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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2009년 여름호

kssi.jinbo.netkssi.jinbo.net/maybbs/pds/kssi/view/동전76호.pdf · 동향과 전망 2009년 여름 통권 76호 발행인 박영률 편집인 박영호 동향과 전망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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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62009년 여름호

  • 동향과 전망 2009년 여름 통권 76호

    발행인 박영률

    편집인 박영호

    동향과 전망 편집위원회

    편집위원장 전병유(한신대, [email protected])

    편집위원 김용현(동국대) 김종엽(한신대) 남궁곤(이화여대) 남기곤(한밭대) 박준식(한림대)

    석재은(한림대) 송위진(과학기술정책연구원) 양문수(북한대학원대학교) 오유석(성공회대)

    유철규(성공회대) 이건범(한국금융연구원) 이남주(성공회대) 이영희(가톨릭대) 이인재(한신대)

    이일영(한신대) 장홍근(직업능력개발원) 전창환(한신대) 정건화(한신대) 정해구(성공회대)

    조석곤(상지대) 조형제(울산대) 조효래(창원대) 홍석준(목포대) 홍장표(부경대)

    발 행 일 2009년 6월 1일

    등록번호 제1-2136호

    출판등록 1997년 2월 13일

    박영률출판사([email protected])

    121-869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571-17 청원빌딩 3층

    전화 02-7474-001

    팩스 02-736-5047

    지식재산권

    이 책의 지식재산권은 한국사회연구소와 박영률출판사가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과 형식을 사용

    하려면 지식재산권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자, 편집위원장, 출판사에게 전자우

    편으로 물어주십시오.

  • 편집자의 글  3

    편집자의 글  

    우리는 지난 겨울 두 개의 세계사적인 사건을 경험하였다. 사상 처음

    으로 흑인 출신 미국 대통령의 출현을 목격하였으며, 미국의 서브프라

    임모기지 부실이 세계동시불황으로 이어지는 불안한 과정을 우리도 직

    접 경험하였다. 두 사건 모두 미국으로부터 날라들었다. 소련이 몰락

    하였고 유럽이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에 있고 중국이 부상하고 있음에

    도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은 크게 약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누구는 이번 금융위기가 미국 자본주의 침체의 시작이라고 보

    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의 금융부실이 세계동시불황으로 이어지면서

    오히려 달러 가치는 상승하였다.

    지난 편집위원회에서는 ꡔ동향과 전망ꡕ이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한 이슈와 쟁점들에 대해서 좀 더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발언하는

    동호회지의 성격을 강화하자고 합의하였다. 이를 위해 ‘특집’을 강화하

    고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결의하였다. 이러한 합의와 결의를 바탕으

    로 “미국자본주의의 성격과 미래”에 대해서 분석해보자는 의견이 제시

    되었다. 이에 따라 구성된 특집이 “금융위기와 미국자본주의의 변화”

    이다. 이번 특집에서는 미국자본주의에 대해 정치, 대외관계, 경제정

    책, 금융시스템 등의 측면에서 분석하고 전망하는 글들을 실었다.

    안병진의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에서는 오바마의

    당선이 단순히 경제위기의 수혜를 받은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미

    국 정치의 변화를 경제위기에 대한 수동적 반응으로서가 아니라 정치

    적 쟁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적 흐름에 서서 오바마 정부를 클린

    턴 정부와 비교하면서 그 특성을 밝히고 있다. 대중적 보수주의 시대

    의 제약 속에서 정치 노선과 활동 방식이 제한된 클린턴 시대와는 달

  • 4  동향과 전망 76호

    리, 잠정적이기는 하나, 오바마 시대는 보다 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자

    유주의 시대의 개막으로 볼 수 있다. 과거 뉴딜 시기를 열어간 루즈벨

    트 정부처럼 새로운 자유주의의 주기의 순환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

    다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이 결론은 잠정적인 것으로, 정치적 쟁투의

    과정에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고 있다.

    고봉준의 “경제위기와 미국 대외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도 경제위기가

    미국대외정책의 패러다임을 크게 바꾸지는 않을 것 같다는 정책적 함

    의를 가진다. 물론 경제위기는 미국의 자원동원능력을 일정 정도 축소

    시킴으로써 일방주의적 패러다임이 전면에서 후퇴할 것이고 다자주의

    적인 외피를 취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적 이익을 반영하는 국

    제주의적, 현실주의적 패러다임은 여전히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특

    히 미국 내부로부터의 경제적 이익의 확대에 대한 압력의 증폭이 오바

    마 행정부의 행동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용하면서 필요시 국제적 관행

    을 무시하거나 정권교체의 대안도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

    망하고 있다.

    정건화의 “미국의 경제위기와 오바마의 경제정책”에서는 기존의 연구

    와 달리 금융부문보다는 실물경제 측면에서의 고용위기와 가계적자 그

    리고 오바마의 불황대책을 둘러싼 쟁점들을 분석하고 국가-시장, 케

    인즈-하이예크라는 담론 지형에서 미국자본주의의 변화를 전망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버블에 기초한 기존의 과잉소비-과잉투자에

    의존하는 경제시스템을 개조하는 단기적 과제와 불황탈출을 넘어서 장

    기적으로 경쟁력을 가지는 경제시스템을 구축하는 장기적 과제를 가지

    고 있다. 오바마가 이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미국경제의

    재구조화의 틀이 형성될 것이고, 이는 향후 예상되는 국가와 시장의 담

    론 지형에서 국가의 역할과 능력에 대한 대중의 동의를 얼마나 획득하

    느냐에 좌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창환의 “미국의 금융위기와 금융자본의 재편 구도”는 이번 금융위기

    에서 큰 타격을 받은 “21세기 글로벌 금융의 중핵”인 미국의 거대복합

  • 편집자의 글  5

    금융기관과 메가 뱅크들이 금융위기에 대해 어떤 구조조정과 회생전략

    을 추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번 위기가 투자은행 중심의

    금융자본의 투기적 축적에 따른 지불불능상태에 기인하였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 결과 미국 5대 투자은행들이 상업은행이나 은행지주

    회사로 전환하거나 인수합병되었다. 그럼에도 위기방지를 위한 제도

    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까지 가지는 못했고 여전히 투자은행 업무는 금

    융화와 증권화, 고령화에 따른 금융자산의 증가에 따라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에서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근본적 성격이 이번

    금융위기로 변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번 특집의 글들을 종합해보면, 정치적 쟁투에 의해 자유주의적인 정

    치 구도로의 변화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대외정책이나 금융시

    스템에서의 큰 변화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경제정책의 패러다임에서

    도 여전히 국가와 시장의 일방의 구도로 가기보다는 양자의 대립 구도

    가 지속되는 것으로 전망해볼 수 있겠다.

    이번 호에서는 일반 논문의 투고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쟁점들을 직접적으로 다룬 논문들뿐만 아니라, 하이브리드 조

    직 모델이나 문화경제학과 같이 이론적인 논의들도 풍부하게 게재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장시간노동체제를 대표하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미시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도출된 정책 대안, 지금 여기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

    운 쟁점인 경인운하에 대한 비판적 분석, 최근의 인터넷 포털 규제에

    대한 정책적 시사점이 큰 블라인드 정책에 대한 분석,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확대됨에 따라서 나타나는 기혼남녀의 계층의식 변화에 대한

    참신한 분석 등 우리 사회의 문제를 파고드는 좋은 글들을 수록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격차 문제에 대해서 국가와 시장의 대안이 아닌 하이브리드 조직

    모델의 대안을 분석한 이일영의 글도 국가실패와 시장실패의 현실에서

    새로운 대안 영역의 모색에 커다란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

  • 6  동향과 전망 76호

    되며, 문화경제학을 다룬 이상호의 글은 과학과 실증이 지배하는 기존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시장을 넘어서는 문

    화의 특성을 보여주는 문화경제학의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2009년 5월 21일

    편집위원장 전 병 유

  • 차례

    3 편집자의 글

    특집 • 금융위기와 미국 자본주의의 변화9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정치질서론’의 시각에서

    안병진

    41 경제위기와 미국 대외정책 패러다임의 변화: 현실주의 이론의 관점에서고봉준

    76 미국의 경제위기와 오바마의 경제정책정건화

    109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와 금융자본의 재편전창환

    일반논문

    144 하이브리드 조직 모델의 수정과 응용: 격차 문제에의 대응을 위하여이일영

    176 문화 경제학의 쟁점과 가능성: 트로스비와 클래머의 논의를 중심으로이상호

    205 기혼 남녀의 사회계층의식에 관한 연구이병훈·신재열

    233 현대자동차의 장시간 노동체제와 ‘주간연속 2교대제’에 대한 시사점박태주

    271 경인운하에 대한 정치·경제·사회적 비판임석민

    306 정보사회 인터넷 포털의 자율규제: ‘블라인드(Blind) 정책’을 중심으로이혜수·유승호

    336 한국의 디지털 문화: 특징과 문제홍성태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9

    특집【 금융위기와 미국 자본주의의 변화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정치질서론’의 시각에서

    안병진❉ 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과 조교수

       

    1. 서론

    지난 2008년 미국 대선 초반기 오바마 후보가 변화와 희망이라는 기치

    를 내걸고 돌풍을 일으켰을 때 쟁점은 주로 이라크 전쟁 등 정치적인

    것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 등 전례

    없는 경제적 위기가 가시화되자 경제는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되

    었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과연 경제적 위기가 없었다면 소수인종 출

    신으로 여러 한계를 가지는 오바마 후보가 당선될 수 있었을까 하는 질

    문을 던지기도 하였다.1)

    당선 이후 경제적 위기의 폭이 전 지구적 대공황을 근심해야 할 정도로

    더 커지자 그에 비례하여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대한 경제

    적 차원의 분석도 그 중요성이 더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오바

    마 대통령이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그의 경제팀을 전적으로 클린턴

    행정부 시기의 루빈 전 재무장관 계열의 친 월가 인맥에서 충원하고,

    [email protected]

  • 10  동향과 전망 76호

    경기부양책 등이 이들에 의해 주도되자 이러한 경제적 분석은 더욱 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은 미국 정치에서 퍼거슨 경향의 경제주의적 분석이 다시

    부활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퍼거슨은 대중 여론 등

    보다 경제적 변수, 특히 자본 분파 내의 경쟁이 정치를 규정한다고 보

    는 입장을 말한다. 그는 과거 미증유의 경제적 위기에서 집권한 루즈

    벨트의 뉴딜 노선을 자본집약적 분파와의 전략적 연합의 결과로 이해

    한 바 있다(Furguson, 1995). 이는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미국 건국 초

    기 헌법 제정과정에 참여한 이들의 경제적 배경을 그들 활동의 주요한

    변수로 분석한 찰스 비어드의 경제주의적 경향과 맞닿아 있다(Beard,

    2004).

    실제로 마이크 데이비스와 같은 노동사학자는 충분한 논거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퍼거슨을 개념적으로 인용, 오바마 행정부는 IT 계열 자

    본과의 전략적 연합을 추구하고 따라서 노동계 등이 추구하는 의료보

    험 과제는 경시될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Davis, 2009). 최근 한국에

    쏟아져 나오는 오바마 행정부나 미국의 미래에 대한 책들은 직·간접

    적으로 이러한 경제주의적 분석에 경도되고 있다(쑹훙빙, 2008; 바트

    라, 2009).

    하지만 과거 뉴딜 시대에 대한 퍼거슨의 분석은 설득력 있는 경험적 근

    거로 뒷받침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플롯케의 지적처럼 자본 집약적

    성향의 자본들이 루즈벨트 개혁주의와 연합했다는 퍼거슨의 가정과 달

    리 대부분의 자본들은 격렬하게 루즈벨트의 진보주의에 저항했다

    (Plotke, 1996).

    시각을 단지 뉴딜 시대가 아니라 미국 정치 전반으로 확대한다고 해도

    정치를 경제의 하위 범주 정도로 인식하는 경제주의적 경향의 설득력

    은 여전히 떨어진다. 예를 들어 폴 크루그만 교수가 풀과 로젠탈 교수

    등의 연구결과를 활용하여 지적하였듯이 미국 정치에서 정치 리더십이

    정치적·경제적 변화의 핵심 추동력임을 이해하는 것은 정치질서의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11

    변화를 이해하는 것에서 매우 중요하다(크루그만, 2008: 23). 예를 들

    어 그는 미국에서 불평등이 확대된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진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1980년대 이후 정치적 리더십에 의해 본격

    적으로 전개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서 정치적 리더십의 우선성이

    란 1970년대 초반 보수주의 운동이 확대되고 1970년대 중반 우파가

    공화당을 차지하면서 정치적 양극화가 선행되고 경제적 양극화는 이에

    뒤따라 진행되었다는 의미다.

    필자의 이 글은 플롯케 등과 같이 정치적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론적 흐름에 서서 새로이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 초기의 특성을 이해하

    고자 한다. 즉 경제적 위기에 대한 수동적 반응으로서의 정치가 아니

    라 각 정치세력들 간의 어떠한 관점과 정치적 리더십이 경제적 정책을

    포함한 노선 전반을 구체적으로 결정하는가의 시각을 말한다.

    여기서 오바마 행정부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들은 포괄

    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압축된다. 즉 오바마 시대는 어떠한

    정치적 질서의 도래를 의미하는가? 보다 구체적으로는 오바마 행정부

    는 어떠한 내용의 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하는가? 이 노선은 어떠한 정

    치적 동기와 과정 속에서 결정되는가? 오바마 정부의 정치적 작동 양

    식은 어떠한 특징을 가지는가?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글은 유사한 자유주의적 정부였던

    클린턴 행정부와의 비교 시각을 주로 취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비교를 통해 오바마 시대가 과거 정치적 질서의 연속선상에 있는지 아

    니면 독특한 새로운 특징들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보다 분명하게 인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오바마 행정부는 출범한 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았기에 많은

    노선에 있어서 아직 유동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래에서 구체적

    으로 서술하겠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오바마 행정부의 전개 양상과 특

    징만으로도 새로운 정치질서에 대한 적잖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그리고 이러한 판단은 이후 오바마 행정부에

  • 12  동향과 전망 76호

    대한 보다 체계적인 분석과 전망, 그리고 추후 연구 과제를 정식화하는

    것에 작은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후 장에서는 오바마 시대를

    단지 서술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서 정치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수단으로 삼고 있는 개념적 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2. 이론적 틀

    여기서 필자가 빈번히 사용하는 ‘정치적 질서(political order)’라는 개

    념은 과거 근대적 정치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마키아벨리가 처음 사용

    한 바 있다. 필자는 이 개념에 대한 데이빗 플롯케(David Plotke) 교

    수의 정의를 수용하여 이를 전국적 차원에서 상당 기간 일관된 특정 제

    도, 정책, 담론을 나타내는 정치권력의 조직과 실행 양식으로 표현하고

    자 한다(1996. 1).2)

    플롯케는 일국의 흥망성쇠에 대한 올슨의 걸출한 분석(1990)을 변형

    시켜 위에서 정의한 정치질서도 나름의 순환 사이클을 가진다고 지적

    한다. 플롯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정치질서의 전개는 간단히 요약하

    자면 다음의 4단계를 거치게 된다(1996: 59∼69).

    • 1단계: 정치질서의 형성첫 단계에서는 기존 질서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적 불만이 증가하고 이

    러한 기회구조를 적절히 활용하는 도전적 리더십이 형성된다. 이 열정

    적 동원의 과정에서 진보적 민주당 정책 집단 같은 새로운 노선의 정치

    적 정체성이 형성된다. 정당, 이익집단, 시민 및 직업적 단체, 사회운동

    같은 다양한 정치적 행위자들이 새로운 정치질서 형성에 함께 관여한

    다. 예를 들어 뉴딜 정치질서는 단지 루즈벨트 대통령만이 아니라 새

    로운 정체성을 공유하는 정당, 이익집단, 운동들의 집합적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13

    • 2단계: 공고화 및 지속2단계에서는 새로운 정부-정당-운동 간의 관계가 유지되고 1단계보

    다는 동원의 강도가 낮아지며 정부의 정치적 역할이 더 확대된다. 정

    치적 동원은 비용과 지속적 헌신성이 필요하고 이미 1단계에 성공한

    정치질서는 정치적 동원의 필요성을 감소시킨다. 대신에 정치적 행위

    자들은 정부와의 결합과 정부에의 의존을 더 심화시킨다. 예를 들어

    정부 내 운동에 호의적인 엘리트들이 존재한다면, 만들어내기 어려운

    사회운동보다는 이 엘리트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것이 훨씬 쉽고 매

    력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실제로 뉴딜 시대에 갈수록 풀뿌리 차원

    의 활력이 저하되는 것은 이러한 엘리트들 간의 편리한 담합과도 연관

    되어 있다.

    • 3단계: 지속과 국가주의의 태동3단계에서는 2단계에서 이미 태동한 정부에의 의존 현상이 극단적으

    로 심화된다. 그 결과 풀뿌리 차원에서의 동원과 조직의 역동적 활력

    이 저하된다. 그리고 이렇게 저하된 활력은 이 정치질서가 새로운 에

    너지를 통해 혁신하는 것을 제약한다. 예를 들어 뉴딜 자유주의나 클

    린턴 자유주의의 퇴조는 바로 이러한 정부나 위로부터의 엘리트층에의

    과도한 의존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이 단계에서 이후 정치질서를 붕괴시킬 긴장의 요인들은 다양하게 존

    재한다. 그 중 하나는 플롯케가 재치있게 표현한 것처럼, 마치 돈을 찍

    어내어 경제위기를 탈출하려하듯이 정부를 더 확대하여 혜택을 받는

    층을 늘리는 것이다. 이 노력은 다양한 세력들 간의 갈등을 일시적으

    로 완화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새로운 이해관계 갈등이 다시 등장하고

    정부의 거대화를 가속화시킨다. 예를 들어 콰다그노 교수가 지적한 바

    있듯이, 트루만 정부가 보수적 엘리트들의 저항을 우회하여 다양한 지

    역 조직들에게 국가 자원을 직접 배분하려고 한 시도는 일시적으로 갈

    등을 완화하였지만 결국 거대 정부로의 경향을 심화시키고 뉴딜 자유

  • 14  동향과 전망 76호

    주의의 몰락을 촉진하였다(Quadagno, 1994).

    이 단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또 하나의 긴장은 경제적 발전 전략이 정

    치질서의 핵심 사회적 기반을 침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보기에 클린턴 행정부의 북미자유무역 노선은 이에 비판적인

    노동 진영 등 핵심 사회기반의 튼튼한 토대를 약화시키고 결국 이후 클

    린턴을 계승한 고어 부통령의 대선에서 한계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 4단계: 부패와 쇠퇴4단계에서는 현 정치질서가 극도로 약화되고 일상적 정치과정 자체가

    불안정해진다. 그리고 정치질서 내부의 균열이 심해지고 정치적 리더

    십은 이를 새롭게 혁신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노력에서 의미 있는 리

    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 단계는 주로 부분적 혁신이나 새로운 질

    서의 탄생, 혹은 헌정 질서 자체의 붕괴로 귀결될 수 있다. 기존에는 극

    단적인 노선으로 간주된 것이 새롭게 설정된 균열선에서 주류로 등장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68년 골드워터의 극단적 보수주의가 1970년

    대 뉴딜 자유주의의 위기 이후 중도 우파 노선으로 재규정된 것이 그러

    하다. 필자가 보기에는 2008년 오바마 후보의 극적 성공도 부시 정부

    의 부패와 쇠퇴가 만들어낸 새로운 질서라 평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질서론은 단순히 퍼거슨 경향의 자본 분파에 의

    한 수동적 정치론이나 혹은 정치적 분석 중에서 대통령 개인의 리더십

    특성을 나열하는 경향에 비해서 어떠한 분석적 강점을 가지고 있는가?

    앞에서 필자는 정치질서란 상당한 기간을 규정하는 지배적 정책이나

    담론, 그리고 이를 담지하는 정치세력들의 지형을 말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선 정치질서에의 접근은 각 시대의 지배적 담론의 범위를 이

    해하는 것을 통해 각 정치세력들 간 쟁투의 성격과 전개 양상,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통찰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러한 쟁투는 단지 경제

    적 변수에 종속되거나 혹은 어느 진영이 보다 탁월한 메시지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서만 승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보다 근본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15

    적으로 중요한 것은 각 정치세력들이 정치질서와 담론지형의 범위와

    특성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가다.

    정치질서의 중요한 구성 부분인 지배적 정치연합과 정치활동의 양식에

    대한 사고도 보다 폭넓은 시야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그 정치질서를

    주도하는 세력의 주요 지지 기반과 활동 양상의 특징 등을 말한다. 이

    는 단지 의회 등 제도권 정치 내 세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권

    바깥의 사회적 운동 진영들까지 광범위하게 포괄한다. 다시 말해 단순

    히 대통령이나 혹은 정부 조직 중심으로만 정치질서의 시야를 한정하

    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 정치질서를 제도권을 넘어 광범위한 사

    회세력까지 포함하여 사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정치질서

    의 흥망성쇠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러한

    시야를 통해서 우리는 과거 민주당 뉴딜 시대의 성공과 퇴조를 단지 민

    주당 대통령들의 개인적 리더십 변수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풀뿌

    리 사회운동과 정치질서의 활력과의 관계 속에서 읽어낼 수 있다. 이

    후 밝히겠지만 이 글은 오바마 시대의 활력을 바로 이러한 운동과의 연

    관성 속에서 이해한다.

    위에서 필자는 정치질서의 역동적 순환론을 간략히 소개하였다. 이 글

    의 지면상 제약으로 필자가 루즈벨트 자유주의의 등장 이후 오늘날까

    지 정치질서의 장구한 역사적 순환을 이곳에서 다룰 수는 없다. 다만

    이 글의 초점상 필자는, 오늘날 오바마 정부와 유사한 자유주의 정부인

    클린턴 행정부는 새로운 정치질서의 시작이라기보다는 ‘대중적 보수주

    의’ 시대의 제약 속에서 작동한 것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

    의 제약은 그에 조응하는 노선과 정치 작동방식을 양산한다고 지적한

    다. 반면에 클린턴 정부가 보인 제한적 모습과 달리 오바마 행정부의

    노선과 정치 양식은 플롯케가 지적한 새로운 정치질서의 개막과 새로

    운 순환주기의 시작에 더 부합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 16  동향과 전망 76호

    3. ‘대중적 보수주의’ 시대 클린턴 정치의 특징

    1) 기존 질서의 연속성과 새로운 정치질서 사이에서의 정치투쟁

    플롯케 교수가 새로운 정치질서 개막의 특징으로 정의한, 기존 정치에

    대한 만연된 불신과 이에 의한 반대당의 도전적 리더십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클린턴 대통령의 당선은 새로운 정치질서의 개막처럼

    보인다. 1992년 당시 클린턴 대통령도 오늘날 오바마 후보처럼 변화와

    초당적 통합을 기치로 내걸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그의 도전적 리더십의 정체성을 과거 1930년대 루즈벨트 대통

    령의 뉴딜 시기와 같은 새로운 노선으로 규정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존

    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클린턴 진영 내에는 기존의

    레이건 공화당 시대의 신자유주의적 노선과의 연속성과 새로운 자유주

    의 질서를 추구하는 이들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전자는 중도적 정책

    노선의 산실인 민주주의 리더십 센터와 루빈 재무장관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적인 노선과 중산층 상층 중심의 중도적 정치 양식을 대변

    한다. 후자는 민주당내 노동·흑인 등 진보적 이익집단과 로버트 라이

    시 노동부 장관 등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 중산층·중하층 중심의 진

    보적 포퓰리즘 정치양식을 대변한다.

    클린턴 정부 초기만 놓고 본다면 단지 기존의 보수적인 정치질서의 연

    속성만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질서로의 질적 차별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투한 측면이 주목되는 시기다. 하지만 클린턴의 진보적 자유주의 노

    선에 의한 새로운 정치질서의 꿈은 취임 직후부터 비틀거리기 시작했

    다. 대통령직 인수과정에 대한 전문가인 피프너 교수의 지적처럼 내부

    에 다양한 노선들이 혼재하고 워싱턴 정가 사정에 밝지 못했던 클린턴

    진영은 미리 인수위 시절부터 자신들의 어젠다 우선 순위를 분명히 확

    정짓지 못했다. 그리고 의욕이 앞선 클린턴 정부는 수많은 어젠다를

    동시에 진행시키고자 하는 욕심이 앞섰다(Pfiffner, 1996).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17

    이러한 클린턴 정부 초기의 아마추어리즘은 당시 새로이 들어선 민주

    당 정부에 대해 매우 강경한 태도를 견지한 공화당 지도부의 이념적 성

    향과 심리상태를 고려한다면 더욱 더 치명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즉 당시 깅그리치 하원의장이 주도하는 공화당 보수주의 진영은 정권

    상실을 넘어 1968년 이래 자신들이 주류에서 퇴장시켰다고 생각한 ‘자

    유주의자’의 재등장에 큰 위기감을 가졌다. 비록 클린턴은 과거 뉴딜

    자유주의와 달리 신자유주의적인 중도주의자이고 과거 공화당 대통령

    아이젠하워류의 온건 보수주의와 더 유사성을 지니지만, 강경한 보수

    이념에 기초한 당시 공화당 지도부의 시각에서 보면 그는 매우 위험한

    자유주의자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화당의 저명한 보수 대통령

    인 테오도르 루즈벨트조차 좌파 대통령이라 비판하고 있었기 때문이

    다. 그런 점에서 심지어 깅그리치 하원의장이 현직 대통령인 클린턴을

    마치 알 카에다처럼 ‘문명의 적’이라 부른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

    었다(Blumenthal, 2003: 120). 이러한 위기감에 기초하여 공화당 주

    류는 긴즈버그 등이 소위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politics by other

    means)’라고 부른 정치양식을 대대적으로 동원하였다. 이 용어의 의

    미는 정치가 정상적인 선거 등의 유권자 검증 과정을 통해 상대 정치세

    력을 패배시키기보다는 선거 이전에 이미 인사 청문회 폭로전이나 법

    적 기소 등의 다른 수단을 통해 정치적 타격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Ginsberg & Shefter, 1999). 이러한 행태는 현대 미국 정치에서 공

    화, 민주 양당 내 온건파가 줄어들고 당내 이념적 결집과 정치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더 빈번한 정치양식으로 활용되어 왔다(안병진, 2004).

    비단 반대당의 강력한 결집만이 아니라 민주당의 내부 사정도 새로운

    자유주의 정치질서를 강력하게 만들어갈 만한 동력을 가지고 있지 못

    했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과거 지미 카터 대통령 시기 의회와의 긴

    장으로 성공적 국정운영에 실패한 교훈을 절대로 잊지 않았기에 자 당

    과의 우호적 관계를 매우 중시하였다. 하지만 클린턴의 엄청난 친화력

    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의원들의 백악관 중심으로의 결집력은

  • 18  동향과 전망 76호

    그리 강하지 못했다. 피프너 교수의 지적처럼 대부분 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대통령보다도 더 높은 표를 받아 당선되었다. 물론 이는

    로스 페로라는 제3당 후보로 인해 대통령의 득표율이 극히 저하된 때

    문이기도 했다(Pfiffner, 1996: 181). 더구나 민주당 의회 지도부는 클

    린턴의 어젠다에 협력하는 대가로 정치자금법 개혁 등에서 선거 기간

    개혁적 기조의 후퇴를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이는 클린턴에게 워싱턴

    의 대대적 개혁가로서가 아니라 또 다른 워싱턴 기득권으로 변모하라

    는 강력한 압박이 아닐 수 없다(Blumenthal, 2003: 122). 결국 이후

    선거자금 개혁은 자유주의자가 아니라 보수주의자인 공화당 멕케인의

    트레이드 마크로 작용하게 된다.

    또 한 가지 성가신 문제는 클린턴 대통령의 어젠다 중 많은 부분들이

    그렇지 않아도 단일한 대오라고 부르기 어려운 민주당 내 다양한 분파

    들과 일치된 단결을 끌어내기 매우 어려웠다는 점이다. 사실 민주당

    전체의 의석 자체도 매우 불안정한 우위에 불과했다. 즉 민주당은 상

    원 100석 중 겨우 57석을 보유하여 트루만 대통령 이후 가장 적은 차

    이의 우위를 유지하는 상황이었고, 하원에서 435석 중 258석으로

    1966년 이래 가장 적은 차이의 우위였다(Pfiffner, 1996: 181). 이러한

    불안정한 우위는 민주당 내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감안하면 클린

    턴이 매 법안마다 근근이 다수 연합을 구성해야만 한다는 결론이 나온

    다. 따라서 클린턴은 집권 초기 가장 중요한 두 전투인 예산과 북미자

    유무역 협정 비준 등에서 겨우 자 당의 27명의 상원의원과 78명의 하

    원의원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그치고 말았다(ibid.: 181).

    이처럼 전반적으로 불리한 정치 지형에서 새로운 자유주의 정치질서를

    만들어가기란 애초부터 난망하였다. 더구나 취임 직후부터 의도하지

    않은 실수로 군대 내 동성애 이슈 논쟁이 전개되면서 더욱 불리한 상황

    을 만들어냈다. 즉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의 군대 내 동성애

    자 복무허용 이슈 질문에 무심코 긍정적으로 대답하는 과정에서 의도

    하지 않은 이념갈등에 휘말린 것이다. 결국 이 의도하지 않은 투쟁에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19

    서 정부 내 중도적 성향의 거물인 콜린 파월 합참의장 등이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문화적 좌파의 대변자 이미지로 낙인찍힌 클린턴 정부는 이

    후 보다 보수적 기조의 노선 전환을 추구하게 된다. 예를 들어 1995년

    부터 줄곧 추진된 클린턴 정부의 ‘가족의 가치’ 어젠다는 과거 레이건

    보수주의 시대와의 연속성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도하지 않은 문화적 이슈 논쟁에서의 패배에 이어 클린턴 정

    부는 새로운 자유주의적 노선의 일환으로 집권 초기 진보적 세금 정책

    을 추구하였다. 작은 정부론과 ‘트리클 다운(부자에게서 가난한 이로의

    적하효과)’ 노선을 강력히 신봉하는 공화당 주류 보수주의 진영은 클린

    턴이 임기 초반 사회적 투자를 통해 경제를 진작시키려고 비록 작은 규

    모이지만 경기부양책을 추진하자, 이를 낭비적 정책이라 공격하며 강

    력히 반발하였다. 이후 클린턴 정부가 최고 소득층에 적용되는 소득세

    율을 증가하려하자 공화당은 더욱 전면전을 선언하였다. 결국 클린턴

    은 부통령 고어가 상원 투표에 가담하고 민주당의 당파적 결집을 추구

    하는 등 출혈적으로 정치자본을 동원한 끝에 겨우 상처 속에서 승리했다.

    클린턴의 개혁이 직면한 어려움은 비단 세금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자

    유주의적 이슈에 걸쳐 있었다. 당시 클린턴 정부는 취임 초 고어 부통

    령 주도로 환경 개혁을 추구한 바 있다. 예를 들어 고어는 취임 직후

    대규모 이산화탄소 부과 법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는 미국 시민들의

    석유의존도를 줄이는 방향의 미래지향적 개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한 이 조치는 이상주의적 기조가 아니라, 세금으로 늘어나는 납세자 부

    담을 급여세 감소와 근로소득 세액 공제 확대 등으로 상쇄하는 현실적

    이고 합리적인 조치를 포함하였다(ꡔ뉴스위크ꡕ, 2008. 12. 10). 하지만 공화당 주류는 이를 전형적인 자유주의자들의 ‘증세 및 낭비’ 노선(tax

    and spend)으로 집중 공격하여 이 담론에 생채기를 내는 데 성공하였

    다. 결국 고어가 원래 기대한 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휘발유세를

    약간 인상하는 정도의 공허한 입법 승리를 거두는 데 민주당은 만족해

    야 했다.

  • 20  동향과 전망 76호

    특히 클린턴 정부가 새로운 자유주의 정부 노선으로서 가장 큰 사활을

    건 의료보험 개혁의 실패는 널리 알려져 있다. 공화당과 제약회사 등

    의 이익집단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단합과 끈질긴 공세를 통해 이를 패

    배시키는 것에 성공하였다. 이 장벽을 돌파하지 못한 실패의 원인에

    대한 이유는 아직도 논쟁적이다. 일부는 보수의 전투적 결집을 자초한

    힐러리 여사의 개혁 주도 자체의 정치적 판단 오류를 비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의회와의 타협의 공간을 남겨두지 못한 협상 스타일의 문

    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혹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경제가 클린턴 정부

    들어서서 급속히 회복되면서 의료보험 개혁에 대한 절실한 추진 동력

    이 상실된 것이나 소말리아 사태로 인한 실기 등 기회구조의 문제를 지

    적하기도 한다(Pfiffner, 1996: 179). 이와 더불어 기억해야 할 것은 반

    대진영의 대중적 결집에 비해 이 이슈에 찬성하는 풀뿌리 운동적 진영

    은 지리멸렬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시 클린턴 정부의 개막이 오늘날

    오바마 정부처럼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운동적 힘에 의한 결집에 의해

    탄생하지 않은 것과도 연관된다.

    위의 일련의 과정들은 클린턴 대통령이 경제주의적 설명에서 보는 것

    처럼 애초부터 월스트리트 자본 분파와의 전략적 연합 하에 다른 진보

    적 이슈들을 희생시킨 것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클

    린턴 정부는 흔히 기회주의적 여론 편승자로 일반적으로 규정되는 것

    과 달리 적잖은 이슈에 있어서 새로운 자유주의 정치질서를 만들기 위

    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반적 정치세력 관

    계에서의 극도의 불리함이나 담론 및 정치 투쟁에서의 패배 등으로 점

    차 기존 질서와의 연속성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자유주의 질서를 만들기 위한 클린턴의 노력이 제한적 영역에

    서 이루어지거나 그조차도 실패했다면 기존 질서와의 연속성에 대한

    노력은 보다 전면적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균형예산과

    금융자본주의 경향의 강화, 거대 정부를 축소하기 위한 사회복지 개혁

    이라고 할 수 있다. 균형예산론자인 제임스 루빈 재무장관, 로이드 벤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21

    슨 전 부통령 후보 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진영의 거물급 인사들

    과 연방준비위 의장 그린스펀은 직·간접적으로 클린턴에게 균형예산

    의 중요성을 압박한 바 있다(Harris, 2005).

    과거 선거 캠페인 기간에는 클린턴은 자신의 진보적 지지층을 고려하

    여 균형예산 노선과는 다소 거리를 둔 바 있다. 균형예산은 오히려 소

    위 CEO 대통령론을 내걸고 워싱턴의 낭비를 줄이겠다고 공약한 백만

    장자 포퓰리스트인 로스 페로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선거 기간과 달리 집권 후 자유주의 좌파들의 아래로부터의 상향

    식 경제 노선 대신에 연방준비위 의장 그린스펀이나 루빈 재무장관의

    권유를 수용하면서 철저한 균형예산론자로 변신하였다. 클린턴의 변

    신은 정치적 고려가 가장 핵심적 이유로 판단된다. 즉 부시 행정부의

    경기침체기에 이어 당선된 그는, 균형예산을 통해 금리를 낮추고 다시

    경기를 부활시키겠다는 신호를 월스트리트가에 보낼 때만이 경제가 회

    복되고 이는 곧 자신의 정치적 업적으로 귀결된다고 믿기 시작했기 때

    문이다. 이는 곧 자신의 일부 지지기반인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케인

    즈주의적 경기부양 기조와의 거리를 의미한다.

    사실 이는 클린턴만의 판단이 아니라 당시 대부분 주류 자유주의자들

    사이에서 넓은 공감대를 얻었던 관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이후

    경제가 회복되어가는 것에 비례하여 더욱 넓은 합의 기반을 구축하게

    된다. 사실 그 후 그의 균형예산, 금융자유화 등의 성과로 연방예산은

    30년 만에 흑자로 전환하고 강한 달러 정책으로 미국으로 자본 유입의

    가속화가 진행되어 주식시장 폭발 등 소위 신경제 황금기가 등장하였

    다. 이는 균형예산 노선에 비판적이었던 일부 진보적 자유주의 진영을

    곤혹스럽게 하거나 그 중 일부는 성과를 적극 인정하기도 하였다. 예

    를 들어 오늘날 케인즈주의의 대변자인 크루그만 같은 진보적 자유주

    의자도 당시의 균형예산 노선이 적절했다고 인정하고 있다(Krugman,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2009. 12. 2).

  • 22  동향과 전망 76호

    2) 대중적 보수주의 시대 정치 양식의 특징

    위를 간단히 요약하면 클린턴 시대의 국내노선은 플롯케가 구분한 정

    치질서의 순환주기 중 새로운 정치질서의 특징에 부합하기에는 다소

    미흡함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한된 시기에는 그러한 정치질

    서에 조응하는 정치양식이 등장한다는 것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클린턴 시대는 넓게 보면 대중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가 만연되며 열정

    적 참여가 축소되는 ‘대중적 보수주의(popular conservatism)’ 시대의

    자장에서 작동한다(Plotke, 2002). 여기서 ‘대중적 보수주의’라 표현하

    는 것은 당시 대중들이 단지 신자유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것이 아니라

    이념적 성향을 떠나서 전반적으로 정부와 정치를 불신하는 경향이 광

    범위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대중적 경향은 당시

    엘리트들 차원에서의 위의 신자유주의 이념과 강한 친화성을 지니며

    상호 강화의 상승작용을 전개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그의 집권 기

    간 동안 종종 대중들의 막연한 정부 혐오론에 의한 자유주의적 어젠다

    추진의 어려움에 대해 좌절감을 토로해 왔다(Morris, 1999).

    이러한 대중적 보수주의의 지형 하에서 엘리트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합

    리적 선택의 전략은 힘이 많이 들고 그 효과가 미지수인 당 주변의 아

    래로부터의 풀뿌리 동원 전략보다 기존 유권자 층에 대한 제한적 타깃

    팅이 더 안정적이고 효과적으로 인식된다. 더구나 점차 미디어 정치

    중심의 예비경선 등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타깃

    팅의 중요성은 이에 비례하여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정치 관심이 극대화되는 선거 기간 동안 보다 일상적 국정운영 과

    정에서 더욱 타깃팅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클린턴 시

    대에서 아래로부터의 풀뿌리 선거운동을 강조하는 스탠리 그린버그 여

    론조사가 점차 소외되고 기업식 정치 마케팅을 강조하는 마크 펜이나

    딕 모리스 전략가가 핵심으로 부상한 것은 이러한 징후를 의미한다.

    클린턴의 초기 진보적 멤버들은 선거나 국정운영 구분 없이 둘 다 자유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23

    주의 대의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영구적

    운동(permanent movement)’의 정치의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이의 보다 선명한 형태는 오늘날 오바마 진영으로 이들은 사회운동의

    일환으로서 정치를 분명히 목표로 하고 있다. 반면에 클린턴 중·후반

    기의 딕 모리스와 마크 펜은 운동을 경멸하고 철저히 위로부터의 정치

    마케팅 관점에서 국정운영을 접근하였다는 점에서 ‘영구적 캠페인

    (permanent campaing)’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영구적 캠페인은 미디어가 24시간 정치적 사이클에 관여하는 현

    대 정치 국정운영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정치 양식이다(Schier,

    2000).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기법은 필연적으로 비용을 동반한다. 새

    로이 운동을 활성화시키고 당 저변을 확대하는 전략보다는 기존의 중

    산층 장악을 둘러싼 민주, 공화의 정치 마케팅이 극도로 과열되면서 상

    호 비용이 상승될 수밖에 없다. 특히 전략가인 딕 모리스의 1995년부

    터 1996년 재선까지의 조기 정치광고는 천문학적 비용을 발생시켰다

    (Morris, 1999). 따라서 선거나 국정운용 과정에서 고액 소수 기부자

    기금과 이를 위한 이들의 이익대변 활동은 극히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클린턴은 집권 기간 중 자주 고액 기부자에게 전화를 걸어야만 하는 자

    신의 초라한 현실에 불평을 털어놓아야 했다. 하지만 그로서는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았다. 만약 2004년과 2008년 민주당 하워드 딘 민

    주당 당의장이 그 당시 수행했던 풀뿌리 토대 강화 전략을 이 당시 주

    장했다면 민주당에서는 결코 수용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2004년 연이

    은 대선 패배 이후조차 당시 민주당 핵심 인사들은 하워드 딘의 조치를

    어리석은 돈 낭비로 규정하였다. 즉 그 당시 민주당은 대중적 토대를

    가진 유권자 정당이라기보다는 주로 선거 기간 기금 모금을 위한 도구

    이자 선거전문가 정당의 성격이 매우 강하였다.

    기존의 유권자층 가운데 특히 클린턴 정부가 중·후반기 양당 대결의

    중요한 승부처로 타깃팅을 한 것은 주로 여피 백인 중산층이었다. 소

    위 ‘사커 맘(중산층 교외 지역에 살며 아이들을 축구장에 데려다주는

  • 24  동향과 전망 76호

    아주머니로 중산층의 상징)’이나 결혼한 30∼40대의 교외 중산층 부부

    등이 해당된다. 이는 클린턴 초기 멤버들인 스탠리 그린버그 등의 중

    하층 노동자 계급 중시 경향과 다소 차이를 보인다. 흑인 등 소수자 진

    영, 노동 진영 등은 어차피 민주당 성향이고 따로 갈 곳도 없으니 클린

    턴 진영은 이들의 지지를 당연시하고 상대적으로 방기하였다. 주로 이

    들은 정책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으로 내각에 임명하는 식으로 대표성

    반영의 정치를 선보였다.

    주로 중도적인 백인 여피 중산층을 타깃층으로 겨냥하기에 특권층을

    공격하는 진보적 포퓰리즘은 이 시기에 주로 기피되었다. 이는 포퓰리

    즘 전략을 강조한 1992년 클린턴 선거운동 전략의 핵심 측근인 제임스

    카빌, 폴 베갈라, 스탠리 그린버그 등의 기조와 차이를 보인 것이다. 클

    린턴 진영이나 이후 고어 진영은 진보적 지지층을 능동화시켜야 할 제

    한적 시기에만 제한적으로 포퓰리즘을 구사하였다. 예를 들어 고어는

    2000년 전당대회에서 제약회사 등과 대결하는 보다 선명한 포퓰리즘

    담론을 통해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키고 역전 시도의 발판을 마련한 바

    있다.

    진보적 포퓰리즘 기피와 동시에 진행된 것이 보수주의 시대에 적응하

    는 점진주의적 정치 양식의 강조다. 대중적 보수주의 시대에 적응한

    클린턴 행정부는 특히 1994년 중간 선거 패배 이후 집권 종료기까지

    대담한 비전보다는 작은 이슈의 점진주의적 추구를 국정 기조로 삼았

    다. 예를 들어 딕 모리스, 마크 펜, 부르스 리드 등이 주도한 1995년 가

    치 어젠다는 학교 유니폼 착용, 텔레비전 폭력 방지 칩 설치 등 맞춤형

    작은 이슈로 중산층으로부터 신뢰 회복을 추구하였다(Morris, 1999).

    1996년 딕 모리스의 섹스 스캔들 낙마 이후 마크 펜은 클린턴 중도주

    의 시대의 정치양식의 상징으로 확고하게 뿌리내린다. 그와 새로운 대

    통령 후보인 힐러리의 파트너십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단단한 유대감

    을 가지며 형성되었다. 그녀는 이후 중도층들에게도 받아들여질 수 있

    는 대중적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민주당에서 부동의 일인자로 정립되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25

    었다. 이는 민주당 고액 기부자들의 모금 대부분과 미국 진보 센터라

    는 정책 싱크탱크의 건립으로 가시화되었다. 하지만 2008년 그들은 8

    년간의 부시 시대를 거치며 보수주의가 지나치게 극단적 노선 속에서

    타락해가며 새로운 정치질서가 본격적으로 태동하고 있는 것을 읽어내

    지 못하였다. 결국 근대 정치학의 선구자인 마키아벨리가 오래전에 지

    적한 것처럼 정치질서의 성격(마키아벨리의 용어로는 포춘)을 이해하

    고 이를 포착하는 리더의 정치적 능력(비르투)이 정치에서는 무엇보다

    도 중요한 것이다.

    4. 새로운 정치질서의 태동과 오바마 시대의 정치

    1) 새로운 자유주의 시대로의 투쟁

    위에서 필자는 클린턴 시대가 플롯케의 정치질서론의 관점에서 보면

    새로운 정치질서라고 보기에는 과거와의 연속성이 더 두드러진다고 지

    적하였다. 일각에서는 새로이 등장한 오바마 정부의 성격에 대해서도

    그 연속성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데이비스 교수는 오바마의 경

    제팀이 오늘날 금융대위기의 씨앗을 뿌린 클린턴 경제팀의 부활이라고

    매우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다(2009: 33). 그에 따르면 이는 과거 새

    로운 자유주의 시대를 열었던 루즈벨트의 진보적 자유주의 경제팀과는

    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가진다. 그는 덧붙이며 만약 예비경선에서 오바

    마와 경쟁하였던 진보적 자유주의자 에드워즈 상원의원이 당선되었다

    면 질적으로 새로운 정치질서를 열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 평가하고 있

    다(ibid.: 36).

    사실 데이비스 교수의 지적처럼 오바마의 경제팀은 과거 클린턴의 팀

    의 부활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바마는 왜 경제팀의 연속성을

    추구하는 것인가? 이는 데이비스가 퍼거슨을 원용하여 시사하듯이 오

  • 26  동향과 전망 76호

    바마가 월스트리트와 전략적 연합을 통해 다른 진보적 어젠다들을 희

    생시키는 증거인가?

    하지만 데이비스 교수의 클린턴 경제팀 부활이라는 지적은 현상적으로

    맞지만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이들의 문제의식이 매우 달라졌다는 사실

    에는 그는 눈을 감고 있다. 사실 국내외적 경제 대위기는 담론의 지형

    을 대폭 이동시키고 아래로부터의 상향식 경제와 같은 기존 비주류 입

    장이 주류 입장으로 변화하였다. 예를 들어 폴리티코/올스테이트 여론

    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유권자들은 강하게 포괄적인 규제 요구를 하고

    있고 과거 클린턴 시대와 달리 60%나 되는 이들이 더 엄격한 기업 규

    제가 경제를 성장시킬 것이라 평가하고 있다(Burns, 2009). 더구나 단

    지 21%가 대기업들에 대해 긍정적이고 대다수는 강한 부정적 태도를

    취하고 있어 진보적 포퓰리즘의 토양을 형성하고 있다. 이제 올스테이

    회장 윌슨의 표현처럼 “사회적 책임의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ibid.,

    2009).

    이러한 시대적 변화의 추세는 클린턴 시기 자유주의자들의 변화를 강

    제해왔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미 그들은 2006년 경 루빈 재무장

    관을 중심으로 브루킹즈 연구소를 근거지로 하여 해밀턴 프로젝트 등

    다양한 비전 정립을 시도하며 과거 클린턴 시대의 신자유주의적 노선

    의 부분 수정을 추구해왔다. 이 프로젝트는 양극화 해소와 안전망 구

    축, 정부 역할 증대 등을 기조로 하고 있는 것에서 드러나듯이 과거 시

    장주의적 클린턴주의와는 사뭇 다른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Sperling,

    2005). 더구나 최근 경제적 대위기가 불거지자 실용주의자 루빈은 발

    빠르게 자신의 기존 경제관의 대변신을 시도하였다. 그는 진보적 자유

    주의로 명성을 가진 제레드 번스타인을 정치적으로 선택하고 함께 뉴

    욕타임즈에 자신의 새로운 입장을 공표하는 정치적 능수능란함을 선보

    였다(Kuttner, 2008). 그리고 그는 재정 보수주의와 부양책 사이 이분

    법의 무용을 주장하며 자신의 변신을 합리화하였다. 사실 루빈이 균형

    예산을 절대 지상명령으로 하였던 1990년대 초는 금리가 높았기에 재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27

    정적자를 줄이는 것을 통해 금리를 내리는 것이 경기회복의 사활적 과

    제였다. 하지만 오늘날은 루빈조차 케인즈주의적 문제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급격히 변화한 것이다.

    물론 이는 단지 과거의 큰 정부 자유주의의 부활은 아니다. 이미 클린

    턴의 ‘제3의 길’ 시대를 거치며 미국 자유주의는 시장친화적인 특성을

    강화해왔다. 그런 점에서 클린턴 시대 이전과 이후의 자유주의는 평면

    선상에 놓여 있지 않다. 그리고 클린턴 시대의 대담한 자유주의 시도

    의 실패는 오바마에게 신중한 방식으로 국가의 책임성을 강화하도록

    문제의식을 부여하였다. 예를 들어 오바마는 선거 기간에 중도주의자

    인 힐러리의 의료보험 의무 가입 조치를 비판하고 오히려 소비자들에

    게 가입의 선택을 주는 시장친화적 조치를 주장하여 민주당 내 진보주

    의자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그는 비슷한 점에서 중산층 겨냥 감

    세 등의 시장친화적 분배 조치를 강하게 선호한다. 하지만 선거 기간

    그는 금융규제에 대해서는 기존 주류보다 강한 규제 성향을 보였다. 이에

    대해 로버트 커트너같은 자유주의 좌파조차 “현재 민주당의 합의를 넘어

    서는” 것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다(Leonhardt, The New York Times,

    2008. 8. 24).

    오바마가 만약 클린턴처럼 대중적 보수주의 시대에 대통령의 지위에

    올랐다면 그는 얼마나 달랐을까? 역사에서 가정에 대한 정답은 없지만,

    그 자신의 클린턴 시대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 시금석이 된다. 그는

    흥미롭게도 과거 클린턴 시대 두 명의 로버트 간 사상 투쟁에서 어느

    일방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여기서 두 명의 로버트란 신자유주의자

    인 로버트 루빈과 자유주의 좌파인 로버트 라이시 노동부 장관을 말한

    다. ‘오바마는 어느 편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세계는 더 복합적이다”

    라고 언급한다. 복합적이라는 의미는 오바마가 다른 자유주의 좌파와

    달리 당시 클린턴의 재정적자 우선 다루기에 공감함을 의미한다. 하지

    만 동시에 “나는 적자 감소에 그토록 집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지적을 보면 오바마가 클린턴의 중도주의에 대해 다소 비판적이라는

  • 28  동향과 전망 76호

    것이 드러난다(ibid.: 4).

    위를 종합하면 오바마는 클린턴 중도주의의 단순한 후계자라기보다는

    보다 자유주의적 색채를 분명하게 강화한 질적 차이를 가진다. 위의

    레온하트 기자는 오바마 경제노선을 클린턴 시대의 자유시장 중도주의

    와 유럽 스타일 사민주의로의 재추진이 결합된 것으로 묘사하기도 하

    는데 이는 적절한 평가로 보인다(ibid.: 4).

    이러한 새로운 자유주의 노선은 과거 클린턴 시대의 균형예산과 달리

    서민과 중산층 중심의 상향식 경제론에 입각한 뉴딜식 경기부양, 신성

    장론이라 이름붙일 수 있다. 오바마는 한 선거 운동 과정에서 이를 다

    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우리에게 상향식 정치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상향식 경제학도 필요합니다.

    노동자들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Portland Mercury, 2008. 3. 21)

    그리고 오바마는 아래로부터의 상향적 경제를 과거 진보적 자유주의

    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의 삶의 질에 대한 연설과 결부시키고 있다.

    케네디는 “한 나라의 건강함은 단순히 경제적 산출로만 측정될 수 없

    다. 그러한 산출은 우리 문의 특수 잠금장치나 이를 부수는 이들을 위

    한 감옥들을 다 계산에 포함시킨다. 하지만 이는 우리 어린이들의 건

    강과 그들 교육의 질 혹은 그들의 놀이의 즐거움은 포함시키지 않는다”

    고 강조한 바 있다(Leonhardt, 2008. 8. 24). 이러한 외생적 성장이

    아니라 삶의 질에 기초한 내생적 성장에 대한 강조는 과거 루즈벨트, 로

    버트 케네디류의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의 부활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상향식 경제학의 핵심을 구체적 정책 어젠다로 보면 중산층 재건에

    토대를 둔 상향식 경제회복과 장기적으로 21세기 지적, 물질적, 생태

    적 인프라의 구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특히 오바마는 이러한 하이

    테크 고속도로가 과거 아이젠하워의 고속도로만큼 새로운 성장동력을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29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그간 미국은 아이젠하워 시대 이

    후로 사회 투자에 있어서 심각한 낙후성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현

    재 미국은 놀랍게도 학교 인터넷망 15위권에 머물며 2007년 전미교육

    통계센터에 의하면 공립학교의 17%가 교육 공간으로 물리적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1990∼2006년간 도로 통행량은 41% 증가하였

    지만 신설 도로는 고작 4%이고, 만성적 도로 부족은 교통 정체를 야기

    하고 있으며 이는 곧 생산성 낭비로 귀결되었다. 미 토목기사협회 추

    정치에 따르면, 이를 재건하는데 향후 5년간 1조 6천억 달러의 소요가

    예상되고 있다(정이환, ꡔ한겨레 21ꡕ, 2008).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오바마 정부는 향후 학교, 도서관, 병원을 인터넷에 연결하여 지적 인프

    라 확충과 의료비용 대폭 삭감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차세대 청정

    에너지 기술 개발로 500만 개의 새 일자리 창출 계획이 예정되어 있다.

    이를 위해서 향후 10년간 1500억 달러를 투자하고 2025년까지 미국 전

    력량의 25%를 재생 가능 에너지에서 충당할 예정이다. 특히 전자 의료

    기록은 환자 수가 아니라 질적 성과에 대한 평가(pay for performance)

    등과 결합하여 비용의 획기적 절감을 추구한다(Lohr, Inter-national

    Herald Trubune, 2009. 1. 20).

    데이비스 교수는 이러한 상향식 경제노선을 퍼거슨적 관점에서 오바마

    가 IT 자본 분파와 전략적 연합을 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2009:

    36). 하지만 그조차 글에서 인정하듯이 IT 측면에서의 인프라 투자는

    굳이 자본 분파와의 전략적 연합을 언급할 필요 없이 민주당 내 다양한

    분파들은 물론이고 미국 내 초당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사항들이다.

    오늘날 강경보수주의 깅그리치 하원의장과 진보적 자유주의 경제학자

    인 로버트 라이시의 정책 비전에 대한 설명은 흥미롭게도 이 점에서는

    수렴된다(Gingrich, 2005; Reich, 2008).

    데이비스 교수가 월스트리트 자본 분파와 오바마의 연합을 통해 시사

    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 루즈벨트 시대와 달리 오바마 정부는 의료보험

    개혁 등의 진보적 자유주의 과제를 희생할 것이라는 점이다(2009:

  • 30  동향과 전망 76호

    32). 사실 과거 클린턴 정부의 의료보험 개혁 실패 악몽은 선거 당시

    오바마 진영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쳐 오바마 진영은 아예 의료보험의

    의무화라는 야심찬 아이디어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이 의료보험 의

    무화 논쟁 과정에서 힐러리의 진보적 안에 격렬히 비판하는 오바마를

    지켜본 많은 진보파들은 과연 오바마가 진보적 어젠다를 추진할 의지

    가 있는 리더인지, 아니면 또다른 ‘뺀질이(slick Willie)’인지 심각하게

    우려하였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예산안은 공화당은 물론 그를 미

    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던 민주당 진보파들을 놀라게 하였다. 예를 들어

    오바마 정부는 실업보험과 건강보험 수혜 폭, 대상을 확대했는데, 실업

    보험을 시간제 노동자까지 확대하고 해고노동자도 계속 건강보험 혜택

    을 받도록 추진하였다. 중소기업 건강보험료 세액공제 확대와 가입자

    의 세부담 감소 조치도 제시되었다. 그리고 비록 의무 조치는 아니지

    만 전 국민 의료보험을 향한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런 점에서

    IT 자본 분파와의 연합에 의한 진보적 과제의 희생이라는 데이비스 교

    수의 도식적 해석은 현실과는 다소 괴리되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

    현실에서는 오히려 IT 자본이 선호하는 어젠다와 진보적 진영이 선호

    하는 어젠다가 동시적으로 공존한다. 그리고 이 두 어젠다의 미래는

    경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 각 정치세력들 간의 치열한 쟁

    투의 결과로 이루어질 것이다.

    2) 새로운 자유주의 시대 정치양식의 특징

    앞에서 대중적 보수주의 시대 클린턴 정부의 정치양식은 정치 참여의

    축소를 전제로 하여 중상층에 대한 제한적 정치마케팅이 강조되는 경향

    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반대로 새로운 자유주의 정치질서 초기인 오바

    마 시대는 풀뿌리 운동의 대 부활이 더 강조되는 시기라고 평가할 수 있

    다. 오바마가 선거 캠페인 시절 이를 캠페인이 아니라 운동이라 부른 정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31

    신은 국정운영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의 온라인 지지자들도 퓨 기관

    의 조사에 따르면 51%가 계속 이메일이나 텍스트 메시지 등을 새 정부

    로부터 받기를 원한다고 대답한 바 있다(Vargas, Washingtonpost,

    2009. 12. 31). 선거 과정에서 오바마 후보의 풀뿌리 운동을 지휘한

    플루프는, 선거 직후 향후 국정 운영의 양식을 예상하게 하는 풀뿌리

    운동을 선보인 바 있다. 즉 그는 선거 직후 지지자들이 12월 13일과 14

    일에 각기 회의를 조직할 것을 호소한 바 있다. 이는 그간 선거를 통해

    무엇을 이루었는지 성찰하고 미래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장이다. 그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가이드라인과 DVD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4200개의 작은 회의들이 개최되었고 플루프는 이를 다시 쌍방향으로

    새로운 운동 설계에 반영하고자 하였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바마 행정부의 국정운

    영 양식은 과거 클린턴, 부시 정부와 사뭇 다르다. 과거 클린턴 대통령

    자신은 온라인에 익숙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신기술에 대한 혁

    신가의 특성을 가지는 부통령 고어의 주도로 클린턴 행정부는 웹 1세

    대로는 진전을 이루었다. 예를 들어 워싱턴 포스트 2008년 12월 31일

    바르가스 기자에 따르면 클린턴 행정부는 WhiteHouse.gov를 최초로

    만들었고 모든 연방기관들의 온라인 활동을 통한 투명성 강화를 지시

    했다.

    부시 행정부 기간에는 온라인 대화나 동영상, 팟캐스팅 등이 도입되기

    도 했다. 오바마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네트워킹 툴을 동원하고 온

    라인 정보의 획기적 투명화는 물론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 유입을 시

    도하고 있다. 인수위 기간에는 인수위 직원들의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

    할 수 있고 회의 기록을 추적하고 질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 이는 첫

    주에 20,468명의 접속자로부터 10,302개의 질문을 받고 97만 8868회

    의 투표가 행해졌다. 이러한 점에서 부시 행정부에서 인터넷 국장으로

    일한 데이비드 알마시(David Almacy)는, 클린턴이 최초의 웹 대통령

    이고 부시가 최초의 디지털 대통령이라면, 오바마는 최초의 온라인 사

  • 32  동향과 전망 76호

    회 네트워킹 대통령이라고 규정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적절한 비유라

    하겠다(Vargas, Washingtonpost, 2009. 12. 31).

    이러한 기제는 향후 보다 다양한 활용으로 확대되리라 예상된다. 이미

    주간 라디오 연설은 최초로 유튜브에도 올려지고 온라인 국민참여 사이

    트 개설로 지지자 풀의 쌍방향 정책 제안 및 여론 형성(going public)

    이 시도되고 있다(Leibovich, 2009). 기존 클린턴 행정부의 핵심 여론

    형성 기제가 정치광고라면 오늘날은 웹 2.0의 기제가 도입되고 있는

    셈이다.

    과거 클린턴은 국정운영 양식에서 고비용의 정치광고를 위해 집권 기

    간 많은 시간을 고액 기부자의 기금 모금 파티와 이들의 이슈에 할애해

    야만 했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이러한 성격의 웹 캠

    페인은 오바마 대통령으로 하여금 상대적으로 이익집단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운 행보를 가능하게 한다. 과거 퍼거슨조차 자신의 자본 분파

    우선의 분석에서도 스스로 예외를 암시하고 있다. 즉 그는 대중적 조

    직의 효율성이 두드러지는 시기에 대중적 활동이 좀 더 영향력을 행사

    할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1995: 22∼23). 바로 오늘날 온라인의 존

    재는 항상적이고 효과적인 대중적 운동을 가능하게 하므로 퍼거슨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대중적인 힘을 증가시킨다.

    오바마 시기 풀뿌리 운동의 활성화는 당의 존재 형식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선거 기간 형성된 그의 정치적 네트워크를 민주

    당에 이관하여 획기적인 당 토대의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만약 이러

    한 네트워크를 독립적으로 놔두면 민주당 지지자가 아닌 이들의 지지

    는 유지되나 통제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당 내에 포함시키면 이

    의 운동적 활력과 기반 축소가 우려되기도 한다. 따라서 당에 두되 다

    소 독립적인 기구로 고려한 것이다(Berman, 2008).

    만약 전국위 의장 케인이 이를 효과적으로 집행한다면 이는 그간 클린

    턴 시대의 민주당이 풀뿌리를 경시한 활동방식과 대비되어 큰 의의를

    가진다. 이는 마치 뉴딜 기간 민주당이 뉴욕, LA 등을 중심으로 유럽식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33

    토대의 정당을 구축한 것처럼 장기적인 민주당 시대의 튼튼한 토대가

    될 수 있다. 플롯케의 정치질서 4단계론이 시사하듯이 운동의 활력 흡

    수 없이는 어떠한 정치질서도 결코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 시대는 진보적 풀뿌리 동원 중심의 정치양식만이 아니라 이들

    이 중시하는 이슈들에 주목하는 진보적 포퓰리즘의 정치를 강화한다.

    이는 중도적 분파들이 중심이 되면서 포퓰리즘에의 호소를 제한한 클

    린턴 시대와는 사뭇 대비된다. 예를 들어 오바마는 당선 직후 노동자

    들의 회사 점거투쟁을 “절대적으로 지지”해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과

    거 진보 대통령의 상징인 루즈벨트조차도 운동의 압력들에 떠밀려 노

    동개혁 법안들에 서명한 것을 연상한다면 대통령의 이러한 주도권은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친노동적 입장의

    이유를 밝히고 있다.

    “우리는 노동자들과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조들의 위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강한 노동운동 없이는 강한 중산층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Kuttner, 2009. 2. 2)

    이는 노동자를 그저 국가경쟁력을 해치는 이익집단 정도로만 인식하는

    과거 대중적 보수주의 시대의 민주당 대통령들과는 차원이 다른 발언

    이다. 위의 커트너의 설명에 따르면 과거 지미 카터는 1978년 상원에

    서 민주당 의원들이 겨우 두 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와그너법의 노동

    자 보호 조항을 다시 복원하려 시도하였을 때조차도 이를 지원하지 않

    았고 이는 결국 패배로 귀결되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노동계 보호는 물

    론이고 그들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북미자유무역협정을 강하게 주

    도하며 월스트리트와의 연대성을 과시한 바 있다. 클린턴 임기 후반기

    에 고어 부통령 주도로 연방 정부와의 계약 사업주들이 친노동정책을

    추구하면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정도가 개혁 노선의 전부였다(Kuttner,

    2009. 2. 2). 반면에 오바마는 단지 친노동 발언을 넘어 근로자 자유

  • 34  동향과 전망 76호

    선택법(Employee Free Choice Act) 제정을 통해 고용자가 노동자의

    노조결성을 막으려고 위협하지 못하게 하는 조치를 추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바마의 정치 양식에서 특징적인 것은 과거 클린턴의 대

    담한 의료보험 개혁의 실패와 그 이후 지나친 점진주의로의 선회에 대

    한 반성이다. 오바마 정부는 점진주의와 대담함을 동시적으로 결합하

    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법을 그의 측근은 ‘다운페이멘트’

    라 비유하여 부르기도 한다. 이는 예를 들어 건강의료보험 범위를 점

    차 확대하거나 경기 부양책에서 에너지 독립과 관련 예산을 배정하는

    것으로 둘 다 오바마의 대담한 장기 목표에 접근해나가는 접근법을 말

    한다(Baker,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2009. 1. 12).

    결국 오바마 정부의 정치활동 양식은 영구적 운동, 대중적 토대의 유권

    자 정당, 진보적 포퓰리즘 노선의 강화 및 웹을 활용할 쌍방향 소통 등

    의 전면화 등에서 과거 클린턴 시대와 사뭇 다르고 새로운 정치질서의

    활력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5. 결론

    대중적 보수주의 시대의 제약 속에서 그 노선과 정치 활동 방식이 한정

    된 클린턴 시대와 달리 오바마 시대는 보다 분명한 정체성의 자유주의

    노선과 새로운 정치 활동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를

    자유주의 정치질서의 개막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물론 아직 오바마 정부는 극히 초기에 지나지 않아 이러한 평가는 잠정

    적인 것에 불과하다. 향후 오바마 정부는 과거 클린턴 계열의 보다 중

    도적 성향의 경제팀과 이를 바깥에서 견제하는 로버트 라이시, 폴 크루

    그만 교수 등으로 대표되는 진보적 자유주의 진영 간에 부단한 쟁투가

    예상된다. 그리고 이 쟁투의 강도와 결과에는 미국 경제의 회복 정도

    나 공화당의 전략적 대응, 여론의 향배 등이 포괄적으로 영향을 미칠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35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출범 초기의 모습만 클린턴 정

    부와 비교해보더라도 심지어 과거 클린턴 경제팀이 여전히 주도하는

    상황에서도 오바마 정부는 정책 노선과 정치 양식에서 클린턴 정부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차이는 오바마 정부가

    마치 과거 뉴딜 시기를 열어간 루즈벨트 정부처럼 새로이 자유주의 주

    기의 순환이 시작된 것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향후 이 새로운 질서가

    보다 분명해질수록 이에 대한 심화된 연구와 과거 주기들과의 체계적

    인 비교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 연구는 그런 점에서 이후 보다 본

    격적인 연구를 위한 초보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에 불과하다. 다만 오

    늘날 만연된 경제주의적 시각에서 벗어나 정치투쟁의 우선성에 대한

    올바른 시야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자 하는 의의를 강조하고 싶다.

    2009. 3. 15 접수/ 2009. 4. 13 심사/ 2009. 4. 30 채택

  • 36  동향과 전망 76호

    주석

    1) 하지만 이러한 가설의 설득력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강

    주현·한인택 교수는 경제위기의 전개과정에도 한동안 오바마 지지율이 정체되었

    다고 지적하며 그 인과관계의 여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2009): 강주현·

    한인택(2009), “2008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타난 사회이슈와 경제문제 분석”,

    ꡔ2008년 미국 대선을 말한다ꡕ, 서울: 오름.2) 이 개념의 특징과 이와 관련된 쟁점에 대한 보다 자세하고 정교한 논의는 다음의 책

    참조할 것. David Plotke(1996), Building A Democratic Political Order: Reshaping

    American Liberalism in the 1930s and 1940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37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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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39

    초록

    클린턴에서 오바마 시대로의 변화의 특징

    ‘정치질서론’의 시각에서

    안병진

    이 논문은 정치적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적 흐름에 서서 새로이 출

    범한 오바마 행정부 초기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한다. 즉 경제적 위기에 대한

    수동적 반응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각 정치세력들 간의 어떠한 관점과 정치

    적 리더십이 경제적 정책을 포함한 노선 전반을 구체적으로 결정하는가의 시

    각을 말한다. 이 논문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던지는 가

    장 포괄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이 압축된다. 즉 오바마 시대는 어떠한 정치적

    질서의 도래를 의미하는가? 보다 구체적으로는 오바마 행정부는 어떠한 내

    용의 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하는가? 이 노선은 어떠한 정치적 동기와 과정 속

    에서 결정되는가? 오바마 정부의 정치적 작동 양식은 어떠한 특징을 가지는

    가?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글은 유사한 자유주의적 정부였던

    클린턴 행정부와의 비교의 시각을 주로 취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비교

    를 통해 오바마 시대가 과거 정치적 질서의 연속선상에 있는지 아니면 독특

    한 새로운 특징들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보다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

    이다.

    주제어 오바마 정부, 정치질서, 클린턴 정부, 자유주의

  • 40  동향과 전망 76호

    Abstract

    From Clinton to Obama

    A Perspective From ‘Political Order’ Theory

    Byongjin Ahn

    This article seeks to examine the key features of Obama admin-

    istration and how it could create and renew the Democratic political

    order. Employing David Plotke’s post-Marxist theory, by political

    order I mean a durable mode of organizing and exercising political

    power. Currently, due to harsh economic crisis, explaining politics as

    the outcome of economic factors is popular. On the contrary, this

    paper underscores the causal role of political action and provides the

    conceptual framework of creating political order. In order to make

    theoretical sense of Obama administration and grasp its distinctive-

    ness as a new liberal order, this paper make efforts to compare Obama

    government with previous liberal regime such as Clinton one.

    Key words Obama administration, Political order, Liberalism, Clinton administration

  • 경제위기와 미국 대외정책 패러다임의 변화  41

    특집【 금융위기와 미국 자본주의의 변화 】

    경제위기와 미국 대외정책 패러다임의 변화현실주의 이론의 관점에서

    고봉준❉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1. 들어가는 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문제에서 파생되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된 경제위기는 냉전의 종식 이후에 세계질서를 주

    도해오고 있는 미국의 대외정책에도 변화를 야기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글은 현 경제위기가 미국 대외정책 패러다임에 미치는 영향

    을 논의하기 위해 경제위기 이전 미국의 대외정책 패러다임을 살펴보

    고, 현 경제위기가 미국 대외정책의 패러다임에 미치는 파급 효과는 무

    엇인지, 그리고 패러다임의 변화가 관찰된다면 그 방향은 어떤 것이 될

    것인지의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제시하는 것을 목

    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2장에서는 현 경제위기가 미국의 대외정책 형성과 집행 과

    정에서 갖는 중요성을 논의하고 이를 살펴보기 위한 공격현실주의의

    분석틀을 제시한다. 또 상호 경쟁하지만 배타적이지 않은 다양한 미국

    [email protected]

  • 42  동향과 전망 76호

    대외정책 패러다임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기존의 논의들에 대해 토론

    한다. 3장에서는 경제위기 이전의 미국 대외정책 패러다임을 클린턴

    행정부 시기의 선택적 미국 제일주의와 부시 행정부의 현실주의적 국

    제주의로 구분하고 각각의 대외정책 기조를 비교·검토한다. 4장에서

    는 현 경제위기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와 대외정책

    의 현안들에 대해 논의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의 패러다임을

    국제주의적 현실주의라는 관점에서 논의한다. 5장 결론에서는 현 경제

    위기가 미국 대외정책 패러다임에 주는 영향은 제한적인 것이며, 정책

    기조는 선택적으로 조정될 수는 있으나, 기본적으로 세계 유일의 초강

    대국 미국의 지위에 부합하는 공세적인 대외정책 기조는 크게 변화하

    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2. 문제 제기

    현 경제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크게 신자유주의로 대별되는 현대 자

    본주의의 구조적 모순과 금융 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미국 연방정부의

    잘못된 경제 정책 및 제도적 결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파악하

    는 시각이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1) 특히 십여 년간 세계적으로 진행된

    신자유주의의 도그마는 시장의 실패(market failure)를 보완하기 위한

    정부 개입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한하여 왔다.2) 미국의 경우에도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금융자본에 대한 국가로부터의 견제와 감시

    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시장에서의 불건전한 금융 거래의 여파가 급속

    히 전파될 수밖에 없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되고 있다(전창

    환, 2009: 173∼174). 사실상 그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의 급속

    한 성장 및 산유국들에서 비롯된 잉여 자본이 미국 및 전 세계의 지출

    을 충당해 왔는데, 이런 과정에서 신용거래의 활성화를 적극적으로 유

    도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 때문에 금융 부문에서의 감시 기능이 약화되

  • 경제위기와 미국 대외정책 패러다임의 변화  43

    면서 결국은 세계의 신용 거래 체계의 붕괴를 초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제위기는 미국에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여러 가지 난제를

    안겨주고 있으며, 따라서 미국의 대외정책에도 이러한 위기를 반영한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미

    국 내부의 정책적 문제는 경제의 활성화 또는 성장 잠재력의 확보일 것

    이다. 최근 미국 민주당 계열의 연구소 중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

    는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의 한 보고서는 현재 경험

    하고 있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미국 정부는 크게 두 가지 분야

    에서의 지출 확대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첫째는 사회간

    접자본의 정비를 위한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경제위

    기의 피해를 직접 경험하게 되는 노동자들의 경제적 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