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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eb: www.svkem.org | twitter: @sfsvkem | contact: [email protected] November 11, 2012 Vol. I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은... 열림의 대화, 나눔의 영성, 자유의 복음을 지향합니다. 주일 기도 모임: 매주 일요일 오후 5시 목요 대화 카페: 매주 목요일 오후 7시~9시 Chromatic Coffee, Lawrence & Stevens Creek, Santa Clara 요 카페 풍경 밖에 가을비가 내리 는 가운데 목요 대화 카페 를 시작했습니다. 뜻밖에 스님 한 분이 찾으셨습니다. 그 탓에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을 경험하는 목요 대화 카페가 마련되었습 니다. 불쑥 나타나신 스님과 나눈 이야기가 흥미로 웠습니다.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이번에는 ‘이빨’ 스님의 “카페 법문”이었다고나 할까요? 불교라는 종교 집단 내부의 고민에서 시작해서, 불 교 자체 안에서 발전된 수행과 가르침의 다양한 색 채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고민과 씨름하는지를 듣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 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종종 서로 ‘난 몰라라’ 하면 서 살지요. 과거에는 하나의 종교 문화가 그 사회 의 문화였으니 그리 살 법도 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다종교 사회, 그리고 사회의 반절이 종교인이 아닌 사회를 살아갑니다.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있는 한, 종교가 다르고 신 념이 다른 이웃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그랬지요. “자기 종교만 아는 것은 자기 종교도 모 르는 것”이라고. 바꿔 말하면, “다른 종교를 알아야 자신의 종교도 더 잘 알 수 있다”는 말이죠. 다른 사람의 경험과 신념에도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내력에 경청할 때라야 대화가 펼쳐질 수 있습니다. 세상이 자신이 좋아하는 한 색깔이어도 좋겠지만, 인간 사회에 깃든 다채로운 색채의 조화 는 더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서로 색깔 다른 작은 꽃들입니다. 세상의 작은 들꽃, 잡꽃이 형형색색 피어 만드는 웅장한 장면을 “화엄”이라고 풀어낸 이도 있지요.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의 꿈이 바로 그런 화엄 세 계입니다. 경계에 선 이들의 대화를 이끌어 주신 만종 스님과 카페 참석자들에게 깊은 합장.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201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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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201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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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2012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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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www.svkem.org | twitter: @sfsvkem | contact: [email protected] November 11, 2012 Vol. I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은... 열림의 대화, 나눔의 영성, 자유의 복음을 지향합니다.주일 기도 모임: 매주 일요일 오후 5시

목요 대화 카페: 매주 목요일 오후 7시~9시 Chromatic Coffee, Lawrence & Stevens Creek, Santa Clara

목요 카페 풍경

밖에 가을비가 내리 는 가운데 목요 대화 카페를 시작했습니다.

뜻밖에 스님 한 분이 찾으셨습니다. 그 탓에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을 경험하는 목요 대화 카페가 마련되었습니다. 불쑥 나타나신 스님과 나눈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이번에는 ‘이빨’ 스님의 “카페 법문”이었다고나 할까요?

불교라는 종교 집단 내부의 고민에서 시작해서, 불교 자체 안에서 발전된 수행과 가르침의 다양한 색채들, 그리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고민과 씨름하는지를 듣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종종 서로 ‘난 몰라라’ 하면서 살지요. 과거에는 하나의 종교 문화가 그 사회의 문화였으니 그리 살 법도 했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다종교 사회, 그리고 사회의 반절이 종교인이 아닌 사회를 살아갑니다.

우리가 사회를 이루고 있는 한, 종교가 다르고 신념이 다른 이웃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그랬지요. “자기 종교만 아는 것은 자기 종교도 모르는 것”이라고. 바꿔 말하면, “다른 종교를 알아야 자신의 종교도 더 잘 알 수 있다”는 말이죠.

다른 사람의 경험과 신념에도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내력에 경청할 때라야 대화가 펼쳐질 수 있습니다. 세상이 자신이 좋아하는 한 색깔이어도 좋겠지만, 인간 사회에 깃든 다채로운 색채의 조화는 더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서로 색깔 다른 작은 꽃들입니다.

세상의 작은 들꽃, 잡꽃이 형형색색 피어 만드는 웅장한 장면을 “화엄”이라고 풀어낸 이도 있지요.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의 꿈이 바로 그런 화엄 세계입니다. 경계에 선 이들의 대화를 이끌어 주신 만종 스님과 카페 참석자들에게 깊은 합장.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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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 자유 - 의식

현존 -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길 바라오니, 주님, 우리 마음이 주님을 향하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평화와 만족을 누리게 하소서.

자유 -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라는 크신 선물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만연한 차별과 불관용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소서. 주님의 눈앞에서 모든 이들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늘 되새기게 하소서.

의식 - 하느님이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니, 현재의 자신을 생각하며 사랑의 눈으로 과거의 상

처를 돌아봅시다. 우리 마음에는 그늘과 어둠이 있지요. 그러나 그 어둠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건넵니다. 치유를 찾으라고, 용기를 내라고, 그리고 용서하라고.

성서 독서

엘리야가 사렙다에서 과부의 집에 방문한다. 물 한 그릇을 대접해 달라던 엘리야는 과부에게 식사마저 요청한다. 그 과부는 겨우 마지막 하루 끼닛거리 밖에 없었지만, 그것으로 낯선 나그네를 먼

저 대접한다(열왕기상 17:8~24).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기다란 예복

을 걸치고 나다니며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가장 높은 자리를 찾으며, 제일 윗자리에 앉으려 한다. 또한,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오래 한다."

가난한 과부는 렙톤 두 개를 넣었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저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은 돈을 헌금궤에 넣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넉넉한 데서 얼마씩 넣었지만, 그는 다 털어 넣었다"(마르코 12:38~44).

성서 대화 길잡이

불교의 고사성어 "빈자일등 장자만등"(貧者一燈 長者萬燈)의 사

연입니다. 부처님 시대에 가난한 '난타'라는 여인이 구걸하여 산 기름으로 부처님을 위해 작은 등잔을 바쳤는데, 부자의 등잔이 꺼졌지만, 그 여인의 등잔은 꺼지지 않고 환한 빛을 발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뒷면에 계속)

주일 기도 모임

주일 기도 모임은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상과 사회 속에서, 속도와 소음이 넘쳐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잠시 비켜나게 하여, 침묵과 오랜 전통의 이야기, 그리고 삶의 솔직한 나눔, 그리고 다른 이를 향한 시선을 훈련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주일 기도 모임에서도 깊고 풍성한 대화, 마음을 담아 나누는 성찬, 그리고 삶에서 얻은 지혜를 편하고 즐겁게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기꺼이 마음을 열고 다양한 삶의 경험에 서로 귀 기울여 얻은 기쁨과 배움이 컸고 사귐이 깊었습니다. 우리는 매 주일 오후 5시에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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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불교의 '빈자일등' 이야기는 그리스도교 성서의 엘리야라는 떠돌이 예언자를 대접한 사렙다 과부의 이야기, 성전에서 동전 두 닢을 바친 과부 이야기는 서로 쏙 빼다 닮았습니다.

자신의 전체를 내놓기 위해서는 몸이 가벼워야 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소유가 많으면 집착이 더해져, 존재의 심연에 다다르는 여행을 주저하게 됩니다. 신앙은 안전한 선택이나 보험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 바치는 모험입니다. 산술적 계산이 아닙니다.

‘화수분'의 기적은 완전히 비워졌을 때 일어납니다. 영원히 빛나는 작은 등잔은 한 사람의 전체가 담긴 염원과 실천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넉넉한 곳에서 조금을 넣은 것이 아니라, 더는 잃을 것 없는 마지막 심정에서 다 바친 실천에 신앙의 핵심이 있습니다.

한편, 오늘 성서 이야기들은 종교와 신앙의 실천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헐벗어 떠도는 나그네 예언자를 겸손히 환대하여 대접하는 태도, 자존심과 초라함을 무릅쓰고 작으나마 담대하게 자기 등불을 밝히는 태도가 돋보입니다.

오해가 많은 유일신 사상의 핵심 의미 가운데 하나는 한 분이신 하느님의 자녀이니 그 안에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삶과 말씀을 따르기로 작정하면서 하느님의 가족이 되었고, 모두 하느님의 은총 안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높은 사람 낮은 사람의 구별은 없습니다. 누구는 더 중요하고, 누구는 덜 중요하다는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앞에서 평등합니다. ***

채 두 달이 남지 않은 한 해를 어떻게 보내시렵니까? 마음을 가다듬고 마지막 계획을 하나 짜보면 어떨까요?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에서는 이를 돕기 위해서 연말까지 40일의 묵상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라는 분이 있어요. 독일 루터교 목사이자 신학자인데,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어 모의자들과 함께 1945년에 사형을 당한 분입니다. 이분이 남긴 글에서 뽑은 내용으로 40일간의 여정을 준비했습니다.

종교인이든 아니든 관계없습니다. 본회퍼 자신은 변화하는 세상과 적극적인 대화를 시도했던 이른바 “세속화 신학”의 선구자였기에 특정 종교를 떠나서 종교인의 영성과 그 실천에 관하여 너른 대화의 공간을 마련해 주리라 생각합니다.

본회퍼에 관하여 제가 짧게 쓰고 번역한 글이 있습니다. 시간을 내어 읽고 시작하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적으로는 제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신학자 가운데 한 분이기도 하고, 실제로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의 여러 고민과 가치도 그분의 신학과 삶에 기댄 바가 큽니다. (뒷면에 계속)

본회퍼와 함께 걷는 연말 40일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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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너머의 신비

송민정 (경계를 걷는 사람)

경계는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와 그 밖의 세계를 구분 짓는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에 몰두해 있을 때는 경계가 있는지조차 보

이지 않는다. 커다란 원을 경계라고 했을 때 그 경계 근처에도 가지 않고 원의 안쪽에서만 지내면 절대 그 선을 발견할 수 없다. 원

안에서만 맴도는 삶이 지겨워지거나, 공허해지면 그때서야 모험을 하기 시작하게 되고, 그러다 경계를 만나게 된다.

혹은 내가 의도치 않았는데 나의 원 안으로 다른 세계가 침투할 수도 있다. 교집합 그림처럼 원 안

에 다른 원이 겹쳐져 버리는 것이다. 용기있는 자들은 그 겹쳐진 선들을 넘어다니며 모험을 하겠지만, 어떤 이들은 그 낯선 세계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두려운 나머지 거부하거나 무시해버리려 할 수도 있다.

얼마 전 비둘기 두 마리가 자신들의 세상을 우리 집 베란다로 밀어 넣었다. 난 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날갯짓에 작은 벌레라도 떨어지면 어

쩔까 하는 걱정, 여기저기 새똥을 다 싸놓아서 내 집을 더럽히면 어쩔까 하는 걱정에…아기새란 존재는 또 얼마나 징그러울지… 하

지만 이 녀석들이 벌써 토마토 화분에 알을 낳아놓아서 차마 쫓아버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토마토는 내년에 또 키울 수 있지만, 어쩌면 집에서 새가 알을 낳고 부화하고 키우는 것을 보는 것은 일생일대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 수도 있다는 선사님의 조언에 일단 비둘기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20여일 동안 암컷수컷이 번갈아가며 정성을 다해 알을 품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비둘기들에게 마음을 열게되었고, 태어난 비둘기들이 자라서 날아가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 착한 비둘기들은 내 마음을 읽었는지 베란다에 똥 하나 흘리지 않고 깨끗하게 베란다를 사용했다!)

그렇게 정성껏 품어 새끼 두 마리가 태어났다. 엄지손가락보다도 작은 듯한 녀석들이 삐약삐약 거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한 마리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죽고 말았다. (뒷면에 계속)

계획은 이렇습니다. 일요일과 휴일을 빼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치의 묵상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겠습니다. 약 3쪽 분량의 짧은 내용입니다. 아침이든, 저녁이든, 아니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든 약 10~15분을 내시면 충분합니다. 지침이 제공하듯, 영성 일기를 써도 좋습니다.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매일 아침 이메일로 제공합니다. 이를 받아보기를 원하시고 한국

이 아닌 외국에 계신 분은 이메일 [email protected] 로 신청하시면 보내 드리겠습니다. 현재 사시는 국가와 도시를 함께 적어서 신청해 주세요.

올해 연말까지 40일 여정을 경계 위에서 본회퍼와 걷지 않으시렵니까?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주낙현 신부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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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안내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모임의 재정에 관해 잠시 안내해 드립니다. 고맙게도 몇몇 분들이 저희 모임 진행을 위해 헌금하기 시작하셨고, 그 내역은 저 홍승환 목사와 최종훈님과 함께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공회 교구를 통한 지원 문제는 계속 논의 중이며, 성공회 캘리포니아 교구 아시아 사목 회의에서 워크숍 및 웹페

이지 제작 등을 위한 소정의 금액을 후원받았습니다.

헌금이나 후원을 해주시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주일 모임이나 다른 방법으로 저 홍승환 목사나 최종훈님께 직접 주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으로도 보내실 수 있습니다. http://www.svkem.org/support/ 에 방문하여 Paypal로 보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헌금과 후원은 비영리기관으로 등록되는 대로 세금혜택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액수가 적어서 90%는 사목 활동 지원에 사용하며, 나머지는 적립하고 있습니다.

재정의 운용과 후원방법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신 분들은 저나 최종훈님께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경계에서 “의심하는 그리스도인” 홍승환 목사 드림

살아남은 다른 한 마리 새는 날갯짓도 제법 해 보이고, 까만 깃털도 거의 다 나고, 화분 안을 왔다갔다 아장거리기도 할 정도로 자랐지만, 어느 날인가 매가 와서 물어 죽여버리고 말았다.

내가 그들의 세상을 받아들였을 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다. 그들의 경계를 받아들이기 전에 그 경계를 넘어서면 그들의 태어남에서부터 죽음까지를 다 보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새들을 다 쫓아 보내었을 것이다.

나는 어떤 기대를 가지고 경계를 넘었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아기 새가 예쁘게 날아서 둥지를 떠나고 가끔 우리 집에 다시 찾아줬으면 하는 그런 기대를 가지고 난 경계를 허락했는데 그것은 나의 기대이자 욕심이었다. 그 경계 밖에는 삶과 죽음 약육강식이라는 비둘기 인생의 파노라마가 펼쳐져 있었고, 실은 그들 인생의 깊이는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다른 생명체의 삶을 페이스북 자랑거리 정도로 여기고 있었던 나

에게 이 사건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경계를 처음 넘을 때의 나의 호기심이나 동경보다 더 깊고 큰 세계를 보았기에, 오히려 다음 경계를 넘을 일도 기대가 된다. 신이 예비해놓으신 그 경계 너머의 세상에는 어떤 진실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나는 또 어떠한 삶의 신비를 경험하게 될지!

***

경계를 걷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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