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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대선에서 실리콘밸리는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면서 도널드 트럼프와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제 후폭풍을 걱정하고 있다. 그동안 실리콘밸리는 자유방임에 가까운 정책의 혜택을 입으면서 성장해왔다. 하지만 기나긴 단꿈에서 깨어나야 할 순간이 왔다. 박상현 메디아티 콘텐츠랩 장 트럼프 정권과 실리콘밸리의 미래 트럼프 시대가 시작된다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는 부동산 재벌이자 리얼리티쇼 스타인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끝났다. 초기의 충격파는 미 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지만, 그 파장의 규모(업계와 계 층에 따라서는 피해의 규모)가 얼마나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 는 상태다. 미국 언론이 트럼프 정권에서 나타날 변화와 문제에 관 해 이야기할 때는 항상 ‘선례가 없는(unprecedented)’이라 는 단어가 등장한다. 한 나라, 그것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에 호텔과 카지노 같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을 때, 그리고 자식들 을 통해 여전히 사업을 관리하고 있을 때 일어날 이해의 충돌 (conflict of interest)은, 그 규모와 해결책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학자와 기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트럼프가 사는 트럼프 타워는 당선자를 보호하기 위해 경 찰과 비밀 요원들이 철통 방어를 하고 있다. 트럼프 타워는 그 점을 이용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아파트”라는 광고로 입주 자를 모으면서 값이 치솟았다. 백악관 옆에 개장하는 트럼프 인 터내셔널 호텔은 트럼프에게 잘 보이고 싶은 외국 외교관들이 가장 즐겨 찾는 호텔이 될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수익을 올리는 것은 엄 연한 이해의 충돌이고 불법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가진 자산의 규모와 성격, 그리고 ‘트럼프’라는 브랜드의 특성상, 전임 대통 령들처럼 재산을 백지신탁(blind trust)에 위임하는 것도 불가 능에 가깝다. 실리콘밸리의 위기 이를 미국의 특정 산업으로 확장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전통적인 산업 영역에 속한 사업가인 트럼프가 자신의 이익 과 관련된, 자신에게 유리한 특정 산업군을 우대할 경우, 그리 고 그것이 자신의 ‘정책’일 뿐이라고 홍보할 경우에는 어떤 일 이벌어질것인가? 그런 문제는 이미, 그것도 이보다 극적이기는 힘든 방향 으로 일어났다. 바로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에 벌어진 일이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실리콘밸리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모든 것을 걸고 트럼프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했지만 (그 리고 그러는 와중에 트럼프의 미움을 샀지만) 클린턴은 패배 했다. 실리콘밸리는 이제 트럼프 정권하에서 미래를 걱정해 야하는상황이됐다. 그렇다면 실리콘밸리는 어쩌자고 클린턴에게 모든 것을 걸었을까? 이유는 단순하다. 트럼프가 가진 모든 것이 실리콘 밸리 테크 기업의 가치와 이익에 반하기 때문이다. 가령 트럼 프는 선거운동 내내 이민자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고 오히 려 부추겼으며, 백인우월주의자 단체나 극우 매체들과도 가 깝게 지냈다. 이는 고학력 외국인 노동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실리콘밸리의다원적문화및가치와동떨어져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테크 산업에 대한 트럼프의 몰이 해다. 트럼프는 국제 테러 단체인 IS가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다는 뉴스가 나오자 “빌 게이츠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을 끄는 (close that Internet up)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IT 대 통령’이라는 별명이 붙은 오바마가 실리콘밸리 기업과 기술 에 깊은 이해를 보이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심지어 오바 마는 퇴임 후에 실리콘밸리에서 벤처 투자자로 활동할 생각 까지 밝혔다.) 따라서 실리콘밸리가 오바마의 거의 모든 정책 을 그대로 계승하겠다고 선언한 클린턴을 지지한 건 지극히 당연한선택이었다. 실리콘밸리는 자신들의 선택을 기부금의 액수로 분명 하게 밝혔다. 정치 후원금을 추적하는 스타트업 크라우드팩 (Crowdpac)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선거가 막바지에 달한 시점에서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대선 후보에게 기부한 금액 810만 달러 중 95%인 770만 달러가 클린턴에게 갔다. 반면 트럼프에게는30만달러에도못미치는4%만돌아갔다. ‘네트’가 흔들린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실리콘밸리에 어떤 ‘보복’을 할 수 있을 까?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 건 오바마 정권이 연방통신위원회 (FCC)를 통해 보장한 망중립성(Net Neutrality) 원칙이다. 망중립성은 전통적인 통신업체, 혹은 망사업자들이 데이터 제한(Data Cap)이나 속도 조절(Throttling) 등의 방법으로 인터넷 기반 서비스를 차별하는 것을 막는다. 따라서 저가의 진보와부의상징실리콘밸리 48 49 2017 01 02 Focus In World View 1

트럼프 시대가 시작된다 - KOCCAsitehomebos.kocca.kr/k_content/vol22/vol22_11.pdf · 그렇다면 실리콘밸리를 향한 블루컬러 백인들의 반감은 정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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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대선에서 실리콘밸리는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면서 도널드 트럼프와 등을 돌렸다. 그리고 이제

후폭풍을 걱정하고 있다. 그동안 실리콘밸리는

자유방임에 가까운 정책의 혜택을 입으면서 성장해왔다.

하지만 기나긴 단꿈에서 깨어나야 할 순간이 왔다.

글박상현 메디아티콘텐츠랩장

트럼프 정권과 실리콘밸리의 미래

트럼프 시대가 시작된다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는 부동산 재벌이자 리얼리티쇼

스타인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끝났다. 초기의 충격파는 미

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지만, 그 파장의 규모(업계와 계

층에 따라서는 피해의 규모)가 얼마나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

는 상태다.

미국 언론이 트럼프 정권에서 나타날 변화와 문제에 관

해 이야기할 때는 항상 ‘선례가 없는(unprecedented)’이라

는 단어가 등장한다. 한 나라, 그것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에

호텔과 카지노 같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을 때, 그리고 자식들

을 통해 여전히 사업을 관리하고 있을 때 일어날 이해의 충돌

(conflict of interest)은, 그 규모와 해결책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이 학자와 기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트럼프가 사는 트럼프 타워는 당선자를 보호하기 위해 경

찰과 비밀 요원들이 철통 방어를 하고 있다. 트럼프 타워는 그

점을 이용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아파트”라는 광고로 입주

자를 모으면서 값이 치솟았다. 백악관 옆에 개장하는 트럼프 인

터내셔널 호텔은 트럼프에게 잘 보이고 싶은 외국 외교관들이

가장 즐겨 찾는 호텔이 될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수익을 올리는 것은 엄

연한 이해의 충돌이고 불법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가진 자산의

규모와 성격, 그리고 ‘트럼프’라는 브랜드의 특성상, 전임 대통

령들처럼 재산을 백지신탁(blind trust)에 위임하는 것도 불가

능에 가깝다.

실리콘밸리의 위기

이를미국의특정산업으로확장하면문제는더심각해진다.

전통적인산업영역에속한사업가인트럼프가자신의이익

과관련된,자신에게유리한특정산업군을우대할경우,그리

고그것이자신의‘정책’일뿐이라고홍보할경우에는어떤일

이벌어질것인가?

그런문제는이미,그것도이보다극적이기는힘든방향

으로일어났다.바로실리콘밸리의기업들에벌어진일이다.

간단하게요약하면이렇다.실리콘밸리는힐러리클린턴에게

모든것을걸고트럼프를저지하기위해총력을다했지만(그

리고그러는와중에트럼프의미움을샀지만)클린턴은패배

했다.실리콘밸리는이제트럼프정권하에서미래를걱정해

야하는상황이됐다.

그렇다면실리콘밸리는어쩌자고클린턴에게모든것을

걸었을까?이유는단순하다.트럼프가가진모든것이실리콘

밸리테크기업의가치와이익에반하기때문이다.가령트럼

프는선거운동내내이민자에대한반감을숨기지않고오히

려부추겼으며,백인우월주의자단체나극우매체들과도가

깝게지냈다.이는고학력외국인노동력이절실하게필요한

실리콘밸리의다원적문화및가치와동떨어져있다.

하지만더중요한것은테크산업에대한트럼프의몰이

해다.트럼프는국제테러단체인IS가소셜미디어를이용한

다는뉴스가나오자“빌게이츠의도움을받아인터넷을끄는

(closethatInternetup)것”이어떻겠냐고제안했다.‘IT대

통령’이라는별명이붙은오바마가실리콘밸리기업과기술

에깊은이해를보이는것과극명하게대비된다.(심지어오바

마는퇴임후에실리콘밸리에서벤처투자자로활동할생각

까지밝혔다.)따라서실리콘밸리가오바마의거의모든정책

을그대로계승하겠다고선언한클린턴을지지한건지극히

당연한선택이었다.

실리콘밸리는자신들의선택을기부금의액수로분명

하게밝혔다.정치후원금을추적하는스타트업크라우드팩

(Crowdpac)이발표한자료에따르면,선거가막바지에달한

시점에서실리콘밸리기업들이대선후보에게기부한금액

810만달러중95%인770만달러가클린턴에게갔다.반면

트럼프에게는30만달러에도못미치는4%만돌아갔다.

‘네트’가 흔들린다

그렇다면트럼프는실리콘밸리에어떤‘보복’을할수있을

까?초미의관심사가되는건오바마정권이연방통신위원회

(FCC)를통해보장한망중립성(NetNeutrality)원칙이다.

망중립성은전통적인통신업체,혹은망사업자들이데이터

제한(DataCap)이나속도조절(Throttling)등의방법으로

인터넷기반서비스를차별하는것을막는다.따라서저가의

진보와부의상징실리콘밸리

48 49

2017 01 02Focus In World View 1

Page 2: 트럼프 시대가 시작된다 - KOCCAsitehomebos.kocca.kr/k_content/vol22/vol22_11.pdf · 그렇다면 실리콘밸리를 향한 블루컬러 백인들의 반감은 정당할까?

들은제한된자원을기술과서비스의혁신에쓰기보다는망

사업자에게지불할것이다.따라서장기적으로혁신은줄어

들고,통신망의지대(Rent)를받는기업이우세한산업지형

을형성하게될것이다.

트럼프의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일원이고차기FCC

의장으로거론되는로슬린레이튼은“무료데이터프로그램

(제로레이팅)은광고주가구글이나페이스북등을거치지

않고소비자에게다가갈수있는제3의길을제공할것”이며,

“기존(인터넷서비스)업체들이받아온광고수익을다른회

사로옮겨서경쟁을발생시킬수있다”고주장해왔다.

민주당과 진보의 두 얼굴

트럼프의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는친(親)기업정책연구소

인미국기업연구소(AmericanEnterpriseInstitute)에서전

통적인기업집단의이익을대변해온레이튼같은인물,버라

이즌이나스프린트같은통신회사에서근무하거나로비스트

로활동해온인물들이포진해있다.그들이선보일인터넷정

책에서,또는그런정책을수행할FCC인선에서실리콘밸리

에유리한결정이날가능성은(적어도현재로서는)희박해

보인다.트럼프는캘리포니아혁신기업들의문화와거리가

멀고,그의지지자들은실리콘밸리를자신과가치가다른‘진

보적인부자들’로생각하기때문이다.

그렇다면실리콘밸리를향한블루컬러백인들의반감은

정당할까?이질문에대한대답은간단하지않다.그리고그

질문에대답하기위해서는실리콘밸리의기업가로서사실상

유일하게트럼프를공개지지해서화제를부른피터틸(베스

트셀러<제로투원>의저자)의주장을들어봐야한다.

틸은인터넷언론사가게이라는자신의성정체성을폭

로한이후,비슷한피해를겪은헐크호건의소송을지원하면

서인터넷황색언론과일대전쟁을치렀다.그런틸이트럼프

를공개지지함으로써트럼프는자신의약점,즉저학력남성

이주된지지층이라는약점을단번에만회했다.그대가로틸

은트럼프행정부IT정책의형성에서중요한역할을할것으

로예상된다.

틸은왜트럼프를지지했을까?“미국의리더십이실패

했기때문”이라는것이그의대답이다.그는미국정부가전

세계와무역협정을맺으면서모두가잘살수있는방법이라

고광고하지만,사실은소수에게만이익이돌아가는협정이

라고비판한다.그리고실리콘밸리기업들의성공역시(전통

기업보다고용이훨씬적은)소수테크기업의성공이마치미

국인모두의성공인것처럼보이게만든다고비판한다.

틸은실리콘밸리의성공공식을누구보다도잘아는사

람이다.그는페이팔의창립멤버중하나로큰돈을번후,페

이스북에초기투자를해서현재이사진에포함되어있다.화

제의기업팰런티어테크놀로지도설립했다.그런그가미국

의현대경제를“소수의성공과다수의실패”라는틀로인식

하는것은트럼프가지지자들에게강조한내용과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는미국의진보진영도인정하는내용이다.다만진보

진영은월마트처럼전통적인산업에속하는대기업은집중적

으로공격하면서도혁신을통해성장한캘리포니아테크기

업에는관대하다.틸은진보진영의그러한이중성을공격하

면서트럼프를지지하는것이다.

이제 단잠에서 깨어날 때

이와관련해진보적인성향의월간지<애틀랜틱>은트럼프당

선후실리콘밸리가트럼프를배척해서는안될이유를흥미

로운시각으로전달해서주목받았다.

<애틀랜틱>에의하면,1990년대빌클린턴이후민주

당출신대통령들은실리콘밸리에서만큼은사실상공화당의

초고속인터넷이필수사업기반인대다수실리콘밸리기업

이중요하게생각하는원칙이다.

실리콘밸리는2008년대선에서모바일경제의전도사

처럼보였던오바마를전폭적으로지지했고,오바마는당선

후망중립성의원칙을지키는결정을이끌어냄으로써이에

보답했다.물론오바마와실리콘밸리의관계를이익집단과

정권의관계로만이해하는사람은많지않다.오바마는테크

산업의성장만이미국경제가세계화의흐름속에서살아남

는방법이라는신념을정책기조로삼았기때문이다.문제는

1946년생으로올해70세가된트럼프의테크산업에대한

전반적인이해의수준이다.트럼프는첨단테크산업을전통

적인제조업이나(자신이익숙한)미디어산업의시각으로보

는경향이있다.실리콘밸리가트럼프정권하에서일어날정

책변화를두려워하는이유가바로거기에있다.

소위‘제로레이팅(Zero-rating)’이그런변화를예고하

는대표적인경우다.제로레이팅이란인터넷서비스업체A

사로부터돈을받는망사업자가사용자의데이터사용량에서

A사의스트리밍서비스는제외해주는것이다.이미일부업

체가이를실행하고있다.

B사의서비스가우수하고양질이라고해도사용자는당

장데이터,즉돈걱정을할필요가없는A사의서비스를이용

하게된다.이런현상이보편화하면서비스를제공하는업체

경제정책에가까운자유방임(Laissez-faire)정책을펼쳐왔

다.클린턴은집권하자마자불황극복의방법으로실리콘밸

리기업들을성장시키고자했고,인터넷상거래에세금을부

과하지않는등기존산업과차별화된혜택을주었다.그런

정책을통해오프라인마켓이온라인으로넘어가는혁명이

일어났다.물론마이크로소프트의독점규제에대한법원의

중요한판결이두차례있었지만,전반적으로자유주의를유

지했다.

닷컴버블이무너진직후등장한부시정권도별다른변

화없이클린턴의정책을유지했다.그러면서미국의인터넷

인프라가어느정도완성됐고,오바마행정부가들어섰을때

는닷컴붕괴의흔적을완전히지우면서모바일경제가활황

을맞았다.오바마가전임대통령들보다훨씬강력한테크기

업의치어리더가되면서미국행정부의실리콘밸리자유방

임은사실상한번도멈춘적이없다.

그런혜택을고스란히받은피터틸이미국정책이나실

리콘밸리를비판하는건다소엉뚱한느낌이들기는한다.하

지만테크기업성장의혜택이소수에게만돌아간것은사실

이고,그런사실을바탕으로실리콘밸리를향한분노를이끌

어낸트럼프의전략은효과적이었다.

당장은트럼프정권의IT정책이인터넷기반실리콘밸리

기업들에어느정도불리한방향으로작용할것으로보인다.

<제로투원>에서‘창조적독점(CreativeMonopoly)’이라는

표현으로독점의필요성을인정한틸이큰틀에서실리콘밸

리의성장을막는정책을제안할것같지는않다.다만지금까

지실리콘밸리가받아온특별대우가똑같이계속되지는않

을것이다.그리고대선기간중에실리콘밸리의비판을한몸

에받은틸이미국테크기업들과트럼프를연결하는유일한

다리로막강한영향력을가지게될것은두말할나위없다.

F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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