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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월간브리프 기록하자 [haja] 20157Contents 칼럼 퐁피두 센터 전시를 다녀와서.. 이슈 헤밍웨이 쿠바 저택 아카이빙이 우리에게 묻는 연구 시청각기록물 수집방안 연구: 시청각아카이브 수집캠페인 해외사례 소개 NGO 기록관리 연구: NGO 기록관리의 필요성 일상아카이브 연구: 영국 대중기억연구회(The Popular Memory Group) 사례연구 ()한국국가기록연구원은 월간브리프 기록하자[haja]통해 연구원의 활동과 고민을 정리하여 공유하고자 합니다 RIKAR ()한국국가기록연구원 / 1 20

월간브리프-기록하자[haja] 201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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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의 활동과 고민을 정리하여 쓴 글. 2015년 4월 창간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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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월간브리프 기록하자 [haja]

2015년 7월

Contents 칼럼 퐁피두 센터 전시를 다녀와서.. 이슈 헤밍웨이 쿠바 저택 아카이빙이 우리에게 묻는 것 연구 시청각기록물 수집방안 연구: 시청각아카이브 수집캠페인 해외사례 소개 NGO 기록관리 연구: NGO 기록관리의 필요성 일상아카이브 연구: 영국 대중기억연구회(The Popular Memory Group) 사례연구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은 월간브리프 기록하자[haja]를 통해 연구원의 활동과 고민을 정리하여 공유하고자 합니다

RIKAR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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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월간브리프 - 기록하자

[haja]

칼럼

퐁피두 센터 전시를 다녀와서.. UNE HISTOIRE - ART, ARCHITECTURE, DESIGN DES ANNÉES 1980 À NOS JOURS

7월 중순 유럽여행이 거의 끝나갈 때쯤 퐁피두 센터에 들렀다. 이번 여행은 파리에서 시작해 콜마르, 몽트뢰, 안시, 아비뇽, 니스, 피렌체를 거쳐 다시 파리에서 아웃하는 긴 구간이었다. 이태리의 40도 무더위 때문에 마지막 파리에서의 이틀은 쉬고만 싶었다. 아카이브는 못 가도 퐁피두 센터는 가봐야지 하며 겨우 들렀다. 도서관을 먼저 보고 15유로쯤 하는 티켓을 끊어 전시를 관람했다. 칸딘스키, 피카소 등 소장물이 전시된 맨 윗층을 5분만에 보고 한층씩 내려오며 봤다. 그 아래층과 아래층을 다 보고 기념품 쇼핑까지 30분이면 족하겠지 싶었다. 아래층에서는 우연하게도 역사가, 아키비스트, 다큐멘터리언 등등 끌리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소개글을 읽으며 왠지 대단한 전시를 보게 된 듯한 기쁨이 몰려왔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찾아보니 아카이브를 주제로 한 25년 전의 유명한 전시를 지금 시점에서 재해석한 것이었다. 결국 한 시간 정도를 그 층에서 머물렀다. 여러 섹션 중에 먼저 ‘아키비스트로서의 예술가(The Artist as Archivist)’를 봤다. 영어로 설명된 게 많지 않아 상상력을 발휘하며 봐야만 했다. 그 다음으로는 ‘역사가로서의 예술가(The Artist as Historian)’와 다큐멘터리언 예술가(The Artist as Documentarian)를 봤다. 중동 지역의 전쟁 사진들과 정치사회적 주제의 작품들이 상당히 강렬하고 아키비스트 섹션보다 흥미로웠다. 이번 달 하자[haja]에 글을 써볼 생각으로 다시 한 바퀴 돌며 사진을 찍었다. 한국에 돌아와 사진들을 보며 이 글을 쓴다. ‘빅 아카이브’ 책을 훑어보며 아카이브가 현대미술 각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약간 정리가 되었다.

현대미술과 아카이브 열병

아카이브는 많은 현대미술가들에게 창작의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작품으로 엮어 내는 작가들 또한 늘고 있다. 예전 글에

썼듯이 미술 전시에서 작가들이 제공하는 레퍼런스로써의 아카이브는 작품의 이해를 한층 돕는다(기록학연구 43호, 전시평, 즐거운 나의 집). 그러나 아카이브가 현대미술에 끼친 영향과 의의는 좀 다른 데 있다. 예술가들은 방법론적으로 아카이브의 전략을 차용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증거와 재현의 맥락을 조롱함으로써 관료주의적(bureaucratic) 아카이브를 비판하려는 것이었다. 일종의 모큐멘터리(가짜 다큐멘터리)처럼 말이다. 현대미술의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는 스벤 스피커의 책(빅 아카이브, 스벤 스피커 지음, 이재영 옮김, 홍디자인, 2013)을 아래 네 문단으로 재구성했다.

1. 20세기의 초현실주의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19세기 아카이브의 지나친 자신감, 즉 상징적 표상에 포착되지 않는 것들을 기록할 수 있다는 역사주의적 야심이나 연대기적 방법론, 출처와 원질서에 대한 믿음을 반박했다. 2차대전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기록보존소의 기록은 이들에게 혼돈과 무질서에 다름 아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의 전사를 통해 새로운 아카이브를 추구했다.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초현실주의 시인)은 자동기술법을 개발했고, 프리드리히 쿤체(Friedrich kunze, 독일 대학교수)는 우연적 저술이 가능한 십진법 정리기를 개발하여 출처의 원칙을 정면으로 비꼬았다. 이들은 무의식의 데이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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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없는 문서들의 아카이브라 여기며 이를 수집하고 기록하고 분류하길 원했다.

2. 마르셀 뒤샹 역시 시간의 우연성과 상징적 표상의 연속성을 조화시키려는 19세기 아카이브의 야심에 비판적이었다.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19세기 아카이브가 기록하려 했던 과거가 단지 우연한 시간 즉, 현재 시점으로부터의 과거 시간일 뿐임을 지적하고 그러한 부질없는 노력에 잔존해 있는 우연성을 극대화시킨다. 뒤샹은 타자기를 이용한 그의 작품에 수많은 공백과 생략들을 주입시킨다. 시간을 통제하고 측정하는 힘을 제거한 것이다. 이는 누적된 파일들의 수가 아카이브의 증거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믿음이나 우연성을 통제하고자 했던 아카이브의 작동기제에 대한 답변인 셈이다.

3.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왈리드 라드(Walid Raad) 등 1970년대 이후 사진작가들의 편집된 사진 아카이브는 진본성과 원질서의 원칙을 부정한다. 이들은 가상의 인물이 엉터리로 설명해 놓은 맥락정보를 첨부하여 사진의 진위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연대순이나 신화적 의미보다는 표현형식에 따른 재분류와 조합을 선호했다. 이러한 시각에 의하면 아카이브는 전통적 해석의 의지를 배제한 대리자로서, 개별 기록들의 배열과 재조합을 통해서만 의미를 생산해야 한다. 낙관적으로 생각하자면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20세기의 자본주의 문제를 19세기의 파리에서, 정치적 관점이 아닌 문화적 관점으로 해결하려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20세기 말의 포트스모더니즘 예술가들은 아카이브의 운용에 오류를 도입하는 아카이브 놀이를 통해 기존의 고고학적 논리에 다각적 물음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역사와 허구, 진본과 위조, 진정한 수집대상과 불법적 물건들을 구분하는 아카이브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려 했다. 이는 역시 과거의 현존 및 우연성 길들이기로 대변되는 19세기 아카이브에 대한 비판이다. 미카엘 페르와 앤드리아 프레이저는 미술관의 아카이브 전체를 전시실에 꺼내 놓았다. 관람객에게 전체 아카이브를 투명하고 가시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전시는 실패했고 아카이브의 맹점인 규모의 위협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다. 수전 힐러와 소피 칼 역시 우리와 아카이브의 교류방식에 대해 탐구한다. 그들은 프로이트의 컬렉션과 자신들의 수집물을 섞어놓음으로써 맥락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또한 조작을 통해 어떤 물건이 작가의 것이고 어떤 것이 프로이트의 것인지 혼동하도록 하여 정신분석과 아카이브 모두를 되돌아보게 한다.

아카이브 열병의 원인과 충동

현대미술 씬의 이러한 특성은 가히 ‘아카이브 열병’이라 할 만하다. 아카이브 열병이란 용어는 데리다(Archive Fever: A Freudian Impression)가 1994년 런던에 있는 프로이드 아카이브 강연에서 거론했다. 데리다는 아카이브가 아르케(Arkhe)라는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며 시작이자 지배를 뜻한다고 했다. 즉 특정한 계층의 관점을 투영할 수 밖에 없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근대 이후의 아카이브 열병을 기억의 부재에 대한 반증으로 설명한다. 조국을 떠난 유대 망명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카이브 열병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렇듯 아카이브 열병은 잃어버렸던 기억을 귀환시키려는 강박이다. 역사를 재현하고 소유하려는 18세기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을 정신분석적으로 설명한 듯하다.

현대미술의 아카이브에 대한 열병은 두 가지 원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 20세기 들어 가속화된 세계화와 자유민주주의 등 정치사회적 지형의 변화, 그리고 컴퓨팅 기술의 발달로 대변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이다.

1989년은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기가 열린 해이다. 천안문은 새로운 중국을 부르짖는 함성으로 들끓었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유럽 예술의 경계를 허물었다. 새로운 아티스트들이 국제 예술 씬과 아트 비엔날레에 출현하여 각국의 정치사회적 이슈를 공론화했다. 새로운 담론은 새로운 예술 영토를 만들어 냈다. 역사가로서의 예술가(The Artist as Historian)가 등장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무언가를 모아 놓았다고 해서 현대미술이 되지는 않는다. 변화된 미디어 환경은 기록과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양차대전 이후 부상한 아카이브와 개인적 기억에 대한 관심은 ‘아카이브적 충동(An Archival Impulse, 할 포스터)’으로 나타난다. 왈리드 라드 등 중동 지역의 작가들은 다큐멘터리나 아카이브 사진을 복제, 편집하여 비극적 장면에 새로운 내러티브를 주입시킨다.

예술이 문화적 ‘소비’에 집중하면서 작가와 갤러리, 전시 큐레이터들의 수는 크게 증가했다. 큐레이터는 예술비평가의 자리를 대체했다. 매스컴의 보도가 현대미술의 대중화를 가속시키며 현대미술 시장의 인기는 고공행진했다. 예술적 관점에서 보자면, 가상 현실과 인터넷, 디지털 등은 새로운 사진 미학을 출현시키고, 필름과 비디오의 자치권을 무용화시키며 전환점을 만들었다. 사운드는 이제 설치 작품의 필수요소가 되었고 행위예술은 춤, 극, 음성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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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통해 신선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미술사는 다양한 해석과 예견을 통해 역사적 시대 이후로 나아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예술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은 역사를 선형적에서 비선형적으로, 수직에서 수평으로 보기 시작했고, 이러한 방식은 개별 미시사를 강조하며 다양한 연구주제와 논쟁거리를 낳았다.

격변하는 정치사회적 환경 속에서 작가들은 이에 대응하는 그들만의 방식을 새롭게 개발해야 했으며, 좀 더 비평적 시선으로 글로벌리제이션을 위시한 새로운 현실들에 반응하였다. 이미 많은 작가들은 문학 뿐만 아니라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들며 각자의 생활 형식을 고안해 냈고, 아티스트로서의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아카이브 예술의 편집광적인 태도는 예술과 문학, 철학, 일상에서 실패한 유토피아적 비전과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트라우마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이다.

역사 - 예술, 건축, 디자인,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Une Histoire - Art, architecture, design des années 1980 à nos jours”

퐁피두센터는 1989년 당시 관장이던 장 위베르 마르탱(Jean Hubert Martin)의 기획으로 <지구의 마술사들(Magiciens de la Terre>전을 통해 아카이브를 주요 맥락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 전시는 서구와 비서구 출신 미술가들의 비중을 절반씩 두며 동시대 활동하는 작가들을 대거 참여시켰다. 1984년 뉴욕현대미술관의 <20세기 미술의 ‘원시주의’> 와 더불어 이 두 전시는 후기 식민주의와 다문화주의 논쟁을 촉발한 현대미술의 터닝포인트였다. 이 전시는 25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다시 아카이브

와 현대미술의 관계를 들여다 볼 수 도록 기획되었다. 이 전시는 3개의 레퍼런스로부터 시작되었다. 마크 갓프레이(Mark Godfrey)의 2007년 논문인 “역사가로서의 예술가(The Artist as Historian)”, 1998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딥 스토리지(Deep Storage)” 전시로부터 차용된 “아키비스트로서의 예술가(The Artist as Archivist)” 개념, 그리고 파리현대미술관과 크리스티앙 볼탕스키가 공동 큐레이팅한 2000년 “Here the world in the head” 전시의 “다큐멘터리 예술가(The Artist as Documentarian: as close to the real)” 이다.

이 전시는 1980년대부터 현재에 걸친 폼피두 센터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통해 현대미술을 개관한다. 회화, 조각, 설치, 비디오, 필름, 드로잉, 사진, 건축물, 디자인 등 20여개국 200여 명의 예술가와 건축가, 디자이너들의 400여 작품을 통해 지난 30년 간의 새로운 동향을 파악할 수 있다. 폼피두 센터의 새로운 컬렉션 전시는 특별히 동유럽과 중국, 레바논 등 중동국가들, 인도,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변화한 예술 지형에 중점을 두고 있다.

1990년대는 생산자, 역사가, 아키비스트, 다큐멘터리스트로서의 예술가가 출현한 시기이다. 많은 작가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삶을 나레이팅하는 자서전 작가나 소설가로 활동하는 동안 보디아트 등은 신체와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며 많은 시각적 발명을 이루어냈다. 일상의 사물 등 현실 그 자체는 조각과 설치작품에 영감을 주었고 일상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낳았다. 또한 공공과 사적 영역의 연결고리를 만들며 심오한 사회적 파동을 일으켰다. 폼피두 센터의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반응하는 작가들의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해석하려 하고 있다.

역사가로서의 예술가(The Artist as Historian)

20세기에는 사건과 갈등에 대해 증언하고 현실에 개입하려는 욕망들이 히스토리 페인팅(history painting)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을 낳았다. 1980년대만 해도 세계화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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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모델이 미국의 프로테스트 예술과 결합하는 등 비판적, 정치적 예술 기조가 잔존하였고, 혹자는 이데올로기와 역사의 종말을 논하던 때였다. 예술가들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현대사를

주요 주제로 작업했다. 마크 갓프레이(Mark Godfrey)의 2007년 논문에 의하면 “역사가로서의 예술가”라는 입장은 지난 30년 동안 예술 씬을 지배했다. 일부 예술가들은 사료나 아카이브 자료를 조사한 후 그 결과를 설치작품, 필름, 비디오, 사진 작업으로 만들어 냈다. 많은 예술가들은 동유럽의 공산주의 몰락, 전쟁과 갈등, 이주, 세계화의 유해함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

David Maljkovic(1973-) Scene for new heritage III, serie B, 2006 Scene for new heritage III, serie B, 2006 Scene for new heritage III, 2006 David Maljkovic의 작업은 역사적 ‘잊혀짐’에 대한 것이다. [Scenes for a New Heritage III]는 유고슬라비아의 2차대전 전쟁영웅들을 추모하기 위해 1970년대 Petrova Gora에 세워진 자유투사기념비(Freedom-Fighter Monument)에 초점을 맞추었다.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가 붕괴되며 국가에 대한 역사적 기억이 휘발되고 기념비 또한 그 상징적 가치를 상실했다. 작가는 이 잊혀진 기념비에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새로운 의식을 만들고자 한다. 우측 비디오를 보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념비 주위를 서성이며 무슨 의식을 치르는 듯 하다. 기념비 주위의 자동차 역시 은박 포일로 감싸 박제해 놓았다. 좌측은 이 의식을 위해 구상한 스케치 두 점으로 보인다.

Fang Lijun(1963-) Untitled, 2003 복도에 걸린 팡 리준의 대형 목판화이다. 반복되는 대머리 인물상은 익명성과 고독을 느끼게 한다. 팡리준은 중국 내 냉소적 사실주의의 선두주자로 천안문 사태 이후 1990년대 중국인들의 고독과 이상이 무너진 현실에 대한 냉소를 표현하고 있다. 그는 천안문 사태 몇 달 전에 마오이스트라는 명목으로 구속되었다.

Thomas Hirschhorn(1957-) Outgrowth, 2005 복도에 설치된 스위스 그래픽 아티스트의 설치작품. 131개 지구본 위에 암 덩어리 같은 이물질이 자라나고 있다. 지구 곳곳의 전쟁, 폭력 등의 현장 사진이 지구본마다 첨부되어 있다.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비주얼은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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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is Mikhailov(1938-) Sans titre(Sots art), 1975-1986 보리스 미카일로프는 소비에트 체제 하의 우크라이나 사회의 과도기를 연작 사진으로 묘사하고 있다. 한 여자가 소련 작가이자 정치인이었던 막심 고리키(Maxim Goriki) 동상 아래에서 케익을 판매하고 있다. 뒷편의 프로파간다 포스터와 일상적인 케익의 강한 색조가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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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ja Bajević(1967) Women at Work (Under Construction) in Construction, 1999 이 설치작품은 ‘일하는 여자’ 삼부작 중 하나이다. 좌측의 비디오는 199년 사라예보에서 있었던 퍼포먼스로 유고슬라비아 출신 보스니아 난민 여성 5

명이 비계 그물망에 조국의 전통 문양을 수놓는 장면을 담고 있다. 영상은 작가가 수집한 하이쿠(Haiku, 단시) 이미지와 자신의 아파트에서 녹음한 사운드 레코딩이 몽타주되어 있다.

아키비스트로서의 예술가(The Artist as Archivist)

1980년대 이래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대두되며, 아카이브는 자원이 아닌 예술작품으로서의 역할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와 같은 작가의 아카이브에 대한 열정은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고, 이는 1990년대의 가상세계와 월드와이드웹의 개가와 함께 여러 작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2009년, 다이어터 롤스트래트(Dieter Rolestraete)와 같은 미술평론가는 예술 분야에서 점점 부각되는 아카이브의 영향력을 역사적 맥락으로 설명했다. 그는 예술 작품의 새롭고 지배적인 형태에 고고학적 발굴 방법이 일종의 모델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중동의 옛 공산당원 작가들이 주도적 역할을 선점해 갔다. 아카이브에 대한 이러한 열병은 1990년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여기서, 베이루트의 아랍이미지파운데이션(AIF) 설립이나 왈리드 라드(Walid Raad), 아크란 자타리(Akran Zaatari)와 같은 레바논 사진 작가들의 작품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비디오와 필름의 편집은 아카이브의 미학을 위한 모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논의는 2000년대 이후 시각예술의 새로운 전략적 방식으로 차용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대표적 사진설치작가인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는 비교적 이전 세대(1944년생)로서 과거와 현재의 명징한 전후관계, 즉 선형적 역사를 통해 삶과 죽음, 실제와 예술의 주제를 다뤘다. 그는 2차대전 중 유태인으로 태어나 두려움과 죽음에 사로잡혔던 자신의 유년시절 기억을 낡은 사진이나 일상적 오브제, 어두운 조명 등을 이용하여 현재로 복귀시키며 관람자에게 추억과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연상시키는 흑백사진(문서보관소, 1987), 주인 없는 수백 개의 낡은 옷들(저장고, 1989), 사람의 영상 1,600개(인간, 1994) 등 그의 설치는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을 의도적으로 구분할 수 없게 만들어 정체성의 상실을 극대화시키고 있다. 그는 과거의 고통이 현재까지 전승된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보관하려는 아카이브적 충동을 이러한 설치작업을 통해 아카이브적 전략으로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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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Boltanski(1944-) Christian Boltanski Archives, 1965-1988, 1989 646개의 주석 비스킷 상자에 작업실에 있던 1,200개의 사진과 800건의 문서를 옮겨 놓았다. 벽면을 가득 채운 이 상자와 기록은 예술가로서 한 개인의 인생 전체와 동일시된다. 그의 사적 기록은 봉인되어 망각 상태로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녹슨 비스킷 상자는 시간의 흐름과 어린 시절의 기억을 의미한다. 이 메모리 월(Memory Wall)은 일반적인 삶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모( Memorial to the glory of Ordinary Life)인 셈이다.

Christian Boltanski(1944-) No Man’s Land, 2010 볼탕스키는 최근 뉴욕의 파크 애버뉴 아모리에서 대형 설치작품을 전시했다. 3천 개의 쿠키상자와 40만 명의 헌 옷 30톤을 모아 늘어놓았다. 대형 크레인의 집게는 아무 옷이나 집어올려 여기저기 흩뿌려 놓는다. 주인 없는 옷들과 퍼포먼스는 익명성, 삶과 죽음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작년 진도체육관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사진출처: http://www.nytimes.com/2010/05/10/arts/design/10boltanski.html

Walid Raad(1967-) Beyrouth 82, 1982-2004 왈리드 라드는 1975년부터 1991년까지의 레바논 내전이 조국을 얼마나 파괴했는지 탐구한다. 그는 사진의 지위(status)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1982년 이스라엘의 베이루트 침공 당시 찍힌 사진 속의 핑크색 반점과 색조들은 네거티브 필름의 열악한 보관상태 때문에 생긴 것이다. 피폭당해 무너지고 있는 도시의 모습과 핑크색조는 극명하게 대비되어 회화같은 느낌마저 준다. 이런 시각적 효과는 화학적 이유로 발생하였고 그것마저 아카이빙되었다. 15장의 사진은 아틀라스 그룹 아카이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http://www.theatlasgroup.org/data/TypeA.html> 그의 ‘아틀라스 그룹 아카이브’(1989~2004)는 레바논의 내전을 조사하고 기록한 오디오, 사진, 문서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 파일에는 기록의 맥락을 설명하는 시적인 개요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을 작성한 목적은 전쟁의 잔혹성을 고발하기보다는 가공의 인물의 엉뚱한 설명을 통해 그들의 경험과 관객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 아랍사진협회(Arab Image Foundation) 레바논 사진 씬은 1990년대에 아카이브 개념과 함께 등장하였다. 왈리드 라드 등 사진작가들은 베이루트에 아랍사진협회(Arab Image Foundation)를 설립하였다. 이후 현재에 이르러 19세기 중동, 북아프리카, 아랍의 디아스포라를 다룬 60만 장의 역사적 증거 사진들을 보유하고 있다. 아랍사진협회의 사진작가나 예술가들은 텍스트, 사진, 비디오, 설치 등의 작업에 아카이브 문서들을 기술적으로 활용한다. 그들은 조국의 전쟁을 재현하는 용도로 아카이브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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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ângela Rennó(1962-) 2005-5101517385-5, 2009 브라질 사진가 로장겔라 르노는 사진의 도용, 전유(appropriation)을 주제로 작업한다. 그녀는 공공 아카이브의 분실된 사진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는 브라질 국립아카이브에서 사라진 사진들의 뒷면을 모아 놓았다. 뒷면에는 뜯긴 풀자국과 사진을 붙이기 전에 연필로 쓴 숫자나 기호가 적혀 있다. 사진이 배지에 배여 희미하게 형체가 보이기도 한다. 그녀가 아카이브에 안전하게? 소장된 사진들보다 사라진 사진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기억의 보존이 아닌 상실에 더 끌리기 때문이다. 즉, 작품은 집단 기억이나 증거의 상실, 권력자로서의 아카이브가 기억을 생성하는 방식과 아카이브에 의해 선택받지 못한 경계의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2005년 4월부터 6월까지 리오의 국립아카이브 도난사건을 다루고 있다. 도둑(gang)은 테레사 크리스티나 마리아(Theresa Christina Maria)가 기증한 750장의 사진을 훔쳤다가 100장을 돌려보냈다. 이 사건으로 19세기 브라질 해군 함정을 기록한 사진들은 신기루와 같이 역사에서 사라졌다. 돌려보낸 100장의 사진은 도둑의 성명서와도 같다. 그의 의도는 알 길이 없다. 이 컬렉션은 더 이상 연구나 전시 용도로 쓰일 수 없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집단 기억을 생성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그녀의 작품과 인터뷰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다. <https://iphorblog.wordpress.com/2013/09/12/ques t ion-answer-e-ma i l -exchange-w i th -rosangela-renno-on-awarded-best-historical-photobook-and-two-more-of-her-books-on-found-photography/>

Clare Strand(1973-) Ten Least Most Wanted, 2010 영국 작가 클레어 스트란드는 어린 시절부터 모은 잡지사진 컬렉션 중 10개를 골라 전시했다. 특별히 눈에 띄거나 연관성을 가진 사진들은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알아낸 사실은 10장을 고른 뒤 그 뒷면을 전시한 것이었다. 그는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이 설치작업은 사진이나 예술, 아카이브의 선별 기준에 대한 것이다. 그는 우연한 발견(Serendipity)의 가능성을 묻는다. 과학의 역사에서 우연한 발견이 중요시되는 것만큼 사진가나 예술가, 아키비스트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책을 정독하는 것보다 아무 페이지나 들춰 보는 방식이 더 창조적일 수 있다로 주장한다. 취향을 버리고 우연성에 기대보라. 이것이 그의 메시지이다. (폼피두 센터에 자세한 설명이 없어 작가의 블로그를 참조했다 ) <ht tp://c larest rand.tumblr.com/post/98249354856/10-questions-10-answers-with-clement-cheroux-for>

Hassan Darsi(1961-) Le Projet de la Maquette, 2002-2003 핫산 다르시는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2002년 카사블랑카의 허미티지 공원(Parc 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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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ermitage)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17년부터 1927년까지 만들어진 이 공원은 관료들이 방만한 행정으로 불법 건물의 건축을 허가하며 점점 축소되었다. 재앙 수준에 이른 현재, 핫산 다르시는 공원의 본래 모습을 보여주는 건축 모델을 제안하고 협력자를 끌어들였다. 탄원서와 신문기사도 작성했다 . 대카사블랑카 ( G r e a t e r Casablanca)의 장관(the wali)은 공원의 재건을 약속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진행된 이 프로젝트와 연작은 도시와 공공장소에 대한 질문이자 운동으로 새로운 예술형식의 가교가 되었다. 사진출처: <https://www.centrepompidou.fr/cpv/r e s s o u r c e . a c t i o n ? p a r a m . i d = F R _ R -a59dea8576f4b183a03df53f40ee6e6&param.id S o u r c e = F R _ O -a8c825973bd7d8ef9e5315fc40b311>

Elisabetta Benassi(1966-) Hitler’s Idea of Springtime in Germany, 2012 엘리자베타 베나시는 뉴욕공립도서관 열람실에서 1920~1990년대의 일간신문과 잡지에 수록된 7만 건의 이미지를 뒤졌다. 그녀는 사진이나 문서 자체보다 뒷면에 적힌 메모, 날짜, 스탬프 등에 집중한다. 그녀는 널리 알려진 소소한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재현할 실마리를 찾는다. 예를 들어 아돌프 히틀러가 폭스바겐 비틀을 구매한 이야기, 이탈리아 정치가 알도 모로의 살인사건 등이다. 20세기 들어 폭발적으로 생산된 저널리즘 사진은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 데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녀의 최근 작품 중 4장의 사진이 전시되었는데 그 중 한 장만을 골랐다.

맺음말: 아카이브는 기억저장소가 아니다

기록을 수집하거나 현상을 아카이빙할 때 늘 했던 고민은 어떤 기록을 어떻게 수집하고 보여줄지이다. 5월 12일 하루, 세월호 참사, 동대문구의 역사적 장소나 사건 등을 기록하려 했을 때이다. 나의 막연한 원칙과 안목이 아키비스트의 것인지, 또는 역사가나 다큐멘터리언, 컨텐츠 작가, 기자의 원칙과 어떻게 다른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머릿 속 어딘가에 쌓여 있을 기록학 이론들과 심미안을 믿고 내 취향의 기록과 디스크립션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이다.

우연히 관람한 퐁피두 센터의 전시는 이러한 고민이 생긴 맥락을 확인하고 생각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대미술 씬의 아카이브 열병은 공식적인 역사 서술에 대한 인문학의 비판적 시각과 흐름을 같이 한다. 미셸 푸코는 서구 학문에서 통용되던 분류와 지식체계, 그리고 비공식적 아카이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동안의 역사적 디스크립션은 기득권이 조장해 온 특정한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은 데리다의 ‘아카이브 열병’으로 이어졌다. 데리다는 푸코 관점에 기반한 확장된 아카이브도 결국 특정 계층의 관점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아카이빙하려는 열망 또한 역사적이기 때문이다. 푸코나 데리다, 하워드 진의 관점은 (명지대에서 주로 하고 있는) 일상아카이브, 즉 난쟁이의 아카이브가 하고 있는 고민과 같다. 일상아카이브에 대한 고민은 얼마나 진전되었나?

현대미술 작가들은 힌트가 될 만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들은 몽타주(병치)나 속임수 등 익숙한 문법으로 역사적 기술, 출처, 진본성의 원칙을 조롱한다. 그들 역시 담론을 확장시켰을 뿐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 아키비스트 행세를 하며 우리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했다. 우리는 아키비스트이자 역사가이자 다큐멘터리언이자 생산자이다. 아키비스트적인 관점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것은 시간낭비일지 모른다. 아카이브의 지평은 이미 크게 확장되었다. 아카이브는 기억저장소가 아니다.

“기억은 아카이브가 아니며, 아카이브 또한 기억저장소가 아니다. 만약 기억의 일부라면, 우리는 그것들을 꺼내려고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일단 꺼내 놓고 나면, 그것들은 종종 기억과 상충된다” (요제프 하임 예루살미, ‘Series Z: An Arcchival Fantasy’, http://www.psychomedia.it/jep/number3-4/yerushalmi.htm)

안대진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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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브리핑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제 영역에서 최근 이슈로 제기된 사안들 중 기록관리적 관점에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는 지점들을 포착하여 그 시사점을 살펴봅니다

헤밍웨이 쿠바 저택 아카이빙이 우리에게 묻는 것

헤밍웨이 쿠바 저택 아카이빙

지난 7월 20일, 미국과 쿠바가 54년 만에 국교를 정상화하고 상대국 수도에 대사관 문을 다시 열었다. 이는 2014년 12월 17일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쿠바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간의 외교관계 복원 및 포로 교환 선언에 따른 조치이다. 국교 정상화에 전격 합의한 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에 대한 통상금지를 일부 완화한 첫 대상은 작가 헤밍웨이의 쿠바 저택(핀카비히아, Finca Vigia)에 대한 개·보수 사업 추진을 위한 건설물자 수출(86만2천 달러)이다. 건설물자의 수출은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56년 만에 처음이다.

헤밍웨이의 쿠바 저택은 그가 쿠바혁명 직후 미국으로 추방되기 전인 1939년부터 1960년까지 거주하면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 등의 명작을 집필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지난 1961년 자살하자 메리 웰시 부인이 집과 헤밍웨이의 유품들을 쿠바 정부에 기증했으며 쿠바 정부는 이를 박물관으로 운영해 왔다. 헤밍웨이의 9000여 권에 달하는 장서와 각종 원고, 유물들이 전시됐던 헤밍웨이의 쿠바 저택은 그동안 관광명소로 운영되었지만 덥고 습한 날씨로 자료 훼손이 우려됐고, 이에 미국 민간재단인 핀카비히아재단은 2005년부터 자료보존을 위한 사업을 추진해오던 중 이번 국교 정상화를 통해 보다 본격적인 아카이빙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헤밍웨이의 오랜 지인이자 담당편집자였던 맥스웰 펄킨스의 손녀인 제니 필립스는 2001년 핀카비히아를 방문한 후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2002년 핀카비히아재단의 전신인 헤밍웨이보존재단을 설립한다. 이후 미국의 국립역사유적보존재단을 통해 지난 2005년부터 지원사업을 추진해왔는데 그 중 10개의 기술지원팀이 꾸준히 쿠바로 파견되어 활동하였다. 기술지원팀은 보존전문가, 건축기술자, 조경전문가, 문서보존전문가, 기록수집전문가 등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다. 2005년에는 저택과 헤밍웨이의 낚싯배로 유명한 배(pilar)의 보존작업을 추진하였고, 2008년에는 3천장 이상의 문서를 디지털화 및 매체수록(마이크로필름) 하여 사본을 쿠바 국가문화예술위원회와 미국 케네디대통령도서관에 기증하였다. 2010년부터는 문서보존을 위한 3년계획을 쿠바 국가문화예술위원회와 공동으로 수립하여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번 건설물자 수출 조치는 헤밍웨이의 유품을 지키기 위한 최첨단 보존시설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내년까지 자택 옆에 실내 온도조절 기능을 갖춘 2층짜리 보존시설을 지어 덥고 습한 날씨와 열악한 시설로 훼손 우려가 제기된 서적, 헤밍웨이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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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수천 장의 사진, 헤밍웨이가 주고받은 편지 등을 보존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보내는 각종 물자로 쿠바인 건축가와 근로자들이 직접 건축사업을 진행키로 해 사실상 양국의 공동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장소성을 획득한 공간에 대한 아카이빙

헤밍웨이의 유품을 아카이빙 하면서 그 유품들을 그가 거주하고 활동했던 저택으로부터 분리하지 않고, 저택과 함께 아카이빙 하는 방식은 그 공간이 갖는 ‘장소성’에 기인한다. 장소(place)라는 인식은 지리학적인 개념인 공간(space)에 특정 활동이 장기간을 통해 지속될 때 발생한다. 구체적으로 장소성이란 일관성 있는 경관, 활동, 그리고 경험이 누적될 때만 발생하는 인식이기 때문에 경관이나 활동 또는 경험의 변화는 장소성의 훼손을 초래한다. 장소와 사람들 사이에는 장소애착(place attachment)이라는 감정적인 유대관계가 존재하는데, 장소나 특유의 장소성에 대한 훼손은 사람들의 정서와 심리적인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특정한 공간이 이미 장소성을 획득하였다고 판단될 때에는 그곳에서 이뤄진 활동과 그 활동의 결과물에 대한 아카이빙을 할 때 그 공간 자체에 대한 아카이빙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아카이빙의 구조와 맥락을 보다 잘 구현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인들의 생가, 활동공간 등을 그대로 보존하여 관광명소로 활용하는 예는 헤밍웨이 저택 외에도 전 세계적으로 상당히 존재한다. 물론 이번 헤밍웨이 저택의 아카이빙처럼 대대적이고 대규모로 진행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복원이나 재현이 아닌 원래 그대로의 장소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드물지 않다. 한편,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복합유형의 세계문화유산은 장소성 보존의 또 다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과 안동 하회마을은 정주형 유산(living heritage)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데, 이는 일반적인

문화재와 달리 주민들이 현재 살아가는 마을이자 살아있는 생활유산이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등재 이후 방문객이 급증하면서 마을공동체의 분열, 생활 및 생산체계의 붕괴를 야기하여 자칫 관광지향적 민속마을로 전략시킬 우려가 있으며 이는 장소성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현실의 변화에 따라 장소성의 내용은 변화할 수 있지만, 그 공간이 내포하고 있던 장소 정체성의 근간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보존과 생활이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

안산 단원고 2학년 교실과 장소성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장소성에 기반한 공간아카이빙의 문제의식을 던진 사례가 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침몰사건의 주요 피해자인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교실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를 두고 현재도 많은 논쟁들이 진행되고 있다. 학교 공식행사인 수학여행 중에 발생한 사건이며, 2학년 재학생 및 교사들의 상당수가 희생되었고, 이후 추모과정에서 교실 안팎에 다양한 추모기록들이 누적되어왔던 상황을 고려하여 학교측은 사고 직후부터 현재까지 2학교 교실이 있는 2층 전체를 일상공간으로부터 분리하여 운영해왔다.

여러 사람들이 자유롭게 출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간 및 공간 내 기록들의 훼손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어떤 형태로든 아카이빙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있지만 문제는 그 방식에 있다. 2학년 교실 공간 그 자체를 아카이빙 해야 한다는 의견과 학교 내 신축공간 마련 후 가능한 그대로의 재현을 통한 이전, 제3의 공간으로의 기록물 이관 등으로 크게 대별된다. 유족과 학교, 일반 학부모, 교육당국 등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지하는 방식은 달라지고 있지만 현재 의견을 모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그 공간을 보존하는 것이 학교 평판의 저하와 일반 학생들의 정신적․심리적 부담감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공간 보존을 반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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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세월호침몰사건을 통해 우리가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 아닐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단원고 2학년 교실은 사건 피해자들의 정체성이 압축적으로 재현되어 있는 공간이자 추모 및 기념 공간으로 이미 인식되고 활용되어 왔기 때문에 유가족에게는 장소애착이, 일반 시민들에게는 장소정체성이 형성된 공간이라 생각할 수 있다. 즉, 이미 장소성을 충분히 확보된 상태이므로 공

간 그 자체를 보존하고 아카이빙 하는 것은 의미적으로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만, 현실적 조건(비용, 시기, 여론 등)과 활용상의 문제(양동마을의 예처럼 정체성의 파괴가 우려되는 상황) 등을 적절히 중재한 아카이빙 방안이 마련되기를 바래본다.

전혜영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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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브리핑 (사)한국국가기록연구원 소속 연구원들의 관심주제별 연구 결과를 지속적으로 공유하고자 합니다.

NGO 기록관리 연구 NGO 기록관리의 필요성 - [공익활동가를 위한 기록관리레시피] 개강에 부쳐 거버넌스 시대, 시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국정에 참여

하고 있다. 그러한 활동 중 하나가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통한 국정감시, 정책개발 참여라고 할 수 있다. 시민들은 후원, 적극적인 참여, 지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시민단체 활동은 시민들의 참여의 장일 뿐 아니라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지역사회의 여러 사업을 수행하기도 하고 나아가 해외 ODA를 집행하기도 하는 등 정부의 손이 미치지 않는 부분에서 대국민서비스를 실행하는 주체가 되기도 한다. 행정자치부의 민간단체등록현황(2014.09.30. 현재)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에 등록된 단체가 1,463개, 시·도 자치단체에 등록된 단체가 10,597개로 총 12,060개이고 같은 해 6월30일 즉 3개월 전과 비교해도 132개가 증가했을 정도로 많은 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 수치는 반드시 시민단체 활동의 양적, 질적 팽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단체들이 이름만 걸고 실질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국사회에는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생겨나고 있고 다양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렇듯 소통과 참여를 지향하는 거버넌스 시대에 시민들

의 참여 공간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단체들, 과연 효과적으로 사업을 수행하고 있을까? 주변에 있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은 많은데 재정도 넉넉하지 않고, 회원들이 좀처럼 적극적인 참여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괴로움을 토로한다. 즉 할 일은 많은데 돈도 부족하고 인력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러하다. 조직이 크던 작던 기본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데에는 인력과 재정이 있어야 한다. 사업을 운영할 사람도 필요하고, 홍보나 회계, 사무실관리 등 최소한의 기능만 한다 해도 다 인력, 돈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사업 운영을 잘해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조직도 커지고 후원금, 사업지원비 등도 커진다. 사업 운영을 잘하려면 사람이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다. 이쯤 되면

이 인력-재정-참여-인력-재정-참여로 반복되는 빈곤의 무한루프를 끊을 한 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이다. 그렇다. 저 단계 어디쯤에 ‘저비용 고효율’의 해법을 하나 넣는다면? 사업의 결과물을 잘 남겨서 회원, 시민들에게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그들의 신뢰를 얻고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활동과정을 잘 남겨 활동가들이 효과적으로 공유함으로써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다면? 그렇다. 바로 기록관리를 통한 효과적인 조직운영의 도입이 그 해법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기록관리계에서도 NGO기록관리의 필요성과 방법론이 드문드문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여전히 필드에서는 너무 어려운 이야기이다. 저 빈곤의 무한루프에서 기록관리는 좋은 해법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에게는 기록관리 전문가도 없고 기록관리시스템을 도입할 재정도 없고 바쁜 와중에 기록물을 정리하고 새롭게 체계를 만들어갈 시간적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을 만나면 기록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한다. 기록관리계에서도 NGO 기록관리를 시민사회의 중요한 과제임을, 기록관리계의 책임 중 하나임을 인정하고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왜 실행이 되지 않을까? 그것은 바로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작 기록을 생산하고 관리해야 할 사람들이 기록관리를 어렵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록관리계 역시 다양한 기관의 다양한 기록을 관리하는 방법을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공공기관의 기록관리야 싫든 좋든 법에 따라 운영이 되고 있다. 그런데 민간영역의 기록관리는 아직도 요원하다.

지속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내부의 사람들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 스스로 자신들의 방법을 찾고 익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지난 7월 9일 개강한 ‘공익활동가를 위한 기록관리레시피’ 강의에 수강인원의 배가 넘는 사람들이 참가신청을 했다. 활동가들의 높은 관심과 필요성 인식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17개 단체의 20명으로 공익활동 아키비스트 1기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자신들의 기관에 맞는 기록관리방법을 찾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17개의 NGO기록관리 방법론이 나올 수도 있다. 이번 강의는 총 7강으로 강의와 워크숍이 진행될 예정이다. 부디 이번 계기를 통해 활동가들이 기록관리가 어렵고 돈이 많이 들고(물론 돈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라 활동가들의 업무에도 도움이 되고 회원들과의 소통에도 도움이 되는 일임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

주현미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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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각기록물 수집방안 연구 시청각아카이브 수집캠페인 해외사례 소개

인간과기억아카이브는 오는 2016년부터 시민들과 함께 시청각 기록물을 적극적으로 수집할 계획이다. “(가칭)당신의 기억, 우리의 기억”이라고 불리는 이 수집캠페인은 카세트테이프, VHS, 6mm테이프 등 지금까지 대중화되어온 시청각 기록물을 매개로 한 기억공유프로젝트이다. 따라서 개인, 가족, NGO, 동호회, 기관 등 민간 영역에서 다양한 유형의 시청각 기록을 생산하고 이를 관리해온 주체들과 함께하는 참여형 일상아카이브를 지향한다. 일기, 편지, 메모, 브로셔 등 문서기록과 비교할 때 사진, 음악, 동영상 등은 기록 자체가 갖는 직관성과 매체의 대중성으로 인해 세대를 아울러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또한 최근 PC와 태블릿, 모바일 기기 등이 보급되면서 기록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지금까지 가정에서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사진, 영상 등을 함께 나누는 형태의 기록수집 캠페인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미 몇 군데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주민들이 가정에서 소장하는 기록물을 DVD/CD, 파일 등으로 변환해주는 대국민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2011년 울산시청, 2013년 남양주시청, 그리고 2015년 1월 의정부 신곡1동 주민센터에서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해 지역주민의 생활상과 주변 환경의 변화된 모습을 담은 비디오나 6mm자료를 디지털화하여 기록물 디지털사본을 해당 기록관과 공유했다. 이러한 서비스를 통해, 기록관들은 컬렉션의 범위와 내용을 풍부히 할 수 있고 주민들 역시 소장기록을 효율적으로 보관하고 활용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벤트가 기획될 때마다 선착순 100명 내외로 제한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에 약간 아쉽다는 평도 있었다.

해외에서는 수년 전부터 여러 민간단체와 공공기관에서 이와 같은 시민들로부터 동영상 자료를 기증받아 해당 자료가 담고 있던 기억들을 사회적으로 공유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PD나 영화 감독 등 영상을 전문적으로 또는 직업적으로 다루지 않는 일반 시민들이 생산하는 자료를 통틀어 아마추어 필름(Amateur Film) 또는 가족영상 (Family fi lms) 등으로 불린다. 통상 “아마추어영상

(Amateur images)"로 부르는 이 자료들은 1960년대 유럽과 미국 등에서 Film Super8, 1990년대 VHS와 캠코더, 2000년대 디지털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일반인들의 기록 생산량이 극적으로 증가했다. 가족구성원의 생일, 결혼기념일, 입학식, 졸업식, 국내외 여행, 각종 동호회 활동, 독립영화 제작 등 다양한 동기와 주제로 영상자료가 생산되어왔다. 그러나 오늘날 모바일기기에 내장된 카메라에 이르기까지 기록생산 도구는 다양해지고 점차 소형화되어 기록의 생산량은 증가한 반면, 과거의 기록도구에 보관된 자료의 유용성은 떨어졌다. 기록매체의 급속한 디지털화에 의해 지금까지 생산된 기록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채 각 가정에서 사장되고 있던 현실에 여러 단체와 기관들이 문제의식을 제기하면서 2010년을 전후로 이러한 자료를 수집하고 관리, 보존하고자 하는 정책들을 마련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프로젝트는 프랑스국립방송아카이브(Institut National de l'Audiovisuel)가 2012년부터 기획한 “공유된 기억 (Mémoires partagées)"이다. 개인, 가족, 지역기반 친목모임, 동호회 등 중소규모 단위에서 촬영된 필름, 비디오, 디지털파일 등이 수집대상이다. 내용상으론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으나 소장기록을 기증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기증 대상인지 등을 판단하는데 참고가 될 수 있도록 기존에 수집된 기록물을 1차 분류하여 온라인 전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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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월간브리프 - 기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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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INA의 공유된 기억 참여 플랫폼: 기록을 제공하고자 하는 시민들은 지역별 이벤트, 여름휴가, 크리스마스, 새해 등 계절별 이벤트, 생일, 결혼 등 가족행사, 투르드프랑스나 올림픽, 월드컵과 같이 국가적 단위의 스포츠 행사, 7월14일 혁명기념일, 국내외 여행 등 해당 주제에 맞는 탭을 선택에 자료를 업로드 하거나 해당 자료를 수집담당자에게 알릴 수 있다. <h t t p : / /www. i n a . f r / t h emes /memo i r e s -partagees/>

기증된 자료는 디지털화, 분류, 기술 작업을 거쳐 웹사이트에서 네티즌들에게 온라인 열람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참여형 기록수집 프로젝트로, 해당 주제에 맞는 기록물 소장자들이 디지털(화)자료를 직접 업로드하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만약 필름, 비디오 등 오래된 매체로 소장하는 경우 수집담당자들이 이를 디지털화하여 색보정 작업을 거친 후 웹사이트에 게시한다.

한편, INA는 현재 프랑스 전역에 6개 지역국을 두고 지역방송국에서 생산되는 TV, 라디오 아카이브를 국가적으로 관리한다. INA지역국과 지역방송국,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기반 시민단체, 지역 시네마테크 의 도움을 얻어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기록수집을 전개하고 있다. 2012년 프랑스 서남부 아키텐 (Acquitaine) 지역, 2013년 북동부 독불 국경지대인 로렌(Lorraine)지역, 2014년 지중해연안의 랑그도크루시용 (Langudoc-Roussillon) 등이 대표적이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자연환경, 경제적변화, 문화적 변화 등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나 지역공동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당 지역 주민들이 소장한 기록을 기증하도록 유도하면 동영상아카이브를 기반으로 하는 ‘기억공유’라는 취지에 맞게 양적 질적 기록수집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지역 기반 시민단체들이 주도하여 아마추어 영상자료 수집을 전개하고 있는 곳도 있다. 프랑스 동북부에 위치한 알자스(Alsace)가 대표적이다. 미라(MIRA-Memoires des Images Reanimes d'Alsace)라고 불리는 시민단체는 이 지역에서 촬영되어온 영상자료 수집과 관리를 도맡아 하고 있다. 이 단체의 이름을 우리말로 “알자스 메모리”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이 단체는 2006년 알자스 지역에서 손, 망실되고 있는 영상기록을 한 데 모아 지역주민과 함께 공유하고자 결성됐다. 이 지역 출신의 한 영화사학자인 오딜 고지용 프론삭(Odile Gozillon Fronsacq)

씨가 단체 결성을 초기에 주도했으며, 원래는 연구자 입장에서 없어져가는 시민들의 영상자료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학생들과 일부 관심있는 시민들과 함께 자료수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림> 알자스 지역 아마추어 영상자료 수집을 담당하는 미라(MIRA)의 온라인 플랫폼 <http://www.miralsace.eu/>

시민단체가 적극적으로 수집활동을 전개한 것이 10년.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를 살펴보면 전원의 일상, 영농활동, 알자스 소재 기업들의 일상, (비)공식 기념사업, 가족나들이, 종교 관련 활동, 카니발, 페스티발, 동계스포츠, 해수욕, 세계여행 등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생산된 다양한 주제의 자료(약 600여 시퀀스)들이 있다. 기록물을 물리적 손망실 위험으로부터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9.5mm, 17.5mm, 8mm, super8, 16mm, 35mm 등 1930년대 전후하여 생산된 자료 수집에 우선순위(priority)를 둔다고 한다. 올해 1월에는 온라인 플랫폼을 최근 구축해 기증자가 직접 자료소장관련 문의를 할 수 있고, 디지털화된 자료에 대한 정보제공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수집된 자료에 관한 지역주민과의 공유(온라인열람)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미라의 기록수집활동은 민간 주도로 이루어지는 활동이지만 정부와 스트라스부르 시 등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에디(INEDIT)는 유럽 아마추어필름협회로, 유럽 지역 아마추어 필름에 대한 조사연구, 자료보존, 활용 등을 수행하는 40여개 유관단체 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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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월간브리프 - 기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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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인에디-유럽아마추어필름협회 로고

공/민영 아카이브센터, 영상제작자, 대학 연구단체 등의 연합조직으로 벨기에 브뤼셀에 그 본부가 있다. 1991년 창립되어 국제적인 규모로 자료수집과 디지털화, 보존처리, 자료공유 및 각종 활용과 관련된 활동을 수행하며, 소속 단체들 간의 기록물과 그와 관련된 정보 교환 활동 지원한다. 특히, 유럽 지역에서 수행되는 유관 프로젝트 연결하여 아마추어 필름을 둘러싼 인적 교류 (학술대회, 상영회, 전시회, 출판사업 등)를 활성화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해외에서 이루어지는 아마추어 영상자료 수집과 관리, 활용 등의 활동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민간 주도 아카이브 구축 공공(정부/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되 민간(시민단체, 아마추어 영화인모임 등) 주도로 수집 및 관리사업을 기획하여 기록소장자들로부터 자료공개 및 제공, 다른 지역주민과의 공유를 위한 적극적인 협조를 이끌어낸다.

업무절차 수립 필름(8mm, super8, 16mm 등)이나 비디오 등 대중화된 매체의 범위를 정확히 파악하고 해당 자료가 수집되었을 때 이에 대한 디지털처리, DB구축 등 업무 절차 등이 수립되어 있다. 관리과정에서 기증자 참여율 제고 온라인 공간에서 기증자 코너를 마련하여 이들과 함께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해당 자료가 이관, 활용되었을 때 이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된다.

자료 공유와 공유된 기억 수집된 자료는 대중 또는 해당 지역주민과의 공유가 최대한 빨리 공유될 수 있도록 온라인공간에 업데이트하고, 신착 자료를 둘러싼 모임(상영회, 출판/전시 사업 등)을 활발하게 기획한다.

인간과기억아카이브가 기획할 대시민 시청각 자료수집도 이러한 원칙들을 기반으로 하고자 한다. 특히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정례화된 수집이벤트를 기획하는 한편 어떤 한 주제와 매체를 구체적인 수집범위 안에 끌어올 수 있는지 국내 사정에 맞는 한국 미디어 사회사를 지속적으로 연구할 예정이다.

최효진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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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아카이브 연구 사례연구 : 영국 대중기억연구회(The Popular Memory Group) 일상아카이브 개념은 이영남(「기록학연구」41, ‘새로

운 기록방법론을 위한 기호론적 접근’)이 지적했듯 하나의 실재(the real)라기 보다는 동시대의 다양한 기록실천의 흐름을 포괄하는 아름다운 은유일지 모른다. 같은 글에서 저자는 구술아카이브, 커뮤니티아카이브, 문화자원 아카이브, 디지털 휴머니티(digital humanity) 등이 이러한 흐름으로 호출될 수 있는 하위개념이라면, 이 전체를 아우르는 현상으로 ‘일상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여기서 다시 문제는 ‘일상’이다. 학문 대상으로써의 일상 개념은 이미 철학, 사회학, 정치학, 문화학, 역사학 등에서 주요하게 검토되어 왔고 이는 이론이나 전략으로 상당 부분 정리되어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기록학계에서 새삼 ‘일상’을 얘기해야 할 때 그것은 이전의 작업들과 어느 지점에서 달라지는가, 혹은 달려져야 하는가.

이는 다른 학문과의 변별의 문제라기보다는 다양한 흐름으로 표출되고 있는 기록관리 실천들이 애초 품고 있었을 새로운 기록관리의 ‘전망’과 맞닿아 있는 문제이다. 여기에는 아카이브 체제가 갖는 근대적 기획에의 한계 인식, 공공영역과 민간영역 기록관리의 불균형성으로 인한 역사 편향성에의 우려, 매체발달과 민주주의 확대에 기인한 기억담론의 분출과 재현의 문제 등이 핵심적으로 놓여있다. 이와 더불어, 일상아카이브를 지향하며 2013년 설립된 인간과기억아카이브는 하나의 실재하는 아카이브(archives in real)로써 구체적인 수집전략과 방법론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기록관리의 ‘전망’들이 구체적인 기록관리방법론으로 접맥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점에서의 연구와 실천들이 조직되고 아카이브의 성과로 누적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앞으로 본 저자는 일상아카이브로써의 인간과기억아카이브가 해명해야 할 수집전략상의 과제들을 발굴하고, 이를 이론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조망함으로써 구체적인 기록관리방법론의 한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우선, ‘일상’과 ‘기억’의 문제에 천착한 다양한 이론적․문화적 실천들을 검토함으로써 기록관리의 대상으로써의 기록과 ‘일상’의 관계를 해명하고자 한다. 즉, 인간과기억아카이브의 다큐멘테이션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의 일환인 것이다. 사례연구의 첫 시작은 영국 신좌파 그룹으로

1980년대부터 활동해온 현대문화연구센터의 대중기억연구회(The Popular Memory Group)이며, 주로 연구의 대상으로써의 ‘대중기억’과 연구방법론을 검토할 것이다.

대중기역연구회의 주요 연구대상인 ‘대중 기억(popular memory)'는 미셀 푸코(Micheal Foucault)의 개념을 계승한 것이다. 푸코는 지배 담론이 책과 영화 그리고 텔레비전 등과 같은 미디어에서 재현되는데, 여기서 제시된 과거에 대해 대중은 자신들의 기억이라고 인식하고, 수용하게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중은 자신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모습이었다고 기억해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또한 기억은 투쟁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기억을 통제한다는 것은 활력과 경험 그리고 지식을 통제하는 과정과 연관된다. 따라서 영화 등과 같은 재현물에서 이러한 기억을 소유하고 통제하며 관리할 때, 어떠한 내용을 포함하여 말하고 있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중 기억은 권력이나 지배 담론으로 억압되고, 망각되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왜곡되고 변형된 대중의 과거를 되살리는 실천적인 기억 행위로 볼 수 있다.

푸코의 대중 기억을 보다 확장시킨 대중기억연구회는 기억의 사회적 생산이 공적인 재현(public representation)과 사적인 기억(private memory)의 두 가지 방식으로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공적 재현이란 역사적 장치들에 의한 지배 기억을 의미하는데, 이는 국가 기관과 제도, 텔레비전이나 신문과 같은 미디어, 박물관이나 미술관 그리고 기록보관소 등과 긴밀하며, 이데올로기적이고 사회의 지배적인 신화의 전형적 모습을 띠고 있다. 이에 비해 사적 기억은 일상생활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이는 과거에 대한 상식들과 연관된 개인적인 편지, 일기, 사진첩 등이며 친밀한 문화적 형태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것들을 역사라고 한다면 대개 “기록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침묵되어진다.”

사회적 기억이 생산되는 과정에는 두 가지 종류의 관계가 있다. 첫 번째는 학계를 포함하여 공적인(public) 분야에서 나타나는 지배적인 기억(dominant memory)과 대항기억(counter-memory) 사이의 관계이고, 두 번째는 현대 국가 체제에서 공적인 담론들과 생활문화에서 생성된 좀 더 사적인 기억 사이의 관계이다. 과거에 대한 다수의 공적인 재현 사이에서 끊임없는 경합이 일어나고 그 중에서 하나가 지배적인 기억이 되면, 다른 것들은 대항 기억이 된다. 이 두 가지 형태의 기억은 그것들이 만드는 역사적 진실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두개의 대립되는 역사적 해석을 내놓는다. 따라서 헤게모니 쟁취를 위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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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월간브리프 - 기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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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적인 기억과 대항 기억과의 사이에 계속적인 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지배적인 기억의 재현들은 국가 기구들에 의해 공식적인 역사 속에서 계속 형식화되고 재생산된다. 그러나 공식적인 기억과 삶의 경험에서부터 오는 사적 기억과의 사이에는 잠재적인 괴리가 있다. 이 괴리는 대중들의 대항기억이 출현할 수 있는 가능한 공간을 남겨준다. 대항 기억은 종속되거나 억압받는 사람들의 사적이지만 집합적인 기억이다. 지배적인 기억과 대중들의 기억과의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협상된다. 이러한 사적인 기억은 헤게모니적인 기억과 담론에 대항하는 대항담론을 구성하는 대항기억으로서 하나의 공적인 역사의 재현이 될 수 있다.

사적인 기억으로써 대항기억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으로 대중기억연구회는 구술사와 자서전을 주목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기존의 연구형태와 방식에서 벗어난 인식론적 전환이 전제되어야만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 대중기억연구회는 이러한 인식론적 전환에서 네 가지 영역의 장애물들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장애물은 연구의 ‘역사적’ 대상을 규정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다. 기존의 역사학은 정통 역사 연구의 경험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역사가의 경험주의는 역사가와 증거 사이의 대화라고 볼 수 있는 고문서연구라는 특별한 형태로부터 온다. 문헌중심의 연구는 대부분 지배계층의 입장에서 기록된 것임을 상기한다면 고문서 연구는 특별히 선택된 종류의 역사만을 다룬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험주의적 입장은 구술사의 진보적인 가능성을 제한시킨다. 대중기억연구회는 구술사는 경험주의적, 실증주의적 규범이 무너질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중기억연구회는 역사가 문화적 구조물인 것처럼, 기억과 개인적 서술(personal narrative)도 문화적 구조물(cultural constructions)로 이해한다. 그래서 사회적, 개인적 수준에서 문화적 과정들과 기억의 형성과 재형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구술자료에 대한 대안적 읽기를 제시한다. 그들은 구술사 연구에 있어서 경험적인 규범에 대한 대안으로서 구술에 대한 구조적 그리고 문화적 읽기를 제시한다. 구조적 읽기(structural reading)이란 구술자가 주관적으로 전유하는 조건들 즉 그의 또는 그녀의 특별한 삶의 경험을 형성하는 조건들, 구조들, 과정들에 관심이 있다. 문화적 읽기(cultural reading)는 구술자의 서술이 구조화된 경험 또는 생애사의 의미를 이루는 방식에 초점을 둔다. 구술자의 서술은 매우 구조화된 텍스트 또는 연행이고, 단순히 개인적 발상이 아니라 일반적인 문화적 레퍼토리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개의 읽기는 서로 보완적이다.

두 번째 장애물은 구술사의 ‘원재료’인 개인적 증언, 서술 또는 자서전이 나오는 형태로부터 온다. 이것은 개인적 구술 주체와 그 또는 그녀가 처한 사회적 맥락을 연결하는 문제를 말한다. 즉 한 개인의 경험이 어떻게 사회적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역사서술에서 주로 다루는 거시적 사회적 과정과 개인적 기억의 바로 주재료인 미시적 사적 서술들을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그람시(Antonio Gramsci)는 인간이 사회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존재라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시각을 제공한다. 그람시에 따르면 “각 개인은 관계들뿐만 아니라 이들 관계들의 역사의 종합(synthesis)이기 때문에 인간은 모든 과거의 요약체다.”따라서 각 개인의 삶의 경험은 단순히 사적이고 개인적이 아니고, 특정한 역사적 상황과 과정이 개인의 삶에 녹아있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라는 창을 통한 구조 읽기를 제공하는 것이지 개인 경험의 사회적 대표성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세 번째 장애물은 역사 연구의 대상을 과거로만 인식하는 경향이다. 대중기억연구회는“정말 이것은 연구의 실천을 급진적으로 비정치화하지 않고는 이러한 정의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구술사적 증언이나 자서전의 형태에 대해서 흥미 있는 것은 대중기억들이 과거에 대한 ‘사실’ 조각들이 아니라, 현재 의식의 일부로서 구성되고 재구성 되는 전체적인 방식에 있다.”라고 주장한다. 기억과 그 서술인 구술사는 단지 과거만이 아니라 과거-현재 관계를 수반한다. 구술사의 증언들은 필연적으로 현재의 사건들에 영향을 받으며, 생각하고 이야기 가능한 것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것들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며, 사적인(private) 기억들과 공적(public) 재현들과,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상황과의 상호관계이다.37) 이러한 인식은 단지 구술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카(E.H.Carr)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라고 지적했듯이, 역사는 현재의 이해관계와 관점에서 항상 재해석되는 것이다. 화이트(Hayden White)가 주장하듯이, 새로운 사적 자료가 발굴된다고 새로운 역사가 쓰여 지기보다는 역사가 쓰여 지는 당대의 주도적인 시각 또는 패러다임에 따라 다른 종류의 역사가 쓰여 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쓰여진 역사서가 그 가치를 잃지 않고 다시 사적 자료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네 번째 장애물은 역사 연구에 내재하는 역사가와 연구 대상 간의 권력 관계에 대한 문제다. 대중기억연구회는 이 문제를 좀 더 근본적이라고 보고 있다. 연구자와 연구대상인 구술자는 대부분의 경우, 계층, 학력, 직업,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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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월간브리프 - 기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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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적 지위 면에서 구술자보다 연구자가 우월한 위치에 있다. 구술자가 구술의 주체이지만, 구술자료를 편집하고, 글을 쓰고, 출판하는 것은 역사가다. 따라서 구술사도 기존의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분업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고, 이것은 바로 문화적 권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중기억연구회의 활동은 기억의 정치학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는 정치적 투쟁의 장이며, 역사와 정치의 관계는 따라서 별개의 것이 아

니라 내적인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정치학이고, 정치의 역사적 차원이다. 이러한 관계의 중심에 있는 것이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를 이해하고 진리를 생산하기 위해 역사를 재창안하는 토대로서 바로 (대중)기억이다. 과거의 공적이 재현이 아니라 사적인 기억의 차원에 집중하면서, 사적인 기억을 형성하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조건, 상황 등을 포착하여 기록화 할 수 있는 방안 등을 중요한 시사점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전혜영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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