
지만 길 끝으로 이어지는 다소 과장된 양식의
한중문화원과 차이나타운의 풍경은 아트플
랫폼의 풍경과 마치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한군데 옮겨놓은 듯 이질적이다.
13개 동 하나로 묶어
건물은 중앙의 길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나뉜다. 도로 쪽에는 전시와 공연, 그리고 교
육이 이루어지는 개방적인 성격의 건물 블록
이었다. 반대편 건물 블록은 작가의 창작공간
과 거주공간이었다. 개별적인 동으로 나뉘면
서도 철제의 공중 보행로가 종횡으로 연결돼
군집을 이룬 건물군이 마치 한 건물처럼 복합
적인 프로그램을 수용하도록 하였다. 이는 새
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하면서도 기존하는 도
시의 문맥을 유지하려는 계획가의 의도를 보
여준다.
철제로 된 공중 보행로는 13동의 건물 사
이 사이에 놓인 하늘이 보이는 좁은 틈과, 옛
골목길과 계단의 흔적이 남은 통로 등 지상
의 유기적인 외부공간을 압도해 현재의 스케
일에서는 다소 과한 느낌이 있다. 주변을 돌아
보고 나서 아트플랫폼을 꼼꼼히 볼 요량으로
전체 개항장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인천공
항과 월미도, 그리고 신도시인 송도 이외 지
역의 인천에 대해 무지했던 필자는 아트플랫
폼과 그 주변 지역을 둘러보는 짧은 탐방으로
인천에 대해 꽤 깊은 이해를 가지게 됐다. 탐
방을 안내해준 인천 재능대학교 손장원 교수
덕이다. 손 교수는 인천의 근대 건축물에 대
해 꾸준히 연구하고 저술활동을 해왔다. 그는
건물의 연혁, 건축가와 건축주의 개인사까지
들려줬다.
다시 제자리인 아트플랫폼으로 돌아와 보
니 한중문화원과 아트플랫폼 사이의 드라마
틱한 경계가 비로소 보였다. 아트플랫폼은 단
기간에 이루어진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 시작
은 이미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
준비를 통해 구체화되어서인지 아트플랫폼
은 완성도 있는 마감과 잘 짜이고 완결된 공
간 구조를 가졌다. 허물지 않고 재활용한 네
채의 벽돌 건물과 새로 지어진 붉은 벽돌조
의 건물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자
연스럽게 이어졌다. 동과 동 사이의 열리고 닫
힌 내·외부 공간의 조합도 짜임새가 있다. 이
렇듯 얼마 전까지 주변의 다른 풍경과 비슷했
을 아트플랫폼은 이제는 통일된 재료와 프로
그램으로 주변과 대비되는 독자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장점이었을 완
성도와 완결성이 주변 지역을 돌아보고 나니
오히려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오래된 것과
새것의 시간차, 그리고 중국 절, 성당, 일본식
적산가옥 등 양식의 불균질함과 거기서 비롯
한 역동성이야말로 이 지역의 정체성을 이루
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예술
가들이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의 변방에 물이
고이듯 모이는 것은, 예술가의 한계적인 상황
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예술가의 본성이 그
런 거친 토양에 반응하고 그것이 그들의 창작
욕구와 그들의 삶 자체와 만나 새로운 장소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일대
의 장소성과 예술가의 작업과 삶의 양태가 만
나지 않는다면 예술과 지역의 재생을 접목하
는 일은 지속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
서 개관전의 제목인 ‘다시 개항’은 이 시점에
딱 맞는 전시인 셈이다.
아트플랫폼은 기존 대지에 있었던 건물 중
다양한 시기에 지어진 건물 네 채를 그 원형을
부분적으로 살려 재활용하였다. 재건축을 위
한 철거과정에서 그 준공연도가 밝혀져 인천
시 문화재로 등록된 대흥공사(구 일본우선주
식회사)는 현재 자료실로, 사진만으로 그 원
형이 알려진 구 군회조점은 교육 및 전시공간
으로 활용되고 있다.
99년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
이 두 건물은 복원과 보존의 방식으로 접근
했다기보다는 보존할 요소를 선택하여 활용
하는 방식을 택했다고 보였다. 구 일본우선
주식회사의 내부는 전체적인 내부 구조를 유
지하고 천장의 장식적인 목재 몰딩과 바닥 아
래 드러난 벽돌 구조물을 유리로 덮어 내려
다볼 수 있도록 했다. 자료실에는 천장 마감
을 없애서 지붕의 목조 트러스를 드러냈다.
철거과정에서 드러난 푸른색 도장으로 금고
의 문을 도색하는 등 이 건물에 축적된 시간
의 켜를 부분적으로 드러나도록 고심한 흔
적이 보였다. 희고 깨끗한 마감재로 덮기보
다 오랫동안 덧대어진 마감재를 덜어냈다. 이
방식이 이곳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에 접속
할 수 있는 창 역할을 하고 있었다. 좀 더 적극
적으로 드러내도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교육공간이자 전시장이기도 한 구
군회조점의 건물은 사진으로 남아 있는 기
록과는 다른 입면으로 변형되었다. 경비실의
뒤로 보이는 원래의 입구 돌 아치와 벽돌의
둥근 줄 눈만이 1902년 지어진 이 건물의 나
이를 짐작하게 한다.
근대 건축 유적이라 할 수 있는 앞선 두 건
물 이외에도 이곳의 장소적인 특징을 드러내
는 대한통운의 창고를 구조 보강한 건물은
전시장으로, 다세대 건물은 작가의 거주공간
으로 각각 활용되고 있었다. 아트플랫폼의 총
괄계획(MA)은 건축가 황순우씨가 맡았다.
황씨는 99년 지역 보존을 위한 정책 제안부
터 2000년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을
수행하는 등 이 지역에 대한 논의가 형성되어
아트플랫폼으로 구체적인 결실을 맺는 전 과
정에 참여해 왔다. 아트플랫폼의 곳곳에는
오래된 건조물을 낡고 쇠락한 것으로 보고
과감하게 새로운 프로그램에 맞게 재구성할
것인지 철저하게 그 흔적을 추적하여 역사
적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인지 보존과 활용
의 정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건
축가와 지역사회의 고민이 드러난다. 황씨는
한 인터뷰에서 과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 현재의 모습을 만들어온 도시의 역동성
을 인정하고 보존할 요소들을 선별하여 과거
흔적에서 미래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건축가
의 몫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그의 생각에 동
의하면서, 개항장 지구의 미래가치는 보존할
요소들을 얼마나 철저하게 선별하느냐에 따
라 좌우되는 점을 더하고 싶다. 이런 과정은
의미를 잃고 낡은 건조물로 쇠락해 가는 자
원들이 비로소 도시의 정체성을 일깨우는 거
울이 되고 시민이, 예술의 힘이 장소의 이미
지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도시를
재발견하도록 하는 창의의 원천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
인천 ‘아트플랫폼’
차이나타운 옆 옛 조계지 건물다름이 빚은 역동적인 매력
쇠락한 건물 재건축
예술가들이 살고 작업하고
전시장 겸한 복합예술공간으로
붉은 벽돌에 둥근 줄눈
1888년 세운 일본우선주식회사
가장 오래된 근대 사무실
인천 등록문화재 제248호로 지정된 옛 일본우선주식회사 건물. 앞으로 아트플랫폼의 자료관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아트플랫폼 전
경. 왼쪽에 차이나타운 일부가 보인다. 사진 앞줄의 창고 등 건물은 전시와 공연 공간 등이고 뒷줄은 작가의 창작과 거주 공간으로 활용된다. 옛 일본우
선주식회사의 내부 바닥 일부를 유리로 만들어 건물 바닥 아래의 벽돌 구조를 볼 수 있다. 창고를 개조해 만든 전시장. 신동연 기자
인천 개항 직후 세워진 일본 해운회사 건물의 재탄생
아트플랫폼은
위치 인천시 중구 해안동
면적 5600㎡
구성 창작스튜디오·공방·교육관·전시장·
공연장 등 13개 동.
※예술가에게 작업실·거주공간을 3개월~1년간
빌려주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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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원 재능대학 실내건축과 부교수
인천광역시문화재위원
조재원
0_1 도시건축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