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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신문 Architecture Newspaper 발행인: 김형국 발행처: 정림건축문화재단 발행일자: 2012. 09. 18 주소: 110-776,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89-4 에스케이허브 102-625 ISSN: 2287-2620 신고번호: 종로 바00136 서울시 신청사에 대한 난상 토론 인터뷰와 답사를 바탕으로 벌인 심층 논의 공공영역에 잠재된 위험성 깨우기 사카구치 교헤가 모색한 건축의 본래 의미 방치된 기념비의 혁신적 탈바꿈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의 문제점과 대안을 들어보고 도시재생의 기회로 실천한 2012 런던올림픽 사례를 분석한다 page 1~3 나의 상상력과 너의 지적 호기심이 만날 때 갤러리팩토리 디렉터 홍보라, 독립 큐레이터 현시원 사유가 있는 곳에 디자인도 있다 디자인과 건축이 갖는 미학적·사회적 과제 www.junglimfoundation.org 방치된 거대한 기념비, 잠실종합운동장 런던올림픽이 한창이다.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 숨소리 하나, 땀 하나에 우리도 같이 움직이고, 숨 쉬고, 땀을 흘리며, 그들과 함께 기뻐하며, 때로는 아쉬워하기도 한다. 우리가 올림픽에 진정 감동하는 이유는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고 국위를 선양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피와 땀과 꿈과 노력을 공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에게도 그런 올림픽이 있었다. 바로 1988년 서울올림픽이다. 당시 개막식에서 파란 운동장을 혼자 가로지르던 굴렁쇠 소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잠실의 올림픽 주경기장은 24년 전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아련한 신전이나 성지로만 존재한다. 올림픽 이후 주경기장은 1년 중 300일 이상 비어있음에도 유지 관리 명목으로 지난 10년 동안 1,000억 원 이상이 소요되었다. 현재는 올림픽대로 옆에 방치된 거대 기념비일 뿐이다. 서울올림픽 이후에도 주경기장은 국가대표 축구 경기와 국내 프로축구 경기를 통해 나름 축구의 전당으로서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2002년 한 · 일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 전용경기장인 서울 월드컵경기장에 모든 축구 경기를 빼앗기면서 올림픽 주경기장은 경기장으로서의 생명력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또한 2002년 월드컵 4강의 감동이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감동을 완전히 대체해 버리면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물론 이후에 올림픽 주경기장을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축구와 야구 겸용 경기장으로 활용해보자는 주장도 있었고, 2008년부터 2010년에는 서울시가 이곳을 '서울디자인올림픽'의 장소로 활용하면서 문화 공간으로서의 변화도 시도되었다. 하지만 그 역할마저 동대문디자인 플라자로 옮겨간 요즈음, 올림픽 주경기장은 다시 버려졌다고 할 수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며 동시에 역동적인 강남의 요지에 위치한 올림픽 주경기장이 이렇게 방치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근대 사회에서 체육을 통해 국가관을 고취시키기 위해 태어난 종합운동장이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그 생명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욕구는 건축적으로 보다 전문화된 스포츠 경기장은 물론, 동시에 여러 가지 문화적 행위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요구하고 있는데, 종합운동장은 더이상 우리에게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만약 종합경기장으로서 올림픽 주경기장이 현대 사회에 맞는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하지 못한다면, 90년 역사가 송두리째 말소되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의 안타까운 전철을 답습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우려를 부추기듯 최근에는 부동산 관련 뉴스에서 잠실종합운동장을 추정 시가 16조 원의 강남 노른자위 땅이라고 지칭하며 각종 개발 방향을 타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잠실종합운동장에 관광호텔을 비롯한 대규모 복합 멀티타운 건축이 예상된다는 보도도 내보낸다. 만약 건축계가 주도적으로 대안을 찾지 않는다면 자본의 논리에 의해 또 다른 우리의 소중한 건축 문화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올림픽 주경기장에 새로운 생명 불어넣기? 잠실종합운동장의 활성화에 고민하던 정부는 최근 규제 계획을 검토하여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만으로도 스포츠 시설 내에 자유롭게 수익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분히 복합문화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는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모델로 한 규제 완화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월드컵경기장들 중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는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수익은 매년 100억 원에 이른다. 이러한 성공담이 가능한 것은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월드컵 이후를 염두에 두고 입지 및 공간 구성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입지적인 측면에서 서울 월드컵경기장은 경의선 사이에 위치하고 지하철이 경기장을 통하며, 인접 주거 단지의 보행거리에 위치하는 등 다중적인 교통 인프라와 효과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공간적인 측면도 영화관과 대형 마트 등 수익 시설이 경기장 스탠드 하부 공간에 수용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서울 월드컵경기장은 단순한 체육시설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지역 주민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잠실종합운동장은 서울 월드컵경기장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관리 주체가 다르다. 잠실종합운동장은 '서울특별시 체육시설관리소' 에서 관리하는 반면, 서울 월드컵경기장은 어린이대공원과 청계천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 ' 이 관리한다. 만약 잠실종합운동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성화하고 싶다면, 서울시설공단이나 별도의 전문 단체가 관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음은 사용 주체가 다르다. 올림픽 주경기장은 이곳을 연고로 하는 프로팀이 없다.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성공은 2002년 한 ·일 월드컵의 열기를 K리그 최고의 인기 팀인 FC서울이 잘 이어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입지 조건이 다르다. 겉보기에는 올림픽대로 및 지하철 2호선과 인접한 잠실종합운동장의 입지 조건이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입지 조건과 유사해 보일지 모르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했던 지역에 들어가 성공적으로 주변 지역을 활성화시킨 서울 월드컵경기장과 달리, 잠실종합운동장 주변은 다양한 문화 및 상업시설로 이미 활성화되어 있다. 서쪽엔 대형 멀티플렉스와 아쿠아리움이 있는 코엑스몰과 코엑스 컨벤션센터, 호텔과 백화점이 이미 포진하고 있고, 동쪽엔 또 다른 대표 복합문화시설인 롯데월드가 있다. 특히 제2롯데월드가 2015년 완공인 마당에 복합문화상업시설로서 잠실종합운동장이 과연 사업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방치된 기념비의 혁신적 탈바꿈 1988년 올림픽 이후 사용 방안에 대한 철저한 사전 기획 없이 만들었다가, 지금은 방치되어 환영받지 못하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의 문제점과 대안을 들어본다. 이어서 그간의 막대한 예산으로 유치 국가에게 빚만 안긴 올림픽을 도시 재생의 기회로 삼아 실천한 런던의 사례를 분석한다. 1984년 9월 29일자 「경향신문」 에 실린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개장시 광경 잠실종합운동장의 올림픽 주경기장을 아파트로? 조한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3면에 계속 >> © 경향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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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신문 Architecture Newspaper 발행인: 김형국 발행처: 정림건축문화재단 발행일자: 2012. 09. 18 주소: 110-776,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89-4 에스케이허브 102-625 ISSN: 2287-2620 신고번호: 종로 바00136

서울시 신청사에 대한 난상 토론

인터뷰와 답사를 바탕으로 벌인 심층 논의

공공영역에 잠재된 위험성 깨우기

사카구치 교헤가 모색한 건축의 본래 의미

방치된 기념비의 혁신적 탈바꿈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의 문제점과 대안을 들어보고

도시재생의 기회로 실천한 2012 런던올림픽 사례를

분석한다 page 1~3

나의 상상력과 너의 지적 호기심이 만날 때

갤러리팩토리 디렉터 홍보라, 독립 큐레이터 현시원

사유가 있는 곳에 디자인도 있다

디자인과 건축이 갖는 미학적·사회적 과제

www.junglimfoundation.org

방치된 거대한 기념비, 잠실종합운동장

런던올림픽이 한창이다.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

숨소리 하나, 땀 하나에 우리도 같이 움직이고,

숨 쉬고, 땀을 흘리며, 그들과 함께 기뻐하며,

때로는 아쉬워하기도 한다. 우리가 올림픽에 진정

감동하는 이유는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고 국위를

선양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피와 땀과 꿈과

노력을 공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에게도 그런 올림픽이 있었다. 바로 1988년

서울올림픽이다. 당시 개막식에서 파란 운동장을

혼자 가로지르던 굴렁쇠 소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잠실의 올림픽 주경기장은 24년 전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아련한 신전이나 성지로만

존재한다. 올림픽 이후 주경기장은 1년 중 300일

이상 비어있음에도 유지 관리 명목으로 지난 10년

동안 1,000억 원 이상이 소요되었다. 현재는

올림픽대로 옆에 방치된 거대 기념비일 뿐이다.

서울올림픽 이후에도 주경기장은 국가대표 축구

경기와 국내 프로축구 경기를 통해 나름 축구의

전당으로서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2002년

한 · 일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 전용경기장인 서울

월드컵경기장에 모든 축구 경기를 빼앗기면서

올림픽 주경기장은 경기장으로서의 생명력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다. 또한 2002년 월드컵

4강의 감동이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감동을

완전히 대체해 버리면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만 것이다.

물론 이후에 올림픽 주경기장을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축구와 야구 겸용 경기장으로 활용해보자는

주장도 있었고, 2008년부터 2010년에는

서울시가 이곳을 '서울디자인올림픽'의 장소로

활용하면서 문화 공간으로서의 변화도

시도되었다. 하지만 그 역할마저 동대문디자인

플라자로 옮겨간 요즈음, 올림픽 주경기장은 다시

버려졌다고 할 수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며 동시에 역동적인 강남의 요지에 위치한

올림픽 주경기장이 이렇게 방치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근대

사회에서 체육을 통해 국가관을 고취시키기 위해

태어난 종합운동장이 다원화된 현대 사회에서

그 생명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의

다양한 욕구는 건축적으로 보다 전문화된

스포츠 경기장은 물론, 동시에 여러 가지 문화적

행위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요구하고 있는데,

종합운동장은 더이상 우리에게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만약 종합경기장으로서

올림픽 주경기장이 현대 사회에 맞는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하지 못한다면, 90년 역사가

송두리째 말소되어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의

안타까운 전철을 답습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우려를 부추기듯 최근에는 부동산

관련 뉴스에서 잠실종합운동장을 추정 시가

16조 원의 강남 노른자위 땅이라고 지칭하며

각종 개발 방향을 타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잠실종합운동장에 관광호텔을 비롯한 대규모

복합 멀티타운 건축이 예상된다는 보도도

내보낸다. 만약 건축계가 주도적으로 대안을 찾지

않는다면 자본의 논리에 의해 또 다른 우리의

소중한 건축 문화를 잃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올림픽 주경기장에 새로운 생명 불어넣기?

잠실종합운동장의 활성화에 고민하던 정부는

최근 규제 계획을 검토하여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만으로도 스포츠 시설 내에 자유롭게

수익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다분히 복합문화공간으로 잘 활용되고 있는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모델로 한 규제 완화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월드컵경기장들 중 유일하게

흑자를 내고 있는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수익은

매년 100억 원에 이른다. 이러한 성공담이

가능한 것은 초기 기획 단계에서부터 월드컵

이후를 염두에 두고 입지 및 공간 구성을

고민했기 때문이다. 입지적인 측면에서 서울

월드컵경기장은 경의선 사이에 위치하고

지하철이 경기장을 통하며, 인접 주거 단지의

보행거리에 위치하는 등 다중적인 교통 인프라와

효과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공간적인 측면도

영화관과 대형 마트 등 수익 시설이 경기장 스탠드

하부 공간에 수용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서울 월드컵경기장은 단순한

체육시설이 아니라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지역

주민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잠실종합운동장은 서울 월드컵경기장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관리 주체가 다르다. 잠실종합운동장은

'서울특별시 체육시설관리소' 에서 관리하는 반면,

서울 월드컵경기장은 어린이대공원과 청계천을

관리하는 '서울시설공단 ' 이 관리한다. 만약

잠실종합운동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성화하고

싶다면, 서울시설공단이나 별도의 전문 단체가

관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음은 사용 주체가 다르다. 올림픽 주경기장은

이곳을 연고로 하는 프로팀이 없다.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성공은 2002년 한 · 일 월드컵의

열기를 K리그 최고의 인기 팀인 FC서울이 잘

이어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입지 조건이 다르다. 겉보기에는

올림픽대로 및 지하철 2호선과 인접한

잠실종합운동장의 입지 조건이 서울

월드컵경기장의 입지 조건과 유사해 보일지

모르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했던 지역에 들어가 성공적으로

주변 지역을 활성화시킨 서울 월드컵경기장과

달리, 잠실종합운동장 주변은 다양한 문화

및 상업시설로 이미 활성화되어 있다.

서쪽엔 대형 멀티플렉스와 아쿠아리움이

있는 코엑스몰과 코엑스 컨벤션센터, 호텔과

백화점이 이미 포진하고 있고, 동쪽엔 또

다른 대표 복합문화시설인 롯데월드가 있다.

특히 제2롯데월드가 2015년 완공인 마당에

복합문화상업시설로서 잠실종합운동장이 과연

사업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방치된 기념비의 혁신적 탈바꿈1988년 올림픽 이후 사용 방안에 대한 철저한 사전 기획 없이 만들었다가, 지금은 방치되어 환영받지 못하는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의 문제점과 대안을 들어본다. 이어서 그간의 막대한 예산으로 유치 국가에게 빚만 안긴 올림픽을 도시 재생의

기회로 삼아 실천한 런던의 사례를 분석한다.

1984년 9월 29일자 「경향신문」 에 실린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개장시 광경

잠실종합운동장의

올림픽 주경기장을

아파트로?

조한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3면에 계속 >>

© 경

향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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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구원투수일까 방화범일까?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대망의 제1회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인류 평화의 대제전' 이라는

구호 아래 전 세계의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정한 화합을 도모하고자 했다. 그러나 불과

몇 회가 지난 후부터 현실은 기대와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

제1, 2차 세계대전으로 제6회(1916), 제12회

(1940), 제13회(1944) 대회가 연달아 무산되었고,

제22회(1980) 모스크바 대회는 자유진영이,

반대로 제23회(1984) 로스앤젤레스 대회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권이 불참함으로써

올림픽의 대의명분은 크게 퇴색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24회(1988) 서울올림픽은 새로운

희망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념의 장벽을 넘어 다시

전 세계가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 흐름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서울올림픽부터는 인류 평화의 대제전

이라는 겉으로 드러난 의미보다 '도시 간 경쟁'과

'도시 마케팅'의 측면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이는

20세기 후반부터 도시 경쟁력이 국가 발전의

핵심으로 등장한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약 2주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도시를 소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올림픽은 효과적인 도시 홍보 수단으로

부각되었다. 따라서 올림픽은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에 더욱 매력적이라 할 수 있고,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유치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끝나자 도시 전문가들

사이에서 베이징올림픽이 기존과 같은 형식의

올림픽으로는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올림픽이 단기간에

경제 발전을 위한 원동력을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다. 올림픽과 경제의 관계를

언급한 어떤 자료도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지만,

2000년 이후 개최된 시드니, 아테네 그리고

베이징올림픽이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적자를 면하지 못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무려 70조의 예산이 투입된

베이징올림픽의 적자 규모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벌어질 정도다. 물론 올림픽이 단기간의

직접 수익보다 이후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다양한 경제유발 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올림픽과 경제의 함수관계를 단순히 평가하기는

어렵다.

경제 효과에 대한 불확실함과 더불어 기존 방식의

올림픽에 대한 부정적 견해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현재 세계 도시들이 추구하는 방향도

한몫을 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의 주요

도시들은 '지속 가능성'을 도시발전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이를 강도 높게 실천하는 중이다. 지속

가능성은 '환경'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도시 개발 모델을 목표로 한다. 이렇게 볼 때,

고작 2주 동안 벌어지는 행사를 위해 몇 년에

걸쳐 대규모 스포츠 및 사회기반 시설을 건립하는

올림픽이 지속 가능한 도시 발전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너무나 당연하다. 더군다나 앞서

올림픽을 치른 여러 나라가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결정적 이유 중의 하나는 새롭게 건립한

시설을 이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올림픽이 끝나고 며칠 동안의 화려함을

뒤로 한 채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경기장들과

딱히 활용 가치가 없는 시설들은 올림픽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갖게 한다. 올림픽이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도시 발전에 역행할 수도 있다는.

두 개의 바퀴, 지속 가능성과 올림픽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올림픽 개최를

준비하면서 위원장인 세바스찬 코Sebastian Coe는

"우리는 더 이상 세계 최대 규모의 스포츠

이벤트가 아닌 최초로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한

올림픽을 준비하겠다 " 고 선언했다. 적어도

이전까지 100년 넘게 열렸던 올림픽들이 유사한

목표와 과정을 거쳤던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변화임이 틀림없다. 물론 이 같은 접근은 앞서

천문학적 비용을 투입해 개최된 베이징올림픽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기보다 차별화를 꾀하려는

현실적 전략도 담겨있다. 세바스찬 코가 강조한

지속 가능한 올림픽은 특정 분야를 넘어서

'환경적 · 경제적 · 사회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개념으로써 도시발전을 위해 올림픽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런던이 야심 차게 수립한 지속 가능한 올림픽을

실현하려는 의지는 개최 지역으로 런던 동쪽

리Lea 강 유역의 스트라트포드Stratford를 택한

것에서 읽을 수 있다. 이미 1908년과 1948년 두

차례 올림픽을 치른 런던은 굳이 새로운 장소를

개발하지 않아도 충분히 활용 가능한 스포츠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은 왜 동쪽의 버려진 공업지역을 택했을까?

올림픽 유치 전략의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비록 50여 년 정도의 시간 간격이 있다 해도 한

도시가 세 번이나 올림픽을 개최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을 제시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 다시

말해 두 번의 경험은 장점인 동시에 한계이다.

특히, 2012년 올림픽의 경우 터키의 이스탄불,

스페인의 마드리드, 러시아의 모스크바, 미국의

뉴욕, 프랑스의 파리,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등

유난히 이름값이 높은 도시들이 대거 유치 경쟁에

뛰어든 상태였다.

절대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런던이 꺼낼 수 있는

비장의 카드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지속 가능성'

이었다.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는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깨달았고, 이후 기후변화협약(1992),

교토 의정서(1993) 등을 필두로 다양한

공동실천방안을 마련했다. 아마도 현대사에서

전 세계가 이념이나 자국의 이익을 떠나 가장

강력한 공조체계를 수립한 유일한 사례일 듯 싶다.

이러한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주의 깊게 살펴볼

점은 영국이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지속 가능한

개발을 국가 아젠다로 설정하고, 가장 혁신적으로

실천해왔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영국이 지속

가능성의 선두 주자로 자연스럽게 부상함을

의미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엄청난 예산과

대규모 개발이 필요한 올림픽이야말로 지속

가능성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런던의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지녔다. 그리고 런던은 낙후된

스트라트포드 지역을 등장시켜 실천적 의지에

방점을 찍었다. 이것이 결국 올림픽 유치로

이어졌다.

일련의 올림픽 준비 과정이 거침없이 진행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런던이 올림픽과 무관하게

이전부터 21세기를 준비하며 치밀한 '동진정책'을

수립했기 때문이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기존의

런던에서 벗어나 동쪽을 개발해 런던의 점진적

성장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즉, 스트라트포드는

올림픽을 위하여 뜬금없이 등장한 지역이 아니라

런던의 미래를 위한 전진 기지로서 오래 전에

낙점된 상태였고, 여기에 지속 가능성과

올림픽이라는 두 개의 바퀴를 정교하게 끼워 넣은

것이다.

구호가 아닌 실천

지속 가능성을 전면에 내세워 세 번째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런던은 다섯 가지 구체적인 주제를

설정했다. '기후변화, 폐기물, 생물의 다양성,

포용, 건강한 삶' 등인데 , 런던은 이를 또 다른

도전을 향한 게임이라 천명했다. 주목할 점은 앞서

강조했듯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 같은 내용은

영국이 자랑하는 국가 · 광역 · 지역 정책을 통해

핵심 개념이 이미 충분히 정립된 상태였다.

초기 단계에서 세심하게 접근한 것은 낙후된

공업지역에서 나온 각종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폐기물 제로' 건설이다. 올림픽과 무관한 기존의

노후한 건물과 시설을 포함해 도저히 활용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진 각종 산업 폐기물을

90퍼센트 가까이 재활용했다. 사실 이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수치로서 대규모 재개발을

시행할 때 부지 내의 기존 시설과 폐기물을

처리하는데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의미가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극심하게 오염된 약 200만 톤의 흙을 첨단

과학과 기술을 활용하여 세척해 재사용했고, 이때

사용한 물은 다시 정화해 호수에 활용했다.

이 같은 방식은 시민들로부터 커다란 호응과

찬사를 받았다.

그런가 하면, 주경기장에 사용된 구조물은 해체

후에 여러 개의 소규모 경기장을 위해서 재사용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디자인했고, 총 8만 석 규모의

올림픽 주경기장 좌석의 경우 2만 5천 석을

제외하고 모두 해체하여 필요에 따라 재사용이

가능하다. 일명 '메카노Meccano 경기장'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경기장이 올림픽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라는 점에서 지어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되었으나,

그러한 접근이야말로 명분만을 쫓고 시대에

역행하는 방식이라 일축했다.

런던올림픽 주경기장 건축가 Populous의 리더

Philip Johnson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소회했다. "올림픽 주경기장을 짓는 건축가의

프로젝트는 영구성에 관심을 갖고 시작한다.

그러나 2012 런던올림픽 주경기장의 경우는

약 9천억 원의 공사비와 4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최초로 분리가 가능한 올림픽경기장이

완성되었다. 미래의 경기장에 대한 모델이 될

수 있기에 필요한 모든 과정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시작에서부터 남달랐다".

지속 가능한 도시발전 모델로서의

런던올림픽

김정후 런던대학 UCL 지리학과 박사

거대 복합 도시

로우어 리 밸리Lower Lea Valley

로우어 리 밸리는 풍부하고 다양한 활동의 중심지로

여겨져 왔다. 오늘날 이곳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안은

서서히 변화 중이다. 산업은 런던의 지속 가능한 발

전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고 있으며, 새로운 도시들

은 과잉 산업 지역에 세워진다.

◦ 새로운 세 개의 번화가를 개발하고 기존 번화가

의 기능을 강화

◦ '복합 산업' 지역 설립 두 개의 주요 산업 지역 통합

◦ 새 주거 지구를 역과 번화가에 가까운 곳에 건설

중심지,번화가

기존번화가

광고업,소매업,

레저산업이복합된도심

중심지의분할사용

잠재적커뮤니티시설

기존의역과개발예정의역

전략적고용지역

지역적으로중요한산업현장

산업중심의복합사용구역

보호부두/세이프가드부두

공사 중인 런던올림픽 주경기장 부지 모습, 2008

2007년 런던 시장에 의해 수립된 밸리 전체의 공간 전략 (참조: London Legacy Development Corporation, Stitching the Fringe: Working around the Olympic Park)

“결국 올림픽이 끝나고 며칠

동안의 화려함을 뒤로 한 채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경기장들과

딱히 활용 가치가 없는 시설들은

올림픽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갖게 한다. 올림픽이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도시 발전에

역행할 수도 있다는

©김

정후

2 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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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아쿠아틱 센터

London Aquatics Centre for 2012 Summer Olympics

런던 아쿠아틱 센터는 물의 움직임처럼 부드러운 기하학으로, 올림픽 공원의 강변 풍경을 반영해 만든 주변 공

간과 환경에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다. 2012년 올림픽에서는 17,5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으며 올림픽이

끝난 후에는 2,000명의 관중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재활용 될 예정이다. 수영장 내부의 물은 화장실 변기 물로 다

시 사용할 수 있는 친환경 기능을 갖추었다. 특히 이 건물은 올림픽 이후에도 많은 행사를 유치할 수 있도록 설계

해 그 실용성으로 주목을 받았다. 런던 아쿠아틱 센터는 올림픽 공원 마스터플랜에서, 스트라트포드시 가까이에

있는 올림픽 공원 남쪽 동부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보행자는 올림픽 공원의 기본 출입구를 통과하여 스

트라트포드시 다리Stratford city bridge를 건너 공원에 접근한다. 런던 아쿠아틱 센터는 올림픽 공원과 스트라

트포드 도시 계획에서 매우 중요한 공공공간으로 역할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바로 올림픽 주경기장의 형태에 있다. 가운데

거대한 녹지(?)가 있는 타원 모양의 중정형

구조물과 360도 조망이 확보된 공간은

아파트로서 최적의 형태와 입지 조건이다.

환상적인 중앙 녹지와 한강 조망은 우리가

기대하는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아니던가.

따지고 보면, 프로 스포츠 구단을 유치하고자

하는 것도, 종합운동장을 복합문화상업시설로

바꾸자는 것도 소비자를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다시 끌어들이기 위함인데 아파트로

전용한다면 소비자를 아예 올림픽 주경기장에

상주하게 할 수 있다. 생활과 소비를

결합한 이러한 방식은 이미 수많은 주상복합에서

성공적으로 검증된 방식이기도 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찬찬히

올림픽 주경기장의 공간을 살펴보자.

올림픽 주경기장의 공간적 매력 중 하나는

거의 40미터 높이의 거대한 기둥 80개가

만들어내는 타원형의 우아한 공간이다. 수려한

곡선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기둥과 기둥 사이를

걸어가면서 변화하는 주변 경관을

바라보노라면 아름다운 서울을 주제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바로 그

공간에 주거 유닛을 삽입하자는 것이다.

특히 기둥 간 거리가 약 10미터인 점도 주거

평면 구성에 용이한데, 개략 100제곱미터

(약 30평)의 2BR 유닛으로 가정하면 3개 층에

240세대, 4개 층에 320세대, 5개 층에

400세대가 가능하다. 50제곱미터(약 15평)의

1BR로 가정하면 그 배가 가능해진다. 물론

기존 구조를 리모델링하고자 한다면 정밀한

구조 진단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오피스나

쇼핑몰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단위 면적 당

사용 인원이 적은 점도 주거 공간이 지닌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에서는 공공공간인 올림픽 주경기장을

대표적 사유공간인 아파트로 전용하는 것에

당연히 반발할 수 있다. 하지만 아파트는

단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단 주거 형태를

의미할 뿐이며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공공성의 측면에서

서민을 위한 장기임대아파트로, 문화예술

복지차원에서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공간으로, 엘리트 스포츠에서 소외된

체육인들을 위한 교육 및 주거 공간으로,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을 위한 유스호스텔로

활용하는 것 모두 가능하다.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필수적이다. 기존 공간을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문화만능주의나,

쇼핑몰 같은 속칭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상업만능주의를 탈피해야만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이 기회에 오히려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오명을 건축계가

긍정적으로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과거에 집착하며 폐허 속에 버려두는 것은

올바른 '기념'의 방법이 아니다. 같이 움직여

호흡하고 땀 흘리며,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그런 곳이 진정한 기념비적 건축이다.

Issue 01 - 03

-잠실종합운동장의올림픽주경기장을

아파트로?:조한

-지속가능한도시발전모델로서의

런던올림픽:김정후

Interview 04 - 05

-관계안에서함께성장하는:

홍보라_인터뷰임국화

-엉뚱,신선,재미그리고시의적절한것:

현시원_인터뷰이경희

Versus 06 - 07

-사유가있는곳에

디자인도있다:김황,안지용

Critic 08

-속물적담합과주제의식의부족:김일현

Borderless 09

-'재발명'을위한도시연구사무소의실험;

'Economic,Love,Camp'프로젝트:김진주

Open Talk 10 - 11

-서울시신청사에대한

난상토론:김광수,임근준

Focus 12 - 13

-공공영역에잠재된위험성깨우기:

사카구치교헤_인터뷰성나연

-행복하지만위험하진않아:심보선

Review 14 - 15

-백남준,예술의프로메테우스인가

시간의예언자인가:정용도

-풍경이되어버린긴장감;

«REALDMZPROJECT2012»:임국화

-마르코폴로증후군을일으키는질문들;

«버티컬빌리지»:현지연

Foundation 16 - 17

-소외계층을위한2012여름건축학교

-2012어린이건축학교가을,겨울프로그램

-라운드테이블,"건축교육을말하다"

-건축교육의가능성:지역으로의확장가능성

-일반인건축강좌

<건축가와함께하는토요일11시>

-포럼앤포럼건축가시리즈#1

-젊은건축가포럼컨퍼런스파티

Round Table 18 - 19

-건축저널리즘의위기와새로운패러다임:

구본준,김광철,이은주,정귀원

CONTENTS

<< 1면으로부터 계속

바스켓볼 아레나

London 2012 Basketball Arena

바스켓볼 아레나는 이전의 올림픽과 패럴림픽 경기장보다 큰 장소이면서 동시에 올림픽 공원에서 세 번째로 큰

장소에 세워진 임시 장소 중 하나이다. 바스켓볼 아레나는 재사용을 위해 쉽게 해체할 수 있는 단단한 개체로

구성되었고 재료들의 2/3 이상은 다시 사용할 수 있으며, 부품들은 재활용이라는 프로젝트의 성격을 고려하였

다. 외관의 독특한 곡선은 발랄하고 역동적인 인상을 주며, 백색 PVC 막 위로는 올림픽 기간 중 조명 예술이 펼

쳐졌다. 임시 구조물로서 이 아레나는 런던올림픽이 끝나면 철거했다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다시

사용할 계획이다. 그간의 올림픽 건축 중 가장 혁신적이면서 실용적인 이 구조물은 지속 가능성이라는 이번 올

림픽의 키워드를 가장 잘 보여준다.

농구와 핸드볼이 열리는 경기장은 한발 더

나아가서 경기가 끝난 후에 해체하여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다시 사용할

계획이다. 전무후무한 올림픽 경기장 자체를

수출하는 셈이다.

한편, 운영의 측면에서도 자동차 사용을 억제했다.

사전에 철저하게 분석해 각종 화물 및 자재 운송

동선을 최소화하고, 매우 높은 수준의-그러나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자체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을 정해 실행함으로써 그야말로 지속

가능성을 실천하는 교과서로 평가받고 있다. 이쯤

되면 올림픽 준비 과정이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

못지않게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라 할만 한다.

사회적 맥락은 진정한 의미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흔히

간과하거나 뒷전으로 밀려나곤 한다. 런던시는

올림픽을 위해서 새롭게 건립하는 사회기반

시설이 올림픽 자체보다 장기적 맥락에서

스트라트포드를 포함해 런던의 동부 지역

활성화에 기여하도록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사회 기반 시설 및 주택을 공급하는 세밀한 계획과

더불어 올림픽과 연관해서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영속적일 수 있는 지역의 일자리 창출 계획도

수립했다. 그동안 세계 최고의 도시인 런던에

속해있음에도 런던 시민이 아니라고 여겼던 지역

시민들의 생각과 자세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올림픽으로 인한 사회적 혜택을 자신이 제일 먼저

누린다는 확신 때문이다. 어디 이뿐인가. 올림픽

단지의 일부로 조성된 친환경 공원은 최고의 녹지

도시인 런던에 살면서도 이를 전혀 실감할 수

없었던 지역 주민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라

할 수 있다.

스포츠 제전을 넘어

지난 2007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지구환경시민상 수상자로 발표되었고, 뉴욕에서

시상식이 열릴 예정이었다. 이때 영국의 데이비드

밀리밴드 환경부 장관은 "지구 환경보호에 공헌한

이유로 상을 받기 위해 런던에서 뉴욕까지

7천 마일을 날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가?" 라고

왕세자를 비판했고, 많은 환경단체가 그의 지적에

동조했다. 이 일은 이후 여러 사람이 두고두고

회자할 정도로 강한 메시지를 던졌다.

오늘날 기후 변화로 인하여 과거에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처 방식은 여전히 요란한 구호에

그치거나 생색내기에 머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도시 프로젝트가 지속

가능한 도시발전의 모델이 되지 못한다면 단순한

스포츠 축제에 불과하다. 2012년 런던올림픽이

갖는 중대한 상징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런던올림픽의 진정한 성공 여부는 런던이

올림픽을 준비하고, 시행하고, 사후 관리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높은 수준의 지속 가능성을

실현했느냐에 달렸다. 이를 통하여 지속 가능성의

교훈을 전 세계에 전한다면 2012년 런던올림픽은

스포츠 제전을 넘어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건축가 :ZahaHadidArchitects

위치 : London,EnglandClient:OlympicDeliveryAuthority

주 계약업체 : BalfourBeatty

프로젝트 면적 : 15,950sqm(Legacy),21,897sqm

사업연도 : 2011

사진 : HeleneBinet,Hufton+Crow

프로젝트 팀 : AlexBilton,AlexMarcoulides,BarbaraBoch-

nak,CarlosGarijo,ClayShorthall,ErtuErbay,GeorgeKing,

GiorgiaCannici,HannesSchafelner,HeeSeungLee,Kasia

Townend,NannetteJackowski,NicolasGdalewitch,Seth

Handley,ThomasSoo,TomLocke,TorstenBroeder,Tristan

Job,YamacKorfali,YeenaYoon

건축가 : WilkinsonEyreArchitects

위치 : OlympicParkNorth(StopM),LondonBoroughof

Hackney,LondonE9,UK

프로젝트 면적 : 11,500.0sqm

사업연도 : 2011

사진 : EdmundSumner

프로젝트 팀 : SKMwithWilkinsonEyreArchitectsandKSS

완공된 런던올림픽 주경기장 광경, 2012

런던 아쿠아틱 센터 내부

바스켓볼 아레나 외관

눈여겨 볼만한 2012 런던올림픽 경기장들

2.

1.

©김

정후

3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Page 4: 건축신문 vol. 3. PDF 다운로드

갤러리 팩토리(이하 '팩토리')는 '이러이러한

전시를 보게 될 것이다'라는 예측을 할 수 없는

공간인 것 같습니다. 항상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여러 활동을 하는 디렉터님의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들이 팩토리의 전시와 활동에

반영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시를

기획하거나 공간을 운영할 때 어떤 관점 또는

입장을 지키려고 하시는지요.

결과적으로 봤을 때 여러 가지 일을 한 것이지만

따로 떼어보면 그 자체가 흥미로웠던 일이었기

때문에 시작한 일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이라는 것을 계기로 나가서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를 경험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재미를 느끼는

것이 있다면, 반대로 경계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지금의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것에 빠지는

것입니다. 특히 시각예술에서 사용하는 특수

언어가 전부인줄로만 생각하게 될까하는 것이

두려워서 저는 자신의 언어에 빠지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디자인'이라고 했을 때 디자인이 갖는

형태적인 측면은 제게 주요 관심 대상은 아닙니다.

이건 미술의 경우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아름다움은 아주 기본이지만 저의 경우에는

그 아름다움을 만드는 다이내믹에 관심을 두고

보는 편입니다. '왜 이것이 아름답다고 불리는지,

이것이 왜 의미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죠.

계속해서 회자되어 트렌드가 되고, 나아가서 그런

방향으로 사회가 움직이는 데에는 이유들이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움직임이 우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자연스레 그 뒤에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팩토리의 디렉터이자

큐레이터로서 어떤 사건이나 이슈 뒤에 있는

현상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미술의 언어나

디자인의 언어로 번역하여 보여주는 것이 제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시 기획이나 워크숍 진행뿐만 아니라 잡지

『VERSUS』도 발행하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발행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잡지 발행과 관련한 기획 및 준비는 2006년

말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책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작업 과정에 참여할 때와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맛보는

기쁨은 어떤 어려움이나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에너지인데요. 『VERSUS』 는 그런 즐거운

에너지들을 바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006년

즈음을 떠올려보면, 전시 공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시기였고 전시는 한시적으로밖에

기능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미술시장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수요가 늘고 커지면서 팩토리의

위치와 공간에 대한 질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시가 가진 한시적인 성향에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허무감을 굉장히 크게

느꼈습니다. 그런 생각들로 힘들어할 때 친구이자

동료이자 그리고 조언자로 같이 성장한 최승훈+

박선민 디자이너와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일종의 책

같은 것을 만들면 그것이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툴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죠.

그때는 『VERSUS』 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습니다. 출판을 하게 되면서, 출판사와

전시 공간을 겸하고 있는 저희와 같은 조건을

가진 갤러리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독립잡지를

출판하면서 전시 공간을 운영하는 일본 갤러리

두 곳을 우연히 발견 또는 소개 받으면서, 이후

그들과 유연하게 파트너십을 맺어 전시와 세미나

등을 함께 진행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그 세계가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매체를 갖는다는

것이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통해서 관계를 형성하고

동료들을 갖게 되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저는 『VERSUS』 처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일 할 때 전문분야를 바탕으로

나오는 '진지함'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제가 큰

그림을 보려고 한다면 그분들은 디테일, 그리고

진지함으로 순간을 대하거든요.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받아서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을 보는 것 자체가 너무나

즐거운 일입니다. 『VERSUS』 의 출판을 통해서

각자의 분야를 존중하면서 일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성장의 계기가 되었고 여러모로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2003년 이용제 디자이너의 전시에서부터

최근의 김영나 디자이너까지 팩토리의 전시를

통해서 디자인 이슈들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팩토리에서는 여타 장르의

전시보다 디자인 관련 전시가 많이 열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의도에 의해서 디자인 전시를 기획한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열렸던 전시들을

떠올려보면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계기가 생겨 전시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어떤 작가의

전시를 해야겠다 하고 생각하기까지는 그

당시에는 비록 의식하지 못했더라도 필히 어떤

이유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 영역 뒤의 다이내믹'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디자인이 팩토리가 가진 언어라고

많은 분들이 생각합니다. 디자인 전시가

팩토리에서 많이 열렸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디자인 쪽에 아는 분들이 많이 있기도 했고,

솔직히 말해서 현대미술을 다루는 전시만

계속하다보면 전시 준비 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있는데요. 특히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의 어려운 점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좀 더 용이하고 과정이

즐거운 편인 디자인 전시를 많이 하게 된

것일 수도 있겠죠. 이용제 디자이너의 ≪한글.

타이포그라피. 책.≫(2003) 전시를 할 때에는

뭘 해야 할지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였던 거

같습니다. 2003년만 하더라도 북바인딩에

대한 어떤 정보 같은 것이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북바인딩을 위한 도구가 아직 많이 구비가 되지

않았던 때라 명주실을 왁싱하는 등 대체 가능한

방식을 이용제 씨가 직접 찾아서 진행했죠. 남은

종이를 이용해 제본을 해보는 북바인딩 워크숍을

같이 진행했는데 반응이 꽤 좋아서 한동안

팩토리가 핸드메이드 워크숍 공간으로 알려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 후에 이용제 디자이너의

추천과 소개로 당시 스위스에서 유학 중인 박우혁

디자이너를 알게 되었고, ≪A Diary: Typographic

Days≫(2004) 전시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 박우혁 디자이너를 통해 주목할 만한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듀오를

소개받았는데 그분들이 슬기와 민입니다.

이후 슬기와 민과 ≪슬기와 민, 팩토리

공육공사이일 - 공육공오일삼≫(2006) 전시를

하게 되었고요. 김영나 디자이너의 ≪FOUND

ABSTRACTS≫(2011) 전시의 경우도 그렇게

열리게 되었습니다. 굳이 전시라는 플랫폼을

필요로 하지 않는 디자인 분야에서 디자이너들이

전시를 하게 되는 데는 일종의 계기가 필요한데,

그런 때에 알 수 없는 우연으로 서로 만나게 되면

꽤 흥미로운 전시로 이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팩토리가 개관하기 이전부터 현재까지 어떤

이슈들에 주목해오셨나요?

제가 2002년부터 갤러리를 시작했는데요.

그때도 다른 장르나 분야에 비해 팝아트에 관심이

덜했지만 최근에는 더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

것 같습니다. 팝아트라고 말하기보다는 에둘러서

재미없을 만큼 지리하게 뭔가를 재현하거나

선언하는 그런 작품에 관심이 없어졌다고 하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개념적인 작품이 더 좋다는

것 보다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목적이 있는

작품이나 노동집약적인 작업에 대한 흥미가 줄게

된 거죠. 그러면서 작업을 보는 방식들이 바뀌게

된 것 같습니다.

한국은 변화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1년 단위로

큰 방향을 정합니다. 미술 혹은 예술 커뮤니티

내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컨텍스트가

계속 바뀌는 것에 촉을 세우고 유연하게

움직이되 근본적인 부분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합니다. 재작년부터는

개인적으로 음식미학gastronomy에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음식미학과 관련한

전시와 연계된 워크숍 및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음식이라는 것이 일상과 예술에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시에 매우 개념적인

작업을 위주로 하는 작가들, 즉 언어와 텍스트의

관계를 조망하는 작가들의 전시도 함께 시리즈로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간 많이 다루지

않았던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 개념미술

작업들이 보여질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지난 5월에 있었던 김온 작가의

≪Surfaces of Listening≫(2012) 전시 그리고

올해 12월에 예정된 전소정 작가의 개인전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VERSUS』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고 전문분야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다이내믹한 분위기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최근 전시 기획의 경험을 바탕으로 큐레이터의

역할범주는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에게 큐레이션은 디렉팅의 역할에 좀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저는 전시 기획을 협소한 영역과

역할로 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전시의 개념을 만들고, 공간에 어떤 방식으로

그 개념이 녹아들 수 있도록 할 것인가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만큼 예산이 어떻게 쓰이고

그 예산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진지하게

고려합니다. 국고지원인지 기업지원인지에

따라 전시의 형식과 방식이 어느 정도 다르게

상정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전시를 만든다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말이

안 되는 일인 거죠. 예술행정을 전공한 영향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국고를 쓴다고 할 때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가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는 것이죠.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객원큐레이터를 맡아 기획한 북유럽디자인전시

≪노르딕 데이≫(2012)를 진행하면서 그런 부분을

굉장히 많이 고려했습니다.

큐레이터, 디렉터의 역할 가운데 중요한 것은 큰

그림을 갖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연하게

문맥에 따라 변화해가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방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저는 전시를

기획하면서 주제나 형식보다 각각의 전시에

맞는 프레임워크를 가장 먼저 만듭니다. 그래서

실제 어떤 작품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구체적

내용에서부터 어떤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어떤

방식으로 홍보할까 하는 것까지 전시 기획 초기에

방향을 잡습니다. 이 모든 것이 서로서로 연결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일은 형태를

통해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 뒤에 숨겨진

보이지 않는 다양한 다이내믹을 생각해보고

그것을 전시라는 형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념으로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 중간 중간에 처음의 프레임워크

단계로 돌아가서 다시 확인하고 다시 또 한걸음씩

나아가는 방식으로 큐레이팅을 합니다. 큰 구조를

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재미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유연하게 바꿔가면서 해야 즐겁게 일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9월 13일부터 문화역 서울 284

에서 열릴 «인생사용법»전시에서도 역시 큰

프레임워크를 정하고 나머지는 열어두며 전시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큰 전시의 제목이

≪인생사용법≫이고 제가 기획자로 참여한 섹션의

전시 제목은 ≪우연한 공동체≫입니다. 이상적인

'공동체'라는 것을 상정하고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혹은 사람과 사물, 동물

간 보이지 않는 관계의 형성과 발전과 변이에

주목하는 전시입니다. 실제로 이 전시를 통해서

개인이나 개체 같은 작은 단위에 관심과 해답을

가진 전문가의 위치가 아니라 궁금한 사람으로서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방식이 저의 큐레이팅 방식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팩토리의 큰 토픽은 무엇인가요?

그간 진행해온 전시와 아트컨설팅 외에

'팩토리 에디션'이라는 프로젝트를 올해부터

새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간이 중심을

이루는 전시라는 플랫폼을 벗어나서 팩토리가

아티스트들과 협업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결과물은 가구, 가방,

멀티프린트, 공간 설치 등 정말 다양한 형태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어떤 한 가지의 정의에

가두지 않고 더욱 자유로워지는 것을 목표로 해서

궁극적으로는 팩토리가 공간이 아니라 개념이

되길 바래봅니다. 공간으로 운영이 되면 언제

없어질지 모르지만, 개념이 되면 새로운 단계로

확장 또는 전환 가능하다는 믿음이 생겼고 그래서

지금이 더욱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임국화 컨템포러리아트저널 편집자

관계 안에서

함께 성장하는

홍보라

서강대에서 종교학과 신문방송학을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서

예술행정을 공부했다. 2002년부터 갤러리팩토리Gallery Factory를

운영하고 있으며, 2012 한국국제교류재단 북유럽국제교류전

≪노르딕 데이: 일상 속의 북유럽디자인≫을 기획 · 진행하고 문화역

서울 284 ≪인생사용법≫에 참여했다. 이 외에도 다수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했다.

≪Surfaces of Listening≫ 전시 전경, 2012

세계적인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은 전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 세계를 담는다고 했던가.

홍보라, 현시원 두 사람이 기획해온 전시를

보면 그들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대상이 얼마나 다양한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그리고 지적이고

창의적인 공동체를 존중하며 만들어가는 이들의

전시는 최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큐레이팅이라는 것이 어떤 기쁨의 원천이

되는지 들어보았다.

나의 상상력과

너의 지적

호기심이 만날 때

4

『VERSUS』 5호 표지 (2012. 8)

최승훈+박선민이 제안하고 동시에 아트디렉터를 맡았으며

편집디자인은 워크룸workroom의 디자이너 김형진이 맡았다.

편집자 김뉘연이 4호와 5호의 객원편집장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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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Page 5: 건축신문 vol. 3. PDF 다운로드

전시 기획 방식의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일반 전시에서부터 온라인의 글로 지은 미술관

(라이팅 밴드), 지면을 통한 전시 기획(워킹매거진),

다원예술(페스티벌 봄)까지. 이러한 가운데에도

본인만의 공통분모가 있나요, 아니면 정말 왕성한

호기심인가요.

주변 분들이 제게 호기심이 많다고는 해요. 질문도

많고요. (웃음) 하지만 저는 그렇게 다양하게

활동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학교

신문사에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던 시기에 비하면

졸업 후에는 관심사를 미술사와 큐레이터로 좁힌

거거든요. 제가 궁금한 것은 미술관에만 있는

미술이 아니라, 껌포장지, 아이스크림 모양과

같은 일상의 이미지들이 왜 그렇게 생겼는가 하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내가 관심 있는 미술이

'현실' 과 가까울 때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재환 선생님 같은 고리타분하지 않고

장난기 있는 민중미술을 좋아하고 미술이란 말이

애매하긴 하지만 현대 '미술'이 어떻게 미술 이외의

다른 것들을 다룰 수 있느냐가 궁금했어요.

기획하신 전시들의 인상이 하나같이 신선하고

엉뚱하다가도, 막상 뚜껑을 열면 매우

시의적절하단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 전시 기획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경력은 그리 길진 않아요. 학보사 문화부 기자를

하니까 자연히 전시를 열심히 봤어요. 미술을

책으로 먼저 본 게 아니라 전시장에서 접한

거죠. 1999~2001 년에는 금호, 성곡, 선재 등에

재미있는 전시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 좀 더 공부하고 싶었고요. 한번은 이영철

선생님이 쓴 글을 봤는데, 전시 기획이라는 것은

"제3의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거예요.

간지럽죠. (웃음)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전시 기획이라는 게 무얼까 진지하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대학원에서는 작가를 친구처럼 만나니까

좋았어요. 당시 남화연 작가의 드로잉이 너무

좋은데 보여줄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지면에

전시를 세우면 어떨까 했죠. 그렇게 『워킹매거진』

에 주변 친구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주제를

잡아서 신작을 선보인 것이 자연스럽게 기획으로

연결됐어요. 그리고 한겨레신문사의 주말 섹션도

3면을 채워야하는데 구성에 큰 제약이 없어서

역시 전시처럼 기획했어요. 한국의 교복 이미지,

광고 문구, 사람들이 선호하는 진행자 등 온갖

시각문화를 분석해봤어요. 꼭 미술이 아니어도요.

순서가 다르네요. 보통은 실기든 이론이든

학교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흐름을 읽고, 관객을

분석해서 테마를 잡아 기획하는데,

현 큐레이터님은 주변의 친구들을 세상에

보여주고 나눌 거리가 필요해서 『워킹매거진』

을 진행했던 거였어요. 출발이 작품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화연 작가와는 5년 동안 매일 전화하다시피

했어요. 꼭 작업 이야기만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야기를 하니까 서로를 더 많이 이해하고

배운 것도 많아요. 살면서 짜증나는 일도 많고

전시 기획이 무엇인지 답답하다가도, 제가 관심

있는 작가들의 미래를 보고 싶기 때문에 전시를

기획하는 건 당연한 거 같아요.

요즘은 매우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큐레이팅을

합니다. 작가 스스로 기획과 작업의 경계를

오가기도 하고요.

주변에서 어려운 가운데도 다양한 시도들을 하는

걸 보면 좋더라고요. 전시가 좋아지는 큐레이터를

실제 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건 우리 모두가

같이 가난해지기 때문에 가능한 거 같아요.

갤러리의 미술은 재미가 없어지고, 미술이 순수

목적이 아닌 특정 목적이 된 사람만 하는 것

같고, 주변에 생활과 미술이 합체되는 작가들이

점점 느는 것도 갤러리의 간섭을 받기보다 자기

생각을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으니까,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아요.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분발하고자 하는 지점이

있으신가요.

우리나라가 이미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매우

약한 건 분명해요. 해외의 문필가들은 그림에

대해서 자유롭게 얘기하는데 우리는 미술과

문학이 분리되어 얘기되거든요. 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수요가 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미지 리터러시라고 할까요. 미디어환경은

변하고 있는데도 이미지가 나와 시대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거든요. 그런 역할을 요즘의 큐레이터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주재환 선생님이 서울을 다니면서 어디에

껌딱지가 많이 붙어있는지 보라는 거예요. 그런

동네는 회환이 많은 곳이라고. 저라면 할 수

있다고. (웃음) 전시라는 게 벽에 멋진 그림 거는 게

아니라 전시 자체가 또 다른 작업이 되어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다고요.

선호하는 작가나 작품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사실

이 질문이 잘못된 게, 현 큐레이터님이 작품보다

사람에게 먼저 관심을 먼저 갖고 접근하는 거

같긴 하거든요. 그리고 전시의 결과물이나 작가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요.

최근에는 잭슨 홍 작가가 현실과 반응하는 그만의

언어가 흥미로워요. 디자인과 미술 사이에서

기생적으로 생겨난 작가인데, 세상을 보는

질문을 만들고 미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기 때문에 좋아요. 그는 디자인과를 나왔지만

예술가가 됐고, 말도 안 되는 사물을 만드는 걸

보면서, 도대체 기성품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진지하게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일상에서는 전시

기획이 아니면 진지하게 이야기 할 기회가 별로

없거든요.

작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더 좋다는 건가요? 대중을 너무 의식하다보면

가공이 들어가고 주석이 들어가고 하니까요.

그게 맞아요. 큐레이터가 조심스러운 게, 작가를

표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라벨을

만들어서 범주화하니까요.

최근 웹을 기반으로 한 <라이팅 밴드>라는

흥미로운 시도를 하셨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공통분모 없이 여러

필자가 글을 올립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러한 기획을 하게 됐나요.

《천수마트 2층》을 하면서 제가 기획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걸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페스티벌

봄을 통해서 무대에 올리는 게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러운 거 같았어요. 시작은 혼자 보기

아까워서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박길종 씨의

도움으로 장치를 만들어 전시한 건데, 공연에서는

많은 이들이 한 공간에서 집중해서 보는 게

결과적으로는 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라이팅 밴드>는 아무도 무대 위에 올라가지

않고, 글 쓰는 일곱 명이 조용히 미술관에 갔다가

조용히 와서 자기가 본 것에 대해서 글 쓰는 것을

해보자 했어요.

글쓰기와 전시가 어떤 관계인지 저도 늘 궁금해요.

<라이팅 밴드>도 그래서 시작한 거예요. 나 말고

다른 이들은 어떻게 글을 쓰는지 궁금했거든요.

「한겨레」나 월간지에 글을 쓰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닌 게, 원고 마감 전에 해당 잡지의 다른

글을 읽어봐요. 포맷이 있거든요. 또 신문 칼럼 중

평소 잘 쓴다고 생각하는 글들을 참고로 각 매체

성격에 맞추거든요. 그런데 <라이팅 밴드>는

예시가 없어요. 같이 하는 다른 사람들도 나름의

스타일이 강하고요. 어떤 모티프를 잡든 그들

마음이거든요. 뒤샹처럼 쓰는 사람, 걸어가면서

빠른 호흡으로 쓰는 사람, 보도자료를 활용해 쓰는

사람 등.

동물원 가서 동물 보고 쓰라고 하는 게 열린 거

같지만 어떻게 보면 또 매우 한정적인 조건을 준

거거든요. 미술계에서는 글을 가지고 하는 시도가

아직은 부족해요. 제가 비판할 입장은 아니지만.

자유로운 글쓰기를 보여주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해보고 싶고요.

그럼 <라이팅 밴드>는 국립현대미술관에만

국한되어 곧 마무리되는 건가요?

이 프로젝트는 다른 공간에서 해야 더 재미있는

거 같아서, 당장 알리기보다는 다른 곳에서

하려고 생각 중이예요. 기획이 현시원이 아니라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서 진행하려고 했는데, 결국

뒤치다꺼리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해서 그렇게

된거예요. 아무튼 이번이 처음이라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궁극적으로는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좀

더 동등한 입장에서 해보고 싶어요.

기획자로서도 그렇고 작가나 공연 등에 관해 글 쓸

일이 많잖아요. 기획자로서 글을 쓰는 작업은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를 갖나요.

말을 할 때도 '유레카'의 순간이 있지만, 글에서

그런 순간을 더 강렬하게 느껴요. 혼자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한겨레21」, 『아티클』지에도 마감을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에는

흥이 나진 않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쓰는 시 형식의 글을 쓸 때 제일 기분이 좋아요.

20대 초중반에는 왜 전시 기획을 해야 하고

미술을 전공해야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림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추상적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은 글이라는 게 전시를 위한

사고를 밑받침 해주고 좋은 출발점이 되는 거

같아요.

대표 직함은 독립 큐레이터잖아요. 그런데 실제

하는 활동들이 좋은 큐레이터가 되기 위한 건지,

아니면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큐레이터를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최종적으로 '큐레이터란 무엇인가'만을 염두에

두지는 않아요. 하지만 매우 구체적으로 재미있는

('재미'라는 표현이 애매하긴 한데요), 전시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요. 글쓰기는 짜릿하기도 하지만

너무 어려운 일이고요.

글쓰기의 모티브도 전시를 기획 하는 것처럼

이미지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좋기도 해요.

요새는 전시 기획을 잘 하고 싶단 생각이 들지만,

글쓰기가 이것보다 덜 소중한 건 아니예요.

50대에는 옷장사를 해도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글을 잘 쓰려면 정말 재미있게 살거나,

슬프게 살거나 해야 하는 거 같아요. 저는 일단

상상이 아닌 눈으로 본 것을 기반으로 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거든요.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한다고

좋은 글이 써지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리듬감 있는

글이 나오려면 일단은 재미있게 살고 계속 변하는

'생활'이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또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지, 큐레이터로서 경험을

많이 쌓아서 글을 쓰고 싶은 건지는 정확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생각을 표현하는데 있어

시각언어는 글에 비해 덜 설명해도 된다는 것에서

자유로움이 느껴져요.

기획자로서 작가를 보여주는 것도 중요한데,

관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그때 포커스를

미술계와 관객 중 어디에 두나요?

전시는 10년, 20년이 지나도 후회되지 않게끔

작가와 기획자의 시각에 맞추는 편이예요.

<라이팅 밴드>도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참여한 사람들(필자들)에게 맞추어

우리 안에서 어떻게 하면 쫀득쫀득한 화학반응이

일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요. 솔직히 관객은

주변의 소수만을 생각하고요.

《천수마트 2층》의 경우도 페스티벌 봄에서 한

것보다 작년 8월에 한 게 더 산뜻했어요. 그 때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반죽이 살아있었어요. 기획,

국립현대미술관의 도슨트, 곧 돌아가실 것 같은

화가 조성린 할아버지... 그때는 오히려 관객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게 페스티벌 봄에서 관객을

생각하면서 가공을 하니까 석회석처럼 굳은

느낌이더라고요. 할아버지를 더 오래 보고 그림을

연구할 수 있었던 점은 좋았지만요.

큐레이터라는 게 좋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 거잖아요. 그런 가운데

사람들의 사유의 폭을 넓히고 물질만능주의에서

획일화된 고인 생각에 자극을 주고 제동을 거는

역할이요.

전시가 왜 매력적인가, 왜 내가 이것을 계속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다른 생각들이 모여 있는

구조가 재미있는 거 같아요. 책만 해도 레이어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하지만 전시가 재미있는

게 여러 계열이 어긋나있어요. 계통이 없다고

할까요. <라이팅 밴드>만 해도 다 다른 사람이

모이고, 잭슨 홍은 계란판 가지고 작품이라 하고,

워크온워크는 홍대 지하철에서 전시를 하잖아요.

현대미술을 다 이해하는 사람은 아마 미치광이일

거에요. 자기 시각으로 보는 게 현대미술 같은데,

기획자는 '다른 종류의 사람도 있다', '보이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다', '다른 삶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거 같아요. 작가들이 좋은

작업을 할 수 있게끔 맥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가들이 신작을 많이 해야 시대가

기록되는 것 같고요. 그런 면에서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글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직업군으로 봤을 때 전시기획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당장 해결방법을

내놓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떤 의의를 가지고

계속해서 전시기획을 할 수 있을까요.

돈이라는 게 왔다갔다 해요. 혹자는 돈이 있어야

좋은 작업이 나온다고하는데, 돈이 작품을 망치는

경우도 많거든요. 돈이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기획도 분명 있어요. 자원봉사 전시기획은

아니지만, 저는 전시기획이 '연구행위'라고

생각해요. 눈 앞의 이익이 중요한 게 아닌 거죠.

그렇다고 예산의 제약에 수긍한다는 건 아니에요.

분명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전시가

나오기도 하고, 그러면서 폭이 넓어지기도

하거든요.

이경희 정림건축문화재단

엉뚱, 신선, 재미

그리고 시의적절한 것

현시원

《지휘부여 각성하라》, 《천수마트 2층》 등을 기획했고, 현재 <Closing

Hours>와 <라이팅 밴드>, 작가 잭슨 홍의 개인전 등을 진행 및 준비

중이다. 시각 이미지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단행본 『디자인 극과 극』

(학고재, 2010)을 썼고 지금은 『너의 의미』(가제)를 쓰고 있다. 경향

『아티클』 , 「한겨레 21」 등에 전시와 그림에 관한 글을 연재한다.

사계절큐큐의 멤버이자 『워킹매거진』의 에디터이기도 하다.

«천수마트2층»전시전경,2011

<라이팅 밴드> 홈페이지의 메인화면과 (위), 각 필자가 쓴 노트 (아래)

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현

시원

현시

원 제

공. 디

자인

: 홍

은주

·김형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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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적 디자인 & 헤르츠 이야기 & 이탈리아

급진적 디자인: 비평적 디자인은 비평적 이론을

바탕으로 디자인에 접근한다. 안토니 던과

피오나 라비(이하 '던&라비')에 의해 알려졌다.

던&라비는 디자인과 예술을 구분하는 것이

대량생산manufacturing이라 보고 소비문화에

크리틱 또는 코멘터리를 구현하는 디자인 제품에

비평적 디자인을 적용한다. 비평적 디자인에서는

사용자를 소비자가 아닌 '관람자audience'로

칭하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비평적 디자인은

관람자의 예상과 기대에 도전함으로써 오브제와

그것의 사용 그리고 오브제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방법들을 자극하고, 기존의

디자인 개념에 도전한다. 비평적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이라는 것이 자극하고, 영감을 주고,

생각하게 하고, 기본적인 가정에 질문하게 하는

것이라 믿고, 그것들이 일상에서 기술로서 역할을

하며 토론하게 하는 것을 통해 가치 있는 기여를

한다고 본다. 따라서 비평적 디자인은 '태도이면서

동시에 입장'이다. 비평적 디자인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단순하게 유용한 방법을 만드는 것을 더

뚜렷하게, 그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너머에

있는 다른 가능성들을 가진 디자인을 강조하는

유용한 방법이다. 한국에서는 디자이너 최성민이

안토니 던의 『헤르츠 이야기』를 번역하면서 처음

소개되었다. 그러나 비평으로서의 디자인의

역사가 이들에 의해 확장되기는 했지만,

그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1960~70년대의 이탈리아 급진적 디자인을 예로

들 수 있고, 이것을 비평적 디자인의 역사로서

바라볼 수 있다. 이탈리아 급진적 디자인에서는

사회적 가치들과 디자인 이데올로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카피레프트 운동: 지적재산권을 의미하는

카피라이트Copyright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저작권의 공유를 의미한다. 1984년 리처드 스톨먼

Richard Stallman이 소프트웨어의 상업화에

반대해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사용하자는 운동을

펼치면서 시작되었다. 그가 이러한 운동을 펼친

이유는 지적 자산인 지식과 정보는 소수에게

독점되어서는 안 되며, 모두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카피라이트는 법에 근거해 문학, 영화,

예술작품 등 저작물에 대한 독점권을 보장하며

저작물의 임의적 사용으로서의 복제를 제한한다.

저작권에 대한 베른조항은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취득 및 행사에 있어서 어떤

요건이나 등록절차를 갖추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저작권이 보호된다는 무방식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황

디자인은 기능과 형태의 조화를 추구하는

행위이며, 주어진 조건과 문제해결을 위한 고유의

프로세스를 따릅니다. 하지만 현대의 디자인은

디자인과 순수미술의 구분을 '기능'에 두었던

도널드 저드Donald Judd의 원칙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현대 디자이너들은 실용성과 관조의

이상적 통합을 실험하고 미학과 기능, 삶과 미술의

자의적 구분과 경계를 허물기 위해 노력합니다.

심지어 산업 문명 논리의 본령에 도전하며 우리

삶의 환경에 다른 각도로 주목합니다. 고유의

내적 논리를 교묘하게 위반하며 상품 미학에

도전하고 소비 메커니즘을 전환시킬 수 있는

이색 아이디어와 시스템을 고안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여러 장르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제 미술, 디자인, 건축의 협업 및 통합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이 최근의 전 인류적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그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물질문명과 깊은 연관을 가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바우하우스 운동을 통해 디자인은

의도적으로 공예와 결별함으로써 (물론 아직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공예와 디자인을 한

맥락으로 연결하려는 노력들이 있지만) 디자인의

개념은 손보다는 기계에 가까워졌습니다. 이러한

의도적인 이별로 하여금 우리는 아직도 디자인을

진행하며 그리는 행위(기계가 만들 수 있도록)와

만드는 행위(사람의 손으로 제작하는), 생각하는

행위 등에서 명확하지 않은 경계를 경험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건축은 어떻게 전통을

유지하며 산업혁명이 태동하는 시기를 건너왔는지

안지용 대표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안지용

역사가 담긴 좋은 질문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디자이너의 창의성에 초점을 두고 그 독창성을

인정받은 디자인 제품이 순수미술과 함께 미술관,

박물관 등에 전시되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디자인과 순수미술의 차이점은

'문제해결'의 여부에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제는

순수미술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능'을

가진 작품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들도 '디자인'

이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디자인의 범위를

순수미술과 대립점을 찾으면서 확인하기보다는

'디자인은 디자인이다' 할 수 있는 거죠.

건축의 경우는 인간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에서 비롯되었기에, 디자인과는 또

다른 영역을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능적 측면, 즉, 비를 막기 위해, 추위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해 만든 보호장비 가운데 고정된 것이

건축이 되었다고 한다면, 건축이 디자인이라는

것을 피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바퀴를 둥글게 만들고, 부엌의 아궁이와 온돌을

연결시키는 '디자인 행위'를 인류는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부싯돌을 만드는 것은

디자인이 아닐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보관하고

다시 사용하면 좋을지 고민한 것은 디자인적

사고입니다. 그에 해당하는 어휘만 없었을 뿐,

지금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디자인'이

특별한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넓은 의미에서 디자인의 원리를 공유함에도,

건축이 기본적으로 산업 · 공업 · 시각디자인과

다른 점은 '일회성'을 갖는다는 점입니다.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뿌리를 내리고 머물러야 하는

기능을 가졌던 건축은 수시로 변화하기 힘든

인간의 행위 중 하나였습니다.

건축은 '특정 클라이언트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14세기 이후 등장한 개인 주거를 위한 건축행위는

물론이고 공공건축 역시 사용자가 거주하는 곳의

지역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디자인 분야가 보편성mass

production을 띤 것과는 다른 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건축도 장인정신(지역성, 공예)과

결별하면서 '20세기 모더니즘과 인터내셔널리즘'

이라는 보편화된 모습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지역성을 무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일회성'의 원칙은 건축가는

물론, 건축주와 시공자, 21세기 일반적인 건축

계약서에도 명시하여, 하나의 건축이 다른 하나의

건축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건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편성으로 그

시장을 넓히고, 동시에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황

'순수 미술은 문제를 제기하고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견에 동의합니다. 앞서

말씀하셨듯이 오래전부터 '디자인 행위'는

존재해왔습니다. 특히 둥근 바퀴나 아궁이-온돌은

'발명으로서의 디자인', 즉 특정 문제해결을 위해

특정 기능을 가진 물체나 시스템을 창조하는

맥락에서의 디자인입니다. 한편, 문제해결이

아닌 이미 존재하는 기능에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디자인 행위도 있습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후자의 디자인 행위를 하고 있는데,

'스타일링 디자이너'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후자의 현실적인 디자인의 경우 '기능'이나

'문제해결'로 디자인과 순수예술을 구분하기에는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 경우 이윤창출,

대량생산manufacturing, 산업과의 연관성을

가지고 그 경계를 나누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산업에 깊이 연결된 예술가도 있고, 극히

개인적이고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디자이너들의

경우는 제외합니다.)

70년대 널리 유행했던 이탈리아의 급진적 디자인

Italian Radical Design, 90년대의 개념적 디자인

Conceptual Design 그리고 최근 언급되고 있는

비평적 디자인Critical Design * 은 디자인 중

가장 순수 미술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디자인들은 기능도, 문제해결 목적도, 산업과의

연결점도 없지만, 디자인 범주에 위치합니다.

안토니 던Anthony Dunne의 『헤르츠 이야기

Hertzian Tales』(1999)에 의하면 디자인과 순수

예술을 구분하는 잣대로 "일상에 귀 기울임"을

듭니다. 즉 순수예술은 자기 자신의 성찰에서

시작하여 아름다움의 본질에 접근하는 행위라면,

디자인은 외부에서 시작하여 본질적인 미에

접근하는 행위라는 것이죠. 이는 마치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이와도 흡사해 보입니다. 하지만

순수미술에도 행동주의적 예술Art Activism이

존재하기 때문에 역시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공예와 디자인의 경계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한정판Limited Edition을 만드는

디자이너를 제외하고 (최근에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한정품 디자인 장르가 개척되어

프로토타입을 판매합니다) 디자이너는

완성된 제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대학에서도

졸업전시회를 위한 프로토타입 제작을 끝으로

교육과정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공예가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이용 / 판매

가능한 완제품을 제작합니다.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손을 이용해 마무리하는 섬세한

책임감은 공예가의 기본 정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물론 자신을 디자이너이자 메이커

Maker라고 부르는 디자이너도 있습니다.

디자인은 발견, 생각, 콘셉트의 창조에서부터

그것을 만들어 내는 행위까지 넓게 정의할

수 있지만 좁게 정의한다면 위와 같은 논리로

공예와 디자인을 구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축에서는 설계, 시공, 감리 등이 더 복잡하게

얽혀있고 그 책임의 범위도 규정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그 경계에서 표류하는 예가 있을까요?

안지용

예술의 범위는 사실 광범위해서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것이 예술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고, 나아가 인간의 기술이나 삶 자체도 어떠한

관점에서는 예술로 담을 수 있어서 그 범위는

매우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의 경우도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미적 가치의

흐름이 생기면서, 건축가 스스로 '작가'라는 의식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건축주를

위한 건물이 아닌 건축가 자신을 위한 건물이

나오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최근 이야기를

나눈 한 건축주의 경우,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건축가가 건축주의 의견은 무시하고 오직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것을 지켜보면서 참지 못해

계약을 파기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유명한 사례가 있습니다. 20세기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는

여러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실현했습니다. 대표작 중 하나가 '빌라 사보아Villa

Savoye'(1929)인데, 이 작품(?)은 그를 세계적인

건축가로 만들어주기도 하였으나 그 이면을

보면, 르 코르뷔지에가 클라이언트의 끊임없는

불만에도 불구하고 이기적으로 자신의 건축관을

관철시킵니다. 그가 재판소에 오르는 것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때마침 벌어진 2차 세계대전으로

사보아 부부가 피난을 갔기 때문이었죠.

이러한 사례를 접할수록 건축주는 건축가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그들의 삶과 상관없는 디자인을

각오하게끔 만들고, 또한 건축가는 점차 건축주를

무시하고서라도 자아실현을 해야 거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디자인이 본질로부터 멀어지고,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게 하는 이유가 되겠죠.

한두 사람이 직접 집을 세우는 작은 규모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규모가 큰 건축은 여러

이유로 다양한 전문인이 등장해 구조, 전기, 배관은

물론 시공, 감리까지 책임을 나누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디자이너로서의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요즘 예민하게 다뤄지는 부분인데,

바로 '저작권'입니다. 대형 공사는 물론이고,

작은 집이라도 실제 짓기 시작하면 처음 계획

단계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이 수없이

나오면서 원 디자인과 100퍼센트 일치하게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예와 디자인의

불분명한 경계에서 갖게 되는 질문에서처럼,

건축 역시 1인의 아이디어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결과물임에도 저작권이 모두 최초 아이디어

제안자에게 귀속된다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점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현행법상

건축가의 건축물에 대한 저작권이 설계도서와

모형으로 한계를 갖는 것은 이러한 이해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시각 · 제품 · 광고 등의 디자인인 경우

저작권의 범위가 어디까지, 어떻게 보장되는지요?

기획, 설계, 제조, 유통, 판매까지 하는 애플을 보면

디자인 저작권에 관한 부분이 조금 쉽게 이해될

수 있는데, 이것을 가장 일반적인 사례로 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황

클라이언트와 건축가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빌라 사보아'는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그럼 디자인에서의 저작권 문제를 언급하면서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관계를 함께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디자인 업계에서는 저작권에 의한 권리

보호는 아주 미미하며 저작권보다도 실용신안권과

의장권이 더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지적 창조물에

대한 공유는 인류 문명의 발현에 가장 큰 토대가

되는 명제 중 하나입니다. 문명의 기원부터

시작된 이 특질, 공유의 욕망은 이제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꼭 필요한 것이라고 자리 잡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창작자는 자신의

창조물에 대하여 단순 공유가 아니라 대가성

건축가와 디자이너는 주어진 조건이나 문제해결 모색이 곧 프로젝트의

시작이며, 논리적이고 감각적인 사유는 디자인의 기반이 된다. 디자인의

의미와 경계가 모호해지는 가운데 동시대 디자인의 정의를 생각해보기

위해 디자이너 김황과 건축가 안지용을 페이스북의 비공개그룹에 초대했다.

본질적 대화가 오갈수록, 디자인과 건축이 갖는 미학적·사회적 과제에 대한

이들의 고민은 점점 더 그 깊이를 더해갔다.

사유가 있는 곳에

디자인도 있다

디자인의 개념과 경계의 확장

Alessandro Mendini, Project for a Piece of Furniture, Color

pencil on board, 1974, Zaidee Dufallo Fund and Greta

Daniel Fund, 241.1975.1-3, www.moma.org

카피레프트는 ⓒ를 뒤집어서 표현한다.

©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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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

a.org

놀이와 노동 사이의 경계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보통의 기계몰딩과 다르게, 볼링공 안에 몰드를 넣고 굴려

공의 원심력을 이용한 '로테이션 몰딩' 기법으로 플라스틱 와인잔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잔은 노동자의 자유와 노동

과정에 대한 소통의 결과물이며, 기계의 대량생산을 거부한다.

디자인과 저작권

Jorge Manes Rubio의 <My Own Factory> 프로젝트, 2009

© J

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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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io

6 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Page 7: 건축신문 vol. 3. PDF 다운로드

몇 년 후, 아니 몇 달 후에 누군가가 2012년을

회상한다면 무엇을 기억할까. 자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4대강이나 녹조현상 혹은 1994년

이후 최악의 폭염을 떠올릴까?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은 런던올림픽이나 유로2012를?

아니면 티아라 왕따 사태나 싸이의 '강남스타일'

을 생각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아마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실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마치 토끼가 영원히 거북이를 넘어서지 못할 듯한

긴박함에 비례하는 무료함으로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에게, 몇 년 전을 혹은 몇 달이 지난 일을

회상할 만한 여유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며칠

전에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하기가 어려우니

말이다.

마찬가지로 몇 달 후에 2012년의 제13회 베니스

비엔날레 를 둘러싸고 일어났던 논쟁을 기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군가에게 2년 전

비엔날레의 주제를 기억하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당혹스러워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없다.

기억하면 좋겠지만 못한다고 해서 심각한 문제는

없으니까. 오히려 문제로 지적할만한 것은 현재

제기된 일련의 현상에 내재된 본질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찻잔 속의 바람처럼 간만에

'논쟁의 무풍지대'인 우리 건축계에 산발적인

논의가 베니스 비엔날레를 둘러싸고 진행되었다.

일단 왜 논쟁의 무풍지대였는지를 살펴보자.

그동안 건축계는 계속 이어진 신도시의 건설,

공공기관의 이전, 지자체의 공모전과 PF, BTL 등의

민간사업으로 인해 매우 유리한 상황을 보내왔다.

1970년대의 강남개발부터 40여 년간 지속되었던

호황은, 국외로는 비우량주택 담보대출에서

비롯된 위기 그리고 국내로는 뉴타운 사업의

철폐라는 실질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사건으로

종료되었다. 건설 중심으로 수익을 올렸던 지난

전 세계의 토건수익 구조는 금융권의 가세로 터질

듯 부풀다가 이제 그 실태를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드러내고 있다.

미국도 스페인도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

지속되어온 수익사업의 주기 아래 방향 없이

질주하는 속도의 건축은 소멸되고 있는 현재와

다르지 않다. 건설계에서의 비슷한 양상은 이미

수십 년간 일상화되었다. 건설이나 건축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이렇게

비대해진 사업에서 각자의 파이 조각을 위해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특정한

프로젝트에 정성을 쏟거나 차후에 완결된

건축물이 지역사회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기대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상황에서 이전에 마르크스

Karl Marx가 논한 바와 같이 노동의 분화는

단지 건축물에 그치지 않고 이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의 정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장소에 대한 섬세함이 없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신도시를 외국에 수출하는

것을 애국으로 생각하는 일차원적인 생각이다.

프루이트 이고Pruitt Igoe와 같은 속물적 계획안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오겠지만, 결국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파이는

먹어 치운 이후일 테고, 과거를 돌아볼 여유는 이

경우에도 부재할 테니 말이다.

하필이면 왜 베니스에서 주택 한 채의 면적도

안 되는 작은 전시관의 내용을 둘러싸고 이러한

논의가 벌어졌는가. 이는 우리의 고질적인

'외국에서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묘한 정서 때문이

아닐까. 이 역시 앞서 사례로 든 신도시 그리고

외국의 수출도시와 동일한 사고방식에 위치한다.

물론 문화도 산업이며 대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바이다. 문화는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재화財貨가

아니다. 더군다나 자주성과 자족성이 부재하다면

심각하게 그 근원적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기자간담회에서 커미셔너는 이번 기회를 통해

"분열된 건축계가 통합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복잡하게

얽혀있던 구조에 대해 모두가 볼멘소리를 했지만

각자 보장된 이득을 얻어왔기 때문에 이를 고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비엔날레에 대형 설계사무소를 참가시킴으로써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문제를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것은 물론이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또 다른 커미셔너의 공약은 "한국의

총체적인 역동성을 재현하겠다"는 것이었다. 과연

비엔날레라는 자리가 그러한 논제를 공유할 만한

적합한 장소일까?

불행하게도 앞서 말한 논의의 부제, 대외적 인정에

대한 갈망은 또 다른 몇 가지의 문제와 공통분모를

갖는데 이는 '정기간행물'과 '교육'이다. 전자에서

지적할 수 있는 문제로 중국과 동남아 시장을

겨냥하며 국내의 이슈와 작품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는 점을 꼽을 수 있고, 후자의 경우

국적불명의 인증제도로 이미 열악한 건축교육을

더욱 획일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어느 지식인은

"나는 한 번도 교육을 받으면서 나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 바가 없다"고 말했다. 보다시피 산업,

문화, 교육에 편재한 이러한 현상은 보다 심층적인

대안의 제시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가시화된 문제, 즉 대형

설계사무소와 아틀리에 간의 갈등을 살펴보자.

지금까지 양자는 거의 교차할 부분이 없는

상태로 공존해왔다. 건설이라는 생태계에서 대형

설계사무소는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비대해진

몸집으로 우위를 누리면서 거의 담합과 독점에

가까운 이익을 누려왔다. 반면에 아틀리에는

간헐적인 현상설계를 제외하면 자영업과

비슷하게 인맥에 의해 주어지는 작은 계획안들을

실현해왔다.

최근에 건설업의 위기로 중간지대가 형성되었고,

대형 설계사무소가 소규모 프로젝트까지도

수주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비엔날레라는

문화적 행사에 홍보적인 내용으로 참여하기에

이른 것이다.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아틀리에는

그동안 대형 설계사무소를 '업자'들로

무시해왔지만, 이들이 건축가협회 임원진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를 통해 문화분야에 자신의 입지를

주장하면서 참아왔던 불편함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양자 모두 글로벌한

상황에서 이렇다 할만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고학력의

유능한 졸업생들이 건축을 하더라도 정작

건축가라고 부르기 어려운 이들로 만드는 대형

설계사무소나 작가주의를 논하면서 저임금과

임금체납을 반복하는 아틀리에 양자에게 이번

논쟁들을 계기로 급변하는 상황과 한국적인

현실에 대해 심층적인 성찰이 요구된다. 지역성은

초토화되고 서울을 중심으로 획일화되는 상황에서

상호작용성, 친환경성, 장소성, 감각의 구축,

감촉성, 직조와 상상, 환유와 회상, 느림과 재편

등의 공허한 수사학은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진정성을 전달하기에 역부족이다.

김일현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

1.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11년 9월 22일 제13

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커미셔너

로 대전대학교 건축학과 김병윤 교수를 선정

했다. 제13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총감

독은 영국의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

perfield가 임명되었고, 건축전의 전시 주제를

≪공통의 토대Common Ground≫로 정했다.

비엔날레는 주제전과 국가전으로 구성되며 주

제전은 주최 측에서 건축가를 선정하여 초청

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국가전은 주제전의

전시와 유기적으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전

시 주제를 설정하고 각 국가의 커미셔너를 통

하여 해당 국가의 건축가와 건축문화를 알리

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

전에는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영국), 자

하 하디드Zaha Hadid(이라크) 등이 참여하고

우리나라는 승효상 건축가(이로재 대표)가 초

청되었다. 한국관의 전시 주제는 ≪건축을 걷

다Walk in Architecture≫로, '상호작용성', '친

환경성', '장소의 기억', '감각의 구축', '섬세함과

감촉성'이라는 하부 주제를 가진다.

2.

2012년 7월 18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김병

윤 커미셔너를 주축으로 대학로 '예술가의 집'

에서 한국관 참가작가, 전시방향, 작품 소개를

하는 기자간담회를 마련했다. 공식적인 참가

작가 발표에 앞서 건축계에서는 작가선정과

관련하여 논란이 확산되어오고 있었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이 세계 건축계의 흐

름과 방향을 진단할 수 있는 자리로 건축계 구

성원들이 공통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관은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건축가가 아닌

턴키 등 건축계의 폐단을 조장하는 대형 건축

설계사무소의 임원들이 국가관의 대표 건축

가가 된다는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참가작가

는 총 8명으로 신진건축가 4명 김현수(이소우

건축), 윤창기(경암건축), 박진택(Jtparchitec-

ture), 오영욱(oddaa), 대형 건축사무소 대표

4명 김태만(해안건축 대표), 박승홍(디엠피건

축 대표), 이상림(공간건축 대표), 한종률(삼우

건축 부사장)이다.

참가작가의 선정은 전시 주제에 대한 이해와

해석 역량을 존중하여 커미셔너에게 일임해왔

으나, 이번에는 공모방식을 통했다. 문제는 공

모에 앞서 사실상 전시의 세부적인 구성과 이

해가 커미셔너보다 공모에 참여한 건축가의

해석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논

란에도 불구하고 김병윤 커미셔너는 참가작가

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선정과 관련해서 어떤

의혹도 없다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답했다. 그

러나 주제와의 개연성 여부를 관객에게 작품

으로 설득하지 못한다면 일각에서 품고 있는

의구심을 풀기는 어려워 보인다.

3.

제13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8월 29일부

터 11월 25일까지 베니스의 카스텔로 공원과

아르세날레나 전시장에서 열린다. 한국관은

참가건축가들이 '건축을 걷다'라는 주제 아래

자신의 작품과 작품을 둘러싼 스토리를 영상

으로 제작해 이를 상영하는 방식으로 구성되

었다. 이토 토요Ito Toyo가 큐레이팅한 일본관

은 ≪architecture. possible here? home-for-

all≫이라는 주제로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건

축의 역할을 묻는다. 일본관은 이번 건축전에

서 베스트 파빌리온 상을 수여했다. 독일관은

≪Reduce, Reuse, Recycle≫을 통해 건축에

대한 긍정적이고 창의적인 접근을 제시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한국관 전시전경, 2012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의 역대 한국관 커미셔너 및 참가작가 현황

연도 커미셔너 참가작가

1996 제6회 강석원 국립중앙박물관 및 명동성당지구

재개발 설계경기 작품 17점

*1998년 건축전은 개최국의 사정상 개최되지 않음

2000 제7회 김석철 최민, 조건영, 이상해, 안건혁, 이상현, 김동건 등

2002 제8회 김종성 김영준, 김종규·김준성, 민현식·이민아, 박헬렌주현,

우규승, 이종호, 조성룡

2004 제9회 정기용 김광수, 송재호, 유석연

2006 제10회 조성룡 김승희, 김찬중, 김헌, 신혜원, 최욱

2008 제11회 승효상 최문규(큐레이터), 배형민(도큐멘터)

*별도의 참가작가 없이 진행

2010 제12회 권문성 이충기, 이상구, 조정구, 신승수, 하태석

2012 제13회 김병윤 김현수, 윤창기, 박진택, 오영욱, 김태만, 박승홍,

이상림, 한종률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이 시작부터 심각한 비판을 받고 있다.

한 국가관이 명확한 메시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대형 건축 설계 사무소의

홍보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김일현 교수가 논란이 시작될 때

보내온 것이다.

속물적 담합과

주제 의식의 부족

제13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독일관 전시전경, 일본관 전시전경 (상단 좌우),

이번 한국관 참여작가 중 김태만, 박승홍, 이상림, 한종률 (아래 왼쪽부터)

8 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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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듈 이론: 모듈module은 측정의 기본 단위로서

구조물의 각 부분의 상관적인 비례 관계에서

기준이 되는 척도를 의미한다. 직사각형을 모듈로

하여 지면을 구성하는 방식을 '모듈러 디자인'이라

한다. 기둥 하부의 굵기를 1 모듈로 하여 그 치수와

비례하도록 건축한 그리스 건축에서 그 역사를

찾을 수 있다. 건축 재료의 크기가 모듈의 기초가

되던 건축에서 르 코르뷔지에는 1942~48년에

본래의 비례 개념에 인체의 비율을 척도로 하는

황금분할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자신만의 모듈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주택의 대량생산이

당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보았고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강조하며 1948년에 『모듈러Modulor』라는

저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마르세이유에 있는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1946~1952)은 모든 부분에

황금비를 적용하여 인체와 비례적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

교환을 요구하는데, 이 경우 공유를 위해 창조된

결과물의 공유를 제한하면서 자연스럽게 모순이

나타납니다.

경제학자 미쉘 볼드린Michele Boldrin과 데이빗

케이 레빈David K. Levine의 저서 『지적 독점에

대항하여Against Intellectual Monopoly』 (2008)

나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 ** 등은 너무 심하게

규제하는 지적재산권 제도를 비판하고, 음원의

불법다운로드 근절 운동은 느슨한 제도를

비판하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입장과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지적

재산권 문제는 근본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접근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저작권이 실용신안, 의장등록 등 다른 권리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1886년 베른협약Berne

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literary and

artistic works에 의해 명시된 '무방식주의'일

것입니다. 사실 저작권은 예술이나 음악, 문학

등에 주로 쓰이는 권리이며 디자인에서는

윤리적인 관점을 제외하고는 크게 고려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디자인 피보호 대상은 주로

실용신안, 의장등록에 의해서만 보호됩니다. 만약

디자인이 이미 공개되어 버렸고, 그에 대해 누구도

등록된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누구도 이

제품의 제조, 판매 혹은 배포 행위를 금지할 수

없습니다. 건축이 저작권에 의해서 보호를 받는

점, 저로서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문서의 하나로

분류되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요?

안 대표님께서 애플의 경우는 기획, 설계, 제조,

유통, 판매까지 디자인 저작권의 일부로 포함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디자인 저작권은

작은 부분이라도 디자인 창조행위가 있었다면

인정되어야 할 것이고, 이것은 애플뿐만 아니라

디자인 업계에서 광범위하게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자신이 창조한 것이 도용되거나

변형되었을 때 안타깝지만 디자인 저작권으로는

재산권을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도덕성에

근거한 인격권은 보호를 받습니다.) 재산권을

보호받고자 원한다면 특허, 실용신안, 의장등록이

되어있어야만 하고 애플이 법적 소송을 하는

부분은 앞에 말씀드린 세 부분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법적 지적 재산권 문제를 떠나서 다시

저작권으로 돌아와 '저작권'과 클라이언트에

관해 포커스를 맞추어 보죠. 먼저 이 경우 크게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인데, '디자이너(소규모

스튜디오, 프리랜서)-클라이언트'의 경우와

'인하우스 디자이너in house designer(기업에

속한 디자이너)-기업'의 관계가 있겠습니다.

전자의 경우 대부분 디자인 인격 저작권은

디자이너가 갖습니다. 예를 들어 알레산드로

맨디니Alessandro Mendini가 알레시Alessi사社를

위해 디자인한 와인오프너가 있죠. 디자인 재산

저작권의 경우 계약에 따라 디자인의 재산권을

전적으로 클라이언트에게 양도할 수도 있고

디자인 재산권을 디자이너가 요구해 로열티를

받는 예도 있습니다. 보통 이름이 널리 알려진

디자이너들이 후자의 계약을 합니다.

많은 디자이너가 함께 일하는 '인하우스 디자이너-

기업'의 관계에서는 디자인을 창조해내는

업무구조상 디자이너가 인격/재산 저작권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런던 디자인 뮤지엄에는

아이팟이 조나단 아이브Jonathan Ive의 작품으로

컬렉션되어 있는데 이는 아주 예외적인 것으로

보통은 저작권이 회사에 귀속됩니다. 최근에는

기업이 기업에 속한 디자이너의 저작권을

인정하는 예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흥미로운 이유는 인하우스와 프리랜서라는

디자이너의 큰 두 개의 틀에 균열을 가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작권이 기업에 귀속되는

후자의 경우에도 자신의 디자인을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넣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디자인 저작권은 윤리로서의 인격 저작권은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디자이너도 본인의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가집니다. 하지만 재산으로서

디자인 저작권의 힘은 미미하여 디자이너가 직접

생산하거나 재산권을 보호하며 클라이언트와

계약하는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디자인은

클라이언트나 기업에 귀속됩니다.

사실 건축은 디자인의 개념정립과 이론, 트렌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특히 모더니즘,

미니멀리즘 가구 디자인의 경우 모더니즘 건축의

영향을 깊이 받았습니다. 의자 디자인에 큰 획을

그은 상징적인 의자들 다수가 건축가의 손에서

탄생한 것만 보아도 논란의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대표님이 운영하시는 매니페스토 건축Manifesto

Architecture 도 건축사무소이지만 <바이크 행어

Bike Hanger>, <보틀 스로틀Bottle Throttle>

같은 흥미로운 디자인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건축가는 무엇을 계기로 가구나

제품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되나요? 그리고

어떤 차이점을 느끼시나요? 건축과 디자인의

관계 그리고 경계에 대한 안 대표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안지용

건축의 일부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부분은, 이것 또한 하나의 창작물로써 인정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작권은 사실 특허와는

조금 달라서, 등록을 하지 않아도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디자이너들이 보다 잘 알아두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회사를 처음 시작할 무렵 가졌던 의문은

디자인과 예술의 관계였습니다. 지금은 그 부분은

스스로 납득할만한 정의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스스로도 디자인과 건축의

경계에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건축과

디자인은 제가 건축에 속해 있기 때문에 보다

그 관계를 모호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건축과 디자인이 공유하는 부분이 있지만, 시간

순으로 '건축architecture'이라는 단어가

'디자인design'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므로 근본이 다르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특히 건축 쪽에서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디자인이 하는 일의 범위가

19, 20세기 산업화, 자본화에 집중되어 있던

과거와 달리, 21세기에는 형이상학적인 문제의

접근법부터 디자인적 방법론에 집중하여 거론되고

있습니다. 분명 19, 20세기 산업 · 공업 · 시각 ·

공간디자인은 건축과 경계면이 겹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일정 디자인 분야와 건축의

경계는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21세기 디자인은

거대한 뿌리를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동물에

비유하면, 건축이 호랑이라면, 공업 디자인은 치타,

산업 디자인은 고릴라, 시각 디자인은 고래와 같이

모두 다른 영역을 이루지만, 근본적으로 '디자인'

이라는 포유류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상위와 하위 개념으로 나누기보다는 포괄적인

개념에서 디자인이 넓은 개념이라면 건축은 좁고,

깊은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건축이라는

것이 '건물'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어느덧 인간은 사라지고,

'건물을 위한 건축'을 하는 지금의 건축계를 보면서

다시 한 번 '21세기 르네상스'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모듈 이론Modulor' *** 에

의하면, 도시의 스케일도 결국 숟가락과 포크의

길이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포크가 긴 문화에서는 테이블 또한 비례해서

길어지고 이를 담는 방, 방을 담는 집, 집을 담는

구역, 길 등의 모습이 모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가 지금 다양한 분야에 시도를 하지만, 건축을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숟가락/포크>

가 2D의 조형물을 3D로 인식한 친환경적인

시도였고, <바이크 행어> 역시 건축의 공간

디자인은 건물 내부에 그치지 않고, 건물 사이의

공간도 디자인이 되어야한다는 생각에서, 도시의

버려진 공간을 이용한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였으니까요.

김황 디자이너께서 생각하는 '건축과 디자인의

경계'란 무엇인가요? <코쿤Cocoon>(2005)을

보면 제품디자인이지만 동시에 '집'이라는

건축이고, 사회적 컨텍스트를 살린 스토리가

살아있는 디자인입니다. 그리고 지금 하고 계시는

분야도 UX 디자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황

'디자인'이 이미 오래 전에 존재했고 잠재되어

있었던 명제라는 점은 흥미롭기 그지없습니다.

만약 이 부분이 더 심화될 수 있다면, 세상에 있는

디자인 역사나 개론 서적들의 서론 부분은 모두

새로 쓰여야겠네요.

사실 고백하자면 저는 제가 건축과 디자인의

경계에 서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코쿤>

작업은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제가 졸업할 당시 크게 유행했던

유니버설 디자인의 영향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것은 작업 발표 당시

디자이너보다는 건축가들로부터 훨씬 더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비온대지

BEONDEGI 학생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하게

디자이너와 건축의 경계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건으로 운이 좋게도 이필훈 전前

정림건축문화재단 대표님과 대담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차이점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이필훈 대표님

말씀으로는 건축가는 디자이너보다 훨씬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생명을 영위하기 위한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을

창조하는 것에서 생기는 사명감을 이야기하시는

것이겠죠. 그제야 저는 제 작업이 왜 건축가들에게

더 어필했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건축가들의 사명감을 자극한 것이죠. 대표님

말씀을 조금 더 빌리자면, 건축에서 새롭게 개발된

구조는 하나의 개념Conception이기보다는 서식

Forming으로서 다른 건축가들도 사용하거나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마치 개방형

어플리케이션open source application이나

개념적인 프리웨어Freeware로서 타 건축가들의

직업에 자유롭게 이용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 사명감 때문에 건축이 타 장르 예술보다

약간은 더 저작권 문제에 대하여 넉넉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디자인 행위는 이러한 사명감이

강조되지 않습니다. (최소한 제가 받은 디자인

교육에서는) 물론 사회적인 책임이나 사회적인

디자인을 보고 듣지만 굳이 그것을 작업의 중심에

두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안 대표님께서 언급한 르 코르뷔지에와 사보아

부부같이 아티스트의 강한 에고ego로 인해 기능이

무시되는 경우는 디자인에서도 매우 많습니다.

기능이나 논리보다는 스토리가 더 중시되는

거장의 디자인이 그러하죠.

제가 하는 디자인은 건축보다는 순수 예술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사회적인 현상에 주목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디자인의 개념을 고민하기 이전에 저는 먼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했고

지금도 질문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술의 본질은 소통과 해방(카타르시스

Catharsis)에 있다고 믿고 있으며, 삶에 있어서

전진보다는 후진의 기능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디자인을 추상적인 콘셉트, 유형,

의제들을 도출하는 행위로 사용합니다. 이

행위는 우리에게 미래가 다가오기 전에 먼저

고민하게 해준다고 믿고 있으며, 이 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그저 우리를 스쳐갈

뿐이며 제품과 서비스는 인류의 진정한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경제와 기술적인 압박에

의해서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진행 중인 <모두를 위한 피자Pizzas for

the People>(2008)가 지금까지의 작업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피자>는 디자인이면서 디자인이 아니고, 물성을

가지면서도 가지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또는

예술가로서 상황에 따라 정의가 마구 변하는

이런 경우에는 그것에 대한 정의를 잠시 미루고자

합니다.

현재는 필립스Philips에서 UX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저의 개인 작업과 회사에서의

작업들은 상당한 거리감이 있습니다. 이 두 원의

접점을 최대한 넓혀 언젠가 하나의 원이 되게 하는

것 역시 또 하나의 프로젝트입니다. 이는 결국

현대의 개인 디자이너, 예술가들이 광범위하게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초상이자

도전이기도 합니다.

김황

2006년홍익대학교미술대학금속조형디자인과를

졸업하고(주)안그라픽스에서일했다.그후2007

년영국왕립예술학교(RCA)제품디자인과(Design

Products)에서석사학위를받았다.RCA의제품

디자인과,플랫폼13(Platform13)에서공부하며,

던앤라비Dunne&Raby,트로이카Troika,옹카

쿨라OnkarKular등의중견비평적디자이너들과

디자인철학의공통점을발견하였으며비평적

디자인에깊은영향을받았다.현재는필립스에서

시니어UX디자이너로활동하고있다.

안지용

2009년뉴욕을중심으로전세계를무대로

활동하는건축회사매니페스토건축Manifesto

Architecture의대표.그의디자인은독특하고

혁신적인콘셉트로접근하면서,동시에일상의

재료와조건으로부터뛰어난가치를지닌

디자인으로승화시키는것을목표로한다.또한

건축의범위를'건물'에국한하지않고삶과공간을

연결하는모든것으로부터시작한다.그래서그의

프로젝트는숟가락에서부터가구,인테리어,구조,

건물,도시에이르기까지매우다양하다.현재뉴욕,

로스앤젤레스,런던,서울,심천등에서다양한

프로그램과규모의프로젝트를진행중이다.

르 코르뷔지에, ‘위니테 다비타시옹’, 1946~52 르 코르뷔지에는 인체를 기준으로 한 '모듈 이론'을 적용했다.

르 코르뷔지에, '빌라 사보아Villa Savoye', 파리, 1929

© 매

니페

스토

건축

김황, <코쿤>, 2005

매니페스토 건축, <바이크 행어>, 2011

© 김

건축 vs 디자인, 건축가의 생각

건축 vs 디자인, 디자이너의 생각

7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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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연구사무소는 도시라는 거주환경 안에서 예술가들이 수행하는 조사와 연구

영역의 방법론과 시각화를 하는 것에 있어 조금은 다른 가능성을 실험해 보고자

기획됐다. 첫 연구주제는 바로 도시 안에서의 경제적인Economic, 사랑Love, 그리고

계속해서 떠돌 수밖에 없는 주거환경Camp이다.

회화작가와 만화가로 구성된 작가 콜렉티브 '기는풍경'과 함께 연구한 풍경 중에

하나인 서울 홍제천변은 개발의 속도가 느슨하게 덧입혀지고 더뎌진 까닭에 변화된

거주공간의 지층을 선명하게 목격할 수 있는 동네이다. 이곳에는 소위 말하는 '집장사'

가 지은 집들이 빼곡히 들어선 틈을 15층쯤 되는 아파트가 비집고 뚫고 나와 하나의

융합체를 이루며 천변을 둘러싸고 있다. 아무리 집이 저렇게 많이 지어져 있더라도

내 집 마련은 어렵고, 사람들은 거처를 찾아 떠돌거나, 혹은 더 넓고 좋은 집으로 가기

위해 잠깐 거쳐 가기 마련이다. 때문에 생존에 더 좋은 조건을 갖춘 환경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되거나, 사유보다는 행동습성이 우선인 상황이

쓸쓸한 개척자나 사냥꾼의 야영지camp를 연상케 한다. 이 야영지의 강가에는

공원화된 근린시설이 랜드마크 마냥 거대한 교각과 운동하는 시민들 몸뚱이 사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낙후된 동네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생활환경의 개선을

향해 내달린다.

강을 따라 도심으로 들어선다. 도시 이곳저곳이 야영 중이다. 동료와 일터를 지키려는

해고자들의 텐트, 금융자본으로부터 노동의 가치를 지키려는 파업자들의 텐트,

탈북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활동가와 종교인들의 텐트, 지방 특산물을 홍보하고

판매하러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올라온 생산자들의 텐트, 상수원의 유기농 밭을

지키는 농부들의 텐트, 도심 오토캠핑장으로 피서 나온 가족들의 텐트, 그리고 서울역

앞 노숙자들의 자작 텐트 등. 이 텐트들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생긴다.

고민하는 머릿속에 바람 좀 쐬어 주고자 다시 도시 밖으로 나선다. IMF 이후에도,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대놓고 엄포를 놓는 2012년, 지금도

계속해서 전국에는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던 땅에 100퍼센트 아파트촌이

만들어지고 있다. 재개발로 인해 밀려난 기존 거주민 문제나 잠식당하는 도시의

완충지대에 대한 우려는 기본으로 하고, 새로운 아파트에 들어오는 입주민들이 평생

그곳에 살리라 짐작하기 어렵다. 대다수는 이사를 하기도 전에 빠르면 바로 다음 해,

오래 걸려도 십 년이 채 못돼 어느 곳으로 거처를 옮겨야 할지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도시의 야영지는 탄생을 멈추지 않고 있다.

왜 도시는 야영지를 증식하는가? 왜 보금자리를 정하지 못하고 선망 혹은 투기만을

거듭해야 하나? 왜 다른 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쫓아가며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나? 왜 가족이나 세대 재생산에 관한 생각이 다른 이의 정착권을 박탈하게

되나? 왜 이처럼 국가, 사회, 공공의 범주 안에서 다 같이 나누며 살기란 어렵나?

증폭되는 '왜' 뒤에 타인과의 관계를 금전적, 물리적, 상징적 자본으로 가늠하는, 다시

말해 사랑이라 말해지는 것과 경제적인 것이 결합된 그 무엇이 자리한다. 하지만 정작

이 질문들은 선물이 사랑의 부재를 증명하듯이, 그 영합의 구체적인 모습이나 사랑

혹은 경제적인 것에 대해 밝혀진 바 없음을 더 강렬히 드러낸다.

고전적인 경제이론부터 유럽에서 건너온 88만원 세대 명명까지, 모기지론부터

러시앤캐시까지, 고전적 아나키즘 이론인 상호부조론으로부터 재능기부 열풍까지,

중세의 길드guild부터 한국형 대형 개신교 커뮤니티까지, 종교와 노동운동이 결합했던

초기 협동조합부터 UN이 지정한 '세계협동조합의 해' 와 제도적 장치 마련을 타고

붐업된 사회협동조합까지 이론과 형태의 스펙트럼은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일상을

관통하는 경제적인 것과 사랑의 영합은 불명확한 그 어떤 것으로 남는다. 이 사이에

존재하는 주체들의 관계 가운데 나약함과 두려움을 뛰어넘는 가장 위대한 힘인

사랑도,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거나 집안 살림을 관리한다는 것에서 출발한

경제도, 사랑하는 연인들이 하룻밤을 서로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내던짐으로 보냈을

야영지도 오용되고 말았다. 이 오용을 파괴할 그 무엇을 찾을 수는 없을까? 논리학이나

전자회로에서처럼 'Not'을 그 앞에 붙인다고 화살표의 진행방향이 뒤집어지지 않는

상황이더라도, 방법을 찾아 경제적인 것을, 사랑을, 살아가는 공간을 재발명하는 것이

작가들이 하는 일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예술가가 수행하는 조사연구의 '다른 가능성'

이라는 본 연구소의 존립근거를 이와 같은 '재발명'에서 찾는다.

재발명의 양태들은 제한 없이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시에서 채집해 온 하나의

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작가가 연구의 한 방법으로 이 돌을 냉장고에 넣었더니 물기

묻은 건조해 보였던 도시의 파편은 부서지고 깨지며 아파할 줄 아는 살덩어리처럼

보인다. 다시, 작가는 주변의 힘을 빌려 네모난 방 안에서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긴다.

땀 흘리는 여럿이 모인 누군가의 사무실은 상호부조와 호혜의 간극을 넘나드는 현장이

된다. 다시, 작가는 아무도 모르게 건물에 남겨진 자생적 양식들을 추적한다. 성냥갑

같았던 집들 사이에도 틈이 생긴다. 다시, 작가는 낮은 자세로 해체된 가벽으로 만든

가설물에, 야영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켓에, 기어 다닐 수 있는 바닥에 사랑과

경제가 결합된 체감이론을 받아쓴다. 이 임시의 방과 벽이 개인소득, 국가경제, 국부,

기부, 호혜, 상호부조 등의 쟁점들이 발화되는 야영장이 된다.

9월 중 서울의 한 공간에서 이 작가 연구원들의 연구결과를 모은 야영장을 본격적으로

선보인다. 도시공간을 공감하고 아파할 줄 아는 하나의 몸이라고 본다면, 이렇게 모인

작가들도 연구라는 방법론을 통해 도시라는 장소에 빗대어 만들어진 '하나의 몸'이다.

일시적인 작가 공동체의 모습은 한 몸으로 살아가는 공동주거와 마찬가지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지평 위에 있는 경제적인 것, 사랑, 사는 공간

등이 본디 정치, 믿음, 신앙, 정의, 아름다움 등과 같이 모두를 생각하는 공통의 그

무엇이었음을 재발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진주 작가

‘재발명’을 위한 도시연구사무소의 실험 ‘Economic, Love, Camp’ 프로젝트

9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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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박성태: 서울시 신청사에 대해 이야기 할

것들이 많지만, 오늘의 주요 방향은 1) 건축가

유걸의 건축언어와 미학적 수준, 2) 서울시

신청사가 보여준 건축적 성과와 한계, 3) 서울시

신청사의 미래, 즉 이미 우리에게 던져진 이 공을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입니다. 특히

이야기 가운데 신청사를 이야기하면서 건축뿐만

아니라 도시 맥락에서 다양한 담론들을 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먼저, 서울시 신청사의

건축적, 도시적 맥락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간략하게 이야기하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어려울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두 분의 기본 입장을 미리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듯합니다.

A 김광수: 건축가로서 유걸 선생의 태도 중

좋은 점은 용감함이죠. 공공프로젝트임에도

본인이 중요하다고 감 잡은 것으로 일단 지르고

본다는 느낌(?). 도시문맥과 디테일, 활용성 등

여러 가지로 희생을 감수하고서도 그 감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을 보면 말이죠. 신청사의 경우

주변 컨텍스트가 매우 복잡한데, 이에 대해 일일이

대응한다거나 윤리적 태도를 견지하며 애매하게

적정 해법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컨텍스트를

엄청나게 단순화시키고 미래지향적인 호소력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부정적인 측면은

그에 대한 반대급부이기도 합니다. 그 '지른 부분'이

정말 중요한 것이었는가. 그 분이 지향하는 미래는

무엇이며 과연 합당한 호소력을 주는가. 그러면 또

그 분이 보는 현실은 무엇인지 하는 것들인데요.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이

긍정과 부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사실 건축가

유걸을 쉽게 부정하거나 긍정하기에 어려운

부분도 이 지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A 임근준: 1940년생인 유걸 선생은 이력은

일견 화려하지만, 분명 '주류'에서 빗겨난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에서 포스트모던 건축을

표방하고 실험했던 1950년대생 건축가들의

행방을 보면, 소위 '유학' 후 귀국해서 몇몇

건축물을 만든 뒤 현장에서 사라졌는데요. 결국

그들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지방대 교수

자리를 얻는 수단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아무튼, 한국 건축계에서 1950년대생의 존재감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한국

건축계의 세대적 특수성 덕분에 건축가 유걸은

반사이득을 봤습니다. 그런 세대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유걸의 서울시 신청사 설계는, 전후

한국 건축계의 역사와 역량과 모순까지 하나로

집적하는 프로젝트로서 흥미진진한 풍경입니다.

건축을 민속지적으로 고찰한다고 하면, 서울시

신청사 건축 사업만큼 한국 건축의 전모를

고찰하고 논의하기에 좋은 예는 없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유걸의 신청사 건물을 개별 프로젝트로서

평가하고자 내적 자율성과 건축 방법론에

주목하게 되면, 역시 평가는 긍정을 향하기

어렵겠죠.

저 역시 건축가 유걸의 장점으로, 이른바 '말도 안

되는 구조'를 실현해내는 능력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건축가의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가,

건축주에게 본인만의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해 그

망상의 구조를 실재의 공간에 물화시켜내는 것일

텐데요. 국내 건축가들은 대개 해외에서 배워온

방법론을 지역화하는 수준에 만족하는 몹쓸

경향을 뵈지만, 유걸 선생의 경우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신청사 또한, 본 캐릭터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작업으로만

보면, 세대 갈등의 구조에서 돌출한 인물인 유걸의

서울시 신청사 건물은, 꽤 흥미로운 지점을 갖는

거죠. 규모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건축으로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장이라는 측면에서의 평가는 급격히

부정적일 수밖에 없죠.

서울시 신청사 건축 프로젝트가 당대의 건축

아젠다를 제시하는 공론장이라고 한다면, 이

건물은 새로운 시대로 향하는 관문이라기보다는

한 시대를 마감하는 무덤처럼 느껴집니다.

이정도 규모의 건축 프로젝트라면, 건축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갱신하는 과정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한국 건축계의

최대 역량이 집결된 신청사 건축 프로젝트에서,

1990년대 중 ·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막바지에

대두됐던 조사 · 연구 기반의 건축 방법론을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계발 · 시험 · 적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무게를 실으면, 역시 유걸이

아니라 조민석이 신청사 건축에 최적/최선의

인물이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Q 박성태: 말씀하신 대로 신청사는 유걸

선생의 기존 작업들의 방법론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신청사의 지리적 위치와

역사적 맥락, 사회적 역할, 도시와의 관계들 속에서

논란의 중심에 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건축가 유걸의 건축은 무엇일까요. 모더니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는

걸까요.

A 김광수: 포스트모더니즘이라기보다는

건축가 유걸과 유걸의 건축 모두 포스트모던한

현상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분은 어떤 범주에 넣기 어려운 분이라고 봅니다.

엘리트 코스를 밟으셨음에도 독특하게

'무학의 정신(?)'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데,

작품이나 그분이 살아오신 삶에도 그런 면이

많아 보여요.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김수근 선생

밑에서도 일했지만 엘리트적 건축이라고 볼

수도 없고 어떤 담론을 바탕으로 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미국으로 가신 것도, 한국의 집단주의

정서나 계보문화, 소통의 불투명성 등에 아주 심한

염증을 느낀 것으로 알아요. 사회가 한 개인의

삶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대단한 반감을 가지고

계셨던 것으로 압니다. 실무도 주로 콜로라도에서

하셨으니 미국의 주류에서도 벗어나셨고,

생계유지도 사무소에 들어가 얌전하게 경험을

쌓기보다는 목수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고요.

거기에서 건축가 유걸의 건축적 사고와 근성이

나오고,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과 건축가로서의

욕망, 사회적 비전이 섞이면서 범주화하기 힘든

캐릭터가 되신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A 임근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아닌데,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닮았다'고나 할까?

(웃음) 포스트모더니즘의 키워드는 '전유專有,

appropriation'입니다. 쉽게 말하면, 모더니스트의

역사적 방법론이 물러선 자리를, 지역에서 추출한

데이터로 메워 넣는 게 포스트모던의 방법론인

것이죠. 유걸 선생은 전유를 정치적으로 실천한

적은 없지만, 그의 건물은 이유불문하고 유명

포스트모더니즘 건물을 닮았습니다. 한국의

대표적 현대미술가 가운데 한 명인 김홍석은,

전유를 정치적으로 실천해온 작가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전유작가가 아니라고 우기죠.

그는 "한국 현대미술의 최대 특징은 서구에

유학 가서 '첨단' 을 학습하고 그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내 작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닮게 만드는 것assimilation'이다"라고

주장합니다. '현대미술스럽게' 만드는 것이라는,

자신의 최대 약점을 최대 강점으로 전치시키는

괴이한 논리인데, 이런 논리를 한국 건축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모던 건축이건, 포스트모던 건축이건, 김수근 선생

이후 한국 건축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새로운

담론이 제시하는 건축의 외형에 '동화assimilation'

하는 일이었을 뿐인 것이죠. 자, 그렇다면 유걸은

어떤가요? 김광수 선생이 '개인주의'라고

표현하셨만, 그것도 서구적 개인주의라기보다는

한국 특유의 개인주의, 즉 식민기 일본인들이

'불령선인不逞鮮人[ふていせんじん, 후테이센진]'

이라고 표현했던 바로 그 제멋대로의 정신에

가깝습니다.

유걸의 활동 연보를 보면, 돌출하는 개인이

도드라집니다. 사회가 제시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탈주노선을 찾은 한국 전후세대

소수자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고 할까요? 유걸

건축의 미덕도 돌출하는 개인이 확보해낸 새로운

판단 유예의 공간을 실물로 제시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1990년대에 완공된 대표작들을 처음 봤을

땐 당혹스러웠는데, 나중에 보니 자신의 콘셉트를

관철시키기 위해 부수적 디테일은 과감하게

희생시켜버린 결과더군요.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실현해내는 걸 보면, 분명 그에겐 남다른 매력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걸 합리적

언어로 묘사할 방법이 없으니, 건축 잡지들에선

자꾸 포스트모더니즘 이야기를 한 거죠.

Q 박성태: 유걸 선생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끊임없이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있잖아요.

A 김광수: 동년배 건축가들과 비교했을 때

드물게도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오랫동안 실무를

한 것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주는 크레딧이 매우

컸죠.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 그 연배에

서울대 졸업하고 미국에서 실무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한 것은 매우 드문 상황이니 건축주에게

주는 인상도 강하고요. 그럼에도 엘리트주의를

내세우지 않고 목수 같은 이미지가 있거든요. 한국

돌아와서도 처음엔 목조주택들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2x4' 공법을 직접 목수를 가르쳐가며

선구적으로 시도하기도 했고요. 말하자면 당시

활동하던 엘리트 오피스 건축가(?)와는 완전히

다른 경험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부분은 지금도 유걸 선생에게서 느낄 수 있는

대단히 큰 매력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 분의

건축은 대체로 일반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꿈'이

잘 드러납니다. 대중에게 아주 호소력 있고 강한

이미지를 제공합니다.

Q 박성태: 그가 실내의 거대공간을 통해

자신의 건축을 설명하는 것도 일반인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A 김광수: 거대공간과 유리라는 재료가

주는 개방성과 투명성은 그 분의 건축에 항상

등장합니다. 사실 한국 사람들도 평소 고밀화된

도시에 살다보니 대공간을 꿈꾸잖아요. 유걸

선생의 건축은 공간의 스케일 뿐만 아니라 공간을

다루는 방식에서도 과대망상적 차원이 느껴지는데

이것이 일반 한국인의 꿈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계속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꿈은 현실의 다른 차원이잖아요? 그

다른 차원은 유걸 건축의 경우 '실내'라고 볼 수

있겠지요.

Q 박성태: 그럼 본격적으로 서울시 신청사

이야기를 시작해보죠. 신청사를 하나의 캐릭터에

비유한다면 어떤 것이 떠오르시나요.

'나이를 거꾸로 먹는 사람(?)'이라고

할까요. 인물도 건물도요. 흔히 말하는 '성숙'을

거부하는 느낌. 실제 그분을 만나면 매우

차분하시고 조리 있으세요. 설득력도 매우

강하고요.

A 임근준: 랜드마크에 대한 욕망으로 정치적

야심을 간접 표현한 오세훈 전 시장이 뒤에

있었다는 점 때문에, 천진난만함을 열쇠말로

삼기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적당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욕망을 먹고 자라는 얼굴 없는 유령 캐릭터

'가오나시かおなし'가 떠오릅니다. 그러니까,

서울시 신청사는 한국인의 욕망을 하나로 뭉친

거대한 풍선처럼 보인다는 말인데요. 징후적으로는

흥미롭지만, 문제는 그런 구조를 물화시켜서 오랜

세월 건물로 사용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건축이 메타 차원의 발언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건축가의 경우라면,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딜레마가 결국 실용성입니다. 유걸은

파도치는 유리 파사드를 통해 자신만의 유토피아

공간을 만들었는데 하나의 명쾌한 질문이고

해답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제3

국의 사람으로서 공개경쟁공모의 심사 자리에

앉아 조민석의 안과 유걸의 안을 선택지로

마주하게 됐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유걸의

안을 뽑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고요? 조민석의

건축 방법론엔 예측 가능한 측면이 강하게

존재합니다. 방법론상으로도 렘 콜하스Rem

Koolhaas 제자 군단들의 성향에서 아직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고요. 하지만, 유걸의 건축은 어디

다른데서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워낙 이상하게

독특하기 때문에 재미있습니다. 심지어 어쨌거나

한국적이고.

A 김광수: 김기덕의 영화 같은.

A 임근준: 그렇죠. 우리에게는

리얼리즘이었으나 저들에게는 판타지인.

(웃음) 아무튼, 유걸 선생의 디자인은 50년,

100년 뒤에 봐도 흥미로울 겁니다. 후세도 "도대체

이건 뭐지?" 하지 않을까요? 이 괴물을 평생 안고

살게 된, 오늘의 서울 시민들은 뭐라고 평가할 지

궁금합니다. 전문가들의 생각과 달리, 의외로 긍정

여론이 나오는 건 아닐까요?

A 김광수: 캐릭터가 강하기 때문에 관이나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점이 많죠.

A 임근준: 유걸 선생의 캐릭터와 건물이 서로

매우 닮았다는 점은 강점으로 작용할 겁니다.

사람과 건물이 따로 노는 경우가 특히 아시아에

흔한데, 유걸 선생의 건축은 그렇지 않습니다.

방법론도 대단히 간단명료합니다. 프리젠테이션

스토리라인에 맞춰 '파워포인트 건축'을 만드는,

'예상한 것 이상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복잡다단한

조사 연구 기반의 방법론에 비하면, 너무 쉽지요.

서울시 신청사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전문가는 물론 일반인들도

가세하여 부정적 의견의 진폭이 만만치 않다. 한국 건축계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그러나 표피적인 인상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좀

더 깊이 있는 논의를 이끌어내고자 건축가 김광수, 미술 · 디자인평론가

임근준(aka 이정우)과 함께 직설적이고 편파적인 난상 토론의 자리를

마련했다. 사전에 서울시 신청사 답사와 건축가 유걸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서울시 신청사에 대한

난상 토론

2012년 8월 6일 동숭동 예술가의집에서 가진 건축가 유걸과 서울시 신청사에 대한 토론 모습. 건축가 김광수 (좌), 미술 · 디자인 평론가 임근준(aka 이정우) (우)

건축가 유걸의 건축

서울시 신청사

“거대공간과 유리라는 재료가

주는 개방성과 투명성은 그

분의 건축에 항상 등장합니다.

사실 한국 사람들도 평소

고밀화된 도시에 살다보니

대공간을 꿈꾸잖아요.

일반 한국인의 꿈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계속적으로

구현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A 김광수:

10 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Page 11: 건축신문 vol. 3. PDF 다운로드

Q 박성태: 외관에 대해 '과잉이다', '어울리지

않는다', '익숙해질 수 없다'는 많은 사람들의

비난이 포화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두 분은 건물의

외관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임근준: 처음 설계안을 봤을 때, 파도치는

유리 파사드나 내부의 이중구조가 과연 구현

가능한가 하고 우려했습니다. 일단 파사드는

그래도 한국 건축 엔지니어링의 기술로 최선의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싶고 유걸의 원안을 90

퍼센트 이상 구현해냈다고 봅니다. 물론, 원안이

아름다운지, 장소에 걸맞으냐 하고 물으면

대답들이 엇갈리겠죠. 아름답지는 않지만, 아무튼

유걸 선생이 구 시청사에 대립각을 세우며

단순명쾌한 발언을 한 셈이니까, 건축가로서는

제 몫의 일을 했다고 봅니다. 원안의 조형적

약점이라면 결국 시점view point의 문제인데,

유걸 선생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에만

신경을 쓰느라 보행자의 시점에서 본 파사드를

숙고하지는 못한 듯합니다. 광장에서 건물을

바라보면, 건물의 윗면이 직선이어서 출렁이는

파사드는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결국 이게 다

외부의 시선을 신경 쓰는 포토제닉한 랜드마크용

건축의 문제입니다. 서울시 신청사 디자인에 그런

일련의 경향을 비평적으로 고찰한 흔적이 없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Q 박성태: 상징성은 있다고 보시나요?

A 임근준: 건축에서 장소특정성을 이야기하고,

도시 조직의 맥락성을 이어받았음을 강조하고,

또 지역의 특성에 기반을 둔 새로운 버내큘러

건축이라는 1990년대 이래의 유행이,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곤 합니다.

90년대 중반 이래 많은 건축가들이 하버드의

렘 콜하스의 뒤를 이어 수집과 조사 연구로 얻은

특정 건축 데이터를 유형학적으로 과대평가해

상상 이상의 매스를 도출하는 동시에, 그렇게

고찰한 도시 조직 맥락에 특정성을 부여해 실물

건축에 합리적인 인터페이스를 부여하는 방법론을

구사해왔습니다. 헌데, 그렇게 해서 정말로 지역의

맥락에 적확히 부합하는 건물이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보면 작가의 방법론, 사용자의 필요, 지역의

역사성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물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유걸 선생은

아예 부채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유걸의 디자인이 역사적 맥락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건, 그리 효과적인 비평은

아닙니다. 그는 역사적 맥락에 순응하지 않는 답을

내놨고, 결국 여러 맥락과 힘이 팽팽히 대치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덕수궁이나 구 시청사의

맥락을 존중하는 척하는 디자인을 시도한

것보다는, 옛 역사와 새로운 역사가 대립하는

상황을 선택한 것이 오래 두고 봐도 더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외관상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A 임근준: 가장 중요한 '투명성'이 확보가

안됐습니다. 이것보다는 더 투명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전반적으로 파사드의 느낌이

무겁고 둔탁한데다, 반사율이 높아서 내부의

2중 구조가 도통 보이지가 않습니다. 냉난방

효율 문제 때문에 두꺼운 유리를 쓴 탓이겠지만,

지긋지긋한 유리구조체 건물의 정점을 찍었고,

이게 유행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또 달리

볼 수 있을 겁니다. 한국 건축계의 기술력으로 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실험해본 셈이니까,

나름 의의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A 김광수: 이번 신청사는 구태의연한 관공서

디자인의 공식을 깨트려버린 상징적 측면이

확실히 있습니다. 상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신청사 현상설계를 전후로 각종 턴키를 통해

지어진 관공서를 보면 신청사 또한 유걸 개인의

건축 현상이 아니라 한 시대가 유걸이라는

건축가를 호명한 매트릭스가 강하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걸 '디자인+턴키 매트릭스'라고

해야 할지. 서로 만나지 말았어야 할 두 시대, 즉

디자인의 시대와 턴키의 시대가 만나서 '디자인을

턴키로 하는 시대'가 된 것인데, 그 과정은 알다시피

이상한 변칙들로 점철된 고통의 과정이었지요.

이런 맥락에서 신청사 건축의 전 과정 및 그 외관은

시대를 무척 우울하게 대변하는 게 있다고 봅니다.

유걸 선생이 용감하다하여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봅니다. 단지 대단히

단순화시켜서 해법을 찾는 것이라고 보는데,

구 시청사를 대하는 방식이 그래요. 건물 이면과

측면은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듯하지만,

하이라이즈 대신 로우라이즈로 간 건 광장이나

덕수궁뿐만 아니라 구 시청사를 대하는 하나의

해법이라고 봅니다. 구 시청사의 병풍, 즉 배경의

포지션을 취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새로운

배경을 광장에 드러내는 방식으로서 동측의

입면과 처마가 불룩 나온 것이라고 보고요.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미래지향성을 가장 강력하게

광장에 투사하는 해법으로 내부의 '꿈' 공간을

드러내는 외피의 투명성에서 승부를 걸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투명성은 실시설계나

시공의 과정에서 확보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항이 '디자인 턴키 매트릭스'의 귀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Q 박성태: 그럼 이제 신청사를 도시적

맥락으로 넓혀볼까요. 서울광장, 구 시청사,

덕수궁, 명동, 을지로, 종로 등 중심 중의 중심, 도시

안의 핵으로서의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유걸 선생은 공공성에 대한 생각이

매우 많다고 봅니다. 개방성, 투명한 의사소통,

시민사회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시고,

이와 함께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게 내부의

거대 오픈 스페이스, 유리의 투명성, 공공적

내부 프로그램이에요. 재미있는 건, 공공성을

건축적으로 구현하는 데 관심이 많으신데,

신기하게도 도시에 대해서는 언급이 별로 없고

건축적으로도 외부공간에 제안되는 것이 별로

없다는 점이에요.

A 임근준: 장소성, 도시 맥락, 공공성은 과장된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대 이래 특히

탈식민주의, 지역이론 등이 나오면서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는데, 성과는 없이 공회전만

계속됐습니다. 그런 면에서 유걸 선생이 자신의

방식대로 밀어붙인 건, 오히려 다행이라고

봅니다. 원안대로 실현되지 않아서 아쉬운 점은,

입구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구 시청사를 통해서

신청사에 접근하는 동선이었는데, 보면, 길

양옆으로 지면을 뚫어 열린 공간(선큰)을 만들어

놨습니다. 구 시청사의 역사와 신청사의 역사를

대비시키는 장치였는데, 그런 동선 계획의 매력은

사라졌고요.

A 김광수: 유걸 선생의 공공성은 미국의

공공성과 닮아 있다고 볼 수도 있어요. '아트리움

문화'일 수 있지요. 미국에는 도시적 담론이 별로

없고, 도시 성격을 잘 구현하면서 건축가 개인의

색깔로 표현해내는 경우도 별로 없어요. 오히려

프랭크 게리Frank Ghery처럼 난데없는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죠. 도시공공성 이데올로기에

주눅 드는 것 보다는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적 상황에서는 많은 의문이 듭니다.

Q 박성태: 내부와 오픈 스페이스의 만남과

동선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A 김광수: 유걸 선생의 건축에서 내외부의

경계는 완충이 없고 대체로 경계선이 분명합니다.

대신 투명한 유리가 내부로 시선의 관심을 끌지요.

그런데 신청사의 경우 현상설계안을 보면 광장의

띠가 내부에 연결되는 듯하고 그 띠 아이디어가

내부 업무공간을 조직하는 역할까지 하고 녹화까지

되면서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상층부로 연결되는

구성이어서 특이했습니다. 하지만 광장조성이

띠 아이디어로 되지 못하면서 내외부는 연속성

보다는 단절관계가 더 크게 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원안과 다른 유리의 불투명성으로 단절의

느낌이 더 큽니다. 전반적으로 유걸 선생의 몇몇

건축물을 보면, 미국의 쇼핑몰을 연상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쇼핑몰의 경우 거대한 수직적

실내 오픈스페이스의 등장 그리고 에스컬레이터의

동선이나 움직임과 함께 스펙터클과 판타지를

경험하는 수직상승의 시나리오가 있잖아요.

그리고 내외부 경계가 만나는 부분에 있어서는

단절의 전략들이 취해지고, 일산의 '밀레니엄

커뮤니티센터'를 봐도 관중석과 스테이지, 수공간

등 실외에 있을 법한 것들이 모두 실내에 있고

에스컬레이터 동선을 통해서 이러한 것들이

경험됩니다.

A 임근준: '밀알 교회' 등에서 나타나는 내부

공간의 동선이 도대체 어디서 연원하는지 알

수 없었는데, 말씀을 듣고서야 그간의 의문이

풀렸습니다. '쇼핑몰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내부의

열린 공간이 유걸 선생의 건축적 특징 가운데

하나라는 걸 처음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용자들의 동선 편의에 대해선 크게 고민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A 김광수: 유걸 선생은 시청의 뒷길이 별

의미 없다고 하셨지만, 이 지역이 큰 스케일에서

벌어지는 일 못지않게 작은 스케일로 벌어지는

일상이 대단히 많은 곳이란 말이에요. 다시 말해서

전면도 중요하지만 이면의 경계성도 대단히

중요한 공간이라고 봅니다. 이건 한국 도시의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이지요. 하지만 그런 도시적

스케일을 번거롭게 보시는 것도 있는 것 같네요.

A 임근준: 뒷면은 생각도 안 한 건물이

되어버렸죠. 그래도 옆면은 내부 구조의

다이어그램이라고 좋게 해석해볼 수도 있겠지만,

뒷면은 비난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뒤에서 보면

마치 첨단 건물의 가면을 쓴 보통의 공무원 건물

같습니다. 어쩌면 그게 신청사 건축의 본질일지도

모르고.

Q 박성태: 사무공간과 다양한 공공공간이

섞여있는 내부 공간은 어떻게 보세요?

A 김광수: 외부는 구시청사를 의식한 게

있지만, 내부는 정말 마음껏 해보겠다고 하신

거 같아요. 특히나 투명하니까 건축 의도를

전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 거고요.

"설계를 할 때 사람들의 움직임을 느낀다, 본다,

보고 싶다, 예측한다, (건물이 다 지어지고 나면)

사람들이 어떻게 의도하지 않았던 움직임들을

보일지도 무척 기대된다"라고 말씀하시는 걸 봐도

움직임에 대해 고민이 무척 많으신 것 같아요.

본인을 안무가에 비교하기도 하고. 실외에 있을

법한 것들을 실내에 배치하고 분주한 움직임을

상상하고. 이건 일종의 인테리어 어바니즘interior

urbanism인데, 그런 면에서는 유럽 도시건축

담론과 맥락이 닿는 것도 있겠지요. 유걸 선생의

건축은, 유선형적 취향이나 인테리어 어바니즘

같은 측면들이 현대 건축담론들과 맥락이 닿는

것 같으면서도 또 그건 아니다 싶은 묘한 매력을

풍기는 지점이 있어요. 외부에는 무관심하지만

내부에는 하나의 새로운 도시를 만들겠다,

내지는 내부에 모든 것이 있는 신천지 같은 것을

만들겠다는 생각 같은 것들. 그렇기 때문에 쇼핑몰

문화로 읽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쇼핑몰

공간은 또 아니고요. 그래서 이러한 건축을 하나의

양식화된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정말 포스트모던한 현상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A 임근준: 내부에 구축된 판단 유예의 공간이

논리적 공간이 아닌 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

공간에서 투명 플라스틱 개미집 느낌이 나는 건,

좀 안타깝습니다. 단지 건물에 들어가 일하게 될

공무원들의 불편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일반

시민들의 동선도 추후 사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나면 수정 작업을 통해 조절할 필요가 있을

텐데, 공무원 조직에서 그런 추가 작업이 가능할까

의문입니다. 수직적 구조의 식물벽만 해도 나중에

억지 춘향으로 추가된 느낌입니다.

해석하기가 애매하다고 느낀

부분이 있는데, 이 건물의 설계는 로직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없어요. 유걸 선생의 설계가 원래

로직이 강한 건 아니잖아요. 오픈 스페이스 디자인

보면 스트라이프가 있는데, 로비에 들어가면

스트라이프가 없고, 업무시설에 들어가면

스트라이프 논리로 조직이 되는데 스트라이프의

방향성과 상반되게 횡적으로는 아트리움이

들어가고 그 위에 다시 횡적으로 부유하는 세 개의

구름 같은 매스들과 수직동선들이 업무시설

매스들과 충돌하며 내부에 존재하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스케일감도 겉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경험되는

것이 매우 다른 거 같아요. 세 개로 나눈 부유하는

덩어리가 안에서 봤을 때는 의도와 다르게

스펙터클한 스케일감으로 잘 안 오네요. 그리고

시민영역의 과감한 의도에 비해서 업무시설

부분은 여전히 과거의 업무시설일 뿐이라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공공발주 업무시설이라

건축가가 자의적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 것도 있을 텐데 이 두 상반된 공간이

가까이에서 대비되며 어색한 동거 같은 느낌이

듭니다.

Q 박성태: 마지막으로, 서울시 신청사가 어떤

역할을 감당하며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할까요?

A 김광수: 인문학자들에게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흥미로운 자료를 제공한 거라고 봐요.

우리에게 '과연 시청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이

그것이지요. 사연 많은 근대화 과정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시민사회'에 대한 질문이 기껏

최근에 시작된 거죠. 그 지점에서 동시에 '대중주의'

가 벌써 등장했습니다. 이 두 의식이 결합하면서

현재진행형으로 서 있는 것이 지금의 시청이라고

보는 면이 있습니다. 대중주의를 지향하다보니

여기서는 결국 업무시설 30퍼센트밖에 남지

않았고 그 외의 시설들(콘서트홀, 결혼식장,

지하공간의 시민을 위한 개방 공간 등)이

장악하다보니, 시청 사무실은 다른 곳에 새로 짓고,

신청사는 '시민청'으로 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기도

합니다. 시청이라는 것이 기능과 상징성이 함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기능이 죽고 시민의

공간이라는 상징성만 남으려고 하는 전도된

상황이 문제적 징후라고 봅니다. 결국 시청은

'대단한 것'이라는 의식으로 엄청난 시간과 비용과

별의별 과정을 겪어가며 지어졌고 반대로 시민

아니 대중이 당연히 주인이 되어야 한다며 시청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는 의식으로 업무공간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없는 건물이 된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대단한 시청을 짓기 위해서

절박하게 대단한 건축가를 요청해 놓고, 결국엔

그 건축가를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것. 대단한

디자인을 요청하며 그 과정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하는 것. '대수롭다가도 어느 순간 대수롭지

않은' 이 모순된 과잉의식이 문제라고 보고요.

이 모순을 두고두고 보여주는 역할을 신청사가

감당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A 임근준: 장소가 갖는 의미 자체가 과거와 크게

다릅니다. 오히려 분산돼 운영되던 조직이 하나의

상징적인 중심 건물을 지으면 망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대표적인 게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라고

생각하는데요. 허황한 규모의 청사를 짓고, 파산

직전에 몰린 곳이 어디 한두 곳인가요? 한국의

중앙집권형 국가자본주의 시스템이 지방자치체를

도입하며 분산·결집된 뒤, 무엇인가를 의인화한

괴상한 형태의 랜드마크형 신청사 건물들이

들어섰습니다. 특색 있는 지역이 되겠다는

허황한 욕망과 무능과 부패가 한데 얽혀서,

곳곳에 애물단지 괴물이 들어섰습니다. 논란이

된 지방자치단체들의 신청사 건물들의 공통점은,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지방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되고자 하는 의지를 품었을 때, 건축업자들의

도움에 의해 건축적 망상의 형태로 구현된

재앙이라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인화할

수 없는 정보를 그러모아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최신의 '모에 의인화' 경향이 건축에서 드러났다는

점은 몹시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난립한 지자체

신청사들의 큰 형님 격이 되는 건물인 서울시

신청사가 소위 '쓰나미'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코믹하고 우울하지 않나요? 서울시의

신청사 건물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아니라,

하나의 장막, 최후의 막 내림이 아닐까요.

2012년 8월 6일 동숭동 예술가의집에서 가진 건축가 유걸과 서울시 신청사에 대한 토론 모습. 건축가 김광수 (좌), 미술 · 디자인 평론가 임근준(aka 이정우) (우)

신청사 외관에 대해

신청사의 도시적 맥락과 내부 구조

“재료가 지역의 맥락에

적확히 부합하는 건물이

만들어졌는지를 생각해보면

작가의 방법론, 사용자의

필요, 지역의 역사성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물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A 김광수:

A 김광수: Q 박성태:

11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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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지만, '건축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는 건축가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저 자신이

건축가가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단지

다른 '건축가'들처럼 건물을 짓지 않을 뿐이죠.

제가 처음 갖게 된 건축가의 책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 책에서 "건축가란 건물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건축에 대해서 늘 생각하는 사람" 이라는 문장을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저는

언제나 틀림없는 건축가입니다.

대학 시절 건축학과에서 공부할 때도 저는

도면이나 모델을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건축학과라면 이런 것들을 하는 것이겠지' 하는

환상을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제나 공간이라는 것은 실제로 보거나 만져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 옥상에 있는 물탱크에 들어가

살거나, 오토바이 뒤에 집을 싣고 다니며 거주에

관한 실험을 했습니다.

'늘 생각하고 있는 건축'이라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이코노믹Economics의 어원을 아세요?

'Economics = Oikos(집) + Nomos(본연의 모습,

법칙) = 집의 본연의 모습', 즉 '집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것을 의미합니다. 한편, 그것을 번역한

경제經濟라는 말은 '경세제민經世濟民'에서

왔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다스려 사람을 구하는

것, 즉, '인간의 삶을 이롭게 풀어나가는 방식'을

뜻합니다. 저는 이로부터 '인간의 삶을 이롭게

풀어나가는 방식이 곧 집의 본연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의 일본에 삶과 진정한 경제의 부재에

주목합니다. 거기에는 단지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자본주의 경제가 있을 뿐이죠.

그러고 보니 교헤 씨는 집을 짓지 않는 대신,

<움직이는 집Mobile House>에서처럼

참가자들을 모아 그들 스스로 집을 짓게 합니다.

본인은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고요.

<움직이는 집> 짓기에 참가한 사람들이 저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분명히 자신의

집보다 면적이 좁은데, 좁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불가사의하다며 이유를 물어보더군요. 그것은

상품화되어 자신과 아무런 인연이 없이 지어진

공간을 체험하는 것과 자신의 손으로 하나하나

생각해가며 지은 공간을 체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움직이는 집>을 참가자 자신의 손으로 짓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공간 경험의 차이는 디자인이

아니라 그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태도'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을 '태도의 공간attitude space'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만들고자 할 때,

그것에 무한히 가까워지려고 하는 노력, 즉 자신이

원하는 공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행동 그

자체가 태도의 공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통해 나에게 정말로 맞는 공간은 어느 정도의

넓이를 갖는지 처음으로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부동산 중개소에 가서 공간을 간단히 빌리는

행위만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세계입니다.

부동산 중개소에서 공간을 빌리는 이들에게는 '더

넓은 집이 더 좋다'는 사고방식만 있죠.

우리에게 '태도의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짓다, 살다,

생각하다bauen, wohnen, denken'라는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하이데거가 이 강연을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과, 제가 노숙자의 집에서 한

경험이나 <모바일 하우스> 워크숍을 통해 깨달은

것이 어떻게 다른지 물어봤습니다. 저는 그

강연의 제목을 보고, '자기가 살 공간을 짓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철학'이라는

메시지를 떠올렸습니다. 즉, 살아가기 위한 철학,

야생의 철학에는 불안이 없습니다.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생각해서 행동할

뿐입니다. 그럴 때 나타나는 새로운 공간 인식,

'아, 넓구나. 이렇게 스스로 만들면 되는구나!' 하고

깨닫는 것이 바로 제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철학입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짓기'를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불을 피우는

것조차 하지 않으니 '살기'도 점점 상실하고 있죠.

하이데거는 이렇게 홀로 남겨진 '생각하기'를

철학이라고 불렀습니다. 철학은 짓기와

살기로부터 소외된 시대의 산물입니다. 그러니

도시화가 가속화 될수록 철학이 필요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죠.

애초에 도시화되기 이전의 인간은 철학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노숙자의 집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깨닫게 된 철학의 본 모습입니다.

어릴 때 놀던 공원에 다시 가 본 적이 있나요?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이전보다 작아졌다고

느낍니다. 단지 몸집이 커졌기 때문에 공간이

작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어릴 때에는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들이 공원과 합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어린이들이 경험하는

공원에는 '오즈의 마법 세계'와 같은 또 하나의

공간이 있는 것이죠. 저는 야생의 사고방식이

남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직도 그러한 마법과

모험의 공간을 감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숙자의 집이 넓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공간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언제나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공간들을 잘라낸 것이 지금의 부동산입니다.

이러한 상상과 철학의 공간을 소외하고, 단지 '35

평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부동산이죠.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일까요? 사회의 시스템일까요?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닌 바로 나의 탓입니다.

공간을 한정하는 것도, 넓게 만드는 것도 실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2,000만 엔이

있어야 집을 살 수 있다는 것, 집은 돈이 많이

든다는 것과 같은 생각은 집의 본연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 지어낸 환상일

뿐입니다. 노숙자들처럼 돈 없이도 집을 지을 수

있고, 260,000엔 정도의 돈이면 <움직이는 집>

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바꾸지 말고, 세상을 늘려나가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의식이 쳐놓은 한계 위에서

어슬렁대는 것을 그만두고 야생의 사고를

되찾으라고요.

그런데 어째서 집이 움직여야 하는 것일까요?

오토바이에 쓰이는 전구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전구가 멋대로 끊어졌다가는 밤에

타다가 크게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반면, 집의 전구는 정기적으로 끊어집니다.

새 전구로 갈면 그만이고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왜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전구가 있는데,

정기적으로 끊어지는 전구를 만드는 것일까요?

또한 오토바이 전구가 사용하는 전압은 12V이고,

집에서 사용하는 전구의 전압은 110V 혹은 220V

입니다. 역시 이상하지 않나요? 오토바이 전구를

보면 아시겠지만, 12V의 작은 전압만 가지고도

충분히 밝은 빛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집에서는 그렇게 큰 전압을 필요로 할까요?

이들은 별도의 법칙을 가지고 별도의 시스템

위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는

자동차의 세계와 집의 세계를 나누어 놓고

있습니다. 자동차의 세계에서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점은 12V의 작은 전압만으로도 조명, 에어컨,

냉장고, 오디오 등 우리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이 구현 가능합니다. 독립된 인프라를 가지고

움직여야 하고, 잘못하면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이 있으니 자동차에는 명확하게 사람을 위한

궁리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땅에 고착된 집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느슨한 채로 우리에게

환상을 강요합니다. 우리는 어째서 전구가

정기적으로 끊어져야 하는지, 어째서 110V, 220V

나 되는 전압이 필요한지 생각해보지 않은 채

살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에게 정기적으로 새

전구를 사게 하기 위해서, 단지 먼 곳의 원자력

발전으로 만든 전기를 쓰게 하기 위해서 생긴

방식일 뿐인데 말이죠. 이 방식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보통 목욕에 물이 얼마나 필요한지, 하루를

보내는 데에 전기가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 채

무턱대고 절약하자고 합니다.

그러니 저는 사람을 위해 완벽하게 궁리된

시스템인 자동차의 세계에서 좀 더 자유를

느낍니다. 그런 의미에서 <움직이는 집>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사카구치 교헤와세다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그러나 대규모 건축물을 설계하는

현대 건축가의 존재에 의문을 갖고 무명의 건축물과 정원에 관심이 있으며,

짓지 않는 건축가를 자임自任한다. 실제 다마 강변에서 거리생활을 체험하기도

한 그는 스미다 강변에 사는 도시 생활의 달인을 그린 『교쿄 0엔 하우스,

0엔 생활』과 소설 『스미다 강의 에디슨』을 출간했다. 3·11 사태 직후 고향인

구마모토로 이주하여 제로 센터를 만들고, 그간의 사고와 활동을 근간으로

신정부를 수립, 초대 수상으로 취임했다.

원하는 집을 찾아 평생 떠돌아다니기에 우리는 방랑자다. 대부분 그 끝은

율리시스의 귀향길 같이 화려하지 않다. 일본의 도시형 수렵채집생활 제안자

사카구치 교헤Sakaguchi Kyohei는 돈과 자본에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

건축의 본래 의미를 모색한다. <움직이는 집> 프로젝트로 한국을 방문한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꿈꾸는 자유로운 주거 방식에 대해 들어본다.

이어서 교헤가 제시하는 세계에 대해 "현실로 작동하도록 디자인된 픽션"이

실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자본주의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심보선 시인의

글을 통해 되짚어 봤다.

공공영역에

잠재된 위험성 깨우기

제14회 서울변방연극제에서의 <움직이는 집> 제작 워크숍의 완성작

서울

변방

연극

제 제

<움직이는 집> 도면의 부분

작가

제공

12 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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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에 대해 보다 철저히

생각하도록 궁지로 모는 작전 같습니다. 저는 아까

만든 집에 '우리는 땅을 소유할 수 없다'고 적혀

있어서, 땅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주인 없는 땅의 공유를 주장하는 ' 제로 퍼블릭-

신정부(http://zero-public.com)'를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어느 날 긴자에 주인 없는 땅이 생긴 것을

알았습니다. 일본 정부와 도쿄도가 소유권을 두고

싸우다 결국은 누구의 것도 되지 않은 땅이었죠.

그래서 저는 그렇다면 그 땅을 내가 접수해,

모두와 공유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3월 11일 대지진이 있었습니다. 거의 무정부

상태와도 같은 정부의 무책임한 행동을 보고,

그렇다면 내가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정부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죠. 마침 국가의 조건을

규정해 놓은 '몬테비데오 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and Duties of States'의 네 가지 조건,

즉 국민, 정부, 영토, 외교실적을 모두 충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정부가 국가로서 성립할 수

있겠더라고요. 물론 이 이야기에 제 친구들은 모두

폭소를 터뜨렸지만요.

신정부는 두 개의 테마를 축으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살아남기 위한 기술인 '예술Art'

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살아남기 위한 '기술'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경제Economics, 즉 세계를 다스려 사람을

구하는 '집의 모습을 만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저는 늘 '짓고, 살고, 생각하기'를 원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만물의 경제를 이해하고

어떤 것이 환상에 불과한 것인지 알아챌 수 있는

재능을 부여받았고, 그것을 공공과 함께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부러 신정부의 총리를

자처했습니다.

저는 특히 건축가야말로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유한한 토지를 사용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째서 토지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인

것인지 늘 궁금했습니다. 토지의 소유를 놓고

다들 구체적으로 생각하려 들지 않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그저 도망치고만 있는 거죠.

저는 안도 다다오Ando Tadao 같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건축 철학은 모두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돈과

권력, 탑다운의 사고방식이 한정한 세계일뿐이죠.

그리고 우리는 건축 잡지에 실린 멋진 사진을 보며

'생각하기'를 놓아버립니다. 그 외의 것에는 사실

누구도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던 저는 유일하게 '손'을 써가며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들이

바로 노숙자였습니다. 그들은 돈을 위해 집을

만들지 않습니다. 그들의 집은 동물의 둥지와 같이,

'삶'이라는 목적만으로 지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도시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야생의 철학과도 같은 집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는 거짓말투성이의 시스템에 우리를 맡기고

그것이 우리를 보호해준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멋대로 '너는 거기 있어,

가난한 채로 살아. 괴롭힘을 당한다고 해도 우리는

너를 도와주지 않을 거야. 알아서 죽어버려'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쉽게 절망하고 자살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노숙자와 같이

구체적으로 생각하며 스스로를 지키고 살아남을

수 있기를 주장하는 것이죠. 이것이 신정부의

가치관입니다.

성나연 서울 소셜 스탠다드

'제로 엔'에서 시작하는 거대한 전환

사카구치 교헤는 행복한 인간이다. 그는 어릴 적 꿈을 성인이

되어 이루었다. 그는 십 대 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기만의 은신처-주거 공간을 책상 아래 만들고 그 안에서

살았다. 그가 건축과에 진학한 이유는 집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어렸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개인만의 주거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대학 시절, 그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쿄에는 당시 70만 채의 집이 텅 비어 있었다. 그런데

노숙자는 만 명이 넘었다. 집은 남아도는 데 집 없는 사람이

늘어나는 부조리를 그는 납득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에게

이상한 경제였다. 아니 경제조차 아니었다. 경제Economy

는 본래 '바람직한 거주'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는 '제로 엔

ZERO YEN', 즉 일체의 비용 없이 집을 짓고 사는 테크닉과

철학을 노숙자로부터 사사 받고 '움직이는 집'이라는 최소

단위로부터 출발하는 대안적 국가를 구상한다. 그는 생태

친화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다.

교헤는 현재 움직이는 집의 거주자들, 소위

'제로 퍼블릭'으로 이루어진 '제로 엔 특구'를 구상하고 있다.

3·11 사태 이후 이미 신정부를 설립하고 자신을 초대 총리로

지명했다.교헤의 프로젝트는 허무맹랑한 스토리로 보인다.

그런데 그렇지만은 않다. 그는 자신의 픽션이 자본주의라는

픽션을 비판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픽션이라고 말한다.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1945)에서 자본주의의 픽션, 즉 자기

조절 시장이라는 픽션이 공동체를 완전히 파괴해버렸다며

이 픽션의 주요 저자이자 지지자들인 경제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폴라니는 특히 인간과 자연이

뿌리내린 토지를 원자재 상품으로 전락시켜버린 것,

인간의 다원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노동이라는 상품으로

축소시켜버린 것이 그 파괴적 픽션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교헤의 픽션은 바로 폴라니의 자본주의 비판을 계승하며

파괴된 삶을 복구하려 한다. "건강하게 최저한도의 생활을

영위할 권리", "일본 헌법 25조에 명시된 생존권을 지킬

권리",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구성된 그의

픽션은 일종의 증강 현실augmented reality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간직해온 꿈의 이미지들을

성인이 된 이후에 발전시키고 정교화해서 그것들을 삶

위에 겹쳐보고 삶을 더 잘 이해하고 심지어 변화시키는 데

사용하게 된 것이다.

팩트에서 진화된 픽션

교헤의 프로젝트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갈래들이 있다.

첫 번째는 어렸을 때부터 간직해온 주거에 대한 이미지와

스토리의 갈래, 두 번째는 노숙자의 주거 공간과 건축 관련

법안과 조항들을 연구하고 그것을 자신의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리서치의 갈래, 세 번째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정당화하는 이론의 갈래 (예를 들어 '태도경제' 같은 개념은

그가 최소한 '선물경제'에 대해서는 공부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네 번째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현실화하는

마케팅과 전략의 갈래이다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이고

현재 코미디언으로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이 갈래들은

교헤의 프로젝트 전반을 지탱하는 상징적이고 물질적인

자원을 제공하는 동시에 일종의 되먹임feed back을 통해

프로젝트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3·11 사태 후

그는 구마모토현으로 피난을 갔다. 그는 거기서 '제로 센터'

라는 신정부 청사를 개설한 후 사람들에게 그곳을 무료

피난소로 제공하겠다고 선포한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고

그곳으로 이주한 60명의 사람들은 사실 그의 애독자들이다.

또 구마모토현이 그에게 모바일 하우스로 새로운 주택단지

를 조성하고 싶다고 제안을 했는데, 그 제안을 가능케 한

요직의 관료 역시 그의 애독자 중 하나였다. 소설가의 첫

번째 책의 독자가 두 번째 책의 등장인물 역할을 한 셈이다.

이렇게 교헤의 픽션은 자기생산성auto-production을 갖춘

시스템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요컨대 "스스로 생산-재생산, 유지-변화하는 증강현실로서의

픽션"이 교헤의 프로젝트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이다.

그런데 교헤가 꿈꾸는 자유로운 주거자의 연합은 과연 어떤

세계일까? 특히 그가 제시하는 세계는 하나의 픽션이지만

현실로 작동하도록 디자인된 픽션이라는 점에서 그의 허구적

세계가 과연 현존하는 자본주의와 국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예를 들어 그는 3·11 사태에서 일본

정부가 보여준 태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3·11 사태 이후 일본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거대한 재난에 직면하여

사람들을 피난시키지 않았다. 교헤는 자신이 총리로 있는

신정부가 오히려 정상 국가로서 사람들에게 피난을 종용했고

피난처를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교헤는

확실히 겸손한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매우 신중한 사람이다.

그는 정부를 비판하려 하지만 정부와 적대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는 "시스템을 적으로 삼으면 위험하고 정부와

싸워 이길 순 없으며, 따라서 자신의 급진성을 사람들이

모르게 추진하면서 원하는 세계를 조금씩 늘려나가는 것"

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만약 사람들이 정색하고 자신을

비판하면 그는 말한다. "아, 농담이에요".

정치를 회피하는 공통의 삶이라는 픽션은 불가능해

그는 국가와 자본주의라는 폭력적 픽션에 대하여 자신의

픽션-급진적이지만 온건하게 포장된, 속으로는 진담이지만

겉으로는 농담인-을 예술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는

언제까지 픽션-농담으로서의 예술을 구사하면서 정부와

좋은 사이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가 확장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계는 현존하는 세계와 언제까지 적대 없이 공존할

수 있을까? 내가 보기에 그가 정부와 싸울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것은 그의 신중함 때문이 아니라 그의 픽션

자체가 내장하고 있는 한계에서 기인한다. 확실히 그는 공적

분쟁에는 관심이 없다. 그는 오히려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

때문에 잠시 방치된 땅만을 자신의 영토로 삼는다. 그는

그것을 영토 확장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눈치를 보면서 주인

없는 땅에 슬쩍 깃발을 꽂는 셈이다. 그는 점거occupy의

오해를 사고 분쟁을 야기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어느

날 소유자가 나타나 나가라고 하면 군말 없이 깃발을 거두고

나갈 것이다. 그의 디자인에 따르면 그의 세계는 어느 순간

확장하기를 멈출 것이다.

교헤는 "일본 안에 방치되어 있는 토지를 여러분을 위해

새로운 공공의 장으로 전용하겠습니다."라고 선포한다.

그다음 말한다. "남아도는 토지"를 "이용할 뿐, 소유하는

것이 아니므로 현 정부의 레이어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 그가 말하는 것처럼 위험하고 야만적인 분쟁을

피하는 것까지는 좋다고 치자. 그런데 문제는 분쟁이 결여된

공공성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공공성이란

공통의 문제에 대해 제기하는 말과 행동으로 구성된다.

더구나 공공성을 구성하는 민주주의적 정치는 누구나 공통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교헤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무정부성을 내포한다.

그의 온건성은 체제 비판을 자제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의 온건성이 정치를 배제하고 인간적

삶의 일부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체제의 속성과 긴밀히,

은밀히 내통하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그가 신정부의 목표를

"자살자 수 제로"라고 선언하고 '피난처'의 제공을 첫 번째

활동으로 전개했을 때, 그의 신정부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정치 없는 통치"를 지향한다고

간접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신자유주의의 통치는 공통의

삶에 대한 토론을 배제한 채, 오로지 사적인 안전 보장,

개체의 생명 유지만 최종의 목표로 삼는다. 그런 의미에서

교헤가 '사적-공공성private-public'이라 부르는 새로운

공공성이란 새롭기는커녕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와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이미 개탄해 마지

않았던 파괴된 공공성의 상태, 즉 사적인 것이 공적인 장을

식민화한 상태, 즉 개인적 안전과 행복만이 공론 장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어버린 상태를 어조만 낙관적으로 바꿔서

말한 것에 불과하다.

어떤 장소를 공유하고 사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피난처를

확보하고 거기서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는

새로운 공통의 삶의 형태가 등장할 것이며, 그 삶의 형태

속에서 인간은 체제의 원료로 동원되기를, 동시에 체제의

쓰레기로 내버려지기를 거부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무대가 구현하는 삶-이야기이다. 왜 교헤에게는 오로지

경제만이 그토록 중요할까? 그것은 그가 정치를 회피하기

때문이다. 그는 통치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교헤가

본래 바람직한 주거라고 부른 경제Economy는 조르주

아감벤Giorgio Agamben에 따르면 본래 가계의 경영

administration of household, 즉 생명의 관리를 지칭한다.

바람직한 주거란 통치자의 입장에서만 바람직할 뿐이다.

반면에 정치는 경제와 대립한다. 정치는 인간의 삶을

가계 바깥으로 끄집어낸다. 즉 고정된 주거지에 할당된 채

관리되어온 신체 바깥으로 주체를 해방시킨다. 정치는 삶을

개인에서 공통의 문제로 전환시키며, 이 과정에서 분쟁은

불가피하고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만약 교헤가 경제뿐인

공공성, 정치를 배제한 통치만을 취한다면 그가 이야기하는

픽션-농담으로서의 예술에 대해서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ere는 정치의 자리바꿈이

예술의 자리바꿈과 상통한다고 주장한다. 예술의 말과

행동은 말할 수 없는 자들의 말, 보이지 않는 자들의 이미지를

발명하고 그것들을 새로운 신체로 기존의 사회적 공간 안에

기입시키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분쟁적 공공

영역의 구성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며 거기서 위험한 픽션-

농담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누가 픽션을 팩트로 발전시키나

나는 글을 시작하면서 교헤가 행복한 인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행복한 예술가인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행복한 예술가는 동시에 위험한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헤는 그 위험성을 자제하고 유예시킨다.

만약에 앞으로, 아니 당장에라도 그의 픽션에 잠재하는

위험성을 현실화할 주체가 있다면 그것은 교헤 자신이

아니라 관객들이다. 앞서 말했듯 자가 생산성을 갖춘 교헤의

픽션은 지금까지는 교헤 자신의 주도로 구성되고 재생산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부터 눈여겨 볼 것은 교헤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쩌면 그의 의도를 반하면서 스스로 갈래를

치고 보완하고 갱신하는 픽션의 전개 과정일 것이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일본 도쿄에서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기 위해

안보법 투쟁 이후 최다인 17만 명의 군중이 시위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이 교헤의 허락 없이 모바일 하우스를

가장 위험한 방식, 소위 무정부적인 방식으로 거리와 광장을

점거하는데 사용한다면, 그것만큼 신나고 흥분될 일은 없을

것이다.

심보선 시인

행복하지만위험하진않아

<제로 엔 하우스> 중 오사카의 <템플하우스> 2000~2002 <4D 가든> 프로젝트 중 <모바일 가든>, 2002~신정부-‘제로 퍼블릭’의 영토, zero-publ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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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홈페이지 www.zero-public.com 참조. 고주영 번역

13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Page 14: 건축신문 vol. 3. PDF 다운로드

미래의 낙관적 신화로서 기술매체 그리고 백남준

일반적으로 예술은 종교적인 신화, 정치적인

사건과 같은 위대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묘사한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예술작품이 인간 정신의

지고한 이상과 그에 관련되는 현실의 사건들을

표현의 중심에 두고 있고, 그런 과정에서 확산된

문화적 보편성이 예술을 우리 삶의 현실에

관한 이야기로 은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미술의 역사는 인간의 정신적

진보상황들을 표현해 왔다. 그리고 그에 따른

문화의 결과적 양태들은 역사의 발전이라는 테제

속에서 인간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신화를

생산하고 있다. 백남준의 예술은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그가 자신의 예술을 삶에 대한

희망으로 채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미술사(주로 서양 미술사)의 맥락에서 볼

때 일제 식민통치기의 문화 불모지인 한국에서

태어나 서양 문화의 중심으로 들어간 백남준은

상당히 특별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관심을 기울여볼 만한 예술가이다. 그는 일제

식민지 시기의 한국에서 태어나 해방을 맞이하고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유럽으로 건너갔는데,

이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로써는 매우

보기 드문 삶의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당시 첨단의 매체인 비디오를 가지고

서양 미술의 본류로 들어갔고, 서양 중심의 세계

미술사에서 미디어 아트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다.

백남준은 음악을 공부한 사람이었고 쇤베르크

이후의 현대 음악을 비디오를 통해 시각적 서사로

풀어낸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초기 활동인 플럭서스FLUXS에서 여타 미술의

새로운 장르들이 탄생할 때 그렇듯이 기존의

예술적 범주를 부정하는 파괴의 퍼포먼스가

존재한다. 그런 퍼포먼스에서 백남준을 비롯한

플럭서스 멤버들은 악기를 부수고 괴성을

지르거나 혹은 비예술적인 재료들을 가지고 그들

예술의 감수성을 표현하려고 했다. 이런 그들의

활동은 사진과 비디오나 필름에 담겼고, 백남준은

한발 더 나아가 그런 기록 이미지들의 예술적

활용성을 확대하여 자신의 작품으로 흡수한다.

그러나 1930~4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이 그들의

개념적 의도와 내용들을 간접적으로 영화를

이용해 표현했던 것과는 달리, 백남준은 TV 와

비디오 이미지를 직접적인 예술의 매체로

사용한다. 예를 들면 <TV를 위한 선禪 Zen for

TV>(1963) 같은 작품에서 작가는 수평으로

된 하나의 선만이 보이는 TV 화면을 통해 미래

사회에서는 TV가 인간 정신생활의 중심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감각적 확장으로서 기술매체와 예술에의 적용

TV를 정보의 전달과 수용이라는 수동적인

매체로 바라보던 관점에서 벗어나 예술적 표현의

주체로서 그리고 인간적 활용의 대상으로 이해

가능했던 것은 백남준의 '기술낙관주의' 적인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그가 1974년 록펠러 재단에 제출한

기금신청 제안서에서 언급한 "전자 고속도로

Electronic Super Highway" 개념이다. *

여기서 언급된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복지에

기여할 것" 이라는 관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기술을 헤겔이 말하는 '지양Aufheben'

의 개념처럼 부정과 긍정의 희망을 동시에

함의하는 진보의 과정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삶에 대한 희망과 인간의 행복이라는 테제가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역할이자 내용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백남준의 초기 작품에는 TV와 같은 기술매체에

대한 개념적인 접근, 다시 말해 기존의 미술사적

관점에서 보면 공간적 해석이 가능한 작품들이

주요 내용을 이룬다. 공간적인 의미와 시간적인

의미의 경계에 서 있는 작품은 <TV부다

TV-Buddha>(1974)이다. 이 작품은 <TV를 위한

선禪>과 마찬가지로 구성이 단순하다.

TV를 바라보는 실제 부처상과 TV 뒤의 카메라를

통해 TV 안에 비추어지는 부처상 자신의 이미지로

구성된다. 이 작품에서 주체와 대상, 아我와 타他,

나와 타자의 구별이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

케이지John Cage의 소음과 멜로디를 동등하게

바라보는 관점과 유사한 의미의 대상으로서의

미술작품이 아니라 '참여의 근거'로서의

예술작품이 탄생한다. 또 이것은 '이미지와 현실의

경계'라는 문제를 일으키는데, 이 작품을 통해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의 비물리적인 이미지와

현실 속 인간이 삶의 총체성 안에서 하나의 커다란

세계, 즉 가상현실을 통해 가능해지는 감각적

현실이 포함되는 세계로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지와 현실의 경계는 공간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말하자면 존재론적인

성격에 따르는 구별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공간의

지형학이 이미 이 세계에서 발생하는 사태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고, 그리하여 공간의 지형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이 생겨나고, 어떤 것들은

시간의 지리학 (시간을 현실적 개별 상황으로

개념화시키는)을 통해 설명해야만 하는 것이다.

시간의 지리학을 적절하게 대변해주는 개념은

'속도'일 것이다. 빛보다 빠른 속도라는 개념은

빛의 속도가 일정하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기인한 것이지만, 어쨌든 빛의

속도는 우리 생각의 속도 혹은 상상력의 전개

속도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은 논리적인 추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 혹은 계산기계라고 불리는 컴퓨터를

예로 들어보자. 컴퓨터의 진화과정이 그래

왔듯이 초기 컴퓨터에서는 계산의 과정을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앙처리장치

CPU 기술의 발전으로 논리적인 연산과 추론의

과정은 사라지고 소위 '아이콘'이라는 그림들이

컴퓨터 작업의 중심이 되었다. 말하자면 이성적인

추론의 과정이 이미지에 대한 직관적인 감각적

반응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술의 진보가

삶과의 유사성이라는 방향을 지향해 왔고, 현실을

모방해온 기존의 미술과는 달리 백남준으로부터

시작된 미디어 아트는 인간 자체를 모방한다는

것이다.

기술의 진보 과정에서 가능해진 감각적 확장의

기술적 요소들이 예술작품의 창조에 적용되면서

기존의 예술을 감상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과 형식이 탄생하게 된다. 백남준 이전의

영화를 포함한 회화, 조각 등의 전통매체 예술

장르들은 관객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작품을

감상해야만 하는 관조의 공간을 요구한다.

그러나 백남준 이후의 미디어 작품은 한 곳에서

텍스트를 읽어나가듯이 감상하기보다는 이미지의

콜라주를 통해 직관적으로 감각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은 백남준이 예견했듯이 기술매체들이

미디어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의 캔버스가 되면서

가능해졌다.

백남준은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단지 자연이

'변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헤겔Hegel은

『정신현상학Phenomenology of Mind』(1807)

에서, 진리를 경험하는 가운데 진리의 개념이

사라지므로 지속적인 부정의 변증법적 사유

과정을 통해 '절대지the absolute knowledge'

에 다다르고자 했다. 헤겔과 백남준의 공통점은

그들 각자의 예술과 철학을 시간의 지속성 안에

위치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 아트에서는

시간성 자체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재정의

되어야만 한다. 아날로그 동영상 기록과 디지털

동영상 기록이 이미지의 활용성 면에서 본질적인

차이를 가지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시간적 선후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날로그의 한계를

<비디오 신시사이저Video Synthesizer>(1969)

를 통해 극복했다. 그는 신시사이저를 가지고

이미지를 분할하고, 합성하고, 왜곡시키면서

이곳과 저곳,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시공간의

콜라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예술의 가치를 넘어 진보적인 삶을 위한 비전

백남준은 그의 비디오 작품에서 서로 다른 곳에서

촬영한 동영상 이미지를 콜라주처럼 합성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한다. 이것은 공간적인

동시성을 극복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삶의

편재성ubiquity에 대한 예술적 반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나와 타자의 구별

없음이 삶의 일반성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고,

그런 삶 안에서 제1세계 중심적인 근대주의적

가치의 우월성의 문제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와 현재의 이미지들이

한 화면에 공존함으로 인해 시간의 불가역성이

예술적 상상력과 삶의 사건들로 구성되는 시간의

지리학, 말하자면 탈역사적 현실성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디오 이미지에서 시간은

존재의 한계가 아니라, 기억의 보편적 현재성을

보증하는 장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의

지리학'의 현실적 이미지는 <글로벌 그루브

Global Groove>(1973)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백남준은 샬롯 무어만Charlotte

Moorman과 함께 한 퍼포먼스를 비롯해 자신의

예술가 친구들의 공연 장면을 편집해 넣었다.

그리고 기록영화처럼 선명하게 보이는 이미지가

아닌 왜곡과 색의 유희가 가득한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제시한다. 고급예술계의 인물들을

대중적인 광고와 대비시켜 대중문화와 고급예술의

구별을 없애고, 현대 사회의 이미지적 평등성,

현대 사회의 광고 이미지와 포스트모던한 삶의

유사성을 제시함으로써 비디오 아트가 가질 수

있는 직관적인 보편 예술 형식으로서의 존재성을

만들어낸 것이다.

1984년 1월 1일 뉴욕과 파리를 연결한 위성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

(1984)에서 백남준은 <글로벌 그루브>와

마찬가지 이미지 형식을 가지고 요셉 보이스

Joseph Beuys, 존 케이지, 알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 등의 세계

여러 예술가들을 위성을 매개로 하나의 정신으로

종합시켰다. 그것은 기술을 통해 기존의 예술과는

다른 내용의 미학적 차원들을 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1984년 도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린 자신의 전시에서

백남준은 위성 기술의 발전 방향성에 관해

"위성으로 강한 자의 자유를 증대시키는 것은

나약한 문화를 보호하고 여러 문화 사이의 질적인

차이를 정확하게 드러내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 *

이런 그의 주장은 실제로 현재 인터넷을 통해

실현되고 있다. 전혀 다른 문화권의 사건들이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달되고, 특히 한국의 대중문화는

인터넷의 혜택을 가장 많이 경험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백남준의 모든 작품은 개인의

예술적 생산물이 아니라 보편 가치를 지닌 문화의

상징으로 작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백남준은 기존의 문화적 패러다임을 자신의

예술적 상상력으로 완전히 변화시킨 인물이었다.

또한 문화의 다양한 발현이 예술의 가치를 넘어

진보적인 삶의 문화를 향해 항해할 수 있게 만든

비전을 제시한 예술가였다. 그가 활동했던 반세기

동안 세계는 기술과 문화 모두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수많은 현대 예술가들이 자신의 문화가

아니라 그동안 타자라고 생각되어 왔던 변방의

문화들로부터 영감을 얻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문화 상황이 진리를 부정하는

자기의식의 단계에서 본질적인 정신을 지향하는

이성의 단계로 다가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백남준에게 문화는 예술이라는 부정의 매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이것은

변화 속에서 사유하는 정신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었다.

정용도 미술비평

"전자 고속도로 빌딩은 훨씬 거대한 사업거리가

될 것이다. 강력한 전송범위 안에서 작동하는

전자통신 네트워크에 의해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연결한다고 상상해보자.

마찬가지로 위성, 웨이브가이드(도파관), 동축

케이블, 그리고 나중에는 레이저광 광섬유를 통해

연결한다고 상상해보자.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것과 거의 비슷한 비용이 들겠지만 파생되는

것들에 의해 얻는 이득은 훨씬 클 것이다."

에디트 데커, 이르멜린 리비어, 『백남준』, 임왕준

외 역, 백남준아트센터, 2010, p. 141.

최근 백남준아트센터와 소마미술관에서는 백남준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동서를 가로지르고,

관객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능동적 주체로 만든 백남준의 작업이 오늘날과 미래의 미디어 환경에 어떠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는지, 문화의 패러다임을 예술적 상상력으로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었는지 살펴본다.

백남준, 예술의 프로메테우스인가

시간의 예언자인가

Electronic Superhighway: Continental U.S., Alaska, Hawaii, 1995, 49 channel closed circuit video installation, neon, steel and electronic components, approx. 15 x 40 x 4 ft.,

Gift of the artist, 2002.23

Zen for TV, 1963, 1976 version, manipulated vintage television and components, 48.3 x 57.2 x 45.7cm,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Gift of Byungseol and Dolores An. 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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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Page 15: 건축신문 vol. 3. PDF 다운로드

2000년 이후 DMZ와 관련되어 기억할만한

전시들로 ≪DMZ on the WEB≫(2000),

≪DMZ_2005≫(2005), ≪베를린에서 DMZ까지≫

(2005)와 최근 열린 ≪REAL DMZ PROJECT

2012≫(2012)를 포함한 4개로 압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를 제외하고도 평화와 통일, 남과

북의 긴장관계를 다루었던 전시들이 있었지만

전시의 주된 언어로 DMZ가 사용된 전시들만

추려보기로 한다. 이렇게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DMZ에 대한 관심은 끊임없이 이어져왔고 계기성

이벤트로서 규모는 확대되어 왔다. 앞으로는

더 전략적이면서도 활발하게 관련 전시 및

행사들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정전 60

주년이 되는 2013년에는 DMZ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학술회의, 산업지대조성계획, DMZ대학원

설립 등 관련 이벤트들이 열릴 계획이다. 또한

DMZ 국제 예술 심포지엄과 비엔날레도 개최될

예정이며 다양한 문화예술 행사가 열리는 철원은

철원평화·문화광장을 중심으로 DMZ를 국제적인

명소로서 알릴 야심을 내비치고 있다. 앞으로

계획된 이벤트들만 보고 있노라면 DMZ라는 곳이

잠정적으로 전쟁을 멈추고 있는 곳으로서의 긴장감

같은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그간의 전시들이

주는 긴장감이 오히려 낯설게 보일 뿐이다.

2000년에서 현재까지의 전시들을 통해 시대의

문맥을 반영하여 DMZ는 어떤 변화를

관통해왔을까. ≪DMZ on the WEB≫은 역사적

장소로서의 구성된 기억, 생태에 대한 탐구, 인간과

자연의 치유의 장으로 상상하는 DMZ를 구성했다.

8명의 국내 작가가 전시에 참여했고 과거와

현실에 대한 반성과 천혜의 자연환경으로서의

DMZ에 대한 이해와 해석들이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이후 한국전쟁 발발 55주년이었던

2005년에 문화관광부와 광복 60주년 기념

문화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주최 ≪베를린에서

DMZ까지≫가 열렸다. 휴전선 근처에서

철거된 대북 심리전에 사용되었던 확성기와

방음벽과 작품의 소재로 활용한 작품들로

전시가 구성되었다. 동독과 서독을 구분 짓던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난 후 파생된 장벽

덩어리도 역시 작품으로 쓰였다. 사용된

오브제들의 출처나 성격을 봐도 알 수 있듯이

공통된 언어는 분단과 통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열린 ≪DMZ_2005≫ 역시

분쟁지역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이야기들을 통해 분쟁국가의 상황과 이데올로기를

풀었다. 앞서의 전시들과의 다른 점이라면 한국과

비슷한 조건에 있는 분쟁국가 (북아일랜드, 독일,

팔레스타인, 이라크, 이스라엘, 멕시코 등)의

작가들을 초청하여 국제적 조건과 상황 속에서

DMZ를 살펴보려 했다는 점이다.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임진각, 통일전망대, 헤이리 등

12곳으로 전시장소가 미술관 밖으로 확장되었다.

세 전시들은 분단국가라는 현실 속 개인으로서의

작가의 경험에 많은 부분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분단의 역사와 아픔을 국내적인 상황 속에서

통찰하고 미래를 예측하던 것에서 국제적인 상황

속에서 DMZ를 바라보고 접근하는 것으로서

범주가 보다 넓혀졌다. 이로부터 7년의 시간이

흐른, 2012년의 DMZ 전시는 이전의 전시들과

비교해 얼마나 다른 면들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을까?

≪REAL DMZ PROJECT 2012≫는 "철저히 무장된

비무장지대의 역설적인 장면들"에 주목했고 이에

따라 전시의 이름이 'REAL DMZ'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전시관계자는 전한다. 전시는

철원안보관광코스를 따라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는데, 비무장지대를 둘러싼 긴장감과

함께 남침 땅굴, 노동당사 등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장소들을 가로지른다.

그러나 안보와 관광이라는 말이 결합되었을 때

전달되는 역설적인 뉘앙스는 ≪DMZ_2005≫

전시에 참여한 함양아의 <공산주의 관광>과

땅굴이 관광코스로 활용되는 현실에 대해

작업한 황용핑Hwang YongPing의 작업에서

이미 다뤄진 바가 있다. 남한의 북방한계선이자

북한의 남방한계선인 DMZ라는 장소 자체가

가져다 주는 불안과 예민한 감각들이 관광이라는

문화산업의 역학구조 속에서 묘하게 나른해짐은

전시의 주제로서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해 이전에 연구한 작가들의 작업

이후의 과제들 이후 다른 해석도구나 방향제시가

충분했는지 질문하게 한다.

철의삼각전적지 관광사업소에는 한국전 당시

전략적 요충지이면서 동시에 북한군이 남침을

위한 중부전선의 본거지로 삼았던 철원이라는

곳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전시물 다수가

전시되어있다. 안보와 관련된 판넬들 사이 사이에

노순택은 안보관광을 온 사람들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했고, 남침을 위해 만들어진 제2땅굴을

관광하는 사람들의 엉거주춤한 춤사위 같은

뒷모습을 담은 <제2땅꿀 뒤태>는 월정리역에

전시되었다. 디륵 플라이쉬만Dirk Fleischmann의

<청주샹들리에조합-샹들리에 363-931>은 총알

그리고 땅굴을 만들기 위해 설치되었던 폭발물이

심어졌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겨진 500m 길이의

땅굴에 설치했다. 일반인 접근이 가능한 마지막

지점에 설치된 샹들리에에 반사되는 화려한

빛은 이 공간이 어떤 계기로 만들어졌는지 잠시

잊어버리게 만든다. 높은 곳에서 낮은 바닥으로,

그리고 화려한 샹들리에와 한줄기 빛도 없는

어둠 속에서 총을 겨누었던 불안감을 충돌시킨다.

이주영의 <비무장 지대 10리里 길… 기다림>은

노동당사를 비롯하여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콘크리트 기념비로서의 흔적들을 탈북자들과

함께 놀이와 여행으로서 안보관광을 낯설게

보는 것을 제시한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을 안보관광코스에 맞춰 관람해야 한다.

철의삼각전적지의 노순택의 사진이나 제2땅굴의

디륵 플라이쉬만, 노동당사 앞에 설치한 김량의

작업 등 몇몇 설치 작품을 제외한 영상작품들은

관람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치 않다. 정말

안보관광을 목적으로 온 것처럼 한국사의 흔적을

더듬거리며 걷고 지나치면서 끝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근 60여 년간 사람의 출입이 없는 DMZ는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안고 있으면서도 언젠가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열린 장소이다. 이 장소적 특징이

가진 것처럼 비무장의 무장화, 안보와 관광 등 서로

어긋나면서 만들어질 수 있는 예술적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남북의 의사소통과 교류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문화적 유산으로서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일회성 전시들과는

다른 지점들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화이트

큐브 전시와의 차이점이 모호한 지점들이 있었다.

또한 2000년부터의 전시를 기점으로 봤을 때

이번 전시는 여러모로 예민하게 촉을 세워 묘한

긴장감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김정일 이후 시대를

시작하면서 지배와 통제에 깔린 변화들을 바탕으로

DMZ를 새롭게 서술해나가지 못한 점 또한 아쉬운

지점이다. 이제 분단의 현실 자체에 대한 긴장감은

프랑소와 마자브로François Mazabraud의

작업처럼 망원경 너머에나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임국화 컨템포러리아트저널 편집자

'버티컬 빌리지Vertical Village'는 네덜란드의

건축 그룹 MVRDV와 더 와이 팩토리The Why

Factory의 협업으로 구상된 도시의 새로운 건축

모델이다. 버티컬 빌리지는 말 그대로 수직성과

마을을 결합한 개념으로, 도시의 밀도를 고밀도로

유지하면서 마을의 가치를 되살린다는 이상을

갖는다. 그리고 이러한 이상의 실현을 실험하기

위해 버티컬 빌리지는 아시아의 9개 도시를 순회할

예정이며, 서울은 그 두 번째 도시이다.

버티컬 빌리지는 아시아 도시들이 성장의 논리

안에서 기형적으로 팽창되고 '거대화, 규격화,

획일화'되었으며 개성과 커뮤니티를 파괴하는

"서구화된 주거 양식을 강요했다"고 진단하고

"도시의 제한적인 조건 안에서"의 대안을 질문한다.

질문은 어느 정도 정당하다. 우리는 너무 빨리 많은

건물을 지었으며, 너무 많은 건물을 폐기했고, 또

너무 많은 건물을 다시 지었다. 그 결과 서울은

유례없이 거대해지고, 획일화 된 도시 풍경을

갖게 되었고 도시인들은 비슷하고 규격화된 생활

패턴으로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버티컬 빌리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MVRDV의 창업자이자 더 와이 팩토리의 대표인

위니 마스Winy Maas의 제안에는 그 정당함에도

오해 혹은 오독의 여지가 존재한다. 건축에 무지한

필자가 그의 건축적 개념을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계획이 도시 공간과 거주

문화를 생성시킬 수 있을만한 것인가에 대한 의심

역시 정당하다.

위니 마스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시의 발전과 시행은 충분히 자유로운 공간과

우수성과 문화 중심지의 발전을 참작해야만

한다. 이것은 예를 들어, 중산층이 도시에서 도시

외곽으로 빠져나가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이하

토탈미술관 제공 인터뷰에서 인용) 뒤이어 그는

"아시아에서는 보통 가난하거나 매우 부유한

사람들을 위한 개발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만약 중산층을 위한 개발을 시도해본다면, 점차

확대되는 중산층 계급을 위한 모델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유럽의 중산층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아시아 도시들을 위한 경험으로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그의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약점은 건축적,

제도적 실현가능성도 아이디어의 순진성도

아니다. 그가 문제로 삼고 있는 아시아 도시에

대한, 아니 적어도 서울과 한국의 도시에 대한

몰이해라 할 수 있다. 우리 도시의 개발과 재개발이

중산층을 소외시켰는가에 대한 고려 이전에, 실제

도시 개발에서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시의 뉴타운 기획에서 원주민의 재정착률은

10퍼센트 전후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재개발

이후 새롭게 들어선 아파트 단지에 정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단지가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을

가지기를 원한다. 즉 그들은 대부분 그들의 '수준'이

중산층이라고 여겨지길 원하며, 그러한 '허위의식'

을 아파트가 채워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쉽게 도시외곽으로 떠나길 원하지 않는다. 서울의

도시외곽은 모두 신도시의 형태로 발전하였으므로,

이주가 일어나도 그것은 또 다른 도시와

아파트로의 이주일 뿐이다. 게다가 현실은 한국

사회에서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줄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유럽의 중산층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아시아의 도시를 위한 경험으로 쓰일" 수 있을까?

위니 마스는 도시 외곽의 주택에서 거주하는

서구의 중산층 라이프스타일을 참고로 버티컬

빌리지를 뒷받침해줄 문화가 유럽에는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델을 유럽에서 먼저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는 왜

아시아 도시에 이와 같은 모델을 제안하는 것일까?

유럽의 경제가 새로운 도시 모델을 시험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그의 다소 모순적인 생각은 우리의

질문에 답이 되지 못한다. 최초의 자본주의적

도시화의 모델인 유럽의 모델에 다시 의존하고

모방하라는 유럽중심주의적 사고가 아니라면, 유럽

중산층의 라이프스타일과 거주 건축의 문화와 삶이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만한 것을 추적할 수 있는

근거는 부족하다.

사회 계층과 관련하여 또 하나, 버티컬 빌리지는

"특별한 사회적 혼합"을 상상한다. 그리고 이

사회적 혼합을 고려하기 위해 도시의 밀도가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제시된다.

고밀도의 도시에서나 가능한 다양한 시설의 집약과

제공,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가깝게 살면서 얻게

되는 "경제적, 생태학적 그리고 특히 문화적인

측면에서의 효율성"이 이 '특별한' 사회적 혼합을

더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고밀도'의 이유가 어떤

목적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서로 더 가까이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믿는다. 인터넷과 페이스북의 급속한 팽창에

대항하는 개발이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삶 속의 발견을 원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반 익명성'

속의 삶을 원하는 것이다."

도시의 고밀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한 근거는

허무하게도 순진한 편이다. 이상적 환경으로서의

도시주의urbanism라는 역사주의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못한 그의 말은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릴

수도 있다. 사람들은 지금 누구보다도 가까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라는 평면적인

형태에 살기 때문에 인간적인 관계를 갖지 못하는

것일까? 버티컬 빌리지가 상상하는 형태의 변형은

그것을 또한 가능하게 할 것인가? 고밀도의 버티컬

빌리지가 거주자가 외부로 나오기보다는 내부에만

머물어도 충분한 자족적 성격을 갖는다면, 그

안에서 공동체는 특별한 사회적 혼합을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인가? 하나의 또 다른 블록 어택이

되지는 않을 것인가?

복제를 거듭한 자폐적인 도시로서의 한국 도시에

대한 외부인의 이해와 시선이 불편한 이유에서

나오는 질문들이다. 이 확률 낮은 변경 게임으로

실패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되살리겠다는

'정의감' 혹은 오독을 일으키는 '순진함'. 버티컬

빌리지는 한국 사회 안에 존재하고 있는 도시

생성의 특이성과 건축의 의미를 단선적으로만

파악한 채, 다소 유토피아적인 동시에 적절하게

타협적인 이상을 구상하고 있을 뿐이다.

현지연 미술비평

Exhibition

풍경이 되어버린 긴장감 ≪REAL DMZ PROJECT 2012≫,

강원도 철원 DMZ 접경지역, 2012. 7. 28 ~ 9. 16

Exhibition

마르코폴로 증후군을 일으키는 질문들

≪버티컬 빌리지≫, 토탈미술관, 2012. 6. 21 ~ 10. 7

15

프랑소와 마자브로, <감춰진 풍경>, color, silent, loop, mimetic device, 6min. 47sec, 2012

MVRDV의«버티컬 빌리지» 전시 전경

노순택, <제2땅꿀 뒤태>, archival pigment print,

measurements vary,2012

사무

소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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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탈미

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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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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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이나 <신사의 품격> 등 영화와

드라마뿐만 아니라, 땅콩집 열풍과 마을가꾸기

프로젝트 등으로 건축 혹은 건축가는 과거에 비해

무척 친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주변에서 '건축가'와 이야기를 나눈 경험은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건축가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하는 이들일까요?

2012년 가을, 정림건축문화재단과 아르코미술관은

'건축을 통한 교육Learning through Architecture'

으로 높은 관심을 받은 어린이건축학교를 기존의

어린이에서 성인으로 그 대상을 확대하여 건축

특강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번 시간을

통해 어느 때보다도 건축[가]에 호기심을 갖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대인들의 여러 가지 궁금증을

다섯 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합니다. 건축가란

누구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떠한 프로세스로

작업을 하는지, '고쳐쓰는 집'(김재관), '건축과

브랜드'(김정임), '시대별 건축가의 초상'(신호섭),

'내가 좋아하는 것들'(서승모), '집과 물건 그리고

쓰임새'(전숙희) 등의 다양한 이슈로 풀어봅니다.

• 기간 : 2012년 9월 1일 ~ 10월 6일

10월 27일 ~ 11월 24일 매주 토요일 총 5회

• 시간 : 오전 11:00 ~ 12:30

• 장소 : 아르코미술관 2층 아카이브

• 공동 기획 : 정림건축문화재단, 아르코미술관

* 오는 10~11월 강연 내용은 추후 공지합니다.

지난 건축학교 1기 과정을 '내가 살고 싶은 집

만들기' 라는 주제로 진행한 데 이어, 2기 과정

(3차: 9~10월, 4차: 10~12월)은 '내가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라는 주제로 이어집니다.

■ 2012 어린이건축학교 2기 개요

교육주제 :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

기간 및 시간 : 6주 과정 매주 토요일 10:00~13:00

3차 : 2012.9.1.~10.13. 4차 : 2012.10.27.~12.1.

장소 : 아르코미술관

공동기획 : 아르코미술관,

정림건축문화재단, K12건축학교

건축학교 교장 선생님: 홍성천 경기대학교

건축학교 겸임교수

■ 교육접수 방법

신청접수 : 아르코미술관 홈페이지

www.arkoartcenter.or.kr

4차 : 10.8(월) 10:00 오픈 예정

*자세한 사항은 추후 아르코미술관과

정림건축문화재단의 홈페이지를 참조 바랍니다.

'2012 어린이건축학교'는 건축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기보다 '건축을 통한 교육'을 지향한다.

본 프로그램은 아파트가 아닌 주거, 마을이 화두로

돌아오기 시작한 요즘의 사회적 관심과 궤를 같이

한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지난 7월에는 곡성, 여수

그리고 광양에서 네 번에 걸쳐 "신문지 아지트

만들기", "신문지로 빛 공간 만들기",

"신문지로 바람집 만들기", "이야기 속 집 만들기"

등의 건축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크게

STEA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s, Mathematics) 교육 프로그램의 일부로

추진되어 타 분야와의 융합교육에 중심을 둔

단발적 건축교육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건축교육

자체의 완성에 집중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진행은 건축교육의 가능성 및 필요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네 번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만난

초·중·고등학생 180여 명과 지역 학교 선생님들,

지역대학에서 온 운영 스텝들의 호응은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도 건축교육의 수요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더 나아가, 각

지역에 맞는 지역성을 담을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지자체, 교육기관들의 강한 요구와 적극적

지원은 지역 건축교육의 활성화를 기대하게 한다.

이는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학생 수와

전문 인력에서 오는 프로그램 운영상 우려되는

부분들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지표가

된다. 그리고 '사회적 인식 능력을 키워주고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 전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넓혀주고자'하는 건축교육

본연의 취지에 더 잘 부합되는 지역별로 특화된

(도시)건축교육 프로그램 개발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이러한 건축교육의 가능성들을

구체적인 모습으로 엮어내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첫 번째로 보다 완성된 확장과 변형이

가능한 건축교육 프로그램의 기본 틀을 마련하는

것이다. 다음은 역시, '사람'이다. 누가 뜻을 같이

하는가, 어떤 기관과 단체가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가를 찾는 단계는 네트워크를 조성하기 위한

인적, 물적 투자로 연결된다.

정소익 도시매개프로젝트

일반인 건축 강좌

<건축가와 함께하는 토요일 11시>

어린이건축학교

건축교육의 가능성 – 지역으로의 확장 가능성

2012 어린이건축학교 가을, 겨울 프로그램

교육목표

도시의 개념과 지역, 시대별

다양한 도시에 대해 이해한다.

현대도시에 대한 기초지식을 높인다.

실제로 도시에 나가 도시의 구성을 답사하고

기록으로 남겨 현대도시를 새롭게 체험한다.

미래도시에 대한 상상 능력과 표현 및

구체화 능력을 높인다.

미래도시에 필요한 구체적인 건축물들을

구상하고 만들어 봄으로써 창의력을 높인다.

4,5회때 구상한 도시를 큰 면적에 구현하여

구성력과 기획력을 높인다.

교육내용 (세부목표)

•도시의 발생과 변화에 대한 이해

•지역의 문화와 기후에 대한 이해

•건축가가 수행하는 도시계획 및 역할 이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도시의 특징을 이해

•자연발생적 도시와 계획도시와의 차이를 이해

•답사와 기록을 통한 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

•장소의 개념에 대한 이해 / 지도의 이해

•건축과 그 외 도시적 관계 요소에 대한 이해

•도시 디자인의 기본 개념 이해

•미래 도시에 대한 다양한 상상

•생태도시에 필요한 요소들의 이해

•건물의 구성 요소에 대한 이해

•건축물의 재료/구법에 대한 이해

•도시의 입지 · 기후 · 지형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

•커뮤니티의 발전과정에 대한 이해

•공간을 구성하고 배치하는 능력의 배양

프로젝트

도시의 형성

현대도시의

특징과 여러 유형

도시탐사

(마을지도그리기)

미래도시

디자인

생태, 환경중심

미래도시의

건물 만들기

생태, 환경중심

미래도시

완성하기

1

2

3

4

5

6

재단에서는 건축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보편화를 위해 어린이에서부터 성인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을 대상으로 직간접의

건축교육 프로그램을 진행 및 지원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건축교육 콘텐츠 향상을

위해 전문가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고 있다.

건축의

대중화를 위한

건축교육 사업◦ 소외계층을 위한 2012 여름 건축학교

◦ 라운드테이블, "건축교육을 말하다"

◦ 건축교육의 가능성 - 지역으로의 확장 가능성

◦ 건축가와 함께하는 토요일 11시

◦ 2012 어린이건축학교 가을, 겨울 프로그램 개요

2012 어린이건축학교 가을, 겨울 프로그램 개요

<건축가와 함께하는 토요일 11시> 수업 후 질의응답 시간

16 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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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건축가포럼코리아Young Architects

Forum Korea는, 지난 2월과 5월에 각각

첫 번째 주제인 일상성과, 두 번째 주제인

주거 건축에 이어, 세 번째 시간을 통해

'에코 건축: 지속가능한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친환경 건축,

녹색 건축 등 여러 용어로 불리는 에코

건축에 대하여 최근 관련 프로젝트를

한 건축가들과 함께 시행착오와 생생한

아이디어를 나누었습니다.

자연과 가까운 건축, 환경을 저해하지

않고 이롭게 하는 건축,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장소에 자연스레 스며드는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컨퍼런스 현장에서만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유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젊은건축가포럼코리아는

젊은건축가의 공공참여를 통한

일상에서의 건축적 복지와 미래의

문화재 창출로 공공에 기여합니다.

● 일시: 9월 3일 월요일 오후 7시~ 9시

● 장소: 문래예술공장 박스시어터

● 토크: 김찬중, 신창훈, 양수인, 조성욱,

임영환+김선현, 조재원, 장철용, 최춘웅,

SOA(강예린+이치훈)

● 기획: 젊은건축가포럼코리아

● 후원: 정림건축문화재단

포럼&포럼 건축가시리즈 #1

조병수 & 조민석

포럼앤포럼은 지난 3월과 6월, 올해를

관통하는 주제인 '건축의 비건축, 비건축의

건축'을 가지고 건축, 도시, 디자인, 현대미술,

패션, 영화 등 다양한 분야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9월에는

건축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 '포럼앤포럼

건축가시리즈'를 마련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서로 다른 성격의

작업을 보여주고 있는 조병수 소장(Bcho

Architects)과 조민석 소장(Mass Studies)

을 초대해 각각 '경험과 인식', '발견과 발명'

이라는 키워드를 토대로 두 건축가의 작업에

숨어있는 건축적 혹은 비건축적인 고민의

흔적을 풀어낼 계획입니다.

건축가의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나

전문가의 리뷰를 통한 글은 여러 매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공간과 시간을 살면서 이만큼 상이한

작업을 하는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한

자리에서 듣고 직접 나누는 기회는 갖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포럼앤포럼 건축가시리즈' 그 첫 번째

시간에는 한국적 감수성을 잘 보여주는

조병수 건축가와 무한한 상상력으로 기존의

틀을 깨는 조민석 건축가를 모시고 이들이

충돌하고 만나는 지점을 통해 '지금, 여기'의

건축의 모습, 그리고 관객으로 참여하는

'우리'의 모습도 되짚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일시:2012.9.25.화요일7:00PM~ 9:40PM

•장소:이화여자대학교 LG컨벤션센터

•주최:정림건축문화재단,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과,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홈페이지:http://www.forumnforum.com

연사소개

조 병 수 ( B c h o A r c h i t e c t s )

미국 몬테나주립대학과 하버드대학 대학원

도시설계학과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크리스

버검과 그루엔 사무소, 정림건축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1994년 서울에서

조병수 건축연구소를 개소했다. 독일

국립대학교 초빙교수, 연세대학교 교환교수,

몬테나주립대학 건축학부 부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하와이대학 건축학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줄곳 '상자'라는 절제된 형태를

통해 사용자의 '경험'과 본질적인 공간의

경이로움을 탐구해왔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과 존재했던 것을 통해 '인식'의 확장에

관심을 갖고 건축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모더니즘과 동양사상 사이의 심오한

연계성을 바탕으로 공존하기 어려운

이 두 극단을 포용한다.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건축에 대한 그의

태도는 나아가 현대 지역주의를 표방하며,

현대건축에서의 '한국 고유의 것'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2005년 미국 『dwell』지에 세계 3인의 개성

있는 현대 디자이너로 소개됐고, 2004

년에는 미국 '아키텍추럴 레코드'에서 선정한

세계 선도적 건축가 11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ㅡ자집', 'ㄱ자집', 'ㅁ자집' 등의 주거작업과

'이외수 집필실', '한일시멘트 방문센터',

'트윈 트리 프로젝트', '카메라타'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조 민 석 ( M a s s S t u d i e s )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뉴욕

컬럼비아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뉴욕 콜라튼맥도날드 스튜디오와 폴쉑 앤드

파트너스에서 건축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네덜란드의 OMA로 옮겨 여러 지역의

다양한 건축 및 도시 계획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1998

년에는 제임스 슬레이드와 함께 뉴욕에서

조슬레이드 아키텍처를 설립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했고, 2003년 한국으로

돌아와 매스스터디스(Mass Studies)를

열었다.

1994년에 신건축국제도시주거공모전에

당선됐고, 조슬레이드 아키텍처에서

활동하던 2000년에는 뉴욕 건축연맹에서

주관하는 미국 젊은건축가상(뉴욕건축가

연맹)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1999년과

2003년에 각각 미국 프로그레시브 아키텍처

어워드를 수상하였다. '부티크 모나코'

는 2008년 세계 최우수 초고층 건축상

(International Highrise Award; DAM)

의 톱5 작품에 최종 선정되었고, 2010

년엔 '에스트레뉴'로 다시 지명되었다.

최근에는 '2010상하이엑스포 한국관'으로

국제박람회기구(B.I.E.)에서 수여하는 건축

부분 은상을 수상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딸기 테마파크'와 'Same But Different

Houses'로 각각 2004, 2010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초청되었고,

≪열린 주택≫이라는 순회 전시와

≪뉴 트렌드 오브 아키텍처 인 유럽, 아시아

퍼시픽 2006~2007≫에 참여하였다. 현재

다수의 국제심포지엄 및 강의에 참여하고

있다. 그 외의 대표작으로, '픽셀 하우스',

'네이처 포엠', '서울 코뮨 2026',

'앤 드뮐메스터 매장', '링돔', '자이 갤러리',

'상하이 엑스포 2010: 한국관' 등이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어린이건축학교는

올 한 해 진행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건축교육에 참고가 될 수 있는

자료집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와 교육

전문가를 모시고 좌담을 갖고 있습니다.

내년 초 발행을 목표로 지난 6월, 어린이

건축 교육에 관심이 있고 실제로 진행

경험이 있는 건축가, 이진오, 정소익,

지정우 소장을 초대해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본

좌담을 비롯해 앞으로 차근차근 진행

예정인 워크숍들이 초중고생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올바른 건축교육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는 시작점이 되길 바랍니다.

* 본 좌담의 내용은 정림건축문화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예정입니다.

지난 여름, 문화 소외계층인 지역아동센터

아동을 대상으로 ‘2012 여름 건축학교’

를 5회에 걸쳐 진행했습니다. 이를 통해

결손 아동들의 정서적 치유 및 자아존중감

제고 등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시킴과

동시에 문화양극화를 해소하고,

건축 꿈나무로의 성장을 지원하고자

하였습니다.

총 12개 지역아동센터의 초중고생 139명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본 교육은

아르코미술관, 정림건축문화재단, K12

건축학교가 함께 주최하였으며, 포스코

A&C가 후원하였습니다.

지역아동센터 소속의 아동들은 모두

국민기초생활 수급권자로 한 부모 가정의

소년소녀 가장 어린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문화적인 혜택에 소외되어 있고,

야외활동, 체험학습 등의 기회가 많지

않은 실정입니다. 다행히도 건축학교에

참여한 지역아동센터의 인솔 교사들과

참가아동의 다수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큰 만족도를 보였으며, 건축이라는

소재와 빨대,신문지로 공간 만들기,

아지트 만들기 등의 주제에 큰 호기심을

보이며 프로그램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도와주신 건축학교 참가

건축가, 지도교사, 운영 스태프 등 총

32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지역아동센터

아동들과의 만남에 특별한 보람과

책임감을 느꼈다는 소회가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서울은 물론, 그 지역을 확대해

지속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추진되길 희망합니다.

라운드테이블

건축교육을

말하다

2012 여름 건축학교

소외계층을 위한

건축교육

YOUNG ARCHITECTS FORUM KOREA

컨퍼런스 파티 Vol. 3 에코 건축

Forum & Forum

2012. 9. 18. Vol. 3

2012년 3월 창간

등록번호: 종로 바 00136

ISSN: 2287 - 2620

발행처: 정림건축문화재단 / 발행인: 김형국

취재 및 편집: 박성태, 이경희, 임국화

디자인: studio fnt 이재민, 조형석

주소: 110-776, 서울시 종로구 경운동 89-4 에스케이허브 102-625

홈페이지: www.junglimfoundation.org / 이메일: [email protected]

트위터: @junglimfd / 페이스북: www.facebook.com/junglimfoundation1/

전화: 070-4365-7816 / 팩스: 02-737-7732 / 광고문의: 070-4365-7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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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 인천아트플랫폼

전남 순천시 예술공간 돈키호테

17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Page 18: 건축신문 vol. 3. PDF 다운로드

구본준

저는 지금 현재 건축 잡지에 불만이 있는데요.

뭐냐면 우리나라 건축 얘기를 많이 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저는 특별히 한국 건축가만

소개하는 잡지가 하나쯤 있으면 좋지 않나

생각해요. 그런데 함부로 얘기는 못하겠어요.

저도 주간지 「한겨레 21」에 잠깐 있었지만,

한국에서 잡지를 한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에요. 광고 시장이 좋으면 활성화됐다가

어려워지면 접는 이런 상황이 일상화된 와중에

전문 잡지들이 그렇게까지 유지하는 걸 보면

대단한 거거든요. 이번에 『공간』 이야기로 놀랐던

이유가, 지원을 해주는 데도 생존이 어렵다는

거잖아요. 만약에 지원이 없었으면 지금의 『공간』

도 없었을 거란 얘기잖아요. 충격적이에요.

『와이드AR』도 어려운 상황에서 선전하는 걸

보면서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어요. 『그래픽』도 5년 넘게 생존하는 것이 참

대단하거든요, 제가 봤을 때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열정을 가지고 승부하는 잡지들만 살아남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겪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은 가슴이 아프죠. 잡지가 풍부해야

디자인계건 건축계건 그 안에서 담론이 생기는

건데 담론이 생기기 어려운 콘텐츠로만 채울

수밖에 없는 점이 안타까워요. 인터넷에 없는

깊숙한 내용은 잡지에서밖에 볼 수 없는 건데

말이에요. 어느 분야에 입문하건 관련 개론서나

전공서보다도 저는 그 분야 관련 잡지를 1년 동안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인 쪽에 관심이

있으면 디자인 잡지만 1년 보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 거죠. 그런 것들이 독자로서 즐거운 건데,

자생하는 것이 너무 힘드니까, 그래서 그 생태계가

오래 가지 못하고 죽는 게 제일 큰 문제죠.

김광철

『그래픽』을 포함해서 '전문지들이 어려우니까

봐주는' 건 멀리 봤을 땐 전문지나 관련 계에

도움이 안 돼요. 잡지를 만든다는 것은, 곧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정하게 평가를 해야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하는 어려운 환경적인

요인이 있기 때문에 잡지에서 에너지가 많이

죽어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예리하고 민감한 것들에

과감하게 촉을 세워서 존재감의 빛을 낼 줄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물론 저 스스로도

반성하고 다른 잡지를 볼 때에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정귀원

창간호를 만들며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아무리

어려워지더라도 한 페이지라도 계속 쓰겠다".

지금도 여러 가지를 감수하겠다는 생각으로

어려운 순간이 와도 결의를 다지면서 잡지를

만들고 있기는 한데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젊은

마인드로 계속 간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시간이 지나 관계자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와이드AR』은 고령자가 만든, 모두

마흔이 넘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만든 잡지라고...

그러면 우리 이후에 누군가가 계속 이것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는 고민이 들어요. 그래서 저희는

치열하게 뭔가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 잡지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후배들이 와야 하는데,

그런 점들이 힘든 것 같아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몇 년 후에 후배들을 데려와서 더 좋은 것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처음과 지금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거든요.

박성태

디지털 장비들이 발달하면서, 대부분의 콘텐츠가

잡지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종이

잡지의 구독자 수가 줄고 또 광고도 줄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산업으로서 잡지를 만드는 것이

당연히 어려워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대안적인 매체에서는 전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다른 부분에서 비용을 아낄 수

있지만, 여타 잡지, 해외 명품 브랜드가 후원하는

잡지를 제외하고는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이

사실이어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대안적으로 가야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됩니다.

김광철

저는 잡지 산업이라는 관점에서 라이센스 잡지를

한국에서 발행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손익이나

산업이라는 측면은 없어졌고, 앞으로 이런 경향이

점점 심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해요. 그건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는 현상인 것

같아요. 중간지대 잡지들이 과거 10년 전부터

사라졌잖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 고용과 수익을

유지하던 전문적 대중지들이 상업적으로 의미가

없어지고 남은 건 '문화적 의의' 정도죠.

그리고 부수가 훨씬 줄고 있다는 현상을 우리가

억지로 역전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단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다음에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보면 애초에 우리 잡지는

'대중매체'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면서 그 안에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박성태

구본준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전문 잡지가

건축계라는 특정 분야의 정보를 소통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었잖아요. 『그래픽』이나 『와이드

AR』을 포함한 독립 매체가 좀 더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까지 역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김광철

저는 충분히 강렬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든 그 커뮤니티는 밀도가 있으니까요.

한국만 생각하자면 좁은 커뮤니티이기 때문에

잡지에 의미 있는 아티클이 하나만 실려도 해당

분야의 주요 멤버들의 생각이 그 아티클 하나에

의해서 버틸 수 있어요. 그래서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그래픽』을 가지고 얘기를 하면, 『그래픽』은

취재나 피처feature 지면이 없어요. 그래도 한국의

젊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생각을 바꿔놨어요.

천천히. 『그래픽』이 여태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상업적 그래픽 디자인과는 다른 '대안적이고

자율적이고 미학적인 그래픽 디자인 세계가 있다'

고 생각한 걸 계속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거든요.

구본준

저는 건축 잡지에서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을 때가

많은데요. 그런데 너무 추상적이고 우아한 것들만

있어요. 현실적인 건 없는 것 같고. 그걸 유일하게

해소시켜주는 잡지가 『와이드AR』이에요. 아까

김광철 편집장이 말씀하신 대로 어차피 지금은

기존에 해왔던 방법만으로는 잡지들이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엔 어려운 실정인 게 사실이에요.

그리고 상식을 비상식 안에 몰아넣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많거든요.

그 분야에 대해서 생생한 얘기를 듣지 않을 바에야

그 잡지를 왜 보겠는가 생각해요. 적합한 모델이

될지 모르겠는데, 『기획회의』라는 잡지가 있어요.

단도인쇄 수준인 출판인들을 위한 잡지인데

'나는 이 책을 이렇게 기획했다'라며 편집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세히 해요. 아무런 형식도 없이.

근데 그런 것들이야말로 정말 귀중한 자료잖아요.

그런 걸 통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듯이 건축이나 디자인도

우아하게 포장되어있는 결과물이나 가끔 선보이는

근사한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거죠.

소수의 스타플레이어 몇몇이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디자인계나 건축계에 있는

사람들이 '맞어, 우린 이래' 내지는 '이런 게 있네'

라고 공감할 수 있을만한 '날 것'의 정보를 접할

수만 있어도 더 많이 이야기되고 해당 분야의

논의들도 더 활력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봐요.

박성태

이은주 기자는 건축이나 디자인 전문지에서 어떤

이야기가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이은주

계속해서 잡지가 죽고 있다고 하시는데, 저는

오히려 새로운 마켓이 있을 수 있겠다는 식으로

접근해보면 어떨까 해요. 디자인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해도 『그래픽』을 보면서 조금씩

그 세계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전문지는 물론이고

중간지대의 좀 더 많은 잡지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타깃 층을 얘기하는 거예요. 사실

『공간』지가 공간건축의 지원 중단으로 폐간

위기에 몰렸다고 한다. 진위 여부를 떠나

건축과 디자인 전문지의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어려운 경제ㆍ사회

여건에서 건축과 디자인 콘텐츠는 앞으로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란 의문을 갖게 된다.

전문지와 신문에서 건축과 디자인 콘텐츠를

만드는 김광철 『그래픽』 발행인 겸 편집장,

이은주 「중앙일보」 기자, 정귀원 『와이드AR』

편집장, 구본준 「한겨레신문」 기자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건축 저널리즘의

위기와

새로운 패러다임

「한겨례신문」 기자 구본준

이날 좌담에 참여한 패널들은 전문지의 위기를 진단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지점을 토론했다.

“잡지가 풍부해야 디자인계건

건축계건 그 안에서 담론이

생기는 건데, 담론이 생기기

어려운 콘텐츠로만 채울

수밖에 없는 점이 안타까워요

18 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Page 19: 건축신문 vol. 3. PDF 다운로드

신문은 불특정 다수의, 굉장히 넓은 타깃을 가진

매체이고 또 제가 신문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

더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답답함인 동시에, 이런 전문 영역에서

중간지대 역할을 하는 매체는 오히려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사람들이 의외로

굉장히 많은 분야에 관심을 조금씩 가지고 있고,

그런 경향이 계속 느는데 그것을 흡수할 수 있는

매체들을 고민해보면 어떨까 생각해요.

정귀원

우리가 '건축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는 제대로

하고 있는가'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또 그렇지도

못했거든요. 저는 가장 전문적인 것이 가장

대중적인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또 해야 하는

것은 전통적이고 전문적인 요소를 넣고 발전시켜

나중에 대중들과의 접점을 잘 찾을 수 있는 부분을

계속해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해요.

이은주

전문적인 이야기를 비전문적으로 풀어내라는 게

아니라, 전문적인 이야기를 비전문인도 읽기 쉽게,

끄덕이며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내라는 거죠. 물론

읽기 쉽게 쓰는 게 어렵죠. 쉬운 건 아니지만 가끔

유명 출판사에서 인정받는 편집자가 만들어낸

책인데도 타깃을 어떻게 잡은 건지, 누가 읽으라고

만든 건지 묻고 싶을 때가 있어요. 특히 건축 책은

더 그래요.

박성태

잡지와 관련해 일하는 사람들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일을 꼭 해야겠다' 라는 사명감을 갖고

뛰어드는 사람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작은 것도

들여다봐야 할 문제라고 봐요. 국내 건축 잡지가

한창 활발했을 때도 면면히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사실은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거죠.

김광철

전체적으로 한국 잡지의 콘텐츠의 질이 문제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과거 1970~80년대를

'잡지의 시대'라고 할 수 있었잖아요. 지식인들이

소통하자는 의식을 가지고 시대를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 사명감이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저도 비판적인 자세를 갖고 서점에 가서

이런저런 책들을 보면, 특별한 게 많지가 않아요.

전문지도 그렇고요. 그게 슬프죠.

아까 이은주 기자님이 말씀하셨듯이 전문지임에도

문화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봤을 때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정보나 또 다른 시각을 갖게 해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전문적인 영역이

대중들과 소통하면서 끌어내야 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데 여기에서 무슨 문제가 있냐면, 잡지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누가 우리

잡지를 읽을 것인가 하고 고민하거든요. 주요

독자층은 전문인인데, 한편으로는 기본 지식이

전혀 없이 단순하게 혹은 일시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수 있는 텍스트를 쓴다는

것은 정말 힘들어요. 그리고 전문적인 지식을

언어로 풀어나가는 능력은, 잡지뿐만 아니라

많은 비평가들에게 힘든 부분이에요. 그런데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잡지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예전에 『씨네21』은 그런 역할을 했죠. 영화를 심도

깊게 다루면서도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정보도 실려 있고. 교양, 역사, 철학이 다 있는

저널이었죠. 거기서 더 나아가야 하는데 말이죠.

아쉬움이 있어요.

정귀원

『씨네21』을 보면서 건축으로도 이렇게 할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봤거든요. 한편으로는

영화와 건축이라는 분야 자체가 달라서 한계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저희가 내부에서 소통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것도 있고, 영화와는 다르게

일반인이 건축은 더 어렵게 생각하는 것도 있고요.

2000년대 초에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최근에

땅콩집을 보면 일반인들의 건축에 대한 관심도가

예전보다는 높아진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어느

순간에 접점에서 만나는 때가 있을 거고 그 부분을

찾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구본준

최근에 『GQ』가 진행한 프로젝트를 보며 건축

잡지들을 향해 안타까운 생각이 든 일이 있어요.

근대건축물에 대한 가상 프로젝트였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땐 사실 굉장히 단순한

수준이거든요. 그런데 대중들이 좋아하는

건 그런 기획인데, 건축이 아닌 다른 분야의

잡지에서 한다는 게 아쉽더라고요. 그런 잡지를

보는 사람들이 평범한 대중이 아니라 눈 높은

독자들이거든요. 그들의 욕구를 건축이나 디자인

잡지들도 충족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요.

독자들이 콘텐츠보다 편집의 인상을 보고 그

잡지를 선호한다고 하는 건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화려한 건 누구나 다 화려하니까 그

문제는 차치하고. 그런 것보다 다양한 꼭지들이

공존하는 것이 잡지에서 중요하거든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전문가보다는 일반인을 상대로

구색을 맞추고, 전체적인 톤과 매력은 그 속에

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은주

기본 타깃이 전문가인 건 좋아요. 하지만 동시에

일반 사람들도 좀 볼 수 있도록 다른 접근 방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건축 얘기를 풀어내되 접근

자체를 다르게 하면서도 충분히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신문에서 건축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이

있어요. 건축가들을 인터뷰하고 와서 나중에

녹음한 것을 들어보면 전문적인 이야기들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해야 하거든요. 건축 분야를 반복해

다루면서 나중에는 편해지긴 했지만, 일단 기본

언어 자체가 나한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어서

힘들었죠. 그래서 저는 기사를 쓸 때 최대한

단순화 시켜요. 신문이니까요. 완전히 다 버리고

단순한 이야기로 '통역을 한다'는 느낌으로 해요.

건축가들의 언어가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김광철

건축 잡지건 디자인 잡지건 전문지는 진지해야

해요. 그런데 『GQ』는 진지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거든요. 영화 잡지의 경우, 비평란을 보면

훨씬 더 유연해서 관련 분야의 사람이 아니어도

패션이든 미술이든 건축이든 누구든 재밌게 볼 수

있죠. 그런데 『와이드AR』 나 『그래픽』은 한없이

너무 무거워요. 진지하다는 건 단순히 무겁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같이

고민해보자는 의지를 담은 진지함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유머러스하거나 비틀어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죠. 전문적인 독자들은

그렇게 하면 굉장히 놀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지의 고리타분한 접근, 매일 하는

얘기 또 하는 그런 벽을 뚫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은주

『뉴욕타임즈』나 『가디언』의 건축 기사는 오히려

쉽게 읽혀요. 뭔가 언어에 함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그런데 한국말로

된 잡지기사는 이해하기 어려워요. 근원적

엄숙주의가 있는 거 아닌가요?

김광철

신문이나 주간지는 누가 읽어도 무조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 쓰는 사람도 추상적인

말을 쓰면 안 되고요. 전 국민이 읽는 글이니까요.

쉽게 쓴다고 해서 왜 전문적인 이야기를

못하겠어요. 재미있고 신선하게, 얼마든지

전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죠. 저널리즘에

대한 기본적인 훈련과 의지가 전문지에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은주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전달하느냐의 문제인데,

사람들이 잡지를 보는 이유는 지금 이 영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기 때문이에요.

생각을 읽다보면 그 생각이 영감도 주고, 정보도

주고 그런 거죠. 지금 무슨 일이 있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구본준

저는 『와이드AR』이 지금 현재 건축 전문 잡지

중에서 가장 쉽게 읽혀지거든요. 이 정도 톤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이은주 기자님이

(중앙일보에서) 렌조 피아노Renzo Piano에

대한 인터뷰를 하신 걸 읽었어요. 중요한 인물,

중요한 사안이면 전문지에서도 인터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렌조 피아노 인터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이렇게 중요한

사람들의 인터뷰는 일간지에 나가야 해' 라는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힘들겠지만 전문지들이

무조건 달라붙어서라도 인터뷰를 해야 해요.

제가 봤을 때 잡지는 '도발'이거든요. 뭔가 튀는

게 하나라도 있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지금까지

해온 방식에서 겁이 나서 못한 것들을 좀 질러야

하지 않겠나 싶은 거죠. 매체 파워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하더라도 도발을 많이 해주면 독자

입장에서는 즐거울 것 같아요. 내용이 없으면

어때요? 기본적으로 진지한 건 당연히 깔고 가는

거니 좋고, 진지함을 더 돋보이게 할 수 있는

도발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만. 진지한

도발이라면 최상입니다.

이은주

독자와 나, 독자와 전문적인 내용의 교차지점이

어디 있는지 독자들의 반응을 추적해보거든요.

전문가의 이야기에서 요즘 독자들이 뭘 원하는가

보니까 렌조 피아노와 같이 "유명한 사람이

생각하는 법"을 보는 것을 좋아하더라고요. 그가

나와 똑같은 일을 하지 않아도, 그걸 전하는

지점이 있거든요.

제가 독자들에게 원하는 부분도 있어요. 가령

렌조 피아노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만든 런던의

'샤드The Shard Tower'에 대한 내용을 넣은

것도, 이것에 대해 독자들에게 정보를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거든요. 당시 영국에서는 '샤드'

에 대해 각종 일간지에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거든요. 이 트렌드를 알고 있고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원하는 독자들이 있어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싶은 게

사람들의 기본적인 호기심이라고 생각해요. 같은

건축가들끼리도 무슨 일이 일어났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지를

건축 저널들도 함께 고민하면 좋겠어요.

구본준

일간지가 건축이나 디자인에 대해 깊이 있는

기사를 많이 쓰긴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 일간지에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전문지를 자발적으로 찾아 채워나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어디서 그런 글을 봤는데,

프랑스에서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

죽었을 때 일간지에서 1보로 다뤘다고 하더라고요.

프랑스가 패션의 나라이고 이브 생 로랑이

중요한 아티스트라고 봤으니 그런 거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가가 죽었을

때 과연 1보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일간지는 매뉴얼대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한계가 있어요. 그런 부분을 전문지가

해주셔야죠. 저희한테는 전문지가 취재원이기

때문에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

덧붙여, 건축 잡지가 추상적인 개념을 다루는 것도

좋지만 사소한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가령, 캐드CAD에 대해서 얘기해본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뤘으면 좋겠어요.

도구적인 측면이죠. 건축이나 디자인 좋아하는

사람들이 물건도 좋아하잖아요. 그리고 그런

에피소드 소개가 실제로 그들이 일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건축가들은

스케치를 하나도 안 해도 되는가, 건축가들은 어떤

카메라를 쓰는가, 같은 내용이요. 이런 것들이

재미를 더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잡지라는 게

'잡스러운' 거잖아요. 잡스러운 게 좋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잡'의 힘을 보여주는 진짜 잡스러운 잡지를

기대합니다.

박성태

잡지가 어렵다고 하는 게,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잡지가 못해준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의 현장성을 담는 데도

한계가 있고요. 2010년대에 들어서 독자는 과연

잡지의 도발을 원하나요?

김광철

도발이라는 것이 '잡지의 화두'잖아요. 화두가

없으면 잡지가 아니죠. 사실 저는 한국 잡지가

어려워진 것이 화두가 없어서라고 봅니다.

기본적인 소식과 정보는 어디서든 구할 수 있죠.

건축 분야도 인터넷에서 더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에디토리얼 측면에서

분명한 자신의 주장과 의견이 없으면 점점 더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현재 쟁점은

무엇인지, 이 카테고리 안에서 뭐가 고민이고

문제인지를 분명하게 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점점 힘들어질 거예요.

정귀원

『와이드AR』도 계속 고민하는 게 대중과의

소통뿐만 아니라, 폐쇄적인 건축가 사이의 소통도

이끌고 싶어요. 건축가 간의 소통을 유도하면서

도발적인 글을 한두 편 정도 게재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반응이 없다는 게 문제에요. 그냥 조용히

하는 거죠. 정말 무반응일 때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아요.

물론 항상 무반응인 건 아닙니다. 긍정적인

면이라고 하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면을

좀 더 깊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최근 베니스

비엔날레 관련 글을 게재했는데, 직접 관여하는

분들이 읽는 건 아니겠지만, 이 문제가 밖에서 볼

때는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건축계 내부에서 볼

때엔 또 다른 문제가 있다고 얘기해 주니까 반응이

있어서 좋았죠.

박성태

한 매체에서 중요한 이슈를 제기해도 그

업계 내에서 그냥 깔아뭉개면 이슈 자체가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건축계 이슈가 건축계

안에서 뿐 아니라 디자인계나 예술계처럼 다른

쪽으로 전파되어서 이슈화가 커지면 더 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광철

도발의 방식도 중요하네요. 도발하려고

마음먹으려면 도발의 형식을 고민해야할 것

같아요.

* 보다 자세한 내용은 정림건축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www.junglimfoundation.org

『와이드 AR』 편집장 정귀원

「중앙일보」 기자 이은주

『그래픽』 #23 표지, 2012

『와이드 AR』 통권 28호 표지, 2012

“건축가 간의 소통을

유도하면서 도발적인 글을

한두 편 정도 게재하고 있어요.

그런데 반응이 없다는 게

문제에요. 그냥 조용히 하는

거죠. 정말 무반응일 때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아요

『그래픽』 발행인 겸 편집장 김광철

“진지하다는 건 단순히

무겁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같이

고민해보자는 의지를 담은

진지함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지의 고리타분한

접근, 매일 하는 얘기 또 하는

그런 벽을 뚫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잡지를 보는 이유는

지금 이 영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하기 때문이에요. 지금 무슨

일이 있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19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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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September 2012. Vol.3 Architecture Newspa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