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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 망원로 57 3층 [email protected] 02-6401-0514 43 기획기사 - 학교에서 군인이 안보를 가르치다 왜 안보교육이 아닌 평화교육인가 안보교육을 막아라 저항으로서의 안보교육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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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서울시 마포구 망원로 57 3층 [email protected] 02-6401-0514

43

기획기사 - 학교에서 군인이 안보를 가르치다

왜 안보교육이 아닌 평화교육인가

안보교육을 막아라

저항으로서의 안보교육

서 적

Page 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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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전쟁없는세상 43호 소식지

차례

소식지를 내며 Editorial 1

평화주의자 노트 Essay

항소이유서-삼성물산 앞 페인트 퍼포먼스 2

죽음을 부르는 군대를 거부한다 7

『남성성들』을 소개합니다 13

참가후기 Experience

전쟁저항자 인터내셔널 국제회의를 다녀와서 17

3박 4일의 즐거움-2014 평화캠프를 다녀와서 23

전쟁거부를 가능케 한 사람들 28

병역거부 망명자 이예다 씨를 일본에서 만나다 32

기획기사 Special

왜 안보교육이 아닌 평화교육인가 39

안보교육을 막아라 45

저항으로서의 안보교육 51

리뷰-책&영화 Review-Book&Movie

홀로코스트, 그리고 나 56

기획연재

전쟁 기업에 저항하라 - 방산 수출이 미래의 희망이라고? 63

이예다의 프랑스 생활기 -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요구한것뿐인데

67

샤샤의 뀨잉뀨잉 71

재정보고 Report

후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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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식지를 내며

길수 |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이번 소식지에는 필자들의 변화가 많습니다. 나름님의 스웨덴 이야기와

가람님의 시사만화는 이번 호부터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거주지 변경

으로 주변 환경이 변하면서 원고 투고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허락할 때 마무리 인사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우님의 <게임과

평화>는 당분간만 휴재입니다. 항상 표지를 예쁘게 장식해주던 난영님의

그림은 편집자 잘못으로 이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반면 새로 시작하는

기사도 있는데, 프랑스에 거주 중인 이예다 님의 원고를 이번 호부터 싣게

되었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이번 가을호 소식지 담당을 맡아 원고 청탁, 진행 상황 체크, 편집 등을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하여 소식지가 평소보다 늦게 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지지와 기대만큼 움직이지 않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렇

지만 필자들의 알찬 원고는 변함없으니 많은 애독 바랍니다.

소식지를 펴는 입장에서 소식지를 읽는 독자의 반응이 항상 궁금합니

다. 소식지의 어떤 글을 재미있게 읽고 있는지, 어떤 부분을 고개 갸웃거

리며 곱씹고 있는지 말입니다. 회원들의 비슷한 생각 혹은 다른 생각을 언

제든 알려주세요. 고민하고 논의하여 더 나은 내용을 담겠습니다.

추운 겨울은 항상 12월의 평화수감자의 날을 생각나게 합니다. 올해는

12월 6일에 행사가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그날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소식지를 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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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항소이유서삼성물산 앞 페인트 퍼포먼스

퍼포먼스 참가자들

2012년 봄은 제주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 발파와 함께 왔습니다. 고작

마을 주민 87명의 동의로 시작된 제주해군기지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습니다. 해군기지 건설은 잔인하도록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매일같이

폭탄 소리가 제주 강정 마을을 뒤흔들었고, 어쩌지 못하고 공사장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마을 주민들과 제주를 평화로 지키려는 사람들도 아픔

에 뒤흔들렸습니다. 멸종위기종인 붉은발 말똥게와 연산호를 대신해 구럼

비 바위에서 서귀포 해안을 드나드는 이들은 구럼비 바위를 깨부수는 화

약을 설치하고 시멘트를 들이붓기 위한 삼성이거나 국방부이거나 정부이

기만 했습니다.

매년 수백억의 예산이 제주해군기지 사업으로 책정되고, 대체 얼마인지

알 수 없는 돈이 시공사인 삼성과 국방부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동안 강

정 마을 주민 94%가 제주해군기지 유치에 반대 결정을 했다는 것은 중요

평화주의자 노트

Page 5: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3평화주의자 노트

하지 않았습니다. 구럼비 해안이 법적으로 개발이 불가능한 절대보전지역

이었다는 것도, 민군복합항과 관련된 정부의 주장이 거짓임이 국방부의

이중협약으로 드러난 것도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해군기지의 총체적인 설

계 오류와 미군이용의 문제, 환경영향평가서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도 마찬

가지입니다. 크루즈의 항로와 겹쳐지는 연산호 서식지는 세계적으로 보호

할 만한 가치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 되었습니다.

불법과 위법으로 제주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동안, 그것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말하던 6백 명이 넘는 주민들과 시민들은 업무방해, 집시법, 건조

물침입 등으로 연행되었습니다. 이들 중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들 589명, 구속되었던 사람은 40 여 명입니다. 부과된 벌금만

총액 3억여 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안보를 이유 삼았으나 정당성과 타당

성을 잃은 국책사업은 강정 주민들의 일상과 미래를 폭력적으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부와 해군 그리고 삼

성이라는 거대권력의 거짓과 불법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들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불법과 위법으로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실제적인 행위자인 삼성

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를 위해 지난 2012년 3월 29일

삼성물산 본사 앞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페인트를 붓는 퍼포먼스를 진행했

습니다. 수십 명의 경비원이 늘 상주하는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삼성물

산 건물 앞에서 단 6명이 평화적인 방법을 택했습니다. 10여 분의 퍼포먼

스, 그것도 점심시간에 이뤄졌으며, 퍼포먼스의 시작과 동시에 삼성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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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경비를 맡고 있던 경비업체 에스원 직원에 의해 그야말로 질질 끌려나

오는 과정에서 약간의 소란이 있었을 뿐입니다. 삼성은 업무방해, 집시법,

재물손괴, 공동주거침입을 이유로 우리를 고발했고, 얼마 전 2년여에 걸

친 재판과정을 통해 1심 선고를 받았습니다.

1심 재판부 박소영 판사님은 '삼성물산 앞 페인트 퍼포먼스' 판결을 내

리며, 피고인들의 퍼포먼스가 삼성물산 직원들의 업무를 방해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거나, 그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발생하였다고 단정하기에 부족

하다는 점을 들어 업무방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공동주거

침입과 관련하여서도 일반적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된다는 사정이 객

관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무죄, 공동재물손괴

와 관련하여 경비직원의 의복 등에 페인트가 묻게 된 것과 관련하여, 피고

인들이 고의로 손괴하였다고 단정하기 부족하다 판단하여 무죄 판결을 내

렸습니다.

그러나 공동재물손괴 죄와 관련하여 퍼포먼스 과정에서 삼성물산 사옥

정문 앞 통로 바닥이 오염된 것과 관련해서는 유죄를, 집시법 위반과 관

련해서도 행위예술의 한 형태인 퍼포먼스임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을 비

판하려는 의도 하에 개최된 옥외집회에 해당한다며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

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가 행위예술의 한 형태인 퍼포먼스임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퍼포먼스라는 행위가 갖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

하지 않는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한 개인이 사회에서 온전

한 주체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헌법적 권리입니다. 동시에 표현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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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평화주의자 노트

상이 국가와 자본이라 하여도 보장되어야 함은 물론이며, 보다 나은 민주

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국민의 권리입니다.

삼성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 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실정법의 맹점

을 이용해 일체 불가능하게 합니다. 용역직원 수십 명을 고용해 '유령 집

회'를 신고함으로써, 삼성 건물 앞의 집회는 모두 불법이 되는 현실을 재

판부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정부의 정책과 거대 자본의 반윤리적인 행

태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단 십여 분 남짓한 예술적 행위조차도 범죄로 만

드는 흔해 빠지고 낡은 관습이 마치 가장 강력한 법인 것처럼 삼성 앞마당

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그 법의 피해자인 우리는 다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국가와 자본의 권력에 저항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에게는 마땅히

그러할 권리가 있습니다.

삼성물산 앞에서 페인트를 뿌리고 쓰러진 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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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적이고 위법적인 행위를 하는 국가와 자본권력에 대항하여 정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저항하는 것은, 설사 실정법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정당합니다. 개인의 양심과 사상에 따른 평화로운

표현행위는 그 자체로 보장되어야 하며 국가와 자본권력에 의해 검열되거

나 제약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로 헌법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

서 우리의 저항행위, 삼성물산 앞 퍼포먼스 사건에 대한 법적인 판단은 다

르게 평가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피고인들은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제주 강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실

현하고자 할 것입니다. 제주도가 아시아 태평양 한 가운데서 화약고가 되

는 것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거대 자본 삼성이 수백억 원

의 세금으로 건설하는 제주 해군기지 방파제는 매년 여름 태풍 때마다 깨

져서 바다 위를 떠다닙니다. 태풍을 맞설 수 있는 기지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생명의 권리에 우선하는 자본도 있을 수 없습니다. 평화를 이기

는 군사기지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제주 강정', 이 몇 음절을 둘러싼 무수히 많은 행간에

서 생명과 평화를 가장 먼저 읽어 낼 것입니다. 우리가 읽어낸 이 단어를

품고 다시 재판정으로 향합니다.

김성민, 염창근, 최정민, 양여옥, 배보람, 박경수

2014년 9월 1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제9형사부) 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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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평화주의자 노트

죽음을 부르는 군대를 거부한다병역거부 소견서

김경묵 | 2014년 5월 13일 병역거부 선언

1.

지난 여름 병무청에 입영거부 의사를 밝혔다. 공교롭게도 그 이후 군대

는 온갖 파문과 함께 죽음을 상징하게 되었다. ‘GOP 총기사고로 5명이

사망하고 7명의 부상, 물고문·성고문 등 온갖 가혹행위로 숨진 윤일병,

특전사 2명 포로훈련 받다 사망, 관심병사 2명 휴가 중 동반자살’등으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들로 사회가 들썩였다. 군대에서 벌어진 참사가

하나둘씩 수면위로 떠오르면서 신성한 국방의 의무로 여겨졌던 군복무가

많은 이들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조작과 은폐로 인하여 100일이 한참이

지나서야 알려진 상황, 기수열외나 가혹행위와 같이 개인의 존엄성을 파

괴하는 행위에 의해 벌어진 사건인 만큼 군당국을 향한 비판여론은 거세

었다. 국방부에서 자체적으로 개선방안을 추진하는 와중에도 군내 가혹행

위 소식은 끊이지 않았고, 남한의 주적이 북한이 아니라 군대 자체라는 성

토까지 이어져 나왔다.

평화주의자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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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바라보는 이전과 다른 여론이 반갑기도 했지만 동시에 낯설었

다. 이 사건들이 발생하기 이전에도 군내 가혹행위와 의문사는 무수했고,

애초부터 군대는 그러한 악행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철옹성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2년 간 강제노역을 해야 하

는 곳, 개인이 아닌 집단의 부속품으로 존재하면서 가혹적인 폭력에 노출

되어야 하는 곳, 약자 앞에서 무자비하고 강자 앞에서 비겁해져야만 하는

곳, 무수한 구타와 의문사가 자행되지만 군사기밀이라는 방패막이로 쉽사

리 은폐될 수 있는 곳, 시민의 기본적인 인권이 휴지조각처럼 버려질 수

있는 곳, 파블로프의 개가 되지 않으면 체제부적응자가 되는 곳, 부당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가지 않으면 사회적 기수열외를 받게 되는 곳, 민주주

의는 교과서에나 있는 것이지 생존전쟁의 사회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전

근대적 규율을 체득하게 되는 곳,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런 곳이 군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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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평화주의자 노트

나라를 지키기 위한 남성의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지는 군대는 실상 사회에

진출하기 이전의 청년들이 군사주의적 위계질서를 체득하고 지배계층의

입맛에 맞게 길들여지게 하는 국가 최대의 훈육기관을 자처해왔다.

복무를 하던, 거부를 하던 군인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군대의

악습은 평범한 얼굴을 지닌 악의 체제로써 작동되고 있다. 철학자 한나 아

렌트는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학살에 중요한 역할을 한 아돌프 아이히만

의 재판에 참여한 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통해 '악의 평범

성'을 말했다. 홀로코스트와 같은 역사 속의 악행이 특별히 사악한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에 순응해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게 된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일어난다는 것. 재판장에 선 아이히만은 남들과 다

를 바 없이 지극히 평범한 국민이었고 성실한 아버지였다. 평범한 사람이

자기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생각없이 커다란 악을 저지를 수 있다. 그

악이 그 체제 안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라면 말이다.

윤일병을 죽음으로 몰고간 이들에게 살인죄가 적용되었지만, 알려진 바

와 같이 그들 역시 후임병이었을 때 군폭력을 당한 희생자였다. 무참히 맞

다가 나중에 맞은 만큼 실컷 때릴 수 있는 사회가 군대이다. 평범한 개인

들이 일상화된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폭력에 시달리던 피해자가 어느새

죄책감 없이 새로운 가해자가 되는 폭력의 대물림은 악한 사람이 아니라

악의 체제에 의해서 발생한다. 사회 전체가 무한경쟁, 적자생존, 우승열패

로 지배되는 군국주의 국가에서는 군대뿐만 아니라, 학교와 직장에서 역

시 강자에 대한 자발적 복종과 약자를 향한 폭력은 필연적이다. 이와 같은

시스템에서는 이름만 다른 같은 형태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끊임없이 발생

되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Page 1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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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군대는 병들었고 그 안의 개인들은 아팠지만, 누구도 아프다 말할 수 없

었다. 밖의 우리들은 그들의 희생과 고통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

였다. 세월호 참사와 같이 시민의 생명을 보호해주기는 커녕 죽음으로 내

몰고, 진실을 규명하기는커녕 수뇌부의 조작과 은폐가 만연하게 통용되는

국가는 그 존재 목적을 스스로 거스를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국가와 군대 앞에 비판적 사고를 정지당한 채, '왜' 이런 비참한 일들이 일

어나야만 하는지, '왜'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왜' 군대를 가야 하는 것인지

질문할 수 없었다. 그만큼 국가라는 존재가 위협적이고 전지전능한 것으

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과 같이 국가 권력에 저항한다

는 것은 삶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위험을 전제한다.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개인들의 저항은 작고 힘겹고 초라하기 마련이고, 그 행위에 따른 처벌은

무자비하다.

군대를 간다고 하면 입영에 대한 입장을 밝힐 이유가 없지만, 군복무

를 거부했을 땐 불복종에 따르는 처벌을 감수하면서 '왜'라는 질문에 타당

한 사유서를 준비해 법정에 서야만 한다. 입영을 거부함으로써 받게 되는

1년 6개월이라는 징역형은 정해져 있었고, 이러한 선택을 지지해줄 주변

사람들도 있겠지만 받아들일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많다

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더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군대를 거부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소견서를 쓰기 위해 긴 시간 유

예기간을 두었지만, 오래도록 썼다 지웠다를 반복할 뿐 단 한 문장도 쓸

수 없었다. 병역거부의 입장을 밝히는 이 글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읽게 될 사람들을 위해 씌여져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군대에 대한 전문가

Page 1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11평화주의자 노트

적 지식을 수집해 씌여진 한편의 논문과 같이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어

야 한다는 강박감에 시달렸다.

양심과 신념을 이유로 군복무를 거부한 이전의 병역거부자들처럼 나 역

시 글을 통해 사회 모순에 저항하는 견고하고 결백한 순교자와 같은 면모

를 드러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지만, 실상은 한 글자도 쓸 수 없는 무

력과 공포에 압도된 상태였다. 여기에 쓸 어떠한 말로도 이해받을 수 없을

것이고 예정된 징역형 역시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무력감, 그리고 사랑하

는 사람들이 있는 세계로부터 단절된 폐쇄 공간에서 짧지 않은 기간을 낯

선 타인들과 갇혀 지내야 한다는 공포. 군체제에 의해 발생하는 가해자의

역할도 희생자의 자리도 거부했지만, 군복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만큼 징

역살이 역시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산책을 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심리상담을 받으며 안정을 찾아보려

해도 복합적인 감정이 앞을 다퉈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병역거

부에 따르는 처벌이 부당하고 화가 났다. 곧이어 자책과 우울감이 뒤따랐

고, 다 운명이라 받아들이니 무력감이 덮쳐왔다. 소견서를 작성하려 책상

앞에 서면 머리는 백지가 되었고 요동치는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무엇

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불행한 일을 겪게 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따라가

는 이 같은 심리 변화의 궤적이 이어졌다.

달리 보자면 지나온 나의 삶 속에서 군복무를 거부할 만한 사유는 꽤 다

양하게 기술될 수도 있었다. 유달리 예민하던 어린 시절에서부터 학교의

억압을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온 유년기를 서술하면서, 성적 위계의 사회

에서 성소수자로 살아온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고집이 강한 독립영화감

독의 얼굴로 내 삶을 비주류적으로 위치지으면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해

Page 1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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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던 여기 이 사람은 폭력적인 군대에 갈 수 없다', 선언할 수도 있을 것이

다. 실질적으로 중퇴자의 신분으로 홀로 가족을 떠나 외롭게 지낸 시절이

나 성소수자라는 위치는 권력에서 먼 사회적 약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독립영화감독으로서 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발언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왔다. 제작한 영화들이 국내외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고, 그 중 영화 2편은 국내개봉을 통해 일반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더구나 해외영화제에 초청을 받아 20대 내내 여

러 국가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이 정도면 또래가 가지지 못한 꽤 많은

자원들을 누리며 살아온 셈이다. 내 삶은 가난에 좌절하고 체제 밖에서 지

냈던 외로이 시절에서부터 연인과 함께한 행복한 나날들, 그리고 일을 통

해 여러 기회와 사회적 관계를 맺은 시기에 이르기까지 역동적 결합체로

존재한다. 어떤 면에서 사회적 약자이기도 했지만, 최선을 다해 한 인간으

로서 하고픈 일들을 하며 살아왔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을 지나오며

나름의 다양한 경험과 관계들을 맺고 살아왔고 그 모든 길들 속에 '나들'이

존재해왔다. 자퇴생, 동성애자, 영화감독은 사회가 나를 수식하기 위해 붙

인 이름표일 뿐, 이런 호칭들을 앞 세워 그 뒤에 숨고 싶지는 않았다. 김경

묵이라는 한 개인은 '나'라는 역사 안에서 살아온 불균질적인 '나들'의 지층

으로 구성되는 존재이지, 병역거부 소견서를 통해 절단된 단일한 면으로

드러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중략)

11월 19일 첫 재판이 열릴 예정입니다. 11월 23일에는 후원행사가 공중캠프에서 열립니다. 소견서 전문은 '전쟁없는 세상' 홈페이지나 '병역거부자 김경묵 후원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후원회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conscieeless.th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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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평화주의자 노트

『남성성들』을 소개합니다

현민 | 전쟁없는세상 회원

올해 초 십여 명의 <전쟁없는세상> 회원들이 모여 두 달 동안 『남성성

들』 세미나를 했다. 이 글의 목적은 교재 『남성성들』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는 데 있다.

성별gender을 논하는 두 가지 대표적인 이론과 비교해보면 '남성성들'

논의가 차지하는 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 하다. 첫 번째 비교대

상은 성역할 이론이다. '이론'이라는 용어가 주는 위압감이 있지만, 우리에

겐 친숙한 내용이다. 오늘날 남녀에게 기대되는 역할(남성성/여성성)이 경

직되어 있으며, 이는 개개인들에게 억압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면, 성역할 이론은 남자는 다소곳하게 뜨개질을 하면 안

될까, 여자는 과격한 스포츠를 즐기면 안 되나, 같은 질문을 불러일으켰

다. 남자도 간호사가 될 수 있고, 여자도 경비원을 할 수 있다! 2000년을

전후로 해서 한국사회에 소개된 대부분의 여성학 입문서는 성역할 이론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는 초중등 교과과정에서도 채택할 정도로 대

평화주의자 노트

Page 1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14

중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사실 '역할'은 매우 안이한 개념이다. 가정, 학교, 군대, 직장과

같은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개인에게 요구되는 명령은 역할이라는 동일

한 용어로 뭉뚱그릴 수 없다. 성역할 이론에서는 남성성/여성성을 마치 개

인들이 열린 자세와 유연한 태도를 취하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처럼 다룬

다. 원래 역할이라는 용어가 유래된 연극에서조차 배역의 선택은 자유롭

지 않다. 성역할 이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의 권력관계를 이해하는

적절한 틀이 되지 못한다. 이는 성역할 이론에서 제시하는 대안이 한 사람

의 내부에서 구현되는 양성의 조화와 화해(양성성)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도 알 수 있다.

두 번째 비교대상은 가부장제 이론이다. 가부장제 이론은 성역할 이론

에는 빠져있는 권력을 쟁점으로 제기한다.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 이론

을 통해 남자들이 여자들을 지배한 억압의 역사가 얼마나 체계적이고 공

고한지를 보여주었다. 1970년대에 등장한 가부장제 이론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다양한 시공간을 관통해서 설명하면서 이론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였다.

그런데 가부장제 이론에도 난점은 있다. 가부장제 이론이 완벽해질수

록, 즉 오랜 시간과 다양한 공간에서 남성지배를 발견할수록 저항과 탈출

의 모색은 힘겨워진다. B.C. 500년 유럽에도, 10세기 라틴아메리카 대륙

에도, 16세기 폴리네시아에도, 남자가 여자를 지배했다는 증거가 있다니!

남성지배가 그토록 오래되고 지구 전역에 만연해있다면 가부장제는 보편

적인 역사법칙이라는 암울한 결론에 이르고 만다. 게다가 가부장제 이론

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적대 관계를 설정하기 마련인데, 이때 이른바 '성

소수자'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실제로 서구에서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Page 1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15평화주의자 노트

등장했을 때, 적잖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몸을 강탈한 가부장으로 간

주하고 비판한 바 있다.

『남성성들』의 저자는 남자라는 집단이 결코 단일하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남성성의 주변과 한계 지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상세

하게 기록한다. 내가 보기에 『남성성들』의 고유한 문제의식은 남녀라

는 이원론에서 가부장이나 가해자라는 이름만 주어져있는 남자들의 자리

를 샅샅이 파헤쳐보는 데 있다. '남자 기 살리기' 같은 보수적인 남성운동

도 아니고, 여성운동을 보조하는 역할도 아니고, 남자들이 갖는 고민을 심

화시키면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운동은 가능할까.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성역할이나 가부장제 이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남성성을 정의하고 분석틀

로 다듬을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용어가 남성성'들'(헤게모니적

남성성 / 공모적 남성성 / 주변화된 남성성 / 종속적 남성성)이다.

Page 1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16

이런 학문적 성취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오스

트레일리아의 사회학자 R.W. 코넬은 결혼도 하고, 딸도 있고, 쉰살이 넘

어 머리도 벗겨졌지만, 현재는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살고 있다. 저자는 남

성성의 주변과 한계지대에서 살고 있는 수십명의 남자들을 인터뷰해서 한

권의 책으로 엮고 이론으로 만들어냈다.

개인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례가 한국보다 급진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트랜스젠더 여성이 교수가 되고 비가시화되는 현실을 언어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가 부러웠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세계적인 석학

이 되었고 남성성 연구에 도전하는 사람은 이 책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더 이상의 내용이 궁금한 사람은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남

성성들』에 등장하는 R.W. 코넬의 개념은 병역거부자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누가 했는지 번역도 잘 했다고 칭찬이 자자하더라.

Page 1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17참가 후기

전쟁저항자 인터내셔널 국제회의를 다녀와서

박승호 |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전쟁저항자 인터내셔널(War Resister’s International, 이하 “WRI”)은

세계 40개국 이상에 80개 이상의 가맹조직을 포함한 개인과 단체로 구성

된 평화주의, 반군사주의를 표방하는 네트워크 조직이다. WRI는 1921년

설립된 이후로 지금까지 “전쟁은 반인도범죄이며, 이에 어떤 종류의 전쟁

이라도 지지하지 않고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창립

정신에 의거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4년마다 총회를 겸해 국제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이번 국제회의의 주제는 “작은 행동, 큰 운동: 비폭력의

지속”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저항 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비폭력운동 사례들

을 남겼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되었다.

2014년 7월 4일 저녁이 되자 세계 각지에서 온 활동가들이 케이프타운

시청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회의장소로 선정된 케이프타운 시청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26년간의 투옥 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직후 기자회견

참가 후기

Page 2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18

을 열었던 바로 그곳으로 그 장소의 상징성 때문에 많은 국제 행사들이 열

리기도 한 곳이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참가자들이 강당을 가득 채우자 이번 국제회의의

공동주최 단체인 씨즈파이어캠페인, WRI의 대표자 둘이 연단으로 개회를

선언했다. 이후 짐바브웨 여성 저항운동을 이끌고 있는 WOZA의 제니 윌

리엄스 활동가, 팔레스타인 BDS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오마르

바르고티, 이스라엘 병역거부자 사하르 바르디 등의 저명한 활동가들이

연이어 연단에 올랐고 각자의 활동 속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나누

는 시간이 이어졌다. 각자의 자리에서 성공적으로 운동을 이끌었던 이들

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그 시간은 분명 힐링의 시간이었다. 아무

리 운동을 기획하고 이끌어도 딱히 어떤 성과들이 드러나지 않을 때가 얼

마나 많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얼마나 많이 들었

던가. 하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싸움을 하

이번 WRI 국제회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렸다.

사진은 케이프타운 시청

Page 2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19참가 후기

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 그리고 그 고된 싸움 속에서 조금씩 변

화를 쟁취해가는 동료들이 여기 있다는 사실만으로 참가자들은 각자의 운

동을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고 있었다. 연사 중 한 명인 사하르 바르디가

이야기 했듯이 결국 우리가 이 곳에 모인 이유는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또 영감을 받기”위함이지 않았던가.

한편, 이날 개회식의 하이라이트는 현장을 찾은 깜짝 손님의 연설이었

다.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가 바로 그 주인공이었는데, 원래 해외 일정이 있

어 영상을 통해서 참가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로 했지만 우연히 시간이

맞게 되어 깜짝 방문을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소식들을 듣고 신이 날마다 눈물을 흘리지만, 바로 이 자

리에 모인 전쟁 저항자들을 볼 때 미소를 짓는다며 이 자리에 모인 당신들

이 바로 신을 미소짓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로 참가자들에게 잔잔한 감동

을 주었다. 이윽고 준비된 순서가 모두 마쳐지고, 참가자들은 다음날부터

시작되는 본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안고 각자의 숙소로 흩어졌다.

이번 회의는 크게 4가지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전 첫 시간은

모든 참가자가 함께하는 전체강연이 진행되었고, 바로 이어진 시간에는

참가자들이 모두 13개의 주제그룹으로 나뉘어져 각 주제별로 주어진 사안

에 대해 4일 동안 논의를 이어갔다. 오후에는 이번 국제회의 참가 단체들

에서 자체적으로 준비한 각종 주제에 대한 세미나와 워크샵이 열렸다. 저

녁에는 음악, 시, 영화 등으로 구성된 문화제가 열리기도 했다. 4박 5일간

의 일정 중에서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은 필자가 참여했던 “경제위기와 군

사주의” 주제그룹 토의와 “직접 군축”이란 제목의 워크샵이었다.

Page 2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20

[주제그룹 토의] 경제위기와 군사주의

어떤 컨퍼런스에 참여해도 그렇겠지만 첫 세션은 늘 어색한 자기소개로

시작되기 마련인 것 같다. 우리 주제그룹에는 약 20명이 참여했는데 출신

지역이 이집트, 카나리제도, 남아공, 미국, 독일, 핀란드, 인도, 한국 등으

로 굉장히 다양했다. 주제그룹의 공동진행자들은 첫 세션에서 각자가 “경

제위기와 군사주의”라는 주제 내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첫 논의의 문을 열었다. 다양한 지역, 성별, 나이의 참가자들이 모

인 만큼 각자가 주어진 주제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은 천차만별이

었다. 첫 번째 주제그룹 세션은 각 참가자들이 내놓은 20개의 질문들을 취

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다음 날 이어진 세션은 전세계 군비지출 현황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으

로 시작되었다. 이 자리에서 2013년 한해 동안만 미화로 약 1조 747억

달러가 군비로 지출되었다는 통계를 시작으로 어떤 지역에서 얼마의 군사

비가 사용되고 있는지, 각국의 무기 거래 현황은 어떤지 개괄적인 데이터

들이 소개되었다. 전체적인 그림을 공유한 뒤 우리는 세개의 모둠으로 나

뉘어져 전날 제시된 20개의 질문지를 각 모둠별 관심사에 따라 추려 논의

의 세부적 방향을 잡기로 했다. 이 날 각 모둠에서 공통적으로 다루어진

핵심 논의는 경제위기와 군사주의와의 연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경제위기와 군사주의는 원인과 결

과 차원에서 이해되기도 하며(군사주의 확장이 경제위기를 불러오거나 전

쟁이 일시적인 버블을 형성했다가 후에 다시 경기침제를 불러오는 등), 경

제위기라는 현재의 상황을 군사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기회로써 활용할

수 있다는 접근방식의 전환, 일부 국가에서 군수산업이 경제위기를 돌파

Page 2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21참가 후기

할 수 있는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제시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 등

다양한 관점이 제시되었다. 또 경제체제 그 자체가 군사주의 한 축으로 작

동하는 부분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제공되기도 했다. 회의의 마지막 날에

는 우리가 파악한 문제적 지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각 단위에서 어떤 행

동이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이 주를 이루었는데, 흥미로웠던 논의

중 하나는 세계화된 전쟁산업 구도 속에서 어떻게 각 국가의 민중들이 연

대해서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각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무분별한 군사비 지출 중 상당액을 차지하는 고가의 무기 구매를 예

로 들어 수출국의 시민들이 ‘우리는 피 묻은 돈으로 일구어 낸 경제성장을

거부한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저항하고, 수입국의 시민들은 막대한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무기체계 구입에 저항하는 운동을 일구고 두 국가의 시민

들이 상호 연대를 구축하는 그런 방식의 운동이 제안되었다.

그외에도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서 우리의 경제체제 내 깊이 뿌리 박힌

군사주의의 망령을 몰아내기 위해서 일상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캠페인들

에 대한 논의, 세계적 군축 이니셔티브로서 세계군축행동의 날(GDAMS)

캠페인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갔다. 하지

만, 아쉽게도 우리의 논의는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수립하는 것까지 이어지

지는 못했다. 하지만 각기 다른 배경 속에서 모인 사람들이 토론의 과정을

통해 서로가 가진 생각의 틀을 깨고 각자의 문제의식을 더욱 심화시켜가고

새로운 캠페인에 대한 영감을 얻어갈 수 있었던 부분은 모두에게 큰 수확

이 되었을 것이다.

마지막 날은 이제껏 각 주제그룹에서 진행된 논의들을 정리해 전체 본회

의에서 공유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Page 2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22

작은 행동, 그리고 큰 운동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제외하고도 이번 국제회의에서 새롭게 배우고 영

감을 얻은 것들을 세세히 나열한다면 아마도 꽤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회의를 통해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세계

곳곳에서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싸움을 하고 있는 동지들과의 만

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세션들을 통해서 우리가 끊이 없이

상기하게 된 것은 세상의 모든 전쟁을 단박에 끝낼 수 있는 단 하나의 비

법이나, 모든 사람의 관심을 모으고 즉각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캠페인 방법이 아니라 바로 세계 곳곳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작은 행동

들’이 어느 날 ‘큰 운동’을 견인해 낼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각자의 자리

에서 지금껏 이어왔던 작은 행동들, 그리고 그 작은 행동들을 통해 큰 운

동이 견인되었던 경험을 나누는 것, 또 그를 통해서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일상의 운동을 이어갈 힘과 영감을 얻었다는 것, 아마 그것이 내가 이번

WRI 국제회의를 통해 얻은 가장 소중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오리가 본회의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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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참가 후기

3박 4일의 즐거움2014 평화캠프를 다녀와서

김영준 | 1인조 인디밴드 하늘소년

페북에서 ‘초심자를 위한 비폭력트레이닝’이라는 문구에 꽂혀 흔들린 마

음과, 황금연휴를 맞아 모처럼 여행을 떠나보자 하던 마음과의 갈등은 이

내 평화캠프행으로 결론이 났고, 입금으로 내 마음에도 마침표를 찍었다.

대학원 공부 중 재세례파를 알게 되었고, 이들 후손들을 통해 비폭력의

전통이 전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 유명한 간디나, 노예해방의 윌리엄 윌

버포스, 아파르트헤이트로 잘 알려진 남아공의 데스몬드 투투 주교나, 흑

인 인권운동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등을 알게 되면서 그 궁금증과 관심을

커져갔다. 이번 캠프행은 바로 그 연장선상에 서 있다.

어느 캠프나 처음은 어색하지만, 꽤 일반적이지 않은 주제에 관심을 가

지고 온 사람들이란 사실이 서로 모르는 참가자들에게 꽤나 동질감을 갖

게 했고, 캠프를 진행하는 ‘망치(비폭력 트레이너 네트워크)’ 스텝분들의 따

뜻한 안내로 그 어색함은 이내 종식되었다. 나처럼 내성적인 사람에게도

말이다.

참가 후기

Page 2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24

내가 교회 관련 캠프를 많이 다녀서 그런 건지는 모르지만, 다른 캠프

와 유독 달랐던 점은 일과가 끝나면 저녁시간에 다른 프로그램이 따로 없

다는 것이었다. 매우 훌륭한 시간 배치라고 생각한다. 이 시간에야말로 몰

랐던 참가자들을 알아가고, 또 낮에 배웠던 것들에 대한 생각을 서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는 하루는 인간 노래방으로 사용되고, 하루는

보드게임에 몰두하느라 그런 시간을 많이 갖진 못했다. 못내 아쉬운 부분

이다.

사실, 후기를 쓰는 지금은 거의 2달이 지난 시점이라 당시 기억이 생생

하지는 않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몸으로 움직였던 실습들은 기억

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실은 이메일로 받았던 당시 자료를 일부러 찾아봤

는데, ‘이런걸 배웠었다니!’ 했다. 그래도 몇 가지 기억나는대로 소개해 보

2014 평화캠프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평택평화센터에서 열렸다.

트레이너의 발표에 집중하고 있는 참가자들

Page 2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25참가 후기

겠다. 물론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소개하지 않겠다. 그건

전쟁없는세상에 문의하시기 바란다.

○ 권력축 분석하기

- 이건 거의 초반에 했었기 때문에 기억이 잘 난다. 무엇보다 해결이 막

막해 보이는 문제를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정리해 보면 의외

로 문제해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이 내

부의 문제라면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도 있는 아주 좋은 분석틀.

○ 비폭력과 민주주의

- 이건 과도하게 큰 PPT 화면의 숫자 때문에 잊혀지지 않는다. 다른 책

을 통해 조금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폭력을 동반한 것보다 비폭력 저항

운동이 훨씬 더 문제해결 비율이 높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 우리편 찾기

- 액션의 기획 단계에서 우리가 상대할 대상을 정하고, 그 대상의 스탠

스에 맞게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이론과 실습을 통해 배웠다. 기억에

많이 남는 내용 중 하나이다.

○ 신속한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

- 훈련과 준비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신속한 의사결정은 어떤

좋은 아이디어나 순발력이 아닌 평소의 준비와 많은 경험을 통해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Page 2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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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롤플레이

- 무엇보다 제일 마지막에 했었던 역할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민

사회단체 활동가 역할을 할 때는 솔직히 어떻게든 봉쇄만 성공시키면 된

다는 생각을 했다. 즉 언론 등의 다른 역할에 대해 부차적인 것으로만 생

각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상황이 끝나고 되돌아보니 우리가 전하고자 하

는 메시지를 전혀 전달하지 못했다. 실제로 상대편에서 그런 피드백이 나

왔다. 현실을 생각해보니 경찰이나 공권력은 늘 이에 대비해 훈련하고 준

비하는데, 우리는 전혀 그런 준비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했고, 공부

와 전략, 훈련이 필요함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건 작곡 워크샵 시간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

이 호응해 주셔 즐겁게 진행할 수 있었다. 특히 열정과 끈기로 '꽃가루'송

이라는 위대한 현장노래를 만든 아침의 노력이 돋보였다. 결국 모두 앞에

서 불러보는 시간도 가졌다.

용석의 지칠줄 모르는 노래에 대한 욕심이 낳은 인간 노래방 시간도 잊

을 수 없다. 엔틸드와 나, 우린 도구였지만 제법 즐거웠고 그 오랜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발휘했다. 함께 모여 옛

노래를 부르는 건 언제 어디서도 즐겁다. 그 때문인지 피스바의 매상은 좀

처럼 오를 줄 몰랐고, 우리는 마담의 구매강요에 시달려야 했다.

나에게 있어 평화캠프에서의 배움은 캠프에서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현재 사회문제를 창조적이고 유쾌하게 해결해 보기 위해 <명랑사회공

작단 ‘호미’>라는 팀을 모았고, 비폭력직접행동의 실천을 모색하고 있다.

소셜마케팅+비폭력직접행동+사회심리학의 공부를 실질적인 액션으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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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참가 후기

일과가 끝난 저녁, 피스바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엔틸드(맨 왼쪽)와 영준(맨 오른쪽)

어가기 위해 모임중이다. 이제 곧 ‘망치’의 라이벌로 떠오를 것이다. 긴장

하시기 바란다.

끝으로 비폭력 트레이닝은 쭉, 계속 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서, 평화캠프를 준비하고 수고한 ‘망치’와 전쟁없는세상 스탭 모두에게

감사와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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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거부를 가능케 한 사람들베트남전 파병50년 행사를 다녀와서

오세영 | 망원동 주민 + 평화연구자

지난 9월 25일, 〈베트남전쟁, 다양한 경계 넘기 - 전쟁 거부를 가능

케 한 사람들〉이라는 제목 아래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열린 강연에 가

보았다. 연사는 일본에서 온 세키야 시게루씨로 전쟁기간 동안 ‘자텍’

(JATEC, Japan Technical Committee for Assistance to U.S. Anti-

War Deserters, 反戰脫走美兵遠眺日本技術委員會, 반전탈주미병원조일

본기술위원회)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며 미군 탈영병을 도왔다고 한다.

그는 자텍이 속했던 ‘베평련’(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에 대한 설명

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잘 알려진 대로 그것은 당시 베트남전쟁에 반대하

는 일본의 시민들이 꾸린 반전운동 단체이다. 강연자에 따르면 기존의 사

회운동 ‘조직’과 달리 베평련에는 평범한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개인의 자발적 의지의 연합이라는 베평련의 특성에

서 자텍의 등장을 찾고 있는 듯 보였는데, 이를테면 소시민들이 품었던 자

신의 생활과 베트남전의 관계에 대한 의구심이 일본 곳곳에 자리한 미군

참가 후기

Page 3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29참가 후기

기지의 현실과 맞물렸다는 점이다. 그러자 이제까지 전쟁의 피해자로만

여겼던 스스로를 아시아 인민에 대한 가해자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이

다. 다시 말해 원폭의 재앙과 이어지는 미국의 압력 속에서 전후 일본은

피해자 정체성을 구축했으며, 베트남전이 일어나자 비로소 일본의 시민사

회가 가해자로서의 자신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미군 병사들에

대한 시선 또한 변화하여 적대해야할 존재라기보다 전쟁에 동원된 또 다

른 피해자로서 반전운동의 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자텍의 출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1967년 당시 요코스카에 정

박중이던 미항공모함 인트레피드에서 탈영한 4명의 병사였다고 한다. 이

들은 베평련의 도움을 받아 국외로 탈출했으며 최종적으로 소련을 거쳐

스웨덴에 망명했다. 그 뒤에 이들과 같은 탈영병을 지원하기 위한 조직의

세키야 시게루 씨(왼쪽)와 통역해주신 역사문제연구소 후지이 다케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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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성이 제기되어 자텍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처음에 자텍이 목

표로 한 바는 탈영병들을 국외로 무사히 탈출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점

차 시간이 갈수록 탈영병의 수도 늘고, 존슨이라는 스파이로 인해 그들 가

운데 일부가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난 뒤 병사들의 출국과 망명은 현실적

으로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자텍은 노선을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합법적인 해결책을 구하기 위해 전문가의 상담을 제공하거나,

반전신문 등의 발간을 통해 기지내의 병사들과 교류를 시도하고 해외 반

전운동과의 협력도 지속하였다.

세키야씨 자신은 재수생 시절 자텍을 알게 되어 대학을 다니는 와중에

도 탈영병들을 보호하는 활동을 지속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에는 회의를

느낄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병사도 있었던 반면, 적극적으로 동참하

고 지지하는 이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탈영병들을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젊은이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아마 또래였던 그들

과 한동안 함께 생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회상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도주한 미군병사에 대한 일본시민의 원조가 철저한 사전준비와 계획

으로 진행되었다기보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대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졌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여기에 참가한 사람들도 직업 활동가들이 아

니라 일반적인 생활인들이었으며, 그들 모두가 거창한 대의명분을 지니고

'운동'에 띄어들지는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그보다 이들에게 중요했던 것

은 전쟁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탈영병에 대한 인간적 연대의식이었다고 한

다. 세키야씨는 이렇게 시민들 스스로가 군대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에서 그전까지의 사회운동과는 다른 베평련과 자텍의 새로움을 찾았다.

이날 강연에서는 한국인 탈영병 김동희와 김진수에 관한 언급도 있었

다. 최근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되어 관련 문헌을 읽어보긴 했지만, 그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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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참가 후기

곳을 몸으로 살았던 사람의 말을 듣는 것

이 묘한 기분을 일으켰다. 세키야씨는 김

진수를 직접 만나보았다고 한다. 그는 한

국전쟁 뒤 한 미군 병사에 의해 입양되어

미국에서 자랐으며, 이후 미군에 입대해

베트남에 파병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전

쟁을 겪다가 잠시 휴가 중이던 일본에서

미국을 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스웨덴으

로 망명한 김진수의 삶에 관하여는 그 뒤로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몇 장

의 사진과 신문기사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와 비슷한 또래의 세키야

씨는 이제 백발이 성성하지만, 사진 속의 김진수는 여전히 앳된 모습이다.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은 여전히 드러나지 않거나 못한 일로 가득 차 있

다.

지난 세기 아시아는 많은 전쟁을 겪었고, 그만큼 다양한 전쟁의 경험상

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 또 같은 전쟁에 대한 시선도 각 나라

와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다. 베트남에서 상당한 희

생을 치른 한국의 입장에서 언뜻 보면 일본은 피 흘리는 일 없이 배를 채

운 셈이다. 그러니 당시 일본의 반전운동이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

겠다. 하지만 일본 민중도 그 나름대로 베트남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한계가 있을지라도 그들의 고민과 활동을 폄하하기

보다, 서로 다른 전쟁의 경험들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논의할 자리를 만

들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 시대의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증언은 매

우 중요하며, 이날의 강연도 그 과정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

각한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더 자주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김진수

Page 3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32

참가 후기

병역거부 망명자 이예다 씨를 일본에서 만나다

양성택 | 일본 거주 중

8월 15일 코엔지에서

8월 15일, 일본에서는 이날을 ‘종전의 날’이라 부른다. 광복절처럼 공

휴일도 아니고 추모관련시설외에는 국민적인 행사를 치르지도 않는다. 다

만 TV에서는 8월 초가 되면은 8월 15일까지 전쟁 관련 특집 다큐멘터리

나 영화, 단편 드라마등을 줄창 방영하긴 한다.

테마는 여러가지를 다룬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피폭자들부터 전범재

판, 주변국 젊은이들의 의식 조사 등…. 때로는 일본에 비판적인 방영내용

이 논란이 되기도 하지만 보통은 정치적인 부분은‘일본적인 기준’에서

의 중립을 지키려고 한다.‘헌법과 자위대’ 도 매번 나오는 테마중에 하

나다. 다만 올해는 앞으로 이야기 할 이유로 인해 예년보다 더 주목을 받

게 되었다.

그렇게 찾아온 69번째‘종전의 날’의 오후, 나는 작가이자 친구인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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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참가 후기

미야 카린씨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오늘 후쿠시마 미즈호 의원이

난토카바1에서 1일 점장을 한다고 초대를 받았는데 같이 갈까?”

오랜만의 연락이라 다른데서 저녁식사라도 같이 하고 가자는 약속을 한

후 회사일을 마치고 약속장소인 코엔지로 향했다. JR코엔지역을 내려 카

린씨와 향한곳은 코엔지 남쪽에 새로 생긴 작은 스시집. 카운터에 앉아서

맥주를 주문하자 TV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가 막 시작하는 중이었다.

“역시 날이 날인 만큼 전쟁영화만 줄창 틀어주는군요.”

“그러게 말이야 집단적 자위권이 각의 결의가 됐는데….”

지난 7월1일, 일본에서는 아베내각이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는 헌법해

석 변경을 각의결정하였다. 그 전에는 무기수출 3원칙이 변경되었다. 작

년 말에는 비밀보호법이 통과되었다. 다만 이런한 움직임에 대해 ‘일본

군국주의 부활 행보’라는 식의 자극적인 타이틀을 뽑아내는 한국 미디어

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약간 회의적이다.

헌법9조 개헌을 관철 시키지 못하자 이런 저런 수를 써서 사실 뒤로 많

이 후퇴한 것이 헌법해석 변경이고 사실 이로 인해 아베 내각은 지지율을

많이 잃었다. 한편 아베내각의 지지율을 지탱하는 핵심은 ‘일본 재무장’

이 아닌 경기회복이다. 이게 건전한 경제정책이라 할 수 있는지, 혹은 아

베노믹스라는 경제정책의 장기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은 남겠지만, 어

찌됐던 올해 들어 경기회복의 기대가 상승한것은 부정할 수 없다. 1년에

한번씩 수상이 바뀌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자 한번 하는 대로 내버려

둬보자는 것이 유권자들의 생각이 아닐까?

1 <가난뱅이의 역습> 으로 유명한 마츠모토 하지메가 운영하는 주점. 매일 담당점원이 바뀐다. 후쿠시마 미즈호의원은 8월15일이라는 이유로 1일점장을 한것이다.

Page 3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34

카린씨하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 영화에서는 일본군역으

로 나온 카즈나리 니노미야(주인공 배우, 쟈니즈)가 상관한테 두들겨 맞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다가 갑자기 떠오른 사실이 있었다.

“아! 맞어 카린씨, 제가 얼마전에 징병거부로 프랑스로 망명한 한국인

하고 연락이 닿게 됐어요.”

“이예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잠시 이야기를 6월로 거슬러 올라가도록 하겠다. 2012년에 한국

을 떠나서 프랑스에 입국해, 2013년 중순에 망명자격을 인정받은 이예다

씨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올해 6월경이었다. 한국의 인터넷 보도를 통해

서 알게 되었다. 내 자신이 해외에서 살고 있다 보니 병역거부의 길을 해

외에서 찾는것에 대해서는 항상 관심이 있었다. 실제로 이미 많은 사람들

이 유학이나 이민, 혹은 원정출산등의 방법을 통해 한국의 통치권밖으로

사실상 이탈하고 있지만 이는 직접적인 병역거부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

이 망명이라는 법적 절차를 통해 이루어질 경우, 한국의 현행 징병제가 국

제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봤을 때 비인권적이라는 점이 인정되어 지는 것

이고, 병역거부라는 본인의 의사도 직접적으로 주장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다.

사실 이예다씨는 첫번째 망명객은 아니다. 이전에도 개인적인 루트로

제3국으로의 망명에 성공한 사람과 연락을 취해본적이 있었다. 다만 성

적소수자라는 본인의 아이덴티티가 한국사회에서 핸디캡으로 작용된다

는 점이 참작 되어서 인정된 케이스였으며, 본인 또한 신분을 밝히기 꺼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이예다라는 기사속 인물은 개인정보는 물론 얼굴

Page 3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35참가 후기

사진까지 다 공개해놓고 매우 당당하게 자신의 새로운 삶에 대해서 이야

기하고 있었다. 또한 그가 정치운동경력이나 종교가 없으며 성적소수자도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 징병제 그 자체가 망명사유로서 인정된 첫번째 케

이스이기도 했다.

이예다씨의 기사를 본 그날 밤, 기사가 계재된 매체에 새벽녘까지 자기

소개와 연락처, 몇가지 제안을 담아 쓴 이메일을 한통 작성하여 ‘이예다

씨에게 전달해 주었으면 한다’며 보냈다. 몇가지 제안이라는것은, 1. 지

리적으로 가까운 일본에서 가족분들과 재회 할 수 있다면 경제적이지 않

을까? 2. 만약 일본에 오신다면 조그만한 이벤트 정도는 해가지고 이곳 사

람들하고도 예다씨의 체험을 공유 해보는것은 어떠신가? 3. 그 이벤트를

기사화해서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은 어떨지?

답장이 없는 상태로 약 3주 후의 어느 금요일 밤, 금요일이 항상 그렇듯

이 나는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왔다. 그 순간 모르는 번호가, 보통전화보

다는 좀 긴 번호가 표시되면서 전화가 울렸다. +33 이라는것이 국가번호

라는 생각도 못해보고 일본어로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상대도 일본어로

내 이름을 확인 하더니 「イ·イェダと申します」 (이예다라고 합니다)

라고 일본어로 대답하였다. 그 순간 술이 깼다.

“일본으로 와주세요!” “네 갈게요. 9월 16일에.”

“외신기자 클럽(FCCJ)에서 대대적으로 기자 회견을 하자!”

앞서 말한 이예다씨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만약 와주면 조그맣게 이벤

트라도 열어서 매거진9(일본의 시사관련 웹진) 등에서 기사화해서 기록

으로 남기면 어떻겠느냐”라는 나의 제안에 카린씨가 의외의 답변을 했다.

Page 3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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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특파원협회(外·特派員協· FCCJ)가 정식 명칭인 외신기자 클럽은

1945년 연합군과 함께 일본에 상륙한 외신 기자들이 만든 협회이다. 도쿄

유락쵸에 있다. 수상 스케쥴을 가지고 추측성 기사를 쓰는 정도로 외신기

자가 출국금지를 당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기 때문인지, 도쿄는 동아시아

전반을 담당하는 외신기자들이 많이 상주하며, 도쿄에 상주하면서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도 커버하는 기자들도 많이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 한국관

련뉴스를 다루기에도 나름 적절한 곳이며, 또 역대 수상과 달라이 라마등

도 이곳에서 회견을 여는 등 몇 가지 역사적인 회견도 있었다.

각 언론사나 저널리스트개인의 멤버십으로 운영되며, 외신클럽이라는

이름이지만 일본매체들도 취재가능하기 때문에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이

전 직장에서 몇 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병역거부 망명

자가 회견을 열 수 있다면 물론 이상적인 일이다. 반대로 이런곳이다 보니

왠만한 이슈가 아닌이상 회견을 여는것은 불가능 하다. 카린씨의 말을 듣

고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일본어로, 영어로 이예다씨의 뉴스를 검색해봤

다.

한국에서도 단신보도로 주목받지 못했는데 외신에 보도가 됐을 리가 없

었다. 하지만 GOP 총기사건의 임병장, 그후 군인권센터의 폭로로 밝혀

진 윤일병 구타사망사건과 함께, 한국 징병제로 인한 사건에 관련해서 협

회를 설득해본다면 가능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이로 인한 메리트

도 생각해 보았다. 이예다씨를 포함해 이전의 망명자들에 의하면, 한국 징

병 군대내의 열악한 환경이나 사회내의 차별등을 다룬 외신보도가 망명판

정을 받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들었다. 이예다씨의 망명 사실이 한국에

서도 알려지고, 외신에서도 보도가 된다면, 적어도 입대 전에 자살하는 사

람들에게 있어서는 어차피 죽을 바라면 그전에 최후의 선택을 하나 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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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참가 후기

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하는것이 좋다. 카린씨는 “집단적자위권

뿐만 아니라 군대내의 괴롭힘으로 인한 사건을 생각하면은 이지메 문제에

있어서도 일본서 생각 해 볼 수 있는 기회. 이건 일본, 한국 양쪽에 다 좋

은 이야기”라는 생각이었다.

여기까지 대화가 진행되자, “자 그럼 이예다씨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

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자리에서 당장 파리시간을 확인 하였다. 오

후 4시였다. 곧바로 연락을 해서 전화가 연결되었다. 나는 아마미야 카린

이 누구인가를, 그리고 그 사람하고 무엇을 하려는지를 짧게 설명한 뒤 카

린씨에게“일본어 잘 하니까 그냥 이야기 하면 된다.”라는 한마디만 하고

전화를 넘겼다.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갔던 카린씨가 잠시 후 돌아와서 말

했다.

“두서없이 내가 ‘일본으로 와주세요’라 했더니 ‘네 갈게요. 9월 16일

에’라고 대답했다. 역시 망명까지 하는 사람은 대단해~!”

역사상 최초의 해외 망명중인 한국인 병역거부자의 기자회견은 이렇게

69번 째 종전기념일 도쿄 코엔지에서 계획되었다.

양성택 님이 보내주신 글을 분량상 일부를 싣습니다. 전문은 전쟁없는세상 홈페이지 www.withoutwar.org에서 볼 수 있습니다.

Page 4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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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기획기사에서는 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안보교육에 대

해 다룹니다. 지난 7월 서울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군인이 안

보교육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초등학생들이 충격을 받아 뛰쳐나오

는 일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하여 안보교육 문제에 대응하는 시

민사회의 모임이 꾸려지기도 했습니다. 현재 교육 현장에서 이루

어지고 있는 안보교육이 왜 문제가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

지고 있는지 알아보고, 안보교육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국방부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대응에 대해서도 알아봅니다. 우리가 지향해

야하는 안보교육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담았습니다.

더불어 청소년 군사화에 저항하는 국제행동주간 캠페인에 대

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청소년의 군사화에 저항하는 캠페인

(Countering the Militarisation of Youth)은 군대가 국방영역

을 넘어 여러 영역, 특히 청소년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어려서부

터 전쟁과 폭력을 배우게 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국

제 캠페인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국제행동주간을 갖고

교육영역에서의 군대의 역할을 드러내고 대안적인 목소리를 내는

전세계적인 반군사주의 행동을 펼쳤습니다. 한국에서는 전쟁없는

세상을 비롯한 몇몇 단체들이 올해부터 국제행동 주간 캠페인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군인이 안보를 가르치다

기획기사

Page 41: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39기획기사

기획기사

왜 안보교육이 아닌 평화교육인가지향해야 할 교육의 방향

가람 | 전쟁없는세상 회원

교육이 한국에서 고생이 참 많다.

아무데나 갖다 붙이면 다 교육이다. 지난 7월 17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에서 군인에 의해 안보교육, 일명 “나라사랑 교육”이 진행되었고, 내용의

폭력성으로 인해 많은 학생들이 충격과 공포를 호소함에 따라 국가보훈처

의 나라사랑 교육이 다시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2012년 10월 국정감사

에서 보수 편향적 자료 배포 및 강연을 통한 대선 개입 의혹을 받았던 그

“나라사랑 교육”이다. 이쯤 되면 이 “나라사랑 교육”이라는 것의 정체

가 궁금해진다. 특히 초등학생들을 포함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

던 교육 내용에 대한 공개 청구에 “내부검토과정 및 의사결정과정 사유”

(2012), “북한이 이를 빌미로 대남비방과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등 우

리의 국익을 해칠 우려” (2014)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정보 공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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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거부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국가보훈처에 의하면, 안보교육을 주목적으로 하는 “나라사랑 교육”은

“1993년부터 시작된 이후 2010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교육 강화 필요성이 제기되어 2011년 초부터 제

도적으로 강화”되었다. 2011년에는 아예 보훈처 내부에 “나라사랑 교육

과”를 신설하여 그 행보를 본격화하였고, 이에 발맞추어 같은 해 3월에는

교과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국방부와, 이듬해인 2012년 초에 이르

러서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14개 교육청이 지방보훈청 및 군과 학

생들의 안보교육 활성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교류·협력협약(MOU)

을 맺었다.1 이는 2010년과 2011년 각각 68회(2,720명), 138회(5,520

명)였던 안보교육 횟수가 2012년에는 920회(119,243명), 2013년에는

1,191회(132,179명)로 급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문제는 나라사랑하는

정신을 함양한다는 미명 하에 안보교육이 실제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

떤 내용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있다.

“성인 장병”에게는 괜찮고 초등학생에게는 안 된다? 둘 다 안 된다.

교육을 받던 학생들이 놀라서 울며 교실을 뛰쳐나갔다는 지난 7월의 안

보교육에서는 북한의 인권유린 실상이라며 북한 주민에 대한 각종 잔인한

고문 장면을 담은 동영상 및 사진 자료가 제시되었다고 한다. 국방부 산하

국방정신전력원이 성인 장병의 정신교육을 위해 제작한 자료가 초등학생

들에게 사용된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방부 교육 관련 부서 관계자가 “인권

1 「전쟁교육 없는 공동체를 위한 시민모임」에서 2014년 3월 13일, 2014년 5월 2일 17개 시‧도 교육청을 대상으로 청구한 정보공개요구에 대한 답변 자료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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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기획기사

감수성이 부족했다”고 잘못을 일부 시인했다고 하지만,2 그 논리라면 성

인 장병에게는 그런 정신교육을 하는 것이 괜찮다는 것인가? 2014년의

민주공화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안보교육은 7~80년대 군사독재 시절의

반공/멸공교육과 꼭 닮았다.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안보에 대한

접근 방식 때문이다.

「군 안보교육문제 공동대응 시민사회 모임」의 수차례에 걸친 정보공

개 청구 결과 국방부 정신전력과에서 2014년 8월 28일 동영상을 제외하

고 공개한 나라사랑 강의 교안은 실패한 국가로서의 북한의 모습과 북한

의 군사적 위협, 한미동맹의 중요성 강조, 무력을 통한 전쟁 억제력 확보,

투철한 안보의식과 강력한 군사력을 통한 국가 번영을 주요 내용으로 하

고 있다. 북한이라는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불안감과 적개심을 고취시킴

으로써 상시적 전쟁 준비 상태를 유지하는 방식의 국가 안보는 평화를 단

2 오마이뉴스 (2014. 9. 1). “초등생 울게 한 ‘끔찍한’동영상, 장병용이었다.”

평화활동가들이 국방부의 안보 교육 자료 비공개를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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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로 보는 소극적 평화관과 전쟁의 억제를 군사적 긴

장을 통해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군사안보 개념에 기반을 둔다.

전쟁 문화(culture of war)와 군사주의가 지배하는 불안사회

소극적 평화관과 군사안보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위계, 복종, 경쟁, 힘

의 논리와 같은 군사주의적 가치가 사회 통제의 기제로 작동한다. 시민과

국가의 안전을 위한다는 안보에서 시민은 없어지고 국가만이 남는 것이

다. 끝없는 군비 경쟁 속에서 군사력 증강을 위한 비용은 교육, 보건, 복

지 비용을 당연한 듯 압도하고, 군사적 수단이 유일한 분쟁 억제/해결책인

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은 전쟁 수행자나 피해자, 또는 둘 다가 되는 것 이

외에 다른 선택지를 갖지 못한다. 군사적 작전은 일반 시민들이 접근할 수

없는, 강력한 보안이 당연시되는 신성한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

문이다.

전쟁이 “아직 발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안감을 강요당하는 시민들은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주체로서의 모든 가능성을 차단당한다. 현재 학교

에서,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안보교육은 피교육자에게 근거 없

는 증오와 두려움을 키우는 것 외에 평화와 공존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지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모든 교육은 근본적

으로 사람들이 자유로운 가치판단과 행위를 위한 주체적 역량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난 7월 서울의 한 초등

학교에서, 한국 사회 곳곳에서 수십만 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안

보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세뇌훈련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형성

된 권위주의적이고 맹목적인 애국심(나라사랑)이 “기득권 유지, 테러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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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기획기사

전쟁, 정권 유지, 분단, 제국주의 등의 수단”이 되어 왔음을 역사를 통해

충분히 경험해 왔다.

공존과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인간안보와 평화교육

2차 세계대전 직후 핵전쟁에 대한 위기의식과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

었을 때, 국제사회의 대응은 더욱 강력한 안보교육이 아니라 “군축 교육

(disarmament education)” 이었다. 1978년 열린 제 10회 국제연합특별

총회(The 10th special session of the General Assembly of the United

Nations)는“전쟁과 군사주의의 사상 선전(propaganda)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군축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국가안보(national

security)를 대체하는 인간안보(human security) 개념 역시 이미 1990년

대 초반에 등장했다. 비록 실제 패러다임 전환이 얼마나 진전되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따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군비경쟁의 악

순환과 군사주의 및 전체주의를 확산시키는 국가안보와 대비하여 인간안

보는 주체로서의 개개인의 삶의 평화와 안보에서 출발한다. 인간안보는

무기가 아닌 인간의 삶과 존엄에 관련된것이며, 인간 삶의 본질인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고…사람들의 힘과 열망을 기반으로…사람들로 하여금 생

존, 생활, 존엄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 사회, 환경, 경제, 군사, 문

화적 체제를 만드는것이다. 인간안보의 실현을 목표로 할 때 우리와 적을

구분하는 배타적, 지엽적 평화를 넘어서서 공존을 도모하는 지속가능한

평화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안보교육이 아니라 평화교육이다. 평화교육은

폭력의 뿌리, 즉 갈등이 발생하는 근원을 이해하고 폭력을 멈추기 위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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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 대안을 적극적으로 탐구한다. 안보교육에서 피교육자가“전쟁의

행위자 혹은 희생자” 자리에 수동적으로 위치지어진다면 평화교육에서의

피교육자는 평화 실현을 위한 역량을 키우는 적극적 주체가 된다. 평화교

육은 현재의 폭력적인 군사주의 문화에 내재된 가치가 아닌 생명존중 가

치를 그리고 군사주의 문화의 공포 이미지와는 다른 비폭력 세계의 비전

을 제시해주면서 학생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미래에 대한 계획

을 짜도록 함으로써 국방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더 강력한 무기를 갖지 않아서 북한이 쳐들어

오면 어떻게 하느냐는 불안감이 엄습한다면, 우리에 대한 위협은 우리가

그들에게 가하는 위협의 수준에 비례하여 증가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

다. 평화를 위해 우리가 사는 무기는 곧 그들의 안보를 위협하고, 이는 그

들의 군비 증강과 우리에 대한 증폭된 위협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평화의 실현은 요원한 끝이 없는 제로섬 게임인 셈이다.

평화교육은 개개인의 안보와 주체성, 공동체의 민주주의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는 지속가능한 평화의 실현을 목표로 한다. 한국이 보다 튼튼하고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두려움으로

똘똘 뭉쳐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애국심과 국가안보 논리에 대한 의심 없

는 충성심을 약속하는 신민이 아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보다 많은 수

의“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던 사람들,“지

겹다, 이제 좀 일상으로 돌아가자”는 불평과 초지일관 외면으로 응답하는

정부에 맞서“잊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바로 인간 존엄

에 대한 보편적 연대와 공존을 추구하는 비판적 민주시민이며, 우리에게

안보교육이 아닌 평화교육이 절실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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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기획기사

여옥 |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지난 7월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안보교육 동영상 사건은 우리

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한참 논란이 되었던 해병대캠프로 대표

되는 병영체험의 문제도 심각했지만, 교육의 공간인 학교 내부에 군인이

나와 직접 안보교육을 진행해오고 있었다는 것은 좀더 충격이었다. 화해

와 상생의 가치보다 전쟁과 폭력에 대해 먼저 배우게 되는 안보교육은 기

본적인 교육의 가치와 상충될 수밖에 없다. 군대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

과는 별개로 군대의 역할이 사회전반에, 특히 교육의 영역에 확대되는 것

을 지양해야하는 이유다.

교육 영역을 노골적으로 파고드는 군대와 군사주의에 대해 사안별로 개

별적으로 대응을 해오던 단체들은 그동안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이

번 사건을 계기로 시민사회의 공동대응모임을 꾸렸다. 약 20여개의 평

화·통일·교육단체가 모인 대응모임에서는 7월 서울시교육청 앞 기자회

안보교육을 막아라 청소년 군사화에 저항하는 캠페인

기획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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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을 시작으로 국방부에 교육자료 정보공개요청, 교육청의 안보교육 실태

조사, 육군본부 방문, 국정감사 대응, 서울시교육청 면담, 언론 연속기고,

안보교육 토론회, 청소년 군사화에 저항하는 국제행동주간 캠페인 진행

등 4개월간 여러 활동들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안보교육 자료의 비공개 문제

문제가 된 나라사랑교육 자료의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 국방부에 정보

공개청구를 했으나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미 학생

들을 대상으로 교육하고 있었던 자료를 일반인에게 공개할 수 없다는 것

을 이해할 수 없어 재차 공개요청을 하자 “해당 동영상 자료를 공개할 경

우 북한이 자료 내용을 빌미로 대남비방과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는 등 우

리의 국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비공개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말은 곧, 동영상의 내용이 북한을 비방하는 것이고 그래서

문제가 있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 교육청은 이번

사건 이후 장교파견 교육을 주관해온 국군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에 강

의 교안을 보내줄 것을 요구했지만 국방부에 문의하라며 거절당했고, 국

방부는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안보교육 동영상은 국정

감사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국회의원들에게도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국방

부는 여러 질타를 받은 후에야 현장에서 의원들에게만 비공개 열람을 허

용했다. 영상을 직접 본 국회의원들은 안보교육 영상 내용의 문제점과 더

불어, 안보를 빌미로 한 국방부의 폐쇄성이 문제를 더 키우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응모임은 국방부 앞에서 자료비공개 처분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국방부의 비공개 처분에 대한 행정심판 청구도 진행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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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기획기사

전국 시도교육청 실태조사

대응모임에서는 전국의 17개 시·도 교육청에 질의서를 보내 안보교육

과 관련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각 교육청에서 보내온 답변서에 따르면

전북과 제주를 제외한 나머지 교육청들은 군대 또는 관련기관과 MOU 체

결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육청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안보교육 현황조차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 그동안 실시된

안보교육의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교육청도 없었고, 사전·사후평가가 이

루어진 곳 역시 단 한 곳도 없었다. 각 학교가 가진 재량권을 침해하지 않

기 위해 교육청에서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지만, 교육청의 업무협

약이 일선 학교에 미친 영향을 고려해본다면 교육청은 그 책임을 피해가

기 어렵다. 관리감독만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인 현황파악

마저 안되는 상황에서 안보교육이 교육의 기본적 가치에 부합하는지에 대

한 논의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군인이 학교에 나가 학생들을 직접

국방부의 안보교육 자료비공개 처분 규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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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별로 없었다. 경남을 비롯한 대부분의

교육청은 교육의 주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교육 내용’이 중요하다고 답

했지만, 내용 역시 검토하지 않았다.

전북교육청은 시민사회가 보낸 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교육적·인권

적 관점이나 평화통일·안보 관점에서 균형감이 떨어져있는 경우가 많고,

교수-학습방법이 시대착오적이며, 학교현장의 교육과정을 존중하기 위해

MOU를 체결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체결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밝혔다.

교육청 차원에서 안보교육 문제를 어떻게 보고있는지에 따라 변화가 가능

하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사례이다.

문제가 발생했던 서울시 교육청은 감독 관청인 교육청에도 자료를 줄

수 없다는 국방부의 태도를 보고 ‘군인이 강사로 나서는 나라사랑 교육’

을 중지하기로 결정하고“현재 일부 군부대 협조로 진행 중인 나라사랑

교육은 별도 안내 시까지 중지하라”는 공문을 각 학교에 보냈다. 또 교안

사전검토, 교안 보관 및 학생 만족도 확인 등을 요청했으며, 부적절한 내

용은 삭제를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의를 취소하라는 당부도

했다고 전해졌다. 일단 당분간은 서울시에서 군인이 진행하는 안보교육은

없을거라고 한다. 이후 서울시교육청과 대응모임은 지난 사건에 대한 후

속조치와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 듣고, 현행 안보교육에 대한 우려를 전달

하기 위한 면담을 진행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조희연 교육감이 취임한 이

후 세계시민교육 또는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조직개편이 진행 중이라며,

이번 사건을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고 앞으로는 '화해와 평화로 가

는 통일교육'을 구체화해나갈 예정이니 시민사회단체의 협조를 요청한다

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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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기획기사

청소년의 군사화에 반대하는 국제캠페인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군사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다. 많은 나라에서 군대는 고급인력을 데려가

기 위해 홍보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고, 그 공간으로 학교를 활용하고 있

다. 어렸을 때부터 군대와 군인을 자연스럽게 만나고 그들을 통해 군대적

인 가치들로부터 익숙해지게끔 하는 군사주의에 대해 포착한 전세계의 평

화활동가들은 정식으로 청소년의 군사화에 반대하는 캠페인(Countering

the Militarisation of Youth)을 시작했다. 첫 번째 국제적인 공동행동은

2013년 6월에 진행되었다. 독일, 스페인, 미국, 남아공, 이스라엘 등 약

10여개 나라의 평화활동가들은 교육영역에서의 군의 존재를 드러내고 이

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전세계적으로 군대가 어떻게 전쟁과 갈등

의 씨앗을 심고 청소년의 삶 곳곳에 침투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공

유하고 이에 도전하는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웹사이트(http://antimili-

youth.net/)도 만들어졌다.

올해 두 번째로 10월 25일부터 31일까지 일주일간 국제행동주간이 열

렸다. 한국의 18개 평화·통일·인권·교육 단체들은 "전쟁교육 없는 공

동체를 위한 시민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이번 국제행동주간을 맞아 연속

캠페인을 진행했다. 10월 27일에는 문제를 일으킨 안보교육의 동영상을

‘외교적 군사적 긴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비공개한 국방부를 상

대로 진행하는 행정심판청구 기자회견을 국민권익위 앞에서 진행했다. 10

월 30일에는 서울인권영화제와 함께 청소년의 병영체험을 다룬 영화 <안

톤의 여름방학>를 상영하고, 활동가와의 대화를 진행했다. 10월 31일에

는 그동안의 활동과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한 ‘시민의 눈으로 본 학생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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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교육’ 토론회가 열렸다. 교사, 학부모, 학생, 평화교육활동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모여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안보교육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앞으로 어떤 방식의 활동을 이어나갈지 고민을 나누었

다.

우리가 어떤 것을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받아들이게 되는지는 다양한 방

식의 교육을 통해 결정된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보고듣고, 무엇

을 경험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시민으로써 이 사회를 함께 살아

가기 위해 필요한 가치를 배우고 훈련하는 것은 우리의 교육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다. 어릴 때부터 전쟁과 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막는 것만이 대

안이 될 수는 없겠지만, 상대방을 비방하고 적개심을 키우는 교육은 우리

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하는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서울인권영화제와 함께한 <안톤의 여름방학> 상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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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기획기사

톨 | 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육노동자

저항으로서의 안보교육안보교육의 방향

안보는 무엇인가

안보(安保)란 정치적 용어로써 ‘안전 보장’을 줄여 이르는 말이다. 그렇

다면 안보 교육이란? 안전 보장을 교육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안전 보장

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교육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이때 안전을 보

장한다는 것은 누구의 안전인가? 자본의 안전? 민족의 안전? 국가의 안

전? 개인의 안전? 아니면 지배계급 이데올로기의 안전? 세계인권선언 등

에 나오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의 안전?

지금까지 이 땅에서 이루어졌던 안보 교육의 성격은 무엇인가? 그것은

북한을 주적(主敵) 으로 하는 군사주의적 안보교육으로 명백히 전쟁 교육

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병영체험인 해병대 체험이다. 해병대의 훈련 과

정을 3~5일 정도로 압축시켜서 진행하는 캠프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

기획기사

Page 5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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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있다. 여성, 어린이,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도 진행된다. 마치 자신을

극복하기 위한 어떤 극기 프로그램으로 위장을 하고 있으나 이는 군사주

의 문화를 내면화시키는 전쟁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병대 체험은 학교 교육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수련회

의 단골 프로그램이었다가 결국 2013년 7월에 태안의 사설 해병대 캠프

에서 학생들 인명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벌어지는 안보 교육의 실태를 좀 더 들여다 보자. 때

만 되면 탈북자를 데려다가 북한의 실상을 알게 함으로써 그들을 구원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교육을 안보 교육이라며 보통 한 학년 전체 학생

을 대상으로 실시한다.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의 원인은 북한의 도발이라

고 늘 떠들어대는 언론에서만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으면서 그것을 바탕

으로 안보 교육이라고 실시한다. 17개 시도교육청이 안보 교육이라는 이

름으로 국방부 산하 지역 부대와 안보 교육 양해 각서를 체결한다. 지난 7

월 17일 서울시 강동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나라사랑 교육 도중 잔인한 장

면이 포함된 영상을 상영하여 물의를 일으킨 바가 있었다. 이런 것을 안보

교육이라고 하고 있다. 평화를 바탕으로 함께 잘 살자는 통일 교육이 아니

라 남한이 북한을 통일시켜야 한다고 교육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반댓말

이 사회주의(공산주의)라고 가르치면서, 북한이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

이기 때문에 나쁜 국가라고 가르치는 이런 얼빠진 교육을 안보 교육이랍

시고 떠들어 댄다.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라는 것이 벌건 대낮에 공산주

의는 빨갱이라며 떠들어 댈 수 있게 한 것은 아마도 이런 안보 교육의 결

과물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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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기획기사

공포와 불안의 안보교육

안보 교육을 조금만 비틀어서 다시 들여다 보자. 그러면 일상적 안보 교

육을 볼 수 있다. 바로 자신만의 안전 보장을 위해 모든 것을 전쟁으로 만

들어 버리는, 일상적 안보 교육을 말이다. 자신만의, 자신의 가족만의, 자

신의 국가만을 위한 안전 보장이라는 신기루를 위해 모두 내달리게 만들

고 있다. 군사주의적 안보교육은 차라리 눈에 보이기나 한다. 이 일상적

안보 교육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확고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일상적 안보

교육이란 바로 공포와 불안의 생산이다.

일상적 안보 교육은 공포와 불안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게 눈과 귀를 멀

게 한 다음,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시키는 대로 하라’일

뿐이라고 한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이 사회의 질서가 흐트러질 것

이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경제가 어려워질 것이고, 시키는 대로 하

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어질 것이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고,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우리’에서 너를 배제할

것이라고 한다.

결국 그렇게 해서 세월호의 아이들은 죽어 갔고, 학교에서 아이들이 지

쳐 쓰러지고, 교실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안보 교육은 한국 사회에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굳건히 하면서 신

자유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기둥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일 뿐이겠는가.

군사적 제국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영원한 동반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총과 돈은 공포와 불안을 생산해내는 안보 교육을 통해 천년왕국을 꿈꾸

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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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으로서의 안보교육

안보 교육이라는 개념을 아예 바꾸자. 안전 보장을 교육한다는 말 자체

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안보는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이 안보이다. 그렇다

면 진정한 안보 교육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에 대한 교육이다. 이를 위해

서 모든 억압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것이다. 남성가부장체제의

군사주의적 신자유주의가 양성해내는 모든 억압을 거부할 수 있는 교육이

안보 교육이다. 그래서 평화 교육, 반핵 교육, 반전 교육, 생태 교육 등 모

든 해방 교육이 바로 안보 교육이다.

그렇다면 안보 교육을 제대로 해보자! 그 시작은 어렵지 않다.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교실에서 계기 수업을 하자. 바깥에서는 노란 리본을 함께

달자고 제안하자. 지하철 5호선 광화문 역사에서 750일 가까이 노숙 농성

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농성장을 함께 방문해 보자.

밀양 할매들의 농산물을 주문해서 반찬을 만들어 가족들과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각종 인권영화제를 주변 사람들에게 홍보해 보자. 학교 공부

에 지친 아이에게 “오늘은 학교 가지 말고 햇볕 쬐러 같이 나가자.”고 말

하자. 어느 날은 고기단백질 대신 채소만으로 밥상을 차려 먹으며 맘껏 뛰

어놀 아기돼지에게 어울리는 이름도 만들어 보자.

무엇보다 안보를 ‘교육’하고자 한다면, 아이들에게는‘두려움 없이 말

할 권리’와‘실수할 권리’가 있음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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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기획기사

우리도 해보는 별점 평가

국방부가 공개하지 않은 동영상 중에 동일한 제목의 영상을 온라인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나의 전우를 건드리는 자, 죽음을 각오하라오리 무고한 희생을 이용해먹는 클라스. 제목 봐라

여옥 도발을 한다는 건지, 하라는 건지.. 근데 전우

가 죽은 이유는 진짜 뭐지? ☆

민용근 적개심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마련. 이

부메랑들을 어찌 감당하려고. つつつつつ(별점 대

신 부메랑 5개)

자유를 위한 외침안지환 정규군이 아나키스트의 폭력노선을 찬양한

다?! 어쩔. ★★

길수 대박이다. 이 동영상 제작자가 국방부 안티인

게 틀림없다. 북조선에 남은 김원봉의 말을 발췌하

여 싣다니ㅋㅋㅋ 대 to the 박! ☆

민용근 조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독립군들이 과

연 이런 자유를 원했던 걸까. (별점 대신 비둘기 다

섯 마리)

김정은의 광기여옥 어떻게 하든 결말이 정해져있는 초절정 막장

호러SF! ☆

안지환 1분 37초 클라이막스는 근래 최고의 슬래셔

코미디 ★★★★

민용근 김정은을 괴물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가 괴

물이 되어버린 영상물. Crazy! (별점 대신 괴물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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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똘 | 출판노동자 + 전쟁없는세상 회원

홀로코스트, 그리고 나―프리모 레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외

최근에 한 독서모임에서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 뒤를 이어서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

었다. 다음에는 조르조 아감벤의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을 읽기로 했

다. 대충 짐작이 가겠지만 모임 구성원들은 이런 걸 궁금해했다. 거대한

역사적 비극에 대해 우리는 쓸 수 있나? 아니, 쓰기 전에 이해할 수는 있

나?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지난 5월에 출간된 소설로, 518광주민중항쟁

을 다룬 이야기다. “소년”을 포함해 당시 죽었던 자들과, 죽지 못한 자들,

그것에 대해 기록하고자 하는 자들 등 비교적 다층적인 목소리를 담으려

고 한 작품이다. 그 층들을 꿰뚫는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죽음”이다. 황

당하게도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것에만 사로잡혀 있었다.“나도 죽

을 수 있었을까?” 겪어보지 않은 일, 절대 겪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 나

의 죽음과 비죽음을 가늠해보다니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리뷰-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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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리뷰-서평

멈출 수 없었다. 나도, 이들처럼, 죽을 수 있었을까? 용감하게? 나는 어느

쪽이지? 여러 목소리를 담고 있다고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이 소설은 처

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목소리가 짙게 깔려 있다. 작가도 자신에게 끝없이

괴로운 질문을 던지는 중인 것 같았다. 동시에 독자에게도. 그들 죽음의

의미는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말이다.

감상이 잘 정리되지 않던 중에, 몇 년 전 우연히 읽었던 소설 한 권이 떠

올랐다. 스티븐 갤러웨이의 소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다. 작가는 사라

예보의 폐허 한가운데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했던 첼리스트 베드란 스

마일로비치에 관한 기사를 읽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전쟁과 전쟁 가운데 인간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총알이 빗

발치는 전투 신을 상상한다면 전혀 아니다. 시종일관 물속에 잠긴 듯 조용

한 전쟁 소설이랄까. 포위된 도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언제든 날아오는

총탄.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전투가 아니라 일상을 지속해나간다. 출근하고,

이웃과 인사를 나누고, 먹고 씻을 물을 받으러 가는 자연스러운 일들. 그

게 이 소설의 가장 큰 줄기이다. 문제는 이런 일상 자체가 전투보다 더 힘

든 싸움이 된다는 데 있다.

1945년 9월 부헨발트 수용소의 유대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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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집 바깥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으면 안 될까 하는 유혹과, 아는 사람

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면 안 될까 하는 유혹과, 괴팍한 이웃 노파의 물통

따위는 버리고 가면 안 될까 하는 유혹 같은 것들, 그 모든 유혹들과 싸워

이겨나가는 일만이“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 하나뿐인 길이라고 작가

는 말하는 듯하다.

“케난은 이곳에서 세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확인할 수 있다. 먼

저 포탄이 떨어지자마자 도망간 사람들로, 이타심이나 시민의식

보다 자기보호 본능이 더 강한 사람들이다. 그 다음엔 도망치지

않은 사람들. 이들은 지금 부상자들이 흘린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채, 긴박감 속에서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한다. 즉 살 가

망이 있는 사람들은 돕고, 가야 할 곳이 어디든 간에 그곳으로 가

지 못하게 된 사람들을 치우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유형이 있

는데, 케난도 이 그룹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입을 헤벌리고 서서

다른 사람들이 도망치거나 구조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케난은 자

기가 도망친 첫 번째 그룹의 일원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라워한다.

그러고는 내심 두 번째 그룹에 속할 수 있으면, 하고 바란다.”

(203쪽)

이 부분을 읽을 때도 앞서 말한 생각과 거의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

다. 나는 어느 쪽이지? 내 자신을 몰아붙여서 억지로 답을 얻으려고 했다.

그게 이러한 홀로코스트 또는 전쟁의 비극을 마주하는, 후세의 마땅한 양

심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유형 가운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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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리뷰-서평

바로 첼리스트다. 사람들이 떼로 죽은 참혹한 흔적 가운데서 날마다 첼로

연주를 하는 사람. 단지“사람이고 싶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 자기 머리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공포에도 연주를 멈추지 않

는 사람. 긴 말이 필요 없다. 그저“고귀한 인간 정신의 승리”다.

이 고귀한 첼리스트는 곧 케난, 드라간, 애로, 모든 등장인물들이 꿈꾸

는 모습, 다시 말해 판타지다. 나아가 이 정직한 작가의 판타지이며,“만

약 전쟁을 겪는다면 내가 얼마나 용감해질 수 있을까, 목숨을 구걸하지 않

고 모두를 위해 몸을 던질 수 있을까?”와 같은 답 없는 생각을 하는 인류

의 판타지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좋은 소설을 그다지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다. 인물

들이 첼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려대는 와중에도 내 이성은 흔들

림이 없었다.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은 한마디로“바르고 순진무구하다”는

것이었다. 옳고 옳다. 인간이 나아가야 할 가장 바람직한 길이다. 당신이

하는 말이 다 맞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당위만으로는 모자라다. 당위만

으로 설정된 인물이 있고(실존인물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 당위로 말

미암아 변화하는 인물들만 있으니 판타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고, 그 판

타지에 백번 동의하는 같은 인간으로서 그저 좀... 애처로울 뿐인 것이다.

홀로코스트, 그리고 나, 하고 몇 번 중얼거려보았다. 전혀 관계가 없는

두 가지를 연결시켜보는 셈이다. 내가 거기 있었다면? 내가 그들이었다

면? 이건 대부분의 경우 억지 상상을 낳고 만다. 아무것도 못 해보고 죽는

다? 나보다 더 약한 사람들을 짓밟고 살아남는다? 이타적인 영웅 또는 투

사로 분한다? 그 어떤 결론을 내든 비약일 뿐이다. 정답을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연결”시키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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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고는 과거의 학살과 비극을 내 것으로 사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체화해

서 사고하지 않으면 그 지옥이 다시 재현될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바로 내 잘못 때문에. 내가 충분히 생각하지 않은 탓으로 말이다.

그러나 못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유형화 자체이다. 나와 내 가족,

지인 모두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 고결한 죽음조차 허용되지 않고 짐승

만도 못한 취급을 견뎌야 하는 상황에서 반응 유형을 나누는 일. 나라면

518에 직면해 용감하게 죽을 수 있었을까 고민하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

장에서 첼로를 연주했다는 자에게 경외감과 동시에 시기심을 느낀다. 더

큰 문제는“나라면?”이라는 이 질문이 곧“너는 왜?”로 이어져 타인을

겨냥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나라면 아무것도 못 했을 거야, 그들은 정

말 대단해”라는 생각은 아주 쉽게 반전될 수 있다.“대단했던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데 너는 왜 그렇게 못 했어?”가 그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비관과 영웅에 대한 판타지 사이를 극과 극으로 오갈 뿐인 사람들에게서

진정한 차원의 이해나 성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프리모 레비는 7장“고정관념들”에서 이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는

다.“당신들은 왜 도망가지 않았나? 왜 저항하지 않았나? 왜“사전에” 체

포를 피하지 못했나?”라는 질문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났다는 것이다.

어느 초등학교 학생은 그의 책들에 대한 얘기를 듣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

다가, 수용소 탈출 방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한다.“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하세요. 꼭 성공하실 거예요.” 물론 이런

어린애다운 발상 때문에 레비가 화가 나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이

일화는 내가 보기에, 분명히 존재하며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간극을, 그러니까“그곳”에서의 실제 상황과 개략적으로 책이나 영화, 신

Page 63: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61리뷰-서평

화들이 키워낸 현재의 상상력에 의해 표현되는 상황 사이의 간극을 잘 보

여주는 것” 같다고 말할 뿐이다. 마치 총탄이 날아다니는 가운데 예술가

가 의연하게 첼로를 연주하고(사라예보의 첼리스트), 군인들의 총검 앞에

서 평범한 소년이 자연스럽게 죽음을 각오했던(소년이 온다) 모습처럼 말

이다. 사람들은 커다란 비극 속에서 발견됐던 몇몇 영웅적, 너무나 예외

적, 때로는 허구적인 경우들에 젖어드는 동시에, 비극의 실체에 대해서는

오히려 눈을 감아버리고 만다. 지옥 속에서의 유형화는 너무나 쉬운데, 그

지옥에서 기적적으로 기어이 살아나온 레비 같은 자가 자꾸 그것을 방해

한다. 그가 명징한 도표 대신에 보여주는 지옥도는 한마디로“회색지대”

다. 유대인을 화로 속에 직접 집어넣어야 했던 자는 유대인이라고 하듯이,

라거(강제 수용소)에서의 악은 나치나 히틀러로 단순 치환되지 않는, 복합

적인 회색의 존재들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 쪽이지? 이 질문으로 다

시 돌아와본다면, 선택이 한층 복잡해지는 셈이다. 어느 쪽도 될 수 없다

면? 아니, 내가 어느 쪽이라고 단정하는 것이 비극의 귀환을 막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

“오늘날 그 누구도 자신의 영혼이 굴복하거나 부서지기 전까지

어떤 시련에, 또 얼마나 오랫동안 견뎌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모든 인간은 비축해둔 힘을 가지고 있고, 그 크기가 얼마나 되는

지 자신은 모른다. (...) 상대방이“내가 너의 입장이었다면 하루

도 견디지 못했을 거야”라고 말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얘기는 실제로는 별로 의미가 없다. 인간은 결코 타인의 입

장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개인은 너무나도 복합적인 존재

라서 행동을 미리 예측해보라고 요구하는 것은 헛된 일이며, 극단

Page 6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62

적인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자기 자신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나는“화장터의 까마귀들”에 대한

이야기를 연민과 준엄함을 동시에 가지고 성찰해보기를 요청한

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판단은 유보해두자.”(68~69쪽)

레비는 그들에 대해 성찰하되 판단은 유보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이해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해하되 그러나 용서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한다.

너무나 거대하고 불가해한 비극 앞에 서면 보잘 것 없는 우리는 어떻게든

그것을 이해해버리고 싶어진다. 그야말로 이해해서, 버리고 싶다. 안 그러

면 미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 비극을, 비극에 관계

된 모든 사람들을 손쉬운 유형으로 정리해버리는 이상, 학살자와 영웅과

“용기가 없었지만 죄도 없었던 나” 등으로 간단히 나누고 고민을 끝내버

리는 이상,“이해”란 있을 수 없고 홀로코스트는 여전히 건재하다.

이 문제에 대해 프리모 레비는 우리에게 최선의 답을 보여준다. 아니,

답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질문이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끝내

질문으로 남기를 택한 것 같다. 고통스러운 질문. 미완의 과제. 인류에게

있어서 그의 존재 자체가 그렇게 남아버린 것 같고, 그것은 슬프지만, 너

무나 다행한 일이기도 하다.

Page 65: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63기획연재-전쟁 기업에 저항하라

박승호 | 무기제로 코디네이터

방산수출이 내일의 희망이라고?

기획연재-전쟁 기업에 저항하라

“방산수출은 내일의 희망입니다.”

언젠가 방위사업청 홈페이지를 방문했다가 대문에 당당히 걸려 있는 위

의 문구를 보고 꽤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아무리 방위사업청이 살

상무기 판매를 국가적으로 지원할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라고 해도 설마

그 같은 죽음의 장사에 대해 떳떳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어서였을까? 전쟁산업이 내일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방위사업청의 이

같은 기만적 자기인식은 제법 충격적이었다. 당시에 나는 분명 이런 문구

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금방 이 홍보 문구가

내려갈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 나는 나중에 이 문구를 자료로 사용

할 곳이 있을 것만 같아서 재빨리 그 페이지를 캡쳐해뒀었다. 혹시라도 페

이지가 사라져버릴까봐. 그건 정말이지 순전히 나만의 착각이었다. 수개

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방위사업청은 이 문제적 문구를 전면에 내걸어 놓

Page 66: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64

고 있다. 하긴, 대통령이 나서서 방위사업을 한국의 신성장동력으로 삼겠

다고 공언하는 나라인데, 난 뭘 기대했던 것일까.

올해 초 바레인으로의 최루탄 수출을 저지하기 위해 캠페인을 하면서

활동가들이 최루탄 수출을 허가해 준 경찰청에 항의전화를 한 적이 있

다. 그때 수출을 승인한 담당자의 답변이 가관이었는데, 그는 “누가 주방

용 칼을 사서 그 칼로 사람을 죽이면 그게 어디 그 칼을 판 사람의 잘못이

냐, 그 칼을 휘두른 사람의 잘못이지”라고 말했다. 이는 사실 미국의 전국

총기협회(NRA) 대변인들이 총기사고만 터졌다하면 입버릇처럼 하는 주

장과 거의 흡사하다.“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총이 아니라 사람이다(Guns

don't kill people, people kill people.).”

“무기수출은 가치중립적인 행위다?”

어쩌면 전쟁수혜자들에 맞선 투쟁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싸움은 바로

위와 같은 거짓 주장에 맞선 싸움일 것이다. 방산수출을 새로운 국가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이야기가 별다른 저항없이 받아들여지는 지금의 상황

Page 6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65기획연재-전쟁 기업에 저항하라

은 이러한 생각이 우리 사회에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나

타내준다.

그러한 측면에서 나는 전쟁수혜자들에 맞선 우리의 싸움에 있어 가장

긴급하고 우선적인 과제가 바로 이렇게나 잘 포장되어진 전쟁산업의 맨

얼굴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방산수출이 더 이상 ‘내일의 희망’

이 아니라‘내일의 절망’을 견인하는 산업이라는 점을, 전쟁기업이 우리

에게 약속해주는 것은 장미빛 미래가 아닌 핏빛 악몽에 불과하다는 점을

말이다. 애초에 사람을 죽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무기를 파는 행위를

식칼 장사에 비유하는 단세포 수준의 논리가 더 이상 이 사회의 상식이 되

지 않으려면 그 중립적이라는 전쟁기업이 자행하고 있는 범죄의 민낯이

낱낱이 공개되고 견제되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는 나는 다가오는 12월 25일 공식 발효 예정인 무기거래조

약에 주목하고자 한다. 무기거래조약은 국제 무기거래에 있어 세계 공통

의 단일 규범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유엔에서 약 8년의 논의를 거쳐 지

난 해 4월 탄생된 다자조약으로, 주요 재래식무기의 국제거래시에 무기가

국제인도법이나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침해 행위에 사용될 위험성을 평가

하도록 의무화하고 각국이 그 같은 평가를 통해 수출허가 여부를 결정하

도록 규정하는 것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 이 조약은 세계 최초로 인권에

근거해 무기거래를 금지시킬 수 있는 법적구속력이 있는 세계 공통의 기

준을 마련했다는 의의를 가지지만 동시에 그 통제범위가 제한적이고 결국

수출허가 여부에 대한 결정이 각국 재량에 맡겨져 있다는 점과 같은 분명

한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CAAT와 같은 대표적 무기거래반대 단체에서는

이 조약을 두고 무기거래를 규제하는 효과는 미미하고 오히려 무기거래를

정당화(합법화)한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그 같은 지적이 타당한 면이

Page 68: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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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현재 한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분명 무기감시 운동

이 무기거래조약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익이 있다고 본다. 앞서 언급했

듯이 우리사회에는 아직 무기거래가 가치중립적이라는 대중적 인식이 탄

탄하고, 무기 수출 통제 절차 상 인권이나 국제인도법 위반 가능성을 근거

로 수출을 제한할 법적 규제장치가 거의 마련되어 있지 않기때문에 무기

거래조약의 비준 과정에서 제대로 된 무기수출 규제 틀거리를 갖춰 놓을

수만 있다면 무기거래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데 있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기거래조약 채택에 열렬한 환영 의사를 보냈던 한국 정부가

정작 조약 비준 과정에서는 수출통제제도를 크게 손 볼 의지를 보이지 않

는다는 데 있다. 정부는 지난 해 6월에 조약에 서명했고 곧 비준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한국 정부가 이 분야에

서 보여왔던 태도로 미루어볼 때 시민사회가 나서서 비준과정을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제도정비 내용을 감시하지 않으면 무기거래조약은 그저 국

제사회에 생색을 내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크다. 12월

25일 발효될 이 조약이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

다.

Page 69: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67기획연재-이예다의 프랑스 생활기

기획연재-이예다의 프랑스 생활기

이예다 | 병역거부를 이유로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진 프랑스 망명자

사람들은 역시 말장난을 좋아하는 것 같다. 병역거부, 병역기피, 난민,

망명자, 정치적 망명자 등.. 나의 최근 행동과 관련되어 여러 가지 단어가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불리운다. 난 날 미화하기 싫다. 그렇

다고 낮춰보기도 싫고. 그냥 난 나이고 싶다. 한국인, 프랑스 난민, 병역거

부 혹은 기피자... 그 무엇도 이예다를 표현하는 한 부분일 뿐이다. 그래도

여러 단어 중에서 가장 맘에 든 건 친해진 민박집 사장님이 표현한 거다.

‘군대 가기 싫어서 프랑스에 도망친 놈.’ 정확하고 날 미화하지도, 낮추

지도 않은 담백한 표현 아닌가? 이후에 내가 군대 문제를 바꾸려 노력을

하든 어쩌든 실제로 내가 한 행동만 간단하게 표현해주는 좋은 표현이라

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를 표현해주는 단어도 중요하

지만 그거에 심각하게 시간과 노력을 뺏기면서까지 이해 못 하는 다른 사

람들에게까지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요구한 것뿐인데

Page 70: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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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서로 간에 양보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존중해가며, 이해하는 것 아

닌가? 이와 같은 맥락으로 최근에 있었던 두 일을 적어볼까 한다. 하나는

동거했던 친구들, 하나는 최근에 영화 제의를 한 분과의 이야기이다.

첫 번째 - 동거했던 친구들

한국의 이상한 애국심을 싫어하고 귀농을 하고 싶어한다는 점을 대화를

통해 알게 되고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었던 친구들이다. 베이글 가게

에서 하루종일 서서 일하며 피곤한데도 당시 매일같이 그 친구들과 시간

을 보냈다는 게 즐거웠다는 걸 증명하겠지. 그런데 관계가 깨지기 시작한

건 동거할 집을 찾기 시작할 때부터, 내 친구와 함께 같은 집에서 넷이서

살려고 했을 때부터였다. 긴 설명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니 간단하게 적

자면 내가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다. 친구와 같이 살고 싶다는 것. 그 친구

가 잘 정착할 때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내가 도와주기로 약속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한 우정을 나누려면,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당장 그

가 직접 일어서야 한다, 그렇게 도와줘야 한다, 너가 평생 도와줄 수 없다,

사람에겐 에너지의 한계가 있으니 너가 끝까지 도와줄 수 없을 거다, 우리

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하고 우린 같이 살기 싫다, 등등을 이유로 들며

그 친구를 도와주는 걸 반대를 했다. 왜...? 내가 요구한 건 내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게 해달라는 것, 그 친구를 내가 도와주도록 해달라는 것뿐이

었는데...?

두 번째 - 영화촬영 제의한 분

목수정씨의 기사를 읽고 연락을 해온 분 중 한 분이었다. 이분 하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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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기획연재-이예다의 프랑스 생활기

첫 만남은 즐거웠다. 왜 나와 영화를 찍고 싶냐는 질문과 수정 씨 기사에

밝힌 나의 생각들과 동의하냐는 질문에 “동의하기에, 또 본인도 세상의 문

제들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 하고 싶고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을 들었기

에 흔쾌히 수락했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건 최근 일본 여행에 기자회견

1을 하러 떠나기 전 파리에서 첫 촬영이 들어갔을 때 ‘요즘도 영화제의 들

어온다’는 얘기를 꺼냈을 때 ‘지금부터 들어오는 제의는 받으면 안 돼요,

우리하고만 찍어야 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였다. 이번에도 또 내가

요구한 건 하나였다(적어도 처음엔). ‘지금 ㄱ씨와 촬영 들어가기 전에 먼

저 촬영하자고 제의한 영화공부하는 학생분이 있는데 그럼 적어도 그분하

고 찍어도 되는지 지금 우리가 진행하는 영화 제공, 후원해주는 분한테 여

쭤봐주시겠어요? 또 제가 주의할 점이 뭐가 있는지 알고 싶으니 계약서를

메일로라도 보내주셨으면 해요’라고. 세상의 모든 약속을 지킬 수 없을진

모르지만 약속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영화사가 양보를 못 한다면 난

먼저 약속한 학생분과 진행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약서를

보여달라고 했다. 학생과, 어느 정도 유명한 기획사 간이라서 내가 후자를

선택할 거라고 생각하신 건지 일본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서도 당당하게(!)

계약서는 없었고 ‘귀국촬영하기로 한 거 사정이 생겨 찍으러 못 가겠다’

라는 메일이 온 후 ‘너무 시간이 가기 전에 일본 갔다온 얘기를 담자’라는

메일이 후에 왔다.

나의 요구에는 답변이 없기에 일본여행 후 세 ㅅ분 이상의 영화 관계일

을 하시는 분들과 대화를 했지만 “내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지 관심을 갖

는, 특히 나 같은 사람은 연출참여권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는지 처음부

터 확실히 하는게 좋다”는 조언들과 “계획서와 계약서를 통해 서로 간의

1 https://www.youtube.com/watch?v=f_hyft1VimM

Page 72: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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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하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게 좋다”는 조언들을 하나같이 해주셨다. 바

로 메일을 보냈다. 메일 말미에는 “계획서를 빨리 보고 싶어요. 큰 흐름이

나 어떤 영화를 만들 목적인지 제대로 보고 싶고 연출과 최종 편집에 참여

하고 싶으며 영화가 이익을 내면 저에게 얼마나 주시는지 등.. 보고 진행

해야할 것 같아요”라고 적었다. 영화로 나온 이익에 관해서 말을 꺼낸 이

유는 이 시점에서는 영화사가 날 ‘독점’하겠다는 거로 이해했기 때문이

다. 후에도 다른 영화사와는 접촉하면 안 된다는 듯이 말을 하셔 놓고서는

최근 메일에 ‘일정 기간 우리와 영화를 촬영한 후 나중에는 다른 영화사랑

촬영을 해도 된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음... 그래서 계획서 보여달라고

했잖아요! 말을 안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근데 이걸 쓴 시점부터 최근 메일을 받을 때까지 내가 돈을 쫓는 돼지라

고 표현을 하며 비난을 했다. 군대문제는 한국 사람들이 직접 자신들의 문

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프랑스 영화제에 낸다는 말만 들

은 이 시점에서, 다른 영화사와 접촉을 금지시킨다면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인지 궁금하기에 계획서를 요구했지만, 날 돈을 쫓는 돼지로 비난

하며 대화는 진행되지 않았다. 군대를 갔다 와야 애국하고 사람된다는 관

습을 거부한 것처럼 잘못된 게 있으면 따지고 싶었을 뿐이다. 서로를 존중

하기 위해 나도 요구를 했을 뿐이다. 내가 요구한 건 친구들과, 영화관계

자분들에게 하나씩이었는데... 그게 큰 건가?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고 학

생분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는데... 심지어 내가 하고 싶은 걸 요구한 것

뿐인데. 난 한국에 요구한 건 주변 사람들과 함께 남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지 않고 즐겁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비겁자, 이기주의자가 되었다.

왜 다들 이 작은 요구를 그렇게 죽어라 못 들어주겠다는 건지 난 역시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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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기획연재-샤샤의 뀨잉뀨잉

기획연재-샤샤의 뀨잉뀨잉

샤샤 | 병역거부자

안녕안녕요? 인생 노답 극혐인 샤샤입니다. 샤샤라는 닉네임을 바꾼지

가 꽤 됐는데 아직 이 코너는 그 전 닉네임으로 되어있군요 ㄱ- 아 뭐 상

관없습니다 어차피 인생이 망했거든요. 인생이 망했는데 그깐 닉네임 따

위가 뭔상관? 히히히 안그래도 편집하시느라 고생하실텐데, 닉네임 바꿨

다고 다시 해달라고 하기도 미안하고 해서 ㅠ3 ㅠ 여튼 그러하다!! 이번에

는 동성애자를 비난하는 논리들을 살펴보고 이를 “철학적으로” 논파해보

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논리학이라고 우리가 일컫는 학문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생

겨난 학문입니다.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등과 함께 철학의 분과학문으

로 속해있다고들 하지요. 뭐 학문 체계가 나랑 뭔상관인가요 난 이따가 저

녁 메뉴만 신경쓰이는걸요. 여튼 논리학이 출발하게된 배경은 우리가 논

Page 74: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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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학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느끼는 압도감이나 중압감과는 달리, 아주

평범하고 시시합니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소피스트들의 궤변들에 빡

쳐서이지요.

SNS에서 엄마부대나 일베, 어버이연합회 등등의 궤변을 듣고 있으면

유체가 이탈될 거 같은 느낌적 느낌은 다들 받아보셧을 겁니다. 그런 궤

변들을 퇴출시키고자 치열한 노력을 했던 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

라톤, 그리고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였지요. 우리는 이런 궤변들을 무찌

르기 위해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은

요즘으로 말하자면 당대의 SNS 악플들에 부들부들하였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머리를 싸맸던 것이지요. 이번 호에서는 이런 맛뵈기들을 선보여보

이도록 하겠습니다. 동성애자를 “비난”하는 무논리적 논리에는 여러 가지

가 있겠으나, 흔히 동성애는 “부자연스럽다”, “더럽다”, “가족을 파괴한

다”, “비정상적이다”, “에이즈의 주범이므로 건강을 망친다”, “아이들을

타락시킨다”, “인간을 성애의 수단으로 대상화시킨다”, “문란하다”, “가

족을 붕괴시킨다” 등등 참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오만 가지 잡다한 이

유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철학자 스티븐 로는 다양한 철학자들과 놀랄

만큼 명쾌하고 평범한 논리를 끌어와서 이 모든 논증들을 논파합니다.(철

학 만세!!) 저런 보기만해도 똥 쌀 거 같은 논리들을 어떻게 논파하냐구

요? 아래를 보시길 바랍니다.

1. 철학자 스티븐 로에 따르면, 동성애가 ‘부자연스럽’기에 비난해야

한다면, 우리는 귀걸이를 하고 있는 사람 또한 ‘비자연적인 것이기에’ 비

난해야 한다.

Page 75: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73기획연재-샤샤의 뀨잉뀨잉

2. 동성애가 ‘더럽기에’ 비난해야 한다면, 우리는 고양이 똥을 치우면

서 정원을 가꾸는 일은 ‘더럽기에’ 비난해야 한다.

3. 동성애는 ‘질병을 퍼뜨리고, 건강에 좋지 않기에’ 비난해야 한다면,

이를테면 포도주가 맥주보다 건강에 좋지 않다면 포도주 마시는 일을 도

덕적으로 비난해야 한다.

4. 동성애가 ‘아이들을 타락시키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잘못이라고 한

다면, 선결전제의 오류이다. (동성애는 옳지 않다 -> 동성애에 빠지게 되

는 것은 옳지 않다 -> 따라서 동성애는 옳지 않다.)

5. 스티븐 로에 따르면, 동성애가 ‘문란하기에’ 도덕적으로 잘못이라고

한다면, 이성애 남성을 가장 비난해야 한다.

6. 철학자 앤서니 퀸턴에 따르면, 동성애가 ‘인간을 대상으로 수단화시

키기에’ 비난해야 한다면, 우리는 테니스 경기를 하는 사람들이 인간을 테

니스 경기 대상으로 대상화시키기에 비난해야 한다.

7. 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에 따르면, 동성애가 ‘역겹기에’ 비난해야 한

다면, 이는 감정과 도덕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도 외국인에게는

‘역겹고 혐오스러울 수’ 있다.

8.철학자 스티븐 로에 따르면, 동성애가 ‘가족을 붕괴시키기에’ 비난해

야 한다면, 우리는 천주교 신부를 ‘가족을 붕괴시키기에' 비난해야 한다.

9. 동성애가 ‘비정상적’이기에 비난해야 한다면, 우리는 빨간머리를 가

진 사람들을 통계상 ‘비정상적’이기에 비난해야 한다.

디테일한 논증들은 생략하고 그 알맹이만 취해봤습니다. 신기방기하고

신통방통하지요. 이것이 소피스트들의 궤변과 수사에 맞서는, 철학의 이

성이 주는 힘이 되겠습니다. 에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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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을 후원해 주신 분들

강경리 강경모 강돌 강민정 강성준 강소연 강은애 고동주 고동환 고태경 고희라 구종우 구중서 권순욱 권인숙 김경묵 김나희 김덕진명랑 김명섭 김미선 김미현 김민영 김박가온 김반지 김범준 김병권 김보미 김선미 김선영 김선옥김성배 김성희 김세윤 김소현 김송이

김수용 김수정 김영수 김영준 김영진 김영환 김영효 김용엽 김은주 김일애 김정은 김조이스 김주현 김중미 김지영 김지호 김태환 김태훈 김한보람 김한상 김현정 김효진 김훈태 김희석 김희순 꽁치 나동혁 나인희 날맹 덴마 류동훈 류진희 명숙 문성호 바다로떠난바람 박남식

박새별 박승호 박아름 박용희 박재형 박정경수 박지선 박진석 박창희 박채원 박현민 배보람 배사은 백가윤 백승덕 보라 상우 설순일 성혜란 송명관 송병채 송준 송지혜 송창욱 수연 수하 숲이아 시우 시와 신기현 신유아 신은재 신희권 아하 아침 아키오 안지환 양선화 양똘 양은혜 양지혜 에리카 여문정 여옥 여은 여지우 염창근 오리 오성민 오소영 오재창 오정록 오학준

우경환 우공 우성섭 우완 우지연 위양자 유건 유현미 윤민순 윤정하 윤정화 윤혜정 은국 은종복 은혜와평화교회 이갑수 이길준 이덕현 이비함 이상길 이선아 이선영 이선옥 이세현 이승규 이승환25주년 이연희 이영롱 이용석 이자호 이재환 이종우 이종혁 이준규 이준호 이현우

이훈 이희진 임재성 임재화 장미희 장샤론 장정혜 장하나 장현진 전기화 전길수 전범준 전영욱 정우진 정육자 정인철 정주열 정창영 정현채 정혜윤 조은 조정의민 주관수 지은 진진 진현호 진흙

참새 채승우 최경송 최민아 최성진 최정자 최하늬 최현정 타랑 편설란 하동기 하승우 한광주 한광희 한주훈 햄 허용만 허윤정 허인애 홍수봉 홍수영 홍이 홍창욱 황명규 황수영 황예랑

(2014.11.1. 현재 총 213명)

재정정리 2014년 8월 1일 ~ 2014년 10월 31일 (단위 : 원)

수입 지출 이월 총계

총 7,791,140 7,600,807 1,795,777 1,986,110

8월 2,721,720 3,229,666

9월 2,600,100 2,191,339

10월 2,469,320 2,179,802

Page 77: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2014년 11월)

발행처: 전쟁없는세상발행일: 2014년 11월 17일제호: 전쟁없는세상 소식지 43호연락처: 02-6401-0514주소: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 422-9번지 3층 (121-230)http://www.withoutwar.org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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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수감자들한테 편지 써 주세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수감된 분들입니다

김무석서울시 구로구 금오로 867 (천왕동) 805번 (152-130) - 서울남부교도소

김동현경기도 의정부시 송산로 1111-76 (고산동) 1988번 (480-700) - 의정부교도소

조익진강원도 원주시 원주우체국 사서함 87호 837번 (220-600) - 원주교도소

박정훈서울시 구로구 금오로 865 (천왕동) 3438번 (152-130) - 서울남부구치소

이상민서울시 구로구 금오로 865 (천왕동) 2139번 (152-130) - 서울남부구치소

하형환전남 장흥군 장흥우체국 사서함 1호 542번 (529-800) - 장흥교도소

김성민경기도 의왕시 안양판교로 143 (포일동) 3723번 (437-702) - 서울구치소

강길모경기도 여주우체국 사서함 30호 509 (469-600) - 여주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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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