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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salimstory.net/renewal/pdffiles/salimstory005.pdf · 꿈꾸는 학교 2 생활자립 꿈꾸는 무주 푸른꿈고등학교 먹을거리 기르고 에너지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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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과 사람

    사람과 땅

    사람과 생명이 만나는

    세상

    2

  • 발행처

    전화

    팩스

    블로그

    발행인

    편집장

    기획·편집

    객원기자

    편집위원

    사진

    디자인

    인쇄

    도서출판 한살림 서울시 중구 장충동 1가 31-6, 4층

    02-3498-3791

    02-576-1309

    www.salimstory.net

    박재일

    김성희

    김현경, 이승진

    윤나래, 윤은정, 임마루, 한정혜

    권복기, 김선미, 김영조, 우미숙, 윤형근

    류관희 외

    slowalk (02-733-1010)

    문성인쇄 (02-776-6534)

    값 5,000원 (1년 정기구독료 18,000원)

    정기구독 및 교환광고 문의 : 02-3498-3791

    살림이야기 05호

    2009년 6월 20일 발행(통권5호)

    등록번호 서울 바 03630

    사람과 사람

    사람과 땅

    사람과 생명이 만나는

    세상

    ‘살림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땅, 사람과 생명이 만나

    이루는 세상이야기가 담긴 생활문화교양지입니다.

    이 책에 실린 외부 글은 필진의 의견을 따릅니다.

    본지는 한국간행물위원회의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책에 실린 글과 사진, 그림은 무단 전재하거나 복제해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미지 설명을 따로 하지 않습니다.

    지금 · 여기 · 우리 · 학교

  • 가까운 먹을거리

    가까운 먹을거리, 서울에서도 구해보자

    글 김현경

    자연을 담는 게릴라, '풍신난 도시농부들'

    작은 인터뷰 | 귀농운동본부 정용수 상임대표

    민통선 안에 일군 수도권의 곳간

    작은 인터뷰 | 수도권생태유아공동체 양은희 교육이사

    식담 | 열무

    속이 뻥 뚫리는 열무김치 / 글 이승진

    집살림 | 흙부대로 지은 집 1

    스스로 그리고 더불어 짓는 생태건축의 혁명

    글 김성원

    밥상살림 | 경북 의성 쌍호공동체의 지역자급축산

    똥이 밥이 되는 사료 독립의 첫걸음 / 글 배영태

    되살림 | 코난과 나눈 재사용 병이야기

    우리는 모두 빈병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 글 서동재

    땅땅거리며 살다 | 솔뫼농장의 잘 사는 농부 김의열

    아이 여섯, 참 고마운 일이죠 / 글 김성희

    살림의 소식 | 태국의 자족경제 인팽네트워크

    파괴된 숲을 복원해 자연도 사람도 살리자 / 글 박준영

    살림의 눈 | 오체투지순례단 2차 회향

    맨발과 맨손 / 글 김성희

    살림이야기에 주는 말

    살림의 칼럼

    학교 밖, 학교 안 어디나 길은 있다 / 글 현병호

    나라 밖 학교 2 미국 평화 공동체에서 만난 학교

    누구도 섬이 아니야 / 글 임마루

    나라 밖 학교 3 라오스

    행복은 OECD 성적순이 아니야 / 글 이영란

    울타리 밖 학교 1

    학교 밖에서 열공의 꿀맛 만끽하다 / 글 한정혜

    울타리 밖 학교 2

    아이들의 집, 소망연구소 / 글 전성태

    살리는 사람을 찾아서 | 사단법인 한살림 박재일 회장

    좋은 사람들과 맺은 관계가 가장 큰 힘 / 글 김선미

    살림이 만난 고집쟁이 | 푸른별영상 윤동혁 대표

    삶의 지혜를 찾아 마음 끌리는 대로 간다 / 글 한정혜

    이 사람의 살림살이 | 이영희의 영혼을 찾는 바느질

    시간을 바느질해 여유를 구한다 / 글 우미숙

    학교를 넘어서다

    살림,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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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를 꿈꾸다학교를 배우다

    빛그림 이야기

    사람이 있는 곳, 거기가 학교다 / 사진 강재훈

    여는 이야기 1

    힘 없는 우리가 등대입니다 / 글 송인수

    여는 이야기 2

    언제까지 붕어빵만 찍을 것인가 / 글 이범

    학교의 역사

    태학에서 자사고까지, 학교가 걸어온 길 / 글 이승진

    교육환경

    학교, 안녕하십니까? / 글 윤은정

    학교밥상

    하늘과 바람과 물을 담은 행복한 밥상을 꿈꾸며

    글 이원영

    학생인권

    튀는 건 용납 못해 ! / 글 괭이눈

    학부모

    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 글 바람

    교사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학교, 그래도 내 길 간다

    글 이경민

    나라 밖 학교 1 영국

    어제의 나와만 경쟁하는 학생들 / 글 최봉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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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집 지금·여기·우리·학교

    살림이야기가 드리는 글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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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이야기 05호 지금·여기·우리·학교

    꿈꾸는 학교 1 지역이 함께 만드는 원주 한알학교

    중심에서 변두리로 생명을 찾아간다 / 글 김선미

    꿈꾸는 학교 2 생활자립 꿈꾸는 무주 푸른꿈고등학교

    먹을거리 기르고 에너지 만들어 쓰는 학교

    글 우미숙

    꿈꾸는 학교 3 아이들이 행복한 상주 남부초등학교

    1학년부터 또 다니고 싶어요 / 글 이길로

    꿈꾸는 학교 4 지역을 만들어 가는 홍성 풀무학교

    마을 속의 학교, 학교 속의 마을 / 글 정민철

    학생 학부모에게 묻다

    “ 친구를 만나요, 시험 때문에 힘들어요”

    교육감에게 묻다

    교육에는 진보 보수 따로 없어요 / 글 이승진

    길잡이

    “엄마가 구해줄게” / 글 한정혜

  • 하와이 사람들의 기도법 ‘호오포노포노’에서는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 말

    들을 주문을 외듯 온 마음으로 되풀이하기만 해도 주변에 긍정의 기운이 퍼져나가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합

    니다. 연전에 화제가 된《물은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랑’이나 ‘용서’ 같은

    말들을 해주면 앞에 놓인 물의 분자 모양이 아름다운 육각형을 이루고 이 때문에 물을 마시는 이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는 동화같은 이야기 말입니다. 어쩐지 이런 말들을 믿고 싶은 요즈음입니다.

    책을 만드는 중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보다 더 놀라운 일은 그의

    죽음을 진정으로 아파하며 고인이 다툼 없는 곳에서 영면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온 나라에 물결친 것입니

    다. 생전에 그를 비판하던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엄숙한 물결에 압도돼 권력도 정치권도 스스로

    의 말길과 행동을 저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잠시 동안 일뿐이라도 말입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용서하세요. 감사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마음은 공과나 시비를 따지고 남을 기어

    이 무찌르려는 마음과는 다른 차원에 존재할 것입니다.

    《살림이야기》이번 호가 주목한 이야기는 ‘학교’입니다. 학교에 대해 모두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경

    쟁에 내몰린 아이들의 현실은 고단합니다. 정부가 손을 댈수록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

    닙니다. 그러나 그 책임이 정책 당국과 교육관료, 선생님들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 역시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숭상해온 경쟁력과 효율성의 가치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들이 조화

    롭게 살아가는 것보다 경쟁만을 중시하고 배제와 특권을 조장하는 것 자체가 비교육적입니다.

    특집 1부 ‘학교를 배운다’에서는 교육정책, 학교의 역사, 학교의 환경, 학교 밥상의 현주소를 통해 학교의 현

    실을 살펴보았습니다.

    2부 ‘학교를 꿈꾸다’에서는 사람을 기르는 학교가 어떠해야 하는지, 국내외의 사례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살림이야기》는 대안학교가 최선의 대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마을 만들기, 지역사회

    속에 뿌리내리는 학교라는 점에서 풀무학교와 한알학교를, 먹을거리 자급과 에너지 자립에 대해서는 푸른

    꿈학교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이들에 대한 글을 싣게 되었습니다.

    3부 ‘학교를 넘어서다’에서는 굳이 학교의 담과 틀에 구애됨 없이 어디든 사람의 생각과 지혜가 자라게 해주

    는 곳은 학교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관련된 글들 입니다.

    학교가 병들어 있다면 그것은 학교가 뿌리내리고 있는 사회가 건강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날로 심해지

    는 학력에 의한 임금 격차, 학벌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는 그릇된 관행이 변하지 않고는 학교가 바로서기 어

    렵겠다는 점을 필자들이 보내준 원고를 읽으며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자라나는 아이들과 우리 모두에게 학교일 게 분명합니다.

    여름호부터 ‘살림, 살림’이라는 모둠을 새로 만들고 그 안에 밥상 살림, 집 살림 등 살림살이에 대한 내용을

    꾸준히 이어가려고 합니다. 먹고 입고 생활하는 문제를 살림의 눈으로 돌아보면서 독자들과 새로운 삶 틀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함께살이’를 모색해보자는 뜻입니다.

    변화무쌍한 현실 앞에서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이웃들을 ‘사랑합니다’. 뛰놀며

    편히 잠 잘 권리마저 빼앗긴 채 전쟁포로처럼 참혹한 현실에 포박된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누구보다도

    내가, 더 많이 가지고 남보다 잘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질주하며 이런 현실을 빚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웃과 세상 만물에 기대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살림이야기》5호는 이렇게 읊조려봅니다. 간절하게 말입니다.

    편집장 김성희 모심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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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집 지금·여기·우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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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어른들에게는 물론이고 당신들끼리도 서로 존대하기로 합시다.

    뒷간이나 담벽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 같은 것을 버리지 말기로 합시다.

    꽃이나 풀을 꺾지 말고 동물을 사랑하기로 합시다.

    전차나 기차에서는 어른들에게 자리를 사양하기로 합시다.

    입을 꼭 다물고 몸을 바르게 가지기로 합시다.

    어린 동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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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강재훈 [email protected]

    사람이 있는 곳,

    거기가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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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 보아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이발이나 목욕 같은 것을 때맞춰 하도록 하여 주시오.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산보와 원족 같은 것을 가끔가끔 시켜 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자세 타일러 주시오.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와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어른들에게

    우리들의 희망은 오직 한 가지 어린이를 잘 키우는 데 있을 뿐입니다.

    다 같이 내일을 살리기 위하여 이 몇 가지를 실행합시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어린 동무들에게’와 ‘어른들에게’는 동학운동을 하던 김기전, 방정환 등이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선포하며 발

    표한 에 있는 내용입니다. 80여 년 전에 쓴 이 당부의 말들이 여전히 새겨들어야 할 것들 뿐입니다.

    사진을 찍은 강재훈 님은 이십 년 가까이 오지의 작은 학교들을 찾아가 사진에 담아왔습니다. 빠르고 큰 것만을 좇는 세태에 결국은 남아나지

    않으리라는 걱정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가 찾아갔던 작은 학교들은 이미 대부분 문을 닫았습니다. 특집에 실린 사진들은 학고재에서 나온 그의

    사진집《들꽃피는 학교, 분교》와 가각본에서 펴낸《산골분교운동회》에 실린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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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시에 관한 한 우리는 우리 문제를 정치권에서 풀어달라고 말합니다. 정치권이 나서서 법과 제도를

    바꾸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다 안 되니 해외로 나가거나 절망합니다. 물론 법과 제도가 바뀌면 세

    상은 한결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매우 보수적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기존의 틀로 세

    상을 설명할 수 있으면 법과 제도는 절대 자신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기존의 법 체계로 설명할

    수 없는 현실이 생기게 되면, 처음에는 그것을 ‘불법’이라고 매도하다가 그런 현상이 많아지면 ‘예외’

    라고 말합니다. 그러다가 너무 예외가 많으면 할 수 없이 자신을 바꾸게 됩니다.

    정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법과 제도를 바꾸는 권력의 힘 아닙니까? 아무리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정

    치일지라도 현실을 기존의 질서로 설명할 수 있는 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새로운 법과 제도가 하나 등장하기 위해서는 먼저 ‘새로운 현실’이 세상에 등장해야합니다. 그러나 그

    ‘새로운 현실’은 어떻게 만들어집니까? 그것은 기존의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버티는 누군가의 실천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그런 실천이 없으면 새로운 현실이 없고, 새로운 현실이 없으면 새로운 법과 제

    도도 없습니다.

    이 말이 사교육 걱정과 입시 고통으로 힘겨운 세상살이를 하는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입니

    까?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새로운 현실’은 무엇입니까?

    글 | 송인수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공동대표 [email protected]

    지난 해 6월 12일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이라는 새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또 올해 5월부터 등대지

    기학교가 시작되어 수많은 부모들과 교사들과 시민들이 모여 배우고 고민하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

    학교를 통해, 사람들은 등대지기학교의 ‘힘없는 우리가 등대입니다’라는 구호를 자기 삶의 원리로 받

    아들이고 있습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이것이 무엇을 하자는 운동입니까? 이 운동은 사교육업자들과 대결하는 운동

    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전사로 아이들을 길러낼 노하우를 제공하자는

    운동도 아닙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아이들에게는 입시 고통, 부모들에게는 사교육 걱정을 주

    는 살인적 교육 전쟁 자체를 끝내자는 운동입니다. 전쟁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기어 체념하고 그 안

    에서 점진적 대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전쟁 자체를 끝내는 근본적인 운동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 운동은 전쟁을 유발하는 입시 경쟁, 학벌, 대학의 잘못된 서열주의, 입시정책, 중등교육의 질 문제,

    간판 숭상주의 등 수십 년 간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우리 숨통을 조여온 이 괴물과 같은 것과 대

    항해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도무지 풀 수 없는 것을 풀겠다는 무모

    한 운동 같지만, 그러나 결코 실패할 수 없는 운동입니다.

    새로운 현실 없이 새 제도는 없다

    힘 없는 우리가 등대입니다

    이 땅의 입시 고통과 사교육 걱정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고, 왜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

    은 이야기합니다. 학벌, 대학 서열주의, 간판, 체면 문화 등 원인이 너무 복잡합니다, 그리고 원인을 제

    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라고요. 그러나 입시와 사교육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문

    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피해 당사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문

    제를 자기가 풀지 않고 정치권, 대학, 언론 등 힘 있는 곳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피해 당사자들

    이 서로 연대하지 않고 서로 경쟁하며 고립된 상태에서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무고한 한 사람의 생명이 죽임을 당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떠올려 보십시오. 한 사람이

    죽으면 그 한 사람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단체나 운동’이 출범합니다. 1980년대 군부독재

    에 희생당한 대학생, 청년들의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는 우리나

    라 민주화 운동의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그런데, 한해에 200명 씩 벌써 지난 40년간 8,000명의 아이들

    이 입시로 인해 자살하고, 부모들의 한숨과 신음소리가 이토록 깊은데, 이 문제에 관한 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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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몽고메리주에서 시작된 흑백차별반대운동은 로자 파크스라는 한 흑인 여성에 의해 시작되었습

    니다. 그는 1955년 12월 1일, 버스의 흑인 좌석에 앉아 있다가, 백인이 앉아야하니, 자리를 비켜달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흑인들은 오랜 세월동안 그런 부당한 요구에 순응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그

    럴 수 없다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켰고,

    이 때문에 범법자라 낙인 찍혀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버스 보이콧 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흑백차별을 폐지하라는 항의운동이 일어났고,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

    니다.

    위대한 웅변과 사람을 이끌어내는 조직 능력은 없을지라도, ‘잘못된 관행’이 길을 비켜달라고 요구할

    때, 아니라고 대답하는 그런 자세, 그로 인해서 감옥 가는 그런 자세가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이

    고, 이를 통해 세상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순을 풀어내

    는 데 언제나 객관적인 해결책은 없습니다. 오직 길은, 그 문제를 가슴에 끌어 앉고 자기 생을 통해 대

    답을 찾는 그 사람 자신이 만듭니다. 그 사람이 곧 길입니다. 도무지 풀 수 없는 문제의 한복판에서 고

    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그 자체가 길입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이 일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뭔가 탁월한 전략이나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있기

    때문에 잘될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일을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던지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이 있

    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그 미래가 구체적으로 언제일지는 모릅니다. 확실한 한 가지는, 우리 국민

    들이 이렇게 나서지 않으면 그 미래는 결코 앞으로도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시, 사교육

    문제 해결 계단이 총 100개라면, 우리는 우리 생애를 통해서 5개 정도 계단을 만들고 죽어야하겠다 그

    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이 내 등을 밟고 올라가 계단 만들고…, 그렇게 해서 세월이 지나

    계단 만드는 일이 완성될 것입니다. 일은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지, 한 번에 달라지는 일은 어디에도 없

    습니다.

    우리 사회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문제 해결의 길은 어렵고, 그 어려운

    문제에 자신을 던지기에는 자기 인생이 너무도 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려운 문제를 상대로 싸움을 걸 때의 자세는 단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자기 인생을 하찮게

    생각하는 자세’, 내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니, 이 답이 안 나오는 일에 내 인생을 낭비하겠다는 마음입

    니다. 다른 하나는 ‘뿌리 깊은 나무’를 만든 한창기 씨의 말대로, ‘가치 있는 일을 위해 돈을 가랑잎 태

    우듯이 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두 가지면 되는 것입니다.

    훗날,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온전히 임할 때 그날,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들이 생기게 될 것입니

    다. 하나는 외로이 땀 흘려 길을 만들어 온 지난 세월을 회상하며 감사해 하는 사람들. 다른 한 부류는

    그렇게 길을 만든 사람들의 수고로 인해 혜택을 누리며, 그동안 수고한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는 사람

    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재주를 다 동원해서 새 세상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 찾

    아온 새 날로 인해 괴로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느 편에 서야 합니까? 어느 편에 서시렵니까?

    교육 문제의 한복판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쓴 송인수 님은 구로고등학교에서 13년 동안 교직생활을 하다 좋은교사운동 대표직을 수행하기 위해 2003년

    퇴직한 후 임기를 마치고 현재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www.noworry.kr) 에서 공동대표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학부모에게 새로운 현실을 만드는 일이란, 승리가 보장되는 곳으로 자녀를 진입시키기 위해 내 인생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내 믿음, 내 가치관을 다 버리고, 옆 집 이웃과의 허망한 경쟁에 더 이상 인생을 탕

    진시키지 않겠다는 결심을 의미합니다.

    교사에게 새로운 현실이란 교사로서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잃어버리고 아이들에게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입시 위주 교육을 하라는 요구에 더 이상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버티며 거부하는 것을 의

    미합니다.

    사교육 업계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새로운 현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더 이상 학원의 이익을 위해

    근거 없는 ‘불안’으로 부모와 아이들을 힘겹게 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요, 이 땅의 아이들에게 복된 날이

    올 수 있다면 내 이해관계를 내려놓겠다는 결심을 의미합니다.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 새로운 현실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진리를 따라 산다는 것은, 이 땅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시도를 내려놓고 고통 받는 이들의 자리에 가서 그들과 같이 되며 그들을 위로하는 일임

    을, 삶으로 선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야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물론, 입시 고통과 사교육 걱

    정 문제는 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 문제가 미국의 흑백 차별 문제보다 훨씬 더

    어렵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사회는 그것을 상당한 수준 풀어냈습니다. 어떻게 풀어냈습니까.

    물론, 루터킹 목사의 희생을 떠올릴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꼭 그런 초인적인 위대한 사람의 선택

    과 결정이 새날을 가져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

    16 17

  • 글 | 이 범 교육평론가 [email protected]

    ‘평준화’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무시험 학교 배정’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의미에서

    의 평준화는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중·

    고등학교 입시가 폐지되면서 이뤄졌다. 두 번째는

    ‘획일적 교육’인데, 학생의 성향이나 수준에 상관없

    이 동일한 교육과정과 수업을 제공하는 것이다.

    획일적 교육을 비아냥대는 의미에서 ‘붕어빵 교육’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태지가 15년 전에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 전국 9백만의 아이들의 머

    릿속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지’라고 비판한 것

    말이다.

    그런데, 첫 번째 평준화와 두 번째의 평준화는 차원

    이 다른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무시험 학교 배정을

    하면서도 획일적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은 상위 학년으로 올라갈수록

    과목 선택의 폭이 넓어지며, 과목별로 운영되는 심

    화반(honor class)이나 선 이수반(AP class)을 일반

    학교에서 제공함으로써 특목고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세계 교육 경쟁력 1위라는 핀란드는 한술 더

    떠서 고등학교가 학점제로 운영되는데, 75학점 중

    45학점은 필수과목이고 30학점은 선택과목이다. 3

    년이 아니라 4년이나 2년 반에 졸업하는 학생도 많

    다. 자신의 의향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수강하면서

    향후 전공에 대한 탐색을 겸한다.

    따라서 현재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획일

    적 교육에서 벗어나려면 특목고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외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한국적 특성이 반영된 참으로 해괴한 주장

    이다.

    평준화 개념이 이처럼 이중적 의미로 사용되면서

    빚어진 혼란은 국민들의 의식 속에 뿌리박혀 있

    다. 일반인 대상의 여론조사를 보면 고교 평준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견해가 2/3 가량 나오지만, 그와

    동시에 고교평준화를 보완해야 한다는 견해도 2/3

    정도가 나온다. 얼핏 보기에 모순되어 보이는 이러

    한 결과는 국민들이 첫 번째 의미의 평준화(무시험

    고교 배정)가 유지되기를 바라고 고교입시가 부활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보지만, 아울러 두 번째

    의미의 평준화(획일적 교육)는 어떻게든 개선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언제까지 붕어빵만 찍을 것인가

    국가의 강력한 교육과정 통제부터 풀어야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획일적 교육이 이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 강점기와 미군정을 거치면

    서 근대적 학교제도가 확립되어가는 과정에서 우

    리나라는 주로 일본을 본떠서 국가가 교육과정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전국적으로 동일한 교육과정을

    운용하는 전통을 확립해왔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학교에서는 국정 또는 검인정

    교과서만이 사용될 수 있으며, 그 내용은 교육당국

    이 강하게 통제한다. 반면 대개의 서구 선진국들은

    교과서 자유발행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교과서 자

    유발행제도에서는 어떤 책이 교과서이고 어떤 책

    이 교과서가 아닌지의 구분 기준이 따로 없다. 어떠

    한 책을 교과서로 삼을지를 학교가 정할 수 있기 때

    문이다. 심지어 스웨덴, 핀란드 등에서는 교사가 직

    접 교과서를 집필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의 경우, 국가 수준의 교과서 검인정 제도는 없

    다. 다만 주별 또는 교육구별로 교과서 검정을 실시

    하여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들 가운데 학교별로 채

    택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의 교과서 검정 제

    도와는 크게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검정을 실시

    하는 교육당국이 미리 ‘교과서에 어떤 내용을 넣어

    라’라는 구체적인 지침을 주기 때문에 비록 검정 교

    과서가 여러 종류가 출판되고 있지만 그 내용을 비

    교해 보면 오십보백보이다. 대단원은 물론이요 소

    단원 제목과 순서까지 똑같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면 미국의 교과서 검정 제도에서는 교육당국이

    ‘대강’의 목표만을 지정하기 때문에 교과서별로 상

    당한 수준의 다양화가 가능하다.

    이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붕어빵식’ 교육이 왜 이토록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과정 편성권은

    현장의 교사들에게 전혀 이양되지 않고 교육 관료

    들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심지어 교육과정상 의

    무적으로 가르치도록 되어 있는 내용의 일부를 빠

    뜨릴 경우 교사에게 징계를 내리는 일도 가능하다.

    현재의 교육 과정은 과목별로 교육 관료들 및 사범

    대 교수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부차적으로 교사간

    힘겨루기의 산물이 되었다. 우리나라 교육 과정은

    지나치게 과목수가 많고 너무 많은 양을 의무적으

    로 가르치도록 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실질적

    으로 문과·이과를 결정할 때를 제외하고는 다른 선

    택의 기회를 거의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

    제다.

    논술고사가 대입에 도입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학

    교교육은 ‘논술적 전환’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

    는 이유도 여기 있다. 교사에게 사실상 아무런 자율

    권도 주지 않고 옴짝달싹 못하도록 묶어놓으면서

    어떻게 ‘논술적 전환’이 가능하겠는가? 입학사정

    관제도가 도입되면서 최종 선발단계를 집단토론과

    면접으로 한다고 하지만 학교 돌아가는 사정을 아

    는 사람들은 학교에서 토론식 수업을 하게 되리라

    는 기대는 아예 품지 않는다. 학교가 거대한 붕어빵

    제조공장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

    학 입시 제도를 변화시켜 공교육을 바람직한 방향

    으로 전환시키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다. 현재의 학교 교육 시스템으로는 그나마 수능 정

    도만을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게 해주는 수준이다.

    등수 없는 성적표를 허하라

    우리나라와 일본 교육의 공통점 가운데 두드러지

    는 것은 중고등학교 내신 성적표에 반 석차와 전교

    석차가 나온다는 점이다. 요즘에는 모든 과목을 통

    틀어 발표되는 이른바 ‘전체 석차’는 기재되지 않지

    만, 각 과목별로 자신이 학급에서 몇 등이고 학년에

    서는 몇 등인지는 성적표에 뚜렷이 나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제도에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에 아

    |

    18 19

  • 무런 문제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성적표에 석차

    가 표기되는 것은 일본과 우리나라를 제외하곤 어

    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대단히 이상한 제도

    이다. 다른 나라의 중고등학교 성적표는 대학교처

    럼 과목별 평점(A, B, C…)이 표기되거나 점수가 표

    기된다. 선진국이고 아니고 간에 거의 예외가 없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성적표 구실을 하지 않

    는가?

    학년별로 석차를 매기는 제도가 얼마나 이상하고

    불합리한 제도인지는 다음과 같은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어느 학교에서 한 학년 8개

    학급 가운데1~4반은 A교사가 가르치고 5~8반은 B

    교사가 가르친다고 해보자. A교사와 B교사가 가르

    치는 방법과 내용이 어느 정도 편차가 나는 것은 당

    연하게 여겨진다. 예를 들어 남북전쟁에 대해 A교

    사는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의 정치사적 의미에

    대해 탐구식 수업을 진행하는 반면 B교사는《바람

    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문학작품에 투영된 남

    북전쟁의 의미에 대해 분석하는 수업을 할 수 있다.

    물론 A교사와 B교사가 공통적으로 가르치는 부분

    도 당연히 있지만, 구체적인 수업 내용은 이렇게 다

    양해지는 것이 불가피하며 또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임진왜란을 가르칠 때에는

    이런 식이 불가능하다. 학년별로 석차를 매겨야 하

    므로, 1~4반과 5~8반의 강의 내용, 수행 평가 과제,

    쓰기·발표 과제 등이 모두 똑같아야 한다. 그리고

    시험문제 및 수행평가 문제 등도 똑같아야 한다. 따

    라서 1~4반을 가르치는 A교사와 5~8반을 가르치

    는 B교사의 수업과 과제 내용은 거의 똑같아야 한

    다. 게다가 교육부가 수업시간에 의무적으로 다뤄

    야 한다고 지정해놓은 내용의 양이 매우 많다. 당연

    히 교사들은 최소한의 공통분모인 교과서의 내용

    을 쭉 훑고 지나가는, 주마간산식 수업을 하게 된

    다. 만약 어떤 교사가 자신만의 창의적인 수업 버전

    을 개발했다간, 당장 ‘체제 부적응자’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다. 학년 등수를 매겨야 하는데 한 교사가

    이렇게 ‘튀게’ 가르쳐서는 곤란하니까 말이다.

    ‘빨리 정답 찾기’평가를 개선해야

    2008년 10월에 치른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의 지

    역별 성적이 2009년 2월에 공개되었다. 수능 성적

    또한 2009년 4월 지역별 정보가 일부 공개되기 시

    작했다. 앞으로는 학업성취도 평가와 수능 성적의

    지역별 현황뿐만 아니라 학교별 현황까지 공개될

    예정이다. 2008년 국회를 통과한 ‘학교정보 공개

    법’이 2010년 시행되면서, 학교의 교육 방향과 여

    건, 그리고 성과 등에 대하여 공개를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학교별 학업성취도 현황을 공개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학부모들에게 자녀

    가 다니는 학교의 평균적인 학업성취도나 대학진

    학률 등에 대하여 알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

    은 세계 어디나 있는 일이다. 상급학교에 진학하면

    서 그런 정보에 대하여 궁금해 하지 않을 학생과 학

    부모가 있을까? 당연히 공개하는 것이 상식이다. 평

    준화의 왕국처럼 알려진 핀란드에서도 이런 정보

    는 공개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학업성

    취도평가와 수능 성적을 공개하는 것은 뭐가 문제

    란 말인가?

    최근에 공개하고 있는 학업성취도평가나 수능은

    모두 객관식이나 단답식으로 되어 있는 ‘빨리 정답

    찾기’ 시험이다. 이런 지표만 공개하면 다른 교육적

    지표들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는 문제가 발생한

    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입에서 오랫동안 시행되

    어 온 ‘논술’이라는 지표를 생각해 보자. 수능은 빨

    리 정답을 찾아내는 시험이지만, 논술은 어떤 현상

    이나 자료를 다각적이고 깊이 있게 분석하고 자신

    의 견해를 정리하도록 유도하는 시험이다. 그렇다

    면 수능이 논술보다 교육적으로 우월하거나 선호

    할만한 지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

    다. 그런데 수능이나 학업성취도 평가와 같은 획일

    적 지표만 공개하고 경쟁을 시키면 당연히 우리 교

    육이 다양화되는 게 아니라 더욱 획일화될 것이다.

    다른 선진국의 상황은 이와 다르다. 서구 선진국들

    은 단답식·객관식의 ‘빨리 정답 맞히기’ 일변도에

    서 크게 벗어나 있다. 논술형 평가, 토론형 수업, 탐

    구형 과제 등이 일반화 돼 있다. 독일 학생들은 객

    관식 시험이라는 걸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객관

    식으로 치러지는 국제학력비교평가 표본 집단으로

    선정된 학급은 사전에 객관식 시험에 대비한 예행

    연습을 해야 할 정도이다. 미국 학교에서는 정규 수

    업시간에 SAT(수능) 문제집을 푸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최근 미국에서도 대도시 중심으로 SAT학

    원이 늘어나면서 그에 대한 대응으로 SAT 문제집을

    푸는 학교가 있긴 하지만, 절대 정규수업이 아닌 방

    과 후 프로그램으로 신청자에 한하여 진행한다. 일

    상적인 학교 교육이 이처럼 주입식 교육과 단답식·

    객관식 시험으로부터 벗어나있고 이것이 정상적인

    학교 교육임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는

    학업성취도를 획일적 잣대로 측정하여 공개한다

    할지라도(여전히 교육 획일화의 우려가 제기되지

    만) 적어도 우리나라보다는 문제가 적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오로지 단답식·객관식 시험

    에서 빨리 답 맞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

    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초등학교는 여기서 어느 정

    도 거리를 두고 있는데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심각

    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내신 성적의 독자적인 가치

    를 인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내신평가가 수능과 다

    를 바 없는 방식으로(심지어 종종 보다 저열한 수준

    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업성취

    도 평가와 수능 성적을 공개하면서 ‘정답 빨리 맞히

    기’ 능력을 더욱 강조한다면, 당연히 논술이나 발표

    력 등과 같은 다른 교육적 지표는 더욱더 뒷전에 놓

    이게 된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지 않고 학업성취도

    평가와 수능 성적을 공개하는 것은 미국이나 영국

    보다 훨씬 강력하게 교육을 획일화시키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려면 학업성취도평가

    와 수능 성적의 공개를 당분간 유예하고 학교 교육

    개혁을 전제조건으로 재추진하든가, 아니면 학업

    성취도 평가와 수능과는 별개의 교육적 지표를 조

    사하여 이를 함께 공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선진형

    교육(논술·토론·탐구 등) 활성화 지수, 자기 주도적

    학습 지수 등의 새로운 지표들을 개발하여 학업성

    취도평가나 수능 성적과 함께 공개하는 것이다. 여

    기에 더해서 인권 지수라든가 학교생활 행복지수

    등을 추가한다면 금상첨화이겠다.

    결국 ‘붕어빵 교육’에 대한 제도적 대안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교육과정 및 교과서 제도의

    개혁이다. 국가가 통제하는 교육과정의 내용을 대

    폭 간소화하고 국정·검인정 교과서 제도를 폐지하

    며 현장 학교별로 다양한 교육과정 및 교과목 운용

    을 가능하게 한다. 문과·이과 구분을 폐지하는 대

    신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대폭 확대한다. 둘째, 성

    적표 표기 방식의 개혁이다. 중고등학교 성적표에

    서 석차를 표기하는 것을 폐지하고 평점이나 점수

    만을 표기한다. 절대평가·상대평가 중 과목 성격

    과 교사의 의향에 따라 적절히 택할 수 있도록 하되

    ‘내신 부풀리기’가 우려되므로 절대평가에 한해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지키도록 한다. 셋째, 수업 및

    평가방식의 개혁이다. 일제고사 및 수능성적 공개

    를 유예하고 학교교육의 ‘논술·토론적 전환’을 앞당

    길 수 있는 충분한 보완조치를 선행해야 한다.

    글을 쓴 이범 님은 고액 연봉을 받던 입시 학원의 스타강사

    자리를 내려놓고, 지금은 우리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교육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20 21

  • |

  • 우리 역사에 최초로 등장한 학교는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세워진 태학(太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구려의 태학(太學), 신라의 국학(國學), 고려의 국자감(國子監), 그리고 조선시대의 성균관(成均

    館)·향교(鄕校)·사부학당(四部學堂) 등이 공교육 기관에 속한다. 특히 조선은 유교국가였고 교육을 강

    조하는 유교이념에 따라 교육 열기가 높았으며 출세하려면 공부해야 한다는 생활철학이 깊이 뿌리를

    내렸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출세란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양명 하는 것을 의미했다. 과거제도는 관

    리를 선발하는 기본 통로로서 무려 1천 년가량이나 명맥을 이어왔다. 고려시대에는 과거를 거치지 않

    고 벼슬을 할 수 있는 길이 다소 열려 있었지만, 조선시대에 와서는 벼슬을 하자면 반드시 과거에 급제

    해야 했다.

    지금의 중·고등학교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발판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조선시대의 학교교육 역시

    과거에 합격하기 위한 교육과정으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시험은 현대판 대입논술 시험과 비

    슷했다고 알려지는데, 예를 들어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정치란 무엇인가?’, ‘교육이 가야 할 길은?’,

    ‘그대가 공자(孔子)라면 어떤 정치를 펴겠는가?’ 등이 시험문제로 출제되었다고 한다. 충분히 지식을

    쌓고 문장력을 갖춘 뒤, 종합사고능력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셈이다. 출세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기에, 조선의 선비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 읽기에 매진해 과거시험을 치러야

    했다.

    그러나 과거를 위한 공부는 실용학문과는 거리가 있었다.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학문, 과거제도로 인

    재를 양성하는 것은 강한 나라가 약소국 침략을 일삼던 당대 현실에 맞서기에는 너무나 무력했다.

    침몰하는 조선을 구하라, 근대학교의 등장

    서구열강과 일제의 침탈로 인해 기울어 가던 조선이 위기를 탈출할 수 있는 방안은 근대적 과학기술과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조선을 문명 부강한 국가로 만드는 길밖에 없었다.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나면

    서 고종은 갑신정변 수습을 위해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했고, 수신사로 파견된 사람들은 남녀차별을 두

    지 않고 실용적 학문에 무게를 두는 일본의 교육방식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또한 자선활동을 펼치던

    선교사들과 조사시찰단으로 다녀온 개화지식인들이 선두에 서서 근대교육의 중요성을 외쳤기에, 이

    들의 목소리는 고종의 마음을 움직였다. 하여, 당시 임금의 명으로 교육조서(1895년)를 발표하면서 고

    종은 구학문을 ‘옛 사람의 찌꺼기를 줍는’ 것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교육 혁신만이 국가의 부강을 이룰 수 있는 길이라 판단한 당대 교육의 핵심은 부국강병과 자주독립이

    었다. 더 이상 사대부들만의 교육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으며, 상하귀천과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국민들

    이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배재학당(1885년)·이화

    학당(1887년) 등의 사립학교들이 문을 열었다. 국민교육기관으로서의 초등학교가 설립된 것은 1894

    태학에서 자사고까지, 학교가 걸어온 길글 | 이승진 편집부 [email protected]

    누군가를 본받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는 나에게 정면(正面)교사, 닮고 싶

    지 않은 경우에 그는 내게 반면(反面)교사가 된다. 그러니 세상 사람 누구

    에게도 배울 점이 있고, 만물이 가르침을 주는 배움의 장이라는 데 이의는

    없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교육은 어느 시절에나 있어 왔다. 교육은 가정에

    서부터 시작 돼 사회 일상에서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렇다면 제도로서

    의 ‘학교’는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학교를 뜻하는 각국의 단어들은 대부분 하나의 어원에서 유래했다. ‘여가’

    라는 의미를 가진 그리스어 ‘schol ’가 바로 그것. 영어의 ‘school’, 독일

    어의 ‘Schule’, 프랑스어 ‘ cole’의 어원이 된 라틴어 ‘schola’도 본래는

    ‘여가’를 뜻하는 말에서 출발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고대 유럽의 학

    교들은 상류층이 교양을 익히는 장소로 발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 후 학교는 종교를 위한 교육, 실용적 요청에 따른 교육을 담당하는 기

    관으로 발달해 왔다. 근대 이후에는 사회가 급속하게 발전하고 상공업이

    부상하면서, 시민계급을 위한 중등교육과 직업교육이 발달했고 근대국가

    의 성립에 따른 초등교육 중심의 국민교육제도가 정비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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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25

  • 년 관립교동소학교(현 교동초교)가 세워지면서부터다.

    오직 과거시험 합격이라는 ‘가문의 영광’을 위해 정진했던 조선의 선비들에게 과거제도 폐지는 존재

    기반의 상실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근대적 교육제도는 그동안 신분제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 한 번 힘껏 토해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사농공상의 신분제도가 붕괴

    된 후 사회적 공백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학교’였던 것이다.

    아는 게 힘, 외국어 능력이 권력의 첩경

    처음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려 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려다가

    심장을 떼서 의학 실험도구로 쓴다는 식의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1885년에 설립된 배재학당의 경

    우 시험을 통해 학생들을 선발하기는커녕 오히려 학용품과 점심 값을 지불하고 아이들을 데려다가 가

    르쳤을 정도이다. 여학생을 입학시키기는 더욱 더 어려워서 1886년 스크랜턴 부인이 설립한 이화학당

    은 천연두에 걸려 광화문 밖에 내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가 치료를 해준 후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일화

    도 전해진다. 그러나 개화바람이 불면서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학교에 입학하는 사람도 점

    점 늘어났고, 서양의 문물과 학문을 직접 배우려는 야망을 지닌 청년들도 있었다. 당시의 학생들은 스

    스로를 문명개화와 조국의 미래를 이끌 존재로 생각했다.

    교육입국조서에 따라 많은 학교들이 생겼지만 그중에서도 특수한 목적을 위해 설립된 학교들이 몇 곳

    있었다. 법관양성소(1895년), 외국어학교(1895년), 무관학교(1896년), 경성의학교(1899년) 등이 그것

    이다. 그 특수한 목적이란, 서구와 같은 문명국으로 발돋움하고 부국강병을 이룩하기 위해서 가장 시

    급하게 요청되는 학문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외국어학교의 중요성은 남달랐다. 외국어를 안다는 것은 곧 서양의 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재

    능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의 외국어 공부는 순수한 학구열이라기보다는 그 나라의 힘에 자

    신을 편입하고 싶은 욕망의 발산이기도 했다.

    1900년대 초 학생들에게는 입시지옥이란 게 없었다. 그 당시 학교라는 공간은 자신의 욕망을 발현할

    수 있는 해방의 공간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학교야말로 대물림된 신분과 계급으로부터, 자신의 삶

    을 옭아매는 구시대적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엔 학생이 워낙

    귀했던 터라 신학문을 배우겠다는 의지만 확실하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

    러나 학생들이 무조건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들어갈 땐 쉬웠지만 나오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입학시험에 합격하면 합격자 명단을 게시판에 붙이는 것처럼, 졸업시험 합격자 명단도 수많은 사람들

    에게 공개되었다. 그것도 1등에서 꼴등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적나라하게. 낙제는 졸업을 못한다는 의

    미를 넘어 ‘집안 망신’이기도 했다. 그것은 몇 백 년 전 과거시험도 마찬가지였다. 시험은 개인의 문제

    가 아니라 ‘가문’의 문제였으며 주위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근대 학교교육을 받는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은?

    초등·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며 고등학교는 일반계, 실업계, 특수목적, 특성화고교, 자율학교 등으로 유형이 분류된다. 1980년대 이

    후 과학고등학교와 외국어고등학교가 설립됐으며, 1995년 ‘고교체제의 다양화와 자율화’ 등이 추진되면서 특성화학교, 자율학교, 자립

    형 사립학교 등 특수목적을 가진 학교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상황이다.

    * 참고《학교의 탄생》 이승원 / 휴머니스트

    것 자체가 집안의 자랑이자 영광이었지만, 학업 성적에 따라 개인은 물론 한 집안까지 들썩이는 것은

    예부터 이어져온 우리의 교육 풍조이기도 하다.

    시장원리에 따라 변해가는 현대의 학교

    1919년 3.1 운동 이후 일제는 초급교육을 통해 천황의 충성스런 신민을 양성하고 중등 교육을 통해서

    는 식민지 하급 관리를 양성하기 위해 조선의 근대교육을 활용했다. 국민학교를 졸업해도 상급학교에

    진학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소수만 선발하는 명문학교를 졸업하는 것만으로도 높은 임금과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일제 말기에 초등교육기관의 취학률은 50%에 육박하였으나, 인문중등교

    육기관의 취학률은 극히 미미할 정도로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이 때문에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는 학생

    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어, 상급학교 진학을 효율적으로 준비시키기 위한 입시 위주의 교육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가열된 학력경쟁은 사설학원을 낳았고,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학교는 사회 지위

    를 획득하는 통로로 인식되었으며,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경쟁공간으로 변질되어 갔다. 해방 이후에

    도 학력경쟁 체제는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었다. 특히나 일본인이 떠나면서 공석이 된 사회 상

    층의 자리에 학연을 통한 충원 사례가 늘어나면서 학력과 학연을 이용해 사회의 중상위층에 진입하려

    는 경쟁 열기는 식지 않고 지속되었다.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입시에 시달리는 것이 교육적,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1968년 정부는 중학교

    무시험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 조치로 입시경쟁의 폐해가 고등학교로 옮겨가자 1974년에는 고등학교

    평준화제도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의 기회는 넓어진 반면 대학 정원을 억제하는

    박정희 정권의 정책으로 대입을 둘러싼 경쟁은 오히려 더 치열해졌다. 대학교육의 기회가 확대되기 시

    작한 것은 1982년 대학졸업정원제를 실시해 입학 정원이 30% 늘어난 것과 김영삼 정권이 교육에 시

    장원리를 대폭 반영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이로 인해 대학이 급격히 팽창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결과

    학생 모집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생기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점은 학교교육이 사회의 지위 획득에 초점을 맞춘 채 몸집만 불려나간 탓

    에 시험과 선발에만 치중하는 교육 풍토가 자리를 잡고 정작 학교가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난 형국이다.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쟁적 교육은 결국 수많은

    ‘학습 소외자’를 양산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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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장 없는 빌딩형 학교

    학교에 운동장이 없다? 학교의 상징처럼 떠올리던 드넓은 운동장이 자취를 감췄다니 이게 무슨 소리가 싶

    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5월 한 방송사가 취재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서울에 운동장이 없는 초등학교가

    다섯 군데, 100m는 커녕 50m 달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좁은 학교도 20여 곳이란다. 그렇다면 대체 체육

    수업은 어디서 한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지만 학생들은 옥상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조차

    도 수업시간이 겹치는 다른 학년 학생들은 걸어서 근처 공원으로 가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안타까

    운 상황도 펼쳐진다.

    부산도 처지가 비슷하다. 지난 3월 공개된 부산시의회의 자료에 의하면 부산지역 초·중·고 603개교 가운데

    69.5%에 해당하는 419곳이 100m 달리기를 할 수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는 293곳 가운데 206곳(70.3%), 중

    학교는 170곳 가운데 135곳(79.4%), 고등학교는 140곳 가운데 78곳(55.7%)이다. 여름철이나 겨울철 실내

    체육을 위한 전용체육관을 갖춘 학교는 아예 단 한 곳도 없었다.

    이처럼 운동장이 없거나 좁은 학교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2007년부터 정부가 학교 건물의 기준 면적을

    완화해 설립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땅값 상승으로 학교부지 마련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학

    교건립을 추진하는 것이라지만, 맘껏 뛰어놀 수도 없는 학교가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맞는지 의문스럽다.

    중금속과 미세먼지에 시달리는 아이들

    운동장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있어도 고민이다. 최근 일부 학교에서는 운동장에 깔린 인조잔디에서 중금속

    성분이 다량 검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의 ㅊ초등학교의 경우 안전기준치를 무려 49배나 초과

    한 4,400㎎/㎏의 납이 검출됐다. 이러한 중금속 성분은 만성중독을 일으켜 두통, 시력감퇴, 빈혈 등을 유발

    하고 신장, 면역체계, 신경조직 등에 심각한 손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성장기 아이들에게 치명

    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우리 아이들이 하루일과의 대부분을 보내는 교실의 실내공기는 안전할까? 실내공기를 오염시키는 주범은

    바로 미세먼지. 일반 먼지보다 사람 폐에 더 깊숙하게 전달되는 특징이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실내 오염물

    질이 폐에 전달될 확률이 실외보다 약 1,000배 높다고 추정하는데, 미세먼지는 폐 속까지 들어가 염증과 암

    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교실의 이산화탄소 농도 역시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요인. 냉난방을 위

    해 창문을 계속 닫아둘 경우 아이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게 된다.

    신도시 개발이 계속되면서 새학교증후군(Sick School Syndrome)도 기승이다. 눈이 따갑거나 목이 아프고

    두통, 아토피성 피부염, 천식 등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 답답하고 오염된 교실에서 대부분의 시

    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 우리나라 어린이의 20%가 알레르기 환자라는 조사결과 역시 학교생활의 고충을 뒷

    받침해준다.

    울산시교육청은 지난 겨울방학 동안 교실 리모델링 공사를 했거나 책·걸상, 컴퓨터 등 교실비품을 대량 교

    체한 26개 학교를 대상으로 오염도를 측정한 결과 6개 학교가 휘발성 유기화합물 환경기준(400㎍/㎥)을 초

    과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교실비품이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것으로 확인된 만큼 친환경 소재로

    바꾸는 등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학교, 안녕하십니까?글 | 윤은정 객원기자 [email protected]

    작지만 강한 나라, 복지선진국 핀란드의 교육방식이 최근 들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대학서열도 사

    교육도 없는 평등교육, 아이들의 즐길 권리를 보장하는 교육철학, 하루 6시간을 넘기지 않는 수업

    시간 등이야말로 핀란드를 국가경쟁력 1위에 등극시킨 비결이라는데…. 얼마 전 학업성취도평가에

    서 기적을 일궈냈다던 전북 임실군이 조작 소동에 휘말리는가 하면, 정부의 ‘사교육 없는 학교’운영

    계획안을 두고 설왕설래 하는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을 보고 있자니 이역만리 타국의 성공담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바람 잘 날이 없는 우리의 교육현실, 새나라의 인재들은 어디 가고 시끄럽게 종만

    울려대는 답답한 현주소를 살펴보자.

    돌이켜보니 꽤 긴 시간이다. 내가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학생’이란 신분으로 산 기간이 무려 16년

    이나 되니 말이다. 아니, 나는 여기에 2년을 추가해야 한다. 대학시절 두 차례 휴학을 하느라 남들보

    다 2년 더 학생으로 살았으니까. 요즘엔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들 하지만, 그때 역시 IMF 한파에 등

    록금을 마련 못해 휴학하는 사례가 많았더랬다.

    아무튼 18년이란 긴 시간을 동고동락한 ‘학교’이지만 애석하게도 학창시절로 돌아가고픈 맘은 없

    다. 추억은 아름다운 법이지만, 학교 교육엔 유감이 많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땐 재래식 화장실 같은

    낙후된 시설이 끔찍하게 싫었고, 중학생 땐 과외 받는 친구들과 비교되는 게 불만이었고, 고등학생

    땐 입시경쟁에 시달리는 게 힘들었고, 대학생 땐 매학기 등록금 걱정하느라 맘 편할 날이 없었다. 세

    월이 흘렀다고 바뀌었을까? 강산이 몇 번 바뀌었어도 여전히 대한민국 학생들은 힘들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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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교육에 빼앗긴 학생들의 사생활

    서울대 연구팀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생활을 조사한 결과 초등학생의 80%, 중학생 이상의 70%가 사교육

    을 받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학원에 시간을 빼앗기다 보니 조사대상의 절반 이상이 평소 운동을 할 시간

    조차 없고,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인스턴트식품으로 식사를 해결한다고 답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사교육

    열풍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사교육비 지출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에는 사상 최고치인 20조 9,000억 원을 지출했

    다. 《시사IN》(2009년 5월 23일자)의 기사를 참조하면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사교육비 격차가 IMF

    외환위기를 전후해 4배에서 6배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7배에 이르렀다고 한다. 외환위기로 타격을 입은

    중산층 부모들의 불안 심리가 사교육 지출을 늘린 것이라는 분석이다. 유학 비용도 급속히 늘어났다. 1994

    년에 9억 4,000만 달러이던 유학수지 적자 규모는 1998년 7억 9,000만 달러로 잠시 주춤했다가 2000년 9

    억 3,000만 달러, 2002년 14억 달러, 2007년 49억 6,000만 달러, 2008년 44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는 ‘사교육 없는 학교’ 대책을 내놓고 7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전

    국에 400개 초·중·고등학교를 선정해 600억 원을 투입함으로써 3년 뒤에 사교육비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취지인데, 강남 부자 학교에 지원이 쏠리면서 일각에서는 비난도 거세다. 과연 중산층의 사교육 지출을 줄

    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돈이 학벌을 결정하는 나라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요즘엔 통하지 않는다. 부모의 자산 수준이 자녀의 명문대 진학을 결정짓기 때

    문이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권영길 의원이 지난 3년간의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합격자 자료를

    232개 시·군·구의 평균 주택가격과 대조한 결과, 집값과 SKY 진학률의 상관관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집값 빅3’인 경기 과천시와 서울 강남구·서초구는 ‘SKY 합격률 빅3’이기도 하다. 반면 집값 하위 10개 지

    역의 합격률을 보면 9곳이 전국 평균에 미달됐다. 합격률 하위 10개 지역은 예상대로 집값 역시 낮은 수준

    이었다. 하지만 합격률 상위 10개 지역에서는 집값이 들쭉날쭉했다. 특목고·자율학교가 있는 지역들이 합

    격률 상위권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또 서울에서 무료급식 비율이 낮은 지역일수록 SKY 합격률은 높게 나타

    났다.

    한편 최근 정부가 발표한 종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8세 이하 아동·청소년의 11.5%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이중에서도 8세 이하 아동들은 일반층(소득이 최저생계비의 120% 이상) 아이들에 비해서 인

    지·언어·학습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음이 밝혀졌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계층 간 우열이 갈

    리는 셈이다. 저소득층의 교육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공평한 교육기회 제공이 절실하다.

    200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대학의 평균 등록금은 사립대 783만 원, 국립대 417만 원 정도이다. 하지만 의

    대나 예체능계의 경우 이미 1,00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등록금 부담이 늘어나면서 학자금대출도 폭발적

    으로 증가했다. 2008년 1학기에만 32만 7261명의 대학생이 총 1조 2451억 원을 대출받았다. 이자를 갚지

    못해 신용유의자로 분류된 대학생 수는 2006년 12월 말 756명에서 2008년 8월 말 7454명으로 10배가량

    늘었다. 사태가 이쯤 되니 등록금 때문에 자살하거나, 등록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졸업 후에

    도 취직이 안 되고 학자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젊은이들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등록금 총액과 인상폭을 제한하는 ‘등록금 상한제’, 졸업 후 일정

    한 소득에 따라 세금 형태로 내는 ‘소득연계형 등록금 후불제’, 소득분위별로 액수를 달리하는 ‘등록금 차등

    부과제’, 상환기간을 10년 이상으로 늘린 ‘무이자·저리 대출’ 등이 꼽힌다. 중앙대의 경우 ‘이자지원 장학금’

    을 운영하면서 한 학기에 800여 명의 학생에게 각각 5~10만 원가량의 학자금 이자를 지원한다. 이자를 지

    원받는 것만으로도 신용유의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로선 반가운 일이다.

    적립금을 5조 6,000억 원(2007년 기준)나 쌓아두고도 학생들의 허리띠만 계속 졸라대는 대학들. 정부가 나

    서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농어촌 학교, “니들이 고생이 많다”

    가장 먼저 농촌지역의 교원 부족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충청남도의 경우 지난해 중·고등학교 교사 수는

    7,287명으로, 법정 정원의 82.75%밖에 채우질 못했다. 이런 이유로 학교 2~3곳을 순회하는 ‘순회교사’와

    전공이 아닌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상치교사’가 등장했고 정상적인 수업 운영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촌지역 학교들이 경험하는 불편함은 이뿐 아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를 때도 고사장이 배정된 타 지

    역으로 원정을 가야 한다. 실제로 지난해 전국 64개 시·군의 2만 2,869명에 달하는 응시생들이 먼 곳으로

    이동해 시험을 봐야 했다. 도시 학생들에 비해 불리한 조건에서 수능을 보는 농촌 수험생들이 느끼는 소외

    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다양한 지원책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환경이 열악한 농어촌 지역 고등학교 82

    곳을 기숙형 공립고로 선정했다. 한 학교당 38억 원이 지원되며, 학교는 기숙사를 신설해 2010년부터 신입

    생을 맞을 계획이다. 올해 6월에 발표된 ‘농·산·어촌 전원학교’ 계획안은 농·산·어촌 면 지역의 초등·중학

    교 가운데 110곳을 선정하고 3년간 총 1,393억 원을 지원해 도시와 농촌의 교육격차를 해소한다는 내용이

    다. 전자칠판, 디지털교과서, IPTV 등 첨단 e-러닝 교실을 갖출 예정이라고. 올해 103개의 소규모 학교를 통

    폐합하고 앞으로도 매년 100개교 이상 통폐합을 추진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된 가운데, 이 같은 지원책

    들이 그동안 소외되었던 농어촌 학교의 갈증을 얼마만큼 달래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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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과 바람과 물을 담은 행복한 밥상을 꿈꾸며 글 | 이원영 안전한 학교급식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 [email protected]

    2008년 기준으로 학교급식에 소요되는 경비는 연

    간 4조 원이 넘는다. 이 가운데 71%를 학부모가 부

    담하고 있다. 학교급식에 종사하는 인원은 무려 7

    만5천 명에 이르지만 영양(교)사, 조리사, 조리종사

    원 가운데 82%가 비정규직이다. 학교급식의 본새

    를 이리 살펴보고 저리 살펴볼수록 학교급식은 국

    민건강과 교육, 농업, 환경 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

    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급식의 기본은 바른 먹을거리 교육

    나도 여섯 살, 다섯 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여느

    부모들처럼 어린 아이들이 밥을 열심히 먹는 모습

    을 보는 것은 매우 흐뭇하다. 그러나 배가 별로 고

    프지 않은 요즘의 여느 아이들처럼 어떤 때는 정성

    스레 밥을 차려 놓아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밥상

    에 착 달라붙지 않고 딴 짓만 할 때가 많다. 그러면

    부글부글 속이 탄다. 요즘 아이들은 손만 뻗으면 달

    고 맛있는 음식들이 즐비한 까닭에 식습관을 망치

    기가 쉽다. 아이가 당장에 혀를 즐겁게 하는 햄버거

    나 피자, 치킨 같은 음식에 길들여진 것은 아이들보

    다 어른들 탓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떤 식습관을 갖

    게 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데, 부모들이 뚜렷하게

    소신을 가지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상

    황은 돌이키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통계를 대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아토피성 피부염

    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비만 역시 큰 걱정거리다.

    학생 때부터 학교급식을 통해 바른 먹을거리 교육

    을 해야 하는 이유가 보다 분명해졌다. 다행히도 올

    해 4월 식생활교육지원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올바른 식습관을 교육하기 위한 법적 장치가 마련

    된 것이다. 올바른 식생활 교육은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음식들의 생산을 규제하는 것보다 더 중

    요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급식이라는 말에서 ‘식중독사

    지금처럼 학교급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전면적인 학교급식은 1993년도 초등

    학교부터 시작되었다. 5년 뒤인 1998년에 고등학교로 확대 되었고, 마지막으로 중학교에서는 2000년도부

    터 시작되었다. 현행 학교급식법이 제정된 것은 1981년이다. 물론 그 사이에 여러 차례 법 개정이 되었다.

    도시락을 대체하고 있는 학교급식은 지난 10년 동안 여러 면에서 국가의 중요한 정책으로 자리를 잡았다.

    고’를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학교급식

    을 통해 집단 식중독사고가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

    다. 특히 급식을 위탁하고 있는 학교에서 식중독사

    고 발생률은 더 높았다. 교육부 통계에 의하면 지난

    5년 동안 식중독 발생률은 위탁급식학교가 직영급

    식 학교에 비해 5배 이상 높았다.

    지난 2006년 발생한 초대형 식중독사고 이후 학교

    급식법이 전면 개정되고 학교급식은 직영으로 하

    는 것이 원칙으로 정해졌다. 학교급식법에 따라 오

    는 2010년 1월까지 모든 위탁급식 학교는 직영으

    로 전환을 해야 하게끔 되어 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학교 교장들이 위탁급식을 고

    수하고 있어 학부모들과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있

    다. 직영전환 예산을 지원하고 지도해야 할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위탁급식업자에게 선거지원금을

    받았다. 몇몇 교장들은 위탁급식업자들로부터 몇

    년동안 해외골프접대를 받다가 중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학교급식법을 이행해야 할 교장들이

    계속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 서울 중등교장회라

    는 단체가 나서서 위탁급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

    장을 하면서 국회와 서울시교육위원회를 향해 비

    교육적인 로비를 벌이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

    문이다.

    80% 이상 대다수 학부모들은 학교급식을 직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 건강

    을 걱정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급식비 가운데 식

    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직영의 경우가 위탁급

    식보다 평균 10% 이상 높다. 국정감사 자료 등에 의

    하면 위탁급식의 수입산 쇠고기 사용비율은 직영

    급식에 비해 20배나 높다. 전국적으로는 90% 가까

    운 학교가 직영 급식을 하고 있고 유독 서울의 중고

    등학교만 위탁급식 비율이 높다. 그러다 보니 서울

    의 중고등학교 교장들의 알 수 없는 고집이 더욱 밉

    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면 학교적응기간인

    한 달 동안은 일찍 귀가하기 때문에 급식을 먹지 않

    는다. 점심을 챙겨줄 조건이 안 되는 맞벌이 부모입

    장에서는 비록 길지 않은 기간일지라도 무척 난감

    한 일이다. 이처럼 점심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것을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학교급식은 전

    국에서 800만 명이 먹고 있다. 초중고학생 750만

    명과 교직원을 포함한 숫자다. 우리나라 전체인구

    를 5천만 명으로 볼 때 학교급식으로 점심을 먹는

    사람이 전 인구의 무려 16%나 되는 셈이다. 유치원

    까지 포함하면 성장기 14년 이상을 매일 한 끼 이상

    학교급식을 먹고 있기 때문에 학교급식이 학생들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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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행되고 있다. 그리고 180개가 넘는 지방자치단체

    에도 학교급식지원조례가 제정되어 시행되고 있다.

    친환경급식은 다양한 형태로 추진되어야 한다. 우

    리아이들에게 먹을거리에 대한 교육, 농촌체험활

    동도 진행하고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직거래도

    추진해야 한다.

    현실을 살펴보면 친환경급식을 하는 학교가 있기

    는 하지만 아직 부족한 수준이다.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하는 농가가 급격히 늘고, 친환경농산물 재배

    면적 역시 지난 10년 동안 70배가 넘게 늘었다고

    한다. 친환경학교급식 역시 이런 상황을 반영해 맛

    도 좋고 건강에도 이로운 친환경 농산물을 학교급

    식에 확대공급해야 할 것이다.

    2009년 지방자치단체의 친환경급식 예산은 1,400

    억 원 정도이다. 친환경급식지원을 앞장서서 이끌

    고 있는 전라남도와 제주도는 올해 100% 친환경급

    식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국에서 가장 늦

    게, 올해 처음으로 친환경급식지원을 시작한 서울

    시는 내년에 그 규모를 10배 확대하겠다고 공언했

    다. 내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지방자치단체의 친환

    경급식 지원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학교급식운동 단체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학

    교급식을 개선하기 위해 종합적인 비전을 제시하

    결식아동을 책임지는 교육으로

    날이 갈수록 경제 사정이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이

    사회를 지탱해야 할 중산층이 엷어지고 빈곤층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빈곤아

    동도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때문인지 5월

    어린이날이 되면 어김없이 결식아동 이야기가 보

    도되곤 한다. 기뻐해야 할 어린이날, 밥을 굶는 아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한다. 빈

    곤 아동은 100만 명이 넘는다. 지원정책이 보호하

    지 못하는 사각지대 또한 대단히 넓다. 학교급식에

    대한 지원 예산이 증가해도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학생 역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경제는 눈에 띄게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데 급식지원예산은 생색

    내기 수준으로만 늘고 있다. 휴일, 방학 중 급식지

    원은 급식지원이 필요한 아이들의 절반도 감당하

    지 못하는 수준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파악하고 있는 2009년 학교급

    식지원 대상자는 70만 명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예산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담임교사가

    학생상담을 해서 급식지원 신청을 한 적잖은 학생

    들을 지원 대상에서 누락시킬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다. 또, 학생들의 자존심을 다치게 하는 각종 증명

    서를 요구하기도 해 급식지원 신청을 스스로 포기

    하게 만들기도 한다. 갈수록 부모의 경제력 차이에

    의해 학생들의 학력차이가 벌어지는데 저소득층

    아이들은 학교급식 때문에 또다시 상처를 받고 있

    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전

    면 무상급식의 시행이 더욱 절실해진다.

    중앙정부는 결식아동 지원에 대해서도 ‘딴 나라’ 일

    처럼 외면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사례

    들이 생기고 있다. 몇몇 교육감과 지방자치단체장

    들이 우리가 꿈꾸는 무상급식을 추진하고 있다.

    현 경상남도 교육감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무상급

    식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되었다. 무상급식에 대

    해 한편에서는 실행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딴지’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경남교육감은 이 약속을 지키

    기 위해 1천억 원이 넘는 예산을 무상급식을 위해

    사용하려고 하고 있다.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이 되

    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경남 하동, 거창, 남해 등 여

    러 기초자치단체에서는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2009년 4월 선거에서 당선된 경기도 교

    육감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무상급식 공약을 이행

    하려고 하고 있다. 경기도는 내년까지 초등학교부

    터 무상급식을 실시하려고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무

    상급식추진단을 꾸려 시행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민선 교육감들이 공약으로 내건 무상급식을 시행

    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우리는 의미 있게 지켜보고

    있다.

    학교급식은 교육의 일환이고 헌법 정신에 따라 국

    가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의무교육으로

    국가가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에서는 급식 역시 교육의 일환으로 무상 제공하는

    것이 옳다. 물론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 부담을 학부모들에게 전담시

    킬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국가가 아이들의 안전한

    밥상을 책임지는 무상급식의 전면실시는 대통령이

    나 교육감, 자치단체장들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문제다. 국민 70% 이상이 반대하는 한

    반도 대운하는 엄청난 재정을 들여 밀어붙이고 있

    지 않는가?

    저질 식재료에서 친환경 식재료로 도약을

    2002년부터 전국에 학교급식운동본부가 꾸려져

    급식조례제정 운동을 시작했다. 꾸준히 노력한 결

    과 16개 모든 광역시도에서 학교급식지원조례가

    고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학교

    급식운동 단체들은 지난 4월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

    했다. 무상급식확대, 안전한 식재료 공급, 급식지원

    센터 설치 의무화, 학교급식 정책을 담당할 학교급

    식중앙위원회 설치를 설치하는 것 등이 주된 내용

    이다. 지난 4월에 제정된 식생활교육지원법이 제대

    로 시행되게끔 해야 할 일도 많다.

    친환경급식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산자 조

    직과 생산기반이 확대되어야 한다. 특히, 친환경 가

    공식품 생산에 대한 지원은 매번 토론회 때마다 지

    적되고 있다. 학교급식지원센터 역시 전국에 설치

    되어야 한다.

    농업의 위기를 모두가 걱정하고 있다. 농업의 위기

    는 먹을거리의 위기이기도 하다. 학교급식운동은

    식량주권을 지키는 노력과도 닿아 있다. 학교 급식

    은 단지 학교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 아이

    들이 생명을 존중하고, 우리 농업에 대한 관심을 갖

    게 하는 일이 학교급식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글을 쓴 이원영 님은 여섯 살 다섯 살 두 아이의 엄마로 바른 학교 급식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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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 37

  • 튀는 건 용납 못해 !

    글 | 괭이눈 초등학교 교사 [email protected]

    폭력적인 학교가 학교폭력 낳고 있지 않나

    학생인권에 관심 많은 초등학교 교사 ‘괭이눈’이 자기를 앉혀놓고 스스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괭이눈은 ‘말도 안 되는’ 학교와 좌충우돌하면서 좌절도 많았지만 날이 갈수록 눈빛 초롱한 아

    이들 때문에라도 학교를 포기할 수 없게 되었다. 인터뷰를 통해 학교 시스템 안의 수많은 관계

    속에 얽혀 있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발견하고 그 안에서 조금씩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꿈을 간

    직하고 있는 자신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편집자 주

    학교라는 말에 심드렁한 표정입니다. 교사인데 학교에 관심이 없습니까?

    학교에 관심이 없다기보다 질렸다고나 할까? 아항 오해는 마삼. 아이들과의 생활이 그렇단 말은 아니니까.

    날이 갈수록 아이들 때문에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있음을 절절히 느끼거든요. 가르치는 일을 하며 학교에

    다닌 지 어느새 10년째.(우왕! 새삼스럽다는…) 그 동안 세 곳의 학교를 다녔고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오르

    락내리락 참 다양하게 생활했지요. 꽤 많은 교장, 교감들을 만났고요. 그동안 학교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요즘 우리 현실이 거꾸로 간다 뭐다 말하지만 학교는 변함없어요. 물론 좀 더 심해진 것 같긴 하지만 본질적

    으로는 그래요. 학교만큼 다양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을까 싶은데, 학교는 아예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

    아요. ‘일제고사’는 말할 것도 없죠.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일제고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선택권을 주었

    다는 이유만으로 ‘짤린’ 교사들. 아이들에게 가차 없이 상처를 주는 학교와 교육 당국은, 그들이 다양성을 얼

    마나 끔찍하게 여기는지 새삼 보여줍니다. 튀지 말고 무리에 잘 섞여 지내라고 끊임없이 윽박지릅니다. 학

    교급식도 마찬가지. 매달 급식을 할 건지를 ‘급식 포기서’라는 이름으로 묻기에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왠지

    나 혼자 외따로 떨어져나가는 느낌이라 선택하기 어렵죠.

    교실 문에 풀꽃 포스터를 붙인 적이 있어요. 많은 이들이 오가며 보길 바라는 마음에 복도 쪽으로 붙였더니

    아이들이 오가며 이 꽃 본 적 있다며 서로 이야기해서 참 듣기 좋았어요. 그런데 교무선생님이 부르더니 떼

    라고 해요. 기가 막혀서, 교육적으로 안 좋은 거냐 안전상 문제가 되는 거냐며 물었더니 대뜸 교감선생님이

    싫어한다면서 그 반 문만 다른 것도 이상하지 않냐는 거예요. 아침마다 영어방송을 트는 것도 알아서 선택

    하라고 해놓곤 교장 교감이 복도를 돌아다니며 틀지 않은 반을 체크합니다. 하다못해 창가 블라인드 높이도

    똑같이 맞추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곳이 학교입니다. 이런 교장 교감이 유달리 이상한 사람이냐?

    그것도 아니거든요. 이런 일은 제가 10년 동안 다닌 학교에서 늘 있었던 일입니다. 10년 동안 열심히 싸웠

    죠. 왜 그래야 하냐며 끊임없이 ‘딴지’도 걸고, 술렁이는 분위기 만들자고 품도 많이 팔았죠. 그런데 이제는

    더 참기 어려운 지경이라고나 할까.

    교사들도 이런데 학생에게는 오죽하겠습니까. 학교만큼 ‘뻥’이 심한 곳이 어딨겠어요. 시험은 얼마나 아는

    지 살피고 모르는 걸 다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치른다면서 실상은 다르잖아요. 한 줄로 세우고 등급

    매기면서 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