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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의 일기 - 영원을 찾아 떠나는 사고의 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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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의 일기- 영원을 찾아 떠나는 사고의 긴 여행이승윤이 글은 나를 찾아 떠나온 여정의 기록과 영원의 의지로서의 나를 발견하게 되는 사고의 변천사를 담고 있다. 이 글은 1998년 21세때부터 2009년 현재 32세까지에 쓴 글들을 시간순으로 담고 있다. 물론 이 글은 아직 진행형이다. 21세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유치하기도 하고 황당하게 보이는 내용도 많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화두로 놓지않고 있는, 생명과 우주의 존재 이유와 의미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이 그 때부터 비교적 구체적으로 형성되고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가능했다고 본다. 비문과 맞춤법ㄱ정을 하지 않았으므로 매끄럽게 읽히지는 않을 것이며, 정제되지 않은 일상의 언어를 수정없이 그대로 모았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는 나를 위한 글이다. 한 인간의 사고가 백지장에서 어떤 과정을 겪어서 구체화되고 어떤 해답에 접근해 가는지에 대한 사고의 기록이다. 중간 중간에 있는 독후감은 독서후에 글을 남긴 몇몇개의 내용이며 그 때 당시의 사고 흐름과 연결되고 있다. 실습 일기나 레지던트 일기 그리고 여행 일기 또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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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년간의 일기- 영원을 찾아 떠나는 사고의 긴 여행

이승윤

이 글은 나를 찾아 떠나온 여정의 기록과 영원의 의지로서의 나를 발견하게 되는 사고의 변천사를 담고 있다. 이 글은 1998 년 21 세때부터 2009 년 현재 32 세까지에 쓴 글들을 시간순으로 담고 있다. 물론 이 글은 아직 진행형이다. 21 세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 유치하기도 하고 황당하게 보이는 내용도 많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화두로 놓지않고 있는, 생명과 우주의 존재 이유와 의미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들이 그 때부터 비교적 구체적으로 형성되고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가능했다고 본다. 비문과 맞춤법ㄱ정을 하지 않았으므로 매끄럽게 읽히지는 않을 것이며, 정제되지 않은 일상의 언어를 수정없이 그대로 모았다. 이 글은 기본적으로는 나를 위한 글이다. 한 인간의 사고가 백지장에서 어떤 과정을 겪어서 구체화되고 어떤 해답에 접근해 가는지에 대한 사고의 기록이다. 중간 중간에 있는 독후감은 독서후에 글을 남긴 몇몇개의 내용이며 그 때 당시의 사고 흐름과 연결되고 있다. 실습 일기나 레지던트 일기 그리고 여행 일기 또한 마찬가지다.

치열함1998-07-22

젊음은 치열함이다. 하루를 살아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나태, 무위, 만족에 굴복하는 한 젊음은 없다. 깨달음의 그날가지 끊임없이 정진하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면의 잣대에 비추어 부끄럼이 없도록 하라. 부끄럼이 없을 경우 행동에 거침이 없어라. 다만 매일 잣대의 눈금을 밀하게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다. 거기에 한치의 오차도 없게 함은 물론이다.

‘도덕경 - 노자 원전, 오강남 풀이’을 읽고1998-08-01

도덕경은 기원전 6 세기에 살았다고 하는 노자가 남긴 글이라 알려져 있다. 전부가 한문으로 겨우 5 천 자 남짓, 200 자 원고지로 25 매 정도로 짧다고 한다. 공자의 윤리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사사이 우리 생활에서 양적인 외면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면 노자의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사상은 음적인 내면 세계에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도덕경의 사상은 한,중,일 동양 삼국의 종교, 철학, 예술, 정치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다고 하며 서양에서도 헤겔리아 하이데가나 톨스토이 등이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은 노자의 원전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준 책으로 한번 쯤 꼭 읽어두어야 할 책이다. 나는 재수하던 시절인 10 년 전에 읽었는데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 삶은 현재 좀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있다.

영원에 대하여199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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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치나 의의, 목표를 찾기 위해 고민해본 사람은 그 생각의 끝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어 삶 자체에 회의를 느끼게 되는 경우에까지 이르게 됨을 경험해 봤을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언젠가 죽을 것인데 지금 내가 무엇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하고 회의가 들지도 모르겠다. 또는 ‘의사가 되어 죽어가는 사람, 병들어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을 돕는 가는 것, 어차피 그 사람들도 몇 십년 후 몇 년 후 면 죽어 없어질 것인데,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가’는 생각도 들지 모른다. 혹은 인류 평화를 위해 노력한다든가,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 지구는 언젠가 없어질 것이고 그럼 인류도 없어질 것인데 이런 일들이 과연 가치로운 일인가… 하는 회의에 빠질 수도 있다.

여기서 생각은 막혀버린다. 분명 이러한 생각이 잘못된 것 같지만 이유는 모르겠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도 나는 배가 고파지면 먹을것을 찾고 그것도 아무거나 먹는 것이 아니라 좀더 맛있는 것을 먹길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삶에 회의를 느기는 자라도 당장 누군가가 자기를 때리면 화가 나고, 만약 복권에 당첨이 된다면 엄청난 기쁨을 느낄 것이다.

즉 인간은 죽기전에 살아있다.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죽음을 직시 했을 때 현재 내가 살아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현재 자신이 살아서 행동하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결국은 그러한 현재의 삶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이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은 것이다. 죽어 버리면 나는 ‘살아있을’수 없고 생각할 수도 없게 되므로 죽기 1초 직전가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

어차피 죽을 인생 대충 살자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나 바보 같은 것이다. 그는 죽음을 너무나 의식한 나머지 죽음에 얽매여 가장 소중한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지금 살아있는 자신의 삶’에 소홀히 하게 된다. 아치럼 바보 같은 것이 있을까. 결국 1 차적으로는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의식한 뒤, 그렇지만 지금 나는 살아있다는 것을 때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임을 깨달은 사람은 ‘당신도 살아 있다’는 것도 역시 가장 소중하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나는 살아있다’, ‘당신도 살아있다’는 상대하여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생명이 있는 어떤 존재의 삶도 하찮은 것일 수 없다.

결국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소중한 것이다. 이 것을 깨달았다면 가장 가치로운 삶은 가장 소중한 것 즉 ‘살아있음’을 지키는 삶이라는 것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것을 알았다면 ‘살아있는’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것은 매우 가치로운 일이며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살아있음’도 지키는 것은 더더욱 가치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살아있음’에 충실할 때는 죽음을 의식할 필요없다. 죽기 1초전까지의 ‘살아있음’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죽음은 ‘살아있음’의 최대의 적이므로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후에는 ‘살아있음’은 없어지기 대문이다. 그러나 여기는 손 쓸 방법이 없다. 죽지 안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단 말이다. 오히려 죽는다는 것에 얽매여 ‘살아있음’에 소홀해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록 목숨은 없어지더라도 정신은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마음의 위한을 삼을 수 있다. 즉 사람은 죽어도 그 사람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으므로 죽는다는 것은 더욱더 무가치하게 된다.

‘살아있다’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고 ‘살아있음’에 충실하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삶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살아있음’에 충실하는 법을 알 차례다 .그런데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이 ‘살아있음’에 충실하는 방법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것은 지속적인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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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지속적인 가치를 순간적인 가치보다 상위에 둔다. 학문을 탐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는 삶은 지속적인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삶이다. 반면 오직 돈만을 위해 사는 삶, 물질적인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삶은 순간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인 것이다.

이처럼 살아있다는 것에는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한 것이 없지만 살아있음에 충실하는 방법에는 분명 더 가치롭고 덜 가치로운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되는 대로 산다는 것은 매우 가치롭지 못한 삶의 방법이다.

여기서 우리는 죽음을 의식해야 한다. 인간의 삶이 유한함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기 직전까지의 삶은 매우 소중한 것이나 이 소중한 ‘살아있음’은 죽으면 없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 ‘살아있음’에 충실해왔던 결과는 때에 따라선 영원히 지속되게 된다.

이 지속적인 결과를 남기지 못한 삶은 유감스럽게도 죽기 직전가지는 소중했었으나 죽어 버린후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됨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가치를 추구하면서 살아있음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과적에서 삶의 의의와 가치 보람을 찾게 될 것이다.

화두1998-11-07

집착을 끊고 자유인이 되는 방법생명이 소중한 이유죽음을 자각함으로써 깨닫는 삶의 소중함생각의 시작(나의 시작)여유있고 태연한 대처나를 비우고 겸손해지는 법

집착은 괴로움거칠 것 없는 자유인을 바랬더니갈수록 좁아지는 마음쌓이는 것은 많으나배출되는 것이 없다.온갖 집착이 피부의 구멍을 막아버려외부와 단절되고 만다외계의 신선한 공기가 자유로이내 몸을 드나들길 원하지만 다 막혔다.구멍이 막혔다.집착, 괴로움, 번뇌, 온갖 욕정아 자유인거리낌 없는 드나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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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1999-03-5

독자리뷰를 읽어보니 상실의 시대가 통속적인 연애소설정도로 밖에 읽혀지지 않았다는 글이 몇개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의 소설에는 허무밖에 없다는 글도. 그렇지만 상실의 시대가 결코 통속연애 소설이 아님을 말하고싶어서 이런 엄한 글을 쓴다.

하루키의 소설은 많이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그가 다루는 주제는 의외로 매우 무거운 것들이다. 인류가 영원이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인...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도대체 왜 사는가?" 라는 질문에대해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것이 그의 소설의 거대한 테마라고 나는 생각한다. 상실의 시대도 얼핏보면 사랑이야기를 다룬 연애소설같지만, 허무함을 느끼는 한인간이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일종의 성장소설이라고 보는것이 조금더 근접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루키의 소설이 허무를 담고 있지만, 허무보다 더 중요한것은 허무를 깨달은 주인공이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는 것인가가 아닐까 한다. 하루키는 '세계의 끝'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세계의 끝은 허무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결론, 상실될 수 밖에 없다는 허무심"이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세계의 끝' 너머의 낭떠러지로 몸을 던져버린다면 하루키는 결코 소설을 쓸 수 없다. '상실의 시대'에는 자살을 하는 등장인물이 몇몇 나온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절대 자살을 하지 않으며, 그런 시도나 생각조차 않는다. 인간은 죽게 마련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은 도대체 왜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인간을 괴롭힌다. 그렇지만 하루키는 안다. 왜 사는지는 모르지만 단지 인간의 어리석은 머리로 그것을 깨달을 수 없는 것이지 인간(생명)이 존재하는 이유는 반드시 있다는 것을. 하루키의 허무는 죽을 수 밖에없다는 사고에서 나오는 허무가 아니라 '왜 태어나서 살아가고 죽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데서 오는 허무'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래드와 태엽감는 새등에서 시도한 바와 같이 죽음을 넘어선 연결을 소설화 하게된다. 즉 인간과 인간이 서로 고차원적인 차원에서 연결되어 있으며, 죽음은 몸둥아리가 녹아 없어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이디어를 소설화 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주인공은 죽기 일보직전의 찰나를 계속 미분해나가는 시간의 개념에서의 무의식 속으로 바져들게 된다. 기가막힌 발상이라고 생각하다. 태엽감는 새에서 주인공은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끊임없이 아내와 연결이 되어있다.

결국 하루키의 소설은 허무를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은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상실의 시대에서 와타나베는 나오코와의 관계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만사가 허무한 사람이 그런식의 인간관계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러나 하루키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사랑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확실히 캐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다. 상실의 시대에 섹스가 많이 나오지만, 그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섹스를 많이 다룬것이다. 이것은 그가 직접한말이다. 내작품을 말한다를 읽어보면 된다. '죽음은 삶의 대극으로서 존재한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언제나 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는 글귀가 상실의 시대에서 두번씩이나 등장하는 것을 보면 상실의 시대가 결코 쉽게 써내려간 통속적인 연애소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어리석어서 결코 내가 왜 살고 있는지 그 모든 이유를 깨달을 수 없지만 전부를 모를 지언정 삶의 이유의 부분적인 모습들을 일상적인 삶속에서 깨닫고 있다. 하루키는 그 작디작은 부분적인 삶의 이유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캐내어보고자 소설을 쓴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고, 웃고, 울고, 화내고, 토라지고, 반목하고, 좋아하고, 배고프고, 짜증나고, 웃기고, 재밌고 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가 살고있는 이유라고 하루키는 말하고 싶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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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 알베르 카뮈’를 읽고2000-05-01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첫 줄만 읽으면 된다. 거기에 다 있다."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그 밖에, 세꼐가 3 차원으로 되어 있는가 어떤가, 이성의 범주가 아홉 가지인가 열두 가지인가 하는 문제는 그 다음의 일이다.그런 것은 장난이다.그보다 먼저 대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정말 진심으로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다.그 어떤 철학적인 문구보다도 적나라한 핵심을 말하고 있다.이 한줄을 읽고 나머지도 계속 읽게 되었다.

연결2000-04-22

이 일기장을 처음 쓴후로 1 년반이 넘게 시간이 흘러 버렸다. 옛 일기를 읽어보니 사고에 힘이 느껴진다. ‘치열’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었다. 지금의 나 ‘치열’을 잊고 산지 오래다. 예전의 다짐들이 물거품이 된걸까?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고 있다. 극한 상황을 설정해 본 것이 도움이 된 듯하다. 세계의 끝 극적반전… 그런데 반전의 방향이 의외의 곳으로 흘러버릴 것만 같다.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변증되는 것인가?

정말로 확실한 것은 무엇일까? 진리가 정말로 없다면… 진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있다고 믿는 것은 평등한 입장이다. 어떤것을 선택하느냐는 ‘기호’의 문제다. 일체의 가치를 부정하고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진리에의 독실한 믿음과 다를 바 없는 평등한 입장이다.

다만 기호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몇 가지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이것또한 기호일지는 모르겠으나) 그것이 바로 ‘기본’이다.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사느냐는 문제는 너무나 골치 아픈 것이 겠지만, 나는 무엇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살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만 깨닫는다면 죽음은 그다지 두려운 것이 아니리…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죽기전의 육체적인 고통 때문이 아니다. 바로 죽고나면 연결이 끊어지고 혼자가 된다는 슬픔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 정도로는 그 연결은 끊어지지 않는다. 연결의 끈은 의외로 강하다. 내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지구가 당장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두려운 것이 없으리

내가 존재하는 세계는 단지 내가 눈으로만 보고 있는 여기 이곳 뿐만이 아니다. 눈을 감고 조금만 집중해보면 또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나’의 시작 ‘생각’의 시작점은 순전히 내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머리속에 생각의 시작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의식은 그 깊은 곳에서 연결되어 있으면 생각의 시작도 내 머리속이 아닌 그 어딘가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의식이라고 일컬어지는 부분은 의외로 우주와 dusrufehljd dlTdmfwleh 모른다. 다만 그 연결의 끈이 강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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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하냐는 정서간의 유대가 강하냐 양가냐에 달려있다.

꿈속에 누군가가 등장한다면 순간 그 사람과 무의식의 영역에서 연결되어 있는 것일 수 있다. 주ㅍ수만 맞으면 된다. 무의식의 영역에서는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있다. 의식과 무의식과의 대화만 가능하다면…

두되는 생각의 우너천이 결코 아니다. 단지 종합하는 역할을 하는 장소일 뿐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의외로 많다. 신호는 시공을 초월하여 나에게로 온다. 무수히 많은 신호중 나는 나에게 의미있는 것만 캐치하며 그것은 나의 의식을 구성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사실이 아니다.

나는 이미 화성에 가있다. 다만 내 몸뚱아리가 그 곳에 없어서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뿐이다. 내 몸은 수순소이며 나의 뇌는 안테나이다.

필요하니까 사는거다. 살 필요가 있으니까 산다. 뭣에 필요한가/ 제 2 의 네트워크가 필요했던 것이다. 제 1 의 네트의 어느 부분이 끊어져도 제 2 의 네트가 연결되어 있다는 괜찮기 떄문이다. 끊임없는 연결이 목적이다. 연결에는 인격은 없지만 생명력은 있다. 그것을 지속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 네트의 생존 필요 때문에 우리가 사는 것인가? 완벽하다. 나의 노력으로 끊을 수 없다. 끄ㅜㅁ끄 꿀 때 이 연결을 느낄 수 있고 확인할 수 있다. 빛이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 이 연결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다. 보다 근본적이고 강력한 연결은 무의식의 연결이다. 의식의 연결은 목숨이 다하면 곧바로 끊어지게 된다.

정말 그러한가? 라는 질문에 그렇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어디에?

육체와 의식이 죽으면 나는 생전에 정서적으로 유대감이 깊은 사랑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간다. 들어가다기 보다는 동시에 거기에 존재한다.

이미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어디라도 갈 수 있지만 어디에라도 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의식적 개념의 공간에서 나와 가까운 사람의 무의식에 머문다.

동시에 모두 없어진다면 – 멸망떠돌게 된다. 우주를 떠돈다.

외계 생명체속의 무의식속에 안착될 확률은 거의 없다. 의식이 있을 때 유대관계를 맺었던 무의식속에 안착한다. 그 곳에서 그 사람의 의식에 영향을 준다.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이다.

나를 움직이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살아있는 내가 떠도는 무의식을 끌어 당길 수 있다. 고인과의 대화, 독서를 통해서 등등… 떠도는 무의식은 때로 자기안의 의식을 만들기 위해 생명을 탄생시킨다. 정착하기 위해서다.

무엇이 진리인가?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진리이다. ‘+’무한대는 ‘-‘무한대와 연결되어 있다.

지식은 의식속에 축적되어 무의식에 영향을 준다. 무의식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지금 살고 있다는 것이 나의 무의식을 성장시키고 그 행동 반경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남의 생각을, 의식을 읽을 수는 없지만 무의식은 캐치할 수 있다. 무의식은 의식에 의해 영향 받았으므로 의식을 추측해 볼 수는 있다. 내가 너의 생각을 하면너의 기분을 느낄 수 잇다. 정서적 유대감이 강할 수록 잘 느껴진다. 상대가 나에대해 빗장을 걸고 있어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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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댄스 댄스 댄스’를 읽고2000-05-10

댄스댄스댄스를 제대로 이해하려면...먼저 하루키의 초기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 년의 핀볼...에 이어 양을 쫓는 모험을 읽어야 한다. 특히 앞에 두개는 제외하더라도 양을 쫓는 모험은 필수로 읽어야 하는데...양을 쫓는 모험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므로...아깝진 않을 것이다.

하루키가 앞에서 말한 초기 작들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댄스댄스댄스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듯 하며...하루키의 해답도 결국은 그것(?....끊임없이 춤을 춘다는...)이 될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줄거리에 상관없이 주인공의 생활 방식과 사물을 바라보는 친근한 시선은 언제나 재미를 안겨준다.

하루키의 소설속 주인공의 방황을 나도 지금 겪고 있으며... 주인공인 '나'처럼...30 이 넘도록 갈피를 제대로 못잡는다면 분명 큰일일 테지만... 갈피를 잡는 다는 것, 정착을 한다는 것, 생활에 휩쓸린다는 것, 이 결코 방황의 끝이 아님에... 하루키의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분명히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다. 언젠가 김명철(맞는지 모르겠지만) 기독교 교수가 대학교 3 학년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했는데...도대체 인간이 죽기전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가 미지수며..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그 교수가 건방지다고 생각된 적이 있었다.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결코 삶과 죽음에 대한 화두의 해답이 아니기에... 서른살이 넘도록... 방황을 거듭하며... 자기를 찾기위해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은 결코 우습게 보이지 않으며... 대충 생각을 끊고... 타협하는 인간들보다는 백배낫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루키 소설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하루키는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면서도 해답이 없는 듯한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또 그것 자체를 소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뛰어난 작가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는 정말로 새로운 해결법(약간 엉뚱하긴 하지만...)을 제시하면서 사고의 일대 전환을 보여줬는데..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를 읽고2000-05-15

무라카미의 장편소설 태엽감는 새를 읽었습니다. 끝까지 읽으면서 줄곧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은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하는 물음은 매우 진부한 질문일진 모르겠으나...태엽감는 새를 읽으면서 하나의 이미지가 머리속에 굳어져...어쩌면 평생 지금 생각해낸 이미지를 갖고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태엽감는 새에는 비현실적인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비현실의 세계를 마치 현실의 세계인 것처럼 들락 날락 거리면서 주인공의 의문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데...그 비현실의 세계가 뜻하는 바가 무의식의 영역이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 이러한 비현실 세계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일각수의 꿈)'에서도 등장한다. 그때 작가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게 되는데...그 이미지가 태엽감는 새를 읽으면서 되살아나서...상당히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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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인간이 죽기 일보직전에 무의식의 또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는 상상이다. '세계의 끝'에서 정말 재미있게 그려졌다.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시간이 축적되는 것으로서의 개념이 아니라...일정 기간의 시간을 미분해 나가는 개념의로서의 시간이 적용된다. 즉 죽기직전 1초전에 시간을 반으로 자르고 또 반으로 자르고...이런 식으로해서 무한이 이어질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시간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따라서 죽기 1초(편의상) 직전에 무의식의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빠져든다면 1초동안 그 1초를 계속 잘라먹어가는 영원한 시간이 부여되어 새로운 영원속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인것이다.

물론 무의식의 세계에는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다. 죽기 전까지 쌓아온 무의식층을 갉아먹어 가면서 사는 것이다. 감정따윈 존재치 않으며 실세계에서 통하는 물리 법칙이나 논리따위는 적용되지 않는 어찌보면 밋밋한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은 그것이 당연한 듯 여기므로 아무 문제는 없다. 그 세계에도 사람은 등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도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행동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 또한 나의 무의식의 영역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무의식은 서로 통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상상도 해보지만 별 진전이 없다. 텔레파시라는 것을 나는 어느 정도는 믿고 있으며 이런것은 무의식의 영역에서 서로 통해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의 무의식이 함부로 통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텔레파시도 주파수가 맞아야 작동되는 것이므로...

나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의 무의식은 연관이 되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태엽감는 새에서는 이처럼 비현실세계(즉 무의식)에서 대화가 이루어진다. 어쨌든 죽기전에 이러한 또다른 세계에 빠져들 수 있고 그곳에서 제 2 의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다면(의지는 작용치 않지만...제 2 의 의지...즉 이미 쌓여온 의지로...) 지금의 삶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를 읽고2000-06-01

하루키의 신간 연작소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를 읽었습니다. '하루키가 1 인칭을 버리고 3 인층 시점을 택했네', '하루키가 사회참여를 선언했네' 하면 말들이 많은 새로운 연작 소설입니다. 장편도 아니고, 단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서로 연관되지 않은 듯 하면서...연관된 6 가지 이야기들을 연작형태로 써내려간 소설이지요. 제목이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입니다.

책 앞뒤에 있는 작품 해설을 보니 하루키는 작품의 주제를 직접 소설의 제목으로 삼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예를 들면 상실의 시대 일본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인데 실제로 그 소설이 노르웨이의 숲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제목이지요. 오히려 상실의 시대가 더 어울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소설의 배경화면에 흐르는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노래를 제목으로 삼음으로서 독자들에게 여러가지 각도에서 작품을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더군요. 부제를 제목으로 삼는 거지요. 주제와 연관된 것을 제목으로 삼게되면 독자들의 시각이 한쪽으로 굳어버려서 소설읽는 재미가 반감된다고나 할까요. 어쨌뜬 하루키 다운 발상입니다.

이야기가 딴데로 새버렸군요. 이 소설의 소개를 읽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 작품은 고베지진사건을 이야기의 어떤 구심점으로 하여 6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입니다. 그렇지만 지진이야기를 절대로 주 소재로 삼지 않습니다. 아주 잠깐 등장하지요. 그렇지만 6 개의 이야기 모두에 지진이야기는 반드시 나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점이 바로 고베 지진이 일어난 한달 후의 이야기입니다. 참 기발한 발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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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긴엔 이번 작품의 주제는 '죽음' 인것 같습니다. 하루키가 죽음을 주제로 이야기하지 않은 작품은 단편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작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죽음 앞에선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지요. 6 가지 이야기중 어디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얼른 기억이 안나는데요 죽기위해 산다는 내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식대로 말을 바꾼것이긴 한데요 하여튼 보통 사람들은 살아나가기위해 살고 있지만. 즉 태어난 것을 기점으로 앞으로 어떻게 성장하고 발전할 것인지를 생각하지만 죽음을 기점으로 삶을 거꾸로 생각해본다면 인간은 죽기위해 산다는 뜻인 겁니다. 음 이런 말이 맞았나 확신할 수 없군요. 책을 다시 뒤져봐야 겠어요. 하여튼 상실의 시대에서도 두번씩이나(소설의 처음부분하고 끝부분에) 언급되는 문장이 바로

"삶은 죽음의 대극에 있는 것이아니라, 삶과 죽음은 함께 지금 존재하는 것이다. "

(위에 문장이 맞는지 확실히 기억이 안나는데 대충 그런것이었던 것 같아요.)

입니다. 즉 보통때 우리는 죽음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살아가지만 언제나 죽음을 껴안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대로 죽기위해 제대로 살아야 한다. 하루키를 읽는 독자들이 하루키의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 다르고...해석도 다 다르지만... 전 언제나" 죽어야 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왜 사는가? " 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읽습니다.

이번 작품 '신의 아이들은 춤춘다 에도 역시 빗겨가지는 않았더군요. 중국행 화물선을 가장 좋아하는 단편집으로 손꼽고 있었는데 이번 작품은 중국행 화물선 못지않게 진지하고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는것 같아 좋습니다. 역시 하루키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할까요?

그리고 하루키가 3 인칭 관점을 택하면서 사회로의 참여를 시도했다는 평을 하는 것 같은데 제가 보긴엔 3 인칭이라는 것이 결국 '나' 를 '그'나 '그녀' 로 바꿔버린것에 지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국 소설의 주인공은 하루키라는 자신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점을 두고 하루키 소설은 그게 그거라고 싫어하는 분도 있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점이 좋습니다. 인간이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삶의 비밀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을 결코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요.

어쨌든 이번 소설 좋습니다. 특히 태국에서 일어난 일과 벌꿀파이가 쪼금더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태국에서 일어난 일에서의 마지막장의 북극곰 이야기 조금만 해볼게요...

"그는 제게 언젠가 한 번 북극곰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북극곰이 얼마나 고독한 동물인가 하는 이야기예요. 그들은 1 년에 한 번만 교미를 합니다. 1 년에 딱 한 번만이요. 부부와 같은 관계는 그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얼어붙은 대지 위에서 수컷 북극곰 한 마리와 암컷 북극곰 한 마리가 우연히 만나게 되고, 거기서 교미가 이루어져요. 그다지 긴 교미는 아닙니다. 행위가 끝나면, 수컷은 무언가를 보고 무서워하는 것처럼 암컷의 몸에서 물러선 다음 교미를 한 현장에서 도망칩니다. 글자 그대로 쏜살 같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는 거죠. 그리고 다음 1 년 동안 깊은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거예요. 상호간의 의사소통이라는 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일도 없어요. 그것이 북극곰 이야기예요. 아무튼 그게 제 주인이 제게 이야기 해 준 겁니다.ㅣ"

"어쩐지 이상한 이야기로 들리는 군요." 하고 사쓰키는 말했다.

"확실히 이상한 이갸깁니다." 하고 니밋은 고지식한 얼굴로 말했다. "그때 나는 주인에게 물어 보았어요. 그렇다면 도대체 북극곰은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 겁니까..라고요. 그랬더니 주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제게 되묻더군요. '니밋, 그럼 우리 인간은 대체 무엇 때문에 살아가고 있나?" 하고요... 마치 달라이 라마가 중생들에게 던지는 화두 한마디 같군요. (제가 불교 신자는 아니구요. ^^) 그리고 글 소설 서두에 짧은 글들에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과 장 뤽 고달의 <미치광이 피에로> 에서 몇줄의 문장을 인용했는데요 이 작품을 써내려 갈 당시 작가가 무엇을 염두해 두고 있었는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개구리군 도쿄를 구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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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고베 지진떄 6000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6000 명이 죽었다고 하는 말 자체는 매우 폭력적이라고 합니다. 6000 명이 죽었다는 사실만 가지고는 평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던 어떠한 모습의 어떤 성격의 사람이 어떻게 하다 죽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으니까요. 하루키는 6000 명속의 한명한명에 관심을 가져보기로 한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아무 보잘 것 없는 도시의 샐러리맨도 도쿄를 지진으로부터 구하여 15 만명의 사람을 구해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한사람 한사람 개개인의 존재의 소중함을 이야기 해 보려고 하는 듯이 생각되기도 하구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읽고2000-06-15

한마디로 이 책은 매우 재밌고도 섬뜩하게 무서운 책입니다. 일단 한번잡으면 어쩔수 없이 끝까지 읽어야만 하는데, 읽는동안 그다지 유쾌한 기분이 든것은 아니었습니다. 뭐랄까... 나라는 놈에대해서 보다 명확히 알게됐다고나할까... 쥐스킨트는 위험한 인물입니다. -_-;; 그리고 가혹하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글이란것은 왜 쓰는 것일까요? 쥐스킨트라는 사람... '향수' 의 살인마 주인공 그르누이와 겹쳐지는 점이 아주 많습니다. 사람을 직접 헤치거나 글속에 질 나쁜 사상을 담고 있는것은 아니지만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매우 조심스럽고 겸손하게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물론 그르누이처럼 완벽한 천재는 아니지요. 그런천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글을 쓰는 능력에 관해서는 가히 천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의 내부를 탐구하면서 뭔가 깨달은 바도 제법 많은 것 같습니다. 세상의 끝을 봤다고나 할까요. 제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하루키는 회의를 극복하기위한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지만 쥐스킨트는 회의 그 자체를 이야기합니다. 그것도 너무나 적나라하게...이야기합니다. 그는 자신과 다른사람을 다르게 봅니다. 제가 어제 쥐스킨트를 통해 한방 크게 먹은것은 나또한 나와 다른 사람을 은연중에 다르게 생각해 왔는데, 그것을 그가 '당신은 똑같다'라고 ... 비참한 기분이 들정도로 이야기를 해주는 것입니다. 니가 뭐가 잘나서 남들가 다르기 위해 노력하는가...웃기는 짓 마라~ 그러면서 그는 마치 그르누이가 스스로가 신이라고 생각하면서 도취감에 빠지듯이 세상을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은둔자는 무릇 자신이 주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없는 고차원적 존재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의 한계는 자신또한 남들과 결국 다를바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겠지요. 물론 그러한 사람들이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천재적인 저작물을 남기기도 하겠지만... '향수' 라는 소설이 세상에 있는 것과 없는 것과 무슨 차이일까요. 그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글을 쓰는 걸까요. 그도 어쩔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을 다른사람들한테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하고 그래서 자신의 사고의 축적물들을 세상에 토해냅니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치부를 드러나게 합니다. 누구나에게는 깊은곳에 숨기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으며, 그것은 자신도 알고 어쩌면 다른 사람도 조금은 눈치를 채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굳이 적나라하게 말해주면서 그 사람을 한없이 작아지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향수'를 읽고 저자신에 대해 그 이전보다는 조금은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면에서는 쥐스킨트에게 감사해야 하겠지요. 그렇지만 그다지 기분 유쾌한 것은 아니군요. 왜냐면 그것을 이야기해주는 방식에 있어... 완곡법과 직설법이 있겠는데 쥐스킨트는 직설법을 뛰어넘어 단칼에 나의 약점을 드러내보입니다. 그의 모든 소설이 그런것은 아니지만 '향수'는 확실히 그렇고... '깊이에의 강요' 에서는 몇가지 글에서도 그렇습니다. 그에게 어느정도 빛은 진셈이겠지만 그다지 그가 좋아질 것 같지는 않군요. 그 때문에 이번 방학내내 나란놈을 다시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많이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첨부터 시작해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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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저도 어쩔수 없이 그가 쓴 나머지 책도 읽어보게 될것 같군요. 또 무슨말을 할런지 궁금하니깐^^대단한 작가라는것은 부인할 수 없군요~ ^^

꼬랑지 1 :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진자라는 책에 보면 그런말이 나옵니다. 진리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죽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2000-06-20

대강의 내용은 고등학교에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결벽증적인 성격을 가지 아웃사이더인 주인공이 학교에 퇴학 당하고 며칠동안 뉴욕시내를 배회하면서 있었던 일을 적은 이야기인데... 스토리가 재밌다기 보다는 주인공 말 하나하나가 뭐랄까... 흥미롭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의 성격은 절대 아니지만 모든 것을 삐딱하게 보고 모든 게 불만이고 나름대로는 매사를 정직하게 바라보려고 하지만, 정직과 삐딱이 좀체 구분이 안되는 놈이다. 이런 스타일의 인간이 분명 주위에 가끔씩 있긴한데... 그놈들 속이 만약 다 이런 생각들로 가득차 있다면 정말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하여튼 주인공의 나이가 30 살정도 먹고 그딴 생각들을 한다고 치면 그런갑다 쳐도 (30 살씩 먹으면 그런 생각들을 하지도 않겠지만...) 인제 스무살도 안된 놈의 생각이 너무 직선적인데... 이시기의 생각쫌 한다는 대부분의 애들이 그렇듯이, 깊이 알지 못한채 피상적인 느낌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 싶으면 일단 씹고 본다.

근데... 그 씹는 말 하나하나가 너무나 재밌어서... 소설로서로는 제격이라는 생각이다. 또 근데... 비틀즈의 존레논을 암살한 채프먼이란 놈의 손에 이 책이 들려져 있었다고 하는데... 그놈의 존레논을 죽이고 한말이 뭐냐면 "나의 소원은 당신들 모두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는 나의 노력은 바로 이 목표를 위해 쓰여지는 것이다. 왜? 이 특별한 책에는 정말 많은 대답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는데... 이처럼 소설을 소설로 보지 않고 소설속 고등학생 주인공의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을 마치 신의 계시인냥 믿고 일을 저지르는 놈이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는데... 소설속 주인공의 말이 아무리 고등학생의 말이라고는 하지만 동시의 작가의 말일수도 있기 때시, 음... 소설가의 영향력을 다시하번 실감해 보게 된다고나 할까...

그리고 일본의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이 소설가에 많은 영향을 받은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머리속에 맴돌았던 것이 '상실의 시대' 인데... 너무나 비슷한 점이 많다. 일일히 말하기도 뭐하지만... 문체도 비슷하고 기본적인 사고 방식이나 패턴도 흡사하고 주인공이 기숙사 생인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느끼는 점을 소설로 쓴 거라는 것도 비슷하고, 스토리는 그다지 재미없다는 것도 비슷하고...

하튼... 하루키가 어지간하게 이책을 많이 읽어봤구나...하는 생각도 해봤는데...어쨌든... 그마만큼 작가 본인도 의도 하지 않은 영향을 여기저기 끼치게 되었다면 나름대로 굉장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직 다 읽은것도 아닌데 ... 섣불리 이런 소리 하는건 뭐하지만... 그렇다는 말이다.

요 밑에 글써놓구선 시험 때문에 거의 못읽었었는데...오늘 밤에 잠이 안오길래 결국 다 읽어버렸다. 근데 내용중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주인공 홀든이 앤톨리니 선생을 찾아갔을때 그 선생이 쪽지에 적어서 홀든에게 준 메모의 내용인데...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에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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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든이 앤톨리니 선생의 설교에 좀체 집중을 하지 못하지만 선생이 쪽지에 적어준 위의 글은 한참 후까지 간직하고 있는데 무슨 심정으로 간직하고 있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메모의 내용은 매우 서글프면서도 기가 막힌 것이다.

특히 이 소설을 읽어보면 주인공의 세상에 대한 냉소와 타협을 거부하는...순진무구한 고집스러운 행동들과, '미성숙한' 주인공의 행동들의 문제점을 점잖히 또는 윽박지르듯이 지적해주는 '성숙한' 앤톨리니 선생을 비롯한 여러 어른들의 태도가 대조되어 생각을 꺼리를 던져주게 되는데...

이 책을 읽어보면 순간 주인공의 시각과 사고 방식에 익숙해지게 된다. 모든 것에 삐딱한 홀든 조차도 자기보다 잘났다고 생각되는 친구 앞에서는 자신이 줄곧 이야기하는 그 '쓰레기 같은 이야기' 들을 먼저 꺼낸다.

'홀든 2' 이라는 사람이 한명 더 있어서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본다면 분명 홀든 1 의 이야기를 쓰레기 같은 걸로 생각할게 뻔하다. 홀든이 미성숙하다는 것은 언제나 삐딱하게 보고 모든 게 맘에 들지 않지만 남들이 다 자기 같지 않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자기 눈에 가장 쓰레기처럼 보이는 인간도 자기와 똑같은 생각들을 하고 살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뭐냐면, 속으로는 누구나 삐딱하게 생각할 수 있고, 문제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누구나 그것을 그대로 겉으로 표시를 내면서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도 나만큼 냉철한 시각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며, 그 사람의 겉 모습이 결코 내면의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모든 것에 욕을 하고 삐딱하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위에서 말한 메모의 내용처럼 성숙한 사람은 비겁한 죽음을 택하려 한다는 것이며 미성숙한 사람은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죽음' 은 말 그대로 정말 죽는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어떤 행동(최후의..) 을 취한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듯)

무언가 부언해서 말하고 싶지만 표현력이 너무나 미숙해서 잘 말하지를 못하겠다.어쨌든 성숙해질 필요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래야 남의 생각들을 존중할 수 있게 되며, 혼자만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삐딱한 자세가 오히려 우습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미성숙 했을 때만이 주인공 홀든처럼 보다 정직하고 솔직하고 순진한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현실적인 유혹들에 흔들리지 않고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 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에 서글픈 연민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비겁하게 죽을 궁리를 하게 되는 것이며, 현실따위는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할 때까지는 고귀하게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너바나의 리더 '컷코베인'의 자살을 많은 사람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위와 같지 않을까...

이청의 성철스님 전기를 읽고2001-01-05

이 책은 우연히 읽게 되었다. 집에 이런 책이 있길래... 그냥 한번 들쳐봤는데 재밌을 것 같아서 읽기 시작한것이 결국 끝가지 다 읽게 되어다. 사실 이책은 고등학교때 무슨 뜻인 줄도 모르고 읽었던 적이있었는데 그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오늘 읽을때는 확실히 달랐다. 5 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 머리도 조금은 컸긴 컸나부다...

'스님'이라는 사람은 과연 어떠한 연유에서 스님이 되기로 결심을 하게 되고 그 외롭고 고통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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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일까... 이런 의문점들을 가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면 어느 정도 그 해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특히 2 년전 쯤에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한 미국인이 미국에서 강연중인 우리나라의 '숭산'스님의 강연에 감명을 받아 스님이 되기로 마음먹고 출가를 하여 서울에 있는 '화계사'에서 지내면서 느낀 점들을 책으로 쓴 '만행, 하버드에서 회계사까지' 를 읽어보면서 그 미국인의 심정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나의 고민도 그 미국인의 고민과 다른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래도 가슴에 와닿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치 누군가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도록 짜 놓은 듯 나는 우연히 또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고 구도자의 길을 걷게 되는 심정에 대해 상당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나는 왜 태어났으며, 나는 누구이며, 또 왜죽는가...' 라는 의문에 한때 휩싸이지만 바쁜 일상 생활속에서 이런 의문은 가슴속 아주 깊숙한 구석으로 내몰리고 말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의 도리 자식된 도리를 저버리고 출가를 하여 구도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스님이라고 다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며 순수한 열정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성철' 스님은 진정으로 본받을 만한 구도자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서 겠지만 그의 수행을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이 모두 거짓일리는 없을 것이다. 일찍이 부처가 그리고 예수가 삶과 죽음에 대한 큰 의문을 품고 구도의 길을 걷고 큰 깨달음을 얻어 묻 사람들에게 그 깨달음을 전파하기 위해 애를 썼었고, 그 영향이 2 천년이 지난 지금에게도 전세계 80%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어 세상살이의 바른 길잡이를 제시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스님이 되기로 마음 먹은 사람과 스님이 되어 깨달음을 위해 온 생애를 바친 '성철' 스님의 생이 함부로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문득 이러한 공상에 빠져본다. 신은 만물을 창조하였고 만물은 '신 의지'의 발현이다. 인간 또한 신의 창조물이며, 역시 신의 의지의 발현이다. 그런데, 신은 자신조차 자기가 만물을 창조한 이유를 알지 못하며 자기가 창조한 세계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 그는 비물질계에 존재하며 그가 창조한 세계는 물질계이므로... 그래서 신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의 모습을 보기위해 창문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영혼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의식'을 가지고 있어 나를 비롯한 세상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유일한 동물인데 그 인간의 영혼...즉...알고자하는 의지의 창을 통해 신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보며 또 자신이 창조한 의지가 무엇인지 깨달아 가는 것이다.

즉 신 또한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해가는데... 그 알고자하는 의지가 바로 인간의 영혼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깨닫는 것이 곧 신의 깨달음이요 우리 인간이 깨달은 진리가 곧 신이 깨달은 진리이다. 따라서 신이 그 알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은 계속 존재하여 신의 창조물에 대한 깨달음을 하나하나 넓혀 갈 것이다.

신은 끊임없이 창조하면서도 자신의 창조의 의지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그러기 위해 물질 세계와의 연결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고 다른 동물과는 다른 특별한 영혼을 불어넣어 그것이 자기의 알고자 하는 의지가 되도록 하였다. 따라서 나는 알기 위해 태어났으며 알고자 하는 나의 모든 노력들은 만물 창조의 이유를 깨닫기 위함이며 그것은 바로 신이 자신의 창조의지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창조의지가 발현된 모습에 대해 궁금해하는 알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인것이다~

이러한 부질 없는 공상은 깨달아야하는 이유를 찾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우주의 시작은 의지의 발현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에잠시 휩싸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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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태어났나2001-11-13 심각한 이야기 안하기로 해놓구선 제목이 심상치 않지요? 오늘 아침에 바이러스에 대해서 시험을 봤거든요. 근데 이 바이러스 라는 놈이 참 재밌고도 생각꺼리를 던져주는 놈이더라구요. 왜 태어났나? 라는 질문에 어쩌면 약간의 힌트를 제공해 줄지도 모르는 그런 놈입니다. 바이러스라고 할꺼같으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요. 요놈들은 자신의 자손들을 번식시키기 위한 매우 심플한 유전정보만을 단백질보따리에 가지고 있는 놈인데요... 자기 스스로는 자손을 번식킬수도 없고 자기가 살아나갈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몸의 세포속에 몰래 들어와서 세포들이 자기를 복제시키는 시스템을 이용해서 번식을 하는 놈이지요. 그래서 혼자있으면 그냥 단백질 덩어리에 다름아니지만 세포나 박테리아 속에 들어가면 자손을 번식 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쯤 되는 놈들이죠.

그런데, 요놈들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은... 도대체 뭐때메 번식을 하냐는 것입니다. 얘네들은 먹지도 놀지도 싸지도 (-.-;;;) 않습니다. 자신의 유전자와 자신의 유전자를 보호해줄 코트를 끊임없이 만드는게 존재의 이유라고 할까요... 복제가 유일한 생존의 목적이라고 보면 될겁니다. 더욱이 신기한것은 옹코진(oncogene) 이라는 놈은 우리몸의 염색체 속에 여기저기 박혀있는 유전자중 하나인데요, 얘네들은 다른 DNA 가닥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놈이라고 하네요. 쉽게 말하자면 얘네들은 바이러스보다도 더욱 간단하게 유전자만 있는 놈입니다. 유전자를 보호하는 코트같은것은 거추장 스럽다고 들고 다니지 않는 것들이죠.

그렇담 마치 이런 유전자에게 생명의 의지라는 것이 있는것 처럼 보이는데요, 그런것이 아니라 다른 유전자들처럼 이런저런 핵산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DNA 조각 다시말해서 '무생물' 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생명이 있는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자신을 복제하고 다니지요. 그래서 암덩어리를 만드는데 기여를 하게되지요.

말이 길어졌는데요, 이야기의 핵심은 뭐냐면요...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나가는데 공통의 이유가 있다고 하면요, 이 바이러스가 자신을 계속 복제하려는 이유와 우리 인간이 태어나서 서로 부대끼면서 살다가 자식을 낳고 죽는 이유가 서로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렇담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자신을 복제하려는 이유만 알면 우리가 태어나서 자식을 낳고 죽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것입니다. 결론은 의외로 뻔한건데요... -_-;; 암만 생각해도 바이러스는 복제자체가 최고위 목표인것 같습니다. 실제로 얘네들은 복제활동 말고는 하는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영양분을 뻇어먹고 독을 내뿜고 하는 세균들이 하는 짓들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Only 자손복제!!! 그것이죠.

다시말해서 생명력 지속이 얘네들 존재의 이유이지요. 그렇담 인간이 태어나서 사는 이유도 그런쪽으로 생각해볼 수 있을텐데요. 두가지 의문점은 모냐면요.... 생명력 지속(대를 넘어서)이 삶의 이유라면 굳이 자기와 똑같은걸 복제해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냥 살아있는것은 어떤형태로든 만들어 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자식이 꼭 사람의 모습을 갖을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되었건 사람의 자식은 사람을 닮았고 돼지의 새끼는 돼지를 닮았습니다.

두번째 의문점? 그러면 왜 나의 자식은 완전히 나와 똑같지 않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낳고 돼지는 돼지를 낳아야 할만한 이유가 있다고 치더라도 사람이 낳는 사람이 왜 또 달라야 하는지? 같은 종류를 낳되... 똑같으면 안된다...는 그런....음....

바이러스도 그렇습니다. 자기와 똑같은 놈을 낳지 않기위해 복제과정에서 수많은 에러를 발생시킵니다. 자기처럼 생긴놈을 낳되 자기와 같지 않는 놈을 낳는것이죠. 음... 단순한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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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렇게까지 힘들여가면서까지 생명을 지속시켜야 하는데는 우리도 알지 못할 오묘한 이치가 있는 것이겠죠? ^^ 근데 그 오묘한 이치라는 것이 그렇게 심각한것이 아니라... 어쩌면 누군가 우연히 그 이치를 깨닫게 된다면 한 보름정도는 밥도 못먹고 계속 웃을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래서 오쇼라즈니쉬 라는 인도 철학자는 '우주를 웃음의 바다'라고 표현하면서 사람들 웃길라고 '배꼽'이라는... 그다지 웃기지 않는 책도 쓰고 그랬잖아요. 어쨌든 이번 글의 결론도 '웃으며 살자!' 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 2002-02-14또 다시 혼란스러워진다. 인생의 3분의 1 그러니깐 운이 좋아서 또는 계산하기 좋게 90 살까지 산다고 치면 무려 30 년동안을 잠을 자면서 꿈속에서 살고 있는 셈인데... 나머지 3분의 2 만 실제이고 3분의1 은 가짜라는 것은 어째 불합리하게 생각된다. 거꾸로 3분의 1 이 정말 진실에 근접된 것이고 3분의2 는 거짓 또는 환상, 허상이 아닐까.. 매트릭스라는 영화, 바닐라 스카이, 오픈 유어 아이즈그리고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래드 이 모든 작품은 3분의 1속에서의 삶을 꿈꿔보는 작품이다. 이런 상상들은 과학이 발달한 지금에서야 비롯된 생각들이 아니라...고대로부터 인간의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온 어찌보면 자연스럽게 삐집고 나오는 생각들이 아닌지... 우리가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 미신이라고 천하게 여기면 업신여기는 모든 행동들 모든 나라에 걸쳐 공통적으로 존재해 왔던 영혼에 대한 공상과 귀신에 대한 이미지들. 이 모든 것들은 도대체 무얼 말하고 있는 것인지. 나를 속이고 내 눈을 멀게 하고 내 가슴을 순수하게 만들 용기가 나에겐 도저히 없다. 나는 물론 현실에 최선을 다하고 싶고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죽을 때까지 뭔가 중요한 것이 빠졌다는 느낌은 절대 지우지 못할 것만 같다. 눈앞에 보이는 세계 너머에 무언지 모를 진실 된 세계가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쉽게 떨쳐버릴 수 없다.

허상을 바로 본다는 것은...2002-02-14

사랑의 대상은 실체가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빠져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정신이 빚어낸 이미지를 사랑한다는 것. 지어 나는 꿈속에서도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속의 대상은 야말로 허상 그자체가 아니던가...

내가 눈을 뜨고 사랑을 느끼는 것 을 감고 사랑을 느끼는 것은 다를 바가 없을진대 가 사랑하는 대상은 내 어설픈 상상력으로 조각해낸 신기루와 같은 그 무엇 아니던가...

내 목마름을 채워줄 것만 같고 에게 그늘을 제공해줄 것만 같은 환상, 그러나 사랑. 리하여 사랑은 영원할 수가 없는 것이며, 순수한 첫사랑의 감정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실체를 알지 못하고 머리 속에서만 부풀려온 완벽한 대상 바로 그것. 그 환상이 깨질 때 비로소 사랑은 情이 된다.

허상을 바로 보게 된다는 것은...사랑의 환상이 깨지게 되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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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집중이 분산되는 것이요집착의 원동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미리 부터 겁낼 필요는 없다. 인간은 젊을때 환상의 콩껍질에 눈이 가려지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으므로 나의 사랑의 감정이 실체 없는 대상을 향한 것임을 알게 되더라도 그 감정 약해짐 없을지어니...

아. 우리 인간은 어찌하여 이토록 어리석고도 맹목적이어서 오히려 순진하고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인가. 허상이 너무 빨리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될 때 인생의 가장 벅찬 기쁨과 행복을 누릴 시기가 그만큼 줄어들게 될 것이다. 현실적이라는 것, 현실을 믿어버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는가.

도대체 어디에 현실이 있으며 현실이란 것은 누가 만들어낸 현실이란 말인가. 왜 그리도 우리는 이토록 현실을 따지고 자신을 속이는 고정관념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것인지... 너무나 우스운 인들, 기막힌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평생을 살면서 진실된 것의 억만분의 일도 알지 못하고 죽어간다는 것. 또는 그렇게 죽어간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하는 우리. 왜 이리도 어리석을까.

허상이 진실이고 실체가 허상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본다.사랑이 진실이고 현실이 거짓이라는 생각.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2002-02-20

자! 그래! 어느날 문득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개안을 했다고 치자! 눈이 번쩍 뜨여서 진리의 그 숭고한 전체 모습이다 가슴속에 들어와 박혀버렸다고 치자!

(부처나 예수님이 만약 '신' 이 세상을 창조한 모든 의도나또는 꼭 그런게 아니더라도 세상이 존재하는 원리에대한 그 '진리' 를 정말 깨달은 '사람(人)'이라면 나또한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

어쨌든 어느순간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면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진리를 깨닫게 되면 정말로 무한한 기쁨이 밀려올 것인가아니면 끝없는 패배감에 몸서림칠 것인가...

진리를 알았다고 해도 죽는건 마찬가지요세상이 변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그 어느 외딴 섬 암좌에서 좌선하다나홀로 진리를 깨닫고 기쁨에 눈물겨워 열반에 이른들그것은 개인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신'이 나를 지목하여 '너가 나의 뜻을 알게 하였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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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씀하심을 들었다고 한들 달라지는게 뭐가 있으리...진리를 깨달은 인간도 결국 고독하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인간의 가능성? 2002-05-17 인간만이 신의 뜻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들어 나라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게 되는데, 그러다가 점점 인간전체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의 범위를 넓혀보게 되었다.

나는 결정론자이다. (너무 단정적으로 말해버리니 나도 무섭지만 그런 것 같다.) 나도 이런 내가 참으로 맘에 안 들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쪽으로만 생각이 들도록 애초에 프로그램이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결정론적이 사고에 휩싸여 있다.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생각에 왜 이리 가슴이 턱턱 막혀오는지.그래도 한가지 위안을 삼는 생각이 바로 인간만이 유일하게 신의 뜻에 이의를 제기하고 딴지를 걸 수 있는 동물이라는 확신인데, 더 우울해 지는 것은 이의를 제기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과연 무엇을 해낼 수 있단 말인지. 회의감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항상 벗어나기 힘든 손아귀에 붙잡혀 있는 듯한 느낌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곤 한다.

오늘 기생충 수업시간에 문득 이런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업을 열심히 듣다가도 꼭...생각이 삼천포로 빠져버린다.) 오늘 배운 trypanosoma 라는 기생충은 그 몸의 표면에 사람의 면역계에 의해 인지될 수 있는 항원을 가지는데, 대다수의 기생충이 A 라는 항원을 가지고 소수만이 B 라는 항원을 가진다고 한다면 A 라는 항원을 가진 기생충이 사람의 면역계에 인식되어 공격을 받는다면... 숨어있다 살아남은 B 라는 항원을 가진 기생충이 증식해서 다시 major form 으로 변하고 이런 게 반복된다는 내용을 들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숙주의 면역계에서 기생충이 살아 남는다는 말을 쓸 때는 기생충 한 마리 한 마리가 살아 남는 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기생충의 어떤 종이 살아 남는 것이 중요한 것일진대, 이것은 마치 기생충 한 마리 한 마리의 삶이라는 것은 그 종의 생존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종의 멸종을 막기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서 숙주의 공격을 피하려고 노력하는데 그 노력의 과정에서 개개의 개체의 죽음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보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면 인간도 크게 봐서는 이와 다들 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만약에 1 년 후에 커다란 운석이 떨어져서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한다면 우리 인간은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 운석을 부서 버리던가 아니면 지구로 오는 궤도를 조금이라도 수정시키기 위해 미사일을 쏜다던데, 아님 무슨 영화더라, 하여튼 특공대를 운석에 착륙시켜 핵폭탄을 설치하고 폭파시켜버리려는 궁리를 하게 될 것이다. 아마 그런 일이 생기게 된다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이 서로 싸우는 것이 라던지, 아프리카 어느 종족끼리 치고 박고 싸운다던지 하는 일은 중단되고 인류에 생존에 온 힘이 집결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우리는 우리 하나의 목숨의 보전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의 보전을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을 아닐 것이데, (수많은 증거를 이 자리에서 굳이 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이든 기생충이든 결국 자기 종족의 불멸을 최대의 목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참으로 묘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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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른 종의 생존에는 별루 관심이 없고, 그것이 멸망되도록 하여도 별 신경을 안 쓰는 것을 보면 살아있는 생명체란 얼마나 이기적이면서도, 또한 자기 종족을 위해서는 헌신적인지 너무나도 아이러니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생충은 자기 종의 생존을 위해 인간의 죽음을 거들떠 보지 않고 인간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시베리아 호랑이가 멸종되고 아프리카 코끼리가 씨가 말라가도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다시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왜 우리 인간은 종의 생존을 위한 방향으로 프로그램 되어 있단 말인가? 우주에 생명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인간은 프로그램 되어진 대로만 살수밖에 없단 말인가? 과연 인간에게 프로그램된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만약에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치면 그것은 또 어떤 소용이 있단 말인가?

생각하면 할 수록 너무나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날그날의 희노 애락에 울고 웃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우리의 몫이고 그것을 고맙게 받아들여야 겠지만, 그래도 가끔은 나라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어디까지 갈 수 있고, 또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또한 결정론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인간은 유일하게 신의 뜻에 의문을 품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 되어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하필 인간에게 그러한 능력이 부여되었는지, 우리 인간도 다른 동물처럼 별 생각 없이 그냥 먹고 싸고 그러다 죽으면 그만 일텐데 그게 너무나도 정말로 절실하게 너무나 궁금하다.

나는 여기서 우리인간의 가능성과, 그리고 나라는 인간의 가능성을 찾아보려고 한다. 우리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 바로 그런 능력을 가진 것에는 분명히 매우 중요한, (아마 그것을 인류가 깨닫는다면, 인류의 역사가 뒤바뀔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가능성이 없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므로...

어느날 애벌레는... 2002-09-30

어느날 애벌래는 먹는 일을 그치고 생각을 했습니다. "삶에는 그냥 먹고 자라는 일 말고도 더 보람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지금과 같은 삶은 아무 재미도 없단 말이야~" 생각끝에 줄무늬 애벌래는 자기에게 서늘한 그늘과 먹이를 대어주던 고마운 나무에게서 기어내려 왔습니다. 그리하여 더 보람있는 것을 찾고 있었습니다.

애벌래가 더 보람있는 일을 찾아 나무에서 내려온 일은 정말로 멋진 생각이 동시에, 삶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무서운 생각일 수 있다. 그렇지만, 고통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있는 자라면 자신의 혁신적 생각과 과감한 행동을 절대 후회하지 않으리라. 아직 나는 비현실적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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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행복해질까?2002-10-09

'행복'에 대해 생각할 때면, 가끔씩 나도 모르게 큰 착각에 빠져버리곤 한다. 지금 고난의 시간이 지나면, 그리고 지금의 고통의 크면 클수록 미래의 어느날에 보다 더 큰 행복감이 나에게 찾아올 것이라는 착각.

행복은 결코 생활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 과정 그 자체이지. 그 언젠가의 행복한 시절을 위해 오늘을 투자한다......는 사고방식으로는 죽을 때까지 행복해지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다.행복해지기 위해 서라면 그 언젠가 따위는 너무 염두 해 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생각하기 나름에 따라서는 지금 이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수도 있을 테니나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행복 같은 거는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아! 그때 정말 행복했는데..." 라는 기억이 별루 없기도 할 뿐더러 행복하면 뭐하나 싶기도 하고, 가장 큰 이유는, 행복이 인생의 해답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나도 진정으로 행복해지고 싶다. 어찌되었건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또는 그 언젠가의 행복에 대하 묘한 동경심이 원동력이 되어 삶을 꾸려나가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 언젠가의 행복, 지금 고생하는 이유로서의 또는 결과로서의 행복은 없다는 것이다. 아니지. 상상 속에서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로서는 없다. 행복은 잡으려 하면 할수록 멀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니.

그렇지만, 그런 행복이 지금 바로 이순간에 내 곁에서 몰래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하루 24 시간동안 살짝살짝 오게되는 기쁨의 순간들이 실제는 내가 바라던 그 언젠가의 '행복'보다 더 큰'행복' 일 수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마음을 열고, 주위의 사소한 일들에 좀더 관심을 가져본다면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게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도'를 좀 닦을 필요가 있겠지?, 오늘 심장학 족보에 누군가 써놓은 말처럼 누구나에게 그 '행복'이 다 모습을 들어내지는 않을 테니...

끊임없이 밀려오는 속좁은 생각들을처리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나는 아직 너무 어리다.

남에 대해서 생각하기2002-11-01

내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은 분명히 내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가 있고 복잡한 사고 및 고민 과정이 선행된 것이며, 한마디로 표현 못할 내 25 년 인생역정 동안의 모든 경험을 녹아내어 이루어진 것일진대, 왜 남이 하는 생각이나 행동은 매우 단순한 사고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유치하기도 할 뿐더러, 더러는 전혀 타당한 이유가 없어보이고 3초이상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는 걸까?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듯.

내 딴에는 밤새 고민하고 몇 날 며칠을 씨름해서 생각해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 주었을 때, 단 한마디로 그 가치를 평가 절하 당했던 경험. 내 딴에는 잘해보려고 노력하는 행동인데, 남들은 전혀 신경도 안 쓸 뿐더러, 오히려 나의 의도를 오해하여 나를 무시했던 경험. 그 이유의 실마리를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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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발견했다.

이야기인 즉슨, 도서관에서 마음에 관련된 책을 읽다가 자. 이제 내가 연필을 빙빙 돌려야지 라고 마음을 먹고 연필을 빙빙 돌렸을 때, 과연 연필을 빙빙 돌려야지 하는 마음을 먹게한 가장 최상위 시초는 무얼까에 대해 골똘히 고민을 했다.

그러던중 도저히 머리만 아픈것 같아서 책상 넘어 앉아있는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만약에 나와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연필을 빙빙 돌리게한 가장 생각의 시초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돌려야지 하니깐 돌리는거지 뭐!!>

그 이상 간단한 답이 없었는데, 금방 또다시 내가 연필을 빙빙 돌려보고, 자! 이제 나로 하여금 연필을 빙빙 돌리게 한 근본 생각의 시초는무엇인가? 라고 자문 하였을 때, 나는 전혀 답을 할 수 없었고 또 다시 머리가 지끈지끈 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이 얼마나 웃긴일인가? 남이 하는 것을 봤을 때 뻔한 일도 내가 하면 오묘한 이치가 있을 것 같아 그 해답을 찾지 못하는 아이러니.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문제의 해답을 찾는 일은 나의 행동의 이유가 남이 하는 것을 봤을 때 만큼 단순하고 간단하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남이 하는 행동 또한 나의 행동의 이유만큼 복잡한 메커니즘이 있을 것이다 라는 마음가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

뻔한 말인가?

하여튼... 오늘은 교훈은 남도 생각하고 고민한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그의 행동을 봐라봐야겠다는 것이다. ㅎㅎ

그나저나 마음의세계는 너무나 오묘하다.

내일 죽는다면...2002-12-03오늘 무슨 일인지 수업시간에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더랬다. 정신과 시간에는 자살에 대해 배웠고 종양학 시간에는 말기 암환자들 호스피스에 대해 배웠고...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그 동안의 스물 다섯 해를 뒤돌아보았을 때 무엇이 가장 안타까울지... 또는 어떤 기억들을 가슴에 묻게 될지...

지금 당장은 시험점수 하나에 아둥바둥 거리며 속좁은 듯 살고 있지만... 막상 내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았다거나 더 많은 책을 읽어볼껄 그랬다거나, 외국에라도 한번 나가볼 껄 그랬다거나, 못 본 영화가 너무 많다던가, 앞으로 내가 이루게 될 직업적 위치라던지, 학문적 명예라던지, 부 라던지...하는 것들을 얻지 못하게 됨에 대한 아쉬움 등등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시 가슴에 무언가 치밀어 오를 정도로 안타까운일은 사람에 대한 기억들이다. 더 깊은 우정을 나누지 못한대 대한 아쉬움 가족들과의 사랑에 대한 아쉬움 나에게 관심을 보였고, 나를 좋아했고, 나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이라던지 미안함이라던지......그런 마음 세상 누구에게도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그리고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등등......

족보 외우는데 에너지를 뺐겨서 정작 소중한 것에 신경쓸 여유가 계속 없어지는 것 같다. 예과 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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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1 때가 더 그렇고 지금은 아얘 그런 생각조차 안들고.....

우리모두 진정한 나를 하나하나 없애가는 작업에 너무나 강박적으로 몰두해 있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 누군가에게 한꺼번에 큰 도움을 주기 위한 인고의 과정. 이라는 말로 합리화 버리기에는 섞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모두의 뒤를 쫓아 그렇게 자학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머릿 속에 떠오르는 소중한 기억들을 하나 둘씩 지워가고 있다. 내일은 수업까지 제끼고 '그 짓'에 몰두 해볼 생각이다. 지금이 어쩌면 내 인생 최대의 굴욕기일지도 모르겠다.

책 읽기에 대하여 2002-12-29

집에 내려올 때 '체게바라평전'을 가지고 내려왔다. 벌써 세번째 도전인데 이번에는 꼭 다 읽어버리고말테다...하는 심정으로 도전했는데 오늘 저녁에 꽤 많이 읽어서 성공 할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

체게바라는 의사출신 혁명가다. 처음에는 훌륭한 의술을 펼치는 꿈을 가졌지만, 젊은 시절의 긴 여행을 다니면서 혁명을 통해 사람들에게 보다 큰 도움과 희망을 줘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는 인물이다.

그런 그는 의사에 사진사에 고고학자에 럭비운동선수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지독한 독서광이었다고 하는데, 전쟁터에서도 남들 다 잘때 '괴테'와 같은 책들에 심취하고 했다고 하니 그의 독서가 어느정도 수준인지는 짐작을 해볼만 하다.

왜 체게바라는 그토록 책을 읽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의 책읽기에 대해 생각해봤다.

책읽기는 정신을 깨어있게 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인 것 같다. 나의 경험을 차근차근 돌이켜 생각해보면 책을 읽을 때 가장 풍부한 생각을 했으며, 책을 읽을 때 삶에 대해 가장 철저히 고민했으며, 책을 읽을 때 인생에 대해 가장 세밀히 설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책은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방법인 것같다. 왜냐면 나의 두뇌는 한계가 있으며 지금 내가 가진 생각의 재료는 너무나 하찮은 것이므로 무언가 내 머리 속에 덧붙여지지 않는다면 거기서 나온 생각이란 것이 온전한 것일 확률은 매우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게으른 일상에 불침을 놓는 행위인 것 같다. 그런데 얼마전에 책꽂이 정리를 하면서 대학교를 들어온 이후에 내가 끝까지 다 읽은 책들이 책꽂이의 두줄도 다 채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반정도 읽다 만 책 까지 합쳐도 두줄을 겨우 채우는 정도다. (나는 책을 꼭 사서 보기 때문에 나의 독서량은 측정 가능하다. -_-)

문득 죽을 때까지 나는 몇권정도의 책을 읽게될까...(전공서적빼고) 하고 생각해봤더니천권을 읽을 자신은 죽어도 없고 500권 정도 읽으면 정말 성공한 거고 300권 정도 읽으면 많이 읽은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스무살 이후부터는 꾸준히 관심가지고 책을 읽는다고 읽었지만 100권도 채 못읽은 내 머리속에 무슨 교양이 들어차 있을런지... 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100권도 안 읽고 만들어낸 나의 생각들이란 정말 쓸데없는 것들이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들면서 그 동안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던 나의 이야기들이 새삼스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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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책을 가까워하기 힘들어진다. 물론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정신적인 여유가 부족하다던가 아님 게을러서 그런것이 분명하다. 역설로 들릴지 모르지만 게으름을 벗어버리기 위해서라도 좀더 책을 읽어야 한다.

지금 읽는 체게바라 평전이 앞으로 나의 독서생활에 적잖은 자극제가 되었으면 한다....

드디어 병원 실습이 시작되다! 2003-05-28

월요일 부터 영동 세브란스 병원의 상부위장관 파트의 실습을 돌고 있다. 오늘부로 삼일째. 첫째날 있었던 일을 간단히 정리해보련다.이 날 있었던 가장 큰 이슈는 내가 말로만 듣던 History Taking 이란 걸 해봤다는 거다. 환자 차트를 보고 또 보고 머리속에 정리를 하고 또 하고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병실에 들어갔는데, 이것저것 이야기를 잘 해주셔서 다음과 같은 History 를 들을 수 있었다.

3 년전부터 속이 쓰린 증세를 호소하던 할머니. 얼마전 동네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해보니 조기 위암이 발견되어 놀라서 경남 김해에서 서울까지 달려오신 분이었는데, 다행이도 초기에 발견해서 암이있는 부분을 잘 떼어내어 완치되신 분이다.암선고 받으시고 식구들 모두 매우 놀랐다가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얼굴표정도 매우 밝으시고 퇴원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시는 상태라 나의 질문에도잘 대답해주셔서, 준 의사로서의 첫 Hx taking 을 성공적으로 끝마치나 싶었는데... Physical Exam (신체검사)도 해봐야 겠다는 심정이 들어

"할머니 배한번 만져볼께요~ ""(할머니 웃으시며) 그래요~ ^^ ""그런데 누울까요? ""아얘... -_-;; "

원래대로라면 자 한번 누워보세요~ 해야되는데... 할머니가 환자복의 앞을 열으셨는데... 아뿔싸 너무나 당연하게도 위수술 한 부분은 두꺼운 붕대로 감겨져 있었고, 거기를 만져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암 것도 모르는 내가 붕대 풀고 수술부위를 확인 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결국 위와는 상관없는 아랫배를 꾹꾹 눌러보고... 심지어!! 청진기로 들어보기도 했다!!

음... 정상 bowel sound (장음) 이 뭔지도 모르지만 그냥 무슨 소리 나는지 들어봤다. 하여튼 그렇게 멋적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드리고 병실을 나섰는데... 어찌나 뻘쭘하던지... 어쨌든 나의 첫번째 환자파악이 이렇게 마무리 되긴했다. 아는게 있어야 물어볼 말도 있구나... 라는 교훈을 가슴속에 간직한채. 그러나 역시 집에가서는 책 한자 안보고 자버렸다. 아무리 우리 파트가 널럴하다고 하지만 집에 오니 정말 피곤하더군!

처음 경험한 죽음 2003-05-28

어제 중환자실에서 Shock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86 세 할머니가 계셨는데, 오늘 오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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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셨다. 이분은 며칠전에 버스에서 내리다 굴러떨어지셔서 온몸에 타박상을 입고 동네 정형외과에 내원중에 갑자기 전신상태가 안좋아지셔서 중환자실로 오신분인데 어제 봤을 때의 상태는 혈압이 60/40 정도로 매우 낮은 상태였고, 배가 매우 불러서 hemoperitoneum 을 의심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래도 장이 터졌나보다. 그런데, 전신 상태가 너무 않좋아서 응급 수술도 못하고 보존적 치료만 하고 있었는데, 글쎄 오늘 아침에 중환자실 회진 돌때 보니 혈압이 40/30 정도 였고, EKG 도 어제는 정상이었지만 오늘은 부정맥이 생겨있었다. 산소포화도도 88% 이하로 떨어져 있었고, 얼굴은 정말 퉁퉁 부어있었다. 그런데도 의료진들은 수액공급, 혈압유지, 산소공급, 전해질 교정, 항생제 투여 등의 기본적인 처치 말고는 손쓸 방법이 없었다.

얼핏보기에 나이도 매우 노환이고 하니 그냥 죽기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도 처음에는 얼굴이 붓고 혈압이 매우 낮고 부정맥도 생긴걸 보니 일단 심장으로 피가 제대로 못들어가고 못나오고, 이유는 sepsis 에 의한 전신장기 부전일꺼고 등등의 생각만 했는데, 막상 이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니 이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게 참 한심스럽게 느껴졌는데, 손이라도 한번 잡아드릴까 했지만, 레지던트 눈치보여 그것도 차마 하지 못했다.

결국 오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오후 회진때 다시 중환자실에 가보니 침대에는 아무도 없고, 간호사들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침대를 정리 하고 있었는데, 뭐랄까... 다들 이런 경우에 너무 익숙 한것 같은데, 그런 익숙함이 참으로 섬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레지던트는 "그 환자 결국 expire 했어~ " 라고 눈하나 깜짝안하고 얘기했지만 나도 나중에 그렇게 될까? 아마도 그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뭔지 모를 씁쓸한 기분이 드는 하루였다.

오전에 EKG 변하는거랑 뭐때문에 shock 에 빠졌는지 궁금해져서 쉬는시간에 도서과에서 책을 들쳑거려보기는 했지만, 결국 아는 것도 없었고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었고 그냥 그렇게 첫번로 환자의 죽음을 경험하게 되었다.

드디어 수술방에 들어가보다! 2003-05-30

외과 실습 4 일만에 드디어 수술방에 들어가서 수술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어제는 두개 오늘은 하나의 수술을 했다. 둘다 위암때문에 위를 절제하는 수술이었는데두번은 위를 반만 떼어내었고 한케이스는 위 전체를 들어내는 수술이었다. 원래는 수술시간이 2 시간 반정도 걸린다고 하지만 어제 오늘 수술에 참여해본 결과 한 수술당 3 시간 반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더라. 물론 수술을 위해 마취하고 수술후에 환자를 깨워서 회복실로 옮기는 시간 포함하면 4시간 반정도 걸릴려나~

어쨌든 그 시간동안 암것도 안하고 수술하는거 지켜보고 있으면 수술하는게 잘 안보이기도 하고, 좀 지루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다리가 너무 아파서 앉고 싶은 마음이 굴둑 같아진다. 끝나면 배가 엄청 고파오기도 하고... 그래도 보람된 일은 어제 내가 수술에 참여를 해볼 기회가 있었다는 거다. 수술중에 수술 시야 확보를 위해 갈라진 배를 당기는 일이 있는데, 그것을 몇번 해봤다는 것과 최고 신났던 일은 수술 끝나고 교수님(집도의)이 나가신후에 레지던트 선생님이 배를 닫는 일을 해보게 해주신것이었다.

물론 속배는 3 년차 선생님이 닫으신다 속배라 함은 피부아래 지방층과 근육층과복벽을 한꺼번에 꼬매는 과정인데 그 과정은 어려우므로 1 년차도 assist 만 하는것이고 속배를 닫으며, 피부를 닫아야 하는데, 그것은 1 년차의 몫! 그런데 1 년차 선생님이 자기가 피부를 닫고 있을테니 나보고 스태플러로 찍으라고 해서 내가 직접 찍었다! 실로 꼬매는게 아니라 스태플러로 살을 찝는 거기 때문에 매우 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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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지만, 그래도 뭔가 수술에 참여했다는 생각에 어깨가 들석이는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역시 자기가 직접 참여해봐야 힘들 안들고 재미도 있는거 같다.

그리고 또 하나의 수확은 위를 절제 한후 나머지 부분끼리 서로 잊는 대표적인 방법 3 가지를 모두 경험했따는 건데, 외과 시험칠때 아무런 개념없이 외우기만 했떤거를 눈으로 직접 보니까 정말 신기하더군. 일명 Billroth 1,2 와 Roux-en-Y gastrojejunostomy 가 그것인데, 위절제후 문합법 중 의사고시에 나올만한 것 대표적인 세가지 수술법을 모두 지켜 보았다는게 참으로 행운이면 행운이었다라고 할까~

처음에는 손씻는 방법도 모르고 옷입는 방법도 모르고 aseptic(무균적) 하게 행동하는 법도 잘 몰라서 어리버리 당황했지만, 슬슬 수술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익숙해지는 맛이 꽤 재밌는 경험같은데... 다만 다리가 너무 아프다는게 문제다. 어쨌든 어제오늘 참 피곤했지만 평생 잊지못할 첫번재 수술방 경험을 했다는 기분이 그 피곤을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음이 충분히 있는것 같다. 외과 실습 힘들지만 그만큼 좋은 경험도 많이 해본다.

산부인과 질식분만 목격담 2003-08-13

오전 9 시쯤 분만실에 도착했을 때 환자분 한명이 분만 대기중이었다. 얼핏 얼굴을 보니깐 너무 평온해 보여서 12 시전에 나을 수 있을 꺼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태아 감시에 대한 공부를 좀하고 전에 분만실에 한번 왔던 경험이 있는 용호에게 그래프 보는 법을 한참 배우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오셔서 학생들 열심히 한다면서 이것저걱 설명해 주셨다.

그러다 10 시 30분 쯤에 amniotomy 를 한다고 와서 보라신다. 암니오토미란 양막을 미리 터트리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양막을 터트리고 난후 분만을 하는것이 요즘 세계적인 추세라는 설명을 들었다. 장갑낀 오른손 손가락 두개를 질속으로 밀어넣은 뒤, 이쑤시개 모양(길이는 3배)으로 생긴것으로 양막을 터트리니 안에있는 양수가 밖으로 뿜어나왔는데, 그 색갈이 갈색같기도 하고 선생님 설명으로는 녹색이라고 하셨는데, 하여튼 태변(애기똥)이 착색된 거라고 하였다. 태변이 양수내에 흘러들었을 때 그것을 태아서 흡입하면 흡인성 폐렴이 걸려태어나자마자 심한 호흡곤란에 목숨이 위태로울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 감시장치의 모니터를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태아의 심박동수가 떨어지면 위험신호가 되는데, 다행이 오늘은 별탈없이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다.

amniotomy 를 한후 산모의 분만 신행이 매우 빨라져서 질을 조금만 벌려도 아기의 머리와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전 8 시경에 자궁경부가 1cm 10 시경에 3cm 이었는데 그후 1 시간도 채 안되서 5cm 으로 벌어졌으며, 12 시까지 자궁경부가 완전 벌어지면서 애기머리가 질밖으로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레지던트 선생님과 간호사들은 끊임없이 환자를 격려하면서 힘을주라고 했는데, 그 요령은 다음과 같다. 진통이 가장 심해질때 입을 꼭 다물고 비명을 참으면서 똥 싸는 느낌으로 아래쪽으로 힘을 쭈~욱 주는 것이다. 산모가 다행이도 힘을 잘 주어서 애기머리가 밖으로 점점더 밀고 나와졌는데 정말 신기하고 긴장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12 시쯤에 환자를 분만실로 옮기고 산모의 남편분을 들어오시게 한후 교수님께서 들어오셨다. 그 때부터는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서 아직도 잘 정리가 되지는 않지만, 레지던트가 리도카인으로 회음부에 국소마취를 하고 교수님께서 질과 항문 사이의 부분(회음부)에 가위를 넣고 싹뚝 잘라버리니 (이것이 회음부 절개로서 거의 대부분의 질식 분만에서 시행된다. 그래야 산모가 적은 고통으로 애를 순산할 수 있기때문에... 그리고 아기의 손상도 적고) 갑자기 양수와 함께 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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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밖으로 그야말로 순풍 하고 나와버렸다. 너무 빨리 밖으로떨어져서 처음에는 애가 바닥에 떨어지는줄 알고 놀랐는데, 다행이 애는 교수님의 두손에 안전히 잡혀있었다.

아이의 피부는 분홍색이었고, 온몸에 태변으로 의심되는 노란색 양수 찌꺼기들로 덥혀있었다. 애는 나오자 마자 울기 시작했고 능숙한 간호사가 아이를 받아서 아기 침대에 눕혀서 몸을 닦아주고 입속으로 관을 넣어서 배속에 들어간 찌꺼기를빨아내어주었는데, 애가 참으로 잘 바둥거리고 피부색도 발그스름해서 한눈에 봐서도 건강한 아이임을 알 수 있었다. 너무나도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다행히 산모는 큰고통없이 아이를 순산하였다. 나중에 남편과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안아펐고 생리통 심할 때 아픈 정도라고 하였다. 진통 시간이 짧았고 애가 빨리나와서 그런 것 같았는데, 의외로 아프지 않게 애를 낳는것이 정말 안좋은 일임이 잠시후 밝혀진다.

애가 너무 빨리나와서 산모의 질점막과 근육과 근막이 찢어져서 그부분을 다시 꼬매어 성형하는데 1시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원래는 처음에 잘랐던 회음부부위만 꼬매면 되는것인데, 이산모는 애낳는것은 쉬웠지만분만후 후유증이 상당히 심할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어쩄든 애는 참 건강했고 소아과 의사가 인투베이션할 때 너무나 센힘으로 버팅겨서 몇 분전까지 엄마 배속에 조용히 있던애가 뭔힘이 저렇게 있나 싶을 정도여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한가지... 애가 딸이었는데, 음... 이쁘다고 할 수는 없는 까놓고 말해서 못생긴애였는데 간호사가 엄마는 이쁜데... 애가 참 아빠닮았네요...라고 했을떄 그 애 아빠 얼굴의 일그러짐이란... 그리고 자기는 모르겠다고 부정하는 광경이란...ㅋㅋ 그래도 역시 엄마는 애가 이쁘던 못난던 상관않고 아이를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껴안아주고 쳐다보고 그랬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운 광경이어서 눈물이 맺힐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하여튼 실습돌면서 오랫만에 좋은 경험해서 기분좋은 하루였다.

질투는 천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 2003-09-11

고대부터 유대인에게 전해지고 있는 수수께끼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랍비여, 당신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낙원에서 아침이 되어서 돌아오며, 이브가 어떻게 하는가를 가르쳐주십시오."

랍비는 대답했다.

"이브는 아담의 갈비뼈 수를 세어본다."

여자는 질투심이 많다. 사랑은 맹목이란 말처럼 질투야말로 맹목으로 사리분별을 어둡게 한다.

유대 속담에 '질투는 천 개의 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있다.눈이 없으면 볼 수 없지만, 눈이 천개가 있다면 사리분별이 더욱 어려울 것이다. 여자의 질투도 무섭지만, 남자의 질투도 만만찮다.

'사랑은 맹목이지만 질투는 보이지 않는 것가지 보아버리기에 맹목인 것보다도 더 나쁘다.'는 속담처럼 질투만큼 무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성서의 잠언은 '증오는 무자비하며, 분노는 격한 흐름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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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가 질투를 참아낼 수있단 말인가'라고 질투를 두려워하고 있다.

질투는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본 것처럼 착각하게 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혼란스럽게 한다.

성성의 창세기에는 인간에게 신이 먹지 말라고 한 금단의 나무 열매를 지식의 나무에 자란 것이기에 인간은 앎으로써 불행해진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는 질투도 애정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질투의 불가지 거려 버리면 이별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그러므로 탈무드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초조하고 속상하지 않는 연인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페르조나에 대하여2003-10-02

오늘 낮에 조금읽은 책 내용이 머리속에 맴돌아서기억나는대로 아래에 끄적여 본다.

페르조나는 자아와 외계를 있는 관계 다리마음은 자아외 무의식의 세계와의 연결역할아니마 아니무스는 집단 무의식세계에 속한 원형자아는 의식과 개인적 무의식의 중심무의식의 중심에 자기가 있음

자기의 완전한 통합이 인격완성의 목표이며 그러기 위해서는자기의 아니마나 아니무스를 의식화 해야함.

의식화의 첫번째 단계가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외계투사인데그것이 바로 사랑이나 집착이나 공포나 외경심임.(대개)

페르조나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은아니마와 아니무스가 의식에 영향을 끼치고 지배하게 되며페르조나에 해당되는 것은 무의식속으로 침잠함.그리하여 무의식이 외계로 투사되며 이것이 동성애로 표현될 수 있음.

1.나의 페르조나는 무엇이며 (이건 대충알겠다.)나의 아니마는 어떤 형태이고 무엇을 바라며 내 행동과 생각에 어떤 힘을 미칠까 (이건 연구대상)

2. 신문을 읽다가 내가 너무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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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치유력에 대한 단상2003-10-08 생명체면 무엇이던지 다치고 병든곳을 자연치유하는 능력이 있는 거 같다. 히포크라테스도 의사의 역할을 자연치유력을 돕는 역할이라 그랬고 고치지 못할 병은 그냥 두는 것이 건드려 해를 입히는 것보다고 낫다 그랬다. 요즘에 병을 고치는데 의사의 비중이나 역할이나 책임이 어느정도 일까... 하는 생각들을 종종 해보게 되는데. 그런 생각을 자꾸 들게 하는 환자들이 계신다.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으면서도 현대 의학으로 더 이상의 치유가 어려운 만성질환을 갖고 계신 분들이 상태가 악화되어 곧 돌아가시게 될 것 같은 모습을 지켜보면, 저분은 아직 때가 아닌데... 몸 속의 자연치유력을 높여줄 수 있으면 어떻게 기력이 회복되지도 않을까하는근거 빈약한 기대감을 가져보게 된다.

어짜피 교수님들도 그 환자 보호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해볼때까지 다해봤고, 편안히 운명하실 수 있도록 더 이상의 힘든 처치를시행할껀지 가족분들이 상의해서 알려달라는 말 이상은 없다. 그런데, 지금 돌고 있는 파트의 11 명 환자중 반정도 환자들께 '지켜봅시다' 이상의 말을 해드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지켜보면서 참 힘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미국의학이 절대적인 것이 분명히 아닐 것이며, 그것을 맹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뜻이 있는 의학자들이 편견을 없애고 시야를 넓히고 마음을 열어서 자연 치유력을 증진 시킬 수 있는 원리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면 소중하고 힘든 인생 쉽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방도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고 뜬 구름잡는 상상에 잠시 빠져본다.

이때 한의학에서 말하는 몸을 보한다라는 개념에도 귀가 솔깃해지기도 하고 개인적인 관심이 많은 정신과 신체와의 관계에서도 뭔가 해결의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요즘 읽는 책에서 말하길 근본 원리에 너무 집착하는 성격을 내향적 사고형이라고 하던데...근본을 모르겠으면 뭔가가 꽉막혀 답답한 듯한 느낌이 드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부다

과거, 현재, 미래 2003-10-14

나는 지금 나를 바꾸어야 한다는 도전에 직면해있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소중히 생각하면 미래를 존중하려는 마음가짐을 흐트려뜨려서는 안된다.

현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무엇이 나를 화나게 하고무엇이 나를 실망시키는지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고,항상 만족감을 가질 수는 없는 거지만지혜가 필요하다.나를 이해해야 한다.나의 콤플렉스를 찾아야 한다.대충 덮어두는 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뭐가 문제냐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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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반드시 있다.그것도 내안의 깊은 곳에서...나는 내안의 그림자가 나의 자아를 조종하려는 힘에 손도 써보지 못하고 쉽게 굴복해버린다.

과거를 이해하고 그 과거가 나의 컴플렉스를 어떻게 자극하며자극된 컴플렉스가 나를 통제불능으로 만드는 상황을어떻게 타개해야 할런지를 고민하는 것이우리의 미래를 존중하는 길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나 혼자서는이 모든것이 너무나 힘들다.

'현재를 즐겨라''현재가 중요하다'라는 말의 몰이해와보상적인 현재에의 집착은모두를 힘들게 할 뿐이다.'현재'라는 무인도에 따로 떨어져 살 수는 없는거니까

나를 똑바로 보기 2003-10-16 나는 인정한다.

나에게는 한푼어치의 창조력도 없다.다만 적당히 나를 포장할 수 있을 만한수준 낮고 유치한 모방만이 있을 뿐이다.내가 닿을 수 없는 미적인 것에 대한 동경심과 경외심이이것 저것을 흉내내게 하고 취미를 삼게 하지만,단 한순간도 내 유일의 창조물을 만들거나 이룬적이 없으며,수준낮은 만족감에 기초한 이정도면 됐다는 심리에언제나 보다 훌륭한 창조물을 보지 않으려 한다.그리고 나의 조잡한 감각에 만족하고,뻔하디 뻔한 콤플렉스에 지레 겁먹고 더이상 전진하지 않는다.

나는 인정한다.

나는 똑똑하지 않으며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의욕도 없으며다만 옹졸한 자존심을 적당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한 순간순간의 간단한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그리하여 치열한 탐구나 끝까지 물고 늘어짐이 없이대충 만족하고 대충 생각하고 나의 능력이 닿지 않는 부분은 그것에 가까이 가려 노력하기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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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찌감치 떨어져서 방관하며 비판하기 일수다.그러나 그 비판또한 저급한 수준의 일관되지 못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것이어서 시시때때로 변하고 남의 말에 쉽게 혹 해버린다.매 순간 남들 보기에 적당한 수준으로 나를 만들기 위해내키지도 않는 작은 노력을 기울이고 그것에 누군가 속아 넘어가면 편안한 만족감과 안도감을 느끼고얼굴에 화색이 돌고 생활에 활력이 생긴다.그러나 정작 내가 정말로 원하는 일에는 1%의 투자도 기울이지 않는다.그것은 당장의 잘보임에는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그리하여 이대로 계속 산다면 제대로된 이룸 하나 없이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으로 만들어 버릴것이 뻔하다.아니 나는 나를 실패한 인생이라고 인정할 만한 용기 있는 위인조차 되지 못한다.나는 콤플렉스의 덩어리이고창조력이 나를 움직이는게 아니라 콤플렉스와 알량한 자존심이 나를 움직인다.

나는 인정한다.

나는 약하고 모든것이 두렵다.그렇지만 그것을 숨기고 남에게 보이기 싫기 때문에대부분의 나의 표정을 굳고 무표정하고 무관심하고 초탈한것 처럼 보이려 애쓴다.그러나 나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두렵고상처 받는 것이 두렵고 비난 받는 것이 두렵다.그나마 나에게 익숙한 일에 조금이라도 용기가 생길라치면보상적으로 의욕적이되고 앞서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린다.이 얼마나 우스운 소인배적 치졸함인가

나는 인정한다.

나는 사랑하는 능력이 부족하다.언제나 진정한 사랑을 부르짓지만내가 과연 사랑을 아는가도 의문이고나 이외의 누군가를 진정으로 아끼는 마음이 나에게 있는지...깊고 깊은 콤플렉스에 의거한 옹졸한 시기심과 질투심을나는 사랑이라 여기고 괴로워한다.

나는 인정한다.

내가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콤플렉스의 힘 2003-11-03

콤플렉스의 힘은 의식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 보다 큰 것 같다.

내 의식은 아무런 외부자극이 없는 상태에서만 약간의 기능을 발휘하지만 관계가 이루어지고 자극이 들어오면 금세 콤플렉스가 나의 의식을 집어 삼키고 그 검은 힘을 발휘하여 나의 감정을 지배하고 나를 통제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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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과 콤플렉스란 단어는 책에서 읽으면서 쉽게쉽게 생각하는 것 훨씬 이상의 지배력을 내 인생 전체에 걸쳐서 발휘하고 있다.

나의 의식은 의식아래의 검은 세력과 화해하고 균형을 맞추면서도 거기에 잠식되지 않도록 항시 긴장의 끊을 놓쳐서는 안된다.

나의 정신에는 어떠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가끔씩 무서운 생각이 들때가 있다.

운명에 휩쓸릴 것인가?2003-11-05

요즘 '융'이 제창한 분석심리학에 관한 책을 틈틈히 읽고 있는 중이다.

분석심리학의 기본이 되는 개념인 무의식, 원형,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페르조나... 등등이 우리의 정신을 방향짓는데 매우 중요하며, 나의 의식이 정신을 지배하는 부분은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책을 읽으면서 매우 그럴듯한 발상이라 생각되었고 나의 미움, 좋아함, 분노, 두려움 등의 감정의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융'은 무의식의 창조적인 면에 주목하여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정말로 집단원형, 집단 무의식이란게 있어서 그것이 나의 정신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면 이것은 결정론 아닌가? 지난 나의 고민들은 모두 결정론적 사고로 귀결되어 좌절하고 체념하고 일상으로 눈을 돌리는 과정의 반복이었는데, 이제와서 또 결정론이라니 숨이 턱 막히는 기분도 든다.

물론 융은 무의식, 아니마, 아니무스, 그림자 등의 의식화 작업을 통하여 결정된 정신, 결정된 마음을 새로이 태어나게 하는 방향을 모색하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일인가? 어디에도 얽매임없는 자유로운 정신, 얽매임 없이도 만물과 조화하는 자연으로의 정신,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모순됨 없이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는 하나의 전체정신... 글로 써놓고 보니 그럴듯 하지만 이게 어디 손에 잡히는 말이냐 말이다.해야할 일은 태산 같은데 절에 들어가서 도를 닦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도 닦는다고 전체정신이 실현될지도 의문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운명에 휩쓸리는 삶은 살 수는 없다는 가슴속 깊은곳의 절실한 요구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런가부다 싶지만, 사소한 자극에도 나는 매우 예민하며, 별것 아닌 핀잔에도 나는 쉽게 상처받으며, 때론 말도 안된는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한다.

물론 예전과는 다른다. 이제는 그러고 있는 내가 보인다. 보인다고 금방 평정심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내 안 깊은곳의 나를 성장시켜야 한다. 운명에 굴복해서는 안된다.

젊은 나에게 있어서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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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단서들 2003-11-10# 1정신은 우주요 몸뚱아리는 자연이다.

# 2남자가 여자를 여자가 남자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듯이사고형이 직관형, 감정형, 감각형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 3엠마융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성들에게서 분별력의 실패는 지나치게 지나간 일을 후회하며 여러 가지 생각에 골몰하는 경향 때문이다. 그러한 정신활동은 초점이 없고 비생산적이며 자학적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생각된 것인지, 혹은 상상 된 것인지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앙과 미신에 만족하는 순간 자신의 아니무스에 굴복하고 사로잡히게 된다.만약 여성이 아니무스에 사로잡히지 않고 스스로 아니무스에 대항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다면 아니무스는 위협을 그치고 창조의 힘이 된다. 자신의 아니무스와의 무조건적 동일시 내지는 순종적인 자세를 지양하고 먼저 여성으로서 자신을 높이고 자존심을 회복해야 한다. 즉 여성은 어쨌든 '여자'가 되어야 한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 4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는 없다.아니마, 아니무스를 의식화 하려면 일단 그것의 투사내지는 거기에 동화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일어나야만 한다. 그래서 연애가 필요하다.

사색의 한계 2003-12-07

어쩌면 사색을 통해서는 '나'에 대해 거의 조금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왜냐면 내가 '나'라고 생각하여 고민하는 대상은 조작된 것이기 때문이다.내가 확신하여 주장하고 버럭 화까지 내는 바로 그 '나'라는 것은 어쩌면 허상,환상,껍질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헨리 소로우'가 말했듯이 세상을 좀더 의도적으로 살기위해 숲속으로 들어가봤자... 이전에 껍데기에 또 몇꺼풀의 껍데기를 더 덧붙이고 나오는 것 이외의 성과가 없을지도 모른다.

'나'를 알기위해서는 관계가 주는 긴장감과 자극됨과 두려움과 분노감과 경계함과 이끌림과 슬퍼함과 상실감에 대한 경험이 필요할 것 같다.

내안 깊은 곳의 '날것'으로의 나와 마주한다는 느낌그것을 가능케 하는 관계가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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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감 넘치는 외과 실습2003-12-20 아침 7 시 반까지 학교에 와서 40분정도 컨프런스를 듣는다. 그리고 곧바로 병동으로 가서 회진을 돌거나 아니면 바로 수술방으로 직행을 한다. 수술방에 도착하면 환자가 마취중인 경우가 많으며 펠로우선생님이나 레지던트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손을 씻는다. 은 구두 닦는 솔처럼 생긴것에 베타딘이라는 갈색 소독약을 묻혀서 닦는데 손끝와 손가락 구석구석을 깨끗이 닦아야 하며 닦은 부분이 오염되지 않도록 정해진 방법에 따라 열심히 닦아야 한다. 그런데 솔이 너무 거칠어서 정말 따갑지만 꾹참고 북북 문지른다.

손을 닦은 후 물기가 아래로 흐르도록 손끝을 하늘로 향하고 등으로 수술방 문을 밀고 손이 문에 닫지 않게 조심하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수술방 간호사가 손닦을 수건을 건네 준다. 수건의 윗부분을 사용하여 손바닥을 닦은 후, 수건을 세로로 반을 접어서 팔에 걸친다음 수건이 몸의 다른 부분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팔의 물기를 제거한다. 그리고 간호사가 수술복을 건네주면 역시 수술복이 몸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정해진 방법에 따라서 옷을 입는다. 처음에는 이 과정들이 너무나 헷갈려서 간호사분께 핀잔도 듣고 그랬지만 이제는 나도 꽤 능숙하고 손을 닦고 옷을 입는다. 옷을 입고 나면 역시 간호사분께서 수술 장갑을 끼워주는데 이 역시 정해진 방법에 따라 해야하므로 여간 헷갈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술한 준비를 다 갖추고 나면 수술대 옆에 선다. 수술대 위에는 환자가 누워있고 환자의 오른쪽 옆에 집도의 한명이 서고 환자의 왼쪽 옆에 2nd assitant 와 3rd assistant 가 위치하게 되는데 학생인 나는 3rd assistant 의 역할을 수행한다. 3rd 의 역할은 수술시야 확보를 위해 환자의 열어진 배를 당기는 역할(의외로 힘들다.)과 타이(실을 매듭짓는것)후 실을 가위로 자르는 역할 수술끝나고 배닫을때 스태플러로 피부를 닫는 역할 등을 수행하게된다. 간단하고 쉬운 작업이지만 이것도 처음 할때는 여간 긴장되고 떨리는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는 제법 능숙(^^)하게 가위질도 하고 눈치껏 행동을 한다.

보조 역할을 하지 않을 때는 발 받침대를 집도의 뒤에 위치시키고 수술을 참관한다. 그런데 솔직히 잘 안보여서 딴생각하다가 선생님께서 이것은 *** 동맥이야...라고 알려주시면 줄곧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는듯이 "예!"하고 대답한다. 보조 역할도 했다가 참관도 하면서 아침 8 시부터 오후 4 시가 넘도록 수술방에서 계속 서있으면 정말 다리가 아프다. 중간에 수술방에서 밥도 한번 먹기도 하지만 배도 참고프고 외과 의사가 되어 이런생활을 평생햐야 한다고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해지기도 한다. 학생은 4 시 5 시면 하루의 일과가 끝나지만 레지던트는 수술이 끝나면 곧바로 환자를 돌보기 위해 회진을 돌고 이런저런 잡무를 수행한다 그러면 저녁시간이 훌쩍넘고 시도때도없이 당직을 하고 일주일에 집에 한번들어갈까 말까라고 하니 얼마만큼 힘든 일이겠나. 그렇지만 몸은 힘들어도 보람된 일들이 많이 생기기도 하는데...

며칠전에는 저녁 8 시에 학생당직때문에 응급실에 갔는데 때마침 교통사고 환자가 실려왔다. 19 세 남자였는데, 횡단보도에서 포크레인에 치인다음 그 포크레인이 가슴을 밟고 지나가서 실려왔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피도 별루 안나고 환자의 정신상태도 온전해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구나 생각했는데.. 왠걸.. CT 사진을 보니 글쎄 간이 반토막이 나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간 열상과, 외상성 기흉, hemoperitoneum(우리말로 뭐지?-.- 복강내 출혈)때문에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응급 수술을 해야 될 상황이었다. 일단 응급실에서 가슴에 튜브를 넣어서 가슴속에 찬 피를 빼낸다음 수술방으로 환자를 이송했다. 불행이도 오늘 당직 스텝선생님은 간 전문 선생님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젊은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이와같은 응급환자 수술경험이 많고 외과 스텝이라면 자기파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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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수술 능력은 있으므로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었다.

수술방에 올라왔을 때 환자의 정신은 점점 혼미해져갔고 마취가 의사 4 명이 달려들어서 환자의 바이탈을 잡기위해 애를 썼고 스텝한명과 3 년차 레지던트 2 명이 집도를 했다. 수술방에 도착해서 배를 열기까지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는데 정말 굉장한 속도였다. "배 열겠습니다!" 하면서 피부와 피부밑 조직, 근육들을 절개 한뒤 복막을 열자마가 안에 고여있는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두명의 레지던트들이 피를 suction 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Bleeding focus(피가나는 부분)을 찾기위해 두동강이 난 간의 단면을 뒤지면서 혈관들을 하나하나 지혈시켜나갔다. 간은 칼로 자른듯 깨끗하게 반으로 갈라져있었다. 그런데 워낙 여러군데서 피가나고 혈압은 계속 떨어지고 맥박은 점점 빨라져서 1 시간동안 피를 잡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피가 배속에 차올랐다.

이때는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 환자의 vital sign 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bleeding focus 를 찾지 못한채 무작정 배를 열어 둔다면 환자가 위태로와지므로 일단은 배속에 거즈를 10 개 넘게 쑤셔넣어서 압박작용으로 피를 멎게한후 그냥 배를 다시 닫았다. 중간에 보호자 들어오게 해서 배 열어둔 상태에서 환자의 피를 지혈하지 못함을 설명했는데, 그때 오열하던 환자의 어머니의 얼굴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쨌든 그냥 배를 닫고 환자를 중환자실로 올려보냈다. 오래 버티기 힘들 것 같았는데, 1 주일이 넘게 잘 살고 있으며 상태가 점점 호전대고 있다고 모두들 신기해 했다. 중간에 다시 배를 열고 거즈를 꺼내고 간 접합수술을 실시했으며 현재 상태가 계속 호전되고 있어서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할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출혈을 잡지는 못했지만 과감한 결단으로 환자를 살려낼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외과 의사 몸은 정말 힘들지만 저런 경험 하나하나가 보통 사람들이 차마 경험 할 수 없는 커다란 보람을 안겨주는 것 같다.

요즘에 3D 업종이니 뭐니 해서 외과 기피현상이 극에 다르긴 했어도 여전히 의사하면 역시 great surgeon 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외과의사가 매력적이고 멋지고 훌륭한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이번 실습을 통해 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힘들 실습이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갑상선 수술 참관기2003-12-22 갑상선 수술의 대가 박정수 선생님파트 첫날, 아침 7 시 40분까지 수술방으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수술복을 갈아입고 수술방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손씻고 와~"라는 소리. 그리고는 오후 3 시가 넘어서까지 계속 스크럽을 섰다.(3rd)

오늘 총 4 개의 수술이 있었는데 나는 3 개의 수술 스크럽을 섰다. 이전 수술과는 달리 나는 쉴틈없이 계속 당기는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그것도 오래하니깐 팔아프더라. 처음에는 수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몰라서 선생님 지시도 잘 못알아듣고 버벅거렸는데, 두번째 수술부터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훌륭한(-_-)보조 역할을 수행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처음 두 수술은 갑상선암 제거를 위한 near total thyroidectomy(거의다 갑상선제거술-_-) 이었다. 수술하나당 시간정도 걸렸으며, 두시간 내내 잡무에 집중해야 했기에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어느새 12 시가 되어버렸다. 세번째 케이스는 22 살 여자환자였는데, 이전에 이미 갑산성 아전절제술(반만)을 받은 적이 있는 환자로 금번에 다시 재발하고 림프절과 폐에 전이가 되어 남은 갑상선을 떼기위해 수술을 하였다. 거짓말아니고 목에 주먹만하게 커진 림프절들이 있었는데, 이수술 4 시간이 넘게 걸렸다. 겉으로 보기엔 목이 밋밋하고 별거 없어보이지만 막상 속을 헤집고 들어가면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장기인 뇌에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굵직굵직한 혈관들이 많이 지나다니며 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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뻗어나온 신경가지들이 여기저기 박혀있어서 조금만 잘못 건드리면 많은 합병증이 생길만큼 수술이 어렵다.

"저게 spinal acessory nerve 야" 라고 말씀해주시면서 신경을 다치지 않게 주위 조직을 조심조심 발라갔는데, 조금만 까딱 잘못해서 금세 끊어질 것 같았다. 저게 끊어지면 끊어진 쪽의 어깨가 위로 쑥 올라가면서 기능을 제대로 못한다.

"이거는 recurent laryngeal nerve 야" 참 실처럼 가늘다. 저게 다치면 말을 못한다. 물론 눈에보이는 혈관들 잘 못건드리면 뇌가 망가진다. 이처럼 중요구조들이 많이 지나서 젊은 여자 수술끝나고 합병증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당연히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치만 멋진 선생님께서 잘 수술 하셨으니 별 문제 없으리라 믿는다.

"폐에 전이 됐는데, 갑상선은 왜 떼요?" 라고 선화가 질문했다. 이유인 즉슨 전이된 폐에 방사능 요오드 치료를 해야하는데 갑상선이 남아있으면 남아있는 갑상선에서 그 방사선 요오드를 다 먹어버리기 때문에 모두 절제해야한다고 했는데, 그럴듯 했다. 치료 잘되서 한창 나이에 하고 싶은거 다 하고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신장이식 환자와 함께한 새해 첫 날2003-12-31 오늘은 12월 31 일 그렇다. 2003 년의 마지막날이다. 오늘은 신장이식 두개있는 날. 결전의 그날이다. 오늘 하루 일과는 대략 이러했다. 7 시 조금 외과 외래에 도착하였고 7 시반쯤 박기일 선생님이 등장하여 X-ray 사진 보면서 간단한 환자 프리젠 테이션을 하였다. 8 시쯤 김순일 선생님 외래에 들어가서 신장이식, 간이식을 받은 환자들이 3 주에 한번씩 외래에 방문하여 그간 몸상태를 보고하고 약을 타가는 것을 구경했다. 9 시쯤 회진을 돌았고 10 시조금 못되어 수술방에 들어갔다. 수술방에서는 이미 신장이식을 받을분(수혜자)의 배가 열려져 있었으며 공여자의 신장을 잘 붙일 수 있도록 혈관을 정리하는 작업이 진행중이었다. 공여자는 엄마 수혜자는 아들이었으며, 공교롭게도 수혜자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고 공여자 나이는 우리 엄마와 동갑이었다. 첫 수술은 김유선 선생님께서 집도하셨는데 11 시쯤 정리작업이 끝났고, 그동안 옆방에서는 비뇨기과 선생님이 공여자의 신장을 떼어내고 있었다. 이 시간이 오래걸려서 아무 하는 일 없이 12 시까지 수술방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졸거나 선구와 용호와 잠담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공여자의 신장이 도착하였고 내가 세번째 어시스턴트가 되어 스크럽을 서게되었다. 그래서 신장이 붙여지는 과정을 눈앞에서 상세히 볼 수 있었는데, 신기,신비,경이 그 자체였다. 수혜자의 common iliac vein 과 atery 의 양쪽에서 clamping 하고 피가 통하지 못하게 한뒤 일단 공여자 신장의 정맥과 수혜자의 정맥을 연결했다. 혈관과 혈관을 연결하는 작업은 고도의 정밀한 기술이 요구된다. 정맥을 연결하면 동맥을 서로 연결하는데 동맥을 연결하는 과정은 더욱더 어렵다. 동맥이 정맥보다 한참 가늘기 때문에 저걸 어떻게 연결하나 싶었지만, 귀신같이 자알 갔다 붙이셨다.

혈관을 잘 연결한뒤 정맥의 클램프를 풀고 하나둘 셋하는 기합과 함께 동맥의 클램프를 풀자~ 눈밭에 물꼬가 트이듯 동맥혈이 공여자의 신장속으로 쏴아하고 들어가면서 원래 하얀색이었던 공여자의 신장이 금세 붉은 강남콩 색으로 물들면서 동맥이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샌생님의 지시에 따라 손끝을 동맥에 대보니 피가 쓩쓩 지나가는게 느껴졌다. 이식 신장에 붙어있던 요관을 방광에 이어 붙이니 아! 글쎄!!! 오줌이 줄줄줄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당연하면서도 정말로 문제없이 오줌이 잘 나오는 것을 보니 너무나 신기하였다.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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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에서 샘물이 졸졸 흐르듯 환자의 폴리카테터를 통해 오줌이 졸졸흘러나왔다. 수혜자의 동맥혈의 새로 단 이식신장속으로 들어간다음 여과되어 정맥으로 나가고 여과된 물은 오줌으로 나오는 과정이 생리학적으로 제대로 이루어졌다. 몇시간 전만해도 온몸의 요독을 배출하기 못해 투석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2 시부터 6 시까지 두번째 이식을 김순일 선생님께서 집도하셨고 6 시반쯤 용호와 저녁을 먹은뒤 10시까지 휴식시간을 가졌다. 10 시부터 새벽 2 시까지는 오늘 수술한 환자의 병실에가서 소변량 체크하고 나오는 양만큼 수액달아주고 혈압재고 중심정맥압 재는 작업을 했다. 의외로 간단치가 않아서 처음에는 상당히 버벅됐으나, 나중에 일이 손에 붙자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신장 이식을 받은 환자들은 그동안 제대로 내보내지 못했던 오줌들을 원없이 내보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오줌이 엄!청! 많이 나온다. 두명중 젊은 남자의 오줌은 30분에 600CC 정도씩 꾸준히 나왔고 수술 이후에 11 리터 이상의 소변이 배출되었다.

물꼬가 트이고 막혔던 배수로가 열리자 몸에 쌓여있던 수분들이 순식간에 바져나가는 순간이었다. 따라서 나가는 양만큼 계속 수액을 공급해줘야하고 혈압과 정맥압을 계속 체크해야 한다. 그런 작업을 하면서 새해를 맞이한 것이다. 너무 피곤하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4 시간을 보냈지만 뭔가 뜻있는 일을 하면서 새해를 맞이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터벅터벅 집으로 굴러들어왔다.

잊지못할 새해 첫날이 될것 같다

사색의 필요성2004-01-24독서는 수많은 신선한 정보를 뇌속에 공급하여생산적인 결과물을 나올수 있게 하는 밑걸음이 된다.

사색은 수집된 정보를 차곡차곡 쌓고 정돈하는 역할이다.

사색만 있고 입력이 없거나 입력만있고 사색이 없거나 하는 경우는 기형적인 정신작용이 야기될 수 있다.

'바보의 벽'의 저자는 사색이 아무 쓸모없는, 비생산적인 것이라고 비판했고그의 말에도 충분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사색없는 입력은 수많은 정보를 분류없이 뒤섞이게 하고,철학있는 주장보다는 비판을 위한 비판만을 낳을 뿐이다.

한정식의 ‘사진예술개론’을 읽고2004-03-16

서점에 들려서 사진 관련 책을 찾아 보다가 이거다 싶어서 사온 뒤 밤에 잠들때까지 읽는다는게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사진 찍기를 좋아한지는 꽤 오래됐는데, 그냥 싸이월드에 올리는 수준의 사진만 찍다보니 사진을 찍는 눈도 형편없고 보는 눈도 수준 이하라 아는 만큼 보인다는 생각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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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본 것이다.

이 책은 사진 전문 출판사이 '눈빛'에서 발간하는 '눈빛시각예술선서'의 7권중 6 번째 책이다. 지은이 '한정식'이란 분은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일본대 예술학부에서 사진을 배우고 중앙대 사진학과에서 교수를 지내신 분인데 국문과 출신이라서 그런지 글이 매우 매끄럽고 읽기 편했으며, 예술가 치고는 상당히 자기 주장을 전개하는 방식이 논리적이었다. 그분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사진은 회화나 다른 예술 분야와는 달리 사진이라야만 발휘할 수 있는 독특한 특성이 있으므로 그러한 특성을 잘 살린 사진을 찍어야 그것에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특히 회화와의 비교를 통해 사진의 특유한 부분을 설명해 나갔는데, 무엇을 찍어야 할지에 대한 작은 영감을 주었던 것 같다. 사진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을 찾아서 찍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은 '발견의 예술'이라 하였는데, 사물 속에 숨은 의미를 작가 나름으로 찾아내는 의미의 발견, 새로운 세계의 발견이 참된 의미의 발견이라 하였다. 또한 사진의 소재는 관념적이거나 문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진이라야만 표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소재를 택하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즉, 관념적 주제는 문학예술에 맡기고 사진은 사진의 고유한 영역을 찾아가라는 말인 것이다. 요즘 한참 읽고 있는 분석 심리학에 대해 사진으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무엇을 찍어야 할까? 고뇌하는 사람의 표정?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 무엇을 찍어도 사진은 한장의 정지된 화면이므로 관념을 표현하기에는 분명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거꾸로 한장의 사진속에 작가의 세상에 대한 애정이나 생각을 담을 줄 아는 능력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주제에는 작가의 사상이나 생각이 들어갈 수 있지만, 소재까지 관념적인 것을 찾아내려는 억지는 부릴필요가 없다. 그래서 지은이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이지 않은 것, 곧 구체적이고 시작적이어서 보면 금방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사진의 주제로는 가장 알맞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은이의 이러한 주장은 책을 읽고 있는 나의 마음을 상당히 편하게 해주는 면이 많다. 사진이 예술적인 경지에 이르려면 무언가 관념적이거나 오묘하고 언뜻 봐서 알기 힘든 모습을 찍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어렵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내용이니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회화적인 소재나 주제가 아니라 사진만이 잡아낼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찍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므로 더욱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가지 더 위안이 되는 것은 사진가가 굳이 현상 인화를 스스로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프랑스의 천재적인 사진작가인 '카르티에-브레송'은 자기 손으로 현상 인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의 화상 형성의 '자동성'때문에 사진 영상은 결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사진가는 사진 찍는 것에 대욱 신경을 쓰면 될 것이라는 말이다. '파이닝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셔터를 누르기 이전 단계에서만 카메라맨은 접근을 생각하고, 도구를 고르고, 아이디어나 감정을 사진 형식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기술을 선택하여, 최종적으로 폼을 조절할 수가 있다. 한번 셔터를 누르고 나면 그 사진의 특질은 결정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 다음은 능숙한 제자가 있으면 그에게 맡겨 버려도 좋은 것이다.'

물론 현상,인화 자체에 예술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작가도 분명히 있으며, 자신의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책임진다는 작가 정신이 있기도 하겠지만, 나 같은 사람에는 굉장히 눈앞이 트이는 글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지은이는 디지털 카메라의 눈부신 발전에 상당히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위와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어차피 찍은 후에는 기계적 과학적으로 현상,인화 되는 것이므로 디지털로 찍어서 보여주는 것에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디지털 사진은 거창한 암실을 집에 꾸며 놓지 않더라도 컴퓨터 작업으로 작가가 원하는 사진을 현상할 수 있으므로 영상 제작을 작가 스스로 하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사진가들의 암실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표현했다. 요즘에 벌써 아마추어 작가들 중에서는 CD롬으로 작품집을 만들고 있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서 장래에 디지털 사진은 사진계 전체로 확산되어 모든 사진을 대신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았다.

어쨌는, 나이들어서도 계속 가꾸어나갈 취미로서의 사진을 좀더 제대로 알수 있는 좋은 길잡이가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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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였다.

잡설로, 요즘 DSLR 을 구입하고 싶어서 미치겠다. 집에 캐논 EOS5 와 렌즈 두개가 있으므로 바디만 구하면 되는 것인데... 음... -_-;;;그리고 어제 나도 피지가서 찍은 사진을 전자앨범으로 제작해서 시리로 구운 다음 피지사진 zzixx 에서 인화해 만든 앨범 속에 삽입해 두었다. 신기한 것이 그 시디만 있으면 어느 컴퓨터에서든 슬라이드 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므로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이다.

우짰든 사진은 참 재미있는 취미이다.

신경외과 실습기2004-03-30 어제부터 4 학년 실습이 시작되었다. 신경외과 2 주부터 시작인데, 역시 외과답게 쉬는 시간 거의없이 어느새 저녁이다. 오늘은 신경외과 수술구경을 했는데, 뇌 혈관에 동맥류(혈관의 어느부분이 풍선처럼 부풀어 터지기 쉬운 상태)를 클립으로 집어서 터지지 않게 만드는 수술이다. 환자는 평생 처음 느껴보는 두통을 느끼고 내원한 아주머니인데 다행히 동맥류가 터지지는 않아서 이번 수술로 위험한 고비를 넘길 것으로 생각된다.

아침 회진을 돌고난 후 수술실에 들어가니 벌써 머리 피부와 근육을 잘라 제쳐둔뒤 두개골을 톱으로 잘라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피부를 벗기고 근육을 젓히니 상아색 모양의 두개골이 드러났다. 드릴로 4곳에 구멍을 뚫은후 그 구멍들을 연결하여 손바닥 반만한 크기의 두개골 뼈조각을 잘라냈다. 교수님에 들어오셨고 마이크로 수술이 시작되었으며 우리는 모니터를 보면서 수술 과정을 지켜보았다.

수술은 의외로 간단했다. 왼쪽 pterion 부위에 있는 sybian sulcus 를 젓히면서 조심스레 들어가서 내경동맥에서 분지된 중대되동맥에 뽈록 튀어나온 동맥류를 클립으로 찝은후 다시 머리를 닫는 것으로 수술은 일단락 되었다. 저런 클립을 두개나 머리속에 넣어두면 두통이 더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알아서 전문가답게 하셨겠지 하는 마음으로 생각을 접었다.

신경 외과 수술은 어려서 하던 로보트 조립과 흡사한 면이 있고 굉장히 재밌어 보이는 부분이 많아서 신경외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힘들긴 하지만 보람된 실습이 되도록 하련다.

신경외과 수술 참관기2004-04-07 오늘은 Hemi facial spasm(HFS) 환자의 치료를 위한 MCD 라는 수술을 참관 하였다. HFS 란 7 번 8번 신경 근처를 지나는 동맥이 그 신경을 압박하여 신경내에 합선이 일어나 눈 주위와 입주위에 비자발적인 수축이 일어나는 질환이다. 병실에 있는 환자를 직접 보지못하여 그 고통이 얼마만큼 크고 실제 어떤 증세를 호소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술까지 하는 것을 보면 꽤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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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은 귀 뒤쪽의 머리부분의 머리뼈를 열고 소뇌를 헤집고 들어가서 신경과 동맥 사이에 작은 솜비슷한 것을 넣어주어 동맥에 의한 압박을 줄여주는 수술로서 그 효과가 매우 드라마틱 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름도 Microvascular decompression 즉 MCD 수술인 것이다.

수술방이 2 개가 동시에 열려서 한쪽 방에는 4 년차 선생님 다른 쪽 방에는 여자 펠로우 선생님께서 수술을 시작하였는데, 우리는 여자 펠로우 선생님께서 수술하시는 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체구의 가냘픈 몸매의 선생님이신데 남자들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고 만다는 그 힘든 신경외과 트레이닝을 어떻게 견디시고 펠로우까지 되어서 수술을 하고 계신지 신기하고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여자 특유의 섬세함으로 꼼꼼하면서도 차분하게 수술을 진행하였으며 머리피부를 벗기고 머리덮개 근육을 젓히고 드릴로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구멍낸 부분을 뻰치로 부슨다음 경질막을 조심스레 가위로 자른뒤 소뇌를 젓혀 그 다음 하이라이트 수술을 위한 시야를 확보하는 때까지 수술을 진행하셨다.

그 이후에는 교수님께서 들어오셔서 현미경을 보면서 마이크로 수술을 하셨는데 우리는 모니터를 지켜보면서 연신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을만큼 정교한 수술이었다. 신경과 혈관 사이에 정확하게 서지셀 비슷한 것을 넣어 혈관이 신경을 직접 압박하게 하지 못하게 한 후 집도를 다시 펠로우 선생님께 넘긴 뒤 옆방으로 가서 4 년차선생님을 이어 MCD 수술을 한차례 더 하시고 수술장을 유유히 사라지셨다.

쌀한톨에 반야심경을 심었다는 장인 이상의 솜씨처럼 느꼈졌다. 힘든 고생끝에 훌륭한 기술을 터득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번 신경외과 실습기간을 통해 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중이다. 환자분들은 훌륭한 수술 덕분으로 분명히 완쾌 되실꺼라 믿는다.

현실적인 사람이 되자2004-04-26 소설가나 시인이 되지 않을꺼면 그런 자질이나 감각이 눈꼽만치도 없는거라면 현실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매우매우매우 현명하고 건질 것이 있다. 꿈과 현실을 혼동하고 이상과 한계를 자각하지 못하면 뒤쳐지고 후회하는 수 밖에없다.

나는 언제나 한발짝 느린편이었다. 의대도 남들보다 2 년 느리게 들어왔고... 사춘기도 재수할때부터 시작되었고 남들 다 알고 지나가면 뒤늦게 깨닫고 혼자 감탄하기 일수였다.

그리고 느려야 깊어진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깊기는 커녕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지경이 이르러 이제는 더이상 이러고 살 수 없을 정도에 도달 했다는 생각이다.

나는 인간이다.그저 인간이다.너도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고인간은 그저 인간일 뿐이다.

쫓기는 듯 아둥바둥 사는 것은 정말정말 싫지만 사람이 현실적이지 못하면 언제나 뒤쳐져서 아둥바둥이다. 느리게 가면서 더 많이 주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쓰레기 몇게 더 주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게 과연 인생에 도움이 되는것일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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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에 의해 타고난 운명은 상당히 심여깊고 정교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조금도 바꾸지 못하고 언제나 그 꼴 그 모습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특히나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백날 머리굴리고 생각한답시고 속으로 파고들어가봤자 나는 나고 내 안에 뭔가 더 남아있을리가 없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팔만큼 팠으면 더이상은 가마솥 바닥 긁는 꼴이고 그러면 손이 닳는다. 내가 닳는다. 반복되는 똑같은 패턴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과감히 뿌리치고 정교하게 노력해야 한다.

사람은 바뀌지 못하는 운명적인 결정론에 사로잡힌 동시에 무한한 갱생의 창조성을 타고난 생명체다. 우리는 유한하면서 동시에 무한하다. 유리수는 무리수의 부분을 채울 수는 없지만 그 자체로서 무한한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닿을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우리는 분명 무한하다.

비현실적인 공상에서 벗어나와 나의 무한한 능력을 현실적인 일에 투자해야 한다. 나는 그래야 할 사명이 있고 책임이 있다.

비현실적 공상내지 자기속으로의 끝없는 침잠, 파고듬은 아무곳에도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를 토닥이는 하나의 방식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벗어나고 싶다. 지금 나의 굴레에서...

비뇨기과 방광절제술 참관기2004-05-01 아침 6 시 20분에 병원을 가면 선생님께서 칼같이 나타나셔서 15분 만에 후딱 회진을 돈다. 그닥 건성건성 도는 것은 아니지만 환자가 10 명 내외라 오래걸리지는 않는다.

화요일, 수요일, 금요일은 수술방에 들어갔다.

화요일에는 아침 8 시에 수술방에 들어가자마자 방광암때문에 근치적 방광절제수술을 3rd 어시스트 하였다. 수술시간은 무려 5 시간 방광을 떼고 없어진 방광 대신 소장을 잘라서 방광 대용품을 만든뒤 맥버니 포인트쯤 되는 곳으로 장루를 형성 시켜 오줌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수술이 오래 걸린다.

1 시쯤 수술이 끝나고 밥먹고 이번에는 부분적 방광절제술을 봤다. 부분적 방광절제술은 암이 있는 부위만 떼어내고 꼬메는 수술이므로 근치적 방광절제술(다떼는거)보다는 시간이 훨씬 적게 걸린다.1 시간 정도만에 수술이 끝났고 이것 저것 다 합치는 4 시쯤 수술방에서 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몽롱하였지만 매일매일 공부한다는 원칙을 지키기위해 저녁을 먹고 자학실로 향했다. 수요일 오전에는 신장이식 도너(주는 사람)의 신장적출술을 보았다. 혈관이 어려워서 꽤 오래걸렸다. 한 4 시간쯤 지겨워 죽는줄 알았다.

목요일에는 나군호 선생님 외래 참관 하였고 금요일인 오늘에는 계획에도 없는 근치적 전립선절제수술에 2nd 어시스트로 들어가게 되었다. 원래 오전 회진만 돌고 하루 일정이 끝나는 것이었으나 나군호 선생님빼고 모두 학회를 가서 일손이 모자란다고 학생을 긴급 호출하여 수술방으로 오게 만든 것이었다. 막상 세컨드 어시스트였지만 하는일 없어 수술필드도 잘 안보여서 멍하니 한 세시간쯤 인내의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정말 열받았다.

하여튼 지난 일주일 너무 빡세고 힘들게 돌아서 일주일간의 피로가 고스란히 온몸에 쌓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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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평등한 생각2004-06-20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인간'이 인간 이외의 동물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뭐 실제로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동물 실험실에 갖혀있는 개, 돼지, 토끼, 생쥐 들의 동물들처럼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어떤 개체가 나타나 그들의 지적 만족 내지는, 그들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인간을 우리에 가둬 놓고 실험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인간보다 우수한 개체가 인간을 그들의 마,소처럼 부려먹고 우리에 가두어서 기르는 내용의 영화(제목은 생각안남)를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영화에서 그 우수한 개체는 생김새도 매우 추악하고 마음씨도 매우 사악한 것으로 그려졌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인간이 자기를 가두고 기르는 개체를 추악하게 바라보듯, 인간의 수명연장을 위해 개나 소를 우리에 가두고 실험하는 우리 인간의 모습이 그 개나 소의 눈에는 추악하고 사악하고 더러운 모습으로 보일 것인가? 뭐 그렇게 보일지 안그럴지는 내가 개,돼지가 되어보지 못해서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우리 스스로는 동물들을 실험하는 목적이 상당히 선한 의도라고 생각하고 있음은 틀림없는 일이다. (일부 동물 애호가들의 동물실험을 반대하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개보다 인간이 한차원 지능이 높은 것 이상으로 지능이 뛰어난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점령하여 인간을 그들의 '선한'목적을 위해 우리에 가두고 실험하고 부려먹고 그런다면 우리는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에 가두어져 있는 개가 짖는 소리나 들판을 뛰어노는 개가 짖는 소리나 우리귀에는 별반 다를바 없이 들린다. 그런 것처럼 우리에 가두어진 인간이 울부짖는 소리가 지능높은 외계인의 귀에는 우리 밖에 있는 인간이 내는 소리와 하등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고로 우리가 우리에 갖혀서 아무리 살려달라고 애원하거나 혹은 그 외계 생명체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고 발광을 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눈과 귀에는 전혀 구별이 안될 뿐더러 히히덕거리거나 그들 나름의 굉장히 선한 목적으로 우리 인간을 실험 한다면 그 참 억울한 일도 없을 것 같다.

인류의 질병퇴치를 위해 온 인생을 쏟아받치고 있는 한 해맑은 영혼의 젊은 여자 연구원이 실험실에서 최고의 선한 마음으로 쥐에게 약물을 주입하고 산채로 내장을 꺼내는 장면을 상상해 보아라.

그리고 그 해맑은 영혼의 연구원이 외계인이고 산채로 내장이 꺼내지는게 바로 우리 인간인 모습을 떠올려 보아라.

그런데 이미, 지금 이 순간에도 인간의 오감과 과학기술로 감지할 수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개체가 인간을 지구에 가두어 놓고 실험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면...

단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채 웃고, 울고, 싸우고, 헐뜯고 죽이면서 그들의 실험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면...무엇 때문에 아둥바둥 살아야 되는건지 모르겠다.

드넓은 대지의 품에 안겨낮에는 자연을 일구어 양식을 얻고저녁에는 석양의 붉은 기운속에 산책을 하며밤에는 별빛의 영롱한 조명아래 사랑을 속삭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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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삶은왜그냥살고 싶지도 않은 걸까.아니그렇게 살면 참 좋겠다 싶다가도그래도 강남에서 살아야지그래도 인터넷은 있어야지그래도 의사되서 돈벌어야지 라고 생각하는게 당연히 너무나 당연한 일인 것일까.

인간은 모순 그 자체이다.스스로의 행복을 갉아먹는 어리석은 모순덩어리그러고도 세상에 자기밖에 없는줄 착각하면서...누군가가 만든 우리속에 갇히어바글바글 서로 찌르고 죽이고 있는 것이것도 모르면서...우주인이 지구인을 보고 그런다더라저 인간이란 족속들은 아무리 연구해도 2 가지를 모르겠다고

하나는 아침에 있어나면 왜 그렇게 터질것 같은 지하철 속으로 기어들어가는지둘째는 저녁만 되면 멍하니 빛이 나오고 시끄러운 시커면 네모상자를 쳐다보고 있는지...

우리도 결국똑같은 방식똑같은 굴레속에서그렇게 그렇게 사는 것이다.눈을 똑바로 뜨고세상의 진실을 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성(sex)'에 대한 엉뚱한 생각2004-06-20

뭐 나도 어디서 주워 들은 이야기일꺼니깐 그렇게 엉뚱한 생각은 아닐지 모른다.

사실은 세상에 두가지 '성(sex)'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4 가지 성인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남자, 여자모습남자, 여자, 남자모습여자

그래서 이 네개의 성이 실제로는 별개의 성이지만 우리가 겉으로 보이는 성기의 모습과 그것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여자모습남자는 여자로 여기고 남자모습여자는 남자로 여기지만 실제로 여자모습남자는 겉으로 여자지만 두되는 남자비슷한 그렇다고 남자도 아닌 새로운 '성' 인 것이고 반대도 마찬가지고...

어쨌든 4 가지 성이 현재의 남자와 여자만큼이나 동등하게 똑같으며 사랑은 겉으로 보이는 '성기'가 아니라 '브레인'이 바라보는 성에 끌리는 것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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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남자와 남자모습여자여자와 남자여자와 여자모습남자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요즘 의학으로 밝혀진 것은태아나 신생아기의 중요한 시점에 여자의 브레인이 남성호르몬에 젖거나남자의 브레인이 여성호르몬에 젖게되면남자의 머리를 가진 여자가 될 수 있다는 정도인데,여자의 두뇌가 남성호르몬에 젖는 것이 병이나 잘못된 일이 아니라원래 4분의 1 은 그렇게 되도록 유전적으로 규정된 것이라면 어쩔것이냐.

하튼뭐랄까... 좀 딴 얘기긴 하지만남자와 여자의 두뇌는 정말 신기하게도 알면 알 수록 너무나 다르고서로가 서로를 사람이라고 여기지만은도통 서로를 이해하기도 힘들고서로를 안다고는 하지만 서로 딴생각들만 자꾸 하는 식이 반복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머스 루이스의 ‘사랑을 위한 과학’을 읽고2004-07-01

이 책은 정신과 의사 세명이 지은 책인데(실은 한명-_-) 사랑과 감정과 정신작용에 대한 비밀에 대해 과학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정신작용에 대해 억압, 유아기, 이드, 에고, 슈퍼에고 등의 메타포적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수많은 비판이 있긴 했어도 인간정신에 대해 그 만큼 많은 이론을 만들고, 수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킨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과학적 사고방식이 주류를 이루는 현대 정신과학 분야에서도 프로이드의 그늘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이제는 프로이드의 검은 망또 속에서 과감이 뛰쳐 나올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하기까지 천동성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론이 세계의 우주관을 지배하였지만, 결국은 지동설이 기존 우주관을 완전히 대체한 것처럼 이제는 프로이드의 이론은 천동설의 씁쓸한 친구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 말한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이론의 핵심은 변연계 공명이다. 포유류의 뇌는 크게 세가지로 구성되는데, '파충류의 뇌'로 불리우는 뇌간이 첫번째고 변연계가 두번째, 대되피질이 세번째이며 진화 또한 이러한 순서로 진행되었다. 파충류의 뇌는 호흡, 반사, 맥박, 혈압 등의 생명활동의 중추이다. 이 뇌의 작용은 우리 몸의 외부 또는 내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우리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게 기능하는 원시적인 뇌다. 물론 이 뇌가 망가지면 인간은 바로 죽게되지만, 감정과는 관계가 없는 뇌이다. 파충류의 눈을 아무리 오랫동안 들여다 봐도 기쁨, 슬픔, 노여움, 외로움등의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없다. 파충류의 알을 낳아 새끼를 부화하지만, 새끼에 대한 본능적인 돌봄 이외의 애정은 전혀 없다.

이에 반해 변연계는 포유류 동물에게 유일하게 존재하는 뇌로, 감정작용에 관계한다. 애완견은 주인에게 충성할 줄 알고, 애교를 부릴 수 있으며, 슬픔, 분노, 기쁨의 감정을 표현 할 수 있으며, 느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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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다. 수천년동안 개, 고양이 등의 포유류가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함께 지낼 수 있는 것은 결코 우연에 의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변연계를 둘러싸는 신피질은 논리적인 사고, 언어적 기능, 운동계획등을 수행한다. 다른 포유류들도 조금의 대뇌 피질을 가지긴 하지만, 인간의 신피질이 다른 동물의 그것보다 월등히 크고 우수하므로 우리 인간은 논리적, 추상적인 사고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신피질 중심적인 사고가 인간을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부터 격리시키고, 세상을 삭막하게 만든다고 한다. 외냐면 우리는 신피질을 통해 사랑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변연계 공명을 통해 사랑을 느끼고, 애착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갖 태어난 원숭이 새끼를 어미로 부터 격리시켜 어미와의 변연계 공명을 불가능하게 하면, 뇌의 성장이 현저하게 저하되어 자폐적이고 자해적이며,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게 된다고 한다. 물론 몸의 성장 또한 온전할 리 없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어서 정신 분열병이나, 정동장애 등의 정신 장애에 취약한 사람들의 유년기를 가만히 살펴보면 부모와의 애착형성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공격적이고, 자신이 저지른 극악 무도한 범행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몬스터 같은 인간들의 성장환경이 원할하지 못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일일 것이다.

세상이 점점 물질 문명화되고, 경쟁 중심적으로 되면서 맞벌이 부부가 늘어났으며, 애기들이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탁아소나 다른 양육자에 의해 길러지는 경우가 많게 된다. 이런 아이들은 어미와 격리되어 자란 원숭이가 뇌가 황폐해진 것처럼 성격형성과 정신작용에 문제가 있는 아이로 자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미국 부모들이 아이를 따로 재우는 문화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초,중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것이 바로 미국의 반 변연계적 육아 방법을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적인 것이라면 무조건 좋은 것인 줄 알고 따라하면 앞으로의 세상은 애정결핍자로 넘쳐나는 공격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비양심적이고, 삭막한 세상이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머리로 따져서 생각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대뇌피질은 애정을 형성하고 사랑을 만드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으므로 머리로 생각하는 사랑은 제대로된 사랑이 아닐지 모른다.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고 하는 말은 변연계공명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머리는 쉬게 하고 가슴을 열어 주위의 사람들을 애정으로 보듬어야 함을 이 책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요로 다케시의 ‘바보의 벽’을 읽고2004-07-05

인간의 뇌는 당초 "알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정보를 차단해 버리는" 구조적 특성이 있다.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말 하면 다 통한다' '얘기 해서 해결 못할 문제는 없다'고들 하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내용인데... 구구절절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내용이다.

뇌의 구성 요소는 단 세가지다. 신경세포, 신경교세포, 그리고 혈관이다. 뇌의 복잡한 사고 작용을 생각해 볼때 뇌의 구성 요소또한 복잡할 것 같지만, 해부학적으로는 위에서 말한 세가지가 전부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신경세포이며, 신경교세포와 혈관은 신경세포를 먹여 살리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정신작용이 그토록 복잡하고 정교한 이유는 신경세포간의 네트워크 연결이 상상할 수 없을만큼 많은 가지수로 이루어져 있다는데 있다.

그렇지만 뇌의 작용을 간단한 수학 공식으로 표현해 볼 수 가 있는데, Y=aX 라는 공식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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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다. 여기서 X 는 입력이고 Y 는 출력이며 a 는 변수이다. 이 책에서 상단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a, 즉 변수에 대한 이야기는 수긍이 가지 않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아 보여 생략하지만 입력과 출력에 관한 이야기는 눈앞이 밝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만큼 신선한 내용이다.

즉 입력에 따른 함수관계에 의해 출력이 나오는 것아니라 입력은 입력대로 출력은 출력대로 따로노는 경우가 인간관계에서 비일비재 하다는 것이다. 즉 알고 싶지 않는 정보에 대해서는 그 것을 차단해 버리고 자기 머리속에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를 빙빙돌려서 출력을 만들어 내는 경우다. 그리하여 말하면 다 통한다는 이야기나 말로써 해결 못할 문제는 없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사색의 무용성에 대해서도 역설하였는데, 입력이 없는 출력 즉 사색은 아무런 생산을 창출해 내질 못하는 쓸데없는 짓이라고 감히 말하면서도... 뇌가 계속적으로 녹슬지 않고 돌아가기 위해서는 생각이라도 해야 한다는 정도로 도발적인 주장을 순화시키고 있다.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사색을 꼬마아이의 레고블럭 쌓기에 비유해 볼 수도 있겠다. 크리스마스때 선물받은 레고블레 한셋트 속에 대략 1000 개의 블럭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 블럭으로 꼬마아이는 차도 만들고 비행기도 만들고 로보트도 만들고 그러겠지만 그것은 규격화된 레고 블럭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결국 제대로 쓸모있는 물건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아이의 엄마는 우리 애가 이번에는 완전 새로운 선박을 만들었다고 대견스러워 할지 모르겠으나 그것 역시 장난감에 불과하지 않는다. 이미 생산물의 재료가 규격화되어 있기때문이다. 따라서 새 재료의 입력이 없는 사색이 어떠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해 낼인지 의문이 들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저자는 주장한다. 직접 경험해보고 몸으로 부딪혀보지 않은 일에 대해 말로만 듣고, 책으로만 읽고(그것도 대충),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면서 들은 내용에 대해 어떻게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화를 하다가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답답함을 경험했다면, 그 때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쌍방의 머리속에 바보의 벽이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입력되는 정보는 그 바보의 벽에의해 차단되고, 그 대신 자기 머리속이 이미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빙빙 돌려가면서 딴생각만 자꾸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이런 내용 이외에도 독자의 정수리를 찔러 정신을 환기시키는 많은 내용들이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길 권한다. 책도 얇고 내용도 시워서 금새 읽을 수 있다.

응급실 실습을 마치고2004-07-03

응급실 실습은 3 학년부터의 임상실습을 통털어 가장 유익한 TOP3 안에 드는 실습 기간이 아니었나싶다. 동맥혈채혈도 많이 해보고 심전도도 많이 찍어보고 L 튜브 넣는 것도 (비록 할아버지의 완강한 거부로 실패하긴했지만) 해보고 혈압도 수없이 재고 드레싱하는것도 돕고 수쳐하는 것도 돕고... 무엇보다도 신환이 병원에 들어왔을 때의 순간부터 등록을 하게 하고 병력을 청취하고 처치를 하고 오더를 내리는 그 과정을 많이 볼 수 있어서 흐름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그치만 우리나라 응급의료 시스템의 커다란 허점 또한 목격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력함도 느꼈더랬다.

'탄광속의 카나리아'라는 말이 있단다. 옛날에는 광부들이 깊은 탄광속의 산소농도를 알기위해 카나리아 새집을 들고 들어갔다고 하는데, 카나리아가 지지배배거리면 걱정없이 일하다가 카나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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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들리지 않고 죽어있으면 산소가 모자람을 알게 되어 탄광 밖으로 나온다는 이야기다. 응급실이 바로 '탄광속의 카나리아'라고 교수님께서 이야기해 주셨다. 응급실의 상황을 보면 그 병원,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인디케이터가 되는데, 현재 응급실의 모습은 매우 기형적이고 비정상적인 상태이고 따라서 우리나라 의료체계도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촌 응급실에는 입원대기 환자들로 가득차서 더이상 환자를 받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중환에서 경환까지 다양한 환자들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그래서 복도 의자에 앉아서 침대가 날때까지 밤을 새서 기다리는 풍경이 연출되는데 그게 어디 병을 고치러 온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외래를 통해 입원실을 구하려면 시간이 한달, 두달 걸리므로 머리가 조금 돌아가는 사람들은 응급실로 내원해서 의자에 앉아서 몇날 밤을 보내더라도 좀더 빨리 입원실을 얻으려고 한다.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던 말기 암환자들이 하루에도 몇명씩이나 응급실로 찾아오며, 아무리 말기라도 누울 침대가 없다. 그 반면에 손가락 베인사람도 자기가 가장 아프다고 빨리 치료해달라고 험한소리 언성을 높인다.

병상 여유가 많아 보이는 영동 응급실에도 해당과에 컨설트를 내면 그 과 의사가 너무 늦게 내려와서 환자들이 욕을하고 난동을 부리기 일수다. 특히 정형외과적 환자들의 매우 많이 오지만 영동 정형외과 1 년차는 그야말로 숨쉴겨를 없이 바빠서 절대 제시간에 환자를 보러 내려올 수 없다. 그래서 항상 싸운다.

응급실은 정말 중요한 곳인데 이건 완전히 전장의 임시 진료소를 방불케하는 분위기니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고 무엇부터 뜯어고쳐야 할지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보다.

이부영의 ‘우리 마음의 어두운 반려자 – 그림자’를 읽고2004-07-10

우리 마음의 어두운 반려자 - 그림자 라는 제목의 '이부영'저서 분석심리학 시리즈를 읽었다.

제 1 부 : 그림자제 2 부 : 아니마와 아니무스제 3 부 : 자기와 자기 실현

으로 이어지는 분석 심리학 시리즈인데, 학문적인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나를 깨닫고 탐구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다. 한권의 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경우를 일컬음인가보다.

분석심리학은 융이 제창한 학문이다. 융은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의 이론에 반박을 가하고 수정하고 자기만의 직관련으로 정신의 구조를 분석하여 새로운 심리학의 분야를 만들었다.

책 내용을 잠시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자'란 무엇이냐!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 즉 허영된 모습, 끊임없이 속구치는 욕망, 소심한 모습 간사한 모습, 화내는 모습, 폭력적인 욕구 등등등... 을 무의식 깊은 곳으로 밀어내어 의식하지 않으려 하면 그런 것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가 된다. 그리고 그림자는 무의식의 우주와 같은 세계에서 무의식의 신과같은 파워(집단무의식,원형,아니마,아니무스등등) 를 등에없고 의식에 끊입없이 영향을 미친다.

특히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될 때 누군가가 이유없이 미워지고 불편하고 그를 욕하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미워지는 사람이 실제로 열등한 사람이 아니라 내가 무의식으로 밀어넣어서 분화될 기회를 잃어버리고 열등한 상태로 남아있는 나의 일부분이 투사되어 그것을 보고 미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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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내 그림자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 그를 통해 내 내면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융은 '전체정신'의 실현의 중요성을 항상 역설하였다. 인간의 의식이 극단으로 치우치고 자기의 내면의 욕구를 안보려할때 무의식 속의 그림자 또한 의식의 극단화를 보상하기 위해 반대방향의 대극을 형성한다. 그것이 심화되면 인격이 해리되고 정신이 망가진다.

해리되면 끝이 아니라 그토록 싫어했던 자신의 열등한부분이 의식을 집어삼키고 의식을 지배하고 조종한다. 그러면 어느날 사람이 완고해지고 고집불통이되고 소심해진다. 밖에서는 활달하고 이해심많고 너그러운 사람이 집에만 들어오면 마누라와 자식들에게 끊임없이 짜증을 내고 사소한 일어 화를 낸다.

이러한 인격의 해리현상은 자기실현을 방해한다. 자기 실현은 뭣하러 하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자기 실현을 행복하게 살기위한 길이다. 분리된 인격을 가지고는 행복해질수 없다. 항상 불안하고 이게 아닌거 같고 시시때때로 다르게 변하는 자기의 모습에 자신도 두려워진다. 세상을 염세적으로 파악할 수도 있겠다. 무의식에도 의식에서도 하나의 인격만 있다면 그 인격이 조금 풍류를 즐기고 욕정에 이끌린다하더라도 무슨 상관이랴. 하나의 인격이 되는 전체정신이 실현되는 순간 인간은 자유로워질 것 같다.

나도 자유로와지고 싶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래서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지만 밖을 잘 보기로 했다. 이유없이 싫어지는 사람, 불편한 사람을 통해서 나의 내면의 모습을 바라보고 열등하고 분화되지못한 유야기적 형태의 그림자를 성숙시켜서 하나의 인격을 향해 나아가야겠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일은 아니겠지만, 꾸준히 관심을 가진다면 안 될것도 없지 않겠는가? 좋은 책 읽게 되서 너무나 다행스럽다.

광주 정신병원 실습2004-08-20 광주세브란스 병원은 시골의 아드막한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큰 길가에서부터 꼬불꼬불 산길로 차로 5분정도 올라가야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과 떨어진 곳이다. 워낙 산속에 생뚱맞게 위치하고 있는 병원이라 주위에는 병원말고는 경치좋고 공기맑은 자연밖에 없어서 마음이 평온해지고 안정되는 기분이다.

2 주동안 실습돌면서 주로 정신분열병 환자들과, 양극성 정신장애 환자들을 보았다. 양극성 정신장애는 조증과 우울증이 일정한 기간을 두고 번갈아 발생하는 정신질환을 말한다. 그 분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같이 배드민턴도 치고 탁구도 치면서 그동안 정신질환자에 갖고 있던 편견들이 한풀 더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원래 정신과에 관심이 많아서 지난 겨울에 특성화 실습도 정신과를 택해서 실습했지만, 이번 실습은 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당연히 정신과를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때이고, 이번 실습 기간에는 정신과보다는 다른과를 모색하고 있던중이라 예전만큼 의욕적으로 실습에 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치만 나또한 정신적으로 그다지 깨운하지 못한 상태이니 나를 가꾸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진로에 대한 고민은 그칠줄 모르고 지속되어, 강박증의 수준가지 이른 것 같은데, 정말 정신과를 할 것인지 아님 그냥 다른과를 할지부터 시작되어 공보의를 먼저 다녀올까의 문제를 비롯,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문제까지... 졸업을 앞두고 그동안 마음 한쪽으로 밀어 두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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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들이 한꺼번에 밀려 오는 듯 하여, 가장 편한 시기라는 4 학년을 심적인 혼동속에서 보내는 중이다.

그래도 머리에 관해서 공부해보고 싶고 마음의 병에 대해 이해하고 그 쪽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데... 실습돌면서 정신과라는 학문의 효용성에대한 회의감도 제법들고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도 많이 낮아져서 그냥 쉽게 살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환자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이렇게 복잡한데 저분들은 오죽 하겠냐는 생각이 들정도이다.

하튼, 신촌 정신과에서의 나머지 2 주 실습을 통해 어느정도는 머리속의 뒤죽박죽 생각들이 정돈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결정론 내지는 운명론에 기대기 2004-08-27머리속이 복잡하고도저히 내가 그리고 내 주변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 같을 때,

'그래 뭐 변하겠어, 맨날 그 꼴이지'또는'그냥 이렇게 사는거지 뭐'와 같은

결정론, 운명론 비스무리한 사고에 빠져스스로를 토닥이고 픈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의지는 얼어죽을놈의 의지그 놈의 '의지'가 너무나 미화 포장되어사람을 참 힘들게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의지를 가지고 나와 세상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그치만 뭐 바뀌는 거 있을라나?

남녀가 오래 사랑하기 위해서는2004-09-02 오늘이 9월의 시작인지도 몰랐었다.

8 시 반에 학교에 가서정신과 케이스 컨퍼런스를 설렁설렁 들었으며,10 시반부터 전우택 선생님과의 논문토론 시간은 꽤 흥미로웠다.

우리조의 논문주제는 가족이어서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전우택 샘 왈,

성경에 이르길 남편 아내을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섬기어야 한다고 써있다는 말씀을 하셨다.순간 저런 시대착오적인 발언이 전우택샘 입에서 나오다는 하는 생각에 여학우들의 표정을 살폈으나역시 언어의 달인 심리의 엑스레이같은 전우택 선생님께서는섬기다는 말을 존경, 존중으로 해석하셔서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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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존중은 각자의 성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 때문에그것만 지속적으로 잘하면 부부생활은 원만하다는 이야기를 참 마음에 와닿게 말씀해주셨다.

남자는 생물학적으로 계급사회, 위계질서를 편하게 느끼는 동물이어서 존중하는 능력은 좋지만누군가를 사랑하는 능력에서는 부족한 면이 많다고 하였다.남자는 금방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확 닳아올라 씨를 뿌렸다가금세 싫증을 느끼고 다른 암컷을 찾아 떠나는 개체이므로 지속적인 아내에 대한 사랑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셨다.

반대로 여자는 새끼를 양육하는 본능이 있으므로 사랑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자기와 자기의 새끼를 보호해줄 수컷을 찾기위해 남자를 존중의 대상이라기 보다 평가의(평가절하포함) 대상으로 본다는 것이다.

여자는 항상 사랑받기를 원하고 사랑을 확인받기 원하며남자는 항상 존중받기 원하고, 치켜세워지기, 인정받기를 원하므로이런 서로의 원하는 부분을 지속적으로 채워줄 때 부부생활이 원만히 지속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일견 너무 간다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너무나도 어렵고도 남녀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배우자 감을 고를 때여자는 불타는 사랑을 할 것 같은 남자보다는 지속적인 사랑을 줄 것 같은 남자를 만나야 하는데그 것은 그 남자가 주위사람에게 대하는 행동을 보고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셨다.또한 남자는 저 여자가 나를 잘 존중해주고 인정해 줄만한지를 살펴봐야 하는데,나에 비해 너무 잘난 여자(학벌이 너무 좋다거나 돈이많은 등의)는 맞춰나가기 힘든부분이 있을꺼라 하셨다.

이런게 궁합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처음부터 잘 고른 상대와 사랑에 빠지면 오죽 좋겠냐만인생만사 그렇게 뜻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우리 인간이 모두가 독심술사가 아니므로위와 같은 기준을 적용시키기는 매우 어려우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정말 서로가 서로를 위해고 존중하고 사랑하면끝까지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면,구구절절 많은 교훈들을 접하는 것 보다는남자는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여라... 라는 성경의 말씀을곱씹어 새겨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나의 방어기제2004-09-03

합리화, 지식화합리화는 나의 주요 방어기제이다. 아침에 지각을 하거나 해야하는 숙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시험을 망치거나 인간관계에서 누군가에게 안좋은 소리를 듣거나 반대로 내가 안좋은 소리를 하게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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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스스로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어 내서 나자신을 합리화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anxiety 가 매우 올라가면서 다른 일을 제대로 잘 못하게 되고, 그런 합리화를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면 상당한 depression 에 빠지기도 한다. 따라서 나에게 있어서 합리화는 스스로를 용서하여 해야할 일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나태에 빠지게 하는 좋지않은 기능이 있기도 하지만, 나의 자존감을 유지하고 마음의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긴장과 불안감을 낮추어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순기능적인 면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시험을 앞두거나 마감일이 임박한 숙제를 해야할 때, 그런 부담감과 긴장감을 감당하기 어렵거나 감당하고 싶지 않을 때, 해야 할일들을 부정하고, 오히려 영화를 보러 간다던가, 술을 마시면서 상황을 부정하려는 경우가 많다. 부정은 감정적인 간장 불안을 낮추어주기는 하지만, 부정의 방어기제가 적용되는 상황은 대개 나의 발전을 위해 힘들더라도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발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정의 방어기제를 의식화하여 나의 마음을 다잡는 것이 인생에 도움이 될 듯한 생각이 든다.

전이전이의 방어기제는 나도 모르는 무의식속의 열등감과 콤플렉스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아무 이유도 없이 맘에 안들거나 꼴보기 싫은 사람이 있는데, 그런 감정이 드는 사람을 이성적으로 바라보면 그 사람에서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나의 열등감의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나는 체구가 작고 남자답지 못하고 자시감이 부족하다는 열등감이 있는데, 이유없이 맘에 안드는 사람에게서 자주 그런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열등감과 전이의 방어기제를 의식화하여 이유없이 싫어지는 감정을 줄여보려는 노력도 해보지만, 무의식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한 것 같아서, 그런 전이의 감정이 잘 없어지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의 콤플렉스를 나에게 전이시켜서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던면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래서 나또한 그런 전이의 방어기제를 물려받은 면이 없지 않는 것 같다. 방어기제의 의식화를 통해 행동을 수정하면서 좀더 성숙한 인격을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반동형성나는 정신과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다. 그러나 정신과에 대한 관심이 정말 순수하게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인간을 사랑하고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생각 때문인것은 아닌것 같다. 속좁고 자기중심적이고 남자답지 못하며 남앞에 서기 싫어하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남보다 이해심이 많고 다른 사람의 마음의 병을 도와주려하고 정신의 움직임을 알고자 하는 욕구로 표출되는 것 같다. 이런 감정은 내부의 충동을 예술로 바꾸는 승화의 방어기제와는 또 다른면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참된 나를 깨닫고 나를 바로볼 술 용기가 있다면 반동형서으로 시작된 일이더라도 큰 각연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합리화의 방어기제를 써서 나를 위로해본다. 그치만 그런 방어기제를 알았다고 정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지는 않으므로 나름대로 좋은식으로 에너지가 바뀐것 같다. 그리고 성충동이나 폭력충동 또는 미워하는 마음이 가는 사람에게 오히려 잘해주는 식의 어쩌면 가식적일지도 모르는 방어기제 또한 자주 사용하는 것 같다.

억압과 억제위에서 말한 방어기제들의 기본 시작은 억압과 억제라고 생각한다. 나의 초자아의 관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충동이나 열등감을 억압하여 수 많은 다른 방어기제들로 표출이 된다. 무엇을 얼마만큼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지는 나도 알길이 없는 일이지만, 억압이 꼭 나쁜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억압된 무의식을 바람직한 방어기제로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이외에 보상, 투사, 전치, 퇴행, 고착통제등의 방어기제들도 있을꺼라 생각들지만, 이런 방어기제는 별루 맘에 안들어 부정하고 싶은 생각이 강한지 그닥 적당한 예와 경험들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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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2004-09-13

요즘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을 꿈꾸고 있다.

올해 3월달의 미국 여행을 시작으로7월달의 피지여행을 지나고8월달의 정신과 실습에서 피크를 이룬앞으로의 삶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번민과 초조함이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의 욕구로 점철되고 있는 중이다.

물론 내 성격상 언제 '뒤로누르기'를 하게 될지는 모를일이지만꿈이 생기고 목표가 생겨서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이 더욱 크다.

무슨 유행가 가사같지만 정말 그렇다.

남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까 하는 심정으로자신감을 하나씩 하나씩 채워나가는 중이다.

글로벌화에 대하여2004-09-30 ER season 1 DVD 를 사서 열심히 보고 있는 중이다.외국으로 나갈 궁리를 하면서 가장 문제가 되고 걱정이 되는 것이 물론 영어이다. 누구는 어려서 외국에 살아서 혀가 잘도 굴러다니는데, 토종 한국 촌놈인 나는 더군다나 영어공부에도 관심이 있어본 적이 없어서 말하기는 물론이거니와 듣기와 읽기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겸사겸사 놀면서 영어공부 좀 해보자고 구입한 것이 바로 ER DVD 이다.

하버드 의대생 출신인 Micheal Chriton (철자맞나 -_-)이 대본을 써서 그런지 철저하게 의학적 정보로 고증이 된 드라마 dl 다. 의학적으로 이상한 것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고 교과서에 배운 응급치료가 이렇게나 정확히 드라마속에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배우들의 프로시져를 수행하는 연기의 수준은 마치 실제 레지던트 4 년차 정도 되는 사람들의 실제 상황을 녹화한 듯한 착각을 들게할 정도다.

어쨌든, 이제 갓 의사가 되려고 하는 찰나의 순간에서 보는 ER 은 그 재미가 예과때나 본과 1,2 학년때 보던 재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것 같다.

집에 DVD player 가 없어서 컴퓨터로 보기는 하지만, 자막을 영어나 한국어로 선택이 가능하고 구간 반복 기능을 사용할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영어공부 한다는 생각으로 영어자막으로 보는데 처음에는 배우들의 대사와 영어자막을 매치시킬 수조차 불가능 했는데, 계속 보고 들으니깐 잡히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구간 반복 기능으로 한 문장을 수십번씩 들으면서 원어 발음대로 따라 해볼려고 흉내도 내보았지만, 한번 굳어진 혀는 절대로 돌이킬 수 없는 것 같다. 3 년 동안 훈련하면 조금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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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괜히 외국 블로그도 기웃거리고 세계지도도 들썩거리면서 넓고 새로운 세계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알면 알수록 그동안 내가 너무 좁은 세계에 안주하면서 산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globe of blogs 라는 블로그 포탈 사이트에 가보면 온세계의 사람들의 블로그가 연결이 되어있는데, 마치 우리만 빼고 남들은 서로 국경을 초월해서 생각을 주고받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새삼 우리나라 4 천 5 백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싸이월드에 천만명이 모여서 북적거리지만, 그냥 우리끼리 지지고 복고 하는 모습이 글로벌 세계에 또하나의 대원군시대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 포탈에 내 블로그도 등록은 시켜놨지만, 난 한국어로 글을 쓰기때문에 소통이 전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영어로 일기를 쓸 노릇도 아니다. 그냥 우리끼리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한글을 모국어로 사용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부심이 강하긴 하지만, 한글이란 언어로는 세계의 100분의 일의 사람들하고 밖에 소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백년뒤 이백년 뒤에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지금 이시대에는 (굉장히 억울하기는 하지만) 영어를 쓸줄알아야 좀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인 것 같아 안타깝다.

영어공부를 해야겠다. 그리고 세계로 나아가야겠다. 쫌 늦긴 했지만 내 두눈으로 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고, 내 두 다리로 밟아보고 싶은 땅이 너무나 많으며, 내 두귀와 하나의 입으로 이야기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우주로 나가지는 못할 망정 이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는 언어나 인종, 국가에 얽매임없이 자유롭게 경험하고 내 작은 능력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일단 미국으로 가련다. (어쨌든간에 싫기해도 아직은 미국이다.)한국 땅에서도 아직 해야할 일들이 너무나 많고도움이 필요할 사람들이 너무나 많지만나혼자서 그 일을 다 끝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솔직히 그러고픈 생각도 없다.아직은 남을 신경 쓰기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그걸 욕한다면 할말은 없지만 사실이 그렇다. 많이 느끼고 배우면 더 큰 도움을 배풀 기회가 생길꺼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스스로를 용서해보기도 한다

어쨌든 그렇다. 지금 나는.

여유로운 삶에 대한 친구와의 이야기2004-10-07 어제 오랫만에 만난 고향 창원의 중고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고기를 구워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둘다 정말 신촌을 떠나서 조용한데 가서 살고싶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고등학교때까지 자란 창원이란 도시는 서울 사람들이 보기에 그야말로 시골 촌구석 처럼 생각되겠지만서도, 나름대로 계획적으로 세워진 깔끔한 도시라서 거리도 한산하고 도시 조경도 잘 되있어서 상당히 깔끔한 도시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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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는 연대 대학원에 있는데, 하는말이 학교에서 신촌역에 가는 동안 사람들을 너무 많이 뚫고 지나가야 해서, 기어갈 정도인데 창원에서는 자기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걸어서 20~30분 정도 되는 거리에 만나는 사람이라야 고작 몇명이라는 것이다. (정말 시골같군) 물론 백번 동감이다.

이제 서울 생활도 8 년째이고 나도 어지간히 서울 사람이 다 되어버렸다.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는 서울의 복잡하지만 활기찬 기운이 참 맘에 들기도 했는데, 요즘은 나이가 점점 30 에 가까워져서 그런지는 몰라도 복잡한거 건물많은거, 사람많고 자동차 많은거, 매연으로 가득찬 공기와 거의 항상 뿌연 하늘이 참으로 싫어진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요즘 참 고향 생각이 많이 난다. 4 학년 들어와서 집에 내려가본 적이 없어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위 사진은 나 고등학교 1~2 학년 때쯤(95-96 년)의 사진 인것 같은데 가운데 있는 넒은 광장이 바로 창원 시청앞 광장이다. 위 사진의 자동차 크기와 건물 크기를 보면 광장이 상당히 넓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고등학교에 가까운 곳이어서 토요일 오후가 되면 저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서 집으로 가기도 하고 그랬으며, 주말 오후에는 식구들과 저기 놀러가서 드러눕고 뛰어놀았던 추억이 서려있던 장소이다.

서울이라는 한정된 지역에 무려 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살다보니 뛰엄뛰엄 살면 평화롭게 살 사람들이 좁은 곳에 모여져 있으니 서로를 잡아 먹지 못해 안달이 난것처럼 행동하고 서로 경쟁하면서 여유가 없는 삶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도시가 복잡해지단 보면 비단 남들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의 관계 또한 매우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항상 남을 의식하고 남보다 잘하려고 아둥바둥 노력하다보니 내 속에서 요구하는 것들에 귀를 기울이기 힘든 것이다. 어쩌다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하더라도, 지금 나의 경쟁 생활속에 아무런 득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애써 무시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예를 들면,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정도는 한가로운 공원에서 여유도 부려보고 싶고, 차를 끌고 도시에서 벗어난 곳으로 드라이브도 가고 싶고, 조용한 커피숍에서 혼자만의 독서시간을 가져보고 싶은 마음도 들기도 할 것인데, 그렇게 할 시간적 여유도 없을 뿐더러 혹 여유가 생겨도 또 다른 경쟁을 위해 그 시간을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휴식의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런 여유와 휴식이 있는 시간이야 말로 나의 내면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시간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채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채, 그저 남들이 다 하는식으로 그리고 남들이 다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삶 속에서 과연 인생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는 정말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다들 대학을 나오면 삼성, LG 와 같은 대기업에 취업하려하고 거기에서 자신의 꿈과 행복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 하지만 막상 그런곳에 취직해서 일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그곳에서의 생활이 결코 행복과 맞닿아 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열심히 일하는대서 나름의 삶의 만족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봉급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2~3 일씩 이어지는 야근에 주말에도 어김없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보내고 그나마 가질 수 있는 자유시간 조차에도 회사에서 걸려오는 업무 전화에 시달려야 한다면, 과연 그런 삶은 누구를 위한 삶인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그렇게 죽어라 일어서 높힌 생산성의 결과는 과연 누구의 검은 손으로 들어가서 누구의 만족을 한단계 높히는 것인지... 서울에서의 삶이 창원에서의 삶에 비하면 경우에 따라서 굉장히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서도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저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삶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 친구는 직장을 창원에서 얻겠다고 하였다. 서울에서 얻으면 나중에 직장을 옮기더라도 경력도 되고 좋지 않겠냐고 얘기하니깐 그 친구 왈, 서울에서 내가 원하는 지방으로 발령날 보장이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창원에서 시작하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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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촌놈이 서울 그리고 수재들이 모인 의과대학에 들어와서 눈만 엄청 높아져서 내 분수를 잊고 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내 분수가 창원이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의 성향은 끊임없이 몰아치는 경쟁과 과제 수행을 해야만 하는 분위기에서는 내 본성과 역행되는 부분이 참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패배자의 변명처럼 들리겠지만서도 요즘 처럼 점점 '나가 '나'가 아닌것처럼 느껴지는 때에는 더더욱 때때로 주어지는 여유로운 시간과 여유로운 분위기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적어도 10 년의 상황은 지금보다 수배는 더 여유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생활이 이어질테니 그런 생각하면 답답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뭐 누가 시켜서 한일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어서 한일이며, 내가 가지게될 의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항상 긴장하고 최선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려 노력해야 하는 것은 분명한 것이며, 그렇게 노력할 것이지만, 그래도 요즘처럼 답답한게 많아지는 때에는 한적했던 고향생각이 더더욱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미국에서의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것도 그러한 맥락일것 같다. 사실 미국에 가면 서울보다 더 힘들 생활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하겠지만서도 그래도 적어도 내가 일하는 병원이 있는 지역은 내 고향 창원에서의 여유로운 분위기와 흡사하거나 더욱 근사한 곳일것이며, 그런 분위기라면 힘든일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망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이다. 여유로운 곳에서의 열심히 일하는 생활은 마치 일석이~삼조의 대단한 신기루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아닐 것이다 절대로.

그래서 어쨌든 현재의 상황에 뭔가 변화를 주고 싶은데, 그게 어떤 인지는 잘 모르겠다. 잘 맞지 않는 옷을 아무리 오래 입고 있어도 내 몸이 그 옷을 소화해 낼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다. 그래도 공부는 계속되고 시간은 흘러간다.

노블레스 노마드에 대하여2004-11-16 요즘 나에게는 '노블레스 노마드'라는 말이 상당히 화두이다.

Noblesse Nomad 즉 귀족적 유목민이란 말인데, 내가 만들어낸 말은 물론 아니고 독일 미래학자 군둘라 엥리슈가 자신의 저서‘잡노마드 사회(job nomaden)’에서 현대인을 ‘유목민(노마드•nomad)’으로 표현한 말이다. 유목민은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며 짐이 되는 것을 기꺼이 버리고 그들은 ‘소유’보다 ‘경험’을 최고의 재산으로 여기는데, 그러한 유목민의 삶의 방식을 현대 인간의 생활 방식과 비교하여 표현한 것이란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재산 축적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껏 번돈을 저축해서 모아두기 보다는 그때 그때 두번다시 맛볼 수 없는 인생의 경험들을 얻기위해 사용하는 신종 귀족층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귀족이라는 말이 좀 귀에 거슬리겠지만서도, 그것은 아마도 이러한 생활팬턴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으로 버는 고정 수입이 보장되어야 가능하게 되는 생활이라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이때 의 경험이라 함은, 여행을 다니거나 영화나 뮤지컬이나 콘서트나 연극등을 관람하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체력단련을 하거나 사진을 찍고 독서를 하는 등의 손에 잡히지 않지만, 뇌속에 저장되어 감성으로 변환되고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그러한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나 또한 워낙 돈을 모으고 저축을 하는데 재주가 없는 것이 천성이며, 왠지는 모르겠지만, 아파트 한채를 마련하는 것보다는 정신적인 경험의 자산을 축적하는게 더욱 보람될 꺼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한번 사는 인생 모아놓은 돈 끌어안고 저세상으로 가는 것도 아닐테고, 자식들이야 돈을 벌 능력을 길러주면 되는 거지 돈을 안겨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물론 원치않는 사고가 생겨서 목돈이 필요할 때는 모아놓은 돈이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아쉽고 문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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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겠지만서도... 원래 유목민들은 굳이 멀리의 일을 걱정하지 않는 족속으므로, 보험이나 몇개 들어두지 뭐... 하는 심정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요즘에 이런 '노블레스 노마드'라는 말이 화두게 된 이유는 이제 100 일만 있으면 국가고시를 치고, 그러면 나도 내 능력으로 돈을 벌면서 생산의 현장에 뛰어들게 되기 때문이다. 뭐 당분간은 워낙 바뻐서 귀족적 유목민 흉내내볼 여유조차 없겠지만서도, 그래도 5 년의 트레이닝과 3 년의 군복무 기간을 마치고 인생의 또다른 2분의 1 로 접어들어서는 어떻게 사는 것이 보람될 것이지 항상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때쯤 되면 내나이도 35 살이 넘게되는데, 남들은 그 나이쯤 되면 이제 재산을 모으고 평생의 터전을 일구기위해 자리를 잡고 정해진 패턴대로 살아가려 하겠지만, 8 년동안의 웅크림을 연료삼아 세로운 세계로 날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그게 바로 미국행이다. 요즘 워낙 흥분된 상태이어서, 당장 졸업하고 군대부터 마친다음에 바로 미국 병원의 레지던트에 도전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워보았지만, 흥분이 가라앉고 여러가지 현실적인 상황들을 고려해볼때 그 시기를 5 년 늦추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결론으로 생각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에 간다면 또다시 5 년이 넘는 기간동안 레지던트 월급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인데, 그럼 돈은 언제 모으고 집은 언제 장만하는가 하는 고민도 약간 들기는 하지만 '물질적 재산' 보다는 '정신적 경험'이 더욱 나를 살찌우게 할것이라는 강력한 확신감으로 정보를 모으로 계획을 다듬어 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나이가 40 이 넘으면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무엇인가 트레이닝 그 다음 과정을 시작하게 되겠지만서도, 그 동안 축적된 많은 경험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면서 세상에 많은 좋은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어렴풋한 생각도 해본다.

비록 지금은 맨날 학교에 처박혀서 억지로 억지로 이해도 안가는 지식들을 꾸겨넣고 있지만, 그 그 언젠가 이런 지식이 새로운 경험들과 융합되어 사람들에서 힘을 불어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된다면 뭐.. 그보다 좋은 일이 더 있겠냐 싶은 생각이 든다. 언제나 지금같은 열정으로 살 수 있다면...

앞으로의 삶에 수 많은 힘들일과 좌절이 있을 것을 믿는다. 그러나 꿈을 잃지 않는 한 넘어져도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 또한 더욱더욱 믿는다.

의도적으로 산다는 것은2004-11-12

마음 또는 정신의 구조를 이야기 할때 크게 무의식 자원에서의 '나'와 의식적 차원에서의 '나' 있다고들 이야기 한다. '프로이트'는 'id', 'ego', 'superego' 라는 말로 정신을 구분지었고 '융' 또한 '페르조나', '자아',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 등의 개념으로 정신의 구조를 설명하였다.

앞으로의 이야기에 앞서 자아와 자기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자아'라 함은 쉽게 의식적 차원에서의 '나'라고 말하기로 하고 '자기'는 '자아'를 떠받치고 있는 무의식의 그림자에 해당하는 부분과 융이 말하길 '원형'이나 '집단 무의식'에 해당하는 것까지 모든것을 아우르는 그야말로 '나'라는 인간 정신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하기로 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에서의 '나'는 '자아'의 부분 중에서 좀더 통제적 의미의 부분을 말하기로 하겠다. (복잡하군-_-)

어쨌든 내가 살아온 지난 26 년을 돌이켜 보면 '나'라고 말할 수 있는 정신적 존재가 탄생한 것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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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살 전후가 아니었나 싶다. 그전에도 물론 '나'또는 '자아'가 있었지만 그것은 그림자의 힘에 따라 움직이고 부모님이나 학교에 나에게 부여해준 일종의 가면 즉 '페로조나'로의 '자아'였다고 생각한다.

새로 태어난 '나' 또한 당연히 '페르조나(가면)'로의 성격을 절대 버릴 수 없겠지만 태어났다는 말을 쓰는 이유는 20 살 이후부터 '나'라는 것이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나간 '나'가 아니라 부모 또는 사회 또는 학교가 만들어준 '나'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 출발의 의미에서 그런 것이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나의 정신 전체를 하나의 자동차라고 생각한다면 그 운전수에 해당하는 '나'를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다. 이전의 운전수는 내가 자동차인지 자동차가 나인지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는 운전수였다고 치면 지금의 운전수는 '아,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는 하나의 존재구나'라고 여렴풋이 깨닫고 인지할 수 있는 운전수라는 것이며 그 운전수의 탄생이 20살이후였다고 말하는 것이며 더 엄격히 탄생의 시점을 이야기 하자면 이제 겨우 4~5 살쯤 된 어린이 운전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그 운전수는 아직도 역시 자동차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자동차라는 놈의 영향을 너무나 쉽사리 받는다. 내가 자동차를 통제하고 멋지게 드라이브하고 싶은데, 어떻게 된 노릇인지 자동차가 나를 통제하고 나를 드라이브한다. 그리고 심지어 자동차가 나를 드라이브 하고 있을 때, 나는 내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자동차가 시키는대로 잘도 막 나간다. 내가 타고 있는 자동차는 굉장히 성격이 자유분방해서 길로만 다니려 하지 않고 들판을 여기저기 내키는대로 질주하기 때문에 내가 잘 그 자동차를 통제하고 운전하지 않으면 내가 탄 차는 어디로 달려가서 누구를 들이박을지 알길이 없는 것이다.

어쨌든 내(자아)가 내(자기,자동차) 삶의 주인(운전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아직 운전법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했고, 차를 어느 방향으로 몰아야 할지조차 잘 모르겠으므로, 헷갈리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차가 출발을 했으면 목적지가 있을 것이고 그 목적지까지 잘 달릴려면 지도를 보고 이정표를 보면서 적당한 운전 기술로 제대로 된 길을 잘 달려야 할 터인데, 아직 나에겐 어느것 하나도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다.

한 때는 내가 왜 이차를 몰아야 하나 하는 회의감에 휩싸여서 출발조차 하지 못하고 시동만 걸어놓은채 엑셀을 차마 밟지 못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어찌되었건 1단 기어정도로 출발을 한 상태인 한데... 잘 굴러가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왜 달려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잘 모를것 같다는 생각이지만 내가 가는 곳이 어디가 됐던지간에 운전이라도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큰데... 아직 4 살박이 운전사에겐 부족한 것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누군가 말하길 성공한 사람은 역설적으로 20 대에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런식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 것인가. 어쨌든 많이 경험하고 하나하나 차곡차곡 배워나가야 할텐데, 하고 싶은일들은 너무나 많고 동시에 무엇을 해야할지를 하나도 모르겠다.

능숙한 운전수가 될 수 있을까? ^^

부조리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 2004-11-13

1. 무엇이 문제인가를 따지기 전에 과연 정말 '문제'라는 것이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2. 생명은 그 자체로 가치로운 것이지만 그렇다고 모두의 행동이 똑같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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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세상에는 악한 행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3. 모두가 똑같이 효율적이고 능력이 있으며, 선천적인 배경이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정된 자원으로 모두가 성공하고 잘 살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누군가는 도채되고, 누군가는 나약해지며, 또 누군가는 스스로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단지 그들의 탓으로만 돌리고 욕하거나 수준 낮은 부류로 치하하거나 단순히 불쌍히 여기고 넘겨버린다면 세상의 반 이상은 설자리가 없고 꿈을 잃게 된다. 자신의 능력과 성공에만 더욱더 심취하고 그것을 당연하고 자랑스럽게만 여긴다면 그것은 일종의 자기 합리화이며 약해진 사람들을 무시하려는 생각이며, 동시에 인류애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겠다는, 다시말해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심보이다.

4. 모든 인간은 내것을 지키려는 본능이 있고 남의 침략에 거부감을 가지도록 프로그램 되었있다. 그래서 가난했던 사람이 부자가 되면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을 까맣게 있고 더욱 더 자신의 재화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게 된다. 진보와 보수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것을 지키기 위해 보수적이 되며, 더 나은 인생을 꿈꾸기 위해 진보적이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는 나 혼자의 노력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류애를 신경쓰지 않으면 잘난 나도 언젠가 망하게 되면, 지금의 강대국의 미래의 약소국으로 전략하거나 혹은 나라가 완전히 망해버릴 수도 있다.

5.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우리 인간과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 마찬가지다. 영원할 것 같은 평화의 시대도, 그 평화가 가장 극에 다다랐을 때 그 평화를 위협하는 사상이나 행동들이 생각나게 되는 것이다. 선인들의 피로 만들어진 지금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세상을 보줄 아는 냉철한 눈이 필요다.

슈바이처의 ‘나의 생애와 사상’을 읽고2004-12-01

세상에 '슈바이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어려서 어린이 위인전기에서 읽어본 사람도 많을테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그 이름은 누구나 많이 들어봤으리라.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봉사한 의사, 노벨 평화상을 받은 위인 이라는 정도 이상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것 같다. 기껏해야 그가 신학자였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정도. 나도 슈바이처가 직접 쓴 이 자서전을 읽고 그가 어떤 인물이었으며, 한 인간으로 존경해야 하는 사람인지를 이제서야 알 수있었다. (의대 4 학년 졸업을 앞둔 이 시점서야 겨우)

이 책은 1930 년도에 아프리카에 있을 때 자신의 생애와 사상을 뒤돌아보며 쓴 자서전으로, 이 저서를 남긴 뒤에도 35 년간이나 더 봉사를 하고 90 세의 나이로 65 년도에 세상을 등지게 된다.

슈바이처는 본디 신학도였으며, 어려서부터 파이프 오르간에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였다. 그리하여 이십대에 그는 파이프오르가니스트로서 이름을 날렸고 신학에서도 뛰어난 연구 논문을 발표하여 20대에 교수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의 무려 100쪽 까지는 의사로서의 삶을 결정하기 전 자신의 신학적 연구 성과와 파이프오르간과 바흐 연구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 그는 상당히 권위있는 신학자였으며, 그가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 쓴 '예수 생애 연구사'는 금세기 출간된 신학사중 가장 영향력 있는 책으로 평가받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의 '생의 경외 사상'은 기억날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의 윤리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우리가 고등학교 도덕교과서에서 배운적이 있을 정도다.

슈바이처가 21 살 되던 1896 년 어느 청명한 여름날 아침 그는 다음과 같이 결심하게 된다.

'문득 이러한 행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여기에 대해 나도 무엇인가 베풀어야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러한 생각과 씨름을 하는 동안 바깥에서는 새들이 지저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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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는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조용히 생각해본 끝에 서른 살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해 살고, 그 이후부터는 인류에 직접 봉사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20 살 어느날 아침에 문득 가진 생각을 평생 정확히 실천에 옮겨서 인류 역사에 길이 남게 되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그는 자신의 예언(?)대로 정확히 30 살까지 신학을 공부하여 교수가 되고 파이프오르간 연주자로서 명성을 얻는 위치에 이른다. 그리고 목사로서 사람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설교하는 역할도 일도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새로운 활동은 사랑의 종교에 대한 설교가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고, 의학 지식이 이러한 의도를 가장 훌륭하게 그리고 가장 포괄적으로 실현시켜줄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나이 서른이 되던 해에 자신이 교수로 있던 대학의 의과대학에 등록을 하게된다. 그런데, 그는 이미 교수 신분 이었으므로 교수단의 일원으로서 동시에 학생으로 등록할 수가 없게 되자. 청강을 하게 되고 대학 당국이 청강생에게도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허가해 주어서 의과대학을 마치게 된다. (교수들이 자기네 동료라고 모든 강의를 무료로 듣게 해주었다.)

의과대학에 있으면서도 계속 교수로서 신학 강의를 하고 매 주일마다 목사로서 설교를 한다. 더 나아가 수시로 파이프 오르란 연주회를 다니면서 부수입을 올리게된다. (의대 공부하면서 과외하나 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예수 생애 연구사'라는 저서도 완성한다.

1912 년 봄 그는 자신의 사상을 실천으로 옮기고자 아프리카로 떠나기 위해 대학 교수직과 교회 목사직을 내놓았다. 그는 자신이 한동아 몸받쳤던 일들을 그만두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 아프리카로 떠날 때까지 교회와 대학 옆을 지나다니는 것을 피했다고 한다. 그는 병원에서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로 가서 랑바레네 라는 병원을 짓는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환자를 보는 틈틈히 자신의 '생명 경외 사상을' 책으로 남기기 위해 '문화 철학'에 관한 저작도 병행하고, 누군가 보내준 피아노로 오르간연습도 계속하게 된다. 그러다 세계 일차대전이 발발하고 그는 포로의 신분으로 본국으로 소환되고 한동안 포로로서의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포로 신분이 풀리자 그는 또 아프리카로 달려가게 되고, 그의 아프리카에서의 헌신적이 봉사활동은 90 세까지 지속되어 그의 생을 아프리카 그의 진료소에서 마감하게 된다.

이 책에서 내가 특히 관심있게 읽은 부분은 자신의 사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는 당신 만연해 있었던 회의주의 염세주의 사상에 역으로 회의를 느낀 듯 했다. 그래서 보편적 의지와 윤리적 의지의 밑바탕이 되는 세계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그것은 "윤리적 세계 긍정 및 인생 긍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세계관을 타당성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고의 근거를 찾기위해 아프리카에서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끝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실천적인 행위가 사고를 형행하게 되듯, 아프리카에서 한참 봉사하는 어느날 문듯 그는 "생의 외경"이란 말을 떠올리고 자신의 세계관을 설명할 수 있는 도대를 마련하게 된다. 물론 그는 평생동안 이어지는 자신의 행동 자체로 자신의 사상을 완벽하게 설명하고 증명해 보이게 된다.

그의 말을 들여다 보면...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둘러싸여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

"모든 생명은 쾌락을 동경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생명의지가 있다."

"인간의 자신의 생명 의지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된다."

"생명 의지를 생명 부정 의지로 변화시키려 든다면 그는 다시 모순에 빠지고 말것이다. 그는 부자연스럽고 스스로 진실하지 못하고 실행 불가능한 것을 자신의 세계과과 인생관으로 삼는 결과가 되록 말 것이다. 인도 사상이나 쇼펜하우어의 사상은 모순 투성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상은 여하한 세계 부정과 인생 부정에도 불구하고 존속해나가는 생명 의지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양보를 해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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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때문이다. 생명 의지의 부정은 실제로 육체적 생존에 종지부를 찍으려 할 때에만 자시 모순에 빠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런 슈바이처의 사상은 굉장히 멋진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회의주의를 극복해 보려는 나의 작은 노력에 큰 영감을 불러일으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생명 경외 사상을 자연의 모든 생명체에도 확대 해서 생각하였는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생명체 사이에 보편타당한 가치 구분을 설정하려면 결국 우리들의 감정에따라 어떤 생명은 우리들에게 가깝고 어떤 생명은 멀다고 판단하게 마련인데, 이것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척도에 불과하다. 다른 생명체가 그 자체로, 그리고 우주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아는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아무도 없다."

어제 텔레비젼에서 중국에는 계급에 따라 먹는 식당이 다르다는 것을 보도한 프로그램을 보면서 '우주 속에서 생명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안는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아무도 없다.'는 그의 말이 많은 생각에 도움을 주는 것 같다. 계급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그래서 그는 한 생명이 다른 한 생명을 어쩔 수 없이 죽일 수밖에 없는 경우는 매우 신중히 생각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심지어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여 균을 죽여야만 한다는 데 대해서도 반성을 하였다고 할 정도다.

그리고 그는 어거지로 믿음을 강조하고 그냥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끊임 없는 사유로서 자신의 사상의 당위성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그는 생명체의 생명의지 때문에 필연적으로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게 되는 경우를 인정한다. 그러나 생에 대한 외경심을 항상 생각하면서 피할 수 없는 경우에만 생명을 해치거나 죽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가 자신의 '생명 외경 사상'을 단순히 '인정'에 호소 하거나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는 절대원리에 기대어 설명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은 이 책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책의 말미에서나 되야 겨우 등장하게 된다는 아이러니한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단지 '사랑'이라는 단어의 힘에 기대에 자신의 사상을 설파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자신의 사상의 근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으며, 그것을 경험으로 깨닫고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하여 아프리카에 자신의 몸을 헌신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남기기 위해 항상 글을 쓰고 원고를 다듬었다. 사상과 실천의 합일인 것이다. 그는 실천이 따르는 사상이 진짜 사상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설파한 셈이다.

또한 그는 파이프오르간 연주와 강의등으로 받는 수입으로 자신의 생활을 연명하였으며, 재물에 대한 욕심을 저술에 대한 노력으로 바꾸었는데, 단순한 착한 의사 이상의 학문 하는 사람으로서의 본보기를 세상에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상 머리앞에서 백날 고민하는 것은 공허한 탁상 공론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체게바라'에 이어 읽은 '슈바이처' 또한 나에게 많은 생각의 꺼리를 던져준다. 국가 고시를 앞에 두고 벌이는 기이한 독서 행각이 나의 앞으로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될꺼라는 어렴풋한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갈피를 못잡던 화두를 정확히 문장화 시킨 후 실천을 통해 그것을 하나하나 구체화 시켜나가야 겠다. 현실에 바탕을 둔 철학만이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항상 자각하면서...

장코르미에의 ‘체게바라 평전’을 읽고2004-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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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사가 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휩싸여 있는 요즘, 앞으로 삶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어느날 내 방 책꽂이에 꽂아져 있던 '체게바라 평전'을 발견하였다. 전에 사뒀다가 앞에 조금만 읽고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던 책이었는데 이 책이 다시 나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데는 어떤 의미라도 있는 것일까? 미래에 대해 혼자 이런저런 생각 해봤자 소득이 없을 것 같아서 남들은 어떻게 살았나 알고자 하여 책을 읽기 시작하였고, 이외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체게바라 역시 의대생이었고, 요즘 개봉한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에서 그린 것처럼 8 개월 동안 친한 의사 형과 함께 남미를 낡은 오토바이로 여행하게 된다. 그리고 남미의 하층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게 된 그 여행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게 된다. 혁명을 통해서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에 동참해 그것을 성공시키는 주역이 된다. 혁명이 성공한 후 쿠바 국립은행 총재와 산업부장관을 지내게 되는 그는, 명예와 권력을 과감히 떨치고 또 다른 혁명을 실현시키기 위해 아프리카 로 떠나고 콩고에서 게릴라전을 펼치고 볼리비아에서 까지 투쟁을 하지만, 그의 혁명은 실패로 끝나고 미국 CIA 에 의해 총살 당하게 된다.

나는 그의 사상을 공부하려 책을 펼친 것이 아니므로, 혁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고 한 인간으로서의 '체 게바라'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지독한 독서광인 그는 전쟁의 한 가운데서도 밤 늦은 시간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온갖 철학서와 사상서를 탐독하면서 정신을 항상 투명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의 하루하루를 빽빽하게 일기장에 기록하였다. 그리고 교육을 굉장히 중요시 여겨서 틈틈히 자신의 부하 군사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사상을 교육시켰으며, 전쟁중에도 의사로서의 인술을 마을 주민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기도 한다. 또한 스스로 배움을 항상 갈망하여, 쿠바 국립은행 총재 시절에 몇년동안 하루에 두 번씩 꼬박꼬박 수학교육을 배웠다고 한다. 총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도 펜과 책을 놓지 않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삶의 자세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책을 덮고난 후, 당연히 나는 나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들. 너무 작은 것에 얽매이지 말고 크게 생각하고 넓게 바라보며 깊이 생각하고 멋지게 상상하며 용기있게 행동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세상에 작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학으로서의 의학에 얽매이지 말고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인류로서의 인간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의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인류학, 철학, 역사, 심리, 문학, 예술등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모든 방법에 관심을 가지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고, 그리고 언젠가 행동할 수 있을 때를 위해 나를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체게바라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으며, 의학이라는 학문 보다는 인간 자체에 정이 더가고 오만가지에 관심이 많은 나의 능률적이지 못한 성격에 조금은 자신감을 가지기로 했다. 분명 세상에는 질병을 고치는 것 이상으로 가치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에 대한 통잘을 얻고 행동 할 수 있게 되기를... 물론 나는 일단은 병원에서의 수련을 통해 인간의 생리와 질병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생각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느냐 아니냐는 천지차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생각과 사상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큰 힘을 가졌으므로...

테드알렌의 ‘닥터 노먼 베쑨’을 읽고2004-12-10

계속 읽고 있으면 나랑 너무 비교되서 부끄러운 내 모습을 다시 쳐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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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쑨도 의대다닐 시절과 군대를 마치고 갓 개업을 했을 당시에는 겉 멋 내기를 좋아하고, 미술작품 사는 것 좋아하는(본인이 미술의 달인) 매우 고상한 부류의 사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외과 의사의 꿈을 꾸어왔으며 그것을 실현시키게 된다.

그러나 그는 원래 의학이면 의학 하나만 파는 성격이 아니라 이것저것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 성격은 매우 나와 흡사하다.) 군대 시절과 얼마간의 해외 여행을 통해 많은 경험을 하고 사회의 불합리함 불평등함을 목격 했다고나 할까? 자신이 처음으로 개업하는 병원이 때마침 사창가 근처에 위치하고 있어서 직업 여성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병원 환자들의 대부분이었고 그는 그들을 평등하게 대우하고 치료한다.

그의 수술 솜씨가 여기저기에 알려지고 의사들이 그를 자기네 편에 끼워주면서 베쑨은 돈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게 되는데, 그러면서 돈을 많이 벌기 시작하게 된다. 그는 이전의 자기 생활과 부자 환자들을 받으면서 돈 많이 버는 자신의 모습에 굉장한 괴리감을 느끼면서도 아착같이 돈을 번다. 그러다 폐결핵으로 몸은 거의 회복 불능의 상태로까지 망가지게 되고, 그는 1 년 동안 결핵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마지막 인생을 정리하려 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났다면 위대한 의사는 역사에 모습을 나타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는 환자로 요양원에 있으면서 최신 저널에서 인공 기흉술로 폐결핵을 치유하는 수술법을 읽게 된다. 그 때까지의 의학계에서는 아직 제대로 인정되지 못하는 시술이었으나, 그는 그 시술이 많은 결핵 환자들을 퇴치 시켜줄 수술이라고 확신하고 본인이 그 수술을 자청해서 받게 되고 기적처럼 완치한다. 그리고 그는 새로 태어난다.

일반 외과 의사에서 흉부 외과의사로 종목을 바꾼 그는 끊임없이 결핵 수술법을 개발하고 수술 도구를 개발해서 그 분야에서 상당히 권위있는 의사가 된다. 그 때 그의 나이는 이미 45 세 정도 였으리라. 그런데, 그는 아무리 자기가 환자들을 수술해도 결핵 환자들이 더 많이 생긴다는 점에서 상당한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가난이 문제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한 명을 치료하면 10 명의 새로운 환자들이 생겨 나는데, 그들은 대부분 돈이 없어서 제 때 치료를 받으면 문제가 없을 사람들 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수술방에서 자기 일만 열심히 한다고 세상의 병들이 퇴치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의료 구조 개편 작업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 무렵 러시아로의 여행이 그의 삶을 또 다시 한번 바꾸게 되는 것인데, 러시아에서 시행 되고 있는 의료보험에 상당한 영감을 받게 되고, 국내에서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알리는 활동들을 하며 국민보건 체계 확립을 위해 힘을 쓰게 된다.

이것저것 관심 많은 그 답게 그는 정말 많은 일을 했는데,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빈민가의 어린이들은 그림을 그려볼 기회도 얻지 못한다는 점을 안타깝게 생각해서 가난한 아동들을 위한 미술학교도 설립한다. 그리고 파시즘에 항거하기 위해 그의 모든 부와 명예를 과감히 떨치고 전쟁이 한창힌 스페인으로 떠나게 된다. 스페인에서 그는 전시 의료 역사를 개척하게 된다. 그리고 중국으로 날아가 항일 투쟁에 참여하게 되고, 중국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직접 책을 읽어보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꾸는 결정들을 한번도 아니고 여러번씩 과감히 하면서 휴머니스트 의사로서의 삶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노력했던 그의 인생이 영화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리고 당연히 나를 되돌아 보게 된다. 남 하는거 흉내 낼 필요는 없겠지만, 훌륭한 사람은 본받아 조금은 모방해보려는 시도를 해 봐도 좋지 않을까?

앨리어트 레이턴의 ‘국경없는 의사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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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15

얼마전에 인터넷을 뒤지다 '국경 없는 의사회'에 대한 책을 발견하고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읽었다. 요즘 어떤 의사가 되어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요즘 국시 공부하면서 틈틈히 읽는 '체게바라' 평전이나 '국경 없는 의사회'같은 책들이 삶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다.

이 책은 한 명의 사진가와 한명의 인류학자와 한 명의 예술가가 벌인 난상토론의 결과로 쓰여진 책이며, 그들이 직접 아프리카 르완다의 국경없는 의사회 (이하 MSF)의 진료현장에 가서 보고 듣고 겪은 경험과 자신들의 생각을 책으로 쓴 것이다. 이 글을 쓴 저자들이 갔던 '르완다'라는 나라는 내가 중학교 1 학년이었던 1994 년, 한 종족이 다른 종족 수십만 명을 벌채용 칼과 도끼등으로 살육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곳이다. 그 때 피난갔던 사람들이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들어오고 있는 시기에 그들은 르완다에서 벌어지는 일을 목격하고 책을 쓴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다음 세가지의 의문에 대한 어느정도의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1. 국경 없는 의사회의 의사들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하는가?2. 어떤 생각으로 일을 하는가? 3. 인도주의 단체들은 과연 도움이 되는 것인가?

첫째로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 의사들은 생각 보다 훨씬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고된 노동을 기본적인 생계비와 빵 몇쪽으로 버티는 사람들이었다. 책의 내용을 보면...

' 대개의 경우, 이들은 긴급상황에서 말라버린 토스트와 커피 한 잔으로 아침식사를 때우고 저녁식사도 급하게 해치워야 한다. 밤에는 겨우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다음 날도 변함없이 또 한잔의 커피와 어제보다 더 말라버린 토스트로 허기를 때운 채 업무를 시작한다. 비행기표, 숙소와 음식, 그리고 몇 백 달러의 쥐꼬리만한 MSF 월급이 보상의 전부다. 이들이 말라리아에 걸리거나 설사로 고통받는 일은 흔하다. 실제로 이 때문에 한 달에 세 명은 캐나다로 송환된다.' p67

그리고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가장 신속하게 현장에 파견되어 실제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프리카에 파견된 다른 구호 단체들보다 한발 앞서 사건이 발생한 지역에 파견되어 구호소를 만들고 구덩이를 파서 화장실을 만들고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 구호 작업을 벌인 후, 사태가 어느정도 수습되면 뒷일은 다른 구호단체에 맡기고 또 다른 분쟁지역으로 그들의 시설을 옮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언제가 가장 필요한 곳에 있게 되며, 동시에 가장 위험하고 긴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둘째 MSF 소속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결코 선척적으로 착하거나 선하거나 군자 스타일이라서 그런 힘든일을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고 작가는 말한다.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가보면..

' 실제로 그들이 MSF 에 동참하게 된 동기를 들어보면 천차만별일 뿐 아니라 지극히 세속적이기까지 하다. 취직이 안 돼서, 혹은 취업 대기중이었거나, 틀에 박힌 생활에 대한 저항으로, 모험과 좀더 의미 있는 일에 대한 갈망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보니 몇몇은, 산업화되고 안보가 철저한 나라에서 권태로움을 느낀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입힌 새디즘적인 상처에 환자용 변기와 붕대를 제공하고 약을 조제하고 처방하는 삶을 그리워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일을 한다고 말하거나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봉사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조금은 스스로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이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즐기고 싶어서 나의 발전을 위해 좀더 의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또는 그냥 많이 경험해보고 싶어서 라고 말하는 편이 더욱 정직한 설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로 이 책에서 인터뷰한 의사들중 어느 누구도 자신을 성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듯 하다. 지루한 일상에서 탈피하기 위해 MSF 에 지원을 하게 되고, MSF 특유의 신속한 일처리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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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심지어 사흘만에) 아프리가 내전의 중심에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면 이미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도착한 그 순간부터 무언가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일이 넘쳐나서 내가 뭘 해야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는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시작은 작았더라도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직접 두눈으로 경험하고 자기가 그런 사람들에게 당장 무엇인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때 봉사 활동에 중독이 되는 것 같다. 즉 행동이 먼저 있고, 해석과 감상은 뒤 따라 오는 것이다.

셋째로 그들은 구호활동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들의 활동 목적이나 존재 이유에 대해 자문하고 토론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내용이지만, 인도주의 산업이 항상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닌 듯 싶었다. 책 속으로 다시 들어가보면..

'인도주의 산없에 대해 가장 혹평을 하는 비평가들은 인도주의적 원조활동이 비공산 선진공업국들의 정치 조작을 은폐하는 연막탄과도 같은 정치기능을 수행하다고 비난한다. 이런 기능 때문에, 부유하고 산업화된 국가의 권력들이, 실상은 기여하는 바가 매우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제 3 세계의 혼란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원조활동의 가면놀이는, 프랑스나 미국 같은 황제의 지위에 있는 나라들이 자국의 지정학적 야망을 만족시키는 데 적합한 피폐한 나라를 택해 여론을 조작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럴 때 그들은 흔히 개화시켜준다는 미덕을 앞세운다.' p183

'...문제는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가는 구호품을 관리하는 이들이 주로 난민캠프를 통제하는 군벌들이다 보니, 이들에게 원조기구로부터 오는 식량과 약품이 강탕당한다는 것이다. 군벌은 원조기구의 활동가들을 제 1 세계에서 보낸 밀정으로 간주하는가 하면, 자신들이 식량과 약품과 식수를 제공받는 방편으로 이용할 뿐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 난민들을 캠프에 몰아넣고 자신들과 똑같이 약탈을 일삼는 라이벌에게 대항하는 인간방패로 활용하기까지 한다. 그러니 지원을 중단하고 고통받는 난민을 지켜보거나, 지원을 하고 살인마 같은 군벌만 돕는 꼴이 된다.'

집단 간의 도덕을 논할 때는 한 집단에서 도덕적인 행동이 다른 집단에서는 악이 될 수 있음을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한다. 함부로 스스로 착한 일이라로 어줍짢게 벌이는 행동들이 큰 화를 자초할 경우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점점 단순한 직감으로 파악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해지고, 도대체 어느편을 들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으리만큼 다양한 의견과 가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속에서 완전한 중립 내지는 도덕적 투명성을 가지고 MSF 에서 하는 것과 같은 구호활동들을 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래도 그들은 차마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다고 하면서 구호활동을 나서게 되고, 살육을 현장을 목격하고 세상에 알리는 것만이라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1994 년 르완다에서 대량 살육이 벌어질 때, UN 의 정책 결정자들은 고급호텔에서 함께 모여, 고급 서양식 식사를 즐기면서 UN군을 파병할지를 논의 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간의 이해관계가 얼키고 설키면서 시간을 흘러가고 6 개월이 지나 몇몇의 군사를 보냈을 때, 이미 6 개월이라는 시간의 수십만명의 대략 학살이 말끔히 끝내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고 한다.

이 때, 가장 정치적인 색깔은 띄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MSF 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논의를 하고 앉아 있을 시간에 바로 의사들을 파견하고 한명의 사람이라도 더 살릴려고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그 노력이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프리카의 수많은 전염병들은 컨트롤 하기위해서는 아프리카에 서구 문명 사회의 수도 시설이 건설되어야 하고, 그것은 엄청난 자본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일은 아프리카에서 당분간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그들에게 음식을 항상 익혀먹게 하고, 깨끗한 물을 마시게 교육시키는게 의미가 있을려면 그런 시설이 이미 갖추어져 있어야 하고, 음식을 익혀먹을 수 있는 연료를 구할 능력이 그들에게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MSF 의사들의 자신들의 서양식 진료활동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지만, 당장 지금 이순간에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무엇인가 행동해야 하기에 그들은 세계의 고통받는 사람들의 찾아 고행을 자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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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게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의 독서에서 배우는 것은 이제는 생각보다는 행동할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슨 과를 택해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는 더 고민해 볼 문제~ ^^

'노먼 베쑨'과 '슈바이처'에 관한 전기도 사서 읽어봐야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으며, 남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아는 것이 방향 잡는데 도움이 많이 되는 듯 싶다.

스펜서 존스의 ‘선물’을 읽고2004-12-20

도대체 항상 삶이 의미없게만 느껴지고, 항상 무언가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는것 같이 느껴지는 사람. 뭘해도 잘 되지 않는 것 같고, 나만 항상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같으며, 삶이 능동적이지 못하고 수동적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다음의 책을 읽어봐도 좋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작가 '스펜서 존슨'의 '선물(The Present)'이란 책이다. 내용은 참 단순해서, 결국 요약을 하자면... 소명을 갖고 살면서바로 지금 일어나는 것에 집중하고 바로 지금 중요한 것에 관심을 쏟아라.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돌아보고, 그것에서 소중한 교훈을 배우며, 지금부터는 그와 다르게 행동하라. 멋진 미래의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리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계획을 세우고 지금 그 계획을 행동으로 옮겨라. 가 되겠다. 너무나 뻔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삽화를 읽으면서 마치 지금의 나를 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나는 항상 내 삶에서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삶을 좀더 채찍질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의 결과는 보잘것 없는 것이었고 (적어도 그렇게 느껴졌으며) 나는 항상 미래의 어느 순간의 잡히지 않는 꿈을 위해 현재에 중요한 것들을 쉽게 놓치고 집중하지 않고 흘려보내기 일수였다. 실습을 돌면서도 그 실습 과정에 집중하지 않고 항상 머릿속에는 딴 생각이 가득하고 무언가 더 중요한 일이 있을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과제물도 건성건성하기 일수였고, 수업시간에도 공상으로 항상 교수님의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고 나만에 세계로 빠져버리는 때가 많았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미래의 어느 순간에 존재하고 있을것만 같이 생각되었고, 그에 비하면 지금의 수업이나 병원 실습은 그닥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그에 응당한 결과를 받았으며, 그 결과에 나는 좌절하고 나의 능력을 스스로 낮추어 보면서 체념하기 일수였다. 그러나 요즘 삶에 자신감을 가지기로 노력하기로 하면서 세상이 조금씩 달리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런 찰나에 읽게 된 책이 바로 이 '선물'이라는 책인 것 같다. 이 책에서 말한대로 생각해보면 나의 과거는 나의 비관적인 생각만큼 그리 나빴던 것은 아니며, 나 나름대로 열심히 삶을 이해하기 위해 보냈던 노력과 시행착오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시간들을 되돌아 볼때 분명 그리 나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그런 혼란의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혼돈의 시간속에서 효율성이 저하되어 수많은 삽질과 비효율적인 시간 낭비 비스무리한 순간도 많이 보냈겠지만서도 그 또한 현재와 미래를 위한 교훈으로 삼아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의 현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어지러운 현재가 아니라, 어렴풋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자 그야말로 가장 소중한 '선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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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공부할 때는 과거의 실수나 미래의 불확실감은 저만치 비껴둔채 공부 그 자체에 최선을 다하면서 즐기면 되고, 식사시간이 되면 공부에 대한 생각은 깔끔히 접고 맛있게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가끔 머리가 아플때면 교정을 거닐면서 다른 생각 접어두고 그 분위기를 즐기고 긴장을 풀면 하루가 풍요로울 것이다. 물론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항상 의도하고 있다면 조금씩 그러한 생활을 몸에 익힐 수 있게 되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멋진 미래를 마음속에 그리는데 시간을 투자한 다음, 그 미래를 현실과 시킬 수 있는 구체적인 일들을 바로 오늘 이 순간에 실행에 옮길 수 있다면 언제간 나는 분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바로 그 일의 중심에 들어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는 너무 불안해 하지 않으련다. 미래에 대한 너무 많이 생각하면 '불안'이 나를 못살게 굴고, 과거에 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하면 죄책감과 패배감이 내 몸을 지배한다. 그런 좋지 못한 생각들은 내 몸을 항상 긴장상태에 있게하고, 그러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좀처럼 relax 가 되지 않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다.마음에 여유를 가지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언제가 그런때가 오겠지 하고 살아서는 절대 평생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 마음을 크게 가지고 여유를 누릴 수 있어야, 미래에도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미래에 언젠가는 내 삶도 훨씬 행복해지는 날이 올꺼라고 생각하지만, 왜 그 날을 지금 바로 이 순간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마음 가짐에 달려있는 것일텐데... 어쨌든, 남눈치보고 남들이 정해놓은 길에 나를 맞추려 하면 항상 긴장이고 여유없는 생활이다. 자신감있게 나의 기준을 정하고 내가 정한 길, 내가 꿈꾸는 미래를 위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도가 좀 트인다면 여유로우면서도 효율적으로 현재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행복은 바로 지금 순간에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일어나도 온몸에 힘을주고 잔듯한 기분... 이제는 더이상 느끼고 싶지 않다. 나도 내 삶의 당당한 주인이 되어 멋진 미래를 현실로 만들어 보련다

인턴 시작한지 일주일째2005-02-24 심부름 하러 밖에 나왔다가 게임방에서 시간떼우고 있다. 일주일 내내 병원에 있으니 슬슬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대낮에도 어두침침한 인턴 숙소에는 수십개의 침대가 놓여져 있으며 밤이 되면 아무 침대에나 굴러 들어가서 잠을 청한다. 그런데 밤 새도록 계속 여기저기서 삐삐 소리가 울려퍼지고 새벽 5 시쯤 되면 온갖 알람소리가 알람 박람회를 방불케 하기때문에 잠이 그닥 깊게 들지는 않는 듯 하다. 그리고 새벽에 콜을 많이 받아야 하는 과 인턴 같은 경우는 가운 입은채 잠을 자는 경우도 많으므로 아무래도 집에서 자는 것 만큼은 깊게 자기 힘들다.

이번주는 '에당(에브리데이 당직)' 이므로 계속 병원에서 생활을 하고 다음주부터는 하루나 이틀 걸러서 한번씩 저녁에 집에 갈 수 있다. (퐁당퐁당이라 부른다.) 그래도 인턴은 하루걸러 한번은 집에 가지만 레지던트 1 년차는 첫 한달은 무조건 병원에서 살아야 하고 (과에 따라 다르지만) 그 다음부터는 1 주일에 한번씩 집에갈 기회가 주어진다. 새벽 5 시 반쯤에 알람소리에 잠을 깨고 잠시동안 앞으로 이보다 더 힘든 생활을 수년간 해야겠군... 하는 생각을 2초정도 해보지만 금새 당장 해야할 산더미 같은 일 때문에 침대를 박차고 뛰쳐나가 고양이 세수를 하고 병원을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그러면 당장 해야할 일들을 욕 안먹고 할 생각만으로 긴장되므로 피곤하단 생각할 여유도 없다.그렇지만 한숨 돌리고 밥이라도 먹을 시간이 주어지면 몸이 슬슬 나른해지고 피곤이 몰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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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금방 다시 어딘가서 콜이 오고 또 다시 병원을 뛰어다니면 몸속 혈관에 스트레스에 무뎌지고 긴장감을 높이게 하는 호르몬이 분비되어 피곤도 잊은채 병원을 뛰어다닌다. 이것이 보통의 인턴과 레지던트 1 년차의 생활이다.

5 일만에 심부름 한다고 병원 밖을 나와 바람을 쏘이니 추운 날씨지만 기분이 상쾌하다. 의사의 일은 지금같은 현대 사회에서도도제식으로 교육되는 비중이 엄청 크므로 바로 윗년차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 세우고 시행 착오를 겪으면서 일을 하나하나 배워나가게 된다. 그리고 1 년 2 년... 시간이 지나고 5 년 후 4 년차가 끝날 즈음에는 어느 정도 의사로서의 일에 자신감과 긍지가 생기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될 미래를 바라보고 지금은 그냥 배우는 자세로 뛰어다닐 뿐이다. 머리로 하는 생각은 잠시 뒤로 미룬채...

녹초가 되다. 2005-03-10 새벽 6 시에 눈을 뜨자마자 까운 걸치고 뛰기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 2 시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점심, 저녁 먹는 20 여분씩을 제외하고는거의 한숨도 쉬지못하고 병원을 뛰어다녔다. 상당히 지칠만큼 힘들었는데 몸에서 정말 스트레스를 이기게 해주는 내인성 몰핀같은 호르몬들이 나오는가보다. 어떻게 어떻게 하루는 지나갔고 그러나 그 20 시간 동안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살고 있다. 일이 손에 익어가고 있다는 느낌만이 차곡차곡 쌓아져갈 뿐이다.월,화,수,목 정말 바빴다. 발바닥에는 몇개의 물집이 생기려한다. 그리고 무릎관절이 닳아가는 느낌과 종아리 근육의 피로가 회복되지 않고 항상 저리다. 얼마나 많이 걷고 뛰고 서있는지 내 머리는 기억 못하지만 몸이 용케 기억해내면서 신호를 주고있다.

오늘은 저녁 9 시가 다 되어 일이겨우 끝났고 오프를 받고 집에 오기 위해 필사적으로 마지막 일들을 헤치웠다. 집에 가봤자 낼 아침 5 시전에 일어나 다시 병원에 가야하지만 그래도 집에가는 버스안의 느낌이 왠지 좋아서 짐을 싸들고 집에 온다. 아침에도 버스를 타고 서 새벽을 뚫고 출근하는 기분이 좋아 집에 간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제발! 출퇴근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참 좋으련만..

어제는 동맥혈 채혈을 실패했으나 서글퍼할 여유도 없이 또 다른 일에 바빴다. ABG 결과가 VBG 로 나온 것을 확인하는 순간의 당혹함이란... 말로만 듣던 VBG(동맥 채혈 실패로 정맥이 채혈된 것)를 내가 해버렸다! 이렇게 하나씩 배우는 거겠지~

하루 이틀 지나면서 흐름이 보이는 듯한 느낌은 꽤 좋다.

현대사진을 보는 눈 - 한정식2005-03-13

일요일에는 병원에서 할일이 별루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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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방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요즘에 읽은 책은 전에 읽었던 '사진 예술 개론'을 집필한'한정식'이라는 분이 쓴'현대사진을 보는 눈'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사진의 역사를 크게19 세기 사진근대 사진현대 사진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19 세기에는 회화로의 사진이 유행하던 시기로 사진의 암흑기라 불렸던 시대고근대 사진은 휴머니즘적인 시각으로 인간사를 기록하는 사진이 유행하던 시대라고 말한다.

현대 사진은 탈 휴머니즘 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굳이 아름답고 따뜻한 시각으로 보려하지 않고있는 그대로 선악의 가치판단을 배제한체 바라보려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이 예술로서의 '사진'인가를 논하면서나에게도 무엇을 찍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아이디어를 주었다.

사진은 현실을 영상화한 것이 아니라작가의 이미지를 현실화 시키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아니라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해석인 것이다.

따라서 현대사진에서는 사진에 나타난 구체적 사물의 외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그 형태 너머에 있는 숨어 있는 의미가 중요하다.

그러나 구체적 사물이 핀트가 선예하게 맞을 수록오히려 개념에 앞서 사물 자체가 선명한 형태로 앞을 가로막으므로그 너머에 있는 작가의 해석을 읽기 어려워 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현대 사진은 추상화 되고 있는데추상이라는 것은 초점이 안맞고 사진기를 일부려 흔들리게 해서모호하게 찍은 것이 절대 아니라고 말한다.그것은 사진과 회회를 착각하는 것으로 사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초점이 흐리거나 떨린 사진이 추상사진일 수 없는 것은 기계적 조작에 의해 상이 왜곡된 것이지 사물의 외형에서 추출되어 걸러진 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또 다시 나의 '진리'에 대한 생각을조금 풀어놓지 않을 수 없다.

왜 태어났고왜 살고 죽으며왜 세상은 이 모양이고왜 우리는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면서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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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세상의 비밀에 대한 진리에 대한 이야기세상의 그 누구도 '진리'가 무엇인지 말할 수 없지만또 누구라도 그리고 그 어떤 생명이라도 아니 무생물이라도진리에 의해 존재하며 그 자체를 그 속에 품고 있는 바로 그것.

이성으로 판단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려하면마치 세게 잡으려 할 수록 도망가는 손안의 미꾸라지처럼 잡히지 않는 그것은감성의 눈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내비칠 수 있다는 것이나의 진리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이다.

내가 사진을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아무리 세상이 아름답다거나 살만한 가치가 있다거나 혹은 그 반대라고 이야기 해봤자공해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바로 그 것을언어나 이성의 도구를 거치 않은채 바로 셔터를 누름과 동시에내 마음의 이미지를 사진 한장으로 잡아내는 바로 그런 작업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에게 있어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사진을 통해 내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찍은 사진을 통해 내가 느끼고 깨달은바로 그 진리와 닿을지도 모르는 어떤 '상'을 찍어내어그 사진으로 부터 내 속에 있는 그 무언가를 깨닫는 작업인 것이다.

내 마음이 바라보고 내 시선이 향하는 대상을 통해'why'에 대한 해답을 찾는 그런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진을 찍을 때는좀더 마음이 향하는 것 이성으로 말할 수 없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직히는 것이 어떤 평가를 받거나 어떤 룰에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에 대해서는의식적으로 신경을 덜 쓸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사진을 찍을 수 없지만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거나병동을 걸으면서 어떤 장면에서 시선이 멈출 때내 마음이 무엇인가를 포착하고나에게 세상의 비밀을 한 조각 알려주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진을 왜 찍느냐면 할 말이 별루 없지만대충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간이면 누구나 '왜'라는 질문을 품고 그것을 알 고 싶은 욕망을 가진다. 그런 욕구를 해소하고자 예술이 탄생했다. 나는 사진이라는 도구를 통해 내 안에서 이미 알고 있는 진리의 모습을 언어와 이성을 통하지 않고 살짝 끄집어 내어 그 모습을 보고 하나 둘씩 형상화 하고 그 형상화된 이미지를 통해 거꾸로 나를 알고 세상을 이해하고 진리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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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어쨌든 많이 찍을 기회는 적지만이 책도 두어번 더 읽어보고다른 서적도 접해보고무엇보다 병원 생활을 통해많이 느끼면서내 속에서 드러내려하는 그 무엇의 정체를 좀더 확실히 하는 작업을 조금씩 해야겠다.

그러나 역시사진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매우 선문답적인 질문이어서항상 화두로 잡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사진을 통해조작되지 않고꾸미지 않은 내 속의 무언가를 끄집어 내는 작업을계속 진행시켜 보련다.

한밤중의 사투2005-03-22 어제는 월요일이었고 새벽 5 시 50분 부터 시작해서 또다시 새벽 2 시 30분까지 죽어라 뛰어다녔다. 그 와중에 건지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제 저녁 재활 카운터 콜이 울린 후 2 시간여 시간이었다. 이비인후과는 매주 화요일 아침에 레지던트들이 케이스 프리젠테이션을 하며 미리 준비할 수 없도록(?) 손을 쓰는 건지 어쩐건지 그 발표할 케이스는 전날 오후 늦게나 알 수 있어서 새벽까지 발표준비와 평소 해야하는 일들이 겹쳐서 죽어라 바쁜 날이 바로 월요일이다. 레지던트가 바쁘면 잡일하는 인턴도 덩달아 바빠지는 법.

한참 바쁘게 여기저기를 뒤어다니고 있을 밤 11 시 무렵 나의 카운터인 재활 콜이 울렸다. ABG(동맥혈 채혈)를 하라는 병동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순간 긴장 되었으나 긴장할 여유도 주지 않기위해 속으로 잘할 수 있다고 외치면서 병실로 달려갔다. 근데 이게 왠일인가 병실에 들어갔더니 간호사들이 할아버지를 에워싸고 있었고 산소포화농도가 60% 대로 떨어져서 응급상황이 상태였다. 두시간 쯤 전에 측정한 혈당이 60 정도로 떨어져 있는 상태였으나 간호사들은 레지던트에게 제대로 노티를 하지 않고 그냥 밥 드시라고 하는 정도로 상황을 넘길려고 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혈당도 낮은데 흡인성 폐렴이 생겨 기도가 분비물로 가득찬 것이 saturation 이 떨어진 원인 같았다.

나는 어리버리 내 할일을 하기위해 femoral artery(넙적동맥?-_-)의 맥을 잡으려 시도를 했으나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으므로 한참을 버벅대는데 재활의학 1 년차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 선생님이 ABG 를 성공하였고, 나는 능숙한 간호사들이 할아버지에게 산소를 달아주고 코속으로 suction(흡입)하는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다 병실을 나왔다.

아무것도 모르고 할 수 없어던 내가 참 한심해 지면서 터버터벅 인턴방으로 들어와 쉬고 있으니 다시 콜이왔다. 엠부를 잡으라는 콜이였다. 잽싸게 달려가니 내과에서 intubation(기관삽관)을 하러오는 동안 내가 할일은 엠부를 짜서 환자에서 산소를 공급하는 것이었다. 내가 엠부를 자는 동안 saturation 은 85%이상 유지되었다. 그러나 내과 선생님들이 나타나서(내과에서 intubation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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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지 첨 알았다.) 기관삽관을 시도하기 시작하고 계속 실패하면서 saturation 이 60% 대까지 떨어지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이러다 내 눈앞에서 큰일이 일어나겠다 싶었다.

계속 침대에 누워 있으니 흡인성 폐렴이 급성으로 생겼고 분비물이 기도를 막아서 saturation 이 급속도로 덜어지는 상황인 것 같았으며원래도 기도에 문제가 있어서 trachotomy 를 한 상태였던 분이었으므로 더욱 intubation 은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정신이 상당히 온전한 상태였으므로 그 끔찍한 고통을 어떻게 견디어 내시고 있을지 참으로 안타까운 시간이었다. 결국 환자를 sedation 시키고 intubation 은 성공하였고 정말 신기하게도 saturation 은 순식간에 85% 이상으로 올랐다.내 원래 과인 이비인후과도 지금 한참 바쁜 일을 하고 있었으므로 나에게 얼른 오라고 콜을 계속 해댔지만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엠부 잡느라 손아귀 힘이 점점빠지고 꽤 힘들었지만 내가 조금만 힘을 늦추면 sat. 가 뚝뚝 덜어지니 오기로 짜는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중환자실 준비가 성공되었고 별 탈이 없으셨기를 바라면서 나는 다시 이비인후과 일을 하러 달려갔다. 귀신같이 intubation 을 해내고환자를 살려낼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또 하고 또 했다.

바쁘고 피곤해도 기억에 남는 하루였다.

재활 병동에서 일어나는 일2005-04-19 병동에서 베타딘 스크럽 하라는 콜을 받고는 인턴 방에 있는 애들한테 대충 어떻게 하는지 배운 뒤간병인의 도움을 받아서 가슴과 배를 베타딘으로 박박 문지르고 헝겁을 덮고 나왔다. 아저씨는 장난 섞인 나의 말을 듣는건지 마는건지 천장만 바라보고 눈만 껌벅거리고 있다. 3 주 넘게 매일 아침 T-site 드레싱을 했지만 나는 아저씨가 반신마비가 되기전에 뭐하고 지내던 분인지도 모른다.

루게릭병 할아버지는 호흡 근육이 약해서 기침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기계로 기침을 유도해주고 매일 수시로 코속으로 관을 삽입해서 가래를 빼낸다. 그래서 코밑이 빨갛게 헐고 딱지가 앉았다. 제대로 된 기침은 하지도 못하면서 밤새 잔기침을 켁켁 거리느라 한숨도 주무시지 못한다. 기침을 하지 못하는 것이 저토록 고통스러울 줄 그 누가 상상이라도 하겠는가? 가래를 뱉어내지 못하고 목에서만 그르렁 거리면서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오만가지 생각들이 머리속을 휘휘 지나간다. 그래도 농담 한마디를 건네면 천진 난만한 웃음을 선사해주신다.

근육병 꼬마애들은 겉으로는 매우 명랑하고 씩씩하지만 부축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신기할 정도록 픽픽 쓰러진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비현실적이게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그런 꼬마의 팔목을 주사바늘고 헤집고 나와야 한다. 병동이 떠나가듯 울어제껴도 나는 주사기에 동맥혈 몇 cc 를 담기위해 손끝의 맥박과 주사바늘끝의 감각에만 신경을 집중한다. 그렇게 아프게 해도 애들은 복도에서 나를 보면 웃으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재활병동에는 오늘도 수십편의 드라마가 동시 상영되고 있다

심장내과는 스피드가 생명이다.2005-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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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준 원 XX씨는 카디오는 스피드가 생명이라고 하였다. 새벽 4 시쯤 기상하여 곧바로 중환자실로 뛰어간다. 4 명의 환자들의 심전도를 최대한 빨리 찍으면서 어제 관상동맥조영술을 한분들의 드레싱을 한다. 심전도 기계가 매우 낡아서 6 번 리드가 접촉이 매우 불량하기 때문에 상당히 짜증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빨리 일을 끝내야 한다.

중환자실의 일을 마치고 병동으로 뛰어올라가서 병동에 있는 환자들의 심전도를 찍고 드레싱을 한다. 중간중간에 두시간 마다 혈압 측정을 해야하는 사람들의 혈압을 측정한다. 해가 뜨고 병동 복도에 환자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내 일도 어느정도 마무리 된다. 그러나 그러면 일년차 선생님의 응급실 차트 찾아달라는 콜이 온다. 오늘은 한시간 동안 의무기록실을 샅샅이 뒤졌는데 차트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고 나면 시간은 7 시

좀 쉴 수 있을까 싶으면 병동 콜과 1 년차 콜이 와서 해결을 하다보면 8 시가 다 되고 잠깐 눈을 붙이고 대충 9 시 30분쯤 부터 angio 한 환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병동에서 angio 한 환자가 나왔다는 콜이오면 불이나게 달려가서 심전도 찍고 혈압재고 증세 물어보고 해서는 안될 행동들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교육하고 차트리뷰를 하고 오더를 넣고 윗년차에게 노티를 한다.

오늘은 4 명의 angio 가 있었고 일을 끝내니 오전 11 시 반이었다. 어제는 매우 어리버리 했지만순서를 정해서 하니 제법 속도가 붙은 느낌이다. 재발리 수술방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밥을 시켜놓고 점심을 먹으면 오후 2 시부터 신환들이 몰려온다. 신환이 왔다는 콜이 오면 잽싸게 달려가서 심전도 찍고, 혈압측정하고 어디가 아픈지 혈관촬영하러 왔는지 당뇨 있는지 여부를 묻고 차트 리뷰를 한 후에 입원 오더를 넣고 윗년차 노티를 하다. 흉통이 있을 경우 11 가지의 chest pain profile 을 작성하여 차트에 끼워 넣는다. 그러나 환자가 많으면 일단 노티부터 하고 환자파악을 자세히 한다. 혈관촬영을 할 경우 보호자를 밤에 환자옆에 있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최대한 빠르게 노티를 하는 것이 생명이라고 하였다.

7 시정도까지 신환을 받고 수술스케쥴을 입력하고 저녁을 먹는다. 물론 지금은 환자가 적어서 저녁을 먹는 것이다. 저녁에는 조영제 스킨테스트를 하고 병동 콜을 해결하고 일이 없으면 얼렁 자는 것이 중요하지만 끊임없이 해야할 일들이 생기므로 일찍 자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도 시간을 다투는 스릴감이 있어서 꽤 재미가 있는 일인 듯 싶다.

흉부외과 의사의 삶을 엿보면서2005-05-29 흉부외과 인턴 생활이 1 주일이 흘러갔다. 그 짦은 시간동안 지켜본 흉부외과 의사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련다. 2 년차 선생님과 함께 회진을 돌다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가 물었다.

"선생님. 흉부외과는 2 년차도 일주일에 한번 집에가나요?""아니. 4 년차까지""......"레지던트 4 년 내내 일주일에 집에 한번씩 가면서 (그것도 반나절일 때가 많고 아얘 없을때가 부지기수다.) 병원에서 모든 생활을 꾸려나간다. '심장과 폐' 인체의 가장 상징적이면서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기관을 다루는 그들... 멋지다고 하기엔 처절하기까지한 죽음과의 사투! 그들은 과연 무엇에 홀려 삶을 송두리채 병원과 환자에 받치는 것일까? 수술하고 3 일째면 중환자실에서 병실로 올라오는데 병실에 올라오자마자 모질게 환자들을 일으켜 세워 복도를 걷게 한다. 누워 있으면 폐가 제대로 펴지지 않아 폐가 짜부러지고 물이차고 폐렴이 생기며 마취약도 더디게 바지고 수술 회복도 느리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몸에는 이것 저것을 주렁주렁 달고 억지 춘향식으로 복도로 내몰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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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을 걷게 하고 기침하게 하는 흉부외과 의사들의 속마음은 까맣게 타들어간다. 수술후에 조금만 신경을 쓰지않고 환자들 편한대로 내버려 주면 금세 열이 오르고 폐가 쪼그라들고 상태가 안좋아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야속하게 들리는 툭툭 내던지는 투의 차가운 말투속에 환자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뜨거운 열정과 쉼없는 인내가 담겨있다는 것을 누가 알것인가?

정형외과나 신경외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그 과는 수련을 마치면 고소득이 보장된다. 그러나 흉부외과는 고속득과는 거리가 멀다. 오로지 사명감과 책임감 하나로 인생을 내 던지는 과가 바로 흉부외과인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돈 밝히는 의사들을 견제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는 경우가 많다. 돈 욕심으로는 도저히 버텨낼 수 없는 과가 바로 흉부외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장을 가르는 외과 의사가 멋져보여서 지원한 사람들은 1 년을 버티지 못하고 대개 도망간다.얼마나 도망가면 우리 병원의 레지던트는 단 2 명밖에 남지 않았을 정도다. 진득한 사명감 하나로 버텨내는 사람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흉부외과 전문의를 획득하고 가슴을 열고 심장을 가르는 수술을 할 자격이 얻게되는 것이다.

뜨거운 가슴과 얼음같은 이성을 가진 그들이 지금도 소리도 없이 어딘가에서 심장과 폐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을것이다

폐암말기 여인의 철 없는 꼬마 아들2005-05-29 폐암 말기인 34 세 젊은 아주머니가 있다. 이미 뼈와 난소 간까지 전이된 말기 폐암 환자다.이 분이 얼마전에 심장과 폐에 물이차서 pericardial tube 와 chest tube 를 응급으로 시행받았다. 그리고 나는 매일 오전에 그 분에게 가서 dressing 을 해준다. 항암제 때문에 머리카락이 거의 없고 만성 병색에 얼굴이 일그러져 있지만 짙은 쌍커풀에 계란형이 미인형 얼굴이다.

드레싱을 할 때면 엄마가 병원에서 아픈지 어떤지 잘 뛰어놀고 있을 철없는 어린 아들 걱정을 자주 하곤 했는데오늘 드레싱 하러 가니 복도에서 환자복을 입은 야윈 엄마곁에서 재롱을 떨고 장난을 치고 있는 개구장이 꼬마 사내애를 볼 수 있었다. 드레싱을 하는 내내 엄마는 고통에 얼굴을 제대로 펴지 못했고 아들은 그런 엄마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서 빵을 뜯으면서 장난감 놀이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엄마 많이 아프겠지?" 하고 연신 말을 건네고 꼬마 아들은 대꾸도 없이 자기 할일에 열중이다. 그 광경이 너무나 짠~해서 평소보다 더욱 조심스레 드레싱을 했더니 그 환자분은 오늘따라 더 정성껏 드레싱을 해준다고 나에게 몇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 꼬마 아들에게 "선생님 얼굴 잘 기억해. 엄마 안 아프시게 해주는 분이야" 라고 인사를 시키고 그제서야 그 꼬마는 내 명찰을 유심히 쳐다보며 웃음을 보낸다.

드레싱을 끝내고 나가려는데 "아침부터 계속 선생님 기다렸요" 라고 하는 말에 드레싱이라는게 그저 귀찮은 일 하나일 뿐이 내가 꽤 많이 부끄러워졌다. 그 분은 아침마다 드레싱하는 고통의 5분을 위해 마음속 준비를 하고 있는거였는지 모르겠다. 그 환자분 옆에 침대에 나이 많은 할머니가 계신데 그 식구들이 이 정도 사셨으면 잘 사셨다는 식으로 말하자 "선생님 저는 정말로 살고 싶어요. 50 년이고 더 살고 싶어요" 라고 나에게 말하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엄마가 언제 하늘 나라로 떠날지 모르는 천진난만하지만 철없는 어린 아들에 대한 걱정의 푸념들... 나는 이런 글이라도 쓰면서 내 부끄러움들을 풀어놓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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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운 응급실 에피소드2005-06-02 오전 회진을 돌고 드레싱 두개를 끝내고 인턴방에서 뒹굴거리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저녁 무렵이 되어갔고 슬슬 시간 떼우기가 지겨워질 무렵 가운 주머니속 삐삐가 차분하게 울려댔다. '3333' 호출기에 응급실 전화번호가 찍혀 재빨리 전화를 걸어봤고 차가운 목소리의 간호사가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채 응급실로 내려오라고 한다. 도착한 응급실에서 무언가 일을 끝낸 듯한 표정의 2 년차 선생님과 마주쳤고 응급실 수술실에 들어가서 엠부를 잡으라면서 사라졌다.

들어간 수술실에는 상기되고 긴장된 표정의 학생 한명과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있었고 침대 위에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30 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전라의 상태로 누워있었다. 나는 엠부(공기를 짜주는 고무주머니)를 넘겨받고 조금 빠른속도로 엠부를 양손으로 짜기 시작했다. 산소포화도가 80%대로 낮았기 때문이다. 엠부를 짤 때 저항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자발 호흡이 없는 상태인 듯 했고 그렇다면 겉으로 보기보다는 심각한 상태인 듯 했다. 사내의 왼쪽 가슴에는 방금전에 우리 파트 레지던트가 시술한 것으로 보이는 흉관이 삽이되어 있었으며, 혈압이 60/30 으로 매우 낮았고 맥박은 분당 70 회 정도로 유지되고 있었다. 정확한 history 는 알 수 없었으나 공사판에서 낙상하여 실려온 것 같았다.

응급의학 선생님은 나보고 엠부를 분당 12 회의 속도로 천천히 짜기를 주문했지만, 조금만 속도를 늦추면 산소포화도가 금세 70% 대로 감소하여 느리게 짜기가 겁이났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환자는 허파에 심한 외상을 입고 혈흉, 공기흉이 동시에 생긴 상태이어서 엠부를 새게 빠르게 짜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은 상태이었다.

혈압이 너무 낮고 맥이 잘 잡히지 않아서 bleeding focus 가 어딘지에 대한 긴박한 논의가 이어졌고 초음파로 배와 가슴을 이리저리 조사했지만 마땅히 출혈이 되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엠부를 잡기 시작한지 10분쯤 되자 맥박이 점점 떨어졌고, 맥박이 30 대까지 떨어져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하였다. CVP 가 20cm 정도로 매우 높았고 혈압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맥박이 빠르지 않았으므로 cardiogenic shock 을 의심하고 심낭천자를 시행하였으나 여의치 않았고 결국 ventricular fibrillation 이 생겨서 DC cardioversion 을 시행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수술실의 밖에서는 환자의 어머니가 계속 흥분된 목소리로 피를 빼내야 한다고 자기가 그것을 하겠다고 소리를 질렀으며 안전요원과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술실에 들어와서 머리핀으로 환자의 창백해진 발가락 끝을 여기저기 찔러댔다. 너무나 말도 안되는 의료지식과 처치라는 것을 뻔히 아는 의료진들도 그 어머니의 행동을 차마 말리지 못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양쪽 발의 발가락을 찔러댔고 그런 행동들도 결국 아들의 눈을 뜨게 하지는 못했다.

번갈아 가면서 흉부압박을 한참 시행한 뒤 모니터에 심전도파가 직선이 됨을 확인하고 심폐소생술을 멈추고 현재 상태를 환자의 형제로 보이는 사람에게 설명하고 사망 선언을 하였다.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매정하리만큼 침착한 표정을 하는 환자의 어머니는 싸늘한 시신이 되어버린 아들의 발가락을 머리핀으로 연신 찔래대며 "아들. 일어나봐. 일어나" 라고 힘빠지고 확신 없는 목소리로 불러댔다.

수고했다는 응급의학 선생님의 말을 뒤로 흘리며 나는 터벅터벅 응급실을 빠져나왔고, 어떻게만 하면 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그게 안되는 상황이 적잖히 안타까왔고 그 상황에 의료인으로 무엇인가를 했던 나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동료들과 수다를 떨고 저녁에 술한잔 걸칠 약속 내기를 했을지도 모르는 젊은 남자의 죽음이 어찌나 비현실적이고 영화속 장면처럼 느껴지던지... 누군가의 삶은 바로 지금 그 진행을 멈추었지만 인턴 방으로 향하는 길에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은 바로 그 시간에 자기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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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생을 마감했는지 알지도 못한채 무표정히 어딘가로 향하였다. 나 또한 더 이상의 생각을 멈춘채 오늘의 경험을 의사로서 처음 겪어본 죽음의 한 에피소드 정도로 정리하고 이번 일을 마감하였다

홀로 떠난 알래스카, 그곳에서의 사색2005-07-01

오늘 밤 8 시 30분 비행기로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떠난다. 지난주에 병원일 때문에 숙소 예약을 제대로 못해서 어제 밤새도록 문법에 맞지도 않는 영어로 e-mail 보내서 숙소예약하고 계획을 세웠다. 신기하게도 나의 영어를 알아듣고 그 머나먼 나라에서 답장을 보내준다. 8 시간이면 나는 알래스카의 한복판에 서있을 것이고 대자연의 품속에 안겨있을 것이다.

어제 인천공항에서 볼일을 보고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풍경을 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코리아라는 나라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노을이 물드는 뿌연 연무에 휩싸이 서해안 풍경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였으며 광할한 대지와 같은 대자연은 없지만 우리 조상들이 산수화로 남겼던 고즈넉한 한폭의 동양화같은 풍경이 우리나라에는 있었다. 서해안 갯벌은 한강으로 이어졌고 미끄러지듯 달리는 버스는 어느새 빌딩 숲 가득한 도심 한가운데로 접어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이 좁은 땅덩이에서 무얼바라며 그리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건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강 둔치에서 조깅을 하고 산책을 하러 나온 사람들을 바라다 보면 여기 회색도시 서울에도 인생의 재미를 찾아보려는 노력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한국의 서울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산다. 알래스카의 대자연 한가운데 사는 사람들도 역시 그네들의 고뇌와 번민을 안고 그 곳에 정착하고 살고 있다. 어디에 살든 삶은 결국 비슷한 만큼의 고통과 그것을 잊게하는 진통제같은 짧은 행복감을 선사해주는 듯 싶다. 지금 글 쓰고 있는 뿌연 연무속의 서울과 잠시후 서있게될 청량한 공기속의 알래스카와의 비교는 내가 서있는 위치에 대한 지혜 한 묶음을 나에게 선물로 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다.

인천공항 다이너스 클럽라운지에서 보딩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참 희안하다. 분명 병원 생활은 힘들고 지치고 감당하기 어려운 것인데, 이렇게 알래스카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은 언제 그렇게 힘든 시간이 있었는지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그래서 계속 버텨낼 수 있는 것이다.

공항에 오기전에 교보문고에 들러서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라는 책을 샀다. 호시노 미치오라는 세계적인 야생 사진작가가 쓴 책이다. 그는 10 대 후반에 처음 알래스카로 떠난이래로 20 여년간 알래스카의 자연을 사진으로 담아낸 사진가이며 43 세에 캄차카 반도에서 곰에 물려 사망한 그림같은 인생을 산 사람이다. 의사와 사진과 여행이라는 커다란 명제로 내 삶을 메꾸어나가고 싶은 나는 지금의 1 주일 짧은 여행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시간이다. 이번에 떠나면 다음 번에는 일년 후가 되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카메라를 통해 나의 뇌리에 박힌 알래스카 대자연의 영상이 다음 1 년간의 내 삶을 이끌어주는 버팀목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호시노 미치오' 처럼 여행과 사진을 업으로 살수는 없지만 나의 삶도 분명 멋진 한쳔의 소설로 만들어낼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앞으로 10 년간의 시간을 버티어 내면 나의 몸에는 인간의 병과 생리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의사로서의 지식과 경험이 터득될 것이며 그 때는 자유롭게 세계 어디든 누비면서 나의 몫을 해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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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것이라 생각된다. 이번 여행에는 내 사진 장비들과 노트북을 총동원해서 떠난다. 가보는거다. 두려워하지 말고...

시베리아 대륙과 알래스카 사이의 베링 해의 평균 수심은 불과 40 미터이다.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1 백미터나 낮았기 대문에 베링해는 드넓은 평원이었고 기원전 1 만 8 천년 경 그 평원을 지나 몽골로이드가 알래스카로 이주해와서 북아메리카는 물론 남아메리카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 중 북극 지방에 사는 소위 에스키모라 불리는 종족은 1 만 5 천여년 동안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는데 그것은 우리 민족의 반만년 역사 세배의 시간을 살아온 것이다. 그런 땅으로 날아가고 잇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공항에 오기 전에 교보문고에 들려서 샀던 일본 사진작가가 20 년 동안 알래스카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겪은 일들을 담은 책을 사서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 나는 겨우 5 일 밤을 자려고 알래스카로 날아가지만, 그곳의 자연에 반해서 20 년을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니 신기했다. 그는 캄차카 반도에서 곰에 물려 사망했다. 어쨌든 부푼 마음으로 알래스카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여행에대한 기대를 부풀려나갔다.

앵커리지 시간으로 11 시 40분에 앵커리지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한산했고 그다지 낯설지도 않은 것이 미국 중소도시의 한적한 공항에 내린 듯한 느낌이었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면서 내가 지금 도대체 여기에서 뭐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용인의 바쁜 병원에서 머나먼 이국 땅의 공항에 와 있는 것이다. 이런 인생도 있구나 싶었다. 입국 심사대에서 미국 직원이 하는 말의 반 이상 못 알아듣고 버벅거렸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밝게 웃기도 하더니 내가 잘 못 알아듣자 경계하는 눈치였다. 어쨌든 나는 미국의 알래스카라는 곳에 와있게 되었고 앞으로 5박 6 일 동안 이곳 생활에 적응해나갈 것이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해둔 budget 렌터카에서 차를 렌트하였다. 직원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보험 이야기가 나와서 긴장했는데 내가 이미 인터넷으로 신청해놓은 것을 다시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공항에서 모기약을 사려고 햇는데 약국을 찾지 못햇다. 작은 슈퍼마켓 같은데서 mosquito protector 라고 말하니 도저히 못 알아듣더라.

결국 모기약 사는 것은 포기하고 운전을 시작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denali 공원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탈 수 있었다. 날씨는 흐리고 비가 간간히 내리고 잇다. 배가 출출해서 고속도로 휴게소의 맥도날드에서 치즈버거 두 개와 커피를 시켜서 먹었다. 역시 종업원은 내가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자 경계하는 눈치다. 그래도 마음씨 좋게 생긴 미국 아주머니가 차례를 양보해 줘서 기분이 좋았다. 맥노날드 안에 어린 아기들 놀이터가 있었는데, 깔깔대며 노는 모습이 우리나라 애들이나 미국 애들이나 전혀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뭐 대단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지만서도 여기도 사람 사는 땅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오늘밤을 지내게 될 북미 최고봉 맥킨리 산을 향해 차를 달려야겠다.

고속도로르 달리다 멋진 풍경의 호수 비행장에 잠깐 들러 사진을 찍었다. 알래스카도 미국 땅이라 고속도로가 끝없는 침엽수림 평원 사이로 시원스럽게 뚫려있었다. 자연을 해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뚫어놓은 뉴질랜드의 2 차선 고속도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알래스카는 관광지이기 이전에 사람이 사는 동네였다. 길가에 어지러이 놓여진 미국적인 집들이 뉴질랜드의 아기자기한 집들과 대조되어 보였다. 날이 개이고 푸른 하늘에 구름이 떠있고 그 위를 수면위로 이륙하는 경비행기가 유유히 날으는 풍경이 이곳이 여행지라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데날리 국립공원이 가까워지자 전형적인 툰드라 지내가 나타나면서 환상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눈덮힌 산을 배경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평원 위에 그림 같은 나무들이 빽옥히 들어서있고 그 사이로 거짓말 같은 강과 호수들이 굽이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풍경 위로 무지개가 드리워졌는데 눈물 날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내가 시인이었더라면 맛갈나게 저 정경을 표현해 볼 수도 있었겟지만 내가 가지고 잇는 것은 카메라밖에 없으므로 나는 셔터를 누를 수박에 없었다. 그러나 다섯컷도 제대로 찍지 못하고 나는 사진 촬영을 중지할 수 박에 없었다. 나의 감성과 내 작은 카메라로는 이 눈앞의 풍경을 도저히 제대로 담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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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을 지내기로 한 데날리 마운트 모닝 로지에 도착하여 주인과 인사를 나눴는데 역시 내가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들었지만 친절하고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4 명이 함께 쓰는 작은 오두막에 짐을 풀고 근처 피자집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다들 여럿이 여행 와서 웃고 떠들고 있는데 혼자서 저녁을 먹으려니 약간 쓸쓸한 기분이 들엇다. 무선 인터넷이 잡혔는데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거라서 나도 사용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인터넷 전문가가 너무 바빠서 좀 기다리라고 했는데 기다리기 뻘쭘해서 그냥 나왔다. 저녁에는 일기라도 좀 쓰고 자려고 했으나 오늘 도착해서 곧바로 250 마일을 운전하니 너무 피곤해서 금방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눈을 드니 이미 밖은 밝아있었다. 우리 방의 다른 사람들은 아직도 자고 있어서 시간이 너무 이른가 했더니 아직 6 시 30분 밖에 되지 않았다. 서울서 준비해온 컵라면에 햇반을 말아서 아침 식사를 했는데 든든하고 너무나 맛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노트북으로 일기를 쓰고 있으니 미국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물론 잘 못 알아들었으나 알아듣는척 하자 게속 말을 걸었다. 내가 영어가 서툴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어서 나도 말을 시작햇다. 여기서는 인터넷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저 머쩍은 웃음만 지을 분이었다. 어쨌든 이런 산골의 허름한 산장에 부인이랑 단둘이 여행 온 미국 노부부의 모습이 매우 보기 좋았다.

차를 몰아 데날리 국립공원 안내센터에 가서 맥킨리 봉을 바라볼 수 잇는 원더레이크까지 가는 버스표를 샀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셔틀버스인데 왕복 무려 11 시간이 소요된다. 국립공원 보호차원으로 일반 승용차는 들어갈 수 없기 대문에 무조건 셔틀버스를 타야한다. 10 시 15분 표가 닥 한 장 남아서 냉큼 샀다. 카메라 밧데리를 챙겨오지 않아서 다시 숙소로 차를 몰아 돌아왔다. 팻메스니의 명곡들을 담은 엠피쓰리를 들으면서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니 너무나 황홀한 기분이 든다. 팻매스니의 음악이 표현하고 잇는 세계가 바로 이런 곳인듯 싶다.

원더레이크로 향하는 10 시 15분 셔틀버스를 탔다. 턱수염을 덥수룩 하게 기른 50 대로 보이는 남자가 운전수였고 대부분의 승객들은 백인이었으며 나이든 사람들이 많았다. 동양인 커플이 한쌍 탑승했고 귀여운 딸 두명을 데리고 나온 아줌마도 있었다. 다들 흥겨운 분위기 속에 버스는 출발했고 장장 11 시간이나 되는 왕복 170 마일의 데날리 국립공원 버스투어가 시작되었다. 이 버스는 데날리 국립공원에서 차로 갈 수 잇는 가장 마지막까지 가는 버스로 인기가 많은 셔틀버스이다. 중간중간에 캠핑장에 사람들도 내려준다.

맥킨리 산으로 향하는 툰드라지대의 야생 생태계는 환상 그 자체였다. 뉴질랜드의 자연에도 입을 다물 수 없었는데 이곳의 대자연은 뉴질랜드보다 훨씬 규모가 큰 것이었다. 지구상에 이런 곳이 잇고 그 한복판을 내가 지나가고 잇다는 것이 눈물나게 고마웠다. 빙하가 흘러내리면서 만들어낸 거대한 골자기에는 툰드라의 키작은 나무들과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생긴 뾰족하고 키 큰 나무들이 석여서 푹신한 양탄자처럼 깔려 있고 그 사이를 곰과 캐러부와 무스들이 노닐고 있었다.

동물들에게는 이 거대한 자연 전체가 그들의 집인 것이다. 왜 인간의 눈에게는 이러한 풍경이 감동적으로 다가올까. 감동이란 감정이 학습된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면 동물들도 저 풍경에 감격하고 감사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일까? 인간이 신과 자연과 하늘을 섬기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이런 대자연에 감격하고 경외하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인간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진을 계속 찍어보았지만 나의 능력으로는 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도저히 제대로 담아낼 수 없었다. 이것을 사진으로 담아서 누군가에 이것이 알래스카의 풍경이라고 보여준다면 그것은 정말로 거짓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의 가장 넓게 보이는 12-24mm 렌즈로도 도저히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담아낼 수 없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자연 앞에서 느낀 나의 감정을 사진속에 실어낼 수 없기 대문이다. 그냥 눈앞에 보이는 풍경을 찍는다면 그 사진은 단순한 관광 사진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직은 사진에 감정을 싣기 위해서는 사진이 담아내는 공간을 완성시키는 어던 요소를 사진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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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가시켜야 하는데 이 잛은 시간에 나의 실력으로는 그것을 도저히 해낼 수 없다. 그래서 그냥 사진기를 놓고 풍경을 눈에 담고있는 수 박에 없는 것이다.

맥킨리 봉을 가장 잘 바라다볼 수 잇는 맥킨리 봉 반대편 산의 완만한 경사면에 낮고 푸른 초목들이 우거져있고 그 수풀 사이사이로 28 개의 텐트가 위치하고 있었다. 왜 28 개 인지 아느냐면 이 캠핑장에는 단지 28 개의 텐트만 야영할 수 잇기 대문이다. 그러나 야영지는 도대체 왜 28 명의 행운아들에게만 캠핑을 허락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넓고 한적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직 시차적응이 잘 안되서인지 병원생활의 피로가 풀리지 않아서인지 게속 잠이 와서 졸면서 5 시간을 달려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시간은 벌서 8 시다. 대충 씻고 짐을 챙긴 다음 근처 식당으로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갔다. 여행 나오면 내가 사간 밥을 먹는 것도 좋지만 이런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것도 괘나 즐거운 일이다. 프라이된 게란 2 개와 토스트 2 개와 소시지, 포테이토, 토마토 등이 석인 아침식사도 매우 맛있었다. 종업원에게 말을 걸어 봐야겠다 싶어서 어제 점심으로 사준 런치가 매우 맛있었고 운을 띄운다음 여기에 동양사람들이 많이 오냐고 물어봤다. 유럽이나 호주 사람들처럼 많지는 않지만 겨울에 일본사람들이 오로라를 구경하러 꽤 온다고 햇다. 겨울에 일본인들이 많이 오는 이유를 설명했는데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나는 혼자 휴가를 받아서 혼자 여행 중이라고 했더니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길래 병원에서 일한다고 했다. 대뜸 의사냐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했는데, 아직 인턴주제에 닥터라고 말하기가 뻘줌해서 beginning doctor 라고 콩글리쉬로 애기했더니 못 알아들었다. 그리고는 나보고 hard working 하겠다고 하길래 정말로 그렇다고 했다. 알래스카 사람들도 의사들이 힘들게 고생한다는 것은 아는 모양이다. 갑자기 며칠 후면 서울로 돌아가 다시 하루에도 수십번씩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되질 것을 생각하니 절로 우울한 기분이 들어다. 서울에서의 나의 생활을 긍정적으로 만들고 내 앞으로의 인생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이번 여행기간에 생각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데날리가 바라다 보이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공원에 앉아서 사진도 직고 노트북을 꺼내들고 일기도 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잇다. 오늘의 목적지인 스워드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지만 알래스카는 12 시가지 해가 지지 않으니 서두들것이 전혀 없다. 점심식사는 아침을 먹은 레스토랑에서 미리 사놨으니 느긋하게 달리면 된다. 길가다 멋진 풍경이 나오면 내려서 사진을 찍는다. 내 mp3 에서 나오는 팻메스니의 음악이 알래스카의 풍경과 어울러져 나의 사진을 더욱더 완성시키고 잇다. 혼자라서 쓸쓸하지만 혼자라서 좋다.

졸음을 참고 도 참고 그래도 졸리면 목이 쉬어라 노래 부르면서 앵커리지까지 차를 몰았다. 앵커리지는 제대로 정돈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중소도시를 떠올리게 했으며 바다와 접해있고 뒤로는 높은 산맥이 자리잡고 잇는 특수한 지형 탓인지 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먼 하늘에는 파란하늘이 보이는 신기한 기상 현상이었다.

어쨌든 비가 내리니 도시는 매우 어둡고 음치해 보엿고 사람들도 밝아 보이지 않았다. Visitor center 를 찾아서 노트북의 무선 인터넷을 해보려고 했으나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어디 있는지 찾기도 어려워서 금방 포기하고 좀더 남쪽에 잇는 오늘의 목적지인 스워드까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스워드로 향하는 길은 환상적인 바닷가 절벽에 위치해 있어서 경치가 매우 끝내주었으나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서 박으로 나가서 오래 경치구경은 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피곤이 심하게 몰려와서 졸음을 좇느라 한참을 고생하면서 밤 8 시가 넘어 겨우 스워드에 도착했다.

상점에서 잠바 하나를 사서 입고 숙소에 도착하였다. 체크인을 하고 무선인터넷을 슬 수 잇는지 물어보았는데 어디다 전화를 걸더니 5 달러를 내면 쓰게 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연결이 되지 않아 계속 주인 아주머니를 귀찮게 굴면서 하는 법을 물어보았다. 왠 아저씨까지 가세해서 방법을 알려주었으나 도무지 연결은 되지 않았다. 밤이 너무 늦어서 그런 것 같다고 그랬다. 그리고는 키보드로 한국어는 어떻게 스냐고 물어봤고 더듬대는 영어로 간단히 설명해주자 신기해했다.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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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보태서 말하는 속도로 수 있다고 하자 놀라워했다.

아침에 늦잠을 잤다. 옆 침대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깨어보니 이미 다른 사람들은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다지 늦잠을 잔 것 같지 않아서 몇 시인지 쳐다보니 벌써 8 시였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Kenai Fjord Cruise Center 에 가서 미리 예약해둔 티켓을 받았다. 다시 말하는 것이지만 이제는 나의 독립문 집 구석에 앉아서 세계 어디든지, 그곳이 아프리카의 밀림 속에 있는 오두막이든 상관없이 인터넷으로 예약할 수 있으며 정말 예약이 되었나 걱정해보면 실제 정말로 잘 예약되어있고 나는 그곳에 도착해서 내 이름을 대고 표만 받으면 된다. 그걸로 모든 것은 끝이다. 세계는 넓으면서도 좁고 신기하게도 단단히 연결되어있다. 아무 곳에도 완전히 혼자는 없다.

어쨌든 표를 받고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떼우고 후드티를 하나 샀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날 산 후드티가 없었더라면 나는 얼음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빙하 바로 아래에서 얼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타는 배는 작은 사이즈의 보트였는데 작은 보트 때문에 나는 내 인생 최고의 뱃멀미로 최악의 고생을 하게된다.

여행 시간은 총 8 시간 30분이었다. 빙하가 최종 목적지이며 중간 중간에 고래나 표범등을 구경하면서 4 시간에 걸쳐서 빙하까지 갔다. 비가 계속 내렸고 날이 흐려서 멋진 풍경을 구경할 수 없었다. 솔직히 빙하까지 가는 내내 스워드에서의 이틀을 데날리에서 보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했다. 완전한 계획 실패가 아닌가 싶었다.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진 촬영에는 실패했지만 수면위로 올라오는 고래의 등짝도 보았고 내 인생 최초로 바다에 얼음이 떠있고 산에서 흘러내리는 빙하가 바다로 떨어지는 장면도 보았다. 빙하를 보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크루즈를 위한 나의 5 일 여행기간중 이틀의 투자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야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힘든 병원 생활에서 휴가를 취하고 재충전을 하고 다시 병원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이 이틀의 계획은 완전한 실패라 할 수 있다. 왜냐면 빙하에서 스워드로 돌아오는 길에는 엄청난 파도가 치면서 배가 끔찍하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승무원에서 멀미약을 얻어먹엇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뱃멀미를 약 3 시간 동안이나 했다. 두명이 먼저 토하기 시작했고 나도 토하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해서 세 명은 3 시간 내내 토했다. 완전히 탈진했고 어서 빨리 항구로 돌아가기만을 바랬다. 워낙 정신이 없었고 내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들어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는데 항구에 도착하자 네덜란드에서 온 남자가 나한테 뭐라뭐라 말했다. 알고보니 돈을 물어달라고 말할 것이니 동참하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선장에게 제법 거세게 항의했고 총 비용의 반을 다시 환불 받게 되었다. 이게 미국인가 싶었다. 날씨가 안좋아서 고생을 해도 여행을 망친 것에 대한 대가를 받아내는 것이다. 이래서 아무리 사소한 것도 함부로 대충 하지 않는구나 라고 깨달았다.

정말이지 대충하는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여행하기에는 정말 천국인 나라다. 사소한 불평도 정중하게 받아들이고 개선하려고 노력한다. 이번에도 선장은 이번 여행이 나쁠 수 박에 없는 이유를 3 가지 설명했고 그래도 사람들의 불평이 줄지 않자 자신의 잘못을 정중히 인정하고 웃는 얼굴로 여행비의 반을 환불해주기로 약속했다. 이번 불평 작전에는 턱수염이 거뭇거뭇한 미국 남자가 주동이 되었는데 껌을 짝짝 씹으면서 띠꺼우면서도 확신에 가득찬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이는 영웅심 가득한 표정으로 항의를 하였다. 정말 미국이구나 싶었다.

숙소로 돌아와서 혹시나 해서 인터넷을 연결해보니 연결은 되었는데 비밀번호가 계속 틀렸다. 또 다시 주인에서 비밀번호를 문의했고 주인은 다시 무선 인터넷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집에 전화를 걸어서 비밀번호를 다시 알려주었다. 사실은 처음 적어준 비밀번호의 B 를 3 으로 잘못 읽어서 접속이 안된 것이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이상한 콩글리쉬를 잘도 해석해서 나의 집요한 요구 사항을 끝까지 들어준 모비딕 호스텔의 주인 아주머니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속이 너무나 니글거리고 콘디션이 좋지 않아서 중국집을 가르쳐달라고 했는데 주인이 한국 어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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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쩌구 하길래 한국식당도 있다는 소리인줄 알았는데 주인이 알려준 그 중국집에 가보니 그 집 주인이 한국인이었다. 영어 못해서 해외여행을 거리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나 같은 사람도 알래스카에 와서 가고 싶은데 잘만 돌아다닌다.

사진을 컴퓨터의 옮기고 잇는데 꽤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긴 일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보트 여행을 하면서 외국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관찰해본 결과 서양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근본적인 점에서는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덜란드에서 온 부부에 대해 이야기 해 보면, 아줌마는 방금 목욕탕에서 나온 것처럼 얼굴이 발갛게 익었고 머리는 부시시했으며 여행 내내 주위의 풍경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뚱하게 앉아있었다. 남편이랑 싸운 것 같았는데 그런 것은 아닌 듯 했다.

반면에 남편은 주위의 풍경에 엄청난 호기심을 보이면서 시종일관 자기의 핸드무비카메라로 풍경 촬영에 열중했으며 신기한 것이 보이면 마누라에게 상황을 전달했다. 아줌마는 겉보다 더 늙어보였고 남편은 겉보다 훨신 애들같아 보였다. 처음보는 젊은 여자 둘이 만나자 마자 금세 친해져서 10 년은 사귄 친구처럼 수다를 덜고 갈갈대는 모습도 여전했다.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변환하느라 새벽 1 시까지 호스텔 2층의 부엌에 앉아있었다. 간간히 사람들이 나와서 인사를 하고 책을 읽다 이내 잠자리로 들어갔다. 호스텔의 부엌에 책을 읽으러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 읽는 것이 부엌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다.

피지, 뉴질랜드, 이번 알래스카에서의 호스텔 생활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그들은 대화를 하기 위해 책을 한권 손에 들고 부엌으로 나온다. 그러다 말이 통하면 한 시간이고 계속 대화를 나눈다. 나도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음 번 여행에는 책 한 권 들고 부엌에 앉아있다가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면서 여행의 재미를 만끽했으면 좋겠다. 영어는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웰빙을 위해서 꼭 필요한 도구인 것이다. 어쨌든 오늘은 늦게까지 혼자 부엌에서 사진 정리를 하고 일기를 쓰다가 잠이 들었다.

어제 밤은 한 남자와 두 여자로 구성된 미국 사람들과 같은 방에 묶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부시럭 거렸지만, 나는 너무 피곤하기도 하고 아침 일정이 정해진 것이 없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계속 잠을 청했다. 그러다 문득 눈을 떠보니 아침 9 시 20분이 되었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주인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아침을 먹으러 스워드 소형보트 항구 근처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였다.

아침 일찍부터 식당은 여행객들로 가득 찼다. 모비딕 호스텔의 주인아주머니도 그렇고 여기 식당의 주인들도 그렇게 참 열심히 일한다. 모비딕 호스텔의 아주머니는 호스텔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여행지에서 사는 사람의 삶은 어떤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무니 멋진 대자연 속에 사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상당한 인생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열심히 일해야 돈을 벌고 생을 이어나갈 수 있다.

너무나 뻔한 말이지만 여행을 할 때마다 그런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하늘에서 돈벼락을 맞지 않는 이상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으며 이런 여행지에서 호스텔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여행이나 실컷 하면 좋을텐데 싶지만 실제로 이런 곳에서 멋지게 여행할 수 있는 사람들은 현실로 돌아가면 다들 꽤 탄탄한 수입원이 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새삼 왜 다시 하느냐면 그래야 나의 일상 생활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찍고 여행만 해도 누군가 나에게 돈을 주면 참 좋을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알래스카에서의 5박 6 일의 생활을 위해 현실로 돌아가면 무려 한달 반 이상은 죽어라 일해야 여기서 쓴 돈을 메꿀 수 있다. 그게 바로 현실인 것이다. 현실에서의 고뇌의 시간이 더욱 압축적일수록 여행지에서의 감동이 두 배 세배가 된다.

내일이 지나고 모레 아침이면 나는 다시 경기도 용인의 세브란스 병원에서 끊임없이 윗년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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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와 환자와 동료에게서 채찍질을 당하면서 하루하루를 지내게 되겠지만 그것을 다 이겨내야 강한 내가 만들어지고 다시 돌아오는 여행의 시간이 더욱 값지게 된다. 사실 병원 생활이 없었더라면 이 짧은 여행기간에 알래스카에서 건져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풍경 사진 몇 장이 나의 여행의 전부가 절대 아닌 것이다. 정리되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들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개념 정립과 앞으로의 인생 설계가 드 넓은 알래스카의 평원을 달리는 렌터카 속의 내 머리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라 말할 수 있다.

스워드에서 앵커리지로 오는 길에 이그지트(exit) 빙하에 들러서 가벼운 하이킹을 하였다. 등산로 입구에는 후드티를 입으면 땀이 날 정도로 따뜻했지만, 빙하에 가까이 갈수록 점점 추워졌다. 빙하 바로 아래에 서있으니 빙하가 내뿜는 엄청난 차가운 공기 때문에 귀가 얼정도로 추워서 오래 서있기가 힘들었다.

등산로 입구에는 길에서 곰을 만났을 때 대처방법이 상세히 적혀있었다. 설마 이런 공원 산책길에 곰이 나타날까 하고 하이킹을 시작하였는데, 글쎄 걷기 시작한지 5분도 안되어서 풀섶에서 거대한 동물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다행이도 그것은 곰이 아니라 무스어미와 새끼 가족이었다. 막상 무스를 가까이서 보고나니 곰이 있지 않으리란 보장이 절대 없었고, 그런 생각이 들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에 가는 사람들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빙하까지 길지 않은 하이킹을 했다.

다행이 곰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날씨도 흐리고 빙하 근처에는 너무 추워서 그다지 상쾌한 하이킹은 아니었지만, 서울의 두 배 면적이라는 어마어마한 빙하의 모습을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다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빙하는 가까이서 보면 정말 새파란 색깔이다. 왜 빙하시대 같은 얼음과자가 파란 색으로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빙하 구경을 마치고 앵커리지로 차를 몰았다.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문득 계기판을 보니 연료가 바닥나서 표시등이 깜빡 거리고 있었다. 머리 속으로는 오만 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 가면서 어쨌든 가장 가까운 주유소로 차를 몰고 가는 수 밖에 없었다.

달리다 차가 멈추면 어떡하나, 영어도 못하는데 어떻게 도움을 요청하나. 더군다나 사람도 없는 이 허허벌판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한참을 달리니 마을이 나왔고 너무나 다행히도 동네 주유소가 눈앞에 보였다. 살았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셀프 주유기가 도무지 작동을 안해서 한참을 해맸는데, 알고보니 돈을 먼저 지불해야 주유가 시작되는 주유소였다. 주유기 정면에 PREPAY 라고 빨간 글씨로 커다랗게 적혀있었지만 나의 까막눈에는 그게 보일리 없었다. 10 여분을 헤매다가 보다 못한 주유소 주인 아주머니가 사무실에서 나와 나에게 돈을 먼저 내라고 일러주었다. 머쩍은 웃음을 지었지만 그래도 주유를 할 수 있어서 천만 다행이었다.

앵커리지에서의 마지막 밤은 혼자서 편안히 쉬고 싶어서 여관을 예약했다. 체크인을 하고 근처의 일본 식당이나 한국 식당이 있냐고 물어보니 ‘다미’라는 일본 식당을 가르쳐주어 그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 비싸긴 하지만 마지막 밤의 혼자만의 파티라 생각하고 배불리 저녁을 먹었다. 아무래도 주인과 종업원이 한국 사람들 같았는데, 그냥 영어로만 대화를 하였다. 돈을 낼 때 혹시 한국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역시나 그랬다. 앵커리지의 한식, 중식, 일식당은 모두 한국 사람이 운영하고 있다고 하였다. 세계 어딜 가도 한국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영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는데, 만약 내가 영어로 하는 말을 완벽하게 다 알아듣는다면 그 때의 여행은 지금의 여행과는 사뭇 다를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해외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을 때 그리 반갑지 않고 왠지 피하고 싶은 기분과도 일맥 상통하는 면이 있다.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 신경을 쓰고 의식을 하기 시작해야 한다.

말이 통한다는 것은 문화가 통한다는 말이고 문화가 통할 때는 나의 무의식 속의 열등감도 감추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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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도 안 통하는 알래스카를 혼자 여행하면서도 그다지 불편하거나 불안하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말이 안 통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골치 아파지기 시작한다.

알아듣지 못하면 배속이 참 편한 것이다. 다만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과 문화를 공유하면서 세계를 배운다는 측면에서는 큰 걸음을 내딛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굳이 해외로 혼자 여행을 떠나려는 것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인 면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영어는 더 잘하고 싶다.

오늘 밤이 지나면 내일 오후에는 다시 서울로 가는 비행기 속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는 가운을 입고 병동 스테이션에서 열심히 차트를 뒤적거리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이 시간을 너무나 붙잡고 싶지만, 그것은 불가능 하다. 일년 후의 휴가를 다시 기약하는 수 밖에 없다. 그 때는 또 다른 모습의 나를 이끌고 새로운 세계로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겠지.

다섯 달도 죽을 맛이었는데 일년은 또 어떻게 버틸 것인지 암담하지만, 버텨내기만 하면 내 피 속에는 인간의 병에 반응하는 본능이 한 움큼 자라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열 번 반복해서 십년 후가 되면 나는 상당히 자유로와질 것이다. 그렇게 되고 싶다. 정말로. 의사짓은 결코 박애정신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꺾이지 않는 사명감과 책임감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끈질긴 인내심으로 버텨나가는 것이다. 다시 서울로 가자. 가서 주저하지 말고 다시 짐을 싸고 병원으로 가자. 거기서 나의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어차피 인생을 커다란 여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한 것 아닌가.

5박 6 일간의 짧은 알래스카 여행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앉아있다. 무척 짧은 여행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상당히 긴 여행이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든다. 5박 6 일동안 나는 많이 변했고, 세상을 보는 방식도 달라졌다. 작년 봄에 처음 해외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1 년 반만에 미국, 피지, 뉴질랜드, 알래스카의 네번의 해외 여행을 했고 한번 여행할 때마다 너무나 달라지는 나를 느낀다.

작년 초에 미국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처럼 한국이 그리고 내가 속해있는 사회가 세상의 전부인 것 처럼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그게 절대 다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다. 지구에는 수많은 다양한 문화들이 존재하며 아직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대자연이 숨쉬고 있 그 우물속에서 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면 나는 이 곳에 절대로 얽매이고 싶지가 않다. 내 몸을 자유롭게 만든 다음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여행하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에서 한가지 깨달은 새로운 것도 있다. 미국 사람이든 뉴질랜드 사람이든 알래스카 사람이든 그들은 그들만의 우물 속에 갇혀있으며 그곳에서의 생활을 이어나가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며 그 과정에서 힘들어하고 즐거워하고 자신의 삶을 좀더 행복하게 만들려고 발버둥친다는 것이다.

커다란 배낭을 둘러매고 두어달씩 알래스카를 떠도는 배낭족도 사실은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하고 싶지 않은 일도 감수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일을 하면 그 일터의 사회에 속해야 하고 그 사회는 어쨌든 결국 우물일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어찌되었건 나는 한국에서의 내 생활과 내 주변의 관계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곳의 의사로서 어느 정도 수준으로 완성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자유로와질 수 있다.

서울의 나의 집으로 돌아가면 나는 다시 짐을 싸고 용인으로 가야 한다. 용인에는 나의 일주일 휴가를 보상해야 하는 두 배로 불어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물러서지 말고 그것을 해내야 한다. 그것이 나만의 우물을 완성하는 길이다. 하나의 완성이 있어야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사진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조금 있다. 정말로 신기하게도 최고의 대자연이라 불리우는 알래스카의 툰드라 한가운데 서있어도 나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풍경은 단 하나뿐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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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그리고 그 풍경을 가장 잘 찍기 위해 여러 번 셔터를 눌러대도 결국 그중에서 한 장의 사진을 건져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그렇게 많고 다양한 사진이 나오질 않는다. 풍경 사진은 그래서 밋밋해질 수 밖에 없다. 풍경 사진은 공간을 찍는 것이고 아무리 멋진 풍경을 아무리 좋은 사진으로 찍는다 하여도 최고의 풍경사진은 만들어질 수 없다. 사진 속에 그 공간을 완성시키는 어떤 요소가 첨가 되어야만 그 풍경사진이 비로소 작품으로 탈바꿈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화룡점정 같은 요소를 나의 사진 속에 첨가시킬 수 있는 감성이나 능력이 없다. 짧은 여행기간 동안 쫓기듯이 풍경을 찍어대면서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을 요소를 넣기 위해 기다리고 찾아 헤매는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풍경 사진 작가는 김영갑이나 호시노 미치오처럼 자신이 원하는 자연 속에서 20 년씩 살면서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는 요소를 찾아 인내해야 한다. 점 하나가 단순한 관광사진이냐 작품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진정한 풍경 사진을 찍을 수는 없으므로 풍경 사진이 아니라 여행사진을 찍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한계이고 그것이 정직한 것이다. 여행기에 끼워 넣을 수 있는 사진이라도 멋지게 찍을 수 있도록 연구하면 그걸로 만족해야 한다. 왜냐면 나는 사진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과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의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이번 여행의 여행기는 이쯤에서 마무리 하기로 한다. 일년 후의 여행은 미리미리 준비해서 유럽으로 떠나야겠다. 세상은 넓고 구경할 것은 넘쳐 흘렀다.

김 아주머니의 임종 2005-08-09 역시나 잠이 문제다. 5 일 연속 당직의 고통이 지나고 어제 오랫만의 오프를 받았었다. 6 시 반쯤 일이 끝나고 저녁을 먹은 후 그대로 침대로 굴러들어가 곯아떨어졌다. 퇴원요약지 정리와 신환 입원노트를 써야했으나 손하나 까딱할 수 없을만치 피곤해서 그냥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는 일어나니 아침 6 시 50분. 오랜 수면은 나에게 에너지를 제공해 주었고 오늘 하루는 꽤 활력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몸이 개운하니 일도 재밌어졌다. 역시나 잠이 문제였다.

오늘은 췌장암으로 고생하시던 김아주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며칠전부터 혈압이 너무 낮아서 중심정맥 라인을 잡고 도파민으로 혈압을 유지하고 몰핀을 지속적으로 투여하면서 통증 조절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혈압이 70/40 까지 떨어졌다. 도부타민까지 달면서 혈압을 유지하려고 하였지만 오전에 이미 아주머니의 동공 대광반사는 소실된 상태였다. 의식은 이미 없어졌지만, 췌장암이 만들어 내는 끔찍한 고통에 아주머니는 반사적이고 규칙적으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오늘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판단하고 환자를 1 인실로 옮기고 아주머니의 따님에게 다른 가족들을 불러서 임종을 대비하라고 말씀 드렸다.

오후 5 시 넘어서야 심전도가 직선화 되었고 더이상 숨을 쉬지 않게 되었다. 이미 심페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은 상태라 의학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의식이 없어진 상태에서 도파민과 도부타민이라는 약물의 힘으로 혈압을 유지시켰었는데, 그 약물은 아주머니의 몸과 영혼에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반나절이나 더해주는 역할을 해주었을 뿐이었다. 몸에 달린 심전도 라인과 중심정맥라인을 제거하고 소변줄도 빼드렸다. 심전도 기계는 듯하게 정확한 직선의 심전도 결과지를 토해냈고 냉혹하게 보이는 일진선 4줄은 생명이 끊어졌음을 말하고 있었다. 사망 선언을 하고 오래전부터 임종을 예상했던 가족들은 흐느끼는 울음으로 아주머니의 마지말 길을 배웅했다. 의사일 시작한지 반년만에 처음으로 나 혼자 임종을 정리한 날이었다.

아주머니가 처음 병원에 입원하였던 1 주일 전에는 돌아가실 양반에게 원짜리 영양제 수액하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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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다고 거부했던 가족들이 너무나 야속하고 매정하게 느껴졌었는데, 아주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조용히 흐느끼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그런 마음도 금세 사글어 들었다. 오늘 하루 너무나 바빠서 그분에게 신경을 더 써드리지 못한 것이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새벽 응급실에서의 생과 사 2005-08-25 시간은 새벽 6 시 몸이 가장 치쳐올 시간이다.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의사 휴게실에서 모니터로 응급실 입구를 응시하고 있는데 시뻘건 불을 번쩍이면서 구급차 한대가 들어왔다. 우리는 서두를 것 없다는 듯이 느릿한 걸음으로 환자를 맞이하러 나갔다. 구급대원이 어서 와보라고 우리를 불렀다. 달려가서 본 구급차 안에서는 양 다리를 벌리고 있는 산모와 방금 태어난 아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구급대원 아저씨가 이미 아이를 받은 모양이었고 산모와 아이 모든 건강한 상태여서 곧바로 산부인과에 노티하고 분만실로 올려보냈다.

새 생명이 탄생한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구급차가 도착했다. 청소부 아저씨가 4 미터 높이에서 떨어져서 실려왔는데, 도착 당시 생사 여부가 확실치 않아 일단 수술방으로 환자를 옮겨 모니터를 달았으나 생명을 알리는 초록색 심전도 그래프는 박동하지 않았으며 도착전에 이미 사망 상태임을 선언 하였다. 나중에 시신을 정리하기 하고 사인을 구명하기 위해 옷을 가위로 잘라서 벗겨내고 엑스레이 촬영을 하였는데, 웃옷 안쪽에서 허름한 지갑이 나왔고 그안에 있는 주민등록증으로 추적하여 유가족에게 연락을 하였다. 이윽고 나타난 아들과 부인은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하였다.

동이 터오는 새벽 응급실에서 아직 신원도 모르는 청소부 아저씨는 운명을 달리하였고 그 순간 이름도 아직 지어지지 않은 새 생명은 힘찬 울음을 터트렸다. 이 두가지 사건은 동시에 우리 응급실을 거쳐갔으며 그 자리에 의사의 신분으로 내가 서있었다.

가슴에 가능한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2005-09-19

추석 연휴 마지막날 하루종일 잠시도 쉴틈 없이 병원을 뛰어다녔다. 지난 일주일은 무난히 흘러갔는데, 휴가 끝이라서 그런지 신환도 많이 오고 해야할 일도 많았다.

'가슴에 가능한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오늘 하루종일 머리속으로 되뇌였던 문장이다. 이 말은 체게바라가 했던말이다. 터무니 없는 꿈을 향해 할발짝 다가서려는 지금의 나에용기를 불어일으키고 넘어지지 않고 지치지 않게 하려는마법의 주문과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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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래가 어떤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두려움도 많지만, 지금의 한순간 한순간이미래의 내 모습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다.

나는 내과의사, 외과의사, 성형외과, XX 의사가 되지 않을 것이다.나는 '의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의사'가 되면 '의사'를 넘어 휴머니스트가 될것이다.

의사가 될것이고 세계를 경험할 것이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면허를 획득할 것이고국제적인 '지구촌'의 '의사'가 될 것이고 누구든 상대할 수 있게 나를 만들 것이며결국은 휴머니스트가 될 것이다.그리고 그 과정을 기록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자신이 생기고 힘이 솟는다.큰 길이 보이고 숲이 보이며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게 되며남의 시선에 덜 신경을 쓸 수 있게 된다.이제 겨우 시작이다.끝인 것 처럼 흐늑적거리지 말자.앞으로 12 년이다.

하고싶은 것만 하기에도 부족한 인생이다2005-09-29

요즘은 매일 짜증과 징징거림의 반복이다. 그래도 오늘 4 일만에 오프를 받고 저녁 7 시쯤 집에와서 맛있는 식사도 하고 목욕도 하고 동네 미장원에서 머리도 깎으니 짜증이 한결 누그러지는 듯한 느낌이다. 오늘은 내 카운터가 휴가에서 돌아와서 내 일만 하면 되기 때문에 일이 반으로 줄었다. 그래도 낮에 밥먹다 말고 수술방 들어갔다오고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일로 또 사람의 성질을 돋우는 바람에 스트레스 받고 피곤한 하루기는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체력이다. 몸이 피곤하니깐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이나고 도저히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가 없다. 젠장... 이게 모냐 도대체!

오랫만에 인수랑 통화를 했다. 인수 역시 아직 과를 정하지 못하고 군대를 가서 미국면허를 준비할지 아니면 남들 안하는 과에 가서 스텝을 노릴지 고민이 많은 듯 했다. 나는 이제 마음이 완전히 콩밭으로 가서 어서빨리 의술을 몸으로 터득한뒤 미국면허와 오지 진료를 통한 여행같은 삶을 살겠다는 계획에 완전 푹 빠져서 현실감을 제대로 잃어버린 상태다. 뭐 까짓거 한번 사는 인생 정해진 길만 길이냐는 심정이다.

요즘 같아서는 병원에서 오는 환자를 기다리는 일은 뭔지 맥이 바지는 구석이 있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노블레스 노마드'에 제대로 심취한 의사가 되고싶다는게 지금 나의 가장 큰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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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홀로 떠난 이틀간의 제주 여행2005-10-14

어제 제주에 내려온 것 같은데 벌써 6 일이 지나 금요일이다. 어제와 그제는 연오프여서 렌트를 해서 혼자 제주도를 한바퀴 돌았다.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몇 가지 있었지만 당장은 도무지 운전하고 사진직고 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뒤로 미루고 무작정 핸들을 잡았다. 섬을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많은 해안도로를 지나며 바다 풍광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나 머릿속에는 단 한가지의 의문점만 계속 가득하였다. 라디오를 틀고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크게 고함도 질러봤다. 그래나 마음속 허한 느낌은 없어지지 않았다.

무작정 돈을 쓰고 싶어서 서귀포를 지나면서 파라다이스 호텔로 들어갔다. 무지하게 비싼 호텔비를 카드로 그냥 긁어버렸다. 푹신한 침대와 안락한 조명과 은은한 향기가 풍기는 호텔방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남는 것은 허무한 느낌밖에 없었다. 바에 나가서 술이나 한잔 할까 하다가 그냥 지쳐 쓰러져 잠으로 빠져들었다. 아침 늦게 일어난 곳은 천국 같은 파라다이스 호텔방 안이었지만, 내가 지금 여기서 모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과 밑도 끝도 없는 고독감과 당장이라도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슬픈 기분만이 내 옆에 남겨져 있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무료 조식 쿠폰으로 아침을 먹었다. 썰렁한 호텔 식당에는 친절한 종업원과 나 둘 뿐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정원을 한 바퀴 산책한 후 다시 핸들을 잡았다. 시뻘건 노을을 기대하고 서쪽으로 차를 몰았지만 날이 점점 흐려지고 노을대신 회색 빛 하늘 덮힌 바다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갑자기 빨리 숙소로 들어가고 싶어서 차를 달려 제주시로 들어가 차를 반납하고 숙소에 들어갔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한국 병원에 파견 나가 있는 승엽이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국 병원 가정의학과 선생님들이 내가 지원한다는 소리를 듣고 회식에 참석하라는 소리였다.

식당에 가서 선생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왠일인지 술이 목구멍으로 술렁술렁 잘 들어갔다. 계속 원샷을 했고 2 차를 지나 3 차 노래방에서 서글픈 노래 두곡을 목청 터져라 부르고 화장실에서 속에 있는 모든 것을 게워냈다. 숙소에 들어온 시간은 새벽 2 시. 아침에 일어나니 아직 술기운이 몸에 남아있었고 울렁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9 시분터 응급실 근무를 서기 시작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마자 급성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coma 상태로 실려온 환자 옆에서 줄창 3 시간 반동안 앰부를 잡았다. 자발 호흡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앰부를 잡아야만 폐에 산소가 공급되는 상황이었는데, 술 때문에 고생한 나로써는 무척이나 힘든 시간이었다. 결국 그 환자는 급성심근경색이 아니라 뇌출혈로 판명이 났고 제주 대학병원으로 후송조치 되었다.

오후에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 가정의학과 의국에 전화를 걸어 지원의사를 밝혔다. 몇 가지 질문을 받았고 내일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하였다. 내 인생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응급실에 환자가 적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였다. 오후가 되니 기운이 다시 살아나는 듯 했다. 노트북을 가지고 내려와 이틀 동안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변환하였다. 맘에 드는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사진은 왜 찍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 때려치우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면서 사진만 찍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간절하였다. 그래도 일을 해야 돈을 버니까 병원을 지키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나는 언제나 주객 전도의 인생을 살아왔다. 항상 소중한 것을 놓치고 쓸데없는 일에 자폐증 환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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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린다. 그래서 결국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고 싶다. 젠장 뭔가 완전히 뒤틀려 버린 것 같은데 고치고 싶은 의욕도 없다. 그저 치료법을 몸으로 익히고 여행을 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것 뿐이다. 가정의학과는 일년 12 개월 중 10 개월을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 각지의 병원으로 파견근무를 다닌다. 떠돌면서 치료술을 익히고 그 기술을 가지고 언젠가는 또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게 지금 당장의 내 심정이다. 의사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 어디든 나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의술에 집착한다. 사진에 집착한다. 일기 쓰기에 집착한다. 그거면 족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면 된다. 그게 다다.

아파서 잠을 깬 할아버지 2005-10-20 어제는 24 시간 응급실 당직 근무 날이었다. 오전과 낮에는 환자가 거의 오지 않아 매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외래가 닫는 저녁시간이 되면서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밤 9 시 무렵 우연인지는 몰라도 머리아픈 환자들이 대거 몰려들었고 몇몇은 뇌출혈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배제하기 위해 뇌CT 촬영을 권유하여 진행시켰으나 이상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증상이 호전되어 병원을 나갔으며 그러한 아픈 사람들의 행렬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한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새벽 5 시경 주무시다가 갑자기 등이 너무아프고 숨이 턱턱 막히는 증세를 호소하는 70 세 할아버지가 내원하셨다. 동맥혈 산소포화도는 정상 수치여서 호흡곤란이 실제로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혈압과 심근 경색의 과거력이 있는 분이었으며 잠을 깨울 정도의 통증이 등쪽에서 나타난다면 이 때 가장 심각하게 생각해야할 질병이 바로 대동맥 박리증이므로 흉부사진과 심전도와 심근효소검사를 비롯한 혈액검사등의 검사를 진행시켰다. 대동맥 박리증은 심장에서 온몸으로 혈액을 공급하는 굵은 혈관인 대동맥의 혈관 벽 사이가 갈가지면서 그 안으로 피가 고이는 질환인데 찢어지면 급사할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혈압이 너무 높아서 당직 레즈던트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혈압 강하제로 혈압을 낮추었다. 대동맥 박리증이 맞을 경우 높은 혈압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설마 이런 응급실에 그런 병을 가진 분이 오셨겠나 생각했는데, 흉부 엑스레이 사진에서 종격동이 확장된 소견이 보였으며 뭔가 불길한 징조가 나타나서 레지던트 선생님과 상의를 해서 흉부와 복부 CT 를 촬영하기로 결정하였다.

몰핀등으로 통증을 조절하고 혈압을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시키면서 환자상태를 관찰했는데, 처음에는 등쪽에서 시작했던 통증이 가슴까지 옮겨 왔다. 역시나 CT 에서는 대동맥 백리증(아마도 하부 대동맥)과 대동맥 근육층내 혈종이 쫙 깔린 소견이 보였다. 당직 내과 과장님께 노티드리고 환자 진료를 넘기고 나는 응급실 당직 근무를 마치었다. 당직실로 올라와서는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잤지만, 그래도 처음 진단 방향을 제대로 잡아서 과장님께 잘 노티드린 일을 했다는 것에 약간의 짜린한 기분을 느꼈다.

제주 응급실에서의 에피소드 2005-10-27 제주 한마음 병원에 파견가서 응급실 근무를 서면서 있었던 일이다. 제주 한마음 병원에서의 응급실 근무는 오전 9 시부터 다음날 9 시까지 24 시간 동안 이어지게 된다. 오늘도 오전 9 시에 교대를 하러 응급실에 내려가보니 8 시 55분에 50 대 남자분이 가슴 통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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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하여 심전도상에서 급성 심근 경색이 의심되는 소견이 나와서 응급처치를 시행하고 있었다. 이 분은 곧바로 응급 시술이 가능한 제주대학 병원으로 전원 조치 되었는데, 병원 도착부터 전원 되기까지 20 여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좋은 예후를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오전에는 87 세 할머니가 119 로 후송되어 왔는데, 새를 잡기 위해 감에 농약을 주사한 것을 몇 개 드시고는 배아프고 구토증세가 생겨 응급실로 오게 되었다. 다행히 감에 주사했다는 농약은 카바메이트 성분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카바메이트는 가역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독성이 적은 것이어서 덜 걱정을 해되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입을 통해 관을 집어넣어 위세척을 했으며 활성탄을 투여하고 입원조치 시켰다. 할머니는 90 이 다 되어가는 세월동안 쉽지 않은 인생을 사셨다는 것이 얼굴의 수많은 주름으로 증거하고 있었다.

바지 안에는 누더기처럼 헝겁으로 덧댄 수년은 입었음직한 메리야스 내복을 입고 계셨고 변을 보셨다면서 옷을 벗기지 못하게 말리셨다. 할머니는 우리의 처치에 잘 응해주셨고, 차라리 죽어졌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작은 목소리를 중얼거리셨으나 10 리터의 위세척을 마치고 훨씬 좋아진 표정으로 침대에 앉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 같은 자식과 50 대로 보이는 손자들이 몰려들어 할머니를 걱정하였고 할머니는 치료를 더 받기위해 병실로 올라가셨다. 그 깊은 주름들과 90 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부끄러움을 타시면서 자식들 신세 안지려는 말씀들을 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짠해지는 것을 느꼈다.

저녁 무렵이 다 되어가서 응급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교통사고를 당한 여자가 이곳으로 후송중인데 맥박과 호흡이 정지된 상태고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니 준비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원 당시 환자의 생명 징후는 이미 모두 소실된 상태였으나 우리는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20 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는 목이 부러진 듯 보였고 가슴에 골절상을 입어 혈흉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기도삽관을 하고 분비물을 흡인하니 기도로 위 내용물이 흡인되었다. 119 가 도착한 직 후부터 병원에서까지 총 1 시간여의 심폐 소생술에도 반응이 없어서 우리는 사망 선언을 하였다. 그리고 사고 경위를 조사하던 중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되었다.

여자는 남편과 신혼여행으로 제주도에 내려온 것이며 렌터카를 빌려서 섬 구경을 하던 중 레미콘 트럭과 충돌하여 변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운전석에는 에어백이 터져서 남편은 겉으로 보기에 큰 이상이 없는 상태였으나 렌터카의 보조석에는 에어백이 없어서 부인은 사망하게 되었다. 남편은 한동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지금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당히 혼란스러운 표정이었으며, 핸드폰을 부여잡고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얼이 빠진 상태였다.

사망선언을 하고도 한참 후에야 아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흐느끼기 시작하였고 영안실로 내려가는 중간에서야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알아챈 듯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갓 시작하는 부부에게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 내려진 듯 싶었다. 이 정도로 큰 사고였다면 아무리 에어백으로 보호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남편도 어딘가에 외상을 입었을 것이라 생각되어 치료받기를 권유하였지만, 오열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치료를 거부하였다. 한 인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시련과 고통이 닥쳐버린 것이다.

지금 시각은 밤 11 시 40분이고 환자가 뜸한 틈을 타서 오늘 응급실에서 있었던 인상 깊었던 일을 적어 보았다.

안타까운 응급실 200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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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아침 8 시가 조금 넘어 응급실로 환자가 한명 119 에 의해 수송되어 왔다. 30분전부터 갑자기 쓰러져 숨을 쉬지 않고 맥박도 만져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앰뷸란스로 후송되어 오는 도중에 구급대원들에 의해 계속 심폐소생술이 이루어졌지만 생명 징후는 돌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신속하게 환자의 생명 징후를 체크했고 심전도는 일직선으로 심장이 뛰고 있지 않음을 나타내었으며 동공은 완전히 산대되어 있었으며 펜라이트의 불빛에 반응이 없었다. 맥박은 몸의 어디에서도 잡히지 않았고 숨도 쉬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심폐소생술을 시작하였다. 나는 장갑을 끼고 곧바로 환자의 가슴을 압박했다. 손바닥으로 분당 100 회의 속도로 흉골중앙을 압박하면 멈춰있던 심장이 인위적으로 박동하기 때문에 전신에 혈액이 공급되게 되며 심장자체에도 혈액이 공급되므로 심장이 다시 박동을 재개할 가능성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이미 심장이 멎은지 30분이나 지나서 반응이 있을 확률은 극히 드문 상태였다. 기도 삽관을 하고 중심정맥을 잡고 수액공급을 시작하였으며 에피네프린으로 혈압을 높이고 아트로핀으로 맥박을 빠르게 하였다. 5분정도 흉부 압박을 시행하자 맥박이 다시 돌아왔으며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응급으로 뇌단층촬영을 시행하였다.

환자의 보호자 말에 의하면 환자는 평소 건강히 지내던 분이었으나 이틀전부터 계속 헛소리를 하면서 마귀와 싸우는 듯한 말을 반복했다고 하며 내원 당일 아침에도 계속 헛소리를 하더니 화장실가려고 일어서서 몇발작 걷다가 쓰러져서 의식이 소실되었다고 하였다. 뇌 단층촬영에서는 뇌출혈을 시사할만한 소견이 보이지 않았고 보호자의 진술로 미루어 볼 때 뇌염에 의한 뇌손상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맥박은 돌아왔지만 호흡과 정신상태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으며 대광반사역시 회복되지 않아서 목숨이 오래 붙어있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왕 살려놓은 것 잘 해보자는 생각으로 중환자실로 환자를 이송하였다. 그러나 끝내 다시 심장이 멎고 이제는 영원히 돌아오는 않는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아침부터 한바탕 정신없는 일을 겪고 나니 하루종일 멍한 기분으로 병동 당직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어제도 응급실 당직이었으며 두 명의 뇌출혈 환자와 한명의 뇌출혈 의심 환자로 순식간에 하루가 흘러가버렸다. 그 중 한명은 30 대 후반의 남자로 부인과 함께 내원 했는데 아침부터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구역질에 계속 난다고 하였다. 지주막하출혈이 강력히 의심되어 응급으로 뇌 단층촬영을 하였는데 전뇌교통동맥 부위의 뇌출혈을 시사하는 CT 결과가 놔와 응급 혈관 조영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후송조치 하였다. 아직 젊은 분이었는데 너무나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부인도 영문을 모르고 어쩔줄 몰라하면서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였다. 또 다른 한분은 행려자로 보이는 분이었는데, 술먹고 비틀거리면서 걸어가다가 쓰러지는 것을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하여 119 에 신고하여 응급실로 왔다. 단순 알콜중독자겠거니 했는데, 동공의 대광반사가 없는 것이 수상하여 응급 뇌CT 를 시행하였고 뇌출혈소견이 보여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이마에 보이는 혹으로 미루어보아 술에 취하여 쓰러지면서 머리를 바닥에 부딪혀 뇌출혈이 생긴 듯 하였다.

정신없이 응급실 당직을 섰고 오늘은 병동당직을 서는 날이다. 오전 내내 당직실에 쓰러져 자다가 오후늦게 드레싱을 하고 인터넷을 하는 중이다. 내일 응급실 당직을 하면 그 다음날부터는 3 일 연속 오프다. 유난히 높고 푸른 하늘아래의 가을제주를 카메라에 담으러 떠나야겠다

허전한 느낌들 2005-11-28 지난 일요일에는 병원에서 당직을 섰다. 하루종일 병원에 쳐박혀 있으니 무척이나 지루했다. 응급실 당직 근무를 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닥 할일은 없었다. 그냥 병원에 있으면서 병동 환자들 처방주고 가끔 드레싱하는 것이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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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어제는 오전에 두개의 수술 어시스트를 선뒤 오후에는 오프를 받고 집으로 와서 카메라를 메고 종로로 향하였다.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설마하며 길을 나선 것이었는데, 버스를 타고 종로에 도착하자마자 억수같은 소나기가 퍼부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카메라를 껴안고 비를 피하다가 이런 상황에서 사진은 도저히 찍을 수 없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다 근처 일본라멘 집에 들려서 라멘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라멘을 먹고나니 밖은 다시 비가 그쳤고 비온뒤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보고자 인사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은 오후 4 시가 넘었고 비온뒤라 발이 매우 어두웠다.

인사동에는 사진 찍으러 여러번 가보지만 막상 제대로된 사진을 건져본 기억이 거의 없다. 제일 처음 사진에 취미를 가졌던 6 년전에 사진수업의 포트폴리오 제출을 위해 인사동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카메라는 니콘 FM2 였고 100mm 단렌즈로 인사동의 사람들을 화면 가득 담았다. 당시의 주제는 고독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아무 생각없이 도촬도 마구 해댔고 사람들 얼굴에도 카메라를 잘 들이 밀었었다. 그때 만든 포트폴리오는 A+ 를 받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때처럼 마구잡이로 도촬을 할 수가 없다. 당시만 해도 인사동에 기이한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인사동 정비 사업을 벌인 후로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린 탓도 있지만, 우선 내가 알지못하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 민다는 것이 용납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애매한 바닥만 여러장 찍고 허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역시 제대로 된 사진은 한장도 없었다. 사진에 대해 알면 알 수록 셔터 누르기는 더욱 힘들어 진다. 매우 낙심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사진 찍을 시간은 없고 오후 늦게 겨우 짬을 내서 어디라도 나가보면 왜이리 셔터누르기가 힘이 드는지...

다음주 부터는 원래 외과 파트를 한달동안 돌기로 했으나 제주도 가는 친구가 바꾸자고 연락와서 다시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제주도는 3 일에 한번씩 24 시간 응급실 근무를 서는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며 앞으로 가정의학과 의사가 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서 결정했다. 제주는 24 시간 응급실 근무에 곧바로 병동 근무가 24 시간 이어진 후 24 시간 오프를 받는 시스템인데 은근히 몸이 피곤해진다. 그래도 오프를 받으면 사진찍으로 바닷가로 나갈 수 있으므로 나에게는 맞는 근무여건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은 잠시 시간을 내서 신촌세브란스병원에 가서 전공의 지원서를 내고 왔다. 그리고 이제 저녁 7 시 부터는 내일 아침까지 응급실 당직 근무를 서게 된다. 눈 좀 붙일 시간이 있을려나 모르겠다.

요즘은 계속 허한 느낌과 뭔지 모를 불안한 느낌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확실히 목표를 정했으면 곧바로 나아가면 될터인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미즈메디 병원 가정의학과 과장님이 국제파견의사로 파푸아뉴기니를 다녀오셔서 잠깐 말씀을 들었다. 군의관과 공보의가 확정되기 전에 지원을 하고 전문의 시험이 끝나자마자 바로 면접을 본다고 하였다. 그리고 레지던트 기간에 몽골 같은 곳에 봉사 진료를 간 경험이 있으면 많은 선발에 많은 플러스 요인이 된다고 한다. 내년 여름 휴가는 열린의사회나 학교 선교팀에 문의를 하여 그런 곳에 다녀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대신 3 년 파견근무 다녀와서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국내에서 취직하거나 개업해서 일해야겠다는 커다란 틀을 짜본다. 그리고 어느정도 틀이 잡히면 틈틈히 의료 소외지역에 파견되어 일을 해보고 싶고 언젠가는 몇년정도의 시간동안 장기적인 활동도 해보고 싶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생활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 길은 정해졌지만, 불안하고 허전한 느낌은 어느 때보다 심해진다. 어서 일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한복판이긴 하지만...

50 시간 연속 응급실 근무 2005-12-05

지난 토요일 오후부터 4 주간의 제주도 파견 근무가 시작되었다. 금요일 밤 서울에서 응급실 밤샘 근무와 저널발표로 초죽음이 된 상태로 오전에 잠시 눈을 붙이고 제주로 날아와 곧바로 응급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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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입되어 근무를 시작하였다. 원래 제주는 인턴 3 명이 내려와야 하나 나머지 두명은 사정이 있어서 내일 오전에 오기로 하였다. 피곤한 기분이 없지 않았지만 제주에 내려왔다는 생각으로 나름 즐거운 마음으로 밤샘 근무를 하였다.

다음날 일요일 오전에 문자가 왔는데 제주에 폭설이 내리고 있어 비행기가 연착된다는 것이었다. 나와 응급실 근무를 교대해야 할 형들이 내려오지 못하고 서울 김포 공항에 발이 묶여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응급실 근무를 계속 서게 되었다. 그런데 일요일 오전이 지나 점심을 너머 저녁이 되었고 결국 제주행 비행기가 완전히 결항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몽롱하고 흐릿한 눈으로 또 다시 일요일 밤이 지나 월요일이 되었다. 환자가 뜸한 틈틈히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하였으나 피로를 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드디어 월요일 아침이 되었고 연락이 왔다. 오후 6 시 비행기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저녁 6 시가 되도록 계속 응급실에 쳐박혀서 장장 50 여 시간에 걸쳐 응급실 연속 근무를 서는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오늘 오전에는 나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응급실 과장님이 수면을 허락해 주셔서 오전에 눈을 좀 붙이고 피곤을 어느정도 풀 수 있었다.

오늘 밤에 서울에서 드디어 사람들이 내려와 근무 교대를 하였으나 어찌 된 일인지 몸은 피곤한데 도저히 잠이 들지가 않는데 게다가 낮에 먹은 피자조각이 배탈을 일으켰는지 속이 부글거리고 계속 설사를 한다. 하루에도 수십명씩 이런 증상의 환자를 응급실에서 진료하는데 내가 그 꼴이 난 것이다. 병동에 가서 부스코판(배탈약) 남은 거 있는지 찾아봤지만 내 몫은 없어서 그냥 화장실 신세로 대체하는 수 밖에 없었다.

잠이 너무 않와서 병동 로비에 있는 동전 넣는 인터넷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기를 써본다. 내일은 아무리 피곤해도 사진 장비를 울러매고 눈덮힌 한라산으로 가야겠다. 나에게 있어서 진정한 휴식은 잠이 아니라 여행과 사진이므로..

이놈의 깡패같은 세상 오래 살아서 뭐혀!2005-12-08 어제는 또 다시 24 시간 응급실 당직을 서는 날이었다. 이날은 환자 수는 많지는 않았지만 인상 깊고 안타까운 일들이 몇번 있어서 일기를 남긴다.

오전이 지난 정오경에 미끄러운 길에 트럭이 전복되어 운전사가 119 로 응급실에 후송되어 왔다. 응급실로 들어 오면서부터 어깨 아래부위와 아래 목부위의 심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신체 검진상 팔은 움직일 수도 있고 감각도 있었으나 가슴 아래부위의 감각이 전혀 없었고 다리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였다. 첫번째 등뼈를 중심으로 척추의 심각한 손상을 예상한 후 우리는 신속하게 응급 조치를 취한후 경추를 포함한 기본 엑스레이 사진과 뇌 CT 촬영을 시행하였다. 경추사진에서 6 번째와 7 번째 목뼈가 어긋나고 7 번째 목뼈의 골절 소견이 보였다. 경추 CT 를 찍어 손상부위를 정확히 파악한 뒤 우리 병원에서 수술이 힘들 것으로 판단되어 제주시 내에 있는 경추 수술 전문 의사가 있는 병원으로 전원조치하기로 하였다.

환자분은 다행히 뇌 손상이 없어 정신은 온전하였으나 끔찍한 통증으로 매우 괴로워하였다. 마약성 진통제를 짧은 간격으로 두번 정맥 투여하였으나 효과가 전혀 없었다. 요즘 응급실 과장님께서 최면으로 환자의 진통을 경감 시키는데 관심이 많으셔서 과장님은 곧바로 환자분에게 최면 요법을 적용하였다. 최면이라는 것이 별게 있는 것이 아니라 통증이라는 감각에 집중되어 있는 정신을 다른 곳에 집중하게 하여 통증을 적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환자분의 얼굴 바로 위의 천정의 한 점을 응시하게 하고 숨을 천천히 쉬라고 예기한 뒤 숨을 길게 내쉴때마다 몸의 긴장이 풀리고 근육이 이완되면서 통증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자 환자분은 그렇게 힘들어하는 와중에도 곧바로 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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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숨을 천천히 고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숨을 두세번 길고 천천히 내쉬자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효과가 계속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환자분이 집중을 하면서 스스로 마인드 콘트롤을 하는 동안에는 통증을 적게 느끼는 듯 하였다. 과장님은 열번 정도 환자분에게 반복적으로 설명을 하면서 시행을 유도하였고 본인 스스로 아플때마다 천정의 아무 점이나 쳐다보면서 이런 식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라고 권유하였다.

과장님의 말에 따르면 급성기의 외상 환자일수록 최면효과가 클 수 있다고 하였다. 통증에만 모든 정신이 집중되어 있는 사람에게 그 정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면 진통 효과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마약성 진통제에도 일체의 반응이 없던 사람이 말 한마디에 진정이 되는 모습은 꽤나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과장님은 의학적으로 투여하고 시행할 수 있는 모든 시술을 다 한 후에 그런 요법을 시행해야 효과가 극대화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의사가 하는 말은 암시 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에 심한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당신은 심각한 병으로 곧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 정말 그 사람은 내가 죽을 것이라고 계속 생각함으로써 병을 이겨낼 능력을 잃게 된다고 하였다. 반대로 당신의 병은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것이니 용기를 가지고 이겨내자고 말을 하면 치유 효과가 훨씬 커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매우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 분은 스테로이트 치료를 곧바로 시작한 후 다른 병원으로 전원되었다. 부디 빠른 쾌유가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가는 때에 역시 119 로 연세가 93 세나 되는 할아버지가 응급실로 실려오셨다. 심한 복통을 호소하셨는데 정신은 멀쩡하셨다. 신체 검진상에서 복부가 널빤지처럼 경직되어 있는 소견을 보였고 모든 복부에서 압통이 있었으며 이것은 복부 내장이 터져서 복막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흉부 엑스레이에서 오른쪽 폐 아래로 공기가 뜨는 소견이 보였으며 이것은 장이 파열되어 장 내의 공기가 몸 속에 떠돌고 있다는 것을 뜻아므로 응급 수술이 필요한 경우다. (인턴하고 이런 사진은 처음봤다.) 응급 복부 CT 를 시행하였고 역시나 복부에 다량의 유리공기가 차있었으며 장 천공되 위치는 확실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외과 과장님은 80 대 노인을 수술해본 적은 있어도 93 세는 처음이라고 자신없어 하였다. 사실 그 정도 나이면 전신 마취를 견디지 못하고 수술중 돌아가실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일단 가족을 수소문 해서 찾기 시작하였는데 다른 요양원에 할머니가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연락을 취하였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40 년이 넘게 할아버지와 같이 살기는 하셨지만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지내셨기에 법적 보호자로서의 효력이 없는 상태였으며 할머니 또한 귀가 잘 안들리고 기력이 많이 쇠한 상태여서 병원으로 모시고 오기가 쉽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지만 할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이 될 수 있다는 병원으로 모시고 와달라고 그 쪽 요양원에 부탁하였다. 아들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서 전화 연락을 하였으나 아들은 지금 현재 서울에 있었으며 할아버지와 연락 닿은지 메우 오래되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당장 비행기 타고 제주로 오라고 하였고 현재 상태를 설명 드리고 수술을 진행할지 여부를 전화를 물어봤고 수술을 승락하였다. 원래는 서면으로 승인을 해야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어서 전화로만 승락을 받았다.

응급실로 할머니께서 오셨고 할아버지 얼굴 한번 보자고 집중 치료실로 들어가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손을 꼭 잡으면서 오래 더 사셔야 한다고 수술 잘 받으라고 하였다. 그에 대한 할아버지의 대답이 심각한 응급실의 분위기를 완전 바꾸어 놓았다.

" 이놈의 깡패같은 세상 오래 살아서 뭐혀!! "

1912 년에 태어나셔서 이미 천수를 다하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시니 웃음이 피직 흘러나왔다. 외과 과장님도 역사의 산 증인인데 한번 살려보자고 하시며 수술방으로 올라가셨다. 할아버니는 수술중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할머니와 요양원 식구들의 미소섞인 환송을 받으면서 약간은 소풍가는 기분으로 수술방으로 올라가셨다. 한참 후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대장의 썩은 부분을 절제 해내고 할아버지도 마취에서 깨어나셔서 정신을 조금씩 차리고 계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딱 1 년만 더 살고 싶다는 할아버지의 소원이 10배는 더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밤 사이에는 여러명의 복통 환자들이 응급실을 내원했었고 그 와중에도 11 시 20분에는 필리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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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려온 에밀리와 10분간 전화통화를 하였고 새벽에는 환자들이 뜸하여 눈을 좀 붙일 수 있었다. 오늘은 병동 드레싱과 병동 일들을 하는 날이고 내일은 바다로 나가볼까 생각 중이다. 환자를 보면 볼 수록 정말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

행복에 대하여2006-01-21 참 히안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재의 자기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정도는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힘든 일을 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편하게 놀고 먹는 사람들이 자기 처지를 비관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남들이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모습은 눈뜨고 보지 못하고 매우 한심하게 생각한다. 약해 빠졌다느니 배가 불러 터졌다느니. 그러나 세상에 남 욕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사실 인간의 능력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클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보지도 않고 되지 않을 것이라 포기하고, 또 용기를 내지 못하고 보다 부지런해지고 싶지 않아서 그냥 현실에 안주하면서 그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것이다. 벗어나고 뿌리치고 과감해지지 못하면 불행해지는 것이다. 행복은 사실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일지 모른다. 그러나 꿈과 용기가 있다면 신기루는 실제가 된다. 생각하기 나름이고 세상에 하면 안되는 일은 없다.

수많은 갈등과 후회가 나를 감싸고 그와 동시에 도전의 욕구가 나를 자극한다. '왜'냐고 묻지 말고 그냥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면 된다. 해답은 그 어디에도 없으며, 용기있고 실천하는 자가 그 해답을 맛볼 수 있다. 꿈은 누구나 이룰 수 있다. 좌절은 그저 귀찮고 게으른 것에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감동하는 법을 터득하면 행복할 수 있게 된다. 행복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것이며, 그 맛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

누군가가 한심해 보이거든 그 순간 나를 되돌아봐라. 그리고 행복해지고 싶거든 현재를 투자해라.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어느 대학병원 인턴의 일기 2006-02-14 요즘 감기에 걸려서 죽을 맛이다. 어제도 응급실에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환자들 보다가 몸살에 복통까지 겹쳐서 고생하니 간호사들과 2 년차 선생님이 너무나 고맙게 배려해주셔서 수액 맞고 주사 맞으면서 6 시간동안 푹 쉴 수 있었다. 쉬고 나니 한결 가뿐해진 느낌이다.

2월달부터는 하루 응급실 하루 병동 하루 응급실... 이런식으로 일하기 때문에 매우 빡쎈 스케쥴이고 몸도 점점 지쳐간다. 24 시간 응급실 당직을 서고 숙소로 돌아와 쓰러져 자면 병동에서 계속 전화를 해대서 이것저것 일처리를 하고 드레싱을 해야 한다. 그러다 저녁 6 시가 되면 오프다. 오프면 그 시간이 아까워서 혼자 영화보고 바에도 가고 아니면 윗년차 선생님들이 불러내어 밥도 사주시고 술도 사주시고 그런다. 그러다가 드디어 몸이 탈이 나버렸다.

이제 레지던트가 된다니 타는 마음에 워싱턴 메뉴얼을 짬짬이 계속 읽으면서 공부도 한다. 그동안 쇄골하 중심정맥 삽입술을 두번 다 성공 했으며 기관 삽관을 3 번의 시도만에 성공하면서 감을 잡았다. 그리고 심폐소생술 때 약 쓰는 법의 흐름을 깨달았다. 알면 알수록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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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예전에 아무것도 모르는 때보다는 훨씬 발전된 것 같다는 생각이다.

캐나다사람 두명을 진료했다. 한 명은 자전거 타고 가다 서있는 차에 스스로 들이 박은 젊은 캐나다 청년이었는데 영어 강사였다. 에밀리와의 전화영어 덕분에 무리없이 진료가 가능했다. 또 한명도 캐나다 사람이었는데 역시 영어 강사였는데 무척이나 뚱뚱한 흑인이었다.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도착한 후 5분만에 arrest 가 났으며 한시간 동안 심폐 소생술을 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동료 흑인이 옆에서 오열하고 매우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나이도 너무 젊어서 살리고 싶은 마음에 죽어라 심장 압박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후 3 일동안 온몸이 뻐근했다.

3,4월달에는 신촌 내과에 파견되어 근무를 하게 된다. 신촌에서 인턴을 하지 않은 나로서는 적잖이 걱정되는 스케쥴이다. 게다가 아마 첫 한달 동안은 병원에서 살게 되지 않을까 하기에 마음이 답답하지만 힘든 스케쥴은 그만큼 많이 배우는 기회가 되므로 좋게 생각하려 하고 있다. 가정의학과는 깊게 배우지는 못할지 몰라도 자기가 노력한 만큼 많이 배우고 좋게 그 기술을 써먹을 수 있는 과라는 생각이 들어서 과 선택은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3 년 후에 페루같은 나라에 파견되어 혼자서 모든 환자들을 다루는 진정한 만능 의사로서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어 본다.

로망이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 달려보자.

아... 그리고 요즘에는 사진기는 거의 손에 만질 수가 없어서 매우 안타깝다. 여름 휴가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여름 휴가는 영국으로 건너가서 차를 렌트해서 일주일동안 한바퀴 돌아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잘 될런지 모르겠네

무기력한 의사짓 2006-03-29

폐암 말기로 12 년째 투병 생활을 해오던 65 세 할머니가 내가 담당하는 환자가 된지 13 일이 되었고, 입원 치료 후 호흡곤란 증세가 점차 호전되어 병색이 조금 좋아지는 듯 하더니 3 일 전부터 가래를 제대로 뱉어내지 못하고 폐 안에 고스란히 쌓이면서 호흡곤란이 심해지면서 오늘 낮에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다.

3 일동안 가래를 뱉지 못하고 헛기침만 계속 하시면서 침대에 눕지도 못하고 밤새도록 잠도 못 주무시고 콜록 거리기만 하시면서 무척이나 괴로워 하시더니 어제 밤부터는 의식이 흐려지시고 결국 침대에 앉은 자세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우리같은 건강한 사람들은 가래를 뱉지 못해서 숨이 끊어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겠지만, 폐 기능이 정상의 4분의 1 이하 밖에 되지 않는 이런 분들은 가래를 뱉어낼만큼 효과적으로 기침을 하지 못하고 기력만 소진하다가 운명을 달리하게 된다. 의외로 많은 호흡기 계통 말기 환자들이 이런 코스로 운명을 맞이하게 되고 그 과정은 무척이나 고통스럽다.

옆에서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이 환자분의 괴로워하는 모습에 안타까와 했고, 특히나 담당 주치의로서 뭐 하나 제대로 도와드리지 못하고 마지막 가시는 길 편하게 해드리지 못하는 자괴감과 무기력함이 흰 가운을 입고 환자 앞에 나서기 부끄럽게 만들었다. 약도 주고 등도 두드리고 콧줄로 가래를 뽑아 드리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카테터를 코를 통해 기도로 넣어 가래를 뽑을때도 산소포화도가 수초만에 50%까지 떨어지면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기관지경으로 제거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기도 삽관을 하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고는 하나 기도 삽관을 하고 인공호흡을 하고 중환자실로 가는 것을 가족분들은 원치 않았으며 우리 치료진도 그것은 환자를 위해 좋지 않은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마지막 3 일동안 침대에 눈지도 못하고 앉은 자세로 가래와 기침과 호흡곤란과 정신이 흐려지는 생사의 경계선에서 근근히 목숨을 이어 나가시면서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와 지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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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을 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례를 하는 강한 정신력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가래를 뽑아드리고 등이라도 두르려 드리면 힘든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꼭 해주셨더랬다. 가족과 의사 그리고 환자 본인도 마지막 순간을 기다렸지만, 그 시간은 너무나 길고 힘든 시간이었다. 더 이상 해드릴게 없다고 말하는 것만큼 의사로서 기운이 빠지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죄송한 마음에 병실만 계속 들락날락 거리지만 뾰족한 수가 없으나 답답할 노릇이다.

뭐라도 해드렸어야 하는건데... 이런 의사짓은 안하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모르는게 많고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 현대 의학이 아무리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가장 눈 앞에 보이는 고통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게 빌어먹을 현대 의학의 현주소다. 고맙다고 손잡아 주시던 모습과 병원에 와도 왜 도와주지 못하냐고 하소연 하시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사망 선고를 하고 아드님이 나보고 고생했다고 악수를 청해 오는데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스물 아홉이란 나이 2006-04-06 1. 꿈에 대해

문득 생각해보니 어느새 내 나이가 스물 아홉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그 나이 때에 해야 어울리는 일들이 분명 있는 것인데, 나는 언제나 한발 늦게 무언가를 깨닫고 알았으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공상에 휩싸여 있는 경우가 많다. 꿈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 것을 이루려는 노력은 적지 않게 괴로운 면이 많다.

사실 꿈을 이루려는 행동은 행복한 삶을 사는 것과 정 반대의 생활양식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고뇌하고 그래서 마음 상하고 지치게 된다. 이제는 무언가에 (사람이든 일이든) 정착을 해야할 나이지만 나는 아직 하고 싶은게 너무나 많고 그래서 또 한걸음 뒤쳐져서 뛰어간다. 포기하지 못하는 것도 불행이다. 그래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나이에 걸맞지 않는 꿈인 것을 어떻게 하냔 말이다.

2. 의사로서

요즘 폐암 말기 환자분들이 자주 입원하셔서 보호자 분들에게 환자분의 현재 상태와 가능한 치료 방법과 앞으로의 예후 및 생존 기간에 대해 설명할 일이 많이 있다. 폐암이라는 것의 특징이 진단 당시에 이미 수술로 완치를 바라기 힘들 정도로 많이 진행되어 있고 다른 장기로 퍼져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보호자 분들께 설명할 때 처음 말을 꺼낼 때부터 완치는 힘들고 항암 치료로 생존을 좀더 연장할 수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지는 않으며 보존적으로 치료하여 앞으로 남은 여생 고통을 덜어드리는 식으로 치료를 해보자 라는 식으로 설명을 하는 경우가 많게 된다. 그렇지만 그것은 의사로서 너무나 맥빠지는 설명이 아닐 수 없다.

어제도 그런 식으로 한참을 설명을 드렸고 보호자 분들은 완전 낙심하여 병실로 돌아갔다. 다시 여러번 되돌려 생각해봐도 내가 말한 설명에 틀린점은 없었지만, 최선의 설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문제일까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부정적인 설명만 한 것 같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보호자를 찾아가 말을 살짝 바꾸어서 힘들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좀더 호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내 자리로 돌아와 의학적으로는 달라진게 없더라도 희망이 담긴 말이 환자나 치료자에게 좀더 힘이 생기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의학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인간은 죽음 앞에서 너무나 무력하다. 그렇지만 마지막까지 좀더 인간적인 모습이 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법은 더욱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그런 점에서 나는 너무나 미숙하고 부족한 점이 많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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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정의학과 의사로서

가정의학과 의사는 인간에게 발생하는 흔한 질병을 과,성별,나이,인종에 관계없이 치료하는 일차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다. 따라서 흔하게 걸리는 감기, 배탈, 두통, 관절통, 불면증, 만성통증 등의 생활 질환부터 시작해서 각종 응급 질환이나 당뇨, 고혈압, 천식, 심부전, 비만, 갱년기, 우울증, 골다공증 등의 만성 질환등에 대해 두루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와 가족의 주치의로서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병에 대해 의학의 전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중 흔한 질병들에 대해 깊이있게 이해하고 치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각종 질병의 예방과 장기적인 관리에 대해 어느 의사보다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면 가정의학과 의사는 암 전문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 수술을 하고 항암제 치료를 하고 방사선 치료를 하지는 않지만, 암을 조기 발견하고 예방하고 만약 암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치료 후에 앞으로 어떤 식사를 하고 운동은 어떻게 할 것이며 어떻게 여생을 고통이 적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대학병원의 저명한 교수님들은 암 치료의 대가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의 조기발견, 예방, 관리, 정서적 지지 등의 부분은 병원 문턱이낮아 쉽게 접할 수 있는 가정의학과를 비롯한 일차 의료의의 몫일 것이다. 또 예를 들면 담배를 피우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으니 끊으라고 말로만 할 것이 아니라 꾸준하고도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 일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꿈이 있고 계획이 있지만 당장은 정확하게 배우고 지식과 경험을 쌓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며 보다 계획성있게 하나하나 자료를 모으고 준비해야 한다. 대충해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차근차근 준비하여 세상의 틀을 깨고 많은 이들이 공감 만한한 나만의 표준을 만들어보자. 그리고 국제 적인 마인드를 항상 마음속에 새겨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의사가 될 수 있도록 보다 실제적으로 하나씩 준비해보자. 할일은 많고 조바심만 가득하니 이를 어찌할꼬...

기적을 바라는 의사2006-04-11 보름전 처음으로 할머니를 만난 날... 잔뜩 찌푸린 얼굴에 툭툭 내뱉는 말투로 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시고 모든것이 귀찮은 듯한 표정이셨다. 이것저것 물어봐야 과거력을 조사할 수 있는 나는 여간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청진도 못하게 하고 몸도 못만지게 하시는 쉽지 않은 상대였다. 일단 일보 후퇴하고 다른 환자들 먼저 본 후에 느긋한 마음으로 다시 찾아갔다. 비위 맞추기 작전을 쓰기로 하고 핸드폰 충전기도 꽂아드리고 식사도 밥상에 올려드리고 이런저런 요구 사항들을 웃는 얼굴로 들어드렸다. 조금은 경계심이 풀리시던지, 언제부터 숨이찼고 지금은 어디가 아프고 예전에 무슨 병을 알았었는지... 병력 보따리를 조금씩 풀어놓기 시작하셨다. 그러다가 할머니와 조금씩 친해졌고, 다른 의사들에게는 호통치고 짖굿게 구시다가도 나한테는 살갑게 대해주시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엑스레이 상에서 오른쪽 횡격막이 상당히 위로 상승하여 폐가 반정도가 허탈된 상태였으며 흉부 시티상 종격동에 종양으로 의심되는 덩어리가 보여, 내원 4 일째 되는 날 조직검사를 위해 실시간으로 CT 를 찍으면서 대 바늘을 가슴에 찔러 조직을 채취하는 시술을 받게 되었다. 위험한 검사이므로 같이 동행해서 검사실에 갔는데 앞 환자의 시술이 너무 오래 걸려서 1 시간 반동안 복도에서 할머니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게 되었고, 할머니는 수십년 동안 간직해오던 비밀들을 하나둘씩 나에게 알려주셨다.

이런 저런 검사가 계속되었고 지루하고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입원 9 일째 조직검사 결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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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왔고 결과는 폐암으로 판정되었다. 가족분들에게 먼저 이 사실을 알려드렸고 도대체 무슨 병이냐고 계속 캐물으시는 것을 최종 확인이 될 때까지 이리둘러대고 저리둘러대다가 병기 결정이 나고 가족들에게 다시 현재 상태를 설명 드렸고 가족분들이 할머니에게 최종 결과를 전해드렸다. 최종 판독은 폐암 말기였다.

다음날 아침에 할머니를 찾아갔을 때 화를 내시거나, 침울해있거나 맥빠진 모습일 줄 알았는데, 폐암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신 것이 맞는건지 의문일 정도로 전날과 다름 없는 모습을 보이셨다. 그렇지만 나에게 계속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이 길어졌다. 알고 보니 할머니는 원래 친 자식을 직접 낳지 못하시고 조카 셋을 어렵게 키워 유학까지 보내시고 하와이로 이민도 보내신 분이셨다.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나는 죄 지은 것도 없는데 왜 몹쓸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시면서 심술궂은 표정을 지으셨다. 생각보다 진행이 더딘것 같으니 교과서에 있는 것보다 오래 사실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 드리니 평소에 청국장 가루를 우유에 타서 매일 먹어서 그렇다는 말씀도 하시고, 웃음치료 모임에 나가서 실컷 웃어서 병을 낫겠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러면서 병실이 떠나가도록 껄껄껄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아이 같았다.

내일은 항암제 치료를 시작하는 날이다. 젊은 사람도 받기 힘든 항암 치료를 할머니께서 잘 견디어 내실지 걱정이 많이 된다. 따님은 항암제 치료 중간 중간에 해외 여행을 시켜드리거나 기도원에 가도 되냐고 물어보시지만, 항암 치료하는 몇달은 사소한 감기에도 중대한 감염증세를 보일 수 있어서 그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 드렸다. 불같은 성격의 할머니가 과연 끈기있게 항암제 치료를 견디어 내실 수 있을런지... 나는 왠지 느낌이 좋은데 의사로서의 자세로는 부족한 면이 있는 것일까? 따님이 나에게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겠냐고 물었고 나는 물론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생각하는 기적은 말기 폐암이 말끔히 사라지고 할머니

가 젊음을 되찾게 되는 기적이 아니다. 별다른 부작용 없이 약효가 잘 들어서 숨찬증세 많이 호전되어서 힘들게 사신 인생 돌아가시기 전에 하와이 여행 꼭 갈 수 있게 되는 기적과 앞으로 별탈 없이 원래 정해진 천수를 누리게 될 수 있는 기적을 말하는 것이다. 교과서는 절대 하늘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교과서 적으로는 치료받지 않는 폐암말기의 평균 생존기간은 반년에서 길면 1 년이며 항암제 치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반년 이상을 더 연장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기 힘들지만, 암 말기 환자처럼 자신이 언제 죽을 것이라는 것을 선고 받은 사람들이 있다. 지금까지의 현대 의학으로 말기 암을 완치 시키기는 어렵다고 할지라도 마지막 삶을 정리할 수 있도록 여력을 만들어주고 시간을 좀더 연장시키는 것은 노력만하면 상당히 가능한 부분이다. 반년 연장이 도대체 무슨 의미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살아온 70 평생보다 남은 반 년이 더욱더 소중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많은 죄책감이 있고 그와 동시에 많이 희생했다는 억울한 마음도 동시에 가지고 계시다. 기적이 일어나서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항암제 치료로 현재의 아픈 몸이 좀더 편해져서 마음의 얽힌 실타래와 앙금을 풀 수 있는 시간적이고 육제적이고 정신적인 여유가 생길 수 있다면 할머니께 힘든 약을 드리는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부디 무사히 항암치료 모든 과정을 마치고 하와이 여행 떠나실 수 있기를...

야간분만 아이 받다. 2006-05-16 오늘은 병동 야간당직 서는 날 별일 없이 평온한 시간이 흘러가는가 싶더니 새벽 2 시에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통 "선생님 분만이요! 빨리오세요!!"

부리나케 분만실로 달려갔고 이미 아기 머리가 반쯤 보이는 상태에서 아기가 나오지 못하게 간호사가 손으로 태아 머리를 막고 있었다. 분만과정이 너무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황이었고 산부인과 과장님이 병원으로 오고 계셨지만 산모는 도저히 몸에 힘을 빼지 못하고 금방이라도 아이가 세상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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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올것만 같았다. 아기는 밖으로 나오려고 안달이었고 손으로 태아 머리를 밀어넣으면서 시간을 벌어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산모가 도저히 못참겠다고 하여 간호사가 회음절개를 하였다. 아이가 머리를 힘차게 쑤욱 엄마 배 밖으로 내어 밀었고 양수와 함께 순탄하게 어깨가 빠져나와졌으며 나는 아이를 두손으로 조심스럽게 밖으로 빼내었다. 산부인과 수업때 배웠던 분만 과정들을 머리속으로 떠올릴 겨를도 없었다.

결국 내가 아이를 받았고 간호사가 제대를 자르고 결찰했다. 그 느낌.... 아.... 아이는 여자아이었고 잘 울고 피부색도 좋았고 숨도 잘 쉬고 있었다. 제대혈 모으고 있으니 과장님이 오셨다. 과장님이 회음절개 부위를 봉합하고 태반을 제거 한후 모든 과정이 마무리 되었다.

얼떨결에 그리고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이루어져 기분이 꽤 좋아졌다. 평소에 항상 의사면 애는 받을 줄 알아야지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하곤 했었는데 막상 일이 닥치니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심폐소생술 동시에 두번 2006-05-20 오늘은 응급실 당직 서는날. 낮에는 한산한 응급실이 밤이 되면서 여기저기 다치고 배아프고 머리아프고 어지러운 사람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밤 8 시쯤 5 병동에서 CPR(심폐소생술)이 터졌다는 소리를 듣고 뛰쳐 올라가니 이미 윗년차 선생님께서 엠부 잡고 호흡을 살려놨으며 기도삽관후 중환자실로 보내는 준비를 하고 나는 다시 응급실로 내려왔다.

내려오자 마자 다시 5 병동에서 CPR 이 터졌다해서 뛰어 올라가니 똑같은 병실에서 다른 환자가 심폐정지로 윗년차 선생님이 CPR 을 하고 계셨다. 30분동안 땀을 비오듯이 흘리면서 심장 압박과 마스크 피팅을 하느라 온몸이 흐느적 거렸다. 안타깝게도 이분은 소생시키지 못했다. 원래 보호자 연락이 되지 않는 분이셨고 가족이 어느정도 환자를 방치하는 상태였던 것 같은데 겨우 연락이 닿은 보호자도 환자의 사망소식에도 오늘 오기 힘들다하여 인생사의 또다른 한 모습을 경험하게 되었다

처음 심폐소생술로 인공 호흡기를 달았던 환자의 femoral 정맥으로 중심정맥을 잡는데 어찌나 손이 후들거리던지... 다시 응급실로 오니 환자들이 잔뜩 깔려있어서 보낼 분들은 보내고 입원해야 할 분은 입원시키고 교통정리를 하고 일기를 쓴다. 내일은 조카 돌잔치라서 서울가는 날.. 맨정신으로 잘 비행기를 탈 수 있을런지...

사람은 꿈이 있는 존재다. 2006-06-21

다시는 결코 메스를 들면서 그 어떤 생명체일지라도 단순한 기계적인 유기체로 취급하지 않으리라. 사람이란 꿈을 가진 존재다. 이제부터 나의 칼은 육체와 동시에 그 꿈을 구하리라- 닥터 노먼베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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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꿈을 가진 존재다.나는 그 꿈을 구하리라...평생 잊지 않으리라.. 노먼 베쑨의 저 말...

아무리 현실이 버거워도로망을 잃지 말아라.로망은 너의 힘의 원천이고삶의 원동력 그 자체다.하루하루 나의 로망이 현실이 되고 있다.바로 그런 믿음!

독서와 로망2006-07-14

결국 독서를 해야 생각을 하게되고 생각을 해야 꿈이 생기고 미래가 보인다. 이번 프랑스 파리 여행 준비를 하면서 여행 루뜨를 짜고 있으려니까 느트르담 성당이며, 몽마르뜨 언덕이며, 베르사유 궁전이며... 그 문화재에 얽힌 역사와 이야기를 알아야 여행이 여행답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어 뜬금없이 세계사책을 한권 속독으로 읽었다. 건성으로 읽긴 했지만, 세계속의 나의 위치와 내가 살고있는 시대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나의 역사에 대해 잠깐 돌이켜보면 스무살까지는 무지의 시기였고 스무살을 지나 스물 두살까지는 혼란 속에 세상의 비밀과 삶의 의미를 찾아 보려 동기를 가지게 된 시기였으며 그 후 스물 여섯살까지 나를 찾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스물 일곱살이 되어 떠난 미국여행을 계기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졌으며 가슴속에 로망을 품기 시작했으며 나를 찾는 여행을 어느정도 마무리 하고 눈을 세상 밖으로 돌리게 되고 수차례의 외국 여행을 다녀오게 된다. 스물 여덟살에는 로망을 구체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기술 습득과 정보 수집에 열을 올렸으며 스물 아홉살 현재 막연한 불안감과 자신감 상실의 상황속에 레지던트 1 년차 생활을 맞이하고 있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어떤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줄지는 미지수지만, 좀처럼 구체화되지 않던 의사로서의 로망과 세계인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들을 조금은 현실적인 서술이 가능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무수히 많은 해야할 일들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게으름과 피곤함에 굴복하는 나이지만, 이번 여행 준비와 세계사 독서를 통해 세계 속의 한국인 의사로서 무언가 작지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보겠다는 나의 로망을 어느정도 구체화, 현실화 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가져본다.

나는 그동안 단 하루의 독서가 한 인간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으며, 내 인생의 가치관과 로망의 변화 과정을 통해 그것을 몸소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무얼 해야할지 모르겠다면 아무 책이나 그저 한번 읽어보기만 해봐도 사고가 생기고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머리속에 맴도는 단어들... 의학 (응급의학, 만성질병, 감염병), 여행, 사진, 국제구호 (국제파견의사), 영어습득, 미국에서 공부, 세계사, 유목민의 역사, 분쟁과 타협과 화합과 평화, 세계인, 세계속의 한국 의사로서의 나의 역할, 세계 문화, 노마드적 인생

영원이 있다면 그것은 기록하는 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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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8 인간은 자신의 유한함을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우주적인 힘에 이끌려 '영원성'을 갈구하게 된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죽기전에 무엇인가를 남기려고 발버둥치고 그리하여 발명된 것이 문자이다. '문자'가 생긴 이래 엄청난 양의 기록들이 쏟아졌으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영원'을 향한 무모하지만 의미있는 몸부림을 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내가 '체게바라 평전'에 가장 여향을 받은 것은 그의 어른스러운 사상과 실천이 아니라 총알이 비오듯 쏟아지는 전장에서도 일기장에 자신의 하루를 기록하고 때론 자신의 시선을 사진으로 남기었다는 것이다. '남김' 즉 '기록'이 없다면 세상 사람들이 그의 삶에 대해 그토록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었을까? 게바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그의 영원성을 향한 갈망은 세상 그 누구보다 지독했다. 웃기는 이야기겠지만, 그는 자신의 일기장을 좀더 화려하고 빛나게 만들려는 그 욕구 하나로 그런 비범한 일들을 해냈을지도 모른다. 그 욕구는 생각보다 끈질기고 마약같은데 이유는 그것이 바로 바로 영원으로의 갈망에 닿아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문화'이며 '문화'는 기록과 남김이다. 이번 프랑스 파리 여행을 통해서 깨달은 한가지가 있다면 우리가 무엇을 잊고 살고 있으며 그들은 무엇을 지키려고 노력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문화'와 '예술'을 수호하려는 강력한 욕구는 인간으로서 인간답고자 하는 바램에 그 근원이 있을 것이다. 파리 사람들은 인류가 남긴 문화 예술품을 철저하게 보호하면서, 그리고 현재 이루어지는 수 많은 문화 예술 활동들을 장려하면서 인간답기위해 노력하며 동시에 영원을 향한 갈망을 파리라는 도시 전체로 표현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절친한 지인들에게 가끔씩 농담처럼 하는 진담이 있다. 내 생애 최고의 목표는 가장 훌륭한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으로 살았던 한 한국 의사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라고. 내 일기장을, 내 기록물을 의미있는 것으로 채우기 위해선 나는 나의 꿈과 로망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곳에 채운 내용이 부실하게 되고 기록으로의 값어치가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기록에 분명히 훌륭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나의 기록을 남길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 삶을 갈고 닦아야 하고 동시에 그것을 부지런하고 정확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기록해야 한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일기나 기행문 형식으로 작성하고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나 나도 알지 못하는 내 안의 울림들은 사진으로 남기기로 했다. 물론 그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부모님의 은혜에 힘입어 코리아의 창원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상경하여 2년간의 시행착오를 거쳐 한 대학에 입학하여 의학을 배우고 의사가 되었다. 방구석에 앉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수년간 해오던 나는 드디어 혼란의 시기를 지나고 삶의 의미에 대한 감을 잡으면서 우연한 기회에 떠났던 미국 여행을 통해 넓은 세계를 알게 되었다. 그 후 돈을 벌게 되면서 일하는 틈틈히 봉급의 일부를 투자하여 세계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녀 보았으며 가슴속에 쉽게 잡히지 않는 로망을 품게 되었다. 많은 장애물들과 거부하기 힘든 기대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지만, 하루하루 그 잡히지 않는 로망의 실체로 접근하는 여행은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만든다.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은 노마드적 인생이며 그것은 나의 방식대로 이루어질 것이며 그것을 글과 사진을 통해 기록할 것이다.

서울역 근처 병원에서의 한달간의 생활이 끝나고 주말부터 신촌의 병원으로 이동을 하게 되며 그 곳에는 쉽지 않은 과제와 도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도전이 힘들면 힘들수록 기록은 더욱 그럴싸해질 것이다. 부지런히 기록하면서 나는 그 수확물들을 낚기만 하면된다. 이 얼마나 기가막힌 노마드적 인생인가.

기록은 보여져야 의미가 있기에 블로그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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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의 관계에 대하여2006-08-12 내가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은 집중하여 경청을 한다. 내가 자녀분들 병원에 좀 오시라고 말하면 다음날 어김없이 아들 내외가 병원으로 찾아온다. 내가 그 비싼 CT 나 MRI검사를 받자고 하거나 그 힘든 내시경이나 아픈 시술들을 받자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응한다. 별것도 아닌 나의 말에 큰 일들이 이루어진다. 저번주에는 입안이 헐어 식사를 못해 몸무게가 많이 빠진 할아버지가 오셨고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있고 담배와 음주를 오랫동안 해왔다는 과거력을 이유로 아들 내외까지 불러다가 이런저런 검사를 권유했고 하기 싫어하는 할아버지를 집요하고 찐득하게(할아버지 말에의하면) 설득해서 진행하게 하였다. 오른쪽 폐에 암이 의심되는 작은 덩어리를 발견했지만 원발암이 아니라 전이암일 가능성이 커서 다른 장기들을 조사하기 위해 이런 저런 검사를 시행했지만 끝내 발견해내지 못하고 할아버지만 무진장 고생시키고 열흘이 넘어서야 겨우 퇴원을 시켜드렸다. 한번도 웃지 않으시던 할아버지는 퇴원 준비하는 동안 내내 싱글벙글이고 농담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확신을 가지고 설득했었지만, 결국 커다란 짐 하나를 안겨드린 셈이 되어버렸다. 내가 그런 짐을 안길 자격이 있는지 한 인간의 삶을 수정하려 할 만한 자격이 과연 있는것인지 평생 고민해야할 화두가 되어버렸다.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것을 요즘 새삼스럽게 실감하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문제로 몸의 병을 얻게 되지만 과학적으로 제대로 밝혀진 생리학적 기전과 증거가 부족하므로 의학에서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그렇지만 분명 몸과 마음은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마음의 병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며 결국 관계가 한 인간의 신체적인 증상을 만들어 낸다는 비약까지 해볼 수 있는 것이다. 5일 전에 입원해서 오늘 퇴원한 한 아주머니는 폐경 7 년째로 불규칙하게 호르몬제와 칼슘제를 복용해 오고 있던 분으로 특별한 큰 병에 걸린적없이 지내던 분이다. 그렇지만 본인은 올해 3월부터 몸에 도무지 힘이 없고 하지가 자꾸 춥고 시리며 다리에 힘이 없고 살도 잘 찌지 않으며 자주 어지럽다는 모호한 증세를 꼭 치료받고 싶다고 우리과로 입원하였다. 교수님은 폐경후 증후군을 의심해서 입원했지만 폐경기 증세와 현재 아주머니의 증세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지나치리만큼 자주 건강 검진을 받아오셨던 분이라 신체적인 이상 때문에 생긴 증세일 가능성은 적어보였다. 가족력과 불안증과 우울증 설문지, MMPI 라는 정신과 설문지등을 동원하여 원인을 찾아본 결과 아주머니는 마음이 여리고 누구에게 화를 잘 내지 못하는 성격으로 무뚝뚝한 남편과 원만하지 못한 시어머니에게서 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감내하면서 무의식속에 그림자로 쌓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융'에 따르면 정신의 그림자는 묻어둔다고 묻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든지 밖으로 표출된다고 하였다. 이 아주머니의 경우 모호하고 의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신체적인 증세로 표출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었으며 이런 점을 아주머니에게 차근차근 설명시켜 드렸더니 상당히 마음이 편해 하시면서 다리가 시리 증세를 거의 느끼지 못하였다. 정신과적으로는 신체형 장애중 미분화형 신체화 장애라고 진단명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많은 한국 아주머니들이 가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내하다 폐경이 지나고 에스트로겐 호르몬이 감소하면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힘든 몸상태가 되면서 우울증에 빠지고 모호한 신체증상으로 고생한다. 여기서 확실히 해야할 것은 마음에서 생기는 병은 꾀병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시자는 분명히 매우 힘들고 확실히 아프다. 그것은 마음의 변화가 우리몸의 교감신경계나 다른 신경계의 움직임을 변화시키고 그것은 분명히 통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약물의 도움도 빌리면서 가족의 지지가 절실히 필요하며 본인 또한 좋아 질 수 있다는 믿음과 가족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건강한 방식으로 풀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평생 힘들게 일하고 가족들 부양하다 이제 좀 쉴만한 나이가 되었는데 이런 일로 고생 받는다면 그것은 참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우리네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우리과가 한 인간의 병만 보지 않고 가족관계와 살아온 환경과 마음과 몸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모두 고려하여 점근하려는 노력을 꿋꿋하게 하려는 점이 참 마음에 든다. 병은 약이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치유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것에 어느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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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는 낭만이 아니다 삶 그 자체이다. 2006-08-12 노마드는 낭만이 아니다 삶 그 자체이다. 유목민들은 낭만을 위해 방랑한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유목하였다. 어쩌면 우리중 많은 사람들은 이미 노마드적으로 살고 있다. 자기의 삶에 노마드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 뿐이다. 나의 인생을 노마드적인 것으로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사실 아무런 차이가 없다. 사는 것은 그냥 사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를 어떤 식으로 규정하려 시도는 인간의 기본 욕구이다. 부질없어 보이더라도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나는 직업적으로 이동이 많으며 내 돈벌이를 위한 도구는 모두 내 머리와 몸뚱아리 속에 있으므로 어디서든 어느 정도의 몫을 해낼 수 있다. 아니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런 노력은 더욱 제대로 노마드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자크 아탈리'가 말했듯이 나는 나 자신을 구축하기 위해 서울 어딘가에 정착하고 있지만 나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마드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마드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계속 어딘다로 나아가기 위해 에너지를 투자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체되지 않고 흐름을 만들어 내는 것은 나같은 성격의 인간을 살아가게 하기위해 너무나 중요한 작업이다. 나는 살기위해 노마드가 되려는 것이다. 지금 나의 일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이것이 노마드적으로 사는 한 과정이라는 생각을 하면 묘한 흥분감마저 든다. 또한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일터나 또 다른 나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삶의 커다란 원동력이다.

관광은 유희이지만 노마드는 '삶' 그 자체이며 여행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삶과 죽음2006-09-26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그곳에서현실감을 잃고 부유하듯 시간이 흘러간다

어떤 20 대 젊은 청년은 초췌하고 병적이 얼굴을 하고도자기 몸에서 암이 자라고 있는지도 모른채 그저 핸드폰 오락 삼매경에 빠져있다.

어떤 20 대 후반 미혼 아가씨는 모자속에 빡빡머리 감추고고통과 좌절과 그래도 희망의 만감의 표정으로 구원을 바라고 있다.

어떤 20 대 초반 아가씨는 멋쟁이 복장을 하고 자기 꾀병 같다면서 영문을 모른채 수다를 떨고 있지만그녀의 신경은 점점 망가져 가고 있다.

어떤 30 대 중반 여자는 한달 동안 계속 배가 불러온다면서변비가 걸린 것 아니냐며 밝게 웃고 있지만그녀도 안다 뱃속의 암세포가 이미 퍼질때로 퍼졌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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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젊은 환자들이 많았던 어제 밤은그 한복판에 서성이며 피곤한 내 몸뚱아리가 한없이 귀찮아졌다어서 날이 밝았으면...

어느 잠 들기 싫은 날의 단상 2006-10-19 연속 야간 당직을 서고 집에 돌아와 곯아떨어져 자다가 밤 10 시쯤 일어나서 라면을 끓여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자면 또 내일이 밝아오기에 잠들기가 아쉬워 책을 읽다 인테넷을 하면서 시간을 떼워본다. 내일 아침이면 분명 일찍 자지 않은 것을 후회하겠지만 별수 없다.

요즘은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 나에게 정말 잘 맞는 일이 무엇일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 일일까... 하는 비생산적인 생각들을 자주 해보게된다. 사실 사람 사귀고 인간 관계에 젠병인 나에게 사람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병원에서는 정말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더 뛰어나고 싶은 요구도 분명 크긴 하지만 병원 문밖을 나서는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다른 주제의 책을 읽고 사진을 찍는다. 사실 '인간'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다 연결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있지만 그래도 뭐 하나에만 매달려도 짧은 인생인데 워낙 진득하지 못한 성격이라 어쩔 수 없다. 본성을 거스르지 않기로 했다. 노는 것도 아니고 일도 하면서 하고 싶은 것도 하겠다는데 뭘 고민할게 있나.

요즘 점점 인류가 어떻게 지구의 각지에 흩어져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가 궁금해지고 있다. 여행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이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구나... 하는 점이다. 알래스카의 산장에서 민박집 운영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고 피지의 그림같은 바닷가에서 고기잡고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그런 것을 내눈으로 직접 보면 당연하지만 신기하게 여겨진다.

의사로서 높은 수준에 오르고 싶기에 일단 병원으로 출근을 하면 강박적으로 일하고 공부를 한다.그러나 병원 문밖을 나서면 병이 걸린 인간이 아니라 역사를 간직한 인간의 흔적이 궁금해지기에 여행을 꿈꾸고 지도를 뒤적이고 책을 읽고 사진을 찍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병에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병에 걸리는 순간 억울해지고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며 빨리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어진다. 만약 그 병이 벗어나기 힘든 불치병이라면 무기력 해지고 대개 그 병의 치료를 위해 그 사람의 역사가 더디어지거나 정지해버리게 된다.

말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표현이 잘 안되는군... 어쨌든 병원이라는 곳은 한 인간의 역사가 일시적 또는 어쩌면 영구히 정지되거나 느려지는 곳이며 의사라는 직업는 그 곳에서 다시 연료를 주입해주고 원래의 삶고 그들의 역사속으로의 복귀를 위해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 인류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욕구와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의 사는 모습과 삶의 흔적들을 목격하고자하는 욕구(여행의 욕구)는 의사로서 함께 관심 가질만한 주제일지 모르겠다.

의학, 여행, 독서는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이고

사진과 일기는 그것을 기록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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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같은 인생2006-10-26 새벽에 일어나 또다시 응급실로 향할 생각을 하니가슴 한복판이 적잖이 답답해 왔다.

신나게 할 수 있는 일은 절대 아니지만그래도 즐기거나 여유롭게 일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오후에는 무진장 바빠서 정신 없는 시간이 흘러갔지만오전에는 여유가 좀 있어서 이런 저런 잡생각들을 해보게 되었다.

여행처럼 살기로 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서울의 한 대형 응급실이라는 쉽지 않은 여행 코스중 한 곳에 머물러 있지만몇일 후면 제주도로 한달간의 새로운 여행을 떠나서 또 다른 사람들과 또 다른 도전을 받아내야 한다.

무작정 놀고 구경만 하는 여행보다는나를 가꾸고 인간을 이해하고 누군가에 작은 영향을 미치는 여행이라면더할나위 없는 여행같은 인생이지 않겠는가.

내 주변에는 여행을 좋아하고여행같은 인생을 꿈꾸는 지인들이 몇몇 있다.그들 모두 죽어라 일하면서도 머리속에는 항상 어떤 멋진 여행지에 있을 모습을 상상하며힘든 시간을 인내하는 사람들이다.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미래의 어느 멋진 순간을 상상하는 달콤함에 취하게 된다.

그러나 결국지금 바로 이 순간을 즐기고매 순간을 최고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왜 냐면 나는 현재 바로 지금 여행의 순간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내일 밤을 응급실에서 꼬박 지새우면 제주로 날아가 새로운 한달의 여행을 시작하게된다.

피곤해도 짐을 싸세~이런 인생 두번 다시 없는 인생

정신없는 응급실 2006-12-06 겨울이 되서 그런지 노인 분들이 119 로 응급실에 많이 실려오시는데 거의 대부분이 중환이다. 단 이틀만에 많은 중한 케이스를 응급실에서 인턴없이 나와 간호사 둘이서 처치했다. 그래도 응급실이 돌아가는 것 보면 신기할 노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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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어제 아침 7 시 교대하자마자 밤새 깔려 있던 술취한 아저씨의 brain CT 를 보았고 skull fracture, pneumocephalus, hemorrhagic contusion 이 있어서 중대 용산 병원으로 전원시켰다.

좀있다 등산하다가 발생한 chest pain 으로 온 50 대 아저씨는 inferia wall MI 여서 신촌 심장내과에 연락해서 트랜스퍼 시켰다. 이송하는 구급차 안에서 계속 아프다는 소리밖에 내지 못하였고 이미 morphine IV 를 두번 써도 효과가 없는 상태였으므로 그저 손만 꾹 잡고서 빨리 이송하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전원을 다녀오니 코피나서 오신 할아버지가 있었는데 코피가 문제가 아니라 맥박이 분당 30 회 밖에 안되면서 심방세동이 있고 potasium 수치가 7.5 까지 올라간 응급 환자였다. 그러나 정작 할아버지는 코피 흘리는 것만 괴로워 하였다. 응급으로 K 를 떨어뜨리는 처치를 한 후 역시 신촌 세브란스로 전원하였다.

전원을 다녀오니 배아픈 91 세 할머니가 있었고 치매 증세로 계속 아프다고 중얼 거리고 있었는데 이런 전런 검사 결과 결국 변비에 의한 통증으로 생각되어 관장하여 증세 호전되었고 배아픈게 가라 앉자 소리지르고 침대에서 내려와서 집에가려고 발버둥쳐서 모두를 힘들게 하였다.

그 할머니 옆 자리에 85 세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사신다는 분이었는데 뭔지 모르게 몸이 안좋다고 오셨고 자기가 아프면 마누라 챙겨줄 사람 없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일제 시대에 만주에서 군생활을 하고 6.25 때 양쪽 다리에 총을 맞아 다리가 온전하지 않았고 아직도 군대 시절의 아픈 기억을 잊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잘좀 치료해 달라고 내 손을 잡으셨다. 다행히 특별한 검사상의 이상이 없어서 퇴원할 수 있었는데 91 세 치매 할머니의 치매 행동을 지켜보면서 저렇게 되기 전에 죽어야 한다고 한숨을 푹푹 내쉬셨다.

그 할아버지 옆에는 정신이 흐려진 81 세 할머니가 119 로 실려와 계셨는데 갑자기 몇일동안 식사를 못하고 기력이 쇠하더니 정신이 혼미해져서 죽을 것 같다고 가족들이 모셔왔다. 열이 39 도까지 치솟는 상태였고 leukocytosis 도 심해서 sepsis 상태였고 원인은 요로 감염으로 생각되어 중환자실로 입원하였다.

정리가 좀 되는가 싶더니 mental change 로 또 다른 할머니가 실려왔고 혈당이 낮아서 저혈당에 의한 혼수 상태였고 포도당 주사로 정신이 돌아와서 가족들과 이야기하면서 웃음을 되찾았다. 최근에 허리 수술을 하면서 혈당 조절이 안되고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데 인슐린은 계속 맞은게 화근이었다.

밤새 배아픈 남녀노소 사람들이 응급실에 내원하여 더러는 입원하여 더러는 증세가 좋아져서 퇴원하였다. 그러다 아침이 밝아왔고 오전에는 2 년차 선생님이 응급실을 봐주셔서 잠시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하려고 젓가락을 드려는 순간 mental change 로 실려온 할머니가 119 로 실려왔고 이번에는 혈당이 매우 높은 NKHC(비케톤성고삼투압혼수) 증세였다. 탈수가 엄청 심한 상태이고 발열도 있는 상태여서 치료가 순탄하지는 않아보였다. 교과서에는 NKHC 의 사망률은 50%에 달한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이 할머니는 운이 좋으셔서 수액보충과 인슐린 공급에 정신이 가족들과 대화가 될 정도로 돌아왔지만 중환자실로 입원하였다.

부족한 장비로 간호사 두세명과 함께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하는 응급실이지만 그래서 더 많은 경험이 되는 것 같다. 그래도 1 년간의 훈련 덕분에 숲이 조금은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해본다

대륙에의 향수2006-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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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 년 동안 집착적으로 7 번의 해외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고의 범위가 확장되면서 세계인으로 살아가야 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국제 의사가 되려는 꿈을 품었고 세계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자연히 세계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세계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니 세계 속에서 나의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우리 민족의 기원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또는 '왜 사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궁금증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울려퍼져 나오는 질문들인데 형이상학적인 사유가 결국은 인간의 역사에 관한 관심과 나의 기원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진다.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실크로드를 달려온 신라왕족이라는 책에는 부여, 신라왕족, 가야왕족등이 기원전 7 세기 이후 천산과 알타이산 너머에서 동쪽으로 이주한 사람들중 일부가 동쪽으로 이주하여 한반도로 들어와 지배세력을 형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천산과 알타이산 너머에 살고 있는 부족은 지금의 터키땅에 살았던 프리지아인(미다스 왕으로 유명하며 인도유럽계인 아리아인의 민족)들이 전쟁을 겪으면서 동쪽으로 밀려와서 알타이산 근처에서 몽골족와 혼혈된 후 그들 중 일부가 한반도까지 흘러들어왔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한반도에도 70 만년 전부터 구석기 사람들이 살아왔지만 그들이 계속 이어져와 현재의 우리와 같은 모습이 되었을 가능성보다는 구석기 사람들은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북쪽으로 이동하였고 우리의 직접 조상들은 신석기 시대에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고시베리아족과 알타이계 몽골족, 예맥족, 퉁구스계 등으로 불리는 청동기 시대의 새로운 이주민으로 보는것이 요즘 학계의 의견이다.

그에 덧붙여 기원전 7 세기라는 꽤 최근의 시기에 터키 지방의 사람들이 동쪽으로 이주해 오고 그들 중 일부가 신라의 왕족이 되었다는 발상은 매우 흥미로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유럽의 피가 우리 몸에 섞이었다는 것이 흥분할 이유는 없지만, 우리 민족이 이 비좁은 반도의 구석에서 닫힌 역사를 펼쳐온 것이 아니라 드 넓은 대륙과 교류하면서 현재의 우리를 이루었다는 사고가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10000킬로 미터가 더 넘게 떨어진 터키와 우리가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말로 달리면 2 주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가 바로 실크로드의 길이다. 서역과의 교류가 없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생각의 범위를 넓히면 더욱 넓은 세계가 보이는 것이다.

이런 독서가 의사짓이랑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겠지만, 나는 병을 알기 이전에 사람을 알고 싶으며 인간을 이루는 것은 생리적인 것 뿐만아니라 문화, 역사, 예술, 사회가 모두 포함되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그 중 의학이라는 것에 조금 더 전문 지식을 가지고 일하는 것 뿐이지만,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겠다면 폭넓은 사고와 독서가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 사실 병자 한명을 살리는 것 보다 사회적인 시스템을 고치고 많은 사람들이 혜택받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큰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소의(小醫)는 질병을 고치는 의사이고, 중의(中醫)는 사람의 마음을 고치는 의사이며, 대의(大醫)는 사회의 병까지 고치는 의사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우리 민족의 무대가 드 넓은 유라시아 평원을 아우르는 것이 사실이라면 좀더 세상을 크고 넓게 보면서 이 비좁은 서울 땅에서 하루하루 동동 구르는 삶의 고리에서 과감히 벗어날 작은 의무감 마저 생기게 된다. 만약 최근의 독서에서 깨달은 바들이 사실이라면 나의 핏줄 속에는 광대한 몽골과 유라시아 초원을 누비었던 사람들과 심지어 터키의 제국을 호령했던 아리아인들의 유전자까지 담겨 있을지 모르는 일이며 그렇다하면 세계 속에서 내가 해야할 일들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너무 황당한 공상일지 모르지만, 나의 아버지의 툭 튀어나온 매부리코를 보면서 어떤 유전자의 흐름을 느끼게 되며 그것이 나의 대륙에 대한 말로 표현하지 못할 향수와 어떤 연관이 있을지 따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두 눈으로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려면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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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실에서의 독서2006-12-09 어제는 과장님들 송년회에 따라가서 상암 CGV 의 골드 클래스에서 저녁을 먹고 영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보고 뒷풀이 없이 헤어졌다. 오늘은 오후 2 시까지 응급실 당직을 서고 지금은 병동 당직 중이다.

교보문고에서 신청한 책들이 병원에 도착했는데, 나는 걷는다 3편, 실크로드 문명기행, 실크로드학,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실크로드를 달려온 신라왕족, 조선의 집 동궐에 들다 등 6권이다.

이제 20 일만 지나면 서른살이 되는데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요즘은 나와 한민족의 기원과 그 뿌리로 추정되는 알타이 산맥지역과 우리 민족이 이주해 왔을 것으로 생각되는 통로인 실크로드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실크로드를 달려온 신라왕족을 읽어보면 저자는 한국의 고대사에는 여러번 이주민의 유입이 있었는데 그러한 이주민의 한 그룹인 부여족의 조상이 현재의 터키 지역에서 활동하던 프리기아의 망명인들이 었음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가야는 원래 프리기아에 뿌리를 두고 동쪽으로 이동한 사람들과 몽골리언이 혼혈된 사람들이 주도하던 사회이고 가야의 김수로왕은 한 무제에게 잡혀온 흉노의 휴도왕 후예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또한 김수로왕의 부인 허왕옥은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온 아리안족 여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라의 김씨 왕족은 천산을 넘어온 사카족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고구려를 창업한 주몽 세력은 부여족이므로 부여족이란 위에서도 말했듯 현재의 터키 지역에서 살던 프리기아의 망명인이므로 중국의 동북공정에서 주장하는 고구려가 중국의 한족의 소수 민족이라고 우기는 것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부여족은 동쪽으로 이주한 사람들이고 중국의 한족과는 혈연적으로 엄격하게 다른 사람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은이의 연구와 주장이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민족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와서 살게 된 것이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의 정기를 품고 살아온 사람들이 이주해와서 만들어진 민족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자의 주장에 따르면 단군 신화는 이주 신화이며 어디선가 천손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곰과 호랑이 토템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 들어왔으면 천손은 현제의 알타이 지역의 어딘가에서 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하였다.

이런 기원에 대한 호기심은 지금 밥벌어먹고 하루하루 살아가는데는 아무런 상관없는 지식일지 모르겠지만 나의 피가 어디서 흘러와서 현재의 나를 만들었는가에 대한 질문은 매우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궁금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당직서면서 시간도 많은데 책이나 좀 읽어봐야 겠다.

실크로드를 달려온 신라왕족 - 정형진2006-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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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우리는 우리 민족이 단일 종족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최근의 연구로 다양한 종족이 섞이어 살면서 만들어진 민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도의 끝자락에서 섬처럼 살아온 민족인 듯 하지만 사실 우리 민족의 기원은 저 드넓은 유라시아 대륙으로부터 유입되어 온 사람들과 남방의 세계에서 항해로 들어온 사람들이 뒤섞이어 정착하여 살아온 것이다. 반도의 땅에서 그야말로 어느날 갑자기 펑하고 사람이 생겨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부여족의 기원과 이동, 고조선과 고대 한국등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해오고 있는 분으로 특이 개방적이고 얽매이지 않는 사유의 자세로 한민족의 기원에 대해 연구를 해오고 있다.

대체적으로 한민족의 원류는 신석기 시대에 시베니라에서 남하난 고시베리아족과 일타이계 몽골족, 예맥족, 퉁구스계 등으로 불리는 청동기 시대의 새로운 이주민으로 본다. 저자는 여기에다가 기원전 7세기 초엽 이후 천산과 알타이산 너머의 현재 터키 지방의 프리기아인들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그 들중 일부과 몽골리안과 혼혈이 되고 동쪽으로 이주하여 중국의 동북 지역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왔으며 그 들중 일부는 신라의 지배층인 김씨 왕족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주장의 핵심은 경주에서 발견되는 중국 문화와 다른 독자적인 문화가 중앙 아시아와 터키등지에서 발굴되는 유적과 관련이 많으며 그 것은 문화의 전파에 의해 이룩된 것이 아니라 직접 주민이 이동해 와서 그들의 향수와 기억들을 문화로 표현해 낸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신라 김씨 왕족의 피에는 유럽인종인 아리아인의 피가 섞이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해보면...

1. 부여의 기원터키의 프리기아 종족은 멀리 흑해의 남족인 터키 중앙 고원에 자리하고 살던 사람들이다. 기원전 12세기경 히타이트가 무력화되고 난 이후에 그곳에서 성장하여 기원전 8 세기경 미다스 왕 때 전성기를 맞는다. 미다스 왕은 만지는 것이 모두 황금으로 변한다는 유명한 전설을 가진 왕이며 임금님귀는 당나기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기원전 7 세기초에 스키타이에게 쫓기어 남으로 밀려들어온 킴메르인의 공격을 받고 이때 살아남은 사람의 길부가 동쪽으로 이주했다. 이 살아남은 프리기아인이 동쪽으로 집단 이주했고 이들과 몽골리언의 혼혈인이 부여계의 조상이 된 사람들이다.

2. 신라 김씨 왕족의 기원사카족은 중앙아시아 지역에 살던 이란계 아리아인이었고 동이란계어를 사용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흑해 북안으로 이주했던 스키타이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엇다. 스키타이인들은 그리스인들에게 스키트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페르시아인이나 인도인은 이들을 사카(Saka)라고 불렀던 이들 사카족은 중앙아시아의 원주지에서 남하하여 인도로 들어가 왕국을 세우기도 했는데 이들을 솨카라고 불렀으며 바로 이 인도로 들어간 사카족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났다. 석가와 사카의 발음의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북해 북안의 스키타이와 현재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지역에 살았던 사카족은 뿌리가 같다고는 하나 엄청난 지리적 공간을 사이에 두고 중간에 사르마티아인이 사는 등 공간적으로 나뉘어 살았으며 그들은 동일한 집단이 아니다.

아리아인의 핏줄과 유전자가 내 몸에 흐르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대륙의 피가 내 몸속에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알래스카의 툰드라에서 느끼었던 그 벅찬 감동과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 자연의 모습들은 나도 모르는 대륙에의 향수를 증명하는 듯 하다. 넓게 바라보고 보다 열린 마음을 가지어야 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세계인이 되고픈 욕구와도 분명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매우 흥미진진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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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문제2006-12-11

결국은 사유의 가장 처음은 존재의 문제라는 것이다. 존재의 문제는 '왜'라는 화두로 이어진다. 밥 먹고 사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될지 모르는 사유일지 모르겠지만, 형이하학의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형이상학적인 정신의 흐름이다.

존재가 왜 있냐 하는 문제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궁금증으로 이어지고, 도대체 왜 우리는 이 모양으로 살고 있냐 하는 문제로 이어지며 형이하학적인 세계로 눈을 돌린다면 인간의 역사에 대한 앎의 욕구로 이어진다.

왜 이렇게 살고 있나 하는 문제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이며 철학, 역사, 문화, 예술, 사회, 의학등의 인간이기 때문에 파생된 모든 정신 활동에 대한 지식을 요구한다. 점점 세상의 지식이 세분화 되어가고 있는 요즘 누군가는 잘라져 나간 재료들을 통합해야할 의무를 가져야 한다. 존재의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하는 것이다.

역사는 형이하학의 영역이다. 그러나 형이하학에 대한 탐구는 역으로 형이하학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안겨준다. 존재에 대한 '왜'라는 질문은 형이상학, 형이하학 둘 모두 우열없이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여행은 역사를 찾는 길이며 역사는 왜 사람이 이렇게 살고 있나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준다.

존재와 인간에 대한 흩어진 학문의 영역을 아마추어 수준이긴 하지만 통합적으로 사고하여 나의 여행을 통하여 세계의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와 이렇게 살고 있는 모습을 관찰하고 경험하여 세상의 비밀을 조금이라도 풀어낼 수 있는 책을 한권 쓸 수 있다면 내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리라.

게으름 없이 공부하고 독서해야함을 느낀다.

‘민족분쟁의 세계지도 - 다카사키 미치히로’를 읽고2006-12-16

세계의 국가중에 군대가 없는 국가는 없으며 이는 모든 나라가 현재 누군가와 싸우는 중이거나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민족과 국가는 동일하지 않으며 특히 중동 지역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서구 열강들의 인위적인 국경 형성으로 국가와 민족이 일치 하지 않으면서 국가간의 갈등 뿐만 아니라 국가 내에서의 민족간의 갈등도 끊이지 않으며 앞으로도 당분간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책은 현재 거의 모든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들의 이유와 전개 양상에 대해 민족 형성과 갈등의 역사를 분석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사실 중앙 아시아와 인도 등지의 민족 구성에 대해 이처럼 명확하고 간결하고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책도 쉽지 않을 듯 싶다.

국제 뉴스와 세계 정세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내용들을 알기 쉽게 담고 있으며 내용이 딱딱하지 않아 쉽고 재밌게 읽힌다. 자세한 내용은 아니더라고 흐름을 이해하는데 좋은 책인 듯 싶다. 담고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팔레스타인과 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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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란계 민족의 역사와 아프가니스탄3. 터키계 민족의 역사와 엣 소련령 5 공화국 -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등4. 인도 반도 - 카슈미르, 펀자브 문제등,,,5. 동남아시아의 분리 독립 운동6. 다민족 국가 중국 7. 국경 없는 민족 쿠르드8. 아메리카 대륙의 민족 지도9. 유럽 세계의 민족 지도10. 옛 소련령의 민족 문제11. 유고슬라비아의 민족 대립12. 통합과 분리에 흔들리는 서유럽 세계13. 오세아니아 세계의 민족 지도14. 아프리카 대륙의 민족지도15, 유랑 민족 집시

뭐 제목만 봐도 흥미진진한 내용들임을 알 수 있겠다.

설날의 공상2007-02-18 설날 연휴 3 일중 다행히 설날 오프를 받았다.갑자기 교수님이 회진을 오셔서 1 시가 되서야 병원을 나섰다.어제는 응급실에서 환자 두명을 입원시켰다.한명은 panic attack 젊은 남자였고한명은 vasovagal syncope 50 세 남자였다.요즘은 모호한 증세로 응급실을 방문하는 사람들 중에서 입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과로 자주 입원된다.

문득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요즘 부쩍이나 점점 내가 내가 아닌 어떤 '인간'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좋은건지 나쁜건지그냥 요즘은 별 생각없이 흐름에 몸을 맡기려고 한다.

우리과는 습관적으로 신체의 질병과 정신의 병리를 함께 생각하고가족관계나 사회관계속에서의 한 인간을 전인적으로 보려는 노력을 많이 주문받는다.매일 습관화 하다보니 나도 병력 청취할 때 반드시 직업이나 현재 하는일과 가족관계나 갈등 상황그리고 현재의 마음상태나 스트레스 상황에 대해 거의 대부분 물어보게 된고 상당히 많은 경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치료의 방향이 서고 clue 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그리고 anxiety scale 과 BDI 라는 불안증과 우울증 척도 설문을 반드시 해서정신적인 요인이 신체증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려를 하게된다.

순전히 신체의 질병에 의해 병이 생기는 경우는 의외로 적다.정신과 가족과 사회 관계 속에서 한 인간의 병이 만들어지고그것을 통합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해결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사실 정말 실력있는 가정의학과 의사가 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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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 대한 공부 뿐만 아니라 정신의학과 사회, 인문적인 요소를 두루 섭렵하고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정신 수양까지 필요한 것이다.수련 기간은 3 년이지만 정말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사가 되려면10 년은 족히 공부하고 연마해야 당연한 것 같다.40 살(불혹) 부터 진짜 의사가 되련다. 의사에게 그 정도 나이는 필요한 부분인 것 같다.

100 가지 질병에 대한 제대로된 지식과 치료 프로토콜성인 만성 질환에 대한 나만의 프로토콜삶의 질과 웰빙을 도울 수 있는 의학적 지식신체화 증세에 대한 해결 방안과 나만의 프로토콜일차 진료현장에서 만나는 불안증과 우울증국제 진료가 가능한 외국어 실력노인 의학과 노화에 대한 이해호스피스에 대한 개념 정립과 죽음에 대한 자세

유전자 인류학역사에 대한 관심, 중앙 아시아세계 분쟁의 역사와 현재

허전함과 불안함에 대하여 2007-04-06

1.누군가 나에게 좌우명이 뭐냐고 물었다.하고싶은 말은 넘쳐 흘렀지만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이제 다시 묻는다면부끄럽고 유치하게도'꿈을 잃지 말자' 이다.

2.아침에 일어나면 무언가 허전하고 빠뜨린 듯한 기분이 든다.덜 열심히 일해서 그럴것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대개 실패하기 일수지만)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그것이 무언지 그 정체는 제대로 잡히지 않지만그것은 인간의 두되 가장 깊숙한 곳에 고이 숨어 있는'영원'에 대한 갈망이 아닐지 모르겠다.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하다지만만족하지 못하는 허전함은 어쩌면 삶의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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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굴러간다.

3. 요즘 나의 화두는세계인이 될것이냐지금에 만족할 것이냐다.자아의 글로벌화에 대한 욕구는어린 시절 모험에 대한 꿈의 연장선상에 있다.

나는 서서히 확장되고 있으며그 한계를 규정지어 나를 어딘가에 가두어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그것은 불안에 대한 패배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불안은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커다란 힘이다.

초자아의 범람 2007-05-23

초자아의 범람이 고독을 만들고 불안을 만든다.

그러나 내 자아의 바램과 꿈들을 이뤄주고 초자아의 강력한 억압에 기죽은 기분을 달래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확~어떻게 해버릴까 싶다가도이내 꼬리를 내리고 약해지는내 불쌍한 ego

자아의 울림에 귀를 기울일 것이냐초자아의 판단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냐어느길이 더 행복한 길이냐그것이 문제로다.

농약 중독 할머니2007-09-19 어제는 원래 오프였는데 오후 회진 때 응급실로 농약 중독 할머니가 우리과로 연락하고 왔다고 해서 가봤더니 ventilator 달고 있는 상태에서 saturation 이 80% 정도 밖에 안나오고 혈압도 50/30밖에 되지 않는 매우 중환이었다. 우울증으로 약을 계속 복용하는 분이었는데 결국은 농약으로 자살 시도를 한 것이다.

농약은 유기인산 제제로 melathion 이라는 성분이며 이 할머니는 치사량의 10배 가량을 먹었다. 드럼통에 넣고 희석해서 쓰면 넓은 밭 하나를 뿌릴 수 있는 정도의 양이라고 한다.

어제 오후에 약을 먹었고 하루동안 다른 병원에서 atropinization 과 pralidroxim 으로 치료하다 전원되었으며 ventilator 를 달고도 saturation 이 안 오르는 것이 이상하여 x-ray 를 찍어보니 intubation 이 오른쪽 폐로만 되서 one lung ventilation 상태에서 왼쪽 폐는 total collapse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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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였다. tube 를 얼마정도 빼고 찍어보니 폐가 펴졌고 satuation 로 어느정도 회복되었다. 그러나 ARF 와 MI 가 동반되어 회생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였다.

중환자실로 올라가서 dopamin, norepinephrine 을 달고 혈압이 올라서 밤사이에 안정된 상태였으나 새벽부터 소변 안나오기 시작하면서 혈압이 다시 곤두박질쳤고 saturation 까지 떨어졌다. dobutamine 도 달고 ventilator 로 별짓을 다해봤지만 결국 다음날 오후 늦게 돌아가시고 말았다.

주요우울증은 정신과의 말기암과 같은 질병인데 우울증으로 자살하나 말기암으로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다. 수많은 사람들의 뇌에서 자살신호가 나온다는 것은 매우 끔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다스려야 한다는 의학 철학을 다시한번 되새겨본다.

통합의학에 대하여 2007-09-29

1. 몸과 마음을 동시에 본다.2. 인간을 통합적으로 파악한다. 인간 - 가족 - 사회3. 일차의료 현장에서 의료의 coordinator 역할을 한다.4. 흔한 질병을 주로 다룬다. 그러나 흔한 질병은 가벼운 질병이 아니다. 예를 들면 shock 도 흔한 질병이며, CPR 도 흔하게 해야하며 ventilator 도 다룰 줄 알아야 한다.5. 응급환자 진료 능력은 외래 진료의 가장 기본이다.6. 성인 질환은 결국 크게 '암의 예방 조기진단' 과 '혈관 보호'로 귀결된다.7. 담배, 비만, 식이, 운동부족 --> 비만,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 --> 심장, 신장, 뇌혈관, 말초혈관 등의 질환으로의 이환 억제8. 노인질환은 질병, 가족, 죽음, 사회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하므로 전문가가 필요하다.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건강한 노인의 수가 많아지면서 노화 방지나 삶의 질을 위한 전문가가 필요하다.9.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호스피스는 가정의학과의 손길이 필요한 분야이다.10. 세브란스 가정의학과는 제대로된 일차의료인과 통합의료및 노인의학등의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교육자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1. 수련기간이 3 년이라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렇게 해야한다.12. 일차진료라는 것은 흔한 질병에 대한 치료임과 동시에 disposition 이 결정되기 전까지의 치료와 관리또한 의미한다. 따라서 아무리 중환이라도 다양한 문제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면 총체적인 진료와 disposition 결정을 위해 일차진료및 통합진료의가 필요하다.

우리의 자아실현을 방해하는 것들2007-11-06

누구나 꿈이 있고 자아실현을 원한다.그러기 위한 중요한 기본 전제중에는 건강이 있다.

질병의 1 차예방, 조기발견, 2 차예방은이미 발생한 질병의 치료 이상으로 중요하다.이미 발생한 질병은 초기의 자아실현 목표를 대폭 수정하게 만들기 때문에병이 아얘 안 생기던지 생겨도 조기에 발견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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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보건과 예방에 대한 이론과 거시적인 학문은 예방의학에서 다루고개인보건과 예방및 조기발견과 치료는 가정의학과 및 일차 의료인들이 주로 다룬다.

2006 년 우리나라 사망원인의 60%는 암과 뇌혈관질환, 심혈관질환이 차지하고 있으며사고와 재해로 사망하는 비율이 15%정도 되므로 그 외의 질병을 다 합쳐도 25%에 그친다.

따라서 암과 뇌,심혈관 질환의 예방과 조기발견및 치료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이 분야에 대한 일종의 사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비만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금연이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의 의의 보다 이것이 뇌심장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위험인자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방과 조기발견 및 치료의 관점에서 본다면상기 문제에 대한 진단과 치료와 교육에 대해그 각 전문분야 의사에 못지않게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1. 사망률을 높이는 중요한 문제들1. 비만 --> 만병의 근원이다.2. 고혈압 3. 당뇨, 내당능장애4. 고지혈증5. 금연 6. Anticoagulation7. 스트레스, 불안, 우울증8. 응급질환9. 간, 호흡기, 신장질환

#2.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문제들1. 폐경, 갱년기2. 골다공증3. 항노화4. 근골격계 질환5. 류마티스 질환6. 내분비 질환7. 피부질환8. 불면증

공허함의 정체 2007-12-16

신경과 당직중정리해보자면...

공허한 기분 --> 영원에의 갈망 --> 이런저런 노력들 --> 부질없음에 대한 깨달음--> 허무 --> 현재의 나를 되돌아 봄 --> 현재를 즐기고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결론으로의 귀결 --> 그러나 계속되는 공허함 이러한 생각의 고리가 끊임없이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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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비밀들2008-04-21 드디어 나는 깨달았다.그리고 깨달은 바를 여기에 적는다.세상의 비밀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이루어진다. 1) 신은 존재한다.2) 신은 전지전능하다.3) 신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곳에 존재한다.4) 신은 따라서, 내 안에도 존재한다.5) 신과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신은 나와 일체이다.6) 고로 내가 곧 신이다.7) 고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신이 생각하는 것이다.8)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9) 내가 진심으로 원하고 믿고 그 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면 미래의 어는 시점에는 그것은 이루어져 있으며 나는 시간이 흘러 그것이 이루어진 나와 마주치기만 하면 된다.10) 진심으로 바라면 그것을 이루어지게 해주는 표지들이 나에게 나타나게 되면 그것들을 잘 잡아야 하며 진심으로 바라면 그런 표지를 반드시 놓치지 않고 잡게 된다.11) 예를 들어 진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진리를 알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이미 진리를 알았다고 믿으면 반드시 진리를 알게 된다.12) 예를 들어 삶의 목적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삶의 목적을 알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이미 삶의 목적을 알았다고 믿으면 반드시 삶의 목적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미 나는 삶의 목적을 알 고 있다.13) 예를 들어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를 모르겠다는 사람은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이미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다고 믿으면 반드시 내가 원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미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고 있다.14) 예를 들어 행복하길 원하는 사람은 행복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고 이미 행복해졌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행복해진다. 지금 당장 행복해질 수 있다.15) 예를 들어 세상의 비밀을 알고자 하는 사람 또한 세상의 비밀을 반드시 알 수 있게 된다.16) 그러기 위해서는 순수하게 긍정적인 생각만 할 줄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하다. 이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릿속에는 끊임없는 부정적인 생각과 잡생각이 생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신이 생각하는 것이므로 부정적인 생각도 이루어진다. 17) 우울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우울해진다.18) 머릿속에 나는 불행하고 불행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해진다.19) 긍정적인 생각과 내가 정말 원하는 것만 머리속에 채우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 방법들 중에 하나가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할 때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미소를 짓기 위해서는 근육의 수축이 필요하고 미소짓는 모양으로 얼굴 근육을 수축시키고 있는 동안에는 머리속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없다. 당장 실험해보라. 20) 깨닫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깨달을 수 있다. 21)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은 나의 의지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일어나게 할 수 있다.22) 강력히 원하면 그것을 이루어지게 하는 어떤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을 놓치지 말고 잘 잡아라. 그리고 진심으로 원하며 그런 표지들을 반드시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게 된다. 표지를 놓치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은 할 필요조차 없다.23) 삶은 허무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인생은 허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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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삶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인생은 행복하게 된다. 무엇을 원하는지는 각자의 몫이다.25) 나는 우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우울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우울해지길 원해서 우울해지는 사람들이 있다.26) 깨달음을 얻기위해 산속에 들어가서 수십년 동안 도를 닦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로 수십년동안 도를 닦아야 깨달을 수 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27) 내가 하는 일을 다 하면서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말 그렇게 된다. 28)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이지는 각자의 몫이며 어떤 방법이던지 본인이 납득하고 믿을 수 있기만 하면 된다.29) 만배기도를 해야지만 깨달을 수 있게다는 사람은 만배기도를 해야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고, 만배기도를 해도 깨달을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람은 만배기도를 해도 깨달을 수 없게 될 것이다.30) 석가모니는 모두의 마음속에 부처가 있다고 했으며 그것은 진리이다.31) 예수는 구하면 열릴것이라고 했고 그것은 진리이다.32) 성인들이 진리에 대해서 이야기 했지만 그것을 깨달은 자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33) 찬송가에서 나오는 가사처럼 기뻐하고 경배하면 의심모두 걷히고 밝은 빛을 주실 것이며 그것은 진리이다.34) 이 글을 읽은 사람중에 죽어본 사람 있는가? 영생하길 원하면 당연히 영생한다고 순수한 마음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35) 천국에 가길 원하면 당연히 천국에 갈것이라고 순수한 마음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될 것이다.36) 여기가 이미 천국이라고 생각하면 여기가 이미 천국이며 여기가 이미 지옥이라고 생각하면 여기는 이미 지옥이다.37) 이 세상의 비밀은 세상 그 무엇보다 강력한 파워이다.38) 비밀과 진리를 알게 되면 자유로와진다.

2. 세상은 순리대로 돌아간다. 1) 신은 존재한다.2) 신은 전지전능하다.3) 신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곳에 존재한다.4) 신은 따라서, 내 안에도 존재한다.5) 신이 창조한 세상에는 어떤 순리와 법칙이 있다. 6) 신조차 그 순리나 법칙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7) 따라서 내안에 신이 있고 내가 곧 신이더라도 아무리 열망하여도 내가 하늘을 날 수는 없다. 자연의 법칙과 순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8) 자연의 법칙으로서 가능한 일은 무엇이든 이루어질 수 있다. 3.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1) 신은 존재한다.2) 신은 전지전능하다.3) 신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곳에 존재한다.4) 신은 따라서, 내 안에도 존재한다.5) 나는 신이므로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6) 선은 내가 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선이다.7) 악은 내가 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악이다.8)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누구나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게 된다. 4. 같은 대상이라도 나의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너의 세상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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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은 존재한다.2) 신은 전지전능하다.3) 신은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곳에 존재한다.4) 신은 따라서, 내 안에도 존재한다.5) 세상한 하나가 아니다.6) 나의 세상과 너의 세상은 같기도 하지만 다르기도 하다.7) 나의 세상과 너의 세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영향을 주고 받는다.8) 내가 원하는 것이 너의 세상에서도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너가 이루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나의 세상에서 이루어진 것들이 너의 세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 이 모든 것은 진리이고 이것이 세상의 비밀이다. 1) 세상의 비밀을 알고 내가 원하는 것을 의심없이 바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그 무엇도 이룰 수 있다.2) 나는 세상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진리를 알고 있으며 삶의 목적을 알고 있으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며 세상이 결코 허무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알고 있으며 다시 죽는 이유를 알고 있다. ) 내가 세상의 비밀을 알고 있고 진리를 알고 있다고 당당히 말하는 이유는 위에서 말한 진리대로 나는 현재 아무런 의심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내가 세상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4) 진리를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은 아직 진리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 깨달음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아직 깨달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6)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이 가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7) 나는 10 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깨닫기를 열망하였고 언젠가 당연히 깨닫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깨달았다. 서른이 넘으면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 믿었기 때문에 서른이 넘어서 깨달은 것이다. 50 세가 넘어서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아직도 깨닫지 못한 상태였을 것이며 25살에 깨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미 5 년전에 깨달았을 것이다.8) 깨달았지만 내가 깨달은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깨달은 것을 실천에 옮겨야 하며 깨달은대로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끊임없이 바라야 한다. 깨달았다고 내가 당장 전지전능해지는 것이 아니며, 이전과 다를바가 하나도 없다. 나는 자연의 법칙대로 사는 한 인간이며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갈 것이다. 9) 나는 내가 진심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계속 알게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많은 부분을 알 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될 것이며 그 바라는 것들 중에 진심으로 바라는 것들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10) 왜 태어났는지를 알 수 있기를 간절히 오랫동안 원했더니 나는 그 것을 알 수 있는 경험을 했었다. 11) 이 모든 것이 왜 이 모양으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왜 창조되었는지를 알 수 있기를 간절히 오랫동안 원했더니 나는 그 것을 알 수 있는 경험을 했었다. # 기도의 방법 1) 나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기도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2) 병이 걸리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며 병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므로 병에 걸리게 될 수도 있다.3) 병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말고 그냥 건강한 상태만을 생각하고 평생 건강한 상태만을 생각하면 평생 건강해진다.4) 이렇게 생각하고 기도하는 법은 쉬운 일이아니다.5) 순수하게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6) 시험에 떨어지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면 시험에 떨어지는 것을 생각하고 있게 되는 것이므로 시험에 떨어지게 될 수도 있다. 그냥 아무런 걱정없이 당연히 시험이 붙고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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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마음으로 통과할 날만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통과하게 된다.7) 긍정적인 생각만 머리속에 가득하게 하기위해서는 기도할때 심각한 표정을 짓지 말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어라. 위에서 말한대로 미소짓는 상태에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지 않게 된다.8) 우울해지지 않길 원하는 사람이나 현재의 우울감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사람은 우울감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면 안되고 기쁘고 행복한 순간만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행복해진다고 믿으면 된다. 아무리해도 우울한 생각이나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면 억지로 웃으면서 행복을 계속 떠올려라. 9) 인간은 언어로서 생각하므로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마라. # 이 글을 읽고 머릿속이 환해지거나 깨달음을 얻거나 세상의 비밀에 대한 힌트를 얻은 사람은 분명히 상당히 오랫동안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위해 노력한 사람이며 지금 바로 이 순간이 그 노력의 결실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 세상의 비밀에 관심이 없거나 진리나 깨달음을 얻기위해 노력해본 적이 없거나 그 노력이 부족한 사람은 이 글을 읽어도 회의감이 들거나 이런게 어디있냐고 무시하게 되거나 제대로 읽게 되지 않거나 아얘 이런 글을 접하게 되지 조차 않을 것이다. # 이 글은 누군가에게 굉장한 표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 신자도 아니므로 연관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으나아래에서 하는 말들은 분명 성경이나 불교교리와 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아래 그 중 몇몇을 예시로 찾아보련다. 성경에서 나오는 말들 마태복음 1 장 ~ 4 장 - 역사에 대한 이야기마태복음 5 장 12 절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 장 18 절 -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 장 48 절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태복음 6 장 9 절 -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 장 10 절 -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 장 11 절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태복음 6 장 12 절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마태복음 6 장 13 절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태복음 6 장 34 절 -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 7 장 7 절 -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 장 8 절 -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마태복음 10 장 31 절 -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마태복음 10 장 40 절 -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태복음 12 장 35 절 -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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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2 장 50 절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태복음 13 장 11 절 -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태복음 13 장 12 절 -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태복음 13 장 13 절 -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태복음 13 장 23 절 -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배, 혹 삼십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3 장 24 절 -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마태복음 13 장 54 절 - 고향으로 돌아가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저희가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뇨 마태복음 13 장 55 절 -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마태복음 13 장 56 절 -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마태복음 21 장 21 절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것이요 마태복음 21 장 22 절 -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1 장 37 절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가복음 4 장 20 절 -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배와 육십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마가복음 11 장 23 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마가복음 11 장 24 절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요한복음 1 장 1 절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 장 2 절 -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요한복음 1 장 3 절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 장 4 절 -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1 장 5 절 -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한복음 1 장 12 절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1 장 30 절 -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요한복음 3 장 6 절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 장 21 절 -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한복음 5 장 30 절 -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한복음 5 장 36 절 -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요한복음 8 장 32 절 -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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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 장 51 절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9 장 1 절 -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요한복음 9 장 2 절 -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요한복음 9 장 3 절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10 장 1 절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요한복음 10 장 2 절 -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요한복음 10 장 34 절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한복음 10 장 35 절 -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요한복음 14 장 6 절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 장 13 절 -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15 장 17 절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6 장 12 절 -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요한복음 16 장 13 절 -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한복음 16 장 22 절 -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6 장 24 절 -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다시한번 진리에 대해 이야기 한다.2008-05-06

진리와 비밀은 다른 것이다. 진리는 깨닫는 것이고비밀은 알아내는 것이다. 진리는 생각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미래의 어느 순간에 원하는 어떤 것이 이루어진 모습을 순수한 마음으로 상상하면그것은 이미 그 미래에 이루어져 있다.이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그러나 노력하면 가능하다.아직 이루어진 일들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자연의 법칙은 거스를 수 없다.무엇을 하겠다고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이미 그 무엇을 이루어진 순간을 생각하면 된다.자질구레한 방법들은 다시 기술하지 않겠다.우울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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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우울이라는 개념을 생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냥 행복해질 순간을 순수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바라면 된다.그러나 우울한 사람들은 그런 행복해진 순간을 생각해낼 수 없다.머릿속이 우울한 생각이 자꾸 들도록 하는 호르몬에 잠겨있기 때문이다.약의 도움도 필요하겠으나 결국 행복을 강하게 바라는 수 밖에 없다.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다.이 진리는 결코 개념상의 것이 아니며실제 우리 모두에게서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울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정말 아이러니한 것은우울해지고 싶어하기때문에 우울해지는 것이라는 것이다.바라고 원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상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아니면엄청난 정신적인 에너지가 드는 활동이다.반대로 우울이나 허무감이라는 것은 그 에너지를 놓아버렸을 때 마음속에 들어오는 기분들이다.그러니까 행복한 기분이 들도록 하려면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수동적인 개념으로)행복해지려고 바라야 한다는 것이다.(능동적 개념으로, 상당한 에너지를 들여서)행복이 그냥 공짜로 내 눈앞에 나타나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속에는정신의 긴장감이 늦추어지고 그 사이에는 우울감과 허무감과 공허감이 찾아온다.생각대로 이루어 진다는 진리를 곰곰히 생각해봐야 한다.이 말이 정말 진리라는 것을 알고 싶다면 성경을 펴들어라.현자들은 수천년 동안 입이 닳도록 진리에대해 이야기했지만 그것에 신경을 기울이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며그 소수중에서도 진심으로 깨닫는 사람은 더욱 소수이다.그러나 그런 진리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내 인생을 송두리채 바꿀 수 있다.행복해지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행복해지고우울해지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우울해질 것이다.

비밀은앞으로 오랜 기간동안 공부를 하고 독서를 해서 알아낼 것이다.특히 인류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내가 알고자 하는 비밀을 역사에 대한 내용이다.인간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나 하는 문제는 진리가 아니라 비밀의 영역이다. 성경에 빗대어 말하자면...구약은 비밀이고신약은 진리이다. 진리를 깨달았고비밀이 하나 둘씩 그 모습을 들어내고 있다.나는 차분히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을 잡아내기만 하면 된다. 진리와 비밀(역사)에 관한 책을 쓸 것이다.진리는 깨달았으나 언어로서 최대한 근접하게 표현해야 할 것이며 비밀은 정보를 모으고 공부하고 글을 써나가는데 앞으로 십수년은 걸릴 것이다.시간이 많으니 즐기면서 해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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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살고자하면 힘들게 살 것이요즐겁게 살고자하면 즐겁게 살 것이다.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깨달지 못할 것이요이미 깨달았다고 생각하면 이미 깨달았을 것이다.30 년동안 도를 닦아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30 년 도를 닦아야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고내일 깨달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내일 깨닫게 될 것이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일 테지만진리가 그런 것을 어쩌겠나

김경묵, 우종익 저 ‘이야기 세계사 1,2’를 읽고2008-05-16 16 일만에 읽는 세계사지도로 보는 세계사또 무슨 세계사더라... 하여튼 그런 세계사 책을 몇권 읽어봤었는데읽을 때마다 별루 기억남는 것이 없더랬다.이번에도 서점에서 충동 구매한 두권의 책을꾸역꾸역 다 읽고 말았다. 서양사 위주의 세계사를 세명의 국내 학자가 나눠서 썼는데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이야기 형식으로 써내려갔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시작해서그리스 로마시대를 거쳐게르만족의 남하와 중세 봉건시대와 십자군 원정교황의 세력이 약해지고 왕권이 강해지는 전제 군주시대를 지나르네상스가 이탈리아 북부지역에서 일어나고대항해 시대가 시작되고개몽사상이 발전하고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인본주의 시대가 도래하고인간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 대기 시작하면서 신화적인 시대를 벋어나과학이 발전하고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고 근대화 되면서유럽의 각국들이 민족주의 자유주의 열풍에 휩싸이고영국혁명, 미국혁명,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민주주의의 기초가 다져지고그 와중에서 국가간의 전쟁은 끊이지 않고영국이 해상권을 장악했다가나폴레옹 시대에 프랑스가 유럽을 재패했다가왕정 복고니 뭐니하면서 우왕자왕 하는 시대를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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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세력이 커지면서 예전의 적군이 오늘의 아군이 되고그 와중에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남아메리카의 식민시대로 유럽대륙의 살이 점점 찌게 되다가이제는 인간이고 뭐고 그냥 자국 또는 자기 민족의 이익을 위해수만명씩 수십만명씩 학살하는 짓거리들을 다반사로 해대다가자본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사회주의가 생기고결국 제 1 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도 정신 못차리고햇병아리 자본주의에 대한 세계 대공황으로 이어지고제 2 차 세계대전으로 수천만명이 죽고 굶주리고식민지였던 나라들도 그틈에 독립은 했다만그래도 다들 굶주리고 힘들어 하다가냉전을 지나고 평화무드로 가는가 싶더니이라크 전쟁 이후에 테러의 위험으로 온 세계가 불안한 상태가 지속되면서미국의 세계 재패에 대한 야욕은 끊이지 않고 있다.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세계는 하나가 되고 정보의 권력화가 약해지면서세계가 하나되는 이마당에 그래도 아직도 국지적인 분쟁과 굶주림은 지속되면서이제는 온 인류가 서로 싸우는 시대를 넘어서로 상부상조하는 시대가 되어야 하겠지만그래도 본능은 못 속이고 보이지 않는 싸움은 지속되고 있다.평화를 원하는 마음과 전쟁을 원하는 마음의 균형이 잘 유지되어야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한국사, 일본사, 중국사중동사, 인도사근현대 유럽사그리스, 로마사등등... 사놓고 안 읽은 책들

깨달음에 대한 글2008-05-18

다음은 깨달은 것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앞으로 기존의 철학과 종교적 깨달음을 고찰하고역사와 예술과 접목시켜 하나하나 그 개념들을 풀어나갈 것이며기본 개념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1. 화두우주는 왜 생겨났나?생명체는 왜 생겨났나?인간은 왜 생겨났나?존재는 왜 유한한가?어차피 죽을 인생 왜 태어났나 그리고 왜 사나?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신이 세상을 창조한 목적은 무엇인가?신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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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본 전제신은 있다. 신이 없다면 '신'이라는 개념조차 없을 것이다.신은 전지전능하며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곳에 존재한다.따라서 신은 내 안에도 있으며 나와 신은 일체이다.곧 나의 생각은 신의 생각이다.내가 원하는 것, 즉 나의 의지는 신의 의지이며 신은 전지전능하므로 그 의지는 반드시 이루어진다. 3. 이론 설명어떤 의지가 있다면 그 의지가 이루어지도록 수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내가 무엇인가를 강력히 원하면 그 것은 신이 강력히 원하는 것이므로 그 무엇인가는 이루어지며 그 무엇인가가 이루어지게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만약 5 년후에 집을 장만하고 싶다고 강력히 원한다면 그 집이 장만 될 수 있는 여러가지 일들이 나와 내 주위에 일어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지는 매우 강력한 것이다. 우주와 생명체와 인간이 왜 생겨났나에 대한 대답 또한 이러한 의지에서 구할 수 있다.어떠한 강력한 의지가 있다면 그 의지가 이루어지도록 수많은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게 되고심지어 우주가 창조되고 생명체와 인간이 생겨나게 되기도 한다.우주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의지'가 이루어지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생명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그 강력한 '의지'란 무엇인가?결론적으로 말하면 '영원하고자 함'이 '의지'이다.'영원'은 '유한'한 것이 아니라 '무한'한 것이다.무한은 곧 영원이다.그리고 무한은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 그 자체이다. # 무한에는 의지의 개념이 필요하다.무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무한은 더 이상 무한이 되지 않고 유한이 될 것이다.다시말하면 무한은 무한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무한한 것이며그러한 속성이 없어지면 무한이 아니라 유한이 된다.유한은 소멸하므로 유한이 없어지면 이 세계는 '공(空)'이 된다.따라서 무한은 곧 무한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또한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 우주는 왜 탄생하였나?태초에 무한이 있다면 그것은 곧 무한하고자 하는 의지, 즉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이다.그 의지가 실현되기 위해 우주가 탄생하였다. # 그러면 세계는 왜 空이 아니라 무한, 즉 '무한하려는 의지'라는 것이 있게 되었나.空은 곧 무한이며 따라서 공 자체가 무한이다. 즉 공은 무한하려는 의지인 것이다.그런데 무한의 실체는 없다. 잡히지 않는 그 무엇이다.루뜨 2 를 예를 들면 '루뜨 2'라는 무리수를 유리수로 표현하면 1.4141414141...... 로 표현할 수 있게 되나라므로 무한히 유리수를 반복하여도 무리수의 끝에 도달할 수 없다.따라서 무리수는 유한한 우리가 만질 수 없는 개념이다.그러나 우리는 '루뜨 2'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다.그것은 '유리수'의 무한 반복을 통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으며그것을 우리는 기호 '루뜨'를 사용해서 표현하고 있다.즉 무한은 유한을 통해 그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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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무한은 어떠한 방법을 통해 무에서 유를 창조하였나.양자물리학의 세계에서는 물체를 계속 분해하면 분자가 남고 분자도 분해하면 원자가 되고원자도 분해하면 결국 남는 것은 파동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파동이라는 것은 그 실체가 없는 것이다.파동은 어떠한 매개체를 통해서 그것이 파동이라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물결을 보고 우리는 파동이라는 것을 알게되지만 그러한 매개체가 없다면 파동의 실체를 알길이 없다.파동이 어떠한 의지에 따라 원자의 모습으로 뭉쳐지고 그것들이 또 뭉쳐져 분자가 되고 물질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무한의 의지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원리가 바로 그것이다.즉 파동은 무한하려는 의지를 실현하고자 물질이라는 형태로 뭉치게 되었다는 것이다.파동은 '공'이며 무한이다.무한하려는 의지는 그 '공=파동'을 유한한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는다.물질은 파동에서 나온 것이므로 물질은 파동과 다른 것이 아니다.물질은 유한이며 파동은 무한이고 물질이 파동과 다른것이 아니므로 무한은 유한과 다른 것이 아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무한은 무한하려는 의지이므로파동 또한 무한하려는 의지 그 자체이다.따라서 파동은 '공'의 상태로 존재할 수 없으며 무한의 의지에 따라 유한을 이루게 된다.파동에서 물질이 만들어지며 그 물질을 통해 파동을 드러낼 수 있다.무한하려는 의지가 유한한 그 무엇을 만들었으며무한은 무한 그 상태로 있을 수가 없으며무한하려는 의지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무한하려는 의지는 파동 그 자체이므로 파동은 무한하려는 의지에 따라 유한을 이루게 된다.

# 그러면 왜 무한은 유한을 통해 무한하려는 의지를 나타낼 수 있는가?그 이유는 유한이 없이는 무한이 무한으로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파동의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유한한 물질이 없이는 파동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루뜨 2'는 2 라는 유리수(유한)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따라서 이 세상에 유한한 물질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 유한은 왜 재생되어야 하는가?유한은 유한하므로 유한은 소멸될 것이다.따라서 유한이 유한을 무한히 재생해야 무한의 의지가 유한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따라서 유한은 재생되어야 한다.수 없이 많은 별은 생겼다가 사라진다.

# 유한은 왜 생명의 형태로 재생되는가?생명의 형태가 아니고서 유한이 재생될 수는 없는가?별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또 다른 별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일은 있지만별은 스스로를 재생할 수는 없다.무한하고자 하는 의지의 결정체가 바로 생명인 것이다.

# 생명체는 왜 죽을 수 밖에 없는가?죽지 않는 생명체는 무한을 이룰 수가 없다.평생을 굶고 칼에 찔리고 총에 맞아도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그런 영원한 사람은 자손을 낳을 필요도 없다. 본이이 영원하기 때문이다.그리고 그러한 영원한 개체는 굳이 수억만 개체가 있을 필요도 없다.홀로 이미 영원하기 때문이다.그러나 홀로 영원한 것은 무한을 이룰 수 없다.유한의 무한 반복이 무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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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생명체는 박테리아만 있으면 됐지 개나 소나 원숭이나 사람은 왜 존재하는가?# 그리고 동물만 있으면 됐지 굳이 인간이란 개체는 왜 존재하는가?인간이 동물과 다른 특질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인간이 동물과 다른 특질은 고차원적인 자의식이 있다는 것이며 감동할 줄 안다는 것이다.감동은 감정과는 다른 영역의 것이다.자의식이 있는 개체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무한의 의지를 표현하는데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에자의식이 있는 개체인 인간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결국 인간이 생겨난 이유는 무한하고자 하는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며그 무한하고자 하는 의지가 만들어낸 결과물 중 가장 최 상위 단계의 물질인 것이다.별보다는 하나의 생명체가 더욱 상위단계이며 생명체 중에서는 인간이 가장 상위단계이다.그러나 이것은 개념적인 상위단계이지 우열관계로 볼 수는 없다.또한 자의식만 있으면 됐지 감동하고 사랑하는 감정은 왜 존재하게 되었는가?우리가 무엇에 감동한다면 그것은 무한의 의지로서 만들어낸 존재에 대한 감동일 것이다.그 의지가 만들어낸 이 우주에 대해서 감동할 줄 안다는 것은그 의지라는 것이 기계와 같은 무엇이 아니라 자의식을 가지고 스스로가 이루어낸 결과물에 반응한다는 것이며이것은 그 의지라는 것이 단순한 물질과 같은 것이 아니라 생명력이 불어넣어진 그 무엇이라는 것이다.우리가 대자연을 보고 감동하거나 인간 관계 속에서 사랑을 느낀다면그것은 곧 그 의지가 감동하고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며의지는 그 자체로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될 것이다. # 죽음은 허무한 것이 아니라무한의 의지를 위해 유한이 재생되는 한 과정이며 따라서 인간의 죽음은오히려 슬퍼할 일이 아니라감동적이고 명예로운 퇴임식으로 생각되어져야 할 것이다. # 자의식은 무엇인가?자의식이라는 것은 '무한'의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의 가장 고차원적인 형태이며자의식과 인간의 사고와 감정과 감동과 사랑 같은 정신 활동이야 말로 바로 그 '무한의 의지'의 실체인 것이다.즉 '무한의 의지' = '인간의 정신' 의 식이 성립되는 것이다.미술과 음악과 시와 소설과 무용과 같은 예술 활동들은 인간 정신의 핵심이고 인류가 생긴이래로끊임없이 이루어져온 정신 활동이며그것은 곧 무한의 의지의 표출 그 자체이다.감동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며 무한의 의지가 무한의 의지로서 이루어낸 창조물들에 대한 반응(감동)인 것이다.쉽게 말해서 무한이 '신'이라고 한다면인간이 느끼는 감동이라는 것은 '신'이 자신이 창조한 것들에 대한 감동과 일치한다는 것이며인간이 감동하는 순간 동시에 신이 감동하고 있는 것이다. #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이상의 내용을 이해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는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공자는 '불혹'을 가리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거칠 것이 없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즉 마구잡이로 깽판을 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고 싶은대로 행해도 남에게 해끼칠 일이 없다는 뜻이다.무한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 속에는 해도 될일과 해서는 안될일과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들에 대해 이미 프로그램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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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란 무엇인가? 나와 모두가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선이다.악이란 무엇인가? 나와 모두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악이다.그것은 교육을 통해 배운 것이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모두가 악이라고 생각하는 것, 예를 들어 살인을 모든 인간이 선이라고 생각한다면인류는 진작에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며 그것은 무한하고자 하는 의지와 역행하는 방향이다.따라서 인류가 멸명하지 않는 것은 멸망하지 않으려 하는 의지가 인류속에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전쟁은 왜 악인가? 모두가 전생을 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악인 것이다.그러면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나와 나의 종족의 영원성을 위하여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인류라는 전체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악이되는 것이며 무한의 의지에 반하는 일인 것이다.로마에 가서 고대 유적을 보고 감동을 느낀다면그것은 무한의 의지로서 인류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한 감동일 것이다.그것은 동시에 신이 그가 창조가 결과물에 대한 감동과 동일한 것이다.

영원의 의지에 대한 생각 시작12008-05-17 태초에 '영원의 의지(영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영원의 의지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다.생명체의 본능이나 만물의 법칙은 모두 영원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영원의 의지의 방향으로 만물을 생성시키고 소멸시키고 있다. # 영원의 의지는 왜 생겨났나?생겨난 것이 아니라 태초에 영원의 의지가 있었던 것이다.무에서 유가 창조되었다면 유가 창조되기 이전이 무(無)의 상태였을 것인데무라는 것이 바로 영원의 의지 그 자체이므로 무는 필연적으로 유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다.또한 영원의 의지는 유한한 물질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으므로무에서 유가 창조된 이유는 저명하다. # 인간의 의지영원의 의지는 모든 것의 최상위 법칙이며 다른 모든 법칙들은 그 것에 종속 되어 있다.이 세상에 자의식과 고차원적인 의지(인식 가능한)가 있는 개체는 오로지 인간밖에 없다.인간의 의지는 영원의 의지에 종속되어 있는 상태로 영원의 의지가 발편되고 있는 발현이다.뛰어야 부처님 손바닥이라는 말처럼 인간의 의지는 영원의 의지에 종속되어 있다.그러나 인간의 의지는 영원의 의지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영원의 의지 그 자체이기도 한 부분이며 영원의 의지 그 자체이기도 한 종속이다.따라서 인간은 인간이 아닌 동물이 할 수 없는 이 모든 것들을 만들어 냈다.그리고 인간은 불멸하고자 한다.인간의 의지는 가장 최상위 의지인 영원의 의지의 발현이므로 인간의 의지는 세상의 법칙을 어기지 않는 범위에서는 모든 것을 이루어 낼 수 있다.영원의 의지가 우리를 창조했고허무론이 이 세상을 가득 메울지라도인간은 계속 나아갈 것이다.그 방향은 이미 우리 속에 내재되어 있고혼돈스럽고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휩싸여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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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면 이미 그 목적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므로삶이 허무하다는 것은 그저 관념에 지나지 않는 생각인 것이다.원하는 대로 살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살고 억지로 함이 없이 살고 모두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살고모두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피하면서 살면 된다.그렇게 산다면 모두가 자기의 인생에서 승리자이며죽음이라는 것은 영원에의 의지를 위해 임무를 마치고 떠나는감격스럽고 명예로운 퇴임식인 것이다.

‘유전자 인류학 - 존 H. 릴리스포드’를 읽고2008-05-19 인류학의 한 분야인 생물학적 인류학에 대해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써내려가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수 년전에 사서 읽다가 덮어둔 책인데오늘 당직 서면서 하루종일 다 읽어버렸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유전학과 분자 생물학의 지식이 있으면 좋다.그렇나 그런 지식이 없더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나는 물론 전공이 의학이므로 흥미가 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인류의 기원에 대한 근원전인 궁금증은결국 인류학에 대한 기웃거림으로 이어졌고이러한 인류학 책들을 몇권 집에 사서 책꽂이어 꽂아두고가끔씩 째려보기만 했었는데, 결국 궁금증이 폭발하여 단숨에 읽어내리게 되었다. 이 책을 썼을 당시보다 현재는 더 많은 연구 결과들이 나왔겠지만이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대강의 이야기는 이렇다. 인간은 동물 계에 속하고척삭동물 문에 속하고 척추동물 아문에 속하며포유류 강, 태반류 아강에 속하고영장류 목, 유인원 아목에 속한다.호미노이드 상과에 속하고호미니드 과에 속하며호모(인간)속에 속한다.중학교때 배운 종속과목강문계를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호미노이드 상과에 속하는 것에느 인간외에 힐로바티드과에 속하는 긴팔원숭이가 있으며폰지드 과에 속하는 오랑우탄, 침팬치, 고릴라가 있다.폰지드 과는 인간이 속한 호미니드 과와 더욱 가깝다. 결론적으로 유전자 분석결과공통조상에서 1200 만년 에서 1600 만년 전에 오랑우탄이 분리되어 나왔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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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릴라는 6-800 만년 전에침팬지는 5-600 만년 전에 분리되어 나왔다고 한다.이후 400 만년동안 호미니드(인간)은 아프리카에서만 진화했으며 이것을 오스트랄로피테쿠스과라고 부른다.200 만년 전에 뇌가 크고 돌 도구를 최초로 쓰기 시작한 호모가 등장했다. 200 만년 전 등장한 호모를 호모 에르가스테르라고 부르며이는 100 만년전에 호모 안테세소르와 호모 에렉투스로 분리된다.호모 에렉투스는 직립을 했으며 동남아시아와 동유럽까지 퍼졌지만 언젠가 완전히 소멸되었다.호모 안테세소르가 진화하여 호모 하이델베르겐시스로 진화하고 이는 나중에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로 분리된다.네안데르탈인은 언젠가에 멸종되었으며호모 사피엔스가 현생 인류의 직접 조상이다.호모 사피엔스는 우리 인류의 직접 조상이며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등장하였다.10 만년 전에 지구상에는 세 종의 인류가 존재했었던 것 같다.인류의 직접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와지금은 멸종하고 없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가 공존 했었던 것 같다. 책의 내용을 매우 간략히 요약해 본다면.........

#1. 현대 인류의 기원고대 인류에서 현대 인류로 진행된 최초의 변화는 15 만년전 아프리카에서 일어났고그 후 다른 곳으로 퍼져나갔으며 아프리카의 인류가 다른 곳의 인류를 대체했다는 설과지구의 여러 지역에서 인류가 기원한다는 설이 대립하고 있는 상태이며본 책의 저자는 15 만년 전 대부분의 우리 조상은 아프리카에 살았으나비아프리카 지역의 어떤 특정한 개체군이 우리 조상의 유전자 형성이 기여를 했을 가능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 #2. 네안데르탈인의 운명기존의 학설과 달리네안데르탈인이 현대 인류의 유전자에 아무런 기여를 못 한 것이아니라현대 인류의 유전자 속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소수 섞여있을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3. 유전자의 흐름유전자의 흐름은 대체로 사하라 남부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중동아시아와 북아파리카와 남아시아를 거쳐유럽과 동북아시아로 퍼지고 유라시아에서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및 태평양의 섬들로 퍼졌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유전자 거리에 대해 상당히 할애를 해서 이야기 하고 있으며이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위해서 꼭 이애해야 하는 개념이다. #4. 아메리카인아메리카인은 1 만 2 천년 전쯤에 동북 아시아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되나몇 번에 걸쳐서 이주해 왔는지 정확히 아시아의 어느 지방에서 이주해 왔는지 등에 대한의문점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며 많은 가설들이 있다. #5. 농경 문화의 확산고고학적 증거로 볼 때 식물과 동물을 최초로 기르기 시작한 것 약 1 만 2000 년 전으로 추정된다.유럽으로의 농경문화의 확산은 약 9000 년 전 지금의 이라크와 터키에서 시작해서서북쪽으로 유럽을 향해 진행되었으며 6000 년 전까지 농경문화가 유럽 서북쪽 끝가지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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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퍼져나간것이 농경문화 '문화'만 퍼진 것인지농부로 구성된 개체군이 직접 유럽으로 건너간 것인지에 대해 논의가 많았는데두가지가 섞인 것으로 생각된다.연구 결과 현재 유럽인 조상중 서남아시아에서 팽창해온 농부 개체군의 비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이 책의 내용과는 상관 없지만 얼마 전에 읽었던 문명의 창세기라는 책을 보면기원전 6000 년(8000 년전)쯤 전에 티키 동부와 이라크 북부에서 아담이 문명을 퍼트린 것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9000 년전 지금은 이라크와 터키에서 농경문화가 유럽으로 확산 되었다는 연구 결과와매우 흡사한 것이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더군다니 초기 문명이라는 것은 결국 농경문화의 확상이 아니겠는가?> #6. 폴리네시안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안의 기원은남중국,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된 흐름이 멜라네시안과 섞이면서 빠른 속도로폴리네시아로 퍼진것 같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외 아일랜드인과 멕시코 아메리컨, 아프리칸 미국인, 유대인등에 대한 흥미로운 글이 실려있다. 이 모든 것을 이루게 한 가장 근원적인 파워는 바로 '영원의 의지'이다.

영원의 의지에 대한 생각 시작22008-05-25 태초에 영원의 의지가 있었다. 영원의 의지가 있기 전이 공(空)이라고 한다면공은 공으로 존재하지 못하므로 공은 곧 영원의 의지가 되었으며 영원의 의지 그 자체이다.무한한 것은 무한하려는 의지 그 자체이다.무한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무한은 무한이 아니라 유한이 되기 때문이다.무한하려는 의지, 즉 영원의 의지는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유한적인 물질을 만들게 된다.그 유한적인 물질은 유한하므로 소멸할 수 밖에 없으나 계속 생겨나거나 재생함으로써 영원의 의지가 존속하도록 한다.이 세상에서 유한적인 물질이 완전히 없어지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영원의 의지는 무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영원의 의지가 유한체를 만들기 전단계를 공이라고 한다면공은 찰나의 시간도 존재할 수 없는 개념적인 것이며 공은 곧바로 영원의 의지를 통해 유한체가 되며공은 곧 무한 그 자체이며공에서는 반드시 유한체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다. 현대의 물리학에서는 물질을 최후까지 분해하면 그것은 실체가 없는 파동이라고 말하고 있으며파동은 그 자체로서 찰나도 존재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영원의 의지가 태초를 창조한 것은 그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지금 현재 우리주변에서 내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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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영원에의 의지에서 나왔다. 고독은 영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낙심의 감정이며유한체의 한계에 대한 자각이다. 그러나 보다 대승적인 관점에서 본다면하나의 유한체는 또 다른 유한체을 낳거나 영향을 미침으로서 영원에 기여한다. 돈을 벌고자 함은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책을 쓰고자 함은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의학의 발달은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철학은 영원하고자 함을 그 가장 핵심 주제로 삼고 있다.예술은 영원하고자 하는 정신의 몸부림이다.정치는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의 실제적인 체계이다.전쟁은 영원하고자 하는 그룹별로의 다툼이다.영원의 의지가 우주를 탄생시켰고 생명을 탄생시켰고 인간을 탄생시켰다.많은 사람들은 영원의 의지를 신이라고 부른다.우리 모두는 죽지 않으려 한다.파리도 죽지 않으려 한다.암세포도 죽지 않고 끊임없이 증식하려 한다. 생명은 영원의 의지의 고차원적인 발현이며인간은 그 것들 중에서도 가장 고차원적인 발현이며인간을 통해 영원의 의지는 비로서 생명력을 얻었다. 인간은 영원의 의지가 담긴 몸뚱아리이며인간의 생각과 감정과 느낌과 감동과 슬픔과 고독은영원의 의지의 발현이다. 이상은 모두 진리이다.

영원성과 유한성에 대한 단상 2008-06-02 우주 만물은 영원하고자 함과 동시에 유한하고자 한다.인간 또한 마찬가지이다.인간은 영원하고자 하면서도 유한하려고 한다.두 의지가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영원하고자 하는 것 같은 행동도 결국은 유한하고자 하는 행동으로 순식간에 변한다.영원성과 유한성은 종이 한장 차이도 안된다.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은유한하고자 하는 의지가 최고조에 이른 상태인 것 같다.

영원의 의지의 실체는 사랑?2008-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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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초에 영원의 의지가 있었다. 영원의 의지의 속성은 무한하고자 함, 영원하고자 함이다. 무한(영원)은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 그 자체이며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영원은 있을 수가 없고 곧 유한이 되버린다. 유한은 없어지게 될 것이며 이세상이 모두 유한체라면 이 세상은 벌써 존재하지 않고 있을 것임은 자명하다.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는 잡히지 않는 관념처럼 생각되나 이 영원하고자 함은 물질이라는 유한체를 매개로서만이 존재하며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반드시 유한체 또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영원의 의지가 없다면 영원이라는 것은 없으며 영원이 없다면 그것은 유한이고 유한이 세계의 속성이라면 이 세계는 벌써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영원은 반드시 있는 것이며 영원은 반드시 유한체를 매개로 존재한다. 파동이 물질을 매개로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무리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유리수가 필요함과 같은 원리이다. 따라서 태초에 영원의 의지가 존재했으며 그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는 유한체를 통해서 발현되었다. 유한체는 유한하려하지만 동시에 생성, 변화, 재생을 통해 무한하려는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주 만물을 비롯한 인간은 유한체이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은 바로 그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의 실체이자 발현이다. 그 의지가 정신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창조될 수 밖에 없었으며, 태초에 찰나의 순간동안에 모든것이 창조 되었고 그 창조물은 끊임없이, 영원히 생성 변화한다. 그렇게 끊임없이 생성 변화하게 하는 것이 하로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그것의 발현이 바로 인간의 정신이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는 그러면 무슨 세계 였는가 자문할 수 있겠으나 인간의 태어나기 전이라는 것은 시간의 관념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찰나에 이미 인간은 창조되었으나 유한적인 개체인 우리는 시간을 통해 그 인간이 창조되는 과정을 시간을 통해 파악하므로 혼란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다. 공룡과 나는 찰나에 창조되었다. 나는 유한체므로 시간의 도움으로 공룡에서 인간까지의 과정을 파악할 수 밖에 없으므로 공룡과 우리는 함께 존재할 수는 없다. 태어남과 죽음 모두 찰나에 일어난 것이며 시작과 끝은 무의미 하다. 영원하는 것은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그것이 우리의 정신이다. 혹자는 그것을 영혼으로 파악하여 천국에 간다는 개념을 만들었다. 유한체인 우리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개념으로는 나쁘지는 않지만, 천국이 따로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 욕심을 만들고 집착을 가져온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중에 어느 누구도 죽음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은 없다. 모든 죽음은 간접 경험이다. 따라서 사후의 세계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육신이라는 유한체가 없어지더라도 정신이라는 바로 그 영원의 의지는 형태가 바꾸어 질지언정 당연히 영원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영원하고자 하는 의지)을 믿으면 천국으로 갈 것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물론 기독교는 예수라는 존재를 매개로 하여야 천국의 문이 열리고 영생을 얻게 될 것이라고 성경에 나온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영원의 의지에 대한 그 누구보다 강한 확신과 믿음으로 살았던 분이며 그 영원의 속성인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자신이 영원할 수 있음을 증명한 존재이다. 구약에서는 그런 존재가 반드시 나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으며 그것을 이루어낸 존재가 바로 예수이다. 예수를 매개한다는 말은 비기독교인 나의 생각에는 예수와 같이 우리도 영생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닐까 싶다. 2. 영원의 의지는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으며 물질을 매개로 존재하며 그 영원하려는 의지가 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 (창조하였다) 3. '영원의 의지'를 혹자는 신이라 하고 혹자는 도라고 하며 혹자는 부처라고도 하고 혹자는 하느님, 또는 하나님이라고도 하며 상제라고도 한다. 4. 영원의 의지를 구성하는 그리고 영원의 의지가 만들어낸 유한체(물질, 우주, 생명등)는 유한하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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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한하고자 하는 유한체의 속성은 무한하고자 하는 무한체의 속성에 속해있는데, 서로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6. 혹자는 그 영원하고자 하는 속성을 '사랑, 천사, 선...등'이라고 이야기 하며, 유한하고자 하는 속성을 '증오, 악마, 악... 등'이라고 이야기 한다. 따라서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으며 그와 동시에 '악'이 존재했는데, 그 둘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나 '악'은 '사랑'에 속하는 속성이다. 7.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그 '영원의 의지'를 구성하고 있어며 바로 그 '의지'의 실체가 바로 인간의 정신이다. 8. 이 모든 것들은 100억 만년동안 만들어졌다기보다 찰나에 만들어졌으나 유한체인 우리는 시간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파악하게 된다. 그러나 영원의 의지의 관점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무의미하다. 9. 우리가 과학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그 '영원의 의지'가 만들어낸 세상의 모습과 원리이지만, 궁극적인 그 원리를 주관하는 의지는 과학으로 밝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느끼고 깨닫고 직관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10. 그 의지라는 것은 이 세상 만물을 창조했으며, 그마만큼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며 그 의지가 바로 인간의 정신이며 그 인간의 정신이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만들어내고 100층짜리 건물도 만들어내고 줄기세포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의지라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파악하며 인간이면 민족과 국가와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숭상한다. 11. 노자는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본체이면서 동시에 그 만물이 운동변화 하는 법칙을 '도'라하였으나 그 법칙의 특성은 무목적적, 무의지적인 무위자연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법칙의 특징은 무목적적이 아니라 '영원하고자 함'이다. 12. '영원하고자 함'에는 반드시 '유한하고자 함'이 함께 존재할 수 밖에 없는데, 그 유한하고자 함이 인간에게 허무함을 심어준다.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유한하고자 함을 만나니 이 어찌 허무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유하한함은 영원하고자 함의 속성에 속함을 깨닫는다면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을것이다. 13. 영원하고자 함은 사랑의 속성이며, 사랑하고자 함은 사랑받고자 함이며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은 매우 강렬한 것이라 우리는 관계를 중시하고 소외받기를 싫어하고 버림받기를 두려워하고 무시당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된다. 그러나 또한 유한하고자 하는 속성을 통해 자신의 무한성을 일시적으로 확보하고자 남을 유한하게 하려고 하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도 유한해지려한다. 그리고 자신이 유한하다는 것에 지극히 만족하고 안도해 한다. 14.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영원성, 즉 사랑이며, 관계이다. 15. 의지의 발현인 정신이 유한의 세계가 아닌 무한의 세계에 속하는 것임을 깨달음으로써 자유로와질 수 있을 것이다. 16. 사후에 무한의 세계(천국같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 이미 영생하리라는 믿음과 의지의 힘과 영원성을 믿어야 할 것이다. 17. 의지의 영원성을 믿고 그 의지의 위대함을 깨닫고 그 의지의 방향(사랑)대로 살려는 노력이 현세의 고뇌와 허무함을 극복하는 길이다. 18. 그 의지가 창조해낸 이 위대한 우주와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낸 작품에 대한 감동과 찬미가 삶을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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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그 의지의 위대한 힘을 업고 우리의 강한 의지는 이루어질 수 있다. 20. 영원하고자 하는 속성이 우리의 본성을 차지하는 것 만큼이나 유한하고자 하는 속성이 인간의 본성의 속성을 이루고 있으므로 인간은 때로 악해지고 때로는 그 유한함의 속성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태초에 유한하고자 함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자 함이 있었고 영원하고자 함이 발현된 것의 속성이 유한하고자 함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고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우리의 정신으로 발현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영원속에 속해 있는 우리 정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힘에 대해 믿음으로 그 유한하려함을 통제해야 할 것이다. 유한하려함이 영원하려함을 뒤엎어버린다면 세상은 무법천지가 될지 모른다. 21. 정리하면 태초에 영원하고자 함이 있었고 영원하고자 함이 이 세계를 만들었고 이 세계의 특징은 유한함이며 유한체의 특징은 유한하려 함이다. 영원하고자 함은 유한체로서만 존재할 수 있으므로 영원하고자 함의 속성에는 유한하고자 함의 속성이 있다. 인간의 정신은 영원하고자 하려는 의지의 발현이지만 인간의 본성에는 유한하려 함의 속성 또한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그 영원하려 함을 '사랑또는 선'이라고 파악하며 유한하려 함을 '악 또는 증오' 등으로 파악한다. 사랑의 속성중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이다. 영원하고자 함은 관계를 맺으려 함과 다름이 아니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정신은 유한하려함이 아니라 영원하려 함이다. 때로는 영원하려함이 다른 개체를 유한하게 하려는 욕심으로 변질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영원의 속성이 아니다. 세속적인 의미의 영생이 영원이 아니라 이미 영원속에 속한 우리의 정신의 실체를 깨닫고 경외하며 통제할 줄 아는 삶으로써 자유를 만긱해야 할 것이다. 정리>1. 인간의 정신은 신의 정신이다.2. 그 신의 정신의 속성은 영원하고자 함이다.3. 인간을 비롯한 유한체는 필연적으로 유한하려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다.4. 인간의 정신은 신의 의지인 만큼 그 능력은 무한하고 위대하다.5. 따라서 인간의 의지는 그 무엇도 이루어낼 씨앗을 품고 있다.6. 그러나 유한하려는 본성 또한 내재되어 있으므로 이를 다스릴 필요가 있다.7. 이 세상 만물을 이루고 이루어낸 신의 의지(영원하고자 함)가 인간의 정신에 깃들여 있으므로 나의 몸 뿐만 아니라 너의 몸도 나의 몸이며 만물이 나의 몸과 같음을 깨달아야 하며 나를 사랑하듯이 만물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8. 그 정신의 가장 고귀한 형태는 사랑이다.9. 그 정신은 그 무엇보다 상위 개념이므로 허무함이 끼어들 여지가 없으며 이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짐은 유한하려는 본성의 작용이다.10. 신의 정신을 가지고 영원성을 이루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려는 의지는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된다.11. 내 육신은 흙이 되더라도 내 정신은 영원하며 순수하게 갈고닭은 정신은 시대를 초월하여 만인과 교통할 수 있다. 내가 논어를 읽고 깨달음을 얻으면 그 순간 내 정신에 공자의 정신이 깃들여 있게 된다. 나또한 그런 식으로 정신을 확장 시킬 수가 있고 육신이 없어져도 나의 정신은 나의 저술이나 나의 말이나 나의 행동이나 나의 예술작품이나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영원성에 근거한 정신 작용은 영원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렇게 되길 원한다. 교보문고의 셀 수 없는 책과 셀수없는 예술품등이 그것을 증명한다. 12. 유한하게 하려는 본성을 잘 다스려야 할 것이며 유한하게 하려는 본성으로 이루어 낸 마음은 말 그대로 유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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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나침반 - 숭산대선사의 가르침 - 현각 엮음’을 읽고2008 년 7월 22 일 이 책은 숭산스님의 가르침을미국인 스님인 현각이 영어로 풀어낸 것을허문명씨가 한글로 옮긴 책이다. 선불교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불교든, 유교든, 도교든,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주제는 다 똑같다. 누가 무엇때문에 이 세상을 창조해서우리는 왜 태어나서 왜 살다가 왜 죽으며그런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The Zen Circle 이라고 번역된 선원에 대해서 말해보면원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데0 도에서 90 도까지 지점은 집착과 생각의 영역이고 생각은 욕심이고 모든 욕심은 고통을 부른다고 한다.90 도에서 180 도까지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영역이다. 결국 모든 것은 공으로 돌아간다는 것인데, 이런 생각또한 공에 집착하는 생각의 영원이라고 한다.180 도에서 270 도까지는 생각이 전혀 없는 영역이며 '공'을 경험하는 상태이다. 말이나 단어가 없는 영역이다. 자유로운 '나'를 얻는 영역이다. 180 도까지만 해도 큰 깨달음으로 보이는데 270 도쯤 되면 도인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270 도의 영역에서 멈추면'자유'에 집착하게 된다고 한다.270 도를 지나 360 도가 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이 영역은 만물을 단지 '있는 그대로'보는 것이다. 만물이 진리이다. 주체도 없고 대상도 없다. 안과 밖이 하나가 된다. 하늘을 볼 때 하늘과 하나가 된다. 시공을 초월한 것이며 삶도, 죽음도 없는 단계이다. 단지 모든 중생을 구하고 돕고 싶을 뿐이며 나와 너는 하나이고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들이 슬프면 나도 슬프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선수행의 목적이 바로 이 360 도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아직 30 도쯤 온 것 같은데 더 가고 싶은 생각도 사실 없다. 나는 나름의 세상에 대한 시각을 가졌다. 이 모든것을 탄생시킨 것은 영원의 의지이며그 의지의 실체가 바로 우리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선불교의 360 도와 통하는 말일지도 모른다.의지만 남고 나머지는 허상이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의지의 발현이 만물이니안과 밖이 하나고 나와 너는 하나고 삶도 죽음도 없는 것이 아니고 무어겠는가. 다만 현세의 나는 머리로는 이해를 하겠으나고뇌의 속세에 더욱 남아서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속세를 격하해서는 안된다.속세는 그 의지의 위대한 발현 그 자체이니까.유한성과의 끝없는 싸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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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읽고2008-07-18 이럴수가!!!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정확하게 내가 고민하고 있는 바로 그 문제에 대해서그의 소설에 줄기차게 이야기하고 있다.이로서 나의 궁금증은 노벨 수상 후보작 정도의 가치는 있는 궁금증이 되었다. 혹자는 카잔차키스의 이름이 카잔초프스키 이고 러시아에서 태어났다면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대문호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라고까지 이야기 한다. 이번에 다녀왔던 그리스 크레타에서의 기억들이소설과 계속 겹치면서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작가를 내 인생 중요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다. 그래...정확히 내가 원한 바로 그 질문을 소설 속 '조르바'가 주인공에게 건네고인텔리인 주인공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그러나 그 주인공인 카잔차키스는 그의 여러 글들과 그의 행보를 통에 온몸으로 그에 대한 답을 하는 인생을 살았으며심지어 그의 묘비 비문에 명확하게 그 내용을 적어두었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소설속에서 끊임없이 물고 늘어지는 바로 그 화두 이 세상은 누가 만들었으며왜 태어났고 왜 죽으며삶의 의미나 목적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거나 빗겨간 책들은 예술이 아니라고까지 했다. 책 속의 주인공은 결국 토할때까지 책을 읽고 쓰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었고그것이 바로 카잔차키스가 행한 일이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정당화일 것이다.주인공의 고민이 나의 인생과 어쩜 그리 겹쳐지는지... 나 또한 의사라는 현실적인 실천에 최선을 다하면서도화두에 대한 구도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다짐을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했던 기억이 난다.그것은 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의 이번 독서의 커다란 수확이다.마치 조르바가 밥을 굶어가면서 미친듯이 탄광을 파내는 일에 몰두하듯이나는 의사가 되어 한명 한명에 최선을 다하는일에 우선 몰두해야 할 것이다. 나는 어쨌든 책상머리에서 책읽고 글쓰는 일에 내 인생을 바칠 생각은 추호도 없기 때문이다.인간은 어쨌든 하루의 대부분을 지칠정도로 일해야 살 수 있도록 태어났다.아니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해야 맞나? 그리고 결국우리는우리 인간은감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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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출줄 알아야 한다.그것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그리고 신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우리가 신을 구원하겠다는 자세에 동의하며인간의 의지, 바로 그 영원의 의지, 바로 그 신의 의지, 그 의지의 끈을 놓아선 안된다. 영원성과 유한성과의 처절한 싸움속에서도 결국 영원성이 종이 한장 차이로 승리하는 바로 그 이 세상의 묘한 이치와그 종이 한장 차이의 승리를 반드시 사수하겠다는 의지와유한성의 유혹에 대한 사투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바로 그 의지바로 그 의지가 바로 신의 의지라는 깨달음과그 신의 의지가 우리의 의지를 통해 이뤄진다는 깨달음이우리를 허무한 듯 보이는 세상에서 구원하여진정한 자유와 영원의 세계로 인도할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어쨌던크레타에서 찾아갔던그의 단순하기 짝이없던 묘지의나무 십자가 모습이 머리속에 떠오른다.

‘서양철학사 상,하 - 버트란드 러셀’를 읽고2008-12-02 이 책을 읽어내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의 도전이다.아무런 장식이 없는 장판지 색깔의 색바랜 노란 커버에무미건조하기 짝이 없는 고딕체로 그것도 한자로 西洋哲學史 라고 적혀있으며깨알같은 글씨체로 무려 1100 페이지가 넘는 내용을 닮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쓰여진 서양철학사 책중에서이렇게나 철학적인 역사서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영어 공부도 할겸 영문 원본 책을 사서 비교해서 읽다가도대체가 시간이 너무나 오래 걸려서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그러나 영어 독해가 완벽하다면 원문을 읽는 것이 작자의 생각을 더 잘 캐치해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누군가가 이야기 했다.철학은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하는 학문이라고 나는 누구나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그러나 굳이 억지로 공부하고 싶지 않더라도 끊임없이 머릿속에철학적인 주제들이 떠올라서 전공을 하지 않더라도 서점에서 철학서적 코너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모짜르트가 억지로 음악을 한 것이 아닐 것이며, 박찬호가 억지로 야구를 한 것이 아닐 것이다.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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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산지 1 년만에 네비게이션을 달았다.나는 도대체가 낯선 곳에 가면 지도상에서 내 위치가 어디있는지를 납득이 가도록 찾아내지 않으면불안해서 견달수가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철학에 대한 관심은 이러한 성격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의 전공의 의학이지만, 철학적 주제에 관련된 꽤 심각한 관심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온다.사실 의학과 철학은 어떻게 보면 아주 잘 어울리는 학문이라고도 하겠다.스무살 왜 태어나서 왜 죽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어 당시에는 나름 심각한 작정으로 책상머리에서 하는 철학이 아니라 생로병사를 직접 몸으로 경험하면서 하는 철학을 해보겠노라고 의학을 택했었던 기억이 난다.물론 의대 공부를 하면서 밀어닥치는 현실적인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그런 생각은 어딘가로 쳐박혀 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끊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왜'에 대한 의문들그리고 부질 없는줄 알면서도 그 의문점에 대한 대답을 해보겠다는 욕심들그래도 그런 욕심이 10 년이 넘으니 눈 앞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 거꾸로 나와 비슷한 생각들을 했던 선인들이 있었는지 이런 저런 책들을 읽어보게 되는 것이다. 사실 버트란드 러셀 자신이 철학자인 만큼 책을 쉽게 쓰지는 않았으며기본적인 세계사와 철학사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읽기 쉬운 책이다.그렇지만 철학자의 시각으로 상당히 날카로운 이해와 비판으로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서양 철학을이해하고 풀어해치고 재해석 시키는 과정을 담아 내었다. 현대 철학사와 동양 철학에 대해서 좀더 읽어보고독서가 어느정도 수준에 이르면 나의 이야기도 좀 풀어봐야겠다. 철학은 힘이다.진리를 아는 것이 철학의 목적이라면진리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일진대진리를 아는 것은 가장 큰 힘을 소유가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왜 모든 존재자는 존재하지 무가 아닌가?"하이데가가 한 말이며 나의 의문이 가장 핵심이기도 하며 철학의 가장핵심이자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 것에 대한 핵심 질문이다. 카뮈는 이렇게도 말했다."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슈바이처는 이렇게도 말했다.모든 형이상학적이고 현학적인 논의들과 탁상공론에도 불구 하고 우리는 죽기 싫어하는 생명이 있는 존재이다. 도대체 왜 모든 존재자는 무의 상태에 있지 않고 존재하는 상태에 있는 것이가.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무슨 차이인가.어차피 죽을 인생 태어난 것과 태어나지 않은 것은 무슨차이인가.지구가 핵폭탄을 맞고 없어져 버리고 인류가 멸망한다면 지금까지의 역사는 도대체 무엇인가.황량한 돌산과 흙 바닭과 물만 있으면 됐지 그곳에 생명은 또 왜 잉태했나.아메바나 파충류나 개나 고양이만 있으면 됐지 인간은 또 왜 생겨났나.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생겨났는데 또 왜 죽어 없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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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뭐 그런거 골치 아프게 뭐하려고 생각하나그냥 돈벌고 즐기고 행복하면 장땡 아닌가. 그래도 문득 허전하지 아니한가.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라는 생각이 들지 아니한가?나만 그런 것인가? 인생 참 리니지 게임같지 아니한가?죽어라 밤새도록 전리품 모으고 돈 모으면 모하나컴퓨터 전원 빼버리면 그만인데 허무의 극복존재자는 무의 상태에 있지 않고 존재하는 바로 그 이유그 답은 바로영원의 의지에 있다.

존재의 이유와 의미에 관한 1 차 사유2008-12-08 태초에 '존재'가 있었다. 그것조차 없는 無는 없다. 존재는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다.존재는 동시에 물질로 존재하고존재하려는 의지가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있다.존재로서의 물질의존재를 지속하려는 성질과존재를 멈추려는 성질이 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 이 몇가지 문장으로 마음만 먹으면 모든 학문적 이론을 해석할 수 있다. 1. 존재에 대한 ‘왜?’ 라는 문제제기.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것은 진리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저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 죽어 있는 사람은 없다. 그것 또한 저명한 사실이다. 만약 내일 우리 모두가 죽는다면 나는 여기에 왜 서 있는 것일까?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한 것이 아닌가? 어차피 죽을 것을 왜 태어났나? 그리고 때로는 즐거우면서도 많은 경우에는 고통스러운 이 인생을 살아 나가고 있는 것인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왜 無가 아니라 有인가 하는 점이며 有는 왜 또 無가 되느냐 하는 점이다. 나머지 문제는 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서 다 같이 죽는다고 생각해보자. 이 세상이 흙으로 이루어졌든, 불로 이루어졌든, 물로 이루어졌든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치니 문화니 예술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들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죽어라 벌어놨던 돈이 문제가 아니다. 주가가 0포인트가 되어 내 돈이 다 없어져도 문제가 아니다. 당장 내일 죽을 지도 모르는 내가 지금 해결 봐야 할 문제가 있다면 이렇게 죽을 것을 왜 태어났으며 죽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고 찾아가 봐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야 하는 문제이다. 그래야 부모님을 찾을 것인지 사랑하는 여자를 찾을 것인지 그냥 혼자 있을 것인지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할 것인지 지구가 내일 멸망하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 것인지 결정할 것 아닌가? 미리 생각해 두지 않으면 하루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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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득할만한 해답을 찾기는 매우매우 어려운 문제다. 아무리 바쁜 현대인이지만 내일 당장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할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는 죽음이란 우리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죽음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집착하는 모든 상대적이고 공허한 것들에 대한 예속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이 있기에 다른 모든 가능성보다 중요한 가능성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죽지 않는다면 오늘 내가 힘들게 일할 필요가 있을까?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까? 누군가와 사랑을 할 필요가 있을까? 스키장에 가서 신나게 스키를 탈 필요가 있을까?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할 필요가 있을까? 누군가를 미워할 필요가 있을까? 인생에 뭐 하나라도 중요해 지는 것이 있을까? 아니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인생의 모든 것들에 중요 순위가 매겨지는 것이다.

그건 알겠다. 그럼 도대체 왜 태어난 것인가. 더 나아가 인류는 왜 생겨났나? 더 나아가 생명체는 왜 생겨났나? 더 나아가 지구는 왜 생겨났으며 우주는 왜 생겨났나? 그냥 없는 채로 있는게 더 편한 것 아니었겠나? 아얘 생기지 않았으면 죽는 일도 없을텐데 말이다. 질문은 그만하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2. ‘나’에게 절박함으로써의 철학

사실 이 문제들은 수 천년 동안 기라성 같은 성인들과 철학자들이 수 억번 반복해 왔지만 의견과 해석과 기호가 분분할 뿐 수학 공식처럼 정답이 명쾌하게 나오는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 구태여 철학을 전공한 철학자도 아닌 의사인 내가 이런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굳이 파고들어 해답을 찾아보려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으로부터 10 년 전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당시부터 나름 꽤 심각했던 문제가 있었다. 몇 일 밖에 살지 못할 것이 뻔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수일간의 추가적인 삶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좋다. 그럼 수 일이 아니라 한 달이라고 치자. 어떤 약을 쓰면 한 달은 더 살 수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한 달이라고 하면 다들 할 말들이 많을 것이다. 그것은 당사자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미 뇌기능이 거의 없이 기계 호흡에 의존하는 경우는 어떨까? 아니면 기계호흡으로는 1 년이고 2 년이고 살 수 있는 식물인간은 또 어떨까? 그렇다면 1 달을 1 년으로 늘리면 어떻겠나? 1 년을 10 년으로 늘리면 또 어떻겠나? 하루의 인생에 의미부여가 되지 않는데 10년을 산들 100 년을 산들 인생의 의미에 대해 뭐라도 한 말 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에 대해 내가 굳이 10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집착적으로 그리고 강박적으로 고민 해온 이유는 이런 문제들이 성철 스님이나 공자나 플라톤이나 칸트나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나 성인들만이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내가 해결을 봐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신 나의 삶을 살아줄 수 없는 노릇이고 나를 대신해서 죽어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해결을 봐야 할 바로 ‘나’의 문제라는 것이다. 아직 나는 서른 한살이지만, 이제는 그 동안의 생각들과 깨달음이라고 하면 깨달음이라고 할만한 것들을 글로서나마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대개의 유명한 사상가들은 이미 20-30 대에 자신들의 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대한 체계를 세웠다. 서른 살이라는 나이는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나의 두뇌가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을 나이고 아직까지 편견이라는 갑옷이 덜 씌어진 나이다. 지금 한마디 하지 않으면 나중에 좀더 세상 풍파에 휩싸이면 다 잊혀질 것 같은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이 더욱 정리되었다. 그리하고 앞 뒤가 맞지 않는 오류의 과정이 있었는데, 그 사고의 오류와 시행착오에 대해서도 서술하겠다. 이렇게 전개해 나가면 이렇게 막힌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3. 첫 번째 시도. 오류에 빠짐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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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無가 있었다. 空이 있었다는 것보다 無가 있었다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이라 할지라고 파장이란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이 간다. 공간조차 없는 것은 공이 아니라 無다. 숫자는 공인가 유인가? 공이기도 하지만 유이기도 하다. 사랑은 공인가 유인가 공이기도 하지만 무이기도 하다. 시간은 공인가 유인가? 역시 공이기도 하지만 무이기도 하다. 이런 관념들은 무이지만 인간이 정신 작용을 통해 유로 파악한다. 이러한 관념조차 없는 것을 순수한 無라고 하자.

무는 가능성의 씨앗이다. 만약 무가 유가 된다면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무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지구도 될 수 있고 우주도 될 수 있고 개도 될 수 있고 인간도 될 수 있다. 상상할 수 있는 그 무엇도 될 수 있으나 되지 않은 상태가 無이다. 무의 가장 기본 속성은 유가 되려 하는 것이다. 무가 유가 되려는 속성이 없다면 지금 우리는 여기에 앉아 있지도 못할 것이다 그냥 계속 無일 테니까. 이것은 논증하기 매우 힘든 문제이지만,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직관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유가 되려 했기 때문에 유가 현재 내 눈앞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 식으로 눈 앞에 보이는 것이 다 허상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떨까. 허상이라도 있는 것이요 그것이 有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이성의 힘보다는 직관이 필요함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중세, 근대의 동서양 철학자들 보다 고대의 동, 서양 철학자들은 이 세상의 진리에 대해 이미 달관하고 있었다. 기원전 6-7 세기경에 살았었다는 서양의 아낙시만드로스는 만물의 출발점을 생동적인 무한자(아페이론)로 규정하는데, 구체적인 사물들은 이 아페이론으로부터 나와 아페이론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한다. 기원전 4-5 세기에 살았었던 석가모니가 말하는 공즉시색 색즉시공은 진리이거나 진리에 매우 근접해있다. 이러한 선인들은 깨달음을 이성에 의한 사유에 의해 책 한권을 써내려 간 것이 아니라 직관으로 달관하여 깨달았다. 언어도단이라는 말도 있지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언어로서만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상을 전달할 수 밖에 없으므로 언어를 통해 직관으로 깨달은 바를 서술해 나가는 것이 결코 헛된 시도라고 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후에 이러한 가르침이 뭔가 석연치 못하다고 생각한 수 많은 기라성 같은 동,서양 철학자들이 수많은 철학 체계를 세웠으나 그 어느 것 아니 완전히 만족스러운 것이 없으며 그 이후의 후배들에게 비판을 당하게 된다. 플라톤의 이데아에서 시작하여 중세 교부철학을 지나 근대의 데카르트와 칸트에 이르러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극에 달하게 되어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것을 다 깨닫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데카르트는 아무리 고뇌하고 답이 나오지 않자 그 고뇌하고 있는 자기를 발견하고는 한걸음 비껴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하였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을 통해 세계를 창조했다. 이미 세계는 거기에 있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니체를 지나면서 신을 부정하고 현재의 인간에 관심을 가지다가 허셀이 드디어 현상학이라는 것을 제창하였다. 현상학은 굉장히 어려운 말들이 수권의 책에 쓰여져 있지만, 그 핵심은 어찌됐던지 간에 여기에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바로 그 현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참 멀리도 돌아왔다. 하이데거 까지만 해도 아직은 희망이 있었지만, 결국 수 천년을 헤매어 해석과 기호의 의미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진리는 저 구름 속에 가려져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듯이 여겨진다.

다시 無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무는 유가되려는 속성이 있음을 이야기 하였다. 유가 되려 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존재하려 한다는 뜻이다. 존재하려 한다는 뜻은 존재를 지속하려 한다는 뜻이다. 존재를 지속하려 한다는 뜻은 영원하고자 한다는 뜻이다. 無는 영원하고자 한다. 아니 영원할 수 밖에 없다. 무가 없어지는가? 아니다. 무는 영원하다. 영원하다는 것은 영원하려 한다는 뜻이며 영원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영원하려 함, 영원하려는 의지가 없어지면 더 이상 영원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유한하게 될 것이며 유한한 것은 사라지게 될 것이고 사라지면 無인데, 무는 영원하려 하고 존재하려 하므로 영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태초에 無가 있었다는 말은 태초에 영원이 있었다는 말이며, 그 말은 태초에 영원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말이며, 이는 또 말을 바꾸면 존재하려 함이 있었다는 말이고 존재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말이며 존재를 지속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無는 무로서 영원할 수 없다. 무가 영원하기 위해서는 계속 無의 상태로 있어서는 안되며 필연적으로 유한체가 필요하다. 이것이 무가 유가 되려는 이유이다. 무가 유한체를 통해 영원하려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직관적인 깨달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예시를 들어볼 수는 있다. 파동은 유한적인 매개체인 물질이 없이는 우리에게 인지될 수 없으며 파동 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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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낼 수 없다. 무리수를 예를 들면서 무리수는 유한수와 기호로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다. 무리수 루트 2 를 제곱하면 2 가 된다. 그러나 루트 2 는 1.41414….로 유리수를 통해 표현해보지만 결코 완전한 루트 2 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호를 사용하여 루트 2 라고 표현하며 루트 2 는 유한수와 기호를 통해 표현되게 된다. 많은 예가 있겠지만 이런 식이다.

無는 영원히 無다. 무가 유한히 무라는 것이 말이 안 된다. 무가 유한하게만 무라면, 예를 들어 1 시간 동안만 무라면 1 시간 후에는 유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無인데 무의 상태를 끝마치면 유가 되기 때문이다. 흑백논리라고 반박할지 모르겠지만 무와 유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무는 필연적으로 유가 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무가 유한해도 유가 될 것이며 무가 무한해도 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는 무가 무한할 때 왜 유가 되는 것에 있다.

억지스럽다고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무가 영원히 무의 상태로 있었다면 이 글 또한 읽고 앉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우주가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무가 유가 되었다는 것은 현재의 상태를 보고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무가 유한하면 유가 되는 것이니 태초에 무라는 것은 아얘 없고 유만 있는 것이 아니냐는 반박이 나올법하다. 그러나 유는 유한하며 유한한 것은 없어지며 없어지면 무가 된다. 따라서 무는 있을 수 밖에 없으며 무가 유한해서 유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가 유한해서 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무가 무한하기 때문에 유가 있는 것이다.

무가 영원함을 통해 유가 되는 것에 대해 말할 차례이다. 무가 무한히 지속되면 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무가 무한히 지속되면 무다. 이러나 이것은 말의 앞뒤기 맞지 않는다. 제 1 명제에 어긋나는 일이다. 제 1 명제는 무는 유가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가 유한히 지속되어 유가 되었다는 말인가? 이것은 위에서 그럴 수 없다고 이미 말했다. 그럼 도대체 뭔가?

무가 무한히 지속되어 무가 지속됨과 동시에 유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동시적이다. 1 시간 후에 무가 유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가 있으며 유가 있는 것이다. 무는 유다. 거꾸로 유는 무다. 그러면 무가 유가 되는 것이냐 유가 무가 되는 것이냐? 둘다 맞지만 시작은 무다. 중요한 것이 무라는 말이다.

무는 무한하다고 했다. 무는 영원하다는 것이며 영원한 것은 영원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것은 일종의 의지이다. 따라서 무는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태초에 무가 있었다는 말은 태초에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무가 유가 되었다는 말은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가 유한한 무엇인가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영원성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나는 이렇게 표현한다. 영원의 의지가 유한체를 매개로 하여 발현되었다. 이는 동시적이다. 발현되는데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태초에 유한체는 이미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유한체를 물질이라고도 표현하겠다.) 따라서 물질은 태초에 이미 있었다. 사실 태초라는 말은 맞지가 않다. 그것은 인간이 시간을 개념화 했기 때문에 편의상 쓰는 말이다. 이에 대해 또다시 할말은 많다.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면 태초에(편의상) 영원의 의지와 물질이 동신에 공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원의 의지가 발현된 것이 물질이나 동시에 스스로 발현된 물질을 매개로 하여 발현되었다. 이 또한 무슨 말인가. 파동의 예를 다시 들어보자. 파동은 물(water)을 매개로 하여 물결이 된다. 파동을 영원의 의지라고 하고 물을 물질이라 가정하자. 따라서 파동은 스스로 물을 만들었으며 스스로 만든 물을 매개로 하여 물결로서 세계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물을 매개로 한다고 하여도 어떤 힘이 있어야 물결이 일렁이게 될 것이다. 예상한 바대로 그 힘 또한 파동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다. 힘(물리적)이라는 것은 물질로서만 가능한 것이며 그 물질은 파동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힘에는 물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방향성 즉 벡터가 필요하다. 그 벡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이 바로 의지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예를 들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이야기를 크게 건너 뛰어 보겠다. 이 세상에서 진정한 의지가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의지는 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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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이고 방향성이며 변화를 꽤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도대체 무엇인가? 그렇다. 바로 인간이다. 개고 살고자 함이 있고 어디로 가는 방향성이 있다. 그러나 변화를 꽤하는가? 개는 만년이 지나도 개다. 아무리 똑똑한 침팬치도 만년이 지나도 침팬치다. 인간도 만년이 지나도 인간 아닌가? 그러나 만년이 지난 침팬치는 만리장성을 쌓지 못하지만 인간은 만년이 지나면 지구도 없앨 수 있는 핵폭탄도 만들어 낸다. 그 인간이 그 인간이 아닌 것이다. 머리가 빨리 돌아가면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아하 그러면 결국 인간이 생겨나려고 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구나.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과 집단이 있었다. 여기에서 해석과 기호의 문제가 나온다.

이제 생명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황무지 지구만 만들어지면 됐지 생명은 또 왜 생겨난 것이냐는 말이다. 영원한 의지는 동시에 물질을 만들었고 그 물질을 매개로 발현되면서 영원하고자 한다는 말을 했다. 그 물질이라는 것은 작은 단위로는 수소, 탄소, 금속 등의 원소에서부터 시작해서 흙, 공기, 물과 같은 물질들과 지구, 달, 별과 같은 우주를 이루는 구성체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영원의 의지는 물질을 매개로 영원해야 하므로 물질 또한 영원해야 한다. 그러나 물질은 그 속성상 영원할 수 없으며 유한하다. 따라서 물질은 다른 방법으로 무한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생명이다. 돌덩어리가 무한히 없어지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왜냐면 돌덩어리는 없어질 수 밖에 없는 유한체인 것이다. 돌덩어리가 없어지려면 부수어져야 하고 부수어진다는 것은 변화된 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은 변화된다. 수소등의 원자는 없어지지 않는 것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수소도 변화한다는 것이 현대 물리학으로 증명되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핵폭탄이지 않는가?

만약 태초에 돌덩어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것이 변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는 것일까? 쉽지 않은 문제다. 사실 물질계 전체는 당연히 영원하다. 왜냐면 영원의 의지가 발현된 것이 물질이므로 영원의 의지가 영원할 때까지 물질계는 영원하다. 그러면 돌덩어리 하나만 만들어져서 변화 없이 영원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혹은 수소원자 하나만 만들어져서 그것이 영원하면 될 것 아니겠느냐? 이것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할 때 바로 현재의 나와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면 된다. 수소원자 하나만 만들어져서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있는 것이다. 엉터리라고? 인정한다. 따라서 좀더 그럴싸한 대답을 만들어본다.

자 생각해보자. 수소원자 하나가 영원하게 있을 것이면 무엇하러 무에서 유가 나왔나. 그냥 무의 상태로 영원하게 있으면 될 것 아닌가?

여담으로 현상학의 맹점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이렇게도 할 수 있다. 무가 무의 상태로 영원하지 않은 이유는 눈앞에 펼쳐진 것을 보면 안다. 왜냐면 무가 무의 상태로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내가 존재하고 현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답은 내가 왜 존재하나에 대한 철학적인 대답으로 부족하다. 이유는 몰라도 있으니까 있는거 아니냐는 식인 것이다. 도저히 모르겠으니까 한 발짝 물러서는 대답일 수도 있으며 그런 대답은 어딘지 모를 공허함을 또다시 우리에게 안겨준다.

무는 의지다. 무가 무로서 영원히 존속하려면 무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무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무의 상태가 아닌 유의 상태가 될 것이다. 따라서 무가 영원히 무라는 것은 영원히 무의 상태를 유지한다는 말이다. 영원의 반대는 무엇인가? 찰나인가? 찰나도 찰나의 시간이 있다. 영원의 반대를 굳이 상상한다면 그냥 시간이 아얘없는 것이며 그것은 무이다. 무에서는 시간 또한 없는 것이다. 따라서 무가 영원하다는 것은 사실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무는 유한하다. 따라서 유한한 무는 유가 된다. 무가 무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 것이 유다.

멀리 돌아왔다.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련다. 왜 무는 무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나? 이것을 우연성의 문제로 해결을 보려는 무리들도 있다. 우연히 무가 무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는 가능성의 씨앗이므로 필연적으로 유가 되었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겠다.

무가 0초 동안 무인 것과 1초 동안 무인 것과 100초 동안 무인 것과 100억년 동안 무인 것과 영원히 무인 것이 서로 차이가 있나? 당연히 없다. 무는 무일 뿐이다. 그렇다면 100억년과 1초와 0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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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것 아닌가? 0곱하기 100 도 0 이고 0곱하기 1억도 0 이고 0곱하기 무한대도 0 이다. 그러나 무한대 곱하기 무한대는 무한대다. 0 과 무한대는 맞닫는다. 무는 당연히 0초동안 무다. 무에는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가 0초동안 무라는 말은 무조차 없다는 말이다. 무가 없으면 무엇인가? 바로 유다. 따라서 무는 유다. 0 이 백억개가 있어도 1 이 되지 않지만 0 은 동시에 1 로서 존재하기도 한다. 다른 말로하면 0 은 1 이 있어야 존재한다. 0 은 2 가 있어야 존재한다. 무는 유가 있어야 존재한다. 무는 유고 유는 무다. 이것이 바로 제 1 명제이며 진리 중의 진리이다. 그리고 무가 무가 아니라 유라는 것이 이 세계의 가장 큰 경의이다. 뫼비우스의 띠를 보자 종의 한 면에 무라고 적고 다른 한 면에 유라고 적은 후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면 무에서 시작한 것이 유로 가고 유에서 시작한 것이 무로 간다. 이런 관계가 무와 유의 관계인 것이다.

이러한 무와 유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 의지이다. 영원하려고 하는 것도 의지고 유한하려고 하는 것도 의지이다. 무는 유다. 유는 물질이다. 무는 유가 되려 하며 동시에 유다. 무는 영원히 유가 되려 하며 동시에 영원히 유다. 무는 영원히 물질이 되려 하며 동시에 물질이다. 물질은 무이며 물질은 무가 되려 한다. 무는 무한히 무다. 그런데 무는 무한할 수가 없다. 무는 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가 유한이 무이면 유이기 때문이며 무한이 무든 유한이 무든 어쨌든 물질이 될 수 밖에 없다.

여기까지 오니 갑자기 모순에 빠진다. 개념정리를 다시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런 오류의 과정을 그냥 날 것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주저리주저리 적어내려 왔다. 기본적인 개념을 다시 정리하고 다시 시작한다.

4. 개념의 재정립

無는 空과 다르며 무한하다는 것은 영원하다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영원은 시간적으로 무한한 것이지만 시간적이지 않더라도 무한할 수 있다. 有는 物과 다르다. 無의 반대 개념을 有라고 한다면 空의 반대 개념을 物이라고 하자. 불교에서는 物이라고 안하고 色이라고 했으며 성리학에서는 氣라고 했다. 空에 대해서는 성리학에서는 理라고 했으며 플라톤은 이데아라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이들은 조금씩 다른 개념인데 나는 나만의 개념정리를 해보려 한다.

無는 空과 다르다. 무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물질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공간도 없고 시간도 없으며 신도 없는 것이다. 이런 無를 空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범했다. 생각하기 나름에서는 無를 空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설정하니 오류가 생겼다. 無는 없는 것이고 空은 비어있는 것이다. 비어있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다. 비어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가능성조차 없는 것이 無다. 그래서 나는 空을 ‘가능성’이 있는 상태로 정의하련다.

태초에 空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空은 有지 無가 아니다. 이것에 위에서 장황하게 써 내려간 내용의 핵심적 오류다. 그렇다면 無는 없었나? 우리는 보통 無에서 有가 창조되었다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러나 그것은 가능한가? 나는 감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련다. 無가 有가 되는 이유를 대기 위해 보통 신이라는 존재를 상정한다. 그러나 無는 신조차 없는 것이므로 無가 100억년 지속된다고 해도 有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왜 살아있으며 컴퓨터는 왜 있으며 자동차는 왜 있는 것인가? 無였던 시절이 있었다면 지금도 우리는 無인 상태일 것이므로 이 모든 것들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無는 없다. 단지 개념적인 관념이다. 시작은 無가 아니라 空이다.

空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만 있는 상태이다. 무엇인가가 될 수 있지만 아직 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空은 空으로서만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나의 대답은 ‘없다’이다. 억지 논증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가능성이 가능성으로서만 영원히 존재한다면 역시 우리는 여기에 앉아있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그럴듯한 이유를 들면 좋겠지만 그것은 나의 능력 밖인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맞는 말이다. 가능성이 영원히 무엇인가로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능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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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며 그것은 無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無는 없다.

그렇다면 空은 무한한가? 대답은 ‘그렇다’이다. 空이 유한하다면 空의 범위가 있다 말이며 空의 밖은 無일 것이다. 그러나 無는 없다. 그러므로 空은 유한할 수 없다. 억지스러운가? 그리고 空이 유한하다면 그 크기가 탁구공 만하든, 지구만하든 우주만하든 무슨 상관인가? 空의 밖은 無일텐데 無의 관점에서는 아무리 우주만한 空이라도 티끌과 다를 바 없을 것일텐데 말이다. 空이 유한하다는 것은 가능성이 유한하다는 말이며 가능성은 유한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다. 그것은 無다. 따라서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영원한가? 무한한 것은 영원한가? 무한한 것이 영원하지 않고 없어진다면 그것은 無다. 따라서 무한한 것은 영원하다. 정리하면 태초에 무한하고 영원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것을 空이라고 이름 붙여 보자는 것이다. 空이 아니라 종이라고 해도 똥이라고 해도 상관없겠으나 나는 空이라고 부르겠다.

다음으로 넘어간다. 우리가 지금 컴퓨터를 하고 있다는 현상을 봤을 때 空이 空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空에서 물질이 만들어지고 사람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空이 얼마나 오래 있으면 물질이 만들어질까? 그리고 空이 가만히 영원히 있다고 해도 물질은 만들어지지 않을텐데 만들어진 것을 보면 그것을 가능하게 한 신(god)이 있는 것 아닐까? 뭐 이런 의문들을 가져 볼만하다. 그러나 空은 가능성이다. 가능성은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 사람도 만들어질 수 있고 사람보다 더 한 것이 만들어져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그리고 가능성은 가능성의 상태로만 영원할 수 없으므로 그 무언가가 되었을 것인데 그 무언가가 바로 이 세상 모든 것들이다.

그런데 가능성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무엇인가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1초? 1 년? 1억년? 1000억년? 영원의 관점에서 봤을 때 1초와 1000억년이 차이가 있을까? 없다. 1초와 0.00001초와 차이가 있을까? 없다. 오히려 동시에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들어졌다는 말도 틀린 말이다. 그냥 동시에 物로 존재하는 것이며 色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다.

空은 物로서 존재한다. 空은 空으로서 단 1초도 존재할 수 없으며 동시에 物로서 존재한다. 예를 들면 파동은 파동으로 존재할 수 없고 물질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가능성은 가능성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 가능성이 가능성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이 단 1초라도 있었다면 이 세상은 있을 수가 없다. 가능성은 동시에 무엇인가로 존재하는 것이다. 신을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이 어딘가 있다면 空에는 가능성과 신이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무언가 되지 않은 상태가 空인데 신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올 수는 없다. 오히려 가능성과 신을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하겠다. 누군가가 空에서 物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야 편하겠지만 그 누군가 또한 가능성이며 가능성에서 物이 만들어진 것이고 그것도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동시에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空은 수소원자로만 존재하면 됐지 왜 산소원자는 있으며 흙만 있으면 됐지 왜 물은 있으며 별만 있으면 됐지 왜 지구는 있는 것인가? 그리고 무생물만 있으면 됐지 아메바는 왜 있는 것이며 아메바만 있으면 됐지 개나 원숭이는 왜 있으며 최종적으로 인간은 도대체 왜 있는 것인가?

어쨌든 현재의 현상을 가지고 역으로 空으로서의 가능성의 성질에 대해 유추해 보자. 가능성은 계속 존재를 지속하려는 성질이 있고 무엇인가가 되려는 성질이 있다. 가능성은 무한한데 무한한 것이 무한을 지속하려 하지 않으면 유한한 것일진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가능성은 유한할 수 없으므로 가능성은 무한하며 그것은 무한을 지속하려는 성질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가능성을 다른 말로 의지라고 표현한다. 空은 동시에 物이므로 物도 무한하려 한다. 공은 무한하려는 의지가 있다. 동시에 物도 무한하려는 의지가 있다.

5. 物은 어떻게 해서 무한할 수 있나?

空이 수소원자 하나로만 무한히 존재하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空이 고정된 하나의 물질로만 무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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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한다면 그것은 공이 공으로 존재하는 것과 다를 바 아니다. 그것은 가능성조차 아니다. 그것은 無다. 그러나 無는 없다. 수소도 있어야 하고 산소도 있어야 하고 철도 있어야 한다. 또한 유한한 物이 무한하기 위해서는 다른 物로 변하던지 재생하던지 생산해야 한다. 따라서 이 세계에는 생명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과학적으로는 분명 생명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의 개념을 없애버리면 생명은 동시에 그냥 있는 것이다. 시간의 개념을 없애면 空은 동시에 생명으로 존재하며 하나의 생명체가 없어지더라도 또 다른 생명체를 낳으면서 무한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메바만 있으면 됐지 원숭이는 왜 있나? 또 인간은 왜 있나? 굳이 인간이 있을 필요가 있는가? 우리는 진화론적인 편견에 너무 사로잡혀 있어서 진리를 보는데 많은 문제를 겪는다. 진화론은 시간적인 개념 속에서 생명의 변화 과정을 탐구한 학문이지만 시간의 개념에서 자유로와지면 아메바와 동시에 인간이 존재함을 직관할 수 있다. 인간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다. 空은 동시에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空은 무한하려 하므로 인간도 무한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죽으므로 자식을 낳는 방식으로 무한하려 한다.

그렇더라도 원숭이면 됐지 인간이 있어야 할 이유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되지 못한다.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그러나 인간과 원숭이의 차이점을 생각보면 그 이유를 직관할 수 있다. 원숭이는 만년이 지나도 자기가 사용할 젓가락 하나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냥 주위에 있는 것을 이용하는 정도이다. 그러나 인간은 끊임없이 주위의 것들을 이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인간만이 진정한 의지가 있다. 인간만이 자의식이 있으며 자기의 존재를 인식한다. 자기의 존재를 인식해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인간은 세계를 변화시킨다. 인간은 없고 다른 모든 것이 다 있는 것은 수소 원자 하나만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인간은 무한하려는 의지의 발현 그 자체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인간은 계속 존재하려는 의지 그 자체이다. 그 의지는 그 무엇이라도 만들었고 그 무엇으로도 존재하지만 결국 그 의지의 핵심은 인간이다. 空은 무한한데 무한하려는 의지가 없이는 무한할 수 없다. 의지가 있기 때문에 무한한 것이며 그것의 발현이 인간이며 동시에 그것이 인간이다. 무한한 가능성에서 돌도 나왔고 아메바도 나왔고 원숭이도 나왔다. 그러나 그 의지에서 인간이 발현된 것이며 그냥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만약 지구가 멸망해서 인류가 없어지면 말이 안되는 것 아닌가? 멸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에 멸망하는 것은 시간적인 개념이다. 현재 우리가 존재하고 있으므로 만년 후에 멸망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현재 우리의 존재가 우주의 시작이자 끝이다. 무한하고 있는 무엇인가의 가장 선두이며 그 선두에 의지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이 모든 우주를 창조한 가장 큰 힘의 원천인 의지가 인간에 깃들여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일 당장 지구상에 있는 핵폭탄을 다 터트려서 다 같이 멸망해도 상관 없다는 말인가? 나중에 지구가 멸망해도 현재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과 다 같이 죽어버리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인간은 무한하려 하며 무한하려는 의지 그 자체이므로 어느날 갑자기 모든 인류가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광적인 소수가 인류를 멸망시킬 작정을 하고 그것이 성공하는 일이 있을 확률도 있기는 하겠다. 그러나 인류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원하며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국제적인 대규모 연합까지 조직하여 서로를 감시한다.

6. 유한하려는 의지

이제 유한하려는 의지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이다. 의지는 무한하더라도 물체는 유한하다. 물질은 유한해야 한다. 물질이 무한하면 그것은 결국 無와 다를 바 없으며 그런 일은 없다. 유한하기 위해서는 무한하려는 의지가 무한을 가능케 하는 것처럼 유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며 유한이라는 것은 유한하려는 의지다. 무한하려는 의지가 유한체로 존재하지만 유한체는 유한하려 한다. 유한의 의지는 무한의 의지만큼 강력한 것이다. 유한해야 무한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죽는 이유, 전쟁이 있는 이유, 증오가 있고 악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무한의 의지를 우리는 선이라 부르고 유한의 의지를 우리는 악이라 부른다. 선 뿐만 아니라 악도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선과 악은 동시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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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악이 정당화 될 수 있나? 오호라 악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니까 나쁜짓만 하면서 살아야지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유한하기 위해 무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의 의지가 유한체를 통해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본능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무한하고 영원성의 가치를 선으로 여기고 이를 좋게 여기며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유한하려는 가치를 악으로 여긴다. 범죄가 있으면 경찰이 있어 범죄를 막으려 한다. 그러나 범죄가 없는 나라는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계속 범죄를 없애려 노력한다. 이 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악을 정당화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들, 그 사람은 세상의 질타를 면치 못할 것이며 추방당할 것이다. 범죄자는 교도소로 추방당한다. 그래야 인류가 존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말처럼 이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랑은 인간이 무한히 번식하기 위해 필수적인 감정이며 인류가 존속하는 한 사랑의 가치는 결코 식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인류가 존속하는 한 악의 유혹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언제나 그것을 극복하려 할 것이다. 인류는 아무리 좌절하고 실패하더라도 계속 일어설 것이다. 끊임없이 의학을 발전시켜 질병을 정복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계속 노력할 것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전쟁하려 할 것이다. 전쟁은 무한하려는 의지와 유한하려는 의지가 복합이다. 그리고 전쟁은 언제나 비판 받을 것이다. 그리고 다같이 멸망하지 않기 위해 온갖 방법과 사회 체계와 법체계를 동원하고 머리를 굴리고 싸매어 노력할 것이지만 때때로 좌절할 것이다. 그러나 선은 언제나 승리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자살하려는 사람도 있다. 유한하고자 하는 의지에 잠식당할 때 그렇다. 그것은 매우 강력한 의지이므로 그런 일은 매우 빈번히 일어난다. 오죽하면 자살이 죽음은 원인 중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갈까? 우리는 누구나 때때로 우울하고 인생을 허무하게 느낀다. 그러나 대부분 다시 일어선다.

10 년전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때가 왔다. 단 하루만 살고 죽은 신생아의 인생과 100 년을 살고 죽은 사람의 인생에 어느 것이 더 많은 의미가 있을까?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단 하루를 살아도 인간으로 살았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것이다. 하루를 살았기 때문에 이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루의 삶을 부정하면 인류 모두의 삶의 의미가 부정되는 것이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의식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자의식이 있어야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무한하려는 의지의 최상위 발현은 자의식이다. 우리는 자의식이 있으며 세상에 반응하면서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금 나아간다. 자의식이 없는 인간이 없었다면 우주는 고정되고 퇴보하고 없어질 것이다. 우리는 그 무한의 의지가 창조해낸 이 세상과 우주에 경외심을 느낀다. 이 세상이 無가 아니라 有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 경의로운 일이며 무한의 의지가 이 모든 것을 통해 존재한다는 것 또한 경의 그 자체이다.

한 가지 질문을 더 하겠다. 그러면 자의식을 가지고 살면 되었지 왜 인간은 유희를 즐기고 예술 활동을 하는가? 어쨌든 그런 일을 하면 우리는 행복하고 즐거워지는데, 행복해야 하루하루를 살아나갈 것 아닌가? 삶에 고통밖에 없다면 삶을 지속하고 싶겠는가? 영원하고자 함은 행복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유한을 자각하기에 죽기전에 무엇인가를 남기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책을 쓰고 예술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사랑을 한다. 우리가 그토록 서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는 확신때문이다.

7. 존재의 경의

결론적으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존재하는 것은 경의 그 자체이며, 나로 인해 우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보다 더한 삶의 의미가 있을까 싶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인생은 가치롭다. 그리고 우주에 존재하는 이 모든 것들은 경이로우며 존재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것이 의미 있듯이 너가 존재하는 것도 의미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증오한다. 유한의 의지는 강력하다. 그렇지만 그것에 괴로워하고 유한하려는 의지를 뛰어넘으려 한다. 아무리 세상이 흉흉할수록 그것에 반해 서로를 돕우려는 움직임은 더욱 많아진다. 균형을 유지하면서 우리는 나아간다. 영원을 희구하면서. 그러나 우리는 죽는다. 그러나 지금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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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신에는 무한하려는 본능과 유한하려는 본능이 동시에 존재하며, 무한의 의지가 발현으로서의 정신이 존재한다. 인간은 유한체에 속하므로 그 무한의 의지의 정체를 온전히 알 수는 없지만 누구나 알고 있다. 직관하면 알 수 있다. 무한의 의지의 정체와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는 수많은 해석이 존재하고 각자의 기호에 따라 그 해석을 선택한다. 신에게 의지하는 것은 그러한 선택 중 하나이다. 이 글도 존재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 그 해석은 순전히 내가 나의 머리로 해내야 하는 작업이다. 아무도 나 대신 존재의 의미에 대해 깨닫게 해줄 수 없다. 나는 이러한 해석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깨달았다. 그러나 나의 해석과 선택이 중요한 만큼 남의 선택과 해석도 중요하다. 내 말만 옳다고 우기면 싸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앞으로의 인류에서 더욱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 이해와 존중이라고 하겠다. 이슬람과 기독교와 불교와 서양과 동양과 이 나라와 저 나라가 서로 자기 말만 맞다고 우기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다. 이제 인류는 어른이 될 때가 왔다. 영원에 대한 믿음을 통해 유한의 의지에 의한 행동들을 콘트롤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나가는 자세는 이미 잘 해오고 있지만 앞으로도 더욱 발전시켜 나야가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9.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 자 여기까지는 왔으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글은 아직 초보적인 사유 단계이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그 문제에 대해 간략이 나열해 본다. 1) 이 글에서 無는 없다고 했는데 이 세상과 다른 차원의 또 다른 어떤 세계가 존재하여 그 곳에 신이라는 존재가 있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면 어떨까? 이 글에서는 무에는 신도 없으므로 무는 있을 수 없다고 했으나 다른 차원의 어떤 세계에 신이 있다면? 2) 空이 동시에 물질이라고 했는데 물질이 어떻게 물체를 구성하였는데가 대한 질문이다. 공은 동시에 수소나 아니면 그 보다 더 작은 원자, 중성자, 쿼크 등으로 존재한다고 치면 그것이 어떻게 수소 분자를 만들고 산소 분자를 만들고 물을 만들고 흙을 만들고 지구를 만들고 인간을 만들었냐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에 대한 대답을 나는 공의 무한히 존재하려는 의지가 있으며 그 무엇도 만들어낼 수 있으며 그 의지의 핵심이 인간이므로 인간을 구성하는 그 무엇도 만들어질 수 있다는 식으로 논리를 전재했다. 자세한 과정은 과학이 발혀내야 할 일이고 이미 엄청나게 방대한 성과를 이루어 냈지만, 그래도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신이 존재를 상정해야 쉽게 해결될 것 같은 충동에 휩싸인다. 그러나 나는 아직 젊으므로 아직은 신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 사유를 끝까지 몰고 가 볼 작정이다.

10. 결론 그러나 무엇이 진실이던지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인간이 유한할 수 밖에 없는 육신과 유한하려 하는 본능과 무한하려 하는 본능과 유한하려 하는 정신과 무한하려 하는 정신이 뒤섞이여 하루하루를 투쟁과 화합속에 살아나간다고 하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의 힘든 하루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유한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무한하려는 의지라는 점이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존재하려는 의지다. 존재가 없어지면 無이며 모든 존재는 無가 되지 않게 미치듯이 노력하다. 無가 될 것 같은 기분은 잊혀질 것 같은 기분이며, 이런 기분에 휩싸이면 버려짐의 감정, 무가치함, 우울함, 피곤함, 불안함, 무기력함, 동기 박탈의 감성에 휩싸인다. 대부분은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 발버동치고 많은 경우 성공하기도 하지만, 이런 상태에 잠식 당하여 자살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어찌됐건 이런 모든 감정의 이유는 無가 되지 않으려는 것이며 존재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 산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변의 진리는 우리의 현존재에 대한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물론 그러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전적으로 각자의 몫이지만, 이런 글이 도움을 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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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공간과 시간을 인정하기2008-12-12 1. 존재와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인정 왜 라는 질문을 품고 한참을 헤매어 돌아다니다 보면 결국 존재를 인정하고공간을 인정하고시간을 인정하고 이 모든 것들이 만들어진 또는 존재하고 있는 이유를 깨닫고 나면 다시 그 시간과 공간속에 존재하고 있는 우리 존재자들로 시선이 돌아와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느끼는 우리네 인간들에게 약 하나라도 더 건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하고 있는 우리와그 무엇보다 가치있는 그 존재 자체에 대한 사랑바로 그것이 최종 결론일 수 밖에 없다. 2. 콩트에 대하여 실증주의 철학자 콩트(Auguste Comte)는 식의 모든 부문은 세가지 단계를 차례로 거치는데, 신학적 내지 허국적 단계에서 형이상학적 내지 추상적 단계로 넘어가고 마지막에는 과학적 내지 실증적 단계에 이른다고 했다. 한 철학자의 개인적 사상이라고 하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뭐 굳이 이런 예를 들지 않더라도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실증 아니겠나. 어쨌든 현상에 대한 관심으로 가닥을 잡아가게 될 듯 싶다. 다시 한번 콩트가 한 말을 인용해본다. '유년기에는 신학자였다가 청년기에는 형이상학자가 되고 성년기에는 물리학자로 변하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 콩트는 세상의 모든 사태를 무기체와 유기체로 구분하면서 학문을 구분짓기를 기체의 이론은 우주의 보편현상을 고찰하는 천문학과, 지구상의 비유기적 사태를 고찰하는 물리학과 화학으로 나누었고 기체의 이론은 개체가 중숨이 되는 개별적 생명체를 다루는 생물학과 종속 전체의 사회적 생활에서 나타나는 사태를 다루는 사회학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이에 속하지 않는 순수한 학문으로 수학을 들었다. 이러한 논리 전개의 귀결상 사회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는데,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학문인 사회학이 바로 이렇게 해서 탄생되었다. 사실 뉴스와 신문에서 다루는 거의 대부분의 분야가 사회학에 속하는 분야 아니겠나. 이렇듯, 현대 사회는 형이상학적인 사유보다는 실증적인 사회학을 좀더 중요시 여기고 있으며, 실제로 그 중요성은 날로 더 늘어가겠지만, 그래도 인간의 정신 어느 한 부분에서는 신학과 형이상학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다는 점을 무시하면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아무리 뻔하디 뻔한 사회 속에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이라지만, 그 가슴 한구석의 메꿔지지 않을 공허감을 따뜻하게 매워 줄 그 무언가가 더욱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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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인간들은 오랜 기간의 교육을 통해 실증적 사회학과 과학의 세계로 바로 던져졌지만, 신학과 형이상학의 문제에 대해서는 교회나 각자의 독서에 맡겨질 수 밖에 없거나 아무짝에 쓸모 없는 것이라도 도외시 당하게 된다. 그러나 나같이 형이상학적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의학에 종사하는 인간도 결국 이 동네를 어슬렁 거릴 수 밖에 없지 않는 노릇이다. 하던 일만 잘해가지고도 부족한 것이 인간이다. 3. 쇼펜하우어에 대하여 물질이 정신의 산물인가(관념론), 정신이 물질의 산물인가(유물론)에 대한 무수한 논쟁이 있어왔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정신은 물질을 통해 물질은 정신을 통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현상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그의 주 저서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집필한 후 이 책에는 모든 시대에서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사상을 닮고 있다고 말했다. 쇼펜하우어는 천재다. 천재적 철학자가 과연 무엇을 깨달은 후에 그런 말을 했을까? 바로 '신체란 공간과 시간에서 객관화된 의지'라는 핵심 사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는 나의 주장인 '존재의 의지가 이 모든 것을 있게 했다'는 사상과 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어찌되었건 나는 체계적으로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므로 이런 생각을 그럴듯하게 체계화 시키는데 한계가 있다. 나는 또한 나의 본연의 직업 활동(매우 중요한)도 지속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나의 인생을 이끌어갈 기본적인 나침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무의식적인 생의의지'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만약 내가 스무살에 철학과에 들어가서 아무런 의구심 없이 모든 철학서를 탐독해서 그것을 지식화 했다면 깨달음의 길에는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백지장 상태에서 나의 사유 자체로만 의심을 끝까지 밀고 같을 때 희미했던 불빛이 환한 태양으로 눈앞에 다가 오게 된 것이다. 그런 후의 독서는 어떤 선인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확인 하고 나의 생각에 확신을 더해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사유, 의식, 이성이 인간의 본질이 아니며 본질을 싸고 있는 표피에 지나지 않으며 본질은 바로 '의지'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우주의 창조 원리인 자유로운 세계의지에 종속된 하위 단계로서 개체 의지를 두었으며, 따라서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결론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허무주의 염세주의로 빠져들어간다. 거의 다 왔는데, 좌절하고 말았다. 바로 그 세계의지의 발현이 인간의 의지이며 따라서 인간은 자유롭고 열린 가능성이며 우주의 가능성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모른채 했을까? 인도 철학에서는 브라만이 세계정신, 즉 세계의지요 아트만이 인간영혼, 즉 인간의지이며 마야는 바로 이 표상의 세계이다. 2500 년전 인도의 현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말로 풀어내려니 별의 별 사상들이 다 등장하는 것이요, 그 사상이 다시 세계를 규정하여 서로를 죽이기도 하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생의 의지의 부정을 통해 구원을 꾀하고자 한다. 이는 불교나 여타의 인도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생의 의지를 부정해서 열반에 이른들 달라지는게 무엇인가? 세계의 창조 원리이지 세계 그 자체인 의지 그 자체의 본질을 철저하고 그리고 의식적으로 체득화 하여 그 의지의 무한한 힘을 이용하여 자신을 자유롭게 만드는 길이 더 현명하고 현대적인 방법이 아닐까? 의지가 이 모든 것의 시작이요 끝이며 내가 의지 그 자체인 이상, 그 어떤 허무도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의지조차 없는 것은 無일 것인데 無라는 것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유한적 물질인 뇌를 통해 그 의지가 발현되고 있으며 우리의 이성으로는 그 온전한 모습을 파악할 수 없으므로 허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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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의 늪에 빠지고 주저 앉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성이 전부인 양 착각했을 때의 이야기다. 이성이 유한체에 속한 뇌의 신경생리학적 작용의 산물이라는 점을 깨닫고 의지가 우리 전체를 휘감고 있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깨닫는다면 눈앞이 밝아지는 것을 분명히 느낄 것이다. 그러면 선불교에서 말하는 360 도를 돌아 다시 본디로 돌아왔으되 예전의 내가 아닌 나가 되있는 것이며, 눈 앞의 모든 것이 마치 매트릭스에 나오는 기호처럼 분명하게 파악될 것이며,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며, 더욱 더 나와 같은 존재들과 자연과 생명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전과는 다른 마음 가짐으로 환자들을 대하게 되는 것이다. 4. 존재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 관념론이니 유물론이니, 신이 있니 없니, 이데아가 실체니 물질이 실체니 이런 고민에 앞서 너무나 당연한 것은 내가 있고 너도 있고 개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돌도 있고 산고 있고 물도 있고 지구도 있고 우주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보고 주위를 보고 아픈 사람을 보고 돈 많이 버는 사람을 보고 정치하는 사람을 보고 노래하는 사람을 보고 그림그리는 사람을 보고 그저 노는 사람을 보고 살인 하는 사람을 보고 간음하는 사람을 보고 도둑질 하는 사람을 보고 아양떠는 개를 보고 훔쳐 먹는 고양이를 보고 똥 싸대는 비둘기를 보고 퍼져가는 암세포를 보고 갈라지는 땅덩어리를 보고 쏟아지는 소나기를 보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누름 넘어 별빛을 보고 또 다시 아프기 싫어하는 나를 보고 교보문고에 널리 셀 수 없는 많이 책들을 보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인터넷을 보고 사건 사고를 보고 길거리의 사람들을 보고 사랑에 상처받는 사람들을 보고 사랑에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고 명예를 쫓는 사람들을 보고 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을 보고 어쨌든 이 모든 것을 보고 나니 단 한가지 공통된 점이 있더라. 존재하려 한다는 점이다. 존재를 지속 하려는 점이다. 계속 존재하려 하고 어떤 면에서는 영원하려 하고 어떤 면에서는 무한하려 하는데 또 어떤 면에서는 존재를 그치려고 하고 죽어 없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한다. 존재의 의지가 동시에 그것을 통해 발현된 물질을 통해 유한체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이 세계이며, 고로 세계는 존재를 지속하려 하지만 유한체에 묶여 있어 유한체의 속성을 통해 존재를 그치려 한다는 것이다. 무한하려 하고 동시에 유한하려 하는 그것이 이 세계이다. 윤회를 하느니 천국이 있느니 지옥이 있느니 다시 태어난다느니 하는 말들은 의견이다. 어떻게 될지 죽어보지 않고 어찌 알겠나. 어찌 되었건 나는 존재하려고 발악을 하는데 존재하려고 발악한다는 것은 없어지지 않기위해 발악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갓 태어난 아이도 자기를 알리려고 죽어라 울어대고, 세살난 꼬마도 엄마가 조금만 안쳐다 보면 잊혀질까 두려워 떼를 써대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어른이 되면 달라질 것 있나? 잊혀지지 않기 위한 발악, 존재 하기 위한 발악,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를 그치려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휩싸임. 그러면서도 벗어나려 함. 바로 그것이 이 세계다. 이를 혹자는 변증법으로 파악하기도 했고 심지어 변증법적 관념론에 대해 변증법적 유물론을 만들어서 20 세기 지구를 이념의 전쟁토로 만든 장본인도 있더랬다. 구원은 의지를 끊고 피안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의지에 매달리는 것이다. 의지가 나라는 것을 깨달으면 그 의지를 조정할 수 있고 그 의지의 무한한 힘과 하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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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행동해도 거칠것이 없는 것이 불혹이라고 했다. 5. 니체에 대해서 니체는 존재의 의지라고 말하지 않고 힘에의 의지라고 했다. 세계의 본질은 힘에의 의지이며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존재의 의지를 힘에의 의지라고 바꾼다면 나는 니체의 사랑에 동조한다. 그러나 힘이란 것은 존재의 의지의 속성 또는 존재의 의지가 발현되어 창조된 현상의 근원적 동력을 표현한 말이므로 힘에의 의지보다는 존재의 의지가 더욱 그럴싸 해 보인다.

세계 사상의 흐름2008-12-16 인도 고대 베다 시대 - 기원전 1500 년경 ~ 1000 년경인도 공물 제의 밀교시대 - 기원전 1000 년경 ~ 700 년경인도 우파니샤드 시대 - 기원전 750 년경 ~ 500 년경 그리스 탈레스 [Thales, BC 624? ~ BC 546?] 인도 석가 [釋迦, 석가모니, BC 563? ~ BC 483?] 중국 공자 [孔子, BC 551 ~ BC 479] 그리스 소크라테스 [Socrates, BC 469 ~ BC 399] 그리스 플라톤 [Plato, BC 428/427 ~ BC 348/347]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 BC 384 ~ BC 322] 그리스 맹자 [孟子, BC 372? ~ BC 289?] 한국 원효 [AD 617 ~ 686]한국 지눌 [AD 1158 ~ AD 1210]한국 이황 [AD 1501 ~ AD 1570]한국 이이 [AD 1536 ~ 1584]독일 칸트 [AD 1724 ~ AD 1804]독일 아인슈타인 [AD 1879 ~ 1955]독일 하이데거 [AD 1889 ~ AD 1976] 뭐 그렇다....형이상학이 과학에 완전히 그 자리를 내준 요즘그래 뇌의 신경생리화학작용이 정신을 만들어냈다고 치자. 나도 의사지만 내 차가 물리기계화학작용으로 굴러간다고 말하는 것과 뭔 차이란 말이냐

‘세계 철학사 -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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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6

이 책은 1950 년대에 처음 출판 된 책인데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철학사 책 중 하나이다. 혹자는 철학 전공자들도 몰래 몰래 읽을 정도로 세계 철학사의 흐름에 대해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정리가 잘 된 책이라고 한다. 왜냐면 이 책은 철학 전공자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정리가 되있기 때문이란다.이책은 여느 서양인이 쓴 철학사 책과는 달리 초반 170페이지를 인도, 중국의 동양 철학에 할애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1000 여 페이지에 걸쳐 서양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심심치 않게 동양 철학적 관점을 수시로 인용하고 비교하고 있다. 물론 서양 철학사만큼 동양 철학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 것은 아니지만 세계 철학의 흐름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선택일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버트란드 러셀의 서양 철학사를 읽었었는데, 이 책을 먼저 읽고 러셀의 책을 읽었다면 어렵고 다소 심오하 러셀의 서양 철학사가 더 잘 이해 되지 않았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후반부에 20 세기 현대 철학에 대하여 많은 할애를 하고 있으며 특히 과학과 철학의 접목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저자의 통찰력을 담고 있다. 인내심을 가지고 이 두꺼운 책을 다 읽어낸다면 단순 철학사가 아니라 하나의 철학 체계에 대한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그랬으니까.

‘자연 존재론 - 소광희’를 읽고2008-12-18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인 소광희 교수가 쓴 책이다. 저자는 과학을 통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21 세기에 철학의 역할과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존재로서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존재론이라고 할 때 이것들을 자연존재론, 사회 역사 존재론, 자아 존재론이라 부를 수 있는데, 이중 자연 존재론에 대해 이야기 했다고 했다. 그리스 시대에는 철학자가 과학자였다. 그러다가 16, 17 세기를 지나면서 과학과 철학은 점차 분리되어 현재는 이 둘이 도무지 합쳐질래야 합쳐질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정도까지 되었다. 그러나 과학도 결국 이세계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단순히 과학을 위한 과학은 기술을 위한 과학이던지 아니면 호기심의 충족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과학은 그런 수준을 넘어서 인류에게 많은 편의를 가져오고 세계에 대한 미신적 요소를 거의 다 걷어 내어 버린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럴 때 다시금 과학을 하는 이유와 과학의 방법론과 방향과 반성을 철학을 통해 길잡이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해서 이 세상이 기계론적으로 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 듯 보여도, 아직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과학적 사유와 기술로는 알아낼 수 없고 직관을 통한 깨달음으로만이 알 수 없는 진리의 영역이 있다. 철학의 의무라 한다면 기계론적 세계관을 벗어나 인간 존재의 의의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많은 철학자들이 그랬듯이 (저자가 오랫동안 씨름했다는 화이트 헤드까지도) 뭔가는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언어로 풀어내려니 벽에 부딪히는 부분이 있다. 내 개인적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이 세계는 존재의 의지가 물질과 생명과 인간으로 발현된 것이며, 이러한 유한자 및 존재자는 無가 되지 않기 위해 발악을 하고 존재를 지속하려고 하면서도(영원을 갈구) 유한자의 특성상 유한하고자 하는 의지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이 세계라 생각한다. 나는 태초에 존재의 의지가 있었으며 이는 이미 무한하고 동시에 물질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無라는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無였던 시절이 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無에는 신조차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재의 의지가 동시에 물질로서 존재하는 것과 의지는 무한하고 물질은 유한하며 존재의 의지가 물질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생명과 인간이 태어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뜬구름 잡는 잠언적인 말로만 풀어낼 것이 아니라(마치 하이데거처럼) 현대 물리학의 성과로서 해석해 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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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의 발전을 가져왔다면 이제는 그것을 해석해 내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하이데거 왈, 인간은 죽음 앞에서 절박한 존재이며, 죽기전에 해결을 보지 않으면 안될 존재자라고 했는데, 만약 500 년 후에 물리적으로 모든게 밝혀진다고 한 들 나는 그 때 죽어 없는 상태인데, 나의 깨달음과는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철학은 그 시대의 깨달음을 그 시대의 성과로서 풀어내야 한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소광희 교수님의 이 자연 존재론은 과학사와 철학사를 통사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저자의 날카로운 철학자적 시작으로 독자를 이해와 깨달음으로 길로 인도하고 있다. 이 한권의 독서가 내 인생에 또 어떤 변화를 가져다 줄지는 모르겠지만, 사변적인 사고들을 실증적인 것들과 접목하여 헤겔이 말한 것 같은 변증법적 발전을 이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처럼 의학에 종사하는 사람이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형이상학과 자연과학 - 송병옥 지음’을 읽고2008-12-19 ---------발췌 -----------근대과학에서는 물질과 정신을 이분법화 하여 생각하였으며 기계론적으로 세계를 파악하였다. 기계론적, 수학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확신에 찾었지만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적 발전으로 그 시도에 많은 수정이 가해지게 되었다. 근대 과학은 물질과 정신, 입자와 파동, 점과 선, 존재와 무같은 것들을 확실하게 분리하여 생각하였으나 현대과학이 찾아낸 자연의 비밀은 이런 분리에 대해서 새로운 시작을 가지게 했다. 다시 말해 이런 분리가 없으면 행동도 사유도 할 수 없지만, 역설적이게도 현대과학은 이런 분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근대 과학에서는 분리를 전재로 했지만 이것은 결국 통일성이 없다는 것이며 통일성이 전제되지 않은 생각과 자연이란 살아 있는 것이 아니고 죽은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 바이츠제커의 색다른 양자론이 나오게 되었다. 그는 이 양자역학을 추상양자론이라고 했다. 바이츠제커에 의하면 양자역학은 경험 가능성의 조건을 구성하기 때문에 경험적 대상을 수학적 방법으로 기술할 수 있는 가장 포괄적인 이론이며 양자역학은 어떤 학문 분야에도 예외 없이 적용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탐구방법론이다. 양자역학은 생물학 분야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식현상에까지 추상양자론이 적용될 수 있따고 본다. 만일 인식의 조건에 관한 칸트의 이론을 추상양자론의 그것과 관련시켜 고찰한다면, 이제까지 제기된 많은 근본적인 물음들의 정체가 밝혀질 것이다.---------------------------- 나의 이러한 독서와 사유 작업은 나의 깨달음을 이미 있던 이론들에 적목시켜 확인하는 작업이며 살을 붙이는 작업이고 스스로 확식하게끔 하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런 깨달음과 목적을 가진 독서는 무미건조한 1000권의 독서보다 효과적이고 파워가 막강하다. 존재의 의지가 동시에 물질을 통해 발현된 것이 이 세계요 생명이요 인간이다. 존재의 의지는 계속 존재하려하며 그 존재하려는 의지가 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존재의 의지는 동시에 물질과 생명으로 존재한다.존재의 의지가 발현된 물질과 생명체는 유한체이므로 유한하려는 속성이 있고 이또한 일종의 의지다.유한하고자 하는 의지는 영원히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만큼 강력하다. 유한해야 무한히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무한하고자 함과 유한하고자 함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이 세계이며 그 것의 가장 핵심이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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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무한하려 하며 이는 거꾸로 말하면 無가 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無가 되지 않으려 하면서도 無가 되려고 하는 것이 존재의 근본 속성이다. 그러나 無는 없다. 신마저 없는 것, 가능성마저 없는 것이 無다. 태초는 無가 아니라 有였다. 가능성이라도 있는 것은 有다. 無가 아니라 有라는 것은 경이 그 자체이다. 여기까지는 직관이다. 이제부터는 현재까지의 인류의 철학적 과학적 성과를 동원하여 이렇게 되는 과정을 짜마추어야 한다. 이러한 깨달음이 현대 철학과 현대 물리학의 성과를 알아가면서 점점 확실해져 가고 있다.직관적 연역과실증적 귀납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깨달음이 비로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나는 존재하려고 하고 무가 되지 않으려 하며, 그것도 발악을 하며, 그러기 위해 영향을 미치려 하고 무언가를 남기려고 한다. 그것은 절대 부질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위에서 서술한 존재의 근본 속성이기 때문이다.결국 나는 저술을 남기려고 한다. 지금은 정리와 자료 수집 단계이며, 의사로서의 경험과 사유를 통한 관념을 결합하여 15 년쯤 후 첫 저작을 낼 작정이다. 동서양의 경험을 두루 합치기 위해 미국에서 수년간 경험할 것이다. 언제나 의사로서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의사가 아닌 인간으로 사유할 것이다. 경험과 관념이 합쳐져야 살아있는 깨달음이 된다. 책상머리에서만의 사유가 아니라 삶과 죽음을 직접 경험하는 사람으로서의 사유 말이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15 년이란 세월은 깨달음을 더 크게 하기 위한 시간이라기 보다 내 이름 석자 앞에 달릴 타이틀을 늘리는 시간이요(그래야 사람들이 보고 찾는다) 정리하고 분량을 만들고 말이 되게 하는 작업의 시간인 것이다. 칸트도 50 세가 넘어서야 <순수이성비판>을 비롯한 주요 저작을 세상에 내기 시작했다. 인간은 시간이 필요하다. 우울증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정신분을 통해 어릴적 부모 관계나 성격형성이나 무의식의 세계를 아무리 분석해봤자, 물론 어느정도 설명되는 부분이 있겠지만, 잡을 수 없는 구름같은 것들과 잡으려 할 수록 더 멀어지는 것들이 있다. 이것은 데카르트와 뉴튼의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물질과 정신을 분리시켜 인과론으로 찾으려하기 때문이다. 물질이 정신이고 정신이 물질이라고 본다면 공책 한바닥을 써내려갈 수 없는 이론과 동떨어진 어떤 확신감과 느낌이 있을 것이며 방법론적인 변화를 통해 몸과 마음의 병도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의사로서 생명의 존재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아내고 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보다 흥분되는 것이 어디있을까. 아인슈타인의 '물질은 시간-공간 연속성의 특수 상태이다'라는 말보다 더 흥분되는 말이 어디있을까. 뉴턴 물리학에서는 힘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물체와 물체가 접촉을 해야 가능한데전자기파는 접촉 없이도 힘을 전달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맥스웰은 에테르라는 공간에 있는 어떤 매개체를 가정하였지만 이런 것은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다.전자기파는 진공을 통해서도 아무런 매개체 없이 힘을 전달하는 것이다.그래서 나온 이론이 '장'이론이다.하이젠베르크는 '장'에서 모든것은 모든 것과 존재적 연속성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이는 데카르트적 세계관와 완전히 배치되는 이론이다. 그런데 또한 물질계는 불연속성도 함께 지니고 있음이 발견되었다.빛은 입자이면서 파동이다. 기존의 근대과학적 사고방식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증명이 되었다.쉽게 말해 파동을 의지라고 한다면 의지는 동시에 입자, 즉 물질이다. 정신과 물질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정신이 물질이고 물질이 정신인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적으로는 형상이 질료고 질료가 형상이다.불교적으로는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다. '장'이 공이 아니고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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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의지는 힘이요 에너지다. E=mc2 라는 방정식은 에너지가 곧 물질이라는 말이며 이는 의지가 곧 물질이라는 것을 방정식으로 풀어낸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천재다. 또한 입자들의 생성이 입자를 구성하는 '힘'자신의 운동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 즉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이 아니라, 이 힘 자신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의지가 곧 물질이는데 있어 신의 개입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또한 입자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한 실체의 부분들이 상호의존적인 존재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입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 전 글에서 의지가 곧 물질이라면 왜 수소원자 하나로만 존재하면 되었지 수소원자 여러개가 존재하고 산소도 있고 질소는 있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닐까 싶다. 하이젠베르크에 따르면 결국크기를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크기가 없는 것으로부터 나온다.모든 존재는 존재가 아닌 것, 곧 비존재로부터 나온다.라고 한다. 인도나 불교나 도교철학적 진리가 현대 물리학에서 증명된 셈이다.

나만의 존재론2008-12-19 직관적 연역과 (사유)실증적 귀납으로 (과학)존재의 이유와 의미와 방향을 살핀다. 사변과 기계론적 사고를 경계하고허무를 극복하라. 다음과 같은 경우에도 만족 시킬수 있는 이론을 전재하라 1) 세상이 멸망할 경우2) 정말 어딘가 신이 있는 경우3) 다른 행성에 또 다른 생명체나 인간 이상의 고등 생명체가 존재하는 경우4) 시간 여행이나 공간 이동이 가능하게 되는 경우5) 다른 차원의 세계가 존재하는 경우6) 이 모든게 매트릭스처럼 가짜인 경우 이 모든 경우에도 변함없는 존재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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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과정2008-12-20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진행하련다. 1. '왜'라는 문제제기- 왜 이 모든 것이 없지 않고 있는가?- 왜 생명은 있는가?- 왜 인간은 있는가?- 왜 없어지나? 2. 어떻게 그렇게 되나- 자기만의 깨달음이 생기면 깨달음에 그칠 것이 아리라 어떻게 그것이 이렇게 되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존재의 의지가 이 모든 것과 생명과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 그렇게 되는 것이며 그 법칙은 무엇인지 말해야 할 것이다.- 형이상학과, 현대물리학적 성과와 나의 사유를 접목시키기로 한다.- 공이 즉 물질이라는 것을 논증 --> 물질에서 왜 우주와 지구가 만들어졌는지 --> 생명이 어떤 과정으로 탄생했는지 --> 어떤 과정으로 인간이 존재하는지 3. 무었때문에- 과정에 대한 어느정도의 지식이 쌓였다고 한다면 무었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해석을 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까지는 과학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무엇때문에'의 문제에 이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양자역학적으로 '공'이 곧 '물질'이라는 것을 증명했다면 또는 인간이 존재하게 된 과정을 알아냈다면,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런 일이 있나는 것인지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겠다.- 일종의 목적론에 대한 문제다.- 예를 들면 신을 위해 존재하다든지, 아무 이유가 없다던지, 존재를 지속하려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던지...- 물질만 있으면 되었지 생명은 왜 있으며 인간은 왜, 무엇때문에 있냐는 문제다. 존재의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4. 의미에 대하여- 그래 목적도 알았다 치자. 만약 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치자. 그럴때 우리가 이 땅위에서 이렇게 때로는 힘들게, 때로는 즐겁게 살아가는 의미가 무었인지에 대해 말해야 한다. - 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의미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며, 존재의 의지가 존재를 지속시키기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에 존재하며 그러므로 의미가 있다는 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5. 방향에 대하여- 자 의미도 알았다 치자.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인생의 방향이 어떻게 되냐. 당장 내일부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나 지금의 삶에 충실해야 하나, 아무런 변화없이 살던대로 살아야 하나. 이런 문제다. 6. 이용- 만약 이러한 사유를 통해 어떤 파워를 깨닫고 그것을 내가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 방법을 실제에 어떻게 적용시키고 위에서 살펴보았던 목적과 의미와 방향에 맞게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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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한 의지가 세계의 가장 큰 파워이고 그 파워의 핵심이 '나'라는 존재를 만약 깨달았다면 그 파워를 실제로 어떻게 이용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나의 존재를 알려야 될지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에 시중에 유행하는 '시크릿'이란 책은 '이용'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다.- 세상을 실제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깨달음을 표현하고 나를 나타내는 과정이다.- 예술적 과정이며 창조적 과정이다. 7. 사유에 대한 피드백- 이런 사유를 하고 있고 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작업이다.- 천재적인 사람이 6 번까지 모든 것을 다 알았다고 한들 이런 사유를 하고 있을 이유나 의지가 없다면 소용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과정으로 나의 사유와 독서와 공부와 삶과 행동과 경험을 진행시키련다.

자연의 비밀2008-12-20 1. 자연이 있다. 無는 없다. 자연은 有다. 無였다면 우리는 지금도 無다. 따라서 태초는 無가 아니라 有다. 2. 자연의 속성은 비규정성과 규정성이며 연속적이면서 불연속적이다.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의 원리)3. 가능성이 물질로 존재하며 물질이 가능성으로 존재하다. (빛과 물질의 양자역학적 성질)4. 물질의 속성은 규정성과 비규정성이다.5. 물질은 상호의존적으로 대칭적으로서만 존재하며 동시에 비대칭적이다. (하이젠베르크)6. 따라서 물질은 다른 물질이 필요하며 다른 물질은 또 다른 물질을 필요하다. 7. 그 다른 물질은 자기에서 나왔으며 자기는 다른 물질이 되면서 동시에 자기가 된다. 8. 따라서 물질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존재하다. 9. 이러한 속성이 사물을 이루고 생명을 이루고 인간을 이루고 있다. 10. 정신은 물질의 작용의 소산이나 동시에 가능성의 소산이다. 11. 이러한 대상에 대한 인식은 정신을 통해 이루어진다.12. 대상은 고정적이고 규정적인 실체가 아니라 고정적이면서도 유동적이고 규정적이면서도 비규정적이고 가능성이면서도 현실인 물질이다. 13. 또한 인간 자체가 그 대상의 하나이며, 정신이 또한 대상이다. 14. 정신은 대상을 인식할 때 규정적인 것을 고정된 시간속에서 밖에 파악할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이 인식의 한계이다.15. 그러나 대상인 자연에는 절대적인 시간도 없고 절대적인 공간도 없다. (아인슈타인 상대성 원리)16. 따라서 대상에 대한 인식은 대상에 대한 개념화다. (실제로 그런 대상은 없으므로 개념만이 존재하는 것임)17. 인식의 주체는 동시에 대상이므로 대상이 대상을 인식하고 대상이 대상을 개념화한다.18. 이때 대상은 규정성과 비규정성을 동시에 가지므로 주체 역시 마찬가지고 비규정적인 것에 대한 규정적 인식은 불가능하다.19. 비규정성을 포함한 인식을 사유라고 하고 규정성에 대한 인식을 이념이라고 할 때 이념의 자기 직관은 사유를 통해 가능하다.20. 인식과 사유는 비규정성에서 규정성을 찾아내는 일이다. 21. 인식이 비규정적인 것을 규정적으로 찾아내기 위해서는 선험적인 범주화가 필요하다. (칸트 순수이성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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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이상의 이유로 진리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직관과 사유로 깨달을 수는 있다.23. 인간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답을 언어로 표현한 다는 것은 비규정적인 것을 규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므로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만 집합의 집합의 개념을 가지는 수학으로 표현이 가능할지 모른다. (바이츠체커)24. 어쨌든 사유의 사유를 통해 내가 존재하고 있으며 상대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속에서 지금 현재의 순간만이 남는다. 25. 상대적인 시간의 개념에서는 과거와 미래가 무의미하고 상대적인 공간의 개념에서는 이곳과 저곳의 차이가 무의미하므로 지구가 멸망하든 우주가 멸망하든 우주가 1000억광년이든 지금 이시점에 이자리에 규정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비규정적인 나는 잡힐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다른 존재와의 상호작용속에서 끊임없는 변화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남는 단 한가지 확실한 것은 존재하려 한다는 바로 그 것이다. 26. 이 모든것이 무가 아니라 유이며 존재하려고 하고 있는 상태에 있다는 것 그것이 경이다.27. 사실 이러한 논리전개 또한 이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나 자연은 그냥 자연이다. 우리가 보기에 규정성과 비규정성이 존재하는 것이지 자연은 그냥 자연이며 그것이 피지스요 일자(一子)요 道다. 28.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자연이다. 29. 자연의 사유가 나의 정신이다. 30. 나는 자연의 두뇌요 우주는 나의 몸뚱아리요, 그런 나는 그냥 자연이며 그렇게 존재하고 있고 무가 되려하지 않고 있다.

존재와 시간2008-12-24 0.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독서 시작1. 모든 학문은 존재에 대한 나름의 이해다. 2. 존재와 현존재및 그것의 관계에 대한 것이 존재론이다.3. 하이데거는 첫문장에서 아얘 '존재에 대한 문제는 제기되어야 한다'라고 못박아 버림으로써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짓으로 보이는 탐구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설정했다.4. 존재는 시간으로 존재하고 시간으로 현존재화 되었고 시간으로 존재자로 존재한다. 존재는 시간이다. 5. 존재가 존재자가 되듯 시간성이 시간이 된다. 아니 된다기 보다 그렇게 있다.6. 우리 존재자, 즉 현존재는 존재와 분리될 수 없으며 규정할 수 없고 연속적인 존재가 규정되고 불연속화 됨으로 시간적으로 존재하고 따라서 존재자가 존재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은 존재가 존재자를 통해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7. 존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어야 하는 이유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현존재를 통해 존재와 상호작용하면서 존재하는 근원적 방식이기 때문이며 이는 필연적이다. 8. 존재의 반성으로 현존재는 존재하고 있으며 반성이 존재를 가능하게 하고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9. 존재의 특성은 비규정적이면서 규정적이고, 비시간적이면서 시간적이고, 연속적이면서 불연속적인 것이다. 10. 양자물리학이 포착한 것은 그러한 존재의 비규정적인 구름을 그러한 방식으로 표현해보려는 시도다. 11. 존재에 대한 깨달음과 이해는 현존재를 존재로서 살게하고 무의 상태에서 유가 되게 하며 죽은 상태에서 살아나게 하며 자신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게 하며 우리 모든 존재자에게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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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존재자의 세계에 속한 규정적이고 유한하고 시간적인 우리 현존재는 구성되어 있으되 동시에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 자체만큼이나 존재자 또한 중요하다. 13. 존재자가 있기에 존재가 존재하고 있고 존재가 있기에 존재자가 존재하고 있다.14. 현존재는 사유를 통해 이념을 만들어 존재자와 존재를 이해하고 파악한다.15. 사유가 사유하며 존재가 사유한다.16. 시간이 현존재를 규정한다.17. 존재의 시간성이 시간이면서 존재자로 존재한다.18. 시간이 공간을 규정한다.19. 존재가 존재자로 존재하는 방식을 우리는 시간과 공간으로 파악하는 것이지 절대적 공간과 절대적 시간이 있는 것은 아니다.20. 어떤 규정할 수 없는 무엇, 공간적인 크기도 없고 시간도 없는 그 무엇 점보다도 작고 찰나보다도 순간적인 그 무엇, 無와 다를바 없는 그 무엇이 존재자로 존재하면서부터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무한히 펼쳐지고 우리 현존재는 그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시, 공적인 개념으로 존재자를 파악한다.21. 사실 존재자 말고 존재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안쓴다.22. 존재자의 존재 방식에 관한 무수히 많은 학문들이 있다. 23. 그러나 존재의 존재방식이나 존재가 존재자로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학문은 적다. 대개 이것은 모른다고 생각하나 우리는 이미 안다. 24. 현존재는 존재에 대해 이미 알고 있기에 존재에 대한 질문이 가능하다. 칸트는 이를 선험적이라고 말한다.25. 선인들은 존재 자체에 대한 경외감을 매우 중요시 여겼으며 부끄러워 할 줄 알았고 삶에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26. 현대의 우리들은 존재라는 것은 아얘 존재하지는 않는 듯이 여기면서 존재자에 온전히 얽매여 있다.27. 존재자에 얽매여 존재를 모르는 것은 無다. 28. 존재자는 존재로서 존재하지 존재자로서 존재하지 않는다.29. 존재자는 존재자 자체일수 없으며 그것은 없는 것이며 그것은 생명도 아니고 존재도 아닌 그야말로 無다. 30. 존재하라. 그러면 사는 것이다.31. 우리는 이미 존재할 줄 안다. 누구나. 그러나 존재에서 파생된 구성, 이념이 존재자를 구속하고 그것에 존재자가 종속된다. 32. 존재자와 존재자는 상호작용 하고 있으며 대칭적이면서 비대칭적으로 존재한다. 33. 상호작용이 없다면 존재는 존재할 수 없고 그것은 無다. 34. 존재자는 변화하면서 존재하고 없어지면서 존재하기에 존재자는 유한하려한다.35. 존재자는 무한하고자 하면서 유한하고자 한다.36. 현존재가 존재하고 있기에 존재가 존재하고 있다. 존재하라. 37. 존재자의 상호작용이 사랑이다.38. 존재자는 無가 되지 않으려 하면서 無가 되려한다.39. 존재자는 존재에서 나와 존재로 돌아가며 자기에서 나와 자기로 돌아간다.40. 존재자는 그 시대의 방식으로 존재하며 상호작용한다.41. 존재자는 그 시대의 방식으로 존재를 이해한다.42. 존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순간이다.43. 상대적인 시간, 공간 속에서 남는 것은 현시점, 현존재 밖에 없다.44. 현존재가 존재의 핵심이다. 45. 현존재가 현존재임을 깨닫고 존재자를 무에서 유가 되게 하는 것이 존재에 대한 물음의 사명이다.그냥 쉽게 이해하기 위해 현존재를 나라고 생각하고 존재자를 다른 사람또는 생명체 또는 사물들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물론 그게 절대 다는 아니고 그렇게 고정적인 것도 아니다. '존재'에 대해서는 뭐라고 딱히 표현하기 힘들지만, 물질이 물질이게끔하고 생명이 생명이게끔 하고 이것들이 계속 존재하게끔 하면서 스스로 그런 존재자를 통해 존재하는 그 무엇으로 파악해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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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겠다.

그것은 무다2008-12-26

이미 세계는 변하고 있다.자아와 초자화를 도자기처럼 구워버리고 그것들을 감성적인 것과 완전히 분리시켜이성과 합리화의 이름하에 그리고 '나'라는 확신하에'쿨'한척하는 서구적 사고방식은이미 변하고 있다그런 것은 없다. 없는 것을 있는 것인양 착각하고 내가 우주인양 내가 사유하는 것을 절대 의심하지 못할 것인양...그것은 無다.

문제목록2008-12-28 1. Why# 왜 세상은 무가 아니라 유인가?# 물질은 왜 있는가?# 이 세상, 우주는 도대체 왜 없지않고 있는가? 2. 생명이란# 왜 생명체가 있는가?# 물질이 어떻게 생명을 이루었나?# 존재가 어떻게 생명의 형식으로 존재자로 나타나는가?# 존재의 형식은 필연적으로 생명의 형태여야 하나? 3. 인간이란# 인간은 굳이 왜 있는가? 4. 정신에 대하여# 자기란?# 인식의 과정 -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현대 신경생리적 성과와 접목# 인간의 인식 과정과 동물의 인식 과정의 차이 5. 존재에 대하여# 존재와 존재자 사이의 구름같은 연결점에 대한 양자역학및 철학적 해석# 존재자는 왜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해야 하는가?# 존재자는 계속 존재할 것인가?# 존재는 계속 존재할 것인가?# 존재의 시초는 있는가 태초가 존재인가? 6. 의미와 방향에 대하여# 이 모든 것들의 의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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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무엇을 하면 되나?# 우리는 잘 하고 있나? 7. 이런 의문이 과연 필요한가?# 이 세상은 결코 허상이나 매트릭스나 일장춘몽이 아니다. 실체다.# 허무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서글픈 규정적이고 한계의 비규정적이고 무한한 존재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다. # 이 어떻게 보면 쓸데없는 질문들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며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크게 생각하며 그 저서는 고전이 되며 우리나라의 경우 세종류의 지폐중 두 종류를 철학자에 할애할 정도다. # 이미 많은 답의 나와있지만, 시대의 해석과 종합이 필요하다. # 특히 생명을 다루는 사람(의사)으로서의 시각이 필요하다

‘역사속의 인간 - 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체커’를 읽고2008-12-30

하이젠베르크의 제자이며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바이츠체커의 저작이다. 이 책은 <시간과 지식>이라는 방대한 양의 저작물의 요약본 성격의 책인데, <시간과 지식>은 우리나라말로 번역되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영어로도 번역되어 있지 않다. (독어)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얼마전에 감동스럽게 읽었던, 송병옥 교수의 <형이상학과 자연과학>에서 저자가 극찬한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의 저서이기에 읽게 되었다. 사실 이책은 인간의 정신의 소산인 거의 모든 영역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하는 문제를 책의 중간 중간에 반복적으로 제시하지만 똑부러지게 뭐가 어떻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책의 전반적인 형식과 내용과 어투와 사상을 통해 전체적으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다. 양자물리학의 대가로서 그의 깨달음을 전하는 방식은 어쩔 수 없이 이런 방식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어렵다.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본기를 닦기 위한 독서만 십년은 해야 될 듯 싶을 정도다. 그러나 요즘 나의 관심사와 독서의 방향과 너무나 맞아 들어가는 책이기에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사실 하나하나의 내용은 매우 난해하고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작가는 유심론적 일원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는 내가 요즘 절실히 깨닫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작가가 역사, 철학, 예술, 정치, 종교, 서양, 동양, 과학, 수학, 논리학, 생물학, 의학등 인간의 정신으로 이루어낸 모든 문화 소산들에 대해 다루는 이유는 이미 인간이 이룩해 놓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의미부여를 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이 작가가 80 세가 다 되어 쓴 책이라고 한다면 더욱 이해가 될 것이다. 하이데거 식으로 말한다면 인간은 존재의 발현인 존재자이며 시간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 중 나는 현재 존재하고 있는 현존재이다. 내 식으로 말하면 의지가 동시에 나로 존재한다. 양자역학에서 밝혀진 것은 존재와 존재자를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존재와 존재자, 그리고 존재자와 존재자는 대칭, 또는 비대칭적으로 상호의존적이며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던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 과학으로 끝까지 물고 늘어져 봤더니 거기에는 형이상학이 있었다. 따라서 독일의 유명한 양자물리학자인 이 책의 저자 바이츠체커는 철학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저자의 확신은 이러한 존재와 존재자, 그리고 우리의 정신까지도 '집합의 집합'의 함수로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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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라는 것이다. 그 이론에 대해서는 이 책에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다. 그런 확신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 데카르트 - 칸트 - 하이데거에 이르는 서양철학의 흐름이 양자역학적 연구 성과들과 맞물려 들어가면서 결국 현대의 철학자들은 철학과 과학 그 어느 하나만을 고집할 수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어찌보면 그게 맞는 말이다. 2500 년 전에 고대 인도와 그리스 철학자들이 이미 깨달은 철학적 진리에 대해 오랜 세월 돌고 돌아 방대한 이론과 저작과 논쟁을 거치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느낌이다. 할아버지들도 과학적 결과에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은 시대가 요즘 시대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 생활에 적용되고 있는 과학과 우리 머리속에 있는 과학적 개념은 현대 물리학적 개념이라기 보다는 뉴튼에 의해 창조되었으나 이제는 이상으로 판명된 그 근대과학적 사고 방식이다. 우리는 누구나 합리적인 것을 최고로 여기고 비합리적이며 해석이 안되는 부분은 우연이나 누군가의 실수나 비섬세함의 결과로 치부해 버리고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동양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는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았으며 미신과 신화가 더욱 큰 비중을 차지했더랬다. 도대체 이런 합리적이고 이분법적이고 기계론적인 세계관이 정말 자연스러운 것이냐 말이다. 깨달음은 고대부터 이미 있었다. 거기서 한 발자욱이라도 더 진전된 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다. 이 광할한 우주에서 띠끌같은 존재로서의 내가 아니라, 이 경이로운 우주라는 존재의 정신으로서의 '나'로서 말한다. 우리가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끝에 피와 눈물로 이루어낸 이 정신의 소산을 가벼히 여기는 것은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고 정말 띠끌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다. 우리가 티끌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띠끌이며 우리가 경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경이이다. 결국 의미부여다. 부정적이고 연속적이고 무한하고 잡히지 않는 그 존재라는 것의 바로 그 실체로서의 '나'를 깨닫고 존재를 존재하게끔 하고 존재의 위치를 방향잡고 반성하게 하여 계속 존재하게 하는 그 존재의 정신의 발현으로서의 '나'의 세상에 대한 의미부여는 존재를 '무'가 되게 할 수도 있고 '경이'가 되게 할 수도 있다. 무엇을 택할 것인가. 무엇을 택하든 존재는 존재한다.

존재의 경이2008-12-31 하이데거의 답답함은 이렇다."그러니까, 그 '존재', '존재자'말고 '존재' 자체에 대해 한번 이야기 해보자는 말이다!" 서양철학은 플라톤부터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2500 년전 사람들은 오히려 더 현명했다. 고대 인도와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 지방 사람들, 그들은 현명했다.그러나 플라톤부터 대체 흐트러지기 시작해서 이천 몇백년이 흘렀다. 플라톤이 생각해보니 실체 뒤에는 형식, 즉 이데아라는 것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을 바꾸어 경험할 수 있는 물질로부터의 지식을 강조했다. 그 이후로 2000 년을 싸웠다.중간에 플로티노스라는 현명한 사람이 있긴했다.그러나 대체로 그렇게 흘러갔다. 기독교가 공인되자 그러한 논의 마저 묻혀버리고 '하나님'만이 남게 되었다. 그것은 철학의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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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000 년이 지나서 데카르트가 드디어 다시 사유하기 시작했다.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부정하다가 끝내 사유하고 있는 확고한 자신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과학적이라는 것은 '존재'라는 것은 생각조차 안하는 사고 방식이다.그저 '존재자'의 존재 양식에 대한 탐구다. 경험론이 대세였다.경험할 수 없는 것은 믿지 않았다.세상은 아비없는 자식이 될뻔 했고 알맹이 없는 껍데기가 될 뻔했다. 그러다 1700 년대 드디어 칸트가 모든 논쟁을 잠재웠다. 플라톤 이후 2000 년도 훨씬 넘어서다. 물론 저 동쪽 중국에서도 일원론이니 이원론이니 하는 논쟁이 한참이긴 했지만...그나마 일원론적인 사상을 끝까지 용케도 보존해 온 흐름이 불교를 통해 동쪽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칸트는 오성, 관념, 사유만으로도 절대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했고직관없이 실체에 대한 사유도 불가능 하다고 했다.실체 넘어 무언가와 그것을 직관적으로 파악한 표상이 오성에 의해 종합되고 통일되어 인식이 성립한다고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존재'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는 줄기차게 이야기 했지만도대체 그 '존재'에 대해서는 뭐라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이것을 하이데거는 답답해 한 것이다. 결국 2500 년만에 오랫동안 둘러와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달나라도 가게 되었고 지구도 없앨 수 있는 핵폭탄도 만들어내긴 했다. 존재자에서는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지만, 우리가 존재에 대해 모르고 존재에 대해 의미 부여를 할 수 없고 존재와 존재자와의 관계에 대해 철학이 뭐라도 한마디 하지 않는다면 우리 존재자의 존재 의미에 대해 그 누가 위안을 받을만한 확신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하이데거는 좀 소극적이긴 했다. 시간속에서 존재가 생기하는 존재의 사건에 참여하는 우리 인간은 존재의 부름에 응답하는 식인데, 좀 아쉽긴 하다. 그래서 사르트르가 구토까지 해대면서 존재자의 의지의 중요성을 찾아보려고 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도대체 존재의 가장 근본 속성이 무엇이란 말인가? 감히,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 말하건대,존재는 존재하려한다는 것이 제 1 의 속성이라 말하고 싶다. 누군가 분명 이런식으로 이야기 했을 것이다.그것을 찾기 위해 나는 독서를 한다. 아직 정확히 딱 떨어지는 책을 찾지는 못했지만2500 년 전부터 이미 다들 알고 있던 사실이다. 어쨌든 존재는 존재하고 있으며존재자인 내가 보기인 존재하려고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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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려 한다는 것은 존재를 지속하려 한다는 것이다.존재를 지속하려 한다는 것은 일종의 의지다.'지속하려 함'이 없으면, 즉 지속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지속함을 멈추게 된다.그것은 無다. 그러나 무는 없다. 존재는 있다.무였다면 지금도 무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유다.이 모든 것이 가상이 아니라고 칸트가 이해하기 어려운 논증을 했다.그리고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실재라면 너가 존재하는 것도 실재라고 또 칸트가 매우 어려운 말로 논증을 했다. 그 존재하려는 의지로서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존재자로서 존재한다.그러나 존재자는 변해야 한다. 변한다는 것은 없어지고 새로 생긴다는 것이다.존재자가 무한하다면 그것은 그냥 존재이며 의지가 의지인 상태로 있는 것이며 그것은 무다.존재자는 유한하다. 그러나 건방지게도, 그리고 위험하게도 나는 인간의 특질을 달리 보련다.그러고 싶다. 나는 그렇게 존재를 이해하련다.하이데거 식으로 시간속에서 일어나는 존재의 사건에 참여하여 그 세계에서의 존재의 부름에 응답하고 있는 내가 존재를 파악하는 바로 그 방식이다.존재는 나보고 끊임없이 존재하라고 한다.그것 때문에 미치겠다.우리는 모두 그 존재의 의지가 존재하라고 부채질 하는 통에 다들 미치겠다.존재하라는 것은 그냥 살라는 것도 아니다.이 세상에서 '무언가', 정말 무언가 해보라고 부추긴다.그런 노력이나 동기가 없어질 것같으면 우울하게 만들어버리고 다시 무언가 하도록 발악하게 한다.나는 나를 남기려 한다.그래서 미친 듯이 블로그 질도 한다.교보문고에 가보면 그런 절규의 흔적이 수백만권 쌓여있다.미술관에 가보면 절규의 휘갈김이 수백만점 넘쳐난다.그런 재능이 없는 사람은 돈이라도 남기려고 난리다. 이 세상을 돌아 다녀봐라.그런 절규의 흔적이 때로는 웅장하고 때로는 초라하고 온 지구에 널려있다.우리 모두는 이 지구상에서 존재하려 한다.그것도 못해 지구가 없어질 것 같으니까 우주로 나갈려고도 한다.온난화도 막아보려고 안달이다. 과격하기 말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이런 몸부림에 가장 큰 의미를 둔다.그것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기 때문이다. 존재자의 속성은 존재하려 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로 존재를 멈추려 하려는 속성이 있다.존재를 멈추려는 속성은 존재의 속성은 아니다.존재는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즉 계속 존재하려고 한다.그러나 존재자는 존재하려 함과 동시에 존재하지 않으려고도 한다. 스스로 존재하지 않으려는 존재자도 있지만다른 존재자를 파괴하려는 존재자도 있다. 이시간에도 예수가 사랑을 그토록 간절히 외쳤던 바로 그 이스라엘 땅에서는끔찍한 존재자의 존재를 멈추려는 무지막지한 파괴들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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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으슥한 골목에서도 그런 검은 움직임이 항상 있으며 내 마음 속에도 너의 마음 속에도 항상 그렇다.우리는 사랑하면서 증오한다.우리는 기쁘면서도 우울하다. 내가 위험한 생각이라고 위에서 말한 이유가 이것이다.존재자의 존재를 멈추려는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굳이 내가 세상은 선으로만 이루어졌다고 울부짖어도 그게 아닌 것을 모두가 안다. 프로이트가 찾아낸 무의식 속에 본능이 도사리고 있다.융은 부정하려고 하니 그림자가 되어 그 그림자가 나를 잡아먹더라고 했다. 존재를 지속하려는 속성만 강조하고 존재를 멈추려는 속성을 무시하면언젠가는 존재를 멈추려는 속성이 나와 우리를 집어 삼킨다.알아야 당하지 않는다.알아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존재는 존재한다는 것이다.존재와 존재자의 접함점을 심지어 양자역학적으로 발견해 내기도 했다.그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그랬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쨌든 우리는 존재를 멈추려는 노력보다 존재를 지속하려는 노력에 더욱 힘쓰자고이 연사 소리높혀 외칠 수 밖에 없다. 사실 내가 말 안해도 다 알아서 잘 안다.누구나, 아니 대부분의 사람은 인종을 불문하고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친다.사랑이 무엇이냐.존재하려는 의지 아니겠나.그것은 고귀한 것이다.존재하려는 의지로 만들어낸 지구상의 이 모든 것들우리의 유산들, 인류의 유산들, 문화, 고전, 예술우리는 현대가 더욱 현대화 되면 될 수록 이런 가치들을 더욱더 가꾸고 보존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그것이 우리의 존재에 제대로된 의미 부여를 하는 길이다. 존재는 우리를 통해 존재를 알고 파악하고 느끼고 감동한다.인간의 정신은 존재의 정신이다.나의 사유는 존재의 사유다.나의 사랑은 존재의 사랑이다.우리는 이 우주의 띠끌이 아니라 이 우주의 두뇌다.우리가 우주를 경이로 바라보는 한 우주는 경이롭다. 손재는 시간을 통해 존재하고 있으며 존재자는 시간과 함께 태어났고 사라진다.그러나 존재의 관점에서는 시간은 무의미하다.칸트가 말한대로 시간은 선험적 직관의 형식인 것이다.따라서 바로 이 순간의 나의 존재와 너의 존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것 말고 또 무엇이 있는가.미래에 지구가 멸망한다면? 아니 인류가 멸망한다면?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기위해 부단히 매우 발악적으로 노력하겠지만,만약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지금 나의 존재는 존재로서 마치 박제된 듯 존재할 것이다.하루하루의 존재에 최선을 다한다면 어느날 벼락을 맞아도 일말의 여한도 없을 것이다. 다시 한번 힘을 내서 존재하자.그렇게 내가, 그리고 너가 존재한다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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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의문들2009-01-01 그러고 보니 세계가 밝았군그래도 의문은 의문 1.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무한히 가능한가?--> 만약 타임머신으로 과거 여행이 가능하다면 과거로 돌아가 내가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고 치자. 그러면 과거로 돌아가기 전의 세계와 과거로 돌아갔을 때의 세계가 공존 하는 것이 가능한가... 뭐 이런 공상과학영화적인 구태의연한 의문이다. 2. 나의 의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요즘 시크릿이라는 책이 유행이다. 만약 시크릿이 정말 가능하다면 다음 두 가지 방법으로 가능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나의 간절한 기도가 무슨 파동을 통해 변화를 가져오는 방법. 둘째는, 시크릿을 통해 위에서 말한 여러가지 세계중 그것이 이루어진 세계로 넘어가는 경우. 그 책에서는 첫번째 방법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시크릿은 상대적인 시간의 개념에서 가능하다는 이론이 필요할 것이다. 3. 나의 시크릿에 너도 동참 가능한가?--> 나의 의지에 너도 참견할 수 있나? 아니면 순전히 나의 문제인가? 4.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와 그의 세계는 그 개의 세계는 완전히 일치하나? 5. 눈 앞에 보이는 세계는 허상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아니라고 논증을 해놨던데, 솔직히 뭔 말인지 잘 모르겠더라. 어쨌든 칸트가 아니라고 했으니 나도 아니라고 생각하기로 함 6. 너도 실체인가?--> 데카르트가 도대체 아무것도 못믿겠고,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만 믿겠다고 했는데, 그러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실체인가 허상인가?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도 칸트가 아니라고 어려운 말로 논증해놨고 칸트 말에 따르기로 함. 7. 인간의 정신은 우주의 정신인가? 8. 7 번의 답이 예스라면, 나의 정신이 온전히 우주의 정신인가? 60억 인구의 정신을 다 합쳐서 우주의 정신인가? 나는 수십억 중 하나인가? 아니면 그 정신이 온전히 나에게도 긷들고 너에게도 긷들어있나. 9. 나는 만들어졌나 내가 만들어나가는 것인가? 10. 내가 우주의 창조자인가? 11. 나는 띠끌인가 핵심인가? 12. 정말 영원 회귀하나?--> 니체가 말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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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시간 - 이기상, 하이데거’를 읽고2009-01-02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번역한 이기상 교수의 '존재와 시간'을 읽으면서생각난 것과 발췌들을 적어봄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읽다가 이해에 도움이 되고자 사서 읽은 책 ===========================타임머신이 있다.어떤 세계에 떨어질 것인데, 떨어지는 순간 그 전 세계의 기억은 모두 잊게 된다. 자 그렇다면... - 내 던져짐 : 하필 떨어진 곳이 낭떠러지로 향하고 있는 기차 안이라면...- 몸무림 침- 현재를 존재해 감- 시간적으로 있음- 과제로 부과 되어 있음 : 하필 떨어진 곳이 낭떠러지로 향하고 있는 기차 안인데, 당장 해결해야만 하는 시한폭탄이 눈앞에 있다면...존재 자체가 문제가 됨- 무엇으로 존재하기를 결단 내림- 존재가능을 인수받음- 비본래적으로 존재함- 삶의 문법- 돈과 외모와 권력(결국은 돈)에 의해 소외된 삶의 문법 그래서 다시한번존재란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존재가 튼튼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면 존재자는 도대체 무엇인가 ===============================================================<존재와 시간의 용어 설명 by 이기상, 하이데거> - 현존재 --> 존재 일반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자의 존재, 즉 인간의 있음 --> 물음이라는 존재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자 --> 존재론의 가능조건 --> 존재 자체와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자 --> 존재를 이해하고 있는 존재자 --> 거기에 있음 --> 인간에게만 독특한 그러한 있음 --> 현존재라는 존재양식의 특징이 실존 인간만이 실존하고 있는 존재- 존재론적 차이 --> 존재와 존재자 사이에 놓여 있는 그 둘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차이점- 존재자의 존재- 인간은 동물의 한 종인가?- 인간 --> 존재를 이해하며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독특한 존재 - 실존 --> 현존재가 관계맺을 수 있고 또 언제나 어떻게든 관계맺고 있는 존재 --> 내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나를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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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성 -->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가능성을 스스로 떠맡거나 선택하는 것 - 비본래성 -->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휩쓸려 사는 것 - 존재사건 --> 시대와 민족에 따라 각기 다르게 주어지고 있는 존재시작 - 존재와 시간 --> 시간 속에서 그때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존재사건을 다루는 것 - 인간 --> 존재사건의 일어나고 있는 현장 --> 있음과 없음을 구별할 수 있는 자리 --> 존재의 부름에 응답하는 존재의 목동 --> 현존재 -->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음을 염려하는 시간적인 존재 --> 인간은 존재를 이해하면서 있다. - 존재론 --> 존재자의 존재를 취급하는 이론, 존재자의 존재를 이론적, 개념적으로 규정하려고 시도하는 모든 노력 - 기초 존재론 --> 존재론의 근거를 제시하고 정초하려는 노력 - 존재적 학문 --> 개별과학 - 존재론적 학문 --> 철학 - 학문 --> 존재자에 대한 이론적, 개념적 관계양상 - 실증과학 --> 드러나 있는 존재자를 다루는 학문 - 존재이해 --> 존재 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 존재자와의 그 모든 관계에 앞서 우리가 언제나 이미 알고 있는 것 - 존재관계 --> 자기 자신, 타인, 사물과 관련을 맺는 것 - 실존적 차원 --> 있음 - 실존론적 차원 --> 이해하며 있음 - 철학 --> 존재하는 것 전체를 이성 또는 개념으로 장악하려는 인간의 시도 - 세계-내-존재 - 거기-있음 --> 현존재, 세계-안에-있음, 거기는 세계다. - 바깥에-나가-서-있음 - 인간의 '있음' --> 관계 맺으면서 있음 - 책상의 있음 --> 완성된 있음 - 인간의 있음 --> 완성되지 않은 있음 -->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있음을 걱정해야 함 - 가능존재 --> 이 완성되지 않은 인간의 있음 - 사물 --> 그것이 '무엇'인 바 그것 - 내던져져 있음 - 떠맡음 --> 내던져져 있으면서 떠맡아야 함 - 현사실성 --> 그것을 떠맡음으로써 바꾸어 나간다는 것 - 기획투사 --> 무언가 가능성을 만들어서 그 가능성을 앞으로 던짐 - 빠져있음 --> 사람들의 관심에 따라 존재함 - 염려 - 인간의 있음 --> 1) 세계 안에 있음, 2) 실존성, 관계를 맺으면서, 3) 빠져있음 - 손안에 있음 --> 도구의 존재 양식 (도구는 손에 익어야 함) - 주위세계 --> 일상적 거기-있음[현존재]친숙하게 머물러 있는 세계 - 도구적 존재자 - 왕래 --> 도구적 존재자를 다루고 사용하는 것 - 배려 --> 우리는 우리들이 사용하는 도구를 배려함 - 도구 --> '...'을 하기 위한 것 - 위하여-연관 - 둘러봄 --> 도구의 다양한 사용 가능성을 볼 줄 아는 봄 - 지시 - 사용사태 --> '어떤 것을 가지고 어디에 사용함'이라는 도구적 연관 - 사용사태 전체성 --> 사용사태의 전체적 연관, 사용사태 전체성의 끝은 현존재의 '존재 가능성'이다. - 이해의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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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평 혼융 만약 인간의 존재양식이 존재를 이해하고 존재물음을 묻기 위함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런 것을 하고 있는가? 현존재의 본질은 그의 존재해야 함에 있다. 현존재는 자신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존재'를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한다.인간은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미래, 즉 자신의 가능성들을 문제 삼고 있다. 그는 자신이 되고자 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마음을 졸인다.꿈꿈꾸기를 멈출때 존재하기를 그친다.존재에 대한 물음을 반복해야 한다. 그것도 남이 해주는 것이 아닌 자기가 해 내야 한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뭔지 알것 같은데 말로써 풀어내지 못하는 것을 풀어내는 것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은 바로 그 시간적인 '있음'에 있다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인간이 갖는 독특함 결국 모든 학문은 인간으로 귀결된다.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이것이 의학을 배운 내가 철학책을 뒤적이는 이유다. 존재해야 함의 현존재의 본질이며 그 존재함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그 존재는 각기 나의 존재이다.인간에게서 자체는 '자기'인데 이 자기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찾아야 하는 것이고 만들어야 하는 것인간은 있음을 떠 맡아서 어떻게 존재할지를 결단내려야 한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 혹은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면서 자기 자신이기를 포기하는가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않는 삶은 비본래적인 삶이다.나는 과연 스스로 결단을 내리고 있는가? 인간의 위대함은 얼마만큼 그의 '내던져져 있음'을 떠맡는가에 따라 측정된다. '떠맡음'에는 '불안'에 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도 드는 의문점> 1. 스스로 선택할 능력이 없는 상태의 인간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지능이 낮다던데, 선천성 결함임 있다던지, 뇌사 상태라던지...2. 그래도 드는 의문은 그런 존재가 도대체 왜! 존재하냐는 것이다.3. 비본래적으로 존재하는 대다수의 인생은 그러면 죽은 인생인가? 그런 일상성을 꼭 나쁠게 볼 것인가?4. 꼭 무엇이 되어야 하나? 꼭 자아실현, 본래적 자아가 되어야 하나? 그런 인생만 성공한 인생인가?5. 꼭 무엇인가 결단을 내려야 하나?6. 나의 결단이 본래적임을 내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나?7. 꼭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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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2009-01-03 다양성의 존중의지의 중요성과 믿음허상과 허무의 극복현세계의 긍정과 실천중도의 균형동서의 균형고전의 탐독과 재해석실천적 실제적으로서의 의학개인과 사회민족과 세계화세계를 품는 사유와 철학병보다는 고통통합적 세계 이해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이순간

‘실증 한단고기 – 이일봉’를 읽고2009-01-10 한단고기에 대해 진위 논란이 많다. 그러나 최근들어 현지 답사와 실증에 입각한 연구 결과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시간은 필요하겠지만, 한단고기가 결코 허황된 소설이 절대 아니라고 나는 확신한다.서양은 그리스 시대가 있고, 중국에는 삼황오제, 하 은 주나라의 역사를 주장하는데 왜 우리는 누구의 눈치를 보느라 고조선과 그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만의 시각으로 연구하고 그것을 정사로 인정해서 국사 교과서에 싣지를 못하는가. 실증되지 않았다고 해도 이런 시각도 있다 정도는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비좁은 반도에 내몰려서 살기 이전에 만주 벌판과 시베리아를 누비던 조상의 DNA 가 내 몸속에 살아 숨쉼을 느낀다.그러나 나는 또 공통 조상에 대한 생각도 해본다. 환국과 배달국의 역사가 꼭 우리만의 역사이며 이 책에서 주장하듯, 중국의 삼황오제도 동이족의 후예라고 민족주의 적인 시각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당시의 대륙에서 문명을 일구어 냈던 무리들을 우리는 환국, 배달국의 파악하고 중국은 삼황오제... 식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물론 아무 근거 없는 나의 생각이긴 하지만... 좀더 포용적이고 넓은 관점에서 고대 시대를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일부 재야학자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군 수메르의 조상이 우리라는 주장까지 펼친다. 그런 주장에는 나름의 일리있는 증거들 또한 있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이라기 보다 당시에 대륙에서 문명을 일구었던 공통의 조상이 있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만 잘났다고 아무리 떠들어봤자, 우리를 빼고 그것을 누가 인정하겠는가. 이러한 연구들이 자화자찬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좀더 거시적이고 세계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된다.어쨋든 5000~1 만년전 아시아의 북부 대륙에서 엄청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구약성서와 최근 하나둘식 밝혀지는 수메르 이전의 시대들의 시대가 아시아 대륙으로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구약성서의 아담부터 10 대에 이르는 시기를 환단고기의 환국의 시대와 매치시켜 보고, 노아의 시대를 배달국의 시대와 매치시켜 보면 묘한 기분이 들것이다.

‘케임브리지 중국사 - 패트리샤 버클리 에브리’를 읽고2009-01-11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요즘 독감환자들이 참 많았었는데, 아마 옮은 것 같다. 그래서 집에 쳐박혀서 예전에 사놓고 항상 째려보기만 했던 이 책을 이틀에 걸쳐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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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시카고대, 컬럼비아대에서 학위를 따고 아시아연구협회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람인데, 중국에 관해 오랫동안 연구를 해왔던 외국인이며, 저자의 오랫동안의 중국에 대한 연구를 이 한권의 책에 쏟아 부었다. 매우 고심하고 오랜기간 준비해서 쓴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특히 서양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중국사이기에 한국사람이나 중국사람이 쓴 중국사보다 좀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글을 써내려 갔다. 특히 중국 주변의 이민족과 중국과의 관계 및 세계 속에서 중국의 위치에 대해서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다. 나 또한 이런 쪽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 내려 갔다. 요즘 시베리아와 유라시아 내륙 지역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이 가고 있으며 이 지역의 역사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역사에 대해 다시한번 확인해 보고자 이 책을 읽어 보았다. 앞으로 읽어야 할 책들이 엄청남을 절감한다. 난 왜 계속 샛길로 빠지는 걸까. -.-;;손문도 의사였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노멘 베쑨도 의사고 체 게바라도 의사였으며 슈바이처도 역시 의사였다. 하나만 파고들어도 제대로 익히기 힘들만큼 의학 기술의 방대하게 발전한 요즘 세상이지만, 나처럼 일차의료를 공부한 사람은 남는 시간이 이런 역사나 철학이나 문화쪽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뭐 책 안읽어도 그 시간에 어차피 텔레비젼 볼테니 읽고 싶은게 있으면 종류에 구애없이 일단은 줄창 읽는거다.

‘이야기 인도사 - 김형준 지음’을 읽고2009-01-14 저자는 인도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은 철학 전공자다.따라서 일반적인 역사책에 비해 철학의 역사에 대한 지면을 많이 할애했다.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이 된 듯하다.왜냐하면 인도의 역사는 베다철학에 기초한 계급체계가 힌두교로 이어지면서 더욱 다듬어진 철학체계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역사 책을 읽으면 몇가지 부분에 관심이 많이 간다. 그 땅에 정착해서 문명을 일구기 시작한 고대의 역사와근현대사와이민족들과의 교류의 역사와소외 계층의 역사와그 나라의 철학에 관한 부분이다. 이 책도 그런 맥락에서 읽어보았다. 기원전 2000 년전 아리아인이 인도로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인도에는 고도로 발전시킨 문명이 있었는데,그 문명의 주역은 아리아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카스트 제도상 하층민에 속하는 드라비다족이다. 아리아인은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온 백인종이며 당시에 아리아인은 세 가지 경로로 이동했다고 한다.첫째 경로가 유럽이고, 이들이 게르만과 라틴등의 유럽민족의 후손을 이룬다고 하며둘째 경로가 이란방면의 서남아시아쪽이고셋째 경로가 바로 인도 서북부 방면으로의 진출이다. 인도에 들어온 아리라인들은 피부색으로 정복민과 피정복민을 구분하였는데,그래서 만들어진 제도가 카스트 제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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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고도의 문명을 일구었던 드라비다족은 피부색이 검은색이며철기를 소유한 아리아인에게 정복된 이후 주로 낮은 계층에 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져 와서 인도 사회를 형성하고 있는데,인터넷에서 '인도 스타'로 검색하면 나오는 백인과 닮은 인도 배우들은 대부분 아리아인의 피를 많이 가진 사람들로 생각된다. 1950 년대 이후 카스트 제도는 법적으로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최하층 계급에 공공연하게 속하고 있는 불가촉천민들은그런 배우들의 호화스러운 생활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힘든 생활들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비슷하게 생겼으니 19 세기 후반에 노예가 양반이 되어도 그것을 알아볼 방법이 없었겠으나인도에는 외모적으로 너무나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 문제로 아직까지 평등한 인권의 길을 멀어보이기만 하다. 어쨌든 이번 독서로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의 역사와 지형에 대해 많은 지식을 얻을 계기가 된 듯하다.특히 구글어스가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

싯다르타는 29 세에 출가를 했고2009-01-24

싯다르타는 29 세에 출가를 했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29 세에 책을 쓰기 시작했다.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이 세상에 던져진 나는 결단을 내려야 하고 그 시대의 부름에 맞추어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한다더라. 다행히도 격동과 갈등과 결단에의 강요의 시대를 교묘히 피해서 동아시아의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던져지듯 태어난 나는, 지난 30 여년 동안 내 주위와 그리고 좀 더 먼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전 시대에 비해서는 다소 무게가 가벼운 듯하면서도 여전히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여러 사건들과 역사의 몸부림과는 거의 상관 없이 내 앞에 떨어진 누군가 끊임없이 던져주는 과제들만 하루하루 해나가면 되는 듯이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이념이 우리를 움직이던 시대는 지나간지 오래이고, 세상의 80퍼센트는 돈과 관련된 것에 몰두하고 있으며, 나머지의 대부분은 잊어버리기 위한 유희에 탐닉하고 있다. 무얼 위해 살아야 할지 잘 모르는 시대이기에 무엇이든 전문가가 대접받고 있으며, 무엇을 남겨야 할지 잘 모르는 세상에 살고 있기에 돈이라도 남기려고 목숨을 거는 세상이다. 내가 던져진 세상은 평균적으로 평화로우나 극단적 불행과 극단적 행복의 수치적 평균으로서의 평화가 오히려 불안감은 더욱 커지게 하는 그런 세상이다. 인류 역사상 평균적으로 이보다 더 평화로운 시대가 있었을까? 그렇기에 무엇을 결단 내려야 할지조차 몰라 던져주는 목표들을 감사히 받아 해결하면서 하루하루 사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할 시대인 것이다. 최근에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그래서 갑자기 초조해지는 것이 있다. 이 세상이 허상이거나 매트릭스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간이 아인슈타인이 말한대로 상대적인 것이 아니더라는 사실이다. 이 세상은 정말 내 눈앞에 실재하고 있으며 시간도 1분 1초 틀리지 않고 나를 통해 흘러간다. 공이거나 무인줄 알았더니 색이고 유였다. 이 세상이 무가 아니라 유라는 사실은 경의 그 자체이면서도 경악 그 자체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이들에게는 아마 끔찍한 경악일 것이다. 내 또 하이데거를 들먹이자면 불안 그 자체가 나를 엄습해 오는 것이다. 그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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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은 넘어 있는 것이다.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 어쨌든 불안에 떠밀려 억지로 입을 열 수 밖에 없는 시점에 오고만 것이다.

고속도로를 질주 하다가2009-05-09 고속도로를 질주 하다가 정말 원하는 것이 있어서 그 것이 이루어지는 상상을 했다. 꿈은 이루어지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것을 믿지만, 그런 믿음의 순수함이 너무나 부족해서 의심과 의구심이 가득했다. 그래서 다시하번 열망했고 또 열망했다. 그러자 결국 나도 모르게 하나님이 떠올랐다. 내가 이루겠다가 아니라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겠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밝아졌다. 그리고 그런 위대한 능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절대 주저 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는 평범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했다. 그러나 믿으면서 달라졌고 그 능력은 모두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이었다. 정말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우주도 구원할 수 있다. 네오처럼 예수처럼. 인류는 영원하다고 그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원했던 존재가 스스로를 영원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그보다 더 강력한 순수한 마음으로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고 원하는 자가 있는 않는 한 우리는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내가 여기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봐서는 영원하리라는 믿음이 더 강력했던 것 같다. 세상의 비밀을 깨달은 자가 있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꿈도 이루어 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의 손을 거쳐간 병자들의 생명을 얻어줄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우리를 영원하게 하였다. 성경에 쓰여져 있는 말이 진리라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불경에 나와있다. 그리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 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유교경전에 나와있다. 이미 2천년도 더 전에 현인들은 이미 깨닫고 있었다. 깨달음은 30 대에 이루어진다. 예수도 그랬고 석가모니도 그랬다. 30 대의 뇌는 깨달음의 뇌다. 동양의 작은 나라 코리아의 별것 없어 보이는 인생을 사는 나의 머릿속에도 서른살이 넘으니까 때때로 벅찬 깨달음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교회 한번 안나갔어도 신약에서 말하고자 하는바 예수의 존재 의미를 비롯해서 반야심경의 공즉시색 양자물리학의 발견들 하이데거의 난해한 문구들 그리고 내가 여기 있는 이유, 너가 여기 있는 이유, 나의 두뇌를 빌려 일어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우주의 그리고 신의 의지들. 영혼의 의미와 존재의 이유들 그리고 깨달은 자의 능력과 인류에 대한 영향들. 이 세상이 무가 아니라 유인 이유. 이런 것들을 감히 알겠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증명해내기위해, 신의 전지 전능한 능력을 보이기 위해, 마치 예수가 항아리속 물을 와인으로 바꾸었듯, 나도 그 끈을 놓치지 말고 이루려 하는 것을 이뤄 내야 할 것이며, 더욱더 믿음이 순수해져야 할 것이고 좀더 상상하고 바라고 다듬어야 할 것이다. 바라면 더욱더 큰 인류의 평화도 가능하다. 그리고 나도 너도 우리 모두는 영원할 수 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다. 이 의미를 알기까지가 참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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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님의 서거2009-05-30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하루다. 얼마전에 두 달간 삼사관학교에서 훈련을 하면서 느꼈던 것은 '자유'라는 것이 정말 소중한 것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사실 별거 아니다. 누구의 간섭 없이 원하는 꿈을 꾸고노력하면 그것을 이룰 수 있고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잘 못된 것은 틀리다고 할 수 있고인간으로서 존엄성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것바로 그것이다. 사실 쉬워 보이는 말들이지우리는 불완전한 인간들이기에 서로의 생각과 원하는 것이 판이하게 다르기에갈등이 있고 분쟁이 생기며 매사 평온할 수만은 없는 것이 실제 세상이다. 제아무리 똑똑한 천재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 절대 정답일 수 없다.그것은 정답이 아니라 의견이요 기호다. 아무리 공자요 예수요 부처님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는 순간그것은 민주주의의 몰락이요 5000 만년 인류 문명의 후퇴인 것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어던 한 사내가 자신의 목숨을 끊었다.그러나 참으로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자기 파괴적인 행동이 수천만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으며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무엇이 잘 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나를 되돌아본다. 나의 아버지는 노무현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셨고 그리고 당당하게 성공하셨다.나는 그런 아버지 덕택에 풍요롭지는 않았더라도 큰 어려움 없이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생각해보면 매순간이 행운이었고 행복이었다.나는 더 이상 나의 현재위치나 능력이나 가진 것에 대해 단 한만디의 불평도 할 수 없다.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그런 감사 덕뿐에 큰 꿈을 꿀 수 있게 되었고 그 꿈을 아직 이루지는 못했지만하루하루 꿈에 취해 공부하고 환자들을 본다.그리고 나보다 더 큰 꿈을 가슴에 품고 있는 그녀를 만났고 너무나 기적적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하루하루를 낭비 없이 보내어 그 꿈을 이루어 내는 일 뿐이다. 세상에는 많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감히 의사로써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해 보련다. 그것을 뜬 구름 잡는 책상머리 앞에서의 탁상공론으로서가 아니라당장 내일부터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의 진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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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좀더 국제적인 무대에서 활동하는 의사로서 내일 만나게 될 우리 부대의 병사들에서 나중에 만나게 될 아프리카의 아픈이들까지 마주하겠다. 멋지게 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멋진 인생은 이렇다. 힘들게 공부해서 의사가 됐고 전문의를 땄다.게다가 또 미국 의사까지 되겠다고 하고 또 그게 정말 가능할지 공부를 하면서도 끊임없는 불안과 견딤을 이겨내면서어쨌든 그래서 미국가서 레지던트를 또 하고 전문의가 되서 미국 병원에서 일하고펠로우를 하고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이제 돈 쫌 벌어볼만할 때쯤그 때부터 그 때까지 견디어 쟁취해낸 그 능력과 실력으로국제 단체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우리가 아닌 그들을 위해 살아보는거다. 국제 무대로 가기 전까지는 우리 나라의 아픈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더 나아가 세계인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일이면 좋겠다. 요즘 항상 전투복 차림으로 의무대에서 진료를 본다.북핵 문제로 항시 전투태세를 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꿈을 꿀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으며5 공시절이 아니며 전쟁이 없는 평온한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던 노무현 대통령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삶과 죽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고 했다.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1 원도 저승으로 가져갈 수 없다.남는 것은 인류의 계속적 평화로운 존재를 위한 기여밖에 없다. 우주의 존재 이유는 존재의 지속이며그것은 파괴가 아닌 평화의 존속을 통해 가능하며살아 있는 동안 그것을 실제 생활 속에서 실제의 일들을 통해 이뤄내야 한다. 그리고 꿈은 이루어진다. 그것은 가장 큰 깨달음 중 하나이다.아시아의 끄트머리의 붙어있는 자그마한 나라 한국의 작은 중소도시에서 태어난 나와 그녀도노무현처럼 오바마처럼 그리고 나의 아버지처럼 그렇게 꿈을 이뤄낼 수 있다.그것을 증명하고 싶다. 그럼으로써 깨달음을 현실로 만들고 싶다.가슴이 뜨거운 의사가 되자. 우주는 존재를 지속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으며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그 어떤 꿈도 이루어질 수 있다.그것은 진리이다.그것을 이뤄보리다.이미 이뤄낸 현인들처럼 서른 두살까지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었다면이제는 그 여행의 수확으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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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secret" 이 있다.2009-07-02 우리에겐 "secret" 이 있다. 나의 힘으로만 모든 것을 이루려 하는것에 한계를 느끼면서 결국 나와 '신'과의 대화가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간절힌 원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은 내가 이때까지 깨달은 가장 중요한 진리이다. 그러나 그것을 간절히 구하는 것이 나 만의 능력이 절대 아님을 절실하게 깨달아야 함은 물론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중 가장 강력한 파워에 연결되어 있다.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 마치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바꾼것 처럼. 순수한 믿음이다. 그것이 나를 살게 하는 것이다. '철학'은 결국 유희다.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유희다. 철학은 단 한마디면 족하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토시가 지구를 가득 메우는 책에 담겨있고 저마다 한마디 씩 하면서 학문을 이루었다. 학문도 유희의 일종 아닌가? 그런게 없으면 도저히 하루하루를 살아낼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밀림에 사는 원주민들은 철학이나 책이 없어도 잘만 산다 우리가 그들 보다 행복한가? 무엇인가에 몰두할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을 꿈이라고 한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의 삶의 허공에 떠 버린다. 하루하루의 나의 삶을 허공으로 날려보내면서 아무런 의도적인 바램이나 의지없이 하루하루를 그렇게 보낸다. 나와 세상을 만들어 냄이 없다. 바래야 만들어진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고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의 인생을 흐름에 맡기는 것은 나를 허공 속에 날려 보내는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무'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는 무와 유의 중간을 왔다갔다 하면서 여기에 존재하는 것일진다. 이 세상이 무가 아니라 유라는 것이 경이이듯 하루하루의 인생을 무가 아니라 '유'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원하는게 있다면 간절히 바라라. 그냥 그것이 이루어 지겠거니 하고 허공속에 그것을 내 맡겨 두지 마라. 최소한의 기도조차 없으면서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도대체 그 누구를 탓할 수 있단 말인가? 하루하루를 실체로서의 '나'의 의지에 의한 바램으로 만들어가라. 그것이 '나'를 허무가 아닌 허공이 아닌 '무'가 아닌 '유'로 만드는 길이요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길이다.

우리는 우주의 두뇌다. 2009-07-23 우리는 철저하게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인간을 죽지 않고 계속 살게끔 하는 메카니즘은 태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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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순간부터 작동된다. 태어나자 마자 건강한 아기는 큰 소리를 울음을 터트려 엄마의 모성애를 자극하고 엄마로 하여금 젖을 물리게 한다. 태어나서 서너달은 주로 우는 것으로 엄마의 관심을 끌지만 어느 정도 뇌가 성장하면 엄마 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위해 본능적으로 웃음을 짓게 된다. 어미는 그 웃음을 매우 귀엽게 받아들이고 모성애는 더욱 더 커져만 간다. 아이는 자기가 웃고 재롱을 떨면 어미가 더욱더 관심을 가진 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터득하고 더욱 더 귀여운 짓을 한다. 돌을 지나면 관심을 받기위해 떼를 쓸 줄 알게 된다. 더 이상 귀여운 짓만으로는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본능적이다. 그러나 그 목적은 결국 단 한가지다. 울건 웃건 떼를 쓰건 화를 내건 그것은 다 관심을 끌려는 행동이며 그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행동 양식이다. 이 후부터는 그 부모의 성격이나 가족 역동과 주변 환경 그리고 또 다른 양육자들의 여러가지 요인에 따라 다양한 방식의 관심끌기 행동이 발달하게 된다. 이것은 유치원을 지나고 초등학교를 지나 중 고등학교가 지나도 지속된다. 처음에는 부모하고만 이어지던 관계가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로 확되된다. 그리하고여 터득한 사회성 역시 기본적으로는 생존을 위한 관심 끌기요 남과 연결되기 위한 몸부림이다. 성인이 되어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그 동안 쌓아온 관심끌기 행동양식이 성격으로 고착화된다. 다 살기위한 몸부림이다. 연인들끼리의 싸움이나 부부간의 접시가 날아다니는 부부싸움도 그렇고 술주정도 손지검도 그렇고 결국 관심끌기요 생존 방식의 고착이요 행태다. 아침 마당의 결론은 언제나 관심을 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폭력적인 산적같이 생긴 사람도 상담원이 이야기를 해보면 어려서의 관심 부족에 대한 불만 표출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관심 끌기를 통한 생존 방식을 어느정도 터득할 때쯤 되면, 우리는 이성에 눈을 뜨게 되고 사랑의 열병에 휩싸이게 된다. 이는 매우 강렬한 감정이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사랑의 감정 앞에서는 냉정하거나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인간이 그랬다면 인류를 벌써 멸망했다. 솔직히 말하면 사랑의 감정은 결국 번식을 위한 본능이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이런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절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사랑이 식고 바람을 피고 집안에 피바람이 돌고 이혼하고 또 다른 배우자를 찾고... 결국 우리를 죽을 때까지 웃고 울리는 이 감정은 사실 나를 위한 것이라고 보다 인류 전체를 위한 본능이라 해야 함이 맞다. 사랑의 달콤함은 인류를 위한 고된 노역, 즉 출산 육아 양육의 고통을 잊고 극복하게 끔, 그리고 때로는 착각하게 끔 하는 마약이다. 우리 뇌에는 자연적으로 마약이 분비되고 있음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동물도 비슷하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 조금더 고차원적인 본능이 있어 그것이 우리를 웃고 울게한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이 인간은 유명해지고 싶어하고 명예나 권력을 얻고 싶어하고 돈을 모으고 싶어하는데, 그런 본능의 기저에는 죽기전에 무언가를 남겨 놓고 싶은 뿌리깊은 욕구가 자리잡고 있다. 자식을 남기는 것은 기본이요, 돈을 모아서 남기려 한다던지 족보를 만들어 이름을 남기려 한다던지 예술작품을 남기려 한다던지, 뛰어난 업적을 남기려 한다던지 하는 것이다. 심지어 남들 보다 더 많이 살인을 해서 이름을 남겨 보려는 이들도 있다. 교보문고에 쌓여있는 그 수많은 책들은 모두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하는 욕구의 집합이다. 음악을 만들고 조각을 하고 책을 쓰고 블로그에 글을 남기고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려하고 1 등을 하고 싶어하고 하는 그런 욕구들이 다 마찬가지다. 내 몸은 죽어도 없어지지 않을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욕망은 자손을 번식시켜는 욕구만큼이나 강렬한데 이것은 인간에게만 있는 특질이다. 소위 우리가 꿈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스타가 되고 싶다던지 대통령이 되고 싶다던지 노벨상을 타고 싶다던지 부처가 되고 싶다던지 깨달음을 얻고 싶다던지 하는 것 모두가 영원하고자 하는 욕구와 관련이 되어 있으며 그것이 불가능할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일 때 우리는 불안하게 된다. 이런 욕구가 없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우리의 하루하루를 이어나가게 하는 것이 밥이 아니라 꿈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질 없어보이는 꿈 때문에 오늘의 힘듦을 벼텨 낸다. 그것은 자신도 미쳐 깨닫지 못한 영원성을 향한 근본적이고 가장 강렬한 욕구 때문이다. 만약 이런 욕구가 없어지는 상태는 대개 우울증이나 불안증이나 정신병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 밥을 먹을 힘이 있더라도 자식을 낳을 생식 능력이 있더라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게 하는 강렬한 신호에 휩싸이게 하여 삶을 더 이상 연명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삶의 이유가 없어지는 것은 인간을 파멸로 이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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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는 무엇이냐? 없어지면 한 줌 재가 될 자신에 대한 불안감에 대한 달램과 의지하고픈 마음요 영원을 향한 몸부림이다. 철학은 무엇이냐? 철학의 궁국적 목적은 어차피 죽을 인생 왜 태어나서 왜 이렇게 살려고 발버퉁 치고 죽어도 살고 싶어하는 그 이유를 알아내고자 함인데 그것 역시 남들보다 더 근사한 이유를 찾아내서 남들에게 인정받고 이름을 남겨보고자 하는 욕구가 기본 바탕이 되어 있다. 그것은 나 또한 역시 마찬가지다. 죽어서 천당을 가든 지옥을 가든 아니면 불교에서 말하듯 윤회를 하든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든 우리는 영원또는 불멸이 가능할 만한 일말의 가능성을 잡아보고자 정말 발버둥을 친다.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의 시작을 찾아 낼 수 있는가? 혹자는 영혼은 몸밖에 있다고 이야기 하기까지 한다. 현대의 신경과학자들이 아무리 연구해도 도대체 인간의 의지라는 것이 뇌의 어느 부분에서 발생하는지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동물과 차별된 인간의 고차원적인 의지의 출처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단언컨데 뇌과학이 아무리 발전해서 신경 다발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 시발점을 결코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현대물리학이 원자를 끝까지 쪼갰을 때 결국 불확실적인 파동과 입자의 공존을 발견했을 뿐인 이유와 같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우리의 의지는 영원성에서 나온다. 영원하고자 하느 그 무언가가 우리 의지의 시발점이다. 그리고 빛이 동시에 파동으로 또는 입자로 존재할 수 있듯이 영원성(나는 영원의 의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은 동시에 '우리'로나 '나'로서 나의 뇌로서 나의 생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영원성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공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로서 나로서 너로서 지구로서 우주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 영원하려 한다. 영원의 의지의 가장 큰 목적은 영원함 그 자체이다. 파동이 입자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듯이 영원의 의지는 우주를 통해서 그리고 나를 통해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주는 없어질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우주가 존재하지 않았던 빅뱅 이전의 시절은 정말 존재하나? 우주의 나이가 200억 광년이라면 200억 광년 전에는 무엇이었나? 無였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無는 없다. 태초에 有였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논증한 적이 있지만, 무는 파동조차 없는 것이며 유가 될 씨앗조차 없는 것인데 태초에 무가 있었다면 지금도 無일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무에서 유를 창조 했다면 그 누군가가 있는 것 자체가 무가 아니므로 무는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태초에는 有였다. 무는 없기 때문에 그 有는 계속 有여야만 하고 계속 有가 되려고 하는 바로 그것이 영원성이다. 영원성은 동시에 물질로서 존재한다. 영원성이 영원성으로만 있는 것을 空이라고 한다. 공은 무와 다르다. 공은 영원성이라는 의지가 있는 상태이므로 무가 아니다. 그러나 공은 공으로만 존재할 수 없다. 공은 아무것도 없는 것인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있는 것은 無이지만 無로는 될 수 없으므로 有로서 존재하는데 그 존재 방식이 물질이다. 공은 물질로서 존재한다. 즉 영원성은 물질로서 존재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다. 색이 없는 공은 있을 수가 없다. 유는 동시에 공이요 색이다. 이때 물질의 특징은 유한성인데 그 유한성을 극복하면서 영원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하며 번식해야 한다. 번식은 유한한 물질이 영원하기 위해 방법이다. 영원하고자 함은 그 무엇보다 강력한 파워다. 우주를 만들고 생명을 잉태해낸 힘이다. 우주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 무엇이라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그 힘은 별을 만들고 지구를 만들고 박테리아를 만들고 그것을 진화시켜 원숭이를 만들고 인간을 만들어낸 힘이다. 아니 그렇게 존재한다. 시간의 개념은 유한한 물질계에 속하는 인간의 개념이지만 영원성에는 시간의 개념이 없다. 100억년전에 박테리아가 만들어진 시대와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지금시대가 영원의 관점에서는 찰나요 동시다. 영원성은 동시에 태초에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핵심이다.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는 결국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인간은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영원성의 존재 방식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없이는 영원성의 존재방식이 완벽하지 않다.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이 분명 있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바로 그것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랑하고 환희를 느끼고 행복해하고 무엇보다도 꿈꾸고 의지를 가지고 더 나은 무엇인가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동물과 인간의 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이 동물에 비해 대뇌 피질이 비약적으로 발달해 있다는 것인데 대뇌 피질의 기능이 바로 의지와 연관된 기능이다. 외계인이 있다면 이 드넓은 우주에서 우리 인간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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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를 가지고 무언가를 꿈꾸고 바랄 수 있다. 생명은 우주의 두뇌다. 그리고 인간은 그 두뇌의 대뇌 피질이다. 영원성은 우주로 존재하고 있고 그 우주 속에서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는데 바로 그 인간이 꿈을 꾸고 있다. 무엇인가를 소망하고 있다. 열망하고 있다. 영원성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온 우주가 나를 통해 웃고 울고 사랑하고 행복해 하고 꿈을 꾸고 때로는 분노하고 절망하고 불안해한다. 다만 물질은 변화로서 영원할 수 있으므로 우리의 육신은 시간이 되면 없어진다. 그리고 자식이 태어나고 자손이 번성한다. 물질에 속한 우리는 영원을 갈망하다 그 만큼 강렬한 의지로 없어지려고도 한다. 그리고 남을 없애려 한다. 파괴의 본능은 영원의 본능만큼 강력하다. 물질은 없어짐으로써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파괴도 영원성의 한 존재 방식이다. 중요하고 보다 더 근본적인 파워는 파괴가 아니라 영원하고자 함이다. 모든 문화권에서 선으로 생각하는 가치인 사랑, 우정, 배려, 희생등과 같은 가치들은 영원성에 부합하는 가치들이다. 증오, 분노, 미움등과 같은 가치들은 유한성의 속성이다. 모든 문화권에서는 영원성에 부합하는 가치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법률이나 관습등과 같은 제도를 통해 보호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언제나 선이 악을 이긴다는 믿음을 소중히 여긴다. 결국 천사가 악마를 이기는 것은 진리이다. 결국 영원성이 나를 움직인다고 하겠다. 그리고 우리가 지구를 위해 우주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지금 당장 행복해 하는 것이고 세상의 아름다움에 환호하고 환희감을 느낌고 기뻐하는 것이며 영원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 영원의 가치중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가장 최상의 가치는 역시 사랑이다. 지금 내가 사랑을 하고 있는 순간 온 우주가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요 내가 기뻐하는 순간 온 우주가 기뻐하는 것이다. 나는 우주의 두뇌요 우주의 눈이요 우주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요 내가 소중하고 남이 소중하고 이 모든 것들이 참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다. 내 육신은 없어지더라도 너무나도 당연히 나는 그 영원성의 한 부분으로 영원할 것이며 영원성은 물질로서만으로 존재할 수 있으므로 그 무엇인가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내가 결국 우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청난 비밀 한가지. 영원성의 그 어마어마한 파워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은 다름아닌 바로 나라는 것이다. 만약 나의 꿈이 영원성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나의 의지와 바램과 꿈은 세상을 움직이고 우주를 움직일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나의 이 소중한 꿈은 이 우주의 꿈이요 영원의 꿈이요 영원 그 자체이다. 사랑하고 기뻐하고 환호하고 행복해하고 꿈꾸자.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그리고 우리를 통해 할 수 있는 우주의 영원을 축복하고 지속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핵심이다. 나만의 방식과 나만의 창조와 나만의 사랑으로 우주를 꿈꾸자.

좁은문2009-08-01 마태복음 7 장 13 절과 14 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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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갈때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말리고 비판하고 때로는 욕한다. 그것에 용기를 북독아주는 사람은 그닥 많지 않다.그것은 고독하고도 험난하고 멀고도 긴 길이다.그리하여 찾는 자가 적지만 그 길이야말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자신은 단 하루의 노력조차 제대로 해보지 않고서 다른 사람의 무모해 보이는 노력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그 틈이 아무리 적다 하더라도 끝까지 참아내기만 한다면 그 좁지만 광할한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 무엇을 얻고자 하면 3 개월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것에 투자해보라고 어느 성공한 세계적인 마케팅 책임자가 이야기 하였다. 단 3 개월이다. 그러면 길이 보인다.3 개월의 노력조차 해보지 않은 자들이 나에게 뭐라 왈가왈부 할 수 없다.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길은 좁은 문을 통과해야 얻을 수 있는 길이요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야 이를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영원성의 발현이다. 영원을 향한 부질없어 보이는 갈망과 노력은 매우 비좁은 문이라 거의 아무도 찾지 않는다.그러나 그 너머에 영원의 생명이 있다. 다시 마태복음 7 장을 인용해보겠다.*********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구하는 이미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 꿈은 이루어진다.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성경을 정말 진리라면 위의 말도 진리일진대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 하는 것인가? 다만 꿈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마르틴 하이데거는 그의 그 어렵디 어려운 역작, '존재와 시간'에게 존재는 시간을 통해 존재한다고 하였다.우리는 영원성의 물질계에 속해있으므로 시간의 구속을 받는다. 따라서 간절히 바라면서 그 바라는 마음이 시키는대로 노력하면서 그저 그 꿈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기다리면 된다.대부분은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여 포기한다.아니 기다리는 것이 끔찍해 보여서 아얘 시도도 하지 않는다.그리고는 바램이 이루어 지지 않는다고 신세 한탄만 한다. 다시 마태복음 7 장 25 절이다.**********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너의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가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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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지 말라는 것인데꿈을 이루는데 가장 큰 해방꾼은 자기 스스로의 염려와 불안과 그로인한 중도 포기이다. 뭐 해먹고 살까 걱정하지 말고 전진하라는 말이다. 대부분 뭐해먹고 살까하는 문제에서 또 포기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다. 꿈이 있다. 그 꿈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사람조차 곰곰히 생각해보면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 다 이룰 수 있다. 그 꿈이 영원성의 방향과 같은 방향이기만 하다면 말이다. 또 마태복음에 8 장 21 절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무엇이란 말인가?그것은 바로 영원성이다. 영원하고자 함이다. 영원히 존재하고자 함이다.물질 세계의 가장 큰 영원의 가치는 무엇인가?바로 사랑이다. 예수님 말씀의 핵심인 '서로 사랑하라'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신의 종이 아니다. 인류가 수천년 동안 착각해온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깨달았다. 내가 곧 신이라는 것을 요한복음 10 장 34 절을 보면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오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 멍충이들아!!!"이런 어투처럼 들린다. 그래도 못알아 들으니 요한복음 10 장 35 절에 보면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요한복음 1 장 1-3 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이 말씀이 도대체 무엇인가?영원하고자 함이다. 영원성이 하나님, 즉 신과 함께 계셨으니 영원성이 신이다.만물이 영원성으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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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성, 또는 신은 우주 만물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나로서도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우주에서 유일하게 의지를 가진 존재 인간은 정체는 바로 그 영원성의 두뇌다. 나는 신의 두뇌다.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지 않았느냐!!!!""그러니까 너가 구하려 하면 다 구할 수 있단 말이다!!!!" 그러나 이것을 알아야 한다. 요한복음 14 장 6 절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영원성의 가치를 향한 바램을 통해 구함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정리하면 태초에 영원성이 있었다. 그 영원성은 우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나로서도 존재한다. 생명은 영원성의 고차원적 발현이요 인간은 영원성의 두뇌이다. 우리는 영원하고자 하기에 무엇인가를 바라고 그 바램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영원의 힘을 통해 그러나 그 구함의 길은 좁을 길이요 우리가 물질계에 속해 시간을 통해 존재하는 까닭에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은 인내와 기다림을 필요한다. 그러나 염려하지 말라. 구하는 자마다 다 구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곧 영원의 힘을 통해 가능하다. 영원성에 대한 믿음을 통해 가능하다. 예수를 믿고 따르고 예수를 통해 가능하다는 말은 예수가 깨달을 바대로 하라는 말이다. 예수가 깨달은 바는 바로 ***** 내가 신이요 그러므로 영원할 것이다 너도 신이요 그러므로 너도 영원할 것이다. ***** 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종으로 만들이유가 전혀 없다. 우리가 도대체 누구의 종이란 말인가? 그러나 눈먼자 믿지 못하는 자에게 이런 영원의 생명은 너무나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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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말의 뜻은 너희가 영원성을 통해 존재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영원하리라는 진리를 깨닫는다면 영원의 힘으로 구하는 것을 얻게 할 것이요, 충만한 기쁨을 줄것이요 현재에 얽매이지 않게 할 것이라는 말이요 영원의 생명을 얻게 하리라는 말이다. 산다고 다 사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나'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영원성을 통해 살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터 새로 태어나는 것이요 과거의 온갖 그림자들을 떨쳐낼 수 있는 것이다. 태생적 환경이 나에게 가져다 준 구속은 누구나 깨닫고 믿으면 벗어버릴 수 있다.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를 기뻐하기만 하고 행복해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목표의 구체화2009-08-28

영원의 의지로 발현된 나와 인류와 생명과 우주라는 점 자각유한하고자 하는 의지와 영원하고자 하는 의지의 대립과 투쟁의 결과가 이 세상이라는 점 자각삶의 의미와 가능성에 대한 개달음영원성에 대한 믿음현실 세계에 대한 긍정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관심그리고 측은지심질병, 기아, 전쟁사랑과 평화의사로서의 나영원성을 지켜내기 위한 사투에 참여직접 행동하는 것이 필요함을 자각사상과 철학의 중요성과 역사성의 중요함과 현실적인 것들의 중요성 자각무엇보다 역사, 그리고 현재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필요함을 자각권력과 힘에 의해 쓰여진 역사 뒷면의 진실을 보는 혜안이 필요함을 자각깊이 있는 의학공부와 더불어 역사 공부 병행분쟁과 기아와 질병과 전쟁의 역사와 이유와 해결책의학과 철학과 역사에 정통한 의사가 되어야 함앞으로 10 년 움추리고 공부하기로 함미국과 유엔을 이용해보기로 함현재 의사로서 나의 의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인문적 지식이 턱없이 부족함을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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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군의관 3 년동안은 의학공부에 매진해서 미국 의사가 되보기로 함의학의 최전선을 달리는 나라에 가보기로 함, 그리고 그곳의 모순을 경험해보기로 함군의관 3 년차에 역사 서적을 탐독하여 세상 보는 시각을 넓힘특히 19 세기와 20 세기 역사에 좀더 관심을 가져보기로 함미국에서 전문의 획득후 국제보건학을 공부하기로 함기아와 질병과 전쟁의 이유와 해결책에 대해 연구해 보기로 함앞으로 10 년후 UN 또는 WHO 또는 NGO 단체에서 세계를 상대로 일해보기로 함그리고 20 년후 책을 한권 써보기로 함 '왜 세게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왜 세계는 전쟁을 멈추지 않는가?' 요즘 읽고 있는 책들인데 인생의 화두가 될만한 제목이다.영원의 의지로 발현된 우리들은 유한하려는 의지에 굴복할 것인가 그래도 결국 영원성이 승리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