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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 -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 + 4 2015 MARCH&APRIL 3 요한복음 2장 13절 이후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수님의 성전 정 화 사건’이 나온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이 본인의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과격한 행동’으로 성전을 혼란케한 사건으로 예수 님의 생애 중 특이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요한이 요한복음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초입에 성전정화 사건을 다루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격한 행동을 통해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하는 의도 (메시지)를 엿볼수 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찾아오신 예수님’이라는 측면에서 보고자 한다. 요한복음은 ‘빛이신 예수님이 어두움을 찾아오셨다’(1:5)는 선언으 로 메시지의 포문을 열고 있다. 그 시각으로 본다면 성전 정화사건은 ‘거룩하신 예수님이 세속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찾아오신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때 예수님이 성전의 세속성을 처음 본 것은 아니다. 이미 어려서부터 예수님은 절기를 따라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고,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 돈 바꾸는 사람들을 봐왔다. 예수님 시 대의 성전 장면이 이전과 달리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공생 애를 시작하시면서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세속적으로 변해’버리고, ‘장사꾼들의 소굴’처럼 타락한 성전을 향해 일성을 발하신 것이다. 이 사건은 어떻게 보면 중대한 결단을 하기전 현충사를 찾아가는 정치인 들처럼 예수님은 본격적 사역을 시작하면서 성전을 찾아갔고, 더럽혀 진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행동을 통해 당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상징 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 한국 교회와 기독교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고 있다. 비판을 받아 경각심을 얻고 오히려 새롭게 될 수 있다면 그 비 판마저도 은혜라고 생각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비난과 질타 는 있지만 내부적 반성과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은 한국 교회를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부끄럽기 도 한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들은 두 패로 나 누어지는 것 같다. 세상의 질타와 비판에 대한 소리를 ‘사단의 계략’ 이라 치부하고 아예 귀를 닫고 자신의 신앙만을 곤고히 하려는 무리 와 세상의 질타와 비판을 마치 ‘하나님의 진리’처럼 받아들여 제도적 신앙으로부터 이탈하는 무리로 말이다. 한 무리는 교회를 ‘무조건 지 켜내야 할 대상’으로 보고, 한 무리는 교회를 ‘사랑하기에는 너무 부 끄러운 대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빛’이신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에 찾아오셨다. 그 빛은 이미지와 영 으로서가 아니라 ‘실체’와 ‘몸’으로서 불순물로 가득한 이 땅을 찾아오 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속’으로 가득하고, ‘장사꾼’으로 넘치는 성 전 속으로 찾아 들어오셨다. 세속에 물든 무리들은 세속화된 성전에 서 안정감을 누리며 하나님과 거래하는 삶을 아무 문제없이 살아갔 다. 그러나 세속화된 성전과 타락한 제도적 종교를 거부했던 무리들 은 세속화된 성전에서는 희망을 버리고 ‘광야’로 나갔다. 그러나 빛이 신 우리 예수님은 ‘더럽혀져 장사꾼의 소굴이 된 성전’ 속으로 찾아오 셨다. 왜일까? 어떤 신앙인은 말한다. “당신은 아직도 교회에 머물러 있는가?” 이 말은 아직도 더럽혀진 교회에서 희망을 찾고, 신앙적 본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도발적인 질문이다. 그 의도를 모르지 않기 에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부끄러운 교회가 ‘나’이기에 나는 나를 버릴 수 없어서 여전히 그 세속적이고 타락한 교회에 머물러 있 을 수밖에 없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몸이 성전임을 후에 알았다.(요 2:21) 예수님은 부끄러운 성전에 동화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셨다. ‘그 안으로’ 들어가 새롭게 하려고 하셨다. 남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었기에. ● 김수억 간사 부끄러운 신앙 속으로 Joy The

2015 3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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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15 3 4월호

J O Y - J E S U S F I R S T , O T H E R S S E C O N D , Y O U T H I R D

+42 0 1 5 M A R C H & A P R I L

3

요한복음 2장 13절 이후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수님의 성전 정

화 사건’이 나온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이 본인의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과격한 행동’으로 성전을 혼란케한 사건으로 예수

님의 생애 중 특이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요한이 요한복음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초입에 성전정화 사건을 다루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격한 행동을 통해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자 하는 의도

(메시지)를 엿볼수 있다. 나는 그 메시지를 ‘찾아오신 예수님’이라는

측면에서 보고자 한다.

요한복음은 ‘빛이신 예수님이 어두움을 찾아오셨다’(1:5)는 선언으

로 메시지의 포문을 열고 있다. 그 시각으로 본다면 성전 정화사건은

‘거룩하신 예수님이 세속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찾아오신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때 예수님이 성전의 세속성을 처음 본 것은 아니다. 이미

어려서부터 예수님은 절기를 따라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고,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 돈 바꾸는 사람들을 봐왔다. 예수님 시

대의 성전 장면이 이전과 달리 이상할 것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공생

애를 시작하시면서 ‘이상할 것이 없을 만큼 세속적으로 변해’버리고,

‘장사꾼들의 소굴’처럼 타락한 성전을 향해 일성을 발하신 것이다. 이

사건은 어떻게 보면 중대한 결단을 하기전 현충사를 찾아가는 정치인

들처럼 예수님은 본격적 사역을 시작하면서 성전을 찾아갔고, 더럽혀

진 성전을 청결케 하시는 행동을 통해 당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상징

적으로 보여주신 것이라 하겠다.

오늘날 한국 교회와 기독교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고

있다. 비판을 받아 경각심을 얻고 오히려 새롭게 될 수 있다면 그 비

판마저도 은혜라고 생각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비난과 질타

는 있지만 내부적 반성과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것 같은 한국 교회를 보면서 안타깝기도 하지만, 부끄럽기

도 한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자들은 두 패로 나

누어지는 것 같다. 세상의 질타와 비판에 대한 소리를 ‘사단의 계략’

이라 치부하고 아예 귀를 닫고 자신의 신앙만을 곤고히 하려는 무리

와 세상의 질타와 비판을 마치 ‘하나님의 진리’처럼 받아들여 제도적

신앙으로부터 이탈하는 무리로 말이다. 한 무리는 교회를 ‘무조건 지

켜내야 할 대상’으로 보고, 한 무리는 교회를 ‘사랑하기에는 너무 부

끄러운 대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빛’이신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에 찾아오셨다. 그 빛은 이미지와 영

으로서가 아니라 ‘실체’와 ‘몸’으로서 불순물로 가득한 이 땅을 찾아오

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속’으로 가득하고, ‘장사꾼’으로 넘치는 성

전 속으로 찾아 들어오셨다. 세속에 물든 무리들은 세속화된 성전에

서 안정감을 누리며 하나님과 거래하는 삶을 아무 문제없이 살아갔

다. 그러나 세속화된 성전과 타락한 제도적 종교를 거부했던 무리들

은 세속화된 성전에서는 희망을 버리고 ‘광야’로 나갔다. 그러나 빛이

신 우리 예수님은 ‘더럽혀져 장사꾼의 소굴이 된 성전’ 속으로 찾아오

셨다. 왜일까?

어떤 신앙인은 말한다. “당신은 아직도 교회에 머물러 있는가?” 이

말은 아직도 더럽혀진 교회에서 희망을 찾고, 신앙적 본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도발적인 질문이다. 그 의도를 모르지 않기

에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부끄러운 교회가 ‘나’이기에 나는

나를 버릴 수 없어서 여전히 그 세속적이고 타락한 교회에 머물러 있

을 수밖에 없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몸이 성전임을 후에 알았다.(요

2:21) 예수님은 부끄러운 성전에 동화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셨다.

‘그 안으로’ 들어가 새롭게 하려고 하셨다. 남이 아니고 자기 자신이

었기에.

● 김 수 억 간 사

부끄러운 신앙 속으로Joy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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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

핵심 가치의 중요성 #12c o r e v a l u e

1976년, 내가 처음 죠이를 만난 해이다.

그 때는 대학 3학년이었다. 입학하면서부터 계속되는 데모와 반복되는 휴강이 당시 대학가

의 풍경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등록금 마련이 매학기 쉽지 않았고, 우리 과 60명중 경기와 이

화여고생들이 50여명 즉 주류였다. 정신여고 출신인 나는 그들 속에 끼지도 못한 채, 젊은 날

의 고민들을 갖고 살았는데, 대학 3학년이 되었지만 문제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먼

지나는 흐릿한 봄날의 나른함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하나님에 대해 내가 아

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혼자 기도실을 드나들 때 기도실 문에 로마서 성경공부

에 대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한 자매가 다가와 전도지를 주며 함께 만날 것을 약속하였다.

죠이어들과의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요즘 대학생들이 개인주의적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 때 나는 더 이기적인 학생이었다.

성경공부 약속시간에 항상 늦게 나타나기, 수양회 참석권유에 온갖 구실로 실망시키기, 그러면서도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착각하기 등. 1978년 졸업을 했다. 선배언니들이 약대를 나오면 다 취직이 된다고 하여 그냥 가

만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사회가 문을 활짝 열고 나를 데려가 주는 줄 알았나 보다. 한 가지 한 것은 죠이선교

회 모임에 스스로 참석하게 된 것이었다. 졸업을 하고서야 비로소!

당시 이화여대 캠퍼스 안에 있는 보건소에 약사로 취직을 하였다. 보건소가 있는지도 모르던 학생에서 학교가

취직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것도 놀라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당시 일하시던 의사, 간호사분들이 나보다

15년 이상 나이가 많은 분들이었는데 이 분들과 성경공부를 시작하고, ‘죽으면 죽으리라’의 저자 안이숙 여사

가 죠이모임에 초대되었을 때 함께 체신노조건물(당시 죠이 모임장소)로 간증을 들으러 가기도 한 것이다. 이

당시 나의 믿음은 죠이의 중심 성경말씀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

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

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고후 5:19-20)” 이 무엇인지도 모르던 때였다.

이런 나를 주목해 준 분이 계셨다. 지금 돌이켜 보니 그 당시 죠이의 리더이셨던 분들이었고, 또 캠퍼스 사역

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하던 때였기 때문인 것 같다. 1979년부터 학생들과 모임이 시작되었다. 처음 모임

을 운동장에서 하며 쭈쭈바를 함께 빨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전도집회를 하고, 영화 상영을 하면 학생들이 몇

백명씩 모이던 때가 있었다. 방학 중 Summer Missionaries를 초청하여 English Class를 열면 늘 학생들이

넘쳐났다. 그 때 배운 영어로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유학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Korean Class를 열고 있다.

정말 시대가 변화한 것 아닌가? 죠이에서 처음으로 캠퍼스 간사를 세우고 사역을 물려주었던 때가 1985년, 그

간사를 후원하기 위해 동문회를 만들고 스스로 회장이 되었다. 1990년, 91년인가 차기회장을 세워 물려주고,

죠이어와의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손 무 인 78년 이대 약대졸, 현 이대 건강센터 약사

Joy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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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4 03

10여년의 이화죠이 사역을 마칠 즈

음 1989년부터 이화가족기도회를

위임받게 되었다.

이쯤에서 내가 배운 죠이의 핵심가치를 다 눈치 채

셨을 것 같다. 죠이에 와서 예수님을 배웠다. 말씀

의 깊이와 맛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을 주목

하고 세워주시는 것을 배웠다.

사람은 언제나 소중하고 중요하다. 캠퍼스에서 그

룹리더들과 함께 공부하며 Building up One An-

other밖에는 말한 것이 없었다. 물론 죠이 리더분들

의 가정생활, 사역하시는 모습, 사는 모습을 통해 배

운 것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배움이 내 속에 있는지

도 몰랐다. 이화에서 이화가족기도회, 약대동창회 선

교부등 사역들이 맡겨질 때 비로서 나는 내 속에 있는

배운 것으로 밖에는 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89년 5월 어느 날 김수지 선교사(당시 간호대 교

수, 현 말라위 선교사)께서 연구실로 오라고 하시더

니 이화 창립 100주년 되던 1986년 때 결성된 이화가

족기도회 24시간 기도체인자 명단과 그동안 발간된

기도편지 묶음을 주시며, 3개월 미국에 다녀올 테니

그동안 맡아 있으라고 하셨다. 그 3개월이 2015년 1

월까지 26년으로 변했다. 교수님 한 분, 간사 한 분을

후임자로 세우고 감사하게도 이화에서 퇴임을 1년 남

겨둔 이 시점에서 인계를 할 수 있었다.

1979년 나에게 이화 캠퍼스 사역이 맡겨질 때, joy

monthly기자가 글을 쓰라고 하셨다. 무슨 말을 썼는

지는 다 잊었지만 한가지 기억나는 것은 기독동아리

대표들과 만나 캠퍼스 사역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 싶

다고 한 것이다. 그 기자분은 어느 날 나에게 다가와

대표들과 만남을 가졌느냐고 확인을 하셨다. 나의 대

답은 not yet이었다. 10년이 지난 1989년 이화가족기

도회를 위임받고 정체성을 고민하다가, 연합기도운

동이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교수, 동창, 재학생

모든 모임을 net working하기 위해 노력한 26년이

었다. 매학기 바뀌는 교수성경공부모임대표, 동아리

대표들, 2-3년마다 바뀌는 동아리 간사님들, 중간에

복음의 변질을 가져오는 단체들, 게다가 새벽예배를

드릴 때 세대 간 부르는 복음송도 수준차가 나고 연합

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말미암

아 일어나는 조화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며 예배는 사

람이 준비한다고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

게 되었다.

내 나이 60살이 되었다. 죠이를 처음 만난 것이 1976

년이니 내년 이화를 퇴임하는 2016년 2월이면 40년

이 된다. 이런 시점에서 다시 죠이 월간지를 맡은 이

화죠이 오승주 간사로부터 원고청탁을 받았다. 죠이

에서 배운 핵심가치를 글로 쓰라는 것이었다. 예수님

을 배웠고, 예수님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웠다라고 답하

면 너무 단순한 것일까? 죠이선교회의 핵심대상은 늘

젊은이들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제 캠퍼스에는 국제

학생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

라보는 리더십과 섬겨 줄 한사람을 찾는 일, 그리고

세워주는 일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생각한다. 언제나

동일하신 예수님, 한사람의 인생을 섭리하시고 생각

지도 못한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 그 분을 대신하여

embassader가 될 사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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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

선교한국을 준비하며①

잇사갈의 자손처럼 #1

● 손 창 남 OMF

들어가는 말

역대상 12장 32절에는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할 때 열두 지파에서 보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

기가 나온다. 다른 지파에서는 활을 쏘거나 말을 타

거나 칼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다윗 왕에게 보냈는

데 잇사갈 지파에서는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

땅히 행할 바를 아는 두령 200명’을 보냈다고 기록

되어 있다. 3000년 전에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대해서 알고 이에 맞추어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있다면 오늘날 선교의 상

황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I. 성경에 나타난 풀뿌리 선교 운동

한국 교회가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한지

100년이 넘었다. 특별히 1980년대 말부터 지난 35

년 동안 선교의 붐이라고 부를 만큼 해외 선교가 성

장했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선교에 대한 인식은 아

직도 단선적이다. 한국 교회는 선교사가 얼마나 파

송되었는가 하는 물량적 기준으로 선교를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도 우리가 세계에서 몇 번째 선교

사를 많이 파송하느냐를 말하고 있다.

선교를 선교사의 파송 수자로 파악하려고 하는 생

각의 기저에는 사도행전 13장에 나오는 안디옥 교

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에 파송했다고 하는 사

실을 선교의 시발점으로 받아들이는 모종의 합의에

있다. 하지만 과연 사도행전 13장에서 안디옥 교회

가 사도 바울을 파송한 것이 진정한 선교의 출발점

인지에 대해서 심각한 의문이 든다.

선교란 타문화에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라는

전제 속에서 사도행전을 다시 살펴보면 타문화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는 사도행전 13장에서 안디옥

교회가 사도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하기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도행전 8장

에서 스데반의 순교로 시작된 핍박을 피해서 사마

리아로 간 사람들과 안디옥으로 간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선교라는 차원에서 다시 조명될 필요가 있

다.

사도행전에서 두 번 나타나는 이 사람들은 예루살

렘으로부터 ‘흩어진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들 모두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스데반의 죽음을

계기로 각지로 흩어졌다. 8장 5절에서 흩어진 사람

들 가운데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빌립이라

고 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7명의 집사 가운데 한 사

람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한 이야기가 나온

다. 5절과 12절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전했다고 기

록되어 있다. 이미 메시아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

었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전

한 것은 문화적으로 매우 적절한 것이었다.

반면 11장 20절에서 안디옥의 헬라인에게 갔던 동일

한 흩어진 사람들은 주 예수를 전파했다고 말하고 있

다. 여기서 주(kyrios)란 당시 헬라의 신들에게 사용

되었던 경어였다. 에딘버러 대학에서 선교학을 가

르쳤던 앤드류 월즈(Andrew Walls) 교수는 이런

것을 ‘상징 빼앗기(Symbol theft)'라고 불렀다. 상

징 빼앗기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갔을 때 현지인

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종교적 상징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취해서 복음을 친

근하게 설명하는데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흩어진

사람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대상에 따라 그들의 문

화에 맞는 적절한 사역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이처럼 대상에 따라 적절하게 타문화 사역

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대부분이 디아스포라 배

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도행전 2장에는

말씀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흩어졌다가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던 이들이었음을 말해

주는 명확한 증거들이 있다. 유대인 디아스포라들

은 외국 문화와 언어에 능통했을 것이며 다른 유대

인 디아스포라들에게만 아니라 이방인인 헬라인들

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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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선교적 상황의 변화

하나님께서는 선교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을 역

사 속에서 여러 모양으로 허락해 주셨다. 특히 흩어

진 사람들이 복음을 들고 나갔던 때와 현재의 모습

은 너무나도 흡사하다. 성경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흩어진 사람들이 돌아다녔을 사회적 배경을 알려주

고 있다. 누가 복음 2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를 통치하고 있을 때 탄생했다고

확인해 주고 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를 최대

로 확장해 놓았던 율리우스 씨저의 양아들 옥타비

아누스와 동일인으로 후에 아구스도라는 호칭을 받

게 되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의 양부가 확정해

놓은 로마를 50년의 치세 동안 잘 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200년 전 개신교 선교사들이 나갈 때도 하나님의

섭리로 독특한 역사적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지난 18세기 말부터 윌리암 캐리로부터 시작된 개

신교 선교에 있어서의 황금기는 식민지 개척을 통

해 선교사들이 복음을 자유롭게 들고 갈 수 있게 되

어 ‘제 2의 로마시대’와 같은 상황이 전개되었다. 식

민지 국가의 선교사들이 주로 피식민지를 향해 자

유롭게 나가게 된 것은 로마 멸망 이후 거의 1000

년 동안 세상이 별다른 대변혁 없이 지냈던 때와 비

교하면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해서 선교의 위대한 세기는 15세기 말

에 있었던 새로운 지리적 발견과 항해술의 발달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항해술이 발달하여 선원

들은 근해를 벗어나 원근해로, 심지어는 대륙을 넘

나드는 항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은 육로의 통

행이 주는 번거로움이나 육로를 통해 아시아로 가

기에는 이슬람 제국을 통과해야 하는 어려움 등의

방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지리적 발견 또한 서구 세계로 하여금 유럽, 아프리

카 그리고 아시아로 국한된 시각에서부터, 그간 알

려지지 않았던 아메리카와 호주 등에 대해서 새로

운 세계를 이해하게 해 주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의학적인 진보도 항해에서 발생하는 병들에 대한

치료를 가능하게 해주었다. 따라서 거의 미신 수준

에 머물고 있었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에서

의료를 통한 선교는 절대적인 민중의 환영을 받았

다. 교육을 통한 선교 또한 매우 효과적이어서 소위

‘미션 스쿨’이라고 하는 기독교 계통의 학교들이 많

이 세워지고 이것이 기독교를 소개하는 좋은 교량

의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대에 이루어진 서구 교회의 선교에 대

해서 부정적 이미지를 떨쳐버리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 시대에 이루어진 많은 개신교 선교는 제국

주의와 함께 했다고 하는 오명을 벗기가 어렵다. 2

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피식민지

들이 독립하면서 선교사들의 선교지 진입이 어려워

지기 시작했다. CAN(Creative Access Nations)

지역은 물론이고 선교사 비자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OAN(Open Access Nations) 지역에서조차

선교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흩어진 사람들처럼 전형적인 선교사가 아닌 형태로

들어갈 수 있는 나라의 폭은 더 커지고 있다.

이제 20세기 후반이 되면서 선교의 상황은 매우 다

른 양상을 띠게 되었다. 특별히 제 2차 세계 대전은

전세계적으로 인류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는

데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다. 최근 들어 통신의 속도는 2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빠르게 발달하고 있다. 문화

적으로도 같은 영화, 같은 음악을 사람들이 감상하

고 있다. 분쟁지역을 제외한 몇 나라를 제외하면 세

계를 여행하는 것은 거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죠이선교회가 선교한국주관단체로 섬기게 됨에 따라, 선교시리즈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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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

D M P D

캠퍼스사역을 하며 말씀준비, 캠퍼스전도, 학생상담, 간사공동체, 행사준비로 바쁘실텐데, 평소에는 후원요청을 어떻게 하셨나요?01후원요청에 대한 어려움이 있다면?

유주환 : 학생 사역자의 하루는 보통 출퇴근이 정해져있는 직장인들과는 다릅니다. 저녁에 정기모임이 있기 때문에 캠

퍼스를 2개 맡고 있는 입장에서 저녁시간을 내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채용원 : 지방캠퍼스나 개척캠퍼스 경우, 대부분의 재학생들과 동문들은 간사후원을 이미 하고 있기 때문에 후원에 대

한 증액을 요청하거나 후원의 통로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또한 타캠퍼스 출신 간사가 동문들과 소통하기 어렵

다는 것도 어려움 중의 하나입니다.

이은애 : 기도편지를 많이 돌리지만, 누가 후원을 해줄지는 알 수 없어 막막합니다.

드렸으니 그저 기다릴 수 밖에..

한나영 :‘후원자와 수혜자‘라는 인식 때문에 상대방과 내가 동등한 관계로 만나지 못하는 불편한 마음이 어려움이 아

닐까 싶습니다.

02

이은애 :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후원에 대한 개념이 사역동역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간사가 재정이

없어서, 재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재정으로 그들도 현장에 있는 사역자

와 동일하게 사역에 참여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원자가 아닌 사역동역자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유주환 : 나의 믿음 없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간사가 귀한 직업이지만 재정적으로는 힘들 수밖에 없을 거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그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한나영 : 무엇보다도 ‘사역은 함께하는 것‘이라는 의식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에 우리 모두가 부름을 받았으며, 그 안

에서 누군가는 전임사역자로, 또 누군가는 기도와 물질로 함께하는 사람으로, 각자 모양은 다르나 한 마음으로 참여하

여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것이 성경적이란 사실입니다.

채용원 : 제일 중요한 변화는 기도와 재정의 요청에 대한 의식과 방법입니다.

죠이출신이 아니더라도 청년사역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이전에는

사역적 필요만을 이야기 했지만 이제는 캠퍼스사역의 중요성과 비전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03 DMPD하면서 개인적으로 인식이 변화된 부분이 있다면?

채용원 : 항상 후원요청의 필요는 있었지만 공식적인 기회는 캠퍼스 종강예배나 겨울 지부수양회 마지막 날 외에는 따

로 후원요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죠이 외에는 교회간사로 사역할 때 사례금을 후원금의 명목으로 받았는

데, 그마저도 교회사역을 그만두게 되면 끊기거나 대폭 줄어들게 됩니다.

이은애 : 후원방법을 기도편지에 적어 보내는 방법으로 요청했었습니다.

새해 초부터 11명의 학원사역부 간사들이 캠퍼스 사역을잠시 뒤로 한 채, 죠이 휴먼스테이션에 모여 4주간(1/12~2/6) 합숙훈련을 받았다. 이름하여 사역동역자개발훈련(Discipleship Ministry Partner Develop-ment)이다. 말 그대로 캠퍼스 사역을 기도와 재정으로동역할 분들을 찾아 만나뵙고 초청하는 훈련이다. 이번이3번째인데, 훈련을 다 마친 간사 몇 명과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DMPD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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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4 07

유주환 :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그 작정하신 일들을 이루어가십니다. 그 가운데 필요가 있다면 그 필요에 맞게 사람

을 세우시고 재정도 채우십니다.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며, 그 하나님이 이끄시

는 대로 살아가는 삶이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한나영 : DMPD를 통해 하나님은 재정적인 필요 이상의 것을 선사해 주셨습니다.

사역은 함께하는 것임을, 또 함께할 동역자들을 주시고, 지난 6년간의 사역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사역의 방향성을 잡

는 시간이었습니다.

채용원 : 저는 재학생들과 동문들께서 섬기시는 교회에서 이런 국내 선교의 필요성과 사역들에 동참할 수 있는 관심

자들을 간사들에게 연결시켜주시면 더욱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스스로에게는 죠이어로서의 사명감을 느낄

수 있으며, 간사들에게는 귀한 사명의 확신과 소망의 불을 일으켜줄 수 있는 귀한 협력의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이은애 : 이 글을 읽고 계신 대부분의 분들은 죠이사역에 동역하고 계신 사역동역자분들이실 거라 생각합니다. 먼저,

이 사역에 동참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직 동역할 수 있는 기회를 받지 못하신 분들이 계시다면 하

나님께서 당신을 하나님의 통로로 삼으시기 원하신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초청에 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DMPD기간 동안 저희의 전화를 받아주시고, 시간 내어 만나주셨던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05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약속만남을 통해 사역을 소개하고 사역동역자로 초대했을 때 반응이 어떠했나요? 만남 중에 특별한 감동이 있으셨다면?04한나영 :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기존에 하지 않던 방법으로 요청하는 것에 당황하셔서 거부감을 표명하거나 재정적인

부분에 대한 부담으로 함께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만남 가운데서 팀으로 초대해

주어 고맙다는 말과 함께 기쁘게 이 청년사역에 동참해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여러 만남 중, 이름과

안면 정도만 알고 있던 동문분이셨는데, 나의 사역소개를 하러 간 자리에서 그분의 하나님 나라를 향한 순수하고도 열

정어린 나눔을 듣고, 오히려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동이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은애 : 대부분 하나님나라의 일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는 것에 감사해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

하신 재정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역에 사용하길 원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평소 물질은 전부 하나

님의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분이셨는데 워낙 직장과 가정일로 바빠 재정을 흘려보내는 것으로 하나님나라의

상급이 될 수 있었으면 하셨다가 제 초청을 받고 오히려 감사해 하셔서 저에게 감동과 큰 격려를 주셨습니다. 어떤 만

남에서는 곧 일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인데도, 적지 않은 금액을 약정해주면서 하나님께서 흘려보내면 또 인도하시고

채우실 것을 믿는다고 말씀해주신 분도 계셨고, 전화를 받고 만남을 잡기는 했지만 단체나 캠퍼스에 마음이 없어 거절

을 할 생각으로 나오신 분이저의 사역소개를 듣는 중에 마음이 바뀌셔서 약정을 해주시고, 거절을 하면서 주려했던 일

시후원금까지도 주시고 가신 일도 있었습니다.

유주환 : 예비 사역동역자들의 반응은 참 다양하였습니다. 일단, 반응이 부정적이신 분들은 전화로 이미 확인한 상태

라 만났던 분들은 다 호의적이셨습니다.한 분은 “왜 이제야 이야기 했냐~ 진작 이야기 하지~” 하시며 사역 소개를 한

것에 대해 고마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러 사람을 추천까지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한 분은 “사역동역자로 초청

해줘서 ”고마워. 내 대신 캠퍼스 현장에서 뛰어주니 너무 감사해~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을 감당 할 테니 열

심히 현장에서 복음 전해~” 하시며 힘을 더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한 분은 “지금은 재정으로 함께 못하지만 기도로 동

참 할께요! 간사들이 그렇게 사는지 정말 몰랐어요. 가치 있는 그 사역에 재정이 생기면 꼭 동참하겠습니다.” 라는 반

응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아주 일부분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캠퍼스 하나님나라 사역을 주관하시고

인도하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엘리야 외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이 있었던 것처럼 이 캠퍼스 사

역에 예비하신 사역동역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순간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채용원 : 특별히 기억하는 한 분은, 제가 본적도 없고 죠이공동체를 경험한 분도 아닌 이제 회사에 취업한 젊은 청년이

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동안 특히 20대 중반에 스스로 신앙에 대한 회의와 인격적인 영접과 헌신에 대해 궁금함이

있었지만 주위에 자신에게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답니다. 혼자 성경과 신앙서적을 읽으며 채워 나갔지

만 늘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교회청년부의 한 후배가 죠이공동체를 그렇게 자랑하고 좋아하면서 교회를 잘 섬

기는 모습을 보았고, 회사에서도 한 그리스도인 선배가 사람들을 잘 섬기고 좋은 롤 모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죠이어임을 알았습니다. 때 마침 제가 그 교회후배에게 청년사역에 대한 관심자를 추천해달라고 했을 때 이 분이 기꺼

이 사역동역자가 되고 싶다고 해서 연결되었습니다. 이 청년 사역동역자는 선교단체 사역을 통해 자신과 같은 사람이

없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동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전 이 간증을 듣고 대학선교에 대한 소망과 책임감이 더욱 더 생

겼습니다.

Page 8: 2015 3 4월호

8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

제 자 훈 련

일찍이 하고 싶었던 죠이제자훈련학교는 여러 가지

상황에 밀려 점점 더 멀어져만 갈 때,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아이처럼 그렇게...어

설프게 죠이에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좋다는 얘기

는 소문으로 듣기는 했지만 으레 하는 말처럼 들렸기

에 ‘그래!어디서든 늘 하나님의 은혜는 있기 마련이

지’하는 타성에 젖은 푸념으로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개강예배가 시작되고 무언가 분주히 적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성경공부가 아니고 제자훈련학교이

다.아차!이건 훈련이구나...’그동안 배웠던 성경공부

의 앎의 차원을 넘어선 실질적인 훈련장에 입학했다

는 생각에 갑자기 움찔해졌습니다.

첫 번째 강의가 시작되고 내 안에서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리더

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가장 근원적인 “내가 누구인

가?”라는 질문은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숙제로 고

개를 내밀어 나를 난처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죄를 짓는 의인”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분리된 정체성을 갖고 있는 나 자신과의 직면은 너무

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것도 첫 시간부터...내가 누

구인지, 어디에 심겨져 있는지의 신분 인식이 가슴으

로 온전히 내려오지 못한 채 열매를 맺으려고 했던 내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그리도 힘들었었는지를 명확하

게 깨닫는 감격의 시간이었습니다. 스스로 열매를 내

려고했던 무지했던 행동들에 성령님께서 매스를 대

시며 알게 해주시는 아픈 깨달음은 바로 사랑이었습

니다.

1단계에서 계속 신분에 대한 확인인식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성품에 관한 주제로 나를 이끌어갔습니

다. 말씀이 너무 소중해서 일주일동안 시간나는 틈틈

이 녹음된 강의를 다시 듣고 하면서 자유의 기쁨을 누

리는 은혜를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내 아이도 내 남편도 가족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더욱 존중되어져야 한

다는 것. 내 안에 만들어진 무수한 상식과 지식과 경

험의 틀들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밑바

닥이 드러나는 붕괴의 소리이며 다시금 새로워지는

기쁨의 소리입니다. 그리고 한동안 하나님을 떠나있

던 남편을 바라보는 내 눈빛의 소리입니다.

거룩한 소원이라는 이름으로 기도하였던 내가 얼마

나 거룩한 목표에서 떠난 이기적인 기도를 했는지 발

가벗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에덴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소원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들이 문제가 아닌 온

전히 하나님 앞에서 드러낸 나의 모습을 있는그대로

감싸주시는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을 힘입어 사춘기 딸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아침마다 “사

랑한다!축복한다!”고 말하며 비젼품기를 실행했습니

다. 하나님은 하나씩 만지고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불만으로 가득 차 있던 딸이 엄마의 품안으로 다시금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지만 우리를 훈련하시는 것도 집요

하게 끝까지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그런 하나님

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며

나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1단계를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풍성한 말씀으로 깨우침을 가르쳐주신 안

세환목사님과 사랑하고 존경하는 리더님. 감사합니

다.

제자훈련학교 간증문● 신 정 은 1단계 1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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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4 9

본 회퍼가 국내에 소개된 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지

났다. 개인적으로는 93년에 지금은 절판된 박봉랑

교수의 ‘신학의 해방’ 이라는 책을 통해 만났다. 국

내 저자의 책으로서 개인적으로는 아직까지 그만한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 후 반역이라

고 할 정도로 서툰 번역서들로 고진감래하며 그의 글

들을 접해야했다.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

러나 그는 유명하지만 무명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한국 교회에는 그러했다.

그 와중에 2014년 한 해에 한국에 ‘본 회퍼’의 바람

이 불어왔다. 아무래도 한국 교회의 부패와 지금의

현실에 대한 인식들로부터 그러한 바람이 불어오게

된 것이리라. 이러한 것이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

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진정으로 이해했는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이런 상황에 마치 필연처럼 올 해 첫 서평이 ‘본회퍼

의 묵상집’이다. 여기서 분명히 하건데 이 책은 본 회

퍼의 책이 아니다. 그의 글들에 대한 한 개인의 묵상

집이다. 물론 그의 글들이 인용되어 기록되어 있지

만 이 책은 엄연히 ‘찰스 링마’ 가 저자다. 개인적으

로 이러한 묵상집과 같은 책에 대해서 염려하는 맘

이 앞선다.

내게는 사뭇 생소한 이름인 ‘찰스 링마’. 결국 그가

누구인지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그의 다

른 묵상집들도 국내에 번역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

다. 그런데 그 대상이 놀랍다. ‘자끄 엘룰’과 ‘헨리 나

우웬’이다. 헨리 나우웬은 국내 일반 성도들에게도

비교적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그런데 자끄 엘룰은?

그 또한 본 회퍼와 같이 유명하나 무명한 사람이라

고 평해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뒤틀려진 기독교’라

는 책을 비롯해 현재 대장간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열

심히 출간하며 세미나를 개최해 가고 있지만 아는 사

람에게만 알려진 사람이다. 그 역량과 내용에 비해

무척이나 아쉬운 현실이다. 아무튼 헨리 나우웬과

자끄 엘룰의 책들을 묵상하여 책을 내었다는 것이 내

게는 참 흥미로웠다. 이 세사람 사이에는 어떠한 공

통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 회퍼의 표현을 살짝

인용해 보자면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려 했던 사람들이다.

그의 이력을 좀 더 살펴보니 ‘역시나!’ 하는 대목이

있었다. 그는 마

닐라의 가난한

이들, 그리고 호

주 원주민들의

지역 사회 일꾼으로 섬긴 이력이 있다. 이런 이력들

로 볼 때 저자가 적어도 본 회퍼를 그저 학문적으로

만 읽지는 않았다는 분명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읽어본 결과 그 확신을 결코 틀리지 않았다.

그의 묵상 속에서 본회퍼는 단순한 학자로서가 아니

라 생생한 사목으로서 존재했다. 본 회퍼의 글들을

단편적으로 기재해 놓았지만 그 이해는 결코 단편적

이거나 치우치지 않았다. 신뢰할만하다. 그러나 저

자의 묵상에만 머무르는 것은 전혀 이 책이 의도하

는 바가 아니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이 묵상들이 혼란을 일으키

고, 경건하기보다는 ‘세상적’일지도 모른다고 말한

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본 회퍼의

글들을 독자 스스로가 읽게 되고, 영성과 세상에 대

한 관심, 그리고 이웃들의 행복을 하나로 연결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밝힌다. 마치 자

신의 책이 몽학선생처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충분히 이뤄질 수 있

다고 보며 저자의 마음에 나의 소망 또한 더해본다.

지난해 불어 온 본 회퍼의 바람은 여전히 미약하다.

거대한 태풍으로 계속해서 불어왔으면 좋겠다. 천지

가 개벽하는 것 같고, 수많은 인간의 산물들이 부서

져가고, 바닥의 온갖 오물들이 용솟음치며 해안가로

밀려 나와 우리의 눈을 찌푸리게 할지라도 그것이 사

는 길임을, 숨쉬는 것임을 우리는 안다. 나는 적어도

이 책이 우리로 하여금 그런 갈망을 가지고 본 회퍼

의 글들로 이끌어 가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부서

질 것은 부서지고, 버려야 할 것은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처음 그를 접하는 사람들도 이 책과 함께라면 큰 어

려움 없이 첫 걸음을 뗄 수 있을 것이다. 하루 하루

천천히 읽고 묵상해 가다 보면 어느덧 우리 손에 본

회퍼의 책들이 들려져 있지 않을까? 거기에서 중단

하고 본 회퍼의 글들로 나아간다면 아마 찰스 링마

는 더없이 흡족한 모습으로 기뻐하리라.

출 판 부 서 평

본회퍼와함께하는발돋움● 한 준 호 | 로고스 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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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

오 우 캠 퍼 스

작년 2학기가 시작할 무렵, 캠퍼스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

배님이 회사 연수차 서울에 올라왔다가 캠퍼스에 방문했

습니다. 저녁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여름수양회

에서 동지부가 동부, 북부로 분할하게 된 소식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선배는 깜짝 놀라면서, 북지부가 생겼는데 어

떻게 국민대는 북지부로 가지 않느냐며 반색을 표했습니

다. 국민대는 북한산 밑자락에 위치한 대학으로, 누가 봐

도 서울의 북 지역에 위치한 학교이기에 서지부로 소속되

기에는 거리상의 밀접성이 떨어집니다. 선배는 학생시절

서지부 자체는 좋았지만 연합으로 모일 때마다 신촌으로

가야하는 거리상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학생들을 위해서

라도 국민대는 북부로 가야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국민대 출신이지만, 어느새 국민대 학생의 입장보다는 ‘서

지부 간사’의 입장으로 먼저 생각하게 되어버린 저의 존재

를 발견하게 되었고, 이 만남이 계기가 되어 2015년 북지

부로 이양하게 되었습니다.

국민대가 북지부로 이양된 최우선적 이유는 지리적 접근

성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북지부인 성신여대나 성균관대

같은 경우는 국민대에서 버스로 15분이면 가는 아주 가까

운 거리에 위치해 있어, 함께 모이는 데에도 부담이 줄고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 할 수 있게 됩니다. (서부의 연합모

임경우에 보통 신촌지역에서 모임을 가지는데 이동하는

데에만 1시간이 소요되니 바쁜 대학생들에게는 여간 부담

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겠지요)

그런데, 이 과정을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사역의 효율성보

다 더 중요한 것을 염두해 두시고 이 일을 인도하셨음을 깨

닫게 됩니다. 바로, 국민죠이라는 한 공동체를 세워 가시는

방법으로 지부 이양의 과정을 사용하셨다는 것입니다.

09학번부터 13학번까지 리더가 잘 세워지지 않고 멤버도

잘 정착하지 못한 국민죠이 공동체는 ‘위기’로 몰리고, 매

해 시작할 때마다 공동체의 생존여부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2014년. 하나님은 먼저 실패와 낙담에 짓눌려 하나

님을 바라보지 못했던 간사의 눈을 뜨게 하시고, 하나님을

보게 하셨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지도교수님을 연결해주

셔서 기본적인 홍보를 위한 학교의 허가를 받아낼 수 있게

해주셨고, 교수님의 연구실과 타 단체의 동아리방도 빌려서

안정적으로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몇 명 안되는 학생들은 서로 알고지낸 시

간도 짧은데다가, 고학번 선배는 새내기를 돌볼 시간적,

심적 여유도 많지 않다보니 피상적인 만남으로 끝나곤 했

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깊은 애정과 헌신의 마음이 없었기에 지부

가 바뀌는 것, 리더가 바뀌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지요.

변화를 걱정으로 대하지 않으니 오히려 잘 되었는지도 모

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국민대가 서지부에서 마

지막으로 함께 보내는 겨울수양회가 다가왔습니다. 마지

막 밤, 국민대를 북부로 파송하며, 국민죠이를 위해 기도

하고, 또 이 시간을 통해 서지부에도 신촌지역의 대학교를

더 품고 가는 기회가 되어 확장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

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수양회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입과 삶에서 생각지도 못한 고백과 변화가 일어

났기 때문입니다. 수양회의 시간을 통해 말씀으로 하나님

을 깊이 만나고, 공동체의 사랑을 깊이 경험한 학생들이

마음을 열게 된 것입니다.

일 년 내내 저와 실랑이를 벌였던 새내기 학생은, 국민죠

이가 준비한 특송의 노래 가사를 외우면서 문득 늘 피해왔

던 죠이에서의 시간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깨닫게 되었으

며 죠이어라는 사실을 깊이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되었습

니다. 수양회 이후 북부 방중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고, 학교의 아는 형도 죠이모임에 데려왔다는

이 학생의 고백과 모습을 통해 저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

습니다. 또 다른 한 형제도, 늘 죠이에 대해 머리로만 알던

공동체를 경험하면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시간이 되었고,

국민죠이와 캠퍼스에 리더로 헌신하는 마음까지 자라나

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국민대의 지부이양은 지

부사역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국민죠

이 공동체를 세워나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던 것이었

습니다. 아마 국민죠이가 지부이양을 하지 않았다면, 수양

회에서도 국민죠이가 준비해야하는 시간이 없었을 것이

고, 아마 그랬다면 국민죠이어들은 수양회에 참여하지 않

았을 겁니다. 죠이어로 자부심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기회

가 마련되었던 셈입니다.

참으로 성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

과 하나님을 자랑하는 국민죠이 공동체를 통해 일하실 하

나님을 기대해봅니다.

국민대

● 정 수 원 간사

오우~~ 캠퍼스

Campus서부에서 북부로의 이양과정을 통한 하나님의 일하심

서지부 겨울수양회 특별순서, “굿바이 국민죠이”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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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4 11

a j o y e r

오늘은 작요가 푹 잤다. 새벽 5시와 8시쯤 깨서 칭얼거렸

으나 젖 먹으며 금새 잠들었다. 이런 날은 아주 수월한 날

에 속한다. 아침엔 남편이 작요를 돌보고, 남편이 출근하

고 나면 나의 하루 육아가 시작된다. 집안을 정리하고, 이

유식을 준비하고, 부랴부랴 내 밥을 차려먹는다. 장난감에

도 앉히고, 안고도 다니고, 혼자 뒹굴게도 하면서 낮에 같

이 놀다가, 작요가 낮잠을 자면 그때는 잠시 나만의 시간

을 갖는다. 지인들과 소식을 나누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거

나. 집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나면 몸이 근질근질 해져서

집 밖을 나선다. 목사님이 일하는 골목길 까페에 마실 나

가 동네아주머니들과 얘기도 나누고 책도 본다. 저녁 즈음

집으로 들어와 세탁기를 돌리고, 8,9시쯤 퇴근한 남편과

함께 밥을 먹고, 꽥꽥 소리지르며 뒹굴거리는 작요와 저녁

놀이를 하면 그렇게 하루가 일단락된다. 별다를 것 없는

단순한 일상같지만(심지어 한가롭게 느껴질 정도), 하루

가 얼마나 정신없고 복작복작 바쁘게 흘러가는지, 겪어본

사람은 지긋이 고개를 끄덕이실 거다.

물론 이렇게 단순해지기까지는 혹독한 적응의 시간이 필

요했다. 작요의 살아온 날 수 만큼, 나도 엄마로 태어나고

자란 셈이니까. 출산후에 급격한 몸의 변화로 어디 한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고, 몸에 익지 않은 낯선 노동과 달

라진 환경을 해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3개월만

기르고 파트 복직하겠다던 야무진 꿈은, 2~3번식 새벽 수

유를 해야하는 백일둥이 앞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생명은 전적인 헌신을 필요로 했다. 그리

고 그 생명은 날 바라보며 ‘음마’ 라고 말했다. 이크! 아가

의 입술이 떼지면서 본능적으로 뱉게 되는 소리가 음마(엄

마)라니.

임신 전부터 임신출산육아를 중요한 신앙의 시기로 설정

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구체적인 대안까지는 마련해두지

못했었다. 나도 막연했고, 날 돕고자 하는 교회지체들도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나의 육아가 흔히

말하듯 엄마가 고립되고 사회적으로 단절되는 그런 시간

으로 채워지진 않을까 적잖이 불안했었다. 특히 나와 함께

하는 남편은 유난히도 ‘살림, 육아’라는 행성과는 멀리 떨

어진 별나라에 사는 사람이었기에 임신 내내 앞날을 고뇌

하는 것으로 태교를 대체했다.

그럼에도 ‘함께하는 관계’가 주는 도움의 손길은 출산 이

후에 내게 큰 힘

이 되었다.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학

생들 동료간사, 친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들은 외부세계와 나를 이어주는

끈이었다. 또한 ‘육아’와 ‘밥상’이 중심인 우리 교회에서

일주일에 두번씩 함께 예배를 드리고 밥을 먹고 아기를 같

이 돌보아 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던지. 허겁지겁 먹

지 않고 파티분위기로 식사를 즐길 주 있다는 것만으로도

쉼을 누리는 듯 했다. 응가를 한 작요의 똥꼬가 짓무르지

는 않을까 물로 씻겨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지체들의 지극

한 마음을 보며 잘 배우고 따라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

다.

동료간사였던 수진이와 그 딸래미 다영이를 만나서 일주

일에 한번씩 공동육아를 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우리의 일

상이다. 우리 두 사람의 집이 가까운 것은 아니지만, 비슷

한 시기에 출산을 한 죠이간사 출신 엄마라는 것 만으로도

거리와 추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아기를 돌보느라 대

화는 하지 못해도 서로 전혀 미안하지 않다는게 엄마들 만

남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다가도 짬이 나면 사역에 대

한 이야기, 서른즈음을 살아가는 여성의 삶, 육아에서 직

면되는 자신의 나약함 등을 거리낌 없이 나누며 위로한다.

물론 대부분 이야기의 저변에는 남편 뒷담화가 깔려있다.

(캬캬)

임신과 출산을 지나 육아로 접어들어 살아가면서 어느때

보다 함께하는 관계의 소중함을 더없이 느낀다. 낯선 길을

걸어갈 때 그 어떤 것보다 친구가 필요하다던 말은 정말

맞는 얘기였다.

나의 지난 8개월의 육아를 감사하며 마무리지으면 좋겠지

만, 허허 이제 시작이다. 아기는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했

고, 나는 다만 초기단계 적응을 끝냈을 뿐이다. 이제 얼마

나 더 다사다난한 길이 내 앞에 펼쳐질지 아득하다. 또한

1년의 육아휴직 후 본업인 죠이간사로 돌아가서 일과 육

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의 삶이 어떨지 내게 주어진 인생의

숙제가 한가득이다.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이 지배

할 때 마다 새로운 생명과의 관계속에서 그때그때 내려주

시는 하늘의 은총이 분명코 있으리라는 믿음에 기댈 뿐이

다.

● 손 거 울 간사

8개월둥이 작요, 8개월짜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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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

추 억 의 사 진 관

추억의사진관

60년대 초 죠이어들의 모습

세련되고 멋있는 양복과 옛날 흑백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한복. 지금과 많이 다르죠?^^

5-60년대 선배죠이어들이 2000년도 REUNION 때 모습

멀리 미국에 계시던 선배님들도 함께 모이셨어요.

죠이 창립 회원번호 넘버원,투,쓰리

(심상권,김흥수,이미자 ) 여기 다 계시네요~^0^

85년도 죠이간사들의 모습1979년 현 제기동에 죠이 본부가 지어졌고,여유로운 잔디밭도 있었답니다~

60년대 joyer들의 skaiting fellowship

당시 스케이트를 타면서 그 곳의 청소년들에게

전도했다. 이는 70년대 초까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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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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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진(이화04) 1/17 결혼했습니다. 축하합니다!김정권(인하97) 2/5 모친상. 삼가 위로를 드립니다.신선호 장로님(70년대) 2/5 소천. 유족들께 위로를 드립니다. 조선미(동지부간사) 2/26 부친상. 삼가 위로를 드립니다.

전반적인 독서인구의 감소가운데 죠이출판회원이 되어 책도 많이 읽으시고, 이 사역에 힘을 실어 주시는 여러분이 되어주세요. 자세한 문의는 02-925-0451 출판부로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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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JESUS FIRST, OTHERS SECOND, YOU TH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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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성,오의정 유대종 유민아 유민지 유복음 유빛나 유서진 유성은 유순옥 유슬기 유슬기 유승범,박선영 유신우 유열매 유영광 유영주 유영하 유오종 유요한 유요한 유은영 유인상,유영주 유인순 유인호 유정춘 유정화 유정훈 유종필,김현숙 유주애 유주영 유지영 유태양 유학규,정호정 유해림 유현숙 유현진 유형수,이지혜 유형진,오인숙 유훈종,황은순 유희정 육미경 육원수 윤경애 윤다슬 윤두선 윤문선,문향자 윤미자 윤미진 윤민수 윤상혁 윤석민 윤선호 윤성진윤성호,안영선 윤수영 윤수영 윤승석 윤신애 윤신원 윤여울 윤영민 윤예헌 윤용지,김지은 윤원진 윤원희 윤정신 윤정아 윤정혜 윤주혁 윤주현 윤준이 윤진희 윤찬송 윤창현 윤형노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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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 윤혜림 윤홍설,조수미 윤희정 은혜민 이 선,박진호 이 슬 이 득,손거울 이 랑 이 옥 이 윤 이 윤 이 은 이가영 이강덕,고옥희 이강진 이강현,육소정 이건형,류광성 이경구,김향선 이경록 이경섭,황은경 이경수,이정미 이경원 이경주 이경찬,추지애 이계홍,김훈중 이계환 이광영 이광호 이구연 이규원 이규철 이근영 이근화 이금옥 이기증 이남훈,강세경 이다빈 이다정 이다함 이다형 이다희 이대연 이대일 이덕림 이덕수,정영숙 이덕행 이동기 이동민 이동순 이동오,홍은혜 이동우 이동우 이동운,송보미 이동훈 이동훈,허효선 이동휴 이만식 이명기이명숙 이명연 이명은,오영례 이문영 이문옥 이문종,송정희 이미순 이미정 이미진 이미진 이민성 이민실 이민욱 이민호 이범수 이병권 이병인 이병헌,김성희 이병환 이병훈 이병훈,최지영 이보람 이복희 이상규 이상길 이상록 이상미 이상민 이상아 이상엽 이상웅,이은영 이상익 이상진 이상혁 이상형 이새봄 이새봄 이샛별 이서희 이석영 이선경 이선경 이선민 이선아 이선애 이선영 이선정,박경은 이선호 이선화 이선희 이섬민 이성규 이성노 이성대 이성민,임정은 이성신 이성엽,최양인 이성욱 이성은 이성자 이성재 이성훈,노성은 이세연 이세정이소명,정동경 이소영 이소영 이솔지 이솔희 이수연 이수정 이수진 이수진 이수현 이숙용 이순단 이슬이 이승각 이승구 이승덕,한정화 이승렬,이경진 이승모,이보람 이승민 이승민,김은진 이승수 이승수,엄윤진 이승연 이승엽 이승원 이승현 이승훈 이아람 이아연 이안나 이애선 이애진 이양순 이연경 이연영 이연주 이영광 이영순 이영주,유희예 이영화 이영희 이예랑 이예솔 이예슬 이예원(이정철) 이예지 이옥라 이완수,이승민 이요한 이용수 이우복 이우철 이원근 이원열 이원재,방은정 이유리 이유엽 이유정 이윤복,홍미연 이윤재 이윤재,정금순 이윤정(리틀죠이) 이은경 이은경 이은규 이은숙 이은신 이은애 이은영 이은영 이은정 이은지 이은찬 이은혜 이은혜 이은화 이응남,서정은 이의신,이상희 이인숙 이일도 이일순 이임수,황선영 이임수,황선영 이장현 이재욱 이재웅 이재원,이아라 이재하 이재호 이정길 이정대 이정민 이정복,김주회 이정섭 이정연 이정은 이정은 이정은 이정자 이정주 이정주 이정준 이정철 이정철,조유희 이정표,박은경 이정혁 이정현 이정훈 이정훈 이정훈,김소정 이정훈,조민정 이종렬,서인순 이종민 이종열 이종영 이종익 이종철 이종현 이종훈 이종희 이주노이주용,조수진 이주은 이주현,김성헌 이주희 이준효 이중근 이지숙 이지연 이지영 이지원 이지윤 이지은 이지현 이지현 이지현 이지혜 이지혜 이지호 이진경 이진수 이진숙 이진영 이진우 이진우 이진원,김순례 이진헌 이진호,김현숙 이진호,유은지 이진화 이찬미 이창영 이창우,허미숙 이창준 이창현 이창훈 이창희 이치현 이태규 이태성,정복미 이태영,김윤주 이태웅,송헌복 이태일 이택근 이평경 이하영 이하은 이한나,우승일 이한승,오주은 이한웅 이현모,최주희 이현아 이현아 이현우 이현웅 이현임 이현정 이현지,김낙주 이형신 이형주 이형호이혜림 이혜미 이혜연 이혜정 이혜지 이혜진 이혜진 이호영 이호영 이호준 이호준,박연주 이호택 이화영 이회건 이회윤 이효정 이효진 이효진 이효진 이후정 이훈희,심에스더 이희승이희준 이희창,김현나 임 선 임관석 임교신 임금순 임도환 임바른 임방통 임보라 임보라 임봉수 임선경,문병용 임선아 임선영 임선우 임선희 임성영 임성희 임세인 임소연 임수경 임수완 임수인 임승호,황은혜 임시연 임연지 임영주 임영희 임옥인 임유선 임은미 임은총 임인택 임재일 임재훈 임정숙 임지혜 임진순 임진희 임창연 임채희 임평재 임한나 임현경 임현주 임혜미 임혜영 임혜원 임호섭 임효섭 임효진 장 군 장금화 장단비 장대영 장동수 장동원 장명훈 장미옥 장미희 장민철 장병만,김경애 장보인 장선영 장성욱(최성련) 장세엽 장순영장순찬 장예진 장우재 장우준 장윤정 장은미 장은석,전주미 장은실 장이상 장익준 장재수 장정화 장종현,이윤재 장주혁 장주현 장지영 장지혜 장지혜 장태관,박나미 장한나 장현수 장현진 장현호 장형진,김유정 장혜리 장혜림 장혜원 장혜인 장호동 전 광,박원경 전경숙 전규훈 전나래 전다정 전다혜 전동혁 전동호 전미현 전보경 전상미 전상우 전석수 전성준 전신화,이승현 전예은 전요셉 전유나 전은혜 전인재 전재성 전종관,유경순 전종철,유혜경 전지혜 전진석 전진영 전창완 전현선 전형배 전형진 전호용 전홍석 전화자 정 민 정 성 정 호,나보미 정가람 정강민 정경화 정경화 정경희 정고운 정광환 정규채,박정신 정근초 정기현,노순희 정나은 정다영 정다영 정다운 정다운 정달래 정대성 정대진 정덕영 정문경 정미영 정미현,김영균 정민웅 정보라 정부영 정성인 정소연 정소영 정수경 정수원 정순호 정순호,장정애 정승이 정아름 정아봉 정아인 정안나 정안나 정양근 정영선 정영숙 정영완 정요셉 정용배,김미자 정용선 정용훈,조남희 정우영 정원근 정원동 정원동,장윤정 정원상 정윤정 정은선 정은휘 정은희 정은희 정인정 정재상 정재욱 정재윤 정재일 정정은 정종원 정주원,오수진정지성 정지웅 정지원 정지은 정진강 정진영 정진화 정진환 정창규 정철성,김순례 정태석 정태영,박계순 정태은 정태호 정해철 정향미 정혜림 정혜숙 정혜아 정호성,김은아 정희경 제승도,정희원 제은형 조 온 조강일 조경미 조경민 조나영 조대희,한희정 조미리내 조범석 조병훈 조새롬 조석환 조선하 조성민 조성민 조성민 조성민,김민정 조성아 조수정 조승연 조신영 조아라 조언제 조영심 조영훈 조옥수 조용규 조윤정 조윤주 조은솔 조은숙 조은영 조은정 조은주 조은혜 조은화 조인성 조인요 조일육 조정환 조진홍 조창대 조한라 조한형 조항배,김윤정 조해나 조현숙 조형원 조혜진,김상진 주광진 주보경 주혜선 주혜연 주홍선,전혜경 지선영 지세훈,김명희 지소연 지영훈 지준왕 진 용 진보라 진유정 진은선 진행자 진형호차다애 차민호 차유진 차재만 차희아 채기응 채수인 채용원 채유정 채정준,김진희 채조석,최지성 천다연 천만리 천인우,김은이 천희우 최 덕 최 설 최경태 최규용 최기철 최기한 최다은 최다정 최락정 최명희 최문상 최민영 최민영 최병준 최보혜 최복순 최상호 최서란 최석영 최성령 최성용 최성운,반혜라 최성인,기주애 최성준 최세민 최솔비 최수연 최순기 최순옥최슬기 최슬기 최슬기 최슬애 최승용,박서연 최승진,박송희 최승훈 최신정 최양섭 최여은 최연지 최영록 최영식,김윤희 최영태,신윤임 최영하 최예은 최오순 최용환 최우범 최월순 최윤지 최은빛 최은숙 최은순 최은실 최은혜 최은희 최인경 최인실,김다솔 최인욱 최인철,한시온 최재혁 최정국 최정규,이선희 최정문 최정아 최정웅 최정은 최정화 최정훈,장태순 최정희 최제혁 최종성 최종우 최주연 최주현 최준희,한화정 최지수 최지수 최지혜 최지혜 최지혜 최지혜 최지혜 최지혜 최지희 최창범 최창식,김형주 최큰별 최태균,문향란 최하나 최한슬최혁락 최혁준,전지연 최현우 최현준 최현지 최형은 최호윤 최호준 최환열 최효영 최희정 최희철 추광호 추나영 추민지 추상민 추형욱,황은진 추혜선 표미경 풍은선 하동호 하둥지 하명효 하선호 하영호,오수민 하유미 하인철 한 별 한경옥 한광엽 한국남 한국화 한권수 한권형 한규남 한금순 한나영 한동성,남궁성녀 한동실 한동엽 한만춘,전진희 한문숙 한민선 한민정 한상용 한상진,조옥진 한성일 한성준 한수원 한승수 한승혁 한승환 한신옥 한연수 한영주 한유경 한유근,박진선 한유선 한윤우 한은애 한정우,이유진 한정은 한종범 한지현 한창희,김은정 한태훈 한태희,김하윤 한혜원,김동훈 한효진 함석경 함현아 함현지 허경회,남오정 허민성 허선영 허시은 허영명 허옥자 허재욱 허재훈 허준영 허준호 허지훈,김예은 허진경허천영 허혜영,김병극 허호범 현두리 현용택 현지연 현지윤 홍경수 홍길란 홍미련,이성일 홍미정 홍석명 홍석유 홍선경 홍선화 홍세진 홍순기 홍순원,김희숙 홍승범,금나영 홍완기,이연순 홍용환 홍웅기 홍은호 홍인걸,신선미 홍주현 홍지은 홍지혜 홍찬영 홍현주 홍화진 황광보 황규대 황규준,진정숙 황규찬,허인숙 황모아 황미선 황병구 황병일 황서현 황선관,김은형 황선숙 황선익 황선희 황성민 황성철 황수연,한현숙 황수정 황영민 황영숙 황용성 황은비 황은숙 황은정 황의룡,곽춘희 황인혜 황재욱,윤상아 황정원 황정한 황주언 황준태 황지환,강은희 황창호 황치하 황현제 황혜리 황흥택,김양애 RHEE PAUL SUNIHL

단체

(주)나은티에스아이 (주)아이젤 (주)충훈건설 (주)토탈이엔씨 GMTC 경희동문 고대동문 국민동문 국민죠이 노무법인 대륜 단국천안동문 대전가족모임 명지.용인동문 명지대학교목실 상명동문(정호정) 상지죠이 서울대1동문회 서울대동문 세무법인조이 아시안미션 연세매지죠이 연세죠이 오르리 모임 인하죠이 주사랑선교회 안디옥기도모임 출판사역부 한국교통대(충주) 행복한나눔

교회

가평기쁨교회 거룩한빛광성교회 거제온누리교회 경주두레교회 구로성광교회 군산동신교회 군산제일교회 청년회 꿈의교회 꿈이있는교회 남대문교회 남서울평촌교회 낮은예수마을교회 넘치는교회 높은뜻하늘교회 대전영락교회 더나은교회 도마동침례교회 동숭교회 동신교회 청년교구 동안교회 동일로교회 동현교회 드림교회 마중물교회 맑은샘교회 무학교회밝은교회 봉신교회 부천평안교회 사랑의교회 사명의교회 산성교회 삼능교회 상도제일교회 상록교회 생명줄교회 서울제일교회 선한교회 선한목자교회 섬기는교회 성서침례교회 성석교회 청년부 성천교회 소망교회 숭인교회 승리교회 신반포교회 염광교회 영암교회 예수공동체교회 예수나눔교회 예수로교회 예수사랑교회 예수향남교회 온누리교회 원천침례교회 인천신광교회 인천제자들교회 인천한빛교회 전민새생명교회 전주안디옥교회 전주온누리교회 제일소망교회 제자교회 제자된교회 제자들교회 주생명교회 지구촌교회 참좋은교회창동가정교회 창문교회 창원혜성교회 청목교회 평택홍광교회 하나의교회 하늘소망교회 하늘소망교회 한마음교회 한믿음교회 할렐루야교회 함께하는교회 항곡교회 화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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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 이종렬

이 사 김학유 손창남 송호신 신용주 윤창현 이윤복 이종렬 전창완 정문경 최은식 황규찬 황병구 유종필

감 사 변재준 허종학

대 표 김수억

법인사무국 장정애(국장)

\행정지원팀 김희숙(팀장) 정영주 조옥진

\대외협력팀 박연주

사역연구소 박기모(소장))

\간사훈련원 제승도(원장) 정희원

학원사역부 박기모(디렉터) 고은미 고진수 고동현 김민주 김선미 김선영 김성연 김수형 김승현 김예지 김은별

김재훈 김지수 김진석 김혜정 김희수 노성은 문영준 박두진 박상신 박설희 박성희 박세진 박신형

박윤석 박태서 백운용 봉인선 손거울 신재호 심재용 오승주 오승환 유성은 유주환 이다솜 이명희

이성훈 이수진 이은애 이정호 이진헌 전재성 정가영 정다영 정수원 정을영 정지성 조선미 조윤정

지준왕 채용원 최 설 최성주 한나영 한민선 홍미연 황선관 황재욱

해외사역부

\국내 제승도(디렉터) 박선영(팀장) 김신영 김지영 조창우

\해외 김토기 경의영 류시내 오하람 황성연 전나래

전문사역부 안세환(디렉터)

\제자훈련학교 이임수

출판사역부 김동신(본부장)

\영업팀 김재준

\편집팀 이성민 임정은 서영주 장성애

발 행 일

발 행 처

발 행 인

편 집 인

제 작

구 독

문 의

대표전화

팩 스

이 메 일

홈페이지

주 소

The JOY 2015년 3+4월호

2015년 3월 5일

죠이선교회

김수억

장정애

죠이선교회

1년 6회분 6,000원

2년 12회분 10,000원

죠이선교회 법인사무국

(02)929-3652~3

(02)921-4352

[email protected]

www.joymission.org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274-6

C . o . n . t . e . n . t . s .

010204060809101112131416

권두언

핵심가치의 중요성 _ 손무인

잇사갈의 자손처럼 _ 손창남

DMPD 좌담회

제자훈련학교 간증문 _ 신정은

출판부 서평 _ 한준호

오우~캠퍼스 _ 정수원

a joyer _ 손거울

추억의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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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하신 분들

신간소개

강한 신념을 가지고 나치체제에서 저항하다 순교한 독일의 신학자

일 년 동안 매일 한 개씩 읽도록 구성한 이 묵상집은 단순히 본회퍼의 명언을 쭉 나열한 책이라 생각할지 모른다.하지만, 적절한 성경 구절과 저자 찰스 링거의 묵상글이 덧입혀졌다.마무리에는 묵상, 기도, 사색의 짧은 글이 더해졌다. 한마디로 본회퍼의 말을 통해 깊이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의 자리에까지 이어진다 하겠다.

부조리 속에서 살아가며,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직도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