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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과 로버트 발저의 자전적 글쓰기 김윤미 (서울대) 1980 . 70 12 Das Gesamtwerk (1966-1975) , 80 20 Sämtliche Werke (1985-1986) ( SW ) , 6 Aus dem Bleistiftgebiet (1985- 2000) ( AdB ) . . . . , . 1) 1) . . . (Peter Utz (1998), Jörg Gallus (2006), David Giuriato (2006) ). Dorothe Kimmich(2009) .

발터 벤야민과 로버트 발저의 자전적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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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과 로버트 발저의 자전적 글쓰기

김윤미(서울대)

1. 들어가며 1980년대부터 꾸준히 관심이 확대되어 온 발저 연구는 이제는 해마다 그의 작품

에관해 여러권의박사논문이나올 정도로폭과깊이를더하고 있다. 발저의작품은70년대에 12권으로된 Das Gesamtwerk (1966-1975)로, 80년대후반에는 20권의전집Sämtliche Werke (1985-1986) (이하 SW로 약칭)으로 묶여 나왔고, 뒤이어 연필로 깨알같이 적은 유고의 상당 부분이 해독되어 6권의 책 Aus dem Bleistiftgebiet (1985- 2000) (이하 AdB로 약칭)으로 나왔으며 비판본의 간행도 몇 년 전부터 이루어지고있다. 여전히 출판을 기다리는 원고량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발저와벤야민처럼거대한규모의저작을일궈낸두작가를맞댄다는것은맞대지

못하는 더 넓은 면에 비할 때 매우 지엽적이어서 무의미해 보일 수도 있다. 게다가단독적으로 함께 다루어지는 경우가 드문 두 작가를 비교할 때면 비교의 작업이 단

순비교와유사연상의일차적단계에머물수도있다. 다른누구보다도둘만을나란히맞대었을때 두드러지는닮음이많이있을 때, 또는각자의 연구에서다른이와의유사비교 없이 각자의 특성으로 강조되어 조명되어 온 점이 닮았을 때 비교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1)

본고에서 다루게될벤야민과 발저의공통관점 또는키워드들역시 이들두작가

1) 발저와의 비교 연구의 대상으로 가장 많이 다루어져 온 작가는 카프카이다. 반면에 벤야민과 발저두 작가를 따로 묶어 다루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발저에 관한 연구문헌에서 카프카 등의 다른 작가들과 더불어 벤야민이 언급되거나 분석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Peter Utz (1998), Jörg Gallus (2006), David Giuriato (2006) 등 참조). 예외적으로 Dorothe Kimmich(2009)의 연구가 발저와 벤야민을 따로 비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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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을 특징지울 수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예를 들어 그 중 하나인 ‘미로’의 경우 카프카 연구가 즐겨 분석하는 이미지이며 발저에 관한 문헌들에서도 카프카와의 비교

분석을위하여종종쓰여왔다. 그럼에도한편으로발저와벤야민이그들의글쓰기에있어 핵심적인 키워드를 남달리 여러 가지를 공유한다는 사실은 다른 여럿이 아닌

둘을주목하게만드는이유가되기도한다. 본고에서다루는관점들은어차피일부에불과하며 그 외에도 자세히 살펴볼 더 많은 관점들과 단초들이 이들 사이에 공통적

으로 있다는 전제하에2) 이러한 시선은 더욱 근거가 있게 된다. 1878년생인 발저와 1892년생인 벤야민은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 1940년 벤야민

은 나치를 피해 도망하던 중 스페인-프랑스 국경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고, 베를린 생활(1905-1913)을 접고 스위스로 돌아온 발저는 1925년에 나온 산문집 Die Rose 이후 작품 발표는 하지 않으며 1929년부터 27년의 세월을 정신병원에서 보낸 끝에1956년에사망한다. 남모르게혼자서깨알같이적어내려간글들(발저가펜을놓은것은 1933년이다)의상당량이해독되었지만, 발저가벤야민에관하여쓴흔적은보이지않는다. 다만정신병원에수감되어있던발저를정기적으로방문했던출판가칼젤리히 Carl Seelig와의 서신교환에서 젤리히가 언급한 몇몇의 작가들에 대해 발저가 호의적으로 평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1937), 이 몇몇 중에 벤야민이 포함되어 있었던것으로 알려져 있다.3) 한편 벤야민은 발저의 발표작들을 여러 권 읽었으며 자신의에세이 Robert Walser(1929)에서 발저에 대하여 주목할 만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벤야민의 로버트 발저 에세이는 벤야민 전집(이하 GS로 약칭)의 4쪽 분량으로 짤

막하며 발저의 많은 작품을 다루고 있지도 않다. 발저 유고의 규모가 드러난 지금의시점으로보자면당시는발저의작품의일부만이알려진때이기도하다. 그렇지만발저의 일부만을 알고 쓰여진 벤야민의 에세이는 1980년대 이후에야 비로소 발견되고연구되고 평가받기 시작한 발저에 관하여 연구자들이 끌어낸 인식의 중요한 일부를

2) 예를 들면대립적요소들혹은 입장들 사이에서 진자운동하며 균형을 잡으려 하는사유 방식, 유년의 모티브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활용, 언어철학적 관점에서도 두 사람은 함께 고찰해 볼 수 있다.

3) 1937년 1월 30일자 칼 젤리히 Carl Seelig에게 보낸 로버트 발저의 편지 참조 vgl. Robert Walser: Das Gesamtwerk, hg. von Jochen Greven, Bd. 12/2: Briefe. 벤야민 전집은 로버트 발저 에세이에관한 주해에서 이 편지를 인용해 놓고 있다. vgl. Walter Benjamin: Gesammelte Schriften Bd. II-3, S. 1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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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취하고 있고, 그래서인지 발저를 다루는 2차 문헌들이 즐겨 언급하고 인용하는 자료다. 하지만 벤야민의 지적 권위를 빌어 발저의 위상을 밝히려는 의도에서 인용된경우도 있어서 벤야민의 글을 비판적으로 되새김질하지 않은 채 종종 피상적이고 필

요대로 맥락에 임의로 걸치는 식의 인용이 되기도 하였다. 벤야민의 발저 에세이가제공하는 발저에 관한 분석과 평가, 테제들을 면밀히 살펴 보는 작업도 의미가 있을것이다.4)

발저에대한벤야민의드높은통찰력은벤야민자신의지적예리함에만이유가있

는 게 아닐 수 있다. 어쩌면 두 사람 사이의 유사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를일이다. 만일 그랬다면 벤야민이 발저에게서 감지했을 기질적, 자의식적 근친성은 추측으로 남을 수밖에 없지만, 작가로서의 둘의 유사함은 여러모로 감지된다. 특히 그들의 자서전적 글쓰기 구상을 보면 서로 만난 적 없을 뿐 아니라 시기적으로 공간적

으로 비껴간 두 사람의 닮은꼴이기에 더욱 주목하게 된다.

2. 자아기획

둘의 유사함을 무엇보다도 그들의 자전적 글쓰기에서 발견한다는 테제에 혼란이

될수도 있는사실이있다. 자서전문학논의에서예외 없이벤야민의자서전문학으로 다루어지는 베를린 연대기에서 벤야민은 “내가 쓰고 있는 이 기록도 분명 자서전은 아니다”(윤미애 역, 194)라고 하였다는 사실이며, 발저는 정신병원에 수감되고펜을 놓기 직전에 쓴 글들에서 자신이 쓰는 모든 것은 자서전적이다 라고 해석될 여

지의 말을 남겼다는 사실이다.5) 발저의 문학이 전반적으로 Ich-Prosa라는 장르적 표

4) 임석원, 발터 벤야민의 로베르트 발저 읽기, 실린 곳: 카프카연구 26집(2011) 참조. 5) Eine Art Erzählung이라는 산문에서 발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Meine Prosastücke bilden

meiner Meinung nach nichts anderes als Teile einer langen, handlungslosen, realistischen Geschichte. Für mich sind die Skizzen, die ich dann und wann hervorbringe, kleinere oder umfangreichere Romankapitel. Der Roman, woran ich weiter und weiter schreibe, bleibt immer derselbe und dürfte als ein mannigfaltig zerschnittenes oder zertrenntes Ich-Buch bezeichnet werden können.” (SW 20, S. 322) 또한 미크로그람텍스트인 개구쟁이 Der Schlingel에서는 이렇게 적는다. “Gestern abend fiel mir übrigens rasch ein zu denken, meine Aufsätze oder prosaischen Äußerungen seien vielleicht etwas wie Personenauftritte in einer Art Theater, das sich auf meiner gewiß nicht wichti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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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으로도 자주 불리우는 것은 이런 사정과도 상관이 있다.6) 자서전으로 다루어지는작품을 쓰면서도 자서전을 쓰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 자신이 쓰는 모든 것은 자서전의 일부라고 말하는 사람. 이 둘 사이의 유사성이 크다며 함께 다룰 수 있다는 말은일견 모순되어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두 사람이 저술하는 ‘자서전’이 이 장르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벗어나기 때문에 이 작업은 가능하다.자서전논의의핵심어라할 ‘자아’는현대의자서전문학에서변모한다. 더이상예

전의 자서전, 가령 괴테의 시와 진실에서처럼 계획하고 조망하는 자아가 끌어가는일관된 흐름과 확고한 자아 전시가 되지 못한다. 이제 자아는 자서전에 자명한 것으로 여겨져 온 정체성 요구를 피해가려 한다. 자아는 불안정한 모습으로, 형체가 고정되지 않는 흔들림과 일회성으로 나타난다. 또는 발견하고픈 동경을 일깨우는 동일성의 대상으로, 분열되어 통일할 수 없는 것들의 모음으로, 감추어져 볼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벤야민과 발저의 자전적 산문 쓰기는 이런 자아 기획을 바탕하고 있다. 이는 벤야민에게서는 1900년경의 베를린의 유년시절에 나오는 ‘무메렐렌’, ‘숨을곳들’, ‘양말’, ‘꼽추 난장이’ 등에서 특히 잘 만나볼 수 있다. 발저에게 있어 정체성숨기기, 마스크의 의도적 활용은 정체성 문제에서 매우 중요한 기술이었다. 그의 작품의 핵심 아이디어 중 하나이자 인물군인 ‘하인’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예로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일기소설 Jakob von Gunten(1909, 국내에는 벤야멘타 하인학교라는 제하에 번역됨)을 들 수 있다. 이런 자아기획의 실현에 있어 발저와 벤야민은 여러 전략을 구사한다. 그리고 이 전략은 두 사람 모두 몇 개의 키워드를 유사하게 맴돈다. 아래에서 이들 전략을 살펴보려 한다.

Lebenslaufbahn selbst gründet.” (AdB 4, S. 37) 6) 자신이 쓴 거의 모든 것은 자신의 이야기라 하되 이렇다 할 자서전 작품을 남기지 않은 발저는 일인칭 화자가 들려주는 수많은 산문작품을 남겼다. 그는 자신이 집필한 작품들에 대하여 1926년의“일기” 단편 Das "Tagebuch-Fragment von 1926 (SW 18, S. 59-110)이라는 글에서 회고하며 조망하고있다. 여기에서발저는자신의작품과관련하여 Ichbuch (S.106), Ichsucht (S. 107), Ich-Stil (S. 108), Ich-Vortragsart (S. 108) 등의 표현을 구사하는데, 이 가운데 특히 Ichbuch는 발저의 다른 글들에서도 만날 수 있고 그의 문학을 특징짓는발저자신의 대표적 표현으로 간주되어 연구 문헌에

서 즐겨 인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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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인성의 포기와 구원의 동시적 기능으로서의 미메시스 자아의 자유공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외부의 요청과 압력에 기꺼이 순응하고 타협

하는 태도는 두 작가 모두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발저는 그가 창조해 낸 숱한 인물들에게 외적 순응이라는 위장을 통한 내적 자유확보 라는 전술적 옷을 입혔다. 낭독극으로쓰인촌극신데렐라 Aschenbrödel (1901)의여주인공, 발저의작품중가장많이 읽힌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주인공 야콥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유니폼을 입은하인이라는 역할을 하나의 존재형식으로 하는 외적 순응은 모종의 가면극이자 동물

의보호색과비슷하다. 이런기교를통하여자아는효과적으로감추어지며보존될수있다. 이 때 순응이 어디까지나 온전히 외적 차원에만 머문다는 것이 중요하다. 내적으로 이들 하인은 간파되지 않는 전복적 에너지를 지니거나 침해받지 않을 정신적

자율공간을 확보한다.유사한 관점을 벤야민은 미메시스 에세이인 유사성론 Lehre vom Ähnlichen(GS

II-1, S. 204-210) 그리고 미메시스 능력에 관하여 Über das mimetische Vermögen(GS II-1, S. 210-213)에서다루고있고 1900년경베를린의유년시절 및 베를린연대기의여러 군데에적고있다. 예를들어벤야민은마치 친척이나친구에게하듯친밀성을 내세워 선생님에게 모자를 벗어 인사하라는 의무가 굴욕적으로 느껴졌던 어릴 적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한 제스처를 통해 나의 개인적 삶의 세력권 안으로 그들을 받아들이라는 요구가 내게는 무례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친밀성을 내세우지 않는, 어느 정도 군대식 경례였다면 별로 반감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친척이나 친구에게 하듯이 선생님에게 인사하라는 것은 사람들이 내 집 안에 학교를 열겠다는 것처럼 끔찍한 무례함으로 보

였다.” (베를린 연대기, 윤미애 역, 224쪽)

이런 부분은 발저의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주인공 야콥을연상시킨다. 야콥의 일

기에 적힌 대로라면 야콥이 유니폼을 좋아하는 이유는 물론 조금 다르다. 하지만 작품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주인공 야콥은 대인관계에서 정체성 요구를 의식적으로비껴 가는 인물이다. 위의 벤야민 텍스트 인용에 나오는 아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야콥은개인성과자율성의외면적포기, 오로지외적인복종의제스처를통하여내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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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외부와의 교집합 없이 가르고자 한다. 이들은 외부세계를 내부로 받아들이지않고 스스로를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보호하는 기제이자 정체성을 온전히 숨길 수 있

게 하는 장치로서 위계와 경직된 예절을 긍정한다. 촌극 신데렐라 Aschenbrödel의 여주인공 또한 유사한 이유로 노동에 묶인 낮은 지위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산다. 그녀는언니들의구박과매질그리고증오를반어와웃음으로가뿐하게견디며, 하녀로봉사하는 일이 즐겁다고 시시때때로 말한다.

그리고 난 항상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울고 있을 시간이 없답니다.웃을 시간은 늘 있지요! 노동은 웃는 거지요 (SW 14, S. 30).7)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전심을 다해그녀의 하녀로 일한다는 게. (SW 14, S. 37)8)

또한 그녀는 하인의 유니폼을 입은 것은 아니지만 궂은 노동으로 인해 더러워진

자신의 옷을 좋아한다. 정체성의 문제를 암시하면서 옷(Kleid)은 이 작품 전체를 관류하는 핵심 모티브 중의 하나다.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에서 이와 비슷한 맥락을 암시하는 귀절은 벤야민의미메시스이론을탐색하는데중요한텍스트인 무메렐렌에서도찾아볼수있다:

“유사성을 파악하는 능력은 실은 유사해지고 또 유사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오래된강제가 미약하게나마 남은 잔재나 다름없다. 내게 이러한 강제를 행사한 것은 바로 낱말이었다. 나를 예의바른 행동의 모범과 닮게끔 하는 낱말이 아니라 집, 가구, 옷들과 유사하게

7) [...]Und weil ich stets beschäftigt bin,hab ich zum Weinen keine Zeit,zum Lachen immer! Arbeit lacht.[...]

8) [...]Welch Glück, daß ich zu Füßen ihr als Dienerin beschäftigt 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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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낱말이 그러하다. 다만 그러한 낱말은 결코 내 자신의 형상과 닮을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내게 내 자신과 닮을 것을 요구할 때면 당혹스러웠다. 사진을 찍을 때가 그랬다.”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윤미애 역, 81쪽)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에게 있어 외부로의 순응, 즉 미메시스는 생존의

본능이며 따라서 ‘자신을 닮는’ 일보다 훨씬 수월한 것이다. 그리고 그래야만 하는전략이기도 하다. 개인성의 포기야말로 개인성을 구하기 위한 길인 셈이다. 벤야민은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프란츠 헤셀 Franz Hessel과 공동작업으로독일어로번역했었고프루스트의이작품이그자신의 1900년경베를린의유년시절집필작업에 끼칠 영향을 두려워할 만큼 매료되었었는데, 프루스트에 관하여서도 벤야민은이런 미메시스와외적순응, 자신이원하는작업을하기 위해하는철저한외적 위장과 모방의 대가스러움에 대해 자세히 적고 있다.9)

‘나’를 드러내지 않겠다는 목표는 벤야민에게서 편지 쓸 때 외에는 ‘나’라는 단어를사용하지않는다는자부심어린원칙 (베를린연대기, 윤미애역, 173쪽)에서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라든지 친구 범위의 인물들과 편지쓰기의 방식과기술에서 어떤것, 특히 글쓰는이로서의그들의 현재에매우개인적이고중요했던 사실을 일부러 빼먹고 언급하지 않는 방식 등 작가들이 구사하는 일종의 가면

놀이는벤야민과발저에서도예외가아니었다. 특히발저는그의글쓰기전략에서숨기기의 시각화나 다름없는 깨알글씨쓰기에 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발저연구에서는 1927년 6월 발저가 막스 리히너 Max Rychner에게 보낸 편지가 자주 언급된다. 이편지에서발저는필기수단을펜에서연필로바꾸면서일어난변화와그로인한 엄청난 신체적 수고로움에 대하여 장황하게 적고 있지만 정작 그 엄청나다는

9) 서사·기억·비평의자리 (최성만역, 길 2012)에실린 에세이 프루스트의 이미지 (233-259쪽) 및프루스트 관련 자료 (261-283쪽) 참조.. 한편 프루스트 자신은 플로베르에게서 그런 위장의 면모를 찬탄한다. <플로베르의 문체에 대하여>에서 프루스트는 “그것은 다름 아닌 의도적으로 모방하기인데, 그리하여 독창적으로 되고 평생 비의도적으로 모방하기 않기 위해서이다.” (269쪽)라고 적었고 벤야민은 이를 자신의 에세이에 재인용하였다. 벤야민의 프루스트에 관한 언급 가운데 본고의 관심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또 한가지는, 프루스트가 하인들을 연구하는 데 열정적이었다는 사실이다(249쪽 참조). 벤야민은 프루스트가 하인들의 “탁월하면서 굴종적인” 태도(249쪽)에서 노련한 모방기술과 의례적인 것의 숙달을 관찰하였다는 데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발저의 하인인물들에게도 적용되는 전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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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이 글씨의 초미니화에 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은 철저히 함구하고 있는 것이

다.10) 발저 사후 자그마한 신발상자에서 발견된, 영수증이나 출판사 편지 뒷면을 활용한 5백여장의 미크로그람 작품들이 처음에는 아무런 의미가없는 낙서에 불과하거나 해독불가의 비밀언어로 짐작되었던 것은 그와 무관하지 않다.물론 이런 측면을 반드시 벤야민과 발저만이 지녔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

지만중요한것은, 진정성과전략적태도, 신념에따르는태도와꾸밈, 친밀함과거리두기, 사실대로보여주기와가면놀이−이숱한대립항의경계가어디인지를정한다는 것은 이 두 작가의 경우 매우 어려운 그리고 별 의미 없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4. 숨바꼭질 자기를 찾고 있는 사람을 두고 아이처럼 숨어버리려는 욕망, 숨바꼭질하며 빨래바

구니 속에 숨은 꼬맹이처럼 자신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 데서 느끼는 쾌감과 안도, 그런 과정을 통하여 보존하는 온전한 개인성이야말로 벤야민이나 발저가 그들의 자

전문학 집필작업에서 놓지 않으려 했던 자기방어와 자기보존의 원칙이다. 고도로 숙련된 해독작업을 거치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깨알글씨로 집필하였던 것은 그 전략

의 중요한 일환이다. 조르조 아감벤 Giorgio Agamben은 벤야민과 발저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은 숨어 있을 때 특히 더 흥미진진해 한다. 결국에 가서는 발견되기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다. 숨어 있는 것, 빨래바구니나 장롱 속에 기어들어가거나 다락방 한구석에 사라질듯 쪼그맣게 움츠리고 있는 것 등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단념하기 싫은 어마어마

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로버트 발저가 (미크로그람에서) 자신의 글을 읽기 불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을 확보하며 갖는 쾌감, 절대로 인식되지 않겠다는 벤야민의 집요한 요청, 이 모두는 이렇듯 아이스럽게 가슴이 콩콩 뛰는 긴장감에서 유래한다. 이들은 한때 아이가 자신이만든 건축물로부터 수여받았던 고독한 영광의 수호자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10) Robert Walser: Briefe, hg. v. Jörg Schäfer unter Mitarbeit von Robert Mächler, Frankfurt am Main 1979, S. 30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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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숨어 있는 곳의 genius loci로서 감격하며 발견하는 아이와 꼭같이 작가는 인식되지않음 속에 자신의 승리를 자축하기 때문이다.11)

발저와 벤야민은 자신들의 집필행위에 내포된 숨바꼭질의 성격을 잘 의식하고 있

었으며 이를 실제로 숨바꼭질하는 아이를 모티브로 한 여러 개의 짤막한 산문작품에

담은 바 있다. 특히 발저의 미크로그람 텍스트 개구쟁이 Der Schlingel(AdB 4), 잡동사니 가득한 다락방에 있던 꼬마아이 하나가 엄마가 잠시 한눈 판 사이 커다란 상자

안에 숨어버리는 내용을 담은 이 텍스트는 종종 이런 정황에 대한 비유로 읽혀져 왔

다. 숨은 아들을 찾는 엄마는 작가의 숨바꼭질에 응하는 독자의 알레고리로, 숨은 꼬마는 미로 속의 미노타우로스, 작품의 핵심이라 할 어떤 것으로, 또는 세상에서 물러나칼슈피츠벡 Carl Spitzweg의그림에나오는다락방시인처럼다락층방을전전하며 살았던 작가 발저의 자화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12) 엄마로 하여금 애타게 찾게 만드는, 트렁크나 바구니 속에 숨어 버리는 아이의 이

야기에서 숨음은 또한 어떤 변용, 질적 변모의 성격을 띤다. 상자 안에 숨은 꼬마는 상자를 점유함과 동시에 말하자면 하나의 정복을 이룬 것이다. 꼬마는 이제 더 이상 이때까지의 그가 아니게 되었다. 자기 때문에 남들이 두려움을 갖게 됨으로써 귀중해진 사람이 된 것이다.13) (AdB 4, S. 40)

벤야민의 1900년경베를린의유년시절에대해서도유사한 해석이있어왔다. 숨

어 있음의 이미지는 이 저작에서 수없이 변주되지만 그 중 특히 숨는 아이 자체를

묘사하는 숨을 곳들이 자서전 장르 연구에서 발저의 소년처럼 자아의 드러냄이 아닌 숨음을 모토와 목표로 하는 저자라는 맥락에서 언급되곤 하였다. 또한 위의 발저의 꼬마처럼 숨은 곳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 역시 벤야민에게서도

11) Girgio Agamben: Profanierungen, Frankfurt am Main 2006, S. 13. (세속화 예찬 김상운 역, 난장2010, 18-19쪽 참조)

12) Vgl. Ulf Bleckmann: „…ein Meinungslabyrinth, in welchem alle, alle herumirren…“. Intertextualität und Metasprache als Robert Walsers Beitrag zur Moderne, Frankfurt am Main 1994, S. 105.

13) “Der Knabe in der Kiste hatte mit dem Besitz von der Kiste schon gleichsam eine Eroberung gemacht, er war jetzt nicht mehr nur, was er sonst war, sondern einer, der dadurch wertvoll wurde, daß man ängstlich seinetwillen geworden war.” (AdB 4, S. 40)

232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중요하다. 현관의 커튼 뒤에 선 아이는 커튼처럼 나부끼는 하얀 물체, 즉 유령이 된다. 식탁 아래 웅크리면 아이는 나무로 된 사원의 신상이 된다. 조각이 새겨진 식탁의 다리들은 사원의 네기둥이다. 문 뒤에 숨으면 아이 자신이 문이라는 무거운 가면을 쓴 마법의 사제가 되어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오는 사람들 모두에게 마법을 거는 것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아이는발견되어서는 안 된다.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윤미애 역, 68-69쪽)

아이는 숨을곳이라는어떤 껍질속에숨었으나 그모습그대로 숨은것이아니라

숨을곳의형태에동화한변형으로숨어있다. 숨으면서아이는식탁을목제신전으로만들고 탁자다리를 신전의 네 기둥으로 만들며, 탁자 아래 있는 자신을 신상으로 만든다. 아이 본인만이 아는 유사관계를 이용한 이런 숨기와 변신은 문학텍스트 안에자아의 모습을 감추는 기술과 조응한다. 유사성을 이용하는 이러한 미메시스 능력은아이로 하여금 무메렐렌에서 가구, 사물, 단어에 동화하여 숨게 만들고, 이런 측면을 흉내 내는 훗날의 저자가 작가로서 “구름”인 언어14) 속에 자신을 감싸 변형하여발견할 수 없도록 만든다.

5. 미로 이런 숨바꼭질 속에서 ‘자아’에 대한 작업을 설명하는 비유로 벤야민과 발저 두

사람모두 미로를이용하는것은우연이 아닐것이다. 미로의 유형은몇가지가있으며 따라서 미로의 이미지는 여러 가지의 관점을 내포한다. 우선 전통적으로 미로 담론에서 중요한 하나는, 미로의 건축자와 미로(혹은 그 핵심인 미노타우로스)의 정복자가서로 다르다는점이다. 글쓰기로 옮겨이런구도를작가 대주인공의관계로이해할 수 있는데, 작가는 사건에 대하여 전지적 심급이 되지만 주인공은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모르고 있다. 그런데 이 구도가 변형된 현대의 서사미로에서 화자는

14) 무메렐렌에는 명료한 지시성을 거부하는 언어관이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때때로 나는 원래 구름인 낱말들도 나를 위장하는 법을 배웠다.”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윤미애 역 81쪽)

발터 벤야민과 로버트 발저의 자전적 글쓰기 233

이따금 주인공과 다름없이 모르고 헷갈리고 비트적댄다. 방향설정을 해주고 확실한출구를아는 화자대신찾아가며쓰는 화자, 빠져나오지 못하고갇히는화자가들어선다. 자서전 문학이라면 화자로서의 자아가 이런 변화를 겪는 셈인데 이 구조를 발저와 벤야민 모두가 활용하고 있으며 벤야민의 베를린 연대기 및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에 실린 몇몇 미니어처, 발저의 미노타우로스 Minotauros(1926) (SW 19, S. 191-193)가 대표적이다.또한 미로는 자주 단절되고 그래서 반복과 잉여를 산출하는, 역설적으로 계속하여

지속되는 움직임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본질, 중심, 핵심이라 하는 것에 이르는 과정이 영원히 연기되는 이미지를 구현한다. 미노타우로스는 없고 중심은 비어 있다. 중심과 주변부의 구분이 해체된 구조의 미로는 수많은 출구를 지녔다. 벤야민은 베를린 연대기에서 자신의 인생경로를 가지에 가지를 뻗는 나무의 형태로 비유하면서이렇게 말한다.

그 미로의 수수께끼 같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나 자신인지 아니면 운명인지는 나

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는 많은 입구들은 나와 상관이 있다. 나는 그 입구들을 근원적 친분관계라고 부른다. 각각의 입구는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이웃관계, 친족관계, 동창관계, 혼동, 여행 조합을 −이러한 상황들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통해 만나게 된 사람과의 친분을 나타내는 그래픽 상징이다. 그러한 근원적 친분관계만큼이나 미로로 들어가는 입구들도 다양했다. 그러나 관계들 중 대부분에서는 −적어도기억 속에 남아 있는 친분관계에서는− 다시 새로운 친분관계,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가열리기 때문에, 한참 지난 뒤 그 길로부터 옆길이 파생된다(오른쪽 길을 남성의 길이라고하고, 왼쪽 길을 여성의 길이라고 해도 좋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체계들 중 어느 한쪽에서다른 쪽으로 연결되는 길이 생길지의 여부는 우리 삶의 행로가 어떻게 얽히는가에 달려 있

다. (베를린 연대기, 윤미애 역, 198-199쪽)

발저와 벤야민이 이해하는 미로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리좀처럼 탈중심적이고 탈

위계적이며외부연결이여러방향으로가능한것으로서, 미로는숱한입구를갖고있으며 모든 입구는 대등하다. 벤야민의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이 중심과 위계를 탈피한 수 십개 미니어처 형태로 독서모델화되어 제시되는 것, 발저가 자신의 전작을 “여기저기 뜯기고 갈라진 자아책 ein mannigfaltig zerschnittenes oder zertrenntes

234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Ich-Buch”(SW 20, S. 322)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것은 이 아이디어의 구체화라 하겠다. 신화에서 중심이자 목표였던 미노타우로스의 존재감은 의도적으로 축소 혹은 은

폐된다. 따라서 엉킨 미로의 한가운데 자리를 틀고 앉은 미노타우로스를 찾는 길은일정할 수가 없다. 끊임없이 숨바꼭질하여 다니는 ‘본질적 자아’를 만나겠다는 발상은 애초에 허황된 것이다. ‘본연의’ 발저 혹은 벤야민이라는 목표는 무의미하다. 핵심, 중심, 그하나의본질−이런것들에대한집착을버릴때그들은잠시나마스쳐가면서라도 만나질 수 있는 상으로 스스로에 대한 기획을 펼치고 있다. 발저가 자신의 글쓰기 원칙 중 중요한 하나로서 텍스트 자아의 분열(시민적 자아

와 작가적 자아)을 미노타우로스 Minotauros라는 텍스트에서 언급하는 것은 우연이아닐것이다. 애초글쓰기는통일된자아의등장을배제한상태에서만가능한작업으로 천명됨으로써 전통적 자서전 이해를 배반한다.

내가 작가적으로 깨어 있을 때면 나는 삶을 무심히 지나쳐 가며, 사람으로서는 잠들어 있고, 어쩌면 내 안에 있는 공동체 일원 시민을 내팽개친다. 내가 이 시민에게 형상을 부여하게 되는 경우 내게 담배를 핀다던가 작가로 작업하는 데에 방해가 될 수도 있을 그 한 시

민을.15) (SW 19, S. 191)

삶 vs 글쓰기, 사회 vs 개인의관계를 깨어있기 vs 잠자기에나란히 놓은뒤 서로

양립불가한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비록 이런 설정이 현실적으로 온전히 가능한 것은아니라 해도) 이전의 자서전 문학이 전제하거나 추구해 온 통일성, 총체성이 강령적으로 전복된다. 발저가 발저에 대하여 Walser über Walser(SW 17, 183)에서 역시 경험하는 발저와 저술활동하는발저가 서로를 배제하는 관계로서만가능했음을 역설한

다. 경험할 때의 발저는 모든 것을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온전히 경험했으며 그로부터 작품이 되리라는 생각을 눈꼽만치도 의식에 품지 않았었기

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고찰의 주체와 객체가 분리, 분열되어 있음을 자서전적 집필

15) Bin ich schriftstellerisch wach, so gehe ich achtlos am Leben vorbei, schlafe als Mensch, vernachlässige vielleicht den Mitbürger in mir, der mich sowohl am Zigarettenrauchen und Schriftstellern verhindern würde, falls ich ihm Gestalt gä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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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의 기본으로 삼기에 통일성의 자아, 강하고 또렷한 자아는 불가능하다는, 언제나의식의지배를비껴가는무의식의부분, 기억의전체를불완전하게하는잊혀진부분이 있다는 인식은 벤야민의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에 나오는 꼽추 난장이에서 중요한 테마다.

6. 비의도적 기억과 조각난 책 사는 일과 쓰는 일을 잠과 깨어남, 의식과 무의식처럼 분리했던 것 그리고 위에서

든미로의속성은우연히마주치는출구와발견에결정적으로의지하게만든다. 법칙성과 의식과 기획이 아니라 우연과 무의식과 무계획성의 작업이 중요해진다. 기억의역할이 크게 마련인 자전적 글쓰기에서는 자의적 기억이 아닌 비자의적 기억

(mémoire involontaire, unwillkürliche Erinnerung), 프루스트에게서 핵심인 이 기법과동인에 의한 글쓰기가 옹호되는 것이다. 주체의 비중과 존재감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주체의 계획과 의지를 벗어나 통제 밖의 무의식과 시공간으로부터 불현듯 찾아드

는 기억에 의한 글쓰기는 주체의 통일성, 정돈의 주체가 적어 내려가는 일정하게 계획된서사를무력하게만들수밖에없다. 자전적글쓰기는과거를찾아가는일이기만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과거의 방문을 받음으로써 온전히 (물론 전체가 아닌 조각의온전함이라는 의미에서) 가능한 일로설명된다. 과거를깨워내는현재의 한순간의 감각, 지각 등은 벤야민에게도 발저에게도 중요하였다.(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중 겨울날 아침, 부고 등)전 작품이 자서전의 일부라 하는 발저는 작품 쓰기의 무계획성, 즉흥성, 우연성을

작품구성의 원리로 만들어 보인다. 미크로그람 텍스트인 개구쟁이 Der Schlingel은이런 글쓰기의 대표적 예다. 분간없고 대책없이 뒤엉킨 어떤 것에 대해 쓰는 글쓰기는 어느 순간, 즉 일종의 비자의적 기억에 의하여 시작‘되며’ 기억의 글쓰기화가 끝나는 데서 멈추게 된다. 이런 글쓰기 컨셉트에서 작가의 주체란 최소화되는 것으로나타날수밖에없다. 산책길에우연히만나고생각하는것들을적어내려가듯우연에지배받으며 단선적 진행이 아닌 미로의 모퉁이처럼 뜻밖의 진행에 내맡기는 구성원

236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리로 인해 ‘산보 산문’이라고도 불리는 이런 산문들을 발저는 특히 후기작에서 무수히 써낸다. (발저는 나날의 산책가였으며 죽음 또한 산책길에서 맞는다.) 이런 자서전 혹은 자서전적 글쓰기에 대한 성찰에서 자아는 드러내기보다는 숨기

는것, 자아를마음대로할 수있는강인하고조망능력 있고일관성있는주체로서의화자보다는 불안하고 일시적이고즉흥적이며 균열된 화자가 자연스러운것으로 보이

게 된다. 이렇게 불안정한 화자가 늘어놓는 자기 이야기인 만큼 쓰여지는 작품은 일시적이며 부분적인 속성을 띠었으며, 언제든 다시 쓰여지고 다르게 쓰여질 수 있는것으로 보이도록 하였다. 발저에게 있어 자전적 문학이란 끝없이 새로 쓰여질 수 있는 것이었다. 열렬한 연극팬이었던 발저는 자전산문을 일종의 무대 등장으로 비유했으며같은 배우같은배역이어도매번의 무대에서꼭같을수는 없듯, 종국적이고단일한 자서전 서사라는 아이디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고정하거나 드러낼 필요 없이 무한변신이 가능한 마스크와 역할의 교체로 삶을 (그리고 자전적 글쓰기를) 이해한다. 벤야민도 예외가 아니었던 이런 식의 시민적 삶에 대한 이해는 어찌 보면 매우 냉정한 인식이다. 시민은 더 이상 삶을 주체로, 주인공으로 사는것이 아니라삶을, 역할을 관객혹은상대방앞에 연기하는것이라는사실을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조각난 책의 비유는 작가 자신과 그의 자서전적 저술 사이의 관계를 서술하는 이

미지로발저와 벤야민모두가마치약속이나 한듯구사한다. 발저는위에인용한바대로 “ein mannigfaltig zerschnittenes oder zertrenntes Ich-Buch”라는 표현을 썼고, 벤야민은 1935년 10월 23일에 숄렘에게 쓴 편지에서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을두고그자신의 “zerschlagene Bücher” 중의하나라하고있다.16) 애초의미된맥락이서로 조금 다르기는 하다. 발저의 경우는 낱장이 남김없이 모인 책의 완성은 불가능할것이라는 의미이자컨셉트의표현으로볼 수있다. 벤야민에게 있어원래이런발언의 배경은, 뜻대로 되지 못했던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의 간행사가 중요한이유였다. 하지만 그런 이유이든 작가의 의도였든 끝없이 변형하고 수정하고 배열의순서를 뒤바꾸고 그러면서도 완성되지 못한 채 여러 개의 판본과 낱장으로 남아 ‘하

16) Walter Benjamin: Briefe, hg. und mit Anmerkungen versehen von Gershom Scholem und Theodor W. Adorno, 2.Bde., Frankfurt am Main 1966, S. 695

발터 벤야민과 로버트 발저의 자전적 글쓰기 237

나의 온전한 책’이 되지 못한 여러 판본의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은 발저의비유와 다시 맥을 함께 한다.

7. 마치면서 발저와 벤야민 두 사람은 자전문학을 이해함에 있어 개인사의 재구성이라는 컨셉

트가 지니는 모종의 감상성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다. 자전문학이되 개인적 흔적을최소화했던 것, 비유적 의미차원을 내포하고자 했던 것, 같은 삶의 장면에 대하여도의미를고정시키지 않고조금씩변형시켜가며 다시쓰기할수있다 믿었던것, 서사적 인과성과 연속성을 거부했던 것이 그런 면면이라 하겠다. 서로 교류한 적이 없을뿐 아니라 서로에 대해 사실상 모르는 두 사람의 동시대인이 유사한 자아기획을 바

탕으로모티브와메타퍼에서겹치는글쓰기를보여준점이주목할만하다. 이런유사한 면모를 근거로 벤야민의 면모를 벤야민 만의 것으로서 혹은 발저의 면모를 발저

의 것으로서만 보기 어렵게 상대화해 볼 수도 있다.물론 둘의 닮음은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이 닮음을 분화시켜 고찰하면 다

시 닮음이 아닌 차이가 보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들의자전문학이 종래의자전문학이지닌개인사의 완결적기술과분열없는 주체, 연대기적 서술, 인과관계의 대대적 긍정 등에 거슬러 쓰여지는 개인사 이상의 그 무엇이 되는 비유성을 갖고 있다 해도, 이 비유의 차원이 저술자의 의도 면에서 역사적, 사회적인가 예술이론적인가 하는 면에서이다. 벤야민에게 유년은 개인사적 우연의 순간들이 아니라 필연성의 사회적 산물이며 몰락하였으나 미래의 이미지를 품고

있던 앞당긴 데자뷰였다. 여기에는 역사철학자이며 독일 최고의 문학비평가이고자했던벤야민에비하여지극히세상에서멀었던, 작음을, null17)을지고의미덕과목표

로 표방하였던, 수다스럽고 장황하게 사소함을 과시하는 발저가 대조된다.

17) 벤야멘타 하인학교에서 주인공 야콥은 여러 번에 걸쳐 “동그란 영”이 되겠다는 목표를 밝힌다. 이 작품에서 “동그란 영”은 실제로는 무가치함이라든가 아주 작고 미미한 존재 정도의 일차적 의미를 넘어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가 가능하고 작품해석에 있어서도 중요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발저는 null이라는 표현을 다른 짤막한 산문작품들에서도 종종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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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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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Zusammenfassung

Autobiographisches Schreiben bei Walter Benjamin und Robert Walser

Kim, Yunmi (Seoul Nat. Uni)

Walter Benjamin (1892-1940) und Robert Walser (1878-1956) waren sich im Leben weder begegnet noch haben sie in irgendeiner Form miteinander kommuniziert. Walser kannte Benjamin kaum. Benjamin las hingegen einige von Walsers Dramoletten und Prosawerken und verfasste zumindest einen kurzen aber für die Walserforschung bedeutenden Essay über sie. Wenngleich weder Freundschaft noch Bekanntschaft beide Autoren verband, weisen ihre Arbeiten interessanterweise vielfache Parallelen auf. In besonderem Maße lässt sich dies an ihren autobiographischen Schriften belegen. Auch wenn Benjamin seine Berliner Kindheit um 1900 nicht der Autobiographie zugeordnet wissen und Walser hingegen praktisch ´alles´ aus eigener Feder als Teile der Autobiographie ansehen wollte, haben sie eines gemeinsam: ihre ´autobiographischen' Schriften unterminieren das herkömmliche Gattungsverständnis von der Autobiographie. So sind die Charakteristiken ihres autobiographischen Schreibens: Eine große Lust des Ichs am Verstecktbleiben und Nichterkanntwerden; Die unwillkürliche Erinnerung als Feder führender Faktor; Nicht stark präsentes ordnendes Subjekt; Metapher des Labyrinths; Schließlich verwenden die beiden Wörter wie zerschlagen, zerschnitten und zertrennt, um ihre autobiographischen Schriften mit ihren nicht nach Vollendung strebenden und ewig fragmentarisch-provisorischen Zügen zu charakterisieren. Diesen Grundzügen ihres autobiographischen Schreibens geht dieser Beitrag nach. Dabei werden besonders Texte aus Berliner Chronik, Berliner Kindheit um 1900 von Benjamin und Mikrogrammen von Walser herangezogen.

발터 벤야민과 로버트 발저의 자전적 글쓰기 241

Keyword(한글/독일어)

자전적 글쓰기

Autobiographisches Schreiben

숨바꼭질

Versteckspiel미로

Labyrinth단편적

fragmentarisch

∙ 필자 E-Mail: [email protected] (김윤미)∙ 투고일: 2013년 6월 29일 / 심사일: 2013년 7월 14일 / 심사완료일: 2013년 7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