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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5. 극 문학의 수용과 생산 ‘벚꽃 동산’은 1800년대의 러시아 농노 해방령을 배경으로, 빚 때문에 경매에 붙여진 벚꽃 동산의 존속 여부를 두고 진행되는 희곡이다. 연극이 갖는 무대의 제약과 관습에 유의하며 작품을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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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7 2 5. 극 문학의 수용과 생산

‘벚꽃 동산’은 1800년대의 러시아 농노 해방령을 배경으로, 빚 때문에 경매에 붙여진 벚꽃 동산의 존속

여부를 두고 진행되는 희곡이다. 연극이 갖는 무대의 제약과 관습에 유의하며 작품을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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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7 3[2] 무대와 관객

앞부분 줄거리

■ 제`1`막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으나 일찍 남편을 여의고 자

식마저 강물에 빠져 죽자 실의에 빠져 외국으로 떠난다. 외국에서 호화롭게 살던 라네프스카야

는 돈도 떨어지고 피로에 지치자, 자신을 데리러 온 딸 아냐와 함께 벚꽃 동산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내려온 아름다운 영지인 벚꽃 동산은 채무의 담보로 잡혀 경매에 부쳐질

상황에 놓여 있다. 농노 출신이지만 현재는 부자가 된 상인 로파힌은 라네프스카야를 진심으로

걱정하여, 빚을 갚기 위해서는 벚꽃 동산을 별장 용지로 바꾸어 임대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

러나 무능하고 자립심이 없는, 라네프스카야의 오빠 가예프는 자신의 명예가 걸린 벚꽃 동산을

버릴 수 없다고 하고, 라네프스카야 역시 자신의 추억이 서린 공간인 벚꽃 동산을 별장으로 만

들 수 없다고 거절한다.

■ 제`2`막 경매일이 점점 다가오자 로파힌은 다급해져서 라네프스카야에게 벚꽃 동산을 별장

으로 만들어 임대하자고 다시 간곡하게 말한다. 그러나 라네프스카야는 로파힌을 믿고 의지하

면서도 자신의 아름다운 추억이 서려 있는 벚꽃 동산을 없애자는 로파힌의 제안을 회피하며 비

현실적인 생각만을 한다. 이런 라네프스카야를 로파힌이 답답해하자, 라네프스카야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벚꽃 동산을 없앨 수 없는 상황을 설명한다.

체호프(Chekhov, Anton

Pavlovich, 1860~1904)

제정 러시아의 소설가, 극작가.

암시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문체로

인생을 냉정하게 분석하여 드러내

는 소설과 희곡을 썼다. 주요 작품

으로 소설‘육호실’, ‘귀여운 여인’

과 희곡‘갈매기’, ‘바냐 아저씨’,

‘벚꽃 동산’등이 있다.

02 벚꽃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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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라네프스카야 류보비 안드레예브나(여지주)

가예프 레오니드 안드레예비치(라네프스카야의 오빠)

아냐(라네프스카야의 딸, 17세)

바랴(라네프스카야의 양녀, 22세)

로파힌 예르몰라이 알렉세예비치(라네프스카야 집안의 옛 농노의 아들, 상인)

트로피모프 표트르 세르게예비치(대학생, 가정 교사)

예피호도프 세몬 판첼레예비치(집사)

시메오노프 피시치크 보리스 보리소비치(지주)

두냐샤(하녀)

야샤(젊은 하인)

피르스(늙은 하인, 87세)

체호프

권영선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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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막

아치형의 칸막이로 홀과 구분된 객실.■

샹들리에가 켜져 있다. 홀에서는 제2막에서

나왔던 유대인 악단의 연주 소리가 들린다. 초저녁. 홀에서는 대원무(大圓舞)가 한창

이다. “한 쌍씩 앞으로!”라는 시메오노프 피시치크의 구령이 떨어지자 차례차례 객실

로 나온다. 선두는 피시치크와 샤를로타, 두 번째는 트로피모프와 라네프스카야 부인,

세 번째는 아냐와 우체국 직원, 네 번째는 바랴와 역장 등등. 바랴는 소리 없이 울다

가 춤을 추며 눈물을 닦는다. 마지막으로 두냐샤 등장.

모두들 객실을 한 바퀴 돌아 지나간다. 피시치크가 구령을 붙인다. “크게 둥그렇게,

좌우로 갈라서!”이어서“신사들은 무릎을 꿇고 숙녀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피르스가 연미복 차림으로 탄산수를 쟁반에 받쳐들고 나온다.

중략 부분 줄거리

벚꽃 동산이 경매에 부쳐지는 날, 라네프스카야는 극도로 불안해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악대를 불러 무도회를 연다.

<중략>

예피호도프 등장.

예피호도프 아브도챠 표도로브나(두냐샤),

당신은 제가 무척 싫은 모양이군

요……. 저를 마치 무슨 벌레 보듯 하니

말입니다. (한숨을 쉰다.) 오, 가련한 인생

이여!

두냐샤 무슨 볼일이라도?

예피호도프 그야 물론 당신이 옳을지도 모르죠. (탄식

한다.) 그러나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당신이라는 분은 솔

직하게 말해서 저를 완전히 정신 이상의 상태로 빠뜨렸다고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 저의 숙명을 알고 있습니다. 제 주변에선 항상 불행

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전 이미 그런 것엔 익숙해져서 제 운명을 미소를

지으며 바라봅니다. 요컨대, 당신은 일단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설령

제가…….

■ 객실 손님을 거처하게 하거나

접대할 수 있도록 정해 놓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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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냐샤 제발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세요. 지금은 절 좀 가만히 내버려두셨으

면 좋겠어요. 전 지금 공상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부채를 만지작거린다.)

예피호도프 전 매일 불행한 일에 부닥칩니다만, 그저 미소를 지을 따름입니

다. 아니, 큰 소리로 웃기까지 합니다.

홀에서 바랴 등장.

바랴 넌 아직도 여기 있었니, 예피호도프? 어쩜 이렇게도 무례한 인간이 있

담! (두냐샤에게) 너도 저리 가, 두냐샤. (예피호도프에게) 당구를 쳐서 큐■

부러뜨리지 않나, 손님처럼 객실을 쏘다니지 않나.

예피호도프 이렇게 말씀드려서 실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당신한테 잔소리

를 들을 까닭이 없습니다.

바랴 잔소리가 아냐, 그렇다는 거지. 일은 안 하고 매일 빈둥빈둥 쏘다니기만

하니, 집사를 고용할 필요가 있겠어?

예피호도프 (울컥 화가 나서) 제가 일을 하건, 돌아다니건, 먹건, 당구를 치건,

거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는 것은 사리를 잘 아는 사람이나 윗사

람들뿐입니다.

바랴 어떻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발끈해서) 말 다했어? 그러니까 내

가 사리를 모른단 말이야? 여기서 얼른 나가! 자, 당장 나가!

예피호도프 (겁을 집어먹고) 거 뭡니까? 좀 더 점잖은 말로 하십시오, 제발.

바랴 (정신없이) 얼른 못 나가겠어? 자, 나가! (예피호도프가 문 쪽으로 가는 것을

그녀가 뒤쫓는다.) 스물둘의 불행 같으니라구! 이 근처에서 얼씬거리면 그냥

두지 않겠어! 두 번 다시 그 얼굴을 내밀지 마! (예피호도프 퇴장. 문 뒤쪽에

서“당신 이야기를 고해 바치겠어요.”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 또

돌아오는 거야? (문 옆에 세워 둔 피르스의 지팡이를 집어 든다.) 자, 오너

라……. 올 테면 오라구. 혼을 내줄 테니까. 올 테냐? 응, 오겠어? 그럼

이렇게 해 주지……. (지팡이를 들어 올린다. 바로 그때 로파힌 등장.)

로파힌 (지팡이에 맞는다.) 이거 매우 황송한데요.

바랴 (분노와 조소가 섞인 목소리로) 실례했어요.

로파힌 천만에요. 융숭한 대접을 받게 되어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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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7 5[2] 무대와 관객

바랴가 화를 내는 이유는 무

엇일지 생각해 보자.

?

■ 큐(cue) 당구에서, 공을 치는

막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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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7 6 5. 극 문학의 수용과 생산

입니다.

바랴 감사할 것까지는 없어요. (한쪽으로 물러섰다가 되돌아와서 상냥하게 묻는

다.) 다치신 데는 없으세요?

로파힌 네, 괜찮습니다. 하긴 커다란 혹 하나쯤은 생길지도 모르겠는데요.

홀에서의 소리 로파힌이 왔어요! 로파힌이 왔다구요!

피시치크 등장.

피시치크 어서 오십시오. 잘 오셨습니다……. (로파힌에게 키스한다.) 이 귀여운

사나이에게선 코냑■

냄새가 나는군. 이봐요, 우리는 보시는 바처럼 유쾌하

게 놀고 있소.

라네프스카야 부인 등장.

라네프스카야 어머나, 당신이었군요, 예르몰라이 알렉셰예비치! 왜 이렇게 늦

었어요? 레오니드는 어디 있나요?

로파힌 오라버님께서도 함께 돌아오셨습니다. 이제 곧 들어오실 겁니다…….

라네프스카야 (흥분하며) 그래, 어떻게 됐어요? 경매는 있었나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로파힌 (기쁨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우물쭈물하며) 경매는 네 시 전에 끝났습니다.

우린 기차를 놓쳤기 때문에 아홉 시 반까지 기다려야 했죠. (괴로운 듯이

한숨을 쉬고) 후유! 머리가 어찔어찔하군…….

가예프 등장. 오른손에는 물건을 들고, 왼손으로는 눈물을 닦는다.

라네프스카야 료냐, 어떻게 됐어요? 네, 료냐? (안타까운 듯 눈물을 머금고) 빨

리 말씀해 보세요. 어서요…….

가예프 (그녀의 말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만 한 손을 흔들기만 한다. 울면

서 피르스에게) 이걸 받아…… 안초비■

와 케르치■

의 청어야……. 난 오늘 아

무것도 먹지 못했어. 아아, 정말 지독한 꼴을 당했지! (당구장으로 가는 문

이 열려 있어서 공이 부딪치는 소리와“칠과 십팔!”하는 야샤의 목소리가 들린

다. 가예프가 표정을 바꾸고 그만 눈물을 거두면서) 난 정말 지쳐 버렸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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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예프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

는 무엇인가?

?

■ 코냑 프랑스 코냐크 지방에서

생산하는 고급 술. 포도주를 증류

하여 정제한 것이다.

■ 안초비(anchovy) 지중해나 유

럽 근해에서 나는 멸치의 일종. 또

는 이것을 절여서 발효시킨 젓갈.

■ 케르치(Kerch) 우크라이나 공

화국 크림 반도 동쪽에 있는 항구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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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 피르스, 옷 좀 갈아입혀 줘요. (홀을 지나서 자기 방으로 간다. 피르스가

그 뒤를 따른다.)

피시치크 경매는 어떻게 됐지? 자아, 얘기해 봐요!

라네프스카야 팔렸어요? 벚꽃 동산이?

로파힌 팔렸습니다.

라네프스카야 누가 샀어요?

로파힌 제가 샀습니다. (사이)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맥이 탁 풀린다. 만약에 안락의자와 테이블 곁에 서 있지 않았

더라면 쓰러졌을 것이다. 바랴는 허리띠에서 열쇠 뭉치를 끌러 객실 한복판에 내동댕

이치고 퇴장.

로파힌 제가 샀어요!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러분. 부탁입니다. 전 머리

가 멍해져서 말이 잘 안 나옵니다……. (웃는다.) 우리가 경매장에 도착해

보니 데리가노프는 벌써 와 있었습니다. 가예프 씨한테는 겨우 만 오천 루

블밖에 없는데, 데리가노프는 대뜸 저당액 위에 삼만 루블을 불렀습니다.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저는 그 녀석을 상대로 사만 루블을 불렀죠. 저쪽

은 사만 오천 루블로 나오더군요. 그래서 저는 오만 오천 루블을 불렀어

요. 즉, 그놈은 오천 루블씩 올렸고, 전 만 루블씩 올렸지요……. 그래서

결국 끝장이 났어요. 전 저당액 위에다 구만 루블을 더 내고 깨끗이 이긴

겁니다. 벚꽃 동산은 이제 제 것입니다! (껄껄대고 웃는다.) 제 것이란 말입

니다! 아아, 이게 웬일일까요, 여러분! 벚꽃 동산이 제 것이라니! 저보고

주정뱅이라고 하든, 정신병자라고 하든, 또는 몽유병자라고 하든 마음대

로 지껄이라고 하세요……. (발을 구른다.) 저를 비웃지 마세요! 우리 아

버지나 할아버지가 무덤 속에서 오늘의 이 결과를 보셨다면 어땠을까

요? 저 예르몰라이가, 얻어맞고만 있던 예르몰라이가…… 겨울에도

맨발로 뛰어다니던 거지가, 틀림없는 그 예르몰라이가 이 세상에 둘

도 없이 아름다운 영지를 산 거예요. 거기서는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노예였고, 부엌에도 들어갈 수 없었던 바로 그 영지를 제가 산 겁

니다. 제가 잠꼬대를 하고 있거나,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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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대와 관객 3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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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에, 이거야말로 당신네들이 터무니없는 상상 속의 무지한 암흑에 싸

인 환상인 거요. (황홀하게 웃으면서 열쇠 뭉치를 주워 든다.) 열쇠를 던지고

갔군. 이제 이 집의 주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말이겠지…….

(열쇠 뭉치를 짤랑거린다.) 흥, 어쨌든 상관없어. (악단이 음조를 맞추는 소리가

들린다.) 어이, 악대, 연주를 시작해. 계속하라구! 모두 와서 구경하시오.

이 예르몰라이 로파힌이 벚꽃 동산에 도끼 맛을 보여 줄 거야. 나무가 차

례차례 땅 위에 넘어지는 거라구! 이곳에 별장을 많이 세워 우리 손자와

증손자 놈들에게 새로운 생활을 하게 해 줄 테다……. 악대, 시작해!

음악이 시작된다.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의자에 깊숙이 앉아서 격렬하게 울고 있다.

로파힌 (나무라듯이) 도대체 왜 당신은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까? 내 소중한

부인, 안됐지만 이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아, 이

런 일은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어. 이렇듯 빗나가기만 하는, 불행하고

재미없는 생활은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어.

피시치크 (그의 팔을 붙들고 낮은 소리로) 부인이 울고 있잖아. 자, 홀로 가세.

혼자 계시도록 하는 편이 좋겠어……. (팔을 잡고 홀로 데리고 간다.)

로파힌 어떻게 된 거야? 악대, 정신차려서 해! 무엇이든 내 주문대로 하는 거

야! (비꼬듯이) 새 지주님의 행차시다. 벚꽃 동산의 주인님께서 말이야! (실

수로 작은 탁자에 부딪쳐서 가지 달린 촛대를 넘어뜨릴 뻔한다.) 무엇이든 값은

치러 주지! (피시치크와 함께 퇴장)

홀에도 객실에도 라네프스카야 부인 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녀는 의자에 앉은 채 몸

을 움츠리고 서럽게 울고 있다. 나지막이 흐르는 음악 소리. 빠른 걸음으로 아냐와 트

로피모프 등장. 아냐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서 그 앞에 꿇어앉는다. 트로피모프는 홀

입구에 선다.

아냐 엄마! 울고 계시군요……. 친절하고 상냥한 엄마! 내 소중한 엄마, 전

엄마를 사랑하고 있어요……. 벚꽃 동산은 팔렸어요. 이제 없어졌어요. 사

실이에요. 하지만 울지 마세요, 엄마. 엄마에게는 아직도 앞날의 생활이

있어요. 상냥하고 깨끗한 마음씨도 있구요. 자, 함께 가요, 엄마.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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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파힌이 열쇠 뭉치를 주워

든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

이 장면에서 로파힌의 심리는

어떠할지 생각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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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7 9[2] 무대와 관객

나가요. 우린 또 새 동산을 만드는 거예요. 이보다 훨씬 훌륭한 것으로 말

이에요. 그걸 보시면 기쁨이…… 조용하고 깊은 기쁨이 마치 저녁 햇살처

럼 엄마의 가슴속을 비출 거예요. 그럼 엄만 상냥하게 웃으실 수 있을 거

예요, 엄마! 가세요, 네, 소중한 엄마! 우리 함께 가도록 해요!

<후략>

뒷부분 줄거리

■ 제`4`막 벚꽃 동산의 새 주인이 된 로파힌은 벚꽃 동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 버리고 그 자리

에 별장을 짓기 위해 바쁘다. 그리고 벚꽃 동산을 잃은 사람들은 아쉬움 속에 각자의 길을 찾

아서 떠날 준비에 분주하다. 라네프스카야는 마지막으로 집 안 곳곳에 남겨진 추억을 조금이라

도 더 간직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마침내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홀로 남겨진 충성스러운 하

인인 피르스는 한평생을 보낸 이 집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끝마쳤다는 생각을 한

다. 멀리서 별장을 짓기 위해 벚꽃 동산의 나무를 찍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작품은 러시아의 격변기를 배경으로 귀족 계급의 몰락과 신흥 자본가 계급의 발흥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권

력의 상징물인 벚꽃 동산은 경매를 통해 농노 출신의 상인인 로파힌에게 넘어가고, 로파힌은 귀족 계급으로 대표되는 라

네프스카야의 추억이 담긴 벚꽃 동산의 나무를 잘라 내고 그곳에 별장을 짓는다. 이를 통해 구세대의 몰락과 신흥 세력

의 성장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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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동산’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생각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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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 0 5. 극 문학의 수용과 생산

1 ‘벚꽃 동산’을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다음 글을 참고하여, 이 작품에 등장하는 라네프스카야 부인과 로파힌은 각각 어

떤계급을대표하는인물인지알아보자.

(2) 이 작품에서 벚꽃 동산의 소유가 라네프스카야 부인으로부터 로파힌에게로 옮겨

간것은어떤상징적의미를지니는지말해보자.

(3) 이 작품에서 로파힌이 벚꽃 동산의 나무를 모두 잘라 내겠다고 한 이유는 무엇인

지생각해보자.

2 ‘벚꽃 동산’의 다음 부분을 읽고, 아래의 활동을 해 보자.

다가서기

깊게이해하기희곡과 무대

희곡은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으로 인해 희곡은 제약과 관습을 갖는다.

희곡은 모든 사건이 무대 위 배우의 행동을 통해 지금 눈앞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현재화시켜 표현되고, 서술자

의 개입 없이 등장인물의 대사와 행동에 의해 사건을 전개하는 특징을 갖는다.

‘벚꽃 동산’은 체호프의 마지막 희곡으로,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의 충돌과 미래 탄

생에 대한 그의 창작적 유언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800년대의 러시아

농노 해방령■

을 배경으로, 봉건 귀족 계급의 몰락과 신흥 자본가 계급의 등장이라는

대립적 구도를 통해 당시 러시아 사회의 단면을 정확하게 묘파해 내고 있다.

■농노 해방령 1861년에 제정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가 내린 농노 해방에 관한 법령. 이에 따라 농노는 인

격적 자유를 얻었으나, 모든 토지가 지주의 재산이라는 전제하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배상금을 지불해야만 토지의

소유를 인정받았다. 더욱이 농노가 차지한 토지는 종래 경작한 땅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아서, 지주 밑에서 소작인

이 되거나, 토지를 떠나 노동자가 되거나 하는 수밖에 없었으므로 농민의 생활 빈곤은 여전하였다. 그러나 이 개혁으

로 농노제의 속박이 완화되고, 다수의 노동자가 생겨남으로써 러시아의 자본주의 발달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아치형의 칸막이로 홀과 구분된 객실. 샹들리에가 켜져 있다. 홀에서는 제2막에서

나왔던 유대인 악단의 연주 소리가 들린다. 초저녁. 홀에서는 대원무(大圓舞)가 한창

이다. “한 쌍씩 앞으로!”라는 시메오노프 피시치크의 구령이 떨어지자 차례차례 객실

로 나온다. 선두는 피시치크와 샤를로타, 두 번째는 트로피모프와 라네프스카야 부

인, 세 번째는 아냐와 우체국 직원, 네 번째는 바랴와 역장 등등. 바랴는 소리 없이

울다가 춤을 추며 눈물을 닦는다. 마지막으로 두냐샤 등장.

모두들 객실을 한 바퀴 돌아 지나간다. 피시치크가 구령을 붙인다. “크게 둥그렇게,

좌우로 갈라서!”이어서“신사들은 무릎을 꿇고 숙녀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피르스가 연미복 차림으로 탄산수를 쟁반에 받쳐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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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0: (362~387)159Ⅰ-5(2)OKD 2011.7.6 6:11 PM 페이지372 mac02 Tviewpds.jihak.co.kr/tsoldb/%EA%B5%90%EA%B3%BC%EC%84%9C%EB%B3%84/… · 봐, 피르스, 옷 좀 갈아입혀 줘요. (홀을

3 자신이 로파힌 역을 맡는다면, 다음 장면에서 어떻게 움직이며 연기할지 자유롭게 구

상하여 이야기해 보자.

넓게생각하기

3 8 1[2] 무대와 관객

(1) 위의부분을바탕으로이작품의무대를그림으로그려보자.

(2) 연극은무대를쉽게바꿀수없다. 위의부분에서는이러한제약을어떻게처리하

고있는지찾아보자.

음악이 시작된다. 라네프스카야 부인은 의자에 깊숙이 앉아서 격

렬하게 울고 있다.

로파힌 (나무라듯이) 도대체 왜 당신은 제 말을 듣지 않

았습니까? 내 소중한 부인, 안됐지만 이젠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아, 이런 일은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어. 이렇듯 빗나가기만 하

는, 불행하고 재미없는 생활은 빨리 지나가 버렸으면

좋겠어.

피시치크 (그의 팔을 붙들고 낮은 소리로) 부인이 울고 있잖아. 자, 홀로 가세. 혼자 계

시도록 하는 편이 좋겠어……. (팔을 잡고 홀로 데리고 간다.)

로파힌 어떻게 된 거야? 악대, 정신차려서 해! 무엇이든 내 주문대로 하는 거야! (비꼬

듯이) 새 지주님의 행차시다. 벚꽃 동산의 주인님께서 말이야! (실수로 작은 탁자에

부딪쳐서 가지 달린 촛대를 넘어뜨릴 뻔한다.) 무엇이든 값은 치러 주지! (피시치크와 함

께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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