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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이리 201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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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이리 2013년 8월호를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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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Page 2: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순서 입니다.

비밀 안(not)스러운 생활 / 사진. 글. beamil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사진. 글. @Ahopsi

회사옆 미술관 / 글. 강세기

대중영화로 세상 읽기 / 글. 곡주대비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연암 박지원 / 글. 사진. 고수진

우울한 청춘 / 그림. 글. 철민

악마를 찾아서 / 그림. 이다솜 글.권고마

독후소설 / 그림. 황은정 글. 김종소리

뼈그림 / 그림. 왼손이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0,0,0 / 글.그림. Night Planet

웹디자이너 생존 매뉴얼 / 글. 그림. 김성연

부산 오뎅 이야기 / 글. odeng

바다비 일요시극장 광고

가브리엘 뱅상 (Gabrielle Vincent) / 글. 그림. 지인

Page 3: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지난달에는 pdf 파일에 하이퍼 링크가 들어갔고 8월 호에는 인쇄물에 qr

코드가 들어갔습니다. 화면을 찍어도 잘 되니 걱정마시고 해 보세요. 혹

사용법을 모르시면 ‘qr코드’로 한 번만 검색해 보세요. 이후의 재미는 책

임지겠습니다.

8월은 여름이고 한참 더울 때 입니다.

창피하다 생각마시고 우산으로라도햇볕을 가리며 다니세요. 8월에는 저

희도 은신에 들어갔다가 9월에는 모종의 변화를 꾀할 예정입니다.

맥주도 수박도 복숭아도 즐기시면서 휴가 잘 다녀오시고요.

웃으며 다시 만납시다.

이달에는 권고마 님과 이다솜 님이 연재에 참여해 주셨습니다. 책 과 관

련된 재미있는 코너가 될 것을 확신 합니다.

월간이리의 공식 트위터는 @postyri 이고

온라인 페이지는 postyri.blogspot.com 입니다.

이곳에서는 컬러 PDF 파일과 바로보기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Page 4: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비밀안(not)스러운생활 2013 AUGUST

15 02:09 14 23:56

19 20:25

19 20:30

18 18:52

18 22:09

13 21:32

18 19:34

6 13:51

그래도 이런 내가 싫지는 않다. 치열하고 앞만 보며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낫다. (기대치가 낮으면 만족도가 높다는 진리 / 나는 잘 못 따라가겠는 이 진리와는 별개의 문제로)

때로는 내 안의 감성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 괜찮다. 역설적이지만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외로워서 행복도 더 크게 보고 느낄 수 있다.

일단은 당신들이 보는 이번 달 사진에서 외로움이 느껴졌으면 좋겠는데. *Android, i-Phone APP ‘인스타그램’의 필터를 이용하여 찍은 사진들만 실어요.

7월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8월도 아마 그럴 것이다. 9월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아마 가는 올해도 내년도, 죽을 때까지 그렇겠지.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가진 것

보다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생을 살았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하고. 그런데 왜 외로운 것일까? 채워지지 않은 나머지가 내게 주는

의미는 생각보다 훨씬 큰 것이 분명하다. 예전에 그런 광고가 있었지. 그 당시에는 꽤 신선한 디자인, 맛, 컨셉이었던 O% (몇 프로)라는 이온음료의 광고. 나를 채워줘.

{beam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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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안(not)스러운생활 2013 AUGUST

15 02:09 14 23:56

19 20:25

19 20:30

18 18:52

18 22:09

13 21:32

18 19:34

6 13:51

그래도 이런 내가 싫지는 않다. 치열하고 앞만 보며 살아가는 사람보다는, 낫다. (기대치가 낮으면 만족도가 높다는 진리 / 나는 잘 못 따라가겠는 이 진리와는 별개의 문제로)

때로는 내 안의 감성들을 다 죽여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 괜찮다. 역설적이지만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외로워서 행복도 더 크게 보고 느낄 수 있다.

일단은 당신들이 보는 이번 달 사진에서 외로움이 느껴졌으면 좋겠는데. *Android, i-Phone APP ‘인스타그램’의 필터를 이용하여 찍은 사진들만 실어요.

7월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8월도 아마 그럴 것이다. 9월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아마 가는 올해도 내년도, 죽을 때까지 그렇겠지. 나는 지금까지 내가 가진 것

보다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생을 살았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하고. 그런데 왜 외로운 것일까? 채워지지 않은 나머지가 내게 주는

의미는 생각보다 훨씬 큰 것이 분명하다. 예전에 그런 광고가 있었지. 그 당시에는 꽤 신선한 디자인, 맛, 컨셉이었던 O% (몇 프로)라는 이온음료의 광고. 나를 채워줘.

{beamil}

Page 6: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Page 8: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무라카미 다카시 수퍼플랫 원더랜드

없는 밑천 드러내는 질문 이겠지만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업을 볼 때 드는 생각 하나.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떴을까?

사실 유명한 작가의 작업 앞에 설 때면 항상 하는 그리고 하려는 질문이다. 그러나 쉽게 알아내지 못하는 이유는 이 간단 명료한 답을 내기 위해서는 많은 발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방대한 양의 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단순 열거 방식의 글이 대다수인 인터넷에서는 간지러운 곳을 긁어 주는 글을 만나기는 정말 어렵다. 영문 기사는 해석이 어렵고... 또 그렇게 해서 발견한다 치자. 어렵게 꼬아놓은 전문가들의 비평문 행간을 헤집고 들어가 내 언어로 변환하는 일이 남아있다.

기적적으로 여기까지 이해를 했다고 하자. 그래도 궁금증의 해답, 즉 왜 유명한지를 알려면 다른 작가와의 비교는 물론 당시 미술의 흐름 속에서 알아내야 할진대, 그러려면 시간을 두고 축적된 내 나름대로의 DB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좋은 작업을 가릴 줄 아는 좋은 기호를 가진 다는 건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회사 옆 미술관

아무튼 무라카미 다카시로 돌아가면, 일본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의 작업이 미술씬에서 굵직한 대우를 받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일단 그의 이력을 살펴보기로 했다. 위키피디아에 들어가서 보니 그의 공식 전시는 89년부터 시작한다. Café Tiens!에서 처음 시작했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갤러리 카페가 아닐까? 우리로 따지면 대안문화공간이라 치자. 민영 갤러리와 대학교 미술관을 거쳐 공식 전시를 시작한 1989년에서 미국 최초 진출은 1994년 The Gallery at Takashimaya라는 이름의 갤러리에서 열린 단체전이었다. 1995년 모마(MOMA)가 전도유망한 젊은 아티스트를 초청하여 1년 동안 창작과 전시공간을 제공하는 P.S.1 Studio Artists에 참가한 점에 주목된다.

그러다 1996년에 엘리자베스 페이튼을 데뷔시킨 딜러이자 아트리뷰 2012 Power 100에서 40위에 오른 개빈 브라운의 갤러리 Gavin Brown’s Enter-prise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더 말하지 않아도 흔히 말하는 아트스타의 길로 승승장구하는 이력이 계속된다.

다카시의 초창기 작업은 기존 제품을 그대로 전시하는 기존 팝 아티스트와 별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러다 대표적인 캐릭터 도브를 1993년부터 만든 이후부터 흔히 우리가 많이 접하는 그만의 캐릭터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1997년 미스 코코, 그 이후에 코스모스 시리즈까지 쭈욱 보면흔히 말하는 예능용어인 다카시는 밀고 갈 ‘캐릭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궁금한 점은 왜 이 캐릭터가 먹혔냐는 것이다. 일본도 일본이지만 외국에 말이다. Yayoi Kusama, On Kawara, Yoko Ono, Hiroshi Sugimoto 등과 같이 기존 국제 미술씬에서 폭넓게 활동한 일본 아티스트와 그의 차이는 무엇일까?

Page 9: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강세기

http://kangjoseph.tistory.com

먼저 기존 작가는 굳이 본인이 일본인이 아니어도 작품 자체가 특이했기 때문에 각광받아온, 그야말로 작업 또는 개인의 캐릭터로 승부한 것으로 보인다. 작업에 작가명과 국적을 지우고 보면 이 모두를 맞출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업은 딱 봐도 “일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카시의 전공은 일본전통화 박사다. 도대체 아티스트가 전공하는 박사과정에서는 무엇을 배우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턴 박사까지 따면 학교에서 적어도 10년은 일본전통그림만 죽도록 본거다. 그런 사람이 팝아트를 한다고 아무리 애써본들 자신이 배운 거에서 나오지 않겠는가. 이 일본 그림이 국제(미국) 미술계에 입성한 데에는 시대적인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나 싶다. 먼저 살펴본 것은 일본 애니매이션의 미국 진출과 저변확대 시점이다. “Japanese Animation in America and its Fans(Jesse Christian Davis)”라는 글을 보면 1980년대부터 주요 일본 애니매이션은 미국 TV에 소개가 되었단다. 그러다 폭발적인 확산은 인터넷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우리의 천리안과 같은 BBS(Bulletin Boards Sys-tems)을 통해 팬덤이 확산되었고, 그 시기는 90년대 중반 부터로 다카시의 미국 진출과 유사한 시기이다. 물론 다카시의 작업이 미국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이 떴기 때문에 지금 이렇다고 보는 건 너무 심한 논리의 비약이겠다. 그렇지만 어느 수준 이상의 흐름을 형성하는 미술작업 일수록 단순한 작품 하나로는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예술가는 역시 타이밍과 운이라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게 된다. 날고 긴다 하는 예술가들 틈에서 스타는 고사하고 회고전을 개최할 만큼의 호사를 누릴만한 작가는 정말 십 만분의 일, 백 만분의 일이나 될까 싶다.

앤디 워홀도 미술계에 숟가락을 깊게 꽃을 수 있던 것도 당시 공산품의 폭발적인 확산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정서에 딱 들어맞는 소재 (브릴로상자, 통조림통으로 대표되는 공산품, 그리고 마릴린 먼로와 앨비스 프리슬리 등의 팝스타)와 기법(실크스크린으로 공장처럼 찍어내는)을 차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잭슨 폴록도 당시 미술씬의 중심이던 유럽이 전쟁을 통해 정신 못 차리는 틈을 미국 중심으로 문화판을 재편하려는 정부 정책과 거기에 대한 미국인의 동조 정서가 없었다면 지금의 네임밸류를 가질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면 회사에서 사장에 오르는 사람이나 굵직한 아티스트나 일 잘하고 그림 잘 그리는 것 외에 뭔가 있긴 있어서 저 위치에 오르는구나 라는 생각도 한다. 근데 같이 일하는 상사 보면 전 직장(대기업)에서 임원을 하다 왔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도대체 이 사람은 뭘 잘해서 임원을 달아준 걸까?

Page 10: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대중영화로 세상 읽기: 곡주대비

최근 개봉한 감시자들을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보았

다. 영화 쪽 일하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기자 시사를

포함하여) 입을 모아 칭찬했던 작품인지라 평소 영

화를 보는 마음보다는 훨씬 더 큰 기대를 가지고 보

았다고 미리 말해 두어야 하겠다. 결론부터 풀자면,

일단 camera work가 뛰어났던 작품이었고, 소재의

신선함이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감시자들: 일상에서 조우하는 ‘감시’의 철학

인문학을 전공한 자 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학자 미

쉘 푸코는 현대 사회에서의 감시 라는 체계가 가시

적 (길거리 곳곳의 CCTV, 경찰력 등의 사회 보안)

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구조 자체가

감시를 기반으로 구축된 단체라 논한 바 있다. 이러

한 그의 주장에 빗대어 보자면 사회 구성원 하나하

나는 단순히 이 생을 살아가는 동료 이상인, 서로를

감시하는 ‘감시자들’ 인 것이다. 물론 이번 개봉한 “

감시자들” 은 범죄자를 체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용

의자를 목적으로 감시를 하게 되는 공식적 공권력

을 갖춘 단체를 칭하고 있긴 하지만 영화 초반에 한

효주 역할이 지하철에서 마주 하게 되는 모든 사람

들과 그들의 소지품,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행

위는 일반인 모두가 감시 당하게 된다는 것을 효과

적으로 보여준다.

좀 더 영화 이야기에 촛점을 맞춰보자면 감시자들

은 범죄자인 정우성 캐릭터를 뒤쫓는 경찰내 특수

조직 감시반, 그 중에서도 한 팀을 이루어 작전을 수

영화의 원작 eye in the sky

Page 11: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행하는 6명의 팀원의 활약상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

다. 이들 6명은 서로 근접 지역을 나누어 범죄자에

게 접근해 결국 체포 한다는 사명아래 임무를 수행

한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이 작품은 이들 6명 - 특

히 한효주와 설경구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 이 얼

마나 치밀한 수법과 감각으로 수사망을 좁혀 가느

냐에 치중을 하는 듯 하지만 다른 각도 에서 보면

이 영화는 정우성 캐릭터 즉, 범죄자가 어떻게 이 6

명을 또한 감시하며 수사망을 피해가는지 보여주는

데도 상당량을 소비 한다. 결국 감시하고 감시 당하

는 대상은 경찰과 범죄자 둘 다 이며, 그 중간에 때

때로 보여지는 시민들 역시 이들의 감시 대상이다.

이 영화가 유독 필자에게 신선하게 느껴 졌던 이유

는 경찰, 범죄자, 감시라는 다소 진부한 주제의 스

토리 위에 감시를 하고 되는 과정이 치밀하게 잘 입

혀져 있다는 점이었다. 가령, 영화의 두 시간 남짓한

다소 긴 러닝타임 속에 감시반이 정우성 캐릭터를

쫓는 과정은 약간 지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집요

하고 섬세하게 그려진다. 대부분의 감시씬들과 미

행씬들에 타이트한 클로즈 업이나 핸드핼드를 이용한 다이나믹한 프레이밍이 사용되고 있고, 장소 역시 광활

한 대도시가 아닌, 광활한 대도시 속에서도 강박증이 느껴질 정도의 좁은 골목길들 (미행씬들이 일어나는),

쓰러질 것 같은 작은 상점 (정우성이 범죄를 사주 받는) 혹은 작은 오피스텔 복도, 방 (공범자의 소굴) 등이다.

이러한 장소들은 현대인들의 일상에서 서로간의 proximity, 즉 도식적인 간격이 얼마나 점점 좁아지고 있으

며 이러한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정보, 특히 개개인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치명적인 정보들이 예기치 않게 드

러나고 사용되는가를 시사한다.

따라서 현대생활에서의 감시는 공권력을 통해 수행되는 것만도 아니고, 특정 개인이 비도덕한 목표를 가지고

하는 행위만도 아닌, 모두의 일상이며, 이는 푸코가 앞서 지적한 근대 사회가 감시라는 개념을 기반으로 건설

되었고 운행된다는 주장과 일통한다.

“감시자들”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인식하지 못한 채 저지르는 ‘감시’라는 행위를 치밀하게

그려낸 근래 들어 (간만에) 조우한 뛰어난 작품이다. 굳이 그런 작품의 흠을 잡을 필요는 없겠지만 다소 미흡

했던 부분을 얄밉게 꼽아 얘기하자면 작품의 결말을 들 수 있겠다. 결말에서 예상한 바 대로 범죄자는 감시반,

특히 한효주 캐릭터, 의 집요한 노력 끝에 체포 되고 동료를 잃은 나머지 요원들은 서로를 위로 하며 뻔한 엔

딩을 맺는다. 내러티브 자체가 특이 하지는 않았던 영화가 기술적인 테크닉과 소재를 다루는 솜씨로 좋은 작

품이 된 만큼 필자가 결말에 대해 갖고 있던 기대도 컸던 지라, 뻔한 엔딩일지라도 그려내는 방법이 좀 달랐

기를 바랬던 것이 사실이다. 허나 지금 주절거리는 흠잡기는 사족이라고 무시 당해도 좋을 정도로 수작이니

놓친 독자들이 있다면 꼭! 극장에서 관람하길 기대해본다.

마감이 쫓아온다.

Page 12: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연암 박지원

7월호에서 예고한대로 이번시간 우리가 함께 볼 문학작품은 조선후기 실학자 연암 박지원의「호질」이다. ‘虎叱=

호랑이의 질책’이란 제목의 의미를 통해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유학자의 위선과 탐욕, 아부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범’의

입을 빌어 질책함으로써, 결국 이러한 인간상은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호질」은 박지원의 문집 중『

열하일기』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와 완성한 기행수필인데

그 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단순히 여행기록이 아니라 박지원의 실학사상과 평소 호방했던 그의 기질이 녹아 있는 독립된

문학작품도 섞여 있다. 그 중 한 작품이 이번호 우리가 볼 작품이다.

박지원은 농담을 좋아 했다고 한다. 굉장히 유머러스한 학자로 전해지는데 그가 지은 작품에 고스란히 그의 성격이

드러난다. 「호질」을 지은 계기는 박지원이 어느 여관에 묵을 때 벽에 있는 글귀를 읽고 너무 재밌어 조선에 돌아와

친구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그 글귀를 베껴 적은 뒤에 좀 더 내용을 덧붙여서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이제 그 이야기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보자.

산중에 밤이 들자 호랑이가 부하들을 소집하고 저녁에 소일거리를 의논하고 마을로 내려올 때 정지읍에 사는

도학 높은 북곽선생이 이웃의 동리자라는 청상과부의 집에서 밀회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동리자와 아들

다섯이 우리 마을의 청렴한 선비가 그럴 리 없다고 여우가 둔갑하여 어머니 방에 있는 것이라 하여 몽둥이를 들고

들어갔다. 북곽선생은 몽둥이를 피해 달아나다 똥통에 빠진다. 그리고 그 앞에는 호랑이가 서 있었다. 호랑이는

너는 잡아먹을 가치도 없다고 하며 위선적인 그를 꾸짖고 가 버린다. 북곽선생은 머리를 숙이고 감사하다고 날이

샌지 모르고 계속 빈다. 아침에 농사를 짓기 위해 나온 농부가 그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 물으니 북곽선생은 그제야

호랑이가 간 줄 알고 농부에게 유학의 도가 이렇게 높으니 내가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다네 라는 핑계를 대며

달아난다.

“나를 돌아보라. 충실하게”

Page 13: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는 무서운 짐승이다. 이런 호랑이를 북곽선생으로 대표되는 유학자와 비교, 대조시키고 있다는

점을 읽어내야 한다. 호랑이는 잔혹한 동물이지만 자기가 잡아먹을 만큼 먹는, 즉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존재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호랑이는 하나의 캐릭터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북곽선생, 동리자)을 풍자하는

신적존재로 보는 것이 더 명확할 것이다.

북곽선생은 유학자로 나라의 왕과 귀족들에게 추앙받는 고고한 성품을 지닌 청렴한 선비이다. 동리자는 정절과

현숙함으로 역시 칭찬이 자자한 인물이다. 그러나 북곽선생은 그 밤에 동리자를 찾아갔다. 그런데 동리자에게는 성이

다른 아들이 5명이나 있었다. 수절과부에게 성이 다른 다섯의 아들, 그 아들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청렴하다던 북곽선생은

음란한 이야기를 나눈다.

풍자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인물이 결함이 있는 인물을 우스꽝스러운 상황 속에서 희화화 하여 비판하는 것인데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부정적 인물에 의한 부정적 인물의 폭로가 나타난다. 그리하여 두 인물의 위선적인 모습이 더욱

극대화 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북곽선생은 동리자의 집에서 봉변을 당하고 도망치다 똥구덩이에 빠진다. 똥구덩이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는데 앞에는

호랑이가 입을 벌리고 서있다. 북곽선생은 호랑이에게 아부를 한다.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호랑이의 덕을 칭송하며

임기응변으로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 호랑이는 북곽선생의 아첨하는 성격을 간파하고 꾸짖는다. 호랑이는

유교적인 도덕 윤리를 내세우면서 뒤에서는 딴 짓하는 인간의 모순을 비난하고 잔인성을 폭로한다. 북곽선생의 모습은

조선 후기 무너져 가는 양반계층의 자기 결함의 모습이자 동시에 인류가 성장하면서 이 세계에 보여준 결함이다. 모순된

인류가 가진 전형성을 폭로한 것이다.

범은 북곽선생을 여지없이 꾸짖었다.

‘범은 초목을 먹지 않고 술 같은 좋지 못한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며 순종하고 굴복하는 하찮은 것들을 차마 잡아

먹지 않는다. 범이 노루나 사슴을 잡아 먹을 때는 사람들이 미워하지 않다가, 말이나 소를 잡아먹을 때는 사람들

이 원수로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노루나 사슴은 은공이 없고 소나 말은 너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냐? 그

런데 너희들은 소나 말들이 태워주고 일 해주는 공로는 다 저버리고 날마다 푸줏간을 채우고 산에 사는 노루나 사

슴도 침해하지 않느냐? (…중략…) 너희가 이치를 말할 때 걸핏하면 하늘을 들먹이지만, 하늘의 소명으로 보자면

범이나 사람이나 다 같이 만물의 하나이다. 천지가 만물을 낳은 인으로 논하자면 범이며 메뚜기며 누에며 사람이

며 다 같이 땅에서 길러지는 것으로 서로 해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공공연히 노략질을 한다. 이는 천

지간의 거대한 도둑이 아니더냐?

(…중략…) 가지각색의 창이며 화포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을 한번 터뜨리면 소리는 산을 무너뜨리고 찬지에 불꽃

을 쏟아 벼락치는 것도 무섭다. 이 병기를 한 번 휘두르면 온갖 귀신이 밤에 곡을 한다. 서로가 잡아먹는다. 너희

들 보다 심히 하는 것이 어디 있겠느냐?

글, 고수진([email protected])

Page 14: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북곽선생이 똥통에 빠진 것은 작가의 치밀하고 고도의

풍자 장치였다. 굳이 똥통에 빠지지 않아도 북곽선생의

몸에선 구린내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똥통에

빠졌으니…. 구린내가 펄펄나는 북곽선생을 호랑이는 더

구린내 나는 인간의 모습을 열거하며 꾸짖는다.

호랑이는 질책을 한 후 떠났고 북곽선생은 농부를

만난다. 어느새 날이 밝은 뒤였다. 위선과 아첨에 젖어

있는 북곽선생에 대해, 부지런하게 노동을 하며 건실하게

살아가는 민중을 대비시킴으로써 독자들에게 양반

사대부 계층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양반

사대부 계층에게 대한 비판 및 자기 혁신을 촉구하고

있다.

좀 더 넓게 보자. 자기 혁신! 북곽선생이나 동리자가

비난을 받은 것은 어쩌면 남들이 만들어준 이목에 맞추어

자신들을 옭아매어 타인이 되어버린 거였고, 시대의

윤리학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풍습이 만들어낸

불쌍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처, 즉 관습, 자본, 그리고 권력이

만든 그 흉터를 드러내자. 그리고 이것들을 진솔하게

풀어낸 인문학 서적을 읽자. 그래야 우리에게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작은 희망이라도 생기지 않겠는가?

이상이란 나는 이렇게 살아가겠다는 이념이자 동시에

자신의 삶을 자기가 결정하겠다는 자유정신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 이상을 실현한 사람들을 우리는 주체적으로

살았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주위를 보면, 자유롭게

당당하게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주체적으로 살았다고 얘기를 듣는 것은 굉장히

어렵기도 하고, 또 내 인생의 찬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우리의 삶을 능동적이게

만들 수 있는가?

기존의 모든 것을 뒤 흔드는 사건, 그리고 그 안에서

충실하게 해결 했을 때 얻는 값진 경험. 「호질」을 읽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북곽선생과 동리자는

그들의 삶에 ‘충실성’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부족했노라고. 여러분은

어떠한가? 양반계층 풍자로만 이 소설을 읽고 덮기에는

너무 짧지 않겠는가?

내가 정말 좋아하고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보노보노』

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늙은 도롱뇽은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았어.

그래서 삶이 지루했데.”

요즘 뉴스를 보면 정치면이고 사회면이고 이렇게 흉흉할

수 없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인 댓글은 없고 그저 원색적인

비난에 젖은 어린아이 같은 댓글뿐이다. 날카롭고 정확한

비난이 있는 그런 사회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날이

갈수록 스마트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데 지식과 윤리는

뒤로 후진하고 있다.

잠을 곱게 주무시는 국회의원들, 원색적인 비난에 몰두

한 익명성에 가려진 네티즌들, 정당하지 못한 불합리한

구조의 경제구조를 만들어 내는 기업인들, 성폭행범들..

보노보노느님

Page 15: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그나마 몇 몇 컨텐츠들은 이러한 열악한 상황에서

빛을 내고 있다. (뉴스타파, 오마이 뉴스,

이이제이… 오옷!- 이들이 어쩌면 호랑이 일 수도

있겠다.)

어떤 경우든 정직하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는

순간 상황은 바뀐다. 그리고 내일부터 당장 눈빛이

달라진다. 충실함, 어렵지만 필요한 순간이다.

다음시간에는 현대시로 다시 넘어와서 시대정신을

냉정하게 그리고 꾸밈없이 썼던 60년대 김수영

시인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를 살펴보겠다.

지각하면 보강이다.

21세기로 슝 하고 넘어와서 삶에 충실성이 부족해 보이는 이들이야말로 우리 호랑이님에게 따끔하게 혼이 나야 정신을

차릴 것 같다. 어흥!!!

둘. 셋.

어.. 어흥

찰칵

Page 16: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우울한 청춘 글. 그림. 철민

Page 17: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그림. 이다솜

글. 권고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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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찾아서 - 암흑의 땅 서아프리카의 비극 그리고 비밀사회

Chasing the Devil(2011년)

팀 부처(Tim Butcher) 지음 | 임종기 옮김 | 에이도스 | 2012년

인터넷 서점에서 분야별 신간 목록을 살피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에이도스는 일인 출판사로 흥미로운

번역서를 주로 출간한다. 압도적인 표지, 매력적인 제목, “2011년 조지 오웰 상 후보작”이라는 카피까지

여러모로 관심을 끌었다.

이십여 년 간 국제 분쟁 기자로 일해온 영국인이 서아프리카 지역의 두 나라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를

여행하며 쓴 논픽션이다. 국내 집필서에서는 이런 종류의 책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김재명, 김영미,

박노해 씨 정도가 당장 떠오르는 저자들이다.) 영어권에서는 심심찮게 베스트셀러가 된다. 모국인들에게

생소한 이국을 여행하거나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얻은 목격담에, 그 지역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약간의

사회과학적 설명과 대강의 역사 서술을 양념처럼 곁들인 글이다. 최근에 우연히 이런 종류의 책을 몇 권

읽게 되었다. 인도 파키스탄의 근현대사가 현대의 풍경과 쓸쓸한 어조로 근사하게 어우러진 『거꾸로

가는 나라들』(판카즈 미시라 지음), 한 미국인 청년이 중국 오지의 시골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며

겪은 일을 기록한 『리버 타운』(피터 헤슬러 지음),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태평양의 외딴 섬 이야기 『나우루공화국의 비극』(뤽 폴리에 지음)이 무척 재밌었다.

사실 내가 다니고 있는 출판사가 이런 종류의 책을 자주 낸다. 한국에서 국제 문제는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열악한(안 팔리는) 분야이다. 어느 날인가 밥을 먹다 한국 사람들은

왜 나라 밖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이해하는 데 별 관심이 없는지 선배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전까지

나는 그저 한국인의 특성으로 치부해왔는데 그는 다른 가설을 내놓았다. 한국인들에게는 식민 지배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서구에서 인류학 같은 것, 다른 사회를 이해하려는 지적 흐름 자체가 식민

지배에서 비롯된 제국주의적 관심에서 시작된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물론 사람들이 책 자체를 안

읽어서, 사회과학은 더 더 안 읽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안 읽어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회사

책은 좀 많이 팔리면 좋겠다.)

이 책에는 네 줄기의 이야기가 겹쳐 있다. 첫째, 영국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Graham Greene)의 여정과

그의 자취. 둘째,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의 근현대사. 셋째, 저자 본인의 개인사와 과거의 경험담.

마지막으로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여행.

너무 많은 콘셉트가 해가 된 사례이다. 만약 내가 이 책의 편집자였다면 서아프리카 근현대사와 저자의

여행기에 집중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저자에게 제안했을 것이다. 좀 더 많은 현지인 인터뷰를 넣고

서아프리카 근현대사와 이전의 연구와 다른 문헌을 참고하고 사회과학적인 분석을 곁들이자고 말했을

것이다. 물론 여행 전에 미리 출판사와 계약이 된 경우에 가능한 이야기다. 이미 본인이 콘셉트와 소재를

정해 원고를 들고온 상태에서는 어떻게든 많이 팔리도록 꾸미고 수습하는 수밖에 없다. 책은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각각의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며 흥미를 돋우지 못한다. 수시로 인용하는 그레이엄 그린의

말이나, 자신의 여정을 그와 견주며 그의 생각을 짐작하고 때로 스스로 그러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나는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어쩌면 내가 그레이엄 그린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영국 아마존에서는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앞에서 소개한 책들과 비교해보면 이 책의 문제가 좀 더 명확해진다. 저자는 겨우 한 권의 책에 너무

Page 19: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많은 것을 바랐던 것 같다. 자신이 직업 기자로 살면서 느꼈던 아쉬움, 위대한 소설가의 여정을 뒤따르는

문학적 호기심(“이런 생각에 빠져 걸으니 어느 새 그레이엄 그린과 함께 거닐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을 직접 탐험하고 (심지어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까지 모두 담으려 했다.

그래서 저자는 두 달 동안의 도보 여행에서 보고 들은 아프리카의 자연과 인간의 모습을 꼼꼼히 기록하고,

그 지역의 근현대사를 요약하고 한 소설가의 전기적 사실을 수시로 언급하며,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숲속 비밀사회 포로(poro)(오늘날에도 여전히 제의 살인을 일삼는 서아프리카의 비밀 공동체. 여성들의

사회는 산데(sande) 혹은 분두(bundu)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할례 의식을 실행한다.)의 정체를 탐구하려

한다.

서아프리카 숲속 비밀사회 ‘포로’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은 전체 구성에서 핵심 이야기이자 절정으로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속시원한 탐사라기보다는 개운치 않은 귀동냥에 가깝고 이전의 연구를 인용하는

정도로 그칠 뿐이다. 책의 후반부에 가서 두어 쪽 정도를 할애해 자기 나름의 해석을 들려준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사람들이 정글에서 생존할 수 있는 최대의 가능성을 지식수호자들이 제시해준다는 점이다.

… 만약 포로 내의 많은 사람들처럼 한 개인이 입문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완전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믿음을 받아들인다면, 제의적 이유로 비입문자들을 살해하는 일은 여러 면에서 우리처럼 요리해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일보다 나쁜 일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원인 분석은 대체로 수긍이 가지만

결론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근대성(modernity)의 문제였다. 저자는 “현대에 들어 아프리카에 그토록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 이유는 부족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국가적 차원의 공공선을

창출하지 못한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비밀사회의 영향력이 강력한 아프리카의 국가들에서는

이들이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식민 국가든 피식민 국가든

근대 국가의 탄생은 이전의 사회 관계망을 무력으로 해체하면서 국가의 공적 권위를 안팎으로 확인받는

과정을 거쳤다. 서아프리카의 피식민 국가(시에라리온을 지배한 영국)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혹은 못했고, 국가가 부재한 상태에서 극단적인 폭력에 대처해야 했던 민간인들은 이전의 사회 관계망에

더욱 의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간간이 눈에 띄는 오탈자가 신경 쓰였다. 단순한 것이면 오히려 개의치 않았을 텐데 ‘그중’을 ‘그 중’

으로 쓴다든가, ‘몇십 년’을 ‘몇 십 년’으로 쓴다든가 하는 것은 그저 실수라기 보기 힘들다. ‘그중’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사로 등재된 단어이고, 수와 관련해 쓰이는 ‘몇’은 의문의 뜻을 가질 때는 몇 십, 몇

백, 몇 천으로 쓰고(“거기 몇 백 명 있어?”) 막연한 수를 의미할 때는 몇십, 몇백, 몇천으로 쓴다. 이런

것은 편집자가 잡아내야 하고 대체로 편집자만 잡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수습하는 말인 것 같아 좀

그렇지만, 그래도 이런 책을 내주어서 고맙다. 나는 더 많은 말이 따라서 더 많은 책이 더 괜찮은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단, 책은 잘 만들어야 하고 그래서 편집자는 잘해야 한다.

gomacoma.tistory.com

Page 21: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 이 달의 선정 도서

『페르세폴리스 1, 2』, 마르얀 사트라피, 최주현 역, 새만화책, 2008

사트라피의 눈에 비친 이란의 모습은 답답하다.

자유에 대한 억압과, 전쟁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녀는 이란을 떠나 프랑스에 정착했고, 자신의 삶이 녹아있는 만화를 그렸다.

그 만화는 이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떠나와 떠난 곳을 떠올린다는 것은 떠떠떠.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Page 22: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 어른 땡

중학생 때 나는 정신적으로 어른들만큼 성숙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충분히 합리적으로 사고했고, 내

게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늘 탐구했다. 이 과정을 거쳐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학교 공부를 충실히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판단하기에 학교 공부는 별 가치가 없어보였다.

대신 소설과 만화책을 읽었고, 영화를 보거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이런 행동들이 나의 영혼을

살찌우는 길이라 판단했다. 학교 수업 중에서도 가치 있는 것들은 들었다. 이를 테면 수학은 가치 있

는 수업이라 생각했다. 수학 점수는 늘 50점대 미만이었지만 문제 풀이만큼은 늘 열심히 했다. 내가

중요한 것이라 판단한 건 정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푸는 과정이었다. 공식을 대입하여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를 내는 것. 내게 그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었다.

어른들은 이런 내 행동에 대해 예외 없이 전부 다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들의 의견은 이런 식이

었다.

“네 나이 때는 학교 공부를 충실히 해야 돼.”

“어쩌려고 그러니?”

나는 그들의 의견이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이 사회는 학벌과 인맥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러니 네가 돈을 조금이라도 쉽게, 많이

벌기 위해선 좋은 대학에 가서 그곳의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해.’

하지만 그건 그들의 의견일 뿐,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치 그것만이 정답

인양 내게 강요하려 들었다. 폭력도 그런 폭력이 없었다. 그럴 때면 나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그럼 어른들은 짧게 한숨을 쉬고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제압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야와라>에 등장하는 말이다. 나는 어른들을 대할 때면 늘 이 말을 되뇌었다.

대화가 아닌 명령으로 다가오는 자들과는 말을 섞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알아서 그들이

나를 피해갔다.

내가 보기에 어른들은 무척 멍청해보였다. 이유인즉, 그들은 하고 싶은 일은 젖혀두고 하기 싫은 일

만 주구장창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어쩔 수 없이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기 싫은 일과 동시에 하고 싶은 일도 하면 될 텐데, 그들은 하기 싫은 일

을 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을 포기하고 있었다. 그리곤 늘 불평만 늘어놓았다. 시간이 없다는 둥,

힘들다는 둥……. 내가 보기에 그건 핑계에 불과했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

르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모든 어른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본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런 삶

을 살고 있었다. 나는 절대로 그런 어른들과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군대에 다녀온 뒤부터 나는 내가 싫어하는 어른들의 삶과 비슷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군대에 다녀온

나는 대학을 다니며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시간이 없었다.’

7시 반 기상. 9시 1교시 수업. 4시에 하교 후, 6시부터 아르바이트 시작. 새벽 2시에 마감. 취침. 다

시 7시 반 기상…….

그나마 주말에는 시간이 좀 남았지만 그 시간엔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만화책을 들춰보며 시

간을 보냈다.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연애를 하고 싶었고, 내 손으로 직접 의자와 책상을 만들어보고 싶

었으며, 영화 평론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연애를 하기엔 시간도, 돈도, 여자도 없었고, 의자와 책

상을 직접 만들기엔 목공의 ‘ㅁ’도 몰랐으며, 영화 평론을 하기엔 영화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이런 한심한 삶을 살고 있는 나를 보며 어른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넌 뭘 해도 잘 할 거야.”

Page 23: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이렇게 성실하니, 넌 성공할거야.”

나는 그 말들이 빈말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이미 중학교 때부터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아이가 이 사회에서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려운 일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른들의 칭찬을 가지고 내 행동을 합리화했다. 쉼 없

이 열심히 살고 있으니 보답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이다. 중학교 때의 내가 봤다면 코웃음을 칠 법한

이야기였다. 돌아올 무언가를 바란다면 그 무언가를 위한 일을 해야지. 다른 일을 한다고 해서 무언

가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

‘비단길을 걸어야만 비단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네가 비단신을 신는다면 온 세상이 비단길이 될

것이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나는 늘 이 이야기를 가슴 속에 품고 다녔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

면 세상 모두가 좋아질 것이라 믿었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그 상황 속에서 좋은 점을 찾아 되

뇌었다. 이를 테면, 새벽에 일이 끝나는 덕분에 한산한 거리를 걸을 수 있고, 학교 마치면 아르바이트

를 가느라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고, 돈이 없는

덕분에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고, 하는 식이었다.

어중간한 회사에 취업해서 어중간하게 야근하고, 어중간한 월급을 받으며 1년 가까이 지났을 때, 우

연히 아르바이트를 할 때 알고 지냈던 형님을 만나게 되었다. 말이 형님이지, 형님과 나는 띠동갑으

로, 그는 ‘어른’이었고, 나는 그에게 ‘아이’였다.

“네가 아직 덜 겪어봐서 그래.”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봐. 삶이 달라져.”

형님은 늘 내게 이런 식의 훈계를 늘어놓곤 했다. 그럼 난 ‘도대체 몇 살을 먹어야 어른 대접을 해

줄 건데? 내가 결혼하고 애를 낳아도 계속 애 취급을 하겠지?’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오랜만에 만난 형님과 담배를 하나 피우며 대화를 나눴다.

“요즘 무슨 일 해?”

“직장 다니고 있어요.”

“직장? 일은 할만 해?”

“네. 그냥 다니고 있어요.”

“그냥? 재미 없나보지?”

“아직 1년도 안 돼서요. 아직 잘 모르죠 뭐.”

“잘 모른다고?”

“네.”

“거짓말하지 마.”

“네?”

“1년은 무슨… 야, 솔직히 한 달이면 각 나오잖아. 너 거기 다니기 싫지?”

순간,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형님의 말 그대로였다. 나는 회사의 업무가 어떤 것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고, 나는 그 일이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돈을 벌어야한다는 생각으로 죽

어라고 내 행동을 합리화시켜가며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어른의 모습이었다.

나는 대화를 얼버무리고 형님과 인사를 나눴다.

“잘 생각해봐. 결혼하고 애 낳으면 끝이야.”

형님은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그날 밤, 나는 이불 위에 누워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곤 손자의 병법을 떠올렸다.

‘36계 줄행랑. 때로는 전략상 후퇴도 필요하다.’

Page 24: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Page 25: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지난 달에 PDF 하이퍼 링크에 이어 이달은 QR코드를 도입했습니다.

지난 달 처럼 뭐가 들었는지 차근 차근히 설명 할 까 하다가.

재미삼아 보물 상자 열 듯 즐기 실 수 있게 준비해 보았습니다. 눌러도 됩니다.

여전히 월간이리 내 원고의 일부분이나 필진 이름, 블로그 주소등을 누르시는 경우

해당 페이지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Page 26: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0,0,0> 야행성Night Planettw

itter : @hitch

hik

er_j

“서울에서 언니와 내게 허락된 공간은 침대에서 내려와 한 걸음만 디뎌도 방

끝에 닿는 크기가 고작이었다. 그나마 내 능력으로 얻은 공간도 아니었다.”

Page 27: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다섯번째 집(2004-2005)>

대학에들어가자갑작스레세상이넓어졌다.대중교통을이용하다보니거리를시간으로

계산하곤하는데,걸어서15분,기껏해야버스로10분거리의행동반경에서크게벗어나지않는생

활을하다가,서울동쪽에있는대학교에들어간이후로는버스와지하철을합쳐서최소1시간40

분까지의거리가일상이되었다.지금생각해보면오고가며지하철에서책도많이읽고꿀잠도많

이잤고,하루시작할준비도,하루마치는정리도했던소중한시간이주어진거였는데,당시에는

매일3시간이넘는시간을통학을위해쓰는게마치길에시간을버리는것처럼느껴졌었다.무엇

보다도대학에와서새로사귄친구들과10분이라도더어울리고싶은신입생에게막차시간에맞

춰남들보다항상먼저자리를떠나야하는건서울에사는부모를두지못한벌이라고는해도너

무가혹했다.

언니도서울북동쪽에있는학교로3년째매일3시간반씩써가며통학을하고있었고,결

정적으로는용하다는점쟁이의“자식들이아빠와떨어져있는게가족모두에게좋다.”는말이신

빙성을얻어,대학에입학하고얼마지나지않아언니와따로나와살게되었다.사는지역은별다

른이견없이언니네학교근처로정했다.학교를지나가는지하철역두군데중에서덜번화한곳

근방으로구역을정하고언니와주말을이용해집을보러다녔다.대학생들과대학생을상대로한

임대업으로먹고사는사람들,그리고대학생들과직접적으로관계하지않는마을주민들이섞여살

고있는조용한동네였다.단독주택이나다세대주택이대부분이었고,이삼년안에생기기시작한

듯한시멘트냄새도채가시지않은신축원룸건물들도드문드문보였다.전봇대마다큼지막한화

살표와‘하숙’이란두글자,그밑에는전화번호를적어넣은작은간판들이달려있었고,군데군

데편의점들도있기는했지만전반적으로는동네상권을기반으로하는세탁소,문방구,빵집등의

소규모상점들이주를이뤘다.

학기중인데다보증금도넉넉치않아방구하기가쉽지않았는데보증금이넉넉치않다기

보다는방값이턱없이비싼느낌이었다.한번도부모님과떨어져살아본적없고,집을구하러

다녀본일도없는이십대초반의여자둘에게집고르는기준이나노하우가있을리없고,돈에맞

춰몇군데를돌아다니다보니이돈을가진-그나마도부모님돈으로-우리에게허락되는방이고

작이크기,이수준인가싶은생각이들었다.어쨌든안전하고쾌적해보이는5층짜리신축원룸에

방을하나얻었다.돌아서면잊어버리고두발자국을걸으면비슷한건물이있을것같은,집에찾

아오는손님에게건물외관에대해아무리열심히설명을해봐야혼란만더해줄것같은,외장에

싸구려대리석판넬을붙인그런흔한건물이었다.꼭대기층에는주인아저씨가가족들과함께살

고있었고,1층부터4층까지는각층을9개로쪼갠각각의원룸을대학생들이차지했다.최소한의

Page 28: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폭만을확보한복도는양쪽으로방이있어서불을켜도좀어두운편이었고,층마다세탁실이있어

서한층에사는사람들이공동으로사용할수있는세탁기가한대있었다.9세대에세탁기가한대

였지만다들혼자,또는둘이사는사람들이라세탁기는그리바쁘지않게돌아갔고,대신방에여

유공간이없으니복도에는방에서내놓은빨래건조대가늘나와있었다.우리방에가려면건조대

사이를요리조리피해다녀야했다.언니랑내가얻은방은4층의복도끝방이었다.

현관문을열고들어가면오른쪽으로는싱크대와가스렌지,소형냉장고가있고,왼쪽으로

는책상과책장이있었다.신발을벗고안쪽으로들어가코너를돌면세면대와변기가꾸역꾸역들

어가있는욕실이있었고,정면에는옷장과싱글사이즈의침대가있었다.침대옆으로창문이하

나있긴했지만반쪽은실외기통합형의에어컨이차지하고있었다.서울에서언니와내게허락된

공간은침대에서내려와한걸음만디뎌도방끝에닿는이크기가고작이었다.그나마내능력으로

얻은공간도아니었다.

<흔한 대학가 신축 원룸>

언니와 함께

살았던 다섯

번째집은집

의저장기능과수납기능을생각하

면낙제점에가까운집이었다.컴

퓨터모니터를올려놓으면여유공

간이없는책상은턱없이작았고,한

창패션에관심많은이십대초반여자

두명의쇼핑욕구를감당하기에옷장

도너무작았다.그래서침대발치에

는늘옷장이뱉어낸옷무더기가쌓여

있었고,책상위아래로잡동사니들이

잔뜩이었다.구색을맞추려고굳이들

여놓은책상이나싱크대를최소화하고

수납공간을충분히확보하는게낫지

않을까싶다. 어쨌든아무리정리를

기때문에나중에는옷무덤에서구겨진티셔츠

를골라입고나가는것에익숙해졌다.저장기능

이생략된집이란결국집이라기보다는임시거

해도외출한번이면잘개어놓은옷

들이옷장에서와르르무너져내렸

Page 29: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처에가까워서,나와살았지만본가에서당장필요한물건들과계절에맞는옷만가져와살았다.집

에서용돈을받았고주말마다본가에가서쌀이나반찬을싸들고왔다.물리적으로는떨어져있지만

사실다른두개의집이라기보다는본가에서분리된방하나로보는게맞을것같다.

처음집에서나와살기시작하고는모든게좋았다.가족이함께살때,덩치가좋던아빠

가귀가할때면계단이쿵.쿵.쿵.하고울렸는데그울림이느껴질때마다심장이터질것같이뛰었

었다.밖에서는친구들과어울려즐겁게지내다가도집에만돌아오면신경이곤두섰고자다가갑자

기소리를지르며깨어나는날이많았다.집은나에게불안한장소였고,벗어나고싶어하면서도경

제적으로는의존하는응석받이였다.아빠는여전히매일같이술을마셨고,엄마는스스로에게만관

심이있었다.그래서일단은매일엄마,아빠를보지않고살수있는게좋았다.떨어져지내니가

끔그립기도했는데,어쩌면가족이란물리적으로떨어져서살며서로를그리워하는것이가장이상

적인건지도모르겠다.좋을것만같던딴집살림은두사람이동시에서있으면꽉찬느낌이들만큼

좁은공간에서1년6개월내내언니와의피튀기는전쟁의시간이었다.좁은공간에둘이꾸역꾸역

들어가살려니부대끼고부딪히는일이많았다.2005년겨울,2학년2학기를마치고휴학계를내놓

고는언니에게말도없이짐을싸들고본가로들어오면서다섯번째집에서의생활도끝이났다.

<어쩌면 본가에서 떨어져 나온 방, 원룸>

Page 30: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Page 31: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잘 다니던 4년제 대학을 때려치우고 서울로 상경해

발 빠르게 2년제 디자인 과를 졸업.

막상 졸업하고 나니 받아주는데도 불러주는데도 없다.

그때부터 이 악물고 익힌 갖가지 처세술과 생존법을 이용해

처음 취직한 회사에서 1년 6개월 만에 팀장으로 승진했다.

앞으로 수주에 걸쳐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몸 건강히

살아남는 방법을 쓸 예정이다.

거의 모든 텍스트가 주관적 경험에 의거한 것이기에 관점에

따라 비판적 지점들이 상당 부분 형성될 여지가 크다.

국내의 많고 많은 웹디자이너 중 하나의 개별적 사례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Chapter 2{스킬}의 생존매뉴얼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회사에 있는 디자이너들에게 ‘포토샵을 어디서 처음

배웠습니까?’ 라고 질문 해보자. 그러면 약 세 가지

정도의 답변이 돌아온다.

(내 경우) 제일 많이 들었던 답변은 대학교 전공수업 때였으며

그다음이 사설학원을 통해서였다. 작게는 디자인 학과가

있는 고등학교에서라는 답변도 있었다. 사실 나는 툴을 접한

시간과 실력이 정확하게 비례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의문을 가지고있다.

하지만 툴을 처음 접하게 되는 환경과 그 후로 형성되는

마음가짐에는 분명 어떠한 필연성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내 경우 예술고등학교 / 학원 / 대학이라는 꽤 다양한

환경에서 툴 교육을 받아 본 결과 그 셋의 차이는

명확하다고 진단 내렸다.

먼저 고등학교에서 받는 툴교육부터 이야기해 보자.

내 기억에 고등학교에서 받았던 툴 교육은 놀이에 가까웠다.

예를 들어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반 친구들의

캐릭터를 제작해 본다거나 기본적인 사진 합성을 해보는

수업들이 대부분이었다.(지금은 어떤지 궁금하다.)

이러한 일련을 과정들을 거치다 보면 툴이라는 것이

딱딱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가지고 놀아도 되는 것

이라는 마인드가 자연스레 형성된다.

두 번째는 대학전공 수업 때 처음 접한 경우다.

실무 디자이너 중 아마 제일 많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될듯 하다.

대학에서 배우는 툴교육의 가장 큰 장점은 업계에서 유명한

전문가들에게서 실무 스킬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대학 툴교육은 고등학교 툴교육에 비해 놀이적인 면은

조금 떨어질지 모르나 실무적 마인드와 예술적 마인드를

고루 배울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존재한다.

대학 시절 반 아이들을 떠올려보면 끝없는 디테일을 추구하던

실무파 친구들과 난, 나만의 길을 가겠어! 라고 외치며 난해한

아트를 보여주던 예술특화형 아이들이 한 반에 조화롭게

뒤범벅돼 있었다.

이러한 조화로움은 대학이라는 환경이 가진 특수성에서 많은

부분 기인했다고 생각된다.

Page 32: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마지막은 사설학원에서 툴교육을 처음 접한 케이스다.

내 경우 드림위버와 3D MAX를 배우기 위해

일정 기간 학원에 다녀본 경험이 있는데 역시나 사설

학원의 가장 큰 장점은 완전한 실무형 인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배운 최초의 수업에서는 자주 사용하는 버튼에 색이

칠해진 키보드를 주며 손가락 위치 그리고 올바른 자세를

알려주었다.

(뭐 이런 것까지 가르쳐 주는 거지! 라고 속으로만 외쳤다.)

그다음 프로그램에 최적화된 인터페이스 창의 크기와

위치 등을 매우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빠른 시간안에 실무형

인재가 될 수 있긴 하겠지만, 왠지 개인의 취향이 묵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영 찝찝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툴이라는 것을 유희적 차원에서

처음 접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옆집에서 누가 창문을 드르륵 열며 내게

‘고등학교때 툴을 접하지 못하면 디자이너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를 가지지 못한다는 말인가요?!’라고 물어볼 수 있겠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툴을 접한 시간과 실력이 정확하게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툴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자의적으로 실무와

연관 지어 접해버린다면 앞으로 일어날 다양한 실험의

문들이 빨리 닫혀버릴 확률이 높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내 경우 툴을 완벽한 유희적 차원에서 습득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그때의 이야기를 조금 해보도록 하겠다.

공부용으로 사주신 거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귓등으로

튕겨내고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밤이 되는 것이었다.

새벽 두 시 / 문이 열린다 / 어머니다

곤히 자는 나를 확인하고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 주무셨다.

내 눈이 갑자기 팟! 하고 떠졌다. 그리곤 마른 벽에 귀를 대어

가족 모두가 잠든 것을 확인 후 컴퓨터의 부팅소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이불로 컴퓨터를 덮고 전원을 켰다.

위이이잉 -

이윽고 컴퓨터가 켜졌고 나는 반에서 가장 빨리 이성에

눈을 뜬 친구가 적어준 주소를 꺼내 인터넷 창에 친다.

몇 초 후 모니터가 온통 살색으로 뒤덮였다.

나는 애써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친구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긴긴 여름밤을 보냈다.

다음날 나는 거울로 퀭해 보이는 눈 밑을 더듬거리며

가족과의 식사자리에서 어젯밤의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보았다.

때는 바야흐로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한참 사춘기가

시작되어 이성에 눈을 뜬 한 마리의 어린 짐승이 부산에서

서식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 짐승에게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그때

당시로는 파격적인 사양의 컴퓨터 한 대를 선물해주셨다.

회색 빛깔의 모던한 외형에 반짝이는 모니터.

여름보다 더 후끈한 방학을 보내던 어린 짐승은 우연히

특별한 사이트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곳은 일반적인 포르노 사이트가 아니라 커뮤니티

기반의 사이트로서 독자 투고란 같은 것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린 짐승은 큰 흥미를 느끼고 독자 투고란을 기웃거렸는데

그 투고란을 기점으로 꽤 많은 합성전문가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age 33: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대체로 합성물들이 제작되는 과정은 전문가가

자발적으로 만들어내는 경우보다 익명의 신청자가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중에는 여자 신청자도 많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신청은 남자 포르노 스타의 몸과 자신이 짝사랑하는

남자의 얼굴을 합성해달라는 신청이었다.

그러면 신청자의 게시글 밑에 전문가들이 정성껏

합성을 해서 올려준다. 신청자가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의 게시물을 선택하고 포인트를 증정하면 프로젝트는

완료된다. 며칠간 눈팅만 하다 마침내 어린 짐승은

다짐을 한다.

남은 여름방학을 이 커뮤니티에 올인하겠다는.

합성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얼굴과 목 부분의 자연스러운

이음새였다. 결국, 그 부분에 대해서는 없는 머리칼을 만들어

내는 궁여지책을 마련하고 나서야 메이저 무대로 나설 수 있었다.

그 후 어린 짐승은 첫 작품이 될만한 소스를 한참이나

찾아 나섰다. 처음 합성을 하게 된 게시물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합성을 신청한 사람의 연령대는

약 중학교 2~3학년 정도로 추정되었으며 자신의 반

담임선생님과 그때 당시 유명했던 일본 최고의 AV스타를

합성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했던 행위들은 분명

범죄행위다. 하지만 한 마리의 어린 짐승은 자신의

존재 증명을 그런 식으로라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글을 보는 독자분들이 심심한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 (죄송합니다!)

나는 첨부 파일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다운받고 포토샵을 켰다.

드디어 두 개의 살덩이가 내 모니터에 안착했다.

바야흐로 실전인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포토샵 서적에서 배운 것들을

상기해가며 나만의 합성법을 터득해 나가는 시간은

매우 행복했다. 비록 콘텐츠가 비윤리적이긴 했지만

어린짐승은 이미 성적인 차원을 넘어 클라이언트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일념하나뿐이었다.

나는 약 삼일에 걸쳐 첫 합성을 마치고 그 성취감에

뿌듯해했다. 물을 한잔 마시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그 자리에 동생이 앉아있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내 머리 위로 스포트라이트 한 개가 떨어졌다.

“오빠... 이게 뭐임?”

나는 할 말을 잃었고 한참 사춘기 동생의 예민한 정서에

몹쓸 짓을 해버렸다. 나는 곧바로 미안하다고 머리 숙여

사과했고 동생이랑은 그 후로 몇 년간 서먹한 관계로

지내야만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름방학 동안 이루어야 하는

대업이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동생을 내보냈고

완성된 첫 작품을 커뮤니티에 업로드 했다.

3일 내내 집중해서 그런지 일을 마친 안도감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곧바로 곯아떨어졌고 새벽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때 당시 나의 포토샵 실력은 고등학교 학과 수업의

1학기를 겨우 통과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게시판에 업로드

되는 합성물들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상당히 수준급이었다.

그러한 실력의 장에서 내가 살아 남는 방법은 연습뿐이었다.

그날부로 나는 서점에 들러 포토샵 서적 하나를

구매한 후 미친 듯 합성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뒤에서 흐뭇하게 지켜보던

어머니의 미소를 등으로 체감한 어린 짐승은 성선설에 대한

강한 의문을 진지하게 제기했다.

동물 대가리와 인간 몸의 합성, 다보탑과 파리 시내의 합성 등

다다이스트들도 놀랄 정도의 급진적인

예제들을 차례로 격파해 나가며

무림진출의 그날만을 나는 손꼽아

기다렸다.

Page 34: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합성사진은 감사히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합성사진을 받고 저 자신에게 너무나 큰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 여자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딴(뭣?! 이딴?) 합성사진을 이용해 성욕이나 채우려는

저 자신이 너무나 한심해 바로 지워버렸습니다.

(뭣?! 내가 이틀에 걸쳐 만든 것을!!)

그리고 그 길로 장미꽃 한 송이를 사 그 여자가 일하는

편의점 카운터로 향했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 장미꽃과 함께 고백했습니다.

저는 지금 군대에 있고 조만간 휴가를 나갑니다.

휴가기간에 하루 정도 그 여자와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직 아무 관계도 아니지만, 그 합성사진 한 장이

저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총총.

졸린 눈을 비벼가며 아까 내가 올린 합성물 살펴보니

그 밑에 웬일로 찬사의 댓글들이 수두룩하게 달려있었다.

‘숨은고수가 등장했다.’

‘제 것도 좀 도와주세요. 부탁이에요.’

‘대단하십니다. 앞으로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순간 가슴 한쪽의 온도가 상승하는 것을 느꼈고 태어나

처음으로 내 자신이 뭔가가 된 것처럼 기뻤다.

그 후로 나는 더 열심히 합성작업에 매진했다.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그때의 합성 스킬들은

대부분 유희적 차원에서 익힌 것들이라 까먹지 않고

잘 쓰고 있다.

그것은 몸에 새겨지는 기억과 유사한 느낌이다.

내가 합성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하나 있었다.

그때 당시 나는 이메일로도 신청을 받고 있었는데

참 구구절절한 사연이 많았지만 대부분은 짝사랑하는 여자를

합성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하루에 거의 열 통 남짓의 메일을 받았는데 유독 눈길을

끄는 사연하나가 있었다.

내용인즉슨 자신이 20대 초반의 남자이며 입대를

앞두고 있단다. 좋아하는 여자가 한 명 있는데

그 여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다. 그런데 자기는

키도 작고 못생겨 고백할 용기가 없다고 했다.

그 남자는 짝사랑하던 여자의 명찰에 쓰인 이름을

기억해 그 당시 성행했던 학교 커뮤니티에서 사진

한 장을 구했단다.

나는 속으로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그 남자의

절절함이 조금은 전해져(다른 신청자들의 변태적

텍스트에 비하면) 그 날 부로 합성작업에 착수했고

이틀에 걸쳐 합성을 끝냈다.

나는 합성작업을 그 남자의 메일로 보내주었고

방학이 끝날 무렵 나에게 회신이 왔다.

Page 35: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오히려 그 메일 한 통으로 바뀌게 된 것은 나일지도

모른다. 비록 내가 그때 한 짓들이 비윤리적이었을지

몰라도 내가 하는 일에서 감동을 느낀 최초의 사건

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메일 이후로 합성사진을 단 한 장도 만들지 않았고

뜨거웠던 고1 여름방학도 덩달아 식어갔다.

비록 고1이었지만 꽤 진지하게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했다 .

조금 특이하게 툴을 접한 나는 그것의 사용성에서 꽤나

자유로운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이런 자유로움은 신입 디자이너 시절에는

오히려 극복해야될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무디자인 대부분은 팀 작업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하지만 내 방식은

너무나 개인적이었다. 레이어를 정리해야 하는 이유조차

몰랐던 신입 시절, 그 모든 것이 스트레스로 내게 오롯이

돌아왔고 많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가 있었던 고1 시절이

그리웠다. 그것은 일종의 향수병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살아남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열심히 실무에

최적화된 툴 사용법을 익혀나가던 찰나 선임 디자이너의

PSD파일(포토샵 전용 파일로서 포토샵에서 레이어 작업을

했을 때 모든 레이어가 다 살아있는 파일)하나를

우연히 입수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나의 선임 디자이너는 자신의 실무 스킬들을

후임들에게 잘 알려주지 않는 구두쇠였다.

그래서 항상 자신이 작업하던 파일들을 후임들에게

전달할 때 중요한 레이어들을 Merge한 상태에서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내가 득템한 PSD파일은 선임이

레이어를 아직 Merge하지 않은 상태의 원본 파일이었다.

나는 쾌제를 외치며 서둘러 ‘내게 메일 보내기’를

이용해 선임의 PSD를 웹이라는 은하 저편으로 날려 보냈다.

정말 그때를 떠올려 보면 정글 같은 삶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날의 약속을 다 취소하고 집에 가서 선임의

PSD를 열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집에서 컴퓨터를 열어 선임의

PSD 파일을 바탕화면에 다운받았다.

나는 오랫동안 찾아헤맨 비법서를 마침내 발견한

모험가가 되어 그 보물상자의 뚜껑을 개봉했다.

모니터가 환하게 빛났고 거기에는 고급스러운

버튼 디자인(그때 당시 가장 유행했던 아쿠아 스타일)과

시크한 패턴들, 그리고 자연스러운 합성물들이 가득했다.

나는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그것들의 구조를 파악해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시한 스킬들이지만

신입디자이너 시절 그 파일속 디자인들은 분명 나에게

문화충격이었다.

나는 그 후로 매일 같이 그 PSD를 분석하고 실무에

적용해 보려 애썼지만, 웬일인지 조화롭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 PSD는 선임과 나와의 현격한 실력 차이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해줄 뿐이었다.

내 생각에 툴에는 왕도가 없는 것 같다.

매뉴얼대로 하면 너무 딱딱한 디자인이 나오고

너무 자유롭게 하면 팀 작업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그 길고 긴 다리를 무던히도 오가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레 맞추어지는 균형점 같은 것이 있을 것 같다.

혹시나 그 균형점을 벌써 찾으신 분이나 행방에 대해

아시는 분은 내게도 좀 귀띔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끝)

<3부 취향의 생존매뉴얼 계속>

블로그clichecliche.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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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6: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그토록 바라던 비...

이제는 지겨울 정도로 온다(현재시각 7월23일 21시50분)

월간이리가 나왔을 땐 아마 폭염에 시달리고 있을까? 비가 오는것도 지겹지만 막상 이 장마가 끝나고 다가올 폭염

이 겁나서인지 비 피해 입은 분들껜 정말 죄송하지만 별 피해 없을 정도면 더 와도 괜찮을 것 같은..

학생들은 기다리던 방학이고 직장인들은 기다리던 휴가철이다. 요즘은 주 5일 근무가 많아서

공휴일 잘 맞춰 가면 5~6일은 충분히 쉴 수 있기에 유난히도 달력을 많이 보게 되는 시즌 일 것 같다. 음식을 대신

해서 해줄 사람도 없고 아주 가끔 생각해보면 있는 듯 없는 듯 한 장인정신... 없는것에 가깝지만 나름 장인정신+주

방장 고집으로 똘똘 뭉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주방에서 음식을 하고 나의 칼을 잡는다는 걸 상상 할 수 없기

에 가게를 쉬면 쉬었지 딴사람에게 맡기고 휴가를 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매니저에게 가게를 맡기고 쥔

장은 휴가가고 쥔장 갔다 오면 돌아가며 휴가를 가고하는 그런 집들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다.

부산오뎅 이야기

( 大陸新郎 )대륙신랑

Page 37: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뭐 어떤 까페는 사장이 둘이다 보니 맘만 먹으면 한 달

씩도 쉬고 야!!! oo까페 이모 김모사장 니넨 좋겠다. 이

번에는 얼마냐 쉬냐?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하던데 나

는 그냥 항복이다. 항복...

이번에는 부산오뎅 휴가 갈지 말지 아직 미정인 가운데

7월 달에 다녀오신 우리 부모님의 해외 여행 얘기를 해

보려한다. 횟수는 얼마나 되는 진 모르겠지만 우리 어머

님 아버님은 해외여행을 짧게 짧게 몇 번씩들 다녀오신

듯 하다. (듯하다라고 쓴 이유는 나한테 간다 만다고 얘

기도 안 해 주시고 다녀오신 경우도 종종 있어서이다)

나한테 얘기도 안하고 가시지만 아버지 어머니도 서로

서로에게 얘기도 안하시고 그냥 며칠 놀러간다고 행선

지와 스케줄도 얘기안하시고 다녀오곤 하신다. 연애 하

실 때 액션영화를 좋아하시는 아버지 멜로 영화를 좋아

하시는 어머니 극장 앞에서 영화 각자 보고 싶은거 보고

끝나면 만나자는 쿨한 마인드의 두 분. 젊었을 때 그대

로 이시다. 근데 놀라운 건 두 분이 해외여행을 몇 번씩

다녀오셨는데도 불구하고 두 분이 함께 가신 적이 한 번

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두 분이 이번에는 부부동반으로

친구 분들 내외와 같이 가시는 앞으로 있을까 말까한 여

행을 하고 오신 것이다. 아버지가 친구 분들과 이런저런

얘기하시면서 부부동반 여행을 가기로 계획하고 어머니

에게 일방적 통보. 나 중국 갈 껀데 같이 갈래? 아마도

아버지는 어머니가 안 간다고 하셨으면 혼자 가셨을 게

분명하고 그걸 누구보다 잘 아시는 어머님은 이때 아니

면 언제 부부동반으로 해외여행 한번 가겠나하는 마음

에 같이 가시기로 결정을 하셨을 것이 분명하다. 어머님

한테 여쭤보니 중국 간다고 만 얘기하셨지 중국 어디가

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신랑이 가자길래. 무작정. 묻지

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 가셨다는 가슴 절절한 순애보...

다녀오신 날 안부도 여쭤볼 겸 전화를 해 본다. 잘 다녀

오셨는지 맛있는 건 많이 잡쉈는지. 어디어디 갔는지. 몇

시 차 타고 한국 오셨는지. 집에 도착한 시간은 언제였

는지. 숙소는 괜찮으셨는지. 사진은 많이 찍으셨는지.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았지만 다리가 아팠다며 힘 닿는

대로 돌아다니셨다는 어머니... 피곤하실 텐데 푹 쉬시라

며 아버지를 바꿔달라고 한다. 또 똑같은 질문 솔직히 그

런 것 말곤 딱히 물어볼 것도 없지않나? ㅎㅎ

아버지나 어머니나 본거 똑같고 음식 똑같은 거 잡숫고

똑같은 숙소에 주무시고 역시 아버지의 대답도 어머니

대답이랑 똑같다 피곤 하실 텐데 얼른 쉬시라는 똑같은

나의 대답 전화를 끊으려는데 아버지가 조심스레 한마

디 하신다 너 중국여자는 어떻니? 예 에에 예??? 가이

드가 그러는데 말이다 중국아가씨들이 이쁜 친구들도

많고 생활력이 강하다던데 말이다. 생각 있으면 한번 추

진해보지 않으련? 순간 무슨 대답을 해야 할 지 멍해진

다. 아버지가 생각 하시는 부산오뎅 CEO의 현주소란 말

인가? 아니면 사나이라면 꿈과 야망을 크게해 대륙으로

나가 더 넓은 곳으로 가서 대륙의 사위가 되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큰 뜻 이란 말인가? 아버지 무슨 뜻이란 말이

옵니까? 아버지의 뜻은 헤아릴 수 없겠사옵니다만은 아

버지의 뜻이 정 그러하시다면 내년에 저랑 단둘이 중국

여행 한번가시지요~

(현재시간 11시40분 중국어 어플을 하나 받아봅니다)

Page 38: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바다비 일요 시극장 2013.8.25 http://cafe.daum.net/badabie

‘窓 내고쟈’

Page 39: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월간이리에서

필진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마을이야기,

패션, 미술, 식물,

여행, 의학, 과학,

철학, 육아,

무속, 코미디

등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신 분들은

언제든지 편하게

문의 주세요.

월간이리

@postyri

트위터 계정이나

exxx2x@gmail.

com 으로

연락주시면

입구에서

친절히 안내해

드립니다.

Page 40: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피카소의 일화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제 부족한 글의 도입으로 삼겠습니다.

한 부인이 카페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는 피카소를 보고 자신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피카소

는 몇 분간 여인의 모습을 그려서는 그림 값을 묻는 부인에게 5000프랑을 요구했다. 부인은 놀라

항의했다. “아니, 그림을 그리는데 몇 분 걸리지도 않았잖아요?” 그러자 피카소가 대답했습니다.

“천만에요. 40년이 걸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가 각기 다른 매체에서 한 너 댓 번 접했더랬는데 몇 번인가는 화가가 달랐고. 또는

그림의 대상이 달랐고, 카페가 아닌 미용실이 되기도 하고 뭐 그림의 액수가 바뀌기도 하고 했기

때문에 파블로 피카소 내지 실존 화가의 이야기라고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이야기의 성분이

바뀌어도 전달하고자 하는 맥락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무리가 없겠습니다.

대학에 다닐 때 한 친구가 제 그림에 대해 평하며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당시 저는 솟은

파도와 타일이 깔린 바닥을 그렸었습니다. 그림의 내용은 차치하고, 그 바닥타일 한 장이 그림 상

에서 대략 5mm정도의 크기였죠. 타일이 쫙 깔린 풍경이라고 고지식하게 타일을 한 장씩 그렸더

랬죠...^^.

그 친구는 제가 타일을 일일이 그린 것과 같은 노동집약적인 면을 그림에서 보여줘야 사람들이 그

림을 쉽게 받아들인다고 했어요. 그렇다고 동의했었죠. 일학년 때엔 과제로 레이스천이 깔린 정물

화 그리는 것이 있었는데 그 레이스를 또 일일이 그리고 앉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 세밀한 부분

을 하나하나 그리고 있노라면 내가 레이스를 그리는 이 노력이면 레이스를 하나 뜨겠구나 하는 생

각을 하게 됩니다. 아, 또 한 번은 어시스턴트 일을 할 때인데, 지붕이 많이 보이는 위치의 기와집을

그릴 일이 있었어요. 그 지붕의 기왓장을 하나하나 그리고 있는 제게 작가님은 회화적이지 못하니

다른 표현법을 써보라고 권유하셨었는데 제가 그런 식으로 좀 단순한 면이 있네요.

여하튼 그런 때에는 그림 속 타일을 팠다-레이스를 팠다-기와를 팠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죠. 팠

다는 말은 곡괭이를 들어 땅을 팠다-우물을 팠다-수로를 팠다하는 것처럼 결실을 위해 노동이 필

요함을 분명하게 의미하는데 그림을 그림에도 이 표현을 붙임이 자연스러운 겁니다. 노동이란 무

엇입니까. 땀 흘려 수고하여 땅의 소출을 받는 것으로, 태초에 받은 형벌이자 ‘일하지 않는 자 먹

지도 말라.‘의 의무죠. 그래서 사람들은 으레 농부는 땅을 파길 바라고 학생은 공부를 파길 바라

고 화가는 그림을 파길 바라죠. 따라서 앞서 말한 일화에서 부인이 그림 그리는데 몇 분 안 걸렸

는데, 그렇게 큰 돈을 요구 하냐고 물은 것은 부인의 입장에서 합당한 이의제기입니다. 화가는 거

기에 대해서 40년이 그렸다고 응수함으로써 자신이 그은 그 획 획들은 자신의 평생을 쌓아서 이

룬 경지이므로 노동량과 투입시간을 따지자면 보이지 않는 시간과 보이지 않는 노동이 담겨있음

을 알려준 것이죠.

가브리엘 뱅상 (Gabrielle Vincent)

Page 41: 월간이리 2013년 8월호

가브리엘 뱅상은 벨기에 브뤼셀 태생의 동화작가로 저는 ‘그 어느 날 한 마리 개는’(또는 ‘어느 개

이야기’)이라는 작품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스마트 폰을 들어 검색해보시면 그녀의

뛰어난 드로잉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동화책하면 떠오르는 다채로운 색이나

과장된 그림체, 혹은 의인화된 동물들은 없고 대신 부드러운 검정 목탄으로 때로는 휘갈기고 때로

는 가만히 그려낸 형태들이 있습니다. 그 단순함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작가의

역량 때문입니다. 얇아지고 굵어지는 선의 쓰임이 그리고자하는 바에 정확히 닿아있죠. 그래서 제

가 앞에서 말한 보이지 않는, 축적된 노동량 운운한 것은 그녀의 그림에서 그러한 기운생동을 느껴

달라는 말씀으로 덧붙인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표피인 그림은 뛰어나다치고 내용은 어떤가. 저는 그녀의 다른 작품 ‘거대한 알’에 대해서 조금 알

쏭달쏭한 느낌을 갖습니다. 일단은 동화책의 형식을 빌어 나왔으나 그것은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내용이라기엔 비유하는 바가 큽니다.

내용을 잠깐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거대한 알’은 어느 날 거대한 새가 거대한 알을 낳고 떠나면

서 시작되는데, 그 거대한 알을 발견한 사람들은 알 주변에 모여들어 살기 시작해서 어느새 도시가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알을 중심으로 유원지를 짓기도 하고 신이 나있죠. 그런데 그 알에 금이 가

며 새끼 새가 태어나게 되고...

나머지는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

사실 제가 동화책에 대해 갖는 의문은 어른이 제시하는 아이들을 위한 무언가가 과연 얼마만큼 아

이들을 대상으로 하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혹은 어른인 작가가 자신의 수준을 얼마만큼 어린아이

의 시선으로 낮추어 제시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새삼 깨달은 것은 누구를 대상

으로 삼았건 딱 그 대상의 시간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를 담을 것은 아니라는 것. ‘거대한 알’은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보다 더 큰 것을 담고 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물론 작가가 의인화

시킨 동물들을 내세워 이야기를 한 동화집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말씀드리는 ‘거대한 알’은 어

린아이의 순간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에 접하여 평생 이따금 떠올리며 새로운 감상과

함께 자라날 각자의 이야기를 심어주는 것으로 그래서 작가의 모순을 깨닫기도 하고, 어릴 적과 다

른 결론을 내기도 하며 함께 성장할 만한 이야기인 거죠. 그렇게 주인공들은 행복하게 살게 되었답

니다- 내지 그래서 주인공은 나쁜 버릇을 고쳤답니다- 의 개과천선이나 권선징악으로 마치는 것

이 아니라 이야기를 접한 뒤에 이따금 떠올릴 때 마다 새로이 질문을 던져줄만한 풍부함을 품은 이

야기를 전할 수 있는 것은 이 작가가 하나의 경지를 이룬 것을 말하겠죠.

글. 그림 지인 freshdrawing.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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