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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세요! 팀장이 됐어요 : 소설로 배우는 프로젝트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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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지음 | IT Leaders 시리즈 _ 006 | ISBN: 9788992939157 | 13,000원 | 2008년 07월 3일 발행 |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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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와 세요!

팀장이 됐어요소설로 배우는 프로젝트 관리지은이 신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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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부모님과

사랑하는 내 아내 승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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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에 걸린 프로젝트 13

프롤로그 15

늪 17D+30_ 월요일 17D+31_ 화요일 30

터닝 포인트 58D+32_ 수요일 58D+33_ 목요일 66D+34_ 금요일 74D+35_ 토요일 93D+36_ 일요일 97

마지막 질주 115D+37_ 월요일 115D+38_ 화요일 124D+39_ 수요일 143

파국 148D+86_ 월요일 148D+90_ 목요일 155D+91_ 금요일 158

귀향 164D+120_ 토요일 164D+121_ 일요일 167

1부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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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팀장이 알아야 할 관리기법 173

시작하며 175

도와주세요! 팀장이 됐습니다! 177

진정한 문제를 찾아라! 180

문제는 1개, 답은 N개 185

: 똑똑한 그리고 사랑 받는 188

‘진짜 팀’을 만들고 싶다면! 191

리더십의 기초 197

: 엉성한 지시 200

You should have 3Sights! 202

정보방열기로

프로젝트 관리하기 206

: V in your life! 214

실수를 대하는 조직의 자세 219

: 회고(Retrospectives)?

뭐에 쓰는 물건인고? 223

생산성에 주목하라! 225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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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노트를 덮고 화이트 보드를

주목해 주세요! 229

: 인지부조화와 스탠드업 미팅 234

0.5Man Month를 경계하라! 236

: 관리자도 아는

‘개발자 교환 불가능의 법칙’ 240

부가가치가

적은 업무를 제거하라! 242

전체적인 관점에서 최적화하라! 247

팀장이 프로그램을 짜야 할까? 251

2프로 부족,

절대적인 혹은 상대적인 가치 255

팀장과 팀원이 충돌할 때 257

게으른 팀장이

일정을 지연시킨다 260

: 김성실 TDD를 배우다 264

회색지대, 정치 272

: 왜 이렇게 됐느냐고?

콘웨이의 법칙 275

협상의 기초 279

나쁜 관리가 자라나는 곳 284

진정한프로젝트가치는

어디서오는가?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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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는 거짓말일지 몰라도, 자

고 일어났더니 PM(Project Manager)이 되었다는 말은 사실에 가깝습니다.

PM 준비를 착실히 해오신 분들도 있겠지만, 제 경우엔 이 말은 사실입니다.

올해로 PM으로서 걸음마를 뗀 지 4년이 됐습니다. 이 글을 쓰려고 이력서

를 살펴보니 10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하면서 17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했더

군요. 말하자면 제가 살아온 삶의 3할은 프로젝트로 채워져 있으며, 다시

그 절반의 삶을 PM으로서 보낸 셈입니다.

월화수목금금금이었던 프로젝트, 매일같이 회식을 했던 프로젝트, 힘

들었던 프로젝트, 악몽이었던 프로젝트, 실패했던 프로젝트, 성공했던 프

로젝트, 지겨웠던 프로젝트, 즐거웠던 프로젝트, 개발자로 참여했던 프로

젝트, 컨설턴트로 일했던 프로젝트, 그리고 팀장을 맡았던 프로젝트.

프로젝트를 하면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기 때문에 참여했던 프로

젝트에 대한 애환은 남다릅니다. 어떤 감정이 남았던 간에 참여했던 프로

젝트가 모두 소중하지만 그래도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건, 처음으로 PM

을 맡았던 프로젝트입니다. PM이 되기 전까지 프로젝트 관리 교육을 두

번 정도 받았으며, 프로젝트 관리 서적 몇 권을 읽은 게 전부였습니다.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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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 팀원이나 고객을 확 끌어당길 만한 카리스마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죠.

그러기에 PM으로서 프로젝트를 이끈다는 것은 제게 커다란 도전이자 시

련이었습니다.

막연한 요구사항, 바쁘다는 핑계로 콧등도 보이지 않았던 고객, 제대로

관리하라고 눈치 주었던 팀원, 더디게 올라가던 개발 진행률, PM을 맡고

하루도 마음 편하게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정신 없이 흘러가서, 잘

한 것보다 잘못한 것이, 능숙한 것보다 실수한 것이 더 많았던 첫 번째 프

로젝트는 운 좋게 끝났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제 몸 하나 추스르기도 힘

에 겨웠던 초보 팀장이 초심자의 행운에 기대어 프로젝트를 끝냈던 셈입

니다.

팀장으로 참여했던 프로젝트 달력이 몇 번이나 바뀐 지금도 새로운 프

로젝트를 맡을 때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여전하지만, 팀장을 처음

맡는 동료나 후배에게 도움이 될 만한 충고를 해줄 정도가 되었습니다. 최

근 들어 회사생활을 하면서 본받고 싶은 팀장도 예전보다 많아졌으며, 도

움이 되는 프로젝트 관리 서적도 다양하게 출판되었습니다. 확실히 몇 년

전보다 프로젝트 관리를 배우기 좋은 환경인 듯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프로젝트 실패 이야기나 프로젝트

때문에 힘들어하는 동료나 후배를 보면, 프로젝트 관리라는 세계는 그 정

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고준한 산인 것 같습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문명이 계속되는 한, 앞으로도 수많은 프로젝트가 계획되고 실행되고 실

패하고 좌절하고 성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몇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뜨니 팀장

이 된 분들도 있을 겁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춘 관리자라면 처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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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하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겠지만, 개발에만 전념했던 분은 8할

의 시행착오와 2할의 행운에 기대어 제대로 끝내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고 여길지 모릅니다.

프로젝트 관리라는 게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닌데 관리자에 따라서 결

과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프로젝트 관리는 일종의 기술(Art)인 듯합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프로젝트 관리 지식이 뛰어나도 관리자로서 역할을 수행

해 머릿속에 알고 있던 지식들이 뼛속까지 내 것이 되지 않는 한, 알기만

많이 아는 헛똑똑이 초보 관리자를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보 PM이었을 때 제가 습득하고 있던 프로젝트 관

리 지식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프로젝트 관리를 하는 데 그다지 부족하

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프로젝트 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앞서 말

씀 드렸듯이 머릿속에만 있던 지식들이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았기 때문

입니다.

과거에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들이대는 것은 덧없는 행위죠. 그래도 저

에게 모자랐던 경험을 채워줄 선배 팀장이 곁에 있었더라면, 첫 번째 프로

젝트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든든한 멘토가 있었더라도 스스로 헤쳐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겠지만, 혼자일 때보다 그렇게 외롭지도,

그렇게 두렵지도 않았을 겁니다.

물론 책은 단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질문을 던질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즉, 진짜 사람이 들려주는 충고와 책 속에 적힌 이야기

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존 프로젝트 관리서적이 지식의 나열

에 그쳐, 프로젝트의 경험적인 혹은 기술(Art)적인 측면에 소홀한 듯합니

다. 물론 이 책도 활자화된 텍스트이기에 분명 한계는 존재하지만, 소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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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이 이런 경험적인 부분을 보강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이유로

PM으로서 간접 경험을 초보 팀장이나 관리에 관심을 두신 개발자 여러

분께 전해드리고자 소설의 형식을 빌린 이 책을 썼습니다.

프로젝트의 세계에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초보 팀장님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귀중한 시간을 내어 원고를 꼼꼼이 살펴봐주신 베

타리더 자바지기 박재성님, 이대엽님, 서창희님 고맙습니다. 끝으로 볼품

없는 원고를 멋진 책으로 탄생시켜 주신 위키북스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

의 말씀 전합니다.

신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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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덫에 걸린 프로젝트

덫에 걸린 프로젝트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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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간절함

이 커질수록 팔과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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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물살을 가르는 스트로크 소리가 경쾌했다. 나팀장은 바위섬의 위치를 확

인했다. 바위섬까지 십 미터 정도가 남았다.

팔을 앞으로 내저으며, 초등학교 때 부모님과 처음으로 바닷가에 놀러

갔던 일을 생각했다. 괭이갈매기를 처음 본 것도 그때였다. 부서지는 파도

에서 솟아나온 듯 번들거리는 하얀 머리, 잿빛 날개와 노란 부리는 검은

바위를 배경으로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영철아! 위험하니까 멀리 가지마!”

엄마 목소리가 파도에 묻혔다. 괭이갈매기가 앉은 바위로 건너뛰었다.

푸드득.

놀란 괭이갈매기가 건너편 바위로 날아갔다.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파도가 칠 때마다 발 밑에는 바닷물이 너울거렸다.

괭이갈매기는 날개를 들고 노란 부리로 날갯죽지를 쪼았다. 앞으로 세

걸음. 두 번째 발걸음을 옮길 때, 큰 파도가 밀려왔다. 발 밑에서 찰랑거리

던 바닷물이 무릎을 덮쳤다. 몸이 순식간에 옆으로 기울었다.

“영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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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엄마 목소리가 파도에 묻혔다. 물에 빠지면서 머리를 바위에

부딪혔다. 바닷물이 입 속으로 밀려들었다. 물맛이 알싸했다.

눈이 감겼다.

스트로크에 물보라가 쳤다. 그 사건에서 간신히 살아났다. 초등학교 때

수영대표였지만 그 일 때문에 바다로 놀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잠깐,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바다수영?

바닷물이 닿은 손끝이 근질거렸다. 마지막으로 수영했던 때를 생각했다.

발끝이 저려왔다. 바다에 빠지기 전날, 학교대표로 나가 우승했다. 이십

년 전 일이었다. 물살을 가르는 팔에서 힘이 빠졌다. 헤엄을 멈추고 바위

섬을 바라봤다. 족히 삼십 미터를 왔을 시간이지만, 바위섬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검은 바위섬에 하얀 파도가 부서졌다. 어떻게 이곳에 왔는

지 기억하려고 애썼다.

생각나지 않았다.

파도가 사라진 자리에 괭이갈매기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괭이갈매기

는 날개를 들고 노란 부리로 날갯죽지를 쪼았다.

괭이갈매기?

큰 파도가 괭이갈매기를 덮쳤다. 바위섬에 부서지는 파도 사이로 괭이

갈매기가 날아올랐다. 순간, 물 속에서 무언가가 오른 발목을 낚아챘다.

땅이 꺼지는 듯 온몸이 바다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아래를 쳐다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날렵했던 스트로크와 킥은 필사의 몸부림으로 바뀌었

다. 몸부림칠수록 물 속으로 더욱 끌려 들어갔다.

허우적거리는 발 끝 아래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이 펼쳐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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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때문에 참았던 숨을 터트렸다. 바닷물이 입 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알싸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간절함이 커질수록 팔과 다

리에서 힘이 빠졌다.

눈이 감겼다.

D+30 _ 월요일

반쯤 열린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췄다. 면티셔츠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젠장, 또 꿈이야. 그런데 지금 몇 시지?

바닥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8시 14분! 빌어먹을!

한 달 사이에 벌써 세 번째 지각이었다. 면티셔츠와 추리닝을 벗어 던지

고 방바닥에 팽개쳐 둔 리바이스 진과 파란색 폴로셔츠를 주어 입었다. 지

하주차장으로 재빨리 내려갔다.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엑셀러레이터

를 깊숙이 밟자, 섬세한 엔진의 떨림은 거친 타이어 마찰음으로 바뀌었다.

4차선 도로에 들어섰다.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9시 반에 능부

장과 만나기로 했다.

능부장이 가만히 안 있을 텐데. 미치겠다! 재수 없는 꿈만 꾸면 이 모양

이냐!

며칠을 두고 반복되는 악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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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가!

빠아~앙!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렸다. 앞의 택시운전사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쳐다보면 어쩔 건데?

창문을 열고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불을 붙였다. 담배연기를 창 밖으로

내뿜으며, 라디오를 틀었다.

“주말 잘 보내셨나요? 7월의 시작입니다. 1월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올

해도 반이 지났네요. 여름휴가 계획 세우시느라 정신 없으시겠지만, 신년

계획도 잘 지키고 계신지 살펴보세요. 그런 의미로 바쁜 월요일 아침이지

만 서둘러 달려 가기보다, 한걸음 쉬어가시는 것도 좋겠네요.”

쉬었다 가라고? 날아가도 모자랄 판이다.

라디오를 끄려다, 담뱃재가 무릎 위로 떨어졌다. 황급히 담뱃재를 털어

내다, 브레이크에서 발이 떨어졌다.

쿵!

택시기사가 뒷목을 부여잡고 내렸다.

“정신을 어디다 팔고 다녀.”

아! 정말 미치겠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탔다. 프로젝트 룸이

있는 4층 버튼을 누른 후 핸드폰의 시간을 확인했다. 10시가 넘었다.

이런! 능부장이 단단히 벼르고 있던데.

초조히 층 표시가 바뀌는 것을 바라봤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오호, 이게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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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부장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여태 기다렸잖아.”

능부장이 능글맞게 웃었다.

“팀장이 늦어서, 팀원 관리가 되겠어?”

“죄송합니다.”

“늦은 건 늦은 거고. 나 회의 있어. 진행률이나 말해봐.”

잠시 머뭇거렸다.

“90퍼센트 정도요.”

능부장은 손에 든 업무수첩을 펼쳤다.

“90퍼센트? 지난 주 월요일에도 90퍼센트라고 했잖아? 일주일 동안 팀

원들하고 소풍 갔다 왔어?”

불쑥 내뱉은 ‘90퍼센트’라는 말에 당황스러웠다. 지난 주에 김성실도 ‘90

퍼센트’라고 말했다.

지난 주 토요일, 주간 개발회의 시간. 프로젝트 룸에는 컴퓨터의 쿨링팬

돌아가는 소리만 낮게 퍼졌다. 두 달 전에만 해도 의자가 모자랐지만 지금

은 군데군데 의자가 비어 있었다. 박선생과 최악은 업무수첩에 뭔가를 적

었다. 까치집은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보다 눈이 마주쳤지만 시선을 피했

다. 뺀질이는 까치집 옆에서 졸고 있었다.

“김성실, 얼마나 됐어?”

“90퍼센트 정도요.”

“90퍼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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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수첩을 신경질적으로 넘겼다.

“지난 주에도 90퍼센트고. 그 전에도 90퍼센트라고 했잖아!”

뺀질이가 놀라 잠에서 깼다.

“버그가 줄지 않아서요......”

김성실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버그? 여기서 버그 안 잡는 사람 있냐?”

박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안다고 박선생, 당신은 버그 같은 거 안 만들잖아.

“내 말이 틀려? 버그 안 잡는 사람 있냐고?”

“없습니다.”

김성실이 고개를 떨구고 대답했다.

“90퍼센트라고 말한 게 벌써 3주째라고!”

“……”

“월요일 아침까지 끝내!”

“네.”

김성실 목소리가 더욱 작아졌다.

“대답은 잘한다.”

“나팀장! 뭘 생각해?”

능부장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아닙니다.”

“팀장 시킬 때는 잘 할거라 생각했는데. 요즘 하는 거 보면 영 아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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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나 지연됐다고. 얼마나 중요한 프로젝트인지 알어?”

“잘 압니다.”

“말은 잘해요. 앞으로 3개월밖에 안 남았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잘 하자. 응?”

능부장이 히죽거렸다.

“……”

엘리베이터 안에서 능부장이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새어 나왔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팀장은 아무나 하나……”

신물이 올라왔다. 한 달 전부터 속이 쓰렸다. 탕비실로 걸어갔다. 갓 내

린 원두커피 향이 복도에 퍼져 있었다. 커피잔에 원두커피를 가득히 따랐

다. 커피가 찰랑거리는 커피잔을 들어 커피 한 모금을 넘겼다.

‘앞으로 3개월밖에 안 남았어.’

능부장이 한 말을 생각하니 신물이 다시 올라왔다.

프로젝트 룸으로 들어갔다. 까치집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자고 있었다.

어제도 집에 안 갔어? 도대체 며칠째야.

박선생과 눈이 마주쳤다. 박선생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안녕하세요.”

뺀질이가 인사를 건네며 황급히 브라우저를 닫았다.

신입사원이라 아무것도 모른다지만 아침부터 싸이질이나 하고.

커피잔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D+30’이라는 글자가 노트북 화면

안에서 돌아다녔다. LCD화면 너머로 턱을 고이고 조는 김성실과 최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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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들어왔다.

이것들이 회사를 모텔로 아나? 참자, 참아. 며칠째 야근한 애들한테 아

침부터 무슨 잔소리냐.

노트북에 비밀번호를 신경질적으로 입력했다. 브라우저를 띄우다가 닫

아버렸다. 한가하게 뉴스 볼 시간도 없었다. 탐색기를 열고 소스코드 폴더

를 클릭했다. 프로젝트 팀에서는 버전 관리 도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소스

를 업데이트하자, 노트북에 보관하는 파일과 스무 개 파일이 다르다는 메

시지가 떴다. 파일 이름을 살펴봤다.

젠장! 어제 수정하던 파일도 있잖아. 마지막 변경자가 누구야? 김성실!

이거 도대체 몇 번째야.

“김성실!”

화내지 말자.

“이리 와봐!”

잠이 덜 깬 김성실이 비틀거리면서 걸어왔다.

“오셨어요.”

“이거 좀 봐라!”

김성실이 서 있는 방향으로 노트북을 홱 돌렸다. 김성실은 당황한 표정

을 지었다.

“이거 뭐야?”

“인쇄 기능에 있는 버그를 고치다 보니까, 팀장님 소스코드도 수정해야

돼서요.”

김성실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돌대가리야. 버그 고치라고 그랬지. 여기 저기 쑤시고 다니라고 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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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대가리? 이젠 별말이 다 튀어나오는군.

김성실의 얼굴이 붉어졌다.

“오늘까지 고쳐놓으라고 하셔서, 수정하다 보니까.”

“물어보고 수정하든지!”

“어제 저녁에 퇴근하시고 안 계셔서요. 전화로 여쭤보기도 그렇고.”

“말끝마다 변명이나 하고. 프로젝트는 지연돼서 미치겠는데, 여기저기

에 똥싸놓고 돌아다니면 어쩌자는 거야.”

김성실의 눈이 충혈되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그만 하자.

“원상복구 시켜놔.”

“……”

“머리 좀 써. 폼으로만 달고 다니지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쳐다보던 팀원들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젠장,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직 오전이었지만 여름햇살이 따가웠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

였다. 입 밖으로 뿜어져 나온 담배연기는 파란 하늘에 녹아버렸다.

갈수록 이 모양이냐? 되는 건 없고 느는 것은 짜증뿐이고. 소스충돌,

개발하다 보면 일상다반산데.

괜히 김성실에게 화를 낸 것 같아 미안했다.

담배 끝에 붙은 담뱃재를 떨어냈다. 회색의 담뱃재가 눈처럼 흩날렸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때였나? 드림팀에서 마지막 회식을 했던 게. 회사 사

람이 모두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던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드림팀.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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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그때가 더 힘들었는지도 몰라. 그때는 간디 팀장님이 계셨지.

간디 팀장님의 온화한 미소가 떠올랐다.

간디 팀장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나처럼 이렇게 망쳐놓지는 않으셨

겠지.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냉각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였다. 펜트하

우스. 한동안 잊고 지낸 펜트하우스가 생각났다. 냉각탑 밑에서 바라보

는 야경이 끝내주었기 때문에, 냉각탑 아래를 펜트하우스라고 불렀다. 펜

트하우스는 드림팀원들끼리만 통하는 은어였다.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면,

가끔 맥주나 탄산음료를 들고 펜트하우스에 모였다.

마지막 회식이 끝날 무렵, 누군가 펜트하우스에서 불꽃놀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펜트하우스에서 폭죽 한 무더기를 하늘로 쏘아 올렸다. 하얀 눈

과 불꽃이 섞여서 내렸다. 화려한 만큼 아쉬움이 깊었다.

간디 팀장님……

다시 한 번 뜨거운 바람이 불어왔다. 냉각탑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요란

한 소리를 내고 돌아가는 냉각탑 아래가 휑하니 넓어 보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사무실에 마시지 않은 커피가 생각났다. 식어

버린 커피는 질색이었다. 탕비실로 향했다. 커피가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커피를 잔에 따라버렸다. 은은한 원두 커피 향이 퍼졌다. 진한 커피

향에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프로젝트 룸에 들어갔다.

“나팀장.”

박선생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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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실이가.”

“뭐?”

성실이가 보이지 않았다. 컴퓨터도 꺼져 있었다.

“관둔다고 부장이랑 면담했다는데.”

빌어먹을. 꿈이 거지같더니.

“성실이는 어디에 있는데?”

메이는 목소리를 간신히 가다듬었다.

“조금 전까지 여기에 있었는데, 가방 들고 나가버렸어.”

“나가는 걸 가만히 뒀어?”

“애도 아니고, 묶어놔?”

박선생이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모두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다.

상갓집 분위기도 이것보다 낫겠다.

수화기를 들고 김성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떨어졌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전화까지 꺼뒀어.

김성실에게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 노트

북에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사내메신저의 대화창이 열렸다. 능부장이었다.

- 잘 한다. 나팀장.

- 네?

- 김성실이 관둔다고 말했다.

- 들었습니다.

- 완전히 남 이야기하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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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이야말로 강 너머로 불구경하는 사람 같았다.

- 어떻게 할 건데?

어떻게 대답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 성실이하고 이야기해보겠습니다.

- 팀장이니까 알아서 하겠지만, 걱정돼서 그런다.

‘알아서 잘하겠습니다.’ 라고 입력했다가 지워버렸다.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말로만 하지 말고 제대로 해봐.

능부장이 대화창을 나가버렸다. 핸드폰을 들었다. 김성실에게 어떤 내

용의 문자를 보내야 할지 몰랐다. 망설이다가 ‘연락바람’이라는 간단한 문

자 메시지를 남겼다.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커피잔들이 눈에 들어왔다.

두 번째 커피도 어느새 식어버렸다.

식어버린 커피, 식어버린…… 열정.

간디 팀장은 열정이 식지 않게 항상 조심하라고 말했다. 커피잔을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 커피 향은 사라지고 쓴맛만이 올라왔다. 간디 팀장이

그리웠다.

밤 10시 반. 일일 점검회의가 끝났다. 팀원들이 하나 둘씩 피곤한 표정

으로 프로젝트 룸을 빠져나갔다.

까치집과 둘만 남았다. 밤 10시에 회의라. 미친 짓이지. 까치집이 커피잔

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밤 10시 일일 점검회의는 능부장이 시킨 일이었다.

3주 전. 밤 9시가 넘어 능부장이 프로젝트 룸에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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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전부야?”

“네?”

“남은 사람이 나팀장하고 까치집뿐이냐고?”

“네.”

까치집이 슬그머니 일어나 프로젝트 룸을 빠져나갔다.

“관리를 안 하는 거야, 못하는 거야?”

“……”

“일주일이나 지연되고 있는데, 다들 한가하게 집에나 가고. 잘한다. 잘

해.”

“어제 늦게까지 일해서요.”

“그러니 일정이 지연되지. 젊은 사람들이 며칠 늦게 간다고 어떻게 돼?”

능부장은 히죽거렸다. 어두워진 창 밖을 쳐다보았다. 창문에는 능부장

의 뒷모습과 기다란 회의탁자가 비쳤다. 능부장이 회의탁자에 걸터앉자,

아랫배 때문에 드레스셔츠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무슨 소리하는지 알겠어?”

능부장은 공중에 떠있는 왼쪽 다리를 흔들었다. 능부장의 다리는 담

을 넘어가는 능구렁이의 꼬리처럼 느물거렸다

“여보세요! 내가 무슨 소리하는지 알겠냐고?”

“무슨 말씀이신지……”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정말 모르는 거야?”

“일정 지연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다음 주 안으로 어떻게든 끝내겠습니

다.”

“쉴 때 쉬고 잘 때 자고, 잘 끝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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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부장은 바지 밖으로 튀어나온 드레스셔츠를 매만졌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최선? 최선 좋~지. 프로젝트 관리는 최선으로 되는 게 아니거든. 이십

년 경력에서 하는 말이야. 하~암”

능부장은 하품을 크게 했다. 주름이 내려앉은 능부장의 눈가에 눈물

이 맺혔다. 능부장은 회의탁자에서 뛰어내려, 눈물을 닦아냈다.

“프로젝트는 당신 혼자 최선을 다한다고 안 끝나. 팀원들하고 함께 해

야지. 피곤하다고 집에 보내고, 아프다고 쉬게 하고. 다음 주까지 안 끝나

면 어떻게 할 건데. 그때도 최선을 다했다고 할래?”

너무 하는 거 아냐? 왜 지연됐는지 몰라?

프로젝트 완료 한 달 전, 능부장은 팀원 두 명을 다른 프로젝트로 빼내

갔다. 사활이 걸린 K프로젝트에서 개발자가 필요하다는 핑계였다. 강력하

게 항의했지만, 김이사의 지시라는 말만 들었다.

능부장이 다시 히죽거렸다.

짜증이 밀려왔다.

“지연된 게 제 책임만은 아니잖아요. 부장님이 K프로젝트로 팀원들만

빼돌리지 않으셨어도……”

능부장이 한 발짝 다가왔다. 능부장의 얼굴에서 느글거리던 웃음이 사

라졌다.

“난 그러고 싶어 그랬어? 회사가 원하잖아. 프로젝트가 제때에 안 끝나

면 피 보는 게 누구냐고? 당신이 아니라 나란 말이야.”

능부장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소름이 돋았다.

“부장으로서, 아니 인생선배로서 충고하는데, 관리자는 최선만 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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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안 돼. 회사는 관리자에게 관리하라고 비싼 월급 주는 거라고. 알겠어?”

능부장은 드레스셔츠를 바지 속으로 넣으며, 벨트를 조였다.

“최선을 다한다니까, 관리비법 한 가지 알려주지. 아니 부장으로서 업

무지시야. 내일부터 밤 10시에 일일 점검회의를 하라고.”

“밤 10시에 회의를요?”

“말 안 끝났어. 밤 10시에 일일 점검회의를 하고 나서 보고하라고. 보고

양식은 마음대로 하고. 하룻동안 뭘 했는지 보고해. 며칠 지나면 고마워

할걸. 보고서는 늦어도 밤 11시까지 메일로 쏘고.”

“……”

“왜 대답이 없어? 내가 너무 친절해서 감동받았어?” 능부장이 히죽거렸

다. “괜찮아, 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돼.”

능부장은 꼬리를 감춘 채 프로젝트 룸을 빠져나갔다.

어쨌든 3주가 지났다. 능부장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팀원들

을 회사에 붙잡아 두는 데 성공했다.

성공? 집에 안 가는 게 성공이야? 웃기는군.

까치집이 커피를 가득 채운 커피잔을 들고 프로젝트 룸으로 들어왔다.

“오늘도 밤새려고?”

“조금만 더 하고 들어가려고요. 성실이랑은 연락됐나요?”

“문자 남기기는 했는데. 연락이 안 돼.”

까치집은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봤다.

자리로 돌아왔다. 이리저리 불려 다니느라고 코드에는 손도 못 댔다. 버

전 관리 도구의 충돌메시지 창을 열었다. 마지막 변경자는 김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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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이가 짠 마지막 코드가 되는 건가?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자.

내 컴퓨터에 저장된 소스를 김성실의 코드로 덮어썼다. 소스가 업데이

트되었다는 메시지가 출력됐다.

의자에 기대어 창에 비친 모습을 바라봤다. 창에 비친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프로젝트 룸에는 까치집이 타이핑하는 소리가 간간히 울려 퍼졌다.

D+31 _ 화요일

샤워를 마치고 시계를 봤다.

새벽 1시! 벌써 며칠째냐?

피곤한데 잠은 안 왔다. 컴퓨터를 켰다. 붉은 색 전원 LED가 들어오더

니 곧 파란색 하드드라이브 LED가 깜박거렸다. RSS 리더기를 열었다. 며

칠 동안 접속하지 않았던 탓에, 리더기에는 읽지 않은 포스트가 천 개가

넘었다. 타이타닉프로젝트에서 개발해야 하는 기능개수보다 훨씬 많았다.

읽지 않은 포스트를 모두 읽은 상태로 변경했다.

이렇게 쉽게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비어 있는 폴더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김성실이 생각났다.

성실이한테 심했지. 그렇다고 관둬? 성실이 자식 너무 무책임한 거 아냐.

RSS 리더기에 ‘새로운 포스트가 등록되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떴다.

‘구루의 일기’라는 블로그에서 등록된 포스트였다. 포스트의 제목은 ‘풋내

기 관리자’였다.

풋내기 관리자?

포스트를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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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기관리자

풋-내기

[푼―]<명사>①‘경험이없어서일에서투른사람’을홀하게일컫는말.

②‘마음이가라앉지못하여툭하면객기를잘부리는사람’을얕잡는말.

-야후사전에서

연공서열이파괴된지오래되었지만,여전히대기업에서는과장급이되면진

급교육이라는명목아래‘후배사원코칭하기’와‘직속상사보좌하기’등을배

웁니다.

물론능력이뛰어난사람들은일주일동안받은교육으로후배사원이회사

와부장에대한불평불만을늘어놓을때잘다독거려서업무에정진하게

돕고,직속상사가말도안되는일을시킬때적절한협상과실행력으로결

과를낼수있습니다.

정말일까요?

아니요.사실관리는기술이자예술입니다.기술은교육과책으로배울수

있겠지만,천재가아니라면모자란예술적인재능은피나는경험으로보충

해야합니다.

그러나현실은치열한전쟁터입니다.병사한명이저지르는실수가전투의

승패를결정한다면,장교에해당하는관리자의실수는전쟁의승패를판가

름낼수있습니다.이런삶과죽음이결정되는전장에서훈련소를막나온

풋내기장교에게지휘권을맡길순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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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라니너무살벌하다고요?잘못된관리때문에힘들었던경험을떠올

려보세요.개념없는관리자들때문에이산저산으로끌려다니다지쳐집

에가버린뛰어난동료들이그리우시죠?잘못된관리는그무섭다는호환마

마보다더심각한병폐를일으킵니다.

이렇게관리자역할이중요한데,이글을읽으시는사장님들어디겁나서풋

내기관리자에게관리를맡기실수있을까요?앞서얘기했듯이,관리의절

반은기술이자절반은예술입니다.즉,풋내기팀장을위대한관리자로키우

는것은오할의교육과오할의경험입니다.천부적인관리자를제외하면,

지금의훌륭한관리자도경험이없는풋내기시절이있었습니다.모자란경

험을실전관리로보충한셈이죠.

결국모순덩어리글같지만,풋내기관리자는필요악(?)입니다.

조직이성장하려면관리자는지속적으로공급되어야합니다.물론외부에서

이미검증된관리자를영입하면안전할겁니다.하지만현실적으로관리자

를모두외부에서검증하고영입한다는것은불가능하며좋은것만이아닙

니다.

이런이유로‘경험이없어서서툰’풋내기관리자는조직에서반드시필요합

니다.문제는이런풋내기관리자들의마음가짐입니다.팀원들이좋은결과

를내기위해서필요한것은무엇인지파악하려고노력하고,책임을미루는

것이아니라책임을나누려는마음만있다면,경험은미천하고,실수투성이

겠지만배우면서어느정도성과를낼수있습니다.

‘경험이없어서서툰’풋내기관리자면서‘마음도차분하지못해객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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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는’풋내기관리자라면,팀원들을이산저산으로끌고다니는멍청한

관리자를뛰어넘어팀원들을지옥문앞으로안내하는사악한관리자가될

겁니다.

경험이많은관리자라도이런‘객기를부리는’풋내기관리자가될수있기에

항상조심해야합니다.

실수투성이겠지만 배우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낸다고? 꿈 같은 소리하

고 있네. 그럼 나는 뭐냐?

기분이 언짢아졌다. 답글 창에 타이핑을 했다.

- 경험도없고실수까지하는데,어느정도성과를낼수있다는말에동의하

지못하겠네요.프로젝트는지연될대로돼버리고팀원은턱없이부족한데,

풋내기관리자가어느정도성과를낼수있을까요?풋내기관리자가성과

를내려면,회사가도와줘야합니다.그렇지않으면풋내기관리자는풋내기

일뿐입니다.지친풋내기관리자가.

메일 입력창에 회사 메일주소를 입력하고, 작성완료 버튼을 클릭했다.

지친 풋내기 관리자라, 남의 블로그에 푸념이나 하고. 뭐 하는 짓이냐?

목이 말랐다. 냉장고를 열고 맥주캔 하나를 집어 들었다. 창 밖으로 보

이는 오피스텔에는 불이 드문드문 켜져 있었다. 창문을 열었다.

치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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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을 따자 하얀 거품이 올라왔다. 재빨리 캔을 입에 대고 맥주 한 모금

을 넘겼다. 맥주는 쓴 트림이 되어 올라왔다.

벌써 5개월이나 지났네.

원래 팀장이 빌어먹을 K프로젝트를 맡으면서 타이타닉프로젝트의 팀장

이 되었다. 능부장은 뒤를 확실히 봐주겠다는 말로 꼬셨다.

능부장을 믿은 내가 바보지.

야옹. 야옹.

골목에서 고양이가 울어댔다.

팀장이 된 첫날, 박선생, 까치집, 최악, 김성실 모두가 좋아했는데. 지금

은 뭐지? 간디 팀장님께서 하시는 걸 보면 쉬워 보였는데. 정리되는 건 없

고 일은 점점 꼬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

르겠다. 성실이 건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남은 맥주를 마셔버렸다. 빈 캔을 찌그러트려서 창 밖으로 힘껏 던졌다.

맥주캔은 얼마 날아가지 못하고 어둠 속에 묻혀 버렸다.

드문드문 켜있던 불빛들이 더욱 적어졌다. 골목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거리에 내려앉은 어둠보다 프로젝트의 끝이 더욱 깊어

보였다

핸드폰 모닝콜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면티셔츠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

다.

“빌어먹을.”

바다에 빠지는 악몽을 다시 꿨다.

몇 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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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놓인 핸드폰을 보았다. 다행히 지각은 아니었다. 옷을 벗고 화장

실로 향했다.

쏴아악.

머리 위에 쏟아지는 찬물이 등을 타고 내려와 말라붙은 땀을 씻어버렸

다. 으스스했지만,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프로젝트 룸에 들어서자마자, 김성실의 빈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까치집이 인사했다.

“성실이는?”

“출근 안 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성실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정말로 관둘 생각인가?

“까치집, 성실이한테서 연락 왔어?”

“아니요.”

화면보호기에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나서, 소스파일이 들어 있는 폴더를

열었다. 김성실이 마지막으로 수정한 파일을 열었다. 소스파일을 들여다

봤지만 집중이 안 됐다. 턱을 고인 채 멍하니 바탕화면을 바라봤다.

새로운 메일이 왔다는 알림 메시지가 떴다.

보낸 사람은 능부장. 제목은 스펙 변경 건? 이게 무슨 헛소리야. 뭘 바

꿔?

맥박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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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모듈을 웹 기반으로 바꾸라고? 뭐 하자는 거야!

수화기를 들고 능부장의 내선번호를 눌렀다.

“능지악입니다.”

침착하자.

제목:전달-스펙변경건

보낸사람:능지악부장

받는사람:나영철대리

-------------------

고객사에서 프로젝트 스펙을 변경 요청함.

나팀장은 아래 메일을 참조하여, 프로젝트 스펙을 변경할 것.

<추신> 프로젝트 완료일은 변동 없음.

제목:스펙변경건

보낸사람:미진수차장

받는사람:능지악부장

-------------------

첨부한 파일을 참조하여, 프로젝트 스펙을 변경해 주시길 바랍니다.

* 변경요청 개요

클라이언트-서버 기반의 관리자 모듈을 웹 기반의 관리자 모듈로

변경할 것.

[첨부파일]

변경요청서.doc

스펙 변경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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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철입니다.”

“왜?”

“찾아 뵙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전화로 이야기하면 안 돼?”

안 돼. 전화로 말하면 할 말도 못하잖아.

“얼굴 뵙고 말씀 드리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아침부터 무슨 할 말이 있다고. 그럼 지금 당장 건너와.”

수화기를 내려놓자, 맥박이 더욱 빨라졌다.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부장님 좀 만나고 올게.”

“다녀오세요.”

뺀질이가 말했다.

능부장은 잠깐 기다리라고 눈짓했다.

“하하. 알겠습니다. 미차장님 요청이신데. 당연히 들어드려야죠. 벌써 나

팀장에게 지시해 두었습니다. 식사라도 한번 하시죠. 네, 그럼 들어가세요.”

능부장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뭔데 아침부터 보자는 거야? 잠깐, 그 전에 내가 보낸 메일 봤어?”

“봤습니다. 부장님도 아시겠지만, 몇 주 사이 바뀐 스펙 때문에 팀원들

이 계속 야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자고, 칭찬해 달라고?”

“이번에 바뀐 스펙을 반영하면 프로젝트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는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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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부장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젠장. 또 시작이야.

“스펙을 못 바꾸겠다고 아침부터 협박하는 거야?”

“그런 것은 아니고 3개월 안에 끝낼 수 없다는 것을……”

능부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끊었다.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돼? 스펙이 바뀌든 넘쳐나든 상관없이 프로젝

트는 3개월 안에 끝내야 해. 그리고 힘들다고 스펙을 반영 안 해?”

겨드랑이 사이로 식은 땀이 맺혔다.

“미차장이 원하는 것을 반영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손바닥 뒤집듯이 스

펙을 완전히 바꿨는데, 일정도 맞추기란……”

능부장이 손사래를 치며 일어났다.

“자네, 요즘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일정 안에 못 끝낸다고 하는데, 노력

이나 해보고 하는 소리야? 팀장이면 안 돼도 해보려는 맛이 있어야지.”

능부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능부장이 인상을 쓰며 핸드폰을 받았다.

“능지악입니다. 네, 이사님. 지금 올라가겠습니다.”

능부장이 전화를 끊었다.

“무슨 전화인지 알아? 임원회의에서 타이타닉프로젝트 보고하란다. 당

신 때문에 김이사한테 잔소리 듣게 됐잖아.”

능부장의 시선을 피했다.

“타이타닉프로젝트? 이름이 그 따위니 꼬락서니가 그렇지.”

능부장은 문으로 걸어갔다.

“부장님!”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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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차장을 만나 설득해 보겠습니다.”

“설득한다고? 설득될 문제면 내가 이미 했지. 그 시간에 코드 한 줄이라

도 더 짜.”

쾅!

능부장이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냉각탑이 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옥상 난간에 기댄 채 하늘을 올려

봤다.

빌어먹을, 능부장.

능부장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생존해왔다. 겉으로는 간디 팀장

이 J프로젝트 실패를 책임지고 물러난 것 같지만, 모든 게 능부장이 꾸민

짓이었다.

간디 팀장님도 못 버티셨는데.

능부장이 목을 조이는 듯했다. 속이 울렁거렸다.

스펙을 반영해? 팀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아니면 미차장을 설

득할까? 간디 팀장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간디 팀장이 떠나는 날이 생각났다. 간디 팀장의 환송회 자리에서, 고

개를 들지 못했다. 간디 팀장은 축 처진 내 손을 잡았다. 창백한 손끝에서

간디 팀장의 온기가 느껴졌다.

“나팀장이라면, 처음 맡는 팀장이지만 잘해 낼 거야.”

간디 팀장의 격려에 목이 메였다.

“기운 내,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날 텐데.”

“네, 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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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팀장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 간디 팀장과 연락이 끊겼다.

간디 팀장이 보고 싶었다. 냉각탑 아래에 볕이 들기 시작했다. 장마철이지

만 며칠째 비가 오지 않았다.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었다. 따가운 햇살을

뚫고 냉각탑의 열기가 전해졌다. 더위 탓에 생각이 더욱 정리되지 않았다.

프로젝트 룸으로 들어갔다. 뺀질이가 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뺀질!”

뺀질이가 놀라 잠에서 깼다. 화를 누르며 말했다.

“맨날 자? 세수하고 와.”

뺀질이가 프로젝트 룸을 나갔다. 최악과 눈이 마주쳤다.

최악 자식! 뺀질이 멘토면서 뭐 하는 거야? 가르쳐서 일 좀 하게 만들

라고 했더니, 매일 졸게만 놔두고. 최악에게 한마디 해? 참자. 성실이 건도

있는데.

자리에 앉아 노트북에 로그인을 했다. 새로운 메일이 2통 와 있었다.

한 통은 옛 동료 프로세스 박이 보낸 메일이었다. 첫째 아이 돌에 초대

하는 내용이었다. 프로세스 박은 간디 팀장이 회사를 떠날 때 그만두었다.

함께 드림팀에서 개발을 했지만, 컨설팅을 하고 싶다며 대형 SI 회사로 자

리를 옮겼다. 프로세스 박은 현재 미차장 회사의 프로세스 개선 프로젝트

에 참여하고 있다.

프로세스 박은 잘 살고 있을까? 그런데 옮기고 나서도 미차장 회사 프

로젝트냐? 업계가 좁긴 좁다.

다른 메일은 ‘구루’라는 사람이 보냈다.

구루?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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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답글을보고보냅니다.

보낸사람:구루

받는사람:나영철대리

-------------------

‘구루의 일기’ 블로그를 운영하는 구루입니다. ‘풋내기 관리자’님이 남

기신 답글을 읽어보니, 프로젝트 관리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시는 듯

하네요.

부족하지만 제 경험이 ‘풋내기 관리자’님께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이 들어, 메일을 보냅니다.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저는 요즘 오후 5시부터 해질 때까지 마로니

에 공원, 은행나무 벤치에서 책을 읽습니다. 풋내기 관리자님의 이야

기를 듣고 싶습니다. 시간 날 때 들러주세요.

스펙 변경 건

구루? 웃기고 있어. 댓글 하나 읽고 뭘 안다고 참견이야. 오지랖도 넓다.

모르는 사람에게 속사정을 들킨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 구루에게서

받은 편지를 삭제했다. 뺀질이가 프로젝트 룸으로 들어왔다.

“팀장님!”

“왜?”

“성실 선배한테 방금 전화가 왔는데요.”

“뭐라고 그래?”

“이번 주 토요일에 사표를 내러 온다고, 짐 좀 챙겨달라고 하네요.”

김성실 정말 관두려고?

“어떻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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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얘기하자.”

뺀질이가 자리로 돌아갔다.

까치집이 불안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까치집의 시선을 외면했다.

미차장이 2주 전에 스펙만 바꾸지 않았어도, 성실이한테 그렇게까지 안

했을 텐데.

2주 전 일이 떠올랐다.

최악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말도 안 돼요. 그걸 어떻게 반영해요?”

까치집과 김성실은 눈치를 살폈다.

“최악, 너한테 하라고 안 했다.”

“나팀장, 누가 하고 안 하고는 문제가 아니잖아.”

박선생이 차분히 말했다.

“그럼?”

“리포팅 기능을 반영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해도 미차장이 또 스펙을 바

꾸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잖아.”

“누군 스펙을 바꾸고 싶어서 바꿔? 빌어먹을 독소조항 때문에 바꿔야

하잖아.”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누가 할래?”

“나팀장! 그렇게 성급하게 정하지 말고, 미차장을 만나 더 설득해봐.”

박선생이 매섭게 쏘아붙였다.

“말해봤자야.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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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프로젝트가 올해 안으로 끝나지 않을지도……”

최악이 말끝을 흐렸다.

“최악, 악담할래? 너한테 안 시킨다고 했잖아!”

까치집과 김성실 쪽을 바라봤다.

“김성실, 인쇄 기능 개발 다 됐지?”

“개발은 끝나가지만, 버그가 많이 남았는데요.”

“인쇄 기능하고 관련이 있으니까, 성실이가 리포팅 기능을 맡아라. 까치

집이 도와주고.”

김성실이 당황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직 디버깅할 게 많은데요.”

“알았어, 일단 해봐. 뺀질이도 졸지만 말고 도와줘.”

뺀질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독단적으로 정하면 돼? 미차장을 설득 못하겠으면, 3개월 안에

끝낼지 파악 정도는 해야 되잖아.”

박선생이 차분하게 말했다.

잘났다, 박선생.

“박선생이나 최악은 지금 하던 거나 잘 해. 둘한테 안 시킬 테니. 일들

해.”

박선생과 입씨름을 피하려고, 프로젝트 룸을 나왔다.

“팀장님.”

까치집이었다.

“제가 성실이를 만나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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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됐어?”

“아뇨. 어디 사는지 아니까, 찾아가보려고요.”

“그럴래?”

“저녁에 만나 볼게요. 그리고 성실이가 개발하고 있는 리포팅 기능 말인

데요.”

“왜?”

“리포팅 기능 때문에 성실이가 부담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맡은 모

듈은 개발이 거의 끝났으니까, 제가 맡는 게 어떨까요?”

까치집은 입사하고 나서 드림팀에 배치됐다. 나는 까치집의 사수를 맡

았다. 드림팀 인연 때문에 둘은 가까워졌고, 까치집은 나를 따라 타이타닉

프로젝트까지 참여하게 됐다.

“리포팅 기능은 성실이를 만나보고 결정하자.”

까치집이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까치집!”

“네?”

“……고맙다.”

까치집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성실이가 돌아와도 이 상태로는 힘들어. 까치집이 리포팅 기능을 맡는

다 해도, 이번 스펙은 누가 맡아?

노트북 너머로 팀원들을 바라봤다. 모두가 지친 표정이었다.

팀원들한테 스펙을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살행위야.

속이 쓰렸다.

안 되겠어, 미차장을 만나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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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DMH의 나영철입니다.”

수화기 넘어 미차장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장님, 오늘 시간 괜찮으시면, 찾아 뵙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초조하게 미차장을 기다렸다. 미차장이 접견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야.”

“스펙 변경 건 때문에 말씀 드리려고 왔습니다.”

“관리자 모듈 변경하는 거? 실력 좋은 나팀장에게는 간단한 일이잖아.”

미차장이 능글맞게 웃었다. 목이 메였다.

“스펙 변경 때문에 일정이 많이 지연됐습니다. 이번에 스펙이 바뀌면 3

개월 안에 프로젝트가 끝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나팀장도 잘 알겠지만 요구사항이란 바뀌기 마련이잖아.”

“저희 문제이긴 하지만, 팀원 하나도 관두겠다고 하고. 아무튼 여러 가

지로 상황이 나쁩니다. 이번 건은 다시 고려해 주시면 안 될까요?”

구걸하듯 이야기하는 자신이 비굴하게 느껴졌다.

“나팀장 사정도 어렵지만 나도 골치 아파. 프로젝트는 지연돼 위에서 쪼

지. 다른 부서에서 웹이 아니면 못 쓰겠다고 난리 치는데, 안 쓰겠다는 걸

만들 수 없잖아?”

“차장님께서 다른 부서를 설득해 보시면 어떨까요?”

“자꾸 왜 그래? 내가 구구절절 그쪽 사정 들어줄 필요 없잖아.”

미차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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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23조, 잊었어?”

“아니요.”

목소리가 작아졌다.

“작년에 김이사랑 능부장이 통사정해서 일 만들어줬더니. 잘 할 생각은

안 하고 사정이나 봐달라는 거야?”

“23조 때문이 아니더라도,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경해 드리는 게

맞습니다.”

“잘 아네.”

미차장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독소조항…… 아니 23조에 따라 3개월 안에 프로젝트가 끝나지 않으면,

저희 회사나 차장님 회사도 곤란해지니까요. 원래 스펙대로 프로젝트를

끝내고, 유지 보수하면서 요청하신 것을 반영해 드리면 안 될까요?”

“유지보수? 말은 좋아. 그런데 검수확인서에 도장 찍어주면 콧등도 안

비추잖아.”

“저희는 다릅니다.”

“난 계약서만 믿어.”

미차장이 시계를 쳐다봤다.

“나팀장, 요청한 대로 반영해. 약속이 있어서, 나 먼저 가.”

미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접견실을 빠져나갔다.

미차장이 떠나고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영철!”

프로세스 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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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잘 지냈지? 아침에 보낸 메일 봤다. 첫째가 벌써 돌이라고? 축하

해.”

프로세스 박이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로 왔어?”

“프로젝트 때문에, 미차장 좀 만났어.”

“프로젝트는 잘 되고?”

미차장이 한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영철, 뭘 생각해? 프로젝트 잘 되냐고?”

“어…… 미안하다. 내가 요즘 이렇게 정신이 없다. 프로젝트?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한 달 정도 지연됐는데, 미차장은 2주에 한 번 꼴로 스

펙을 바꾸지, 팀원 하나는 관두겠다고 출근도 안 하고 있어. 거기다 능부

장이 상관인데 말 다했지 뭐.”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괜히 물어본 것 같네.”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답답한 내 얘기는 그만하자. 새로운 일은 마음에 들어?”

프로세스 박이 커피잔을 매만졌다.

“…… 별로.”

“무척이나 하고 싶던 일 아니었어?”

“일은 마음에 드는데, 그 외 것이 눈에 들어오네.”

“그 외 것?”

“내 시간이 너무 없어. 애 크는 것도 못 보고.”

“시간 지나면 조금 나아지겠지?”

“새로운 일에 적응하면 나아지겠지만,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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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되고. 컨설팅을 하면 을이라는 딱지 좀 뗄까 싶었는데, 똑같아. 갑을

관계도 신물이 나.”

프로세스 박은 들고 있던 커피잔을 단숨에 비웠다. 프로세스 박이 비운

커피잔을 쳐다보았다. 비어 있는 잔이 유난히 초라해 보였다.

“아내가 직장을 다시 구했거든. 아내가 힘들어도 공부해보라고 하네.”

“공부?”

“의대편입하고 싶다고 지나가듯 말했는데, 아내가 그걸 담아뒀나 봐. 뒷

바라지하겠대. 몇 년 동안은 어렵겠지만 어떻게든 졸업하면 조금 나아질

것 같아서.”

“프로세스 박이야 항상 성실하잖아. 뭘 해도 잘 할거야. 그만 회사 들어

가봐야겠다.”

“시간되면 돌잔치에 와서 밥 먹고 가.”

“그래.”

프로세스 박과 악수를 나눈 후 헤어졌다. 올 때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

졌다. 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 능부장이 회전문을 통해 들어오는 게 보였

다. 능부장과 시선이 마주쳤다.

“……부장님.”

“여기서 뭐해?”

능부장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미차장님을 만났습니다.”

“그럴 시간 있으면 코드 한 줄이라도 더 짜라고 했잖아. 어떻게 됐는데?”

“요청한 대로 반영해 달라고 합니다.”

“쪽 팔리게. 어서 들어가 일이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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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님은 무슨 일로?”

“신경 끄고, 자네 일이나 잘해.”

능부장이 고객 접견실로 들어갔다. 회전문을 밀고 거리로 나왔다. 다섯

시가 넘었지만 여전히 더웠다. 오후 햇살이 내리쬐는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보였다.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

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회사로 돌아가 팀원들에게 스펙 변경을 지시해야

된다는 게 너무나 끔찍했다.

그냥…… 관두고, 프로세스 박처럼 새롭게 시작할까? 비전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일은 재미있는데. 아니면 회사를 옮겨? 팀장이 되자마자 중도하

차라? 최선을 다해 커리어를 쌓았는데 여기서 무너질 수 없어.

무더운 긴 하루가 지나고, 거리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일단 회사

로 들어가자. 일일 점검회의도 있잖아. 고개를 들고 가까운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마로니에 공원 150m’

마로니에 공원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아침에 받은 ‘구루의 메

일’이 생각났다.

몇 시지?

손목시계는 6시 반을 가리켰다.

나영철! 무슨 생각하는 거야? 생판 모르는 사람을 만나서 뭘 하려고.

표지판 아래에서 머뭇거렸다.

마로니에 공원은 오랜만이었다. 공원에서 공연이 열리고 있어 조금 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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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러웠다.

정말 있을까?

은행나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잎이 무성한 은행나무 아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을 찾았다. 주위가 어수선했지만, 40대 중반

으로 보이는 남자가 책을 읽고 있었다. 남자에게 다가갔다.

“혹시 구루의 일기……”

책을 읽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온화하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얼굴이

었다.

“풋내기 관리자님?”

“네, 나영철이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구루가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조용한 곳으로 옮겨 이야기할까요?”

구루가 물었다.

“시원하니 여기도 좋은데요.”

구루와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저처럼 답글을 남기는 사람에게 항상 메일을 보내시나요?”

“좀 웃긴 얘기지만, 글을 읽어보면 쓴 사람의 에너지가 느껴져요.”

“네?”

“영철씨 글을 읽었을 때 도움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설마 도 닦으시는 분은 아니시죠?”

“도요? 하하하. 제 말투가 그랬나요? 전 조그마한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철씨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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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소프트웨어 개발팀을 관리하고 있습니다만, 팀장이라고 불릴 자

격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미리 짐작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답글을 보니 힘들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처음 만나 개인사정을 말하는 게 어렵겠지만, 실마리를 주면

제가 도와드릴 게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디서부터 말씀 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뻔한데 답이 보

이지 않네요.”

구루는 들고 있던 책을 벤치에 내려놓았다.

“사람들은 해답을 찾기에 몰두해 해답보다 더 중요한 걸 잊죠.”

구루가 말을 끊었다.

“해답보다 중요한 게 있나요?”

“있답니다. 바로 문제죠.”

“문제요?”

고개를 돌려 구루를 바라봤다.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실력을 인정받은 똑똑한 개발자가 있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의 팀장이 관두자, 이 개발자는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

았지만 팀장으로 임명되었죠. 개발자는 처음으로 팀을 맡았습니다.

초보 관리자가 프로젝트를 맡고 보니, 일정이 무척이나 지연되어 있었죠.

프로젝트 문서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상황을 파악하려면 팀원들이 하는

말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습니다.

초보 관리자는 프로젝트에 있는 문제점을 제거하려고 팀원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팀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빌드 머신이 너

무 느려 개발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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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관리자는 팀원들이 한 말만 믿고, 상관에게 가서 빠른 빌드 머신

이 필요하다고 보고했습니다. 상관은 초보 관리자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비싼 빌드 머신을 제공해줬죠.

초보 관리자는 새로운 빌드 머신을 설치하고 나면, 개발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달리 개발속도는 빨라지지 않았죠.”

“왜 그랬나요?”

“문제가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이죠. 개발자가 빌드 머신에 소스를 올

려 컴파일하고 테스트하는 속도는 줄었지만, 개발자가 자신에게 할당된

모듈만 개발하느라고 인터페이스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즉, 빌드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보다 각자 개발한 것을 통합하는 데 시간이 더 걸렸죠.

상관은 비싼 빌드 머신을 제공했는데도 개발속도가 빨라지지 않자, 초

보 관리자를 나무랐습니다. 상관의 꾸지람을 듣자, 초보 관리자는 문제가

아닌 것을 문제라고 말한 팀원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죠.

하지만, 팀원들은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단지 느린 빌드 머신이

통합에 존재하는 문제를 가렸을 뿐이죠. 팀원들은 통합이 어려웠지만, 그

게 병목구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죠.”

“그래서 그 초보 관리자는 어떻게 됐나요?”

“하늘이 도왔는지, 초보 관리자는 우여곡절 끝에 프로젝트를 끝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영철씨 옆에 앉아 있죠.”

“구루님이 그 초보 관리자셨나요?”

구루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프로젝트를 관리하면서 여러 가지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면서 배운

소중한 교훈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가 진짜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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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거죠. 프로젝트 팀원들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빌드

머신이 느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통합에 있

었듯이,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근본 문제 때문에 다른 문제가 또 발생하기 마련이죠.”

“네.”

“아직 영철씨 사정을 얘기하기 어렵다면 혼자서라도 문제를 정리할 방

법을 알려드릴게요. 들어보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면 정리 되는 대로

영철씨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말씀 드리기 어렵다기보다는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몰라서요……”

“그럼, 제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구루는 벤치에 놓인 책을 들어, 빈 페이지를 펼쳤다.

“우선 A4크기 정도의 종이를 준비하세요. 반을 갈라서 왼쪽 위에는 ‘사

실’이라고 적고, 오른쪽 위에는 ‘감정’이라고 적으세요.”

구루는 펜으로 페이지를 반으로 가르고, 사실과 감정이라고 적었다.

“왼쪽에는 객관적인 사실로 영철씨를 괴롭히는 것, 오른쪽에는 감정적

인 것을 적으세요. 예를 들어, ‘개발일정이 2개월 지연됐다’, ‘개발이 싫다’,

‘월급이 적다’는 것이 문제라면, ‘개발일정이 2개월 지연됐다’와 ‘월급이 적

다’는 왼쪽에 적고, ‘개발이 싫다’는 오른쪽에 적는 거죠.

다음으로 결과항목에서 원인항목으로 화살표를 연결하세요. ‘개발일정

이 2개월 지연됐다’는 것의 원인은 ‘개발이 싫다’일 수가 있습니다. 즉, 개

발이 싫기 때문에 일의 능률이 안 올라서죠. 한편, 월급이 형편 없어서 개

발이 싫을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개발일정이 2개월 지연된 것은 개발

이 싫기 때문이고, 개발이 싫은 것은 월급이 적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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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가 그린 화살표는 ‘월급이 적다’라는 항목에서 끝났다.

“문제점을 모두 종이 위에 기록하고, 화살표로 연결한다면 마지막 화살

표를 받는 항목이 근본원인이 되는 거죠. 이 방법은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문제를 종이 위에 적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깊게 생각하게 도와줍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보조적일 뿐, 진짜 문제를

찾으려면 다양한 관점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구루가 책 위에 그려놓은 화살표를 유심히 살펴봤다.

“네, 한번 해보겠습니다.”

“도움을 준다고 이야기해놓고 더 힘들게 한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미차장이 바꿔버린 스펙이 떠올랐다. 가슴이 무거워졌다.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고객을 만나고 오는 길인데, 고객이 스펙을 바꿔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팀원들한테 알려야 하는데, 팀원들이 이 사실을 들으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스펙을 바꾸지 않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영철씨의 리더십이 심판대 위에 올라가 있네요.”

리더십?

팀장이 되고 나서 리더십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조그만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데 리더십이 필요한가요?”

“리더십과 조직의 규모는 관계가 없어요. 어떻게 보면 작은 조직에서 리

더십이 더 중요하죠. 리더십을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예수, 부처, 간디 이런 분들을 보면 다른 사람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

었죠. 그런 면에서 보면 ‘카리스마’가 아닐까요?”

“동경이나 존경은 타인에게서 자발적인 행동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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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비범함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존경하게 하거나 두려워

하게 하지 못하죠. 그렇다면 보통 사람에게는 리더십이 없는 걸까요?”

“그렇기 때문에 리더십이 어렵지 않나요?”

“물론 존경이나 카리스마도 좋은 리더십의 조건이죠. 하지만 일반인들

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요. 즉, 영철씨가 이끄는 작은 개발팀에서 좋

은 리더십이란 ‘신뢰’라고 생각해요.”

“신뢰요?”

“개발조직처럼 팀장과 팀원이 매일같이 얼굴을 보고 부대끼면서 사는

조직에서는 하루하루 지내면서 팀장으로 쌓아가는 신뢰가 중요하죠. 신뢰

를 쌓는 건 간단하죠. 작은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켜나가는 과정을 보

여주면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신뢰가 쌓이고, 이런 신뢰는 리더십으로 나

타납니다. 다시 말해 리더십은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십은 학습이며,

약속인 셈이죠.

신뢰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존경이나, 카리스마보다 더 얻기 힘

든 가치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해야지 얻을 수 있지만 한순간에 무

너지는 게 신뢰이기 때문이죠. 즉, 얻기 어렵기 때문에 중요한 가치이지만

성실히 노력한다면 얻을 수 있어요.”

“제가 팀원들한테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지 모르겠네요. 상황에 따라

서 말을 바꾼 경우가 많아서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그렇게 신뢰할 만한

관리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스펙을 바꿔야 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큰일이네요.”

“영철씨, 이거 이야기가 점점 심각해지네요. 세상 일은 심각하게 받아

들이기 시작하면 심각해지죠. 스펙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당면한 문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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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하루나 이틀 정도 영철씨 앞에 놓인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해보세요.

그러면 당면한 문제와 근본 문제 사이에 관계도 드러날 테니, 그때 닥친

문제를 해결해도 늦지 않을 거에요.”

“알려 주신 방법을 한번 써보겠습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왜 저를 도

와주시려는 거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도 초보 관리자였을 때, 너무나 많은 실수

를 저질렀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때 많은 것을 배웠죠.

반대로, 모든 것을 혼자서 했기 때문에 잃은 것도 많았죠. 나보다 먼저 길

을 갔던 사람이 조금만 알려줬다면 팀원들도 저도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훌륭한 관리자 재목인데 고생하는

분들을 보면 그때 생각이 나서요. 굳이 이유를 찾자면 오지랖이 넓은 거

죠.”

구루는 명함을 꺼내 건넸다. 하얀 바탕 위에는 구루의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메신저 아이디가 적혀 있었다.

“당분간 비가 오지 않으면 같은 시간에 여기서 책을 읽을 생각이에요.

궁금한 점이 있으면 찾아오세요. 아니면 전화로 연락해도 좋고요.”

“책 읽는 걸 방해한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

녁에 회의가 있어서 이만 들어가봐야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루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손을 내밀었다. 구루

와 악수를 하고 공원을 나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회사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핸드폰이 울렸다. 까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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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집?”

“팀장님, 어디 계세요?”

“회사 들어가려고.”

“성실이 만나러 나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일일 점검회의에 못 들어갈

것 같습니다.”

“알았어. 잘 만나고 와.”

“내일 뵙겠습니다.”

회사로 가는 버스가 정차했지만 타지 않았다. 회사에 들어가고 싶지 않

았다.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타이타닉프로젝트 팀, 최악입니다.”

“최악, 오늘은 일일 점검회의 안 한다고, 모두에게 전해줘. 내일 보자.”

전화를 끊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A4용지 위에 적어놓은 것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많은 화살표가 ‘프로젝트 관리를 잘못한다’, ‘악의 근원, 계약서 23조’, ‘팀

원들과 사이가 안 좋다’라는 항목을 향해 있었다. 세 항목 사이에서 마지

막 화살표를 어디로 그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쥐고 있던 볼펜을 내려놓고 의자에 기댔다.

이것은 그렇다고 치고, 스펙이 바뀌었다고 팀원들한테 얘기해야 하는데,

어쩌지.

머리만 복잡해지고 정리되는 게 없었다. 시계를 봤다. 자정이 넘었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까치집은 성실이를 만났을까? 스펙이 바뀌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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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 포인트

D+32 _ 수요일

복도를 따라 걸었다. 악몽을 꾸지는 않았지만 뒤척이다 잠이 들어선지 몽

롱했다. 프로젝트 룸으로 들어갔다.

성실이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까치집이 인사했다.

“까치집, 잠깐 이야기 좀 하자.”

까치집과 복도 밖으로 나왔다.

“성실이는 만나봤어?”

“만났습니다. 요즘 집에서 쉬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심정이 복잡한 것

같습니다. 자꾸 실수를 저질러서 팀장님한테도 미안하고, 기간이 얼마 남

지도 않았는데 디버깅할 것도 많고, 거기에 리포팅 모듈까지 맡는 바람에

더 초조했나 봅니다. 리포팅 모듈을 제가 맡아 주겠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팀장님께서 한번 연락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응. 알았어. 수고했다.”

까치집과 함께 프로젝트 룸으로 들어왔다. 박선생, 최악, 뺀질이 함께 서

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팀장.”

“뭔데? 박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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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차장이 스펙을 또 바꿨다던데 사실이야?”

머리 위에 뜨거운 것이 쏟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가 그래?”

“어제 팀장님 안 계실 때 부장님께서 오셨어요. 팀장님께서 스펙 바꾸라

고 지시하셨냐고 물으셨습니다.”

뺀질이가 말했다.

“아직 정확하지 않아, 확인되면 알려줄게.”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나팀장, 숨기지 말고 말해 봐.”

박선생이 차분하게 말했다.

“괜히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다. 정리되면 말해 준다니까.”

“팀장님, 이번에 바뀌면 끝장이에요. 성실이도 관두려고 하고요.”

최악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아직 정해진 것 없다고 했어. 성실이 건은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테니

까 걱정하지 말고.”

말씨름을 피하려고 자리로 돌아왔다. 서 있던 팀원들도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바꾸라고 지시하지 않았는데도, 들고 일어나다니 미치겠다.

“제가 알려준 대로 문제점을 찾아봤나요?”

저녁시간을 이용해 공원을 다시 찾았다. 업무수첩 사이에 접어놓은 A4

용지를 꺼내 구루에게 넘겼다.

“깔끔하게 정리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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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가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편안한 미소였다.

“세 항목 사이에서 어디로 화살표를 그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이렇게 정리하는 게 문제 해결의 반을 지나친 셈이죠. ‘프로젝트 관리

를 잘 못한다’, ‘팀원들과 사이가 안 좋다’…… ‘악의 근원, 계약서 23조’? ‘계

약서 23조’가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구루는 A4용지를 건네며 물었다.

“성급한 생각인지 모르지만, ‘계약서 23조’가 제 문제의 근원인지도 모르

겠습니다. 능부장이라는 직속상관이 있습니다. 작년에 회사 자금 흐름이

안 좋았죠. 부장님이 영업통이신데, 작년에 프로젝트를 여러 개 따왔습니

다. 제가 맡고 있는 타이타닉프로젝트도 부장님이 영업한 결과고요. 문제

는 프로젝트 금액의 70퍼센트를 선수금으로 받는 조건으로, 계약서에 독

소조항이 들어갔습니다.”

“23조가 독소조항인가 보죠?”

“네. 계약서 23조에 두 가지 항이 있습니다. 하나는 프로젝트 종료 시점

까지 고객이 요구사항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고, 나머지는 프

로젝트 지연사유에 관계없이 완료시점을 기준으로 4개월 안에 프로젝트

가 끝나지 않으면 저희 회사에서 전액 배상한다는 내용입니다.”

이야기를 마치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여 달이 보이지

않았다. 후덥지근했다.

“완료일이 한 달 지났습니다. 앞으로 3달 남았죠. 3달이 길기는 하지만,

고객은 수시로 스펙을 바꾸고, 바뀐 스펙 때문에 팀원 한 명도 회사를 관

두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제 말씀 드렸듯이 또 고객이 스펙을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부장님과 고객은 무조건 스펙을 바꾸라고 하고, 팀원들은 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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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꾸는 것을 강경하게 거부하고요…… 어떻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팀원이

하지 않으면 저라도 개발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전부 이야기를 해 시원하긴 했지만, 바뀐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허탈했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영철씨 문제를 다루기 전에 이야기 하나 들려

드릴게요.”

고개를 돌려 구루를 쳐다봤다.

“중국 베이징시 버스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어떤 소녀가 버스 안내양과

시비가 붙었는데, 버스 안내양이 일방적으로 소녀를 목 졸라 죽인 사건이

있었죠. 물론 버스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무도 안내양을 말리지 못했

답니다. 이 사건이 인터넷에 알려지면서 중국사람들은 비상식적이라는 여

론이 조성된 적이 있었어요.”

“어떻게 어린 소녀가 목이 졸려 죽어가는데, 승객들이 가만히 있었죠?

어처구니가 없네요.”

“언뜻 보면 몰인정한 승객들을 비난할 수 있지만, 1960년대에 뉴욕에서

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죠. 젊은 여자가 길거리에서 칼에 찔려 죽는 것을

수십 명이 목격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답니다.

이 기사를 접한 심리학자들이 몇 가지 실험으로, 이런 현상을 ‘책임감

분산’이라는 용어로 풀어냈죠.”

“책임감 분산요?”

“사람들이 대중에 섞여있을 때, 다른 사람이 위험에 처해진 것을 목격

하면 책임감이 목격자의 수만큼으로 나눠진다고 합니다. 즉, 끔찍한 사건

을 목격했을 때 심리적으로 충격은 받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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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에 책임감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이죠. 반대로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

과 단둘이 있을 때 더 잘 도와준다고 하니, 익명성에 익숙해진 현대사회

에서 필연적으로 접하게 되는 씁쓰름한 현상이죠.”

“책임감 분산이라, 재미있네요. 그런데 이 이야기가 제 상황과 관련이

있나요?”

“조금은요.”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이런 책임감 분산 현상이 프로젝트에서도 나타

나죠.”

구루는 허리를 펴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물론 익명성의 책임감 분산은 아니기에, 심리학에서 말하는 책임감 분

산과는 조금 다릅니다. 하지만 메커니즘은 비슷하답니다. 팀장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이 떨어지면, 팀장은 자기 일인 양 고민하죠. 팀원들도 고민하

는 팀장이 안쓰럽지만 팀원의 수만큼 책임을 나눠 갖기 때문에, 팀장만큼

프로젝트 실패나 문제에 대해 스트레스를 안 받습니다. 결국 팀장은 자신

의 문제인 것처럼 끙끙 앓고 있다가, 사태를 더 악화시키죠.

반대로 팀장이 문제를 다른 팀원에게 전가시켜 버릴 때도 있습니다. 이

때도 마찬가지로 팀원들 사이에 책임감 분산 현상이 생기죠. 일을 떠맡은

동료가 안쓰럽지만 책임감을 다른 동료와 나눠 갖기 때문에, 일을 도맡은

동료만큼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답니다.”

구루가 이야기를 끝내고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구루의 시선을 피해 뛰

어 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봤다.

김성실에게 리포팅 모듈을 시킨 일과, 아침에 팀원들이 한 말이 떠올랐

다. 구루의 말처럼, 팀원 모두가 책임감 분산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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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 분산에서 빠져 나올 방법이 있나요?”

“그럼요.” 구루가 밝게 웃었다. “문제를 나 혼자만의 것, 아니면 팀원만

의 것으로 보는 데서 책임감 분산이 일어납니다. 따라서 문제를 공동의 것

으로 만들게 된다면 팀은 책임감 분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를 어떻게 공동의 것으로 만들죠?”

“팀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진솔하게 팀에 할당된 문제가 무엇인지 이야

기하고, 같이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게 전부에요.”

“그게 전부인가요?”

실망스러웠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팀장들은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카

리스마가 넘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죠. 물론 이런 독단적인 일 처리 뒤에,

팀원들이 자신의 업무 지시를 거부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두려움

이 숨어 있습니다. 이런 두려움에 압도당한 팀장은 자신이 문제를 껴안기

도 하고, 반대로 다른 팀원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말죠. 둘 다 책임감

분산에 팀을 노출시키는 행위입니다.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

음이 있습니다. 팀장이 진정으로 대화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면, 팀원들로

부터 이런 마음을 끌어내고 책임감 분산의 그늘을 거둬낼 수 있어요.”

“방금 말씀하신 책임감 분산이 저희 팀에도 만연한 것 같습니다. 2주

전에 스펙을 변경해야 했을 때, 상대하기 껄끄러운 팀원들을 피해 비교적

상대하기 쉬운 팀원에게 일을 떠넘겼습니다. 일을 떠맡은 팀원이 많이 힘

들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팀원이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 관두려

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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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얼굴에 물방울이 떨어

졌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비가 오네요. 영철씨, 우산 있나요?”

“한동안 비가 안 오더니…… 저도 없습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서 얘기를 더 하면 좋을 텐데, 약속이 있어서요. 못다

한 이야기는 내일 마무리하죠. 내일 시간 괜찮나요?”

“네, 시간 내보겠습니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서둘러 공원을 빠져나갔다. 구루와 함

께 일어나 버스 정류장 쪽으로 뛰었다.

굵은 빗줄기가 버스 정류장 지붕 위에 떨어졌다. 빗소리가 경쾌하게 들

렸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오늘 이야기 감사합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영철씨, 회사를 관둔다는 팀원 문제 있잖아요. 머리로 다가가지 말고

여기로 다가가 보세요.”

구루는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가리켰다.

“네? ……”

“가야겠네요. 그럼 행운을 빌어요.”

구루는 비를 맞으며 정차한 버스로 달려갔다. 집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

했다. 비를 맞으며 재빨리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자, 머리 위에서 센 에

어컨 바람이 불어왔다. 구루가 한 마지막 말을 생각했다. 핸드폰을 꺼내

김성실에게 전화를 했다.

신호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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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김성실이었다.

“성실? 나영철이다.”

“네, 팀장님.”

버스엔진 소리에 김성실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전화를 귀에 가

까이 댔다.

“잘 지냈어?”

“그럭저럭 지냈습니다.”

“할 이야기가 있는데, 오늘 좀 만날 수 있을까?”

“……선약이 있어서요.”

“그래, 어쩔 수 없네. 언제 시간이 괜찮을까?”

“직접 말씀 드려야 했는데, 토요일에 짐 가져 가겠다고 뺀질이에게 일러

두었습니다.”

“그 얘긴 들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어쩔 수 없지. 토요일에 나온다면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하겠지만, 이

말은 꼭 해야 할 것 같아서…… 뒷수습하려고 이런 말하는 것처럼 들리겠

지만 나쁜 말로 상처 준 것 미안해. 앞으로 어떤 결정을 하든 함께 일한

것 고맙게 생각하고, 조금 욕심을 더 보태자면 끝까지 좋은 결과 내고 싶다.

이야기가 길어졌네. 잘 쉬고 토요일에 보자.”

“……네, 들어가세요.”

찬 에어컨 바람 때문인지, 몸이 으스스했다. 아쉬움이 남았지만 기분은

조금 나아졌다. 창 밖으로 굵은 장맛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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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라서 그런지, 장맛비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D+33 _ 목요일

출근하자마자 회의를 소집했다. 회의탁자에 성실이를 뺀 팀원들이 모두

모였다.

“전할 말이 있어 모이라고 했어.”

전부 긴장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미차장이 보낸 변경 요청서를 잠깐 쳐

다보았다.

“화요일 아침에 미차장이 스펙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했어.”

“그럴 줄 알았어요. 이제 완전히 망했네!”

최악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뒷목이 뻐근해졌지만, 차분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최악, 조금만 있다 말할 기회 줄게. 이야기는 마저 끝내게 해 줘.”

최악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사실, 성실이 건도 있지만, 이번에 스펙 바뀌는 것은 개인적으로 용납

하기 어렵다고 봐. 그래서 부장님한테 스펙을 바꾸지 말도록 미차장을 설

득해 줄 것을 요청했어. 하지만 부장님이 스펙을 반드시 반영하라고 지시

하더라고.”

모두가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부장님하고 이야기하고 나서, 미차장을 찾아가 스펙을 바꾸지 말도록

설득해 봤지만, 계약서대로 이행하라는 말만 들었어. 계약서 때문이 아니

더라도 사용자들이 이번 스펙이 꼭 필요하다는 말도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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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어제 스펙 변경 건에 대해 알려주지 못한 건 미안하다. 개인적

으로 어떻게든지 해결책을 내보려고 노력했지만, 나 혼자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미차장이 뭘 요청했는데?”

박선생이 물었다.

“어?” 박선생의 덤덤한 반응 때문에 당황했다.

“변경 요청이 뭐냐면……”

변경 요청서를 박선생에게 건넸다.

“관리자 모듈을 웹 기반으로 바꿔달라는 거야. 자세한 내용은 보면 알

겠지만, 로직을 바꾸는 것은 없고 서버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을 웹 기반으

로 변경해 달라는 요청이지.”

박선생이 변경 요청서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빨리 훑었다.

“박선배, 다 봤으면 저한테 넘겨 주세요.”

까치집이 말했다. 박선생은 변경 요청서를 까치집에게 넘겨 주었다.

“좀 성급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웹 모듈로 바꾸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는걸.”

“왜죠? 클라이언트 서버 버전을 웹으로 다 바꿔야 하잖아요. 미차장이

결정적인 한방을 날리는군요. 원래 관리자 모듈을 전부 바꾸는 건데. 제

가 봤을 때, 말도 안 되는 스펙 변경 같은데요.”

최악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맞아. 클라이언트 서버 버전에서 웹으로 바꿔야 한다는 건, 완전히 뜯

어 고치는 거야. 하지만 관리자 모듈의 핵심 기능은 테이블 형식으로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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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를 입력하는 부분인데, 기존 서버 클라이언트 버전을 액티브X로 변경

하면 되고, 다른 GUI는 일반적인 웹 컨트롤을 쓰면 될 것 같아. 그리고 기

존 관리자 모듈이 MVC패턴으로 구현되어 있어 웹 애플리케이션 레이어

로 쪼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아.”

“네, 박선배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이번 스펙 변경은 그다지 어렵지 않

을 것 같아요.”

까치집이 변경 요청서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말했다.

“스펙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하니까, 다행인데…… 어렵지만 결정할

부분은 누가 맡아서 진행할지……”

말끝이 흐려졌다.

“관리자 모듈은 내가 주도적으로 개발했으니까, 내가 맡아서 하지. 커널

도 거의 안정화됐으니까 말이야.”

박선생이 까치집 앞에 놓인 변경 요청서를 자신의 업무 수첩 위에 올려

놓았다. 다들 놀란 눈으로 박선생을 쳐다봤다. 박선생이 어깨를 으쓱거렸

다. 프로젝트 룸에 전화가 울렸다.

“타이타닉프로젝트 룸입니다.” 뺀질이가 전화를 끌어 받았다. “네, 알겠

습니다.”

뺀질이가 전화를 끊었다.

“팀장님, 부장님이 방으로 올라오라고 하시네요.”

“그래 알았다. 오늘도 수고하고.”

팀원들이 일어나 각자 자리로 돌아갔다. 프로젝트 룸을 나서면서 박선

생을 바라봤다.

“박선생,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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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내가 하는 게 맞는 건데.”

박선생은 이내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김성실이 프로젝트 룸 문 앞에서 인사했다.

“성실아!”

까치집이 반갑게 인사했다. 팀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김성실에게

다가왔다.

“짐 챙겨가려고? 토요일에 관둔다면서?”

최악이 물었다.

“아니, 다시 일하려고.”

성실이가 멋쩍게 웃었다.

“최악, 넌 성실이가 관뒀으면 좋겠어?”

까치집이 최악에게 핀잔을 주었다.

“반가워서 그랬다! 농담도 못하냐!”

“고맙다. 성실아! 부장님 만나러 가야 돼서…… 갔다 와서 보자.”

오랜만에 팀 분위기가 들떠 있었다.

“나팀장! 나랑 해보자는 거야?”

능부장의 미간에 잔뜩 주름이 잡혀 있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지시한 일일 점검회의를 왜 안 해?”

“화요일에는 미차장님을 만나 뵙고, 어제는 성실이를 만나려고……”

“미차장을 만나든, 김성실을 만나든, 상사가 시킨 일은 해야 되는 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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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 미차장 건도 그래. 내가 만나지 말라고 하면 만나지 말아야지, 본전도

못 찾을 걸 만나서 체면이나 깎아먹고. 이거 젊은 인간이 왜 그래? 시말서

써와.”

“시말서요?”

“귀 먹었어? 시말서 써오라고.”

“일일 점검회의를 안 했다고 시말서까지 쓰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으세

요?”

“꼬박꼬박 말 대답이야. 이 양반아, 근무시간에 상사한테 보고도 안 하

고 무단으로 이틀 동안 외출하고 지시사항도 불이행했는데, 그 정도면 감

봉 감이야! 알고나 말해.”

기가 막혔다.

“내일 아침까지 시말서 써오고. 시키는 거나 잘 하라고.”

“…… 김성실이 복귀했습니다. 계속 근무할 것 같습니다.”

“이것들이 회사를 놀이터로 알아, 기분 나쁘면 안 나오고 기분 좋으면

출근하고. 김성실한테도 시말서 써서 내일까지 내라고 해.”

“네?”

“두 번 말 시키지 마! 그 자식도 며칠이나 무단 결근했잖아. 당신처럼 감

봉 감이지만, 내가 봐주는 거라고. 팀장이 똑바로 해야지 팀원도 제대로

할 거 아냐. 나가봐!”

능부장은 귀찮은 듯 손사래를 치며, 의자를 돌려 창 밖을 쳐다봤다.

담배 한 개피를 꺼내 불을 붙였다.

말로만 듣던 시말서까지 써보는구나. 다음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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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기가 묻은 난간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봤다. 아침까지 내리던 비는 그

쳤지만, 짙은 먹구름이 끼여 있었다. 옥상문이 열렸다. 까치집과 K프로젝

트 팀장이었다. K프로젝트 팀장은 나를 보자, 까치집과 반대편 난간으로

걸어갔다.

둘이 무슨 일이지?

까치집은 K프로젝트 팀장과 이야기를 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둘을

애써 외면했지만 신경이 쓰였다. 마지막 담배 한 모금을 빨았다. 까치집은

이야기를 끝내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K프로젝트 팀장은 옥상을 내려갔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

“K프로젝트 팀장님께서 제가 드림프로젝트 때 개발했던 변환기 모듈에

기능을 추가해달라고 요청하시네요.”

“그래서 뭐라고 했어?”

“일단 팀장님하고 상의해본다고 했는데, 기능을 추가해 드려야 하지 않

나요?”

“까치집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일이 많다 못해 넘치면서 성실이 리포

팅 모듈도 맡겠다고도 했잖아. 리포팅 모듈은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지만,

K프로젝트까지 신경 쓸 여력이 돼?”

“그래도 전 팀장님이시고, K프로젝트도 많이 어려운 것 같아서요.”

까치집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알았다. 하지만 K프로젝트 건은 아직 보류야, 아무것도 하지마.”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불을 붙였다. 까치집은 옥상을 내려갔다. 잔뜩 낀

구름을 보니, 곧 장맛비가 한차례 내릴 듯했다. 담배연기를 폐 속 깊이 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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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였다.

프로젝트 룸에 들어갔다. 성실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성실이가 복귀해서 다행이다.

뺀질이가 모니터 앞에서 고개를 떨군 채 졸고 있었다.

또 졸아?

뺀질이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만 졸고 세수하고 와.”

“…… 네.”

뺀질이가 프로젝트 룸을 빠져나갔다.

최악이 자식, 뺀질이 좀 가르치라니까.

최악을 쳐다봤다. 최악은 무표정한 얼굴로 일하고 있었다.

“최악, 잠깐만 이야기하자.”

“저 지금 바쁜데, 좀 있다 하시죠.”

최악이 모니터를 쳐다보며 말했다.

“잠깐이면 돼.”

프로젝트 룸을 나와, 휴게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최악이 휴게실로

들어와 주위를 살피더니, 맞은 편에 앉았다.

“뺀질이 좀 봐달라고 했던 것 기억하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기억하죠.”

“뺀질이가 우리 팀에 온 지도 2달이 넘어가는데, 내가 옆에서 지켜보니

까 졸지 않으면 인터넷하고 있더라. 지금 당장 도움은 안 되더라도 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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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좀 가르쳐 줘.”

“무척 바쁜 것 아시잖아요. 솔직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코딩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코 찔찔 흘리는 애 가르칠 시간 없어요.”

최악이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슬슬 화가 났지만, 참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하루에 30분 정도만 신경 써주면 어떨까?”

“팀장님, 제가 프로젝트를 끝내는 걸 바라세요, 아니면 뺀질이하고 놀길

바라세요?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걸 할게요.”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말문이 막혀, 최악을 빤히 쳐다 보았다.

“알았다. 바쁜데, 들어가서 일해.”

말을 마치자, 최악은 일어나 휴게실을 나갔다. 최악이 앉았던 자리를 한

동안 쳐다보았다.

프로젝트 룸으로 들어갔다.

“나팀장, 잠깐만 얘기해.”

박선생이 불렀다. 박선생 자리로 갔다.

“이번 스펙 변경 건 때문에 관리자 모듈을 뜯어봤는데, DB쪽도 조금 손

을 봐야 할 것 같아. 내가 다른 모듈을 웹으로 바꾸는 것은 문제 아닌데,

DB쪽은 아직도 나팀장이 맡고 있잖아.”

“그래, 로직은 어떻게 바꿀지 생각해 봤어?”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지 파악하지 못해서 말이야. 아무래도 DB 레이

어는 나팀장이 변경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변경하려면 파악하는 데 시

간이 더 필요하고.”

Page 72: 도와주세요! 팀장이 됐어요 : 소설로 배우는 프로젝트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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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

“바쁘겠지만, 빨리 좀 해줘.”

자리로 돌아와 앉아서, 소스코드가 보관되어 있는 폴더를 열었다. 이번

주만 해도, 여기저기 불러 다니느라 개발을 거의 하지 못했다. 무슨 소스

부터 고쳐야 하는지 살펴봤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벽에 걸린 시계는 6시 반을 가리켰다. 창밖에는 장맛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팀원들은 식사하러 나가고, 혼자 프로젝트 룸에 남았다.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구루의 명함을 손에 쥐고 있었다. 구루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갔

지만, 바로 끊어버렸다.

아직 전화로 사정 이야기할 정도로 친하지 않잖아.

빗줄기가 굵어졌다. 박선생이 추가 스펙을 맡고, 김성실이 복귀했을 때

까지만 해도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아침이 일년

전처럼 느껴졌다.

자리로 돌아왔다. 노트북에는 워드프로세서가 떠 있었다. ‘시말서’라고

입력하고, 커서가 깜박이는 것을 지켜봤다.

다시 자판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D+34 _ 금요일

비가 그쳤다. 공원에는 금요일 오후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