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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과 문화 Vol. 11 No.1 ● 겨울 32 33 하천에 얽힌 옛이야기 아우라지와 정선아리랑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나를 넘겨주소. 이 노래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 가운데 하 나인 정선아리랑입니다. 정선아리랑은 강원도 정선 지방에 서 전해 내려오는 노래로 ‘아라리’라고도 합니다. 이 노래에 나오는 ‘아우라지’는 동강 상류인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에 있는 강의 이름입니다. 북쪽 구절리에서 훌러 오는 송천과 남동쪽 임계면에서 흘러오는 골지천의 두 물줄 기가 서로 어우러지는 곳이라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지요. 앞에 소개한 정선아리랑 노랫말에는 다음과 같은 슬픈 사 연이 전해지고 있어요. 옛날 아우라지 나루터를 사이에 둔 두 마을이 있었는데 여 량리와 유천리입니다. 여량리는 이름 그대로 먹고 남을 식량 이 있는 잘사는 마을이고, 유천리는 버드나무로 유명한 버드 내골이었습니다. 어느 날, 여량리에 사는 처녀와 유천리에 사는 총각이 아 우라지 나루터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날은 총각이 집안 어른의 심부름으로 여량리에 왔다가 유천리로 돌아가는 길 신 현 배 | 시인 / 아동문학가 ([email protected]) 일러스트레이터 김도연 4

하천에 얽힌 옛이야기 아우라지와 정선아리랑Ž˜이지_ Vol11_No1...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나를 넘겨주소. 이 노래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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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과 문화 Vol. 11 No.1 ● 겨울32 33

하천에 얽힌 옛이야기

아우라지와 정선아리랑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백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 나는 못 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나를 넘겨주소.

이 노래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 가운데 하

나인 정선아리랑입니다. 정선아리랑은 강원도 정선 지방에

서 전해 내려오는 노래로 ‘아라리’라고도 합니다.

이 노래에 나오는 ‘아우라지’는 동강 상류인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에 있는 강의 이름입니다. 북쪽 구절리에서 훌러

오는 송천과 남동쪽 임계면에서 흘러오는 골지천의 두 물줄

기가 서로 어우러지는 곳이라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지요.

앞에 소개한 정선아리랑 노랫말에는 다음과 같은 슬픈 사

연이 전해지고 있어요.

옛날 아우라지 나루터를 사이에 둔 두 마을이 있었는데 여

량리와 유천리입니다. 여량리는 이름 그대로 먹고 남을 식량

이 있는 잘사는 마을이고, 유천리는 버드나무로 유명한 버드

내골이었습니다.

어느 날, 여량리에 사는 처녀와 유천리에 사는 총각이 아

우라지 나루터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날은 총각이 집안

어른의 심부름으로 여량리에 왔다가 유천리로 돌아가는 길

신 현 배 | 시인 / 아동문학가

([email protected])

일러스트레이터 김도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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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습니다.

총각은 나루터에서 한 처녀를 보고는 숨이 멎는 줄 알았습

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가 봐. 이처럼 어여쁜 처녀는 처

음 보겠네.’

총각은 나룻배에 올라타서도 처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

습니다. 넋이 나간 듯 하염없이 처녀의 얼굴을 바라보았습

니다.

‘어디 사는 처녀일까? 여량리에 사는 처녀일까? 이제 헤어

지면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어. 말이라도 걸어 보자.’

총각은 몇 번을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처녀에게 말을 걸

었습니다.

“아가씨, 여량리에 사시나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처녀가 머리를 쳐들었습니다.

처녀는 커다란 눈으로 총각을 흘긋 보더니 수줍은 듯 다시

고개를 숙였습니다.

“예, 여량리에 살아요.”

처녀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총각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처녀에게 이것저것 물어 보았습니다. 그 때마다

처녀는 미소를 지으며 꼬박꼬박 대답했습니다.

처녀도 총각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총각이 헤어지

기 전에 “다음에 또 만날 수 있겠죠?” 하고 다짐하듯 묻자 고

개를 끄덕였으니 말입니다.

두 사람은 어느새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서로에 대

한 그리움이 눈덩이처럼 커져갔습니다.

처녀와 총각은 부모님 몰래 몇 번 만났습니다. 총각이 여

량리로 심부름을 오면 꼭 처녀의 집 근처를 어슬렁댔기 때문

입니다. 그 뒤부터 처녀는 사립문 밖에 나가 총각을 기다리

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오늘은 우리 마을에 오실까? 어제 다녀가셨는데 왜 이리

보고 싶지?’

처녀는 총각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

루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고 사립문을 나섰습니다.

“싸리골에 가서 올동백 따 가지고 올게요.”

올동백은 노란 동백꽃이었습니다. 강원도 특산물로, 동강

아우라지 건너 싸리골에는 올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었습니

다.

그러나 처녀가 올동백을 따온다는 것은 핑계였습니다. 처

녀는 아우라지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총각을 만나

러 갔던 것입니다.

두 사람은 싸리골에서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

림자처럼 붙어 앉아 꿈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머! 날이 저물어가요. 그만 돌아가야 해요.”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면 처녀는 허둥지둥 돌아갈 차비를

했습니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왔

습니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봄이 지나 여름이 되었습니

다.

다음 날 총각을 만나기로 약속했던 처녀는 밤새도록 비가

내리자 안절부절못했습니다.

‘어쩌면 좋지? 강물이 불면 내일 강을 건널 수 없는데, 큰

일 났네.’

아침이 되어도 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장마가 들어 무섭

게 쏟아졌습니다.

처녀는 빗속을 뚫고 강가로 나갔습니다. 강물은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습니다. 저런 상태라면 도저히 배를 띄울 수가

없었습니다.

처녀는 불어난 강물을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총

각은 강 건너편에서 애타게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습

니다.

처녀는 강물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다가, 강을 건너가 그리

운 임을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정을 담아 노래를 불렀습

니다. 그것이 바로 정선아리랑입니다.

이 노래는 아우라지 나루터의 뱃사공에 의해 널리 불렸습

니다. 뱃사공은 강을 건널 때마다 처녀 총각의 애절한 사랑

을 생각하며 구성지게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선아리랑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졌을 때

고려 유신들이 처음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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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과 문화 Vol. 11 No.1 ● 겨울34 35

1392년 이성계는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했습니다.

그러자 이를 반대하던 고려 유신 72명은 송도(개성) 광덕산

서쪽 기슭에 있는 두문동에 들어가 숨어 살았습니다.

이성계는 이들에게 벼슬을 주어 나라 일을 맡기고 싶었습

니다. 하지만 고려 유신들은 끝까지 지조를 지켰습니다. 자기

들은 고려 왕조의 임금만 섬길 뿐이고, 절대로 두 임금을 섬

길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성계는 이들을 나오게 하려고 두문동 입구에 불을 지르

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불에 타 죽으면서 끝까지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켰습니다.

고려 유신들 가운데 원천석ㆍ이색ㆍ길재ㆍ최문한ㆍ전오

륜ㆍ서진ㆍ구홍 등 일곱 사람은 강원도 정선 땅으로 내려가

지금의 남면 낙동리 거칠현동에 숨어 지냈습니다. 이들은 산

나물을 뜯어먹으며 어렵게 살았는데, 가장 견딜 수 없는 것

은 고향산천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유신들은 그

그리움을 한시로 지어 달랬는데, 이것이 정선아리랑의 시작

이 되었다고 합니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장마 지려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명사십리가 아니라면은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 3월이 아니라면은 두견새는 왜 우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소.

정선아리랑의 노랫말은 무려 800여 수가 전해지고 있습니

다. 지금은 강원도 무형 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널리 불리

고 있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김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