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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화, 사회적 경제, 어소시에이션 - 맑스코뮤날레 문화과학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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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화, 사회적 경제, 어소시에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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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금융화와 탈정치화의 정치

최철웅 /『문화/과학』 편집위원

1. 들어가며 : 금융 위기와 죽지 않는 신자유주의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시작된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미 재무부와 연

방준비위원회(FRB; 이하 연준)의 적극적인 개입과 공적자금 투입으로 다소 진정되는가 싶더니,

이내 2010년 그리스를 필두로 한 유럽 국가들의 연쇄적인 채무 위기로 재점화 되었다. 2000년

대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재정위기에 직면한 그리스와 스페인 등 유로존의 적자국들은 구제금융

을 대가로 긴축정책과 노동시장의 개혁 등 고통스러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강제당하고 있

다. 이에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los indignados)’을 위시해 유럽의 민중은 “그들의 긴축에 맞

서 우리의 민주주의를”이라는 슬로건 하에 경기회복을 내세워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부와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에 대항해 대중투쟁을 펼치고 있다. 3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유럽의 채무 위기는 최근 키프로스가 구제금융을 받는 등 완화되기는커녕 주변

국들로 계속해서 확산되고 있는 형편이다.

유럽 국가들의 채무 위기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신용에 의거한 거품 경제가 꺼지는 과정에서 발

발한 것으로, 따라서 사실상 이번 위기는 주변부 나라들의 국내 은행과 공공부문에 대한 각종

청구권을 가지고 있는 독일, 프랑스, 영국의 주요 은행들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은행들이

야말로 유럽 주변부의 부동산 거품이 터지는 상황에 엄청난 규모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1)

유럽 주요 국가들은 임시적으로 주변부 국가들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긴축재정과 구조조정

을 강제함으로써 자국의 은행들에 대한 구제비용을 주변부 국가들의 민중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금융위기에 직면해 은행과 채권자의 손실을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이익의 사유

화와 손실의 사회화‘, 그리고 그에 대한 처방으로 강제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1997년 금

1) 이시드로 로페스·엠마누엘 로드리게스, ‘스페인 모델’, 『뉴레프트 리뷰 2013/4』, 길, 2013, 54쪽. 스페인은 1995년 이후 10년 동안 7백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성장률은 거의 4퍼센트에 달하는 등 2008년 금융 재난이 터지기 전까지 유럽 지역 내에서 활발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었다. 특히 주택 가격은 1997년과 2007년 사이에 220퍼센트나 오르면서 건설업 호황을 이끌었고, 2007년이 되면 민간의 자택 소유는 87퍼센트에 달하게 된다. 그러나 2008년 말경이 되면 미분양 주택이 1백만 호에 이르면서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하나둘 무너지고, 그에 이어 이들에 대출을 주었던 저축은행들도 엄청난 악성 부채를 떠안게 된다. 이처럼 거품이 꺼지는 과정에서 신용 수축과 더불어 민간 소비가 줄어들면서 실업률이 급증하고 세수도 급격히 줄면서 이윽고 채무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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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위기를 겪은 우리에게도 이미 익숙한 광경이다.

선진국에서의 연이은 금융 붕괴는 1970년대 말 이래 서구 세계와 다른 많은 지역들을 사로잡았

던 경제에 대한 관념을 한때 위태롭게 하는 듯 보였다.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의 위기를 목도하

면서 신자유주의 질서는 물론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좌·우파를 막론해 터져 나왔

고, 금융자본의 본산인 월가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풍문이 들려오기도 했다. 이때 다소 느슨하게 통용되는 신자유주의의 교리란 대체로 다음과 같

은 믿음을 의미한다. 자유 시장이야말로 개인들의 열망을 충족시키고 물질적 이익을 극대화 하

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제공하며, 국가와 정치는 비효율적일뿐더러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기

십상이라는 것.

이러한 믿음에 따르면 은행과 투자자들이 최첨단 금융공학의 지식과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합

리적으로 투자하는 금융시장이야말로 순수한 시장의 전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중한 자유

주의 경제학자 마틴 울프의 말을 들어보자. “성공적인 금융 시스템이 이룩한 성과를 잠시 생각

해 보라. 그것은 수천 명 혹은 수백만 명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을 적당한 비용에 공급하여 수

많은 기업을 탄생시키고, 다양한 외부인들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여 기성 업체에 도전하도록

돕고, 자금의 재구성을 통해 위험을 분산하고, 평생에 걸쳐 큰 비용을 계획적으로 분산하도록

허용하고, 삶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을 제공한다.”2) 울프처럼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믿는

이들에게 금융위기는 투자자들의 지나친 탐욕과 공포 사이를 오가는 인간 습성의 문제거나, 위

험을 감수하도록 보증함으로써 선택의 왜곡을 낳는 정부의 불완전한 개입 탓이다. 따라서 정부

는 개인의 위험 감수에 대한 무제한적인 보증을 제공해서는 안 되며, 금융기관의 투명성을 높이

고 특수 관계자 간 거래를 방지해야 하며, 파산한 금융기관의 경영진과 주주들이 무거운 손실을

감수하도록 해야 한다.3)

물론 이러한 조처들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다소 누그러뜨리는 방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현재 작동하고 있는 금융의 동학과 다소 동떨어진 주관적 소망의 투영에

불과하다. 당대의 금융시장을 특징짓는 폭발적인 과잉거래와 단기적 거래차익의 추구는 오히려

금융에 내재한 고유의 불안정성을 토대로 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 “성공한 투

기는 '순수' 금융이윤이란 독특한 형태의 금융소득을 창출하는 것으로 보이며, 금융자금 관리자

는 이 소득을 자산 계정에 기입할 수 있다. 다른 한편 이러한 투기적 운용은 어느 정도의 통화

및 금융 불안정을 불가피하게 요구한다. 시장이 지나치게 안정되어 있을 때 운용자들은 거리낌

없이 ‘지겹다’고 고백한다.”4)

오늘날 자유로운 자본이동과 금융거래를 통해 부를 확보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지배적인

공공선(common good)의 지위로 격상되기에 이르렀다. 그에 따라 국가의 역할은 개인의 재산권

을 보증하고 신용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놓여진다. 즉, 금융자본과 채권자들의 이해관계를 최

2) 마틴 울프, 『금융공황의 시대』, 김태훈 옮김, 바다출판사, 2009, 52쪽.3) 위의 책, 52~3쪽 참조.4) 프랑수아 셰네, 『자본의 세계화』, 서익진 옮김, 한울, 2003,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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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국면에서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논리와 정책적 결정을 뒷받침

하는 데 복무하고 있다. 그리하여 “금융위기는 은행들 자체와 은행의 행태에 관련된 것이었지

만, 위기의 해법은 여러 나라에서 딱 잘라서 복지 국가와 공공 지출을 삭감할 필요성으로 재정

의”5)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970년대 말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전환 자체가 금융지배를 제도화

하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필연적인 귀결이기도 하다.

금융자본의 이해가 사회적으로 최우선시 되는 데에는 우리의 일상 자체가 금융적 실천을 통해

영위되고, 나아가 금융자본과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오늘

날 우리는 소비자로서 신용카드로 할부구매를 하고, 노동자로서 퇴직연금에 가입되어 있고, 중

산층으로 진입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끌어다 쓰고 있다. 재테크를 통해 부자가 되는 것만이

사회경제적 지위를 개선하는 유일한 방편으로 제시되며, 불안한 노후에 믿고 기댈 수 있는 것은

연금과 보험 그리고 수십 년간 원리금을 상환하며 힘겹게 장만한 아파트 한 채 뿐이다. 우리는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자본시장의 성쇠와 운명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랜디 마틴은 개인들이 투자자로 변신하고 일상생활이 금융시장의 지배를 받는 이러한 상황을

‘일상의 금융화(financialization of daily life)'라고 한다. 마틴에 따르면, 오늘날 금융은 더 이상

단순히 은행 업무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자 자아 획득의 수단이다.6) 또한 “일상의 금융

화 현상은 노동자 계급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그들에게 새로운 주체성을 부여하는 일종의 문화

이데올로기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윤율이 저하된 시대에 개인들로 하여금 각자의 미래 가치를

앞당겨 소비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축적을 지속하는 메커니즘”7)이기도 하다. 즉, 일상의 금융화는

대중들이 소비자신용과 채무를 통해 금융시장에 연루되었다는 경제적 현실만을 지시하는 데 그

치지 않으며, 훨씬 더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변형을 함축한다. 본고는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금

융화가 발생한 원인과 그것이 일상생활로 확대된 과정을 살펴보면서, 그것이 신자유주의적 이데

올로기의 확산과 지배구조의 확립에 어떻게 기여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그 함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전개

20세기 자본주의의 동역학에 관한 아리기의 연구는 19세기의 영국과 20세기의 미국과 같은

‘세계 헤게모니’ 국가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역사를 분석한다. 세계 헤게모니 국가는 국제적인

5) 콜린 크라우치, 『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 유강은 옮김, 책읽는수요일, 2012, 7쪽. 크라우치는 신자유주의가 오히려 공고화되는 이유를 신자유주의가 흔히 주장하는 것과 달리 자유 시장이 아니라 거대 기업의 지배와 이해관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오늘날 산업그룹들이 금융 세계화의 능동적 주체들로 활동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진단도 가능하겠지만, 금융자본의 동학을 강조하는 본고의 논의와는 강조점이 다소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산업그룹들이 금융 세계화에서 수행하는 능동적인 역할에 대한 분석은 셰네의 『자본의 세계화』 제 10장 ‘산업그룹, 금융의 세계화의 능동적인 주체들’의 논의를 참고할 수 있다.

6) Randy Martin, Financialization of Daily Life,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2002. pp.2~3.7) 박성일, ‘일상을 잠식한 금융자본주의’, 『친밀한 적: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김현미 외, 이후, 2010)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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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경제적 질서를 자국의 이익과 결합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을 주도하게 된다.

아리기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성장의 고유한 동역학을 표현하는 체계적 축적순환의 논리는 ‘물질

적 팽창’과 ‘금융적 팽창’의 시기로 구분된다. 헤게모니적 축적체계의 성장기는 산업생산의 팽창

을 특징으로 하는데, 성장의 잠재력이 소진되고 자본 간 경쟁이 심화되어 이윤율이 하락하면 이

내 ‘징후적 위기’를 맞게 되고, 그러한 위기에 대응해 금융을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금융적

팽창’의 국면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나 금융적 팽창은 오히려 위기를 가속화하며, 마침내 금융적

팽창이 붕괴하면 하나의 축적순환은 ‘최종적 위기’를 맞게 된다.8)

세계 헤게모니 국가로서 전후 호황기를 구가하던 미국 경제는 1960년대 말부터 지속적인 이윤

율 하락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된다. 1970년대 초 인플레이션으로 달러 가치 하락이 예상되

자 대규모의 자본유출이 발생했고, 이에 1971년 닉슨 행정부가 금태환 중지를 선언하면서 전후

안정적인 국제화폐체제의 근간을 이루던 브레턴우즈 체제가 사실상 붕괴되었다. 경기침체와 인

플레이션이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속에서 화폐보유자들의 불만은 지속적으로 높아졌고, 초민

족적 은행들은 금융과 외환시장에 대한 탈규제와 자유화 조치를 요구했다.9) 금융의 반격은

1980년대 초 볼커의 대대적인 이자율 인상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연준 의장인 볼커는 달러의

신뢰성 회복과 금융소득의 안정성 확보를 목표로 대대적인 긴축 정책을 추진했고, 그 결과 금융

소득이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지 않고서 안정적인 양의 이자율을 확보하게 되었다. 높은 대출

금리로 수익률을 내기 어려워진 산업자본은 금융 부문으로 투자를 선회했고, 이후 금융화를 폭

발적으로 진전시키게 된다.10)

이러한 관점에서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1970대부터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는 수익

성의 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이 점차 금융적 축적을 추구하고, 1980년대부터 시작된 국가의 정책

적·제도적 변화가 이러한 금융적 팽창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제공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따

라서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시작되어 세계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은 국가의 해체

와 자유시장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신자유주의를 확산시킨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orld Bank)이 세계국가의 형성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물질적 팽창국

8) 조반니 아리기, 『장기 20세기』, 백승욱 옮김, 그린비, 2008. 아리기의 논점을 수용하는 백승욱에 따르면 실물적 팽창이 금융적 팽창으로 넘어가는 국면과 금융적 팽창국면에서의 위기는 상이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실물적 팽창의 위기가 산업생산물이 제때 팔리지 못해 발생하는 과잉생산 위기의 형태를 띤다면, 금융적 팽창국면의 위기는 과잉축적 위기로 나타난다. 생산된 상품이 실현되지 못해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과잉 상태가 되어 생산에 투자되지 못하고 생산에서 이탈하게 된 자본들이 쌓이면서, 그 자본들이 통로를 찾지 못해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금융위기의 양상을 띠게 되는데, 경쟁이 취약한 지역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고 자본의 기대수익률이 높다고 보이는 지역에 더 집중되어 나타날 수 있다.(백승욱, 『자본주의 역사강의』, 그린비, 2006, 286~87쪽.) 이러한 관점은 현 시기 미국과 유럽에서 금융위기가 터져 나온 배경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참조점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후 1973년까지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던 반면, 1973년 이후에는 전 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수백 차례의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는 사실도 이러한 논거를 뒷받침한다.

9) 이들의 지속적인 압력 속에 미국은 1974년 해외자본 이동에 대한 제한을 완전히 철폐했고, 미국과 영국은 1978년 역내시장과 역외시장을 통합했다. 그리고 1979년에 미국이 외환통제를 공식적으로 철회하면서, 은행과 기업의 네트워크 내부에서 단기적인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10) 박상현, 『신자유주의와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변화』, 백산서당, 2012, 206~214쪽. 백승욱, 앞의 책, 354~3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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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에 확립된 기존의 국내적·국제적 정책과 제도가 금융적 팽창에 조응하는 형태로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11) 다시 말해 국가의 쇠퇴와 순수한 시장의 복원이라는 상상적 이미지는 신자유

주의의 교리 속에나 존재하며, 신자유주의적 전환은 축적의 한계에 직면한 자본의 재구조화를

뒷받침한 국가의 역할과 기능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12)

1970년대 말 이후 진행된 금융의 반격은 단순히 자본의 재구조화에 그치지 않으며, ‘노동자계급

에 대한 자본의 반격’이라는 계급정치의 실행이기도 했다.13) 자본과 노동의 계급적 타협에 기초

해 산업적 팽창을 시도한 케인스주의 관리국가에서 노동자계급은 노동조합이라는 사회적 권력

에 기초해 임금 인상과 노동조건의 개선을 추구했으며,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보장과 완전고용의

추구에 의해 실업이라는 노동자계급 고유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았다. 그러나 수익성 악화에 직

면한 자본은 노동자계급에게 비용을 물리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다. "개

인의 자유, 해방, 개인 책임 그리고 사유화, 자유 시장, 자유무역 등의 미덕에 관한 무수한 수사

로 포장된 신자유주의는, 자본가계급의 권력을 회복하고 강화하기 위해 고안된 가혹한 정책들을

정당화했다.”14) 적극적인 수요관리를 추구했던 케인스주의의 재정정책을 대신하여 인플레이션

억제를 주창했던 신자유주의적 통화주의의 교리가 전면에 나서 공격의 수사를 제공했다.

통화주의는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위기에 대한 급진적 대응을 제공했다. 완전

고용 성장이 ‘자국의 축적’에 위험이 되자, 통화주의는 고용 보장의 파괴가 경

제 회복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공공 지출의 양이 국가의 재정 위

기를 일으키자, 통화주의는 공공 지출과 임금 사이의 케인즈주의적 관계의 폐

지를 선언했다. 사회적 통합의 협조 조합주의적 전략이 사회적 평화를 보장하

지 못하자, 통화주의는 노동조합들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선언했다. 실업이

급격히 성장하자, 통화주의는 시장 자유와 실업의 자연율이 바람직하다고 선

언했다. 시장 자유는 모든 민주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의 기초로 선언되었

다.15)

11) 박상현, 40쪽.12) 브뤼노프의 논의는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브뤼노프에 따르면 사적 자본은 축적을 위해 필수적인 노동력과

화폐만은 시장에서 구입할 수 없으며, 이처럼 특수한 상품인 노동력과 화폐의 (재)생산가 관리는 국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즉 “경제적 착취, 잉여가치의 추출은 '공장의 전제'를 통해서뿐만 아니라 국가의 폭력 혹은 합리성을 통해서도 전개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경제(적인 것)'와 '정치(적인 것)'는 동일한 사회적 현실의 두 가지 상이한('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측면들이다.”(쉬잔느 드 브뤼노프, 『국가와 자본』, 신현준 옮김, 새길, 1992) 이런 관점에서 브뤼노프는 현재 시기의 적대를 국가의 명령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적대로 규정하는 이탈리아 자율주의 운동의 조류에 대해 비판적이다, 계급적대의 장이 객관적인 사회적 관계가 아닌 직접적인 국가의 명령 관계로 대체됨으로써(정치와 경제의 결합) 계급에 관한 주관주의적 관점을 띠게 되고, 투쟁이 국가의 합리적 관리로 대체될 위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이 기호, 신체, 가족, 국가의 ‘정치경제학’으로 전개됨으로써 오히려 반사된 형태의 ‘경제주의’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그로 인해 상품형태와 권력메커니즘이 전면에 나서고, 자본의 측면이 방치된다는 것이다. 이는 현 시기 금융의 지배를 기호로서의 자본의 전면적인 침투, 혹은 명령 관계에 기초한 신용의 지배로 보는 자율주의의 흐름들과 중요한 이론적 쟁점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인다.

13) 제라르 뒤메닐·도미니크 레비, 『자본의 반격』, 이강국·장시복 옮김, 필맥, 2006; 데이비드 하비, 『자본이라는 수수께끼』, 이강국 옮김, 창비, 2012.

14) 하비, 24쪽.15) 워너 본펠드, ‘통화주의와 위기’, 『신자유주의와 화폐의 정치』(워너 본펠드·존 홀러웨이 편저, 이원영 옮김, 갈무

리, 1999) 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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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정책적 전환은 실업의 증가와 성장의 쇠퇴를 무릅쓰고라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이 국가정책의 최우선 목표가 되었으며, 이는 곧 노동에 대한 화폐의 우위, 즉 금융 권력의

지배가 제도화되었음을 의미한다.

1980년대 이후 금융 권력의 부활과 함께 금융기관의 활동도 전례 없이 활발해졌다. 전통적인

금융기관을 대표하는 상업은행뿐만 아니라 연기금, 뮤추얼펀드와 같은 새로운 금융기관들이 이

시기에 급속하게 성장했다. 산업기업들도 장기적인 산업투자 대신 단기적인 고수익을 추구하며

금융수단에 투자했고, 정크본드(junk bond)를 통한 차입매수를 중심으로 거대한 인수·합병의 물

결이 폭발했다.16) 가격변동성의 증대와 자본이동의 자유화는 금융 차익거래(financial arbitrage)

라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 냈고, 환차익을 노리는 외환투기나 금리차를 이용해 수익을 챙

기는 캐리 트레이드처럼 미세한 가격 차이를 이용해 단기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투기적 거래가

활발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정성에 따른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금융상품인 파생상

품거래도 활성화되었다(물론 애초 목적은 리스크 회피였으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밝혀

졌듯이 리스크를 이용한 돈벌이로 곧잘 사용되었다.)17)

기업 경영에서도 ‘주주가치 경영’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주로 초국적 기

관투자가들로 이루어진 증권의 소유자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하기보다 현재의 기업잉여

중 금융자본의 분배 몫을 늘리는 단기적 수익성 증대에 더욱 강한 이해관계를 갖는 경향이 있

다. 이러한 외부의 압력이 강화되면서 경영자들은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 원리에

신속하게 적응했고, 주가 극대화와 자본수익성 극대화를 경영의 최고 목표로 설정하기 시작했

다. 단기 주가 극대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기업의 경영자들이 적대적 M&A로 경영권을 박탈

당하고, 스톡옵션제도의 도입으로 경영자의 이해관계가 주식시장에서의 성과와 연동되면서 다른

이해관계자들보다 주주와 채권자의 이해를 최우선으로 삼게 된 것이다.18) 이로 인해 “노동 유연

화, 설비투자 감소, 생산공장 폐쇄, 여타 기업기능 아웃소싱 등 구조조정과 탈산업화를 통해 비

용을 절감하여 주주가치에 기여”19)하는 노동 억압적 경영 전략과 관행들이 확산되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활발해진 금융혁신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부채를 증권이라는 새로운 금융수

단으로 전환시키는 ‘부채의 증권화’라는 현상이었다. 전통적인 중개 업무를 수행하던 은행은 수

익성이 낮아진 대부업무에서 벗어나, 대부한 부채를 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새로운 금융상품으

로 변모시켰다. 부채의 증권화와 함께 주택 모기지, 자동차 대부, 신용카드 매출채권, 학자금 대

출금 등 은행의 금융자산은 자본시장에서 거래될 수 있는 증권, 즉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이나

자산담보부증권(ABS) 등으로 변모했다.20) 이로 인해 애초 위험성을 지니던 부채는 수익성을 높

이는 증권으로 변모했고, 부채를 증권화 하여 판매한 은행은 이를 통해 수수료 수익을 챙기면서

16) 박상현, 256쪽.17) 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 책세상, 2011, 67~68쪽.18) 조영철, 『금융세계화와 한국 경제의 진로』, 후마니타스, 2009, 43~44쪽.19) 지주형, 100쪽,20) 박상현,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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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른 위험까지 떠넘길 수 있게 되었다.

금융증권화는 금융기관이나 신용평가회사 입장에서 볼 때, (모기지 뿐만 아니

라 신용카드와 같은) 고객 대출 상품을 투자은행에 판매함으로써, 재무 상태

를 개선하게 해준다. 투자은행은 (양호부터 불량까지) 차등적인 리스크에 따라

신용 풀을 만들며, 이것을 기초로 자산을 발행한다. 다음으로 발행된 자산은

임의로 창출된 금융회사(이른바 콘듀잇이나 특수목적회사)에 양도되고, 이들

회사는 매입 대금을 단기 채무로 조달한다. 마지막으로, 채권은 헤지펀드와

투자은행, 퇴직연금, 투자기금과 같은 투자자에게 넘어간다. 이 같은 방식을

통해, (일이 계속 잘 풀린다면) 아무개의 모기지 부채는 다른 누군가의 손에

서 수익성 높은 사업이 된다.21)

이러한 금융화와 증권화를 통해 금융자본은 더 이상 산업자본의 가치실현의 한 고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세력으로서 금융적 수익을 축적해간다.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주의

적 관계의 가장 물신화된 형태”인 이자 낳는 자본(M-M')을 대표하면서, 어떠한 상품의 생산

및 유통과도 무관하게 마치 스스로 가치를 증식하는 것처럼 현상하는 것이다. 증권화와 파생상

품 기법으로 무엇이든 상품화하는 것이 가능해지며, 생산을 조직하는 일 없이도 유통시장에서

언제든 가치를 실현할 수 있게 된다.

금융영역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자본들은 생산 부문에서 태어났으며 또

끊임없이 태어나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포획한 실물자원들 중 가장 큰 부분의

가치실현 또는 '결실'이 채권과 주식, 즉 미래의 경제활동을 대상으로 한 채권

증서들에 투자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증권들 이른바 금

융자산들은 이중의 가상적 차원을 가진다. 그것들은 이차 증권시장에서 고유

의 생명을 가지며, 여기서 그것들은 가치의 상승과정을 겪는다. 이 과정은 금

융운용자들 사이에서 그 가치에 대한 평가나 협약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지속

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금융자산들은 그 시세가 폭락하여 더 이상 "종이

누더기"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생산, 무역 및 금융시장

들을 동시에 요동치게 만드는 심각한 위기가 발생하여 축적이 중단되지 않는

이상, 또는 국가채무의 지불정지 심지어는 지불거부로 귀결되는 중대한 정치

적 사건들이 발생하지 않는 한, '대부화폐자본'이나 '금융자본'의 범주에 속하는

자본은 새로운 가치와 부의 생산에서 형성되는 일차소득에 대한 '실질적인' 잠

식을 통해서 소득을 올리며 또 성장한다.22)

이러한 가상적 성격으로 인해 금융영역이 ‘자율적인 세력’으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수행

21) 크리스티앙 마라치, 『금융자본주의의 폭력』, 심성보 옮김, 갈무리, 2013, 47쪽. 한편으로 이러한 증권화 과정은 일종의 화폐를 창출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채권 흐름의 분할은 본질적으로 금융증권화를 통해 신용을 증식시키기 때문이다.”(48쪽) 이는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신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22) 셰네, 294~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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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역할들이 감춰지고, 금융영역에서 가치를 실현하는 자본들이 실제로는 생산과정에서 창조된

잉여가치의 일부라는 점이 은폐된다. 오늘날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적 형태인 ‘화폐물신’(“돈이 돈

을 번다!”)은 이러한 메커니즘에 의해 추동되고 있다.

3. 한국사회의 금융화와 부채경제의 정치학

한국 사회는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권 시절 금융 자유화를 통해 민간 주도 경제로 전환하고

재벌의 투자와 지구적 경쟁을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세계화’를 기치로 금융 자유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진행된 것은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

으면서부터였다. 1997년 이전의 자본자유화가 재벌기업의 이익을 고려한 것이었다면, 1997년

이후엔 IMF의 주도 하에 월가의 금융자본과 외부투자자의 관점에서 기업투명화와 자본자유화

가 전면화 되었다. 은행과 기업의 경영에서 BIS 비율 등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는 금융적·재

무적 논리가 중시되었고, 외국인 주주의 압력으로 단기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주주가치 경영이

확산되었으며, 금융기관은 물론 기업 부문에서도 금융자산의 매출과 수익은 물론 스톡옵션과 주

식배당이 증가하는 등 금융적 축적이 확대되었다.

노동유연화를 위시해 상시적인 구조조정을 동반한 신자유주의적 노동억압 정책이 이러한 변화

를 뒷받침했다. 그 결과 노동자 계급의 실질임금은 하락하고, 가계소득은 정체되었다. 재무구조

개선의 압박 하에서 기업들이 신규투자를 축소하고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아웃소싱을 통해 인

건비 지출을 줄여나간 데다, 부실기업 정리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재벌들이 국내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면서 임금을 하향 압박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생산의 글로벌화를 통해 언제든 저

임금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할 수 있었고, 그러한 위협만으로도 노동자들의 요

구를 효과적으로 억누를 수 있었다. 기업들이 고용구조의 차별화와 성과주의의 도입 등으로 노

동자들을 내부에서 분할시키는 전략을 구사한 탓에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조

건과 가능성도 약화되었다. 이처럼 노동이 약화되고 저임금 구조가 고착되면 거시경제상 수요

부족의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윤을 실현하는 문제(즉, 잉여가치 상품의 판

매)는 비임금 소득을 통한 소비에 의존한다. 이러한 분배의 측면에서 볼 때, (부의 극단적인 양

극화를 특징으로 하는) 자본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부채를 통한 임금생활자의

소비 때문이다.”23) 금융은 실물경제에 대해 기생적이지 않으며, “소비의 증진을 가져오는 지대

창출 능력, 즉 GDP 성장에 필수적인 유효 수요를 창출하는 역량”을 통해 허구적 이윤을 증대

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200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 사회의 가계경제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저축률 감소와

가계부채의 급격한 증대24)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997년 이전까지 정부는

23) 마라치, 42쪽. (강조는 원문)24) 1990년대 20%대를 유지하던 저축률은 2000년대 들어 평균 3% 내외 수준으로 떨어진 반면, 가계부채 비율은

2012년 말 기준 약 1,000억 원으로 10년 전인 2003년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했다.(한국금융연구원, 『가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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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예금을 기업 대출로 유도하려는 목적에서 예금 금리의 상한선과 소비자 대출 옵션을 제한

해 소매 금융의 발전을 정책적으로 억제했다. 그리하여 별다른 자금 운용 방법이 없는 가계와

개인들은 대부분의 여유자금을 은행예금으로 저축했다. 1970년대 이후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추구해 온 정부도 앞장서 과소비 행위를 지탄하고, 저축을 도덕적인 행위로 장려해왔다. 1990년

대 말까지는 주택 융자도 주택은행이 독점했고 부동산 담보대출 규정도 극도로 제한적이어서,

고객은 담보로 제공한 부동산 가치의 30퍼센트까지만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1차 주택 융자의

개인당 최고한도는 5만 달러에 불과했다.25)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이후 기업들이 투자

를 축소하고,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으로 낮은 경제성장률과 실질임금의 감소를 겪으면서도 한국

사회가 2000년대에 비교적 안정적인 경기 회복세를 유지한 것은 생산적 투자와 고용 증대가 아

니라 ‘금융에 기초한 경기회복’의 효과였던 셈이다.26)

IMF의 구조조정 처방을 이행하던 김대중 정부는 투자 부족과 민간소비 위축으로 1998년 경기

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자 ‘내수 진작'의 요구에 직면했고, 소비자 금융의 활성화와 규제 철폐,

금리 하향 및 재정지출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경기 부양 대책을 내놓았다.27) 소비자 금융 확

대를 위해 정부가 꺼내든 카드는 먼저 신용카드업 활성화였다. 1999년부터 신용카드 수요 확대

를 위해 소득공제 제도와 신용카드 영수증 복권 제도가 도입되었고, 부대 업무(일반 대출, 어음

할인 등) 비율 규제 폐지와 현금 서비스 이용 한도(월 70만원) 폐지 등 규제 완화정책이 시행되

었다. 신용카드 시장 개방 조치로 현대와 롯데가 2001년 이후 신용카드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

고, 신용카드 산업은 시장선점을 위한 과당경쟁 체제로 돌입했다. 회원 확보를 위한 과당경쟁은

카드발급 남발로 이어져, 길거리에서 발급 자격이나 심지어는 신분증 확인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발급되었다.

이로 인해 신용카드 발급 수와 사용액은 폭발적으로 성장해 2002년에 접어들면 총 1억여 장의

신용카드가 발급되고, 경제활동인구 1인당 카드수가 4.6개로 증가하게 된다. 카드 회사들은 시

장을 선점하기 위해 사활을 건 경쟁을 펼쳤고 카드 회사들이 2000년 한 해 동안 모집인에게 회

원 유치 대가로 지급한 보수만 1,928억 원에 달했다. 카드업체의 경쟁과 성장은 당시 TV를 켜

기만 하면 흘러나왔던 각종 광고들에서도 확인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부자 되세요”

등 아직까지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 광고카피를 내세워 카드회사들은 막대한 규모의 광고를 퍼

부었다. 2002년 신용카드 5개 업체의 4대 매체에 대한 광고비는 약 1,300억 원에 달해 1998년

과 비교해 무려 30배 이상 증가한 액수를 기록하게 된다. 신용카드 이용의 폭발적 증대에서 눈

여겨 볼 점은 현금서비스 사용이 다른 서비스에 비해 훨씬 더 가파르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연회비나 가맹점 수수료보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신용카드사의 주요한 수익원

이었던 데에서 기인한다. 카드사들은 사용자들에게 높은 수수료와 연체료를 물렸고, 대출금을

채 백서』, 2013 참조.)25) 김순영, 『대출 권하는 사회』, 후마니타스, 2011, 31~32쪽.26) 크라우치는 이처럼 신자유주의 국면 하에서 경제를 자극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빚을 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 빈

곤층을 포함한 개인과 가구가 빚을 떠안는 현상을 “사유화된 케인스주의” 모델이라 부른다.(크라우치, 169쪽)27) 1998년 9월 28일 기자회견을 통해 경기 부양 의지를 밝힌 이후 발표된 후속조치는 통화의 신축적 공급 및 콜금

리의 추가적인 하락과 은행 대출금리의 인하 유도, 주택 수요자 금융 확충과 은행을 통한 소비자 금융 지원 확대, 재정 적자 규모를 GDP의 5퍼센트 수준으로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김순영, 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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갚지 못하면 강박적인 추심을 통해 부채를 받아내는 방식으로 수익을 올렸다.

규제완화로 인한 신용카드 회사의 과당경쟁과 발급 남발은 결국 2003년 카드사들의 대규모 구

조조정으로 이어진 ‘카드대란’과 2004년 말 기준 약 400만 명에 달하는 ‘신용불량자’28) 문제를

낳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신용불량자 문제는 사회적 문제라기보다 도덕적 해이에 빠진 일탈적인

개인들의 문제29)로 치부되었고, 카드남발로 이득을 챙긴 것은 결국 정부와 카드회사였다. 1999

년부터 2002년까지 평균 약 7퍼센트의 경제성장을 이루며 한국경제는 IMF 조기 졸업을 선언했

는데, 민간 소비지출에서 신용카드 거래가 차지하는 비율이 1999년 15.8퍼센트에서 2001년 약

35퍼센트로 증가한 데에서 짐작할 수 있듯 신용카드가 내수 진작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 또한

2001년 삼성 등 3개 카드 회사의 초과이윤이 평균 8,403억 원에 이르는 등 카드회사들도 현금

대출 위주의 영업으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30)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와 대출을 이용한 계층이

주로 생계를 목적으로 한 중하위층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부를 강탈하는 방식으로 자

본의 축적이 이루어진 셈이다.

한편 가계대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신용대출보다 오히려 주택담보대출이다. 2000년

대 들어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 저금리 기조가 자리 잡으면서 한국을 포함한 신흥공업국으

로의 자본 유입이 활발해졌고, 자본자유화 조치로 인해 국내은행의 차입이나 외국인의 주식투자

등을 통해 해외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유동성이 풍부해졌다. 외화자금의 대규모 유입은 국내

금융시장에서 저금리 기조가 경향적 현상으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고, 우리나

라 통화 당국도 정책적으로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펼쳤다. 그로 인해

은행과 금융회사들은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졌고, 담보가 보장돼 기업보다 부실위험이 상대적으

로 적은 주택담보대출을 집중적으로 늘리기 시작했다.31) 이는 투기적 수요와 맞물리면서 정부

의 연이은 대책마련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한국인들의 욕망을 지배한 ‘부동산 열풍’을 낳게 된

다. 특히 표준화되고 규격화되어 있어 유동화가 용이한 아파트는 중산층의 상징이자, 높은 수익

성과 안정적인 자산 가치를 보장하는 최고의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부동산 거품’을 주도

했다. 데이비드 하비가 2차 순환 축적이라고 부르는 건조 환경에서의 자본순환을 통한 축적의

메커니즘이 진행된 것이다.32) 사실상 2000년대 들어 정부는 정권을 막론하고 공히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투자와 고용을 일으키는 건설과 토목사업에 의존해 왔다. 2000년대 한국의 경제회

복은 상당부분 금융-부동산 개발의 순환 회로에 의해 이루어졌던 셈이다.

28) ‘신용불량자’는 개인이 대량채무를 지도록 방조하거나 조장하는 이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특징적인 주체성의 형상이 아닐 수 없다.

29) 김순영은 신용불량자가 된 원인으로 과소비 대신 소득감소와 허약한 복지체계를 들고 있으며, 신용불량자들에게서 ‘카드 돌려막기’가 성행했음을 근거로 신용의 상품화와 약탈적 대출이 신용불량자를 양산한 구조적 힘이었다고 진단한다. ‘카드 돌려막기’는 본질적으로 복리계산으로 이루어지며, 그로 인해 부채를 갚고자 돌려막기를 하면 오히려 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나아가 대출금을 갚지 못해 채권 추심에 몰린 사람들은 마지막 탈출구로 살인적인 고금리를 물고 대부 업체나 사금융을 이용하며, 결국 원금의 몇 배에 해당하는 빚만 늘린 채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경로를 밟게 된다는 것이다.

30) 이상 신용카드와 관련한 내용은 김순영의 책 2~5장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것이다.31) 한국금융연구원, 77~78쪽,32) 데이비드 하비, 『자본의 한계』, 최병두 옮김, 한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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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이나 부동산의 자산 가치 상승은 액면가치상의 부를 중대시키며, 그로 인한 ‘부의 효과

(wealth effect)'에 의해 추가대출이나 소비를 증대시키게 된다. 그리고 여건이 좋은 경우 이것은

추가적인 투자를 유도할 것이라 기대된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결국 자산가치가 끊임없이 상

승할 것이라는 ’예상‘에 기초했다는 점에서 고유한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아가 대출을

통해 거액의 투자를 한 경우 미래소득의 흐름을 현재화시킨 것이기에 더욱 더 불확실성에 노출

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이후 부동산 가격이 꾸준히 상승해왔다는 ’부동산 불패

신화‘와 주변에서 들려오고 목격되는 ’대박 신화‘에 힘입어 투자수요는 꾸준히 증가했고, 저금리

기조와 우호적인 대출 조건 하에서 대출을 활용하는 ’레버리지 투자‘가 성행하게 되었다. 미셸

아글리에타는 신용과 자산 가격 상승의 메커니즘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신용은 자산 시장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자산 시장에서 가처분 저축만 운

용된다면 이 시장은 그 자체로 고유의 한계를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자산의

가치는 끊임없이 증가하는데 이를 획득하기 위해 구매자들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그들의 저축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산 가격이 동원 가

능한 저축액보다 지나치게 높아지는 순간이 올 수 있다. 이때 정상적이라면,

통상의 재화 시장에서처럼, 수요는 줄어들고 그래서 자산 가격도 하락할 것이

다. 그러나 금융 영역에서는 사태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 핵심

이유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자산의 획득이 신용으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신용이 늘어날수록 자산 가격은 더 오르고, 차입 유혹을 받는

구매자의 수도 늘어난다. 왜냐하면 구매자는 신용을 받기 위해 가격이 상승

중인 자산을 담보로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33)

정책 당국 입장에서는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가격의 인플레이션이 크게 우려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볼 수 있듯 자산가격의 디플레이션이야말로 파국적인 결과

를 가져올 것이다.) 부동산이나 금융 자산과 같이 구매 이후에도 가치를 유지하는 비소모재의

경우 가격 상승은 동시에 가치의 상승이며, 소모재나 서비스 상품과 달리 인플레이션에 기여하

지 않는다. 따라서 “자산 및 자산에 근거한 소득은 논리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런 정책 체제 아래서는 통상적인 상품과 서비스의 판매를

통해 생겨난 소득 가운데 자산 기반으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성공을 구가한

다. 연봉 가운데 주식 옵션으로 지불된 부분과 연봉과 임금이 아니라 부동산 가치에 근거한 모

기지 확대를 통한 지출이 여기에 해당된다.”34) 그리하여 자산 가격이 폭등한 2000년대 한국 사

회에서 자산을 보유한 계층은 더욱 높은 자산소득을 누렸으며, 이로 인해 계층 간 소득불평등보

다 자산불평등이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35)

금융화를 심화시키는 과정에서 금융에 대한 접근권을 높이는 것은 개인의 선택과 부의 증대 가

능성을 높이는 ‘신용의 민주화’라고 상찬된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개인과 가계에 차별적으로 신

33) 미셸 아글리에타, 『위기, 왜 발발했으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서익진 옮김, 한울, 2009, 12~13쪽.34) 크라우치, 171쪽.35) 손낙구, 『부동산 계급사회』, 후마니타스, 200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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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제공하며, 부를 불평등하게 재분배한다. 빈민과 하위층에겐 더욱 많은 사회적 지원이 필요

하나 금융기관은 이들 집단의 리스크가 높다고 판단하여 고율의 이자를 책정하며, 담보여력과

상환능력이 높은 상류층에겐 우대 금리를 적용한다. 이는 사회적 논리로부터 벗어난, 순전히 수

리적인 계산에 의거하는 금융적 포섭과 배제의 기제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자산의 가격이 올라

갔다고 해서 사회 전체의 부가 더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현 주택 보유자가 상승분에서 얻는 이

득은 미래의 구매자들이 감수해야 하는 손실과 일치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사람의 개

인적·집단적 이익이 금융 시장과 연결된 상황에서 금융 시장은 대단히 불평등하게 작동하면서

극단적인 부의 집중”36)을 낳고 있을 뿐이다.

4. 금융적 주체의 두 얼굴 - 투자자와 채무자라는 형상

우리는 이제 일상적인 금융적 실천의 또 다른 영역을 탐색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전통적으

로 저축이라 일컬어지던 영역에서의 질적인 변형이다. 금융화가 글로벌 자본이나 금융기관의 영

역을 넘어 가계와 개인의 경제적 실천의 장으로 확장되면서, 간단히 말해 많은 저축자들이 금융

투자자가 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식소유권, 연금 설계, 뮤추얼 펀드를 통해 자본시장과

긴밀하게 엮였고, 한때 전문가들의 영역에 속하던 리스크와 계산의 테크놀로지들을 일상적 실천

속으로 끌어들였으며, 자본 없이도 마치 자본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영국

과 미국에서는 ‘소유자 사회ownership society' 담론을 통해 이러한 ’경제적 시민권‘의 보급이

국가 정책의 확고한 목표로 추진되었다.

사적 소유의 확장은 정부의 독단적인 권력에서 개인들을 보호해 주며 이들에

게 더 많은 자유와 시민으로서의 자신감을 제공해 준다. 미국을 소유자 사회

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더욱 많은 미국인들에게

주식, 채권, 뮤추얼 펀드에 투자할 기회를 제공해서 그들이 자본가가 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37)

이는 사회보장과 노동을 통해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인정과 권리를 보장받던 ‘노동자 시민권’

에서 자산 소유를 통해 그러한 권리를 보장받는 ‘경제적 시민권’으로의 이행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엔 사람들이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실업자와 세입자가 아닌 자신의 주택과 자산을

소유한 소유주로서 더욱 책임 있는 시민의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에 영

국의 대처 정부는 1980년 주택법을 제정해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공공 임대주택을 임차인이

‘구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줌으로써 150만 가구의 임차인들을 주택 소유자로 변모시켰으

며, 이를 본뜬 미국의 부시 정부도 2004년 재선을 맞이해 ‘소유자 사회’ 건설을 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며 국민들에게 주택 소유와 금융 투자를 독려했다.38)

36) 크라우치, 172쪽.37) 미국의 보수적 민간연구소 <카토 인스티튜트Cato Institute>의 데이비드 보아즈의 발언(박성일, 60쪽에서 재인용).38) 박성일,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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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는 미국의 닷컴 열풍을 이어받아 김대중 정부가 주도했던 벤처투자와 코스닥 열

풍을 통해 ‘투자의 대중화’가 확산되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만으로 거대한 부를 움켜쥘 수 있

다는 ‘지식기반사회’에 대한 환상에 힘입어 ‘벤처창업’이 일자리 기회가 줄어든 젊은 야심가들을

열광시켰고, IT나 신기술을 표방하는 벤처기업들에 대한 ‘묻지마 투자’가 성행했다. 그러나 신대

륙 대신 네트 속으로 ‘골드 러쉬’를 떠났던 이들은 이내 거품 붕괴와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졌

고, 그로 인해 주식시장의 열풍도 이내 사그라졌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펀드

투자가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 떠오르기 시작해, “20008년 금융위기 직전 적립식 펀드 계좌

수는 1,500만개, 주식형 펀드 계좌 수는 1,800만개에 이르렀다.”39) 한국은 펀드투자보다 주식

등과 같은 직접투자 비중이 더 높은 편이긴 하나, 펀드는 직접투자보다 위험이 적고 간편한 투

자 수단으로 널리 선호되고 있다. “뮤추얼 펀드의 대중 마케팅에서 중심적인 전략은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를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적인 활동으로 자연화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

적을 위해 뮤추얼 펀드 투자는 옷이나 음식을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일

상적인 구매행위로 제시되었다.”40)

이러한 투자 열풍은 정부의 저금리 기조와 금융 산업 육성 정책에 힘입은 것이지만, 소위 ‘부자

되기 신드롬’이라 불리는 새로운 문화현상의 전사회적 확산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저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필두로 ‘부자 되는 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쏟아

져 나왔고, ‘재테크에 미쳐라!’를 외치는 목소리들이 모든 이의 귓전을 울려댔다. 2000년대의 부

자는 과거처럼 근면하게 노동해 자수성가한 사람이 아니라 금융적 수단과 기술(재테크)을 통해

자산을 축적한 자이며, 노동이 아니라 자산을 굴려서, 즉 ‘돈이 돈을 벌게끔’ 만드는 자이다. 부

는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건 그 자체로서 가치를 인정받으며, 부자 되기는 모두가 추구해야

할 규범이자 강박이 된다.41)

금융 투자자에게 있어 돈은 단순히 거래와 축장의 수단이 아니라 “끊임없이 굴리면서 애지중지

해야 하는 것”42)이며, 시장도 단순히 합리적인 가격형성과 거래의 장소가 아니라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된다.

현재의 금융 양식은 단순한 스펙타클, 즉 눈길을 끄는 경제적 경관이 아니라,

그것의 근본적 요소로서 전시되는 것에 참여하라는 초청이다. 금융은 번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돈에 대해서 수행하는 작업의

한 방식이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에 대한 작업의 한 방식이다. 금융적 자기관

리의 새로운 모델에 따라 돈을 버는 것은 고용되어 임금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돈은 생계를 위해 지출되어야 하지만, 이제 일상생활은 돈을 만들어

39) 박성일, 62쪽.40) Adam Harmes, Mass Investment Culture, 『New Left Review』 9, May June 2001, p.109.41) 최민석,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일상생활의 금융화와 투자자 주체의 형성’, 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학위

논문, 2011, 4장 참조.42) Randy Martin, op. cit.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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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기 위한 열망을 포함한다. 돈은 현명하게 투자하고, 사려 깊게 예측하고, 전

략적으로 자원들을 배치할 책임을 수반하는 기회이다. 시장은 필수적 소비재

들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싸워 이겨야만 한다. 인생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경제에 대해 이겨야만 한다.43)

즉, 금융은 어떤 경제적 영역에 대한 표상에 그치지 않으며, 주체의 수행적 실천이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실천 그 자체가 된다. 금융은 단순한 은행 업무가 아니라 "정확한 시간 할당, 명료한

계산, 간섭받지 않는 자기통제, 끊임없는 산출의 확대"44)로 이루어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인 것

이다.

알다시피 이러한 금융적 규범은 2000년대에 폭발적으로 보급된 모든 재테크 지침서들의 공리를

구성한다. “돈을 위해 일할 때 그 힘은 우리가 아닌 고용주에게 있다. 하지만 돈이 우리를 위해

일하게 만들 때에는 우리가 그 힘을 관리하고 통제한다.”45)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스

스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주체적이고 윤리적 삶의 태도야말로 진정 중요한 문제이다. 자신을 통

제할 수 없다면 돈을 벌어봤자 금방 잃고 말 것이다. 따라서 금융은 단지 부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계발하고 개선하며, 타인으로부터 간섭받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온전한 자유를 보장해준다. “금융화는 가장 숭고한 직업마저도 우리가 평생 응답할 수 있

는 소명을 제시하지 못하는 때에, 자아를 계발할 수 있는 방법을 약속한다. 그것은 불확실한 정

체성에 대한 의심을 생산적인 활동으로 돌리는 고도로 신축적인 자기-지배의 양식을 제공한

다.”46)

금융적 실천에 고유한 합리성은 특수한 계산적 합리성과 ‘리스크 관리’ 테크놀로지의 결합을 통

해 이루어진다. 오늘날 리스크에 대한 새로운 이해야말로 과거의 저축이나 보험과 다른 투자 행

위의 특수성을 구성한다. 저축과 보험이 리스크를 위험하고 최소화해야 할 것으로서 계측하고

관리한다면, 투자행위에서의 리스크는 인센티브이자 잡아야 할 기회로서 표상된다. 불확실성은

측정 불가능하지만, 리스크는 계산적 행위에 의해 개연적인 측정을 가능하게 한다. 물론 예측과

전망이 옳을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중요한 것은 수량화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처럼 불확실성을 계산 가능한 위험으로 전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위험을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많은 가치를 지니는지 결정할 수 있으며, 나아가 이러한 위험성을 사고파는 게 가능해진다. 서

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 최신의 금융공학으로 무장한 금융기관들이 벌인 불장난이 바로 이러

한 ‘리스크 거래’였다.

모기지를 증권화 하여 투자은행 등 다른 거래자에게 판매하는 것은 리스크를 팔아넘기는 것과

같다. 이때 가격은 대출의 실제 위험성이 아니라 유통 시장에서의 그 위험에 대한 평가에 근거

43) Randy Martin, op. cit. p.17.44) Randy Martin, op. cit. p.2.45) 기요사키·레흐트,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형선호 옮김, 황금가지, 2000, 145쪽(최민석, 앞의 논문, 73쪽에서

재인용.)46) Randy Martin, op. cit.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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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된다. 이러한 리스크 유통 시장은 글로벌화 된 금융환경에서 여러 확대된 거래의 연쇄로

매우 빠르게 발전해 간다. 거래의 연쇄가 길어질수록 ‘믿음에 관한 믿음’의 연쇄도 길어져, 애초

리스크에 대한 평가에서 조금씩 왜곡이 발생하나 더 높은 가격에 리스크를 구매해줄 다음 거래

자가 존재하는 한 문제될 것은 없다. 리스크에 대한 애초의 평가보다 유통 시장의 가격이 훨씬

더 중요해지자, 유통시장에서의 가격이 실제 가치를 반영하는가라는 물음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

졌다. 이는 마치 “사람들이 경마장에서 돈을 거는데 말이 한 마리도 달리지 않는 것과 같았다.

내기는 오로지 다른 도박꾼이 얼마를 걸지에 관한 추정만을 반영했다. 결국 신용 평가 기관들은

신용 평가의 토대를 유통 시장 자체에 두기 시작했다. […] 마지막으로, 기업 회계 시스템조차

바뀌었다. 그 결과로 회계사들은 노동력, 자본, 시장 등의 가치에 비추어 한 기업의 자산 가치

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이 자산의 주식 시장 가치, 즉 다른 거래자들의 믿음에 대한 거래자들의

믿음에 의해 형성된 가치만을 보았다.”47) 크라우치는 이러한 낙관이 각국 정부가 시스템이 망가

지게 두지 않을 것이라는 구제금융에 대한 거래자들의 확신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확신은 결국 옳았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리스크는 비단 금융거래의 테크놀로지일 뿐만 아니라 자기관리의 테크놀로지이기도 하다. 투자

자란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리스크를 오히려 삶의 축복으로 여기는 자들이며, 자기규율적인

리스크 관리 실천을 통해 자아를 계발해가는 자들이다. 당신이 리스크에 대한 부담 때문에 불확

실성이 낮은 쪽에 판돈을 건다면, 본전은 건질지언정 ‘대박’을 터트릴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

다. 위험을 리스크로 받아들이는 순간 시시각각 급변하며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은 무질

서와 혼란이 아니라 자유와 기회의 열린 장으로서 다가오게 되며, 나아가 리스크 관리의 책임

또한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 된다. "리스크 회피는 자신의 인생을 남들에게 관리 당한다는 것이

고, 그들의 계산 착오에 종속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다."48)

우리는 이러한 능동성과 자기책임의 원칙이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에토스와

중첩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윤리에 따르면 우리는 매년 계약을

갱신하기 위해 직장 내에서의 부당한 처우와 끝없는 불안감을 감내해야 하는 계약직 노동자가

아니라, 우리가 가진 역량과 서비스를 1년 단위로 기업에 판매하는 1인 기업가이다. 서로의 이

해관계가 맞지 않는다면 현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아 떠나면 될 것이

다. 실업은 일자리를 갖지 못한 상태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잠재적 역량을 실현하지 못하는 상

태일 뿐이다. 설령 누군가 당장 직업이 없어 노숙을 하고 있을지언정 그는 여전히 고용가능성

(employablity)의 상태에 놓여 있는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며, 부단한 경력계발과 자기관

리를 통해 고용가능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리스크를 감수하려는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자세야말로 우리 시대의 성공한 1%의 자아들이 공유하는 자질이며, ‘기업가 정신’의

본령을 이루는 것이다.49) 국가와 개인, 자본가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모든 사회적 정

체성의 구분이 소실되고 창 없는 모나드와 같은 1인 기업가들의 무한경쟁만이 존재하는 세상.

이곳엔 국가의 억압도 없고, 자본가의 착취도 없고, 기득권의 지배도 없다. 다만 성공한 개인과

47) 크라우치, 앞의 책, 151쪽.48) Randy Martin, op. cit. p.106.49)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돌베개, 2009, 4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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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개인이 존재할 뿐이다.

투자자가 금융적 주체의 낙관적 형상이라면 그 이면에는 그늘진 채무자의 형상이 놓여 있다. 대

출은 관점에 따라 신용이나 부채로 불린다. 신용(credit)이 미래 소득을 담보로 현재의 소비와

기회를 얻는 수단으로서 낙관적인 전망을 표현한다면, 부채(debt)는 있지도 않은 미래를 저당

잡힌 무모하고 부도덕한 행위라는 부정적 입장을 드러낸다. 대출 기관들은 보통 경제가 성장세

이고 낙관적일 때에는 사람들에게 신용을 권장하다가, 경기가 침체될 때에는 채무자에게 온갖

부도덕한 평판을 뒤집어씌우면서 상환을 재촉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가 우리에게 약속했던 ‘모

두를 주주로, 모두를 지주로, 모두를 기업가로’라는 주체의 실현상은 우리를 자신의 운명에 책임

이 있으며 따라서 죄를 지은 '채무자'라는 실존적 조건으로 몰아가고 있을 뿐이다."50)

개인적으로 금융기관의 대출을 이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찌 보면 우리는 이미 모두 잠재적

으로 ‘사회적 채무자’들이다. 국가와 공공부문의 지출이 공채 발행을 통해 자본 시장에서 이루

어지고, 조세의 일정 부분이 ‘채무원리금’의 지불을 통해서 금융부문으로 끊임없이 이전되고 있

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국면에서 나타났듯이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은 복지국가의 해체를 추동

하는 가운데 국가가 진 채무의 원흉을 사회적 지출에서 찾아내어 그것의 삭감을 요구한다. 사회

보장을 통해 사회적 시민권과 사회적 위험으로부터의 안전을 보장받던 빈민들과 노동자들이 투

자자들의 손실을 떠안으면서 간접적으로 상환의 의무를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강내희는 금융화 된 자본주의가 현재를 미래보다 우위에 두는 ‘시간의 경제’를 통해 작동하며,

이것이 ‘미래할인’이라는 관행으로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주조한다고 말한다. 금융은 미래의 가

치를 이자율로 할인하여 현 시점에 가치화하는 계산 기법을 활용하는데,51) 이런 관점에서 보면

채무자는 결정과 선택의 가능성으로서 열려 있는 미래를 박탈당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금융자

본이 미래를 선취해 현재의 부를 축적한다면, 채무자는 자신의 미래를 담보로 잡힌 채 현재에

구속된다. "부채는 피고용자와 국민 전체의 현재 시간표를 전유할 뿐만 아니라 비연대기적 시

간, 곧 각자의 미래와 사회의 미래를 전체로서 선취한다."52) 예컨대 학자금 대출을 받거나 주택

담보대출을 받을 때, 우리는 2~3년의 짧은 유예기간 동안 비교적 자유롭게 학업이나 거주의 자

유를 누리지만, 이내 몇 년에서 수십 년에 걸친 원리금 상환기간 동안 금융자본의 통제구조로

들어가게 된다. 오늘날 금융자본은 부채를 매개로 공장 문을 넘어 사람들의 재생산 영역을 포함

한 삶의 모든 영역과 미래를 자신의 통제와 지배하에 두고 있는 것이다.

5. 나가며 : 일상의 금융화와 탈정치화의 정치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는 증권화와 파생상품 기법을 통해 사회적 삶의 모든 것들을 상품화하

50)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부채인간』, 허경·양진성 옮김, 메디치, 2012, 27쪽.51) 강내희, 「미래할인의 관행과 일상문화의 변화」, 『경제와 사회』, 2011년 겨울호(통권 제92호)52) 라자라토, 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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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새로운 행위자를 금융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을 통해 축적을 확대한다. 날씨파생상품과 같이

자연현상도 거래되는 상품이 되며53), 과거에는 금융시장과 거의 무관하게 살아가던 노동자들도

퇴직연금54)을 통해 금융투자 메커니즘에 통합된다. 주식 및 펀드투자, 퇴직연금 가입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금융자본의 이해관계에 긴밀히 엮이게 되고, 개인적 소득의 증대와 재산권의 향

유를 추구하는 개인화된 투자자들로 변모한다. 이처럼 대중 투자 문화와 ‘사회보험의 사유화’에

기초한 금융의 일상으로의 침투는 “글로벌 금융의 실행들을 자연화하고 탈정치화 할 뿐만 아니

라, 그것이 선호하는 정책들에 대한 동의를 생산해냄으로써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강화에

이바지”55)하게 된다.

신자유주의적인 개인화 및 자기책임성의 이데올로기와 금융적인 계산 및 리스크 관리 테크놀로

지의 결합은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금융적 해결을 추구하도록 강제한다. 전통적인 사회보장이

공통의 위험에 대해 집단적으로 대응한다는 사회보험의 원리에 기초했다면, 이제 사회적 안전과

재생산의 책임은 개인적 소득을 증가시키는 투자와 사적인 부채의 원리를 따르게 된다. 개인과

가계는 고용불안과 실업, 육아와 질병, 퇴직과 노후생활 등 생애주기 상의 위험에 대해 민간보

험과 펀드, 민간연금을 통한 금융적 해결을 추구하도록 촉구된다. 무주택자는 정부가 지원하는

전세자금대출 제도를 활용함으로써 주거의 권리를 실현해야 하고,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은 학자

금 대출 제도를 이용해 고등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빈민들은 마이크로크레디트를 통해 자활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 모든 활동은 금융적 이윤을 증대시키는 데 기여하며, 금융시장의 고

유한 불안정성에 편입된다. 그 결과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기대와 전망은 사라지고, 불안과 불

확실성 속에서 ‘현재만이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금융자본과 권력이 사회적 삶의 실천들을 주조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금융을 통한 사회운동의

시도를 통해 금융의 영역을 (재)정치화 하려는 시도들도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노동자들의 연

기금을 투자하는 과정에서 환경, 인권, 지역사회의 공헌도 등 ‘윤리적’인 이슈를 고려하도록 촉

구하거나,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요구하는 소액주주운동 등을 들 수 있다.56) 이러한 운동들은

더욱 더 많은 자산들이 금융을 통해 사회화되면서 소유권 자체도 사회화되었으며, 소유권을 나

눠 가진 노동자와 주주들이 기금의 운용에 있어서도 통제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운

다. 이런 맥락에서 한때 피터 드러커는 노동자들의 연기금 펀드가 미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

었다며 요란스레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랜디 마틴은 노동자 연기금의 운용에 있어 소유와 통

제는 별개의 문제였으며, 그로 인해 노동자들이 더 부유해지거나 자본가가 되지도 않았다며 이

러한 주장을 일축한다. 소유권의 사회화는 노동의 사회화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정치적 표현도

직접적으로 보증하지 않았던 것이다.57) 나아가 이들 운동의 주체는 기본적으로 소유권을 가진

53) 날씨파생상품의 원리에 대해선 김홍기, ‘날씨파생상품의 도입 및 운용방안에 관한 연구’, 『증권법연구』 13(3), 2013.1, 165-196를 참고할 수 있다.

54) 퇴직연금 제도는 2005년 12월부터 국내에서 시행되어, 2012년 7월 이후부터 설립되는 신규사업장의 경우 의무적으로 1년 이내에 퇴직연금제도 설정 및 가입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확정급여형의 경우 매달 납입금을 내고 퇴직 이후 정해진 급부금을 받는다면, 확정기여형의 경우 납입금이 가입자의 개별 퇴직계정으로 들어가 개인의 투자실적에 따라 급부액이 달라진다. 확정기여형의 경우 급부액이 주식시장에서의 성과에 좌우되며, 투자책임을 가입자 개인이 지게 된다.

55) Harmes, op. cit, p.123.56) Paul Langley, The Everyday Life of Global Finance, US: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chapter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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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로 제한되며, 그들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데 목적을 두게 된다. 이로 인해 소

유권의 사회화에 대한 주장이 결국 소유권을 개인화하는 데 일조하고 만다는 역설을 낳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개인의 자조적인 활동이건, 정부의 사회정책의 일환이건, 대안적 사

회운동의 시도건 간에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정치를 ‘우회’하여 직접적인 금융적 해결을 추구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노동과 화폐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한 금융자본은 금융의

고리를 통과하는 모든 것들을 자신의 이득을 위해 전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시민의 요구에 대해 정부는 기껏해야 이자율을 조정하는 등의 기술 관료적인 미세조

정을 시도하며 자본의 안정적인 흐름을 보조할 뿐이다. 무엇보다 개인적 소유권에 기초한 ‘경제

적 시민권’은 기껏해야 우리를 수동적인 현실주의자로 만들거나 끝나지 않는 채무의 연쇄 속으

로 밀어 넣는다. 경제적 주권자가 되라는 국가-자본의 명령에 맞서 전지구적 시민권으로 무장

한 정치적 주체를 구성하는 것, 저항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57) Randy Martin, op. cit, pp.1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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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에서 사회적인 것의 문제58)

김성윤 /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중앙대․한예종 강사

오늘날의 위기는 축적의 위기와 동일성의 위기로 파악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금

융세계화 경향은 사실상 ‘강탈에 의한 축적’에 가까웠고 지구적인 외환․금융․재정 위기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민중적 저항들을 거치면서는 더 이상의 강탈조차 힘들어졌을 정도로 축적의 위

기에 다다랐다. 다른 한편, 세계화로 은유되는 ‘시장의 퇴행적 확장’ 경향은 얼마간 안정적이었

던 ‘국민적-사회적 국가 형태’를 쇠퇴하게 했고 이에 따라 더 이상 포섭되지 않는 사람들로 하

여금 배제의 고통을 경험하게끔 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프로그램이

제시된다면, 적어도 그것은 생산과 소비 그리고 소유와 분배 등에 있어 대안적인 교환양식이어

야 하며, 동시에 주체화와 타자화 그리고 인간관계 등에 있어 대안적인 교류양식이어야 할 것이

다.

그 중에서 ‘사회적 경제’는 주로 교환양식의 측면에서 제기되는 의제에 해당한다. 전체 경제에

서 사회적 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0.04%로 극히 미미한 수준이지만, 적어도 담론적 차원에서

는 대항 헤게모니로 간주될 수 있을 정도로 각 분야에서 진지한 검토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59) 이러한 사실은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사회적 경제라는 문제가 정치적 입장을 초월

할 정도로 중요한 담론이지만 그 방향성은 아직 안정화되지 않았다는 점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회적 경제에 얽혀 있는 위기관리에 대한 기대와 발전에 대한 전망은 다양한 이

해관심들에 따라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오늘날 한국에서 사회적 경제는 운동

의 의제화, 공공성 강화의 시도, 복지의 대체 입론, 윤리적 시민성 고양 기획 등등이 과잉결정

‘되고 있는’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정된 것이 없다는 현실은 두 가지 문제의식을 유도한다. 하나는 미결정 상황이라면 우리들 누

구라도 거기에 개입하여 정치적 방향을 구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

기 위해 과잉결정의 ‘블랙박스’ 안에 무엇이 얽혀 있는가를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대안적 교환양식으로 부상하고 있는 사회적 경제에서 ‘사회적’이라는 언어의 모호성으로부

터 시작하여 여기서 제기될 수 있는 이론적․실천적 쟁점들을 추출하고자 한다(3절). 이를 위해

58) 이 글은 『문화/과학』, 73호(봄호), 2013에 같은 제목으로 수록된 글을 많은 부분 수정 ․보완했다. 필자는 오늘날 사회적인 것의 문제가 물질적인 교환양식과 정신적인 교류양식에서 동시적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번 글에서는 ‘사회적 경제’ 담론을 중심으로 하여 주로 교환양식에 집중하고자 하며 교류양식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추후 다른 지면을 통해 논의하고자 한다.

59) <한겨레>, “새정부·민간 함께 ‘사회적경제 펀드’ 조성해야”, 2013년 1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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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경제 담론이 제기된 배경과 그 자체의 역사성(1절),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점들(2절)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도록 할 것이다.

1. 사회적 경제의 역사적 쟁점

(1) 대안적 교환양식 혹은 새로운 경제학적 가상

1990년대에 지식기반경제라는 용어가 출현한 이래로, 이 용어는 새로운 ‘경제학적 가

상’(economic imaginary)60)을 매개로 하여 경제 관행이 새롭게 조직됨을, 어쩌면 이미 조직되

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경제학적 가상이란 말이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경제

라는 물질적 영역과 가상이라는 상징적 영역은 서로 무관하거나 오히려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

로 오해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이데올로기라는 타자 없이,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

가 경제라는 타자 없이 존립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문제다. 어느 시대의 어느 국면에서나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경제는 이데올로기를 통해서야 제대로 관철될 수 있었고 이데올로기는

경제에 힘입어서만 작동할 수 있었다.

<표 2> 여러 기능적 체계들과 전체 사회에서 지식기반경제로 연결되는 표상 용어들

테크놀로지스마트 기기, 인텔리전트 생산품, 전문가 시스템, 신소재, 탈물질화, 웨트웨어/네트웨어, 정보통신 기술, 정보 고속도로, 이노베이션 시스템

경제지식 창조, 지식 관리, 지식기반 기업, 학습조직, 지식집약적 비즈니스 서비스, 정보중개, 착근된 지식네트워크*, e-커머스, 학습경제, 성찰적 축적

자본지식 자본, 지적 자본, 지적재산권, 정보자본주의, 테크노-자본주의, 디지털 자본주의, 버추얼 자본주의, 바이오-자본주의

노동재택근무, 지적 노동, 지식노동자, 상징분석가(symbolic analysts), 비물질 노동, 암묵적 지식, 인적 자본, 전문가적 지식인, 사이보그

과학지식기반 이노베이션, 과학기술 혁명, 생활과학, 기술 예측, 트리플헬릭스(triple helix)**

교육 평생학습, 학습사회, 사내 대학, 지식 공장, 고급 교육 기술문화 창의 산업, 문화산업, 문화상품, 사이버문화, 테크노문화법 지적재산권, 정보접근권, 무형 자산, 생물자원 수탈(biopiracy)

국가버추얼 국가, e-정부, 과학 정책, 이노베이션 정책, 하이테크놀로지 정책, 근거기반 정책

정치 전자민주주의, 사이버정치, “핵티비즘”(hactivism)***

* 무디스나 스탠더드 앤 푸어스 같은 신용평가기관을 뜻함.** 삼중나선구조. 특히 대학-기업-정보가 긴밀하게 지식기반 창조경제를 추동하는 모델.*** 정치적 목적의 해킹.

<표 1>61)을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것처럼, 한 번 수립된 경제학적 가상은 단순히 이 가상을 중

60) Bob Jessop, “Critical Semiotic and Cultural Political Economy”, Critical Discourse Studies Vol. 1, No. 2, October 2004, 159–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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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으로 하는 (유사)완결적 구조를 지닌 기호체계로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경제 관

행은 물론이고 일상의 사회 실천을 조직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지식

기반경제’라는 담론을 유력한 표상으로 가지게 됐을 때, 이것은 (생산 차원에서) 지식이나 창의

성같은 비-물질적인 대상을 허구적으로 상품화하는 새로운 변화 그리고 (주체화 차원에서) 인

간 주체를 무한히 자기계발하게 하는 새로운 변화와 조응하는 셈이었다.62) 요컨대, 경제학적 가

상은 축적 논리와 동일화 메커니즘에 두루 영향을 미치면서 오늘날의 세계를 질서 짓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지식기반경제가 됐든, 아니면 그것의 모체로 지목받는 신자유주의가 됐든, 그것의 정치적 효과

는 비교적 자명해 보인다. 1990년대의 축적 위기에 직면하여 고안된 탈출구는 ‘지식’을 정점으

로 하는 비-물질의 개발이었다. 이를 두고 자본의 실질적 포섭 운운하면서 노동자들의 역량 강

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있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자본의 동학은 전혀 녹녹하지

않아서 대중들의 역량을 강화하기보다는 새로운 허구적 상품으로써 ‘시장의 퇴행적 확장’을 촉

진하는 역설을 창출했다. 그 사이에 순수한 프롤레타리아라는 형상들은 자기 내면으로 침잠하면

서 (다른 존재들과 횡적으로 동일화하기보다는) 성찰적으로 자기-동일화를 반복하는 모순에 처

했다.

이렇게 한동안 지식기반경제가 지배적인 가상으로 작동하고 있었지만, 2000년대 후반 지구적

금융위기와 이로 인한 금융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들이 중심부 지역마저 강타하면서,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잉태한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집합적으로 소망하기 시작했다. 경제

영역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고 일상 영역에서는 소셜 네트워크(와 이를 통한 치유)

를 강조하는 경향들이 대표적이다. 이는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뿐만 아니라 새누리당마저 ‘경제

민주화’라는 모토를 내걸었던 것을 결코 우연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화라는

말이 가지는 이념적 보편성에 비해 이들의 실제가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가 하는 점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근 몇 년에 걸쳐 거의 유일한 대안(적 교환양식)으로 부상하고 있는 ‘사

회적 경제’ 담론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누적적 위기로 인해 세

계경제 질서에 있어 근본적 재고가 요청되는 시점이고, 동시에 국민주의의 이념적 시효가 다함

으로써 생겨난 배제의 정치에 대응하여 새로운 가상적 보편성의 창출이 긴급한 상황이기 때문

이다.

그 사이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 출몰하고 있음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사회책임투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공유가치 창출, 사회적 기업, 마이크로 크레딧, 공정

무역 등이 한편에 있고, 사회적 자본, 소셜 미디어, 윤리적 소비, 마을 만들기, 공공예술과 관계

미학, 자원봉사활동, 재정․재능 기부 등이 다른 한편에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들은 신자유주

의적 자본주의에서의 지배적 관행들, 즉 ‘고삐 풀린’ 금융, 주주가치경영, 벤처기업, ‘약탈적’ 담

61) 같은 글, 169쪽.62) 이에 대해서는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돌베개, 2009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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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대출, 자유무역, 그리고 인적 자본, 1인 미디어, 과잉소비, 주거 격리, 상업화된 대중예술, 자

기계발, 스펙쌓기 등과 흥미로운 대척점을 보여준다. 축적 논리와 동일화 메커니즘에서 한동안

역량, 유연성, 계산가능성, 개별성 같은 것들이 지배하고 있었다면, 거기에 네트워크, 지속가능

성, 공정성, 친밀성 같은 덕목들이 응전하고 있는 태세인 셈이다.

이와 같은 추세가 언어유희 내지는 단순한 유행현상 정도로 그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이런 말들은 지배계급과 중간계급, 심지어는 민중계급조차도 동의하는 보편성을 띠고 있기 때문

이다. 조선일보가 자본주의 4.0을 보도할 때 경향신문이 사회적 경제를 기획하고, 야당 후보가

경제민주화를 ‘제시’할 때 여당 후보도 경제민주화를 ‘약속’한다. 이러한 역설은 사회적 경제라

는 새로운 교환양식과 그에 준하는 새로운 교류양식이 대다수 민중계급뿐만 아니라 지배계급에

의해서도 추구된다는 점을 입증한다.

물론 사회적 경제에 관한 이론적 논의와 실천적 관행들은 비교적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무

엇보다 국가와 시장이 주도했던 지난 시기의 자본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른 자본주의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곤 한다. 그런 까닭에 사회적 경제 담론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이론적

으로나,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결코 쉬울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회적 경제 담

론이 가지는 대안적 측면이 과연 무엇이고 여기서 담론 내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들은 없

는지, 실제 대안 프로그램으로 적용됐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은 없는지, 아울러 경제 담론으로서

경제 외적인 영역들을 얼마나 포괄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질문들은 비교적 까다로운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오늘날 사회적 경제 담론은 어떠한 이론적 곤궁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

까.

(2) 지배 내 구조라는 은폐된 논점

먼저 사회적 경제 담론이 대안적 교환양식으로 추인받게 된 역사적 궤적을 따라 가보자. 사회적

경제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목적을 가진 경제활동’을 포괄하지만, 때로는 제3섹터나 비

영리부문 같은 용어들과 혼용되면서 신자유주의적 경제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각광을 받고 있

다.63) 그러나 사회적 경제에 관한 담론들은 19세기부터 있어 왔으며 1970년대 축적 위기와 더

불어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는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문제들과 더불어 정교화

되고 있다. 애초에 사회적 경제는 △정치경제 논리를 대체하기 위해 경제의 사회적 속성을 해명

하고자 시도됐던 이론적 작업, △분배 문제 등과 같은 경제적 정의 실현에 관한 포괄적 프로젝

트, △당대의 사회적 위험에 결사체주의적으로 대응하고자 한 경제적․사회적 운동 등으로 (서로

가 무관하지만은 않았던) 여러 뿌리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이 세 가지 전통이 혼융

되어 현행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64)

63) 장원봉, 「사회적 경제의 대안적 개념화: 쟁점과 과제」, 『시민사회와 NGO』, 5권, 2호, 2007. 이하에서 사회적 경제에 관한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물론 필자 본인의 것이지만, 역사기술 자체는 많은 부분 장원봉의 논문을 참고하였음을 밝힌다.

64) 이러한 전통들이 최근 들어 사회적 경제를 구상하는 상상력의 원형으로 작동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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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거치면서 대안적 실천으로서 사회적 경제는 공제조합, 농업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소비자협동조합, 노동자협동조합 등의 지류들로 현실화됐다. 이들 협동조합이 영리적 관심의 부

차화를 비롯해 공동출자, 공동목표, 공동책임 등을 특징으로 하면서 일반적인 자본주의적 기업

조직과 다른 형태를 가진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로 노동계급이 직접적으로 기업을 운

영하는 등 착취 메커니즘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결사체(association) 조직들이 대안적인

생산양식으로서의 속성을 가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늘날에 와서는 사회적 경제가 내포하는 가능성의 조건들이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물론 케인

스주의 이래로 국가가 주도하는 관리자본주의의 속성이 강화되면서 사회적 경제 영역이 일정

부분 제도화되거나 주변화되는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1970년대 대량생산체계에 위기가 닥치고

복지국가 위기론이 격화됨으로써 사회적 경제 부문이 재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자연스러

운 수순에 가까웠다. 1977년 데로쉬가 ‘사회적 경제 기업’이라는 용어를 제안한 이래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운동 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소비 등등으로 구축된 오늘날의 사

회적 경제 담론은 ‘국가의 실패’ 및 ‘시장의 실패’ 이후로 상상가능한 대안의 최대한도로 자리매

김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사회적 경제 부문이 가지는 불가능성의 조건들에 대해서도 고려해보도록 하자. 사실

초기의 협동조합 운동 역사에서도 이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줄기차게 제기된 바 있었다. 특히,

사회적 경제가 성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생산관계에서의 대안적 가능성이 점쳐져야 하는데,

다른 협동조합 조직들에 비해 (몬드라곤 같이 다소 신화화된 몇몇을 제외한다면) 대다수 노동자

협동조합들이 크게 성장하지 못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사회적 경제 조직이 조합원

들의 배타적 소유 경향 때문에 관료제적 위계질서에 빠짐으로써 결국에는 자본주의적 조직으로

퇴행하기 십상이고(조직 자체의 문제), 나아가 조직 내 민주적 질서를 확립했다 하더라도 비조

합원이나 다른 조직들에 대해서는 소집단 이기주의 경향을 내비치며(조직들간의 문제), 궁극적

으로는 조직 규모 자체가 영리 기업에 비해 약소하기 때문에 사회 전체로 확산될 만한 생산양

식으로 보기 어렵다(전체 경제와의 문제)는 문제들로 나타나곤 한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마르크스가 ‘경제적 관계의 무언의 강제’라고 말했던 것을 사회적 경제에

대해서도 중대한 질문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이, 나아가 다수의 집합적 시민들이

무엇을 하더라도 ‘생산의 자연법칙’에 따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 귀환할 수밖에 없다는 역

설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 부문이 (특히 협동조합이)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의 협동 사회라는,

복지를 동반한 공화적 제도”인 것은 분명하지만, “전반적인 사회적 변화, 즉 사회의 전반적 조

건의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이상 자본주의 사회를 개조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65) 실

컨대, 라투르를 필두로 하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에서 결사체주의의 이론적 원형으로서 (뒤르켐과 대립하고 사실상 패배했던) 가브리엘 타르드(Gabriel Tarde)로 복귀하고자 하는 특징을 보이는 것 역시, 현존해왔던 ‘국가’사회주의를 비판하고 초기 ‘결사체’주의 전통을 일종의 ‘오래된 미래’로 간주하고자 하는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 최근 젊은 연구자들을 위시로 해서 생시몽이나 오언을 다시 보고자 하는 시도들 역시 이러한 맥락으로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65) 칼 마르크스, 「임시중앙평의회 대의원에게 보내는 개별적 문제에 관한 지침」, 김성한 옮김, 『맑스·엥겔스의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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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역사에서도 20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공제조합과 노동자협동조합은 사회보장 체계 내로 통합

됐고, 신용협동조합과 농업협동조합은 소규모 투자에 국한됐으며, 소비자협동조합 등은 단순 경

제조직으로만 명맥을 유지했다. 사실상 ‘사회의 기술적 관리자’로 전락한 것이다.66)

사회적 경제 담론의 생산자들은 사회적 경제의 역사적 문제들에 대해 다소 기계적인 방식으로

논점을 끌어내는 데 치중해왔다. 이를테면 과거의 협동조합에 관해선 △노동자의 지위에 존엄을

부여하는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웠다는 점, △노동자 개인이나 경영진이 효과적 경영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 △조합원 자격을 제한하거나 하면서 소규모 자본주의적 기업으로 전환하

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 △성공하더라도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해산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

△자본조달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 △생산방법과 시장거래에 있어서 보수적인 경향이 있

었다는 점 등이 지적되곤 한다.67) 이러한 논점들은 사회적 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원인들이라기

보다는 문제점 그 자체를 재기술한 동어반복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협동조합에 대한 마르크스의 역사적 평가 자체보다는 ‘무언의 강제’라는 그

의 설정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의 설정에는 교환의 당사자들 사이에서 맺어지는 대

면적 관계에 더하여 외재적인 제3의 관계가 작용하는데, 이는 체계에 대한 반작용적 요소들을

흡수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개조를 불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재생산하게끔 하는 지점으로서

지배 내 구조(structure in dominance)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게끔 한다. 요컨대, 사회적 경제가

왜 역사적으로 패착을 보였는가가 아니라, 사회적 경제라는 대안적 운동이 어떻게 해서 경제와

사회를 관리하는 데 기여했는지가 더 중요한 논점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적 경제 담론은

‘기술적 관리자’의 지위를 벗어나 실제적인 대안이 될 수 있겠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라도, 사

회적 경제라는 교환양식에 있어서, 경제 자체가 아니라 이를 가능케 하는 전반적 조건들로서 이

데올로기나 국가 등과 같은 논점들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 두 가지 이상 징후

(1) 담론과 그 효과: 접합과 배제

최근 사회적 경제 담론들 중 일부는 대안으로서의 전거를 들기 위해 폴라니를 수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폴라니의 대안적 경제 모델은 경제라는 언어에 필요 충족에 초점을 둔 ‘실체적 정의’와

비용 편익 달성에 초점을 둔 ‘형식적 정의’가 중첩되어 있음에 착목하면서, 시민사회의 실체적

경제로써 시장의 형식적 경제를 인간화하고 제어하는 것을 기본원리로 삼는다.68) 따라서 폴라

업론』, 아침, 1990, 159~160쪽. 이에 덧붙여 마르크스는 △경제제도 표면에 저항하는 소비 협동조합보다는 이 제도의 토대를 공격하는 생산 협동조합에 열중할 것, △총수입의 일부를 기금으로 돌려 새로운 협동조합의 설립을 촉진하고 그 취지를 널리 알릴 것, △흔한 부르주아 주식회사로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협동조합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는 주주든 아니든 평등한 분배를 받을 것 등을 협동조합 노동의 원칙으로 삼았다.

66) 장원봉, 앞의 글, 15쪽.67) 존스턴 버챌, 장종익 옮김, 『21세기의 대안 협동조합 운동』, 들녘, 2003, 46~47쪽.68) 홍기빈, 「옮긴이 해제: 시장경제 유토피아와 사회의 발견」, 칼 폴라니, 홍기빈 옮김, 『거대한 전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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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로부터 아이디어를 추출하고자 하는 사회적 경제 담론들은 전자의 ‘살림살이 경제’를 후자의

‘돈벌이 경제’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나아가 돈벌이 경제 원리를 살림살이 경제 원리로

써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등을 기본적인 전략으로 삼곤 한다.

<표 3> 폴라니를 통해 본 대안적 경제 원리와 근대자본주의 경제 원리

살림살이 경제 돈벌이 경제실체적 경제 영역 형식적 경제인류 역사 전체 기원 근대 자본주의필요: 삶의 영위 - needs, wants

목적비용 편익: 효용 추구 - economize, optimize

자연, 활동, 매개 대상 토지, 노동(력), 화폐선물 교환(상호성과 재분배) 교환 등가적 교환총체적 존재로서의 인간 인간 모델 이익추구자, 혹은 신민H-C-H' 부의 증진 M-C-M'

<표 2>69)에서 보는 것처럼, 이때 ‘실체적 경제’란 등가적 교환이 아니라 상호성과 재분배에 기

초한 선물 교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경제적 동기를 정치․사회적 동기에 착근시키며, 국가에 복

종하는 신민도 아니고 시장에서의 원리적 이익추구자도 아닌 총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물론 이 모델 자체만으로 사회적 경제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는데, 왜냐하

면 오늘날의 선진자본주의 맥락에서는 이와 같은 호혜적 경제 체계를 (경제인류학적인 관심사를

넘어서) 국가-시장-시민사회 간의 ‘규범적 균형’을 달성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제시할 필요가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 담론의 ‘현대화된’ 설정은 정당화 기제로서 사회적 목적, 주체

설정으로서 이해당사자들의 사회적 소유, 타당성 논리로서 호혜와 연대에 기초한 사회적 자본

등등의 논리들로 확장되고 정교화되기에 이른다.70)

사회적 경제 담론과 폴라니의 논의를 결부시키는 시도들은 사회를 기업 형식으로 대체하는 것

에 반대하고 시장경제를 사회 속에 재착근화하고자 하는 시도라는 점에서 정당성을 부여받곤

한다. 그러나 그 순수한 의도와 달리 여기에도 일정한 난점이 존재하게 된다. 먼저 폴라니의 실

체적 경제학 자체만으로는 사회적 경제라는 대안적 교환양식이 시장 제도와 양립을 추구하는

것처럼 인식될 여지가 있다.71) 사회적 경제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보완재라는 소극적 관

점이 아니라 대체재라는 적극적 관점을 유지하는 한, 폴라니의 논의, 그 중에서도 실체적 경제

는 하나의 참조점일 뿐이지 그 자체로 ‘해답’이 된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폴라니의 사회의 자기 방어 운동 명제는 뉴딜을 비롯한 역사적 사례들이 있어왔기 때문에

오늘날 사회적 경제에 있어서도 일정 정도 기시감을 부여할 수도 있다. 특히 사회적 경제 담론

2009, 629~630쪽.69) 홍기빈, 「칼 폴라니와 한국에서의 사회적 경제」, 『새롭게 다르게』, 창간호, 2011의 내용을 요약 ․정리함.70) “사회적 경제는 사회적 목적, 사회적 소유 그리고 사회적 자본을 구성요소로 해서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

고자 한다.” 장원봉, 앞의 글, 27쪽.71) 이상우, 「우석훈과 사회적 경제」, 『마르크스 21』, 3호, 2009년 가을호,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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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초래한 위기의 형식들 이후에 부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

하다. 그러나 사회적 경제 담론에서 폴라니 수용에 있어서 제기되는 의문점들은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볼 만하다.

첫째, 선물 경제 원리 같은 것들이 오늘날에 적용됐을 때 중요한 점은 원리 자체가 아니라 그

원리가 어떻게 굴절되느냐 하는 데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사회적 경제의 모체로서 시민사회

가 국가나 시장과 맺는 체계가 고도화되고 복잡해진 탓에 오히려 그로 인해 촉발될 문제들이

더 많을 수도 있으며, 시민사회 자체도 순수한 결정체가 아닌 이상 우리는 더 많은 이론적 논점

들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고려사항들은 실체적 경제 자체를 이상화하는 것만으

로는 불충분한 이유에 해당한다. 오늘날 필요한 것은 사회적 경제에 관한 일반이론이 아니라 이

것을 급진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접근이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문제는 폴라니 자신에 있다기보다는 최근 들어 폴라니의 도덕경제론

이 유통되는 맥락과 관계되어 있다. 예컨대 폴라니는 좋은 자유와 나쁜 자유를 구분한 바 있는

데, 그에 따르면 사상, 표현, 결사, 집회, 선택의 자유 등은 19세기 정치경제학의 산물로서 작동

한 것이지만 동시에 ‘악한’ 자유들을 생산하기도 했다.72) 그렇기에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깔끔하게 분리해내는 일은 불가능”하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새로 얻는 자유와 새로 잃는 자유

의 사이에 어떻게 균형을 취할 것인가의 문제뿐이다.”73) 이는 자유 개념이 근본적으로 경합적임

을 함의하는 주장으로서, 자유뿐만 아니라 실체적 경제 역시도 언제나 특정한 정치적 관계들에

의해 현실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하게 해준다. 사회적 경제 담론에 있어서도 관건이 되는

것은 이 담론이 현실화되는 정치적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실체적 경제라는 관념 자체는

이 과정에서 제기되는 (폴라니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보편적 상수로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그

렇지만 최근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 폴라니는 이론적 교리로서만 등장할 뿐, 그 자신이 토로했던

현실적 곤궁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둘째, 경제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가 하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주지하듯이 폴라니에게는 빈곤 구제라는 쟁점으로부터 시작하여 사회의 자기

방어 운동이 불가피성으로서 인식된다. 19세기 고전적 자유주의로부터 시작하여 경제가 재착근

됨으로써 자유방임주의가 후퇴했던 시기들(사회적 자유주의의 시기)을 돌아보건대 경제가 완전

히 탈착근된 자기조정적 시장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논지를 최근으로 옮겨와서 신자유주의 그리

고 이에 대응하는 사회적 경제에 맞물려 추론을 해보더라도 유사한 설명 구도가 형성된다. 사회

또는 사회적인 것을 우회하는 어떠한 통치나 지배도 궁극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인

셈이다. 바로 이때 폴라니에게 사회적인 것은 관계의 형식으로서 사회성의 측면(socius)보다는

공동체주의적인 가치가 응집된 사회부조의 측면(societas)으로 집중된다. 이는 사회적인 것이 이

72) “다른 동료들을 착취할 자유, 공동체에 덜 기여하고도 과도한 이득을 취할 자유, 공적 이득에 사용될 것으로부터 기술적 혁신을 영위할 자유, 교묘한 획책을 부려 공적 재난으로부터 사적 이익을 취할 자유” 등이 그것이다.. Karl Polanyi, “Our Obsolete Market Mentality”(1947), in: George Dalton(ed.), Primitive, Archaic and Modern Economies: Essays of Karl Polanyi, Boston: Beacon Press, 1968, pp. 74-5.

73) 칼 폴라니, 홍기빈 옮김, 앞의 책, 59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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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적 대상이거나 정치적 구성물이 아니라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일종의 당위적 원리

로서 이해된다는 점을 함의한다.

전술했듯이 폴라니의 논지에서는 실체적 경제나 사회적인 것이 보편적 ‘상수’로 배치되며 그 자

체가 모든 문제의 해답으로서 제시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서로 연관된 두 가지 논점이 따라붙게

된다. 첫째, 사회적인 것이 상수가 아니라 ‘변수’라면 어떻겠는가. 사회적인 것을 상수로 상정하

는 문제설정에서는 인간주의적 서사를 통해 순수한 시민이라는 형상과 다소간 낭만화된 시민사

회라는 영역이 전제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이러한 서사들이 종종 들어맞지 않기 일쑤이며

오히려 지배적인 주체 형상과 활동 공간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알게 해준다. 둘째, 사회적 경제

를 비롯하여 최근 제기되고 있는 공동체 논리가 신자유주의와 불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면

또 어떻겠는가. 이를테면 푸코주의식으로 착근된 자유주의든 신자유주의든 이것은 ‘국가의 통치

화’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으며, 따라서 오늘날 ‘착근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역시도 통치의 이상

적 영토를 자율과 책임성의 테크놀로지로부터 공동체의 테크놀로지로 찾아가는 과정일 수 있

다.74)

이러한 문제점은 사회적 경제라는 하나의 이념적 모델을 실제 세계에 적용했을 때 ‘담론의 헤게

모니적 접합’이라는 쟁점이 제기된다는 점을 가리킨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어떻게 해

서 다른 생산양식을 자신의 (확대)재생산에 끌어들이면서 스스로 지배적인 생산양식이 되는지에

관한 문제75)와도 연결되는데, 그런 까닭에 사회적 경제가 시장경제를 재착근화하더라도 그 불

안정성 때문에 사회권력을 강화하고자 하는 힘, 즉 정치 없이는 그 어떤 해결도 불가능하다는

쟁점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일례로 1930~50년대 독일에서 탄생했던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사회

적’이라는 형용사는 경제에서는 (등가적 교환을 넘어) 효율적 경쟁의 원리를, 사회보장에서는

(연대가 아니라) 자기 책임과 국가 보조의 원리를 도입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76) 요컨대 특정

한 정치적 조건 하에서는 사회적인 것이란 이름으로 오히려 경제적인 것을 더욱 급진화하는 역

설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데올로기에 관한 문제설정이 없을 경

우 사회적 경제 담론이 물화될 수도 있다는 쟁점도 만나게 되는 셈이다. ‘사회적’이라는 언어는

논란의 종결자가 아니라 논란의 생산자 구실을 할 수도 있다.

여기서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담론의 접합 과정에서 특정한 효과가 수반되리라고 예측

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경제가 보통 도덕적이고 순수하며 이상적인 것으로 간주되곤 하

는데, 실제 결과도 그러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전술했던 것처럼 사회적 경제 담

론은 배제의 문제에 대응하는 취지를 가지는데 이는 사회적 경제의 문제설정이 기본적으로 사

74) Nicolas Rose, “The Death of the Social? Re-figuring the Territory of Government”, in: Economy and Society, vol. 25(3), 1996.

75) 그런 의미에서 국가-시장-시민사회 사이에서 규범적 균형을 하나의 원리로 제시하더라도 “자본주의적 권력이 자신의 내재적 경향에 따라 경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결사체적 권력을 침식하게 되어, 결국 자본주의가 다시 뚜렷하게 지배적으로 되고 말 것”이라는 경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릭 올린 라이트, 권화현 옮김, 『리얼 유토피아』, 들녘, 2012, 188쪽.

76)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와 그에 대한 이념적 토대를 제공했던 질서자유주의에 관해선 미셸 푸코, 심세광 옮김, 『안전, 영토, 인구』, 난장, 2011를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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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적 포섭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포섭의 시도가 기술적으로 완전할 수

있는가 하는 데 의문을 품어본다면,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배제된 자들을 문자 그대로 모두

포용하는 데 성공한다고 낙관할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배제의 영역이 재산출될 가능성에 대해

서도 예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사례들에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첫째, 협동조합운동들이 부침을 겪는 가운데 몬드라곤이 가장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스

크 특수주의가 있었다.77) 이러한 조건은 자본주의적 기업의 일반적 관행이라는 외적 압력 속에

서도 자본주의적 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방지하고 조합원의 이탈을 막을 수 있었던 구심점 구

실을 했다. 문제는 몬드라곤이 세계화하는 방향으로 발전 궤도를 그리면서 나타나고 있다. 현지

의 자본주의 기업들을 인수해 자회사로 전환시키면서 이제 몬드라곤 협동조합 기업은 절반 이

상을 비조합원으로서 일반 피고용자 상태에 있는 노동자들을 보유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대다

수 몬드라곤 회원들은 이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고 게으르며 성공적인 협동

조합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동기를 결여했다”고 판단하고, “자회사들 내의 조합들에 대해 오히

려 적대적인 태도를 취해” 오고 있다.78)

둘째, 사회책임투자 부문은 투자 포트폴리오에 오른 사회책임경영 기업이나 협동조합들에 자금

순환을 가능케 해주는데 이러한 구도는 자못 의미심장한 것일 수도 있다. 과거의 국민적-사회

적 국가 형태에서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사회적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사회책

임투자라는 관행은 사회부조에 쓰이는 자금들이 주로 시장-시민사회의 회로에서 순환된다는 것

을 의미한다. 그렇게 보면 사회적 권리의 요구와 행사에 있어서 새로운 위계가 발생하게 됨을

적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제부터 시민 개인이 사회보장을 요구하기 위해선 그 자신이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투자자가 되지 않고서는 권리 요구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약해지기 때문이다. 따

라서 잠재적인 수준에서 말하자면, 사회적인 것에 관한 최악의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사회적

성원권(membership)이 국민이나 시민이 아니라 투자자에게만 주어질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

다.79) 어쩌면 이것은 외부불경제의 내부화를 통해 역설적으로 (축적 조건의 재생산을 자기 스스

로 관장하는) 자기조정적 시장의 신화가 관철되는 과정일 수도 있다.80)

이러한 양상들은 사회적 경제가 배제의 현실적 조건들에 대응하여 사회적 포섭에 성공적이라기

보다는, 정확히 말하자면 배제의 분할선을 새롭게 획정해가는 측면들을 보여준다. 이것은 사회

적인 것이 나타내는 공동체 효과가 결과적으로는 배제의 새로운 수준을 동반하는 한에서만 작

동한다는 점을 함의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는 하나의 해결책에 머무는 게 아니

라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하는 측면이 있다. 사회적 경제에 관한 일반이론이 강조될수록, 문제가

해결된다기보다는 지배 내 구조의 힘에 의해 오히려 과잉결정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77) 버챌, 앞의 책.78) 라이트, 앞의 책. 344쪽.79) 김성윤, 「사회적인 것의 재-구성: 사회자본론, CSR, 자원봉사활동 담론들의 접합」, 『진보평론』, 48호, 2011.80) Geoffrey M. Heal,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 An Economic and Financial Framework”, in: The

Geneva Papers on Risk and Insurance - Issues and Practice, vol. 30(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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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도와 그 효과: 동형화와 물화

실제에 비해 담론적 과잉이 나타나는 현상은 이 새로운 교환양식이 지역과 계급 등을 초월해서

광범위하게 지지받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고용 창출과 사회적 서비스 수요에

대응하고자 하는 국가, 지속가능성 패러다임에 영향을 받아 장기수익성을 도모하고자 하는 시

장, 빈곤과 비인간화의 위협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시민사회 등의 삼자적 이해관계가 사회적

경제라는 언어로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관건은 20세기 자본주의의 역사를 거친 이래

로 오늘날 사회적 경제 담론이 19세기에서 20세기 초중반 무렵의 사회적 경제 담론과 결코 동

일할 수 없다는 데 있을 것이다.

실제로 (주체의 차원에서) 19세기의 사회적 경제 담론이 노동자들의 집합적 대응 전략으로 제

기되었던 데 반해, 오늘날의 사회적 경제 담론은 주로 시민사회 차원에서 제기된다는 특징을 지

닌다. 이는 해당 시대별 담론이 무엇을 표적으로 삼는가라는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의제의 차

원에서) 19세기의 문제가 자본주의 산업화와 시장경제라는 상대적으로 넓은 범위의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문제는 실업과 복지 후퇴라는 좀 더 좁은 범위로 초점화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그래

서 (형태의 차원에서) 과거의 사회적 경제 부문이 국가나 시장과 무관한 성격으로 오늘날 말하

는 제3섹터로서의 순수형에 가까웠다면, 최근에는 국가-시장-시민사회의 공조체계로서 상대적

으로 혼합형에 가깝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이러한 공조 형태를 일컬어 ‘제4섹터’ 또는 ‘창발적

제4섹터’(the emerging fourth sector)라고 개념화하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사회적 기업가, 펀드

가입자, 비영리부문 종사자, 경영인, 피고용인, 일반 대중, 결사체 회원, 정책입안자, 학자, 법률

가, 회계사, 컨설턴트 등등이 참여하고 각자의 이득을 취한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그동안 국

가-시장-시민사회 등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던 이들은 이제 공동의 언어와 전망을 필요조건으

로 여기고 공동 작업(collaboration)을 충분조건으로 삼는다.81)

‘사회 같은 것은 없다’던 영국 보수당에서 ‘큰 사회’(big society)라는 선거 모토를 들고 나왔던

것처럼, ‘실용’과 ‘성장’을 외치던 한국 여당에서 ‘공정 사회’와 ‘경제민주화’ 같은 말들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배-피지배의 논리에서 보자면, 국가와 시장을 제외했던

과거의 사회적 경제는 지배질서에 있어 원리상 불온하고 위험한 것이었지만, 지금의 사회적 경

제는 어렵지 않게 관리될 수 있는,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내로 포섭할 수 있는 성격의 것

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그’ 큰 사회와 경제민주화가 과거와 같이 국가가 아니

라 사회적 기업 같은 것들을 통해서 충족된다는 논리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효과에 대해 주

목할 필요가 있다.82)

81) Heerad Sabeti, “The Emerging Fourth Sector: Executive Summary”, http://www.fourthsector.net (2013년 1월 12일 검색).

82) 물론 현재 한국에서 중앙정부와 도시정부에 따라 약간의 온도차가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고용노동부가 사회적 기업을 주로 일자리 창출의 목적으로 지원하는 데 반해, 서울시의 경우엔 그에 더하여 윤리적 시민성과 시민복지를 도모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둘 모두 시민들의 요구에서 정치적인 것의 자리를 간과하고 사회적인 것만 반영하고자 한다는 점에선 공통적이다. 또한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정치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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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거버넌스 형태에 가까운 사회적 경제 부문은 그 자체로 구조적인 제약조건을 떠안을 수

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논점이 바로 신제도주의 등에서 언급하곤 하는 ‘제도적 동형

화’(institutional isomorphism)83)라고 하는 일종의 동질화 현상이다. 사회적 기업이 됐든 협동조

합이 됐든 사회적 경제 조직들은 육성과 진흥이라는 맥락에 위치되는 이상 정부와 기업의 행정

적․재정적 지원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자원을 통제하는 측으로부터 나오는 특정한 규범

과 요구사항을 따라야 하는 고충을 겪게 된다. 실제로 사회운동 차원에서 사회적 기업 등에 몸

담았던 종사자들이 자신이 활동가인지 피고용자인지 그리고 조직형태가 비영리조직인지 영리기

업인지 혼동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문제와 맞닿아 있다.84)

물론 그 과정은 타율적 강제나 막연한 모방 또는 자체적 규범화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전개된

다. 이를테면 대다수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사회적 기업 육성법」(2007)이나 「협동조합 기본

법」(2012) 같은 법률에 의해 동기화되고 정부 기관이나 기업 부서에 활동 결과를 계량화해서

성과 보고해야 하는 사정들을 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관료제적 관습이나 영리기업의 관행을

그대로 답습해야만 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강제적 동형화). 또한 사회적 경제가 일종의

붐처럼 확산되고 있는 이상 신생 기업이나 조합의 경우 조직의 목적이 불확실하거나 모호한 것

이 일반적인데, 이때 기존에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기업이나 조합을 모델로 삼으면서 자기 조직

의 전망을 설정하는 사례들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모방적 동형화). 뿐만 아니라 (중간)관리자나

조합원들이 각종 전문가 집단들로부터 교육을 받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동질화되는 직간접적 경로가 될 수 있다. 실제 종사자들을 체계적으로 그리고 효과

적으로 관리하는 데 있어 학습과 내면화만큼 빠른 지름길은 없기 때문이다(규범적 동형화).85)

그리고 우리는 동형화 과정(특히 모방적 동형화 과정)에서 과연 무엇이 패턴 설정자(pattern

setter) 역할을 하느냐 하는 데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모방의 대상이 되는 패턴 설정자

가 생산․소비․분배를 아울러 대안으로서의 적합성을 가진다면 사회적 경제 담론에서도 일정 정도

출구를 모색할 길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추진되는 사회적 경제는 서

구중심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한국이 2000년경에야 사회적 국가 형태

를 경험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86) 제3의 길로서 사회적 기업 등과 같은 서구 사회의 포스트복

83) 동형화는 “어떤 단위체가 같은 환경조건에 직면한 단위체를 닮아가게 하는 제약 과정”을 의미하는데, 여기서 제도적 동형화라 함은 “조직들이 자원과 고객을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과 제도적 정당성, 즉 경제적 적합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적합성을 놓고 경쟁”을 하는 맥락에서 나타나는 동질화 양상을 가리킨다. Paul J. DiMaggio and Walter Powell, “The Iron Cage Revisited: Institutional Isomorphism and Collective Rationality in Organizational Fields”,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Volume 48, Issue 2, April 1983, 149쪽.

84) “사회적 기업의 경우 비자본주의적·반자본주의적 입장들이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 같은 인상과 정부가 인증을 매개로 적극적으로 제도화해 간 과정이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김병기, 「사회적 경제에 대한 토론문」, 한국사회포럼 기획토론 발표문, 2009년 8월 27일(이상우, 앞의 글, 301쪽에서 재인용).

85) 그들은 이러저러한 과정들을 통해 사회적인 것과 경제, 혹은 사회적인 것과 기업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원리적 모순들을 거의 체념조로 봉합하게 된다. ‘사회적 기업도 어차피 기업이잖아’, ‘계속 지원을 받으려면 수치화할 수밖에 없어’, ‘(사회적 기업이든 협동조합이든) 원래 이런 거구나’, ‘싫어도 해야만 하는 게 있는 법이야’ 등등. 그런데도 오늘날 사회적 경제의 환경조건들은 별다른 문제해결의 기미 없이 조직의 유지와 재생산을 위해 정부나 영리기업과의 파트너십 구조를 재촉하는 실정이다. 이 문제에 대해선 별도의 경험적 연구를 진행 중이다.

86) 이 당시 한국은 ① 5%에 이르는 공적 사회 지출을 기록했고(이는 서구 국가들과 달리 복지 지출이 증가한 결과였다), 질적인 측면에서도 ② 1995~8년 고용보험 도입과 확대 그리고 2005~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써 포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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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담론을 모델로 삼는 것은 다소간 아이러니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사회적 경제 담론

에서 (이를테면) 베네수엘라의 국유화나 아르헨티나의 노동자 자주관리 같은 사례들은 구조적으

로 삭제되고, 대리운전 협동조합이나 동네슈퍼 협동조합 등이 모범적 사례로 추인되는 것이 보

통이다.87) 이와 같은 경향은 두 가지 쟁점을 내포하는데, 하나는 사회적 경제 내에서 생산관계

의 변혁과 같은 정치적 쟁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위주의의 패착을 예외로

한다면) 국가의 실패를 채 경험하기도 전에 위기관리와 발전의 전망에서 국가의 자리를 지워버

리거나 후퇴시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국적 맥락에서 사회적 경제의 경험은 서구의 표준화된 경험 방식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이를테

면 한국의 국가 형태는 주지의 사실처럼 (사회)보장보다는 (사회)동원하는 형태에 가까웠다. 이

러한 역사는 복지의 문제를 공적인 차원에서 제기하기보다는 개인이나 가족 같은 사적인 차원

에서 해결하는 쪽으로 수렴시켰던 게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국가로 권위가 집

중되는 풍토가 지속되는 등, 서구 사회에 비해 국가권력이 시장권력이나 사회권력에 대해 비대

칭적이라는 점 역시 제기될 수 있다. 결국 이런 이유들 때문에 한국에서는 사회적 경제에 관한

담론과 현실이 크게 어긋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어떤 경우에는 현실이 담론을 견인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담론에 이끌려 다니고 때로는 경합하는 담론들에 치여 기형적인 형태로 창출되

기도 한다. 이러한 불안요소는 국가, 시장, 시민사회에 고루 산포해 있다.

국가의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으로 하여금 정부 지원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는 경향을 낳는다. 이 문제는 제4섹터와 같은 아이디어를 통해 얼마간 봉

합되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사회적 기업 육성법」이나 「협동조합 기본

법」 제정 이전에 자생적으로 존립해왔던 몇몇 조직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고용창출이나 사회서

비스 수요 충족 등과 같은 지배의 기술에 종속되게끔 하는 경로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기존의 조직들마저도 지원 혜택을 위해 기관들로부터 ‘인증’을 받고자 하는 경우에는 관료제적

병폐와 성과지상주의로 인해 대안적 생산양식으로서의 전망이 소원해지기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현장에서 ‘나라가 끼면 될 일도 안 된다’는 푸념이 종종 들리는 것도 이러한 문제점들과 무관하

지 않다.

시장의 경우에도 사회적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교과서적 기술 내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보통은 지속가능성과 장기수익성을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을 언급한다고 하지만, 한국의 대기업들이 사회사업팀이나 사회공헌팀을 운영하는 경우는

내부적으로 기업의 이미지 제고 전략과 맞물려 있거나 외부적으로는 ISO 2600088) 같은 국제

인 사회보험제도의 골격이 갖춰졌으며, ③ 2000년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됨으로써 복지정책에서 시민권 ․사회권 성격이 강화되었다.

87) <한겨레>, “대리운전자도 동네슈퍼도 “협동조합으로 양극화 막자””, 2012년 11월 30일자.88) ISO 26000은 사회적 책임 개념과 원칙에 있어 조직 거버넌스, 인권, 노동관행, 환경, 공정 운영 관행, 소비자 이

슈, 지역사회 참여와 발전이라는 7대 핵심 주제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 이 국제인증은 40여개 국가의 기술 규정과 소비자 평가 기준으로 활용되기 시작하고 있으며, 미국 등에서 ISO 26000 인증 마크 부착 제품만 수입하겠다고 공시하는 등 사실상의 무역장벽으로 작동할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2년 8월부터 고시 ․보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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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마저도 관리자나 실무자들의 경우

CSR을 생산활동, 고용창출, 세금납부 등에 국한해서 인식하는 경향이 팽배하고 대중적으로 퍼

져 있는 반기업 정서 때문에 마지못해 움직이는 경향89)이 작지 않아서 ‘규범적 균형’으로서의

사회적 경제라는 이념형과는 거리가 먼 게 사실이다. 요컨대 (당연한 귀결일 수 있겠지만) 영리

기업들에 있어서 사회적 경제 부문은 그들 자신이 ‘제4섹터’에 참여를 하더라도 대안이 아니라

부차화된 영역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아울러 시민사회 차원에서 발견될 수 있는 취약성은 첫째로 정치운동과 경제전략, 즉 체계를 극

복하고자 하는 의도와 그 안에서 적응해야만 하는 제약조건 사이에서 평형감각을 유지하는 게

원만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기원한다. 여기서 개인과 조직의 존립 및 유지를 위해 제도적 동형화

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역설은 비교적 예상가능한 수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흔히

말하는 ‘대중들의 의식 문제’도 중대한 장벽으로 존재한다. 예컨대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에

서 생산품을 만들어도 그에 걸맞은 적정 소비가 이뤄져야 하는데, 사회적 경제 담론에 대한 의

식이 부족하거나 관련 정보가 아예 부재한 경우들이 많아 경제적․사회적 생태계 자체가 원활하

게 작동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90) 마지막으로, 사회적 기업 종사자들이나 협동조합 조합원들

사이에서도 사회적 경제를 둘러싸고 세대간 온도차가 존재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것을 청년 세

대들이 상대적으로 정치적 관심이 적어서 생기는 문제로 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로 인해

사회적 기업에 신규 채용되는 경우 조직의 기존 목표를 공유하지 못한다거나 직접 창업하는 경

우에는 대안적 가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문제들이 발생하곤 한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들을 집약했던 것이 ‘소셜 벤처’와 같은 사례였다. 이 말은 사회적 기업이라

는 사회적 경제 조직 그리고 창업을 통한 고용 창출이라는 시장경제 전략이 극적으로 타협한

결과물이었다. 물론 2012년 들어 사회적 경제 조직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사회적 기업에서 협동

조합으로 이전되고 말 자체의 넌센스가 널리 공유되면서 전보다 덜 언급되긴 하지만, 이 말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의 벤처 열풍과 2000년대 말 지구적 금융위기 즈음의 사회적 기업

열풍 사이에 묘한 근친성이 있음을 내포한다. 즉, 위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자 하는 국가, 이

윤 창출의 사회적 토대 및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시장, 경제적 성공 내지는 생존을 희구하

는 시민사회 등의 삼각구도 속에서 달라진 게 있다면, 주재료가 창의성에서 사회성으로 바뀌었

고 동력이 성공에서 생존으로 조정됐다는 정도일 뿐이다.

소략하자면, 사회적 경제에는 제도적 동형화의 위험이 뒤따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시장경제’라

는 전례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이라는 언어가 어떻게 접합되느냐에 따라 물화의 위험91)도 수반

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근래 들어 사회적 기업이 아니라 협동조합

이 강조되는 추세에 접어든 게 사실이지만, 협동조합 체계 역시도 제도적 동형화와 더불어 담론

89) 임항, 「지금 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인가」, 이장원 엮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노동』, 한국노동연구원, 2008.

90) 최근에는 서울시에서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협동조합 상품에 대한 공공구매 물량을 늘리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경우에는 거꾸로 생산 단위에서 상품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제가 예상되기도 한다.

91) 이러한 경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사회적 자본’ 개념이다. 이에 대해서는 Ben Fine, Theories of Social Capital: Researchers Behaving Badly, Pluto Press, 201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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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헤게모니적 접합의 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롭다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사정이 그렇다

면, 우리는 ‘경제적 관계의 무언의 강제를 돌파할 수 있는 전반적인 사회적 변화’라는 고전적

질문의 테두리에서 여전히 머물러 있는 셈이 된다.

3. 사회적 경제라는 가상의 함의

문제는 우리의 선택이 종종 의도와는 다른 결과로 이어지는 일이 있다는 데 있다. 자본주의로부

터 달아난 덕분에 외려 자본주의가 공고해지고, 내쫓은 신자유주의가 뒷문으로 슬쩍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답이 제출되는 순간 그와 동시에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쯤

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적잖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또

그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을 던지곤 한다. 비판가들의 분석에 얼마간 동의하면서도

가끔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사회적 경제에 관련하여 그런 혼란이 생겼다면 그것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이라는 형용사가 가

진 어떤 신비함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적인 것은 단순히 성취해야 할 무언가라기보다

는 그 자체로 문제 삼고 넘어서야 할 대상일 텐데, 우리들은 종종 이 언어가 전도되어 있음을

간과하고 그 자체로 물신화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는 사회적 경제 담론에 빠져 있는 근본

적 공백 두 가지와도 관련된다. 하나는 정치라는 쟁점이고 다른 하나는 이데올로기라는 쟁점이

다.

사회적 경제 담론의 인상적 특징은 다분히 당위적이라는 데 있다. 그것은 ‘사회적인 것 = 윤리

적인 것 =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라는 암묵적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간혹은 그 자체

로 성장과 분배의 완결적 구조를 가진 일반이론인 것처럼 묘사하는 경향도 이러한 정당화 논리

를 강화하곤 한다. 사회적인 한 그것이 정답이라는 이론적 독단에 의해, 정치에 관해서는 더 이

상 말하지 않게 되는 것은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인 것의 탄생이

“진보에 대한 믿음을 대체”해버리고 결과적으로는 “노동과 자본의 대립을 사회적인 것과 경제의

대립으로 전위”시켰던 19세기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을 재연하는 것 같기도 하다.92) 예컨대 현

실에서는 국가권력이 문제적이라 토로하면서도 담론에서는 국가를 협상의 대상으로 중성화하는

관습은 사회적 경제 담론이 국가와 자본의 동학에 대해 근본적으로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는 방

증일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사회적 경제 담론은 시민사회 영역을 다소간 낭만화하는 문제들로 이어지게 된다.

경제에서 시민사회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논지는 그 바탕에 시민사회의 주체들이 ‘순수성을 담지

하고 있고 따라서 정치적으로 옳으며 종국에는 그 자체로 희망’이라는 부당전제를 깔고 있다.

사회적 경제 담론이 경제학 담론으로서 주체에 관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92) 자크 동즐로, 주형일 옮김, 『사회보장의 발명』, 동문선, 2005,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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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하나, 그것이 체계에 대한 대안운동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라면 사정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

경제적 관계를 바꿔내기 위해서는 그것의 재생산을 추동하는 이데올로기와 주체화양식의 뇌관

을 건드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제 담론 내에서 징후적으로라도 주체에 관한 문제설

정을 독해해낸다면 우리는 기껏해야 ‘호혜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 인간’이나 ‘그들의 교류관계’

정도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관계가 자기-동일성을 확보한 평등한 존재

들의 2자관계로 수렴되고 현대사회가 이들의 ‘네트워크’ 내지 ‘직조’(fabric)로 구상되는 한, 착

취와 배제를 양산하는 현대자본주의의 ‘지배 내로의 구조’(structure in dominance)에 관해서는

그 어떤 변화도 대안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소망과 달리 현실에서 국가-시장-시민사회는 전혀 대칭적인 영역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일상의 구체적 개인들이 계급․젠더․민족․인종 등을 초월해서 서로가 평등하다고 상정될 수

있는 보편적 조건이 주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보면 결을 달리 하긴 하지만 ‘제3항’이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 경제 담론에서 나타나는 정치의 공백과 이데올로기의 공백은 사실상 동

일하다. 여기서 전혀 다른 차원의 이론적 문제설정을 구하지 못한다면, 사회적 경제는 담론의

헤게모니적 접합과 제도적 동형화의 막다른 길에서 별다른 출구를 찾지 못할 듯하다. 그리고 그

들이 말하는 정확히 바로 그 의미에서 사회적 경제는 반(反)사회적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사회적 경제라는 새로운 경제학적 가상이 가지는 이론적 함의들에 대해 정리해보

자. 이 문제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첫째는 교환양식의 가상으로서 사회적 경제가 필

연적으로 주체화를 비롯한 교류양식에서도 어떤 새로운 가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사회적 경제가 신자유주의의 대체제인지 보완재인지 살펴봐야 하고 아울러 지구적 수준뿐만 아

니라 한국적 이례성에 대한 논점들도 기입해야 한다는 점이며, 셋째는 사회적인 것이라는 문제

에서 은폐되어 있는 혹은 과소결정된(under-determined) 요소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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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어소시에이션과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의 전망

이동연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1. 대선이 남긴 문화운동의 교훈

제 18대 대통령 선거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야권은 선거를 며칠 앞두고 야

당의 반전이 마침내 가시화되었다느니, 선거 당일 날 높은 투표율로 사실상 정권교체에 성공할

것이라고 설레발을 쳐댔지만, 결국 승리는 유신의 딸 박근혜에게 돌아갔기에 어떤 전략적 이유

로든 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그 충격과 심리적 공황상태는 클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의 무

능함, 문재인 후보의 승부사적 기질의 부족, 진보정치의 실종 등이 대선 패배의 이유로 거론되

고 있는데, 대선 패배에 대한 정치적 진단과 진보정치의 재구성의 필요성 못지않게, 중요한 것

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큰 곤란과 동요를 겪었던 문화운동이 대선 결과를 냉철한 현실로 받아

들이면서 앞으로 어떤 전망을 세울 것인가이다. 문화운동의 향후 재구성과 관련하여 세 가지 문

제설정을 고민하게 만든다.

첫째, 박근혜 체제는 보수 권력의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동, 복지, 안보 의제를

이른바 '안전사회'라는 프레임으로 묶어 대중을 향한 헤게모니 투쟁을 본격화할 것이다. '시장 자

율화'와 '남북대치'라는 노동과 안보 프레임은 한국의 클로컬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특이성을 보

여주는 정치-경제-이데올로기 복합체로서 박근혜 체제가 일관되게 보수적 정책을 견지할 때 갖

게 될 기본 관점이다 이 프레임 정책을 대중들에게 설득하기 위한 장치로 복지 담론이 지속적

으로 사용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방송, 언론을 포함해 국적 홍보 장치를 이용해 대중적 동의를

이끌어내는 헤게모니 싸움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복지담론은 박근혜 체제에서 유효

한 헤게모니 블록이다. 이 과정에서 문화운동 진영 역시 문화복지 담론 투쟁에서 곤경에 빠질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좌-우파 이념적 코드라는 단순한 이분법에 의해 문화계를 갈라놓았던

이명박 식 문화정치와는 다르게 박근혜 식 문화정치는 문화복지 담론을 발판으로 문화민주주의,

문화 공공성의 의미를 형식적으로 적극 견인하여 문화예술계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데 진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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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진보정치의 소멸의 근원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제18대 대선은 19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역대 총선, 대선, 지방선거 등 현실정치의 싸움에서 진보세력이 가장 처참하게 패배

했다. 제18대 총선이 있었던 2008년 진보정당의 지지율은 13%를 기록하여 진보정치의 대중화

를 기대하게 만들었고, 제19대 총선에서 진보정당 지지율이 15%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당초 기대와는 달리 제19대 총선에서 진보정당의 지지율은 10.3%로 하락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전략적 단일화 효과로 비교적 선전했지만, 진보신당은 참패했고, 제

19대 대선에서는 야권단일화라는 프레임에 걸려 주요 야권 후보들의 사퇴했고, 전략 전술이 부

재한 채 등장한 좌파 후보자들의 특표수(율)은 사실상 공식적 통계 그래프에서 실종될 정로도

미미한 것이어서 진보정치 세력의 존재감 없음을 사실상 증명하는 꼴이 되었다.

박근혜-문재인 양자대결 구도로 인해 진보정치, 혹은 진보진영의 대권 후보가 설자리를 잃은

것이 진보정치 실종의 표층적인 상황이었다면, 대중들을 설득할 수 있는 대안정책의 의제발굴과

그것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화법과 수사의 전략이 없었다는 것이 심층적 상황이었다. 진보정치

는 박근혜 식 복지담론, 문재인 식 경제민주화 담론에 끌려 다니면서 진보정당이 주장하는 복지

및 경제의 혁신적 대안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 못했다. 더욱이 진보정치의 대중적

활동을 책임지고 있는 대권 후보들이 자신의 화법과 수사의 기술을 발견하지 못하고, 대중적 인

지도를 넓히려는 목적으로 나꼼수 류의 포퓰리즘 정치에 끌려 다니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배타

적 신원주의 정당성의 환상에 사로잡혀 대중들의 피부에 와 닿는 다양한 정책의제들을 개발하

지 못했다. 진보정치만의 급진적 상상력, 즐거운 화법과 표현의 정치는 진보정치의 '진보'에서

문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하게 던지게 만든다.

세 번째, 이번 대선의 결과는 지식-담론과 기술-장치의 낡은 패러다임으로부터의 단절이 절실

하게 필요함을 알려준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지식-담론과 기술-장치는 모두 야권에 유리할 것

으로 누구나 예상했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 지식-담론을 주도하는 시민사회계는 야권 연대,

후보 단일화를 일관되게 요구했고, 직접 민주주의 혁명의 단초를 마련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

한 SNS의 기술-장치도 정권 교체의 교두보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

적으로 이러한 예상과 기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말았다. 정권교체를 위한 시민사회계의 단일

화 요구의 지식-담론은 단일화를 과정이 아닌 목적으로 간주하여, 어떤 진보적 정치 의제들이

그 과정에서 개입할 것인가에 대한 지식-담론을 생산하지 못했다. 이른바 시민사회의 원로회의

가 수행한 것은 오로지 단일화를 위한 형식적 절차, 즉 기자회견-언론보도-상징적 권위를 이용

한 우회적인 압박이 전부였다. 내용 없는 원로회의들의 형식적 요구들은 자신의 상징권력의 효

과를 확인받고 싶은 심리적 기제로만 작동하여, 정작 그들이 담당해야 할 대중을 설득하는 새로

운 형식의 지식-담론의 생산을 기각했다. 제 19대 총선과 제 18대 대선에서 시민사회의 지식-

담론 생산에 큰 영향을 미친 원로회의의 핵심 인물인 백낙청의 '2013년 체제론'은 '복지-생태-

분단'의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위상들을 어떻게 진보적 의제로 현실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

는 분단체제의 극복을 위한 과도적 단계로 복지와 생태를 어설프게 설정하여, 미리 재단한 대선

의 결과에 대입시키려 한다.93) 결과적으로 그가 예상한 것은 모두 현실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93) 백낙청의 2013년 체제론은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단계론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이 총선-대선 승리-정권교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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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중요한 정치적 캠페인을 이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확장시키거나, 자신의 지식-담론의 권력

을 선거 정치세력에 의존해 재생산하고자 한다. 민주당-원로회의 연합 체제는 이번 대선에서

그 원로들의 지식-담론의 체제가 얼마나 낡은 생각과 정치적 토대 위에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기술-장치의 정치적 형세 역시 이번 대선을 통해서 그것

이 곧바로 진보적 결과로 이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게 해주었다. 미디어의 빅뱅을 낳았던

SNS의 혁명의 순간들이 과연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현실화되었는가를 반문해 보면, 오히려 기술

-장치의 진보적 역주행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배제된 SNS의 표상의 정치의 '불편한 진실'이다. 폭로를 진보로 가장한 나꼼수 류 포퓰리즘과

진중권, 조국, 공지영과 같은 지적 셀레브리티들의 자기도취적 계몽주의는 SNS의 확성기로 자

처하면서 사회적 소수자들과 대중들을 오히려 피곤하게 만들었다. SNS 공간 역시 몇몇 지식인

그룹의 표상의 정치가 지배했고, 이른바 자크 랑시에르가 미학과 정치의 관계를 설명할 때 언급

한 '감각적인 것의 분배'가 SNS의 진보의 공간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다.94) 기술-장치의 표상의

정치에서 소수자 정치로 이행하는 주체형성의 기회를 확장하고 이를 통한 문화적 역능에 대한

급진적인 상상력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것인가?

결과적으로 박근혜 체제 하에서 문화운동은 문화복지 담론에 대한 헤게모니 투쟁의 투쟁, 진보

정치의 문화적 재구성, 새로운 주체형성을 향한 문화적 역능의 발견이란 문제설정을 간파하고,

구체적인 실천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이 글에서 그러한 실천경로들의 모든 지도를 그릴 수는 없

다. 다만 이 세 가지 문제설정을 가로질러가는 문화운동의 구체적인 경로로 문화적 어소시에이

션을 위한 생산자-소비자 연합운동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 제안은 문화복지 담론을 넘어설 수

있는 자생적이고 독립적인 문화 생산-소비의 공간을 만들고, 삶으로서 진보정치의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문화적 재구성의 계기들을 탐색하며, 표상과 대변의 정치가 아닌 직접적인 대중 행동

을 통해 기술-장치의 역능을 발견하는 실천을 담고 있다. 이 실천경로를 탐색하기 위해 먼저

어소시에이션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론적 탐구와 그 개념에 기반한 최근 문화적 실천 사례들을

통한 민주적 복지국가론 수립-남북국가연합으로 이행이다. 그러나 그의 2013년 체제가 두 번의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

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는 점, 2013년 체제의 기반이 되는 국가론에 대한 입장은 박근혜가 주장한 복지국가

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복지국가론에 생태적, 성평등적 복지국가를 근거없이 대입하고 있다는 점, 세계 자본주

의 체제의 위기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 없고, 신자유주의 체제에 진보적 시각이 부재한 점, 특히 한국 사회 계급구성의

변화에 대한 분석이 부재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지적한 ‘안철수 현상’, 젊은 세대의 정치 복귀, 민

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전열 정비, 박근혜 대세론의 붕괴와 ‘조기등판’에 따른 정치적 타격 론은 모두 객관적 진단

을 결여하고 있다.94) 랑시에르는 민주주의는 두 가지 형태로 분리된다고 말한다. 하나는 합의에 기반 한 윤리적 민주주의 견해로서 이

것은 자유주의 시장원칙이나 민주주의적 정부와 통치성의 원칙들을 갖는다. 시장과 정부는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에 의

해서 위협받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개인의 민주성 대중성 등의 등장에 대한 불만"을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견,

불일치의 민주주의가 있다. 랑시에르는 이것이 정치학의 핵심이라고 본다. "불일치는 대립적인 당사자들, 부자와 가난

한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갈등 그 이상을 의미한다. 오히려 그것은 단순한 지배와 반역의 게임에 보충을 하는 것"

이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민주적 보충은 결국 능력이 없는 자들의 능력, 자격이 없는 자들의 자격을 의미한다.(Jacques

Rancière(2009), “The Aesthetic Dimension: Aesthetics, Politics, Knowledge”, Critical Inquiry, Vol. 36, No. 1

(Autumn 2009)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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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해보자.

2. 어소시에이션이란 무엇인가? -가라타니 고진 이론의 비판적 독해

어소시에이션의 이론은 사실 19세기 유럽의 파리코뮌과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 기에 있었던 혁

명적 노동자들의 자발적 코뮌주의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심지어는 그 기원을 원시공동체 사

회나 종교 공동체주의로까지 소급할 수 있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대체로 협동조합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주류 자본과 시장에 포섭되지 않고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이

어떻게 서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연합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하는 것이 현대 어소시에이션

운동의 출발이다. 이와 관련하여 어소시에이션의 이론을 가장 독특하게 제시한 이론가가 일본의

맑스주의 문화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이다. 고진의 어소시에이션은 맑스주의와 코뮌주의에서 기초

하지만, 생산양식과 경제적 토대를 강조했던 맑스의 정치경제학과는 달리 교환양식, 생활-세계

로서의 상부구조를 강조하다. 고진의 어소시에이션 이론의 시작은 사회구성체 양식의 초점을 생

산양식에서 교환양식으로 이동하는 데 있다. 고진은 교환양식이 중요한 이유로 네이션(국민)과

국가(스테이트)의 기능이 달라지면서 경제적 토대로서의 생산양식의 개념이 불명확해졌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본제 이전의 사회구성체에서는 국가도 말하자면 생산양식의 일부입

니다. 즉 거기에 경제적 구조와 정치적 구조의 구분이 없습니다. 생산양식이

란 관점에서 서면, 마치 그런 구별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됩니다. 따라서 이

와 같은 혼란을 피하고 자본제 이전을 포함하여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보편적

으로 보기 위해서는 '생산양식'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게 좋습니다.95)

고진은 이러한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세계사의 구조를 밝히고자 하는데, 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인류의 교환양식은 네 가지로 변화했다. 먼저, 교환양식A는 증여와 답례에 기반 한 방식으로 원

시공동체 사회를 말하고, 교환양식B는 약탈과 재분배에 기반 한 방식으로 전제군제가 지배하는

세계-제국의 시대이다. 교환양식C가 합의에 의한 상품교환에 기반 한 방식으로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시대라면, 교환양식D는 새로운 형태의 호혜적, 상호증여의 교환에 기반 한 방식으로 원

시공동체의 교환양식A를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는, 자본-국가의 지배 양식을 거부하는 어소시에

이션 사회를 꿈꾼다. 대안사회로서 어소시에이션은 "자본-네이션-국가"가 인간 사회의 불평등을

구조화시키는 현실에 대항해서 이뤄내야 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 자율성과 상호 보살핌

의 관계를 회복시키자는 것이다."96)

고진은 현재의 교환양식의 상태는 교환양식 C의 단계, 즉 자본-국가-네이션의 연합 체제로 규

정한다. 그렇다면 자본제-국가-네이션의 연합으로서 사회구성체는 어떤 형태를 말하는 것인가?

95) 가라타니 고진, 『세계공화국으로』, 도서출판b, 2006, 32쪽. 96) 김민웅, 「2012년 대선 결과를 만든 초대형 방정식」『프레시안』, 2013년 1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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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은 현재 자본주의 체제가 자본제-국가-네이션의 상호 견제와 협력을 통해 작동된다고 본

다. 무한 이익을 얻으려는 자본제의 논리와 수탈과 재분배의 역할을 하는 국가의 논리와 그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네이션의 논리의 결합을 고진은 자본제-네이션-스테이트의 삼위일체라고 언

급한다.

『트랜스크리틱』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네이션-스테이트란 이

질적인 국가와 네이션이 하이픈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

다. 하지만 근대의 사회구성체를 보기 위해서는 거기에 자본주의 경제를

부가해야 한다. 즉 그것은 자본-네이션-스테이트로서 보아야 한다. 그것

은 상호보완적인 장치이다. 예를 들어, 자본제 경제는 반드시 경제적 격

차와 대립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네이션은 공동성과 평등성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제가 초래하는 격차나 모순을 해결하기를 요구한다.

그러고 국가는 과세와 재분배나 규칙들을 통해 그것을 행한다. 자본도 네

이션도 국가도 서로 다른 것이고, 각각 다른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여기서 그들은 보로메오의 매듭처럼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성립하지

않을 정도로 결합되어 있다. 나는 그것을 자본-네이션-국가라고 부르기

로 했다.97)

고진은 이러한 자본-네이션-국가의 삼위일체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어소시에이션을 제안한다.

어소시에이션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 체제를 유지했던 이념으로서 어소시에이셔니즘과 다르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이항 대립적인 대척점으로서 사회주의 이념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본을 내파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체제를 구성하려는 의지를 가진다. 이러한 체제 내 내파의

대안으로 어소시에이션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자본-국가를 중요하게 지탱하는 네이션-화폐에 대

한 재해석, 기능전환이 필요하다.

네이션이 나타나는 것은 그 후 즉 절대왕권이 시민혁명에 의해 무너진 이후이

다. 간단히 말해, 네이션이란 사회구성체 중에서 자본-국가의 지배 하에서 해

체되어 가던 공동체 내지 교환양식A를 상상적으로 회복하는 형태로 둥장한

것이다. 네이션은 자본-국가에 의해 형성된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본-국

가가 가져오는 사태에 항의하고 대항하는 것으로, 그리고 자본-국가의 결락을

보충해서 메우는 것으로 출현했다. (중략) 네이션의 감성적 기반은 혈연적, 지

연적, 언어적 공통체이다. 하지만 그것이 네이션의 비밀을 명확히 만드는 것

은 아니다. 그와 같은 공동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네이션이 성립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네이션은 자본-국가의 성립 이후에 등장한다. 따라서 네이

션의 형성은 우선 두 가지 시각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주권국가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자본주의이다. 바꿔 말해, 전자는 교환양식B라는 측면이고, 후자는

교환양식C라는 측면이다. 네이션은 이들의 계기를 통합함으로써 성립한

97)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14-5쪽(이후 인용은 본문에서 쪽수로만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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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303-4쪽)

네이션은 국가와 자본과 밀접한 관계 하에서 형성된다. 인민 주권자로서의 네이션은 산업자본주

의의 내셔널리즘에 의해 형성된 네이션(상상적으로 호명된 국민)으로 변형된다. 말하자면 프로

테스탄트 윤리의식처럼 신의 소명 아래 최선을 다해 노동하는 자본주의 주체로 네이션이 호명

되는 것이다. "시간을 엄수하고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일하는 태도, 그리고 모르는 타인과 협동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타인과 협동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언어나 문화를 갖는 것이 불가결하다

"(307쪽)는 고진의 설명은 네이션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국가에 의해 흡수-통합되는 것을 강조

한 것이다. 따라서 네이션은 인민주권자라는 의미와 국가-자본에 호명된 노동-국민이라는 서로

다른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자본-국가의 수동적 산물로서 네이션은 자본-국가에 종속되는

네이션(국민경제, 내셔널리즘)으로 포섭될 수 있다. 그러나 고진에 따르면 네이션은 반드시 호명

된 주체로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네이션은 자본-국가가 만들었지만, 스스로 자본-국가에 대

항하기 위해 출현했기 때문이다. "네이션은 노동능력이나 경제적 이익이라는 차원만으로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에 대한 반발을 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네이션은 말하자면 감정이라는

차원에서 근거하고 있다고 해도 좋다."(308쪽) 주장은 네이션은 이익의 주체가 아니라 감정의

주체라는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고진이 말하는 감정의 주체로서 네이션은 자유-평등-우애의

슬로건 중에서 우애에 해당된다. 그것은 다른 의미로 말하자면 네이션은 연대의 감정을 간직한

주체라는 점이다. "네이션이 '감정'으로서 나타난다는 것은 네이션이 국가와 자본과는 다른 교환

양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309쪽)는 지적도 그런 의미에서이다.

여기서 긍정적 의미로서의 네이션의 해석을 통해 교환양식D(호혜적 교환양식)의 가능성이 발견

된다는 것이 고진의 해석이다. 이것이 고진이 제시하려는 어소시에이션이다. 그것은 교환양식의

매개체로서 화폐교환의 기능전환, 그것의 수행적 전복을 기획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소시에이션

의 두 번째 해석으로 잉여가치를 만들지 않고 상호 호혜적인 관계(어소시에이션)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수탈-재분배의 기능을 가진 국가의 기능을 무력하는 것이 관건이다. 고진

은 어소시에이션의 현대적 실천을 구상하는 관점으로 종교적 사회주의를 꿈꾸던 청교도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를 꿈꾸던 프루동주의를 근대적 어소시에이션의 사례로 제시한다. 이 이유는 교

환양식D의 호혜적, 등가적 관점을 이 두 가지 예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교적

호혜성과 분배적 등가성은 모두 종교주의와 사회주의의 원리에서 추출할 수 있는 부분이다. 종

교를 부정하되 종교 안의 '윤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은 종교를 비판하면서 종교의 윤리

적 핵심 즉 교환양식D를 구출하는 과제를 추구하자는 논리로, 고진은 이러한 관점에 서 있던

사상가가 칸트라고 말한다. "타자를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목적으로 다뤄라"는 칸트의 도덕법칙

은 자유의 상호성, '세계시민적 도덕적 공동체', 즉 세계 공화국으로 나아가는 길의 철학적 기초

이다.

칸트가 말하는 영원평화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적대감이

끝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국가가 무엇보다도 먼저 다른 국가에 대하여 존재한

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국가가 끝난다는 것이다. '세계 공화국'이란 국

가들이 지양된 사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인 차원으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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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국가 간의 경제적인 '불평등' 이 있는 한,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영원평화는 일국만이 아닌 다수의 나라에서 '교환적 정의'가

실현됨으로써만 실현된다. 따라서 '세계 공화국'은 국가와 자본이 지양된 사회

를 의미한다.(334-345쪽)

고진은 어소시에이션의 원리로 개인의 자유를 가장 높게 평가한다. 그는 18세기 프랑스 시민

혁명의 이념이었던 '자유-평등-우애' 중에서 자유를 가장 높은 가치로 평가한 프루동의 견해를

지지하면서 어소시에이션의 구성 원리에서 자유가 가장 앞선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평등을 자

유보다 우월한 것으로 만드는 사고에 반대"(339쪽)한다. 평등은 국가에 의한 재분배로서 국가의

강화로 인도하는 반면에 우애는 공동체 형성 과정에서 내셔널리즘으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고진의 판단이다. 고진은 개인의 자유를 먼저 고려한 평등과 우애만이 진정한 어소시에이

션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공동체와 한번 절연된 개인(카트의 언어로 말하자면, 세계시민)에

의해서만 진정한 우애나 자유로운 어소시에이션이 가능하다"(340쪽)는 고진의 주장은 개인의 자

발적인 동의와 적극적인 자기 활동을 어소시에이션의 제1 원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어소시

에이션은 "자유에 기초한 개인들의 호혜적 상호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 즉 공동체의 전체주의,

파시즘, 종교적 환원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자유에 기반을 한 호혜적, 상호적

교환양식이 자본-네이션-국가의 삼위일체를 해체하는 대안사회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고진의 궁극적인 주장이다.

고진의 어소시에이션 이론은 자본-네이션-국가의 동맹 지배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다음과 같은 이론적, 실천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어소시에이션 이론은 교환양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자 연합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고진은 맑스가 언급하는 경제적 토대로서 생산

양식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현대 자본주의에 올수록 국가가 생산양식의 역할을 대체하는

상황에서 상부구조에 영향을 받는 생산양식 그 자체에 대한 강조는 별 의미 없음을 말하기 위

해 사회구성체의 변동을 교환양식으로 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생산양식 자체를 생산자의

지배적 독점의 관점으로 일별할 수는 없다. 생산자, 생산양식 역시 자본주의 지배체제에서 벗어

난 대안적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물론 고진의 어소시에이션 운동은 자본의 대항운동으로서

자본의 잉여가치 회로에서 벗어난 생산과 소비 형태를 창조하는 것을 강조한다.98)

고진은 일하지 않으면서 사지 않는 것보다는 일하면서 살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

요하며 이 대안은 노동자(생산자)-향유자(소비자)의 연합을 이루는 협동조합 운동울 통해서 가

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과는 다르게 어소시에이션 운동은 거의 대부분 노동

주체들이 소비자 주체로서 전환되는 시점. 즉 생산관계에 개입하는 노동조합 운동으로서 노동자

운동이 아닌 능동적 소비자로서 노동자운동의 시점을 주되게 강조한다. 그가 주장하는 자본의

대항의 가장 큰 계기는 소비자로서 노동자의 상품구매 보이콧 운동이다. 자본의 자기증식을 막

을 수 있는 길은 자본제 경제의 내재적 투쟁을 통해서 즉 "노동자가 소비자로 나타나는 장, 즉

98) 가라타니 고진, 『트랜스크리틱』, 송태욱 역, 한길사, 4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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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의 장에서 연결시킬 수 있다"(498쪽)는 주장은 노동자-소비자의 상호작용을 따른 노동운동

의 선순환 과정을 사실상 고려하지 않는다. 그가 언급하는 생산-소비 협동조합에서 '생산'은 단

지 자본과 노동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만 간주된다. 따라서 그의 어소시에이션 운동은 사실상 소

비자운동으로 대체될 수 있으며, 생산자-소비자 간의 내적인 어소시에이션의 가능성을 간파하

지 못한다. .

두 번째, 고진 스스로 언급했듯이 자본-국가에 포섭되지 않는 긍정적 네이션이라는 전제가 현

실화될 수 있는 경로는 무엇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다. 자본-국가에 포섭되지 않

는 긍정적 네이션은 고진에게 어떤 이상적 상태로 지시될 뿐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한

지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자본주의 생산 관계의 재생산이 가능한 것

은 국가-자본이 네이션을 포섭, 흡수했기 때문이고, 이 위험성에 대해 1960년대부터 서양의 많

은 철학자, 정치사상가, 문화이론가들이 언급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론, 그리고 기 드보르의 상황주의, 스튜어트 홀의 인코딩-디코딩 이론 모두 국가-자본

의 강력한 네이션 포섭 기제를 비판한 것이다. 어소시에이션의 대안 경제, 대안 주체로 긍정적

네이션은 사실상 네이션이란 기표를 버릴 때, 가능한 것이고 이 문제를 안토니오 네그리와 같은

자율주의 이론 진영에서는 네이션을 넘어서는 주체, 즉 다중으로 설명하려 한다. 어쨌든 긍정적

네이션이 어소시에이션의 주체로 전환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고진의 설명에는 결여되어 있

다.

세 번째, 어소시에이션의 작동 원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 구체

적인 설명이 부족하다. 고진의 자유의 상호성이 자본-네이션-국가를 극복하는 어소시에이션의

가장 중요한 원리로 간주하면서, 그것이 칸트가 말하는 윤리와 도덕성의 의미와 부합한다고 언

급한다. 프랑스 시민 혁명에서 자유란 봉건영주와 국가권력의 억압에서 벗어난 시민들의 자발적

인 주권 능력의 쟁취로 정의할 수 있다. 개인의 주권능력은 노동자 계급을 시민주체로 전환하는

도덕적, 윤리적 의지를 내장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개인들의 주권능력

으로서 자유는 정치적 의사결정의 자발성 뿐 아니라, 문화적, 감성적 주체로서의 자율성을 함께

견지할 때 가능하다. 고진의 자유의 상호성에서 칸트의 윤리, 도덕성의 수준을 넘어서는 문화적

역능, 감성의 활성화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칸트의 철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감각적 주체로서의 개인의 문화적 역능에 대해서는 어소시에이션의 주체 혁명

의 중요한 조건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어소시에이션의 실천에 있어 공간적, 지리적 스펙트럼이 매우 불안전하고 유동적이

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고진은 이론적 층위에서는 어소시에이션의 공간을 세계 공화국으로

까지 설정하고 있다. 자본-네이션-국가의 삼위일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최대치가 국민-국가

경계를 넘어서는 대규모 어소시에이션 즉, 세계 공화국으로의 이행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상상력 이론적 가능성을 넘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은 이미 20세기 초 국제

사회주의 운동의 전사를 통해서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고진 자본에 대항하는 어소시에이션의

실천 운동으로 제시한 것은 능동적 소비자 운동으로서 렛츠(LETS)와 '남'(NAM: New

Associationist Movement)이다. 렛츠는 지역통화 화폐 운동으로서 화폐를 재화의 교환을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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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의 등가물로만 기능하게 하는 공동체의 호혜적 교환을 강조하는 소비자 운동이다. '남'은

렛츠운동의 일본식 버전으로 2000년에 고진을 중심으로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주도했지만,

2003년에 해산했다. 고진 역시 초국적 소비자 협동조합 운동으로서 어소시에이션을 주장하고

있지만 국지적 규모의 성공가능성도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주장은 이론적 상상에만 머무

를 수밖에 없다.

이상과 같이 고진의 어소시에이션 이론의 가능성과 한계를 염두에 두고 이를 극복하는 대안적

어소시에이션을 구상해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설정이 가능하다. 생산양식-교환양식의

상호작용을 통한 대안적인 생산자-소비자 어소시에이션의 형성, 지역화폐, 협동조합운동을 넘어

서 자유와 자율에 기반 한 문화적 어소시에이션의 가능성 탐색, 생산자-소비자 연합을 통한 문

화적 어소시에이션의 구체적인 실천경로에 대한 제안이다. 이 세 가지 문제설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전에 최근 한국에서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는 문화적 어소시에이션 사례들을 비판적으

로 검토하고자 한다.

3. 문화적 어소시에이션의 양상들

이명박 정부 이후 문화운동은 자생적인 물적 토대 구축이 어려워지면서, 조직 운영과 활동이 약

화되는 등 큰 위기를 맞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집단지성-대중정치의 부상으로 물리적 거대

조직을 가진 문화운동조직의 영향력도 크게 위축되었다. 현실 문화운동 조직의 양대 축이라 할

수 있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문화연대 모두 조직적 위기를 맞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민예총은 이명박 정부 기간 동안 정규 사업 예산지원 중단과 내부 조직 혼란 등으로 1988년 창

립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민예총은 예술가 장르별 협회와, 지역 조직만 남고 중앙 컨트

롤 기능은 사실상 붕괴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한편 문화연대는 한미 FTA반대 운동, 용

산참사, 쌍용자동차, 희망버스 등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통해서 나름 자기 역할을 했지만, 조직력

약화와 이론의 재생산 능력의 저하로 문화운동의 생산성의 차원에서 부침현상을 거듭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기간 동안 일정한 물적 토대를 확보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던 장르별

문화운동 단체들도 이명박 정부를 지나오면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화운동의 조직적인 위기가 장기 지속화하는 상황에서 2000년대 후반부터 기존의 문화운동 조

직과는 다른 새로운 문화적 흐름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흐름을 하나로 명명할 수 있는 담론이

구체적으로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이러한 흐름들은 '집단지성', '자율주의', '사회적 경제'

라는 지적, 정치적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사회적 대안 경제를 표방하고 나선 문화

기획가 그룹들이나, 독립이 아닌 자립을 선언한 문화예술가들, 그리고 탈도시적 삶 속에서 대안

문화를 꿈꾸는 문화귀촌 운동, 취미공동체를 통해 집단공작의 즐거움을 꿈꾸는 메이커 커뮤니티

문화 등이 그 예들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공교롭게도 1980년대부터 뿌리를 두고 있는 문화운동

조직들의 위기와 맞물려 나타기 시작했고, 그 조직들의 운동방식과는 다른 양상들을 가지고 있

다. 나는 이러한 흐름을 통칭하여 문화적 어소시에이션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앞서 열거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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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 대표적 기업 명 인증연도 주요사업

음악

광명 심포니오케스트라 2010년신나는 예술여행 “꿈, 희망을 전하는 음악

여행”(2005)서울오케스트라 2010년 오감만족 콘서트

유유자적 살롱 2010년 청소년 밴드음악교육 사업

영상 및

시각예술

공공미술프리즘 2008년 공공디자인, 생활문화공동체사업예술과 시민사회 2010년 미술비평연구, 미술교육과 워크숍시민영상기구 영상미디어센터 2010년 시민영상제작, 미디어 교육

공연 및 퍼

포먼스

노리단 2007년 에코퍼포먼스, 교육 워크숍자바르테 2007년 문화마을만들기, 문전성시 사업듀비커뮤니케이션 2010년 댄스뮤지컬 '사랑을 하려면 춤을 배워라'

들은 각기 발생배경이나 실천경로 및 전망이 다르지만, 삶-운동을 일치시키는 문화적 협동사회

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문화운동 조직과 구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 구체적으로

이들의 운동 사례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1) 사회적 기업의 문화적 리모델링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 기업의 출현과 문화예술가 집단의 변화에 대한 것이다. 2000

년 초반에 한국에서 시작된 사회적 기업은 유럽 사회에서 198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던 사회적

경제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2002년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가게'가 최초의 사회적 기업 사례로서

기존 먹거리 중심의 생활협동조합운동과는 달리, 자발적 기부와 호혜적 거래를 통한 공익경제를

창출하는 것이었다. 2004년에 산업자재와 재활용품을 활용하여 퍼포먼스 그룹을 만든 '노리단',

컴퓨터를 비롯해 전기-전자 폐기물을 친환경적으로 재활용하여 제품을 만든 '컴윈', 그리고 10

여개의 청소업종 자활공동체가 모여서 만든 '함께하는 세상'이 초기 사회적 기업의 대표적인 사

례이다. 2012년 12월까지 '사회적기업인증지원센터'에서 인증 받은 사회적 기업은 총 680개나

된다.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으면, 법인세의 절반을 감면해주며, 4년간 채용 직원의 급여 일

부를 지원해 준다. 사업적 기업들이 주로 하는 일들은 주로 노동, 복지, 환경, 생태, 문화 분야

에서 공공적 가치가 있는 영역들을 개발하여 그것을 경제활동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사회적 기

업은 경쟁적인 시장자본주의와 비경제적 NGO 활동의 중간에서 새로운 인력과 시장을 창출하

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사실상 대안적 경제활동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사회적 기업들 중에서 문화 활동에 종사하는 기업들은 680개 중 103개로 전체 680개 기업 중

15,14%를 차지하고 있다. 문화 분야의 사회적 기업은 대체로 2009년과 2010년에 인증을 많이

받았다. 문화예술 분야의 소규모 기획 창작 집단이 자생적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으

로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초기 활동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

적 기업들은 앞으로 많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적 기업은 지역

오케스트라단체, 시각문화 그룹, 공연기획사, 문화기획자 그룹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다.

[표 1] 문화 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 분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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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

예술

들소리 2008년 전통연희공연과 교육워크숍밝은 마을 2010년 환경체험과 전통문화교육체험학교운영한울누리 2010년 지역 전통예술 프로그램 사업

문화기획서울프린지 네트워크 2010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개최시민문화네트워크 티팟 2008년 공공미술기반 공동체 문화 프로그램일상예술창작센터 2010년 생활창작시장, 생활창작기획

기타문화로 놀이짱 2010년 버려진 가구를 활용한 재활용 가구만들기 한빛예술단 2010년 시각장애인 중심의 공연예술작품 제작

문화 분야의 사회적 기업 사례들을 살펴보면 독립적인 문화예술 기획 집단으로 시작했다가 경

제적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한 경우와 문화예술 분야의 자생적인 기획사

로 시작했다가 사회적 기업의 지원을 받기 위해 공공사업을 강화하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말하자면 사회적 기업은 문화 창작 및 기획 집단을 대안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하면서 문화적

공공성을 중성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사회적 기업은 문화예술 활동가들에게는 사회적 진출의

장벽을 완화시키는 기능을 하지만, 경제활동의 필요에 의해 문화적 자발성을 위축시키고, 창작

의 독립성을 위축시킬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은 문화예술 행위-행동의 변형된 공공성을 조장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자본-시장의 위기에 대한 탈출 방편으로 유휴 노동

력의 경제적 효과를 독력하는 국가의 개입 행위에서 비롯된 면도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사회

적 기업은 특히 예술가의 사회적 진출을 구조적으로 봉쇄한 상황에서 차선으로 선택한 임시방

편의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로서의 의미가 크다.

물론 사회적 기업 제도를 적절하게 활용하면 대안적인 문화조직으로 가는 기초를 만들 수 있다.

최근 사회적 기업으로 성공한 그룹들이 최근 개정된 협동조합기본법의 활용하여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경제적 조직에서 문화 공동체의 역할이 강조될 수 있는 가능

성의 조짐이 보인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부분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적 기업들은 소위 문화를 비

즈니스 모델로 확장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문화를 통해 대안적 어

소시에이션을 형성하려는 전망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2) 대안으로서 '자립'과 '조합'의 연대: 자립음악생산조합과 예술인 소셜 유니온

사회적 기업이 대안 경제 효과를 염두에 둔 것이라면, 문화자립 운동은 좀 더 독립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문화자립운동과 사회적 기업의 차이는 경제적 생존 방식의 차이에 있다. 사회적 기업

이 국가의 공공성에 부분 의존하여 자신의 활동을 펼친다면, 문화자립운동은 자신들의 독립 활

동의 연합을 통해서 자립 생존을 기획한다. 그 차이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생적 자립과 공공적

지원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문화자립운동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자립음악생산자조합이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은 홍대 인디

음악의 변질된 독립정신을 비판하면서 독립, 인디라는 언어 대신에 자립이라는 말을 선택하였

다. 이때 자립의 의미는 경제적 자립을 의미한다. 어떤 점에서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사회적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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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조하는 대안적 경제활동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자립을 위한 조합의 형태는 경제적 활

동에서의 생산과 분배의 공동 운명책임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하는 경제적 활

동의 방식과 태도는 사회적 기업에 비해 훨씬 자생적이고 자율적이다. 그들의 이러한 자생적인

태도는 그들이 생산하는 음악 스타일에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자립음악생산조합에 속해 있는

회기동 단편선, 무키무키만만수, 밤섬해적단, 아마추어 증폭기 등은 인디음악 신에서도 가장 날

것 그대로의 음악적 퍼포먼스를 추구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자립과 조합의 의미는 경제적 자립

과 협동조합의 의미를 급진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음악가들의 연대와 연합으로 스스로 자신들의 음악 창작

활동과 환경을 만들어가고자 한다. 자립 음악가들의 조합은 자신들의 음악적

자립을 위한 생산자조합으로 출발하지만, 그들만의 이해관계만을 대변하지 않

는다. "경쟁이 아닌 상생으로, 분열이 아닌 연대로, 의존이 아닌 자립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이들은 지역, 생활, 민중의 가치를 지향한다. 자립음악 생산자로서

이들이 추구하는 실천은 1) 기본권으로서 음악권(음악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기본권이라는 발상에서, 자유로운 음악권을 침해하는 모든 압력에서 해방), 2)

음악가들의 노동권(음악가가 고용되었을 때 정당한 처우를 받을 권리를 뜻하

며, 조합 주최 공연 시 공연자에게 1인당 최저 1만원씩 급여를 지급), 3)조합

원들의 생활권(조합은 조합원들의 생활권을 지원하기 위함과 동시에 열정의

착취구조를 지양하기 위해 모든 수익금의 1/3을 인건비로 지출)을 추구한

다.99)

그러나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이러한 자립정신이 정형화된 홍대 인디음악의 새로운 대안활동으로

자리매김 될 지는 미지수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원하는 음악적, 경제적 '자립'의 자립이 온전

하게 성취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사회적 기업의 형태로 있는 문화예술 창작집단과 현재 준비 중

인 '예술인 소셜 유니온' 사이에서 그들의 위치가 어떻게 자리매김 될 지 의문이다. 또한 2012

년 협동조합기본법의 개정으로 설립조건이 대폭 완화된 상황에서 자립음악생산조합이 '자립'과 '

조합'이라는 이 두 개념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도 궁금하다. 협동조합기본법 개정은 협동조

합의 설립 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조합구성의 자발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계기를 마련하였는

데, 조합 설립을 위한 구성원과 재원 마련에서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립음악생산조

합은 이번 개정안이 공식적인 협동조합 구성에 유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협동조합의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여 자립의 진용을 잘 갖추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이번 개정된 협동조합 제도를 잘 활용한다면, 자립음악생산조합의 가장 취약한 점이라 할

수 있는 소비자 연합으로 확장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자립음악생산조합 구성원들

은 협동조합으로의 제도적 편입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지만, '생산의 자립'

과 '소비의 연합'의 상호작용을 위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지점이 아닐까 싶다. 자립음악생산조합

에서 '자립'이 인디음악 신에서 오래 동안 사용했던 독립의 낡고 변질된 용어를 대체하기 위해

99) 이동연, 「진정한 독립을 꿈꾸는 문화 어소시에이션, 자립음악생산조합」, 인천문화재단기관지, 2012.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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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한 것이라면, 경제적, 음악적 자립을 위한 생산자 연합의 대안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조합'의 언어가 어소시에이션으로서의 협동조합을 기획하는 것이라면, 소비자 연합과의 생태적

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자생적 생산자 연합과 생태적인 소비자 연합의 상호작용이야말로

자립음악생산조합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자립음악생산자조합과 같은 자생적인 음악 생산자들의 연합과는 다른 맥락에서 최근 '예술인 소

셜 유니온 준비위원회'의 흐름들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홍대 주변 공간의 막 개발에 저항했

던 두리반 투쟁이 계기가 되어 결성된 자립음악생산자조합이 홍대 인디음악의 비판적 진화의

한 흐름이라면, 예술인 소셜유니온 운동은 역사적 문화운동의 궤적의 현재적 진화의 한 양상이

다. 물론 예술인 소셜유니온 운동이 기존의 수목적 문화운동 조직들이나 '임투'를 기반으로 하는

노동조합운동의 계보를 분명 비판하면서 나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예술인 소셜유니온 운동은

자립음악생산조합이 비해서 상대적으로 역사적 문화운동과 노동운동의 궤적에 가깝다. 그것은

어쨌든 현재 존재하고 있는 문화적 어소시에이션 운동 중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진보적인 문화

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예술인 소셜유니온이 아직 결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객관적인 자료

를 바탕으로 운동의 목표와 조직 성격, 활동방향과 내용을 분석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들을 정리하면 예술가의 당사자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예술가 당사자 운동이란 관점에서 기존 문화운동을 리뷰하면 예술가의 생존권을 위한 운동이

역사적 문화운동의 실천 지형에서 전면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먼저 언급할 수 있다. 예

술가 생존권의 문제는 각자 알아서 해결할 문제로 보거나, 현실 노동운동 조합이 해결할 문제로

간주했다. 두 경우 모두 예술가의 생존권 운동에 있어서 당사자 운동을 배제했다. 생계-생활과

직결되는 예술가들의 생존을 개인의 문제로 간주하는 것은 문화운동에서 당사자 운동을 삭제하

는 것이나 다름없고, 반대로 노동조합 운동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도 민주노총 산하 문화예

술 분야의 노동조합에 포함되지 않은 다수의 예술가들의 당사자 운동을 배제하는 것이다.

물론 예술가 생존의 문제를 문화운동의 이슈로 부각시킨 제3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문화와 예술의 시장화가 가속화되면서 생산-소비-유통의 독점화 현상이 심해졌

고 그로 인해 기초예술의 위기 담론이 등장하여 이른바 예술가 생존의 문제를 국가 문화정책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특히 인디밴드 출신의 이진원씨와 최고은씨

가 생계고에 시달리다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한 사건이 있고 난 후에 예술인 생존권의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이 두 사람의 사망으로 세상에 알려진 예술인들의 생존 문제는 영화,

방송, 대중음악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기층노동인력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다

수의 예술가들에게 절실하다. 그러나 예술가들의 생존권에 대한 당사자 투쟁은 역사적 문화운동

의 전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사실이고, 최근에서야 비로소 그 심각함이 직시되면서

예술가들의 당사자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당사자 운동 역시 두 작가의 사망에 따른 사

회적 봉합을 위한 국가의 예술인 복지정책 안으로 수렴되기에 이르렀다. 2011년 11월에 제정된

이른바 '예술인복지법'이 그간 예술인 생존권 문제가 여론화되면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내용

을 들여다보면, 한심하기가 그지없다. 예술가 생존권을 위한 기본 권리 조항도 삭제된 채, 예술

인복지법은 다만 예술인복지재단의 설립 근거를 마련하는 법으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그 한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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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필자가 판단하기에 현행 예술인복지법의 수준은 현행 '문화예술진흥법'과 '근로

복지법'의 기계적인 결합을 형식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쉽게 설명하면

'예술'과 '노동'의 특수성에 대한 상호인식에 대한 충분한 생각보다는 예술을

노동으로, 노동을 예술로 단순하게 대입하려는 생각에 머물러있다는 점이다.

예술인복지법의 기본 철학이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돈을 더 많이 주는 것에 있

을까? 불쌍한 예술가들에게 생활하는 데 최소한의 재정 지원을 해주어 예술

활동에 불편함을 덜어주는 데 있을까? 사실 이것만이라도 제대로 보장된다면,

예술인복지법의 제정 목적은 충분히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의

조문만으로 보면 그러한 목적이 달성될 수 있는 여지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

다. 더욱이 예술인복지법은 예술에서 노동의 가치와, 노동에서의 예술의 가치

를 동시에 고려하여 예술가들에게 복지의 기본 토대가 되는 예술가로서의 자

존감을 법의 가치로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100)

당사자 운동으로서 예술인 소셜유니온 운동은 예술가의 생존권과 복지권을 주요한 실천 과제로

제시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런 점에서 예술인복지법에 대한 비판적 개입은 불가피하다. 예술인

소셜유니온 운동은 우선적으로 현행 예술인복지법 개정에 대한 제도적 투쟁을 전개하면서 동시

에 예술인복지법의 범위와 한계를 넘어서는 자기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예술인

유니온은 예술인복지법 개정을 위한 제도적 개입과 함께, 단체 임금협상과 정리해고 저지투쟁

중심의 노동조합 운동을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인 생존권 운동, 사회적 기업의 문화적 확

산과 협동조합기본법 개정에 따른 예술가들의 안정된 활동기회의 폐해들을 넘어서는 기획들이

당면한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예술인 소셜유니온이 예술인 생존권을 위해 문화복지 담론, 협동

조합 담론, 사회적 기업 담론을 넘어서야 하는 역설과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다

시 예술가 생존은 알아서 해결하자는 식의 원론적인 선명성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면, 예술

인 복지 담론과 관련하여 복합적이고 전략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이래의 인용문은 그러한 고민

을 반영한 것이다.

미조직 개인들과 기존 조직들이 수평결합하며 상호포괄 하는 동맹(내지 동맹

적 노동조합)의 형태로 허브의 역할을 하고자 한 ‘예술인소셜유니온’은 공론장

을 통하여 공유지를 만들어내야 한다. 개별 이익단체화 한 일부 조직의 한계

를 극복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작게는 업계 관행과 관성적 관념의 개선, 구체

적 사안의 의제화, 사각지대 문제의 해결과 문화정책 제안을 시도하고, 크게

는 시장·사업자 중심의 정책기조와 산업구조를 노동·예술인 중심으로 재편할

것을 요구하고자 했다. 또한 앞서 예술인들의 죽음에서 배웠듯이 보편적 인민

복지, 특수한 예술인복지, 구체적 예술정책이 사회·문화 생태계에 모두 필요하

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면서 각각의 보편성과 특수성 그리고 구체성을 이해하고

100) 이동연, 「예술과 노동 사이: '예술인복지법'을 넘어선 예술인 복지」, <시민과 세계> 2013년 봄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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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하는 장을 마련해나가고 있다. 실질적인 문제해결력을 위하여 실태조사와

노동상담을 위한 법률지원 서비스 체계도 장기적으로 구상하고 있다. 아울러

문화예술의 공공성 확보를 통해 문화예술정책 전반의 관점 변화, 문화예술 교

육시스템에 대한 적극 개입, 거대기업의 문화산업 독식에 대한 대응, 해외 사

례 연구와 발표에 의한 의식구조 개선 등이 제안되고 있다. 공동의 문제 제기

와 사회연대의 모색, 특히 독립예술에 대한 지원체계에 관한 고민은 합의점에

다다랐다. 물론 최종 목표는 예술인의 노동·생존권을 제기하는 당사자 연대를

통하여 예술인의 권리를 증진하고 예술 환경을 본질적이고 진보적으로 개선하

는 것이다.101)

3) 생활-생태적 어소시에이션: 문화귀촌과 메이커 커뮤니티 운동

신자유주의 체제의 무한 경쟁과 문화자본의 독점화, 그리고 이명박 정부 하에서 생활세계에서의

문화적 억압의 가중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대안문화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대안문화는 역으로

생각해 보면, 무한 경쟁으로부터의 탈주, 독점적인 문화자본이 생산하는 소비패턴으로부터의 해

방, 그리고 자율적인 문화 생활세계의 발견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대안문화의 상상은 어떤

거대한 문화운동 조직을 새로 만들고 사회적인 이슈를 위해 정치적 폭로 행위를 수행하는 것보

다는 자신들의 생활세계에서 비자본주의적, 비경쟁적 삶을 사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

다. 이러한 생활세계 중심의 대안문화를 생활-생태적 어소시에이션으로 부르고자 하며, 그 대표

적인 사례로 문화귀촌 운동과 메이커 커뮤니티 운동을 언급하고자 한다.

문화귀촌운동은 대안사회 운동의 하나인 귀농운동의 문화적 버전이라 할 수 있지만, 단순히 예

술가들의 귀농이나, 귀농 인구들의 문화적 생활로의 업그레이드 운동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물론 예술가들의 귀농과 귀농인구들의 문화활동 활성화가 문화귀촌운동의 구성 요소인 것은 사

실이지만, 예술가의 생활 세계 공간의 확장으로서 귀촌의 의미를 간파하는 것이 더 중요한 목표

이다. 이 문제를 충분하게 사고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비도시적 삶의 생태적 전환을 위해 귀촌

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와, 귀촌의 행위가 귀촌이란 공간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구체

적인 경로를 밝히는 것이다. 전자의 질문이 귀촌이 문화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라면, 후자의

질문은 문화가 귀촌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이다. 이 말을 다른 방식으로 질문하자면 예술가의

대안적 삶에서 귀촌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그러한 대안적 삶을 선택한 예술가로 인하

여 비도시적 삶의 공동체가 어떤 문화적 전환을 이루는가이다. 현재 문화귀촌 운동의 담론은 전

자의 문제의식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문화연대가 말하는 문화귀촌은 창의적 삶으로의 새로운 이행이다. 사회에 대

한 문제의식, 현재의 소비 중심의 체제 의해 살지 않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와

101) 나도원,「공동체를 위한 당사자 운동- ‘예술인소셜유니온’의 과정과 전망」,『문화과학』, 73호, 2013년 봄호, 참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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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으로 지역을 사고하고 자신의 삶의 기반을 바꾸는 선택으로서의 생태적

문화 귀촌을 강조한다. 자립은 커뮤니티와 연대를 통해 더 풍성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듯이 문화귀촌 또한 준비하는 개인들이 실패하지 않도록 이를 지원

할 수 있는 문화적 접근과 과정의 디자인이 필요하다. 따라서 다른 방식의 귀

농 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문화귀촌이라는 담론과 방법론은 중요한 방향

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102)

문화귀촌 운동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예술가의 생활 세계의 이동을 위한 것이라면, 메이커 커뮤

니티 운동은 도시 생활 세계 안에서 일에서 놀이로 자신의 일상을 재조직하는 것이다. 비도시적

삶의 생활공간이 전자의 중요한 키워드라면, 비자본주의적 취미 공동체가 후자의 중요한 키워드

이다. 그러나 두 흐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생태적인 삶에 대한 대안을 상상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메이커 커뮤니티 운동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구별된다. 하나는 생

태적 재생활동을 통해 비자본주의적 삶을 중시하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들의 일상문화를

공작활동을 통해 활성화하는 취미공동체의 유형이다. 물론 이 두 가지 유형이 결합된 경우가 대

부분이지만, 메이커 커뮤니티 집단의 성격에 따라 강조하는 지점이 서로 다르다. 문제는 메이커

커뮤니티 운동이 생태적 생활 공동체의 의식을 실현하는 자급자족의 원리와 일상생활의 취미

생활을 활성화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원리를 어떻게 연계할 것이가에 있다.

메이커 문화의 가능성은 현재의 소비주의를 벗어나 자립문화를 활성화하는 것과

관련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생산의 개인화가 어떤 방향으로 우리의 삶을 자

극할지 아직 예측 할 순 없지만, 제작은 자립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술을 습득함

과 동시에 행동하게 만들고 그런 행위는 일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잠재적 힘

이다. 따라서 제작은 결과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경험 자체가 중요하다. 제작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생산 이전에 기존의 있는 사물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행위 -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변형하는 과정-이다. 이는 익숙한 시스템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관계를 확장시키며 삶의 능동적 주체를

형성하게 한다. 또한 제작은 일상의 재구성과 함께 일상의 정치성을 회복한다.

제작 행위를 통해 사회의 자원 순환의 문제, 기술의 문제, 노동의 문제를 읽을

수 있다. 모든 사물, 제작물에는 다양한 이력이 있고 그 이력은 나와 사회와 관

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103)

문화귀촌 운동과 메이커 커뮤니티 운동은 문화적 비용을 과도하게 지출하고, 정형화된 문화소비

패턴을 따를 수밖에 없는 문화 독점의 시대에 개인들, 혹은 소수집단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문

화 운동의 한 형태인 것은 분명하다. 신자유주의 문화독점의 시대에 예술가들, 혹은 대중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할까? 이러한 질문에 문화귀촌은 예술가 당사자 운동의 개인화 경

향을, 메이커 커뮤니티 문화는 소비자 당사자 운동의 소수집단화의 경향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102) 송수연, 「새로운 문화정치의 장-자립문화운동: 문화귀촌, 청년의 소셜네트워크, 메이커 문화를 중심으로」『문

화과학』73호, 2013년 봄호 참고. 103) 송수연, 위의 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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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국가(수탈/분배) 네이션(국민)사회적 기업 ● ◐ ◐자립음악생산조합 ◐ ◐ ◐예술인 유니온 ◐ ○ ○문화귀촌 ○ ◐ ◐메이커 커뮤니티 ◐ ○ ○

다. 최근 문화운동의 경향이 문화행동, 예술인 소셜유니온, 창작과 기획 집단의 사회적 기업으로

의 전환과 같이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와 예술의 사회적 성격을 재구성하려는 점을 강조하

는 것과 다르게, 문화귀촌과 메이커 커뮤니티 문화처럼 개인화, 소수집단화하는 경향이 두드러

진다. 특히 후자의 경우가 사회운동에 결합하는 문화운동, 문화행동의 집단적 개입의 태도에서

벗어나 비정치적, 복고적, 개인취향적인 소수집단이 등장하여, 문화 자본의 감정노동에 대항하는

대안적 감정을 형성하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개인화, 소수집단화의 경향을 현실 문화운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이 운동의 흐름들이 생활-생태적 어소시에이션을 기획한다는 점에서 앞서 설명한 사회적 기업,

문화협동조합, 자립음악생산조합, 예술인 소셜유니온의 사례와 더불어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

운동을 구성하는 실천적 자원으로 간주할 수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문화적 어소시에이션의 사

례들은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으로 이행하는 데 있어 과도기적인 징후들이자, 부분적 한

계를 안고 있는 흐름들이다. 앞서 열거한 문화 어소시이이션의 사례들은 가라티니 고진이 언급

한 자본-국가-네이션의 연합 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부분적인 한계를 가진다.

[표 2] 자본-국가-네이션의 관점에서 본 문화협동 최근 사례들의 위치((강함 ●, 중간 ◐, 약함 ○)

예컨대 자립음악생산조합, 예술가 유니온, 문화귀촌은 문화기획자, 예술생산자들의 새로운 어소

시에이션을 강조하지만, 소비자 연합으로 확장하는 구체적인 실천경로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로 사회적 기업과 메이커 커뮤니티 문화는 소비자-대중의 어소시에이션의 대안을 제시하지

만 예술가 연합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문화적 어소시에이션의 새로운 흐름들의 장단점을 파악

하여 문화 예술 생산자와 소비자-수용자가 서로 연합할 수 있는 새로운 문화운동은 새로운 어

소시에이션 운동으로 이행하는 데 있어 진일보한 실천 사례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생산자-

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4. 문화자본의 독점화와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의 조건들

앞서 설명한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적 기업의 확산, 협동조합법의 개정, 예술인복지법의 제정 등

예술가가 처한 문화환경이 변화하면서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문화적 어소시에이션 운동이 주목받

고 있다. 특히 독립 예술가와 비주류 문화산업에 종사하는 기획자, 창작자들이 최근 달라진 문

화환경에 대응하는 실천방식을 놓고 고민하는 사례들이 늘어났는데, 대부분 주어진 제도와 공공

자원을 활용하여 지속가능한 대안적인 삶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대안적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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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은 예술가가 무엇을 할 것인가의 질문과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생존권에 대한 자

기 질문을 본격적으로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예술가들, 혹은 문화 창작자들의 자립, 자생을 위한 고민들은 달라진 법적, 제도적 환경 때문만

은 아니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문화시장, 문화자본, 혹은 문화산업의 독점 강화 탓이다. 대안

적인 삶을 원하는 예술가들에게 문화의 독점 강화는 창작의 종다양성과 유통의 다원화를 위축

시키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창작-유통의 체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산업의 독점화

경향은 갈수록 심각한 상황이다. 영화산업의 경우 2011년 말 전국 1,974개의 스크린 수 중 멀

티플렉스는 1,844개를 차지해 전체 상영관의 93.4%를 점유하고 있다. 관객 수로 보아도 멀티플

렉스에서 영화를 본 관객 수는 전체 관객 중에서 98.1% 차지한다. 대규모 제작비를 들여 만든

작품들은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 현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스크린 수를 확보해야 하

고, 거액을 돈을 들여 영화 홍보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영화자본의 독점을 위해 산업의 중간

고리에 해당되는 영화배급자본이 영화제작사업과 극장상영업을 동시에 소유하는 이른바 수직계

열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들이 시제이(CJ)와 롯데이다. 이 두 기업은 탄탄한

자금 지원으로 현재 한국 영화산업의 배급과 상영 업을 양분하고 있다. 특히 방송, 영상 분야에

서 독보적인 독점적인 지위를 보유하고 있는 CJ는 사실상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영화산업의 독

점적 수직계열화를 완성했고, 방송, 케이블, 게임 등 추가 문화콘텐츠 산업 분야에서도 비교 우

위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표 3] CJㆍ롯데 기업집단의 한국영화 시장지배 현황104)

구분 CJ 롯데 기타 합계

배급시장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67.5%41.2% 26.3%

상영시장CJ CGV

프리머스 시네마롯데시네마 메가박스

86.6%

42.2% 25.3% 19.1%

케이블 TVCJ E&M

100.0%100.0%

104) 최현용,「한국영화산업 독과점의 실태와 문제점」, “외화내빈, 설자리를 잃어가는 영화창작자” 한국영화를 사랑

하는 의원모임 주최 국회 토론회(2012.7.9.) 자료집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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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기획사 매출액(2012년, 억원) 주식가치(2013년 2월 초)

SM 엔터테인먼트 1702억7,762억

(이수만 지분 21.50%)

YG엔터테인먼트 1,054억6,471억

(양현석 외 2인 지분, 42%)

JYP엔터테인먼트 400억(추정)1,211억

(박진영외 3인 지분 15,94%)

[그림 1] CJ그룹의 계열사 현황105)

케이팝의 글로벌 열풍을 몰고 온 메이저 연예제작사의 시장 독점도 심각한 수준이다. SM, YG,

JYP의 연간 매출액과 상장된 주식 가치들의 합은 다른 수백 개의 연예기획사의 그것보다 많다.

이들 3대 기획사가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독점력도 막강하여, 소속 기획사 출신 연예인들이

방송출연 빈도와 맨 파워는 방송제작 지속 여부를 가늠할 정도로 커다란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3대 메이저 연예기획사가 제작하는 음악 콘텐츠가 대부분 아이돌 그룹 중심의

케이팝이어서 아이돌 그룹 중심으로 재편된 유행형식의 판도를 너무 오래 동안 지속하게 만든

다. 일례로 2012년 9월 30일부터 10월 21일까지 4주간 SBS의 대중음악 프로그램인 <SBS 인기

가요>의 출연진들을 조사해 본 결과 아이돌 그룹으로 분류될 수 있는 팀들은 총 74팀 중 64팀

이 될 정도이다.

[표 4] 3대 연예기획사 매출액과 주식가치 현황

한국의 문화콘텐츠 산업 중에서 가장 높은 자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게임산업 역시 최근 넥

105) 최현용, 위의 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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슨의 엔시소프트 인수로 1인 지배체제로 바뀌었다. 4-5개의 메이저 기업들이 차별화된 게임 장

르를 특화시켜 경쟁하던 상황에서 넥슨이 엔씨 소프트를 인수하고, 국내외 주요 모바일 게임 유

통시장을 인수․합병하면서 제작-퍼블리싱을 통합하는 독점 체제로 변화하고 있다. 2012년 기준

으로 넥슨의 연매출액은 1조 5,275억 원으로 2위권에 해당되는 엔씨소프트의 7535억 원과 네

오위즈의 6751억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넥슨은 탄탄한 자본력으로 지속적으로 게임 퍼블리

싱 영역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어 매출 독점력은 갈수록 확대될 것이다.

영화, 대중음악, 게임뿐 아니라 출판, 뮤지컬, 인터넷 서비스,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등 디지털

문화콘텐츠에서 문화자본의 독점은 개인들의 문화비용의 상승과 라이프스타일의 표준화를 야기

한다. 개인들의 일상문화는 이러한 독점적인 문화산업이 제공하는 콘텐츠 소비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문화적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일상문화를 즐길 수 있는 기회는 갈수록 줄어들기 때문에

대안적인 생산자-소비자 연합의 문화적 어소시에이션을 실현하는 것도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

러나 문화산업의 독점화와 라이프스타일의 표준화가 대안적 생활세계 형성을 어렵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보다 더 심각해 진 자본의 독점화 현상을 거부하고 대안적 문화를 만들려는 생

산자 연합의 흐름들은 지난 몇 년 사이에 강화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자립음악생산조합 외에

1990년대 후반부터 대안적 독립음악 생산의 거점 역할을 했던 홍대 인디음악 신은 독점적인 음

악 제작방식과 관료화된 음악저작권 시장에 반기를 들고 독립음악제작의 연합을 선언했다. 영화

산업의 경우 연간 수입 1100만원에 불과한 영화제작 분야 기층 노동자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

한 전국영화산업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예술창작들 역시 앞

서 언급했듯이 예술인 소셜 유니온 결성을 준비하는 등 문화예술계의 생산자 연합 운동은 다양

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산자 연합 운동은 대안적 문화 어소시에이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문

화 환경의 토대 구축에 있어 소비자 연합으로 이행하는 경로들을 충분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생산자 연합의 당사자 운동은 대안적인 문화 어소시에이션 운동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소비자 연합의 형성 없는 생산자 연합 운동은 절반의 어소시에이션 운동에

불과하다. 소비자 연합에 대한 구상 없이 유통과 소비의 과정을 문화자원의 공공성에만 의존할

경우 지속가능한 대안시장을 형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문화 어소시에이션 운동에서 소비자 연합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아직까지 본

격적으로 논의된 바는 없지만 어소시에이션에 관심을 가진 생산자들과 문화운동 그룹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현재 활성화되고 있는 문화예술

분야의 사회적 기업의 확대를 통해서 소비자 연합을 형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생산

자 연합의 창작 콘텐츠가 좋으면 소비자 연합도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하기

도 한다. 일부에서는 현재 문화자본의 독점화에 제동을 걸지 않는 한 대안적인 소비자 연합을

형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비관적 입장을 드러내기도 한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언급한 일

리 있는 말이지만,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 사회적 기업의 활성화를 위한 소

비자 연합은 지속가능한 연대를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소비자 연합을 구성할 수 없고, 생산자 연

합의 능력을 강조하는 것도 유통의 확대에 대한 고민 없이는 궁극적인 한계를 갖는다. 소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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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의 구성 불가능성을 언급하는 것도 생산자-소비자의 경계구분이 사라지고, 획일화된 문화

콘텐츠 소비를 거부하고 대안적인 문화 취향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등장의 새로운 흐름들을 지

나치게 간과한다.

결국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이 많은 한계와 난관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 중인 다양한

문화 어소시에이션 운동을 한 단계 진일보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는 점은 분명한 듯하다. 주지하

듯이 '두레', '한살림' 등 이미 오래전부터 먹거리 분야의 생활협동조합이 생산자-소비자 연합의

성공적인 사례로 등장했고, 최근 의료-주택 분야의 생활협동조합의 경우에는 생산자-소비자 연

합의 경계를 허무는 통합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욕구와 욕망을 동시에 실현해야 하는 문화 분

야에서의 어소시에이션은 이들 협동조합운동의 예보다는 훨씬 복잡한 조건과 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더불어 영향력은 커졌지만 상당부분 시장경제 안으로 흡수된 생활협동조합의 전례를 그대

로 밟을 수는 없는 어떤 새로운 운동의 관점과 실천경로들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마지

막으로 대안적 문화어소시에이션 구성을 위해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의 실천 경로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5.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의 실천 경로들

2000년대 들어 문화운동의 지난 궤적들은 주로 국가의 문화정책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고, 문화

산업의 독점화를 반대하고, 조직을 강화하고 조직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캠페인 운동

에 집중했지만, 정작 문화의 생산자의 다른 편에 서 있는 문화 소비자들을 위한 운동을 적극적

으로 전개하지 못했다. 문화소비자 운동은 문화산업의 독점 반대운동으로 대체되었고, 시민들을

위한 일상문화의 활성화 운동은 시민들을 문화운동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형식적 절차에 머물렀

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문화소비자인 대중들이 얼마나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가에 대한 생

산자 연합의 충분한 고민들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은 이념적, 이론

적, 거시적 문화운동의 한계와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대안운동으로 제시될 수 있다. 그렇다면 생

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제안을 구체적으로 말하기 위해 생산

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의 기본 방향,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의 주요 내용, 생산자-소

비자 연합 문화운동의 실천을 위한 로드맵 구상으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

1)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의 기본 방향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의 가장 핵심적인 기본방향은 대안적인 문화생산을 원하는 생산자

연합과 대안적인 문화소비를 원하는 소비자 연합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에 있다. 그렇다면

먼저 대안적인 문화생산자 그룹들에는 어떤 사례들이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홍대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이다. 홍대 인디 음악은 음악산업의 독점화 추세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환

경 속에서도 여전히 자생적인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매일, 매주 홍대 클럽에 가면 인디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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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고, 어느 정도 기량을 검증받은 그룹의 경우는 음반제작을 하고 일부 밴

드들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다. 홍대 인디 음악 생태계는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첫 번

째 유형은 '크라잉넛', '노브레인', '언니네이발관'과 같이 홍대 인디밴드 1세대들로서 대중적인 인

기를 누리고 있는 그룹들이다. 사실상 이들 밴드들은 인디음악의 장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 번째 유형은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너마저', '국카스텐', '10cm' 등 최근 음악성을 인정받

으면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그룹들이다. 이 두 유형은 인디음악 신과 주류 음악 신을

넘나드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세 번째 유형은 1-2장의 정규앨범이나 EP(Extended Play) 앨

범을 내고 홍대 인디 신에서는 유명하지만, 대중적인 인지도가 위의 두 유형에 비해 높지 않은

밴드들로 최근에 활동하는 '9와 숫자들', '아폴로19', '전기뱀장어' 같은 밴드이다. 마지막 네 번째

유형은 홍대 인디클럽에서 정기적인 공연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높여나가는 무명의 밴드들로서

현재 홍대 인디음악 신에서는 가장 많은 생태계 수를 형성하고 있다.

독립영화의 경우는 인디음악보다 대중들에게 소개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적다. 기본적으로 독

립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한데다, 상업적인 영화가 대중들의 문화소비를 철저하게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립영화들이 대중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가장 큰 장소는 각종 영화제

에서이다. 유통 배급 상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매년 독립 영화들의 제작 편수를 상업적인 영

화제작 편수보다 월등하게 앞서 있고 다루는 소재들도 다양하지만, 독립영화 관객 수를 환산하

기가 어려울 정도로 철저하게 관객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 이밖에 문학 출판 부분에서는 전통적

인 출판사 권력과 근대적 등단제도를 뛰어넘을 만한 새로운 흐름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런 사

정은 게임 콘텐츠 분야에서도 두드러져 상업적으로 성공한 모바일 게임콘텐츠들을 독립적인 콘

텐츠로 볼 수 없다면, 인디게임이 게임마니아들에게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경우는 극히 미약하

다. 웹툰의 경우에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유통 서비스로 인해 독립적인 창작물들이 네티즌들

에게 비교적 다양하게 소개되어 상대적으로 독자적인 소비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시각문화예술 분야에서 독립적인 창작자들의 창작활동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독립적인

전시회 이외에 대중들과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는 시각분야의 독립

예술가들이 대부분 대안공간에서 활동하거나 서울시가 제공하는 아트팩토리 상주 작가로 활동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이들은 창작의 시간을 비교적 여유롭게 가지는 장점이 있지

만, 실제 창작물을 가지고 관객들과 대면하는 기회를 충분하게 마련하지 못한다. 오히려 독립적

인 시각 예술가들은 창작자로서 관객 대중과 만나는 방식보다는 사회운동의 현장에서 문화행동

가로 대중들과 만나는 기회가 늘어난 점이 특이하다. 이 과정에서 작가들의 창작능력이 문화행

동의 현장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문제는 투쟁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행사 이외에 이러한 창작의 잠재성을 실제 생산자-소비자를 연결하는 대안적 시장으로 연계하

는 플래폼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시각문화예술가들의 작품들을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구

입할 수 있거나, 대중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공방제작에 대한 연계된 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

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문화 어소시에이션을 위한 생산자들의 창작 환경들이 열악한 상황 속에

서도 각각의 영역에서 소비자와 연합할 수 있는 콘텐츠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

는 독립적이고 대안적인 각 분야의 창작물들이 소비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 유통경로와 새로

운 흐름을 어떻게 생성할 것인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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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은 기존의 지역 화폐운동처럼 호혜적인 태도에 기초한 문화적 능

력들의 자발적 상호 교환과 잉여가치를 남기지 않는 부조 행동과는 다르게 대안적이고 독립적

인 시장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대안적인 문화시장은 생산자들의 막

대한 수익창출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교환행위에 기초한 것으로 소비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비주류 문화예술의 창작콘텐츠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점에서 대안적인 문화시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목표이지만, 좋은 창작콘텐츠들을 대중들

에게 유통시키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목표이다.

물론 생산자 연합이 자신들의 창작콘텐츠를 소비자에게 유통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

니다. 홍대 인디 음악 제작자들은 인디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라이브

데이'를 개최했고, 다양한 형태의 음악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다. '비트볼 뮤직', '파스텔 뮤직'

과 같은 인디음반을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레이블 역시 인디뮤지션들의 대중소통을 위해 드라마

와 영화 OST 프로모션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독립영화의 경우도 매년 개최되는 독립

예술제 뿐 아니라, 시네마테크, 영상미디어센터, 예술영화 전용 스크린을 통해서 관객과 만나려

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비주류 영역에서 활동하는 생산자들의 연합은 아직 충분하게 소

비자들에게 소개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생산자 연합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창

작콘텐츠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비주류 영역의 창작콘텐츠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아 대중적 취향과 어울리지 않고, 방송 미

디어의 문화자본의 독점 논리 때문인 탓이 크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대안적인 문화소비를 원하

는 다수의 대중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어떤 문화적 경향이나 흐름이 생성되지 못하기 때문

이다. 말하자면 서로 영역별로 분리된 생산자 연합의 연합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 생산의 흐름

을 이어갈 수 있는 소비자 연합의 형성이 필요하다. 인디음악, 독립영화, 대안미술공간, 대안공

연예술, 인디게임과 같은 대안적인 창작콘텐츠들을 소비자들에게 적절하게 제공해 줄 수 있도록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재-연합하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비자 연합은 생산자 연합에

비해 불안정하고 일관된 요구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특별한 문화적 취향을

보유한 소비자들의 연합이 생산자 연합의 연합과 만날 수 있는 문화적 계기와 호혜적 교환의

플랫폼이 마련된다면 적극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문화자본의 독점으로 소비자들의 문화적

선택회 기회가 줄어들고 그만큼 문화적 취향이 획일화된 면이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

른 문화적 소비활동, 다른 문화적 취향을 갖고 싶은 개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다양

한 개성을 가진 문화소비자들을 견인하려는 생산자 연합이 노력이 부족했다.

그런 점에서 생산자-소비자 연합의 문화운동의 기본 방향은 먼저 생산자 연합의 연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 단계로는 비주류 문화취향을 가진 소비자들의 연합을 생성할 수 있는

문화적 계기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생산자 연합의 연합과 소비자 연합을 연결할 수 있는 대안시

장의 플래폼을 구상하는 식으로 나가야 한다. 대안시장의 플래폼은 과거처럼 일시적인 페스티벌

이나 이벤트가 아닌 실제로 교환행위가 일상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새로운 장의 형성을 통해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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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의 주요 내용

새로운 대안시장의 형성은 문화생산자와 소비자를 상시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온라인 문화협동조

합과 같은 형태를 통해서 가능할 수 있다. 온라인 문화협동조합은 생산자 연합의 연합을 통해서

예술가들이 보유한 다양한 창작콘텐츠 정보들을 통합적으로 관리 유통시키는 대안시장의 공간

을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구상할 수 있다. 생산자들 역시 온라인 문화협동조합의

공급자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일정한 회비를 지불하고 생산자 연합이 제공하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구매할 수 있는 기회와 자격을 획득한다. 창작콘텐츠들의

소비는 모두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음반구매, 공연관람, 영화관람 등은 모

두 오프라인 시장을 통해서 거래된다. 그러나 문화협동조합의 형태를 유지하는 데 있어 온라인

방식이 중요한 것은 온라인 네트워크가 생산자연합과 소비자 연합을 일상적으로 연결시켜주는

플래폼으로 기능할 수 있고, 특히 소비자 연합의 잠재력을 확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비주류

창작콘텐츠들을 대규모로 통합 유통시킬 수 있는 온라인 문화협동조합의 운영프로세스는 다음

과 같다.

먼저 생산자 연합의 연합의 형성을 위한 제작자들의 공동 모임과 합의가 필요하다. 예컨대 독립

음악제작자협회, 서교음악자치회, 한국독립영화협회, 우리만화연대, 프린지페스티벌, 대안공간 그

룹들 간에 생산자 연합의 연합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며, 그 합의 과정에 따

라 각 영역별로 공급 가능한 창작콘텐츠들을 온라인에서 통합적으로 관리 유통시킬 수 있는 문

화협동조합을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다. 여기서 온라인 문화협동조합은 온라인 유통에 필요한 최

소한의 운영 경비만을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유통시장 자체가 이익을 남기는 것을

배제하는 것이 생산자 연합의 연합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고진이 언급한 소

비자들의 대안적 유통을 활성화할 수 있는 장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유통을 통한 화폐 이익의

경제는 배제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온라인 문화협동조합의 구축과 함께 이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담론적 실천

이 이루어져야 하며, 담론적 실천이 소비자 연합의 계기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소비자 연합은

자생적이고 자발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자신의 문화적 소비에 일정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

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온라인 문화협동조합에 가입을 원하는 소비자들은 일정한 연회비, 혹은

월 회비를 내면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형태의 독립적인 창작콘텐츠들을 할인하여 구매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된다. 구매 방식은 회원들의 회비가 구매 가격에 모두 합산되는 방식

보다는 회원들이 구매에 할인율 적용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이

구매를 사전에 결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회비, 혹은 월 회비는 구매를 위한 최소한의 비

용으로 처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연회비 10만원, 월 회비 1만원으로 듣고 싶은 음반이나

음원, 독립영화, 웹툰을 구매할 때, 일정한 구매 회수에 따라 할인율이 적용되고 나머지 금액을

구입 시에 결제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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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연합이 미리 지불하는 회비는 거꾸로 생산자 연합이 창작콘텐츠를 제작 할 때 제작 자

본으로 활용될 수 있다. 소비자 연합의 회비를 어떤 방식으로 생산자들에게 분배할 것인가하는

방식은 별도의 규정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소비자들의 회비는 생산자 연합의 콘텐츠 제작에 투

자 자본으로 활용될 수 있다. 가령 10만 명의 소비자들이 연 10만원의 회비를 내어 콘텐츠제작

의 투자비용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 생산자 연합은 100억에 해당되는 제작 자본을 미리 확보할

수 있다. 소비자 연합은 회비를 투자로 전환할 수 있으며 생산자 연합은 투자자본을 콘텐츠 생

산으로 전환하여 소비자들에게 다시 재판매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온라인 문화협동조합의 운

영에서 이익을 남기지 않는다면, 이익은 온전히 생산자 연합에게 돌아갈 수 있으며,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을 소비할 수 있다.

투자와 제작, 구매와 이익의 선순환 구조는 생산자 연합과 소비자 연합의 호혜적 관계를 통해서

만 가능하다. 따라서 이익의 배분과 소비의 분배는 결론적으로는 주류 문화자본의 독점에 대항

하는 대안시장을 창출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 교환행위에서만 그치지 않고 문화적, 상징

적 교환행위로 확산될 수 있다. 새로운 호혜적 문화시장을 만들려는 의지와 열정, 감정의 공유

가 대안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관건이며, 이를 통해서 생산자연합과 소비자연합의

생산-소비의 이분법의 경계가 허물어 질 것이다. 호혜적 교환행위를 통한 대안문화시장의 생성

은 생산자연합과 소비자 연합의 공동의 노력과 책임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고, 모두가 대

안 문화를 형성하는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산자 연합 문화운동임과 동시에 소

비자 연합 문화운동이기도 한다.

3)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의 실천을 위한 로드맵

비자본주의적 삶을 살아가기 위한 생활공동체의 역능이 먹거리, 주택, 의료와 같은 생활 필수

영역만이 아니라 문화의 영역에서도 가능할 수 있으려면, 이 문제의식을 대중적인 문화운동의

형태로 가지고 가야 할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생산자 연합과 소비자 연합의 연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환행위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대안적인 플래폼을 만드는 것이라면, 생산자-소비

자 연합의 문화운동의 성공의 열쇠는 창작자와 수용자를 연결시킬 수 있는 매개자 운동 주체들

의 역할이다. 서로의 다른 이해관계와 관심사를 가진 생산자 연합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근거

와 명분을 누가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은 문화활동가 당사자들이 해야 할 몫이다. 소비자 연합의

흐름을 만드는 주된 역할 역시 문화활동가들의 몫이다. 마지막으로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

동의 실천을 위한 경로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먼저 대안문화 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생산자 연합의 연합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이론

적 구성이 선행되어야 하고, 개별 문화예술 장르 단체들을 중심으로 이 문화운동의 목적과 내용

을 설명할 수 있는 내실 있는 제안서 구성이 필요하며, 함께 이 문제를 놓고 토론 할 수 있는

담론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서로 다른 창작콘텐츠들을 하나의 유통구조로 통합할 수 있는

연합의 연합, 즉 통합적 조직형태를 구상해야 한다. 나는 앞선 설명에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문화협동조합 형태를 제시한 바 있다. 물론 문화협동조합은 최근의 협동조합기본법의 개정,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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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인복지법의 개정, 사회적 기업의 확산이라는 중립적인 문화환경의 흐름을 진보적이고 독립적

인 관점으로 전환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통합적인 유통망을 구축하는 협동조합의 형태 없

이는 생산자-소비자 연합의 운동을 성공할 수 없다.

온라인 문화협동조합의 형태는 사실 궁극적으로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대안

문화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필요한 기능을 행사할 뿐이다.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

운동의 궁극적인 형태는 연합의 연합에서 다시 연합의 재분화로 나가야 한다. 각기 자율적인 문

화예술의 영역들이 더 많은 발전을 위해 자기 진보를 이루어야 하고 소비자들은 더 강력한 연

합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소비자 연합은 처음에는 호혜적 태도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능

동적, 적극적 태도로 바뀌어야 하고, 생산자 연합의 연합은 처음에는 대안 시장의 유통의 힘에

의존하다 나중에는 독자적인 제작과 유통의 능력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생산자-소비자 연합운동에 대한 제안은 앞으로 많은 논쟁지점을 안고 있고 분명한 입장과 자기

설정이 요구되기도 할 것이다. 문화예술 창작자들과의 많은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고 문화소비자

들에게 설득력 있는 제안을 위한 담론적, 제도적 실천을 해야 한다. 문화 어소시에이션 운동으

로서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의 아주 구체적인 실천경로들은 지면의 한계로 인해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구체적 실천경로는 담론적 이론적 논쟁과 함께 문화예술의 생산자들과 소비

자들의 연대를 위한 다양한 현장에서의 모임과 토론을 통해서 구체화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

한다. 생산자-소비자 연합의 새로운 문화운동을 위한 추가 논의들은 앞으로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