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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4 마을공동체 심층 사례집 김영림 · 오명화 · 원동업 · 전명순 · 최현정 제2014-02-005호

제2014-02-005호 20 14 마을공동체 심층 사례집news.seoul.go.kr/gov/files/2015/04/552c5f2d56d346.76784920.pdf · 나의 일터인 일상예술창작센터는 흔한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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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공동

    체 심

    층 사

    례집

    2 01 4 마을공동체 심층 사례집

    김영림 · 오명화 · 원동업 · 전명순 · 최현정

    제2014-02-005호

    122-824 서울특별시 은평구 통일로 684, 8동 3층(녹번동)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Tel. 02)385-2642 Fax. 02)354-9280

    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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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습하는 마을, 글 쓰는 동네

    누군가는 마을살이를 한마디로 ‘지지고 볶는 거’라고 한다. 그렇다. 열두 번씩 “이걸 왜 하나?”하면

    서도 하고 있다. 그러다가도 지나고 나면 지지고 볶을 때의 끌탕은 눈 녹듯 간데없고, 뿌듯한 보람

    이 남는다. “이 맛에 하나?”

    무엇을 할까? 우리 뭐 하면 좋을까, 마을에 필요한 게 뭐지, 대단한 아이템이 따로 있는 양 한다.

    뭐 할지 결정하고 나면 일을 거진 다 이룬듯하지만 그때부터이지 않던가?

    어떻게 하지? 뜻이 좋다고, 아이템이 좋다고 일이 되는 게 아니란 걸 알 때쯤이면, 이미 빼도 박도

    못함을 안다. 그야말로 지지고 볶으며 헤쳐나오듯 통과하고 나면, 보람도 있지만 또 해낼 수 있을

    까 싶다. “내가 이걸 왜 하지?”

    ‘무엇’에서 ‘어떻게’를 지나면 ‘왜’가 새삼스레 다시 다가온다. 돌아볼 때다. 돌아보려면 당연히 돌

    아볼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다볼 안목이 있어야 돌아볼 수 있다. 내다볼 안목은 어떻게 생

    기나? 학습이다. 교육으로는 안 된다. 학습에는 학습노동이 따른다. 학습노동은 읽고, 쓰고, 생각

    하기인데, 이 중에 제일은 쓰기다.

    쓰기는 생각을 문자로 시각화시켜 손에 잡히듯 만질 수 있게 해준다. 구멍이 숭숭한 내 생각의 허

    점들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내 생각을 빤히 들여다보고 요리조리 고치고 바꿔볼 수 있게 해준다.

    올해는 학습하는 마을, 글 쓰는 동네가 되면 좋겠다.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장 유 창 복

    펴내는 말

  • 4

    이 책은 ‘우리마을 돌아보기’라는 이름으로 발간되는 마을공동체 심층 사례집이다. 우리마을 돌아

    보기는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가 2012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교육 사업의 명칭이기도 하

    다. 주민이 마을활동의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단계별 교육과정 중 마을활동가 심화 단계

    의 교육이다. 우리마을 돌아보기에 참여한 마을활동가는 활동의 경험을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그간의 경험을 한 편의 글로 기록한다. 센터에서는 이러한 과정의 결과물을 모아 한 권의 책

    으로 엮어낸다. 우리마을 돌아보기는 마을활동가들이 자신의 실천을 성찰하면서 마을에 대한 철

    학을 정립하고, ‘마을연구자’로 성장하는 경로를 제공하고자 한다.

    우리마을 돌아보기, 3년의 과정

    2012년 사업 첫해에는 공모를 통해 여덟 명의 참여자(단독 혹은 공저)를 선발했다. 집필 자문회의

    를 열고 원고료 지원을 통해 그간의 마을활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 결과

    기존 마을사업에 대한 공론의 결과와 방향 모색이 담긴 다섯 개의 사례를 출간했다. 지역공동체와

    생활정치를 꿈꾸는 마포구의 두 공동체 사례와 십대들이 마을을 만나고, 사람들이 일상을 매개로

    마을을 형성한 이야기가 담긴 강북구의 두 공동체 사례, 여성단체 활동가에서 마을활동가로 변신

    해 살아가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2013년 두 번째 사례집 발간 과정에서는 여덟 명의 참여자와 7주간의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했고,

    집필 기간을 늘려 글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역점을 두었다. 마을연구자로서의 정체성 확립과 자기

    성찰, 자긍심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는 참여자들의 평가와 함께 여섯 개의 사례가 책으로 묶였다.

    은평구의 품앗이 육아와 공동육아협동조합 사례, 동대문구의 품앗이 육아 사례, 용산구의 동네잡

    지 발간 활동과 광진구의 마을 미디어 탄생 사례, 성동구에서 책을 매개로 마을공동체 활동을 시

    작한 주민들의 성장 과정을 접할 수 있다.

    2014년 올해의 우리마을 돌아보기 사업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마을공동체의 지속가능성에 대

    한 고민과 성찰을 담은 다양한 분야의 사례집 발간을 목표로 했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글쓰기 워

    이 책에 대하여

  • 5

    크숍을 진행해 글의 완성도를 높이고, 참여자들이 집필 동기로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했다. 더

    많은 사람에게 글쓰기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12명의 참여자를 선발했으며, 참여자들은 6주간

    의 글쓰기 워크숍을 마친 후 원고를 집필하는 동시에 마을활동 현장에서 만나 간담회를 열었다.

    마을 활동의 분주함 등 일신상의 이유로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하지 못하거나 원고를 완성하지 못

    한 참여자도 있어서, 올해 사례집에는 최종적으로 다섯 개의 사례가 담기게 되었다. 2014 우리마

    을 돌아보기 사례집에서 만날 수 있는 사례는 다음과 같다.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동작구 부모커뮤니티

    은평구 마을기업

    성동구 문화예술동아리

    동작구 교육공동체

    홍대앞 문화기획자들이 연남동으로 활동의 터전을 옮긴 뒤 전봇대 ‘찌라시’로 주민들을 불러 모으

    며 반상회가 많은 마을을 꿈꾸게 된 이야기, 공동육아에서 출발해 마을과 지역으로 관계를 확장

    하던 중 ‘놀이’에 꽂혀 마을 놀이터를 만들어가고 있는 이야기, 결혼이주여성의 닭똥 같은 눈물과

    가슴 아픈 사연을 접하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기업을 세워 ‘우리’의 회사로 만들어가

    고 있는 이야기, 아이 키우려고 이사한 동네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헤매다 우산이 되고 둥지가 되

    어줄 문화예술 동아리를 만나 그 안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성장한 이야기, 도서관 자원활동가

    로 만난 사람들이 함께 마을의 엄마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마을의 커다란 도토리나무가 된 이야

    기가 알감자처럼 영글어있다.

    마을활동의 지속가능성에 답하다

    사람들은 묻는다. 마을활동과 마을공동체 사업의 지속가능성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마을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요인인가? 어떤 식으로든 지원 사업을 통해 생존하는 것 외에 대안은 없는가? 마을

    활동은 자립할 수 있는가? 마을공동체 활동을 통해 협동과 공유의 마을경제를 이루어나갈 수 있는

    가? 우리마을 돌아보기 사례집 속의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은 답을 들려주는 듯하다.

    마을활동의 지속가능성의 원천은 ‘같이 하는 즐거움’이다. 마을활동에는 힘든 일을 잊게 하는 ‘소

    소하고 원초적인’ 즐거움이 있다. 같이 할 사람이 있고, 거들어주는 지역 주민이 있고, 함께 마을의

    작은 변화를 목격하는 보람과 쾌감이 있다. 지원제도를 통해 확보한 마중물을 바탕으로 마을에서

  • 6

    즐거움과 기쁨을 찾았다면, 이제는 스스로 소박하게 마을활동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힘들어도 변

    화해야 성장한다. 마을활동의 중요성과 가치를 깨닫고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실천하려는 사람들

    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계속 발굴하고, 교육하고, 지원하고, 지지해 주는 것이 마을활동을 지속하

    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역설적이게도 ‘자립’은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사례집 속 이야기들은 다섯 명의 집필자들이 올해 여름과 가을 사이, 그 바쁜 마을활동 사이사

    이에 짬을 내어 땀띠 나게 써내려간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들은 수년간의 마을활동 경험을 정리하

    고 기록하면서 마을활동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지역사회에서 공동체의 실천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사례 속에 녹아있는 이들의 고민을 잘 찾아보기 바란다.

    글쓰기 워크숍 진행을 맡은 이현구 씨는 집필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잘 기록할 수 있도록 세세하

    게 원고 집필 과정을 안내해주었고, 이 책의 편집 작업에도 힘을 보태주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었’ 듯 2014 우리마을 돌아보기 심층 사례집 발간을 위해서 봄부

    터 겨울까지 머리를 맞대고 함께해 준 센터 사업협력실 여러분의 훈훈한 입김과 손길도 이 책에

    보태졌다. 그야말로 ‘여럿이 함께’ 걸어온 길에서 더 자란 우리가 만났다. 고마움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 사업협력팀 김혜자

  • 7

    2012 · 2013 우리마을 돌아보기

    2012 우리마을 돌아보기

    * 수록 사례

    이웃과 만나는 곳, 우리동네 나무그늘 (마포구 우리동네 나무그늘)

    유쾌한 십대가 유쾌한 마을을 만든다 (강북구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그녀들의 풀뿌리 Herstory (풀뿌리여성센터 바람)

    사람이 마을을 만들고 마을이 사람을 만든다 (마포구 마포희망나눔)

    행복한 일상, 마을에서 꿈꾼다 (강북구 삼각산재미난마을)

    * PDF 파일 내려받기

    센터 홈페이지(www.seoulmaeul.org)→알림마당 → 자료실 → 센터자료 웹하드 공유 안내문 확인 →

    웹하드 로그인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 발간물 폴더 → 2013년 발간물 폴더

    2013 우리마을 돌아보기

    * 수록 사례

    ‘같이’ 키우니까 ‘가치’를 알겠더라 (은평구 은평 품앗이 육아)

    나의 동네잡지 원정기 (용산구 남산골 해방촌)

    알토란 성장 관찰일지 (동대문구 알토란)

    공동육아, 마을속으로 퐁당 (은평구 소리나는 어린이집)

    마을미디어 의 돌잔치 이야기 (광진구 광진사람들)

    소통하는 자원활동가를 꿈꾸며 (성동구 책과 함께 사는 마을)

    * 웹 상에서 읽기

    센터 홈페이지→알림마당→자료실→주제전체보기→사례집

    * PDF 파일 내려받기

    센터 홈페이지→알림마당→자료실→센터자료 웹하드 공유 안내문 확인→웹하드 로그인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발간물 폴더→2013년 발간물 폴더

  • 펴내는 말

    이 책에 대하여

    ‘홍대앞 사람들’의 마을 정착기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 생활창작공간 새끼 > │ 최현정

    지붕 없는 마을 사랑방, 놀이터

    동작구 부모커뮤니티 < 산별아 > │ 오명화

    나는야 은평구 다문화의 종결자

    은평구 마을기업 < ㈜ 마을무지개 > │ 전명순

    그림, 마음, 마을로 떠나는 마실

    성동구 문화예술동아리 < 그림마실 > │ 원동업

    떼굴떼굴 마을로 굴러온 엄마들

    동작구 교육공동체 < 꿈꾸는 도토리 > │ 김영림

    차 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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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 현 정

    ‘홍대앞 사람들’의 마을 정착기

    그때 내가 무심코 던진 저렴한 아이디어가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일명 ‘치킨

    전단지’다. 마을시장은 무척이나 편하고 흔한 것이어야 주민들이 부담 없이 참

    여하고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멋스럽게 만들어진 리플릿보다 흔하게 동네 구

    석구석에서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안했다. 홍보물의 디자인

    은 최대한 세련되고 차별화 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내부 콘셉트를 깨고 코딩된

    A4 아트지로 두께는 가장 얇은 것, 색깔은 눈에 확 띄는 다홍색. 붉은색도 주황

    색도 아닌 그저 눈에 잘 띄는 다홍색. 넉넉하게 5000장 마련했다. 그리고 붙였

    다. 붙이고 또 붙였다. 동네 구석구석, 전봇대마다, 마트 가는 길에, 붙이고 또

    붙였다.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 “

  • 들어가며

    1. 연희동의 남쪽이라 연남동

    마을살이의 시작

    ‘누구의 무엇’이기엔 아까운

    연남동에 부는 바람

    2. 새끼와 마을예술창작소

    새끼의 탄생과 성장

    새로운 출발, 마을예술창작소

    쉽지 않았던 마을로의 안착

    마을예술의 지휘자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연

    3. 마을시장 ‘따뜻한 남쪽’

    “마을에서 시장이나 해볼까”

    역전의 드라마

    왜 하느냐 물으신다면

    4. 부딪히고, 잇고, 만나서

    뜨거운 감자, 1.8km

    있는 것들을 잇는다

    반상회를 기다리며

    나오며

    글쓴이Ⅰ최현정

    마포구 연남동에서 살고, 일하고, 논다. 20대 초반, 펑크록에 심취해 홍대앞에 살면서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의 자원활동가로 활동하며

    문화기획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 현재는 프리마켓을 개최하는 사회적기업 일상예술창작센터의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생활창작공간 새끼를

    운영한다. 주 전공은 대안시장기획과 문화예술교육. 커뮤니티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자연스럽게 마을 일을 시작했다. 함께 일하는 40대 남

    편, 두살 난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email protected]

    생활창작공간 새끼

    2007년 일상예술창작센터가 만든 커뮤니티 공간이자 공방. 2012년부터 서울시 마을예술창작소 지원을 받으며 연남동 마을예술과 마을공

    동체 활동의 거점공간이 되었다. ‘연남마예스트로’ 프로젝트를 통해 목공, 벽화, 바느질, 음식 등의 강좌와 모임이 산발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를 통해 모인 이들이 마을공동체 활동의 주요 인물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257-3 B1

    ○ 홈페이지 : cafe.naver.com/spacesaekki (페이스북: [email protected])

    일상예술창작센터

    생활창작공간 새끼를 운영하는 문화예술분야 사회적기업이자 비영리민간단체. 2002년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 개최로 모인 문화기획

    자, 자원활동가, 학생, 예술가, 관련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2003년 설립했고, 2010년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되었다. 문화생산과 소비

    의 틀을 새롭게 하고, 1인창작자들의 활동을 지원하며 활로를 모색하는 활동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257-3 F1

    ○ 이메일 : [email protected]

  •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13

    들어가며

    나는 가끔 이중생활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바로 지금이 그렇다.

    이 글을 시작하는 지금, 나는 문화기획자로서 올해의 가장 큰 이벤트를 마치고 녹초가 되었지만,

    마을 주민으로서 혹은 마을활동가로서 나의 올해 가장 큰 이벤트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기 때

    문이다. 가을이 채 되기도 전에 내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었다고 느끼는 지금, 마을일을 펼쳐놓고

    나니, 어쩐지 숨겨놓은 쌈짓돈을 발견한 기분이다.

    연남동의 마을공동체 활동은 올 가을 전환점을 맞을 예정이다. 그동안 마을예술, 창작활동을 계

    기로 개개인의 다채로운 욕구와 열정을 만났다면 이제는 마을에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함께

    마음과 머리를 모아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활동들은 새롭게 엮어 성과를 만들어 보기도

    해야 할 것이며, 더욱 더 많은 이들과 만나야 할 과제도 남아있다.

    연남동의 마을공동체는 아직 시작단계이다. 그래서인지 연남동의 마을공동체는 큰 어려움도 없

    어 보이고 아름답게 보여 지기만 한다. 올 가을을 기점으로 드러날 새로운 이슈와 네트워크사업들

    이 우리를 어디로 데리고 갈지 모르겠다. 이 글을 써 내려가며 그동안 우리 마을의 공동체 활동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차근차근 살펴보고 새롭게 만들어 갈 그 길을 예측하고 준비해 보려한다.

  • 2014 우리마을 돌아보기

    14

    1. 연희동의 남쪽이라 연남동

    마을살이의 시작

    나의 일터인 일상예술창작센터는 흔한 말로 ‘홍대앞 출신’이다. 2002년 한 · 일 월드컵을 맞이해 홍

    대앞 지역의 문화예술 주체들이 모여 다채로운 문화관광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 가운데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이하 프리마켓)’이 있었다.

    2002년 6월, 프리마켓은 첫 개최 이후 폭발적인 참여와 반응으로 큰 관심과 호평을 받았고 이로

    인해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뜻있는 이들이 모여 프리마켓을 지속하기로 했다. 당시 문화기획자

    이자 홍대신촌문화포럼1)의 사무국장이었던 김영등 씨가 일상예술창작센터를 설립했다. 그리고

    함께 시장을 만들어 오던 예술가, 자원활동가, 그리고 문화예술 관련 전문가들이 함께 단체를 꾸

    려나갔고, 나도 자원활동가로 함께 하게 되었다.

    일상예술창작센터는 이후 프리마켓과 같은 대안시장기획, 문화예술교육, 공공예술 프로젝트와

    같은 사업을 추진하며 성장해 나갔다. 일상예술창작센터의 주 전공 중 하나는 프리마켓에서 활동

    하는 1인 창작자들과 센터 기획자들의 공동기획으로 만들어나가는 교육 · 강좌 프로그램이었다.

    센터 사업이 확장될수록 프로그램을 할 수 있는 공간, 창작자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고

    이런 공간에 대한 바람을 꽤 오랫동안 품어왔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홍대앞 상권은 팽창했고, 따라서 가난한 비영리단체

    의 형편으로는 사무공간도 보전하기 어려웠다. 2007년 겨울, 마침 가깝게 지내던 단체인 서울프린

    지네트워크2)가 홍대앞과 가까운 연남동에 함께 주택을 얻어 나가자고 제안했고, 홍대앞을 지켜야

    ‘홍대앞 사람들’의 마을 정착기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15

    한다는 미련은 월세부담을 이기지 못했다.

    새롭게 시작된 연남동에서의 나날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홍

    대앞의 소음과 악취도 없었고 주말 인파에 스트레스 받지 않아

    도 되었다. 넓은 주택 마루와 정원에서 다채롭게 모임과 프로그

    램도 할 수 있었다. 특히 거실 한쪽을 ‘생활창작공간 새끼’라 이

    름을 붙여 드로잉, 바느질 등 다양한 생활창작강좌를 진행했고,

    마당에서는 가끔 필요한 가구들을 만들기도 했다. 마당 한 편에

    텃밭도 만들어 상추 따위를 길러 나누어 먹는 것, 사람들을 초

    대해 삼겹살 파티를 여는 것도 연남동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

    었다. 프리마켓 작가들이 모여 공동의 프로젝트를 모의하기도

    했고, 보다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모임들과 토론회가 벌어지기

    도 했다. 목적과 방향은 다소 모호했지만, 그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을 누렸다.

    사실 그 시절엔 물리적 공간의 이동, 즉 ‘홍대앞 서교동’에서 ‘홍대앞과 가까운 연남동’으로 이동을

    했다고 생각했을 뿐, 우리가 새로 머물게 된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가지거나 마을활동에 크게 관심

    을 두지 않았다. 그저 ‘이웃이나 주변에 사는 이들이 가끔 놀러와 주면 좋겠다’ 정도의 생각만을 가

    지고 있었을 뿐 큰 기대나 바람을 갖지 않았던 것 같다.

    앞서 이야기 했듯 일상예술창작센터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기획과 진행에 탁월한 인력과 시

    스템,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2005년 프리마켓에서 진행한 생활창작워크샵3)을 시작으로 2006년

    부터는 본격적으로 문화예술교육 사업에 뛰어들어 다채로운 활동을 해 왔다.

    그 중 가장 열정적으로 했던 활동이 지역아동센터에서의 활동이었다. 주로 관악구나 노원구 등

    지역아동센터가 밀집된 지역에서 서울문화재단이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지원사업으로 진

    행했다. 프로그램의 방향은 지역의 아동들이 창작활동을 쉽게 즐겁게 접해보고 그로인해 조금이

    나마 자존감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주로 ‘나 · 내 주변 · 나의 동네’를 창작의

    소재로 삼았고, 지역 안에서 이러한 소재를 발견하고 채집하는 과정을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2~3년여 간은 지역아동센터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방면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쌓았다. 사실 프로

    그램과 대상에 대한 훈련을 한 기간이기도 했다. 빠듯한 예산에 프로그램을 촘촘하게 하다 보니,

    2008년 연남동 일상예술창작센터 전경

    1) 2002년 홍대앞과 신촌 등지에서 활동하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만든 협의체.

    2)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주최하는 사회적기업.

    3) 프리마켓이나 축제 현장에서 진행하는 일회성 창작워크숍으로 주로 프리마켓에서 활동하는 생활창작자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보고 경험하는

    프로그램. 2005년부터 시작했다.

  • 2014 우리마을 돌아보기

    16

    지치기도 했다. 따로 차량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예산도 넉넉지 못해 재료와 도구를 이고지고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거나 언덕을 오르며 3개의 지역아동센터에서 6개월 이상 프

    로그램을 지속하는 것은 거의 도 닦는 일과 맞먹는 고행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왜 이 프로그램을

    지속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매 연말 평가회의를 혼돈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연남동살이는 3년째 접어들었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문화예술교육사업의

    한해 계획을 세우는 테이블에서 우리는 아주 당연한 물음과 해답에 직면했다.

    ‘왜 우리는 그동안 우리 동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도 아동들이 살고, 청소년이 살고, 복작거리는 사람냄새가 나는데, 우리

    는 왜 이곳에서 무언가 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 물음에 누구도 속 시원히 답하지 못한 채 우리는 물 흐르듯 연남동에서, 연남동을 위한, 연남

    동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이르렀다. 그리하여 2010년에는 마포구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 지원 사

    업’으로 연남동 주민과 함께하는 ‘연남올레아카데미’, 연남동의 경성고 · 홍익디자인고 학생들과 함

    께하는 생활창작자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한뼘가게’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을살이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누구의 무엇’이기엔 아까운

    이웃이라곤 동네 인쇄소와 편의점, 동네마트가 전부였던 우리는 본격적으로 연남동살이를 시작하

    며 가장 먼저 주민센터를 찾았다. 동장님과 주민자치위원회는 일상예술창작센터에 대해서 이미

    들어서 알고 있다며 무척이나 환영해주셨다. 우리는 주민센터에 주로 공간대관과 홍보협조와 같

    은 행정적 도움을 자주 요청했고, 프로그램의 내용과 의미에 대해서도 때마다 전달을 해드렸다.

    몇 가지 마을 사업의 추진위원회에도 초대해주셔서 참석하기도 했는데, 그때 받았던 느낌은 연

    남동의 개발과 발전에 대한 어르신들의 열정과 약간의 조바심이었다. 연남동을 단절시키다시피

    했던 경의선이 지하로 옮겨가는 공사, 그리고 그 위에 새롭게 생겨날 공간, 홍대앞 상권 팽창에 따

    른 연남동의 지역경제 활성화 등 여러 요인들이 지역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서교동과 연희동

    사이의 소박하고 조용했던 동네에 뭔가 떠들썩한 변화의 바람이 불길 간절히 원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마을의 여러 모습들을 만나다보니 자연스럽게 ‘연남동’의 유래를 살펴보게 되었다.

    연남동은 1975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새로 생긴 동으로 서대문구 연희동 일부(경의선 남서쪽 구역)를 분리

    하여 마포구에 편입시키면서 동명을 연희동의 남쪽이라 하여 ‘연남동’이라 하게 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ko.wikipedia.org)

  •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17

    연 희동(延禧洞)의 남(南)쪽이라 붙여진 이름 연

    남 동(延南洞) 이라니. 사실 적잖이 충격을 받았

    다. 우리 동네가 누군가(연희동)의 한쪽(남)이

    라 니. 뭔가 복속되는 느낌도 있고, 부속품 같다

    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여하튼 찜찜하고 석연치

    않 았다. 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 연유는 잘 모

    르 겠지만, 1970년대에 서대문구 연희동이었던

    지 역 일부를 떼어 만든 곳이 연남동 이었다고 한

    다. 그 이전까지는 지역의 정비가 제대로 이루

    어 지지 않아 상습침수 지역이었고 그래서 사람

    들이 많이 살지 않았다고 한다. 주로 농경지로

    많이 사용되었고 1970년 이후 도시 계획에 따라 깔끔하고 규모 있는 단독주택들이 들어서기 시작

    하면서 현재의 연남동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3년 전 처음 만났던 나의 연남동은 철길 가장자리로 호박넝쿨이 즐비하고, 경의선 굴다리 위에

    조그마한 정자가 하나 있어 택시기사 아저씨들의 휴식처 역할을 했었고, 서울 와 처음 얻었던 그

    방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하면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들이 참으로 소란스럽게 들리던 곳이었다.

    가끔은 더욱 더 과거로 돌아가 20년 전의 연남동은 어땠을까, 새로운 주택들이 들어서고 화교들이

    동네로 이주할 때 동네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내가 사는 이 집은 누가 지었을까 등등을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사실 연남동만의 특징과 이야기는 이 밖에도 무궁무진하다. 최근 들어 가장 큰 특징으로 부각되

    는 것이 바로 화교들과의 공존이다. 1969년 명동 중국대사관에 있던 화교학교가 연희동으로 이주

    하면서 많은 수의 화교들이 연남동에 터를 잡게 되었다.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짧은 기간

    거주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연남동은 마포구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들이 실거주하는 지역이다. 등

    록된 인원만 1000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더욱 많은 이들이 함께 살고 있을 것이다. 이 밖

    에도 연남동을 정확히 반으로 갈라놓은 듯한 경의선, 500미터에 달하는 공원길 등 연남동에 대해

    서 이야기 할 거리, 상상할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누군가의 무엇, 이라고 하기엔 너무 아까운 우리

    마을 연남동. 그래서 갑자기 유명해져 사람들이 많이 찾는 우리 마을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 관심으로 인해 변하는 마을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다.

    2000년대 중반의 경의선 철길(제공: 동심원 조경)

  • 2014 우리마을 돌아보기

    18

    연남동에 부는 바람

    사실 지역의 활성화가 가져오는 다소 비극적인 결과는 이미 홍대앞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4)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연남동을 강타했고, 우리는 연남동살이 6년, 이제 막 마

    을공동체의 맛을 알아가려는 찰나에 또 다른 대책과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2000년대 초중반, 경의선 지하화 공사가 언급되고 결정되면서, 이미 연남동은 들썩이기 시작했

    지만, 본격적인 개발은 최근 3~4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우리처럼 홍대앞에서 활동하던 문화예술

    단체나 젊은 예술가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매력적인 이 작은 동네로 어렵지 않게 옮겨왔다. 사

    무실, 작업실, 주거공간부터 특색 있는 맛집, 멋집까지. 홍대앞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주로 주택이

    나 작은 상가를 개조하거나 활용하는 수준에서 시작했던 개발은 이제 주택을 없애서 새로 빌딩을

    짓는 수준에 이르렀다.

    2012년 서울시 마을예술창작소 지원사업을 준비했던 가을날이 생각난다. 있는 그대로 조용히 생

    활창작공간 새끼를 운영해 나가자는 의견과 적극적으로 마을 안에서 새끼가 기능할 수 있게 하자

    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여러 차례의 진지하고 격렬한 논쟁 끝에 마을예술창작소 지원사업

    을 신청하며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연남동은 지금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연남동의 주민이자, 주인으로서 자신감을 가지고 이 변

    화의 바람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가자. 새끼안팎에서 함께 작업을 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웃을 만나고 친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시작된 마을사업이 현재와 같은 모습에 이르렀다. 본격적으로 마을 사업을 한지 2년 만에

    실제로 뜻을 함께하는 이들을 만났고,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이들도 만났다. 그리고 새롭게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들도 마구 생겨났다. 하지만, 사실 이 모든 일들의 시초인 생활창작공간 새끼의

    탄생은 뭔가 거창하거나 섬세하게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4)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도시에서 비교적 빈곤 계층이 많이 사는 정체지역에 비교적 풍부한 사람들이 유입되는 인구 이동현상이다. 따라서

    빈곤지역의 임대료 시세가 올라 이전까지 살고 있던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되거나, 이전까지의 지역특성이 손실되는 경우가 있다. (출처: 위키백과(ko.

    wikipedia.org))

  •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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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새끼와 마을예술창작소

    새끼의 탄생과 성장

    어딜 가나 화제가 되는 이름이다. ‘생활창작공간 새끼(이하 새끼)’.

    누군가는 한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이라며 재미있어 하고, 누군가는 어감이 좋지 않다

    며 지금이라도 바꿀 생각이 없느냐 묻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에도 없는 그 이름 ‘새끼’ 덕분

    에 동네 어르신도, 예술가들도, 공무원들도 긴 시간 우리의 활동을 기억하고 격려하고 응원해준다

    고 생각한다.

    새끼의 시작 역시,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이었다.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을 시작한 뒤 단

    지 프리마켓을 여는 행위 그 자체에 머물지 않고 그 활동을 사회적으로 의미화하거나, 더 많은 사

    람들과 나눌 방안을 찾는 데 힘썼다. 그 과정에서 프리마켓에서 펼쳐지는 활동에 대해 단지 수공

    예, 핸드메이드, 예술 활동이라 이름붙이기는 아쉽다고 여겨 새로운 이름 짓기에 몰두 했다. 이전

    에는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작업 양상, 활동 내용, 정의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생활창작’이라는 단

    2008년 새끼에서의 드로잉 강좌

  • 2014 우리마을 돌아보기

    20

    어로 우리의 활동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생활 속에서 창작하는’, ‘창작의 소재는 생활 속에’, ‘생활하며 창작하는’, ‘생활과 창작이 따로 떨어

    져있지 않은’ 등의 의미에서 그러한 이름을 붙이고, 프리마켓 기획위원5)들과 몇몇 선생님들과 함

    께 공부와 이야기자리를 마련해 그 명칭에 내용과 힘을 더했다. 그 결과 프리마켓 참여자는 ‘생활

    창작자’, 작품을 함께 만드는 워크숍은 ‘생활창작워크샵’,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

    교육은 ‘생활창작교육’으로 이름 붙여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하여 우리가 새롭게 만들게 될 창작공간은 자연스레 ‘생활창작공간’이 되었고, 그야말로 독

    창적인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일상예술창작센터 김영등 대표의 제안이 있었다. 각자 이름 하

    나씩을 내기로 한 자리에서 결국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이름이라는 이유로 김영등 대표가 제안한

    ‘새끼’가 선정되었고, 새끼의 첫 번째 공간의 가장 큰 창문에 아주 크게 ‘새끼’라는 이름을 써 놓았다.

    새끼라는 이름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그야말로 새끼를 낳듯 작업하자, 새끼를 꼬듯 협력해서 작

    업하자, 하루 세끼를 꼬박 먹듯 작업하자 등 주로 열심히 함께 모여서 뭔가 해보자라는 의미가 컸

    고, 지금도 이름의 뜻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다. 사실 새끼는 처음부터 독립적인 공간은 아니었다.

    당시 우리를 연남동으로 이끌고, 2년간 함께 살기도 했던 서울프린지네트워크와 공동으로 사용하

    는 공간이기도 했다. 물론 공간을 꾸미거나 사용을 더욱 많이 하는 것은 우리 쪽 이었지만, 아주 자

    유롭게 공간을 이용하긴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사무공간이 아닌 제2의 공간이

    생긴 것은 정말 큰 사건이자 기쁨이었다.

    공간 꾸미기에 관심 있는 프리마켓 참가자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공간 디자인을 하고, 필요한 재

    료와 도구들을 갖추고,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논의도 했다. 생활창작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공간, 프리마켓 현장에서 일회성으로만 진행해오던 생활창작워크샵을 좀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새끼를 가꾸어갔다.

    새끼는 2008년 입춘 날 공식적으로 첫 문을 열어 꼬박 6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꾸준히 활동

    을 해 온 탓에 어느 정도 유명세를 얻었다. 얼마 전부터는 공방이나 창작커뮤니티공간을 운영하려

    는 이들이 조언을 구하러 오기도 한다. 개설하는 강좌 프로그램은 대부분 인기가 높았고, 모임공

    간이나 작업공간이 필요한 이들이 공간을 빌려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이야기

    할 마을예술창작소의 주요 프로그램도 이 곳에서 기획되었고, 프로그램 운영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예술가 등 주요 멤버들도 바로 이 곳에서 의기투합해서 모였다.

    새끼의 유명세에 가장 큰 기여를 했고, 오랫동안 지속된 프로그램이 바로 ‘드로잉 강좌’였다. 지

    금이야 드로잉, 일러스트 강좌를 찾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지만, 2008년 당시에는 그림을 그리려

    5) 문화운동가, 예술가, 이론가 등 프리마켓 개최 초기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시장을 열고 발전을 모색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현재까지 6명

    의 위원이 10년 넘게 도움을 주고 있다.

  •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21

    2008년 새끼 손연습 강좌 홍보물

    면 화실로 가는 게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 ‘드로잉 강좌’

    를 함께 만들었던 이들이 바로 지금도 함께 하고 있는

    프리마켓 작가 출신 부부 ‘쑨’과 ‘엉클죠’다. 쑨은 일러스

    트레이션을 전공하고 자화상을 그려 프리마켓에 나왔

    고, 엉클죠 또한 일러스트와 캐리커처 작업으로 프리마

    켓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둘은 프리마켓과 새끼 등에

    서 주로 우리와 작업하면서 흔한 말로 눈과 맘이 맞았

    고,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하여 예쁜 가정을 꾸렸다. 지금

    도 쑨은 일상예술창작센터의 기획자이자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있고, 엉클죠는 디자인회사에 근무하면서 센

    터에서 가끔 에스오에스(SOS)를 보낼 때 달려와 디자인

    작업을 도와주곤 한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새끼의 작업 성격을 처음으

    로 규정했고, 지금까지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드로

    잉 강좌’는 새끼에서 처음 기획한 강좌이자 중요한 콘셉

    트를 담고 있는 강좌이다. 우선 이 강좌는 그림을 기술

    적으로 잘 그리게 하는 강좌가 아니었다. 정교하고 세

    밀한 테크닉보다는 자신만의 색깔과 개성을 담은 그림

    을 그리길 원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강좌라고 홍보를 했다.

    생활창작공간 새끼는 생활 속에서 누구나 창작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응원하는 활동을 하며, 드

    로잉 강좌는 창작으로 가는 가장 기초적인 단계로서 창작을 위한 손 연습임을 내세웠다. 따라서

    그림을 처음 그리더라도, 잘 못 그리더라도, 혹은 잘 그리더라도 이러한 우리의 생각에 동의하고

    함께 작업하길 원한다면 참여해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소 도발적이고 지나치게 자신감 넘치는 문구이지만, 처음 공간을 만들고 나서 무

    엇을 할까, 어떤 기획이 우리를 즐겁게 할까라는 아주 단순명쾌한 생각을 가지고 접근했던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기억에 오래 남는 기획이었고, 그 시간과 함께 했던 이들에게 감사한다.

    드로잉강좌는 1회당 여덟 강좌로 이루어졌고, 매 회당 10여 명의 수강생을 모집해 꼬박 3년간 10

    회를 진행했다. 즉, 100명 이상의 수강생을 배출했다고 할 수 있다. 매 회가 끝날 때 마다 특색 있

    는 발표회와 전시회로 강좌를 완주한 것을 축하하고, 강좌가 끝나더라도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서로를 격려했다. 강좌를 진행했던 쑨과 엉클죠는 그 특유의 위트와 따뜻함, 만담을 하는

  • 2014 우리마을 돌아보기

    22

    듯한 진행으로 수강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들과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지속적으로 이어지

    고 있고, 센터 활동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새끼의 강좌는 드로잉 이외에도 바느질, 캐릭터, 캘리그래피, 뜨개질 등 무궁무진했다. 강좌의 예

    산이 빠듯함에도 불구하고 늘 주제가 있는 디자인과 콘셉트, 문구로 리플릿을 만들어 홍대앞과 연

    남동 일대에 배포하곤 했다. 그 작업을 4년 이상 열심히 했기 때문일까? 실제로 강좌에 참여한 이

    들은 한정되어 있지만, 새끼와 새끼의 활동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언젠가는 한

    번 가볼 곳이라고 정해두기도 했다고 한다.

    새끼는 이후 2년간 더 열심히 활동을 하다가 당시 공간으로 사용하던 주택에서 따로 나오게 되

    면서 그야말로 사무공간과 분리된 독자적인 공방공간으로 새롭게 개편을 하게 되었다. 야심찬 강

    좌와 기획들이 계속되었지만, 강좌사업 자체가 늘 그러하듯 공간 운영이 버거울 정도로 적자가 났

    고, 일상예술창작센터의 사업규모 자체가 성장하고 다채로워지면서 새끼 운영에 쏟는 에너지는

    상대적으로 축소되기 시작했다. 사무공간과 분리된 새끼를 2년 반 정도 운영하던 우리들은 새끼

    운영에 점차 자신이 없어졌다.

    공교롭게도 2012년 가을, 일상예술창작센터 사무실과 새끼가 함께 공간을 비워야 할 상황이 되

    었고, 이미 홍대앞과 비슷하게 임대료가 올라버린 연남동에서 우리는 더 깊이 마을 속으로 들어가

    기로 결심하고 부동산을 찾았다. 그때까지 새끼를 계속 운영해야할지, 그만두어야 할지 의견이 분

    분했고 누구도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다채로운 새끼의 홍보물

  •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23

    새로운 출발, 마을예술창작소

    “찾는 게 사무실이에요?”

    “네, 그렇긴 한데 거기서 밥도 해먹어야 하고, 모임도 하고, 작업도 해요. 근데 그야말로 사무실

    말고, 오래된 주택 같은 거 싸게 나온 거 없어요?”

    언제부턴가 사무실을 얻으러 부동산에 갈 때 마다 오고가는 대화다. 우리는 사무실이긴 하지만,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있는 따뜻하고 편안한 환경을 원했다. 그리고 함께 밥을 해먹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임공간도 작게나마 필요했다. 그야말로 ‘멀티 공간’을 원했는데, 그러다 보니 늘 공

    간을 찾는 일이 녹록지 않아 형편보다 비싸게 구했다. 그날도 그렇게 사고를 친 날이었다. 첫 부동

    산에서 보여준 첫 집이었다.

    1층은 넓은 주방과 거실이 자리한 가정집. 그리고 깔끔한 지하. 조용한 골목길과 작지만 나무가

    있는 마당. 지은 지 20년 이상은 된 듯하지만, 깔끔하게 관리되어 정갈한 구석구석. 너무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새끼의 존폐 자체를 논의하던 생각은 어디론가 던져버리고, 지하는 새끼로, 1층

    은 모임공간과 사무공간으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이미 머릿속에 그림을 그렸다. 2층에는 한눈에도

    맘씨 좋아 보이는 주인어르신들이 계셨다.

    2014년 현재 생활창작공간 새끼 전경

  • 2014 우리마을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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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마음에 들었던 대목 중 하나는 현관에서 보았을 때 반지하였던 공간이 집의 뒤편에서 보면 1

    층이었다는 것이다. 주차장 문을 개조하고 장판만 깔면 완벽했다. 세 개로 분리된 공간은 각기 창

    고와 목공방, 그림 및 바느질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역시나 월세부담은 적지 않았지만, 나는

    단번에 이 공간을 계약해야 했다. 아니, 계약하자고 내부에 설득하기 시작했고, 2012년 가을 우리

    는 그 공간에 입주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간을 꾸미고 꾸릴 생각으로 가득 찼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어리바리하다 보

    니 월세는 어느새 한 달 치가 나갔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새끼의 사업방향과 거취에 대해 다시 논

    의를 시작해야만 했다. 잠시 접어둔 어려운 책을 다시 집어든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의견은 아주 다채로웠다. 기존의 새끼 강좌를 화려하게 부활시켜 공간이 쉼 없이 돌아가도록 활

    성화를 시키자, 마을 안에 들어왔으니 마을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마을공방의 성격을 갖추자,

    두 가지 성격을 다 갖추자, 장사를 하자 등등 결국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 모든 내용을 수용하는 방

    향으로 가게 되었다.

    새끼가 정식으로 간판을 달지는 않았지만, 크고 작은 모임을 연속적으로 갖고 가려고 했다. 크게

    홍보를 하거나 사업의 계획을 세우면서 가지도 않았지만, 새끼의 이사는 마을주민들에게 새로운

    관심사였다. 지금도 자주 받는 질문이지만 “여기 뭐하는 데예요?”, “들어가도 되나요?” 등 끊임없는

    질문과 호기심 어린 그들의 눈빛에 우리는 점차 새끼의 운명은 마을 공방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다고 마을에 적합한 프로그램을 따로 준비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시작해야할지도 몰랐고,

    우리의 이웃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몰랐다. 우선 같은 연남동이라고 할지라도 이사 오기 전의 곳과

    비교해 동네 자체도 무척 낯설었다. 2년이 지난 지금은 근처에 사무실, 작업실, 상가, 게스트하우

    스가 생겼지만, 그해 가을은 참 야근하기 무서울 정도로 한적하고 조용했다.

    그러던 중 새끼의 운명을 한방에 바꾸어 놓을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서울시 마을예술창

    작소’ 지원 사업이었다. 김영등 대표는 “이것이야 말로 우리를 위한 사업, 새끼를 위한 사업”이라며

    반겼지만, 나와 더불어 새끼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을 맡아서 해오고 있는 신문자 팀장은 우리의

    ‘소중한’ 새끼가 ‘마을예술창작소’라는 낯선 이름을 갖는 것에 대해서 반대했다. 사실 누가 미리 지

    원금을 준다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지원사업 신청서를 내느냐 마느냐 가지고 참 며칠 동

    안 격하게도 토론을 했다. 결론은 새끼가 새롭게 갖게 될 기능과 함께 내려졌다.

    ‘일상예술창작센터 삶의 터전인 연남동에 친구들을 만들고, 그들과 함께 긍정적인 연남동의 변화

    를 이끌어 내자!’

    이러한 진심이 통했는지, 우리는 감사하게도 서울시 마을예술창작소 예산 지원을 2013년과 2014

  •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25

    년 연속으로 받게 되었다. 그 예산으로 우리는 지하 차고 문을 예쁜 나무문으로 바꾸고, 간판도 새

    로 달고, 보다 거창한 마을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이웃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서 잠깐, 서울시 마을예술창작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겠다. 마을예술창작소 사업은 사업

    명에 ‘마을’이 포함되어 있지만, 마을사업의 성격보다 문화예술사업의 성격이 크다. 그래서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가 아닌 서울시 문화정책과 담당 사업이라 마을 활동을 하는 분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2014년 10월 현재, 서울시 마을예술창작소(이하 마술소)는 총 25곳이 있다.

    새끼와 같은 주민자율형도 있고, 자치구와 민간이 함께 운영하는 민관협력형도 있다. 주민자율형

    은 규모가 민관협력형보다 조금 작지만, 내부 커뮤니티가 강하고 좀 더 자생적으로 운영된다는 장

    점이 있고, 민관협력형은 보다 안정적인 공간을 확보할 수 있으며, 자치구와 운영의 책임을 공유

    한다는 것이 장점이다.

    모든 자치구마다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는 않지만, 어쨌든 강남 지역을 제외하고서는 각 자치구

    에 적게는 1곳, 많게는 3곳 이상 만들어져 있다. 마술소의 장점 중 하나는 지원금으로 임대료나 공

    간운영 인력의 인건비를 책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필요한 곳에 필요한 예산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만 해도 타 지원사업과 달랐다. 덕분에 투명하고 짜임새 있게 비용을 활용할 수 있었고,

    이런 점은 확실히 사업의 성과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무엇보다 마술소 사업의 가장 큰 장점은 각 마술소의 운영자들의 네트워크이자 논의 테

    이블인 마술소 운영위원회가 있다는 점이다. 나는 2014년 1월부터 이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기 시

    작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마술소 연합워크숍과 마을박람회 참여, 담당 주무관의 잦은 연락에

    ‘이거 참 마을사업이라 그런가, 참 가족적이고 친근하지만 약간 귀찮기도 하다’라고 생각하기도 했

    다. 당시 마술소 담당 주무관은 현

    재 서울시 마을과에 근무하는 이준

    학 주무관이었고, 참으로 친근하고

    빈번하게 전화도 하고 메일도 보내

    곤 했다. 지금도 마술소 운영위원들

    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로

    마술소 사업이 안정적으로 안착하고

    활발하게 운영되는 데 일등공신이라

    고 할 수 있다.

    나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

    리듯 마술소 운영위에 참석하겠노 2014년 서울시 마을예술창작소 분포도

  • 2014 우리마을 돌아보기

    26

    라, 나를 받아주시라 당당하게 요구하고 그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홍대앞이나 각종 문

    화단체들의 네트워크 모임에 참석하고 나름의 역할도 해 봤지만, 사실 마술소 운영위만큼 자발적

    이고 열정적인 네트워크를 본 적이 없다. 서울시 전역에서 마술소를 운영하는 이들의 절반 조금

    못되는 이들이 운영위로 활동을 하고 있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기 회의를 한다. 그리고 올해는

    마술소 기능강화 사업의 일환으로 전시 · 공연 · 아카이빙 등의 소위원회를 만들어 회의도 하고 행

    사를 추진하기도 한다.

    그리고 2014년 10월 14일부터 16일간 마술소의 3년의 성과를 나누고 미래를 설계하는 워크숍과

    공연, 정책제안의 자리가 마련됐다. 이 책이 나올 즘이면 이 크고 작은 마술소의 연합 사업들이 마

    무리 되겠지만, 아마 그 이후에도 더 많은 일들을 꾸미고 있을 것이다.

    마술소는 매년 전문가들의 모니터링과 컨설팅을 받고 있고, 최근에는 이분들과 함께 정책포럼을

    주최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마술소의 지속가능성은 바로 이 ‘마술소 운영위’로부터 나온다는 평

    가를 받았다. 각 마을에서 중요한 일꾼으로 역할을 하면서 각 마술소들이 함께 소통하고 협력하여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어 간다는 것, 서울시나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가 주도하지 않아도 자

    율적으로 일을 만들고 추진한다는 것. 이러한 점들로 인해 새끼가 마을예술창작소라는 이름을 갖

    게 된 것이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더 열심히 활동을 지속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새끼는 마술소가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쉽지 않았던 마을로의 안착

    2012년에서 2013년으로 넘어가는 기간에는 새롭게 공간을 개편하는 데 집중했다. 마침 나는 임신

    과 병가와 출산휴가, 그리고 육아휴직으로 연이어 일손을 놓는 바람에 마술소 지원 사업 선정 이

    후 새끼가 새롭게 변신을 하는 동안 가깝게 지켜보지는 못했다. 예측했던 대로 공간을 새롭게 정

    비하는 것이든, 내실을 다시 고민해 보는 것이든 쉽지 않았고, 그 과정이 꽤 길었던 것으로 전해 들

    었다. 무엇보다 기존 새끼의 복합적인 성격과 마술소 프로그램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 무엇에

    집중해야할 것인지 내부 논의가 분분했다. 최근 들어 예전 회의 자료와 기록들을 살펴보면 매주

    갈팡질팡 고민했던 모습들이 그려져 안쓰럽기도 하고, 그 과정을 거쳐 지금의 마술소 활동을 멋지

    게 이끌어 낸 것이 고맙기도 하고, 함께 하지 못해 아쉽기도 하다.

    새끼가 본격적으로 마술소로 변모하기 위해 실행했던 두 가지는 마을예술 프로그램 개발과 공간

    정비였다. 이를 위해 우선 했던 과정이 마을 공부와 함께 할 이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함께 연남동

  •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27

    6) 연남마예스트로 프로그램에서 강사 역할을 하는 사람을 길잡이라고 부른다. 일방적으로 강사가 수강생을 가르치는 관계가 아닌, 서로 협력하는 관계

    를 지향하는 마술소의 사업방향을 담아서 길잡이라 부른다.

    연남마예스트로 1기 모집 홍보물

    을 산책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

    했고, 이 작업을 담당했던 일상예술창작센

    터 교육팀은 자주 연남동을 쏘다니며 동네

    자원을 찾았다. 과거 우리가 했던 프로그램

    을 뒤져보기도 했고, 새끼를 새롭게 정비하

    는 일 등을 비롯해 함께 이 공간을 만들어갈

    이들을 모아 새끼 벽에 도색도 하고, 그림도

    그려나가고, 이 공간에 대한 바람을 함께 나

    누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새끼는 2013년 4월, 새

    로운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고,

    더불어 연남동의 마을예술을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이름하여 ‘연남마예

    스트로’! 연남동의 마을예술을 의미하는 이

    름이기도 하고, 마에스트로가 연남동의 마

    을예술과 공동체를 지휘하듯 주민들이 자발

    적으로 활동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새끼

    의 마술소로서의 주요 프로그램인 연남마예스트로는 1기로 시작해 현재는 6기에 이르렀다.

    연남마예스트로는 목공, 바느질, 벽화의 세 분야로 나뉘어 있고, 기존의 생활창작강좌와는 다른

    형식과 목적을 갖고 시작하게 된다. 강사와 수강생이 아닌, 길잡이6)와 주민 혹은 참여자가 있다.

    새로운 아이템을 가진 강사를 섭외하기보다 경험이 많은 우리 식구들이 길잡이가 되어 프로그램의

    내용을 제안하고, 6회 정도의 교육 프로그램을 마치면 참여자들이 스스로 동아리를 꾸려 자발적으

    로 창작모임이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사업 방향이자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되었다.

    새끼에서 그간 강좌를 진행하면서 매 회마다 후속강좌에 대한 요구와 강좌가 끝난 뒤 수강생들

    끼리 동아리를 만들어 운영했으면 하는 바람이 꾸준히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과정을 만들어 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으리라 짐작했다. 프로그램 홍보와 준비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각 강

    좌마다 적당한 참여자가 모집되었다. 예상보다 연남동 주민들의 참여율은 낮았고, 기존 새끼 수강

    생들과 연남동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첫 술에 배부르랴, 이에 만족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해

    나갔다.

  • 2014 우리마을 돌아보기

    28

    목공팀은 마을에 필요한 목공작업을 고민하다가 마을 벤치를 만들었고, 바느질팀은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마을의 지도를 완성했다. 마을벽화팀은 지난 2009년 우리가 그렸던 연남지하보도의 벽화

    를 보수하는 것으로 활동방향을 잡았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종료될 시점에 다시 복귀를 했는데,

    평가회의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살벌했다.

    목공팀은 참여자 중 마을주민들의 비율이 낮았고, 주민이라도 하더라도 자신에게 필요한 가구를

    만들기를 원할 뿐 마을벤치를 만드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따라서 가구가 놓일 위치와 이

    용 대상에 대한 조사가 부족해 결국 완성된 벤치는 마을 어느 구석에도 놓이지 못했다. 바느질팀

    역시 참여자들이 바느질을 하는 것은 좋지만, 그 결과물이 마을 지도라는 점, 따라서 개개인의 욕

    구와 필요가 반영되기 힘들다는 점에 대해서 아쉬움이 있었다. 마을벽화팀의 경우엔 모이는 인원

    이 일정하지 않았고, 작업의 완성도가 다소 떨어졌다. 벽화작업을 팀 내부에서 여러 차례 진행했

    기 때문에 특별한 길잡이 없이도 벽화를 완성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탄탄한 프로그램 구성에

    비해 결과물은 다소 아쉬웠다. 다년간의 강좌사업, 문화예술교육,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단련

    된 우리의 실력이 한 순간 의심을 받는 듯 했다. 별 어려움 없이 마을 안에 안착하리라 여겼던 우리

    의 예측이 빗나갔다.

    마을예술의 지휘자들

    나와 나의 동료들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자신감이다. 프리마켓을 비롯해 우리가 해 왔던 일은 우

    리가 쏟은 정성만큼 빛을 발했고, 신규 사업들도 대체로 나쁜 평가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간혹 문

    연남마예스트로 2기 목공팀 활동

  •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29

    제가 발생하면 잠시 좌절하기도 하지만, 이내 잡초 같은 생명력으로 딛고 일어나는 편이다. 연남

    마예스트로 1기의 아쉬운 결과도 바로 냉철한 평가와 판단으로 재구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럴

    때 마다 우리에게 자기합리화 따위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김영등 대표의 자문자답, “우리가 이걸 왜

    할까?”.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을 꺼내놓으며 2기 활동을 준비했다.

    우선 목공팀은 마을의 목공팀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기존 목공강좌와의 차별점을 드러냈다. 마을

    일에 관심이 있는 자, 마을에 필요한 사인물을 만드는 데 관심 있는 사람들을 우선 모집했고, 기술

    강좌라는 점 보다는 ‘호프사인(Hope sign) 만들기’라는 프로그램 내용에 집중해 홍보를 했다. 호프

    사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그림이나 글씨로 전달해 마을 곳곳에 부착하는 일

    종의 안내판이다. 바느질팀의 경우에는 너무 억지스럽게 마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강요하는 듯

    보였다는 점에 대해 반성하고 우선은 바느질에 대한 즐거움을 알아갈 수 있게 천천히 시작하기로

    했다. 마을벽화팀에는 가장 대대적인 개편이 있었는데, 우선 다년간 드로잉강좌와 공공미술프로

    젝트 기획 및 작업을 해 온 쑨이 길잡이로 나섰다. 지나치게 섬세하게 계획된 프로세스 대신 ‘우선,

    그려라! 아무 데나 그려라! 그런 다음 내가 알려줄게’ 식으로 진행했다. 마을벽화 2기야 말로 그간

    드로잉 강좌나 새끼 강좌를 통해 우리가 꾸준히 전달했던 메시지가 담긴 프로그램이었다. 그림 그

    리기가 두렵고, 벽화 그리기가 낯설고 쑥스러운 이들이 함께 게릴라 벽화팀을 조직해 마을 여기저

    기에 침투하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을벽화의 콘셉트였고, 이는 결국 연남마예스트로의 활동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선 2기에는 1기보다 원활하게 참가자가 모집되었다. 연남동에서는 흔치 않은 활동이라 1기 홍

    보 때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던 주민들도 있었고, 기존 새끼 수강생들이 오랜만의 프로그램이라 반

    갑게 신청을 하기도 했다. 반갑게도 1기 참가자들이 2기에 다시 신청을 한 경우도 있었다. 마을 안

    에서 새끼와 연남동만의 마을예술 활동을 어떻게 만들어 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민했던 보

    람이 있었는지, 2기의 성과는 나쁘지 않았다. 참가자들의 관심과 만족도, 지속가능한 활동을 향한

    열망 등 모든 항목에서 1기보다 평가가 좋았다. 2기 활동 마감 후에도 3기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

    각 팀별 평가회의와 만족도 조사를 했고, 그 결과를 3기 기획에 반영했다. 3기의 경우엔 더 많은 참

    가자가 몰려 조기 마감을 해야 할 정도였고, 프로그램의 만족도와 완성도도 높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새끼에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함께 모여 작

    업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함께하고, 그들이 새로운 일을 꾸미고. 마을예술창작소 새끼로 변모

    한지 1년 만에 우리는 마을의 참 맛을 알아가게 되었다.

  • 2014 우리마을 돌아보기

    30

    연남동 마을예술의 주역, 마을벽화팀

    새끼를 연남동의 마을예술창작소로 안착시키고 주민들에게 새끼의 존재를 알리게 한 일등 공신은

    마을벽화팀이다. 2013년 여름부터 가을 사이 정해진 일정 이외에도 따로 시간을 내어 언제든지 원할

    때 새끼로 쑥 들어와 물감과 붓을 집어 들고 마을로 나가 그림을 그린 이들이다. 마을벽화팀은 주로

    밖에서 작업을 하는 덕에 주민들의 눈길을 끌기 쉬웠고, 연남동에서 흔치않은 활동인 덕에 주민들의

    질문세례를 자주 받았다.

    “이거 어디에서 하는 거예요?”

    “우리 집에도 좀 그려주나?”

    그럴 때 마다 새끼와 연남마예스트로 활동에 대해서 주민들에게 알린 홍보대사들! 연남마예스트로

    마을벽화팀원들은 모두 훌륭하고 멋지지만, 그 중 일부를 소개한다.

    * 오연이네

    일곱 살 오연이와 엄마. 간호사인 엄마는 오연이와 더 의미 있

    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매주 토요일 연남마예스트로를 통해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오연이와 엄마 모두 밝은 성격 덕에

    친구가 많아 주변에도 새끼와 새끼의 활동을 자주 알린다. 오

    연이의 이종사촌네는 목공팀에 참여하기도 했다. 오연이네

    벽화는 그 특유의 컬러감 때문에 연남동에서 가장 눈에 띄고

    화사한 벽화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벽화팀 참여 활동 외에도

    매번 연남동 마을시장 따뜻한 남쪽에서 오연이 또래의 친구

    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연남동 마을

    예술의 활력소이다.

    * ‘풀꽃벽화’ 온수

    그야말로 공간과 골목에 스며드는 벽화라는 말은 바로 온수

    의 ‘풀꽃벽화’를 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온수는 연남동 인근의

    망원동에 사는 아마추어 일러스트레이터다. 하지만 풀꽃벽화

    를 그리는 동안 다채로운 활동을 해왔고 이제는 당당히 일러

    스트레이터, 혹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불러도 무방하

    다.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풀과 풀꽃들이 예뻤고 그래서

    온수는 골목골목 그 배경에 스며들 듯이 벽화를 그리기 시작

    했다. 직접 그리기도 하고, 스텐실 기법을 활용해 찍듯이 그리

    기도 한다. 크기는 아주 작지만, 마을 구석구석에 열심히 그려

  •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31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연

    프로그램으로서 연남마예스트로는 지금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보다 많은 이들이 새끼에서 창

    작활동을 경험해보고 이웃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또 꾸준히 그것을 지속하길 바라는 방향으로 말

    이다. 실제로 지금도 연남마예스트로는 꾸준히 참여열기가 높고, 프로그램 자체도 무척 즐겁다.

    하지만 연남마예스트로 활동을 통한 가장 큰 성과는 프로그램을 넘어서는 관계의 발견, 그리고 지

    속가능성이었다.

    나는 2기까지의 연남마예스트로 활동을 마감하고 나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고

    ‘새끼-홈커밍데이’를 제안했다.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 새끼에 왔던 주민들을 초대하고, 2기의 작품

    들과 성과들도 함께 살펴보는 자리로 마련했다. 각 팀별로 소감을 발표하며 다른 팀의 활동들도

    알게 되고, 서로 격려하며 앞으로의 바람들도 담아보았다. 급조된 이 파티를 통해 확인하려고 했

    던 것은 우리가 정말 마을 안에서 제대로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들은 서로 만날 수 있을 것인 가였

    다. 실제로 연남마예스트로의 참가자 뿐 아니라 마을에서 새롭게 만난 주민들을 초대하기도 했는

    데, 그들은 대체로 지금도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중 가장 특별한 분인 ‘사공순자 할머니’와의 인연도 이 파티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동네 산책을 하면서 늘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집이 있었다. 수많은 화분들이 정성

    껏 가꾸어져 철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고 나는 아이 사진을 그곳에서 자주 찍어주

    곤 했다. 나와 동료들은 늘 그 집이 궁금했고 어느 날 용기 있는 벽화 길잡이 쑨과 바느질 길잡이

    차강이 과감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두 사람은 다년간 공공미술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주민들을

    인터뷰했던 경험이 있던 지라 어렵지 않게 할머니와 말문을 텄고, 첫 방문에 할머니 안방까지 진

    입했다.

    진 그의 벽화는 연남동 벽화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고, 매

    체에 소개되기도 했다. 온수는 벽화팀 2기부터 4기까지 꾸준히

    함께해오며 벽화 길잡이 쑨과 단짝처럼 함께 벽화팀을 이끌어

    나갔고,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예쁜 아가를 낳

    아 서로 의지하며 키우고 있다. 두 사람은 몸이 무거워 벽화를

    그릴 수 없게 되자 임산부들을 위한 드로잉 교실을 기획하기도

    했다. 벽화팀은 이 두 사람이 다시 벽화를 그리러 돌아오기만

    을 기다리고 있다.

  • 2014 우리마을 돌아보기

    32

    할머니의 특기는 비단 화분 가꾸기에만 있지 않았다. 소박한 집의 꾸밈새, 음식솜씨 등 모든 면에

    서 할머니는 매력적이었고, 무엇보다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할머니의 원피스였다. 할

    머니는 아주 오랫동안 손바느질로 원피스를 지어 입으셨는데, 그 재료는 주로 할아버지가 입던 샤

    워가운, 파자마, 양복 등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되 심각하지 않게 ‘대충’ 만들다

    보니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뒤이은 대화에서 할머니도 역시나 우리가 무척이나 궁

    금했다고 털어놓으셨다. 재미있는 젊은이들이 동네에 이사 왔는데 무얼 하는지, 혹시 저곳에 재봉

    틀이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재봉틀이 없어 내내 손바느질로 원피스를 만들어

    오셨는데 재봉틀을 이용하면 보다 손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우리는 기꺼이 할머니

    에게 언제든 재봉틀을 쓰시고, 우리에게 그 지혜를 좀 나누어달라고 했다.

    이렇게 시작된 할머니와의 만남을 계기로 우리는 할머니를 초대해 식사도 대접하고 연남마예스

    트로 바느질팀이 할머니의 노하우를 전수받아 원피스를 만들 수 있게 주선도 해주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개최하는 마을시장에서도 그 솜씨를 발휘해 이웃들에게 원피스를 만드는 시연도 하고 완

    성된 원피스를 전시해 큰 화제가 되었다. 새끼의 활동을 방송에서 취재해 갈 때마다 대표적인 주

    민으로 할머니를 추천했는데, 늘 할머니는 우리의 활동보다 더 비중있게 다루어졌다. 그야말로 우

    리 동네 스타가 되셨다.

    지금도 할머니의 원피스 노하우를 듣고 싶거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이들의 문의

    가 있어 가끔 ‘사공순자 할머니의 대충대충 원피스 이야기 토크쇼’와 원피스 만들기 강좌를 진행하

    사공순자 할머니와 함께하는 원피스 만들기 수업

  •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33

    기도 한다. 할머니는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자 맘씨 좋은 동네 할머니로 키우던 열대어도 분양해주

    시고, 반찬도 나누어주시고, 우리의 화단을 대신 손봐주시기도 한다. 조만간 동네 어르신들의 이

    야기 모임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에겐 발 넓고 입담 좋으신 할머니와 할머니를 통해

    알게 된 동네 어르신들이 계시니 마음이 이미 든든하다.

    이 밖에도 연남마예스트로의 참가자들 중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모여 연남동 마을지

    도를 만든 사례, 바느질 모임 참가자이면서 자연요리 연구가인 소현 씨와 음식 모임 ‘새끼 한 끼’를

    기획해 낸 사례 등 연남마예스트로 활동을 통해 좋은 사람들이 모이고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 낸

    사례는 적지 않다. 그리고 앞으로 예정된 일들도 꽤 있다.

    이렇게 프로그램이나 모임을 통해 만들어진 인연들이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그 자체의

    성과가 남을 뿐만 아니라 그 성과가 다음 과정으로 무척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사

    업들을 하면서도 사업이 확장되거나, 다른 일들로 연결되는 경우는 많지만, 그 과정이 이렇듯 자

    연스럽고 원만한 것은 아마도 구성원들의 생활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아

    닐까 싶다. 아니면 복잡할 것 없이 우리는 이웃이기 때문에, 한 마을 안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사

    실 이런 질문은 다음 장에서 소개할 마을시장을 운영하면서도 계속되었다.

    3. 마을시장 ‘따뜻한 남쪽’

    “마을에서 시장이나 해볼까”

    2013년 6월, 길고 긴 출산 휴가에서 복귀할 무렵이었다. 아이를 사무실에서 키울 생각이라 적응 기

    간을 가질 겸, 사무실 업무도 파악할 겸 자주 사무실과 집을 오갔다. 사무실을 비운지 8개월쯤 되

    었으니 당연할 법도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도 자주 오갔고, 내가 그 목적을 알 수 없는 모임들이 늘

    있었다. 그 중 ‘마을시장 기획단’이라 이름 붙은 이들의 모임이 있었다.

    연남마예스트로 참가 주민들과 마을에서 만난 다양한 인연들, 일상예술창작센터의 김영등 대표

  • 2014 우리마을 돌아보기

    34

    와 신문자 팀장, 그리고 프리마켓에서 활

    동하는 자원활동가까지. 열 명이 조금 안

    되는 사람들이 모여 마을시장을 열겠다고

    했다. 기존의 센터 사업과 달리 디자인과

    홍보 등 기본적인 업무도 기획단 내부에서

    해결하고 있었고, 막힘없이 추진하던 타

    사업과 달리 뭔가 속도가 굉장히 느린 것

    이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2013년 초 마을에서 할 다양한 활동을 궁

    리하던 중 김영등 대표가 문득 “마을에서

    시장이나 해볼까”라고 던졌던 말이 화근이

    었다고 한다. 새끼 활동을 총괄하던 신문

    자 팀장은 아주 자연스럽게 마을 사업까지

    떠맡게 되어 ‘마포구 살기좋은 마을만들기’

    사업에 지원금 신청서를 제출했고, 실력이

    실력인지라 어렵지 않게 지원금을 받아 사

    업을 추진하게 되었다.

    사업의 시작을 자신 있게 추진한다는 점

    에서 어쩐지 앞서 소개했던 연남마예스트로와 비슷한 스토리로 전개될 것 같은데, 불행히도 그렇

    다. 시장기획은 교육사업과 함께 일상예술창작센터의 주 전공이었다.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

    과 그 밖의 다채로운 대안시장을 만들어 온 주역들이니 ‘마을시장쯤이야’하고 어렵지 않게 접근했

    다. 늘 하듯 홍보물을 만들어 공간에 비치하고, 인터넷 홍보도 좀 하고, 뮤지션들 몇몇을 섭외해 공

    연을 준비했다. 나름 시장 안에서 통용되는 대안화폐도 만들어 보았고, 누구나 만든 것, 쓰던 것을

    나눌 수 있는 연남동의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포부가 있었다. 그리고 ‘마을시장 기획단’이

    있었다. 연남동 주민의 범위를 주소지 기준으로 한정짓지 않고, 연남동에 살거나 일하거나 놀거나

    좋아하는 이들 누구나 참여하게끔 했다. 자연스럽게 연남마예스트로 참가자들도 몇몇 참여했고,

    공개적으로 모집해서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각기 맡은 프로그램을 충실하게 운영했다.

    2013년 6월 2일 첫 번째 시장이 열렸다. 시장의 이름은 ‘따뜻한 남쪽’. 연남동이 따뜻한 동네가 되

    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 그렇게 이름 붙였다. 앞서 예고했듯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소박한 마을

    시장으로 본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지만, 가장 큰 실패 요인은 주민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못했

    첫 번째 ‘연남동 마을시장-따뜻한 남쪽’ 전단지

  •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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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명동 외환은행 본점 삼각공원에서 5월부터 10월까지 매주 금요일에 열리는 야시장. 일상예술창작센터가 주최하고 외환은행이 후원한다.

    다는 것이다. 찾아오는 주민들, 참여하는 주민들 모두 너무 적었다. 가뜩이나 연남동에 이벤트가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다보니 음량이 그렇게 크지 않은 공연에도 민원이 빗발쳤다.

    역시나 너무 쉽게 생각했고, 대책이 필요했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시장은 하지 말자고 했다.

    홍대앞에 프리마켓도 있고, 명동에 명랑시장7)도 있는데 시장은 그만하자고 했다. 하지만 이미 계

    획한 사업을 물릴 수는 없는 일이었고, 김영등 대표를 중심으로 한 기획단이 꾸려져 있는 상황에

    서 나의 개인적인 의견을 관철시키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아찔하다. 우리가 시

    장을 열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마을살이는 얼마나 지루했을까.

    역전의 드라마

    어떻게든 가을 시장을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대충 넘어가려는 나의 생각과는 달리, 모인 이들은

    아주 재미나게 시장을 계획하고 있었다. 가을에 열리니까 제목은 ‘홍시장’으로 하자는 둥, 먹을거

    리를 강화하자는 둥. 그 와중에도 시장 기획단을 추가 모집했고, 굉장한 실력자가 우리의 곁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바로 구루라는 닉네임을 가진 권

    승곤 씨였다. 푸드 디자이너로 자신을 소개한 구루는

    시장 기획단에 신청하고,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며 자

    주 연락을 취했다.

    마침 그가 보내온 소개 글에 적힌 홈페이지를 살펴

    보고 우리는 ‘호박이 넝쿨째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세

    련된 디자인 실력, 화려한 이력, 엄청나게 맛있어 보

    이는 그의 음식들까지……. 게다가 첫 미팅에 들고 온

    그의 기획안은 프로페셔널한 편집디자인에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해 우리를 그저 감탄하게 만들었다.

    사실 첫 시장에서 영상 촬영으로 시작된 그의 활동은

    시장의 대표메뉴 개발, 공간 디자인, 시장 기획까지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그와 그의 아내 ‘밀’은 멋지고도

    따뜻한 나의 이웃이 되었다. 현재는 푸드 디자이너 구

    루부터 마을 주민 은실언니, 연남동을 좋아하는 혜선 마을시장에 참여한 구루밀스튜디오

  • 2014 우리마을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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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 강원도 농산물 브랜딩 회사 ‘브라이트모닝’의

    이민성 대표, 서양화가 이제, 사진가 홍철기, 최근

    연남동으로 이사 온 문화연대까지 탄탄한 기획단

    이 만들어져서 시장을 멋지게 꾸려가고 있다.

    다시 시장 준비로 돌아가 전력투구 했던 홍보 이

    야기를 해야겠다. 홍대앞 놀이터에서부터 중소도

    시 골목까지, 시장이란 시장은 모두 경험했던 우리

    에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한 가지 진실은 바로 시

    장의 성공 여부는 집객에 달렸다는 것이다. 모든

    행사가 그러하겠지만, 정성들여 만든 작품과 팔고

    나누기 위해 가져온 물건들을 놓아둔 시장에 찾아

    오는 사람이 없는 것만큼 어색한 상황도 없다. 물

    론 함께 즐길 거리, 이야깃거리가 있어 시장에 참

    가한 사람들끼리 그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괜찮

    지만, 마을시장은 마을에 활력을 주자고 만들어 놓

    았는데 파리만 날린다면 다른 전시성 사업들과 다를 바 없었다. 어떻게든 주민들을 불러 모아야만

    했다.

    그때 내가 무심코 던진 저렴한 아이디어가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일명 ‘치킨 전단지’다. 마을시장

    은 무척이나 편하고 흔한 것이어야 주민들이 부담 없이 참여하고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멋스럽게

    만들어진 리플릿보다 흔하게 동네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안했다.

    홍보물의 디자인은 최대한 세련되고 차별화 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내부 콘셉트를 깨고 코딩된 A4

    아트지로 두께는 가장 얇은 것, 색깔은 눈에 확 띄는 다홍색. 붉은색도 주황색도 아닌 그저 눈에 잘

    띄는 다홍색. 넉넉하게 5000장 마련했다. 그리고 붙였다. 붙이고 또 붙였다. 동네 구석구석, 전봇

    대마다, 마트 가는 길에, 붙이고 또 붙였다. 지금도 가끔 동장님께 그 전단지 때문에 꾸지람을 듣곤

    하지만, 주민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그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둘러대곤 한다.

    그리고 자치구 사업담당 부서는 물론이고 동장님, 주민자치위원들에게도 자세하게 연남동 마을

    시장 ‘따뜻한 남쪽’을 알려드리고 초대했다. 장소도 옮겼다. 공원 안이 아닌 연남동에서 가장 길게

    펼쳐진 공간인 공원길에서 길을 따라 열기로 했다. 민원을 넣었던 주민들에게 편지도 쓰고, 행사

    장 주변의 주민들에게 불편함을 예고하며 양해를 부탁드림과 동시에 참여를 권유하는 편지를 썼

    다. 하루만 차량을 다른 곳에 주차해 주십사 부탁도 드렸다. 나중엔 근처의 고등학교 운동장을 빌

    마을 곳곳에 붙여진 마을시장 전단지

  •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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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려 그곳에 행사장 인근 주민들이 주차할 수 있도록 했다.

    마을의 어린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알차게 꾸려야겠다는 생각에 연남마예스트로 길

    잡이들과 참가자들에게 참여를 권유했다. 목공팀은 가구 제작을 하고 남은 자투리 나무 조각에 메

    시지를 쓰거나 그리는 메시지스틱 만들기를, 바느질팀은 사공순자 할머니와 함께 원피스 만들기

    시연과 전시를, 마을벽화팀의 온수는 작은 돌멩이에 세상에서 가장 작은 벽화를 그리는 프로그램

    을 진행했고, 오연이네는 페이스페인팅을 준비해 또래와 즐길 준비를 했다. 주민들 개개인 뿐 아

    니라 연남동의 공간과 단체에도 참여를 요청했다. 그 결과 도예공방 ‘흙과 놀다’, 자수공방 ‘모모크

    래프트’, 석고캐스팅공방 ‘러브캐스터’ 등이 참여했고, 그 밖에도 다채로운 공간과 프로그램을 가진

    모임들이 참여했다. 전단지를 붙인지 일주일 만에 참가신청이 쇄도했고, 그중 상당수가 연남동과

    인근 지역 주민들이었다. 150개가 넘는 팀이 참가신청을 했고 우리는 당일 운영에 대한 걱정과 설

    렘에 가슴이 떨렸다.

    2013년 10월 9일 한글날, 우리가 기획한 두 번째 마을시장인 ‘연남동 마을시장-따뜻한 남쪽’이 열

    렸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연남동 주민뿐 아니라, 평소에 알고 지내던 문화예술인, 기획자, 지인

    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거나 격려해주었다. 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

    동안 길을 오가며 마주쳤던 이웃들과 연남마예스트로 멤버들도 많이 와주었다.

    주민 스스로 만든 물건, 쓰던 물건을 나눌 수 있는 시장, 맛있는 먹을거리가 있고 어린이들이 맘

    껏 즐길 수 있는 시장, 동네 이웃이 공연을 하고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는 시장, 무엇보다 우리 집

    앞에서 열리는 우리 동네 시장이었다. 그리고 그런 우리 마을 시장에 우리 뿐 아니라, 옆 동네 사람

    2013년 9월, 두 번째 마을시장 풍경

  • 2014 우리마을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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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도 좋아하며 구경을 많이 왔고, 우리 마을 좋다며 칭찬도 했다. 두 번째 시장을 열고나서 2주간

    은 전화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다음 시장은 언제인지, 연남동 주민만 참여할 수 있는 것인지 질문

    은 끝이 없었다.

    왜 하느냐 물으신다면

    2014년 10월 9일, 여섯 번째 마을시장이 열렸다. 2014년 들어 네 번째 시장이자 마지막 시장이었

    다. 2013년에는 두 번 열었고, 올해는 네 번 열기로 했다. 이 마지막 시장을 앞두고 의미 있는 시간

    이 있었다. 바로 마을의 골목축제 강의다. 2014년 6월에 열렸던 마을시장이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

    합지원센터 뉴스레터에 소개가 되었다. 통산 네 번째 시장 이었고, 시장은 여러모로 진화하고 있

    었다. 한 차례 두 차례 시장이 고비를 넘기고 더욱더 나아지고 있던 터라 시장운영 자체는 꽤 안정

    적이었고, 시장에 대한 고민도 나름 정리가 잘 되어있었다. 감사하게도 시장 이모저모와 풍경 사

    진 모두 뉴스레터에서 잘 소개를 해주시기도 했다. 이후 마을시장 개최에 대한 조언과 컨설팅 문

    의도 있었고, 이렇게 골목축제 강의 요청까지 받게 되었다. 사실 시장기획과 같은 주제로 강의는

    몇 차례 진행해 보았지만, 마을 일은 아직 시작이라는 생각에 망설여졌다.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우리 마을의 시장사례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의 시행착오와 극복

    과정이 누구에게 도움이 된다면 아낌없이 전하고 싶었다. 여러모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강의 내

    용을 충실히 준비해 진행하였다. 10월 2일 강의에선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에서 우리 마을시장

    사례 발표와 더불어 골목축제의 개념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10월 9일에는 수강생인 마을활

    동가들이 마을시장을 함께 둘러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마침 날씨도 좋았고, 주민들

    연남동 마을시장 ‘따뜻한 남쪽’

  • 마포구 연남동 마을예술창작소 생활창작공간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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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많이 나와 주어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날이었다.

    유난히 바쁜 일정 속에서 강의를 준비하며 문득 질문을 하고 답을 해 보았다. ‘우리는 왜 시장을

    하는가?’. 자기합리화 없이 아주 깔끔하고 명확하게 답을 할 수 있었다. 너무너무 즐거웠다. 그것

    이 의심의 여지없는 최고의 이유다. 내가 일하고 놀고먹고 자는 이 공간에서 나와 함께 하는 이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