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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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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연구 제14권 제2호: 29~64 한국법철학회 2011

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1)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심우민2)**

Ⅰ. 서 론

최근 들어 한국사회에서는 정의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지고 있다. 이는 특히

현실 정치 영역에서의 문제가 그 촉발 기제로서 작용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

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사회정의에 대한 요청은 당해 정의

관념에 입각한 법의 운용을 요구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특히 입법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에 부합하는 법형성이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사실상

* 이 글은 2011년 한국법철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이다. 논문의 내용과 관

련하여매우건설적인비판과조언을아끼지않아준원광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이이

계일교수를비롯한동학들에게감사드린다. 이글에서의작업은출발지점에서부터한

계를가지고있다. 그것은기본적으로학술대회의취지상발표주제의범위가한정되어

있다는점에기인한다. 이글에서수행하고있는논의들이가지는함의가좀더명확해

지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정의론적 관점들까지도 동시에 논해져야 할 것이다.

**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법학박사([email protected])

*** 투고일자 2011년 07월 1일, 심사일자 2011년 7월 30일, 게재확정일자 2011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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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사회에서 사회정의가 문제시되는 상당수의 논제들이 바로 입법의 문

제와 연관되어 있다.

현대 한국사회의 정의 문제를 논함에 있어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질

서의 문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주제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서가 가지는 문

제를 좀 더 면밀히 분석하기 위해서는 이와 적대적 지형을 형성하고 있는 담론

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중심

적 논의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마르크스에 대한 해석은 실로 매우 다양한 가능

성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때로는 마르크스주의 내부 진영에서도 상이한 해석

에 따라 각기 다른 실천양식과 대립양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한 다양한 마

르크스주의의 조류들 중 이 논문이 중심적인 논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것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Post-Marxism)의 급진민주주의(radical democracy)에 대

한 논의이다.

이를 중심 논제로 삼고자 하는 이유는 소위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가지는

경직성과 한계를 넘어서서 또 다른 대안 논의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기 위함이

다.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 운동에서의 노동계급의 중심성, 생산관

계에 의해 규정되는 계급관계, 사회구성체 내에서 경제관계의 이론적 지위 등

에 관하여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본 논문은 기본적으로 사회 정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그 논의의

초점으로 삼고 있지만, 현실적 측면에서의 논의인 입법학1)적인 검토를 부수적

으로 병행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정의에 관한 논의가 이론적인 차원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실천적인 입법의 영역에서 어떠한 함의를 가지는지

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리라고 판단한다.

1) 우리사회에서 입법학이라는 학문 분야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그다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입법학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들에 대해서는 최대권, “입법학의 의

의와 목표,” 입법학연구 창간호, 2000; 김승환, “입법학에 관한 연구: 입법의 주체․원칙․기술을 중심으로,” 고려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87; 이상영, “법사회학적 입법

연구: 토지공개념 삼개법안 입법과정을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3;

최윤철, “입법학 연구의 현황 및 전망,” 입법정책 제1권 제1호, 2007; 박영도, “입법학서설(Ⅰ),” 외법논집 제3집, 1996; 박영도, “입법학서설(Ⅱ),” 외법논집 제4집,1997; 박영도, 입법학입문(한국법제연구원, 2008) 등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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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의를 위하여 우선 마르크스가 정의의 문제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

었는지를 살펴보고(Ⅱ), 이에 바탕을 두고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마

르크스의 정의 관념이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검토해볼 것이다(Ⅲ). 또한

최종적으로 이러한 정의 관념에 바탕을 둔 입법의 원리는 어떠한 내용으로 구

성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Ⅳ).

Ⅱ. 마르크스와 사회정의

기본적으로 마르크스는 정의의 문제에 대해 체계적인 분석을 제시하지 않았

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에서 그의 정의 관념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켜

왔다. 특히 이러한 논란은 터커와 우드에 의해서 본격화 되었다. 다음에서는

이를 중심으로 마르크스의 정의 관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자본주의 비판과 정의

(1) 터커와 우드의 명제

마르크스의 입장을 사회정의라는 이상과 연관 지어 사고하려는 시도들에 대하여

터커(R. Tucker)는 이의를 제기2)하였고, 우드(A. Wood)는 이를 더욱 심화시켰다.3)

이를 계기로 마르크스주의에서의 정의에 관한 논쟁이 촉발되었다.4) 터커와 우드는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이 결코 정의와 관련성을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하위 명제로 요약해 볼 수 있다.5)

2) Robert C. Tucker, “Marx and Distributive Justice,” The Marxian Revolutionary

Idea (W. W. Norton and Company, 1969).

3) Allen W. Wood, “The Marxian Critique of Justice,” Marx, Justice, and History

(Princeton Uniersity Press, 1980); “Marx on Right and Justice - A Reply to

Husami,” Marx, Justice, and History (Princeton Uniersity Press, 1980).

4) 이에 대한 개관으로는 Norman Geras, “The Controversy about Marx and Justice,”

New Left Review 3(4), 1985, 47-85면.

5) 설헌영, “분배정의와 마르크스주의,” 철학 제33호, 1990, 53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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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상응명제: 정의는 생산양식에의 상응이다.

(ⅱ) 착취명제: 상응으로서의 정의에 의거할 때, 자본주의적 착취는 부당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것이다.

첫째, 상응명제의 경우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적인 전제라고 할 수 있는 토대-상

부구조 논의와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

을 전제로 법과 국가는 사회로부터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생산양식

의 귀결로 보아야 하며, 정의 역시 사회를 합리화하고 평가하는기준이 아니라 생산

양식의 한 기능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의의 기준은 가치법칙에 따르는 등가교

환이므로, 이 기준에 따라 임금을 지불하고 노동력을 구매한 자는 잉여가치를 전유

할 권리를 갖는다. 즉 등가교환의 기준에 따라 구매한 자는 상품의 사용권과 함께

그 사용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물에대한 권리를 갖는 것이 정당하기 때문이다. 따라

서 착취가 부당하다고 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관점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6)

결국 이상과 같은 명제는 정의라는 것은 단지 각각의 생산양식이 반영된 결과이

므로, 보다 정의로운 이상적인 차원의 정의 관념이 적용될 수 없는 영역이며, 정의

는 법적․제도적 규범이므로 도덕적 규범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내는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2) 터커-우드 명제에 대한 비판

이상과 같은 명제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 진영으로부터 상당한 비판이 가

해진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그것의 착취적

성격 때문에 정의롭지 못하다고 주장했다는 입장을 취한다. 마르크스가 임금교

환을 등가교환이라고 일컫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종국에 가서는 그것을 허위

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7) 이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마르크스는 자

6) Allen W. Wood, 앞의 글(주 3), 22-26면.

7) Gray Young, “Justice and Capitalist Production: Marx and Bourgeois Ideology,”

Canadian Journal of Philosophy 8(3), 1978, 441면; Ziyad I. Husami, “Marx on

Distributive Justice,” Philosophy & Public Affairs 8(1), 1978, 51면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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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들이 잉여노동을 등가 없이 가진다는 점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

에, 우드 등의 입장은 불충분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후사미(Z.

I. Husami)는 “마르크스에 의하면, 노동자는 그가 그의 노동력의 완전한 가치를

받는다 하더라도 정의롭지 못하게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러한 노

동력이 생산하는 것은 가치론적 측면에서 보자면 노동력 자체의 가치를 넘기 때

문이다. … 자본주의적 불의는 기여와 보상의 이러한 비등가, 달리 말해 노동력

의 탈취 또는 착취에 있는 것”8)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또한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마르크스가 자본가에 의한 잉여가치의 전유를

정당하다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그 이

유는 마르크스가 비록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설명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궁극적

으로는 이 정당성 또한 허위임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자본주의

적 권리관념이 허위적인 등가교환의 원칙에 근거하고 있다면, 자본주의적 생

산양식의 정당성 또한 허위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요컨대 임금교환

의 등가교환성,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평등성, 그리고 이와 관련된 소유권의

정당성 모두가 허위에 불가한 것으로 증명된다면, 앞서 제시된 명제들은 설득

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후사미에 의하면, 자본주의 체계가 노동자와 자본가

의 불평등한 경제적, 사회적 관계를 이미 내포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정당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라고 한다.9)

2. 이데올로기와 정의

(1) 자본주의 정의 관념은 비판의 대상인가

마르크스는 정의의 문제를 그것의 내용적 측면에 있어서는 재산권과 관련하

여, 그리고 형식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경제적 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권리관계

8) Ziyad I. Husami, 위의 글(주 7), 47면.

9) Ziyad I. Husami, 위의 글(주 7), 52면; Nancy Holmstrom, “Exploitation,” Canadian

Journal of Philosophy 7(2), 1977, 357면; Roser Hancock, “Marx's Theory of

Justice,” Social Theory and Practice 1, 1971, 68면; Richard J. Anderson, “What's

Wrong with Exploitation,” Ethics 91, 1981, 2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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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이해하고 있다.10) 그 결과 모든 생산양식은 각각의 생산양식 자체에 의해

주어진 재산에 대한 규칙을 제각기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본다면, 마

르크스는 정의의 개념을 법적․제도적 권리개념과 동일시하고 있다고 주장하

는 우드의 주장에는 타당성이 존재한다. 이에 더하여 마르크스는 정의라는 것

을 최고의 사회적 가치로 간주해 온 당시까지의 지배적인 사유양식을 대체하고

자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11)

그렇다면 우드의 입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정의가 마르크스의 비

판대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정의 관념은 아무

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인가?

마르크스가 언급하고 있는 부르주아적․자본주의적 윤리의 자명성은 등가

교환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12) 등가교환의 원칙은 시장이 성립되기 위한 매

우 기본적인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기반하여 자유로운 거래자들의 평등한

권리관계로 설정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정의 관념과 연계된다. 자본가와 노동

자는 “평등한 권리를 지닌 상품 소유자”로서 “노동력”이란 상품을 서로 교환하

는데, 노동자의 재산권인 임금은 노동력의 상응하는 가치로 자본가로부터 받

게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결국 이러한 임금교환관계는 노동력이 상

품법칙, 즉 등가교환의 법칙에 의해 완전히 지불된다면 정의로운 것이 된다.

비록 노동력의 상품가치가 완전히 지불된 뒤 노동력이 생산한 가치 중의 일부

가 지불되지 않고 남아있어 이것이 자본가에 의해 전유된다고 하더라도 이러

한 교환은 정의롭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이다.13)

결과적으로 마르크스가 언급하고 있는 정의의 판단 기준은 모든 종류의 “도

둑질”14)이 아니라, 상품교환의 법칙이 가지는 적법성을 침해하는 것을 의미한

10) 서영조, “마르크스와 정의: 논의의 쟁점과 새로운 해석의 시도,” 통일논총 제9집,1996, 192면.

11) Allen W. Wood, 앞의 글(주 3), 5면.

12) 서영조, 앞의 글(주 10), 193면.

13) 노동력의 가치는 모든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이 특별한 품목의 생산 및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이라고 마르크스는 언급한다.

14) 노동자가 노동하는 시간은 자본가가 상품으로서 구입한 노동력을 소비하는 시간이

다. 이 경우 노동자가 자유롭게 처리할 수 있는 시간을 자신을 위해 소비한다면,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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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결과적으로 자본가가 노동임금을 노동력의 가치이하로 지불하는 것만이

상품교환의 법칙과 그에 따른 제약을 위반하는 도둑질이고 따라서 정의롭지

못한 것이 되며, 그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부르주

아적 정의가 자본주의 내에서 조차도 실현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15)

(2) 정의 관념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이상과 같은 입장에 선다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정의 자체를 허위적인

것이라고 여겼다는 해석(터커-우드 명제의 반대론자)은 오해이며, 반면 실제적

인 정의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마르크스가 정의

관념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가지는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본주의적 재산권(부르주아적 정의)뿐만 아니라, 참된 등가교환에

근거한 사회주의적 재산권리(사회주의적 정의)까지도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비

판하고 있다.16) 이와 관련하여, 엥겔스의 지적은 참조할 만하다.

여태까지의 역사는 거의 평등=정의라는 문구를 애써 도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가 존재했을 때 비로소 성공했다. 그러나

평등이라는 문구는 어떠한 특권도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 따라서 본질적으

로 부정적이며, 전체 역사를 나쁜 것으로 공언한다. … 그러나 평등=정의를 최고의

원칙, 마지막 진리로 설정하고자 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평등은 단순히 불평등에 대

립하여, 정의는 불의와 대립하여 존재할 뿐이다. 따라서 그것들은 낡은 지금까지의

역사의 대립에, 즉 낡은 사회 자체에 얽매여 있다.17)

자본가로부터 도둑질하는 것이 된다. 자본가는 상품교환의 법칙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15) 서영조, 앞의 글(주 10), 196면.

16) Karl Marx, Zur Kritik des Gothaer Programms, MEW 19, 21-22면. 서영조, 위의

글(주 10), 197면 재인용.

17) Friedrich Engels, Materialien zum Anti-Dühring, MEW 20, 580면. 서영조, 위의

글(주 10), 197면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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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의를 정리해 보자면, 마르크스는 정의라는 것이 경제적 관계에 의

해 규정되며, 자본주의적 재산권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일치하므로 정의롭

다고 표현하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는 부르주아적 정의에 대한 비판을 결

코 포기한 것은 아니다. 즉 이는 정의관념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가진다

는 점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라는 관념 자체를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하는 마르크스의 입장은, 그를 당

시의여타의사회주의자들과구분해주는지점이다. 마르크스는비판을정의관

념과 결부시키는 당시 사회주의자들의 관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정의를 영원

한 것, 초역사적인 것, 즉 하나의 이상으로 생각하면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정

의라는관점에서해결하려는그들과달리, 그는정의의경제종속성을강조한다.

이는 자본론에서 마르크스가 행한 프루동에 대한 비판에 나타나 있다.

프루동은 그의 정의의 이상․영원한 정의를 상품생산에 일치하는 권리관계로부

터 끄집어낸다. 그런데 이것은 상품생산의 형태가 정의처럼 영원하다는 것을 증명해

소시민들을 위안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하여 거꾸로 실제적인 상품생산과

그에 일치하는 실제적인 권리를 이 이상에 따라 변경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실제적

인 물질의 교환법칙을 연구하고 그것의 토대 위에서 특정한 과제를 해결하는 대신

에, 물질교환을 자연성과 유사성의 ‘영원한 이념’을 통해 변경하려는 화학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18)

마르크스는 결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정의에 대한 호소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자본주의의 근본문제를 분배의 문제에만 국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3. 마르크스적 정의관념의 경제결정론적 성격

요컨대 마르크스는 정의관념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비판의 대상인 이데올

18) Karl Marx, 김수행(역), 자본론(Ⅰ)(비봉출판사, 1999), 107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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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에 포함되는 것이며,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궁극적으로 토대를 구성하는

생산양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경제결정론적 전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터커-우드의 입장은 일면 타당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마르크스는자본주의적정의관념을그것과는다른상위의정의관념을상정하여

비판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의관념이 가지는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비판한

것이다.19) 이렇게 본다면, 자본주의적 정의관념은 그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

는것은아니다. 오히려그러한이데올로기적인정의관념을구성해내는생산양

식 또는 토대에 비판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특정한 정의관념을

제시했다기보다는 생산양식에 의해 규정되는 이데올로기적인 정의관념을 언급

하고 있을 뿐이며, 오히려 그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생산양식 변화의 필요성을

주장한것이라고할수있다. 이러한전제에설경우사실상정의실현에있어서

의실천적판단기준이모호해진다는비판비판을받게될가능성이농후해진다.

궁극적으로 마르크스의 정의관념에 있어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정의라는

것이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이러한

정의관념이 단지 생산양식의 반영에 불과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측

면에서 보자면 이것은 이미 전제된 고정적 실체로서의 성격을 가지는 것이 아

니라, 어떠한 전제에 의해서든 ‘구성되어지는’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Ⅲ.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적 관점과 정의

1.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와 본질주의 비판

(1) 본질주의 비판

앞서 마르크스의 정의관념이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보았다.

19) 마르크스주의에서 나타나는 이데올로기의 기능적 성격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들이

전개된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김정오, 현대 사회사상과 법: 자유주의 법체계의 운명 (나남, 2008), 제2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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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입장에 서게 되면, 이는 경제결정론에 가해지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경제결정론을 비롯하여 계급환원주의와 같은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대두된 사조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른다. 그들은 이러

한 경제결정론과 계급환원주의를 본질주의라고 규정한다. 계급환원론과 경제

결정론은 공히 이원론적인 성격을 가진다. 계급환원주의는 보편적이고 단일한

사회적 주체를 상정하고 있으며, 경제결정론은 사회가 토대(생산양식)와 상부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는 기본 전제를 가지고 있다.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시도한다. 이러한 위기라는 것은 마르크스주의나 사

회주의 이념 자체라기보다는 새로운 시대적 상황을 분석해내고 그것을 기반으

로 새로운 사회적 실천의 전망을 제시하는 데 무기력한 기존의 이론적 틀과

정치적 틀이 가지는 문제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대표

적인 학자는 무페(Chantal Mouffe)와 그의 동료 라클라우(Ernesto Laclau)이다.

그들은 현재의 위기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지금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노동자 계급의 존재론적인 중심성과 한 유형의 사

회로부터 다른 유형의 사회로 이행하는데 있어서 근본적인 계기로 간주되는 혁명

(Revolution)의 역할, 그리고 정치라는 계기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완벽하게 통일적

인 동질적 집합의지에 대한 가상적인 전망에 근거한 사회주의라는 전체주의적 구상

물이다.20)

라클라우와 무페는 전체론적 사회관이나 역사에 대한 본질주의적 접근이 마

르크스주의의 역사 자체를 관류하고 있다고 본다. 때문에 이들은 우선 본질주

의를 ‘해체’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에 내재하는 본질주

의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경제영역의 모순을 본질적인 모순으로 규정한

다든가, 사회적 실천의 여러 차원들을 단순히 계급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태도

인데, 이 점이 바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다음 세 가지 근본명제를 성립시켰

20) Ernesto Laclau & Chantal Mouffe,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Verso, 1985),

24면(이하 이 문헌은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e’로 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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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는 것이다. 생산력의 중립성, 노동계급의 동질화·궁핍화, 노동계급의 사회주

의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같은 명제들이 그것이다.21)

이런 명제들이 이론정합성과 현실적합성을 상실해 가는 과정을 라클라우와

무페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로 보며, 이 위기의 차원을 두 가지로 규정한다.

하나는 꾸준히 조직화되어가는 자본주의의 복잡성과 생존능력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고, 다른 하나는 통일적인 사회세력의 파편화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다.22) 이러한 문제는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 이래 줄곧 모든 마르크스

주의의 논쟁의 배경이 되었으며, 이에 대한 대응과정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에

‘헤게모니(hegemony)’ 개념이 도입되었다.

헤게모니의 개념은 새로운 유형의 관계를 그것의 특정한 정체성(identity) 속에

서 정의하려고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필연성의 연쇄 속에 열려있었던 틈새

를 메우기 위해서 출현한 것이다. … 그 개념이 등장하는 맥락은 채워야 할 ‘단층’과

균열의 맥락이며, 극복되어야 할 우연성의 맥락이다. 따라서 헤게모니는 동일성의

장엄한 전개가 아니라, 위기에 대한 대응인 것이다.23)

이처럼 헤게모니의 개념은 ‘정상적인’ 역사발전이라고 여겨졌던 것의 위기

와 붕괴로 인해 요구되어지는 일종의 ‘우연적인’ 개입을 암시하고 있다. 그 후

레닌주의에서 제국주의 시대의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우연적인, 그리고 구체적

인 상황에서의 새로운 정치적 과제, 즉 계급동맹의 형성이 중요한 개념이 된다.

그러나 라클라우와 무페는 이러한 접근이 노동계급에 대한 존재론적 우위와

유사한 것으로 전위당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권위주의적 방식이라고 비판한다.

(2) 사회적인 것과 담론

본질주의적 측면에서의 사회 개념이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것(the social)24)을 이루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담론을 매개로 하여 구성되기

21)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75~76면.

22)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18면.

23)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7면.

Page 12: 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2011

40 법철학연구

때문이다. 그래서 라클라우와 무페는 “모든 대상은 담론의 대상으로 구성된

다”25)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담론이란 무엇인가? 라클라우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담론의 개념은 사회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궁극적인 비고정성을 기술한다.

물론 우리는 담론을 말하기와 쓰기에만 환원시켜서는 안 되고 모든 종류의 의미관

계로 확장시켜야 한다. 이러한 담론 개념은 헤게모니 개념이 구축될 수 있는 지형이

다. 담론의 개념에 대해 내가 제안하는 것과 가장 가까운 용법은 데리다의 인문과학과 담론에서 구조, 기호 그리고 유희에서 발견된다. 거기서 그는 담론 개념을 모든 초월적 기표의 해체에 연결시킨다. 담론은 정확히 비고정성의 계기이기 때문에

초월적 기표가 환상으로 인지되고 우리가 가지는 모든 것이 끊임없는 차이의 미끄

러짐일 때 모든 것이 담론이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다른 말로 하면 담론은 통상적

의미에서의 정신적 행위가 아니다. 물질적 사물들, 외부적 대상들 자체 또한 담론적

구조속에 참여한다. 이는 사물의 물질성 자체가 그에 참여하는 의미 있는 질서의 구

성을 포함하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게임 개념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담론의 개념은

기호의 본질에 관한 근본적인 재고를 요청한다.26)

24) 이러한 사회적인 것에 대한 부연설명이 필요하다. 탈구조주의 언어철학에서 언어/담

론의 핵심 개념은 하나의 ‘기표’가 수많은 ‘기의’를 갖을 수 있으며, 이러한 성격 때문

에 언어에 매개되는 우리의 현실은 결코 객관적인 객체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라클라우와 무페는 사회적인 공간을 이러한 열린 공간으로 인식한다. 이런 공간은

단일한 중심이나 본질을 지니지 않고 어떤 완결된 총체성을 지닐 수도 없다. 이처럼

사회를 열린 체계로 보면 체계의 각 요소들의 의미는 자신의 바깥과 맺는 관계에 따

라 그것이 상대적으로 고정되므로 안정적인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위협받는다.

요소들의 동일성은 그것을 궁극적으로 고정시킬 ‘기의’가 없기 때문에 불안정한 상태

로 존재한다. 이것은 사회 안에서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비고정적임을 의미한다. 이

런 까닭에 그들은 중심이나 총체성을 전제하는 ‘사회’(the society)라는 개념을 버리

고, 담론 구성의 대상으로 열려져 있는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라는 개념을 사용

한다. 이러한 용어법은 비단 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어서, 이들은 같은 논리로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 ‘경제적인 것’(the economical)과 같은 용어로 사용된다.

25)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107면.

26) Ernesto Laclau, “Metaphor and Social Antagonisms,” C. Nelson & L.

Grossberg(eds.) Marxism and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 (University of Illinois,

1988), 270-271면.

Page 13: 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2011

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41

이 인용문을 분석하면, 첫째, 담론을 모든 종류의 의미관계로 확장시켜야 한

다는 것은 담론이 인간에 의해 구성되어지는 총체적 의미성(a meaningful

totality)을 가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모든 대상이 담론으로 구성된

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둘째, 모든 담론은 물질적 성격을 가진다

는 점이다. 이는 담론이 정신적 성격을 가진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넘어서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라클라우와 무페는 실체적인 ‘사회(society)’의 개념을 포기하고, 담론적으로

구성된 ‘사회적인 것(the social)’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사회적인 것이 개방

성으로 특징 지어 진다면, 그 자체가 닫힌 자기규정적인 ‘총체’로 고정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또한 그것이 담론적인 것과 나란히 무제한 열린

공간 속에서 떠돌 수만은 없다. 이 경우 담론은 사회적인 것의 열린 공간을 부

분적으로 고정화시키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접합(articulation), 담론

(discourse), 계기들(moments), 요소(element)들 간의 구분이 필요하게 된다.

이 논의의 맥락에서 우리는 접합적 실천의 결과로서 그것들의 정체성이 확립된

그런 요소들간의 관계를 확립하는 모든 실천을 ‘접합’이라고 부를 것이다. 또한 우리

는 접합적 실천의 결과로 생긴 구조화된 총체성을 ‘담론’이라 부를 것이며, 차별적

위치들이 담론 내에서 접합된 것으로 나타나는 한에 있어서 그것들을 ‘계기들’이라

고 부를 것이다. 이에 반해, 담론적으로 접합되지 않는 차이는 모두 ‘요소’라고 부를

것이다.27)

그러므로 요소로부터 체계로의 항상적인 운동만이 접합적 실천을 통해 존재

하게 되는 것이지, 궁극적인 체계나 요소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담론 구성

체는 그 요소들의 논리적 정합성 속에서도, 초월적 주체의 선험 속에서도, 의

미부여적 주체 속에서도, 그리고 경험의 통일성 속에서도 통일되지 않는다.

이들의 이론에 있어, 의미의 궁극적 고정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역설적이

게도 부분적 고정화(작업)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27)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1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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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법철학연구

모든 담론은 담론적 영역을 지배하기 위한 시도로서 구성된다. 라클라우와 무

페는 이러한부분적고정화의특권적인담론적지점들을 ‘결절점’(nodal point)28)

이라고 부른다. 접합적 실천이 가능하다는 것은 사회적인 것이 궁극적인 고정

성을 가질 수 없으며 개방적이라는 점에서 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접합적 실천

은 의미의 결절점의 형성을 통해 이 개방성을 제한하고 중심을 형성하는 기능

을 한다.

(3) 적대의 지형

접합적 실천이 일정한 중심성을 가지고 구성된다는 것은, 그것이 구성체로

형성된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무페는 판단한다. 그렇다면 접합적 실천이 가지

고 있는 중심성은 어떠한 상황을 전제로 성립하는 것인가? 라클라우와 무페는

접합적 실천이 중심성을 가지고 구성되는 지형은 ‘적대’(antagonism)29)의 지형

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때 그 중심성은 헤게모니 원리로 개념화되며, 그것이

구성되는 적대적 지형의 관점에서 고찰하게 되면 그러한 것들의 총체는 헤게

모니 구성체(hegemonic formation)가 된다.

여기서 적대의 개념은 사회 안에서 모든 객관성의 궁극적 불가능성을 드러

내는 경험을 가리킨다. 이들이 변증법에서의 ‘모순’ 대신에 ‘적대’ 개념을 내세

운 데는 이유가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변증법은 어떤 것과 그것에 모순되는

28) 그들은 이 개념이 라캉의 고정점(caption point) 개념을 차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라

캉은 고정점 개념을 통하여, 즉 의미화 연쇄의 의미를 고정하는 특권적인 기표들이

란 개념을 통하여 이러한 부분적 고정화를 강조하였다. 의미화 연쇄의 생산성에 대

한 이러한 제한은 서술을 만드는 위치를 설정한다. 따라서 의미의 어떠한 고정성도

창출할 수 없는 담론은 정신병자 담론이다.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112

면.

29) 라클라우와 무페는 ‘적대’ 개념을 언어학에서의 은유(metaphor) 개념에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적대는 모든 가능한 객관성의 한계에 대한 경험이며, 모든

객관성이 그 자신의 객관화가 부분적이고 자의적임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언어학의

비유로 표현한다면, 랑그(langue)가 차이의 체계라면 적대는 차이의 균열이다. 그리

고 이러한 의미에서 적대는 그 자신을 언어의 한계에 위치시키고 언어의 파열

(disruption), 즉 은유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 Ernesto Laclau, “Metaphor and Social

Antagonisms,” Cary Nelson & Lawrence Grossberg(eds.) Marxism and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University of Illinois, 1988), 1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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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43

것을 매개하여 고차적인 질서로 통합시킴으로써, 차이를 제거하고 결국 총체

적이고 통합된 공간을 만드는 형이상학에 지나지 않는다. 즉 그것은 차이를 동

일성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적대는 상반된 대립항이 상호 규정되

는 것을 거부하면서 상대방과 대립하고 배제하는 관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러한 적대의 개념은 사회의 궁극적인 고정가능성이 불가능함을 단적으로 보

여주고 있는 개념이다.30) 즉 이러한 적대는 다차원적인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적대의 관계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무페는 어떤 현존의 담론에서 특

정한 방식으로 형성된 (집합적) ‘주체’가 자신의 주체성이 다른 담론들이나 실

천들에 의해 부정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적대가 일어난다고 본다.31) 무

페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어떤 권리에 기초해서 구성된 주체들의

권리나 주체성이 부정되거나 침해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일부 담론에서

는 예속되면서 다른 담론에서는 평등한 것처럼 호명(interpellation)32)되는 경우

이다. 달리 말하자면, 모순적으로 호명되는 경우이다. 이것은 특정 주체위치의

부정임과 동시에 종속적인 주체성의 부정이다.

궁극적으로 라클라우와 무페는 주관/객관, 관념론/실재론의 이분법을 넘어

서기 위하여 ‘담론’ 개념을 도입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대상이 의식 바깥

30) 사회적인 것이 사회(즉, 차이들의 객관적이고 폐쇄된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부분적

인 노력으로서 존재할 뿐이라면, 적대는 최종적 봉합의 불가능성에 대한 증인으로서

사회적인 것의 한계에 대한 ‘경험’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적대는 사회에 ‘내적’인 것

이 아니라 ‘외적’인 것이다. 그것은 사회의 완전한 구성의 불가능성을 조건지운다.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125면.

31) Chantal Mouffe, “Hegemony and New Political Subjects: Toward a New Concept

of Democracy,” Cary Nelson & Lawrence Grossberg(eds.) Marxism and the

Interpretation of Culture(University of Illinois, 1988), 247면.

32) 이러한 호명의 개념은 알튀세르(Louis Althusser)가 강조하는 개념이다. 주체란 자율

적인 자기 충족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회 구조에 의해 구성되는 수동적 존재로 취급

된다. 주체는 이데올로기라는 사회적 힘에 의해 재현되기를 기다리는 미완의 존재라

는 것이다. 즉 자연인으로서의 인간 개체는 이데올로기의 호명에 의해 비로소 사회

적 주체로 승인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호명의 의미는 알튀세르가 기반

하고 있는 구조주의의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페는 알튀세

르와는 달리 ‘구성적 외부’를 강조하는 입장에 있다. 이러한알튀세르의이데올로기의

호명에 대한 내용은 Louis Althusser, Ben Brewster(trans.), Lenin and Philosophy

(Monthly Review Press, 1971), 170-175면을 참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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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법철학연구

에 주어져 있고 의식이 그것을 반영한다는 입장이나, 거꾸로 대상을 의식의 구

성작용으로 보고 설명하는 논리, 즉 대상을 의식의 객관화로 보는 관점 모두를

거부한다. 바로 이 지점이 라클라우와 무페의 인식론에 있어 핵심적 부분이라

고 할 수 있다.

2. 로베르토 웅거와 허위적 필연성 비판

(1) 허위적 필연성 비판

이상과 같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논의는 사실 법제도적인 측면에서

의 논의가 다소 부수적으로 다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과 유사한

주장을 법이론 분야에서 논하고 있는 학자인 로베르토 웅거(Roberto Unger)의

논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웅거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흐름

에 상당부분 부합하는 학자로 평가하고자 한다.33) 이러한 유사성은 다음에서

의 논의를 통하여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33) 이러한 웅거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은 소위 ‘사적유물론’이라고 불리는 역사발

전에 관한 특정한 양식과 연관된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비판의 근거는 이러

한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이 역사적 경험을 무시한다는 사실에 있다.

Roberto Unger, Social Theory: It's Situation and Task(Verso, 2004), 101-103면(이

하 이 문헌은 Social Theory로 표기함). 즉 실존하는 국가들을 봉건 사회, 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로 구분하기에는 그 다양성이 너무 넓으며, 어떤 사회가 특정한

유형으로부터 다른 유형으로 진화해가는 패턴을 단선적인 진화과정으로 설명하기에

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류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처럼 역사의 발전을 법

칙과 같은 진화의 과정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

하여 트루벡(David Trubek)은 웅거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웅거는 Politics에서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가한다. 왜 그렇게 그는 모든 다양한 종류의

마르크스주의를 지적 역사가 가지는 쓰레기통으로 폐기시키려고 정력을 소모하는

가? 웅거는, 비록 완전하게 제거된 것은 아닐지라도, 마르크스주의를 재고하려는 최

근의 노력이 그가 심층구조 사회이론이라고 부르는 원칙적 약속을 완화시켜왔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 그러나 그는 그러한 진보주의자들이 그를 전향자(converts)

로 취급한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이러한 주장은 무엇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인가?”

David M. Trubek, “Radical Theory and Programmatic Thought,” The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95(2), 1989, 451~452면. 이러한 측면에서 이 글에서는 웅거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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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45

웅거의 논의는 인공물로서의 사회(society as artifact)라는 논의로부터 시작

된다. 인공물로서의 사회라는 관념은 서구 계몽주의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데,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러한 것이 내포하는 함의는 근대화 과정 속에서 완전히 발휘되지 못했다. 인공

물로서의 사회라는 관념을 그것의 한계선상까지 밀어붙이려는 노력은, 역사

과학(science of history)을 발전시키려는 근대 사회이론들 내부에 존재하는 반

발에 의해 무산되어 왔다.34)

인공물로서의 사회라는 관념은 인간의 역사가 종교적인 섭리에 종속되지 않

는다는 것을 나타내는데, 웅거에 따르면 이러한 근대 사회사상은 후기 기독교

적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관념은 사람들이 그

들의 의지에 따라 사회를 구성 또는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

초기 사상 중에는 이러한 인간의 원동력에 대한 관념을 나타내는 것들이 상당

부분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로, 홉스는 ‘자연법’으로부터 ‘자연권’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근대적인 자연권 이론들과 사회계

약 이론들은 자연법에 관한 중세적인 관념이 가지는 이론적인 내용들을 제거

하기 시작했으며, 인공물로서의 사회라는 관념에 기반 하여 사회이론들을 발

전시키고자 노력해 왔다고 웅거는 주장한다.35)

그러나 그의 주장에 의하면 근대 사회사상은 인공물로서의 사회라는 관념을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데에는 실패했다.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실패가 기독교

적 내세론의 종말에 대한 과잉반응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근대 사

상가들은 기독교적 내세론을 버리고 난 후에도, 여전히 철학이나 역사과학을

발전시키기를 원하고 있었다.36) 마치 그들은 근대 사상이 기독교에 의해 제기

34) Social Theory, 1면.

35) Social Theory, 224면.

36) 이러한 실패와 유사한 측면은 웅거의 근대사회에서의 법에서도 발견된다. 근대 자유주의적 법체계인 법질서(legal order)는 서구의 자유주의 국가에서 탄생한 것으로,

두 가지의 역사적 조건들이 이러한 법의 지배 원리를 발생시킨다. 하나는 집단 다원

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상위의 보편법, 즉 ‘자연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한 믿

음이다. 이러한 자연법 개념을 뒷받침 해주는 한 가지 요소가 ‘초월적인 종교성’이다.

이러한 자연법 이념이 만들어 짐으로써 사회제도들에 대한 진보적인 비판이 처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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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법철학연구

되어왔던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처럼

보였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창조와 내세에 관한 중세 기독교적 사고체계가

취하던 입장을 근대 사회사상이 다시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37) 바로

이러한 실패는 허위적 필연성(False Necessity) 출현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위적 필연성의 산출은 주로 현대사회의 사회이론적 논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웅거의 판단이다. 그는 오늘날 사회이론의 경향성을 크게 두 가지

로 제시하는 데, 그것은 심층구조 사회이론과 실증주의 사회과학이다. 여기에

서는 논의 전개상 마르크스의 논의와 관계있는 ‘심층구조 사회이론’에 관한 논

의에 초점을 맞추도록 한다.38)

웅거가 심층구조 사회이론(deep-structure social theory)이라고 명명했던 이

론은 역사 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근대 사회사상의 노력에 해당하는 대표적

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이론은 법칙 및 이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

는 설명들로 넘쳐난다. 비록 웅거가 심층구조 사회이론의 예로서 마르크스

(Marx)를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39) 또 다른 사회이론적 전범(典範)이라고 할

수 있는 뒤르케임(Durkheim)과 베버(Weber)도 역시 이러한 전통의 흔적을 가

지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했다.40) 웅거에 따르면, 심층구조 사회이론적 분석은

세 가지의 순환적 성격을 가지는 이론적 동인에 의해서 개념 정의 된다.

로 가능하게 되었다. Roberto Unger, 김정오(역), 근대사회에서의 법(삼영사,1994), 82-105면.

37) Roberto Unger & Zhiyuan Cui(eds.), Politics: Theory Against Fate - The Central

Text(Verso, 1997), VI면.

38) 다만 웅거의 실증주의 사회과학에 대한 관점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는 기본적으로 심층구조 사회이론의 한계를 넘어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결과

적으로는 형성적 맥락에 대한 논쟁을 상실하게 된다고 비판한다. Social Theory,

130-133면.

39) 이러한 웅거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은 소위 ‘사적유물론’이라고 불리는 역사발

전에 관한 일정한 양식에 대한 주장에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비판의 근거는 이러한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이 역사적 경험을 무시한다는 사실에 있다. Social

Theory, 101-103면.

40) Social Theory, 87-8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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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47

(ⅰ) 모든 역사적 환경에 있어 ‘형성적 맥락, 구조 또는 프레임’을 ‘굳어진 일상’

으로부터 구별해 내려고 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굳어진 일상(일상적인 활동이라는

맥락)은 사회적 재생산을 돕는 역할을 한다.41)

(ⅱ) 자본주의처럼 반복적이고 불가분적인 사회의 조직 유형과 같은 특수한 환

경 속에서 확인되어지는 구조를 포섭하여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다.42)

(ⅲ) 반복적이고 불가분적인 구조들에 대한 폐쇄된 목록이나 강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심층적인 제한 요소들과 진화의 법칙들에 대한 호소이다.43)

웅거는 그러한 심층구조 사회이론이 이미 상당한 분열 상태에 도달해 왔음

을 보여준다. 위 세 가지 동인들에 대한 심층구조 사회이론의 주장은 역사적이

고 현실적인 경험(ex.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패망)에 의해서 점점 더 신빙성을

잃어가고 있다.44) 즉 궁극적으로 일정한 법칙성 또는 필연성을 추구하지만, 결

국에는 그러한 법칙성 및 필연성들이 오류가 있는 것임이 밝혀진다는 것이다.

(2) 형성적 맥락과 부정 능력

웅거의 이론적 혁신에서 눈의 띄는 개념적 도구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형성

적 맥락(formative context)’, 그리고 변화 가능성의 정도와 관련된 ‘부정 능력

(negative capability)’이라는 개념이다.

형성적 맥락이라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에 있어 ‘생산양식’에 대비되

는 대안으로서 명확하게 제시된다. 마르크스주의의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은 너

무 경직되어 있다는 이유로 비판받아 왔다. 형성적 맥락이라는 것은 좀 더 느

슨하고 좀 더 색다른 개념으로, 우연적인 제도적․이데올로기적 집합체를 의

미한다. 이러한 것은 핵심 자원의 분배에 대한 규범적 기대와 일상적 충돌을

규제하는 역할을 한다.45) 비록 우리가 그러한 형성적 맥락이 가지는 제한적인

41) Social Theory, 88-89면.

42) Social Theory, 90-91면.

43) Social Theory, 91-92면.

44) Social Theory, 130면.

45) Perry Anderson, “Roberto Unger and the Politics of Empowerment,” A Zone of

Engagement (Verso, 1992), 1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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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소들을 완전하게 뛰어넘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도전과 변화에 좀

더 개방적인 상태로 만들 수 있다.46) 웅거는 이러한 개방성의 정도는 그 자체

로 변화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웅거는 형성적 맥락의 개방성과 변화 가능성의 정도를 나타내기 위하여 ‘부

정 능력(negative capability)’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47) 부정 능력이라는 용어

는 존 키츠(Jhon Keats)의 1817년 12월 28일의 편지로부터 유래된 것이라고 한

다.48) 웅거의 용법은 이 시인이 사용했던 의미를 일반화 시키고 변형시킨 것이

다.49) 그것은 역동적인 인간의 의지, 그리고 사고 및 행위에 있어 이미 전제되

어진 형성적 맥락을 부정함으로써 그러한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낸다. 부정 능력을 증대시키는 것은 결국 제도적 맥락을 변화에 더욱 개방

적이게 만들어서, 구조와 일상, 혁명과 점진적 개혁, 사회 운동과 제도화 간의

격차를 좁히도록 만든다. 웅거는 부정 능력의 강화를 인간 자유의 확장이라는

그 자체의 목적, 그리고 다른 목표들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가

치를 둔다. 또한 이러한 견지에서 웅거는 사회변화와 관련하여 마르크스와는

달리 우연적인 요소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결과적으로 웅거의 특유한 이론적 관점은 ‘형성적 맥락’에 대한 두 가지 측

면의 관점에 의하여 특징지어 진다. 그는 형성적 맥락의 활력성(탄력성)과 힘

을 인식하는 동시에, 좀 더 높은 수준의 필요성과 권위를 가지는 분위기로부터

46) 이러한 웅거의 주장은 마르크스와의 다소간의 차별성을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다.

마르크스는 “한 사회가 비록 자기 진행의 자연법칙을 발견하였다 하더라도―사실

현대사회의 경제적 운동법칙을 발견하는 것이 이 책의 최종 목적이다―자연적인 발

전단계를 뛰어넘을 수도 없으며 법령으로 폐지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사회는 그러

한 진행의 고통을 단축시키고 경감시킬 수는 있다”고 언급하였다. Karl Marx, 김수

행(역), 앞의 책(주 18), 6면; 즉 마르크스는 사회의 형성적 맥락을 인식하기는 하였지

만 궁극적으로 그러한 맥락은 일정한 역사발전의 법칙성 안에 얽매어 있다고 판단하

고 있다. 그러나 웅거는 이와 다르게 완전하게 그러한 변화를 현재로서는 모두 한

번에 뛰어넘을 수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 인간들을 그러한 맥락들을 지속적으로 변화

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47) Social Theory, 81면.

48) Roberto Unger & Zhiyuan Cui(eds.), 앞의 책(주 37), VIII면.

49) Roberto Unger, False Necessity: Anti-necessitarian social theory in the service

of radical democracy, 279면(이하 이 문헌은 False Necessity로 표기함).

Page 21: 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2011

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49

이러한 맥락을 도출해 낸다.50) 그는 사회를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정적이

지 않은 상황 하에서 고정되어진 것들(허위적 필연성)을 판별해 내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3) 법분석에서의 적대 지형 회복

웅거에 있어 허위적 필연성에 대한 법분석 측면에서의 비판은 ‘합리화 법분

석(rationalizing legal analysis)’의 극복 필요성에 대한 주장으로 나타난다. 합리

화 법분석이라는 것은 상호 이질적인 법적 표상들을 정합성 있는 일련의 정책

들과 원리들로 귀결시키고자 하는 시도를 의미한다.51) 합리화 법분석과 관련

한 각각의 법이론적 분파들은 그것의 이론적 기초가 ‘정책 지향적’이든 ‘원리

근거적’이든 간에52) 분석적 실천의 이데올로기적 양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

러나 정책과 원리에 관련된 이상적 관념들은 그것의 실체적 내용과 관련 없이

이미 전제된 것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합리화 법분석 양식은 현실의 제도들이

인간이 가지는 자유의 다양한 실현 형태라기보다는 동시대에 ‘유일한’ 정당성

을 지닌 것임을 나타내는 것이고, 이는 결국 법에 관한 대안적 상상력을 저해

한다고 웅거는 평가한다.53)

따라서 웅거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상상력(institutional imagination)

을 주장하고, 이의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맵핑(mapping)과 비판(criticism)을 제

안한다. 맵핑은 법적인 측면에서의 현실 제도적 구조에 대한 탐구 내지는 조망

을 의미한다. 비판은 맵핑을 통해 확인된 구조를 사회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공

언된 이상이나 프로그램의 측면에서 비판하는 것을 의미한다. 맵핑은 비판을

50) Roberto Unger & Zhiyuan Cui(eds.), 앞의 책(주 37), VIII면.

51) Roberto Unger, What Should Legal Analysis Become? (Verso, 1996), 36면(이하

이 문헌은 What Should Legal Analysis Become?로 표기함).

52) “정책 지향적” 또는 “원리 근거적”이라는 표현은 웅거 스스로가 명확하게 밝히고 있

지는 않으나, 각각 법경제학 등의 사실적 법적 담론들과 드워킨의 법원리론 등과 같

은 다소 규범적 법적 담론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견지에서 설명하

고 있는 글로는 Jeremy Waldron, “Dirty Little Secret,” Columbia Law Review 98,

1998, 515-517면을 참조.

53) What Should Legal Analysis Become?, 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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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법철학연구

위한 소재들을, 비판은 맵핑을 위한 관점과 아젠더를 설정해 준다. 여기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비판을 행함에 있소 특정의 우월적․전제적 관점을 전제로

하지 않으며, 다소 맥락-독립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앞서 설

명한 형성적 맥락과 부정능력에 관한 웅거의 관점을 표현하고 있다.54)

이러한 법분석 방식의 대표적인 사례는 권한부여적 민주주의(empowered

democracy) 또는 급진민주주의의 실현과 관련한 권리론의 재구성 문제에서 확

인할 수 있다.55) 기본적으로 웅거는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권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개념들이 예측가능성을 확보하여 안정적인 삶에 기여

한다는 측면을 일정부분 인정한다.56) 그렇지만 그는 이러한 오늘날 법적 권리

의 폐단은 ‘통합적 성격을 가지는 재산권’의 현존하는 허구적 우월성에 기반하

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57) 그는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재산권 제

한의 원리, 또는 웅거식으로 표현하지면 일탈적 요소(deviant element)에 주목

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는 이러한 일탈적 요소는 전통적인 법 또는 권

리 담론 내부의 정당화 작업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이지만, 이러한 요소들을 더

욱 발전시킨다면 진보적 대안의 토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웅거는 판단한

다. 따라서 그는 현재의 권리 시스템을 이러한 일탈적 요소에 기반하여 재구성

하는 시도를 수행한다.58)

맵핑과 비판을 중심적인 방법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웅거의 제도적 상상력이

라는 법분석은 결국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적 표현으로 설명하지면, 모종의 우

54) 이러한 법분석 방법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설명은 심우민, “제도적 상상력으로서의

법분석: Roberto Unger의 법이론을 중심으로,” 법과 사회 제33호, 2007을 참조.55) 물론 이러한 웅거의 권리체계에 대한 언급이 그의 제도적 상상력에 관한 논의를 모

두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의 저술 전반을 통하여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56) False Necessity, 508면.

57) False Necessity, 511면; 정태욱 교수는 이러한 통합된 재산권이 가지는 우월성을

‘재산 소유 중심의 물권법정주의’와 ‘물권의 우선성’에서부터 찾는다. 이는 웅거의 설

명과 유사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와 관련해서는 정태욱, “자본주의 재산권의

법리에 관한 법철학적 상상,” 민주법학 제13호, 1997, 326면을 참조.58)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은 설명하지 않기로 한다. 다만 이에 대한 좀

더 세부적인 설명은 심우민, 앞의 글(주 54), 232-234면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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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51

월적․본질적 관념(이 글의 맥락에서 보자면 우월적․본질적이라고 상정되는 정

의관념)에 의하여 배제되어 있던 ‘적대 지형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구체적으로 그가 언급한 일탈적 요소를 재인식함으로써 이루어

진다. 이러한 측면에서 웅거의 논의는 기존의 제도적 질서나 이에 대한 관념을

단순히 부정해 버린다기보다는, 현실적인 제도 속에서 그것의 변화를 추동해

낼 수 있는 요소 및 지점들(형성적 맥락)을 확인하고, 그것에 내재하는 적대의

지형을 회복시킴으로써 극복하고자 하는(부정능력) 의미를 가지고 있다.

3.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정의

(1)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관점

이상에서 무페와 라클라우를 중심으로 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입장,

그리고 이와 유사한 로베르토 웅거의 입장을 살펴보았다. 양자는 상당부분 일

치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다.

첫째, 포스트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본질주의의 극복은 웅거에 있어서는

허위적 필연성의 극복으로 나타난다. 이들 양 진영 모두는 기존의 정통 마르크

스주의가 가지는 경제결정론적인 경직성과 그로 인한 필연성의 제시가 현대적

인 사회변화에 적합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적인 것에 대한 관념은 웅거에게 있어서

는 인공물로서의 사회라는 관점과 조응한다. 사회적인 것은 ‘모든 대상은 담론

의 대상으로 구성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웅거의 인공물로서

의 사회라는 관점은 사회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들에 의해 구성되어진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들 양 진영은 모두 완전한 해체를 주장하지 않는다. 이는 포스트 마

르크스주의에 있어서의 접합적 실천이 가지는 의미, 그리고 웅거에 있어 형성

적 맥락과 부정 능력이 가지는 의미를 비교해 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경우 접합적 실천에 있어 의미의 부분적 고정화를 의미하는

결절점 또는 그것의 담론 중심성을 경시하지 않고, 웅거의 경우도 형성적 맥락

에 있어 드리워지는 제한적 요인들을 전적으로 경시하지 않는다. 이러한 측면

Page 24: 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2011

52 법철학연구

은 양 진영의 이론들이 근대적인 관점을 상당부분 유지하고 있음을 드러낸

다.59)

(2) 사회 정의의 문제

이상과 같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정의관념은 다분히 유동적일 수밖에 없

는 속성을 가진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앞서 마르크스가 정의관념이라는

것이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 주장은 이들의 이론에 있어서

도 역시 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마르크스의 정의관념은 생산양식 또는 토대에 의해 규율된다

고 하는 경제결정론적인 관점에서의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강조한다는 데에 있

다. 이것이 바로 본질주의 또는 허위적 필연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포스트 마르

크스주의자들이 비판하는 지점이다. 마르크스에게 있어서는 정의관념이라는

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반영이라는 부수적인 측면에서 논의되고 있음에

반해,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이론에서는 담론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구

59)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하나의 해방이라는 기획 자체의 재구성

을 회피하거나 의문시하는 특징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반해서, 라클라

우와 무페는 계몽주의 기획의 내용이 되고 있는 휴머니즘적 정치적 가치를 포기하지

않고, 단지 기존의 모더니티 담론에 숨겨져 있는 본질주의적 이론의 접근방법에 대

한 비판만을 수용한다. 그들이 수용하고 있는 모더니티와 계몽주의의 긍정적 측면들

인 휴머니즘적 정치적 가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지평 안에서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

고 주장한다. Chantal Mouffe, “Radical Democracy : Modern or Postmodern?,”

Social Text, No. 21, Universal Abandon? The Politics of Postmodernism (1989),

66면. 또한 웅거도 이와 비슷한 입장을 취한다. 심층구조 사회이론과 실증주의 사회

과학을 뛰어넘는 두 가지 이론적 방향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울트라 이론(ultra

theory)과 슈퍼 이론(super theory)이다. 울트라 이론이라는 것은 구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염두 해 둔 설명으로 판단된다. 울트라 이론은

설명적 기술을 제공할 수 없고, 진보적 정치에 필요한 프로그램적 이념들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결국 이러한 것은 끊임없는 부정의 작업 속에서 하나의 진정한 인간성

을 찾으려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그는 이러한 이론적 방향을 비판한다. 슈퍼 이론이

라는 것은 웅거가 자신이 지향하는 이론적 방향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구조의 필연성

이나 법칙성을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구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인간

들을 이러한 구조를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전제하는 것을 말한다.

Social Theory, 165면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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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53

성되어지는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있

어서 정의라는 관념이 중심적인 논의 대상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도 이들의 이론적 관점에서는 본질주의적인 측면을 넘어서려 할 것이라

는 점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정의에 관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관점은 기존 마르

크스의 관점과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적인 정의관념이 설

정되지 않는다면 입법을 행하는 데 있어 따라야할 규범적 준거점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60) 이러한 관점은 실제 법의 운용, 특히 본 논문의

서두에 제기한 입법문제와 관련하여 더욱 면밀한 고찰이 요구된다. 특히 다음

에서는 이 문제를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웅거가 공히 지향하고 있는 급

진민주주의의 측면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Ⅳ. 급진민주주의와 입법

1. 급진민주주의의 지향점

현대사회는 다양성의 사회이다. 따라서 다양한 사회적 요구가 분출하여 새

로운 형태의 저항이 구성되고 일어나고 있다. 이를 라클라우와 무페는 ‘적대의

다원화’(plurality of antagonism)라 한다.61) 현대의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의 다양한 저항과 갈등 및 종속관계들은 특정한 조건들과 특수한 형태 하에서

60) 이와 관련하여 언급할 수 있는 것은 다원주의적 상황이 강조되면서 주목받고 있는

절차주의(적 정의론)이다. 예를 들어, 롤즈(John Rawls)의 경우 ‘순수절차주의’라는

개념을 전제로 하여 정의의 원리를 구축하기 위한 가상적 ‘중립지대’를 형성하고자한

다. 이러한 논의구조는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경우도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결국 절차에 있어서 중립적이지 못한 배제의 문제를

야기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심우민, “입법절차와 절차주의: 순수절차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그 대안,”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1. 2의 제3장과 제4장을

참조할 것.

61)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15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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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법철학연구

정치적 성격을 획득하며 또한 투쟁으로 성숙한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 상상이 끊임없이 확대되고 심화되는 것을 민주

주의 혁명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민주주의 혁명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그들

에게 부여된다. 따라서 원래 민주주의 특유의 전복적 성격을 사회전체에 전면

적으로 확대시키는 것이 급진민주주의이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급진적․다

원적 민주주의의 정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체의 위치들(subject positions)이 하나의 실증적(positive)이고 단일한 토대

적 원리에 회귀될 수 없다는 점이 인정되기만 한다면, 그 때 다원주의는 급진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다원주의라는 것은, 이 다원적인 정체성들의 각 항목이 그

자체의 타당성 원칙을 찾음에 있어 모든 정체성의 의미를 위계서열, 더 나아가서는

그들의 정당성 근원의 보장을 위한 초월적이거나 토대적인 근거 안에서 찾으려고

하지 않고 그들 자체 내에서 추구하는 한에서만 급진적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러한

급진적 다원주의는 그 항목들 각각의 자기구성이 평등주의적 상상의 대체물들인 경

우에만 민주주의이다. 그러므로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의 기획은 시원적인

의미(in a primary sence)에서 등가적-평등주의적 논리의 일반이라는 기반 위에 선

영역들의 최대 자율화를 위한 투쟁과 다를 바가 없다.62)

결론적으로, 어떤 사회가 급진민주주의적이라 할 경우 그것은 어떤 특정한

유형의 사회조직적 가치들을 여타의 그것들과 대립시키면서 자신의 타당성을

자명한 것으로 주장하지 않으며, 오로지 그 자신의 조직 및 가치들에 ‘궁극적

토대’의 부여를 거부하는 한에서만 민주주의적일 수 있다. 어떤 사회든지 완전

하고 자명한 민주주의를 성취하려 하지 않는 한에서만 진정 민주주의적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웅거도 마찬가지로 ‘급진민주주의’를 추구한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학(politics)63) 전 3권 중, 제1권인 허위적 필연성이라는 저

62)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 167면.

63) Roberto Unger, False Necessity: Anti-necessitarian social theory in the service

of radical democracy; Social Theory: It’s Situation and Task; Plasticity i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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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55

술의 부제가 “급진민주주의에 봉사하는 반(反)필연주의적 사회이론”(anti-

necessitarian social theory in the service of radical democracy)라는 데에서 두

이론 간의 연관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반필연주의적 사회이론이라는 웅

거의 이론적인 출발점은 열정(passion)64)이라는 저술에 나타난 그의 해방적인간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오늘날의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까지 발전한

철학적·이론적 경향은 회의주의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고, 따라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시금 인간 해방적 가치를 실현 내지 복원 시켜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관점의 핵심 내용은, 사회는 개인들의 ‘자기주장(self-

assertation)’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맥락(plastic context)’65)을 보존해 주

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웅거의 인간성에 대한 해명은 웅거가 이야기하는

인간 해방의 귀결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질서인 ‘구조 부정적 구조

(structure-denying-structure)’66)와 관련이 있다. 이러한 관점은 궁극적으로 웅

Power: Comparative-historical studies on the institutional conditions of economic

and military success (Verso, 2004), 이 저술은 1987년 Cambridge University Press

에서 출판되었다가, 2004년부터 Verso에서 출판되고 있다. 또한 이에 앞서 제1권인

False Necessity는 2001년에 개정되어 Verso에서 출판되기도 하였다. 1987년 당시

Social Theory가 최초로 출판되었고, 이에 뒤이어 False Necessity, Plasticity into

Power가 순서대로 출간되었다.

64) Roberto Unger, Passion: An Essay on Personality (Free Press, 1984)

65) 웅거는 지속적으로 우리들을 속박하는 관계의 망들을 묘사하는 데에 있어, 구조

(structure), 맥락(context) 그리고 프레임(framework)이라는 단어들을 동일한 의미

로 사용한다. Social Theory, 3면.

66) False Necessity, 572면; 이러한 ‘구조 부정적 구조’라는 관념이 처음 나타난 것은

비판법학운동이라는저술(Roberto Unger, “The Critical Legal Studies Movement,”Harv. L. Rev. 96, 1983)이었다. 이 저술에서 웅거는 사회적 변화와 실험에 관계된

법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구축한다. 이러한 변화와 실험이라는 것은 인간 연

합체의 새로운 형식들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사회적 구조를 요구하는 동시에, ‘맥락

초월성’에 기반 한 인간성(human personality)을 인정하는 사회와 관련된 것이다(651

면). 이러한 유연한 사회는 ‘구조 부정적 구조’라는 것을 요구하게 된다. 즉 이러한

구조 부정적 구조란 ‘통상적인 사회적 활동의 과정 속에서 비판과 변화에 영향을 받

지 않는 관행과 믿음의 모든 구조들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을 말한다’(660면).

이러한 새로운 ‘초자유주의’ 사회는 바로 ‘사회적 차별과 위계질서라는 숨겨진 계획

으로부터의 점진적 해방을 통하여, 지배자와 피지배자 또는 남성과 여성 간에 존재

하는 것과 같은 모든 직접적인 인간관계들의 시스템적 재구성’을 말한다(587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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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법철학연구

거의 급진민주주의 또는 권한부여적 민주주의(empowered democracy)에 대한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보자면, 급진민주주의에 대한 주장은 사회 내에 존재

하는 각 주체들의 정치적 주장 또는 자기주장이 모종의 토대적․실체적 기준

에 의해 재단 또는 배제되는 것을 거부하고, 가급적 그들의 주장을 제도적으로

수용해 줄 수 있게 해주고자 하는 이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열려진

체계를 추구한다.

2. 급진민주주의적 정의관념과 입법의 원리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지향하는 사회상을 구성하는 일은 단지 이 사회

속에 존재하는 제도적 틀의 일부분을 수정한다고 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작업을 수행함에 있어서는 총체적인 제도뿐만 아니라 정치 참

여자들의 사고방식에 있어서도 상당한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현실 제

도적인 논의에 위와 같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접목

시키는 것은 사회적․법적 안정성을 상당부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하는 변화가 단시일 내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부단히

현실 제도적 환경 속에서 그러한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아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글에서는 우선 입법의 문제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제도적 개선방안에 대

한 선결적 문제로 입법의 원리를 논해보고자 한다. 그간 공법학 분야의 논의를

중심으로 입법의 원리에 대한 논의는 한국에서도 존재해 왔다.67) 이러한 논의

들 중 최대권 교수의 견해 일부68)와 입법 기술적인 요소들을 제외하면, 기존에

러한 사회에서, 정부는 그 자체의 보존을 위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과 변화

에 반하는 제도 및 차별들을 방지하기 위한 역할을 한다(602면).

67) 이상영, “입법의 원칙에서 본 한국의 입법자와 입법과정의 분석,” 입법학연구 창간호, 2000; 홍완식, “입법의 원칙에 관한 연구,” 법제 제578호, 2006; 최대권, “입법의원칙,” 서울대 법학 제25권 제4호, 1984; 김승환, “입법의 원칙,” 세계헌법연구 제12권 제2호, 2006; 박영도, 입법학입문(한국법제연구원, 2008) 등을 참조할 것.

68) 앞서 최대권 교수의 견해 중 (ⅰ) Fuller가 법의 도덕성이라 부르는 8가지 원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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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57

입법의 원리로 제시된 내용들의 상당부분은 기본권 제한입법의 한계에 관한

헌법재판소 판례의 내용을 좀 더 세분화하여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하다. 즉 입

법이 가지는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라

는 요건에 대부분 포함되는 입법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69) 이러한 맥락에서

이제까지 한국사회에서 논의되어 온 입법의 원리는 입법을 정의에 맞게 합리

적인 것으로 만들며 법으로서 정당화할 수 있는 입법의 기준 내지 원리를 의미

한다고 일반적으로 설명되고 있다.70) 이렇게 본다면 기존에 논의되어 온 입법

의 원리들은 급진민주주의적 관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참조할 수 있는 논의로는 최근 주장되고 있는 빈트겐스(Luc

J. Wintgens)의 입법이론(legisprudence)에 관한 논의이다. 그는 입법의 문제에

대한 법이론적․규범적 접근방식을 취하지만, 사회계약론 논의와 연계하여 집

단적인 측면에서의 ‘자유에 대한 관념’(conceptions about freedom)보다는, 개인

적 측면에서의 ‘자유의 관념’(conceptions of freedom)을 중시여긴다. 즉 ‘자유에

대한 관념’이라는 것은 기존의 홉스나 루소와 같은 사회계약론자들의 논의에

서와 마찬가지로 외재적으로 주어진 집단적․공동적 자유의 개념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사회계약과 관련하여 교환모델(trade-off model)을 제안한다. 이

모델에서 행위자들은 각자가 가지는 자유의 관념들을 교환할 뿐, 총체적 성격

을 가지는 자유에 대한 관념들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즉 이러한 교환모델에서

는 홉스처럼 인간의 성향을 일반화하지도 않고, 루소처럼 인간사회의 일반적

(ⅱ) 밀(J. S. Mill)의 해악의 원칙, 친권적 보호주의, 공공복리, 사회정의의 실현 등의

경우가 그것이다. 이러한 입법의 원칙의 경우 다른 학자들이 주장하는 입법의 원칙

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주장들은 특정의 정의관념이나 도덕

성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서 급진민주주의 관점에 부합하지 않는다.

69)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법률에 의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때에

도 어디까지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행하여져야 할 것이고,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을 함에 있어서는 입법목적의 정당성

과 그 목적달성을 위한 방법의 적정성, 피해의 최소성, 그리고 그 입법에 의해 보호하

려는 공공의 필요와 침해되는 기본권 사이의 균형성을 모두 갖추어야 하며, 이를 준

수하지 않은 법률 내지 법률조항은 기본권제한의 입법적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헌법

에 위반된다.” 헌재 2003.12.18. 2001헌바91.

70) 홍완식, “입법의 원칙에 관한 연구,” 법제 제578호, 2006, 7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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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법철학연구

성향도 추정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관점은 앞서 논의한 급진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것과 상당한 조응성을

가진다. 특히 모종의 정의관념을 일반화 하지 않고, 각 개인들이 가지는 자유

의 관념을 교환한다는 사고는 각 주체들의 자기주장을 제도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지향점과 유사하다. 결과적으로 특정의 정의관념을 상정하고 이에 위반

되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것과는 차이점을 가지게 된다.71) 이러한 이론적 기초

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입법 또는 입법이론적 원리를 제시한다.72)

(ⅰ) 대안의 원리(The Principle of Alternativity): 사회계약이 실패한 경우에만

대안적으로 입법의 개인적인 자유에 대한 개입이 정당화 될 수 있다는 원리이다.

(ⅱ) 규범적 밀도의 원리(The Principle of Normative Density): 보충적 성격을

가지는 입법을 통한 제재(sanction)는 자유의 제한이라는 측면에서 더욱 특별한 정

당화를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ⅲ) 정합성73)의 원리(The Principle of Coherence): 전체로서의 법적체계(legal

system as a whole)라는 관점에서 입법을 정당화 하는 것을 의미한다.

71) 실제로 이러한 측면에서 빈트겐스의 입법이론은 웅거의 급진민주주의적 비전의 상

당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대해서는 Vlad F. Perju, “A

Comment on "Legisprudence",” Boston University Law Review 89(2), 2009를 참조

할 것. 또한 이는 그의 자유(freedom)에 대한 견해에서 더욱 잘 나타나는데, 그는 기

존의 지배적인 자유에 대한 관념과는 다른 다소 유명론적인 자유 관념을 주장한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는 금번에 출간된 Luc J. Wintgens, Legisprudence: Practical

Reason in Legislation(Ashgate Publishing, 2011)에 나타나 있다. 특히 이 책의 제1

장은 근대 리걸리즘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세 후기의 자유 관념이 유명론

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 착안하고 있다. 현재 이 책은 한정판으로 출간되어 있다(운

좋게도 필자는 빈트겐스의 배려로 이 책의 미간행 원고를 읽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

다). 그러나 그가 종국적으로 입법에서의 합리성을 기존의 이론들과 유사하게 강조

하고 있는 측면은 그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72) Luc J. Wintgens, “Legisprudence as New Theory of Legislation,” Ratio Juris

19(1), 2006, 10면 이하.

73) 이러한 정합성(coherence)은 일관성(consistency)과 구분되어야 한다. 일관성이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문제라고 한다면, 정합성이라는 것은 정도의 문제를

의미한다. 또한 일관성이 논리적 요건이라고 한다면, 전체로서 타당한 것(making

sense as a whole)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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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59

(ⅳ) 잠정성의 원리(The Principle of Temporality): 법 창출 행위는 인간의 다른

행위와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조건에 의해 변화한다는 것이기에 입법에 대한 정당화

는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타나내는 원리이다.

이상과 같은 원리들은 기본적으로 특정의 정의관념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

니기 때문에, 각자 개인들이 가지는 자유의 관념의 견지에서 정당화 되어야 함

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빈트겐스가 제시하고 있는 입법이론적 원리들은 급진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

다.

우선 (ⅰ) ‘대안의 원리’와 관련해서는 개인적 자유를 기본 전제로 사회계약

이 실패한 경우에만 입법을 통한 개입이 정당화된다는 측면에서, 이는 각기 다

른 도덕적 관점에 기반한 자유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특정의 정의관념

또는 실체적 관점을 총체적 측면에서 강제하지 않는다. 또한 (ⅱ) 제재를 수반

하는 입법의 경우 그러한 정당화의 정도가 더욱 특별하게 요구된다는 점에서

‘규범적 밀도의 원리’도 기본적으로 각자의 도덕적 관점에 기반한 자유라는 의

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ⅲ) 빈트겐스는 일관성이 아닌 ‘정합성의 원

리’74)에 따른 입법의 정당화를 의미하는 데, 이는 입법의 결과가 가지는 실정

성을 인식하면서도 각기 다른 정의관념이 경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ⅳ) 급진민주주의의 지향점과 관련하여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원리는 ‘잠정성의 원리’이다. 사실 앞서 세 가지의 원리는 급진민주주의를

전제로 하지 않더라도 일정부분 설명이 가능한 문제라고도 평가할 수 있기 때

74) 빈트겐스는 이러한 정합성의 원리를 상당히 강조한다. 그는 정합성의 원리를 4가지

의 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제0단계 정합성”은 규칙 상호간의 내용이 서로 모순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모든 진술이나 언명에 요구되는 기본적 원리이다. “제1단계 정합

성”은 규범을 지나치게 쉽게 변경해서는 안 된다는 차원의 정합성을 요구하는 원리

이다. “제2단계 정합성”은 규범이 전체 법체계와 정합성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원리

이다. “제3단계 정합성”은 법시스템이 외부적 또는 규범외적인 현실에 관한 이론들

과 정합성을 가져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러한 단계별 정합성 원리에 대해서는 Luc

J. Wintgens, 앞의 글(주 72), 15면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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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법철학연구

문이다. 입법의 정당화와 관련하여 ‘잠정성의 원리’는 특정한 정당화 절차를 거

친 결과가 절대로 진리가 될 수 없으며, 단지 불가피한 선택의 측면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75) 그 결과 빈트겐스는 입법이라는 것을 지속적인 정

당화의 과정 또는 절차라고 판단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원리는 모종의 정

의관념을 전제한다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급진민주

주의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반본질주의적 또는 반필연주의적 사고를 내포하

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재차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논점은 결국

입법의 원리라는 것은 ‘결과론적인 실체’의 문제보다는 ‘입법적 의지형성의 절

차’ 또는 빈트겐스의 표현에 따르자면 ‘정당화 또는 논증 절차’의 문제를 포괄

하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76)

75) 이와 관련하여 논해질 수 있는 입법의 형태로는 ‘실험법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

는 주로독일어권국가에서논의되어온입법의형태로 4가지의요건이충족되는경우

이에해당한다. (ⅰ) 법률의유효기간이정해여있음(법률의잠정적성격), (ⅱ) 실험이

라는 의사를 보증하기 위해 당해 법률의 처음에 유효기간을 규정함, (ⅲ) 입법평가

시행의 규정(한시법과의 구별), (ⅳ) 항구적 입법화 여부가 입법평가의 결과에 따라

좌우됨. 이러한 실험법률에 대해서는 서원우, “행정학과 행정법학의 대화,” 한국행정학보 제31권제4호, 1998; 박영도, 입법학입문(한국법제연구원, 2008), 96면이하참조.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본격적인 실험법률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76) 이러한 측면에서 최근 입법학 연구에서는 입법논증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 시작

하였다. 세계적으로도 입법학의 한 분야로서의 입법논증에 대한 관심은 아직까지 그

다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이와 관련하여 출간된 의미 있는 연구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Daniel Oliver-Lalana, “Legitimacy through Rationality:

Parliamentary Argumentation as Rational Justification of Law,” Luc J. Wintgens

(ed.) The Theory and Practice of Legislation: Essays in Legisprudence (Ashgate,

2005); Manuel Atienza, “Reasoning and Legislation,” Luc J. Wintgens (ed.) The

Theory and Practice of Legislation: Essays in Legisprudence (Ashgate, 2005);

Daniel Oliver-Lalana, “Towards a Theory of Legislative Argument,”

Legisprudence 4(1), 2010; Jan Sieckmann, “Legislative Argumentation and

Democratic Legitimation,” Legisprudence 4(1), 2010; H. José Plug, “Institutional

Boundaries on the Evaluation of Argumentation in Legislative Discussions,”

Legisprudence 4(1), 2010; Gema Marcilla, “Balancing as a Guide to Legislative

Reasoning,” Legisprudence 4(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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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61

Ⅴ. 결론에 대신하여

이상의 논의를 통하여, 마르크스의 정의관념과 이러한 정의관념이 정초하고

있는 경제결정론이라는 본질주의 또는 허구적 필연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포스

트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와 더불어 포스트 마

르크스주의가 지향하는 급진민주주의와 이에 바탕한 입법의 원리 문제를 살펴

보았다.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는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로서의 근본 취지

를 상실했는지도 모른다.77) 그러나 과거 마르크스의 이론이 부르주아적 자유

주의 또는 자본주의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면, 오늘

날 신자유주의적 경향성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역할은

살아있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이것이 오늘날 마르크스주의 진영의 살아있는

적대의 지형인 것이다.

비단 이러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의의는 그들을 포괄하는 전체적인 마르

크스주의 진영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적대의 지형을 잃어버린 오늘날

정치 지형은 진정한 민주정치의 구현이라기보다는 항상 신자유주의적 경향성

에 부합하는 정책기조 하에서 각 정치적 입장들간의 약간의 피상적인 스팩트

럼 차이만을 노정하면서 작동하고 있다. 사실상 현실 정치권의 논의들은 그들

이 제시하는 구호의 다양성을 제외하면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

는 상황이 된 것이다.78) 따라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는 적대의 지형을 회복함

77) 이와 관련하여 지젝(Slavoj Žižek)의 지적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는 라클라우와의

논쟁에서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진영(무페와 라클라우)의 헤게모니적 실천이 보편성

의 형식을 차지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계급투쟁의 배제를 우려한다. 이에 대해서는

Slavoj Žižek, “계급투쟁입니까, 포스트모더니즘입니까? 예, 부탁드립니다!”Judith

Butler,Ernesto Laclau, Slavoj Žižek, 박대진․박미선(역), 우연성, 헤게모니, 보편성: 좌파에 대한 현재적 대화들(도서출판b, 2009), 163-164 참조.

78) 이와 관련하여 무페의 지적이 존재한다. “경쟁자 사이의 정치적 구분선이 부재할 때,

부패나 수뢰와 같은 것이 그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상황

하에서는 정치적 경계는 종교적 정체성이나 혹은 낙태 문제처럼 타협될 수 없는 도

덕적 가치를 중심으로 만들어 질 수 있고, 그것은 모든 경우에서 좌/우의 구분이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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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법철학연구

으로써 더욱 활력적인 정치를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일정부분 보여준다.

이러한 모든 주체들이 각각의 자기 주장을 제도적 질서 속에서 제기하고 또

한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넓혀주고자 하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급진민

주주적 지향점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밝힌 자유인들을 위한 연합체(AnAssociation of Free Men)와 마찬가지로 단지 머나먼 이상향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을 현실 속에서 실현시키기 위한 대안을 고민하는 것은 좀 더 세밀

하고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리라고 판단한다. 위에서의 논의들은 이러한 접

근을 위한 하나의 이론적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해지고 정치적 담론이 사소한 것으로 되면서 만들어진 민주적 결핍을 드러내는 것

이다” Chantal Mouffe, 이행(역), The Democratic Paradox(Verso, 2000); 이행 역,

민주주의의 역설(인간사랑, 2006), 17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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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민주주의적 사회정의와 입법 63

Abstract

Radical Democratic Social Justice and Legislation

―Focusing on the Theories of Post-Marxism―

Sim, Woomin

Concerns about justice in Korea has increased recently. This has special

meaning in the respect that these concerns are resulted from realistic

politics. Generally speaking, the demand for the social justice asks for the

management of law on the ground of justice. In the same line, there must

be the law-making which fits for this conception of justice. As a matter of

fact, many discussions about social justice are related to the legislative

issues.

The concerns about social justice in Korean society cannot be separated

from the orders of capitalism or neo-liberalism. In this respect, we need to

concentrate on the theories of Marxism, which provide the critical

alternatives for these orders. This article concentrates on the Post-marxist

theories among many different readings of marxist theories. Most of

theorists of Post-Marxism claim for radical democracy.

This article is focusing on these theme; (ⅰ) What does Marx think about the

conceptions of justice? The main point of this part is whether there are ideal

type of justice in the theories of Marx or not. The writer suggests that Marx

criticized the ideological character of justice. And in this respect, (ⅱ) how can

we explain Marx’s conceptions of justice in the perspectives on

Post-Marxist? In this part, Chantal Mouffe and Ernesto Laclau are mainly

explained. However, because these scholars concentrate on the political

issues, their theories need to be supplied with legal and institutional aspects.

Therefore, the writer introduces the theories of legal scholar, Roberto U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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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법철학연구

Those Scholars in these both disciplines suggest the same alternative,

“radical democracy”. Finally, (ⅲ) how can the principles of legislation be

constructed on the basis on the conceptions of justice within Post-Marxist

alternatives, radical democracy? For this explanations, the writer introduces

the analyses of Luc Wintgens, who researches in the field of Legisprudence.

In his analyses, there are four principles of legislation; The Principle of

Alternativity, The Principle of Normative Density, The Principle of

Coherence, and The Principle of Temporality. This part mainly explains how

these principles can be read in the perspectives of radical democracy.

정의(Justice), 포스트 마르크스주의(Post-Marxism), 제도적 상상력

(Institutional Imagination), 입법이론(Legisprudence), 입법의 원리

(Principles of Legislation), 샹탈 무페(Chantal Mouffe), 어네스토 라클

라우(Ernesto Laclau), 로베르토 웅거(Roberto Unger), 룩 빈트겐스

(Luc Wintgens)

색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