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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安心)경영은 걱정 없고 편안한 마음으로 정상적인 기 업경영이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즉, 작업환경이 안전하고 쾌적하여 근로자들이 안심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 를 만들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안전을 심는다’라는 의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나와 내 주위의 안전을 챙기다보면 행복이 곁에 동행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행복한 동행’은 안전한 세상을 만 들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기분 좋은 약속이다. 레시피(recipe) : 음식의 조리법을 뜻하는 요리용어로, 이 책에 서는 안심경영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행복한 동행 안심경영 레시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근로자의 생명을 존중하고 산업현장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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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스토리텔링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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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안심(安心)경영은 걱정 없고 편안한 마음으로 정상적인 기

업경영이 가능한 상태를 말한다. 즉, 작업환경이 안전하고

쾌적하여 근로자들이 안심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

를 만들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 ‘안전을 심는다’라는 의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나와 내 주위의 안전을 챙기다보면 행복이 곁에 동행하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행복한 동행’은 안전한 세상을 만

들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기분 좋은 약속이다.

레시피(recipe) : 음식의 조리법을 뜻하는 요리용어로, 이 책에

서는 안심경영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행복한 동행안심경영 레시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근로자의 생명을 존중하고

산업현장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Page 2: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H a p p i n e s s g o i n g t o g e t h e r

Page 3: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H a p p i n e s s g o i n g t o g e t h e r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안전은 바로 투자입니다.

몇 푼 아끼려다 더 큰 손해 보지 마세요.”

- 산업안전 오락프로그램 KBS <위기탈출 넘버원> 개그맨 황현희씨

“보호구 산업은 근로자들의 생명을 지키는 생명산업이고, 만드는 사

람들이 양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양심산업입니다.”

- 호흡용 보호구 제조업체 (주)제일뢰스텍 한재원 사장

“우리 현장에서 당신이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일보다는 사람입니다.”

- (주)대우건설 파주열병합발전소 건설현장 강희성 팀장

“행복은 행복할 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합니다. 산업현장에서

‘설마’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습니다.”

- 장애 극복한 지체장애 1급 김충현씨

18,000원

Page 4: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이 책의 크기는 최근의 사회적 추세인 녹색경영 차원에서 손지율(재단시 종

이 손실률)이 가장 적은 176mm×260mm 사이즈로 독자의 시각적 편의성

을 고려하여 제작하였습니다.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초판 1쇄 인쇄 2009년 9월 10일

초판 1쇄 발행 2009년 9월 10일

발 행 인 노민기

발 행 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주 소 인천광역시 부평구 구산동 34-4

전 화 032) 5100-500

총괄기획 안전보건 미디어개발실

홈페이지 www.kosha.or.kr

제작·편집 (주)매일노동뉴스 02) 364-6900

표지 및 디자인 인쇄 Q-line 02)2279-2209

이 책은 신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 저작물입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하며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시

려면 반드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Page 5: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이 책을 만든 사람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미디어개발실)

총괄기획 임태영 실장

박문열 TF팀장

김희성 인턴

이희경 인턴

매일노동뉴스(편집국)

취재팀장 박 운 부국장

취재기자 한계희 정청천 김학태

신현경 김봉석 김미영

구은회 오재현 조현미

사진기자 정기훈

편집기자 김명은 윤정희

Q-line(Design Company)표지 및 편집디자인, 인쇄

Page 6: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H a p p i n e s s g o i n g t o g e t h e r

일반분야-홍보자료

미디어개발 2009-265-958

Page 7: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언제부턴가 책 만들기의 룰이 깨지기 시작했다. 룰대로 만들면 오히려

매너리즘에 빠졌다는 비난을 듣거나, 유행 지난 옷처럼 장롱 깊숙이 처

박히고 만다.

산업안전보건 분야도 마찬가지다. 어떤 콘텐츠를 만들든 고정관념을

깨지 않으면 고객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신선한 자극’은 어쩌면 시대의 대세다. 겉보기에 좋아도 식상한 단어

와 사례만 나열된 책은 금세 들통 나 책장 안에 꽂힌 장식품이 되고 만

다. 특히나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책들은 딱딱하다. 보는 사람이 이해하

려고 노력해야 겨우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어렵다. 여간 인내심이 요

구되는 게 아니다.

이 책을 만들게 된 계기는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

나 쉽게 읽고, 읽다 보면 자연스레 안전의식이 고취됐으면 하는 바람이

오롯이 들어가 있다. 산업재해를 줄이고 예방할 수 있는 열쇠는 국민의

안전보건 의식이기 때문이다. 안전보건 의식이 모여 주춧돌이 되고, 그

주춧돌에 튼실한 기둥이 하나 둘 들어서면 종국에는 안전문화를 우선

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 책에서는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다양한 소재를 현장감 있게, 그리고

보다 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안전보건과 친해지는

18가지 이야기

책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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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스토리텔링 기법’을 통해 안전보건 우수사례와 사고사례, 안전

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 등 18가지 이야기를 풀어냈다.

각 이야기 끝에는 『화학물질 바로알기』와 『산재판례 따라잡기』를 실어

안전보건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이 책을 만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줬다. 매일노동뉴스의 박성

국 대표를 비롯해 현장감을 높이기 위해 전국을 무대로 뛰어다닌 취재

기자들, 취재팀장, 산업현장에서 바쁜 일정을 쪼개 인터뷰에 응해 주신

많은 분들, 취재대상 선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추천을 아끼지 않으신

분들, 그리고 총괄기획 역할을 담당한 우리 공단의 안전보건미디어개

발실 직원들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격려의 말을 해주고 싶다.

책을 읽다 어느 한 대목에서라도 ‘아하!’ 하고 무릎을 친 독자가 있다면,

안전보건 활동이 중요하다고 느낀 독자가 있다면 더 이상 기쁜 일이 없

을 것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안전보건 수준이 한 단계 올라선 것이

기 때문이다.

2009년 9월 10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

노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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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 R T 1 / 안전지킴이 편

현장의 중심에서 안전을 외치다

웃고 즐기다 저절로 스며드는 ‘경각심’ 08 산업안전 오락프로그램 KBS <위기탈출 넘버원>

‘천안 주먹’이 ‘무재해 전도사’가 되기까지 18 (주)에스제이세이프티 조정운 대표이사

“무슨 일로 왔냐는 질문 숱하게 받았죠” 28 (주)인터엠 보건관리자 송근희 과장

“귀찮아도 한 번 더 확인!” 38 정경환 경기남부지도원 건설안전팀 차장

“지급된 보호구, 막걸리와 바꿔먹던 시절도…” 48 호흡용 보호구 제조업체 (주)제일뢰스텍 한재원 사장

“한국의 안전모델,벤치마킹하고 싶어요” 60 인도 듀베이씨의 한국 산업현장 나들이

c o n t e n t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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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 R T 2 / 안전경영성공 편

효율적인 경영을 위한 안전레시피

“근로자 안전, 착한 빛으로 지킵니다” 746,000호 S마크 인증업체 선광전자

티끌조차 허용되지 않는 반도체 공장 지키는 비상대응팀 86 전 직원이 ‘안전지킴이’ 페어차일드반도체

“0.01초의 방심이 가장 무섭다” 98 공기업 최초로 코샤18001 획득한 코레일 충남지사

발로 뛰는 안전관리로 조선소를 누비다 110 현대삼호중공업 안전보건 선봉대, 안전1과 안전1팀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소중한 일은 없다” 122 (주)대우건설 파주열병합발전소 건설현장

“안전의 사칙연산을 아시나요?” 134 시스템·설비·철학 ‘안전 3박자’ 갖춘 호남석유화학(주)

P A R T 3 / 사고·극복 사례 편

0.01초, 눈물과 웃음의 갈림길

“사장님, 콧물 때문에 일을 못하겠어요” 148 자동차 부품회사 ○○기업(주)

화마가 휩쓴 자리, 잔해만 덩그러니 남아 160 경기도 이천 물류·냉동창고 화재사고

‘빨리빨리’가 부른 반복되는 비극 172 판교 ○○연구소 건설현장 붕괴사고

위험요소 많은 플랜트 현장, 재해가 줄고 있다 184 ○○제철소 건설현장

“제 나이는 이제 19살입니다” 196 장애 극복한 지체장애 1급 김충현씨

유령 보고 게임하면서 깨닫는 ‘안전불감증’ 208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GS건설 안전체험 교육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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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현장의 중심에서 안전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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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즐기다 저절로 스며드는 ‘경각심’ _ 08산업안전 오락프로그램 KBS <위기탈출 넘버원>

‘천안 주먹’이 ‘무재해 전도사’가 되기까지 _ 18 (주)에스제이세이프티 조정운 대표이사

“무슨 일로 왔냐는 질문 숱하게 받았죠”_ 28 (주)인터엠 보건관리자 송근희 과장

“귀찮아도 한 번 더 확인!”_ 38

정경환 경기남부지도원 건설안전팀 차장

“지급된 보호구, 막걸리와 바꿔먹던 시절도…”_ 48호흡용 보호구 제조업체 (주)제일뢰스텍 한재원 사장

“한국의 안전모델,벤치마킹하고 싶어요”_ 60인도 듀베이씨의 한국 산업현장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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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웃고 즐기다 저절로 스며드는

‘경각심’

산업안전 오락프로그램 KBS<위기탈출 넘버원>

“자! 현희씨, 예빈씨. 준비하세요.”

피디의 ‘큐’사인이 떨어지자 카메라와 조명이 배우들을 비추기 시작한다.

극중 넘버짱 공업사에서 안전을 담당하는 강예빈(배우 강예빈·26) 대

리가 황현희(배우 황현희·29) 회장을 부른다.

“회장님, 회장님!”

“어, 왜?”

쾡한 표정의 황 회장이 컴퓨터 앞에서 게임에 열중하다가 고개를 쳐든다.

어이없는 표정의 예빈. “요새 이 게임하느라고 꼼짝도 안하셨던 거예

요?”

“아니, 그게 처음에는 조금만 하려고 했는데. 자꾸 생각이 나서. 내가 진

짜 오늘까지만 하고 안 하려구 했어. 진짜~루.”

개그맨은 개그맨이다. “진짜~루”라고 말하는 황현희씨의 익살스런 표

정에 피디와 상대배우, 스태프들이 배꼽을 잡고 자지러졌다. 스태프들은

“황현희씨 표정 진짜 웃긴다”며 한마디씩 했다.

“회장님! 이 손! 도대체 게임을 얼마나 오랫동안 한 거예요?” 예빈이 황

회장 손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그의 손이 하얗게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공업사 직원인 김씨가 다른 직원들에게 부축당한 채 회장실로 들

어온다. 김씨의 손도 하얗게 변해 덜덜 떨면서 마비되고 있었다. 황 회장

과 김씨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증상은 ‘진동증후군’이다. 황 회장은 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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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터 게임을 하면서 진동이 오는 조이스틱을 너무 오랫동안 잡고 있었

다. 김씨는 장시간 드릴작업을 했다. 안전담당인 강예빈 대리가 전문가

답게 진단을 내렸다.

“김씨 아저씨랑 회장님 두 분 다 쉬지 않고 계속 진동에 노출됐기 때문에

진동증후군 증상이 나타난 거예요.”

‘재연·퀴즈’로 경각심 고취

7월3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진행된 KBS 예능프로그램 <위기탈

출 넘버원> ‘위험한 황 회장’ 촬영장면이다. 국내 최초 안전오락프로그램

인 <위기탈출 넘버원>은 개그맨 서경석·황현희·노홍철 등 인기 연예

인들의 재연과 퀴즈 풀기를 통해 자연재해부터 생활 속 안전상식에 이르

기까지 딱딱한 산업안전 얘기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한다.

<위기탈출 넘버원>은 4명의 MC와 1명의 게스트가 재연장면을 보고 정

답을 맞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MC들이 틀리면 ‘밀가루 손’이 사정없이

MC들의 뺨을 후려갈겨 웃음을 유발한다. 정답을 말하면 경쾌한 음악이

흘러 나온다. 이어서 재연장면이나 실험장면을 보면서 안전상식을 전해

주고 경각심을 일깨운다.

산업안전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위험한 황 회장’은 한 달에 한 번 방송

<위기탈출 넘버원>의 ‘위험한 황

회장’편 촬영현장. 개그맨 황현희

의 익살스런 표정 연기에 모두들

웃음이 ‘빵’ 터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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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진동게임에 빠져 ‘다크서클’이 강

렬해진 황 회장의 넋 나간 표정.

유정아 피디(노트북 만지는 이)

가 배우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협찬으

로 진행되는 ‘위험한 황 회장’은

MC들이 나오는 스튜디오 촬영을

빼고 모든 촬영이 인천 부평구 소

재 공단본부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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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공단의 협찬으로 진행되는 ‘위험한 황 회장’은 MC들이 나오는 스

튜디오 촬영을 빼고, 모든 촬영이 인천 부평구 소재 공단본부 건물에서

진행된다.

이날 재연장면 촬영의 소재는 진동증후군. 주로 산업현장에서 사용하는

전기톱이나 착암기·드릴은 물론이고, 어린이들이 많이 쓰는 게임용 조

이스틱과 같은 진동발생 기구를 장시간 사용할 때 나타나는 병이다. 손

가락 끝이 창백해지고 손과 팔·어깨 등이 저리다가 결국 손끝 세포가 죽

어 하얗게 썩어 가는 무서운 병이다.

진동증후군을 일으키는 기계들로 인해 자주 발생하는 산업재해는 또 있

다. 이것이 이날 MC들이 맞혀야 하는 퀴즈의 답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이 사고로 인한 재해자수는 무려 15,250명으로 최근 3

년 동안 넘어짐 사고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렇다면 진

동증후군을 일으키는, 드릴과 같이 회전 및 반복운동을 하는 기계들로

인해 발생하며, 일상에서도 큰 부상을 일으키는 이 사고 유형은 무엇일

까요? 여러분도 함께 맞혀 보십시오.”(방송 내레이션)

답은 바로 ‘감김·끼임 사고’다.

MC들이 정답을 맞히면 회전축이 있는 기계와 마네킹을 이용한 실험장

면이 이어진다. 마네킹의 작업복 소매가 컨베이어벨트의 회전축에 끼여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나타난다. 가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러

닝머신에 마네킹 머리카락이 걸려 사고가 나는 모습도 보여 준다.

올바른 복장과 안전모 착용 등을 통해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설명도 곁

들인다.

아이들도 알게 되는 산업안전

실제 생활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산업현장의 얘기이기 때문에 시

청자들의 관심이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감김·끼임 사고가 러닝머신

에서도 발생하는 것처럼 산업현장의 사고가 실생활에서도 일어날 수 있

다는 것을 프로그램은 보여 주고 있다.

이 코너를 맡고 있는 유정아(27) 피디는 감전 사고와 미끄러짐 사고가 가

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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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위기탈출 넘버원>은 학교에서 재량수업 교재로 활용된다. 시청자층도

중학생들이 가장 많다. 제작진에 따르면 프로그램을 본 학생들이 “위기

탈출 넘버원을 보니까 이렇게 하면 사고가 난대요”라며 부모들에게 알려

주기도 한단다.

유 피디는 “산업안전에 대한 조기교육 효과도 있다”며 “TV를 본 아이들

이 어른들의 교사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딱딱한 산업안전을 쉽게 설명

딱딱하고 어려운 산업안전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에 인기절정의 연예인들

이 투입된 것도 산업안전의 대중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극중에서 황 회장

은 ‘산업현장의 스크루지’로 불린다. 돈을 너무 아끼다 보니 산업안전 투자

에 인색하다. 산업안전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다. 때문에 근로자들뿐 아니

라 자신까지 위험에 노출된다. 산업안전 전문가인 강예빈 대리는 항상 황

회장을 견제하고 감시하면서 산업안전의 전도사 역할을 한다.

“사실 프로그램을 처음 맡았을 때 산업안전 코너가 시청자들에게 도움이 될지 의문을 가졌어요. 그

런데 만들면서 보니까 시청자들은 물론이고 저한테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일상생활 속에서도 미끄

러지거나 감전되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거든요.”

T I P산업재해는 일상에서 일어난다

산업재해는 산업현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일어난다. ‘위험한 황 회장’에 나온 것처럼 감

김·끼임 사고는 러닝머신에서 자주 발생한다. 제작진이 실험한 결과 러닝머신에 머리카락이 끼인 마네킹은 두

피까지 뜯겨졌다.

질식사고도 마찬가지다. 유독가스 등으로 지하작업 공간에서 질식사고가 발생하듯이, 텐트나 자동차 안에서 잠

을 자다 질식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위험한 황 회장’ 코너에서는 산업안전물품 절도 피해를 막기 위해 황 회장

이 텐트에서 잠을 자며 창고를 지키다 위험에 빠지는 장면이 그려지기도 했다.

여름 휴가철에 아이들이 자주 들고 다니는 잠자리채가 전철역에서는 감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미끄러짐·추

락 등도 일상생활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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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틈을 통해 이상한 소리를 엿듣는 장면을 촬영

중이다. 이 짧은 장면을 위해 카메라와 조명, 마이

크까지 부지런히 움직인다.

눈 밑 ‘다크서클’을 강조하는 화장을 하고 있다.

Page 19: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황 회장 역을 맡고 있는 개그맨 황현희씨는 2008년 연말 KBS 연예대상

에서 코미디 부문 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강예빈씨

역시 <미녀들의 1박2일>, <식신 원정대> 등의 케이블TV 오락프로그램

에 출연해 주목을 끌고 있는 신예 방송인이다.

일반인들의 관심이 떨어지기 쉬운 산업안전 코너에서 이들은 윤활유 역

할을 한다. 이들에게 쏟아지는 인기가 곧 산업안전에 대한 관심으로 바뀐

다. <위기탈출 넘버원> 시청자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올라온다.

“현희 오빠 너무 귀여워요~.”

“위험한 황 회장, 내 생활의 활력소.”

“황현희씨가 나오는 산업안전 프로젝트 진짜로 재미있어요. 앞으로도 좋

은 정보 많이 전해 주세요.”

KBS <개그콘서트>에서 인기를 끌었던 코너 ‘많이 컸네. 황 회장’의 복장

과 방식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 주효했다.

황씨는 “6개월 정도 촬영을 하다 보니 산업안전이 반드시 현장에서 일하

는 분들만 알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알아야 하는 상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방송을 통해 산업안전 사고가 줄어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황씨는

극중 황 회장처럼 안전투자에 인색한 ‘산업현장의 스크루지’들에게도 한

마디 했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안전은 바로 투자입니다. 몇

푼 아끼려다 더 큰 손해 보지 마세요.”

취 재 후 기 _ 글 김학태 _ 사진 정기훈

‘위기탈출 넘버원’ 촬영현장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대본이었다. ‘협착’이나 ‘전도’ 같

은 어려운 용어가 ‘감김·끼임’이나 ‘넘어짐’과 같은 쉬운 용어로 명시돼 있었기 때문

이다. 취재하는 내내 “어려운 산재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

이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안 가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공단이 전문가들과 함께

산재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방송’과 ‘쉬운

말’로 국민에게 다가서려는 공단의 노력이 ‘산재 감소’라는 결실을 맺기를 기대해 본다.

대사를 놓치곤 웃음으로 때우

는 황 회장. 제 아무리 ‘프로’ 라

도 실수는 하게 마련, 안전사고

도 마찬가지다.

Page 2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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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탈출 넘버원>의 산업안전 코너는 2006년 8월부터 2009년 6월까

지 총 48편이 방송됐다.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국민에게 효과적으로 전

달하기 위해 공중파 TV 홍보를 추진하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하던 제작진이 의기투합한 것이다.

지난해까지는 인기 개그맨 이수근씨가 참여하는 ‘안전만대리’라는 코너

로 운영됐고, 올 들어 ‘위험한 황 회장’으로 바뀌었다. 공단이 촬영장소 제

공과 취재 사업장 섭외, 대본 검토, 전문가 섭외까지 도맡고 있어 프로그

램의 공신력과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3년 동안의 성과는 크다. 방송녹화분은 총 5,500개의 DVD로 제작돼

산업재해예방 교육용 자료로 활용된다. 공단 홈페이지(www.kosha.

or.kr)에 접속하면 누구나 녹화분을 시청할 수 있다.

2007년 공단이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4.8%가 ‘위기탈출 넘버원이 안전의식 제고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2006년 조사에서도 92%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감사원도 공단의

<위기탈출 넘버원>을 통한 홍보를 우수사례로 선정하기도 했다. 2008년

7월에는 산업안전보건대회에서 노동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프로그램 진

행자인 개그맨 서경석씨는 산업안전 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동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7년 KBS가 실시한 ‘시청자 품질평가’에서 방송 3사의

교양·오락 프로그램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전체 프로그램 평가에

서는 198개 중 27위에 올랐다. 조기안전 교육용 프로그램으로 사용되기

도 한다.

이처럼 국내 최초 안전 오락프로그램인 <위기탈출 넘버원>의 재미와 교

육효과는 정평이 나 있다.

아이도 어른도 “안전공부 넘버원”

포 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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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은 상온에서 액체상태로 존재하는 유일한 금속이다. 기원전 1,500년께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됐다는 기록

이 존재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사용됐다. 온도계와 기압계·전등·의약품 제조 원료로 널리 쓰인다. 그러나 수

은은 강력한 독성을 지닌 물질이다. 잘못 관리할 경우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인체에 치명적인 질병을 일

으킨다.

2000년 태호환경산업(가칭) 근로자 3명이 수은중독에 걸렸다. 이들은 수은을 취급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근

로자들이었다. 태호환경산업은 반도체 기판 생산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에서 은을 추출하는 업체였다. 은을 추

출하려면 폐기물인 원재료를 건조시킨 뒤 ‘볼밀기계에 넣고 쇠구슬·수은·물과 함께 약 40시간 동안 분쇄한

다. 분쇄된 혼합물을 물에 담고, 광목으로 찌꺼기를 걸러낸다. 찌꺼기를 걸러내고 남은 혼합물을 가열해 수은을

분리한다. 이를 다시 스테인리스 용기에 넣어 질산과 물을 섞어 불순물을 제거하고 은을 추출한다.

김용대(가명)씨를 비롯한 근로자 3명은 2000년 7월10일 이 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반도체 폐기물 원재료를 분

쇄하는 볼밀작업과 수은을 분리하는 가열작업을 했다. 작업현장이 밀폐된 공간은 아니었지만, 근로자들은 자

주 수은에 노출됐다. 볼밀기계로 분쇄하는 과정과 혼합물을 가열하는 과정에서 많은 양의 수은증기가 발생했

기 때문이다.

김씨는 2000년 8월20일부터 팔과 다리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병원에 입원해 검사한 결과 수은중독이라는 진

단이 나왔다. 한 달 뒤에는 다리의 무력감과 어지럼증이 심해져 산재전문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았다. 이후 환

청과 망상증상까지 나타났고, 기억장해도 심해 정신병원 치료를 받았다. 김씨는 수은중독에 따른 ‘급성 반응성

정신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동료인 노정환(가명)씨도 2000년 7월 말부터 피로감과 피부발진이 심해졌다. 체중이 급격하게 줄고 어지럼증

이 심해져 병원에 입원했다. 피부에 좁쌀 같은 것이 돋아나는 발진증상이 온몸에 퍼졌고, 단기기억장애와 다발

성 말초신경염 증상도 나타났다.

1 . 화학물질 바로알기_수은

폐기물처리 노동자 정신질환 불러온 수은

1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Page 22: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7

또 다른 동료 배순호(가명)씨 역시 2000년 9월 초 피로감과 어지럼증이 심해져 산재전문병원에서 진료를 받았

다. 입원 당시 체중이 줄고 왼쪽 다리에 통증이 있었다. 배씨는 입원치료를 받은 뒤에도 발이 차갑고 감각이 둔

했다.

이들의 혈중 수은농도는 기준치(15ug/L)의 30~70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폐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고농도의 수은에 노출된 것이 원인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일본 미나마타 사건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중절모 신사가 등장한다. 그는 수은중독의 전형적 사례를 보여 준다. 이 소설이

쓰여질 당시 중절모자가 매우 유행했다고 한다. 이 중절모자에 붙이는 토끼털을 부드럽게 처리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바로 무기수은. 이 신사는 무기수은 중독으로 나타나는 전형적 증상인 손떨림과 신경이상 증세를 보였다.

일본에서 공해병으로 유명했던 미나마타병도 유기수은 중독의 대표 사례다. 52년 일본 남부의 작은 어촌인 미

나마타 연안의 바다가 검붉게 변했다. 조개들은 썩었고 해변에서 밀려온 죽은 물고기를 먹은 까마귀는 괴로운

듯 허공을 맴돌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안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은 주민들의 손발이 뒤틀리

고 혀가 마비되기 시작했다. 사망자도 나타났다. 질소비료공장에서 유출된 폐수 때문이었다. 폐수에 함유된 메

틸수은이 정화처리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다로 흘러든 것이다. 2001년까지 2,265명의 환자가 공식 확

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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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천안 주먹’이

‘무재해 전도사’가 되기까지

(주)에스제이세이프티 조정운 대표이사

악수를 건네는 폼이 범상치 않다.

군복에 방탄조끼를 덧입고, 허리춤에 찬 가스총에는 총알까지 장착했

다. 군화는 기본이고, 선글라스도 빼놓지 않았다. 빨간색 안전모로 화

룡점정을 찍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간지’가 좔좔 흐른다. 건설현장

에 웬 군인?

‘빨간모자’ 조 단장이 떴다

“어때요? 폼 좀 납니까?”

조정운(67) (주)에스제이세이프티 대표이사가 화통하게 말을 건넨다. 많

은 말이 필요 없다. 그냥 딱 보면 느낌이 온다. ‘이 사람, 여기까지 오는 데

만만치 않은 사연이 있었겠구나.’

사람들은 조 대표이사를 ‘조 단장’이라고 부른다. 평범하지 않은 그의 이

력을 알고 나면 대표이사보다 단장이라는 말이 더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1945년 북한에서 태어난 조 단장은 51년 1·4후퇴 때 고향을 떠나 남한으

로 내려왔다. 젊은 시절에는 운동을 좋아해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로 활약

했다. 지금도 한국 무에타이 고문과 입식타격 격투기 K1 심사위원으로 노

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산행에도 조예가 깊어 에베레스트 원정을 두 번이

나 다녀왔다. 그러나 지금의 그를 만든 결정적 계기는 군대생활이었다.

남들과 다름없이 입영영장을 받고 군에 입대한 그는 ‘북파공작원’ 부대로

알려진 HID 요원으로 차출됐다. 극한 훈련의 연속이었다는 5년간의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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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생활을 마친 그는 ‘제2의 고향’인 천안에 돌아와 ‘주먹 좀 쓰는’ 지역 건달

로 이름을 날렸다.

“어려서 그랬나. 좋은 일은 힘들어서 싫고, 자꾸 나쁜 일만 하게 되더라고

요. 심지어 마약에도 손을 댔으니까…. 몸에 무궁화 문신이 있는데, 전두

환 정권 때 문신 때문에 잡혀 가서 죽을 뻔하기도 했죠.”

위험표지판은 “내가 원조”

본인 스스로 “정말 나쁜 짓 많이 했다”는 그는 이 사업 저 사업에 손을 대

다, 84년 5월 삼성종합건설(현 삼성건설)에 계약직 안전담당직원으로 입

사했다. 예의 그 군복 풀세팅 차림으로 건설현장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당시만 해도 건설현장에 별도의 안전담당직원을 두는 것은 흔치 않은 일

이었다. “안전시설도 미비하고, 안전의식도 낮으니 건설현장에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자꾸 일어났어요. 어두컴컴한 현장 내부에 경고표지판조

차 없어 개구부 같은 곳에 빠져 죽는 근로자가 적지 않았죠. 한번은 근로

자 한 명이 윈치(원통형 드럼에 와이어로프를 감아 중량물을 끌어 올리

는 기계)에 깔려 죽었어요. 내가 시체를 옷으로 둘둘 말아 병원으로 옮겼

죠. 유족들의 울고불고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정운 (주)에스제이세이프티 대표이사가 김포 오스타·파라곤 아파트 건설현장을 둘러보던 중 웃음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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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많은 사람들이 어처구니없이 죽어 가는 모습을 마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

었다는 조 단장. 그는 곧바로 안전표지판 제작에 나섰다.

“그때도 건설현장에 안전표지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굴러다니는

합판에 페인트로 휘갈겨 쓴 조잡한 것이었죠. 어떻게 하면 표지판이 눈

에 잘 띌까 고민하다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글씨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

죠. ‘위험’, ‘추락주의’, ‘출입금지’ 이런 단어를 적었고요. 요즘 공사현장

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지판이랑 비슷해요. 그때 디자인 특허를 받아 뒀

어야 했는데…(웃음).”

“돈 욕심 부리니까 사고가 나지”

건설현장 안전요원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조 단장은 아침 조회에 ‘지적

확인 환호응답’을 도입했다. ‘지적확인 환호응답’은 직무상 사고를 방지

하기 위해 확인해야 할 대상물이나 현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확인하

면 그에 환호해 응답하는 것이다. 일종의 안전구호다. 한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힘차게 구호를 외치는 모습은

이제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삼성종합건설에서 20여년간 안전요원으로 근무한 그는 2003년 (주)에

스제이세이프티를 설립, 지금까지 건설현장 전문 안전대행요원으로 활

동하고 있다. 요즘에는 김포시 걸포동에 있는 성우종합건설 오스타·파

라곤 아파트 현장에서 안전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현장 사무실에서 지적구호를 시범 보이는 ‘조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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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단장의 하루는 새벽 5시 기상과 함께 시작된다. 서울 송파구 거여동 집

에서 한 시간쯤 걸려 현장에 도착하면, 그날그날의 안전 포인트를 점검

한다. 점검내용은 조회를 통해 근로자들에게 전달된다.

“갱폼(고층 아파트를 지을 때 외부 벽체에 설치하는 대형 거푸집과 작업

발판 겸용으로 사용하는 철 구조물)이나 철근 인양작업이 있는 날은 다른

공정 근로자들의 현장접근을 통제하고, 화기 근처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합니다. 사다리를 탈 때는 반드시 2인1조로 작업을 하라고 지적도 하고

요. 안전모·안전벨트 등 안전보호구 착용은 기본이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근로자에게 안전구 착용 상태를 지적하고 있는 조정운씨. 현장 깊숙이 들어가 안전 상태를 꼼꼼히 살피는 게 안전감시단의 임무다.

조정운씨가 현장 안전관리자 하창은 대리와 함께 현장 안전점검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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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뜨거운 여름, 탈수 증상을 막기 위해 식염 섭취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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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타파라곤 아파트 현장에는 시공사인 성우종합건설 외에도 20여개

의 협력업체가 들어와 있다. 협력업체의 작업내용을 점검하는 것도 조

단장과 안전요원들의 몫이다.

수시로 바뀌는 일용직 근로자들을 상대로 잔소리를 퍼붓기도 한다. “일

끝나고 과음하지 마라”, “더워도 안전모 벗지 마라”, “집에 가서 푹 쉬어

야 다음날 사고가 안 난다”….

“거칠고 고된 일을 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은 대개 술이나 도박으로 스트

레스를 풀곤 합니다. 그러다 보니 수면시간이 부족하고, 다음날 몸 상태

가 좋지 않은 상태로 건설현장을 찾게 되죠.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서 가

정생활이 파탄 나는 경우도 많고요. 이 모든 것이 안전사고의 위험을 높

이는 요인입니다. 근로자들이 조금만 신경 써서 자신의 몸을 돌보면 사

고가 많이 줄어들 텐데….”

조 단장은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고용주들에게 있다”고 믿고 있다. 공사

기간을 단축시켜야 이윤이 많이 남는 건설현장의 시스템이 문제를 야기

하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안전비용은 까먹는 돈?

“돈만 벌려고 하는 건설현장 협력업체 사장들을 보면 정말 답답합니다.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더 큰 금전적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그걸 몰라

요. 사람들이 도로교통법은 잘 지키면서 산업안전 관련법은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요. 왜 그런 줄 아세요? 규제가 너무 약해서 그래요. 만만

하게 보는 거죠.”

T I P“ 건설 근로자 , 이것만은 지키자 ! ”

● 안전은 곧 행복. 안전수칙 안 지키면 사고가 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넘어지기 쉬운 건설기계 밑에서 쉬지 말자. 쉴 때는 실내에서.

● 낙하물 조심. 일 할 때도, 쉴 때도 안전모 착용.

● 화학약품이 즐비한 건설현장은 화재 취약지대. 담배는 흡연구역에서만.

● 넘어지거나 빠지기 쉬운 어두운 곳에서는 절대 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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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누구나 잘 알지만, 쉽게 고치기 어려운’ 과제다. 공기 단축이 수익 증대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안전에 눈을 돌릴 여유가 많지 않다는 것이 건설

업 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사정이 이러니 (주)에스제이세이프티

같은 건설현장 전문 안전대행업체의 손을 빌리는 건설업체가 적지 않다.

조 단장은 “예전에는 불이 나면 초가삼간만 태우고 말았지만, 지금은 불

이 나면 대형 폭발사고와 같은 연쇄 재해로 연결된다”고 우려했다.

“이제는 아파트를 지었다 하면 30층은 기본입니다. 건설현장이 커지면

서 중대재해가 예상치 못한 곳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구호에 그치는 재

해예방활동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어요. 근로자도 사용자도

안전의식을 뼛속까지 새겨야 합니다.”

그는 건설재해 예방에 ‘왕도’가 따로 있을 수 없다며 꾸준한 관리가 필요

하다고 강조했다. “건설현장 근로자들에게 안전모를 씌우는 데 거의 10

년이 걸렸습니다. 그러면서 근로자와 사용자들의 안전의식도 조금씩 높

아졌죠. 원칙을 정하고 꾸준히 이행한다면 ‘무재해’ 현장이 하나 둘 늘어

나지 않겠습니까.”

취 재 후 기 _ 글 구은회 _ 사진 정기훈

‘조 단장’의 카리스마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예의 군복 차림이 그렇고, 손가락 힘만

으로 팔굽혀펴기를 하던 강철체력이 그랬다. 그가 들려준 북파공작원 시절의 무시무시

한 경험담도 인상 깊었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안전 문제에 대한 그의 신념이다.

“예전에는 초가삼간만 태우고 말았지만, 지금은 대형 폭발사고와 같은 연쇄 재해로 연

결된다”는 그의 말은 최근 잇따라 발생한 중대 건설재해를 떠올리게 했다.

“사람들이 도로교통법은 잘 지키면서 산업안전 관련법은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 같아

요. 왜 그런 줄 아세요? 규제가 너무 약해서 그래요. 만만하게 보는 거죠.”

‘안전 구호’만 외치지 말고, 좀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말. 역시 ‘빨간모자’ 조 단장

답다.

안전업무를 비정규직이 맡고 있는 업체도 적지 않다. ‘안전비용은 까먹는 돈’이라는 인식이 그만큼

팽배하다는 뜻이다. 건설현장에 만연한 이 같은 인식은 최근 연이어 발생한 건설현장 중대재해와

무관치 않다. 안전설비의 자동화로 경미한 사고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건설현장이 대형화되면

서 대형재해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Page 3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5

올해 발생한 건설현장 중대재해 가운데 언론의 조명을 가장 많이 받은 사

고는 2009년 2월15일 발생한 판교○○연구소 터파기공사장 붕괴사고

다. 성남시 판교 택지개발지구 ○○ 공사현장에서 터파기공사를 하다 축

대가 무너져 인부 3명이 숨지고, 13명이 부상했다.

이 사고가 주목받은 이유는 많은 사상자를 낸 중대재해라는 점과 시공사

가 대기업인 ○○건설이었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건설재해에

있어 대기업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시켜 준 사건이다.

사고는 예견돼 있었다. 사고현장에서 근무한 한 근로자는 “기중기가 흙

을 떠올릴 때마다 복공판이 흔들렸다”며 “복공판 위에 있는 컨테이너 안

에서도 흔들림을 느꼈을 정도”라고 증언했다. 따뜻해진 날씨와 수도관

파열 등에 따른 지반 약화가 사고원인으로 지목됐지만, 철 구조물 자체

도 안전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건설업체의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도 사고를 부른다. 판교 붕괴사고는 주

말인 일요일에 발생했다. 건설현장에서는 일요일은 물론, 새벽까지 공사

가 이어진다. 특히 건설현장 관리직원 다수가 쉬는 일요일에는 안전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이 같은 유형의 사고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건설현장

이 대형화되고 고층화될수록 공사현장의 지하를 깊게 파야 하기 때문이

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건설현장 붕괴·도괴사고 재해자

는 2005년 320명, 2006년 357명, 2007년 319명, 2008년 497명 등 해마

다 증가하고 있다. 동일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작업공정 준수 및 안

전에 대한 인식변화가 시급하다.

“대기업도 예외 없는 건설현장 중대재해”

포 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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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1 . 산재판례 따라잡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는 “업무상재해란 업무상 사유에 따른 근로자의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을 말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근로자는 근로기준법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

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다. 그렇다면 대표이사로 등기부상 등재돼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임금을 받는 근로자에 해당할 경우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형식상 대표이사의 간질성 폐질환 사망

93년부터 경기도 안양시 평촌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근무하던 박아무개씨는 입사 2년 만에 그 회사의 사장

이 됐다. 대주주인 노아무개씨가 그의 근면성실한 근무태도와 과거 건설부 및 대한주택공사에 근무한 경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노씨는 95년 1월1일 상시 근로자 270명인 자신 소유의 회사(주택관리업)에 박씨를 등기부상 대표이사로 등재했

다. 사장이 된 박씨는 일반 관리업무 외에 주택관리 수주업무도 도맡아 했다.

박씨는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에도 사실상 노씨의 지시와 감독을 받으면서 일반관리업무와 수주업무에 종사

했다. 고정적인 월급으로 기본급 70만원과 수당 80만원을 받았다. 다만 대외적으로 관공서에 출입할 때나 업무

계약을 수주해야 할 때는 대표이사의 직함을 사용했다. 거래회사와 계약서를 체결할 때도 박씨가 회사 대표로

기명날인을 했다.

어느 날 박씨는 건강상 이상을 느껴 96년 1월 병원을 찾았다가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받았다. 그 후 증상이 악화

돼 그해 9월 집에서 사망했다.

서류상 대표이사의 산재적용 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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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성에 대한 판단

이 사건의 원고는 박씨의 유족인 김아무개씨다.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원고는 업무상재해라고 주장하며 근

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금과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박씨가 회사의 대표이사이므로 산재보상

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은 98년 6월 ‘박씨를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판결요지는 이

렇다.

“우선 대표이사란 주식회사의 업무집행권을 갖는다. 회사의 주주가 아니어도 회사의 영업에 대해 모든 법적 권

한을 위임받고 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일정한 근로를 제공하고 소정의 임금을

받는 고용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라 할 수 없다. 대표이사인 박씨가 업무수행과 관련해 회사의 대주주로부터 사

실상 지시와 감독을 받았다 해도 회사로부터 부여받은 대표이사로서의 법률상 권한이나 책임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박씨가 회사를 대표하는 업무를 수행한 사실에 비춰볼 때 박씨를 임금을 목적으로 한 근로자라

고 보기 어렵다.”

이 사건은 서류상 대표이사에 불과한 박씨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것인가 아닌가가 핵심이다. 법원은 기

존판례(대법원 94년 선고 93누12770)를 인용해 근로자성을 부정하고 있다. 법원은 이른바 ‘월급쟁이 대표이사’

라 하더라도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하고, 모든 법적 권한을 회사로부터 위임받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요건을 충족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박씨의

경우 회사의 대주주로부터 사실상 지시와 감독을 받았지만 대표이사로서의 지위마저 상실된 것은 아니라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법원은 박씨가 대표이사로 대외적 업무를 수행한 사실에 비춰보면 근로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고 밝혔다. 또 회사에서 박씨를 근로자에 포함시켜 산재보험료를 납입한 사실이 있지만 법원은 이를 근로자성

의 근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과연 이런 경우 박씨를 근로자로 봐야 할까 아니면 사업주로 봐야 할까?

관련 판례

•서울고법 1998년 6월9일 판결 97구33029

유족보상일시금등부지급처분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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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무슨 일로 왔냐는

질문 숱하게 받았죠”

(주)인터엠 보건관리자 송근희 과장

“어떻게 오셨죠?

간호사 선생님은 양호실을 지키셔야죠.”

92년 산업용 음향기기 제조업체 (주)인터엠에 보건관리자로 입사한 송

근희(당시 38세)씨는 적잖이 당황했다. ‘내 일이 건강관리실만 지키고 앉

아있는 게 아닌데….’

송씨는 굴하지 않았다. 꿋꿋하게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작업현장을 순회

했다. 근로자들의 건강에 영향을 줄 만한 문제점을 꼼꼼하게 체크했다.

건강관리실은 아침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오후 쉬는 시간, 퇴근 시간에

만 자리를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근로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시간이

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오셨냐’는 질문은 그 후로도 10년이나 계속됐다.

“보건관리자에 대한 근로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생

산라인에 갈 때마다) 무슨 일로 왔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죠. 오버한다

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자유롭게 다니기까지 10년

17년이 지난 지금, 보건관리자 송씨는 송 과장이 됐다. 이제 누구도 ‘어떻

게 오셨냐, 무슨 일로 왔냐’고 묻지 않는다. 그를 ‘간호사 선생님’으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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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르는 사람도 없다. 5월11일 경기도 양주시 덕정동에 있는 인터엠 건물 2

층 건강관리실에서 송근희(55) 과장을 만났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키우다 보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요. 왠지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73학번인 그는 서른세 살의 나이에 다시 한 대학의 영문과 3학년으로 편

입했다. 간호학을 공부하려면 영어를 잘 알아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그때 학생들이 데모를 참 많이 했어요. 상황은 이해하지만 한편으론 답

답했어요. 가사도우미한테 아이들을 맡겨 놓고 나왔는데, 공부를 못했

으니까요.”

85년, 내친김에 간호대학원에 진학했다. 졸업 후 보건소와 개인병원에

서 4년간 일했고, 92년 대학원 지도교수의 소개로 인터엠에 입사했다.

인터엠은 산업용음향·방송기기 전문업체로 제조에서 설계·시공·설

치까지 맡고 있다. 특히 인천국제공항에 방송·통신설비를 설치해 화제

가 되기도 했다.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방송·음향 국책사업을 따냈기

때문이다.

인터엠은 송 과장이 입사하기 전에도 정규직 보건관리자를 두고 있었다.

앞서 가는 기업답게 안전보건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주)인터엠의 보건관리자 송근희 과장이 물류창고 앞에서 수줍게 웃는다. 이것저것 욕심 많은 ‘멀티 플레이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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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개인병원에서 일했던 경력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제가 하는 일이 예방

업무와 1차 보건의료잖아요.”

점심식사를 마친 근로자들이 하나 둘 건강관리실로 들어왔다. 한 여성근

로자가 무릎이 아프다며 파스를 찾았다.

“무릎이 아플 때는 신발이 중요해요. 운동화로 바꿔 신을 수 있으면 바꾸

세요. 걸을 때도 발뒤꿈치가 먼저 닿게 걸어야 합니다.”

파스를 붙여 주던 송 과장이 행여나 잊을세라 주의사항을 빼놓지 않는

다.

“예전에는 건강관리실과 근로자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막이 있었어요. 혹

송 과장이 건강관리실을 찾은 한 근로자에게 파스를 붙여 주고 있다. 주의사항을 자세히 일러주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송 과장이 생산라인을 돌아보던 중 한 작업자에게 “병원엔 다녀왔느냐”고 웃으며 묻고 있다.

생산현장을 자연스레 다니기까지 꼬박 10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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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시 아픈 게 탄로 나면 불이익을 당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던 거죠.”

요즘 같아선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근로자들은 언제든지 건강관리실

을 이용할 수 있다.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발 마사지를 받거나 파라핀

(손 마사지 기구)을 사용하는 것은 인터엠에서 흔한 일이다. 건강관리실

이용자들은 건강관리실 방문대장에 이름만 쓰면 된다. 그것도 회사에 보

고하지 않아도 되는, 어디까지나 ‘건강관리’ 차원에서 작성하는 것이다.

인터엠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280여명.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근로자들

은 주로 손목 관절이나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

는 제조업 근로자들에게 가장 좋은 예방법은 규칙적인 스트레칭이다.

하루 세 번 정착된 스트레칭

“96년부터 하루 세 번 체조를 하고 있어요. 시행 초기에는 잘 따라하지 않

았어요. 몇 달간 시범을 보인 끝에 정착시켰죠. 예전에는 산업간호 실습

을 나오는 대학생들의 도움을 많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송 과장이, 나중에는 라인조장이 앞에서 시범을 보였다. 점심

시간이 끝나 갈 무렵 음악소리가 흘러 나왔다. 현장 근로자가 음악을 배

경으로 직접 ‘하나, 둘, 셋, 넷’ 구령을 녹음한 것이다.

“라인조장이 누구인가에 따라 스트레칭을 따라하는 모습이 달라요. 이제

는 조장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가 됐어요.”실제 둘러보니 체조에 참여하

는 열성도가 층마다 다르다.

“저희 회사는 예전부터 보건관리자와 안전관리자의 협조가 참 잘됐어요.

특히 라인조장의 역할이 크죠.”

3층 자재관리실에 들어서니 빨간색 삼각형 상자가 천장에서부터 줄에

매달려 있다. 자재를 쌓아 두는 높이를 150㎝로 제한하라는 표시다. 부품

을 세척하는 공정 한쪽 벽에는 ‘이소프로필알코올’ MSDS(물질안전보건

자료)가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송 과장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서 관련 사진을 다운받아

직접 만든 것이다. 주의사항과 응급조치요령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근로자 건강 문제를 관리하려면 안전과 보건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송 과장의 지론이다.

Page 37: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3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처음에는 직원들이 방문대장을 작성하는 것도 부담스러워했어요. 혹시

라도 불이익이 갈까 봐서요. 걱정하지 말라고 했죠. 회사에는 몇 명이 어

떤 질환으로 아프다는 것까지만 보고하니까요.”

건강관리실 옆에는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다. 훌라후프 8개

와 자전거가 비치돼 있고, 탁구대도 3개나 있다. 이상란(48)씨는 “훌라후

프를 많이 하면 허리통증에 좋다”는 송 과장의 권유에 따라 아침마다 운

T I P보건관리자 취업준비생 상담받은 사연

오후 2시께 건강관리실로 전화가 걸려 왔다. 보건관리자 취업을 앞둔 간호사의 전화였다. 산업간호사로 새출발을

하고 싶다고 했다. 대기업으로의 계약직과 그보다는 약간 작은 기업으로의 정규직 보건관리자로 모두 합격했는

데 어디로 가는 것이 좋으냐는 상담이었다.

송근희 과장은 “장단점이 있다”고 조언했다. 대기업은 계약직이어도 봉급이 높은 반면 업무영역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작은 회사일수록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외환위기 이후 보건관리자도 계약직

으로 고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영이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줄이는 분야가 안전보건이기 때문이다. 송 과장처

럼 보건관리자가 직급을 갖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그는 “업체의 분위기와 경영방침이 보건관리자의 업무영역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며 “얼마나 필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하루 세 번, 근로자들이 음악에 맞

춰 체조를 한다. 근골격계질환에

시달리는 제조업 근로자들에게 가

장 좋은 예방법은 규칙적인 스트레

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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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동실을 찾는다. 업무는 오전 8시30부터 시작되는데, 한 시간 전부터 주

부사원들로 북적인다.

안전과 보건은 함께 간다

건강관리실 문패 밑에는 ‘고충상담실’이라고 쓰여 있다.

“생산직은 대부분 주부사원이에요. 입사할 때부터 주부사원의 고충에 대

한 상담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았죠.”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딴 것도 그 때문이다. 그야말로 ‘멀티플레이어’다.

어렸을 때 ‘오빠들과 함께 다리미를 뜯으며 놀았다’는 송 과장은 컴퓨터

에도 관심이 많다. 94년 ‘Healthtopia manager’라는 보건관리 프로그

램을 만들었을 정도로 실력파다.

그는 근로자들의 건강진단결과뿐만 아니라 건강관리실 내원기록 등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인터엠에서는 분기별로 안전보건위원회가 열리

는데, 송 과장이 위원회를 주관한다. 한번은 노동부 관계자가 “안전 쪽을

모르실 텐데 왜 위원회를 주관하느냐”고 질문했단다.

이상란(48)씨 등은 “훌라후프를 많이 하면 허리통증에 좋다”는 송근희 과장의 권유

를 받고 아침,점심 짬을 내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인터엠 생산현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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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멀티플레이어’ 송 과장

“너무 화가 났어요. 안전관리자가 위원회를 주관해야만 하는 이유가 없

지 않습니까. ‘모르실 텐데요’ 이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산업안

전기사 자격증을 땄죠.”

언젠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새댁’이 건강관리실을 찾았다. 배가 너무 아

프다고 했다. 집에 가겠다는 그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자궁외임신이 의

심됐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응급수술에 들어가야 하는 긴박한 상

황이었다. “연말 회식 때 저보고 울면서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교통정리를 잘해야죠”

최근 며느리를 봤다는 그는 천생 보건관리자다. 손가락이 잘린 근로자

를 응급처치했던 일, 허리 아프다는 직원에게 신장염이 의심된다며 병원

에 가도록 한 사연 등을 떠올리던 송 과장은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제가 하는 일은 교통정리를 잘하는 겁니다. 더 큰 병이 되지 않게 근로

자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빨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제가

의사는 아니니까요.”

취 재 후 기 _ 글 조현미 _ 사진 정기훈

‘사업장 안전보건 수준은 사업주의 관심 정도에 달려 있다.’

송근희 과장을 취재하면서 절실하게 드는 생각이다. 산업용 음향·방송기기 전문업체

중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인터엠은 송 과장이 입사하던 92년 당시에도 보건관리자를

두고 있었다. 보건관리자에게 ‘과장’이라는 직책을 주는 사업장은 많지 않다.

공장에서 만난 생산직은 거의 여성근로자들이었는데 대다수가 10년 이상 근속한

직원들이었다.

사업주가 보건관리자를 채용하면서 여성근로자 ‘고충상담’ 업무를 특별히 부탁했다니,

근로자를 생각하는 사업주의 배려가 묻어났다. 잘되는 회사는 안전보건경영도 남다르

다. 이 사실을 많은 ‘사장님’들이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Page 4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35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보

건에 관한 기술적인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보좌하고 관리감독자에

게 조언을 하는 보건관리자를 둬

야 한다. 상시근로자가 50인 이상

1천인 미만인 사업장은 의사나 간

호사·산업위생지도사·산업위

생관리기사 등의 보건관리자를 선

임해야 한다. 사업주와 관리감독

자는 보건관리자의 조언에 상응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보건관리자의 직무는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작업관리 △보호구

구입시 적격품 선정 △물질안전보건자료 게시 △근로자 건강관리·보

건교육·건강증진지도 △외상 치료·응급처치·건강진단결과 발견된

질병자의 요양지도 등 의료행위 △작업장 내 환기장치 등 설비 점검과 작

업방법 개선 △사업장 순회점검·지도·조치 건의 △직업성 질환 발생

원인조사와 대책수립 등이다. 최근 업무상질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서 보건관리자에 대한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최근 송근희 과장은 비상대기요원이 됐다. 경기불황으로 생산량이 줄어

들면서 근무시간을 교육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늘었기 때문이다. 근로자

들이 출근을 했는데 일이 없는 경우도 있어 보건교육을 하는 경우가 많아

졌다. 근무자가 줄어들면서 건강관리실을 찾는 사람도 줄고 있다. 2008

년 8월 인터엠 건강관리실을 찾은 인원은 238명이었지만, 2009년 4월에

는 86명으로 급감했다.

근로자 건강관리의 보루 ‘보건관리자’

포 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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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화학물질 바로알기_페놀(Pheno l )

3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피부가 일부 탈색되는 피부백반증을 심각한 병으로 여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탈색 부위가 온몸을 뒤덮

어 외출하기 어려운 지경이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관상 문제가 되고, 사회생활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제조공정에서 10년간 도장공으로 일한 배진호(41·가명)씨는 피부가 흉하게 탈색되는 백반증에 걸렸다.

도장작업을 위해 사용한 페놀계 도료가 문제였다. 배씨는 90년 1월 광주광역시에 있는 완성차업체인 대영자동

차(가칭)에 입사했다. 그는 트럭을 제조하는 승합차체부 도장과에서 10년 7개월간 일했다.

자동차 도장공정은 전처리·전착·중도·상도공정으로 이뤄진다. 전처리공정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차체에 묻

은 각종 이물질과 불순물을 세척한 뒤 차체 표면을 화학약품으로 처리하는 과정이다. 전착공정은 도료가 담긴

탱크에 차체를 완전히 담가 차체 내부까지 균일하게 도정하는 과정이다. 이 두 공정은 차량에 녹이나 부식이 생

기지 않도록 차체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 중도공정은 색상 도료가 잘 부착되도록 스프레이로 작업하는 과정

이다. 상도공정은 차체 표면에 색상 도료를 뿌린 뒤 그 위에 투명 도료를 다시 뿌리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자외

선 등으로부터 도장면을 보호하고 차량의 광택을 높인다.

배씨는 주로 전착공정과 상도공정에서 근무했다. 방독면과 작업복·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차체의 먼지를 떨어

낸 뒤 스프레이건을 이용해 도장작업을 했다. 스프레이는 도료통과 연결돼 있었다.

배씨가 입사하고 6~7년이 지나도록 스프레이 도색 작업장에 설치된 국소배기장치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방독

면이나 보안경만으로 가려지지 않는 얼굴과 목덜미 등에 도료가 묻었다. 장갑을 껴도 팔목에 도료가 묻었고, 때

로는 장갑에 도료가 스며들기도 했다.

배씨는 이 같은 작업환경에서 매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정상근무를 한 뒤, 매달 평균 90시간

에 육박하는 연장근무를 했다. 배씨가 사용한 도료는 페놀계인 에폭시계·알키드계 도료였다. 여기에 백반증 유

발물질이 포함돼 있다.

피부백반증에 걸린 자동차 도장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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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입사 3~4년 만에 배씨의 몸에 이상이 나타났다. 오른쪽 팔과 겨드랑이 주위에 쌀알크기로 피부가 탈색됐다. 염

증이나 가려움증 같은 증상은 없었다. 그러나 탈색부위가 점점 커지기 시작해 허리·목·얼굴까지 탈색증상이

나타났다. 입사 9년째가 되자 온몸의 피부가 탈색됐다. 결국 그는 피부과를 찾았다.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좋

아지지 않았다. 대학병원으로 옮겨 전문치료도 받아 봤지만, 탈색 정도가 일부 완화될 뿐 완치는 되지 않았다.

페놀(Phenol)과 직업성 백반증

페놀은 달콤한 냄새가 나는 연분홍색의 결정형 고체다. 주로 염료·페인트·플라스틱 제조, 직물 및 목재 가

공, 제지·제약·제강·정유 등의 원료로 사용되며, 각종 합성수지·제초제·윤활유 등을 정제할 때 용매로

쓰인다.

페놀계통 도료에는 피부를 탈색시키는 다양한 화학물질이 함유돼 있다. 페놀류에 급성 노출되면 조직이 부식되

고, 눈에 닿으면 실명하고, 피부에 닿으면 고통은 없지만 접촉 부위가 하얗게 변색된다. 페놀계 도료를 취급한 뒤

이전에 없었던 피부탈색이 발생하면 화학물질에 의한 백반증을 의심할 수 있다.

직업성 백반증을 예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기 보호구와 장갑을 착용하는 것이다. 장갑은 도료가 스

며들지 않는 것을 사용해야 한다. 피부 이상이 발견되면 반드시 산업의학 전문의와 상의해야 한다. 조기에 치

료해야 호전될 확률이 높아지므로, 증상을 발견하는 즉시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페놀 취급공정에는 밀폐설비

와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해야 하며, 6개월에 한 번 이상 작업환경측정을 실시해 페놀의 농도를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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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귀찮아도 한 번 더 확인!”

정경환 경기남부지도원 건설안전팀 차장

33, 32, 501, 101.

널리 알려진 대형 건설재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숫자다. 1970년 4월 서

울 마포구 창천동 와우아파트가 붕괴하면서 33명이 사망했고, 94년 10

월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32명이 운명을 달리했다. 95년 서울 서초동 삼

풍백화점 붕괴사고는 무려 501명의 목숨을 앗아 갔고, 같은해 대구 아현

동 지하철 가스폭발사고는 101명의 죽음을 불렀다. 부실공사와 부실관

리가 부른 참극이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산업현장에서 사고

로 사망한 근로자 1,448명 가운데 669명이 건설현장 근로자였다. 건설

현장 재해예방 활동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다.

4월16일 오전 수원시 이의동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경기남부지도원 건

설안전팀 사무실. 정경환(43) 차장이 동광종합토건(주) 관계자들이 들고

온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심사하고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

“설계도면을 보면서 얘기하죠. 동탄신도시에 고층 아파트를 짓는 건설업

체들은 대개 외관을 중요하게 여기더라고요. 디자인적인 요소를 가미하

는 건 좋은데, 그럴수록 안전 부문을 소홀히 하기 쉽죠. 지금 짓는 아파트

도 32층짜리죠? 돌출된 처마에 몰딩을 둘러싼 구조인데, 이러면 갱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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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벽 거푸집) 상단에 고정볼트를 잘라내야 하잖아요. 자칫 추락사고가 발

생할 수도 있겠는데요.”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제도는 사전에 안전상태를 점검, 건설현장의 대형

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시공업체가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공

단에 제출하면, 공단에서 이를 심의한다.

“올해 2월에 성남 판교 ○○연구소 터파기 공사장에서 붕괴사고가 발생

산업안전보건공단 경기남부지도원 건설안전팀 정경환 차장이 광교신도시 대지조성공사 현장을 둘러보던 중 카메라 앞에서 잠시 ‘자세’를 잡았다.

정경환 차장이 경기남부지도원 사무실에서 ‘유해위험방지계획’ 대면 심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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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해 인부들이 숨지지 않았습니까. 시공사인 ○○건설은 재해율이 낮아 자

율안전관리업체로 분류된 업체입니다. 재해관리 우수업체죠. 이런 곳에

서도 사고가 납니다. 건설현장에서 방심은 금물입니다. ”

정 차장은 건설현장의 재해를 사회 무질서에 관한 이론인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에 빗대어 설명했다. 깨진 유리창 한 장

을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듯이, 건설현장에서 작

은 안전사고를 방치하기 시작하면 더 큰 재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다. 이날 심사에 참석한 박찬엽 동광종합토건 동탄신도시 아파트건설현

장 소장은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한정된 시간과 예산 때문에 안전

에 소홀해지기 쉽다”며 “오늘 지적받은 부분을 꼭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심사가 끝나면, 공단 관계자들은 주기별로 해당 공

사현장를 방문한다. 각 업체들이 계획서대로 안전수칙을 잘 지키고 있

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공단에 소속된 전국의 건설안전 담당직원은 130

명 정도. 경기남부지도원에는 팀장을 포함해 7명이 일하고 있다. 경기남

부지도원 관할지역인 수원·용인·화성·오산·평택 등에는 대단위 아

파트 신축현장이 밀집해 있다. 경기남부지도원 직원 1명이 시(市) 한 곳

을 담당하는 식이다. 직원 7명의 연간 출장횟수는 2,100여회에 달한다.

정 차장은 이날 오후 수원시 망포동에 위치한 (주)중앙건설 하이츠아파

트 신축현장을 찾았다. 벌써 네 번째 방문이다. 현장사무소 책상 위에는

두툼한 서류더미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기문 현장소장과 공정 진

행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중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이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250여명. 이 중 130여명이 중국·태국·베

트남 등에서 온 외국인근로자다. 근로자 2명 중 1명이 외국인인 셈이다.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근로자들은 안전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공

단 집계에 따르면 2009년 2월 현재 전국적으로 104명의 외국인근로자

가 건설현장에서 재해를 당했고, 경기남부지도원 관할지역에서도 15명

의 외국인근로자가 일하다 다쳤다.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안전관리는 공

단과 건설업체 모두에게 중요한 과제가 됐다. 공단은 미리 신청한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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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차장이 공사 중인 아파트 내부에서 갱폼(벽체를 만들기 위한 거푸집의 일종)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유해위험방지계획서가 잘 지켜

지는지 점검하는 현장방문이다.

신호수가 철근 자재를 별다른 안전조치 없이 타워크레인 줄에 묶고 있

다. 이동 중에 떨어져 안전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수원 신영통의 한 아파트 신축현장을 찾은 정 차장이 안전관리자들과

함께 현장을 돌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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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를 상대로 통역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각국 언어

로 표기된 안전수칙 표어와 포스터를 작성해 건설

현장에 배포하기도 한다. 정기문 소장은 “외국인

들이 사고라도 당할까 봐 걱정이 많다”며 “조만간

공단에 통역서비스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류점검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정 차장은 현장

소장을 따라 현장시찰에 나섰다.

“타워크레인이 너무 오래됐네요. 반드시 점검을

받으세요.”

“폐자재는 소규모로 박스에 담아 옮겨야 합니다.

저렇게 크게 묶어서 나르면 떨어질 수도 있어요.”

현장 이곳저곳을 살피던 정 차장이 미주알고주알 지적을 늘어놓는다.

“사다리는 위험할 수 있으니 계단을 설치하는 게 안전하겠네요.”

“건설현장은 늘 깨끗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

어요.”

“안전표지판은 눈에 잘 띄는 곳에 설치해 두세요.”

현장을 한 바퀴 둘러본 정 차장은 “작업발판 설치상태가 중·하 수준”이

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현장시찰이 끝나면 시공업체와 협력업체 안전담당자들을 상대로 다시

한 번 ‘잔소리’를 해야 한다. 정 차장은 미리 준비한 사진 자료 등을 보여

주며 일본 등 외국의 건설현장 재해예방 사례를 교육했고, 이 자료를 나

눠줬다. 필요할 때 열어 보고 참고하라는 뜻이다. 정기문 소장은 “공단 관

계자가 찾아와 이렇게 지적해 주면 아무래도 신경을 더 쓰게 된다”고 말

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 그 근처에는 반드시 상가가 들어선다. 아

파트주민 덕택에 안정적인 상권이 형성되는 것이다. 아파트 시공은 중견

기업 이상의 업체가 맡는 데 반해, 규모가 작은 상가 건설은 영세업체들

의 몫이다. 이런 곳일수록 추락이나 붕괴사고가 빈번하다.

현장점검을 마친 뒤 정 차장이 시공사와 협력업체 안전관리자

들을 상대로 강평을 하고 있다.

“발코니 맨 윗부분은 근로자들이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빨간색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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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I P건설현장 안전수칙 ‘ B e s t 4 ’

❶ 정해진 작업방법·순서 등 작업계획에 따라 작업을 실시한다.

➔ 공사시간을 단축하겠다는 생각으로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면 사고가 난다. 미리

공종별 작업안전계획서를 작성해 이를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

❷ 위험한 행동을 자제하고, 무리한 작업을 금지한다.

➔ 높은 위치에서는 반드시 작업발판 또는 추락방지용 난간 등을 설치해야 한다. 이

같은 시설물이 설치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작업을 하면 재해가 발생하기

쉽다.

❸ 작업 중 안전모·안전대 등 보호구 착용을 습관화한다.

➔ 보호구는 건설현장 근로자의 생명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덥거나 불

편하다고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간혹 있는데, 그래선 안 된다. 불과

1~2m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한 근로자도 있다.

❹ 현장 정리정돈을 생활화한다.

➔ 정리정돈이 되지 않은 건설현장에서는 근로자의 동선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다. 바닥에 쌓여 있는 건축자재를 피하려다 못에 찔리는 등 사고가 발생한다.

현장실사 ‘잔소리꾼’

정 차장이 재해예방 구호가 적힌 포스터를 챙겨 들고 용인시 영덕동 가

은프라자 신축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시공사는 성호건설(주). 2009년 8

월 준공 예정인 가은프라자는 지하 2층, 지상 7층의 상가건물이다. 가은

프라자 말고도 주변에 상가 건축이 한창이다. 비전문가의 눈에도 아찔한

모습이 속속 포착된다. 안전대조차 착용하지 않고 지붕 위에서 작업하는

인부들이 적지 않다.

이유호 현장소장의 안내를 받아 정 차장이 가은프라자 안으로 들어섰다.

현장 내부는 예상했던 것보다 깨끗했다. 추락방지용 난간이 몇 군데 설

치되지 않은 것을 빼면, 안전수칙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었다. 정 차장

은 “소장님이 워낙 꼼꼼한 분이라 현장이 아주 깔끔한 것 같다”며 “이 정

도로 정리가 잘된 현장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공단 관계자들이 영세한 건설현장까지 점검하기는 쉽지 않다. 인력이 부

족한 데다, 업체 관계자들이 탐탁지 않아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최근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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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취 재 후 기 _ 글 구은회 _ 사진 정기훈

“잘 지내시죠? 저는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6월의 어느 날 오후. 정경환 차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정 차장이 관할하고 있는

지역의 한 건설현장에서 중대사고가 발생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는 하소연

이 이어졌다. “언제 삼겹살에 소주 한잔 걸쳐야 되는데, 여기저기서 펑펑 터지니 원….”

정 차장과의 짧은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사고는 ‘아차’하는 순간 발생한다. 근로자 스스로 자기 몸을 지키려는 노력이 중요하

다. 나아가 공사기간을 줄일수록 이윤이 남는 건설현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 경기남부지역 민관합동 안전지킴이 ‘세이프티 케어 존’ 활동에 눈길이 쏠리는 것

은 이 때문이다. ‘돈보다 생명을’이라는 짧은 문장에 동의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무재

해’는 가까워진다.

단은 기존의 점검활동과 함께 ‘공단-사용자-근로자’가 유기적으로 재해

예방에 동참할 수 있는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경기남부지도원이

지역특성화 사업으로 진행 중인 ‘세이프티 케어 존(Safety Care Zone)’

사업도 이 같은 취지에서 시작됐다.

권희동 용인·흥덕지역 안전관리협의체 회장(경남기업 용인·흥덕지구

관리차장)은 “업체 관계자들이 한데 모이기 쉽지 않은데 공단에서 자리

를 마련해 주니까 고맙다”며 “지역 협의체 활동이 활성화되고 각 지역 간

정보공유가 많아지면 재해예방 효과가 커질 것 같다”고 평가했다.

소규모 건설현장에서는 최소한의 안전수칙조차 지켜

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일일이 점검·지도하

기엔 어려움이 많다. 인력 부족 탓이다.

Page 5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45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가·빌딩 신축현장이 밀집한 경기남부지역에는 지역 특성에

맞는 재해예방 활동이 필수적이다. 공단 경기남부지도원은 지난 2007년부터 지역특

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세이프티 케어 존(Safety Care Zone)’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화성동탄·용인흥덕·오산세교·수원광교 등 4개 지구를 세이프티 케어 존으로 지

정해 안전·보건종합교육, 안전의식을 높이기 위한 홍보활동, 건설안전기술 지원 등

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세이프티 케어 존 제도는 △공단 직원들이 분기별로 해당 공사현장에 찾아가 진행하

는 현장 캠페인 △해당 공사현장 시공업체 안전담당자와의 네트워크 활동 등 두 축으

로 이뤄진다.

특히 시공업체들이 직접 참여하는 네트워크 활동이 눈길을 끈다. 세이프티 케어 존으

로 지정된 4개 지역에는 각각 ‘안전관리협의체’가 구성돼 있다. 협의체에는 공단과 시

공업체, 공공발주기관 관계자들이 참여한다. 이들은 재해현황과 안전활동 성과를 공

유하기 위한 만남을 주기적으로 이어 가고 있다. 4개 협의체가 모여 합동 간담회를 진

행하기도 한다. 안전관리협의체가 자율적 모임이기는 하지만 참가자들이 현장 중간

관리자급 이상이라서 결정사항에 대한 집행속도가 빠른 것이 장점이다.

경창수 경기남부지도원 원장은 “공사기간을 줄여 이익을 늘리겠다는 욕심이 결국 큰

화를 부른다”며 “건설현장 관리자들이 협의체를 통해 재해예방 활동을 보다 중요하게

인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이프티 케어 존 사업이 성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18일 화성시 남양1택지개발지구 내 터널공사장에서 너비 50m, 높이 50m의

암반 절개지가 무너져 인부 3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대규모 건설현장이 밀집한 화성·용인·오산·수원 지역에서 유사한 사고가 잇따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세이프티 케어 존 사업이 단순 친목모임에 그치지 않도록 관

계자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민관합동 안전지킴이 ‘세이프티 케어 존’

포 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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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산재판례 따라잡기

4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을 썼다. 이 책은 자살이라는 현상을 심리적 영역으로 끌어들인 이론

서라는 평가받는다. 그는 자살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했다. 이기적 자살과 이타적 자살, 그리고 아노미적 자살.

이기적 자살은 사회와 개인 간의 통합이 약화될 때, 반대로 이타적 자살은 자신이 속한 사회 또는 집단에 지나치

게 밀착했을 때 발생한다. 아노미적 자살은 사회가 각 개인이 만족할 만한 조건이나 방향을 제시해 주지 못해 일

어나는 복합적인 결과다. 뒤르켐은 “자살은 도와 달라는 마지막 호소다. 그러나 너무 늦은…”이라고 썼는데, ‘자

살의 원인은 개인과 사회 간 통합 정도에 있다’는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문장이다. 그렇다면 산업재해보상보

험법에서 자살은 어떻게 다뤄지고 있을까.

회사에서 ‘왕따’로 괴로워하다 자살

99년 김포시에 위치한 이동통신 단말기 제조회사에 입사한 이아무개씨는 2000년 9월10일 강화도의 자택 옥상

난간에 목을 매 자살했다. 이씨의 어머니는 딸이 자살 직전 회사 내 왕따로 괴로워했고, 자신이 원치 않는 부서로

전보 발령이 나 극도로 불안해했다며 산재보상을 신청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씨 어머니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회사의 주장에 따르면 이씨는 같은 공정

(CDMA 휴대폰 가공)의 직원들과 사소한 문제로 자주 싸우고, 퇴근시간에 통근버스에서 내리는 동료를 붙잡아

큰소리로 야단치기도 했다는 것이다. 동료들과 마찰이 있은 뒤에는 이씨의 어머니가 근무시간에 해당 동료에게

전화해 욕설을 퍼부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갈등이 점점 깊어지자 2000년 4월 회사는 이씨를 MP3 다운로드공정으로 전보조치했다가 MP3 포장공정으로

다시 전보했다. 전환배치한 부서에서도 이씨가 사소한 문제로 직원들과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모습이 자주 목

자살과 업무상재해의 관계

Page 52: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47

격됐다. 회사는 그 이후에도 두 차례 전보조치했다. 그럼에도 1주일에 1회 간격으로 이씨와 동료 간 싸움이 발생

하자 회사는 이씨를 휴대폰 포장공정으로 전보조치했다. 하지만 이씨는 ‘불공평한 대우’라며 ‘철회하지 않을 경

우 사직하겠다’고 반발했다. 회사는 이씨의 요구를 거부했고, 이씨는 자신의 방에서 식음을 전폐하다 자살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씨 어머니의 유족보상 및 장의비 신청에 대해 불승인 판정했다. 업무상 스트레스로 자살했

다는 증거가 없어 사망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씨의 어머니는 소송을 제기했다.

자살에 대한 법원의 판단기준

이 사건의 원고는 이씨의 어머니,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대법원은 “이씨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부서로 전보

발령이 나자, 집단 따돌림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오해한 나머지 극도의 좌절감·흥분·우울감 등의 증

세를 보이면서 자살에 이르렀다”며 “사망 전 우울증 등의 정신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거나 치료약을 복용한 적

이 없기 때문에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자살은 업무상재해로 인정받기가 매우 어렵다. 법원은 자살이 △업무상 질병의 악화로 말미암은 심신상실 내

지 정신착란의 상태에서 이뤄졌거나 △과중한 업무의 수행으로 누적된 과로 또는 업무상의 스트레스로 우울증

이 심화돼 정신병적 증상이 발현된 상태에서 이뤄졌을 때 업무상재해로 인정한다. 물론 입증책임은 주장하는

쪽에 있다.

특히 자살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고인이 생전에 정신과적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느냐 여부다. 공단은 정신과 치료

기록이 없으면 대체로 자살을 업무상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관련 판례

•대법원 2004년 3월11일 판결 2004두60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서울고법 2003년 12월12일 판결

2003누1419

•서울행법 2002년 12월12일 판결

2001구5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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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지급된 보호구,

막걸리와 바꿔먹던 시절도…”

호흡용 보호구 제조업체 (주)제일뢰스텍 한재원 사장

“용접을 하면 철가루가 섭씨 3,000도에서 기체로 떠올랐다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고체가 됩니다. 폐쇄된 공간에서 용접할 때 하얗게 떠다니는

건 다 먼지 아니면 철가루인 셈이죠. 작업자들이 그걸 마시는 거예요. 코

털 같은 곳에 걸리지도 않아요. 0.3~3마이크로미터(㎛) 크기거든요. 그

냥 폐에 들어가 박혀요. 그게 쌓이면 10년 뒤에 진폐증에 걸리는 겁니다.”

2009년 7월22일 오후에 찾아간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에 있는 호흡보호

구 제조업체 (주)제일뢰스텍. 한재원(46) 사장은 기자를 보자마자 호흡

보호구가 왜 중요한지 역설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끔찍하다. 용접하

는 모습이야, 여느 현장에서든 흔하게 볼 수 있다. 비릿한 냄새와 불꽃,

먼지가 한 묶음으로 피어오르는 곳. 더군다나 그곳이 막힌 공간이고 마

스크도 없이 장시간 일을 한다면 요새 유행하는 말로 “100프로”다. 마음

한켠에 짓궂은 생각도 든다. 방진·방독마스크 생산업체 사장인지라 혹

시 자기 제품을 돋보이게 하려는 장삿속은 아닐까.

그러나 한 사장의 말은 분명한 ‘사실’이다. 4,000여명에 달하는 진폐환자

가 이를 증명한다. 진폐환자들은 대부분 십수 년씩의 경력을 가진 탄광

근로자들이다. 진폐증은 산업안전보건을 별세계 일로 여기던 시대의 부

산물이다. 근로자에게 방진마스크가 보급됐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

람은 많지 않았다. 한 사장의 얘기다.

Page 54: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49

“80년대에는 석탄을 캐는 탄광이 중요한 시장이었어요. 진폐증이 뭔지

도 모르던 시대 아닙니까. 근로자들에게 13장 정도의 마스크 필터를 줬

는데, 3장은 빨아 쓰고 나머지 10장은 막걸리 집에 가서 막걸리하고 바꿔

먹는 근로자들이 많았어요. 막걸리 가게 주인은 이걸 도매상에 팔고, 도

매상은 다시 회사에 납품하고 그랬죠.”

“조선소, 진폐증에 걸릴 일 없어”

마스크를 세탁한다면 ‘말짱 도루묵’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니다. 분진마스

크는 정전기를 통해 미세먼지를 거르는 정전기식과 구멍을 좁혀 그보다

큰 먼지를 거르는 기계식이 있는데, 세탁하면 약품 처리된 정전기는 사

라지고 구멍은 커진다. 치명적인 먼지를 막을 수 있는 보호막을 스스로

없앴으니 자살행위를 한 셈이다. 80년대 탄광 사업장이 진폐증을 대수롭

지 않게 생각했다면, 지금은 이른바 ‘마찌꼬바’로 불리는 금속가공업체나

소규모 주물공장 같은 영세 제조업체들이 그렇다.

한 사장은 보호구를 사용하지 않는 영세업체를 두 가지로 분류했다. 몰

라서 못 쓰는 경우가 첫 번째고 알아도 안 쓰는 경우가 두 번째다. 몰라서

접근을 못하는 경우는 작업장에서 쓰는 물질이 어떤 종류인지, 어떤 유

지금은 사라진 사북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의 모습. 석탄산업이 한창 활황이던 80년대 초만 해도 안전보건은 별세계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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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해성이 있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금광에서 채취한 금은 약품처리를 합니다. 어느 날 이 사업을 하는 친구

가 냄새도 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소연을 하더라고요. 방독마스크를 보

내 줬더니 정말 좋아해요. 직원들 것까지 추가로 주문해서 가져갔어요.”

알아도 안 쓰는 사업장도 적지 않다. ‘돈’이 아깝다는 이유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직원들은 유해물질에 노출된다. 역시 산업재해의 사각지대로 남

는다. 한 사장은 “영세업체들은 사장이 안전관리자 역할까지 맡고 있다”

탄광에서 일하다 진폐증을 얻은

한 근로자가 산재의료원 태백중

앙병원에서 요양 중이다.

Page 56: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51

며 “노동부 산업안전감독관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많다”고 우려했

다. 사업주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영세업체들은 정말 조건이 좋지 않아요. 떨어지거나 절단되는 사고도

그렇지만 질병 쪽은 거의 무방비예요. 귀마개나 보안경·마스크 같은 것

을 착용하지 않는다고 하루 이틀 사이에 증상이 나타나는 게 아니거든

요. 서서히 죽어 가는 거예요. 보호구 산업을 육성하네, 마네의 문제가 아

닙니다. 그래서 영세사업주 의식개선사업이 필요한 겁니다.”

한재원 제일뢰스텍 사장.

방진패드 생산실에 들어가려면 반

드시 ‘에어워셔’를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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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방독마스크에 들어가는 정화통을 생산하는 공정. 작업자 역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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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그의 호소는 절절했다. 안전보건은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난다. 조선업이

좋은 사례다. 제일뢰스텍의 거래처도 대형 조선회사들이다. 한 사장은 “

조선소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진폐증에 걸릴 일이 없다”고 확언했다. 충

분한 물량과 적절한 안전감독이 어우러져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는 설명

이다. 그는 “조선소에는 보호구를 쌓아 두고 원하는 대로 가져갈 정도로

충분하게 공급된다”며 “제품이 비싸더라도 좋은 자재를 사용한 보호구

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안전관리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모습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는다.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다가 세 번 적

발되면 여지없이 퇴출된다. 삼진아웃제다.

보호구 산업의 확장은 안전하게 일하려는 근로자들의 욕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보호구 시장이 80년대 후반 노동운동의 성장과 발을 맞추고 있

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제일뢰스텍도 올해 설립 20년을 맞는다.

생명산업·양심산업 그러나 악전고투

힘이 커진 노동조합은 보호구가 사고와 질병에 직결된다며 회사측이 일

방적으로 정할 게 아니라 단체협약을 맺어 결정하자고 요구하기 시작했

다. 요새도 가격과 품질을 사이에 두고 경영진과 노조 사이에 보이지 않

는 신경전이 벌어진다. 회사는 법적으로 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검인증

센터에서 인증을 받은 제품을 사용하면 되는 일이고, 노조는 더 좋은 품

질의 보호구를 사용하고 싶어 한다. 인지상정이다.

보호구 제조업체들도 악전고투하고 있다.

대체로 보호구 산업이라고 하면 안전을 위해 반드시 인증을 받아야 하

는 12개 품목 제조업을 뜻한다. 몸에 착용하는 안전화·안전대·보호

복·안전장갑 등 4종과 머리를 보호하는 안전모·귀마개·귀덮개·보

안경·보안면·방진마스크·방독마스크·송기마스크 등 8종이 있다.

한 사장은 “보호구 산업은 근로자들의 생명을 지키는 생명산업이고, 만드

는 사람들이 양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는 양심산업”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시장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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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12개 품목의 시장규모를 다 합쳐 봐야 2,681억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생산업체는 무려 375개나 된다. 그중 안전화가 940억원, 안전마스크가

937억원으로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당연히 업체 규모는 영세하다. 2005년 기준으로 338개 보호구와 보호장

치 제조업체 중 10인 이하가 47%인 161개, 11~30인은 23%인 77개에 달

했다. 50인 이하 기업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81%에 이른다. 연간 매출액

이 10억원을 밑도는 회사가 부지기수다.

한 사장은 “업체 규모가 작으면 경영자들이 양심을 가지고 품질관리를

하는 것 자체가 힘들 수밖에 없다”며 “만들기 바쁘고, 팔기 바빠 품질관

리는 신경 쓰기 어렵다”고 귀띔했다. 품질을 측정하는 기계의 가격이 웬

만한 생산설비보다 비싸다.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소규모 영세업

체들이 많다면, 그 다음은 말할 것도 없다.

안전산업 수준은 국가의 수준

거기에 경기한파까지 겹쳐 품질보다 가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들

이 증가하고 있다. 기업 사정이 어려워지면 산업안전보건은 후순위로 밀

려난다. 일정 기준을 통과한 싼 제품을 쓰게 되는 것이다. 한 사장은 “가

격 안 따지고 품질만 좋으면 된다고 했던 회사들도 요즘은 가격을 먼저

물어본다”고 말했다.

“버릴 수는 없고 끌고 가자니 너무 열악하고, 참 뜨거운 감자죠.”

한 사장은 보호구 산업을 보는 정부의 시각이 이렇다고 했다. 버리면 근

로자들이 골병들고 지원하려고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 되지 않

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선순환 구조는 가능하다. 사용자들이 제품을 쓰

면 시장이 형성되고, 물량이 많아지면 업계 매출이 늘어 규모가 커지게

마련이다. 가격 하락과 제품 질 상승을 동반하는 과정이다.

한 사장은 그러나 동남아시아 국가 모델을 경계했다. 그는 “대부분의 동

남아 국가들은 안전기준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며 “100% 수입하기 때

문”이라고 지적했다. 다국적기업이 선두에 섰다. 유명 다국적 기업이 시

장에 진출하는 방식은 ‘덤핑’이다. 싼 제품을 살포해 먼저 시장을 장악한

다. 팔리지 않으면 기술이 정체되고, 나아가 제조기반이 무너진다.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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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선소에서 근로자가 마스크를 쓰고 용접 작업을 하고 있다.

주위로 ‘용접흄’(용접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이 불꽃에 비쳐 뿌옇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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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이 사라지고 나면 그제서야 다국적기업이 등장해 원하는 대로 시장을 쥐

락펴락한다.

한 사장은 보호구 산업이 국가의 수준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재해율 줄이기에 적극 나서는 것과 같은 이

치다. 하지만 수준을 갑자기 높일 왕도는 없다. 뚜벅뚜벅 갈 길을 갈 뿐

이다.

“제대로 만들어서 잘 팔겠다는 게 제 전략입니다. 기업이 지불하는 비용

보다 많은 가치를 가진 제품을 만들면 되거든요. 제대로 만든 제품이 팔

리면 산업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한국 제품의 경

쟁력을 키우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취 재 후 기 _ 글 한계희 _ 사진 정기훈

안전보호구는 반드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인증을 받아야 한다. 보호구가 생명

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보호구가 제대로 기능을 갖추려면 공단이 정한 기준 이상을 충

족해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생명산업이 실제로는 ‘3무(無)’ 산업으로 불린다. 3

무는 기술개발 비용이 없고, 기술개발 인력이 없고, 기술개발 실험장비가 없다는 뜻이

다. 보호구 산업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 준다. 산업이 발전할수록 유해물질의 종류는

다양해진다. 유해물질이 생기는 속도를 기술이 따라잡지 못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조

용하게 병이 드는 것이다. 국가가 나서 기술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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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2008년 5월, 경기도 화성시 발안지방산업단지의 한 폐수종말처리장에

서 김아무개(37)씨가 여과탱크에서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쓰러졌다.

탱크로 들어간 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았다.

김씨를 포함해 3명의 근로자는 여과탱크에서 활성탄 교체작업을 했다.

탱크 바닥 뚜껑을 열고 1m 두께로 쌓인 활성탄을 긁어내는 일이었다. 김

씨가 윗뚜껑을 열고 탱크 안으로 들어가 활성탄을 밑으로 밀어주면 나머

지는 밖에서 긁어내기로 했다.

김씨가 방독마스크를 쓰고 3m 높이의 탱크 안으로 들어갔다. 쌓인 활성

탄에서 훌쩍 뛰어 손을 뻗으면 윗뚜껑에 닿을 듯했다. 갑자기 삽을 내팽

개치는 소리와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동료들이 달려갔을 때는 이

미 늦어 버렸다. 김씨는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다음날 사망했다.

김씨의 죽음은 어이없게도 마스크 때문이었다. 밀폐된 공간이라 산소가

부족한데도 김씨는 방독마스크를 썼다. 이런 상황에는 호흡용 송기마스

크를 써야 한다.

호흡용 보호구의 종류는 다양하다. 환경조건이나 대상물질, 사용가능시

간이 다르고 일반 작업용인지 화재나 폭발 때 구출용으로 쓰는지에 따라

다르다. 용도에 맞게 잘 골라 써야 한다.

호흡용 보호구는 여과식과 급기식이 있다. 여과식은 방진마스크와 방독

마스크를 말한다. 급기식은 호스를 통해 깨끗한 공기를 보내는 송기마스

크와 산소용기가 달려 있는 자급식 호흡기가 있다. 자급식은 소방관들이

쓰는 보호구다.

폐수종말처리장 사고 때처럼 산소가 부족한 곳에서 여과식 마스크를 사

용하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부족한 산소가 마스크 안에 그대로 흡입되

기 때문이다. 특히 방독마스크는 특정 가스 이외에는 효과가 없다. 유해

물질의 종류나 농도를 알지 못하거나, 가스가 혼합돼 있는 곳에서는 방

독마스크를 사용해도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마스크 용도, 알고 쓰세요!

포 커 스

Page 63: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3 . 화학물질 바로알기_메틸브로마이드

5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육류나 곡물·과일에 이르기까지 수입농산물이 우리 식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지고 있다. 수입된 곡물

이나 과일이 국내에 유통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방역이다. 특히 식품류는 병해충을 제거하기 위

해 살균가스를 뿌리는 훈증소독을 하는데 이때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메틸브로마이드(Methyl Bromide)다. 브롬

화메틸이라고도 불리는 메틸브로마이드는 단기간 노출돼도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강력한 독성을 가진 물질이다.

최원찬(가명·당시 20세)씨는 수입과일을 훈증소독하던 중 메틸브로마이드에 노출돼 질병에 걸렸다. 최씨는

2000년 3월27일 친구 세 명과 함께 아르바이트생으로 부산 동구 소재 (주)성민방역(가칭)에 채용됐다. 이 회사

는 수입용 과일과 목재에 방역하는 업무를 했다. 정규직 근로자가 6명이었고, 방역물량에 따라 아르바이트생

을 채용했다.

최씨는 수입컨테이너 방역작업을 했다. 최씨가 주로 방역작업을 했던 품목은 수입오렌지였다. 하루 8시간씩 주

6일을 근무했다. 매일 40개 정도의 컨테이너 작업을 했다. 마지막 단계에 검역작업을 위해 컨테이너 안쪽에 설

치한 송풍기·호스 등을 해체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해체작업은 컨테이너 개방 뒤 한 시간이 지난 이후에 작업

을 해야 하지만 물량이 많을 때에는 컨테이너 문을 개방하자마자 해체작업을 했다. 작업을 할 때 방독면도 착

용하지 않았다. 최씨는 훈증에 사용되는 물질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것이 인체에 해로울 것이라고는 생각하

지 못했다.

최씨가 몸에 이상을 느낀 것은 일을 한 지 보름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말을 더듬기 시작했고 많이 피로했다. 4

월 말부터는 어지럼증이 심해졌다. 남이 깨워주지 않으면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다. 5월에는 증

상이 심해져 먹지도 못하고 잠만 잤다. 같은달 12일부터는 손이 떨리는 증상까지 나타났다. 최씨는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수입오렌지 소독하다 한 달 만에 뇌 손상된 아르바이트생

Page 64: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59

당시 최씨와 함께 일을 했던 친구 3명 중 2명도 말을 더듬거나 보행이 곤란한 증상이 발생했다. 평소 질병이 없

었던 최씨는 결국 메틸브로마이드에 의한 뇌병증(뇌손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최씨가 방역회사에서 일한 기

간은 겨우 한 달 정도였다.

신경장애 일으키는 메틸브로마이드

메틸브로마이드는 독성이 강하고 무색투명한 액체 또는 기체다. 낮은 농도에서는 아무런 냄새나 맛이 없지만 고

농도일 때 약간 달콤한 냄새가 난다. 메틸브로마이드는 각종 곡물과 과일 소독제, 의약품·염료 제조 용매나 촉

매제로 사용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식물방역법에 따라 수출입 식물에 기생하는 병해충을 방제하기 위한 훈증 소

독약제로 많이 사용된다. 메틸브로마이드에 중독되면 신경장애가 나타난다. 걷기 어렵거나 팔다리에 힘이 빠지

고 생각이나 반응이 느려지기도 한다. 시신경이 손상될 수도 있다. 주로 호흡기를 통해 흡수되는데 가스상태에

서는 눈이나 피부로도 흡수된다.

메틸브로마이드에 노출되면 중추·말초신경장해가 나타난다. 고농도에서는 폐포에 액체가 고이는 폐수종이

유발된다. 피부에 닿으면 홍반·부종이 생기고, 고농도일 경우 화상으로 인한 수포가 발생한다. 메틸브로마이드

에 의한 신경질환은 일반 신경질환과 구분하기가 어렵다. 취급 근로자가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반드시 산

업의학·신경과전문의와 상의하고, 자신의 직업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Page 65: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6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한국의 안전모델,

벤치마킹하고 싶어요”

인도 듀베이씨의 한국 산업현장 나들이

2009년 6월30일

인천광역시 부평구 소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교육원. 배계완(48) 공

단 건설안전실 팀장이 한국의 산업안전제도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

다. 십수 명의 강의생들은 모두 외국인.

인도에서 온 듀베이(56·B.D. Dubey)씨는 통역으로 전해지는 강의내용

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연신 볼펜을 움직였다. 듀베이씨는 인도 노동고용

부 제조업 산업안전보건 자문위원이다. 지난 6월24일 방글라데시·인

도·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16개국에서 온 산업안전보건 관계자 16명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공단이 한-ILO 협력사업의 일환으로 2주 동안

진행하는 산업안전보건분야 초청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배 팀장은 ‘건설안전기준 및 재해사례’를 주제로 한 이날 강의에서 한국

의 산업안전보건법과 건설안전 관련 법률을 소개했다. 건설관련 재해 통

계와 공단이 진행하고 있는 건설재해예방활동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

했다.

듀베이씨가 유독 이 강의에 집중한 이유는 인도에서는 접하지 못한 분야

Page 66: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61

였기 때문이다. 인도에는 건설산업안전 관련 연구가 초보적인 단계에 머

물러 있다. 제조업과 광산업의 안전보건시스템은 50년 전 만들어져 안

착단계에 있지만, 건설 관련 시스템은 10년 전에야 시작됐다. 듀베이씨

는 “한국과 같은 발전된 산업안전보건 시스템이 아직 인도에는 없다”며 “

내가 담당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인도 담당자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전문분야는 제조업 산업안전지도다. 인도 정부에서 35년

간 산업안전보건 분야에 종사했다.

노동부가 ILO와 한 5년 전 약속

공단은 매년 동남아시아지역 산업안전보건 관계자들을 초청해 연수를

진행한다. 또한 해당 국가 관계자들과 1년에 한 번 워크숍도 갖는다.

산업안전보건공단 초청 연수과정에 참가한 동남아시아 지역 산업안전보건 관계자들이 공단 건설안전체험장에서 교육중이다.

노동부는 2003년 국제노동기구(ILO)와 특별기술협력사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아시아·

태평양지역 개발도상국에 노동 관련 제도를 소개하고 기술을 전수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후 노동

부 산하 공단들은 기관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각종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Page 67: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6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공단은 매년 아시아 개발도상국가 산업안전보건 관계자들을 초청해 한

국의 산업재해 예방제도를 소개하고 기술을 전수한다. 공단 관계자는 “

한국에 대한 이미지 제고와 우호증진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

다. 공단은 올해 4월 ILO와 협력사업협정(LOA)을 추가로 맺었다.

이 같은 활동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의무이기도 하다.

OECD는 각 회원국들이 경쟁력에 상응하는 개발도상국 지원계획을 마

련해 시행토록 하고 있다. 듀베이씨는 “노동고용부가 추천한 두 명 가운

데 선택을 받았다”며 “과거 프로그램을 경험했던 동료들의 평가가 매우

좋아 많은 기대를 갖고 한국에 왔다”고 말했다.

필리핀 산업안전보건센터 환경국장인 넬리아(Nelia G. Granadillos)씨

도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행운’으로 여기고 있었다. 넬리아씨는

“한국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필리핀에서 유명하

다”며 “한국모델을 벤치마킹해 필리핀에 적용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고 소감을 밝혔다.

공단의 연수 프로그램은 이론교육과 실습, 현장견학, 방문자 상호토론

연수생들이 공단 내 강의실에서 ‘재해자 구조 및 응급조치’ 강의를 듣고 있다.

Page 68: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63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론교육에서는 산업안전보건과 관련한 ILO협약,

한국의 산업안전보건관련 법·제도를 소개한다. 각국의 산업안전보건

시스템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초청연수 프로그램에

는 민속촌 방문 등 한국문화체험도 포함돼 있다.

이론교육 → 현장견학 → 상호토론

참가자들은 특히 산업안전보건통계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강의 내내 열

심히 메모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산업안전보건통계를 보면

그 나라의 산업안전시스템을 가늠할 수 있다. 그만큼 통계산정이 중요하

다. 듀베이씨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계에 따라 대처

방법이나 정책방향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넬리아씨는 한국의 외국인근로자 산업안전교육에 관심이 많다. 필리핀

근로자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넬리아씨는 “한국은 산

업안전보건과 관련한 규제가 매우 강력하고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

원도 많은 것 같다”며 “필리핀은 아직 산업안전보건보다는 고용에 관심

이 높다”고 아쉬워했다.

초청연수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과 GS건설 일

산 자이4단지 현장을 둘러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의 전자동시스템 앞에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듀베이씨는 안전모·안전화 등 산업안전도구가 잘 갖춰진 건설현장이

정말 부러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인도에는 소규모 경공업 사업장들이

많아 근로자들을 상대로 안전교육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휘트

니스센터 등 직원들의 복지시설에도 관심을 보였다.

넬리아씨는 “작업장이 너무 깨끗하다”고 거들었다. 이어 “전자동시스템

말고 직원들이 직접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고 덧붙였다.

건설업에 주목했던 듀베이씨의 관심사는 역시 GS건설 일산현장이었다.

작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를 두루두루 살폈다. 듀베이씨는 “인

도에 돌아가 강의를 하려면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Page 69: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6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 실습이 한창이다. 사람모형에 귀를 대고 호흡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실습은

즐겁게, 실전이라면 진지하게!

Page 7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65

리우선언에 비유되는 ‘서울선언’

초청연수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가장 주목한 프로그램은 6월2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선언 1주년 기념식’이었다. 이날 기념식은

듀베이씨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인도를 대표해 서울선언에 서명하

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듀베이씨는 “2008년 선언식에 인도 노동

고용부 장관이 참석했지만 서울선언에 서명은 하지는 않았다”며 “올해

내가 대신 서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고 흥분했다.

서울선언은 환경분야의 ‘리우선언’에 비유될 정도로 안전보건분야에서

는 의미 있는 협약이다. 서울선언은 2008년 7월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산

업안전대회에서 채택됐다. 당시 대회는 120개국 4,500여명이 참석하는

등 성황리에 개최됐다.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에서 일할 권리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이

고, 세계화는 반드시 이를 보장하기 위한 예방대책과 함께 진행돼야 한

다.”(서울선언 중에서)

T I P산업안전보건 관련 I L O협약

산업안전보건협약(제155호)과 산업안전보건증진체계협약(제187호)이 있다. 한국은

2008년에 두 협약을 비준했다. 이로써 우리나라가 산업안전보건분야에서 비준한 협

약은 전체 13개 중 4개로 늘어났다.

산업안전보건협약은 노사단체들과 협의를 통해 산업안전·보건 및 작업환경에 관

한 일관된 국가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계·설비 안

전조치와 점검체계 운영 등을 통해 작업환경에 내재된 위험요소를 최소화해 근로자

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1983년에 ILO에서 채택돼 2008년 기준으로 50

개국이 비준했다.

산업안전보건증진체계협약은 정부가 노사 대표기구와 협의해 산재예방체계 구축과

산재예방 정책·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약속이다. 지속적인 산업안전보건정책의 증

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07년 채택됐다. 우리나라는 일본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이 협약에 비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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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공단 본부 건물 앞에서 기념촬영.

지난 6월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선언’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방문단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노민기 이사장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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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서울선언에는 노사정의 역할도 제시돼 있다. 선언에 따르면 정부는 강

력한 근로감독으로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해야 한다. 사용자는

근로자와 근로자 대표에게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근로자는 안전수칙을 준수하고 사업주와 협력해

야 한다.

초청연수 프로그램 인기

공단의 초청연수 프로그램에 대한 참가자들의 평가는 후했다. 공단이 연

수 마지막날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매우 만족한다’는 응답이 76.15%, ‘

만족한다’는 답변이 23.35%로 나타났다. ‘보통’은 0.5%에 불과했고, 불

만족스럽다는 대답은 없었다.

듀베이씨와 넬리아씨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던 것을 빼고는 다 괜찮

았다”고 평가했다. 차중철 공단 국제협력팀 대리는 “고국에 돌아가 감사

하다는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고 전했다.

끝으로 듀베이씨와 넬리아씨에게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듀베이씨는 “정부대표와 사용자대표, 근로자대표가 함께 노력해야 하는

의무”라고 답했고, 넬리아씨는 “대기업과 정부가 인적자원의 소중함을

알고 소규모 기업과 근로자들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방문단이 GS건설 일산 자이4단지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Page 73: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6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취 재 후 기 _ 글 신현경 _ 사진 정기훈

난감했다. 방문단의 빡빡한 일정 탓에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외국인이라는 것도 마음

에 걸렸다. 하지만 이는 모두 기우였다. 듀베이씨와 넬리아씨의 인터뷰는 공단에서 진

행됐다. 방문단이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선언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뒤 공

단으로 돌아와 교육을 받기 직전에 짬을 낸 것이다. 통역을 거치다 보니 취재시간은 생

각보다 훨씬 길어졌다. 옆집 아저씨처럼 자상했던 듀베이씨. 지금은 고인이 된 마이클

잭슨을 좋아한다는 넬리아씨. 공단의 초청연수 프로그램이 그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

았으면 좋겠다.

방문단이 GS건설 일산 자이4단지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Page 74: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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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산업재해가 증가함에 따라 각국에서 산업안전보건활동이 광범위하게 펼쳐

지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업무상 사고나 질병으로

매일 평균 5,000여명이 사망하고 있다. 한 해 200만명에서 230만명이 사망하는

셈이다. 4일 이상 휴업해야 하는 근로자는 2억7,000만명을 웃돌고, 질병에 걸린

근로자는 1억6,000만명이 넘는다. 또한 위험물질로 인해 숨지는 근로자가 매년

44만명에 달하고, 석면분진으로 인한 사망은 10만명에 육박한다.

이에 따라 ILO와 세계보건기구(WHO)·국제산업보건위원회(ICOH: Interna-

tional Commission on Occupational Health) 등 국제단체들은 산업안전보건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 기구는 세계 각국이 서로 협력해 특정한 산업위

험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공동사업을 벌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특히 ILO는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글로벌 전략(Global Strategy on OSH)’을 채

택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증진체계협약

(제187호) 비준을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사회적 인식

증진과 국가적인 산업보건관리시스템 구축, 실행 프로그램의 도입, 국가 차원

의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플로차트(Flow-Chart)를 작성해 실행과 점검을 독려

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산업안전보건문화 조성을 위해 세계안전의 날 등을 지정해 캠페인

을 진행하기도 한다. ILO는 특히 산업안전보건시스템 가이드라인을 제정, 개발

도상국에 대한 기술·재정지원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각종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08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산업안전보건대회에서 외국인근로자 등 취약계층

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지원방안이 집중 논의되기도 했다. 한국 노동부도 ILO와

협약을 체결하고 아시아·태평양지역 개발도상국가 지원사업에 나서고 있다.

한편 유럽연합(EU) 국가들은 고령·외국인·여성근로자가 증가함에 따라 취약

계층의 안전보건 확보를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고 있다.

글로벌화되는 산업안전보건활동

포 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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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3 . 산재판례 따라잡기

정기적인 운동은 심장마비 가능성을 줄인다. 하지만 마라톤처럼 3시간 이상 지속되는 운동을 하던 사람들 가운

데 갑자기 심장에 이상이 생겨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한때 유명한 마라토너였던 미국의 한 의사는 “마

라톤은 보양식을 과잉섭취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5만명 중 1명 꼴로 마라톤이나 사이클을 3시간 이상 격렬하게 하다가 심

장마비로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마라톤을 즐기는 것은 비행기를 타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마라톤대회가 열풍이다. 기업이나 단체들이 너도나도 마라톤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홍보효과가 높기 때문

이다. 그렇다면 회사 홍보를 위해 마라톤대회에 참여할 것을 권유받고 연습을 하다 숨진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

정받을 수 있을까.

실적 스트레스에 마라톤하다 사망

포항에 위치한 한 은행에서 일하던 정아무개씨는 2005년 2월부터 채권관리팀장으로 발령받았다. 그의 업무

는 구상채권 및 특수채권의 관리·회수 관련 소송을 관장하는 것이었다. 그가 맡은 일은 해가 갈수록 늘어났

다. 2007년에는 2006년에 비해 관리대상채권 규모가 20%나 증가했다. 채권 회수를 위해 포항뿐만 아니라 경

주·영덕·울진으로 출장을 다녔는데, 같은 기간 평균 출장횟수도 25%가량 늘었다. 또 2007년 그가 동시에 담

당한 소송건수도 무려 52건에 달했다. 더구나 악성채권을 관리·회수하는 업무다 보니 매일 빚 독촉 싸움을 벌

여야 했다.

2007년 1분기 실적발표에서 회사 전반의 순위는 크게 올랐으나 정씨의 부서만 부진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후 직

회사 홍보 마라톤대회 연습 중심장마비로 사망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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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회의가 열릴 때마다 정씨는 지점장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정씨의 건강검진 결과도 당연히 나빴다. 의사는 고혈압·당뇨·고지혈증 진단을 내렸다. 정씨는 2007년 4월 초

영덕군으로 출장을 가다 30초가량 호흡곤란과 심한 가슴통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포항시가 주최하는 해변마라톤대회가 임박했다. 매년 6월 초 열리는 이 마라톤대회를 앞두고 회사는

전 직원들에게 참가 독려방침을 전했다. 전년도 대회에서 경쟁 은행측의 참가인원이 더 많았던 탓이다. 회사는

“경쟁 은행보다 더 많이 참가해 회사의 위상을 높이고 지방자치단체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참가비

를 전액 지원하고 대회참가에 대비한 연습도 지시했다. 특히 정씨와 같은 팀장급에게는 마라톤동호회 정기연습

에 참가하라고 했다. 이에 따라 정씨는 4월21일 마라톤동호회 연습에 참여하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회사가 참여 지시, 마라톤 연습도 업무의 일환”

이 사건의 원고는 정씨의 부인이고,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2심 재판부는 “달리기 연습은 자율적인 동호회

활동의 일환으로 보이고 동호회 활동이나 달리기 연습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었다고 볼 증거도 없다”며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정씨의 사망은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및 업무수행성이 인정되는 달리기 연습에 기인해 발

생한 것으로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환송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마라톤동호회 연습 참가가 업무인지 여부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2008년 개정 이전 산업재

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 제37조를 근거로 삼았다. 이에 따르면 ‘근로자가 운동경기·야유회·각종 행사에 참가

중 사고로 사상할 경우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참여하도록 지시한 경우 업무상재해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행

사참가를 위한 준비연습 중 발생한 사고’도 마찬가지다.

관련 판례

•대법원 2009년 5월14일 판결

2009두58 유족보상일시금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대구고법 2008년 12월5일 판결

2008누526

•대구지법 2008년 4월16일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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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효율적인경영을 위한안전레시피

Page 78: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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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안전, 착한 빛으로 지킵니다” _ 746,000호 S마크 인증업체 선광전자

티끌조차 허용되지 않는 반도체 공장 지키는 비상대응팀 _ 86 전 직원이 ‘안전지킴이’ 페어차일드반도체

“0.01초의 방심이 가장 무섭다” _ 98 공기업 최초로 코샤18001 획득한 코레일 충남지사

발로 뛰는 안전관리로 조선소를 누비다 _ 110

현대삼호중공업 안전보건 선봉대, 안전1과 안전1팀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소중한 일은 없다” _ 122대우건설 파주열병합발전소 건설현장

“안전의 사칙연산을 아시나요?”_ 134시스템·설비·철학 ‘안전 3박자’ 갖춘 호남석유화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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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근로자 안전,

착한 빛으로 지킵니다”

6,000호 S마크 인증업체 선광전자

“여보세요. 선광전자입니다.”

“검찰입니다. 조사받으러 오셔야겠습니다.”

“네?”

심우정(52) 선광전자 대표이사는 3년 전 뜬금없는 전화를 받았다. ‘검찰

이라니….’ 처음엔 친구들의 장난전화인 줄 알고 끊었다. 다시 전화가 걸

려왔다. 진짜 검찰이었다. 평생 경찰서 한번 가 본 적 없는 심 대표의 가

슴은 ‘쿵쾅쿵쾅’ 뛰었다.

“검찰에 가면 조사를 받기 전에 주민등록번호를 쓰는데요. 머릿속이 하

얗게 되면서 한참 동안이나 번호가 생각이 안 나더라니까요.”

심 대표가 검찰에 불려 간 이유는 무엇일까. 해외 우수제품을 연구하기

위해 장비해체 전문업자에게 일을 맡겼던 것이 문제가 됐다. 하필이면

이 업자가 2006년 사행성 오락기계 ‘바다이야기’를 불법으로 복제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광학·전기·기계 기술의 절묘한 하모니

“기계를 뜯어 봐야 이게 씨인지 열매인지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일을 맡겼는데, 그 사람이 불법복제를 하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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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 조사에서 솔직하게 얘기했죠. 복사해서 상용화하려는 게 아니라 공부

하기 위해서였다고.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습니다.”

아찔했던 3년 전의 경험을 털어놓는 심 대표. 그는 1989년 회사를 설립

한 이후 오로지 기술개발에만 몰두했다.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선광전

자는 광전자식 안전장치를 생산하는 작은 제조업체다. 광전자식 안전장

치는 프레스나 전단기에 부착하는 것으로, 작업자의 신체접근을 감지해

감김이나 끼임 같은 재해를 예방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심 대표는 “간단

한 것 같지만 전기·공학·기계의 메커니즘이 결합된 장비”라고 말했다.

광전자식 안전장치의 작동원리는 이렇다. 50㎝의 막대기 모양인 투광기

와 수광기 양쪽에 16개의 센서가 빛을 쏜다. 빛을 쏘는 중간에 어떤 물체

가 있으면, 이를 감지해 제어기에 신호를 보내고 기계는 작동을 멈춘다.

광전자식 안전장치는 사람의 손이 들어가면 기계를 자동으로 멈추게 한

다. 회사 이름에서도 만드는 제품을 짐작할 수 있다. 착할 선(善)에 빛 광

(光)을 따서 선광전자다.

프레스기를 갖고 있는 국내 영세사업장 사장 10명 중 9명은 손가락 하나

가 없다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다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프레스기를 다루는 근로자들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장치를 달아

야 한다는 법 규정이 생긴 지 얼마 안됐습니다. 직원이 다치면 사장이 보

상해 주든가 병원에 보내면 그만이었죠. 반면에 유럽은 달라요. 이미 오

래 전부터 작업자가 프레스기 근처에 못 가게 펜스를 칠 정도로 안전을

허재연(35) 연구개발팀 대리가

대표이사실 한켠에 마련된 연구

개발실에서 신제품을 테스트하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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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심 대표는 “우리 회사 제품을 구입한 작업장에 가 보면 사장님들 상당수

가 손가락이 잘려 있다”고 말했다.

광전자식 안전장치는 등급도 다양하다. 2등급 장치는 위험한 곳에 사람

의 손이 들어가면 자동으로 기계를 멈추게 한다. 이보다 높은 수준인 4등

급 장치는 정전 등의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기계를 멈추게 하는 인공지능

까지 갖추고 있다. 선광전자는 2008년 6월과 8월 4등급 제어장치와 광

센서장치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2009년 5월6일에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6,000번째로

S(Safety)마크 인증을 받았다. 97년 도입된 ‘S마크 안전인증 제도’는 공

단이 산업현장의 각종 기계에 대한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으로, 국제표준

(ISO/IEC)과 유럽연합규격(EN)등 글로벌 기준에 적합해 선진국의 수출

장벽을 뛰어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S마크 인증까지 10년, 험난했던 개발과정

“이건 괜찮아요. 이건 마킹이 이상한 것 같은데요.”

5월13일 기자가 선광전자를 찾아갔을 때 심 대표는 생산라인에서 손톱보

다 작은 집적회로를 확대경으로 보면서 불량 여부를 꼼꼼히 살피고 있었

심우정 대표(가운데)와 직원들이

회사 생산라인에서 손톱보다 작

은 집적회로를 확대경으로 살펴

보면서 불량품인지를 꼼꼼히 살

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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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전자식 안전장치가 달린 기계에 손을 넣으니 빨간 불이 들어오며 기계가 멈춘다.

한 작업자가 전자회로판 접점 불량 등을 점검하고 있다. 작업대마다 가습기가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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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다. 선광전자의 임직원은 20명인데, 연구개발인력은 심 대표를 포함해 3

명이다. 심 대표는 국내 방호장치 분야의 개척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대

표이면서 동시에 연구개발의 핵심인력이기도 하다.

연구개발실을 따로 둘 형편이 아니라서 연구원들은 대표이사실 한쪽에

서 일을 한다. 근로자들은 전자회로판(PCB)에 집적회로(IC)를 붙이고,

제품 케이스를 만든다. 허재연(35) 대리는 “연구개발에 필요한 첨단장비

는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빌려 쓴다”고 말했다.

새로운 장비를 개발하려면 최소한 6가지 테스트를 거친다. 인체에서 나

올 수 있는 최대 정전기인 1만5,000볼트를 장비에 가하는 테스트도 있

다.

정진욱(32) 대리는 10년 전 대학교 실습을 선광전자로 나왔다가 ‘말뚝’을

박은 케이스다.

“회사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어요. 처음엔 완제품 케이스에 구멍부터 뚫

는 일부터 했어요. 시간이 흘러 조금씩 배웠고, 3년 전부터 연구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정 대리는 “앞으로도 배울 게 많고 이제 시작”이라며 “프레스기뿐만 아니

라 자동차나 반도체의 생산라인에서 쓰일 안전제품들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불합격이면 끝· 될 때까지 지원!

선광전자는 S마크 인증을 받기 전 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2년6개월

동안 20여회의 기술지원을 받았다. 제품 현장심사와 전자파 시험 등 3번

의 테스트를 거쳤고, 그 결과 2008~2009년 3회에 걸쳐 15개의 모델에

대해 S마크 인증을 받았다.

공단에 따르면 국내기업이 해외기관을 통해 인증을 취득할 경우 4개월

에서 6개월이 걸리며 2,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그러나 S마크를 통

해 해외인증을 취득하면 2~3개월간 500만원 이하의 비용이면 충분하

다. 비용이 절반 이상 줄어드는 것이다.

연간 매출액이 20억원 정도인 선광전자가 수억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시

험장비를 구입하기는 힘들다. 예컨대 전자파장비의 경우 사방이 쇠로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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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있어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각종 시험을 할 수 있다. 장

비를 설치하려면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공단도 단 한 대만 보유

하고 있다.

단가인하와 납품기일 재촉은 걸림돌

특히 S마크 인증을 취득하면 CE마크 등 해외인증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는 장점이 있다. 심 대표는 “기술개발에 반드시 필요한 고가의 장비를 공

S마크 인증을 받은 컨트롤러 제품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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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이 무상으로 빌려 주고, 기술지원까지 해 줘 S마크 인증을 받는 데 많

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공단은 영국·미국·독일 등 해외인증기관과 상호 업무협력 협정을 체

결해 국내 기업이 해외인증 취득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반 이상 단

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재훈 관리이사는 “해외기술이 다 좋다는

편견을 버렸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이른바 ‘데리바리’라고 불리는 가혹한 납품기일 강요도 소규모 인력으로

운영되는 중소기업에는 큰 부담이 된다. 안 이사는 “일본의 수입품은 한

달을 기다리면서 국내 중소기업에는 왜 그렇게 납품을 재촉하는지 모르

겠다”고 말했다.

“시내 부품상가에 있는 대리점들은 어떤 제품이 팔릴지 모르잖아요. 일

본 제품을 재고로 쌓아 두지 않죠. 사려는 사람이 있어야 주문을 하는데,

비행기로 운반하기 때문에 보름 안에는 절대 못 들어와요. 그래도 잘 기

다립니다. 하지만 국산은 안 그래요. 싸야 하고 빨리 가져와야 한다는 인

식이 팽배해요.”

T I PS마크 , C E마크 , U L마크

S(Safety) 마크는 산업현장에서 사용하는 기계나 설비로 인한 재해예방을 위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1997년

도입한 안전인증제도다. 공단은 지금까지 2,922개 업체에서 6,032건에 대해 인증을 수여했다. S마크 인증제품의

수출실적은 6,500억원으로 집계돼 국내기업의 수출신장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E(Conformite Europeenne) 마크는 유럽지역 표준마크다. 생산된 제품이 유럽 공동체의 제반규칙을 준수하

고 있다는 것을 보증한다. 국내기업이 유럽에 제품을 수출하려면 반드시 CE마크를 부착해야 한다. 미국에는

UL(Underwriters Laboratories) 마크가 있다. 미국보험업자협회가 관장하는 세계 최대의 전기·전자분야 공업규

격이다. 미국에 제품을 수출하려면 이 마크를 받아야 한다.

“제품을 개발하면서 가장 서운한 게 뭔지 아세요. 제값을 못 받는다는 겁니다. 일본제품에 뒤지지 않

는 S마크 인증을 받았는데도, 가격은 반값으로 해 달랍니다. 국내 대기업들이 그래요. 제값을 받아

야 좋은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데,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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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본격화된 경기침체로 인천 남동공단 제조업체가 30% 가량

감소했다. 선광전자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제품을 구입하겠다는 전화가 하루에 한 통 이상

은 걸려왔어요. 그런데 요즘엔 문의전화도 잘 오지 않아요.”

선광전자는 S마크 인증을 받고 매출신장을 기대하고 있던 터에 경기침

체 한파가 몰아친 것이다. 심 대표는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다”면서도 “

꾸준한 연구개발로 위기를 극복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련, 연구개발로 돌파할 것

국내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동종 일본업체의 S마크 인증제품 가격은 약

200만원. 선광전자 제품보다 30% 비싸다. 심 대표는 “품질과 가격에서

경쟁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잘될 때를 대비해 인원을 줄이지는 않을 생

각”이라며 “직원교육을 강화하고 기술개발에 매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눈빛이 매섭다. 정진욱(32) 연구개발팀 대리가 오작동을 일으킨 전자회로판을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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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취 재 후 기 _ 글 오재현 _ 사진 정기훈

심우정 선광전자 대표는 마라톤 마니아다. 52세의 나이에도 매년 한 번 이상은 마라톤

풀코스를 뛴다. 그의 사무실에는 마라톤대회에서 받은 상장이 가득했다. 기술개발에

전념하고 있는 중소기업 경영진에게 기업 운영은 마라톤과도 같다고 한다. 10년의 마

라톤 끝에 개발한 광전자식 안전장치가 회사 이름대로 ‘착한 빛’이 돼 근로자들의 안전

을 지켜 주기를 기대해 본다.

생산라인에서 직원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심우정 대표(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는“잘될 때를 겨냥해 인원 절감 없이 직원교육을 강화하고 기

술개발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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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정(52) 대표는 1989년 서른세 살의 나이에 방호장치 사업을 시작했

다. 회사 설립 3년 전에는 프레스기 20~30대를 보유한 업체를 운영했

다.

“일하다가 옆에서 ‘악’ 소리가 나면 어김없었어요. 누군가 프레스기에 손

이나 손가락을 다친 겁니다. 한 달에 두세 건씩 사고가 났어요. 방호장치

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입니다.”

심 대표는 10년의 연구 노력 끝에 어렵게 S마크를 받았다. 이제 됐다 싶

었다. 그런데 곧바로 경제위기가 닥쳤다. 억울할 만도 한데, 심 대표는 담

담했다.

“직원교육에 주력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연구개발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굵은 목과 작은 키의 심우정 대표는 한눈에 봐도 다부진 인상을 갖고 있

다. 쉰 살이 넘은 나이에도 마라톤 풀코스를 뛸 정도로 체력이 좋다. 그의

끈기는 오기에서 비롯됐다.

10년 전 해외 기업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동종업체였는데, 혹시나 해

서 명함까지 남의 것을 들고 갔다.

“한국에서 이런 제품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하니까, 비웃더군요. 10년이

돼도 못 만들 거라고요. 자존심이 무척 상했죠.”

그때부터 심 대표는 기술개발에 뛰어들었다. 정확히 10년 뒤, 심 대표는

국내 최초로 광전자식 안전장치를 개발했다. 그는 “근로자들의 안전을

지키는 제품을 개발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위기는 또 다른 기회”

포 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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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치가 손상되면 흔히 의치를 사용한다. 의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베릴륨(Beryllium)’이라는 화학물질이 쓰

인다.

김태오(가명·36)씨는 치과 보철물과 치과질환 예방기기를 만드는 치과기공사였다. 그는 ‘도자기 치아’로 불릴

만큼 투명도가 좋고 치아와 비슷한 색을 내는 ‘포셀린’이라는 치아 보철물을 만들다 과민성 폐렴에 걸렸다. 포셀

린을 만들면서 베릴륨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 2002년부터 경남 진해와 부산지역의 치과기공소에서 일명 ‘크라운’이라고 불리는 금니를 만드는

치과기공사 일을 시작했다. 2년 뒤인 2004년부터는 부산에 있는 수환치과기공소(가칭)에서 사기 재질의 치아

인 포셀린을 만들었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였지만 보통 1~2시간 초과근무를 했고, 늦게는

자정까지 근무했다.

포셀린 제작과정은 정밀함을 요구한다. 치과의사가 환자의 구강이나 치아의 본(MOLD)을 떠 치과기공소에 보내

면, 치과기공사가 회반죽을 치아 본에 부어 구강모형을 제작한다. 교합상태와 턱의 움직임을 살펴보는 장치에

제작된 모형을 삽입하고, 잇몸과 치아의 크기·형태 등을 고려해 ‘왁스’라고 불리는 밀랍치아를 제작한다. 이를

다시 매몰재에 넣고 2시간 동안 섭씨 900도로 가열한다. 그런 뒤 원심주조기에 니켈·크롬·베릴륨 등을 섞어

포셀린 금속을 만들고, 포셀린에 붙어 있는 매몰재를 망치로 깨 제거하고 분사기로 털어 낸 다음 연삭기를 이용

해 다듬고 깎는다. 이렇게 해서 치아와 똑같은 형태의 보철물이 완성된다.

김씨는 보철물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작업했다. 주조와 가공과정에서 분진이 발생했다. 작업대에 집진기가 설치

돼 있었지만 작업장 내 모든 분진을 제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김씨는 방진마스크가 아닌 일회용 마

스크를 쓰고 작업했다.

김씨가 몸에 이상을 느낀 건 이곳에서 일한 지 6개월 정도 지난 2005년 2월.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기

4 . 화학물질 바로알기_베릴륨

치과기공사가 폐렴에 걸린 이유는?

8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Page 9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85

인공치아 연마작업 중

베릴륨 분진 노출

침이 나고, 호흡곤란과 피로감이 몰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밤에 식은땀이 나고 기침과 가래가 심해졌다. 운동

할 때 호흡곤란을 느끼기도 했다. 인근 이비인후과와 내과 등을 방문했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김씨는 큰

병원에서 진찰 받을 것을 권유받고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이어 포셀린 치아 제작과정에서 발생한 베릴륨 분진의

지속적인 노출로 인한 ‘급성 과민성 폐렴’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치명적 발암물질 베릴륨(Beryllium)

베릴륨은 회백색의 결정체로 부식에 대한 내성이 좋고, 열전도율과 전기전도율이 좋은 금속이다. 가정용 전기제

품, 용접기의 전극, 플라스틱 금형의 형틀 등의 재료, 형광등과 네온사인 제조에 쓰인다.

베릴륨은 호흡기·소화기·피부접촉을 통해 흡수되며 전신 독성을 갖는다. 체내에 들어오면 몸 밖으로 쉽게 배

출이 되지 않으며 폐·뼈·간·비장 등에 축적된다. 고농도 베릴륨에 노출되면 기침·가슴통증·호흡곤란 등

의 기관지염, 빈호흡·객혈·청색증·수포음 등의 급성 폐렴에 걸릴 수 있고, 폐수종과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베릴륨은 발암성 물질로 근로자에게 중대한 건강장해를 유발할 수 있다. 베릴륨을 사용하려면 노동부장관의 허

가를 받아야 한다.

베릴륨 취급공정에 대해서는 6개월에 1회 이상 작업환경측정을 실시해 베릴륨의 농도를 관리하고, 밀폐설비나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공치아 연마작업 중

베릴륨 분진 노출

Page 91: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8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티끌조차 허용되지 않는

반도체 공장 지키는 비상대응팀

전 직원이 ‘안전지킴이’ 페어차일드반도체

“수소탱크가 위험합니다. 비상상황입니다. 비상대응팀(Emergency

Response Team) 요원들은 현장 출동 바랍니다.”

투박한 말투가 사내 방송망을 타고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에 위치

한 페어차일드반도체(주)에 울려 퍼졌다. 공장이 일제히 멈췄다. 공장 뒤

에 있는 도당산에 산불이 발생한 것이다. 페어차일드반도체는 순식간에

비상체제로 전환했다.

방송이 나간 지 2~3분 뒤. 공장 이곳저곳에서 20여명의 사람들이 뛰쳐나

왔다. 저마다 소방서에서나 볼 수 있는 특수화학복과 안전모를 착용했다.

두터운 특수화학복 사이로 비친 비상대응팀 요원들의 얼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발걸음도 빨라졌다. 비상대응팀의 임무는 산불을 차

단하는 것이다. 유해물질이 가득한 공장시설물로 불이 옮아 붙으면 말

그대로 난감한 일이 일어난다. 페어차일드반도체에는 4기의 수소탱크

가 있다. 수소탱크와 불이 만나면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한다. 4기의 수

소탱크가 한꺼번에 폭발하면 그 결과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공장 안에

는 수많은 화학물질이 있다. 그래서 반도체공장은 완벽한 안전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요원들은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움직였다. 10명은 도당산과 공장 간 산

불 차단작전에 들어갔다. 이들은 ‘불길 차단조’다. 공장 외부에 있는 소화

전에 호스를 끼워 도당산과 공장 사이에 연신 물을 뿌렸다.

나머지 요원들은 수소탱크 주변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수소탱크 사수조’

다. 차단조의 진화가 실패할 경우 수소탱크를 사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Page 92: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87

사수조도 소화호스를 가동했다. 동시에 수소탱크 주변에서는 자체 살수

장치가 가동됐다.

비상대응팀이 출동한 지 1시간이 지났다. 인근 소방서가 출동해 산불을

진화했다. 공장으로 불길이 번질 가능성도 사라졌다. 비상대응팀 요원들

의 입에는 희미한 미소가 흘렀다.

“산불진화 완료. 훈련상황 종료.” 다시 한 번 거친 방송음이 흘러 나왔

다. 두꺼운 화학복 탓에 땀에 흠뻑 젖은 사람들이 속속 공장 안으로 사라

졌다.

한 번의 출동 위해 뭉친다

기자가 공장을 찾은 5월27일 페어차일드반도체는 강도 높은 실전훈련을

실시했다. 생산공장 바로 뒤 도당산에서 산불이 발생했다는 가정하에 펼

쳐진 비상대응 훈련이다. 화재진압 이론교육을 실제 사례에 적용하는 과

정이기도 하다.

페어차일드반도체가 자랑하는 비상대응팀의 위용이 이날 훈련에서도

유감 없이 발휘됐다. 비상대응팀은 33명으로 구성돼 있다. 방재센터는

물론이고 생산·설비·안전 등 분야별 전문가들이다.

비상훈련은 매달 한 번씩 실시된다. 비상대응팀은 공장 내 전체적인 안

전관리를 감시하는 방재센터의 지침이 내려지면 즉각 출동하는 ‘5분 대

기조’다. 각 영역에서 생산활동을 담당하지만 비상시에는 회사의 재산과

인명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만일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구성된 팀이다. 비상대응팀의 요원이 되려면

강도 높은 훈련을 거쳐야 한다. 화재·정전·지진·화학물질 누출과 같

은 갖가지 상황을 꿰고 있어야 한다. 그만큼 선정 절차도 까다롭다. 공정

별 근무경력 5년 이상인 사람에게만 지원자격이 부여된다. 지원자들은

종합검진과 기초체력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지원자격이 부여됐다고 요원에 선정되는 것이 아니다. 별도의 교육을 이

수해야 한다. 가스·화학 유해성 식별능력과 대응능력이 필요하다. 화재

진화·소방시설사용·밀폐공간 대처·비상대응 장비사용법 등을 익힌

뒤에야 비로소 요원이 될 수 있다.

Page 93: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8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화재·정전·지진·화학물질

누출과 같은 상황을 고려한 페

어차일드 반도체의 비상대응훈

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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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비상대응 훈련의 출발은 방재센터다. 공장 내 모든 시설을 폐쇄회로(CC)

TV와 열 반응 장치로 감시하고 있는 방재센터가 전체 상황을 점검한다.

두 명씩 3교대로 24시간 가동된다.

국내 최고의 안전시스템 갖춰

페어차일드반도체는 국내 사업장 가운데 가장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안

전시스템을 갖춘 곳으로 유명하다. 안전에 민감한 이유는 반도체 사업장

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다. 반도체 사업장을 나타내는 색깔은 흰색이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공정은 ‘깨끗함’·‘깔끔함’이다. 제조공정에서는 티끌

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반도체 생산공정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위험지역이다. 반도체공정 곳곳에 유독물질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안

전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반도체 사업장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반

도체 제조공정은 ‘확산(diffusion)-사진(photo)-식각(etching)-증착

(T/F)’으로 구성된다. 반도체 제조가 이뤄지는 주기는 2주 이상인데, 일

상생활에서 접할 수 없는 유해물질이 사용된다. 공정과정에서는 화학물

질과 고압전류가 사용되는가 하면 전리방사선까지 동원된다.

반도체 제조공정에는 포스핀(PH3)·알진(AsH3)·실란(SiH4)·브롬화

수소(HBr)·불화수소(HF) 등 유독가스와 육불화텅스텐(WF6)·삼불화

질소(NF3) 등 이름도 생소한 특수가스들이 대량으로 쓰인다.

반도체의 원판인 웨이퍼를 화학용액이 담긴 용기 안에 넣었다 빼는 작업

에만 불화수소(HF)·이온화수(DI)·과산화수소(H2O2)·황산암모늄

(NH4) 등이 사용된다.

전 직원이 ‘안전지킴이’

때문에 페어차일드반도체에서는 전체 직원들이 ‘안전지킴이’ 역할을 하

고 있다. 1974년 국내 최초의 반도체 회사인 한국반도체로 출발한 페어

차일드반도체는 전력절약형 고성능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79년 삼성

전자를 거쳐 99년에 미국계 반도체기업 페어차일드에 매각됐다. 종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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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1,600여명이 4조3교대로 근무한다.

부천공장은 다국적기업 페어차일드의 핵심이다. 2008년 말 기준으로 부

천공장의 종업원은 페어차일드 전체의 19%에 불과하지만 매출은 36%

를 차지했다. 4만5,000㎡에 달하는 부천공장에는 4개의 생산라인이 갖

춰져 있다.

특히 페어차일드반도체의 ‘안전 제일주의’에는 최고경영자(CEO)의 경

영방침이 녹아 있다. 기자는 이날 반도체 제조공정 한 곳을 방문했다. 머

리에서 발끝까지 덮을 수 있는 보호옷(통칭 토끼옷)과 보호신발·장갑·

마스크를 착용하는 데만 10분 이상 걸렸다. 마침 송창섭 대표이사가 같

은 장소를 지나갔다.

박천재(44) 환경안전그룹 과장이 “대표이사의 현장방문은 일상적인 일”

이라고 귀띔했다.

일반적인 대표이사와는 전혀 달랐다. 송 대표이사는 부하직원도 없이 이

곳저곳을 누볐다. 반도체 생산라인을 출입하려면 복잡하고 번거로운 과

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예고되지 않은 대표이사의 현장방문에도 무덤덤했다. 간단한

목례만 오갔을 뿐이다. 박천재 과장은 “대표이사가 엔지니어 출신이라서

생산과정과 안전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다”고 말했다.

공장 내 모든 시설을 CCTV와 열 반응 장치로 감시하고 있는 방재센터. 2명씩 3교대로 24시간 가동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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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반도체 공장의 클린룸(Clean room)에 들어갈 때에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덮을 수 있는 보호옷(통칭 토끼옷)

을 입는다. 먼지 등 외부물질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구조적으로 소방훈련이 불가능한 곳이기에 사전예방이

중요하다.

Page 97: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9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환경안전시스템 구축은 기본이다. 습도와 온도에 민감한 반도체공정은

항상 섭씨 24도와 습도 40%를 유지한다. 모든 작업장에는 위에서 아래

로 기류를 움직이는 공조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공정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대기 중의 유해물질이 작업자에게 미치지 않도록 하는 장치다.

무재해 3,500만 시간 달성

안전 제일주의를 외치는 페어차일드반도체의 환경안전보건 사전예방

은 꼼꼼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대표적인 것이 ‘EHS(Environment,

Health and Safety) 사전승인제’다. 이 제도에 따라 생산공정에 투입

T I P클린 룸 ( C l e a n R o om )은 클린하지 않다?

‘청정실’·‘무진실’로 불리는 반도체공장의 클린 룸(Clean Room)에서는 웨이퍼의 표

면에 홈을 파는 식각(Etching) 작업이 진행된다. 온도·습도·압력이 정밀하게 통제된

다. 연기나 먼지 등에 의해서도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클린 룸을 들어갈 때는 머리에

서 발끝까지 덮을 수 있는 보호옷을 입는다. 보호옷은 반도체 칩이 외부물질에 오염되

는 것을 막기 위해 설계됐다.

클린 룸은 구조적으로 소방훈련이 불가능한 곳이다. 그래서 사전예방이 중요하다.

클린 룸에는 전기설비·기기장치·화학약품·가스배관이 산재돼 있다. 클린 룸에

서 취급하는 인화성·가연성·부식성 가스는 화재 및 폭발의 잠재적 위험성을 내포

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에는 80~90종의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상당수는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다. 최근에는 환경안전이 강조되면서 대다수 국가에서 유해물질을 규제하고 있다. 유

럽연합(EU)은 ‘유해물질 사용제한지침(RoHS)’을 통해 수은·산화납·할로겐 등의 유

해물질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페어차일드반도체에서 생산하는 제품에도 수은·산화

납·할로겐이 들어가지 않는다.

생산직원들도 안전의식이 남다르다. 그 중심에는 대표이사 직속의 환경안전그룹이 있다. 사업장 전

체의 환경·안전·보건을 책임진다. 직원들은 생산과정에서 재해요인이 눈에 띄면 즉각 환경안전

그룹에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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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되는 모든 설비·장비는 도입에서 폐기까지 검증을 거쳐야 한다.

페어차일드반도체는 EHS시스템으로 잠재적인 재해발생 요인을 사전

에 차단하고 있다. 화기작업이나 2미터 이상의 작업, 중장비 사용 등 위

험작업은 반드시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 표시가 없는 작업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페어차일드반도체는 환경경영시스템·안전보건경영시스템·공정안전

관리시스템에 대한 통합 내부감사를 6개월에 한 번씩 진행한다. 본사에

서도 1년에 1회 자체감사를 실시한다. 제3의 외주기관에 의뢰해 진행되

는 감사도 3년에 한 번씩 이뤄진다. 1년에 받는 감사만 여섯 번에 달한다.

노사 대표 10명으로 구성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도 분기별로 열린다. 매

달 둘째 주 목요일에 모든 임원이 모여 EHS 월간회의를 갖는다.

이 같은 노력은 무재해로 이어졌다. 페어차일드반도체에서 발생한 산업

재해는 98년 11월이 마지막이다. 폐수처리장 작업자가 손가락이 절단되

는 사고였다. 그 뒤 산업재해라는 말은 사라졌다.

페어차일드반도체는 상패가 많은 회사다. 환경·안전·보건 부문에서

일반기업이 얻을 수 있는 인증 대부분을 취득했다. 95년 환경부로부터

환경친화기업으로 지정됐고, 2005년에는 산업재해예방 유공사업장으

로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반도체 제조 공정엔 각종 유독성 화학약품이 쓰인다. 클린룸 내의 폐

기물 분리수거함.

화기 등을 사용하는 공장 내 위험작업은 반드시 환경안전그룹의 승인

을 받아야만 한다. 작업 기구에 ‘위험작업허가서’가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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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취 재 후 기 _ 글 정청천 _ 사진 정기훈

일반적으로 기업의 산업안전 담당자는 업무의 중요도에 비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

산업재해가 일어나지 않으면 이들의 존재감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반대로 산재가 발생

하면 산업안전 담당자들이 모든 책임을 떠안는다.

잘하면 그만이고, 못하면 욕을 먹는다. 산업안전을 기업의 보조부서로 치부하는 인식

이 워낙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자가 찾은 페어차일드반도체는 산업

안전 담당자들이 대우받는 곳이었다. 모든 작업장을 자유롭게 드나들었고, 모든 작업

에 대한 허가·승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다. 페어차일드반도체가 산업안전 우수사업

장으로 자리 잡은 것은 산업안전 담당자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

한 일이었다.

또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KOSHA 18001 인증’(2000년)을 취득

했고, 노동부로부터 공정안전관리(PSM) 최고 등급인 P등급을 받았다.

올해 5월에는 무재해 3,510만 시간을 달성했다. 무재해 성과는 회사에

금전적 이익을 안겨 준다. 보험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화재보험금은

14%, 산업재해 보험금은 50%의 감면혜택을 받고 있다.

페어차일드반도체의 안전에 대한 명성은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철저한 사전예방활동과 상시 감시체제가 만들어 낸 성과였다.

최광만 그룹장을 비롯한 환경안전

그룹 팀원들이 공장 앞 뜰에서 단

체사진을 찍었다. 다른 기업들에서

통상 보조부서로 취급받는 환경안

전담당부서가 페어차일드반도체

에서는 핵심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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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페어차일드반도체(주)의 무재해가 계속되고 있다. 98년 11월 이후 올해 5월까지 무재해

3,500만 시간을 훌쩍 넘겼다. 숨은 공로자는 사업장 곳곳을 누비는 환경안전그룹이다.

다른 기업들에서 보조부서로 취급받는 환경안전담당부서가 페어차일드반도체에서는

핵심부서로 통한다.

환경안전그룹은 ‘부장급’인 그룹장을 중심으로 환경·안전·보건·방재·부속시설 등

5개 영역으로 업무가 나뉜다. 환경안전그룹 소속은 아니지만 부서별로 환경안전리더가

임명돼 있다. 환경안전리더는 해당부문의 환경안전 점검과 개선활동을 담당한다.

환경안전그룹 직원들이 갖고 있는 연두색 사원증은 페어차일드코리아에서 ‘프리패스

(FreePass)’로 통한다. 사업장 곳곳을 제한 없이 출입할 수 있다. 대표이사실도 예외는 아

니다. 사전예방의 중요성 때문이다. 문제의 소지가 발견되면 즉시 개선조치가 내려진다.

환경안전그룹의 위상도 높다. 환경안전그룹의 사전 승인·허가가 없으면 공장이 가동

되지 않을 정도다. 각 부문 전문가들로 구성된 15명의 팀원들은 환경·안전·보건 업무

를 전담한다. 화학물질 80여종과 전리·비전리방사선에 대한 작업환경측정, 국소배기

측정, 실내환경측정, 건물 내·외장재에 대한 석면현황조사, 건물 페인트 납 현황조사

등이 주요 업무다. 반복작업에서 나타나는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인간공학프로그

램도 가동하고 있다. 스트레스 관리프로그램, 뇌심혈관계질환 예방프로그램, 유행성질

병 예방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페어차일드반도체는 외국계 기업의 특성상 해외출장이 잦은 관계로 유행성질병에 대해

서는 단계별 조치요령을 마련하고 있다. 감염 의심자가 다수 발생하면 공장 가동이 일시

적으로 중단된다. 최근에는 금연프로그램을 통해 직원들의 금연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146명이 금연프로그램에 지원해 52명이 금연에 성공하는 성과를 냈다.

최광만(44) 그룹장은 “산업재해 예방은 작업자의 일상생활에서부터 회사의 안전시스템

구축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가 얽혀 있다”며 “환경·안전·보건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유기적이고 종합적으로 만들어지는 종합예술”이라고 말했다.

사업장 누비는 프리패스, 환경안전그룹

포 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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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4 . 산재판례 따라잡기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그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교도소의 여름이 겨울보다 끔찍하다고 썼다.

하지만 건설근로자에게 겨울은 여름보다 끔찍하다. 일단 땅도, 물도 꽁꽁 얼어붙어 공사가 없다. 일자리가 사라

진다. 운 좋게 일거리가 들어와도 매서운 추위 때문에 괴롭기 짝이 없다. 허허벌판 공사장에는 추위를 피할 곳이

없다. 오죽하면 건설근로자에게 식당과 탈의실과 화장실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법까지 생겼겠는가.

지난 2006년 2월 말 한 일용직 석공이 늦추위를 피하려 공사장에 모닥불을 피웠다가 불이 옮겨 붙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일거리 기다리다 피운 모닥불에 숨져

20년 경력의 일용직 석공 김아무개씨는 2005년 12월부터 공사 준공일까지 전북 진안군 수해복구 공사현장에서

석축업무를 담당하기로 하고 ㄱ건설회사와 근로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눈이 많이 내리면서 수해복구 공사는 잠

정 휴업상태가 됐다. 김씨는 그해 12월14일 하루 일당을 받은 것 외에는 이듬해 2월까지 일거리를 받지 못했다.

이후 김씨는 2006년 2월27일 공사 재개가 언제쯤 가능한지 살펴보기 위해 현장에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 이날

오전 7시20분께 몸을 녹이려고 피운 모닥불이 자신의 몸에 옮겨 붙은 것이다. 당시 솜바지를 입고 있던 김씨는

휘발유를 옮기다 불길에 휩싸였다.

김씨의 어머니 조아무개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보상금과 장의비 지급을 요청했다. 공단은 김씨가 사고 당일

고용상태에 있지 않았고, 자의적으로 피운 모닥불로 사고가 발생한 만큼 업무상재해로 볼 수 없다며 거부했다.

이 사건의 원고는 김씨의 어머니,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공단의 손을 들어줬으나, 대법

원은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판결요지는 이렇다.

모닥불 피우다 사망 ‘업무상재해’

Page 102: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97

불 피워 몸 녹이는 것도 ‘업무 준비행위’

“첫째, 계약기간이 정해진 근로계약을 체결한 이상 단지 하루 일당만 지급받은 상태에서 공사가 일시 중단됐다

해도 근로관계가 소멸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둘째, 사고 당일 김씨는 작업재개를 기다리며 현장점검을 하던 중

몸을 녹이기 위해 불을 피웠을 가능성이 크다. 겨울철 토목공사 현장에서 공사준비 및 휴식을 위해 불을 피워 몸

을 녹이는 것은 작업을 위한 준비행위 또는 사회통념상 그에 수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회사의 지배 또는 관리

하에서 업무수행 및 이에 수반되는 통상적인 활동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다.”

이 사건의 쟁점은 두 가지다. 먼저 공사가 3개월 가까이 중단된 상태에서 근로계약의 성립 여부다. 재판부는 김

씨와 회사가 2005년 12월1일부터 수해복구공사의 준공일까지 기간이 정해진 근로계약을 맺었으므로 공사의 일

시중단과 상관없이 근로계약이 유지된다고 판시했다.

두 번째는 공사현장에서 몸을 녹이기 위해 피운 모닥불과 업무와의 관계다. 재판부는 김씨가 이날 작업을 하기

위해 사전준비를 하고 공사현장에 나갔다는 점에 주목했다. 사고 전날 김씨는 현장소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사

고 당일에는 김씨 외에도 작업보조인과 굴착기 기사도 현장에 와 있었다. 또 김씨가 공사현장에 와서 귀가하지

않고 불을 피운 행위는 작업가능 여부가 확실해질 때까지 대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재판부는 김씨가 공

사현장에서 불을 피운 것은 사회통념상 작업(또는 준비행위)에 수반되는 합리적·필요적 행위라고 보았으며,

이 불이 옮겨 붙어 사망에 이른 것 역시 회사의 지배·관리하의 업무수행(또는 수반되는 통상적인 활동과정) 과

정에서 일어난 사고라고 결론지었다.

관련 판례

•대법원 2009년 5월 14일 파기환송 2009두157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광주고법 2008년 11월 28일 판결

2008누1015

•전주지법 2008년5월 22일 판결

2007구합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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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0.01초의 방심이 가장 무섭다”

공기업 최초로 코샤18001 획득한 코레일 충남지사

1899년 9월18일 오전 9시.

서울 노량진과 인천 제물포를 잇는 철도가 기적을 울렸다. 이 땅에도 철

도가 등장한 것이다. 당시 경인선의 최고 속도는 시속 55㎞, 평균 운행속

도는 20~30㎞에 불과했다. 그래도 조선 사람들은 땅을 뒤흔드는 철마의

굉음이 ‘지신(地神)’을 깨운다며 공포에 질렸다. 육당 최남선은 “빨리 부

는 바람의 형세 같아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라가겠다”고 읊었다. 3량짜

리 나무로 만든 객차의 1등칸에는 외국인만 탈 수 있었다. 내국인 남자는

2등칸, 여자는 3등칸을 탔다.

19세기 유럽에서 처음 출현한 철도는 혁명과 진보의 상징이었다. 산업화

를 이끈 증기기관은 최초의 인공 동력이다. 인류와 물자의 이동을 가로

막던 지리적 장벽이 철도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1세기가 지난 지금, 한국에는 최북단 신탄리역에서 최남단 진성역까지

총 8천여㎞의 선로가 놓였다. 디젤기관차는 이제 전기기관차로 교체되

고 있다. 시속 300㎞가 넘는 KTX가 3시간 만에 전국을 잇는다. 하루 평

균 1천38만명의 승객이 철도를 이용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충북 옥천군 이원역에 내리면 멀지 않은 곳에 조용한 사당 한 채가 있다.

극락정사와 성모마리아상, 십자가가 공존하는 이곳은 ‘철도성역’으로 불

린다. 영령위패봉안 사당에는 해방 이후 2006년 6월6일까지 철도에서

순직한 2,214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현충일이면 1,074명의 철도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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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미망인으로 구성된 유족회가 위령제를 열어 먼저 가신 넋을 위로한다.

철도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2001년부터

정부 산하기관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적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3년 8월 산업안전에 관한 규칙 제10편(궤도관련 작업 등에 의한 위험

방지)이 신설되면서 열차운행감시인의 배치(제505조)·악천후시 작업

중지(제532조) 등 19개 조항이 마련됐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적용되기 전 철도에서는 매년 두 자릿수가 넘는 근로

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간 발생한 철도 산업

재해는 305건으로 연 평균 11.6명이 숨졌다.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비용

35억9,000만원에다 간접비용까지 합치면 피해액은 179억5,000만원에

달한다.

그런데 2002년 이후 산업재해가 눈에 띄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2002년

부터 2006년까지 재해 발생건수 9.6건. 사망자 4.6명, 중상자 10.6명으

로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기관차 출입문 안전확인, 좋아!” 천안기관차승무사업소 운영실의 유승봉 지도운영과장(사진 오른쪽)이 기관사들과 ‘중점지적확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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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선로 유지보수팀의 한 직원이 크레인을 이용해 LPG(액화석유가스)통을 작업용 궤도 차량에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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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을 가르는 0.01초

“승무원이 기관차 출입문에 손가락이 끼여 골절상을 입는 직무사고가 발

생했습니다. 기관실에 오를 때 각별히 주의하십시오. 지금부터 중점지적

확인을 실시하겠습니다.”

2009년 4월13일 오후 2시. 천안역 구내에 위치한 한국철도공사 충남지

사 천안기관차승무사업소 운영실. 유승봉 지도운영과장이 갑자기 오른

손 검지손가락을 치켜든다.

“기관차 출입문 안전확인! 좋아!”

“천안기관차승무사업소 운전팀! 무재해로 나가자! 좋아!”

기관사 김재수씨도 똑같이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우렁찬 목소

리로 구령을 맞춘다. 40분 후 새마을호 운전을 맡은 김씨는 기관실에 오

르기 전 다시 한 번 외쳤다.

“기관차 출입문 안전확인! 좋아!”

스스로 안전사항을 지적하고 확인하는 ‘지적확인’ 행동이다. 제복 차림

의 건장한 기관사가 지나가는 열차를 일일이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가

리키며 ‘열차통과 확인! 좋아!’라고 외치는 모습은 사실 좀 우스꽝스럽다.

그렇지만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철길 위에서 기관사의 생명을 지켜 주

는 소중한 습관이다.

플랫폼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선로보수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

다. 여섯 명이 한 팀을 이뤄 썩은 침목을 새것으로 교환하는 일이다. 나무

로 된 침목은 1개에 80㎏, 시멘트로 된 것은 220㎏이 넘는다.

곡괭이로 자갈을 파고 지지대로 레일을 고정한 다음 썩은 침목을 빼고 새

것을 넣은 뒤 고정시키면 작업이 끝난다. 단순해 보이지만 침목 하나를

교환하는 데 40분 가까이 걸린다. 수시로 열차가 지나다니기 때문이다.

충남지사는 2009년 1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코샤(KOSHA)18001 인증을 획득했다. 지

금까지 460개 사업장이 코샤18001 인증을 받았다. 공기업 중에는 철도공사 충남지사가 처음이다.

황장규 충남지사 안전차장의 안내에 따라 연간 1천700만명이 이용한다는 천안역을 둘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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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6명의 작업자 가운데 1명은 ‘열차감시원’이라는 완장을 차고 앞에 선다.

열차가 출발한다는 기적이 울리면 그는 무선메가폰으로 ‘삐용삐용’ 소리

가 나는 알람을 켜고 흰색 깃발을 높이 든다. 그러면 작업자들이 일손을

놓고 선로 주변으로 몸을 피한다. 열차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천안역에

정차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는 열차의 속도는 시속 150㎞가 넘는다. 컨

테이너를 운반하는 화차는 그 길이만 400m에 달한다. 열차가 한 번 지날

때마다 땅이 흔들린다. 장항선과 경부선이 교차하고, 전철까지 오가는

천안역에는 4~5분마다 열차가 지나간다.

만약 기관실에서 사람을 발견해 열차를 멈춰 세운다면, 그 사람은 이미

시체로 변해 있을 것이다. 선로보수 작업에서 0.01초의 방심은 생사를 가

르는 기준이 된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전기기관차는 디젤기관차와

달리 소음이 없다. 가까이 다가와도 기척을 느끼기 힘들다. ‘녹색철도’에

꼭 필요한 전기기관차이지만, 선로보수 작업자 입장에서는 위험요인이

또 하나 생긴 셈이다.

“3~4년 전만 해도 열차감시원 없이 작업을 했어요. 인력이 부족했으니

까요. 열차 접촉사고가 너무 많이 나니까 도입됐죠.” 작업책임자인 이경

희 시설선임장의 말이다.

2009년 1월 코샤18001 획득

조남민(57) 충남지사장은 “지난해 직원 한 명이 철길을 건너다 순직하는

사고가 있었다”며 “매번 사고를 보고 받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지만 그때

는 정말 충격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2008년 9월8일. 야간작업 중이던 장비운영과 운전원 안아무개씨가 열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천안역으로 진입하던 열차를 미처 발견

하지 못한 것이다.

철도는 거대한 장치산업이자 여러 기술이 집약된 종합예술이다. 전기·

시설·건축·정보통신·차량정비·운전·서비스 등 거의 모든 직무가

포괄돼 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전사적인 안전보건관리시

스템이 필요했다. 충남지사가 사업장 안전보건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

는 산업안전보건공단의 문을 두드린 이유다.

Page 108: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03

선로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열차가 운행 중인 선로에서 낡은 침목을 교체하고 있다.

뒤편에서 열차감시원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Page 109: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0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T I P하인리히 법칙과 ‘아차사고 ’

‘하인리히 법칙’은 산업재해로 중상자 1명이 나오면, 그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운 좋게 재난은

피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했던 잠재적 상해자가 300명에 달한다는 법칙이다. 위험요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적어도 330회에 한 번은 중대재해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1930년대 초 미국의 한 보험회사 관리로 일하던

H.W. 하인리히가 사고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큰 사고가 있기 전에 반드시 전조가 나타나기 마련이며, 이를 통해 앞으로 발생할 위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 순간적인 실수로 발생하는 아차사고를 철저히 예방할 때 앞으로 다가올 중대재해를 막

을 수 있다.

열차감시원 유문

만(48)씨가 역사 쪽

을 바라보며 열차

의 운행 상황을 살

피고 있다. 현장 작

업자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한

다.

선로 유지보수팀 직원들이

선로 위에서 침목을 옮기

고 있다.

차량정비팀 직원들

이 차량기지에서

정비작업을 하고

있다.

Page 11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05

그러나 코샤18001 인준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안전팀 외에는 전혀 관

심이 없었다. 충남지사가 신청서를 접수하자 직원들은 ‘또 다른 업무’로

받아들였다. 철도노조도 ‘생색내기용 행사’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서 고까워했다.

황장규 차장은 “코샤18001 인증을 받는다고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것

이 아니어서 직원들의 동참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안전보건 강화에 대한 경영진의 의지를 보여 주자

서서히 변화가 나타났다. 충남지사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작업장 위험요

인을 평가하고 개선사항에 대한 제안을 받는 위험성평가를 실시했다.

갖가지 요구가 쏟아졌다. 제품을 옮길 때 사용하는 대차가 너무 협소해

넘어질 위험이 있다며 대차에 손잡이를 달자는 제안부터, 레일을 이어

붙이는 데 사용하는 섭씨 2,000℃짜리 용접기기의 화재발생 위험을 경

고하는 지적까지 약 930여건의 의견이 나왔다.

위험요인에 대한 개선작업과 함께 안전보건 매뉴얼도 발간했다. 한 손으

로 잡기 어려울 정도로 두꺼운 책자에는 ‘안전한 걸음걸이’까지 매뉴얼로

정리해 담았다. 예를 들면 비상계단을 사용할 때는 반드시 난간 손잡이

를 잡도록 했다. 급하게 달려가도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치지 않

도록 사무실 코너에 볼록거울을 설치했다. 충남지사는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2009년 1월 드디어 코샤18001 인증을 획득했다.

안전강화에 신뢰는 ‘덤’

충남지사는 최근 직원 1천여명을 상대로 이른바 ‘아차사고’ 경험을 조사

하고 있다. 충남지사에서 지난 3년간 발생한 재해의 54%가 추락·전

도·협착 등 재래형 사고다. 충남지사는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반복

적으로 발생하는 아차사고를 줄인다는 계획이다.

O(5)K운동(5가지 안전사항을 사전에 확인하는 운동), 재해사례 사진전

개최, 지적확인 환호응답 생활화 등 보다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

한 안전보건 활동을 개발하고 있다.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안전에 즐거

움을 더하는 것. 직원들이 귀찮아하는 안전지침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Page 111: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0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취 재 후 기 _ 글 김미영 _ 사진 정기훈

철도는 지금 눈부시게 변하고 있다. 정보통신과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일일이 사람

의 손을 거쳐야 했던 일들이 첨단장비들로 대체하고 있다.

철도사고를 예방하는 핵심인 신호만 놓고 보더라도 과거에는 역무원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플랫폼에서 서서 초록깃발과 빨강깃발을 들어 수신호를 보냈다. 지금은 쾌적한

신호실에 앉아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점등하는 불빛과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선로보수 업무만은 마치 조선시대 성곽을 쌓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한 치의 오

차가 열차의 탈선을 부르고 수백, 수천의 인명피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선로보수 업무

는 아직까지도 사람의 손을 거쳐야 한다. 유난히 일찍 찾아온 더위 때문이었을까. 5월

초순임에도 철로는 뜨거웠다.

“공기업이다 보니 인력이나 재정운영에 한계가 있어요. 안전보건에 투자를 많이 하기 어렵죠. 그런

데 코샤18001 인증 이후 안전에 대한 직원들의 인식이 달라졌어요. 경영진과 노조, 전체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터에 상존하는 위험요인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조남민 지사장은 “사소한 위험요인을 제거할수록 철도에 대한 국민의 신

뢰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충남지사의 변화는 이제 철도공사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올해 들어 대

전지사 등 3곳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충남지사를 찾았다. 철도공사 직원

이 안전하게 일한다는 것은, 곧 국민이 철도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는 의미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입환 작업을 위해 차량에 매달려

이동하는 근로자.

Page 112: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07

코샤(KOSHA)18001은 안전보

건 경영시스템 인증제도다. 영

국과 미국 등 선진국에서 시행

하고 있는 제도를 한국산업안전

보건공단이 우리나라 실정에 맞

게 개발한 것이다. 지난 99년 처

음 시작해 올해로 10년째를 맞

았다. 2009년까지 철도공사 충

남지사를 비롯해 430개 사업장

이 인증을 받았다.

코샤18001은 최고 경영자가 안전보건에 관한 경영방침을 정하고 선언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실행계획을 수립해 운영하면서 위험성평가 등 점검과 개선조치를 병행한다. 그 결과를 다시

최고 경영자가 검토하는 순환과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안전보건 활동이 개선되도록 유도한다.

공단에서 2007년까지 인증을 받은 사업장 322곳을 조사한 결과 재해율이 평균 24% 감소했다.

산재보험료 감소같은 금전적 이익이 뒤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사의 안전보건의식 향상 등

간접적인 효과도 높았다.

코샤18001 인증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업주의 안전보건 의식이 향상됐

냐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가 51%, ‘약간 그렇다’가 35.2% 등 10명 중 9명이 효과가 있었다. 근로

자의 안전보건의식 향상효과에 대해서도 63.4%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78.6%가 대외 인지

도가 상승했다고 응답했고, 57.2%는 안전사고가 줄었다고 밝혔다.

코샤18001 인증은 신청에서 결정까지 약 4개월이 걸린다. 인증 후에도 1년마다 사후심사가 진

행되고, 3년마다 인증 연장심사를 받는 등 심의절차가 까다롭다. 비용은 사업장 규모별로 차이

가 있지만 300인 사업장을 기준으로 약 5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안전도 시스템으로 관리한다”

보보보보보건에건에건에건에건에건에건에관관관관관관관관한한한한한한한경영경영경영경영경경영경영경 방침방침방침방침방침방방침방방 을을을을을을을을정하정하정하정하정하정하정하하정 고고고고고고고선언선언선언선언선언선언선언언하는하는하는하는하는는는것것것것것것것에서에서에서에서에서에서에서에서서시시시시시시시작한작한작한작한작한작한한작한한다다다다다다다다

신호실의 열차운용원. 역을 드나드는 모슨 차량의 상황을 파악해 무전 등으로

알리는 역할을 한다.

포 커 스

Page 113: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5 . 화학물질 바로알기_석면

10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석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불멸의 물질’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석면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축

용·산업용 자재로 널리 쓰였다. 석면은 10~40년의 잠복기 뒤 치명적 병을 낳는다. 석면의 유해성을 몰랐던 사

람들이 수십년 뒤 치명적인 병으로 고통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운종(가명)씨는 17세 때부터 자동차 정비업무를 했다. 88년 종암교통(가칭)이라는 택시회사에 취직한 뒤 네 차

례 회사를 옮겨다니며 19년간 같은 일을 했다. 주로 택시의 브레이크라이닝(마찰재)을 교체하고 엔진을 수리하

는 업무였다. 종암교통은 80~100대의 택시를 운행했다. 브레이크라이닝은 한두 달에 한 번 교체했다. 하루 평

균 2~4대의 브레이크라이닝을 교체했다. 교체작업을 할 때 먼지가 발생했지만 방진마스크를 착용하지는 않았

다. 먼지에 석면이 포함됐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브레이크라이닝 교체업무를 시작한 지 17년째 되던 2005년 몸에 이상을 느꼈다. 찌르는 듯 한 가슴통증

이 찾아왔고, 체중도 줄어드는가 하면 숨이 가빴다. 그해 12월 가슴통증이 심해져 종합병원을 찾은 이씨는 다음

해 1월 ‘악성중피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석면에 포함된 브레이크라이닝에 장기간 노출된 것이 화를 불렀다.

악성중피종은 흉막·복막 등에 생기는 악성종양이다.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받더라도 완쾌를 기대하기 힘들다.

다만 수명을 몇 개월 연장시킬 뿐이다. 폐암이나 악성중피종 같은 호흡기계통의 암은 발병 초기에 특별한 증상

을 느낄 수 없다. 숨이 차거나 통증이 생긴 경우라면 이미 병이 심하게 진전된 뒤다. 때문에 석면해체·제거작업

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미리 건강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 담배를 피우면 폐암발생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석면 노출이 우려되는 사업장에서는 금연하는 것이 좋다.

석면해체·제거작업을 할 때에는 방진마스크 또는 송기마스크, 고글형 보안경과 신체를 감싸는 개인보호구를

착용해야 한다. 석면 취급 근로자는 현장에 배치되기 전 건강진단을 받아야 하며, 업무배치 뒤 12개월 안에 특

수건강진단을 받아야 한다. 또 1년에 한 차례씩 정기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받아 호흡기계 이상 여부를 확인해

야 한다.

정비공 건강 앗아간

브레이크라이닝 속 석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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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사용 금지된 석면 브레이크라이닝

브레이크라이닝은 브레이크슈와 브레이크밴드처럼 제동장치에 붙이는 마찰재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마찰을

통해 차량이 정지되는데, 브레이크라이닝은 마찰시 발생하는 고열에 견딜 수 있도록 석면이나 섬유를 굳혀서

만든다.

석면 브레이크라이닝에는 40~50%의 석면이 함유돼 있다. 석면 브레이크라이닝은 제동력이 좋고 소리가 나지

않는 장점이 있지만 내구성이 좋지 않아 수명이 짧다. 비석면 제품의 경우 내구성은 좋았지만 브레이크가 밀리

고 소음이 발생해 운전자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석면에 대한 건강피해가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는 2007년부터 석면이 함유된 브레이크라이닝의 사용이 전면 금

지됐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지금까지 국내에 유통됐거나 현재 유통되고 있는 석면 함유제품에 대한 정보를 공

단홈페이지(www.kosha.or.kr→보건사업→석면작업관리→석면함유제품검색)에서 제공하고 있다.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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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발로 뛰는 안전관리로

조선소를 누비다

현대삼호중공업 안전보건 선봉대, 안전1과 안전1팀

“니, 대한조선공사라고 아나?

그럼, 깡깡이라고 아나?”

김이호(43) 현대삼호중공업 안전보건부 차장의 어머니가 어릴 적 김 차

장에게 던진 질문이다. 김 차장의 어머니는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

업)에서 ‘깡깡이’ 일을 했다. 깡깡이란 지금의 그라인딩과 비슷하다. 낡은

배를 망치로 때린 뒤 녹을 없애 배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근로자에

게는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국내

조선업의 불과 30년 전의 모습이다.

70년대 대한조선공사에 일했던 김 차장의 어머니는 일을 마치고 나면 매

일같이 녹이 잔뜩 묻은 빨랫감을 산더미처럼 들고 오셨다. 그런 어머니

를 보며 성장한 김 차장에게 조선소, 특히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을 살피

는 일은 그래서 남다르다. 김 차장은 “우리 어머니가 안전하게 일을 마

치고 집에 돌아가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안전보건의 선봉장, 안전1과 안전1팀

전남 영암군 삼호읍에 위치한 현대삼호중공업은 20년 전만 해도 갯벌이

었다. 1994년 삼호읍에 간척지가 생기자 삼호조선이 들어섰다. 99년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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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호중공업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현대중공업그룹에 합병된 2002년부터

현대삼호중공업으로 지금까지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국내 매출순위

1,000대 기업 중 유일하게 호남권에 위치한 기업이다. 명실상부 호남권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2009년 6월5일 찾아간 현대삼호중공업. 거대한 골리앗 크레인과 남해

로 머리를 내민 거대한 선박들이 ‘서울에서 온 촌놈’을 압도했다. 우선 배

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물어봤다. 배 하나를 만드는 데는 보통 20개월

의 시간이 걸린다. 선주와 계약을 마치면 대체로 300여개의 블록(강재)

을 준비한다. 강재는 ‘전처리→절단→판넬블록 조립→곡블록 조립→선

행 의장→도장→탑재’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배로 완성된다. 도크(Dock)

에 바닷물을 유입하고 마무리 의장작업과 시운전을 거치면 최종적으로

명명식(네이밍 세리머니)을 한 뒤 선주에게 배를 넘긴다.

정연성(52) 현대삼호중공업 안전보건부 안전1과 안전1팀장. 그의 업무

일지도 조선소 공정만큼이나 복잡하고 빽빽했다. 일일 안전활동 집계,

사고조사, 점검활동 실적관리, 일일현장 문제점 관리, 개선업무 관리, 관

리감독과 행정업무까지…. 정 팀장은 “오전 7시 업무를 시작해 보통 저녁

9~10시에 퇴근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선박용 강판을 고르게 펴는 대형 롤러 기계 아래에서 작업 중인 근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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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현대삼호중공업 안전보건부는 7개 과로 구성돼 있다. 정 팀장이 일하는

안전1과 안전1팀은 이른바 ‘안전업무의 선봉대’로 불린다. 정 팀장의 책

임 관리구역은 가공공장·판넬공장·도장공장이다. 안전1팀 직원 11명

은 오전 7시25분이면 작업장에 ‘전진 배치’된다. 오전에는 책임구역에서

안전점검에 들어간다. 정 팀장은 이때부터 전체 구역을 순회하기 시작한

다. 모든 공장을 돌며 안전점검을 하는 데만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자전거를 타고 대충 돌아봐서는 완벽한 안전점검이 불가능합니다. 위험

요인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현장 책임자와 대화도 나눠 봐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요.”

정 팀장은 전 구역을 돌면서 발견한 문제점을 사진으로 남긴다. 모든 업

전남 영암군 삼호읍에 위치한 현대삼호중공업 전경.

정 팀장의 일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기자도 안전모를 쓰고 공장 내 사무실을 나왔다. 사무실을 나오

자 주차된(?) 자전거 수십 대가 눈에 띄었다. 현대삼호중공업 근로자들은 작업장 사이를 이동할 때

주로 자전거를 이용한다. 그러나 안전을 책임지는 정 팀장에게 자전거는 ‘그림의 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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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성 안전보건부 안전1과 안전1팀 팀장이 개구부 추락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 구석구석 발로 뛰어야만 제

대로 살필 수 있다고 정 팀장은 강조한다.

정 팀장이 현장을 둘러보던 중 한 작업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속적인 현장 점검과 작업자 참여가 현

대삼호중공업 안전문화운동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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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무는 전산으로 이뤄진다. 그가 회사 인트라넷에 안전 지적사항을 올리

면, 해당 부서에서 보고 관련조치를 취한다. 매일 기록한 내용은 일일조

찬회를 통해 대표이사에게 보고되고 매주 금요일 ‘주간 안전문제점’으로

정리되어 생산총괄 중역이 참여하는 주간공정회의에서 발표된다. 정 팀

장은 “생산직으로부터 본의 아니게 공공의 적으로 불리지만 철저한 안전

관리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1,232㎡ 규모의 안전체험교육장을 보유하고 있다. 조

선소의 생산현장과 동일한 환경에서 직접 체험을 통해 안전의식을 높이

고 안전사고 예방하기 위한 시설이다.

현대삼호중공업의 자랑, ‘안전보건 체험장’

정 팀장은 “체험교육을 받은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수년 동안 해 왔던 일

이지만 이렇게 위험한 줄은 몰랐다는 반응을 보인다”며 “직원들은 물론

이고 협력업체 직원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체험장은 블록 체험장·보건 체험·가상 체험·안전보호구 체험·실외

체험 등으로 구성돼 있다. 블록을 건조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직접 체험하고, 직업과 위험요인의 유해성도 직접 체험한다. 가상체험은

실제 체험이 불가능한 교육을 가상현실과 입체영상을 통해 경험한다. 실

외 체험은 화재 발생시 초동 대처요령과 크레인과 곤돌라 작업요령을 체

험할 수 있다. 김이호 차장과 정연성 팀장은 현대삼호중공업의 안전문화

운동을 TBM(Think Before Move)이라는 단어로 소개했다. TBM은 원

래 위험예지훈련(Tool Box Meeting)이라는 산업안전 용어인데, 현대삼

호중공업이 안전문화 슬로건으로 변형한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해 아무 탈 없이 가정으로 돌아가자’, ‘경미한 사고

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정신자세’, ‘서로가 서로를 위해 관심을 가

지고 돌보며 관심을 표현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움직이기 전에 먼저 안전을 생각한다”

TBM은 관리자·작업자·설비·제도 등 4가지 부문에서 각각 실천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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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공장에서 불꽃 튀는 그라인딩(표면을 매끄럽게 다듬는 일) 작업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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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을 갖고 있다. ‘관리자’는 현장과 개인을 위한 맞춤형 안전대책을 수립하

고, 지속적인 현장점검과 작업자 참여를 유도한다. ‘작업자’는 오전·오

후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위험요인을 스스로 지적하고, 작업자들끼리도

위험요인을 점검한다. ‘설비’에서는 인간공학적 장비와 공기구를 개발하

고 안전작업을 위한 설비를 보완해야 하며, ‘제도’에서는 작업표준서를

만들어 위험한 작업은 사전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최근의 경기불황은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에게도 큰 관심사다. 조선

업은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2008년에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하다는 평가

를 받았다. 그런데 김 차장의 생각은 달랐다.

“경남 거제도에 지세포항이라는 작은 항구가 있어요. 한번 가 보세요. 다

만들어진 배 수십척이 항구를 떠나지 않고 몇날 며칠을 그대로 있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지세포항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정박료를 안 받

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가공공장에서 작업 중인 근로자 뒤로 대형 강판을 옮기는 크레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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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I P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현대삼호중공업이 조선업 재해예방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공단은 2009년 6월12일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조선업 재해예방 콘텐츠 공

동개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공단과 현대삼호중공업은 내년 6월까지 조선업종 작업

별·공정별 교육용 동영상 6종과 재해사례 애니메이션 5종, 파워포인트 교육용 교안

6종 등 총 100여종의 콘텐츠를 공동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공단 관계자는 “산재예방 전문기관인 공단과 세계 5위의 선박 건조능력을 보유한 현

대삼호중공업이 현장감 있는 안전보건 콘텐츠를 개발·보급하고 관련 업종의 재해예

방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업이 호황이라고요?

컨테이너선이나 유조선 등이 국내 광양항이나 부산항에 오면 선적·하

역작업을 서두른다. 정박료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정박료를 아끼려

는 선주들 때문에 지세포항에 완성된 배들이 새까맣게 몰리는 것이다.

“조선소는 배를 만들면 계약에 따라 돈을 받고 명명식을 하면 그만인데

요. 금융위기 이후 물동량이 줄어들면서 선주들이 배를 가져가지 않고

있어요.”

무게와 크기 탓에 부품 하나를 들어 옮기는 일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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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취 재 후 기 _ 글 오재현 _ 사진 정기훈

배에 쓰이는 강재(철판)들이 쿵쾅하고 굉음을 낼 때마다 공정을 함께 돌던 정연성 팀장

의 목소리가 묻혔다. 취재수첩에 적으려 같은 질문을 큰 소리로 몇 번이나 반복했다. 준

비했던 녹음기에도 사람 목소리는 없고 굉음만 남았다. 답답한 마음에 귀마개를 빼 주

머니에 넣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귀마개를 한 현장의 근로

자들은 내 질문을 다 알아듣는 것 같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귀마개가 특수한 기능을 갖

고 있었다. 청력에 손상을 주는 고음만 걸러 내고, 사람의 목소리는 잘 들리도록 제작

됐다고 한다. 굉음에 신경 쓰느라 애꿎은 귀마개를 탓한 것이다. 머쓱했던 순간이었다.

조선소는 선박을 하루라도 늦게 건조하면 선주에게 페널티를 물어야 한

다. 다 만든 배를 도크에 두는 것도 손해다. 김 차장은 “조선업이 상대적

으로 호황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 2년 뒤의 물량을 기본적으로

확보하는 조선업체들의 특성을 따져 보면 나홀로 호황은 아닌 것 같다”

고 말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해 아무 탈 없이 가정으로 돌아가자.’ 참 쉽고 당연해 보이는 말이다.

Page 124: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19

정연성(52) 현대삼호중공업 안전1과 안전1팀장은 1977년 한라중공업 전기 담당 직원으로 조선소

에 첫발을 내딛었다.

“제가 20대였을 때는 인식이 좋지 않았어요. 안전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몸이 좋지 않거나, 나이

먹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는 편견이 있었죠. 지금은 다르죠. 안전에 관한 기술적 지도를 하려면

생산직만큼 현장을 많이 알아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현대삼호중공업 안전과에는 생산직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많다. 정 팀장처럼 전기

담당 생산직이 4명이나 된다.

“부서 직원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어요. 안전요원은 생산직과 달리 ‘각이 있어야 한다’는 점입

니다. 철저한 안전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은 ‘각 없는 안전활동’은 안전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얼마 전 야간근무를 하던 현장근로자들이 잠을 자다가 안전요원에게 들키는 일이 있었다. 정 팀장

은 “얼마나 피곤하면 그렇게 위험한 장소에서도 잠이 올까”라는 생각에 안쓰러웠다고 했다. 현대

삼호중공업 가공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1주일은 주간근무, 1주일은 야간근무를 한다. 안전과

직원들도 야간근무를 하는데, 야간에 사고라도 발생하면 혼자서 수습해야 할 부분이 많아 항상 긴

장한다고 한다. 근로자의 건강을 걱정하는 일을 하다 보니 정 팀장 스스로도 건강관리에 철두철미

하다. 수십 년 동안 피운 담배를 끊은 지 벌써 13년째다. 매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축구장에서 공

을 찬다. 매주 운동을 하지 않으면 일주일 내내 찝찝한 느낌이 들 정도로 운동에 열중한다고 했다.

“쉰 살까지는 공을 차야지 했는데 어느덧 쉰 살을 넘었더라고요. 예순 살까지는 차야 할 것 같네요.”

2009년 현대삼호중공업의 재해율 목표는 0.39%다. 안전1과의 목표는 회사 목표보다 낮은

0.305%다. 생산직 근로자들은 때로는 안전1과 직원들에게 ‘성가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정 팀장은 그럴 때마다 정색한다.

“물건은 피해를 입으면 복구할 수 있지만, 몸은 한번 다치면 되돌리기 힘들어요.”

“안전요원은 ‘각’이 있어야 합니다”

포 커 스

Page 125: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5 . 산재판례 따라잡기

12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기러기 아빠’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장들이 값싼 인건비를 노리고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가족들을 한

국에 남겨 두고 홀로 전근을 가는 아빠들이 크게 늘었다.

낯선 타국에서의 독신생활은 건강에 좋지 않다. 장기간 해외근무로 심한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를 느낀 근로자

가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면 업무상재해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해외부임 7개월째, 뇌출혈로 사망

ㅇ섬유회사에 79년 입사한 박아무개(사망당시 48세)씨는 97년 협력회사가 중국 호북성 황석시에 합작공장(미

경섬유)을 짓자 제작기술지원팀으로 혈혈단신 부임했다. 그의 회사는 2년간 미경섬유에 폴리에스터 생산기술

을 이전하는 대신 협력회사로부터 250만달러의 기술료를 받기로 했다.

박씨는 98년 6월 미경섬유의 조직개편에 따라 직무사업본부 소속으로 인사발령이 났지만, 서울 본사로부터 업

무지시를 직접 받았다. 월급지급은 물론 각종 세금공제도 서울에 있는 회사가 담당했다.

98년 6월28일 공장 개업식을 앞두고 박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중국 현지 근로자들이 기계조작법을 완전

하게 숙지하지 못해 사소한 기계고장도 그가 직접 처리해야 했다.

박씨는 공장개업 나흘을 앞둔 24일 오후 6시 퇴근한 후 심한 두통을 앓았다. 자정 무렵에야 우황청심환을 먹고

잠들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날 시신으로 발견됐다.

박씨의 사인은 뇌출혈(고혈압과 지주막하출혈)로 밝혀졌다. ㅇ섬유회사는 일단 박씨의 사망을 업무상재해로 보

고, 먼저 유족에게 1억4,700만원을 지급한 뒤 근로복지공단에 대체지급보험급여금을 청구했다. 공단은 박씨가

중국의 미경섬유로부터 복무관리를 받았으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

했고, 그의 회사는 소송을 냈다.

산재보상,

해외출장과 해외파견은 다르다

Page 126: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21

해외근무자의 산재보험 적용 여부

이 사건의 원고는 ㅇ섬유회사이고,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서울행정법원은 박씨가 산재보험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며,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판결요지는 이렇다.

“구 산재법보험(99년 12월 개정 이전)에서 말하는 ‘사업’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내에서 행해지는 것만을 의

미한다. 국내의 사업주와 산재보험 관계가 성립한 근로자가 국외에 파견돼 일할 경우 근무의 실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단순히 근로의 장소가 국외에 있는 것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는 국내의 사업에 소속돼 사용자의

지휘에 따라 일할 경우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는다. 장기간의 해외근무 및 독신생활, 언어소통 장애 등으로 인

한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가 고혈압 등의 질병을 유발 또는 촉진시킨 원인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박씨의 사망

과 업무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

이 사건에서 핵심은 박씨의 해외근무를 출장으로 볼 것인가, 파견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해외출장에 해당

한다면 국내의 사업과 마찬가지로 절차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해외파견의 경우 그렇지 않다. 대부분 국

가가 속지주의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현지국가의 보험적용을 받는다. 노동부는 중국 공장이전이 활발해지면서

산재보상을 둘러싼 다툼이 늘어나자 99년 12월 해외파견자도 임의가입할 수 있는 특례조항을 제정했다.

재판부는 해외출장과 해외파견 간의 차이를 국내 혹은 국외에서 근무했느냐가 아니라 근로의 실태를 종합적으

로 검토해 실질사용자가 누구인가를 통해 판단한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박씨가 서울 본사로부터 직접 업무지

시를 받고 복무지휘에 따라 근무했기 때문에 해외출장자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관련 판례

•서울고법 2003년 5월 30일 판결

2002누9614 항소기각

•서울행법 2002년 5월 30일 판결

2001구13446 (대체지급보험급여금지급청구서반려처분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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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소중한 일은 없다”

(주)대우건설 파주열병합발전소 건설현장

멀리서 볼 때부터 분위기가 남다르다.

열병합발전소에서 끓인 물을 저장한다는 축열조. 두 개의 거대한 기둥

겉에는 눈에 익은 걸개그림이 걸려 있다. 조선 후기 대표적 화가인 신윤

복의 미인도와 김홍도의 매작도다. 주민들에게 환경친화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서다. 녹색이나 푸른색 계통의 방진망 대신에 그림을 걸

었을 뿐인데 다가오는 느낌이 너무 다르다. 누가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

고 이곳이 먼지 풀풀 날리는 건설현장이라고 생각할까.

현장 입구에 들어서면 더 놀랍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건설자재나

흙더미가 아니다. 양쪽으로 갖가지 색깔의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

다.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하청업체 사무실과 개인장비 보관용

시설로 사용되는 조립식 건물까지 각종 그림으로 도색돼 있다. 대충 페

인트로 칠해 놓은 것이 아니다. 전문가의 손길이 거쳐 갔다는 것을 단번

에 알 수 있다.

6월16일 경기도 파주 교하읍에 있는 복합화력·열병합발전소 건설현장.

보이는 모습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대우건설이 주관하고 있는 이곳은

2007년 3월 착공한 뒤 2년 넘게 무재해기록을 이어 가고 있다. 다른 현장

에서는 볼 수 없는 방식의 사전 안전교육, 철저하게 원칙을 적용하는 안

전관리, 아낌없는 투자를 통한 안전·복지시설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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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두 개의 안전고리와 보안경

뜨겁게 데운 물을 퍼 올리는 펌프동 건설현장. 건물의 지하 맨 밑바닥에

서 전기케이블을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지상 1층까지 높이만 해도

9미터. 포설작업을 하는 근로자들이 추락사고의 위험에 노출될 만한 환

경이다. 안전대를 매고 안전고리를 연결하는 것은 필수안전조치.

그런데 다른 공사현장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벨트식 안전대를 찾

아볼 수가 없다. 사람이 떨어지는 재해가 날 경우 질식·척추골절 등의

우려가 있는 벨트식 안전대는 반입 자체가 차단된다.

“안전장비가 현장에 들어올 때는 사무소 앞에서 반드시 점검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현장에서는 벨트식 안전대를 많이 사용하지만, 우리는 절

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안전을 담당하는 이민석(34) 대리의 말이다. 모

든 안전대의 안전고리는 한 개가 아니라 두 개다.

여타 건설현장과 다른 점은 또 있다. 근로자들이 머리에 쓴 안전모에는

보안경이 달려 있다. 안구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정문에서 바라본 파주 열공급시설 건설현장 모습.

Page 129: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2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현장 내 보호구 착용을 강조하는 대형 안내문.

Page 13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25

그러나 아무리 안전을 강조해도 ‘구멍’은 늘 생기게 마련이다. 건물 꼭대

기에 올라갔다가 계단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낯선 사람 두 명과 맞닥뜨렸

다. 그런데 복장이 영 아니다. 안전모와 보안경,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슬리퍼 차림이다. 강희성(35) 팀장과 이 대리의 얼굴에 당

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누구세요?” “○○○○ 소속인데 작업하러 왔습니다.”

“어디 가시죠?” “옥상에 볼 일이 있어서요.”

“그런데 복장이 그게 뭡니까? 그리고 옥상에 담배 피우러 가는 거지요?

여기 금연인 거 모르십니까?” 담당자들에게 된통 혼난 그들은 풀이 죽어

밑으로 내려갔다.

난감한 상황이 또 발생했다. 한 근로자가 보안경도 없이 전기드릴로 돌

을 깨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깨진 돌이 눈에라도 튀면 큰 부상으로 이어

질 수 있다.

당황한 이 대리가 소리쳤다. “보안경 없어요? 눈에 돌이 들어가면 어쩌

려고 그래요?”

“아니…. 아까 찾아보니까 없더라고.” 근로자는 머쓱한 듯 대답을 얼버

무렸다.

“없긴 뭐가 없어요. 이거라도 끼고 하세요.” 이 대리가 자신의 보안경을

근로자에게 줬다.

조금 걸어가니 커다란 지게차가 건설자재를 나르고 있다. 그런데 유도자

나 신호수가 없다. 건설현장에서는 유도자나 신호수 미배치로 인해 사람

이 건설장비에 깔리는 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난다. 열이면 열, 현장에서

즉사하는 중대재해로 이어진다.

정수기부터 건강관리까지, ‘없는 것이 없는’

“저거 위험하지 않나요?”

“아닙니다. 지게차 뒷부분을 자세히 보세요. 카메라가 보이지요?”

실제 지게차 뒤에는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운전기사는 앞에 있는 모니

터를 연신 들여다봤다. 굴삭기·지게차 등 모든 건설장비에는 후방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운전자는 카메라가 무선으로 보내는 화면을 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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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석에서 모니터로 볼 수 있다.

지게차 운전자가 검지손가락으로 모니터를 가리킨 뒤 엄지손가락을 치

켜세웠다. “마음이 얼마나 편하고 안심이 되는지 몰라요.”

가지런히 정리된 벤치. 그 옆의 정수기와 종이컵. 물을 따라 먹은 근로자

들이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기자 일행이 지나가자 근로자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어이, 여기 식염수 좀 갖다 놔. 다 떨어졌어.”

완공된 건물 내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모습은 이곳에서 어렵지 않게 확

인할 수 있다. 공사 중인 각 건물 사이사이마다 휴게시설도 마련돼 있다.

사실 대우건설 파주열병합발전소 건설현장에는 ‘없는 것’이 없다. 휴게시

설에는 근골격계 예방을 위해 뭉친 근육을 풀 수 있는 안마기와 침상, 개

뜨겁게 데워진 물을 퍼 올리는 ‘펌프동’ 건설현장 지하에서 근로자들이 전기케이블 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높

은 곳에서 안전고리 연결은 필수다.

Page 132: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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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성 팀장이 대우건설 파주병합발전소 건설현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리 현장에서 당신이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한 신규근로자가 대우건설 교육강사로부터 일대일 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Page 133: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2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인사물함이 비치돼 있다. 깔끔하게 청소해 놓은 수세식 화장실과 연중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는 샤워시설, 여름철 일사병 방지를 위해 얼음분

쇄기까지 갖춰 놓은 식당….

몇 년 전 도시락 먹을 곳과 용변 볼 장소를 마련해 달라며 지방의 건설노

조가 파업까지 벌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설이다.

특히 풍부한 경력을 갖춘 간호사가 상주하고 있다. 기본적인 의약품이

완비돼 있다. 경미한 질환이 중대재해로 이어지는 것을 막는 역할도 톡

톡히 하고 있다. 500여명에 이르는 근로자들은 건설현장에 나오자마자,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의무실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 검진결과 고

혈압 등으로 2차 검진대상자로 분류되면 약물치료와 작업 재배치 등 중

점관리대상이 된다. 이들의 건강기록은 의무실에 차곡차곡 쌓인다.

강희성 팀장은 “고혈압과 같은 질환은 건설현장에서 자칫 큰 사고로 이

어질 수 있기 때문에 사전예방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현장에서 당신이 다치면서까지 해야 할 소중한 일은 없습니다.”

관리사무소 1층 강당. 강사가 다음날부터 일하게 될 근로자들 중 팀장급

한 명을 불러 주의를 준다. 강사의 말은 현장 곳곳에 걸린 현수막에 적혀

있다. 안전교육을 할 때 가장 먼저 듣는 말이다.

T I P플랜트 건설현장의 안전관리

같은 건설이라고 해도 열병합발전소와 같은 플랜트건설은 아파트 등 일반건설과 다르다.

같은 크기, 같은 모양의 집을 짓는 주택건설이나 도로를 닦기만 하면 되는 토목건설은 비교적 단순하다. 하지만

열병합발전소만 하더라도 각기 다른 모양에 각기 다른 크기의 건물을 지어야 한다. 게다가 발전소 건물 내에는 각

종 정밀 기계설비가 들어서게 된다.

따라서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플랜트 건설현장에서는 주택건설이나 도로건설과는 달리 보다 세밀한 안전·

보건관리를 해야 한다. 대우건설 파주열병합발전소 양희영(57) 현장소장은 20년 가까운 플랜트 건설경력을 갖

고 있다. 강희성 안전팀장도 입사한 뒤 10년간 열병합발전소·LNG화력발전소 등 플랜트 건설현장만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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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하는 의식 속에 안전사고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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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다치면서까지 할 일은 없다”

대우건설 파주열병합발전소 건설현장에 처음 들어오면 한 달간 ‘신규 근

로자’라는 노란색 스티커를 안전모에 붙여야 한다. 예전에 일했다가 중간

에 다시 들어와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친다. 한 달이 지나고 정기교육을

이수하면 비로소 스티커를 뗄 수 있다.

취 재 후 기 _ 글 김학태 _ 사진 정기훈

취재 당일, 파주시 근처 초등학교에 도착하니 황당한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축, 파주

열병합발전소건설 중지 가처분 신청 승소’. 근처 주민대책위가 내건 것이었다. ‘어렵사

리 시간을 빼 현장취재를 왔는데, 건설이 중지된다니….’

허탈한 마음으로 열병합발전소 현장사무소에 들어섰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발

주처인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제기한 가처분결정 취소신청이 그날 받아들여진 것이다.

열병합발전소가 그 혜택을 누리는 시민들에게 ‘혐오시설’로 인식되면서 웃지 못할 상

황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신윤복의 미인도와 김홍도의 매작도는 발전소가 완공될

때까지 계속 걸려 있어야 할 듯싶다.

“아무리 급해도 일보다는 사람입니다. 막상 현장에 나가면 알면서도 서두릅니다. 3초 만이라도 여

유를 가지고 생각하세요.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은 지켜 주셔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건물의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 탓에

보다 세밀한 안전·보건관리가 필

요한 곳이 플랜트 건설현장이다.

Page 136: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31

대우건설 파주열병합발전소의 철

저한 안전교육과 관련 프로그램은

대우건설 내에서도 독보적이다.

기본적으로 하는 교육만 해도 △

신규채용자교육 △매달 진행되는

정기안전교육 △사고가 잦은 공종

을 대상으로 한 특별안전교육 △

관리감독자교육 △외국인 안전교

육 등 5가지에 달한다.

화재(폭발)·풍수해(침수·태

풍)·응급환자 발생·비상연락망 구축 상태 점검훈련 등 비상사태에 대비한 교육도 매년 한 번

씩 진행된다. 4단계로 이뤄진 3D 입체 동영상 교육은 전국 어느 건설현장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프로그램이다. 모든 근로자들은 3차원 동영상으로 도면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장에 건설하게 될

축열조·냉각탑·펌프동·관리동 등 향후 완성될 16개 건물의 외형과 내부 모습이 입체 화면으

로 눈앞에 펼쳐진다.

근로자들은 또 16개 건물별로, 40개 작업 종류별로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 이에 대한 대책은 무

엇인지 만화를 통해 교육을 받는다. 건설현장 구조와 흡사한 그림으로 작업에 투입된 근로자들

의 현장 적응을 돕는다. 실제 경험에 가까운 간접 경험을 하는 셈이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시행하는 건설안전교육에 뒤지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덕분에 대우

건설 파주열병합발전소 현장 사무소는 공단과 ‘건설업 재해예방 콘텐츠 공동개발 협약’을 맺었고

각종 자료를 공단에 제공하고 있다.

이런 최고 수준의 교육은 양희영 현장소장의 지론에서 비롯됐다.

“어느 건설현장이나 시설 등에 대해서는 비슷하게 투자합니다. 최종적으로 사고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철저한 교육과 이에 대한 투자밖에 없습니다.”

공단도 인정한 최고 수준의 안전교육

구구구구축축축축상태상태상태상상상상태점점점점검훈검훈훈검검 련련련련등등등등등등비상상비비상비상상사태사태사태사태사태에에에에대비대대비대비대비한한한한교육교육교육교육육교육교육도도도도도도도매년매년매년매년매년매매년한한한한한한번번번번번번번

한 철근공이 비계틀 해체작업을 하고 있다.

포 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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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화학물질 바로알기_다핵방향족탄화수소

13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나사·볼트·철심 등 선재제품을 제조하는 업체인 (주)대영기공(가칭)에서 10년간 근무한 최원숙(56·여·

가명)씨는 콧속에 암이 생겼다. 금속제품을 연마하기 위해 금속가공유를 다루면서 ‘다핵방향족탄화수소

(PAHs, Polynuclear Aromatic Hydrocarbons)’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것이 병을 키웠다.

최씨는 화장품 외판원 등으로 일하다 87년 부산에 있는 대영기공에 입사했다. 그는 연마반에서 근무하며 탭

핑기를 이용해 나사나 볼트의 표면을 갉아 내는 일을 했다. 작업은 보통 오전 8시30분에서 오후 6시까지 이어

졌고, 물량이 많을 때는 수시로 야근을 했다.

탭핑기를 다루는 과정에 금속가공유가 사용됐다. 탭핑유·절삭유·윤활유와 같은 금속가공유는 금속의 냉

각·윤활·부식방지 등을 위해 쓰인다. 대영기공에서 사용한 금속가공유는 광물류의 함량이 90% 정도였고,

천연기름과 첨가제가 섞인 비수용성 제품이었다. 이 제품에는 다핵방향족탄화수소가 함유돼 있었다.

최씨가 금속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기름이 튀고, 냄새가 심하게 났다. 최씨는 입사 초기 심한 두통과 구토증세

에 시달렸지만 곧 익숙해졌다. 그는 아무런 보호구 없이 기름에 젖은 장갑을 낀 채 일을 했다. 금속가공유에

포함된 다핵방향족탄화수소가 최씨의 호흡기와 피부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어느 날부터 최씨는 코를 풀면 피가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비염인 줄 알고 이비인후과에 찾아가 치료를 받았

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둔 98년 초 증상이 심해졌다. 귀에도 이상이 와, 양쪽 귀에서 소리가

나고 귀가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코막힘 증세도 동반됐다.

병원을 다녔지만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결국 다른 병원에서 다시 진찰을 받게 됐고, 코의 등쪽 부분에 혹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다시 큰병원으로 옮겨 정밀검사를 받은 결과 ‘비인강암’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씨는 평

콧속에 암이 생겼다면?

Page 138: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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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호흡기 관련 질환이 없었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금속가공유를 다루면서 다핵방향족탄화수소에 지속적

으로 노출된 것이 원인이 돼 암에 걸린 것이다.

금속가공유 취급 근로자 비인강암 부르는 ‘다핵방향족탄화수소’

다핵방향족탄화수소(PAHs, Polynuclear Aromatic Hydrocarbons)는 2개 이상의 벤젠핵이 결합한 벌집모

양의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독특한 향기를 내는 방향족 화합물의 일종이다.

PAHs는 무색 또는 흰색의 고체이며 주로 유기물이 불완전 연소할 때 발생한다. 수백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중 일부는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다. 알루미늄 생산, 코크스 제조, 주철, 주강 주물업, 콜타르 관련상품, 카본

블랙 취급공정, 콜타르 함유 도료를 취급하는 도장공정, 광물류가 포함된 금속가공유 취급 및 습식연마 공정

중에 주로 노출된다.

PAHs 호흡기나 피부를 통해 체내로 흡수되며 아주 적은 양으로도 암을 유발하거나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

다. 우리나라에서는 열처리 근로자의 후두암, 금속가공유 습식연마공의 비인강암이 직업성 질환으로 인정된

바 있다. PAHs 취급 공정에는 반드시 밀폐설비나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자동차 부품 습식

연마작업 중 PAHs 노출

Page 139: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3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안전의 사칙연산을

아시나요?”

시스템·설비·철학 ‘안전 3박자’ 갖춘 호남석유화학(주)

“호남석유화학 여수공장에 취재를 오셔서 나가실 때까지 기자님들

도 털끝 하나도 다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2009년 6월4일 오전 전남 여수시 중흥동에 있는 호남석유화학 여수

공장. 이중형(44) 안전과 차장은 기자들의 ‘안전한 취재’를 책임지겠

다며 안전모를 건넸다.

거대한 공 모양의 원료 저장탱크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파이프와 냉

각장치에서 나오는 수증기가 석유화학 공장의 웅장함을 대변하는

듯했다. 여수국가산업단지(여수산단) 안에 위치한 호남석유화학은

1976년 설립된 이래 국내 중화학공업을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종합

석유화학회사다. 전남 여수공장과 충남 대산공장에 생산기지를 두

고 있으며, 석유화학공장의 핵심으로 불리는 납사분해공장과 방향

족공장도 갖추고 있다. 이른바 ‘원료에서 제품까지’ 수직계열화를 이

뤘다.

27m 높이, 1만톤의 납사 저장고

석유화학산업에서는 질식·폭발·화재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고

온·고압을 이용하는 데다 위험물질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여

Page 14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35

수산단이 생긴 67년 이후 200여건이 넘는 사고가 발생해 97명이 숨

지고 168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남석유화학도 2000년대 들어 두 번이나 뼈아픈 안전사고를 경험

했다. 2001년 폭발사고와 추락사고로 근로자 1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2003년에도 폭발사고가 일어나 근로자 1명이 숨지고 6명

이 부상당했다.

하지만 호남석유화학은 2003년 이후 6년째 무재해 기록을 이어 가

고 있다. 두 번의 사망사고를 극복하고 무재해를 달성한 비결이 궁금

했다. 김홍근(55) 호남석유화학 안전과 과장과 공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김 과장은 30년 동안 안전업무를 담당한 베테랑이다.

기자는 김 과장과 함께 지상 27m 높이의 납사 저장고에 올랐다. 납

사는 정유공장의 원유처럼 석유화학 공장의 주원료다. 납사 저장고

는 규정에 따라 10년마다 한 번씩 그 속을 모두 비우고 안전점검을

한 뒤 보수해야 한다. 마침 저장고 안 도장작업이 한창이었다.

커다란 원통형 모양의 저장고를 뱀처럼 감은 계단을 5분 정도 오르

자 호남석유화학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가스 냄새가 코

전남 여수시 중흥동 소재 호남석유화학 여수공장. 거대한 공 모양의 원료 저장탱크와 얽히고설켜 있는 파이프 모습.

Page 141: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3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호남석유 화학 안전과의 ‘독사’ 김홍근(55) 과장이 안전 점검을 위해

지상 27m 높이의 납사 저장고에 오르고 있다.

호남석유화학은 지난 2003년 이후 6년째 무재해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거대한 공 모양의 원료 저장탱크 앞에서 이중형 안전과 차장

이 무전을 치고 있다.

Page 142: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37

를 찔렀다. 김 과장은 “10년 동안 납사를 저장했던 탱크라서 냄새가

저장고 곳곳에 배어 있다”며 “하수구를 씻어도 냄새가 사라지지 않

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은 납사 저장고를 오르는 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안전을

점검했다. 납사 저장고에 함께 오른 유형민(50) 생산부 계장은 그런

김 과장을 보며 웃으면서 ‘독사’라고 소개했다.

협력업체 근로자도 안전하게

“워낙 경험이 오래된 선배라 작은 것도 빠뜨리지 않고 지적을 합니

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한 편이죠. 안전 문제는 그래야 합니다. 안전

성 인증을 받을 때까지 작업을 하지 않는 게 맞죠.”

납사 저장고 꼭대기에서 내려오자, 협력업체 근로자 10여명이 도

장작업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도장작업은 납사 저장고의 안전

성을 강화하기 위한 일이다. 호남석유화학의 협력업체 근로자는 상

주인원만 350여명이다. 정규직인 생산직(650여명)의 절반을 넘는

다. 그럼에도 안전사고 피해자는 대부분 협력업체 근로자라고 한다.

한 협력업체 직원은 “어느 회사든 정규직 직원이 다치는 일은 1%도

안 될 것”이라며 “보통 어렵고 힘든 일은 협력업체 사람들을 데려다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호남석유화학은 그런 측면에서 남다르다. 신규 채용자는 물론이고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위한 안전보건 교육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중

형 차장은 “작은 산업단지 중에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마스크인지 방

한모인지 모를 장비를 주고 작업을 하는 곳도 있다”며 “형편이 괜찮

은 원청업체들이 나서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

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남석유화학 여수공장의 안전과 직원은 모두 25명. 생산직 근로자

1,153명의 안전을 책임진다. 기간산업의 특성상 공장은 24시간 가

동된다. 생산직 근로자들은 4조3교대제로 일한다. 안전과 근로자들

도 생산직과 마찬가지로 교대제로 근무한다. 한 조에 4명씩 16명이

일하고, 나머지 9명은 협력업체 교육과 여수공장 내 3개 공장의 방

Page 143: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3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재업무를 맡는다.

호남석유화학은 여수산단 최초로 종합방재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아픈 경험을 또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시설투자를 늘리고 있다. 가

스누출 감시설비·기상관측 설비·폐쇄회로TV·자동화재 탐지설

비·소방펌프 감시설비·소화용수 감시설비 등이 공장 곳곳에 설치

돼 있다. 회사도 예방관리를 위한 시설과 안전부문에 대한 투입되는

비용을 가장 먼저 집행한다고 한다.

이 차장의 명함에는 ‘안전담당리더’라는 글이 적혀 있다. 말 그대로

호남석유화학의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리더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

다고 했다. 그는 안전업무의 철칙으로 ‘안전의 사칙연산’을 꼽았다.

‘안전의식 곱하기’는 회사를 넘어 여수산단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이 차장은 2006년 여수산단 내 석유화학업체 안전업무 담당자들

이 모여 만든 여수석유화학안전관리위원회(석안회) 간사 일을 맡았

다. 석안회는 여수산단의 29개 석유화학업체 담당자들이 모여 안전

기술을 공유하고, 개정된 법에 대한 대책과 모범사례를 발굴한다.

“안전을 위한 규정과 안전시설은 ‘더하기’, 불안요소는 ‘빼기’, 위험물질을 집중관리하기 위해 비위

험물질과 위험물질은 ‘나누기’, 안전의식은 ‘곱하기’하는 겁니다.”

김홍근 안전과 과장과 유형민 생

산부 계장이 도장 작업이 진행 중

인 납사 저장고 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age 144: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39

산업안전의 철학, ‘안전의 사칙연산’

석안회는 석유화학 공장의 사고 중 화재사고가 빈번한 것에 착안, 여

수산단 각 업체들이 보유한 소방차를 빠른 시간 내에 사고현장에 출

동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선책을 마련했다. 소방법에 따르면 위험물

지정배수가 4,000배 이상인 곳은 소방차 1대를 운영해야 한다. 위

험물 지정배수는 경유를 200ℓ보유할 경우 1배, 시너와 같은 위험물

질은 양이 같더라도 2배로 지정하는 방식으로 산출된다.

업체들은 위험물 지정배수에 따라 최소 1대에서 최대 4대까지 소방

차를 보유할 수 있다. 이 차장은 “소방차가 부족한 조그만 회사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각 업체들이 소방차를 출동시켜 초동대응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가스누출 감시설비, 현장 감시 폐쇄회로(CC)TV, 기상관측 설비, 자동화재 탐지설비, 소방펌프 감시설비, 소

화용수 감시설비 등을 망라한 종합방재센터 모습.

Page 145: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4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T I P여수국가산업단지(여수산단)는 1967년 국내 중화학공업 육성계획과 함께 설립됐다. 옛 이름은 여천공단이다. 98

년 여천시와 여천군이 여수시로 흡수통합되면서 이름이 여수산단으로 바뀌었다.

여수시 북쪽 9㎞ 지점인 여수시 중흥동과 삼일동 일원에 있는 여수산단은 총 면적이 3천171만1,000㎡에 달한다.

산업시설 면적은 2,293만㎡다. 단지 주변에는 비료와 원자재를 수입하는 전용부두인 낙포부두와 석유화학 전용

부두인 중흥부두 등 14개 부두가 자리 잡고 있다. 석유화학공장의 주원료인 납사 수입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

추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2008년 9월 말 현재 여수산단 입주업체는 264개사다. 입주업체 중 가동업체는 182

개사이며 이 가운데 86개사가 석유화학업체다. 여수시의 제조업체 근로자는 1만7,261명인데, 여수산단에서 일하

는 근로자만 1만3,621명이다.

안전보건 담당자의 직업병은?

입사 14년째인 안전관리과 한아무개(40)씨는 아직도 사원직급에 머

물러 있다. 국내 제조업체 상당수가 겪고 있는 인사적체 문제를 호남

석유화학도 안고 있다. 한씨는 “입사 당시 850명이던 직원이 지금은

650명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입사 이후 줄곧 안전업무만 담당한 한

씨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직업병(?)을 갖고 있다.

“보통 집에 소화기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가스레인지 옆에 간

이소화기를 두고 있어요. 자동확산소화기가 아파트에 있기는 하지

만 화재를 감지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거든요.”

이뿐만이 아니다. 자녀들이 문틈에 손이 낄까 봐 집안 곳곳에 안전

사고가 생길 만한 곳에 ‘안전장치’를 해 놓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다

칠 수 있는 부분은 미리 손을 써 둔다. ‘이건 위험하겠다’고 생각되면

안전조치를 취해야 직성이 풀린다. 안전업무 담당자들의 어쩔 수 없

는 숙명이다.

Page 146: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41

안전과 직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현장 점검에 나서고 있다. 6년 무재해의 자부심도 크지만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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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금연 성공을 기념해 안전과 직원이 아이스크림을 건네고 있다.

취 재 후 기 _ 글 오재현 _ 사진 정기훈

전남 여천에 도착해 호남석유화학 공장까지 택시를 탔다. 15분 가량을 가면서 “여수산

단에서는 사고가 많이 나느냐”고 물었다. 택시기사는 지역에서 일어난 대형사건을 기

억했다. 대형사고는 근로자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안전업무는 표시가 안 나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데도 여간해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취재과정에서도 이런 하소연을 자주 들었다. 한 안전업무 담당 근로자는 “잘해야 본전”

이라고 말했다. 잘하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안전불감증’ 얘기를 듣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안전업무 담당자들은 오늘도 그 단 한 번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

을 쓰고 있다.

Page 148: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43

- 이중형 호남석유화학 안전과 차장

이중형(44) 호남석유화학 안전과 차장은 입사한

지 19년째다. 입사 이후 줄곧 생산직이었던 그는

2005년 7월 안전과로 부서를 옮겼다. 이 차장은

“생산직에 있다가 안전과로 오니 제일 중요한 것

은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4년이라는 기간 동안 산업안

전보건법과 소방방재법 등 산업안전 관련법령을

섭렵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규칙에다 소방법까

지…. 공부해야 할 내용이 어마어마하게 많았어

요. 현장에서 일할 때 몰랐던 것들을 배워 나가는

기쁨도 컸어요.”

그의 평소 소신은 산업안전도 교육처럼 백년지대계의 장기적 안목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 창고에서 화재가 나서 불연재를 써야 한다고 하면, 유행처럼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이 쏟아

져 나옵니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법도 많아요. 꼼꼼하게 점검해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차장은 복잡해 보이는 석유화학 공정의 원리를 쉽게 설명하는 재주를 가졌다.

“쌀과 조를 골라내기 위해 채에 넣고 흔들잖아요?. 그게 혼합물을 분리하는 방법이에요. 납사라

는 화합물은 열과 압력을 이용해 필요한 물질을 골라내는 겁니다.”

공정의 원리는 간단하지만, 안전분야는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석유화학 공장에서 쓰이는 원료

중에 위험물질이 많은 데다 공정 자체도 고온과 고압을 이용해 한번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로 이어

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도 백년지대계”

을을을을을을을을

까까까까까까

았았았았았어어어어어어어어

가가가가가가는 는는는는는 는

안전을 위한 규정과 안전시설은 ‘더하기’, 불안요소는 ‘빼기’, 위험물질

을 집중관리하기 위한 비위험물질과 위험물질의 ‘나누기’, 안전 의식은

‘곱하기’한다. 이중형 안전과 차장의 안전 철칙이다.

포 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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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6 . 산재판례 따라잡기

‘회사’라는 조직에서 생존은 쉽지 않다. 때로는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를 담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와는

상극인 상사와 일해야 할 때도 있다. 이렇게 무리한 회사생활을 하다보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스트레스는 만

병의 근원이다.

능력에 비해 무리한 보직발령으로 과로가 누적되고 뇌출혈로 이어졌다면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12년간 전산업무 담당하다 학습지교사로 발령

공아무개씨는 94년 학습지회사에 전산요원으로 입사했다. 12년간 전산관련 업무를 담당하다가 2006년 5월 갑

작스레 학습지 방문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회사가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타 부서 잉여인력을 모두 학습지교사

로 전환배치했기 때문이다.

전문대를 졸업한 후 오랫동안 전산업무만을 해온 공씨는 학습지교사 업무가 버거웠다. 그러나 매일 2~3시간 이

상 초과근무를 하면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 3개월 만에 회원수가 크게 늘어났다.

그런데 이것도 잠시, 학습지교사 5개월 만인 그해 10월 공씨는 구토와 두통증상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뇌동맥

류 파열에 의한 뇌지주막하출혈(뇌출혈) 진단을 받았다. 공씨는 무리한 보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과로

와 스트레스가 뇌출혈의 원인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승인을 신청했다. 공단은 공씨의 업무량이 동료

직원에 비해 과중하다고 보기 어렵고, 뇌출혈 진단 당시 추석 연휴기간이었던 점, 공씨가 종전 건강검진에서 비

만과 고혈압 판정을 받았다는 점을 이유로 거부했다. 공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무리한 보직이 뇌출혈 원인이라면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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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업무상 과로가 뇌출혈 유발

이 사건의 원고는 공씨고,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뇌출혈의 주

된 발생 원인이라고 보이는 고혈압 및 동맥류와 겹쳐 자연적 경과 이상으로 악화시킨 것으로 추정된다”며 공씨

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요지는 이렇다.

“적어도 업무상의 과로나 스트레스가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 질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면 그 사이 인

과관계가 있다.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입증해야 할 필요는 없다. 제반 사정을 고

려할 때 업무와 질병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정되는 경우에 입증 가능하다. 또 평소에 정상적인 근

무가 가능한 기초질병이나 기존 질병이 과로로 인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도 마찬

가지다.

이 사건의 경우 원고의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기존 고혈압 및 동맥류와 겹쳐 병을 악화시킨 결과 뇌출혈이

발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실 의학적으로 ‘과로사’라는 용어는 없다. 다만 뇌심혈관계질환에 과로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

고 있다. 업무와 뇌심혈관계질환 사이 인과관계가 입증될 경우 업무상재해로 판정한다.

이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법원은 공씨의 무리한 보직이 업무상 스트레스를 키웠을 것으로 봤다. 또 초과근무

를 한 점도 인정됐다. 비록 공씨가 기존에 고혈압과 동맥류 등 뇌출혈 원인이 된 질병을 앓고 있었다 하더라도 ‘

급격한 업무의 변화’가 뇌출혈 진행속도를 악화시켰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관련 판례

•서울고법 2009년 7월14일 판결

2008누17037

•서울행법 2008년 5월28일 판결

2007구단5632 요양불승인처분취소

Page 151: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4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0.01초 눈물과 웃음의 갈림길

Page 152: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47

“사장님, 콧물 때문에 일을 못하겠어요” _ 148자동차 부품회사 ○○기업(주)

화마가 휩쓴 자리, 잔해만 덩그러니 남아 _ 160 경기도 이천 물류·냉동창고 화재사고

‘빨리빨리’가 부른 반복되는 비극_ 172 판교 ○○연구소 건설현장 붕괴사고

위험요소 많은 플랜트 현장, 재해가 줄고 있다 _ 184

○○제철소 건설현장

“제 나이는 이제 19살입니다”_ 196장애 극복한 지체장애 1급 김충현씨

유령 보고 게임하면서 깨닫는 ‘안전불감증’_ 208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GS건설 안전체험 교육현장

Page 153: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4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사장님, 콧물 때문에

일을 못하겠어요”

자동차 부품회사 ○○기업(주)

2009년 6월29일 오후

충남 아산시에 위치한 ○○기업(주). 거무튀튀하고 묵직한 쇳덩어리가

용해로에 들어가자 금세 시뻘건 쇳물로 변했다. 용해공은 ‘파지직~’ 불

꽃이 튀는 쇳물을 연거푸 거푸집에 쏟아 부었다. 제 성질을 이기지 못

한 쇳물이 자꾸만 꿈틀거렸다. ‘후~욱’ 하고 더운 열기가 한꺼번에 몰려

왔다.

모래와 물로 거푸집을 식히자 투박하게 생긴 고리가 만들어졌다. 몇 번

의 연마와 세공과정을 거치자 고리는 매끄럽고 날렵한 모양으로 바뀌었

다. ‘피스톤링’이 완성된 것이다.

자동차 부품회사인 이 회사는 엔진에 들어가는 피스톤링을 만든다. 팔찌

처럼 생긴 피스톤링은 기통을 조이는 부품이다. 윤활유를 조정하기도 하

고, 열을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윤활유는 기계가 맞닿은 부분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쓰는 기름이다. 절

삭유나 금속가공유라고 부르기도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윤활유 같은 사

람’은 어디서나 환영받는다. 무거운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기 때

문이다.

그런데 실제 공장에서 쓰는 윤활유는 곰팡이와 박테리아가 번식하기 쉬

워 사람에게 해롭다. 이 회사에서도 윤활유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1988년 23살의 나이로 ○○기업 영동공장에 입사한 신아무개씨.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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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13년간 피스턴링 연마공장에서 일했다. 그런데 입사 3년째인 90년부터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찬바람을 쐬면 양쪽 코가 번갈아 가며 막혔다.

연마공장의 코맹맹이 근로자들

92년부터는 아예 냄새를 맡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코막힘 증상은 갈

수록 악화됐다. 2001년에는 머리와 오른쪽 눈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신

씨는 그해 병원에서 만성부비동염·비용증·만성비후성비염 진단을 받

았다.

신씨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현장에는 유난히 코질환으로 괴로워하

는 근로자들이 많았다. 특히 쇠를 깎고 다듬는 연마공장 근로자들은 수

시로 병원을 찾았다. 주로 코가 막히는 축농증(부비동염)과 콧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알레르기성 비염 진단을 받았다. 처음에는 감기인가 싶었지

만, 코를 풀면 시커먼 콧물이 나왔다. 사람들은 공장에서 나오는 쇳가루

가 의심스러워졌다.

주물공장에서 한 근로자가 시뻘건 쇳물을 거푸집에 붓고 있다. ‘파지직’ 소리를 내며 불꽃이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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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완성된 피스톤 링. 주조·연마·도금·검수 등 10~40가지 공정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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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

이 회사는 2005년 말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역학조사를 요청했다. 당

시 아산공장 연마과 22명 중 절반이, 여성이 많은 검사과는 28명 중 19명

이 코와 관련한 건강 이상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름때 먹고사는 곰팡이가 원인

근로자들을 코맹맹이로 만든 주범은 공장에서 쓰이는 금속가공유였다.

공단에 따르면 호흡기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금속가공유 유해인자는 에

어로솔(대기 중에 부유하는 고체 또는 액체의 미립자)·엔도톡신·곰팡

이·박테리아·에탄올아민 등이다.

이 현장에서는 주조된 고리를 연마하는 공정에서 금속가공유를 사용한

다. 쇳덩어리 고리가 피스턴링이 되기 위해서는 종류별로 적게는 10단

계, 많게는 40단계의 공정을 거친다. 쇠를 갈고 절단하고 구멍을 뚫거나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만 25단계 내외다. 이때 마찰로 인한 열을 막아 주

는 게 금속가공유다. 합성금속가공유에는 소량의 에탄올아민이 들어가

있다. 이는 사람에게 비염이나 천식 같은 호흡기질환을 유발한다.

공단의 역학조사 결과 국소배기장치가 제 기능을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

다. 에어로솔을 막기 위해 기계에 둘러놓은 헝겊이 오히려 곰팡이를 번

식시킨 것이다.

쇳덩어리를 깎고 다듬어야 하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윤활유가 몸에 해

롭다고 안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근로자들이 곰팡이로 오염

된 공기를 마시지 않도록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 기업은 2001년 경기도 부천에서 충남 아산으로 이전했다. 그런데 여

성근로자가 많은 검사과가 공장 한가운데 들어섰다. 연마공정에서 오염

된 공기가 검사과에 그대로 유입됐다. 연마과에 비해 금속가공유 노출이

적은 검사과 직원들이 비염을 심하게 앓았다.

“막힌 코를 뚫어라”

가장 좋은 방법은 실내에 공기가 유입되지 않도록 시설을 전면 재보수하

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공장을 이전한 지 얼마 안 돼 공장을 새로 지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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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산업안전보건공단의 도움을 받아 배기장치 전반을

보수하고 시설 상당부분을 개선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각도

조절이 자유로운 국소배기장치인 암-후드(Arm-Hood).

연마공정을 거친 반제품을 들어 옮기고 있다. 쇳덩이라 그 무게도 만만치 않다.

Page 158: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53

도 없었다. 오일미스트 발생공정을 개선하는 데 주력했다.

박정훈(40) 환경안전팀 과장은 “어떤 공정은 손과 눈으로 일일이 제품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해결방법이 마땅치 않았다”고 털어놓았

다. 그래서 오일미스트가 밖으로 튀지 않고 공기가 새지 않는 밀폐성 기

계를 도입했다. 배기장치도 새것으로 교환했다.

이렇게 시설투자에만 총 16억5,000만원이 소요됐다. 박 과장은 “처음에

안전관리자로 와서 고생을 참 많이 했다”며 “주조공장에서 용탕을 치는

데도 마스크 한 장 착용하지 않고 일하는 것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

았다”고 회상했다.

“기계는 뜯어고치면 되지만 사람은 개조하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안전

관리자로서 그가 겪었을 어려움이 짐작이 갔다.

공단의 도움을 받아 배기장치 전반을 보수하고 시설 상당부분을 개선했

다. 그렇지만 근로자들은 아직도 만성적인 코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비

염은 한번 걸렸다 하면 현대의학으로도 완치되기 어렵다.

연마공정. 근로자들을 코맹맹이로 만든 주범은 이 과정에 쓰이는 금속가공유로 밝혀졌다.

가장 문제가 컸던 연마공정에 15억원짜리 기계 2대를 새로 들여왔다. 또한 국소배기장치와 덕트·

후드를 설치해 공기를 최대한 실외로 빼내기로 했다. 그 결과 공장 한가운데 위치한 검사팀의 통풍

과 채광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다. 가공공장 제습장치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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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최근에는 레이저를 이용해 염증을 일으키는 부분의 코 점막을 전부 떼 내

버리는 수술도 시행되고 있지만, 재발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

염이 만성부비동염으로 발전하면 후각이 마비되고 만성 두통을 유발한다.

비염은 불치병 … “우리만의 문제 아냐”

이 회사는 2006년 4명의 근로자가 비염과 만성부비동염으로 산재요양

을 했다. 2007년부터는 비염 치료비를 회사에서 부담하고 있는데 총 30

명에 달한다. 회사가 내는 병원비만 연간 5,280만원.

특히 작업환경으로 인한 코질환은 만성이 많다. 지난해 신규 환자 10명

을 포함해 23명, 올해도 11명의 근로자가 비염 치료를 받고 있다. 박 과장

은 “치료를 한다 해도 증상만 완화해 주는 방식이 대부분이라 비염 환자

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했다. 그는 “금속가공유

로 인한 코 질환을 문의하는 전화가 부쩍 늘었다”며 “우리회사만의 문제

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이 공기질 관리를 소홀히 한다면 직업성 호흡기질환은 머지않아

뇌심혈관계질환이나 직무스트레스와 함께 산업안전보건 분야의 최대

복병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 기업은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미국 자동

차업계의 빅3인 포드·크라이슬러·GM에 피스턴링을 납품하려면

ISO4000 인증 등 통과절차를 밟아야 한다. 환경·안전관리도 규정에 맞

게 바꿔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다.

회사 관계자는 “단순히 안전사고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으로 환

경·안전보건관리방안을 구축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세계시장 진출 위해서라도…”

이 회사의 노사는 매달 한 번씩 산업안전소위원회를 열고 작업환경 개선

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뛰어난 전략을 가진 경영자라면 안전보건을 우선하는 시스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Page 16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55

쉬는 시간. 한 근로자가 연마공장 문을

나서고 있다. 직업성 호흡기질환은 뇌심혈관계질환이나 직무스트레스와 함께

산업안전보건분야의 최대 복병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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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취 재 후 기 _ 글 김미영 _ 사진 정기훈

이 기업을 찾았을 때 근무 중인 근로자는 만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그날 금속노조가

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도 금속노조 파업날짜와 취재 약속이 겹쳐 이미

한 차례 연기한 터였다. 어쩔 수 없이 파업 중인 공장을 찾았다. 일손을 놓은 공장은 적

막하기까지 했다.

이번 취재는 금속가공유에 의한 콧병 때문이었지만 사실 이 기업은 근골격계질환 예방

에 있어 탁월한 모범을 보이고 있다. 2004년 근골격계질환으로 근로자 40여명이 산재

요양을 한 이후 독특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우선 참가를 희망하는 근로자를 대상으

로 자세 측정을 한다. 그리고 매주 세 번씩, 석 달간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허리와 어깨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한다. 이 과정이 끝날 무렵이면 휘었던 척추뼈가 정상으로 돌

아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절삭·연마과정에서 발생하는 유증기(Oil Mist)를 막는 국소배기장치 앞에 ‘방독마스크 착용’이란 대형 선전판을 붙였다. 공정개

선 못지않게 작업자의 보호구 착용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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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사용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금속가공유(Metal Working Fluids,

MWF)는 금속제조업에서 가장 몸값을 올리고 있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용도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선 금속이 가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을 제거하거나 윤활

작용을 해 가공정도를 향상시킨다. 공구수명을 연장시키기도 하고, 가공 중에 발생하

는 칩(소재에서 깎여 떨어져 나오는 금속찌꺼기)을 제거하는 기능도 있다.

그런데 금속가공유에는 그 역할만큼이나 다양한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 방부제·윤

활제·방청제·부식방지제·세정제·분산제·거품방지제·극압 첨가제…. 금속가

공유 자체 성분이나 첨가제로 들어간 화학물질은 물론 사용 중에 열이나 부패 등의 원

인으로 변형된다. 이때 추가적으로 발생하는 물질도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산업의학계는 금속가공유의 발암성을 경고하고 있다. 주성분인 ‘기름’과 첨가제(또는

2차 변형물질)에는 포름알데히드·니트로스아민·염소화파라핀·다핵방향족화합

물 등 각종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

신체 모든 조직이 금속가공유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피부암부터 응낭암·후두암·

직장암·췌장암·방광암·폐암·위암·식도암·전립선암·신경계통암·백혈

병·결장암·간암 등 매우 다양하다. 호흡기질환도 유발한다. 비염이나 부비동염이

대표적이다. 과민성 폐렴과 직업성 천식, 만성기관지염도 금속가공유가 유발하는 주

요한 질환이다. 직업성 피부질환은 쉽게 지나치기 쉽다. 금속가공유의 주성분인 기름

이 피부에 장기간 노출되면 여드름과 같은 화농성 피부염이나 모포염 등이 생길 수 있

다. 심지어 피부화상도 초래할 수 있다.

최근에는 금속가공유 자체의 화학성분뿐만 아니라 이에 기생하는 미생물에 대한 논

란이 더 크다. 미생물은 유기물을 먹이로 하기 때문에 그것이 혼합돼 있는 금속가공유

는 아주 좋은 증식처가 된다. 여름철 온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관리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08년 8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금속가공유 노출기준과 관리방안을 신

설했다.

여드름부터 암까지 … 금속가공유의 ‘검은 비밀’

157

포 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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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화 학 물 질 바 로 알 기 _벤젠

“본드 사용 작업자 백혈병, 원인은 벤젠”

15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작업현장에서 일을 하다 몸에 이상신호가 왔을 때 ‘내일이면 괜찮아지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이렇게 가벼운 증상을 무시할 때 큰 병을 부를 수 있다. 유해물질을 다루는 작업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경

우 더욱 그렇다. 재임음향(가칭)에 다녔던 김아무개(당시 38세)씨가 그러한 예다. 김씨는 옛 일을 떠올릴 때마

다 눈물을 글썽거린다.

경기도 동두천에 소재한 재임음향은 텔레비전과 자동차 오디오 스피커를 제조하는 회사다. 86년 입사한 김씨

는 스피커 부품을 조립하고, 부품 틈새를 메우는 작업을 하면서 ‘본드’를 사용했다. 공장 안에 본드냄새가 진동

했지만 환기시설이나 배기장치는 없었다. 호흡용 보호구를 착용하고 일하는 근로자도 없었다. 이 회사는 300

명의 생산직 근로자가 일하는 제법 큰 회사였는데도 말이다. 근로자들은 본드가 건조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겨울에도 창문을 열지 못했다.

코를 찌르는 본드냄새를 매일 맡았다면 몸에 이상신호가 오는 것은 당연하다. 회사를 다닌 지 11년째 되던 해

(97년) 특수건강진단을 받은 김씨는 ‘혈소판 감소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정밀검사를

권유했지만 김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 이듬해부터 두통과 어지럼증이 계속됐

다. 2001년부터는 한 달에 한두 번 어지럼증이 나타나더니 두통과 구토증상이 이어졌다.

결국 대학병원을 찾은 김씨는 골수검사

를 통해 백혈병(재생불량성 빈혈) 진단

을 받았다.

김씨의 백혈병 원인은 본드에 함유된 ‘

벤젠’ 탓이었다. 투명한 액체인 벤젠은

달콤한 냄새가 나는 휘발성 유기용제

판 감소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정밀검사를

다. 그러다 이듬해부터 두통과 어지럼증이 계속됐

증이 나타나더니 두통과 구토증상이 이어졌다.

Page 164: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59

로 산업현장에서는 ‘벤졸’이라고 불린다. 무심코 벤젠을 흡입하면 두통·어지러움·의식상실 등이 나타난다.

고농도 벤젠에 노출되면 구역질·마비·혼수상태가 올 수 있다. 벤젠이 피부에 닿으면 피부 건조와 지방 감소

로 인한 홍반·물집·피부염 등이 생긴다. 눈에 닿을 경우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김씨는 1일 기준치의 5분의 1

정도에 노출됐지만 환기장치가 없는 공간에서 작업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벤젠 사용 작업장에서 작업환경을 측정해, 노출기준을 초과하면 사업주는 처벌을 받는다. 김씨의 경우 16년 동

안 본드작업을 하면서 오랫동안 벤젠에 노출돼 병을 얻었다. 노출기준을 초과하지 않더라도 사업주는 환기시

설 설치, 안전마스크 제공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유해물질인 벤젠에 대한 기초 정보를 근로자에게 알리는 것도 사업주의 몫이다. 또 6개월에 한 번 작업환경을

측정해 벤젠 노출정도를 확인해야 한다.

벤젠과 혈소판 감소증

벤젠은 톨루엔·크실렌과 함께 ‘시너’의 주요 성분이자 발암물

질이다. 벤젠은 주로 의류·인쇄·신발·석유화학·의약품 제

조업·자동차 수리업 등 쓰인다. 염료·합성세제·유기안료·의

약·농약·향료·조미료·사진관련 약품·폭약·방충제·절

연유·페인트 제거제 등의 원료로도 사용된다. 하루 8시간 작업

기준으로 노출치가 1ppm을 초과하면 안 된다.

혈소판 감소증은 선천적 유전에 의하거나, 후천적으로는 화학물질(벤

젠 등)에 노출됐을 때 발생한다. 혈소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지혈작용’이다. 혈소판 감소증이 생기면 출혈증세

가 나타난다. 혈관·피부·위에서 출혈이 일어난다. 입 속에서도 피가 나고, 피부를 눌렀을 때 반점이 생기기도

한다. 출혈이 장기간 지속되면 빈혈이 생기며, 백혈병의 원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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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화마가 휩쓴 자리,

잔해만 덩그러니 남아

경기도 이천 물류·냉동창고 화재사고

“아이고 내 새끼야, 내 새끼야.

얼마나 뜨거웠을꼬. 내 새끼야.”

2008년 1월7일.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 유산리 소재 코리아2000 냉동창

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직후 이천 시민회관과 냉동창고 화재현장

은 유가족의 오열로 가득했다. 자식이나 부모, 친인척을 잃은 유가족들

은 쉴 새 없이 눈물을 쏟아 냈다.

코리아2000 냉동창고에서 설비를 담당했던 이명학(당시 50세)씨는 아

내 정향란(당시 47세)씨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씨의 유가족들은 “먹

고살려고 평생 쉬지도 못하고 일만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화재로 함께 목숨을 잃은 부부만 3쌍. 아버지·처남·매형 등 일가족

7명이 같이 일하다 봉변을 당한 비극도 벌어졌다. 40명이 숨졌는데, 17

명이 중국 동포였다. 화재현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10명도 중화상을 피

할 수 없었다.

피할 수 없는 참사는 없다

2008년 1월 이천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의 아픈 기억이 사그라지기

도 전인 같은해 12월 인근 서이천물류센터에서 또다시 화재가 발생했다.

두 사건으로 모두 48명의 근로자들이 숨졌다. 안타까운 것은 피할 수 없

는 재해가 아니라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는 사실이다.

Page 166: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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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대표적 참사로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꼽힌다. 두

사고로 모두 534명이 숨졌고 1,000여명이 넘게 부상을 당했다. 부실시

공에 따른 참사였다.

2000년대 들어 건물 붕괴사고는 줄어들었지만, 물류창고를 중심으로 크

고 작은 화재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2000년 2월과 4월에 울산과 제주에

있는 가구창고에서 잇따라 불이 나 3억4,000만원의 재산피해를 냈고,

2003년과 2005년에도 인천과 울산에 있는 물류창고 화재로 7억5,000

만원의 손실이 났다. 전문가들은 주택이나 공장 등 다른 건축물에 비해

창고 구조 자체가 화재에 취약하고, 화재예방에 대한 안전의식이 낮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돌아보면 피할 수 없는 참사란 없다. 그러나 잇단 사고에도 강화되지 않

2008년 1월7일과 같은해 12월5일 발생한 이천시 물류창고 화재 참사로 48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재산피해액

도 200억원이 넘는다. 사진은 이천시 마장면 장암리 서이천물류센터 화재사고 현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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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2008년 1월 이천시민회관에 마련된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 사고 합동분양소. 조문

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고 유가족들은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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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는 안전규정과 잠깐의 방심이 불러온 화재는 수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손

실을 낸다.

T자형 건물구조·샌드위치 패널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는 지하 1층 냉동설비 마무리 공사 중 원인 미

상의 화재·폭발로 일어난 불길이 스티로폼 샌드위치 패널을 덮쳐 발생

했다. 거세진 불길이 다시 우레탄 패널을 태우면서 유독가스를 분출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1·2층의 연면적 2만9,519㎡의 냉동창고가 전소했다. 재산피해액만

124억원. 유족 보상금으로 한 명당 평균 2억4,500만원씩 총 89억원이 지

급됐다. 단 한 번의 화재로 코리아2000 경영자는 상당한 손실을 입었다.

유가족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다.

당시 화재 진압을 위해 투입된 소방관이 1,215명에 달했고, 소방차 223

대가 동원돼 12시간에 걸쳐 화재를 진압했다. 그야말로 ‘대형 참사’였다.

코리아2000 냉동창고 참사는 화재에 취약한 건물구조와 건축자재 사용,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과 다단계로 이어진 건설업계의 하도급 관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졌다. ‘창고 화재’라는 말에서 누전이나 전기과부하로

인한 우발적 사고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건설 산재’라

는 말이 더 적합하다. 40명의 사망자 중 37명이 건설근로자였고, 3명만

이 창고 관계자였다.

손병석 한국물류시설연구소 박사는 “최근 창고 화재는 운영 과정이 아닌

건설·보수 과정에서 발생하는 건설 산업재해로 봐야 한다”며 “안전보

다는 비용적인 측면을 고려해 싼 건축자재를 쓰기 때문에 대형 화재사건

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리아2000 냉동창고에 사용된 건축자재는 5㎜ 강판을 가운데 넣고 양

쪽으로 100㎜의 스티로폼과 우레탄폼을 붙여 놓은 샌드위치 패널이었

다. 스티로폼은 불이 붙기 쉽고, 강판은 그 불이 내뿜는 열을 전달하는 전

도체 역할을 한다.

우레탄에는 보통 불에 타지 않는 물질인 난연재(불에 타지 않는 물질)를

넣도록 의무화하고 있어 불에 잘 타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불이 붙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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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작하면 몇 모금만 마셔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유독가스를 분출한다. 우

레탄이 탈 때 나오는 시안 가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에 사용

됐던 독가스의 일종이다.

원청-하청-재하청, 갈수록 낮아지는 안전의식

‘T’자 형태로 지어진 창고는 출입문이 하나밖에 없었다. 출입구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양쪽으로 길이 갈라지고 그 길을 따라 냉동창고가 빽빽

이 들어서 있다. 화재 당시 공장 내부 공기 중에 인화성 물질이 가득 차 있

었다. 화재가 났을 때 근로자들은 나갈 길을 찾지 못했다. 하나뿐인 통로

는 불이 확산되는 길이 돼 버렸다.

직접적인 화재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용접 불꽃이나 가스토치(Gas

Torch) 가열작업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장에 있었던 작업자들은 지하 1층에서 단열처리·전기설치·배관설

비·에어컨 설치와 같은 작업을 동시에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고

를 조사한 임태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성남센터 소장은 “화기 사용 작

업과 가연물 취급 작업을 동시에 하면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몇 배로

커진다”며 “창고를 빨리 짓고 이윤을 남기려는 이유로 건설공정을 한꺼

번에 수행하는 건설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소방시설인 화재감지기·스프링클러·방화셔터는 모두 꺼져 있

었다. 작업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작동을 중단시킨 것이다. 요즘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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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현장에 소방관들이 모였다. 불을 끈 이후에도 시신을 발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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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소 건설작업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다단계 하도급일수록 안전관

리자를 두지 않고, 안전규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다. 비용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김태현 노동부 성남지청 산업안전과장은 “건설업체들이 안전관리자를

두더라도 비용절감 차원에서 계약직 형태로 고용하고 있다”며 “책임감도

떨어지고 현장에 대한 통제권도 제한받고 있다”고 말했다. 코리아2000

냉동창고 건설공사에는 하청-재하청 건설업체 12곳이 참여했다.

11개월 만에 다시 발생한 서이천물류창고 화재는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의 판박이였다. 강판·스티로폼·우레탄폼을 이용한 샌드위치 패널

이 그대로 쓰였다. 안전감독과 설비를 갖추지 않은 채 용접작업이 이뤄

졌고, 발화로 이어졌다. 작업 편의를 위해 화재감지기·스프링클러·방

화셔터를 꺼 버린 것까지 똑같았다. 화마는 창고 전체를 휘감아 철제 구

조물만 남기고 모든 것을 태웠다. 그나마 사람들이 창고를 비운 점심시

간에 화재가 일어나 인명 피해가 덜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돌아보면 예방 가능했던 사고

코리아2000 냉동창고나 서이천물류센터에서 불과 5㎞ 남짓 떨어진 곳

에 위치한 동원산업 이천냉장. 이 회사는 인근에서 보기 드물게 화재예

T I P화재 예방 , 가연물·점화원 통제는 필수

가연물(불에 타는 물질)과 점화원 그리고 산소. 화재는 이 3가지 요인이 모두 갖춰져 있

을 때 발생한다. 반대로 하나만 통제해도 화재를 막을 수 있다.

산소는 통제할 수 없으니 예방과 점검은 가연물과 점화원 통제에 집중된다. 화재(발화)

원인으로 흔히 지목되는 것은 용접 과정에서 나온 불꽃, 가열작업에 사용하는 가스토

치, 전동공구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스파크다. 가연성 물질로는 유성접착제나 PVC접

착제, 다목적 시너 등이 지목된다. 휘발성이 강해 공기 중에 떠 있다가 불꽃만 일어도

불이 붙는다.

이런 작업을 동시에 진행할 경우 화재 가능성은 몇 배 이상 커진다. 그런 식으로 공사를

하는 곳이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바로 코리아2000 냉동창고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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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

방시스템을 철저하게 갖추고 있다. 스티로폼이 아니라 유리섬유를 건축

자재로 사용했다. 가격이 세 배나 비싸지만 방염효과가 있고 유독가스도

발생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창고 전체가 완전 개방형으로 설계됐다. 지하 3층, 지상 4층의

건물이지만 산을 깎아 지은 탓에 지하도 지상처럼 차가 드나들 수 있다.

창고 왼쪽으로 ‘F’자 모양의 길을 따라 오르면 지하부터 지상까지 각 층으

로 이동이 가능하다. 모든 층의 창고 전면이 개방돼 있다. 화재가 나도 대

피가 용이한 구조다. 조종권 동원산업이천냉장 대리는 “창고 건설비용은

상대적으로 많이 들었지만 일하는 입장에서는 화재위험이 적어 마음이

편하다”며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소방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말 현재 전국에는 약 2,350여개의 물류창고가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경기도 등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들 물류창고

의 60%는 가연성 샌드위치 패널을 사용하고 있다. 냉동·냉장창고는 대

부분 철골 콘크리트 구조이지만 내부 마감은 경질 폴리우레탄폼을 사용

한다.

김태현 과장은 “화재 현장을 지켜볼 때마다 예방과 사후점검에 늘 신경

을 쏟지만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 많던 관심

은 사라지고 규제에 관한 법률 개정도 이뤄지지 않은 채 사고 예방은 남

겨진 자들의 몫이 됐다”고 아쉬워했다.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에 위치한 동원산업이천냉장은 화재 예방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창고와 창고를 잇는

곳마다 화재 방지 셔터가 설치돼 있다.

Page 173: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6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취 재 후 기 _ 글 김봉석 _ 사진 정기훈

살인사건과 같은 형사사건만 끔찍한 게 아니다. 산업재해도 못지않게 참혹하다. 한 번

의 실수가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낼 수 있기에 더 심각하다. 이천에서 발생한 두 건

의 물류·냉동창고 화재가 꼭 그렇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사

람에게 씻을 수 없는 슬픔을 남겼다. 특히 피해자 대다수가 돈을 버는 가장이었다는 점

에서 유족들이 느꼈을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두 사고를 이렇게 곱씹는

것은 누군가를 탓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해답을 찾기 위해서다.

손병석 박사는 “물류센터가 계속 대형화 추세에 있다”며 “불이 날 경우

초기 진화에 실패하면 대형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손 박사는 “불연성 건축자재를 사용해 건축물의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해

야 한다”며 “제도적 예방관리시스템을 구축해 대형 화재에 따른 인명 피

해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9년 4월 다시 찾은 이천 냉동창고 화

재현장에는 불탄 건물만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이천에 위치한 물류창고만 300여

개가 넘는다. 전국적으로 물류창고

는 약 2천350여개에 이르며, 일반

물류창고의 60%가 가연성 샌드위

치 패널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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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경기도 이천 코리아2000 화재사고 직후 이천소방서는 창고시설을 돌며 화재 안전시

설을 점검하고 예방훈련을 강화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성남센터에서도 중소규

모의 건설업체 연락처와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 일일이 화재예방 교육자료를 발송했

다. 전국을 떠돌며 공사하는 이들을 한곳에 모아 교육할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

해서다. 노동부 성남지청은 90년대부터 있었던 화재사고 자료를 담은 동영상을 제작

했다. 과거 참혹했던 사고들을 되새겨 앞으로 있을 사고를 예방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1년이 채 안 돼 똑같은 사고가 되풀이됐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비난여

론이 들끓었다. 그동안 흘렸던 땀방울들은 성과 없이 질책으로 돌아왔다. 물류창고의

건축 구조와 자재에 대한 안전규정 강화 없이 교육만으로 화재를 예방하기에는 한계

가 있었다.

2009년 4월 강창일 민주당 의원이 ‘건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코리

아2000 화재 사고 이후 1년3개월, 서이천물류창고 이후 4개월 만이다. 개정안에 따르

면 이천 화재사건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인 내부 심재에 가연성 합성수지를 사용한

샌드위치 패널을 창고와 같은 건축물의 마감 재료로 사용하지 못한다.

현재 주거용 건물은 가연성 물질을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지만, 창고와 같은

건물은 사람이 사는 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관련 규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김태

현 노동부 성남지청 산업안전과장은 “창고라고 하지만 상시 거주인력이 70명에 달하

고 화물인력까지 합치면 하루 300명이 넘는 인원이 이용하는 시설”이라고 말했다.

화재 당시 수많은 정부 관계자들과 국회의원들이 현장을 방문했다. 언론도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연일 보도했다. 그럼에도 제도적인 뒷받침이 쉽지 않은 현실

이다. 현장감독만으로 예방하기 힘든, ‘화약고’나 다름없는 창고 시설이 이천에만 300

여개에 이른다. 사고예방은 현장에 남겨진 이들만의 몫이 아니다.

쉽지 않은 제도적 뒷받침 … 상반기에야 관련법 제출

포 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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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7 . 산재판례 따라잡기

최근 한나라당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라는 주문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

표는 “망치소리가 전국 곳곳에서 더 크게 울려 퍼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국에 망치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질수록 건설근로자들이 산업재해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청주에 있는

ㅎ반도체는 2007년 6월 공장증설 공사에 착수하며 24시간 맞교대로 풀가동하는 새로운 공법을 도입했다. 그 결

과 약 8개월 만에 11건의 산재사고가 발생해 3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쳤다. 사업주가 기본적인 추락방지 의무만

지켰어도 안타까운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

작업발판·안전난간 없어 추락사

ㅎ반도체 공장증설 공사현장에서 2007년 12월16일 오후 3시20분께 중국동포 건설근로자 이아무개씨가 10m 높

이에서 건물 3층 바닥으로 추락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작업발판이나 안

전난간과 같은 안전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거푸집 해체작업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10m 높이에서 작업하다 개

구부에 빠져 3층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추락 과정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한 것으로 판명됐다.

같은해 10월22일에도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건설근로자 이아무개씨가 4층에서 떨어진 건설자재(37kg 무게의

기둥 결속밴드)에 머리를 맞고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 역시 안전의무 소홀이 원인이었다. 작업으로 물체가 떨어

지거나 날아올 위험이 있을 때는 낙하물방지망이나 방호선반 등을 규정에 따라 설치해야 한다. 그러나 숨진 이

씨가 작업한 현장에는 안전요원도 배치되지 않았고, 성능검정조차 받지 않은 러셀망(분진방지용 벌집망)만 쳐

져 있는 상태였다.

건설현장서 ‘추락사’…

업무상과실치사죄 받은 사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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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과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 적용

이 사건의 피고인은 철근콘크리트 공사를 도급받아 시공한 A건설회사, A사 소속 현장소장이자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인 김아무개씨, A사로부터 재하도급을 받아 공사를 시행한 B건설업체, B업체의 현장소장이자 안전보건

관리 책임자인 이아무개씨, B업체의 거푸집 해체작업자 김아무개씨, 안전요원 민아무개씨 등 6명이다.

청주지방검찰청은 피고인들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범죄사실에

적용된 법조항은 2007년 5월 개정 이전 구 산업안전보건법 제67조(추락위험 방지의무 또는 기계·기구·기타

설비에 의한 위험방지의무 위반)와 제23조(각 안전상 조치의무 위반으로 인한 치사)·제10조(각 산업재해발생

보고의무 위반)·제29조(각 도급인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조치의무 위반)·형법 제30조(각 업무상과실치사)

등이다.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다.

“10월22일 사고와 관련해 낙하물방지망 대신 설치한 러셀망은 분진 등을 방지하기 위한 속칭 ‘벌집망’ 정도에 불

과해 낙하 또는 비래위험 예방에 충분치 않다. 피고인들은 물건의 낙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모

두 취하지 않았다. 규정에 따라 10m마다 낙하물방지망이 설치되는 등의 조치가 있었다면 비록 37kg이나 하는

낙하물이 떨어지더라도 그 충격이 완화돼 피해자가 사망에까지 이르렀으리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업무상과실과 사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 12월16일 사고와 관련, 3일 전부터 A건설회사로부터 거푸집 해

체요구를 받아들여 조속히 작업을 해야 했다. 비록 사고 당일 작업계획에 해당 거푸집 해체작업이 없었다 하더

라도 현장소장인 이씨는 안전대 걸이시설 설치 등을 했어야 했다. 이를 게을리한 업무상 과실이 있다.”

법원은 B업체 현장소장 이씨에게 징역 10월에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는 등 피고인 6명에게 4,1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B업체 안전요원 민씨에게는 금고 5월을 선고했다.

관련 판례

•청주지법 2009년 3월26일 판결

•2007고단2126, 2008고단175, 2008고단993, 2008고단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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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빨리빨리’가 부른

반복되는 비극

판교 ○○연구소 건설현장 붕괴사고

“복공판에 세워져 있던 유조차에서

주유선을 내려 굴삭기에 기름을 넣고 있었어요. 갑자기 흙막이 벽체 안

에서 ‘탕’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어요. 굴삭기 경적을 울리면서 사람들에

게 나오라고 소리쳤죠.”

2009년 2월15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택지지구 ○○연구소 건설현장 붕

괴사고는 순식간에 발생했다. 일요일이었던 이날 37명의 근로자가 현장

에 출근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체조와 안전교육을 받았고, 곧

이어 작업이 시작됐다. 땅을 파내는 굴착작업이 한창이었다. 지하 5층,

지상 8~9층짜리 연구소와 오피스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공사장 한켠에 설치돼 있던 20m 높이의 복공판(철골작업대) 아래에는

굴삭기 5대가 돌을 깨뜨려 부수고, 흙을 퍼냈다. 복공판 위에 있는 크램

셀이 굴삭기가 퍼낸 흙과 돌을 위로 떠올려 덤프에 실었다. 오전 8시10

분쯤 굴삭기에 주유를 하기 위해 유류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작업자들은

복공판 위에서 주유선을 내려 굴삭기에 기름을 넣었다. 15분쯤 지났을

까. 갑자기 북쪽 흙막이 벽체가 무너져 내렸다. 붕괴된 지점의 암반과 흙

이 복공판을 덮쳤고, 복공판이 무너지면서 위에 있던 컨테이너 7동과 35

톤 크램셀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 사고로 컨테이너 사무실에 있던 유아무개(58)씨와 이아무개(36)씨,

노아무개(66)씨가 숨졌고, 13명이 다쳤다. 시공은 ○○건설, 터파기 공

사는 ○○이엔씨가 맡고 있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성남산업안전보건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어스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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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

커(earth anchor)가 흙막이 벽체를 충분히 지지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어스앵커공법은 흙막이 벽에 구멍을 뚫어 그 속에 철

근을 넣고 주위를 시멘트와 모래를 물로 반죽한 ‘모르타르’로 메우는 것

을 말한다.

‘어스앵커’ 흙막이벽 지지 못해

복공판도 사고의 간접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복공판 위로는 흙을 실어

나르기 위해 덤프트럭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복공판은 흙막이 벽체 위쪽

과 연결돼 있었다. 덤프트럭 등 건설기계가 드나들면서 발생되는 충격의

일부가 흙막이 벽체에 전달돼 붕괴사고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

로 추정된다. 사고현장에서 일했던 박아무개씨는 “크램셀이 흙을 떠올릴

때마다 복공판이 흔들거렸다”며 “복공판 위에 있는 컨테이너에서도 흔

지난 2009년 2월15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택지지구 ○○연구소 신축공사 현장이 붕괴돼 근로자 3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사고당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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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도로 옆으로 흙막이 벽체가 무너져 내린 모습.

흙막이 벽체가 무너지면서 도로가 공중에 뜬 상태가 됐다.

복공판 위에 있던 컨테이너 7동과 크램셀 등 건설기계가 그

대로 무너져 내렸다. 컨테이너 사무실 안에 있던 근로자 3명

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들거림을 느꼈을 정도”라고 전했다.

사고를 조사한 배기진(45)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성남센터 기술지원팀

차장은 “복공판 상부의 중장비와 가설 컨테이너의 하중이 복공판 붕괴를

가져온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사고의 간접적인 요인은 될 수 있

다”고 말했다. 사고 이틀 전 쏟아진 비도 영향을 미쳤다. 사고 당일 35.5

㎜의 비가 내렸고, 빗물이 흙막이 벽체에 침투돼 지반이 약화됐을 것으

로 추정된다.

경기도 분당경찰서는 7월에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안전도가 떨어지게

설계를 변경한 데다 부실시공과 현장 안전조치 미흡 등 여러 요인이 복합

Page 18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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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으로 작용해 사고가 났다”고 밝혔다. 분당경찰서는 시공업체의 현장소

장 박아무개(45)씨와 공사과장 한아무개(39)씨, 감리단장 임아무개(61)

씨 등 4명에 대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청

업체 현장소장 이아무개(58)씨 등 6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2009년 2월에는 유독 붕괴사고가 많았다. 판교 붕괴사고 일주일 전이었

던 2월7일 오후에는 전남 신안군 흑산도 댐 공사장에서 콘크리트 더미가

무너져 근로자 4명이 중상을 입었다. 같은달 28일에는 경기도 남양주시

오남읍 택지지구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터파기 공사를 하던 박아무개씨

가 무너져 내린 토사에 매몰돼 숨졌다.

3개월 만에 또 대형사고

3개월 뒤에는 판교 붕괴사고에 버금가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5월18일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 화성시청 인근 택지개발지구 공사장에서 절개지

가 무너져 3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친 것이다. 사고가 난 현장은 화성

시청이 발주하고 ○○○개발이 시공사, ○○건설이 하청사업자로 참여

했다.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무너진 절개지는 암반이 도

로 쪽으로 절리가 있고 많이 깨져 있는 데다 중간에 점토가 있어 붕괴에

취약했다”며 “지질조사 부실이 사고원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사망재해는 사고 당사자인 근로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 2차 피해를 준

다. 화성사고 이튿날 안산고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망자 최아무개

(59)씨의 딸은 “사고발생 이틀째가 되도록 화성시청이나 회사에서 아무

도 오지 않았다”며 “무릎 꿇고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이게 말이 되느냐”

고 하소연했다. 숨진 최씨는 매몰자 가운데 유일하게 휴대전화 신호음

이 울려 가족들은 끝까지 그가 생존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

다. 그러나 최씨는 그날 오후 5시30분께 시신으로 발견됐다.

“유품으로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받았어요. 아버지는 항상 가슴에 있는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넣고 다니셨어요. 얼마나 크게 다치셨는지, 휴대전

화에 피가 스며들어 있었어요.”

시신 훼손 상태가 심각해 아들과 사위를 제외한 가족들은 최씨의 시신을

확인조차 하지 못했다.

Page 181: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7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빨리’ 하려다 근로자 생명 단축시켜

붕괴사고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붕괴·도괴 사고 재해자는 2005년 320

명에서 2006년 357명, 2007년 319명, 2008년 497명으로 해마다 증가하

고 있다. 건물이 고층화될수록 지하를 깊게 파야 하기 때문에 이런 유형

의 붕괴사고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사고를 예방할 수는 없을까. 건설현장에서 사고를 부르는 첫 번째 원인

으로는 공사기간 단축이 꼽힌다. 판교 붕괴사고는 주말인 일요일에 발생

했다. 법적으로 주 5일제가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건설현장에서는

여전히 토·일요일에도 공사가 진행된다. 판교 현장에서 일했다는 한 근

로자는 “일요일은 물론이고 새벽까지 공사가 이어질 때가 많았다”고 털

어놓았다.

판교 붕괴사고 다음날 인근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언덕 위에서 사고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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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37)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일요일에는 현장 관리직원

들도 당직 직원을 빼놓고는 대다수가 쉬기 때문에 현장의 안전관리시스

템이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화성 붕괴사고의 경우 당초

○○○개발과 함께 공동으로 시공을 맡았던 업체가 중간에 빠지면서 우

여곡절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완공 목표시점을 넘겨 공사를 서둘렀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사기간에 맞춰 공사를 진행하려다 보니 일정한 시간과 돈을 투입해야

하는 지질조사를 부실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수곤 교수가 2006년

9월부터 2009년 4월까지 전국의 절개지 100여곳의 설계보고서를 조사

한 결과, 70~80%가 부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30%는 실제 붕

괴사고가 발생했거나, 설계변경으로 보강공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긴급 대피체계 있었더라면 …

붕괴사고를 막으려면 사고의 원인을 제거해야 하고, 사고가 발생하면 시

급히 현장을 벗어나야 한다. 판교 붕괴사고의 경우 현장 근로자가 사고

를 인지한 후 붕괴가 시작되기까지 약 5분의 시간이 있었다. 만약 비상 사

7월 초 무너져 내린 흙막이 벽체의 보강 공사를 끝낸 모습이다. 근로자들이 한창 작업 중이다.

공사기간 단축은 공사의 시작인 지질조사마저 부실하게 만든다. 배기진 차장은 “보통 건설부지를

선정하면 지질조사를 한 뒤에 설계도를 작성한다”며 “붕괴사고의 대부분은 지질조사가 부실해 나

타나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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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T I P유해·위험방지계획서

산업안전보건법(제48조)에 따르면 지상높이가 31m 이상인 건축물, 연면적이 3만㎡ 이

상인 건축물과 깊이 10m 이상인 굴착공사의 경우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노동부장관은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심사한 후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상 필요

하다고 인정될 때는 공사의 착공을 중지하거나 계획 변경할 것을 명할 수 있다.

하지만 판교 ○○연구소 신축공사 현장의 경우 사전에 노동부나 한국산업안전보건공

단의 안전점검을 받지 않았다. 자율안전관리업체로 선정돼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제

출 의무가 면제됐기 때문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제121조)에 따르면 노동부장

관이 산업재해발생률 등을 고려해 자율안전관리능력이 있다고 인정해 지정하는 건설

업체는 유해·위험방지계획서 자체심사서류만 공단에 제출하면 된다.

일반업체의 경우 계획서를 제출하면 공단이 심사를 거쳐 공정별 안전준수 사항을 확

인하지만, 자율업체는 계획서를 자체적으로 심사하고 심사를 했다는 확인서류만 제출

하면 안전준수 확인이 면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자율업체 공사현장에서 중대재해가 잇따르고 있어 이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

이 제기된다. 2005년 이천물류센터 붕괴사고와 2007년 소록도 연도교 붕괴사고의 경

우 시공사가 자율업체였다. 2008년 자율업체로 선정된 46개 건설업체 가운데 2009년

2월까지 37개 업체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26개 업체는 2007

년에도 중대재해가 발생한 바 있다.

이렌이 울렸다면 근로자들이 대피할 수도 있었을 시간이다.

당시 굴삭기에 기름을 넣다 어스앵커가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는 김아

무개씨는 굴삭기 경적을 울리며 사람들에게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이어

김씨는 하청업체 현장간부 A씨에게 전화를 걸어 “흙막이 벽체 안에서 ‘

탕’ 하고 터지는 소리가 났다”고 전했다. 현장사무실로 이동하다 전화를

받은 A씨는 복공판 위에 있던 덤프트럭 신호수에게 전화를 걸어 “작업을

중지하고 덤프트럭을 밖으로 유도하라”고 지시했다. A씨는 본사에 붕괴

조짐을 보고하기 위해 공사장 인근 현장사무실로 들어선 순간 “복공판이

무너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현장에 비상 경보시설이 있었더라면 최소한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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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붕괴사고 이튿날 ○○연구소 신축공사 현장 앞으로 행인이 지나가고 있다.

이 공사 현장에는 ‘오늘도 당신의 가족은 당신의 안전을 기원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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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취 재 후 기 _ 글 조현미 _ 사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판교 ○○연구소 신축공사 현장이 붕괴된 2009년 2월15일은 일요일이었다. 이날도 건

설근로자들은 쉬지 못하고 출근했다. 그리고 세 명의 근로자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

왔다. 사고현장으로 달려간 가족들은 혹시나 남편이, 아버지가 살아 있을까 발을 동동

굴렀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일 것이다.

2008년 산업재해를 당한 근로자는 9만5,806명. 이 가운데 2,422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3시간37분마다 근로자 한 명이 숨지고, 5분29초마다 한 명씩 다치고

있다. 산업재해로 인한 피해는 당사자에 머물지 않는다. 2차 피해를 입는 산업재해자

가족이 매년 수백만명에 달한다. 이 숫자는 계속 누적되고 있다.

화성 붕괴사고 다음날 현장의 한

관계자가 사고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배기진 차장은 “근로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사 현장 곳곳에 비상

사이렌을 울리는 버튼을 설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시공사와 협력업

체 간에 비상시 공동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협의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고 말했다.

Page 186: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81

“시공사-협력업체 위험요인 공유해야”

붕괴·도괴(무너짐)란 토사나 적재물·구조물·건축물·가설물 등이 전체적으로 허물어져

내리거나 주요 부분이 꺾여 무너지는 경우를 말한다. 붕괴와 도괴를 굳이 구분하자면, 붕괴는

무너지는 것이고 도괴는 구조물 등이 넘어지면서 무너지는 것이다.

2008년 건설업에서 발생한 붕괴·도괴에 의한 사고 재해자는 497명. 2007년(319명)에 비해

56%나 늘어난 것이다. 사망자는 2005년 48명, 2006년 32명, 2007년 39명으로 들쑥날쑥했다.

2007년 사망자 39명 중 27명이 토사 붕괴사고로 사망했다.

2007년 붕괴·도괴재해는 주로 공사금액 120억원 미만의 중·소규모 건설현장(83.4%)에서

발생했다. 붕괴·도괴재해는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다른 재해에 비해 치사율이 높은 편이다.

건설업 전체 재해자 중 사망자 비율이 3%인 것에 비해 붕괴·도괴재해 치사율은 무려 17%다.

붕괴·도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현장소장과 안전관리감독자·작업반장·근로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위험성을 평가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어 위험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굴착공사

전에 지질조사를 통해 적정기울기와 흙막이 공법을 선정하고, 가설 구조물을 사전에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안전성이 확보된 공법을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계도면에 따라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시공사와 협력업체가 회의를 통해 끊임없

이 붕괴·도괴 위험요인을 공유해야 한다.

구분 계 추락 전도 충돌

낙하 붕괴 감김 절단 감전 폭발 화재 기타

비래 도괴 끼임 베임

2005 15,918 5,260 2,517 1,737 1,929 320 1,749 495 238 60 61 1,552

2006 17,955 5,873 2,855 2,274 2,108 357 1,904 597 219 78 79 1,611

2007 19,050 5,950 3,050 2,744 2,182 319 2,010 681 231 89 127 1,667

2008 20,473 6,976 3,633 1,585 2,741 497 1,636 1,461 205 108 78 1,553

포 커 스

<건설업 재해자 발생형태별 현황> (단위 : 명)

Page 187: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8 . 화학물질 바로알기_TCE(트리클로로에텔렌)

18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코리안 드림을 바라며 2005년 9월 한국을 찾은 다우(가명·24·베트남)씨. 한국의 한 대학교 국제교육원에서 1

년간 한국어를 배운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2006년 4월 인천시 남동공단에 위치한 수포산업(가칭)에 취업했다.

수포산업은 숟가락과 포크 등을 제조하는 업체로 12명의 근로자가 근무했다. 작업은 △프레스기에서 숟가락과

포크 등이 찍혀 나오면 연마기를 이용해 표면을 다듬는 공정 △가공된 숟가락 등을 세척하는 공정 △검사와 포

장 공정 등으로 나뉜다.

다우씨는 세척공정에서 일했다. 숟가락 등을 세척기에 넣어 씻은 뒤 건조시키는 일이다. 이 과정에 TCE(트리클

로로에틸렌)가 사용됐다. TCE는 무색의 달콤한 향기를 내는 휘발성 액체로 세척력이 뛰어나다. 주로 드라이클

리닝, 금속의 기름때·페인트의 시너·커피의 카페인·면과 모의 지방과 왁스 제거에 쓰인다. 현장 근로자들은

주로 금속부품의 기름때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TCE 증기를 흡입하거나, TCE 액체에 피부가 오염된다. 흡수된

TCE는 혈액을 따라 중추신경계에 전달돼 두통·현기증·구토·졸음 등을 유발한다. 고농도 TCE에 노출되면

급성간염이나 피부홍반이 나타나며, 최악의 경우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에 걸려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다우씨는 수포산업에서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일했다. 1주일에 3일 정도는 저녁 8시까지 잔업을

했다. 공장에는 밀폐설비나 국소배기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다우씨는 세척작업을 하면서 제대로 된 보호

구도 착용하지 않았다. 장갑을 끼긴 했지만 유기용제용 장갑이 아닌 목장갑을 사용했다. 마스크도 방독바스크가

아닌 베트남에서 가져온 일반 마스크를 착용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다우씨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통과 현기증을 느꼈다. 입사 한 달 뒤에는 손과 팔

에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고, 반점은 하루 만에 온몸으로 퍼졌다. 증세가 호전되지 않자 다우씨는 며칠 뒤 인

천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병세는 악화됐고 그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신세가 됐다. 그는 TCE에

의한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TCE에 씻겨 버린 베트남 청년의 꿈

Page 188: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83

붉은반점 방치하면 순식간에 죽음으로 ‘스티븐스존슨 증후군’

스티븐스존슨 증후군(Stevens-Johnson Syndrome)은 피부와 점막이 심하게 부어오르면서 손상이 생기는 질

환이다. 미국인 스티븐스 존슨이 최초로 이 병에 걸렸다.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은 1년에 100만명당 1~2명에게 발생하는 희소병이다. 피부에 작고 붉은 반점이 여러 개 생

기다가 이것이 수포로 바뀌고, 심한 경우 온몸에 부스럼이나 딱지가 생기고 피부가 벗겨진다.

TCE에 의한 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은 TCE에 노출된 지 2~3주 뒤에 증상이 나타난다. 이때 치료를 하지 않고

TCE에 계속 노출되면 1~2개월 안에 사망한다. 이 때문에 TCE를 취급하는 사업장의 사업주(관리감독자)는 물질

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해 근로자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해야 한다. 또 TCE를 취급하는 근로자에게 TCE의

위험성·취급시 주의사항·비상시 조치사항 등을 교육하고, 호흡용 보호구를 지급해야 한다.

TCE 취급 공정은 6개월에 한 번 이상 작업환경측정을 실시해 TCE의 농도를 관리하고, TCE 증기 발생지역에는

밀폐설비나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해야 한다.

또한 근로자를 TCE 취급업무에 배치하기 전에 건강진단을 실시해 간기능을 확인하고, 배치 후 6개월 안에 첫 번

째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해야 한다. 이후 1년에 한 번 이상 정기적으로 특수건강진단을 실시해 간기능 이상 여부

를 확인해야 한다.

Page 189: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8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위험요소 많은 플랜트 현장,

재해가 줄고 있다

○○제철소 건설현장

사람이 사는 곳이면

늘 크고 작은 사고들이 일어난다. 사고로 인해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

가기도 하고, 때로는 목숨을 잃는다. 수백 킬로그램이 나가는 중량물이

많고, 수십 미터의 높은 곳에서 일하는 현장은 말할 필요도 없다. 플랜트

건설현장이 바로 그런 곳이다.

모두 조심하고, 모두 함께 신경 써야

2008년 3월 어느 날 ○○제철소 건설현장. 건설자재를 옮기던 중 강판에

부착돼 있던 안전고리가 떨어졌다. 강판은 아래에서 전기용접을 하던 이

아무개(당시 50세)씨를 덮쳤다. 이씨는 이 사고로 가슴에 충격을 받았고,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러나 심장 주위에 있는 주요 혈관이 이미 손

상된 상태였다. 이씨는 결국 사망했다.

같은해 6월에는 임아무개(당시 48세)씨가 17m 높이의 구조물에서 작업

비계(가설 발판구조물)를 설치하다 작업대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2009년 2월에는 장아무개(당시 36세)씨가 6.5m 높이의 작업장에서 크

레인 샤클을 풀던 도중 작업대가 갈라지면서 추락해 숨졌다.

이 현장은 740만㎡(224만평)에 이르는 대지에 400만톤 규모의 조강 생

산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고로 2기를 비롯해 항만·철강저장소·자체

Page 19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85

발전소를 짓는 대규모 공사다. 워낙 공사규모가 크다 보니 그만큼 위험

요소도 많다.

사고예방은 혼자만 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2008년 3월 숨진 이

씨는 느닷없이 날아온 강판에 부딪혀 목숨을 잃었다. 플랜트 공사현장

의 산업재해는 모두가 조심하고 모두가 함께 신경을 써야 줄일 수 있다.

그래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제철(주) 제철사업단이 손을 맞잡

았다. 양측은 2009년 3월 ‘안전실천 파트너십 협약’을 맺고 건설현장 재

해를 줄이기 위한 공동활동에 나섰다. 일관제철소 건설에 참여한 시공사

들과 노동부 대전지방노동청 천안지청 산업안전과도 동참했다. 2009년

7월1일 충남에 있는 공사현장을 찾았다.

신영호(50) 건설안전총괄본부 총괄임원(이사)은 “여러 시공사가 건설공

사에 참여하다 보니 책임을 지고 총괄하는 주체가 없어 안전관리에 소홀

충남 당진군 소재 ○○제철소 건설공사는 740만㎡(224만평) 의 부지에 항만·철강저장소·자체 발전소를 비롯해 연간 400만톤 규모의 조강(철강)

생산능력을 갖춘 2기의 고로 등을 설치하는 대규모 공사다.

“민관이 힘을 모으니까 산업재해 예방활동이 훨씬 순조롭습니다. 시공사가 안전활동을 벌이긴 하

지만 아무래도 정부가 나서야 효과적입니다. 업체뿐 아니라 근로자들도 각별히 신경을 쓰니까요.”

Page 191: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8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며 “산업안전보건공단과 안전협약을 맺은 이후

임원급이 참여하는 건설안전총괄본부가 생겨 다른 시공업체들의 협조

를 받기가 쉬워졌다”고 평가했다.

하루 1만여명 넘게 일하는 공사현장

이 건설현장은 추산비용만 5조8,400억원에 달하는 대형 플랜트 공사다.

2006년 10월 기공식과 함께 시작된 건설공사는 2009년 7월 현재 공정률

70%를 넘어섰다. 2010년에는 국내 최대 규모인 400만톤급 고로가 시험

가동된다. 180여개의 건설업체들이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 하루 평균 1

만1,000여명의 근로자가 공사현장에서 땀을 흘린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320만명에 달한다.

공사 자체가 대규모인 데다, 하루에만 1만여명이 넘는 근로자들이 일하

다 보니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공단 충남지도원의 김일수(46)

건설안전팀장은 “사고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적게 나고, 일어나

작업현장이 높고 중량물을 다루는 작업이 많아 추락이나 전도(넘어짐) 사고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Page 192: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87

더라도 근로자가 다치지 않도록 예방활동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공사가 시작된 이후 이 현장에서 일어난 사고는 2009년 6월 현재 53건.

플랜트 공사현장에서 발생하는 재해는 일반 건설현장의 사고 유형과 비

슷하다. 다만 협착(끼임)보다는 추락이나 전도(넘어짐) 사고가 많이 일

어난다.

공단 충남지도원에 따르면 플랜트 건설공사에서 건축공정별 사고빈도

는 토목공정을 1로 할 때, 구조물 공정은 1.2배, 기계설비 및 마감공정은

1.5배가량 많다. 토목과 구조물공정은 크고 무거운 건축자재가 많이 사

용되고 작업 현장도 높은 곳이 많다. 시공사는 물론 근로자들도 안전에

신경을 쓰기 때문에 사고 발생빈도가 오히려 낮다. 반면에 추락 등의 사

고가 일어나면 근로자가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아 재해의 내용은 심각한

편이다.

작업현장 높고, 중량물 많고

마감공정에서는 사고가 많이 일어나지만, 재해의 내용은 덜한 편이다.

더러 큰 사고도 발생하지만, 산재 판정을 받더라도 요양기간이 29~90일

안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감공정에서 사고 빈도수가 늘어나는

것은 일반 건축과는 다른 플랜트 공사의 특징이다.

한 근로자가 300여m 높이의 굴뚝

에서 작업 중이다.

Page 193: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8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마감공정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전도(넘어짐)가 많은데, 구조물이 규모

가 크고 철근 등으로 만들어져 단단하기 때문에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는

작은 실수도 재해로 이어질 수 있다.

2009년 7월 현재 이 현장의 건축공정은 구조물공정에서 기계설비 및 마

감공정으로 넘어가고 있다. 2009년 초까지는 제철소의 토대를 다지는

토목공사와 공장·구조물의 뼈대를 세우는 작업이 진행됐다. 2008년에

는 사망사고가 두 건이나 일어났고, 요양기간이 6개월이 넘는 재해가 12

건이나 발생했다. 그렇지만 2009년에는 7월까지 사망사고 1건, 6개월

이상(1년 미만) 요양재해도 3건으로 감소했다.

사고는 근로자 모두가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

다. 건설안전총괄본부의 오태환(44) 건설안전팀장은 “플랜트 공사는 다

른 건설업체가 같은 작업장에서 동시에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며 “높은

곳에서 작업하다 공구를 하나 떨어뜨려도 밑에서 작업하는 사람이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만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 지

적했다.

민관 합동 안전점검, 산재율 낮췄다

공단과 ○○제철 제철사업단은 안전실천 협약을 맺은 이후 산재를 줄이

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각종 홍보는 물론 안전시설도 집중점검하고 있다.

별다를 것 없는 기본적인 안전활동이지만,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모여야

재해를 줄일 수 있다. 안전 확보를 위한 획기적인 방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740만㎡에 이르는 넓은 건설현장을 일일이 다니면서 안전시설을 점검하

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단은 2009년 4월 노동부·시공사 안

전감독관들과 함께 7일에 걸쳐 합동점검을 실시했다. 수십미터 높이의

공사현장까지 올라가는 등 하나하나 꼼꼼히 점검했다. 점검보고서를 작

성하는 데만 3일이 걸렸다. 사후 조치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특히 협약

체결 이후 발주처가 산업안전활동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했다. 기존 안전

총괄팀도 임원급이 책임지는 건설안전총괄본부로 승격됐다. 본부 인원

Page 194: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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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충남지도원 김일수 팀장이 현장 건설안전총괄팀 직원과 함께 150여m 높이의 굴뚝에 올라 현장을 둘

러보고 있다.

위로 솟은 굴뚝, 옆으로 뻗은 배관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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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카메라를 통해 현장 구석구석을 살피는 종합상황실(아래 우측), 굴절사다리차 등을 갖춘 소방서(아래 좌측)

와 안전체험교육장(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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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T I P3대 다발재해란?

협착·전도·추락 재해를 말한다. 공단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발생한 산

업재해 가운데 50.2%가 3대 다발재해였다. 협착재해자는 연평균 1만7,311명으로 전체

연평균 재해자(8만8,530명)의 19.6%를 차지했다. 전도재해자는 17.5%인 1만5,474명,

추락재해자는 13.1%인 1만1,608명이다.

플랜트 공사는 협착보다는 전도와 추락재해가 많다. 제조업과는 달리 작업현장이 높

고 중량물을 취급하기 때문에 미끄러지거나 넘어짐과 같은 작은 사고도 재해로 이어

질 수 있다. 협착과 전도는 우리말로 끼임과 넘어짐을 의미한다.

이 3명에서 11명으로 대폭 늘었다. 현장을 점검하는 안전감독관까지 합

치면 60명이 넘는다.

이에 따라 2009년 4월을 기점으로 재해발생 건수가 크게 줄고 있다. 충

남지도원은 ○○제철소 건설이 구조물공정에서 마감공정으로 넘어가고

있는 만큼 사고가 지난해보다 많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2009년 1월 5건에서 2월 8건, 3월 17건으로 치솟던 재해 건수가 4

월 12건, 5월 9건, 6월 7건으로 줄었다. 사고 자체를 막지는 못했지만, 공

정상 사고가 줄고 있는 것이다. 6월까지 발생한 재해 건수는 58건으로,

충남지도원이 2009년 초 공정별 비교·분석을 통해 예상했던 재해건수

(91건)를 크게 밑돌았다.

물론 안심하기엔 이르다. 2009년 하반기부터 마감공정이 본격적으로 진

행되기 때문이다. 김일수 팀장은 “공단과 제철사업단의 협약 체결이 안

전에 대한 관심을 높였고 함께 노력하면서 재해발생 건수가 실제 줄고 있

다”며 “안전교육과 안전점검을 꾸준하게 진행해야 재해발생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Page 197: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9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취 재 후 기 _ 글 김봉석 _ 사진 정기훈

노력한 만큼 얻는다는 말이 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렇다고 노력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이루는 것은 아니다. 산업안전보건공단과 ○○제철(주) 제철

사업단이 파트너십을 맺고 안전활동에 나서고 있는 것은 그런 ‘노력’ 중 하나다. 이 같은

노력으로 산업재해 자체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줄이고 싶은 것이 산업안전 담

당자들의 꿈이다. 막상 그들을 만나니, 그 꿈을 느낄 수 있었다.

갈 길은 멀지만 한 걸음부터 시작이다. 이들의 노력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

지 장담할 순 없지만 그들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언젠가는 결실을 맺으리라 믿고 싶다.

건설안전총괄본부 임직원과 산업안전보건공단 충남지도원 직원들이 제철소의 핵심설비인 고로 건설현

장 앞에 함께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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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제철소 건설현장 … 의료·소방시설까지 갖춰

○○제철소 시공사들은 대규모 건설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답게 안전설비도 상당히 잘

갖추고 있다. 안전을 총괄하는 방재센터 건물이 따로 있고, 자체 의료·소방능력도

보유하고 있다.

이 건설현장에는 총면적 1,140㎡(345평)의 2층짜리 방재센터 건물이 있다. 건설현

장 안전을 총괄하는 건설안전총괄본부가 입주해 있다. 의사 1명과 간호사 2명이 항

상 대기하는 부속병원도 이 건물 안에 있다. 응급환자나 급·만성환자 치료가 가능

하다. 응급환자 이송을 위한 응급차도 갖추고 있다. 소방차 2대와 45m 사다리차도

운용한다.

방재센터에 있는 안전시설 가운데 핵심은 건설안전 종합상황실이다. ○○제철소 주

요 건설현장에는 37개의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37개 카메라와 연결된 17개의 모니

터를 통해 현장을 상시 점검한다.

안전모·안전벨트·안전화와 같은 개인보호구 착용 여부와 안전난간대·생명줄·

추락방지망과 같은 안전시설 설치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작업현장에서는 차량 이

동속도가 20㎞ 이하로 제한된다. 차량이나 크레인을 구동할 때는 반드시 신호수를

배치해야 한다. 안전관리가 미흡할 경우 카메라 근처에 설치된 40개의 스피커를 통

해 곧바로 시정을 요구한다.

이 건설현장에는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육장 5곳이 마련돼 있다. 교육장에서

는 안전교육과 화재교육이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된다. 공사에 참여하는 건설근로자

모두가 교육대상이다. 실제 높은 곳에 올라가 보고, 떨어져 보고, 부딪혀보면서 안전

의 중요성을 체험할 수 있는 건설안전 체험장도 별도로 만들었다.

신영호 총괄임원은 “예전과는 달리 건설사들도 재해 예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

고 있다”며 “○○제철소 안전본부는 재해 예방은 물론 재해가 발생하더라도 외부의

도움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포 커 스

Page 199: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8 . 산재판례 따라잡기

19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인파가 많은 길거리에서, 혹은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죽거나 미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호흡곤란을 겪은 적이 있다면?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가슴통증이나 압박감이 느껴지고, 실신한 적이 있다면?

이런 증상이 10~20분가량 나타났다가 급격히 사라졌다면 당신은 공황장애일지도 모른다.

대부분 첫 공황발작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태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난다. 약 10분에 걸쳐 급격하게 증상이

심해지는데, 증세가 오래 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제 또 공황발작이 찾아오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불안과 공포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지하철 기관사의 경우 공황장애를 앓을 가능성이 일반인보다 무려 7배나 높다. 사람을 치거나 다치게 한 경험 탓

이다. 언제라도 운행사고를 낼 수 있다는 스트레스는 사상사고 경험이 없는 기관사에게도 공황장애를 유발한다.

전동차 지연사고 이후 공황발작

서울메트로 기관사 김아무개(52)씨는 2003년 3월 기관사로 전직발령을 받았다. 기관사로 일한 지 4년여 만에 전

동차 지연사고가 연달아 터졌다. 2007년 7월 초, 출입문 개방 문제로 9분간 전동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며칠 뒤

에는 전동차 전기보조장치가 고장나 20여분간 운행이 멈췄다. 당시 신문과 방송에는 ‘전동차 고장으로 시민들

의 발이 묶였다’고 보도됐다.

이후 김씨는 ‘미숙 기관사’로 분류돼 6개월간 전동차 고장 처리교육을 받았다. 사실 20여년 전 서울메트로 입사

당시 김씨는 역무원이었다. 기관사로 발령받기 전까지 건강에 어떤 이상도 없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기

는 했지만 가족 중에 정신질환을 앓은 이도 없었다.

하지만 전동차 지연 사고 이후 김씨는 목에 무엇인가가 덜컥 걸리는 느낌이 나고 거품이 있는 침이 역류되는 이

상증상이 나타났다. 가슴이 뛰고 숨이 차 열차 운행을 계속하기 힘들었고, 결국 응급실로 후송됐다. 그해 5월 김

사상사고 경험 없는

기관사 공황장애도 산재

Page 20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95

씨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공단은 “업무와의 연관성보다는 개인적 취약성으

로 공황장애를 앓게 됐다”며 산재신청을 불승인했다. 김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직접적 원인 없어도 스트레스가 질병 악화시켜

이 사건의 원고는 김씨,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서울행법은 이례적으로 사상사고를 경험하지 않은 지하철 기

관사의 공황장애도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요지는 이렇다.

“김씨는 기관사로 전직된 이후 고속운행에 대한 불안감과 정확한 시간에 출발과 정차를 반복해야 하는 긴장감

과 운행지연으로 인한 경위서 제출, 승객들의 항의와 언론보도와 이로 인한 문책성 교육 등으로 지속적인 육체

적 피로와 정신적·심리적 스트레스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발병에 따른 전환배치로 기관사 업무를 수행

하지 않은 이후 공황장애 증상이 상당히 호전된 점이나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지하철 기관사들 중 상당

수가 공황장애를 호소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 볼 때 이 사건은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

공황장애가 발병하는 데에는 유전적·생물학적 요인과 함께 환경적·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알

려졌다. 이 사건의 쟁점은 김씨의 공황장애가 개인적 요인에 의해 유발됐는가, 업무·환경적 요인에 의해 발생

했는가를 가리는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의 성격이나 유전적·생물학적 요인 중에는 공황장애의 발병원인이 내재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부는 그보다 김씨가 기관사로 전직한 이후 겪었을 육체적 과로와 정신적 스트

레스에 주목했다. 직접적인 발병원인이 될 수 있는 사상사고가 아니더라도 김씨가 느꼈을 과로와 스트레스가 공

황장애를 유발하거나 자연적인 진행경과 이상으로 악화시킬 수 있다는 데 무게를 둔 것이다.

관련 판례

•서울행법 2009년 5월14일 판결

2008구단702 요양불승인처분취소

Page 201: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9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제 나이는 이제 19살입니다”

장애 극복한 지체장애 1급 김충현씨

명함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대전광역지도원, 산업재해예방교육 강사, 솔정

산재문화연구소 소장, 한국장애인미술협회 회장, 한국장애인서예협회

부회장,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장애인문화정책기획단 위원….

2009년 5월13일 대전 영광교회에서 만난 김충현(58)씨. 그는 지체장애

1급이다. 91년 한샘에 근무하던 중 당한 추락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아파트 시공현장을 점검하고 회사로 돌아가다 5m 높이의 구덩이로 떨어

진 것이다. 그는 휠체어가 없이는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정상인도 소

화하기 어려울 정도의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장애인미술협회 업무

를 보러 일주일에 두세 번은 서울에 올라간다. 요즘은 장애인 미술 전시

회가 얼마 남지 않아 집이 있는 대전보다 서울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틈

틈이 교회에서 노인들을 상대로 무료 서예 강의도 진행한다. 몸도 그에

게 “무리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는 걸까.

최근에는 부쩍 몸이 쑤시고 아프다고 했다. 김씨는 섭씨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방한복과 양털 장화를 신고 있었다.

“다친 이후로는 몸에 땀이 나질 않아요. 그늘에서 1시간 이상만 있으면

온몸이 뻐근하고 욱신욱신해요. 비 오기 전후로는 고통이 더 심해지죠.

최근에는 허리통증도 심해져 파스를 붙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네요.”

Page 202: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97

사고 … 좌절 … 가정불화

김씨는 “처음에는 장애인이 됐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죽을 결심

까지 했다”며 “TV에나 봤지,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고 털

어놓았다. 좋다는 병원은 다 찾아다녔고, 효험이 있다는 약은 다 먹었다.

그러다 찾은 곳이 대전중앙병원. 재활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는 말을

듣고 대전으로 내려갔다. 집도 옮겼다.

“당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설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얼마동안은 휠체어도 사지 않았어요. 좋다는 치료는 다 받

았어요. 엄청 고통스러웠지만 재활훈련도 착실히 받았어요.”

그러나 그의 바람은 단지 희망일 뿐이었다. 척추관련학회에 직접 참석하

고서야 “척추 환자가 다시 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

였다. 김씨는 “당시 느꼈던 좌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

했다.

2년 가까이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했지만, 생활은 엉망이 됐다. 몸도 몸

이지만 절망감이 그를 엄습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아내와 자주 싸

웠고, 아이들도 엇나가기 시작했다.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몸 여기저기

에 욕창이 생겼다. 대변을 볼 때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소변조차 스

스로 해결하기 힘들어 외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김충현씨의 부인 정귀순씨가 휠체

어를 분리해 차량에 싣고 있다. 뒷

바라지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지

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Page 203: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9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김충현(사진 가운데)씨가 대전의 한 교회 노인대학 서예강좌 시간에 수강생들의 부채글씨 작품을 검토 중이다.

전시회가 얼마 남지 않아 선생님도 학생도 정신없긴 마찬가지다.

Page 204: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199

Page 205: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0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김씨의 아내 정귀순(55)씨는 “본인도 힘들었겠지만, 옆에 있는 나도 우울

증이 걸릴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루는 볼 일이 있어 남편이 근무했던 회사를 찾아갔어요. 남편의 동료

들은 부장이나 이사로 승진해 비서를 두고 일을 하고 있더군요. ‘우리 남

편도 다치지 않았으면 넥타이를 매고 근무를 했을 텐데’라는 생각에 가슴

이 너무 아팠어요. 다치기 전에 회사에서 꽤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었

거든요. 차장으로 승진하고 얼마 되지 않아 사고를 당한 거예요.”

정씨는 그날 저녁 남편에게 “다시는 회사에 가지 말자”고 말했다.

제2의 인생을 설계하다

김씨는 가족이 아파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조금씩이나마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사고를 당한 지 3년 만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화폐

산재의료원 대전중앙병원 특수재활치료실을 찾은 김충현(오른쪽)씨가 재활치료 중인 한 장애인 미술가

와 전시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짜배기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한다.

Page 206: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01

김충현씨의 아내가 병원 들머리 오르막에서 휠체어를 밀어 주고 있다.

며칠간 궂은 날씨가 이어진 탓에 김충현씨는 자주 하반신 통증을

호소했다. 통증을 이기려 상체를 앞뒤로 움직이고 있다.

병원 재활치료실 한켠 벽에 설치된 기구를 이용,

김충현씨가일어섰다. 5분여의 짧은 시간이지만 운동을 마친

김씨의 표정이 밝았다.

Page 207: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0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나 우표를 수집하는 작은 활동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병원 입원 당시 배

웠던 서예로 관심을 돌렸다. 평소에 글씨 쓰는 것을 좋아한 탓에 쉽게 적

응할 수 있었다. 94년 6월 병원에서 함께 치료를 받았던 동료들과 서예

모임인 ‘붓사랑’을 만들었다. 이후 서예협회로, 장애인미술협회로 활동

반경을 넓혔다.

“사회활동을 시작하니 생활이 변하더군요. 아내와의 관계도 좋아졌고,

아이들도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이제는 모든 일을 즐기면서 하고 있습

니다.”

김씨의 아들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현재 대전에서 사회복지

사로 활동하고 있다. 딸은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육교사로 일하고 있다.

아내도 사회복지사다. 김씨의 사고가 가족들의 삶을 뒤바꾼 것이다.

김씨는 “내 나이는 19살”이라고 말한다. 사고를 당한 후부터 제2의 인생

을 살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근로복지공단 재활수기 공모에 당선된 것

을 계기로 산업안전보건공단 지도원 활동도 시작했다. 일주일에 수십 시

간씩 근로자들을 상대로 안전교육을 진행한다. 그에게 4월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달이다. 장애인의 날이 있는 데다, 산업재해 관련 행사가 집중

돼 있기 때문이다.

T I P척수손상

척수손상은 교통사고·추락·둔상·스포츠둔상 등 외상에 의한 경우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척추 결핵·추간

판 파열·횡척수염·종양·동정맥 기형 등 비외상성으로 오기도 한다. 척수는 중추신경으로 사지의 운동 및 감

각을 관장하고, 여러 내장기관의 기능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척수의 손상부위와 정도에 따라 환자에게 나타나

는 증상은 다양하다. 운동마비와 동작의 제한, 감각손실, 배뇨·배변장애가 나타난다. 이외에도 심혈관계, 호흡기

계, 위장관계, 비뇨기계, 내분비계 등 신체의 모든 기능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환자들이 이동이 가능하게 되면 재활치료를 받게 되는데, 이때 치료의 목표는 환자의 척수손상 정도에 따라 가능

한 최고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보행이 치료 목표일 경우는 보행훈련을 한다.

Page 208: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03

지금까지 받은 상패와 표창만 수십 개에 달한다. 2008년 4월에는 대통령

으로부터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받았다. 같은해 10월에는 문화체육관광

부가 주는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공로상을 수상했다. 언론에서

도 역경을 이겨 낸 그를 주목했다. 방송사와 신문사 등 언론매체의 스포

트라이트를 받았다. 김씨는 “이제는 인터뷰가 익숙하다”고 너스레를 떨

정도로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김씨가 산업안전교육을 할 때 반드시 빼

놓지 않는 말이 있다. “행복은 행복할 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는 것이다.

‘설마’가 인생 바꿔

“산업현장에서 ‘설마’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습니다. 저를 보십시오.

오직 잘살기 위해 24시간 일했는데 한순간의 실수로 이렇게 됐습니다.

몸만 망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까지 파탄 납니다. 건강과 행복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겁니다.”

그는 “안전모를 쓰지 않아 낙하물에 뇌를 다쳐 팔다리를 못 쓰는 경우도

봤고, 안전화를 신지 않아 다리를 절단한 사람도 봤다”며 “근로자들 스스

로가 안전수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인터뷰 내내 “산업재해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조합원들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어떤 활동

보다 중요하다”며 “산업재해 예방활동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에 대해서는 “홍보만 하지 말고 기업에 대한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

고 당부했다.

“산재로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이 사회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게 가장 절실해요. 평범한 삶을 살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됐

는데, 살기 쉽겠습니까. 그런데도 정부와 병원은 변변한 사회적응교육

없이 환자들을 내보내고 있어요.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대부분 기업들은 사고가 발생한 후 수습하는 사후약방문식 조치만 하고 있어요. 산업안전 관리자

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줘야 합니다. 산업재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다는 점

을 명심하고 예방활동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합니다.”

Page 209: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0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취 재 후 기 _ 글 신현경 _ 사진 정기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김충현씨의 목소리는 너무도 씩씩했다. 아픈 사람 맞나 싶었

다. 5월 대전 영광교회를 찾아갔을 때 그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점심도 거른 채 서예

를 가르치고 있었다. 솜바지에 털장화를 신고 있지 않거나,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

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를 장애인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김씨도 그렇지만

옆에서 하루도 떨어지지 않고 그를 돕는 아내와 아들, 딸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

급작스러운 일을 당했을 때는 하늘이 무너졌었다”며 태연하게 웃으면서 얘기하는 그

와 아내. 아마도 고통의 세월을 버틴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아닐까. 김씨의 말

이 귓가에 맴돈다. “순간의 실수가 평생을 좌우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산재장애인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김씨는 “더 이상 앉아서 남이

해 주기만을, 도와주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자세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Page 21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05

질병과 사고 등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과 중증재해

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노동부

의 2008년 산업재해통계에 따르면 2008년 12월

현재 4일 이상 요양을 필요로 하는 재해자는 9만

5,806명이다. 사망은 2,422명, 부상은 8만4,624

명이다. 업무상질병 요양자는 8,760명이다. 재해

율은 0.71%로 2007년에 비해 0.01%포인트 감소

했다.

반면에 사망자는 전년 대비 0.7%(16명) 증가했다.

업무상사고로 인한 사망자도 크게 늘었다. 1,448

명으로 2007년(1,383명)보다 65명(4.7%포인트)이

늘었다. 중증장해인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

다. 1~3등급 판정을 받은 근로자는 486명으로 2007

년(485명)과 비슷했다. 그러나 장해등급 1급(164명)

판정을 받은 근로자는 2007년(156명)에 비해 9명

(5.1%) 증가했다. 장해등급 4~7등급은 같은 기간 4,393명에서 4,430명으로 약간 증가했다.

장해등급은 보통 1~3등급일 경우 노동능력 상실도는 100%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일상

생활이 불가능하다. 4~7등급은 노동능력 상실도가 50% 이상이고, 본래 직장으로 복귀가 어려

워 전직훈련을 받아야 한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장해등급별 산재장애인 발생현황을 살펴보면, 2001년 1~3등급 판정을

받은 규모는 293명에 그쳤다. 그러나 2004년 712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2006년에는 1,117명으

로 급증했다. 4~7등급도 2001년 2,907명에서 2006년 5,509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8~14

등급은 같은 기간 2만1,960명에서 3만1,963명으로 1만명 정도 증가했다.

산업재해로 인한 중증장해 매년 증가

포 커 스

Page 211: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9 . 화학물질 바로알기_카드뮴

20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수십 년 동안 같은 일에 종사하면 동일한 유해물질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특정 직업병에

걸릴 위험은 높아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자신이 직업병에 걸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조아

무개(56)씨의 경우도 그렇다.

조씨는 78년 냉·난방기 제조업체인 (주)산전(가칭)에 입사했다. 그는 이때부터 용접작업을 했다. 은납땜용

용접봉을 이용한 산소용접이었다. 2001년에는 (주)산전에서 분사된 (주)퓨코산업(가칭)으로 이직했다. 퓨코

산업은 에어컨에 들어가는 냉매압축기를 생산하는 회사였다.

퓨코산업은 냉매압축기의 일종인 스크롤식 압축기과 왕복동식 압축기를 제조하는 공정으로 나뉘어 있었다.

왕복동식 냉매압축기를 제조공정에서 은납땜용 용접봉을 사용해 용접을 했다.

조씨가 몸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입사 19년째인 97년부터다. 양쪽 무릎과 발목 관절 주의의 뼈가 시

리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는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고 몸에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별다른 치료를 받지는

않았다.

2004년 3월 회사에서 실시한 특수건강검진에서 조씨는 직업병 유소견 판정을 받았다. 카드뮴 중독이었다.

조씨의 혈액과 소변에서 카드뮴 농도가 기준치보다 2~3배 높게 나왔다. 같은해 5월 대학병원에서 신장·호

흡기·골관절질환 진단을 받았다.

조씨가 근무하는 작업장은 항상 연기가 자욱했다. 용접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중금속인 흄이 배출됐다. 카드

뮴도 섞여 있었다. 국소배기시설이 설치돼 있었지만 공기정화기능은 낮았다. 이런 곳에서 조씨는 오전 8시부

터 오후 5시30분까지 일했다.

조씨에게 직업병이 발견되자 회사는 전체 근로자를 상대로 건강검진을 실시했다. 왕복동식 냉매압축기 제조

공정에서 일하던 근로자 5명 중 2명의 혈액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카드뮴이 검출됐다. 이들은 모두 은납땜용

용접봉을 사용해 10년 넘게 산소용접을 한 근로자들이었다.

근로자 건강까지 녹여버린 용접봉의 카드뮴

Page 212: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07

카드뮴을 흡입하면 신장질환이나 폐암에 걸릴 수 있다. 기침과 호흡곤란·혈뇨·단백뇨·부종 등도 나타난

다. 카드뮴을 사용하는 작업장의 근로자들은 흉부방사선·신기능·폐활량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아야 증세

를 확인할 수 있다.

카드뮴을 사용하는 사업장은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해 환기해야 하며, 6개월에 한 번 이상 카드뮴 노출수준을

측정해야 한다.

카드뮴과 ‘이따이이따이’병

카드뮴은 은백색을 띠는 분말 또는 금속으로 연성·전성이 풍부해 가공하기 쉽다. 내식성(부식을 잘 견딤)이

뛰어나 통신기 재료와 도금에 사용된다. 주로 은·구리·니켈과 혼합해 합금을 만드는 데 사용하고 전기도금

제·스프레이 도장제·축전지 재료로도 쓰인다.

카드뮴 중독은 50년대 말 일본 광산촌 주변 주민에게서 처음 발견됐다. 일본 도야마현 진즈강 유역 상류에 위

치한 동방아연 신강영업소에서 폐기한 폐광석에 함유돼 있던 카드뮴이 하천으로 흘러들었다. 하천수를 농업

용수로 사용한 농토에 카드뮴이 축적됐고, 이 농토에서 수확한 쌀은 카드뮴이 오염됐다.

이 쌀을 30여년 동안 먹은 주민 260여명이 카드뮴에 중독됐다. 대부분 아이를 낳은 중년여성이었다. 요통·

근육통이 시작됐고, 수년 후 보행불능으로 이어졌다.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몸을 조금만 움직이거나 기침만

해도 뼈가 부러질 정도였다. 일본인들은 이 같은 증세에 ‘아프다아프다’라는 뜻인 ‘이따이이따이’라는 병명

을 붙였다.

Page 213: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0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유령 보고 게임하면서 깨닫는

‘안전불감증’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GS건설 안전체험 교육현장

“저런저런. 이봐, 위험해!”

한 아파트 신축공사장. 유령이 동료들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 얼마 전 안

전대를 매지 않아 추락사한 근로자의 원혼이다.

공사장을 떠도는 유령들

유령의 눈에는 위험하고 아찔한 장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안전대를

매지 않고 고층을 오가는 동료들, 발파작업 중인 곳에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암벽 조각들, 매듭이 약해 풀어지기 직전인 로프…. 유령이 안타

까운 마음에 “조심하라”고 소리치지만 들릴 리가 없다.

밤이 되자 동료 유령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자재더미에 맞아 머

리 일부분이 없어진 유령, 용접작업 중 화재사고로 몸이 새까맣게 타 버

린 유령, 도로포장 작업 중 롤러에 깔려 피투성이가 된 유령…. 동료나 자

신들의 부주의함을 탓하며 뒤늦게 눈물을 흘리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Page 214: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09

안전과학수사대 “진범은 안전불감증”

유령이 집으로 가 가족들을 지켜본다. 자신이 죽은 뒤 생활고에 시달리

는 모습에 가슴이 미어진다. “안 돼! 안 돼!” 소리치다 보니 꿈이다. 근로

자는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과연 꿈으로만 끝날 일일까.(GS건설 안전혁

신학교 건설가상안전체험교육 입체영화 중에서)

어느 공사장 지하에 마련된 자재창고에서 지게차 운전수 조씨가 자재더

미에 깔려 숨진 채 발견됐다. ‘안전과학수사대’가 출동해 타살인지, 사고

사인지 수사를 시작했다. 범인은 현장소장이었다. 평소 허리가 아픈 조

씨를 돕기 위해 현장소장이 지게차를 운전하다 조작미숙으로 자재더미

가 조씨 위로 쏟아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수사를 하는 도중에 두 명의 근로자가 사고를 당했다. 지

반이 무너지면서 경사로를 오르던 굴삭기가 뒤집혀 운전수가 사망했다.

미리 지반조사를 하고 안전조치를 취했으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

한국전력 계열사 현장관리직과 소방관들로 이뤄진 교육생들이 인천시 부평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내 가상안전체험관에서 입체안경을 쓰고

화면을 보고 있다. 앞쪽의 조종간을 움직여 가상의 현장에서 위험요소를 찾아내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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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벨트식 안전대를 이용해 공중에 매달린 교육생들이 괴로워하고 있다. 허리부분으로 지탱하는 벨트식은 질식

이나 척추부분 골절 등을 가져올 수 있어 위험하다.

Page 216: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11

“위험요소를 찾아라” 가상체험교육

이번에는 외벽 도장을 하던 근로자가 추락사했다. 대충 묶은 로프가 풀

려 버린 것이다. 안전대와 안전고리만 연결했어도 살 수 있었다. 역시 최

종 책임은 현장소장에게 있다. 현장소장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와 관리

소홀 등 직무유기 혐의로 체포됐다. 안전과학수사대는 “진범은 소장이

아니라 안전불감증”이라고 입을 모은다.(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건설가

상안전체험교육 입체영화 중에서)

건설공사 현장에서 사고의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위험요소를 사

전에 제거하기 위해서는 현장 관리자들의 감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알

고만 있는 것과 간접체험이라도 해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5월13일 GS건설이 운영하는 경기도 소재 안전혁신학교 가상체험교육

장. GS건설이나 협력업체 공사현장 관리자로 구성된 30여명의 교육생

들이 입체안경을 끼고 조이스틱(조종대)을 붙들고 가상체험 게임을 벌

이고 있다.

조종대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온라인게임의 전쟁게임처럼 시선이 앞뒤,

좌우로 움직인다. 공사장 구석으로 들어가니 지게차 작업이 한창이다.

그런데 신호수를 배치하지 않아 근처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치일 것 같

다. 교육생이 “위험”이라고 소리쳤다. 지게차가 빨간색으로 변한다. 제

대로 문제점을 파악했다는 뜻이다. 곧바로 주위 근로자와 충돌하는 끔찍

한 장면이 입체화면을 통해 펼쳐진다. 교육생들이 앉은 진동의자가 크게

흔들린다. 이어 “건설장비를 운행할 때는 주위에 반드시 유도자나 신호

수를 배치해야 한다”는 문구가 나온다. 화면은 유도자가 배치된 정상적

인 모습으로 바뀐다.

공사현장을 입체화면으로 보여 주고 위험요소를 정해진 시간 안에 찾아

내는 가상체험교육이다. 안전대를 매지 않거나 개구부(구멍) 표시를 하

지 않아 추락사고가 우려되는 곳, 유도자나 신호수를 배치하지 않아 포

클레인과 같은 건설장비와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을 찾아내야 한다. 현장

을 감독하는 관리자들은 문제점을 빠르고 정확하게 지적하는 날카로운

시선이 필요하다. 가상체험 장소는 아파트·터널·도로·용접현장·발

파현장 등 다양하다.

Page 217: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1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자세히 보세요, 자세히. 뭐가 문제인지.” 위험한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

하고 지나치는 교육생에게 어김없이 강사의 호통이 떨어진다. 한 사람씩

가상체험을 하고 나면 필기시험을 치른다. 80점 이상을 받지 못하면 수

료증을 받지 못하고,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한다.

가상체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건설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사고를 체

험하기 위해 공사장과 흡사하게 꾸며 놓은 세트장에서 현장체험교육도

진행된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짧은

순간이다. 언제 떨어질지 예상할

수도 없다. GS건설 안전혁신학교

내 ‘개구부 추락체험장’에서 한 교

육생이 ‘추락’하고 있다.

Page 218: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13

“어”하는 순간 구멍으로 추락

같은 날 오후 인천시 부평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현장체험교육장. 한

국전력 계열사 관계자들과 소방관들로 이뤄진 교육생들이 안전모와 안

전대를 착용하고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현장 관리직이다 보니 안전대를

처음 매는 교육생도 있다. (주)동서발전에서 현장 관리직으로 일하는 정

영우(42)씨는 “장비를 다 착용하면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말

했다.

첫 코스는 추락재해 중에서 가장 빈번한 개구부 추락이다. 교육생들은

2m 높이에 올라가 자기 발밑의 발판이 빠져 밑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하

게 된다.

발판 위에 올라선 교육생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래에 푹신한 스

펀지 조각을 깔아 놓아 떨어져도 안전하지만, 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발판이 양옆으로 벌어지자마자 “어”하는 외마디 비명이 끝나기도 전에

밑으로 떨어진다.

“아찔한 느낌이 들었어요. 진짜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 같아요.”

추락체험을 한 김병철(43)씨의 말이다.

건설현장의 중대재해 중 절반 이상이 추락재해다. 3m 이하 낮은 곳이라

해도 안심해서는 안 된다. 공단 강사는 “매년 3m 이하 추락사고로 사망하

는 사람들이 90명이 넘는다”며 “고작 1m 높이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사람이 추락하게 되면 머리부터 떨어져 치명적인 상처

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안전모와 안전대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이유다.

공단 체험교육장에서 추락방지대

실습 중이다. 강사는 방지대를 믿

고 손을 놓으라 하는데 도무지 손

이 떨어지질 않는다.

Page 219: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14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현장관리 못하면 안전장치도 무용지물

다음 체험은 안전대를 매고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것이다. 같은 안

전대라고 해서 다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추락할 때 양어깨와 사

타구니로 무게를 지탱하는 그네식이 안전하다. 반면 허리부분만 지탱하

는 벨트식은 질식이나 척추골절을 유발할 수 있어 위험하다. 벨트식 안

전대를 차고 대롱대롱 매달린 교육생들은 구호도 지르지 못하고 캑캑거

렸다.

GS건설 안전혁신학교에서는 건물외벽 추락도 체험할 수 있다. 실제로

취재 당일 교육생들은 밑에 에어매트를 깔아 놓고 유격훈련을 받는 군인

들처럼 뛰어내렸다. 추락의 공포가 어떤지 직접 몸으로 느껴 보는 것이

다. 매트까지의 낙하길이는 1m에 불과하지만 다리가 떨려 포기하는 교

육생들이 속출했다.

“사랑하는 근로자들이 절대 추락하는 일이 없도록 하세요. 안전대 착용

은 물론이고 안전망 설치도 잊지 마세요.” 강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체험장에 울려 퍼졌다.

“강원도 동해에서 5시간 동안 차를 타고 올라온 교육생들인데요. 마치

폭동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분위기인데요.” 공단의 강사가 우스갯소리

를 건넨다.

GS건설 안전혁신학교 교육생들이

체험교육에 들어가기 전 체조를

통해 몸을 풀고 있다.

Page 220: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15

T I P위험천만한 벨트식 안전대

건설현장에서 안전대는 생명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안전대를 매지 않아 사망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런데 안전대를 매기만 하면 사망사고를 피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건설현장에서 추락사고가 나면 안전대를 맸더라도 절반은 사망한다. 허리를 지탱하지만, 질식

사고나 척추골절을 불러올 수 있는 ‘벨트식’ 안전대 때문이다. 최근 들어 벨트식 안전대 보급률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이지만 외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일본에서 원숭이를 대상으로 추락실험을 한 결과 그네식 안전대를 맨 원숭이는 30분을 넘게 별다른 문제없이 버

티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연히 죽지도 않았다. 반면 벨트식 안전대를 맨 원숭이는 추락 후 1분30초 만에 질식사했

다. 전문가들은 벨트식 안전대가 추락사고 방지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GS건설 협력업체 관리자인 현종수(43)씨는 “다른 교육보다 피부에 와

닿아 좋다”고 말했다. 공단에서 교육을 받은 한전KPS 공사현장의 김남

진(35)씨는 “지금까지는 근로자들이 안전대를 매는 것 자체에만 만족했

다”며 “회사로 돌아가면 벨트식을 전부 그네식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GS건설 산업안전혁신학교 강사는 수차례 “현장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

다”고 강조했다.

“피치 못해 공사 현장을 비울 경우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이라도 반

드시 배치해 감독하게 하세요. 그래야 근로자들이 안전대를 한 번 맬 것

을 두 번 매게 됩니다.”

공단과 GS건설 안전혁신학교에서 체험교육을 받는 교육생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교육에 적극적이

지 않다. 하지만 직간접 체험을 거치다 보면 이내 교육자세가 자못 진지해진다. 현장 관리직인 자신

들의 조치 하나로 최악의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생들은 “현

장에 돌아가면 안전사항을 일일이 점검하겠다”고 입을 모은다.

Page 221: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16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공단 체험교육장에는 건설현장의 위험요소를 그대로 옮겨 놓은 시설이 많다. 강사가 개구부 안전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취 재 후 기 _ 글 김학태 _ 사진 정기훈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건설안전체험장의 ‘개구부 추락체험장’. 강사는 교육생들을 한

번씩 체험시키고 나더니 느닷없이 취재기자와 사진기자를 불렀다. 오전에 방문한 GS

건설 안전혁신학교에서는 “위험하다”며 체험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공단 강사는 무조

건 해야 한단다. 멋쩍어하면서 추락대에 올라섰다. “헤헤헤, 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개구부가 열렸고, 이내 스펀지 조각 틈새에 갇혀 허우적거렸다. 한순간이었다. “1미터

높이에서 떨어져도 사망할 수 있다”는 강사의 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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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건설안전체험교육은 국내 최초 체험교육과정

이다. 97년 처음 문을 열어 현재 연간 5,000명, 총 6만여명의 건설현장

관계자들과 학생·공무원이 교육을 수료했다. 2,680㎡ 공간에 개구부

추락과 안전대 체험 등 20여개 코스에서 현장체험교육을 받을 수 있다.

GS건설이 운영하는 안전혁신학교는 기업단위로는 유일한 1만㎡ 규모의

체험교육시설이다. 2005년 이천물류센터 신축공사장 붕괴사고를 계기

로 2006년에 개교했다. 한 기수에 30명을 교육시킨다. 올해 5월10일 기

준으로 3,000여명이 교육을 이수했다. 교육대상은 GS건설과 협력업체

직원들이다. 공단의 체험교육시스템을 벤치마킹했다. 하지만 4시간을

교육하는 공단과는 달리 2박3일 동안 숙식하면서 밀도 있는 교육을 실시

한다.현장 경험이 풍부하더라도 무조건 한 번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내

근을 하다 현장으로 갈 경우 현장 투입 한 달 전에 반드시 교육을 이수해

야 한다. 이 교육을 받지 않으면 해외 건설현장에도 나갈 수 없다. 교육을

생략한 채 중동 건설현장에 나간 직원이 일주일 만에 귀국해 교육을 받고

다시 출국한 사례도 있다.

베트남·중국·중동의 고위 공무원들과 건축을 전공하는 국내 대학의

교수·학생들이 잇따라 견학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수료생들의 반응도

좋다. 2008년 7월 교육을 이수한 97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현

장의 무재해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답변이 76.8%를 차지했다.

공단이 2008년 하반기에 교육을 이수한 사업장 교육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교육효과 지수가 89.2점으로 높게 나타났다. 항목별

로는 ‘재해감소에 도움을 준 정도’가 91.5점으로 가장 높았다.

공단·GS건설 체험교육 … 반응·효과 ‘만점’

포 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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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9 . 산재판례 따라잡기

불황에는 소주가 잘 팔린다. 저렴하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과 실직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

탓이다. 소주 제조업체는 경기가 어려울수록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소주를 만드는 근로자들은 그만큼

늘어나는 노동강도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평소 기관지천식을 앓고 있던 소주회사의 공장장이 40여일간 하루도 쉬지 않고 철야근무를 하다 급성호흡부전

으로 사망했다. 법원은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40여일간 철야…급성호흡부전으로 사망

소주회사 공장장으로 일하는 조아무개씨는 99년 8월 중순께부터 다음달 23일까지 약 40여일간 하루도 쉬지 않

고 철야근무를 했다. 밤새도록 일하고 다음날 낮시간에 잠시 눈을 붙이는 것으로 휴식을 대신했다. 추석을 앞두

고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무리를 한 것이다.

평소 기관지천식을 앓고 있던 조씨는 추석연휴를 보내며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했다. 결국 조씨는 추석연휴 직후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증상을 보이다 사망했다. 사인은 ‘급성호흡부전’. 조씨의 유족은 과로와 함께 공장의 발

효실과 증류실에서 누룩발효와 파쇄 과정에서 나는 냄새와 분진이 기관지천식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

다며 장의비와 유족보상금을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했다. 공단은 이를 거부했고 유족들은 소송을 냈다.

과로가 천식 악화시켜

이 사건의 원고는 조씨의 부인 이아무개씨다.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대법원은 조씨의 업무내용과 작업환경,

기관지천식 앓던 소주회사 공장장, 갑자기 숨이 멈춰 사망했다면?

Page 224: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19

사망 직전 노동시간 등에 비춰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판결요지는 이렇다.

“조씨는 사망하기 직전까지 약 40여일 동안 휴무 없이 매일 철야근무를 했다. 과로와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기

존질병인 기관지천식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 이산화탄소·에탄올·분진 등이 비산하는 작업환경

이 기관지천식을 자연적 경과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해 급성호흡부전으로 사망하게 됐

다고 추정된다.”

기존질병의 악화로 사망했을 경우 업무상재해 여부를 가리기 쉽지 않다. 법원은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를 요구한다. 소송을 제기하는 원고에게 입증책임이 있다.

소주 재료 ‘에탄올’도 원인

그러나 반드시 의학적·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판례(대법원 2000두4538)에 따라 해당 노

동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제반 사정을 고려해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추정될 경

우 업무상재해로 인정한다.

이 사건에서 조씨는 40여일간 하루도 쉬지 못하고 밤샘작업을 계속했다. 또 공장장으로서 추석까지 물량을 맞

추기 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급격한 업무량의 변화가 조씨의 지병인 기관지천식을 악화시켰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소주공장의 작업환경도 기관지천식 환자인 조씨에게 해로웠다. 기관지천식은 기도에 자극이 가해

질 경우 기도를 감싸고 있는 조직이 부어오르거나 경련을 일으켜 기도내강을 좁아지게 만든다. 그래서 호흡곤란

과 기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알레르기 항원(꽃가루·집먼지·곰팡이 포자 등)과 아스피린 같은 약물을 흡입

하거나 흡연, 심한 대기오염이 증세를 악화시킬 수 있다. 향수나 작업장의 화학물질도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

다. 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도 악화요인으로 분류된다.

관련 판례

•대법원 2001년 7월27일 판결 2000두 4538

•대전고법 2000년 5월12일 판결 99누1005

•대전지법 1999년 8월19일 판결 98구1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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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사진기자 취재후기

‘건축업자’아버지의 잔소리

초등학교 시절, 갱지로 만든 까칠한 가정통신문을 열심히 집으로 나를

때였다. 그중에 ‘가정환경조사’라는 것이 있었다. 부끄럼 많던 내게 그 일

은 꽤나 곤욕스러운 것이었다. 생활수준란에는 늘 ‘중산층’이라고 적었

다. 뭐 밥을 굶지는 않았으니 맞다 싶었지만, 거짓말이란 느낌을 지울 수

는 없었다.

‘ 건 축 업 자 ’ 아 버 지

아버지 직업란이 문제였다. 난 아버지께 몇 마디 슬쩍 여쭙곤 내 손으로 ‘

건축업’이라고 적었다. 아버지는 공사현장 일을 하셨다. 사람들은 보통

‘노가다’ 혹은 ‘미장이’라고 했다. 아버지 손은 늘 거칠었고 얼굴은 거무

튀튀했다. 거북이 등껍질을 꼭 닮은 그 손은 자주 짓물렀는데, 어머니는

시멘트 독 때문이라고 하셨다. 늦은 저녁 덜그럭거리는 연장 가방을 지

고 집에 오신 아버지한테선 소주며 막걸리에 홍어 냄새가 풍겼다. 평소 “

밥 먹자”, “일찍 자라” 정도의 말씀만 하시던 아버지는 술기운을 빌어서

야 맺힌 말을 풀어놓곤 하셨다. 넓지 않았던 마루에 불려 나가 공자 왈,

맹자 왈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듣는 일은 인내심 강화훈련이라 생각했다.

마침 공장 야근조 일을 나가시던 어머니가 “그만 좀 하시라”며 날 구원해

주시곤 했다.

Page 226: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221

단칸방 아랫목엔 부모님이, 그 옆엔 누나 둘이, 마지막엔 형과 내가 이부

자리를 깔았다. 마루에 주방까지 따로 있던 집이었지만, 우린 연탄 부뚜

막이 딸린 방 한 칸에 대한 권리만 가졌을 뿐이었다. 누나들이 좀 더 커서

야 방 한 칸을 추가로 세내었다.

연 탄 부 뚜 막 , 그 리 고 아 파 트

지리산 아래 산골에서 농사를 짓다 상경한 부모님은 가난했다. 서당에서

글 좀 읽었다는 아버지가, 낯선 도시에서 할 일이 많지 않았다. 이른 아침

쓰레기차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면 작은 누나와 난 연탄재 두어 개씩

들고 쪼르르 뛰어나가곤 했는데 아버진 늘 우리보다 빨랐다. 공사장 일

은 새벽밥 먹는 일이란 걸 그때 이미 알았다. 한여름, 구멍 나고 해진 아버

지의 누런 메리야스에서 퀴퀴한 땀 냄새가 많이 났다.

오래지 않아 우린 방 세 개 딸린 빌라로 이사를 가게 됐다. 반지하였지만

거실과 입식 부엌도 있는 멋진 곳이었다. 아버진 큰 맘 먹고 더블 데크 전

축과 빠른 탐색이 가능한 최신 비디오 기계를 사 오셨다. 친구 몇 놈을

집에 불러 제목 없는 비디오테이프를 몰래 보다 걸려 실컷 혼쭐이 났다.

난 방충망을 뜯고 가출을 감행했다. 친구 집 방에 앉아 들고 나온 저금통

을 뜯어 십 원짜리 동전을 한 70여개 세었을까. 문이 벌컥 열리고 아버

지가 예의 그 무뚝뚝한 표정으로 “가자!”고 하셨다. 동네 여러 곳을 찾아

오래도록 뛰셨다고 형이 전했다. 그날 아버지는 날 가만히 안아 주셨다.

장마철에 화장실 물이 역류해 새벽잠 깨어 물 퍼내기를 여러 해. 근심 많

던 우린 드디어 넓은 신축아파트로 이사했다. 거긴 못을 내 마음대로 박

을 수 있는 ‘우리 집’이었다. 똥물이 넘치지도 않았다. 집들이를 했고 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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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안심경영레시피_행복한 동행

분들이 휴지며 세제를 사들고 와선 부러워했다. 부모님은 참 많이 기뻐

하셨다. 밤이 늦도록 술을 많이 드신 아버지는 다음날 새벽, 연장 가방 덜

그럭거리며 어김없이 일을 나가셨다.

뜻 하 지 않 은 산 재

전화 목소리가 다급했다. 누나는 울먹였다. 아버지가 다쳤다. 떨어지셨

단다. 어머니도 형도 황급히 나를 찾아 소식을 전했다. 가슴이 철렁 했다.

이젠 집에 좀 계시라고 가족들이 그렇게 말렸는데도 굳이 찾아 나선 일감

이었다. 조그만 상가 건설현장에서 천장 벽을 바르는 작업 중에 딛고 선

이동식 고소작업대가 밀려 떨어졌다고 했다.

발뒤꿈치를 비롯해 복사뼈 어디 어디가 부스러졌다고 의사가 말했다. 다

늙어 주름 깊은 아버지 눈가에 자주 눈물이 맺혔다. 병상 옆 간이침대에

서 수발들던 내게 아버지는 자꾸만 미안하다고 하셨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 나도 몰래 울었다. 어머니도, 누나도, 형도 울었다. 노인네

뼈는 잘 붙지도 않았다. 철심을 여러 개 심고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아

버지는 걸을 수 있었다.

위태로이 절룩이는 그 걸음을 뒤에서 바라보며 나는 또 몰래 울었다. 건

강이 최고다, 다치면 안 되니 늘 조심하라던 당신의 잔소리가 떠올라 서

글펐다. 한동안 지루한 책임 공방을 벌이고서야 산업재해 승인이 떨어졌

다.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관행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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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가 슴 아 린 ‘ 뻔 한 구 호 ’

그래서다. 취재를 다니는 내내 아버지가 떠올랐다. 십수 번 찾은 현장에

서 일하던 그들도 누군가의 남편 혹은 부인, 또 아버지일 터. 어디선가 봤

던 ‘아무도 다쳐선 안 된다’는 뻔한 구호가 새삼 가슴을 후벼 판다.

커 가는 아이들 학비며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또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갚기 위해 잠시 유보한 그 행복 앞에, 다치면서 할 만큼 중요한 일이 대체

어디 있던가. 평생 변변찮은 안전화 한 켤레 없이 일하면서도 막내아들

나이키 운동화는 사 주셨던 아버지께 늦었지만 튼튼한 등산화라도 한 짝

사 들고 가야겠다.

얼마 전 주말농장에 움막을 짓다가 손을 살짝 다치셨다던데, 찾아가 잔

소리 좀 보탤 작정이다. “조심 좀 하시지!”

글·정기훈

Page 229: 안심경영 레시피 '행복한 동행

이 책을 만든 사람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보건미디어개발실)

총괄기획 임태영 실장

박문열 TF팀장

김희성 인턴

이희경 인턴

매일노동뉴스(편집국)

취재팀장 박 운 부국장

취재기자 한계희 정청천 김학태

신현경 김봉석 김미영

구은회 오재현 조현미

사진기자 정기훈

편집기자 김명은 윤정희

Q-line(Design Company)표지 및 편집디자인, 인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