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 제344호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최세진 당시 어린이들은 서당에서 ‘천자문’을 제일 먼저 배웠습니다. 1525년 때는 중종 시절, 최세진이 ‘천자문’보다 더 뛰어난 한자 학습서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웃 마을 역관 하나가 최세진을 찾아 왔 습니다. “자네가 ‘천자문’을 뛰어넘는 책을 만들었다는 것 이 사실인가?” “어서 오게. 숨 넘어 가겠네. 자네도 알다시피 ‘천 자문》은 중국 양나라 주홍사가 편찬한 것인데, 중국 의 고사를 따 배열하고 비유하여 글을 지은 것 아닌 가? 그 뜻은 좋으나 글자의 뜻을 알기 위해 일일이 고 사를 살펴서야 되겠는가?” “하긴, 한자가 중국 글자이긴 하지만 중국 사람이 오래 전에 만든 것을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따라야 할 필요는 없겠지? 우리나라 사람이 엮은 ‘유합》이라는 책도 있지 않나?” ‘유합’이라는 책은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것은 맞 지만 누구 손으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지 않나. 비 록 여러 글자를 종류별로 합했다고 ‘유합’이라 하지 만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글자가 적어 아이들이 세 상의 흐름을 제대로 알기 어렵네.” “하긴 ‘천자문’이나 ‘유합’이나 일상생활 속의 단 어나 삶을 보여 주지 못하지.”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먼. 오늘날 어린이를 가 르치는 이들이, 비록 ‘천자문’과 ‘유합’을 배워서 경 서와 역사책을 두루 읽게 되더라도, 다만 그 글자만 알고 그 글자가 나타내는 실체를 몰라 드디어 사물을 나타내는 글자와 사물이 둘이 되어 맞지가 않고, 조수 와 초목의 이름을 꿰뚫어 알 수 없는 사람이 많으니, 대개 글자만 외울 뿐 실체를 보기에 이르도록 힘쓰지 않은 탓이네.” “책 제목을 ‘훈몽자회’라고 한 까닭은 무엇인가?” “‘글자를 통해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가르친다’는 의미라네. 어린이들도 역시 새·짐승·초목의 이름 을 알 수 있게 되어, 세상에 대한 견문이 넓어질 걸 세.” “언문 배우는 내용을 앞에다 배치한 이유는 무엇인 가?” “자네도 언문을 빨리 깨쳐 한자 공부가 쉽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무릇 시골이나 지방사람 가운데 언문 을 모르는 이가 많질 않나. 그러니 언문 자모를 함께 적어 그들로 하여금 먼저 언문을 배운 다음 훈몽자회 최세진은 대대로 통역 관리인 역관 을 지내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양반이 아닌 중인 신분으로 태어났 지만 뛰어난 업적 덕에 높은 양반 관 리까지 될 수 있었어요. 태어난 연도 는 잘 알 수 없지만 대략 세조가 나라 를 다스리던 1465년쯤으로 짐작합니 다. 최세진은 사역원(고려ㆍ조선 시 대에, 외국어의 번역 및 통역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에 다니던 아버 지 덕에 일찍부터 중국어를 빨리 배 우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한글 덕에 한자뿐만 아니라 중국어를 쉽고 정확 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글로 한자 와 중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적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역원에서 갓 들어온 젊은이들을 가르칠 때도 무척 한글이 요긴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 래서 한글을 먼저 정확히 가르칠 필 요가 있음을 깨달았지요. 그런데 한글을 가르칠 때 가장 기본 한마당 ‘훈몽자회’ 한글 배우는 지침서가 되다 를 공부하게 하면, 한자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될 것 아 니겠나. 한자를 모르는 사람도 언문을 배우고 한자를 알면, 비록 스승의 가르침이 없더라도 한문에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야.” “정말 좋은 생각이네. 이 책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가 르치게 할 셈인가?” “지방의 각 군에서 이 책을 펴내어 한 고을마다 각각 훈장을 두고 어린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게 어떤가. 아 이가 장차 자라 향교나 국학에 진학한다면 사람들이 모두 배우기를 즐길 것이니 어린이들이 발전되는 바 가 있을 것일세.” 최세진은 중인의 신분이었으나 워낙 뛰어난 재주와 능력으로 최고의 양반 신분까지 올라간 분이었습니 다. 그가 죽자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기록했습니 다. 동지중추부사 최세진이 죽었다. 최세진은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으며 더욱이 중국어에 정통하였다. 관리가 되어서는 중국으로 가는 각종 공문서를 모두 그가 맡아보았고, 추천받아 발탁되어 벼슬이 2품에 이르렀다. 저서인 ‘언해효경(諺解孝經)’, ‘훈몽자 회(訓蒙字會)’, ‘이문집람(吏文輯覽)’이 세상에 널 리 펴졌다. 중종 37년 때인 1542년 2월 10일자 기록입니다. 신 분을 뛰어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시절, 양 반들도 하기 힘든 정2품 벼슬까지 올랐다는 것은 그 가 얼마나 뛰어난 업적을 남겼는지를 알려 주는 것입 니다. 더 큰 업적은 실용적인 한글 교육의 틀을 마련했다 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실제 한글교육을 반영한 심훈의 상 록수라는 소설은 그 광경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후락한 예배당 안은 콩나물을 기르는 것처 럼 아이들로 빽빽하다. 선생이 부비고 드나들 틈이 없을 만치 꼭꼭 찼다. 아랫반에서 ‘가’자에 ㄱ 허면 ‘각’ 허구 ‘나’자에 ㄴ 허면 ‘난’허구 하면서 다리를 못 뻗고 들어앉은 아이들은, 고개를 반짝 들고 칠판을 쳐다보면서, 제비 주둥이 입을 일 제히 벌렸다 오므렸다 한다. _ 1936년 심훈, 상록수, 166-167쪽. 차례 어금닛 소리 혓소리/반혓소리 입술 소리 잇소리/반잇소리 목소리 [1] 초성종성통용팔자 ㄴㄷ/ㄹ ㅁ ㅂ [2] 초성독용팔자 ㅈ ㅊ /ㅿ ㆁ, ㅎ 훈몽자회 자음 배열순 재구성 닿소리와 홀소리의 이름 처음 만들다 오늘날 닿소리·홀소리의 순서 정하다 ‘쉽고 빠르게’ 최초의 한글 음절표 만들다 모음자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 중심축 수직 글자 수평 글자 수평 수직 음운성격 개모음 폐모음 양성 음성 양성 음성 음성 중성 양성 자음조합 가로 배열 세로 배열 세로 가로 모음 우 조합 좌 조합 상 조합 하 조합 기본자 ‘훈몽자회’ 모음자 배치도 가장 대중적인 한글 기본 음절표 김슬옹의 “한글 이야기” <1465?∼1542> 이 되는 닿소리를 가리키는 이름이 가지각색이었습니다. 홀소리는 그냥 단독으로 발음되므로 ‘아야어여’ 으로 그대로 부르면 되지만 홀소리의 도움을 받아야 발음이 되는 닿소리는 정확한 표준 이름이 없었습니다. 읽 을 때는 “기, 니, 디”와 같이 ‘ㅣ’를 붙 여 부르거나, 아니면 “그, 느, 드”라 는 식으로 ‘ㅡ’를 붙여 불렀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으’를 넣어 ‘기윽, 니은, 리을’식으로 불렀습니다. 최세 진은 이 방식이 가장 옳다고 보았습 니다. “옳지 ‘ㄱ’은 첫소리글자로도 쓰이 고 끝소리글자로도 쓰이니 기본 모음 을 넣으면 ‘기윽, 니은, 디 , 리을 미 음 비읍’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 가장 좋겠구나. 쓰이는 자리에 적절하게 닿소리 글자와 홀소리 글자가 어울리 니 글자 이름 자체가 그 글자 사용법 이 되겠구나.” 최세진 , ‘ 위대한 나랏글 한글 교육의 새 길을 열다 어가행렬 세종대왕 탄신일을 맞아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진 어가행렬. 최세진은 닿소리와 홀소리의 합리 적 배치를 통해 한글을 가장 쉽고 빠 르게 배울 수 있는 음절표의 틀을 마 련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갸 거겨, 나냐 너녀”와 같은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 장짜리 한글 음 절표가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 최세진이 세상을 떠난 뒤에서 이 한 장짜리 음절표는 전국 방방곡곡 두루 퍼져 어느 가정에서나 이 표를 통해 한글을 배우게 됩니다. 18세기 어느 전라도 궁색한 몰락한 양반 가정 이야기입니다. “여보 임자, 우리 끝순이가 이제 시 집을 가게 되었구료.” “그러게 말입니다. 저 철없는 막내 가 시집을 가게 되다니. 그것도 멀리 경상도 땅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으니 이제 저 귀여운 것과는 영영 이별인 듯 싶소.” “그래서야 되겠소. 편지라도 주고 받게 언문이라고 가르쳐 시집을 보냅 시다.” “아 참. 편지라도 주고 받을 수 있다 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마침 이웃 마을 정대감 댁에서 언 문을 가르치는 표가 있다 해서 얻어 왔소이다. 어서 끝순이를 부르시오.” (끝순아!) (끝순이가 등장) “끝순아. 이제 내일 모레면 우리도 이별이다. 편지라도 주고받게 언문을 배우렴.” “언문이 쉽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찌 그리 금방 배운다우.” “네가 어린애도 아니고 다 컸으니 이 한 장짜리 표만 있으면 한두 시간 이면 금방 배운단다.” “일단 따라 읽어 보렴.” “가갸가갸” “가갸거겨” 그래 이 때 앞에 나오는 소리가 닿 소리라는 것이고 뒤에 나오는 소리가 홀소리라는 것인데 두 글자가 합쳐지 면서 온갖 소리를 다 적게 되는 것이 지. 이제 끝순이는 부모님과 편지를 주 고받을 수 있다는 말에 시집가는 날 이 덜 서럽게 되었답니다. 과 같은 차례가 되었습니다. 빈도수 가 높은 닿소리를 먼저 앞세운 셈이 지요. 홀소리 글자의 경우는 세종대 왕의 경우는 만든 순서에 따라 ‘ㆍ ㅡ ㅣ / ㅗ ㅏ ㅜ ㅓ / ㅛ ㅑ ㅠ ㅕ’식으로 배열하였으나 최세진은 입벌린 순서 에 의해 입을 벌리는 개모음(ㅏ ㅑ ㅓ ㅕ) 입을 닫는 폐모음(ㅗ ㅛ ㅜ ㅠ)식 으로 배열하였습니다. 이는 발음하기 편한 ‘수직 글자- 수평 글자’ 순이기 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닿소리와 결 합할 때 수직 글자는 가로 배열, 수평 글자는 세로 배열이 이루어져 리듬감 을 타게 됩니다. 더욱이 양성 음성이 교차하여 홀소리가 자연스럽게 가락 을 타게 됩니다. 최세진은 오늘날 닿소리, 홀소리 순 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닿소리의 경우 세종대왕은 ‘어금닛소리-혓소 리-입술소리-잇소리-목소리-반혓 소리-반잇소리’ 순으로 했지만 최세 진은 반혓소리는 혓소리 옆으로, 반 잇소리는 잇소리 옆으로 모아 주었습 니다. 그리고 세종대왕은 ‘ㄱ’을 ‘ㅋ’ 과 같이 모아 놓았는데 최세진은 떨 어뜨려 놓았습니다. 발음으로 볼 때 첫소리(초성) 자리와 끝소리(종성)자 리에 모두 올 수 있는 글자들을 먼저 배열하고(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그 다음에 발음으로는 첫소리에만 오른 글자들(ㅋ ㅌ ㅍ ㅈ ㅊ ㅿ, ㆁ, ㅎ)을 나 중에 배치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훈몽자회’ . ‘천자문’ .

위대한 나랏글 한글 교육의 새 길을 열다pdf.g-enews.com/344/34419.pdf을 알 수 있게 되어, 세상에 대한 견문이 넓어질 걸 세.” “언문 배우는 내용을

  • Upload
    others

  • View
    0

  • Download
    0

Embed Size (px)

Citation preview

Page 1: 위대한 나랏글 한글 교육의 새 길을 열다pdf.g-enews.com/344/34419.pdf을 알 수 있게 되어, 세상에 대한 견문이 넓어질 걸 세.” “언문 배우는 내용을

19 제344호 2013년 5월 29일 수요일

최세진 당시 어린이들은 서당에서 ‘천자문’을 제일 먼저 배웠습니다. 1525년 때는 중종 시절, 최세진이

‘천자문’보다 더 뛰어난 한자 학습서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웃 마을 역관 하나가 최세진을 찾아 왔습니다.“자네가 ‘천자문’을 뛰어넘는 책을 만들었다는 것이 사실인가?”“어서 오게. 숨 넘어 가겠네. 자네도 알다시피 ‘천자문》은 중국 양나라 주홍사가 편찬한 것인데, 중국의 고사를 따 배열하고 비유하여 글을 지은 것 아닌가? 그 뜻은 좋으나 글자의 뜻을 알기 위해 일일이 고사를 살펴서야 되겠는가?”“하긴, 한자가 중국 글자이긴 하지만 중국 사람이 오래 전에 만든 것을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따라야 할 필요는 없겠지? 우리나라 사람이 엮은 ‘유합》이라는 책도 있지 않나?”“ ‘유합’이라는 책은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것은 맞지만 누구 손으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지 않나. 비록 여러 글자를 종류별로 합했다고 ‘유합’이라 하지만 사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글자가 적어 아이들이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알기 어렵네.” “하긴 ‘천자문’이나 ‘유합’이나 일상생활 속의 단어나 삶을 보여 주지 못하지.”“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먼. 오늘날 어린이를 가르치는 이들이, 비록 ‘천자문’과 ‘유합’을 배워서 경서와 역사책을 두루 읽게 되더라도, 다만 그 글자만 알고 그 글자가 나타내는 실체를 몰라 드디어 사물을 나타내는 글자와 사물이 둘이 되어 맞지가 않고, 조수와 초목의 이름을 꿰뚫어 알 수 없는 사람이 많으니, 대개 글자만 외울 뿐 실체를 보기에 이르도록 힘쓰지 않은 탓이네.”“책 제목을 ‘훈몽자회’라고 한 까닭은 무엇인가?”“‘글자를 통해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가르친다’는 의미라네. 어린이들도 역시 새·짐승·초목의 이름을 알 수 있게 되어, 세상에 대한 견문이 넓어질 걸세.”“언문 배우는 내용을 앞에다 배치한 이유는 무엇인가?”“자네도 언문을 빨리 깨쳐 한자 공부가 쉽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무릇 시골이나 지방사람 가운데 언문을 모르는 이가 많질 않나. 그러니 언문 자모를 함께 적어 그들로 하여금 먼저 언문을 배운 다음 훈몽자회

최세진은 대대로 통역 관리인 역관을 지내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양반이 아닌 중인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뛰어난 업적 덕에 높은 양반 관리까지 될 수 있었어요. 태어난 연도는 잘 알 수 없지만 대략 세조가 나라를 다스리던 1465년쯤으로 짐작합니다. 최세진은 사역원(고려ㆍ조선 시대에, 외국어의 번역 및 통역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에 다니던 아버지 덕에 일찍부터 중국어를 빨리 배우게 되었습니다. 더욱이 한글 덕에 한자뿐만 아니라 중국어를 쉽고 정확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글로 한자와 중국어 발음을 정확하게 적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역원에서 갓 들어온 젊은이들을 가르칠 때도 무척 한글이 요긴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글을 먼저 정확히 가르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지요.그런데 한글을 가르칠 때 가장 기본

한마당

‘훈몽자회’ 한글 배우는 지침서가 되다

를 공부하게 하면, 한자를 익히는 데 도움이 될 것 아니겠나. 한자를 모르는 사람도 언문을 배우고 한자를 알면, 비록 스승의 가르침이 없더라도 한문에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야.”“정말 좋은 생각이네. 이 책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가르치게 할 셈인가?”“지방의 각 군에서 이 책을 펴내어 한 고을마다 각각 훈장을 두고 어린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게 어떤가. 아이가 장차 자라 향교나 국학에 진학한다면 사람들이 모두 배우기를 즐길 것이니 어린이들이 발전되는 바가 있을 것일세.”최세진은 중인의 신분이었으나 워낙 뛰어난 재주와

능력으로 최고의 양반 신분까지 올라간 분이었습니다. 그가 죽자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동지중추부사 최세진이 죽었다. 최세진은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썼으며 더욱이 중국어에 정통하였다. 관리가 되어서는 중국으로 가는 각종 공문서를 모두

그가 맡아보았고, 추천받아 발탁되어 벼슬이 2품에 이르렀다. 저서인 ‘언해효경(諺解孝經)’, ‘훈몽자회(訓蒙字會)’, ‘이문집람(吏文輯覽)’이 세상에 널리 펴졌다.중종 37년 때인 1542년 2월 10일자 기록입니다. 신

분을 뛰어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시절, 양반들도 하기 힘든 정2품 벼슬까지 올랐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업적을 남겼는지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더 큰 업적은 실용적인 한글 교육의 틀을 마련했다

는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때 실제 한글교육을 반영한 심훈의 상

록수라는 소설은 그 광경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가뜩이나 후락한 예배당 안은 콩나물을 기르는 것처

럼 아이들로 빽빽하다. 선생이 부비고 드나들 틈이 없을 만치 꼭꼭 찼다. 아랫반에서

‘가’자에 ㄱ 허면 ‘각’ 허구‘나’자에 ㄴ 허면 ‘난’허구하면서 다리를 못 뻗고 들어앉은 아이들은, 고개를

반짝 들고 칠판을 쳐다보면서, 제비 주둥이 입을 일제히 벌렸다 오므렸다 한다. _ 1936년 심훈, 상록수, 166-167쪽.

차례어금닛소리

혓소리/반혓소리입술소리

잇소리/반잇소리 목소리

[1] 초성종성통용팔자 ㄱ ㄴㄷ/ㄹ ㅁ ㅂ ㅅ ㅇ

[2] 초성독용팔자 ㅋ ㅌ ㅍ ㅈ ㅊ /ㅿ ㆁ, ㅎ

훈몽자회 자음 배열순 재구성

닿소리와 홀소리의 이름 처음 만들다

오늘날 닿소리·홀소리의 순서 정하다

‘쉽고 빠르게’ 최초의 한글 음절표 만들다

모음자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

중심축 수직 글자 수평 글자 수평 수직 점

음운성격개모음 폐모음

양성 음성 양성 음성 음성 중성 양성

자음조합 가로 배열 세로 배열 세로 가로

모음 우 조합 좌 조합 상 조합 하 조합 기본자

‘훈몽자회’ 모음자 배치도

자모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ㄱ 가 갸 거 겨 고 교 구 규 그 기

ㄴ 나 냐 너 녀 노 뇨 누 뉴 느 니

ㄷ 다 댜 더 뎌 도 됴 두 듀 드 디

ㄹ 라 랴 러 려 로 료 루 류 르 리

ㅁ 마 먀 머 며 모 묘 무 뮤 므 미

ㅂ 바 뱌 버 벼 보 뵤 부 뷰 브 비

ㅅ 사 샤 서 셔 소 쇼 수 슈 스 시

ㅇ 아 야 어 여 오 요 우 유 으 이

ㅈ 자 쟈 저 져 조 죠 주 쥬 즈 지

ㅊ 차 챠 처 쳐 초 쵸 추 츄 츠 치

ㅋ 카 캬 커 켜 코 쿄 쿠 큐 크 키

ㅌ 타 탸 터 텨 토 툐 투 튜 트 티

ㅍ 파 퍄 퍼 펴 포 표 푸 퓨 프 피

ㅎ 하 햐 허 혀 호 효 후 휴 흐 히

가장 대중적인 한글 기본 음절표

김슬옹의 “한글 이야기”

<1465?∼1542>

이 되는 닿소리를 가리키는 이름이 가지각색이었습니다. 홀소리는 그냥 단독으로 발음되므로 ‘아야어여’ 식으로 그대로 부르면 되지만 홀소리의 도움을 받아야 발음이 되는 닿소리는 정확한 표준 이름이 없었습니다. 읽을 때는 “기, 니, 디”와 같이 ‘ㅣ’를 붙여 부르거나, 아니면 “그, 느, 드”라는 식으로 ‘ㅡ’를 붙여 불렀습니다. 일부에서는 ‘이’, ‘으’를 넣어 ‘기윽, 니은, 리을’식으로 불렀습니다. 최세진은 이 방식이 가장 옳다고 보았습니다. “옳지 ‘ㄱ’은 첫소리글자로도 쓰이고 끝소리글자로도 쓰이니 기본 모음을 넣으면 ‘기윽, 니은, 디읃, 리을 미음 비읍’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 가장 좋겠구나. 쓰이는 자리에 적절하게 닿소리 글자와 홀소리 글자가 어울리니 글자 이름 자체가 그 글자 사용법이 되겠구나.”

최세진, ‘위대한 나랏글’ 한글 교육의 새 길을 열다

어가행렬 세종대왕 탄신일을 맞아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진 어가행렬.

최세진은 닿소리와 홀소리의 합리적 배치를 통해 한글을 가장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음절표의 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갸 거겨, 나냐 너녀”와 같은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한 장짜리 한글 음절표가 널리 퍼지게 된 것입니다.최세진이 세상을 떠난 뒤에서 이 한

장짜리 음절표는 전국 방방곡곡 두루 퍼져 어느 가정에서나 이 표를 통해 한글을 배우게 됩니다. 18세기 어느 전라도 궁색한 몰락한

양반 가정 이야기입니다. “여보 임자, 우리 끝순이가 이제 시집을 가게 되었구료.”“그러게 말입니다. 저 철없는 막내가 시집을 가게 되다니. 그것도 멀리 경상도 땅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으니 이제 저 귀여운 것과는 영영 이별인 듯 싶소.”“그래서야 되겠소. 편지라도 주고받게 언문이라고 가르쳐 시집을 보냅시다.”“아 참. 편지라도 주고 받을 수 있다

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마침 이웃 마을 정대감 댁에서 언문을 가르치는 표가 있다 해서 얻어 왔소이다. 어서 끝순이를 부르시오.”(끝순아!) (끝순이가 등장)

“끝순아. 이제 내일 모레면 우리도 이별이다. 편지라도 주고받게 언문을 배우렴.”“언문이 쉽다는 말은 들었지만 어찌 그리 금방 배운다우.”“네가 어린애도 아니고 다 컸으니 이 한 장짜리 표만 있으면 한두 시간이면 금방 배운단다.”“일단 따라 읽어 보렴.”“가갸가갸”“가갸거겨”그래 이 때 앞에 나오는 소리가 닿

소리라는 것이고 뒤에 나오는 소리가 홀소리라는 것인데 두 글자가 합쳐지면서 온갖 소리를 다 적게 되는 것이지. 이제 끝순이는 부모님과 편지를 주

고받을 수 있다는 말에 시집가는 날이 덜 서럽게 되었답니다.

과 같은 차례가 되었습니다. 빈도수가 높은 닿소리를 먼저 앞세운 셈이지요. 홀소리 글자의 경우는 세종대왕의 경우는 만든 순서에 따라 ‘ㆍ ㅡ ㅣ / ㅗ ㅏ ㅜ ㅓ / ㅛ ㅑ ㅠ ㅕ’식으로 배열하였으나 최세진은 입벌린 순서에 의해 입을 벌리는 개모음(ㅏ ㅑ ㅓ ㅕ) 입을 닫는 폐모음(ㅗ ㅛ ㅜ ㅠ)식으로 배열하였습니다. 이는 발음하기편한 ‘수직 글자- 수평 글자’ 순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닿소리와 결합할 때 수직 글자는 가로 배열, 수평 글자는 세로 배열이 이루어져 리듬감을 타게 됩니다. 더욱이 양성 음성이 교차하여 홀소리가 자연스럽게 가락을 타게 됩니다.

최세진은 오늘날 닿소리, 홀소리 순서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닿소리의 경우 세종대왕은 ‘어금닛소리-혓소리-입술소리-잇소리-목소리-반혓소리-반잇소리’ 순으로 했지만 최세진은 반혓소리는 혓소리 옆으로, 반잇소리는 잇소리 옆으로 모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세종대왕은 ‘ㄱ’을 ‘ㅋ’과 같이 모아 놓았는데 최세진은 떨어뜨려 놓았습니다. 발음으로 볼 때 첫소리(초성) 자리와 끝소리(종성)자리에 모두 올 수 있는 글자들을 먼저 배열하고(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그 다음에 발음으로는 첫소리에만 오른 글자들(ㅋ ㅌ ㅍ ㅈ ㅊ ㅿ, ㆁ, ㅎ)을 나중에 배치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훈몽자회’. ‘천자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