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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m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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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enlink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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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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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ing

생생한 시각

민우스케치

민우칼럼 창

人터뷰

기획

독자평가

문화산책

모람풍경

마포나루에서

나의 삶 나의 이야기

9개의 시선

지부소식

민우알림

˙공동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서는 법

˙여성주의 고전읽기 강좌 ‘나를 매혹시킨 여성학자’

˙‘좋은 일터’를 제공하는 ‘참 좋은 식당’을 만들자

˙디지털 수신환경 점검을 하러 남도에 가다

˙이토록 피임이 어려워지는 순간

˙왜, 지금, 누구를 위한 피임약 재분류인가?

˙경구피임약의 전문의약품 전환, 어떻게 보아야 할까?

˙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 이야기의 시작은, 우연히

˙그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 누구로 기억할 것인가, 누구와 기억할 것인가

˙ 점이 아닌 선, 에피소드가 아닌 역사

˙ 과거에서 미래로 - snapshot

˙ “함여 어땠어?”

˙ 넝쿨당에서 ‘나’는 누구?

˙ 개봉박두 슈퍼스타 M & 여백

˙ 9년 만의 전업주부 탈출기

˙ 모두 함께 행복하기

˙ 우리 사회는 다문화 사회입니까?

www.womenlin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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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가는 여성’의 필자명은 실명과 필명을 함께 씁니다. (단, 필명만 있는 것은 필자의 요청에 의한 것입니다.)

발행처 한국여성민우회 발행인 김인숙 박봉정숙 편집인 주현정 발행일 2012년 7월 31일 통권 210호 편집위원 강나영 강선미 김현진 노재윤 문지은 배범호 오영식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249-10 시민공간 나루 3층 전화 02.737.5763 전송 02.736.5766 이메일 [email protected] 디자인 문화지형연구소 C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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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ing

이 글의 제목은 상담소에서 진행하는 사업의 이름이다. 총회 자

료집을 꼼꼼히 봤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사업의 정체를 알기

는 어려울 거다. 홈페이지와 블로그에 이름 한번 올려보지 못한 사

업. 7월이 되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이제야 겨우 소

식을 알린다. 극비리로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었냐고 묻는다면 민망

할 뿐. 중구난방 아이디어로만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이제야 겨우

1차 작업의 결과물을 손에 쥐었다. 더운 여름 자꾸만 멀리 떠나려

는 멘탈을 부여잡고 보낸 시간을 보고한다.

민우회 상담소는 ‘성폭력가해자교육’을 하고 있다. 97년부터 시

작한 가해자 교육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그동안 가해자 교육

을 위한 매뉴얼도 세 권이 나왔다. 가해자 교육은 성폭력 사건이 잘

못된 성문화에 기인하기에 교육을 통해서 가해자의 행동과 잘못된

인식을 바꾼다는 목적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가해자 교육은 조직

내부의 징계 절차나 피해자와의 합의 과정에서 결정된다.

회사 . 노조 . 학교 . 사회단체 등 다양한 조직의 형태를 가지고 있

는 공동체에서 의뢰된다.

외면이 아닌 ‘우리’의 문제로

‘공동체 해결’은 성폭력을 개인 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는 것

이 아니라 공동체 문화나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기 위한 노력이다.

또한 성문화나 의식에 대한 성찰과 성별권력관계를 점검하는 계기

를 마련하여 공동체의 변화를 지향한다. 이 과정 속에서 피해자가

사건 이전과 같이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이 원대한 의미와 목표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의 과정은 그

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공동체가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공간이거나, 가치관을 공유하

며 의미를 두는 공간이기에 사건은 일상을 함께 보내는 관계 속에

서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일상적인 갈등이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

으로 옮겨와 갈등이 증폭되기도 하며, 가해행위를 성폭력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도 항상 따라다닌다. 또 가해자의 처벌 수위

를 두고 적당한지 과한지를 두고도 긴 시간 공방을 하기도 한다. 그

과정은 몇 가지 원칙이나 규칙으로 정리하기 어렵고 정돈되어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개입하거나 판단하는 것조차 피로감을 느끼게 된

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외면하거나 침묵하게 된다. 정치권 뉴

스가 나오면 피로감을 먼저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한편 또 다른 상황은 가해자 개인에 대한 징계로 사건을 빠르게

마무리 하는 방식도 있다. 철저히 구성원들과 가해자를 분리하고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그’의 문제로 치부하거나 외면하는 것으

로 끝내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 또한 공동체 문화나 성의식 변화

로 연결되기는 어렵다. 이쯤 되면 이런 질문이 나올 법 하다. “도대

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그 질문 때문에 상담소 활동가들도 머

리를 싸맨다.

공동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서는 법이선미(너굴)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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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해소할 수 있는 통로로서 공동체 프로그램 개발

어느 날 “가해자 말고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없나

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질문의 배경은 이렇다. 성폭력 사건이 발

생한 이후 내부 절차에 따라 처리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

끼리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피해자/가해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혼란스럽다. 그래서 성폭력 사건 이

후, 그동안의 과정들을 정리할 수 있는 교육이 구성원들에게도 필

요하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가해자에게 주어지는 교육시간 만큼

이나 구성원들에게도 사건을 소화하기 위한 시간이 중요하다는 생

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담소는 구성원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계

획을 세웠다.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생각하니 그동안 미뤄뒀던 ‘공

동체 해결’과정에 대한 점검이 필요했다. 그래서 공동체 내 성폭

력 사건 해결 경험이 있는 활동가를 섭외하여 간담회를 진행했다.

노동조합 . 정당 . 단체 등에서의 해결 절차에 대한 경험과 평가

를 나눌 수 있는 그야말로 전문가들. 간담회에서 많은 이야기가 나

왔지만 지면의 한계로 몇 가지만 소개한다.

반성폭력 규칙을 잘 준수했는지에 대해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와

구성원들이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할지, 이 사건을 거치고 각자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피해자가 해결 과정에서 고통스러운 이유는 사건의 의미가 제대로 소통되

거나, 토대의 변화 조짐이 보이지 않을 때이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 명예회

복이 어렵고, 공동체 복귀도 어려워진다. 성폭력 사건의 의미화를 위한 충

분한 작업이 필요하다.

피해자 요구를 중심으로 한 사건 해결은 조직 내 부담을 피해자에게 부여하

게 된다. 또 피해자의 요구가 정당한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만 발생할 뿐 피

해자의 역량강화에도 도움이 안 된다.

피해자라는 정체성은 잠정적인 것이다. 정체성이 변화할 수 있다.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피해자는 일시적으로 약자가 되었을 뿐이지,

사회운동에 기여한 사람이고 투쟁하는 사람이다.

해결 과정에서 가해자의 변화는 중요한 포인트이지만 사건 해결의 지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 간담회 이후 피해자 대리인, 피해자, 대책위원 등 다양한 역

할을 했던 사람 10명을 대상으로 개인 인터뷰도 했다. 인터뷰를 통해

각 조직의 사건 해결의 흐름, 구성원들의 역동, 논쟁이 발생하는 지점,

공동체 해결의 의미 등을 짚어보며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를

수집했다. 우리는 이 아이디어를 정리하여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10

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공동체 해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기

성폭력 사건 이후의 공동체 구성원이 사건을 정리할 수 있는 프로

그램을 개발하고자 시작했다. 계획은 중구난방으로 뻗어나가 ‘공동

체 해결’ 과정에 대한 평가와 이 과정 중에 피해자가 자신을 더 잘 설

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개발하는 것, ‘공동체 해결’의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을 찾는 데까지 흘러갔다.

아직 어디까지 정리할 수 있을지 담당자도 확답할 수 없지만 확

실한 것은 성폭력 사건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 직면하는 법을 알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이며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가 소외되지

않는 방법을 찾을 거라는 것이다. 사방으로 뻗어 정리되지 않은 고

민들이 부담스럽거나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내

용을 담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는 중이다. 정신없는 이 글을 끝

까지 읽은 당신 마음 속에도 그 기대가 자라고 있다고 믿는다. 기대

를 품은 당신, 10월에 만나자.

* 프로그램 시범 운영을 할 공동체의 신청을 받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우리에

게 필요하다 생각하신 분 고민하지 마시고 전화주시길. (02-739-8858)

너굴 ●

머리가 아니라 몸이 먼저

반응하는 연습을 하고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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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ing

여성주의 고전읽기 강좌 ‘나를 매혹시킨 여성학자’김진선(제이)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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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관련 글을 읽다 보면 몇 번씩 언급되곤 하여 왠지 찾

아 읽고 싶어지는, 심지어 이름을 하도 많이 들어서 책 한 번 읽지

않아도 마치 읽은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여성학자들이

있다. 그런데 혼자 공부를 하려면 도대체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

야 할지 막막하다. 하지만 대학의 여성학 수업이 아닌 이상 평소

에 여성학 고전을 다루는 강좌는 가뭄에 콩 나듯 드물고, 있다 해

도 너무 이론 위주의 학술적인 분위기일까 봐 괜히 수강신청이 망

설여지곤 한다.

그래서 민우회에서는 작년, 늦여름 밤을 달구는 ‘여성주의 고전

읽기 강좌-열독(熱讀)’ 을 열었고, 아니나 다를까 여성주의 고전 공

부에 목마른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강의 평

가를 통해 이런 고전읽기 강좌 기획이 계속되기를, 또 책 내용 정리

뿐만 아니라 그 저자의 삶에 다가갈 수 있는 강좌가 마련되기를 바

란다는 소망을 피력해 주셨다. 이런 코멘트들을 그냥 지나칠 민우

회가 아니다! 이 열망들을 냉큼 받아 안아, 올해 봄 민우회에서는

‘여성주의 고전읽기 강좌 - 나를 매혹시킨 여성학자’ 를 준비했다.

열독 강의를 통해 수렴된 욕구들을 반영하여 이 강좌는, 그냥 단

순한 고전 공부 이상의 어떤 것이었으면 했다. 그건 이런 자리가 되

었으면 하는 상상이었다.- 학계, 나아가 당대에 새로운 관점의 지

평을 열었고 자신의 삶을 통해 그것을 실천했던 여성학자들의 치

명적 매력에 빠져드는 자리. 여성학자들을 내 삶의 든든한 ‘빽’으로

위치 짓고 그 ‘언니’들에게서 앞으로의 삶에 대한 조언과 힘을 얻을

수 있는 자리. 이 소망을 구현하기 위해 ‘나를 매혹시킨 여성학자’

라는 핑크빛 컨셉을 잡았다.

강사분들이 ‘내가 좋아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

음과 책에 대한 주관적 애정과 해석이 포함된 강의를 해준다면. 참

가자들의 마음과 삶에 더 쉽게 파고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

하여, ‘권김현영-정희진-김고연주-전혜은-전희경을 매혹시킨 애

드리언 리치-사라 러딕-캐슬린 배리-주디스 버틀러-시몬 드 보

봐르’라는 간지폭발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그럼 대체 무슨 강의였는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초간단 포인트.

1강 권김현영님이 그리스 신화를 그린 그림과 리치가 쓴 시를

통해 ‘혁명적 존재의 시학, 본투 페미니스트’ 리치의 삶과 사상을

다루었다. 리치 자신이 여성 커뮤니티의 산물이었고 평생 여성들

에 대한 사랑으로 공부하고 실천했음이 감동적이었다.

2강 정희진님이 ‘젠더는 인식론(episteme)이다.’, ‘개념은 행위

(practice)에서 형성된다’라는 두 문장을 중심으로 날카로운 통찰

과 인식의 전환을 특유의 유머와 함께 끝없이 던져 주며, 사라 러

딕의 <모성적 사유>가 ‘성역할고정론’을 강화한다는 만연한 오해

와 오독을 짚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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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

넘겨짚어 단정하는 것과

과시하는 것을 무척 싫어함

좋아하는 건 너무 많아서

부끄러울 지경

3강 김고연주님이 캐슬린 배리의 <섹슈얼리티의 매춘화>의 주

요 문장들을 소개하며 섹슈얼리티와 관련한 기본적인 개념부터 성

매매에 대한 현재의 쟁점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성적

실천에서의 여성 주체성에 대한 흥미로운 질의응답도 잇따랐다.

4강 전혜은님이 그 어렵다는 주디스 버틀러의 이론을 저작세

계에서의 위치부터 개념들까지 그림을 통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했

다. 월가 시위에서의 버틀러의 멋진 연설 “우리는 불가능을 요구합

니다”로 뜨겁게 강의를 닫았다.

5강 전희경님이 시몬 드 보봐르의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노년 연구의 선구적 저작이었던 <노년>의 역사적 맥락과 핵심 내

용 그리고 보봐르의 실천적 면모에 대해 강의했다. 전체 다섯 강의

를 아우르는 의미를 짚으며 마지막 강의를 마무리했다.

주옥같은 강의내용을 전부 널리 공유하지 못하는 건 무척 안타

깝지만, 사실 강의 내용은 직접 강의를 듣지 않고서는 끝내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 법.

여성 커뮤니티가 배출한 학자인 애드리언 리치로부터 시작한

강의는 노년에도 젊은 페미니스트들과 연대했던 시몬 드 보봐르

로 끝났다. 1강부터 5강까지 저마다 다른 분위기로 진행되었으나,

그렇게 다채로운 가운데 결국에는 묘하게 맞닿아 이어지는 맥락

과 느낌이 있었다. 제각각 다른 시공간에서 제기된 여성주의적 문

제의식들이 ‘지금 여기’에 대입되면서, 그것들은 동떨어진 별개의

이론들이 아니라 우리 앞의 여성 현실을 매개로 느슨하게 연결된

하나의 ‘이론 세계’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이 여성학자들의 이론과

실천들은 앞선 여성학자 선배들의 활동에 연속된 것이었다. 강의

를 했던 강사들 또한 ‘지금 여기’의 여성학자로서, 그리고 우리들

역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주의자로서 그 긴 역사를 이어가는

주체임이 와 닿았다.

시몬 드 보봐르를 강의한 전희경 님은 “고전은 그것을 계속해서

읽고 인용하는 커뮤니티가 있을 때 가능하다”고 했다. 다섯 강 모

두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바로 강의를 하고 또 강의를 듣는 ‘우리’가

어떤 여성학자들을 ‘고전’으로서 지금 여기에 불러내고 있다는 점

이었다. 참가자 후기의 몇 문장을 옮겨본다.

“여성학자들의 삶과 이론의 배경을 따라가다 보면 수많은 여성

들의 삶과 싸움의 결과들 속에서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역사는 반드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진화하지 않

음을 깨닫는다. 미국에서 살아온 학자의 문제의식을 내가 있는 이

사회에도 시간과 장소의 경계에 상관없이 적용시킬 수 있음에 여

성범주의 공통된 삶의 문제들을 느낀다.”(토리)

“왜 여성학자들의 계보와 학파는 뚜렷하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는 바로 남성 중심 학문과 같은 커뮤니티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부터 서로 긴 인생의 목격자가 되고, 페미니스트들의 독자가

되어주며 공부를 하는 건 어떨까?”(면진)

버틀러 강의를 들었던 몇몇 활동가들은 농담으로 ‘인용과 반복

실천’이 어쩌고 하며 (그 내용이 맞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강의

내용에서 파생된 페미니스트 농담을 나눴다. 그렇게 깔깔 웃다가

우리는 또 다른 어딘가 곳곳에서, 여성주의자들이 자신의 일상적

삶에, 활동 속에, 심지어 농담 속에 ‘여성학자 선배들’을 ‘인용’함으

로써 촘촘히 이어져가는 우리들의 긴 역사를 상상한다.

5x2, 10명의 여성학자와 함께한 ‘나를 매혹시킨 여성학자’가 그

러한 역사 쓰기의 한 실천이었으면 하고, 앞으로도 이 역사 쓰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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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ing

‘좋은 일터’를 제공하는 ‘참 좋은 식당’을 만들자- 차림사 노동환경 변화를 위한 지역 조례운동을 준비하며

문성훈(나은)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카페라떼 나오셨습니다. 손님”

아마 대부분 높임법을 잘못 썼다고 생각하겠지만, 트위터에선

이에 대해 촌철살인이라 할 만한 지적이 유행했다.

“카페라떼가 알바생 시급보다 비싸기 때문입니다.” 최저임금

이 내년에는 시급 4,860원이 된다. 한 시간 노동해도 식당 밥 한

끼 값, 커피 한 잔 값이 안 되는 것이 지금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각종 노동법 등 노동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들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 법규들은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걸 우

리는 작년 실태조사를 통해서도 확인했다. 식당노동자(차림사)들

의 노동환경은 영업주들이 제반 노동법규만 잘 지켜도 많이 달라

질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시일 내에는 쉽지 않다.

영세사업장일수록 노동조건이 좋지 않은 경향을 보이기 마련

2010년부터 시작된 민우회의 ‘식당여성노동자’에 대한 관심 덕(?)에 식당에 가면 사실 밥 먹는 것보다 관찰에 집중하게 된다.

식당에 들어서면 차림사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노동강도는 얼마나 될까, 휴일은 어떻게 될까, 휴식 시간은 얼마나 있고 쉴만한 장소가

따로 있나, 일하는 분위기나 사장 스타일은 어떨까?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본다. 2011년에 민우회가 전국에서 35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

한 식당노동자 실태조사 경험 때문이다. 당시 실태조사를 통해서 우리는 훨씬 구체적인 소중한 자료들을 얻을 수 있었다. 하루 평균 11.6

시간의 노동, 한 달에 쉬는 날은 보통 이틀에서 사흘 정도. 그에 비해 임금은 노동법 기준으로 계산해 보니 시급으로 따지면 최저임금도 안

되는 현실. 그래서 올해는 본격적으로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사업계획을 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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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데 음식점업은 영세 업종의 대표격이다. 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다고 여겨지지만 폐업 역시 잦다. 실제 힘들게 일하는 것은 사

장이나 노동자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는 노동법 준수 캠페인이나 강력한 단속과 처벌같이 이른바 “채

찍 휘두르기”만으로는 쉽게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와 소통을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

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것이 바로 ‘상생하는 마을 공동체를 위한

- 참 좋은 식당 조례(이하 참 좋은 식당)’(가) 다. 최근 각 지자체마

다 대형마트 휴무를 규정하는 조례를 제정하면서 소규모 상공인

들의 생존권 보장이 화두가 되고 있다. 지역 차원에서 상생-더불

어 살기를 모색하자는 거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 태도로 조례를 준비했다. 서울 마포구의

경우에만 음식점 업체수가 3,505개로 관내 사업체의 12.1%를

차지하고 종사자 수도 1만 2천 명에 달한다. 이 정도면 지역 경제

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음식점을 이용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

지역 주민이거나 그 지역에 직장을 가진 사람이고, 식당 차림사

들 역시 대부분 지역 주민이다.(노동시간이 길기 때문에 거주지

와 가까운 식당에서 일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사업주 역시 그 지

역 주민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음식점업은 지역 내에서 영업과

고용, 소비가 이루어지고 그 이익은 지역 내에서 순환되기 때문에

지역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가려는 접근이 유효하다.

즐겁게 일할 수 있어야 좋은 식당

“차림사(식당노동자)에 대한 기본적인 노동기준을 충족하는 식

당을 지원하자.”는 것이 ‘참 좋은 식당’(가) 조례의 핵심 내용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한 ‘좋은 식당’의 기준은 맛이 좋은지, 서비

스가 좋은지, 친절한지, 값이 적절한지, 위생적인지 등이었다. 하

지만 이것으론 부족하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즐겁고, 정

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는 지도 ‘좋은 식당’의 기준에 포함되

어야 한다. 물론 지역 차원에서 음식점을 지원하는 기존 제도들

이 있긴 하다.

대표적인 것이 모범음식점 제도이며, 지자체 별로 관광진흥의

목적으로 다양한 지원제도들이 있지만 노동자 처우까지 고려하

는 조례안은 우리가 마련한 것이 유일하다. 만약 이 조례가 만들

어진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지역 주민과 전문가들이 주축

이 되어 지역 내의 음식점을 심사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

는지,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지, 종사자와 식당 이용자에

게 편의를 제공하는 환경을 제공하는지를 따져 ‘참 좋은 식당’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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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선정한다. 선정된 식당은 지역차원의 홍보와 더불어 매출 증

대에 도움이 되는 각종 인센티브를 받게 된다. 이렇게 지정되는

식당들이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을 수 있다. 이 지원책이 자리를

잡아가면 좋은 일터를 만드는 흐름에 동참하는 식당들 역시 늘

어갈 것이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차림사들의 노동환경이 바뀌어 나갈 것

이다. 음식점들이 영세하기 때문에 노동기준을 충족하기 어렵지

않냐는 볼멘소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식당 영업자들

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가장 큰 고민은 잦은 인력 교

체였다. 열악한 노동조건은 잦은 이직을 낳고 이는 영업에 마이

너스로 작용한다. 좋은 일터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음식점의

지속가능성의 바탕이 될 것이다.

조례제정운동에 관심을

상반기 내내 민우회 김원정 정책위원을 필두로 고양파주여성

민우회와 민우회 여성노동팀이 함께 조례안을 준비해 왔다. 음식

점 관련 법령과 제도, 각 지자체 조례들을 검토하며 조례의 내용

과 취지를 구성해 왔다. 초안을 구성하여 법률전문가·지자체 의

원·관련 공무원·식당 영업주들의 자문과 조언 역시 구했다.

하반기에는 이 내용을 세상에 내어놓고 제도화하는 것이 목표다.

이 조례의 의미와 내용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홍보물을 발간

하고, 9월 초에는 토론회를 개최한다.

민우회가 소재하는 지역에서는 민우회가 주축이 되어 조례제

정운동을 펼쳐 나가겠지만, 이 조례의 취지와 내용에 동의하는 이

누구라도 자신의 지역에서 운동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 학생인권조례 등은 지역을 기반으로 조례

제정운동이 펼쳐졌고 그 과정에서 조례가 지향하는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참 좋은 식당 조례’ 역시 제정운동 과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은 ‘좋은 일터’이며 좋은 일터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든다는 가치를 업

종과 지역을 넘어 전 사회적으로 퍼뜨릴 수 있었으면 한다.

나은 ●

매일 밤 술을 홀짝이며,

법정 주4일제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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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ing

디지털 수신환경점검을 하러남도에 가다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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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부터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옥상에 올라가 안테

나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케이블 방송 또는 위성 방송

에 전화를 한다, 텔레비전을 연결해 달라고. 왜냐면? 안테나 하나

만으로 텔레비전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지상파 방

송사들은 난시청 문제만 나오면 입버릇처럼 “디지털 전환이 되면

난시청은 다 해결된다”라는 말만 되풀이 해왔다.

정말 그럴까? 의심이 들었다.

자, 출발

그래서 DTV전환감시시청자연대1)

는 DTV코리아2)

에 전국적인

수신환경조사를 요구해 왔고, 논의 끝에 6월 27일부터 7월 1일까

지 4박 5일 동안 3개의 팀(서울 · 수도권팀, 충청 · 전라팀, 강원 · 경

상팀)으로 나눠 조사를 해 보기로 했다. 나는 충청 · 전라팀이었고,

우리 팀은 충주를 시작으로 충청과 전라내륙을 거쳐 해안가를 돌

아보기로 했다. 충주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부

터 실내외 수신이 가능한지 점검해보았다.

“어라?! 잘 나오네.”

“그렇다니까요. 실내 안테나로도 디지털 신호는 웬만큼 잡혀

요. 그리고 실외 야기 안테나

3) 로는 거의 잡힐걸요?”

DTV코리아측은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

다. 이제 겨우 한군데 봤을 뿐인데 뭐. 우리는 서둘러 점심을 먹고

충북 음성군 삼성면 양덕리로 갔다.

장소 선정은 DTV코리아측이 만든 ‘수신환경지도’를 보고 전파

가 가장 약한 곳을 내가 직접 골라서 찾아갔다. 선정한 곳들이 난

시청도 있고, 수신이 잘 안되는 지역도 있어 DTV코리아측에서는

족집게라며 같이 일하자는 스카우트 제의도 농담 삼아 했었다. 아

니나 다를까 찾아간 곳은 디지털 난시청지역이다! 그곳은 실외 안

테나로도 2채널(KBS2와 민방) 밖에 잡히지 않았다. ‘앗싸’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다시 의기양양해 졌다.

“그것봐요. 나오지 않는데도 있잖아요.”

“그러네요… 난시청 지역도 있네요.”

그들은 당혹스러운 듯 말했다. 이렇듯 우리는 방문한 지역의 수

신 환경에 따라 각자 일희일비하며 충청도와 전라도 구석구석을

다녔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양한 사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파트

전체에서 홀로 직접수신4)

을 하겠다고 관리소장과 싸우며 고군분

투하는 부부, 마을 전체가 위성방송을 보고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

로 위성방송을 볼 수 없어서 정부지원을 신청해 놓고 있다는 할아

버지, 안테나만으로 도저히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아 위성방송을

달아 매달 8,800원을 내고 있지만 겨우 KBS1만 시청하고 계시

는 할머니 등. 무수히 많은 안타까운 현실을 보았다.

1) DTV전환감시시청자연대는 2011년 7월 6일에 출범하였다. 디지털전환정책 및 직접수신환경구축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들의 연대로 이루어 졌으며 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사무국을 맡고 있다.

2) 지상파 방송 디지털 전환을 위한 홍보 및 시청자 지원을 목적으로 2008년에 출범하였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인력을 파견하여 운영하고 있다.

3) 야기 안테나는 실외에 다는 안테나로 예전 옥상에 달았던 생선 가시 모양의 안테나를 더 작게 그러나 성능은 좋게 개선한 것이다.

4) 별도의 유료방송 가입 없이 KBS1, KBS2, SBS(지역민방 포함), MBC, EBS의 채널만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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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을 아프게 했던 일은 전남 보성군 미력면

도개리에서 만난 한 할머니의 상황이었다. 이 할머니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동네에서 유일하게 직접수신을 하고 계셨다. 그동안

안테나를 달아서 그럭저럭 아날로그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었

는데, 현재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할머니댁을

방문해 텔레비전을 점검해 보았으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할머니

는 올해 말 아날로그 방송이 끊기고 디지털 방송으로 바뀌는지도

모르고 계셨고, 직접수신가구에 대한 정부 지원도 모르고 계셨다.

이 지역은 실외에서 전파가 잡혀서 안테나 하나만 세우고 컨버터

로 텔레비전을 연결하면 충분히 직접수신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간 장비로는 전혀 손을 쓸 수 없어서 죄송하다는 말

만 하고 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말씀하셨다.

“혼자 사는데 텔레비전까지 볼 수 없어서 많이 외로워.

농사 지어서 일기예보는 꼭 봐야 하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와줘서 고마워.”

슬그머니 눈물을 훔치며 할머니 댁을 돌아 나오자마자, 같이 간

지상파 방송사측 사람에게 따지듯 물었다.

“보셨죠? 직접수신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 있는

데 그동안 지상파 방송사는 뭐했죠? 전파라는 공공재를 사용

하고 있고 수신료 꼬박꼬박 받으면서 뭐 했냐구요?”

“그러게요… 우리가 그동안 잘못한 것 같네요.”

우리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도 할머니를 도울 수 있는 방

법을 고민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어디

이런 분이 한 둘이겠는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4박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각 팀이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

DTV전환감시시청자연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고,

이는 KBS가 전국 각지에 콜센터를 운영해 원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안테나를 달아줘야 해결 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후 ‘수신환경점검 발표회’에서 이러한 대안을 지상파방송사

에 요구 할 예정이다.

그렇다. 우리 시청자들의 요구는 복잡한 것이 아니다. 단지 지

상파 직접수신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려움 없이 직접수신을 할 수

있도록 수신 환경을 개선하라는 것이다. 이는 시청자들의 매체 선

택권을 보장하는 중요한 토대이다. 따라서 이번 점검 사업은 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기초 작업이었고 많은 만남을 통해 축적된 다양

한 사례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방향성과 대안을 제

시해 주었다.

그래, 이제 하기만 하면 된다!

후기

어디를 가나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신 분들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인사 드립니다. 더운데 고생한다면서 고흥에서는 유자청을

주신 아주머니, 금산에서는 홍삼액을 손에 쥐어주신 아저씨, 작

은 며느리가 가져왔다면서 비닐봉지에 튀밥을 담아 건네주시던

할머니, 당일에 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오라고 했던 대전

과 청주에 사는 나의 동서들. 그리고 광주민우회 백희정 대표님

과 이미선 샘께도 감사드린다.

윤정주 ●

우리 팀 팀원은 갓 백일 된 아기를 떼어 놓고

4박5일 지방출장을다녀온 저를

모성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학습되고 강요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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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은 지난 6월 7일에 ‘의약품 재분류(안)

및 향후계획 발표’를 하였다. 그중 ‘피임약 재분류(안)’이 이슈가 되었다.

‘피임약 재분류(안)’이 확정되면, 빠르면 내년부터 시행이 된다.

식약청의 계획대로라면, 사후(응급)피임약을 의사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입할 수 있다. 반대로, 경구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분류하여 의사 처

방전을 받아야만 구입할 수 있다. 갑작스런 변화에 여성들이 혼란스러운

와중에, 각계각층의 의견이 기사로 쏟아졌다.

그래서 이번 호 ‘생생한 시각’에서는 여성들이 궁금해 할 ‘경구피임약의

부작용’과 당사자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글을 실어보았다. 짧은 내용이지

만, 앞으로도 계속될 논쟁 속에서 방향키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생생한시각

이토록 피임이어려워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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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섹스 하고 살아요” 라고 말하기 힘든 젊은 여자애다.

피임을 한다는 것도 말하기 힘들다. 피임은 곧 섹스를 한다는 뜻

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전한 피임 수단을 요구

하기도 어렵고, 피임약을 구하고 다니기도 힘든 처지다.

중학생 때 섹스를 시작한 후 피임법에 대한 나름의 역사가 생

겼다. 생리 시작하는 날을 확인하는데서 시작되어, 지하철역 자

판기에서 사탕을 뽑는 척 하며 콘돔을 구입하고, 성인이 돼서는

약국에서 피임약을 사 복용하기까지.

이번 피임약 재분류에 대한 소문이 한동안 트위터에 떠돌았

다. 건강의료보험이 아버지 명의로 되어있는 나는, 겁에 질려 2

년치 약을 사재기 했었다. 구할 수 있는 약의 최대 유통기한은 2

년까지였고, 2년 뒤엔 건강의료보험을 내 명의로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결국 피임약 재분류안은 현실이 되었고, 나를 비롯한 몇몇 사

람들은 많이 화가 났다. 친구의 블로그(http://mydefinition.

tistory.com)를 빌려 성명서를 만들어 올리고, 연명을 받았다.

불과 며칠 만에 1,8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그 성명서는 주옥

같은 댓글들과 함께 식약청에 전달되었다.

왜 화가 났을까?

성명서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화가 나는 이유도 다양하다. 누

구는 약국에서 피임약 달라는 말이 어려워, 비타민제를 사서 나

왔단다. 이제 산부인과에서 훈계들으며 약 사야 하는 거냐는 청

소년도 있었다. 성인 여성들은 매달 산부인과에 섹스한다고 보고

하라는 뜻이냐고 비꼬기도 했다. 비혼 여성이 산부인과를 가기엔

보는 시선들이 곱지 않은데, 어떻게 매번 산부인과에서 가서 피

임약을 처방받아야 하느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많은 여성들에

게 산부인과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산부인과의사회의 말처럼 전문가와의 상담을 거쳐 자신

에게 가장 좋은 피임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나

부터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약국에서 구입한 피임약을 먹고 생

리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 보다 짧은 생리 기간을 가능하게 하는

신약을 처방받고 싶기도 했다. 거기다 지병이 있어서 웬만하면

의사와 상담을 하고, 가장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국에서 약을 구해왔다. 일요일 하루 외

에는 일을 하고 있는 상황에 정기적으로 처방전을 받으러 산부인

과에 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병원 기록이 남아서 혹시라도

생생한시각

왜, 지금, 누구를 위한 피임약 재분류인가?

김우유 트위터 하는 여자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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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알게 될까봐 걱정도 됐다. (원칙적으로는 알 수 없다지만

가끔씩 우편물 등을 통해 알려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피임약이 식약청의 안내로 재분류되면, 이제 진료비용과 약제

비용까지 합쳐진 피임 비용은 얼마가 되는 걸까?

식약청의 피임약 재분류안은 결과적으론, 나를 비롯한 수많

은 여성들에게서 피임 수단 하나를 앗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 생각한다. 여전히 사회에 존재하는 편견속에서 현실적으로는

섹스를 하고 있는 청소년들, 산부인과에 가기 힘든 젊은 비혼 여

성들, 약값과 진료비용을 동시에 부담하기 버거운 여성들 등에

게서 말이다.

물론 경구피임약을 쉽게 살 수 있다고 해서 아무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작용에 대한 걱정, 그리고 복용을 한 두번 빠트리

게 될 경우엔 복잡하고 묘하게 걱정되는 설명서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불안하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부인과를 둘러싼 사회적인 낙인

과, 가부장 중심의 의료보험 체계까지, 변하지 않는 이 모든 사회

적 조건 속에서 피임약 처방전을 요구하는 것은 피임에 대한 하

나의 크고 단단한 장벽을 만드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재분류안에 대해 여성들이 화가 나는 것

이다. 그 감정은 가뜩이나 적은 피임 수단을 뺏긴다는 분노, 현실

적인 진료 환경 개선은 아직인데 처방전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만

앞세우는 산부인과에 대한 불신, 섹스와 피임의 당사자인 여성이

아닌 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분노까지 포함된 복합적인 감

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분노를 행동과 압력으로 풀어내어 포괄적

인 여성의 건강권과 성적자기결정권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

이 피임 문제에 대한 장기적인 대응이 될 것 같다. 당장 피임약 구

입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피임약 재분류안에 반대하

는 것이 가장 우선이고 말이다.

정말이지 섹스하기 힘든 세상이다.

김우유 ●

트위터 하는 여자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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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시각

경구피임약의 전문의약품 전환, 어떻게 보아야 할까?무영 살림의료생협 ‘살림의원’ 주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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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식약청에서 경구피임약을 일반의약품에서 전문의약품

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발표하였다. 전문의약품이

된다는 건, 현재는 약국에서 사먹던 경구피임약을 복용하기 위

해 의사의 처방전이 반드시 필요해진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

하자면 나는 전문의약품 전환에 반대한다. 또한 식약청에서 전

문의약품 전환의 근거로 들고 있는 위험성이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경구피임약이 전혀 위험하지 않다거나, 완벽하게

안전한 약품이라는 얘기가 당연히 아니다. 30~35mcg 정도의

에스트로겐을 포함하는 경구피임약을 복용하는 여성의 혈전증

1년 발생 위험도는 3/10,000명 정도인데, 경구피임약을 복용

하지 않는 여성의 발생 위험도는 1/10,000명이니, 혈전증의 위

험을 분명히 높인다고 할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도 젊은 여성에

게서 허혈성 대장염이 발생했다는 보고나, 경구피임약으로 인한

약년자 뇌졸중의 사례들이 알려진 바 있다.

경구피임약의 부작용, 근거 있나?

그러나 식약청에서 발표한 바대로 “장기간 복용해야 하므로 전

문의약품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근거가 부족하다. 혈전증의 위

험도는 복용 4개월째 정도에 가장 증가하여 1년 정도 유지되며

그 이상 오랜 기간 복용한다고 해서 위험도가 증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근거로 들고 있는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의 위험도

도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심근경색의 위험도를 나이·만성

질환여부·흡연여부·비만도·종족 등으로 보정하면 경구피임약으

로 인해 심근경색의 위험도가 증가한다는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최근 사용되고 있는 에스트로겐 저용량 제제를 복용

하는 여성들에서는 기타 다른 심근경색의 위험인자가 없는 한

심근경색의 위험도가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35세 미만의 건강한, 비흡연자 여성에서는 50mcg 이하의 에

스트로겐이 포함된 복합호르몬 경구피임약의 복용이 심근경색

이나 뇌졸중의 위험도를 증가시키지는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경구피임약이 처음 개발되기 시작한 1960년대에는 여성호

르몬의 함량이 많아 여러 가지 부작용과 합병증이 발생하였으

나, 최근 부작용과 합병증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경구피임약이 위험했던 1970~80년대에는 안전하

니까 안심하고 복용하라고 선전하더니, 외려 경구피임약이 점

점 더 안전해지는 요즘 피임약은 위험하니 전문의약품으로 전

환해야 한다고 하는 셈이니, 단순히 의약품의 안전성만을 근거

로 전문의약품/일반의약품을 구분한다는 발표는 믿기 힘든 일

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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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은 낮추고, 정보는 올바르게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은, 특히나 경구피임약에 대한 접근성

은 중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은 피임약이 일반의약품일

때를 더 선호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한 전문의약품으로 전

환되면 전체적인 비용이 증가한다는 보고도 있다.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연령이 어릴수록 효과적이

고 건강한 피임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조건이 불충분하다는 연

구결과에 기대어 볼 때, 여성들의 건강한 피임실천에 대한 접근

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현재 일반의약품인 경구피임약을 전문의

약품으로 전환하기 보다는 아래와 같은 교육을 강화하고, 경구

피임약 복용과 관련하여 의사와 상담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

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꼭 전문의약품이냐 일반의약품이냐에 따라 의사와의 상담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에도 경구피임약에 대해 의사와의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상담할 수 있으며, 다른 약과의

상호작용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미리 그 약을 처방하기 전에 충

분한 상담이 이뤄져야 한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경구피임약 그 자체가 아니다. 40

년 넘게 여성들이 복용해왔던 약물에 대해 그것이 전문의약품으

로 분류되어야 할만큼 위험한 약이라고 이제와 설명을 하는데도,

누구 하나 여성의 건강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

리를 불안하게 한다. 여성의 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에 여성들이 전혀 참여할 방도가 없다는 사실이 우

리를 불안하게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산아제한이냐 출산장려냐에

따라 일관성 없이 흔들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정책이 아니라,

진짜로 여성들의 건강을 고민한, 적절한 가격의, 충분한 진료와

상담이 보장되는 효과적인 피임법인 것이다.

물론, 여성들 스스로의 결정이 반영되어야 함은 당연하고!

무영 ●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8월 말 여성주의자들과 은평구 주민들이 함께 만드는

살림의료생협의 첫 의료기관 ‘살림의원’ 개원을

앞두고 바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경구피임약을

안전하게 먹는 방법

· 건강한 젊은 여성에게 경구피임약은 안전합니다.

(만35세 미만)

· 담배를 피지 마십시오.

· 적정 체중을 유지하십시오.

· 혈압을 잘 조절하십시오.

· 특별한 질환(고혈압, 고지혈증, 혈전증, 혈관질환,

심장질환, 편두통 등)이 있는 경우에는 복용 전에

의사와 꼭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 경구피임약을 복용하는 중 이상이 생기면

의사에게 진료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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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 1인시위 | 피임약 재분류 왜

‘여성’이 결정의 주체여야 하는가?

피임약 재분류(안)을 주제로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여성의 결정권과 건강권을 위한 피임약 정책 촉구

긴급행동과 남윤인순 국회의원이 공동주최 하였

습니다. 다른 공청회와 토론회에서 다뤄지지 않

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부작용 위험성

을 짚어보는 발제가 있었습니다. 또한 여성건강

팀 활동가들이 보건복지부 앞에서 1인 시위에 참

여하였습니다.

7월 4일 국회도서관

민우스케치

논평 | 요양보호사 노동인권 개선 인권위

권고 조속히 시행하라.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5년차에 접어들었다.

시행되는 동안 요양보호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문제제기 되어 왔다. 요양보호사 노동인권 개선

이 촉구되는 가운데 국가인권위의 요양보호사

노동인권개선 정책 권고안 발표가 있었다. 권고

안을 받은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국민건강보

험공단은 조속히 대안을 시행하기를 촉구한다.

5년 뒤, 10년 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보다

향상된 공공성 있는 노인 돌봄서비스로 자리매

김하길 바라는 바이다.

7월 2일 한국여성민우회

후기 | 나만의 여름나기 방법 대공개!

이번 ‘신입회원 만남의 날’은 회원팀에서 준비한

시원한 팥빙수를 먹으며 시원한 시간을 보냈습

니다. 무려,휘,카티아,수수깡,메어리,귄,스머프,

이카루스,햇살,자스민,은아,먼저 가신 영은님까

지. 많은 신입회원 분들이 함께 해주셨습니다.

“나만의 여름나기 방법, 기억에 남는 여름휴가”

를 주제로 자기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

졌습니다. 와주신 신입회원분들 반가웠어요 ^^

6월 28일 원경선 홀

후기 | 오장육부가 무지개빛으로!

올해 퀴어축제에서 민우회는 “오장육부를 무지개

빛으로!”라는 슬로건에 맞게 칵테일을 준비해나갔

어요. 부스를 찾아주신 많은 분들 덕분에 준비한 칵

테일 300잔을 모두 팔수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매

니 퀴어(Many Queer) 행사, 이상형 월드컵, 내가

꾸리는 가족 사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였

습니다. 특히, 회원분들이 많이 참여해주셔서 힘이

났습니다. 음악소리에 함께 춤추고, 매니큐어도 나

눠 바르고. 즐거운 축제였습니다. ̂ ̂

6월 2일 을지로 한빛광장

기자회견문 | 최저임금은 여성노동자의

절박한 최소한의 요구!

한국사회는 여성의 노동력의 저임금 임금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남녀 간 임금격차가 가장 큰 우리

나라는 여성 3명 중 2명이 비정규직이다. 그러나

2012년 현실은 시급 4,580원으로 하루 8시간 한

달 209시간을 꼬박 일해도 95만원에 임금에 불

과하다. 특히 이런 상황은 여성의 노동에 대해 어

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하

며, 우리가 요구하는 최저임금 5,600원은 여성노

동자의 절박한 최소한의 요구이다. 2013년 적용

최저임금 5,600원 쟁취를 위해 공동행동에 나설

것임을 선포한다.

6월 7일 생생여성노동행동

성명 | 현병철 위원장은 즉각 사퇴하고,

청와대는 임명을 즉각 철회하라.

애초에 현병철 후보자는 인권위법 최소 자격요건

을 충족하지 못했기에 취임을 반대해왔다. 더구나

이번 청문회에서 보여준 태도는 암담함을 느끼게

하였다. 취임 기간 동안 있었던 사건· 사고들을 부

인하였다. 오죽하면 청문위원들이 수차례 “위증혐

의”를 경고하고, 진위 여부를 다투는데 상당한 시

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연임을 주장하는

현병철 위원장은 즉각 사퇴하고, 국회에서도 임명

철회 의사를 밝히기를 촉구한다.

7월 17일 현병철 인권위원장 연임반대와

국가인권위 바로세우기 긴급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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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민우칼럼 창

2009년 가을, 한국여성재단에 3명의 미국인이 찾아왔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Korean Unwed Mothers Support

Network:KUMSN)의 대표 리차드 보아스 박사와 고문 엘렌 휴

나리, 미쉘. 세 명의 미국인은 2007년 KUMSN이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한국에도 사무소를 마련해 미혼모들을 위한 다양한 지

원 사업을 수행해 왔다는 설명으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한국미

혼모지원네트워크가 미국 단체라는 것, 그 단체가 한국에 사무

소를 두어 한국의 미혼모들을 지원해왔다는 것, 그러나 그 한국

사무소는 지부도 한국에 등록된 단체도 아니라는 것. 처음에는

이 모든 설명이 난해했다. 한국의 미혼모들을 지원한다면서 왜

단체는 미국에? 미국의 재단에서 재원을 마련하여 지원한다고

하니, 그렇다면 한국에 있는 사무소가 지부가 아닌 이유는? 여러

차례 질문을 던졌지만 방문한 미국인들은 이런 기본적인 질문에

답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도 많았다.

그들은 서둘러, 정말 급히 서둘러 그동안 KUMSN에서 지원

했던 사업들을 설명했다. 미혼모 시설의 교육 프로그램 지원, 미

혼모들의 경제력 강화를 위한 직업프로그램 지원, 미혼모 당사

자들을 발굴하고 리더십을 키우는 역량강화 프로그램 지원, 한

국의 미혼모에 대한 연구사업 지원….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들이 실로 다양한 미혼모 지원 사업을 해왔다는 것에 놀랐고,

한국의 미혼모들에 대하여 깊은 이해와 많은 정보들을 가지고

있는 것에 놀랐다. 그러면서 한국 미혼모들의 상황에 대하여 한

국인인 나는 묻고 미국인인 그들이 대답하고 있는 상황이 낯 뜨

거워졌다. 그리고 그 시간의 끝에서 이 미국인들이 화를 내고 있

음을 깨달았다.

“한국인은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히 큰 민족이다.

그럼에도 최근 급속히 증가하는 다문화가족들에 대한 사회와 정

부의 관심과 지원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데 미혼모 가족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전혀 나아지고 있지 않다. 미혼모의 자녀들

은 당신들에게 중요한 정통 핏줄임에도 왜 한국사회는 미혼모와

그 자녀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가?”

물론 미혼모 이슈를 이야기하면서 혈통을 언급한 것이 적절치

는 않지만, 한국사회의 속 터지게 답답한 편견에 대해 치밀어 오

르는 화를 표현한 것일 테니 유구무언일 수밖에. 이 화난 미국인

들의 질문에 대해 한국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이유로 들

어 설명했던 그 한심하고 초라했던 시간을 시작으로, 나는 외면

했거나 몰랐던 것은 아니었으나 우선 과제에서는 밀려있었던 미

혼모 이슈에 적극적으로 다가서게 되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강경희 한국여성민우회 재정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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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고 있는 미혼모라는 이름

최근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 주인공 김도진 앞에 존재도

몰랐던 19세 아들이 나타나 스토리의 긴장을 고조시켰던 적이

있다. 연인과의 열애가 끓어오르려는 시기에 나타난 19세 아들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김도진 앞에 19년 전 홀연히 사라졌던

첫사랑 연인 김은희가 아들의 엄마로 마주 앉았다. 몹시 당황하

는 김도진에게 김은희는 지금 당신이 겪는 놀람과 당황스러움을

자신은 19년 전 홀로 겪었다고 차분하고 당당하게 이야기 했다.

작가에게 고마운 장면이었다. 김은희가 대부분의 드라마에 나왔

던 불쌍하고 처절한 미혼모로 그려지지 않아 다행스러웠고 이런

변화가 발견되는 데서 희망을 느꼈다. 김은희가 미혼모라는 당

시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외국으로 갔다는 설정에서도 미혼모

가 되면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편견에 대한 작가의 섬세한

이해를 읽을 수 있었다.

2009년에는 연예오락 프로그램인 <1박2일>에서 ‘시청자 투

어 특집’을 방송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한 그룹이 ‘싱글맘’ 그

룹이었다. 미혼모들이 국악여고 학생들, 체대 학생들, 남자 간호

사들 등과 함께 군더더기 같은 수식어 없이 ‘싱글맘’이라는 이름

으로 방송 내내 편하게 불리는 것을 보면서 담당 PD에게 큰 박

수를 보냈더랬다.

느리고 더디기는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지금의 편견들이 어

이없는 난센스로 여겨질 것이다. 지금 우리가 “옛날에는 결혼 전

에 신랑 신부가 얼굴도 못 봤대!” 하듯이 “옛날에는 결혼 전에

아이가 생기면 난리도 아니었대!”라고 이야기하게 되지 않을까.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생명의 탄생과 관련한 많은 일들이 여

성에게만 짐 지워지고 있다. 잉태로부터 시작하여 출산, 양육, 교

육….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라는

인디언 속담을 떠올려본다. 태어나는 모든 생명은 환영과 사랑을

받아야 하며 그 생명들을 돌보는 책임은 사회가 함께 져야 한다.

그 책임의 한 자락을 잡기 위해서, 2009년 여성재단을 찾았던 한

미국인의 분노로 쪼그라들었던 자존심을 펴서, 우리 사회를 향해

분노하려고 한다.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태어나는 새 생명

의 존엄성을 존중할 줄 아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건강하게 분노

하려고 한다.

잉태로부터 시작하여 출산, 양육, 교육….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

강경희 ●

철들어 세상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누군가 조금만 등을 밀어도 그대로

전진하여 보이는 일들을 무작위로 해치우듯 시간을 살았음.

이제 머리카락이 하애지면서는 하고 싶고,

기왕이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투자대비 비용효과가 큰일을 하고픈 아짐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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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

인터뷰

이야기의 시작은, 우연히 한국여성민우회 편집팀

<이야기 해주세요>는 홍대에서 활동하는 여성 뮤지션 18명이 곡을 모아 만든 앨범입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할머니들을 위한 음반입니다.

여러 뮤지션들이 새롭게 곡을 쓰기도 하고, 자신의 곡을 주기도 했습니다.

올해 4월엔 앨범 제작비 마련을 위한 콘서트도 했습니다. 콘서트 후엔,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다니며 곡을 모은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송은지씨를 만났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어디서 시작된 이야기일지 그 이야기 한번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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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밴드를 좋아하는 회원들을 위해서

요즘 근황 알려주세요

작년 4월에 4집 앨범 <Ciaosmos>이 나왔어요. 음반 활동을 하다

가 잠시 쉬었어요. 그리고 올해 봄부터 다시 활동을 시작해서 꽤

꾸준히 공연 하고 있구요. 5집 음반 준비를 해야 하는데, 제가 너

무 바쁘다 보니까, 어떻게 낼까? 궁리중이에요. 민홍이(리더, 보

컬, 기타) 오빠는 솔로 프로젝트를 하고 있구요.

<이야기 해주세요> 음반에 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어요.

<이야기 해주세요> 음반을 만드시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5~6년 전부터 할머니에 대한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

요. 혼자 보다는 여럿이 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모임을 만들고 여

성주의 세미나도 찾아다녀보고, 각자 경험들 얘기도 해봤어요. 개

인적으로는 여성주의를 알게 된 계기가 되었던 모임이었거든요.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모임이 흐지부지 되고… 작년에 그때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서 음반 작업이 시작됐죠.

할머니에 대한 작업을 하고 싶으셨다고 하셨는데, 그 작업이 위안

부 할머니들을 위한 음반 기획으로 연결된 지점이 궁금해지네요.

외할머니가 저를 키워주셨는데 오랫동안 아프셨어요.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을 지켜보게 됐어요. 어렸을 땐, 각별했지만 커서는

멀어지기도 해서 아프실 때 얘기를 많이 해보고 싶었어요. 결국에

는 하고 싶은 만큼 얘기는 못했어요. 그런데 외할머니도 그렇고 친

할머니도 그렇고 결혼을 하실 적에 처녀봉출1) 안되려고 결혼했다

는 얘기를 하나같이 하시는 거예요. 그 당시에 공공연한 비밀 같은

것이었나 봐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일이라는 인상

을 받았거든요 우리 할머니는 결혼하셔서 평생 평범하게 사신 분

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처녀봉출 안되려고 결혼을 일찍 했다는 얘기를 자꾸 듣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럼 우리 할머니가 위안부로 가셨을 수도 있었겠구

나 생각이 들고, 그랬으면 내가 이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게 그렇게 먼 얘기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

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의문을 가진 거 같아요. 위안부 얘기를 하

는 게 왜 이렇게 어렵기만 한 걸까? 거리감이 있고 뭔가 되게 조심

스럽기만 하고. 너무 어렵게만 느껴지는 게 꼭 그럴 필요 있나? 그

러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방향의 작업을 하고 싶어졌어요.

주변에선 단순히 ‘위안부 할머니’들을 음반 작업에 주제로 삼은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거 같아요. 연예인들에 사회 참여에 부정적

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더러 있으니까요.

그런 시선도 있을 거예요. 사실 시작은 저로부터 비롯되었기 때

문에 참여하신 다른 분들은 난데없이 과제를 떠안게 된 거예요.

제가 찾아가서 ‘해주세요.’ 하고 툭 던진 과제를 떠안게 된 거죠.

거의 모든 분들이 오랜 시간이 걸려서 해주셨어요. 처음부터 흔

쾌히 ‘좋아요, 관심 있었어요.’ 하신 분들은 몇 분 없고요. 심지어

“이미 배상 끝난 거 아니야?” 하신 분도 계셨어요. 하나하나 얘

기를 하면서 알아가기도 하고 나눔의 집에 가서 할머니도 뵙기

도 하는 과정들을 죽 밟았는데. 그런 과정들이 솔직하게 담겨 있

는 거 같아요. 노래를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뭐랄까? 어마어마

한 그런 작업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선에서 해낸 작업

이기 때문에. 실제로 제안을 받았을 때 “잘해야 한다.” 는 부담을

스스로 많이 느끼고. 쉽게 가지 않으려고 경계를 많이 하신 거 같

아요. 그리고 그 정도 무게감을 실어줄 수 있는 분들한테 하자고

했고요. 아, 들려드리고 싶다. (웃음)

앨범 제목이 왜 <이야기 해주세요> 인가요?

차학경의 소설 <딕테>에서 나온 이름이에요. 단편영화 <리코더시

험>을 감독한 김보람씨가 작업을 도와줬었는데요. 그 친구랑 같이

제목을 뭘 할까? 얘기 했었어요. 근데 <딕테>를 되게 좋아하더라

고요. 소설엔 ‘이야기 해주십시오.’라고 나오는데요. 그게 열려 있

1) 일본강점기 때, 결혼하지 않은 미혼여성들을 많이 데려가자 당시 사람들이 쓰던 말이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를 봉출 해간다’해서 처녀봉출이라고 부르고,

처녀봉출을 피하려고 결혼했던 여성들이 많았다. 대다수는 탄광이나 공장에 가게 됐지만, 일부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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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그녀들에 대해서 널리 “이야기를 해주세요.” 라는 제목일 수

도 있고 당신의 이야기를 ‘나한테 해주세요.’가 될 수도 있고. 쌍방

으로 열려 있는 제목이라는 게 마음에 들더라고요. ‘주십시오.’가

너무 딱딱해서 ‘이야기 해주세요.’로 정했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작업 쉽지 않았을 거에요. 중간에서 여러

분들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셨을 텐데, 어떠셨어요?

곡은 각자 다 알아서 만들어주는 거라서. 음반이 만들어지는 방식

은 되도록 정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했죠. 그 과정에

서 되게 많이 배운 거 같아요. 서로 서로 다 열려있는 태도를 가지

려 했어요. 제가 잘못한 것도 있고 잘한 것도 있는데…, 되게 힘들

었어요, 사실.(웃음) 일이 많았어요. 진짜. 아, 음반에 들어갈 곡 순

서를 정하는 청음회를 했었어요. 다 모여가지고 취합된 곡들을 들

어보면서 한 곡 들어보고 박수 치고 건배~ 하면서(웃음) 그러다보

니 밤을 새더라고요. 그 날 아주 재밌었죠..

7월 즈음 앨범이 나올 예정이라고 알고 있어요.

올해 나오긴 힘들 거 같아요. 원래 계획과 다르게 자꾸 마감이 미

뤄지더라고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앨범이 나오고. 두 번째 앨범 작

업을 하고 있을 일정이거든요. 콘서트 기사가 나오고 나서 이효리

씨한테 연락이 왔어요. 본인도 참여하고 싶다고요. 이미 곡들이 많

아서 두 번째 앨범을 같이 하자고 했어요. 벌써 이효리씨, 소이씨

가 곡을 주겠다고 했어요. 두 번째 음반은 조금 더 대중적으로 인

지도가 있는 친구들이 참여할 거 같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니까

조금 더 인터내셔널 하게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베트남

계 미국인 가수가 곡을 준다고도 하고요. 조금 더 운동에 가까운

음반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저 혼자는 못

할 거 같고, 누군가 운동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 같아요. 앨

범이 나오고 나서 수익금을 어떻게 할머니들을 위해서 쓸 수 있을

지도 고민 중이에요. 기금을 마련하자는 분들도 있고. 여러 의견들

을 주시는데 아직은 정해진 건 없어요.

일이 점점 커지네요. ̂ ^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오세요. 심지어 엊그제는 홍순관 선생님

을 만났어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모금 공연을 국내 .

국외에

서 1000회를 넘게 하신 분이에요. 그런 분을 만나게 된 거예요.

그 분이 겪으신 일도 어마어마하더라고요. 너무 놀라운 거예요. 그

분이 겪으신 일과 목격한 역사를 듣게 되니까. 나는 정말 겨우 요

만큼 했구나 싶더라고요.

앨범이 나오기 전까지 다른 계획은 없으세요?

9월에 용산구청에서 공연이랑 사진전을 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다큐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작품을 만드신 안해룡 감독

님이 계세요. 이 음반 만드는데 되게 많이 도와주셨는데, 그분이

아시아 전역에 있는 피해 할머니들의 사진을 모아서 100점 정도

전시를 하기로 하셨어요. 저희는 거기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구요.

이게 왜 특별하나면요. 위안부 문제가 외교 문제라서, 지금까지는

관에서 한 번도 다룬 적이 없대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니까

요. 근데 용산구청 노조가 제안해서 처음으로 공무원 사회에서 위

안부 문제를 거론하는 거래요.

마치 앨범이 스스로 몸집이 커지는 것만 같네요. 새로운 일들이 계

속 생기구요. 느끼시는 점도 남다를 거 같아요.

정말 많아요. 피부가 뒤집어진다는 말을 쓰잖아요. 인생이 뒤집어

진 거 같아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게 아니라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많아서요. 힘든 일도 있지만 뭐랄까? 나 자신에 관

한 일이 아닌 거잖아요. 그래서 마음이 되게 정화되는 거 같은 거

예요.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해나가면서, 사람이다 보니까 나를 주장

하게 되기도 하는 일도 있지만. 일이 이렇게 잘 굴러나가는 걸 보

면 오히려 마음이 정화 되더라고요. 피부가 뒤집어지고 나면 피부

가 좋아진다잖아요. (웃음)

마지막으로 회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음반 나오면 많이 사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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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그.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새 천년에는 우리 여자들이 - 또 다시! -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선배들의 업적 위에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보다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알리스 슈바르처 (1942~ )

역사는 기록하는 것이지만, 어떤 역사는 기억하기에서 시작된다. 기록되지 않았기에 ‘역사’로 인정되지 않는 어떤 것들이 있다.

미국의 역사학자가 게르다 러너는 이렇게 말한다. “여성의 역사는 남성의 지배 권력에 의해 갈취되었다. 그리하여 본받고 싶은 여자

영웅이나 따르고 싶은 역할 모델들이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 말에 한숨이 나올지도 모르고, 정말 그랬던가?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기획은, 기억하는 역사를 말하려 한다. 왜 그래야 하는 걸까?를 대답해줄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시타, 한국 최초의 비혼공동체를 만든 언니네트워크 몽, 1세대 페미니스트 사진작가를 만난 20대 조윤.

이들의 글을 읽고 나서는 이 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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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마가 오래 아프시다. “하나님, 나 20년만 더 살게 해 주세요”

라는 그의 기도는 늘어난 평균수명에 비추어 욕심이랄 수 없건만,

어려운 질병이 그의 몸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주 구체적인

증상으로 목격할 때면 인간의 삶이 너무나도 짧다는 것에 소스라

치게 놀라곤 한다. 그러나 엄마는 어느 저녁 심상한 표정으로 아버

지에게 이르신다. “나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설거지 연습도 좀 하

고, 그 좋아하는 옥수수 삶는 법도 익혀둬야지.” ‘나 죽은 다음’ 이

라는 것을 생각하는 저 마음은 어떤 것일까 헤아리다 보면, 나는 어

쩔 줄 모르다가 이내 다른 생각을 해버린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끝까지 잘 살아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엄마는 어

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계실까. 무엇이 그를 고독하지 않게

해 주고 있을까.

2.

고정희 시인이 4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여성운동가였

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삼십대가 된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내가 활

동하고 있던 단체였던 언니네트워크가 2005년 제3회 ‘고정희 상

(賞)’을 수상하면서다. 고정희 상? 고정희가 누구길래 ‘고정희 상’

까지 있지? 했던 나는, 그가 또 하나의 문화 창립 동인이었고,

<여성해방 출사표>(동광출판사, 1990)라는 시집을 비롯한 많은 시

집을 발표했으며, <여성신문>의 초대 주간이기도 했다는 것을 뒤

늦게 알았다. 그제서야, 이십 대에 어떤 페미니스트 선배에게 들었

던 일화가 떠올랐다. 고정희 시인이 지리산 등반 중 실족하여 갑작

스레 세상을 떠났을 때, 그를 민족주의 시인으로서 추모하려는 남

자 문인들 사이에서 또 하나의 문화를 중심으로 한 페미니스트들

이 그를 ‘페미니스트 시인’으로 불러내고 기억하기 위해 했던 일들

에 대한 이야기였다. 별다른 감흥없이 곧 잊었던 그 일화가 몇 년 만

에 다시 떠오르면서, 나는 내가 변했음을 알았다. 무수한 시인들 중

한 명이었던 고정희 시인이, 갑자기 특별한 시인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고정희를 특별한 시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의 일부가 되었다

는 뜻이기도 했다.

누구로 기억할 것인가,누구와 기억할 것인가시타(전희경)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기획 그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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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리고 그 해, 2005년, 여성학과 동료들과 소식을 나누는 온라

인 까페에서 “안드레아 드워킨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

을 읽게 되었다. 안드레아 드워킨은 그 전까지 나에게 책이나 논문

에서 등장하는 이름이었을 뿐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살

아왔는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역시 너무나 생경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 아직 살아있는 사

람이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1946년 생 미국의 급진주

의 페미니스트. (<가디언> 지에 실린 어느 페미니스트의 기고글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비방당한” 페미니스트. “포르노는

이론, 강간은 실천”이라는 유명한 (그러나 지나치게 단순화된) 문

구 외에는 드워킨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고, 드

워킨의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했던 기억이 난다. 58세의 죽음

이 ‘너무 이르다’고 느끼는 나이가 된 나는, 그의 삶이 얼마나 고단

했을까 생각했다. 한국에서 그 삶의 고단함에 대해 상상하는 삼십

대의 페미니스트가 있다는 것을, 드워킨의 영혼은 알고 있을까 하

는 생각도 했다.

4.

2009년. 최명숙 선생님의 장례 소식을 들었다. ‘여성장’이라고

했다. 몇 벌 없던 검은 색 옷을 찾아 입고 추도식에 갔던 기억이 난

다. 무슨무슨 단체 장, 무슨무슨 대표들이 그를 ‘명숙이’나 ‘명숙 언

니’라고 부르며 추도사를 했다. 이십 대 후반에 몇 번 함께 회의를

했던 기억밖에 없었던 나는, 바람결에 그의 직함이 바뀌었다는 이

야기를 들었고, 지나가는 지인에게 그의 투병 소식을 들었고, 온라

인에서 그의 추도식 소식을 들었다. 그 시간들 동안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 아프게 느껴졌다. 나는 또, 추도식에

가서야 그가 20년간 민우회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날부

터 나는, 단체에서 오래 일한 활동가들은 그가 누구이건 일단 존경

받을만 하다는 입장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흘렀다. 그 다음 해에도,

또 그 다음 해에도, 그를 기억하는 페미니스트들이 9월마다 모인다

는 소식을 들었다. 페미니스트들이 모여 함께 기억하는 동안, 최명

숙 선생님의 삶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겠지. 내가

그를 기억하는 만큼 그가 나에게 스며드는 것처럼. 나는 그를 ‘선배’

라고 부르고 싶어졌다. 그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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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배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이십 대가 생각난다. 20대 중

반, 페미니스트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나에게는 욕할 선배

들 뿐이었고, 나는 몇 년에 걸쳐 대상을 바꿔가며 많은 선배들을 비

판했다. 나는 그들이 나의 선배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싶어 했고, 그

것이 내가 했던 많은 비판들 뒤에 숨겨진 감정의 핵심이었다. 민족

민주운동과 ‘따로 또 같이’를 선포했지만 여전히 감정적으로 연루

되어 있는 선배들을 충분히 ‘급진적’이지 못하다고 욕했고, 반성폭

력 운동보다 호주제 폐지에 매진하는 선배들을 결혼제도 안에 있

는 ‘아줌마’들이라고 폄하했다. 그 때의 비판들이 다 무효하다고는

지금도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그들의 삶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내가 모르

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었다. 내가 물려받은 것이 무엇인지는 더

더욱 몰랐다. 하지만 ‘선배가 없다’는 그 때의 고아심(孤兒心)은 한

편으로 내가 선배를 찾거나 기억하려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는 걸, 이제는 안다. 노트북 모니터에 띄워 놓은 ‘여성주의 계보’라

는 문구를 보며, 선배를 욕할 수 있다는 것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

다. 선배를 욕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인 이유는 물론, 일단 선배가 있

어야 욕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배를 욕하면서, 선배를 넘

어서려 애쓰면서, 은연중에 그의 후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함께 선배를 욕하고 그것을 넘어서려 애쓰는 사람들과 동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

여성학자 정희진은 화가 이중섭이 나혜석과 비슷한 말년을 보냈

음에도 불구하고 “이중섭의 죽음은 나혜석처럼 ‘시대를 앞서간 자

의 당연한 말로’가 아니라, 위대한 화가의 치열한 예술혼으로 여겨

진다”는 사실에 대해 질문하면서, “나는 나혜석의 삶이 행복했다고

본다”고 썼다. 가부장제가 기록한 나혜석의 죽음에 나혜석의 삶을

되돌려준 정희진의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나의 어떤 불안이 구원

받았다고 느꼈다. 여성주의 계보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

어 기억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시대적 존재로서의 한 여성을 ‘누

구로’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그 여성을 ‘누구와 함께’ 기억할 것인

가 이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것은 기억된다. 기억하는 사람

이 여럿일 때, 그것은 이야기가 된다. 기억하는 사람이 그 기억과 현

재의 자신을 연관시킬 때, 그것은 계보가 된다. 기억하는 사람이 과

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면서 공동으로 다른 미래를 열고자 할 때, 그

것은 역사가 된다. 우주의 먼지처럼 짧고 유한한 삶들이 얽히고 이

어져 이루는 어떤 ‘의미’ ― 바로 여성주의의 역사 말이다.

시타 ●

여성들과 관련된 것이라면 별 것도 아닌데도

잘 울곤 하는 주책바가지. 민우회에서는 정책위원으로,

살림의료생협에서는 무려 여성학 전문이사로

빡쎄게 일하며 사느라 연구는 잘 못하고 있는 여성주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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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언니네트워크 책장을 뒤적이다가 12년 전 발간된 연세

대 여성전문저널 <두입술>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읽어보았다. 표지

를 넘기자마자 공산당선언을 패러디해서 만들었다는 ‘결혼안당근

주의선언’을 읽고 혼자 사무실에 앉아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난다.

아니, 婚(혼) 빼는 여자라니, 이런 유쾌한 비틀기가 가능한 선언문

이라니. 왜 여태 몰랐던가!

5년 전인 2007년 1회 비혼여성축제에서 발표된 ‘비혼선언문’

만을 기억하고 있던 내게, 총여학생회, 여성주의 자치언론 등 학내

여성주의 운동이 활발하던 2000년도의 ‘婚(혼) 빼는 여자 연합’과

‘결혼안당근주의선언’1) 은 또 다른 버전의 (비장하면서도 유머러스

한) 든든한 ‘참고문헌’이다. 나는 특히 비혼 여성들에게는 이러한 참

고문헌이 더욱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혼자가 될 것이

라는 불안, 아무도 내 삶의 정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 같은 외로

움, 결혼제도의 자장 밖에서 나아갈 길을 잃은 것 같은 혼란 - 이와

같은 수사들이 비혼의 의미를 채우지 않도록 다잡아주는, 내 삶의

나침반과 같은 참고문헌 말이다. 하지만 비혼 여성들은 충분한 참

고문헌을 가지고 있을까?

하나의 플롯, 하나의 대본?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남성들의 관계, 계보, 역사는 ‘밀어주고 끌

어주기’ 단 두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여성들, 특히 가

족 내 역할로 환원되는 ‘여자다운 삶’의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여

성들의 삶은 늘 ‘맨땅에 헤딩’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이 안 된다. 캐

롤린 하일브런2) 은 여성들이 ‘이야기들’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가

1) ‘결혼당근주의’가 “결혼은 완전한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로서 인생의 당연한 과정이며, 그것은 또한 매우 달콤하고 환상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 시대의 주

류 이념”이라면, ‘결혼안당근주의’는 “결혼은 선택이 가능한 것이고 개인의 선택을 통해 이루어져야하며 우리는 환상에서 벗어나 보다 객관적인 눈으로 결혼을

바라봐야 한다. 또한 결혼은 선택사항이므로 인격체의 성숙도와 결혼여부는 일체의 상관성이 없다’라는 주장의 이념”이라고!

2) 캐롤린 하일브런의 책은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두 권이 번역, 출간되어 있다. 특히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을 통

해 여성사로서 여자답지 않게 살아간 여자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유통되어야 한다는 그녀의 주장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점이 아닌 선, 에피소드가 아닌 역사몽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하나의 婚令(혼령)이 이 땅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 가부장의 망령이 깃든 결혼당근주의라는 婚令(혼령)이. 이 婚令(혼령)이 씌우지 않은 무리,

즉 婚(혼) 빼는 여자들이 이 유령을 퇴치하기 위하여 각지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婚(혼)을 빼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婚令(혼령)이란 실체 없는 아무것도 아님이 드러나리라.

- 전국 婚(혼) 빼는 여자 연합, ‘결혼안당근주의선언’ 中

기획 그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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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못하는 이유는 여성들이 단지 하나만의 플롯을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계속해서 자신들이 쓰지도 않은 하나의 대본에만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퍼뜨리는

‘여자다운 삶’의 이미지가 너무 강력할 때, 용기 있는 여성들의 ‘맨

땅에 헤딩’은 다른 삶을 상상하는 여성들이 따를 수 있는 역할모델

로서 기록되고, 기억되고, 소환되기보다 남성사회의 인식에 부합

하는 방식으로 규정되고 해석된다. 이상한 여자의 삶이거나, 이상

해서 비참한 여자의 삶이거나.

동의할 수 없는 하나의 대본에는 그것을 상대화 할 수 있는 다른

이야기들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나는 그것이 여성주의적 개

입이자 실천이자 역사쓰기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특

정한 시대를 살아갔던 여성들의 다른 서사를 복원하는 것, 그 여성

들이 자신의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자원을 얻거나 빼앗기거나 협

상할 수 있었던 사회문화적 조건이 무엇이었는지를 해석하는 것,

그 의식과 행위, 삶의 의미를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것으로 위치시

키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플롯, 우리의 대본

그래서 나는 언니네트워크에서 비혼 운동을 하며 가장 감동스

러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1990년에 한국 최초로 독신여성단체

‘한국 여성 한마음회’ 를 만들었던 김애순3)씨를 만났던 경험을 빼

놓을 수가 없다. ‘비혼이라는 용어가 한국사회에 등장한 건 10년

이 조금 넘으니, 그 이전에는 독신이라고 했겠지?’하는 생각으로

포털에서 ‘독신’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다 읽게 된 ‘한마음회’의 오

래된 기사. “혼자 사는 여성이 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불리한 현

행 세제나 아파트 분양권 같은 당면문제 해결에 힘을 모으고 신체

적, 정신적 고통을 당할 때 어려움을 함께 나누기 위해 단체를 창립

한다”는 당시에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취지로 창립한 독신여성단체

가 이미 20여 년 전에 한국여성운동사에 존재했을 거라고는 상상

조차 하지 못했다.

‘한마음회’의 흔적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

는지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김애순 씨가 쓴 책 <독신 그 멋과

매력>, <독신 그 무한한 자유>를 출간했던 출판사는 폐업했거나

너무 오래되어 저자 연락처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김애순씨가 활

동했던 여러 단체들에 연락을 해 보아도 알 수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급기야는 김애순씨가 졸업한 대학 학과 사무실에도 매

달려보았지만 마찬가지였을 때의 절망이란…. 그러다 김애순씨

가 살았던 10년 전 집주소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주소

지에 살고 계실지도 알 수 없었고, 무작정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꼭 뵙고 싶다는 구구절절한 편지를

쓴 그 날로 등기를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정말로 기적과 같이 김애

순씨에게 연락이 왔을 때- 그때의 희열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92명의 창립회원이 모여 400여명 가까운 회원이 있었던 한마음회

의 시작, 독신에 관한 책조차 부모에게 들킬 새라 이불을 뒤집어쓰

고 봐야 했던 20년 전의 3~40대 독신여성들, ‘가시 돋친 장미’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데려갈 사람이 없다’는 말로 둘러대면서도 결혼

3) 독신여성단체 <한국 여성 한마음회>와 초기 회장이었던 김애순씨에 대한 자세한 인터뷰는 언니네(www.unninet.net) “20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 - 한국 최

초의 독신여성단체 <한국 여성 한마음회>의 회장 김애순씨를 만나다” 칼럼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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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는 꿈꿀 수 없기 때문에 당당히 살아온 독신의 삶. 그 와중에 독

신을 위한 교양강좌를 하면서, 명절마다 여행을 다니면서, 서로의

삶을 챙기면서 만들어간 네트워크…. 나에게 어색하기만 했던 ‘선

배’라는 명칭과 불투명하기만 했던 ‘역사’라는 단어가 이렇게 가슴

벅찼던 적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다가왔던 적이 있었을까. 그건

마치 내가 어떤 길 위로 걸어왔는지 알 수 없어 정처 없이 헤매고 있

는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울 때 만난 이정표와 같았다.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기 위해서

한창 ‘한마음회’의 발자국을 찾아다닐 때, 내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가 지나가듯이 한 말이 있다. “나중에 10년, 20년 지나서 너

처럼 다른 여성들이 ‘비혼’ 운동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서 찾

아올 수도 있겠네?” 순간 머릿속이 멍해져서 몇 초 정지해 있다가,

낮게 읊조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니, 그렇게 안 되려고 내가 지

금 비혼 운동 열심히 하고 있는 거라고!’ 만약 내 미래에 그런 장면

이 펼쳐진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지금은 생각만 해도 너무 씁쓸하

고 슬플 것만 같다.

2011년 언니네트워크가 개최했던 ‘비혼PT나이트’ 에서 스피커

중 한 사람이었던 노미는 “남성들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는 건 ‘스

토리텔링‘이 되기 때문이다, 비혼 여성의 삶에 대한 더 많은 스토리

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에피소드’가 아

닌 ‘역사’이다. 각자 떨어져 맨땅에 헤딩은 하지 않을 수 있는 인식

론적 토대, 때로 혼란스럽고 불안해지더라도 그것을 지탱해줄 수

있는 버팀목, 여성들이 ‘이야기들’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가질 수

있고 서로의 참조점이 되어줄 수 있는 역사. 그 역사를 다시 발견하

고 새롭게 쌓아가기 위해서, 여전히 여자답지 않은 여자들의 더 많

은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인다.

몽 ●

언니네트워크 활동가 + 가입한지 얼마 안 된(̂ ^;)

한국여성민우회 회원입니다.

더 많은 ‘+’들이 쌓여가는 시간을 기대하며 살고 있어요.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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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 작가를 만나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받았을 때, 사실 많이

망설였다. 박영숙 작가는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진행된 “미친년

프로젝트”로 유명한 1세대 페미니스트 사진작가이다. (현재는 종로

구 소격동에 있는 트렁크 갤러리를 운영한다) 그에 반해 나는 아직

사회에서도 풋내기 20대이고, 사진을 찍은 역사도 짧은 편이다.

이런 내가 이미 깊은 연륜과 역사를 지닌 사람과의 만남이 가능할지

에 대한 의구심이 더 앞섰던 것이다. 그분과 만나면 이야기가 통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고민이 많은 시기를 지나

고 있는 와중에 조언이 될 수 있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

대에 만나보기로 했다.

제 각각의 시작, 사진으로 만나다

처음부터 사진을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특정한 꿈도 없

이 무작정 취업이 잘 되는 학과를 선택해야겠다 싶어 상경계열

로 진학을 했다. 적응을 잘하진 못했고 점점 소위 말하는 ‘빨갱

이’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학보사에 들어가면서 대학생활의

절반 이상은 학보사에서 정치·사회·여성 등의 이슈에 눈뜨게 되

었다. 사진도 학보사에서 시작하였다. 성격이 소극적인 터라 낯

선 곳에선 쭈뼛거린다. 그런데 사진을 하게 되면서부터 그런 것

이 많이 사라졌다.

특히,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온 정신이

집중되어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그 시간이 좋았다. 혼자

서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을 찍다가 외로움을 느껴 사진 동아리나

모임 등을 물색하였지만 대부분 남자와 아저씨들로 구성된 조합

이었고, 그 조합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2010년 퀴어

문화축제에서 언니네트워크 회원 소모임인 ‘어떤사진관’을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활동 중이다. 최근에는 사회에서 가족으로 인정

하지 않는 소위 ‘비정상’ 가족들에 대한 사진전인 <정상가족관람

불가 展>에 참여하였다.

박영숙 작가도 사진과 관련된 학과를 학부에서 전공하지는 않

으셨다고 한다. 물론, 이후에 석사로 숙명여대산업대학원 사진학

기획 그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과거에서 미래로 - snapshot조윤 언니네 ‘어떤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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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공부하긴 하였지만 기본적으로 사진을 배우지는 않은 것이다.

요즘에야 사진이 보편화되고 DSLR이 대중들에게 친숙해져서 일

명 ‘찍사(사진 찍는 사람의 준말)’들이 넘쳐나고 여성들도 쉬이 카

메라를 쥘 수 있게 되었지만 과거의 카메라는 부유한 집안만이 전

유할 수 있는 물품이었다.

“박영숙 : 아버지는 기계를 소중히 다루기보단, 그것의 논리가

어떻게 되는 가를 저희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더욱 중요하게 생

각하셨습니다. 당시 카메라는 지금처럼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집

한 채 가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비싼 물건을 딸이 가지고 노

는데도 아버지는 위험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박영숙 작가가 사진작가가 된 것이 특별한 집안 환경

덕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개인적인 의지와 꾸준

함이 우선되지 않았나 싶다. 여성으로서 사진기를 든다는 것 자

체가 어려웠던 시기이기에, 한 전시장에서 본 사진에 매료되어

카달로그를 사고, 전시장에서 마주친 숙대학보의 기자에게 사진

을 배우고 싶다고 매달리게 된 것이 본격적인 사진 인생의 첫 발

걸음이었다고 한다.

사진은 남성의 전유물?!

내가 대략 4년간 사진을 찍어오면서 느끼는 것은 여전히 사진

은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차별받거나 저평가 되는 경

험이 많았다는 것이다. 인디밴드 웹진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할

당시, 나보다 나이가 5~6살 정도 많은 남성사진가가 있었다. 나

는 늘 그에게 밀리는 마이너였다. 물론 그가 사진도 더 잘 찍고 장

비도 더 많았다. 거기다 전문사진가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었기

에, 나는 그저 넘쳐나는 찍사들 중 하나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기

죽지 않고, 그를 보며 많은 것을 배웠고 빛이 거의 없어 촬영이 어

려운 공연사진을 점점 더 나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나의 노력은 ‘대학생, 젊은이의 열정’을 이유로 댓가없

이 이용됐다. 돈을 바라거나, 내 사진이 뛰어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작은 관심이나 피드백 정도를 바랬지만 가장 먼

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여성’이라서 저평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

었다. 카메라가 결부된 장소에서 느껴지는 여러 종류의 차별이

있었다. 박영숙 작가도 한 잡지의 기자로 활동할 적, 사진부장과

충돌을 자주 일으켰다고 한다.

“박영숙 : 학교를 졸업하고 1964 ~ 1966년까지는 <여상>이

라는 여성잡지 기자로 활동했어요. 제가 기자노릇은 잘하는데

늘 사진부장과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그 사진부장은 두 아

이의 아빠였어요. 그러던 어느날 편집장이 저를 부르더니 하는

이야기가 ‘그 사람은 애 있는 아빠이고 네가 직장을 관두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고사직을 받았고 저는 부당해고를 당한 채 쫓겨

났죠. 이것이 저를 페미니스트로 만들 수밖에 없는 첫 번째 케

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도 여성으로서 오는 차별지점

은 많았어요. 언론사에 사진기자로 취직하려고 해도 늘 면접에

서 떨어졌는데 그 이유가 ‘여자는 사진기자로 뽑지 않는다’라는

것 때문이었어요.”

요즘에도 여성 사진기자가 있지만 적은 수이며 언론사는 대체

로 보수적이라 여성으로서 사진기자가 되기는 어렵다. 이와 같

은 상황은 아무리 세대를 넘는다고 해도 온전히 해소되는 문제

는 아닌 것 같다. 이런 차별들이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님을 오래전

에 사진을 시작한 노년의 작가에게 들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여성주의를 사진으로 담고 싶다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접하게 된 것은 학보사의 세미나를 통

해서였다. 여성이 차별받는다는 것은 그 이전에 가정에서도 충분

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정상가족관람불가 展>을 준비하면서는 이미지를 통해 메시

지를 전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고, 사진으로 여성

주의를 표현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래서 박영숙 작가가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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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들이 대단하게 느껴졌고, 나의 경험은 아주 작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었다.

“박영숙 : 1975년에 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가 저에게 여

성의 해를 맞이하여 한국의 여성의 현주소를 그려보는 사진전

을 해보라고 제안했어요. 총 13섹션이 되는 사진전을 6개월 동

안 저 혼자서 진행하였죠. 짐을 머리에 이고 서울로 상경한 여성

들이 많은 영등포역, 영등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창녀촌’이 있

었고, 성냥갑 같은 집에 살면서 가발공장에서 일을 하는 여성들

이 있었죠.

아파트가 처음 생겨난 이촌동에는 행복한 얼굴을 한 여성들도

살고 있는 반면 용산 정도만 들어가도 행상을 하는 여인, 길거리

에 아이를 두고 음식 만드는 일을 하는 여인 등 너무 다양한 모습

을 한 여성들이 있었죠. 여협의 각종 세미나에 참석하며 여성주

의를 알게 모르게 공부하게 되었고 1985년에는 ‘또 하나의 문화’

(이하 ‘또문’)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죠. ‘또문’을 통해서 여성주

의 미술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고 마녀화형이 무엇

인지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마녀화형을 당한 여성들의 영혼을

위로한다는 의미를 지닌 사진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 작업이

페미니스트 1세대로서의 제 첫 작품입니다.”

한편으론, 박영숙 작가님과의 만남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열심히 한다지만 여전히 초보로 머물러 있는 것 같은 나 자신.

스스로가 더욱 매진하고 노력해야 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데 현실 탓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모습. 이런 내 모습

이 다시 상기되었다. 이제 막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는 나에

게 박영숙 작가는 가감 없는 조언을 해주셨다. 어떤 조언들은 쓰

리기도 하였다. 쓰지 않는 약은 없다는 생각으로 새겨들었고, 혼

자 성찰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미래의 나에게

사진에 나의 철학을 담아내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과

고민들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여성으로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 남성과 비등한 여성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의 전유물

로 읽히는 카메라를 제자리에 놓고 싶다. 흔히 알려진 ‘미적 아름

다움’이 아니라 나의 철학을 담은 미(美)를 그려내고 싶다. 보편

적이고 문화적인 영역의 스튜디움(Studium)을 통한 감동이 아

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단박에 찌를 수 있는 주관적인 어떤 요소,

푼크툼(Punctum)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라며.

미친년프로젝트 中

조윤 ●

취직은 해야겠는데 갈피도 못 잡고 있는,

사진은 계속 하고 싶은, 그러나 돈은 없는 내년 2월 졸업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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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평가

나에게 민우회는?

가입한지는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신입회

원 모임에도 참석하지 못했어요. 그래서인지

저와 민우회를 이어주는 가장 큰 끈은 함여에

요. 다양한 이슈에 대응하고, 새로운 시각을

생산하는 민우회의 모습이 멋져 보여요.

지난 호 함여에서 눈에 띄었던 점?

표지부터 눈에 확 들어왔어요. 배우 권해효씨

가 “차림사님~”하고 외치는 모습이라니! 여성

단체 소식지에 전면적으로 남자배우가 1인

으로 등장하는 것은 드문 일인데 말이죠. 물

론 표지만큼 안의 내용도 읽을거리가 많았어

요. 특히 최현정님의 ‘폭력, 그 공포와 고독에

대처하는 자세-수원에서의 외로운 죽음을 위

로하며’가 좋았습니다. 경찰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질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그들도 치유가 필요하구

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시민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을 테니.

함여에 바라는 점?

소식지에 민우회 활동사진, 다양한 회원, 활

동가들의 사진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꼭

누군가의 얼굴이 나오지 않아도 ‘직찍’ 사진은

정겹고, 서툰 매력이 있어서 소식지와 잘 어울

리는 것 같아요.

박은지 ● 여성건강 이슈에 관심이 많음.

점심시간을 3시간 주는 직장에서 일하

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음.

지난 호 함여 어땠나요?

한 꼭지 한 꼭지가 흥미로웠어요! 빠짐없이 읽

고 또 읽었던 것 같아요. 산부인과 이야기, 추

행의 고의 판단, 폭력에 대한 심리적 기제 같

은 주제들이 저와 주변사람들의 경험을 떠올

리게 하면서 절실하게 읽히더라구요.

그럼 가장 좋았던 꼭지가 있다면?

기획 꼭지 글 중에서 <노출, 노출, 노출!>을 아

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노출에 반대하고, 외

모에 무관심해지는 것이 정말 여성주의적인

태도라 할 수 있을까요?” 혹은 “그렇다면 마

돈나와 같은 노출이 우리의 전략이 될 수 있을

까요?”라는 의문이 제가 갖고 있는 고민과 맞

물려 와닿았거든요.

다음 함여에 바라는 점은?

‘여성-노동자로 살아가기’에 대한 글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침 민우회에서 ‘노

동법교실’이 열리던데, 그와 관련해서도 많

은 수다들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참, 그리고 ‘연애’에 관한 날카로운 글도 실렸

으면 좋겠어요. ^^

여해 ● 민우회 소모임 슈퍼스타M(슈엠)

의 멤버로 끼어있는 ‘여해’(‘여성해방’의

준말)입니다. 이름은 거창하나 실은 슈엠

에서도 허당을 맡고 있어요. ^^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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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2012년 6월은 진정 드라마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분위기를 피부로 느낄 때는 회사에서 직원들이 모였다 하면 전날

드라마가 재방되는 순간이다. 텔레비전을 한번 켜면 애국가가 끝날

때까지 끄지 못하는 집중력 때문에 텔레비전을 없앤 지 4년. 그러다

보니 직원들의 드라마 파티가 시작되면 한마디도 끼지 못하지만, 경

청하는 덕분에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는 빠삭하다.

그중에서도 주인공은 <신사의 품격(이하 신품)>과 <넝쿨째 굴러

온 당신(이하 넝쿨당)>. 넝쿨당 팬이 되어버린 나는 이제 제법 이야

기를 주도하고, 며느리들의 고민을 공유한다. 텔레비전도 없는 내

가 어떻게 이야기를 주도하냐고? 다~ 방법이 있지^-^

남편도, 친정도 시댁에 더 자주가길 원했다.

어느 날 인터넷에서 김하늘과 장동건의 벚꽃 길 뽀뽀 사진을

본 뒤, <신품>을 방송하는 날마다 방랑자처럼 정신없이 떠돌아다

니고 있다. 텔레비전이 없는데다 본방을 사수해야 이야기에 합류

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주말 저녁마다 동서네 ☞ 친정집 ☞ 시댁

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신혼이라는 이유로 시댁을

더 자주, 오래 갔었는데(친정, 시댁, 동서네 모두 가깝지만 남편은

시댁을 더 자주 가길 원했고, 친정에서 더 그랬다 -.,-^) <신품>방

영시간에 맞춰 가면 의도가 너무 드러날까 봐 오후 3~4시쯤 미리

가 자리를 잡았다. 시댁에 가면 텔레비전만 보는데도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라 불편했지만 <신품>이 있어 잠시나마 망각할 수 있

었다. 시댁은 연애 때도 수시로 들락날락였고, 끊임없이 먹을 것

을 챙겨주시며 애정을 보여주셨다. 그렇지만 갈 때마다 긴장되고

불편한데, 정작 남편은 이해를 못했다.

“한 가족인데 뭐가 불편해? 너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맨날

가면 텔레비전만 보고, 밥 먹고, 심지어 낮잠(피곤에 쩔어 앉아서

조는 걸 낮잠이란다)도 자면서 불편하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돼.”

정작 자기는 친정가면 말 한마디 못하고 잔뜩 긴장해 있으면서.

그런데 언제부턴가 <신품>과 함께 기다려지는 게 있었으니 바로

<넝쿨당>이다. 시부모님, 주말부부 시누이, 남편 그리고 어느 날

은 동서네까지. 시댁 식구들과 시청하는 넝쿨당은 그야말로 가족

드라마다. 어쩌다 귀남이가 윤희에게 지극 정성을 보이는 날이

면 남편에게 “잘 봐!”하고 장난 반, 진담 반 눈치 주며 웃고 떠들다

가도, 고부갈등 장면이 나오면 각자를 돌아보는 듯 조용해진다.

넝쿨당은 [시월드를 대하는 며느리 매뉴얼]

넝쿨당은 비현실적으로 무서운 시어머니, 싸가지 없는 며느리,

불륜같은 자극적인 소재 없이 시월드(드라마에서 시댁을 시월드라

고 부른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인 차윤희의 시댁

식구들은 요즘 보기 드문 대가족이다.

시부모와 세 명의 시누이에 시할머니, 거기다 작은어머니·아버

지까지. 그들이 얼마나 보수적인가는 이름에서도 드러나는데 아들

이름은 방귀남. 이름에서도 장군같이 귀하고 든든한 남성성을 부각

시킨다. 반면, 딸들의 이름은 일숙, 이숙, 말숙이 같이 무성의하다.

그런데 그 귀하디 귀한 아들을 잃어버리고 슬픔과 자책에 빠져 살

넝쿨당에서 ‘나’는 누구?김민정(단팥)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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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시어머니 엄청애 앞에 운명적으로 아들이 나타나고, 덤으로 며

느리까지 생기게 된다. 엄청애에게는 그동안 엄마로, 시어머니로

하지 못했던(부러워했던) 욕구들이 마구 샘 솟는다. 그런데 그 욕

구는 대부분 며느리를 통해 전달된다.

“목욕 같이 가자, 현관문 비빌번호 알려 달라, 남편 밥 잘 챙겨줘

라, 임신해라, (임신했더니)직장 그만둬라, 아가씨에게 말 높여라”

등등…. (엄청애가 며느리에게 바라는 것들이 결혼 5개월 차인 나

에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다. 하지만 출산에 대한 압박은

시월드의 공통적인 특징인가 보다. 나도 결혼과 동시에 “하루라도

젊었을 때 임신해야지, 아들이 있어야 든든해”라는 이야기를 아주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윤희는 만만치 않은 당찬 며느리다. 시댁과 남편을 위

하는 말로 포장하며 결국 본인 생각대로 이루어지게, 현명하게 해

결하는 데서 드라마를 보는 며느리들의 속을 시원하게 만든다. 더

군다나 남편이나 친정에 하소연하거나 전적으로 매달리지 않고 혼

자서 철두철미하게 해결하는 모습은 가히「시월드를 대하는 며느

리 매뉴얼」이라 할 만하다. 또, 차윤희 못지 않은 인물이 있으니,

바로 남편 방귀남이다. “잘못한 게 있으면 저랑 같이 혼내주세요”,

“저도 이제부터 처남을 존중하는 의미로 말을 높이려구요.” 며느리

를 혼내는 어머니의 부당함을 꼬집을 때는 ‘허상’이라 생각하면서

도 남편을 째려보게 된다. 허상이라도, 대리만족 할 수 있으니 작가

가 고마울 뿐이다.

“누구의 모습을 따라가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다운 모습, 마

음 가는 대로 살자.”

차윤희는 애초에 며느리가 될 싹을 자르고자 고아 남편과 결혼

했다. 차윤희의 막내 시누이 말숙이는 가족도 남자들도 모두 자기

손바닥 위에 있다. 하지마 말숙이가 악몽을 꿀 정도로 두려워한 것

도 시월드다. 결혼을 준비하는, 혹은 결혼을 전제로 두고 있는 여자

들이라면 격하게 공감할 부분이다. 나 역시 결혼보다는 동거가 하

고 싶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결혼이 현실이라는 건, 경제적인 비

용 발생 뿐만 아니라 시댁 관계를 넘는 그야말로 시월드라는 새로

운 나라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넝쿨당에 나오는 여러 며느리들이 갖고 있는

장점들이 없다. 주인공 차윤희 같은 현명함이나 작은아버지의 부

인인 고옥의 순종이나, 시어머니 엄청애의 희생정신처럼 말이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르듯, 이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없다. 그

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예비)며느리라면 누구의 모습을 따라

가려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다운 모습’, ‘마음 가는 대로’ 살

기 바란다. 나쁜 사람은 없다. 그리고 누구도 나쁜 사람이 되고 싶

지 않다. 각자의 위치와 상황이 만드는 불편함이 있을 뿐. 그러니

나다워야 후회가 없지 않겠는가.

단팥 ●

입사 하자마자 결혼하고. 결혼 하자마자 임신하고.

12월에 출산을 앞둔 스팩터클 익싸이팅한 서른.

여행·음식·일·태현이 좋은 민정.

한국자원봉사문화와 민우회를 사랑하는 단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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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람풍경

지난호 모람풍경에 소개됐던 소모임들 소식을 전합니다.

아직은 두세명의 단촐한 모임이지만, 앞으로 활약을 기대합니다.

어떤 활동을 하는 걸까? 궁금하셨던 회원분들 주목해주세요~

시작하는 이야기-슈퍼스타M과 여백

슈퍼스타M

안녕하세요. 슈퍼스타M(이하 슈엠) 소모임 담당 활동가 민트입

니다. (꾸벅~ 큰절 올리옵니다.) 춤추는 소모임을 뚝딱 만들고, 나

중에야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은 연습할 만한 거울

이 있는 공간 섭외가 걱정되고, 활동가 . 회원분들이 유행곡들을

무리할 정도로 신청을 하시는데. 흑! 감당이 안되었지요. 하지만

이런 걱정들을 슈엠 멤버들과 하나씩 풀어나가고 있답니다. 심지

어 면진님 덕분에 바로 공간 섭외 완료! 앞으로도 기대 많이 해주

세요. 0_0 다음으로 슈엠의 멤버! 손짓 하나마저 그림이 멋진 면

진님의 소모임 후기입니다!

민우회에 댄스 소모임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신청해놓고

첫 모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첫 만남! 면진·여해·민트가 민우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으흐흐흐~” 웃기만 하며 서로 조금 부끄러워도 했지만, 각자 왕년(?)에

춤을 췄던 이야기를 꺼내놓으며 서로 찌릿찌릿 통하는 뭔가를 느꼈다.

음~ 이 정도면 시작이 꽤 괜찮은 것 같다.

그리고 2주 뒤 본격 댄스타임! 내가 일하는 곳에 널따란 마룻바닥과 거울

이 구비된 연습실이 있는 터라 꽤 좋은 환경에서 연습 할 수 있게 되었다.

민우회원캠프를 첫 데뷔(?) 무대로 정하고, 첫 연습곡은 티아라의 <롤리

폴리>. 이미 안무를 알고 있는 민트의 지도 아래 연습했는데 등에 땀이

찰 정도로 열심히 했다!

여해는 연습용 몸빼바지까지 장만해왔다. 다음 모임에는 멤버들이 돌아

가면서 춤을 준비해서 알려주기로 했다. 집에 와서 혼자 거울 보며 연습

하기도 하고, 직장에서는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댄스 동영상을 보며 순

서를 외운다. 소모임이 시작된 후 내 삶에 새로 생겨난 소소한 재미이다.

바람이 있다면 나름 춤 대형까지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소모임 회원이 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것. (그렇다고 이 후기를 보고 신청폭주하면 곤

란한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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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여백 담당 활동가 반아입니다. “퇴근하면 쓰러져 잠자기 바쁜 와

중에 세미나라니?! 그것도 여성주의 세미나라니? 여성학자들이

누가 있지? 머리가 백지 상태다.” 그래서 우리 소모임 이름이 여

백이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을리는 없구요. ^^ 여성주의가 나

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힘이 되도록 공부해보기로 했습니다.

이왕이면 회원들과 함께하면 더 즐겁겠죠. 누가 나랑 세미나를 해

줄까? 걱정과 달리 벌써 세분이나 함께 해주시고 계십니다.

아래는 세라님이 써주신 여백 소개글입니다. ^^

어느 날 문득 변화의 바람을 따라 여성주의가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여성주의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죠. 막상 가볍게 발을 들여놓았지만 같

이 어울리는 여성주의자들의 말들이 살짝 이해가 되질 않고, 함께 웃지

도 못하겠고. 겉으로는 따라 웃지만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에요. 그래

서 여성주의 책을 찾아 읽어 보았죠. 왜 이렇게 어렵지? 한 페이지가 넘

어가질 않아요. 분명 한국말인데 왜 이해가 쏙쏙 안되지?

아하! 문득 깨달았죠. 여성주의 언어의 기초가 없다는 것을, 영어 공부를

할 때도 알파벳을 먼저 공부 해야하는 것처럼, 남성의 언어가 아닌 여성

의 언어를 새로 배우기 위해서는 여성주의 알파벳이 필요하다는 것을요.

여성주의 백투더퓨쳐

여성주의의 과거·현재·미래까지, 여성주의 알파벳을 알아가기 위해, 쉬

운 책부터 읽어 보아요.여성학자들이 과거에 어떤 고민으로 여성학을 시

작했는지 알고 나면, 여성주의의 현재도 조금은 이해 되겠죠.

매일매일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새 여성학 책도 술술 읽히고 여성주의자

들과의 대화가 재밌어지고 진정 웃을 수 있게 될 거에요. 여성주의 내공

이 훌쩍 올라가 있을 거에요.

여백에서 함께 공부해요, 여성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여백에서 함께 만들어가요, 여성주의의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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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나루에서

9년 만의 전업주부 탈출기김나현(용가리)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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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회 활동가가 된 지 이제 2개월 2주

“승은 엄마, 요새 왜 그렇게 얼굴 보기 힘들어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저… 사실 민우회에 취업했어요.

너무 갑작스럽게 돼서 미처 얘기를 못했네요.”

“와~ 능력 좋으신가보다.”

“아, 아니에요. 경력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꾸준히 활동을 하다보니.”

“나도 큰애 낳기 직전까지 일 했었는데. 이제는 끝났죠, 뭐.

집에만 있는 게 너무 힘들어요.”

이따금 연락하고 지내던 지인들도 “민우회? 그럴 줄 알았다”며

많이 축하해줬다. 친하진 않지만, 조금씩 말을 건네며 지내던 동

네 엄마들의 관심도 받고 있다. 남편으로부터 직장 동료의 배우자

가 “자신도 상담일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취업했냐?”며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함께 성폭력 상담원

교육을 들었던 몇몇 회원분들도 오랫동안 회원으로 있다가 활동

가가 됐다는 것에 관심이 많다고 전해들었다.

원고 의뢰를 받고 나서, 문득 일 년 전 생활 글쓰기 소모임에서

썼던 글이 생각났다. 제목은 <8년 차 전업주부의 일주일 취업기>

다시 꺼내 읽어보았다. 또 읽어 보아도 그 글을 써내려갈 때의 절

박함이 느껴져 가슴이 저민다. 오랫동안 사회에서 소외되어 온 고

립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 내 인생은 이대로

고정되어 죽을 때까지 주부로 끝날 거라는 절망감이 고스란히 담

겨있다. 그때의 마음이 담긴 부분을 옮겨적어 본다.

작년 가을이었다. 아는 언니 사무실에서 일을 도와달라는 연락을

급하게 받고서, ‘아 이제 뭔가 다른 변화가 시작되는구나!’ 기대했

다. 열심히 일했고, 계속 사무실 다니면서 일을 배워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한 달이 넘는 유치원 방학을 앞둔 아이들을 하루 종

일 맡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김장, 제사 등 연이은 집안 대

소사를 해결할 방법도 없었다.

거기다 출근한지 며칠만에 집안은 엉망이 되었고, 아이들을 제대

로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매 순간 시

간에 쫓기고 숨 가쁘고 정신이 없었다. 결국 5일 만에 녹다운! 그 일

을 포기했다. 힘들게 찾아온 기회를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날려버

려야 하다니. 아마 다시 이런 기회가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너무 심

란하고 속상해서 엉엉 울어버렸다. 사회 경험도 경력도 능력도 전혀

없는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내 손으

로 돈을 벌어 보고 싶었다. 집순이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대단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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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사회의 일원으로서 작게나마 인정받고 싶

은 욕구가 그렇게 배부른 욕심인건가. 남편은 옆에서 “좋은 기회가

곧 올 거야.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고 위로를 한다.

위로가 안 된다. “누가, 집에서 살림만 하던 애기 엄마에게, 기

회를 주겠어. 이 사회가 그렇게 만만해? 내가 그것도 모르는 바본

줄 알아? 나한테 무슨 일을 주겠냐고. 나는 정말 그 기회가 절실했

다고.” 통곡을 하며 소리쳤다.

다시 한 발, 한 발

그런데 그 일을 겪은 뒤 느낀 것이 많았다. 아무리 절실하고 절

박하게 전업주부 탈출을 원하더라도, 나 스스로 사회에 나갈 준비

가 안 되어 있으면 기회가 와도 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조급

한 마음을 억누르고, 다시 천천히 준비해 나가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한 일은 늦은 시간까지 마음 편하게 맡길 수 있

고 안전한 보육시설을 알아보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

요한 건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내 안의 진짜 이유

를 다시 깊이 고민해 보는 것이다. 잠시 출근했던 그 일을 만약 내

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었다면 포기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누

군가는 “그런 생각 하는 걸 보니 뭐 별로 절실한 것도 아니었네.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라고? 그런 건 사치야.” 할지도 모른다. 하

지만 그 일을 하고 있을 나를 상상해보니 행복하지 않았다. 계속

한다고 해도 절대 평생 업으로 할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차마 그 일을 붙잡지 못했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시간을 조금만 더 투자하

기로 했다. 평생 어떤 형태로든 여성운동을 하겠다는 꿈이 생기

자, 이왕이면 민우회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신나게, 통쾌하게 해

나가고 싶었다. ‘너무 열심히 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천천히 딱

10년만 여성운동을 하고 있자. 그러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기회

가 올 것이다. 그때 내가 뭐가 되어 있을지 한번 지켜보자.’라고 생

각하면서 1년 계획을 세웠다.

성폭력상담원 교육 듣기, 기획단 활동하기, 성교육 강사 워크

숍 하기. 그러자 예상보다 훨씬 빨리, 미처 준비가 끝나기도 전 에

기회가 찾아왔다.

아직도 이따금 ‘어? 여기가 어디지? 내가 이곳에서 일하다니.

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니 믿어지지 않아.’ 하며 새삼스레 감격스

러워울 때도 있다. 괜히 생애 첫 명함을 꺼내 보기도 한다. 그래서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발걸음이 가볍고 행복하다.

용가리 ●

민우회에서 퇴근한 후 다시 집으로 출근한다.

집에서의 감정노동이 훨씬 더 고되다. 아~ 야근하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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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이야기

모두 함께 행복하기

어린시절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누가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화가나 디자이

너가 되겠다고 대답했다. 혼자서 조물락조물락 만드는 것도 좋아

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다. 좋아하는 일엔 시간가는 줄 모

르고 몰두하는 버릇이 있었다. 또래 친구들과는 여럿이 모여 고

무줄 놀이나 운동장에서 하는 편 나누기 게임을 하기보다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데 시간을 더 많이 쏟았다. 그래서 새삼

부모님께 감사한 건 내가 뭘 하든지 그냥 관심 있게 지켜봐 주셨

다는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만 하던 어린시절을 지나, 고등

학생이 되자 진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미대로 진학하게 됐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자연스럽

게 진로가 결정되었다. 진로를 고민하던 때, 우연히 알게된 미술

선생님에게서 영향도 받고, 고1때 담임선생님도 사모님이 미술

학원을 하고 계셔서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 주셨다. 선생님은

3학년 입시 원서 쓸 때도 담임은 아니셨지만 대학지원 하는데 학

교 정보를 알려주시기도 하셨다. 대학에서 공예과를 전공하며 도

예도 하고, 목공도 배웠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대학생

활은 즐거웠다.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내 작품을 보고 좋

아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가 배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

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기도 했다.

우연히 어쩌면 운명일지도

서른이 될 무렵 우연히, 어쩌면 운명인지 모를 결혼을 하게 되

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가정은 평화로웠지만, 뭔가 내 속에는

자아가 텅 빈 것처럼 허전하고 불만스러웠다.

‘나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간절히 원하는 것들에 대한 타는 목마름은 날이 갈수록 심해

지고, 인내심은 가슴 저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아이

태교를 위해 문화센터에서 받았던 취미 수준에 수업들로는 욕구

충족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국제도자기박람회> 포스터를 보

게 됐다. 마침 전시기간이었고, 가족들과 나들이 차 관람을 갔다.

박람회에는 예전 학교 선후배들이며 유명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열심히 홍보 중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선배들은 탄탄한 실

력과 노하우를 뽐내며 자신감 가득한 모습들이었다. 그에 반해 나

는 한편으론 유모차를 끌며 뛰어가는 아이를 주시하고, 다른 한편

이정미(무지개빛) 한국여성민우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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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론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작품들을 감상해나갔다. 그 때, 깊숙

이 숨어있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했다. 옛사람들과 재회하니 새

로운 충격과 동시에 커다란 자극이 밀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그 길로 다음 날부터 도자기 작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다시 시

작하면서, 전시회도 하고 단체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나름 재미

를 느꼈지만 하면 할수록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

지 고민이 되었다. 단순히 만드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이 경험

을 하고 느끼는 피드백은 나에게 보람과 동시에 또 다른 감동으

로 밀려왔다. 그리고 내가 만든 그릇들을 쓰면서 행복해 할 사람

을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했다.

나 혼자 행복해서 무엇할까?

사회속의 나는 더불어 가는 관계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기도

하고, 내가 주체가 되어 충실하게 집중하며 내 자아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나는 딸이자 어머니이고, 한 남자의

부인이자 며느리, 또 사회의 일원으로 주어진 책임감이야 많다.

그렇지만 요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

각이 불쑥 들기 시작한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것

이 곧 내가 행복한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민우회 회원이 된 것에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어떤 문제의식에 부딪혀 구원의 심정으로

가입하게 되었는데,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을 성찰해 가면서, 변화를 주도하는 힘을 만드는 과정이

생긴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민우회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에너지를 받아가는 것 같고 발전해 가는 느낌이 든다.

치열한 경쟁에서 남보다 더 잘 나가고 싶고, 돈도 잘 벌고 싶기

도 했었지만, 이젠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과 행복한 것이 더 소중

하다. 최근 감명 깊게 본 <말하는 건축가>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주인공인 정기용 건축가님의 마지막 말이 생각난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바람, 햇살, 나무 모두 감사합니다.”

무지개빛 ●

자연에 감사하고,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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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의 시선

우리 사회는 다문화 사회입니까? 그런가요? 그럼 언제부터

다문화 사회였나요? 다문화 하면 누가 떠오릅니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우리의 문제의식은 시작되었다. 우리의 고

민은 점점 확장되었다. 다문화는 부정할 수 없는 사회현상이다.

이런 사회현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

인가?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역여성운동의 과제는 (나를 비롯하여) 여성이나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차별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차별을 발견하고

해소해 나아가면서 더 행복해지는 길을 함께 찾아가기 위해서

는 지역의 특성과 상황은 참 중요하다. 지역별 특성 만큼이나

차별의 모습도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 만들기

진주는 34만 인구의 도농복합도시다.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경남이 농촌지역이다. 진주시의 결혼이주여성의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출산율도 증가하고 있다. 2010년 통계

연보에 따르면 진주시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결혼이주여

성을 포함해서 3,438명이다.

그런데 진주시의 지자체와 정부의 이주민 인권 정책은 어

떠한가? 존중 속에서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져 공존하자는 생

각이 부족해보인다. 오로지 한국화 시키려는 노력만 보인다.

한국의 전통복을 입고 전통예절·전통놀이·전통음식을 배운다.

단순히 체험이라기보다 강요처럼 보인다. 이주민을 주체로 내

세우는 다문화 축제를 하면서도 다를 바 없는 태도이다. 비록

각 나라 전통복을 입고 나와 “안녕하세요?”를 본인 출생국에서

는 어떻게 말하는지, 어떤 음식을 먹는지를 소개하기는 한다.

하지만 철저히 획일적으로 소개하고, 철저히 한국 위주로 만들

어 나간다. 현지 적응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데, 왜 굳이 전

통만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한국(인)이다.’라는 주장

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

한국인이라면, 독도를 우리땅 이라고 말하고, 월드컵 경기를

볼땐 대~한민국을 외치고, 김치를 좋아하고, 세종대왕을 존경

한단다. 정부 정책은 대한민국 국민의 다양성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문화 사회를 대하는 자세

마저도 한국화하기에 급급한 것이다. 급기야 더 큰 대한민국을

위해 다문화 가정의 자녀를 한국인으로 인정하는 것이 좋지 않

겠냐고 말한다. 아이들이 자라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될 것

이고, 한국을 빛낼 과학자가 될 것이니 말이다.

다문화가정을 남다르게 만드는 시선들

이러한 정부와 지자체의 다문화 정책은 우리의 의식을 좌우

한다. “다문화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우리 사회는 다문화 사회입니까?정윤정 진주여성민우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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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다문화 가정, 다문화 센터, 이주노동자 라는 대답들을

한다. 특히, 여성가족부의 ‘다문화 가정’ 사업을 시작으로 ‘다문

화’ 옆에는 항상 ‘가정’이 따라 붙게 되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쟤 다문화에요.”라고 말한다.

‘다문화’가 또 다른 차별이 되어버렸다. 학교에서 학부모와 선

생님의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학교 몇 학년 누구누구 엄마

가 외국에서 왔다. 그 집 아이가 아이들 사이에서 어떻게 지낼지

걱정스럽다.” 정보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에 한 말이겠지만 은근

히 다문화 가정, 다문화 가정 자녀에 대한 편견이 담겨있다.

차별 없는 나라로

문제는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인 것은 확실한데 ‘어떤 공동

체를 만들어 갈 것인가?’ 이다. 우리는 그 답을 찾았다.

바로, 다문화 인권 교육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업비를 지

원받지는 못했지만 활동을 시작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교육센터

를 통해 ‘인권의 이해와 심화과정’을 수료하기를 과제로 삼고, 한

양대학교의 ‘글로벌 다문화 연구소’ 오경석 교수님을 모시고 다

문화 사회에서의 인권에 대한 몇 가지 쟁점들을 짚어보며 다문

화 주의를 이해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09년부터 진행했던, 다문화 인권교

육의 자료를 공부하며 교안을 만들어 시연도 했다. 다문화 인권

교육은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총 6회를 진행하였다. 쉽지

않았지만 열심히 했다.

이제는 진주여성민우회의 표준교안을 만들어 학교로 나갈 일

이 남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민우회 교육은 다르다. 그래서 민

우회의 메시지가 담긴 표준교안이 중요한 것이다. 민우회의 한결

같은 운동, 차이와 다양성의 인정·평등·차별 없는 나라로가 다문

화 인권 교육의 핵심이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게 소수자이며, 특별한 사람이다.

인권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것이며, 다문화 사회란

차이와 다양성의 인정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확산하기로 했다. 결

국 민우회가 확산하고자 하는 운동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정윤정 ●

2003년 성폭력상담소 활동을 시작으로

2005년부터는 사무처 상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나의 삶과 민우회 활동에 경계 없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은 많지만 서두르지 않으려구요.

느리게 가더라도 함께 가는 행복을 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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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파주여성민우회

고양 여성영화제

‘함께하는 우리… 그래서 참 좋다’

· 일시: 7월 3일(화)

· 내용: <두개의 선> 상영 및 지민 감독과의 대화

· 일시: 7월 4일(수)

· 내용: 영화평론가 ‘심영섭의 힐링시네마’ 강의

· 일시: 7월 5일(목)

· 내용: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 일시: 7월 6일(금)

· 내용: <헤어드레서>

· 일시: 7월 7일(토)

· 내용: <블랙>

여성주간 ‘차림사 호칭 확산 캠페인’

· 장소: 화정역 문화거리

· 일시: 7월 7일(토) 오전 11:00~오후 4:00

생애주기별 양성평등의식 교육

· 참가대상: 파주시 학생상담 자원봉사자

· 참가인원: 25명 · 장소: 파주교육청

· 일시: 7월 9일(월) 오전 10:00~12:00

생애주기별 양성평등의식 교육

· 참가대상: 남서여성민우회 자원활동가

· 참가인원: 15명 · 장소: 아름드리 지역아동센터

· 일시: 7월 17일 오전 9:40~오후 2:00

고양시 여성정책 토론회 “소원을 말해봐”

신개념 정책제안 PT쇼, 누구나 정책제안자가 되어

고양시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자리

· 장소: 일산 동구청 2층 대강당

· 일시: 7월 20일(금) 오후 2:00~5:00

꿈틀이 여름캠프 - 외갓집 체험하기

· 장소: 경기도 양평 신논리

· 일시: 7월 30일(월) ~ 7월 31일(화)

청소녀 자기성장 치유 캠프

10대 청소녀를 위한 자기성장 치유캠프.

· 장소: 강화 석모도 · 일시: 8월 2일(목)~8월 4일(토)

광주여성민우회

성폭력 생존자 치유극 - <너의 목소리가 들려>

· 장소: 울산 토마토 소극장

· 일시: 7월 11일(수) 오후 4:00

넝쿨째 굴러온 닭신

초복 맞이, 본회 재정마련을 위한 후원사업

· 장소: 북동성당

· 일시: 7월 18일(수) 오전 11:00~저녁 8:00

다솜누리 심신회복 캠프

쉼터 생활인의 드라마 치료 및 마음의 휴식 갖기

· 장소: 경남 남해 독일마을

· 일시: 8월 13일(월) ~ 8월 15일(수)

여성인권학교

쉼터 생활인 및 종사자의 인권교육

· 장소: 교육실 · 일시: 8월 중

청소년 성에 대한 연극 - <사랑해? 사랑해!> 관람

· 장소: 중학교 강당 · 일시: 8월~10월 중 (3회 공연)

군포여성민우회

재능나눔 - 민우데이

완소 DIY가구 만들기 (티슈 케이스,장식장)

· 장소: 교육실 · 일시: 7월 17일(화) 오후 2:00

7월 민우아카데미

한국 언론의 역할과 mbc 파업

· 강사: 장준성 기자

· 장소: 교육장 · 일시: 7월 18일(수) 저녁 7:00

8월 민우아카데미

자녀와 함께 듣는 알기 쉬운 국부론

· 강사: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 장소: 교육장

· 일시: 8월 2일(목)~8월 16일(목)

저녁 7:00 (총 3회)

서울남서여성민우회

한여름 밤마실

남서여성민우회의 지역운동에 힘을 실어주세요~

· 장소: 청미래유기농뷔페 · 일시: 7월 13일(금)

양성평등교육 - 두드림

성평등의식 점검 및 평등의 눈으로 세상 보기

· 장소: 교육장

· 일시: 7월 17일(화) 오전 9:30~오후 2:00

마을을 가꾸는 주민학교

인권 이야기를 주제로 진행합니다.

· 장소: 양천구청 해누리타운 아트홀

· 일시: 7월 19일(목) 오전 10:30~12:30

차림사 호칭 확산 캠페인

차림사라는 호칭을 널리 알리기 위한 캠페인

· 장소: 양천문화회관 앞 · 일시: 7월 21일(토)

서울동북여성민우회

지역여성과 함께한 ‘민우20’

창립 20주년 기념 호프데이

· 장소: 홍닭발 호프

· 일시: 7월 13일(금) 오전 11:00~오후 11:00

도봉구 여성친화도시 모니터 활동

여성친화도시 도봉구를 만들기 위한 모니터 하기

· 장소: 도봉구 14개동 · 일시: 5월~7월 중

도봉구 여성건강 시범사업 공모

여성건강 사업을 발굴하고 추진하는 시범사업을 지원

· 마감: 7월 31일(화)

원주여성민우회

원주여성영화제

‘여성 그리고 가족’을 주제로 원주여성영화제 진행

지부소식www.womenlin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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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원주영상미디어센터

· 일시: 7월 12일(목) ~ 7월 16일(월)

· 참가비: 무료 상영

아동안전망 구축 간담회 및 협약식

상반기 동안 진행한 아동안전망 실태 설문조사를 토

대로 청소년 유관단체들과 아동안정만 구축 간담회

및 협약식을 개최합니다.

· 장소: 원주 밝음 신협

· 일시: 7월 25일(수) 오후 2:00

후원의 밤 ‘달빛마실’

· 장소: 상지대학교 창조관 교직원 식당 2층

· 일시: 8월 14일(화) 오후 4:00~저녁 10:00

인천여성민우회

제17회 부평구청 여성주간 행사

“차림사라 불러주세요~” 캠페인 및 평화의 힘

공동 그림 그리기

· 장소: 인천광역시 부평구청 · 일시: 7월 3일(목)

한부모 역량강화교육

‘여성 한부모에게 삶이란?’ 1박 2일 워크숍

· 장소: 송내 스카이랜드

· 일시: 7월 14일(토) ~ 7월 15일(일)

학교폭력예방교육 강사 양성 ‘어깨동무 내동무’

강사 양성 심화교육 및 워크숍

· 장소: 교육장

· 일시: 7월 매주 화,목 오전 10:00~12:00

민우청청기자단 1기 활동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탐방하고 청소년의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기자단 활동

· 일시: 7월 21일(토)

· 내용: 생활문화공동체 ‘열우물’ 마을 탐방

· 일시: 8월 11일(토)

· 내용: ‘기자란 무엇인가’ 강의와 기사쓰기 교육

· 일시: 8월 14일(토)

· 내용: 문화교육 강연

진주여성민우회

독립영화 상영

<엄마에게> 상영

· 장소: 진주교도소

· 일시: 7월 13일(금), 7월 20일(금)

오전 10:30, 오후 7:00(2회 상영)

다문화인권 강사 양성교육 - 2차 시연

· 장소: 교육장

· 일시: 7월 17일(화) 오전 10:30~12:30

경남여성주간 - <애정녀> 공연

· 장소: 창원 호텔 인터네셔널

· 일시: 7월 19일(목) 저녁 7:00

행복중심 가족 요리교실

패스트푸드 수업과 피자 만들기

음료 색소 실험과 화채 만들기

· 장소: 교육장

· 일시: 8월 9일(목), 8월 23일(목)

오전 10:30 ~ 12:30

여성가족부 공동협력사업 ‘할매들의 당·안·즐’

여성노인 성폭력상담, 성교육 강사 양성교육

· 장소: 미정

· 일시: 8월 6일(월) ~ 9월 10일(월)

매주 월,수,금 오전 10:00 ~ 오후 1:00

춘천여성민우회

청소녀! 건강과 환경을 부탁해!

찾아가는 ‘건강과 환경 교육’ 및 ‘대안생리대 제작 교육’

· 장소: 동부·부안·만천·삼포 초등학교

· 일시: 7월 12일(목) ~ 7월 18일(수)

차림사 알리기 캠페인

우리를 풀어내는 건강한 수다

· 장소: 춘천 명동

· 일시: 7월 18일(수) 저녁 6:00~7:00

함께 타요! 10차 생명버스

강원도 골프장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 나눔

· 장소: 강원도 홍천군 동막리

· 일시: 7월 21일(토) 오전 10:30 ~ 오후 4:00

수다카페

‘쉼’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기

· 장소: 춘천 명동 · 일시: 7월 26일(목) 저녁 7:30

봄내 벼룩시장 및 차림사 홍보 캠페인

아껴쓰고, 나눠쓰는 환경장터 및 차림사 알리기

캠페인

· 장소: 몸짓극장

· 일시: 7월 7일(토), 8월 4일(토)

저녁 7:00 ~ 9:00

달팽이지역아동센터의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

박물관 투어

· 장소: 박수근 박물관 외 3곳

· 일시: 7월 24일(화) 오전 9:30

숲 체험 캠프

· 장소: 춘천 부귀리

· 일시: 8월 6일(월) ~ 8월 7일(화)

추억 캠프-달팽이에서의 하룻밤 추억 만들기

· 장소: 달팽이 지역아동센터

· 일시: 8월 9일(목) ~ 8월 10일(금)

인형극 체험 및 발표

인형극 대본쓰기, 인형 만들기 및 발표

· 장소: 춘천인형극장 · 일시: 8월 14일(화)

공예 프로그램

천연비누, 버물리, 샴푸, 썬크림 만들기

· 장소: 달팽이 지역아동센터

· 일시: 8월 2일(목) ~ 8월 16일(목) 오후 2:00

“차림사님, 고마워요!” 홍보 캠페인

춘천막국수,닭갈비축제 주간 ‘차림사’ 알리기 캠페인

· 장소: 춘천 공지천

· 일시: 8월 23일(목) ~ 8월 28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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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알림

강숙현

고현실

공길숙

권귀남

권영은

김경숙

김근실

김도경

김동원

김미라

김미옥

김미은

김보경

김선영

김송희

김수진

김승민

김승은

김시형

김영진1

김영진2

김은아

김은주

김의영

김정자

김종금

김지혜

김진숙

김진아

김진영1

김진영2

김진희

김태수

김현숙1

김현숙2

노연식

노인순

목완수

민경량

민상희

박남희

박명화

박선애

박성진

박영미

박재민

박정임

박춘자

박현정

박희화

방유경

배하영

백경흔

서보미

서성진

성진숙

소진형

송경진

송명용

송윤

송은미

송현영

신유정

신필규

안금순

안영희

안은진

양소진

양윤숙

양이현경

양재덕

양창모

엄지원

오영숙

용아름

우종성

원순재

윤석주

윤은주

윤현옥

이근진

이남희

이미연

이보라

이수정

이영임

이영자

이용숙

이원숙

이정희

이지영

이창숙

이향숙

이현승

이현협

이혜정

이희정

장명심

정난옥

정안라

정인애

정효정

정휘채

조윤미

조임옥

조정휘

조지현

지미자

지선영

최상희

최성화

최승미

최영희

최원순

최혜영

한규택

한나정

한명희

한순례

한채윤

허진영

홍성원

홍순홍

홍용도

황지성

회비인상 캠페인에 함께해 주신 회원님 감사합니다! - 권경순, 전이미경

신입회원 여러분 반가워요! 2012년 5월 중순 ~ 7월 중순

정정합니다

<함께가는여성> 지난 209호 바로잡기

˙<마포나루에서> 여성노동팀에 필자는 ‘현진’이 아니라 원진(눈사람)으로 정정합니다.

지면을 빌어 원진 활동가에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민우ing> 중 미디어운동본부의 ‘아날로그 방송 종료되면 텔레비전 못 보나요?’에서

DTV코리아 홈페이지 주소를 ‘www.d텔레비전korea.org’ 로 잘못 기재하였습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올바른 주소는 www.dtvkorea.org 입니다.

전국 민우회원 분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시간

2012년 민우회원캠프에 많은 관심과 신청 부탁드립니다.

다양한 신들의(^^:) 프로그램이 준비된 민우회원캠프 놓치지 마세요!

일정 : 2012년 8월 25일(토)- 8월 26일(일)

장소 : 경기도 여주군 점동면 덕평리 산3번지 한국노총 중앙교육원

참가비 : 회원 3만 원 / 미취학 아동은 2만 원

탁아방 운영 : 미취학 아동(3-7세,영아는 불가)은 별도 보육프로그램이 운영됩니다.

˙문의사항은 본부 회원팀(02-737-5763)으로 해 주세요.

Ⅰ. 수입내역 금액

회비수입 101,348,500

후원금 20,035,110

사업수입 7,446,100

기타수입 2,536,079

수입합계 131,365,789

Ⅱ. 지출내역 금액

인건비 126,599,260

복리후생 비 439,600

사무용품 비 772,890

사무행정 잡비 812,570

사회보험 금비 8,287,000

소모품비 1,067,900

연대활동비 2,104,360

제세공과금 1,827,250

지급수수료 1,686,781

지급이자 6,618,213

통신비 2,737,988

회의비 1,239,690

나루운영비 1,772,085

감가상각비 0

정보홍보사업비 14,274,827

조직활동비 11,127,180

정책연구교육사업 5,305,820

재정사업비 9,231,660

지출합계 195,905,074

Ⅲ. 당기수지차 -64,539,285

한국여성민우회 2/4분기 결산보고서

(2012년1월1일부터 6월30까지)

(단위 :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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