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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화 l 319 명을 합치면 주교는 모두 36명(추기경 1명, 대주교 5명, 주교 30명)이다. 한국 천주교에는 서울·대구·광주 등 대교구 3곳을 포함 해 16개 교구가 있다. 이와 별도로 북한에도 3개의 교구가 있 으며, 평양교구장은 서울대교구장이, 함흥교구장은 춘천교구 장이, 덕원 자치 수도원구 교구장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 원장 박현동 아빠스가 각각 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설정한 조선대목구로 출발했으며, 1898년 명동대성당 봉헌식을 연 것을 계기로 한국 천주교가 크게 발전하게 됐다. 1942 년 첫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주교가 제10대 교구장을 맡은 이래 윤공희 대주교, 김수환 추기경,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2012년 염수정 대주교가 제14대 교구장을 맡고 있다. 서울 대교구는 조규만 주교가 2006년부터 보좌 주교를 맡고 있 으며, 유 주교와 정 주교의 임명으로 보좌 주교는 3명으로 늘었다. 문화재 개 요 2013년은 문화유산계에서는 다시 돌아보기 싫은 해로 기 록될지도 모르겠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을 두고 대혼란 에 빠져드는가 싶더니, 한국미를 대표하는 국보 83호 금동미 륵반가사유상 해외 반출을 두고서는 볼썽사나운 다툼이 벌어 졌다. 이런 혼란은 급기야 화마에 휩싸였다가 화려하게 복구 완공을 알린 숭례문에서 곪아 터져 ‘총체적 문화재 관리체계 부실’이라는 논란으로 발전했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를 ‘원전비리’ 수준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총체적 문화재 부실이라는 논란 에 다름 아닌 국가의 문화재 정책을 총괄하는 문화재청장이 깊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 경질을 자초하기에 이르렀다. 숭례문, 5년 3개월 만에 복구 준공 국보 1호 숭례문이 5년 3개월에 걸친 복구를 완료하고 5월 4일 다시 공개됐다. 완공식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복구사업 참 여 장인, 그리고 일반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 5월 4일 오후 열린 숭례문 복구 기념식에서 어린이 무용단이 숭례 문의 만복을 기원하는 복조리 춤을 추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축사를 통해 “숭례문은 우리의 민족혼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라면서 “숭례문의 부 활은 단순한 문화재 복구 차원의 의미를 넘어서 우리 민족의 긍지를 되살리고, 새로운 희망의 문, 새 시대의 문이 열린 것” 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새 정부는 국정 기조의 핵 심축으로 문화융성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면서 “숭례문의 새 문 이 활짝 열렸듯이 우리의 문화 자산과 콘텐츠를 인류가 함께 누리고 즐길 수 있도록 세계로 나아가는 문을 활짝 열어가겠 다”고 강조했다. ‘반구대 청장’의 등장과 반구대 논란 박근혜 정부 출범과 더불어 초대 문화재청장으로 울주 반 구대 암각화의 맹렬한 보존운동가 변영섭 고려대 미술사학 과 교수가 3월 18일 임명되면서 문화유산계는 술렁이기 시 작했다. 자신의 청장 임명을 반구대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으 로 안다고 밝힌 그는 청장 취임과 더불어 사연댐 수면 아래로 연중 자맥질을 반복하는 암각화 문제 해결에 올인하기 시작 했다. 취임과 더불어 예정에도 없던 반구대 암각화 특별전을 밀 어붙여 불과 1주일 만에 개막하는가 하면, 이 문제 해결을 울 산시가 가로막고 있다면서 각종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에게는 ‘반구대 청장’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 했다. 비단 그 자신뿐만 아니라 문화재청 또한 이 문제 해결을 위 해 사연댐 수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시민에 대한 맑 은 물 공급을 내세운 울산시는 대체 수원 개발 없이는 사연댐 물을 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런 대립은 변 청장 이전 에도 10년이 넘게 지속된 해묵은 문제였다. 하지만 변 청장이 주도한 강공 드라이브는 그에 상응하는 더 강한 반발을 불렀다. 울산시는 물론이고 이 지역을 장악한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그들이 속한 새누리당이 결국 울산시 편을 들어 사연댐 수위 낮추기가 아닌 다른 방식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대립이 격화하자 결국 국무조정실이 나서 중재를 하기에 이르면서 정홍원 국무총리가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고 결국 국무조정실과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과 울산시 등 4개 기관이 문제 해결을 위한 MOU를 6월 6일 체결하기에 이 르렀다. 한데 그 내용이 문화재청으로서는 굴욕에 가까웠다. 이와 관련한 거의 모든 정책 결정권은 국무조정실로 넘겨줘야 했 으며, 이후 정부는 암각화 구출을 위한 이동식 임시 물막이 시 설인 ‘카이네틱 댐’ 건설 방안을 확정했다. 카이네틱 댐은 사연 댐 수위를 낮춰 암각화를 보호해야 한다는 문화재청 생각과 는 거리가 한참이나 먼 것이며, 그 주변에 생태제방이나 차수 벽을 설치해야 한다는 울산시 생각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 다. 이 때문에 사연댐에 질식한 것은 암각화가 아니라 문화재 전체라는 말까지 나왔다. 반가사유상 반출 논란 문화재위원회는 2월 24일 회의에서 미국 뉴욕 메트로폴 리탄박물관이 10월 29일부터 이듬해 2월 23일까지 이 박물 관에서 개최하는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 전시를 위해 국

문화재 - 연합뉴스cdnvod.yonhapnews.co.kr/yonhapnewsvod/public/yearbook/2014/A/09_16_n.pdf경주에서는 왕릉급 무덤이 잇따라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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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문화재 - 연합뉴스cdnvod.yonhapnews.co.kr/yonhapnewsvod/public/yearbook/2014/A/09_16_n.pdf경주에서는 왕릉급 무덤이 잇따라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문 화 l 319

명을 합치면 주교는 모두 36명(추기경 1명, 대주교 5명, 주교

30명)이다.

한국 천주교에는 서울·대구·광주 등 대교구 3곳을 포함

해 16개 교구가 있다. 이와 별도로 북한에도 3개의 교구가 있

으며, 평양교구장은 서울대교구장이, 함흥교구장은 춘천교구

장이, 덕원 자치 수도원구 교구장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

원장 박현동 아빠스가 각각 교구장 서리를 맡고 있다.

서울대교구는 183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설정한

조선대목구로 출발했으며, 1898년 명동대성당 봉헌식을

연 것을 계기로 한국 천주교가 크게 발전하게 됐다. 1942

년 첫 한국인 주교인 노기남 주교가 제10대 교구장을 맡은

이래 윤공희 대주교, 김수환 추기경,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2012년 염수정 대주교가 제14대 교구장을 맡고 있다. 서울

대교구는 조규만 주교가 2006년부터 보좌 주교를 맡고 있

으며, 유 주교와 정 주교의 임명으로 보좌 주교는 3명으로

늘었다.

문화재

■ 개 요

2013년은 문화유산계에서는 다시 돌아보기 싫은 해로 기

록될지도 모르겠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안을 두고 대혼란

에 빠져드는가 싶더니, 한국미를 대표하는 국보 83호 금동미

륵반가사유상 해외 반출을 두고서는 볼썽사나운 다툼이 벌어

졌다. 이런 혼란은 급기야 화마에 휩싸였다가 화려하게 복구

완공을 알린 숭례문에서 곪아 터져 ‘총체적 문화재 관리체계

부실’이라는 논란으로 발전했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이를 ‘원전비리’ 수준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뜻밖에도 총체적 문화재 부실이라는 논란

에 다름 아닌 국가의 문화재 정책을 총괄하는 문화재청장이

깊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 경질을 자초하기에 이르렀다.

■ 숭례문, 5년 3개월 만에 복구 준공

국보 1호 숭례문이 5년 3개월에 걸친 복구를 완료하고 5월

4일 다시 공개됐다. 완공식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복구사업 참

여 장인, 그리고 일반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5월4일오후열린숭례문복구기념식에서어린이무용단이숭례문의만복을기원하는복조리춤을추고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축사를 통해 “숭례문은 우리의 민족혼과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라면서 “숭례문의 부

활은 단순한 문화재 복구 차원의 의미를 넘어서 우리 민족의

긍지를 되살리고, 새로운 희망의 문, 새 시대의 문이 열린 것”

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새 정부는 국정 기조의 핵

심축으로 문화융성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면서 “숭례문의 새 문

이 활짝 열렸듯이 우리의 문화 자산과 콘텐츠를 인류가 함께

누리고 즐길 수 있도록 세계로 나아가는 문을 활짝 열어가겠

다”고 강조했다.

■ ‘반구대 청장’의 등장과 반구대 논란

박근혜 정부 출범과 더불어 초대 문화재청장으로 울주 반

구대 암각화의 맹렬한 보존운동가 변영섭 고려대 미술사학

과 교수가 3월 18일 임명되면서 문화유산계는 술렁이기 시

작했다. 자신의 청장 임명을 반구대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으

로 안다고 밝힌 그는 청장 취임과 더불어 사연댐 수면 아래로

연중 자맥질을 반복하는 암각화 문제 해결에 올인하기 시작

했다.

취임과 더불어 예정에도 없던 반구대 암각화 특별전을 밀

어붙여 불과 1주일 만에 개막하는가 하면, 이 문제 해결을 울

산시가 가로막고 있다면서 각종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그에게는 ‘반구대 청장’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

했다.

비단 그 자신뿐만 아니라 문화재청 또한 이 문제 해결을 위

해 사연댐 수위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시민에 대한 맑

은 물 공급을 내세운 울산시는 대체 수원 개발 없이는 사연댐

물을 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런 대립은 변 청장 이전

에도 10년이 넘게 지속된 해묵은 문제였다.

하지만 변 청장이 주도한 강공 드라이브는 그에 상응하는

더 강한 반발을 불렀다. 울산시는 물론이고 이 지역을 장악한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그들이 속한 새누리당이 결국 울산시

편을 들어 사연댐 수위 낮추기가 아닌 다른 방식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대립이 격화하자 결국 국무조정실이 나서 중재를

하기에 이르면서 정홍원 국무총리가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고

결국 국무조정실과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과 울산시 등

4개 기관이 문제 해결을 위한 MOU를 6월 6일 체결하기에 이

르렀다.

한데 그 내용이 문화재청으로서는 굴욕에 가까웠다. 이와

관련한 거의 모든 정책 결정권은 국무조정실로 넘겨줘야 했

으며, 이후 정부는 암각화 구출을 위한 이동식 임시 물막이 시

설인 ‘카이네틱 댐’ 건설 방안을 확정했다. 카이네틱 댐은 사연

댐 수위를 낮춰 암각화를 보호해야 한다는 문화재청 생각과

는 거리가 한참이나 먼 것이며, 그 주변에 생태제방이나 차수

벽을 설치해야 한다는 울산시 생각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

다. 이 때문에 사연댐에 질식한 것은 암각화가 아니라 문화재

전체라는 말까지 나왔다.

■ 반가사유상 반출 논란

문화재위원회는 2월 24일 회의에서 미국 뉴욕 메트로폴

리탄박물관이 10월 29일부터 이듬해 2월 23일까지 이 박물

관에서 개최하는 ‘황금의 나라, 신라’ 특별전 전시를 위해 국

Page 2: 문화재 - 연합뉴스cdnvod.yonhapnews.co.kr/yonhapnewsvod/public/yearbook/2014/A/09_16_n.pdf경주에서는 왕릉급 무덤이 잇따라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320 l 문 화

립중앙박물관이 요청한 대로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을

비롯한 국보 12점, 보물 14점을 포함한 국내 유물 대여를 결

정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장이 최종 결정권을 지닌 이런 결정은 변

영섭 청장이 임명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변 청장은 문화재

위원회 심의 결과에 아랑곳없이 잦은 해외 대여와 그에 따른

훼손 우려 등을 들어 금동반가사유상에 대한 대여불가 판정

을 했다. 변 청장 주변에 포진한 외부 인사들 또한 변 청장을

지지하는 발언을 잇달아 신문 기고나 방송 출연 등으로 쏟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여가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 발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 역시 극심한 반발을 불렀다. 무엇보다 이런 결정

이 문화재위 심의결정을 번복한 것인 데다 그 소장기관이자

특별전 공동주최 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이 격렬하게 저항했

다. 이에 맞서 변 청장은 같은 삼국시대 불상으로 성격이 비슷

한 78호 금동반가사유상을 반출해 나가라고 요구했다. 문화

재청은 이런 방침을 최종 확정해 7월 29일 국립중앙박물관이

반출 허가를 신청한 문화재 목록 중에서 금동반가사유상 등 3

건 3점을 제외한 반출허가 목록 18건 23점을 확정해 박물관

에 공식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논란은 한·미 관계를 고려한 청와대가 개입하고 유

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나서 제시한 중재안을 8월 9일

문화재청이 받아들임으로써 일단락을 지었다. 그렇지만 83호

반가사유상은 결국 미국 나들이를 했다는 점에서 문화재청이

나 변 청장으로서는 또 한 번 굴욕을 맛봐야 했다.

■ 단청 훼손이 촉발한 숭례문 복구 부실 논란

이런 두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그런대로 평정함을 찾아가

던 문화유산계는 숭례문이라는 핵폭탄이 터지면서 쑥대밭이

되다시피 했다. 5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가운

데 5년여에 걸친 복구가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화려하게 알린

숭례문이 실은 부실 복구의 총체적인 결과물이라는 주장과

보도가 터진 것이다.

그 직접 계기는 단청에서 발생했다. 복구 완공식이 있고 나

서 한 달 가량 지나 숭례문에서 단청이 훼손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터진 것이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단청 훼손은 이미 완

공 직후에 발생했다.

이는 철저한 고증과 전통기법에 따른 복구를 표방한 문화

재청에는 일대 타격이었다. 숭례문에는 단청 외에도 목공사

(대목장), 기와(기와장과 번와장), 철물(철물장), 성벽(석장) 등

의 분야에서 각각 장인이 투입돼 복구공사를 했다. 이 중에서

도 실은 단청 분야에 문제가 가장 많다는 사실은 적어도 문화

재 분야에서는 공개된 비밀이었다. 40년 이상 단절된 전통 단

청기법을 되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기 때

문이다.

한데 단청에만 국한되는 듯하던 숭례문 부실 복구 논란이

갑자기 커졌다. 변 청장을 필두로 그와 가까운 주변 문화계 인

사들이 숭례문은 단청뿐만 아니라 대목이나 석장, 기와 등의

여러 방면에서도 문제투성이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이런 와

중에 특정 언론이 이들 주변인사로 자문단을 꾸려 문화재 부

실 문제를 시리즈로 다루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유럽 순방에서 돌아온 직후인 11월 11일 박

근혜 대통령은 “문화재 행정 전반에 대해서 철저한 조사를

통해 문제점을 밝히고, 비위 관련자에 대해서 책임을 엄중히

묻고 또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할 것”을 지시하기에 이르

렀다.

이에 즈음해 문화재 관리 부실 문제는 계속 제기되고 급기

야 석굴암과 팔만대장경판도 안전 문제가 심각하다는 보도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 되자 12월 2일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석

굴암을 찾아 현장을 점검하기도 했다. 하지만 석굴암은 멀쩡

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보도에서 위험 요소로 지적한 석

굴암 내부 균열 중에는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이 석굴암을 창

건하다가 생긴 균열도 있었다. 나아가 팔만대장경판도 보도

와는 달리 보존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이내 드러

났다.

이런 와중에 11월 15일 변 청장이 전격 경질됐다. 그의 경

질은 숭례문 부실 복구 논란 때문인 것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제 이유는 이런 일련의 문화재 사태 전개에 다름 아

닌 변 청장 자신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논란

을 수습하고 대응책을 내놓아야 할 문화재청장이 주변 인사

들을 동원에 논란을 부추기고, 더구나 특정 언론사에 문화재

청 내부 자료를 제공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를 즈음해 숭례문 복구 부실 논란을 포함한 문화재계 전

반은 원전비리에 준하는 비리의 온상처럼 몰리면서 강도 높

은 감사원 감사와 경찰 수사가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 집안 고구려비 발견과 삼국유사 왕력편 고판본 공개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마셴(麻線)향 마셴촌에서

기존에 알려진 광개토왕비문을 압축한 듯한 내용을 새긴 고

구려 비석이 발견, 공개됐다. 광개토대왕비, 충주 고구려비에

이어 세 번째 고구려비로 등록된 이 비석은 광개토왕비처럼

고구려 역대 왕릉을 관리하기 위한 규정을 담은 이른바 수묘

비(守墓碑)로 평가됐다.

이 비석은 2012년 7월에 발견됐지만 그런 사실을 중국 당

국은 늦게 공개한 것이다. 중국 당국 발표에 의하면 비석은 윗

부분과 아랫부분이 결실된 상태로, 현재 크기는 높이 1m73

㎝, 너비 60.6~66.5㎝, 두께 12.5~21㎝다. 무게는 464.5kg.

비석 정면에는 예서체로 총 218개 글자를 새겼다.

비석은 총 10행으로, 마지막 10행을 제외하고 행마다 22자

를 적었다. 10행에는 20자가 확인된다. 218자 중 판독이 가능

한 글자는 140자.▲10월촬영된벗겨진숭례문처마단청일부모습.

Page 3: 문화재 - 연합뉴스cdnvod.yonhapnews.co.kr/yonhapnewsvod/public/yearbook/2014/A/09_16_n.pdf경주에서는 왕릉급 무덤이 잇따라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문 화 l 321

비문은 광개토왕비 비문을 압축한 듯한 느낌을 준다. 첫머

리에는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창건하니라(始祖鄒牟王之創基

也)” “하백의 손자(河伯之孫)”, 그리고 그런 추모가 “나라를 일

으켜 (왕위가) 후대로 전해졌다”는 구절 등이 보인다. 이어 연

호(烟戶)를 배치해서 “사시(四時)로 제사에 대비케 하고” “부

유한 자들이 (묘를 관리하는 사람들인) 수묘인(守墓人)들을 함

부로 사고팔 수 없다”는 구절 등이 발견됐다.

그런가 하면 국내에서는 국보급 삼국유사 왕력편 조선초기

판본이 공개됐다. 이 왕력편은 구석기 고고학자 겸 서지학자

로 연세대 사학과에 오래 봉직하면서 대학박물관장을 역임한

고(故) 손보기(1922~2010년) 씨가 소장하던 것으로, 유족이

이 대학에 기증하면서 공개됐다.

기증본은 ‘왕력편’과 삼국시대 각종 기이한 이야기를 모은

‘기이편(紀異篇)’ 권1과 권2로 구성된다. 검토 결과 출판 상

태로 보아 조선 초기에 간행된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이 확인

됐다.

이 판본 왕력편은 삼국유사를 구성하는 여러 편 중에서도

유독 글자의 탈락이나 오류가 심한 기존 판본을 상당히 교정

한다는 점에서 국보급으로 평가됐다. 예컨대 기존 조선 중종

시대에 간행된 임신본을 통해 신라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어

머니 천명부인(天明夫人)은 죽은 뒤에 받은 이름인 시호가 문

정(文貞)이라 했지만 이번 조선초기본에서는 문진(文眞)으로

쓰였다.

신라 진덕여왕 아버지는 국기안(國其安)으로 알려졌지만

손보기 본에서는 국진안(國眞安)으로 드러났다. 또한 진덕여

왕의 어머니 아니부인은 아버지가 기존 자료에는 이름이 ‘奴’

이며 사후에 ○○갈문왕(葛文王)으로 추봉되었다고 했지만

이 자료에서는 기존에 탈락한 갈문왕 이름이 ‘포천(蒲天)’으로

드러났다.

■ 경주에서 잇단 왕릉급 무덤 발굴

경주에서는 왕릉급 무덤이 잇따라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계림문화재연구원은 공장 부지에 포함된 경

주시 천북면 신당리 산7번지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통일신

라 어느 왕, 혹은 그에 준하는 최고 지배층의 대형 봉토분을

확인했다.

원형 봉토분인 이 고분의 봉분 바깥으로는 3단 석축으로 호

석(護石)을 쌓아 돌리고, 일정한 구간마다 받침돌을 세운 것

으로 드러났다. 무덤

주인공을 매장한 석

실(石室)은 봉토 중

앙에서 발견됐다. 호

석 기준으로 고분

은 지름 14.7m이며,

둘레는 현재 4분의

1 정도가 유실되고

35.5m 가량 남았지

만 원래는 46.3m였

던 것으로 추정된다.

호석에 비스듬히

기대어 붙인 받침돌

은 대체로 120~178

㎝ 간격으로 모두 12

개가 확인됐다. 받침돌은 길이 125㎝, 폭 35㎝ 가량이며, 호석

과 맞닿은 상부 부분에는 빗금을 치듯이 돌을 잘 가공한 것으

로 밝혀졌다. 봉분 앞쪽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 호석에서 120

㎝ 떨어진 지점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최고 지배층 무덤에서는

흔히 발견되는 돌로 만든 상(床) 모양 시설물인 상석(床石)이

있던 흔적도 완연히 드러났다. 고분은 유물 대부분이 도굴된

까닭에 만든 시기를 가늠하기 힘들지만 8세기 중반 무렵 왕릉

혹은 그에 준하는 최고 신분층이 묻힌 곳으로 추정됐다.

전남 함평에서 왕릉급에 견줄 만한 대규모 지방수장층 백

제시대 고분이 발굴됐다. 동신대 유적조사단이 이곳 학교면

마산리 산16-2번지 마산리 고분군(전라남도 기념물 제122

호) 중 봉토 규모가 가장 큰 제1호분(봉분 지름 47m)을 발굴한

결과 이 무덤은 주인공을 안치한 봉분 내부 시설인 석실(石室)

은 장방형이며 길이 523㎝, 너비 250㎝, 높이 290㎝에 이르

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석실 규모는 현재까지 확인된 전남

지역 삼국시대 고분 중 최대 규모이며, 백제지역에서도 최상

위그룹에 속하는 초대형에 속하며 충남 공주 지방에서 발견

된 무령왕릉에 비견됐다.

1921년 조선총독부가 발굴한 신라시대 적석목곽분인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한 환두대도(環頭大刀)에서는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글자가 확인됐다. 글자는 칼집 끝 부분과 자루

와 만나는 첫 부분을 장식한 금속(금동)에서 각각 확인됐다.

하지만 이사지왕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보이는 신라 왕

중에서 누구에 해당하는지는 확정하지 못했다.

▲전남함평군학교면마산리고분군중제1호분발굴현장의입구막음시설.

Page 4: 문화재 - 연합뉴스cdnvod.yonhapnews.co.kr/yonhapnewsvod/public/yearbook/2014/A/09_16_n.pdf경주에서는 왕릉급 무덤이 잇따라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322 l 문 화

■ 김장문화, 인류무형유산 등재

한국의 ‘김장문화(Kimjang; Making and Sharing

Kimchi in the Republic of Korea)’가 12월 5일 아제르바이

잔 바쿠에서 열린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인류

무형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등재됐다. 이로써 한국은 종묘제례·종묘제례악, 판소리, 강

릉 단오제 등에 이어 총 16건에 이르는 인류무형유산을 보유

하게 됐다.

무형유산위는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 세대를 거쳐 내려온

김장이 한국인들에게는 이웃 간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한

편 그들 사이에 연대감과 정체성, 소속감을 증대시켰다”면서

“김장의 등재는 비슷하게 자연재료를 창의적으로 이용하는

식습관을 가진 국내외 다양한 공동체 간의 대화를 촉진할 것”

이라고 평가했다.

‘난중일기’와 ‘새마을운동기록물’은 6월 18일 광주광역시 라

마다플라자광주호텔에서 열린 제11차 세계기록유산 국제자

문위원회(IAC·The 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

of the UNESCO Memory of the World)에서 세계기록유산

(Memory of the World)에 각각 등재됐다.

한국은 이로써 훈민정음을 필두로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

요절, 승정원일기, 조선왕조의궤, 해인사 대장경판 및 제경판,

동의보감, 일성록,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에 이어 모두 11건

에 이르는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한편 북한의 개성역사지구는 6월 23일 캄보디아 프놈펜

에서 열린 제37차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WHC는 개성역사유적지구 유산들이 “통일된 고

려왕조가 사상적으로 불교에서 유교로 넘어가는 시기의 정

치적, 문화적, 사상적, 정신적인 가치를 내포하며 이는 도시

의 풍수적 입지, 궁궐과 고분군, 성벽과 대문으로 구성된 도

심 방어 시스템, 그리고 교육기관을 통해 볼 수 있다”고 평가

했다.

개성역사유적지구는 개성성벽 5개 구역, 만월대와 첨성대

유적, 개성 남대문, 고려 성균관, 숭양서원, 선죽교와 표충사,

왕건릉 등 7개 왕릉과 명릉, 공민왕릉을 포함한다.

관 광

■ 개 요

2013년에는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이 1천200만 명

을 돌파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인이 일본인을 제

치고 처음으로 방한 외래객 1위에 올라 한국을 찾는 최대 ‘큰

손’으로 등극했다. 방한 외국인이 늘어난 반면 해외로 간 내국

인 여행객도 동시에 급증해 관광수지는 13년 연속 적자를 기

록했다.

관광 산업으로는 인천 경제자유구역에서 외국인 전용 카지

노를 낀 복합리조트 사업이 잇따라 추진돼 영종도가 ‘한국판

마카오’로 뜰지 주목 받았다. 여행사 단체 관광보다 개별 여행

을 떠나는 사람이 늘면서 모바일로 항공편과 숙소 등을 예약

하는 ‘스마트폰 여행’이 대세가 됐다. 유류할증료 부풀리기, 중

국인 싸구려 관광 등 여행 업계 꼼수가 잇따라 도마 위에 오르

기도 했다.

■ 중국인 방한 관광객 1위 등극…‘큰 손’ 입증

2013년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이 1천217만 명에

달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12년과 견줘 9.3% 늘어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이 432만6천

명에 달해 일본인을 제치고 처음으로 국가별 방한 관광객 1

위에 올랐다. 이는 2012년에 비해 52.5% 늘어난 규모로, 중

국인이 전 세계 관광지를 휩쓰는 ‘큰 손’임을 한국에서도 입증

했다.

중국인은 씀씀이도 컸다. 중국 국경절 연휴(10월 1∼7일)

에 한국에서 쓰고 간 은련카드(중국은행연합회카드) 결제액

이 평소 대비 33.4% 증가한 1천899억원에 달했다. 서울 시내

주요 면세점의 중국인 대상 매출도 731억원에 달해 평소 대비

24.7% 늘었다.

반면 일본인 관광객은 급감했다. 한·일 관계 악화와 엔저

여파로 직격탄을 맞아 2012년 대비 22% 줄어든 274만7천

명에 머물렀다. 여행 업계에도 불똥이 튀었다. 일본인 방한을

주로 담당하던 여행사는 경영난으로 구조조정 위기에 놓였다

며 정부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12월6일경남농협중앙회경남지역본부뒷마당에서열린‘2013사랑의김장김치나누기’행사참가자들이절임배추에양념을버무리며오순도순즐겁게김장을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