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k多 ½쓰컴 ξ 宗쩠 ·思想 24˚ 무룐 놀을 뚫는 같은 꾸준한 으르 것입 겠느 聖賢 친철 또한 권요 없음 다마 侈妾 길을 서지 이리 인도 있을 ° + 으로 新年 내버리 例로 °ㅜ 에게 , 시그러 져비리 精神 邰郭 想을 것입 ^-λ 三六 -月 =六 B 申報 ) 朝鮮 固有 오늘은 固有 달라 기에 기에 , 輿온 嫩格한 沆움 으르 , 脈締 릉하 되기 혹은 透徹 못한 있으 각하나 쨌든 本人 리고 택심 에딩는 여러 건도 聰하 조금 여리분 에게 싼고 가 進行합 구분 오늘날 서의 鮮人 田Ⅲ 애시 심으로 朝鮮 있었 는가 였는가 세째 만약 固有 있었 , 고자 開發 헤시는 전부 ⅲ㎽ ㎖懈 맥느 :,Ⅲ L∴ :H나 생把 247 胡佯의 固有俉仰 도록 기회 각하고 있었 그련 오늘 當局 莩하 하고 하고 있었던 구하고 있는 일잉 忌揮 맡하자 늦은 것입 田開 뱌닥 心을 것이 하는 自ㄸ 르씨 田開 어서 敎든 敎든 .ㅗ 根抵 길이 않곡 =로 으로 包攝 消化 못하 일시 또는 , 文痴 · 誇習으로 있었던 이것이 디어 乾燥한 出現 시킴에 上으로 말하 또는 字穴 이며 근본 바가 까닭 오늘 朝鮮 心田開 오늘 田開 중요 무엇 나고 그것 朝鮮人 에게 길러 紫地를 주는 일입 敎도 모두 홑륭 것이 朝鮮 貝猷 없움 이러 홑륭 와있으 朝鮮人 황으로 파하 반들 取하 원리 하고 헝식 들었 胡鮮 比喩 씀드 花草 가꾼 다고 , 리기 충분 바닥 로를 내러 음부 홑륭한 이치입니 A도 않은 리면 없는 것엡 佛敎 別途 냘과 같은 옴은 鮮人 섣뷸 무렇 .ㅗ 흗붕 敎도 받아 험이 모자라교 따라 충분 自己 으로 만듣 벴던 것이 에서 孜뿐 여러 지의 來思想 있으 동화하 신의 들고 本的 만을 取하 있는 朝鮮 李朝 잔은 오로 仝盛 , 胡鮮 1ㅗ 輿萸的 존중 冠婚喪 式과 死後 , 같은 儒牧 侈齊治 大理想은 眞莩 侈行 고는 胡鮮 佛改 佈放 다만 누구도 받아 람은 드물다 그렇 받아 요컨테 ,ㅗ 索地 本砬 문인 같은 高踏的 侈行도 榮西 _,,=工 臨淸宗 宗祖 譁者 )의 ^興 稗護國論 )에 같은 問的 받아 들였고 敎도 規推兮 -,츳 5 宗派 王法爲 身的 으로 硬値 換을 佛敎 理論的 성립이 만한 華˜도 쪘澄 (某 -^三

Egloospds12.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618532.pdf · 겨 k多牲 「½쓰컴 ξ 宗쩠·思想 24˚ 할 바 아 님 이 무룐 입 니 다 。 낙朝鮮 슷 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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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k多牲 「½쓰컴 ξ宗쩠 ·思想 24˚

바 아님이

무룐입니다。 낙슷물이

셤놀을

뚫는

것 같은

꾸준한

楕進

으르씨

一 일의

생팔이

항상의

一 段쐬

一년은

디 큰 一 曆이

되어야

것입니다。

어멓게

그렇게

하겠느냐

함에

태하여

古來

聖賢의

친철하신

가르첨

또한

한이

없으매、

우리가

다시

군소리를

더할

권요가

무론

없음

니다마는、 아직

人間侈妾에

큰 길을

들어서지

옷한

이를

이리로 인도

하는

방편은

메와

사람을

따라

다소의

변통이

있을

것이°+ 해바다

理想으로써

맞이한

新年을

후회로써

보내버리기를

恒例로 하는

°ㅜ리

같은

凡夫에게

있어시는

,

얼른하면

茶然히

시그러져비리는

精神의

띄蚌詳對㏅。軋碑〓Ⅲㅋ粕神朴邰郭

向하여 이 感想을

한 번 고맥하는

것입니다。

^-λ

三六年 -月

=六

B

日申報

)

朝鮮의

固有信仰

오늘은

嘲鮮의

固有信仰에

관해서

묀가

이야기해

달라기에

여기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만

,

輿온

그처럼

嫩格한

講沆움

할 요량으르 나온

것이

아니기

메문에

,

따라서

이제부터 발씀三리러는

것노 前後

脈締이

릉하지

않온

것이

되기도 하고、 혹은

論旨카 透徹하지

못한

첨도 괘

있으리라

고 쟁각하나、 어쨌든

간에

平紫 本人이

연구하여

온 바를

없이

말씀드리

고、

그리고 문제와

택심에

딩는

데까지

이야기해

보러

코 쟁각합니다。 물론

여러분의

의건도 拜聰하곡

또한

칠문이

있으면

그에

應혜시

조금이라도 여리분에게

싼고가

된다면

매우

다행한

로 셍각하는

바입니다。

우선

이 이야기를

進行합에

있어 나는

태체로 이을

새 가지로 구분

혜시

말씀드리

고자

합니타。 즉

킷째는、 오늘날애

있어서의

朝鮮人의

心田Ⅲ發에는

우선

우엇애시

부터 손을

태지

않으면

안되는가、 바꾸이

낟하먼

무잇윰

중심으로 산

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

둘쩨는、 朝鮮에는

과연

固有의

信仰이

있었는가

없였는가。

세째는、 만약에

朝蚌에

固有信仰이

있었다고 한다면

,

이것이

현재

창래의

進運에

어며한

관제를

갖는가

하는

세 가지로 나누어시

見을

말씀드리

고자

합니다。

나는

朝鮮人의

心田開發이라는

것에

관헤시는

괘 오래 전부터

생각

뼈㏆약ⅲ㎽」Ⅱ卽㎼㎖懈㏐㎹岬맥느:,ⅢL∴:H나

생把枷

247 胡佯의 固有俉仰

하여、 되도록

기회가

있는

대로 이돋

발표해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멉니다。

그련데

오늘냠은

當局에

있어시도 이 문게를

매우

眞莩하

연구하고 있고、 디구나

내가

생가하고 있었던

이상으로 척극적인

신님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잉니다。

그러나

忌揮

없이

맡하자면、 오히디

뒤늦은

感바지 없지

않은

것입니

다。 그련데

이 心田開發이라고 하는

것온

文字

그대로 各人의 마음의

밑뱌닥에

있는

眞心을

께우치는

것이

그 목척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시、 자기가

자기

자신올

自ㄸ합으르씨만

참다운

心田開發이 되는

인데、

胡鮮에 있어서는

佛敎든

擺敎든

간에 모두

.ㅗ

根抵가

자기

완성

길이

되치

않곡

虞=로

자기의

것으로시

包攝

消化하지 못하고、

일시 또는 ,

暗級의

文痴

·

誇習으로 멀어진

경향이 있었던 것이며、

이것이 드디어 오늘날과

같이

乾燥한

형식적인

사회를

出現시킴에 이

것입니다。 이것은

歷史上으로 말하더라도、

또는

民俗의 실제상으

로 보더라도 명맥한

字穴이며、

이와

같이 겅신생활의

근본에 缺如된

바가

있는

까닭에、 오늘날

朝鮮ㅅ젝

心田開發이란

문제가

일어난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心田開發에

있어서

가강

중요한

것은

무엇이나

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朝鮮人에게

이를

받아들이

또한

길러낼

만한

紫地를

만들어

주는

일입니다。 佛敎도 備敎도 道敎

도 그 본래의

敎는

모두

홑륭한

것이

고、

또 이들이

朝鮮의

받진에

창한

貝猷올

한 것은

두말

할 나위도 없움니다만、

이러한

홑륭한

仰이라든가

思想이

朝佯에

들어와

있으면시

이를

朝鮮人이

황으로 소

파하

고 피와

살로 반들어

자기

몸에

鈺取하여

이를

쟁활의

원리로 삼

못하

고、 이틀

몽께로 잠켜

다만

⋯ㅗ 헝식만을

받아들었다는

것이

오늘날의

胡鮮의

상태입니다。

比喩하여

말씀드리자면、 우리들이

花草룰

가꾼다

고 하더라도

,

그 씨

뿌리기

전에

충분히

땅바닥을

파 엎고 비로를

주어저

뿌리가

깊이

내러

크게

자랄

수 있도륵

처음부터

준비해

두지

않으면

홑륭한

花草

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 땅의

地A도

좋고 그 씨도

흘륭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를

받아들일

만힌

준비룰

하지

않은

채 그

씨를

뿌리면、

그만한

망도 아무리 좀은

씨도 진혀

→ㅗ 본래의

효과

나타낼

수 없는

것엡니다。

佈敎나

佛敎드 그 성능과는

別途로 그

결과가

오늘냘과

같은

상태로 되었옴은、

요컨데

梱鮮人이

본연의

신을

몰아보지

않고 섣뷸리

아무렇게나

.ㅗ

씨를

뿌렸기

때문에、

아니

그리한

씨들이

뿌려졌기

메문에、 흗붕한

敎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험이

모자라

교、 따라서

충분히

自己의

것으로 만듣지

못벴던

것이

닌가

합니다。

日本에서도 佛孜뿐만

아니라

기타

여러

가지의

外來思想이

들어와

있으나、

日本에

있어서는

이들을

잘 동화하여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

들고 결국은

日本的인

것으로 단들어

그 필요한

것만을

取하

고 있는

것입니다。 朝鮮의

李朝

五맥년잔은

오로지

枾牧

仝盛의

상태였움니다

만,

이것도 胡鮮에서는

다만 1ㅗ

輿萸的

방면보다도 형식져

방면이 더

많이

존중되어、

冠婚喪祭의

儀式과

같은

死後의

일이

시끄럼게

論識

되는

테 비해

,

사람의

일、 살아

가는

방법과

같은

것온

오히려

忽히

되고、

儒牧

본래의

精神인

侈齊治平이란 大理想은

아무리

보아

도 眞莩하게

侈行되

코 있다

고는

섕각되지

않습니다。 胡鮮에도 佛改나

佈放에

폐 홑륭한

사람도 많이

있움니다만、

누구도 이룰

自己의

것으

로서

완전히

받아들인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말하지

않올

수 없움니

다。 왜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는가

하면、

요컨테

,ㅗ

索地 本砬에

분한

준비가

없었기

메문인

것엡니다。

粹과

같은

高踏的

侈行도 榮西兮 盂

_,,=工

日木의

臨淸宗의

宗祖Ⅱ

譁者)의

^興

稗護國論)에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비근한

世問的인

것으

로 받아들였

고、 後生

安樂의

淨土의

敎도 規推兮 珏三-

,츳

5 宗派와

王法爲本이란

식의

現世印身的인

것으로 硬値碑換을

하였

고、 佛敎

고의

理論的

성립이라고 할 만한

法華˜도 쪘澄(某

七-^三

日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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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敎 ·思想 248

天台宋의

宗祖)으

로부터 日述兮三二,

,ㅊ

二、

日本의

日述宗의

開祖)까

지의

발전을

보 고 그쳤움니다만、 이것이

日本人의

佛敎에

대한

攝取

委努입니다。 이것이

佛敎의

本堪에시

보면

어며한가

하는

것온

스로 별문제가

되겠움니다만、

外來文化에

태한

自重的 소화력이라

하논

것은

이에

의해시

충분허

인겅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朝鮮온

어며한가

하면、 元曉尖=¸

交˛

·

義湘숯릎¸芭二、

東華俄宗의

始祖) 이하

폐 많은

碩德을

내었

고、

그 충에는

百部論土

고 일컬어질

만한

분도 한둘에

그치치

않는

샹태임니다만、

그렇다

고 헤서

佛敎가

열바만큼

朝鮮人의

생활원리르시

安際化되어

있었는

가는

참으로 의심스리운

일임니다。

本來

心田開發이라교 한다면

우전

문제가

되는

깃은

心田 그 自膣

아니면

안되겠움니다。

土壤이

이루어겨시

비로소 槿子의

選揮도

肥料의

拖給도 雨雷의

因操도 차츔차츰

考慮되어야

함이 頗序입니다。

그런데 ,ㅗ

유레는

어쟀든

간에、 현게에

있어서의

朝鮮人의

心m은

·

佛牧

어느 것으로부터도 何等의

沃化를

받지

않았을

뿐더러、

히려

本地의

風光이

그것으로 말미암아

흐려지

고 거칟어진

형편엡

니다。

따라시

오늘날에

있어서의

朝鮮人의

心田開發이란

문제는

메마

心田을

먼저

整治하는

것으로、 換言하면

좋은

씨앗을

받아들일

聚地를

만드는

것이

중대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索地를

들기

위해시는

瑞的으로 말해시

朝僻의

固有信仰을

復興시켜시

彈撥

力과

함께

撥取

· 消化의

기능을

作用케

하는

일이라

고 생각합니다。

그리

고 그 信仰이란

것은

어느 民族에서나

”ㅗ 民族의

眞心으로부터

”依

또는

반용하는

것이

아니면

안되기

메문에、

맨먼지

各人의

眞心

께우쳐

이에

傅統淸神

내지

固有信仰의

復興을

圖謀케

하려

고 생각

하는

것엡니다。

廻去에

있어서의

外來宗敎의

상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당연한

이익이라기보다노 오히려 白己喪失이란

惡絡共루

가져다

주고 있는

으로、

이는

佛牧에

있어시도 佑敎에

있어시도 모두

그리합니다。 이듣

모두

臨時方便的이며

皮相的인

것이었으며

,

뫈다우

姆빠人의

田開發에

필요한 1ㅗ

眞心을

振作한다는 것에

태해시는

何等의

효과도

발휘하지

못하였기

매문엡니다。 心田Ⅲ發이라

고 하는

것은

걷국

,ㅗ

람의

眞心을

불리 일으키는

것이

ㄱㅗ 치음이요 또한

ㄱㅗ 마지막이

되어

할 것이기

메문에、

밖에서

아무리

이를

仕入하러

고 해도 이를

아들이는

感踵作用이

일어나지

않으면

,ㅗ

효과는

오르지

않는

것업니

다。 아무리

뛰어난

머리로 생각하

고 아무리

권력움

써시

이를

진하려

고 해도、

이를

받아들일

素地가

없다면

오히려 걍요되먼

강요될수록

反撥을

나타내는

法이며、

도지히 소기의

효과는

얻을

수 없는

것익

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시

나는

오늘날의

心田開發이란

것에 태해서는

무엇보다도 民性

世情에

郞應한

근본

원직을

겅하는

것이 필요하며、

첫째로 朝鮮人의

眞心을

뷸러

일으키는

매 가장

*世

度가

강한、

직감

적으로 께닫게

되는

신앙이

아니면

안된다

고 생각함니다。

피리룔

지질로 춤추게

되는

따의가

아니면

안둬

'i다

。 듄째로는

극히

자인

스러운

것으로서

질태로 무리가

있이시는

안된다는

것잉니다。 공연히

理想만

쫓는

것이라든지

第二義的 요구에

사로잔혀버러시

白然에

反되어시는

안됩니다。 나무에

대룰

첩한

갇은

깃이어시는

안됩니다。

세째로는

오늘과

내일을

통하여、

朝鮮人으로시도 □□□□으로시도、

枝高

窮極의

생활의

統 一 原理가

될 만한

깃、

뻗어가는

생명의

길에

있어

過去

·

現在

·

未來를

한 딩어리로한

伺久的

성질이 있는

것인

타가

ㄸㅗ 普遍

쫏當性이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의

요건을

구비하여

비로소 朝鮮人의

心田開發을

합 수 있는

것으로

,

그 충의

나만

마겨도 그것은

아무헌

意堆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요구에

匯할

수 있는

것은

朝鮮人의

本然精神인

동시

2‘ ̊ 朝마의 固有信仰

東方世界에

있어시의

普遍原理인

깃 외에는

없다

고 쟁각하

고 있는

바입니다。 이

문제만은

理論으로도 理想으로도 解決되지

않는

것이기

메묻에、

爭者나

思瑟家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든가

또는

孜洽家가

攷治

便요上

:시

키는

따위로써는

도지히

안되는

것입니다。 특히

朝鮮

煜에

그러한

信仰이

없다면

할 수 떴겠지만、 다행히

朝鮮에는

그러한

요건율

갖춘

홑븅한

固有信仰이

있고、

그것이

日本의

古道이

고 근본

져인

것、 包容性이

있는

것이라는

拔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本이

셤으로써

길이

셍기는

범이ㅕ지、 萬事

出發點이

중요합니다。

心田開發이라는

것은

要컨메

올마른

쟁팔원리의

파악

또는

건럽이

깃이어시、

그것이

根本에

있어시

誤謬나

무리가

있을

메는

그 출

발의

칫걸음、 즉

ㄱㅗ 本源으로부터

다시

나올

필요가

있움니다。

다른

것과

달라시

속임수를

쓰거나

열버무리는

직은

祚容되지

않는

것입

니다。

오늘날의

朝佯人의

마음、 즉

摘澣의

缺陷이란

문게를

생각하여 본

다면、 나는

무엇보다도 艮擧합이 엾다는

첨이라고 생각합니다。

萬事

旗中함이

없는

결파

眞安性이라는

것이 없음니다。

그래서

자기의

본래의

捕神올

외면하고 있는

결과, 각종의

外來思想에 끌려가

버리고

그 본래의

精乖은

조금도 自己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고、 결국은

형식

흐르거나

由僞에

바져버리는

것엡니다。

僑敢도 佛牧도 그냥

룽째

로 삼켜버리고、

이를

씹어서

자기의

피와

살로 만들지

못하고、 바칭

내는

셜사룰

일으킨

것과

같온

상데엠니다。 이것이 오놀날의

朝鮮의

芻狀이기 메문에、 이를

이 佛攷라든가

儒敎에

의해서

치로하려고 하

것은

,

마치 食傷을

일으키고 있는

사람에게 또다시 같은

食物을

어가지고 治쩍하려고 하는

것파

뜩같은

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

욥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아 문제에

태해서는

아무래도 밖으로부터 강요

것으로씨가

아니라、 朝佯人

스스로의

마음의

힘、

그 잠자코 있는

본연의

構神的

기능을

뷸러

일으키

고 密起시킴으로씨

스스로의

庾心

에시

생활할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셍각합니다。 자기에

눈뜨 고 자기

힘에

依支케

하는

勘機룰

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朝鮮人에는

어머한

思想的 本地、

換言하면

어떠한

固布

信仰이

있었는가

하는

것이

패 충요한

문게가

되는

것엡니다。

내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朝鮮에는

휼륭한

固有償仰이

있었던

것이

며、 더구나

어디에

내놓아도 遜色이

없으며

홀흉한

系綎的인

것이

었던

것임니다。

이에

관해서

詳細히

말씀드리면

매우

번거로운

이야

기가

되겠

코、

또 오늘은

시간도 없으므로 이것온

생략합니다만、

요컨

「ㅗ 결론만올

말씀드리면、

朝鮮에는

다만

固有佶仰이

있었율

뿐더

러、

오히러

우리들로부터

말하자면

뜻밖이라

고 생각할

경도의

체제가

경연한

國民宗敎가

존재하

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俯牧나

佛牧와

같은

外來思想의

강대한

힘에

의해시

깃늘리

고 오랫

동안

虐待받

고 들

뷰이다가

마침내

오늘날과

같은

상태로 되었던

것이어서、

設者로서도

그 존재를

의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만、 이는

民俗的으로 보아도 열

마든지

ㄱㅗ 事廣이

남아

있고、

또한

文狀에도 그 消息이

분명히

남아

있는

것업니다。

여러분께시도 잠 아시다시괴、 合一國史記)의

與興王의

三七년에

ㄱ源

花」의

原意를

紹介함과

동시에、 崔致遠의

^賻

郞碎序)로

부더

ㄱ日有玄妙之道、

日風流、

殷敬之源

,

備詳仙史、

=乃

包含三攷

,

接化ㅉ生、 且如入

則孝於ㅉ、 出則忠於ㅂ、 魯司寇之旨也、

史無爲之卒、 行不旨之敎、 周柱史之宗也、

渚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라는

글을

引用하

고 있움니다。 이를

건성으로 읽으면

아무렇게나

가지의

德目을

廷列한

것처렁

보이기도 합니다반

,

安은

半島의

牧를

진하는

소중한

文ㅄ엡니다。

그 뜻은

이처림

八0○

내지

一 、五

0

○년

전의

朝鮮에는

ㄱ風流」라고 하는

휼륭한

宗敎가

있었

고、

그리

ㄱ風流」란

敎는

磻敎

·

道敎 ·

佛敎의

主된

요소를

兼俯한

것이었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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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敎 ·思想 25˚

다。 이깃은

오늘의

朝鮮의

歷史라든가

思想을

調在하는

사람은

마땅

맨먼지

調査할

만한

것이라고 섕각합니다만、

遺僊스럽게도 많은

람들은

이를

매우

가볍게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보롱은

이 글을

一 種의

選擧制度를

전하기

위혜저

씌어진

것으로만

쟁각하고 있음

니다반、 실은

固有信仰의

片쏴이

여기에

한 줄기의

殘光을

남기고 있

것입니다。 나는

꽤 오래 진부터 다른

事穴로부터 朝蚌에는

ㄱ부루」

라고 하는

宗敎가

있었올

것이라

셍각하여 오랫 동안

조사하였움니다

만、 이 記事를

역시 選擧制度를

천하는

것으로 解樺하고 있었으므로

,

좀치럼

,ㅗ

俱莪가

파악되지

못하몄던

것인테

,

뒤늦게야

겨우

이것

이 選擧에 관한

것이 야니고 固有信仰의

文ㅄ이라는

것을

발견하었던

것임니다。 좀

더 일찍 發見했으면

오랫 동안

고생하여 다른

事與을

사하지

않더라도 이 一 節만으로씨

固有信仰의

消息을

알고 그 즐거리

세율

수 있었을

것이었움니다만、

그 글 속의 깊은

뜻을

깨닫지 못

하고 페 迂廻賂를

彷徨하였던

것잉니다。 이 ㄱ風流」란

말은

얼핏

보기

에는

그리 좋은

느낌을

주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이깃이 宗牧인가

싶을

만큼

一 種의 怪異한

느낌마지 주는

것엡니다만、

그러나

ㄱㅗ 寅際는

태로 그런

것이 아님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 「風流」 즉

ㄱ부

루」라고 하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神道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ㄱΠ沈」가

예 ”이란

뜻인가

하는

네 돤히서는

學問的으로 여리 가지

銳이 나올

것엡니다만

지 仝一國史記)의

太古에

콴한

記事에 나타난

扶供의

古王 ㄱ夫袞」、 新羅의

「弗矩內×赫居世) 둥의

ㄱ부루」를

롯혜셔、 內外의

歷史에 「ㅗ 證迹은:많

찾아볼

수 있는

것임니다。 또

ㄱ氏流」란

字面은

과연

中國式이기토 하고 또 佛敎에도 보임니다만、 이

단지

그러한

文字만을

빌어 온 것으로、

그 내용은

천혀 다른

것입

니다。 風流라고 하는

전게의

뎡칭뿐만

아니라、

그 故義의

설명인

「入

則孝於家、 出則忠於國」이라는

것도 과연

儒學式의

표현밉니다만、 이른

忠孝의

茗女的

방면은

怖敎

이친에도 스스로 갖추어겨 있었을

으로、

古來로 어미이나

임극에게

成"은

냐하느÷

ㅗ.시

심온 l

子의

敎 그대로라는

테 불과합니다。 이것은

Π 不외

古神迫에

미추어

보아도 찰 알 수 있는

것밈니다。

뜨 不言之敎라는

것도 字面은

迫效로부디

빌어

은 깃이나、

그 사싣

방면은

요컨대

日本의

萬葉跋人에

의해시

귄해지

모 있논

이른바

ㄱ神음

성기

고 神의

뜻에

따라

헹동하되

만로씨

하지

않는다×神左

"b言

ㅌ七쏸¤)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日本도 朗鮮도 그 古適에

있어서

理論이나

형식은

까다롭게

굴지

않고 싣행을

존중하었음을

맡한

블과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吉話文字의

저면에

있는

ㅠ女을

把握하는

험쓰지

않으면

古典의

貝意는

잠아내지

폿하는

것임니다。

이와

같이

個佃의

文字라든가

言評

등온

혹 빌어

온 것이었다

합지

라도 事寅은

決코 그런

것이

아니며

,

이들

牧瑤가

古來로부터의

伸杭

的인

것이었음은

이를

의심합

여지가

없옴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

文ㅄ을

머나시

民俗的으로 조사하여

보더라도、

듈呈" · 地名

· 人名

둥에

숨어

있는

”庶을

파낸

수 있는

것입니다。 여

리분도 다 아시는

바와

같이、

輞鮮

안에

있는

山으 로 이음

있는

것에는

모두

白이란

글자가

씌어져

있움니다。

혹은

太白이라든지、 小白이라

든지、

白頭라든지、

白岳이라

고 부르 고 있옵니다。 이와

같이 文字는

다르지만

모두

白이란

文字가

사용되어

있어、

+쓱

애시

제일

높은

것이

白頭山

,

京城에시도 景福官 뒤에

있는 것이

白∏出、

蹉尙北道와

江原道의

境界에

있는

것이

太白山이며

,

이민

地域

내에시의

매표직인

高大한

山은

모두

白이라는

글자로 불리우

고 있는

것임니다。 다시

하자면、 이와

같이

어디를

가더라도 ㄱ白」이라는

굳자가

붙은

山은

지방에

있어시의

最高

·

最大의

山엡니다。

그멓다면

白이란

뜻온

어디시

온 것인가

할 것갇으먼

,

오렛

동안

가지로 쟁각하여

본 결과、 朝鮮의

名山에

白이란

글자가

붙어

것은

걷코 우연한

깃이

아니라

이에

핀연척인

이유가

있옴을

알게

2" 朔佯의 固有俉仰

되였움니다。 여기에

덧붙여

말해

두노자

하는

것은、

輞鮮에시는

白이

글자가

사용되기 않은

名山도 있움니다만

,

거기에는

으레 다른

文字가

에외

없이 사용되어

었음니다。

그 첫졔는、 만약에 白이란

글자가

붙어 있지 않으면

반드시 昆度峯

이라는

봉우리가

있움니다。 平安南道의

妙香山、

또는

江原道의

金剛

山파

같은

것이 모두

그러합니다。 이와

같이 제일

높은

峯은

白이란

글차가

붙어

있지

않은

山이면

毘底탄

글자가

사용되이 있움니다。 이

毘ㄸ란

글자는

佛敎로부터

빌어 온 것이란

데서

佛牧

報入 이후에

생긴

이름으로 보는

경향도 있움니다만

, :

그멓다면

佛敎에는

山의

명칭으

로서

더 져질한

가지가지의

文字가,있

데도 불구하교 왜 1一

충에서

이 丈字룰

選揮했는가

하는

테 매계시

우리들은

追窮하여 보지

않으

안되겠움니다。 또 이 毘庄란

글자가

없는

山에는

天圭各이라는

자가

있음니다。 이 제 가지는

어며한

관게가

있어시

나온

것인가

것은

本論을

進行하는

데 가쟝

중태한

일이 되는

것이기

띠문에

이룰

셜명례

두고자

합니다√

朝佯의

유명한

山에는

반트시 白이란

글자가

山名 안에 사용되어 있

고、

또 그것이 使用되어

있지

않온

名山에는

그 山의 妓高牢에 반드

시 毘苡라든가

天土라고 하는

봉우리가

있움니다。

이것은

全鮮

응통

의 =★

이며、 많은

山이 있는

것이니까

한둘의

에외가

있음직도 한데、

하나의

에외조차

없이 이상하게도 어디서나

이 세 가지

충의

어느 하

나가

사용되어

있윰니다。

女은

이 白이나

毘虛나

天圭라는,말

語源은

모두

ㄱ부루×風流)란

말의

播源과

같은

것으로시、 다만 ,ㅗ

꼴이 다른

데 지나지 않슴니다。

어누

것이나

어러운

문게는

아띰니나。 朝佯의

옛 말에는

빚을

√ㄹ이

라고 하는데、 朝鮮語의

音韻法則에

따라서

이 ㄱ밝」이

메로는

中音인

R이

다겨시

ㄱ박L이

되고、

꽤로는

搖音인

K가

마겨시

㎡ξ로도 되는

것입니다。 이 -

一音을

베꺼기

위혜시

여러 가지의

借字가

使用되고 있

는데、

얻핏

보아시

다른

文字

같으면시도 ㅁ*의

"파

지나지

않으

머、

그 뜻은

모두

天主로 여기는

大陽과

그의

神性으로 丙한

神을

타내는

깃이

됨니다。

그리

고 毘披란

금자를

띤 것은

다만

甘이

닮았

뿐만

아니라

,

毘盧

遮那가

본시

光明 관계의

語句인

테시

한걷

리하였다는

검을

認定할

수 있음니다。

게다가

내가

재미있다

고 생각하는

것은、

神을

√ㄹ이라고 한 것은

朝蚌만의

말이

아니

고、 남쪽에

이르리시는

日水

혹은

琉球、

그리

교 북쪽은

滿洲

·

蒙古

또는

中西아시아

둥에서도 모두

같은

琳鋌을

나타내

고 있다는

것임니다。 특히

蒙古에

이르래서는、

糊鮮의

杻君이

太白山에

내리셨다

교 하는

것과

같이、

建園의

祖神이

부루간이란

내리셨다

고 되어

있움니다。

그리고 蒙古語에

있어서도 이 부루간

이란

말은

神 ·

또는

神人을

뜻하고 있음니다。

日本의

古典에도 天孫

坦琨杵尊(니

니기노미코도)은

群虧山의

高千

愁峯에

降臨하였다

고 되어

있고、

뜨 商千租卒은 ,

彦山(히

코산)이

라고 되어

있는데、

ㄱ渗×히코)라

코 하는

것은

梱鮮의

ㄱ白」이란

該宙합니다。 日本의

神話는 大膣로 두 가지의

系碗이

있는테、

그 하나는

九州의

이론바

商千釉牛에

降臨하었다

고 하는

天孫系의

話와、

다른

하나는

出雲系杭의

국가

건립의

說話의 ,

Ξㅇ밈니다。 후에

皇室中心主義로 이것이

整理되어

있어시

,

ㄱ倭之園」 이전의

일은

똑똑

알 수 없음니다만、

그 엣날에는

여리 가지의

說喆의

흐롬이

있었

음온、

^日

本啓紀)에

많은

一 흄에

가로되라

고 引用하고 있는

것으로 앙

수가

있움니다。 어쨌든

天孫降臨의

神山에

ㄱ彦×히코)란

글자가

있는

것과

같이、

또한

出雲

쪽에서도 ㄱ히루」라고 하는

山名이

있움니다。

태체로 日本과

朝佯에서

볼 수 있는 古典上의

싶찌는

걸코 偶然牡

것이

야니라

핀연직인

이유가

있음은

考ㅉ을

거둡발수록

명맥해지

것으로、 建國 祖神이

天降한

山의

이롬뿐단이

야닙니다。

예컨데

神武天良온

大和(야

바토)의

杻原(가

시하라)이

라는

곳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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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牧 ·思想 2‘ 2

位하였다

고 되어

있는테

,

이 곳을

杻原이라

고 하는가

하먼、

日本 爭

者는

白檀나무가

거기에

많이

茂盛하였기

메문이라

고 말하

고 있으나

,

그러나

나로 하여금

말하라고 하면、 이는

막연한

癒測으로서、 오늘날

文化

·

科學의

知識에

의해

이를

비교걱으르 고구한다면

,

걸코 그처

럼 단순한

것이

아니라

고 생각합니다。 朝鮮에시는

合一塑史記)의

高句

麗本紀에

扶餘의

故都가

迦葉原이었다

고 하고、

高句岡의

시울에는

斯水、

滾의

시울에는

河西角

둥의

명칭이

보이며、

日本의

神話에

어시도 天孫坦覡杵尊이

降臨한

곳을

笠狹畸(笠

沙之御埼),

後代에

가시

崇神天皇時代에

三種의

神器롤

올겨

모신

곳이

笠縫邑이라

고 불렸

는테、 역시

ㄱ笠×캬사)라

코 하는

글자가

붙어

있움니다。

이와

같이

祭政 一 致時代에

있어서의

권럭의

충심지에는

으레

ㄱ캬사」

(笠

) 또는

ㄱ카시×杻)라

글자가

사용되어

있음니다。

그리

고 이 검은

日本이나

朝鮮半島

또는

滿洲

방면이

완전히

일치하

고 있음을

볼 수

있움니다。 이것은

일종의

觀念的인

것으로시、

걸코 土地의

상황이나

人名 ·

地名

둥으 로 말미앙아

생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움니다。 또 神

武天皇의

東征과

같은

것에

있어시도 여기시부티

동쪽에

五殷이

찰 익

기름진

당이

있으니

가시

都邑으로 상으라는

神勅이

있었던

것이

교 이것이

東征의

勤機가

되어

있는데、 이들도 扶餘의

傅說과

똑같은

것밈니다。 이와

같이

「ㅗ 傅說이나

내용이나

또는

명칭까지가

모두

常하게도 일치하

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라

고는

쟁각되지

않습니다。

문인가、 祭η라든가

橄力이

돤한

桂憊、

그리

고 그 멍칭이

대게

비슷

첨도 깊이

注意합

만한

일임이

물론입니다。

이리한

것들을

하나하나

들어시

이야기해

가자면

限이

없읍니다만、

어쨌든

朝鮮에는

옛 信仰이

있었으며

,

더구나

그것은

홀륭한

系統이

것이며、

그리

고 그것은

단지

朝佯뿐만

아니라、

남쪽은

琉球 ·

日本、

북쪽은

滿蒙

· 中西아시아의

방면까지

공통적인

꽤 廣範田에

걸쳐시

하여진

것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린

것엡니다。

이로씨

앞시

맏씀드린

첫째의

心ⅢIjij"우

맨만지 무잇으로부티 숀

대지

않으면

안듸는가

하는

깃과、 다우에

둡쩨

문제인

梱鮮에

回有信仰이

있었는가

어떤가

하는

것까지 초금 인급됐유니다만、

늘은

벌써

珉定의

시간도 다 되었으 므로、

둘째 .

세째의

문게에

관헤

시는

다른

기회가

있으면

다시

말씀드리기로 하고

,

으늘은

이만

그치

기로 합니다。

'\

前週에는

朝鮮人의

心田閔發이란

것에

태해시는、

우선

이를

받아들

만한

紫地를

충분히

만들

고 나서

자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깃마、

朝鮮에는

과연

固有信仰이

있었는가

없었는가

,

이에

태해서는

여리 가

지의

文ㅄ

또는

현재

남야

있는

民俗的

事甘로부터

,

胡奸에는

흗룽한

趙系가

갖추어진

固右信仰이

있었다

고 말하

고、

뜨 이에

태혜시

명빽

증거도 있어시、

多年問

이 방면을

연구하여 온 나로시는

이미 이에

대해시

아무련

疑心조차도 픔고 있지

않다는

깃을

말쑤드몄었유니다。

오놀은

츰 디 깊이 들이가시、

그와

같이 炘級 이전에는 ,ㅗ

명칭이나

내용이나

또는 .ㅗ

傅說까지가

똑같았딘

빠系⒨

“仰이

,ㅗ

후는

어멍

되었는가

하는

것인데、

이것은 1ㅗ

후의

눈화、

강한

外來思想에

짓뉼려 一 時 그 그림자를

감추기는

하었움니다만、

그러나

아무리 짓

늘렸다

하더라도 오랫

동안

民俗的으로 천해진

固i佰

仰온

걸코 뿌리

뽐혀버릴

리는

없는

것임니다。 예컨태

佛敎가

아무리 繁榮하

고 錦

敎가

아무리

全盛을

다한다

하더라도、

固有佑仰이

그것들로 맘미암아

中途에시

사라겨비린다

고는

나는

생각할

수 없는

깃임니나。

대체로 新羅時代는

佛敎

때문에

덮여겨비리

고、

出m에

들어가시는

그 겉모습이

더욱

더 희미해겨서

쉽사러

그 具相을

把握하기

어려워

感이

있움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시

당시의

문화를

徽驗합에는、 이러한

문화훌

전하

고 있는

것으로시

^高

媤史)에

依披하게

되는데、 이

合凹砥史)란

것이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

하면、

이는

卒胡 初抑부티 兵久한

琰月

?¸3 胡佯외 固有俉仰

걸쳐서

만들어진

것으로서

,

그 史料란

것도 과연

上代의

事安

데로롤

진하

고 있는

것인지

어떤지는

多少

凝心스러운

것도 있읍니다。

맨먼지

생각혜야

할 것은、 四七五년

간의

高麗의

初期의

일은

아를

낸 시대에

있어시는

상당히

그 原形을

잃어비린

것도 있었으리라

고 생각합니다。 마라시

多少

本來위

것파는

변화된

형태의

것이

실려

있는

것이기

메문에、 이

첨은 ^高

砥史)의

史安에

依推할

매 바땅

注忠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高

麗史)에

八閑슐라

고 하는

租典이

있어

이를

국가척으로

勘行하였다는

것올

진하고 있는데、 이것들도 普通은

佛敎에서

유래한

것처렴

섕각되

고 있으나

결코 그렇지가

않고、

그 내용은

佛牧와는

무란

관제도 엾는

것엡니다。 여러분도 다 찰 아시다시피

佛敎에서

론바

八ⅲ이라는

것은、

僧侶

외의

佛牧

信徒에게 , 年

中의

머칠을

겅레셔

이 여덟

가지의

일을

해서는

안된다

고 막는(關

) 期限付의

戒律

生活임니다。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華麗한

차림을

해서는

안된다든

가、 혹은

廣大한

짐에

살아서는

안된다든가、

흑은

肉食을

혜서는

된다든가、 혹은

男女

同居해서는

안된다든가

하는

따위잉니다。

그런테

高甦의

八圈슈의

女陳를

보면、 佛敎의

八糊과는

전혀

다른

오히려

반되는

것으로서、

珀的으로 말하자면、

神道的일

빔셔을

피웠던

것엡

니다。 요컨태

佛敬的인

이름

뒤에

슴어셔

헹하여진

엣 진통저

神事였

것입니다。 普通의

佛牧에

의한

佳式들이란

것온

시대에

따라

興廢

있고: 어띤

시데에는 盛行하지만

어떤

시태에는

전허

衰徽한다

하는、 이른바

有爲轉挺이란

것이

있움니다만、 이

八ㅃ만온

高麗

一 代

걸쳐

恒常

최데의

관심이

기울여졌

고、 한메

약간

衰退하려는

徵兆

나타나는

메는

임금님으로부터

: ⅜한

명령이

내려서

이의

復興

힘을

섰다

고 하는

기훅바저

있는

청도엡니다。 이

八Ⅲ은

요컨태

ㄱ밝L의

具稱語일

「밝안L의

對字로서, 新羅의

風流(부

루)에

대한

高麗

데의

呼稱이였던

것입니다。

原來

民俗的인

行卒、

특히

信仰에

관한

그것은

文化

土潮의

挺易에

따라

형태상의

면화가

있고、

또 그것에

매한

명칭파

같은

깃도 꽤 번

화를

하는

일이

있기는

하나

,

그 本腔·輿質은

상당히

强杻한

것으로

좀처렴

소멀해버리는

짓이

아닙니다。

輞鮮에

佛敎가

들어와시

모든

문화가

커다란

銜動을

받는

동시에

文化

外形

내지

→ㅗ 명칭이

佛牧式

으로 변화된

것은

열바든지

있음니다。 에컨태

單刀山入的으로 말해시、

山의

명칭을

보더라도 얼마나

佛效的으로 되어

있는가는

여리분도 다

아시는

바와

같으며、

貯尼

·

伽倻

·

智與

둥과

같은

文字는

모두

佛牧

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 임금님의

이름으로 말하더라도、 현재의

鉦錄

보이는

것만도 다분히

그와

같은

겅향이

있는바、

高句砥

초기의

王으로 琉璃明王이

있고、 新羅

초기의

王으로 脫解란

이가

있는

겅도

엡니다。 후데에

갈수록

이런

마위의

명칭은

디욱

더 불어나

고 있움니

다。 이런

경향은

어느 방면에서나

볼 수 있는

바임니다반、

명칭이야

어쨌든

固有의

民俗、 옛

傅統的인

箕質온

결국

그 安質을

아주

감추어

머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華麗를

극한

神迫的

祭事가

八關의

이롬에

의혜서

행하여졌다는

것은

정말

奇理이

아닐

수 없음니다。

^高

ㅃ史)에

의하면、

八鬪會에서는

茁事

華美를

겨루고、 宮中의

特定拐所를

舞堊로

하여

國王 이하

文武

百官

내지

一 般 民庶가

뜩같은

氣分에

젖이서

麗한

儀式을

올리

고、 게다가

ㄸㅗ 이에

歌舞

·

甘曲 ·

鄕樂

둥올

겯들어

놓고 있는

것으로、

어면

種類의

것을

막기는커녕

平紫의

몇 배나

겨운

일들이

행하여졌던

것엡니다。 粱의

武帝에

의해시

시작되었다

하는

八關의

佛會와는

열토당토않은

깃입니다。 이형게

相與하다는

本問題에

있어서는

중요한

일인

것이벼、 이것이

곧 朝鮮의

固有民

俗에

의한

朝鮮

特有의

것이라

고 하는

말이

되는

λ,니

다。

그렇다면

李朝에

와서는

어멓게

하여

남겨졌느냐

고 말할

것 같으면、

李朝는

여러분도 찰 아시다시피

萬事

倫敎本位였으 므로 이 八베의

式이란

것은

大部分

시들어버릴

지경이었음니다。

그리나

李朝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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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敦 ·思想 2¸ 4

國宋로서

이를

擧行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슴니다만、

그 民俗的인

명은

역시

끈질김을

나타내어、

그 古瑤

·

本質이

으늘날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유지되어

있음을

볼 수 있움니다。 橘牧的인

丈句를

빌어시

綾하여

온 ㄱ府君의

堂」 또는

、ㅗ 神事가

그것익니다。 이는

韓日合倂

까지는

서울이나

시골의

어느 官困에도 府君堂이

선치되어

있어시、

官吏들이

任命을

받으면

맨먼저

여기에

參拜하여

幣帛을

올렸던

것입

니다。

그러나

李朝의

儲敬에

心醉한

사람들

중에는

府君堂의

本袁를

모르 고、 왠히

하나의

淫祠로 보 고 이를

破壤합을

자랑으로 여겨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기

고 있는

者도 있을

정도임니다。 또 官

座뿐만

아니라

一 般 民家에서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강소에는

반드시

府君堂이

있었던

것입니다。 또 佛牧

등에

있어서도 그전에

佛尊의

이외에

억시

그 土地의

神을

모신

府君堂 或은

獨準堂

등이란

있어、 佛事를

행하는

때에는

本尊보다

먼지

이 堂애

供物을

올려

祭事를

지내

고、

그것이

끝난

뒤 佛尊의

供萎을

시작하였던

것엡니

다。

그리

고 이는

오늘날에도 행하여지

고 있움니다。 이

府君은

高麗朝

있어시의

八關의

橘擧的

樊形語로시、

모두

古代에

있어서의

ㄱ밝

안×弗矩內)과

.-

語源이

같온

것입니다。

이는

中間의 R가

K로

기도 하고、

K가

R로

되기도 한 데 치나지

않슴니다。

지금도 많은

地方에

있어서는

봄과

가을의

두 차레、

또는

한 차레만

하는

데도 있

움니다만、 한

차레만

할 메는

가율의

秋收를

끝낸

뒤 이 府君堂의

茁(부

군굿)를

벵하는

것이

코、

곳에

따라시는

祭名은

다르디라도 비슷

비슷한

神事가

어디서나

행하여지

고 있는

형편으로서、 이

風流

·

·

府君의

道가

짙령

國家的으로는

中斷된

일온

있어도 民俗的으로

조금도 시들지

않고 오늘날까지

깊이

스머들어

진하여져

온 것은

오히려

駑喚할

만한

事쌌임니다。 이

ㄱ불그내」란

짓은

걸코 朝鮮에서

쓴 말이

아니라、

예컨태

日本에

있어서도 옛

都邑에

「후루」라는

글자를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모두

같은

民俗

本源으로부터 나온

것이

고 인정됩니다。

古市(후

루이치)라

투지

古Π

I(후

루타)가

모두

그린

마위입니다。 득히

나는

年前에

伊꽈(이

세)의

山田(야

바다)에

갔올

메、

奈良에시

伊勢에

이르는

사이의

옛 聚落에

ㄱ古」字가

붙어

있는 것을

많이

보았는데、 이것들도 모두

JT그

내」외.

ㄱ부루L의

流碑밈에

를림

없다

고 쟁각합니다。 또 金의

祖上의

發祥地가

僕渶이있다는

깃,

썼古

國祖의

天降地가

不兒罕이었다는

깃、

그 빅에

中西아시아의

亘山에

이런

따위의

명칭이

붙어

있는

事臾

둥으로 미루어

보아、

나는

직어

도 어떤

시대에는

그러한

넓은

極園에

걸쳐시

공롱된

信仰이

있었

고、

게다가

이 信仰의

중심올

이룬

ㄱ불그내」의

性焚을

대략

感得합

수 있

것입니다。 걸론만을

말씀드리면

,

「붕

그내」는

곧 神明이요 天土이

神이란

뜻으로、 이는

抽象的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兵膣的으로 태

양을

가리켜

말한

것이

명삑합니다。

이와

같이

胡鮮에

있어시의

固布佑仰온

기욕상으로나

民俗의

싣재

상으르나

상당한

具匯的인

것이

있었음은

의씽할

여지가

없으며、

군다나

이는

세게의

왜 넓은

면적에 걸처서

행하여졌던

깃임을

알 수

있음니다。

그리

고 이와

같은

政治規柾에

있어시의

祭司的

君圭에게

牧的으르 祭祀흘

쓩掌하는

職務가

없음

수 없으머、 이를

곧 撥君이라

고 일컬었던

것엡니다。

朝마人은

柯君이마

고 하먼

Ⅲ빠이란

나라휼

만든

神으로 믿고 있움니다만

,

일반의

俉仰이야

어쨌든

간에、 卒π椀

君이란

말은

엣 시대에

있어시

俉仰系統의

來祀불

쌉卒하는

職ⅱ의

멍침이었던

깃엡니다。

그리

고 이는

祭政 一 致의

시테의

일이므로 ¾"

長이

곧 政治樵의

鯉掩者이기도 했을

깃엡니다。

俓茸에

관해시는

學界에

아직도 우스꽝스러울

만큼

非枓學的

謬見이

行하여지

고 있어시

상당히

문제도 되겠움니다만、

새로운

人文科學的

고찰에

의하면、

椀甘

中心의

神政時代가

돼 오랫

동안

게속되였음은

도지히

부깅할

수 없

사실이며、 만약

이를

부겅한다

고 하먼、

堈鮮이

그 문파척

츌받첨

喪失항은

물룐、

東方文化의

硬古托를

갗는

劤鍵이

무시된다는

것을

2¸ ̧ 朝蚌의 固有佰仰

나는

念庄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梗君說에 반대하는

者는

어디시 나오

는가

하면、 控君은

高麗

中葉의

僧侶가

기록한

文ㅄ에만

있는

것이므

로、

그것은

오래된

것도 아니고 또 :매

佛敎

냄세가

난다、 아무래도

佛典에서

脫化한

이름인

것 같다고 하는

者와、

또 하나는

桎君은

佯와

기록에는

실려 있으나

周曰

나라들의

기록에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

오늘날에

있어서의

反對說의

圭된

것잉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검에

관혜시

본다면、 본래 朝蚌에는

고유의

文字

라든가

記錄行이

없었던

것이므로、 이쪽

사람이 支那

전래의

文字라든

記錄衍올

매운

것은

훤씬

뒤의 일임니다。

그멓기 메문에、 朝佯의

文뺐" ”ㅗ 記錄이 있느냐

엾느냐

하는

것온

問題가

되지 않는

것엡니

다。 遼物

·

迪路이 오놀에

傅하여지고 있는

것만

해도 그 記錄에 없

것은

많슘니다。

그렇기

메문에 文字가

없었던

시태의

일이 그 기

록에 있느냐

없느나

하는

것만을

가지고저

하는

反對說온

문제가

되논

것엡니다。

그련데

ㄸㅗ 하나의

說인、 支那의

歷史에도 실려 있지

않다는

것은

면가

하뎐、

^魏

志)라

는 , 千六、 七百년이나

이전의

支那의

歷史에 馬韓

풍속을

기슐하여 말하기를

ㄱ馬斡아는

別都가

있는테、 거기서는

天君

이란

者가

있어

祭祀를

管莩한다

云云」이라고 하였움니다

^魏

志)의

文茸온

馬斡에

관해셔

척은

것이기

메문에

記事

전부를

朝鮮

全般에 嫉

大시키기에는

熟論이

펄요하나

하더라도、 우전

이것이 의혜시

祭司를

天君이라고 한 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示唆가

주어진

셈엡니다。

그리

고 文化의

쿄原坮的

또는

坡根本的인

것인

信仰의 그것、 특히 祭司의

명칭과

같은

것은

쉽사리 挺改가

헴하여지지

않았으리라는

검에서

다면、 이

天君의

호칭이 후세의

新語는

아닐

것이며、 半島의

어느 부

분에서든

쾡하여졌을

神及時代의 枝毋者는

역시 天君이라고 블리어첬

것온

대충

推定할

수 있는

것멤니다。

그련테

枝君과

天君은

字形이

다롭니다만、 支那란

나라가

다른

라의

事物을

寫音할

때、 다소 音形음

歪曲시키던시도

*과

뜻을

合하

고 애를

쓰는

例는

많이

있으벼、

粗삼을

天君이라고 쓴 것과

같은

것은、 역시

祭天者인

事丈을

드러내기

위한

의식직

獲改라고 묠 수 있

움니다。

그러기

메문에

반드시

支那의

기록에

授君이란

文字가

보인

안보인다

하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안됩니다。 또 日本의

기록에

있지

않았다는

것은、

日本은

오히려

朝鮮보다

늦게

文字가

생겨났

으므로、

日本에

없다고 하는

것은

무론

태수로운

일이

아니라

고 생각

합니다。

그러나

記錄面이야

어쨌든

事焚面으로 본다면

,

日本에

杻君系의

語는

얼마든지

볼 수 있는

깃으로

,

日本武φ(야

바토 다케루노미코토˘

라든지

熊酋伍(쿠

마소다케루)라

고 하는

ㄱ다케루」가

그깃잉니다。

尊이라든가

猛이란

文字는

日本에

있어시는 ,ㅗ

地方의

袞族 · 首領과

같은

사람에

한해시

붙여진

이름이며、 이

ㄱ다케루」란

말온

朝鮮語의

ㄱ대가리×首領)와

더불어

모두

杻君파

같은

搭源에시

나온

것임니다。

控君의

첫째

語源은

ㄱ당질」입니다。

「당질」이란

것은

朝鮮의

古代

語로 말하자면

天이란

뜻엡니니。 그리

고 이 ㄱ당철L의

幷音아

엾어진

것이

걸(데

갈)임

니다。 中間에

끼어

있는

幷音이

없어진다는

것은

洲語에시도 日本語에시도 같은

것이머

빠지기

쉽슴니다。 원래

ㄱ대긷」

게일

엣 뜻은

위에

있는

것이라는

뜻이며、 바꾸어 말하자면

하늘도

위얘

있고、

또 人間으로 말하자면

머리도 위에

있으므로、 이들은

태갈이

되는

것입니다。 日本語로 上樣(우

에사마)라

고 하는

것도 이

같온

趣旨에

지나지

않슘니다。 또 지금도 쉈古語에서는

하늘을

ㄱ당

구리」라고 말하

고 있움니다。

그리

고 이 ㄱ당구리」라

고 하는

것은

天이

라든가

佛이라는

뜻을

나타내

고 있움니다。 또 支했위

서북

지방에

山南路

·

天山北路란

것이

있음니다。 이

天山노 모두

그러한

箝源에시

나온

것임니다。 더구나

西域

地方의

어먼

것은

내가리山이란

例도 있

옴니다만、 이것들도 모두

幷音이

빠진

語形으로시

興味 있는

例이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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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蒙古의

祖上인

凶奴民族의

文化가

^漢

苦)에

의해시

若干 전하여져

” 있움니다만、

凶奴에서는

圭權者름

ㄱ球黎孤屠」라

고 맘하는데、

擦竣↑°

⋯ㄸ

–瓘

ㅁ胡

에 巫뜨따

고 부르는

地方도 페 많이

있움니나。 이련

종류의

자료를

종합해서

생각하여

보면、 朝鮮側의

裡君의

語源이

열마나

뿌리

깊은

것이며、

또한

어떤

文化圈에

있어서의

普遍的인

것인가를

알 수 있음니다。

이와

같이

支那

·

日本

或은

蒙古

둥의

史枓들로 보야、

檀君에

의한

政治規範의

存在라는

것은

뚜렷례질

뿐만

아니라、

또 이 檀君이란

古代

祭杞

관계의

職名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으며、

이런

것은

다소

나마

인류의

原始文化에

理解를

가지

고 眞琺하게

東方의

古代史에

문척

관심올

가진

사람이라면

바땅히

께닫지

않으면

안될

것임니다。

文化

水準이

由ㅈ 段階나

달라겨버린

오늘날에서

본다면

,

巫覡

따위는

어쩌면

보기

용한

구시데의

殘滓物르도 보입니다만、

古代의

神政이란

것은

요컨태

巫行上의

伋越者에

引卒된

生活樣態에

지나지

않슘니다。

巫覡도 淵源的으로는

輕視

蔑視해서는

안되며、

또 現在에

있어서의

民間佰仰

岡題로시도 합부로 撲滅

掃苒을

云謂해시는

안되벼、

그 처

리는

여간

恨盧올

요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야

셌든

간에、 檀君은

神政時代에

있어셔

巫君의

호칭이었

고,

이것이

시문화에

ㅆ어시의

당연한

態樣이었으리라

합은

賚言을

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래로 檀君은

神人으로

b,겨

고、

또 古代

支那의

三皇五

帝와

같은

사랍들에게는

곧찰

神聖의

德이란

것이

誼美되고 있는데、

그 옛 뜻을

찰 더듬어

보면、 이른마

神聖

·

取智란

것온

결코 후세에시

r,발

건하여

온 '念

的인

것이

아니

곳:

端的으로 말혜서

巫道

·

呪行에

뛰어나

있는

상태에

태한

形容에

지나지

않온

것임니다。

그것은

古代

있어시의

君主의

명칭

및 、- 德읕

讀美한

語紮에

관해시

文字學的

分析을

成鬪하여 보아도 명맥한

일이며

또 ^古

經×ⅳ俓) 둥에

내프되

있는

원시문콰의

꽈箕을

김토하여 ㅛ 아도 ÷부히 앞 수 있는

것익

니다。

^易

經)에

보이는

ㄱ聖人은

神으로써

說牧한다」라고 하는

것은

端的한 ,

記事라

할 것엡니다。 이

剖"에

파한

人類擧的

짇레는

프레

이지

Q.Φ

ψRq)

둥의

著述에

매우

笠富하게 蒐樂뇌어

있옴니다。 穴

朦로 스二國史記>에

新羅의

古代에

巫君이

있었음을

明記하

고 있으

며,

支那側의

古文ㅄ에

의하면

日本의

古代에도 卑彌呼(히

메코)라

하는

巫君政治가

存在하였던

것으로 되어

있움니다。

앞셔

말쑴드린

古代의

政治中心地에

한걸같이

ㄱ카시하라」라는

호침이

있었던

까닦도

貸은

이 政治規範에

의한

것이며、

ㄱ카시」란

祭祀를

말하며

「카시하라」

祭祀上의

聖所란

의미를

나타내었을

뿐입니다。 이

ㄱ캬시」는

朝鮮

現代語로 「굿」 또는

ㄱ고사」로시

殘存하였

고、

日本에시

珏異를

타내는

ㄱ쿠시」란

말도 이 眷屈의

것으로 인청되는

것입니다。

요컨태

古代의

攻治가

巫君에

의해시

運營되

고 있었던

것온

인류

공통의

이며、 이

지위에

있는

者를

표현하는

ㄱ巫」란

명칭이 윈래

神聖의

지녀야

합은

당연한

일입니다。

硼鮮에

있어시는

枕右이

그것이었

것임니다。

控君

否認論者에는

몹시

비뚤어진

規桀思考方法을

취하는

겸쨔이

있는데、

그 일레로 枝君의

粧字가

杻越의

樵字라는

데시、 佛典으로부

脫化한

한 證左인

것치럼 말하는

사람도 있옴니다。

그련데

만약에

佛典에

의해서

說話휼

꾸민다

고 한다엮、

佛典에는

祖說話로 하기에

그 밖에도 듣기

좋은

文字가

많이

있고、

世界

稅話의

本源地라

고 일컬어지

고 있는

印度이니

이야기의

줌거리도 더 홍륭한

것이

얼마든지

있으므로、 現在의

棺君古記

이상으로 옆마든지

銳話의

作成法이나

이롬짓는

法도 있었을

것입니다。 控越의

梗字돌

딴다는

촘처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입니다。 셜령

枚字룰

柾越에서

若想했

고 하더라도

,

거기에는

檀字를

빌어

오지

않으면

안될

본래의

約柬

2‘

朗佯의 固有信仰

있었다

고 하지

않으면

안될

것엡니다。

墻的으로 말해서、

그것은

ㄱ당굴」이란

原語가

있었기

메문엡니다。

비첫한

原形이

있는

이상

멋대로 이름을

붙일

수는

없었던

것임니다。

대체로 현존한

擅君古記

읽어

보면、

그것이

佛者에

의해서

採錄되었으면시도 티꼴만큼도 佛

典의

냄새가

없논

것이

오히려

奇怪하기

그지없을

지경입니다。 또 한

편으로는

柱君古記에

渶文式의

侈師셰

의한

技巧的

挺改가

加해져

않은

것도 현저한

특색의

하나인데、 이것은

渶文學者에게는

이른

怪力拉神의

이야기처럼

여겨짐으로써

거들며보지도 않은

데시

되었다

손치더라도、 우리들에게는

오히러

뜻밖의

多華이라

하겠음니

다。 지나치게

殘缺

疎略하긴

하더라도、 어쪘든

純眞

紊朴한

原型的인

것임온

한 청의

疑心의

여지도 없는

'

것이라

고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대체의

출거리는

日本의

古典에

의례

類橡、 관제를

찾을

수 있는

엡니다。 예컨태

어지러운

人間世界훌

건지려

고 天神이

ㄱㅗ 아들을

려보내는데、 거기에는

하늘의

무리들이

뒤따른다、 세

가지의

神器가

주어진다、 神捿磐境이

營爲된다、 保食中心의

神政이

행하여진다는

위가

완진히

符節을

맞추

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

것임니다。

또 杻君古記룰

文ㅄ學的으로 살펴

보더랴도、

,

一 句 각각에

확실

根披를

지니

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예컨태

天降하시는

분은

天神의

庶子라

고 되어

있는데、

庶子란

뜻온

檀君古記만으로써는

解揮할

수 없었움니다만

,

뒤에

가시

蒙古典을

조사하여

보니

,

억시

그와

같은

神話가 .

있는데、 더군다나

여기에는

十三번째의

아드님이라

고 되어

있움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庶子란

것은

우연한

文句

아니라

女온

이 母睡神話로부터의

尊윳한

傳承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全,國

史記)나 ^遺

專)가

전하고 있는

文句들은

아주

些少

文句일지라도 이에는

매우

중태하

고 도 深遠한

이유가

포합되어

것율

알 수 있기

메문에

,

결코 躁急히

소흘하게

단경을

내리는

삼가야

합 일임니다。

또 檀君古訌에는

神坦澍에

관해시

전하

고 있는데

.

이것이

오늘난

日本의

神道家에

의해서

神社

形態의

彼古的

一— 要件이라

해시

떠들어

고 있는

ㄱ히모로기

이와사캬」 바로 그것인

셈입니다。

胡鮮에시는

현재도 치방의

어느 都落에나

神木이

있고、

거기에는

形式만이라도

또는

神石이

놓여져

있고

,

해에

한 자례 또는

몇 차레씩

部落

祭가

行하여지

고 있는데、 傅統의

힝이

끈질긴

데는

매메로 늘라지

수 없읍니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보면、

ㄱ단군」이라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後代의

爲造、 外來의

偶像

둥이

아니라、 民俗的인

확실한

存在였다는

것은

코 의심할

수 없움니다。 설령

文ㅄ的으로 약하다

고 하더라도 오히려

民俗擧的으로 강한

것이

枉君의

神政임니다。

이것온

요컨태

古代에

있어서는

「부루」라든가

ㄱ불구내」 라

고 붙렀

는데、 이것은

어느 쪽이든

相閑

없움니다만、 어쨌든

홑륭한

信仰遯系

있었던

것이며、 이

祭祀를

管革하는

者가

ㄱ단군」이라고 하는

職務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은

명벡한

專寅엡니다。 이를

분명히

하기

혜시는

디 詳細한

설명올

필요로합니다만、 오늘은

그럴

겨를이

없음을

遺憾으로 셍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日本·

朝佯

·

袞古·東部아시아

둥에

공통하여

헹하여진

信仰文化에

있어서의

神格에

관한

일입니다。 이

信仰髓系

속에시도 가치각섹의

神이

있으

며、 多神的인

데서부터

일종의

汎神的인

경향을

나타내기에까지

이르

렀움니다。

위로는

天地의

主宰神으로부터

風雲雷電의

天換神이라든가、 山에는

山神、 내에는

川神、 물에는

水神이라고 하는

여러

가지의

神이

있었

움니다만、

그러나

차차

信仰이

발전하여

가면

自然힘

神에도 그럴듯

調整이

이루어겨

왔던

것입니다。 그리

고 그 중에시도 제일

⅜厘된

神이

둘이

있움니다。

즉 ,ㅗ

첫셰는

開發의

神이라고 도 말할

수 있는

것으로、

그 土地 ·

文化흘

開拓한

神、 즉

棨國의

神을

위시한

온갖

Page 7: Egloospds12.egloos.com/pds/200901/12/09/a0100509_496ab5d618532.pdf · 겨 k多牲 「½쓰컴 ξ 宗쩠·思想 24˚ 할 바 아 님 이 무룐 입 니 다 。 낙朝鮮 슷 물 이

宗枚 ·思想 2‘ B

化神이며、

그 둘쩨는

誣國의

神、

국가생팔에

身命을

바친

神입니

다。 自然神보다

人文神、

특히

국가

판제의

神格이

소충히

여겨지는

경향올

취하여

간 것이

현저한

특징입니다。 朝鮮에

있어서도 대체로

神이

소흘히

다루어지기

쉬우면서도、 이

두 神만은

坮絡

변함

없이

民의

η信을

모으 고 있는

형편얩니다。

仝,園

迪珥) 둥을

볼 ”然 같으면、

註國의

神이란

것이

매우

咸旁를

고 있고、 국민척

英雉인

어띤

王의

경우는

즉어서

註國의

題이

되기

盟苦한

에도 있움니다。 高麗朝에는

前期에

Ξ(大

師L、

後期에

崔瑩·

鄭麥周와

같은

國桂的

人物이

國民

崇敬의

최고 태상이

되었으며、

崔瑩과

같은

사람에

이르러서는

後世의

巫覡올

통하여

고금 최태

血祀를

받는

겅도에까지

이른

상태엡니다。 李朝에시는

六臣이라든

三秊士라든가

하는

것이

그것인데

,

南鮮의

沿岸地方에

있어시의

李舜臣의

神格視가

열마나

熾烈합을

다하

고 있는가는

오히려 想像

상의

것이

있는

것임니다。 李舜臣뿐만

야니라、 地方을

두루

다니면시

現地를

살펴보면、

모두

救國

護世의

사람들이었음을

붙 수 있음니다。

참깐

^東

國輿地勝鬼)올

펴 보더라도、

安映의

祭堂淵、

溫陽

·

燕山의

城隍祠、 康津、 莞島의

註園神祠와

같은

많은

실레가

눈에

띕니다。 또

巫覡

사이에

녈리

奉祀되는

代表神으로 Ξ(將

軍神L이

것이

있어시

,

金雲妾에게도 이에

태한

迎神送神之薛를

撰하여

文樂에

실려

있는

도인

데、

六將軍이라

고 하는

것은

역시

崔瑩

·

南怡

·

中砬 · 宋象賢

·

林皮紊

둥 軍國의

功勞者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歷史흘

통해시

山川의

神이

모셔지고 있는데、 都城

·

錤衝의

山들은

ㄱ護國의

神」이라

고 블리어、 한걸

높은

崇敬이

받쳐지

고 있는

형편입

니다。 알기

쉽게

말해서、 京城에도 白岳

· 南山 ·

駱山

등 모두

太祖王

초기에

이미

註國神으로 封해겨、

ㅁ末에

이로기까지

五○0년

변합

엾는

苦茁한

樹林으로 덮일

수 있었음도 이리한

神性에

의한

것이었

옴니다。 註國神이아말로 毋貝하다

고 하는

까닭임니다。

이와

같이

新羅 ·

高瀝

·

李糊률

통해서

새로이

神으로 된 깃은

포두

護國의

神이었으며、

그 밖의

神은

빌로 엾움니다。

그리고 또 이 閉阻

神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日本

神适와

萸際

職柑가

같다는

것은

주의하여야

첨잉니다。

그리

고 軸鮮에

있어시의

古神適와

日本에

있어시의

神道와의

내용이

일치한

첨에

대해석 詳細하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이는

시간을

요하기

때문에

이 깅도로 그치

고자

함니다。

그렇다면

오늘낭의

心田開發은

무엇으르부터

시착할

것인가。

心田

開發애

가창

필요한

것은

이를

받아들일

索地를

만드는

일이라

고 말

씀드렸는데、 씨를

뿌리는

일이나

肥料롤

주는

일은

오늘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메문에

오늘냘

내가

생각하

고 있는

의견과

내가

抵한

여러분의

의견파는

거기에

꽤 趣ㅁ가

다른

것이

있으며 페 距離

있는

깃임니다。 측

여리분의

의견과

같이 佛牧휼

어떻게

한다든가

儒致를

어떻게

한다든가

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며、

무레하

고 도 당돌

말임니다반、 佛敎를

어떵게

한다든가

儒敎를

어떻게

한다든지

것이

오놀날에

있어시의

朝鮮人의

心mⅢ

졌의

근본

문게가

된다는

것은

나는

若千

納得이

안가는

것멉니다。 요권테

먀옹이

거친어진、 바

꾸어

말해서

일종의

부량매를

어멓게

해서

게 겅신옵

차리게

하고 마

음의

彈機를

튀이오르도록

해 즐 수 있는가가

先決悶題인

것으로、 佛

敎를

어멓게

한다든가

橘牧를

어떻게

한다든가

하는

것과는

문제

다르다

고 생각합니다。 朝鮮人의

心m開

發이라

고 하는

것은

그 본

래의

精神을

불러

일으키

고 이에

活力을

갖게

해 주는

것이

眼∃임니

다。

오늘날까지의

朝鮮人은

자기

자신을

망착하

고、 佛敎가

盛行하면

그것에

끌려가

교、

儒敎가

興匯하면

그것에

치우쳐시、

언게나

스스르

비트척거리

고 있었던

것엡니다。

그래시

自己意請이

뚜렷하지가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메문에

오늘날

佛敎률

크게

일으키

고 여기처기

절간을

세워

봤자、 오늘날의

朝鮮人에게

이것이

枏神的으로 어띵

작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찰 쟁각해

보아

°ㅑ

문체익니다。

고상한

2¸ ̊ 柬方 古民族의 中理覩念어 對하여

牧理는

원래 大宋性이 없고、 비근한.형

식은

迷伍으로 바지기 쉬우며、

더군다나

오늘날의

僧侶에게는

많은

濟度機能을

기대할

수 없는

실청

엡니다。 巫覡을

迷信이라

혜서

배게하는

이유와

貸際로 矛盾된

방범이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원래 拂敎는

根枝룰

중히 여기고 衆生의 珹에

마라

八반

四천의

敎門이

있다고 하고、

函蓋相腫、 針芥相投룰

시끄럼

말하는

宗門입니다。

이러한

佛牧

自身의

牧理에서

보더라도、 막언한

佛法復興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요。 또 儡敎로 말하더라도 바챤가지로、 원래 階級性

이 질은

儡敎이긴

하지만

,

그것이:胡

鮮에 있어시는

더윽

그 性能이

발휘된

질검이어서、 安琪에

있어서

兩珏階級

·

特權階級이 구체화되었

것임니다。

더구나、 侈齊治平의 大理想은

兩珏階級에 있어시조차

멸다른

효과

나타내고 있지 않교、 이른바

儒依文化는

실은

庶民과는

沒交涉的

것、 메로는

對蹠的인

물체이기도 하였움니다。

伍敎

· 儲學이라고

하면

이런

것이라고 時旁가

경헤겨 있어、

그련

旣咸쪘念으로부터 벗

어난다는

것은 =僚

로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혹시

흄院올

활용한다

고 하면、 이른바

兩珏階級에게는

어떤

反嚮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

바도 일반

사람은

馬耳東風으로 흘려 듣고、

그 反時代的인

無意味性을

비웃올

것임니다。 푼게가

다른

것꽈는

달라서

心田의

그것입니다。 反

*과

感哲율

외면혜시

무슨

효과가

期待되갰움니까。 理論이야

어쩠든

ㅣ僚를

보라고 말하고 싶슴니다(原

文日文)。

^ ,

九三六年 =月

心田Ⅲ發= 円ㅈ

"=潢

)

Π

東方

古民族의

神聖觀念에

對하여

– 、 ξ

二、 古代民族파

長白山

三,

神걜搜念의

表象

四、 君土의

稱號에시

旁滾윤

본다

五、 太陽

崇拜와

光明

神覩

六、

不咸에서

白에의

悠統

七、 神山의

文化系列的

考察

八、 天

·

·

君土의

名琪的 - m

九,

一 、 導

報告의

제목은

ㄱ東方

古民族의

神猝斌念」으로 되어

있움니다바는、

이것은

보시는

바와

같이

東方이니 古民族이니

하는

것온

다 학문직

으로 극히

모호하

고도 疎鹵한

것으로서、

硏究晥에시의

보 고로시는

어멀까

생각되는

점도 있음니다。

그리나

오늘날에

있어시의

亞細亞、 톡히

”ㅗ 동북부

,

디우기

古代의

그것에

관한

人種후

또는

民族論이라는

것온、

아직

학문적인

겅확셩

지니기에

이르지

못했

고,

겅도의

차이는

있을망겅

어느 것이나

약간의

單語와

土俗을

싣바리로 하어

,

暗中模索을

弑岡하

고 있는

태에

지나지

아니하므로、 굳이

어색한

限定性을

붙여

보아아

결국

것이

아니

고、

또 이 渶題의

내용은

그것을

깊이

論雄합

궐요도 없으

므로、

그 .걱

도로 챰아

주셨으면

합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