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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를 일구는 농도상생마을공동체 2013 10 제41호

아름다운마을 41호(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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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아름다운마을 41호(2013.09)

생 명 평 화 를 일 구 는 농 도 상 생 마 을 공 동 체

2 0 1 3 1 0 제 4 1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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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북한산 아랫마을 인수동입니다.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날씨에도 마을길을 산

책하는 아이들 재잘대는 소리가 그칠 날 없지만, 요즘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아이들은

더욱 부지런히 마을 구석구석 누비고 다닙니다. 숲속을 산책하다 도토리며 밤송이를 찾

는 재미에 푹 빠져든 아이들 풍경이 마을어린이집 날적이에 그려집니다(다람쥐와 청설

모같은 숲 친구들을 위해 전부 아낌없이 돌려주고 오지만요).

홍천마을에서도 추수하고 볕에 말리고 갈무리하는 수고의 결실에 더해 잣, 밤, 산초 등

자연이 주는 열매들을 만나는 이야기들이 전해집니다. 여름에는 지천에 널린 오디며 산

딸기를 따서 서로서로 나눠 먹느라 손과 입술이 붉게 물들었지요. 자연과 가까이 사는

삶 속에서, 거저 얻은 열매를 상품이 아니라 선물로 여기는 마음이 깃드는 것 같습니다.

먹을거리가 상품이 되지 않는 곳이 또 있습니다. 밥상지기가 정성 담아 밥 차리고 마을사람들은 둘러앉

아 온 생명의 기운을 받아 먹는 마을밥상입니다. 하늘과도 같은 밥이기에 밥값을 아까워하거나, 재료비

를 아까워하는 이가 없는 식당입니다. 밥상지기 부부에게 얼마 전 새 생명이 찾아왔습니다. 내년 봄쯤 만

날 날을 기다리면서, 밥상지기가 적절하게 쉴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밥상지킴이로 나서는 마을사람들이

함께 생명을 품고 있지요.

매년 연이어 마을에서 태어나는 아기들은 밥상에서 자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가을 태어

나 밥상에서 젖 먹고 뒤집기하고 배밀이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아기들이 얼마 전 돌을 맞이했습니다. 물

론 이모삼촌들이 마을찻집에서 진심어린 축하잔치도 마련해주었지요. 마을밥상에 오면 신나는 아이들

에게 밥상을 대하는 예를 가르치는 것도 마을 어른들의 몫입니다. 마을밥상은 마을 공동육아의 역사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올 봄에 아이들 네 명으로 출발한 공동육아 도토리집이 어느새 아이들

일곱 명으로 늘었습니다. 육아주체들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

가 끊임없이 소통하고 공부하며 마음을 모으는 시간이 쌓이면서, 일상의

리듬도 자리 잡고 아이들의 밝은 기운이 알려지게 되었나 봅니다. 인근

에 사시는 가정들이 하나둘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린 것이지요. 다른 기

준들에 흔들리지 않고 더불어 자라는 우리 아이들로 키우면서 공동육아

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마을사람들을 조만간 마을신문 지면에 모실 계

획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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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0 41호

편집실에서

아름다운마을교육공동체 홍천터전에서는 2011년 개교한 생동중학교에 이어

2014년 고등/대학 통합과정이 문을 열고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농생활 하

는 삶을 바탕으로 삶의 자기규율을 증진하는 공부, 주체적으로 실제적 기술을

연마하는 공부, 다양한 생명의 약동이 어우러지는 세상을 함께 꿈꾸고 만들어

가는 동지로 세워져가는’ 아름다운마을교육공동체의 가치를 담은 교육과정입

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입시체제로 수렴되는 교육구조, 대학이 취업사관학교

로 전락한 사회 현실을 극복하고 고등/대학 통합과정이라는 새로운 편제를 서

른 명 가까운 기획위원들이 모여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8월과 9월에는 학생들

과 학부모님들의 상상력 넘치는 의견들이 자유롭게 오간 집담회를 하면서, 배움

의 동지가 되어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마을공동체 교육의 의미를 새길 수 있

었습니다.

이번 호 <아름다운 마을>에는 공교육 현장에서 학생들과 동료교사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제대로 가르

치고자 분투해온 15년차 특수교사의 고백을 실었습니다. 올 초 두레공동체 귀촌에 동참하며 서울에서 강

원도로 자원 발령을 받았지요. 짧지 않은 기간 다양한 직장영역을 지켜온 이들, 새로운 관계로 자기 삶부

터 전환해가는 이들, 성공보다 더 큰 전망을 가지고 현장에서 우직하게 실천하는 이들을 [꿈꾸는 일터] 지

면을 통해 소개하려 합니다. 마을신문을 통해 만나고 싶은 사람과 주제가 있다면 추천해주셔도 좋습니

다.

이번 호 특집은 ‘문명의 전환과 귀농귀촌 지식의 역사’라는 논문을 다루었습니다. 이 논문은 ‘아름다운

마을생활’ 인터넷카페에 게시된 글 5,000여 편을 추적했습니다. ‘아름다운마을생활’ 카페는 농생활 지식

이 만들어지기까지 아름다운마을공동체가 지향하며 실천해온 지식의 형성 과정을 잘 보여주는 공간입니

다. 임신출산육아를 통한 생명의 경험이 단식/생채식 수련을 통한 통전적 몸수련으로 이어지고, 마을밥

상을 통해 일상의 섭생의 변화를 구현하고, 다시 유기농 상품 소비자에 그치게 되는 도시문명의 한계를

넘어 생산과 자급이라는 화두를 안고 농도상생마을공동체를 이루어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서울 인수동과 강원도 홍천에 이어 새로운 마을공동체를 개척하는 걸음을 내딛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

금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금 새로운 꿈을 꾸고 창조적 역량으로 더 넓게 더 낮게 퍼져가는 것입니다. 떠나

는 걸음이 든든하고 가벼울 수 있도록 저와 당신도 잘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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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아름다운 마을이 들려주는 이야기]

최소란

05 [특집]

문명의 전환과 귀농귀촌 지식의 역사

권상원, 김나경, 박민수, 정인곤

08 [특집]

터전 개척하며 남긴 방대한 기록을 추적하다

11 [그리고]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 황지영

12 [청춘답게]

평화와 화해의 순례 ┃ 신한열

14 [청춘답게]

타인을 새롭게 만나는 경험 ┃ 김겸손

15 [알림]

참여를 기다립니다

16 [꿈꾸는 일터]

학교 현장을 지키는 이유 ┃ 송미영

19 [알림]

마을찻집 마주이야기

20 [생태건축]

수련하고 연마하며 ┃ 김동언

22 [아이들 세상]

형님동생, 호흡 맞춰 영차영차 ┃ 최소란

23 [마을학교]

함께 땀 흘리며 성장 확인하다 ┃ 조승연

글 싣는 순서

<아름다운마을> 펴낸 곳 아름다운마을공동체 www.maeullo.net 문의 02-999-9294

후원 국민은행 487101-01-369173 예금주 생명평화연대(신문) 기자 김세진 김준표 김형우 임안섭 주재일 최소란 디자인 김준표 서아름

<아름다운마을>은 강원도 홍천 아미산자락 효제곡마을과 서울 북한산자락 인수마을을 오가며 농촌과 도시에서 농도상생마

을공동체를 일구는 사람들의 삶을 증언합니다. 시대 과제와 소통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소통과 대안]에 담습니다. 일

상과 관계, 수련을 통해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와 이유를 찾아봅니다. 마을밥상 지기들이 밥을 차리는 마음을 [밥상머리]에 모

읍니다. 기독청년아카데미에서 만나는 20·30대 청년대학생들과 [청춘답게] 모험하는 활동을 나눕니다. [청소년마당]과 [마을학

교] [아이들세상]은 홍천과 인수 마을학교 아이들이 살아있는 배움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농(農)을 통해 문명과 삶

전체를 다시 살피고 재구성하는 [農생활]과 건강한 주거문화를 만들어가는 [생태건축] 현장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리고 [만나보

기]에서는 당신과 우리가 함께 만나고픈 사람을 찾아갑니다.

2013 10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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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 귀농귀촌 흐름이 생긴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귀농귀촌은 일시적으로 퍼진 유행이 아

니라, 폭주하는 도시화 기운을 돌이키는 움직임이다. 농과 관련된 삶과 가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산업

적인 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것, 열등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농촌과 생산의 가치를 착취하며 발전한 도

시문명은 그 자체로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 학계에서도 농촌과 도시의 관계를 ‘분리’나 ‘연결’로 보지 않

고 ‘공생’으로 보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 연구는 농촌과 도시의 공생적 관계라는 구도 아래 국가와

아름다운마을공동체가 귀농귀촌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가운데 어떤 지식이 형성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몸에서 출발한 시대의 성찰

국가적 관점은 귀농귀촌 자체를 실업, 도시의 과밀화, 농촌저발전 등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도구적 방안으로 접근한다. IMF사태 이후 실업이 급증하자 각종 실업대책 중 하나로 실업자의 농업 취

업, 즉 귀농이 정책적으로 강조되었다. 지자체들은 감소하는 농촌인구 문제를 해결하고자 귀농귀촌을 지

원했다. 2012년 농림식품부는 귀농귀촌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편익을 계산하여 “도시민 1인이 귀농귀촌

하면 사회적 편익 169만원이 창출된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국가 정책은 농촌과 농업의 발전을 위한 동

력을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심화과정에서 발표된 연구논문 ‘문명의 전환과 귀농귀촌 지식의 역사’는 점점

증가 추세에 있는 귀농귀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루고 있다. 도시 탈출이나 지역 발전의 방편으로

보는 관점과 비교하여, 몸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하여 도시문명의 근본적 전환이 될 농도상생마을공

동체라는 시대적 화두로 확장되어간 지식 형성의 역사를 짚어본다. A4 50장 분량의 논문을 간략하

게 요약하여 싣는다(편집자 주).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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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농업의 산업화와 상업화에 기반한 관점으로 인해, 도시와 농촌의 분리, 물질 순환의 고리 파괴,

농촌공동체의 해체라는 근대화 문명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로 귀농귀촌 정책과 지식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다. 귀농귀촌 정착지원 심사기준을 보면 귀농구성원 수(15점), 교육이수 실적(15점), 세대주 연령(15

점), 농촌 거주(10점), 영농정착 의욕(5점), 영농 규모(10점), 사업계획의 적정성(30점) 등 8가지 가점사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농규모는 농지면적 2천 평 이상이어야 한다. 기계와 시설을 쓰거나 관행농업을

하지 않고 자연농업을 지향하는 이에게는 부담스러운 규모다. 다품종소량농을 하는 사람들은 법률체계

에서 실제적으로 배제된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의 농생활 지식의 역사를 살펴보면, 생명의 잉태, ‘임신출산육아 지식’에서 출발했

다. 이 주제는 공동체가 가장 구체적인 ‘몸’으로부터 출발하여 시대의 문명을 성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

었고, 단식·생채식 수련과 마을밥상 등 식의주락 생활양식의 전환을 실천하고 증언하는 과정을 통해 생

활영성수련 지식으로 확장되었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는 도시문명과 산업문명에 기반한 가치체계와 생활양식의 한계를 자각하고, 문명

적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농을 기반으로 한 삶을 지향하며 2010년 7월부터 홍천터전을 마련하였다. 농생

활 지식은 공동체가 도시에서 해왔던 식의주락 생활영성수련과 몸수련 지식들이 합생한 결과이며 또한

지금까지 해온 공부와 실천을 더 정직하게 밀고 나간 것이다.

공부하며 생활양식을 바꾸다

새로운 사건, 지식, 흐름은 반드시 새로운 주체를 통해 구체화된다. 귀농귀촌으로 어떤 주체가 생성되

었는지 살펴보자. 지자체마다 제시하는 귀농인의 조건은 기본적으로 타지역에서 해당 지자체로 이주하

여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단순 거주지만을 농촌으로 이동하여 인근 도시로 직장 다니는 사람도 귀

농인구에 포함된다. 귀농인들이 어떤 생활양식과 그에 맞는 지식을 만드는가에 주목하기보다 주민등록

상의 정보, 행정구역상의 인구수 변화로 읽는 것이다. 다만 귀농인들을 농촌 발전, 개발에 동참하는 중요

한 자원으로 보는 경향도 공존하고 있다. 귀농인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농촌개발사업에서 사무장,

위원장 등 직책을 맡고 있다. 이 부분은 귀농인을 바라보는 국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이다.

귀농귀촌에 관한 국가 통계는 농도상생마을공동체를 일구고 있는 다양한 이들이 포착될 수 없다. 주말

마다 홍천마을에 와서 생활을 하는 이, 주말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 울력을 하러 오는 이들은 통계에

서 배제된다. 농촌과 도시를 절대적으로 분리된 물리적 공간으로 파악하지 않고 상호의존적이고 유기적

인 관계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에서는 사뭇 다른 양상으로 지식을 구현하는 새로운 주체가 형성된다. 마을을 이루

어 사는 삶에서 자연스레 만나게 되는 임신출산육아, 식의주락 생활 등 일상적인 사건들 앞에서 함께 공

부하며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공동체적 지식이 쌓이는 과정에서 음적 가치가 공동체의 중

요한 의제가 되고, 새로운 지도력이 생성되었다.

특집 문명의 전환과 귀농귀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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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0 41호

귀농귀촌의 주체 역시, 도시에서 생활영성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자립’과 ‘자급’ 능력을 어느새 잃어버리

고 ‘돈’으로 모든 것을 사고 버리는 것이 거리낌 없는 문명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하고, 농에 기반한 삶

의 가치를 새로운 습으로 들이는 이가 곧 주체가 되었다. 임신출산육 과정에서 그 주제를 공부하고 실천

한 주체가 계속 이어서 귀농귀촌으로 자신의 공부를 심화해가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결합하며

지식이 더 넓고 깊게 확장해간다는 것도 아름다운마을공동체의 귀농귀촌 주체 형성의 특이성이다.

분절을 넘어 상생하는 마을로

국가에서 농촌이라는 공간은 어떤 공간인가? 한국전쟁 이후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도시는 급격하게 성

장했고 농촌의 인구, 자원 등은 도시로 빠져나갔다. 90년대 세계화의 거센 바람이 불자 각종 국제협약에

서 공업에 유리한 교역조건을 얻어내기 위해 우리 농산물은 항상 협상용 카드로 희생되었다. 각 지자체

는 농산물 상품화, 브랜드화 전략을 강구하였다. 농촌에서는 도시의 시장을 놓고 자기착취적인 경쟁을

하는 집약적 농업이 출현하여 농촌공동체가 붕괴되고 토지가 황폐화되었다. 농가들은 특정작물을 전문

적으로 경작하는 농가가 되거나 배합사료를 먹여 가축만을 사육하는 축산농가로 전락하게 되었다.

귀농귀촌 정책에서도 여전히 농업과 농촌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의 삶이란

것은 농생활이 생산하는 물질과 가치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도 농의 삶과 도시의 삶은 철저하게 단절되

었다. 도시를 중심으로 도시인들의 식량 공급지, 휴식지 등으로 농촌을 바라보지 않고 복원되어야 할 가

치를 중심으로 농촌과 도시의 공생적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는 도시와 농촌의 삶 그 분절이 시작되었던 지점을 거슬러 농도상생마을공동체라

는 화두를 잡았다. 문명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 이후 문명을 건설하기 위한 핵심 가치와 지식, 생활양식

인 농생활에 기반하여 농촌과 도시생활의 양식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서울 인수마을에서는 돌아가면서 주말마다 홍천마을을 찾아와 함께 땀 흘려 노동하며 피정한다. 주중

에는 서울 혹은 타지역에서 근무하고 주말에 홍천마을에서 보내는 일상을 정해놓고 매 주말 농생활 영성

을 키워가는 이들도 있다. 인수마을에서는 기꺼이 밥상부산물과 오줌을 모아 홍천마을로 보내 생명순환

을 이루는 농사에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홍천마을에서 자연에 어우러져 만들어가는 생활양식은 인수마

을에 있는 구성원들도 도시에서 농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한다. 도시와 농촌에 있는 ‘마

을’을 중심으로 물리적 분리가 주는 간극을 뛰어넘어 서로 상생하는 조건과 생활을 함께 이루어가고 있

다.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심화과정 역사 연구모둠 ┃ 권상원, 김나경, 박민수, 정인곤

특집 문명의 전환과 귀농귀촌의 역사

Page 8: 아름다운마을 41호(20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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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논문에 함께 참여한 각 사람들의 소개를 해달라.

권상원 주중에는 경기도 이천세무서에서 일하며 도시 속 직장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주말에는 홍천마

을에서 비혼형제들과 공동체생활을 합니다. 연구를 함께하면서 제가 살고 있는 공동체가 어떻게 살아왔

고, 어떻게 살려고 하는지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김나경 직장에서 디지털콘텐츠 관련 업무를 하면서 주말에는 홍천에 가서 공부하는 모임에 참여하거

나 주말학교에서 영어수업을 하기도 합니다. 10개월 넘게 바쁜 일정 가운데 많은 양의 글을 읽고 토론하

고 글을 써야 했지만, 글을 읽으면서 크게 생하는 힘을 얻었습니다.

박민수 홍천 생동중학교에서 몸놀이와 사회역사 과목을 가르치며 학생들과 생기 있는 삶을 살고 있습

니다.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주제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심화과정에

서 수년 동안 꾸준히 공부해온 사람들과 역사를 연구하며 신이 났습니다.

정인곤 이 시대 청년대학생들을 만나는 활동을 하며, 한국현대사를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입니다.

20대 초반부터 마을사람들의 결혼·임신·출산·육아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

다. 공동체의 역사, 희망과 대안의 역사를 쓰고 싶어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문명의 전환과 귀농귀촌 지식의 역사’는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심화과정에서 신학, 교회사, 철학, 한국

근현대사, 정치경제학, 동양고전 등을 포괄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함께 쓴 공동논문이다. 대학원생, 직

장인, 공무원, 활동가들이 모둠을 구성해서, 지난해 12월부터 올 6월 초안을 완성한 이후 토론과 수정작업

을 거쳐 9월 200여명의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발표를 했다. 공동논문에 참여한 이들을 만나봤다(편집자 주)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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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0 41호

귀농귀촌에 대한 국가의 정책적 관점과 아름다운마을공동체가 형성해온 지식의 역사를 비교한 게

흥미롭다. 비교 대상으로 국가와 공동체를 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박민수 보통 비교의 대상을 삼을 때, 국가와 다른 국가를 비교합니다. 분석 단위 상 그게 자연스러워보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그 국가 안에 있는 한 공동체를 비교한 것은 한 조직이 만드는 '지식'

형성과정과 그 지식의 내용, 그리고 패러다임을 본다면 두 조직을 보는 것이 충분히 유의미하고 필요하

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정책을 시행하는 데 가장 국가 패러다임‘적’인 방식을 따르는 조직은 국가 그 자체일 것입니다. 국

가뿐 아니라 무수한 민간단체, NGO, 심지어는 국가적인 것과 구별되는 지향을 가진 단체들도 국가 패러

다임 안에 포섭될 수 있습니다. 뚜렷한 철학과 가치, 자립할 수 있는 토대와 그것을 담지한 자각된 주체가

없으면, 반국가적 패러다임을 지향하지만, 실제는 반대로 국가 패러다임 속에 갇힐 수 있습니다.

특히 도시문명을 지탱해온 국가가 귀농귀촌이라는 흐름에 주목했지만, 그 정책 속에 내재된 근본적인

한계를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과주의’와 ‘행정편의주의’ 논리로 정책을 시행하고 그와 관련된 지식

을 만들어내는 곳이 국가입니다. 귀농귀촌 정책을 실시하는 국가 패러다임을 분석하고, 그 국가 패러다임

에 대해 철저히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른 길을 만들어온 아름다운마을공동체의 ‘길’과 ‘패러다임’을 보여준

다면, 이후 귀농귀촌을 주제로 한 다른 단체들의 진정성과 역량, 방향 등을 평가하고 분석하는 데도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점에서 ‘기원’을 찾아들어가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분석이란 생각이 듭니다. 국가의 경우 IMF 때 실업

문제 해결방안으로 귀농귀촌에 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여전히 귀농귀촌이라는 주제를 도시와 현재 산

업 시스템을 지탱하기 위한 도구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마을공동체의 귀농 관련 지식

의 역사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결혼임신출산육아’라는 주제로부터 출발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름

다운마을공동체가 걸어온 길 가운데, 현재 농도상생마을공동체를 구성하는 핵심 가치, 지식, 실천은 농생

활입니다. 그 농생활의 ‘기원’이 임신출산이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또 다

르게 본다면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임신출산 과정은 모든 생명체들이 생명의 신비

와 경이로움을 근원적으로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농’에 토대를 둔 ‘생활’이란

생명과 생명이 ‘평화’의 교감과 관계를 이루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름다운마을생활’ 인터넷카페에 10년 동안 올라온 게시글 5000개를 따라가며 읽고 분석했는데,

그 과정에서 특별히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권상원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비혼남성이기에 임신출산이야기 게시판에 있는 글을 이해하고 공감하

는 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세상으로 나왔는데, 살면서 부모님으로부터 그

때에 대한 아쉬움과 아픔을 수없이 듣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병원의 지식권력에 의지한 채, 비주체적으로

임신출산의 과정을 겪는 것을 거부하고 새로운 공부와 수련 그리고 관계를 통해 임신출산의 과정을 주체

적으로 맞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제왕절개로 출산한 이후 첫 출산 경험을 반

복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준비해왔는지, 출산 직전 상황으로 의사의 판단에 내어맡기는 것이 아니라, 스

스로 몸의 변화를 판단하고 역아의 상황을 태아와 교감을 통해 극복하고 순산한 체험기에 큰 감동을 받

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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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곤 2009년 단식수련을 했고 놀라운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단식·생채식에 대한 1000

여 개의 글을 읽는 과정에서 저의 경험을 재해석하고, 당시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발견할 수 있었습니

다. 그리고 단식·생채식 이전에 공동체 생활영성의 근원적 경험이 임신출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요. 프로그램화된 것, 양적인 것에만 관심이 쏠려 일상적이며 음적인 것을 보지 못했던 저는 역사를 생명

의 관점으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단식·생채식 수련 중에 명현반응을 겪습니다. 몸과 마음의 치유과정에서 아프고 편향된 부분이 표출

되는 경우이지요. 참여자 사례를 읽으면서 ‘명현반응’과 ‘부작용’을 구별해서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비로

소 이해하게 되었어요. 단식·생채식 수련 과정에서 주체성이 고양되면서 경험하는 것이 명현이라면, 주

체성을 상실하게 되면서 겪는 게 부작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식·생채식 수련을 통해 깨달은 것을 망각

하고 사는 것은 가장 치명적인 부작용입니다.

김나경 홍천으로 공동체 귀촌하던 2010년 4월부터 2013년 6월까지 3년 치 분량의 글을 읽으면서 홍천

으로 간 사람들이 새로운 터전을 개척하면서 정성스레 하루하루의 삶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참 인상적이

었습니다. 사실 새로운 생활을 몸으로 부딪혀가는 나날 가운데 적지 않은 피로감이 있었을 텐데 부지런

하게 정리하고 나누어준 것이지요.

홍천에서는 몸에 맞게 최소한의 농사를 지으면서도 산과 들에서 절로 나는 풀과 나물을 채취해서 밥상

에 들이고자 노력합니다. “김매기하거나 길을 오갈 때에도 터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풀들을 살

피기도 하고, 먹을 수 있는 풀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찾기도 했다”는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터전 밭,

샘물 근처, 마을 입구 소나무숲 아래, 산 초입” 등 늘상 다니는 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유심히 관찰하며

생명이 자라는 곳으로 인지해내는 것이지요.

이후 남겨진 과제가 있다면.

김나경 각자가 자기의 삶 가운데 지식을 생성해가는 것입니다. 국가의 지식과 아름다운마을공동체의

지식의 형성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는 이번 작업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각자 자신의 과제,

주제를 안고 계속해서 역사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하면 좋겠어요.

박민수 오랜 동안 국가가 펼쳐왔던 다양한 농촌농업 정책, 주요 정책들과의 연관 속에서 귀농귀촌 정

책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고, 아름다운마을밥상이나 홍천밥상 등 그동안 공동체가 축적해온 방대한 ‘지

식’의 역사를 주제별로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작은 꿈이 있다면, 친구들과 함께 사회과학·

역사 관련 연구소를 만드는 겁니다. 이 시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던져주는

조직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정인곤 사건을 통해 문제의식을 갖게 되고, 문제의식이 신념화되는 과정이 새로운 지식의 주체가 세워

지는 과정입니다. 신념화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 새로운 삶의 양식이 만들어집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공동체 지식의 주체로 세워져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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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0 41호

홍천

마을

에서

함께

한가

위를

보내

며,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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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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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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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에

서 둥

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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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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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

청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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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그림

┃황

지영

Page 12: 아름다운마을 41호(2013.09)

12

추석을 앞둔 토요일, 철조망의 장벽이 높게 세워진 분단의 길을 다양한 배경의 젊은 그리스도인 35명이

함께 걸었다. 임진각에서 출발하여 북한이 눈앞에 보이는 초평도, 장산전망대를 거쳐 화석정, 율곡리 습

지공원에 이르는 ‘평화누리길’이다. 침가자들은 전날 저녁 서울 종로5가에서 만나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먼저 가지고 각자 이번 순례에 참가한 동기를 얘기했다.

“북한을 생각하면 우울하고 슬퍼진다”, “평소에 분단 상황을 잊고 무심하게 지낸 것을 반성한다”, “가정

과 직장에서 소통이 너무 어렵다”, “한국사회는 분열의 단계를 넘어 분쇄되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이

념 대결과 편 가르기가 만연한 이 땅에서 화해를 위해서 기도하고 싶다” “시리아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한

다” 등의 나눔이 이어졌다. 이날 밤 참가자들은 자신과 주위, 이 땅의 모든 분열의 아픔과 무거운 짐을 주

님께 맡기는 공동기도(예배)를 드렸다. 긴 침묵의 시간이 있었 고 어둠을 밝히는 빛을 상징하는 촛불을

손에 들고 함께 찬양했다.

이번 순례는 인원 구성에서 좀 독특했다. 개신교 여러 교단뿐 아니라 가톨릭과 성공회 신자들도 함께 했

다. 프랑스 떼제공동체에서 여러 달 살았던 청년들과 아름다운마을공동체 지체들이 여럿 참가했다. 북한

을 위해 기도해온 스웨덴의 스티나는 이번 순례 바로 전에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온지 3년이 된 스페

인 가톨릭선교사 에스더와 참여연대에서 인턴을 하는 홍콩 청년 파니도 합류했다. 20대와 30대가 대부분

이었지만 40대와 50대도 함께 섞였다.

이 시대 평화와 화해를 염원하는 청년들이 9월 13~14일 강화도, 파주 접경일대를 걸으며 대화하며 기도하며 순례했

습니다. 순례를 이끈 신한열 수사님은 1988년부터 떼제공동체에서 살고 계시며 2012년 6월 아름다운마을공동체

를 방문하셨고 다양한 연합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평화와 화해의 순례에 다녀오신 소감문을 아름다운마을신문에

기고해주셨습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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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0 41호

청춘답게

함께 걷기 전에 서로 만나 알아가는 과정이 벌써 순례였다. 예배시간에는 영어와 스웨덴 말로도 성경을 읽

었고 스페인 말로도 노래를 불렀다. 모두 손에 손잡고 각자의 모국어로 주님의 기도를 드렸다. 주님의 기도

는 한국어만 해도 가톨릭용과 성공회용 개신교의 옛 번역과 새 번역 등 네 가지였다!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경험되었다.

토요일 순례에서도 여는 예배와 낮기도, 순례를 마치며 드린 공동예배는 모두 떼제의 찬양과 성경봉독, 긴

침묵, 일련의 짧은 중보기도로 이루어졌다. 전날 예배와 마찬가지로 설교는 없었다. 내가 강의하기보다 서

로 생각을 나누고 침묵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사실 이번 순례 때 묵상한 성경구절들은 모두 그대

로 가슴에 와닿는 말씀이었다. 예배는 그것을 마음 속에 새기고 말씀대로 살기를 다짐하면서 그렇게 할 힘

을 구하는 시간이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같은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예배 안에서 함께 침묵하고 찬

양하는 가운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일치’를 체험했다. 다름이 장애가 되지 않을뿐더러 우리를 더욱 풍부하

게 한다는 것, 또 교회와 전통은 다르더라도 우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보다 더 많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어진 형제와 이웃이 어디 북한뿐이랴.

화해가 필요한 곳은 남북한 사이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도처에

있다. 서울과 지방, 가진 이들과 덜 가진 이들, 보수와 진보, 사

용자와 노동자, 농촌과 도시, 기성세대와 젊은이들…. 그리스도

를 주님이라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분열된 교회는 또 어떤가? 교

리와 전통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혀 불

신과 의혹의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스

도의 몸이 분열되어 있으면 복음은 힘을 잃어버린다. 누구를 탓

하기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라 고백하는 이들이 먼저 하

나되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치유도, 평화도, 화해도 우리 안에

서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편 가르기에 젊은 그리스도인이 동참하지

않고, 충돌과 대립이 갈라놓은 그 길을 화해와 평화의 길로 바꾸

는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이번 순례가 삶 속에서

의 대화와 만남으로 이어지고 더 큰 화해, 가시적인 일치를 향한

노력으로 연결되기를, 또 우리가 속한 공동체들이 이를 위해 누

룩의 역할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두 손을 모은다. 다음은 이번

순례에 우리를 동반한 성경구절이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

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

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

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골로새 3: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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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각에서 보이는 도로를 따라 몇 분만 더 가면 바로

개성이라는 사실과, 조금만 헤엄쳐 건너면 바로 닿을 수

있는 곳이 군사지역이라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참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순례에서는 함께 걸어갔던

그 물리적인 공간보다도 평화를 염원하며 찾아온 다양

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 길을 걸

으며 이야기 나눴던 사람들과의 만남은 짧지만 묵직했

습니다. 국적, 연령, 종교와 종파 또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양한 질문을 서로 건네며 자연스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눠주

었지요.

우리 사회는 타인의 생각과 삶에 대해 관심 갖고 질문하는 습관보다는 타인에게 관심없이 그저 나 자신

에게만 집중된 삶의 습관이 더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상대방에 대해 일정하게 규정된 생

각을 갖고, 상대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국 상대방을 새롭게 보지 못하는 것입

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분열을 만들어내고, 평화를 해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수많은 소통의 단절은 이렇듯 서로를 새롭게 보지 못함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요. 순례를 하며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들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몰라 어색해하던 저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가 평화를

만들어가는 삶과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해 지금 노력해야 할 과제는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평화를 만들어가는 존재

로 계속 거듭나는 것이지요.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이와 질문하며 대화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내가 과연

통일 이후에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가게 될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저 도움

을 주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며 전혀 새로운 존재로 보지 못한 채 오히려 평화를 흔들리게 하는 한 사람

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더 클 것만 같습니다.

평화와 화해의 순례를 통해 나와 내 옆에 있는 사람과의 만남이 곧 남과 북의 만남임을, 그것이 곧 이 세

상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한 걸음임을 깨닫습니다. 순례를 통해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새롭게 관계 맺어

갔던 경험이, 이제는 저의 일상이 되어야 하겠지요. 평화를 만드는 삶은 그저 조용히 온화한 미소를 띤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역동적이고 생명력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 것임을 생각합니다.

김겸손 | 은평구에 있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는 곳은 부천이고요,

그곳에서 지체들과 ‘새삶공동체’라는 이름으로 함께 신앙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청춘답게 평화와 화해의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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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0 41호

<아름다운 마을>을 우편으로 보내드리는 분들이 어느새 200분(혹은 곳)으로 늘었습니다.

서울 인수동과 강원 홍천마을 분들 뿐 아니라, 이 땅 곳곳에서 땀 흘리며 살아가는 수많은 분

들이 마을신문을 읽고 마음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자신 뿐 아니

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을신문에 담아 다른 이에게 전하는 이들을 기억하며, 멀리서 지켜보

고 계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더 널리 향기롭게 퍼져가는 마을신문이 되고자 합니다.

함께 누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우리 힘을 모아 지켜준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봅니다. 그동

안 <아름다운 마을>에 후원해주신 손길과, 가진 재능을 공유해주시는 분들의 수고로 달마

다 지치지 않고 결실을 펴낼 수 있었습니다. 마을신문이 앞으로도 계속 꾸준히 나올 수 있도

록 필요한 게 무엇일까 생각하며 창조적 변화와 지속에 대해 계속 모색하고 시도하고 있습니

다.

<아름다운마을>을 위해 자발적 소액후원에 동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함께하는 마음

으로 작은 정성이 모이면, 든든한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지금 약 서른 분이 달마다 꼬박꼬박

작은 정성을 모아주고 계십니다. 약 예순 분(혹은 곳)이 더 정기후원을 시작해주신다면, 안정

적으로 마을신문 제작과 발송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 무료발송으로 받아오셨다면, 이참

에 발송료를 유료로 전환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을신문 후원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마을신문 정기후원 : 월 1만 원 이상(가정에서 후원하실 수도 있습니다).

교회나 단체에서 하실 경우, 미리 전화주셔서 의논하시면 됩니다.

후원 계좌 : 국민은행 487101-01-369173 예금주 : 생명평화연대(마을신문)

위 계좌로 마을신문 후원을 하시면 기부금영수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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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꿈꾸는 일터

첫 제자인 강이(가명)는 매년 저에게 전화를 합니

다. 올 봄에도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잘 지내세

요? 밥 먹었어요?” “응, 강이도 잘 지내니? 어디야?” “

집에서 TV 보고 있어요.” “요즘 뭐하니?” “그냥 집에

있어요.” 졸업 후 복지관에 다닌다고 한 것 같은데,

지금은 다니지 않나 봅니다. 장애인복지관은 보통 4

년 다니면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합니다. 강이는 지적

장애가 있는 28세 청년입니다. 졸업 후 무료한 생활

을 하는 강이가 제 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저를 아

주 무서워했는데, 다른 담임들에게 전화를 하다 모

두 번호가 바뀌어 통화가 안 되니 저에게까지 전화

를 한 것입니다. 긴 대화는 어렵지만 짧은 질문과 대

답에서 강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강이 어머니와도 통화가 되어 아픈 마음을 전해 들

었습니다.

“송미영 선생님, 추석 잘 보내세요.” 올 추석에도

산이(가명)는 저에게 어김없이 문자메시지를 보냅

니다. 개천절, 한글날에도 저에게 문자가 올 것입니

다. 국경일, 기념일 그리고 서울 버스·지하철 노선

이 바뀌었거나, 차량에 변화가 있으면 어김없이 변

화된 상황을 문자로 알려줍니다. 산이는 자폐성 발

달장애가 있는 24세 청년입니다. 문자 내용을 보고

엉뚱한 내용이면 굳이 답장을 하지 않고 때에 맞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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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0 41호

내용이면 답장을 보냅니다. 가끔 받는 답장이 즐거운지, 7년째 문자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산이는 졸업

후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보호작업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작업장 일도 강이처럼 계속할 수는 없을 것

입니다. 강이는 첫 학교인 특수학교에서, 산이는 두 번째 학교인 중학교 특수학급에서 담임을 했던 제자

입니다.

더불어 살아가자는 가르침은 어디로

저는 15년차 중등 특수교사입니다. 가르치는 학생들은 지적장애, 정서장애, 발달장애, 언어장애, 지체

장애, 학습장애, 틱장애 등 다양한 장애가 있습니다. 장애학생만 있는 특수학교에 근무하기도 하고, 일반

학교에 있는 특수학급에서 근무하기도 합니다. 특수교육의 큰 목표는 사회생활 적응과 독립입니다. 장애

학생이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독립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능(물건 사기, 버스 타기 등)과 지식(시계 보기,

화폐 계산 등)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세상을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장애로

인해 생긴 행동과 지식 부족은,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독립된 주체로 서지 못하게 합니다. 여러 기능을 익

히는 것 못지않게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학생들을 정말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10년 동

안 장애학생에게는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동시에 사회도 장애를 이해하고 장애인을 생

명으로 존중하며 살아갈 환경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안장애 학생들에게도 장애의식 개선 교육을 했습

니다.

그러나 현실사회는 장애를 경계 짓고 소외시킵니다. 장애인을 복지의 대상이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생

명으로 보지 않습니다. 강이와 산이는 10년에서 3년씩 저와 함께했던 제자들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학

생 때 특수학교와 특수학급으로 구분되어 공부한 것처럼 청년이 된 지금도 장애인복지관에서 구분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특수교육과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소명으로 삼아 인생을 걸고 달려온 저는 막막하고 억울했습

니다. 정해진 구조와 소진된 개인이 어떤 변화를 시도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한계를 경험하고 처음

부터 다시 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기존에 있던 사고와 관념을 벗고 내 삶을 설명하는 공부

를 했습니다. 기만하지 않는 삶, 분별하고 철학하는 방법, 식·의·주와 살림, 살리는 관계와 서로를 지키

는 공동체, 생명과 평화를 향하는 삶, 농(農)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2009년 3월 공부의 시작과 함께 세 번

째 학교로 옮겼습니다.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교육현장으로

그동안에는 관계가 없이 늘 혼자서 고군분투했습니다. 옮긴 학교에서 관계를 만들어갔습니다. 첫 해는

학생과 나의 관계를 성찰하고 새롭게 맺어갔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고유한 생명의 기운을 잘 구별

하고 생명과 생명으로 평화롭게 관계 맺으려 했습니다. 경력이 쌓이니 교생지도 교사가 되었습니다. 동

지가 될 교생 선생님 또한 정성껏 만났습니다. 그중 한 명은 저의 모습을 보고 특수교사가 어떤 것인지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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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고 공부할 이유를 찾았다며 그해 임용고시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 이후 힘들 때면 저에게 전화를 합니

다.

두 번째 해부터 부장교사를 하면서 학교 전체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에서 공격성이 심한 힘든 학생

이 있다고 기피하는 반을 자원해서 담임을 했습니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교원평가를 전면시행했

습니다. 수업공개를 하고 학부모, 동료교원 평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자칫 경쟁적으로 성과위주의 수업,

학생지도를 할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동학년 선생님들을 모아 협의를 했습니다. 평가로 위축되지 말고 서로 수업을 지켜봐주는 관계가 되자

고 제안을 했고, 연구공동체로 1년간 동학년 선생님들과 만났습니다. 장애학생만 있는 특수학교는 특수

성으로 인해 비민주적이고 억압하는 분위기가 많습니다. 획일적으로 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교원평가

와 차등성과급으로 인해 교사들은 더 위축되었습니다. 평가와 성과급 자문위원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

여 교육 현장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규정을 만들어갔습니다. 2년간 소통한 관계가 힘이 되

었습니다.

관리자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시는 교감, 교장선생님을 존중해드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건 저의 현

장을 새롭게 보게 된 공부 덕분이었습니다. 1년 반 동안 함께 근무한 교장선생님은 늘 부장회의에서 저와

의견대립을 보이고 회의시간에 충돌했지만, 막상 떠나실 때는 저를 격려해주셨고 올 초 제가 강릉으로 발

령이 났을 때에도 선생임을 잊지 말라 하셨습니다.

번호를 바꾸지 않고 기다립니다

특수학교에서 동료교사, 학부모, 학생을 잘 만나면서 장애를 세상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만들고 싶

었습니다. 제가 떠나온 학교 분위기가 많이 좋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그러나 다시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

는 것이 위축되었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심한 공격행동이 있는 제자가 작년까지는 좋았는데, 더 나빠

져 아주 힘들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희망과 절망을 함께 경험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체념하거나 억울하

지 않습니다.

어느 날 후배 선생님이 저에게 질문했습니다. “어떤 책을 읽으면 선생님처럼 할 수 있는지요? 책을 추천

해주세요.” 웃으면서 공부의 내용과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말해주었습니다. 공부한 대로 최선을 다했고

맺고 있는 관계가 있습니다. 올 3월 서울을 떠나 강원도로 왔습니다. 학교현장 뿐 아니라 함께 가는 공동

체와 만들어갈 마을에서 장애를 새롭게 해석하고 살아갈 삶의 양식을 공부하고 도전할 것입니다. 15년간

맺었던 관계에서 저의 모습을 기억하는 학생, 학부모, 동료교사들이 가끔 전화가 옵니다. 핸드폰 번호를

바꾸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송미영 | 15년차 특수교사로 일하며, 두레교회 안에서 만난 청년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다.

꿈꾸는 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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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0 41호

하나. 마을찻집의 모든 식재료는 친환경 유기농 재료를 사용합니다.

생협을 통해 온전한 생명으로 키워진 음식을 받아

정성껏 요리한 음식을 먹고 생명과 평화의 삶을 살며

남은 음식부산물은 홍천땅을 일구는 퇴비로 되돌아갑니다.

둘. 건강을 생각해 전자레인지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전자레인지를 통해 조리, 가열한 음식은

간편할지 모르지만 몸에 건강한 음식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마을찻집은 전자레인지를 치우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셋. 아기들이 편하게 기어 다닐 수 있는 좌식 카페입니다.

아기들에게도 편할 뿐 아니라 함께 온 부모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넷. 자연의 리듬에 맞게 저녁 9시까지만 운영합니다.

도시에 살고 있지만 이러한 농생활의 생활리듬이

우리 몸과 맘을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다섯. 마을사람들의 삶이 보이는 사랑방입니다.

마을공동체는 적은 소유를 통해 공유의 삶을 만들어갑니다.

공동의 거실과 같은 찻집이 있기에 집의 규모도 굳이 늘릴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방과 같은 찻집에서 사람을 만나 차 한 잔 나눌 수 있습니다.

여섯. 마을공동체에 대해 도전을 받고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개별화된 채 자본이 강요하는 방식으로 살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한 세상에서

마을을 통해 대안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을 찾아오는 분들에게

그러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언하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곱. 세미나실(4~12인)을 예약할 수 있습니다.

공간이 쉬는 일요일과 월요일엔 공간을 통째로 대여하기도 합니다.

마을의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지는 장입니다.

예술소모임, 공부모임, 돌잔치, 생일잔치, 공동체모임, 지역단체들의 모임 등

·서울 강북구 인수동 516-62 (북한산 둘레길 흰구름길 구간) / 070-8752-2389

·문 여는 시간 : 화~토요일 오전 11시 ~ 밤 9시 (일, 월요일 :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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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겨울, 봄, 여름, 그리고 가을. 홍천터전에서 생태건축연구소 흙손 사람들과 함께 노동한지 딱 1

년이 지났습니다. 늘 메고 다니던 배낭과 옷가방 하나 달랑 들고 사랑채로 난 길을 걸어오를 때가 벌써

아득합니다.

그동안 흙부대집 두 채와 강당을 짓는 사이사이에 퇴비간, 뒷간, 닭장 등을 만들었습니다. 한 평 텃

밭에서 20여 개의 단호박을 따서 나누고, 닭들과 어떻게 하면 겨울을 든든히 날까 고심하며 지냅니다.

한여름을 강당 지붕에서 뜨겁게 보내고 내려와 바닥에 보일러관을 깔면서 문득, ‘이제 집을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천장에 다닥다닥 붙어서 마감할 때와 지붕 끝에 매달려 나사를

박을 때 느꼈던 집짓기의 막연함은 사라졌습니다.

바닥 미장을 할 때였습니다. 흙손 사람들과, 서울에서 울력으로 건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가세하여

흙을 비벼서 나르는 동안 두 분의 미장공 아저씨들의 신기의 손놀림을 보았습니다. 미장 칼이 쓱싹하고

두 번 지나가니 바닥이 평평해지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본 무림고수들

의 검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란 생각은 곧바로 ‘얼마나 흙을 비비고 날랐

을까’란 생각으로 이어져 흙을 열심히 퍼 날랐습니다. 비비고, 나르고, 쓱싹하는 환상의 호흡으로 60평

바닥 미장을 오후 2시경에 마무리했습니다.

바로 전날 한 평 반 보일러실을 우리 손으로 미장할 땐, 수평 맞추느라 한 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게다

가 미장 칼 자욱이 선명하게 남더군요. 흉내내기를 넘어 뭔가 어설픈 구석이 남아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듭니다’란 광고카피가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마지막 손을 뗄 때 비

로소 느낄 수 있는 깔끔함을 맛보려면 얼마나 많이 연마해야 할까요. ‘이렇게 마무리해도 되나’하고 갸

우뚱하며 돌아설 때의 뒷맛은 언제나 찜찜합니다.

문을 손으로 만들려하니 이건 또 다른 세계입니다. 톱질, 대패질, 끌질을 다 동원해가며 작은 문 한 짝

만들어내려니 옛날 장인의 손길을 다시 보게 됩니다. 열심히 잘 하다가도 손끝 하나 까딱 잘못하니 똑

하고 부러지고 뻥하고 뚫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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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건축

그러다가도 벽을 보면 마음이 한없이 흐뭇해집니다. 서

울에 사는 마을사람들이 주말에 한걸음에 달려와 벽에 붙

어 마지막 흙벽을 올릴 때의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낌없

는 수고의 흔적과 함께 저마다의 개성이 묻어납니다. ‘아,

이 부분 누가 했지’ 하고 그 사람 얼굴을 떠올리니, 그저 감

사할 따름입니다.

고된 날도 많습니다. 서로 잡아주고 부어주며 흙부대집

을 지을 때와는 또 다른 어려움입니다. 천장 마감하러 높

은 데 올라서서 호흡을 맞추려니 날선 말들이 오고갈 때

도 있고, 비가 많이 와 물기 많은 흙으로 벽을 쌓다가 한쪽

이 뚝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서두른다고 빨리 할 수 없고,

매끈하고 깔끔하게 하려해도 마음만 같지 않습니다. 몸에

지긋이 남아 있는 통증은 기분 좋지만, 몸 한쪽을 짓누르

는 듯한 통증은 빨리 떨쳐버리고 싶습니다. 자기 수련의

과제가 노동하는 일상에서 그대로 반복됩니다.

강당 2차 공사까지 마무리 하려면 앞으로도 많은 날들이

남았습니다. 가을걷이를 한 논에 눈이 쌓이고 또 쌓일 때

쯤이면 제법 우람한 건물이 우리 앞에 떡하니 서있을 겁니

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지은 강당은 누가 뭐라 해도 세상

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김동언 | 서울에 있는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홍천마을로 삶의 전환을 이루어 일하고 쉬고 가르치고 배우며

틈틈이 닭들도 돌보며 마을공동체를 일구고 있다.

툇마루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 정겹습니다.

흙미장 울력으로 벽체를 완성했습니다.

깔끔한 마무리를 하려면 더 연마가 필요합니다.

벽마다 수고한 사람들의 개성이 묻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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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가을날 인수마을에서 운동회가 열렸습니다. 9월 마지막째 주

금요일, 한신대학교 운동장에 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7~11세) 형님들

과 마을어린이집 동생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모처럼 한 자리에 모이

니 꽤 많습니다. 아이들은 넓은 운동장에 왔다고 신났습니다. 늘상 오

가던 곳이지만, 이렇게 여럿이 함께 맘껏 뛰놀 수 있어서 더 마음에 드

는가 봅니다.

11살 큰 형님부터 4살 어린 동생까지 모두 섞어서 모둠을 나눴습니

다. 반달곰모둠, 호랑이모둠, 빨간호랑이모둠, 청둥오리모둠으로 나

눠 서로 알아보기 쉽게 색지를 붙였습니다. 모여서 응원 구호도 만들

고, 이름도 정합니다. 어린 동생들도 진지한 표정으로 임했지요.

줄지어 서서 마음을 모아 모둠 이름과 구호를 크게 외쳤습니다. 다음

에는 선생님을 따라 몸풀기 체조를 했습니다. 어깨도 돌리고 허리도

돌리고 발목도 돌리면서 서로의 모습이 재밌어서 웃음꽃도 피웁니다.

이제 두근두근, 경기를 시작합니다. 카드 뒤집기, 짝꿍과 공 옮기기,

줄다리기…, 함께 하는 형님, 동생들과 호흡을 잘 맞춰 영차영차 집중

합니다. 힘껏 운동장을 누비며 달리기를 하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

는 과자 따먹기로 마무리합니다.

형님들은 그동안 열심히 키워온 체력을 발산하며 형님답게 앞서가는

기상을 보여줍니다. 형님들 사이에서 못지않게 열심히 하려 하면서 동

생들도 쑥쑥 자라갑니다. 신나게 뛰어노느라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

며 인사하고 헤어졌습니다.

아이들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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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아름다운마을신문 2013 10 41호

여러 날 두고 구름이 짙어지더니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습니다. 가을을 재

촉하는 바람까지 간간이 불어오는 이른 아침, 도시락을 싸들고 홍천으로 달

려갑니다. 생명의 약동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학생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가뿐하기까지 합니다. 추석을 한 주 앞둔 토요일 열린 이번 가을운동회는

새롭게 설립되는 고등/대학 통합과정을 위한 학부모 집담회를 진행한 후에

열리게 되어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생동중학교 첫 졸업생들의 새로운 공

부과정을 함께 준비하기 위해 학부모님들과 선생님, 마을 이모삼촌들이 함

께 모여 이야기는 나누는 시간을 가졌고, 아침부터 부지런한 손길로 준비해

온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어느새 비구름이 시원하

게 벗겨져 밖에서 뛰어놀기에 딱 적당한 날씨가 되어 있었습니다.

몸풀기를 하고 단체줄넘기와 림보, 그리고 높은 줄을 넘는 경기를 하였습

니다. 어른들은 소싯적 고무줄놀이 경험을 살려 발을 힘껏 들어 올립니다.

자기 키보다 훨씬 높은 고무줄에 가볍게 발을 올려놓는 학생들, 여전한 유

연성을 보여준 학부모들이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도저도 안 되면 재주를 넘

어서라도 통과하기도 합니다. 운동회의 꽃은 이어달리기였습니다. 아빠들

은 봐주지 않겠다는 눈빛을 보였고, 학생들은 더 빠른 선수를 초반에 배치

해 간격을 벌리려 했습니다. 호루라기가 울리고 출발! 경기 초반 학생들의

작전이 그대로 들어맞았지만, 막바지에 학부모 모둠이 기어이 역전했습니

다. 서로 조금도 봐주는 기색이 없는 치열한 경기였습니다.

운동회가 끝나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사과와 떡을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

웠습니다. 부모님들과 선생님, 마을의 이모삼촌들은 학생들에게 인생의 좋

은 길동무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마음속에 다지는 시간이 되었

습니다.

조승연 | 초등학교 특수교사. 인생에서 안정을 찾고 싶은 나이에 삶의 배치를 새로이 전환했습니다.

낯선 일상들을 신명나게 보내며 진정한 안정감이 무엇인지 배워가고 있습니다.

마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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