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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 비치를 추구하는 첨단 문학 교양지 2011 no. 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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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 비치를 추구하는 첨단 문학 교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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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기쁨이 있는 문학, 보는 기쁨이 있는 문학의 잔치

저 어려웠던 일제시대를 살다 간 이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의 유쾌한 웃음소리

를 기억해 내곤 했다. 그는 유쾌하다 못해 기괴하게 웃는 사람이었다. 이 웃음소리는

세상의 모든 고뇌, 고통을 한달음에 깨뜨려버리는 소리였다.

우리나라에서 문학이 침중한 표정을 띤 것이 오래되었다. 깊이 있는 문학은 엄숙하고

진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한 지 오래되었다. 소설은 인물, 사건, 배경이 33%씩 적

당하게 배분되어 있어야 하고, 시는 모르는 표현이 꼭 들어가 있어야 한다거나 매너

리즘에 빠진 줄글을 행갈이만 해놓으면 된다고 생각한 지 오래되었다.

『문학의 오늘』은 이 모든 생각의 인습을 벗어던지고, 침통해 하지 않는 문학, 읽는 기

쁨이 있는 문학, 아니 보는 기쁨이 있는 문학으로 나가야 하겠다. 『문학의 오늘』은

한 번 지금까지 문학 잡지가 존립해 온 방식과는 다른 방도를 취해 봐야겠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다짐해 본다.

첫째, 우리 책은 뉴스와 정보를 창조하는 잡지가 돼야겠다. 남의 소식을 받아쓰는 잡지가 아니라 남에게 먼저 주는 잡

지가 돼야겠다.

둘째, 우리 책은 보는 기쁨이 있는 잡지가 돼야겠다. 흰 종이 위에 검은 글씨만 내리 달리고 있는 잡지가 아니라 글도

보고 그림도 보고 사진도 보는 잡지가 돼야겠다.

셋째, 우리 책은 현대문화의 첨단 지대를 함께 살아가는 잡지가 돼야겠다. 철 지난 문화를 보수하는 사람들이 되지 말

고 맨 앞에 가는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아는 잡지가 돼야겠다.

넷째, 우리 책은 우리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 잡지가 돼야겠다. 원형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줄도 모르는 죄수처럼 되지

말고, 문학의 안과 밖을 다 보는 잡지가 돼야겠다.

다섯째, 그러고도 우리가 훌륭한 소설과 시를 이 책에서 볼 수 있고, 날카로운 비평적 시선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고,

살아 있는 사람들, 문학인들, 다른 예술인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면,

우리 책은 단 일 년을 살더라도 보람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도 이

책에서 누군가 웃음과 채색 속에 묻혀 있는 생각의 씨앗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우리

는 좋은 잔치를 벌였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주간 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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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오늘』이 드리는 약속, 하나

새로운 정보 발신지!

뉴스와 정보를 창조하는 잡지!

소식을 받기보다 주는 잡지!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 어디서 왔나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 ‘이수일과 심순애’

아, 사랑보다 돈이 좋았던 여자, 심순애는 이수일을 버리고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택했더니라. 과연 이 이야기는 누가 만든 것이었을까? 일제시대때 만들어진 것일까? 구한말 때 만들어진 것일까? 이도 저도 아니면, 저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것일까?

여기 ‘이수일과 심순애’가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연대표가 있다. 1890년, 미국의 『Weaker than a woman』 →1909년, 일본의 『금색야차(金色野 次)』 →그리고, 드디어 1913년,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 『장한몽』 탄생하다!

어린 시절부터 결혼을 약속해왔던 연인이 돈에 눈이 멀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이수일은 분에 이기지 못해 심순애의 허리를 힘껏 발로 지른다. 배경은 달이 환하게 뜬 평양 부벽루다. 이수일은 학생복을

떨쳐입고 심순애는 한복을 입었다는 설정은 50여 년의 시간 속에서도 굳게 지켜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장한몽』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연인의 배신을 책망하고 차갑게 돌아서는 이수일과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리는 심순애일 것이다. 단행본 표지는 물론 레코드 표지, 영화 포스터에서도 다양하게 변주하는 『장한몽』의 전매특허는 바로 이 장면이다.

이미 일본에서 공전의 인기를 모으며 히트했던 『금색야차』의 번안소설이다. (……)

『금

색야

차』의

주인공의 이름은 각각 하자마 간이치(이수일), 시기사와 미야(심순애), 도미야

마 다

다쓰

구(김

중배

).

이제 『금색야차』의 공공연한 비밀도 밝히도록 하자. 당대 일본 평단이 상당히 이색적인 소설이라 칭했던 『금색야차』 역시 번안소설이었다는 비밀을 말이다. 『장한몽』의 ‘오리지널’이라 생각되었던 『금색야차』의 ‘오리지널’도 존재했던 것이다. 『장한몽』에서 출발하여 『금색야차』를 거쳐 거슬러 올라간 그 끝에 있는

여기서 『장한몽』의 공공연한 비밀을 밝히도록 하자. 사실 조중환이 연재했던 『장한몽』은 그의 창작소설이 아니라

그런데 이수일이 학생복을 떨쳐입기는 했으되 심순애가 기모노를 입고 있는 이 장면은 대체 뭘까?

간이

치가

미야

의 허

리를 발로 차는 이 장면은 이수일이 심순애의 허리를 발로 차는 그 유명

한 장

면의

‘오

리지

널’이

다.

‘오리지널 오브 오리지널’은 영국 작가 샬롯 브레임이 발표했던 소설 『Weaker than a woman』이다. 이 소설의 발표년대는 확실히 확인할 수 없으나, 다만 1890년 경 먼로사(Munro社)가 출판했으리라 추정되는 시사이드 라이브러리(The Seaside Library)의 포켓북 에디션에 수록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자키 고요도 이 시사이드 라이브러리를 통해 버사 클레이의 소설을 접했으리라 추정되고 있다. (이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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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둘

보는 기쁨이 있는 잡지!

흰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다, 하는 잡지 말고

알록달록 보고 또 보고 싶은 잡지!

쾌활했던 조선의 툴루즈 로트렉, 구본웅!

이상의 벗이자 근대조선 예술인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그의 후손에게 듣는다.

이 글을 준비하는 동안 구본웅의 차남과 삼남인 상모·순모 형제 두 분을 만나 이상에 대한 기억과 산일되어 있던 구

본웅의 그림을 입수하게 된 경로 기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그림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에

게 두 가지 중요한 선물을 해 준 장본인이었다. 우선 차남은 구본웅 선생이 해방 이후 생활했던 집의 창고에서 둘둘 말

린 채 방치된 유화 한 뭉치를 우연히 발견했고, 그 그

림들 중 하나가 바로 나중에 이상의 초상화로 알려

진 〈우인상〉이었다. 삼남은 어떤가. 다방 제비의 인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다가, 1972년 현대

미술관에서 개최한 ‘근대미술 60년전’에 아버지의 그

림을 출품하기 위해 인수자를 찾아 설득 끝에 얻어

낸 그림이 〈인형이 있는 정물〉이었다. 두 그림 중 〈우

인상〉은 구본웅과 이상의 예술적 교감을 확인시켜주

는 증거로 자주 인용되어 왔다. 이에 못지않게 프랑

스 화집과 인형을 화폭에 담은 두 번째 그림 역시 구

본웅과 이상의 예술적 취향과 그들의 유희를 암시하

고 있어 유쾌하기까지 하다.

[우인상]

(전우형)

[인형이 있는 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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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에게는 다른 동물의 보호색 모양으로 호신상(護身上) 필요에 의하여 몸뚱어리에 여러 가지 모형을 그리고 온몸을

장식하였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오직 성적 충동을 위한 장식일 것이다. 그 어떤 것 하나가 그 색채에 있어서나 형상으

로 있어서나 도발적이 아닌 게 어디 있던가? 그런데 그것도 아닌 이 그림과 같이 여학생 기타 소위 신여성들의 장신운동

이 요사이 격렬하여졌나니, 항용 전차 안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다 황금팔뚝 시계…보석반지——

현대 여성은 이 두 가지가 구비치 못하면 무엇보담

도 수치인 것이다. 그리하여 제일 시위운동에 적당

한 곳은 전차 안이니, 이 그림 모양으로 큰 선전이 된

다. 현대 부모, 남편, 애인, 신사 제군, 그대들에게 보

석반지 금 팔뚝시계 하나를 살 돈이 없으면 그대들

은 딸, 아내, 스윗 하트를 둘 자격이 없고 그리고 악

수할 자격이 없노라. 현대 여성이여! 이집트 무덤에

서 파낸 모든 보물은 뒷날 이집트 민족의 생활의 유

물이었음에 그대들에게 감사하는 바로다. (안석주)

*포모걸이란? postmodern girl

저 1930년대가 모던걸, 모던보이의 시절이었다면 이제 우리들의 시대는 포모걸, 포모보이들의 시절이라고나 할까.

현대라는 말도, 모던이라는 말도 이미 낡아버린 고전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저 1930년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여성들의

자기 몸 꾸미기 운동은 이른바 명품열, 명품족으로 면면히 계승되고 있으나, 이 장신운동(裝身運動)의 대선수들께서

오늘날 특별히 애호하시게 된 종목이 있으니, 그것은 이름하여 하의실종 운동! 어찌하여 오늘날의 포모걸들은 아랫도리를

감추지 않다시피 다 드러내게 됐는가? 그 설은 분분하되, 첫째 저 2008년 9월의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미국발 세계

경기 불황이 몇몇 부분적 호전에도 불구하고 급전직하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유를 찾은 이들이 있다.

그것은 불경기일수록 여성들 노출이 많아진다는 속설에서 나온 설명일 텐데, 그러니 이것은 올해 초에 가인이니,

구하라니 하는 아이돌들이 아랫도리를 아예 안 입은 것처럼 하고 나와서 유행이 되었다기보다도, 그 진정한 기원은

혹시 저 강남의 나가는 아가씨들이 저마다 콜을 붙잡으려고 점점 더 짧은 하의를 선호하다 못해 아예 안 입은 듯

보이려 했던 그 동물적 생존 감각이 여성 선수들의 열띤 호응을 불러일으킨 데 있었던 것이 아닌지? 늘씬하고

날씬하고 롱다리에 아이돌 패션을 연상시키는 하의 실종 종목이 이 포모걸 사회를 뒤흔들어 놓으면서, 나가는

아가씨들은 물론, 이 홍대 입구 9번 출구를 드나드는 여대생, 오피스걸, 18세 가출녀, 돌싱녀, 어린애 같은

유부녀 같은 온갖 종류의 여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이 유행을 따라하게 되었겠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드러나는 맨 다리의 색채 감각은 금박으로 빛나는 황금시계나

긴 손가락 사이에서 반짝! 하고 빛나는 다이아몬드 같은 화사함과 도발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바 없지 않으니, 이에 어울리는 한 가지 소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갖가지 종류의 문양을 수놓은 스타킹과 레깅스들! 까맣든 희든 망사형이든

이제 하의실종 선수들이 즐겨 입는 스타킹과 레깅스에는 장미 문양이나 호피 문양의

장식 형태들이 가득 들어차 있으니, 하의실종으로 드러내어진 그 늘씬한 롱다리의

노출 욕구는 맨살의 감각만으로는 부족한 모양.

하지만 이 온갖 종류의 가두에서 팔고 있는 스타킹, 레깅스들의 가격은 대략 일만 원 이상을 결코 넘지 않으니,

이 파국적 포모 시대에는 자신의 몸뚱어리를 내걸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것 같은 가난한 여성들의 위기감이

가격의 경제학과 절묘한 타협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저 옛날 장신운동의 선구자들의 팔뚝시계와 보석반지가

오늘날 어느 집안의 재부를 이루고 있는지 알 수 없으되, 오늘날 이 하의실종, 호화 스타킹, 레깅스 착용 운동의

소모품들은 어느 미래에도 결코 재부를 구성치는 못할 것이러니, 과연 오늘날 포모걸들의 격렬한 이 운동은

누구의 감사함도 받지 못할, 그러면서도 이 여성들의 멋진 다리를 훔쳐보는 포모보이들의 관음증이나

감질 안 나게 충족시키는 불황의 경제학적 몸짓들이 아닐는지!

이 하급적 노출문화를 너나 할 것 없이 따라하다 못해 저 상류층의 여성들까지 이곳 홍대입구역 9번 출구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흉내 내는 것을 보면, 문화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만 아니고,

아래에서 위로도 흘러갈 수 있음을 눈에 보이는 사태 그대로 믿을 수 있지 않은가? (운형)

약속, 셋

현대문화의 첨단 지대를 함께 가는 잡지!

홍대, 압구정동, 삼청동, 대학로, 인사동……

이곳들의 공통점은?

첨단문학 교양지 『문학의오늘』이 있는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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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정진영은 자기 안에 심연이 있는 사람 같다. 그런데 그것을 쉬운 말로 표현

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혹시 비밀이 많은가? 결벽 증상이 있는가?

>> 어릴 때는 있었지만, 나이 들면서 없어졌다.

● 예전에 대학시절에 당신을 알았을 때 당신에게는 ‘나는 이 길을 간다’라는 분위

기가 있었다. 최근에 당신은 어느 면에서는 직업인 같다. 옛날의 포스는 어디로 갔

는가?

>> 오늘은 배우와 인터뷰어의 만남의 자리다. 사적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 내가 알기로 당신은 혼자 여행 다니기 좋아하고, 혼자 작업실에 쳐박혀 있기 좋

아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일 때문에 사람들을 만났다

돌아서서 자기 자리로 숨어 버리는 당신을 보면, 혹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

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드는데.

>> 옛날에는 술을 마셨는데, 지금은 술을 옛날만큼 마시지 않는다. 술 마시기보다

혼자 있기를 즐긴다. 배우니까 운동하고, 혼자 여행을 가거나 책을 읽는다. 취미

를 찾는데, 그림을 못 그리는 게 억울하다. 그림은 혼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취

미인데.

● 당신은 어딘가 큰 공허를 안고 사는 사람 같다. 이런 우리들의 대화 속에서 당신

은 또 뭔가 감추고 있는 것 같고 고독해 보인다.

>> 그냥 스타일의 문제다. 배우는 인간관계가 한시적이다. 내게는 일하는 것 자체

가 일종의 ‘여행’이다. 다른 사람들, 배우든, 스텝이든, 감독이든 3-4개월 매일 보

다가 일 끝나면 안 보게 되는 관계, 그래서 나는 내 일을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여행’ 갔다 와서 자기 삶의 공간 속으로 돌아오면 ‘여행’ 하면서 만난 사람들을

추억하며 지낼 분이다. 다른 데로 가야 하는, 안 가본 다른 데로 가고 싶은 게 여

행인 것처럼 내가 하는 일도 ‘여행’ 같아서 혼자 또 여행을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 직업은 어딘가 내 체질과도 잘 맞는다.

● 그럼 지금 당신은 ‘여행’에서 돌아와 작업실에 쳐박혀 있는데 혼자 무슨 일을 하

고 있는가?

>> 책을 읽는다. 요즘은 과학에 대한 책을 읽는다. 내 스스로 과학에 무지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시대는 과학 지식이 매우 중요한 교양이 될 것

이라 생각한다. 근거는 없지만. 요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있

는데, 읽다보니 자연과학적 지식은 정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냐하면 일단 앞에서 틀렸던 것을 인정하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 그럼 당신은 또 어떤 책을 읽는가?

>> 가장 좋아하는 책은 사실은 자서전 종류다. 모든 자서전을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체게바라가 좋다.

● 왜 자서전이 좋은가?

>> 내가 자서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진실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

이다. 자서전은 픽션이 아니라는 것,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점

이 매력이다. 그 속의 인물의 삶을 읽으면 울림이 우러난다. 그가

어떤 인물이고 직업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다. 자서전이라는,

‘이 이야기는 거짓말이 아니다’라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 당신도 당신의 자서전을 쓸 의향이 있는가?

>> 있다.

● 그러면 어떤 자서전을 쓰고 싶은가?

>> 기억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기록을 남기고 싶

다. 옛 사람들은 50대에는 자서전을 써야 한다고 했더라. 그것

은, 50이 되면 써야 하는 이유가 생기는구나, 했다.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연기와는 달리 사회적 행위가 아니니까 일기 쓰듯이 차

곡차곡 쓰면 될 것 같다. 실제로 써놓은 것도 있다. 2009년 가을

외국 여행 갔다가 원고량 250~300매 정도 써놓은 게 있다. 그런

데 쓰다가 멈췄다. 86년 시절을 쓰는데 엄청나게 길어지면서 세

밀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아직 내가 정리가 안 되었

구나. 정리가 안 되면 하염없이 글이 길어진다. 디테일이 많아진

다. 그 부분 어딘가에 병소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만 뚱뚱해지는

것이다.

● 그 기억과 맞서 싸워야 할 것 같다. 병소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치유될 수 없으니까.

>> 나는 아직 그때 내가 썼던 자서전의 첫문장을 버릴 수 없다.

글은 원래 첫문장을 버려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첫 문장을 잘

쓴다. 그래서 그 첫문장을 못 버리게 되고, 그래서 나는 아직 글

쟁이가 될 수 없다. 전문적인 글쟁이는 첫 문장을 잘 버리는 사

람이라고 생각한다.

도시 빌딩숲 속에 숨어 사는, ‘왕의 남자’ 정진영

우리가 정진영을 만나러 간 건 어느 평범한

금요일 저녁. 그가 먼저 전화를 걸었다.

후각처럼 예민하게 스치는 생각. 아하! 그가

술을 먹고 싶어 하는군. 짐짓 모른 체하고

전화를 받으니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를 정말

하고 싶다면 자기 작업실로 지금 당장

오라신다! 누구 말씀인데, 당근 달려가야지.

작업실에서 대충 몇 장 찍고 이야기 좀

하려는데, 밖으로 나가잔다. 그런데,

이 작업실, 어딘가 수상하다. 영화배우가 이런

감옥 같이 좁은 작업실에서 뭘 하고 있었다?

뭔가 수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이 인간은 어딘가 숨기는 게 있다. 그게 뭘까.

오늘의 인터뷰는 이게 주제다. 자리를 옮겨

우리는 대뜸 그에게 물었다.

이렇게 얘기를 나누고 보니 정진영, 이 사내, 어딘지 사무라이 같은 데가 있다. 옛날 일본 무사처럼 말수도 적고 단답형에 자기

얘기 별로 안하고, 그러면서도 어딘가 삶의 허무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 같다. 옛날 1980년대의 격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배우. 그는 극단에서도 오래 일했고, 이제는 늦깍이로 연기파 배우로 성공한 자가 되었다.

약속, 넷

문학의 안과 밖을 다 보는 잡지!

문학하는 샌님만 보는 잡지 말고

영화도 알고 공부도 알고,

저 먼 아이슬란드까지 다 보는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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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다섯

훌륭한 시와 소설, 날카로운 비평이 숨 쉬는 잡지!

주례사로 성장한 작가는 싫다! 돈으로 쏟아 부은 작가도 싫다!

우리가 원하는 건 오로지 하나,

창조하는 실력!

상상하는 기쁨!

옛날에 앞산에 메밀을 하얗게 심었다. 하야면 영감이다. 영감이면 꼬부라졌다. 꼬부라졌으면 새우

다. 새우면 뛴다. 뛰면 고양이다. 고양이면 새까맣다. 새까마면 까마귀다. 까마귀면 너풀거린다. 너풀

거리면 무당이다. 무당이면 때린다. 때리면 대장장이다. 대장장이면 깊다. 깊으면 게다. 게면 문다. 물

면 범이다. 범이면 무섭다. 무서우면 곶감이다. 곶감이면 먹는다. 먹으면 달다. 달면 엿이다. 엿이면 붙

는다. 붙으면 첩이다. 첩이면 싸움 난다. 싸움 나면 운다. 울면 상제다. 상제면 하

얗다. 하야면 영감이다. 영감이면 꼬부라졌다. 꼬부라졌으면 새우다. 새우면 뛴

다…….*

병신 같은 게!

꼴에 오빠랍시고 입만 벌렸다 하면 오빠 타령이다. 오빠가 말이야, 오빠한테 감히, 오빠가 하는 일

에, 등등 병신 같은 게 오빠면 다 되는 줄 안다.

“넌 오빠가 평생 택시나 몰아야 되겠냐?”

썅! 누가 평생 택시나 몰라 그랬어? 네 능력이 그것밖에 안 되니까 그런 거 아냐? 병신

같은 게 남 탓까지 하고 있어, 썅!

“썅!”

썅?

병신 같은 거의 입에서 ‘썅’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에 나는 벌써 맘속으로 두 번이나 ‘썅’을 내뱉었기

때문에 병신 같은 거의 입에서 ‘썅’이 튀어나오자 정말이지 눈알이 튀어나올 뻔했다. 병신 같은 게 언제

독심술까지 배웠지? 놀라, 병신 같은 거를 쳐다봤다.

“넌 꼭 이 오빠가 소릴 질러야 쳐다보냐? 오빠 말이 말 같지 않어?”

병신 같은 게 또 오빠 타령이다. 성질 나, 병신 같은 거를 째려봤다.

“이걸 그냥 콱!”

병신 같은 게 오른손을 확, 위로 치켜들었다.

짜작!

뺨 때리는 소리와 동시에 질끈, 눈을 감았다.

…….

안 아팠다. 얼얼하지도 않았다. 뭐야? 병신 같은 게 이제는 뺨도 제대로 못 후려치냐? 그래, 썅, 때려

라, 때려, 때리면 누가 못 개길 줄 알고? 눈을 부릅떴다. 부릅뜬 눈에 퉁퉁 부은 뺨이 보였다.

내 뺨은 여기 붙어 있는데? 눈앞에 있는 이 퉁퉁 불은 뺨은 누구 거냐?

“내가 죄가 많아서…….”

엄마 뺨에 큼지막하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내 뺨은 멀쩡한데 엄마 뺨은 안 그

랬다.

* 신동흔 엮음, 「끝없는 이야기」, 『세계민담전집1-한국편』, 황금가지, 2003, 4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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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소개

편집주간 방민호

문학평론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서울대 국문과 및 동 대

학원 박사 졸업. 1994년 평론 「현실을 바라보는 세 개의 논리」(『창

작과비평』 겨울호)로 신인평론상 수상. 연구서 『일제 말기 한국문

학의 담론과 텍스트』, 비평집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납함 아래의

침묵』, 『문명의 감각』, 『행인의 독법』, 『감각과 언어의 크레바스』가

있으며,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등을 출간.

이경철

문학평론가. 동국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박사 졸업. 중앙일보 문화

부 기자와 문화부장, 문화전문기자, 『문예중앙』주간 역임. 현재 문

학 사업과 지원 모임인 '문학과 문화를 사랑하는 모임' 부이사장을

겸하여 랜덤하우스코리아 주간으로 활동.

『대중문학과 대중문화』, 『천상병을 말하다』, 『그리운 이문구』(공저),

『한국 현대시 100년 기념 명시』, 명화 100선 시화집 『꽃필 차례가 그

대 앞에 있다』(편저) 등 다수의 현장비평적인 평론과 산문을 발표.

유성호

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연세대 국문과와 및 동 대학

원 박사 졸업. 1999년 대한매일 신춘문예에 문학평론 당선. 2001년

대산창작기금과 제13회 김달진문학상 수상. 저서로 『한국현대시의

형상과 논리』,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등의 비평집을 발표.

이명랑

소설가.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부 교수. 26세에 한국 여성 성

장소설의 계보를 잇는 장편소설 『꽃을 던지고 싶다』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활동. 이후 장편소설 『삼오식당』, 『나의 이복형제들』, 창작

집 『입술』, 『어느 휴양지에서』 등을 출간.

최근 동화 『나는 개구리의 형님』,『할머니의 정원』, 『작아진 균동이』,

『핑크 공주, 싫어 공주』에 이어, 청소년 소설『구라짱』,『폴리스 맨, 학

교로 출동!』 등 재미와 감동을 두루 갖춘 작품을 출간.

“다 내 죄다. 내가 죽어야지, 죽어도 싸지…….”

병신 같은 거랑 말로 싸우든 치고받고 싸우든 나는 괜찮은데 엄마는 안 그랬다. 엄마 눈에 눈물이

맺혔다. 엄마 눈에 눈물이 맺히면, 그러면 살맛이 안 난다. 살맛이 안 나면 그러면 죽고 싶어진다. 내가

죽고 싶어지면, 그러면 나만 믿고 사는 우리 엄마는 어떻게 되나? 누굴 믿고 사나? 저 병신 같은 걸 믿

고 사나?

“아이, 썅! 엄마가 거기서 왜 튀어나와?”

병신 같은 게 엄마 뺨 후려친 제 손을 이빨로 물어뜯는다, 벽에 짓찧는다, 아주 지랄을 했다. 그래도

패륜을 저지른 손에서는 피 한 방울 안 나왔다. 꼴에 잘못한 줄은 아는지 이번엔 방바닥에 쾅쾅, 머리

를 박아댔다.

“나 같은 놈은 죽는 게 낫다구요!”

병신 같은 게 가지가지 다 한다. 병신 같은 게 머리로 방바닥을 박든, 대못을 박든 나는 상관없는데

엄마는 안 그랬다.

“아서라, 아서! 너 이러면 나 죽는다!”

병신 같은 거의 머리가 방바닥에 한 번 쾅! 할 때마다 병신 같은 거를 낳고 미역국 먹은 엄마는 컥,

컥, 숨넘어가는 소리를 했다. 병신 같은 게 그래도 계속 방바닥에 머리를 박아대자 엄마가 확 장롱 문

을 열어젖혔다. 장롱 속 이불 사이에 푹, 쑤셔뒀던 농약병을 집어 들었다.

“너 진짜 엄마 죽는 꼴 볼래?”

그 말은, 나한테 하는 말이었다.

“주면 될 거 아니야!”

그리하여 지금 나는 개털이다. 병신 같은 게 오빠랍시고 내 2학기 등록금까지 가져가 버렸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제 새끼 머리 나쁜 줄은 모르고 과외 선생인 내 탓만 해대는 아줌마들, 아들

과외 선생한테도 찝쩍거리는 중년 아저씨들, 순진한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 생글생글 웃으면서 내 치

마 속 풍경을 고스란히 휴대폰 동영상 폴더에 저장해서 다니는 중학생 녀석들…….

에잇, 말을 말자.

그래 놓고도 나는 계속 구시렁거린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이게 다 병신 같은 오빠 때문이다. 병신 같은 게 오빠랍시고 큰소리만 탕탕 쳤지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 멀쩡한 4년제 대학을 나와서 취직도 못했다. 비정규직으로 몇 군데 싸돌아다니더니 결국에는

그나마도 못 해먹고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내가 누구냐. 네 오빠 아니냐. 오빠가 말이야, 우리 영지 대학은 책임진다!

택시 운전대를 잡자마자 또 큰소리 뻥뻥 쳐대더니 대학을 책임지기는커녕 내가 모은 등록금까지 가

져가 버렸다. 제 말로는 뭐 선배랑 동업으로 야식집을 한다나. 권리금도 없는 데다 전 주인이 배달 노

하우에 오토바이까지 넘겨주기로 했다면서 있는 돈 다 내놓으라는 거였다.

과외해서 번 돈, 다 털렸다. 오빠 야식집 계약금으로 다 들어갔다.

나는 개털이다. 개털이 된 나는 지금 편의점에 있다. 위에서 아래로 줄이 죽죽 그어져 있는 유니폼을

입고 소리친다.

“아저씨! 거기, 라면 국물 쏟는 데 아니란 말이에요!”

썅,이란 말은 안으로 삼키고, 나는 대걸레질을 한다. 술 취한 중년 아저씨가 구역질하듯 바닥에 쏟

아놓은 라면 국물을 닦으며 생각한다. 이 짓이 나은가, 아들 과외 선생한테 찝쩍거

리는 중년 아저씨한테 시달리는 게 나은가. 손이라도 한번 만지게 해줬으면 안 잘렸

을까. 요새 과외 구하기 하늘에 별 따긴데.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나…….

에잇, 생각을 말자.

Page 9: 2011 no. 00 - download.sdu.ac.krdownload.sdu.ac.kr/files/Board_Files/class_info/Z0101/2884045/1.pdf · 약속, 둘 보는 기쁨이 있는 잡지! 흰 건 종이요, 까만 건 글씨다,

<근대문인산문선> 시리즈 아트앤스터디

계간

문학

의오

늘 | 발

행일

2011년

12월

1일

| 발행

인 오

봉옥

| 편집

위원

방민

호, 이

경철

, 유성

호, 이

명랑

| 발행

처 예

옥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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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 산문집 2 이효석 산문집 3 이태준 산문집

『레몬향기를 맡고 싶소』 『사랑하는 까닭에』 『책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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