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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닉 뮤직 타임라인 ESCAPE

일렉트로닉 뮤직 타임라인 By E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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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닉 뮤직 타임라인

ESCAPE

1940년대 이전

Elisha Gray, 최초의 전자 악기

Musical Telegraph 발명 (1876)

Telhanmonium (1897)

Theremin (1930)

Ondes Martenot (1928)

Novachord (1938)

1876 ~ 1939, 최초의 장비들.

Sketch of a New Aesthetic

of Music by 페루초 부소니

(1907)

전자음과 미래주의 사운드의

새로운 개념을 최초로 제시

art of noisesby 루이지 루솔로(1913)

이탈리안 미래주의운동의 시작

Imaginary Landscape No. I

by 존 케이지 (1939)

처음으로 연주가 아닌 자연적

인 소음을 곡에 차용함

Funeral of the Unknown Warrior (이름없는 전사의 장례식)by George William Guest, Horace Merriman (1920)

최초의 레코딩 작업물 중 하나

1907 ~ 1939, 최초의 작업들.

1940년대, 1950년대

세계 제 2차대전 (1939 ~ 1945)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은 유럽 문화에 대한 이들의 자부심을 황폐화시켰다. 전통적인 농가 생활의 낭만은 사라졌으며,

그릇된 민족주의의 결과는 민속 풍습에 대한 향수를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구체 음악 / Musique concrète (1948)

1948년, 작곡가 및 이론가인 피에르 셰페르는 프랑스의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다섯개의 작품을 묶은 Cinq études de bruits (Five Studies of

Noises)을 발표한다.

원래 세계 제 2차대전 당시 점령된 프랑스의 라디오 저항운동의 하나였

던 이 방송을 통해 피에르 셰페르는 음향 기술과 라디오 녹음기술을 이용

한 실험을 시작하였고, 이는 구체 음악(Musique concrète), 혹은 전자음

향학(electroacoustic)의 기틀이 된다.

구체 음악 / Musique concrète (1948)

콜롬비아-프린스턴 전자 음악 센터의 탄생 (1950s)

Columbia–Princeton Electronic Music Center (왼쪽)RCA Mark II Sound Synthesizer (오른쪽)

1950년대 콜롬비아 대학에 설립된 컴퓨터 뮤직 센터.

(Computer Music Center) 컴퓨터 음악과 멀티미디어를

연구하기 위한 최초의 전문기관으로 전자 음악 작법과 기

술, 시스템 등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1940, 1950년대 전자 음악의 전개

Symphonie Pour Un Homme Seul (Symphony for a Man Alone) by Pierre Schaeffer and Pierre Henry (1949)

두대의 턴테이블과 믹서를 사용, 샘플링의 개념을 제시함

Louis & Bebe Barron -

Forbidden Planet (1956)

최초의전자 음악으로 된영화 OST

Edgard Varèse - Poème électronique (1958)

브리셸 세계 박람회에서 시연, 비행기 소리와 전자음 노이즈가합쳐진 형태의 음악을 선보임

Karlheinz Stockhausen이Elektronische Musik 작업을 시작 (1952)

자메이칸 사운드시스템 (1950s)

1950년대 자메이카의 킹스턴에서 유래된

사운드 집단의 형태. 커다란 트럭에 엄청난

크기의 스피커와 캐리비안 칼립소, 멘토 등

지역 전통음악을 싣고, 공연자들을 데리고

길거리에서 공연을 벌였다.

1960 ~ 1970년, 자메이카 이민자들로 인

해 영국 역시 사운드 시스템 문화를 받아

들이게 되었다. 이는 1960년대 후반 자메

이카의 댄스홀 및 덥, 레게 문화와 함께 번

성하였고, 후대의 정말 많은 음악들에 영향

을 미쳤다.

참고 자료 :

봄비노 레코드 : 사운드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1940, 1950년대 전자 음악의 전개

LP의 등장 (1948)

Jimmy Savile, 재즈 레코드를

애용해 처음으로 현대식 디제

잉 파티를 염 (1943)

두개의 턴테이블을 사용해 연

속 디제잉을 함 (1947)

자메이카의 Count Matchuki와King Stitt이 토스팅 (Toasting)을 함 (1956)

자메이칸 사운드 시스템과 랩에영향을 줌

Guitar Slim & Johnny 'Guitar' Watson - The Things That I Used to Do (1953)

현대적인 기타 디스토션 사운드의 개념을 제공

1960년대

1960년대 전자 음악의 전개

영국 BBC의 드라마

Doctor Who가 전자

음악을 OST로 차용

함 (1963)

라 몬테 영과 그의 그룹

Theater of Eternal

Music이 드론 사운드를

사용함 (1964)

Francis Grasso, 뉴욕의나이트클럽 Salvation II에서 현대식 디제잉 기술을 선보임(1968)

The Beach Boys - Good Vibrations (1967)

전자음과 테레민을 사용한첫번째 일렉트로닉 팝

무그 신디사이저의 등장 (1963~1968)

Wendy Carlos - Switched-On Bach (1968)

최초의 상용 /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Robert Moog, Herbert Deutsch에

의해 1963년 최초 개발에 들어갔고 1964년 프로토타입이 제작된다.

진공관 기반의 기존 악기가 매우 제한적인 기능을 수행했던 것에 비해 이

신디사이저는 트랜지스터를 사용하면서 더 작고 값싸며 많은 기능을 수

행할 수 있게 되었고, 1967년 몬트리올 팝 페스티벌의 시연과 1968년

Wendy Carlos의 Switched-On Bach를 통해 인지도를 넓혀 업계 표준

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크라우트락 / Krautrock (1968)

크라우트락 / Krautrock (1968)

1960년대 후반, 신디사이저가 대중화되며 독일에서는 기존의 브리티쉬,

아메리칸 음악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음악이 시도된다. 초월적인 느낌

을 주는 사운드스케이프나 fuzz 효과를 준 음악들, 아니면 미니멀리즘 /

아방가르드 형태의 음악이 새로운 악기와 작법을 통해 쏟아져나왔고, 영

국 언론은 이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다소 멸칭이지만) 크라우트락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후에 Kosmische musik이라 불리기도 했다.

Harmonia - Musik von Harmonia (1974)

Tangerine Dream - Zeit (1972)

덥 / Dub (1968)

덥 / Dub (1968)

1968년, 자메이카 킹스턴의 사운드 시스템 기사였던 Rudolph “Ruddy”

Redwood는 듀크 리드의 Treasure Isle 스튜디오에 재생용 덥 플레이트를

얻기 위해 찾아간다. 당시의 엔지니어였던 Byron Smith는 실수로 보컬을 생

략하였고, 사람들은 인스트루멘탈 버전에 맞춰 보컬을 따라 부르기 시작하였

다.

다음 날 이를 목격한 Bunny Lee는 킹 터비에게 찾아가 사람들이 인스트루

멘탈 버전을 원하고 있다고 말하게 된다. 킹 터비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Slim Smith의 “Ain't Too Proud To Beg“의 더빙 버전을 만들었다. 이후

Little Roy의 Hard Fighter은 처음으로 드롭아웃, 에코를 사용한 앨범으로

최초의 덥 레코드를 만들고 이는 리믹스의 기원이 된다.

Augustus Pablo and King Tubby - King Tubby Meets Rockers Uptown (1977)

Lee "Scratch" Perry - Super Ape (1976)

1970년대

우주시대의 개막 (1969)

1970년대 히트 싱글 / 앨범

Hot butter - Popcorn

(1972)

Original by Gershon Kingsley

(1969)

Gary Numan - Cars (1979)

Jean Michel Jarre - Oxygène(1976)

Isao Tomita -Snowflakes Are Dancing (1974)

일렉트로닉 유닛의 등장

Autobahn, Radio-Activity 등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Kraftwerk는 Trans-Europe Express (1977), The Man-Machine (1978)에서부터 미래와 로봇, 컴퓨터 세계와 테크노 팝에 대해 노래하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실물 크기의 마네킹과 로봇을 컨셉으로 사용하면서 전자음악의 미래적 컨셉을 확립하였으며, 이는 전자음악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준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결성된 3인조 그룹 Yellow Magic Orchestra는 처음에는전자 음악과 엑조디카, 오리엔탈리즘 등의 분위기를 가진 Haruomi Hosono의 일회성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셀프 타이틀 앨범 Yellow Magic Orchestra(1978)에서 보여준 새로운 음색이 Billboard를 통해 알려지고, 일본에 '테크노 팝'을 전파시키며 세계적 인기를 구사하게 되었다.

브레이크 비트 / Breakbeat (1972)

브레이크 비트 / Breakbeat (1972)

펑키 음악이 유행하던 1974년 뉴욕, 브롱크스 지역의 디제이였던

Kool Herc는 여러개의 펑키 & 디스코 레코드의 구간을 이어붙이고

반복하여 브레이크의 비중을 늘인 새로운 양식을 개발하였고, 이를

통해 힙합/브레이크비트가 탄생하게 되었다.

'브레이크'라는 용어는 원래 재즈 밴드의 연주 중 다른 악기가 연주

를 멈추고 짧은 시간동안 드럼이 독주를 가지는 구간을 칭하는 말이

었다. 이후 Kool Herc에 의해 만들어진 브레이크비트는 곧 거리로

퍼져나갔으며, 1970년대 DJ들은 앞다투어 12인치 레코드를 발매하

고 1520 세드웍 에비뉴, 브롱크스, 뉴욕 등의 거리와 공공 농구장 등

에서 기기를 연결하고 디제잉을 선보이게 된다.

West Street Mob - Break Dance Electric Boogie (1983)

The winstons - Amen brother (1969)

디제잉 전용 장비의 등장

1972년 Technics SL-1200의 등장은 브레이크비트 디제이들에게 축복이었을 것이다. 다이렉트 드라이브라는 방식과 Wow and Flutter를최소화시킨, 단단하고 내구성 좋은 이 기기가 현장에서 얼마나 굴러댔을는 말하지 않아도 뻔하다.

"SL-1200이 주목을 끌며 본격적인 판매고를 올리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후반에 불어 온 디스코의 열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어찌되었든 이 제품의 시작은 나이트클럽이었다. 나이트클럽이란 곳의 특성상더스트캡을 덮지 않고도 웬만한 베이스 음파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하고, 최소 몇 년 동안 말썽 없이 잘 달려주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이 점에서 SL-1200은 mk2 로 업그레이드된 스펙으로가뿐하게 합격을 해준 것이다."

참고 자료 : 전설이 되어가는 이름 '테크닉스 SL-1200' 당시 Technics SL-1200의 판매 광고

파티가 시작되었다

최초의 디제잉 전용 믹서Rosie (1971) - NY 클럽 Haven에서 최초로 사용됨Bozak CMA-10-2DL (1971) - 스테레오 상용 믹서

GLI PMX 7000 (1977) - 크로스페이더 사용

The Loft. ‘Love Saves the Day’를 모토로 1970년 데이비드 맨쿠소에의해 뉴욕에서 열림. 파티와 디스코텍에 영향을 끼침

Chicago Warehouse의 오픈 (1977)프랭키 넉클스와 시카고 하우스의 요람이 됨

디스코 / Disco (1974)

디스코 / Disco (1974)

1970년대에 들어서자 펑크와 소울은 four on the floor이라는, 좀 더

댄서블한 리듬을 통해 디스코로 탈바꿈한다. Disc, 혹은 디스코텍

(Discotheque)에서 유래한 이 장르는 댄스 뮤직과 디스코볼, 나이트클

럽이라는 요소로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였고 - 특히 기존의 락 뮤직

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 반문화, 아프로-아메리칸, 라티노, 이탈리안-

아메리칸 등의 이민자들에게 큰 인기를 끈다.

The O'Jays - Love Train (1972)

Carl Douglas - Kung Fu Fighting (1974)

Donna Summer - MacArthur Park Disco ver. (1978)

인더스트리얼 뮤직 / Industrial Music (1975)

인더스트리얼 뮤직 / Industrial Music (1975)

1978년 스로빙 그릴스의 등장과 그들이 설립한 레이블 Industrial

Records, 슬로건 <industrial music for industrial people>이란

말에 의해 탄생했다.

초기의 인더스트리얼은 노이즈와 파시즘, 연쇄살인, 오컬트 등의

사회적 논쟁거리를 음악적, 시각적으로 나타내려 하는 시도가 많

았으며 아티스트들은 음악만이 아니라 메일 아트, 퍼포먼스, 설치

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적 실험을 행하였다. 이후 포스

트 인더스트리얼 운동과 함께 스키니퍼피가 고딕적인 컨셉을 선보

였고 이는 기존의 극단적 해체주의와 달리 대중적으로 더 잘 받아

들여지게 되었다.

Throbbing Gristle - 20 Jazz Funk Greats (1979)

Front 242 - Front by Front (1988)

앰비언트 / Ambient (1978)

앰비언트 / Ambient (1978)

1973년 이후 록시 뮤직을 탈퇴한 이노는 개인 작업인 Music For Airports

(1978)를 통해 최초로 앰비언트의 개념을 공표한다.

“앰비언트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할 공간을 만들기 위한 음악입니다.”

이후 이 기본 정신은 히피와 명상음악, 그리고 뉴에이지 운동 등과 섞여 음악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Music From The Hearts Of Space의 호스트인

Stephen Hill은 '뉴 에이지'라는 태그에 대해 부정하였다. “현실을 직시합시다.

모든 음악은 인간의 정신에 도달합니다. 왜 그것을 판매 전략으로 삼나요?”

당연히 이 방송을 통해서 뉴에이지 운동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삼은 음악가인

로버트 리치(Robert Rich) 와 스티브 로치(Steve Roach) 등이 발굴되었고, 이

들은 미국의 앰비언트 및 전자음악의 주요 흐름이 되며 다음 세대에 영향을 끼

쳤다.

Brian Eno - Ambient 1: Music for Airports (1978)

Steve Roach - Dreamtime Return (1988)

뉴웨이브 운동 (1978)

1970년대 히트 싱글 / 앨범

Donna Summer – I Feel Love (1977)

이탈로 디스코, Hi-NRG의시발점

Walter Gibbons - Ten Percent 12" (1976)

최초의 12인치 싱글

The Fatback Band - King

Tim III (Personality Jock)

(1979)

The Sugar Hill Gang -

Rapper's Delight (1979)

최초의 랩/힙합 레코드

Little Roy - Hard Fighter (1971)

공간계 효과를 사용한최초의 덥 레코드

하이 에너지 / Hi-NRG (1979)

하이 에너지 / Hi-NRG (1979)

1977년, 유명한 디스코 디바 도나 섬머는 싱글 "I Feel Love"에 관한 인터뷰

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곡의 흥행하게 된 이유는 엄청난 에너지(high-

energy vibe)가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죠."

이 인터뷰를 통해 '하이 에너지'는 빠른 템포의 전자음 디스코를 일컫는 말로

장르화된다. 1979년부터 이 빠른 템포의 디스코는 LGBT 커뮤니티와 뉴욕/

샌프란시스코 도시를 중심으로 유명해지고, 유럽 주류 음악 시장에서도 성공

을 거두며 1980년대 중반 LGBT 커뮤니티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Bananarama - Venus (Bananarama ver.) (1986)

Dead or Alive - You Spin Me Round (Like a Record) (1984)

디스코 데몰리션 나이트 (Disco Demolition Night)

디스코 데몰리션 나이트 (Disco Demolition Night)

"1979년은 분명 디스코의 황금기이기도 했

지만 동시에 디스코의 몰락이 다가오는 시

기이기도 했다. 디스코라는 음악이 음악 챠

트를 지나치게 오래 점령하고 있었고, 같은

음악을 3~4년씩 듣다 보니 대중들은 점점

디스코에 질려가고 있었다.

1979년 7월 12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홈구장인 코미스키 파크(Comiskey Park I)에서 DJ 스티브 달이 디스코 레코드들을 외야

에 쌓아놓고 폭약을 설치한 뒤 폭파했다. 갑

자기 수천명의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돌진하고, 사태는 폭동으로 치닫게 되었다. 이 "디스코 폭파의 밤"은 디스코의 종말을 확실히앞당긴 사건이 되었다. "

참고 자료 : 리그베다 위키 ‘디스코 폭파의 밤’

1980년대

신스팝 / Synthpop (1980)

신스팝 / Synthpop (1980)

1980년대의 시작과 함께 나타난 신스팝은 프로그레시브 락, 아트 락, 크라우

트락 등의 신디사이저 사용법에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은 미디 규격의 신디

사이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댄스 리듬 위에 뉴 웨이브, 포스트 펑크 등의 스

타일을 차용하였으며, MTV 시대의 첫 아티스트로서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

두었다.

The Human League - Dare (1981)

Eurythmics - Sweet Dreams (Are Made of This) (1983)

MTV의 등장 (1981)

“Video Kill the Radio Star”

일렉트로펑크 / Electro Funk (1982)

일렉트로펑크 / Electro Funk (1982)

디스코가 저물어가는 시점에 펑크 음악은 전자 음악과 뉴욕의 부기, 일렉트

로팝 등과 결합하게 된다. 1982년, Afrika Bambaataa은 Kraftwerk의

Trans-Europe Express를 개작한 Planet Rock을 선보이며, 이는 기존 곡

의 댄스 스타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일렉트로 펑크, 혹은 일렉트로는 808 드럼머신과 펑크 샘플링, 보코더 혹은

토크박스를 사용하여 독특한 전자음과 드럼비트의 음색을 표현하였으며,

Sun Ra의 아프로 퓨처리즘에 영향을 받은 듯한 Sci-fi 사운드와 강렬한 이펙

터로 주목을 받았다.

Hashim - Al-Naafiysh (The Soul) (1983)

Herbie Hancock - Rock It (1983)

CD 매체, 미디 신호 규격의 등장 (1982~1983)

롤랜드 신디사이저 / 드럼머신의 등장

보다 현실적인 음색의 드럼머신이등장하며 TR-808은 생산이 중지되고 염가 판매되었다.

돈이 없는 1980년대 중반 음악가들은 이 싸구려 악기를 구해 비트를찍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테크노와하우스 등 새로운 전자음악이 등장한다.

하우스 / House, 테크노 / Techno (1984~1986)

하우스 / House (1984)

1984년 제시 샌더슨과 빈스 로렌스의 ‘On and On’의 성공 이후 많은 프로듀

서들이 이에 영향을 받아 트랙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값싸게 입수 가능

한 전자악기를 이용하여 디스코와 댄스 음악에 영향을 받은, 하지만 좀 다른

음악들을 생산해내었다.

이후 하우스 음악은 론 하디, 릴 루이스와 같은 DJ에 의해 클럽에서 재생되

고, 이는 지역 레코드 샵과 라디오, 그리고 시카고와 디트로이트의 음악가들

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된다. Trax Records와 D.J. International Records는

시카고 외 지역에 하우스 음악을 널리 전파시켰으며 1987년 영국으로 건너

간 하우스 음악은 스티브 헐리, 팔리 잭마스터 펑크, 래리 허드, 데릭 메이와

케빈 샌더슨 등의 음악을 발매하여 UK 차트에 오르게 한다.

Steve "Silk" Hurley - Jack Your Body (1986)

Mr Fingers - Can You Feel It (1986)

테크노 / Techno (1986)

최초의 테크노는 1980년대 중반에 후안 앳킨스, 케빈 샌더슨, 데릭 메이에

의해 디트로이트 벨레빌 교외에서 생겨난다. 이후 Eddie Fowlkes, Blake

Baxter와 James Pennington 등이 추가되어 테크노 씬이 구축된 것으로 보

고 있다.

1980년대 후반이 되자 미국 디트로이트와 뉴욕, 시카고 등의 지역 씬은 테크

노에 점차 흥미를 잃어갔고, 더 이상 본 무대에서 활동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

달은 디트로이트의 프로듀서들은 유럽으로 건너가며 “second wave”를 만

들어내었다. 1991년 베를린에서는 UFO와 Tresor와 같은 파티가 문을 열었

고, 1990년에서 1992년 사이 미국에서 만들어진 테크노 음악들은 유럽, 특

히 독일 테크노 씬의 밑거름이 되었다.

Cybotron - Clear (1983)

Inner City - Big Fun (1988)

애시드 하우스 / Acid House (1987)

애시드 하우스 / Acid House (1987)

“1987년 9월, 훗날 폭풍처럼 휘몰아쳐올 영국 애시드 하우스 씬을 이끌어

갈 핵심 인물들이 이 프로젝트 바에 모이게 된다. 폴 오큰폴드, 쟈니 워커, 닉

키 할러웨이 그리고 대니 램플링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이전 브릿들과 마

찬가지로 엑스타시와 함께 발레릭 사운드를 처음 접하며 일생에서 지울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이비자의 주술에 휘말린 이들은 자신들

의 경험과 느낌을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리라 결심한다.”

출처 : PVUW 14: 2nd Summer of Love, the London Tale

Phuture – Acid Tracks (1987)

Armando – 151 (1988)

두 번째 사랑의 여름 (Second Summer of Love)

“1988년 6월 런던 웨스트 엔드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애스토

리아Astoria에 트립 TRIP자리를 잡으며 제2 사랑의 여름이라 불

리는 레이브 / 엑스타시 열풍은 오버그라운드화 되어 버린다.

여기저기서 애시드와 엑스타시에 대해 떠들어 대자 아무 생각 없

이 이 흐름에 너도나도 동참하는 애시드 테드들이 넘쳐나기 시작

했다. 이 때부터 사랑과 행복이 넘쳐나던 ‘그들만의 파티’는 종료

되고 기존의 이비자 베테랑들과 애시드 테드들 간의 복잡한 갈등

이 일어났다. 이비자의 기억과 히피적 사상이 전무했던 애시드 테

드들은 아무 생각 없이 엄청난 양의 엑스타시를 복용하고 “애시

~~~~드!!!”를 외치며 미친 망아지들처럼 씬을 휘졌고 다녔다.“

출처 : PVUW 14: 2nd Summer of Love, the London Tale

앰비언트 하우스 / Ambient House (1989)

앰비언트 하우스 / Ambient House (1989)

폴 오켄폴드의 애시드 하우스가 런던 헤븐에서 울려퍼지고 있을 때, 헤븐의

VIP룸인 The Land of Oz에서는 Alex Paterson과 The KLF의 멤버였던

Jimmy Cauty가 필름 뮤직과 각종 소음, 질감 등을 섞어 특이한 형태의 디제

잉을 선보이고 있었다. 이들은 곧 팀을 꾸렸고, 1989년 A Huge Ever

Growing Pulsating Brain That Rules from the Centre of the Ultraworld

이라는 25분의 대곡을 선보임으로서 더 오브로 데뷔하게 되었다.

앰비언트 하우스는 레이브 파티에 대한 반작용에서 시작되었다. 앰비언트 하

우스는 영국에서 만들어진 음악가들을 위한 백과사전에서 '무지크 콩크리트

의 1980년대 팝 버전'으로 묘사되었다.

The Orb - A Huge Ever Growing Pulsating Brain That Rules from the Centre of the Ultraworld

(1989/1990)

Biosphere - Microgravity (1991)

1990년대

유로댄스 / Eurodance (1990)

유로댄스 / Eurodance (1990)

유로댄스는 유로댄스, 유로 NRG, 댄스플로어, 혹은 아주 단순하게 '댄스' 곡

으로 불렸다. Hi-NRG와 유로 디스코의 요소를 차용한 이 상업적 음악은 그

야말로 히트 싱글이었으며, 라디오와 TV 방송을 통해 퍼져나가 1990년대

중반의 황금기를 장식했다.

2 Unlimited - No Limits (1993)

La Bouche - Sweet Dreams (1996)

IDM / Intelligent Dance Music (1992)

IDM / Intelligent Dance Music (1992)

1992년, Warp Record는 Artificial Intelligence 시리즈

의 첫 앨범을 발매한다. Autechre, B12, The Black Dog,

Aphex Twin과 The Orb 등이 참여한 이 앨범에서 당시

와프 레코드의 공동 소유자였던 Steve Beckett은 이 앨범

들이 ‘포스트-클럽, 그리고 집 안의 관중들을 위해 만들어

진 것’이라고 하였다. "intelligent techno"라는 단어는 곧

유명해졌고, 런던의 클럽은 이들 테크노를 ‘레이브에 때묻

지 않은 순수한, 분별력 있는 음악’이라고 광고했다.

Black Dog Productions - Bytes (1993)

Autechre - Anti EP (1994)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 Progressive House (1992)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 Progressive House (1992)

Sasha - Xpander EP (1999)

Sasha And John Digweed - Northern Exposure (1996)

1992년, 영국의 Mixmag는 이 영국에 불어오는 새로운 흐름에 대해 이렇게쓴다. "새로운 하나의 유형이다. 강한 대신 아름답고, 쿵쿵 두드리는 대신 사려깊고, 몽환적이며 고양감을 느낄 수 있는 이 브리티쉬 하우스는 트렌드를쫒는 발레릭 군중들을 레이브에 빠져들게 만들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쉽고, 재미있고, 이는 오로지 영국에서만 나올 수있는 음악이다."

런던 리즈의 DJ인 Lee Softley는 최근 한 칼럼에서 그 때에 대해 회상한다. "1994년의 스코틀랜드 클럽에 무슨 일이 일어났냐구요? 단 두 단어.. 아니네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네요. 'Northern Exposure”. 그리고 by “Sasha & Digweed'." 영국 출신의 이 두 젊은이가 만든 이 믹스 앨범은 영국을 물들였고, 이 물결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빠르게 흐르는 중이다.

하드 트랜스 / Hard Trance (1993)

하드 트랜스 / Hard Trance (1993)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초기 트랜스의 발상지는 1990년대 독일

프랑크프루트라고 한다. 1992년 독일의 테크노 그룹 Hardfloor이

발매한 Hardtrance Acperience는 애시드 하우스를 기반으로 하였

으나 좀 더 멜로디에 초점을 맞춘 사운드로 이후 하드 트랜스의 탄

생을 예견하였고, 같은 독일의 그룹 Jam and Spoon은 1992년 The

Age Of Love의 동명의 싱글을 리믹스한 The Age Of Love (Jam

& Spoon mix) (1992)을 발매하고, 이는 첫번째로 대중화된 트랜스

트랙으로 기록된다.

Quench - Dreams (1993)

Jam & Spoon - The Age Of Love (Jam & Spoon mix) (1992)

미디어 매체의 등장 (1993)

1991년 런던의 대형 나이트클럽에서 시작한 Ministry of Sound는 1993년경 레코드 레이블로 사업을 확장하며컴필레이션/믹스 앨범의 성공으로 대표적인 댄스 뮤직 유통 레이블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등장한 DJ Magazine은 1993년부터 투표를 통해 세계적인 DJ들의 순위를 매기는 DJ Mag top 100을 공개했고, 이는 현재까지도 댄스뮤직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지표로 남고 있다.

브레이크비트 하드코어 커뮤니티의 등장

한편 언더그라운드에서는

또다른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1990년대 초 언더

그라운드 클럽은 레이브 성

향의 하우스와 테크노를 주

로 트는 파티와 브레이크비

트 하드코어를 중심으로 한

파티 두 부류로 나눠졌으며,

언더그라운드 클럽의 디제

이들은 브레이크비트를 중

심으로 한 새로운 음악들을

실험하였고 이는 보다 언더

그라운드적인 성격을 유지

하며 발전하게 된다.

하드코어 테크노 / Hardcore Techno (1993)

하드코어 테크노 / Hardcore Techno (1993)

1992년, Grooverider와 같은 DJ들은 상업적인 레이브 씬에 반발하여 다소 어

두운 스타일의 음악들을 전면에 내세웠고, 1993년에 이르러선 많은 DJ들이 보

컬 트랙이나 환희에 찬 스탭 사운드나 샘플링 된 피아노 사운드와 같은 밝은 사

운드가 사용된 음악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대신 이들은 좀 더 무겁고 빠른,

어두운 하드코어 트랙들을 플레이하기에 이르렀다.

1994년에서 1995년 사이 해피 하드코어 DJ들은 본격적으로 개버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 새로운 스타일의 해피 하드코어는 레이브 스텝과 정박으로

발을 구르는 듯한 킥드럼 등의 특징으로 4-비트라는 이름을 얻은 채 시장의 전

면부에 나서게 되었다. 하드코어의 소리는 이전 어느때보다도 확실히 더 거세

졌다.

Euromasters - Amsterdam waar lech dat dan (1992)

Neophyte - Real Hardcore (1998)

Criminal Justice and Public Order Act 1994

1990년대 초반부터 애시드 뮤직과 레이브 파티, 그리고 약물을 둘러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라 논란이 되었다. 영국 일간지와 정부는 '약물에 찌든젊은이'들이라며 이들의 행동과 레이브 파티에 대한 지속적인 탄압을 실시했고, 레이버들은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파티의 장소를 점점 도시에서외곽지로 옮겨갔다.

1992년, 영국 정부는 공공질서와 형사사법에 대한 개정안을 발인하였는데그 내용 중 일부에는 ‘특정한 반사회적 행동에 대한 규제와 지역 내에 혼란을 일으키는 불법 침입과 무단 야영 및 파티’, 즉 레이브를 규제하는 항목이들어있었다. 사람들은 이를 특정 문화에 대한 규제라고 생각하고 런던에서반대 시위를 벌였다.

드럼 앤 베이스 / Drum and Bass (1994)

드럼 앤 베이스 / Drum and Bass (1994)

아멘 브레이크 샘플의 발견은 굉장한 것이었다. 1990년에 발견된 이 전설적인

드럼 루프는 브레이크비트를 비롯한 정글 음악가들에게 엄청난 영감을 불어넣

어주었고, 정글, 혹은 드럼 앤 베이스 음악은 이 전설적인 샘플과 함께 브레이

크비트 하드코어에 영향을 받아 탄생하였다. 음악의 빠르기는 165 BPM 이상

으로 올라갔으며 비트와 베이스라인은 힙합과 덥, 레게 및 댄스홀에 영향을 받

아 더욱 복잡해졌다.

1994년 크리미널 저스티스 빌이 통과된 이후 일부 정글 아티스트들은 오명을

피하고 불법 레이브 파티 음악이라는 딱지를 떼기 위해 정글을 개량한 드럼 앤

베이스를 선보이게 된다. 2000년대에 들어 드럼 앤 베이스는 “return to old

skool” 운동을 통해 되살아났으며, 약소한 씬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한 방식

으로 분화되었다.

Metal Heads – Terminator (1992)

Fabio – Liquid Funk (2000)

빅 비트 / Big Beat (1994)

빅 비트 / Big Beat (1994)

빅 비트의 어원에는 몇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로는 영국을 기반으로 한,

Iain Williams가 소속된 1989년의 전자음악 듀오 Big Bang의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 기자들이 만들어낸 용어라는 설과 노먼 쿡 (a.k.a 팻보이 슬림)과 Damien

Harris가 관련된 Skint Records 및 이 레이블이 주로 활동하던 영국 브라이튼

의 클럽인 The Big Beat Boutique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빅비트는 이후

미국으로 넘어가 “Electronica invasion”이라 불릴 정도의 엄청난 성공을 기록

하게 된다. 사람들은 강한 기타 리프를 사용하는 빅비트의 사운드가 락과 유사

한 것이 흥행의 이유라고 보았다.

Fatboy Slim - You've Come a Long Way, Baby (1998)

The Prodigy - The Fat of the Land (1997)

Pioneer CDJ의 등장 (1994)

미니멀 테크노 / Minimal Techno (1994)

미니멀 테크노 / Minimal Techno (1994)

초기의 미니멀 테크노는 독일 베를린과 로스토크 지방의 아티스트와 종종 연결되고는 했다. 이들은 테크노의 첫번째

세대가 세계적으로 성공을 누리고 있을 때 이를 보고 자란 다음 세대들이었고, 이후 테크노가 대중화되어 개버, 레이브

등으로 분화되며 초기 테크노의 사운드가 사라져가는 것을 염려한 이들은 포스트-레이브 씬에 대비하여 초기의 테크

노를 되살리고자 했고 이를 통해 클래식 미니멀, 아프리칸 전통 음악 형식에서 모티브를 얻어 “가공되지 않은 신호음.

드럼, 베이스라인, 그루브와 같은 기본적인 요소로만 이뤄나가는” 장르를 만들어나갔다.

Plastikman - Sheet One (1993)

Robert Hood - Minimal Nation (1994)

싸이키델릭 뮤직 / Psychedelic Music (1994)

싸이키델릭 뮤직 / Psychedelic Music (1994)

1960년대 중반의 고아는 히피 문화의 성지나 다름없었다. 80년대 후반 고아는 유럽 각

지에서 온 DJ들에 의해 씬이 형성되었다. 이후 고아에 유입된 다양한 종류의 문화 (인도

전통 음악, 히피 문화, 싸이키델릭 락, EBM, 테크노, 애시드 하우스)가 융합된 고아 트

랜스가 탄생한다.

1997년이 되자 고아트랜스는 그 유행이 시들며 많은 레이블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싸이키델릭 트랜스의 등장은 이 시대 배경과 관련이 있다. 그들은 오리지널 고아 멜로

디를 줄이는 대신 미니멀 테크노, 프로그레시브 트랜스, 하우스, 테크노의 요소를 사용

하였으며 1997-1998년의 독일은 이 새로운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시기 처음으

로 각 나라간의 싸이트랜스 시장에 차이가 생겨났으며, 동일한 움직임이 이스라엘, 독일,

남아프리카와 일본 시장에서 생겨나게 된다. 독자적인 영역을 추구하던 이스라엘은 이

시기 풀-온, 니조낫 등의 장르를 탄생시킨다.

Astral Projection - Trust In Trance (1996)

Hallucinogen - Twisted (1995)

다운템포 / Downtempo (1995)

다운템포 / Downtempo (1995)

전자음악의 범위 내에서 라운지, 칠아웃, 다운템포 등의 음악 장르가 형식화된 것

은 90년대 초반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영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전자 음악 시장

에서는 '느린 음악'의 열풍이 불고 있었다. 프로듀서들도 비트와 신디사이저, 샘플

러 등을 사용하여 음악에 새로운 분위기를 덧입히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운템포의 형식을 최초로 제공한 아티스트는 Kruder & Dorfmeister로

보인다. 이들은 트립 합이 유행하던 1997년 트립 합의 형식을 물려받았으나 좀

더 느리고 무딘, 둔탁한 비트 기반의 음악을 만들어내었다. 이후 Fila Brazillia,

Thievery Corporation의 영향으로 다운템포쪽에 브라질 사운드가 유입되었고,

Buddha Bar 컴필레이션 등은 다운템포가 제 3세계의 이국적 사운드를 받아들이

는데 역할을 하였다.

Morcheeba - Big Calm (1998)

Kruder & Dorfmeister - The K&D Sessions (1998)

업리프팅 트랜스 / Uplifting Trance (1996)

업리프팅 트랜스 / Uplifting Trance (1996)

1996년 프로그레시브 트랜스의 등장과 함께 트랜스가 상업화되기 시작한 단계에

Brooklyn Bounce와 Darude 같은 비 영국계 음악가들이 성공을 거두자, 영국의

팬들은 이들의 장르를 따로 구분할 필요성이 생겼고 이를 업리프팅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업리프팅 트랜스는 1990년대 중후반 트랜스 상업화의 물결을 타고

빠르게 대중화되어 우리가 흔히 아는 아민 반 뷰렌, 페리 코스텐, 티에스토, 어보

브 앤 비욘드, ATB 등의 스타를 만들어냈다.

Rank 1 - airwave (1999)

Gouryella - Ligaya (2002)

UK 개러지 / UK Garage (1997)

UK 개러지 / UK Garage (1997)

1996년, 본토의 US 개러지는 쇠락하고 있었지만 UK 개러지는 점점 흥행의 서

막을 올리고 있었다. 드럼 앤 베이스 스튜디오의 엔지니어들은 영국 음악의 특

색을 녹여낸 자신들의 개러지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것이 영국 언론의 주

목을 얻게 됨으로써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언론은 이들 개러지를 '스피드 개러

지'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새로운 사운드와 수많은 트랙으로 중무장한 컴필레이

션이 마구 쏟아져나왔다.

이와 함께 1997년부터 투스탭 개러지의 서막이 오르게 된다. 투스텝 개러지는

독특한 드럼 패턴, 질질 끄는듯한 박자감과 함께 R&B와 소울 음악의 저음을 차

용함으로써 특징을 확보하였으며, 특히 전체 드럼 패턴에서 2번째, 4번째 킥 드

럼을 제거한 것은 이 둘을 구분짓는 가장 큰 변화였다.

Artful Dodger & Romina Johnson - Movin Too Fast (2000)

Lovestation - Teardrops (1998)

프렌치 하우스 / French House (1999)

프렌치 하우스 / French House (1999)

1980년 이전의 프랑스는 미국 음악에서의 디스코 계보에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초기 디스코에서 파생된 유로 디스코 및 스페이스 디스코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

다. 토마스 방갈테르는 프랑스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한 하우스 음악을 만들

고 싶어했다. 그는 다프트 펑크와 스타더스트 등을 통해 초기의 프렌치 하우스 트

랙들을 발매하고, 1990년대 중반까지 잠잠하다 다프트 펑크에 의해 상업적 성공

을 거두며 1997년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후 다프트 펑크와 캐시

어스, 에띠앙 드 크레시 등을 통해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며 장르가 확립된다.

Cassius - 1999 (1999)

Stardust - Music Sounds Better with You (1998)

2000년대

DJ 전용 프로그램의 등장 (2001)

일렉트로클래시/ Electroclash (2001)

일렉트로클래시/ Electroclash (2001)

'일렉트로클래시'라는 용어는 2001년 뉴욕의 일렉트로클래시 페스티벌을 통해 처

음으로 언론에 등장하였다. 뉴웨이브와 모던 아트,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팝 사운

드가 결합된 이 음악은 2002년에서 2004년 사이 크게 유행하였지만, 일부 사람

들은 이 장르가 실체없이 미디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며 이를 비난하기도 했

다.

참고 자료 : PLUR and Vibe Upon the World: 07년 1월자-Electroclash

Fischerspooner - #1 (2001)

Peaches - Fatherfucker (2003)

하드스타일 / Hardstyle (2002)

하드스타일 / Hardstyle (2002)

2000년도 초부터 겨우 10년이 조금 넘는 짧은 기간 동안 하드스타일 장르는 꾸준

한 진화를 거듭하였다. 특히 장르 태동기때부터의 특징인 뒤집힌 베이스를 부각

시키면서도 좀 더 깊고 강력한 킥을 만드는 것에 대해 오랜 시간에 걸쳐 심도있는

연구가 이루어졌다.

한편, 이러한 진화의 흐름 가운데에서 2009년을 전후로 또 다른 변화의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더치 하드코어와 개버의 영향을 깊게 받은, 상대적으로

거칠고 어두우며 과격한 분위기의 하드스타일 음악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내는 프

로듀서들과 이러한 트랙들을 모아서 트는 DJ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Headhunterz – Victim Of My Rage (2006)

Scooter - Under the Radar Over the Top (2009)

일렉트로 하우스 / Electro House (2005)

일렉트로 하우스 / Electro House (2005)

2002년 베니 베나시가 작곡한 Satisfaction은 초기 일렉트로 하우스 중 하나로써

장르를 대중화시키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된다. 이후 2000년대 초반 나카타 야스

타카와 같은 젊은 프로듀서들이 이 장르에 뛰어들게 되고, 2005년을 기준으로 장

르의 규모는 더욱 커졌다. 2006년 페데 레 그랑의 Put Your Hands Up For

Detroit와 Bodyrox의 Yeah Yeah (feat. Luciana)가 UK 싱글 차트 40에서 1/2

위를 차지하며 부흥하고, 데이비드 게타와 데드마우스 등의 아티스트가 나오며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Fedde Le Grand - Put Your Hands Up For Detroit (2006)

Kavinsky - 1986 (2007)

덥스텝 / Dubstep (2006)

덥스텝 / Dubstep (2006)

초기 덥스텝은 1998년 투스텝 개러지의 B-side 싱글로 등장했다. 음악가들은 투스

텝 개러지에 어두운 질감과 실험적인 사운드를 첨가하고 브레이크비트, 드럼 앤 베이

스 등의 요소를 집어넣기 시작했으며 2001년에 최초로 등장한 Forward»는 덥스텝

프로듀서들이 자신의 새 음악을 제공하고 청취할 수 있는 환경을 가져다줌으로써 덥

스텝 씬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2006년 1월에는 BBC Radio 1의 DJ인 Mary Anne

Hobb가 Dubstep Warz라는 타이틀의 라디오 쇼를 만들게 되었고 이로써 덥스텝 무

브먼트는 더욱 활발하게 진행된다.

Various – Ammunition & Blackdown Present: The Roots Of Dubstep (2006)

Benga – Pleasure EP (2008)

페스티벌 시장의 성장 (2006)

온라인 스토어의 등장 (2008)

2010년 이후

EDM / Electronic Dance Music (2012)

보일러 룸의 등장(2010)

트랩 / Trap (2012)

트랩 / Trap (2012)

엄밀히 말하면 트랩의 시작은 1992년이지만, 우리는 좀 더 이후의 이야

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2010년 Lex Luger는 그의 곡에 강렬한

808 사운드와 스네어, 그리고 과장된 브라스, 스트링, 목관 악기등을 사

용해 유명해졌고, Future의 싱글 Turn On The Lights는 빌보드 50위에,

Chief Keef의 I Don't Like와 Love Sosa가 유튜브에서 3천만의 조회수

를 찍는다.

전자 음악 프로듀서들은 이에 빠르게 반응했다. 2010년 이후 EDM 스타

일의 트랩이 Diplo, TNGHT, Baauer, Flosstradamus, RL Grime,

Yellow Claw 등에 의해 쏟아져나오고, 이들은 클럽과 함께 유튜브 최다

조회수까지 휩쓸게 되었다.

Future - Pluto (2012)

RL Grime - Void (2014)

브로스텝 / Brostep (2011)

브로스텝 / Brostep (2011)

2011년 스크릴렉스의 EP인 Scary Monsters and Nice Sprites

는 기존의 덥스텝을 헤비메탈을 연상케 할 정도로 엄청나게 공격

적인 사운드로 변형시켜 주목받게 되었다. 중음역대를 뒤흔드는

과격한 우블 베이스와 고주파 샘플의 공격적인 사용은 엄청나게

주목을 받았으며, 미국 시장의 성장과 함께 많은 프로듀서들이 이

스타일을 차용하게 된다.

브로스텝이라는 단어는 원래 시종일관 “Bro”를 외치는 미국화된

덥스텝에 대한 경멸적인 단어로 쓰이기 시작했으며, 일부 “덥스텝

순수주의자” (“dubstep purists”) 는 이들 브로스텝이 덥스텝 전

체를 딱딱하고 로봇같은, 공격적인 질감의 소리들로 탈바꿈하였다

며 싫어하기도 하였다.

Rusko - OMG (2010)

Datsik - Vitamin D (2012)

EDM / Electronic Dance Music (2012)

EDM / Electronic Dance Music (2012)

미국 전자 음악 시장의 성장은 ‘EDM’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등장시켰다. 사람들은 기존

의 레이브와 댄스 뮤직을 포함해 페스티벌 시

장의 급부상, DJ의 위치와 빌보드와 UK차트

를 비롯해 세계 시장을 석권중인 전자 댄스 음

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필요로 했고, 그렇게

새로 만들어진 ‘EDM 시장’은 상업적으로 더

크게, 화려하게 성장하고 있다.

EDM / Electronic Dance Music (2012)

EDM의 기업화 및 주식화 (2012)

EDM / Electronic Dance Music (2012)

모바일 디제잉 시장의 개척 (2013)

EDM / Electronic Dance Music (2012)

유튜브 채널의 증가 (2013)

Mixmag은 2014년 '인스타그램 하우스'를 새로

조명한다. "새로운 '멜로딕 딥 하우스'의 유행일

까요? 작년, 혹은 재작년부터 새로운 흐름의 전

자음악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바베큐, 해변가,

카페나 라운지 바, 혹은 저녁 풍경에 알맞은 듯

한 이런 사운드들은 앞서 말한 유튜브 채널들을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으며, 이 흐름을 기반으로

라디오에서도 유행을 하며 유럽 전역의 여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

강렬한 EDM의 유행에 반발하는 또 하나의 음

악적 경향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유통 과정이다. 사람들은 이제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채널은 거기에 가장 발

빠르게 반응하며 음악을 내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