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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07 + 08 산재보험 50주년 특집 산재보험 50년 의미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총재 축하 인사 산재보험에 바란다 산재보험 50년 사료 산재보험 체험수기 산재보험 변천사 직영병원 명칭 변경 the 희망, 인문학에 묻다 고난을 통해 배워라, 그러나 맹목적 긍정은 경계하라 the 달려라, 희망 “내일 찾기 프로그램이 희망의 내일을 선물해줬습니다” 대화목재 손복식 씨 the 감성 여행 국토의 동쪽 끝에서 만나는 일본 그리고 1900년대 구룡포 근대역사문화거리 희망의 끈을 놓지 마세요 당신 곁에 든든한 동반자가 있습니다.

2014 7 8 희망나무 고(스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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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 희망 웹진, 2014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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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14 7 8 희망나무 고(스프레드)

2014 07 + 08

산재보험 50주년 특집

산재보험 50년 의미국제사회보장협회(ISSA) 총재 축하 인사 산재보험에 바란다 산재보험 50년 사료산재보험 체험수기산재보험 변천사 직영병원 명칭 변경

the 행복

희망, 인문학에 묻다고난을 통해 배워라, 그러나 맹목적 긍정은 경계하라

the 나눔

달려라, 희망 “내일 찾기 프로그램이희망의 내일을 선물해줬습니다”대화목재 손복식 씨

the 공감

감성 여행 국토의 동쪽 끝에서 만나는 일본 그리고 1900년대구룡포 근대역사문화거리

희망의 끈을 놓지 마세요당신 곁에 든든한 동반자가 있습니다.

Page 2: 2014 7 8 희망나무 고(스프레드)

한 걸음 한 걸음

50년을 묵묵히

그리고 힘차게 걸어왔습니다.

모두에게 꼭 필요한

가장 반가운

발자취

더 가까이 다가서겠습니다.

듬직한 동행이 되겠습니다.

희망이, 행복이 자라나게 하겠습니다.

the 행복

Page 3: 2014 7 8 희망나무 고(스프레드)

02 인트로

한걸음한걸음

06 특집

산재보험50주년

24 이철환의 짧은 동화

지금도그때를생각하면

28 포토 에세이

행복을찾는아주쉬운방법,

긍정을믿고어울림의가치를아는것

32 희망, 인문학에 묻다

고난을통해배워라,

그러나맹목적긍정은경계하라

38 명화 읽기

환상과신비,사랑과낭만을채색한

시인이자마법사마르크샤갈

42 달콤한 동행

지역농업발전의견인차,전북귀농귀촌연합회

68 이영철의 마음 그림

꽃랑이와희망새

70 감성 여행

구룡포근대역사문화거리

78 직장 처세술

정직이최선의방책이다

82 컬처 노트

영화<그녀(her)>를보고

84 멘토 스쿨

꿈을현실로바꾸는성공의열쇠,절제

90 TV 열전

날것그대로의토론과논박으로주목을끌다

94 웰빙 건강 하우스

기본수칙으로직업성호흡기질환,

피부질환을물리친다

96 하트&하트

울주군덕하리나눔터에온전기압력밥솥

100 나의 버킷 리스트

가치있는삶을위한되돌아봄

102 희망 물음표

104 희망 뉴스

108 알립니다

48 이어령의 희망 메시지

두더지보다부자세요?

50 달려라, 희망

대화목재손복식씨

“내일찾기프로그램이희망의내일을

선물해줬습니다”

56 희망 안테나

근로복지공단대구병원

“재활에서복직까지,원스톱으로서비스합니다”

62 희망 지킴이

직원절반으로확대된성공프로그램실천,

킨텍스

“EAP로고민털어내니업무능력쑥쑥”

the 행복 the 나눔 the 공감

2014. 07+08 vol.52

발행일 _ 2014년7월1일(통권52호)

발행인 _ 이재갑

편집인 _ 강윤호

편집위원 _ 김헌재,윤은중,권순식,

나원석,이영무,김이호,

김기륜,이종호,유시환

발행처 _ 근로복지공단

울산광역시중구종가로340

기획 편집 디자인 _ 더북컴퍼니

<희망나무>는근로복지공단홈페이지홍보마당과

애플리케이션‘희망나무’를통해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서도볼수있습니다.

www.kcomwel.or.kr

Page 4: 2014 7 8 희망나무 고(스프레드)

2014년, 산재보험이 50주년을 맞았다.

출범 당시 여러모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굳건히 뿌리내린 데는

전국의 근로자 및 산재근로자와 그들의 가족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근로복지공단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50년 산재보험이 걸어온 길, 그 의미와 가치를 짚어보는 것은

향후 산재보험 50년의 미래와 비전을 위한 중요한 사료가 되리라 믿는다.

•산재보험 50년 의미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총재 축하 인사

•산재보험에 바란다

•산재보험 50년 사료

•산재보험 체험수기

•산재보험 변천사

•직영병원 명칭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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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이하는 등 상징적 일이 많습니다.

내년에는 공단이 창립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고요. 이런 계기들과 연계해

취임 초기부터 산재판정의 공정성 강화,

직영병원 경영 정상화, 미래경영 추진 등

공단의 핵심 역량을 축적하고 강화하는 데

집중해왔습니다.

특히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 신청 이후

직업성 암, 희귀질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지난해 7월 그간의

노사정 제도개선TF 논의 등을 바탕으로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과 판정절차가 대폭

개선되었습니다만, 아직도 산재판정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지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공단에서는 산재보험

판정제도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재해조사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에 대한 인식조차

없던 1960년대 경제개발5개년계획 초기,

우리나라가 어렵던 시기에 도입해 벌써

반세기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정부에서

직접 운영한 기간이 31년이고, 우리 공단이

그 업무를 위탁받아 운영한 기간이 벌써

19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동안 산재보험은

우리나라의 산업발전과 궤를 같이하면서

핵심 사회보험제도로 자리매김해 왔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으로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제도가 우리

사회에 효과적으로 도입되고 뿌리내리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는데 공단 본부가 창립 후 처음으로

지방으로 이전했고, 산재보험이 50주년을

“지난50년거울삼아새로운50년준비하는계기만들것”

이재갑근로복지공단이사장에게듣는산재보험50년

산재보험 시행 50주년을 맞아 산재보험 운영기관 이사장의 입장에서 지난 50년을 어떻게 보는지,

산재보험 사업 운영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부문, 갈수록 중요시되는 산재근로자의 재활과 직업·사회

복귀 계획 등을 근로복지공단 이재갑 이사장에게 들었다.

산재보험 50주년

1964~2014 산재보험 50년 의미

사내자격인증제 도입, 재해조사 지원

인프라 구축 등 재해조사 전문성을 제고하고

재해조사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계획입니다. 산재근로자의 재활사업과

맞춤형통합서비스의 연계를 강화해 고객

중심의 요양·보상·재활서비스를 더욱

고도화하고자 합니다. 공단은 현재 직영병원

10곳을 통해 의료재활과 직업재활을

연계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고, 최고

수준의 재활공학연구소를 운영하는 등

산재근로자의 재활과 조기 직업·사회

복귀를 위한 여건은 성숙된 상태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산재 요양초기 단계부터

맞춤형 재활 계획을 수립하고 사이클에 맞는

의료재활, 사회재활, 직업재활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등 산재보험 서비스의 질적

강화를 도모할 예정입니다.

우리 공단은 산재보험 50주년을 맞은 올해,

지난 50년을 거울삼아 새로운 50년을 향한

방향성을 정립하는 한 해로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당면한 현안을 체계적으로

관리·실행하기 위해 올해 초에 발족한

미래경영위원회를 중심으로 내부 시스템을

계속 재정비하고 있으며, 산재보험 50주년과

공단본부 울산 이전을 맞아 새로운 50년을

위한 재도약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비전과

전략경영체계도 재정립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산재보험제도 운영의 공정성을

더욱 강화하고, 산재근로자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제도의 혁신을 도모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산재보험 운영 기관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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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산재보험은 독일 법을 참조한

정부 주도방식이다. 당시 한국 사회에는

일본식이 더 낫다는 판단에 따라 채택했다.

근로기준법상의 산재 보상은 탁상 법률에

불과했고, 회사는 산재 상황 기록조차

보유하지 못한 상태여서 ‘확실한 보장’을 해줄

사회보장제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심강섭 전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

전문위원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초안한

이 법의 산파이자 산증인이다. 1918년생인

그는 1942년 일본대학 전문부 법률과

본과를 졸업하고, 귀국한 후 미군정 시절과

정부 수립 후 경상남도 노동계장, 한국전쟁

이후에는 부산시 사회과장과 사회국장으로

산재근로자의 경제적 궁핍과

정신적 고통을 헤아리다

“당시 한국 사회는 경제 발전이 되지 않은

시기라 실업 문제가 최대 현안이었다.

일자리가 없는 실업자는 경제적 고통만

경험하지만, 산재근로자는 거기에 정신적

고통까지 가중된다. 그리고 실업보험은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한 나라에서 시행할 수

있는 제도다.” 사회보장제도로서 산재보험을

우선 추진한 데 대한 심강섭(96세)

당시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 전문위원의

명쾌한 답변이다.

당시 미국과 불가분의 관계였음에도

일본의 관련 법을 참작한 이유에 대해

“미국식 산재보험은 민간 주도 방식이고,

“가난한나라여서더욱확실한사회보장제도가필요했다”

심강섭전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전문위원

산재보험 50주년을 맞은 근로복지공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초안한, 이 법의 산파이자

산증인인 심강섭 당시 사회보장제도심의위원회 전문위원을 만났다. 일찍이 산재 근로자의 고충을 헤아린

그의 혜안과 강한 추진력이 있었기에 산재보험 50년의 가치와 의의는 더욱 빛을 발했다.

산재보험 50년 의미

일했다. 이때 부산 부두에서 속출하는 하역

노동자들의 업무상 재해를 수없이 목격했다.

“그때 재해 근로자들은 피해 보상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거지가 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상황이었다”는 게 그의 회고다.

“당시 근로기준법이 제정됐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었기에 실효성이 적었다.

이 법을 전쟁이 미처 끝나기도 전인 1953년

5월 10일에 전격적으로 공포한 점 자체가

정부가 근로기준법 준수에 별 관심이

없었다는 반증이다”라고 그는 지적했다.

산재보험 50년의 초석, 미래 가치를 창출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안을 심의하기 전

당시 최고회의 의원들은 예산 문제를 들어

산재보험 도입 자체를 반대했다. 법안은 뒷날

민정 이양 후 대통령 경호실장이 된 홍종철

최고위원이 밀어붙인 끝에 1963년 10월 8일

제107차 최고회의 상임위원회에서 겨우

통과됐다. 그는 “법안 통과 후

홍 위원이 불러서 갔더니 ‘이 일에 자신이

있느냐?’고 걱정하며 ‘오늘 회의에서 논의된

발언은 모두 의미 있는 것으로, 앞으로

이러한 이유로 이 사업이 실패로 돌아갈 때는

5년, 10년 안에는 재기할 수 없을 것이며,

다른 사회보장제도를 창설할 길도 막힐

것이니 잘하라’고 강조하던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고 말했다.

“법안을 놓고 공개 설명회를 열었는데,

고용주 쪽은 자기들이 직접 산재를 책임지는

것이 근로자에게 더 생색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 산재보험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근로자는 단체 협상을 통해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산재보험의

보상 수준이 더 낮아지는 게 아닌가 하고

우려해 노사 양측을 설득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고 했다. 1963년 9월 노동청이

창설되고 그는 산재보험 업무를 관장하는

직업안정국장에 임명됐다. “이듬해 7월에

시행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관련한

기관 등을 구성하느라 직원들과 사무실에서

새우잠을 자며, 하루 세끼를 자장면으로

때우던 게 어제 일 같다”며 회고했다.

산재보험 50주년

196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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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50주년기념엠블럼을소개합니다

50주년을뜻하는숫자‘50’을기본으로,

업무상재해로부터근로자를보호하는

산재보험제도의사회보장적성격을우산이미지로

형상화하고,여러가지색의아름다운무지개컬러로

산재보험제도의다양한서비스혜택을표현.

산재보험 50년 의미

또 오늘날에는 한국에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기여 범위를 확대해 한국의

발전 경험을 배우고 싶어 하는 많은 국가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다양한 국제기구 또는

국가와 협력해 개발도상국의 산재보험

제도 도입과 제도 운영의 효율성, 역량

강화에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사회보장 수준 향상을

추구하는 ISSA 입장에서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며, 이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앞으로도 한국의 산재보험이 국내와

국제사회의 근로자 복지와 관련한 당면

현안을 성공적으로 풀어나갈 것이라

확신합니다. 한국 산재보험 50주년을 맞이해

한국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 그리고

모든 관계자 여러분의 헌신적 노고에 경의를

표하며, 더욱 든든하고 행복한 새로운 미래

50년을 만들어가길 응원합니다.

한국 산재보험 50주년을 맞아 축하의 말씀을

드리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한국

산재보험은 산업사회의 재해 위험으로부터

근로자와 사업주를 보호하고,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게 함으로써 한국의 성공적 산업화에

핵심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또 산재근로자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꾸준한 노력을

통해 한국의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한국 산재보험은 1964년 한국 최초의

사회보장제도로 도입해 지난 50년간

국가의 발전만큼이나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근로자 500인 이상

광업·제조업을 가입 대상으로 시작했으나,

2000년 7월부터 근로자 1인 이상 모든

기업으로 대상 범위를 확대했으며, 이후

중소기업 사업주, 특수 형태 고용 종사자 등

다양한 계층으로 보호 범위를 확대해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산재보험50주년을축하드립니다”

국제사회보장협회(ISSA)총재에럴프랭크스투브(Errol Frank Stoové)

축하 인사산재보험 50주년

1964~2014

산재보험 50주년

196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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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가까이,더쉽게우리곁에서도움주는산재보험이돼주세요”

각계각층근로자가보낸축하인사와바람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 50주년을 맞아 산재보험 수혜자부터 예술인 산재보험 가입자,

보험 설계사, 중소기업 대표, 근로복지공단 블로그 기자단 등 각계각층에서 축하 인사와 더불어

산재보험에 바라는 점을 전해왔다. 그들의 목소리는 근로복지공단이 향후 산재보험 50년의

길을 닦는 소중한 희망나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정두홍(한국무술연기자협회 회장, ‘서울액션스쿨’ 무술 감독)

산재보험50주년을진심으로축하합니다.

2013년11월,우리예술인에게절실히필요한

예술인산재보험을도입했을때정말기쁘고

누구보다반겼습니다.그래서저를포함한

‘서울액션스쿨’가족모두바로가입했죠.

개인적으로그리고예술인의한사람으로

이자리를빌려감사의말씀전하고싶습니다.

음지에서고생하는더많은예술인에게한줄기

빛이되고또실질적으로도움을받을수있도록

보장내용이나적용사례가더욱폭넓어졌으면

하는바람입니다.예술인이모두산재보험에

가입하는날,우리나라의예술문화수준도함께

업그레이드되지않을까요?

신수민(대학생, 근로복지공단 블로그 기자단)

지천명에접어든산재보험!

사람은나이가들면서원숙해지며,타인을

좀더생각하게되는만큼산재보험도한층

더‘원숙해지는’사회보험이되길희망하고

응원하겠습니다!연령,국적,알바생,정규직여부에

상관없이산재보험이적용된다는

사실을모르는사람이많아요.

산재보험은존재자체로모든근로자에게희망을

주는존재이기에‘희망산재보험’이라는명칭으로

홍보하면어떨까하는생각을해봤어요.그렇게

되면산재보험의무거운이미지를개선하고

산재보험에무지한일반인도좀더관심을가질

것이라생각합니다.

산재보험에 바란다

황서영(보험 설계사)

산재보험이오랜시간꾸준히제도를개선해온

덕에근로자에게큰도움을주었듯,앞으로도

근로자의일상을지키고희망을보장해주는

든든한조력자가되길바랍니다.보험설계사인

저도최근에야산재보험에가입했어요.그러면서

새삼느낀게많은데,산재보험은일하는사람

누구에게나필요하다는거예요.그런데아직도

사보험의필요성을알고가입하는경우는많지만

산재보험은모르는분이많더군요.최소한의

안전망을구축하는산재보험을널리홍보해주세요.

저도앞장서서열심히설명하고권유할게요.

김민경(더북컴퍼니 CP팀 국장)

산재보험은삶의터전을지켜주는수호천사라고

생각해요.그러나미리대비하지않으면

소용없잖아요?산재보험이왜중요하고

왜필요한지널리알리는홍보를더욱

강화했으면합니다.전국의근로자와가족

모두에게산재보험이밥먹고숨쉬는것처럼

자연스러우면서중요한일상이되기를바랍니다.

이두희(현대퀵서비스 기사)

2012년5월부터택배기사와퀵서비스기사도

산재보험에가입할수있게됐습니다.아무리

조심한다해도사고가늘도사리는우리같은

직종의근로자에게는더할나위없이반가운

단비같은소식이었죠.산재보험이앞으로더욱

발전해우리같은근로자에게더많은도움이

되기를진심으로바랍니다.

김흥수(민족탁주 울산 태화루 대표)

산재보험50주년을진심으로축하드립니다.본부

이전에따라울산과함께더불어더욱번창하기를

기원합니다.

산재보험 50주년

196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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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보는산재보험50년발자취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 50주년을 기념하고자 오래된 책장과 사진첩을 뒤져 기나긴 역사를 되짚어봤다.

산재보험 공포문, 산재보험 1호 수혜자 급여 원부, 1970년 사진 등 흥미로운 50년간의 스토리가 펼쳐진다.

산재보험 50년 사료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공포

국가재건최고회의도입 결정

1963.111963.10

최초의 산재보험 시설인산업재활원 현판식

대한석탄공사로부터장성병원(태백병원) 인수

1972.08

1975.01

근로복지공사 설립 현판식(여의도 본사)

1977.06

최초 산재보험 지방 사무소(서울 개소식)

1964.07

노동청 지방사무소 현판식직제 개편에 따라 전국 27개소노동청 산재보험 지방사무소가노동청 지방사무소로 개편

1972.12

근로복지공단 창립

1995.05노동청에서 노동부로 승격

1981.04

근로복지공단 신청사(울산 이전)

2014.04

재활 사업 5개년 계획 수립 선포식

2001.07

산재보험 50주년

1964~2014

산재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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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선생님을 만나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던 저의

응어리가 풀어졌습니다.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민망할 정도로 감사의 마음을 온몸으로

전하시는 아주머니 모습을 보며 나는 오늘도

한알의밀알이되어

산재보험50주년기념‘산재보험체험수기공모전’대상작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 50주년을 기념해

‘산재보험 체험수기 공모전’의 입상작 15편을 선정했다.

지난 3월 10일부터 4월 30일까지 진행한 이번

공모전에는 총 121편의 수기가 접수됐다. 건축 공사

현장의 산재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산재보험

혜택으로 사회복지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상우(48) 씨의 수기 ‘한 알의 밀알이 되어’가

최고상인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글 이상우사회복지사(부산산재장애인협회)

웃는다. 오늘의 웃음은 오랜 시간 동안 내

것이 아니었다. 내가 웃음을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잊히지 않는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세월의 쓴 약을 함께 먹으며 견뎌온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산재보험이라는 사회 안전망 역할이 컸음을

고백한다.

“자, 김 기사, 그쪽 모서리 약 10cm 정도의

깊이로 마무리하면 되겠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

순간 온몸이 불 속에 던져진 것처럼 뜨거운

고통을 느꼈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든 아픔

때문에 미동도 할 수 없었다. 1995년 9월

2일 오후 3시 30분, 울산상호신용금고

신축 공사 현장의 지하 터 파기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갈 즈음, 지하 바닥의

잔토를 담아 덤프트럭에 상차하고 내려오던

크레인의 버킷에 피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협착되어 인생의 꿈을 향해 달려가던 내

소중한 시곗바늘은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구급차를 타고 백천병원으로 갔으나

흉추 12번과 요추 1번 압박 골절과 늑골

골절로 장이 파열되어 지체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급히

부산백병원으로 이송돼 사고의 충격으로

골절된 늑골 조각에 의해 파열된 장기 일부는

절제하고 봉합하는 응급수술을 받았다.

찢기고 터져버린 폐의 기능 부전으로 자가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산재보험 체험수기

마치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채취하듯

옆구리에 호스를 주렁주렁 꽂아 배 속에

고인 피와 나쁜 물을 뽑아내 고비를 넘겼다.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장 파열 수술을 받은 뒤라 척추

수술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렇게 숨만 쉬며 며칠을 보내던 어느 날,

병실에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의 근원은

욕창으로, 엉덩이의 3분의 1이 썩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살이 썩어 들어가는데 모를

수가 있을까? 나는 순간 부패해가는 시체가

된 것 같은 참담한 기분이었다. 사고일로부터

2주 후 압박골절된 흉추와 요추부 수술을

받았으나 신경 손상으로 하반신이 마비돼

걷지 못할 수도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허무함과 분노, 좌절감 때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이상의 희망을 가질 수가

없었다. 견딜 수 없는 절망과 좌절로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꼼짝도 못 하고 누워 병상에서 지내야 하는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숨 쉬고

말하는 것 외에는 단 한 가지도 허락된

것이 없었기에 그 어떤 선택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내 삶의 미래는

소용돌이 속에서 발생했다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건축가로

성공한 나의 모습과 평생을 사랑하며 불러도

모자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소박하게

만들어가고자 한 미래의 꿈이 사라져버린

현실 앞에서 더 이상 기대거나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의 빛은 멀어져만 갔다. 텅 빈

가슴을 파고드는 고독과 상실, 좌절과

분노, 자괴감은 그 어떤 것으로도 치유될 수

없었다. 그러나 내 곁에는 가족이 있었다.

그 어디에도 마음 두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를

바라보면서 슬픔을 감춘 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도하는 사랑하는 아내와 네 살

된 아들, 이제 갓 5개월 된 딸을 생각하면서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야. 살아야 한다.

가족 앞에서만큼은 눈물을 보이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현장을 뛰어다니며

태산을 깎고, 늪지를 개간해 기초를 닦아

건물을 지으며 인생을 개척해온 건강하던

날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침에 왔다가

흩어져버리는 안개와도 같은 막연한

현실 앞에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가족과 함께 다시 한 번 도전해 새로운

삶을 개척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장애를

수용하자고 마음먹고 열심히 재활치료를

받았다. 서서히 육신의 상처도 아물어 거의

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다짐으로 세상의 문턱을 넘어보려 했지만

이 또한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때로는

편견과 차별의 냉대에 부딪히고 넘어지고

좌절하면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언제나

아내는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조언자로서

나와 동행하며 후견인이 되어주었다.

산재보험 50주년

1964~2014

Page 11: 2014 7 8 희망나무 고(스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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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근로복지공단의 재활 프로그램 중 직업훈련

비용 지원 사업의 문이 열려 있음을 알고

나에게 권유했고, 나는 기꺼이 컴퓨터

학원에 등록해 공부하면서 나처럼 산재를

당해 힘들어하는 산재장해인들을 만나게

됐다. 나의 작은 마음이 이분들의 마음을

열어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작은

불씨가 되려면 나부터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사회복지 실천 현장에 발을

들였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기사로

현장에서만 근무하던 사람이, 사회복지

실천 기술이 없는 비전문가가 사회복지

실천 현장에서 그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사회복지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근로복지공단의

대학 학자금 대출을 받아 늦은 나이에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다. 지금은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해 내 생애

제2의 전성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비록 장애로 활동의 폭은 좁지만

사회복지 전문가로서, 산재근로자

사회 적응 프로그램 운영 기관의

슈퍼바이저로서, 근로복지공단의 희망

멘토로서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우고,

사회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일들을

감당하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오늘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나는 꿈과 희망 그리고 비전이 있다.

나를 찾는 많은 분은 희망의 다리를 잃었고,

소망의 팔을 잃어가고 있다.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증오한다. 그리고 좌절하고 삶의

의지를 잃어가고 있다. 나는 이분들의

잃어버린 다리와 팔을 되돌려줄 수는

없다. 그러나 이분들의 다리와 팔이 돼주기

위해 희망과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그중 첫째는 이분들이 사고의

충격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사회에

적응하도록 심리적 안정을 찾아주는

일이다. 둘째는 이분들이 사회에서 다시

활동하도록 잔존 기능을 이용한 사회 직업

재활을 원조한다. 셋째는 이분들에게

찾아온 불행을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경험을

전한다. 나는 아직도 아픔을 겪고 있다.

제대로 걸을 수도 없고, 온몸은 수술

자국으로 가득하다. 힘이 들어 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나에게 남아

있는 작은 것을 가지고 세상에 기여하며

살아갈 것이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는 성경

말씀처럼 힘들어 지쳐 쓰러질 때 누군가를

만나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 삶의 끈을

이어갈 수 있도록 그루터기를 다시 한 번

만들어가겠다는 그 아주머니의 미소가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는 순간까지 나는 한 알의

밀알로 살 것이다.

산재보험 50주년

1964~2014

산재보험 50주년

1964~2014 산재보험 변천사

한눈에보는산재보험변천과정

도입

산재보험관장

산재보험수행기관의변천(노동부수행)

산재보험수행기관의변천

(보험시설)

산재보험수행기관의변천

(근로복지공단수행)

산재보험의목적

1963.10.8국가재건최고회의산재보험도입의결

1963.11.5산업재해보상보험법공포

1964.7.1산업재해보상보험법시행

1963.9.1보건사회부장관

1970.12.31보건사회부노동청장

1981.4.8노동부장관(노동부승격)

2010.7.5고용노동부장관(고용노동부로명칭변경)

1964.7.1산재보험지방사무소개소※서울,부산,장성(태백),대구,전주,광주,대전

1972.8.6산업재활원설립

1972.12.19노동청지방사무소개편

1974.8.12(재단법인)한국근로복지공사설립

1974.12.31장성병원인수

1977.6.2근로복지공사설립

1995.5.1근로복지공단설립(산재보험업무위탁수행)

1995.4.7산재의료관리원설립

2010.4.28근로복지공단과한국산재의료원통합

사업목적 변천

1964재해보상

1976 보험시설

1986재해예방,복지증진

1999산재근로자재활및사회복귀촉진

연도별적용규모확대

19640

100

200

300

400

500

1965 1966 1967 1969 1972 1973 1982 1987 2000연도

500인 이상

200인 이상

150인 이상

100인 이상

50인 이상 30인 이상

1인 이상5인 이상10인 이상16인 이상

사업장 규모

Page 12: 2014 7 8 희망나무 고(스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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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직영병원 명칭 변경

“병원명칭변경으로국민에게더욱가까이다가갑니다”

국민을위한국민의병원,근로복지공단병원

산재보험 50주년을 맞아 근로복지공단은 전국 10개 산재병원의 명칭을 바꾸어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공의료기관’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지난 세월 ‘산재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산재환자 진료 등 목적 사업을

충실히 수행해왔다면 이제는 ‘근로복지공단병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국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간다.

산재보험 50주년을 맞아 근로복지공단은 전국

10개 산재병원의 명칭을 변경해 ‘일하는 사람을

위한 국민의 병원’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지난 세월 ‘산재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산재환자

진료 등 목적 사업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면

이제는 ‘근로복지공단병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국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간다.

그동안 산재환자 진료 외에도 근로자 건강검진

공단직영병원명칭변천과정

<변경 예>근로복지공사장성병원(’77)→한국산재의료원태백중앙병원(’97)→

근로복지공단태백산재병원(’10~’14.06)→근로복지공단태백병원(’14.07~)

공단직영병원설립목적

’70~’80년광부를치료하기위해진폐전문병원3개소,산업단지밀집지역산재거점병원5개소,

요양·재활전문특성화병원2개소등총10개소건립·운영

진폐 병원태백병원(’77),동해병원(’83),정선병원(’88)

산재거점 병원창원병원(’79),인천병원(’83),안산·순천병원(’85),대전병원(’91)

요양병원경기요양병원(’85)

재활전문병원대구병원(’12)

운영기관근로복지공사(’77~’94)→한국산재의료원(’95~’09)→근로복지공단(’10~)

공단직영병원성과

민간부문이기피하는지역또는산재환자(장기·고령만성질환자,진폐요양환자)에게양질의

의료서비스를제공하는등공공의료기관으로서선도적역할수행

공단직영병원발전전략

산업재해로매년9만여명의산재환자가발생하고있어,이들에게최적의의료재활서비스를제공하기

위해울산지역에산재모병원건립(’19개원)과10개병원을①산업재해상병별급성기치료전문

②재활전문③진폐치료전문④요양전문분야로특성화하고

고객대상을①산재환자(요양부터재활까지맞춤형통합서비스제공)뿐아니라②근로자(건강예방과

치료)③일반국민(공공의료기관으로서최적의의료서비스제공)으로까지확대해산재보험시설과

공공의료기관역할을적극수행.

산재보험 50주년

1964~2014

등 지역 주민의 보건 향상을 위한 공공의료

기관 역할을 수행했음에도 ‘산재병원’이라는

명칭에서 산재환자만 진료한다는 국민의

오해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또 국민 중심의

고객 확대, 병원별 명칭 통일화를 통한

‘공단 네트워크 병원’으로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도 이번 명칭 변경은

그 의미가 크다.

근로복지공단정선병원

근로복지공단동해병원

근로복지공단태백병원

근로복지공단대구병원

근로복지공단대전병원

근로복지공단경기요양병원

근로복지공단안산병원

근로복지공단인천병원

근로복지공단순천병원

근로복지공단창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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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짧은 동화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얼굴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얼굴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아주 오래전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 건널목엔 항상 교통경찰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그 아저씨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왼팔에 ‘교통경찰’ 완장까지

둘렀지요. 그 아저씨는 진짜 교통경찰이

아니었습니다. 모자도 경찰 모자가 아니었고,

팔에 두른 완장도 매직으로 아무렇게나 쓴

볼품없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는 우리 아랫집에 살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아저씨를 ‘만복이 아저씨’라고

불렀습니다. 만복이 아저씨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초등학교 앞

건널목에 서서 교통경찰 행세를 하는 만복이

the 행복

지금도그때를생각하면

글 이철환(소설가) 일러스트 조성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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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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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철환은소설가다.작품으로는430만명의독자가읽은<연탄길1·2·3>과<행복한고물상>,<위로>등총20권이있다.

작가의작품중총9편의글이초등학교와중학교교과서에실렸고,뮤지컬<연탄길>대본은고등학교‘문학’교과서에실리기도했다.

2000년부터책수익금으로운영해온‘연탄길나눔터기금’을통해낮고그늘진곳에있는이들을후원하고있다.

아저씨를 보고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

수군거렸지만, 만복이 아저씨는 마음씨가

아주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아저씨는 매일같이 우리 학교 앞 건널목으로

와서 습습한 모습으로 교통정리를 했습니다.

양팔을 나비처럼 너울너울 흔들며, 실없는

웃음을 선득선득 흘리며 만복이 아저씨는

오가는 차들을 향해 정신없이 수신호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저씨의 수신호는

그야말로 엉터리였습니다. 차에 탄

사람들은 만복이 아저씨가 보내는 수신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야, 이 미친놈아! 너 죽으려고 환장했어?”

자동차 경적을 크게 울리며 아저씨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저씨를 향해 수군거리거나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만복이 아저씨가

서 있는 곳은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

중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날은 진짜

경찰들이 와서 만복이 아저씨를 잡아간 적도

있습니다. 경찰들은 서름한 낯빛으로 만복이

아저씨에게 으름장을 놓기도 했고, 선웃음을

치며 달래기도 했습니다. 만복이 아저씨가

미친 사람이라는 것을 경찰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저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 앞으로

왔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내리면

눈을 맞으며 교통정리를 했습니다. 땡볕

아래 서서 팥죽같이 땀을 흘리며 수신호를

했습니다. 아저씨가 그곳에 서 있었기

때문에 신호를 위반하고 쌩쌩 달리는 차는

한 대도 없었습니다.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들 중에는 만복이 아저씨를 슬금슬금

피해 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시금털털한

얼굴로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저씨

옆을 지날 때마다 낮은 목소리로 “바보!”라고

놀리는 아이들도 있었고, 먼 곳에 서 있다가

아저씨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가는 못된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만복이 아저씨의 아픔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저씨를 향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복이 아저씨는 초등학교

1학년 어린 딸을 하루아침에 잃었습니다.

만복이 아저씨가 교통정리를 하는 바로

그 건널목에서 아저씨의 어린 딸이 눈을

감았습니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차에

치여 아홉 살짜리 어린 딸이 차도에서 영영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 후로 아저씨의

얼굴엔 깊은 그늘이 드리워졌습니다.

아빠 얼굴을 도화지에 그려 가지고 집을

나서던 어린 딸의 마지막 모습을 만복이

아저씨는 잊을 수 없었습니다. 아파하다가,

아파하다가, 가슴을 찢으며 아파하다가

아저씨는 그만입니다. 어린 딸의 얼굴을

단 한순간도 지울 수 없어 정신을 놓고 만

것입니다. 학교를 오가는 아이들이 혹여

아저씨의 어린 딸처럼 될까 봐 만복이

아저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학교 앞

건널목을 지킨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아저씨가 어느 날부터인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2년이 넘도록 해온

교통정리도 더 이상 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두운 방에만 누워 있던 만복이

아저씨는 그해 가을 무렵 끝내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만복이 아저씨가 떠나간 후에도 아저씨는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남았습니다. 만복이

아저씨 가슴에 펄럭이던 빨간 카네이션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버이날 어린 딸이

가슴에 달아준 카네이션을 만복이 아저씨는

비닐로 꽁꽁 싸매 2년이 넘도록 가슴에 달고

다녔습니다.

그 후, 만복이 아저씨가 서 있던 건널목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한참을 멈춰 서

있곤 했습니다. 건널목을 건널 때마다

몽당연필만 한 1·2학년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던 아저씨의 상그레한 얼굴이 자꾸만

눈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가엾은 아저씨를

생각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건널목을 다시

바라보면 만복이 아저씨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저씨의 얼굴은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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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the 행복

포토 에세이

나의삶에서

너를만남이행복하다.

내가슴에새겨진

너의흔적들은

이세상에서내가가질수있는

가장아름다운것이다.

나의삶의길은

언제나

너를만나러가는길이다

그리움으로수놓은길

이길은내마지막

숨을몰아쉴때도

내가사랑해야할길이다.

이지상에서

내가만난가장행복한길

늘가고싶은길은

너를만나러가는길이다.

- 용혜원

너를 만난 행복

행복을찾는아주쉬운방법,

긍정을믿고어울림의가치를아는것

글양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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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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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론자는수많은기회중에서도어려움을

찾고,긍정적인사람은수많은어려움중에서

기회를찾는다”라고윈스턴처칠은말했다.

살다보면힘든때가많다.실패,배신,이별….

그러나삶은계속되고우리는다시일어나야

한다.지친일상에힘을주는것은반드시대단한

것만이아니다.누군가의작은기억,한마디의

위로,잠시스쳐간바람이큰용기를줄수있다.

그러나이런특혜는누구에게나오는건아니다.

자신의밥그릇에긍정이담겨있어야한다.

사소한것이라도딛고일어서게하는용기라고

믿는사람이진짜대단한것이다.

어울림은숫자가아니다.

소통,조화,화합이라는거창한메시지가

아니어도된다.가까운이에게손을내미는

아주간단한일로어울림은시작된다.

나와주변을살피는마음,먼저다가서는

용기가울타리를견고하게만든다.

가족과함께하고이웃과어울릴때내가

존재하듯,나무한그루도저혼자서는아름답지

않다.멀리둥그런산등성이가둘러져있고

하늘에조각구름이걸려있어야비로소그

나무는아름다울수있다.시냇물도바위사이를

흐를때소리가더욱아름답듯,만물은서로다른

것들과어울려야존재하고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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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인문학에 묻다

“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just go.”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문장을 김난도 교수가 자신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재인용한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가라’라는 뜻입니다. 삶이란 참으로

미묘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쉽사리 답을 주지

않고 늘 의문에 휩싸이게 합니다. 그래서

고통스럽고 괴롭습니다. 그러나 어찌합니까.

늘 헷갈리는 일의 연속이지만, 어쨌든

살아내야 하니 말입니다.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겁니다. 앞서 소개한

문장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거든 일단 (어디로든) 가라.’

매우 설득력 있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숙인 인문학 강좌에서 만난 분들 중에

자활의 길을 걷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그 자활의 의지가 얼마 못

가서 여지없이 꺾여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엇비슷한

상황입니다. 인문학 강의에 참여한 뒤

자활 의지를 불태우게 되었고 다시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했지만, 현실의 장벽은

너무 높아서 쉽사리 뛰어넘지 못하겠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자활의 길을 걸으려 해봐도 막상 일자리를

고난을통해배워라,그러나맹목적긍정은경계하라

글최준영(작가,거리의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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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노숙인 대부분 엄청난 빚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일용직, 임시직, 관공서에서 주는 자활 근로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자는커녕 방을 얻어

월세를 내고 밥 먹는 것을 해결하기도 빠듯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해줄

말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그들의 얘기를

경청해주는 것, 그 이상의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어떡합니까.

그렇다고 다시 거리의 삶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할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고민 끝에

그분들에게 들려줄 말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게 고스란히 한 권의 책으로 묶였습니다.

저의 졸저 <결핍을 즐겨라>(최준영 지음,

추수밭, 2013년)가 바로 그것입니다. 책에

나오는 문장 가운데 마침 자활의 길을

포기하려는 분들에게 들려준 것이 있습니다.

작은 제목은 ‘흐르는 물이 구덩이를 지나는

방법’입니다.

“‘흐르는 물이란 구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황광우의 <철학하라>에서 건진

맹자의 말입니다. 흐르는 물 앞에 구덩이가

있으면 물은 일단 구덩이를 채웁니다. 물이

차기 전에는 흐름을 멈출 수밖에 없고,

구덩이를 가득 채운 뒤라야 비로소 흐릅니다.

단순한 자연의 이치에서 맹자는 인간의

덕목을 이끌어냅니다. 무릇 군자는 학문과

덕행을 차근차근 쌓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잡기가 쉽지 않으니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 여기저기 도움을 청해보지만 워낙에

일자리가 귀한 세상인 데다 노숙한 적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인력시장에

나가거나 동사무소에서 주는 임시직

일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받는 급여라고

해봐야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액수다.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말소된

주민등록도 살리고, 주거도 확보해야 하지만

그럴 경우 빚쟁이가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그게 두려워 결국 다시 거리를 떠도는

것이다. 자활 의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실의에 빠져 술에 의존하게 된다. 사회는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냥 숨어버리고

피해버리는 게 더 쉽고 편한 것이 아닌지

묻고 싶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도 그럴

인생의 시련 혹은 역경이란 흐르는 물이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마련인 구덩이에

다름 아닙니다. 흐르는 물에 구덩이란

채워야 할 곳이지 흐름을 멈추어야 할

파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은 숱한 시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련은 종류도 다양합니다. 경제적 어려움,

관계의 어려움, 성취의 어려움, 소통의

어려움, 심지어는 쉼이나 여가조차

어려움으로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숱한 어려움을 어찌 해결해야

할까요. 아니 해결책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걸까요.

극복하기 어려운 걸 억지로 이기려 하고

넘어서려고만 하는 건 어쩌면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섭니다. 되레

극복하기보다 그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 오히려

슬기로운 일일지 모릅니다.

역경과 시련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에게는 기다림과

인내의 의미를 알려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역경과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별별 수를 내보거나 도망쳐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다고 고통이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겪어야 할 것은 겪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물이 구덩이를 채우지 않으면

더 이상 흐르지 않듯이, 고통도 겪어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맹자는 어려움을 긍정합니다. 어려움은 또

다른 새로움의 시작입니다. 어려움을 이겨낸

자만이 새로운 단계, 새로운 세상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맹자는 또 말합니다.

지금의 어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결핍을즐겨라>

70,71쪽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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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맞닥뜨리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고통에 맞서느냐 피하느냐입니다.

어떤 사람은 시대의 불행과 맞서는

고통을 감내합니다. 반면 대부분의

사람은 애써 그것을 외면하고

비겁하게 살고 있습니다. 시대의

아픔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나에게 주어진 고통만큼은

견디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철학자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통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 고통의 내용을 알려고 하는 순간, 이미

고통으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고통은 피하면 피할수록 더 큰 고통으로

되돌아옵니다. 차라리 직접 대면하는

것, 그게 바로 고통을 이기는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얼핏 하나마나 한 얘기처럼

들리거나 빤한 얘기를 하는 것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모든

고통을 비판 없이 무조건 긍정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지나친 긍정은 외려 근거

없는 낙관주의로 흐를 수 있으니 그 역시

위험합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의 배반>에서

맹목적 긍정을 경계하라고 일러줍니다.

“긍정주의의 메시지는 불편한 사회 현실을

외면하고 저마다 자신의 쳇바퀴에만

열중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매트릭스로

작용하고 있음”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긍정의 배반>은 유방암 경험에서 시작해

시중에 넘쳐나는 자기 계발서의 메시지,

초대형 교회의 모순적 설교, 동기 유발

강사들과 기업의 커넥션, 그리고 세계를

재난에 빠뜨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긍정주의’의 실체를 날카롭게 비판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책에 등장하는 암 투병

경험자들이 펼치는 긍정론은 어딘가

허전하고 공허롭게 들립니다. 책에는

‘메리’라는 여성의 말이 등장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더 감성적이고 사려 깊은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이런 얘기가 우습게

들릴지는 몰라도 예전에는 정말로 잔걱정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일로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나는

삶을 훨씬 더 즐기며 많은 면에서 예전보다

더 행복합니다.”

어떻습니까. 어려움을 겪은 사람으로서

이 정도의 긍정론은 당연한 것 아닐까요.

하지만 에런라이크는 그러한 마음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자기 합리화의

★글쓴이 최준영은2000년문화일보신춘문예에당선되어작가의길로들어섰다.2005년부터노숙인을위한인문학강좌등

각종시민인문학강좌에참여해열심히강의하고있다.성프란시스대학,경희대실천인문학센터교수등을역임했으며,지금도전국의

도서관,관공서,복지관등에서글쓰기와인문학강의를진행하고있다.지은책으로<어제쓴글이부끄러워오늘도쓴다>(2013),

<결핍을즐겨라>(2012),<유쾌한420자인문학>(2011),<책이저를살렸습니다>(2010)등이있다.

어차피 닥칠 일이라면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 것입니다.

다시 저의 졸저를 인용해야 할 듯합니다.

“참지혜는 사람들에게서 아득히 떨어진 채

절대 고독 속에 은거하는데, 이 참지혜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다.

버리는 것과 고통스러워하는 것만이

세상으로 통하는 마음의 문을 열게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

캐나다 북부 캐리부 지역에 사는 에스키모의

샤먼 ‘이그주가르주크(Igjugarjuk)’의

의미입니다. 조셉 캠벨의 <신화의 힘>

서문에서 옮겨왔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허점을 여지없이 짚어냅니다. 병이 우리를

성숙시킨다는 긍정론은 자칫 모든 불행에는

교훈적 요소가 있다는 맹목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삶의 역경은 분명 우리를 지치게 하고

괴롭힙니다. 그렇다고 피할 수 없습니다.

피하면 피할수록 더욱 집요하게 우리의

마음을 갉아먹고 더 큰 불행으로 이끕니다.

그러느니 당당하게 맞서 싸워서 고난을

극복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저의 졸저를 인용하는 무리수를 두기까지

했습니다.

한편 놓치지 말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역경, 고난, 고통은 분명히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지만 그것을 통해 정신적 성숙을

기대할 수 있다는 식의 자기기만 혹은 맹목적

긍정론은 경계해야 한다는 말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결론입니다. 고난은 피한다고

해소되는 것이 아닙니다. 당당하게 맞설 때

해결의 실마리가 풀립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교훈을 얻었다는 식의 맹목적 긍정론

역시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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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읽기

화가의 상상력과 그리움이 불러낸 고향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은 1887년 7월

7일 벨라루스공화국의 비텝스크에서 유대인

부부의 아홉 자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거칠고 말이 없는 성격으로 청어

도매상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소규모

잡화상을 운영하며 열정적으로 가족을

보살폈다. 샤갈은 화가로서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고 격려해준 어머니에게 늘 감사했다.

비텝스크는 러시아 서부의 유대인 거주

지역으로, 샤갈의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영원한 고향이다. 그는 이곳에서

비록 가난했지만, 미술을 공부하며 비교적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성인이 된 후,

대부분의 시간을 프랑스에서 보낸 샤갈은

평생 고국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고향에서의

기억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평생

동안 간직했다. 그의 그림 속에서는 항상

그리운 고향 마을과 사랑하는 가족을 찾을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유대인의 전통 이야기와

민속예술도 많이 등장하는데,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은 샤갈 작품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다. ‘마을과 나’는 스물네 살의 청년

샤갈이 고향을 떠나 파리로 온 이듬해에

처음으로 자신의 고향을 그린 작품이다. 화면

왼쪽에는 염소, 오른쪽에는 초록색으로 화가

자신의 얼굴을 그렸다. 그렁그렁한 눈망울의

커다란 염소가 친근하고 푸근하게 안부를

묻는 것처럼 보인다. 초록색 얼굴의 샤갈은

눈동자와 입술을 흰색으로 표현했다. 염소의

뺨 부분에는 염소 젖을 짜고 있는 엄마가,

위쪽으로는 삽을 메고 밭으로 나가는 아빠가

보인다. 아빠의 앞에 거꾸로 선 소녀는

샤갈의 동생 같기도 하고, 애인 같기도 하다.

샤갈과 염소의 얼굴 사이에 난 길을

따라가보면 마을이 나타난다. 샤갈의 고향인

러시아의 작은 유대인 마을이다. 샤갈이

꿈속에서 만난 그리운 고향 모습이 이랬을

것 같다. 화가의 상상력과 그리움이 불러낸

독특한 표현 방식이다.

샤갈은 색이나 형태, 구성보다 자신의 마음속

‘마을과나’,162×151cm,캔버스에유화,1911년,뉴욕현대미술관.

환상과신비,사랑과낭만을채색한시인이자마법사

마르크 샤갈

20세기 유럽 화단의 가장 진보적 흐름을 보여준 마르크 샤갈. 러시아의 민속적 주제와

유대인의 성경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 활동을 한 샤갈은 인간의 원초적 향수와 동경, 꿈과 그리움, 사랑과 낭만,

환희와 슬픔 등을 눈부신 색채로 펼쳐 보였다. 구성양인실

‘산책’,175.2×168.4cm,캔버스에유화,1917~1918년,국립러시아미술관,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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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작품에 담으려 했고, ‘마을과 나’에는

그리운 고향을 추억하는 샤갈의 향수가 담뿍

묻어난다.

샤갈의 영원한 뮤즈이자 영감의 원천, 벨라

1909년 당시 스물두 살의 청년이던 샤갈은

고향인 비텝스크의 친구 집을 방문해 아홉

살 연하의 벨라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아들이던 샤갈과

러시아 상류층 부호의 딸인 벨라는 환경과

신분 차이를 사랑으로 극복하고 1915년

결혼했다. 벨라가 미국으로 망명해 사망한

1944년까지 완성한 샤갈의 작품에서는

두 사람의 행복한 결혼 생활이 아름다운

색채와 함께 나타나 있다.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1917년에도 샤갈은 사회적 격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을 작품에

투영할 수 있었다.

이는 그의 든든한 작업 파트너이자 뮤즈인

벨라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벨라는

샤갈 작품의 제목을 정하는 것부터

작품의 최종 완성본을 고르는 것 그리고

종종 간질 발작 때문에 고생한 샤갈을

옆에서 어머니처럼 지켜주는 역할까지 한

사랑스러운 아내였다.

그녀가 떠난 후 샤갈은 깊은 슬픔에 빠져

한동안 붓을 들지 못했고, 이후 그의

작품에서는 그녀를 잃은 슬픔을 나타낸

푸른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샤갈이

첫눈에 벨라에게 반한 것은 그녀의 외적

매력 때문이었겠지만, 사후에도 계속

그녀를 그리워한 것은 그에 대한 그녀의

헌신과 희생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적

아름다움과 지성을 갖춘 사람은 많겠지만,

본인에게 진정한 사랑을 준 사람은 벨라

한 사람뿐이었을 테니까. 벨라는 샤갈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생일’, ‘술잔을

들고 있는 이중 초상’, ‘에펠탑의 신랑 신부’

등에서 벨라의 초상을 볼 수 있다. 벨라가

등장하는 샤갈의 그림은 밝고 아름다우면서

색감이 살아 있다.

샤갈은 “평생토록 그녀는 내 그림이었습니다”

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작품 곳곳에 벨라를

등장시키며 그녀와의 사랑을 놓지 않았다.

환상적 주제를 화려한 색과

특유의 능란한 붓질로 묘사

파리에 거주하는 샤갈을 한 동료는

‘시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이 별명은

어쩌면 훗날 그가 비평가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를 함축한 것인지 모른다. 큰 꽃다발과

우울한 어릿광대, 날아다니는 연인들,

환상적 동물들, 성경의 예언자들,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자 등의 이미지를 묘사한 민속

작품들로 말미암아 샤갈은 20세기 파리파의

중요한 전위 미술가들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이 환상적 주제를 화려한 색과 특유의

능란한 붓질로 묘사했는데, 그의 양식은

표현주의나 입체파, 추상미술 같은 1914년

이전의 운동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변함없이 개인적 성향을 띠었다. 비평가들은

때때로 그의 작품 대부분에 가벼운 감상이

깃들어 있고, 작품의 질이 일정하지 않으며

모티브가 지나치게 되풀이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특히 걸작은 현대의 작품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시각적 은유 수준에

이르렀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위)‘생일’,80.5×99.5cm,캔버스에유화,1915년,뉴욕현대미술관.

(아래)‘에펠탑의신랑신부’,150×136.5cm,캔버스에유화,1938년,

조르주퐁피두센터.

(왼쪽)‘녹색의바이올리니스트’,198×108.6cm,캔버스에유화,1923~1924년,솔로몬R.구겐하임.

(오른쪽)‘비텝스크위에서’,67×92.7cm,캔버스에유화,1915~1920년,뉴욕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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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동행

“귀농인뿐아니라농업인모두가잘살아야성공”

지역농업발전의견인차,전북귀농귀촌연합회

연간 귀농·귀촌 인구 3만 명 시대. 전북귀농귀촌연합회(회장 문응주)는 초보 귀농인에게 각종 귀농

정보를 제공하고 귀농 후 농촌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귀농인의 젊은 피가 노후화된 농촌

사회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같이’의 ‘가치’를 알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의 귀농 철학이다. 글이나영사진김원태

귀농 열풍 속 역귀농 등 시행착오 많아

귀농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0년까지 한 해 4000가구를 넘지 않은

귀농·귀촌 인구는 2011년 1만 가구를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3만2000여 가구가

귀농·귀촌 대열에 합류했다.

이러한 열풍을 방증하듯 최근 서울

세텍(SETEC)에서 열린 귀농·귀촌

페스티벌은 연일 발 디딜 틈 없이 성황을

이루었다. 21세기 최첨단 시대에도 사람들의

마음속 고향은 콘크리트 숲이 아닌 황토

구들장에 있는 듯하다.

물론 귀농이 마냥 낭만적인 시대는 지났다.

고소득 작물이나 융·복합 농업을 목표로

전략적으로 귀농하는 사례도 많다. 하지만

귀농 인구가 크게 늘어난 이면에는 귀농

가구의 연평균 10%가 다시 콘크리트 숲으로

돌아간다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귀농자의 30%가 3~5년 만에 다시 농촌을

떠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귀농자를 뜨내기로 여겨 농촌 주민들

사이에서 인식이 좋지는 않죠.”

(사)전북귀농귀촌연합회 문응주 회장은

“귀농에 성공하려면 농업으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역 주민들과의 친화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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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연합회가 직접 ‘귀농귀촌지원센터’ 운영

그런 의미에서 전북귀농귀촌연합회(이하

‘연합회’)는 귀농인에게 무엇보다 지역

친화를 강조한다. 연합회는 전라북도

내 14개 시군 귀농·귀촌인의 모임으로,

전북귀농귀촌지원센터를 직접 운영한다.

다른 도의 경우 귀농귀촌지원센터 운영은

지자체가 직접 수행하지만, 전라북도만

예외적으로 민간 조직인 연합회에서 업무를

담당한다. 따라서 담당 공무원 보직 변경에

따른 업무 혼선이 없고, 실제 귀농인의

생생한 정보 교류와 지원이 가능하다는

일거양득 효과가 있다고.

연합회는 상근직 2명이 상담 콜센터와

홈페이지를 맡고 있으며, 관련 교육 사업과

정책 연구 등을 수행한다.

귀농인이 해당 지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귀농 희망자를 대상으로 교육과

정보 제공, 농산물 판매 확대를 위한 홍보

활동에도 힘쓴다. 또 귀농 지역 발전을 위해

봉사하면서 지역 주민과의 친화를 도모하고

있다.

영어 공부방 봉사 등 지역 발전을 위해 나눔 실천

이들은 귀농 전 각자가 쌓아온 재능을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기부하기도 한다. 전북

완주에서 된장과 고추장을 생산·판매하는

박윤경(45) 씨의 경우,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박 씨는 대학 졸업 후 미국 워싱턴DC에서

10여 년간 직장 생활을 했다. 7년 전 유방암

진단을 받은 뒤 남편과 함께 귀촌했고, 요양

생활을 하던 중 장류에 관심이 생겼다. 이후

직접 된장을 담그면서 (주)홀푸드를 설립하고

‘된장 푸는 남자’라는 브랜드도 론칭했다.

박 씨는 3년 전 마을 아이들을 위해 경로당에

영어 공부방을 열었다. 몸은 아프고 힘들지만

자신의 재능을 나누고 싶어 시작한 것. 또

자신의 세 아이에게도 언제나 열심히 사는

엄마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정읍으로 귀촌한 이현선(34) 씨 역시 농촌

사회 발전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고

있다. 서울에서 디자인 회사에 다니던

이 씨는 다리 수술을 계기로 고향에서 요양을

하게 됐고, 여기서 만난 남편과 2008년

결혼하면서 귀촌했다.

이 씨는 농산물 관련 홍보물 제작과 쇼핑몰

귀농에 성공하려면 이웃과

상관없이 나 혼자만

잘 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귀농 성공 여부는

매출 1억 원이 아니라,

담장 너머로 음식을

주고받을 이웃이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전북귀농귀촌연합회는전라북도내14개시군귀농·귀촌인들의모임이다.

전북귀농귀촌지원센터를직접운영하면서귀농인을위한정보제공과지원사업을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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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에성공하기위한세가지방법은“지역의대표작물을

선택할것,선배귀농인들의이야기에귀기울일것,마을이장과

친하게지낼것”등이다.

제작 관리를 대행하면서 농산물 홍보 전문

회사를 설립했다. 소정의 비용을 받지만

농업인의 여건상 도움이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실비만으로 작업을 대행해준다.

또 판매 마케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농업인에게 보다 효과적인 홍보 전략을

제시하며, 농산물을 더 많이 팔기 위한

방법을 연계해주고 있다.

귀농인의 성공이 지역 경기 부양에 도움 돼야

지역 발전을 위해 좀 더 거시적으로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문 회장은 ‘귀농귀촌&농업농촌’

체험 교육장을 운영하면서 마을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하고 있다.

문 회장은 9년 전 연로하신 부모님이 암

투병을 하자 고민 끝에 귀농을 결정했다.

현재는 오디와 복분자, 야콘, 꾸찌뽕, 둥근마

등을 재배하며, 이를 원료로 한 가공식품과

기능성 건강식품을 생산·유통하고 있다.

또 ‘오복야 시골가자’라는 체험 관광 농장을

운영하면서 농업의 6차 산업화를 이끈다.

하지만 문 회장이 생각하는 6차 산업의 성공

비전은 ‘모두 다 잘 사는 농촌’을 만드는

데 있다. 이에 문 회장은 고소득 농업인

벤처 사업장으로 지정돼 교육장을 설립할

당시 지원비 외에 자비 1억 원을 들여 체험

교육장을 건립했다. 그리고 이 체험 교육장

운영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전액 자비로

충당하고 있다.

체험 교육장에 더 많은 사람을 유치함으로써

지역(정읍 신덕마을) 경기 부양의 첨병이

되겠다는 것.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더 많이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쇠락해가는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그의 목표다.

젊은 귀농인의 역량으로 농촌을 젊게 만들자

이 밖에 연합회 회원들은 귀농 지역에서

가능한 한 봉사와 공익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도시 출신으로 소비지에 연고가

있다는 장점을 살려 농산물 직거래 판매에

역량을 발휘하기도 한다. 또 회원들

가운데 마을 이장직을 맡고 있는 비율은

50%. 이들은 평균 연령 70세가 넘는

농촌 마을에서 잔심부름과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한편, 귀농귀촌지원센터를 운영하다 보면

귀농 시 경제성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한다. 과연 시골에서 농사지으면

도시에서만큼 또는 그 이상 돈을 벌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그때그때

달라요”다. 귀농의 경제성과 성공 확률은

섣불리 장담하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단, 문 회장은 귀농에 성공하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을 조언했다. “재배 작물은 지역의 대표

작물을 선택하라, 선배 귀농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라, 마을 이장과 친하게 지내라”가

그것이다.

귀농 초기에 지역 대표 작물을 선택하면

실패할 위험이 적고, 나만의 농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할 때 선배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

또 좋은 땅이나 종자를 구하려면 마을 이장이

가장 확실한 조력자라는 것이다.

이 외에 “이웃과 상관없이 나 혼자만

잘 살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귀농 성공 여부는 매출 1억 원이

아니라 담장 너머로 음식을 주고받을 이웃이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농촌체험교육장을통해

도농간교류를강화하고,

침체된농촌경기에활기를

불어넣고자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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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보다 부자세요?

들토끼 가운데는 자기 몸무게보다

100배가 넘는 건초를 저장하는 녀석이 있나 봐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먹을 것을 예비해두는 거지요.

두더지들은 지렁이를 반만 먹고

나머지는 자기 굴속으로 끌고 간대요.

훗날 키워서 먹으려고 지금의 배고픔을 참는 거지요.

800마리나 되는 지렁이를 키우고 있는

두더지의 농장을 발견한 적도 있다나 봐요.

해오라기는 벌레를 잡아 냇물에 떨어뜨린대요.

그것을 먹으려고 모여드는 물고기를 잡으려고요.

작은 것을 투자해 더 큰 먹이를 얻는 거지요.

the 나눔

★이어령의 희망 메시지는 <이어령의 80초 생각 나누기>(시공미디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어령 교수가 80년 동안 쟁여둔 생각을 펼쳐낸 이 책에는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감동 메시지, 내 삶과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지혜의 메시지, 번뜩이는 창조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어령의 희망 메시지

토끼보다는 두더지가 낫고

두더지보다는 해오라기가 더 나아요.

그런데 저축은 하고 계세요?

내일을 위해 투자를 하시는지요?

정말 사람들이

토끼보다 두더지보다 그리고 해오라기보다

더 슬기롭다고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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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the 나눔

손복식 씨는 목재 가공 회사에서 목재를

절단하고 재단해서 팔레트 등의 목재 상품

만드는 일을 한다. 그런데 이 작업이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든다. 커다란 목재 한 장의 무게가

10kg이 넘는데, 이것을 작업대로 옮길 때 온몸을

비틀며 힘을 주다 보니 오른쪽 어깨에 힘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손 씨는 약 4년간 이 일을

하면서 항상 오른쪽 어깨가 뻐근함을 느꼈다.

주위에서는 적당히, 쉬엄쉬엄하라고 충고도

했지만 맡은 일은 제대로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손 씨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전에 해보지 않은 일이라 요령이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빨리 익숙해져야 제 몫을 할 수 있으니까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지요. 아픈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통증을 참을 수 없을 때는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계속 일하다

지난해 5월 10일, 결국 사단이 나고 말았다.

“내일 찾기 프로그램이희망의 내일을 선물해줬습니다”

대화목재 손복식 씨

요령 피우지 않고 묵묵히 일만 한 까닭에 어깨를 쓰기 힘들게 된 손복식 씨. 사고 후 헤어날 수

없는 불안과 좌절에 빠졌던 그가 근로복지공단의 내일 찾기 프로그램을 통해 희망의 끈을 잡았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재활을 위해 땀 흘린 손 씨는 사고 1년이 지난 지금, 복직한 회사에서 누구보다

유능한 일꾼으로 하루하루를 힘차게 살고 있다. 글 이선민 사진 이진하

50

달려라, 희망

“남들은 힘든 곳이라고

하지만 나이 든

저를 써준 직장이 고마웠죠.

그런데 사고로 더 이상

팔을 쓰지 못하면 일을

하지 못할까 봐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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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나눔

이효진 잡 코디네이터처음엔 부정적 태도였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한

다음부터는 누구보다 모범적인 분이셨어요.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강한 분이어서 가족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실시한 가족 상담이 좋은 영향을 미친 거죠. 저 역시 요양

기간이 길어지면 좋지 않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내일

찾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권했고, 이를 통해 복귀 시기도

앞당기고 누구보다 빨리 원래 업무로 돌아오셨어요.

정말 성실하게 맡은 일을 열심히 하시는 손복식 씨가

앞으로도 더 활기차게 일할 수 있기를 열심히 응원할게요.

그날 역시 평소와 똑같이 작업하던 중 어깨 통증이 심해지면서

더 이상 팔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입에서는 비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곧바로 큰 병원으로 실려간 손 씨는 그곳에서 오른쪽

어깨 근육과 힘줄 손상, 열상 등의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계속

일한다면 팔을 쓸 수 없을 테니 요양이 필요하다고 진단을 내렸고,

손 씨는 곧바로 요양 신청을 했다.

재활은 자신과의 싸움, 자신감 회복이 우선

손 씨가 요양을 시작하면서 팔의 통증보다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다시는 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대학에 다니는 두 딸과 척추 손상으로 누워 지내는 어머니, 부인과

질병으로 운신하기 힘든 아내. 그의 어깨에 지워진 짐은 일을

쉬어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경고하는데, 자신의 상황은 녹록지

않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52

“솔직히 제가 하는 일이 젊은 사람은

오래 버티지 못해요. 일은 고되고 보수는

적으니까요. 하지만 저처럼 나이 든

사람에게는 그나마 아쉬운 직장이지요.

제 나이에 어디 가서 이렇게 일할 수

있을까 싶으니 막막했습니다.”

현재의 직장이 자신에게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고, 회사에서 자신이

할 일은 지금의 일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원직 복귀가 아니면 안 된다는

초조감이 그의 우울증을 악화시켰다.

불안과 우울에 빠져 있던 손 씨가

이효진 잡 코디네이터를 만난 것이

바로 그때였다.

“손복식 씨는 그 당시 굉장히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였어요. 일하면서 매일 소주

2병 이상 드시던 손복식 씨는 건강도

좋지 않았습니다. 산재를 당했을 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가족의 격려인데,

그런 지지도 받지 못하고 계셨죠.”

이효진 잡 코디네이터는 손 씨를 위해 단계별 내일 찾기 서비스와

함께 심리 상담을 제공하려 했으나, 자신감을 상실한 손 씨는

고집스럽게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 손 씨는 당시 이효진

잡 코디네이터가 아무리 자신을 설득해도 ‘해봤자 무슨 소용 있나’

하는 생각에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효진 잡 코디네이터는 손 씨가 계속 거부하자 가족 상담을 통해

부인을 만난 자리에서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며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손 씨의 부인은 이효진 잡 코디네이터의 설명을 듣고

남편을 열심히 설득해 손 씨는 결국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됐다.

산재환자에게 재활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손복식 씨. 아무리 주위에서

좋은 말을 해줘도 자기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요즘도

매일 근력운동을 통해 스스로

건강해지기 위해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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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나눔54

빠른 복귀 통해 업무 수행 능력 이상 무

이효진 잡 코디네이터는 손 씨가 원직 복귀가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오자,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에 워크 하드 트레이닝을 의뢰해

집중 재활치료를 받게 했다. 동시에 회사와

업무 전환에 대해 논의하며 손 씨가 회사로

돌아갈 수 있는 물꼬를 터나갔다. 손복식 씨는

일단 마음을 먹자 일할 때처럼 아주 모범적인

환자로 변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재활

스포츠와 작업 능력 강화 프로그램을 수행했다.

처음엔 ‘다 나으면 생각해보겠다’던 회사

측에서도 이효진 잡 코디네이터가 직장 동료 화합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차츰 입장을 바꿨다. 손 씨의 업무를 대신하던 직원은

손 씨가 다시 원업무로 돌아올 때까지 몇 달간 그 일을 계속하기로

했고, 회사 측도 어깨에 무리가 가지 않는 지게차 운전을 손 씨에게

맡기기로 했다. 결국 6개월 만인 11월 8일 손 씨는 그토록 바라던

직장으로 복귀했다.

“이효진 잡 코디네이터 덕분에 용기를 얻고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심리 상담 덕분에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고, 작업 능력 강화

프로그램 덕분에 다시 돌아온 직장에서 별 무리 없이 다시 원래의

일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정말 고맙고 또 고맙죠.”

손 씨는 얼마 전부터 목재 재단 업무에 복귀했다. 무리하면

재발할지도 몰라 조심하다가도 상품은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가끔 무리해서 어깨 통증을 느낄 때도 있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그런 걱정을 덜어도 될 듯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지원하는 클린 사업장에 선정되도록 이효진 잡 코디네이터가

주선해서 조만간 작업 환경이 개선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더 아프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손복식 씨의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심리 상담 덕분에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고,

작업 능력 강화 프로그램

덕분에 다시 돌아온

직장에서 별 무리 없이

원래 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정말 고맙고

또 고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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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나눔56

희망 안테나

경북 칠곡군 석적읍의 한 목재 가공업체에서

일하던 손OO(52) 씨는 작업장에서 합판을 들어

올리려다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한 결과 회전근개 파열 판정을 받았다.

구미 시내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후

복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 부위가 다시

찢어지고 말았다. 결국 일을 포기해야 했다.

직장을 잃는 것도 두려웠지만 평생 다친 어깨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더 괴로웠다.

그때 한 젊은이가 찾아왔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운영하는 대구병원 소속 박상건 씨였다.

직업 평가사인 그는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된 손 씨의 부상 정도를

파악하고, 그의 재활과 복직을 돕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다시 일할 수 있으니 재활 프로그램을 받아보자고 설득하더군요.

자신이 없었어요. 프로그램을 받아도 다시 어깨가 찢어지면 어떡하나

두려움이 컸죠. 하지만 자신감 있는 태도와 회복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해주어 믿고 따르기로 했지요.”

“대구병원의 경우

산재근로자의 신체적

재활치료뿐 아니라

사회 복귀를 위한 직업

재활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하는 점이 다른

재활 병원과 뚜렷하게

차별되는 요소다.”

“재활에서 복직까지, 원스톱으로 서비스합니다”

근로복지공단 대구병원

산재를 당한 후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일을 포기해버리는 많은 산재근로자.

대구병원 직업사회재활팀의 목표는 이들을 다시 사회의 일꾼으로 되돌려놓는 것이다.

이들을 설득해 재활을 시키는 한편 고용주를 만나 사정도 해야 하는 직업사회재활팀의

사고 이전으로 산재근로자를 되돌려놓기 위한 재활과 복직 프로젝트. 글 김인수 사진 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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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나눔58

과학적 직무 분석으로 산재근로자 재활 용기 북돋아

박 평가사가 손 씨에게 믿음을 준 근거는 바로 직무 분석이었다.

박 평가사는 손 씨가 어떤 일을 어떤 자세로 했는지, 작업하는 물건의

크기와 무게, 개수, 작업장 환경 등을 꼼꼼히 분석해 그 결과를

손 씨에게 제시했다. 그리고 재활 프로그램을 이수한 후 어느 정도

일할 수 있는지를 수치로 계산해 손 씨를 설득한 것이다.

박 평가사의 이러한 근거 제시에 두려움을 떨치고 대구병원에서 재활

프로그램을 이수한 손 씨는 결국 복직에 성공했다. 업체 사장 역시

박 평가사가 제시한 회복 데이터를 보고 두말 없이 손씨를 복직시켰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산재를 당하신 분은 스스로 포기하는 마음이

강하고, 고용주 입장에서는 한 명이 아쉬운 작업장에서 노동력에

손실을 입은 직원을 복직시키기 꺼리는 거죠. 결국 양자 모두를

설득해야 하는데, 최고의 무기는 역시 수치로 나타난 데이터입니다.”

박 평가사는 데이터를 산출해내기 위해 수차례 작업 현장을 찾아

일의 내용과 자세, 주변 환경, 작업

도구, 무게, 사용하는 힘 등을

파악한다. 그리고 산재근로자의 현재

상태를 체크한 다음 작업에 필요한 힘

사용량을 끌어올리기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대구병원은 산재근로자의 직장 복귀를

위해 이 같은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몇 안 되는 국내 병원 중 하나다.

지난 2012년 4월에 문을 연 이곳은 현재 국내

재활치료의 모범 병원으로 손꼽히기도 하다.

특히 산재근로자의 신체적 재활치료뿐 아니라

사회 복귀를 위한 직업 재활까지 원스톱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다른 재활 병원과 뚜렷하게

차별되는 요소다.

현재 대구병원에서는 산재근로자의 원직장

복귀를 지원하기 위해 두 가지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하나는 작업 능력 강화

프로그램이며 또 하나는 직업 복귀 소견서 발급

업무다. 작업 능력 강화 프로그램은 대상에 따라

2주~3개월에 걸쳐 이루어지는데, 작업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과 평가 그리고 심리

치료가 주내용이다.

작업 능력 강화는 다친 부위에 대한

근력 치료와 모의 작업 등의 순서로

이루어지고, 복귀 시점에서는 사업장에서

직접 작업을 해보는 것으로 이어진다.

또 직업 복귀 소견서 발급은 산재근로자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는지를 기계 시스템을

통해 파악해 복귀 가능 여부를 판별하는

것으로, 산재근로자 모두 대상이며 무료로

발급해준다.

“일반 병원에서 육체적 평가에 주력한다면

대구병원에서는 산재환자의 주변 상황까지

평가하고, 실제로 이곳에서 치료를

받으면 재활 가능성도 높고요. 그런데

산재근로자는 치료받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요. 재활치료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몸의 회복 여부에 따라 보상금이 적어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지요. 다친 후 처음 6개월이

중요한데, 치료 시기를 놓치면 건강을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보상금을 조금 더 받기

위해 치료를 포기하고 평생 불편한 몸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지요.”

이강우 병원장의 말이다. 이 원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재활치료 분야 전문가다.

미국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 교수와

삼성서울병원 국제진료소장을 지낸

이 원장은 평소 제대로 된 재활전문병원

설립을 꿈꿔왔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의

“산재근로자의 경우

치료받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요. 재활치료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장애

등급 수가 높으면 보상이

적어지는 점 때문이지요.

다친 후 처음 6개월이

중요한데, 치료 시기를

놓치면 건강을 회복하기가

어렵습니다.”

Page 31: 2014 7 8 희망나무 고(스프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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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나눔60

제의에 선뜻 연고도 없는 대구로 내려와 병원 건립을 진두지휘했다.

환자를 위한 최선의 시설을 만드는 데 주력한 결과, 재활 부위에 따른

치료실은 물론 수중치료실 등 국내에서 보기 드문 치료실도 갖추었다.

특히 병실은 공간을 분리해 침대를 배치하는 등 일반 병원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최적의 환경을 구현했다.

산재근로자의 재활과 직업 복귀를 위해 직업사회재활실을 꾸렸고,

직업 재활사, 직업 평가사 등의 인력을 배치했다. 이는 국내 다른

재활 병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분.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사회복지사가 이를 맡아 하는데, 사회 복귀를 위한 심리적 안정과

조언을 하는 데 그치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고용주 만나 서너 번 설득은 보통

대구병원에서는 산재근로자의 원직장 복귀를 위해 직업 평가사가

직접 산재근로자와 고용주를 만나 현장을 점검하고 복직을 권고하며

설득한다. 양자 모두 복직을 꺼리는

부분이 있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 번, 네 번 만나고 설득하는 것은

보통. 그렇게 해서 지난해엔 작업 능력

강화 프로그램을 이수한 산재근로자

가운데 75.7%가 원직장에 복귀했다.

이는 여타 기관의 복귀율 58.2%보다

17.5%가 높은 수치다.

“산재전문병원이 늘어나면 좋겠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산재 전문 팀을 갖춘 병원이

늘어나야 합니다. 이것이 부족하다 보니 충분히

다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스스로 포기하거나

방치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지요.”

사람이 다치거나 아프면 최대한 고치고

다시 생활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의사의

직업 본능. 재활 분야에서 평생을 일해온 이

원장의 입장에서는 자의든 타의든 다친 후

일을 포기하는 이를 보면 안타깝다. 그래서

재활전문실 직원들에 대해 한 명이라도 더 일할

수 있도록 산재환자를 설득해달라고 독려한다.

쾌적한 병실 환경부터 수중치료실까지….

대구병원은 재활치료를 위한 최고·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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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the 나눔

“처음엔 반응이 시큰둥했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받은 이들의 평이 좋자 너도나도 상담에

적극적으로 응하기 시작했어요. 상담자들의

평균 평점이 5점 만점에 4.7이 나왔으니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죠.”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위치한 킨텍스 문정은

대리의 말이다. 올해 3월, 근로복지공단에서

기업에 지원하는 EAP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킨텍스에서는 90여 명의 직원 가운데 40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심리와 재무 상담을

받았다.

‘상담’이라고 하면 왠지 꺼리는 한국인의 풍토

속에서 50%에 가까운 직원이 상담을 받은 것은

쉽지 않은 일. 그만큼 이 프로그램의 효과와

신뢰를 높이 샀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란 기업이 소속 근로자의

직무 만족도나 생산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근로자가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진기업복지제도의 하나. 주로 상담을

62

희망 지킴이

“스트레스가 개인,

더 나아가 기업의

업무 능력과 직결되는

현대사회에서

이 같은 제도는 절대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다.

하지만 무료로 지원함에도

아직 이 제도를 모르거나,

알고 있다 하더라도

사업주가 도입하길 꺼리는

경우도 많다.”

“EAP로 고민 털어내니 업무 능력 쑥쑥”

직원 절반으로 확대된 성공 프로그램 실천, 킨텍스

고민 없는 사람이 있을까? 직장 내 구성원이 개인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직업 능률, 더 나아가

회사의 생산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이를 해결하기 위해 킨텍스에서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지원하는 EAP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95% 이상 만족도를 자랑하는 EAP 효과를 킨텍스에서 알아본다.

글 김인수 사진 임익순

(왼쪽부터) 컨설턴트 임형석 씨와

킨텍스 문정은 대리, 한국EAP협회

최유진 씨는 좀 더 효과적으로

상담하기 위해 수시로 모임을 갖고

의견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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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the 나눔64

통해 이루어지며 재무, 법률, 이직과 전직, 조직 내 갈등, 정서와

성격부터 학업, 자녀 양육과 부부 관계, 성희롱과 성폭력 등 개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상담 대상이다. 상담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이루어지며, 300인 미만의 중소기업과 소속

근로자가 단체, 혹은 개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개인, 더 나아가 기업의 업무 능력과 직결되는

현대사회에서 이 같은 제도는 절대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다.

하지만 무료로 지원함에도 아직 이 제도를 모르거나, 알고 있다

하더라도 사업주가 도입하길 꺼리는 경우도 많다.

“일부 사업주의 경우 직원과의 상담을 통해 회사 기밀이나 문제점이

외부로 새나가지 않을까 두려워해 이 제도를 꺼리기도 해요.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또 담당 직원이 자신의 업무가

늘어난다며 외면하는 경우도 많고요.”

근로복지공단의 위탁을 받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국EAP협회

상담팀 최유진 씨는 직원들에게 꼭

필요하고, 회사를 위해서도 도입해야 할

프로그램이 일부 사업주나 직원의 부정적

시각 때문에 도입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안타까워했다.

갈수록 커져만 가는 직장인의

스트레스를 발산하고 풀어내는 통로를

마련해야 함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리고 그에 적당한 통로 중 하나가 바로

EAP라고 할 수 있다.

2009년 실시 이후 이 프로그램은 그 효과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프로그램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스트레스 관리 능력이나

업무 몰입도, 조직 관계 만족도, 신체·정서적

안정감·자신감·자존감 회복 정도 등 다양한

항목에서 뚜렷한 성과를 나타낸 것이다. 이는

킨텍스에서도 마찬가지다.

킨텍스가 이 프로그램을 도입한 데는 문정은

대리의 역할이 컸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문 대리는 직장인의 심리적 문제가 작업 능률에

대규모 행사장에 위치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데다 젊은 직원이 많아

늘 활기찬 분위기의 킨텍스. EAP 실시 이후에는 밝은 표정까지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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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the 나눔

갖는 경우도 많다.

현재 킨텍스에서는 크게 재무와 심리 두 분야의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세무사나 금융감독원, 병원, 전문가 등과도

연결해주고 있다. 병원이나 전문가와 연계할 필요가 있는 경우 4회에

걸쳐 무료로 지원한다.

EAP의 효과는 일순간에 그리고 바로 그자리에서 수치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위기는 느낄 수 있다. 사무실에 감도는 분위기

그리고 직원들의 표정, 말하기 어려운 사정을 누군가에 털어놓고

나면 그 스트레스가 상당히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또 상담을 통해

어느 정도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가닥을 잡게 되면 당사자가 느끼는

만족감은 다른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킨텍스의 경우 비정규직 직원부터 팀장급 직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이 상담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상담을 받으면 다른 직원이

혹 문제 있는 사람으로 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하지 않게 되었다.

“‘털어놔봤자 뭐 하겠어. 누가 해결해줄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상담해보니 제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내가 모르는 다양한

해결 방법이 있고,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받으며 고민할 거리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과 근로복지공단에서

EAP를 지원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회사에

적극 건의했다.

“상담료가 얼마나 비쌉니까. 외국의 경우

비싼 돈을 들여 일부러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무료로

지원하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죠.”

문 대리는 반신반의하던 윗선을 설득해

3월부터 EAP를 실시하고 있으며, 그 효과가

긍정적으로 나타나자 윗선에서 지속적으로

실시하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직원을

상담실로 이끄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턱대고 상담받으라고 하면 모두가

손사래를 치는 것이 현실. 그래서 문 대리는

묘안을 짜냈다.

“연말정산 환급금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라거나 간단한 성격 테스트 용지를

주고, 그 결과 나타난 당신의 성격을

알아보라고 하는 등 가벼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했죠. 상담이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여기니 별 부담 없이

상담실로 향하더라고요. 이후 상담받은

이들이 모두 좋았다고 하니 너도나도 상담을

받기 시작했어요.”

10분쯤 궁금한 점 물어보고 나오겠다고

상담실에 들어선 이들의 상담 시간이 한

시간을 넘기는 것은 보통. 대부분 다음을

기약하고, 또 회사 밖에서 개인 상담 시간을

아니었는데 말이죠. 아무튼 고민이 반쯤 해결된

듯해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재무 상담을 받은 P 씨는 확실히 상담 효과가

있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행복은

나누면 배가되고, 어려움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바로

EAP 실시 현장인 셈이다.

대규모 전시회장에 위치해 수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데다 젊은 직원이 많은 까닭에 늘

활기차게 느껴지는 킨텍스 사무실. EAP 실시

이후엔 밝은 분위기까지 더해졌다며 직원들은

만족스러워했다.

상담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을 감안해 성격 테스트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상담으로 유도한다.

재무와 법률, 성격부터 육아에 이르기까지 원하는 부분에

대한 상담이 이루어지며, 필요 시 전문가와 연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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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the 공감

이영철의 마음 그림

꽃랑이와 희망새

추억은

시간 속에 담고

슬픔은

가슴 속에 담고

용서는

사랑 속에 담고

희망은

내일 속에 담아

너에게 부치는 꽃 편지

★이영철 화가는 세상의 작고 여린 곳을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소시민의 사랑과 희망 그리고 너른 들판에 핀 풍성한 꽃 같은 풍요로움이 담겨 있습니다.

순수하고 따스한 그의 그림과 글을 보며 마음을 다독여보세요.

‘꽃랑이와 희망새’, 34.8×27.8cm, 캔버스에 아크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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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the 공감

감성 여행

국토의 동쪽 끝에서만나는 일본 그리고 1900년대구룡포 근대역사문화거리

대게와 횟집이 즐비한 구룡포항. 골목을 슬쩍 접어들면 세월을 건너뛴 듯 풍경이

바뀐다. 일제강점기가 시대 배경인 드라마에서나 봄 직한 골목 모습. 이곳엔 일본의

집과 문화 그리고 100년 전 한국인과 일본인 삶의 이야기가 곳곳에 남아 있다.

글 김인수 사진 임익순 일러스트 문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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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떼를 놓치지 마라”, 가난한 일본 어부들의 엘도라도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은 일본 전통 가옥.

미리 알고 오지 않았다면 당혹스러웠을 게 분명하다. 낯설지는 않은,

그러나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드는 곳. 국토의 동쪽 끝자락에서 ‘일본’을

만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편치만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일제강점기의 감정 찌꺼기가 최근 일본 우경화 상황과

맞물려 그 색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 마을은 일제 수탈 계획의 일환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다. 그저 몇몇

일본인이 먹고살기 위해 애쓰다 조성된 마을이다. 그래서 그 시대의 적개심을

굳이 이곳에서 느낄 필요는 없다.

1902년 일본 야마구치 항에서 50여 척의 일본 어선이 고등어 떼를 뒤따랐다.

몇 날 며칠을 지나 그들이 닿은 곳은 조선 땅, 구룡포였다. 이곳엔 고등어뿐

아니라 꽁치, 정어리 등 물고기가 넘쳐났다. 그것을 본 가난한 일본 어부들이

조선 땅에 정착을 시도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도가와 야사브로라는 사람으로,

1902년 장기면 모포리에 터를 잡았다가 1908년 구룡포로 이주해 왔다.

이후 이곳은 일본의 조선 내 어업 전진기지로 각광받으며 일본인이 속속

이주해 1932년에는 287가구에 1161명이 거주할 정도로 규모가 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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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골목길에서 만나는 100년 전 일본

1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일본인은 모두 떠났고, 그들이 살던 집들은 점점 쇠락해져 거의 무너져 내릴 순간에

포항시의 손길이 닿아 새롭게 단장되고 조명받고 있다. ‘근대역사문화거리’라는 조금은 과한 이름으로.

모양이 조금씩 다른 일본의 가옥과 현재 ‘호호면옥’이라는 간판이 붙은 당시 여관, 우체통이나 인력거 같은

그 시절의 소품 몇 가지 그리고 내부에 일본 민속품을 전시해놓고 차를 파는 찻집, ‘구룡포근대역사관’이란

이름이 붙은 그 시절 이 지역의 실력자이던 하시모토 젠기치의 살림집 등을 돌아보는 것이 이 거리에서 맛볼

수 있는 일본 문화의 전부. 그래도 주말이면 골목길을 다니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한국인은

물론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들러 차를 마시는 후루사토야 찻집은 현재 일본인이 인수해 운영한다.

각종 일본 생활 소품으로 집 안 구석구석을 장식해 일본의 한 가정집에서 차를 마시는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일본 차를 팔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인 관광객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는 편. 구룡포근대역사관은

그 시절의 가재도구를 통해 하시모토 젠기치 가족이 어떻게 살았는지, 또 당시 일본 세력가의 집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집 한쪽에 이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사진을 걸어놓고 전시실로 꾸며놓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생뚱맞다. 근대역사관이라는 이름을 살리기 위해서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일본인

집 안에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보여주는 전시실이라니….

일제강점기에 세력가이던 하시모토 젠기치의 집.

지금은 구룡포근대역사관이란 이름을 달고 있다.

이곳에는 하시모토 젠기치가 생활하던 모습을

재현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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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74

구룡포항 찾아가기

한국과 일본, 그 복잡한 감정의 단면을 보여주는 구룡포공원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한일 간의 감정은 이곳에서도 뚜렷하게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거리 뒤편 산 언덕에 자리 잡은

구룡포공원. 공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엔 비석이 죽 늘어서

있는데, 본래는 과거 이 지역에서 이름깨나 날린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그 이름들은 시멘트로

가려졌고, 대신 그 반대 면에 한국전쟁 희생자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그뿐 아니라 공원 내에 거대하게 자리한 도가와

야스브로 송덕비 또한 그 이름을 시멘트로 덧칠해 보기에

부담스러운 돌덩이로 남아 있다. 과거 자신들의 잘못을 끝내

인정하지 않는 일본, 그러기에 일본에 대한 감정을 깨끗하게

털어버릴 수 없는 한국. 이 어긋나는 관계의 단면을 한국의

한 어촌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다.

구룡포공원의 계단을 따라 늘어선 위령비. 본래 일본인들 이름이 새겨져 있었으나 시멘트로 덧칠하고

그 반대 면에 한국전쟁 당시 이 지역 출신 사망자들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구룡포공원의 정자

옆에는 부동명왕이라

새겨진 조그마한 불상이

서 있다. 일본에서 믿고

있는 불교 형태의 일종인

밀교 5대 명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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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78

실수는 원하는 것을 드러낸 무의식의 반영

프로이트가 쓴 <실수의 분석>이라는 책을

보면 사람은 실수를 ‘자신도 모르게 저지른

잘못’이라고 여기지만, 실은 무의식의 깊은

곳에 그렇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한다. 즉, 자신은 모르는

것처럼 여기지만 실은 의도된 잘못이라는

것이다. 의도된 잘못이든 자신은 모르는

잘못이든 사람은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럴 때 바로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면서 사과하면 대체로 실수를

용서하게 마련인데, 문제는 실수를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때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직장 생활에서도 실수는 수없이 일어난다.

아주 작은 실수부터 어떤 경우는 회사나

부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큰 실수까지

종류도 많다. 그런데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그러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감추려

거짓말을 하면 아무리 유능한 인재라도 조직은 거부하기 마련이다. 능력보다 성실성을 인정받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실수에 대처하는 자세는 그중 좋은 잣대가 될 수 있다.

글 김용전(작가, 커리어 컨설턴트) 일러스트 조성흠

차마 정직하게 고백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물론 용기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나에게 치명타가

되기 때문에 어떡하든 숨기려는 마음이 있다.

여기,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 한 직장인이

있다. 이 실수를 고백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뒤따라 발생하는데, 과연 그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번에 처음 이직하는 경력 4년 차

직장인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직 면담을

하기 전에 현재 받는 연봉보다 20%를 꼭 더

올려 받아야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지금

받는 연봉이 3000만 원이니 3600만 원을

받는 것이 목표인데요, 네고(nego, 협상)를

하더라도 반드시 3500선은 지켜야겠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사장님이 갑자기 지금

얼마를 받느냐고 물었을 때 저도 모르게

3500이라고 대답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직장 처세술

알고 둘은 모르는 격인데, 왜 그런가 하면

나중에 그 거짓말이 밝혀졌을 때 퇴사

이유까지는 안 된다고 치자, 그러면 편안하게

열심히 회사에 잘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가? 힘든 이야기다. 회사에서 사람을

쓰는 데는 능력을 보는 것이 첫째 같지만,

사실은 성실한 사람을 더 우선으로 친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아무리 유능해도 쓰지

않는 것이 조직의 원리다. 따라서 이분이

고의든 아니든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로

크게 잘못한 것이며, 뒤늦게라도 제대로

회사에 다니고 싶으면 가급적 빨리 바로잡는

것이 좋다고 본다. 그리고 필자에게 질문한

의도가 거짓을 바로잡을 방법이 아니고

책정된 높은 연봉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는 거라면 그건 자신의 거짓을

도와달라는 이야기인데, 그런 질문에는

답변할 수가 없다.

이게 그대로 인정되면서 20%를 더 받기로

협의했으니까 총액이 4200만 원이 되어버린

겁니다. 인사 담당 임원이 일주일 이내로

원천징수 영수증을 내라고 하는데,

제 거짓말이 탄로 날까 봐 두렵습니다.

자료에 명시되지 않은 비용을 받았다고

하든지 원천징수 영수증을 어떻게

고쳐보든지 무슨 조처를 취해야 할 것 같은데,

이게 나중에 발각되면 퇴사 사유가 되는

건가요?”

거짓말하는 사람은 유능해도 소용없다

이분의 생각은 너무 앞서 가 있다. 본인의

실수를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보다 일단

받기로 한 연봉은 고수한다는 원칙 아래

그것을 정당화할 방법을 찾고 있으니까.

욕심에 눈이 멀어 갈수록 태산인 쪽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하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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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게 책정되었다 하더라도 역시 현재 받는

연봉을 속인 것만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

거짓말에 대한 책임은 감수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원천징수 영수증을 냈을 때 사실과

다르다고 합격이 취소되어도 아무런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처럼 정말 순간의 실수로 그랬다면

안타까운 면이 없지 않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분의 연봉이 재조정되어

줄어드는 것은 상관없지만, 자신이 고의로

거짓말한 걸로 오해되어 합격이 취소되는

사태만큼은 면해야겠다는 입장이라면

그 마음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만약 정말로

그런 상황이라면 필자의 생각에는 연봉

협상을 담당한 인사 책임자를 사무실이 아닌

밖에서 개인적으로 만나 솔직하게 털어놓고

상담하는 게 좋을 거라고 권했다. 뜻하지

않게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해버렸는데, 이제

와서 그냥 솔직하게 고백하려니까 고의로

★글쓴이 김용전은 작가다. 현재 방송 중인 KBS 제1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에서 그가 맡고 있는 ‘직장인 성공학’은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그만의 현실적 조언이 입소문 나면서 최장수 인기 코너가 되었다. 특히 누구보다 직장인의 고민을 공감하는 그는 “성공한

직장인보다 행복한 직장인이 돼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저서로 <회사에서 당신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는 법>, <직장신공>이 있다.

그러나 이분이 당황해서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을 잡지 못하는 것일 뿐 정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필자는 성실하게

답변해줬다. 정반대의 경우라는 건 이분이

질문에서 말한 “저도 모르게 3500만

원이라고 대답해버렸습니다”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사실은 성실하고

착한 분인데, 당사자 말대로 연봉을 많이

받으려는 의욕이 앞서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순간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아마도 자기가 연봉을 높게 불러도 회사가

당연히 깎지 않을까 생각한 건데, 밀고

당기는 과정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예상이 빗나간 것인데,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걸 정직하게

이야기해봐도 회사에서는 액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고의로 거짓말을 했다고

단정 지어 합격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나쁜 의도가 없는 실수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건데, 실제로 결론은 그럴 개연성이

많기 때문에 그런 사태만큼은 피하고 싶다,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물어본 거라면 무조건

정직하게 말하고 연봉을 바로잡으라고만

조언하기에는 좀 난감한 측면이 있다.

합격이 취소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실수를 인정하고 해결하는 것이 진짜 능력

그러나 더 엄격히 말하면 이분 예상대로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설령 연봉이 지금보다

식의 변명 같은 건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회사도

없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꾸며대기로

맘먹는 순간부터 진짜 고의로 거짓말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격언이 왜 있겠는가? 우리가 살다

보면 신이 아닌 인간인 이상 고의가 아닌

실수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그 거짓말을 덮으려고 또 다른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얼마 뒤

이분에게서 감사 편지가 왔는데, 밖에서 인사

담당 책임자를 만나서 솔직하게 고백한 결과

그 임원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당신은 정말 요즘 보기 드문 사람입니다.

대부분 약삭빠르게 변명으로 거짓말을

감추려 할 텐데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다니요. 사장님이 그렇게 연봉을 높게

책정했을 때는 당신이 그만한 능력이 있다고

보아서 그랬을 테니 내가 굳이 그걸 깎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어쨌든 당신은 요즘

내가 뽑은 사람 중에 가장 성실한 분 같아서

좋습니다. 이번 건은 고의가 없는 실수로

보아서 넘어갈 테니 열심히 일하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거짓말을 한 걸로 오해받을 것 같아 두렵다,

꼭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겠느냐, 이렇게

물어보면 된다. 어쨌든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이기 때문에 연봉이 깎이든 입사가

취소되든 깨끗이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나를 일부러 거짓말하는 사람으로는 생각지

말아달라, 이 점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기 때문에

반드시 좋은 결론이 나올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의외로 성실성을 인정받으면서

잘 해결될 수도 있다고 본다. 서류에

명시되지 않은 비용을 별도로 받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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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영상미, 의미 있는 인생과 사랑에 대한깊은 통찰

영화 <그녀(her)>를 보고

글 배종신(산업재해보상보험심사위원회 차장)

얼마 전 서울 시내 예술극장에서

영화 <그녀(her)>를 봤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 호아킨 피닉스(주인공 테오도르),

루미 마라, 에이미 애덤스 등이 출연하는데,

특히 스칼릿 조핸슨(운영 체제인 OS1)은

목소리만으로 출연한다.

테오도르는 어릴 때 만나 결혼 생활을

한 아내와의 별거로 외로움에 빠져 운영

체제를 구입한다. OS1이라는 제품인데,

인공지능을 갖추어 서로 대화도 하고

전자메일을 읽어주고 일정 등 모든

일상생활을 함께할 수 있다. 외로운

테오도르는 여성 목소리인 OS1과의 대화로

점차 사랑을 느낀다. OS1 역시 몸은 없으나

모든 사리 판단이 가능하며, 특히 가슴

뛰고 질투 나는 사랑의 감정을 배워가면서

테오도르와 연인 관계로 발전해간다.

테오도르는 OS1과의 관계에서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을 배운다. 직업이 남의

사연을 듣고 손으로 편지를 대신 써주는

것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오랜 기간 아내와

교감 없이 부부 생활을 해왔고, 급기야

서로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별거까지 하던

테오도르였다.

그는 OS1처럼 상대방의 말과 감정, 상황

등을 들어주고 함께 공감해주며 최선을 다해

삶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공동 운명체가

사랑하는 관계임을 절실히 느낀다.

테오도르는 결국 용기를 내어 아내와의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그리고 아마

OS1과 본격적으로 교제할 터였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OS1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어서 질투나

사소한 다툼도 가능했지만, 한편으론

기계였기에 수백 명과 대화도 할 수 있고

사랑까지 가능했다. 즉, 테오도르는

사랑하는 상대방의 수백 명 중 하나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러는 사이 OS1은 자신이 테오도르와의

사랑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면서도 관계를

정리하고 떠나겠다고 통보한다.

테오도르는 이별의 아픔을 느끼면서

사랑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는다.

OS1은 기계일까? 적어도 사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운영 체제로서 귀에 꽂는

이어폰으로 이어지는 대화만으로도 사랑이

가능함을 영화는 매우 리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면서 기계(운영 체제)도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함께하는데,

왜 우리 인간은 정작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 주고 상처받으면서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가를 다시금 돌아보았다.

즉, 이 영화는 기계나 사람 아닌 것과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지를

코치해주는 영화라 할 것이다. 기계의

디지털 문명을 통해 사람의 아날로그 사랑을

확인하는 맛, 이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감독 스파이크 존즈 출연 호아킨 피닉스, 스칼릿 조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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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우왕 때 장원급제해 관직에 들어선

젊은 맹사성은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다.

맹사성은 뛰어난 스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갔다.

“스님이 생각하시기에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착한 일을 많이 베풀면 됩니다.”

“그건 세 살 어린아이도 다 아는 이치인데,

내게 해줄 말이 그것뿐이오?”

맹사성은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자 스님이 잠시 앉아 차를

한잔 하자며 맹사성을 붙들었다. 그러고는

맹사성에게 차를 따라주는데, 찻잔에 차가 넘쳐 바닥을

적시는데도 계속 차를 따랐다. 맹사성은 다시 화를 냈다.

“차가 넘쳐 바닥을 적시는데 이게 무슨 짓입니까?”

“찻물이 넘쳐 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는지요.”

스님의 말에 앉아 있기가 부끄러웠던 맹사성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려다 이번엔 문틀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쳤다.

그러자 스님이 다시 나직이 한마디 덧붙였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지요.”

이날 큰 깨달음을 얻은 맹사성은 이때부터 자만심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삼가고 절제하는 모습을 갖추고자 노력했다.

20세 때 얻은 깨달음, 평생 가슴에 품은 청백리

맹사성

꿈을 현실로 바꾸는 성공의 열쇠절제

절제란 자신과의 싸움이다. 한발 더 나아가려는 본성을 억누르고, 지나치지 말라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다독여야 하는 힘겨운 싸움이다. 솟구치는 다양한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면 큰

실패를 겪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마음속 욕구를 다스려 성공한 인생을 만들어가는 키워드

‘절제’. 스스로의 인생을 절제해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본다. 글 권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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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멘토 스쿨

the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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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

봉사를 통해 어린 시절 행복을 세상에 돌려준 성자

슈바이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슈바이처는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날 동네 친구

게오르그와 싸움이 붙었는데, 힘에서 밀린

게오르그가 “나도 너처럼 매주 두 번씩 고기

수프를 먹는다면 너한테 이길 수 있을 거야!”

하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그는

가난과 부유함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생의 반을 30세까지로 정하고,

그때까지는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그 이후에는 타인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1905년 프랑스 선교단의 보고서를 본

아인슈타인은 30세 이후의 삶에 대한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변신을 꾀했다. 그 보고서에는 아프리카인이 의사가 없어

고통받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때부터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밤낮으로 일과 공부를 병행해 36세에 의사가 되었으며,

아프리카의 가봉 오고웨 강변에 정착해 의료 활동을 시작했다.

점차 세인에게 알려진 그는 1928년 괴테상을 수상하고,

1951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 되었으며, 1952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헌신과 봉사로 대표되는 슈바이처. 그가 이러한 인물이

되기까지는 어린 시절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한 자신이

혹 지나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경계한 절제력이 바탕이 되었다.

인쇄공으로 불러주길 원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

발명가이자 정치가 그리고 사업가이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며 100달러짜리 지폐의 인물이 될 만큼

미국인에게 추앙받고 있다.

젊은 나이에 신문사를 차린 그는 신문사가

커지면서 권력가와 재벌가 인물들과도

교류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추한 모습을

자주 접한 그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삶의 목표를 대통령이나 정치가, 사업가가

아닌 완전한 인격자가 되는 데 두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열세 가지 덕목을 정했다.

‘절제, 침묵, 질서, 결단, 절약, 근면, 진실,

정의, 중용, 청결, 침착, 순결, 겸손’이 그것이다.

절제를 가장 앞에 둔 것은 약간의 부와 권력만 얻어도 그것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너무나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난로, 흔들의자, 피뢰침, 이중 초점 안경 등 수많은 물건을

발명했음에도 단 한 건의 특허도 받지 않았다. 발명은 대중에

대한 봉사이며 모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독립 전쟁 당시 프랑스와 외교 협정을 맺어 미국을

독립으로 이끎으로써 미국 건국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그는

미국인의 그러한 존경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죽기 전 자신의 묘비에 ‘인쇄공 프랭클린’이라고

써주길 부탁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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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패션 국가다.

프랑스를 패션 국가로

만든 대표적 인물이 바로

가브리엘 샤넬이다. 20세기

초반 프랑스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선 커다란 모자에 온갖

귀금속으로 치장한 드레스가

대유행이었다. 샤넬은 이 같은

허영과 패션계를 뒤엎었다.

여성들이 코르셋을 벗게 하고, 무릎을 살짝 덮는 실용적 스커트를

입게 했다. 샤넬은 “아름다움은 절제하는 데 있다”고 선언했다.

샤넬의 이 같은 ‘절제의 미학’은 그의 어린 시절 환경과 무관하지

않았다. 수도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샤넬은 성장하면서 자연히

물질과 허위의식에 경계심을 가졌고, 그것이 자신의 패션 세계에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최고의 향수로 꼽히는 ‘샤넬 N°5’ 역시

마찬가지다. 그 안에는 수도원 근처에서 자라던 재스민과 라벤더,

수도원에서 의식을 치를 때 쓰던 귀한 향유 등의 향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고의 향수를 만들면서도 샤넬은 그 향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절제하는 쪽을 선택했다. 일반 향수병이 요염한 여성의

보디라인을 본떠 디자인했지만, 그는 단정한 사각 병에

그 향을 담아 다른 어떤 향수병보다 고귀하고 품위 있는 병으로

인정받았다.

여성의 몸을 감싼 허영과 사치를 걷어낸 패션계의 상징

가브리엘 샤넬

절제력 높이는 생활 습관

완벽하게 혼자 있는 시간 갖기

컴퓨터와 TV, 최근엔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빠져 살아간다. 이 같은 ‘화면’에서 잠시 떨어져 완벽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자. 이렇게 하면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새삼스레 되돌아보며 무절제한

생활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정돈으로 생활 패턴 알기

정리 정돈이 된 주변 환경은 집중력을 높여줄 뿐 아니라 불필요한 시간적·경제적 소비를

줄이고 질서를 부여한다. 사무실이나 작업실에서는 동선과 생활 패턴을 고려해 물건을

배치하면 일을 효율적으로 하는 데 도움이 된다. 2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과감하게

정리하자.

절제력을 키우는 명상법

명상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서를 고양시킨다.

또 뇌에 충분한 양의 산소를 공급해 집중력과 학습력,

감정 조절력 등을 향상시킨다. 실제로 명상을 규칙적으로

한 그룹과 일반 건강 그룹을 비교한 결과, 명상을 규칙적으로

한 그룹은 스트레스 감소, 긍정적 정서 반응, 스트레스

조절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호흡 명상법

1 의자나 바닥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눈을 지그시 감고 한 손을 배꼽 바로

아래에 올려놓는다.

2 아랫배가 불룩해지도록 천천히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아랫배가 쏙 들어가도록

천천히 내쉰다.

3 숨을 내쉴 때마다 숫자를 센다(반복해서 열에서 하나까지 거꾸로 세기).

4 이때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의 긴장을 내려놓는다고 생각하며 숫자를 센다.

뇌파 진동 명상법

1 자세를 편안하게 하고 앉는다.

2 어깨와 목의 힘을 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이 동작을 계속 반복하면 자연스럽게

리듬이 생긴다.

3 마음이 편안해지면 서서히 동작을 멈추고 숨을 깊이 쉰다.

절제력 향상에 도움 되는 음식

절제력을 높이는 데는 알칼리성 음식이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알칼리성 음식만 섭취할 수는

없는 노릇. 비율은 산성 음식 40%, 알칼리성 음식 60%가 좋다. 알칼리성 음식을 섭취하면

에너지는 상승하고 불안감은 감소해 절제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채소 시금치, 오이, 양배추, 당근, 감자 과일 복숭아, 사과, 수박, 포도, 파인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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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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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

TV 열전

종편에서 시작한 다양한 콘텐츠 전쟁

24시간 뉴스 전문 채널 CNN이 처음

출발할 때 회의적 시각이 많았다. 회의적인

이유는 누가 24시간 뉴스를 보려 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1년 걸프전을

생중계하면서 CNN의 진가는 발휘되었다.

이후 10년 만에 발생한 9·11 테러에서는

CNN의 진가를 톡톡히 보여주었다. CNN

사례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한국에서도 뉴스

프로그램이 새삼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냥 뉴스 프로그램이

아니라 뉴스를 매개로 토크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프로그램이

새삼 늘어난 것일까. 그 진원지는 종편이다.

종편에서 시작한 이런 프로는 어느새 KBS,

2014년 종편의 보도 프로그램 편성 비율은

TV조선 48.2%, 채널A 43.2%, MBN 39.9%,

JTBC 14.2% 순이었다. 사업 계획에는

TV조선 24.8%, 채널A 23.6%, MBN 24.3%,

JTBC 23.2%이었다. JTBC를 제외한 나머지

3개 방송사의 비율이 높았다. TV조선은

2014년 보도 프로그램을 47.6%, 채널A도

2014년 38.9%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이는

종합편성채널에 맞지 않는 행태였다.

애초에 종편이 출범한 명분은 다양한 콘텐츠

제작이었다. 약속한 다양한 미디어 환경

조성에 역행하는 와중에 보도 프로그램만

넘쳤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높은 비율을

보인 이유는 현실적으로 종편이 틈새시장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날것 그대로의토론과 논박으로 주목을 끌다

대세로 떠오른 시사 인터뷰 프로그램

시사 토크 프로그램은 전문가가 시사 현안에 대해 토론과 논박을 벌이는 날것 그대로의 대결로

게임의 묘미를 전했고, 시사 문제부터 대중문화까지 다방면에 걸친 이슈를 날카롭게 다루면서 새로운

시청자를 끌어들였으며, 시장의 발견을 이뤘다. 종편에서 시작해 공중파의 흐름을 이끌어낸 시사

인터뷰 프로그램을 알아본다. 글 김헌식(문화 평론가)

SBS까지 비슷한 프로그램을 신설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초기엔 호평 속에서

이뤄진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시청자가

시사 대담 토크 프로를 찾는 이유가

밝혀졌다. 2011년 12월 1일,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종합편성채널이 드디어 출범했다.

동아일보의 채널A, 조선일보의 TV조선,

매일경제의 MBN, 중앙일보의 JTBC가

본격적으로 방송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애초에 약속한 미디어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였다.

그런데 실망스럽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적은 돈으로 되도록 많은 시간을 채우려는

의도가 다분한 것이다. 대표적 유형이

뉴스나 시사를 다룬 보도 프로그램이었다.

메이저에서 밝힐 수 없는 이면과 경험을 드러내다

채널A는 평일 오후 2~6시대까지 4시간

넘게 시사 토크 프로그램을 집중 편성했다.

본방을 기준으로 주간 편성 시간은 채널A가

1500분, TV조선 1475분, JTBC 880분,

MBN 750분 순이었다. 비슷한 포맷의 시사

프로그램으로는 채널A의 <탕탕평평>,

<직언직설>, <돌직구쇼>, JTBC는 <썰전>,

<뉴스 콘서트>, <정관용 라이브>, MBN는

<김미화 공감>, <두루치기>, TV조선은

<시사열차>, <시사탱크>, <황금펀치>,

<돌아온 저격수다>, <신통방통> 등을

선보였다. 처음에는 시사 보도 프로그램은

대개 지상파 방송사에서 선보인 방식과

비슷했다. 뉴스를 전하거나 그와 관련한

대세로 떠오른 시사 인터뷰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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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92

대세로 떠오른 시사 인터뷰프로그램

해석·논평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지만

시청자가 주목한 것은 단순한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바로 시사 대담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고정 편성되었고, 개별 프로그램은

짧게는 55분부터 길게는 90분까지 방송했다.

편성 시간대는 본방을 기준으로 주로

낮 시간대에 집중했다. 하루 동안 벌어진

일들을 다른 방송 프로그램보다 발 빠르게

전한 것이다. 대체로 이런 시사 프로그램은

심야 시간이나 새벽, 그것도 일주일에 한 번

억지로 편성하는 것이 방송사의 통례였다.

이 가운데 대표적 성공 사례를 들자면

채널A의 <쾌도난마>였다. <쾌도난마>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인터뷰 중심의 시사

토크 포맷이었다. 단순히 뉴스를 전하거나

해설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무엇보다 출연자들이 스튜디오 안에서

털어놓는 정보나 지식은 기존 매체에서는

접할 수 없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흡입력이

상당했다. 한 분야에 수십 년간 종사하거나

실제 관련 당사자의 경험과 속내를

방송으로 직접 접할 수 있었다. 메이저

언론에서 언급할 수 없는 이면의 사실까지

방송을 통해 직접 노출시켜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TV조선과

채널A는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 역사적

현장에 있던 인물들이 당시 상황과 체험을

전달하거나, 북한 새터민에게 직접 듣는

생생한 증언은 더욱 사실감 있게 만들었다.

특히 텔레비전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린

중·장년층의 시선을 잡을 수 있었다.

중·장년층에게 익숙한 패널을 섭외하는 것도

인기에 부합했다. 때로는 너무 직설적이고

감정적 발언이 수위를 넘어 방통위의 징계를

자주 받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심층적 정보, 비교 검토를 통한

판단 근거를 보여줘야

종편에 한낮의 시청률을 빼앗긴 지상파는

부랴부랴 한낮의 시사 인터뷰 대담

프로그램을 선보였는데, KBS는 3시의

<뉴스 토크>, 4시의 <황상무의 시사 진단>,

SBS는 3시 10분의 <이슈 인사이드>를

방송했다. 종편 따라 하기라는 비난도

있었다. 그렇다면 지상파의 한낮 시사 토크

프로는 성공했을까? KBS <뉴스 토크>

편성 이전의 KBS 평일 오후 3시대의 평균

시청률은 0.437%였으며, <뉴스 토크> 편성

이후는 0.493%로 상승한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60세 이상 시청자의 KBS <뉴스 토크>

시청률은 1.853%인데, 이는 편성 이전보다

0.356%나 증가한 것이다. 이 시간대의

종편 시사 토크 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이

0.263%인 것과 비교해보면,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이 종편에 비해 1.9배 정도 높았다.

종편에서 시작한 시사 토크 프로그램은 적은

제작비로 효율성을 추구했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시청자와 시장을 확보했다. 하지만

특정 세대에 편중되는 경향은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다매체와 디지털 시대, 미디어의

다양성으로 무수한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심층 정보, 비교 검토를 통한 판단 근거를

시사 토크 프로그램이 보여주어야 한다.

매체는 다양화되었지만 콘텐츠는 오히려

획일적이고, 디지털 상호 간에 무한 복제를

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여기에 가감 없는 질의응답과 토론이

시청자의 눈길을 붙잡기 시작했다. 파격적인

건 편성 시간대와 분량이었다.<쾌도난마>는

낮에 매일매일 시사 현안에 대해 한 시간

동안 다뤘다. 뉴스 현안의 배경이나 이면의

사실들을 캐내어 보여주었다.

시사 토크 대담 프로는 해당 현안 당사자를

스튜디오로 불러 심층적 인터뷰를 시도했다.

때로는 송곳 같은 질문으로 상대방을

쩔쩔매게 했지만, 때로는 심도 있는 논의가

가능하게 했다.

무엇보다 전문가가 시사 현안에 대해 토론과

논박을 벌이는 것이 시청자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날것 그대로의 대결은 게임의

묘미를 전하기도 했다. JTBC <썰전>의

경우에도 시사 문제뿐 아니라 대중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이슈를 날카롭게 다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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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94

웰빙 건강 하우스

최근 일어나는 각종 재난 사고는 기본 수칙만 잘 지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하기도 한다. 이는 직업병도 마찬가지다. 보호구나 장갑을 착용하고 손을 깨끗이 씻는 것처럼

아주 간단한 수칙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직업성 호흡기 질환이나 피부 질환을 막을 수 있다.

글 장규진(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건강관리센터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보호구&장갑 착용, 손 씻기, 작업장 청결

기본 수칙으로 직업성 호흡기 질환, 피부 질환을 물리친다

것이다. 원인 물질 회피의 첫 번째 원칙은

노출 자체를 근본적으로 삼가는 것이며,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마스크 등 보호구를

착용함으로써 조치를 철저히 해야 한다.

당연히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호구를

사용법대로 꼼꼼히 착용해야 한다. 특히

병원에서도 포르말린은 자주 사용하는

물질이므로 병원 종사자에게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 벤젠에 의한 백혈병, DMF에 의한 급성

간독성, 메틸렌 클로라이드에 의한 급성

폐장염 등 다양한 화학물질에 노출됨으로써

생기는 직업병의 경우에도 대부분 기본

보호 조치(건강·안전 설비, 개인 보호구

등)를 통해 100%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업주의

무관심이나 무지, 노동자에 대한 교육

부족이나 노동자 스스로의 ‘귀차니즘’, 또는

감독 소홀 등으로 인해 보호 조치가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보호구 착용 등 기본 보호 조치를

강조할 경우 많은 사람이 ‘관행’이라며 그런

조언을 일축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외국계 기업의 사업장을 방문해보면

그 어떠한 경우에도 안전과 건강을 위한

조치를 소홀히 하지 않고 철저히 지키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관행’이 아닌

‘원칙’을 지키는 사업장은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든다.

직업병은 건강·안전 설비를 소홀했을 때 발병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들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사실 세월호

참사의 여러 원인 중 일부는 근본적인

사업장 안전 관리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사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직업병,

예를 들어 직업성 호흡기 질환(천식 등),

직업성 피부 질환(주로 자극성 피부염 혹은

접촉피부염), 직업성 신경계 질환(예를 들어

노멀 헥산에 의한 하지 마비) 등은 대부분

기본적인 건강·안전 수칙만 잘 지켜도

예방할 수 있다.

직업성 천식을 예로 들면, 이 질환은

기본적으로 일반 천식과 마찬가지로

알레르기 염증에 의해 기관지가 반복적으로

좁아지는 만성 호흡기 질환이다. 기관지가

좁아지면서 숨이 차고, 기침이 나며,

가슴에서 쌕쌕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증상이 반복된다. 원인으로는

꽃가루, 곰팡이, 집먼지진드기, 바퀴벌레

체부 등 다양하지만, 특히 담배 연기나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각종 화학물질 등도

중요한 원인이다. 가구·도장·악기 사업장

등에서 사용하는 TDI와 MDI 등이 직업성

천식의 주요 원인이고, 병원에서 사용하는

포르말린(포름알데히드의 수용액) 등도

천식 유발 물질이다. 직업성 천식 치료

방법은 일반 천식과 마찬가지로 원인 물질을

피하고, 내과적 약물 치료를 통해 관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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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96

하트&하트

“밥은 생명입니다. 생명을 나누고 싶어요”

울주군 덕하리 나눔터에 온 전기 압력밥솥

7명의 중증 장애아와 그들의 두 번째 엄마인 성효련 씨가 시끌벅적 살아가는 울주군 덕하리 나눔터에

선물이 도착했다.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 김이호 과장은 차지고 고소하고 맛있는 밥 한 그릇으로

그들이 더욱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트&하트’ 문을 두드렸다. 핏줄이 아닌 가슴으로 품은

울주군 패밀리의 무지갯빛 이야기가 지금부터 펼쳐진다. 글 양인실 사진 임익순

아이들은 일곱 빛깔 무지개랍니다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에 있는 덕하리

나눔터는 장애인 복지시설이다. 그러나

자세히 간판을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이곳은 시설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인다. 하얗게 칠한 대문은 누구나 반기는

듯 활짝 열려 있고, 안을 살펴봐도 역시

여느 집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곳이

특별하고 남다른 점은 외관이나 분위기가

아니라 거기에 사는 가족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덕하리 나눔터는 7명의 중증 장애아와

그들의 두 번째 엄마인 성효련 씨가

시끌벅적 요란하게, 분주하게 그리고 힘차게

일상을 보내는 곳이다. 7명의 장애아는

1년 사이에 성효련 씨를 찾아와 엄마와

자식이라는 인연을 맺었고, 7명은 서로

남매가 되었다. 빼어난 미모에 재잘재잘

수다를 떠는 공주 엄마 성효련 씨,

푸근한 맏형 진훈, 청개구리 성진,

카리스마 꽃미남 도환, 비닐남 현석,

금방 사랑에 빠지는 송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효준, 미소 천사 정민의 가족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고 뭉클하며

감동적이다. 무엇보다 환하게 웃을 때면

누구나 붕어빵 가족이라고 여길 정도로

그들은 서로 참 많이 닮았다.

차지고 고소하고 맛있는 밥 한 그릇

근로복지공단 울산지사 가입지원부의

김이호 과장이 덕하리 나눔터를 알게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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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98

생각하니 자기 일처럼 기쁘고 뿌듯하다며

‘하트&하트’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새 전기 압력밥솥이 도착한 날, 성효련 씨와

아이들은 밥솥 주위로 일제히 모여들었다.

“아이고 예뻐라. 아까워서 어떻게 쓴대요.

마음 같아서는 송실이 시집갈 때 주고

싶네요”라며 엄마가 환하게 웃었다.

“밥은 생명입니다.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욱 소중하죠. 우리에게 생명을 나눠준

거나 다름없어요. 여러분의 마음을 기억하며

밥도 더 잘 먹고 건강하게 살게요.”

주변이 모두 가족, 늘 감사드려요

14년 전 남편이 데리고 온 현석이는 뇌병변

장애를 앓는 네 살배기였다. 그저 사람

좋고 착하기만 한 남편이 무턱대고 데리고

온 현석이를 바라보는 성효련 씨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러나 부부는 닮았다. 오래지

않아 현석이를 잘 보살피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아이가, 그리고 또 한 명이 들어오더니

1년 사이에 현석이를 비롯해 7명의 아이가

들어왔다. 그 이후로 성효련 씨는 아이들의

두 번째 엄마가 됐고, 아이들은 서로 남매가

되어 지냈다.

한때 빼어난 미모로 울산을 주름잡았다는

전설의 여인이자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 공주로 불렸다는 성효련 씨의 인생은

그렇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내를 끔찍이 사랑하며 아끼던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이제 이 아이들을 책임질 사람은

나밖에 없구나. 난 엄마다. 쓰러지면

안 된다. 아이들을 위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의 빈자리를 아들이 메워준다는

점이다. 성효련 씨의 아들 안도근 씨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직장을 그만두고

덕하리 나눔터 사무국장이 됐다. 그는 군기

반장이자 행정 책임자, 아이들의 운전기사가

되었다. 그만이 아니다.

우연히 배달 왔다가 사연을 알게 된 후

12년 동안 매주 금요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자장면과 자장밥을 배달해주는 중국집부터

주말마다 찾아와 청소, 목욕 등을 돕는

자원봉사자들까지 나눔터의 가족은 셀 수

없이 많다. 이들 모두 핏줄이 아닌 가슴으로

품은 가족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가족, 울주군 패밀리의 일곱 색깔 이야기는

오늘도 내일도 알록달록 예쁜 무지개를

만들어간다.

것은 필연과 우연이 작용했다. 덕하리

나눔터에서 봉사 활동을 한 직원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김이호 과장은 성효련 씨가

잘 아는 지인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얼마 전 TV에서 덕하리 나눔터와

성효련 씨를 소개한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됐다. 계속 겹치는 우연을 김이호

과장은 필연으로 이끌었다. 덕하리 나눔터에

작으나마 도움을 줄 방법을 찾던 김이호

과장의 눈에 ‘하트&하트’ 코너가 들어왔다.

나눔터에 있는 밥솥이 오래되어 밥맛이 예전

같지 않고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안 김이호

과장은 새 전기 압력밥솥을 보낼 수 있도록

부서와 직원을 대표해서 사연을 보냈다.

김이호 과장은 이제 새 전기 압력밥솥으로

지은 고소하고 기름진 밥을 먹고 더욱

건강하고 씩씩하게 지낼 나눔터 가족을

(왼쪽) 핏줄이 아닌 가슴으로 낳고 품은 엄마와 7명의 아이들.

(오른쪽) 집안 뒤뜰에서 활짝 웃고 있는 엄마 성효련 씨,

푸근한 맏형 진현, 그리고 금방 사랑에 빠지는 송실.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신기할 정도로

꼭 선물이 들어온다며 기뻐하는

성효련 씨와 아이들이 덕하리에 도착한

전기 압력밥솥 주위로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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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

나의 버킷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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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가치 있는 삶을 위한 되돌아봄

용기가 필요한 나에게 보내는 응원

긍정의 힘, 어디에서 나오나요?

행복 지수를 높이는 나만의 비법

한창 앞만 보고 달려가시나요?

그러나 이제 숨 고르기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릅니다.

되돌아봄은 절대 후퇴가 아닙니다. 가치 있는 삶을 보살피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나, 가족, 주변을 둘러보세요. 행복, 용기, 응원, 긍정이 거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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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102

사건

희망 물음표

점심시간에 직원끼리 족구하다가 발생한 사고, 산재보험 적용받을 수 있을까?

일러스트 조성흠

점심시간에 외부인을 포함해 직원끼리 족구를 하다가 발생한

사고를 행사 중 재해로 볼 수 있을까요?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의해 통상

종사할 의무가 있는 업무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회사 외의

행사나 모임에 참가하던 중 재해를

당한 경우.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려면 그 행사나 모임의 주최자,

목적, 내용, 참가 인원과 강제성 여부, 운영

방법, 비용 부담 등에 비추어 사회 통념상 그 행사나

모임의 전반적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어야

한다(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7두24548 판결 등 참조).

그런데 이 족구 경기는 이 사건 발굴 조사의 위 현장 책임자인

김○신이 개별적으로 또는 구체적으로 지시하거나 승인한 데 따른 것이

아니라, 원고를 비롯한 조사 보조원 3명이 발굴 조사 현장과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휴식 시간을 이용해 식당 옆에 설치된

족구장에서 이 사건 발굴 조사와 무관한 외부인 1명을 참여시킨 가운데

자율적·자발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특별히 비용이 소요되거나

이를 지원받은 바도 없는 점, 그 밖에 달리 이 족구 경기가 사전에

계획되었다든지, 강제로 참가했거나 사실상 강압적 요구에 의해 했다고

볼 만한 사정을 기록상 찾을 수 없는 점 등을 종합해보면, 이 족구

경기는 사회 통념상 그 전반적 과정이 사용자의 지배나 관리를 받는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족구 경기 중 피고의 사고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처분은 적법하다.

[대법원 2011두22693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판결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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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뉴스

07+08

근로복지공단(이사장 이재갑)은 7월 1일 코엑스에서 ‘산재보험 50주년 기념식’을 거

행했다. 산재보험은 산업화와 더불어 발생하는 산재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1964년

에 도입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제도로, 산재근로자와 그 가족의 생활을 보장

하기 위해 국가가 책임지는 의무보험이다.

이재갑 이사장은 “산재보험이 이 땅에서 산재로 고통 받는 모든 근로자들에게 실질

적인 도움과 희망을 주는 사회보험으로 더욱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앞으로의 50주

년을 착실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산재보험 발전에 기여한 유공자를

포상·격려하고, 고용노동부장관과 한국노총·민주노총 위원장, 유관기관 관계자 등

600여 명을 초청해 산재보험 5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념행사이다.

근로복지공단(이사장 이재갑)과 울산시(시장권한대행 박성환)는 6월 10일 울산시청

상황실에서 ‘산재모병원 건립 협약’을 체결했다. 양 기관은 협약서에서 산재모병원

건립 및 기반조성, 울산시 보건·의료서비스 향상, 기타 산재모병원 건립 및 육성을

위해 필요한 사항에 대해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산재모병원은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가 통과될 경우 울산과학기술대(UNIST) 캠퍼

스 내에 500병상 규모로 2019년 완공할 예정이며, 전국 10개의 근로복지공단 직영

병원을 총괄 조정하면서 연구·의료 능력을 강화하는 일종의 어머니 역할을 할 것으

로 기대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험, 산재보험 50주년!

산재보험 50주년 기념행사 거행

근로복지공단-울산시 산재모병원 건립 협약 체결

산재모병원 건립-운영 협조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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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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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공감

제23회 근로복지공단 직영병원 나이팅게일상 수상

(순천병원 정인숙 간호사)

공단(이사장 이재갑)

은 5월 22일 제23회

직영병원 나이팅게일

상에 순천병원 정인

숙(46) 간호사를 수

상자로 선정했다. 나이팅게일상은 ‘백의의 천사’로 불

리는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받아 사랑과 봉

사 그리고 참간호를 실천하는 간호사에게 수여하는 상

이다. 공단은 전국 10개 직영병원에서 재직하는 간호

사 1000여 명 중에서 추천을 받아 엄격한 심사를 거

쳐 매년 수상자를 선정한다.

수상자인 정인숙 간호사는 1991년 4월 순천병원에 입

사해 23년간 간호 업무를 해온 베테랑 간호사로, 사랑

과 배려로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을 극진히 보살피는

투철한 봉사 정신이 알려지면서 올해 공단직영병원 간

호사를 대표하는 나이팅게일이 됐다.

이재갑 이사장은 “고객에 대한 사랑과 봉사는 국민행

복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소명 의식으로 올해 나이팅

게일로 선정된 정인숙 간호사뿐 아니라 현장에서 아픈

분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직영병원의 모든 간호사

여러분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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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학교안전공제중앙회와 MOU 체결

공단(이사장 이재갑)

은 지난 5월 26일 서

울 영등포구에서 학

교안전공제중앙회(이

사장 한창희)와 ‘학교

안전사고 예방과 산재보험 인식 개선을 위한 업무협

약’을 체결했다. 이번 협약체결을 계기로 양 기관은 서

로의 정보와 자원 등을 공유해 정부 3.0 시대에 상생

의 협업 체계를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지난 5월

21일에는 공단 인재개발원(원장 김영준)과 충북중소기

업종합지원센터(본부장 김정선)가 인재개발원 세미나

실에서 ‘중소기업 동반성장을 위한 교육 지원’ 협약을

체결했으며, 6월 3일에는 근로복지공단과 한국공항공

사 울산지사(지사장 손종하)가 울산공항 이용 증대를 위

한 업무 지원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청년이사회(블루보드) 워크숍 실시

공단(이사장 이재갑)

은 5월 19일(월)부터

이틀간 공단본부(중

구 우정혁신도시) 7

층 스마트룸에서 제6

기 블루보드 워크숍을 개최했다. 블루보드(Blue

Board, 청년이사회)는 이사장과 공단 4급 이하(과장,

대리, 주임)의 실무자급 젊은 직원들 간 소통 채널로,

직원들이 본부 또는 현장(지사)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점과 건의 사항 등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이를 업

무 프로세스 개선 등에 반영하기 위해 운영한다.

이재갑 이사장은 “이번 블루보드 워크숍을 통해 직원

들이 일하면서 힘든 점, 회사에서 개선해줬으면 하는

점, 공단이 국민에게 신뢰받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점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들을 수 있는 기회

가 되어 직원 한 명 한 명의 소리도 소중하게 생각하

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수렴·반영해 애사심을 느낄 수

있는 회사로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산재보험 UCC 시상식 개최

공단(이사장 이재갑)

은 지난 5월 13일 본

부(울산) 스마트룸에

서 2014년 산재보험

UCC 공모전 시상식

을 개최했다. UCC 공모전은 산재보험 50주년을 기념

하고 공단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지난 2월 17일부터

3월 31일까지 약 6주간 공모전을 개최해 60여 편이

응모했다. 공단은 대상을 받은 일러스트레이터 김재효

씨에게 상금 400만 원과 상장을 수여했다. 최우수상

은 유민호, ‘김가람 등 6명’ 2팀에게 수여했고 우수상,

입선 등 총 10개 팀에게 총상금 800만 원을 지급했다.

수상작들은 전국 케이블방송, 보도 전문 채널 등을 통

해 하반기에 방송될 예정이다.

산재보험 50주년 기념 ‘수기 공모전’ 입상작 발표

공단(이사장 이재갑)

은 산재보험 50주년

을 기념해 개최한 ‘산

재보험 체험수기 공

모전’ 입상작 15편을

선정했다. 지난 3월 10일부터 4월 30일까지 진행한

이번 공모전에는 총 121편의 수기가 접수됐다. 건축 공

사 현장에서 산재 사고로 하바신이 마비되었지만, 산

재보험 혜택으로 사회복지사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이상우(48) 씨가 수기 ‘한 알의 밀알이 되어’로 최

고상인 고용노동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15편의 입상작

은 공단 사보 <희망나무>와 SNS 등에 연재하고, 장려

상 이상의 작품은 편찬 중인 <산재보험 50년사>에도

수록할 예정이다.

대전병원 근로자건강센터 개소

공단 대전병원(병원

장 이규성)은 지난 5

월 29일 대전테크노

밸리(유성구 테크노3

로) 2층에서 50인 미

만 대전권 영세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무료 직업

건강 서비스를 제공하는 근로자건강센터 개소식을 갖

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이날 개소한 근로자건

강센터는 근로자의 질병·직무 스트레스 상담, 업무 적

합성 평가, 근골격계 질환 프로그램 등 직업건강 서비

스를 제공한다.

종이 없는 진료 차트

통합의료정보시스템(EMR) 오픈

공단 안산병원(병원

장 임호영)은 지난 6

월 1일 신시스템인 통

합의료정보시스템을

병원 전반에 오픈했

다. 다가오는 8월에는 인천병원을 비롯해 2015년에

창원·대전·순천병원에도 EMR을 오픈할 계획이다.

태백지사 청사 이전

공단 태백지사(지사장 김동기)는 지난 6월 16일 새로

운 청사로 이전했다. 신청사 주소는 강원도 태백시 황

지로 181(황지동)이다.

희망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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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산재보험 UCC 공모 ‘대상’ 작품(희망의 끈을 놓지 마세요, 김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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