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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아이들이 사는 마을을 들부시고, 불 싸지르고, 먹을 것, 입을 것, 잠 자리를 가로채고, 그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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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2013년도 춘계학술대회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 일시 :2013년 6월 15일(토) 9:00∼17:30■ 장소 :세종대학교 광개토관 컨벤션홀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2013년도 춘계학술대회 일정표

    09:00-09:30 등록 및 친교

    Ⅰ부 사회:윤은주(숙명여대 교수)

    09:30-09:50 개회 및 인사말

    인사말:임재택(본 학회 회장, 부산대 교수)

    09:50-10:50 기조발제

    이 시대, 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는가? - ‘좋은 세상’을 여는 생태유아교육 -

    발표자:윤구병(농부 철학자, 전 충북대 교수)

    10:50-11:50 발제 Ⅰ

    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유아교육적 측면에서 정당한가?

    발표자:김희연(세종대 교수)

    11:50-13:20 점심시간 및 포스터발표

    Ⅱ부 사회:전일우(강원대 교수)

    13:20-14:00 주제발표

    누리과정 수업 도입에 따른 일과운영과 교수매체 활용

    발표자:조채영(동의과학대 교수)

    14:00-15:00 발제 Ⅱ

    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생태유아교육에서 어떻게 바라보는가?

    발표자:김은주(부산대 교수)

    15:00-15:30 휴식시간

    15:30-16:00 주제발표 1

    생태유아교육기관에서의 누리과정 운영 : 교사의 입장

    발표자:권선임(양산부산대병원어린이집 교사)

    16:00-16:30 주제발표 2

    생태유아교육기관에서의 누리과정 운영 : 부모의 입장

    발표자:조정민(부산법원어린이집 학부모)

    16:30-17:30 종합토론

    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한국 유아교육계에 묻는다

    토론좌장:임재택(부산대 교수)

    토 론 자:김성희(홍제어린이집 원장)

    이진우(금오유치원 원장)

    정대현(총신대 교수)

    송현숙(경향신문 기자)

  • 목 차

    ■ 기조발제이 시대, 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는가? ······································································ 11

    - ‘좋은 세상’을 여는 생태유아교육 -

    윤구병(농부 철학자, 전 충북대 교수)

    ■ 발제 Ⅰ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유아교육적 측면에서 정당한가? ······································ 25

    김희연(세종대 교수)

    ■ 주제발표 누리과정 수업 도입에 따른 일과운영과 교수매체 활용 ·············································· 41

    조채영(동의과학대 교수)

    ■ 발제 Ⅱ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생태유아교육에서 어떻게 바라보는가? ··························· 73

    김은주(부산대 교수)

    ■ 주제발표 1. 생태유아교육기관에서의 누리과정 운영: 교사의 입장 ············································95

    권선임(양산부산대병원어린이집 교사)

    2. 생태유아교육기관에서의 누리과정 운영: 부모의 입장 ········································· 103

    조정민(부산법원어린이집 학부모)

    ■ 종합토론1. 「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한국 유아교육계에 묻는다」에 관한 토론 ················ 115

    김성희(홍제어린이집 원장)

    2. 「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한국 유아교육계에 묻는다」에 관한 토론 ················ 121이진우(금오유치원 원장)

  • 3. 「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한국 유아교육계에 묻는다」에 관한 토론 ················ 127정대현(총신대 교수, 하리숲 대안학교 교사)

    4. 「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한국 유아교육계에 묻는다」에 관한 토론 ················ 133송현숙(경향신문 정책사회부 기자)

    ■ 포스터 발표1. 가족건강성, 동료교사 및 가족의 지지가 기혼 보육교사의 교사효능감에

    미치는 영향 ············································································································ 145

    김정희*(경동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2. 공을 활용한 신체활동이 유아의 대근육조작성과 기초체력 향상에 미치는 효과 · 147

    김주연*(전남대학교 유아교육학과 박사과정)

    김정민(전남대학교 유아교육학과 박사과정)

    김경숙(전남대학교 유아교육학과 교수)

    3. 대학 교양강좌 ‘잘 먹고 잘 사는 법’ 교과가 대학생들의 생태적 삶에 대한 인식

    및 생활습관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 ········································································ 149

    임재택(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장미연*(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박사수료)

    송주은(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박사과정)

    4. 만 5세 유아가 인식한 행복 조건에 관한 연구 ······················································ 151

    황해익(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김미진(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박사과정)

    탁정화*(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박사과정)

    5. 보육의 공공성을 묻다 : 한 구립 어린이집 교사의 내러티브 ································ 153

    김희연(세종대학교 교육대학원 부교수)

    박은아*(반포초등어린이집 원장)

    6. 세시풍속 체험활동을 통한 유아의 경험 탐색 ························································ 157

    김영중*(제주관광대학교부속유치원장)

    7. 숲유치원과 놀이: 후기구조주의적 관점을 중심으로 ·············································· 159

    임부연(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정경수*(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박사과정)

    8. 숲유치원에 대한 자원봉사자의 인식 연구 ····························································· 163

    전연우*(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박사수료)

    김태경(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박사과정)

    조희숙(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 9. 숲유치원 유아들의 사회적 역량에 관한 연구 ························································ 165

    정선아(숙명여자대학교 아동복지학부 교수)

    이현영*(반포퍼스티지하늘어린이집 교사)

    10. 숲유치원의 음악활동을 통한 누리과정 예술경험영역의

    실현 가능성에 관한 연구 ······················································································· 169

    신지연(삼육대학교 유아교육과 조교수)

    이미화*(삼육대학교부속유치원 교사)

    11. 숲의 날 운영에 대한 유치원 교사의 인식 ···························································· 173

    신지연*(삼육대학교 유아교육과 조교수)

    남보라(삼육대학교 유아교육과 석사과정)

    12. 어머니의 양육행동과 유아의 자기조절력이 또래 유능성에 미치는 영향 ············ 177

    왕나경(경성대학교 유아교육과 석사과정)

    서현아(경성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하선혜*(동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강사)

    13. 어머니의 행복감 및 양육행동과 유아의 행복감 간의 관계 ································· 181

    김남희(강원대학교 유아교육학과 교수)

    김주리*(강원대학교 유아교육학과 석사과정)

    14. 예비유아교사의 스마트폰 사용이 전두엽 기능에 미치는 영향 ···························· 185

    강신영*(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시간강사)

    장미연(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박사수료)

    15. 유아교육기관 숲 체험 활동에 따른 유아의 다중지능 비교연구 ·························· 189

    황해익(부산대학교 유아교육과 교수)

    강현미*(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박사과정)

    송주은(부산대학교 유아교육학과 박사과정)

    16. 자연의 소리를 활용한 유아미술활동이

    유아의 미술표현능력과 자연친화적 태도에 미치는 영향 ····································· 191

    함영숙*(경동대학교 유아교육과 조교수)

    조미영(한중대학교 유아교육과 조교수)

    함애숙(범계초등학교 교사)

    17. 통합적 요리활동이 유아의 식품안전성에 대한 개념 및

    태도 형성에 미치는 영향 ······················································································· 195

    최복자*(경북대학교 아동학부 박사과정)

    정정희(경북대학교 아동학부 교수)

    배재정(대구가톨릭대학교 유아교육학과 강의전담교수)

  • 모시는 글

    자연의 결을 따라

    땅과 하늘이 호흡하며

    온 누리 만물이 소생하는 활기찬 봄날입니다.

    그동안 본 학회에서는

    《한국 유아교육, 행복찾기 시리즈》로

    공간, 건강, 교육과정, 교육과정 개편,

    그리고 생명이라는 내용을 다루면서

    유아교육의 근본 원인 성찰과 더불어

    아이들과 교사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방안들을

    모색해 왔습니다.

    이번 춘계학술대회에서는 이전의 흐름을 이어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7번째 행복 찾기 시리즈로 유치원ㆍ어린이집

    3,4,5세 누리과정 수업 도입이 아이들과 교사를 진정

    행복하게 하는지 유아교육 내부의 목소리를 듣고

    근본적인 성찰과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부디 함께 하셔서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한 미래를 위한

    여러분의 힘과 지혜를 함께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2013년 6월

    한국생태유아교육학회 회장 임 재 택

  • ▪▪기조발제▪▪

    ◈ 윤 구 병(농부 철학자, 전 충북대 교수)

  • 기조발제

    이 시대, 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는가

    - ‘좋은 세상’을 여는 생태유아교육 -

    윤구병(농부 철학자, 전 충북대 교수)

    1. 말과 마을

    오늘 이 자리가 아이들의 놀이마당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어른이 되어 이제

    나이 일흔이 넘었는데도 저는 제 안에 아직 자라지 않았거나 자라지 못한 아이, 자라

    기를 마다하거나 철 안든 아이가 여기저기 숨어서 놀 곳을 찾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제 멋대로 손발 놀리고, 입 놀리고 웃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하고, 두 주먹 불끈 쥐

    고 바람 가르면서 뛰어다니는 자연의 아이, 생명의 아이들이 제 안에서 저를 부릅니

    다. 가끔 나이를 건너뛰어 저는 그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 함께 놉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그 아이들과 놀면서 귀담아 들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모두 ‘훈민

    정음’(요즈음은 흔히 ‘한글’로 부르지요.)은 집현전 학자들의 도움을 얻어 조선 시대

    세종 임금이 만들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글’이 생겨나기 앞서 있었던 ‘말’은 누가

    만들어 냈을까요? 기독교 신약성서에 나오는 대로 ‘맨 처음에 말이 있었다. 말이 하느

    님이었다’는 말로, 그냥 ‘처음부터 있었던 것’으로 얼버무려도 될까요?

    제가 듣기로는 말은, ‘원시언어’로 불리는 첫마디 말들은 어린애들의 입에서 빚어졌

    습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시답잖다 여기시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그만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돌 무렵이 되면, 옹알이를 하던 애가 어느 순간

    또렷한 소리를 입 밖에 냅니다. ‘마’라는 소리죠. 이 소리가 귓전을 울릴 때, 애 어미는

    귀가 번쩍 뜨입니다.

    ‘이 애가 나를 불렀어. 이제 이 애가 나를 알아본 거야. 그래, 그래, 아가야. 내가

    ‘마’야.’

    아이는 그저 입을 열었을 뿐인데, 아랫입술과 윗입술이 열려 그 사이로 입 밖으로

    내기 가장 쉬운 입술소리가 빠져나갔을 뿐인데, 안아 주고, 업어 주고, 젖 먹이고, 기

  • 12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저귀 갈고, 입 맞추고, 눈 맞추고, 볼 쓰다듬고, 둥개둥개 얼러 주던 어른이 갑자기 눈

    이 화등잔만 해지고, 입이 귀에 걸리도록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기쁨에 젖어 어쩔 줄

    몰라 하면서 꼭 안아 주니 아이로서는 이 뜻밖의 반응이 좋을 수밖에요. 그래서 ‘마’라

    는 말을 입에 달게 됩니다. 어느 날 젖먹이 아이는 ‘마’보다는 조금 어렵지만 그래도

    가장 쉬운 소리인 ‘바’를 입 밖에 냅니다. 그러자 ‘마’ 옆에서 어정거리던 낯익은 이가

    ‘마’와 마찬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이 녀석이 이제 나도 알아보네. 그래, 내가 아빠야. 아이고, 이 귀여운 것.’

    아이로서는 어쩌다 ‘마’와 ‘바’라는 외마디 소리를 질렀을 뿐인데, 자기를 돌봐 주는

    가까운 사람이 이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기쁨을 드러내고 안아 주고 얼러 주니 이거

    나쁘지 않구나, 같은 소리 자꾸 입 밖에 내야겠구나 생각할 수밖에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이 세상 아이들이 맨 처음으로 내는 소리는 같습니다. 듣는

    귀에 따라 그 소리가 ‘마마’, ‘파파’로 들리기도 하고 ‘맘마’, ‘빠빠’로 들리기도 하고,

    ‘엄마’, ‘아빠’로 들리기도 할 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은 가장 쉬운 소리로 가장

    가까이 있는 가장 소중한 대상을 가리키고, 이 소리는 뜻을 담은 말로 영글어 갑니다.

    아이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무’ 하면 엄마는 ‘얘가 이제 물도 알아봤어. 그래, 이 마

    시는 게 물이야. 엄마 젖도 물로 되어 있어. 네가 누는 오줌도 물이란다.’ 하고 자꾸

    그 소리를 다시 내라고 부추기죠. ‘부’ 하면 아빠가 ‘이 놈 이제 불도 알아보네. 그래,

    그래. 이 호롱불도 불이고, 아궁이에서 타고 있는 장작불도 불이야. 그런데 조심해야

    해. 불에 데면 아프니까 만지지는 마.’ 하고 뜨거운 반응을 보입니다. 어느 때 어느 나

    라에서는 ‘물’이 ‘메르’로, ‘불’이 ‘풰르’라는 말로 뿌리내리고 글로 적히지만 그 바탕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한테 가장 가까운 몸을 가리키는 말도 죄다 입 밖에 내기 쉬운 소리로 이루어

    져 있습니다. ‘머리’, ‘이마’, ‘볼’, ‘목’, ‘배’, ‘발’. 어디 그뿐인가요. ‘물’, ‘불’ 밖에도 ‘비’,

    ‘바람’ 같은 자연 현상을 가리키는 말. ‘밀’, ‘보리’, ‘벼’, ‘무’, ‘배추’ 같은 낟알이나 남새

    를 일컫는 말. ‘밭’, ‘벌’(큰 들)을 나타내는 말. ‘방’, ‘마루’, ‘마당’ 같은 말……. 모두 가

    장 쉽게 낼 수 있는 입술소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말들은 이렇게 가장 입 밖에 내기 쉬운 소리에 하나하나 뜻을 담아 생겨난

    것들입니다. ‘말’(뜻을 담은 소리)도 그렇고 ‘말’(마을)도 마찬가지지요. 가장 소중한

    것들을 가리키는 말들은 가장 입 밖에 내기 쉬운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그리

    고 이 소리들을 입에 올린 아이들의 입놀림이 말의 세상을 열어 왔다는 것을 잊어서

  • 기조발제 ❙이 시대, 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는가? 13

    는 안 됩니다.

    ‘마을’에서 ‘말’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도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잠 자리를 마

    련해서 수십만 년에 걸쳐 핏줄을 이어왔던 이들이 죽고 죽이고, 빼앗고 빼앗기고, 짓

    밟고 짓밟히는 소용돌이에 휘말린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사람 가운데 힘 센 수컷

    들이 힘 있는 나라를 만들어 떼 지어 다니면서 힘없는 마을에 사는 힘없는 암컷들과

    아이들이 사는 마을을 들부시고, 불 싸지르고, 먹을 것, 입을 것, 잠 자리를 가로채고,

    그 마을에서 아이들 입에서 움돋고, 싹트고, 꽃이 피어 열매 맺은 말까지도 짓뭉갠 드

    잡이질이 벌어진 것은 지난 5,000년 안쪽 일입니다.

    2. 해와 달

    아이들은 끊임없이 물어 댑니다. ‘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나이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알아야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뺀 다른 살아 있는

    것들은 태어나서 따로 배워서 아는 것이 없어도 거개(거의)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거미나 벌로 태어나면 따로 집 짓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됩니다. 삶의 ‘정보’는 이미

    ‘유전자’ 속에 ‘입력’되어 있어서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집을 지을 줄 압니다. 그러나

    사람 새끼는 가르쳐야 합니다. 일러 주어야 합니다. 배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생명체

    로 태어났기에, 배워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배움의 길을 찾아 왜냐고 묻습니

    다. 이때 제대로 일러 주는 게 필요합니다. 거짓으로 꾸며서, 아닌 것을 이라고, 없는

    것을 있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물을 분들이 있겠군요. ‘신화’나 ‘전설’이나 옛

    날얘기나 다 꾸며 낸 거짓말이 아니냐? ‘인지’가 ‘발달’해서 ‘과학적 사유’가 ‘일반화’되

    기 전에 ‘원시 상태’의 ‘인류’가 저도 모르게 아이들한테 잘못된 ‘정보’를 일러 준 게

    아니냐? 그렇게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왜 아이들이, 온 세상 아이들이 아직

    도 ‘신화’나 ‘전설’, 옛이야기에 그렇게 깊이 빠져들까요? ‘태양’과 ‘지구’, ‘달’과 ‘별’들

    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귓등으로 흘려듣고, 잘 들으라고 윽박지르면 눈살을 찌푸리

    는 아이들이 왜 에 나오는 해와 달의 ‘탄생설화’를 들으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까요?

    까닭이 있습니다. ‘합리적 근거’가 있습니다. 이제부터 이야기하지요. 다 알다시피

    해와 달이 없으면 우리는 살 길이 없습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목숨을 지닌

    생명체 모두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해와 달은 낮과 밤을 비추는 불덩어리나 햇빛을

  • 14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반사하는 둥근 물질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한 해를 나타내는 때의 흐름, 철의 바뀜이

    기도 하고, 바닷물을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힘일 뿐만 아니라, 때맞추어 달거리를 있게

    하는 ‘생리 순환’의 원인일 뿐더러 다달이 접어드는 ‘한 해’ ‘열두 달’이기도 합니다. 그

    래서 해와 달이 어떻게 생겨났는지가 어른이나 아이한테 그렇게 궁금한 것입니다.

    이야기는 겉보기에 단순합니다. 어머니가 마을 잔치 일을

    거들다가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일을 마치고 떡을 얻어 집에 돌아가려고 산길로 접어

    드는데 ‘범’이 나타납니다.(‘호랑’이라는 말이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 생긴 ‘신화’이니

    까, 이때 ‘범’을 ‘호랑이’로 잘못 알면 이 이야기의 알맹이는 없어지고 꺼풀만 남으니까

    머릿속에서 호랑이 모습을 지우고, 오래오래 이 땅 깊은 숲 속에 사람들과 어울려 살

    던 ‘범’을 떠올려야 합니다.) 범이 어멈한테 말을 겁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멈은 떡을 줍니다. 그런데 범의 요구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팔 하나 떼 주면

    안 잡아먹지.’, ‘다리 하나 떼 주면 안 잡아먹지.’ 어멈이 범의 요구대로 팔 다리까지

    다 떼어 주었는데도 범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어멈을 통째로 삼켜 버립니다. 그리고

    그 길로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한테 찾아갑니다. 기름등에 심지를 밝히고 이제

    나 저제나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오누이는 엄마 탈을 쓴 범이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곧장 알아챕니다. 범이 방으로 뛰어들 참에 오누이는 재빨리 나무 위로 올라가

    뒤쫓아 오는 범한테 잡혀 먹히지 않으려고 하늘에 빕니다. 동아줄을 내려 주어 오누이

    를 살린 이가 묻습니다. ‘해와 달이 있으면 살기 좋은 환한 세상이 올 텐데 누가 해가

    되련? 또 누가 달이 되련?’ 오라버니가 말하지요. ‘누이가 밤을 무서워하니까 누이가

    해가 되고 제가 달이 될래요.’ 이렇게 해서 오라버니는 달이 되고, 누이는 해가 되었다

    는 이야기. ‘유래설화’의 ‘일종’이지요.

    그냥 들으면 간단해 보이는데, 이 ‘신화’의 ‘해석’은 만만치 않습니다.(제가 ‘신화학

    자’가 아니니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셔도 됩니다.) 먼저 ‘범’ 이야기부터 할까

    요? ‘범’은 ‘밤’으로도 불렀습니다.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하기야 홀소리(모음)는 때에

    따라 곳에 따라 소리 바뀜이 큽니다. ‘하늘’의 다른 이름이었던 ‘검’은 ‘감’으로도, ‘곰’

    으로도, ‘금’으로도, ‘김’으로도, ‘굼’으로도 소리가 바뀌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개마’,

    ‘고마’, ‘구마’, ‘고미’, ‘구미’, ‘금와’로도 가지를 쳤습니다.(우리나라 토박이 성씨인 ‘김’

    은 하늘을 가리키는 ‘검’이었고, 경주 김씨 시조로 알려진 ‘김알지’는 성이 ‘김’이고 이

    름이 ‘알지’가 아니라 ‘김’(하늘)의 ‘알지’(아지→아기). 다시 말해서 중국말로 바꾸면

    ‘천자’(天子)를 나타내는 옛말이었습니다.)

  • 기조발제 ❙이 시대, 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는가? 15

    해가 기울면 어둠이 찾아듭니다. 밤이 옵니다. 밤이 오면 숲길은 어둠에 덮여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산길에 놓인 돌부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미는 발이 눈이 되어 더

    듬거리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집니다. 떡 소쿠리는 엎어지고, 흩어진 떡들은 팔을 뻗혀

    더듬어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범’이, ‘밤’이 떡을 앗아간 것입니다. ‘밤’은 팔도 안 보

    이게 만들고 다리도 지웁니다.(팔 하나 떼어 주고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다

    리 하나 떼어 주면 죽은 목숨이지요. 밤의 어둠은 어미의 흔적을 통째로 삼켜 버립니

    다.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밤길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습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범’에,

    ‘밤’에 물려 가지 않고,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오기만 기다립니다. 그러나 등잔 기름은

    차츰 줄어들고 심지는 타들어 갑니다. 드디어 ‘밤’은 오누이가 엄마를 기다리는 오두

    막에도 찾아듭니다. 깜깜한 ‘밤’이 오면, 엄마가 오더라도 집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오

    누이한테는 ‘밤’은 죽음의 상징입니다. 살 길을 찾아 오누이는 나무에 오릅니다.(나무

    는 생명의 상징입니다. 굳이 에덴동산에 있었다는 ‘생명수’를 떠올리지 않아도 됩니다.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나무가 생명의 상징이라는 증거는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으니

    까요. 나무와 사람, 나무와 숨 쉬는 생명체는 목숨을 주고받는 사이입니다. 코와 입을

    거쳐서 목으로 드나드는 바람을 우리는 ‘목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내쉬는 숨결에

    섞인 ‘이산화탄소’를 나무가 잎으로 받아 자라납니다. 또 나무가 내쉬는 숨결에 섞인

    ‘산소’를 받아 사람도 다른 동물들도 손발 놀리고 몸 놀리고 머리 굴려 살아갑니다.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원소기호’를 몰랐어도 옛 어른들은 누구나 이 ‘상생’의 ‘원리’

    를 깨우치고 있었습니다.) 살 길은 ‘밤’을, ‘범’을 물리치는 것뿐입니다. 하늘은, ‘검’은

    오누이한테 빛이 되라고 합니다. 해와 달이 되라고 합니다.

    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수컷들이 힘을 내세워 제 입

    맛에 맞게 ‘신화’를 ‘가공’하지 않은 본디 모습으로 이 ‘신화’가 우리한테 전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수컷들이 ‘통치’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낸 ‘글’에는 힘을 휘두르는 ‘큰

    것’들이 모두 수컷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하늘을 나타내는 그리스 신화의 ‘우라노

    스’는 수컷입니다. ‘제우스’도 수컷이고, 해를 나타내는 ‘아폴로’도 수컷입니다. 그러나

    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신화에서는 해가 누이이고 달이 오라

    버니입니다. ‘모계사회’의 자취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단군 신화’에 나오는 ‘단

    군왕검’은 수컷이 아닙니다. 한자(중국글자)의 소리와 뜻을 따서 에 기록된

    ‘단군왕검’의 우리 말은 ‘밝달잇검’입니다. 이 말을 풀면 ‘밝’은, ‘박’은 ‘환수’, 환히 비추

    는 수컷, 곧 해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달’은 ‘밝’의 딸, ‘다→따→딸→땅’을 가리킵니다.

  • 16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잇검’은 나중에 ‘임금’으로 소리가 바뀌는데, ‘검’을 이었다, 하늘이 낳았다는 뜻을 지

    니고 있습니다. ‘검’이 ‘감’이나 ‘곰’이나 ‘김’이나 ‘금’으로 소리바꿈을 한다는 것은 앞에

    서 이야기했습니다. ‘검’은 ‘하늘’의 다른 이름입니다. ‘누르’가 ‘땅’의 다른 이름인 것처

    럼이요. 중국에서도 이 땅에서도 하늘은 검고(검이고), 땅은 누르다(누리다)라고 생각

    했습니다. 해가 비칠 때 드러나는 하늘빛, 푸른 빛깔은 제 하늘빛이 아니라고 여겼습

    니다. 이 사실은 (千字文) 맨 앞에 밝혀져 있습니다. ‘天地玄黃’(천지현황),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르 황’으로 읽습니다. 하늘(天)은 ‘감→검’(玄)이고 땅(地)

    은 ‘누리’(黃)라는 뜻입니다. 중국에서도 힘 센 수컷들이 그 힘을 휘두르기 전에 하늘

    을 암띤 것으로, ‘여자’로 보았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풀이하기로는 ‘천

    지창조’의 ‘신화’인 우리 ‘단군신화’에는 ‘환수’(환웅→해)가 암컷인 ‘검’(곰→하늘)과

    ‘밤’(범)한테 백일(白日)을 견딜 수 있으면 짝을 삼겠노라고 합니다.(이때 ‘백일’을 ‘석

    달열흘’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온 날’이라고 읽어야 합니다. ‘백’의 우리 말은 ‘온’이고

    ‘일’은 ‘날’입니다. 따라서 ‘온 날’은 해가 비추는 ‘하루 내내’라고 뜻풀이해야 합니다.)

    ‘검’이나 ‘밤’이나 깜깜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날이 밝지 않으면 누가 누군지 가려볼 길

    이 없습니다. 그런데 해가 뜨자마자 ‘밤’(범)은 달아나 버리고 ‘검’(곰)만 남습니다. 파

    랗게 빛이 바랜 모습이로요.(우리 ‘단군신화’의 ‘해석’이 그동안 엉터리 ‘신화학자’들

    손을 거치는 사이에 엉뚱하게 ‘변질’되는 것을 보다 못해 제가 서른 해쯤 전부터 달리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바뀌지 않아 얼마 전에 제가 쓴 《철학을 다시

    쓴다》라는 책에서 제 ‘이론’(異論? 理論?)을 드러내 놓고 밝혔습니다. 지금 ‘반론’을

    기다리고 있는 참입니다.) 제 풀이가 맞다면, 어미들이 마을 살림을 맡았던 지난 수십

    만 년 동안 우리 ‘신화’에서는 ‘하늘’도 ‘암’이었고, ‘해’도 ‘암’이었고, ‘땅’도, ‘달’도 ‘암’

    이었습니다. ‘수컷’들이 득세하기 전에는 온 누리가 ‘암컷’들 세상이었다고나 할까요.

    3. 철 - 봄, 여름, 가을, 겨울

    제가 이렇듯이 꽤 길게 ‘신화’ 이야기를 (믿거나 말거나) 늘어놓는 까닭이 있습니

    다. ‘가르침’은, 교육은 ‘철들고’, ‘철나게’ 하는 과정입니다. 먼저 철들고 철난 어른들이

    철없는 아이들을 길러 ‘철 있게’ 하고 ‘철없는’ 짓을 그만두게 하는, 그래서 마침내는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하고’(개체 생존 유지 능력의 배양), ‘서로 도우면서 사는 힘을

    기르는’(협동과 상생 능력의 함양) ‘학습 과정’입니다. ‘철’은 ‘계절’의 우리 말입니다.

  • 기조발제 ❙이 시대, 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는가? 17

    한 해는 봄철, 여름철, 가을철, 겨울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람은 한 철 한 철 접어

    들면서 철이 들고, 한 철 한 철 나면서 철이 납니다. 우리 말에 ‘철들려면 아직 멀었다’

    는 핀잔이 잇습니다. ‘철부지’라는 말도 있고, ‘철 날 때까지 기다려야지 뭐.’ 하는 체념

    섞인 푸념도 있습니다. 철들지 않은 사람, 철나지 않은 사람은 제대로 제 앞가림을 할

    길이 없습니다. 남에게 기대 살 수밖에 없습니다.

    ‘철’은 자연 현상입니다. 사람 뜻대로 철들게 하고, 철나게 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데 필요한 것들은 저마다 ‘제 철’이 있습니다. 철 따라, 철에

    맞게 손발 놀리고(놀게 하고), 몸 놀려야(놀게 해야) 사람은 제 구실을 할 수 있습니

    다. 그래서 철 따라 제 모습을 바꾸고, 그에 따라 다른 몸놀림과 손짓 발짓을 끌어내

    는 자연은 우리의 가장 큰 스승이고 삶의 길잡이입니다. 사람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

    길이 없습니다. 자연은 ‘바람’으로 우리 목을 거쳐 허파에 드나들면서 ‘목숨’을 이어 주

    고, 우리 몸 안에 ‘바닷물’ 성분인 피로 흐르면서 살아 움직이게 하고, ‘해’가 가져다주

    는 ‘불’로 우리 몸을 덥히고, 철 맞추어 우리가 먹을 것, 입을 것을 길러 내는 기름진

    ‘땅’으로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이 자연 속에서 뛰놀아야 합니다. 몸 놀리고 손발 놀려야 합니다. 자

    연 속에서 봄철, 여름철, 가을철, 겨울철을 맞으면서 열심히 몸 놀리고 손발 놀리는 어

    린 시절을 거쳐야 부지런한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열심히 몸 놀리고 손발 놀린다’는 말은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릴 때 자연 속에서 실컷 놀아 보지 못한 사람은 커서 제대로 손발 놀리고 몸 놀려

    서 일할 수 없습니다. 제 앞가림할 힘을 기를 수 없습니다. 자연과 마을 사람들이 함

    께 벗하면서 서로 돕고 사는 모습을 어렸을 적부터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제철 음

    식’도 가리지 못합니다. 잠깐 화제를 돌려서 ‘먹을 것’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람이 먹

    는 낟알(곡식)과 남새(채소류)는 사람 손을 오래 타서 들풀에 견주어 스스로 살아가

    는 힘이 약합니다. 해마다 사람이 거두어서 갈무리하고 제 때 씨 뿌리고, 돌보고, 거두

    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다른 풀에 치어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농사짓는 사람

    들이 해마다 씨앗을 따로 간직했다가 이듬해 논밭에 내는 까닭은 한 해만 묵혀도 씨

    앗에서 싹트는 ‘발아율’이 뚝 떨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곡식’과 ‘채소’는 이렇게 한편

    으로 사람을 먹여 살리면서 사람이 돌보아 주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

    게 자연 속에서 서로 살리는 것을 ‘상생’이라고 하고 함께 사는 모습을 ‘공생’이라고

    합니다.

  • 18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자연으로부터, 또 몸에 좋은 제철 음식을 마련해 주는 자연의

    사람인 ‘유기농사꾼’으로부터 놀이가 일이고, 일이 놀이라는 것을 철따라 몸으로 익혀

    야 합니다. 그래야 철이 들고 철이 납니다.

    철없는 사람은 생명의 시간, 자연의 시간을 모릅니다. 날마다, 철마다 해 뜨는 때와

    곳이 다르고, 밤마다 달뜨는 모습이 바뀐다는 것도 모릅니다. 낮에 할 일이 무엇이고,

    밤에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빚어지는 결과는 ‘생명력의

    약화’입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 치고 ‘제철음식’을 가려먹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듭니

    다. 제 땅에서 나는 제철음식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건강’을 지킬 수 있겠

    습니까? 몸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덩달아 거칠어집니다. 도시는 철없는 사

    람들이 모여 사는 영원히 철들 길 없는 삶터입니다. 짧은 기간 동안 사람들은 이 인공

    의 공간 속에서 시계가 가리키는 인공의 시간에 맞추어 물질 에너지에 기대 목숨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길지 않습니다. 가까운 예로 우리 나라만

    보더라도 지난 50년 동안 우리 어른들은 대대로 물려받았던 기름진 땅, 맑은 물, 푸른

    숲을 깡그리 더럽히고, 파헤치고, 심지어 순간순간 들이쉬고 내쉬어 목숨을 이어야 할

    공기까지도 오염시켜 왔습니다. 조상들이 생명 에너지, 생체 에너지로만 살 길을 열어

    쓰레기 하나 없이 물려주었던 깨끗한 토양과 썩지 않은 물과 더럽혀지지 않은 공기를

    이제 우리는 자라는 우리 아이들한테 물려줄 길이 없습니다. 맑은 물이 흐르던, 자연

    의 젖줄이었던 강들은 무지막지한 ‘삽질’로 마실 물조차 없는 썩어 가는 늪으로 바뀌

    고, 산새와 노루들이 뛰놀아야 할 산과 숲은 농약을 뒤집어쓴 잔디들만 자라는 골프장

    으로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철들지 않고 철나지 않은 철없는 어른들이 저질러 왔고 지

    금도 저지르고 있는 철모르는 짓들이 우리 아이들이 살 길마저 막고 있습니다.

    4. 삶과 살림

    저는《철학을 다시 쓴다》라는 책의 ‘책머리’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길지 않으니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글보다는 말이 먼저입니다. 따라서 우리 말이 우리 글에 앞섭니다. ‘말’은 입에서 나

    와 귀로 들어가는, 뜻을 담은 ‘소리’입니다. ‘말소리’에는 ‘뜻’만 아니라 ‘느낌’도 담겨 있

    습니다. ‘말소리’의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어린애들의 놀이마당을 거칩니다. 재잘재잘

    물이 흐르고 쫑알쫑알 산새들이 웁니다. 깡충깡충 토끼가 뛰고, 머루 알이 조롱조롱 달

  • 기조발제 ❙이 시대, 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는가? 19

    려 있습니다. 얼룩 바지를 입은 새끼 멧돼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호비작호비작 흙을 팝

    니다. 온갖 소리 흉내, 짓 흉내가 숲을 흔들고 바람에 말 씨앗을 날립니다. ‘누리’는 ‘누

    르’고 ‘풀’은 ‘푸릅’니다. ‘물’은 ‘맑’고, ‘불’은 ‘밝’고, ‘바람’은 ‘붑’니다. 아이들 입에서 나

    오는 소리는 하나하나 말로 영글고 ‘글’이라는 ‘그림’으로 모래 위에 그려집니다. ‘깔깔’

    은 웃음이 되고, ‘앙앙’은 울음이 되고, 억지로 ‘부리’는 ‘몸’은 ‘몸부림’이 되지요.

    느낌이 와 닿지 않는 말은 말이 아니고, 그런 말을 글로 옮겨 봤댔자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글’보다 ‘말’이 앞섭니다. ‘말’이 바로 서야 ‘말길’이 열립니다. 그리고

    ‘말길’이 열려야 살 길도 열립니다. ‘말’은 아이들의 입에서 싹트고, 꽃피고, 열매 맺는

    다는 것을 앞에서 얼마쯤 밝혔습니다. ‘말’은 서로 도우면서 살 수밖에 없는 생명체로

    태어난 ‘인간’들이 살 길을 찾는 가운데 움텄습니다. 가장 여린 생명체인 ‘어린것’들은

    부모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말’은 도움을 청하는 ‘소리’에 뿌

    리를 두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앙앙 울면서 ‘몸부림’을 치면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립

    니다. 그러다 가장 쉬운 입술소리를 입 밖에 냅니다. 아이들은 말을 꾸미거나 ‘거짓말’

    을 하지 않습니다. ‘참말’만 합니다. 쉬운 말만 합니다. 부모가, ‘선생님’이 혼내지 않으

    면, 겁나지 않으면, 두려움을 느끼거나 무섭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 우리는 ‘참말’이라고 하고 어떤 때 ‘거짓말’이라고 합니까? ‘참’과 ‘거짓’을 가리는

    일은 ‘진리’와 ‘허위’를 구별하는 것과는 달리, 어렵지 않습니다.(‘진리’와 ‘허위’는 힘센

    사람들이 자기들보다 더 힘센 나라에서 들여온 어려운 말, 겁주는 말입니다. 낯선 말

    입니다. 세살배기 아이들이나 까막눈인 시골 할매들은 익히지 못한 말입니다. 그런 말

    로, 힘 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겁주고 주눅 들게 하는 말로 말문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할 때’, ‘인 것을 이라고 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할 때’ 그 말은 ‘참말’이 됩니다. ‘있는 것을 없다고 하거나 없는 것을

    있다고 하거나, 인 것을 아니라고 하거나 아닌 것을 이라고 할 때’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참’과 ‘거짓’을 가리는 ‘말’은 이렇게 쉬워야 합니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고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힘없는 아이들도, ‘촌사람’도 말문을 열고

    제 뜻을 밝힐 수 있는 참세상, 민주 사회가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은 ‘자연생태계’뿐만이 아닙니다. ‘말’의 생태계도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씨 뿌리고, 싹 틔우고, 꽃피운 소중한 우리

  • 20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말, 우리 삶에 가장 필요한 것들을 가리키는 쉬운 우리 말은 자취를 감추고 이른바

    ‘식민지 지식인’, ‘이데올로기 청부업자’들이 힘센 나라에서 마구잡이로 ‘밀수입’하거나

    ‘불공정거래’로 들여온 낯선 ‘글말’들이 그 자리를 때우고 있습니다. ‘양껏 먹는다’, ‘양

    이 안 찬다’고 할 때 ‘양’은 중국 ‘글말’인 ‘위’(胃)에 자리를 내주고, ‘애쓴다’, ‘애가 탄

    다’, ‘애가 끓는다’, ‘애가 터진다’는 말이 아직 살아 있어도 ‘애’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중국’에서 들여온 ‘창자’가 애써 지켜 온 우리 말을 밀어냈기 때

    문입니다.

    우리 모두 참 세상, 좋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우리 아이들이 맞이할 새 세상

    이 더 거짓되고 나빠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이 거짓되고 나쁜 세상 덕에 잘 먹고 잘

    사는 한 줌도 안 되는 ‘있는 것’들밖에 없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없는 사람’ 가운데 가

    장 ‘없는 사람’입니다. 어른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제 앞가림을 할 수도 없고, 고사리

    손이라서 ‘일손’을 나눌 길도 없습니다. 이 아이들이 그나마 입 벌려 살려 달라고 외쳐

    도 어른들은 그 ‘소리’를 귓등으로 흘려버립니다. ‘선’과 ‘악’은 알아도 무엇이 ‘좋은 것’

    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 모르는 ‘유식한’ 어른들 틈에서 ‘말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

    습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한테만은 좋은 세상을 물려주어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합

    니다. 그 말들 죄다 입에 발린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야

    할 이 ‘땅별’(지구) 생태계를 쓰레기 하치장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서로 말을 주고

    받으면서 도와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언어생태계’마저 어지럽혀 놓았습니다. 이런 상

    황에서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낯선 외국말(중국말, 일본말, 미국

    말)투성이인 글을 읽고 방송을 들으면서 자라야 하는 아이들이 어떻게 좋은 세상, 민

    주 세상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어떨 때 우리는 ‘좋다’고 하고 어떨 때 ‘나쁘다’고 합니까?(‘공동선’이니 ‘악의 축’ 같

    은 쓰레기 같은 말은 걷어치웁시다.) 아마 말문이 막힐 분들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수천 년에 걸쳐 지배계급이 어지럽혀 놓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언어

    식민지’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것 없습니다.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있

    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좋다’고 하고 ‘있을 것이 없거나 없을 것이

    있을 때’ 우리는 ‘나쁘다’고 합니다. 배고플 때 ‘밥’은 ‘있을 것’(있어야 할 것)입니다.

    없으면 ‘나쁩’니다. 굶주림은 ‘나쁘고’, 먹일 수 있는데도 굶주리게 하는 사람은 더 ‘나

    쁩’니다. 건강해야 하는데 우리 몸에 ‘없을 것’인 병이 있으면 ‘나쁘’지요? 이렇게 좋고

    나쁨은 아이들도 가려 봅니다.

  • 기조발제 ❙이 시대, 왜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는가? 21

    좋은 세상은 ‘있을 것만 있고 없을 것은 없는’ 세상입니다. ‘억압’, ‘착취’, ‘전쟁’, ‘공

    포’, ‘탐욕’…… 같은 ‘없을 것’투성이인 세상은 ‘나쁜’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을 우리 아

    이들한테 물려주어서는 안 됩니다. 자유, 평등, 평화, 우애, 협동……은 좋은 세상이 되

    려면 우리가 아이들한테 아름다운 ’유산‘으로 남겨야 할, 꼭 ‘있을 것’(있어야 할 것)입

    니다.

    제철음식을 먹여 우리 아이들의 몸을 지키는 것 못지않게, 쉬운 우리 말을 되찾아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지키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입니다.

    5. 좋은 세상 앞당기는 참교육

    앞에서 저는 ‘있는 것을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이 ‘참말’이고, ‘있는

    것을 없다고 하거나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두 가지 이유에서 거짓말을 합니다.(크게 보아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상상의 세

    계를 현실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즐겨듣는 옛이야기에는 상상의 세

    계가 펼쳐집니다.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토끼가 용궁에 갔다가 오기도 합니

    다. 혹부리 영감의 혹이 아름다운 노래 주머니로 바뀌기도 하고, 선녀가 나무꾼을 만

    나 아이 낳고 잘 살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두레박을 타고 올라가기도 하지요. 이 상상

    력이 빚어낸 ‘거짓말’은 ‘없는 것’을 있게 하는 창조의 싹을 기르는 힘을 낳습니다. 아

    이들은 동화나 옛이야기 속에서 이 세상에는 없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상상 속에서

    어른들한테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꾸며 냅니다. 이때는 ‘거짓말하지 마.’ 하고

    윽박질러서는 안 됩니다. 그 ‘거짓말’에는 남을 해코지하는 마음이 담겨 있지 않습니

    다. 귀담아들어 주고 맞장구쳐 주면 그만입니다. 어떤 때는 부추겨 줌직도 합니다. 아

    이들이 지어내는 말은 그 안에 창조의 씨앗이 들어 있으니까요. 그러나 부모나 교사한

    테 혼날까 봐 두려워서 ‘거짓말’을 할 때는 아이들은 야단치기에 앞서서 왜 거짓말을

    하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찬장 위에 올려놓은 꿀단지를 발뒤꿈치 들고 내리려다 잘못

    해서 깨뜨린 아이는 가슴이 덜컹 하는 것으로 이미 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미 깨

    진 단지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런 곳에 꿀단지를 올려놓은 탓도 있습니다. 그러니,

    ‘먹고 싶으면 내려 달라고 하지 그랬어.’나, ‘많이 놀랐지? 더 낮은 곳에 둘 걸 그랬구

    나.’ 하고 아이의 놀란 가슴을 다독거려 주어야 합니다. 그 아이가 저지른 일이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누가 그랬어?’ 하고 눈을 부라리면 아이 입에서는 반사적으로 ‘내가 안

  • 22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그랬어.’라는 거짓말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아이들만이 아닙니다. 어른들 사이에서

    도 마찬가지입니다. ‘벌거벗은 임금’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좋은 임금이라면 아첨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이지 않겠지요. 그리고 그 임금이 무섭지 않으면 백성들이 벌거벗은

    임금을 보고 좋은 옷을 걸쳤다고 손뼉 치지 않겠지요.

    ‘참’과 ‘좋음’은 말 하나에 달려 있습니다. 있‘는’ 것과 있‘을’ 것만 다릅니다. ‘있는 것

    을 있다고 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하는 것’(참말)을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것’(좋은 것)으로 이끄는 힘은 ‘현재’를 가리키는 ‘는’을 ‘미래’를 나타내는 ‘을’로 바꾸

    는 데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우리가 있

    는 것을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닐 때만 우리는 미래

    세대인 우리 아이들한테 ‘없을 것’이 무엇인지 눈뜨게 하는 ‘비판정신’을 일깨울 수 있

    고, ‘있을 것’이 없으면 어떻게 빚어내거나 만들어서 있게 할 것인지를 깨우치는 ‘창조

    정신’을 길러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한테 ‘비판의식’과 ‘창조의식’을 지닌

    미래의 주인공으로 자랄 참교육, 철들게 하고 철나게 하는 가르침을 베풀어야 우리 아

    이들이 맞이할 세상은 좋은 세상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자리를 참교육을

    통해 좋은 세상을 여는 생태유아교육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읍시다.

  • ▪▪발제 Ⅰ▪▪

    ◈ 김 희 연(세종대 교수)

  • 발제 Ⅰ

    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유아교육적 측면에서 정당한가?

    김희연(세종대 교수)

    I. 들어가며

    전계층 보육비 지원과 유치원 교육과 어린이집 보육의 질 향상을 위한 3~5세 누리

    과정의 개발과 적용에 세간이 떠들썩하다. 국가와 지방 재정의 공적 자금이 유아교육

    에 대거 투여되면 그와 더불어 유아교육 기관에서의 교육/보육의 책무성을 담보해야

    할 관리․통제의 요구가 더욱 강해지기 때문에 국가수준 교육과정의 역할은 앞으로

    유아교육계의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누리과정 개발의 배경

    이 학문적 성과에 의한 교육과정 개정의 필요에서 출발했다보다 정치적, 사회적 요구

    가 앞서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과연 누리과정이 2007 개정 유치

    원교육과정이나 표준보육과정을 잘 조합해 놓은 이상의 무엇이 변화한 것인지 의구심

    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인 것 같다. 그렇지만 어린이집을 포함하여 유치원에서도 전

    계층 보육비 지원과 함께 따라온 이 누리과정의 여파는 생각보다 크다. 보육시설 평가

    인증과 유치원평가로 맞물려 동일한 보육․교육과정을 적용해야한다는 사실 자체가

    기관 단위의 관계자들과 평가자들 그리고 평가체제 개발자에 이르기까지 누리과정을

    신격화에 가까운 방식으로 접근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5세 누리과정을 한국검정교과서에 주문하면 누리과정 해설서 1권, 교사용 지침서 1

    권, 11권의 교사용 지도서가 묶음으로 배달된다. 이 방대한 문서는 누리과정 개발 이

    전에도 총론과 교사용 활동 자료라는 형태로 제공되어 왔다. 문제는 이 문서들의 의미

    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다양한 특성화된 교육접근이 그런대로 자리 잡고 있었

    던 측에서는 특성화보다는 국가고시 보육․교육과정의 강화로, 이제 겨우 보육과정이

    라는 개념에 걸음마를 시작했던 측에서는 더욱 구조화되고 조밀한 체계적인 보육․교

    육과정의 구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한 차별화된 교육과정 모

    델을 적용하고 있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는 자신들의 철학을 포기해야하는 딜레마

  • 26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로, 일반적인 보육․교육과정 모델을 적용했던 기관에서는 자신들의 서비스의 합법성

    과 전문성을 담보하는 장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3권으로 구성된 누리과정 문서는,

    국가가 원한 바대로, 더 이상 장롱 속 문서가 아니며 영유아보육교육기관들을 안내하

    는 가장 강력한 문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영유아보육교육은 교과 교육의 형태를

    취하지 않기 때문에 소위 ‘교육과정/보육과정’이 도대체 무엇이고 초․중등교육과 구

    별되는 영유아보육교육의 성격과 영유아보육교육과정의 특징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을 뒤로 밀어 놓고는 이 현상의 변화를 가늠할 수도 성장을 운운하기도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누리과정의 의미를 다시금 살피고 누리과정이 전제로 하는 수업의 의미를

    짚어, 누리과정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를 이어감으로써 국가수준 교육과정 개정

    에 있어서나 현장의 보육교육 실천에 있어 발전적 성과를 이루어가는 일은 매우 중요

    하다고 볼 수 있다.

    II. 누리과정의 의미

    1. 관리와 통제

    우리나라의 영유아보육․교육은 개념적으로는 보육과 교육이 더 이상 분리될 수 없

    는 것으로서 에듀케어(edu-care)가 보편화되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는 보육과 교

    육으로 이원화된 분리 체제로 그대로 남아 있으며, 교육과 보육이라는 표현이 모두 사

    라진 제3의 용어인 누리과정은 교육과정과 보육과정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진

    통을 암시한다. 보육시설 평가인증 및 유치원평가로 시작되어 표준 보육․교육 공통

    과정(누리과정)의 개발과 적용으로 이어지고 전계층 공적 자금의 수혜를 이룸으로써

    하나로 통합된 공공의 영역으로 작동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운

    영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표준에 대한 보육계와 유아교육계의 문제의

    식 또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유아교육계와 보육계에서의 교육과정/보육

    과정 개발과 그 역할에 대한 관점을 살핌으로써 공통과정으로서의 누리과정의 의미를

    현실적으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먼저, 유아교육계에서는 공교육화를 이루기 위한 기반으로 질 관리체제의 확립에

    주력하고 있었다. 재정의 투명성이 유아교육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의

  • 발제 Ⅰ ❙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유아교육적 측면에서 정당한가? 27

    식이었다. 이대균(2005)은 유아교육 및 보육의 공공성 확립을 위한 재정 지원의 필요

    성과 더불어 그 합법성의 기반으로서 책무성 확립을 위한 질 관리 체제 확립의 중요

    성을 강조하였다. 그의 주장은 유아교육계의 자체 구조 조정 노력, 즉 유아교육 및 보

    육서비스 제공의 당사자가 스스로 갖추어야 할 질의 확보를 재정 지원 확보에 선행되

    어야 할 조건으로 부각시키는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유아교육의 공교육

    화 추진을 위해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집중적으로 수행되었던 기반 연구 및

    정책 연구들과 그 맥을 잇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정책과제로서 장명림과 나정과 최

    윤정(1999)의 ‘유아교육의 공교육화 촉진을 위한 유치원 평가체제 구축’, 장명림과 이

    기숙과 최수경(2000)의 ‘유치원 모의 평가를 통한 유아교육 평가모형 확립 방안’, 김

    규수 외 3인(2002)의 ‘유치원 공교육화에 대비한 사립유치원 경영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이기숙(2002)의 ‘유아교육기관인정제’, 양옥승(2002)의 ‘유아교육기관 종합평가

    인정제’, 이대균 외 3인(2003)의 ‘우수유치원 인증체제’ 연구 등, 교육인적자원부를 중

    심으로 위탁 수행된 연구들은 평가체제의 수립을 통한 ‘관리’를 유아교육의 질을 제고

    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목소리를 모았다. 이들 연구가 제안한 국가 평가체제의 확립은

    유아교육의 책무성 확립과 동일시되었는데, 책무성 확립은 다시 공교육화라는 정책의

    실현을 이끌어 내기 위한 과제로 여겨졌다. 국가에 의한 질 관리체제를 확립시킴으로

    써 공교육화라는 대사업에 임하는 유아교육종사자들이 유아교육의 사회적 책무를 한

    층 더 구체적으로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확인,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었

    다. 외국에서의 유아교육 기관평가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벤치마킹하며 진행된 질

    관리 평가체제가 마련되고 2005년 유아교육법 및 영유아보육법 개정 법률 시행으로

    전격 확산되었다. 민간 주도로 급속히 진행된 양적 팽창 과정에서 무분별한 사적 욕망

    의 작용과 품질의 하자(?)를 동시에 통제할 강력한 장치가 필요했었던 것이다. 민간

    주도의 교육기관에 대한 질 관리를 전제로 공적 자금의 투여를 확보하게 하기 위해

    총력전을 기울인 형상이었다. 교육기회의 평등을 이루는 공교육화를 이루기 위해서

    유아교육의 질 증진을 ‘국가의 관리체제’라는 제도 확립에 직결시킴으로써 국가수준

    교육과정의 의미는 질의 향상이라는 의미를 넘어 관리와 통제를 위한 강력한 도구로

    서의 의미를 강화하게 되었다.

    한편, 보육시설 확충 정책의 성공은 보육시설의 양적 팽창을 일궈냄으로써 보육의

    질 문제를 새롭게 대두시키고 있었다. 국가의 재원이 투입되고 사회적 지원을 받는 것

    만큼에 상응하는 양질의 보육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가, 즉 양적 보편화가 질적 보편

  • 28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화로 이어지고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었다(김종해, 2007; 이대균, 2006). 즉

    영유아보육의 전문성에 문제제기였다.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정부(여성부)는 보육시

    설에 대한 질관리 시스템과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하였

    다. 보육시설의 수를 늘려서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설, 교사의 자

    질, 교육과정 등의 여건과 과정에서의 평등을 지향하기 시작한 것이다(김영화, 2004).

    한국여성개발원(2003)에서 ‘보육시설 인증제도’ 연구가 진행되었고 2005년부터는 보육

    시설 평가인증제도가 실시되었다. 표준보육과정의 개발의 적용 또한 보육의 전문성을

    증대하기 위해 마련된 질적 보편주의 실현을 향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유치원보다 설

    치 기준이나 종사자 기준이 엄격하지 않아 무분별한 양적 팽창의 온상지였던 어린이

    집에 대한 평가인증 실시는 유치원평가보다 더 시급한 과제로 여겨졌다. 공교육 기관

    의 책무성의 개념이 동원된 유치원교육의 책무성은, 보육시설에 있어서는 전문성의

    개념으로 접근되었다. 이 전문성을 갖추는 데 있어 가장 중요했던 사안은, 질적 보편

    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공통의 보육내용을 갖추는 일이었다. 유치원교육과정 개발자

    들이 대거 참여한 표준보육과정이 탄생하고, 표준보육과정의 적용은 서비스 전달체제

    의 전문성을 유아교육의 모습으로 수렴시키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결국 유아교육과

    마찬가지로 보육의 질 증진을 ‘국가의 관리체제’ 도입과 ‘국가수준 표준보육과정’ 제정

    이라는 제도 확립에 의존한 전문성 증진으로 직결시키고 있다는 점은 영유아보육․교

    육에서의 누리과정의 의미를 특정한 방향으로 제한시키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결국 유아교육계에서는 공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보육계에서는 보육의 전문성 제고

    를 위해, 질 관리를 위한 평가체제를 확립시키고자 하고 있었고, 국가수준 교육과정/

    보육과정은 평가체제를 구성하는 중요 영역을 차지하면서, 국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서는 지켜져야 할 규범으로서 인식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유아

    교육계에서 더욱 공고화된 국가수준 교육과정의 위상과 유아교육계의 교육과정을 모

    델로 표준보육과정을 개발하게 된 보육계에서의 보육과정의 위상은 공통과정으로서의

    누리과정의 의미를 국가 관리체제와 직결시키고 공교육의 실현과 보육의 전문성을 확

    립을 위한 관리와 통제 패러다임으로 귀속시키게 되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 발제 Ⅰ ❙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유아교육적 측면에서 정당한가? 29

    2. 준비 그리고 의무교육

    5세 누리과정의 해설서에는 누리과정의 의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정부는 ‘5세 누리과정’ 제정 및 적용을 통해 지난 15년간 미루어 왔던 취학 직전 1년

    간의 유아보육․교육 선진화를 실현하게 되었으며, 정부가 부담하는 의무교육 기간을 사

    실상 10년으로 확대하고, 공정한 출발선을 보장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교육과학

    기술부`보건복지부, 2012a: 7)

    이는 정부가 누리과정의 개발에 임하면서 1999년 이래 확대되어 온 저소득층을 위

    한 만 5세 아 무상교육 지원 사업을 전계층 전면 지원과 동시에 의무교육 사업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사실, 유아교육계의 오랜 염원이었던 만 5세 공교육

    화는 초․중등교육 학제의 연장선상에서 단일화되는 의무교육화의 방향이 아닌 민간

    주도의 이원화된 영유아 보육과 교육에 대한 무상교육화로 실현된 것이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만 5세 아 전면 무상교육이 실현되는 시점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의

    책무성을 강화하기 위한 만 5세 아 누리과정을 의무교육의 연속선상에서 해석한다는

    점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무상성에(의무교육으로서의) 강

    제성을 덧씌운다는 점이다. 무상교육이 반드시 의무교육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무교

    육으로서의 강제성을 암시함으로써 현장의 기관들로 하여금 법적 구속력을 인식하도

    록 하는 결과는 낳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그간 유아교육계의 공교육화 논의와 연결

    된 것으로 만5세 무상교육을 우리나라 공교육제도의 연속선상에 위치지우고자 하는

    의도이다. 10년 의무교육으로 대표되는 공교육의 일환으로서의 만 5세 무상교육이 공

    교육제도의 틀을 고수해야 할 필요성을 함의하고 있다. 교육과정 문서의 틀을 일관성

    있게 조정하는 것으로부터 수업시수와 같은 개념이 등장하면서 의무교육으로서의 공

    교육과의 합치를 지향한다. 따라서 국가수준 교육보육과정으로서의 누리과정이 적용

    되는 오전 3~5시간의 보육․교육이란 결국 유아교육에서의 기존의 공교육화 모델을

    따르면서 더욱 더 교육적 개념들이 강조된 교육시간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유치원에서

    1일 3~5시간을 기본교육과정 운영시간으로 하고 있듯이 12시간 운영을 기본으로 하

    는 어린이집에서도 오전 “1일 3~5시간의 기본 교육을 위한 과정”(교육과학기술부`보

    건복지부, 2012a: 13)으로서의 누리과정을 따르도록 한 것이다. 보육․교육이라는 용

    어를 사용하고 다양한 일과 운영 형태에 따라 보육․교육과정을 심화 확장할 수 있도

  • 30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록 한다고는 하나 사실상은 오전은 교육, 오후는 보육(과 특별활동)으로 단순 결합된

    교육과정 모델로 보아야 할 것 같다.

    한편 무상교육을 의무교육과 동일시하는 것과 관련하여 누리과정에서는 준비교육

    의 성격이 강화되고 유아교육의 독자성 확대를 위한 심화된 논의가 반영된 것으로 보

    이지 않는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사실상(만 5세 기준) 10년간의 의무교육의 출

    발점에서 누리과정이 이루어야 할 목표는 의무교육에서 명시된 “범교육과정적 주제”

    (교육과학기술부`보건복지부, 2012b: 14)가 반영되는 동시에 “초등학교 교육과정과의

    연계”(교육과학기술부`보건복지부, 2012b: 14)에 있었다. 그런데 초등교육학자 정광순

    (2010)이 지적한대로 우리나라 의무교육 제도에서는 교육내용의 위계를 준거로, 상급

    학교 상위 교육과정에서 도출되는 하위 교육과정의 성격으로 각 급 교육의 성격이 파

    악되는 경향이 있었다. 즉, 고등교육을 위한 중등교육, 중등교육을 위한 초등교육, 초

    등교육을 위한 유아교육이라는 역방향 ‘준비’ 패러다임이 학교교육과정 이해에 적용되

    어 왔다(정광순, 2010). 이는 각 급 교육 간의 교육과정 연계를 주도하게 되는데, 결국

    각 학교 급의 교육과정의 성격이나 본질이 상급 학교 급에 의해 규정됨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왜곡하는 경향을 동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 5세 누리과정 교사용

    지침서에는 이 지침서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초중고등학교는 국가 고시 교육과정을 가르치기 위해 교사용 지도서를 참고하여 교과

    서를 중심으로 학생을 지도한다. 그러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5세 누리과정을 지도

    하기 위해서는 해설서를 참고로 놀이 중심의 교육활동으로 교과서 대신 개발된 5세 누리

    과정 교사용 지도서와 어린이집 프로그램에 제시된 활동의 예시를 활용하여 지도하게 된

    다.(교육과학기술부`보건복지부, 2012b: 6)

    이 진술은 초중고등학교와 같은 교과서의 존재는 없지만 교사용 지도서가 교과서의

    역할을 대신함을 명시하고 있다. 정광순의 문제의식에 비추어 본다면, 누리과정은 교

    과서에 준하는 교사용 지도서를 따름으로써 초등교육과의 연계를 구현하므로 준비 패

    러다임 안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놀이 중심의 교육활동’의 성격이 누리과

    정과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과의 차별성 내지 독자성이다. 다음 절에서 이 교육활동

    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드러냄으로써 의무교육, 준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 발제 Ⅰ ❙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유아교육적 측면에서 정당한가? 31

    III. 누리과정이 전제하고 있는 수업의 의미

    1. 학습을 위한 놀이

    유아교육보육을 대표하는 지도방법은 ‘유아의 주도성’과 ‘놀이 중심의 통합적인 교육보

    육과정 운영’이라 할 수 있다. (중략) 이렇게 누리과정에서는 5개 영역을 중심으로 유아

    의 주도적인 경험과 놀이 중심의 통합 과정을 강조하여 구성하였다. (교육과학기술부`보

    건복지부, 2012a: 12-13)

    본 지침서는 (중략)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5세 누리과정의 목표와 내용을 ‘어느 수준

    과 범위’로 ‘가르치고 평가해야 하는지’를 안내하는 것으로 활동 및 프로그램의 방법적 틀

    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5세 누리과정의 영역별 내용을 놀이 활동 형태로 전개하는

    필요한 (중략) 지침으로 구성하였다. (교육과학기술부`보건복지부, 2012b: 7)

    누리과정 해설서와 교사용 지침서에서는 놀이 중심의 교육보육과정 운영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영역별 내용은 놀이 활동 형태로 전개시키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주제별로 개발된 11권의 교사용 지도서에 약 700개 이상의 동일한 형태의 놀이 활동

    제공하여 교육보육과정 운영의 편의를 돕고 있다. 활동유형과 영역이 명시된 이 활동

    들은 활동명, 목표, 누리과정 관련요소, 활동 자료, 활동 방법, 활동의 유의점, 활동 평

    가, 확장 활동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이 활동들을 잘 조합하여 계획안으로 구현

    해 놓기만 하면 5개 영역에 걸친 조화로운 놀이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것으로 안내

    하고 있다. 기존의 유치원 교육과정에서 교사용 활동 자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유

    아들에게 ‘가르쳐야할’ 내용을 교과 수업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즉 교과 중심 수

    업이 아니라 유아들의 일상적 활동으로 전환하여 유아 중심으로 재편되도록 한 노력

    으로서 보다 맥락적이고 보다 아동의 경험과 밀착될 수 있도록 한 흔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쳐야 할 내용의 습득을 목적으로 고안된 놀이 활동은 외형적으로 ‘수업’

    이 아닌 ‘놀이’의 형식을 띈 발견학습식의 교수법에 지나지 않는다. 놀이라는 방법을

    취할 뿐 가르쳐야 할 내용의 습득이 부과되는 모든 활동은 교과 수업과 다를 바가 없

    다. 이러한 접근은 유아교육의 특성인 우발적이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발현적 교육

    과정(emergent curriculum) 형태의 실제 교육현장에 있어 여전히 겉도는 교육과정 모

    델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 놀이 활동을 계획하여 누리과정 요소의 습득하도록 하는 방

    식을 초중고등학교와 차별화된 유아교육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재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놀이 활동이 국가수준 교육보육과정 운영을 위한 교사용 지도서

  • 32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에 등장하는 것이던, 민간 업체들이 누리과정 운영을 위해 개발하여 판매한 것이던 그

    것은 분명한 교육목표를 가지는 ‘학습을 위한 놀이’ 활동이다. 즉 놀이라는 방법으로

    접근한 놀이 활동 접근은 교과 수업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2. 조직된 일상

    대부분의 교사들이 경험하는 바, 교사 주도로 진행되는 대소집단 활동을 제외하고

    자유선택활동이나 바깥놀이로 계획된 놀이 활동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경우는 많지 않

    다. 주제를 중심으로 연간, 월간, 주간, 일일교육/교육계획안에 치밀하게 계획된 다양

    한 활동들은 문서로 존재하고 교재교구로 놓여지지만 자유선택활동, 바깥놀이로 일과

    가 전환되면서 유아들은 계획된 놀이활동보다는 자신들이 주도하는 놀이를 즉흥적으

    로 창출해낸다. 이러한 현상은 교사들로 하여금 자유선택놀이 시간을 줄이고 자유선

    택 활동으로 계획된 놀이 활동들을 대소집단 활동으로 전환하여 ‘수업’을 진행시키는

    파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침서에서 안내하는 대로 “어떤 경우에도 유아의 활동이

    전체 흐름 속에서 서로 연계”(교육과학기술부`보건복지부, 2012b: 11)되도록 하기 위

    해서는 교사(정부)에 의해 고안된 놀이 활동을 수업의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 가장 안

    전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르쳐져야 할 내용을 습득하도록 하는 놀이활동 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은 3~5시간을 놀이활동을 소개하고 안내하는 수업(?)으로 이어지게 하

    고 있는 것이다.

    유아의 일상생활은 놀이 활동 속에서 유아가 개념이나 지식을 더 쉽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배려에 불과할 뿐, 유아들이 실제로 이끌어가는 일상의 영역을 무시되거나

    통제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교사들은 수업 중에 산만한 아이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때

    로는 완벽하게 조직된 일상이 이러한 몇 명 아이들에 의해 방해받으면 교사가 준비한

    놀이 활동은 실패로 평가된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은 자신이 조직된 일상대로 유아

    들이 진행해 주지 않을 때 무엇을 평가해야하는지 조차도 혼란스럽게 된다. 중요한 것

    은 교사가 조직한 일상과 유아들이 주도하는 일상이 늘 합치되지만은 않는 것은 유아

    들의 특성상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교사에 의해 조직된 일상이 진

    정한 의미의 유아 주도성을 고무하는가에 대해서는 질문이 던져진다. 유아들의 일상

    적 삶 속에서 얽혀서 유아들의 성장에 관여하는 그 무엇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유아의 삶 속에 깃들어 놀이로 표현되고 흥미로 나타난다. 이 놀이와 흥

  • 발제 Ⅰ ❙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유아교육적 측면에서 정당한가? 33

    미의 연속적 장면 안에서 학습의 고리를 찾아내는 것, 그 고리로 연결시키고 의미를

    부여해가는 과정이 교과 수업과 차별화되는 놀이 속의 학습이라고 볼 수 있다. 누리과

    정은 놀이 속의 학습 모델로 접근하는 방식이 아니라 학습을 위한 놀이 활동을 고안

    하고 이를 오전 3~5시간의 수업으로 조직한 일상을 지향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IV. 누리과정, 수업을 넘어: 유아교육에서 영유아보육`교육으로

    정광순(2004)은 학교 급별 교육과정의 개념적 지위가 각각의 독자성을 중심으로 공

    고해진다면 서로 연계됨과 동시에 독자성이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라 보면서 표 1과

    같은 교육의 단계를 제안하였다.

    각 학교 급별 교육과정 및 교육과정 실행에 대한 인식 관점

    Sharing의 시기 Liking의 시기 Knowing의 시기 Inquiring의 시기 Creating의 시기

    일상영역 일상+교과영역 교과영역 교과+학문영역 학문영역 학문+삶 영역

    선경험의 단계 경험화의 단계 개념화의 단계 전문화의 단계 삶화하는 단계

    유아(유치원) 초등(초등학교)(중학교) (고등학교)

    고등(고등학교) 삶중등

    (출처: 정광순, 2004, p.118)

    이 제안에 의하면, 유치원 및 어린이집에서의 교육과정의 원천은 교과지식이 아니

    라 일상생활이다. 즉 “교과 이전의 경험 혹은 공적인 사회문화를 내용을 다루기 이전

    의 경험”(정광순, 2010: 11)으로 구성된다는 의미에서 ‘선경험의 단계’로 규정될 수

    있다고 본다.

    유아들의 경험은 일상을 무대로 하며,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는 교과 용어라기보다는

    생활용어이며, 공식 용어라기보다는 사적 용어들이다. 유아들의 경험을 수업이라는 공개

    석상에서 공유하도록 하는 활동으로 교육은 시작된다(정광순, 2010: 11).

    그리고 초등교육과정은 유아교육과정의 관점에서 출발하여 중등교육과정의 핵심이

    되는 교과의 관점으로 연계해야 하는 단계로, 아동의 개인적 상황적 맥락에서 출발하

    여 각 교과 관련 경험으로 변용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이 아동의

  • 34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개인적, 주관성의 세계를 중심에 두고 교과를 연계하는 흥미와 쾌락의 기반으로 한 심

    미적 단계가 초등교육과정이어야 한다면, 유아교육과정은 무엇을 다룰 수 있고 또 다

    루어야 하는가? 여기서, 10년의 의무교육과 공교육제도의 연속선상에 놓일 필요가 없

    는 유아교육이 아닌 독자성을 추구하는 영유아보육교육으로서의 유아 단계에서 ‘일상

    영역’이라는 언어와 ‘선경험’이라는 언어는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교과영역과 연계

    되기 이전의 일상영역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또한 교과를 경험하기

    시작하는 단계의 이전 단계로서의 선경험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교과영역과 연계되기 이전의 일상영역이란 일상이 일상으로 존재해야 함을 함의한

    다. 교과와의 연계를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된 교과 활동으로 전환되지 않은 일상, 올

    바른 교과지식 습득을 목표로 고안된 교재교구의 구조 안에 갇히지 않는 일상, 유아가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제도화된 교과지식 구조를 향해 자신의 흥미와 쾌락을 수렴해

    가도록 강요받지 않는 일상, 한 마디로 말해서 교과지식에 의해 유도되고 재단되고 평

    가되지 않는 일상의 모습을 간직함으로써 영유아보육교육의 본질이 훼손되지 않을 것

    같다. 유아들이 교실에서 유아교사와 또래와 함께 교과지식 습득이라는 목표와 구조

    로부터 자유로운 하루하루를 놀면서 살아가면서 구성해가는 영역이 일상영역이다.

    또한 교과를 경험하기 시작하는 단계의 이전 단계로서의 선경험이란 교과를 교과로

    경험하기 이전의 상태를 함의한다. 교과 경험과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경험화의 단계,

    유아가 자신의 동기를 교과를 향유하는 데 사용하는 않는 경험화의 단계, 현실적이지

    도 사회적이지도 직업적이지 않은 교과 경험을 바탕으로 구축하게 되는 형식적 경험

    이전의 비형식적 경험의 단계, 다시 말해서 교과 경험으로 채워지지 않는 선교과 경험

    의 의미를 찾아감으로써 영유아보육교육의 지향점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유아들의

    일상이라는 틀 위에 교과영역이 덧씌워져 일상을 빙자한 교과 경험으로 채워나가지

    않는 유아들만의 인식과 경험내용이 존중받는 교육과정의 단계가 영유아보육교육과정

    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유아들이 일상영역을 살아갈 때 동원하는 개인적 지식이다. 유

    아교사가 정작 잘 알아야 할 것은 전문적인 교과내용 지식이라기보다 유아가 동원하

    는 지식에 대한 지식이다. 유아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교과와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

    만, 교사의 입장에는 그것을 교과지식에 비추어 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성인으로서의

    교사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한 도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아의 일상은 교과영역

    으로 구분될 수 없는 상태에서 흘러가므로 유아교사가 갖추어야 할 교과지식은 유아

  • 발제 Ⅰ ❙누리과정에서의 수업 도입, 유아교육적 측면에서 정당한가? 35

    와 결합되어 있는 지식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이다. 이 지식은 발달적 지식 그 자체와

    는 구분된다. 이러한 유아교육에서의 교과지식의 일부는 발달심리의 연구 성과와 학

    문 분야 또는 교과학의 연구 성과로 교사가 습득하게 되겠지만, 지식의 대부분은 교실

    에서의 아동관찰을 통한 교과 실천지로 습득되어야 할 것들이다. 따라서 유아교사는

    자신이 고안한 활동이나 교재교구 안으로 유아를 데려다 놓아야 하는 임무를 띠어서

    는 안된다. 오히려 유아의 일상 속으로 함께 들어가 그 맥락을 타고 일상에 속에 담긴

    교과지식 요소를 읽어내고 그 고리를 매개로 유아들의 일상에 풍요로움을 더하고 교

    과지식에 매몰되지 않는 선교과적 탐구활동을 함께 해 유아들의 선경험이라는 항해에

    닻을 거두고 돛을 올리는 존재이다. 이러한 항해과정에서 구성되는 유아들의 지식은

    유아들의 밖에서 거대하게 감시하고 억압하는 도달점으로서의 교과지식과는 거리가

    멀다. 유아들만의 선경험의 풋풋함이 살아 있다. 유아들의 일상에서 교사가 읽어낸 교

    과지식의 고리가 유아들의 경험이 분산되고 표피적이며 단편적인 상태로 머물지 않도

    록 몰입, 심층, 종합, 탄생으로 지원된 지식이다. 유아 교실에서 유아들이 구성하는 지

    식은 이 풋풋함과 탈단편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자 결과이다.

    영유아보육교육에서의 교육보육과정이란 유아의 생활과 분리되어 실체로 존재하는

    도달점 목표로서의 가르쳐져야 할 내용을 지칭하는 관점을 넘어섬으로서 비로소 그

    의미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유아의 생활세계인 일상을 살아가는 유아 안에 내재해 있

    고, 놀이로 생활하는 가운데 그것을 읽고 확장해 준 교사와 함께 구성해 가는 경험으

    로서 유아교육과정의 의미 또한 과정과 결과 중심으로 재진술될 필요성에 대한 문제

    제기(Pinar, 1975)에 부응할 수 있다. 교육보육과정의 의미를 명사적으로 이해함으로

    써 가시적이고 공적인 설계, 계열화, 실행, 평가를 강조하고 개인의 경험을 간과하게

    된 문제이다. 과거지향적인 지식으로서의 권위를 갖는 고정된 교육보육과정이 아니라

    유아가 지식을 구성해 나가는 생활사태 속에서 유동적으로 살아 있어서 교사를 포함

    해 유아들의 적극적인 해석이 가능한 텍스트로서의 교육보육과정으로서 재개념화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 36 한국 유아교육의 행복찾기 시리즈 Ⅶ : 누리과정, 아이와 교사를 행복하게 하는가?

    V. 나오며

    영유아보육교육에서의 교과 중심 학습을 배척하면서도 교육보육과정의 조직과 놀

    이 활동 수업이라는 전통적 유아교육 접근에 천착하게 되는 배경에는 학문적인 기준

    에 의한 교과지식의 위계와 수준에 대한 오래된 관념 및 공교육제도 안으로의 편입을

    위한 유아교육의 위상의 확립이라는 강박관념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는 난점이 있

    다. 영유아보육교육 또한 이 위계의 교과지식의 수준이라는 형태로 어딘가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어야 하고 공적 자금의 지원과 국가의 관리와 통제 하에서 그 가치를 인

    정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근대교육의 제도적 망령이 영유아보육교육계를 사로잡고 있

    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때이다. 유아교육의 모델로부터 벗어나 영유아보육교육이

    지니는 본질적인 특성과 역할을 타진하고 초중등교육과 구분되는 모종의 의의를 찾아

    가야 한다. 영유아보육교육이 초등교육을 준비하기 위한 초등 교과지식의 기초를 다

    루는 준비교육이 아니라면, 교과지식과 교육보육과정을 바라볼 때도 유․초연계의 방

    향을 모색할 때에도 유아라는 존재의 관점에서 재조명이 필요해 보인다. 누리과정의

    의미와 누리과정의 수업의 의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본고에서는 관리와 통제 그리고 의무교육과 준비라는 패러다임으로 치닫고 있는 누

    리과정에서의 학습을 위한 놀이의 개념을 되돌아보고 영유아보육교육에서는 수업의

    의미를 넘어 ‘일상영역’과 ‘선(교과)경험’, 그리고 ‘구체적인 교수 장면에서의 유아가

    가지고 들어오는 지식’의 관계 속에서 재해석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영유아보육교육

    과정은 유아의 놀이라는 일상의 유동적 흐름 가운데서 유아에게 내재한 학습의 요소

    를 찾아내고 선결정된 교육과정 지식의 구조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몰입하고 심

    화되어 가는 경험의 과정과 결과이다. 영유아보육교육에서의 교육보육과정이란 교사

    의 도식으로 존재하면서 교사가 그 요소를 유아에게서 찾아내어 경험의 고리를 연계

    해 나가는 소재이자 동력이다. 이렇게 보면, 영유아보육교육의 특성으로서의 발현적

    교육보육과정이라는 현장의 실제에 있어 유아의 흥미와 경험을 읽어내도록 안내받고

    유아와 함께 탐구하는 지식 구성의 동반자가 되도록 길러진 유아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