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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치 l 101 개 관 2013년 한 해는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의 대선개 입 의혹,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및 사초(史草) 실 종,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으로 들끓었다. 치열했 던 대선의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2월 25일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정치권의 시계는 대선 정국에 묶여 혼란 에 빠졌다. 여야 모두 과거에 발목이 잡힌 채 정치 공방에만 몰두하느라 민생과 경제는 뒷전으로 밀렸다는 비판이 제기되 기도 했다. 실제 여야 간 사활을 건 공방으로 9월 정기국회에서는 고작 34건의 법률안을 처리함에 따라 역대 국회와 비교해 ‘생산성’ 이 가장 떨어지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1년 내내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새해 예산안의 법 정 처리 시한(12월 2일)을 넘긴 것은 물론이었다. 사실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과 경제민주화, 복지강화를 약속하고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등장 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반도 평화와 통일기반 구축 등 4대 국정기조의 달성을 위해 야심차게 출범했다. 그러나 정부가 모습을 갖추기도 전인 2월 정부조직법 개편 을 놓고 여야 간에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게다가 장관 을 비롯한 일부 고위 공직 내정자가 도덕성 검증의 문턱을 넘 지 못하면서 가장 귀중한 정부 출범 후 100일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대선 불복으로 번져 그러나 이것은 6월부터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국가기 관의 대선 개입 의혹을 둘러싼 정쟁에 비하면 서막에 불과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정치 개입과 이에 대한 수사 축소·은폐 혐의를 받으며 공직선거 법 위반으로 기소 당하자 여야는 마주 달리는 기관차처럼 부 딪쳤다. 이후 민주당은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의혹을 고리로 국정 원의 조직적인 대선개입과 경찰의 축소·은폐수사 의혹을 지 속적으로 제기한 데 대해 새누리당은 민주당을 향해 “대선불 복의 망령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며 정면 충돌했다. 진실 규명을 위해 국회 국정조사특위까지 구성돼 7월 2일 부터 총 53일간 활동을 벌였으나 여야 간 현격한 입장차 때문 에 보고서조차 채택하지 못하는 등 여야 간 갈등은 끝날 줄 몰 랐다. 그러자 민주당은 국조특위 파행 등을 이유로 원내외 병행 투쟁을 선언하며 8월 서울시청 앞에 천막당사를 설치하고 무 려 101일간의 장외투쟁을 전개했다. 이런 와중에 트위터를 포함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활용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면서 여야 정쟁에 불을 붙였다. 이어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는 국군사 이버사령부와 국가보훈처의 대선개입 정황이 드러나면서 여 야 간 대치는 정점으로 치달았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사건 수사 와중에 채동욱 전 검찰 총장이 혼외아들 의혹으로 중도낙마 하자 민주당은 청와대 외압설을 제기하며 특별검사 도입 카드를 꺼냈다. 박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까지 나서 박 대통령을 수혜자로 지목하고, 대선이 불공정했다고 언 YONHAP Y E A R B O O K 정치

YEARBOOK - cdnvod.yonhapnews.co.krcdnvod.yonhapnews.co.kr/yonhapnewsvod/public/yearbook/2014/A/05_01.pdf · 권력분화 양상과 비주류의 각자 도생 속 연대 기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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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 치 l 101

    개 관

    2013년 한 해는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의 대선개

    입 의혹,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및 사초(史草) 실

    종,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논란으로 들끓었다. 치열했

    던 대선의 ‘후유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2월 25일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정치권의 시계는 대선 정국에 묶여 혼란

    에 빠졌다. 여야 모두 과거에 발목이 잡힌 채 정치 공방에만

    몰두하느라 민생과 경제는 뒷전으로 밀렸다는 비판이 제기되

    기도 했다.

    실제 여야 간 사활을 건 공방으로 9월 정기국회에서는 고작

    34건의 법률안을 처리함에 따라 역대 국회와 비교해 ‘생산성’

    이 가장 떨어지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1년 내내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새해 예산안의 법

    정 처리 시한(12월 2일)을 넘긴 것은 물론이었다.

    사실 박 대통령은 국민대통합과 경제민주화, 복지강화를

    약속하고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등장

    했다. 박 대통령은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한

    반도 평화와 통일기반 구축 등 4대 국정기조의 달성을 위해

    야심차게 출범했다.

    그러나 정부가 모습을 갖추기도 전인 2월 정부조직법 개편

    을 놓고 여야 간에 지루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게다가 장관

    을 비롯한 일부 고위 공직 내정자가 도덕성 검증의 문턱을 넘

    지 못하면서 가장 귀중한 정부 출범 후 100일 동안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대선 불복으로 번져

    그러나 이것은 6월부터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한 국가기

    관의 대선 개입 의혹을 둘러싼 정쟁에 비하면 서막에 불과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정치

    개입과 이에 대한 수사 축소·은폐 혐의를 받으며 공직선거

    법 위반으로 기소 당하자 여야는 마주 달리는 기관차처럼 부

    딪쳤다.

    이후 민주당은 국정원 여직원의 댓글 의혹을 고리로 국정

    원의 조직적인 대선개입과 경찰의 축소·은폐수사 의혹을 지

    속적으로 제기한 데 대해 새누리당은 민주당을 향해 “대선불

    복의 망령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며 정면 충돌했다.

    진실 규명을 위해 국회 국정조사특위까지 구성돼 7월 2일

    부터 총 53일간 활동을 벌였으나 여야 간 현격한 입장차 때문

    에 보고서조차 채택하지 못하는 등 여야 간 갈등은 끝날 줄 몰

    랐다.

    그러자 민주당은 국조특위 파행 등을 이유로 원내외 병행

    투쟁을 선언하며 8월 서울시청 앞에 천막당사를 설치하고 무

    려 101일간의 장외투쟁을 전개했다.

    이런 와중에 트위터를 포함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활용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면서 여야

    정쟁에 불을 붙였다. 이어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는 국군사

    이버사령부와 국가보훈처의 대선개입 정황이 드러나면서 여

    야 간 대치는 정점으로 치달았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사건 수사 와중에 채동욱 전 검찰

    총장이 혼외아들 의혹으로 중도낙마 하자 민주당은 청와대

    외압설을 제기하며 특별검사 도입 카드를 꺼냈다.

    박 대통령의 경쟁자였던 민주당 문재인 의원까지 나서

    박 대통령을 수혜자로 지목하고, 대선이 불공정했다고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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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

    Y E A R B O O K

    정치

  • 102 l 정 치

    급함에 따라 정치권은 본격적인 대선 불복 소용돌이에 빠졌

    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민주당 장하나 의원의 대선불복 선

    언과 대통령 사퇴 촉구, 양승조 최고위원의 박 대통령 ‘선친

    전철 답습’ 가능성 발언 등은 정국을 더욱 경색 국면으로 몰

    고 갔다.

    ■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및 ‘사초(史草) 실종’ 논란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대선 전인 2012년 10월 8일 노무

    현 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사이에 NLL을 포

    기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이 담긴 정상회담 대화록이 있다고

    한 주장이 새삼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이를 두고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6월 ‘NLL 포기 논란은 국

    정원과 새누리당의 시나리오’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이에 대

    해 새누리당이 강력 반발하면서 논쟁이 재점화됐다.

    결국 국정원이 6월 20일 국회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

    들에게 대화록 발췌록을 열람시킨 데 이어 나흘 뒤 대화록 전

    문까지 제공한 것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새누리당

    은 이를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취지의 발언을 했

    다’며 대야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었다.

    그러자 친노(친 노무현) 진영을 포함한 민주당은 원래 정상

    회담의 취지에 어긋나는 발췌본을 공개하는 것은 의도적인

    왜곡이라며 원문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결국 여야는 7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기록원을 상대

    로 대화록과 녹음기록 등 일체의 열람과 공개를 요구하는 자

    료제출 요구안을 가결했고, 이후 여야 열람위원들이 국가기

    록원을 방문해 관련 자료 열람에 착수했다.

    그러나 여야 의원들이 기록원을 수차례 방문해 관련 기록

    을 샅샅이 뒤졌지만 대화록은 발견되지 않았고, 곧 ‘사초(史

    草) 실종’ 논란으로 비화했다.

    여야 간 공방을 벌이던 중 새누리당이 검찰에 고발해 압수

    수색이 이뤄졌다.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참여정부에서

    대화록을 폐기했다는 취지의 검찰 수사결과 발표에도 친노

    (친노무현)를 중심으로 한 야당은 표적수사, 편파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박근혜 후보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으로서 대화록 사전 유

    출 의혹에 연루된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권영세 주중대사

    (선대위 종합상황실장)도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로 결

    론났다.

    ■ 여권 권력 지형 변화…‘친박’ 실세 장악

    대선이 끝나고 여야 권력 지형도 적지 않게 재편됐다.

    새 정부 출범 6개월 무렵 허태열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일부 청와대 참모진이 교체됐다. 또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초연금 공약 후퇴 논란 속에, 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아들

    논란 끝에 각각 물러나는 등 청와대와 정부의 주요 포스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선 과정에서 일찌감치 친박(친박근혜) 중심으로 재편된

    당은 친박 색채가 더욱 짙어졌다. 박 대통령의 후보 비서실장

    을 지내는 등 핵심 측근으로 통하는 최경환 의원이 5월 이한

    구 전 원내대표의 바통을 이어받아 원내사령탑에 오르면서

    확고한 당청 공조체제를 구축했다.

    강창희 국회의장에 이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서청

    원 의원 등 이른바 친박 원로그룹이 당청의 전면에 등장한 것

    도 박근혜 정부 첫해 여권 권력지형 변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정권 초반 크고 작은 인사 잡음에 시달렸던 청와대로서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박 대통령 방미 중 성추행 사건이

    결정타였다. 지휘 책임자인 이남기 전 홍보수석이 물러난 것

    은 물론 방미 성과 전체에 먹칠을 했다.

    허태열 실장이 물러나면서 친박 원로그룹으로 7인회 멤버

    이기도 한 김기춘 현 비서실장이 전면에 등장, 박 대통령의 절

    대적 신임을 바탕으로 청와대를 명실상부한 국정의 컨트롤

    타워로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근혜의 입’으로 불려온 이정현 홍보수석은 여전히 두터

    운 박 대통령의 신임을 기반으로 ‘복심’ 역할을 수행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도 박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 아래 외

    교 안보 컨트롤타워로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와 함께 청와

    대 1기 참모진 그룹으로서 유임된 유민봉 국정기획수석과 조

    원동 경제수석,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도 입지를 굳힌 것으로 보인다.

    김 비서실장과 함께 제2기 참모진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박

    준우 정무수석과 홍경식 민정수석, 윤창번 미래전략수석, 최

    원영 고용복지수석은 새로운 파워엘리트로 부상했다.

    ▲ 김기춘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이 8월 5일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원영 고용복지수석, 윤창번 미래전략수석, 홍경식 민정수석, 박준우 정무수석.

  • 정 치 l 103

    청와대와 비교해 내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정홍원 국무

    총리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내각을 통할하고 있는 가운데 친

    박 정치인 출신인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과 조윤선 여성가

    족부 장관이 내각에서 박 대통령을 뒷받침하고 있다.

    야당의 사퇴 압박을 받는 남재준 국정원장이나 이경재 방

    송통신위원장 등 장관급 국무회의 참석자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만 ‘실세 장관’으로 불리던 진영 보건복지부 전 장관이 9

    월 정부의 기초연금 수정에 반발, ‘항명 파동’을 일으키며 전격

    사퇴해 정권에 적잖은 부담을 줬다. 또 전임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양건 전 감사원장은 4대 강 감사 논란 속에 사퇴해 외

    풍 논란을 빚었고, 혼외아들 의혹으로 사퇴한 채동욱 전 검찰

    총장은 ‘찍어내기’ 논란 속에 여야 정치공방의 한복판에 서기

    도 했다.

    여당에서는 몇 차례 재보선과 당내 선거로 권력 지형이 재

    편됐다.

    이미 2012년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열린 4·11 총

    선을 통해 당은 친박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됐다. 이제 친이(친

    이명박)-친박의 계파 갈등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 출범 직후 잇따른 고위 공직 후보자의 낙마와 정부조

    직법 개편 과정에서 청와대 눈치를 살피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 것도 친박 일색의 당 체제

    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현재 황우여 대표와 더불어 친박 실세인 최경환 원내대표,

    홍문종 사무총장,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이 실질적으로

    당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황 대표는 지난 2년 가까이 당을 무리 없이 이끌었다는 평

    가를 받고 있으며, 강창희 국회의장에 이어 후반기 국회의장

    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졌다. 3선인 최 원내대표는 통상 4선

    이상이 하던 원내대표를 거머쥐었다. 이를 두고 집권 초반 국

    정을 힘있게 끌고 가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한 것 아니

    냐는 해석이 나왔다.

    구주류 친이계 출신인 김기현 정책위의장은 최 원내대표와

    함께 당선돼 ‘강한 정책여당’을 견인하고 있다. 또 17∼18대

    때 원외에 머물렀던 홍문종 의원도 여당의 살림살이를 책임

    지는 사무총장을 맡으면서 단박에 지도부에 편입됐고, 윤상

    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여야 협상 전략을 짜는 ‘브레인’으로 부

    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내에선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차기 당권과 2014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차기 주자들

    의 물밑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류 친박의

    권력분화 양상과 비주류의 각자 도생 속 연대 기류가 감지

    되면서 당내 역학구도가 기저부터 뜨겁게 꿈틀거리는 양상

    이다.

    특히 한때 친박 좌장으로 불렸던 김무성 의원이 4·24 재

    보선, 친박계 맏형인 서청원 의원이 10·30 재보선을 통해 각

    각 여의도에 재입성하면서 당내 권력구도는 요동치기 시작했

    다. 본인들은 부인하지만 당권을 놓고 두 사람의 경쟁이 이미

    시작된 모양새다.

    여기에다 차기 원내대표, 후반기 국회의장 등을 놓고도 치

    열한 신경전이 일고 있다. 초반 대세론을 형성한 김무성 의원

    은 최근 다시 로키 행보를 하고 있지만 8월 ‘근현대사 연구교

    실’, ‘통일경제교실’을 잇따라 발족시켜 공개 행보에 나서 세

    불리기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첫 모임에 100여명

    의 의원이 모인 것은 김 의원이 갖는 당내 위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러자 유기준 의원을 비롯한 원조 친박이 주축이 돼 ‘국가

    경쟁력강화모임’을 결성했고, 이는 ‘김무성 견제용’이 아니냐

    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서청원 의원은 드러내놓고 행보를 하지는 않지만 당내는

    물론 야당 중진들도 물밑에서 꾸준히 만나면서 조용히 영향

    력을 키워가고 있다.

    역시 4·24 재보선에서 당선된 충남지사 출신의 이완구 의

    원도 차기 당권 후보군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김종필 전 국

    무총리를 기념하는 ‘운정회’ 창립을 주도하며 충청권 세력을

    확장하는 것은 물론 각종 모임을 통해 중앙 무대에서 정치적

    외연을 넓히고 있다.

    ■ 野 대선후보들의 현주소

    야권에서는 2012년 대선 주자를 중심으로 변화가 적지 않

    게 일고 있다.

    대선 패배의 멍에를 짊어진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2007

    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깊은 수렁에 빠졌다가 2013년 말

    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정치재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2012

    년 TV 토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와 가장 날카롭게

    각을 세웠던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정당해산 심판이라는

    초유의 위기에 봉착했다.

    대선 본선무대를 밟지는 못했으나 사실상의 후보급이었던

    무소속 안철수 의원은 신당 창당에 속도를 높이면서 6월 지방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 ‘대화록 벙커탈출’ 文, 친노 결집으로 재기 모색 = 야권의 대

    선 후보로 끝까지 남아 박 대통령과 자웅을 겨뤘던 문 의원은

    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한동안 ‘칩거생활’을 했

    었다.

    여기에다 선거 과정에서부터 제기된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논란을 둘러싸고 “국가기록원에 보관된 대화록 원본을

    열람하자”고 역제안한 것이 오히려 스스로 발목이 잡히는 결

    과를 낳았다.

    국가기록원에서 대화록 원본을 찾지 못하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서 여권에 ‘사초 실종’이라는 공세의 빌미

    만 제공한 것이다.

    ‘대화록 파문’에 휘말려 운신의 폭이 좁았던 문 의원이 재기

    의 실마리를 찾은 변곡점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로 볼

    수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노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

    라 고의로 폐기됐다는 것이 검찰의 결론이지만, ‘NLL 포기’는

    노 전 대통령이 아니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발언이었

    던 것으로 확인된 데다 문 의원은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됨

    으로써 ‘책임론’에서 몸이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이후 문 의원은 11월 28일 민주당 가톨릭신도회 소속 의

    원들과 주최한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원미사’에

    앞서 박근혜 정부의 ‘종북몰이’를 맹비난하고, 기자 간담회

  • 104 l 정 치

    에서는 차기 대선 재도전을 시사하는 등 거침없는 정치 행보

    에 나섰다.

    문 의원은 당시 간담회에서 “2012년 대선의 꿈이 2017년

    으로 미뤄졌다. 반드시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면서 “내가 역

    할을 해야 한다고 집착하지 않지만 회피하지도 않을 것”이라

    고 선언했다.

    12월 5일에는 대선 회고록 ‘1219 끝이 시작이다’를 출간

    하고 인터넷 팟캐스트 공개녹화에 출연해 100여명의 지지

    자와 함께 시민과의 소통에 나서는 등 보폭을 늘리고 있다.

    회고록 출간을 계기삼아 12월 14일 서울 코엑스를 시작으로

    전국 순회 북콘서트를 여는 등 대중과의 접촉면을 늘리는 것

    은 물론 당내 친노 세력을 재결집해 2014년 지방선거 이후

    본격적인 ‘대권 재수’ 준비에 착수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

    된다.

    • 신당 창당 박차…정치지형 혁신 꿈꾸는 安 = 대선 후보를

    양보하고 투표일 당일에 곧장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던

    안철수 의원이 정치 무대에 다시 서기까지는 3개월도 채 걸리

    지 않았다.

    3월 11일 귀국한 안 의원은 4·24 재보궐선거 출마를 선언,

    서울 노원병에서 당선돼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안 의원의 독자

    세력화 추진 선언은 대선 패배로 흩어진 야권 지지자들의 호응

    을 받으면서 식었던 ‘안철수 열풍’이 재연될 조짐까지 보였다.

    당선 한 달만인 5월 22일 싱크탱크격인 ‘정책네트워크 내

    일’을 창립하고 전국 거점도시를 순회하는 지역 토론회를 개

    최해 세 결집에 나서는 등 초기 행보까지만 해도 거침이 없었

    으나 강고한 양당 구조의 틈바구니에서 거물급 인사 영입 소

    식이 감감무소식인 가운데 ‘내일’의 이사장으로 영입한 최장

    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갑작스러운 사퇴에 직면하는 등 시행

    착오를 드러내기도 했다. 당초 기대와 달리 10월 재·보선에

    참여하지 않고 신당 창당 작업이 지연되면서 정치적 한계에

    부딪힌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안 의원이 돌파구를 찾은 것은 11월 4일 국가기관 대선개

    입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 도입을 여야에 공식 제안하면서 ‘특

    검 이슈’를 선점하면서부터다.

    민주당, 정의당과 함께 특검 공조체제를 구축해 야권의 중

    심축 가운데 하나로 존재감을 각인했고, ‘국민과 함께하는 새

    정치 추진위원회’(새정추) 출범을 선언하면서 신당 창당과

    2014년 지방선거 참여를 공식화했다.

    안 의원의 신당 창당 공식화 선언은 마침 문 의원의 정치행

    보 재개 시점과 맞물려 차기 대선 구도를 향한 야권 내 라이벌

    구도에 불꽃을 튀기기도 했다.

    민주당 출신의 전직 3선 의원인 김효석 전 의원, 현대자동

    차 사장과 민주당 의원을 지낸 이계안 전 의원, 박호군 전 과

    학기술부 장관, 윤장현 광주비전21 이사장을 새정추 공동위

    원장으로 영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몸집을 불렸다.

    안 의원은 새정추 위원으로 대선 1주년을 맞아 전국 순회

    설명회에 나서고, 지방선거와 재보선에 출마할 인재 영입을

    본격화하는 등 정치행보에 탄력을 붙이고 있다.

    • ‘이석기 사건’ 발목잡힌 李…위기 계속 = 우여곡절 끝에 다

    시 차기 주자로 자리매김 중인 문재인, 안철수 의원과 달리 이

    정희 대표의 가시밭길은 끝이 없어 보인다.

    2월 23일 진보당 대표로 선출된 이 대표는 당 소속 이석

    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에 휩싸여 본인은 물론 당 전체

    로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석기 의원이 ‘RO(Revolution

    Organization)’ 조직원과의 비밀모임에서 통신·유류 등 국

    가기반시설 파괴를 모의하는 등 내란음모를 꾀한 혐의로 9월

    구속되면서 ‘종북 프레임’에 갇힌 것은 물론 정당의 존립 자체

    가 흔들릴 상황에 처한 것이다.

    정부는 11월 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는 등 구체적인 실행에 나선 것도 큰 위협이다. 이 과정

    에서 이 대표는 정부·여당과의 대립각을 더 날카롭게 세우

    고 진보세력 결집을 호소하는 등 고군분투했지만 뚜렷한 리

    더십을 보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이 대표가 직접 변호인으로 참여 중인 이석기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 재판과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심판 결과에 따라

    이 대표의 정치적 명운도 갈릴 전망이다.

    대통령

    개 요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 박근

    혜 대선후보가 당선됐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

    ▲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12월 14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선 회고록 ‘1219 끝이 시작이다’의 북콘서트에서 발언하고 있다.

    ▲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11월 28일 오전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추진위원회’를 결성,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