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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매체 변화와 의사소통 3 특집. 매체 변화와 의사소통 누리소통망 서비스 확산과 소통 문화의 변화 임영호 부산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1. 서론 아무리 시류에 둔감하다 해도 요새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 스마트폰은 길 찾기 , 식당 예약 , 업무 연락 , 온라인 장보 기 등 우리 일상의 거의 모든 부분에 활용되고 있다 . 인터넷이 본격적 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게 불과 10여 년 전인데 , 이제는 인터넷이 미치 지 못하는 시간과 장소까지 스마트폰이 파고들어 삶의 영역을 촘촘하 게 이어 주는 온라인망을 이루고 있다 . 이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소통 하는 방식 (커뮤니케이션 )이나 공동체에 참여하는 방식도 빠르게 바뀌 어 가고 있다 . 지하철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대학생은 물론이고 어린아 , 나이 지긋한 노년층까지도 심심찮게 카카오톡 에 열중하고 있다 . 주기적으로 동창회나 계모임을 마련하는 대신에 페이스북이나 카카오 스토리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이도 적지 않다 . 이처럼 새로운 유행 덕분에 생활 방식이나 인간관계가 더 편해졌 다는 사람도 있지만 , 그 삭막함에 몸서리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 인터

누리소통망 서비스 확산과 소통 문화의 변화4 새국어생활 제23권 제1호(2013년 봄) 넷이나 누리소통망 서비스(sns)라는 새로운 기술이 가져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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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매체 변화와 의사소통 3

특집. 매체 변화와 의사소통

누리소통망 서비스 확산과 소통 문화의 변화

임영호 부산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1. 서론

아무리 시류에 둔감하다 해도 요새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스마트폰은 길 찾기, 식당 예약, 업무 연락, 온라인 장보

기 등 우리 일상의 거의 모든 부분에 활용되고 있다. 인터넷이 본격적

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게 불과 10여 년 전인데, 이제는 인터넷이 미치

지 못하는 시간과 장소까지 스마트폰이 파고들어 삶의 영역을 촘촘하

게 이어 주는 온라인망을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소통

하는 방식(커뮤니케이션)이나 공동체에 참여하는 방식도 빠르게 바뀌

어 가고 있다. 지하철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대학생은 물론이고 어린아

이, 나이 지긋한 노년층까지도 심심찮게 ‘카카오톡’에 열중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동창회나 계모임을 마련하는 대신에 페이스북이나 카카오

스토리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이도 적지 않다.

이처럼 새로운 유행 덕분에 생활 방식이나 인간관계가 더 편해졌

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삭막함에 몸서리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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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새국어생활 제23권 제1호(2013년 봄)

넷이나 누리소통망 서비스(SNS)라는 새로운 기술이 가져온 소통 문화

는 이처럼 예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다. 그런데 최근 특히 화제가

되고 있는 누리소통망 서비스는 과연 사람들의 소통 방식과 공동체 참

여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 놓고 있을까? 이 글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 대

한 탐색이다.

엄격히 말해 누리소통망 서비스라는 소통 방식에서 나타나는 특징

들은 누리소통망 서비스의 기술적 속성에서만 유래한 것은 아니다. 누

리소통망 서비스나 온라인 통신망은 여러 가지 잠재적 기능을 가능하

게 해 주는 기술적 바탕일 뿐, 누리소통망 서비스라는 ‘새로운’ 소통 방

식의 특성은 사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라는 기술적 잠재력에 여러 요

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형성된 한국적 현상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한국에서는 초고속 통신망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구축되었고 인터넷 이용이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

었는데, 이때의 집중적 경험이 없었다면 누리소통망 서비스는 지금 우

리가 보는 대로 그렇게 확산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 사회 특유의 환

경, 가령 1990년대 이후 한국형 포털의 토론 문화라든지, 짧은 정치 민

주화 이후 사회 집단 간 갈등의 표출과 격화, 아이엠에프(IMF) 경제 위

기 이후 심화된 계층 갈등, 한국 사회 특유의 연고주의, 집단주의나 배

타적 민족주의 등의 문화적 토양 역시 누리소통망 서비스에서 독특한

소통 문화를 형성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누리소통망

서비스의 소통 문화는 바로 이 모든 유산들이 작용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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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소통의 진화와 융합: 누리소통망 서비스는 과연 새로운

소통 방식을 가져왔나?

20세기는 신문과 텔레비전을 주역으로 하는 대중 매체의 시대였

다. 대중 매체는 사람들에게 정보와 오락거리를 제공했고, 사람들은 이

를 수동적으로 소비하였다. 정보는 주변의 인맥을 통해서도 비공식적

으로 얻을 수 있지만, 대중 매체가 지니는 이름값과 권위, 편의성 때문

에 사람들은 거기서 제공한 정보를 더 신뢰하였다. 이와 달리 사람들

간의 일대일 접촉은 기능적인 의사소통도 중요하지만 대인 관계를 형

성·유지·관리하는 데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물론 양자가 엄격히 분

리되지는 않지만, 대체로 매스 커뮤니케이션은 특히 정보의 대량 전달

과 전파가, 대인 커뮤니케이션은 관계 형성과 유지가 중심이 되는 분업

구조가 지금까지 우리가 보던 소통 방식의 특징이었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누리소통망 서비스는

과거의 이원화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뛰어넘어 매우 독특하고 새로운

소통 방식을 가져온 듯하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누리소통망 서비스

에 대해 ‘새로운’ 소통 문화의 탄생이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들

여다보면 여기서 우리는 이전에 흔히 접하던 소통 방식의 흔적들을 쉽

게 발견할 수 있다. 트위터로 뉴스가 전파되는 모습은 과거 방송의 전

파력을 연상시키고, 페이스북에서 친구들과 교류하다 보면 이전에 다

방이나 동창회에서 나누던 대화를 떠올리게 된다. 다만 과거 대중 매체

시절에는 정보 전달과 대인 관계, 생산자와 소비자, 정보와 오락 등의

기능적 구분이 거의 상식처럼 여겨졌지만, 누리소통망 서비스에서는

이 구분이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전의 소통 채널에 비해 누리소통망 서비스는 훨씬 다양한 기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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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게 해 준다. 누리소통망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은

외국의 전문 잡지나 신문에서 찾은 흥미로운 기사를 서로 돌려 읽고, 나

름대로 의견을 붙이며, 지인에게 안부를 묻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기사

내용을 수동적으로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이와 관련된, 혹은 그 주장을 반

박하는 추가 정보를 올려 격렬한 토론을 유도하기도 한다. 나아가 누리

소통망 서비스에서는 정보가 단순히 인지 차원의 ‘콘텐츠’에 그치지 않

는다. 누리소통망 서비스는 같은 내용이라도 풍자 ‧ 희화적 요소를 가미

해 재미있는 말을 만들어 내는 언어유희를 통해 서로 즐거워하는 오락

의 장이기도 하다.

즉, 대중 매체의 시대에는 서로 엄격히 분리되어 있던 사회적 기능

들이 누리소통망 서비스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때로는 서로 융합된

형태로 전개된다. 과거 어느 휴대 전화 회사 광고에서 ‘토크, 플레이, 러

브’라는 문안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이는 누리소통망 서비스 소통 문화

의 특징을 잘 요약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누리소통망 서비

스식 소통 문화는 새롭다면 새롭고, 또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누리소통망 서비스가 과거의 소통 방식이 진화 ‧ 융합해 재구성, 재

창조된 것임은 누리소통망 서비스 안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누리소통망 서비스는 소통 기능 측면에서 크게 관계 지향형 누리소통

망 서비스와 정보 지향형 누리소통망 서비스로 대별할 수 있는데, 페이

스북이 관계 지향형이라면 트위터는 정보 지향적 성격이 좀 더 강하다.

즉, 페이스북은 소통에서 관계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대인 채널

에 가깝고, 트위터는 페이스북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계에서 익명성이

강하고 정보 확산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과거의 매스 미디어와 닮은

데가 많다.

페이스북은 주로 ‘아는’ 사람들로 관계망이 형성된다. 따라서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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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에서도 사실은 서로 존재를 확인하고 관계를

돈독히 하는 부수적 역할이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반면

에 트위터는 소수의 유력 트위터리안이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는 수

직적 구조로 되어 있다. 물론 이들 사이에는 공통된 정치 성향이나 취

향, 관심사라는 연결 고리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나를 따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모르기 쉽다. 나와 친구 관계를 맺고 있는 사

람은 다시 나의 트위터 연결망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다 내 글을 퍼뜨릴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는 과거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소식이

퍼져 나가던 유언비어 확산 구조와 매우 흡사하면서도, 마치 방송 매체

처럼 엄청난 확산력도 지녔다.

이 두 누리소통망 서비스 유형이 공통적으로 과거의 대인 채널과

매스 커뮤니케이션과 다른 점도 있다. 무엇보다 소통에 참여하는 ‘송신

자’와 ‘수신자’의 역할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전에는 매

스 미디어가 중심을 차지하고 여기서 정보가 넓게 확산되어 갔다면, 누

리소통망 서비스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방대한 인맥과 소통망이 구축

된다는 점이 다르다. 나는 내가 맺은 넓은 관계망에서 수많은 정보를

얻는 한 명의 수동적인 소비자에 불과하지만, 동시에 나는 주도적으로

정보를 선별해서 읽고 퍼뜨리며, 때로는 독자적으로 새로운 의제를 만

들 수도 있고 나의 의견을 보태 집단적 여론 형성 과정에 참여하는 적극

적인 생산자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시공을 뛰어넘어 온라인망으로

모두 하나로 엮여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개개인의 특수한 상황

에 맞춰 개별화된 독특한 다원적 소통 구조가 등장한 셈인데, 이 추세에

대해 웰먼(Wellman)이란 사람은 ‘네트워트형 개인주의(networked

individualism)’의 시대라 이름 붙였다. 말하자면 이제 누리소통망 서비

스라는 끊임없이 뻗어 있는 정보 관계망의 세계에서 중심은 바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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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다. 단지 나 외에도 세상의 중심이 무수히 많아 그 누구도 과거

의 막강한 언론 매체처럼 이 소통망을 지배하거나 좌지우지하기 어렵

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3. 누리소통망 서비스형 소통 방식의 특징

3.1. ‘팩트’와 근거가 실종된 소통

누리소통망 서비스로 연결된 세상에서 소통은 삶의 영역에서 일부

를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 시대 흐름을 대표하는 핵심 단어로 떠

오르고 있다. 그렇지만 소통이란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복합적인 개념이다. 특정한 목적을 갖고 남을 설득하는 도구적 행

위도 소통이고, 서로 웃으면서 따뜻한 느낌과 교감을 나누는 호혜적인

행위도 소통이다. 설득 행위의 전략에서도 그리스 수사학자들의 용어

를 빌리면 논리와 근거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고(로고스, logos), 주로

듣는 이의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도 있으며(파토스, pathos), 말하는 이

의 권위와 이름값으로 승부할 수도 있다(에토스, ethos). 누리소통망

서비스식 소통 방식이 엄청나게 빠르고 광범위하게 사람들의 일상에

파고든 덕분에, 이 방식의 장점과 단점 역시 이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파급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여러 학자들은 누리소통망 서비스식 소

통 방식의 특징과 장단점을 따져 보면서,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정치 풍토

나 소통 문화에 미칠 영향에 우려와 기대 섞인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우선 누리소통망 서비스에서는 참여자 간에 소통의 장벽과 문턱이

사라졌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장점은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과

거 대중 매체가 정보와 의견 전달에서 독점적 지배를 유지할 수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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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는 바로 이들이 사회 각 영역의 정보에 가장 깊고 체계적으로 접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의 참여가 주도하는 누리소통망 서

비스라는 새로운 소통 공간에서는 대화의 기반이 되어야 할 사실, 즉 팩

트가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무엇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사안

에서 진실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다. 지금

까지 정치 과정에서 논쟁은 언론이 제공한 보도를 토대로 했는데, 비록

해석이나 입장 차이는 다르더라도 이 내용이 어느 정도 ‘팩트’에 근거하

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언론이 기사 작성에서 사실 판단을 내릴 때

에는 공식적인 취재원(정부 기관이나 전문가)에 거듭 확인을 거치고,

이 취재원의 권위에 근거해 수용자들은 이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었

던 것이다.

하지만 누리소통망 서비스를 통해 뉴스가 퍼져 나갈 때에는 사안

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팩트가 일면적이고 불완전하거나 심지

어 부정확할 때도 많다. 원래 여론 형성은 어떤 사안에서 어떤 측면을

강조하는지에 따라서 전개 방향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그나마 사실의

근거조차 불확실할 때에는 여론의 흐름이 어처구니없는 쪽으로 왜곡되

기 쉽다. 특히 어떤 누리소통망 서비스에서 유통되는 뉴스가 특정인의

일방적인 주장에 근거한 것일 때에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물론 뉴스

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사실이 보완 ‧ 수정되면서 여론이 균형을 잡아

가는 긍정적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쪽으로 악화되는 사

례도 적지 않다.

2012년에 인터넷과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채선당 폭행녀’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즉, 종업원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임산부의 일방적인

주장에 자극을 받은 대중에 의해 해당 식당에 무차별적인 공격이 가해

졌다가 이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난 후에는 다시 화살이 임산부에게 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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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가학적인 마녀사냥이 이뤄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론 확산에

서 사실의 근거가 빈약한 와중에 사람들은 주로 ‘피해자’의 일방적인 주

장을 판단 근거로 삼았을 수밖에 없었으며, 임산부는 약자라는 고정관

념이 그 판단을 거의 사실처럼 굳게 믿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3.2. 소통의 감성화

또한 누리소통망 서비스를 통한 여론 형성 과정에서는 논리와 사

실 근거를 갖춘 주장보다는 대중의 감성과 공감에 호소하는 주장이 더

파급력이 커졌다. 즉, 수사학자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로고스’보다는

‘파토스’가 누리소통망 서비스의 소통에서 지배적인 언어 구사 방식이

자 설득 원리로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누리소통망 서비스에서 사람들이 주로 화제로 삼는 것은 자신과

관련성이 높다고 판단한 사안이거나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 수준에서

이해하기 쉬운 주제들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할 때뿐 아니라 언론

에 보도된 기사를 공유할 때도 비슷한 판단이 선별 과정에 작용한다.

언론에서 크게 보도하고 중요하게 다뤄지는 기사가 아니라, 자신의 잣

대나 성향에 맞는 ‘개인화’한 메시지, 아니면 흥미로운 화젯거리로 삼을

만한 것만 선택한다. 이는 과거 대중 매체가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기사

뿐 아니라 전문가가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판단한 주제를

균형 있게 다룬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이렇게 해서 누리소통망 서비스

를 통한 소통에서는 한편으로는 다양한 정보가 주체 못할 정도로 넘쳐

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보고 싶은 사안과 관심 있는 측면만 편식하

는 집단적 편향성이 발생한다.

특정 사안에 접근하는 태도에서도 이전의 언론과 큰 차이가 있다.

논리적 근거 제시를 통한 설득보다는 감정 이입과 공감에 의존할 때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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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은 더 쉽게 동조하고 관심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누리소통

망 서비스에서는 화젯거리를 선택할 때뿐 아니라 다루는 방식에서도

희로애락의 감정 표출이 소통 언어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사람들이 훨씬 쉽게 반응을 보이고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통 구조가 단순화되는 데에는 누리소통망 서비스에서 사용

가능한 언어에 제약이 많다는 점도 원인이 된다. 특히 트위터에서는

140자 이내로 글을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논리적 글쓰기가 어렵다. 누

리소통망 서비스의 언어로는 산문보다는 시가 적합하고, 함축적이고

정감 있는 글이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메시지의 홍수 속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는 좀 더 쉬우면서도 자극적이고 효과적인 언어 구

사가 필요하다.

감성화한 소통에서 가장 흔한 사례는 앞서 언급한 ‘채선당’ 사건이

나 ‘개똥녀’ 사건에서처럼 대개 사람들의 공분을 자아낼 만한 행위를 한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분노가 형성되고 이러한 감정이 전염성을 지니

면서 퍼져 나가 집단적으로 표출되는 형태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여

론의 집단적 영향력을 통해 사회악을 단기간에 의제화하고 해결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이성보다는 감정, 특히 집단적 분노에 의존한다

는 점에서 상당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특히 이처럼 감성화한 여론 형성

과정은 복잡한 세상 문제를 합리적 토론의 장으로 끌어내 다각적으로

조명하기보다는 가해자(강자)와 피해자(약자)라는 이분법적 선악 구도

로 단순화해서 보고, 선입관에 맞는 부분만 보려는 선택적 지각에 의존

하며, 집단 내 사고의 동질화와 극단화로 흐르기 쉽다는 등의 특징 때문

에 우려할 만한 점이 많다. 특히 이 과정은 ‘개똥녀’, ‘지하철 패륜녀’ 등

의 여성으로 의인화한 형태로 구성되면서, 여성을 비이성적이고 도덕적

타락의 가능성이 높은 존재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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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감정 중심의 소통은 평범한 시민들을 사회적 의제에 참여시

키고 대중의 힘을 발휘하게 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긴 하나, 이는 모든

사안에 적용될 수 없다. 모든 쟁점을 옳고 그름이나 선악 구도로 재단

할 수도 없다. 분노, 감동과 공감을 동원할 수 있는 주제는 제한적일 뿐

아니라, 때로는 어떤 복합적인 사안에 대해서 관심 유도가 쉬운 방식으

로 접근하다보면 사안의 성격을 왜곡 ‧ 과장 ‧ 단순화하게 될 우려도 발

생한다. 여론 형성 과정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어떤 공적 문제를 도덕

적 틀에 따라 구성하게 되면, 토론 과정에서도 다수 의견 외에는 대다수

가 침묵하는 바람에 다양한 의견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의제가 도덕

적 틀에 따라 설정되면 그 안에서는 윤리적으로 옳거나 그른 선택 문제

만 남지 새로운 틀에서 문제에 접근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소통의

감성화는 여론 형성의 흐름을 바람직하지 못한 엉뚱한 방향으로 비틀

어 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4. 공동체의 확대와 파편화

누리소통망 서비스는 사람들 사이를 매개하는 매체의 기술적, 공

간적, 경제적 장벽을 허물어 버리고 사람들이 직접 ‘대면’하게 해 준다

는 점에서 과거의 어떤 매체보다도 혁신적인 소통의 기술이다. 그런데

이처럼 입체적이고 사통팔달인 소통망은 자세히 보면 이 구성원들 간

의 ‘관계’라는 결을 따라서 뻗어 있다. 원래는 어디 있는 그 누구든 나와

소통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실제로는 나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사

람들끼리만 소통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것이 좁게는 취미 동호회든, 정

치 결사체이든, 넓게는 지역 사회이든 이렇게 나와 느슨하게 때로는 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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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매체 변화와 의사소통 13

끈하게 맺어진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일찍이 베니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은 민족과 민족주의

의 등장 과정을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라는 용어로

설명했다. 민족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의 특성이 실제로 동질적인지와

무관하게 어떤 매체(18세기에는 신문)가 공동체를 특정한 방식으로 재

현하고 관련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 간에 소속감

과 일체감이 형성되었는데, 그 결과로 민족이라는 의식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21세기에는 넓게는 인터넷을 비롯한 온라인, 좁게

는 누리소통망 서비스를 통해 서로 소통하면서 형성되는 상상의 공동

체를 그려 볼 수 있다. 지식인들은 새로운 기술의 잠재력 덕분에 이전

과 달리 경계나 영토, 구심점 등의 제약 없이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대화

하고 공감하면서 서로 일체감을 형성해 가는 열린 공동체의 가능성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누리소통망 서비스의 이러한 기술적 잠재력이 실현되는 데

장애 요인들은 여전히 작용하고 있으며 이미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이 상상의 공동체에는 과거 현실 세계의 여러 가지 사회적 결(젠

더, 계층, 언어 차이 등)이 배어들면서 자유로운 소통 공간에 폐쇄적인

칸막이와 균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일부 조사에 따르면 누리소통망 서

비스에서 맺은 인맥의 범위와 활동량은 오프라인 세계의 사회적 지위

(교육 수준, 경제적 수준, 직업 등)와 접한 관련이 있으며, 예상과 달

리 누리소통망 서비스의 인맥이 오프라인에 비해 그리 넓지 않은 것으

로 나타났다.

심지어 누리소통망 서비스 활동량에서도 맬컴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말하는 ‘소수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 즉, 여기서도 주도

적으로 활동하면서 글을 남기는 사람은 소수이며, 대다수는 수동적인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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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새국어생활 제23권 제1호(2013년 봄)

비자나 구경꾼으로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발언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

어지지만 실제로 발언할 능력을 갖춘 사람은 소수에 불과한 탓에 몇몇 사

람만 트위터의 잠재력을 활용하고 있다. 트위터에서도 추종자 수가 많은

사람은 주로 공인이나 명사(名士)들이며, 이들은 현실 세계에서 누리던

권력을 여기서도 재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소수의 명사를 대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친 감을 느끼고 한 방향으로만 소통이

이루어지는 왜곡된 ‘의사상호 작용(para-social)’이 흔히 발생하고 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사람들이 사회적 배경이든 관심사든 공통점을

중심으로 소통 공동체를 형성하기 때문에 집단 내부적으로는 매우 동

질적이나, 집단 간에는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분절화가 나타

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온라인을 통해 이어지는 거대한 가상

공동체가 아니라 사회적 경계를 따라 파편화된 수많은 폐쇄적 소집단

들만 남을 수도 있다. 소통이 넘쳐나지만 정작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

역설적 현상이 생겨나는 셈이다. 이는 과거 인터넷 토론방이 처음 등장

했을 때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 간의 대화가 활성화되고 민주적인

의견 수렴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다수 의견의 폭력과 소수의

침묵이라는 부작용이 나타난 것에 비견할 만한 현상이다.

마지막으로 좀 더 미시적인 수준에서 보면, 누리소통망 서비스는

개개인들의 소통 방식에서 극단적인 양상을 동시에 낳을 수도 있다. 한

편으로는 자유롭게 정보를 교환하고 대화를 주고받는 열린 대화의 장

이 조성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소통과 담을 쌓고 지내는 외

톨이 문화를 조장하기도 한다. 누리소통망 서비스에서 정보와 소통이

너무 넘쳐나기 때문에 오히려 정보 빈곤과 소통의 단절이 발생하게 된

셈이다. 던바(Dunbar)라는 사람의 연구에 따르면 한 개인이 유지할 수

있는 관계망은 150명이 한계치로 그 이상은 유지 ‧ 관리하기 어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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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매체 변화와 의사소통 15

한다. 인간의 인지 능력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수시로 올라오는 글에 반응하고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울 수 있다. 끊임없이

웃음 지으며 자기감정을 억제하고 위장해야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처

럼,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노출되는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

해 어쩔 수 없이 가식적 소통을 지속해야 한다고 느끼게 된다. 누리소

통망 서비스에 무심코 남긴 글 한 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이

미지에 악영향을 미치고 미래에 족쇄로 변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

에 소통의 피로감은 더 심해진다. 실제로 요즘 어떤 기업에서는 채용

대상자들의 누리소통망 서비스 활동 기록을 들여다보면서 개인의 과거

행적을 낱낱이 추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누리소통망 서비스에서 소통은 지인과 만나 가볍게

대화하면서 피로를 푸는 휴식 행위가 아니라 타인에게 비쳐지는 자신

의 모습을 효율적이고 전략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 변하

게 된다. 이러다 보니 사람에 따라서는 이러한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예 소통을 단절하고 외톨이로 살아가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이

중 어느 쪽이든 공동체 전체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누리소통망

서비스가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5. 맺음말

누리소통망 서비스는 사회를 움직이는 주도 세력의 위치에 대중을

올려놓았고, 이제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변화시키지 못하면 정치

도 기업 활동도 개인의 경력 관리도 쉽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대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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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새국어생활 제23권 제1호(2013년 봄)

의견과 참여가 주도하는 환경에서 사회 변화 방향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누리소통망 서비스가 가져온 변화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러한 무지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

오늘날 인문학이든 사회 과학이든 학자들은 과거의 지식인처럼 시

대를 꿰뚫어보고 진단하는 통찰력을 잃고 미시적이고 경험적인 자료에

만 매몰되는 전문가로 전락해 가는 경향이 있다. 경험적 지식이 오래

축적되면 이를 근거로 좀 더 세상을 넓고 체계적으로 보는 안목이 생길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회 과학자들이 사회 현상의 조그

만 부분을 들여다보면서 연구에 몰두하는 순간에도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어 어제의 지식은 쉽게 무용지물로 변하고 있다. 지금처럼

변화와 속도,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환경에서는 전문가뿐 아니라 개인

이든 조직이든 변화를 일상생활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고 늘 새로운 환

경에 대비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누리소통망 서비스처럼 다수가

주도하는 불확실한 소통 문화는 바로 그 일상사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이미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로 누리소통망 서비스를 통해 전개되는 변화에

서 부정적인 측면을 위주로 살펴보았다. 아직까지 누리소통망 서비스

에는 사람들의 막연한 환상, 기대감이 투영되어 과도하게 낙관적인 예

측이 넘쳐나고 있어 이러한 불균형을 나름대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고 느꼈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은 여러 방향으로 변화를 유도하는 잠재

력을 풍부하게 갖고 있으며, 실제 변화의 방향은 그러한 잠재력에서 좋

은 쪽보다는 부정적인 쪽으로 흘러가는 사례가 많다. 기술 발전에 의해

유발되는 변화란 실험실 속의 과학자가 구상한 논리적 가능성보다는

그 잠재력을 수용하는 사회의 토양에 의해 선별, 변질, 변형, 절충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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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매체 변화와 의사소통 17

을 거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리소통망 서비스가 가져오는 새로운 소

통 방식에서는 누리소통망 서비스라는 기술적 도구의 잠재력이 구현되

는 과정뿐 아니라 우리가 거쳐 온 과거의 정치 풍토, 미디어 관습, 사회

적 관행의 흔적을 읽어 낼 수가 있다.

현재 누리소통망 서비스에서 유행하는 소통 관습에서 우리는 누리

소통망 서비스의 문제점과 가능성뿐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방식 중에서 좋은 전통과 고질적 문제점을 모두 성찰하며 새로운 관습

과 전통을 만들어 내는 계기를 찾아야 한다. 페이스북에서 드러나는 소

통의 편향성은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전통인 내부 순혈주의가 새로운

기술적 환경에서 약간 변형된 형태로 나타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누리소통망 서비스라는 새로운 소통 기술의 등장은 단지 기술이 가져

오는 새로운 가능성의 축복에 그치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우리 자신에

게 너무나 친숙해 문제점을 잘 인식하지 못했던 문화적 토양을 분갈이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