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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3, No. 2, 5015 213 연재기사 <만추晩秋 ; 안개의 도시 시애틀>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도시는 미국의 시애틀 이다. 시애틀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생각한다면, 열 에 아홉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개봉한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이 영 화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물론 제 목에 “시애틀”이 들어가 있기도 하지만, 맥 라이언 의 풋풋했던 모습에 매료되었던 관객이 그 만큼 많 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사실, 이 영화의 마지막 엔딩이었던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운명적인 만남 은 뉴욕의 앰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시애틀과 함께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는 이제 는 탕웨이의 남편으로 더 유명한 김태용 감독의 <만 추>이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상업영화 데 뷔를 한 김태용 감독은 두 번째 장편영화 <가족의 탄 생>으로 충무로에서 연타석 안타를 쳐낸다. 개인적 으로도 <가족의 탄생>은 김태용 감독의 영화를 앞으 로 계속 챙겨 봐야 하겠다라고 생각하게 해준 영화 이다. 이 영화가 흥행대작은 아니었지만, 평단의 호 평을 받은 이유가 감독의 세밀한 연출과 인물들 간 의 심리를 잘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영화속의도시, 그리고 도시 속의 건축 임 동 우 PRAUD 설계사무소 대표 [email protected]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학사 하바드대학교 도시설계 건축학 석사 2013 뉴욕젊은건축가상 수상 (현) PRAUD설계사무소 대표 (현) 로드아일랜드 스쿨오브 디자인 (RISD) 강사 (대표작) 수헌정 (the Leaning House), 청평 Casa Periscopio, El Salvador (저서) 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효형출판사) I Want to be METROPOLITAN (공저, ORO Editions) 북한 도시 읽기 (공저, 담디) 함흥과 평성 (공저, 한울아카데미)

영화속의도시, 그리고 도시 속의 건축 - CHERIC · 2015. 3. 30. · 예상하는 보다는 와 함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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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3, No. 2, 5015 … 213

연재기사

<만추晩秋 ; 안개의 도시 시애틀>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도시는 미국의 시애틀

이다. 시애틀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생각한다면, 열

에 아홉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개봉한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이 영

화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물론 제

목에 “시애틀”이 들어가 있기도 하지만, 맥 라이언

의 풋풋했던 모습에 매료되었던 관객이 그 만큼 많

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사실, 이 영화의 마지막

엔딩이었던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의 운명적인 만남

은 뉴욕의 앰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시애틀과 함께 소개하고자 하는 영화는 이제

는 탕웨이의 남편으로 더 유명한 김태용 감독의 <만

추>이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로 상업영화 데

뷔를 한 김태용 감독은 두 번째 장편영화 <가족의 탄

생>으로 충무로에서 연타석 안타를 쳐낸다. 개인적

으로도 <가족의 탄생>은 김태용 감독의 영화를 앞으

로 계속 챙겨 봐야 하겠다라고 생각하게 해준 영화

이다. 이 영화가 흥행대작은 아니었지만, 평단의 호

평을 받은 이유가 감독의 세밀한 연출과 인물들 간

의 심리를 잘 묘사했기 때문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영화속의도시,

그리고

도시 속의 건축

임 동 우PRAUD 설계사무소 대표[email protected]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학사하바드대학교 도시설계 건축학 석사2013 뉴욕젊은건축가상 수상(현) PRAUD설계사무소 대표(현) 로드아일랜드 스쿨오브 디자인 (RISD) 강사

(대표작)수헌정 (the Leaning House), 청평 Casa Periscopio, El Salvador

(저서)평양, 그리고 평양 이후 (효형출판사)I Want to be METROPOLITAN (공저, ORO Editions)북한 도시 읽기 (공저, 담디)함흥과 평성 (공저, 한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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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이러한 세밀한 묘사는 감독이 두 남녀의 심리가 타

이트하게 클로즈업 되어 묘사되어야 하는 <만추>에

서 더 빛을 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

인 의견이지만, <만추>의 남자주인공인 현빈이 군대

가기 직전 찍었던 <만추>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

는다> 두 편의 영화를 선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

던 것 같다(두 편 모두 흥행은 하지 못했지만, 현빈의

연기가 돋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시 <만추>로 돌아가자면, 영화 속 내내 표현되

는 우중충하고 짙은 안개가 낀 분위기가 시애틀을

소개하기에 더 적합한 영화가 아닐까 하여, 모두가

예상하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보다는 <만추>

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더 좋을 듯 싶었

다. <만추>는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듯이 60년대의

원작 <만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은 서울이

배경이지만, 새로운 <만추>는 시애틀이 배경이다. 이

것은 아마도 김태용 감독이 영화에서 표현하고자 했

던 약간의 판타지와 동시에 “밝지 않은” 분위기를 연

출하기에, 서울이나 국내의 여타 도시보다는, 여름을

제외하고는 늘 날씨가 우중충한 외국의 도시가 더 적

합했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만희 감독

의 원작 <만추>를 보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은 영상미

가 뛰어난 영화로 유명하다고 하다. 그리고 김태용

감독은 원작의 영상미를 의식했는지는 모르지만, 전

작들에 비하여 <만추>에서 훨씬 세련된 영상미를 연

출하고 있고, 이는 시애틀의 안개 낀, 혹은 비가 보슬

보슬 내리는sprinkling 날씨가 이를 극대화시켜 준 것

같다.

사실 시애틀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에 비해서

는 상당히 작은 도시이다. 인구 65만명의 도시로 우

리나라로 치면 전주시 정도의 크지 않은 도시이고,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오레곤 주의 포틀랜드와

경쟁을 하는 구도니 시애틀이 알려진 것에 비해서는

작고, 또 한편으로는 도시의 규모에 비해서 도시 브

랜딩을 잘 한 것일 수도 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

프트 본사가 시애틀 인근의 도시에 있고, Amazon의

헤드쿼터가 시애틀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IT에 익

숙한 젊은 층에게는 더욱 친숙해진 도시가 되지 않

았나 싶다. 실제로 MS윈도우 바탕화면에는 시애틀

의 상징인 Space Needle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며, 늘

샌프란시스코 항공사진을 갖고 시연을 하는 Google

Map과는 달리, MS는 시애틀 항공사진으로 Bing Map

을 시연한다. (MS의 검색엔진이 Bing이다) 그리고

아마존에서도 드론으로 배송을 한다고 했을때, 이를

처음 시연하고자 했던 도시가 그들이 위치해 있는

시애틀이었다. IT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러

한 뉴스를 접하며 시애틀을 익숙하게 생각하겠지만,

설사 IT에 친숙하지 않은 사람이어도 시애틀하면, 스

타벅스 1호점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듯 하

다. 또 미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Grey’s Anatomy>

의 배경이 시애틀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을 것

이다(하지만 이 드라마는 시애틀에서 단 한번도 촬

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글로벌 IT기업들이나

스타벅스, 혹은 드라마보다 이미 먼저 시애틀을 국

제 무대에 등장시킨 것은 1962년 있었던 시애틀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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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였다. 우리의 남산타워와 비슷하여 늘 친숙하

게 느껴지는 시애틀의 Space Needle이 이 엑스포를

기념하여 세워신 것이고, 우리나라 역시 이 엑스포

에 파빌리온 하나를 지어 참여하였다. 당시에 약 천

만명의 관람객이 방문을 했다고 하니 대단한 흥행을

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반세기 후에 열린 2012년

여수 국제박람회보다도 많은 수치이다). <만추>에서

도 순간순간 등장하는 고가차도처럼 보이는 모노레

일이 있는데, 이것이 1962년 엑스포때 처음 만들어진

모노레일이다. 아무쪼록 이때의 엑스포 이후 시애틀

은 다양한 산업들이 발전을 하며, 많은 이주민들을

도시로 끌어들였다.

실제로 보스톤에 오래 살다가 시애틀로 이주한

사람이 말하길, 시애틀 인구의 절반 이상은 1990년

대 이후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직장때문에 시애틀로 왔기 때문에, 그곳에

서의 인사는 보스톤과는 다른 것을 느꼈다고 한다.

보스톤에서는 워낙 학교때문에 보스톤으로 이주하

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학교 어디 다녀?”

혹은 “학교 어디 나왔어?”라고 물어보는 반면, 시애

틀에서는 “어느 직종에서 일해?” 혹은 “어떤 회사 다

녀?”하고 많이 묻는다는 것. 그 만큼 시애틀은 이주

의 역사가 짧기도 하고, 또 많은 새로운 산업들이 이

주민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는 미국 국내인들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마찬가

지이다. 특히 시애틀에서 가까운 동아시아 지역출

신의 이주민들을 오래전부터 시애틀에 정착하기 시

작했다. 이는 시애틀의 공항에만 가봐도 느낄 수 있

다. 일본말과 한국말 안내가 영어와 함께 방송된다.

더 재미난 사실은, 이들 아시아 국가의 이주민들이

많다 보니, 대부분 다른 도시에서는 차이나타운으로

명명되는 지역이 시애틀에서는 International District

라고 명명된다. 여전히 중국인들이 대부분이기는 하

지만, 그만큼 다른 아시아 민족들도 시애틀에 많이

정착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우리에게도 친숙

한 일본 야구의 이치로 선수가 처음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때 시애틀 매리너스로 간 것도 비슷한 맥락

으로 이해할 수 있다(LA다저스에서 박찬호나 류현

진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그 만큼 그 지역에서

의 한인이 티켓파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러한 면 때문에, <만추>의 배경이 시애틀

인 것이 어색하지 않다. 원작 <만추>와는 달리 김태

용 감독의 <만추>에서는 서로 다른 국적의 남여를

등장시킴으로서 원작보다 남여 사이에 하나의 간극

을 더 추가하였다. 원작과 리메이크작 모두(그다지

사회 모범 인간형은 아니지만) 밖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남자와(순간의 범죄를 저지르기는 했으나 모범

인간형에 가까운) 여자 죄수를 등장시킴으로서 그

둘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간극을 처음부

터 설정해 놓고 있는데, 김태용 감독은 여기에 국적

이 다른(따라서 서로에게는 늘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는) 간극을 추가하였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시

애틀은 이 두개의 다른 국적의 아시아인이 등장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도시이며, 여기에 시애틀의

기후는 영화의 판타지적인 영상미를 극대화해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배경이 된다.

<만추>의 훈(현빈 분)과 애나(탕웨이 분)는 데이

트 아닌 데이트를 즐기는데 그 중 역시 제일 유명한

곳은 시애틀의 Pike Place Market이라는 곳이다. 문

닫은 시장의 이곳 저곳을 누비며 뛰어다니는 모습

은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함축적인 영상인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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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다. 복잡한 시장의 일상이 모두 사라진 시간에 세상

에서는 이방인일 수 밖에 없는 두 남녀가 짧은 행복

한 순간을 보내는 장면이 이 공간이다. 여기는 시애

틀을 관광이건 비지니스건 무슨 목적에서건 다녀간

사람들은 반드시 들렸을 법한 시애틀의 명소이다.

이곳은 Elliot Bay를 바라보고 형성된 시장같은 곳인

데, 과일, 빵, 수산물 등 그야말로 우리네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있다. 최근에는 관광객

들이 많아져서 그들을 상대로 하는 아이스크림 가

게나 쵸코렛 가게 등도 많이 생겼다(시애틀에서 보

이는 바다는 태평양이 아니라 Puget 해협이다. 시애

틀에서 실제 태평양을 보려면 차로 몇 시간은가야

한다). 이곳은 소비자가 생산자를 직접 만나게 한다

(Meet the Producer)라는 구호아래 시장을 재생시키

고 꾸준히 생산자를 시장에 유치함으로서 현재에도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보

스톤의 Quincy Market 역시 수산시장으로 유명했지

만, 이제는 그 기능은 사라지고 관광지로서의 구경

거리로 바뀐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시애틀의 Pike

Place Market은 여전히 그 시장의 기능을 한다는 점

에서 더 흥미롭다. 그리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셔본

사람들은 이미 예상을 했겠지만, 스타벅스 드립커

피 중 Pike Place라는 커피가 있는데, 이는 이곳 마켓

을 의미하며, 바로 이곳이 스타벅스 1호점이 있는 지

역이다. 사실 스타벅스 1호점이라고 해서 70년대의

분위기와 인테리어를 기대했지만, 그런 모습은 아니

고 여타 스타벅스와 대동소이하다(이곳은 사실 제

일 처음 스타벅스 카페가 위치했던 곳은 아니고, 처

음 위치했던 곳에서 이곳으로 70년대에 이전한 것이

다). 이 뿐만 아니라 Pike Place Market 주변에는 힙한

Bar나 레스토랑들이 많아서 단순히 관광객들을 위한

지역이 아니라, 로컬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기도 하

다. 그 중 유명한 것이 Gum Wall이라고 해서 사람들

이 벽에 온갖 씹다 뱉은 껍들을 붙여 놓은(약 수 천

만개는 있을 것 같은) “껌벽”이 있는데, 그 옆에 Pike

Brewing Company라는 맥주집은 시애틀의 로컬맥주

를 맛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새로운 개념의 도서관

Seattle Public Library

일반적인 관광객들에게 시애틀의 Pike Place

Market을 제외한 관광명소는 아마도 Space Needle 이

겠지만, 아무래도 건축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근 가

장 주목받고 있는 명소는 Seattle Public Library (SPL)

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현대건축가라고

불리우는 Rem Koolhaas (렘콜하스)가 운영하는 네덜

란드의 OMA라는 사무소에서 설계한도서관이다. 아

마도 건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렘콜하스라는 이름이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

리나라에서는 서울대학교 박물관과 리움을 마스터

플랜하고 그 중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를 설계한 건

축가로 유명하다. 렘콜하스는 단순히 작품이 멋져

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디자인 과정에서 프로그램

을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구축하는 과정해서 새로운

공간들을 구성하는 등, 기존의 설계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설계하기 때문에 현재 최고의 현대건

축가로서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SPL이시애틀의 명소가된 이유는 단순히 건축적

으로 의미가 있고 훌륭해서가 아니다. 시애틀시민들

이 이 도서관을 또다른 공원처럼 좋아하고 잘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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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NFORMATION FOR CHEMICAL ENGINEERS, Vol. 33, No. 2, 5015 … 217

하기 때문이다. 이 도서관의 로비에 들어서면 우선

본인이 도서관에 들어 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실내

공원에 들어 와 있는 것인지 잠시 헷갈리게 된다. 이

는 도서관이라는 것이, 책을 수장하고 대여/반납하

는 전통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공간에서, 공공 공간

으로서 정보검색과 휴식, 만남 등의 기능을 제공하

는 공간으로 변화해 나가고 있다고 분석하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제안한 건축가의 역할이 컸

다. 실제로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고, 휴게할 수

있는 SPL 도서관의 로비 공간을 렘콜하스는 Living

Room이라고 명명하고 설계하였는데, 이를 보면 건

축가가 이 공간이 시민들에게 만남, 휴게, 시간때우

기 등의 공간이 되기를 원한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SPL의 장점 중에 하나는, 누구나 아무런 제제를 받

지 않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인데, 따라서 많

은 구직자들이 이곳의 시설을 거의 하루 종일 이용

하며, 도서관에서도 이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구직활

동을 도와주기도 한다. 또한 친구와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하며, 직장인들이 점심시간 때 잠깐 들

러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러

한 친근감 있는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SPL에서는 설

계단계에서부터 잘 반영되어 있다. 책을 수장하는

시설을 가능한 한 공간으로 몰아넣고 나머지 공간들

을 열린 공간으로 계획하여, 그곳에서 독서, 웹서핑,

자료검색, 강연 등등 각종 액티비티가 일어날 수 있

도록 하였다. 따라서 시애틀의 시민들은 SPL을 전통

적인 도서관을 이용한다고 생각하고 가는 것이 아니

라, 하나의 도시생활 공간 중에 하나로 활용하고 이

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을 봤을 때, 우리도 시

립도서관, 구립도서관 등 많은 도서관 시설들이 있음

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 공간들이 일상의 공간이라

기 보다는(각종 고시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

을 제외하고는) 책 대여와 반납이라는 특정한 목적이

있을 때만 이용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 아쉽다. 최근

들어 몇몇 기업이 SPL과 유사한 형식의 도서관 공간

을 만들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인상적이라

생각한다(물론 여전히, 공공에서 제공해야할 공간을

사기업에서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안타깝다).

다시 SPL 얘기로 돌아가자면, 이 건물은 밖에서

봐도 한 눈에 특이하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건물이

직육면체로 반듯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삐뚤빼

뚤”하게 설계되었는데, 이는 내부 공간을 구성하고

그것이 외부형태에 반영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루

어진 모습이다. SPL은 반듯반듯한 주변의 오피스 건

물 사이에서 새로운 형태로 자리함으로서 도시 공간

에서 새로운 효과를 제공한다. 이는 뉴욕의 직사각형

건물 사이에서 구겐하임 뮤지움을 원형의 형태로 설

계한 미국 모더니즘의 아버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의 아이디어와 유사하다. 아직 한국에서는 많은 건축

논리가, 공간의 효율과 공사비로 규정되다 보니, 한

국 사람들이 이러한 건물을 보면 “이상하다”라고 느

낄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한국도 효율과 비용만 따

지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체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

한지 따지게 되는 날이 곧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