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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l .~ 편 인의예치(仁義,禮웹) Dl 야 ;J · 점심에 주먹밥 한 덩이를 먹은 뱃속이 무섭게 시장했다. 죄인인 왕도 군사들도 모두 자신처럼 시장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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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져l.~편 인의예치(仁義,禮웹) Dl야;J

  • 에L~l!!o

    지곡팔경에 스며든 단종애사 I 257

    치곡펠검에 스며든 단종애사

    /

    단종 임금은 왕위를 숙부인 세조에게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나 있었

    다. 그런데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 이개, 유응부, 유성원 등이 다시 상왕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모조리 참형을 당했다. 이에 단종은

    노산군으로(盧山君) 격하되어 머나먼 강원도 땅 영월로 향하는 유배 길에

    들게 되었다.

    오십 명이 넘는 호송 군사들에 에워싸여 떠나는 길이 이토록 험한 것

    을 어린 임금은 처음 알았다. 살아서 다시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는 귀양

  • 뚫 너른고올 옛이야기 | 廣州說샘갤 길이다.

    수많은 백성들은 단종이 궁궐을 떠나 한양을 벗어나도록 길거리에서 혹

    은 담장 안에서 그 모습을 보며 엎드려 울었다. 단종도 그 광경을 보았다.

    호송하는 군사들과 왕방연도 묵묵히 백성들의 통곡소리와 탄식을 들었다.

    하지만 새로 왕위에 오른 세조임금의 왕명이 지엄한 이상 먼 귀양길을 서

    둘러 가야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구중궁궐

    써 꼬박 하루 흔들리는 가마 속에서

    깊은곳에서

    깊은절망과

    이곳까지 실려 오길 벌

    시름에 잠겨 이 나라의

    왕손으로 태어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였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여봐라, 물 좀 다오.”

    유월의 햇볕은 그늘에서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더웠다. 죄인에게 주

    는 최소한의 음식만 제공받을 뿐 단종은 물 한 모금도 마음대로 먹지 못해

    목이 타고 머리가 아랐다. 상왕에서 하루아침에 대역죄인의 몽으로 바뀐

    단종은 가마 밖으로 소리를 질렀다. 밖은 말발굽소리와 군사들의 발소리만

    부산할 뿐 대답이 없었다.

    “내말을 못 들었느냐? 물 좀 다오.”

    다시 한 번 큰 소리를 질렀을 때 금부도사 왕방연이 가마 옆으로 다가

    섰다.

    “마마, 송구하옵니다. 왕명으로 일체의 음식물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고정하옵소서,”

    왕방연의 이마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새 임금의 명령을 어길 때

    는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어린 상왕을 유배지로

    모시고 가는 처지가 그는 한없이 송구했고 고통스러웠다. 왕명을 거역했다

    가는 그도 가문도 대역죄로 몰려 삼족이 멸문지화를 당하는 화를 받을 것

  • 지곡팔경에스며든단종애 } 혔 은 자명한 일이다. 조정은 어린 임금을 내쫓은 자들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들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상왕의 배후를 캐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고 유배길 내내 전 임금에게 죄인에게 내리는 음식 이외의 어떠한 음

    식도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엄명을 내린 터였다.

    단종임금이 숙부에게 권좌를 빼앗기고 머나먼 영월 땅으로 귀양을 간다

    는 소문을 들은 백성은 분노와 두려움에 떨었다. 임금을 어버이처럼 섬기

    는 조선의 백성이다. 한양을 벗어나자 여지없이 흰옷을 입은 백성들이 나

    와서 엎드려 통곡을 했다.

    백성들은 어린 임금이 가는 귀양길을 보려고 젠 감자나 미숫가루, 설기

    먹 등을 해서 갖고 나왔다. 그들 앞을 군사들이 가로막았다. 죄인에게 함

    부로 음식을 건넨 자에겐 죄를 묻겠다는 서슬 퍼런 칼날이 앞을 막았다.

    “허허, 말세로세. 어찌 숙부가 어린 임금의 자리를 빼앗아 차지하고 임

    금을 저리 혹독하게 귀양을 보낸단 말인가?”

    “아이고 불쌍해서 못 보겠네. 돌아간 선대 임금님들이 어린 왕 한 분 못

    지키다니 -- - --- 쫓춧…….

    “여보게, 말조심하게. 지금이 어느 때라고 새 임금을 비판하나. 자네 목

    이 서너 개는 되나?”

    나직한 말소리였지만 백성들이 하는 소리를 금부도사인 왕방연이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못 들은 체 군사들에게 일체의 민간인들을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어느덧 삼전도를 거쳐 경안역을 지나면서부터 단종은 운명을 체념으로

    받아들였다. 아무 말씀도 없이 고요했다. 나무 그늘에 쉬면서 불볕이라도

    피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일행이 지윌리로 들어서면서 산그늘이 길어

    지고 해가 서산마루에 걸렸다. 길가의 백성들도 민가도 드문 적막한 산골

  • 뀔 너懶|熾州說詩짧 마을이었다.

    호송대장 왕방연은 이 마을에서 오늘밤을 유숙하리라 생각하며 군사들

    과 산굽이를 돌았다. 깊은 산중에 쉴 곳이라고는 이 마을밖에는 없을 것이

    다. 낮게 엎드린 십여 채의 민가에서 저녁밥을 짓는지 초가지붕 굴뚝으로

    연기가 흩어졌다. 점심에 주먹밥 한 덩이를 먹은 뱃속이 무섭게 시장했다.

    죄인인 왕도 군사들도 모두 자신처럼 시장할 것이다.

    마을이 시작되는 동구 밖 몇백 보 앞에 큰 나무가 보였다.

    “저 나무 아래서 오늘밤은 쉬어가겠다.”

    그의 명령에 군사들의 발걸음이 부산해졌다. 단종임금도 감았던 눈을

    뜨고 마을을 바라봤다 쥐 죽은 듯 조용한 마을이다. 몇몇 촌로들이 정자

    나무그늘아래 모여 있는모습도보였다. 일행이 다가가자그들은기다렸

    다는 듯 허리를 굽혔다. 그 순간 일행은 깜짝 놀랐다. 평소에도 볼 수 없는

    갖가지 음식들이 넓은 멍석에 가득 차려져 있었다.

    “상왕전하, 오시는 길 얼마나 힘드셨는지요. 소인들은 이 마을의 백성

    입니다. 부족하지만상왕전하의 수라상을마련했사오니 옥체를생각하

    셔서 조금이라도 잡수시옵소서.”

    갓을 쓴 선비가 단종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그를 따르는 하인이며

    촌로들도 모두 엎드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 감히 누가 왕명을 어기고 음식을 차렸느냐? 거기

    엎드린 그대는 누군가?”

    추상 같은 왕방연의 물음에 엎드렸던 선비가 고개를 들었다.

    “장군, 이 마을에 사는 생원 강첨이라 하옵니다. 죽을 죄를 짓는 줄을

    알면서도하늘같은상왕전하께 이 나라백성의 마지막충성이라생각

    하고 조출한 음식을 마련했습니다.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부디 미련

  • 빼)!’b

    지콕팔경에 스며든 단종애사 I 261

    한 백성의 충정을 막지 말아 주십시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다시 엎드렸다

    “장군, 이 미련한 것이 장군의 허락 없이 음식을 대접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내 집 앞을 지나치시는 상왕전하께 백성 된 도리로 어찌

    냉수 한 그릇이나마 대접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추후 반드시 죄를

    받겠사오니 부디 차린 음식을 전하와 군사들에게 대접할 수 있도록 눈

    감아주시옵소서 . 장군!”

    통곡에 가까운 선비의 말소리가 단종임금의 귀에까지 들렸다. 한창 혈

    기왕성한 열일곱 살의 청년의 허기진 뱃속이 음식을 보자 꼬록꼬록 요동치

    는것을막을힘이 없었다.

    잠시 왕방연은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선비의 말은 옳았다. 하늘로 머리

    둔 백성이라면 어린 임금의 처지를 생각하고 그 참담함에 가슴 아파하는

    것은인지상정이었다.

    “잘 알았다. 너의 충정을 굳이 막을 생각은 없다. 네가 마련한 이 음식

    을 전하께 올려라. 나와 군사들도 먹을 것이다. 너의 가룩한 정성이 후

    세에는 충정으로 기록될 날이 반드시 온다고 하더라도 내일 당장 누군

    가 포도청에 밀고를 해서 너에게 죄를 묻더라도 내 원망을 말거라.”

    “장군, 황공합니다. 소인의 죄를 달게 받겠사오니 어서 음식을 상왕전

    하와드시옵소서.”

    말을 마친 선비는 가마에서 내린 단종임금을 멍석 위로 모셨다. 인절미 ,

    닭백숙부터 구절판까지 정성껏 차려진 음식을 본 임금의 눈이 환하게 빛났

    다. 이 마을의 행세하는 집안인 듯 선비의 지시에 따라 하인들의 웅직임이

    부산했다.

    “전하, 아무 걱정 마시고 이 자가 대접하는 저녁수라를 드십시오. 나라

  • 앓 너른고을옛 0):71 廣의 녹을 받지 않는 백성의 충심입니다. 저도 군시들도 다함께 먹겠사

    오니 안심하시고 오늘밤은 여기서 쉬어가겠나이다.”

    임금을 어버이로 떠받들던 백성이 차려 논 음식상까지 치우라고 할 만

    큼 모진 마음이 왕방연에게는 없었다. 이 음식상이 어쩌면 상왕의 마지막

    잔칫상이 될지도 모를 판국이었다. 수라상과는 별도로 군사들의 음식도 푸

    짐하게 마련한 듯했다. 주린 배를 움켜쥔 군사들의 간절한 눈빛을 금부도사

    왕방연이 모를 리 없었다. 그의 뱃속도 허기에 지쳐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백성은 충성심이 지극하여 집 앞을 지나는 상왕마마께 수라를 올린

    것이다. 죄가 되는 줄 모르는 백성의 마음을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나

    중에 관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은 여기

    서 쉬어가야 할 것이니 너희들도 이 음식으로 배부르게 저녁을 먹어라.”

    금부도사의 말이 끝나자 단종임금이 수라를 들었다, 깔깔한 입 안을 물

    로 행구고 천천히 배불리 치밀어 오르는 분노조차 팍팍 눌러가며 밥을 먹

    었다. 겨우 허기를 면할 정도의 국밥을 먹고 이틀을 걸어온 군사들은 선비

    가 차려 논 음식이 진수성찬이나 다름없었다. 너도나도 기름진 이밥에 닭

    고기가 둥둥 문 국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모처럼 먹이며 부침개 막걸

    리까지 한 잔씩 마신 군사들은 들판에 세운 장막에서 잠을 청하고 일부는

    보초를섰다.

    그날 밤 선비는 단종을 집으로 모셔갔다. 달이 휘영청 몬 밤이다. 모내

    기를 끝낸 논배미의 잔잔한 못물에서 개구리들이 합창을 하듯 떼거지로 울

    어댔고 못물 위에 몬 달빛이 교교한 거울 속의 환상처럼 아름다운 마을이

    었다. 달빛에 뒷산 그림자가 길게 선비의 사랑채까지 내려와 앉는 광경을

    바라보는 임금의 용안에 눈물이 맺혔다. ‘아, 내 신세가 농사를 짓고 사는

    백성의 처지만도 못하구나. 지금쯤 왕비는 어떤 곤경을 치르고 있을까.’

  • 지곡팔경에스며든단종H } 혔 가슴을 난도질하듯 왕비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다. 혼례를 올린 지 3년이

    지났다. 세상에서 가장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단종과 왕비였다.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조용히 상왕으로 살려고 했던 부부

    였다. 자신의 돗과는 상관없이 그를 복위시키려다 죽은 사육신이 귀양길

    내내 안타까우면서도 미웠다. 통곡하다가 혼절하는 왕비, 다시 살아서 만

    날 수 있을지 누구도 나서서 위로하는 자가 없던 궁궐이다.

    수양을 왕으로 추대한 무리들이 조정을 장악하고 있는 한 단종의 목숨

    은죄인 아닌 죄인으로바람앞의 등불같았다.

    앞산에서는짝을찾는부엉이가 길게 울었다.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으

    나 끝없이 밀려오는 서러운 상념을 견디지 못해 눈물이 흘렀다. 그때 방문

    이 열리며 선비가 식혜를 받쳐 들고 단종임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상왕전하,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요? 미처 준비를 못해서 이런 험한 곳

    으로 모시게 되어서 송구하옵니다.”

    “아니오, 그대의 충정이 훗날 후환을 만날까 두렵소. 그대 같은 백성이

    사는 이 마을 이름이 무엇이오?”

    “상왕전하, 이 마을은 지윌리라고 하는데 산천이 수려하고 아름다워 시

    인들과 풍류객들이 자주 찾는 곳입니다. 이 마을은 광주에서도 이름난

    절경이 많고 전해오는 이야기가 많은 마을입니다.”

    “그렇소? 남한산성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디 이 마을 이야기나 들

    려주시오. 잠도 안 오고 시름이나 덜 생각이오,”

    “황공하옵니다. 상왕전하 시름을 거두시고 침소에 드시는 시간까지 무

    료하신 어의를 제 부족한 이야기로나 달래옵소서.”

    선비는 새파렇게 젊은 상왕의 잠 못 이루는 너무 많은 슬픔을 잘 알았

    다. 자신의 아들이나 손자빨밖에 안 되는 어린 임금이 하늘 아래 첫 동네

  • 짧 너련을옛01 °): l I懶라는 첩첩산중 오지인 영월로 귀양을 간다는 것은 하늘이 무심한 처사였

    다. 밤을 새더라도 말동무를 해드리면 기나긴 밤이 흘러갈 것이다. 선비는

    황공하고도 기쁜 마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상왕전하, 이 마을은 지월리 마을의 팔경이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경치

    를 자랑하는 곳이 여닮 군데 있사옴니다. 두어 군데에 얽힌 이야기만

    올리겠습니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선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상감마마, 지월리 팔경 중 거울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경수(鏡水)마을

    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선

    비가 이 마을에 묵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걸었던 탓에 정신없이 잠

    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소피를 보려고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왔습니

    다. 그런데 집 앞 연못에 달빛이 하얀 면경처럼 비추더니 하늘에서 선

    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비는 너무 놀라서 심장이

    빚는 것 같았으나 아름다운 선녀에게서 눈을 멜 수가 없었답니다. 나

    무 뒤에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습니다. 연못에 잃은 안개가 깔려

    있어서 그 모습은 황홀하면서도 신비했더랍니다. 잠시 후 목욕을 마친

    선녀가 옷을 입고 니-비처럼 물위를 사뿐사뿐 날아가는데 선비가 흘린

    듯선녀 뒤를쫓아갔습니다. 사방은고요하고모내기를끝낸논머리서

    시끄럽게 울어대던 개구리도 울음을 그쳤으며 못물 위로는 자유자재로

    춤을 추며 날아가는 선녀의 그림자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답니

    다. 선녀는 두물머리 부근의 절벽인 낙화암에 사뿐히 앉더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몸을 드러내며 날개를 다는 것이었습니다. 조마조마하게 지

    켜보던 선비가 그때 하필이면 큰 소리로 재채기를 했더랍니다. 그러자

    깜짝 놀란 선녀는 그 자리에서 낙화암 갚고 갚은 물속으로 풍덩 빠졌습

  • 지곡팔경에 스며든단종애 } 짧 니다. 이승사람에게 함부로 몸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옥황상제님의 명

    을 어긴 선녀가 스스로 강물에 폼을 던졌지요. 선비 또한 너무 놀라고

    허전해서 뒤돌아서서 주막으로 돌아오는데 달빛에 비친 못물이 눈이

    내린 것처럼 차갑고 환하더랍니다. 서리가 새하양게 내려앉고 연못 주

    위를 벙벙 돌며 주막을 찾지 못한 선비는 바로 코앞에 주막을 두고 얼

    어 죽었지요. 보름날 밤이면 연못에 선녀가 내려오고 그러나 선녀를

    본 사람은 이상하게도 죽는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조

    심을 했으나 나그네인 선비는 그걸 몰랐던 거지요. 그래서 벌을 받은

    겁니다. 또 다른 말씀을 올릴까요? 상왕전하!”

    다정하고도 나직한 자애로운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재미있구려 . 또 무슨 말씀이 있으시오?”

    “네 상왕전하. 이 마을 뒤에 작은 절이 있사용니다. 아주 오래 전에 절

    이 있는 산을 낀 두 마을이 겨우 보리농사로 입에 풀칠을 하는 정도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월 대보름달이 뜨

    면 산봉우리가 마을까지 그림자를 드리우는데 그 그림자가 말머리 형

    상을 하고 있더랍니다. 그 말머리가 동쪽 마을을 향하고 있으면 동쪽

    마을에 보리흉년이 들어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았답니다. 또 남쪽으로 말머리가 향하면 남쪽마을이 보리흉년이 들

    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말이 자라나는 보리 싹을 뜯

    어먹어서라는 그럴듯한 말이 떠돌았습니다. 그래서 양쪽 마을사람들은

    정월 대보름날 산의 말머리 그림자가 자신들의 마을로 향하지 못하도

    록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사람 먹을 양식도 없는데 보리가 자라기도

    전에 말이 먼저 먹어치우니 흉년이 든다고 믿는 마음들이었습니다. 서

    냥에 빌기도 했고 굿도 하고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어느 쪽으로든 보름

  • 웠 懶 ~ l I 廣”!說챔集 달 산 그림자를 없앨 수는 없었지요 이렇다 보니 절의 신도는 줄어들

    고 시주를 낼 곡식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스님이 묘안을 떠올렸지

    요 ‘그래, 산의 정상에다 돌탑을 쌓는 거야. 그러면 산의 지형이 바뀔

    것 아닌가.’ 그날부터 스님은 가사장삼을 걸치고 산으로 올라갔습니

    다. 그리고는 돌을 주워 모아 정성껏 돌탑을 쌓았습니다. 마을사람들

    의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해 커다란 돌탑을 완성시킨 스

    님은 너무나 자신을 혹사시켜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돌탑 아래 쓰러져

    죽었습니다. 얼마 후 정월 대보름날 양쪽 마을사람들은 달이 뜨고 산

    의 그림자가 떠오르자 그림자가 자신들의 마을로 향하지를 않도록 간

    절히 빌면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말머리가 아닌 스님이 고깔을 쓰

    고 바라춤을 추는 아름다운 그림자였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해서 산을

    올라가자 스님이 거대한 돌탑을 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양쪽마을

    을 살리려고 탑을 쌓고 열반에 든 스님 그 후로는 달빛이 돌탑에 걸려

    다시는 말머리그림자가 마을로 비추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두 마을

    사람들이 싸우는 일도 없어졌고 스님을 위해 부도를 세워주었습니다.

    이 마을 국수봉의 유래 입니다. 상감미-마!”

    임금은 백성들이 어떻게 자연을 숭배하며 의지하며 살아가는지 깨달았

    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며 주인이라는 말은 임금이나 권력을 쥔 벼슬아

    치들이 그들을 더 옮아매는 구실에 불과했다.

    “그만 물러가 쉬시오. 그대의 이야기가 많은 위안이 되었소. 궁궐 안에

    서만 지내다 바깥으로 나오니 비로소 백성들 사는 모습도 보고 산천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건만 내 신세가 한심하고 박복해서 언제 죽을지

    모를 운명이라는 것이 원통하고 한스러울 뿐이오.”

  • 지곡팔경에總애} 혔 “상왕전하, 너무 심려 마옵소서. 돌아가신 선왕마마들이 전하를 굽어

    살피실 줄 아옵니다. 아무 생각 마옵시고 침소에 드소서.”

    선비는 공손히 큰절을 올리고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모시등결이 진땀에

    젖어있었다. 선비가 물러가고 얼마나 갚은 시간이 흘렀을까. 새벽녘이 돼

    서야 단종은 겨우 눈을 붙였다.

    어지러운 꿈자리였다. 자신의 두 눈에 피눈물이 흐르는 흉몽이었다. 모

    든 권력을 뭔 무섭고 섬뜩한 숙부와 숙부에게 죄인으로 낙인찍혀 멀리 귀

    양을 간 수많은 종친들의 얼굴도 스쳐갔다. 자신을 다시 임금으로 추대하

    려다 김질의 밀고로 모두 목이 베인 사육신의 피비린내 나는 얼굴들이 악

    몽처럼 겹쳤다.

    비몽사몽에서 헤매던 단종이 군사의 호각소리에 눈을 폈을 때 희붐한

    아침이 밝아왔다.

    “전하, 갈 길이 머옵니다. 단단히 수라를 드시옵소서.”

    선비가 아침밥상을 들고 와 수저를 올렸다. 북어국과 더덕구이, 도토리

    묵, 산채나물이 올라있는 정갈한 밥상이다. 입맛이 깔깔했지만 단종은 밥

    한 그릇을 비웠다. 밖에서 군사들이 가마를 대령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전하, 부디 옥체를 보존하시어서 좋은 날을 기다리십시오.”

    선비가 큰절을 올렸다. 굵은 눈물이 마른자리로 묵묵 떨어졌다.

    “그대에게 크게 신세를 졌네 . 다시 돌아올 기약이 있다면 꼭 잊지 않고

    자네를찾아오겠네.”

    말을 마친 임금이 차마 떼어지지 않는 발길로 가마에 올랐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큰 칼을 차고 말을 탔다. 다시 군사들이 왕이 탄 가마를 메었다.

    가마 양옆으로 호송 군사들이 늘어섰다. 일행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선비

    를 비롯한 몇 안 되는 백성들이 멀리까지 따라왔다.

  • 뚫 너른뺑 |廣써| 흔들리는 가마 밖으로 단종은 마을 풍경들을 비로소 자세히 바라보았

    다. 어디인지 알 길은 없으나 매우 아름다운 산세와 백옥같이 깨끗한 물길

    이 너럭바위 아래로 흘러내리는 절경이 눈길을 사로잡는 마을이었다. 선녀

    가 목욕을 했다는 연못인지 알 수는 없으나 푸른 물길을 가둔 큰 연못 위

    로는 아름다운 연꽃도 피어있었다.

    개울에서 아낙들이 빨래를 하거나 아이들이 어울려 고기잡이를 하는 정

    겨운 모습들도 눈에 띄었다. 늦은 아침을 짓는지 모락모락 흰 연기가 오르

    는 초가집도 보였다. 한없이 평회롭고 순박한 농촌풍경들이 궁궐에서 숙부

    의 감시를 받으며 불안한 삶을 영위하던 자신의 처지와 너무도 달라서 단종

    은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어쩌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일지도 모른다.

    며칠이 걸렸을까. 단종은 영월 정령포라는 외진 곳으로 유배되었다.

    삼면이 푸른 강으로 둘러싸인 귀양지였다. 배 없이는 건널 수 없고 육지

    와 붙은 산 아래 천길 절벽으로는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고립무원의 땅

    이었다.

    단종은 그곳에서 두 달 후 장마로 불어난 물을 피해 영월 관아 관풍헌에

    서 왕방연이 들고온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아나 왕방연은 차마 단종에게

    사약을 올리지 못했다. 사약을 쏟고 자결할 결심을 하려는 그를 눈치챈 관

    아의 군졸이 단종의 뒤에서 활시위로 단종의 목을 졸랐다. 단종이 죽은

    것을 확인한 군졸이 활시위를 풀었다. 군졸은 그 자리에서 피를 쏟고 죽

    었다

    세조의 명을 어기고 단종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영접한 강첨은 경기도

    수군절도시를 지낸 강효정의 아버지로 지금도 지월리의 매봉산 기숨에 그

    의자손들과묻혀있다.

    〈집필 허정분〉

  • 분원앓1쩍l술혼

    분원도공의 예술흔

    、、r

    구름이 여름마다 비를 만들고 겨울이면 산골나무에 긴 바람이 깃드는

    남한산성 먼 동쪽 산모롱이 마을에 칠순이 다된 박 노인이 살고 있었다.

    대대로 그릇을 구워 생계를 유지해나가는 천민 출신으로 분원이 이곳 광주

    에 설치되자 개인의 가마를 접고 사기장의 일원이 되어 그릇을 빗게 되었

    다. 이 노인의 기량은 일대에서 가장 뛰어나 그가 만드는 그릇들은 하나같

    이 정교해 진상품으로 뽑혔으므로 그 마을에선 그를 선수장이라 불렀다.

    그에겐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었으니, 죽기 전에 우주를 담을 수 있는

  • 짧 너른고을옛 ojoj: l I 劉|說話集신비스러운 그릇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당시 분원에서는 형태와 기준

    을 엄격하게 지켜야 했기 때문에 자기만의 창의적인 형태를 지닌 그릇을

    만들 수가 없었다. 더구나 진상할 기명이 매월 삼십여 종인 데다가, 분원

    에 바쳐야 할 인정이 사백 바리여서 별도로 자기 나름의 그릇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평생을 도공으로 늙은 노인인지라 솜씨가 뛰어

    나다고 주변에서 칭찬이 자자했고 부러움과 시새움도 한몽에 받았지만 어

    느 날부턴가 틀에 박힌 반복적인 작업이 공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날

    이 갈수록 박씨 내면엔 자기만의 것을 만들고 싶은 예술에 대한 창작욕구

    가뜨겁게불타올랐다.

    ‘그래 , 나만의 그릇을 빗는겨.’

    노인은 눈자위가 행할 정도로 새로운 도자의 세계에 정신이 팔리고 있

    었다. 주문에 의해 그릇을 만드는 일들이 점점 시들해졌다. 그러자니 예전

    과 달리 속도는 느려지고 정교함에서도 점점 오차가 생겼다.

    “나이는 못 속여 , 선수장도 이젠 한물갔구먼…

    “그러게 말여, 그럴 때도 됐지 뭐. 헌데 솜씨가 너무 아까워.”

    도공들은 시샘 때문에 내심 반가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작업량은 점점 떨어지고 솜씨도 점차 줄지- 관에선 그를 아예 제쳐두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 같으면 파면에 해당할 벌을 내리겠지만 지금

    까지의 공을 헤아려 노인에게는 얼마간의 자유를 허락했다.

    노인이 다른 세계에 빠져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넋이 나간 듯한

    그의 모습을 보며 위로하고 격려도 하다가 종당엔 안됐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그러나 박씨는 주변의 그 어떤 반응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우

    두커니 앉아있기 일쑤였고 먼 산 바라기가 그의 일상이 되었다.

  • 분원둑공응γ예술혼

    달이 까마득히 중천에 뜬 밤이었다. 먼 숲속에서 소쩍새가 가슴을 쏟아

    내 울고 있었다. 소슬바람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서너 변 건드리는 사이

    개구리들이 술깨나 마시던 주객들과 잔치문들처럼 무논에서 돌림노래 한

    가락을 멋들어지게 부르고 있었다. 노인은 평상에 가부좌 틀고 앉아 잠시

    혼미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 속에서 저 멀리 안개가 띠를 이루며 떠다녔다. 안개들은 골짜기를 스

    쳐 지나가기도 하고 산자락을 휘감기도 했다. 하늘은 밝은 회색빛을 띠었

    고 새들은 하루를 준비하느라 푸드덕 거리며 수선을 떨었다. 그때 안개를

    헤치고 붉은 빛이 떠오르더니 용을 탄 신선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하늘로

    떠올랐다.

    “우주를 담을 그릇이 따로 있는 줄 알았더냐? 네가 곧 우주고, 네가 만

    든 그릇이 곧 우주를 담을 그릇이니라. 아직도 그걸 못 깨달은 게야?

    허허---- - -- 허허------

    신선은 울리는 목소리를 길게 남기고 공중으로 사라졌다.

    용을 탄 신선의 말도 이상하거니와 천하를 호령할 것 같은 용의

    용맹스러우면서도 자애롭고 사나우면서도 또한 우수가 서려 있어

    어안이 벙벙한 채 허공을 바라보다 꿈에서 깨어났다.

    눈매가

    노인은

    노인의 고민은 점점 깊어졌고 날이 갈수록 말수도 줄어들었다. 백토를

    쌓아둔 창고에 들어앉아 한 달 내 두문분출이 었다.

    그에겐 10년 연하의 아내가 있었는데 요즘 들어 남편이 점점 우두커니

    먼 산만 바라보게 되자 꿀탕을 하고 있었다.

    “영감, 멀쩡히 잘살다 왜 그래요? 어디 아픈 거예요? 왜 찬도 안 들고

    그래요? 노망난 것도 아니구 참 알 수가 없네.”

  • 옳 너른고올옛1爛 그의 아내는 평소 남편이 좋아하던 음식을 해 나르며 애걸복걸했지만

    그것조차도 저지당한 채 애만 태우게 되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노인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흙을 체

    에 거르는가 하면, 거른 물을 가라앉힌 뒤 관 물을 퍼내는 작업을 며칠째

    반복해서 했다. 흙이 명주실처럼 보드라워질 때까지 수십 차례를 연거푸하

    고 나서 가라앉힌 진흙으로 물기를 뺀 다음 반죽을 하고 반죽한 흙덩어리

    를 물레에 올려 그릇을 빗는 작업에 들어갔다. 평생을 물레질을 해온지라

    물레엔 고수였으나 아주 천천히 그의 작업은 진행되었다. 형태가 마음에

    들지 않아 뭉겠다 다시 세우기를 수십 변 하고 나서야 가느다란 실을 밑동

    에 대고물레로부터 그릇을떼어냈다.

    화병 하나에 한 달, 연적 하나에 한 달, 향로 하나에 두 달-- - - ---

    일곱 개의 작품을 만드는 데 무려 열 달이 넘게 걸렸다. 밑에서 위로 우

    아하게 벌어지며 올라가다 주둥이가 둥글어지는 균형 잡힌 화병, 어디론가

    금세라도 날아갈 것 같은 원앙모양의 연적·

    그의 집중은 놀라울 정도였다. 생애 최고의 걸작을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지 않은 채 혼자 그 일들을 다 해냈

    다. 아내라도 얼씬거릴라 치면 소리를 벽력같이 내지르며 주무르던 흙을

    패대기치기 일쑤여서 그의 아내조차도 접근할 수가 없었다.

    만족할 만한 작품이 만들어지자 예전에 쓰던 개인용 묵은 가마를 깨끗

    이 손을 보고 초벌을 구워냈다. 초벌을 구운 그릇들은 정교하고도 단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제 그릇에 생명을 불어 넣을 그림과 유약 시유가

    남았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그릇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보았

    던 용의 표정을 살릴 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최고의 걸작이 될 것이라 생

  • 분원도공의’예술혼

    각하고 있었다. 박 노인은 마침내 그림 그릴 것을 선택해 붓으로 그려 나

    가기 시작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무섭게 몰두하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매번 똑같은 잔소리를 꿀어 부으며 벅지도 않는 끼니를 문

    밖에 바꿔가며 차려놓았다. 혹여라도 앓아 쓰러질까봐 한참을 중얼거린 뒤

    인기척을 확인하고야 돌아가곤 했다.

    “괴팍한 영감탱이 같으니라구. 평생을 흙 개는 일만 시키더니 워쩔려구

    저러는지. 저러다 죽지 죽어…….”

    부인의 나날은 근심과 눈물로 채워졌다.

    이욱고그림이 완성되었다. 나무를태운재와물 그리고그밖에 것들을

    넣어 그만의 비법으로만든유약에 초벌구이 한그릇을충분히 담갔다. 그

    리고 그것을 가마 속에 채워 넣고 열십자형으로 나무를 여러 겹 꼼꼼히 쌓

    았다.

    이곳 광주의 나무들은 전국에서도 가장 좋기로 유명해 화력을 내는 데

    는그만이었다.

    가마를 덤히는 과정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 이틀째 접어들면서 가끔씩

    같으면불이 잘타도록 가마구멍으로 조금 더 많은 나무를 넣었다. 평소

    관리하기만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이번엔 밤이고 낮이고 가마에 붙어 앉

    아 있었다. 사나흘째 이르러 가마는 적당한 옹도에 도달했다.

    불이 절정에 달했을 때 노인은 등신불처럼 가마 앞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불꽃들은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차라리 영혼의 절규였다. 가난과 질병으로부터 천민으로 천대

    받았던 존재의 서러움으로부터, 삶의 속박으로부터의 해탈이자, 승천이었

    다. 영롱하고도 찬란한 꿈의 세계가 불길 속에 있었다. 용의 용맹스럽고

  • 뚫 너른懶 {說자애로운 눈빛이, 사나우면서도 애상적인 눈빛이 불꽃 속에서 어른거렸다.

    그것은 어릴 적 자애로운 어미의 형상이면서 또한 아비의 장엄한 눈빛이었

    다. 그리움의 모든 실제가 그곳에 있었다.

    넋을 놓고 바라보던 노인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치 누군가의

    부름에 이꿀리듯 불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불꽃을 향해 기 어들어가는 노인

    은 이미 사람이 아니었다. 뜨거운 옴부림도 비명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

    불꽃은 기다렸다는 듯이 노인을 삼켰다. 불꽃은 한참을 이글거리며 타오르

    다 마지막 어둠까지 다 삼킨 후에야 고요히 사위었다. 가마 앞에는 짚신

    두 짝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어느새 해는 발목을 잡던 어툼에서 벗어나 동쪽 산마루로 붉게 떠오르

    고있었다.

    불을 다 때면 그땐 볼 수 있겠거니 했던 그의 아내가 며칠이 지나도 영

    감이 돌아오지 않자 가마터로 나왔다. 가마터엔 가마의 옹기만 남아 있을

    뿐 정적이 가득했다. 섬뜩한 생각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며 영감을 불렀으

    나 어디에도 노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 들은 그의 아내

    는영감을연신불렀다.

    “어디 있어요∼오? 영가∼암…….

    주변을 둘러보아도 박 노인은 보이질 않았다. 불현듯 등골이 오싹해지

    면서 불길한 예감이 몸을 떨게 했다,

    그때 가마 입구에서 허름한 짚신 두 짝을 발견했다. 온몸에 소름이 확

    끼침을 느끼며 방정맞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 박씨 부인은 정신없이 짚신을

    주워들고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울부짖었다.

    “이게 어티기 된겨? 설마, 설마----- -.”

  • “누구 없어요?”

    여인의 절규가 뒷산으로 퍼져 나갔다. 그의 울부짖음에 마을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박씨 부인으로부터 대강 사태를 눈치챈 마을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신발을 벗어 논 게 수상하잖어? 이게 어떻게 된겨?”

    “누가 저 가마 속으로 좀 들어가 봐. 저 재 좀 긁어내보라구.”

    “설마 그러기야 했겼어?”

    마을사람들은 온통 난리들이었다.

    누군가 재를 긁어내기 위해 고무래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는 웅성거리

    는 사람들을 헤치고 가마 앞으로 다가갔다. 막 재를 긁어내려는데 재 속에

    서 이상한 물체가 희미하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고무래를 대던 마을

    사람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재속엔 기어가다 엎드린 듯한 유골이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입구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박씨 부인은 실신하듯 주저앉

    으며 곧 대성통곡을 했다.

    “영감, 이게 웬일이래요∼.”

    “이게 영감맞아요?”

    그의 아내는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물을 먹이고, 손

    을 따고 해서 겨우 정신을 돌려놓았다. 그녀의 통곡은 너무나도 애절해 보

    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사람들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끊임없이 수군거렸다.

    “세상에나 이게 웬일이랴.”

    “근래 들어 선수장이 좀 이상하긴 했어.”

    “그러니까 저게 선수장이란 말여?”

  • 옳 너른고을옛l뼈 마을사람들이 유골을 수습하는 동안 한편에선 가마를 열었다. 가마 속

    에는 일곱 개의 작품들이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칠

    십 평생을 기리기 위해 일곱 개를 만들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사람

    들은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다루며 가마 둔덕에다 작품들을 꺼내 놓았다.

    영롱한 그릇들이 일제히 빛을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까지 느끼지

    못했던 신비한 기운이 가마 근처에 가득했다.

    부인을 달래랴, 작품에 감탄하랴 마을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며 야단법석

    을 떨었다. 그때 실신할 듯 엎어져 몸부림을 치던 박씨 부인이 고무래를

    뺏어들더니 가마를 향해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울부짖음은 비통한 넋두리

    를 담고 흐린 하늘로 가득 퍼졌다.

    “사람 잡아먹는 이까짓 그릇들이 다 무신 소용이여∼어.”

    “우리 영감을 잡아먹은 저놈의 그릇들 내가 다 부줘 버릴 껴. 부줘 버

    릴껴∼어…

    순식간에 달려들어 고무래를 사정없이 휘두르는 바람에 도자기들이 챙

    그랑챙그랑 부서져 나갔다. 마을 사람들이 말릴 겨를도 없이 박씨 부인이

    휘두르는 고무래에 도자기들은 처참히 박살났다. 횡겨져 나간 사금파리들

    은 흐린 날씨 속에서도 유난히 영롱했다. 사람들은 아깝다고 혀를 차면서

    도 박씨 부인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오는지 마치 미

    친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고무래를 휘둘러댔다.

    “진정하셔요. 이러면 안돼요,”

    박씨와 평생 경쟁자이면서도 친구였던 김 노인이 박씨 부인을 가로 막

    고 그 중 가장 큰 항아리 하나를 겨우 안고서 자리를 피했다. 조각난 사금

    파리들이 박씨 부인의 슬픔과 함께 사방에 나핑굴었다.

    아침부터 흐릿했던 하늘에 삽시간에 먹구름이 가득 깔렸다.

  • -- - -

    분원도공의 예술혼 I 277

    천둥소리가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와 산골짜기 깊은 곳으로 사라지더니

    번쩍번쩍 번개가 내리쳤다. 푸른 불덩어리가 산목대기의 나무를 정통으로

    때린 다음 푸른 불꽃을 공중에 퍼뜨렸다. 갑자기 돌풍이 몰아치며 나뭇가

    지들이 휘어지더니 굵은 빗방울들이 시커먼 구름을 뚫고 쏟아지기 시작

    했다.

    박씨 부인의 톰부림으로부터 유일하게 구해낸 ‘백자청화운룡문항아리’

    는 이제껏 보아온 그 어느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항아

    리는 이전 백자와는 다르게 백색이면서도 포르스름하고도 투명한 빛을 띠

    고 있었으며 항아리의 균형은 너무나도 완벽했다. 표면에 그려진 용은 구

    름을 타고 마치 하늘을 날아다니듯 자유롭고도 힘갔으며, 눈매에서 뿜어

    나오는 빛은 우주를 다 포용하고도 남으리만치 갚고 날카로웠다.

    후에 이 작품은 왕실에 진상되었고 그 소문은 중국과 일본으로까지 퍼

    져 조선도공의 실력을다시 한번 입증하게 되었다고한다.

    박 노인의 장인정신은 그 후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 이곳 광

    주에서 훌륭한 도공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니 그 소문은 전국방방곡곡으로

    또 해외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나라에서는 그들을 천민이라 하여 누구도

    예술가로서 대접해주지 않았고 그러한 나라의 태도는 한때 명문도자기의

    맥을 끊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평소 조선도공들의 실력을 탐내던 일본은 임진왜란 당시 많은 조선 도

    공들을 일본으로 끌고 가 일본도자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는데 , 조선도공들

    의 실력은 고려청자를 만들 때부터 이미 중국 황실에서조차 그 실력을 최

  • 옳 너른뺑廣 짧음폼集 고로 인정할 정도로 세계적으로 뛰어났다고 한다.

    오랜 동안 중국에 조공을 바쳐오던 우리나라는 고려 후기부터 금 · 은

    조공의 의무를 폐지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다. 조선에 들어와 왕실

    스스로 금 · 은을 물리치고 백자를 전용하는 솔선수범의 자세를 보임으로

    써 면공을 위한 대의명분을 세워나갔다. 이를 계기로 조선왕실의 큰 부담

    이었던 금 · 은 조공이 면제되었고 백자가 고급그릇으로 쓰이면서 백자제

    작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펼요성에 의해 국내 유일의 국영 백자

    제작소인 ‘사옹원 분원 백자 번조소’ 가 지금의 분원을 위주로 한 광주일대

    에 설치 되게 된 것이다. 남종면 · 중부면 · 퇴촌면 등 광주시 일대에서 도

    자기를 굽는 데 필요한 흙이 나오는 데다 나무와 물이 풍부하고, 제품의

    공급지인 서울과 가까워 한강을 이용한 운반의 편리성으로 인해 사옹원의

    분원으로 이곳 광주가 지정된 것이다. 그 후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130

    여 년 동안 2857R소의 가마가 이 일대에서 번성했다고 한다.

    현재 광주시에는 약 300여 개소의 가마터가 남아있으며, 이 일대가 국

    가 사적 제314호로 지정될 만큼 도예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지역

    이되었다.

    현재에도 광주 도처에는 박 노인의 장인 정신을 닮으려는 도공들이 뛰

    어난 작품을 만들기 위해 그들의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다.

    〈집필 이종남〉

  • 곤지암에 살아있는 신립 장군

    곤지압에 살아았는 선립 창군

    역사의 위대한 인물은 그 시대가 지닌 불행한 정황 속에서 영웅이 되기

    도 하고 반대로 역신(평많)이 되기도 한다.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의 운명

    이 풍전등화와같은 위기에 자신의 목숨을 던져 나라를구하고자 애쓴충

    신 신립장군. 역사는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죽음으로 스러진 그의 이름을

    영웅으로 자리매김하며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 웰 너른懶 짧써|說5힘않 곤지암(昆池岩)이 조선시대의 명장 신립 장군으로부터 유래된 역사와

    전설과 유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면서도 귀

    한 우리 고장의 자랑이다.

    충주를 떠나 이천 땅으로 접어들변서 상여를 멘 군사들이 장군을 불렀다.

    “장군님?”

    “오냐, 에햄!”

    믿기지 않는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듯 가끔씩 장군을 부르는 소리가 상

    여를흔들었고상여에서는생시처럼 대답과동시에 큰 기침 소리가흘러나

    왔다. 경사가 심한 고개는 가파랐고 군사들은 내리찍는 햇빛 아래서 땀에

    흥건히 젖은 폼으로 장군의 시신을 담은 상여를 메고 오르느라 숨이 가쨌

    다.

    “대장군님?”

    싱-여 앞의 군사가 다시 대장군을 불렀다.

    “에햄!”

    대답처럼 들리는 장군의 목소리가 현실인지 환청인지도 분간키 어려운

    지경이 었다. 극도의 허망함과 슬픔에 사로잡혀 군사들은 오히 려 장군이 자

    신들을 꿀고 간다고 여겼다.

    충주 들녘 너른 벌판을 호기롭게 말을 달리는 대장군의 환영이 금방이

    라도상여를 열고 나올듯한분위기였다. 구척 장신의 장군의 봄은무거웠

    다. 수십 명의 군사들이 걸머멘 상여가 걸음을 펠 때마다 휘청거렸다. 앞

    장서서 요령을 흔드는 군사가 애달픈 진혼가를 부르면

    “어∼여 , 어∼여 . ”

    군사들이 구성진 소리로 화답하며 느린 걸음을 옮겼다. 며칠 전만 해도

  • 곤지암에살總 짧 자신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던 장군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적군에게

    패한 장수가 되어 지금 영원한 안식처로 가는 길이다. 꼬박 사흘을 메고

    오는상여였다. 군사들은온몸이 상처투성이고제대로 먹지 못해 비틀거리

    면서도 정신만은 강물처럼 맑았다.

    가끔 구경 나온 백성들이 음식과 물을 건네주는 마을도 있었지만 광주

    로 가는 길은 큰 고갯마루 두 개를 넘어야 했다. 첫 번 고갯길을 상여를 메

    고 올라가던 군사들의 걸음이 느려졌다. 아무래도 한참 쉬어야 기운이 날

    판이었다. 요령을 든 군사가 걸음을 멈췄다.

    “여보게들 이 고개에서 쉬어가게나!”

    “그러세, 아직 장지 인 곤재까지는 삼십 리도 더 남았지 않았나.”

    “우리와 함께 오시는 장군님도 잠시 쉬어 가셔야 힘이 날 걸세.”

    군사들은 고갯마루에서 상여를 내려놓고 곤지암으로 가는 멀고도 험한

    길을바라보았다.

    상여에는 적군에 쫓겨 충주 달천강에 몸을 던져 순국한 신립장군이 누

    워있다. 그러나 자신의 주검을 부정하듯 상여길 내내 군사들이 부르면 기

    침소리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자, 또 떠나세. 오늘 해 안으로 장지에 당도해야 할 걸세.”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군사들은 또다시 상여를 메었다. 흰 바지저고리

    차림의 촌민들이 간혹지나다니는고갯길 양옆으로는하얀싸리 꽂이 피어

    있었다. 밥풀 같은 하얀 꽃이 허기를 참으며 걷는 군사들의 눈에 이밥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장군의 염력이 자신들을 꼼짝없이 지휘하는 마당에 배고

    픔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한동안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고개를 내

    려오도록 계속되었다. 얼마를 더 왔을까. 눈앞의 이 큰 고개만 넘으면 펑

    펑한 대로가 이어진 곤재 쪽이라고 군사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웅성거리

  • 뚫 너른고을 옛이야기 | 廣州說쁨集 는 틈새에서 누군가가 상여를 향해 장군을 다시 불렀다.

    “장군님?”

    일순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긴장감으로 더 조용해졌다.

    “어, 이상하다. 대장군님?”

    또 다른 군사가 더 큰소리로 장군을 불렀으나 메아리처럼 돌아온 건 그

    소리뿐이다.

    “어, 장군님이 대답을 안 하시네. 완전히 돌아가신 거 아냐?”

    누군가 비감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그러게, 장군님 넋이 하늘로 오르셨나 보네.”

    여기저기서 아우성과 탄식소리가 들렸다. 군사들이 상여를 내려놓았다.

    “이 고개만 넘으면 장지가 가까운 곤지암인데 돌아가시다니 !”

    “장군님이 여기서 아예 하늘로 오르셨네. 이 고개 넘기가 힘들어 우리

    장군님이 북망산천으로 가셨다네.”

    비통한 어조로 말을 마친 군사가 통곡을 하며 상여 아래 엎드렸다. 그를

    뒤따라

    “장군님! 대장군님!”

    여기저기서 군사들이 장군을 부르며 통곡을 했다. 조용하던 고갯마루가

    군사들의 울음소리로 냥자했다. 부모를 잃은 듯 땅을 치며 울부짖는 군사

    들의 슬픈 호곡소리가 멀리 마을까지 펴져나갔다. 이천 넋고개에서 영혼이

    승천했다는 신립장군, 나라는 명장을 잃고 군사들은 훌륭한 장수를 잃고

    백성들은 의지했던 영웅을 잃은 것이다.

    대장군 신립, 그는 어려서부터 출중한 무예실력을 타고난 장수였다. 22

    세에 무과에 급제한 후로 조선 선조임금 때 오랑캐 족인 이탕개가 그곳의

  • 곤지암에살繼띔 혔 여러 호족들과협공으로북방을침입해 왔을때 출전하여 그들을토벌하고

    이탕개의 목을 베었다. 오랑캐들의 잦은 침략으로 고통을 받던 백성들은

    신립만 나타나면 환호를 하였다. 우리나라를 넘보던 적군의 장수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피해 달아났던 장군이 신립이다. 그는 함부로 조선을 넘보

    는 왜인들과 오랑캐를 무찌른 맹장이며 두만강 너머 호시탐탐 조선을 침략

    하며 괴롭히는 야인(野A)들을 소탕한 명장이었다.

    평소에는 자상하며 부하들을 아끼고 충성을 다하는 장군이지만 전장에

    서는 감히 대적하는 장수가 없었다. 눈부신 흰 말을 타고 활과 칼을 든 비

    호처럼 빠르고 날랜 구척장신의 장군이 보이면 적군을 지휘하는 대장들조

    차줄행랑치기 바쨌다.

    선조임금도 장군을 나라를 지키는 큰 성벽과 같이 신임하였다. 임금은

    넷째 아들 신성군(信城君)과 신립의 딸을 혼인시키면서 부원군인 신립장군

    을 자신의 몸의 일부처럼 여겼다. 장군이 북방 호족들을 토벌할 때였다.

    적으로 잡혀온 늙은 호족 하나가 장군 앞에 엎드려

    “장군 저에게 딸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 시집도 못간 처녀로 이대로 죽

    기에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저와 제 딸의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그 은

    혜에 보답코자 저의 전 재산과 딸아이를 바칠 것입니다.”

    호족은 눈물로 애원하였다. 그 옆에는 버들가지처럼 가녀린 허리에 달

    빛처럼 흰 얼굴을 지닌 아름다운 처녀가 간절한 눈으로 장군을 응시하며

    아비의 목숨을 살려줄 것을 애원하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절세에 보기 드

    문 미인이었다. 철의 심장을 지녔다고 믿던 장군의 마음이 흔들렸다. 자신

    의 지휘 하에 있는 전선, 또 혁혁한 전공으로 호족들의 생사쯤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였다. 크고 검은 처녀의 눈에 그렁거리는 눈물이 장군의

    젊은 혈기를 당장이라도 무너트릴 만큼 애절하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마음

  • 웰 懶): l I 廠州說쁨않 을다잡은장군은

    “여봐라, 저 아비는 반드시 제 딸의 아름다운 미모와 간계를 앞세워 능

    히 한 나라라도 무너트릴 해를 끼칠 것이다. 여자라고 해서 살려두면

    여러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괴롭힐 터, 어서 목을 치라!”

    추상 같은 명령을 내렸다. 사색이 되어 벌벌 떠는 아비와 달리 처녀는

    원한이 가득한 눈으로 장군을 쏘아보며

    “장군, 내 죽은 원혼이 언젠가는 장군의 말발굽을 휘감으리다!”

    싸늘한 말과 태연한 모습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듯 차가웠다. 하지만

    전쟁에서 인정은 금물이다. 처녀도 아비도 시퍼런 칼날 아래 목이 잘려 쓰

    러졌다. 죽고 살기로 싸우는 전장에서 어찌 억울한 죽음인들 없을까. 장군

    은 처녀의 망령을 애써 잊었다.

    이때 나라는 임진년에 20여만 명이나 되는 왜적들이 쳐들어와 조정이

    갈팡질팡하게 되었다. 자신의 영화에만 급급한 정승들의 무사안일한 정치

    가 시대를 꿀고 가는 시기였다. 지방 관리들이 왜나라(일본)의 심상찮은

    낌새를 알고 왜적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예견된 보고서와 계책마저 미친 짓

    이라고내칠 정도였다.

    “전하, 지금 왜적의 침입으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지경입니

    다, 얼른 신립을 대장군으로 삼아 전쟁을 승리로 이꿀어야 합니다.”

    왜적들이 경상도 땅으로 물밀듯이 쳐 들어오고 나서야 사태가 급박해짐

    을 깨달은 신하들이 벌떼처럼 나서서 한성부사로 있는 신립을 전장에 파견

    하도록 임금께 청원하였다. 임금은신립이 자신을든든히 지켜주는신하로

    남아있길 바랬다. 한시도 곁에 없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 충신이며 심복

    이 신립이었다.

  • 곤지암에 살싹였힐갓합장군

    “신립공은 나의 조아(날카로운 발톱과 예리한 어금니)와 같은 사람으로

    나를 호위하고 보필해야 하는 사람인데 어찌 전쟁터인 사지로 보낼 수

    가있단말인가?”

    하고거절하였다.

    “전하, 어찌 전쟁을 평정하는 데 신립만한 장수가 있겠습니까? 나라를

    구하려면 신립이 왜적들과 싸워서 이겨야 하옵니다. 윤허하소서.”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승리를 거둔 신립이야말로 왜적들을 물리치는 막

    강한 힘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신하들이 거듭 임금을 졸랐다. 마침내 임

    금은신립에게 전쟁에 나가싸울마음을물었다.

    “전하, 대장부가 나라를 위해 싸우는데 목숨이 어찌 구차하겠습니까?

    청컨대 김여물을 제 휘하에 둘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신립은 나라를 위해 장수가 전쟁에 나가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겼다. 무

    고한 죄로 옥사에 갇혀있던 김여물을 자신의 종사관으로 삼기를 청원했다.

    신립이 지목한 김여물은 용맹스럽고 대담한 장수였다. 자신의 무술을 날마

    다 새롭게 갈고 닦았다. 손자병법에서 익힌 전법으로 군사들을 연습시키며

    진두지휘하는 모습이 태평성대라고 노래하는 벼슬아치들에게는 좋게 보일

    리가없었다.

    그가 북방의 의주목사로 있을 때였다. 중국의 큰 장수가 압록강으로 놀

    이를 와 김여물을 청했다. 김여물은 백우선(白%房)이라는 큰 부채를 즐겨

    갖고 놀았는데 그가 백우선을 한번 휘두르자 백여 명의 말을 탄 병사가 일

    사불란하게 강기숨에 진을 치고 부채의 움직임에 따라 향방을 달리하는 것

    이었다. 크게 놀란 중국의 장수는 그를 무고하기에 이르렀고 조선의 정승

    들은 유언비어를 퍼트려 옥에 가두어 버렸다. 신립은 그를 뛰어난 장수로

  • 웰 너른고을옛 1 t기 | 廣州짧縣 알아보고 자신과 함께 왜적들을 무찌르는 선봉장으로 삼았다. 하지만 제대

    로 조련된 군사들이 있을 리 만무했다.

    드디어 신립이 임금께 출장을 알리자 임금은 손수 지니고 있던 상방검

    (尙方劍)을내리면서

    “그대가 경상도 순찰사 이일 이하 모든 장수와 장병들을 이 칼로 지휘하

    며 왜적들을 물리치고 승전보를 보고하라.”

    고 지시했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을 충신 신

    립장군이 다시 튼튼하게 세워주기를 바라는 염원이 가득 담긴 칼이었다.

    장군은 한양을 떠나 왜군들이 개미떼처럼 밀려옹다는 경상도 쪽으로 군

    사들을 꿀고 나섰다. 외세의 침략에 지치고 피폐한 나라, 제대로 훈련된

    군사들이 아닌 여기저기서 모집한 오합지졸의 군사들을 데리고 장군이 한

    양을 떠나 충주에 이르렀을 때 아군은 수천 명에 불과하였다. 싸워서 이겨

    야겠다는 의지를 찾아볼 수 없는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모인 군사들이다.

    신립이 승리를 기대하였던 경상도 순찰사 이일도 상주전투에서 패하여 신

    립의 진지로찾아왔다.

    “그대는 경상도 순찰사로 전장에서는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하거늘 어

    찌 패장의 모습으로 쫓겨 온단 말인가? 내 당장 죄를 묻고 싶지만 그대

    는 적군의 동태를 보고하고 대책을 말해보라!”

    장군은 머리끝까지 치미는 노기를 누르며 이일의 목을 베려던 마음을

    돌려 대책을 묻고 대비를 하기로 했다.

    “장군, 왜적과 우리 군은 병력의 차이가 너무나 큼니다. 이대로 싸움을

    한다면 우리 군은 크게 패하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싸우지 말고 한양

    으로 후퇴해서 병력을 모집한 후에 싸워야 승리를 잡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대는 또다시 아직 싸우지도 않은 군사들의 사기마저 떨어트

  • 곤지암에살顯짧 리려고 하느냐? 군사들의 선봉으로 앞장서서 그대의 죄를 씻으라.”

    신립의 추상 같은 명령이 충주 벌판을 가로질렀다. 신립이 진을 친 탄금

    대 절벽은 앞으로는 넓은 벌판이 이어져 탁 트였으나 뒤로는 깎아지른 절

    벽 아래로 남한강 물이 흐르는 후퇴할 수 없는 요지였다.

    “장군님, 이곳은 우리에게 불리한 지형입니다. 문경 조령협곡에다 진을

    치고 고개를 념는 적군을 맞아 싸우는 게 유리할 것입니다.”

    지형을 살펴본 김여물이 건의했다. 충주목사 이종장도

    “이곳은 앞이 넓은 평지로 적에게 우리의 진지가 훤히 보입니다. 험준

    한 산세를 이용한 조령협콕에다 진을 치고 적을 유인해야 합니다.”

    라며 문경새재로 옮기기를 권하였다. 이에 여러 장수들도 합세하여 말

    하였으나신립은

    “그렇지 않다. 적을 벌판으로 꿀어들여 말을 탄 우리 기병이 먼저 기선

    을 잡는다면 보병인 적은 쉽게 무너질 것이다. 적이 지금 조령 밑에 와

    있는데 우리가 조령으로 옮겨가다가 적이 먼저 조령을 점령하면 어떻

    게 하겠는가. 이대로 배수진을 쳐야 한다. 훈련 상태가 미숙한 우리군

    사들이 승리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결심을 하도록 해야만 한다.”

    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탄금대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배수진

    을쳤다.

    이튿날 왜군은 조령에 조선군이 매복해 있으리라 예상하고 조심조심 고

    개를 넘었으나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충주까지 진격해 왔다. 충주성 아

    래 탄금대에 진을 치고 기다리던 신립의 군대는 기병 천여 명이 나아가 적

    을물리쳤다.

    “자! 모두 나가 적을 무찌르라! 왜놈들은 이미 선두가 무너졌다!”

  • 뚫 너른고을옛l爛 말발굽아래 적군 수 백 명이 쓰러지고 목숨을 잃었다. 일시적으로 전투

    는 아군에게 유리한 쪽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왜적은 벌떼같이 덤벼드는

    수많은보병들이었다. 수적으로 열세인 아군의 피해가속출했다. 그들은신

    무기 인 조총과 포탄을 터트리며 열악한 신립군사들을 사지로 몰았다

    왜군은 아군들이 몰리는 탄금대를 포위하고 빠져나갈 수 없도록 조여들

    었다. 말을 탄 기병들이 몰려오는 적을 향해 결사적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충주벌판 너른 들녘은 전날 밤 내린 비로 말의 발목이 빠질 정도로 수렁이

    었다.

    적은 수십 만의 대군을 꿀고 오긴 했지만 바다를 건너온 보병에 불과 했

    고 우리군은 말을 타고 달리며 싸우는 기병이라서 속전속결로 적을 치고

    승리를 하겠다던 신립의 계략이 물거품이 된 상황이었다. 이미 전운은 아

    군에게 기울고 있었다. 후퇴할 수도 진격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이 신립을

    기다렸다. 장군은 부하들에게 마지막 최후의 공격을 하도록 명령을 내린

    뒤 김여물과 함께 적진으로 나갔다. 그의 앞에는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왜군들이속출했다.

    너른 벌판이 피비린내와 죽어 넘어진 시체 주인을 잃고 울부짖는 말울

    음소리로 아수라장이었다. 태산처럼 밀려드는 왜군들이 탄금대 절벽까지

    바글거렸다. 저 멀리 북방 만주벌판에서 말을 타고 나가 승승장구 싸우던

    위력만 믿던 그였기에 이런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리란 것은 치욕이며 죄였

    다. 언젠가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부녀의 정경이 떠오르고 꽃보다 아름다운

    미모로 자신의 마음을 흔들던 처녀를 살려주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일순 들

    었다. 비정한 칼날 아래 스러지며 흘겨보던 북방처녀의 원혼이 자신을 이

    런 사지로 꿀고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죽음을 각오한 대장부답게 함께 싸우던 김여물을 돌아보며

  • 예↓--,.

    곤지암에 살아있는 신립i정군 I zs9

    “남아가 전장에서 죽을지언정 어찌 구차한 목숨을 부지하리오. 그대는

    아직 젊은 나이요. 싸우다 죽지 말고 갈 길을 가시오.”

    신립은 최후의 말을 마쳤다. 김여물이 살아나갈 것을 당부하는 말이 었다.

    “나도 장군을 따르겠소. 대장부가 나라를 위한 죽음을 아껴 무엇 하리오.”

    김여물 역시 죽음을 각오했다. 죽을 각오로 달려드는 왜적 수십 명을 목

    베었다. 그 순간 신립이 타고 있던 말과 함께 수십 길 탄금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찰나의 순간 김여물도 허공을 가르며 절벽으로 뛰어내렸다.

    시퍼런 강물이 첨벙 소리를 내며 큰 소리로 두 사람을 받았다.

    대장군과 부하장수가 탄금대 절벽에서 몸을 던지는 것을 본 군사들이

    줄줄이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왜군에게 죽기보다 스스로 몸을 던지는 죽음

    을 선택했다. 싸움에 진 군사들에 이어 아낙네들까지 더러운 왜놈의 발아

    래 목숨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물고기 밥이 되자는 비참한 심정으로 탄금대

    절벽을 뛰어내렸다. 낙엽처럼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람들과 신립, 김여물을

    비롯한 수많은 시체들을 삼킨 강물은 피로 붉게 물들었다. 드넓은 벌판은 자

    욱한 포성연기로 뒤덮였고 주인 잃은 말들의 슬픈 울음이 너른 벌판을 채웠

    다.

    신립장군은 곤지암이 내려다 보이는 대석동 유택에 안장되었다.

    멀리 태화산으로부터 흘러온 개천과 남이고개 아래로 흘러온 물이 만나

    는 마을이 곤지암이다. 이 마을에 꼭 고양이처럼 생겨서 묘(觸)바위라 불

    리는 묘한 바위가 있다. 마을에 흉년이 들거나 변고가 있을 때면 마을 사

    람들이 달빛이 환한 보름날 밤 집집마다 쥐를 잡아 자루에 담아 바위 밑에

    묻는 성황당 바위였다. 또 쥐띠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쥐날이 되면 혹시 회를

    입을까우려하여 바위 앞을 피해 멀리 돌아다니는 게 마을의 전통이었다.

  • 뚫 너른빠 | 많써|說話集 그런데 장군의 묘소를 쓴 후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묘바

    위 앞을 말을 타고 지나려면 영락없이 말이 움직이지 않아 내려서 걸어야

    만 하는 변고였다. 급히 한양으로 올라가야 하는 파발이나 물품도 별 수

    없이 내려서 바위를 지난 후라야 말이 웅직이는 괴변이 이어졌다.

    어느 날 담력이 센 장수가 묘바위 앞을 지나게 되었다. 휘하에 거느린

    부하들이 여러 명이어서 인근 백성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수가 탄 말이 바위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장수는 아차 싶

    었지만 다른 길이 있을 리 없는 외길이다. 과연 장수가 말에서 내려 걸어

    갈까 하는 구경을 하려는 백성들이 길거리에 떼거리로 모여 있었다. ‘내가

    이 바위 앞을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면 두고두고 조롱감이 될 것이다. 무슨

    묘책이 없을까?’ 장수는 잠시 생각하다가 온몽의 기를 모았다. 크게 한번

    호통이라도 치고 지나가야 체면이 설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큰 칼을 차고 갑옷을 입은 당당한 풍채의 장수가 바위를 향해 큰 소리로

    호령을했다.

    “신립 장군은 들으시오! 그대는 왜적과 싸워서 진 패장이오. 아무리 장

    군의 원통함이 크다고 하나 염력을 통해 이 바위 앞을 지나는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무슨 온당치 못한 처사란 말이오? 장군은 당

    장 원혼을 거두시고 장군의 체통을 지커시오!”

    쩌렁쩌렁 울리는 호령이 채 끝나기도 전에 햇빛이 챙챙하던 하늘이 흐

    려지면서 검은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구름은 순식간에 캄캄한 천지

    를 만들더니 세찬 비바람을 뿌렸다. 하늘에서는 큰 용 두 마리가 엉겨 붙

    어 싸우는 듯 천둥을 치고 번개를 날렸다. 사람들이 이 무슨 변고냐고 기

    겁을 하고 물러났다. 그 순간 뇌성벽력을 치는 천둥번개가 바위를 번쩍 때

    렸다.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꺼지는 엄청난 힘이었다. 바위는 두 동강이

  • 에ι!\JJ!,,

    、 ' I v 곤지암에살아있능선립장군 I 291

    나면서 머리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얼마나 천둥벼락이 컸는지 바위를 둘

    러싼 낮은 평지가 움푹 파이며 큰 연못이 생겼다. 비바람은 연못에 물을

    가득 채우고서야 그쳤다.

    얼마 후 연못에 선 두 갈래의 바위 중 큰 바위 갈라진 틈새에서 향나무 한

    그루가 자라났다. 장군의 기개처럼 올곧고 늘 푸른 기상을 지닌 나무였다.

    현재 곤지바위는 경기도 문화재 자료 63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그 후 연못은 복개되어 곤지암 초등학교와 주민들의 주택지로 변질되었다.

    바위틈에서 자란 향나무는 400년이 넘는 수령을 지닌 채 광주시 보호수로

    역사의 궤적을 묵묵히 가지마다 피워 올리고 있다.

    〈집필 · 허정분〉

  • 뚫 너른고을옛 | 倒| 繹죽음으로 지져낸 젤개 - 갑자수 션생

    ‘사람다운 길은 효성이 근본이요 효자의 집에서만 충신이 난다.’

    어릴 때부터 재주 좋은 신동으로 이름났던 소년은 〈효경〉을 배우다가

    이 대목에 큰 감동을 받고 아버지를 일찍 여왼 아들로서 홀로 고생하시는

    어머니에 대한 효도를 다짐하게 된다. 2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나 귀여움도

    많이 받았지만 교육에만큼은 엄격했던 아버지 살아계시변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오늘따라 아버지가 몹시 그리워졌다.

    “사람은 공(公)에서나 사(私)에서나 거짓이 없이 정직해야 한다. 거짓을

    하긴 쉽고 정직하긴 어렵다. 부모에게 거짓이 없으면 자연 효도가 되

  • 죽음으로지켜댄織선생 혔 고, 임금에게 거짓이 없으면 자연 충신이 된다.”

    라며 아들에게 충효를 가르쳐 주신 소년의 아버지는 고려 말 신흥사대

    부 가문으로 정6품인 통례문부사를 지낸 분이다. 그러한 부친의 말씀을 새

    기며 아침부터 밤까지 모친의 옆을 떠나지 않고 공부를 했다. 그것은 모친

    의 잔심부름까지 때를 잃지 않고 해드리기 위해서였다.

    “넌 왜 어린애처럼 내 곁에만 붙어 있느냐? 모든 시간을 네 공부에 써도

    모자랄 댄데, 내 시중드는 것이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느냐? 암만해도

    내가 빨리 죽든지 머릴 깎고 중이라도 되어야지, 내가 집에 있다가는

    네가 공부를 못하겠구나!”

    모친은 너무 지극한 아들의 효성이 자칫 아들의 장래에 걸림돌이 되지

    나않을까내심 걱정되어 마음에도 없는소릴 했다.

    “자식이란 부모에게 늙기까지 어린아이가 아닙니까? 어머니!”

    하고 웃으며 안심시키고 모친의 손발이 되었다.

    하지만 모친의 이러한 걱정에도 불구하고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의 공부는 천품과 노력의 공으로 날로 대성해 갔다.

    고려 충정왕 3년(1351년)에 경상도 안동에서 출생해 청년 문장으로 자

    부하게 된 김자수 선생은 20세가 되던 해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당시 성균관은 목은 이색이 대사성으로 있으면서 정몽주, 박

    상충, 이숭인 등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업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후 공

    민왕 23년(1374년)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학문적 이념과 정치적 노선을

    거의 같이하는 사우(師友)관계를 유지하였다. 상촌이 장원급제했을 때 누

    구보다 기뻐한 이색은 마침 병상에 누워 있어 제자의 집을 가지 못하는 대

    신 축하의 시를 한 수 지어주었다.

  • 짧 너른고을 옛이야기 | 廠州說짜않 세상이 다 놀라는 이런 경사에

    축하 못 가는 이 몸의 병이 한이로구나

    인생의 모였다헤졌다함이

    부평초와물과같듯이

    즐겁고 고달픔을 그만 술잔에 맡기는 세상이어라

    아아 내 몸이 언제 쾌차해서

    그대와함께소요하리오

    비바람소리쓸쓸한집에홀로누워있네

    이후 충청도 관찰사 형조핀-서 등 ‘공(公)과 사(私)에 거짓 없이 정직하

    라’는부친의 유훈을실행하며 관직을 역임하던 그가우왕초사간원 정언

    (正言)의 벼슬에 있을 때의 일이다. 때마침 왕은 왜병과 씨-워 이긴 조민수

    에게 상을 내렸는데 이를 사양하지 말고 받으라는 회교(回敎)의 칙명을 쓰

    라고 분부하였다 그러나 상촌은 왕의 이 분부를 단연 거절하고 왕의 상벌

    에 대한불명(不明)을당당히 아뢰었다.

    “조민수는 경상도를 책임지는 병사로서 김해대전이라는 큰 전쟁에서 왜

    병에게 대패하여 많은 군사를 잃었으니 그에 대한 견책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지금 밀양 전투에서 조그만 공을 세웠다고 그에 대한 큰 죄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도 염치가 없어서 사양하는데 다시 전하라

    는 분부의 회교는 신으로서는 쓸 수가 없습니다.”

    직언으로 왕을 보필하지만 이로 인해 전라도 여수 돌산으로 유배를 당

    하게 된다. 또 공양왕 때 성균관 대사성으로 있으면서 세자좌보덕(-|#子左

    補德)이 되었을 때에도 미신을 장려하는 폐단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려 왕

    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왕의 정치가 간신들의 농간으로 흐려지

  • 죽음으로지켜낸절빼선생 혔 지 않도록 충언을 아끼지 않던 충직한 신하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정치적 소신은 성리학의 의리를 몽소 행동으로 실천하고자 한

    의지의 실현이었다. 물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성균관에서 수학하면서

    이색과 정몽주를 비롯한 당시 대석학들로부터 받은 영향이 컸을 것이다.

    불교 폐단의 대안으로 떠오르던 주자학은 이색 등에 의해 성리학으로 정착

    되고 상촌 선생이 〈예기진호집설(禮記n휩晧集說)〉 30권을 역서하면서 학문

    적 · 사상적 결실이 맺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원나라 진호(陣j晧)가 쓴 것을 한자(漢字)로 번역한 것으로, 인간

    행위의 준칙으로서 예경(禮敬)을 중시하여 개인은 물론 사회와 왕실조차도

    예를 모르거나 문란해지면 질서와 조리를 잃고 그 존립기반마저 위태롭다

    고 생각, 성리학적 예론을 깊이 연구하였다. 특히 예를 운영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경(敬)에 기초해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예는 왕과 귀족 관료 등 지

    배층부터 먼저 솔선수범해서 실천해야 하며 , 동시에 군왕에게는 경으로써

    예를다할것을 권유하였다. 또한성리학의 이해에만그치지 않고 이를몸

    소 실천한 당대의 대표적인 학자였다. 당시 그와 교유한 선후배의 석학들

    도 그의 인품과 학문을 존경하였고 또한 앞으로 유도를 일으킬 거목으로

    보필하였다.

    물론 성리학의 이념을 실현시키겠다는 그의 의지는 그가 과거에 합격하

    기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관직에서 돌아와 모친을 모신 집으로 오면 여

    전히 한낱 어린애로 돌아갔고 늙으신 모친이 잠들 때까지 옆에서 보살펴드

    렸다. 성균관에 머문 지 1년이 안되어 편찮은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고

    향인 안동으로 내려갔다. 병환 중 약시중 드는 일에 온 정성을 다하였지만

    돌아가시게 되었고, 그러자주자가례에 입각하여 장례를치르고묘소곁에

    움집을 짓고 시묘살이 3년을 하면서 예를 다했다. 그러는 동안 한번도 집

  • 짧懶 에 간 일이 없으며, 된밥 한번도 입에 대지 않고 멀건 죽 한 그릇씩을 겨우

    조석으로 취할 뿐이었다. 날마다 묘 앞에 엎드려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니

    지나가는 자와 나무관들도 이를 보고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의리와 명분을 평생토록 지켜옹 그의 생활철학이었다. 그의 효행이 알려지

    자왕이 이를듣고가상히 여겨 효자정려(族聞 : 충신 효자, 열녀 등그동

    네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던 일)를 내렸다. 또 화공에게 명하여 출거여도

    (出居廣圖 ; 묘에서 여묘(盧基)하는 모양을 화폭에 담은 그림)를 그리게 하

    고 이를 〈동국상감행실록〉에 게재하도록 하였다. 이후 그의 시묘살이를 생

    각하며 문익점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위문하고 있다.

    처음에 안동에서 악차에 있는 사람 보았는데

    얼음 깨고 잉어 구하여 무척 자득해 하더구만

    눈 속에서 죽순이 난 것은 참으로 효성이 지극함인데

    거적자리 앞의 뀔이 내린 것은 효열의 열림이지,

    그러나 당대 유교의 거목으로 성리학의 이념을 충효의 도리로 실천해오

    던 상촌에게도 시대의 흐름을 뛰어넘을 방도는 없었다. 스승으로서 평생

    삶의 좌표가 되었던 포은 정몽주의 죽음을 전해들은 것이다.

    포은은 나이가 상촌보다 15세가 많아 사제지간이면서도 서로 벗으로 예

    우해 주는 사이였다. 높은 학덕과 정치외교가로서 새 왕조를 개창하려는

    이성계 일파의 세력들에 맞서 끝까지 고려를 지커려고 노력했다. 어지러웠

    던 고려말 정국 안정에 기여하다 문하시중(현 국무총리) 때인 1392년 이성

    계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음모에 항거했지만 이성계를 문병하고 귀가하는

    도중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피살되었다. 이는 고려의 몰락

  • 뽑으로지켜낸절 H 김짜선생 혔 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 상촌은 좌상시와 형조판서에 재직하면서

    그와 돗을 같이하였지만 정몽주가 피살되고 조선이 건국되자 벼슬을 버리

    고 안동으로 낙향하게 되었다.

    상촌이 살았던 당시 고려말 사대부들은 조선왕조의 건국을 둘러싸고 고

    려의 충신이냐, 아니면 조선의 공신이냐의 전환기에서 그 행보가 갈라졌

    다. 정몽주 계열의 사람들은 고려 왕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개혁과 중흥

    을 도모하였고, 이성계 등 정도전 일파는 고려 왕조의 유지가 불가능하다

    고 판단하여 혁명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포은의 죽음은 고려왕조를 지킨

    충절의 대명사로 남게 되고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자 고려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은 신하들은 경기도 개풍군의 두문동으로 들어가 동네 밖으로 나

    오지 않았는데 이른바 두문동 72현이라 하여 여기에서 ‘두문불출(*土門不

    出)’이라는말이 생기게 되었다. 상촌선생 또한그중한분이었다.

    고려의 충신들이 마지막 절의를 꺾지 않는 사이 고려는 공양왕을 꿀으

    로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새 정부를 일으킨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고려 때의 중요한 정계의 인재를 널리 포섭해 자기의 새로운 정

    권에 협력시키려고 했다. 충청도 관찰사의 벼슬을 했지만 나라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안동에 은거하고 있던 상촌에게도 역시 대사헌을 임

    명하고 불러들이려 했다. 그러나 상촌은 예 아닌 말은 듣기도 더러운데 무

    슨 대꾸를 하냐고 시종 묵살해 버리고 병을 핑계 삼아 자리에 누워 버렸

    다. 태조는 이러한 상촌의 태도에 크게 노했다

    “만일 경이 나의 부름을 끝까지 거역하면 엄벌에 처할테니 다시 한번 생

    각하라!”

    강경한 최후통첩을 보냈지만 끝내 거절하였다.

    역성혁명으로 나라를 세운 조선왕조는 이른바 ‘왕자의 난’ 이라 불리는

  • 옳 너른고올옛 010): l I 廣州說짜파 태조 아들 간의 왕위 다툼으로 궁궐이 또 한번 피로 얼룩지는 환난을 겪게

    된다. 형인 정조를 꿀어내리고 태종으로 등극한 다섯째 아들 이방원 또한

    상촌에 대한 도덕과 경룹을 인정하고 있었다. 형조판서의 직을 내려 다시

    한번 새 왕조의 협력을 강요했다. 더는 왕의 명을 거역할 수 없는 상촌은

    즉시 아들 근(根)을 불렀다.

    “내가 어명을 받았으니 떠나야 되겠다. 벼슬을 받으면 고려를 향한 충

    절을 저버리는 일이 되고 벼슬을 받지 않으면 집안이 풍비박산 날 진퇴

    양난의 처지가 되었구나. 너는 어서 수의와 흉구(언|具. 장례식에 쓰는

    물품)를챙기거라.”

    “갑자기 웬 장례물품입니까?”

    깜짝 놀란 아들이 되물었다

    “내 평생에 충효에 뭇을 두고 스스로 격려하였거늘 지금 태종에게 굴복

    하면 이것은 의리가 아닌지라 지하에 가서 선왕과 부모를 어찌 대하겠

    느냐. 드디어 때가왔구나.”

    아들은 만류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의중을 잘 아는 바 눈물을 삼키며

    묵묵히 그 뭇을 따라야 했다. 이욱고 상촌은 사당에 들어 조상에게 이별의

    예를올렸다.

    ‘이 세상 어디에도 편안히 쉴 곳이 없습니다. 불초 이 몸도 조상님의 뒤

    를 따르겠사오니 용서하여 주십시오.’

    안동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은 멀기도 멀지만 다른 평탄한 길이 있음에

    도 상촌 부자는 굳이 험로인 광주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상촌은 멀리

    송악산을 바라보며 힌-때 포은과 목은과 더불어 오르던 추억을 회상하며 눈

    물을흘렸다.

  • 봄바람에 말을 타고 산 구경을 왔건만

    말도 느릿느릿 걸으며 숲속에서 졸으려고 하네

    개울가의 깊은 숲엔 바위도 없이 그욱만 한데

    저편 절벽에는 꽃이 져서 울리는구나

    석잔 술에 흥분해서 세상사를 탄식하면

    뽑으로넓戀생짧

    한 곡조 소나무 바람 소리가 옛날 거문고를 울리는구나

    아아 아득한 역사가 어제 일과 같아서

    충신 열사들이 슬푼 회포를 옳어 마지아니함이라

    고려의 운명에 한탄하며 한없이 허망한 길을 걸어 광주 추령(秋鎭 : 지

    금의 태재로 추정)에 이르렀을 때 상촌은 고갯마루에 서서 산천을 둘러보

    았다. 더 물러설 수 없는 선택의 시간이 온 것이다. 아들에게 나즈막히 그

    러나 결연하게 당부하였다.

    “이 곳은 내가 죽을 땅이다. 여자도 불경이부 하거늘 하물며 신하가 되

    어 어찌 두 왕을 섬길 수 있으랴.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두 임금을 섬기

    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너는 나를 이곳에 묻되 비석은 세우지 말

    며 행적을 금석에 새기지도 말아라. 널리 알리게 되면 자손들까지 해

    를 미치게 되니 그저 초목과 함께 썩어 없어지도록 해야 한다. 내 뭇을

    어기면 자손이 아니다.”

    그리고는 준비해간 독약을 삼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때는 1413년 태종 13년 향년 63세였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던

    곳의 눈앞에는 한양 땅이 펼쳐지고 등 뒤로는 포은 정몽주의 묘가 있다.

    한양이냐 정몽주냐의 갈림길에서 그는 정몽주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저 산 너머에 포은(園隱)의 묘가 있으니 나를 이곳에 묻어주면 지하에

  • 뚫 너른懶廣州說렘集 가서 가까이 교의(交誼)하겠다.”

    아들에게 이렇게 유언하고 절명시 한 수를 남겼다.

    -절명사(總命詞)

    平生忠孝意 평생토록 지킨 충효

    (평생충효의)

    今日有誰知 오늘날 그 누가 알아주겠는가

    (금일유수지)

    -死홈休恨 한 번의 죽음 무엇을 한하랴만은

    (일사오휴한)

    九原應有知 하늘은 마땅히 알아줌이 있으리라.

    (구원응유재

    아들은 부친의 유언대로 추령에 묘를 쓰고 3년 시묘를 마친 후 비석은

    세우지 않았으나 후에 7대손 적의 발의에 따라 신도비를 마련하였다. 그러

    나 김자수가 생전에 남긴 훈계가 지엄하였음을 반성하고 묘 아래쪽에 묻어

    두었다. 8대손 김홍욱은 땅에 묻힌 것을 1926년에 발굴하였는데 마모가

    심해 채유후가 새로 찬하여 건립하게 되었다. 오포읍 신현리 산 120-1번

    지에 있는 김자수 선생 묘 아래에는 순절비각과 시비와 함께 신도비가 세

    워져 있으며 , 땅에 묻었던 마모된 와비가 함께 누워있어 고려말 정치적 혼

    란기에 선생이 겪었던 안타까운 곡절을 짐작하게 한다.

    한편 상촌이 절명할 당시 포은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일화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광주 태재에서 영구를 운반하던 소의 발이 땅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소를 재촉하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끌어도 보았지만 소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한

  • 뽑으로지켜낸절개뽑선생 짧 남자가 영구 앞에서 눈을 감고 합장하며 고인의 넋을 보내주기를 빌며 간

    청하자,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그 바람이 명정(銘族 : 죽은

    사람의 관직과 성씨 따위를 적은 기)을 낚아채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

    다. 명정은 포은의 묘소를 한참 배회하다가 어느 한 곳에 떨어져 반듯하게

    펼쳐졌다. 여기에 천광(穿購 ; 시체 묻을구덩이를팡)을하니 그제야소의

    발이 떨어져 장례를 모시게 되었다. 그곳이 상촌 선생의 묘가 되었다는 이

    야기다.

    안동에서 출발할 때부터 이미 자결을 각오한 상촌이 죽어서라도 정몽주

    와 함께 뭇을 같이하겠다는 의지를 잘 알려주는 일화로 전해온다.

    김자수(金自 〈字〉牌, 1351∼1413, 자는 순중〈減f中〉, 호는 상촌〈총村〉).

    선생은 학문, 사상, 예론, 정교(政敎) 면에서 고려말 성리학적 유교윤리

    를 확립하였다. 관료로서 기우는 국운을 유교적 개혁으로 붙들어 되돌리고

    바로 세우기 위해 옹건개혁론자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무엇보다 일관되게

    효행을 실천하였으며 새 왕조의 끊임없는 회유에도 불구하고 ‘충신불사이

    군’ 의 성리학적 의리를 끝까지 지켜왔다. 죽음으로 지킨 그의 절개는 눈앞

    의 이익에 쉽게 마음을 옮기는 오늘날 철새 같은 이들에게는 깊이 되새겨

    볼 일이다. 광주의 땅 신현리 그의 묘역에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지조와 절의의 나무가 무성한 잎을 날리며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집필 • 오경영〉

  • 웰 너른고을옛 l爛 _2-향리 검사녀의 청젤

    실촌읍에서 양평 방향으로 3km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