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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토론회 자료집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kdi.re.kr/data/download/attach/8332_data.pdf · 2010-07-22 · 2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회적 취약 계층도 늘어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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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개토론회

    자료집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 목 차

    개 회 사 ····································································································· 1

    공개토론회 개요 ························································································· 5

    제1절 경제위기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과정 ················································ 7

    제2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대응 ······················································ 91. 통화 및 재정긴축 ·························································································· 72. 기업부문 구조개혁 ························································································ 9

    3. 금융부문 구조개혁 ······················································································ 11

    4. 노사관계 개혁 ···························································································· 12

    5. 공공부문 구조개혁 ······················································································ 13

    6. 실업정책과 복지정책 ··················································································· 14

    제3절 경제위기 극복정책의 성과 ····························································· 171. 부실의 해소 ································································································ 17

    2. 선진형 시장경제시스템의 정착 ···································································· 18

    3.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성과 ·································································· 19

    제4절 위기극복 이후 한국경제의 전개과정 ·············································· 231. 기업부문 ····································································································· 23

    2. 금융부문 ····································································································· 23

    3. 노동시장 ····································································································· 25

    4. 소득분배 및 사회복지 ················································································· 26

    제5절 지속적 안정성장을 위한 정책방향 ················································· 271. 국가경제의 역동성과 유연성 배양 ······························································· 27

    2. 사회통합의 제고 ························································································· 30

    3. 안정적인 거시경제 운용 ·············································································· 30

  • 개 회 사

    안녕하십니까. 오늘 KDI가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이라는 주제로 마련한 토론회에 참석해주신 귀빈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다음 주 화요일인 12월 4일은 10년 전 우리 정부가

    IMF와 ‘양해각서’를 맺고 외환위기의 극복을 위해 본격적인

    노력을 시작하였던 날입니다. 이후 한국경제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업부문과 금융부문의 건전성이 크

    게 개선되었습니다. 기업의 부채비율은 위기 이전 300~400%

    에 달하였으나 위기 이후 100~200%로 낮아졌습니다. 이는

    주요 선진국들의 수준과 유사한 수준입니다. 금융부문에서는

    은행들의 부실자산이 감소하고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BIS 기

    준 자기자본비율이 1997년 7.0%에서 2005년 12.4%로 상승하

    였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의 취약점이었던 기업 및 금융

    부문의 부실이 거의 모두 해소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 다른 변화도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성장률은 위기 이전 연간 7~8%에 달했으나 위기 이후에는

    연간 4~5%로 하락하였습니다. 또 실업률은 위기 이전 2%

    초반에 머물렀으나 위기 이후에는 약 3.5%로 상승하였고 사

  • 2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회적 취약 계층도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따

    라 과연 외환위기는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인지,

    위기극복과정에서 정부는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한국경제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등

    에 대해 적지 않은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위기 이후의 성장둔화는 소위 ‘反기업 정

    서’가 팽배하여 기업들의 투자행태가 지나치게 보수적인 방향

    으로 바뀐 것에 기인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또 대외개방의

    확대로 인해 외국자본의 침투와 國富의 유출, 그리고 국내산

    업의 空洞化가 심각해졌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또 일각에서는

    위기 이후 채택된 소위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가 사회통합

    을 저해하고 빈곤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논의가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외환

    위기를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개발

    연대 성장전략의 특징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보유외환의 고갈로 시작된 외환위기가 기업 및 금융부문의

    광범위한 부도사태를 야기하며 전반적인 경제위기로 轉化되

    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보

    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왜 기업부문의 부채비율이 1960

    년대 말에 100~200%에서 300~400%로 급상승하였는지, 기

    업 및 금융부문의 부실문제를 위기 이전에는 왜 해소하지 못

  • 개회사 3

    하고 위기를 맞고서야 해소할 수 있었는지, 부실문제에도 불

    구하고 왜 한국경제는 고도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는지, 고도

    성장은 기업 및 금융부문의 부실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던 것

    인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이와 더불어 대내외 경제․사회여건의 변화에 대한 고

    찰도 필요합니다. 대내적으로는 위기 이후 투자행태의 변화가

    어떤 요인에 기인한 것인지, 과거와 같은 수준으로 투자율을

    높일 수 있는 근본적 방안이 존재하는지, 그것이 존재하지 않

    는다면 국가경제의 총요소생산성 증대에 기댈 수밖에 없을

    터인데, 위기 이후 기술혁신의 動因은 어떻게 변하였으며 이

    動因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또 대외적으로는 세계화 추세,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국가 간

    자본이동의 증가가 외환위기의 발발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이에 대처하여 정부는 어떠한 정책을 추진했어야 했고 실제

    로는 어떠한 정책을 추진하였는지, 앞으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목표와 정책수단으로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를 살

    펴보아야 합니다.

    사회정책에 있어서는 소득불평등도의 악화를 어떤 시

    각에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합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지식경제화 및 세계화의 추세는 소득불평등도

    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러한 추세 아래 한국에서는

  • 4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특히 분배악화가 문제인지 아니면 빈곤확대가 문제인지, 외환

    위기 이후 취한 정책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

    를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물론 쉬운 답은 있을 수 없습니다.

    아직 실증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고, 각자의 철학적

    배경에 따라 같은 현상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

    기 때문입니다. 오늘 KDI가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 그리고

    금융감독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마련한 논의의 場은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을 정리해보고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정책대안을 찾아

    가는 데 있어 오늘의 논의가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바쁘신 가운데에도 오늘 토론회에 참석해주신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첫 세션의 사회를 맡아주신 박영

    철 서울대학교 국제무역금융센터장, 그 외 토론자 및 방청객

    여러분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2007년 11월 29일

    KDI 원장 현정택

  • 공개토론회 개요 5

    공개토론회 개요

    □ 제 목 :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 일 시 : 2007년 11월 29일(목) 10:20~16:00

    □ 장 소 : 은행회관 2층 국제회의실

    □ 주 관 : KDI

    □ 후 원 :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금융감독위원회

    10:20 ~ 10:40 개 회개 회 사: 현정택 (한국개발연구원 원장)기조연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10:40 ~ 12:20 총괄발표및 종합 패널토론사 회: 박영철(서울대학교국제무역금융센터장)발 표: 고영선(KDI 재정사회개발연구부 부장)

    "외환위기의 발생원인과 정책대응"

    패널토론: 김기원(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김인준(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양수길(국가경영전략연구원 원장)

    이제민(연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메랄 카라술루(Meral Karasulu, IMF 한국사무소장)

    14:00 ~ 16:00 부문별 주제발표 및 토론사 회: 설광언 (KDI 부원장)

    발 표: 금융부문 - 신인석(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기업부문 - 임원혁(KDI 산업․기업경제연구부 연구위원)노동․복지부문 - 최경수(KDI 재정사회개발연구부 연구위원)

    토 론: 박덕제(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상제(한국금융연구원 금융시장연구실 연구위원)

    이인권(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 제1절 경제위기의 역사적 배경과 전개과정

    한국은 1960년대에 본격적인 정부주도의 성장전략을 추구한 이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이루었다. 세계적으로 개발도상국 가운데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성장을 유지한 나라는 이웃 동아시아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많

    지 않다. 이처럼 유독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만 지속적 경제성장에 성공한 이유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시장친화적 견해(market-friendly view)에 따르면 동아시아 국가의 성장에 있어 정부의 긍정적 역할은 시장의 형성과 효율적 작동을 촉진한 데 있었다. 반면 개발국가적 견해(developmental-state view)에 따르면 경제개발 초기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자원동원․투자배분․기술습득 등과 관련한 시장실패를 정부가 효과적으로 시정하였기 때문에 빠른 성

    장이 가능하였다.경제위기 이전 한국에서는 정부가 개발국가적 관점에서 시장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왔다. 이는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나, 정부와 민간의 위험공유체제로 인해 기업 및 금융부문의 광범위한 부실을 낳았

    다. 또 재벌의 경제력 집중, 사회적 갈등과 불신, 거시경제의 불안정과 같은 문제를 낳았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시장과 反시장, 경쟁과 反경쟁의 대립구도에서 反시장 및 反경쟁이 우세한 모습을 보였다. 과거의 성장전략이 거둔 일정한 성과는 이처럼 국내적으로 反시장 및 反경쟁이 우세한 가운데 대외적으로는 수출진흥을

    통해 기업들이 세계무대에서 경쟁에 직면하도록 만든 측면에 기인하는 바 크다. 경제위기는 이러한 이중적인 정부주도형 성장전략을 폐기하고 국내적으로도 보

    다 시장친화적인 방향으로 정책기조를 바꾸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1997년 11월 발생한 외환위기는 국제채권자들이 우리나라 은행들로부터 무차

    별적으로 자금을 인출하면서 시작되었다. 인출사태로 은행들이 외화자금수요를 조달할 수 없게 되자 한국은행은 외환보유고에서 긴급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으

    나 막대한 자금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곧 외환보유고는 고갈되었으며 한국은행의 환율방어능력이 무력화되면서 폭발적인 환율절하, 즉 외환위기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업 및 금융부문의 광범위한 부실로 인해 전반적인 경제위기로 전화되었다.

  • 8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외환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제시되어 왔다. 1970~80년대 중남미 국가들의 외환위기를 설명하기 위한 제1세대 모형, 1992년 유럽의 ERM (Exchange Rate Mechanism)위기를 설명하기 위한 제2세대 모형, 그리고 1990년대의 아시아 외환위기를 설명하기 위한 제1세대 모형의 연장과 현대화된 금융공황모형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여러 이론은 크게 근본요인(fundamentals)론과 자기실현(self- fulfilling crisis)론으로 구분될 수 있다.

    근본요인론에서는 소위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로 일컬어지는 정부와 민간 사이의 불건전한 관계로 부실이 누적되었다는 데에서 외환위기의 원인을

    찾는다. 정부주도로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기업과 은행의 의사결정에 깊숙이 개입하다 보니 기업투자 및 은행대출이 부실화되었을 때 그 책임도

    함께 져야 했다. 정부와 민간 사이의 이러한 위험공유체제하에서 기업은 무리하게 투자를 확장하였고 은행은 위험관리에 대한 고려 없이 대출을 확대하였다. 결국 엄청난 규모로 부실이 누적되었고, 정부는 그것이 현재화되었을 때 발생할 국민경제적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워 외환위기 이전까지 근본적 개혁을 계속 미루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한국경제는 국제금융시장에 통합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따른 국민경제의 시스템적 위험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였고, 결국 외환위기가 발생하여 기업 및 금융위기로 이어지고 말았다.

    한편 자기실현론에서는 경제의 근본요인이 건실하더라도 국제금융시장의 불안

    정으로 인해 외환위기가 발생한다고 본다. 이에 의하면 동아시아, 특히 한국의 경우 위기 이후 경제가 곧 회복되었던 점을 고려할 때 채무상환능력(solvency)은 문제가 없었고 단지 일시적 유동성(liquidity) 부족이 문제였을 뿐으로 추정된다(Radelet and Sachs[1998]). 한국은 IMF의 처방에 따라 구조개혁을 시작하였지만 유동성이 부족하여 외환시장을 안정시킬 수 없었다. 유동성 문제는 외국 채권은행과 만기연장협상이 타결된 후에야 해결되었다. 이는 자기실현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제시된다.

    한국의 경우에 근본요인론과 자기실현론 가운데 어느 것이 외환위기를 발생

    시켰는가에 대해 아직 뚜렷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어느 이론이든 이를 뒷받침할 계량적 증거는 쉽게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최소한 표면적으로 근본요인의 악화와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 등 두 요인이 혼재되어 있었음을 시

    사한다. 위기 이후 취해진 기업․금융구조조정과 긴축적 통화 및 재정정책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구조조정을 통해 근본요인을 치유하는 한편 긴축정책을 통해 외화유동성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 제2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대응

    1. 통화 및 재정긴축

    외환위기가 기업 및 금융부문의 불안정으로 이어지면서 한국경제는 전반적인

    경제위기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에 대응하여 한국정부는 먼저 거시경제 측면에서 통화 및 재정정책을 긴축기조로 운용하였다. 즉, 국내총수요를 위축시킴으로써 경상수지를 흑자로 전환시켜 외환보유고를 확충하는 한편 급격한 환율절하를

    억제하고자 한 것이다. 외환위기 이전 12% 수준이었던 회사채 발행금리는 긴축정책의 결과 1997년 말 30%를 넘는 수준으로 급상승하였다.

    고강도의 긴축정책을 추진한 결과 환율은 1998년 2/4분기 들어 안정되기 시작하였고 GDP 대비 경상수지는 1997년 -1.6%의 적자에서 1998년 11.7%의 흑자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고금리로 인해 기업도산과 실업이 급증하였고, 이에 따라 IMF의 처방이 지나친 비용을 초래하였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긴축정책이 잘못된 선택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을 내기 어려우나, 최소한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별다른 대안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환율 급상승의 가장 큰 이유는 국내 금융기관들이 외화부채 상환을 위해 국내시장에서 원화를 차입하여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구입하

    였던 데 있는데, 이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지 않았더라면 국내 금융기관들이 원화차입 및 달러구입을 지속해 환율이 더욱 상승하는 악순환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초기 유동성 위기가 해결되는 기미가 보이자 정부는 1998년 5월 이후 긴축정책을 완화하여 금리를 인하하고 재정적자를 용인하면서 경기회복을 도모하게 된

    다. 이에 따라 성장률은 1998년 -6.9%에서 1999년 9.5%로 ‘V’자의 회복을 보였다. 이러한 거시경제정책의 전환은 기업․금융․노동부문의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과

    정에서 야기될 불안요소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였다.

    2. 기업부문 구조개혁

    기업부문의 구조개혁은 두 가지 목표로 추진되었다. 첫째는 단기적 관점에서 기존 채무를 감당할 수 없는 부실기업을 처리하는 것이고, 둘째는 중장기적 관점

  • 10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에서 향후 경제위기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시장규율을 강화하고 효율성을 제

    고하는 것이었다.첫째, 기존 부실기업의 처리는 대기업 간의 사업교환(빅딜)과 금융기관의 협

    약에 기초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양축으로 하여 추진되었다. 회사정리(법정관리)나 화의 등 법원 주관하의 도산절차에 비해 빅딜과 워크아웃은 비상대책의 성격을 띠었다. 이러한 비상대책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에게 부실처리를 맡겨둘 경우 부실의 현재화보다 부도유예를 선호할 유인이 컸던 당시의 상황에서 불

    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빅딜과 워크아웃 외에도 부실징후기업평가, 회사채신속인수제, 기업구조조정촉진법 등의 비상대책이 도입되었다.

    이러한 부실기업 처리는 1980년대의 산업합리화와 양적․질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양적으로는 대규모의 공적자금이 조성되어야 할 만큼 부실채권의 규모가 컸으며, 질적으로는 경제성 원칙에 입각하여 갱생과 청산 대상기업을 분류하고, 공개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부실기업을 처리하려고 노력하였다. 부실기업을 매각하는 경우 비밀리에 인수자를 선정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국내는

    물론 해외 인수희망자에게 문호를 개방함으로써 특혜시비를 차단하고 매각가치

    를 제고했다.둘째, 시장규율 강화 및 효율성 제고 측면에서 기업부문 구조개혁은 ‘5+3원

    칙’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1998년 1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4대 그룹 총수는 ①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② 상호지급보증(채무보증) 해소, ③ 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 ④ 핵심주력사업으로의 역량 집중 및 중소기업과의 협력 강화, ⑤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책임성 강화 등 기업구조개혁의 5대 원칙에 합의하였다. 이 가운데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관련해서는 대규모기업집단의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 국제기준에 따른 기업회계기준 개정, 상장법인의 사외이사 선임 의무화 등이 추진되었다. 그리고 지배주주의 책임성 강화를 위해서는 사실상 이사 직무를 수행한 자를 이사로 간주하는 조항을 상법에 도입하였다.

    1998년 1월에 발표된 기업구조개혁의 5대 원칙에 더하여 1999년 8월에는 ① 제2금융권의 지배구조 개선, ② 계열사 간 순환출자의 억제 및 부당내부거래 차단, ③ 변칙적인 상속․증여의 방지 등 3대 보완과제가 제시되었다. 이처럼 3대 원칙이 추가된 이유는, 제2금융권에 대한 재벌의 지배와 계열사 간의 부당한 지원으로 인해 기업구조조정이 차질을 빚었고, 편법적인 경영권 세습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데 있다.

  • 제2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대응 11

    이상과 같은 ‘5+3원칙’ 중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나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책임성 강화는 시장규율을 확립하기 위해 반드시 추진되어야 할 과제였다. 이에 반해 상호채무보증 해소, 재무구조 개선, 부당내부거래 차단 등은 시장규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과도기에 불가피하게 도입된 것으로서 원인보다는 결과에 초

    점을 맞춘 규제 위주의 조치였다. 당시 시장규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예로는 대우가 1997년 말에서 1998년 9월 사이에 무려 17조원에 달하는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신규로 발행했던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정부가 5대 그룹은 살릴 것’이라는 기대가 시장에 팽배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5+3원칙’을 추진함과 동시에 도덕적 해이의 혁파, 기업지배구조의 개선, 경쟁압력의 제고 등을 통해 시장규율을 강화하고자 노력하였다. 도덕적 해이의 혁파를 위해 정부는 부분예금보장제도 및 FLC(Forward-Looking Criteria)를 도입하는 한편, 1999년 대우사태의 예에서 보듯이 부실기업을 원칙적으로 처리하고 기업과 금융기관은 물론 일반 투자자들까지 손실을 보도록 하였다. 지업지배구조의 개선과 관련해서는 주주권의 행사요건 완화, 기관투자가의 역할 제고, M&A 활성화를 통해 경영진에 대한 주주의 규율을 강화했다. 그리고 경쟁압력의 제고를 위해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저해하는 규제의 철폐, 수입선다변화제도 철폐, 도산법 개정 등이 추진되었다.

    3. 금융부문 구조개혁

    금융부문의 구조개혁은 단기적 과제로서 구조조정을 통한 금융시스템의 정상화와

    중장기적 과제로서 금융안전망의 정비 및 개선이라는 두 가지 목표하에 추진되었다.첫째, 금융구조조정에 있어서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정부주도의 신속

    한 금융시스템 정상화로 방향을 잡았다. 부실금융기관 중 그 기관의 폐쇄가 시스템 위험에 결정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평가될 경우 불가피하게 재건이 시도되

    었고 자본확충을 위해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다. 이 경우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고 시장규율이 최대한 유지되도록 하기 위해 기존경영진 퇴출, 기존주식 소각처리, 일반직원들의 내부 구조조정 등이 추진되었다. 반면 금융시스템 위험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경우 문제의 금융기관은 폐쇄되었다. 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금융기관으로는 대형 은행이 선택되었고, 후자의 경우로는 규모가 작은 은행 및 종합금융회사가 선택되었다.

  • 12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둘째, 금융안전망의 정비 및 개선에 있어서는 먼저 은행․증권․보험 등을 포괄하는 통합감독기구가 설립되고 ‘적기시정조치’가 도입되었다. 이와 더불어 부실자산기준이 대폭 강화되었다. 또 부실채권정리기구로서 ‘자산관리공사’가 1998년 설립되었다.

    이처럼 구조조정체제가 정비됨과 동시에 1998년 5월 64조원의 1차 공적자금이 채권발행을 통해 조성되었다. 이후 대우 부도사태로 금융권의 부실자산규모가 크게 늘어나자 2001년 12월 추가로 40조원의 공적자금이 조성되었다. 그 외에 차관자금․국유재산․공공자금관리기금 등의 재원을 통한 자금을 합하면 총

    168.3조원의 공적자금이 구조조정에 사용되었다.

    4. 노사관계 개혁

    정부는 대기업 및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해고를 추진해야 할 필

    요성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문들은 과거부터 노동조합이 집중되어 있던 부문으로서 근로자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되었다. 이런 여건에서 정부는 노사관계 개혁을 달성하고 또한 노사관계가 파국적 상황으로 치닫지 않게 하기 위

    해 1998년 1월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사회협약에 기초한 관련법 제․개정을 추진하였다.

    당시의 핵심쟁점은 정리해고제의 도입이었는데, 이에 대해 1998년 2월 노사정 합의와 관련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합의 직후 민주노총에서 합의안 추인이 부결되고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민주노총에서는 새로운 집행부가 구성되어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의 철폐를 주장하면서 노사정위

    불참 및 대정부 직접협상으로 전략을 전환하였다. 그리고 6월부터 순차적으로 발표된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에 대하여 총파업 등 강경대립으로 맞서게 된다. 정부 역시 공권력 동원 등 강경대응에 나서게 되었다. 결국 노사정위는 1998년 2월의 법개정 이후 파행만을 거듭하고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사실 법개정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는 전반적으로 노동계에 유리한 교환이었

    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의 도입은 使에 유리한 것이었으며 교원노조 허용, 노조정치활동 허용, 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 사회보장법제의 정비 등은 勞가 그동안 핵심적으로 요구하던 사항이었다. 그러나 정리해고와 파견제는 현실적으로 이미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법개정으로 우리나라 노동시장

  • 제2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대응 13

    이 특별히 더 유연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사정 합의 이후 노동계는 정리해고의 정당화에 동원되었다는 인상을 주어 노조와 조합원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되었다.이처럼 법개정은 법제적 측면에서 볼 때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기여하지는 않았

    지만 노동계의 반대로 오랜 기간 동안 도입이 저지되었던 파견근로제와 1996~97년 노동법 파동의 핵심쟁점이었던 정리해고 관련규정이 노사합의ㆍ여야합의로 처

    리되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의미는 찾을 수 있다. 또한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노동기본권의 대부분이 주어짐으로써 1990년대부터 논란이 되어온 조항들에 대한 법개정 작업은 거의 마무리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 노사관계제도의 비합리성 중 집단적 노사관계법의 과도한 규제는 상당히 해소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개별적 노사관계법 영역에서의 과도한 보호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5. 공공부문 구조개혁

    정부는 민간부문의 구조조정을 선도하고 국민경제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공공부문의 구조개혁을 추진하였다. 먼저 위기극복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재정경제원 해체 및 기획예산위원회 신설 등의 정부조직개편을 실시하였다. 또 매각수입 확보 및 국가신인도 제고를 위해 과거보다 훨씬 강력하고 폭넓은 민영화계획

    을 수립하였다. 1998년의 민영화계획에 따르면 26개의 공기업 모기업 가운데 5개(포항종합제철, 한국중공업, 한국종합화학, 한국종합기술금융, 국정교과서)는 즉각 민영화하고, 6개(한국전기통신공사, 한국담배인삼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대한송유관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는 단계적으로 민영화하며, 나머지 15개는 경영혁신 또는 자체 구조조정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중앙 및 지방정부와 정부산하기관의 기구와 인력을 대폭 감축하는 구조조정을 추진하였다.

    보다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시장친화적 정부기능 확립 및 정부역량 강화를 위

    한 노력도 이루어졌다. 전자의 대표적 사례는 규제개혁이었는데, 정부는 국무총리실에 규제개혁위원회를 두고 ‘규제 반으로 줄이기’를 과감하게 시행하였다. 또 부담금 정비방안을 마련하고 ‘부담금관리기본법’을 제정하였다. 후자에 있어서는 공직사회에 경쟁을 도입하기 위해 개방형 임용제 및 성과급 보수제를 도입하고

    전자정부사업을 추진하였다. 또 대정부 신뢰회복을 위한 대국민서비스 개혁도 추진하였다.

  • 14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6. 실업정책과 복지정책

    경제위기 직후 생산감소에 따라 노동수요는 크게 위축되었으며 실업자가 양

    산되었다. 또 신규채용이 억제됨에 따라 청년실업이 크게 증가하였으며, 빈곤이 크게 확대되어 생계곤란에 직면한 인구가 증가하였다. 이에 대응한 초기의 실업대책은 기존의 고용보험제도를 우선적으로 활용하여 고용안정사업과 직업훈련사

    업을 대폭 확대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어서 1998년 3월에는 정부의 직접고용창출(direct job creation)을 통해 실직자에게 단기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공공근로사업이 도입되었다. 이는 실업정책으로 명명되었지만 구조적 실업을 줄이려는 본래적 의미의 실업정책보다는 생계비 지원을 위한 긴급구호사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1998~2000년중 투입된 막대한 예산은 공공근로사업이 경제위기 기간의 실업대책 중 핵심적인 부분을 구성하였음을 보여준다. 이와 더불어 청년실업 증가에 대처하여 정부지원 인턴제도가 단기일자리 창출사업의

    일환으로 대규모로 실시되었다.공공근로사업은 여러 장점을 가지기도 하였으나 효율성은 낮았던 것으로 평가

    된다. 실업대책을 표방하고 있었으나 실제로 실업감소에 얼마나 기여하였는지는 의심스러웠다. 또 실업자보다 여성 등 비경제활동인구를 대상으로 함으로써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공공근로사업이 경제회복 이후에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사업의 정비 없이 지속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문

    제로 지적되었다. 소비과열이 우려된 2002년에도 공공근로사업은 지속되었으며 농촌지역에서는 오히려 공공근로사업이 인력부족을 야기한다는 비난도 발생하였다.

    공공근로사업과 함께 추진된 고용보험 적용범위 확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등은 공공근로사업과 달리 제도적이고 항구적인 성격을 갖는다. 고용보험제도는 1995년 7월 1일 상시근로자 3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도입되었으며 1998년 1월 10인 이상 사업장으로, 1998년 3월 5인 이상 사업장으로 적용범위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실업급여 수혜율(실업자 중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들의 비율)은 1998년 10.1%에 불과하여 1997년의 1.8%보다 훨씬 높아지기는 하였으나 대량실업에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컸다. 수혜율은 2000년대 중반에야 25%를 넘어섬으로써 실업자 소득보전에 어느 정도 역할하게 되었다.

  • 제2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대응 15

    한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경제위기 기간 동안 실시된 공공근로, 노숙자보호, 한시적생활보호, 생업자금 융자 등의 일시적 성격의 사회안전망 사업을 제도화하여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취지로 2000년 10월부터 시행되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전의 생활보호법에서 복지는 시혜적 보호로 규정되었으나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는 국민들이 최저생활을 보장받을 권리를 실제적으로 규정하였

    다. 이에 따라 복지는 국민의 권리이며 국가의 의무가 되는 국가복지 성격의 대전환이 초래되었다. 둘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근로능력의 유무에 관계없이 수급자 선정기준에 해당하는 모든 절대빈곤층의 기초생활을 국가가 보장하게 하였

    다. 반면 이전의 생활보호법은 근로능력이 있는 국민에게는 소득에 관계없이 생계급여를 제공하지 않았다. 셋째, 국민기쵕활보장법은 근로능력이 있는 대상자를 ‘조건부수급자’로 분류하여 자활사업 참여를 조건으로 이들에게 생계급여를 제공함으로써 ‘생산적 복지(workfare)’의 성격을 표방하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은 대상자 규모와 급여 면에서 공공부조의 대폭적

    인 확대를 결과하였다. 생계비 지원대상자는 시행 이전인 1999년 54만명이었으나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실시 이후 149만명으로 증가하였으며, 급여수준도 4인 가족 기준으로 1999년의 73만9천원에서 2002년 10월에는 122만2천원으로 대폭 증가하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은 그 이전의 정책적 흐름과 비교한다면 국가복

    지정책의 대전환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획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최저생계보장이라는 목표달성에만 집착한 나머

    지 빈곤에 대한 접근방법의 정교성이라는 측면에서는 크게 미흡하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소득보전의 원리(보충급여방식)하에서는 수급자들이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 노력할 동기가 미약하여 궁극적으로 빈곤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

    다. 또 빈곤의 원인을 고려하지 않는 단일의 포괄적인 접근(통합급여방식)을 채택함에 따라 교육․의료․주거 등 국민의 다양한 욕구(needs)에 선별적으로 접근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이밖에 자활제도는 근로의무의 부과가 현실적으로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와 같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그 도입과정이 획기적이었던 것만큼 또한 많은 개혁과제를 남겨두게 되었다.

  • 제3절 경제위기 극복정책의 성과

    1. 부실의 해소

    경제위기 이후 추진된 구조조정은 기업부문의 부실을 해소하고 재무적 안정

    성을 제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외환위기와 대우사태에 이어 현대그룹의 위기가 상당 부분 수습된 2001년 말을 기준으로 할 때 기업부문의 잠재부실은 18.6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GDP 대비 3.4%에 해당하는 수준으로서 금융기관이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또 기업의 부채비율은 1960년대 말부터 위기 이전까지 30여년간 300~400%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으나 위기 이후 100~200%로 크게 낮아져 1960년대 초중반의 수준 및 현재 선진국들의 수준과 유사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경제위기 이전과 별 차이가 없으나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부채비율 감소 및 금리 하향안정에 따른 이자부담 경감으로

    급격히 상승했다. 무엇보다도 1997년 이후 수많은 대기업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본 기업들은 정부의 암묵적 보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구

    조조정을 추진하는 한편 무모한 투자를 자제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금융부문의 부실해소 역시 괄목한 만한 것이었다. 대형은행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부실금융기관은 폐쇄 또는 다른 금융기관으로의 흡수합병 등을 통하여 정

    리되었다. 금융위기의 촉발요인 역할을 하였고 초기 구조조정의 대상이었던 종합금융회사(종금사)의 경우 전체 30개사 중 29개사가 인가최소 또는 흡수합병으로 사라졌다. 이처럼 극적이지는 않았지만 보험, 상호저축은행, 리스 등의 경우에도 위기 이전 존재한 회사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의 비중에 해당하는 회사들이 구

    조조정 과정에서 정리되었다.구조조정이 추진되면서 은행의 재무건전성은 급속하게 정상화되었다. 무수익

    여신 비율은 1999년 8.3%에서 2001년 2.9%로 급격히 하락하였고 2005년 1.1%에 이르기까지 계속 하락하였다. 은행 수익성은 1997~2000년의 음(-)의 수치를 보였으나 부실자산을 대체하여 가계대출이 증가하면서 2001년에는 0.8%로 반전되었다. 이후 2003년 신용카드 위기 기간에 일시 둔화되었으나 전반적으로 높은 수

  • 18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준을 유지하였다. 이러한 부실자산 축소 및 수익성 개선에 따라 은행산업의 건전성이 향상되어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1997년 7.0%에서 1999년 10.8%로 상승하고 2005년에는 12.4%를 기록하였다.

    공공부문 구조개혁에서도 뚜렷한 성과가 나타났다. 1998년의 계획에 따라 2002년 말까지 즉각 민영화 대상 공기업 5개는 모두 민영화되었고 단계적 민영화 대상 공기업 6개 가운데 3개가 민영화되었다. 그 결과 공기업의 수는 자회사를 포함하여 78% 감소(98개→35개)하였고 인력은 62% 감소하였다. 또 24.3조원의 매각수입을 확보하였다. 중앙정부․지방정부․공기업․산하기관을 포함한 공공부문 전체로는 1997~2001년중 인력이 20% 감소하였다.

    2. 선진형 시장경제시스템의 정착

    구조개혁의 두 번째 목표인 시스템 개선에 있어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첫째, 대외개방을 적극 추진한 결과 외국인직접투자․외환거래․자본시장 등

    의 자유화가 큰 폭으로 진전되었다. 1997년 말 외국인직접투자에 대한 제한이 대폭 철폐되면서 직접투자 유입액이 급증하여 경상가격 기준으로 본 외국인직접투

    자 누계액은 2004년 10월 1,000억달러를 기록하였다. 이 가운데 경제위기 이후 누적된 금액이 전체의 82%를 차지하였다. 외환거래에 있어서는 1999년 4월과 2001년 1월 2단계에 걸쳐 대폭적인 자유화를 추진하였다. 이에 힘입어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일평균 거래규모는 1998년 40.2억달러(GDP 대비 1%)에서 2006년 302억달러(GDP 대비 3.5%)로 증가했다.1)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 주식보유한도가 점차 확대되다가 마침내 1998년 5월 일반 상장사에 대한 한도가 전면 철폐됨으로써 외국인 참여가 크게 늘어났다. 1996년 시가총액으로 평가했을 때 15%에 미달하던 외국인 투자가의 비중이 2004년에는 40%를 상회하게 되었는데, 이는 미국(10.3%), 일본(17.7%), 프랑스(38.8%) 등 대부분의 선진국이나 대만(23.1%) 등 아시아 경쟁국들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둘째,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위한 노력 역시 상당한 결실을 맺었다. 먼저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와 관련하여 기업회계기준 개정,

    1) 그러나 이는 아직 선진국에 비해 작은 편인데,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의 연계가 충분치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채권투자를 위한 외국인 등록제도는 채권시장 국제화와 외환시장 확대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제3절 경제위기 극복정책의 성과 19

    대규모기업집단의 결합재무제표 작성 의무화, 분식회계와 부실감사에 대한 처벌 강화 등에 따라 기업의 분식회계 가능성은 상당히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에 있어서는 사외이사제도가 기업지배구조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고 주주권도 상당히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2)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정부와 민간 사이의 위험공유체제가 대부분 철폐되었다는 점이다. 5대 재벌의 하나인 대우가 망하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대마불사(too big too fail)’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다. 또 분식회계 및 재산국외도피 사건으로 기소된 전․현직 대우 임원들에게 26조원대의 추징금과 함께 중형이 선고된 이후 기업경영의 책임성이 대폭 향상되었고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혁파되었다.

    셋째, 금융시장의 선진화 역시 큰 진전을 보았다. 먼저 통화정책의 운용체계 선진화와 국채시장의 선진화에 따라 금리기능이 정상화되었다. 위기 이전 한국의 통화정책은 M2 등 통화총량을 중간목표로, 지준총책을 운용목표로 삼아 운용되었는데, 이로 인해 한국은행은 재량적인 시장개입과 물량통제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고 금리불안을 막기 위해 금리자유화를 지연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위기 직후 고금리를 통해 외환시장 안정을 도모하게 되면서 통화정책의 운용목표는 콜금리로

    전환되었으며 순수하게 공개시장조작만으로 콜금리가 결정되는 선진적인 정책운

    용이 정착되었다. 이와 더불어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국채발행이 대폭 확대되고 국채전문딜러제도․통합발행제도 도입 등 시장의 유동성과 기능적 효율성을 높이

    기 위한 미시구조개편이 이루어짐에 따라 국채시장은 지표채권시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조치에 힘입어 금리기능이 정상화되는 가운데 주식시장은 2003년 이후 안정적인 추세적 성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주주이익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전면적 시장개방, 기관투자가들의 역할 증대, 그리고 저금리 추세의 장기화 등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3. 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성과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개혁의 미시적 성과는 경제 전체의 거시적 성장률 상승

    으로 나타났는가? 표면적으로 연평균 GDP 증가율은 1991~95년 기간에 7.5% 수준

    2) 그러나 사외이사의 역할에는 아직 많은 제한이 남아 있으며, 주주권의 행사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사외이사 선임에 대한 지배주주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소수주주의 권리행사에 필요한 비용을 낮추어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 20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을 보였으나, 2001~05년 기간에는 4.4%로 하락하였다. 이러한 성장률 둔화는 투자율의 현저한 하락을 동반하였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낮아진 투자율은 위기 이전의 경이적으로 높고 지속적이었던 투자율 및 자본축적과 대비되면서 흔히

    ‘투자부진’이라는 용어로 지칭되었다.Hahn and Shin(2007)은 그 동안의 성장성과(growth performance)를 설명하기 위

    한 일차적인 시도로서 자본․노동․총요소생산성 등의 近因(proximate causes)을 살펴본다. 이들의 분석결과에 의하면 위기 이후의 성장둔화는 생산성보다 주로 요소투입 측면에 기인한다. 특히, 위기 이전 10% 내외의 높은 증가세를 기록하던 자본투입의 둔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질적 변화를 감안한 자본증가율은 1990~95년 기간의 연평균 11.6%에서 2000~05년 기간에는 4.7%로 크게 하락하였으며, 질적 변화를 감안한 노동증가율도 1990~95년 기간의 연평균 4.2%에서 2000~05년 기간에는 1.3%로 하락하였다.

    요소투입 증가세가 둔화된 것과 대조적으로 총요소생산성은 오히려 경제위기

    이후 증가세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은 1990~95년 기간의 연평균 0.8%에서 2000~05년 기간에는 2.0%로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경제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이 1960~90년 기간 동안 연평균 1.5% 내외로 추정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경제위기 이후 총요소생산성 증가세는 이러한 역사적 추세와 크게 다르지 않거나 혹은 오히려 다소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한국의 성장성과는 우수한 편으로 확인된다. 1960~2004년 기간중 총 83개국에 대한 성장회계를 실시하여 경제활동인구 1인당 GDP 증가율을 요소투입 증가 및 총요소생산성 증가의 기여분으로 분해한 결과에 의하면 한국의 2001~04년중 연평균 노동자 1인당 GDP 증가율 2.9%는 대부분 개도국 지역뿐 아니라 선진국에 비하여 상당히 높다. 한국의 위기 이후 노동자 1인당 자본스톡 증가율(연평균 1.3%p, 기여도) 역시 경제위기 이전에 비해서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른 지역들에 비해서 높은 수준이다. 또 총요소생산성 증가율 역시 위기 이후 대부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높은 편인 것으로 보인다.

    이상의 분석결과를 통해 볼 때, 성장둔화에 대한 많은 우려와 논란에도 불구하고 위기 이후 노동자 1인당 GDP 증가율, 노동자 1인당 자본축적,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의 수준은 국제비교적 관점에서 여전히 우수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위기 이후 자본축적의 둔화는 ‘투자위축’ 혹은 ‘투자부진’으로 이해하는 것보다는 위기 이전 경이적인 자본축적의 종료로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듯하다.

  • 제3절 경제위기 극복정책의 성과 21

    또한 전 세계가 2000년 이후 총요소생산성 증가의 둔화를 경험한 반면 한국경제는 나름대로 과거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을 유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경제위기 이후 광범위하게 추진되었던 제반 개혁조치들이 우리 경제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가설에 우호적인

    것이다.

  • 제4절 위기극복 이후 한국경제의 전개과정

    1. 기업부문

    경제위기가 일단락된 후 2004년경부터 투자부진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투자부진을 설명하는 가설은 다음과 같이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경기주기론’으로서 경기부진이 설비투자의 위축을 가져왔다는 가설이다. 둘째는 ‘반재벌정서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과 반재벌정책이 기업인들의 의욕을 감퇴시켜 투자위축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셋째는 ‘대마불사 종식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제위기 당시 수많은 대기업이 몰락하는 것을 지켜본 기업들이 정부의 암묵적 보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

    식하고 무리한 투자를 자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넷째는 ‘산업공동화론’으로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가 증가함에 따라 국내 설비투자가 위축되었다는 가

    설이다. 네 가지 가설 중 반재벌정서론은 타당성이 미약한 것으로 보이며, 투자부진은 주로 경기부진, 대마불사의 종식, 산업공동화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벌의 경영권 보호에 대한 논란도 제기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핵심이 되는 문제는 출자총액제한 및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인데, 이들 제도는 이해관계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사적 구제수단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고경영자의 사익추구를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차선책의 성격을 가지

    고 있다. 따라서 출자총액제한 및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제한제도를 철폐하여 재벌총수의 경영권방어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제도의 도입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핵심적 문제인 경영권 방어장치(poison pill, golden parachute 등)는 실효성이 의문시될뿐더러 경영에 실패한 경영자마저 경영권 위협에서 보호할 가능성이 있어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2. 금융부문

    경제위기 이후 은행을 중심으로 발생한 거시적 자금순화구조의 변화는 가계대

    출의 급속한 증가와 중소기업 중심으로의 기업대출구조 재편으로 요약할 수 있다.

  • 24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가계대출의 증가는 근본적으로 신용자원 배분의 원칙이 종래 정부의 정책적 판단

    에 의한 배분에서 시장의 가격신호에 근거한 배분으로 바뀌었다는 점에 기인한

    다. 또 자금 공급자인 은행의 행태변화뿐 아니라 주요 자금 수요자인 기업의 자금조달패턴 변화에도 크게 영향을 받았다. 외부자금의 비중이 급속히 하락하고 내부자금의 비중이 증가하여 양자 간의 비중이 위기 이후 역전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신용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제고되고 종래 광범위하게 존재하

    던 가계부문의 신용제약 및 유동성 제약이 대폭 완화되어 소비자 후생이 증대되

    는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초래된 것으로 판단된다. 금융산업에 있어서는 금융회사의 대형화와 복합화가 급속하게 진전되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시장에서 시장 참가자의 필요에 의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라

    경제위기 이후 전 금융권역에서 대규모로 발생한 부실금융회사를 정리하는 과정

    에서 정책당국이 개입한 결과라는 점에서 199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 금융산업의 경향적 현상으로 자리잡은 대형화와 그룹화(복합화)와 다소 다른 측면을 띤다고 할 수 있다. 함준호(2007)는 은행산업의 경우 각종 지표를 통하여 대형화에 따른 규모의 경제 효과와 시장집중도의 상승에 따른 시장지배력 확대에 힘입어 수익

    성이 향상되었음을 뒷받침하는 간접적인 증거를 제시하였다.경제위기 이후 발생한 자금순환구조의 변화로 인하여 종래 신용시장에의 접

    근이 제한적으로만 허용되던 가계부문에 대한 신용공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가계부채가 매우 빠르게 누적되어 갔다. 이에 대해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매우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첫째는 가계신용 팽창의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는 것이다. 둘째는 구조 측면에서 가계신용의 증가를 주도하였던 은행대출의 증가가 주로 주택담보대출의 증가에 의하여 견인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적절한 신용평가 없이 남발된 신용카드로 인하여 발생한 대출의 건전성이 큰

    문제를 낳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결국 2003년 들어 신용카드업계 전반이 부실화되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성까지도 일부 위협받는 파국적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가계부채의 폭발적 증가에 대응하여 금융감독당국은 여러 가지 정책적 조치를 취하였다. 이에 따라 부실에 대한 우려가 상당한 정도 불식되었으나 아직도 주택담보대출의 구조적 문제 등 위험요인은 여전히 잠재해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된다.

  • 제4절 위기극복 이후 한국경제의 전개과정 25

    3. 노동시장

    경제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변화는 고용창출기반의 약화로 요약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일자리 창출 증가가 둔화되었으며 고용의 내용면에 있어서도 이전보다

    악화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요인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학문적으로도 아직 명쾌하게 정리되지는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조업의 고용감소는 주요인으로 보기 어려우며, 그보다는 서비스업의 부진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서비스업의 부진은 무엇보다도 거시경제적 상황, 특히 소비부진에 기인한다. 환율상승 등으로 인한 개인부문 본원적 소득증가의 저조, 사회보장부담금 등 국민부담률의 상승, 소비자 신용의 급격한 확대와 뒤이은 가계부채 및 신용불량 증가 등이 소비위축에 기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대기업 고용이 감소한 것에 비추어 볼 때 노사관계제도 역시 일자리 창출 증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또 서비스업 노동시장이 원활히 발전하지 못한 점, 특히 서비스업에서 대기업 고용이 증가하지 못한 점도 문제일 수 있다.

    경제위기 이후의 고용창출기반 약화는 특히 청년실업률의 상승을 결과하였다. 경제위기 이전에는 전체 실업률이 낮은 가운데 청년층 실업 가운데에서는 장기

    실업이 많지 않았으며 장기실업은 장년층 실업자들에게 집중되고 있었던 반면, 경제위기 이후에는 오히려 청년층에서 장기실업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

    다. 청년층 실업의 주원인은 부실한 고등교육이 양산되어 청년층의 기대치와 생산성의 격차가 확대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있어서도 아직 학문적 논의는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신규채용 및 순고용창출이 위축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용양상에 있어서도 비정규직이 확대되어 소위 ‘고용의 질적 저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노동수요가 지식경제로의 이행과 생산성 향상의 압력 속에서 차별화되며 유연한 기업조직을 구축하여야 할 필요성은 증대되는 데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노동법 체제는 여전히 개별적 노사관계에 있어서는 경직성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으며 연공급 등 사내규칙이나 단체협약관행 역시 차별성보다는 일체성 위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제도 및 관행 하에서 기업들은 고용관계를 다양화함으로써 노동비용 절감과 고용의 유연성 확보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 법규의 개정을 통한 비정규직의 보호는 노동시장 변화의 압력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장

  • 26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기계약직의 허용 등 개별적 노사관계의 경직성 완화 없이 새로운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얼마나 실효성을 가질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4. 소득분배 및 사회복지

    경제위기 이후 나타난 다른 하나의 중요한 현상은 소득 및 임금격차의 확대이

    다. 소득 및 임금분포의 격차 확대 그 자체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소득격차 확대 추세가 외국과 비교하여 크게 다른 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그 변화속도가 외국과 비교하여 크게 빠르다는 것이다. 둘째는 소득격차 확대가 중간과 상부 사이의 격차확대 뿐만 아니라 하위와 중간 사이의 격차확대에 의하여 발생하였

    다는 것이다. 최하위계층의 소득정체는 공급측 요인보다 수요측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술편향적 노동수요 변화, 즉 IT 기술 등이 도입됨에 따라 노동수요의 구조가 변화하여 저숙련 근로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은 외생적인 요인으로서 정책효과가 작용할 수 있는 여지는 크

    지 않다. 이러한 소득격차의 확대는 빈곤의 확대를 결과하였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

    험을 살펴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경제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한 만큼 빈곤율

    이 상당한 기간 동안은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여야 하며 성장과 사회보장대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사회보장지출을 확대해 왔으나 이에 대한 일부의 평가는 높지 못하다. 그 이유는 사회보장지출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출이 거의 의료급여에 사용됨으로 해서 사회보장의 대상과 프로그램에 있어서의 확대

    는 실현되고 있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경제위기에 의하여 충분한 제도적 실험이나 검토의 여유 없이 급박하게 실시된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의 구조적 결함을

    치유하는 것이 향후의 과제로 남아 있다.

  • 제5절 지속적 안정성장을 위한 정책방향

    1. 국가경제의 역동성과 유연성 배양

    위기를 맞은 지 10년이 흐른 지금 한국경제는 부실이 해소 및 시장규율의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과거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장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위기 이후 성장 및 투자가 둔화되어 앞으로 인구고령화 등 대내외 여건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목소

    리가 높다. 또 일부에서는 위기 이후의 소위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가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빈곤을 확산시키고 주장한다. 외국자본의 침투와 국부유출에 대한 논란도 거세졌다. 이에 따라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R&D 투자를 확대하여 성장산업을 육성하고, 빈곤문제 및 저출산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각종 재정지출을 증가시키며, 자유무역협정(FTA)을 저지하고 대외개방을 지연시켜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고 있다. 이는 과거와 같이 정부가 각 부문에 직접 개입하는 개발국가론적 국가운영이 아직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앞으로 한국경제의 성장전략을 구상하는 데 있어서는 먼저 과거의 성장전략

    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정부주도의 투자를 통한 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외환위기는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정부는 이미 외환위기 이전에 적극적 시장개입과 국내산업의 보호라는 정책기조에서 점차 벗어나 자율과 개방을 확대하

    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IMF 등 국제기구와 그 배후에 있는 선진대국들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보다는 그동안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상품․금융․노동 등 각 부문의 시장이 심화

    됨에 따라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해진 결과일 가능성

    이 높다. 외환위기는 단지 이러한 변화에 촉매역할을 하였을 뿐이다.지속적 안정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민간주도의 혁신노력과 기술개발을 촉

    진하는 방향으로 우리나라의 성장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개발연대의 성장은 외연적(extensive)인 성격을 가졌다(Eichengreen and Chung[2004]). 이미 성공이 입증된 외국의 기술을 수입하고 이를 활용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데에

    는 별다른 혁신이 필요하지 않았다. 혁신보다는 모방이 더 적절한 전략이었다.

  • 28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이 단계에서 애로요인은 금융시장의 미발달로 인해 대규모 자원동원과 성장산업

    에 대한 자금공급이 어렵다는 데 있었다. 따라서 정부의 중앙집권적 계획과 금융시장 통제는 성장촉진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정부는 대기업과 장기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원을 제공하여 투자에 나서도록 하였고, 대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활용하여 국내외 시장을 개척하였다. 자원배분의 경직성과 비경쟁적 시장환경이 문제가 될 수도 있었으나, 이러한 비용은 기술격차의 해소(catch-up)라는 편익에 비해 크지 않았다.

    그러나 기술격차 해소에 초점을 맞춘 외연적 성장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1990년대 이후의 한국경제에서는 모방보다 혁신이 더 중요한 성장의 동인으로 등장

    했다. 투자성과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부가 사전적으로 특정 기업을 선택하여 특정 기술에 투자하도록 지시하고 지원하는 전략은 더 이상 비용효과적인 대

    안이 되지 못하였다. 그보다는 다양한 기업이 다양한 종류의 혁신을 추구하고 시장을 통해 투자성과를 검증받도록 하는 것이 기술진보를 위해 더 적절한 전략이

    되었다. 이 단계에서 자원배분은 정부통제에서 벗어나 경쟁적 환경에서 시장성과에 따라 신축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방향으로 성장전략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국가경제는 첨단의 기술수준에 영원히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주장은 Acemoglu, Aghion, and Zilibotti(2002)에 의해 모형화된 바 있다.

    이런 논의를 참고할 때, 앞으로 한국경제의 지속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개발국가론적 성장전략에서 벗어나 시장친화적 성장전략으로 전환할 필요

    가 있다고 판단된다. 즉, 정부는 기업들이 스스로 혁신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하고 이에 적합한 시장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혁신을 이끄는 여러 정책 가운데 특히 중요한 것은 경쟁의 창달과 대외개방이다. 과거 한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은 정부가 수출을 적극적으로 장려함으로써 국내기업들이 해외경쟁에 노출

    되도록 유도한 데 기인한 바 크다. 앞으로는 국내시장 안에서 경쟁압력이 보다 고조될 수 있도록 대내적․대외적 개방을 촉진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R&D 등에 대한 공공부문의 물적투자 확대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국내시장의 경쟁압력을 높이기 위한 대내적 개방과 관련해서는 시장진입에

    관한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 동시에 독과점 및 담합행위에 대한 처벌의 수위를 높

    이고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권을 강화해야 한다. 또 중소기업에 대한 차별적 보호와 지원은 경쟁정책적 관점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재벌문제의 해결은 주

  • 제5절 지속적 안정성장을 위한 정책방향 29

    주들이 사적구제(private remedy)를 통해 경영진 규율 권한을 행사하기 쉽도록 만드는 한편 기업인수합병(M&A) 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또 재벌총수일가의 범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사법처리를 통해 경제권력의 정치권력화를

    막아야 한다.대외적 개방과 관련해서는 서비스업과 농업을 중심으로 개방을 확대하는 동

    시에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특히, ‘小國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과감히 세계시장과의 통합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외국자본의 침투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해외활동능력을 갖추지 못한 국내 금융기관들의 경쟁력 부족

    을 걱정해야 한다. 국내산업의 공동화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국내기업이 해외로 진출하지 못하고 보다 많은 외국기업이 국내로 진입하지 못하는 현

    상을 걱정해야 한다.기업들의 활발한 혁신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금융시장의 역할 역시 변해야 한

    다. 현재의 새로운 성장산업은 유형자본보다 지식과 기술, 즉 무형자본을 기업가치의 핵심요소로 하고 있다. 이 같은 기업특성은 유형자본 위주의 기업가치 평가와 자금공급에 적합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전통적인 형태의 은행으로는 해결하

    기 어려운 수준으로 정보비대칭성이 높아지는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혁신금융(innovation financing)’의 기능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사모펀드에 대한 단일 법규를 만들어 최대한 시장자율이 실현될 수 있는 펀드를

    허용하는 동시에 전반적인 자본시장 관련 규제에 최대한 포괄주의 규제정신을

    도입해야 한다. 또 공공부문의 자금지원체계에서는 과거 1970년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하여 구축된 개발국가형 체계를 전면 개편할 필요가 있다. 이와 더불어 연금기금이 혁신금융기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적연금의 비중을 대폭 축소하고 사적연금의 영역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 또는 현 체제를 유지하되 기금운용을 가능한 한 분할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기술혁신에 따라 산업 또는 기업 차원의 구조조정이 신축적으로 이루어지도

    록 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역시 중요하다. 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유연성 요구에 대한 부담은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앞으로 당분간 광범위한 근로자 계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용보호 관련 법제에

    대한 개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된다. 이보다는 우리나라 노동법제가 결여하고 있는 전문직의 장기계약제 등 지식사회에 필요한 부분을 추가적으로 손

    질하는 것이 요구된다.

  • 30 외환위기 극복과 재도약의 10년

    2. 사회통합의 제고

    현재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최하위 계층의 소득정체라 할

    수 있다. 소득격차 확대는 범세계적인 경향이며 국내의 정책적 요소에 의하여 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저소득층의 소득개선은 특정의 정책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다방면에 걸친 다양한 정책들의 작은 효과들이 누적됨으로써 그 효과가 나타

    난다. 다양한 정책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는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를 축소하는 일, 사회부조제도를 강화하기 위해 의료급여의 재정지출 확대를 억제하고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노

    동시장 프로그램과 연계하는 일, 육아휴직 지원을 통해 출산율을 제고하고 저소득층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을 꼽을 수 있다. 반면 저소득층 근로자는 숙련향상이 어렵기 때문에 숙련향상이 가능하며 이들과 보완관계를 지닌 다른 계층의 근로

    자를 대상으로 직업훈련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정부의 직접적 고용창출은 관리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그 효과와 효율이 보장되는 범위 내에서 제한

    적으로 실시할 필요가 있다.

    3. 안정적인 거시경제 운용

    과거 개발연대와 마찬가지로 경제위기 이후에도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은 미

    국 등 주요 선진국뿐 아니라 대만․싱가포르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향후에는 통화정책의 초점을 보다 명확하게 물가안정에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가안정목표제하에서 물가상승률 목표를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재정정책에 있어서는 재정규율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국가재정운용계획의 실효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안정적인 거시경제 운용은 활발한 민간투자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위한 필수조

    건이다. 또 이는 사회통합에도 기여한다. 일반적으로 저소득층은 거시경제 불안정에 대하여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다. 또 재정적 불안정성은 저소득층의 소득회복에 불리한 여건을 조성하며, 국내통화가치를 무리하게 높은 수준에 유지하는 환율정책 역시 내수에 악영향을 미쳐 저소득층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다.

  • 제5절 지속적 안정성장을 위한 정책방향 31

    금융정책에 있어서는 보다 효율적인 금융안전망의 구축을 위해 ‘관치금융의 자발적 리더십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위기관리는 반드시 공적자금의 직접적인 지원을 수반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아 보다 많은 경우에는 금융시장의 협조행위를 이끌어내는 리더의 역할이 효율적인 위기관리에서 중요하였다. 이제 공적 위기관리기구가 관치금융을 넘어서 시장이 자발적으로 신인도를 부여한 위

    기관리의 리더로 재탄생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현재 시점에서 중요한 불안요인으로 잠재해 있는 주택담보대출시장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도

    지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