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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선생의 삭발터를 찾았 다. 2월 말 마곡사 주변에 있 는 개천의 얼음장은 금이 가 있었다. 균열은 해빙의 흔적 이고 크랙(crack)이다. 선생은 삭발하면서 얼음이 녹아 하천 이 해빙되듯 우리나라가 일제 로부터 해방되어야 된다는 결 기를 가졌는지 모른다. 백범 김구선생이 1945년 11부터 1946년 6월 26 일까지 사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던 경교장. 6 월 26일 ‘네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경교장 2층 유리창은 구멍이 뚫렸고 백범의 가슴엔 총탄이 박 혔다. 백범이 저격당한 역사의 현장이다. 유리창의 크랙은 당시 총탄 흔적이고 ‘탕’하는 총소리이며 그 충격으로 생긴 불규칙한 갈라짐이다. 경교장의 크랙은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라고 외친 선생의 민족자존의 메시지 같았다. 찻잔 하나를 모셔왔다. 은은한 황토 빛이 도는 자태 고운 잔이다. 잔 바닥에 십자 문양이 새겨 있 다. 잔에 뜨거운 물을 부어 십자가 문양을 보면서 성호를 긋고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얼마쯤 있 다 다시 잔을 들어 물을 마시려는데 바닥에 물기 가 흥건했다. 잔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깨진 흔적 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동안 이 잔으로 보이차를 즐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찻물이 든 잔속에 실금 이 생겼다. 희한하게도 가는 금이 생긴 잔 밑에는 습한 느낌일 뿐 더 이상 물은 괴지 않았다. 다도선생은 찻잔을 설명하면서 “일반 도자기는 1,200도 이상에서 굽는데 이 잔은 700~800도에 서 구웠답니다. 진흙의 특성이 살아있어 잔이 숨 을 쉬고요. 물을 머금을 수 있어 찻물이 배인 답니 다. 이 잔으로 차를 마시면 크랙이 생겨 더욱 멋스 러울 겁니다.” 몇 번 차를 우려내는 동안 맹물과 달 14 2020년 5월 29일 금요일 이종근 기자 [email protected] 크랙 임동옥 /제자 이승연 /제자 이승연 이선화시인이 '그곳에 내 스무 살 이 살고 있다(신아출판사)'를 펴냈다. 이번에 9년 만에 2번째 시집을 발간 했다. '바지랑대로 받쳐 든 굵은 햇 살들이 쏟아지던 그곳 혀 굽은 소리 가 울타리를 넘어 문패 없는 집으로 들어가고 청춘들이 살던 골목길이 어슴푸레 스친다 내 스무 살 그 시 절로 돌아가 한 송이 고운 꽃 피워 보고 싶다.('그곳에 내 스무 살이 살 고 있다에서') 작가는 스무살즈음 가방 하나 들 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해 서 저녁노을 지 는 하늘을 올려 다보니 바지랑 대로 받쳐 든 굵 은 햇살들이 울 타리를 넘어 문패 없는 집으로 들어 가던 그 시절이 아련하고 젊은 청춘 들이 긴 골목길을 어슴푸레 지나가 면 마음 한켠은 늘 고향이 들어 있 었다. '봄 노래를 담는 동생들 햇살 같은 커피 향으로 사랑의 건반을 두 드리며사랑의 바이러스를 골목으로 깔아 놓는다('사랑의 건반에서') 타향살이에 찌들어 지쳐 돌아간 황금 같은 휴식의 기간에는 대청마 루에서 늘반겨 주는 낡은 괘종시계 가 가보처럼 걸려있고 창 옆에 걸린 액자 속에서 목단 꽃처럼 과묵한 어 머니와 벚꽃처럼 잔정이 많은 시인 의 언니가 사랑의 바이러스를 골목 으로 깔아 놓고 언제나 저와 동생들 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시집은 지 난 시간 동안의 제 추억들과 기억들 을 정리하는 과정으로 연세많은 어 머니와 언니, 동생들, 그리고 멀리 소풍 떠난 아버지께 바치는 내용이 다. 작가는 "따뜻한 5월이 지나가고 또다시 한계절이 돌면 쌓인 시간들 과 추억을 저축하여 더 나은 오늘을 다시 기록할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오 길 바래본다"고 했다. 리 찻잎에 들어있는 타닌 성분이 틈새에 스며들었 는지 점점 선명한 그물무늬가 생겼다. 800도 고열 에서 구운 찻잔의 진흙입자는 모두 매끄럽게 보였 으나 알고 보면 입자들 사이에 미세한 공극이 생 긴 거다. 크랙은 공극들이 서로 연결된 문양이고 잔이 숨 쉬는 구조이며 차 맛을 순화시키는 찻잔 의 묘미다. 이제 크랙을 즐기면서 더욱 멋진 차 명 상을 할 거 같다. 크랙은 분명 흠이고 오점이다. 얼음장의 크랙은 얼음이 깨졌다는 신호이고, 경교장 유리창의 크랙 은 민족의 지도자를 잃은 애석한 역사의 얼룩이며, 찻잔의 크랙은 찻물로 틈을 매운 흔적이다. 크랙은 분명 흠결이지만 빙판의 금은 봄이 온다는 소식이 요. 유리창의 크랙은 반탁운동 전개와 완전자주독 립노선을 주장한 옹이자국이다. 찻잔의 크랙은 차 생활의 반영을 말한다. 찻잔의 크랙은 미완의 흠결이 아니다. 찻잔이 숨 쉬는 숨길이고 연대의 네트워크다. 찻잔의 크랙은 차향이 스며든 시간을 말하고 균열을 스스로 메우 는 마음치유의 문양이다. 찻잔에 순화된 크랙은 다 도의 경지를 드러내는 명품의 상징이다. 김소운의 ‘특급품’이라는 수필이 있다. 흠이 있는 비자나무 바둑판을 통해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범하게 되는 잘못이나 허물을 탓하지 않고 보듬어 주는 바람직 한 태도를 역설하고 있다. 사회적 통념과 달리 흠 결이 있는 비자반이 오히려 특급품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찻물이 들어 크랙이 생긴 찻잔이 최상품이 다. 찻잔의 크랙처럼 삶의 시련 앞에서 자책하거나 낙담하기보다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유연하게 대처 하고 이겨내는 것이 명품 인생의 묘미일 테다. 실 금이 짙게 배인 연대의 문양을 보면서 내가 행복 하고 상대에게도 행복을 주는 공감의 크랙을 내 안에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을 꾼다. 호남대학교 교수/ 교무처장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수필과 비평 및 광주문인 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상: 신곡문학상, 대한문학작가상, 교육부장관표창, 국무총리표창, 과총우수논문상 수필집: 계룡산의 아침 이슬은 약이 될까, 게들의 잔치, 꿈꾸는 굴렁쇠 이제, 그만 그 업보 내려놓으시고 바람처럼 훨훨 날으소서 ■ 이선화 `그곳에 내 스무 살이 살고 있다' 나라가 지운 빚 말없이 떠안은 오월 광주 '붉은 오월, 그곳에 푸른 동물원(저자 최종욱, 출판 아롬주니어)'은 나라가 지 운 빚 말없이 떠안은 오월 광주, 5·18 민 주화 운동을 마주한 소년이 동물원을 배 경 삼아 살아남은 자의 아픔과 희생된 영령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른다. 광주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에는 중세 유럽의 성채 같은 동물원 '그리하여 밤이 밤을 밝히었다(저자 이 선우, 출판 소명출판)'는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나오는 문형으로, 『십 자가의 성 요한』에 나오는 구절을 맥락 을 바꾸어 사랑의 문형으로 제시한 것 이다. 저자는 이 역설적인 사랑의 문형이 야말로 그동안 읽고 쓴 작품들의 핵심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이 평론집은 35편의 글이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묶어져 '약초치유(저자 김민철, 출판 헬스레 터)'는 알레르기성 비염과 아토피, 건선 과 면역성 질환 등 현대인의 난치성 질 환을 약초처방으로 치유한 임상사례를 공개한다. 난치성 질환을 장기치료에서 '오늘도 구하겠습니다!(저자 조이상, 출 판 푸른향기)'는 힘든 곳, 뜨거운 곳, 아 픈 곳, 위험한 곳, 빌딩 위, 호수 밑, 폭풍 속으로 1퍼센트의 희망을 찾아서 달려 가는 헬멧 속의 히어로, 어느 소방관의 '어린이를 위한 사피엔스(저자 마이클 브라이트, 출판사 한겨레아이들)'는 ‘인 류는 어떤 존재일까’라는 물음에서 시 작해 쥐와 비슷했던 초기 영장류, 유인 원의 시대를 지나 수많은 위기를 넘으 며 오늘에 이른 진화의 과정을 흥미롭 이 있다. 하지만 동물원이라고 해서 5·18 민주화 운동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는 없 었다. 사람이 떠난 동물원에 부자만 남 게 된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어도 동물에게 는 사람 손길이 필요하기에. 하지만 동물 원에 군인과 시민군이 번갈아 드나들게 되면서, 부자는 그들이 가슴에 품고 있 있다. 1부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인간 존 재의 조건과 윤리에 대해 고민한 글들이 며, 2부 ‘죽음 앞의 삶’은 인간을 극한 으로 몰아붙이는 세계의 폭력과 실존의 절박함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고통에 충실한 삶’ 속에서 드러나는 문 벗어나게, 한약학과 현대의학을 결합한 ‘약초치유’는 에세 이처럼 재미있다. 조 선시대 선비들은 귀 양길이나 낙향할 때, 목가구인 약장(藥 欌·약재를 넣어 두는 장)과 두둑한 의학 서 몇 권을 넣어갔다. 스스로 건강을 돌 이야기다. 지난 4월 1일 소 방공무원은 지방직 에서 국가직으로 전 환됐다. 그것은 소 방관들의 조용한 희 생과 노력 끝에 얻은 결과로, 국가재난 게 보여 주며 미래 인류는 어떤 모습일 지 예측해 본다. 인 류의 과거를 돌아 보며 미래를 생각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추천사를 쓴 는 진실들과 마주한 다. 명령을 따라야 만 하는 군인의 방 황과 자신을 희생해 서라도 역사에 산 증인이 되고자 하는 학생, 그리고 어린 광훈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현장에서 고통스럽게 살아 숨 쉬던 이들의 속살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학살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종근 기자 학의 역설적인 성취를 생각해본 글들로 묶여 있다. 한강의 「회복하는 인간」부터 손아람의 『소수의견』에 이르기까지 체 제 속에서 고통받는 자들의 윤리와 그 들의 연약하지만 끈질긴 생의 의지가 이 세계를 어떻게 바꾸어 내는가를 보여주 고자 했다. 3부 ‘청춘의 종언과 선언 사 이’는 세대론에 대한 비판을 위장한 일종 의 세대론들로, 청년 세대를 둘러싼 현실 의 무게와 무늬, 이에 대한 다양한 대응 전략들을 살펴보았다. /이종근기자 보기 위해서다. 의술에 조예가 깊은 선비 는 유의(儒醫)로 불렸고, 강진으로 유배 를 간 다산 정약용도, 낙향한 풍석 서유 구도 그랬다. 이제는 조선시대 유의와도 같은 귀농· 귀촌이 필요한 때이다. 이 책은 집에서 쉽게 약초치유가 가능한 질환들을 골라 내 처방전을 재배치했다. 임상치료 결과 가 매우 구체적이며, 한의학적 시각과 생 리학에 기초한 질병 이해를 서양의학 기 법으로 녹여냈다. /이종근 기자 의 신속한 대응 및 소방 서비스의 격차 해소 등 여러 면에서 업그레이드 되었다. 하지만 국민의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소 방관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열악한 상황 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불 끄는 소방관 그림을 그렸던 소년은 어른이 되어 진짜 소방관이 됐다. ‘힘들고 괴롭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뒤늦게 소 방관직에 뛰어든 5년차 소방관의 생생한 현장 스토리이다. /이종근 기자 경희대 사학과 강인욱 교수는 사람은 왜 두발로 걷는지, 왜 사람만 말을 하는 지 등 박물관에서 만난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책 속에 있다며, 최신 학계 이론과 용어가 체계적으로 정리된 알찬 책이라고 소개했다. ‘작은 시작’의 이야기는 독자의 흥미를 사로잡기 충분 하다. /이종근 기자 ■ 최종욱 `붉은 오월, 그곳에 푸른 동물원'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진화의 씨앗은 비로소 움텄다 ■ 마이클 브라이트 `어린이를 위한 사피엔스' ■ 이선우 `그리하여 밤이 밤을 밝히었다' 좋은 약차는 마시고 싶어요 “소방관입니다, 제 손 잡으세요” ■ 김민철 `약초치유' ■ 조이상 `오늘도 구하겠습니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저자 라즈 파텔, 옮기 백우 진, 이경숙, 출판사 북돋움)'는 기후 위기, 극단적 불평 등, 금융 불안 같은 현재의 위기가 자본주의가 감춰온 비용이 비로소 우리에게 청구서로 날아들었음을 서늘 하게 지적한다. 이들 위기는 별개의 해법으로 고칠 수 '나는 자연인이다. 3(저자 MBN 나는 자연인이다 제 작팀, 출판 다온북스컴퍼니)'은 그동안 만나온 자연인 가운데 아픈 몸과 마음을 자연에서 치유한 특별한 9명 의 이야기를 담았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도시에서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쳤던 사람들, 그러다 생긴 몸과 마음 의 병을 치유하고자 산을 찾은 자연인, 가족을 도시에 '외국어를 과학적으로 배우는 방법(저자 이충호, 출 판 다개국어)'은 왜 단어를 외우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되지 않는지, 외우더라도 어떻게 외워야 하는지, 영화 자막은 있어야 하는지, 없이 봐야 하는지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의문 사항에 관해서 여러 연구 자료를 토대 '어떤 남자를 스치다(저자 이원재, 출판 몽트)'는 지금 은 떠났지만 우리 모두에게 강한 울림을 준 정치가 노 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집이다. 저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자신의 인생에 큰 획을 긋고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 시로 채 워져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가슴으로 이해가 안 되면 첫 페이지를 다시 펼쳐야 한 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시 읽어야 한다.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라는 총체 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재구성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세계의 역사 를 하나의 시선으로 꿰뚫는 지적 인 충만함을 넘어 현재의 세계를 관통하는 문제의 근원을 직시하 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한 권으로 탁 트인 시선을 갖 추게 될 터이다. /이종근 기자 남기고 고향에 내려와 제 2의 인생 을 사는 자연인, 힐링을 하고자 다 갖추어진 시골마을이 아닌 산속에 서 자연과 인연을 맺은 자연인의 이야기가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자연인들은 모두 지금처럼 다시 삶을 살게 된 것이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말한다. /이종근 기자 로 설명해준다. 이 책의 내용을 이 해하게 되면 외국어를 어떻게 배 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알 수 있다. 6개 외국어를 6년간 배워 오 면서 수많은 연구 자료와 폴리글 랏(polyglot, 다국어 사용자)을 연 구해 왔다. /이종근 기자 이 책은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는 세상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행 하며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내 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다. 바람을 이기고 나아가야 하는 세상, 이쪽에서 저쪽으로 내달리는 옮김의 여행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따라 걷는 저자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중이다. /이종근 기자 “지금은 인류세가 아니라 자본세다!” ■ 라즈 파텔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지금 이곳이라서 너무 행복하다 외국어를 어떻게 배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알 수 있다 지금은 떠났지만 우리 모두에게 강한 울림을 준 노무현 ■ MBN 나는 자연인이다 제작팀 `나는 자연인이다. 3' ■ 이충호 `외국어를 과학적으로 배우는 방법' ■ 이원재 `어떤 남자를 스치다' ‘십자가의 성 요한’에 나오는 구절을 맥락을 바꿔 사랑의 문형으로 제시

이제, 그만 그 업보 내려놓으시고 바람처럼 훨훨 날으소서 크랙 · 보고 싶다.('그곳에 내 스무 살이 살 고 있다에서') 작가는 스무살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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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이제, 그만 그 업보 내려놓으시고 바람처럼 훨훨 날으소서 크랙 · 보고 싶다.('그곳에 내 스무 살이 살 고 있다에서') 작가는 스무살즈음

김구선생의 삭발터를 찾았

다. 2월 말 마곡사 주변에 있

는 개천의 얼음장은 금이 가

있었다. 균열은 해빙의 흔적

이고 크랙(crack)이다. 선생은

삭발하면서 얼음이 녹아 하천

이 해빙되듯 우리나라가 일제

로부터 해방되어야 된다는 결

기를 가졌는지 모른다.

백범 김구선생이 1945년 11부터 1946년 6월 26

일까지 사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던 경교장. 6

월 26일 ‘네 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경교장 2층

유리창은 구멍이 뚫렸고 백범의 가슴엔 총탄이 박

혔다. 백범이 저격당한 역사의 현장이다. 유리창의

크랙은 당시 총탄 흔적이고 ‘탕’하는 총소리이며

그 충격으로 생긴 불규칙한 갈라짐이다. 경교장의

크랙은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독립이오”

라고 외친 선생의 민족자존의 메시지 같았다.

찻잔 하나를 모셔왔다. 은은한 황토 빛이 도는

자태 고운 잔이다. 잔 바닥에 십자 문양이 새겨 있

다. 잔에 뜨거운 물을 부어 십자가 문양을 보면서

성호를 긋고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얼마쯤 있

다 다시 잔을 들어 물을 마시려는데 바닥에 물기

가 흥건했다. 잔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깨진 흔적

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동안 이 잔으로 보이차를

즐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찻물이 든 잔속에 실금

이 생겼다. 희한하게도 가는 금이 생긴 잔 밑에는

습한 느낌일 뿐 더 이상 물은 괴지 않았다.

다도선생은 찻잔을 설명하면서 “일반 도자기는

1,200도 이상에서 굽는데 이 잔은 700~800도에

서 구웠답니다. 진흙의 특성이 살아있어 잔이 숨

을 쉬고요. 물을 머금을 수 있어 찻물이 배인 답니

다. 이 잔으로 차를 마시면 크랙이 생겨 더욱 멋스

러울 겁니다.” 몇 번 차를 우려내는 동안 맹물과 달

14� 2020년�5월�29일�금요일

이종근 기자 [email protected]

크랙임동옥

/제자 이승연/제자 이승연

이선화시인이 '그곳에 내 스무 살

이 살고 있다(신아출판사)'를 펴냈다.

이번에 9년 만에 2번째 시집을 발간

했다. '바지랑대로 받쳐 든 굵은 햇

살들이 쏟아지던 그곳 혀 굽은 소리

가 울타리를 넘어 문패 없는 집으로

들어가고 청춘들이 살던 골목길이

어슴푸레 스친다 내 스무 살 그 시

절로 돌아가 한 송이 고운 꽃 피워

보고 싶다.('그곳에 내 스무 살이 살

고 있다에서')

작가는 스무살즈음 가방 하나 들

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해

서 저녁노을 지

는 하늘을 올려

다보니 바지랑

대로 받쳐 든 굵

은 햇살들이 울

타리를 넘어 문패 없는 집으로 들어

가던 그 시절이 아련하고 젊은 청춘

들이 긴 골목길을 어슴푸레 지나가

면 마음 한켠은 늘 고향이 들어 있

었다. '봄 노래를 담는 동생들 햇살

같은 커피 향으로 사랑의 건반을 두

드리며사랑의 바이러스를 골목으로

깔아 놓는다('사랑의 건반에서')

타향살이에 찌들어 지쳐 돌아간

황금 같은 휴식의 기간에는 대청마

루에서 늘반겨 주는 낡은 괘종시계

가 가보처럼 걸려있고 창 옆에 걸린

액자 속에서 목단 꽃처럼 과묵한 어

머니와 벚꽃처럼 잔정이 많은 시인

의 언니가 사랑의 바이러스를 골목

으로 깔아 놓고 언제나 저와 동생들

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시집은 지

난 시간 동안의 제 추억들과 기억들

을 정리하는 과정으로 연세많은 어

머니와 언니, 동생들, 그리고 멀리

소풍 떠난 아버지께 바치는 내용이

다. 작가는 "따뜻한 5월이 지나가고

또다시 한계절이 돌면 쌓인 시간들

과 추억을 저축하여 더 나은 오늘을

다시 기록할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오

길 바래본다"고 했다.

리 찻잎에 들어있는 타닌 성분이 틈새에 스며들었

는지 점점 선명한 그물무늬가 생겼다. 800도 고열

에서 구운 찻잔의 진흙입자는 모두 매끄럽게 보였

으나 알고 보면 입자들 사이에 미세한 공극이 생

긴 거다. 크랙은 공극들이 서로 연결된 문양이고

잔이 숨 쉬는 구조이며 차 맛을 순화시키는 찻잔

의 묘미다. 이제 크랙을 즐기면서 더욱 멋진 차 명

상을 할 거 같다.

크랙은 분명 흠이고 오점이다. 얼음장의 크랙은

얼음이 깨졌다는 신호이고, 경교장 유리창의 크랙

은 민족의 지도자를 잃은 애석한 역사의 얼룩이며,

찻잔의 크랙은 찻물로 틈을 매운 흔적이다. 크랙은

분명 흠결이지만 빙판의 금은 봄이 온다는 소식이

요. 유리창의 크랙은 반탁운동 전개와 완전자주독

립노선을 주장한 옹이자국이다. 찻잔의 크랙은 차

생활의 반영을 말한다.

찻잔의 크랙은 미완의 흠결이 아니다. 찻잔이 숨

쉬는 숨길이고 연대의 네트워크다. 찻잔의 크랙은

차향이 스며든 시간을 말하고 균열을 스스로 메우

는 마음치유의 문양이다. 찻잔에 순화된 크랙은 다

도의 경지를 드러내는 명품의 상징이다. 김소운의

‘특급품’이라는 수필이 있다. 흠이 있는 비자나무

바둑판을 통해 삶에서 어쩔 수 없이 범하게 되는

잘못이나 허물을 탓하지 않고 보듬어 주는 바람직

한 태도를 역설하고 있다. 사회적 통념과 달리 흠

결이 있는 비자반이 오히려 특급품으로 인정받는

것처럼 찻물이 들어 크랙이 생긴 찻잔이 최상품이

다.

찻잔의 크랙처럼 삶의 시련 앞에서 자책하거나

낙담하기보다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유연하게 대처

하고 이겨내는 것이 명품 인생의 묘미일 테다. 실

금이 짙게 배인 연대의 문양을 보면서 내가 행복

하고 상대에게도 행복을 주는 공감의 크랙을 내

안에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을 꾼다.

호남대학교 교수/ 교무처장<수필과 비평>으로 등단, 수필과 비평 및 광주문인

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수상: 신곡문학상, 대한문학작가상, 교육부장관표창,

국무총리표창, 과총우수논문상수필집: 계룡산의 아침 이슬은 약이 될까,

게들의 잔치, 꿈꾸는 굴렁쇠

이제, 그만 그 업보 내려놓으시고 바람처럼 훨훨 날으소서

■ 이선화 ̀그곳에 내 스무 살이 살고 있다'

나라가 지운 빚 말없이 떠안은 오월 광주

'붉은 오월, 그곳에 푸른 동물원(저자

최종욱, 출판 아롬주니어)'은 나라가 지

운 빚 말없이 떠안은 오월 광주, 5·18 민

주화 운동을 마주한 소년이 동물원을 배

경 삼아 살아남은 자의 아픔과 희생된

영령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른다.

광주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에는 중세 유럽의 성채 같은 동물원

'그리하여 밤이 밤을 밝히었다(저자 이

선우, 출판 소명출판)'는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나오는 문형으로, 『십

자가의 성 요한』에 나오는 구절을 맥락

을 바꾸어 사랑의 문형으로 제시한 것

이다. 저자는 이 역설적인 사랑의 문형이

야말로 그동안 읽고 쓴 작품들의 핵심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이 평론집은 35편의

글이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묶어져

'약초치유(저자 김민철, 출판 헬스레

터)'는 알레르기성 비염과 아토피, 건선

과 면역성 질환 등 현대인의 난치성 질

환을 약초처방으로 치유한 임상사례를

공개한다. 난치성 질환을 장기치료에서

'오늘도 구하겠습니다!(저자 조이상, 출

판 푸른향기)'는 힘든 곳, 뜨거운 곳, 아

픈 곳, 위험한 곳, 빌딩 위, 호수 밑, 폭풍

속으로 1퍼센트의 희망을 찾아서 달려

가는 헬멧 속의 히어로, 어느 소방관의

'어린이를 위한 사피엔스(저자 마이클

브라이트, 출판사 한겨레아이들)'는 ‘인

류는 어떤 존재일까’라는 물음에서 시

작해 쥐와 비슷했던 초기 영장류, 유인

원의 시대를 지나 수많은 위기를 넘으

며 오늘에 이른 진화의 과정을 흥미롭

이 있다. 하지만 동물원이라고 해서 5·18

민주화 운동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는 없

었다. 사람이 떠난 동물원에 부자만 남

게 된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어도 동물에게

는 사람 손길이 필요하기에. 하지만 동물

원에 군인과 시민군이 번갈아 드나들게

되면서, 부자는 그들이 가슴에 품고 있

있다. 1부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인간 존

재의 조건과 윤리에

대해 고민한 글들이

며, 2부 ‘죽음 앞의

삶’은 인간을 극한

으로 몰아붙이는 세계의 폭력과 실존의

절박함을 드러내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고통에 충실한 삶’ 속에서 드러나는 문

벗어나게, 한약학과

현대의학을 결합한

‘약초치유’는 에세

이처럼 재미있다. 조

선시대 선비들은 귀

양길이나 낙향할 때, 목가구인 약장(藥

欌·약재를 넣어 두는 장)과 두둑한 의학

서 몇 권을 넣어갔다. 스스로 건강을 돌

이야기다.

지난 4월 1일 소

방공무원은 지방직

에서 국가직으로 전

환됐다. 그것은 소

방관들의 조용한 희

생과 노력 끝에 얻은 결과로, 국가재난

게 보여 주며 미래

인류는 어떤 모습일

지 예측해 본다. 인

류의 과거를 돌아

보며 미래를 생각

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추천사를 쓴

는 진실들과 마주한

다. 명령을 따라야

만 하는 군인의 방

황과 자신을 희생해

서라도 역사에 산

증인이 되고자 하는

학생, 그리고 어린 광훈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현장에서

고통스럽게 살아 숨 쉬던 이들의 속살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학살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종근 기자

학의 역설적인 성취를 생각해본 글들로

묶여 있다. 한강의 「회복하는 인간」부터

손아람의 『소수의견』에 이르기까지 체

제 속에서 고통받는 자들의 윤리와 그

들의 연약하지만 끈질긴 생의 의지가 이

세계를 어떻게 바꾸어 내는가를 보여주

고자 했다. 3부 ‘청춘의 종언과 선언 사

이’는 세대론에 대한 비판을 위장한 일종

의 세대론들로, 청년 세대를 둘러싼 현실

의 무게와 무늬, 이에 대한 다양한 대응

전략들을 살펴보았다.

/이종근기자

보기 위해서다. 의술에 조예가 깊은 선비

는 유의(儒醫)로 불렸고, 강진으로 유배

를 간 다산 정약용도, 낙향한 풍석 서유

구도 그랬다.

이제는 조선시대 유의와도 같은 귀농·

귀촌이 필요한 때이다. 이 책은 집에서

쉽게 약초치유가 가능한 질환들을 골라

내 처방전을 재배치했다. 임상치료 결과

가 매우 구체적이며, 한의학적 시각과 생

리학에 기초한 질병 이해를 서양의학 기

법으로 녹여냈다. /이종근 기자

의 신속한 대응 및 소방 서비스의 격차

해소 등 여러 면에서 업그레이드 되었다.

하지만 국민의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소

방관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열악한 상황

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불 끄는 소방관

그림을 그렸던 소년은 어른이 되어 진짜

소방관이 됐다. ‘힘들고 괴롭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뒤늦게 소

방관직에 뛰어든 5년차 소방관의 생생한

현장 스토리이다. /이종근 기자

경희대 사학과 강인욱 교수는 사람은

왜 두발로 걷는지, 왜 사람만 말을 하는

지 등 박물관에서 만난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책 속에 있다며, 최신

학계 이론과 용어가 체계적으로 정리된

알찬 책이라고 소개했다. ‘작은 시작’의

이야기는 독자의 흥미를 사로잡기 충분

하다.

/이종근 기자

■ 최종욱 ̀붉은 오월, 그곳에 푸른 동물원'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진화의 씨앗은 비로소 움텄다

■ 마이클 브라이트 ̀어린이를 위한 사피엔스'

■ 이선우 ̀그리하여 밤이 밤을 밝히었다'

좋은 약차는 마시고 싶어요

“소방관입니다, 제 손 잡으세요”

■ 김민철 ̀약초치유'

■ 조이상 ̀오늘도 구하겠습니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저자 라즈 파텔, 옮기 백우

진, 이경숙, 출판사 북돋움)'는 기후 위기, 극단적 불평

등, 금융 불안 같은 현재의 위기가 자본주의가 감춰온

비용이 비로소 우리에게 청구서로 날아들었음을 서늘

하게 지적한다. 이들 위기는 별개의 해법으로 고칠 수

'나는 자연인이다. 3(저자 MBN 나는 자연인이다 제

작팀, 출판 다온북스컴퍼니)'은 그동안 만나온 자연인

가운데 아픈 몸과 마음을 자연에서 치유한 특별한 9명

의 이야기를 담았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도시에서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쳤던 사람들, 그러다 생긴 몸과 마음

의 병을 치유하고자 산을 찾은 자연인, 가족을 도시에

'외국어를 과학적으로 배우는 방법(저자 이충호, 출

판 다개국어)'은 왜 단어를 외우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되지 않는지, 외우더라도 어떻게 외워야 하는지, 영화

자막은 있어야 하는지, 없이 봐야 하는지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의문 사항에 관해서 여러 연구 자료를 토대

'어떤 남자를 스치다(저자 이원재, 출판 몽트)'는 지금

은 떠났지만 우리 모두에게 강한 울림을 준 정치가 노

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집이다. 저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자신의 인생에 큰

획을 긋고 떠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 시로 채

워져있다.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가슴으로 이해가 안 되면 첫 페이지를 다시 펼쳐야 한

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시 읽어야 한다.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라는 총체

를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재구성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세계의 역사

를 하나의 시선으로 꿰뚫는 지적

인 충만함을 넘어 현재의 세계를

관통하는 문제의 근원을 직시하

고자 하는 독자라면 이 한 권으로 탁 트인 시선을 갖

추게 될 터이다. /이종근 기자

남기고 고향에 내려와 제 2의 인생

을 사는 자연인, 힐링을 하고자 다

갖추어진 시골마을이 아닌 산속에

서 자연과 인연을 맺은 자연인의 이야기가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자연인들은 모두 지금처럼 다시 삶을 살게

된 것이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말한다. /이종근 기자

로 설명해준다. 이 책의 내용을 이

해하게 되면 외국어를 어떻게 배

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알 수

있다. 6개 외국어를 6년간 배워 오

면서 수많은 연구 자료와 폴리글

랏(polyglot, 다국어 사용자)을 연

구해 왔다.

/이종근 기자

이 책은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는 세상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행

하며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내

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다. 바람을 이기고 나아가야 하는

세상, 이쪽에서 저쪽으로 내달리는

옮김의 여행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따라 걷는 저자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중이다. /이종근 기자

“지금은 인류세가 아니라 자본세다!”

■ 라즈 파텔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지금 이곳이라서 너무 행복하다

외국어를 어떻게 배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 알 수 있다

지금은 떠났지만 우리 모두에게 강한 울림을 준 노무현

■ MBN 나는 자연인이다 제작팀 ̀나는 자연인이다. 3'

■ 이충호 ̀외국어를 과학적으로 배우는 방법'

■ 이원재 ̀어떤 남자를 스치다'

‘십자가의 성 요한’에 나오는 구절을 맥락을 바꿔 사랑의 문형으로 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