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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ㅁ -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news.seoul.go.kr/gov/files/2016/01/56a07e80250bd3.80401059.pdf · 04 엄마들의 손으로 만드는 세상 ... 는 마을살이를 알리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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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이 궁금한 당신을 위한 ㅁㅁ시리즈 2

  • 차례

    01아파트에서 싹튼 마을공동체의 씨앗 ‘파크리오 맘’ 운영자 임유화 6

    02마을로 가는 도시 생활자들의 안내자, 삐삐와 함께 마을에서 힐링하자! 마을예술창작소 릴라 ‘삐삐’ 허선희 12

    03내가 살던 마을을 이제야 발견했어요! 마을 아키비스트 최호진 20

    04엄마들의 손으로 만드는 세상 햇빛공방 대표 정수정 26

    05품앗이육아로 배운 마을공동체의 소중함 마을활동가 안세정 34

    0620대 청년들의 진짜 삶을 찾아서 청춘행성 209 김동혁 42

    07마을살이의 즐거움을 전파하다 마을상담원 고창록 48

    08더 많은 사람들을 엮고 싶은 마을 네트워커 거북골 마을사랑방 대표 변경미 56

    09마을은 내 운명 마을공동체 강사 박경란 64

    ‘마을이 궁금한 당신을 위한 ㅁㅁ 시리즈’를 내면서 410 ‘마을 오지라퍼’라고 들어보셨나요? 성동구 마을코디네이터 손병호 73

    11아빠, 마을에서 활동하는 슈퍼맨이 되다 장안마을 장한가족들 김정호 80

    12 네모난 아파트의 문을 열고 더 넓은 마을로 공동 주택 커뮤니티 전문가 문효심 88

    13 가족이 튼튼해야 마을이 튼튼해진다! 성동구 꽃재마을 허준수 98

    1410년 분쟁도 해결한 텃밭의 힘 청량리 한신1차아파트 입주자대표 김희정 105

    15관계의 허기를 채우다 우리동네청년회 2030 반찬 모임 ‘반쪽’ 112

    16 맛있는 삶을 위한 어떤 레시피 아빠맘두부 122

    17엄마의 눈으로 마을을 바라보다 구로구 여성 주민 모임 김현주 134

    18 마을, 청바지를 입다 도봉구 마을탐사단 ‘청바지’ 144

    19 이렇게 모이니 그냥 좋은걸! 방학3동 대원그린아파트 입주자대표회장 강성현 155

    20 친구와 동료를 만들어준 마을에서의 6개월 금천구 마을로 청년활동가 정소민 165 >>

  • 4 5

    ‘마을이 궁금한 당신을 위한 ㅁㅁ 시리즈’를 내면서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 정책 3년. 쉽고 만만한 사업들로

    시작된 마을 씨앗 뿌리기는 3년이 지나며 7만 명의 주민을 등

    장시켰고, 2,700여 개의 주민 모임을 형성시켰습니다. 이웃과

    의 호혜적 관계망을 바탕으로 이제 명실상부하게 뿌리를 내

    렸다 할 수 있지요.

    이제 이렇게 시작된 작은 모임들이 얽히고설키며 관계를

    확장하고, 잎이 나고 꽃을 피우는 때가 오겠지요.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기도 하지만 그래도 마을의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것은 곁에 있는 나의 이웃과, 함께했던 지난 시간들이 내일을

    준비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서는 작고, 쉽고, 재미있

    는 마을살이를 알리고자 매월 온라인 뉴스레터 〈서울마을이

    야기〉를 발행해 왔습니다. 이 책은 〈서울마을이야기〉를 통해

    만나왔던 마을과 사람, 그리고 공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권 《마을을 말하다》에는 마을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기고문과 강의록을 담았습니다. 진지하지만 지루

    하지 않게 “왜 마을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합니다.

    2권 《마을에서 만나다》에는 그동안 만나온 마을활동가들

    의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마을공동체란 ‘특별한 누군가’가 하

    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입니

    다. 마을에 사는 우리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엿볼 수 있습

    니다.

    3권 《마을에 머물다》에는 때로는 마을의 사랑방이 되고,

    가끔은 마을학교가, 어느 날엔 마을극장이 되는 마을의 다양

    한 커뮤니티 공간들을 소개합니다. 마을공동체 활동의 무대가

    되는 ‘공간’에 대한 소개는 물론, 그 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마을활동의 면면을 담았습니다.

    ‘마을이 궁금한 당신을 위한 □□ 시리즈’는 마을살이를 시

    작하려는 분들에게는 작게나마 마을에 대한 길잡이가 되고,

    이미 마을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분들에게는 그간의 마을살이

    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모쪼록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재미있는 마을살이의 참

    맛을 조금 더 맛보고, 즐기고, 빠지게 되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센터장 유창복

  • 7

    1 /아파트에서 싹튼 마을공동체의 씨앗

    “시온아, 안녕!”, “시온이 어디 가니?”

    임유화 씨의 딸 박시온 양은 놀이터에 가면

    쏟아지는 인사 세례에 정신이 없다.

    또래는 물론 엄마들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온이를 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인

    서울 송파구 잠실 파크리오, 흔히들 삭막한 아파트라

    부르는 이곳엔 이렇게 사람 냄새가 난다.

    엄마들의 친목 단체 ‘파크리오 맘’ 덕분이다.

    >>

    ‘파크리오 맘’ 운영자 임유화

    온라인에서 출발한 특별한 주부 커뮤니티

    “하루는 시온이가 유치원에서 집까지 혼자 왔는데,

    제가 둘째를 돌보느라 녹초가 되어 자는 바람에 초인종

    누르는 소리를 못 들은 거예요. 엄마가 안 나오니까 시

    온이가 혼자 놀이터에 가서 울고 있었나 봐요. 그걸 본

    동네분이 아이를 자기 집에 데려가 밥을 먹인 후 집에

    데려다줬어요. 다른 동네는 몰라도 ‘파크리오 맘’(cafe.

    naver.com/parkriomom, 이하 ‘팍맘’)에서는 가능한 일이

    죠.” 임유화 씨의 말이다.

    아이를 잠시 맡길 곳이 필요할 때, 약국도 문 닫는 새

    벽에 해열제가 필요할 때, 잠실 파크리오 단지의 사람들

    은 당황하지 않고 온라인 카페(‘팍맘’)에 글부터 올린다.

    순식간에 필요한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기 때

    문이다.

    2008년 8월 임 씨에 의해 개설된 온라인 카페에서 출

    발한 ‘팍맘’은 2013년 1,700명의 회원 수를 자랑하는 거

    대 모임이 되었다. 대부분 36세 전후로 3~5세 정도의 미

    취학 아동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다수를 이룬다. 육아, 부

    부 생활, 살림 등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엄마 띠 모임,

    아이 띠 모임, 퀼트 모임, 운동 모임, 재테크 모임 등 다

  • 8 9

    양한 소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임유화 씨는 어떻게 이런

    모임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됐을지 궁금해졌다.

    “당시 이곳으로 이사 올 때만 해도 친구가 한 명도 없

    었어요. 그래서 온라인 카페를 만들었어요. 이왕이면 저

    처럼 아이를 낳아 기르는 또래의 엄마들을 찾아내 만나

    고 싶었거든요. 아무래도 비슷한 환경에 놓인 이들이라

    면 관심사를 나누기도 쉬우니까요.”

    반응은 서서히 나타났다. 특히 아이를 가지면서 회

    사를 그만두거나, 육아 휴직으로 경력 단절을 겪고 있는

    젊은 엄마들의 호응이 컸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

    이 동네 젊은 엄마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팍맘’이

    있어서 산후우울증, 육아우울증 겪을 틈도 없다”고. “보

    람을 많이 느끼죠. 이 활동을 하면서 마음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나게 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주변으로부터

    참 많이 들었어요. 지금껏 살면서 들은 ‘고맙다’는 말을

    다 합해도 ‘팍맘’ 활동하면서 들은 말보다 적을 거예요

    (웃음).”

    ‘이웃의 정’을 타고 퍼져나간 나눔 풀씨

    모임이 커지면서 이제 ‘팍맘’은 단순한 엄마들의 친

    목 모임에 머무르지 않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팍맘’의

    활동은 ‘기부’다. 이들은 한 해 총 2,000만 원 가까이 되

    는 기부금을 다양한 불우이웃 시설이나 복지 단체, 국제

    구호 단체 등에 전달하는 ‘기부 단체’로 성장했다.

    그 계기는 ‘팍맘’ 온라인 카페였다. 카페 규모가 커지

    면서 안 쓰는 물건을 주고받는 ‘드립니다’ 코너가 활발

    해졌다. 임씨는 ‘물건을 가져간 이가 준 사람 이름으로

    기부를 하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고, 2009년 9월 ‘기부

    통장’을 만들어 이를 알렸다. 그러면서 500원, 1,000원씩

    ▲ ‘파크리오 맘’ 기부 활동.

  • 10 11

    기부금이 쌓이기 시작했다.

    기부의 즐거움을 깨달으면서 정기적으로 벼룩시장을

    개최했다. 당연히 판매 수익금은 고스란히 기부통장으

    로 들어갔다. 2009년 12월 그때까지 모은 410만 원을 어

    린이재단에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팍맘’ 엄마들은 아이

    티 지진 때도, 일본 쓰나미 재난 때도 두 팔 걷어붙이고

    어려운 이들을 도왔다.

    벼룩시장뿐만이 아니라 ‘팍맘 아카데미’ 활동도 ‘기

    부’로 시작해 ‘기부’로 끝난다. POP 강좌, 재봉틀 강좌,

    인라인 강좌, 사진 강좌 등 다양한 강좌가 열리는데 이곳

    의 강사는 외부에서 초빙해 온 이가 아니라 자격증을 가

    진 이 동네 엄마들이다. 무상 재능 기부로 강의가 열리는

    만큼 수업료는 없지만, 대신 강좌를 듣는 수강생들은 재

    능 기부자인 강사의 이름으로 기부금을 낸다. ‘팍맘’은

    이렇게 모은 수강료로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모잠비크에

    우물 만드는 일을 후원했다. 또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국내 지역 아동 센터를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일에도 앞

    장서고 있다.

    “마을공동체가 별건가요? 내 아이 키우며, 앞집 아이

    도 옆집 아이도 함께 잘 키우는 게 진짜 공동체죠. 바다

    건너 다른 나라 아이들도 도우면서요. 서로가 서로의 보

    초가 되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기를 꿈꿉니다.”

    동네 이웃을 알고 싶어 시작한 친목 모임에서 출발

    해 이제는 자신이 사는 동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관심과 돌봄의 손길을 뻗고 있는 ‘팍맘.’ 이들의 활동은

    “아파트에 살면 아랫집, 윗집에 사는 사람들의 얼굴조차

    모른다”는 통념을 보기 좋게 배반하고 있다. ‘이웃의 정’

    을 매개로 기부를 실천하는 ‘팍맘’의 활동이 풀씨처럼

    널리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글 임은선(소소북스), 사진 제공 임유화

  • 13

    2 /마을로 가는 도시 생활자들의 안내자,삐삐와 함께 마을에서 힐링하자!

    망원시장 골목 안 건어물집 2층에 위치한

    마을예술창작소 ‘릴라.’

    그곳엔 언제나 웃음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삐삐’가 있다.

    문화기획가로 활동하다가 성미산마을에

    터를 내리고 일상 속의 예술 찾기를

    시도하는 그녀와 만났다.

    >>

    마을예술창작소 릴라 ‘삐삐’ 허선

    마을로 내려온 문화기획가

    “이곳에 오기 전까지 다른 곳에서 10년 정도 조직 생

    활을 했어요. 중앙 단위의 일을 계속 하다 보니 스트레스

    가 오고 몸이 안 좋아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중앙 단위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이 들었어요.”

    1998년 노동문화정책정보센터에서의 활동을 시작

    으로 문화 단체에서 10여 년간 일을 해온 허선희(별칭 삐

    삐)씨는 2004년 소외 계층을 찾아가는 문화 예술 사업인

    ‘신나는 문화학교’ 일을 마지막으로 ‘조직 생활’에 안녕

    을 고했다.

    “신나는 문화학교 일을 하며 서울시 저소득층 아이들

    을 많이 만났어요. 아이들이 처한 현실이 안타까워 울기

    도 많이 울었죠. 그곳에서의 활동을 통해 아이들을 지켜

    줄 수 있는 울타리로서 마을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어요.

    동시에 ‘이제까지 해온 일이 모두 중앙에서였구나’라는

    자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때에 마침 성미산마을의 선배

    가 ‘축제 기획’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해왔죠.”

    2007년 삐삐가 성미산마을로 간 계기였다. 처음 제안

    을 받았을 때만 해도 ‘딱 1년만이야’라고 생각했던 그였

  • 14 15

    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고 보니 마을 일이라는 게 그렇

    게 뚝딱 손대고, 뚝딱 손을 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축제

    를 위한 프로세스는커녕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

    을 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 계획을 세우고, 사람을 만나

    고, 일을 나눠 맡기면서 꼬박 한 달을 매달려 축제를 열

    었다. 그러면서 만난 마을 사람들과 함께 1년, 다시 또 1

    년…… 그렇게 그녀는 성미산마을의 주민이 되었다.

    성미산 친구들과 예술 문화 놀이터 ‘릴라’를 꾸리다

    2008년 안면이 마비되는 구안와사가 그를 찾아왔다.

    3개월 동안의 치료로 병은 나았지만 이를 계기로 ‘중앙

    에서 가장자리로’, ‘외적 성취보다는 내면의 변화를 향

    해’ 삶을 꾸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단단해졌다.

    “그래서 마을에 기반을 두되, 조직에 적을 두지 않고

    개인적으로 즐거운 일을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지난 1년

    동안 재미난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친구들과 자주 만나

    면서 고민을 나눴어요. 그 결론이 자연스럽게 릴라로 모

    아졌죠.”

    평소 인문학과 명상, 그리고 티베탄 요가에 관심을

    ▲ 성미산마을축제 때 망원시장에서 열린 릴라의 공연.

    갖고 공부해 온 아난도와 성미산마을학교 교사로 일하

    며 음악 창작 작업을 희망해 온 실비, 그리고 삐삐는 동

    네 주민이란 이유와 관심사가 비슷하단 이유로 자주 만

    나다 친구가 되었다. 친구가 되니 서로의 가슴속에 숨겨

    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은 셋 모두의 공통 관심사였다.

    “음악, 미술, 명상 등 저마다 관심사를 사람들과 나눌

    수 있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공간을

  • 16 17

    얻자는 데 의기투합했죠. 창조적인 놀이터로 쓰자는 전

    제는 있었지만, 목적을 딱 정하고 시작하진 말자고 했어

    요. 성미산마을에서 작업을 해보면 알게 되요. 목적을 가

    진 누군가가 움직이는 것과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일의

    지속 가능성은 다르거든요. 느슨해 보일지 몰라도 이래

    야 일하는 과정에서 상처 입는 일도 적고, 즐겁게 할 수

    있으니까요.”

    협동조합이니 하는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말 그대로 세 명이 낼 수 있는 만큼 내고, 할 수 있는 만

    큼 하자는 암묵적 동의를 바탕으로 2012년 12월 서교동

    의 한 반지하방에 문을 연 릴라는 각박한 경쟁 속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치유’와 ‘성찰’의 기회를 주는 공

    간으로 서서히 자리 잡았다. 처음엔 성미산마을 주민들

    이 대상이었지만 점차 다른 곳에서 찾아오는 이들이 늘

    어났다.

    “릴라는 산스크리트 어로 ‘우주의 놀이터’란 뜻이에

    요. 이름 그대로 이곳에서 많은 이들이 서로 교류하고 소

    통하며 놀이의 즐거움과 힐링을 얻기를 바랐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다양한 소모임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

    쿨렐레나 기타 같은 악기를 배울 수 있는 악기 서클, ‘만

    다라 그리기’를 시도하는 아트 서클, 여성의 행복을 위한

    힐링 서클 등 세분화된 소모임이 있다. 힐링 서클에서는

    티베탄 펄싱을 활용한 요가와 명상, 여성 인문학 ‘맘품앗

    이’ 등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삐삐는 ‘만다라 그리기’ 수업을 맡고 있다.

    동그라미 안에 자유롭게 떠오르는 대로 패턴이나 문양

    을 그려 넣는 것이다. “머리가 시켜서가 아니라 마음이

    가는 대로 그리는 것”이 만다라 그리기의 핵심이다. 소

    정의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수요일의

    만다라’ 수업이 있고, 방학 때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도

    진행한다. 2012년 연말에는 1년 동안의 작품을 모아 전

    시회도 열었다.

    그 외에도 바자회, 벼룩시장 등 다양한 활동이 펼쳐

    진다. 특히 매주 금요일 정오에 성미산 마을카페 앞에서

    열리는 ‘슬그머니’란 이름의 거리 공연은 ‘릴라’ 회원뿐

    만 아니라 누구나 와서 실력을 뽐낼 수 있는 자리다.

    “꼭 프로의 실력이라야만 공연할 수 있는 건 아니잖

    아요. 자신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족한 거죠. 예술을 거창

    한 별개의 것으로 보지 말고, 일상과 가까운 것으로 여기

    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 18 19

    망원시장 안의 ‘릴라’에서 새로운 시작을

    크고 작은 소모임과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힐링과 놀

    이가 함께하는 기회를 만들어온 릴라. 삐삐는 앞으로도

    예술로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 마을과 마을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계속해 나가고 싶다고 했다. 여기서 중

    요한 것은 언제나 ‘사람’이다.

    “함께하는 실비가 그랬어요. 일이 비록 성공했다고

    해도 함께한 이들이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이라고. 성공 여부를 떠나 함께하

    ▼ 릴라의 정기 음악 공연.

    는 사람들이 ‘또 해보자’고 말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웃

    음).”

    2012년 12월 릴라는 망원시장 안으로 이사했다. 성미

    산마을축제 때 망원시장 내 공연장에서 공연을 통해 상

    인들에게 신고식도 마쳤다. 아직은 서로 알아가는 단계

    에 불과하지만, 언젠간 상인들과 함께하는 공연도 기획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삐삐. 떠들썩한 시장의 기운을

    받아 더욱 흥겨워질 릴라의 시즌 2가 더욱 기대되는 이

    유다.

    글과 사진 하정희(소소북스), 사진 제공 허선희

  • 21

    3 /내가 살던 마을을 이제야 발견했어요!

    은평구 여기저기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누비는 사람이 있다.

    백발을 휘날리는 최호진 할아버지.

    그의 양손에는 늘 그의 ‘비밀 무기’인

    카메라와 수첩 그리고 펜이 들려 있다.

    >>

    마을 아키비스트 최호진

    “은평구에 60년 넘게 살았는데 이웃에 누가 사는지

    도 몰랐어. 은평구 어디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당연히 몰랐지.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인데 정

    말 아무것도 몰랐어.”

    6·25전쟁 후 서울로 피난 온 이래로 은평구에 살았

    다는 최호진 할아버지. 부친과 자신, 그리고 아들과 손

    자에 이르기까지 무려 4대가 한 마을에 살고 있으니 ‘토

    박이’도 이런 토박이가 없다. 그런데 정작 최호진 할아

    버지 자신은 최근 1년 동안 마을에서 만난 사람이 60평

    생 마을에 살며 알게 된 사람보다 많다고 했다. 특히 나

    이, 성별을 초월한 동네 친구들이 많이 생겨 정말 즐겁

    다고 했다.

    “나는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많은 축제가 열리는지

    몰랐어. ‘은평구 어린이잔치 한마당’이 10회가 넘었는데

    작년까지만 해도 몰랐단 말이지.”

    2013년 한 해 동안 최호진 할아버지는 은평구 어린이

    잔치 한마당을 비롯해 은평난장, 갈현 골목 상상축제, 청

    소년 문화존 등 40여 개나 되는 시민 단체들의 크고 작

    은 마을축제를 기획하는 자리부터 축제 현장, 행사가 끝

    나고 난 뒤풀이까지 함께했다. 마을을 ‘기록’하기 위해서

    였다. 기록을 하다 보니 마을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 22 23

    나아가 보이지 않았던 것들도 보였다. 마을을 위해 활동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마을에 대한 애정이 바로

    그것이었다.

    “축제가 끝나면 청소하는 사람들이 와서 치우는 줄

    알았어. 근데 그게 아니데. 담배꽁초 하나까지 자기네들

    이 다 같이 치워. 축제 준비하고 진행하는 걸 기록하면서

    참 많은 사람이 애쓰고 있는 걸 알게 됐어. 축제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숨어서 열심히 일

    하고 있었다니 정말 많이 놀랐어. 그걸 보면서 은평구가

    잘 발전할 것 같다는 걸 느꼈어. 우리 동네가 참 괜찮은

    동네야.”

    최호진 할아버지는 연신 그들이 대단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최호진 할아버지는 정작 자신이

    더 대단하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축제뿐만 아

    니라 은평구에서 열리는 각종 아카데미, 음악회 등 사람

    들이 모이는 곳마다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는 우리 동네

    ‘최반장’ 할아버지. 그가 이렇게 열심히 기록하기로 마음

    을 먹은 건 무엇 때문일까?

    “내 나이가 이제 일흔 넷인데 내 나이에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어.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지.”

    은퇴 후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지만 마

    땅한 일을 찾지 못했다는 최호진 할아버지. 특히 터널 건

    설일을 해온 엔지니어로서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기회

    는 전무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찾아낸 활동은 시민 기

    자였다. 익숙하지 않은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 언론사 교

    육 센터를 찾아 기자 교육을 받았고, 평생교육원에서는

    문예 창작을 배우기도 했다니 그 열정에 사뭇 고개가 숙

    여진다. 그렇게 최호진 할아버지가 MBC 시민 기자로 활

    동하면서 작성한 기사의 개수는 650건이 넘는다. 10년

    가까이 시민 기자로 활동한 경험이 지금의 ‘아키비스트’

    최호진을 만들어낸 것이다.

    ▲ 한 손에는 작은 수첩, 한 손에는 카메라가 이제는 그의 필수품이 되었다.

  • 24 25

    ‘아키비스트’(archivist)란 보전 기록인 아카이브를 관

    리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리고 ‘마을 아키비스트’란 말

    그대로 마을활동을 기록하고 보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

    이다. 서울에서 마을공동체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다양

    한 마을활동과 마을살이의 기록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

    고 유지하는 ‘마을 아카이브’ 활동의 중요성이 제기됐다.

    활동 못지않게 활동의 기록, 관리, 전파도 중요한 것이

    란 의식이 싹튼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일을 하는 활동가

    를 2012년에 모집했고, 그 중 한 명이 바로 최호진 할아

    버지다. 10년 동안 쌓아온 노하우, 작은 것 하나까지 놓

    치지 않고 기록하는 섬세함, 마을을 위해 봉사하고픈 열

    정…… 최 할아버지는 ‘마을 아키비스트’ 중에서도 가장

    ▲ 본인이 참여한 은평구 이야기전시회 판넬 앞에서 손을 흔드는 최호진 할아버지.(좌) 방문한 기자에게 그간의 기록들을 보여주는 최호진 할아버지. 앞으로 최호진 할아버지의 기록이 담긴 ‘마을박물관’을 기대해 본다.(우)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으로 주목받고 있다. 2013년에

    는 그 공로와 열정을 인정받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아키비스트로 활동하면서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마

    을에 대해 잘 알게 되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만 사명감

    같은 걸 느껴. 우리는 하루가 지나면 많은 걸 잊어버려.

    기록하지 않으면 10년, 20년이 지나면 과거의 모습은 까

    맣게 잊어버리게 될 거야. 우리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알 수가 없지. 마을이 하루하루 변화하는 모습을 기록해

    야 후세에 우리 마을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알 수 있

    지 않을까? 그래서 계속 기록하는 거야.”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자신이 기록한 자료들을 모아

    ‘마을박물관’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최호진 할아버지.

    이런 열정이 있는 한 그의 마을 기록기는 앞으로도 쭉

    계속될 것이다. 최호진 할아버지가 기록한 은평구 마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리고 한 마을 아키비스트의 열

    정을 확인해 보고 싶다면, 은평구의 축제 현장들을 누비

    는 그를 찾아보자.

    글과 사진 임은선(소소북스)

  • 27

    4 /엄마들의 손으로 만드는 세상

    지역 사회에서 사랑받는 핸드메이드 인형과

    소품을 만들던 엄마들이 사고를 쳤다.

    성동구 마을기업 ‘햇빛공방’이 그 주인공.

    대표 정수정 씨가 털어놓은

    ‘사업 초보 엄마들의 얼렁뚱땅

    창업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본다.

    >>

    햇빛공방 대표 정수정

    《안 돼! 데이빗》의 데이빗, 《구룬파 유치원》의 코끼리

    구룬파, 《꿈꾸는 윌리》의 침팬지 윌리, 《겁쟁이 빌리》의

    단짝 걱정 인형까지 동화책 속 등장 인물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엄마의 요술 손 덕분이다.

    동화책 주인공과 소품을 뚝딱 뚝딱 인형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햇빛공방은 2013년 1월 문을 연 마을기업이자

    새내기 협동조합이다. 그러나 정수정 씨가 대표로 있는

    햇빛공방에는 긴 역사가 함께한다. 그 시작은 같은 성동

    구 내에 위치한 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였다.

    “2001년 민간 도서관이자 비영리 단체로 문을 연 어

    린이 도서관이었는데, 처음엔 여길 들어갈까 말까 고민

    을 많이 했어요. 당시엔 도서관이라고는 구립 도서관밖

    에 없었고 아이랑 같이 가면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쉿,

    조용히 해’ 이게 다였거든요. 그러다가 도서관에서 ‘나랑

    같이 놀자’라는 큰 행사를 열었는데, 그때 간 게 인연이

    되어 활동이 시작되었죠.”

    어린이 도서관 ‘책 읽는 엄마 책 읽는 아이’에 아이와

    함께 모여든 엄마들은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소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닐곱 가족 공동체 모임인 ‘마

    더구스’, ‘마녀스프’와 놀토 프로그램을 모색하다 꾸려진

    ‘딱정벌레’, 지역 봉사 단체 ‘다하미’ 등 다양한 모임이

  • 28 29

    생겨났고, 인형 만들기 모임인 ‘엄마 손 요술 손 우리 도

    서관 햇빛공방’도 그런 소모임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때

    만 해도 정수정 씨는 햇빛공방 소모임 멤버는 아니었다.

    “제가 활동한 건 ‘크레파스’라고 동화책을 영상 그림

    책으로 만드는 모임이었어요. 매년 두 권씩 영상 그림책

    을 만들었고, 현재까지 총 10편 이상의 영상 그림책을

    만들어냈죠.” 이런 소모임 활동을 통해 창작자로서의 꿈

    을 키워가던 정수정 씨는 2011년부터는 그림책을 바탕

    으로 독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복지 교육 활동에도 참

    여했다.

    ▲ 왕십리역 인근에 자리 잡은 햇빛공방. 아담하지만 아늑한 공방 안에는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가득하다.

    “일반적인 독후 글쓰기 대신 저희는 책 내용을 바탕

    으로 손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해요. 얼마 전에

    는 《내 알이 아니야》를 읽고 달걀판과 솜으로 만든 알

    을 활용해서 메모꽂이를 만들었어요. 수업은 한 시간이

    지만 프로그램을 정하고 수업 재료를 준비하는 시간은

    3~4배가 걸리니 꽤 힘이 드는 일인 셈이죠.”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겸하고 있었던 터라 다른 활동

    을 시작한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와

    햇빛공방은 함께할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바느질이 좋

    아 2012년부터 햇빛공방에 합류한 그녀는 햇빛공방이

    마을기업이 되는 ‘회오리’를 함께하다, 덜컥 대표까지 떠

    맡게 되었다.

    “익히 알고 있었죠. 하지만 제가 하는 일이 많다 보니

    합류할 생각은 못했어요. 어쩌다보니 작년부터 함께하

    게 되었는데, 그만 대표까지 맡게 되어버렸네요.”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된 햇빛공방이었지만,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역의 엄마들이나 아이들에게는 그 실력을

    인정받아 입소문이 난 참이었다. 엄마들이 정성스레 만

    든 장난감과 앞치마, 가방 등 생활소품은 지역 사회 곳곳

    에서 사랑받고 있었다. 2012년에는 침선 명장한테서 배

    워온 바느질을 바탕으로 배냇저고리를 만드는 평생 학

  • 30 31

    습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서

    울시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랬던 엄마들이니만큼 욕

    심을 낼 법도 했다. 아홉 명 엄마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

    3,000만 원으로 도서관 가까이에 작은 공간을 얻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편히 작업할 창작 공간이 필요해서 얻은

    거였어요. 그런데 성동구 사회경제협력추진단에서 우리

    를 보더니 마을기업 육성 프로그램에 지원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임대료라도 지원받을 수 있을까

    싶어 솔깃한 마음에 지원했죠.”

    그러나 마을기업 육성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창작 공간으로 열었던 햇빛공방을 창작품을 판매하는

    영업 공간으로 전환해야 했다. 사업을 해본 경험도 없는

    그들이기에 두려움이 더 컸다.

    “마을기업 육성 프로그램 과정 중에 팀 워크숍이 있

    는데 세 번의 팀 워크숍이 진행되는 동안에 저희 사업에

    대한 평가가 매번 바뀌는 거예요. 매번 지적 사항을 반영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그만둘까도 진지하게 고

    민했었죠.”

    실제로 지원을 포기하겠다고 중간에 통보까지 했다

    고. 그러나 이렇게 중단하는 건 아쉽다는 판단에 모두들

    끝까지 가기로 했고, 그 결과 마을기업 ‘엄마 손 요술 손

    우리 동네 햇빛공방’이 문을 열게 되었다. 도서관 소모임

    시절부터 무려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해 온 터라 상품

    의 완성도도 높고, 지역 사회의 인지도도 크고, 팀워크도

    단단하지만 여전히 힘든 점은 많다.

    “모두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 때문에 사업하는 데

    있어 변수가 많아요. 각자의 가족들이 ‘무슨 사업이냐?’

    며 이해 못하고 반대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저 역시 그렇

    고요.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가족도 있지만 대부분 반

    ▼ 햇빛공방의 소품들은 모두 수공예품이다.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정성껏 만든 인형을 보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면 손가락의 굳은살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 32 33

    대해요. 그게 우리가 해결해야 할 또 다른 숙제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홉 명 모두 포기하지 않고 활동

    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수정 대표는 창작자

    이자 생산자로서의 활동은 물론이고, 지역의 여성 혹은

    아이들에게 창작 과정을 교육하고, 창작 공간이 필요한

    지역 여성들에게 작업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기쁨 때문

    이라고 힘줘 말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의 그림 작가 유승하 님이 2

    차 저작물이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전까지는 해당 캐릭

    ▶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 엄마 손으로 만든 소품들은 어딜 가나 인기가 좋다. 2. 2013년 9월 서울시청 일대에서 열린 ‘2013 서울마을박람회’에 참석한 햇빛공방. 3. 같은 해 10월 왕십리역 광장에서 열린 ‘성동마을박람회―마을에서 협동하다’에 참석한 햇빛공방.

    터를 만들어서 판매해도 된다고 저희에게 허락해 주셨

    어요.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팔 수 있는 기회가 우리에게

    생긴 셈이죠. 이런 식으로 힘들어도 계속하면 뭔가 되지

    않을까요?”

    아이들과 함께 읽은 동화책 속의 주인공 캐릭터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주고 싶었던 엄마들에서 핸드메이드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창작 예술가로, 또 지역 소모임으

    로 출발해 당당히 마을기업으로 변신한 햇빛공방. 엄마

    들의 소박한 욕심이 일궈낼 앞으로의 미래가 더 궁금해

    진다.

    글과 사진 임은선(소소북스), 사진 제공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 35

    5 /품앗이육아로 배운 마을공동체의 소중함

    첫 시작은 사소했다.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라는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해 어느새

    품앗이육아를 고민하는 모임으로,

    그리고 모임에서 더 나아가 마을을 고민하며

    달려온 지 1년. “은평 품앗이육아를

    홍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는 안세정 씨는 이제 단지

    두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야무진 마을활동가다.

    >>

    마을활동가 안세정

    2013년, 안세정 씨는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의 ‘우리마을돌아보기’ 사업의 일환으로 마을 연구자가

    되어 그간의 마을활동을 한 편의 글로 엮어내는 작업을

    했다.

    “그동안 ‘은평 품앗이육아’에서 벌어진 그 회오리바

    람과도 같은 사건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까? 대체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목차는 어떻게 잡아야 할지 처음엔 막

    막하기만 했어요.”

    그럴 때의 답은 언제나 초심을 들여다보는 것일 게

    다. 안세정 씨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의 자취가

    남아 있는 온라인 카페 ‘은평 북스타트 맘’(http://cafe.

    naver.com/epbookstart)에 들어가 내용을 훑어보면서,

    회원들과 주고받은 메일들도 하나하나 열어보며 목차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난 일들이 마치 영사기를 돌리는

    것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힘든 일도 많았지만 비슷한 고민을 가진 재능 있는

    엄마들을 만나 함께한 지난 1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값진 시간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는 안세정 씨는 ‘은평

    품앗이육아’의 ‘첫 단추’부터 얘기를 시작했다.

    ‘은평 품앗이육아’의 시작은 2012년 6월, 은평구 꿈

    나무도서관에서 열린 ‘북스타트’ 모임이었다. 영국에서

  • 36 37

    시작되었다는 북스타트 모임은 생후 3~18개월 유아를

    대상으로 좋은 책을 무상으로 나눠주는 책 꾸러미 행사

    를 말한다. 우연히 이 행사에 대해 알게 된 안세정 씨는

    10개월 된 둘째 휘연이를 안고 무작정 도서관을 찾았다.

    행사가 끝난 후 독서 선생은 그곳에 모인 엄마들에게 책

    을 중심으로 한 모임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

    을 했고, 그 말을 듣던 세정 씨의 머릿속엔 전구가 반짝

    였다.

    “제가 평소 공동육아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첫째 휘

    준을 낳고 집안에서 살림만 하느라 육아 스트레스를 많

    이 받았어요. 그때 우연히 품앗이육아에 대한 얘기를 듣

    고 감동을 했던 터라 무언가 시작해 보면 좋겠다는 결심

    이 섰죠.”

    ▲ 은평 품앗이육아는 1년 4개월 만에 회원 수 100명이 넘는 공동육아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던 열네 명의 엄마들은 일주

    일에 한 번씩 서로 돌아가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품앗이 동화책 읽어주기’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마침

    예전에 온라인 쇼핑몰을 했던 경험이 있었던 세정 씨는

    자청해서 온라인 카페를 만들겠다고 했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커뮤니티가 중요하다’는 그의 생각은 적

    중했다. ‘북스타트’ 모임이 ‘은평 품앗이육아’로 커가는

    데 온라인 카페는 가장 효과적인 플랫폼이었다.

    “어느 날 은평구 소식지에서 마을공동체 사업을 지원

    해 준다는 기사를 봤어요. 함께 활동하는 언니에게 전화

    ▲ 활동은 엄마들이 직접 모여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조금 산만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기에 참여율도 높다.

  • 38 39

    를 해서 3인 이상이면 된다니까 우리도 해볼까 하고 농

    담처럼 던졌는데, 다들 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지원했

    고 그만 ‘덜컥’ 된 거죠.(웃음)”

    말은 쉽지만, 아이를 들쳐 업고 처음 써보는 낯선 양

    식의 서류를 채우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지자

    체에서 서류 작성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그 결과 그를

    대표로 하는 ‘은평 품앗이육아’라는 단체가 탄생했다. 그

    리고 지원 대상으로 뽑혀 300만 원의 사업비가 나왔다.

    아기 엄마들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혼자보다는 둘이, 내 아이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로

    키우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니 만큼, 그리고 국민의

    세금으로 받은 지원금이니 만큼 허투루 쓸 수가 없었어

    요. 우리만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

    ▲ 은평 품앗이육아의 다양한 활동들을 모아 만든 소식지 〈북키북키〉.

    게 마을공동체를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넓혀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결과 기존에 일주일에 한 번 하던 수

    업을 두 번으로 늘리고,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조직도 만

    들었어요.”

    행정적인 일은 미숙했지만 열정만큼은 뜨거웠다. 기

    존에 없던 ‘엄마표’ 교육 재료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

    해 머리를 맞댔다. 독서 관련 각종 체험 놀이와 학습 프

    로그램이 나왔다. 엄마들이 모여 동화책을 연구하는 모

    임 ‘맘스데이’도 만들어졌다. 나아가 소식지도 만들어보

    기로 했다.

    “누구도 책을 만들어본 사람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다함께 마음과 시간을 쪼개서 아이를 서로 봐주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소식지 〈북키북키〉(Book & Kids의 준말)

    를 만들었지요. 300부가 인쇄되어 온 그날을 잊지 못합

    니다.”

    그러나 은평 품앗이육아가 성장하는 데 가장 큰 걸림

    돌은 공간이었다. 꿈나무도서관은 공간도 작고, 무엇보

    다 교통이 불편해 아이를 안거나 유모차에 싣고 와야 하

    는 엄마들에겐 접근성이 낮았다. 은평 품앗이육아의 엄

    마들은 안으로는 서로 호흡을 맞추고, 밖으로는 아이들

    을 위한 공간을 찾기 위해 한겨울 추위도 마다하지 않고

  • 40 41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은평어린이도서연구회

    의 석은진 선생님의 도움으로 응암에 위치한 신사종합

    사회복지관과 연이 닿았다.

    처음에는 복지관 2층 강당만을 아이들을 위해 제공

    받았지만, 이들의 꾸준한 활동을 지켜봐 온 복지관의 배

    려로 2013년 6월에는 5층에 아예 전용 공간까지 얻게 됐

    다. 이름하여 ‘육아사랑방.’ 아이들만이 아니라 엄마들이

    수시로 찾아와 수다 떨고 고민을 나누는 공간으로 평일

    에도 늘 개방하고 있다.

    은평 품앗이육아 팀은 2013년 마을공동체 사업 대상

    자로 재선정됐다. 그리고 세정 씨는 회장직을 2기에 인

    계했다. “크든 작든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에겐 많은

    책임과 의무가 따르잖아요. 때론 하기 싫어하는 이를 다

    ▲ 까꿍놀이(좌), 엔젤데이(우). 엄마와 아이들 모두 행복한 시간!

    독여 일을 하게 만들기도 해야 하고요. 처음엔 리더 역할

    을 한다는 게 힘들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

    간이 제 자신이 성장할 수 있던 바탕이 된 것 같습니다”

    라며 안세정 씨는 무엇보다 가족에게 고마움이 크다고

    했다.

    “마을공동체 일을 하다 보면 정작 가족에겐 소홀해지

    기도 하거든요. 절 이해해 주고 지원해 준 가족들의 배려

    가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이제 회장직을 내려놓지만, 한가하게 보내지는 못할

    거 같다는 안세정 씨. “더 많은 이들에게 은평 품앗이육

    아를 알리고, 우리가 그간 쌓은 노하우를 마을공동체 사

    업을 시작하는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행복한 육아에 대한 고민에서 시

    작해 공동육아, 그리고 마을살이로 점점 더 크고 구체적

    인 세계로 관심사를 넓혀간 안세정 씨, 마을활동가로서

    의 본격적인 제2라운드에 올라선 그녀를 응원한다.

    글과 사진 하정희(소소북스), 사진 제공 안세정

  • 43

    6 /20대 청년들의 진짜 삶을 찾아서

    청년들은 고민이 많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잘살 수 있을까? 무엇이 잘사는 것일까?

    이런 청년들의 고민을 나누고 해결책을 찾아가는

    그들만의 공간이 생겼다. 이름하여 ‘청춘행성 209.’

    천문 지도에는 없는 이 행성은 미래를 향해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다.

    그곳에 사는 마을활동가 청년 김동혁 씨를 만났다.

    >>

    청춘행성 209 김동혁

    ‘청춘행성 209’는 아직 미완성이다. 문을 연 지 이제

    한 달. 직접 자신들이 꾸몄다는 공간은 개성대로 여기는

    흰색, 저기는 회색으로 페인트칠되어 있다. 심지어 초록

    색 벽도 있다.

    “아직 많이 어설프죠. 하지만 지금은 오랫동안 꿈꾸

    던 공간이 생겨서 좋기만 해요. 아주 예전부터 공간이 있

    었으면 했어요. 공간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

    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 생길 테니까요.”

    ‘청춘행성 209’의 김동혁 씨는 청년들에겐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한다.

    “마을에는 마을과 함께 커가는 청년들이 있어요. 그

    런데 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대학 외에는 마

    땅히 갈 곳이 없어요. 그렇다고 남들 가듯이 대학을 가자

    니 딱히 길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안 가자니 할 것도 없

    고요.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나누는 데서 대안이 나올 수 있을

    텐데, 이럴 때 공간이 좋은 매개가 될 수 있겠죠.”

    ‘청춘행성 209’는 공간의 이름이자 동혁 씨와 김하늘,

    이상현 등 20대 활동가들의 모임 이름이기도 하다. 마

    을장터와 축제를 기획하고 집행하는 일을 해온 이들은

    2013년 서울시의 공간지원사업에 응모해 선정됨에 따라

  • 44 45

    강북구 우이동 ‘청소년문화, 공간’ 건물 1층에 꿈에도 그

    리던 그들만의 공간을 확보하게 됐다. 이들은 이 공간을

    통해 마을과 청년을 위한 시도와 다양한 실험을 펼쳐나

    갈 거라고 포부를 밝힌다.

    동혁 씨가 마을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중학교 3학

    년 때다. 당시에 공부를 썩 잘했던 동혁 씨는 학생회장으

    로 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학교라는 틀 안에서만

    활동해야 한다는 게 답답했다.

    “학생회 활동이란 게 학교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이

    뤄지잖아요. 솔직히 학생이 주체가 되어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고요. 그러다가 청소년문화공동체 품을 알게 됐

    죠. 품에서는 청소년이 주축이 되어 축제를 만든다고 하

    더라고요. 그래서 참여하게 되었죠.”

    품은 1992년에 탄생한 청소년문화공동체다. 입시에

    ▲ 마을축제 준비를 하는 모습. 음향 장비를 챙기고, 필요한 책걸상을 나르는 일도 모두 한마음으로 한다.

    찌들어가는 10대 아이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즐거

    운 ‘놀이’로 문화 예술을 알려주고 싶어 심한기 대표가

    만든 청소년놀이연구소가 모태다. 품은 청소년 캠프, 어

    울마당, 노래패 공연, 청소년 축제 등 다양한 활동을 하

    며 20년 넘게 활동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이 ‘품’에서 해마다 가을이면 여는 것이 강북청소년

    문화축제 ‘추락’(秋樂)이다. 2013년 16회째로 서울시에

    서도 역사가 긴 지역 청소년 축제다. 1, 2회까지는 어른

    들이 만들었지만, 3회부터 청소년이 주축이 되어서 축제

    를 만들었다는데, 동혁 씨는 바로 이 3회부터 참여했고,

    그만 축제의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서로 얼굴도 몰랐던 사람들이 만나 함께 웃고 떠들

    고 응원도 해주고 칭찬도 해주면서 축제를 만드는 게 너

    무 신기하고 매력적이었어요. 능동적으로 뭔가를 기획

    하고 진행하는 것도 좋았고요. 추락(秋樂)이라는 축제 이

    름도 그때 제가 만든 거예요.(웃음)”

    공동체의 즐거움과 마을축제의 맛을 알게 된 그는 이

    후 계속 축제에 참여했다. 그리고 마을에서 활동을 했다.

    고민 끝에 대학은 진학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동네 친구

    두 명과 함께 ‘축제로 웃는 녀석들, red.p’라는 모임을 만

    들어 다양한 축제와 장터를 돌아다녔다. red.p란 이름은

  • 46 47

    아버지가 버리려던 낡은 빨간색 프라이드에서 나왔다.

    빨간 프라이드를 사무실삼아 먹고 회의했던 춥고 배고

    픈 시절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활동을 발전시켜 나갈 물

    리적 시스템이 없는 것이 더 힘들었다. 우선 돈을 벌기로

    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5년 정도 신발 사업에 매달렸다.

    사업을 하면서도 마을장터, 축제 활동은 병행했다. 그러

    나 밥벌이에 매몰될수록 회의가 몰려왔다. 결국 일을 그

    만뒀다. 그런 그를 반겨준 건 역시 마을이었다.

    그는 자신과 같은 청년들이 ‘청춘행성 209’에서 만

    나기를 꿈꾼다. 오로지 취직을 위해 스펙 쌓기에 연연하

    지 않아도 되는 청춘, 일과 삶이 괴리되지 않는 청춘들이

    맘껏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청춘행성

    209’는 그런 20대들의 든든한 보호막이 되어주고 싶다.

    “말 그대로 아지트로 만들고 싶어요. 20대들이 함께

    모여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영화를 보는 등 예술적

    인 활동도 하는 아지트요. 이곳에서 온갖 작당이 일어났

    으면 좋겠어요. 현재는 질문 워크숍을 기획중이에요. 우

    리는 늘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해야만 했는데, 역으

    로 세상에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청년들이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여기에 답해줄 어른들을 모셔 얘

    기를 나누는 거죠.”

    대학이나 여타 인문 철학 아카데미에서는 배울 수 없

    는, 청년들이 삶에서 진짜 알고 싶은 것들을 추려내 기획

    하고 알려주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오픈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간 대학생, 직장인, 비정규직,

    뮤지션, 백수 등 다양한 청년들이 50여 명 넘게 이곳을

    오고갔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청춘행성 209’의 209는 20살부터 29살까지 누구

    나 모이는 공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에요. 이 공

    간이 20대 청년들이 스스로 자아와 꿈을 찾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청춘행성 209의 ‘꿈지기’

    동혁 씨의 다짐이다.

    글과 사진 임은선(소소북스), 사진 제공 청춘행성 209

    ▲ ‘청춘행성 209’에서 먹고 놀고 회의하는 청년들.

  • 49

    7/마을살이의 즐거움을 전파하다

    “올 한 해 만난 시민들이 평생 동안 만나온

    시민의 수보다 많다”고 말하는 고창록 씨.

    아파트 입주자대표로 마을활동을

    시작했던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을상담원으로 일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마을살이의 즐거움을 전파하고 있다.

    >>

    마을상담원 고창록

    아파트 하면 삭막한 느낌이 먼저 떠오른다. 시멘트

    로 된 벽과 아스팔트가 깔린 바닥, 그리고 빈 공간 없이

    빼곡하게 들어선 차 등에서 푸릇한 자연이나 이웃의 따

    뜻한 정이 먼저 떠오르긴 힘들다. 노원구 하계동 한신아

    파트의 첫인상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신아파트에는

    비밀의 공간이 있다. 아파트 옥상 위에 꾸며진 옥상 텃밭

    ‘한신에코팜’이 그것이다.

    “아파트 입주자대표가 되면서 주민과 주민을 이어줄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농촌 현실이

    나 농업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터라 함께 농사를 지으면

    주민들 사이에 더 많은 소통과 화합이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했지요.”

    고창록 씨가 농사를 떠올린 건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

    이 갖는 본질적인 삭막함 때문이었다. 1,200세대나 함께

    살고 있지만 이웃 간의 정은커녕 서로 무관심하기만 했

    다. 주민들과 함께하자고 회의를 개최해도 나오는 이는

    열 명 안팎에 불과했다. 과연 아파트에서도 살 맛 나는

    마을을 만들 수 있을까?

    “전원주택에 왜 관심을 갖겠습니까? 도시에 살고 있

    지만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꿈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래

    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작물을 기르면 온정이 생기고 자

  • 50 51

    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때마침 옥상 정비를 하면서 풍부한 햇빛과 바람이 공

    존하는 옥상을 ‘재발견’하고 텃밭을 꾸미게 되었다고. 그

    러나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았다.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

    는 것부터 옥상 텃밭을 만들기 위한 기반 공사, 효율적

    인 운영 방법, 옥상을 오르내리면서 생기는 소음, 농약과

    비료 때문에 발생할 공해 등에 대한 민원까지. 아파트에

    하중을 주지 않기 위해 일반 흙보다 가벼운 흙을 개발해

    비닐하우스로 실험 재배를 할 정도로 고창록 씨의 열의

    는 뜨거웠다.

    “우리 아파트는 라인 댄스를 추거나 영어를 배우거나

    하는 문화 커뮤니티가 다른 아파트보다 먼저 시작되어

    ▲ 개발 경작 구역에서 고창록 씨(왼쪽 두 번째)에게 교육을 받는 주민들 모습. 처음엔 왜 공동 수돗물을 쓰느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젠 주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공간이다.(좌) 옥상에 탐스럽게 널린 가을 배추들. 한신아파트 주민들이 풍성한 옥상 텃밭 덕분에 겨울 김장 걱정을 덜었다.(우)

    활성화되어 있어요. 그래서 옥상 텃밭도 그런 문화 활동

    의 일환이라 홍보했지요. 또 옥상은 공공 공간이니 누구

    나 활용할 수 있고, 예상되는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하겠

    다고 게시물도 붙였고요.”

    그러나 민원은 많았다. 농사를 짓는데 왜 공용 수도

    를 사용하느냐며 고소하겠다는 전화까지 걸려왔다. 설

    상가상으로 작물이 잘 자라지 않을 거라는 실망스런 예

    측도 있었다.

    “농촌진흥청에서 와서는 옥상에 내리쬐는 햇빛이 너

    무 세서 열매는 잘 안 맺힐 거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지금 옥상은 밀림처럼 무성해

    요. 수확물도 좋고요.”

    농사가 잘되자 민원도 현저하게 줄었고 이젠 ‘옥상

    텃밭 반대파’들조차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고 씨는 이

    제는 사람들더러 “옥상에 그만 좀 올라오라”고 구박을

    해야 할 정도로 다들 애착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한신에코팜은 개별 경작 구역과 공동 경작 구역으로

    구분해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공동 경작 구역에서 나

    온 작물은 텃밭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주민들에게도 나

    눠준다. 참여 회원만 수확물을 가져가면 다른 주민들과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단

  • 52 53

    지 도시 농업을 하기 위한 옥상 텃밭이 아니라 주민들의

    화합과 소통이 더 중요하다는 마음 씀씀이가 읽히는 대

    목이다. 2013년에는 공동 경작 구역에서 수확한 수박과

    참외를 가지고 두세 차례 파티도 했다. 노원구청장과 박

    원순 서울시장도 이곳에 와서 수박 맛을 봤다고.

    최근에는 협동조합 설립을 고민하고 있다. 이미 회

    원들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에 관한 기초 교육도 받았다.

    “지금은 (서울시의) 지원을 통해 한신에코팜이 운영되

    고 있지만 지원을 계속 받을 거라는 보장은 없죠. 자립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서민 아파트이기 때문에 우리

    가 모여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거 같습니다. 경

    제가 점점 어려워지는데 그걸 이겨낼 수 있는 건 사람의

    가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의 연대와 관계 회

    복이 열쇠입니다. 그게 협동조합이 아닐까요?”

    “아파트를 마을답게”라는 고민에서 출발한 소박했던

    활동이 이만큼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고 씨는 2012년부

    터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더 많은 이들이 마을살이를 하

    도록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바로 ‘마을상담원’이다. 마

    을상담원이란 마을공동체 활동을 이제 막 시작하는 이

    들에게 선배로서 경험한 선례와 노하우를 알려주고 길

    라잡이가 되어주는 이들을 부르는 말이다.

    “서울시가 지원하는 마을공동체지원사업이 시민들

    에게 실제로 유익하고 정말 효율적으로 운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경험해 본 사람들의

    도움이 중요하죠.”

    2013년 한 해 그는 금천구, 성북구, 강서구, 성남시 등

    을 누비며 마을공동체 현황과 실태는 어떠한지, 어떤 의

    제를 가지고 마을활동에 임해야 하는지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가지고 강의를 하고 상담을 하며 바쁘게 보냈다.

    그가 마을상담원으로 상담에 임하며 늘 염두에 두는 건

    언제나 ‘초심’이다.

    “마을 상담을 하다 보면 당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

    ▲ 2013년 여름, 수확한 수박을 들고 웃어 보이는 고창록 씨. 옥상 텃밭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을 거란 그의 믿음이 일군 값진 성과다.

  • 54 55

    되는 사업 계획서나 제안서 작성에 대해 질문이 집중됩

    니다. 하지만 그런 걸 일러주는 게 마을 상담의 다가 아

    니라고 생각합니다. 마을공동체 회복에 기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분들이 마음을 열고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유도하는 일이 제가 해야 할 일이죠.”

    마을 프로젝트의 최일선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간혹 아쉬운 점도 보인다고 한다. 고 씨는 서울시의 지원

    사업 대부분이 공모 방식이라 탈락하는 이들이 많은 것

    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사업마다 의미가 있고 참여자마다 의지가 있으니 선

    정에서 탈락된 지원자들을 발굴해서 인큐베이팅을 하면

    좋지 않을까요? 마을상담원으로 활동해 보니 그분들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과정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되더

    ▲ 서울시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는 마을 사업을 위해 협동조합 관련 교육도 받고 있다.(좌) 아파트 입주대표로 시작해 마을상담원이 된 고 씨는 마을공동체 사업이야말로 인생의 보람이라고 말한다.(우)

    군요.”

    “평생 해온 영어 강사라는 직업보다 마을상담원 활동

    이 더 의미 있다”는 고 씨는 앞으로도 시민의 입장에서

    마을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에 적극 나서고 싶다고 했다.

    “아직은 서울 시민들 중에 마을 사업에 대해 잘 모르

    고 무관심한 이들이 더 많을 겁니다. 먹고살기만 해도 바

    쁘니까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더 많은 이들이 마을 살리기에 나설 수 있도록 하고 싶

    습니다. 시민 운동을 하거나 풀뿌리 운동도 해본 적 없는

    저 같은 일반인이야말로 일반 시민들의 입장을 알고 있

    으니 그런 일은 더 잘하지 않겠습니까?(웃음)”

    욕심이 있다면 그간의 마을활동과 관련해 책을 펴내

    는 것이다. 마을과 관련된 책은 많지만 서울시의 마을공

    동체 사업을 제대로 소개하고, 특히 사례를 정밀하게 다

    룬 책은 없지 않느냐는 것.

    “그간 마을공동체 사업의 성공 사례만 우르르 퍼 나

    른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합니다. 그 안에 담긴 문제점

    을 짚어내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나 대안

    도 담아내야죠. 그래야 마을이 진짜로 살아나겠죠.”

    글과 사진 임은선(소소북스), 사진 제공 고창록

  • 57

    8 /더 많은 사람들을 엮고 싶은 마을 네트워커

    서대문구 거북골로에서 ‘거북골 마을사랑방’을

    운영중인 변경미 대표. 서대문구 희망네트워크 대표,

    서대문 마을넷 운영팀장, 여성주의 풀뿌리 활동

    시민 단체 ‘너머서’ 간사 등 그가 맡고 있는

    다양한 직함만 봐도 이 사람의 하루는

    몸이 서너 개라도 모자라겠구나 싶어진다.

    그래도 마을 안에 있는 게 가장 행복하다는

    자칭 ‘서대문 미실이’ 변 대표를 만났다.

    >>

    거북골 마을사랑방 대표 변경미

    서대문구 희망네트워크를 통해 마을을 고민하다

    거북골 마을사랑방의 변경미 대표가 마을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째 아이를 임

    신하고 사단법인 탁틴내일에서 요가를 배우는 게 그 시

    작이었다. 이후 둘째 출산 후 찾아온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요가 강사로 일을 시작했고, 마침 탁틴내일의 상근

    직 자리가 나면서 부부교실 기획자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러다 2011년 우연한 기회에 ‘서대문구 희망네트워

    크’라는 모임준비위 사람들의 뒤풀이에 끼게 되었다. 모

    인 이들은 그간 지역의 민간 단체나 주민들의 교류가 적

    었음을 반성하면서 새롭게 지역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가

    길 원했던 이들이었다.

    변경미 대표도 그 과정에서 시민 활동가, 주민, 관계

    기관 등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모든 만남은 서로를 알고

    친해지는 데서 시작하는 법. 한 달에 한 번씩 정기 모임

    을 갖고 여성 커뮤니티도 기웃거리며 자발적으로 모임

    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정말 재미나게 일

    했던 거 같아요. 일이라기보다는 놀이였죠.”

    그러다가 2012년 5월, 잠시 일을 쉬며 숨고르기를 하

    고 있는 그에게 서대문구 마을만들기 모임을 위한 TF팀

  • 58 59

    에서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다. 서대문구 희망네트

    워크 활동을 하며 이미 ‘마을’과 ‘마을공동체’의 중요성

    을 알고 있던 터라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었다고.

    “저처럼 노는 거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

    사람에겐 마을 일이 천직 같아요. 누군가에겐 새로운 관

    계를 적극적으로 맺어야 해서 힘든 일일 수도 있는데 제

    겐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해 9월 발기 대회를 기점으로 ‘서대문 마을공동체

    준비모임’이 만들어졌고, 12월 마을잔치, 2013년 3월에

    ‘서대문 마을넷’ 창립 총회를 열며 활발하게 마을 관계

    망을 넓혀나갔다. 한편 2012년 12월부터는 여성주의 풀

    뿌리 활동인 ‘너머서’에서 간사 활동을 겸하기 시작했다.

    “너머서가 지향하는 건 지역 공동체 활동을 통해 풀

    뿌리 운동을 강화하자는 거예요. 여기서 고민하고 배우

    는 내용이 사실 서대문 마을넷, 서대문구 희망네트워크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토대이기도 한 거죠.”

    어떻게 그렇게 많은 활동을 소화할 수 있느냐고 남들

    은 놀라워하지만 그는 그렇지도 않다고 손사래를 친다.

    다양하고 많은 활동을 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일들은 모두

    지역 공동체와 주민 자치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고, 결국

    ‘마을’이라는 큰 줄기로 합류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린이집에서 동네 사랑방으로 변모한 사연

    변경미 대표가 운영하는 거북골 마을사랑방의 외관

    은 평범한 여느 주택과 같다. 서로 구분이 잘 가지 않는

    주택가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 찾기는 쉽지 않지만 집이

    기 때문에 더 푸근하고 자유로운 곳이다.

    이 거북골 마을사랑방을 그가 운영하게 된 계기가 흥

    미롭다. 2012년 부모커뮤니티 활동을 시작한 ‘서대문 사

    람숲’이라는 단체에 공동육아에 관심 있는 부모들이 있

    었고, 이 뜻에 동의하는 부모들이 부모협동조합을 설립

    하고, 그곳에서 운영할 어린이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점

    찍어 놓은’ 공간이 현재 거북골 마을사랑방이 있는 주택

    이었던 것. 문제는 이 집을 어린이집으로 오픈하기 위해

    계약금 1,000만 원을 걸어둔 상태에서 발생했다. 어린이

    ▲ 거의 매일 행사가 잡혀 있는 거북골 마을사랑방.(좌) 서울시 주민제안사업에 선정돼 공간 리모델링을 지원받아 한층 쾌적하게 변모했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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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인가가 나지 않은 것이다.

    “규정에 따르면 어린이집 인근 50미터 안에는 주유

    소가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근데 어린이집과 주유소

    간 거리가 47~48미터로 약 2~3미터 때문에 어린이집

    불가 판정을 받은 거죠.”

    지역 주민들도 머리를 맞대고 도울 방법을 찾을 즈음

    변경미 대표가 용기를 냈다. 마침 이사를 준비하던 그가

    임대 공간의 2층으로 이사를 오기로 결단을 내린 것이

    다. 그러면서 이제는 어린이집으로 쓸 수 없게 되어버린

    1층 공간을 마을 사랑방으로 내놓았다. 최소한의 관리비

    는 공간을 활용하는 대여료나 후원금 등으로 운영하기

    로 했다. 계획엔 없었지만 그 결정은 유연하고 신속하게

    이뤄졌다.

    ▲ 거북골 마을사랑방은 엄마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으로(좌), 또 마을 청년들의 소셜 다이닝 공간(우)으로 사랑받는 공간이다.

    “평소 지역 모임을 많이 하면서 공간에 대한 욕구가

    컸어요. 모임이 많아질수록 밤늦게까지 모임이 이어지

    고, 다른 사람들이 아이들을 돌봐줄 수 없어 아이들을 데

    리고 모임에 나오려면 적당한 모임 장소를 찾기 어렵잖

    아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평소 생각

    해 왔던 주민들의 필요가 맞아 떨어진 거죠.”

    사실 이 결정은 변 대표뿐만 아니라 다른 주민이나

    마을활동가에게 더 절실했던 부분이었다.

    일터이자 사랑방으로 쓰이는 1층은 거실과 큰방, 주

    방, 사무실 이렇게 네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방이 있다

    보니 네트워크 모임이나 각종 강좌들이 활발하게 이뤄

    지고 주방이 있어 요리교실, 반찬 모임이나 소셜 다이닝

    등도 가능하다. 집이기 때문에 1박2일 워크숍이나 파자

    마 파티 등도 할 수 있다는 게 마을 사람들에게는 큰 장

    점이다. 2013년 가을에는 서울시 주민제안사업에 지원

    하여 5,000만 원의 지원을 받아 리모델링도 거쳐 한층

    시설이 깨끗해졌다.

    물론 2층에 변경미 대표의 집이 있기 때문에 사전 예

    약은 필수다. 정해진 이용 시간이 있긴 하지만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다. “마을 사랑방은 그래야 한다”고 변경미

    대표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터와 생활 공간을

  • 62 63

    함께 쓰는 이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이게 구분한다고 딱

    칼로 자르듯 되는 일은 아니다.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

    건 어려운 일이다.

    “내년(2014년)에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큰딸이 공간

    문제에 예민해졌어요. 사실 지금 사춘기이기도 하고, 혼

    자만의 공간이 필요할 텐데 1층에 늘 사람들이 오가니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이 없게 느껴져 스트레스가 많았

    던 모양이에요.”

    그렇지만 변 대표 입장에서는 불편보다 장점이 많다

    고 한다. 일하다 보면 늦은 귀가를 하는 일이 많은데, 1

    층에 늘 어른들이 있어 안심할 수 있다는 것. 딸도 엄마

    의 그런 사정을 헤아려 서로 어느 정도 이해해 준다고.

    “마을활동을 한다고 대단한 권력이나 금전적인 이익

    이 생기진 않아요.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단절적인 도시

    의 삶 속에서 잊고 살았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

    속에 있는 힘을 다시 발견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혼자

    각기 살기는 너무 힘든 세상에서 뭔가 작은 것이라도 같

    이하면서 서로 힘이 되어주자는 것이죠. 같이 놀고, 같이

    밥 먹고, 같이 공부하고, 같이 아이를 키우는 소박하고

    원초적인 활동이야말로 마을활동의 기본이라고 생각합

    니다.”

    매일 한 팀 이상 예약이 잡혀 있고, 주말에도 비어 있

    는 날이 드물다는 거북골 마을사랑방. 그럼에도 불구하

    고 그는 “아직 부족하다”고 여긴다. 한 땀 한 땀 뜨개질

    로 모자나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실로 더 많은 코를 만

    들어야 하듯이,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사람과 사람이 엮

    이고 뭉치고 꽃을 피우려면 아직 더 많은 고리가 필요하

    다는 것이다. 변경미 대표는 모두가 행복한 마을을 만들

    기 위해 더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즐겁게 모일 수 있

    는 ‘고리’를 만들어내고 싶다. 그게 ‘마을 네트워커’로서

    그가 가진 소박한 행복이며,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글과 사진 하정희(소소북스), 사진 제공 거북골 마을사랑방

    ▲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소셜 다이닝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변경미 대표.

  • 65

    9 /마을은 내 운명

    마을공동체의 필요성을 알리고

    참여 방법과 사례를 분석해 주고 탐방을 통해

    현장의 소리를 듣고 직접 교육을 진행하는

    마을공동체 전문 강사 박경란 씨.

    그녀는 마을살이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주는

    ‘마중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

    마을공동체 강사 박경란

    새내기 마을공동체 전문 강사(이하 마을 강사) 박경란

    씨는 첫 강의의 설렘을 잊지 못한다. 2013년 11월, 65세

    이상 어르신들의 모임인 ‘문화동네’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였다. 처음이라는 건 언제나 설레는 말이지만, 10

    년 가까이 동아리 활동을 해온 관악구 신림동 성민종합

    사회복지관에서 한 강의이기에 더욱 그랬다.

    “신림동에서 15년 정도 살았고 복지관에서 많은 활

    동을 해와서 복지관은 이웃 같은 곳이에요. 공간이라도

    익숙한 곳에서 하자는 마음에 복지관에서 첫 강의를 했

    습니다. 그런데 한 분 빼고는 다 처음 뵙는 분들인 거예

    요. 참 많이 떨리고 설레었던 것 같아요.”

    이어 성수동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두 번째 강의와

    아이들까지 데려온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세 번째 강의

    까지 무사히 마쳤다. 마을공동체 사업의 필요성을 알리

    ▲ 마을 강사 활동을 통해 박경란 씨(왼쪽 사진 가운데)는 마을공동체의 가치와 필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 66 67

    기 위해 시작한 강의였지만 이제는 도리어 강연을 통해

    마을을 배우게 된다고 말하는 박경란 씨. 강연을 통해 막

    연히 알고 있던 마을공동체가 더 선명하게 보이고, 마을

    공동체의 필요성도 구체적이 되어간다고 힘줘 말한다.

    평범한 아이 엄마였던 그녀가 무슨 이유로 마을 강사가

    된 것일까 궁금했다.

    복지관 활동에서 출발해 마을 강사로

    “예전에 ‘서울시 마을만들기’라고 써 있는 플래카드

    를 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서울에 무슨 마을이야? 생뚱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이미 마을공

    동체를 만들고 있었더라고요.”

    그녀는 관악구 성민종합사회복지관에서 힘찬가족이

    라는 가족 모임과 책꿈맘이라는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

    다. 2004년부터 시작한 힘찬가족은 가정이 튼튼해야 아

    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그 지역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

    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활동이다. 다양한 가족 대상 프로

    그램 외에 마을장터도 열고 있다. 2008년부터 시작한 책

    꿈맘 동아리는 지역 공부방의 독서 지도와 독서 캠프를

    진행하는 엄마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이 모임에 오래 참

    여해 오면서도 정작 이것들이 마을공동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당시에는 마을공동체라는 말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이게 바로 마을공동체구나 싶어

    요. 주민들이 스스로 모임을 통해 만나고 더 괜찮은 마을

    을 만들기 위해서 활동해 왔으니까요.”

    박 씨가 참여하는 두 모임을 비롯해 신림동의 30개에

    달하는 주민 모임이 주축이 되어 2010년부터는 매년 ‘나

    ▶ 지역 공부방의 독서 지도와 독서 캠프를 운영하고 있는 ‘책꿈맘’의 활동. 박 씨는 마을 강사가 되기 전부터 복지관을 통해 마을살이에 관심을 키워왔다.

  • 68 69

    눔동네’ 마을축제를 진행하고 있다. 축제를 통해 모은 기

    금은 마을 청소년 장학금 사업에 쓰고 있다. 이런 ‘나눔

    동네’ 마을축제가 2013년 6월 ‘우리마을프로젝트’에 선

    정된 것이 그가 ‘마을 강사’라는 낯선 직업을 향해 발을

    내딛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우리마을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촉진 교육이 있었

    어요. 전 촉진 교육 대상자가 아니었는데 너무 듣고 싶어

    서 센터에 들을 수 없느냐고 사정을 했죠.”

    그 바람이 통했는지 원하던 수업을 듣게 되었다. 아

    이들을 놔두고 1박2일로 집을 떠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었다. 그러나 그 기회는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교육을

    통해 마을공동체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사람들과

    함께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비전이 명확해졌다. 또

    한 교육을 통해 만난 김승수 똑똑도서관 관장의 조언과

    격려도 큰 힘이 되었다. ‘전업주부인 내가 무얼 하겠어?’

    라고 움츠러들어 있던 마음에 자신감이 꽃피었고, 그런

    그녀의 눈에 ‘마을공동체 전문 강사’ 모집 공고가 딱 들

    어왔다.

    “공고를 보자마자 ‘하고 싶다!’ 그랬어요. 살면서 뭔

    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번엔

    달랐어요. 교육받으러 오라는 문자를 받고는 너무 좋아

    서 길에서 팔딱팔딱 뛰었다니까요.(웃음)”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교육 내용을 흡수했

    다. 마을 안의 사람이 바뀌면 마을이 바뀌고, 마을이 변

    하면 지역도 변하고, 그리하여 나라도 전 세계도 더 나은

    세상이 될 거라는 믿음에 ‘마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며, 마을을 바꾸는 구심점이 되겠다’는 목표도 생겼

    다. 3:1 경쟁률의 서류 심사와 조마조마 떨리던 시험 강

    의를 마친 후 드디어 바라던 마을 강사가 되었다.

    “교육은 받았지만 처음엔 자신이 없었어요.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에서 지속적으로 교육을 받은

    게 도움이 됐어요. 교육을 받으면서 내가 여기 온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봤어요. 내가 그저 좋아서, 배우고 싶

    고 나누고 싶어서 이런 교육을 듣듯이 마을 강사도 마찬

    가지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마을이 좋고 마을에 대해 같

    이 고민하고 나누고 싶어서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가

    르치겠다는 중압감을 버릴 수 있었어요. 내가 가진 경험,

    내가 교육받으며 알게 된 것을 나누고 공유하는 자리라

    고 생각하니 도리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렇게 불안감이 사라지자 실천만 남았다. 기세를 몰

    아 박 씨는 강연 나가는 것도 일등으로 접수했다.(강의 신

    청이 들어오면 강사가 직접 접수하게 되어 있다.) 욕심을 내어

  • 70 71

    직업 상담사가 되기 위해 방송통신대 청소년교육과 수

    업도 이수했다. 현재 직업 상담사 시험에도 응시, 1차를

    통과한 상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6개월의 시간이

    그녀의 삶을 바꿔놓은 셈이다. 그렇게 마을은 그에게 가

    장 큰 의미가 되었다.

    “마을에서 활동하는 게 너무 좋고 많은 에너지를 얻

    어요. 또 사람들이 모여서 일상생활을 나누고 일을 꾸미

    고 함께 꿈을 꾸는 게 좋아요. 그 덕에 내 아이가 건강하

    게 자라고 주변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라고 또 사람들이

    건강해지고, 그렇게 좋은 사회가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

    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일을 하

    고 싶어요. 그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고요.”

    제대로 된 마을공동체 사업을 시작해 보고 싶다

    최근 힘찬가족 모임에서 문제가 생겼다. 매달 여는

    마을장터를 두고 힘찬가족 안에 갈등이 생긴 것. 박 씨는

    마을 강사 교육을 통해 배운 토론법을 활용해 문제를 해

    결했다. “장터에 대해 많은 뒷말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뒷담화를 공론화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월드카페 토론

    을 열었죠. 힘찬가족에 대한 생각부터 장터에 대한 생각

    까지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그렇게 문제는 해결됐

    고 힘찬가족은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간 힘

    찬가족은 지원이 없이 오랜 시간을 버텨왔어요. 이제는

    비빌 언덕이 필요해요. 2014년에는 마을공동체 지원사

    업에 응모해 보려고요.”

    그녀에게 2014년도 목표는 마을 강사로서의 포부를

    펼치는 것 외에도 힘찬가족, 책꿈맘이 모임의 성격에 맞

    는 마을공동체 사업 공모를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

    ▲ 매달 마을장터를 여는 힘찬가족. 박 씨는 2014년 힘찬가족이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에 응모하여 한 단계 성장하도록 돕고 싶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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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주는 것이다. 또한 그 사업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이끄는 안내자 역할도 겸할 생각이다.

    “정말 마을공동체다운 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그러려

    면 우리가 원하는 일 말고 마을에 필요한 일도 해야 한

    다고 생각해요. 우리끼리만이 아니라 더 많은 주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야죠. 제가 알고 있는 것을

    잘 활용해서 제대로 된 마을공동체 사업의 모델을 만들

    고 싶어요.”

    경험은 새내기지만, 열정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다는 박경란 씨. 그녀와 같은 이들이 하나둘 생겨나고

    상호 네트워킹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지지목이 되어

    준다면, 서울 곳곳이 그야말로 ‘살 만한’ 마을이 되지 않

    을까?

    글과 사진 임은선(소소북스), 사진 제공 박경란

    10 /‘마을 오지라퍼’라고 들어보셨나요?

    2013년 한 해를 손병호 씨는 바쁘게 보냈다.

    마을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활동 영역을 금호동, 행당동에서

    성동구 전체로 확장했기 때문이다.

    마을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열정과 오지랖의 소유자인 그가 전하는

    ‘유쾌한 마을살이’란 어떤 것일까?

    >>

    성동구 마을코디네이터 손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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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8월, 성동구 마을공동체에 관심이 많은 사람

    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름하여 ‘마을만들기 레시피’를

    나누는 자리다. 손병호 씨가 2008년부터 몸담고 활동하

    고 있는 성동주민회가 기획한 모임으로, 무려 40명 가까

    이 되는 이들이 열 일 제쳐놓고 모였다. 이 모임을 계기

    로 그해 12월까지 여러 차례 모임이 진행됐다. 그 자리

    를 통해 성동구 마을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각 모임의 네트워크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여러 아이

    디어들이 오갔다. 그러면서 마을공동체 사업을 위한 전

    담 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마을코디네이터’다.

    “구청은 사업비를 지원하는 등 물리적·행정적 지원

    을 해줍니다. 그렇지만 그것만 가지고 마을이 되진 않거

    든요. 같은 생각을 하는 주민들이 만나는 자리가 있어야

    하고, 이미 만들어진 단체들이 네트워크를 하도록 해줘

    야 합니다. 게다가 회계나 행정 절차도 누군가는 해야 하

    는 일이고요. 그 일을 할 직책으로 마을코디네이터를 만

    들었고, 제가 1호 직원이 되었지요.”

    그리하여 손병호 씨는 성동주민회 기획실장에서 매

    일 구청으로 출근하는 ‘마을코디네이터 1호’가 되었다.

    마을활동가들이 열정과 의지는 있으나 생계와 관련한

    고민을 놓을 수 없어 마을 일에 전념하지 못하는 문제점

    을 구청이 슬기롭게 해결해 낸 것이다. 서울의 다른 자치

    구에서는 만날 수 없는 마을코디네이터는 과연 어떤 일

    을 할까?

    “마을공동체 사업에 관심 많은 주민들, 즉 민과 관을

    연결해 주는 역할이죠. 마을공동체 일을 하고 싶은 분들

    을 만나 제가 가진 노하우나 경험을 알려드리고, 그들이

    좀 더 쉽게, 잘 마을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 드

    리는 것이 바로 제 일입니다.”

    ▲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 성동주민회의 반찬 나눔, 2. 마을 모임, 3. 논골주민문화마당, 4. 사랑방에서는 아이들 풍물반도 열린다.

  • 76 77

    마을코디네이터가 담당하는 분야는 생각보다 넓다.

    초기 단계의 모임을 만나면 마을공동체 사업의 목표나

    방향 설정부터 도와줘야 하고, 제안서나 사업 계획서 같

    은 복잡하고 어려운 서류 작성도 도와준다. 특히 주민들

    이 가장 어려워하는 건 복잡한 회계나 행정 절차다. 손

    씨는 일일이 컴퓨터 작업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들을 돕

    는다.

    “행정을 해본 적도 없는 분들이 비목 분류니 하는 걸

    어떻게 하겠어요? 뭐든 해봤던 제가 봐드리는 게 아무래

    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제가 가진 경험이 성동구 주민들

    의 마을만들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뿌듯합니다.”

    그렇게 성동구 곳곳에서 온, 마을공동체에 관심 있는

    이들을 만났다. 모든 커뮤니티나 단체가 다 다른 이유로

    기억에 남지만, 2014년 봄 개소를 앞두고 있는 금북초등

    학교 학부모회 모임 ‘엄마처럼 좋은 방, 모방’은 각별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좋은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의지

    를 확인하고 공간을 만드는 것까지 각 단계를 지켜볼 수

    있어서 즐거움이 두 배가 되었다. ‘엄마처럼 좋은 방, 모

    방’은 공간 마련도 마쳤지만, 그는 앞으로도 계속 지켜보

    며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외에도 기존 주민자치회

    에서 만든 ‘옹기종기’ 카페도 기억에 남는다.

    “자치위원장님이 대단하세요. 마을아카데미 수업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셨어요. 구의 지원이 끊어져

    도 자발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장학 사업, 독거

    노인 지원사업 등을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마을코디네이터가 되면서 손 씨에게는 중요한 직책

    이 하나 더 주어졌다. 성동구 마을공동체네트워크 간사

    가 그것이다.

    “당장 모임부터 할 게 아니라 먼저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어요. 그래서 기초 자원 조사,

    마을아카데미 교육, ‘마을에서 협동하자’ 행사 등을 진행

    했습니다. 또 《성동아 마실가자!》라는 책도 만들었지요.”

    《성동아 마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