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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는 한겨레 <한겨레> 25년 창간정신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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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거는 한겨레

<한겨레> 25년창간정신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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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거는 한겨레

<한겨레> 25년, 창간정신의 진화

개방, 공유, 협력으로 펼치는 ‘전체 그림’

25살, 한겨레의 좌표 ● 02

새로운 25년의 비전: ‘말 거는 한겨레’ ● 14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가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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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한겨레> 25년, 창간정신의 진화

25살, 한겨레의 좌표

1. 성취와 한계

내우외환의 위기가 있고, 이를 극복한 위인들이 있었으며, 백척간두에 서서 갈 길을 논쟁한 영웅호걸들이 있다. 티끌에

서 시작해 높은 성채를 건설했고,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두루 영향을 미쳤으며, 마침내 세상을 크게 바꾸었다. ●

2008년 발행된 한겨레 20년 사사(社史)의 한켠에 나와 있는 이 말대로 한겨레의 25년은 ‘세상

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 모여서 마침내 ‘세상을 바꾼’ 역사이다. 자긍심을 가져도 좋은 평가이

자, 그간 많은 선후배 한겨레인이 흘린 땀과 노고에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지난 25년 한겨레

의 공과에 대한 자세한 평가는 이미 나온 10년, 20년의 기록이 있고, 아울러 30년 되는 해에 다

시 나올 사사의 몫으로 돌리는 게 나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성취와 한계를 중심으로 지금 한

겨레가 처한 좌표를 간략히 점검해 보기로 한다.

● 성취

가장 신뢰받는 신문 한겨레는 창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역에 부단히 도전해 왔다. 민주주의를

제한하고 인권을 억압하는 정치권력과 정부, 경제 영역을 넘어 사회 전체를 지배하려고 하는

● 한겨레신문사, 『희망으로 가는 길』, 2008, 

p.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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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거대 기업들이 한겨레가 맞서 싸운 성역이었다. 한겨레는 남북 관계에 대한 보도가 대결 일변

도일 때 평화적 공존과 화해를 촉진하는 보도에 앞장섰다. 또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위해

한국 언론 최초로 윤리강령을 만들어 실천했으며, 순한글 가로쓰기, 컴퓨터조판(CTS)을 사상

최초로 도입하는 등 한국 언론의 관행과 규범을 혁신하는 데 앞장서왔다. 이런 점들은 해마다

실시하는 조사에서 한겨레가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신문사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한겨레>는 2011년 <시사저널>이 언론학자 등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

에서 ‘가장 신뢰하는 언론매체’ 부문에서 <KBS>(26.0%)에 이어 전체 2위(25.4%)를 차지했다. 이는 신문사 가운데는 1위

로 <경향신문>(4위, 20.5%)은 물론, <조선일보>(5위, 13.9%), <동아일보>(7위, 7.4%), <중앙일보>(8위, 6.7%)를 크게 앞서

는 것이다. 2012년 조사에서도 한겨레는 전체 신뢰도에서 2위, 신문사 가운데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참된 언론의 대표주자 한겨레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의 대척점에서 한국 사회의

진보적 담론 생산과 유통을 주도하고 있다. 진보적이고 대안적인 정보와 해석의 상당 부분이

한겨레를 통해 생산되고 유포되고 있다. 민주적, 진보적 심성을 지닌 시민들이 세상을 이해하

고 자신의 의견을 확인하기 위해 한겨레를 보고 있다. 매체의 확산에 따라 정보가 범람하고

사회적 갈등 역시 첨예화하면서 담론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속에서 진보적 담론을

주도적으로 생산하는 한겨레의 역할은 비교적 뚜렷하다. 한겨레가 민주개혁세력의 확장과 다

●●시사저널 1191호(2012.8.15), 1138호 

(2011.8.10).

한겨레 창간호가 찍혀 나오자 송건

호 사장 등 당시 한겨레 내외 인사들

이 창간호를 펼쳐 보며 감격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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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한겨레> 25년, 창간정신의 진화

양한 진보이념의 확산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인정과 안정 한겨레의 경영은 늘 위기였다. 문민을 표방했던 정부의 안기부도 1996년

한겨레에 광고를 하지 말도록 정부투자기관과 대기업을 조종했다. 광고 탄압은 12년 뒤인 2008

년, 이번에는 자본권력의 상징인 삼성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삼성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2007년 11월부터 2년 넘게 한겨레 광고를 큰 폭으로 줄였다. 이런 어려

움으로 생존 자체가 불투명했던 상황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소 재정적인 안정을 확보했다. 창

간 첫해 66억원이던 매출액은 이제 10배 이상 커졌고, 2010년부터 3년간 흑자를 이어오면서 그

간의 누적결손도 완전히 해소했다. 이런 점에서 한겨레는 더 이상 25년 전의 ‘벤처기업’이 아니

다. 여론 지형에서 확보한 진보담론 생산의 선두주자란 대표성은 신문시장에서 한겨레가 차지

하는 독자 비중을 넘어서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준다. 특히 온라인(인터넷, 모바일 등)

의 발달은 한겨레가 신문시장에서 가진 태생적인 물적 취약성을 뛰어넘어 영향력을 확장하고

이를 경영(광고·협찬 등)에 선순환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성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단면을 잘라보면 위기의 싹이 자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극단화하는 담론 지형에서 영향력이 증가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40, 50대 등 전통적 선호

층의 지지가 약해지고 다른 세대나 계층으로 공감대가 넓어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확장성이

떨어질 때 그간 확보한 영향력도 오래 유지되기 힘들다. 아울러 다양한 플랫폼에서 진보 매체

들이 활발히 활동하게 되면서 진보담론 생산을 주도하는 존재감 역시 조금씩 퇴색하는 모습

을 보이고 있다.

● 한계

확장성 제한 한겨레 선호층과 독자층이 일정한 범주에 갇혀 쉽게 확대되지 않고 있다. 2012

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진보라고 한 국민은 28.0%, 중도라고 한 국민은

37.2%이다.● 적어도 50% 넘는 국민이 진보언론의 독자가 될 수 있는 토양인 것이다. 하지만 지

난해 말 종합일간지에서 한겨레의 온-오프 통합 뉴스/기사 이용률은 4.3%로 조선일보의 13.4%

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종이신문만의 열독률을 따졌을 때 그 격차는 더욱 커지는 게 현실

이다. 온라인(인터넷, 모바일) 열독률 격차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위안을 하기에는 현재의 열독

률 수준과 갈수록 나이 들어 가는 독자의 구성은 위태롭다.

● 경향신문, 현대리서치연구소(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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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위협받는 독보성 다양한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진보매체가 늘어나며 한겨레가 갖고 있던 진보

담론 생산의 독보성이 위협받고 존재감도 약해지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이후 나타난 현

상은 이를 잘 보여준다. 정권교체 실패에 상심한 민심은 진보매체의 힘이 커질 필요가 있음을

절감시켰다. 종편에 대항할 진보방송 논의가 본격화하며 협동조합 방식의 국민방송이 설립 절

차를 진행하고 있고, 팟캐스트를 기반으로 한 독립언론 <뉴스타파>에도 꽤 많은 정기 후원이

들어오고 있다. 또 대선 이후 <오마이뉴스>의 10만인 클럽 회원이 늘어나거나, 진보적 시사잡

지 <시사인>의 신규 독자가 늘어나는 흐름도 나타났다. 진보매체의 독자가 늘고 관심이 높아

지는 현상은 그 자체로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진보매체의 맏형 노릇을 해야 할 한겨레한테

도전 과제가 늘어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2. 무엇이 문제인가?

진실을 말하는 신문사 한 개만 있어도 사회가 확 바뀔 것으로 믿었다. 이런 열망이 모아져 한

때 한겨레의 열독률이 지금 대형 보수신문 수준인 9%에 육박한 적도 있었다. 한겨레의 젊은

독자들이 20년, 30년 뒤 주역이 되는 날, 한국 사회는 한결 자유롭고 공정하고 따사롭게 될 것

이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2013년의 한국 사회는 여전히 많은 갈등과 불만으로 소용돌이치

고 있다. 이 모두가 한겨레의 부족 때문은 아니지만, 한겨레에 걸었던 기대가 빗나간 이유는 따

져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25년의 길이 보일 것이다.

● 창간정신은 꺼지지 않는 ‘등대’

일부에서는 한겨레가 25년 전에 내걸었던 창간정신과 언론규범이 이제 낡았다고 말한다. 변화

된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겨레의 창간정신은 민주화와 남북 분단체제

극복, 민생안정을 지향하며, 이를 실천하기 위한 규범으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의 독

립’을 핵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의 폭압 속에서 국

민의 기본권이 짓눌리고, 민생은 고달프며, 이런 문제점을 눈치 보지 않고 말할 자유조차 없는

‘숨 막히는 대한민국’을 바꿔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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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한겨레> 25년, 창간정신의 진화

새 신문은 민주주의적 모든 가치의 온전한 실현, 민중의 생존권 확보와 그 생활수준 향상, 분단의식 극복과 민족통일의

지향을 주요 방향으로 삼을 것입니다. … 그 실천을 위하여 새 신문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물론 대자본으로부터

의 독립, 광고주로부터의 독립을 확고히 할 제도적 장치 위에서 출발할 것입니다.●

한겨레의 창간정신은 시대정신과 국민의 열망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1988년

2월 모금을 시작한 지 불과 108일 만에 50억원의 자본금(1년 뒤의 발전기금 모금 포함 총 169억

원)이 모였고, 창간발의를 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새 신문이 인쇄돼 나올 수 있었다. 당시 언론

을 안다는 사람 열에 아홉은 “어림없는 일”이라며 회의적이었지만, 돼지저금통을 들고 온 어린

이부터, 휠체어를 타고 온 장애인, 노인, 주부 등 폭넓은 성원이 있었기에 6만7000여 국민주주

의 성금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언론사가 탄생한 것이다.

한겨레의 항로는 순탄치 않았다. 정권은 창간 전에는 일간지 등록증 교부를 미루며 방해

했고, 1989년에는 방북 취재를 계획했다는 이유로 안기부가 리영희 논설고문을 구속하고, 편

집국을 압수수색했다. 한겨레는 창간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이런 어려움을 뚫고 성역에 부단

히 도전했다. 수십년간 묻혀 있던 많은 진실들이 한겨레 기자의 취재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한겨레는 남한과 북한의 평화적 공존과 화해를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은 2000년과 2007년

의 남북 정상회담 등 남북한의 평화적 교류와 협력의 확대로 이어졌다. 또 한겨레는 촌지 수

수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최초로 윤리강령을 제정해 실천하는 등 한국 언론계의 관행을 건

전하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한겨레가 창간 당시 실현을 다짐했던 사회적 과제는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국가

기구의 비민주성은 여전하고 사회적 배제와 불평등은 심각한 상태이며 남과 북의 적대적 공

● 새 신문 창간발의 선언문(1987.9.23)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 확정 직후

길거리나 광장에 나와 환호하는 인

파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왼쪽).

노무현과 김정일 남북정상회담 때

둘이서 반갑게 포옹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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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관계가 변치 않고 있다. 과제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창간정신에 기반을 둔 진보언

론의 정체성은 계속 강화해 나가야 한다. 한겨레에게 창간정신은 꺼지지 않는 ‘등대’인 것이다.

● 창간정신의 진화와 혁신 필요

그럼에도 시대 변화와 함께 창간 당시 집약했던 사회적 과제들이 다기다양하게 변모하고 있음

을 우리는 유의한다. 지금 이 시점 진화하는 사회적 과제들은 과거와 달리 민주, 민족, 민생 등

몇 개의 열쇳말을 갖고 단순 도식화하기 어렵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민주주의의 과제는 단순한 반민주, 반인권 행위의 폭로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심화시킬

것인가라는 한 단계 높은 영역으로 진화하고 있다. 국가기구의 노골적 폭력행위보다는 국가기

구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해 공공성을 발휘하도록 견제하고 감시하는 게 시민사회의 중요

한 과제로 떠올랐다. 탈권위주의의 진전과 디지털 기술의 진보 속에서 시민들이 더 이상 민주

주의의 관람객에 머물지 않고 대규모로 쌍방향 여론형성을 시도하고 참여를 시도하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참여민주주의의 기운이 강하게 일어난다면 여론형성의 기제, 즉 공론장의 성

격이 변화할 수밖에 없다.

분단 극복과 민족 통일의 과제도 진화하고 있다. 분단체제에 터 잡아 기득권을 고수하려

는 세력의 냉전·수구적 담론은 여전히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민주, 진보적 심

성을 가진 시민들은 더 이상 반대 담론에만 머물 게 아니라 대안을 지향하는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할 과제를 안게 됐다. 정권교체, 그리고 비록 여린 싹 수준이었더라도 남북협력 시대

를 체험함으로써 시민들의 욕구와 눈높이가 높아졌다. 분단 극복과 통일의 가치가 한반도 평

화, 남북 또는 진영 간 화해협력, 국제평화, 다문화와 다민족의 공존, 탈핵, 반테러 등으로 다기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민중생존권도 마찬가지다. 경제규모가 세계 12위권에 이르고 1인당 소득도 2만달러를 넘

어선 지금은 분명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계층의 경제적 피폐함이 심각했던 1980년대 말 상황

과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절대적인 결핍을 벗어났다고 경제·사회적 갈등이 줄어든 것은 아니

다. 양극화가 심화하며 상대적 결핍이 더 문제가 되고 있다. 노동과 자본으로 대별되던 갈등

의 축과 성격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대도시와 지역

등으로 분화되며 세세히 살펴봐야 할 지점이 늘어났다. 이러한 과제들에 대한 제도적 해결책

으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만들기라는 쟁점이 떠오르고 있다. 환경과 생태, 여성, 지구 온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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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한겨레> 25년, 창간정신의 진화

도 중요한 과제다.

한겨레가 창간 당시 설정한 사회적 과제, 즉 민주주의와 분단 극복, 민중생존권의 본질적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지난 25년 한국 사회의 갈등 구조가 크게 바뀌었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과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지만 갈등의 성격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가

새로운 인식의 틀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창간

정신의 진화와 혁신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유이다.

● 진화와 혁신에 굼뜬 한겨레: ‘부분적인 그림’

언론은 한 사회에 꼭 필요한 무엇인가를 제공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다. 이는 시민들이 자유로

워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독립적이고, 신뢰할 수 있고, 정확하고, 포괄적인 정보와 해석을 말

한다.● 뉴스는 숨겨진 사실을 드러내고 서로 관계 지움으로써 현실에 대한 ‘그림’을 그려준다.

위에서 열거한 조건을 충족하는 뉴스는 사안의 전모를 드러내 주는 ‘전체그림’(whole picture)

이다. 이게 아니라 다른 무엇을 공급하는 언론은 그 민주적 소임을 다한다 할 수 없다.

한겨레가 창간정신을 바탕으로 열심히 해 왔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가

전모를 보여주기보다는 불충분한 그림을 보여주었다는 의미이다. ‘부분적인 그림’을 독자와 시

민들에게 제시했기에 한겨레의 많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확장성과 영향력이 제한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번 보고서를 위해 만나본 한겨레 구성원과 독자, 주주, 전문가들은 우리가 창

간정신을 진화하고 혁신하지 못했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낡았다 고정된 인식의 프레임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도 불

구하고 과거의 가치로 현실을 재단하는 보도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변화의 속도에 둔감하고, 순

발력이 떨어지며, 보도 내용이 교조적이고 사변적이란 느낌을 준다.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의 세세한 결을 자주 놓치며, 세상의 풍부함과 역동성이 지면에 충

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 “한겨레만 보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없다”거나 “진보의 맏형이

란 기득권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다.

편파적이다 진영논리라 불리는 좁은 정파성에 갇혀 선험적 선악의 잣대로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논쟁적인 사안에서 어느 한편에 서는 것은 필연적이다. 기계적 중립은 옳은 보도 태도가

● 빌 코바치·톰 로젠스틸, 『저널리즘의 기

본원칙』, 한국언론재단,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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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아니다. 그러나 자신과 다른 견해에도 귀를 기울이고 보도와 논평에 반영하려는 노력은 부족

해 보인다. 진영적 관점이 앞서서 때로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취사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주고 신뢰를 떨어뜨리게 된다. “주류 진보와 야당

지키기에 골몰하고 있다”, “조-중-동 못지않게 작위적이다”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일방적이다 독자 및 사회와의 상호작용에 소홀하다. 상당한 엘리트 집단이며, 엘리트주의를

굳이 숨기지 않는다. 자신들끼리 반응을 되먹임하는 순혈주의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매체

환경은 쌍방향 소통으로 급속히 변화하는데 독자의 변화를 반영해 새로운 뉴스를 생산하는

데 소홀하며, 출입처와 보도자료 위주의 기사를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공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지면을 통해 충분한 공감을 얻지 못하고, 특히 젊은 독자들과 연대하지 못한

다. “가르치려 한다”거나 “국민주 신문이 일반 회사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 원인 진단 

콘텐츠 혁신과 플랫폼 혁신의 지연 한겨레의 탄생과 성장은 ‘혁신’과 함께한 것이었다. 정권과

사주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직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뜻에서 ‘국민주 신문’이란 소유구조를

택한 것부터 생각의 혁명이었다. 또 짧게는 8년, 길게는 13년간 펜을 빼앗겼던 해직기자들이

언론자유의 이상을 구현한 ‘전혀 다른’ 신문사를 만들기 위해, 편집위원회란 수평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도입하고, 편집위원장을 기자들의 직선으로 선출한 것도 변혁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갓 개발된 첨단 기술인 컴퓨터조판시스템(CTS)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납활자 조판을 대체해,

일반적으로 예상되던 비용(2000억원)의 10분의 1로 신문사를 만들어낸 것도 혁신이라는 말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다. 이 모든 것은 다가올 미래를 선취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겨레는 시대

변화와 미디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자신에게 각인된 ‘혁신의 디엔에이’를

충분히 살려내지 못했다.

혁신의 원천은 소통 혁신은 유연함에서 나온다. 자신을 열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

며, 변화를 받아들이는 유연함이 부족한 ‘독불장군’은 자신도 괴롭고 주위로부터도 서서히 고

립되어 간다. 안팎의 벽을 허물고(개방), 남과 대화하고(공유),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협

력)하는 가운데 새로운 아이디어가 솟아나고 변화의 동력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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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한겨레> 25년, 창간정신의 진화

소통, 한겨레의 잊혀진 유전자 앞서도 말했지만 한겨레는 국민 참여 방식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언론사다. 사회와 대화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것이다. 창간 직후 지면에 ‘국민기자석’

이란 난을 만들어 국민 모두를 기자로 초빙한 것도 신문사가 가질 수 있는 교조와 독단을 경

계하고자 함이었다. 편집국장이 아니라 편집위원장을 둔 것도 토론과 합의에 기반을 둔 민주

집중제를 실천하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언론활동 과정에서 이런 소통의 정신과 원칙

은 차츰 잊혀져 갔다. 다음의 예시는 소통과 관련해 우리를 잘 아는 외부에서 어떻게 보고 있

는지를 보여준다.

한겨레의 가장 큰 문제는 국민주 모금할 때만 국민이 참여했다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주주나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공

간이 부족했다. 국민주 언론사에 걸맞지 않았다. 첫출발만 국민주 언론사였고 그 뒤 거의 모든 것은 기성언론과 같은 체

제로 바뀌어갔다. 지면구성에서부터 뭐든… ●

3. 시대 변화도 소통을 요구

지난 25년간 한국 사회는 숨 가쁘게 달려왔다. 이 과정에서 사회도 언론도 변했다. 이제는 진

●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인터뷰

한겨레 주주총회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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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의 재구성이 얘기될 만큼 정치, 경제, 사회인식의 패러다임이 변화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

다. 매체 환경 역시 급속히 변해 한겨레가 뉴스를 생산, 유통, 소비하는 체제 전반의 혁신이 요

구되고 있다.

● 인식틀의 재구성 필요성

지난 30년간 전 지구적 정치·경제 패러다임으로 작용해 왔던 신자유주의 체제는 2008년 금융

위기로 한계를 노출했다. 옛것은 무너졌으나 정치, 경제, 사회를 설명하고 규율하는 새로운 인

식과 실천의 패러다임이 없는 혼돈의 상태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1960년대 산업화와 1980년대 민주화란 역사적 경험에 기초해 세상을 보도록

해 주었던 ‘1987년 체제’의 인식틀이 한계에 이르렀고, ‘2013년 체제’의 필요성 등이 거론되고 있

다. 특히 1987년 체제의 인식틀은 한겨레의 창간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인식틀의 ‘진부화’는 중대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국민들의 의식은 빠르게 변하는데 과거 기득권 사고에 갇힌 진보와 보수는 이를 따라잡

지 못하고 있다. 2012년 대통령 선거는 이런 인식과 현실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국민

들은 기성 정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시민운동가를 서울시장으로 뽑고, 대선 무렵에는 벤처사

업가 출신의 정치신인한테 큰 관심을 보냈다. 진보의 인식과 실천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 언론 환경의 변화

독자들이 뉴스를 접하는 매체가 신문과 방송에서 인터넷으로, 또 소셜미디어로 빠르게 이동

하면서 뉴스의 유통과 생산 방식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무엇이 뉴스이고 아니냐는 본질적인

물음도 따라오고 있다.

직업 언론인이 엄선한 정보에 의미를 부여해서 전달하는 것이 뉴스였다. 그런데 이는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지면 및 전파 제약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소식을 뿌려

야 하는 대중매체에 적합한 나름의 양식이었다. 온라인 세상에서는 전문가와 비전문가 사이

의 경계조차 사라진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시민은 더는 수동적인 독자가 아니라 직접 뉴스를 생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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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겨레> 25년, 창간정신의 진화

고, 해석하고, 나누길 바라는 ‘프로슈머’(生費者)다. 언론사와 언론인은 이런 변화에 맞춰 시민

들과의 소통을 늘리고 뉴스 생산-유통 관행을 혁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 미래 언론의 새 열쇳말: 개방, 공유, 협력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를 일관되게 설명하고 규율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는 데는 시

간이 필요하며, 상당 기간 세상은 혼란스런 모색기를 보낼 수 있다. 특히 진보적 관점에서 변화

의 핵심을 이해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출해 내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

에도 큰 흐름 속에서 진보의 맹아라고 할 만한 열쇳말들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협력, 사회성, 공공성으로 이어지는 진보적 담론의 흐름이다. 시장자

유주의는 원자화된 인간의 경쟁을 극단적으로 강조했다. 이의 맹점이 ‘1 대 99의 사회’ 등으로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인간의 협력적 본성에 대한 재발견이 행동경제학과 사회생물학 등의 저

술에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예: 제러미 리프킨, <3차 산업혁명>). 협력하고 공유하는 인

간의 본성은 곧 사회성이며, 인간의 사회적 속성이 제도화된 것이 공공성이다.

따라서 향후 진보의 흐름은 사회성과 공공성을 재발견해 확장하는 쪽일 것이다. 이는 공

영방송, 공공의료 등 시장주의 흐름 아래 위축됐던 공적 제도의 부활일 수도 있고, 정부의 역

인터넷은 시민의 기사 생산과 소비

의 폭을 크게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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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확대일 수 있다. 다만 지난 세기 시장과 정부를 왕복하는 패러다임의 한계를 경험한 뒤여

서 이번에는 사회라는 제3섹터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사회책임경

영 등 사회적 경제의 영역이 주목받는 이유이다. 이들은 개방과 공유, 협력이라는 가치와 원리

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진보적 담론은 물적 토대라 할 수 있는 글로벌 정치·경제의 패러다임 변화와도 조응

하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해 선진국들은 1990년 이후 탈공업화하면서 정보와 네트워크를 특

징으로 하는 무형재 경제로 이행했다. 무형재 경제는 애플의 앱스토어, 위키피디아 등에서 보

듯 혁신과 가치창출이 경쟁이나 사유재산권보다는 협력과 공유에서 나온다. 이런 협력은 지

속적으로 참여하고 관계를 맺는 소통을 통해 신뢰가 만들어질 때 가능하다.

디지털 시대의 언론 역시 대표적인 무형재 경제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사회

를 진보적으로 변화시키는 방향과 미래 진보언론의 변화가 큰 틀에서 같은 가치와 정신에 바

탕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언론의 임무는 기본적으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생산해 사회를 발전적으로 통합하

는 것이다. 특히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실체적 진실을 가려내고, ‘전체그림’(whole picture)을 보

여주는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그런데 온라인 시대에는 이런 역할을 독자, 전문가들과의

협력적 생산과 소비라는 네트워크에서 구현할 때 제대로 할 수 있다. 이는 독자와 같은 수평적

위치에서, 이들과 정보와 해석을 공유하며 발전시켜 가는 것을 말한다. 모두 개방과 공유, 협

력이라는 소통의 정신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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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한겨레> 25년, 창간정신의 진화

새로운 25년의 비전

‘말 거는 한겨레’

1. 왜 말 거는 한겨레인가?

언론활동은 사회적 대화의 과정이다 우리가 하는 언론활동은 결국 크게 두 가지로 이뤄진다.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는 것과 이를 사회적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언론활동은 결국 특정 사물

과 사안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과 예측을 만들어냄으로써, 사람들에게 행동의 지침을 주며,

집단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다. 이 모두는 사회적 과정이다. 사회적이라는 것은 상호작용을

통해 이뤄진다는 의미이다. 언론이 추구하는 진실 역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듯 보이는 사실

(fact)과 해석 사이의 끊임없는 ‘협상’(negotiation)이며, 사회적 구성의 과정이다. 즉, 정태적이기

보다는 진행되는 과정이며, 사회적인 대화의 과정이다.

저널리즘의 진실은 하나의 과정으로 혹은 이해를 향한 계속되는 여행으로 이해하는 편이 도움이 되고 현실적이기도 하다.

… 의도적으로 유포된 정보와 자기선전적인 편견을 제거함으로써 진실에 다가간다. 그 뒤에는 공동체가 반응하도록 하고,

진실을 찾기 위한 가닥을 잡아가는 과정이 뒤따르도록 한다.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은 이렇게 대화과정으로 발전한다.●

소통은 콘텐츠를 개선하고 치유한다 언론활동이 풍부해지고 완성되는 비밀은 말 걸기에 있다.

이런 대화는 내부 성원끼리의 말 걸기와 사회와의 말 걸기를 포함한다. 이를 통해 협력을 할 수

● 빌 코바치·톰 로젠스틸, 『저널리즘의 기

본원칙』, 한국언론재단,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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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고 시너지가 발생한다. 소통과 협력은 그 자체, 정의나 목적은 아니다. 이를 통하지 않고 콘텐

츠를 더 잘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일상의 제작 과정에서, 또 언

론사 외부의 변화와 관련해서 대화가 부족한 언론이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기는 불가능하다.

2. ‘말 거는 한겨레’는?

● 토론이 제2의 천성이 된다

소통의 기본은 토론이다. 특히 언론사에서 토론은 복잡한 사회 현실을 공유하고, 자신의 가치와

관점에서 현실을 구성해 나가는 핵심적인 프로세스다. 또 지식산업에서 토론은 집단지성을 가능

케 해 부가가치가 높은 정보와 해설의 원천이 된다. 일상의 지면을 대상으로 한 토론은 언론사에서

가장 강력한 교육의 수단이다. 토론이 약한 언론사가 강력한 담론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내부적으로는 편집회의에서 토론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삼삼오오 모여서 하는 뒷담화가

아니라 공개된 상호비판이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규칙과 절차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비판이 감정싸움으로 흘러 소모적이 된다. 토론을 촉진하고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 개방적이다

개방은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가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며, 외부와 대화하는 것이다. 일상적으

로 자극을 받을 때 한겨레는 세상의 변화에 민감해지고 생각은 울타리를 넘어 상상력이 발휘

된다. 그러려면 외부의 시각이 정기적으로 유입돼 회사 안에서 환류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

하다. 일상적인 편집방침에 대한 채팅에서부터 외부 전문가들의 편집자문, 정기적인 기자 세미

나, 연구소의 담론 생산 등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경험을 가진 집단과의 접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극단적이

아니라면 생각이 다른 쪽에도 지면을 내주고 토론에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다양한 외부

의 시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채용 등에서의 변화도 필요하다. 한겨레는 고학력 엘리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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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이며 순혈주의적인 조직 행태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탈북자, 다문화가정, 장애인 등 우리 사

회 다양한 소수자의 처지와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이들의 목소리를 키워주고 이들을 지면 제

작에 동참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 공유하고 협력한다

언론활동은 갈수록 협업이 된다. 많은 협력을 얻을수록 더욱 풍성해지고 강해지는 것이 네트

워크의 특성이다. 토론(대화)과 개방은 공유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기초가 된다. 개방하고 회사

의 자원을 공유하면서 외부 전문가 및 독자와의 협력이 이루어진다. 토요판에서 지면을 외부

전문가와 공유하면서 이들의 전문지식과 능력을 공유하는 협력 형태가 한 예이다.

협력은 ‘그룹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자기가 누구와 협력하는지 알기에 연대의식이 생성되

는 것이다. 협력생산과 협력소비 과정에서 생산된 시민들과의 연대는 한겨레의 비즈니스 측면

에서도 귀중한 자산이 된다.

3. ‘말 거는 한겨레’의 지향점: ‘전체그림’

소통을 통해 우리가 이루려는 목표는 독자에게 한국 사회에 대한 ‘전체그림’을 제공하는 것이다.

전체그림은 맥락과 부분이 조화를 이루며, 시민과 직업 언론인의 역량이 결합돼 공적 이슈로 연

결되는 뉴스의 총체성을 말한다. 전체그림의 인식을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는 공감과 신뢰를 얻고,

확장성을 가질 수 있으며 영향력을 늘려갈 수 있다. 이런 전체그림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망라

한 소통을 통해서만 이루어낼 수 있다. ‘전체그림’의 한겨레는 다음과 같은 덕성을 갖춰야 한다.

● 풍부하다  

세상의 다양성, 역동성에 눈과 귀를 열어두는 것이다. 이는 유연하게 사람과 사안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럴 때 큰 의미를 가진 작은 결의 차이가 드러나고, 가려져 보이지 않던 삶의 희로애

락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정치의 민주주의뿐 아니라 생활의 민주주의, 정파의 정치뿐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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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더 근본적으로 규율하는 삶의 정치, 문화의 정치에도 눈을 돌리게 된다.

한겨레는 고정된 프레임이란 ‘지적 게으름’을 벗어던질 것이다. 한겨레는 의제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전문성을 발휘해 모호한 것, 희미하지만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을 명료하게 할 것이

다. 그럼으로써 독자보다 반 발 앞서 생각의 길을 열어갈 것이다.

● 담대하다

저항을 넘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상상력으로 담론의 국면을 바꾸는 것이다. 반

응적이기보다는 능동적이며, 고정관념을 벗어나 도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는 한

겨레가 참고서를 벗어나 기본서가 되는 것을 말한다.

비판에만 매몰될 때 상대의 프레임에 갇히고 이를 더욱 강화한다. 중요한 것은 한겨레가

지향하는 가치와 비전에 대한 확신을 자신 있게 제시하는 것이다. 또 이것이 현실에서 구현되

는 ‘미끄러운 비탈’의 입구를 찾아내는 것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누구도 그러리라 생각하

지 못했던 무상급식 공약이 우리 사회에 복지란 시대정신의 해일을 몰고 온 것이 예이다.

● 공정하다

진영논리,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것이다. 정파적 관점은 숙명이며,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다만 정파성은 역설적으로 보편성을 갖추어야 설득력이 있다. 보편적 정파성이 요구된다. 보편

적 정파성은 우선 근본적인 가치와 윤리의 관점에서 성찰하는 것이다. 이럴 때 성역을 두지 않

고 원칙에 입각해 비판하거나 지지할 수 있다.

정파성이 보편성을 얻으려면 사실 확인의 규율과 방법적 통일성을 갖춰야 한다. 의견은

자유이지만 사실은 신성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념이나 목적이 앞서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전

에 해석을 하거나, 취사선택하는 것을 배격해야 한다. 이럴 때 한겨레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더

라도 최소한 인정은 하게 된다.

● 친절하다

한겨레 저널리즘이 사회 및 독자와의 참여와 교감 속에서 수행되는 것을 말한다. 출입처와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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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한겨레> 25년, 창간정신의 진화

도자료에 의존하는 공급자 위주의 기사가 아니라 독자와 대화하며 그들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가르치려는 기사가 아니라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그들과 콘텐츠를 함께 생산하

고 함께 소비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독자의 신뢰와 공감은 공동체의 기초가 된다. 한겨레를 중심으로 시

민사회와 독자가 조직되며, 한겨레는 바른 시민적 덕성을 가진 이들의 콘텐츠 및 사회활동의

허브가 되는 것이다.

4. 온라인, 전체그림을 완성하는 ‘소통망’

공유, 협력, 집단행동을 하는 인간의 본능이 늘 거래비용 때문에 제약을 받아왔으나 온라인

덕분에 이 일이 매우 쉬워졌다. 그래서 새로운 그룹 및 새로운 종류의 협업에 대한 실험이 폭

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대중과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기자는 온라인(인터넷, 모바일, 소셜미디어)에서 생각하고, 대화하고, 협력할 때 전체그림을 그

릴 수 있다. 더 이상 신문이 먼저냐 온라인이 먼저냐는 고민은 큰 의미가 없다.

우리의 독자는 이제 대중이 아니라 ‘참여군중’(스마트 몹)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로 정보를 올리고 공감하고 이야기하는 군중이다. 새로운 미디어 기술 덕분

에 소통능력이 극대화된 시민들은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공론장이 아니라 ‘네트워크화된 공

론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손쉽게 공적인 담론으로 전환하게 된다.

온라인에서 뉴스를 읽는 것은 오프라인에서 뉴스를 대하는 것과 많은 점에서 다르다. 마

치 친구가 좋다고 추천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처럼 신뢰와 정감을 더 느끼기에 읽는 뉴스의

영향력이 커진다. ‘좋아요’를 누르고 링크를 걺으로써 뉴스를 선별하고 강조해 무엇이 많은 사

람들이 중시하는 문제인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뉴스에 자신의 의견을 첨가하고 수정, 보완하

는 과정에서 집단지성을 발휘해 지식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온라인에서의 뉴스 소비는 마을 어귀나 공동우물에서와 같은 ‘이야기 공동체’가 된다. 이

야기 공동체는 참여와 공유를 중시하는 미래의 시민이 뉴스를 소비하기 위해 머무는 주된 공

간이 된다. 온라인에 범람하는 정보를 일일이 수용할 수 없는 시민들은 점점 더 자신이 좋아하

는 공동체 안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통해 뉴스를 거르고 필요한 정보만을 얻으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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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네트워크화된 시민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장소가 되어야 한다. 미국 <에이피통

신>의 짐 케네디 전략담당 부사장은 “미래 소비자가 원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고민하기보다,

그들이 어디서 뉴스를 소비하고 싶어 하는지를 파악하라”고 조언한다. 이를 위해 뉴스를 내

보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간 뉴스에 반응하고, 확인하고, 맥락을

부여해 시민들과의 대화 밀도를 높이는 것이 기자들의 할 일이다.

기자가 아는 것은 제한되고 혼자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대중의 지

식, 뛰어난 전문가의 역량을 엮어서 취재를 해야 한다. 시민들이 일상에서 얻고 경험하는 정보

를 공유하고 제공토록 하는 ‘집단협업(crowdsourcing) 저널리즘’이나 ‘오픈 저널리즘’을 능숙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온라인에 난무하는 정보와 주장 가운데 사실 여부를 판별하고, 꼭 알

아야 할 정보를 엮어 쉽게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5. 소통하며 진화하는 한겨레

소통의 디엔에이를 갖춘 한겨레인은 다음과 같이 진화해 가며 신뢰를 얻고, 영향력을 넓히며

한국 사회의 미래를 그려 갈 것이다.

● 강연자에서 사회자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독자의 등장은 직업 언론인의 역할에도 변화를 요구한다. 이들은 기자가

엄격한 게이트키핑 과정을 거쳐 제시하는 뉴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언론인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이를 수행하는 방법이 달라진 것뿐이다. 과거 언론은 게이트키

핑이나 의제 설정 등을 통해 독자가 알아야 할 내용을 전해주는 강연자였다면 이제는 세미나

의 사회자처럼 대화와 소통을 촉진하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 아래서 한겨레는 열린 포럼이 된다. 이제 독자는 온라인과 소셜네트

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얼마든지 뉴스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 그들에게 뉴스 제작 과정을

공개하고 참여토록 유도해야 한다. 미래의 한겨레 기자는 ‘혼자 재배해서 파는 고립된 농부에

서 독자와 함께 만들고 함께 소비하는 협동조합 농부’가 될 것이다. 미래의 한겨레 기자는 ‘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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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하지만 차가운 엘리트에서 공감하는 친구’가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뉴스를 제작함으

로써 전체그림을 만들어내야 한다.

● 소리치는 자에서 이끄는 자로

한겨레의 첫 25년은 ‘소리치는 자’(outcrier)로서의 정체성이었다. 덮어둔 문제를 드러내고 문제

가 있다고 소리치는 역할이었다. 다른 언론이 침묵하거나 편향된 상태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

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나쁜 것이 아닌 것’ ‘나쁜 것에 반대하는 것’과 같은 ‘대

응’으로 진보의 정체성을 세우는 것은 미래가 없다. 확장성과 책임성이 떨어진다. 열린 자세로

현실의 대안 및 미래 사회의 비전을 상상해야 한다.

여야 정권교체를 두 번 경험한 한국 사회는 능동적인 진보를 요구한다. 자신감을 갖고

비전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홀로서기’ 진보가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를 말하더라도

“비민주가 아닌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즐거운 것”으로서 제시되어야 한

다. 불이 났다고 소리치는 것뿐 아니라, 대피로는 어디에 있다고 안내까지 하는 책임성이 필요

하다. 극장에서라면 소리를 지를 것인가, 뒤에서부터 한명씩 조용히 대피시킬 것인가를 고민

하는 성숙함도 요구된다.

● 편드는 자에서 성찰하는 자로

민주와 반민주, 민족과 반민족, 노동과 자본과 같은 경계선이 선악의 경계선과 동일시되던 시대도

있었다. 한겨레의 지난 25년 중 상당 기간은 그런 시기였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고 사람도 변하면

서 그런 경계선이 갈수록 희미해졌다. 조직 노동 대 비정규직, 대기업 대 중소기업처럼 세상은 점

점 더 세세한 결을 살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현실의 풍부함을 오래된 프레임에 욱여넣고, 진영

논리와 선악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재단할 때 전체그림이 아니라 왜곡된 그림을 보여주게 된다.

한겨레의 비판이 힘을 가지려면 성찰하는 자세가 함께 따라야 한다. 성찰적인 비판은 3가

지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먼저 대상에 관해 성역이 없어야 한다. 진영이나 이념 측면에서 가깝

거나 멀다는 이유로 비판대상에 넣거나 빼서는 안된다. 둘째는 방법이 옳아야 한다. 이는 사

실을 왜곡하지 않는 것이다. 셋째는 감수성이 있어야 한다. 비판을 넘어서 새로운 대안이나 비

전을 고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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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부터 시작할 것인가

한겨레는 지난 25년을 뒤로하고 앞으로 25년을 내다보면서 다시 길을 나선다. ‘강연자에서 사

회자’로, ‘소리치는 자에서 꿈꾸는 자’로, ‘편드는 자에서 성찰하는 자’로 진화하려는 한겨레의

나침반은 소통이다. 소통을 이루는 개방과 공유와 협력이란 팻말을 들고서 걸어갈 것이다.

익숙지 않은 길인 만큼 순탄치 않은 길이 될 것이다. 한겨레라는 ‘닫힌 성채’가 불과 하루

아침에 독자와 시민이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광장이 되진 않을 것이다. 명문대를 나온 남성 중

심의 편집회의가 하루 만에 독자들과 소통하는 열린 편집회의로 바뀌지 않을 것이다. 또한 종

이신문에 막힌 상상력이 한두 달 만에 디지털 세상이 제공하는 다양한 상상가능한 협력적 네

트워크로 탈바꿈할 순 없다.

길이 멀다고 떠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는 뚜벅뚜벅 나아갈 것이다. 독자와 시민에게 먼

저 말을 걸고, 말을 귀담아듣고, 그 말을 콘텐츠에 투영해 나가면서 한겨레가 그리려는 ‘그림’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 나갈 것이다.

한겨레는 이를 위해 사내외 합동 지면 제작 논의기구인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를 구성하

고, 편집 방향에 실시간으로 독자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는 ‘톡톡하니’를 도입할 것이다. 아울

러 외부인의 내부 감시 제도인 ‘시민편집인’을 강화할 것이다. 또한 지금의 약속들이 단지 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소통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겨레가 실제 얼마만큼의 언론활동을 향상시켰는

지 평가하는 ‘한겨레가치준수보고서’를 만들어 공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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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한겨레> 25년, 창간정신의 진화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

‘열린 편집국’ 실험

한겨레열린편집위원회는 대화하는 한겨레를 만들 명실상부한 ‘열린 편집국’ 실험이 될 것이다.

기자들 중심으로 뉴스를 일방적으로 만들고 의제를 설정해 공급하는 게 아니라 독자 대중과

함께 신문을 만드는 협력 제작의 방식이다. 이는 또한 국민주 신문사에서 출발해 사원주주 회

사로 변모하면서 약해진 민주주의 실천 수탁기관으로서 한겨레의 책무성을 강화한다는 의미

도 지닐 것이다.

위원회는 보기 좋게 명망가를 모아 놓는 게 아니라 한겨레의 탄생과 존립, 미래의 이해관

계자가 될 외부 인사들로 균형감 있게 구성될 것이다. 청년세대와 여성, 노동, 중소기업, 다문

화, 외국인, 합리적 보수 등 다양한 계층의 시선으로 한겨레 논조와 의제 설정, 보도의 공정성

과 심층성 등을 평가하고, 진행중인 이슈의 편집 및 제작 방향에 대해서도 제언할 것이다. 한

겨레의 편집 방향과 논조를 결정하는 내부 주요 인사도 소수 참여해, 내·외부 합동 편집위원

회로 운영할 것이다. 이 토론장에서 나온 ‘외부 목소리’는 한겨레 편집국에 자극을 주고 활기

를 불어넣을 것이다. 매달 한 차례씩 실시하는 회의 결과는 온라인과 지면을 통해 독자와 관

심 있는 모든 이에게 생생히 전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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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9일 한겨레 본사에서 첫 한

겨레열린편집위원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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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가디언>(위)과 스웨덴 <노란>

은 온라인으로 편집 방향을 공개하

고 실시간 대화를 통해 독자들의 의

견을 수렴해 자신들의 편집방향을

정한다.

뉴스 방향 논의에 수용자 실시간 참여

‘톡톡하니’

또 뉴스 제작 과정에 수용자가 실시간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소통체제를 우리나라 언론

사 최초로 고안해 실행할 것이다. 신문사 편집국과 수용자 사이의 간극을 디지털 기술로 이어

보려는 시도다. 이 새로운 실험은 ‘톡톡하니’로 부를 것이다. ‘톡톡하니’는 지금까지 주로 사후

평가 차원에 머물렀던 언론에 대한 수용자의 참여를, 편집국과 독자 대중이 실시간으로 소통

할 수 있게 함으로써 뉴스의 협력적 생산을 한 차원 높여 나갈 것이다.

이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오전 편집회의 결과 자료 일부를 공개하고 이에 대한 독자

들의 의견과 제보를 받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스웨덴 신문 <노란>(Norran)

은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온라인 채팅을 하면서, 매일 주요 기사의 방향에 대한 독자 의견을 청

취해 지면 제작에 반영한다. 경쟁 언론사에 취재 방향을 노출하는 단점이 있을 수 있지만, 독

자와의 쌍방향 소통을 통해 더욱 깊고 풍부한 기사를 씀으로써 단점을 상쇄하고 있다.

한겨레는 매일 오전 편집회의가 끝나면 그날 다룰 주요 의제 가운데 일부를 온라인과 사

회관계망서비스로 공개할 것이다. 논쟁적 의제를 중심으로 수용자의 의견을 실시간으로 듣고,

이를 기사 작성과 논평 등에 반영할 것이다. 

내부 생산 과정 공개

‘시민편집인 제도’ 강화

현재 시행중인 시민편집인 제도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시민편집인이 독자들의 불만이나 불편

사항을 접수해 그것에 대해 조사하고, 보도가 더 명확해지도록 적절한 처방이나 대답을 권고

하는 퍼블릭 에디터의 본래 취지에 맞게 운영할 것이다. 독자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자기 성찰

과 비평을 상시화해 한겨레를 더욱 투명한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는 한겨레의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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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전반과 보도 과정의 투명성을 더욱 높여줄 것이다.

국내 많은 언론사가 퍼블릭 에디터를 두지 않거나 두더라도 매체 인상비평 수준의 칼럼

을 쓰는 데 그치고 있다. 한겨레도 2000년대 초반부터 10여년 시민편집인 제도를 운영해 왔으

나, 이런 한계를 크게 뛰어넘지 못했다. 퍼블릭 에디터를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으

로 평가받는 <뉴욕 타임스>의 경우엔 퍼블릭 에디터가 신문사에 상주하면서 격주로 지면에

칼럼을 쓰고, 블로그를 통해 독자와 수시로 소통한다. 조직 내부의 의사 결정과 제작 과정의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타임스의 신뢰도 또한 한층 강화됐다.

강화된 한겨레 시민편집인은 뉴스룸 내부 사정까지 솔직히 드러내고 문제점을 비평할 것

이다. 외부의 목소리를 내부에 전달하는 ‘독자의 전령’이자, 내부 구성원들이 자신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자극제’가 될 것이다.

핵심 가치 및 비전 평가 연례화

‘한겨레가치준수보고서’ 발간

한겨레는 지금의 약속과 한겨레의 핵심 가치들이 실제 얼마만큼 실천되고 있는지 매년 평가

해 이를 ‘한겨레가치준수보고서’란 이름으로 독자와 관심 있는 모든 이에게 공개할 것이다. 보

고서는 크게 저널리즘 규범 이행과 독자와의 소통 정도를 핵심 평가 지표로 삼고, 기업으로서

도 지속가능 경영을 하고 있는지 평가할 것이다. <가디언>은 2002년 이후 이런 내용을 담은 ‘가

치준수’(Living our value) 보고서를 해마다 내고, 이를 모든 이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한겨레가치준수보고서도 매년 작성돼 인터넷과 지면, 주주총회 등에서 공개될 것이다.

가디언의 보고서가 영국 최초의 시도였다면, 한겨레가치준수보고서는 한국 언론의 의미 있는

최초의 실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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