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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pp.7~45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 P대학을 중심으로* 이선순 ** 1) |목차| 1. 문제 제기 2. 대학 내 성희롱 ·데이트폭력의 실태 및 특징 3. 대학 내 구제절차의 한계 4. 대안 : 회복적 사법의 적용 가능성 검토 5. 마치며 |초록| 본 연구는 대학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중 일상적인 범주로 학생 간 언어적 성희롱과 데이트폭력의 통제행위를 규정하였다 . 이들 유형은 성폭력임에도 일상에서 거의 폭력 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 P대학의 실태조사 결과 를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 일상적 범주의 성희롱과 데이트폭력 문제는 본질적으로 성 별권력관계와 성별화된 섹슈얼리티 수행에 그 원인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학생 간에 발생하는 언어적 성희롱은 일상에서 수시로 행해지기 때문에 그 원인이 성별을 기반으로 하는 권력관계에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며 , 연인 간의 통제행위는 사랑의 표 으로서 성별화된 섹슈얼리티의 수행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규범으로 수 용하였다 . 학교의 구제절차 과정 또한 이 사건이 성별권력관계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 가해자 에 대한 처벌 위주의 일방적 처리로 인해 피해자의 치유와 가해자의 성찰 과정이 부재 * 이 논문은 2015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5S1A5B5A07043013). ** 부산대학교 여성연구소 [email protected]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 2019-05-09 · 토한 후 학교 공동체로서의 성평등상담센터의 실천적 역할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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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pp.7~45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P대학을 중심으로*

이선순**

1)

|목차|

1. 문제 제기

2.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실태 및 특징

3. 대학 내 구제절차의 한계

4. 대안 : 회복적 사법의 적용 가능성 검토

5. 마치며

|초록|

본 연구는 대학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중 일상적인 범주로 학생 간 언어적 성희롱과

데이트폭력의 통제행위를 규정하였다. 이들 유형은 성폭력임에도 일상에서 거의 폭력

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P대학의 실태조사 결과

를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 일상적 범주의 성희롱과 데이트폭력 문제는 본질적으로 성

별권력관계와 성별화된 섹슈얼리티 수행에 그 원인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생

간에 발생하는 언어적 성희롱은 일상에서 수시로 행해지기 때문에 그 원인이 성별을

기반으로 하는 권력관계에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며, 연인 간의 통제행위는 ‘사랑의 표

현’으로서 성별화된 섹슈얼리티의 수행을 보여주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규범으로 수

용하였다.

학교의 구제절차 과정 또한 이 사건이 성별권력관계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가해자

에 대한 처벌 위주의 일방적 처리로 인해 피해자의 치유와 가해자의 성찰 과정이 부재

* 이 논문은 2015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5S1A5B5A07043013).

** 부산대학교 여성연구소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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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했으며 친밀한 관계의 통제행위에 대한 중재에는 한계가 있었다.

본 연구에서 대안으로 검토한 회복적 사법은 피해자와 가해자, 학교 공동체가 자발

적으로 참여하여 관계회복을 도모하는 개념이다. 이는 피해자의 특성과 관계적 상황

을 존중하고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을 이끌어내는 상호 소통작용이며 나아가 성평등한

대학문화 조성에도 일조한다는 점에서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주제어 : 성희롱, 데이트폭력, 통제, 일상적 범주, 성별권력, 회복적 정의

1. 문제 제기

성폭력 가해 사실을 폭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

면서 최근 교육부에서 ‘교육분야 성희롱·성폭력 예방 대책’을 발표하였

다.1) 요지는 예방교육을 강화하고 가해자 처벌수위를 올리는 등 학내 성

희롱·성폭력에 ‘강력 대응’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대학 내 성희롱

은 관련법을 통해 처벌할 수 있었고 교직원들은 예방교육을 받아왔지만

이번 기회에 더욱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부의 이러한 최근 입장은

점점 확대되고 있는 미투 운동의 영향으로 보이는데, 정작 발표내용을 살

펴보면 대학 내 성폭력사건의 주요 당사자이면서 피해자인 학생보다 교직

원에 대한 처벌 강화가 대부분이다.

여러 기관에서 발표한 대학 내 성희롱 실태조사2)를 보면 학생 간 성희

1)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나온 발표로, 대학의 성폭력 예방

교육 실적을 대학정보공시에 반영하고 교육부 홈페이지에 성희롱·성폭력 온

라인 신고센터가 운영되며 가해자의 은폐를 엄정하게 조치하고 교육공무원이

성범죄를 저지르면 교단에서 퇴출하겠다는 등이 주요내용이다. 정성민. “대학

정보공시에 성폭력 예방교육 실적 반영.” <대학저널>. 2018.2.27.

2)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실시한 <성평등 실천 국민실태조사 및 장애연구 Ⅲ: 대학

생활 영역을 중심으로>에 의하면 전국 남녀 대학생 및 대학원생 5,555명을 대상

으로 조사한 학내 성희롱 경험에서 가해자가 ‘학과 동기 및 선후배’인 경우가 전

체 피해 응답자의 62.7%로 나타났고 이어 ‘동아리 동기 및 선후배’(21.5%),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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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9

롱이 가장 많이 발생했고 따라서 가해자 역시 학생인 경우의 비율이 높게

나오지만, 관련법과 규정3)은 여전히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과 처벌을

명시하고 있다. 교내 데이트폭력 역시 점점 그 비중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대학 차원의 자율적인 구제나 대응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학은 최종적인 제도적 교육기관으로서 주된 구성원인 학생들이 과나

동아리를 통해 상호작용하며 예비 사회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춰가는 공간

이다. 대학생들은 대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으로 이해되기에 학생 간에

사건이 발생한 경우 위계나 권력의 문제로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학은 내면화된 성별 규범, 또래의 문화처럼 일상화된 성적

대상화의 언어들, 캠퍼스의 ‘낭만적인 데이트문화’로 간주되는 연인 간의

통제 등 차별적인 성문화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학생 간에 발생하는 언어적 성희롱과 데이트폭력의 통제행위는 이러한

차별적 성문화 속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폭력에 해당된다. 이들 행위

는 대학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폭력’으로 쉽게 인

식되지 않는 성폭력 범주이다. ‘폭력’으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가해자 자

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경향이

있다. 피해자 역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로 여기거나 개인적

인 문제로 여겨 혼자 감내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또한 일상적 범주의

원 선배’(4.3%), ‘교수’(2.3%) 순이었다.

여성가족부가 전국 95개 대학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 성폭력피해자 지원 및

사건처리 매뉴얼 개발 연구>에 따르면 2013-2015년 7월 사이 접수한 대학의 성희

롱·성폭력 사건에서 학생 간 사건에서 피해자는 학부생이 78.9%로 가장 많았고,

가해자 또한 선배 등 학부생이 49.2%를 차지했다.

경상대학교 여성연구소에서 2013년 4월 8일-4월 30일 사이에 재학생 64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학문화와 성평등 의식:경상대 재학생들을 중심으로>에 의하

면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전체 응답자는 23명이었는데 학과 동기 밑 선후배가

16명으로 가장 많았다.

3) 성희롱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 양성평등기본법 ,

국가인권위원회법 에서 규정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대학에서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을 두고 성희롱과 성폭력을 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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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폭력은 반복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성별권력관계와 성별규범을 ‘자연스

러운’ 것으로 수용함으로써 성별 불평등 구조를 고착화하고 대학의 성평

등한 문화 조성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학생 간 성희롱과 ‘사랑과 관심’으로 해석되는 연인 간 통제행위는 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식의 차이로 인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성희롱이

무엇인지 또는 어떠한 행동이 이에 해당하는지, ‘애정어린 관심’이 왜 폭력

인지에 대한 인식의 불일치는 사건발생 후 해결과정에서도 갈등을 심화시

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학교 차원의 성희롱예방교육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

는 가운데4)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를 가해자에게만 일방적으로 책임

을 묻는 것은 사법기관이 아닌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의 역할은 아닌 것이

다. 즉, 대학은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구성원 간의 일상적 폭력에 귀 기울여

야 하고 자율적 해결을 위해 교육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학생 간 성희롱과 데이트폭력의 통제행위를 일상적 범주의

성폭력 행위로 규정하고 이들 행위들이 발생하는 본질적 원인을 실태자료

와 함께 살펴볼 것이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범주의 행위들이 또 다른 ‘자

연스러운’ 성별 통념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검토하고 이들 일상적 행위

들이 사건으로 접수되었을 때 대학차원에서 해결하는 구제방식과 그 과정

에서 나타나는 한계점도 함께 볼 것이다. 일상적 범주의 성희롱과 통제행

위는 무엇보다 왜곡된 성 인식의 전환을 요하기에 구성원인 가해자와 피

해자 그리고 대학 공동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구제절차의 확보가 중요

하다. 폭력의 강도나 대상 등 그 층위에 따라 대응책 또한 달라져야 하기

에 대학구성원에 의한 일상적 범주의 폭력행위 해결에는 무엇보다 가해자

와 피해자, 대학 공동체가 함께 소통하며 문제를 풀어가는 해결방식이 모

색되어야 한다.

4) P대학의 실태조사에 의하면 1년간(2016.11.~2017.11.) 성희롱 예방교육 경험유

무를 묻는 문항에서 남녀대학생의 18%만이 교육의 경험이 있었고 남학생의

75.8%, 여학생의 87%가 예방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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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11

마지막으로 대안으로서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 개념을 제시

할 것이다. 우선 언어적 성희롱과 데이트폭력의 통제와 같은 일상적 범주

의 행위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회복적 정

의는 형사사법(刑事司法)의 처벌적 방식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보통 “회

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5)으로 알려져 있다. 본 글에서 다루려는 폭

력의 유형들은 사법체계 내에서 논해지는 젠더폭력과 그 성질을 달리하

며, 형사사법에 해당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보고자 하는 바는 처벌이 아

니며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관계를 회복하려는 상호소통의 방

식이며 궁극적으로 성평등한 “회복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회복적

사법절차에 의해 피해자의 특성과 맥락이 제대로 고려되는지, 가해자와

피해자가 참여하는 대화에는 피해자를 불편하게 할 요소가 없는지를 검

토한 후 학교 공동체로서의 성평등상담센터의 실천적 역할도 함께 고민

해볼 것이다.

연구를 전개함에 있어 최근에 조사한 P대학의 <성평등 의식 및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실증적 자료로서 제시하고자 한다. 한 대학의 실태조사

결과로 일반적 특징을 추정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분명 연구의 큰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대학의 실태조사에 의의를 두고자 하는 것

은 4년제 대학으로서 각 학년이 고른 분포로 참여했고 전체 500명 중 남녀

비율을 남성 224명, 여성 271명으로 거의 최대한 비슷하게 구성하여 조사하

였다는 점이다. 또한 총 14개의 단과대를 모두 조사하면서 단대별 재학생

5)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대 전후에 들어서면서부터 형법학과 형사정책학 분야

에서 회복적 사법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2007년에 이르러서야 소년법

개정으로 소년보호사건에 화해권고제도를 도입했는데 현재로서는 이것이 우리

나라 유일의, 유의미한 회복적 사법제도이다. 김주미. “우리 형사재판절차에도

회복적 사법(RJ) 도입 가능할까.” <법률저널>. 2017.6.1.; 처벌 위주의 형사사법

이 가해자에게 범죄에 합당한 처벌이라는 고통을 주는 것으로 범죄에 대응하

며 흉포화 되어가는 범죄에 대해 지속적으로 처벌강도를 높이는 방식이라면,

회복적 사법은 범죄로 인한 피해의 실질적 회복과 진정한 책임을 기초로 하여

손상된 관계를 회복하려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정준영, 2013: 52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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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수와 성비 비율에 맞춰 조사 참여자수를 결정하였다. 2017년 11월 13일에서

12월 4일까지 총 140개의 문항으로 대면 설문조사가 이루어졌다.

대학 내 성폭력 사건이 다양한 형태로 발생하고 증가하고 있지만 이제

껏 교육부나 대학 차원의 체계적인 전수조사는 이뤄지지 않았고6) 사건이

발생한 경우 주로 개별 대학의 자체조사로 급하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

다. 이러한 현실에서 P대학의 실태조사는 자료조사 및 수집, 조사표 개발,

조사표 수정 과정을 거쳐 최종 조사표가 확정되고 결과 분석까지 약 6개월

의 검토과정을 거쳐 나오게 되었으며, 빈도분석과 함께 성별과 단과대를

교차분석함으로써 본 연구가 보고자 하는 바를 더욱 명확하게 하였다는 점

에 의의를 두었다.

2.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실태 및 특징

1) 성별권력의 문제

한국사회에서 ‘성희롱’은 1993년 서울대 교수에 의한 조교 성희롱 사건7)

에 따른 민사소송으로 법적 개념화되었고 이 개념은 지금까지 성적 언동과

행위를 규정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양성평등기본법 , 국가인권

위원회법 ,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 에서 모두 성

희롱을 규정하고 있지만 그 대상이나 범위는 조금씩 다르다. 세 법을 근거로

한 공통적인 성희롱 개념은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성적 언동을 함으로써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하며

6) 박민호. “대학내 성폭력 집계 못하는 교육부.” <뉴스토마토>. 2015.4.21.; 이지희.

“20대 데이트폭력 심각한데…대학 대응체계는 미비.” <한국대학신문>. 2017.7.30.

7) 대법원 1998.2.10. 선고 95다39533 판결. 이 사건은 대한민국 최초로 제기된 성

희롱 소송이었으며 6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행위자인 교수가 피해자인 조교에

게 500만원을 지급하도록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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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13

그 결과 노동권이나 학습권 등의 평등권이 침해’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P대학을 포함한 다수의 대학은 성폭력과 성희롱 개념을 학교 규정에 모

두 명시하면서 ‘성폭력’은 형법 및 성폭력처벌법에 의한 성폭력 범죄행위

로 정의하고 ‘성희롱’은 성폭력 범죄 행위의 성립여부와 관계없이 성적 수

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일체의 행위로 규정하였다. 특히 성희롱 정

의의 세부항목은8) 성적 행위뿐만 아니라 성별에 기반 한 행위 및 성별 위

계로 인한 차별의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어 현행 법령보다 넓게 성희롱 의

미를 규정하고 있다.

2010년 이후 본격적으로 여러 기관에서 실시해 온 <대학 내 성폭력 실

태조사>에 의하면 학생 간에 발생하는 성희롱 비율이 교직원과의 관계보

다 일관되게 높게 나타났다.9) 2017년 11월 P대학에서 재학생 500명을 대

상으로 실시한 <성평등 의식 및 성폭력 실태조사>의 경우에도 학생 간 성

희롱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12가지 성희롱·성폭력 경험 유형에서 가해

자인 행위자와 응답자와의 관계를 발생시점 기준으로 묻는 문항에서 가장

높은 응답율을 차지한 관계는 ‘동기’(44.3%)였고 다음으로 선배(36.3%)–

후배(7.8%)-교수(7.7%) 순으로 나타났다. 동기나 선배, 후배를 합친 비율

을 감안해 볼 때 대학생활에서 함께 공유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성희롱이

나 성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음을 재차 확인 할 수 있다. 학교에서 가

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건은 학생에 의한 학생 성희롱이고 교수에 의

한 성희롱은 가장 낮은 비율로 발생하지만 대학 내 성희롱은 교수에 의한

성희롱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아 우리의 성희롱 개념은 제도적으로 부여

8) P대학의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 제2조 1항 가목.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성적 행동과 요구 등 언어적·정신적·물리적인 행위를 통하여 개인의 성

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행위. 나목. 성적 자율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한 불응이

나 성차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그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이익 공여의 의사

표시를 하는 행위. 다목. 성차에 기반하여 불공정한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 라목.

성희롱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자에 동조하는 자가 정신적인 협박이나 물리적인

강압 및 다른 수단으로 피해자에게 상당한 피해를 주는 행위.

9) 각주 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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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된 지위와 위계관계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2016 인권통계’ 보고서>에 의하면 성희롱 문제에서

피해자는 여성(944명)이 남성(146명)에 비해 7배 가량 높았고 <2012년 국

가인권위원회 성희롱 진정사건 백서>에서도 전체 피해자의 94%가 여성

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매년 성희롱의 피해자는 여성

이 압도적으로 많았었다. 이러한 통계 결과는 성희롱이 성별관계의 문제

임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찍이 맥키넌(Mackinnon)은 성희롱이 근본적으로 기존의 위계질서에

관계없이 남성 집단이 여성 집단에게 저지르는 일이며 성별 또한 위계질

서임을 주장한 바 있다(Mackinnon, 1987). 성희롱의 대상이 단지 여성이

기 때문이라면 이는 성별 집단 간의 문제이다. 성희롱의 행위자 대부분이

남성이며 피해자의 다수가 여성이고 피해자인 여성에게 오히려 성희롱에

대한 비밀유지와 침묵이 강요되는(Mackinnon, 1987: 104) 현실은 성희롱

이 본질적으로 성별 권력의 문제임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성희롱 개념

과 그 관계들이 고용주와 종업원, 상급자와 하급자, 선생과 학생, 직장 동

료라는 제도적 위계와 업무관련성 속에서 주로 논의되며 성별에 내재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희롱을 성별권

력의 문제로 인식한 맥키넌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P대학의 경우에도 유의미한 결과들이 도출되었다. 문항들

은 먼저 성희롱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는 과나 동아리의 뒤풀이

술자리와 성희롱에 관한 직접적인 내용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았다.

아래 <표 1>, <표 2>, <표 3>은 술자리에서 여성에게 강제로 술을 따르

게 하거나 술자리에 동석하지 않은 여성의 외모를 품평, 그리고 술자리에

여자동기 및 후배를 불러내는 경험을 묻는 문항에 대한 결과이다. 이들 문

항은 성희롱 인식과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인으로 미국 교육부

(U.S, Department of Education OCR)의 성희롱 규제 지침에서 말하는 ‘적대

적 환경형 성희롱’(Hostile Environment Sexual Harassment)10)의 좀 더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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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15

장된 범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으며 학교 규정에도 성희롱 행위의 범주

로서 명시되어 있다.11)

결과를 보면 세 문항 모두 ‘거의 없음’ 에 응답비율이 높게 나와 전체적

으로는 P대학의 술자리 ‘문화’는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성별을

교차시켰을 때 결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세 문항 모두 ‘자주 있음’과 ‘매

우 자주 있음’을 합했을 때 남녀의 응답비율은 1.4%(남)-8.5%(여), 12.2%

(남)-28.3%(여), 10.8%(남)-21.2%(여)로 최소 2배, 최대 6배로 여성의 비율

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술자리는 뒤풀이의 형식으로 대학의 과나 동아

리 활동을 통해 일상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는데 구성원의 성적 고정관념

이나 통념이 그대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아 성희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

은 장소이다.

성별여성에게 남성의 술을 따르게 하는 것***

합계거의 없음 가끔 있음 자주 있음 매우 자주 있음

남성207 12 2 1 222

93.2 5.4 0.9 0.5 100.0

여성210 35 17 6 268

78.4 13.1 6.3 2.2 100.0

<표 1> ‘술자리에서 강제로 술 따르기’에 관한 경험(단위: 명, %)

***p.001

10) 미국 교육부의 민권국(U.S. Department of Education Office of Civil Rights)은 교

육기관 내 성희롱을 조건형 성희롱과 적대적 성희롱으로 구분하여 정의했다.

조건형 성희롱이 대부분 교수인 행위자가 학생에게 시험점수나 학점 등 학문적

결정을 조건으로 성적 접근을 하는 것인 반면, 적대적 환경적 성희롱은 ‘위협적

이고 적대적이며 불쾌한 교육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 있으며 교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포함된다. 다만 미 교육부의 적대적 환경적 성희롱은 학생의 수

업과 관련된 침해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11) P대학의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 제2조는 성희롱을 정의하고 있으

며 제2조 1의 다에 “성차에 기반하여 불공정한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라고 명

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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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성별 동석하지 않은 여자동기/선후배의 외모 품평***

합계거의 없음 가끔 있음 자주 있음 매우 자주 있음

남성109 85 14 13 221

49.3 38.5 6.3 5.9 100.0

여성109 84 40 36 269

40.5 31.2 14.9 13.4 100.0

<표 2> ‘술자리에서 동석하지 않은 여성 외모 품평’에 관한 경험(단위: 명, %)

***p.001

성별여자 동기나 후배를 술자리에 불러내기***

합계거의 없음 가끔 있음 자주 있음 매우 자주 있음

남성145 53 18 6 222

65.3 23.9 8.1 2.7 100.0

여성130 82 36 21 269

48.3 30.5 13.4 7.8 100.0

<표 3> ‘술자리에 여자동기 및 후배 불러내기’에 관한 경험(단위: 명, %)

***p.001

아래 <표 4>와 <표 5>는 직접적으로 성희롱을 묻는 문항으로 언어적 성

폭력에 관한 경험과 성희롱에 대한 태도를 질문하였다. 언어적 성희롱은

성희롱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유형으로서 특히 익명이 가능한 온라인

단톡방이나 게시판에서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표 5>를 보면 언

어적 성희롱이 ‘없다’고 답한 비율이 남성이 53.2%인 반면 여성은 33.7%만

이 ‘없다’고 응답함으로써 성희롱에 대한 인지차이의 폭이 컸다. <표 6>은

성희롱에 대해 흔히 가지는 태도에 관한 문항으로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성희롱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해서는 확고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미

발생한 성희롱에 대한 문제제기에 있어서는 남성에 비해 매우 소극적이었

다. 피해를 입은 당사자 스스로 문제제기가 오히려 인간관계를 나쁘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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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17

다고 생각하거나 피해자가 손해를 본다고 여기는 것은 성적인 문제에서

그 원인과 책임을 피해여성에게 묻는 성별 규범이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성별이 바로 권력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성별학생들 간의 언어적 성희롱 ***

합계일상적이다 자주 있다 가끔 있다 없다

남성5 22 77 118 222

2.3 9.9 34.7 53.2 100.0

여성25 38 116 91 270

9.3 14.1 43.0 33.7 100.0

<표 4> ‘학생들 간 언어적 성희롱’에 관한 경험(단위: 명, % )

***p.001

전혀그렇지않다

그렇지않다

그렇다매우

그렇다합계

본인이 원치 않는다면 가벼운 성적농담이나 신체적 접촉이라도 성희롱이다. **

남여

5.04.0

2.71.9

49.833.8

47.163.9

100.0(221)100.0(269)

성희롱은 여성의 옷차림이나 여지를 주는 태도 때문에 발생한다. ***

남여

47.574.0

45.218.2

6.87.1

5.07.0

100.0(221)100.0(269)

성희롱을 문제 삼으면 인간관계가 나빠진다. **

남여

37.630.9

43.033.1

16.732.7

2.73.3

100.0(221)100.0(269)

성희롱을 문제 삼으면 결국 피해자만 손해 볼 뿐이다. ***

남여

43.424.5

42.536.8

12.732.3

1.46.3

100.0(221)100.0(269)

우리 학교에서는 성희롱 피해가 발생해도 문제제기가 힘들다. ***

남여

31.77.8

42.132.3

23.549.8

2.710.0

100.0(221)100.0(269)

<표 5> 성희롱에 대한 태도 차이(단위: %, 명)

**p.01 ***p.001

한편 대학 내 성희롱, 특히 학생 간 성희롱은 많은 대학들에서 더욱 ‘다

양한’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행해지고 있다. OT나 MT, 축제 주점 등 집단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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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인 과 행사나 뒤풀이에서 ‘즐거움’과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 사람들의 시

선과 관심을 집중시키는 도구로 성을 희화한 표현들, 성행위를 묘사하는

행동으로 성적 굴욕감을 주는 게임들이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놀이’로서

자행되고 있다. 이러한 ‘놀이’에 불편함이나 혐오감을 느꼈다 하더라도 문

제제기를 하기는 쉽지 않다. 문제제기를 했을 경우 대부분 수반되는 ‘예민

하고 놀이도 이해 못하는 별난 아이’로 낙인찍혀 주변의 불편한 시선과 비

난을 각오해야하기 때문이다.

위계와 권력은 거창하거나 엄숙한 어떤 모습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

라 과나 동아리 등의 단체에서 호칭 등에 의해 애써 친밀함을 서로 표현하

거나 실제 친밀하다고 느끼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집단

적 행사 속에서 성희롱을 경험한 여성은 성적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이러

한 ‘놀이’를 하나의 문화적 관례로 내면화, 학습할 수도 있고(민무숙,

2016), ‘관계가 어색해질까봐’ 대응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태도를 취하는 경

우도 많다.

P대학의 실태조사에서도 성희롱·성폭력 경험12)을 한 경우 대응방식에

서 당시에도 대응을 못하고 이후에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는 응답이

60.5%로 가장 높게 나왔다. <표 6>은 이 응답자들(187명)을 대상으로 대응

하지 못한 이유를 묻는 문항으로 ‘관계가 어색해질까봐’라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왔다. 이는 폐쇄적인 친밀함과 위계의 일상 문화 속에서 거부의사

를 밝히는 것이 쉽지 않은 일상의 성별 관계가 지닌 힘을 반영하고 있다.

12) P대학의 성희롱·성폭력의 유형별 경험을 알기위해 성희롱, 언어적 성폭력, 강

제추행, 강간 등 12가지 유형을 5가지 척도(일상적으로 있다, 자주있다, 가끔있

다, 거의없다, 전혀없다)에 따라 성별과 교차분석한 결과 유의미한(p.001,

p.05) 5문항이 나왔다. ‘여성에 대한 비하적 언어 사용,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품평, 별명 사용, 외모에 관해서 이것만 고치면 좋겠다는 권유, 사생활

에서의 성적 경험 등에 대한 공개적 질문, 가벼운 신체 접촉(어깨 두드리기,

손 만지기 등)으로 대부분 상대적으로 가벼운 성희롱에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일상의 자연스러운 것으로 내면화한다는 측면에서 바로 범죄로 인식하는 강제

추행이나 강간보다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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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19

성희롱·성폭력 피해경험 대응하지 못한 이유 응답수 비율

관계가 어색해질까봐 47 25.1

나에게 불이익이 올까봐 17 9.1

대응할 방법을 몰라서 25 13.4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35 18.7

문제가 더 커질 것을 우려해서 17 9.1

기타 41 21.9

무응답 5 2.7

합계 187 100.0

<표 6> 성희롱·성폭력에 대응하지 못한 이유(단위: 명, %)

또한 ‘관계가 어색해질까봐’ 다음으로 응답률이 높은 것이 ‘기타(21.9%)’

로 나타났다. 아래 <표 7>의 내용을 보면 피해여성 역시 문제로 여기지 않

거나 장난으로 인식할 정도로 ‘사소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별거 아닌 문제’

를 여성 자신이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자기검열을 하거나

주변반응에 신경 쓰는 등 주변에서나 상대방에 비춰지는 나의 모습에 신

경 쓰는 응답들이 많았다. 이 의견들은 다시 말하면 성폭력으로 생각하기

에는 강도가 약한 행위나 표현으로 이해되는 성희롱 범주를 남성과 여성

모두 대학 문화의 관례로 받아들이고 익숙해져 감을 의미한다. 극단적이

고 잔인한 수법의 성폭력 사건이 주로 언론에 보도됨에 따라 우리 주변에

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성희롱 유형들은 상대적으로 ‘사소’하고 ‘사적

인’ 문제로 치부되고 혹 문제로 인식하더라도 ‘자연스러운’ 위계문화 속에

서 피해자는 침묵하게 된다. 또한 대학문화가 일상적인 성차별일 때 대학

역시 이를 성별권력의 문제로 인지하기 쉽지 않다. 사건으로 접수된 경우

에도 피해자가 그동안 왜 침묵해야 했는지를 이해하거나 가해자의 행위가

피해자에게 어떤 고통의 의미인지 일깨워줄 틈도 없이 규정된 절차대로의

상황수습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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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당시에도 대응을 못하고 이후에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 이유

1. 딱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2.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장난이라고 생각, 가볍게 여겨서, 그냥 무시

3. 불쾌하거나 모욕감을 느끼지 않았다

4.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까봐

5. 내 잘못인거 같아서

6. 상대방은 농담인데 내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 같아서

7. 술에 취해 있어서

<표 7> 성희롱 피해경험 무대응 시 기타의견 (빈도순)

2) 성별화된 섹슈얼리티 수행과 규범으로서의 수용

데이트폭력에 관한 정의는 아직까지 법적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

고(윤상민, 2016: 303), 폭력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상이하다. 기존에는 신체적 폭력만을 인정하거

나(Sugarman & Hotgaling, 1989; 홍영오, 2017: 322에서 재인용), 성폭력과

신체적 폭력에 한정하는(Makepeace, 1981; 홍영오, 2017: 322에서 재인용)

관점이 우세했다면, 최근에는 신체적 폭력에 언어적 폭력, 정서적 학대 및

겁을 주는 행동 등 심리적 폭력까지 포함하고 있다(Anderson & Danis,

2007). 특히 심리적 폭력은 노출되기 어려운 반면, 그 정신적 고통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는 통제행위를 포함시켰는데(World Health Organization, 2010: 11), 통제는

그 자체로 폭력이지만 상해, 감금, 살인 등 물리적 폭력 행사의 발단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해야 하는 현상이다. 요컨대 데이트폭력은 유형의 특성상

이론적으로 나누어질 수 있지만 현실 속 데이트폭력은 폭력들이 중첩되어

행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특히 통제행위는 가해자는 물론이고 피해자

스스로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데이트폭력은 일반 폭력과 달리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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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21

폭력이다. 때문에 폭력이 발생하여 해를 당한 경우에도 피해자는 신속하

게 대웅하기 보다 문제를 밝히기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주로 여

성)의 일상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폭력이지만, 연인관계

에서 이 폭력은 ‘남다른 애정과 사랑’, ‘보호와 걱정’ 등 성애화(sexualized)

되어(정희진, 2007: 80)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된다. 다시 말하면 친밀한

관계에서 보호와 통제의 대상은 여성으로 성별화되어 있으며 성별화된 섹

슈얼리티는 위계적 성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여성을 소유와 훈육의 대상

으로 보는 가부장적 신념은 이러한 위계적 성역할 속에 내재하며 일상 속

통제라는 폭력행위를 비가시화하게 된다.

데이트 관계의 통제행위는 물리적 폭력과 함께 드러날 때 사건화되는

경향이 있다. 함께 영화를 보다가 여자친구가 졸았다는 이유로, 전화 받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래 기다리게 했다는 이유 등으로

심각한 폭행을 당한 경우, 그 심각한 폭행으로 사건화되지만 더 큰 문제는

폭행의 이유이며 본질은 성별 역할 수행이다. 남성성은 태생적으로 관계

적 개념으로 ‘여성성’과 견주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고(코넬, 2010: 112). 가

족이나 학교에서 강제되는 성역할,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스포츠나 군

대의 위계적 남성성은 ‘여성성’과의 관계 속에서 습득하고 ‘수행’되는 것

(코넬, 2010)이다. 따라서 데이트폭력은 헤어짐이나 특정 사안이 계기가

되어 갑자기 발생하기 보다는 이미 그 이전부터 관계 안에 폭력이 있는 경

우(손문숙·조재연, 2016: 32)가 대부분이며 남성성의 전형적 ‘실천’으로

서 통제행위는 그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다.

2017년 7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성인의 데이트폭력 가해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가해자의 교제 당시 연령은 20대가 63.2%로 가장 높았고

학력 수준도 4년제 일반대 졸업자가 62.8%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

다.13) 대부분의 대학생이 20대이고 이들이 예비 사회인이라는 것을 고려할

13) 이러한 통계결과는 2016년 한국여성의전화가 조사한 실태에서도 비슷하게 나

타났다. 데이트관계 당시 여성은 20대가 91.6%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상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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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때,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은 이후 사회에서 발생하는 연인 간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의 예방이라는 측면에서 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P대학에서 조사한 데이트폭력 유형을 보면 신체적, 성적 폭력 경험은

매우 낮게 나타났지만 통제를 경험한 비율이 무려 88.6%로, 이것은 나머

지 3개의 폭력유형을 합친 비율 19.5%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이

러한 결과는 2016년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의 결

과14)와도 비슷하며 이후의 다른 조사에서도 통제유형은 높은 수치를 보

여 왔다.15)

통제 언어적·정서적 신체적 성적 합계

88.6(719) 2.7(22) 1.0(8) 7.7(62) 100.0(811)

<표 8> 4가지 유형별 데이트폭력 피해경험(중복응답)(단위: %, 명)

P대학의 거의 90%에 가까운 연인 간 통제행위 경험비율은 대부분의 연

인 관계에서 이러한 행위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음

을 의미한다. <표 9>는 데이트폭력 유형에서 통제행위만 따로 구성한 것

이다. 구체적인 통제유형을 살펴보면 상대방의 핸드폰, 카카오톡을 확인

하거나(16.2%), 연락이 안 되면 화를 낸다(13.8%), 인간관계나 활동을 제

약하려 한다(12.3%)는 행위는 연인 간에 전반적으로 비슷하게 행해지고

연령 역시 20대로 84%를 차지했다. 학력 역시 여성과 남성 모두 4년제 대학

졸업으로 나타났다(손문숙·조재연, 2016: 7).

14) 2016년 9월 12일부터 9월 21까지 10일 동안 만18세 여성 성인 1082명을 대상으

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통제 유형이 62.6%로 언어적/정서적/경제적 폭력

(45.9%), 성적 폭력(48.8%), 신체적 폭력(18.5%)보다 높게 나타났다.

15) 대구여성의전화가 2017년 대구·경북 4개 대학 학생과 일반인 274명을 상대

로 설문조사한 결과 63.1%(173명)가 데이트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으며 유형

별로는 휴대전화를 검사하거나 옷차림을 제한하는 통제 피해가 94.3%로 가장

많았다. 류연정. “성인 절반 이상 데이트폭력 경험…경찰 신고는 미미”. <노

컷뉴스>. 20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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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23

있었다. 하지만 성별 분석을 살펴보았을 때 남녀 간의 경험비율이 확연하

게 차이가 난 통제행위들은 옷차림 단속, 판단력이나 사고능력 무시, 자신

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일방적 강요로서 통제행위에도 가부장적 성규범

이 그대로 작동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연인인 여성을 무시하거나 일방적

으로 가르치려 드는 남성의 행위는 상대방 여성의 목소리와 신뢰성을 부

정하고, 내게(남성) 상대방(여성)이 존재할 권리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리

베카 솔닛, 2014: 19)고 강요하는 폭력의 한 방법인 것이다. 폭력이 통제와

맞닿아있음을 아는 것은 일상에 보이지 않는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폭력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데이트폭력 유형 성별

전체남성 여성

통제

나의 옷차림을 단속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15.5(18)

84.5(98)

14.5(118)

나의 핸드폰 통화내역이나 카톡을 확인한 적이 있다

45.3(58)

54.7(70)

16.2(131)

내가 귀가하는 시간을 통제한 적이 있다28.3(26)

71.7(66)

11.6(94)

나의 인간관계나 활동을 제약한 적이 있다41.8(41)

58.2(57)

12.3(100)

연락이 안 되면 화를 낸다47.3(52)

52.7(58)

13.8(112)

연락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낸다

32.6(15)

67.4(31)

5.9(48)

나의 외모나 성격을 지속적으로 비하한다37.5(6)

62.5(10)

2.0(16)

나의 판단력, 사고능력을 무시한 적이 있다24.5(12)

75.5(37)

6.0(49)

자신(데이트 상대방)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강요한 적이 있다

28.0(14)

72.0(36)

6.3(51)

합계 88 149 240

<표 9> 데이트폭력 통제 경험(중복응답)(단위: %,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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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또한 데이트폭력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을 묻는 문항에 대한 아래 <표 10>

의 결과를 보면, 여성들은 상대방에 대한 소유욕이거나 성적인 욕구를 억제

할 수 없어서라는 응답이 높았고 남성은 사랑의 확인이나 원래 그런 성격이

라는 응답이 높게 나왔다. ‘사랑의 확인’이란 응답은 남녀 모두 비슷한 비율

을 보였지만 특이한 점은 남성에 비해 오히려 여성이 ‘소유욕’이나 ‘억제할

수 없는 성적인 욕구’라는 남성중심적 성별규범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트폭력에서 대부분의 피해자는 여성이고 이러한 성별규범은

가해자인 남성이 폭력을 사랑으로 정당화할 때 들고 나오는 이유이지만 피

해여성 또한 남성 섹슈얼리티를 내면화하고 있다. ‘다들 그런다고 생각해

서’라는 이유나 ‘상대가 술에 취했기 때문’이라는 이유 또한 여성의 응답비

율이 높았는데 이는 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정상적인’ 관계로

수용하게 하며 상대(남성)의 폭력에 관용적인 기제로 작동한다.

데이트폭력 배경 성별

합계남성 여성

다들 그런다고 생각해서 27.7(18) 72.3(47) 100.0(65)

사랑을 확인하려고 53.7(51) 46.3(44) 100.0(95)

소유욕 때문에 30.1(25) 69.9(58) 100.0(83)

나를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21.3(10) 78.7(37) 100.0(47)

원래 그런 성격이라서 37.3(22) 62.7(37) 100.0(59)

상대가 술에 취해서 27.3(3) 72.7(8) 100.0(11)

성적인 욕구를 억제할 수 없어서 13.3(2) 86.7(13) 100.0(15)

내가 신뢰를 주지 못해서 51.6(16) 48.4(15) 100.0(31)

합계 88 147 235

<표 10> 데이트폭력 발생 배경(중복응답)(단위: %, 명)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행하는 통제행위는 대부분 폭력으로 인식한

다. 반면 그 관계가 연인이 되었을 때 동일한 통제행위이지만 ‘사랑’이 되

는 현상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이성간의 사랑과 폭력이 남녀 관계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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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25

선상에 있고, 사랑과 폭력의 모호한 경계(정희진, 2007: 157)는 성별화되

고 불평등한 섹슈얼리티가 수행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즉, 통제행위로 인

한 여성의 ‘사소한’ 괴로움은 남성의 ‘사랑’ 앞에서 침묵되고 사랑의 강도는

여성에 대한 폭행과 감금, 살인이라는 폭력행위를 정당화한다. 2000년대

이후 데이트 관계에서의 자신의 경험을 ‘폭력’으로 재구성하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지만(배수희, 2015: 66), 극단적으로 보도되는 데이트폭력의

제목과 사건16)은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 경험을 여전히 ‘사소’한 것으로 규

정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침묵하게 한다.

3. 대학 내 구제절차의 한계

대학 내 성희롱은 현행 법령보다 성희롱의 범위를 폭넓게 규정하고 있

는 대학의 자체규정에 따라 권리구제 절차를 거치게 된다. 대부분의 대학

들은 규정에 피해자 보호 조항을 따로 두어 비밀보장이나 심리/의료/법

지원, 공간 분리와 접근금지 등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성

희롱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제대로 배려 받고 있는가의 문

제일 것이다. 학생은 대학을 존재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구성원이지만 학

내 사건의 피해자가 될 때 매우 열악한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1) 피해자는 모르는 대처과정과 징계결과

학생 간 성희롱은 학교 축제나 MT, 새내기 환영 술자리 모임 등에서 신

체나 언어를 통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소규모 집단 활동이 많다보니 어디

16) 안대용. “수위 넘은 ‘데이트폭력’…여자친구 살해 매주 1명 꼴.” <법률신문>.

2015.11.10.; 아시아경제온라인이슈팀. “前여자친구에 ‘염산테러’ 남성, 전기충

격기까지…‘끔찍.” <아시아경제>. 2015.12.28.; 박성환. “〔죽음 부르는 데이트

폭력〕갈수록 흉포해진 ‘폭력’ 대체 왜?.” <뉴시스>. 2017.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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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서나 쉽게 확인이 되고 소통 가능한 온라인 대화를 통해서 더욱 자주 일어

난다.17)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던 일련의 단톡방 성희롱 사건18)은 대

화내용이 같은 과 여성을 품평하고, 성행위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적나

라한 표현19)이었다는 점에서도 충격이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대화

가 특정 대학의 특정학과의 몇몇 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단톡방 밖에서

도 ‘남자들끼리 다 하는 말’로서 통용되는 일상대화20)라는 점이다. 즉, 남

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언어적인 성적 폭력인 것이다.

하지만 사건이 접수되고 처리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맥락은 거의 고려되

지 않고 피해자는 다시 학교에 의해 처분만을 기다려야 하는 대상이 되고

조사·처리과정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진상조사에서부터 결과가 나

오기까지의 과정은 피해자에게도 대부분 비공개되며 징계수위 또한 학교

는 가해자에게만 통보할 뿐 피해자와는 공식적으로 공유하지 않고 있다.

또한 결과에 대한 이의제기는 가해자의 재심청구로만 가능하도록 되어있

다.21) 학교의 규정에 명시된 절차이지만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는 형사사

17) P대학의 경우, 대학 내 온라인성폭력 발생 공간으로 마이피누(45.0%) - 학과나

동아리 단톡방 혹은 밴드(31.5%) - P대 대나무 숲 등(13.2%) 순으로 나타났다.

18) 2015년 국민대를 비롯해 고려대, 서울대, 경희대, 충남대 등 전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남학생이 자신들의 단톡방에 여학생들의 사진과 실명을 올리고 이

들에 대해 성범죄 수준의 언어 성희롱을 저지르는 등 성적으로 여성을 대상

화하고 비하한 사건이었다.

19) 국민대의 경우 여학생을 ‘위안부’, ‘빨통’에 비유하고 “가슴은 D컵이지만 얼굴은

별로니 봉지 씌워서 하자”, “정액도둑X”, “1억에 내XX 물게 해 준다” 등 입에

담기 어려운 낯 뜨거운 대화를 주고받았다. 심지어 학과 공식 행사에 함께 참

석하자며 “가서 여자 몇 명 낚아서 회치자” 등 충격적인 언어 성희롱을 가했다.

박길자. “국민대 카톡방 성폭력 사건 ‘일파만파’…성범죄수준 언어폭력.” <여성

신문>. 2016.11.9.

20) 모 대학 대나무숲(익명의 글을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여러 대학에

서 드러난 ‘단톡방 언어 성폭력’에 대해 ‘남성들끼리는 원래 저런 말들을 아무

무게감 없이 가볍게 던진다, 남자들끼리는 다 하는 말이다’라는 취지의 글이

올라왔다. 김민준. “‘단톡방 성폭력’ 가해자만 단죄하면 끝인가?.” <오마이뉴

스>. 2016.7.12.

21) 2017년 동국대에서 발생한 단톡방 성희롱 사건의 경우 무기정학 처분을 받은

학생 2명이 재심신청을 했고 이 중 1명이 감경처분을 받아 올해 학교에 복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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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27

법적 형식을 그대로 닮았다고 보이는 지점이다.

피해자는 피해를 당한 당사자임에도 사건의 조사와 심의 과정에서 철

저하게 ‘격리’되어 있어 학교의 처분이 어떠한 판단을 근거로 내려졌는지

직접적으로 질문하지 못하며, 결정된 징계수위에 대해 이의가 있어도 달

리 방법이 없다. 사건의 당사자이지만 사건 발생 이후부터 상당기간을 언

제 어디서 가해자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주변의 시선, 자기검열

로 인해 오히려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게 되며 결국 침묵하게 된다.22) 여성

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겪었고 또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이후의 고

통과 침묵은 본질적으로 성희롱이 성별권력의 문제임을 드러내는 것이지

만, 학교의 구제절차 과정에는 이러한 피해와 고통의 맥락이 거의 고려되

지 않고 있다.

2) 치유과정과 성찰기회의 부재

많은 대학에서 발생한 단톡방 성희롱 사건들은 그 정도에 따라 경고와

근신부터 무기정학까지 징계처분이 내려졌지만 대부분 실효성이 없는 처

분들이 많았다. 예컨대 무기정학 처분이 내려진 학생 2명은 졸업예정자

였기 때문에 징계를 받았지만 학사 일정대로 졸업을 하거나, 사건발생 후

‘1년’이 지나서 내린 정학 또는 사회봉사는 가해자의 휴학이나 군대입대

로 사실상 징계를 받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고, 징계기간이 방학에 포함되

면서 형식적 징계에 그친 경우들도 있었다.

이런 경우 피해자는 다시 가해자와 함께 학교생활을 할 가능성이 높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와 조치를 사건의 해결로 인식하는 분위기 속에서 피

면서 피해자들은 가해자와 함께 학교를 다녀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박동해. “단

톡방 성희롱 가해자 복학에…학생들 ‘피해자와 분리해야’.” <new1>. 2018.3.16.

22) 아주대학교 조사 결과 성희롱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경우는 42.1%, 친구나

선배와 의논 20.8%, 당사자에게 얘기함 21.7%, 전문상담기관에 의논 10.8%,

사건을 공론화 함 4.6%로 나타났다(아주대학교성폭력상담센터,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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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해자의 고통 역시 바로 치유되는 것으로 이해해버린다. 피해자는 이미 사

건의 발생 자체로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이후 사건처리 과정에서의 배제와

공정성 문제로 상처를 받아왔다. 성폭력의 특성상 피해자의 상처와 고통

이 온전히 치유되기 위해서는 피해의 중단과 함께 안전한 환경 속에서 지

속적인 상담이 필요하지만 구제절차에서 피해자의 사후관리는 단톡방 사

건에서 보듯 잘 이행되지 않으며 개인이 감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해자 역시 구제절차 과정 속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갖기 힘들다(이미정 외, 2012: 65). 학교 측의 징계가 부당하다며 법원에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징계무효 확인 청구 소송을 제기

하는 경우도 발생하면서 가해자는 피해자와 학교에 대한 원망과 분노만

쌓이게 된다. 자신의 ‘가해행위’를 왜곡하여 인식함에 따라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의 발단이 될 수 있다.23)

가해자의 성찰과 진정성 있는 사과는 피해자의 치유를 위해서 가장 필

요한 부분이다. 사건이 종결되고 난 이후에 조치로서 받는 상담이 아니라

구제절차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가 피해자에게 어떤 고통과 후유증을 남기

는지 직·간접적으로 들을 기회를 제공하고 여성이 피해자임에도 침묵해

야 하는 맥락을 설명함으로써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을 유도하는 식의 인

식 전환의 과정이 필요하다.

3) 친밀한 관계에서의 중재

연인 간의 친밀한 관계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통제행위는 ‘폭력’으

로 거의 인식되지 않는 만큼24) 대응에서도 공식적인 기관을 통한 문의는

23) 고려대의 경우 가해자는 사건 이후 사과문에 자신들의 실명이 포함된 정보가

일부 누리꾼에 의해 유포되었음을 언급하며 이는 명예훼손에 해당하고 피해

자가 2차 가해를 받을 수 있다며 자제해달라고 적었다. 하지만 사과문은 당

해 피해자와 합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온라인뉴스팀. “고려대 단톡방 언어

성폭력 가해자들 ‘징계 달게 받겠다’ 사과.” <스포츠경향>. 2016.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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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29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P대학의 조사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드러났

다. 아래 <표 11>에서 나타나듯이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대부

분 개인적인 차원에서 대응하는 방식이었다. 통제행위는 오히려 연인 간

에 따라야할 행동규율로 규범화되고 성별고정관념에 입각한 ‘여성성’의

수행(손문숙·조재연, 2016: 33)이라는 사회문화적 통념과 연결되면서 더

욱 비가시화 된다. ‘싫다’라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만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고 상대의 화에 아무 말 하지 못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데이트폭력에 대한 대응 방식 성별

남성 여성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 26.9(21) 53.3(73)

관계가 어색해질까봐 가만히 있었다 ** 33.3(26) 18.2(25)

하지 말라고 했더니 상대가 화를 내서 더 이상 아무 말 못했다 ** 3.8(3) 8.0(11)

주변사람들에게 상의했다 ** 5.1(4) 3.6(5)

상담기관에 상의했다 0.0(0) 0.0(0)

헤어지자고 말했다 ** 2.6(2) 4.4(6)

경찰에 신고했다 0.0(0) 0.0(0)

기타 28.2(22) 12.4(17)

합계 100.0(78) 100.0(137)

<표 11> 데이트폭력에 대한 대응(단위: %, 명)

** p.01

24) 한국여성의전화 실태조사에 의하면 통제피해가 발생한 직후 느낌을 묻는 질

문에, 여성응답자의 38.9%가 ‘폭력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35.8%는 ‘아무

렇지도 않았고’, 32.1%는 ‘나를 사랑한다고 느꼈다’고 응답했다. 그리고 18.3%

는 ‘내가 더 잘하면 상황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고 응답했다(손문숙·조재

연, 201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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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데이트성폭력 및 스토킹 문제로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이 이전보다 많

이 증가했다고 하나(이미정 외, 2015: 32), 상담기관 문의는 상당기간 폭력

행위가 지속되고 심화된 상황에서 <표 11>의 결과처럼 개인적으로 해결

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반복되는 실패를 경험한 이후에 선택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손문숙·조재연, 2016: 35). 이 경우에도 대부분 비

공식적으로 처리되기를 원하며 가해자와의 합의를 상담소가 중재해주기

를 원한다.

중재는 사건의 심각성이 크지 않은 경우 피해자가 행위자의 진심어린

사과를 원할 때 가능한 구제절차이다. 예를 들면 일회성 언어적·시각적

성폭력이나 과한 장난으로 인한 가벼운 신체접촉, 성별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인한 부적절한 대우 등과 같이 학생들 간에 발생하는 일회

성 사건이 많다. 연인 간에 발생하는 통제행위 또한 본질적으로 성별에 대

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여기에 해당된다고 보여 지

며, 피해자가 상담을 문의한 경우 행위자의 잘못 인정과 사과를 원한다는

점에서도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재는 행위자로 지목된 당사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피해자의

요구조건을 수용한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경우에 가능한 처리방식이다(여

성가족부, 2015: 84). 연인 관계에서의 통제행위는 무엇보다 스토킹이나

신체적 폭력으로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초기 대응이 중요하지만 통제를

‘사랑’으로 여기는 행위자가 자신의 행위를 잘못으로 인정하기란 쉽지 않

다. 중재에서 성평등 상담교육이 실시되는 경우가 많지만 행위자가 거부

할 경우 교육을 강제할 수는 없다. 때문에 친밀한 폭력, 특히 통제행위의

경우 상담센터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게 된다. 스

토킹과 함께 연인 관계에서의 통제행위는 성별고정관념에 입각한 연애각

본과 집착과 통제를 정상화하는 데이트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만큼 행

위자의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무엇보다 시급한 것

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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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31

4. 대안 : 회복적 사법의 적용 가능성 검토

일찍이 서구 여성주의자들은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등 주로 여성을 대

상으로 하는 범죄에 대한 국가적 개입과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법적 처벌

을 요구해왔고 이러한 요구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처벌법 제정으로 이

어졌다(Daly, 2002). 우리의 경우에도 주로 여성단체에 의한 문제제기와

공론화 운동에 힘입어 가정폭력, 성폭력에 관한 특별법이 제·개정 되어

왔다. 문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는 사이이거나 친밀한 관계에 있을 경

우, 가해자의 처벌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형사사법(刑事司法) 절차에서

처벌로 인해 오히려 피해자가 소외되고, 다양한 고통25)을 겪게 되었다는

점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관계폭력의 특성, 피해자의 회복과 지원 차원에

서 다양한 해결방식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회복적 사법은 이러한 해결방식

중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회복적 사법은 나라마다 다른 형태로 발전해

왔고 지금도 단정적으로 개념을 정의하기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피해자

가 입은 피해를 회복하고, 가해자에게 그의 행동에 책임을 지우며, 갈등

해결에 지역이나 학교 등 공동체가 참여하도록 하는 데 무게를 둠으로써

범죄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정현미, 2010: 357-358). 그러나

젠더폭력인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에 대한 회복적 사법의 적용은 그 적정성

에 대한 의문제기와 함께 여전히 찬반논쟁이 계속되고 있다.26)

25) 예컨대 성폭력 피해 여성이 공개법정에서 2차피해를 겪게 되고, 가정폭력 피

해여성이 오히려 비난과 가해자 측에 의한 보복을 당하거나 생계유지가 곤란

한 문제 등이 발생하며,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불법적 신분으로 인해 추방의

두려움에 놓이는 등 엄격한 처벌의 효과가 피해자의 상황을 더욱 열악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26) 회복적 사법제도를 가정폭력이나 여성에 대한 다른 폭력범죄에도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Strang & Braithwaite, 2002), 이에 대해 위험의 경

고와 함께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보내기도 한다(Presser & Gaarder, 2000). 또

는 절충적인 입장에서 가정폭력 등에 적합하지 않은 몇 가지를 제외하고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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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한편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이나 데이트폭력 또한 본질적으로

남성의 여성에 대한 권력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대부분의 사건 처리

과정에서 구조적 불평등 관계가 고려되지 않음으로 인해 피해여성에게

오히려 고통이 가해진다는 맥락에서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범죄가 지닌

특성과 맞닿아 있다. 형사적 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학생 간 언어적 성희

롱이나 연인 간의 통제행위의 경우, ‘당사자에게 맡겨두기에는 심각한 행

위(최대권, 2002: 32-36)’이기 때문에 대학의 구제절차를 거치게 되지만,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가해자의 처벌에 중심을 두는 형사사법절차와 많이

닮아있었다.

일상적 범주의 성희롱과 통제행위는 무엇보다 왜곡된 성 인식의 전환

을 요하기에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대학 공동체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절차의 확보가 중요하다. 회복적 사법절차에 젠더폭력의 특성상 내재된

위험성이 반영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여성주의 시각은 회의적이지

만, 젠더폭력의 강도나 대상 등 그 층위에 따라 적절히 보완된다면 처벌만

으로 해결될 수 없는 복합적 문제의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교

육 공동체라는 특성과 무엇보다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측면에서 본

연구가 대상으로 하는 일상적 범주의 행위들에 대한 회복적 사법의 적용

은 대안으로서 충분히 검토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1) 피해자의 특성과 감정적 맥락 우선 고려

일반적으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조사과정은 ‘어떠한 법률에 위반되었는

지. 가해자는 누구인지, 어떤 처벌이 가해자에게 부과되어야 하는지’(정준

영, 2013: 524) 등에 집중한다. 이는 우리 형사사법이 처벌을 목적으로 형벌

가능하다는 견해도 있다(Stubbs, 2002). 우리나라의 경우 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된 적은 없으며, 기존의 서구 찬반양론의 타당성을 검토하거나(박강우,

2007), 위험적 요소에 대한 고려와 함께 긍정적으로 그 가능성을 보는 견해들이

있다(정현미, 2010; 이강민,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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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33

권의 주체인 국가와 행위를 저지른 범죄자를 주축으로 하는 이원적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김재희, 2014: 223). 따라서 당해 사건의 피해자는

이 과정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최근 들어 서서히 피해자 중심

으로 이동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27) 피해자가 입은 정신적 상처(트

라우마)나 피해배상은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되고(정준영, 2013: 525) 형사

사법과는 분리된 다른 절차(민사소송)을 통해 구제받도록 하고 있다.

특히 여성이 주된 피해자인 성폭력 사건의 경우 이러한 형사사법 절차는

사건의 본질적인 부분을 간과할 가능성이 높다. 피해 여성이 범죄를 신고

하더라도, 피해자는 오히려 형사절차 안에서 폭력의 원인을 추궁당하는 증

인의 신분으로 불려가게 된다. 성폭력은 대부분의 피해자가 단지 ‘여성’이

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자와 이미 아는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피해자는

도덕적 비난에 대한 두려움과 모멸감 및 자기검열로 사건을 은폐하거나 또

는 가해자의 보복 등을 우려해 침묵하게 된다. 즉 대등한 개인 간에 발생하

지 않았지만 형사사법 체계에서 이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의 힘의 관

계를 축소시키는28) 일회성의 사건일 뿐이다(가더·프레서, 2011: 244). 인

간이란 존재의 본질적 취약성으로 인해 법의 존재의의가 있으며 법은 언제

어디서든 사람의 감정 상태를 고려한다고 하지만(너스바움, 2015: 22), 누

구의 어떤 감정적 맥락을 우선시하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게 된다.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학생 간 성희롱의 경우에도 가해학생의 행위가 징

계의 대상인지, 학교는 어떤 징계를 내릴 수 있는지, 내린 징계에 불복한 학

생들이 어떤 소송을 제기했는지 등 가해자에 집중함으로써 ‘사건발생’의 단

선적인 시간적 흐름과 사실관계에 집중한다. 물론 피해자 입장에서도 가해

27) 피해자보호법 개정이나 형사조정제도, 피해자의 재판절차 참여로써 의견진

술제도 등이 변화의 예라고 할 수 있다.

28) 강간의 경우, 강간과정에서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적 맥락, 예컨대 장래의 폭

력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직장을 잃을 수 있음에 대한 생계불안, 죽임의 위

협 등은 재판에서 단지 동의와 동의하지 않음이라는 두 가지 논리로 축소된

(가더·프레서, 2011: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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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자에 대한 처벌은 여전히 중요하며 사안에 따라서는 지금보다 훨씬 강력하

고 철저한 처벌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동시에 처벌만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처벌 역시 제한이 필요하게 된다(Minow, 1998: 135). 처벌의 강도가 가해자

의 성찰과 피해자의 치유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복적 사법 개념은 기본적으로 당사자들의 관계와 피해자의 감정적

맥락을 존중하며 특히 당사자인 피해자의 치유과정에 중점을 둔다(정준

영, 2013: 526). 부분적으로 일반범죄에 적용되고 있지만29) 당사자 간 관

계적 맥락과 피해자의 감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성희롱이나 데이트

폭력과 같은 여성 대상 사건의 경우 더욱 필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구체적으로 가해자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피해자에게는 어떤

고통이 있으며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지를 살핌으로써 회복적 사법 개념

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문제해결의 초점을 두게 된다. 가해자

의 경우에도 단지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가 왜 잘못인지를 일

깨우고 피해자와 학교 공동체에 끼친 해악을 회복시킬 수 있는 책임있는

당사자로(하혜숙, 2007: 310-311) 존재할 수 있다. 회복적 사법 개념은 피

해자의 치유를 도움으로써 궁극적으로 가해자와 이들이 속한 공동체의 관

계망을 회복시키는데 의의가 있다.

2) ‘대화’의 여성주의적 딜레마

대화는 회복적 사법의 매우 중대한 실천방법으로 인식되어 왔다(Coker,

1999; Presser, 2004).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공동체 모두가 자발적으로

대화에 참여함으로써 제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29) 2007년 소년법이 개정되어 소년보호사건에서 소년부판사가 소년에 대해 피해

자와의 화해를 권고할 수 있는 화해권고제도가 도입되고(소년법 제25조의3),

2010년 4월 범죄피해자보호법이 개정되어 검찰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

던 형사조정제도가 법적 제도로 정식 도입(범죄피해자보호법 제6장) 되는 등

일부 회복적 사법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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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35

원할 경우30) 자신의 피해상황과 감정을 가해자가 있는 자리에서 말하고,

가해자로부터 범행이유를 듣고, 사과와 피해배상을 받고, 궁극적으로 가

해자를 용서해야 정신적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 회복적 사법 개념

의 핵심이다. 따라서 대화는 쌍방향의 상호작용과정(정준영, 2013: 526)이

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호작용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이미 대등한 관계

가 아닌 구조적인 성별 불평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대화는 여성

주의적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들은 피해자, 가해자와 함께 대화에 참

여하는 한 축인 공동체(가정, 직장, 학교 등) 역시 기존의 ‘보편적인’ 성별

이데올로기 관점을 고수할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의

도적인 개입이 없이는 ‘누군가 동등하지 않은 상대방을 대화로 끌어들이

는 시도를 하는 경우, 더 힘센 사람이 자신의 방식대로 이끌어가기 쉽

다’(Daly, 2002: 65)며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법정에서와 다르지 않은 피해

를 다시 경험하는 것에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즉, 대화에 이미 힘의 불균

형이 내재함으로 인해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를 뉘우치고 개선하는 데 영

향을 주지 못할 수 있으며, 가해자와 대면한 피해자에게 공포감만 안길 것

(Daly & Stubbs, 2007: 422)이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형사사법절차는 범죄 구성요건적 행위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두지만, 회복적 사법절차에서는 대화와 주관적 감정표현을 중시하므로

과거의 지속적, 반복적 폭행과 얽혀 있는 문제와 감정들이 더 많이 표출될

수 있으며 이것이 오히려 가해자의 분노로 이어져 다시 피해자에게 폭력

을 행사할 위험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이다(정현미, 2010: 367). 때문에 피

30) 좋은교사 모임에 따르면, 회복적 대화모임은 피해자들에게 심리적인 안정감

을 주는 데에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좋은교사모임이 회복적 대화모임

을 진행한 교사와 학생 199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피해 학생의

72%가량은 상대와 관계가 동등해졌고, 대화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고 답했

다. 27% 정도의 피해 학생들은 가해자들과 같이 있는 것이 여전히 불편하다

고 답했다. 백철. “소년범 처벌강화보다 회복적 정의를 세우자.” <주간경

향>1247호. 201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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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해자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한 대화 역시 무의미하다고 보고 있다. 가정

폭력이나 성폭력과 같은 관계폭력의 경우, 이미 발생한 폭력행위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스스로 자기결정적인 행위를 하기 어려운 위험이 존재한

다. 위축된 자기결정능력으로 인해 피해여성은 대화에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할 수 없기에 대화를 거부하거나 대화가 실패함으로써 대화의

원래 취지는 상실되어 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이강민, 2013: 56). 대

화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화해나 용서에 있어서도 찬반의견은 분분한

데, 화해나 용서의 강요나 압력은 성폭력 사건에서 가장 부적절하고 피해

자 치유에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온다며 그 위험성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회복적 사법 찬성론자들은 화해나 용서를 강요하지 않으며 이는 회복적

사법의 주요 목적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대화’를 둘러싼 의견들, 특히 대화에 회의

적인 여성주의 관점에서 전제로 하는 젠더폭력 유형이 대부분 가정폭력

또는 성폭력 범죄들이라는 것이다. 본 연구의 대상인 학생 간 성희롱이나

연인의 통제행위 또한 성별권력 관계로 인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젠더폭력과 그 맥락을 함께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특별법에 그 처벌

근거를 두고 있고 대부분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는 가정폭력이나 성폭력과

달리, 형사법적 처벌근거가 없고 ‘폭력’으로 인식조차 하지 않는 학생 간

언어 성희롱과 통제행위는 넓은 의미의 젠더폭력에 들어가지만 그 층위는

분명 다르다고 할 수 있으며 그 대응책 또한 범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Minow, 1998: 133-135).

학생 간에 벌어지는 경미하지만 일상적인 폭력 행위에서 ‘대화’는 피해

자가 가해자에게 당해 사건이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등 하고

싶은 말을 풀어냄으로써 두려움이나 창피함에서 탈피하고 회복될 가능성

이 높다. 피해자 연구가인 주디스 허만(Judith Herman)에 따르면, 폭력에

의해 나타난 트라우마에 대한 궁극적 해결책은 공개적인 인정을 요구하는

것이며 회복은 오로지 관계의 맥락에서만 발생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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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37

(Herman, 1998: 70, 153). 가해자의 공개적 사과는 피해자의 요구사항이기

도 하지만 가해자 스스로에게도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성찰하

는 의미가 포함되어야 상호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구제절

차에서 제출되는 가해자의 진정성 없는 형식적인 사과문과 대화과정에서

피해자의 고통 경험을 가해자가 직간접으로 공유했을 때의 사과는 질적으

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폭력의 정도가 경미하다고 볼 수 있는 학생 간 언어성희롱

과 연인 간 통제행위 단계에서 당사자들은 일반적인 젠더폭력보다는 그들

의 갈등경험과 폭력경험, 가해자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설명 등 그들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이 중점이 되어 자신의 말로 묘사할 수 있다. 물론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이고 가해자와의 관계 역시 동기나 선배, 후배일 가능성이

많아 대화에는 이미 성별이라는 권력관계가 내재됨으로써 민감하고 조심

스러운 측면이 다분하지만,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

던 현실을 감안할 때31) 피해자인 여성이 원할 경우 피해를 입힌 상대방을

향해 자신의 감정과 고통을 ‘뱉어냄으로써’ 얻는 치유의 효과는 피해자 본

인뿐만 아니라 가해자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성찰하게 하는

직접적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대화는 이들 행위를 ‘폭력’으로 인식하게 하

는 중요한 단계라 할 수 있다.

물론 개별사건에서 가해자가 자신의 행위를 폭력으로 인식하는 단계에

서 회복적 사법절차가 끝나서는 안 될 일이다. 대학 공동체, 특히 상담센

터는 대화에 조정자로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

계 및 피해유형에 따라 맞춤식 대응메뉴얼이 우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대응메뉴얼을 적용하는 단계에서 세심하게 살펴야 하는 대상은

피해자의 마음이다. 행정 업무처럼 단계별로 처리만 하면 된다는 생각과

행위는 피해자와의 소통을 단절시키며 2차 피해를 가하는 것으로서 결코

31) 통계에 따르면 학생 간 분쟁에서 피해당사자는 비공식절차에 의해 당사자끼리

해결하는 방식을 가장 선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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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회복적 사법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없다.

한편 대화나 화해를 포함해 사건처리 과정에서 피해자는 예측할 수 없

었던 정신적 고통과 압박감에 시달릴 수 있다. 일상적인 범주의 폭력행위

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고 때문에 피해자에게 “예민하다”거나 “까칠하

다”는 등 비난이 가해질 우려가 있다. 따라서 사건이 조사·처리되는 과정

에도 피해자가 원할 경우 심리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고 가해자에 대한 사후 의식교육, 예컨대 폭력에 대한 감수성 교

육 등도 함께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회복

적 사법을 통한 인식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학 자체의 성 불평등한 문화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는 구

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이 함께 고민되어질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학생과

교직원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성평등문화제’나 ‘성평등을 위한 의사소통

워크샵’ 형태의 프로그램도 있을 수 있고, P대학처럼 성평등 관련 특정이

슈를 주제로 매년 열리고 있는 ‘성평등네트워크 심포지움’ 같은 형식의 프

로그램 역시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틀을 변화시킬 수 있다. 또한 이번 P

대학에서 실시한 <성평등 의식 및 성폭력 실태조사>의 단과대학별 결과

를 근거로 단과대별 맞춤식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3) 공동체의 기여 : 성평등 상담센터의 역할

우리 법의 경우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은 기소 전에는 형사조정제도로,

기소 후에는 민사상 다툼에서의 화해제도로 존재하고 있지만 회복적 사

법은 여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사회적 갈등해결의 원리로 활용할 수

있다.

대학 내 성평등 상담센터(이하 상담센터)는 이미 중재나 조정 절차에

의해 전문 상담자가 개입을 하면서 자율적으로 문제 해결을 모색하고 있

다.32) 즉, 상담자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직접 대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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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39

지 않아도 중간에서 조정자의 역할을 하며 의사를 소통시키는 역할을 담

당하는 것이다.

중재 단계에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신고접수와 함께 조사·처리 절차

에 착수하게 되는데33), 문제는 조사·처리 과정이 앞의 상담과 연속해서

진행되는가의 여부이다. 조사·처리 과정을 화해와 조정을 시도했던 상

담 과정과 동일한 맥락으로 간주하여 상담의 연장으로 이해한다면 상담과

정과 조사·처리 과정의 절차가 엄격하게 분리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조사·처리 과정은 징벌을 주기 위해 필요한 조사절차가 아니라 피

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공동체가 모두 모여 피해 회복을 위해 각자의 의견

을 나누고 토의해 가는 회복적 사법 개념의 실천과정(하혜숙, 2007: 317),

이 된다. 즉, 회복적 사법에서 공동체는 지리적이기보다는 관계적으로 정

의된다(가더·프레서, 2011: 253).

반면에 조사·처리 과정이 가해자의 행위에 대한 징계수위를 찾기 위

한 조사 절차로 이해하게 되면 상담과정과 조사·처리 과정은 엄격하게

분리된다. 물론 상담 과정에서 축적된 자료가 이후의 조사과정에 참고자

료로 활용될 수는 있지만, 다수의 대학이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상담과정

과 조사·처리 과정이 구분되지 않은 채 사실상 중복되어 있어(여성가족

부, 2015: 63-64) 사건 전반에 대한 정보를 가장 잘 알고 있음에도 상담전문

가는 조사과정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이유로 조사위원회에서 배제되는 경

우가 대부분이다(이미정 외, 2015: 32). 이 경우 조사처리 절차는 개인의

행위에 적절한 징벌을 부과하는 과정이 되며 상담의 역할은 축소된다.

32) P대학의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제3장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처리절차 제 12조(징계) 2항에서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경미한 사

건에 대하여 피신고자의 반성을 촉구할 수 있는 조치를 상담센터 내규로 정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33) 신고인이 중재를 원하지 않거나, 신고인과 피신고인간의 중재가 결렬되거나,

성폭력 사건이 심각하여 중재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 그리고 상담기구가

학내 구성원이 당사자로 연루된 성폭력 사건을 인지하게 되면 심의위원회를

소집하여 직권으로 사건을 처리하게 된다(여성가족부, 2015: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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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앞서 단톡방 성희롱 사건에서 보여준 처리절차는 이러한 단계의 엄격

한 분리로 인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상호 소통을 위한 선택의 여지도 없이

처분이 통보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따라서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가

해자는 가해자대로 불만이 쌓이게 되며 치유와 성찰의 기회는 힘들어진

다. 이러한 맥락에서 대학 내 성희롱 문제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 위주의

사건종료보다는 상담과 사건·처리 과정이 연계됨으로써 피해자와 가해

자 그리고 대학 공동체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는 (하혜숙, 2007: 318) 방향

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

5. 마치며

여성운동에서 획기적 전환점이 될 미투(Me too) 운동이 대학가에도 점

점 확산되고 있다.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후폭풍을 감수하고 ‘미투’라

고 말하며 전면에 나서는 용기와 결단에 공감과 지지를 보내면서도 왜 이

들이 ‘폭로’의 방식으로 자신의 피해를 말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성찰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법과 제도, 문화와 의식 모두가 성별 권력관계에 있는 구조에서 피해자

의 고통은 온전히 치유되지 않으며 가해자의 ‘사회’를 향한 즉각적인 사과

는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소’하다 여기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상의 성차별범주에서 “회복적 정의”가 조금씩 실현된다면 의식의

대전환은 멀지 않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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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대학 내 성희롱·데이트폭력의 일상적 범주와 회복적 정의

Abstract

Daily Categories of Sexual Harassment·Dating Violence in a University and Restorative Justice :

Focusing on P University

Lee, Seon soon(Women's Studies Center, Pusan National University)

This research found through factual survey in P university that a cause of verbal-sexual harassment, dating violence is in gender power relationships, gendered sexuality by observing the limits in features of verbal-sexual harassment, dating violence and in proceeding which universities have. As verbal-sexual harassment happened frequently between students, they don't realize that the cause of these is power relationships based gender and control action in romantic relationship is understood as a ‘natural’ gender norm and a expression of love. Therefore proceeding of sexual harassment case whose victims are usually women have a lack of cure for victims and introspection and are mostly unilateral processes involving punishment. The concept of restorative justice which is represented as a alternative in this research is to respect characteristics of victims and it also means mutual communication that victims and attackers recover their relationships through a cure of victims and an introspection of attackers. Especially restorative justice is useful in terms of preventing counselling processes of university which are caused by sexual harassment from detaching from the processes of investigation and handling and I expect that it will ultimately contribute to gender equality culture of camp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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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연구 제28권 제1호(2018.4.) 45

Key words: Sexual harassment, dating violence, control, daily categories, gender power, restorative justice

❙투 고 일 : 2018년 3월 10일

❙최초심사일 : 2018년 3월 13일

❙게재확정일 : 2018년 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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