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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 김유신묘원숭이 만봉筆한국문화에 나타난 원숭이((申猿)의 상징성 - 갑신년 지킴이, 재주꾼 원숭이 - 천진기(국립민속박물관) 원숭이해는 임신(壬申)갑신(甲申)병신(丙 申)무신(戊申)경신(庚申) 다섯 번으로, 12지의 여덟 번째 동물인 원숭이(申)는 시각으 로는 오후 3시에서 5시, 방향으로는 서남서, 달 (月)로는 음력 7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며 시간 신이다. 잔나비, 즉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영장동물로 갖가지의 만능 재주꾼이고, 자식과 부부지간의 극진한 사랑은 사람을 빰칠 정도로 애정이 섬세한 동물이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불 교를 믿는 몇몇 민족을 제하고는, 원숭이를 ‘재수 없는 동물’(The emblem of ugliness and trickery)로 기피하면서도 사기(邪氣)를 물 리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원숭이가 좋은 건강성공수호(보호) 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1) 원숭이는 동물 가운데서 가장 영리하고 재주있는 동물로 꼽히지만, 너무 사람을 많 이 닮은 모습간사스러운 흉내 등으로 오히려 재수없는 동물로 기피한다. 띠를 말할 때 ‘원숭이띠’라고 말하기보다는 ‘잔나비띠’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같은 속설 때문이 다. 우선 원숭이가 우리 민족에게 비친 대체적인 모습은 구비전승에서는 꾀많고 재주있 고 흉내 잘 내는 장난꾸러기로 이야기된다. 도자기나 회화에서는 모성애(母性愛)를 강조하고, 스님을 보좌하는 모습, 천도봉숭아를 들고 있는 장수의 상징으로 많이 표 현되고 있다. 1) 문화적 표상의 역사적 전개 선사시대에는 우리나라에도 원숭이가 살았다. 선사시대 유적에서 원숭이 뼈가 발굴 된 예가 있어 일정한 기간 일시적이긴 하지만, 원숭이가 서식한 사실이 입증되었다. 기상조건이 오늘과 달랐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평양시 상원군 검은 모루동굴, 충북 청원군 두루봉과 단양 구낭굴, 제천 점말동굴 등의 유적에서 원숭이 뼈가 화석 으로 발견되었다. 2) 1) C.A.S. Williams, 앞의책(1976), 277~278쪽. 2) 이융조, 한국 구석기 시대의 動物相韓國考古學報第19輯, 19~62쪽.

한국문화에 나타난 원숭이((申 猿)의 상징성 · 원숭이 두 마리가 소나무 가지에 앉아서 한 마리는 손에 천도복숭아를 들고 있고, 한 마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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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숭이 김유신묘」 「원숭이 만봉筆」

    한국문화에 나타난 원숭이((申․猿)의 상징성- 갑신년 지킴이, 재주꾼 원숭이 -

    천진기(국립민속박물관)

    원숭이해는 임신(壬申)․갑신(甲申)․병신(丙申)․무신(戊申)․경신(庚申) 등 다섯 번으로, 12지의 여덟 번째 동물인 원숭이(申)는 시각으

    로는 오후 3시에서 5시, 방향으로는 서남서, 달

    (月)로는 음력 7월에 해당하는 방위신이며 시간

    신이다.

    잔나비, 즉 원숭이는 인간과 가장 많이 닮은

    영장동물로 갖가지의 만능 재주꾼이고, 자식과

    부부지간의 극진한 사랑은 사람을 빰칠 정도로

    애정이 섬세한 동물이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불

    교를 믿는 몇몇 민족을 제하고는, 원숭이를 ‘재수

    없는 동물’(The emblem of ugliness and trickery)로 기피하면서도 사기(邪氣)를 물

    리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는 원숭이가 좋은 건강․성공․수호(보호)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1)

    원숭이는 동물 가운데서 가장 영리하고 재주있는 동물로 꼽히지만, 너무 사람을 많

    이 닮은 모습․간사스러운 흉내 등으로 오히려 재수없는 동물로 기피한다. 띠를 말할때 ‘원숭이띠’라고 말하기보다는 ‘잔나비띠’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같은 속설 때문이

    다.

    우선 원숭이가 우리 민족에게 비친 대체적인 모습은 구비전승에서는 꾀많고 재주있

    고 흉내 잘 내는 장난꾸러기로 이야기된다. 도자기나 회화에서는 모성애(母性愛)를

    강조하고, 스님을 보좌하는 모습, 천도봉숭아를 들고 있는 장수의 상징으로 많이 표

    현되고 있다.

    1) 문화적 표상의 역사적 전개

    선사시대에는 우리나라에도 원숭이가 살았다. 선사시대 유적에서 원숭이 뼈가 발굴

    된 예가 있어 일정한 기간 일시적이긴 하지만, 원숭이가 서식한 사실이 입증되었다.

    기상조건이 오늘과 달랐기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평양시 상원군 검은 모루동굴,

    충북 청원군 두루봉과 단양 구낭굴, 제천 점말동굴 등의 유적에서 원숭이 뼈가 화석

    으로 발견되었다.2)

    1) C.A.S. Williams, 앞의책(1976), 277~278쪽.

    2) 이융조, 「한국 구석기 시대의 動物相」 ꡔ韓國考古學報ꡕ 第19輯, 19~62쪽.

  • 「원숭이 턱뼈, 구석기, 단양구낭굴」

    「원숭이 턱뼈 청원두루봉동굴 구석기」

    「원숭이 신라토우 국박소장」

    문헌기록에는 『삼국유사』 이차돈 순교기사에 원숭이의 언급이 보인다. 법흥왕 14

    년(527 A.D.)에 이차돈이 처형된 뒤에 나타난 자연이변을 묘사한 기사에 “곧은 나

    무가 부려지고 원숭이가 떼지어 울었다”라는 기록이 있다.3)

    (1) 토우와 원숭이

    토우는 글자 그대로 토제(土製)의 인형을 말한다. 고대의 토우는 장난감으로 만들

    어진 것과 주술적인 우상으로서의 성격을 가진 것, 무덤에 넣기 위한 주장 부장품(副

    葬品)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신라의 토우 가운데 원숭이의 예가 있다.

    바구니인지 나무둥치이지 확실치 않은 것 위

    에 원숭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 4점 있

    다. 토기 파편에 붙어있는 원숭이는 얼굴과

    몸체를 사실적으로 정확히 표현하여 놀랍다.

    또다른 예로는 구창덕궁박물관(舊昌德宮博

    物館)에서 발견되었다는 가야금 타는 원숭이

    가 있다. 신라토기에 붙여 있던 장식으로 가

    야금을 타는 모습을 하고 있다.4)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 전시실에도 원숭이 토우가 전시되어 있다. 이 원숭이

    토우는 19세기초 오오타니(大谷光瑞, 1876-1948) 탐험대의 중앙아시아 수집품이

    다.5) 토제 원숭이는 코탄(Kohotan)지역에서 출토된 테라코타 상이다. 중앙아시아의

    소동물상(小動物像)의 테라코타는 코탄지방에서 특히 많이 출토되고 있는데 표현된

    대상도 인간은 물론 각종 동물상 또는 기물, 장식 등 다양하다. 그 가운데서 가장 흥

    미로운 것은 이 지방에 서식하지 않는 원숭이를 의인화하여 인간의 생활상을 재미있

    게 풍자한 점이다. 이들 원숭이는 극히 작은 상임에도 불구하고 정교하게 제작되었으

    3) ꡔ三國遺事ꡕ 第二 原宗興法 胃犬 滅身 條 “.獄吏斬之 白乳湧出一丈…直木先折 遠 群鳴

    4) ꡔ人間文化財ꡕ, 어문각, 26쪽.

    5) 민병훈, 「중앙아시아 탐험사 실크로드 미술」 ꡔ국립중앙박물관도록, 1991, 49~51쪽.

  • 「원숭이像

    성덕대왕능호석 높이 116.0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원숭이상(능지탑)」

    「원숭이상 방형분

    통일신라 경주」

    「방형분 전경

    통일신라 경주」

    「능지탑 통일신라

    경주」

    며, 성기(性器)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상도 보인다. 원숭이를 주제로 한 조각은 인도

    지방에서도 발견되는데, 그 기원은 인도 토속신앙(Ramayana)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

    측된다. 이러한 신앙이 고대 교통로를 통해 코탄 지방에 전래되었다. 이 믿음이 다시

    서역일대로 확산되면서 중국으로도 전파되어 『서유기』의 배경이 되었으며, 신라 토

    우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추측된다. 이러한 테라코타 원

    숭이 상은 부적(符籍)으로 휴대하거나 부장품(副葬用) 또

    는 각종용기의 장식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여러 가지 면에

    서 신라토우와도 일맥상통한다.

    원숭이가 십이지와 관련된 예는 흔하게 볼 수 있다. 통

    일신라 시대부터 등장하는 원숭이의 상이나 조각은 무덤의

    호석으로 두상은 동물의 측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신

    체는 사람의 모습으로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들이다. 그외

    에 탑상(塔像)이나 부도(浮屠), 불구(佛具)등에도 나타난

    다. 성덕대왕 12지상 가운데, 원숭이가 가장 완벽하게 남

    아있다. 이 원숭이상은 머리의 표현이 원숭이의 특징을 잘

    묘사하고 있고, 몸체는 쇠 갑옷을 입었다. 오른손은 무릎

    사이에 긴 대도(大刀)를 잡았고 왼손은 허리춤에 올린 당당한 자세이며, 양쪽 어깨에

    사천왕상(四天王像)에서 볼 수 있는 귀면(鬼面)을 나타냈다. 발 밑의 네모난 축이 마

    련되어 있어서 땅에 꽂아 고정시킬 수 있게 되어있다.

  • 「원숭이상 괘릉(부분)」

    「괘릉전경 통일신라

    경주」 「원숭이상 탑(부분)」

    「개심사지탑

    통일신라 예천」「원숭이상

    탑(부분)」

    「원원사지탑 통일신라

    경주」

  • 「靑磁원숭이形硯滴 고려

    12세기, 높이 10.0

    간송미술관소장」

    「靑磁猿形印章, 고려 12세기,

    최고높이4.4

    호림박물관소장」

    「靑磁猿形印章 고려 12세기 최고높이 4.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2) 도자기 속의 원숭이

    청자․청화백자․백자에는 원숭이가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원숭이들은 도장의 꼭지, 서체(緖締 ;

    주머니 따위를 묶을 때 풀려지지 않게 주머니 끈을 고

    정하는 장식), 소호(小壺 ; 작은 항아리), 수적(水滴),

    연적(硯滴), 장식품(裝飾品) 등에서는 기형 자체가 원

    숭이 형상을 띠고 있다. 큰항아리․탑(榻 ; 걸상) 등에서는 장식문양으로 포도문(葡萄文)과 함께 원숭이의

    나무타기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고려시대의 인장(印章)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동물

    형 꼭지(뉴)의 발달인데,6) 그 도장의 꼭지 가운데 원

    숭이형이 많다. 그 재질은 청자와 청동이 그 주류를 이

    루고 있다.

    청자원형인(靑磁猿形印)7)은 원숭이가 양쪽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마주잡은 채 위로 치켜들고 있는 형상의

    방형 인장이다. 다른 하나는 한쪽 손으로 턱을 괴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원숭이 형상의 원형 인장이다.

    국립중앙박물관소장의 원형인장(猿形印章)8)도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형(圓形) 또는 방형(方形)의

    인장으로 그 꼭지의 원숭이 모양은 쭈그리고 앉아

    있는 형상이나, 긴 손으로 얼굴을 만지거나, 두 손

    을 마주잡은 형상을 하고 있다. 원숭이 형상 꼭지에

    는 끈을 달 수 있는 구멍이 있어 그 당시(고려)에는

    인장(印章)을 허리에 인수(印綬)로 꿰어차고 다녔음

    을 알 수 있다.

    원숭이의 형상을 충실히 표현한 원숭이

    의 모자상이 청자서체(靑磁緖締), 연적,

    장식품에서 많이 보인다. 마다가스카르섬

    에 사는 링테일여우원숭이 집단에서 새끼

    가 태어나면 온 집단이 큰 흥분상태가 일어

    나고 너도 나도 다투어 새끼를 안아 혀로

    핥아 주려고 한다. 암수 친부모가 새끼를

    돌보며 집단이 이동할 때에는 새끼는 보통

    어미의 배에 매달려 간다. 생후 2주일쯤 되

    6) 金洋東, 「韓國 印章의 歷史」 ꡔ韓國의 印章ꡕ, 국립민속박물관, 1987, 192쪽.

    7) 높이 4.4, 3.8 넓이 2.7, 3.4, 12세기, 호림미술관 소장

    8)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번호 덕2968, 덕4418 ,덕4942은 靑磁猿形印이고, 덕1305, 덕4487은 靑銅

    猿形印이다.

  • 「靑磁母子猿形飾 고려

    높이 2.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靑磁堆花猿形小壺, 고려

    12세기 높이 3.6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자상감수하원문금채편병 ,

    고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면 어미 등에 올라 탈 수 있고, 어미가 먹이를 찾

    아 나무 위에서 건너뛰며 돌아다녀도, 땅 위에

    바쁘게 쏘다녀도 등에 단단히 매달려 있다.9) 리

    서스 원숭이의 애무형태는 털(fur)쓰다듬기, 털

    긁어내기(털에 붙은 잡물질을 제거), 털에 붙은

    흰물질 집어먹기(염분섭취) 등의 세 가지로 나타

    난다. 원숭이 간의 애무 빈도와 시간은 성원간의

    친밀도를 나타내며, 어미와 새끼의 상호 간의 유

    대는 다른 어미보다 친어미와 새끼 간이 더 강하게 작용한

    다고 한다.10) 이러한 원숭이의 모자 간의 유대의 정을 청

    자모자상(靑磁母子像)으로 표현하고 있다.

    청자원형연적(靑磁猿形硯滴)11)은 어미 원숭이가 새끼 원

    숭이를 껴안은 형태이다. 어미의 머리 위에는 직경 1.0cm

    정도의 원형 입수구가, 새끼의 머리 위에는 직경 0.3cm 크

    기의 원형 주구가 각각 뚫려 있다. 두 원숭이의 손과 발은

    양각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청자모자원형서체(靑磁母子猿形緖締)12)는 어미 원숭이

    가 새끼를 품에 안고 있는 형상으로, 어미 원숭이 머

    리에서 바닥까지 구멍이 뚫려 있어 끈을 넣어 주머니

    를 맬 수 있게 되어 있다. 창자가 끊어질 듯한 단장

    (斷腸)의 슬픔이 바로 원숭이에서 시작된다.

    중국 남북조시대 진(晉)의 환온(桓溫)이 초(楚)를 치기

    위해 배에 군사를 나누어 싣고 양자강 중류의 협곡인 삼

    협을 통과할 때였다. 환온의 부하 하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서 배에 실었다. 어미 원숭이가 뒤따라왔으

    나 물 때문에 배에는 오르지 못하고 강가에서 울부짖었다.

    배가 출발하자 어미 원숭이는 강가의 험난한 벼랑에도 불

    구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배를 쫓아왔다. 배는 백 리쯤 나

    아간 뒤 강기슭에 닿았다. 어미 원숭이는 서슴없이 배에

    뛰어올랐으나 그대로 죽고 말았다. 그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 애통한 나머지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출전 : ꡔ세설신어(世說新語)ꡕ]

    그외에 문방구의 일종으로 물을 담을 수 있는 청자원숭이수적(靑磁猿水滴)13)과 청

    9) 한국일보 타임 라이프, ꡔ세계의 야생동물ꡕ, 1988.

    10) 金大坤, 「靈長類의 社會的 行態에 관한 人類學的 硏究」ꡔ人類學硏究ꡕ 제3집,영남대 문화인류

    학연구회, 1986, 76쪽.

    11) 높이 10, 12세기, 간송미술관 소장

    12) 높이 2.9, 넓이 2.0, 12세기. 국립박물관소장. 靑磁緖締 뿐만 아니라 石材로 된 遺物

    도 있다(덕3860)

  • 「원숭이와 사슴그림

    傳 尹儼 筆 견본채색

    178.5x109.7 국박소장」

    자퇴화원형소호(靑磁堆花猿形小壺)14)에서는 원숭이가 항아리를 두 손으로 들고 있거

    나 지고 있는 형상를 하고 있다.

    청화백자(靑華白磁), 백자(白磁)의 항아리나 걸상15)에서는 원숭이가 장식문양으로

    포도 넝쿨 사이로 다니거나 포도를 따먹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포도화는 조선조에 사

    군자와 더불어 문인화의 어엿한 쟝르로 부각되었으며, 17세기까지는 사군자가에 속

    한 난이나 국보다도 포도가 사대부들에 의해 더욱 즐겨 그려진 소재였다. 포도알의

    탐스런 외형은 풍요다산(豊饒多産)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16) 이런 포도화에는 동자

    (童子)․해수(海獸)․다람쥐․원숭이 등이 함께 나타나는데, 포도나무 가지 사이로 다니는 모습이나 포도를 따먹는 모양은 원숭이의 생태와 걸맞은 표현이다. 청자는 아

    니지만 벼루17)의 문양에서도 포도와 원숭이가 함께 나타나는데 그 모습은 앞의 경우

    와 같다.

    지금까지 도자기에 표현된 원숭이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인장의 꼭지에 표현된 청

    자 원숭이는 원숭이의 동작이나 행위를 아주 적나라하게 묘사를 했고, 청자연적이나

    서체의 모자상은 원숭이의 애절한 모정을 그렸다. 포도문의 원숭이는 숲 속의 원숭이

    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나타내면서 풍요다산을 기원하는 내용이다. 풍요다산을 의미

    하는 포도알을 원숭이가 따먹는다는 것은 바로 부귀다산의 상징을 표현한 것이다.

    (3) 그림 속의 원숭이

    그림 속의 원숭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

    나는 십장생(十長生)들과 함께 등장하면서 천도봉숭아

    를 들고 있는 장수의 상징인 원숭이, 또 다른 하나는 불

    교설화와 중국 명대(明代)의 소설인 『서유기(西遊

    記)』와 관계되어 스님을 보좌하는 원숭이, 마지막은 자

    연 숲 속에 사는 원숭이 등이다.

    회화에 등장하는 원숭이를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하

    고 있는 회화를 위주로 그 예를 살펴보겠다. 장수의 상

    징인 원숭이는 전(傳) 윤암[尹儼(松岩)] 필의 원록도

    (猿鹿圖)이다.(국박유물번호 덕2220) 이 그림은 견본담

    체화(絹本淡彩畵)로 십장생인 소나무 바위 사슴과 함께

    원숭이 두 마리가 소나무 가지에 앉아서 한 마리는 손에

    천도복숭아를 들고 있고, 한 마리는 천도복숭아를 먹고

    1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덕991, 높이 7.1.

    14) 국립중앙박물관소장, 덕 1070, 높이 3.6, 12세기.

    1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유물로는 白磁鐵畵葡萄文壺(덕2029), 靑華白磁葡萄猿文壺(덕3618), 靑畵

    白磁透刻榻(덕3339) 등이 있다.

    16) 李源福, 「朝鮮白磁에 나타난 葡萄畵」ꡔ美術資料 39ꡕ, 1987, 1~25쪽.

    1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유물로는 渭原端溪硯(신 2597, 신2885) 등이 있다.

  • 「산수영모10첩

    병풍(원숭이)

    장승업筆,

    견본담채

    148.5x35

    서울대박물관」

    「송하노송도

    장승업筆 견본

    담채, 136x35.1

    호암미술관」

    있는 그림이다.

    장수를 상징하는 원숭이는 필자미상인 그림이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유물번

    호 본5182). 지본체색(紙本彩色)의 그림으로 십장생인 바위․소나무․폭포․천도복숭아와 함께 원숭이 두 가족이 그려져 있다. 한 가족은 천도복숭아 나무 위와 아래

    땅 위에서 북숭아를 따고 있거나 들고 있다. 나무에 올라간 원숭이는 한 마리는 다른

    한 마리의 등을 손으로 잡고 있으며, 땅 위에 있는 원숭이 어미는 머리 위의 새끼를

    두 마리 올리고 다른 새끼 원숭이가 봉숭아를 머리 위에 원숭이에게 건네 주는 모습

    이다. 또 한 가족의 원숭이는 소나무 아래 폭포 옆에서

    천도 봉숭아를 사이에 두고 정답게 노는 어미 원숭이와

    새끼 두 마리이다.

    천도복숭아는 열매를 한 번 맺는데 3,000년이 걸리

    고, 그 열매가 익는데 다시 300년이 걸리는 과실로 장

    수의 상징이다. 이런 천도를 먹거나 손에 잡은 것은 바

    로 장수의 상징이며, 원숭이 가족이나 한 원숭이가 다

    른 원숭이 등을 잡고 있는 것은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

    는 의미이다.

    불교 설화나 서유기와 관련되어 스님의 시중을 드는

    원숭이 그림이 있다. 석희안(釋希安, 雪峰)이 그린 노

    승원도(老僧猿圖, 국박 유물번호 덕2528 29-13)는 견본

    담채(絹本淡彩)로 나무 아래에 스님이 앉아 있고 원숭

    이 한 마리가 손에 천도를 스님에게 바치는 그림이다.

    또 다른 원숭이 그림(국박 유물번호 본2514)에서는 노

    장의 지팡이를 원숭이가 잡고 있고 뒤에는 동자승이 호

    로병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자연 상태의 생활을 그리고 있는 그림은 보통 나무가

    지를 잡고 있거나 나무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도자기 포도원문(葡萄猿

    文)과 맥을 같이 한다. 유물로는 김익주(金翊冑, 鏡岩)가 그린 노원도(老猿圖, 국박 유물번호 덕2097 81-51)와 필자 미상의 원도(猿圖, 국박 유물번호

    덕5683) 등이 있다.그림이나 문방사우 등에 원숭이를 그리는 이유가 있다. 원숭이

    “후(猴)”자는 제후 “후(侯)”자와 발음이 같아 원숭이는 곧 재후, 높은 벼슬을 얻는다

    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조선시대까지 높은 직위는 부와 명예를 모두 포괄하는 인생

    의 지복(至福)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원숭이는 장수의 상징, 자손의 번창기원, 높은 벼슬, 스님의 보좌, 자연

    생활 모습 등의 의미를 그리고 있다.

  • 「群猿遊戱(원숭이), 정유승筆 지본담채

    47.3x29.5 간송미술관소장」

    「천도복숭아를 따먹는 원숭이 조선후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5182)」

    「葡萄文日月벼루(원숭이)

    조선 26.3x17.2 개인소장」

    2) 생태학적 모형

    (1) 영장류(靈長類)에 대한 형질인류학적 연구동향

    원숭이(monkey)와 인원(人猿, ape)을 연구하는 영장류학은 최근 20여 년 동안 급속

    히 발전했고, 동물학, .병리학, .생태학, .심리학, .인류학에서 많은 참여가 있어 왔

    다. 인류학에서 영장류를 연구하는 주된 목적은 인류와 문

    화의 기원 및 진화과정을 규명하는데 있다. 이를 규명하기

    위한 영장류의 진화연구에서 영장류 형태(morphology)의

    변화는 오늘날 인간의 생물학적 생태로 되었고, 영장류 행

    태(behavior)의 변화는 오늘날 인간문화에 이르게 되었음

    이 밝혀졌다.18) 영장류에 대한 모든 연구자들의 관심은

    침팬지와 고릴라 등이 동물계에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

    척이기 때문에 영장류의 진화적 역사를 복원하여 비교방법

    을 사용하여 인류와 그 문화의 기원과 진화과정에 관한 연

    구에 새로운 국면을 밝히는데 있다. 영장류의 진화에 대한

    연구에서 영장류의 형태 변화가 바로 오늘날 인간의 생물

    학적 상태이고, 이들의 행태 변화가 바로 오늘날의 인간

    문화에 이르게 되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영장류의 형태적

    변화를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생물학적인 이해를 증진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행태연구를 통해서 인간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켜 보

    다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19)

    특히 영장류의 행태연구는 인간문화의 생성 및 진화과정을 이해하는 선행요건이 되

    는 것이다. 영장류의 행태를 규명함으로써 사람과 원숭이 및 인원의 공동조상으로 부

    터 인간 특유의 생활양식을 이루기까지의 발전과정을 재건할 수 있다20)는 것이다.21)

    18) 權彛九, ꡔ形質人類學 및 先史考古學ꡕ, 탐구당, 1981a, 140~141쪽.

    19) 권이구, 앞의 책(1981 a), 140~141쪽.

  • 「은입사담배함, 조선후기,

    한양대학교박물관」

    영장류학자들은 인간과 가장 닮은 영장류를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진화관계를 연구

    하는 형질인류학자들이다. 영장류학자들은 최초의 영

    장류가 나타났던 때부터 인간 최초의 조상까지 진화과

    정에 주력을 기울인다. 최근 30년 동안에는 오늘날의

    인간으로 진화하는데 있어서 행태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감안하여 자연상태에서 서식하는 침팬지, 고릴

    라, 비비(balboon)같은 영장류들의 행태를 연구하고

    있다. 영장류학자들은 인간에게만 독특하게 있다고 믿

    어졌던 여러 가지 양상들, 침팬지도 기호와 언어를 쓰

    며 사회집단에서 협동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

    주었다22)

    영장류의 행태연구는 일반적으로 지능과 사회적 행태 혹은 개인적 행태와 사회적

    행태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사회적 행태는 먹이에 대한 우선권을 포함한 우세관

    계(優勢關係, dominance relationship), 어미와 새끼의 유대, 애무, 놀이, 영역성,

    학습능력 등 여러 측면에서 연구되었다.23)

    영장류의 사회적 행태는 크게 다섯 가지 주제로 묶을 수가 있다. 즉, 수컷은 암컷

    보다, 어미는 새끼보다, 나이 많은 것이 적은 것보다 우세한 위계질서, 영장류 사회

    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유대 중의 하나인 어미와 새끼의 유대, 암컷과 수컷의 유

    대, 연령에 따른 역할분담, 그리고 성에 따른 역할분담 등이 그것이다.24)

    (2) 원숭이의 생태(生態)와 습성(習性)

    원숭이(Monkeys)란 오늘날 신구 양대륙에 걸쳐 퍼져 있는 수많은 영장류들을 총칭

    하는 것으로 몸무게 약 80g의 아기 여우원숭이에서 200kg이 넘는 거구의 고릴라까지

    그 종류는 굉장히 많다.

    우리가 영장류 목(目)을 정의하는데 이용되는 영장류의 형태학적 유형을 보면 다음

    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영장류 유형

    20) Devore, 1964, 「The evolution of social life」ꡔIn Horizons of Anthropologyꡕ S. Tax, ed.

    Chicago: Aldine Publishing Co. pp25-26(金大坤, 1986 재인용, 86쪽)

    21) 金大坤, 앞의글(1986), 69쪽.

    22) 權彛九, ꡔ현대인류학ꡕ, 탐구당, 1981, 44~46쪽.

    23) 권이구, 앞의책(1981), 141쪽, 김대곤, 앞의글, 70쪽.

    24) 권이구, 앞의책(1981), 143~146쪽.

  • 원시적이고 일반화된 해부학적 구조

    직립․반직립 자세와 이동양상

    전지(前肢)의 분리

    다섯 손․발가락

    납작하게 된 손톱

    털의 감소

    수한 털의 감소

    열대․아열대 기후

    체구와 체중이 매우 다양하다

    후각기능감퇴

    주둥이 수축

    확장된 視界

    입체적 시야

    색깔을 감지할 수 있는 눈

    엄지와 다른 손․발가락의 대향

    강력한 쥠

    정확한 쥠

    상대적으로 복잡하게 된 뇌

    마치 시계추 메달린 것과 같은 수놈의 성

    2개의 가슴

    일산성(一産性) 혹은 단산성(單産性)

    하나의 자궁

    연중 내내 번식능력

    연장된 체질적, 정서적 의존

    이빨수의 감소와 치아 특수화의 결여

    잡식

    쇄골의 보유

    원숭이류의 진화 특징은 다음과 같다. 원숭이의 손발가락은 하나하나가 길고 자유

    자제로 움직인다. 대향성이고 평조형이어서 쥐고 잡는데 유리하다. 지문과 장문은 물

    체를 잡은 손이 미끄러지지 않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그 가는 손금은 촉각이 예민하여

    물체의 성상을 정확하게 분별한다. 또 상박(上膊)은 그대로 두고 전박 만을 180도로

    뒤집을 수 있다. 어깨 관절이 부드러운데다 쇄골의 존재로 팔을 모든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큰 운동 폭을 가지고 있다. 발로 가지를 잡고 체중을 지탱할 수 있게 된 원숭

    이는 다리에 중심을 싣고 앉을 수 있어 손이 해방된다. 다른 네 발 짐승이 엄두도 못

    내는 손재간이란 어마어마한 능력 차이를 가지고 있다.

    눈이 얼굴의 양쪽에서 앞쪽으로 이행하여서 양안시(兩眼視)할 수 있는 눈으로 발달

    시켜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눈은 안륜(眼輪)에 의하여 안와(眼窩)가 형성되어 있

    다. 여느 동물들이 전색맹에 가까워 흑백의 세계에 살지만 원숭이는 색채감각이 뛰어

    나 칼라의 세계에 살고 있다. 사물을 입체화시켜 볼 뿐만 아니라 거리가늠도 정확하

    다.

    원숭이는 뇌가 발달되고 지능이 높다. 다양한 행동과 심리변화는 그때그때의 단순

    한 반사적인 것이 아니고 고도의 사고의 결과이다. 대형의 유인원들은 사람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

    원숭이는 생각하는 동물이다. 뛰어난 기억력과 풍부한 경험을 토대로 고도의 지적

    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그러나 반면에 원숭이짓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치하고

    아둔하다. 남아메리카 인디오들은 옥수수 항아리로 원숭이를 잡는다. 목이 가는 항아

    리에 옥수수를 담아 두면 원숭이가 손을 넣어 옥수수를 한 주먹 쥐고 빼자니 주먹이

    걸린다. 주먹을 펴 옥수수를 놓을 줄 모른다.

    원숭이는 대개 리더가 통제하는 사회적 집단을 이룬다. 작게는 가족단위, 크게는

    수십 마리로 구성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이들에게 고도의 의사소통 수단이 있기

  • 때문이다. 특히 유인원일수록 구사하는 수단은 다양하다. 고릴라는 22종의 음성을 내

    고 하나의 소리는 몇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풍부한 표정과 손

    발 짓을 동원하는 제스처에 의한 방법이 발달되어 있다.25)

    새끼 낳은 수가 감소되면서 임신기간이 길어지며, 체축(體軸)의 직립화가 점차로

    확립되고 수명도 길어졌다. 사회적인 행태와 집단구조가 복잡화 된다. 원숭이류에는

    색소나 혈액에 따라 얼굴 등이 붉은색이나 검은색이 있다.

    이러한 유형적 특징과 진화의 특징들을 지니면서 과 같은 생태를 가지고 있다.

    원숭이의 생태와 습성

    25) 오창영, 「아마추어 원숭이학」 ꡔ원숭이의 생태와 관련민속ꡕ,국립민속박물관 제21회 학술발표

    회, 1991. 12. 26.

  • 종류(10과 50여 속 200여 종)

    반원류(半猿類)

    원원류(原猿類)유인원류(類人猿類, 眞猿類)

    튜파이류

    안경원숭이류

    여우원숭이류

    로리스류

    꼬리감는 원숭이

    (광비류,

    신세계원숭이)

    긴꼬리원숭이

    (구세계원숭이)유인원(類人猿)

    분포

    지역

    - 인도에서 동남아시아에

    걸친 대륙부(튜파이류)

    - 동남아시아의 여러 섬

    (튜파이 안경원숭이)

    -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

    이남(로리스)

    마다가스카르섬(여우원

    숭이)

    멕시코 남부

    에서 남아메리

    카의 아마존을

    중심으로 브라질

    남단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

    리카, 인도, 동

    남아시아, 중국

    남부, 일본

    (적설지대)

    아프리카와 동남

    아시아 열대

    활동

    시간

    야행성(안경원숭이, 아

    이아이원숭이, 로리스

    전부, 튜파이원숭이, 인

    드리개원숭이 일부)

    단독생활자.

    주행성(야행성인 것은 밤원숭이 뿐임)

    집단생활

    활동

    장소

    수상생활(수가 적고 성숙

    한 수컷 한마리 밖에 없는

    무리)

    수상생활지상생활이 나타남(많은 암수를

    거느리고 있는 무리)

    식성곤충류 편식자(야행성)

    나뭇잎 편식자(주행성식물성 편식자 잡식

    긴판원숭이(잡식)

    우랑우탄(과일)

    고릴라(완전채식)

    침팬지(잡식)

    이동

    - 가장 하등힌 여우원숭이나 로리스 일부는 수면이나 휴식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듬.

    - 원숭이는 일반적으로 이동생활을 하는데 개체 또는 무리의 이동범위는 거의

    정해져 있으며 세력권을 가지고 있다.

    - 우랑우탄 고릴라 침팬지만이 수면과 휴식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듬.

  • 3) 민속학적 모형

    (1) 꾀많은 원숭이 이야기

    예로부터 “동국무원(東國無猿)”26)이라 하여 우리나라에는 원숭이가 살지 않아 원

    숭이에 얽힌 이야기가 그리 흔치 않다. 원숭이가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 왔는지에 관

    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다만 조선 초기에 중국이나 일본에서 선물용으로 들어온 듯

    하다는 가설만 있다. 그러나 원숭이 상(像)이나 조각 그림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무덤

    의 호석․부도․고분벽화․석관 등에 보인다. 이들 유물은 모두 불교가 전래된 이후의 것들이다.

    동양의 다른 민족 특히 불교국가에서는 원숭이가 이야기에 자주 등장한다. 고대 인도의 서

    사시 「라마야나(The Ramayana)」에서 원숭이 군대의 영웅적인 지도자인 신통력을 가진

    원숭이 하누만(Hanuman)은 마왕(魔王)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긴 라마(Rama)신을 도와

    준다. 원숭이는 선한 수호신으로 인식되고, 라마에 대한 충성심 등으로 인도에서는 널리 숭

    배된다. 타일랜드나 스리랑카 같은 불교국가에서 원숭이는 신격으로 신앙된다.

    일본에서도 많은 사찰에서 원숭이상을 세우고 도시의 이름도 원숭이를 본따 부른다. 일본

    원숭이는 인도의 붉은 털원숭이의 친척으로서, 일본의 그림․종교․설화․조각 등에 곧잘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원숭이는 동경근처에 있는 닛코(日光) 도쇼구(東照宮)의 산

    자루(三猿-세 마리 원숭이)이다. 도쇼구는 닛코(日光)에서 가장 유명한 곳으로 1616년에 죽

    은 에도막부의 초대장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이다. 도쇼구 오모태문을 들어서면 왼

    쪽에 마구간 건물이 있다. 이곳은 유일하게 색을 칠하지 않은 건물이다. 내부에는 말을 묶어

    두는 장소가 있는데 원숭이 조각으로 유명하다. 문 위에는 유명한 여덟개의 원숭이조각이

    있는데, 그 중의 세 마리 원숭이(三猿 - 산자루)가 가장 유명한데, 보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

    고, 듣지말라 라고 풍자하고 있다. 마구간에 원숭이 조각을 한 것은 원숭이가 말을 질병으로

    지켜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초에는 이에야스가 세키가

    하라 전쟁 때 사용했던 말을 신마(神馬)라고 하여 바쳤는데 그 후

    로도 장군들은 계속하여 말을 바쳤다고 한다. 도쿠가와는 당시에는

    이미 신격화 되어 말도 신마라고 하며 마구간도 신큐샤(神廐舍: 마

    구간)라고 부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원숭이가 재수없는 동물로 기피하는 동물이기에 띠

    를 말할 때 ‘원숭이띠’라고 하기 보다는 ‘잔나비띠’라고 표현하는게 점잖은 것처럼 여겼다.

    잔나비는 원래 신(申) 자의 풀이인 ‘납’이 어근이다. 여기에 작은 것을 의미하는 접두사 ‘잔’

    과 접미사 ‘이’가 붙어 ‘잔납이’가 연음으로 잔나비가 되었다. 원숭이는 순수한 우리말로 잔

    나비나 잰나비라고 부른다. 우리 말에 옛날에는(17세기까지도) '원숭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18세기에 와서 한자어인 '원성이'(원숭이 원, 원숭이 성)가 생겨났고 '성'의 음이 '승'으로

    변하여('어'가'으'로 발음되는 경우는 많지요. '어른'도 '으른'이라고 하지 않나요?) '원승이'

    가 되고 이것이 또 변하여서 오늘날'원숭이'가 된 것이다. 원숭이의 고유어는 '납'이다. 그

    래서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 '원'의 새김도 '납 원'이라고 했다. 여기에 '재다'(동작이 날쌔고

    재빠르다)의 형용사형 '잰'이 붙어서 '잰나비'가 되고 이것이 음운변화를 겪어서 '잔나비'가

    26) 魚叔權은 ꡔ稗官雜記ꡕ에서 우리나라(東國)에는 원숭이가 없으므로, 고금(古今) 시인들이 원숭

    이 소리를 표현한 것은 모두 틀린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된 것이다.

    송강 정철(鄭澈)의 가사 에 보이는 잔나비 노래가 아마 한국

    문학사에서 원숭이를 소재로 한 최초의 일일 것이다.

    “한잔 먹새근여.....곳 것거 산노코/...뉘 한잔 먹자 갖고/잰납이 파람 불제야....”

    그러나 이때만 해도 송강이 잰납이를 구경하고 읊은 가사가 아니고 다만 두보(杜

    甫)의 시에서 잰납이를 인용한 것 뿐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숭이의 울음소리는 구슬

    프다고 한다. 가슴을 들먹거리며 조용히 우는가 하면 설움에 북받치는지 대성통곡을

    해댄다.

    우리의 시정에서 소쩍새의 울음소리처럼 중국의 시정에서 원숭이 소리가 슬픔을 상

    징한다.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의 시 가운데 잔나비의 휘파람소리, 울음소리가 자주

    등장하는데 모두가 처량한 슬픔을 상징한다. 두보의 칠언율시(七言律詩) 「등고(登

    高)」의 한 구절에 다음의 구절이 있다.

    “風急天高猿嘯哀” (가을 바람이 소슬하게 불며 하늘은 밝아 한껏 드높고

    원숭이 울음소리는 처량하게 들리는데.....)

    이 시는 노경(老境)의 처량한 객심(客心)을 읊는 시이다. 중국에서는 흔하게 원숭

    이가 야생하였던 것으로 그 울음소리가 휘파람 부는 것 같다는 데서 ‘원소(猿嘯)’라

    는 말이 관용된다고 한다. 원숭이의 의리를 적은 기록도 있다.

    원숭이를 놀려 저자에서 걸식하는 거지가 있었다. 그는 원숭이를 매우 사랑하여 한번도 채

    찍을 든 일이 없었다. 저물어 돌아갈 때에 언제고 원숭이를 어깨에 얹는다. 몹시 피곤해 보여

    도 그렇게 하였다. 이후 거지는 병들어 죽게 되었다. 원숭이는 눈물을 흘리며 병자의 곁을 떠

    나지 않았다. 거지가 굶어 죽어서 화장을 하는데 원숭이는 사람들을 보고 우는 시늉을 하며 절

    을 굽신굽신하고 돈을 비는 것이었다. 사람들도 모두 불쌍히 여겼다. 장작불이 빨갛게 타올라

    거지의 시신이 반쯤 탔을 때 원숭이는 길게 슬픈 소리를 지르더니 그만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27)

    원숭이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없지만 원숭이못 이야기․원숭이재판 이야기․강화도 전등사 원숭이상에 관한 이야기 등이 있고, 문헌기록으로는 『택리지(擇里志)』에

    정유재란 때 명나라 군사들이 원숭이를 전술용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선조 때의 일이라고 한다. 이 원숭이못 부근에 한 포수가 살고 있었다. 그는 매일같이 이 산

    저 산으로 돌아다니며 사냥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나무 그늘 밑을 보니 이상한 짐승이 있는지라,

    자세히 보니 그것은 원숭이였다. 포수는 얼른 화살을 재어 당기어 잡고 보니 그것은 암놈이었고, 또

    그 옆에는 새끼 원숭이가 울고 있었다. 포수는 그 암놈 원숭이와 같이 새끼 원숭이를 망태기에 넣

    어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그 새끼 원숭이를 잘 길렀다.

    27) 『추재기이(秋齋紀異』(국립중앙도서관소장, 19세기후반) 弄猿乞者

  • 이렇게 오랫동안 기르는 사이에 원숭이도 자연히 주인을 알아보고 또 따르게 되었으며, 주인 포

    수의 젖먹이 어린아이를 안아도 주고 업어도 주는 것이었다.

    하루는 포수의 아내가 빨래하러 나간 사이 원숭이도 빨래하는 시늉을 낸다는 것이 솥에 가서 뜨

    거운 물을 떠다기 그 젖먹이 어린애에게 부었다. 그러자 어린애는 죽는 것 같이 자지러지게 울자 이

    것을 본 원숭이는 그만 놀라서 젖먹이애를 안고 어디로 인지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포수 내외가 집으로 돌아와서 보니, 어린애와 원숭이가 없어졌다. 그리하여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찾아보았으나 찾지를 못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산골짜기에서 무슨 이상한 소리가 나므로 그곳

    으로 가보니 그곳에는 맑은 못이 있고, 못 가에는 많은 원숭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포수의 어

    린아이를 안고 어르고 노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포수는 그곳으로 뛰어들어가서 어린아이를 덥썩

    안자, 무심코 놀던 원숭이들은 난데없는 습격에 그만 놀래어 모두 달아나 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것

    은 어린아이의 데인 상처는 나아 있었다. 포수 내외는 이상한 일이다 하고 그 못물을 자세히 살펴보

    고는 그 못물이 약수(藥水)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원숭이는 어린아이가 뜨거운 물에 데어 상처가 나자, 자기의 잘못을 알고 이 어린아이를 안고

    천연의 약수 못에 와서 그 물에 씻기어 낫게 하였던 것이다. 이런 이로 인하여 뒷날 그 못을 ‘원숭이

    못’이라 부른다고 한다(1936년 8월 부여군 부여면 李潤儀씨 談).28)

    이 이야기에서 원숭이는 인간의 흉내를 내지만 완전하지 못하고 어설픈 흉내를 내

    다가 사고를 내지만 자기의 잘못을 알고 약수를 찾아 치료를 한다. 그런데 원래 우리

    나라에 살지 않는 원숭이가 어찌하여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닌 여러 마리가 있었던 것

    일까? 여기에 대해 최상수 선생은 이중환(李重煥) 의 『택리지(擇里志)』 「팔도총론

    충청편(八道總論 忠淸道)」 편의 기록을 인용하여 정유재란 때 명나라 군사들이 가지

    고 와서 전술로써 왜군에게 사용했던 수백 마리의 원숭이가 달아나 충청도 산림지대

    여기저기에 나타났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29)

    『택리지(擇里志)』 「충청도(忠淸道)」편의 내용은 다음이다.30)

    선조 정유년에 왜적이 남원을 쳐부수고, 전주를 지나 북쪽으로 공주에 올라와서 군세가 매우 강

    성하였다. 그때 명나라 장수 형개는 총독이 되어 요동에 머물러 있었고, 경리인 양호가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새로 평양에 도착하였다. 연광정에서 방금 저녁밥을 먹는 중이었는데, 첩보가 날아들었다.

    호는 포 한 방으로 명령을 내리고 곧 말에 올라 남쪽으로 달리니, 기병이 급히 따르고 보군이 또 뒤

    를 따랐다. 평양에서 한양까지 7백 리 길을 하루 낮, 이틀밤 만에 달려왔다. 달단(몽고의 한 부족) 출

    신인 해생과 파귀 건귀 양등산 등 네 장수에게 철갑기병 4천 명과 말을 탄 원숭이 수백 마리를 거느

    리게 하여 소사하 다리 밑 들판이 끝나는 곳에 숨어 있게 하였다. 그 때에 왜적은 직산에서 북쪽으

    로 올라오는데 숲같이 보였다. 숨어 있는 곳에서 수백보 되는 곳에 왔을 때에 말을 탄 원숭이를 먼

    28) 崔常壽, 「원숭이못전설」 ꡔ韓國 民族傳說의 硏究ꡕ, 成文閣, 1988, 53~54쪽.

    29) 최상수, 앞의책(1986), 54~57쪽.

    30) ꡔ擇里志ꡕ, 朝鮮光文會, 大正 2年, 30쪽.

    “宣廟丁酉倭破楊元於南原從全州北上公州兵勢甚盛時邢介以總督駐遼東經理率十萬兵新次平壤

    方夕食於練光亭土飛馬報至鎬下筋一聲包卽上馬南下馬軍 先隨而步軍又隨後自平壤至漢陽七百里

    而一日二夜馳到使 達將 生擺貴 貴楊登山等四將率鐵騎四千挾弄猿數百騎狙伏於素沙橋下元盡處

    望見倭自稷山如林而北上未至百餘步先縱弄猿猿騎馬執鞭鞭馬突陣倭國本無猿始見猿似人非人咸疑

    怪之駐陣而皆停足 望旣逼猿卽下馬入陣中倭欲擒擊猿善避貴穿一陣陣亂 生等隨縱鐵騎急蹂之倭

    不及施一銃矢而大崩南走伏屍蔽野捷至鎬始整兵南追至慶尙海上自倭犯順未有若此之捷其揮 之謀

    節制之功過李如松平壤之戰而主事丁應泰憤鎬不關由於己而獨成功誣秦僞捷鎬遂被劾去以此一事知

    皇廟之不可爲矣”

  • 저 풀어놓았다. 원숭이는 말을 타고 채찍을 잡아 달리면서 왜적의 진을 충돌하는 것이었다. 왜군에

    는 본래 원숭이가 없으므로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한 원숭이를 처음 보고 괴이하게 여겨서

    진에 머물러 발을 멈추고 멀거니 보는 것이었다. 왜군에 가깝게 간 원숭이는, 곧 말에서 내려 왜진

    복판에 들어갔다. 왜적을 사로 잡고자 하였으나 원숭이는 도망쳐서 잘 피하여 온 진을 꿰뚫으니 진

    이 요란하여졌다. 이 틈을 타서 해생 등이 마침내 철기를 놓아 급히 짓밟으니 왜적은 총과 화살 한

    번 쏘아보지도 못하고 크게 패하여 남쪽으로 달아났는데.......31)

    원숭이 재판이야기는 동물담 가운데 지략담(智略譚)으로 원숭이가 음식을 공평하

    게 나눈다면서 자기가 다먹어 버린다는 내용의 이야기로 전국적으로 전승된다.

    옛날에 이리와 여우가 먹이를 찾아 나섰다가 길에서 고기 덩어리를 발견하자, 서로 자기 것이라

    고 다투었다. 다툼이 좀처럼 끝나지 않아서 지혜롭다는 원숭이에게 찾아가서 결판을 내리기로 하였

    다. 재판을 부탁받은 원숭이는 공평하게 나눈다면서 고기를 반으로 잘랐는데, 한쪽은 크게 다른 한

    쪽은 작게 잘랐다. 그러고는 큰 것을 작은 것과 같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자기가 베어 먹었다. 그러

    나 다시 차이가 생겼고, 원숭이는 이런 짓을 몇 번 되풀이하여 고기를 혼자 다 먹어 버리고는 도망

    쳐버렸다.32)

    이 이야기는 다툼의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가 이득을 차지한다는 내용으로 원숭이는

    자신의 지혜를 능동적으로 발휘하여 뜻하지 않게 이득을 얻는다. 이리와 여우 주위의

    상황을 보지도 않고 오로지 자기의 눈앞의 이익만을 다투다가 결국 그 조그마한 이익

    마저도 놓치고 만다는 교훈이 담겨 있는 이야기다. 여기서 원숭이의 교활성은 부정적

    이지만은 않다. 마땅히 징계해야 하는 수단으로 긍정적인 지혜가 된다.

    궁궐 지붕 잡상(雜像)에도 원숭이가 등장한다. 잡상은 궁궐 등 큰 건축물을 지으면

    서 재앙이나 악귀를 쫓기 위해 추녀마루에 대칭으로 장식하는 토우(土偶)들이다. 『조

    선도교사 朝鮮道敎史』에 의하면, 궁궐의 전각과 문루의 추녀마루 위에 놓은 10신상

    (神像)을 형상화하여 벌여놓아 살(煞)을 막기 위함이라고 적고 있다.『어우야담 於于

    野譚』에 의하면, 신임관(新任官)이 선임관들에게 첫인사[色新許參]할 때 반드시 대

    궐문루 위의 이 10신상 이름을 단숨에 10번 외워보여야 받아들여진다[許參]고 하면

    서, ①대당사부(大唐師傅), ②손행자(孫行者), ③저팔계, ④사화상(沙和尙), ⑤마화상

    (麻和尙), ⑥삼살보살(三煞菩薩), ⑦이구룡(二口龍), ⑧천산갑(穿山甲), ⑨이귀박(二鬼

    朴),⑩나토두(羅土頭)의 상을 적고 있다. 곧, 여기에서의 대당사부는 삼장법사 현장이

    고 손행자는 손오공(孫悟空), 사화상은 사오정(沙俉淨) 들로, 바로《서유기》의 등장

    자 등의 귀물(鬼物)을 만들어놓는다는 것이다. 이들이 잡상으로서 기와지붕 위에 놓이

    게 됨은 《서유기》에 나오다시피, 당나라 태종의 꿈속에 밤마다 나타나는 귀신이 기

    와를 던지며 괴롭히자 잡상을 내세워 전문(殿門)을 수호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추녀는 원숭이가 받들고 있다. 옛날 경기도 강화군 전등사의

    대웅전을 중수할 때의 일인데, 이 절을 맡아서 짓는 도목수는 온갖 정성과 재주를 다

    31) 최상수, 앞의책(1986), 55~57쪽.

    32) 沈宣麟, ꡔ朝鮮童話大集ꡕ, 漢城圖書. 1926 ; 손동인, ꡔ한국전래동화연구ꡕ, 정음문화사,

    1984 ; 成耆說, ꡔ韓國民譚의 比較硏究ꡕ, 일조각, 1979.

  • 잡상 경복궁 조선

    「원숭이잡상

    조선 동아대학교

    박물관 」

    원숭이상 경복궁 월대 조선

    해 집에 다녀오지도 못하고 오로지 절을 짓던 중에 인근 주막의 예쁘장한 여자에게

    반하였다. 그 여자의 유혹에 빠진 목수는 품삯을 모두 맡겼다. 그런데 그 여자는 목

    수에게 받은 패물과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가버렸다. 여자에게 배신당한 목수는 그 여

    자가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대웅전 추녀를 받들고 있으라고 해서 원숭이 나

    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은 불교와 원숭이와의 관련성, 전통 건축물 지붕에 나타

    나는 귀신을 쫒는 동물들(그 중 원숭이도 있음)의 신앙과 연결되어 설명될 수 있겠

    다.

    원숭이 속담은 원숭이의 생김새나 입내내기나 재주 꾀를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 그

    재주를 과신하거나 잔꾀를 경계하는 내용이다.

    (1) 원숭이 낯짝 같다(술을 많이 먹어서 얼굴이 붉게 된 사람을 보고하는 말).

    (2) 원숭이 똥구멍 같다(술이 취하여 얼굴이 붉게 된 사람을 두고 한 말).

    (3) 원숭이 볼기짝 같다(얼굴이 빨간 사람을 가리킨다).

    (4) 원숭이는 가르치지 않아도 나무에 잘 오른다(毋敎升木 ꡔ詩經ꡕ;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을

    가르치듯이 헛된 일을 하지 말라는 뜻).

    (5) 나무에 잘 오르는 원숭이도 가르치면 더 잘 오른다(잘하는 사람도 배우면 더 잘 할 수 있

    다는 뜻).

    (6) 원숭이에게 나무 오르는 법을 가르친다(다 아는 것을 가르쳐 헛수고만 한다는 뜻).

    (7)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蹶失木枝 ; 아무리 능숙한 사람이라도 실수할 때가

    있다는 뜻).

    (8)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朝三暮四)33)

    33) 송나라에 저공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원숭이를 사랑하여 원숭이를 기르다보니 무리를 이루었다. 그

    는 원숭이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고 원숭이도 역시 저공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집안 식구들의 음

    식을 줄이면서 원숭이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가 얼마 못가서 궁핍하게 되었다. 원숭이들의 먹이

    를 제한하고자 하였으나 여러 원숭이들이 자기를 따르지 않게 될까 두려워서 먼저 그들을 속여 말했

  • (9) 원숭이 흉내내듯 한다(남의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을 보고 하는 말).

    (10) 원숭이 잔치다(먹잘 것도 없이 부산하기만 하다는 뜻).

    (11) 관 쓴 원숭이(원숭이 같이 경솔한 관리라는 뜻).

    원숭이 가운데 세계에서 제일 북쪽에 사는 일본원숭이의 얼굴과 손․엉덩이는 붉은색 피부로 덮여 있다.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

    는 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긴 것은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른 것은 비행기, 비행기

    는 높아, 높은 것은 하늘”이라는 어린이들의 말(言) 이어가기 놀이가 있다. 어떤 사

    물의 특징을 간략히 설명하면서 이어가는데 여기서 원숭이의 가장 큰 특징은 빨간색

    이다. 속담 (1)․(2)․(3)은 원숭이의 빨간색 모습을 빗대어 술이 많이 취한 사람이나 얼굴색이 빨간 사람을 지칭할 때 원숭이 속담을 쓴다.

    왜 원숭이엉덩이가 빨간가? 게의 다리와 원숭이 엉덩이의 형상에 관한 유래 설화에 보면

    게와 원숭이가 떡 다툼을 하다가 생겨나게 되었다. 게와 원숭이가 떡을 해 먹기로 하였는데,

    떡이 다 되어서 먹으려고 하자 원숭이가 가로채어 나무 위로 올라가 버렸다. 원숭이는 게가

    나누어 먹자고 사정하는데도 나무 위에서 게를 놀려 대면서 혼자 먹다가 떡을 땅에 떨어뜨렸

    다.게가 그 떡을 얼른 주워서 굴속으로 도망가자, 원숭이는 나무에서 내려와 게의 굴 앞에서

    게에게 떡을 나누어 먹자고 사정을 하였다. 그러나 게가 말을 듣지 않자 원숭이는 자신의 엉

    덩이로 게의 굴을 막고는 방귀를 뀌었다.그 때 게가 앞발로 원숭이의 엉덩이 물어뜯었기 때문

    에 오늘날까지 원숭이의 엉덩이는 털이 없이 빨갛고, 게 앞발에는 아직도 원숭이 엉덩이의 털

    이 그냥 붙어 있다는 이야기이다.

    원숭이의 대부분은 나무에서 산다. 우리 주위에서 나무를 잘 타는 사람을 ‘나무다

    람쥐’라고 한다. 그런데 다람쥐 이상으로 나무를 타는 귀신이 원숭이다. 대향성(對向

    性)이 있는 손가락과 발가락으로 나무가지를 잡고 자유자재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흡사 날아 다니는 것 같다. 원숭이와 관련된 속담은 자연히 나무와 함께 이야기 된

    다. (4), (5), (6)의 속담은 서로 상반된 내용이다. 일상생활에서 자기 잔재주와 잔

    꾀만 믿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을 경계하고,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것처럼 재주

    가 많아도 성실히 노력하면 더욱 잘된다는 것이다. 원숭이는 동물계에서 가장 진화되

    었고, 인간과 닮았으며, 흉내내기와 재주부리기를 잘한다. 그러면서도 어리석은 지

    혜․잔재주․잔꾀의 대명사로 원숭이가 등장한다. 미숙한 지혜를 가지고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원숭이의 지혜라고 한다. 원숭이의 지혜가 제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의

    지혜를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처럼 재주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성공에

    이르기가 어려운 것이다.

    (8)의 속담은 재주 많고 꾀 많은 원숭이지만 눈 앞의 작은 이익에 어두워서 일을 그

    르치는 어리석음을 나무라는 속담이다.

    (9), (10), (11)은 원숭이의 재빠른 움직임과 동작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부산함

    다. “너희들에게 주는 밤을 아침엔 세 개 저녁엔 네 개로 정하면 족하겠느냐?” 여러 원숭이들은 모두

    일어서서 성을 내었다. 조금 있다가 말하였다. “너희들에게 주는 밤을 아침엔 네 개 저녁엔 세 개로

    정하면 족하겠느냐?” 여러 원숭이들은 모두 업드려 기뻐하였다. [출전 : ꡔ열자(列子)ꡕ]

  • 을 떨지만 실속이 없고 재빠른 만큼 실수가 많기에 경솔한 사람을 원숭이에 비유한

    것이다.

    (2) 탈판 속의 원숭이의 흉내내기와 재주부리기

    원숭이가 탈춤에서도 등장한다. 봉산탈춤 제4과장 노장

    춤 제2거리 신장수춤을 비롯하여, 양주별산대 제6과장 노

    장춤 제2거리 신장수놀이, 송파산대놀이의 일곱째 마당 신

    장수, 강령탈춤의 둘째 마당 원숭이춤, 은율탈춤 등에서

    원숭이가 나와 생불(生佛)이라 칭송을 받던 노장이 소무의

    요염한 교태와 능란한 유혹에 빠지는 파계승의 형식적 도

    덕을 풍자하고 비판한다.

    원숭이탈은 종이나 나무로 만들고 얼굴 전체를 붉은색으로 칠

    하고 가장자리에 털을 붙였다.34) 원숭이 걸음은 유난히 발을 올

    렸다 내렸다 몸을 흔들며 원숭이처럼 깡충깡충 걸어간다. 탈춤

    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탈 뿐만아니라 의상도 원숭이처럼 붉게

    입고, 대사도 없이 그냥 사람의 흉내만 낸다.

    봉산탈춤의 제 4과장 노장춤 제2거리 신장수춤에 등장하는 원

    숭이를 보자. 노장이 소무와 어울려 맞춤을 추는데 신장수가 탈

    판에 등장한다. 신장수가 노장 앞으로 지나가자 소무의 신을 팔

    라고 한다. 신장수의 신짐을 끄르니까 원숭이가 팔짝 뛰어 나온다. 신장수가 원숭이

    를 보고

    “아, 짚신 속에서 뛰어나온 이게 무슨 괴물이냐? 돼지냐? 고양이냐? 노루냐? 사슴이냐? 토끼

    냐?” 하고 묻는다. 그러면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부정한다. “가만 있자. 내가 가만히 보니 사람의

    입내를 내는 것은 원숭이라고 했는데 사람의 입내를 잘 내니 네가 분명 원숭이로구나. 오오 그러면

    원숭이면 잘 됐다. 과거에 우리 선친께서 중국 사신으로 다닐 적에 기념으로 사다 두었다고 하더니

    내가 신 짐을 지고 나온다는 것이 원숭이짐을 지고 나왔구나, 원숭이라 하는 것은 사람과 같이 영리

    하니 수금원으로 채용할 터이니 내 말을 잘 듣겠느냐?”

    하며 노장에게 신값을 받으러 보낸다. 그러나 원숭이는 노장에게 가는 것은 고사하

    고 소무에게 가서 등에 붙어 외설스러운 짓을 하다가 온다. 그러자 신장수도 화를 내

    34) 원숭이탈의 생김새는 다음과 같다(ꡔ한국의 탈ꡕ 국립민속박물관, 1988).

    양주산대 : 얼굴은 진홍색 바탕으로 소나무를 깍아 코를 만들었으며 얼굴가장 자리에는 털

    을 둘렸고, 눈은 둥글고 오른쪽 눈자위가 유난히 크며 금색(金色)을 칠했다(H 25.5 W 17cm).

    봉산탈춤 : 얼굴 바탕은 붉고 코 밑에 흰 점을 무수히 찍었고, 눈이 뚫렸으며, 흰 테와 검은

    선을 둘렀다. 머리 가장자리에는 모피로 선을 둘렀고, 두 귀를 달았다(H 21 W 16.5cm).

    강령탈춤 : 종이탈로 붉은 바탕에 여러 가지 색으로 반점을 찍고 코 좌우에 노란 수염이 한

    둘씩 나있다(H 22.5 W 20.5cm).

    은율탈춤 : 종이탈로 백색 바탕에 눈썹은 반달형이고 얼굴엔 연지 곤지를 찍었다(H 25.5

    W 17cm).

    송파산대 : 빨간 바탕에 눈은 둥글고 얼굴 주위에 토끼털을 붙었다(H 22.5 W 20cm).

  • 원숭이탈

    며 원숭이와 야한 짓거리를 하다가 퇴장한다.35)

    양주별산대 제6과장 노장춤 제2거리 신장수놀이에서도 봉산탈춤과 비슷하게 원숭

    이가 나온다. 신장수가 원숭이를 보자기에 씌워 업고 등장하여 물건 파는 소리를 한

    다. 노장의 큰마누라와 작은 마누라에게 신게 할 신을 노장과 흥정하다가 원숭이를

    탁 때리면 보자기 속에서 발딱 일어난다. 원숭이는 붉은 쾌자를 입고 붉은 행전을 치

    고 모든 행동을 신장수와 똑같이 흉내를 낸다. 신장수는 원숭이에게 소무를 빼어 오

    라고 시킨다. 원숭이는 타령장단에 맞추어 멍석말이춤을 추면서 소무에게 가서 외설

    한 시늉을 한 춤만 추다가 그냥 돌아온다. 소무를 유혹 못했다고 신장수에게 야단을

    맞고 소무 대신으로 신장수의 외설스러운 장난의 상대가 된다.

    탈판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모두 인간의 외설스러운 음험한 행위를 흉내내면서 원숭

    이의 그러한 흉내를 통해 파계승 노장의 형식적인 도덕과 신장수의 비행을 풍자와 해

    학으로 폭로한다.

    원숭이 재주를 이용한 장사는 탈판의 신장수에서 비롯하여, 그 후로는 장터나 서커

    스단에 주인공이 된다. 시골 장터에서 만병통치약을 파는 약장수는 의례히 원숭이를

    데리고 다니며 재주를 보여 장꾼을 모은 다음 약을 판다. 서커스단에서 공굴리기․줄타기․자전거타기 등의 묘기는 원숭이 차지다.

    (3) 원숭이와 관련된 속신(俗信)

    동양문화권의 신화에서 원숭이는 가장 사랑받는 동물 가운데

    하나이다. 원숭이는 보통 추하고 장난를 좋아하는 재수없는 동

    물이었다. 그러다가 스님을 도와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오는데

    공헌한 원숭이의 용감성․장난․심술기의 이야기가 여러 희곡이나 소설에 등장하면서, 원숭이는 악귀 악마 등의 사귀를 물리치거

    나 쫒을 수 있는 힘이 있어서 인간에게 건강과 보호․성공을 이루게 해주는 동물로 여겨졌다. 사람들은 아프거나 장사나 시험에

    실패하는 것은 악마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고, 『서유기(西遊

    記)』의 손오공처럼 귀신을 쫒기 위해서 축귀의 힘이 있다고 믿

    는 원숭이를 숭배하기도 한다.36)

    『서유기(西遊記)』의 손오공은 돌에서 태어나 신축자재의 여의봉(如意棒)을 휘두

    르며 천공(天空)을 어지럽히다 큰 바위산에 갇히게 된다. 그러다가 인도로 불경을 구

    하러 가는 스님을 동행하라는 명을 받고 돌에서 나와 인도로 가게 된다. 도중에 온갖

    귀신들과 싸워 72반 변화술과 여의봉으로 퇴치하고 어려울 때마다 스님을 도와 그 일

    을 완수한다. 그 후 손오공은 하늘의 현인으로 추앙을 받는다. 사람들은 손오공처럼

    원숭이들은 잡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큰 건물의 지붕이나 사찰에

    원숭이 상을 세우는 것도 이러한 믿음에서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한 것이다.

    35) 李杜鉉, ꡔ韓國의 假面劇ꡕ, 一志社, 1980.

    36) C.A.S. Williams, 앞의 책(1976), 277~278쪽.

  • 백동자도(부분)

    「백동자 10곡 병풍 조선후기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원숭이를 재수 없는 동물로 기피한다. 한국의

    속신에 나타난 원숭이는 그다지 달갑지 않는 동물이다. 아침에 원숭이에 대해 이야기

    를 하면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 모두 재수가 없다고 한다.37) 로버트와 최정필

    (1984)은 47 종류의 동물에 대해 한국인이 갖고 있는 관념을 설명하면서 원숭이를 불

    운, 비애, 슬픈 장난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세시풍속에서 새해 들어 첫 원숭이날을 상신일(上申日)이라 한다.

    전남지방에서는 원숭이날을 좋은 날이라 해서 일을 아니하고 놀며 가무와 음주로

    즐기는 곳이 많다. 이 날을 사람날로도 생각하고, 고기를 먹으면 살찐다고 해서 일부

    러 육식을 한다고 하다. 이렇게 소중히 여기는 관념 때문에 이날은 위험한 일을 하지

    않는다. 칼질을 하면 손을 벤다고 해서 삼간다.

    될 수 있는 대로 바깥 출입도 꺼리는 풍속이 있어서 근신하고 집에 있는다. 정월 초

    하루와 같이 여자가 남자보다 먼저 밖에 나가는 것을 삼가는 지방도 있다. 즉 이날에

    는 남자가 여자보다 먼저 일어나서 문을 열고 밖에 나가, 비를 들고 부엌 네 귀를 쓸

    고 다시 마당 네 귀를 쓰는 등 수선을 피운다. 부엌에

    귀신이 나온다고

    해서 이 날만은 남

    자가 꼭 먼저 부엌

    에 들어간다는 지

    방들이 있다.

    제주도에서는 원

    숭이날을 납날이라

    고도 한다. 특히

    이날에는 나무를

    자르지 않는다. 이

    날 자른 재목으로 집을 짓거나 무슨 연장을 만들면 거

    기는 좀이 많이 먹게 된다고 한다.38)

    우리나라에서 전해오는 방아타령 가운데 “경신년

    경신일 경신월, 경신시(庚申年 庚申月 庚申日 庚申

    時) 강태공의 조작방아”라는 귀절이 있다. 오행과

    간지를 배합시키는데 있어 경(庚)과 신(申)은 모두 금(金)에 속하고 귀신은 금(金)을

    꺼린다고 전해져왔기 때문에 경신이 붙은 때에는 어떤 일을 해도 탈이 나지 않는다는

    데서 나온 것 같다.

    또 우리나라 도가 계통에서는 「육경신(六庚申)」이라는 수행을 하였다. 경신일 밤

    에는 전혀 잠을 자지 않고 앉아 새우는 것을 말하는데 이렇게 계속해서 여섯 번의 경

    신일을 새우면 만사가 뜻대로 된다는 것이다.

    37) John M. Roberts and Chong Pil Choe, 앞의글(1984), 109~121쪽.

    38) 張籌根, 앞의책(1984), 117~118쪽.

  • 이같은 풍속은 중국의 전설에 “경신날 밤에 잠을 자면 인체에 있는 삼시충이 달아

    나 그 사람의 죄(罪)를 천제께 고한다”는 속설이 있어 삼시충이 달아나지 않도록 철

    야하는 것이 전래된 것이다.39)

    원숭이띠인 사람은 원숭이를 닮아 천부적인 재주가 많으나 자기 재주를 너무 믿어

    방심하므로 스스로 발등을 찍는 일면도 있다고 한다. 원숭이가 꿈에 나타나면 그 해

    몽(解夢)은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원숭이는 흉내를 잘 내고 비교 잘하며 독단적이고

    성급하여, 질투심이 강한 사람․중개자․재주꾼․배우․사기꾼 등의 의미로 해몽하며 일거리 권리행사 기술의 상징으로도 풀이한다.

    * 원숭이와 정면으로 마주 보면 교활한 자가 자기 권리를 침해하려 하거나 사기꾼에게 모욕을 당

    해 싸우게 된다.

    * 원숭이의 귀가 가위에 잘려 떨어져 나간 꿈은 사기 근성이 농후한 사람과 절연할 일을 예시한

    것이다.

    * 원숭이가 나무에 오르는 것을 보면 신분이 새로와지고 직위가 높아진다.

    * 원숭이가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 배우나 요술사가 연기하는 것을 보거나 자기 일을 모방하는

    자를 책망하는 일이 생긴다.

    * 원숭이가 놀리는 것을 보면 간사한 사람이 자기 마음을 더욱 부채질해서 분노하게 한다.

    * 정글에서 원숭이떼에게 조롱당하면 어떤 사업에 착수하거나 단체에 가입해서 많은 라이벌로 인

    해 고통을 당한다.

    물론 이러한 원숭이의 꿈의 해몽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꿈해몽을 통

    해 우리 민족이 원숭이에게 갖고 있는 상징성이나 이미지, 부정적인 관념의 일면을

    볼 수 있다.

    4) 재주꾼․흉내꾼의 원숭이 상징성 지금까지 원숭이에 대한 한국인의 관념과 태도를 원숭이 이야기, 탈춤, 속신, 토

    우, 십이지, 도자기, 회화 등을 통해서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지혜와 잔재주를 겸한 원숭이, 아픈 척․슬픈 척․죽은 척 등등 필요에 따라서 임기응변적 표현이 뛰어난 연극의 시조, 쾌청한 날에 신바람나고, 우충충한 날에 청승

    을 떠는 원숭이의 성깔 등 이러한 원숭이의 생태학적 모형을 문화의 창을 통해 민속

    학적 모형으로 만들어 내고 그것을 다시 사람의 운명과 연관시키는 띠문화를 만들었

    다. 가령 잔나비띠는 천부적인 재질인 숫자놀음과 지혜를 잘 이용하는 수학 공학적인

    직업인으로 각광을 받는다는 등의 속설이 있다.

    원숭이는 실제로는 우리나라에 없는 동물이지만, 여러 민속과 전통미술품에 나타난

    다. 이러한 원숭이의 모습은 우리나라에 실존하는 동물이상으로 그 형태나 행태 혹은

    생태 등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통하여 원숭이의 상징성․암시성 등을 부여했다.원숭이를 재수없는 동물로 인식하여 잔나비로 대칭(代稱)하고, 아침에 이야기하는

    39) 任昌淳, 「庚申雜談」, 한국일보사 자료집, 1980.

  • 원숭이상, 박찬수, 현대

    원숭이, 만봉스님, 현대 원숭이불화, 조선, 통도사

    것조차 꺼렸다. 그러나 불교의 영향․중국과 일본의 원숭이 풍속의 전래 등으로 다소 부정적인 관념이 희석되었다. 그리하여 민속에 나타나는 원숭이는 다소 부정적이나,

    전통미술품에서는 중국의 영향으로 좋은 면이 부각되었다. 원숭이 이야기에서는 원

    숭이의 생김새나 흉내내기․재주․꾀 등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그 재주를 과신하거나 잔꾀를 경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탈판에 등장하는 원숭이는 사람의 흉내

    를 적나라하게 냄으로써 노장의 형식적인 도덕이나 신장수의 비행을 풍자와 해학으로

    직설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속신에서는 중국의 영향으로 잡귀잡신을 원숭이가 쫓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믿어 큰 건물이나 사찰에 원숭이상을 새겨 세우는데, 일반적으로 비애․불운․슬픈 장난 등으로 이미지화하고 있다.

    토우 원숭이는 부적으로 휴대하거나 부장품 혹은 각종 용기의 장식으로 사용되었

    고, 십이지상의 원숭이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하면서 방위신 또는 시

    간신으로 나타난다.

    청자․청화백자․백자에서는 도장의 꼭지, 서체, 작은 항아리, 연적, 수적, 걸상 등에서는 자연에서의 원숭이의 모습과 모자 유대의 행태를 아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림 속에서 원숭이는 십장생과 함께 장수의 상징과 자손의 번창․불교와 서유기의 내용에 따라 스님을 보조하는 역할․자연생활 모습․높은벼슬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 「12지호석 현대 충남

    공주」

    「원숭이 12지호석, 현대, 충남 공주」

  • 12지 크리마스씰 현대(2003) 대한결핵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